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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암리 진혼곡(외언내언)

    경기도 수원시청에서 서남쪽으로 20㎞쯤 달리면 화성군 향남면 제암리에 닿는다.400여명의 주민이 오순도순 모여 살고 있는 이마을 시장터옆에 마을이름을 딴 조그마한 교회 하나가 우뚝 서 있다.제암리교회.농어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골예배당 모습이지만 이곳은 3·1운동때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생생하게 증언해주고 있는 비극의 현장이다. 화성군일대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것은 서울보다 꼭 한달뒤인 4월1일.이날 하오7시 장안면 수촌리 뒷산에서 봉화가 오르면서 시작됐다.이튿날 시위군중은 2천명으로 불어났고 3일에는 시위군중일부가 주재소를 습격하기도 했다.사태가 급박해지자 조선총독부는 헌병대를 파견,시위를 진압했고 15일에는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23명을 제암리교회에 가둔뒤 불을 지르고 무차별총격을 가했다.그리고 같은 날 제암리 옆마음인 고수리에서도 천도교신자 6명을 무참히 살해,불태웠다. 이 만행으로 사람과 가축·곡식 등이 타는 냄새가 10㎞밖까지 퍼져 나갔다고 한다.학살사건이 일어난후 신자나 일반주민은 일본경찰의감시 때문에 사건현장에 얼씬도 못했지만 캐나다 의료선교사 스코필드박사가 찾아와 불탄교회에서 유골을 수습,공동묘지에 묻었다.제암리교회가 복원된 것은 1952년.정부의 도움과 주민의 성금으로 옛터에 옛모습 그대로의 교회가 지어졌고 유족회관도 건립됐다. 성탄절 전날인 지난 24일밤 제암리교회에서는 조촐하지만 감동적인 음악회가 열렸다.일본 히로시마(광도)슈도(수도)대학 나카우네 미노리 교수(50·여)가 3·1운동때 학살된 영혼들의 명복을 빌고 일제의 만행을 속죄하기 위해 마련한 「진혼연주회」.이 연주회에서 나카우네 교수는 바이올린으로 11곡의 진혼곡을 연주했고 「아리랑」 「봉선화」 「고향의 봄」 등 우리 가곡을 주민 200여명과 합창하기도 했다. 진혼연주회는 작은일이다.그러나 그 뜻은 매우 크다.이런 일들이야말로 한·일 두나라 관계를 보다 가깝게 하는 큰걸음이 아닌가 싶다
  • 「총독부」 철거·가짜총통 “희비”/’96 문화재부문 결산

    ◎남대문·동대문 옛이름 되찾아… 30경비단 철수 의의 1996년 병자년은 한국의 문화재와 관련해선 우리 민족 얼의 자존 찾기노력이 두드러진 반면 우리 문화재 지키기에 정부와 일반인들이 얼마만큼 무지했는가를 적나라하게 노출시킨 빛과 그림자의 한해였다.범 국민적인 행사로 진행된 옛 조선총독부 건물철거가 마무리되고 민족혼 회복차원에서 국보와 보물 1호의 명칭을 바꾸는 등 외형적인 성과가 부각된 반면 우리 선열들의 흔적을 담아냈다는 이유로 지정된 국보급 문화재 총통이 가짜로 판명되고 무형 문화재 지정과 관련해 금품수수가 폭로되는 정신적인 약체의식이 드러난 명암이 교체됐던 해이다. 이 가운데 옛 조선총독부 철거는 일제 청산의 타이틀 아래 범 국민적인 행사로 진행됐던 사안.찬·반 양론이 철거 순간까지도 팽팽했지만 결국 해체로 귀결된 만큼 대다수 국민들의 일제에 대한 정서가 반영된 국사였다.바로 옆 사회교육관 건물로 이전한 경복궁 국립중앙박물관 개관이 일제 잔재청산의 「부산물」로 남았지만 일단 일제청산이란 작업과 민족정기 회복의 미래지향 의지가 겹친 상징물로 압축되고 있다. 국보1호 남대문과 보물1호 동대문의 명칭변경도 우리 것 찾기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추진된 산물.일제의 우리 문화재에 대한 폄하를 바로잡기 위해 시정한 정신적인 시도로 「숭례문」과 「흥인지문」이란 고유의 이름을 되새겨준 의미있는 작업으로 평가되고 있다. 반면 귀함별황자총통 가짜 판명과 무형문화재 지정과 관련한 금품수수사건은 우리 문화재 정책의 후진성을 적나라하게 노출한 희대의 사건이었다.인양된지 불과 사흘만에 국보로 지정되는 문화재위원회의 불찰도 문제지만 문화재에 대한 정부와 국민들의 인식결여가 낳은 치욕적인 결과였다.불행중 다행격으로 뒤늦게 본말이 밝혀져 우리 문화재 정책의 후진성을 뿌리부터 지적해준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전화위복의 사건으로 기록됐다. 총통 가짜사건이 유형의 과오였다면 중요무형문화재 사기장 지정과정에서 드러난 금품수수건은 우리 문화의 보존차원에서 경종을 울리는 흔치않은 경우랄 수 있다.물론 관련 대학교수와 국가기관 인사의 사정이 일반인들의 동정을 적지않게 샀고 거래 액수가 작긴 하지만 중요무형문화재가 대대손손 이어지는 정신적 산물이란 점을 고려할 때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국방부가 군사독재 잔유물인 30경비단을 경복궁에서 철수키로 한 과정과 결과가 우리 문화재에 대한 인식 차원에서 일말의 밝은 빛을 드리우는 올해 의미있는 또하나의 조치로 받아들여진다.
  • 옛 총독부 철거기념/범 국민축제 성대히/27일 건물잔해도 나눠줘

    옛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를 기념하는 범국민축제가 오는 27일 하오 5시 조선총독부가 헐린 자리에서 성대하게 펼쳐진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일제침략의 상징인 옛 조선총독부 철거를 기념하고 남북통일과 민족번영을 기원하기 위해 국내외 귀빈 1천명이 참석한 가운데 400여명의 출연진이 전통예술공연을 벌이는 「겨레의 얼 되살리기 한마당 축제」를 개최키로 했다고 20일 밝혔다. 축제예술 대표 허규씨가 총감독을 맡은 이날 행사는 국군 전통의장대와 국방부 취타대,국립국악원 무용단,국립무용단,서울예술단,국립창극단,국립국악고교 등이 민속무용 고풀이와 궁중무용,대형 북춤을 공연하는데 이어 출연진과 참석인들이 함께 지신밟기와 강강수월래 불꽃놀이를 벌이는 대동춤 한판이 벌어진다. 국립중앙박물관측은 이날 행사 직전 경복궁 복원을 상징하기 위해 경복궁 근정전에 조명시설을 설치,점등식을 가지는 한편 행사후 참석인사와 관람객들에게 옛 조선총독부 철거 잔해인 석재를 나눠줄 예정이다.
  • 총독부 철거물 절반 재활용/총 4만8천여t

    ◎도로포장·토목공사 기초재료로 일제 식민통치의 상징인 국립중앙박물관(구 조선총독부건물)을 허물면서 생긴 건축 폐기물이 절반이상 재활용된다. 환경부는 18일 철거 시공업체인 현대건설이 최근 내년 1월말 철거작업이 끝나는 중앙박물관에서 발생하는 전체 건축폐기물 8만251t 가운데 4만8천738t에 대한 재활용 계획을 통보해 왔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전체 건축폐기물의 76.2%인 6만1천150t의 폐 콘크리트 가운데 절반인 3만575t을 도로포장 또는 토목구조물 공사의 기초재료로 활용한다. 폐 석재는 전체 폐기물의 19.7%인 1만5천863t으로 박물관 출입구에 있던 무게 2천400t의 화강석 기둥은 천안 독립기념관에 영구보존하고 나머지 돌판은 25∼30㎜ 크기로 잘게 부숴 보도블록 등의 제조에 쓰기로 했다.
  • 영 통치 벗어나 「항인치항」 진입/홍콩 행정장관 선출 의미

