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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총련 상경 격렬시위/특별검사제 요구… 연희동 진출 시도

    전남광주지역 총학생회연합(남총련)소속 학생 3백여명은 28일 낮12시10분쯤 서울 연세대 북문 앞에서 「특별검사제 도입」등 구호를 외치며 연희동으로 진출하려다 저지하는 경찰에 맞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대학생들은 이날 시위에서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북문을 통해 빠져나가려다 최루탄을 쏘며 경찰이 저지하자 2시간여만에 교문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이에 앞서 5·18 학살자처벌 특별법제정 범국민 비상대책회의(상임공동대표 이창복등)소속 회원 30여명도 이날 낮12시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장기신용은행 본점앞에서 집회를 갖고 「5·18관련자 전원 처벌」과 「특별검사제 도입」 등을 촉구했다.
  • 북 찬양 유인물 배포/단대 학생간부 구속

    【천안=이천열 기자】 충남 천안경찰서는 28일 단국대 천안캠퍼스 총학생회장 김성곤(26·회계과 4년)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김씨는 지난 3월31일부터 4월2일까지 교내에서 열린 제3기 한총련 대의원 대회 참가자들에게 북한을 찬양하는 내용이 담긴 유인물 2천장을 나누어준 혐의다.
  • 과격시위문화도 청산해야(사설)

    1천여 한총련학생의 격렬한 시위가 있었다.「5·18특별검사제도 도입과 대선자금공개 촉구」가 그들의 구호다.아직도 폭력시위에 대한 미련이 청산되지 못한 학원가의 모습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젊은이들이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앓으며,희생을 감수한채 투쟁한 것은 이른바 「군사문화」를 청산하는 것이었다.이제 그것은 지난 시대의 부끄러운 유물이 되었다.그 결과 모든 언로가 개방되고,대화와 토론참여의 모든 기회가 열려 어떤 의사와 뜻도 주장하고 개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그러나 그것과 대응되어 탄생된 극한적인 학원가의 시위문화는 아직도 청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사회를 위해 투쟁한 지난날을 생각해서라도 군사문화와 함께 전시대의 낡은 유산으로 역사의 강에 떠내려보냈어야 마땅한 것이 폭력시위문화다.그것을 아직도 기회만 있으면 의사표시수단으로 행사하려 하는 대학생집단이 아직도 있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그것은 군사문화의 완전한 청산도 불가능하다는 논리일 수 있어 서글프기조차 하다. 특히 학생의 시위이슈가 걸핏하면 정국을 「장외」로 끌고 다니려 하는 특정정치권과 같다는 사실에 우리는 더욱 실망을 느낀다.일부러 사주한 것은 아닐지라도 잘못된 본보기를 젊은이로 하여금 흉내내게 하는 잘못의 책임은 져야 한다.타협과 조화가 생명인 참여민주주의 아래서,찬란한 미래를 지닌 젊은 주인공이 구시대의 행태 그대로 권력쟁취만을 목적으로 삼는 야권의 정치적 악습을 흉내낸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아직 성숙하지 못한 혈기의 젊은이에게 고의로 본을 보여주며 소요를 충동이는 정치권의 저의는 아주 불쾌하다. 비지성적이고 시대를 역행하는 군사문화수준의 폭력시위는 이제 진정으로 청산할 때가 되었다.높아진 시민의 정치의식수준으로 모든 감춰진 의도가 남김 없이 들켜지게 되었다.좀처럼 청산되지 않는 과격시위에 시민은 염증을 느끼고 있고 그것을 조장하는 세력에 대해서도 충분한 비판을 하고 있다.그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한총련 연대서 격렬시위/4백명 연희동 진출 시도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의장 정태흥) 소속 학생 4백여명은 27일 상오 9시15분쯤 서울 연세대에서 5·18 관련 집회를 갖고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 집이 있는 연희동으로 가려다 경찰이 저지하자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이날 「전직대통령 체포」 등의 구호를 외치며 연희동쪽으로 진출하려다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앞을 가로막자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돌을 던지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인 뒤 2시간여만에 교내로 되돌아갔다.
  • 해외동포 어디에 얼마나(서울신문 50돌 특집)

