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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에선…/민단과 조총련(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5)

    ◎“흔들리는 조총련”… 이탈자 해마다 급증/사회주의 붕괴·김정일 체제 불안감 큰 몫/이탈 「제3세력」 포용하는 민단노력 절실/남북화해 물결따라 두 단체 교류 조짐도 재일동포 2세 전월선(36·여)씨는 일본에서 화려한 각광을 받고 있는 오페라 가수다.그녀는 지난해 비제의 「카르멘」으로 한국무대에도 데뷰했다.그러나 전씨의 화려한 무대 뒤에는 둘로 갈라진 재일동포 사회가 안고 있는 분단의 아픔이 짙게 깔려 있다. 청중들의 열광적 박수소리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녀는 남·북으로 국적이 갈린 가족과 만나야 한다.그녀의 가족은 일본사회의 민족차별과 함께 또 하나의 비극인 민족분단의 비극 속에 살아가고 있다.전씨의 국적은 처음에는 조선(북한)이었다.그러나 지난 93년 한국으로 바꾸었다.그녀의 아버지도 한국 국적이다.그러나 어머니와 동생들의 국적은 조선이다.한 가정에서 조차 국적이 남·북으로 갈라져 있다. 재일동포 사회는 그녀의 가족과 같이 재일본 대한민국민단과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로 나누어져 있다.민단자료에 따르면 현재 68여만명의 재일동포중 민단계는 49만여명,조총련계는 18만여명으로 나타나 있다.그러나 조총련계가 24만여명이라고 추산하는 사람들도 있다. 재일동포사회는 당초 1945년10월 「조선인연맹」이라는 하나의 단체로 출발했다.그러나 1946년 「조선건국촉진 청년동맹」과 「신조선건설동맹」을 비롯 20여개의 산하단체가 공산주의자에 의해 독점됐던 조선인연맹을 탈퇴,새로운 단체를 구성함으로써 둘로 나뉘었다.냉전의 이데올로기 대립이 재일동포 사회도 이처럼 둘로 갈라놓았으며 오늘도 그러한 대립과 갈등은 청산되지 못하고 있다. 민단은 초창기 재일동포에 대한 세금투쟁,외국인등록령 반대투쟁 등을 시작으로 재일동포의 권익옹호와 민생안정를 위한 여러가지 민족차별 철폐 투쟁을 해왔다.83년에는 지문날인제도 철폐를 위해 1백80여만명의 서명을 받았으며 64년 도쿄올림픽과 88년 서울올림픽 때는 한국선수단을 지원했다. 민단은 75년7월 조총련계 동포들의 모국방문을 위한 성묘단 사업을 추진,많은 호응을 받았다.성묘단 사업을 계기로 조총련중 민단으로 전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당초 조총련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인구 비율이 역전됐다. 그러나 민단은 고질적 파벌싸움과 재일동포에 대한 권위주의적 태도 등으로 적지 않은 비난을 받고 있다.이름을 밝히기 거부한 한 재일동포는 민단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아주 싫어한다』고 잘라말했다.그는 『민단은 단비만 받고 재일동포를 위해 하는 일도 별로 없으며 지나치게 권위주위적』이라고 혹평했다.민단 관계자들도 민단에 대한 무관심과 비난을 어느정도 인정하고 있다.신용상 단장은 『봉사하는 민단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재일동포사회의 또하나의 세력인 조총련은 더욱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냉전 종식과 사회주의 붕괴와 함께 북한에 대한 실상이 알려지며 이탈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져 조총련은 지금 크게 흔들리고 있다. 조선학교 교장과 조총련의 주요 직책을 맡았던 박로호 모국방문추진도쿄위원회 부위원장(70)은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하여」라는 책을 통해 사회주의의 모순을 깨달은 후 조총련에 대한 깊은 회의를 가졌었다』고 말한다.그후 조총련을 탈퇴한 박부위원장은 『조총련의 중요한 지지 기반인 지식인들의 갈등이 특히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북한의 경제 지원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조총련계 상공인들도 많은 지원에도 불구하고 북한 경제가 날로 악화되는데 실망,크게 흔들리고 있다.지난해에는 조선상공연합회 부회장을 비롯 조총련계 상공인 1백40여명이 집단 탈퇴하기도 했다. 조총련은 한덕수의장이 88세의 고령에다 병을 앓고 있어 허종만 책임부의장 체제로 전환하려 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북한도 외화공급원인 조총련을 끌어안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김정일에 대한 인식이 김일성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 외교관은 말한다. 조총련은 사실 당초 민단보다 지식인이 많았고 잘 조직됐었으며 지금도 경조사와 경제 문제 해결 등을 적극 지원하는 등 강한 조직관리를 하고 있다.그러나 사회주의 몰락이라는 시대의 큰 흐름과 북한의 모순과 어려운 실상을 깨달은 많은 사람들은 조총련을 떠나고 있다.최근에는 매년 5천∼6천여명이 탈퇴했으며 지난해 이탈자는 6천2백여명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총련을 떠난다고 해서 그들이 민단에 가입하는 것은 아니다.대부분이 민단에도 가입하지 않고 있다.조총련도 민단도 아닌 「제3의 세력」이 늘어나는 것이 오늘의 재일동포 사회 현실이다.그런 가운데 민단과 조총련의 화해 움직임과 교류도 조금씩 많아지고 있다.하지만 본격적인 화해는 아직은 미래의 일로 남아 있다.세계적 이념의 대결 시대가 막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민족 내의 이념적 대립은 한반도 뿐아니라 이국땅에서도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인터뷰/민단 중앙본부 신용상 단장/재일동포 권익보호·생활안정에 최선/“참정권 획득,민족차별 철폐 앞장/권위주의 탈피 봉사단체로 일신” 재일본 대한민국민단 중앙본부의 신용상단장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민단은 앞으로도 재일동포들의 권익보호와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하며 『지금의 최대 현안은 재일동포들의 지방참정권 획득』이라고 말했다. 세금은 같이 내면서도 재일동포라는 이유로 지방자치단체에서조차 참정권이 인정되지 않는 것은 반드시 바뀌어야 합니다.참정권문제 등 민족차별철폐와 함께 재일동포들의 인식도 이제는 일본 영주로 정착되고 있으며 민단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지난해 4월 당초 이름에서 임시로 머문다는 의미의 「거류」라는 말을 빼고 재일본 대한민국민단이라고 바꾸었습니다. 재일동포들의 의식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민단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고 있어 우려됩니다.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민단에 계속 관심을 갖고 있으나 민단에 신세질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신(판신) 대지진때의 위로금 분배를 민단에서 맡아 했듯이 재일동포를 위해서는 조직이 반드시 필요합니다.민단은 일본정부에 대해서도 중요한 압력단체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그러나 민단은 권위주의적이라는 비난을 겸허하게 반성하고 봉사하는 단체의 역할을 해야 하며 그러한 방향으로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파벌의 알력과 후계자문제,계속 늘어나는 귀화현상 등 많은 어려운 점이 있지만 결코 비관하지는 않습니다.한국정부도 재일동포들이 한국에서도 사업을 하거나 불편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서울시/관변단체 사무실 환수