    ◎친중인사 뽑혀 중국과 긴밀한 관계 예고/과도기 50년간 일국양제 기틀마련 과제 해운재벌 동건화의 초대 홍콩행정장관 선출은 150여년에 걸친 영국의 홍콩식민지지배가 막을 내리고 이른바 「항인치항」(홍콩인이 홍콩을 통치)시대가 임박해오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이제 오는21일 의회격인 입법국을 대체할 임시 입법회 의원 선출과 행정장관의 주요 고위공직자 임명이 주요 후속조치로 남게됐다. 특별행정구 최고책임자로 동씨를 선출한 것은 내년7월 출범될 홍콩특별행정구(SAR)의 자치실험이 북경당국과 긴밀한 협조아래 진행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홍콩경제계를 대표하는 친중인사의 행정장관직 선출은 미래 홍콩진로를 상징한다.11일 400명의 선거인 가운데 320표란 압도적 표를 얻은 것도 홍콩경제계와 상류사회의 중국과의 협조를 통한 안정 및 홍콩경제 번영유지의 희망으로 풀이된다. 특별행정구의 첫 최고책임자는 정치적 개혁보다 경제적 번영을 통한 안정유지에 최우선을 둘 것으로 전망된다.동건화는 과도기의 안정유지와 앞으로 50년동안 유지될 중국의 「일국양제」제도의 기틀마련이란 과제를 안고 있다.높아지는 민주화 열기속에 일반 홍콩국민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도 동씨의 당면과제다.「체육관에서 선출된 중국의 파견총독」이 아닌 홍콩인들을 대변하는 자치정부의 대표란 입지를 중국정부와의 밀월속에서 어떻게 확보할지도 홍콩 자치실현과 관련,주목받고 있다.입법국 해산,기본권법 개정,인민해방군의 재판관할권,형법개정을 강행할 중국측과 홍콩내 민주세력의 정치자유확대 및 민주법제 유지 요구라는 상반된 주장속에서 동씨가 어떻게 운신의 폭을 확대할지도 주목된다.
  • 홍콩 초대행정장관 동건화 유력/선출위원 설문

    ◎결선투표 250∼280표 획득 예상 【홍콩 AFP 연합】 오는 11일 실시되는 홍콩특별행정구(SAR) 초대행정장관 결선투표에서 홍콩 해운왕 동건화(59·동방해외그룹회장)의 당선이 유력한 것으로 여론조사 결과 나타났다. 홍콩의 일간지 스탠더드는 400명의 행정장관 선출위원회 위원에게 설문조사한 결과,크리스 패튼 총독의 고문역을 역임한 바 있는 동회장이 250∼280표를 얻어 당선될 것으로 나타났다고 8일 보도했다. 지난달 실시된 1차투표에서도 동회장은 206표를 얻어 82표를 얻은 양철량 전 수석대법관을 크게 따돌린 바 있어 결선투표에서 무난히 당선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1898∼1947년 「제국의회 비밀회의」 속기록 공개

    ◎일,조선인 노동자 강제·조직원 동원/다나카 총독부총감 “징병 안된 모든 사람 데려온다”/내무성 적극개입 확인… 소 참전사실 두달전에 인지 일제가 제2차세계대전중 일본 국내의 노동력 확보를 위해 조선인 노동자를 사실상 강제적·조직적으로 동원했던 사실이 6일 공개된 일본 중의원의 1898년(메이지 31년)부터 패전후인 1947년까지의 「제국의회 중의원 비밀회의」 속기록에서 확인됐다. 88건의 속기록중에 포함된 다나카 다케오(전중무웅)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의 44년 2월 답변에서 다나카는 『(조선인 노동자가 없으면) 내지(일본)의 생산이 중단된다고 말을 듣고 있어 가능한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올해는 내무성의 막대한 협력으로 그같은 문제가 해결돼 기쁘다』고 말했다. 다나카는 이어 강제연행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군대에 가지 않은 자는 전부 노동자로 내지에 데려 온다』고 설명,조선인 동원이 징병과 같은 수준에서 강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뒷받침했다.그는 조선인 노동자의 차별과 관련해서는 『내지인의 태도에 모멸이 거듭되고 있다』면서 『원인을 내지인이 만들고 있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고 말해 일본인들이 차별을 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또 44년 무렵 『조선의 독립운동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고 말하면서 『미국 소련 중경세력(국민당정권)으로부터 조선의 독립운동을 사주하는 움직임이 있다』고 답변,당시 열강과의 협력하에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됐음을 증언했다. 한편 침략전쟁 막바지 식량확보방안과 관련,시바야마 육군성차관은 『조선으로부터 식량을 나무통에 담아 해류를 이용해 일본에 보내고 있다』고 말해 마지막까지 조선을 착취해 전쟁을 수행했음을 보여주었다. 한편 소련이 소·일 중립조약 불연장방침을 통보받은 직후인 45년 6월의 전시긴급조치법위원회에서는 도고 시게노리 외상이 이와관련,『조약이 지켜지리라는 것을 절대적이라고 믿기 어려운 사태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해 소련의 참전(45년 8월8일)을 두달전에 각오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같은 판단은 일본군부가 패전이 확실했음에도 불구,전쟁을 계속한 사실등은 외면한 채 소련의 일방적인 중립조약 파기와 대일참전을 패전의 주된 요인으로 돌리면서 러시아를 비난해 온 일부 인식과 관련해 주목된다.‘도쿄=강석진 특파원>
  • 국립중앙박물관 새 단장… 13일 전면 개관/중앙박물관은

    ◎총독부건물 서편 사회교육관 개조/용산 박물관 완공 2003년까지 임시 사용/부지 3만435평… 지상2층 지하1층 규모/미공개 1천300ㅇ여점 포하 4천425점 전시 경복궁 국립중앙박물관이 새 단장을 마치고 마침내 오는 13일부터 전면개관,일반관람객을 맞게 된다.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이던 옛 조선총독부건물이 헐려나가고 서편에 위치한 박물관 사회교육관을 다듬어 면모를 갖춘 경복궁 국립중앙박물관은 서울 용산에 새 박물관이 들어서는 오는 2003년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의 역할을 하게 된다. 개관에 앞서 6일 언론에 공개된 경복궁 국립중앙박물관은 부지면적 3만435평,연건평 5천550평에 지상 2층,지하 1층 등 3개 층에 걸쳐 선사실·고구려실·백제실·신라실·고려자기실 등 18개 상설전시실과 2개의 기획전시실을 갖춘 모습. 크게 고고분야와 미술실분야로 나누어 고고분야는 선사실·원삼국실·고구려실·백제실·가야실·신라실·통일신라실로 구분되며,미술실분야는 불교조각실·금속공예실·서화실·역사자료실,그리고 기증관인 수정기념실과 동원기념실·고려자기실·분청사기실·조선백자실·사랑방 등으로 꾸며져 시대·성격별로 세분화했다. 고고분야 전시실에는 최근 발굴된 중요유물을 대폭 보강전시하는 한편 신석기인의 생활상과 청동기제작과정,고구려 벽화고분모형,가야 무사상등 각종 모형제작을 통한 전시의 입체성을 살렸고 미술실분야는 각 유적지에서 출토된 매장유물과 구입유물을 보완하는 한편 서화유물을 전면교체한 것이 특징이다. 전시유물만 하더라도 총2천112평에 4천425점을 갖추게 된다.이 가운데 36%에 해당하는 1천300여점은 과거 헐린 박물관에 내놓지 않던 새로운 것으로 지난 94년부터 국내 수집은 물론 소더비와 크리스티 경매에서 사들여 처음 공개하는 유물이다. 새 박물관답게 전시형태를 종전의 평면적 방식에서 탈피,고분을 실제모양으로 만들어놓는 등 입체적으로 꾸며 관람객이 보다 흥미롭게 유물을 접할 수 있도록 애쓴 흔적이 보인다.전시물의 훼손을 막고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 외부공기를 차단하면서 직원이 진열장 안에 들어가지 않고도 자유롭게 전시유물을 이동할 수있는 시스템 슬라이드진열장을 설치한 것도 눈에 띈다. 관람객에 대한 다양한 편의제공도 달라진 모습.관람객은 모두 25대가 설치된 무인안내 시스템을 통해 유물의 위치와 내용을 파악할 수 있고 핸드폰 음성안내기로 진열장 유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녹음으로 들을 수도 있다.이 터치스크린과 핸드폰은 우선 우리말과 영어·일어서비스를 시작으로 내년까지 7개 국어로 늘려 하게 된다.
  • “황산대첩비 등 문화재 일제가 파괴”