    ◎그들의 위상은 어떠한가/6대주 142국에 520만명 근면·성실로 기반 확고히/2년새 5.7% 증가… 중국에 최고 194만 거주/미 180만·일 69만·중앙아시아 46만명 생활/최근 취업·유학·투자이민 급증/망국·가난의 한 딛고 현지 빠른 적응/정·관·재·교육계서 활약 숱한 인재 배출/한민족 동질성 유지가 최대의 과제로 구한말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이주로부터 시작된 한국이민사가 90여년에 이르면서 해외교민수가 5백만명을 넘어서고 있다.중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그리 길지않은 역사이지만 한민족 특유의 근면성과 성실성으로 세계 곳곳에서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어느 나라에 얼마나 살고 있으며 그들의 현재 위상은 어떤가를 알아본다. ▷교민현황◁ 94년12월31일을 기준으로 외무부가 파악하고 있는 우리의 해외교포는 모두 5백22만8천36명이다. 지역별로는 아시아에 2백72만,미주에 1백96만,유럽에 52만,중동에 9천2백,아프리카에 3천2백명이 분포하고 있다. 국가별로 볼 때는 중국에 1백93만명으로 가장 많다.이어 미국에 1백53만,일본에 71만,러시아를포함한 독립국가연합에 46만명이 거주중이다. 전세계 1백92개국 가운데 우리동포가 살고 있는 나라는 무려 1백42개국이나 된다.중국이나 미국·일본등처럼 역사적인 이유로 우리 민족이 옮겨간 경우도 있다.그러나 우리동포의 분포가 이처럼 넓어진 것은 최근 늘어난 선교이민과 태권도교관의 파견 때문이라는 것이 당국의 설명이다. 2년마다 해외교포의 현황을 파악하는 외무부가 92년12월31일자로 파악한 해외교포는 4백94만3천5백90명이다.해외교포는 지난 2년동안 5.7%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해외교포가 증가한 것은 교포의 2세·3세·4세가 태어났고,해외경제활동의 증가로 우리 기업등의 파견원이 많이 진출하기 때문이다. 해외교포 가운데 95%인 4백70만명은 거주국의 국적을 갖고 있거나 거주국에서의 영주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나머지 5%는 상거래나 취업·유학등으로 체류중이다. ▷중국 교민◁ 중국에 한국인이 건너간 것은 매우 오래 전의 일이다.이미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부터 전쟁포로나 인질·공녀등의 형태로 한국인의 이주가 시작됐다.그러나 중국에 2백만의 교민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엽,일본의 한반도 침략이 본격화하면서부터다.외무부에 따르면 을사조약이 체결된 이후 한국민의 중국이주가 급격히 증가,1907년에 7만1천명,1910년에 10만9천명,1916년에 20만명,1921년에 30만7천명이 조국을 떠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해방이후 80만명 귀국 1945년 이전까지 약 2백16만명의 한국인이 만주지역에 거주했으며,해방과 더불어 80만명이 귀국하고 나머지가 잔류했다. 현재 우리교민은 중국내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12번째 규모다.전체의 약 97%인 1백87만명이 길림성,흑룡강성,요령성등 동북 3성에 집중 거주하고 있다.특히 길림성내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는 82만명이 밀집해 살고 있다. 중국 교민들은 해방후부터 냉전시대까지 남한과는 별다른 접촉을 가질 수가 없었다.따라서 정부도 이들에 대해 특별한 정책을 세울 수 없었다. 지난 88년부터 우리정부가 사회주의권 교민의 자유로운 모국 방문을 허용함으로써 중국동포와의 교류가 본격화됐다. ○동북 3성에 집단촌 그러나중국교민들의 모국 방문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교민들이 경제수준이 월등한 모국에서 돈벌이를 하고자 대거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밀입국,불법취업,취업사기,절도·강도등의 사건이 잇따랐다. 정부는 이에 따라 중국교민들에 대한 사증발급 심사를 강화하고,이들이 고국으로 돌아오는 것보다는 현지에서 성장하도록 지원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중국내에서 교민들은 한인이나 다른 소수민족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교육수준과 경제·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또 중국 교민들은 스스로를 한국인 혹은 북한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조선족 중국인으로 생각한다. ▷미국 교민◁ 한미우호통상조약에 따라 1903년 한국인 1백21명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떠나면서 미국 이민사가 시작됐다. 이후 1961년 해외이주법이 제정된 이래 지난해까지 모두 62만6천명이 미국으로 이주했다.이 기간 동안의 총 해외이주자 79만2천명 가운데 미국이민 비율이 79%를 차지하고 있다. 재미교민의 상당수는 한국내의 중산층,식자층 출신이며 자녀의 교육문제,경제적 이해관계,혹은 한국사회에서의 불만 때문에 미국에 건너간 사람들이다. ○구한말 하와이로 나가 이들은 다른 민족들에 비해 비교적 짧은 이민 역사에도 불구하고 미국사회 내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물론 언어장벽과 사고방식의 차이 때문에 아직 미국사회의 주류에 진출하는데는 한계를 보이지만,최근들어 의사·변호사등 전문직 진출자가 늘어나고 있다.캘리포니아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된 김창준씨가 대표적인 한국교민의 성공사례이다. 교민 1.5세와 2세 이후세대는 현지에서 교육,성장해 비교적 빠르게 현지에 동화되어 가고 있다. 