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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굽이굽이 연둣빛 ‘넓은 벌 동쪽’… 지친 맘 쉬어 가라 하네

    굽이굽이 연둣빛 ‘넓은 벌 동쪽’… 지친 맘 쉬어 가라 하네

    아주 오래전 이른 봄에 충북 옥천의 강변을 본 적이 있다. 강물과 거의 높이가 같았던 강변은 온통 연푸른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이 지역 출신 시인 정지용의 시 ‘향수’를 떠올린 건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이제 어린 날의 기억을 되짚어 그 강변을 찾아나선다. 목표는 두 가지다. 올 마지막 시기에 이른 반딧불이 관찰과 시 ‘향수’에 등장하는 ‘넓은 벌 동쪽’을 찾아보는 것. 두 가지 모두 쉽지는 않다. 반딧불이는 밤이 이슥해야 ‘유혹의 춤’을 선보인다. 이는 ‘퇴근 시간’이 그만큼 늦춰진다는 걸 뜻한다. ‘넓은 벌 동쪽’ 역시 대청호가 조성되면서 지형 자체가 현격히 바뀐 탓에 찾기가 만만하지 않다.옥천은 한국의 대표적 모더니즘 시인으로 꼽히는 정지용(1902~1950)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현재의 옥천 중심에 빗대 옥천 구읍(옛도심)이라 불린다. 정지용에게 옥천은 애증의 땅이지 않았을까 싶다. 남북 분단과 전쟁의 와중에 불온한 시인으로 몰리면서, 한동안 이름조차 입에 올리기를 꺼려했던 고향이 바로 옥천 구읍이라서다. 그럼에도 그의 시들은 대개 고향과 고향의 정서에 맞닿아 있다. 한때 그를 멀리했던 고향 역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처럼, 먼 길을 돌아온 그의 시를 기꺼이 보듬어 주고 있다.●정지용의 詩 ‘향수’의 그곳… 오지로 남은 안터일까, 피실일까 옥천(沃川)은 비옥한 물길이 지나는 곳이란 뜻이다. 금강의 푸른 물줄기가 산모퉁이를 돌고, 너른 들녘을 굽이굽이 적신 뒤 대청호로 흘러든다. 시 ‘향수’와 관련해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안터마을 일대다. 대청호로 유입되는 작은 물줄기의 끝자락에 연초록 공간이 펼쳐져 있다. 실개천이 지줄대며 휘돌아 가고 안터마을 외양간에선 간간이 소 울음소리가 들린다. 실개천과 외양간이 있다 해서 시의 무대라고 주장하는 건 억지에 가깝다는 거 잘 안다. 뭐 그런들 어떤가. 이 풍경 앞에 서면 누구나 시인이 되는 걸. ‘넓은 벌 동쪽’으로 유력한 또 다른 지역은 피실이란 곳이다. 여기는 다소 상상이 필요한 공간이다. 시계추를 정지용의 어린 시절쯤으로 돌려 보자. 대청댐과 대청호는 없었고, 거대한 담수호가 삼킨 땅들도 절반 넘어 뭍이었을 때다. 산자락 사이로 개여울이 흘러가고 주변으로는 평탄한 연둣빛 초지가 광활하다. 딱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아이들은 물장구를 치며 뛰놀고, 둑방길엔 소꼴 매러 가는 촌부며 장 보러 가는 아낙 등이 부지런히 오가는 모습 말이다. 지금의 피실은 사실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사륜구동 차량을 타고 위험한 교행을 각오해야 닿을 수 있다. 대청댐이 조성되면서 지형이 완전히 변한 탓이다. 안터와 피실 등이 오지로 남아 좋은 점도 있다. 반딧불이처럼 점점 갈 곳을 잃어 가는 생명들이 인적을 피해 살아갈 수 있어서다. 여름은 은하수 관찰의 적기이기도 하다. 성하의 계절이 될수록 은하수 떠오르는 시간이 더 당겨진다. 요즘은 밤 10시 언저리에 떠오른다. 안터, 피실 등 은하수 관찰이 용이한 곳은 사진 촬영을 위해 늦은 밤에도 찾는 이들이 많다. 이들의 카메라가 향하는 곳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렵지 않게 은하수를 찾을 수 있다.●인기척 없이 갔더니… 반딧불이 수십 마리 어우러져 야간 비행 고대하던 반딧불이는 밤 11시 즈음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했다. 한두 마리 정도만 눈에 띌 정도로 애간장을 태우던 녀석들은 밤이 이슥해지고서야 곳곳에서 수십 마리가 어울려 야간 비행을 펼쳤다. 한국에 서식하는 반딧불이는 운문산반딧불이, 애반딧불이, 늦반딧불이 등이 있다. 안터마을에 서식하는 반딧불이는 대부분 운문산반딧불이다. 여러 반딧불이 가운데 가장 먼저 출현해 6월 중·하순 무렵까지 영롱한 빛을 낸다. 녀석들이 빛을 내는 건 짝을 찾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녀석들이 선보이는 연둣빛 유혹의 선은 혼인비행의 결과물인 셈이다. 달빛이 밝은 보름보다는 달빛이 적어지는 상, 하현으로 갈수록 반딧불이가 잘 관찰된다. 차량 불빛이나 손전등 등 밝은 빛이 있으면 녀석들은 자신의 빛을 감춘다. 인기척에도 반응한다. 가급적 어두운 상태를 유지하고, 말소리를 삼가야 반딧불이의 활발한 모습을 기대할 수 있다.●‘황국신민비’ 즈려밟고서… 정지용 생가·문학관에서 만난 詩 세계 이제 옥천 구읍으로 간다. 정지용 생가가 있는 곳이다. 사실 그의 작품은 한국전쟁 이후 30여년간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한국전쟁 중 행방불명돼 월북 작가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1988년 해금됐고, 생가는 1996년에야 복원됐다. 정지용 생가 입구의 실개천 위엔 황국신민서사비가 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그저 돌다리 정도로만 여기지만 사실 사연이 많은 비다. ‘청석교’라 불리는 돌다리엔 원래 1937년 조선총독부가 제작한 ‘황국신민서사’가 새겨져 있었다. ‘일본제국의 신민이며 일왕에게 충의를 다한다’는 따위의 내용이 담긴 일종의 맹세문이다. 일제는 전국에 황국신민서사비를 세웠는데 정지용 생가 앞 돌다리는 옥천 지역에 남은 두 개의 비석 중 하나다. 원래 청석초등학교에 있던 것을 지난 세기말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꼭 ‘사뿐히 즈려밟고’ 생가로 넘어가길 권한다. 생가 옆은 정지용 문학관이다. 검정 두루마기를 입은 정지용 밀랍인형, 그의 삶과 문학을 엿볼 수 있는 자료 등이 전시돼 있다. 인근 교동저수지와 장계관광지 등에서도 그의 시 세계를 엿볼 수 있다.●육영수 여사 생가·옥천전통문화체험관도 필수 코스 정지용 생가에서 수백m 떨어진 곳엔 영부인이었던 육영수(1925~1974) 여사의 생가가 있다. 정지용 생가가 건평은 비좁고 주변 터가 넓다면 육영수 생가는 건평 자체가 광활하다. 1894년 축조된 건물을 육 여사의 부친이 1918년 매입한 것으로 당시 사랑채, 안채, 별채 등 10여 동의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육 여사 서거 이후 방치되다 1999년 철거됐고, 2010년에 지금의 건물로 복원됐다. 육 여사의 방은 안채 뒤에서 대숲과 마주보고 있다. 도자기와 재봉틀, 다리미, 좌식 책상 등이 있는 작은 방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도 있다. 생가 앞뜰은 ‘밭 전’(田)자 연못이다. 6월 말부터 연꽃 바다가 된다. 옥천전통문화체험관도 필수 방문 코스다.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의 강소형 잠재관광지로 선정된, 믿고 가는 ‘K컬처 핫플레이스’다. 교동저수지는 밤에 찾을 만하다. 연못 주변으로 경관 조명이 들어오면서 낭만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
  • “17세 맞아? 억지춘향” 춘향 새 영정에 남원 ‘시끌’

