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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에선/일본 주재원(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22)

    ◎총독부청사 첨탑 철거에 착잡한 “선린”/2천여사 직원·가족 등 1만여명 체류/툭하면 “쪽바리” 시비… 봉변당하기 일쑤/물가많이 올라 내핍생활… 교통난도 고민거리 광복 50주년이던 지난 15일 무로오카 데쓰오씨(35·일본 무역진흥회 서울사무소 조사부장)는 착잡한 하루를 보냈다.일본인에게는 패전 50주년인 이날 구총독부의 첨탑 제거식장에서 환호하는 한국인을 바라보면서 결코 좁힐 수 없는 한·일간의 거리를 새삼 느꼈다.한국생활에서 평소 느끼던 당혹감의 실체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었다.개인적으로 그렇게 친절한 수 없는 한국인이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선 혐오감으로 바뀌는 그 뿌리엔 일제 36년이라는 과거의 악몽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현판 상처투성이 유키 모도아키씨(39·일본 규슈철도 서울사무소장)는 최근 한 술집에서 당한 봉변이 잊혀지지 않는다.일본인 친구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던 중 갑자기 『쪽바리 조용히 해』라는 술취한 젊은이의 소라가 들렸다.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라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한바탕 싸움이라도 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반일감정이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한국이지」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쳐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이 사건 이후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선 경계심을 풀 수 없다고 한다. 고하리 스스무씨(32·일본 국제관광진흥회 서울사무소 차장)는 말한다.『한국에서 오래 근무한 주재원을 보면 흰머리나 대머리가 많은데 저는 그 원인을 스트레스라고 생각합니다.한국인 직원과의 갈등과 반일감정에 대한 경계심 등에서 오는 스트레스지요』 주한 일본인(6개월이상 장기체류자)의 대부분은 반일감정으로 인한 실랑이를 한두차례 경험하고 있다.광복 50주년을 맞아도,국교정상 30주년을 맞아도 스러지지 않는 일본혐오가 한·일 양국의 발전을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입을 모은다. 주한 일본인의 자녀 4백여명이 교육을 받는 일본인학교(서울 강남구 개포동 산84)의 현판은 항상 상처투성이다.현판을 달아놓기가 무섭게 누군가 떼어버리거나 돌멩이를 던져 망가뜨리기 때문이다.이 학교의 관계자는 『주로 국민학생이나 중학생이 장난삼아 현판을 망가뜨리지만 이들의 마음속에 있는 일본에 대한 반감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광복 이후 한·일 양국간의 정치·경제·사회 등 전분야에 걸친 교류확대는 주한 일본인의 수에서 확연히 드러난다.현재 1만명선으로 전체외국인(9만명) 가운데 11%,화교의 4분의 1에 불과하지만 한·일 국교정상화 이듬해인 66년의 1백48명과 비교하면 무려 60배가 넘는 수다. ○유학생 1천명선 이 가운데 경제관련 인사와 그 가족이 75∼80%,단독 및 합작형태로 진출한 기업은 2천여개에 이르고 있다.1백% 단독에서 3∼5%의 합작 등 다양하다.대부분 상사주재원이나 합작회사·은행등에 종사한다.한국기술의 자존심을 세운 현대자동차의 경우 미쓰비시상사와 중공업이 각각 5.7%와 4.5%의 지분을 갖고 있을 정도다. 88올림픽을 기점으로 유학생도 크게 늘고 있다.보통 1년이상 한국에 머문다.1천여명정도로 추산되며 국내 대학에서 일본어를 강의하는 교수 등 학교관련 인사가 60여명이 있다.아사히와 요미우리등 일본 언론사 특파원이 25명.한국인 남편과 결혼,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여성도 1천명선으로 추산된다.미미하지만 목사와 간호사·수녀 등도 한국에서 활동중이다. 최근 주한 일본인은 한정된 거주지에서 벗어나려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한국어를 습득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한국사회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이해된다.80년대말까지만 해도 서울 동부이촌동이나 한남동 등에서 집중적으로 모여 살았지만 지금은 50%선으로 떨어졌다. 한국생활에서 주한 일본인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교통문제다.한국에서의 자가운전은 『목숨을 걸고 해야 한다』고 지적할 정도다.무로오카 데쓰오씨는 『한국에서 자가운전을 한다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그래서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만 일본에 비해 너무 열악한 상태』라고 말했다. 날로 치솟는 물가도 이들의 생활을 위협한다.외식비의 경우 88년을 1백으로 기준삼아 지난해 1백94로 뛰어 6년 새 2배가 올랐다.야채나 농산물가격은 일본의 3분의 1수준이지만 옷이나 생필품값은 일본과 별차이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6∼7년전만해도 가정부를 두는 등 일본에서 누리지 못한 호사(?)를 누렸지만 지금은 일본에서 익숙한 내핍생활이 서울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관행달라 당혹감 한국인과의 거리설정도 주재원에게 고민거리다.친하게 되면 너무 참견이 심하고 친하기 전에는 너무 쌀쌀하고 무섭기 때문이다.마이니치신문의 서울특파원 나카지마 데쓰오씨(38)는 『한국인은 거리감을 안두고 솔직하지만 형제·친구간에도 언행을 조심하는 일본식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볼때 한국인의 툭 터놓고 사는 분위기가 때론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인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일본이 싫다」는 사람이 69%로 84년의 39%보다 크게 늘었다.「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이웃」인 한·일 양국을 「가까운 이웃」으로 돌려놓는 것은 광복 50주년을 맞는 한국과 일본인 모두에게 숙제로 남아 있다.
  • 김 대통령­“오늘은 특별한 날” 건배 제의

    ◎각계원로 초청 청와대오찬 이모저모/우리나라 번영 위해… 일제히 박수/DJ,당사 돌아온 뒤 흡족한 표정 김영삼 대통령은 23일 낮 청와대에서 새정치 국민회의의 김대중 창당준비 위원장을 비롯한 여야대표,전·현직 3부요인,각계원로 등 24명과 오찬을 나누며 국민화합을 위해 적극 협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특히 3년여만에 만난 김대통령과 김위원장은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가벼운 대화도 주고받는 등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이끌었다.오찬을 마치고 당사로 돌아온 김위원장은 이날 모임에 대해 매우 흡족스러워 했다. ○…김대통령은 낮12시 다른 참석자들과 함께 본관 인왕실에 마련된 오찬장에 입장,모두가 자리를 잡자 김대통령은 『웃옷은 벗으면 어떻겠습니까.편하게…』라고 제의,참석자 전원이 웃옷을 벗었다. 김대통령의 맞은 편에 김승곤 광복회장이,김회장의 바로 오른쪽에 김대중 위원장이 앉았다. 김대통령은 포도주잔을 만지면서 『청와대에서 점심시간에 마주앙이 나온 것은 처음』이라면서 『오늘은 특별한 날입니다.광복50주년도 맞았고….우리나라의 번영과 여러분의 건강을 위해 건배합시다』라고 제안했다. 김대통령은 건배가 끝난 뒤 박수를 유도했고 김대중위원장을 비롯한 참석자 전원은 일제히 박수를 쳤다. 김대통령은 『원래는 광복절을 보내고 17∼18일쯤 지도자 여러분들과 이런 자리를 가지려고 생각했는데 윤관 대법원장과 김계수 광복50주년 기념사업 회장도 중국에 가 계신 바람에 날짜를 늦췄다』고 설명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김승곤 회장과 광복 50주년 및 옛 총독부건물 철거 등을 화제로 한동안 대화를 나눴다. 특히 김회장은 옛총독부 건물 철거와 관련,「선철거」가 옳았다고 강조했는데 김회장 바로 옆에는 총독부 건물의 「선 철거」를 반대한 김대중 위원장이 앉아 있어 묘한 분위기. 식사가 시작되자 김대통령은 『청와대 메뉴중 가장 유명한 칼국수입니다』라고 소개하자 강영훈 전총리는 『소문대로 맛있군요』라고 말했다. 낮12시45분쯤 식사가 끝나고 김대통령이 참석자들에게 국정운영에 협조해 줄 것을 당부한 뒤 하오1시10분쯤 김광복회장의 건배 제의와 박수로 오찬은 끝났다. ○…이에 앞서 김대중 위원장은 이날 참석자 24명 가운데 끝에서 세번째로 상오11시52분쯤 도착했고 곧바로 이기택민주당총재와 이민우전신민당총재가 모습을 나타냈다. 특히 유치송 전 민한당 총재는 은백색 「아우디」승용차를 손수 몰고 도착,차를 현관앞에 세운 뒤 입장,눈길을 끌었다. 청와대측은 이날 초청자에게 본관 현관 바로 앞까지 차량을 타고 오도록 배려했는데 이는 국빈급 외국원수들에 대한 예우수준이라는 것. ○…오찬전 차를 나누기 위해 충무실 전실에 들어선 김대중 위원장은 미리 와 있던 인사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김위원장은 마지막으로 이기택 총재에게도 악수를 청했으나 이총재는 마지 못한 듯 응했고 두사람은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는 등 어색한 분위기가 역력. 초청자들이 대강 인사를 나눈 시점인 11시56분쯤 김대통령은 한실장의 안내로 충무실 전실에 들어섰다. 김대통령이 방에 들어서기 직전 김대중 위원장은 김대통령과의 「1대1 악수」장면을 염두에 둔 듯 복도쪽으로 나가 김대통령을 맞이하려는 모습을 보이다 사진기자들이 입구를 막고 있자 입구쪽의 참석자들 맨 앞쪽에 서서 김대통령과 활짝 웃으며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김대통령이 김위원장에게 오랜만이라고 인사를 건네자 김위원장은 『건강하시죠』라고 화답. 한편 이날 오찬에 초청된 29명의 인사 가운데 김종필 자민련 총재,박준규 전국회의장,노재봉·이현재 전총리등은 개인 일정 때문에,김재순 전국회의장은 외유로 참석치 않았다. ○…김대중 위원장은 이날 오찬이 끝난 뒤 여의도 당사로 돌아와 지도위원들을 배석시킨 가운데 기자들에게 대화내용을 설명했다. 김위원장은 김대통령으로부터 「실체」를 인정받은 탓인지 무척 밝은 표정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특별한 얘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서두를 꺼낸 김위원장은 『대통령과 서로 정중하고 친절한 태도로 인사를 나눴다』『오랜만에 만나 반가웠다』『점심은 칼국수로 먹었는데 맛이 괜찮았다』『비서실장등 여러분들이 아주 친절하게 대해줬다』는 등 우호적인 발언으로 이어갔다. 김위원장은 김대통령이 『요새 바쁘시겠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네 『건강은 어떠시냐』고 화답한 뒤 곧바로 대통령의 유엔연설을 놓고 잠시 대화를 나눴다고 소개했다. 그는 김대통령과의 단독회동 가능성을 묻자 『우리당이 정당으로 결성됐고 여야간의 대화는 자연스레 있는 것 아니냐』면서 『대통령이 대화합의 정치를 하겠다고 하니 서로간의 대화는 서로에게 유익할 것』이라며 단독회동을 희망한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피력했다.
  • “10월∼11월 안보리 진출… 긍지 갖자”­김 대통령