또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개선되면서 교민 사회에 북한과의 교류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있고,과거 음성적으로 활동해오던 친북인사의 활동도 표면화하고 있다고 외무부 당국자는 밝혔다. ▷일본 교민◁ 일본에 거주하는 교민들은 다른 지역의 교민들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태평양전쟁 발발후 일제가 전쟁수행을 위해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강제적으로 징용해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강제 징용자의 숫자는 19 45년 당시 2백10만명에 달했으나,해방후인 46년 이후 65만명이 잔류하고 있다. 재일교민들은 오사카를 필두로 나고야·고베등지에 밀집해 거주하고 있으며,주로 상업 제조업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 일본교민들은 본국에서의 좌·우익 대립을 그대로 답습,민단과 조총련으로 나뉘어 대립하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그러나 최근에는 남북간의 국력차이가 워낙 커져서,민단과 조총련이 특별히 경쟁하는 양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교민1세들은 우리국적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민족주의적인 성향으로,일본에 귀화하는 것에 대해 큰 거부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교민 2세이후부터는 모국과의 연대의식이 희박해지고 있으며,이에 따라 일본에 귀화하는 사람이 늘고있다.지난 50년 이래 일본에 귀화한 한국인은 모두 20만명 정도다.특히 교민 2,3세들은 일본인과의 결혼을 선호해 91년 결혼한 사람 가운데 82.5%가 일본인 배우자를 맞이했다. ▷독립국가연합지역 교민◁ 현재 옛 소련 지역내에는 러시아에 11만명,우즈베키스탄에 22만명,카자흐스탄에 10만명,우크라이나에 9만명등 모두 46만명의 교민이 거주하고 있다.이들은 대부분이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에서 강제이주된 우리 교민의 2,3세들이다. 각 지역으로 강제 이주된 뒤 이들은 자연적으로 그곳의 문화에 동화되었다.따라서 우리말과 문화적 전통을 많이 잃은 상태고,러시아 극동지역에 거주하는 교민들 말고는 우리말로 대화가 가능한 사람도 적다. 그러나 이들은 국제고려인단체연합회등 31개의 교민단체를 조직,모범적으로 혈연의식을 이어가고 있다.또 이를 바탕으로 각종 문화단체 활동,출판물 발간활동과 함께 대학교수,영농지도자를 다수 배출했다.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각 공화국은 우리교민의 근면성,높은 교육수준과 사회기여도를 평가하고 있다. ○사회기여도 평가 받아 이 지역에 대해서 정부는 물론 민간기업에서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우리업체와 현지 교민들간의 고용과 취업지원이 이뤄지도록 노력하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내각 안에 「민족문제 및 지역정책부」가 설치돼 소수민족과의 화합 및 육성지원 정책을 마련한다고 표방하고있으나 체첸 공화국 사태에서 보듯이 러시아의 범위를 이탈하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는다.정부는 이러한 점을 감안,교민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보다는 민족의식과 민족적 일체감을 고양하기 위해 한글교육,전통문화 재생,학술·체육 교류를 중심으로 지원책을 마련해가고 있다. 사할린에 거주하는 4만명의 교민들 가운데 1세들을 본국으로 귀환하는 문제는 한·러·일간의 현안으로 협상이 계속되고 있다. ▷이주추이◁ 우리나라의 최근 해외이주자 추이를 보면,80년 3만3천3백명에서 83년에 2만3천3백명으로 하강세를 보이다,86년 3만7천80명으로 다시 늘었다.이후 다시 감소해 93년에는 1만4천4백명으로 매우 낮은 수치를 나타냈다. 그러나 사업과 취업이주는 지난 10여년동안 꾸준히 증가했다.이는 그동안의 연고초청 이주,즉 막연한 동기의 해외이주보다는 뚜렷한 목적을 가진 이주형태가 늘어나고 있음을 반영한다. 이민간 사람이 다시 돌아오는 역이민도 늘어나고 있다.80년 역이주자수는 1천49명으로 그해 이민자의 2.8%였다.86년에는 역이민자의 비율이 7%를 차지했다가 89년 25%로 급증했으며,91년 40%,92년 50%를 기록한 뒤 93년에는 60.65%를 차지,이민자의 반이상이 되돌아오는 현상을 보였다. 역이주자수가 늘어나는 이유는 우리국민의 소득수준이 향상돼 국내에서도 안정된 생활이 보장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외무부는 설명하고 있다.같은 이유로 해외이주자수도 점차 감소하고 있다고 외무부는 밝혔다. 최근 국내외에서 해외교민들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의 하나로 해외동포에 대한 이중국적을 허용하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해외교민에게 이중국적을 부여, 국내 왕래를 자유롭게 하고 각종 할동 및 재산권 행사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견은 교민의 권익을 크게 신장할 수 있는 방안이기는 하지만 여러가지 문제점을 수반한다. 우선 교민들이 국적을 가진 두나라로부터 납세와 병역의 의무를 동시에 부여받게 되고, 범죄가 발생할 경우 자국민 불인도 원칙을 고수, 외교적 마찰이 발생할 가능성이 많다. 또 납세·병역 등 의무를 다하는 국민들과 비교할 때 권리행사와 의무이행의 형평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다른 국민들과 위화감이 조성될 우려가 크다.
  • 5·18 특별법 촉구 제2차 맹휴 거부/서울대 총학생회