    ◎행주전승비·이순신 명량대첩비 등 20건/오세탁 전 충북대교수 「지시 공문」 발견 일제가 남원 황산대첩비 등 우리 문화재 20건을 반시국적인 고적이라며 무참히 파괴할 것을 지시한 공문이 발견됐다. 오세탁 전 충북대교수가 3일 국립민속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릴 「일제의 문화재정책 평가 세미나」 발표를 앞두고 국립중앙박물관 일제문서보관창고에서 찾아낸 이 문서는 태평양전쟁 막바지 무렵인 1943년 8월,11월 전북도 경찰부장과 총독부 학무국장이 각각 발송한 「유림의 숙정및 반시국적 고적의 철거에 관한 건」.문서에 따르면 유림등 주민의 반일적 불온한 동향이 황산대첩비와 같은 이른바 반시국적 고적이 정신적 지주가 돼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일제는 사적비 20건을 파괴할 것을 지시했다. 명기된 문화재는 고양 행주전승비,청주 조헌전장기적비,공주 명람방위종덕비,공주 명위관임제비,공주 망일사은비,아산 이순신신도비,운봉 황산대첩비,여수 타루비,여수 이순신좌수영대첩비,해남 이순신명량대첩비,남해 명장량상동정시비,합천 해인사 사명대사석장비,진주 김시민전성극적비,진주 촉석선충단비,통영·남해 이순신충렬묘비,부산 정발전망유지비,고성 건봉사 사명대사기적비,연안 연성대첩비,경흥 녹보파호비,회령 고충사타 등.
  • “총독부 벽돌 등 기념보관 하세요”/국립중앙박물관

    ◎중순께 무료 배포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달 중순 조선총독부 철거 현장에서 철거된 폐기물을 국민들이 가져가 기념품으로 영구 보존할 수 있도록 하는 행사를 마련한다. 박물관측은 총독부건물에서 나온 돌을 벽돌크기로 잘라 철거현장에 쌓아놓고 이날 방문객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기로 했다.또 지난해 총독부 첨탑 제거행사때와 마찬가지로 각종 공연 등을 열어 방문객들이 총독부 철거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박물관측은 당초 일반인들이 철거 폐석재를 반출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원칙아래 7만3천여t의 철거 폐석재중 첨탑,전면기둥,장식돌,내부난간 등 주요 부재 2천4백여t은 독립기념관에 이전 보존하고 나머지는 김포매립지에 버리기로 했었다.
  • 되찾은 이름(외언내언)

    국보1호 남대문이 숭례문으로,보물1호 동대문이 흥인지문으로 본래의 명칭을 되찾게 되었다.일제 때인 1934년에 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꼭 62년만에 「호적상 이름」을 되찾은 셈이다.이밖에도 5점의 문화재명칭이 바뀌었고 6점의 보물이 국보로 승격되는 등 일제 지정문화재의 재평가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숭례문」「흥인지문」이란 어엿한 현판이 걸려 있는데도 지정명칭이 속칭인 「남대문」「동대문」으로 된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현판의 글씨는 가로쓰기가 원칙인데 숭례문만은 세로로 씌어졌다.서울 외곽인 관악산의 화기를 억누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숭례문의 현판은 세종의 형님인 양녕대군의 글씨라고 전해진다. 일제는 문화재명칭의 격하뿐만 아니라 조선왕조와 관련되는 것은 가능한 한 말살하려고 했다.조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을 가리기 위해 광화문을 옮기고 근정전 앞에 총독부청사를 세웠다.왕조에 대한 백성의 향수조차 막으려 한 것이다.1918년에는 창덕궁 내전을 중건한다는 명목으로 200여동에 달하는 경복궁의 전각을 헐어냈다.일제는1909년 창경궁에는 느닷없이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고 벚꽃을 심었다.이름도 「창경원」으로 바꿔 유원지로 만들었다.그들의 구실은 『고종의 적적함을 달래주기 위해서』였다.왕궁을 밤벚꽃놀이장소로 만든 것도 계산된 휼계였다.창경궁은 84년부터 중창공사가 추진돼 「창경궁」이란 본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창덕궁의 「비원」도 일본인이 개명해놓은 것.원래이름은 금원이다.금원이란 호적명을 찾아줬음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비원이라 부르고 있다.일제가 물러간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명칭에 남아 있는 일제의 잔재는 아직도 많다.「국민학교」란 이름이 「초등학교」로 바뀐 것도 해방 51년만의 일이 아닌가.
  • 구총독부 지하 나무말뚝 9천388개 뽑아낸다

    일제가 옛 조선총독부 건립 작업에 앞서 기반을 다지기 위해 조선총독부 건물 부지 땅속에 박아 놓았던 9천388개의 대형 나무말뚝들이 모두 제거된다. 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재관리국은 이미 철거한 옛 조선총독부 지하에 일제가 박아놓은 지름 20∼25㎝,길이 4∼8m의 대형 나무말뚝들도 민족정기 회복 차원에서 제거돼야 한다는 지적에 따라 모두 제거하기로 했다. 말뚝뽑기 작업은 청사 잔해물 제거작업이 완료되는 내년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 “경복궁 불교문화재 반환”/조계종,정부에 요구

    구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로 경복궁의 옛 모습을 복원하는 작업이 진행중인 가운데 불교계는 일제가 경복궁 안에 모아둔 국보 및 보물급 불교문화재의 반환을 요구하고 나섰다.
  • 28개 기업 진출… 작년 교역량 55억불/한·말련 관계 현황

    말레이시아는 독특한 입헌군주국이다.국왕이 있지만 영국·일본과 달리 선출직이다.연방국가인 말레이시아에는 13개의 주가 있다.페낭·말라카 등 비말레이계 4개 주는 국왕이 임명하는 총독이 통치하며 나머지 9개 주는 주왕이 통치자다.주왕회의에서 9명의 주왕중 1명을 국왕으로 호선한다.국왕 임기는 5년. 국왕은 국가원수로서 의전적 성격이 강하며 실제국정은 총리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말레이시아는 1인당 GNP가 4천달러를 넘고 있다.동남아에서는 싱가포르 다음으로 잘 사는 나라다.연간 교역규모도 1천5백억달러이상으로 탄탄한 경제기반을 갖추고 있다.마하티르 총리는 「비전 2020」의 기치를 내걸고 선진국도약을 꿈꾸고 있으며 88년이래 연 8%이상의 고도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말레이시아간 교역량은 95년 55억달러에 달했다.우리가 계속 적자를 기록하다가 지난해 처음으로 흑자로 반전됐다.28개 우리 업체가 진출해 있고 현지투자설립업체가 30여개다.총투자액은 2억9천만달러. 말레이시아는 우리의 주요자원공급국이다.95년 우리의 수입액25억달러중 절반이 목재·원유·천연가스 등 자원수입이었다.95년부터 2015년까지 매년 2백만t씩의 LNG장기도입이 진행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또 우리에게 제2위의 해외건설시장이다.지난해에만 12억달러의 수주가 이뤄지는 등 95년까지 건설수주누계는 60억달러에 이른다. 말레이시아정부는 최근 한국건설업체에 대해 불리한 조치를 취하기도 했으나 김대통령 방문을 앞두고 대부분 해제했다.한·말레이시아 정상회담 이후에 우리 건설업체의 진출이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전망된다.
  • 국립중앙박문관 개관/새달 13일 경복궁내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정양모)은 다음달 13일 경복궁내 국립중앙박물관을 개관한다고 22일 밝혔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사용해오다 이 건물 철거작업에 앞서 지난 6월1일 휴관에 들어갔다.
  • “신문 변혁” 주도… 언론사 새 장 열다(서울신문 51년)