    “17세 맞아? 억지춘향” 춘향 새 영정에 남원 ‘시끌’

    새로 공개된 ‘춘향 영정’을 두고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작품 속에서 17세인 춘향이 중성적인 외모의 40∼50대 여성으로 보인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정을 다시 그리거나 90여년 전 최초 영정을 사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25일 남원시와 남원문화원은 제93회 춘향제 춘향제향에 앞서 춘향 영정 봉안식을 갖고 새 영정을 전북 남원의 광한루원 춘향사당에 봉안했다. 이 영정은 남원시의 위탁을 받아 남원문화원이 제작을 주도했고 김현철 작가가 가로 94㎝, 세로 173㎝ 크기로 그렸다. 새 영정 제작 비용으로 1억 7000여만원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남원시와 남원문화원, 김 작가는 보도자료를 통해 “새 춘향 영정은 판소리 완판본 ‘열녀춘향수절가’와 경판본 ‘춘향전’의 첫 대목에 등장하는 5월 단오일을 맞아 몸단장을 한 채 그네를 타기 위해 나오는 17살 안팎의 18세기 여인상”을 염두에 두고 그렸다고 밝혔다. 영정 제작 과정에서 남원소재 여자고등학교에서 추천받은 7명의 여학생 모습을 참고했다고 덧붙였다.그러나 새 영정 공개 후 남원 지역사회에선 어렵게 다시 제작한 영장의 모습이 기대와 달리 남원의 가치와 춘향 정신을 담아내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15개 단체가 모인 ‘남원시민사회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는 14일 성명서를 통해 “새 그림 속 춘향은 도저히 10대라고 보기 힘든 나이 든 여성이다. 또 춘향의 덕성이나 기품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했다는 것이 중론”이라면서 “춘향 영정 봉안 문제에 대해 다시 객관적이고도 민주적인 공론 조사를 제안한다”라고 밝혔다. 앞서 남원시는 김은호 작가가 1939년 그렸다가 유실돼 1961년 다시 똑같이 제작한 춘향 영정을 사용하다 2020년 9월 철거했다. 김 작가의 친일 행적 때문에 당시 영정 교체 여론이 컸다. 연석회의는 “친일화가 김은호는 1938년 조선총독부 출신 금융인으로부터 내선일체의 ‘가부키 춘향’ 그림 제작을 지시받았다”면서 김은호 영정이 처음 봉안된 1939년 제9회 춘향제를 “우리 민족문화를 말살하는 가부키 춘향제”라고 강하게 비판했다.이어 최초의 춘향 영정으로 전해지는 그림은 1931년 1회 춘향제를 맞아 강신호·임경수 작가가 그린 작품으로, 30대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연석회의에 따르면 해당 작품은 한국전쟁 중에 일부가 훼손됐지만 남원향토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돼 상태가 양호하다. 연석회의는 공론조사를 통해 춘향영정 봉안 문제를 풀어나갈 것을 제안하고, 춘향사당 왜색 논란 및 춘향제향 변질 논란 등에 대해 학술적 검토를 요청했다. 최초춘향영정복위시민연대도 “억지 춘향을 만들어서 춘향정신을 모독하지 말라”며 “춘향이를 새로 예쁘게 그린다는 것은 꽃노리개 춘향을 만들자는 것이며, 사당은 신을 모시고 제례를 거행하는 곳이지 미술관이 아니다”고 밝히며 최초 영정 봉안을 촉구했다.
  • 신병 모병 포스터에 젊은이들이 답하다 [으른들의 미술사]

    신병 모병 포스터에 젊은이들이 답하다 [으른들의 미술사]

      미국(United States)의 약어 ‘US’는 ‘엉클 샘(Uncle Sam)’의 약자와 같다. 따라서 미국인들에게 엉클 샘은 그 자체로 미국을 상징하는 인물이며 애국심의 표상이다. 그동안 미국을 상징하는 인물은 콜럼비아로 알려진 여성이다. 콜럼비아는 국가의 정체성, 미국의 문화, 미국의 정신을 뜻했다. 그러나 여성형의 콜럼비아 이미지는 유약하고 부드러워 강력한 군사력을 상징하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20세기 초반 1차 세계대전의 참전을 독려하는 포스터 모델로서 콜럼비아는 어울리지 않았다.   농담에서 유래한 엉클 샘 엉클 샘의 기원에 대해서는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지만 1812년 사무엘 윌슨이 가장 유명하다. 사무엘은 육류 배급업자로서 부대에 고기를 납품하는 군납업자였다. 당시 군납품에는 반드시 납품업자의 이름을 표기해야 했다. 사무엘이 군납하는 고기 포장재 표면에 U.S.라고 적혀 있었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검사관이 ‘U.S.’가 무엇을 의미하냐고 묻자 배달 직원은 농담처럼 가볍게 ‘엉클 샘’이라고 대답했다. 이후로 정부에 납품하는 군수물 업자를 엉클 샘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미국의 국가와 정신을 뜻하는 엉클 샘은 싱거운 농담에서 유래했다.   강력한 눈빛과 손짓 그리고 명령어 그러나 엉클 샘의 유래는 싱거울지 몰라도 엉클 샘 포스터의 기능과 효과는 상당했다. 엉클 샘 포스터는 J.M. 플래그(J.M. Flagg·1877~1960)가 자신의 얼굴을 모델로 그린 것이다. 엉클 샘이 관람자와 눈을 마주하며 손가락을 정면으로 향해 “나는 널 원해(I Want You)”라고 말한다. 관람자의 눈을 노려보며 강력한 어조로 말하는 노인의 눈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나는 널 원해’는 평범한 평서문이다. 그러나 이 손짓과 말투는 강력한 명령형으로 보는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이렇게 자신을 꼭 집어 부르는 행위를 모른 척 지나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포스터는 1차 세계대전 참전병을 모집하는데 사용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이 시기 많은 미국 젊은이들이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고 한다.   영국의 모병 포스터가 원조 사실 엉클 샘 포스터는 영국의 신병 모병 포스터를 모방한 것이다. ‘키치너 모병 포스터’라 불리는 이 포스터는 정면을 향한 얼굴, 손으로 콕 짚는 행위 등 엉클 샘의 모습 그대로다. 이 포스터는 영국 육군 원수이자 식민지 총독인 호레이쇼 키치너(Horatio Kitchener·1850~1916) 경을 모델로 했다. 키치너는 1차 대전이 길고 긴 전투가 될 것을 예견해 신병 모병을 제안했다. 키치너의 무표정하지만 단호한 표정에서 결연한 전투 의지가 읽힌다. 신병 모집 결과 40만 가까운 신병이 모집되었다. 강압적이고 단호한 명령어 즉 ‘조국은 너를 원한다(Britons want you)’에 젊은이들이 응답했다. 이는 카리스마 있는 키치너 경의 모병 효과라기보다 젊은이들이 자신의 조국과 국민을 위한 고귀한 행위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육군 원수가 손으로 콕 집어 불러서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 속에 자리한 고귀한 부름에 젊은이들이 응답한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20대 초반에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국군 장병들에게 고맙고 대견하고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 기름칠하거나, 불 지르거나… ‘외줄타기’ 관저외교