    서울대 총학생회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이 오는 12월1일 실시하기로 결정한 「5·18 특별법 제정 촉구와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사건 규탄을 위한 1백만 학도 제2차 동맹휴업」을 거부하기로 결의했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지난 16일 「비자금과 5·18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서울대 특별대책위」 회의를 열고 『한총련이 제시한 동맹휴업의 시기는 부적절하고 실효성도 없어 이같이 결정했다』고 18일 밝혔다.
  • 5·18 특별법 제정 광주도심서 시위/남총련 5백명

    【광주=최치봉 기자】 전남·조선대 등 광주·전남 지역 총학생회 연합(남총련)소속 대학생 5백여명은 18일 하오 5시30분 쯤부터 광주시 동구 중앙로와 금남로 등 도심에서 5·18 학살자 처벌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2시간여 동안 시위를 벌였다.
  • 북한 프로복싱(외언내언)

    72년 뮌헨올림픽 사격 소구경에서 세계신기록(5백99점)을 세우며 북한에 첫 올림픽금메달을 안겨준 이호준은 이렇게 말했다.『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받들어 미제의 심장을 겨눈다는 마음으로 한발 한발 쏘았다』.20년 뒤인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출전선수단 결단식에서 김정일은 『경기장에 나서는 선수는 돌격선에서 총을 들고선 군인과 같다』고 독려했다.북한의 스포츠가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를 명료하게 보여준 말들이다. 북한의 「정치용어사전」은 스포츠에 대해 『신체를 다방면적으로 발전시키며 집단주의 정신과 혁명적 동지애를 배양함으로써 국방력을 강화하고 공산주의건설을 성과적으로 수행하는데 이바지하기 위한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따라서 북한의 스포츠는 생산력 증대·국방의 강화·김일성부자 우상화와 직결되어 있다.학교·사회·직장등 대중스포츠도 그렇지만 엘리트스포츠도 마찬가지. 그러나 근년들어 북한의 엘리트스포츠가 적잖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비생산적이고 퇴폐적인 자본주의 경기』라고 매도해왔던 프로복싱을 받아들였을뿐 아니라 세계무대로의 진출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 그 좋은 예. 92년 7월 프로권투협회를 창설한 북한은 조총련을 통해 프로선수훈련에 필요한 기자재를 반입하는 한편 「4·25선수단」「압록강선수단」등에서 본격적으로 유망선수를 발굴·양성해왔다.그리고 93년 4월 67명의 선수가 출전한 가운데 최초의 「공화국프로권투대회」를 갖기도 했다.아직 전반적인 수준은 낮은 편이지만 플라이급의 최철수,밴텀급의 이광식 등은 타이틀에 도전할만한 기량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여기에 자신을 얻었는지 최근 WBC(세계복싱위원회)에 공식가입했으며 WBA(세계복싱협회)가입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북한이 세계프로복싱에 뛰어든 것은 외화벌이 때문으로 알려졌다.별다른 투자비용이 들지않는 데다 주먹하나로 많은 돈을 거머쥘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짐작된다.프로복싱으로 얼마나 많은 외화를 벌어들일지 알 수 없지만 참으로 궁색한 고육지책이 아닐 수 없다.
  • 민단­조총련 해방 50돌 합동 심포지엄/도쿄서

    ◎“이젠 이념굴레 벗고 재일동포 화합 이루자”/본국 정세 휘말리지 말고 우리위치 찾을때/분파주의 벗고 귀화자와의 알력 극복해야 해방 50주년을 맞아 재일동포들의 새로운 존재 형태를 모색하는 심포지엄이 3일 도쿄에서 개막됐다.이번 심포지엄은 3일 「재일동포의 화합」을 주제로 주제발표와 토론을 가진데 이어 4일 「재일동포의 법적·사회적 지위」를 주제로 계속되며 오는 18,19일 오사카에서 「재일동포의 생활과 경제활동」,「재일동포의 민족교육과 문화」를 주제로 열린다. 남북분단과 재일동포사회의 분열속에서 한국적과 조선적을 가진 동포들이 함께 자리를 하면서 재일동포의 공동체를 진지하게 모색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특히 이번 심포지엄과 관련,조총련측이 「반동분자들의 책동」이라고 비난하고 민단이 소극적인 가운데 심포지엄이 열린데 대해 참석자들은 「기적」이라고 입을 모았다.이날 참석자들의 주제 발표내용은 다음과 같다. ▲문경수(45·리쓰메칸(입명관)대 조교수)=재일동포의 분열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지만 초기에는일본 공산당의 영향,그 뒤에는 남북분단에 의해 분열됐다.한국전쟁의 결과 분열이 결정적으로 됐다.당시의 분열은 조직의 분열이었다.그러나 65년 한일협정결과 재일동포 사회까지 분열에 이르렀다.이같은 분열은 재일동포의 운동이 본국직결형이었기 때문이다.이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운동 속의 하나로 존재하도록 상대화를 못시킨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신기수(64·텐리(천리)대 강사)=해방당시 재일동포들은 노래와 춤으로 해방을 맞았다.일본인들이 망연자실해 있을 때 동포들은 자각속에 해방을 맞았고 그 정열로 노천학교를 지어 후세를 교육하기도 했다.한국은 정치범이 8월16일 풀려났지만 일본은 2달뒤에나 풀려났다.당시 풀려나는 일본인 정치범조차 맞이하러 간 사람의 90%는 재일동포였다.이처럼 세상변화를 기대한 재일동포들이었지만 계급투쟁 우선으로 나간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조련(재일본조선연맹,조총련의 전신)은 2회 대회때까지 동반자인 민족주의자를 모두 추방해버렸다. ▲김총령(52·통일일보 편집장)=재일동포 사회의 분열이 남북분단과 이데올로기라고 하지만 운동 지도자들의 첨예주의 과격주의 운동속에서 출세하려는 사람이 결국 동포운동을 미군정과 대립하도록 가져가고 탄압받게 만든 면도 있다.구체적으로 파고 들어가 반성하지 않으면 안된다.올해 해방50주년을 화합하지 못한 채 맞이했다.반성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3세들이 재일동포 운동의 중심이 되고 있는 만큼 본국정세에 휘말리는 운동이 아니라 재일동포로서의 위치를 분명히 인식하는 운동이 돼야 한다.또 여러가지 단체와 운동의 존재의의와 권리가 인정되는 민주적 운동이 돼야 한다.상대를 향해 「적색 스파이」,「안기부 앞잡이」등으로 「레테르화」해서는 안된다. ▲김규일(57·재일동포의 생활을 생각하는 모임 대표)=재일동포 사회는 위기에 처해 있다.스스로 문제해결능력을 높여야 한다.민족적 민주적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가 바람직스럽다.지방할거주의,정치적 분파주의를 극복해야 한다.사회적으로는 귀화자가 늘어가고 있는 것과 관련,귀화자와 비귀화자간의 간극을 극복해야 한다.또 일본 각지에서 풀뿌리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는 재일동포 시민운동과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 “간첩 대비책 강구를”/자유총련 성명