    ◎1백80여곳 연내 도상 전환/「새마을」「자유총련」등/연간 임대료 10억 예상 서울시는 4일 새마을운동 시지부 등 관변단체들이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는 시청이나 구청의 사무실을 올해말까지 환수하거나 유상사용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시청사를 무상사용하고 있는 단체는 새마을운동 시지부 등 6개 단체 4천7백37㎡로 이들 사무실을 유상으로 전환하면 연간 3억5천5백만원의 수입증대가 예상된다. 시청사를 무상사용하고 있는 단체는 ▲새마을운동 시지부(종로구 인사동) ▲한국자유총연맹(동작구 신대방동) ▲바르게살기 협의회 ▲민주평화통일협의회(이상 마포구 노고산동) ▲시우회(동대문구 용두동) ▲대한민국 헌정회(중구 을지로1가)등이다. 또 자치구청사를 무상사용하고 있는 관변단체는 새마을 관련단체 33곳을 포함해 모두 1백79개소 9천2백60㎡다.시는 이들 사무실을 구청장 책임으로 유상사용으로 바꾸거나 환수하도록 했다.이에 따라 연간 6억9천5백만원의 자치구 재정수입증대가 예상된다. 시는 이들 단체의 유상사용 전환이유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사용할 경우에만 무상사용토록 한 지방재정법 시행령을 들고 있다. 그러나 새마을운동 조직법,한국자유총연맹 육성에 관한 법률 등에 이들 단체가 공유재산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근거가 있고 대부분 재정자립도가 낮아 시의 이같은 방침에 반발할 것으로 여겨진다.
  • 북한과 팩시 교환 남총련 5명 수배

    【광주=최치봉 기자】 전남지방 경찰청은 28일 북한 대학생들과 팩시밀리를 통해 집회시기 등을 사전 조정한 광주·전남지역 총학생회 연합(남총련) 의장 이몽석(23·전남대 총학생회장)씨등 5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거에 나섰다. 경찰은 이씨 등이 북한의 김책공대와 조총련 산하 일본 조선대 등과 3자 동시 집회를 개최하기 위해 지난 13일과 25일 두 차례에 걸쳐 김책공대 학생위원회와 팩시밀리를 통해 서신을 주고 받았다고 밝혔다. 이씨 등은 또 집회장 연단에 김책공대와 일본 조선대의 깃발 1개씩을 설치한 협의도 받고 있다.
  • 북 「군사경제」 존재/GNP의 20∼40% 규모

    ◎미 국제경제연 보고서 【도쿄=강석진 특파원】 북한에는 일반 국가경제와 별도로 대규모 군사경제가 극비리에 존재,국민총생산(GNP)의 20∼40%를 점유하고 있다고 일본 산케이신문이 28일 미 국제경제연구소 보고서를 인용,보도했다. 보고서는 또 조총련이 북한에 대한 외국인 투자의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북한 상품수출의 2배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북한경제에 중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반경제를 통제하는 국가계획위원회와 전혀 별개로 비밀리에 기능하는 군사경제 체제는 군부가 독자적으로 광산·농장·무기·군복공장·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2백50만 군인중 과반수가 군사경제 활동에 종사하고 있다.
  • 문민시대 달라진 사법부 위상 반영/간첩단사건 첫 재심결정 의미

    ◎“객관성 상실·강압에 의한 허위자백” 인정/군사정권 조작의혹 사건 청구 잇따를듯 지난 80년 조총련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신춘석(56) 서성철(60·사망) 신귀영씨(57) 등 기결수 3명에 법원이 재심개시 결정을 내린 것은 유례 없는 일이다.문민정부와 함께 달라진 사법부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형사소송법은 재심의 사유를 무죄선고 이상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군사정권이 처리한 간첩사건 중 조작의 의혹이 큰 사건에 대한 재심청구가 앞으로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부산지법 제4형사부(재판장 김태우 부장판사)는 『원 판결 재판부가 재심청구인 3명에 대한 범죄사실의 부존재에 관한 고도의 개연성이 있는 상태(예컨대 진범이 나타는 경우와 범죄의 증명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피고인들의 간첩행위 등을 유죄로 인정했다고 볼 수 있다』고 재심개시 결정 사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공소장에 나타난 간첩행위 지령자인 신수영씨가 문서를 통해 자신은 조총련 간부가 아니며,간첩행위를 지령했거나 이들을 만난 적이 없다고 진술했고,공판 당시 일본에 거주하던 신씨가 증인으로 공판에 출석해 진술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청구인들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공소장에 나타난 상황 자체가 간첩행위 당시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도 꼽았다.예컨대 지난 66년 6월 초 신춘석 피고인이 일광∼기장∼송정∼해운대를 운행하는 버스에서 051탄창 및 수영비행장 등을 촬영했다고 했으나 이 도로는 지난 70년쯤 개통됐다. 서성칠 피고인이 지난 72년 4월 초 부산중구 광복동 근학도서에서 부산 항만시설 지도 등을 구입했다는 내용 역시,근학서점의 개업일자가 75년 1월1일이고 부산항만 시설지도도 취급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밖에 청구인들은 지난 80년 2월25일과 3월24일까지 부산시경 대공분실에 연행돼 40∼70여일간 영장없이 구금돼 조사를 받았고,4월10일까지는 피고인들을 조사한 기록이 일체 없다.그 이후 자백이 구체성을 띠는 점 등은 강압수사에 따른 허위자백 또는 임의성 없는 자백임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신귀영씨는 전주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며 서성칠씨는 89년 5월9일 교도소에서 사망했다.10년형을 선고받은 신춘석씨는 지난 90년 출감,경남 양산군 일광면에서 큰 어려움 속에 살고 있다. 문재인 변호사는 『그동안 너무 엄격하게 운영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던 재심제도가 이번에 활성화되는 계기가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 공익관변단체 지원은 강화해야(사설)