    ◎「청와대 오찬회동」 대화록/“유엔총회때 연설 하셔야죠… 북선 누가옵니까”­DJ/“지도자들 활발하게 활동하도록 뒷받침을”­KT 김영삼 대통령은 23일 낮 새정치 국민회의 김대중 창당준비위원장을 비롯한 여야대표와 전·현직 3부요인 등 24명을 청와대로 초청,오찬을 함께했다. 다음은 윤여전 청와대 대변인이 전한 오찬회동 대화요지. ▲김대통령=옛 총독부건물을 헌 것은 국민 절대 다수의 뜻에 따른 것입니다.그 건물은 사무실로 지은 것이지 박물관으로 지은 것이 아닙니다.우리 문화재 가운데 현재 그 건물에 있는 것은 5천여점이고 20여만점은 다른 곳에 보관되어 있습니다.새(임시)박물관을 짓고 있고 문화재 보호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이홍구 총리=정부가 홍보를 잘못한 부분도 있습니다.하나는 총독부 건물을 두고는 경복궁을 복원하지 못한다는 것,또하나는 따로 역사박물관을 짓고 있어 문화재 수장에는 문제가 없다는 점을 보다 적극 알려야 했습니다. ▲김대통령=비가 많이 와서 대부분 해갈이 돼 다행입니다.전남지역에 90㎜가왔고 경북지역에도 10㎜가 왔으나 앞으로 더 올 것이라고 합니다. (김대중 위원장에게) 요즘 수고를 많이 하시는 것 같습니다. ▲김위원장=(가볍게 목례를 한뒤)유엔총회때 가셔서 연설을 하셔야죠.10월인가요.북한에서는 누가 오게 됩니까. ▲김대통령=10월에 가는데 첫날 제가 연설을 하고 다음날 북한이 연설을 하는데 누가 오는지는 알수 없고 연설만 신청해 놓고 있습니다. (이기택 민주당 총재에게)요새 고생 많이 하시지요. ▲이총재=야당이 원래 그렇습니다.고생에는 이골이 났습니다.국가지도자들이 활동을 활발하게 할 수 있도록 대통령이 뒷받침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김대통령=(이민우 전 신민당 총재에게)고희때 제가 생신을 차려드린 기억이 있는데 벌써 팔순이 넘으셨으니…. ▲이전총재=그때는 어려울때인데 성대하게 치러줘 정말 감사했습니다. ▲김대통령=그때 등산을 배웠습니다.처음에는 10명미만이 갔고 나중에는 50∼1백명으로 늘어났어요. 광복 50주년을 계기로 새로운 결심,새로운 각오를 다져야 할 시점입니다.조국광복을 위해 애쓴 분,그중에서도 들판에서 이름없이 사라진 분들을 생각할 때 광복 50주년은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광복은 통일을 성취해야만 달성됩니다.냉전이 종식됐다고 하지만 한반도 만은 냉전이 계속되는 불행한 곳으로 남아 있습니다. 6·25때 유엔 안보리 결의로 16개국이 참전,우리의 자유를 지켜줬는데 우리가 비상임이사국으로 오는 10월이나 11월 안보리에 진출하게 됩니다.우리 모두가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긍지를 가져야 합니다. 2차대전후 많은 신생국이 생겼지만 그중에서 한국은 전쟁의 참화로 가장 어려운 나라였습니다.그러나 우리는 문민민주주의를 성취하고 세계 11위의 경제력을 가진 나라가 됐습니다.세계에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이는 국민의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이라고 생각하고 국민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올해는 명성황후 시해사건 1백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당시 우리 지도자들이 친일·친로로 갈라져 싸우다 결국 나라를 잃고 말았습니다.국론이 갈라져 나라를 잃은 것인데 지금도 힘이 있어야 나라를 지키고 평화도 지킬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 입니다.한반도에서 우리가 이만큼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것도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취임직후 북한이 핵확산 금지조약에서 탈퇴,지난 2년여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임기중 어떻게 해서든 전쟁은 막아야 겠다는 각오아래 노력해왔습니다. 앞으로 변화와 개혁이라는 큰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나갈 것입니다.광복절을 계기로 국민대화합을 위해 대사면을 단행했습니다.일반사면은 건국후 두번 있었는데 법무부에서 대상자 선정작업이 끝나면 정기국회의 동의를 거쳐 시행할 것입니다.대상은 1천만명 정도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변화와 개혁,세계화를 통해 일류국가를 만드는데 국민 모두가 동참하도록 해야합니다.우리의 경제력이 이만큼 컸기 때문에 국론분열만 없으면 세계 중심국가가 될수 있다는 점과 광복 5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며 여러분의 협조를 바랍니다.부정부패척결은 앞으로도 절대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며 이번 사면에서도 그런 사람은 제외시켰습니다. 여러분이 애국적 견지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중심국가가 될수 있는기틀을 마련하는데 도움을 주고 국민들의 성원이 합쳐지면 반드시 자랑스런 나라를 만들수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우리 후손들에게 자랑스런 나라를 물려 줄수 있게될 것으로 믿습니다.
  • 김영삼 정부 30개월/김 대통령에 바란다/각계인사 제언

    ◎계파·지역 떠나 전문인력 적소에 배치를/환경·교육·복지 등 생활개혁에 역점둬야 ○박정희 전서울 YMCA회장 앞으로 인재등용은 그 폭을 넓혀 계파,지역을 불문하고 전문성·도덕성·정직 그리고 신뢰가 가는 인물을 써야 한다.공식적인 조직을 통해 열성·책임감·실천력을 가진 사람을 찾아야 한다.국가 예산도 해마다 몇 %씩 관례적으로 올리기 보다는 모든 문제를 제로 베이스에 놓고 국정운영의 우선 순위를 정해 새로이 배정해야 한다.이때 환경보전·교육·복지·기술개발 등에 획기적인 예산배정이 되어야 한다.또한 윤리와 도덕성 회복에 역점을 둬 인간과 생명이 존중되는 정의와 평화의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바른 제도 개선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올바르게 사는 국민이 피해를 입는 세제는 개혁되어야 할 것이다. 지방자치제를 제대로 실시하려면 중앙정부와의 권한 상충문제를 잘 해결해야 할 것이다.위험한 시설,혐오시설을 내집 뒤뜰에는 둘 수 없다는 님비현상과 지역이기주의를 고칠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주민들을 위한 시설 때문에고통을 받는 지역에는 이에 상응하는 보상혜택이 주어져야 하겠으나 무조건 데모하면 정부도,법도 힘을 못쓴다는 잘못된 지역이기주의는 없어져야 한다. 김영삼 대통령의 이번 사면조치는 크게 환영을 받았다고 본다.화합정치,결단과 포용으로 다시 중지를 모으고 국민이 원하는 뜻을 헤아려 후반기 개혁을 추진해 주길 바란다. ○오석홍 서울대 교수 문민정부 전반기에 있어서는 김대통령의 과거 정치 경력때문인지 그 참여인원이 한정돼 있었다.정부와 전문성있는 인사들과의 연계가 원활하지 못했다.앞으로는 정책수행이라든지 인력동원에 있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적재적소에 참여하기를 바란다.많은 지식인들에 대해 문호가 개방되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되어야 한다.새 정부가 들어선 뒤 상해임시정부 관련인사들의 유해를 봉환하고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기로 결정한 것은 잘했다고 본다.이러한 일제잔재의 청산작업은 김대통령이 하지 않으면 우리 국민 성향으로 볼때 앞으로도 제대로 못했을 것이다.그런 문제는 다수결로 할문제가 아니다.대통령 자신과 지도층이 지닌 역사관에 따라 일관성있는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과거,현재,장래에 어떤 역사가 이어지는지를 통찰,확고한 정책을 수립해 과감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개혁추진으로 만인을 만족시키기는 힘들다고 본다.선거에서의 지지기반만 생각하다가는 개혁도 제대로 안되고 결국은 표도 잃게 된다.통치세력이 줏대를 세우고 밀고 나가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학수 서강대언론연소장 앞으로는 생활개혁에 중점을 둬야 된다.1년동안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1만4천명에 이르고 있다.우리가 월남전에 10년동안 참전해 4천3백명이 희생됐는데 1년에 월남전을 3번씩 치르고 있는 셈이다.자동차 안전 기준을 외국에 수출하는 것만큼 높이는 간단한 문제 하나도 해결 못해서야 다른 개혁이 되겠는가.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물건이 플라스틱,석면 등으로 이루어져 재생이 불가능하다.이런 것들을 종이로 전환시켜 재생이 가능한 환경제품으로 만들어야 한다.그것이 가능하려면 정부가 재벌들의 눈치를 보지말고 어느 수준까지 재벌들을 컨트롤해 생산주체가 스스로 국민들의 불편을 덜어주는 쪽으로 돌아서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 가정의 고체쓰레기 대부분이 신문이다.그에 대한 확고한 대책도 세워져야 한다.또 우리나라 언론의 대부분을 재벌이 소유하거나 언론사 스스로가 재벌화되고 있다.이런 언론 풍토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다양성이 존재하지 못하고 제대로된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작은 신문이 살아남고 작은 목소리가 반영되는 다양화된 사회가 되어야 한다.
  • 김 대통령 민자 전국위 치사/요지