    한장의 사진 속에는 지나간 역사의 한 순간이 시간이 정지된듯 그대로 살아 있다.올해로 51돌을 맞은 서울신문도 그 무르익은 연륜만큼이나 뜻깊은 사진을 많이 남기고 있다.낡은 한장의 사진에는 서울신문 변화의 발자취뿐만 아니라 격동과 부침을 겪으며 발전해온 우리 역사가 숨쉰다.서울신문이 우리 사회와 창조적으로 교감,그 발전을 이끌어온 사실이 무엇보다 뚜렷이 드러나는 것이다.서울신문과 우리사회를 씨줄·날줄 삼아 짜인 사진들을 통해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을 서울신문의 기념비적 순간들을 돌이켜본다. ▷서울신문 1호◁ 1945년 11월23일자 서울신문 첫호 1면.서울신문이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를 이어받아 창간했음을 전하는 기사가 한가운데 보인다.지령을 제13738호로 한 것은 1904년 창간한 대한매일신보로부터의 계승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 ▷언론메카 기공식◁ 1982년 4월6일 서울신문사는 태평로 옛사옥을 헐고 현재의 서울신문사·프레스센터 건물인 새사옥 신축에 들어갔다.지난 39년 건축돼 해방,정부수립,6·25,5·16 등 파란많은 한국현대사를 고스란히 지켜보며 서울신문과 영욕을 같이한 구사옥은 이로써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신사옥 기공식에서 힘차게 삽질하는 인사는 맨 왼쪽에 정주영 당시 전경련 회장,한사람 건너 문태갑 당시 서울신문사장,그 곁에 이광표 당시 문공부장관 등이다.새사옥은 84년말 완공됐다. ▷을지로 사옥 시절◁ 1982년 12월16일 서울 을지로5가 서울신문 임시사옥 게시판에서 「김대중 석방」을 알리는 속보를 보는 시민들.새사옥을 짓는 3년간 서울신문은 농협 건물에서 셋방살이를 해야했지만 서울신문 가족은 최신식 건물에서 더 크게 도약할 미래를 꿈꾸며 어느때보다 부지런히 뛰어 「중공기납치범」사진 특종,「아웅산 폭발사건」일보 등 잇따른 특종을 엮어냈다. ▷국내 첫 CTS 도입◁ 서울신문이 1985년 1월1일자부터 언론사상 처음으로 도입한 컴퓨터편집조판시스템(CTS).태평로 새 사옥으로 돌아온 때에 맞춰 서울신문은 기존의 납활자 제작방식에서 탈피,최신기술의 결정체인 CTS로 신문을 찍어내며 전자신문시대의 새 장을 열었다.이후 모든언론사가 앞다퉈 CTS 대열에 참여했고 제작시간 단축,지면개선 등 신문제작에 일대 혁명이 일어났다. ▷대구 분공장 준공◁ 1992년 7월1일 서울신문은 대구인쇄본부 건물을 준공,신문의 지방화시대를 열었다.준공식에 참석한 김영삼 당시 민자당대표 등 축하방문객들은 시설들을 둘러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구로공장에 이어 건립된 대구인쇄본부는 신문의 전국 동시인쇄를 가능케 해 「정보의 지방공유시대」를 앞당겼다.대구인쇄본부는 현재 하루 30만부 정도를 찍어내면서 서울판과 똑같은 따끈따끈한 뉴스를 지방독자들에게 전해준다. ▷인터넷 신문시대 개막◁ 1995년 11월22일 창간 50주년을 기해 서울신문은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서비스하는 「뉴스넷」을 도입했다.이로써 네티즌들은 서울신문을 비롯해 자매지인 스포츠서울·뉴스피플·TV가이드 등에 실린 모든 기사를 인터넷상에서 찾아볼 수 있게 됐다.신속하고 세밀한 정보제공으로 「뉴스넷」은 개통 열달 만에 「하루 접속 1백만건 돌파」라는 기적을 일궈냈다.그러나 정보화의 혁명적 물결에 대비하고 더 나아가 이를 이끌어나가기 위한 서울신문의 정보화노력은 이제부터가 시작단계라 할 수 있다.
  • 공익정론 외길 초일류 고급지로(서울신문 51년)