    ◎관변단체 선별의 지혜를 이른바 관변단체들이 일대 시련을 맞고 있다.자체수익없이 관의 지원과 협조로 유지해온 이들 단체들이 바뀐 시대상황에 따라 자력으로 유지되기를 요구받게 되었고 특히 지자체 선거 이후 민선단체장들이 활동비명목으로 지급하던 「보조금」을 전면 중단함에 따라 존폐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활동예산은 물론 무상대여나 협조를 받던 사무실조차 사용할수 없게 된 것이 대부분의 사정이라 근거가 흔들릴 위기에 이르고 있다. ○지원단절 등으로 존폐위기에 관변단체들에 대해서는 그동안 일부에서 부정적인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국가사회를 위한 기여 등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은 무시 또는 외면당하는 경향이 있어온 것이 사실이다.그런저런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함으로써 모든 「관변단체」가 해롭고 불필요한 단체의 대명사처럼 지칭되어온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공익 관변단체란 어느 사회에나 있게 마련이고 우리에게도 있어야 한다.정부가 해야 하는 일이지만 여유가 없거나 성격상 정부가 직접 할 수없는 공익사업이 있으므로 그것을 맡아주고 그럼으로써 사회개혁의 보완역할을 하고 정부대신 국민운동 차원의 일을 맡아 주는 그런 단체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관변단체」라기 보다는 국가 지원의 「국공익단체」인 이들은 적극 지원육성해 가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국공익 위한 필요성 인정해야 우선 예를 들어도 새마을 운동본부,바로살기 협회,자유총련맹 같은 단체들이 그들이다.국민 개개인의 의식화수준이 높아 민주시민의 기능을 해내는 사회에 아직 못이른 우리는 국민적인 합의를 실천으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국민운동을 벌여야 한다.산업화과정에서 그런 기능들을 충분히 해왔고 앞으로도 역할이 요구되는 단체들이 있다.자유수호의 민간적 역할에 지대한 공을 세워온 관변기관도 있다.그 기능은 여전히 필요하다. 관변단체라면 모두 무조건 친여단체정도로 보고 그런 시각이 관변단체에 대한 부정적 시각의 근원이기도 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그러나 지금은 민주화시대다.실제로 우리는 몇번의 선거를 통해 시각교정의 기회를 거쳤다.또한 금융실명제나 재산등록법등 제도 개혁으로 관변단체의 정치적 이용이 불가능해졌다.앞으로는 더욱 그럴 것이다. ○정치적으로만 판단은 무책임 그러므로 지금과 같은 관변단체에 대한 일괄 추방같은 방법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근대화 과정에서 크게 공헌해온 단체들을 고사시키는 것과 같은 일은 모처럼 뿌리내린 유능한 공익기능을 버리는 것과 같은 손실을 부를 것이다.정부는 엄정히 선별하는 과정을 거쳐 적극적인 육성책과 지원책을 마련해야 하리라고 본다.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지자체는 소수민족의 독립단체가 아니다.그 또한 국가기구이고 정부기구의 하나이다.국가를 위해 필요한 공익단체(공익단체)에 대해 덮어놓고 지원을 끊어 추방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특히 중앙정부와 정치적 배경이 다르다고 해서 지자체가 독자적으로 지원을 끊는 정치적행위를 관변단체를 상대로 행사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옳지 못하다. ○유용하게 활용할 방법 강구를 그보다는 오히려 관변단체의 오염성을 적극 청산시켜 사회봉사나 의식개혁운동및 정신함양,도의실천운동등의 주체가 되게하여 유용하게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세계에서 우리나라를 찾아 끊이지 않고 유학생이 찾아오는 새마을 운동의 경우는 우리의 정신적 자산이다.가꿔야 할 중요한 자원인 것이다. 관변단체들 스스로가 수익사업을 개발하여 자립도를 유지하는 일도 바람직스런 일이다.스스로 그런 노력을 하는 일과 함께 그럴 수 있도록 돕는 일이 또한 중앙과 지방의 관에서 지원·협조할 일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아무런 대안도 없이 무차별 소탕하 듯하는 무책은 곤란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천명해둔다.
  • 실형 확정 간첩단 사건/법원,첫 재심개시 결정

    ◎부산지법,“강압수사 의한 자백 의구심” 【부산=김정한 기자】 부산지법 제4형사부(재판장 김태우부장판사)는 24일 간첩단 사건과 관련,징역 10∼15년씩의 실형이 확정된 신춘석(56),서성칠(60·사망),신귀영씨(57) 등 3명의 가족 및 본인이 낸 재심청구사건에 대해 재심개시결정을 내렸다. 국가보안법 및 간첩단사건의 기결수에 대해 법원이 재심개시 결정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피고인들이 40∼70여일간 영장없이 장기간 구금된 점,자술서도 시간이 경과할수록 자백의 내용이 구체성을 띠는 점 등을 비춰 볼 때 강압수사에 의한 자백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검찰은 피고인들이 72년 4월 초순 부산시 중구 광복동 근학서점에서 부산항만 시설지도 등을 구입했다고 했으나 이 서점은 75년 1월 문을 열었고 지도도 취급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두 신씨와 서씨 등 3명은 부산항 항만시설과 군사시설 등을 조총련에 넘겨준 혐의로 80년 5월30일 국가보안법위반 등 혐의로 구속된 뒤 같은 해 10월15일 부산지법으로부터 두 신씨는 징역 15년 및 자격정지 15년,서씨는 징역 10년 및 자격정지 10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대구고법과 대법원은 81년 2월19일과 같은 해 6월23일 이들의 항소 및 상고를 이유없다고 기각했다. 재심개시결정은 재심청구가 이유있다고 인정될 때 내리는 것으로 결정이 내려지면 형의 집행이 정지된다.
  • 검찰,“「5·18 위증고발」 수사”/기소촉구 결의대회·시위 잇따라

    서울지검 공안1부(장윤석 부장검사)는 22일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전두환 전 대통령과 이희성 전 계엄사령관,주영복 전 국방장관 등 5·18사건 관련자 7명을 위증혐의로 고발한 것과 관련,5·18 고소·고발사건에 대한 정밀검토작업에 들어가는 등 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위증여부를 가리기 위해 당시 국회 청문회자료와 수사결과를 면밀히 비교,검토하기로 했다』고 말하고 『피고발인에 대한 조사일정과 방법은 5·18사건 고발인들의 항고와 재항고등 법적 불복절차가 남아 있어 이를 먼저 마무리한 뒤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민변이 위증혐의로 고발한 5·18사건 관련자는 전 전대통령과 이 전계엄사령관,주 전 국방장관등 3명을 포함,최웅 11공수여단장,안부웅 11공수여단 61대대장,권승만 7공수여단 33대대장,임수원 3공수여단 11대대장 등이다. 국회에서의 증언 및 감정 등에 관한 법률상 위증혐의가 드러나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고 공소시효는 7년으로 89년말 증언한 전 전대통령은 96년 12월30일,나머지 피고발인들은 올 12월에 공소시효가 만료된다. ◎1백36개 단체 참가 【광주=최치봉 기자】 광주·전남지역의 1백36개 재야단체로 구성된 「5·18 학살자 재판회부를 위한 공동 대책위원회」(공동대표 조비오 신부)는 22일 하오 전남도청앞 광장에서 시민과 학생 등 3천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5·18 책임자 기소관철을 위한 광주시민 결의대회」를 가졌다. 이에 앞서 전남대·조선대 등 「광주·전남지역 총학생회 연합」(남총련) 소속 대학생 5백여명은 이 날 상오 6시 40분쯤 광주지검 앞에 몰려가 「5·18 책임자 재수사」 등을 요구하며 최루탄으로 저지하는 경찰에 맞서 5일째 격렬한 시위를 했다. ◎연희동 진출 시도 한국대학 총학생회 연합 소속 대학생 1천8백여명은 22일 하오 6시30분쯤 서울 연세대에 모여 5·18 광주사태 책임자의 처벌을 요구하는 집회를 가졌다. 학생들은 집회를 마친뒤 전두환·노태우 두 전대통령의 집이 있는 연희동 쪽으로 가려다 경찰이 막자 학교앞 도로를 점거하고 3시간여동안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로 전경과 학생 20여명이 다쳤으며 경찰이 학생들의 시위를 진압하며 신촌세브란스 병원 앞마당에 최루탄을 마구 쏘아 입원하고 있는 환자들이 큰 고통을 겪었다.
  • “5·18 기소하라” 무기농성/광주·전남 공대위