    한국자유총연맹(총재 최호중)은 1일 최근 북한의 간첩침투사건과 관련,성명을 통해 『연이은 무장공비의 침투는 김정일집단이 대한민국을 무력과 폭력으로 전복하려는 냉전시대의 사고를 버리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성명은 또 『비자금에 휩싸인 정치권은 이번 심각한 사태에 왜 한마디 말이 없는가』라고 묻고 『정부는 대간첩작전의 장비와 인원을 보강하는등 새로운 대비책을 강구하라』고 촉구했다.
  • “한점 의혹없이 진상 밝혀야”/노태우씨 비리조사­시민·각계 반응

    ◎국가의 수치… 엄정한 법 집행 필요/전 대통령 소환되는 일 다시 없어야 재임중 비리때문에 헌정사상 처음 전직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는 모습을 TV 생중계를 통해 지켜본 시민들은 『국가의 수치』라며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그러면서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참회의 마음으로 모든 의혹의 진상을 낱낱이 밝히는 국가에 대한 마지막 봉사를 기대했다. 특히 대부분의 시민들은 『노씨를 구속수사해야 한다』고 잘라 말하고 『검찰은 비자금문제 뿐만 아니라 부동산투기와 해외 재산은닉,재임당시 각종 비리 의혹 사건까지 철저히 수사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나아가 전직 대통령이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는 비극의 역사가 결코 되풀이되지 않도록 정치권과 기업들이 일대 각성해 「깨끗한 정치판」의 풍토를 일궈 나가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실련·민주노총준비위등 재야·시민단체들도 노씨의 구속수사를 촉구하고 이를 위해 집단행동을 결의했다. 서울대 사법학과 양승규 교수는 『정말 부끄럽고 침통한 일이지만 전직 대통령예우 문제에 얽매이지 말고 마땅히 노씨를 구속해서 법대로 처리해야 한다』고 말하고 『정치권도 이번 일을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소기업체인 영등포구 문래동 가나금형 사장 권홍철(43)씨는 『종업원 봉급과 세금에 치여 쩔쩔매는 판에 전직 대통령이 엄청난 부정축재를 했다는 사실에 화가 치민다』고 토로하고 『한점 의혹없이 친·인척비리까지 철저히 파헤쳐 엄정하게 법집행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역에서 대구행 열차를 기다리던 주부 김미정(32·서대문구 남가좌동)씨도 『노씨의 검찰 소환조사는 당연한 역사의 심판』이라며 『검찰은 어떠한 정치 요인에도 흔들리지 말고 공정한 수사를 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대학생인 서현수(22·서울대 정치학과 4년)군은 『이번 수사가 여론무마용으로 흐지부지 끝나서는 안된다』고 지적하고 『현정권이 노씨한테서 대선자금을 받았다는 의혹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공정하게 수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실련등 2백97개 재야·시민단체들은 오는 4일을 노씨 비자금 문제의 올바른 처리를 촉구하는 「국민행동의 날」로 정하고 이날 하오 3시를 기해 전국 모든 차량이 경적을 울리고 종묘공원에서 노씨 구속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갖기로 했다. 「전국민주노조 총연맹준비위」 소속 단위노조 대표자 1천여명도 이날 상오 여의도 장기신용은행 앞에서 노씨의 구속수사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에 앞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도 이날 상오 고려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학생의 날인 오는 3일 대학별 집회에 이어 노씨 구속을 관철하기 위한 대규모 시가행진을 벌일 예정이다. 경실련 시민입법위원 고계현 간사는 『노씨에 대한 검찰의 소환조사는 전직 대통령일지라도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는다는 선례를 남긴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면서 『엄정한 법집행으로 국가기강을 바로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서총련,비자금 규탄 집회/3백명 어제 연대서

    ◎노씨 구속­5·18 특별법 촉구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서총련)소속 대학생 3백여명은 27일 하오 5시 연세대 민주광장에서 「학살주범·비리주범 노태우 구속처벌과 5·18 특별법 제정및 특별검사제 실시를 위한 투쟁」집회를 가졌다. 이들은 집회에서 『현정권은 6공 비자금문제를 이용,최근 여론질타의 대상이 된 검찰의 5·18 처리문제를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짙으며 이는 내년 총선을 위한 국면전환용』이라고 주장하고 「5·18」과 비자금문제를 동일선상에 놓고 철저히 수사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집회가 끝난 뒤 연희동 노태우 전대통령집으로 가려했으나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이를 막자 학교앞 도로를 점거한채 1시간여동안 연좌농성하며 구속수사를 촉구했다. 경찰은 학생들의 가두시위에 대비해 도심및 연희동 일대와 민자당 지구당사 등에 32개중대 4천여명의 병력을 배치했다.
  • 6공 비자금 파문­시민·사회단체 반응