    □45년∼84년 ·항일지 「대한매일신보」 뿌리로 ·54년 소설 「자유부인」장안 선풍 ·56년 언론사상 첫 한글판 제작 □85년∼현재 ·CTS 첫 도입 등 언론사에 큰 획 ·서울신문,스포츠서울 뉴스넷 개통 ·96년 10월 전면가로쓰기 단행 서울신문은 해방공간의 어지러운 상황이 한창 전개되던 1945년 11월22일 태어났다. 서울신문 탄생은 당시 언론계는 물론 정치·사회·문화계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은 하나의 사건이었다.일제 총독부 기관지 역할을 한 매일신보의 인쇄시설과 건물 등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신문발행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갖춘데다 이제야 비로소 민족의 기대와 염원을 담아낼만한 권위있고 책임있는 언론기관이 등장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서울신문은 이와 함께 창간호를 1호가 아닌 제13738호로 시작했다.이는 새 시대를 맞은 해방조선의 대변기관을 자임하는 동시에 1904년에서 한일합방까지 지령 1461호를 기록한 대한매일신보와 이후 1945년 11월10일자(13737호)를 끝으로 미군정청으로부터 정간처분을 받은 매일신보의 전통을잇는다는 정통성의 표현이었다. 창간 이래 3년 가까운 기간 중립지 노선을 고수해온 서울신문은 그러나 국토가 분단되고 공산화 위협이 거세지자 반공지로 변신한다.직접적인 계기는 1949년 5월3일 공보처가 내린 발행정지 처분이었다.이유는 반정부기사를 많이 싣는다는 것이었다.그러나 이후에도 각종 현안이나 이승만정부에 대한 건설적 비판논조는 계속 이어갔으며 미군철수안·여순반란사건·국가보안법 문제 등에서 비교적 온건하고 균형있는 입장을 견지했다. 한국전 발발은 서울신문에도 큰 시련이었다.기자 1명을 포함한 사원 8명이 목숨을 잃었고 시설 일부가 두차례나 파괴·해체당했으며,고단한 부산 피난시절을 감당해야 했다.그러나 서울신문은 멈추지 않았다.51년 4월6일에는 서울수복후 첫 진중신문을 발행,「우리는 돌아왔다」는 사설을 게재함으로써 서울시민들을 감격에 젖게 했다. 6·25전란은 한편으로 서울신문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강화시키는 계기가 됐다.이는 자유당 발족을 전후해 통치기반의 공고화를 꾀했던 이승만정부의 구상에 의한 것이었다.하지만 이같은 상황에서도 서울신문은 정치부문에선 친정부적 성격을 분명히 하면서도 기타 문제에 있어서는 시시비비를 엄정하게 가리는 절묘한 균형을 취했다. 한편 50년대초 반공포로 석방·휴전협정 조인·한일회담 결렬 등 역사적 사건들이 쉼없이 전개되는 속에서도 서울신문은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사상초유의 인기와 시비를 몰고 왔던 소설 「자유부인」의 연재가 그것이다.54년 1월1일부터 그해 8월6일까지 모두 215회에 걸쳐 연재된 「자유부인」은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6·25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때 전후의 퇴폐적 분위기에 휩쓸려 허영과 향락으로 치닫는 여성을 묘사한 이 소설은 장안에 숱한 화제를 낳으며 소설의 윤리성과 창작의 자유에 관한 논쟁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1960년 4·19혁명은 서울신문에게 시련과 희망을 동시에 안겨주었다.4·19 그날 시위군중에 의해 사옥이 불타는 수난을 당한 반면,곧이어 출범한 제2공화국 하에서 서울신문은 「불편부당과 엄정중립」을 다시 표방할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된다.그러나 새출발의 기쁨도 잠깐,극심한 경영난으로 서울신문은 61년 5월9일부터 무기한 휴간에 들어갔다. 5·16 쿠데타는 서울신문에게 재기의 길을 열어주었다.7개월째 발행되지 못하던 서울신문이 집권층의 후원과 재벌들의 호의적 반응으로 그해 12월21일 속간된 것이다.이때부터 서울신문은 비약적인 사세신장을 이루었으나 한편으로는 5·16 군사정부와 뒤이은 제3·제4공화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길을 걷게 된다.특히 72년 10월 유신으로 빚어진 전환기에서 서울신문은 친정부적 성격을 굳히게 된다.서울신문의 성격상 당시로선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서울신문은 창간 30주년인 75년을 기점으로 사세중흥기를 맞게 된다.고속 오프셋 윤전기의 가동으로 신문발행의 전환기를 마련했고 ▲지령 1만호 기념 만호장학금 신설 ▲의료보험제 도입 ▲급여인상 등 사원복지를 크게 향상시켰다. 5공 출범한 81년은 서울신문으로선 새롭게 내실을 다지는 원년이 됐다.대중문화에 대한 욕구를 해소할 길이 없던 청소년층을 위해 「TV가이드」를 창간,대중문화를 선도했는가 하면 「예술과 비평」을 선보여 고급문화를 추구하는 독자들을 만족시켰다.바야흐로 종합언론사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신문은 이와 함께 국내 최고 종합일간지다운 면모를 다지고자 새 사옥 마련에 나섰다.82년 1월1일 태평로를 떠나 을지로 임시사옥으로 이사한 뒤 3년여에 걸친 대역사끝에 새 사옥을 마련한 것. 85년 1월1일 준공된 서울신문·프레스센터 사옥은 한국언론 제2세기의 개막을 알리는 전조였다.이때부터 서울신문은 쾌적한 환경에 최첨단 시설을 갖춘 「한국언론의 메카」로 자리잡았다.특히 이 시기에 도입된 CTS 제작시설은 신문발행사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됐다.국내 신문사로는 최초로 CTS를 도입한 서울신문은 다른 신문사들의 부러움을 한껏 즐기며 신문제작 역사에 뚜렷한 이정표를 남겼다. 서울신문의 비약적 발전을 위한 사건은 또 있었다.그해 6월23일 「스포츠서울」의 탄생이 그것이다.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보다많은 스포츠 정보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자 창간한 「스포츠서울」은 30분만에 창간호 가판이 완전매진되는 등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면서 지금까지 정상의 스포츠·연예·오락 전문지로 군림하고 있다. 스포츠·연예·오락전문지 「스포츠서울」,시사주간지 「뉴스피플」,대중문화 전문주간지 「TV가이드」,여성월간지 「퀸」등을 자매지로 둔 서울신문은 이제 또한번의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증자를 통한 5세대 CTS와 최첨단 윤전기의 도입을 마무리한데 이어 「서울신문·스포츠서울 뉴스넷」이 1일 접속횟수 1백만을 돌파함으로써 전자신문계의 신기원을 이룩한 것이다.21세기에 진정한 정론지로서 독자들을 찾아갈 서울신문의 밝은 미래는 이미 시작됐다. □약사 1945년 △11.22 서울신문 창간 1946년 △3.1 제1회 「3·1기념 서울·인천간 왕복마라톤 경기대회」개최(77년 32회까지 존속) 1948년 △10.18 시사지 「주간 서울」 창간 1951년 △3.8 전란으로 휴간 △6.9 피란지 부산에서 서울 복귀 1953년 △8.16 첫 견습기자 공채 실시 △9.1 어린이신문 「주간소년서울」 창간 1954년 △1.1∼8.6 소설 「자유부인」연재 1956년 △10.18 언론사상 첫 한글판 제작 1958년 △10.1 신문사상 처음으로 조석간 발행 1960년 △4.19 시위군중에 의해 사옥 전소 △4.26 휴간 △6.27 속간 1961년 △5.9 경영난으로 휴간 △12.21 속간 1962년 △8.13 석간으로 전환 1966년 △2.9 한국 최초로 1백만원 고료 장편소설 당선작 시상 1968년 △9.22 대중 주간지 「선데이 서울」 창간 △11.22 전 지면에 걸쳐 한글전용 단행 1975년 △3.30 「주간 스포츠」 창간 △11·2 「주간 소년서울」 폐간 1978년 △10.5 보관자료 마이크로필름화 1981년 △7.18 청소년 주간지 「TV가이드」창간 1982년 △1.1 을지로 임시사옥으로 이전 1985년 △1.1 언론사상 처음으로 CTS 도입,태평로 신사옥 입주 △6.23 스포츠 전문지 일간 「스포츠 서울」 창간호 발행 1989년 △9.23∼10.18 파업 1990년 △6.23 여성월간지 「퀸」창간 1991년 △7.31 구로공장 준공 △12.31 「선데이 서울」폐간 1992년 △1.5 자매지 주간 「피플」창간 △7.3 대구인쇄본부 준공 △12.25 「피플」,「뉴스피플」로 제호 변경 1994년 △2.18 「깨끗한 산하지키기 운동본부」발족 1995년 △11.22 서울신문·스포츠서울 뉴스넷 개통 1996년 △1.29 서울신문·스포츠서울 뉴스넷 국내 첫 동화상 속보체제 시작 △10.1 전면 가로쓰기 단행
  • 서울신문 창간51돌 기념 김 대통령 특별회견:Ⅰ