    이번에 구조선 총독부청사를 실질적으로 철거했습니다.문민정부의 중요한 개혁 중의 하나입니다. 5·16 군사쿠데타로 중단됐던 지방자치제도 32년 만에 부활시켰습니다.지방선거를 공명정대하게 치름으로써 세계로부터 사랑받게 됐습니다. 그러나 민자당은 이번 선거에서 패했습니다.반성이 없으면 미래가 없습니다.올바른 반성이 있어야 미래가 있습니다.반드시 앞으로 있을 중요한 선거에서 승리해야 합니다.이것을 해내는 것이 민자당의 저력입니다. 12·12 관련 녹음테이프는 문민정부 탄생 이전 유출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국민들이 그 생생한 목소리를 들으며 어떤 느낌일까를 짐작하고도 남습니다.저는 대통령에 취임한 뒤 제일 먼저 군대 사조직인 하나회를 청산하고 정치군인의 옷을 벗겼습니다.그 결과 능력있고 깨끗한 사람에게 자리를 보장해 군의 사기가 충천했습니다. 헌법에 보장돼 있는 통수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안됩니다.저는 지금 확고하게 60만 대군을 통수하고 있는 것을 보람과 자랑으로 생각합니다. 북한은 제가 93년 2월25일 대통령에취임한 뒤 3월에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했습니다.내 임기중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면 안된다는 생각에 클린턴 미대통령과 3번 정상회담을 갖고 수십번의 전화를 통해 북한핵 문제에서 한국이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됐습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북한이 너무도 어렵다는 것입니다.그러나 신뢰회복을 위해 북한사정에 관한 모든 것을 공개하기를 삼가고 있습니다.흔히 냉전이 끝났다고 하지만 한반도는 마지막 냉전지역입니다. 과거 독일통일을 예언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한반도도 예외는 아닙니다.모든 사태에 대해 준비해야 합니다.여러가지 시나리오를 만들어 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공직자 재산공개,정치관계법 개정등 많은 일을 했습니다.이것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의 동참이 중요합니다.생활의 개혁,우리 모든 사회의 개혁이 필요합니다. 8·15를 기해 대대적인 사면을 했습니다.앞으로 정기국회가 개회되면 1천만명이 넘는 일반사면도 단행할 것입니다.이를 통해 국민통합을 이루고,진실로 큰 정치로나아가자는 것입니다.그러나 부정을 용서하자는 말은 아닙니다.문민정부 출범 이후 저질러진 부정은 이번 사면에서 전부 제외했습니다.결코 부정을 묵과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10월 아니면 11월에 유엔 안보리이사국에 진출할 것입니다.세계속에 중심적 역할을 하는 나라가 됐습니다.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당은 단합하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역사와 명분은 우리 당에 있습니다.누구하고의 싸움이 아니라 운명과의 싸움이 제일 중요합니다.역사에 끌려다니는 정당이 아니라 역사를 창조하는 당이 돼야 합니다.총재인 저 자신이 당을 직접 챙기도록 하겠습니다.민자당을 오늘의 정당이 아닌 미래의 정당으로 길러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줍시다.
  • 광복과 항복의 두얼굴/김승희 시인·미 버클리대 교환교수(서울광장)

    미국의 가장 서쪽 바닷가에 앉아 눈앞에 망망히 펼쳐져 있는 태평양을 바라본다.누군가 여기서 저 바다를 쭉 따라 가면 우리나라 동해가 나온다고 말한다.가만히 생각해보니 여기는 미국 대륙의 가장 서쪽,우리말로 하자면 서부의 토말리(전남 해남땅의 맨끝에 있는 땅끝마을)와도 같은 곳인데 우리나라쪽에서 보면 동해가 되니 세상이란 참 이상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우리나라의 동해가 이쪽에서 보면 서해가 된다는 사실은 세상에는 단지 자기중심적인 해석이 있을 뿐 절대 변할 수 없는 어떤 절대적인 것,불변의 향방 같은 것은 없는 것이 아니냐 라는 상대주의적 인식을 준 것이다. 그런 상대주의적 인식은 「종전 50주년」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을 만날 때도 강하게 나를 혼란시키고 있다.우리는 올해를 「광복 50주년」으로 부르면서 해방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다.이곳 버클리 대학 동아시아 도서관에 소장된,서울에서 건너온 잡지들만 봐도 많은 잡지들이 「광복 50주년」특집 증면호들을 마련하여 해방이후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고 있는 것을 만날 수 있다.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서의 「종전 50주년」은 자신들이 처음으로 국제사회에 나가 일본과 독일의 제국주의에 종지부를 찍게 했다는 강한 자부심과 더불어 『그러나 과연 히로시마 원폭투하는 인류평화를 위해 꼭 필요불가결했던 것인가』라는 양심의 반성을 담고 있는 것 같다.그래서 지난 일요일에는 히로시마를 생각하는 시민들의 모임이라는 행사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기도 했다.「종전 50주년」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이렇게 자기힘의 확인에 대한 자부심과 자기반성이 어울린 것이라고 보여진다. 그런데 올해를 「항복 50주년」이라 부르고 있는 일본의 태도는 철저하게 항복의 슬픔과 히로시마의 고통을 내세우면서 자신들의 입장을 피해자 측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히로시마 사진전이나 히로시마의 후유증들을 매스컴을 통해 확대재생산함으로써 서방세계에 죄의식을 일으키고 동시에 자신이 가혹하게 지배했던 다른 아시아 국가에 대해서 가해자로서의 책임과 죄를 면제받고 싶어하는 것이다.심지어 『과연 일본이독일이나 다른 유럽국가였다면 미국이 원자폭탄을 떨어뜨릴 수 있었겠는가? 히로시마는 미국이 아시아를 무시한 결과다』라고 말하는 재미교포를 본 적도 있다.일본제국주의의 지배로 인한 고통을 누구보다도 많이 당했던 한국이 같은 아시아권이라는 이유하나로 일본의 피해자의식에 동의해준다는 것은 일본이 아시아에 가혹한 가해자였다는 역사조차를 잊어버린 편리한 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상조차 안하고 있는 그들이 아닌가. 어쨌든 우리는 광복 50주년에 이제야 옛 총독부건물의 상징적 해체를 시작했지만 일본은 항복 50주년에 이미 미국을 경제적으로 정복하여 미국의 길에는 일본 자동차가 쫙 깔리고 미국가정의 거실에는 일본이 만든 만화영화가 소니 텔레비전을 통해 넘쳐들고 있다.항복의 시간뒤에 이미 경제의 힘으로 자신의 빚을 되찾을 광복을 철저하게 만들어 오고 있었던 것이다.그렇다면 우리가 광복절만 되면 광복을 분에 넘치게 자축한다는 일이 부끄러운 일임을 느낄 수 있게 된다.히로시마의 결과로 광복을 얻었지만 겨레는 두동강이 되었고 아직도 남이 채워준 족쇄를 허리에 차고 있는 형편이며 방송과 광고는 일본베끼기에,인기있는 신세대 문인은 일본작가 하루키 베끼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 50년전의 역사적 광복과 항복이 이제 뒤집혀져 버린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우리에게 동해가 남에겐 서해일 수 있듯이 우리에겐 광복이 남에겐 항복이었으며 그 항복의 절망이 경제적 정복을 낳는 긴 시간동안 우리는 분단이라는 기형적 현실을 고치지도 못하고 여기까지 왔다는 슬픔을 우리가 직시할 때만 참으로 의미있는 새 광복을 만들 수 있을 것같다.
  • 이제 일본콤플렉스 벗을때(임춘웅 칼럼)