    ◎“이번 기회 정경유착 고리 끊어야”/비자금 국고환수·국정조사권 필요/관련자 철저수사… 6공 청문회 열자 「6공 비자금」에 대한 검찰수사가 본격화된 23일 비자금의 진상규명과 관련자 처벌을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의 성명과 집회·시위가 잇따랐다. 이들은 『믿어달라』며 「보통사람」임을 강조하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이미 드러난 것만도 4백85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며 정치자금을 받지 않겠다던 취임 직후의 약속과도 어긋나 국민들에게 심한 배신감과 분노를 안겨주고 있으므로 철저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천명했다. 계훈제·신창균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고문,김중배 「참여연대」 공동대표 등 사회원로 38명은 이날 하오 서울 중구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에 대한 엄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노전대통령이 명백한 비자금을 「통치자금」이라고 변명하는 것은 5·18을 통치권 행사 행위라고주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며 『6공뿐만 아니라 5공의 비자금도 똑같이 추적해 범법사실이 드러나면 준엄히 사법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일시대민주주의국민회의」소속 회원 1백여명은 이날 낮 12시 서울 여의도 중앙빌딩 앞에서 비자금의 진상규명과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는 「4천억 비자금 수사촉구 결의대회」를 가졌다. 이들은 결의문을 통해 『시민 탄압으로 정권을 잡은 세력의 정치자금이 드러나 온국민이 허탈과 분노에 빠져 있다』며 ▲노전대통령에 대한 세무조사 ▲비자금 국고환수 ▲국정조사권 발동 ▲6공청문회 개최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성명을 통해 『이번 사건은 아직도 우리사회에 남아 있는 정경유착의 명백한 증거』라며 『노전대통령측이 「통치자금」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부정한 정치자금 수수 사실을 감추고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경실련은 앞으로 이같은 비자금 조성을 막기 위해 ▲금융실명제 강화 ▲내부 고발자 보호를 위한 법률제정 ▲비실명계좌에 대한전면조사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은 『정부가 이번에도 축소수사를 통해 5·6공 세력을 비호한다면 문민정부의 정통성이 부정되는 것은 물론 통치기반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전국민주노조 총연맹준비위」도 『노전대통령 소유로 드러난 천문학적 거금은 재벌의 로비자금일 가능성이 크다』며 『자금조성 경위를 철저히 규명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도 성명을 내고 『민주화와 정의사회를 외치던 대통령과 주변인사들이 권력을 이용,수백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은 국민들로 하여금 실망과 좌절을 느끼게 하는 끔찍한 사건』이라며 『정치적 타협에 의한 졸속처리가 아닌,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사결과를 내놓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혐의가 있으면 전직 대통령이라도 성역없이 조사하는 것만이 국민의 의혹을 푸는 길』이라며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한편 전남대·조선대 등 「남총련」소속 대학생 3백여명은 하오 4시30분쯤광주시 동구 금남로3가 광주은행 네거리 등 시내 곳곳에서 노전대통령의 사법처리 등을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 북송 일인 「옥수수 주식병」 신음/「아이치 모임」서 증언

    ◎일의 동생 야스모토/“돈·약 보내달라” 전화 자유왕래 방안 호소 일본 나고야시의 국제센터빌딩에서 21일 열린 「귀국자 가족을 돕는 아이치의 모임」(대표 하기와라 시게오 와코대 교수) 주최의 강연회에서 일본으로 귀화한 재일동포여성 야스모토 사쿠코(안본좌구자·51)씨는 북송가족의 애절한 삶의 고통과 북한의 어려운 실상을 밝혔다. 야스모토씨는 그녀의 언니가 북한으로 간 북송가족.그녀의 언니는 23살이었던 지난 60년 남편등 가족과 함께 「귀국」하기 위해 북송선을 탔다.일본에 있는 귀국자들의 가족·친척들은 북송교포들의 비참한 삶을 잘 알지만 북한에 있는 부모·자식·형제의 안위를 염려해 입을 열지 않는다.그저 부지런히 돈과 물건을 보내고 남몰래 눈물을 흘릴 뿐이다.인질인 셈이다.야스모토씨도 그랬다.그러나 그녀는 이날 『북송자 가족중 누군가 입을 열지 않으면 문제해결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강연에 임한다』고 비장하게 말문을 열었다. 언니는 울면서 말리는 가족들에게 「차별이 없는 조국으로 간다.자리잡으면 부를께」라면서 떠나갔다.지금은 황해남도에 살고 있다.언니는 늘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배려로… 잘 지낸다」라고 편지했다. 지난 83년 어머니를 비롯한 우리 가족은 언니를 만나러 북한을 방문했다.23년만의 상봉. 가슴이 벅찼지만 언니와 우리 가족 사이에는 통역·주민·안내원 등 10여명이 끼어들었다.친밀한 말을 나눌 수 없었다.언니는 23년전 일본을 떠나가면서 니가타에서 한벌 사 입었던 가디건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언니는 그 곱던 손도 형편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9월6일 북한으로부터 콜렉트 콜(수신자 부담)로 국제전화가 걸려왔다.언니는 「신장약 간장약 그리고 페라글라병 약을 보내줘」라고 말했다.언니는 울먹이고 있었다.「어떻게든 혼자 힘으로 살려고 했는데….뭐든지 좋으니까 도와줘」라고 말했다.페라글라병이 무어냐고 물으니 영양부족병이라고 말했다.옥수수를 주식으로 할 때 생기는 병이었다. 그 두달전에 언니의 막내딸로부터 편지가 있었다.조카는 「어머니는 요통,큰 오빠는 후두열,가운데오빠는 신장염,셋째 오빠는 급성간염,그리고 조카는 눈병을 앓고 있습니다.미안한 부탁이지만 약을 보내주세요.될수록 빨리 보내주세요.약이 안되면 돈이라도 보내주십시오」라고 부탁해 왔었다. 그녀는 여기서 강연을 마치면서 북송가족의 자유왕래 실현을 위해 북한 조총련 일본 모두가 노력해야만 할 것이라고 간절히 호소했다.
  • 최장기수 김선명씨 어제 환영집회 무산/경찰 원천봉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등 재야단체와 한총련 소속 대학생 3천여명은 21일 하오 5시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 노천극장에서 지난 8·15 특별사면때 석방된 미전향 최장기수 김선명(71)씨에 대한 대규모 환영집회를 열려고 했으나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됐다. 경찰은 이날 57개 중대 6천8백여명의 경찰력을 경희대 주변에 배치,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했다. 경찰은 이에앞서 20일 하오부터 서울 관악구 봉천6동 김씨의 집 주위에 전경 3개중대 3백60명을 배치해 김씨의 외출을 막았다. 이에 대해 주최측인 「민가협」측은 『이번 집회는 순수한 문화행사로 기획된만큼 집회신고를 하지 않았다』면서 『경찰의 원천봉쇄 방침은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 민자 당사 기습 잇달아/서울·인천서 「5·18」 특별법 요구