    ◎미·중 정상과 한반도문제 긴밀 논의/OECD가입 무역적자 해소에 도움/일 하시모토 총리와 월드컵 협력 협의/북,군인조차 굶주리며 적화통일 망상/북한 도발재발 방지 약속해야 경협 재개/금융기관 경쟁 촉진… 금리 하향안정 유도 김영삼 대통령은 서울신문 창간 51주년 기념 특별회견을 옛 조선총독부건물 철거에 따른 소회를 밝히는 것으로 시작했다.『해방후 50여년동안 그 건물이 그대로 있어 무언지 국민의 정신을 짓눌러왔다』면서 『금년에 다 철거된 것은 문민정부 개혁중 특별히 기억될 일』이라고 강조했다.김대통령은 조선총독부건물 철거와 관련해 서울신문에 대한 따뜻한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서울신문도 해방직후 창간됐다』며 『새 역사와 서울신문은 같이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김대통령은 이어 20일 시작되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과 베트남·말레이시아 순방,미국·일본·중국 등 주요국가 정상과 만나 대북문제를 조율하는 일정,경쟁력 10%이상 올리기운동 등에 대한 물음에 진지하게 답변했다.특히 공직부정을 언급할 때의 단호한 톤은 부정부패척결의지가 얼마나 강한지를 그대로 보여줬다.회견장소는 청와대 본관 접견실이었으며 서울신문 우홍제 편집국장과 이경형 정치부장이 질문에 나섰다. ­필리핀 APEC 정상회의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 정상들과 어떤 문제에 대해 중점적으로 논의하실 계획인지요.한국은 어느 정도 수준의 자유화계획을 제출하게 됩니까. ▲작년 오사카 정상회의에서 APEC 무역투자자유화를 위한 기본골격인 행동지침(Action Agenda)을 마련했습니다.이번 정상회의에서는 오사카회의의 행동지침에 따라 역내 무역투자자유화 실천을 위한 실행계획(Action Plan)과 APEC 회원국간 경제협력방안에 대해 주로 논의할 예정입니다.나는 이번 회의에서 APEC을 통한 무역투자자유화의 혜택이 역내 회원국에게 골고루 돌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생각입니다.특히 APEC 국가가 공동체의식을 갖고,공동의 목표를 향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공존공영할 수 있다는 점을 역설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 그 역할에 상응하는 수준에서자유화실행계획을 마련했습니다.이번 실행계획은 WTO협정을 비롯한 기존의 무역투자자유화계획을 중심으로 작성한 것입니다.이는 앞으로 우리가 선진경제로 진입하는데 초석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북의 점진적 개방 유도 ­APEC회의 참석을 계기로 한·미,한·중 정상회담도 열릴 예정입니다.재선된 클린턴 대통령과 어떤 형태의 대북공조방안을 이끌어내실 생각인지요.중국정상과 만나 북한이 잠수함사건을 사과하고 4자회담에 나오도록 영향력을 행사해달라고 요청하실 의향이 있으신지요. ▲한·미 양국은 그동안 대북정책추진에 있어서 긴밀한 공조체제를 유지해왔습니다.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에서는 잠수함을 통한 무장공비침투사건과 관련,북한의 잇따른 보복위협에 대해 확고한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거듭 확인하고 저들의 무력도발가능성에 단호히 대처할 것을 다짐했습니다.양국은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궁극적인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북한의 점진적인 개혁·개방을 통해 남·북간 화해·협력을 증진시켜 나가야 한다는 데도 인식을 같이하고 있습니다.이번 클린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는 이와 같은 양국간의 공동인식과 공조체제를 재확인할 것입니다.또한 북한에 대해 먼저 무장공비침투에 대한 사과 및 재발방지약속 등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할 것과 4자회담에 조속히 응할 것을 다시 한번 강력히 촉구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북한엔 미래가 없다” 우리는 그동안 한반도문제와 관련하여 중국과도 긴밀히 협의해왔습니다.강택민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도 북한의 무장공비침투사건과 4자회담을 비롯하여 한반도에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중국의 건설적인 기여방안 등 상호관심사를 폭넓게 논의할 것입니다. 다른 나라 정상도 남북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개인적으로 만나면 으레 그것을 물어봅니다.외국정상들도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북한 미래에 대해 그 사람들 나름대로 전망을 합니다.대부분 북한의 미래가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국민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남북통일에 대한 생각에 있어 우리와 북한이 다르다는 것입니다.우리는 민주방식인데 비해 북한은 적화통일에서 한치의 변화도 없습니다.북한은 군인조차 배가 고픈 실정입니다.굶는 군인이 있으며 자주 후송되고 있습니다.그런 상황에서 1백6만의 군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도저히 상상이 안되는 일입니다. ­일본 총선에서 자민당 승리이후 일본국민과 정계가 보수화·민족주의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그러나 우리와 일본은 대북정책공조와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 등 함께 노력해야 할 과제도 많습니다.필리핀에서 하시모토 총리를 만나면 과거사 정리문제와 함께 양국간 협조방안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내실 생각이신지요. ○베트남 한국공단 협의 ▲나는 이번에 새로 출범한 일본의 자민당정권이 하시모토 총리의 지도력 아래 종래의 대외정책기조,특히 한국을 중시하는 대한반도정책을 변함없이 견지해나갈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나와 하시모토 총리는 21세기 미래지향적인 한·일 협력관계는 올바른 역사인식의 토대 위에서 구축되어야 한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하고 있습니다.이번 마닐라 정상회담에서도 이러한 인식에 입각하여 한반도에서의 안정과 평화유지,2002년 월드컵의 성공적인 공동개최 등에 대한 양국간 협력방안을 심도 있게 협의하고자 합니다. ­APEC 정상회의 참석을 전후해 베트남과 말레이시아를 방문하시게 되는데 동남아 2개국 순방에서 역점을 두고 논의하실 내용은 무엇입니까. ▲나의 이번 베트남 방문은 수교후 우리나라 국가원수로서는 최초의 방문입니다.베트남의 풍부한 자원과 성장잠재력에 비추어 양국간 실질협력을 강화할 필요성은 매우 커지고 있습니다.베트남은 인도차이나의 주요국가로서 우리와 수교한지 4년에 불과하지만,교역·투자 등 여러 분야에서 우리와의 실질협력관계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이번 방문기간중에 한국전용공단설립,원자력협력협정체결,메콩강유역개발 등을 비롯하여 경제협력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이 중점논의될 것입니다.말레이시아는 동남아에서 가장 모범적인 경제성장을 지속해오고 있는 우리의 주요실질협력상대국입니다.나의 이번 방문에서 투자확대,자원협력을 비롯하여 범아시아 철도망건설,방위산업협력 등 새로운 분야에서의 협력확대방안도논의하고자 합니다.또한 이번 순방중에는 이 두 나라가 회원국으로 있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의 협력증진방안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논의할 계획입니다.이것은 동아시아의 일원으로서 한국과 ASEAN이 21세기 아·태시대를 함께 준비한다는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무장공비침투사건과 관련해 북한이 아직 공식사과는 않고 있습니다.내부적으로는 북한으로부터 어떤 반응이 왔는지요. ▲북한은 지금까지 우리의 요구에 대해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오히려 우리에 대한 비방·중상을 강화하고 있습니다.북한의 이와 같은 적반하장의 행태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면서 북한주민의 어려움을 지원해온 우리의 대북정책기조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것입니다.무엇보다 먼저 북한당국은 무장공비침투와 무고한 우리 주민을 살상한데 대해 명시적으로 시인·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해야 합니다.북한이 우리의 이러한 요구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때,남북간에는 대화와 협력의 분위기가 다시 조성될 것이며 남북경협도 재개될 수 있을 것입니다. ○국력 국제적 인정 의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으로 우리 경제는 또 한번의 도약기회를 맞고 있으나 그에 따른 부담도 적지 않습니다.OECD 가입이후 한국경제의 진로를 어떻게 구상하고 있으신지요. ▲정치적 민주주의,시장경제창달,인권존중을 3대이념으로 하고 있는 OECD에 우리나라가 초청받았다는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입니다.그것은 우리가 OECD의 이와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특히 아시아지역에서 일본 다음으로 두번째 가입초청을 받은 것은 더욱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OECD에 가입함으로써 대외적으로는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핵심국가와 함께 세계경제질서형성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대내적으로는 열린 세계와의 경쟁을 통해 능률과 생산성을 향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또한 OECD 회원국의 경험을 활용하여 경제·사회 각 분야의 제도개선을 촉진함으로써 국민의 삶의 질을 한차원 높이는 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회원국의 경제정보와 기술을전수받는 것은 우리의 무역적자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밖으로 나가보면 OECD 회원국끼리 모여 소곤소곤 얘기합니다.무서운 세계입니다.당분간 OECD는 문을 닫아걸 것으로 예상됩니다.앞으로는 가입이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입니다.회원국 한 나라라도 반대하면 가입이 안되는 것입니다. 정부는 OECD 가입을 계기로 각종 제도와 관행 및 의식의 선진화를 통해 경제체질을 개선하고 총체적인 경쟁력을 높임으로써 개방과 자유화의 물결에도 흔들리지 않는 경제체제를 구축하는데 힘쓸 것입니다. ­과소비를 치유하고 고비용저효율구조를 깨기 위해 경쟁력 10% 높이기운동을 제안하셨는데 앞으로 추진방향과 특히 금리와 땅값을 낮출 방안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계획입지」규제 완화 ▲최근 우리 경제의 어려움은 반도체가격 하락,일본 엔화절하 등 외부적 요인도 있겠지만,근본적으로는 고비용저효율구조와 분별 없는 소비급증 등 내부적 요인에 의한 우리의 대외경쟁력 약화에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의 에너지수입이 세계 5위이고 그 소비증가율은 세계최고로 에너지수입 증가에 의한 금년도 국제수지 추가적자요인이 50억달러에 달할 정도입니다.정부는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9·3종합대책」에 이어 「경쟁력 10%이상 높이기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기업활동여건을 개혁적 차원에서 개선하고 있으며 각종 제도와 규제를 OECD국가수준에 맞게 고쳐나갈 것입니다.이와 함께 금리·땅값·임금을 안정시키고,실질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규제개혁을 통해 기업의 경쟁력향상노력을 뒷받침하겠습니다.금융기관의 경쟁을 촉진하여 스스로 경영혁신을 하도록 함으로써 금리가 하향안정되도록 할 것입니다.기업이 꼭 필요로 하는 자금은 해외에서 직접 들여올 수 있도록 기회를 넓히는 것도 금리안정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부동산실명제 등으로 부동산투기가 없어짐으로써 땅값이 많이 안정되었고 이것이 장기적으로 공장용지값을 하락시키게 될 것입니다.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미흡하다고 판단되어 공장용지와 관련한 각종 부담금을 줄이는 한편 계획입지에 대한 규제도 대폭 완화하고자 합니다.계획입지가 기업이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것보다 더 싸게 공급되도록 할 것입니다.공단용지도 지속적으로 개발하여 공급을 계속 늘려나갈 계획입니다.정부는 내년도 경제운영에 있어서도 「경쟁력 10%이상 높이기」시행을 최우선과제로 삼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특히 내년도에는 경상수지적자를 금년의 절반수준으로 낮출 수 있는 대책을 우선 추진코자 합니다.이러한 일은 정부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우리 국민 모두가 「경쟁력 10%이상 높이기」에 적극적인 참여와 노력을 기울여줄 것을 당부합니다. 외국정상이나 외국연구기관에서는 한국의 미래를 무서울 정도의 나라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전체적으로 세계경제가 안 좋고 이웃 일본경제도 큰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이런 것들이 우리에게도 영향을 줍니다.그러나 경제는 굴곡,사이클이 있으니 영원히 나빠질 이유는 없습니다.국민이 새 결심을 하고 정부·기업인·근로자 모두가 경쟁력 10% 올리기에 나선다면 우리의 미래는 밝습니다. 쓰레기문제가 언론에 많이 보도되고 있는데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버려지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한해 8조원의 음식쓰레기가 버려진다는데 실제로 10조원이상일 겁니다.10조원이상을 버린다는 것은 낭비중 낭비이며 국가경쟁력 강화에 역행하는 것입니다. ­노동관계법 개정을 포함,노사관계개혁에 있어 국정통치권자로서 복안이 있으시면 밝혀 주십시오. ○노사 의식개혁 중요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노사관계개혁은 대립과 갈등의 낡은 틀을 깨뜨리고,참여와 협력의 새로운 노사관계질서를 만드는 일입니다.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함으로써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근로자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것입니다.지난 6개월여동안 「노사관계개혁위원회(노개위)」가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노개위의 공개적이고 민주적인 논의과정을 통하여 개혁의 당위성과 기본방향에 대해 노사당사자가 인식을 공유하게 되었고 노동법 개정방향에 대해서도 국민적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되었다고 봅니다.이에 따라 정부는 이러한 노개위 논의결과를 참고하여 국가발전과 국민전체의 이익이 도모되는 방향으로 법개정을 추진할 것입니다.노사개혁은 제도만 고친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노사의 의식을 바꾸어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앞으로도 노개위가 계속해서 노사제도,의식·관행에 관한 2차개혁과제도 대타협의 정신을 바탕으로 적극 추진하여줄 것을 기대합니다. ­정부 전체적인 측면에서 각 부처에서 발생되고 있는 연구개발수요에 대한 종합조정능력이 보다 강화되어야 한다고 봅니다.국가연구개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정부의 과학기술행정체제,정부출연연구소 기능개혁조치를 할 용의는 없으신지요. ○전문연구기관 일류화 ▲정부는 과학기술정책의 조정능력과 정부출연연구소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는 다각적인 방안을 마련하여 추진하고 있습니다.먼저 국가연구개발의 경쟁력과 우리의 과학기술력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해 「과학기술혁신특별법」을 이번 국회에서 제정하고자 추진하고 있습니다.이 법이 통과되면 관련 법규정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과학기술혁신5개년계획(97∼2001)」을 수립·시행할 예정입니다.과학기술정책과 연구개발투자계획의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추진을 위해 경제부총리를 의장으로 하는 과학기술장관회의를 금년 3월부터 운영해오고 있습니다.앞으로 수립될 「과학기술혁신5개년계획」도 이 회의를 통해 실효성을 확보해나갈 것입니다.아울러 정부출연연구소와 관련,무엇보다도 연구개발의 효율성과 능률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여 세계일류의 전문연구기관으로 육성해나갈 계획입니다. ­지난달 14일 대통령께서 발표하신 정보화선언은 시의적절하다고 봅니다.재임기간에 이 정보화선언을 좀더 구체화하고 또 차기정부까지 연속성을 갖게 하기 위한 방안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정보화는 국가경쟁력 강화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핵심적 국가전략이며,이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국민·기업·정부 등 모든 주체가 합심하여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이를 위해 나는 이미 내각에 세부적인 실천계획을 수립하여 시행토록 지시했으며,정보화추진 확대보고회의를 계속 주재하면서 직접 챙겨나갈 것입니다.특히 물류·교육·행정·국방 등 국민생활은 물론 기업활동과 밀접한 분야에서 정보화를 집중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정보화의 효과가 국민의 피부에 닿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아울러 초고속정보통신망구축,법과 제도정비,정보화마인드확산 등 정보화기반조성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이제 정보화는 어느 한 정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21세기의 새로운 시대로 나가는 전환점에 서 있는 우리에게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여는 시대적 과제입니다.
  • 서울신문 창간51돌 기념 김 대통령 특별회견:Ⅱ