    「일본은 없다」로 일약 문명을 날리게된 전여옥씨가 일본의 한 보수우익인사를 만났다고 한다.그때 그인사가 한다는 말이 『한국을 점령했던 일본이 후회하는 것은 하필이면 이처럼 집요하게 사죄를 요구하는 끈질긴 민족을 식민지로 삼은 것』이라고 하더라는 것이다.물론 농담이지만 재미있는 말이다. 그런데 반대로 『세계에는 침략했던 나라도 많은데 하필이면 우리는 지겹게도 끈질긴 일본한테 식민지노릇을 해 50년이 되도록 사과다운 사과,반성다운 반성 한번 못들어보고 사나』싶기도하다.지난 15일 무라야마(촌산) 일본총리가 모처럼 「사과」라는 것을 하긴했지만. 해마다 우리는 8월이 되면 「광복행사」를 갖는다.우리는 이때가 되면 명성황후의 시해사건에서부터 일본의 침략야욕이 얼마나 잔악했는가를 회상하고 그들이 한민족과 이나라를 어떻게 착취했는가를 돌아보게 된다.그리고 우리는 구한말 이나라의 지도자들이 세상물정에 얼마나 어두었고 또 얼마나 무력했는가를 상기하며 자성의 계기로 삼는다.금년은 특별히 광복 반세기가 되는 역사적전환점이었다.그래서 광복의 의미도 한결 새로웠고 그만큼 기념행사도 다채로웠다. 광복을 통해 우리가 민족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다시 확보하고 오랜 정통문화를 복구하게된 뜻을 되살리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민족의 아픔과 일본의 만행을 되새겨 우리의 젊은 세대에게 역사를 바로 가르치고 민족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경각심을 일깨우는 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넘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방식의 「광복행사」를 언제까지 계속해야하는 것일까.지금까지 그것이 중요했고 의미가 있었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러할 것인가.현실적으로 「반일」을 반복적으로 하는데도 한계가 있다.똑같은 얘기의 되풀이가 되고있다.세상은 이미 너무 좁아졌다.「반일」을 계속해서 하는것이 과연 우리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도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에겐 일본콤플렉스가 있다.바로 이 콤플렉스가 아픈 상처를 키우고 있는지도 모른다.광복 50년에 우리가 일본콤플렉스에서 벗어날수만 있다면 그것은 구총독부 건물을 헐어내는 일보다 더큰 소득이 될지도 모르겠다. 다음으로는 우리가 해마다 「광복행사」를 하지만 실제의 한일관계는 그렇지 않은데서 오는 괴리의 문제다.정치적으로는 벌써 30년전에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됐고 경제적으로 양국간에는 연간 무려 4백억달러가 넘는 경제교류를 하고있다.작년 한해만 1백65만명의 일본인이 한국을 다녀갔고 1백5만명의 한국인이 일본을 다녀왔다.공식적으로는 닫아놓고 있지만 문화교류도 이미 제어할수 없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제 우리는 더이상 약자가 아니다.일본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때다.광복은 「반일」의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그것은 미래로 웅비하는 한민족의 기상이어야하고 능동적인 세계화여야 한다.
  • 구총독부 건물 해체/일 언론 상세히 보도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언론들은 15일 한국의 해방 50주년 기념식과 일제식민지지배의 상징이었던 옛조선총독부 해체철거작업을 관련사진을 곁들여 보도했다. 언론들은 이날 김영삼대통령이 『건전한 한일관계의 구축은 일본의 과거 침략행위와 식민지지배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소개하는 등 경축기념식행사모습 등을 비교적 상세히 전했다. 요미우리(독매)신문,산케이(산경)신문 등은 이날 총독부건물 첨탑이 대형크레인으로 해체되는 사진과 함께 총독부 해체사실을 전했다.
  • 김 대통령 8·15 경축사/전문

    ◎광복반세기 올해 남북관계 새 장 열길/민족정기 회복위해 총독부 철거 마땅/지속적 개혁… 21세기엔 역사의 전면에 친애하는 국민여러분,북한동포와 해외동포 여러분,그리고 자리를 함께 하신 내외귀빈 여러분. 우리는 오늘 뜻깊은 광복 50주년을 맞아 민족사에 새 지평을 열자는 굳건한 결의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지금 우리의 귓전에는 잃었던 국권을 되찾은 기쁨으로 독립만세를 외치던 반세기전 그날의 환호가 생생합니다. 우리의 가슴은 온갖 고난을 뚫고 숨가쁘게 달려온 지난 반세기에 대한 깊은 감회로 가득 차 있습니다.다가오는 21세기를 우리 민족의 위대한 시대로 만들자는 굳은 다짐속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선열들의 축복과 7천만 겨레의 기대가 이 자리에 충만해 있습니다. 이 경하스러운 날을 맞아 나는 먼저 조국의 광복을 위해 신명을 바치신 애국선열들을 추모하며 삼가 경의를 표합니다.오늘의 이 나라를 만들기까지 전국 방방곡곡에서 묵묵히 땀흘려 일해 오신 국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7천만 동포 여러분.우리 겨레에게 지난 50년은 가혹한 시련의 연속이었지만 우리는 불굴의 의지로 이를 극복해 왔습니다. 우리는 민족분단과 동족상잔이라는 엄청난 비운을 안은채 국가건설의 대장정에 나서야 했습니다.물려받은 빈곤과 전쟁의 폐허 위에서 생존마저 위협받아야 했던 「절대빈곤의 시대」를 헤쳐나와야 했습니다.극단적인 남북대치와 군사독재 아래 민주주의가 질식하던 「어둠의 시대」를 뚫고 나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식민통치의 사슬을 끊던 불같은 투혼과 강철같은 의지로 우리는 분연히 일어섰습니다.불과 한세대 남짓한 짧은 기간에 우리는 가장 가난한 나라로부터 이제는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으로 뛰어올랐습니다. 민주의 씨앗이 싹트기조차 어렵던 그 메마른 땅위에 문민 민주주의를 활짝 꽃피웠습니다.민족의 자존을 크게 드높이고 민족사의 정통성을 확고히 세웠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세계의 당당한 중심국가로 떠오르고 있습니다.자유와 풍요의 민주공화국을 세우고자 했던 선열들의 소망이 마침내 실현되고 있는 것입니다.우리 민족의 위대한 저력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고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것입니다. 내외동포 여러분.우리의 성취가 이처럼 빛나는 것임에도 우리의 광복은 여전히 미완으로 남아 있습니다.남북의 민족성원 모두가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광복의 완성일 것입니다. 통일의 큰 길을 열기 위해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정착시키는 일입니다.평화없이는 통일된 조국은 물론 민족의 장래 또한 기약할수 없습니다. 나는 민족의 안전과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해 다음과 같은 기본원칙을 제시하는 바입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문제는 반드시 남북 당사자간에 협의·해결되어야 합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지킬 책임은 궁극적으로 남북한 당사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관련 국가들의 협조와 뒷받침도 필요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는 동북아 안정과 세계 평화에 크게 기여할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남북 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을 비롯한 모든 남북간의 합의사항은 존중되어야 합니다.평화의 첫걸음은 신뢰구축이며 신뢰는 서로 약속한 것들을 지키고 실천에 옮기는데서 생기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같은 기본원칙을 밝히면서 남과 북이 지금의 정전협정을 준수하는 가운데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적절한 대책을 함께 강구해 나갈 것을 촉구합니다. 광복 50주년이 되는 올해야말로 남북관계에 새로운 장을 여는 역사적인 해가 되어야 마땅합니다.나는 북한이 조속히 안정되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나오고 남북간에도 신뢰가 증진되기를 기대합니다. 아울러 국민여러분께 당부 드립니다.평화통일은 우리 모두의 절실한 염원이지만 그것을 추진하는 것은 냉엄한 현실의 과제입니다.통일문제에 대해서는 환상적인 기대도,성급한 포기도 모두 금물입니다.꾸준한 인내심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그것이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7천만 동포 여러분.광복 반세기라는 역사의 장을 넘기는 오늘 우리의 눈앞에 새 하늘,새 땅이 열리고 있습니다.우리 민족에게 무한한 희망을 주는 21세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역사의 전면에 나설 아시아·태평양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선조들의 꿈과 후손들의 소망이 담긴 민족의 꿈을 활짝 펼칠 때가 왔습니다.우리는 이 기회를 결코 놓쳐서는 안됩니다. 이제 나는 7천만 겨레의 여망을 모아 민족이 나아갈 길을 역사앞에 엄숙히 선언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조국을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는 「일류국가」로 만드는 것,이것이 오늘의 우리에게 주어진 민족사적 소명입니다.21세기를 우리 민족의 위대한 꿈을 실현하는 세기로 만들어 나갑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나라의 각 분야가 선진화되고 세계화되어야 하겠습니다.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고루 확산되어야 하며 한차원 더 높은 발전이 이루어져야 합니다.파당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대변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정착되어야 합니다. 국민을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통합하는 정치가 나와야 할 것입니다. 낡은 틀에 안주하지 않고 시대와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는 새 정치가 나와야 합니다. 우리의 경제 또한 선진경제권에 진입해야합니다.경제의 규모가 더욱 커질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고도화되어야 하겠습니다.또한 성장의 과실이 국민 모두에게 고루 나누어지고 삶의 질을 존중하는 경제가 되어야 합니다. 정당한 부가 존경을 받고 분배의 정의가 존중되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통일에 대비하는 경제역량 또한 구축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진정한 문화국가를 건설해야 하겠습니다.무엇보다 인간과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제도와 관행이 확고하게 정착되어야 하겠습니다.정신문화가 존중되고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실현되는 투명한 사회가 되어야합니다.민족정기를 드높이고 자랑스런 민족문화를 꽃피워야 하겠습니다. 셋째,인류와 세계의 발전에 더욱 기여하는 민족이 됩시다. 우리는 지금 역동적인 동북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우리는 평화와 번영의 아시아·태평양 공동체를 만드는데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합니다.나아가,민족의 웅대한 꿈을 저 넓은 세계무대에서 펼쳐야 합니다. 세계의 모든 나라와 긴밀하게 협력하고당당하게 경쟁해 나가야 하겠습니다.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진정으로 기여하는 나라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역사는 청산과 계승을 통한 창조의 과정입니다.우리는 오늘 옛 조선총독부를 철거하는 역사적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이 건물이 철거되어야만 우리 민족사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경복궁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식민잔재를 깨끗이 청산하고 우리의 민족정기를 회복하자는 온 국민의 뜻과 의지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옛 조선총독의 관저를 철거한 것도 같은 취지에서 입니다. 옛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는 단순히 식민잔재의 외형적인 청산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그것은 우리 모두의 의식속에 남아있는 그릇된 역사의 잔재로부터 진정으로 해방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한·일 두나라 관계가 불행했던 과거의 그늘로부터 벗어나 미래지향적으로 발전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이 과거 역사를 올바로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건전한 한일관계의 구축은 일본의 과거 침략행위와 식민지 지배에 대한 건전한 반성의 토대위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오늘 광복 50주년을 계기로 애국선열 등 1천4백여분을 새로 독립운동 유공자로 모셨습니다.나라와 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신 선열들의 애국애족정신은 우리가 이어 받아 후대에 전해야 할 소중한 유산입니다. 나는 광복 전반세기와 후반세기를 잇는 대통령으로서 역사의 창조적 발전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거대한 문명사적 변혁 앞에서 우리가 가야할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습니다.우리는 지금 안으로는 내실을 다지면서 밖으로는 21세기를 향한 역사의 격랑을 헤쳐나가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더이상 미움과 분열과 갈등으로 소모할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미움을 사랑으로,분열을 통합으로,갈등을 조화로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나는 오늘 대통령으로서 헌법에 따라 대대적인 특별사면과 복권을 단행하였습니다.국회의 동의절차를 거쳐 대규모의 일반사면도 실시할 계획입니다.이는 뜻깊은 광복 50주년을 맞아 우리 국민 모두가 대화합을 이루어 새출발하는 역사적 계기를 만들겠다는 충정에서 내린 결단입니다. 그러나 문민정부 출범이후에 이루어진 부정부패 관련자는 이번 조치에서 제외했습니다.이것은 부정부패는 반드시 척결한다는 정부의 단호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우리는 이제 온 국민이 하나되어 세계로 미래로 힘차게 전진해 나가야 합니다. 조국과 민족의 앞날이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를 통해 위대한 국민만이 위대한 역사를 창조한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었습니다.우리 모두 다시 한번 한민족의 위대한 21세기를 향해 힘차게 나아갑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을 세계화합시다.변화와 개혁을 힘차게 추진합시다.그리하여 세계의 중심에 우뚝서서 인류공영에 기여하는 「일류국가」의 꿈을 실현합시다. 50년후 광복 한 세기가 되는 그날,우리의 후손들이 오늘의 우리를 진정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합시다.감사합니다.
  • 「총독부」 첨탑 69년만에 철거/세종로 중앙경축식 5만 운집