    기름칠하거나, 불 지르거나… ‘외줄타기’ 관저외교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지난 8일 관저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나 우리 정부의 외교 기조에 대해 쏟아 낸 작심 비판이 양국 간 논란이 되면서 관저 만찬 외교 관행에 관심이 모인다. 대사관과 관저는 외교관의 업무 수행 근거지인 동시에 여러 인사를 만나 자유롭게 정보를 공유하는 장소가 될 수 있다. 13일 외교가에 따르면 주재국 현지의 대사관저는 대사가 정치·경제·문화 분야 인사들과 교류하는 대부분의 외교활동이 이뤄지는 곳이다. 특히 외교관의 공식 사무실인 대사관과 달리 공적인 공간과 개인적인 공간의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는 관저는 주재국 주요 인사들과의 만찬이나 리셉션 등 행사를 열고 친교를 다지는 장으로 활용된다. 그렇기에 관저 만찬 자리는 양국 간 첨예한 문제에 대해 편안하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자리로도 쓰인다. 관저라는 공간을 활용한 외교 행위는 양국 관계에 윤활유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자칫 역효과를 부르는 사례도 빈번하다. 해리 해리스 전 주한 미국대사가 대표적이다. 그는 2019년 당시 이혜훈 국회 정보위원장을 초청한 관저 만찬에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압박했다가 이 위원장이 관련 사실을 언론에 공개해 논란이 됐다. 당시 정치권에서 “조선 총독 같다”는 말까지 나오며 한미 외교 현안으로 번졌다.주재국 현지 외교에서 중요한 기준 중 한 가지는 접수국과 본국 간 우호 증진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다. 현안에 대한 이견은 외교라인을 통해 비공개로 해결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이에 따라 싱 대사가 온라인 생중계되는 방식으로 정부의 외교 기조를 비판한 것은 통상적인 관저 만찬 외교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전직 대사급 외교관은 “만약 싱 대사가 이 대표의 사무실에 찾아가 정부의 외교 기조를 비판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주재국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 반대 의사를 공개적으로, 관저에서 냈다는 것은 빈 협약이 금지하는 내정불간섭 의무에 저촉될 소지가 있을 뿐 아니라 비외교적이고 무례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전직 외교관도 “싱 대사가 발언한 내용보다는 관저에서 준비된 원고를 생중계로 알린 형식이 더 큰 문제”라며 “최전선의 외교관들은 일반적으로 주재국 간 원만한 관계를 추구하지만 싱 대사는 조심스러움을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관저는 주재국에 함께 근무하는 제3국 외교관들과의 교류의 장으로도 활용된다. 각자 공동의 관심사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는 비공개 모임이 잦다. 최근 니컬러스 번스 주중 미국대사가 지난 2일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 다루미 히데오 주중 일본대사와 베이징 관저에서 오찬 회동을 한 것 역시 이 같은 활동의 일환이다. 특히 주중 미국대사는 이번 한미일 대사 오찬 사실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했는데, 사실상 중국에 대한 정치적인 메시지를 낸 것으로 풀이된다. 또 다른 전직 외교관은 “중국에 대해 대응하는 듯한 제스처를 보여 줬지만 3국의 대사들이 모여 항의하는 내용을 발표한 것은 아니기에 일상적인 외교활동에 속한다”고 평가했다. 앞서 2021년 조지프 영 주일 미국 임시대리대사가 1979년 단교 이후 42년 만에 일본 도쿄에 있는 셰창팅 주일 대만 대표 공관에 방문한 것 역시 유사한 중국 압박 제스처로 읽힌다. 한국에 상주하는 주한 공관장을 둔 국가는 총 115개국이다. 각국 대사관은 주로 서울 용산구·종로구에 집중돼 있다. 주재국에서 근무하는 다른 국가 외교관들과의 교류도 일반적이다. 대사들이 사는 관저는 서울 성북동과 한남동 일대에 모여 있는데 타지 생활을 하는 대사들 간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 네 자녀 살해 혐의로 20년 복역한 호주 여성, 자연사 가능성에 사면

    네 자녀 살해 혐의로 20년 복역한 호주 여성, 자연사 가능성에 사면

    호주 여성 캐슬린 폴비그(55)는 한때 ‘호주 최악의 여성 연쇄 살인마’로 언론에 오르내렸다. 1989년부터 1999년까지 생후 19일∼18개월 된 두 아들과 두 딸 가운데 셋을 살해하고 맏아들 칼렙을 과실로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고 2003년 재판에서 배심원단의 유죄 평결을 받아 징역 25~30년형을 선고받고 지금까지 20년을 복역했다. 다른 아들의 이름은 패트릭, 두 딸의 이름은 사라와 로라였다. 그런데 5일 현지 일간 디오스트레일리안과 영국 BBC 등에 따르면 마이클 데일리 뉴사우스웨일스(NSW)주 법무장관은 20년을 복역하던 폴비그를 사면한다고 발표했다. 2021년에야 숨진 두 딸에게서 돌연사를 일으킬 수 있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견되면서 상황이 결정적으로 바뀌게 됐다. 의학자들은 폴비그 사건과 관련해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청원을 올렸고 NSW주는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 은퇴한 톰 배서스트 전 판사에게 조사를 맡겼다. 검찰은 네 아이가 특별한 이유 없이 갑자기 사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배서스트 전 판사는 사망한 네 아이에게서 셋에게서 설명할 수 없는 의학적 상태를 발견됐다며 아이들의 죽음이 갑작스러운 자연사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두 딸은 갑작스러운 심장 이상으로 죽음을, 두 아들은 원인 모를 사지마비로 한순간 목숨을 경각에 이르게 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지닌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따라 폴비그에 내려진 유죄 평결이 잘못됐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 배서스트 전 판사의 조사 결과에 데일리 장관은 NSW주 총독에게 폴비그의 사면을 권고했고, 이날 사면이 이뤄졌다. 데일리 장관은 “유죄 판결에 합리적 의심이 있다는 배서스트 전 판사의 결론을 고려해 사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사면 결정으로 그에 대한 유죄 판결이 무효가 된 것은 아니다. 그가 무죄 판단을 받으려면 배서스트 전 판사가 형사항소법원에 재심을 청구해야 한다. 현지 언론은 그가 항소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내면 NSW주 정부로부터 수백만 호주달러(수십억 원)의 배상금이나 위로금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폴비그와 유사한 사례는 있었다. 린디 챔벌레인이란 여성이 친딸 아자리아를 살해한 혐의로 잘못 기소돼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는 이유로 1992년 130만 달러를 보상받은 일이 있었다. 하지만 챔벌레인은 단지 3년 밖에 복역하지 않아 폴비그의 사례와 비교할 대상이 못 된다는 점을 지적하는 이도 있다. 폴비그는 기소된 뒤부터 지금까지 줄곧 무고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날 교도소 밖으로 나와 오랜 기간 자신의 석방을 위해 노력해준 친구들의 환영을 받았다. 데일리 장관은 “그녀가 삶을 제대로 영위할 수 있도록” 프라이버시를 존중해달라고 언론에 당부했다.
  • 우리가 진정 오르지 못한 山, 근대…안치운의 신간 ‘침묵하는 산’

    우리가 진정 오르지 못한 山, 근대…안치운의 신간 ‘침묵하는 산’