    ◎옛 총독부건물 철거 민족정기 되살린 얼/차기 논의 시기상조… 적잘한 때 경선으로/부패척결 제도로는 한계… 의식개혁 중요/신문 지면 너무 많아… 서울신문 가로쓰기 돋보여 ­대통령의 공약사항인 문화예술분야 예산확보(총예산의 1%)를 포함해 국민문화예술발전기반의 확충에 관한 앞으로의 구체적인 계획은 무엇입니까. ○문화인프라 적극 확충 ▲문화예산을 선진국수준인 정부예산의 1%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한 것은 진정한 의미의 「삶의 질」향상을 위한 정책의지를 나타낸 것이며,정부는 이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습니다.97년도에도 문화예산의 증가율은 24%로서 교육개혁 등 다른 분야보다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습니다.그러나 시급한 사회적 간접자본(SOC)확충,민생사업 등에 투자비중을 높이다 보니 1%수준까지 끌어올리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습니다.96년도 문화예산 3천5백8억원(정부예산대비 0.56%),97년도 문화예산안 4천2백50억원(정부예산 대비 0.59%),그러나 문화산업의 경쟁력이 국가경쟁력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투자우선순위를 높여 빠른 시일내에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힘써나가겠습니다.또한 금년을 「문화복지시대」의 막을 여는 첫 해로 선포한 만큼 중앙과 지방의 문화격차를 해소하고 문화가 국민생활속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각종 문화인프라를 지속적으로 확충해나가겠습니다. ­이제까지 많은 개혁을 하셨는데 그에 대한 평가와 함께 추진할 개혁과제는 무엇이며 개혁의 마무리는 어떻게 하실 것인지 말씀해주십시오. ▲우리가 목표로 하는 21세기 세계중심국가는 「변화와 개혁」 없이는 결코 건설할 수 없습니다.오랫동안 누적되어온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부정부패를 척결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도,경제발전도 불가능합니다.취임이후 줄기차게 추진해온 과감한 개혁조치의 결과 우리 사회가 엄청나게 변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그동안 이 개혁작업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동참해주신 국민 여러분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변화와 개혁이야말로 오늘의 시대정신이라는 공감대가 확고하게 자리잡게 된 것을 큰 보람으로 여깁니다.부정부패척결,군의 개혁,공직자 재산공개,금융실명제 실시,부동산실명제 도입,교육개혁 등 많은 개혁조치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 효과가 더욱 나타날 것입니다.앞으로 민생분야의 개혁에 역점을 둠으로써 온 국민이 개혁의 성과를 더욱 체감할 수 있도록 할 생각합니다. ○민생분야 개혁에 역점 ­최근 장관들이 비리문제와 관련,경질되는 일이 있었습니다.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없애기 위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신지요. ▲우선 이와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난데 대해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개혁을 주도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이러한 일을 저지른 것을 보고 비통하고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특히 청렴하고 헌신적인 대다수 공직자의 명예를 더럽힌 것은 더욱 가슴 아픈 일입니다.나는 취임이래 부정부패척결을 가장 중요한 개혁과제로 삼아 관련자에 대한 단호한 처벌과 함께 비리의 소지가 되는 제도를 고치는 등 줄기찬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무엇보다도 부패의 원천인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기 위해 『어느 누구로부터 어떤 명분의 돈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그 약속을 철저히 지켜오고 있으며 금융실명제,공직자재산공개,부동산실명제 등 과감한 개혁조치를 단행한 것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이 아직도 일어나고 있는 것은 부정부패의 구조가 얼마나 뿌리깊은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부정부패의 역사는 인류와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나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하나의 관행처럼 이어져온 부정부패에 너무 무감각해져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도무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정도가 되어버린 것입니다.이처럼 고질화된 부정부패의 척결은 형벌이나 제도개선만으로 이루어진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온 국민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합니다.국민의 의식개혁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과거에 비해 국민의식이 많이 달라지고 있어 큰 다행입니다만 아직 미흡하다고 생각합니다.부정을 결코 용인하지 않는 국민의식,비리와 결탁하지 않는 공직자의 투철한 윤리의식이 확립되어야만 깨끗한 사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공직자는 물질보다 명예를 소중히 여기고,기업인은 부정한 수익보다 떳떳한 이익을 추구하는 건전한 풍토를 만들어가야 하겠습니다.부를 택할 사람은 공직에서 물러나야 하며 공직자는 사회봉사·국민봉사의 길로 혼신의 힘을 다해 나가야 합니다.부정부패하면 살아 남지 못한다,걸리면 감옥간다고 생각하면 부정을 저지르기 힘들 것입니다.어찌보면 제도보다 중요한 게 국민의식변화입니다. 부정부패를 추방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그러나 이 일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반드시 해내야 합니다. 솔직히 얘기해서 과거정권에서는 부정부패를 은폐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우리 문민정부는 절대 감춰놓는 일이 없습니다.부정이 있으면 탁 터놓고 철저히 처벌합니다.부정부패가 우리 역사의 오래된 관행이라 할지라도 이것을 고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봅니다.대통령이 결심하고 실천해나가면 결국 그렇게 간다고 봅니다. ○명예 중시하는 풍토를 부정부패가 사라지지 않는 한 나라의 선진화를 이룰 수 없으며,경제발전의 진정한 혜택을 누릴수 없습니다.지금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부정과 비리를 우리 사회로부터 영원히 추방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가다듬어야 할 때입니다.나는 나라를 새로 세운다는 비장한 각오로 부정부패의 뿌리를 뽑는 일에 끝까지 모든 힘을 다 기울일 것입니다.앞으로도 부정부패관련자는 신분이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단호하게 법에 따라 처벌할 것입니다.아울러 불필요한 각종 규제를 지속적으로 개혁해나감으로써 부정부패의 소지를 원천적으로 없애는 제도개선작업을 병행해나가겠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부정부패를 몰아내겠다는 역사적인 일이 시작된 만큼 기필코 성공을 거두어 깨끗하고 자랑스러운 나라를 후손에게 물려주도록 합시다. ­정권의 변화와 관계없이 한국의 장기적 국가전략을 체계적으로 연구,국가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길잡이를 제시할 연구기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과거 인류의 역사에서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변화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이렇듯 급변하는 세계속에서 우리나라가 나가야 할 방향과 국가전략을 세우는 것은 정권의 향배와 관계없이 반드시 지속되어야 할 과제입니다.그러나 이러한 국가적 과업은 어느 특정기관이 전담해서 추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우리나라가 나가야 할 방향과 비전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의견과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제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정부는 그동안 사회 각계인사가 참여하는 각종 위원회,정부산하 연구기관을 통해 이러한 국가비전제시작업을 계속해왔습니다.앞으로도 이러한 맥락에서 보다 구체적인 국가전략을 꾸준히 마련해 나갈 것입니다. ­지방자치제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부차원의 재정지원,자율권보장을 위한 법적·제도적 정비,정부와 광역자치단체간 명확한 업무영역구분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그와 관련한 정책구상이 있다면 밝혀주십시오. ○지방자치제 정착 성공 ▲지방자치 실시이후 지방의 다양성과 창의성이 살아나고 대민봉사행정과 경영행정이 크게 신장되는 등 우리의 지방자치는 전체적으로 볼때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되어가고 있습니다.정부는 우리의 지방자치가 조기에 정착될 수 있도록 중앙권한의 지방이양과 지방재정력확충 등에 힘써 지방자치단체 스스로의 역량을 제고해나가는데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나갈 것입니다.특히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을 저해하는 규제·지침등을 완화하고,정부와 광역지방자치단체간 사무배분을 명확하게 하는 것 등 기능조정과 그에 걸맞는 재원배분체계를 빠른 시일내에 마련하고자 합니다.다만 현시점에서 진정한 지방자치의 발전은 국가발전의 큰 테두리 속에서 가능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신한국당 대통령후보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결정되는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언제쯤 대권논의가 시작되는게 바람직한지요. ▲신한국당 대통령후보는 당헌·당규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적절한 시기에 당원의 선택에 의해 결정될 것입니다.안보와 경제문제 등 국가적으로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한 시점에서 차기대통령선거논의가 조기에 일어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지금은 이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는데 우리의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개인보다는 나라를 생각하는 입장에서 지금 이 시점에서 무엇이 진실로 중요한 일인가를 통찰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는 내각제개헌이나 4년중임제개헌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내 임기중에 개헌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더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확고한 방침입니다.실제로 대통령직을 수행해보니 5년이라는 기간은 하기에 따라 굉장히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긴 시간이라고 느껴집니다.더구나 국가의 근본규범인 헌법을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편의적으로 바꾸는 것은 국가발전과 법적 안정성의 측면에서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건국이래 잦은 개헌으로 얼마나 많은 혼란과 국력낭비를 초래했던가를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옛 조선총독부건물이 거의 철거되었습니다.반대도 있었습니다만 많은 사람이 속이 시원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대통령께서 어려운 결단을 내리셨다고 생각됩니다만…. ○개헌주장은 국력낭비 ▲옛 조선총독부건물은 민족의 자존심을 짓누르는 상징이었습니다.이 건물이야말로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구축하는데도 큰 걸림돌이 되어왔습니다.이 건물을 철거한 것은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며,문민정부의 개혁조치 가운데 특히 기록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철거를 반대하던 사람도 철거후의 모습을 보고는 헐기를 잘했다고 생각을 바꾼 사람이 많아졌다고 듣고 있습니다.이 건물을 철거한 것이 민족정기를 되찾고 우리의 자긍심을 살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신문에 대한 충고를 해주신다면. ▲신문지면이 너무 많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독자가 그렇게 많은 양을 다 보지 못합니다.배달도 문제고 버리는 양도 엄청나다고 듣고 있습니다.최근 몇몇 신문이 가로쓰기를 하고 있는 것은 잘한 것 같으며 국민의 공감대를 얻고 있는 것 같습니다.
  • “부정부패 끝까지 뿌리 뽑겠다”/김 대통령,서울신문 특별회견