    ◎「광복 50돌」 전국서 성대한 행사 역사적인 광복 50주년을 기념하는 중앙경축식이 15일 상오 서울 세종로 일대에서 김영삼 대통령을 비롯한 3부 요인과 각계 대표,광복회원,해외동포,시민 등 5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거행됐다. 「광복 50년 통일로 미래로」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경축식은 상오 9시부터 10시까지 식전행사,10시부터 10시55분까지 본행사,10시55분부터 11시10분까지 식후행사 등 3부로 나뉘어 2시간 10분동안 화려하고 웅장하게 치러졌다. 경축식은 일제 침략의 상징인 옛 조선총독부 건물의 중앙돔 상부 첨탑을 떼어내 민족정기를 되살리는 「어둠 걷우기」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주최측은 건물 철거를 만천하 호국영령께 알리는 고유시 낭독에 이어 대형 크레인으로 첨탑을 끌어내렸다. 이날 식전행사는 역사의 그늘에 갇혔던 선열들의 넋이 빛(횃불)과 소리(북·바라)가 되어 거대한 행보를 시작하는 「새아침의 소리」,옛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와 경복궁 복원을 알리는 「어둠 걷우기」와 「다시 찾은 빛」 공연,1천여명이 넘는기수단이 입장하는 「한울림」의 순으로 진행됐다. 본행사에서는 김승곤 광복회장의 기념사에 이어 축가 「동방의 빛」 합창,독립유공자 포상,김대통령의 경축사,광복절노래 제창과 만세3창,축하비행이 있었다. 식후에는 「우리의 소원」을 편곡한 통일판타지에 맞추어 한반도와 무궁화를 무용으로 나타내 통일과 번영의 한민족시대를 향한 민족의 결의를 상징하는 「통일로 미래로」가 이어졌다. 이날 본행사 시작 직전 전국의 교회와 사찰에서는 일제히 종을 울렸고 선박은 기적을 울려 50주년 광복절을 경축했다. 지방에서도 자치단체별로 중앙경축식에 준하는 기념행사가 열렸다. 정부는 이날 하루 창덕궁을 제외한 5대 궁과 능원,현충사,국·공립 공원등을 무료로 개방했으며 경복궁 경회루에서 각계 대표 1천여명이 참석하는 경축연회를 개최했다.
  • “일제청산… 이젠 통일에 나서자”/옛 총독부 첨탑 철거 각계 반응

    ◎「식민통치」 응어리 뽑아 가슴후련/민족의 자존·긍지 높이는 계기로/“오욕의 역사 다시는 없어야” 새다짐 일제 식민지 36년,오욕의 역사는 절단되었다.광복50주년을 맞은 15일 식민통치의 상징이었던 구 총독부청사의 첨탑이 철거된 것이다. 이날 상오 「왜의 상투」가 잘려나가던 장면을 지켜본 각계 인사,시민,학생들은 가슴속 깊이 응어리진 분통을 이제야 삭이게 됐다며 감격해 했다. 이들은 그러면서도 첨탑제거의 진정한 의미는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일제의 잔재를 깨끗이 청산하는 것은 물론 다가올 「광복1백년」을 향해 「통일로 미래로」로 온 국민이 함께 전진할때 승화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온도표(68·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 부회장)씨=이제야 일제잔재에서 벗어나 완전한 대한민국이 탄생했다는 감명을 받았다.앞으로 우리 민족은 힘을 길러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나보다는 나라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는 지혜를 기대한다. ▲이태동(서강대 문과대학장)씨=일본 제국주의의 잔재를 씻고 민족의 자존심과 긍지를 되찾는다는 의미에서 대단히 잘한 일이다.민족정신과 문화는 우리 스스로가 찾아야 한다. ▲손기정(84)옹=어서 통일이 되어 고향인 신의주에 가고 싶다.우리의 국력이 세계무대에서 신화를 이룩해 한민족의 기상을 만천하에 알리길 바란다. ▲박한(고려대 농구감독)씨=해방동이로서 너무 늦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일제의 망령처럼만 느껴졌던 구 총독부건물의 철거가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진정한 광복인 통일을 향한 첫 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 ▲김기도(민자당 국회의원)씨=광복 반세기만에 참된 광복과 통일의 길로 이어질 수 있는 계기로 받아들인다.첨탑철거를 계기로 심기일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그러나 과거를 무시해서는 안되며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아픈 역사의 교훈도 가르쳐야 한다. ▲박이도(시인·경희대교수)씨=통일된 조국의 세종로광장에서 광복 50주년 축하행사가 이루어졌으면 얼마나 기쁠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남과 북의 대결구도를 허물기 위해서는 우리의 국력을 신장해야 한다. ▲신명호(재정경제원 제2차관보)씨=과거 한많은 시대를 마감하고 미래를 향해 재도약할 시기가 왔음을 절감했다.이제는 과거의 반일감정을 청산하고 평화통일을 이루어 자랑스런 역사를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양호철(동서증권 부사장)씨=일제의 상징을 없앤 것은 당연한 일로 환영한다.이를 계기로 경제의 질적인 면과 사회복지,군사,외교 등에서도 앞서가는 나라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백승우(백승우·14·성재중1년)군=학교와 어른들로부터 일제가 나쁜 짓을 많이 했다고 배웠는데 왜 지금까지 총독부건물을 남겨두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공부를 열심히 해 나라의 힘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유순애(유순애·57·주부·강북구 미아2동 791의1142)씨=늦은 감은 있지만 잘한 일이다.이번 철거작업이 단순히 광복50주년을 기념하는 일회성 행사로 그쳐서는 안된다.우리 생활속에 알게 모르게 남아 있는 일제잔재를 없애기 위해 앞으로도 국민 개개인의 의식개혁과 더불어 체계적이고도 구체적인 사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우철(21·한민족축전 참가학생·수리남공화국)군=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6살때 이민을 갔지만 아버지에게서 우리역사에 대해 종종 들어왔다.수리남에 살고 있는 7가구의 한국이민 가족들에게 오늘 보고 느낀 것을 빠짐없이 전하겠다. ▲반제만(24·육군사관학교 4년)군=군의 젊은 간성으로서 다시는 힘이 없어 나라를 빼앗기는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
  • “이제야 바로 선 민족 정기”… 온국민 환호/총독부 첨탑 철거현장