    ◎“관철안되면 정권퇴진 운동” 【광주=최치봉 기자】 광주·전남지역 1백36개 단체로 구성된 「5·18 학살자 기소관철을 위한 공동대책위」(공동대표 문병란조선대교수)소속 인사 등 30여명은 21일 하오7시부터 광주시 동구 계림동 민주당 광주시지부 사무실에서 5·18 학살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공대위는 이날 상오 기자회견을 갖고 『특별법제정 및 특별검사제도입과 5·18진상규명을 위해 전국의 모든 민주세력과 연대해 투쟁하겠다』며 『이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김영삼 정권의 퇴진운동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남총련 6백여명/4일째 격렬시위 【광주=최치봉 기자】 광주·전남지역 총학생회(남총련)소속 대학생 6백여명은 21일 하오7시 30분쯤 광주시 북구 중흥동 민자당 광주시지부앞에서 『5·18 진상규명과 특별검사제도입』등의 구호를 외치며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는 경찰에 맞서 4일째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 「삼풍」과 한국 이미지/강석진 도쿄특파원(오늘의 눈)

    지난달말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뉴스가 거의 매일 일본 TV에 방영되고 있다.해외에서의 파문도 적지 않은 형편이다.한국 건설업체들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점은 익히 짐작되는 바다.성수대교 붕괴사고의 파문이 가라앉기도 전에 또 발생한 이번 사고는 「한국」의 이미지에 결정적 타격을 가한 것같다. 특히 97년 건설시장 개방을 앞두고 우리 건설업체들은 연간 공사규모 85조엔에 달하는 일본시장이 금세기 마지막 황금시장이 될 것으로 보고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왔었다.이들에게 이번 사고는 청천벽력이다.일본 건설시장은 기본적으로 지명입찰제도로 운영된다.발주자로부터 입찰 자격이 부여돼야 경쟁 대열에 들어갈 수 있다.일본에 진출한 S종합건설의 지점장은 『97년부터 건설시장이 개방된다 하더라도 누가 입찰 자격을 주겠느냐』고 고개를 흔든다.그는 『98년 공공부문이 일반경쟁입찰로 바뀌어도 민간부문에서는 자기 집 지어달라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비관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고의 파장은 여기서 머물지 않고 있다. 한국 관광산업은 일본이 주요 시장.이곳의 일부 여행업체들이 사고 발생 후 한국 거래여행사들에 숙박시설의 안전보장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와 관광업계를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한동안 덤핑 경쟁으로 부도업체가 속출하는 불황을 겪다 겨우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는 여행업체들로서는 혹이 붙은 셈이다.관광공사 도쿄지사는 곧 여행사 대표자 회의를 열어 구체적 대책을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여행업체들의 안전 요구는 지난해 성수대교 추락 사건 당시에는 없던 것이다. 우리 정부는 지난 20여년 동안 조총련계 교포들을 상대로 「모국방문단」사업을 벌여왔다.최근 재일동포들이 많이 거주하는 한 지방본부는 32명의 방문단 모집을 끝내고 오는 26일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가 이 가운데 19명이 참가를 취소,결국 단체방문단을 구성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났다.19명은 「호텔이 위험하지 않을까」라는 이유를 들었다.이와 관련,한 민단관계자는 『조총련의 유언비어 때문이라고 판단된다』면서도 『성수대교 붕괴,유람선 화재,대구 가스폭발,삼풍백화점 붕괴 등으로 한국의 안전도에 대한 일본지역의 평판은 땅에 떨어진 것은 사실』이라고 한숨짓고 있다.일본지역에서 삼풍사고의 파문이 예상외로 넓고 깊게 번지고 있는 상황이다.
  • 북/대외경제기구 2원체제로(오늘의 북한)

    ◎대외경협추진위­외자 유치·수­출입 투자업무 전담/국제무역촉진위­무역상사들 통합… 무역업무 총괄 최근 북한이 대외 경제기구들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작업을 완료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는 북한의 조선국제무역촉진위원회(위원장 이성록)가 일본측에 쌀지원을 요청하면서 그 전모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민간차원의 남북경협 창구역할을 맡았던 고려민족산업발전협회는 회장이었던 이성록이 국제무역촉진위원회로 옮기면서 다른기구로 업무를 이관,사실상 해체된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고려민족발전협회는 지난 92년 발족되어 대외경제위원회의 지도아래 남한 기업인들에 대한 방북 초청장 발급업무등을 담당한 바있다.그러나 북한은 최근 그 기능을 우리측과 쌀회담의 막후 실무파트너 역할을 했던 조선삼천리총회사와 조선광명성총회사등으로 이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의 대외경제기구 개편의 골격은 정무원 대외경제위원회(위원장 이성대)를 정점으로 투자업무와 무역업무를 분리,2원체제로 한 것이다.이에 따라 외자유치 및 수.출입 업무는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위원장 김성우)에서 전담하게 됐다.반면 국제무역촉진위는 정무원 내의 각부.위원회 소속 무역상사들을 산하로 통합해 무역업부를 총괄하는 기능을 맡게 됐다. 북측은 또 대외경제협력추진위산하에 대외경제협력총국을 설치하는 한편 그 아래에 다시 4개의 활동기구를 신설한 것으로 나타났다.남한기업의 투자유치를 담당하는 「민족개발지도국」과 조총련과의 합영.합작사업을 총괄하는 국제합영국 및 나진­선봉지도국,「국제협력국등이 그것이다.대외경제협력추진위는 또 산하에 조선설비총회사를 운영,각종 플랜트 수출및 해외건설 지원업무를 담당한다.이회사는 최근 미국기업 「스탠튼」사와 화력발전소 건설등 대북합작사업을 추진 중이다.이처럼 대외경제기구들에 대해 대대적 수술을 하게 된것은 명령.보고체계의 혼선등 비효률적 요소를 줄이기 위한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동안 각 기관들이 독자적으로 남한기업인들에게 방북초청장을 남발해 북한 내부에서도 상당한 알력이 있었다는 후문이다.특히 남한을 포함한 외국기업을 상대하는 일부 대회 경제기구 관계자들의 뒷돈거래 혐의가 포착되어 내부적으로 큰물의를 빚기도 했다는 것이다. 대외경제협력추진위」는 북한의 현정무원 조직.편제상의 기구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다만 두 기구의 책임자들인 이성록과 김정우가 모두 정무원직속의 「대외경제위」부위원장(차관급)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의 당국이라고도 볼수있다.〈구본영 기자〉
  • “한국·조선학교 졸업생에 일 국립대 입학자격 차별”