    누구나 대한민국이 근대를 지나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그럴까?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그렇게 믿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한 장의 흑백사진 때문이었다. 1940년 11월 3일에 서울 북한산 인수봉 정상 아래 왼쪽 비탈에 58명이 도열해 찍혔다. 조선인인지 일본인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누구 하나 웃지 않는다. 저자는 이들이 왜 곁눈질하며 만나 점심을 먹고 재빨리 하강해야 했는지 궁금해 했다. 누구 하나 이 사진의 비밀을 궁금해 하지 않는 것도 마냥 신기한 일이었다. 우리가 근대를 겪은 것은 일본 제국주의란 타의에 의해서였다. 산마저 그랬다. 조선 지식인들도 산을 찾아 즐겼지만 시나 그림으로 즐겼을 뿐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엄홍길이나 고(故) 박영석 같은 유명 산악인들도 도무지 자신의 등반을 기록하지 않았다. 기록하지 않는 산행은 시간을 뛰어넘어 공유될 수 없고, 그 의미를 되새길 수도 없다. 일제가 지배하던 시절 산에 갈 수 있었고 기록을 남긴 이들은 일제에 힘을 보탠 이들이었다. 침탈의 의도로 산을 오른 일본인들에 의해 쓰인 산의 역사는 진정한 우리 역사가 아니다. 그 빼앗긴 내력을 돌아보지 않은 우리는 진정 우리의 산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이 책 ‘침묵하는 산’(한길사)은 준엄하게 꾸짖고 있다.한국연극학회 회장을 역임한 안치운 전 호서대 예술학부 교수는 예외적이고 특출했지만 어쩔 수 없이 일제에 협조할 수 밖에 없었던 산악인 김정태를 집중 조명한다. 김정태는 황국 신민화를 위한 체력 증진을 목적으로 등산을 적극 장려했던 총독부 방침에 부응, 일본인 중심의 조선산악회에 가입해 왕성하게 활동했다. 1942년부터 해방 때까지 ‘타츠미 야스오’란 일본 이름으로 일제의 등반 행사를 주도했다. 만주 침략, 태평양전쟁에도 그는 동원되지 않고 금강산, 백두산, 북수백산 등을 초등(初登)하며 명성을 얻었다. 해방 후에는 1946년부터 1954년까지 열한 차례 국토 구명 사업에 참여했다. 강점기 때의 등반 업적을 기반으로 그는 한국 근대 산악계의 거목이 됐다. 저자는 김정태가 남긴 글과 자료들을 샅샅이 뒤져 식민지 조선인이란 정체성과 자의식을 찾아볼 수 없다고 비판한다. “친일은 일본과 친한 것이 아니라 일본을 종주국으로 여기는 태도를 뜻한다. 일제 강점기를 지내면서 한국 사회의 뿌리는 뽑혔고, 친일의 전면성과 총체성은 온 사회의 얼굴이 되었다. 일본 제국주의를 통해서 서구 근대 알피니즘(등반)을 알게 된 이즈음, 산을 오르는 이들과 방식 그리고 기록을 포함하는 산악 등반의 역사도 이 친일과의 친연성을 무시할 수 없다.” 책은 김정태뿐 아니라 조선 산악인들과 함께 했던 일본인 이이야마 다츠오, 이즈미 세이치, 이시이 요시오 등의 삶도 함께 조명한다. 이이야마 다츠오는 일본에 대해 절망하고 조선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고, 이즈미 세이치는 한국의 산을 무척이나 사랑했던 문화인류학자였다. 저자는 한국의 산을 좋아했던 이들 모두 불행한 존재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개인을 사회적, 역사적으로 종속시킨 제국주의라는 시대의 굴레에 억눌려야 했기 때문이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진정한 근대를 통과하지 못한 채 자본주의 질서에 편입돼 안중근 의사가 꿈꾸는 동북아 평화는 멀어졌고, 지금도 그 그늘에서 신음하고 있다. 등산과 산의 역사를 제대로 쓰는 일이 우리 근대를 바로 세우는 일이란 저자의 결론에 탄복하며 이런 일을 뒤늦게 해낸 저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저자는 산악 작가 박인식 선생과 변기태 한국산악회 회장에 대한 고마움을 서문에 적어놓았다. 이 노작(勞作)을 읽고 진정한 근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으면 한다. 504쪽 2만 8000원.
  • ‘한국 대표 유물’ 인천공항에서 만나는 백제 명품

    ‘한국 대표 유물’ 인천공항에서 만나는 백제 명품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부여박물관이 함께한 ‘백제 명품, 백제 문양전’ 특별전이 인천공항박물관에서 지난 16일 개막했다. 이번 특별전은 1960~2019년까지 국외 전시 출품 순위에서 1위(22회)를 차지한 백제 문양전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보물로 소개하고 알리기 위해 마련했다. 특별전에선 백제인의 빼어난 감각과 고난도 기술력으로 탄생시킨 8종류의 문양전을 선보인다. 백제인들은 산수, 연꽃, 구름, 봉황, 용, 도깨비를 소재로 다양한 문양전을 만들었다. 산과 나무, 하늘과 물, 누각과 사람을 한 폭의 그림처럼 표현한 산수무늬 벽돌은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옮겨놓은 듯하다. 산수화의 기원이 되는 작품으로도 일컬어지는 문양전의 자연 속에서 관람객은 백제인이 꿈꿨던 이상 세계에 잠시 머물며 140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된다.특별전은 크게 1부 ‘백제 문양전의 발견’, 2부 ‘백제 문양전의 특징’으로 구성됐다. 1부에서는 1937년 충남 부여군 규암면 외리에서 농부에 의해 최초 발견된 백제 문양전의 역사를 소개한다. 조선총독부에 의해 보름 만에 긴급 조사된 발굴 이야기와 문양전 150여점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촬영된 유리건판 사진을 함께 소개해 문양전 발견 당시의 생생한 모습을 느낄 수 있다. 2부에서는 백제 문양전이 배열과 조합에 따라 2종 또는 4종으로 짝지어지는 독특한 구성을 소개한다. 산수무늬·산수봉황무늬 2종의 벽돌을 나란히 배열하면 세 봉우리의 바위가 산 모양을 이루고, 용무늬·봉황무늬·연꽃무늬·연꽃구름무늬 4종의 벽돌을 모으면 중앙에 하나의 꽃잎이 형성되는 모습은 백제 문양전만의 특별한 아름다움과 독창성으로 꼽힌다.
  • “대통령궁, 전투기 미사일 폭격으로 완파”…수단 분쟁 격화 [포착]

    “대통령궁, 전투기 미사일 폭격으로 완파”…수단 분쟁 격화 [포착]

    수단에서 군벌간 무력분쟁 격화로 대통령궁까지 파괴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준군사조직 신속지원군(RSF)은 9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자신들이 통제하고 있는 대통령궁이 수단 정부군(SAF) 전투기가 쏜 미사일에 맞아 무너졌다고 밝혔다. 신속지원군은 지난달 15일부터 대통령궁을 장악하고 있었다.신속지원군은 성명에서 “9일 새벽 정부군은 ‘공화국 궁전’에 폭격을 가했고, 그 결과 궁전은 완전히 파괴됐다. 우리 신속지원군은 오마르 알 바시르 전 독재 정권의 구성원과, 정부군 지도부 내 극단주의자들이 수단을 계속 파괴하도록 두지 않을 것임을 이웃 국가와 국제 사회에 보장한다”고 했다. 이어 “정부군은 민간인 거주지역과 공장, 민간 및 공공 기관을 계속 공격해 무고한 민간인 사상자를 발생시켰다”고 정부군은 비난했다. 그러면서 “우리 신속지원군은 오마르 알 바시르 전 독재 정권과 그 협력자들이 실패했음을 강조한다. 그들은 민간인과 특정 인종 및 부족 탄압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는 수단의 포괄성을 촉진하기 위해 수년간 해온 우리의 노력에 해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정부군 방해에도 우리 신속지원군은 민주주의와 인권 및 민간 주도 정부 수립에 전념하고 있다. 수단과 지역 전체의 평화 및 안정 증진을 위해 결의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고 역설했다. 10일 알자지라도 공군 전투기가 대통령궁 주변에서 격렬한 공중 폭격을 가했다는 목격자 증언을 전했다. 목격자는 “대통령궁 주변에서 강력한 폭발음과 함께 검은 연기가 피어 올랐다”고 말했다. 대통령궁 폭파 주장에 대해 정부군은 아직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수단 수도 하르툼에 위치한 대통령궁 단지에는 오마르 알 바시르 전 대통령 집권(1989~2019) 말기인 2015년 지어진 새 궁전과, 옛 궁전이 있다. 영국 식민지 시절 초대 총독 허버트 키치너는 1830년대 건립됐다가 1899년 허물어진 하키마다리아 궁전 자리에 총독 관저를 지었고, 관저는 차기 총독인 레지널드 윈게이트 쟁미 시절인 1906년 완공됐다. 1956년 1월 1일 수단 독립 후 관저는 공화당 궁전으로 바뀌었고, 수단 우표와 지폐에도 새겨졌다. RSF가 정부군 폭격으로 파괴됐다고 주장하는 건물은 옛 궁전인 것으로 보인다. 하르툼에서는 정부군과 RSF, 두 군벌 간 교전이 계속되고 있다. 그 때문에 대통령궁 근처에 사는 주민들은 일절 바깥출입을 못 하고 있고 식량 등 생필품을 구하지 못해 고통을 겪고 있다. 교전 당사자들은 주민들에게 인도적 지원의 손길이 닿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휴전을 논의 중이다. 영국 더타임스는 이 같은 휴전 논의가 이번 대통령궁 공습 때문에 중단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신속지원군은 이번 대통령궁 폭파를 두고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보복을 공언했다. 쿠데타를 통해 2019년 정권을 잡은 압델 파타 알부르한 장군과 RSF 지도자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의 권력다툼에서 비롯된 수단 군벌간 무력 충돌은 지난달 본격화했다. 두 무장세력간 교전이 시작된 후 지금까지 수백 명이 죽고 수천 명이 다쳤으며, 약 11만 5000명이 인접국으로 피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분쟁이 내전으로 본격화하면 해외 피란민 수십만 명이 발생해 동북 아프리카가 함께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 독립운동가 송진우 선생, 오늘 서울현충원서 추모