    ◎“일제오욕 청산” 역사적 드라마에 숙연/경복궁 복원·새 문화거리 조성 선포 그것은 한편의 거족적인 민족드라마였다.일제식민통치의 상징인 구조선총독부 첨탑이 철거되던 날인 광복절 아침 전국은 기쁨을 넘어서 엄숙한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이날 광복절 경축식 본행사가 시작되기 1시간 전인 상오9시.경축식 본행사장에 초청인사들이 입장하는 가운데 멜북꾼·횃불수·바라꾼들의 합주와 행진이 시작되면서 구조선총독부 첨탑주변과 국립중앙박물관 주변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우리민족의 언어와 역사를 말살하고 겨레의 생존까지도 박탈했던 식민정책의 본산 조선총독부건물을 철거하여 암울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워 통일과 밝은 미래를 지향하는 정궁복원작업과 새 문화거리건설을 오늘부터 시작함을 엄숙히 고합니다』 주돈식 문화체육부 장관의 고유문낭독이 끝날 무렵인 9시21분.국립중앙박물관 중앙입구 좌측에 묵묵히 자리잡고 있던 3백30t급 대형 하이드로 크레인이 「웅∼」소리와 함께 육중한 몸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동시에 첨탑주변에 붉은 조명등이 커지고 국립중앙박물관 옥상 다섯곳에서 폭죽이 터지면서 마침내 4.5m높이의 첨탑 상층부가 들어올려지기 시작했다. ○14분간의 드라마 하이드로 크레인에 연결된 8개의 철줄끝에 두 동강나 있던 첨탑의 윗부분이 대롱대롱 매달린 채 허공으로 솟아오르자 경축식장의 초청인사와 광화문일대에 몰려 있던 시민,그리고 TV생중계를 지켜보던 전국의 국민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68m의 크레인 팔에 매달린 첨탑이 구조선총독부 우측상공을 포물선을 그리며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하자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기 시작했다.경축식장에 입장해 있던 광복회 회원들은 일제히 일어서서 박수와 함께 만세를 외쳤다. 박물관광장 좌측에 마련된 가로·세로 5m의 받침대까지 첨탑이 이동한 거리는 약 1백m.첨탑 꼭대기부터 박물관광장 받침대까지 대각선거리는 70m,수직높이는 58m. ○청산 비로소 실감 웅장한 폭죽과 불꽃놀이가 장관을 연출하면서 첨탑이 중앙박물관광장 받침대에 놓여진 것은 9시35분.원래의 위치에서 박물관광장까지 들어내리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정작 8분이면 족하지만 이날 역사적인 순간을 부각시키기 위해 1백m를 우회해 14분간의 드라마를 연출한 것이다. 정양모 국립박물관장은 『첨탑이 허공에 떠오르는 순간 순국선열들에 대한 경외심과 함께 말로만 듣던 일제청산을 부분적이나마 실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독립기념관 보관 첨탑의 나머지 부분도 하오7시 같은 방식에 의해 박물관광장에 내려졌다.첨탑 철거로 시작된 총독부 철거는 내년 상반기부터 압쇄기를 사용한 기계식 철거방식에 의해 본격화된다.철거된 첨탑은 8월말까지 박물관광장에 전시되며 9월에는 독립기념관으로 옮겨져 후세에 오욕의 역사를 일깨우는 산 교육자료로 소장된다.
  • 광복 50돌 경축행사 준비 뒷얘기

    ◎생음악 진행에 연주자 요구 맞추기 진땀/열흘 연습 군인들 바라연주 솜씨는 수준급/성화주자 내정 손기정옹 신병으로 못뛰어 ○…중앙경축식 준비과정에서 광복 50주년 기념사업위원회가 가장 고심한 대목은 음향. 우선 공연성을 강조하기 위해 축가·애국가·광복절노래를 모두 생음악으로 연주하다 보니까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는 것이 행사의 실무총책이라고 할 수 있는 김범일 총무처 의정국장의 설명. 또 음향설비와 악단의 구성,악단석의 위치 등과 관련해 정명훈씨 등 세계적인 음악인들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수준을 맞추는 일도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고. 이와 함께 「새아침의 소리」에 등장하는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방위병으로 구성된 멜북꾼과 바라꾼은 지난 3일에야 비로소 연습을 시작해 제대로 소리를 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주최측은 고심. 그러나 무거운 바라를 몇시간씩 들고 있어야 하는 탓에 겨드랑이에 가래톳이 생길 정도로 열심히 연습한 결과 전문가로부터 『열흘 남짓 기간에 저런 소리를 낼 수 있다니 놀랍다』는평가를 받았다. 식전행사인 「한울림」에 나오는 약 1천2백명의 연합기수단은 광복절 바로 전날 겨우 5시간 연습하고 행사에 참가했으며 군악대와 경찰악대도 1주일밖에 합동연습을 할 시간이 없었다는 후문. 의자를 2만5천개나 설치하는 것도 큰 일이어서 총무처는 군·경찰 병력을 동원하려다 결국 전문용역업체에 일임. 한편 식전행사인 「한울림」의 기수단행진의 제목은 당초 「큰 임 오신 날」에서 「다시 보는 광복 50년」으로 수정. 총무처는 애국지사의 모습을 인형 또는 조각물로 만들어 입장시키려고 했으나 인물선정상의 어려움 때문에 풍선과 깃발로 대신. 또 옛 총독부건물 첨탑을 철거하는 「어둠 걷우기」의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본행사 직전에 진행하려던 계획을 바꿔 「어둠 걷우기」에서 「다시 찾은 빛」,그리고 「통일로 미래로」의 순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하기로 계획을 변경. 식후행사인 「통일로 미래로」에서 「통일성화」의 마지막 주자는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옹으로 예정됐으나 손옹이 신병치료차일본에서 갔다가 귀국한 지 5일밖에 되지 않은 탓에 달릴 수가 없어 보스턴마라톤 우승자인 서윤복씨가 단상에 있는 손옹에게 성화를 전달하고 손옹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다시 인계하는 형식으로 대체했다고.
  • “한민족 기맥 끊기”… 경복궁에 터잡아/총독부청사 약사