    ◎교포,유엔에 첫 제소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의 국립대학이 한국·조선학교 졸업생에게는 수험자격을 인정하지 않는 문제가 처음으로 유엔 인권위에서 논의된다고 일본의 마이니치신문이 11일 보도했다. 조총련계 민족학교인 조선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입학 자격검정시험을 본 뒤 일본 국립 교토대에 입학한 김해영씨(21·이학부 3학년)는 7월말부터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 인권위원회 차별방지 소수보호소위원회(차별소위)에 국립대학의 불평등 실태를 제소할 계획이다. 일본은 민단계 한국학교를 비롯해 조총련계 조선학교를 교육법상 정식 고등학교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대학입학자격을 부여하고 있지 않다.
  • 북 “김부자에 충성 불변”/김일성 1주 추모연회

    【내외】 북한은 9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김일성 사망 1주기 기념연회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충성불변」을 다짐했다. 북한 중앙방송이 이날 보도한 바에 따르면 당 중앙위원회가 주최한 이 연회에는 총리 강성산,부주석 이종옥·박성철·김영주·김병식,부총리 겸 외교부장 김영남,군총참모장 최광 등 당정 고위간부들과 조총련 의장 한덕수,밀입북한 고 문익환목사 부인 박용길씨도 참석했다.김정일과 김일성의 미망인 김성애는 불참했다. ◎추모행사 지역별 개최 【내외】 북한은 8일 전국의 도·시·군 및 연합기업소들과 군부대별로 김일성 추모대회를 일제히 진행했다.
  • 전·노씨 기소 요구/검찰청사 앞 시위/한총련 학생 80명

    「한국대학생총연합회」(한총련·의장 정태흥) 소속 대학생 80여명은 8일 하오 4시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 청사 앞에서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 등 5·18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들에 대한 기소를 요구하며 1시간 남짓 시위를 벌였다.
  • 현총련산하 현대강관·정공노조 등/「사회개혁안」 잇단 철회

    【울산=이용호 기자】 현대그룹노동조합총연합(현총련·의장 윤재건·구속중)소속 노조들이 올 임금협상안에 포함시켰던 사회개혁 요구안을 잇따라 철회했다. 22일 울산지방노동사무소에 따르면 한국프랜지 노조(위원장 성화섭)가 지난 21일 쟁의발생 결의를 위한 대의원대회에서 사회개혁 요구안을 철회했으며 쟁의 중인 현대정공 울산공장 노조도 사회개혁 요구를 임금협상과 별도로 협의하자고 제의,당초 요구를 철회했다. 현대강관 노조(위원장 남상철)도 이미 사회개혁 요구를 임금협상 과정에서 거론하지 않기로 내부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 남·북·일 새 3각관계(한·일수교 30년)