    독립운동가 송진우 선생, 오늘 서울현충원서 추모

    고하(古下) 송진우(1890∼1945) 선생 탄생 133주년, 서거 78주기 추모식이 8일 오후 2시 30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다고 국가보훈처가 7일 밝혔다. 송진우선생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리는 추모식에는 박민식 보훈처장과 각계 400여명이 참석한다. 전남 담양군에서 출생한 송 선생은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당시 천도교와 기독교 연합을 주선하는 데 앞장섰으며, 이로 인해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 6개월이나 옥고를 치렀다. 1927년 동아일보 사장에 취임했으며, 1936년 독일 베를린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 금메달을 땄을 때 가슴에 붙은 일장기를 지운 시상식 사진을 신문에 게재해 총독부의 압력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1945년 8월 광복 후 한국민주당을 조직해 수석총무로 활동하다가 자택에서 암살당했다.
  • 독립운동가 송진우 선생 추모식 8일 열린다

    독립운동가 송진우 선생 추모식 8일 열린다

    고하(古下) 송진우(1890∼1945) 선생 탄생 133주년, 서거 78주기 추모식이 8일 오후 2시 30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다고 국가보훈처가 7일 밝혔다. 송진우선생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리는 추모식에는 박민식 국가보훈처장과 각계 인사 400여명이 참석한다. 전남 담양군에서 출생한 송 선생은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당시 천도교와 기독교 연합을 주선하는 데 앞장섰으며, 이로 인해 서대문형무소에서 1년 6개월이나 옥고를 치렀다. 1927년 동아일보 사장에 취임했으며, 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 금메달을 땄을 때 가슴에 붙은 일장기를 지운 시상식 사진을 신문에 게재해 총독부의 압력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1945년 8월 광복 후 한국민주당을 조직해 수석총무로 활동하다가 자택에서 암살당했다. 박민식 처장은 “송진우 선생님을 비롯한 독립유공자분들의 헌신적인 생애와 정신을 우리 미래 세대들이 잊지 않고 계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 전남도의회, 역사 오류 왜곡한 ‘전라도 천년사’ 폐기해야

    전남도의회, 역사 오류 왜곡한 ‘전라도 천년사’ 폐기해야

    전남도의회가 역사 오류를․왜곡한 ‘전라도 천년사’ 폐기를 강력 촉구하고 나섰다. 전남도의회는 4일 성명을 통해 “최근 공개된 전라도 천년사 34권의 e-book 전문을 보면 말문이 턱하고 막힌다”며 “전남을 우롱하고 모욕한 심각한 역사 오류와 왜곡이 있어 전면 폐기해야한다”고 이같이 강조했다. 도의회는 “야마토 왜가 전라도를 침략해 나라를 세웠다는 일본서기를 인용했다”며 “남원을 기문, 장수․고령을 반파로, 강진․해남을 침미다례로, 구례․순천을 사타라는 임나 지명을 기술해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확인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이러한 사실에 기반해 전라도민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공개토론이나 학술토론 등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예정되었던 봉정식 취소와 함께 시․도민에게 사전 공개 후 검증에 대한 약속도 이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도의회는 또 “34권의 방대한 분량을 5월 7일까지 단 2주의 이의신청 기간을 정해 이메일로 받은 후 편찬위 자체 검증을 하겠다는 것이다”며 “이는 민주주의 정신과 역사의식이 투철한 전남도민을 우롱하고 모욕한 것이다”고 강하게 성토했다. 이어 “일본은 지금도 끊임없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등 야욕을 보이고 있다”며 “3개 지자체가 주관해 발간한 ‘전라도 천년사’를 이용해 전라도를 넘어 대한민국 전체를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주장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고 덧붙였다.전남도의회는 “우리의 역사를 지키는 일에 도민들과 함께 할 것이다”며 “조선총독부 식민사관도 모자라 중국의 동북공정까지 추종해 전남을 왜놈의 땅으로 만들려는 ‘전라도 천년사’를 폐기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도의회는 “이후 모든 역사적 사료나 자료들의 출간이나 출판은 공개적이고 투명한 방법을 사용해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도록 최선의 대책을 강구하라”고 강력 요구했다. 성명을 주도한 조옥현 전남도의회 교육위원장은 “고대사 기술 과정에서 고조선의 건국 시기를 왜곡해 우리의 기초적 역사관을 통째로 왜곡하는 일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며 “뿐만 아니라 일본 극우 사학자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백제 근초고왕이 야마토 왜에 충성을 맹세했다는 내용을 인용한다는 것은 이의신청을 떠나 전면 폐기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 전남도의회, ‘전라도 천년사’ 폐기 촉구

    전남도의회, ‘전라도 천년사’ 폐기 촉구

    전남도의회는 4일 최근 공개된 ‘전라도 천년사’가 전남을 우롱하고 모욕하는 심각한 역사 오류와 왜곡이 있다며 전면 폐기를 강력히 촉구했다. 전남도의회는 성명을 통해 “전라도 천년사 34권의 e-book 전문을 보면 야마토 왜가 전라도를 침략해 나라를 세웠다는 일본서기를 인용해 남원을 기문, 장수와 고령을 반파로, 강진과 해남을 침미다례로, 구례와 순천을 사타라는 임나 지명을 기술,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특히 “고대사 기술 과정에서 고조선 건국 시기를 왜곡하고 역사관을 통째로 왜곡하는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며 “일본 극우 사학자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백제 근초고왕이 ‘야마토 왜’에 충성을 맹세했다는 내용을 인용하는 것은 이의신청을 떠나 전면 폐기해야 할 문제다”고 반발했다. 또 “이러한 사실에 기반하여 전라도민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공개토론이나 학술토론 등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고 시도민에게 사전 공개 후 검증에 대한 약속도 이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편찬위가 34권의 방대한 분량을 5월 7일까지 단 2주의 이의신청 기간을 정해서 이메일로 받은 후 자체 검증을 하겠다는 것은 전남도민을 우롱하고 모욕한 것이다”고 강하게 성토했다. 의회는 또 “지금도 끊임없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의 야욕을 보면, 광주시와 전남도, 전북도가 주관하여 발간한 ‘전라도 천년사’를 통해 전라도와 대한민국 전체가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주장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성명을 주도한 의원들은 “조선총독부 식민사관도 모자라 중국의 동북공정까지 추종하여 전남을 왜놈 땅으로 만들려는 ‘전라도 천년사’를 폐기하고 공개적이고 투명한 방법을 통해 역사를 바로 세우도록 최선의 대책을 강구하라”고 촉구했다.
  • 120주년 생일날 국립묘역에서 쫓겨난 파시즘 지도자 [메멘토 모리]

    120주년 생일날 국립묘역에서 쫓겨난 파시즘 지도자 [메멘토 모리]