    18일 상오 3시55분쯤 서울 성북구 동서문동 민자당 성북갑지구당사무실에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회(한총련)」 대학생 20여명이 화염병 등을 던지며 5분여동안 기습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이날 4층 건물 3·4층에 있는 지구당사무실을 향해 화염병과 페인트병 20여개를 던져 유리창 5장을 깨뜨린 뒤 「5·18 학살자 처벌과 특별법 제정」등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다 경찰이 출동하자 달아났다. 경찰은 현장에서 김모군(19·성균관대 농경제학 1년)등 3명을 붙잡아 시위가담 경위등을 조사하고 있다.
  • 변호사 1백50명 「5·18」 가두시위/사상 처음/민변 소속

    ◎한총련 13명 민자당사 한때 점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회장 고영구) 소속 변호사 1백50여명은 16일 낮 12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5·18 관련자 기소촉구대회」를 갖고 검찰청사 앞까지 1시간가량 가두시위를 했다. 변호사들은 성명서를 통해 『수백명의 동족이 학살된 사건에 대해 검찰이 불기소처분을 내린 것은 법치주의실현 차원에서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민변」 관계자는 『변호사들이 특정사안에 대해 조직적·계획적으로 시위에 나선 것은 건국 이후 처음』이라며 『앞으로 5·18 관련자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질 때까지 지속적 활동을 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찰,전원 연행 16일 상오 9시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소속 대학생 13명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민자당사에 난입해 6층 정책평가위원장실을 점거하고 5·18 책임자처벌과 특별법 제정 등을 요구하며 농성하다가 10시쯤 모두 경찰에 연행됐다. 경찰은 상오 9시45분쯤 정책평가위원장실에 최루탄가스를 쏘며 2개중대 2백40명을 들여보내 학생들을 모두 붙잡아 영등포경찰서로 연행,심모군(19·전북대 무역1년)등 13명을 상대로 난입경위와 배후조종 여부등을 조사하고 있다. 연행된 학생들은 전북대 3명,경북대 2명을 포함해 부산공업대·서울시립대·서울신학대·인천시립대 등 9개대학 소속이다. 이들은 이날 각자 버스 등을 이용해 민자당사 앞으로 와 화염병 1개와 쇠파이프 8개를 옷안에 숨긴채 직원들의 출근시간을 이용,민원인인 것처럼 꾸며 당사로 들어가 정책평가위원장실을 점거했다. 학생들은 이어 집기일부를 들어내고 대형 유리창 4장을 깬 뒤 5·18 특별법 도입및 책임자처벌 등을 요구하는 유인물 1백여장을 뿌리며 농성에 들어갔다.
  • 밀입북 여대생 2명 오늘 판문점 귀환

    조국통일 범민족 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은 범민족대회 남측 대표자격으로 지난달 14일 밀입북한 정민주(22·인천대 건축3제적),이혜정(20·가톨릭대 회계2)양등 한총련 소속 여대생 2명이 3일 하오 3시 판문점을 통해 귀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총련은 이날 판문점에 대규모 환영단을 파견키로 했으며 경찰은 밀입북 여대생 2명을 귀환 즉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는 한편 환영단 학생들의 판문점 접근을 원천봉쇄 한다는 방침이어서 충돌이 예상된다.
  • 전국 3만여명 「5·18 시위」/「동맹휴업」 이틀째