    ◎14년 걸려 1926년 완공… 전각 4백칸 훼손 조선왕조의 정국 경복궁앞에 버티고 선 옛 조선총독부건물은 우리민족의 「정수리에 박힌 말뚝」.일제가 북악에서 종로 남산으로 이어지는 맥을 끊으려는 의도에서 건축했다.작약꽃송이 모양의 명당에 위치한 경복궁을 가로막고 있다.일제는 공사를 위해 건축학자와 사학자들로 구성된 고건축조사단을 파견해 조선의 궁성을 모두 조사한뒤 조선의 궁맥을 끊을 수 있는 최적지로 경복궁을 선택했다. 이 건물이 들어선 것은 지난 1926년10월1일.1911년 초대총독 데라우치(사내)의 지시로 4년간의 설계와 10년간의 공사끝에 완공됐다.기초설계는 독일인 게오르그 라란데가 맡았고 세부설계는 대만총독부를 설계한 노무라(야촌)와 구니에다(국지)가 했다.설계에만 4년이 걸린 것은 영국의 인도총독부나 네덜란드의 보르네오총독부보다 크고 웅장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기 때문이다.공사도 예정보다 2년이나 늦어졌다. 총독부건물의 규모는 대지 4만7천평에 동서로 2백42칸,남북으로 1백42칸.이 공사로 인해 경복궁의 강령전교태전 등 전각 4백여칸이 헐렸다.이는 경복궁 전체면적의 4분의1에 해당하는 것이다. 총독부건물은 「일」자 형태를 띠고 있다.일부 학자들은 『「대」자형인 북악산과 「본」자형인 서울시청건물과 아울러 공중에서 보면 「대일본」의 형상을 나타낸다』고 말한다.위치선정과 설계등 모든 점에서 우리 민족사의 기맥을 절단하고 식민통치를 영구화하려는 치밀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총독부건물은 10대총독 아베(아부)에 이르기까지 20년간 잔혹한 일제의 사령탑으로서 군림했다. 일제는 총독부건물과 함께 1927년 경복궁내 과거장등을 허물고 총독관저(구 청와대)를 지었다.풍수지리로 보면 총독부자리는 인체의 「입」,그리고 총독관저자리는 「목」에 해당한다.따라서 경복궁을 허물고 총독부와 총독관저를 지음으로써 왕조와 민족의 숨통을 억압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광복후 총독부건물은 미군정청사로 사용됐다.과도 입법의회가 사용하기도 했으며 이승만대통령 정부출범이후 정부청사로 사용됐다.제헌국회 개회식,초대대통령 취임식,9·28수복 등 역사적 사건들이 이 건물에서 이루어졌다.중앙청이라는 이름은 과도 입법의회가 중앙홀을 사용하면서부터 비롯됐다. 이 건물은 6·25때 대파된후 그대로 방치돼 「유령의 집」으로도 불렸다.제대로 복구돼 정부청사로 다시 활용된 것은 5·16후인 지난 62년11월부터. 그러나 건물을 철거하자는 주장이 줄기차게 제기돼 왔다.아예 폭파하자는 강력한 주장도 있었다.하지만 재정형편이 감당할 수 없었다. 이 건물에 정부기관이 철수하고 국립중앙박물관이 들어선 것은 5공때인 지난 86년.정부청사 이전과 총독부건물 철거여론이 거세게 일자 정부는 3년여에 걸쳐 2백77억원의 개조비를 들여 박물관 개관을 일방적으로 강행했다.철거주장은 6공때도 제기됐으나 1천억원에 이르는 철거및 박물관 이전비용 부담때문에 무산됐다. 이같은 우여곡절끝에 50주년 광복절에 비로소 중앙돔 첨탑부터 철거가 시작된 것이다.총독부건물은 약 68년10개월간 서울 한복판에 버티고 서있었던 셈이다. ◎총독부 첨탑 철거 지휘 유원우씨/“준비해온 2개월 긴장의 연속… 무사히 들어내려 다행” 『일제잔재 청산의 상징적인 작업인 구 조선총독부 건물 중앙돔 첨탑 해체를 무사히 끝내게 돼 감회가 새롭습니다』 조선총독부 철거작업을 2개월전부터 총지휘해온 철거현장 소장 유원우(44)현대건설 건축부장은 15일 아침 첨탑이 들어내려져 국립중앙박물관 광장에 안착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영남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78년 현대건설에 입사한 유씨는 아랍토후국 유전시설 공사장 근무등 해외근무 2년간을 빼놓곤 줄곧 국내 공사장에서 17년간을 보낸 현장통.건축과장 시절인 지난 86년 경희궁 개보수 공사를 관리하면서 유적지 현장 공사와 인연을 맺게 됐고 지난해 8월 조선왕궁역사박물관 신축공사를 현대건설이 맡으면서 현장 총책임자가 됐다. 『조선왕궁 역사박물관이 완공되는 내년 상반기에는 구 조선총독부 건물전체에 대한 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약 6개월이 소요될 이 작업은 첨탑해체보다 더 중요하고 위험한 만큼 신중한 준비작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첨탑 해체작업이진행되던 지난 2개월간은 긴장의 연속이었다』는 유씨는 『최근 다발하는 건축사고는 비양심적인 건설인의 소치』라며 조선왕궁역사박물관 완공과 구 조선총독부 건물이 완전철거되는 내년말까지 양심있는 건설인으로 현장을 지킬 것이라고 다짐했다.
  • 시민 5만명 「그날의 감격」 되새겨/기념식·경회루 연회 이모저모

    ◎뙤약볕 아랑곳 않고 “통일” 의지 새로 다져/“「총독부」 철거는 한민족의 정신적 해방” 강조 김영삼 대통령은 15일 광화문 앞 광장에 마련된 광복50주년 경축식에 참석한 뒤 경복궁 경회루에서 내외귀빈을 초청,광복절 기념 리셉션을 베풀었다. ○…이날 상오10시 부인 손명순여사와 함께 경축식장에 도착한 김대통령은 이홍구 국무총리 등의 영접을 받으며 단상에 올라 3부요인과 김승곤 광복회장을 비롯한 애국지사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인사했다. 김대통령은 고 이동휘 선생의 손녀 리 류드밀라씨 등 애국지사와 후손 11명에게 대통령장과 독립장 등 각급 포상을 직접 수여하고 격려한 뒤 경축사를 낭독했다. 김대통령이 경축사를 하는 동안 광화문앞 광장을 가득 메운 5만여 청중들은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10여차례 박수를 치며 연설을 경청했다. 경축사에 이어 김대통령은 통일과 미래에 대한 의지를 형상화한 남녀학생들의 집단체조를 관람했고 이어 손기정옹으로부터 「통일성화」를 인계받아 성화봉송단과 함께 통일전망대로 떠나는 황영조 선수에게 인계. 김대통령은 1시간 가량의 경축식이 끝난 뒤 이기택 민주당총재와 김종필 자민련총재등 단상의 초청인사들과 악수를 나누고 행사장을 떠났다. 한편 가칭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창당준비위원장은 정당대표가 아닌 탓으로 경축식 초청대상에서 제외됐다. ○…김대통령은 이어 이날 낮12시 경복궁내 경회루에서 열린 경축연회에 참석했다. 3부요인과 각계 인사·해외동포·주한외교사절단 등 1천여명이 참석한 이날 경축연회에서 김대통령은 『오늘 날의 우리가 있게 된 것은 조국 광복을 위해 이름 없이 광야에서 사라진 수많은 애국열사와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고 조국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조들 덕분』이라고 추모했다. 김대통령은 『광복절인 이날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면서 『6·25는 통일을 가져다 주지는 못했으나 공산주의의 종말을 예고 하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전쟁이었다』고 평가하고 평화와 자유를 지키고 공산주의를 막기 위해 함께 싸운 우방국에 대해 국민을 대표해 감사의 뜻을 표했다. 김대통령은 『옛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는 우리 민족이 정신적으로 해방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광복의 그날 만세를 부르던 심정으로 돌아가 위대한 나라,위대한 국가를 만드는 데 힘쓰자』고 역설했다. 경축연회에서 김대통령은 학창시절의 독립운동으로 이번에 독립유공자 포상인 애족장을 수여받은 홍영기국회부의장에게 감회를 물었고 홍부의장은 『옥중에서 맞은 해방의 감격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라며 당시의 감격을 회고했다. 이날 경축연회에는 이기택 민주당총재와 김종필 자민련총재가 초청돼 지난 달 31일 청와대 회동에 이어 김대통령과 야당총재들의 만남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됐으나 이총재와 김총재는 개인사정을 이유로 불참했다.
  • 오늘 광복 50돌/대대적 경축 행사

    ◎5만명 「환희의 그날」 기념식/구 총독부 중앙돔 첨탑 제거/세종로/김 대통령,대북 메시지 발표 15일은 제50주년 광복절.일제의 강점에서 벗어나 자유민주주의를 기치로 새 나라를 세운지 반세기를 맞는다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우리가 선진국으로 발돋움하여 21세기 새시대로 접어든다는 감격을 국민 모두가 함께 나누는 특별한 날이다. 정부는 광복 50주년을 기념하는 중앙경축식을 15일 상오 9시 광화문앞 세종로 광장에서 김영삼대통령과 3부요인및 각계대표,광복회원,해외동포및 일반시민 등 5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개최한다. 「광복 50년,통일로 미래로」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날 경축식에서는 특히 일제침략의 상징인 옛 조선총독부 건물의 중앙돔 상부첨탑이 크레인으로 철거된다. 김대통령은 이날 경축사를 통해 남북한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등에 관한 기본입장을 천명하고 향후 국정운영 방향도 밝힐 예정이다. 한편 광화문에서 충무공동상에 이르는 세종로 일대의 교통을 통제한 가운데 치러지는 경축행사는 식전·식후 행사까지 포함,15일 상오9시에서 2시간10분간 계속되는데 국민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수 있다. 본행사는 김승곤 광복회장의 기념사,정명훈씨 등 세계를 빛낸 한국음악인 4인의 축가 「동방의 빛」 연주와 합창,독립유공자 포상,김대통령 경축사,참석자들의 광복절노래 제창과 만세3창,축하비행 순으로 진행된다. 전국의 사찰·교회·선박은 본행사 시작 1분전 일제히 타종,취명을 해 광복절을 경축한다.
  • 1945년 「그날」도 무더웠다/대구 35도의 불볕… 오늘과 흡사

    「1945년 8월 15일.전국이 가끔 구름 많이 끼었고 기온은 대부분 지방이 30도를 넘는 무더운 날씨를 보였음.최고기온은 서울 33.9도,부산 31.7도,대구 35.0도,광주 32.9도… 강수량 기록 없음」 온 나라가 광복의 환희에 들떠 있던 50년전 날씨 관련 자료의 요약내용이다. 기상청이 14일 예보한 1995년 8월 15일의 전국 날씨 개황과 너무나 흡사하다. 기상청은 광복 50주년이 되는 날의 기상을 「전국이 가끔 구름 많고 소나기 오는 곳도 있겠음.최고기온은 서울 32도,부산 32도,대구 37도,광주 34도…」라고 예보했다. 단지 그때 기록에는 소나기 오는 곳도 있었다는 내용은 남아있지 않지만 기상관측술이 허술했던 점을 감안하면 그때와 지금의 날씨는 꼭 닮은 꼴이다. 기상청은 광복 50주년을 앞두고 당시의 기상자료를 뒤진 결과 이같은 내용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8·15 당시의 기상관측 조직은 조선총독부 산하의 기상본부가 인천에 있었으며 전국에 24개 측후소와 17개 항공기상출장소가 있었다.
  • 아시아를 위한 일본으로(해외사설)