    스페인 마드리드 북부의, 우리로 치면 현충원 같은 ‘전몰자의 계곡(Valley of Cuelgamuros)’에 묻힌 파시스트 지도자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1903~1936)의 무덤이 24일(현지시간) 발굴돼 그의 유해를 마드리드 남부의 묘지로 옮겼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좌파 연립정부가 1930년대 내전과 독재 시절을 되살리려는 극우파들의 노력을 저지하기 위해 벌인 과거 청산의 일환이다. 정부는 보란 듯 그가 태어난 지 120년 되는 날을 이장 날로 잡아 그를 여전히 추앙하는 극우 집단을 화나게 만들었다. 호세 안토니오는 1939년까지 이어진 스페인 내전이 시작된 해에 공화파에 의해 처형됐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킨 반군의 지도자였다. 이오네 벨라라 사회권리부 장관은 트위터에 “프리모 데 리베라의 발굴은 민주주의를 위해 좋은 소식”이라고 적은 뒤 “파시스트들이라면 묘지 밖으로 끌어내 길거리에 내걸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호세 안토니오의 시신은 원래 네 곳에 나뉘어 묻혔는데 1959년 마드리드 북부의 커다란 공동묘지로 예전에 ‘망자의 계곡’으로 불렸던 이곳으로 옮겨졌다.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이 1975년 세상을 떠나기 전에 조성해 본인도 이곳에 묻혔다. 두 남자는 이 묘역의 성당 제단 옆에 나란히 잠들어 있었다. 2019년 집권 사회당 정부는 법적 다툼 끝에 승리, 프랑코의 묘를 발굴했다. 스페인 정부는 한 발 나아가 지난해 ‘민주적 기억 법’을 통과시켜 공공장소에 남겨진 프랑코 시대 상징물을 제거하고 프랑코 정부와 관련된 인물들을 우상화하는 시도를 막도록 했다. 이 법에는 또 어떤 인물도 전몰자 계곡의 “돋보이는 위치”에 묻혀 있어선 안된다고 딱잘라 규정했다.호세 안토니오의 남동생 미겔도 프랑코 정부의 장관을 지냈고, 여동생 필라도 파시즘 정당 팔랑헤(Falange)의 여성 단체를 조직했는데 둘 모두 산 이시드로에 묻혀 있다. 이 가족의 아버지 미겔(1870~1930)은 필리핀 총독을 지냈으며 1923년부터 1930년까지 총리를 지낸 독재자였다. 전몰자의 계곡은 프랑코 시대를 가장 눈에 띄게, 악명 높게 상징하는 장소였다. 내전에 희생된 공화파와 왕당파 3만 4000여명이 안장돼 있다. 그런데 이 기념 공간을 축조하는 데 동원된 이들은 파시즘에 반대해 떨쳐 일어난 공화파 포로들이었다. 건축 기법은 프랑코 총통의 국가기독교 이념을 좇았다. 지상으로부터 150m 높이의 석재 십자가가 떡하니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펠릭스 볼라노스 총리실 장관은 독재를 우상화하지 않는 장소로 옮겨간 것이어서 “일보 진전”이라고 표현했다. 민주적 기억 법에 따르면 베네딕토 수도원 커뮤니티가 전몰자 계곡을 관리해 왔는데 이제 손을 떼게 된다. 이 커뮤니티의 수장은 2019년 프랑코 총통 묘 발굴을 막으려 했다. 물론 야당은 발굴 및 이장에 강력히 반대했다. 다음달 지방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을 선동하기 위해 꾸민 짓이라고 비판했다. 마드리드 시장은 이번 이장이 “우리 모두를 위한 미래를 만들기보다 과거의 상처를 여는 것으로 정치를 이해하는 사람들이나” 관심을 갖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 서울시의회 자연문화환경탐사연구회, 광화문 월대·삼군부 행랑터 문화재 발굴현장 방문

    서울시의회 자연문화환경탐사연구회, 광화문 월대·삼군부 행랑터 문화재 발굴현장 방문

    서울시의회 박환희 운영위원장(국민의힘·노원2)은 지난 14일 의원연구단체 ‘자연문화환경탐사연구회’ 소속 의원들과 함께 광화문 월대와 삼군부 행랑터 발굴 현장을 방문했다. 광화문 월대는 조선 대표 궁궐 경복궁의 정문 앞에 놓인 넓은 기단으로 각종 궁중 행사를 통해 왕과 백성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삼군부는 광화문 동쪽의 의정부와 마주 보며 서쪽에 있었던 조선 최고 군사기관이다. 월대는 일제 강점기 총독부의 편의를 위해 놓은 철도로 크게 훼손됐고, 삼군부 청사 건물 역시 다른 지역으로 이전되거나 소실됐다. 이들 문화재 발굴 현장을 직접 찾은 자연문화환경탐사연구회 소속 의원들은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발굴 사업의 역사적 의의와 진척 상황을 확인하고 여름 장마철 폭우에 대비한 발굴터 안전대책에도 유의해줄 것을 당부했다.자연문화환경탐사연구회 대표를 맡고 있는 박 위원장은 발굴터 현장 여러 곳에 흰색 실선으로 표시된 삼군부 행랑터의 적심(積心)을 설명하며, “우리는 흔히 건물의 토대하면 주춧돌만 생각하는데, 사실 그 주춧돌을 떠받치는 기반은 작은 돌과 흙을 쌓아놓은 적심”이라며, “적심은 마음을 쌓는다는 뜻인데, 우리 의원들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건물을 떠받치는 적심처럼 마음과 정성을 모아 서울시민의 행복과 시정 발전에 전력을 다해 대한민국 민족정기 복원에 이바지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자연문화탐사연구회는 국회에서 개최하는 삼군부 복원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으며, 박 위원장을 비롯해 김원태, 민병주, 김지향, 소영철, 김영철, 서호연, 박영한, 이병윤, 김혜영, 임춘대, 한신 의원이 참여하고 있다.
  • ‘일광’이 욱일기 상징?…부산 기장군 “심각한 명예훼손”

    ‘일광’이 욱일기 상징?…부산 기장군 “심각한 명예훼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일 부산 해운대구의 횟집 ‘일광수산’에서 광역단체장, 국회의원, 국무위원 등과 만찬을 한 것과 관련해 한 언론사가 ‘일광’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행정구역이고, 욱일기를 상징한다고 주장하자 부산 기장군이 관내 행정구역인 일광읍 주민과 기장군민 전체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이라며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기장군은 10일 보도자료를 내고 ‘일광수산’ 논란과 관련해 “역사적 무지에서 비롯된 허위 정보”라고 일축했다. 이어 “일광을 친일과 연관시키는 것은 일광읍 주민을 포함한 기장군민 전체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이라고 덧붙였다. 일광수산 논란은 지난 6일 윤 대통령이 부산에서 중앙지방협력회의를 주재한 뒤 해운대구 소재 횟집 일광수산에서 만찬을 한 뒤 불거졌다. 식당의 상호는 일광읍 지명을 따온 것이며, 본점이 기장군 일광읍 학리에 있다. 이를 두고 시민언론 더탐사가 ▲기장군 일광면(2022년 일광읍으로 승격)은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행정구역 ▲건진법사의 소속 종단은 일광조계종 ▲일광은 영어로 선라이즈, 욱일기의 상징이라는 등으로 주장했다. 이에 대해 기장군은 일광이라는 지명은 기장의 옛 읍성이 있었던 고성(古城)의 진산인 일광산(日光山)에서 유래했다고 반박했다. 기장향교에 있는 남루상량문에 ‘일광산’이라는 글귀가 나오고, 이 상량문이 1638년에 지은 글임을 고려하면 일광이라는 이름은 380년 전부터 불렸다는 설명이다. 기장군은 또 1919년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3·1 독립 만세운동이 일어난 후 같은 해 4월까지 일광, 좌천, 기장읍 등 기장군 곳곳에서도 만세운동이 벌어졌으며, 기장군에서는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나왔다는 점도 강조했다. 정종복 기장군수는 “치열한 항일 운동이 벌어졌던 지역의 역사를 고려할 때 ‘일광’이라는 명칭을 친일로 호도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며 “일광이라는 지명은 옛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아름다운 이름으로 앞으로도 소중하게 지켜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더탐사는 이날 SNS 등에 “일광면 명칭은 조선총독부가 1914년 기장군면을 통폐합하면서 지정한 명칭이라는 사실이 국가기록원을 통해 확인된다. 일광이란 단어가 유독 윤 대통령 주변에 자주 등장하는 점을 지적했을 뿐 친일이라는 언급을 한 적이 없다”고밝혔다. 또 “일광이 일광산에서 유래했을지는 모르나, 일광면 명칭을 지정한 것을 조선총독부라는 점은 변함없다”고 덧붙였다.
  • 국립마한역사센터 고대 마한 심장에 나주 ‘100년 노력’