    ◎일의 「남·북 줄타기 외교」 대비해야/대북 수교협상 자세따라 한·일갈등 소지/끊이지않는 「망언」… 선린의 앞날 불투명 국교가 정상화된지 30년,한일양국관계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지난 65년 6월22일 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에 서명한 이후 양국 관계는 발전과 퇴보를 되풀이하고 있다.지난 30년동안 정치,경제,사회,문화등 모든 측면에서 양국 관계는 양적으로는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다.65년 2억 달러에 불과하던 양국간 무역액은 그동안 2백배 가까이 늘어 지난해에는 3백89억 달러를 기록했다.양국간 인적 교류도 65년 1만명에서 지난해 2백70만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양국이 이웃국가로서 결속력있는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고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한국쪽에선 「동반자」보다는 「반일감정」이나 「망언」이,일본쪽에선 「혐한」「추한 한국인」이란 단어가 언론에 더 많이 등장한다. 지난 연말 한국 외무부와 일본 외무성 당국자들이 여느해 보다 강하게 새해를 맞는 흥분을 느낀다고 털어 놓는 것을 본 일이 있다.광복 50년(일본에는 종전 50년이다),국교정상화 30년이라는 1995년의 역사성이 양국관계를 다루는 당국자들에게는 팔을 걷어붙일만한 의욕을 촉발하는 계기일 수 있을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도 몇차례 천명했듯 95년을 과거를 극복,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구축하는 원년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 당국자들의 바람이었다. 그러나 양국 정부의 의욕은 국민감정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쳤다.일본과의 수교 30년을 기념하는 것 같은 공식행사를 용인할 수 없는 것이 아직도 엄연한 우리 국민의 평균적 정서이기 때문이다. 양국 정부는 기념행사를 아예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에,이를 반민간 단체로 볼 수 있는 한일의원연맹(회장 김윤환/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으로 넘겼다.그러나 연맹측이 계획했던 행사조차 제대로 추진되지는 못했다.경북 예천 출신으로 「일본의 이미자」로 불리는 재일동포 가수 미야코 하루미의 서울,부산 공연은 문화체육부의 불허로 무산됐으며,한일청소년회관의 건립계획도 변경됐다.이달 일본에서,오는 12월 우리나라에서 기념우표가 발행되는 것 정도가 확실히결정됐을 뿐이다. 의원연맹측이 초대 조선총독을 지낸 데라우치(사내정의)가 한반도에서 수집해간 문화재를 반환하는 작업을 추진하는 것 정도가 계속 기대를 걸만한 사업이다. 양국 관계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한국과 일본이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차원에서 시각의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분석한다. 우선 한일 관계를 양자관계로만 볼 것이 아니라 다자간 관계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국제사회 내에서라면 한일 양국의 이익은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양국은 자유무역체제를 지향하고 그 안에서 국가발전 전략을 꾀하고 있으며,민주주의와 세계 평화를 지향하는 국가의 기본 이념도 같다. 일본 관계를 다루는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일본이 세계무역기구(WTO)사무총장 선출과정에서 김철수후보를 적극 지원하거나,우리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원하고 있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양국의 이해가 상당부분 일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처럼 국익이 일치하는 구조 속에서도 양국 국민들이 화합하지 못하는 것은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불충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 지적이다.일본인들 스스로의 지적처럼 『괴롭지만 과거를 바로 보지 않으면,미래는 없다』는 것이 한일관계의 현실이다. 한반도 및 동아시아 침략에 대한 사죄,군대 위안부문제,사할린동포 문제등은 양국이 해결해야 할 오랜 현안이지만,일본측은 어느것 하나 진심으로 반성하며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일의원연맹의 지철민 사무총장은 올해 사회당,자민당,신당 사키가케등 여당연합과 신진당이 추진하던 일본 국회의 과거사죄와 부전결의가 결국 신진당이 불참한 채 반성과 평화추구라는 용두사미로 끝나고,때를 맞춰 터져나온 와타나베(도변미지웅) 전외무장관의 한일합방과 관련한 망언이 아직 한일관계의 미래를 바라보기 어렵게 만드는 일본의 태도라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의 대북 쌀 제공 협상 과정에서 보여준 일본 정부의 미묘한 자세는 우리 국민과 정부 당국자들이 안고 있는 일본에 대한 원초적 우려감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의 한반도 전략은 무엇인가.일본은 과연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는가.한국민은 일본이 북한과의 수교를 이끌어낸뒤 한반도의 남북 양쪽을 저울질하는 줄타기 외교를 전개하며 이문을 챙기려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연스레 갖게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올해가 광복 50년,국교정상화 30년이라서가 아니라,북한과 일본의 수교가 본격화되는 시점이기 때문에,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일본 태도에 따라 한일 관계는 또 한차례 갈등하며 후퇴의 시기를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한국측 외교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지난 1월 고베 대지진 때 한국 국민들은 진심으로 안타까워 하며,구호물자를 보낸 바 있다.전문가들은 광복후 50년이 지나고 양국을 움직이는 세력이 전전세대에서 전후세대로 교체되면서 보다 합리적인 방식으로 양국관계가 전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신세대들은 미래를 위해 과거를 청산한다는 인식을 전세대보다는 어렵지 않게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또 우리사회가 갖고 있는 「낮에는 반일,밤에는 친일」이라는 식의 일본에 대한 이중적 잣대에 대해서도 공개적인 논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베스트셀러가 된 「일본은 있다」의 저자 서현섭씨(외무부 외교정보관리관)는 『한일관계의 지난 50년은 두나라 국민이 무시(DISREGARD)→불신(DISTRUST)→혐오(DISLIKE)라는 3D를 만들어온 세월』이라고 말했다.그는 『앞으로의 50년은 세 단어에서 부정을 의미하는 「DIS」 세글자를 떼어버리고 상호인정(REGARD)→신뢰(TRUST)→선린(LIKE)의 관계로 나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일관계 30년 일지 ▲1965년 6·22=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 서명 ▲8·28=한일협정 반대 학생 데모 및 위수령 발동 ▲12·18=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 발효 및 주한·주일대사관 상호개설 ▲1966년 1·17=한일간의 일본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법적지위와 대우에 관한 협정 발효 ▲5·27=일본 문화재 2천3백28점 반환 ▲19 67년 6·30=사토 에이사쿠 일본총리 방한,박정희대통령 취임식 참석 ▲1970년 6·16=한일 정기여객선(부관페리호) 취항 ▲1971년 2·5=일·북 재일교포 북송합의서 조인 ▲1973년 8·8=김대중 납치사건 발생 ▲1974년 8·15=조총련계 문세광,육영수 여사 저격 ▲1975년 9·15=조총련계 동포 성묘단 모국 방문 ▲1982년 7·26=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외교 문제 비화 ▲1983년 1·11=나카소네 일총리 첫 공식 방한 ▲1984년 9·6=전두환 대통령 첫 공식 방일 ▲1986년 5·18=일,대한 2백해리 어업수역 선포 ▲7·24=후지오 문부상 교과서 왜곡관련 망언 ▲1990년 5·24=노태우대통령 방일 ▲9·24=가네마루 자민당부총재 등 3당 대표 방북,일북수교 원칙 합의 ▲1991년 1·9=가이후 총리 방한,한일 우호협력 3원칙 발표 ▲1992년 7·6=일본정부 종군위안부 조사결과 발표,정부관여 인정 ▲11·8=노태우 대통령 실무 방일 ▲1993년 10·4=사할린 동포 관련,한일 실무협의회 ▲11·6=호소카와총리 실무 방한 ▲1994년 3·24=김영삼대통령 방일 ▲7·23=무라야마 총리 방한 ▲1995년 1·19=한국정부,고베지진에 구호품 전달 ▲6·5=와타나베 전외상 한일합방 관련 망언 ▲6·14=일본의회 과거 반성,평화 추구 결의 ◎지표로 본 양국관계/교역규모 급속 증가… 1백85배 늘어/경기둔화·국민감정 악화… 90년초 주춤/대일 누적적자 1천억불 시정 과제로 국교정상화 이후 양국간 경제교류는 빠른 속도로 진행돼 왔다. 80년대 말까지 교역과 투자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다가 90년대 초 국내 경기둔화와 노사분규 여파로 잠시 주춤했다.그러다 엔고에 힘입어 지난 해부터 기계류와 부품을 중심으로 산업협력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그러나 30년간 누적돼 온 대일 무역적자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65년 국교정상화 당시 대일 수출은 4천4백만달러였다.이것이 지난 해에는 1백35억2천만달러로 늘었고,대일 수입도 1억6천만달러에서 2백53억9천만달러로 커졌다.교역규모만 1백85배 신장한 셈이다. 반면 교역확대속에 65년 1억2천만달러였던 대일 무역적자가 86년 50억달러를 넘은 데 이어 지난 해에는 1백억달러 돌파(1백18억6천만달러)라는 반갑지 않은 기록까지 남겼다.그간의 누적적자만 이미 1천억달러를 넘었다. 좀 더 자세히 보면 국교정상화 이후 계속 늘던 대일 수출은 89년 1백35억달러를 고비로 줄기 시작,92년 1백16억달러로 떨어졌다.수입도 91년 2백11억달러에서 92년 1백95억달러로 감소했다. 일본의 대한투자가 전체 외국인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92년 건수기준 30.5%,금액기준 17.3%로 82∼86년 평균(건수 47.7%,금액 49.6%)에 못미쳤다.고임금으로 한국의 투자매력이 떨어진 탓도 있지만 과거사 문제로 국민감정이 악화돼 소원한 상태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93년 초 양국 모두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양국 경제관계에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됐다.국민감정과 정치논리보다 경제논리로 문제를 풀기로 양국 정상이 합의한 뒤 우리 정부가 먼저 수입선다변화 품목을 해제하는 등 관계를 개선해 나갔다. 교역액이 92년 3백11억달러에서 지난 해 3백89억달러로,일본의 한국투자는 92년 72건,1억5천달러에서 지난 해 1백32건,4억2천만달러로 각각 늘었다. 교역형태도 기계류와 부품·소재를 일본에서 들여다 경공업제품을 생산,제3국에 파는 「산업간 교역형태」에서 반도체와 철강 등 중화학제품을 서로 주고받는 「산업내 교역」으로 바뀌었다.일본으로서도 가격과 품질경쟁력이 있는 한국산 부품과 소재를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일본기업들의 투자도 저임금을 겨냥한 해외 생산기지화 전략에서 전략적 제휴형태로,기술협력도 한국의 일방적 기술이전 요구가 아닌 경제논리에 기초한 교류형태로 바뀌어 가고 있다. 엔고 지속과 세계경제의 지역주의화,미국과의 협상실패에 따른 무역마찰로 일본은 우리와 산업협력의 끈을 단단히 할 가능성이 높다.따라서 일본기업을 적극 유치,대일역조를 개선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그렇게 되면 기술이전도 자연스럽게 이뤄져 양국관계가 호혜와 동반의 관계로 성숙돼 갈 것이다.
  • 일 자민 「쌀」 비밀창구 가토 정조회장