    ◎제도개선 지속 추진… 국민의식 변해야 김영삼 대통령은 『앞으로 부정부패 관련자를 법에 따라 단호히 처벌하는 것과 함께 불필요한 각종 규제를 지속적으로 개혁해 나감으로써 부정부패의 소지를 원천적으로 없애는 제도개선작업을 벌여나가겠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오는 22일의 서울신문 창간 51주년에 즈음해 지난 16일 청와대에서 서울신문과 가진 특별회견에서 『나라를 새로 세운다는 비장한 각오로 부정부패의 뿌리를 뽑는 일에 끝까지 모든 힘을 다 기울일 것』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국민의식개혁을 당부한뒤 『명예 대신 부를 택할 사람은 공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또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한 것은 우리 민족 정기를 되찾고 우리 국민의 자긍심을 살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필리핀 마닐라의 아태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에 앞서 오는24일 열릴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클린턴 미국대통령과의 회담을 통해 북한이 먼저 무장공비침투에 대한 사과와재발방지 등 납득할만한 조치를 취할 것과 4자회담에 응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게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북한 당국이 무장공비 침투와 무고한 우리 주민을 살상한데 대해 명시적으로 시인·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조치를 취할때 남북간에는 대화와 협력의 분위기가 다시 조성될 것이며 남북경협도 재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앞으로 민생분야의 개혁에 역점을 둠으로써 온 국민이 개혁성과를 더욱 체감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라고 향후의 개혁방향을 제시했다. 김대통령은 「경쟁력 10%이상 높이기운동」과 관련,『금융기관의 경쟁을 촉진해 스스로 경영혁신을 하도록 함으로써 금리가 하향안정되도록 할 것』이라며 『공장용지와 관련한 각종 부담금을 줄이는 한편 계획입지에 대한 규제도 대폭 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내년 대통령선거에 따른 당내 정치일정과 관련,『신한국당 대통령후보는 당헌·당규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적절한 시기에 당원들의 선택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말하고 『안보와경제문제 등 국가적으로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한 시점에서 차기대통령선거 논의가 조기에 일어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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