    국립마한역사센터 고대 마한 심장에 나주 ‘100년 노력’

    광주시와 전남도, 전북도, 충남도 등 광역자치단체 4곳이 문화재청에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유치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경쟁이 시작됐다. 문화재청은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고대 문화를 꽃피운 마한의 역사를 복원하고 관광문화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를 설립한다. 그동안 ‘고대 마한의 수도’를 자처했던 전남 나주시는 지난달 17일 도에 센터 유치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6일 밝혔다. 나주가 가진 마한의 역사성과 상징성, 당위성을 신청서에 담았다. 윤병태 나주시장은 “나주를 빼놓고 영산강 유역 마한의 역사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나주는 마한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며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를 나주에 유치하는 것은 마한 역사의 실체를 규명하고 정립하려고 노력한 나주 시민들의 노력과 성과의 마침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한 역사 실리콘밸리 나주나주는 ‘내륙의 바다’ 역할을 한 영산강의 물길을 통해 바다와 육지를 연결한 고대 문명 교류의 거점이자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웠던 마한의 핵심 지역으로 손꼽힌다. 실제로 나주는 국보 295호 ①금동관을 비롯해 보물 ②금동신발과 같은 마한 관련 지위와 권세를 나타내는 금은 장식 위세품이 전국에서 가장 많이 나온 지역이다.특히 마한 문화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다수의 대형 옹관고분, 그중에서도 국내에서 가장 큰 3.28m의 옹관(왕곡면 마산 화정일 1호구분 출토 옹관)이 2008년 발굴됐다. 옹관을 제조했던 옹관 가마 유적도 나주 오량동에 있다. 옹관 가마는 마한 시대에 옹관을 생산하고 유통했던 생생한 유적이다. 이 때문에 나주는 ‘마한의 실리콘밸리’로 손색이 없다. 2021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영산강 유역 마한역사문화권 12개 지방자치단체별 관련 유적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총 2567개 유적 가운데 나주시에만 403개가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독보적으로 많다.●마한 복원사업 주도 100년 마한 관련 역사성도 남다르다. 나주의 마한사 복원 최초 기록은 100년을 넘게 거슬러 올라간다. 1917년 조선총독부 고적조사단에서 발굴한 반남 신촌리 고분 9호분에서 금동관, 금동신발을 비롯한 지배층의 위세품이 다량으로 출토됐다. 공주 무령왕릉, 경주 금관총의 발굴조차 이뤄지지 않았던 때 한반도 내 최상위 지배자의 상징인 금동관이 나주에서 처음 발굴돼 의미가 크다. 정부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시대 국가와 공존했던 가야역사문화의 역사적 중요성을 뒤늦게 알고 국정과제로 채택해 체계적인 복원·정비를 추진했다. ‘잃어버린 역사’로 등한시했던 마한역사문화를 2020년에 제정된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에 포함했다. 그렇게 되기까지 나주시의 숨은 노력이 작용했다. 어느 지역보다 역사적 정체성을 확립하려고 마한사 복원사업을 추진했고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나주시는 1988년 반남고분 종합조사보고서 발간을 계기로 잃어버렸던 마한사 조사와 연구를 사실상 주도했다. 특히 국립나주박물관과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등 나주에 모여 있는 국립 학술연구조사 기관과 협업해 성과를 거뒀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은 1996년 영산강 유역 다시면 복암리고분 3호분을 발굴·조사했다. 그 결과 유례없는 일명 ‘아파트형 고분’ 형태의 다양한 묘제를 발굴해 냈다. ●마한 새로운 100년 불굴의 도전 나주시는 2016년 다시면 복암리고분 3호분의 크기와 구조를 국내 최초 1대1 비율로 복원해 놓은 복암리 고분전시관을 설립했다. 2002년에는 옹관을 제조했던 옹관 가마를 발견했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유적을 발굴·조사하고 70기의 옹관 가마와 각종 유구를 출토했다. 옹관 제작에 관한 궁금증도 이때 풀렸다. 옹관 재현 프로젝트를 통해 실험 고고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는 나주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정촌 고분을 발굴·조사했다. 2014년 정촌 고분에서는 완전한 형태의 용머리 장식 금동신발 한 쌍이 금동관 편과 함께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같은 나주시의 노력은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를 유치해야 하는 당위성과 연결된다.●‘잃어버린 역사’ 재정비 최적지 반남 신촌리 9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80년 만인 1997년 국보 제295호로 지정됐다. 나주시는 금동관 출토 100주년인 2017년 국립나주박물관과 함께 특별전 ‘신촌리 금동관, 그 시대를 만나다’를 연 데 이어 ‘나주 신촌리 금동관의 재조명’을 주제로 국제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하며 나주에서 출토된 마한 시대 금동관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조명했다. 나주시는 검인정 교과서에 3~4줄 설명에 그쳤던 마한 역사를 재조명하기 위해 2015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마한 역사 교과서를 발간했다. 여기에 마한문화제(6회)와 마한 관련 학술대회(14회)를 열고 마한 유적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를 준비하는 등 지금도 마한 역사를 규명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이렇듯 나주는 마한사 복원 노력의 흔적과 정책적 성과가 있어 다른 지역과 차별되는 독보적인 지역이다. 나주시는 대표 축제인 마한문화제를 개최해 2000년 전 영산강 유역에 융성했던 고대 마한의 역사·문화 중심지임을 알리고 있다. 시는 오는 10월 국립나주박물관 일원에서 ‘제7회 대한민국 마한문화제’를 열 예정이다. 윤 시장은 “마한문화제가 역사문화관광 활성화의 마중물이 되길 기대한다”며 “잔칫집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함께 즐기고 힐링하는 모두의 축제가 되도록 다양하고 알찬 프로그램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 나주 마한을 탐(探)하다 “국립마한역사센터 유치 나섰다”

    나주 마한을 탐(探)하다 “국립마한역사센터 유치 나섰다”