    ◎“쌀주고 국교 트자” 대북정책 주도/남북비밀회담도 소상히 파악… 북서 정보 제공한듯 최근 남북한과 일본,3자가 북한에 대한 쌀제공 문제를 두고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는 가운데 일본 자민당의 가토 고이치(가등굉일·56) 정책조사회장이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대북한 쌀제공을 적극 주도하고 있기 때문. 그는 18일 나가노현의 한 강연에서 『무라야마 정권 동안 북한과 국교를 정상화해야 한다』면서 쌀 제공을 징검다리로 국교정상화까지 한숨에 풀어나갈 것을 역설하고 있었다.그는 이어 『18일 아침까지의 정보로는 (남북한 협상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해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는 남북한 협상의 내용을 자세히 파악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요즘 남북 쌀협상은 일본에서 정보가 심심찮게 흘러나온다.북한이 바로 일본에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그 연락이 닿는 곳이 가토 회장 쪽이 아니겠는가라는 것이 이곳 정계에서의 추측. 북한이 쌀문제를 기회로 대일본 접촉 창구를 사회당에서 자민당으로 바꾸면서 그는 북한과 가까워졌다.지난 3월 연립여당 대표단 방북시,그는 대표단에 끼지 않았지만 그의 측근들이 다수 동행,쌀 문제를 물밑 협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조총련에서 귀화한 일본인 실업가 Y씨도 그와 가까운 것으로 전해진다.또 지난 5월 북한의 이성록 국제무역촉진위원장이 쌀제공 요청을 위해 일본을 방문했을 때도 와타나베 미치오 전외상(방북대표단장)과 함께 중심적인 역할을 했었다. 가토 회장이 북한에 대한 쌀제공 문제에 적극 나서는 것은 그의 이력으로 볼 때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다.외무성 관리 출신인 그는 당직은 총합농정조사회장,농림부회장 등을 역임해 외교 및 농정통으로 행세하고 있다.북한 쌀문제는 그의 전공·부전공과목인 셈이다.게다가 지난 72년 첫 당선,8선의 관록을 자랑하면서 떠오르는 실력자로 대접받고 있지만 당내에서는 아직 「영 제너레이션」.범파벌조직 「그룹 신세기」를 이끌며 세대교체를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그래서 당원로들의 눈길이 곱지만은 않다.그로서는 북한 쌀제공문제가 잉여쌀 문제를 원만히 처리하고 북한과도 관계를 개선한다는 명분과 함께 실력을 과시해 당내 위상을 제고한다는 실을 거둘 수도 있는 중요한 건수인 셈이다.
  • “국민들 분열선동 안 속을것”/“의사표현 자유 박탈 말아야”

    ◎여야,김대중씨 정치재개 공방 여야는 16일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의 「정치재개」문제를 놓고 성명·논평등을 통해 공방전을 펼쳤다. 민자당의 박범진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김이사장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채우기 위해 교언영색으로 국민을 이간시키고 분열시키는 선동행위에 속아 넘어갈 국민은 없을 것』이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박대변인은 이어 『김이사장의 지역등권론은 13대 대선때 영남을 분열시키고 충청도를 떼어낸 뒤 호남만 단결하면 이길 수 있다는 4자필승론을 새로 포장한 위장된 호남패권주의』라고 성토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김대식 선거대책본부장은 『책임 있는 집권여당이 국민의 기본권인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마저 박탈하려는 행위는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며 『민자당은 김이사장에 대한 비난에만 골몰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정치적 갈등이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지 철저한 자기반성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지원 대변인은 『민자당이 남총련학생의 시위를 김이사장의 유세와 연관시켜 용공음해를 시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조합원은 실익 택했다/현대중 무분규타결 의미

    ◎집행부의 명분없는 연대투쟁에 쐐기/민노준 올 공동임투 전략 수정 불가피 해마다 악성 노사분규로 중병을 앓아오던 현대중공업 노사가 16일 임금협약에 대한 잠정합의안을 조합원 찬반투표에 부쳐 69.8%라는 높은 지지율로 타결지음으로써 노조창립이후 첫 무분규타결이란 신기원을 이룩하게됐다. 이에따라 4대 지방선거를 앞두고 1백여 산하 노조의 동시파업을 유도하고 있는 민주노총준비위원회의 공동임투계획에 차질을 주는 것은 물론 현총련과 전국조선업종노조협의회 소속 각 사업장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당초 노동전문가들은 올해도 현대중공업의 노사협상은 예년처럼 파업 등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했다.민노준의 방침대로 장외 공동임투와 노동관계법에 금지된 제3자개입 등을 결의한데다 해고자 복직,의료 및 교육개혁 등 회사측이 수용하기 곤란한 사회개혁 등을 협상안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또 지난 달 12일 발생한 현대자동차 해고근로자의 분신기도사건으로 조업거부와 직장폐쇄에 이어 공권력이 투입되는 등 혼전을 거듭했다. 그러나 막상 임금협상이 시작되자 노조측은 예상치 않은 상황에 직면했다. 집행부가 협상도 제대로 갖지 않고 쟁의발생신고를 결의하자 이에 불만을 가진 일부 노조원들이 무분규 타결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또 노조집행부가 주최하는 집회에 조합원들이 1천∼2천여명 정도만 참여하는 등 호응도도 적었고 쟁의예산 및 쟁의조직안 심의가 유보되는 등 노노갈등의 조짐까지 보였다. 회사측도 무분규시 격려금 1백% 지급 등 3백10%의 추가상여금을 보장하는 등 파격적인 임금인상안을 제시,협상분위기를 돋워갔다. 회사측은 특히 15일 교섭에서 협상 최대의 걸림돌이었던 해고자 복직문제도 교섭타결뒤 2주일안에 협의해 처리한다는 안을 제시,집행부측에 명분을 제공했다. 결국 명분과 실리가 주어진 상태에서 조합원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는 노조집행부는 별다른 선택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사실은 협상이 끝난뒤 운재건 위원장의 「칼날이 서 있는 줄 알았는데 녹슬었더라」는 말에서 확인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노사간 임금협상의 타결은 해고자복직문제가 재론되는 선례를 남기긴 했지만 조합원의 권익과 어긋난 조합활동은 조합원들의 지지를 받기 힘들며 무모한 연대투쟁은 노조의 투쟁력과 장악력을 저하시킨다는 평범한 교훈을 확인시켜 줬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 호화판 생활:상(북한 특권층 심층 해부:3)