    겐셔 전독일외무장관은 독일통일을 실현한 전후독일을 대표하는 외교전략가다.그는 유럽의 긴장완화를 추진,독일통일을 실현했다.겐셔외교가 미국은 물론 유럽으로부터 신뢰를 받은 최대의 이유는 그가 역설한 외교이념이었다.그는 『선량한 유럽인이 되는 것은 선량한 독일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나치독일은 유럽의 독일화를 꾀했지만 전후독일은 독일의 유럽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유럽과 미국을 향해 되풀이 말했다. 일본과 독일은 똑같은 패전국으로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했다.그러나 유럽과 아시아에서 점하는 지위와 세계로부터 받는 경의는 크게 다르다.독일은 유럽의 경계감을 해소했다. 한국 및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는 일본이 진실로 과거를 반성했는가에 의문을 품고 있다.일본에서는 얼마나 사죄해야 하는가라는 반발도 들린다.하지만 정부의 사죄표명후 과거 침략행위를 정당화하는 정치인들의 발언이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 여러 나라가 깊이 의심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국회의 전후 50년 결의를 둘러싼 혼란은 아시아여러 나라에 대일 불신을 크게 증폭시키는 결과로 끝나고 말았다. 한국에서는 구총독부건물의 철거작업이 15일 시작된다.구총독부건물은 아시아를 일본화하려던 역사의 유물이다. 철거는 전후 50년의 교훈에는 다소 구애되는 점이 있지만 미래지향의 한·일관계를 꾀하려는 한국지도자들의 뜻이 반영돼 있는 것이다. 일본은 미·일관계를 외교의 기본으로 해왔다.그러나 미국과의 관계강화는 아시아로부터 일본을 멀어지게 하는 국제역학으로 작용했다.독일의 경우 미국과의 관계가 북대서양조약기구를 중심으로 한 유럽과의 관계강화와 직결돼 있던 것과 비교하면 일본이 국제적으로 보다 복잡한 환경에 놓여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일본은 미국과의 대립을 격화시키지 않고 태평양의 가교역할을 해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아시아의 이웃나라와 미국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할 외교능력과 국민의 이해가 필요하다.독일의 지혜로부터 배운다면 과거 전쟁과 침략이 아시아를 일본화하려 한 행위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일본이 장래 아시아의 해양국가로 남으려면 아시아를 위해 노력한다는 새로운 이념을 명확히 제시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 광복절 경축 예행연습 이모저모

    ◎「새아침의 소리」 연주 이어 화려한 “폭죽”/전통국악대 연주… 장병 바라꾼도 눈길/「통일 환타지」서 모두 「우리의 소원」 합창 총무처는 13일 광화문앞 세종로 일대에서 광복절 중앙경축식 행사 예행연습을 가졌다.이날 연습한 부분은 식전행사인 「새아침의 소리」와 「다시 찾은 빛」,그리고 식후행사인 「통일환타지」등 3개. ○…「새아침의 소리」는 이날 상오 국립국악원에서 나온 대고수 5명,육군 60사단에서 차출한 장병으로 구성된 멜북꾼 2백4명,육군 71사단에서 나온 장병으로 이루어진 바라꾼 2백9명등 모두 4백18명이 참가했다.중앙식단 전면에 위치한 전통군악대는 「새아침의 소리」 연주에 이어 세종로 중앙분리대에서 큰북 소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폭죽이 터지면서 충무공동상앞에 대기하고 있던 멜북꾼·횃불수·바라꾼들이 북과 바라를 두드리면서 광화문으로 입장했다.「새아침의 소리」 연주는 과거의 어둠을 향한 초혼의 나발을 의미하며 북과 바라 소리는 역사의 문을 여는 소리,그리고 폭죽은 어둠에 눌렸던 과거의 빛을 상징하는것이라고 총연출을 맡은 표재순sbs프로덕션사장이 설명했다. ○…「다시찾은 빛」은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연주속에 국립무용단 서울시립무용단 경기도립무용단 단원들의 무용이 횃불수 멜북꾼 바라꾼과 한데 어우러진 「구시대의 유물인 총독부 건물의 첨탑이 사라지니 찬란하고 새로운 빛이 비쳐온다」는 내용.국악인 김성녀,성악가 신동호씨와 3백명으로 구성된 연합합창단의「천둥소리」합창이 이어졌다. ○…「통일환타지」는 한국현대무용단 서울시립가무단과 육군 56사단에서 차출된 군인들로 이루어진 무용단,서울 미동국교 어린이들의 무용과 합창이 어우러지는 행사.미동국교 어린이들이 식장 전면으로 춤추며 등장한데 이어 현대무용수들이 동·서 양쪽에서 합세해 「한반도」와 「무궁화」를 무용으로 표현하고 세종로 중앙분리대쪽에서 어린이 독창자를 태운 리트프가 하늘로 올라가면서 모든 출연자와 참석자들이 「우리의 소원」을 불렀다. 행사장 주변은 차량 통제로 매우 한산했으나 북과 바라,그리고 합창이 광화문 일대에 울려퍼져 광복의 분위기를 한껏 돋우었다. ◎미리본 광복 50돌 중앙 경축식/옛 총독부 첨탑철거부터 행사 시작/시민·해외동포 등 5만명 축제 참여 광복 50주년을 기념하는 중앙경축식이 15일 상오 9시 광화문앞 세종로 광장일대에서 각계대표와 광복회원,해외동포및 일반시민등 모두 5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된다. 이날 경축식은 광화문에서 충무공동상에 이르는 세종로 일대의 교통이 통제된 가운데 오전 9시부터 10시까지의 식전행사,10시부터 10시55분까지 본행사,10시55분부터 11시10분까지 식후행사로 나뉘어 2시간10분동안 진행된다.정부는 특히 식전행사에서 일제침략의 상징인 옛 조선총독부 건물의 중앙돔 상부첨탑을 크레인으로 철거한다. 전국의 사찰·교회·선박은 본행사 시작 1분전에 일제히 타종·취명을 해 광복절을 경축한다.국민들은 경축식에 자유롭게 참석할 수 있고 창덕궁을 제외한 5대궁과 능원,현충사,국·공립공원등이 이날 하루 무료 개방되며 광복회원및 동반가족 1인에게는 철도및 시내버스 무임승차 혜택이 주어진다.
  • 광복 50년/“조선 정궁” 경복궁 위엄 되찾는다

    ◎강녕전 등 8개동 완공… 10월 일반에 공개 광복50주년이 되는 올해 8월15일부터 조선의 정궁 경복궁도 그 위엄과 긍지를 되찾게 된다.경복궁을 가로막고 흉물스럽게 버티고 섰던 일제의 상징 구 조선총독부 건물의 중앙돔 첨탑이 이날 해체되면서 총독부건물의 철거작업이 본격화되기 때문이다.총독부 건물철거는 정부가 추진중인 경복궁 복원의 중추적인 작업으로 일제잔재 청산 뿐만 아니라 경복궁 복원 차원에서도 큰 의미를 담고있다. 문화체육부의 경복궁 복원 계획에 의하면 96년말까지 총독부 건물이 완전 철거되고 오는 20 09년까지 경복궁내에 모두 84개의 전각이 들어선다.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도 본래의 자리에 본디 모습에 따라 목조문으로 서게 된다.또 현재의 조선총독부 자리에는 회랑이 설치되며 조선총독부 미술관(구 민속박물관)도 98년까지는 모두 철거된다. 지난 91년 기공식을 갖고 시작된 경복궁 복원작업에 따라 지금까지 복원된 전각은 8개동 4백22평.강녕전·교태전·연생전·연길당·경성전·흠경각·응지당·함원전 등이다.왕과 왕비의 처소인 이 전각들에 이어 현재는 교태전 주변 행각들에 대한 복원공사가 진행되고 있다.당초 침전 복원계획의 85%에 달하는 공정이 마무리 된 셈인데 복원된 전각들은 오는 10월쯤 일반관람객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총 1천7백89억원의 예산이 드는 경복궁 복원공사에는 목재 약 4백50만재,기와 1백50만장이 소요되며 우리 전통건축술의 정수인 궁궐기축기법을 전승한 인간문화재 대목장·소목장·단청장 등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복원작업이 시작되기전 경복궁안의 전각은 일제의 훼손과 화재로 파손돼 36동에 불과했다.그러나 조선조 고종때만 해도 경복궁은 3백30여동의 전각에 7천여칸에 이르는 웅장한 궁궐이었다.13 95년 태조에 의해 창건될 당시엔 4백여칸 규모였으나 고종에 의해 18 67년 중건되면서 9천9백99칸에 이른다는 중국의 자금성 못지 않은 규모를 갖춘 것이다.오는 20 09년까지의 복원작업이 그 모두를 되살리지는 못한다 해도 잊혀진 조선 정궁의 당당한 모습은 재현해 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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