    ◎13개 도시서 「문민」 들어 최대/시민단체·서명교수 등 동참/서울 도심 한때 전면 마비… 최루탄 해산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소속 전국 1백20여개 대학의 동맹휴업 이틀째인 30일 서울·부산·대구·광주 등 전국 13개 도시에서 5·18 특별법 제정을 위한 제5차 국민대회가 일제히 열렸다. 전국에서 3만여명이 참가,문민정부이래 최대 규모인 이날 대회에는 학생·재야단체는 물론 사회·시민단체도 가세해 하오 늦게까지 도심 곳곳에서 거리행진과 시위가 이어졌다. 특히 전국 99개 대학 교수 6천4백여명이 이날 상오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5·18 서명교수 모임」을 발족하고 전국 초·중·고 교사 1만여명도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서명에 동참하는 등 5·18 불기소 파문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한총련도 「5·18 책임자 체포결사대」 2천∼3천여명을 조직하고 학생의 날인 다음달 3일 총궐기하기로 해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날 하오 서울 장충공원에서는 전국연합과 경실련 등 20여개 재야·시민·사회단체들로 이뤄진 「5·18특별법제정시민사회단체 연석회의」와 「5·18진상규명과 광주항쟁 정신 계승 국민위원회」 주최로 시민·학생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회가 열렸다. 이날 「국민위원회」 등은 오는 15일 지역별로 국회의원들에게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약서를 받은 뒤 16일부터 이틀동안 민자당사를 항의방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23일에는 5·18 기소촉구와 관련,70여만명의 2차 서명부를 국회에 전달하기로 했다. 참석자들은 집회를 마친 뒤 동대문로터리를 거쳐 종묘공원까지 3㎞구간에서 거리행진을 벌인데 이어 하오 7시쯤 종묘공원 앞 왕복 8차선 도로를 점거,시위를 벌였다.경찰은 하오 9시쯤 최루탄을 쏘아 이들을 해산시켰으나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이 시위로 동대문과 광화문 양쪽 차량통행이 2시간남짓 전면마비돼 청계로와 을지로 등 주변도로까지 극심한 정체현상을 빚었다. 또 정기 연·고전을 마친 연세대와 고려대생 1만여명은 지하철 2호선 아현역 주변에 모여 신촌로터리까지 거리행진을 벌인 뒤 하오 8시쯤 연세대에서 폐막제행사를 가졌으며 이 행사로 신촌로터리일대의 교통체증이 3시간남짓 계속됐다. 이에 앞서 휴업 이틀째인 이날 1백25개의 강의가 있던 서울대에서는 자체 휴강과 낮은 출석률로 1백여개 강좌가 무산되는 등 대부분의 대학에서 정상수업이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은 이날 전국 집회 및 시위장소에 1백35개 중대 1만6천여명을 동원,시민·학생들의 과격 시위에 대비했다.
  • 1백여 대학 「5·18 동맹휴업」 돌입

    ◎1만2천명 서울 도심 시위… 곳곳 교통마비/경찰·시위대 충돌 20여명 부상/오늘도 15개 도시서 대규모 집회 전국 1백여개 대학들이 29일부터 이틀간 5·18책임자 처벌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동맹휴업에 들어간 가운데 서울대 서강대 한양대 등 서울시내 26개 대학생 1만2천여명이 이날 하오 학교주변과 도심 곳곳으로 진출,쇠파이프를 휘두르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하오5시5분쯤 중구 회현동 신세계백화점앞 네거리에서 롯데백화점 앞길까지 왕복 8차선도로를 점거한채 5·18특별법 제정 등을 요구하며 3시간여동안 격렬한 시위를 벌이다 최루탄을 쏘는 경찰에 의해 강제해산됐다. 이 과정에서 일부 시민들은 학생들의 대열에 합류,경찰의 강제진압에 항의하기도 했으며 명동일대등 시내 중심가에는 최루탄냄새가 가득 차 업주와 쇼핑객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이중 3천여명의 학생들은 종로3가,대학로 등지로 몰려가 산발적인 시위를 벌이다 하오10시20분쯤 해산했다. 이날 시위로 이충원(20·서강대 정외과2년)군이 왼쪽 무릎에 부상을입고 신촌세브란스병원으로 후송되는 등 학생 2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또 신세계백화점에서 롯데백화점 앞길이 2시간여동안 완전 통제되는등 명동과 종로,을지로,퇴계로일대 도심교통이 밤늦게까지 극심한 체증을 빚었다. 서울대는 이날 상오 5·18서명교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교수들이 예정대로 강의를 진행했으나 70%이상의 학생들이 강의에 참가하지 않았으며 서강대 경희대 한양대 이화여대 등도 하오들어 80%이상의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했다. 경찰은 이날 시위현장에서 32명을 연행,조사중이며 경찰관 7명이 부상당했다고 밝혔다. 전남대 조선대등 「광주·전남지역총학생회연합(남총련)」과 경북대 영남대등 「대구·경북지역총학생회연합(대경총련)」,충남대와 대전대 학생들도 이날 상오부터 일제히 동맹휴업에 돌입한데 이어 하오부터는 시내로 진출,가두시위를 벌였다.그러나 충남지역의 한남대와 목원대는 동맹휴업에 참여하지 않고 정상수업을 했다. 학생들은 동맹휴업 이틀째인 30일 하오2시 장충단공원에서 집회와 가두행진을 벌이는등 전국 15개도시에서 제5차 국민대회를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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