    ◎일반주민은 상상못할 의·식·주 특혜/간장·된장까지 특제품 공급받아/12분도 쌀에 양복지는 영·일제 애용/고위층 병동따로… 수입 약품만 사용 평양시 중구역 역전동에 들어서면 고급스러운 2동의 아파트가 한눈에 들어온다.12층짜리 이 아파트가 여느 주택과 다른 점은 북한에선 매우 드문 복층구조로 돼 있는데다 각 가구의 면적이 70평을 넘는 호화판 아파트이기 때문이다.주민이 「정무원아파트」라고 부른는 이곳에는 이름 그대로 정무원부장과 정무원 산하 각 위원회 위원장들이 살고 있다.이 아파트엔 양복장이나 이불장 등이 붙박이로 시설돼 있을 뿐 아니라 소파·에어컨 등 가재도구 일체가 갖춰져 있다.따라서 집주인이 바뀔 경우 그냥 몸만 들어가도 사는 데 아무 불편이 없도록 돼 있다. 북한은 무산대중,노동자가 나라의 주인이라고 외쳐대고 있지만 실제에 있어선 지구상의 그 어떤 나라보다도 계급이 많고 계급에 따른 처우 또한 천차만별이다. 그렇다면 북한에서 부르주아적 호화생활을 하는 특권층은 과연 누굴까.강명도씨가 당·정·군으로구분한 특권층은 다음과 같다. 중앙위 부부장·부장이상과 정치국 위원·부주석. 부총리 겸직 부장을 포함한 부총리급이상,정무원 산하 각종 위원회(국가계획위원회·경공업위원회·교육위원회 등)위원장이상. 인민무력부 부부장,인민무력부 대장(군사령관)이상. 이들 특권층에겐 주택과 의료서비스에서 식품공급·교통편의제공 등에 이르기까지 각종 특혜가 주어진다.그 가운데서도 김정일(김정일)과 그 직계가족이 누리는 특혜는 상상을 초월한다. ▷식료품 공급◁ 이들 특권층에게 공급되는 식료품은 모두 「룡성특수식료공장」에서 따로 제조된다.평양시 용성동에 소재한 이 공장의 종업원은 1천2백명.된장·간장에서부터 각종 통조림과 과자류·훈제식품·소주·위스키에 이르기까지 수백종의 식품을 생산한다.쌀도 농약을 치지 않은 황해남도 연안지방산만을 취급하며 12분도이상의 고급미로 도정,공급한다.강명도씨는 서울에 와서 용성간장·된장만큼 맛있는 것을 먹어본 적이 없다고 말해 그 품질이 우수함을 시사했다.「룡성특수식료공장」에선 일체 묵은 원료는 쓰지 않으며 북한에서 나지 않는 원료는 몽땅 외국에서 수입한다고 한다. ○직급따라 공급 차등 이곳에서 생산되는 각종 식료품도 공급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급이 달라진다.호위사령부가 직접 관장하는 공급에는 3종류가 있는데 김정일부자와 그 직계가족용이 「1호공급」이다.1호공급용 식품생산라인은 무장보초에 의해 항시 감시될 뿐 아니라 종사자는 한달에 한번씩 필히 신체검사를 받아야 한다. 「2호공급」은 당중앙위 정치국 위원들과 후보위원·부주석 등이 그 대상이며 당중앙위비서와 부장·부부장·과장들은 「3호공급」대상자다. 특히 정치국 후보위원 이상에겐 경호차원에서 호위사령부가 별도의 차량편으로 이틀에 한번씩 식료품을 직접 공급해준다.이들에 대한 호위사령부의 식품공급가격은 일반의 경우보다 대체로 싸며 대금정산은 한달에 두번 현금으로 나누어 한다.3호공급 대상자들은 각각 중앙당공급소및 정무원공급소를 통해 식료품을 구입한다. ▷김부자 가족 물품공급◁ 김정일부자와 그 직계가족에 대한 일체의 물자조달업무는 금수산의사당(주석궁) 경리부에서 맡는다.양복과 작업복·구두 등은 보통강구역 서장동 소재 경리부5과에서 직접 만들어 공급한다.김정일에겐 호위사령부 피복부에서 따로 옷을 만들어 올리기도 한다.강성산총리를 비롯한 다른 특권층은 중구역 중성동 소재 남산양복점에서 옷을 맞춰 입는데 가족들은 제외된다.양복지는 조총련이 보낸 일제가 대부분이며 더러 영국제가 사용되기도 한다. ○결혼하면 자격상실 ▷의료서비스◁ 이들 특권층은 의료부문에서도 최고수준의 서비스를 제공받는다.북한에서 최고수준을 자랑하는 병원은 봉화진료소.이곳엔 당정치국 위원및 그 가족과 당중앙위 위원이상,그것도 본인만 출입할 수 있다.당정치국 위원의 자녀가 결혼할 경우엔 봉화진료소출입자격을 상실한다.그 대신 남산진료소로 이관된다.남산진료소는 이들 외에 당중앙위 위원 직계가족의 진료를 맞는데 역시 자녀가 결혼하게 되면 이 병원 대신 평양의대 진료5과로 진료수혜처가 바뀐다.북한주재 외교관은 대개 남산진료소에서 의료서비스를 받는다.남산진료소엔 10만달러이상을 북한당국에 헌납한 북송동포도 출입할 수 있다.평양의대 진료5과엔 결혼한 정치국 후보위원이상의 자녀도 출입이 가능하다.항일 빨치산 유자녀와 고위간부 자녀에게도 평양의대 진료5과의 치료혜택이 주언진다. ○외교관도 특별대우 평양 보통강구역에 자리잡은 봉화진료소는 대지만 10만평이 넘으며 주위환경은 물론 경관 또한 시설 못지 않게 뛰어나다.여기엔 정치국 위원과 부주석이상 고위직용 개별병동이 따로 마련돼 있으며 의약품은 전량 일본이나 독일에서 수입,사용하고 있다. 얼마전 친구 문병차 서울의 명문 모대학병원을 찾은 강명도씨는 거의 까무러칠 뻔했다고 한다.비좁은 병실과 녹이 묻어나는 침대,시장바닥처럼 복작대는 병원을 처음 봤기 때문이란 것.그러면서 그는 서울의 대학병원들은 평양의 봉화진료소나 남산진료소엔 명함조차 내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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