    광주시와 전남도, 전북도, 충남도 등 광역자치단체 4곳이 문화재청에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유치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경쟁이 시작됐다. 문화재청은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고대 문화를 꽃피운 마한역사를 복원하고 관광문화자원으로 활용하려고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를 설립한다. 그동안 ‘고대 마한의 수도’임을 주창했던 전남 나주시는 지난달 17일 도에 센터 유치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6일 밝혔다. 나주가 가진 마한의 역사성과 상징성, 당위성을 신청서에 담았다. 윤병태 나주시장은 “나주를 빼놓고 영산강 유역 마한 역사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나주는 마한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며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를 나주에 유치하는 것은 마한 역사의 실체를 규명하고 정립하려고 노력한 나주시민들의 노력과 성과에 마침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한역사 실리콘밸리 나주나주는 ‘내륙의 바다’ 역할을 한 영산강 물길을 통해 바다와 육지를 연결하는 고대 문명 교류의 거점이자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웠던 마한의 핵심 지역으로 손꼽힌다. 실제로 나주는 국보 295호 금동관을 비롯해 보물 금동신발과 같은 마한 관련 지위와 권세를 나타내는 금은 장식 위세품이 전국에서 가장 많이 나온 지역이다. 특히 마한문화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다수의 대형 옹관고분, 그중에서도 국내에서 가장 큰 3.28m의 옹관(왕곡면 마산 화정일 1호구분 출토 옹관)이 지난 2008년 발굴됐다. 옹관을 제조했던 옹관 가마 유적도 나주 오량동에 있다. 옹관 가마는 마한시대에 옹관을 생산하고 유통했던 생생한 유적이다. 이 때문에 나주는 ‘마한의 실리콘밸리’로 손색이 없다. 2021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영산강 유역 마한역사문화권 12개 지자체별 관련 유적알 총괄한 결과 총 2567가지 중 나주시에만 403가지가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독보적으로 많다. ● 마한 복원사업 주도 100년 마한 관련 역사성도 남다르다. 나주의 마한사 복원 최초 기록은 100년을 넘게 거슬러 올라간다. 1917년 조선총독부 고적조사단에서 발굴한 반남 신촌리 고분 9호분에서 금동관, 금동신발을 비롯한 지배층의 위세품이 다량으로 출토됐다. 이 시기에는 공주 무령왕릉, 경주 금관총의 발굴조차 이뤄지지 않은 때로 한반도 내 최상위 지배자의 상징인 금동관이 나주에서 처음 발굴돼 의미가 크다.정부가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시대 국가와 공존했던 가야역사문화의 역사적 중요성을 뒤늦게 알고 국정과제로 채택해 체계적인 복원·정비를 추진했다. ‘잃어버린 역사’로 등한시했던 마한역사문화를 2020년에 제정된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에 포함했다. 그렇게 되기까지 나주시의 숨은 노력이 작용했다. 어느 지역보다 역사적 정체성을 확립하려고 마한사 복원사업을 추진했고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나주시는 1988년 반남고분 종합조사보고서 발간을 계기로 잃어버렸던 마한역사 조사와 연구를 사실상 주도했다. 특히 국립나주박물관과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등 나주에 모여 있는 국립 학술연구조사 기관과 협업, 성과를 거뒀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1996년 영산강 유역 다시면 복암리고분 3호분을 발굴·조사했다. 그 결과 유례없는 일명 ‘아파트형 고분’ 형태의 다양한 묘제를 발굴해냈다. 나주시는 2016년 다시면 복암리고분 3호분의 크기와 구조를 국내 최초 1대1 비율로 복원해놓은 복암리 고분전시관을 설립했다. 2002년에는 옹관을 제조했던 옹관 가마를 발견했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유적을 발굴, 조사하고 70기의 옹관 가마와 각종 유구를 출토했다. 옹관 제작에 관한 궁금증도 이때 풀렸다. 옹관 재현 프로젝트를 통해 실험 고고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 2013년부터 2016년에는 나주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정촌고분을 발굴·조사했다. 2014년 정촌 고분에서는 완전한 형태의 용머리 장식 금동신발 한쌍이 금동관 편과 함께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같은 나주시의 노력은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를 유치해야 하는 당위성과 연결된다. ● ‘잃어버린 역사’ 재정비 최적지 반남 신촌리 9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80년 만인 1997년 국보 제295호로 지정됐다. 나주시는 금동관 출토 100주년인 2017년 국립나주박물관과 함께 특별전 ‘신촌리 금동관, 그 시대를 만나다’를 연 데 이어 ‘나주 신촌리 금동관의 재조명’을 주제로 국제 학술심포지엄 개최하며 나주에서 출토된 마한시대 금동관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조명했다. 나주시는 검인정 교과서에 3~4줄 설명에 그쳤던 마한역사를 재조명하기 위해 2015년 전국에서 처음 마한역사 교과서를 발간했다. 여기에 마한문화제(6회)와 마한 관련 학술대회(14회)를 열고 마한유적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 준비 등 지금도 마한역사 규명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이렇듯 나주는 마한사 복원 노력의 흔적과 정책적 성과가 있어 다른 지역과 차별되는 독보적인 지역이다. 나주시는 대표축제인 마한문화제를 개최해 2000년 전 영산강 유역에 융성했던 고대 마한 역사·문화 중심지임을 알리고 있다. 시는 오는 10월 국립나주박물관 일원에서 ‘제7회 2023년 대한민국 마한문화제’를 열 예정이다. 윤 시장은 “마한문화제가 역사문화관광 활성화의 마중물이 되길 기대한다”며 “잔칫집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함께 즐기고 힐링하는 모두의 축제가 되도록 다양하고 알찬 프로그램을 준비해가겠다”고 말했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식목일에 돌아보는 아사카와 다쿠미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식목일에 돌아보는 아사카와 다쿠미

    서울 중랑구 망우리 묘지 안에는 우리가 좀처럼 알지 못하는 일본인의 무덤이 있다. 무덤 203363호라 돼 있다.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1892~1931)의 무덤이다. 추모석이 눈길을 붙든다. “한국의 산과 민예를 사랑하고 한국인 마음속에 살다 간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 되다” 절묘하게도 식목일을 사흘 앞둔 지난 2일이 야마나시현 출신으로. 조선총독부 산림과에 근무하며 산림 녹화에 힘썼던 그의 92주기였다. 당시 한국 잣나무는 2년을 길러야 양묘에 성공할 수 있었지만 그가 고안한 양묘법 덕에 1년으로 줄일 수 있었으며, 2011년 기준 국내 인공림 37%에 잣나무가 심겨져 있다. 아사카와는 조선의 민둥산을 푸르게 하는 것이 소명이라 믿고, 전국을 돌며 맞는 수종을 고르고 식목을 거듭해 자연 상태 흙의 힘을 이용하는 ‘노천 매장법’ 방식으로 조선오엽송 종자를 싹 틔우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의 형은 ‘조선 도자기의 신’으로 불린 아사카와 노리다카. 그 자신도 조선 공예를 사랑했다. 형에게 조선 도자기 파편을 구해 보내줘 형이 조선 백자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했고, 본인은 조선의 소반(밥상)을 연구하며 조선 문화의 독창성을 높이 샀다. “올바른 공예품은 친절한 사용자의 손에서 차츰 그 특유의 미를 발휘하므로 사용자는 어떤 의미에서는 미의 완성자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의 소반은 순박, 단정한 아름다움이 있으면서도 우리 일상생활에 친히 봉사하여 세월과 함께 아미(雅美)를 더해가므로 올바른 공예의 대표라고 칭할 수 있다.” 야나기 무네요시가 민예운동을 시작한 배경에는 조선 백자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강점기 경복궁에 조선민족미술관을 세웠는데 지금의 국립중앙박물관이다. 아사카와는 형제가 함께 수집한 조선백자 등 미술품 3000여점을 조선민족미술관에 기증했고, 지금 우리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관람하고 있다. 고향인 야마나시현 호쿠도시에 형제 기념관이 세워졌다. 에미야 다카유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2012년 영화 ‘백자의 사람: 조선의 흙이 되다’가 두 나라에서 개봉됐다. 조선일보는 ‘4일 오전 아흔두 번째 기일을 맞아 망우리 묘지에서 추모식이 열렸다’고 보도했다. 두 나라 인사 50여명이 모였고, “한일 간 어두운 과거사와 해묵은 감정들, 오늘 내리는 이 봄비에 다 털어냅시다”란 추모사가 있었다고 전했다. 추모식을 주최한 ‘아사카와 노리다카·다쿠미 형제 현창회’가 알리지 않았는데 중랑구에 거주하는 일본인들도 직접 현장을 찾았다고 했다. 처음 추모식에 참석했다는 소리꾼 장사익(74)씨가 가장 먼저 헌주(獻酒)를 했고 무반주로 ‘아리랑’과 ‘봄비’ 두 곡을 불렀다. 장씨는 “나는 몰랐는데 한국의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해준 것이 고맙다”며 “한일 교류에 있어 문화의 힘과 중요성을 다시 실감한다”고 했다. 정부가 지난달 강제징용 배상 해법으로 발표한 ‘제3자 변제’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심규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장도 참석해 추모사를 낭독했다. 심 이사장은 “한국은 현재 일본 문제로 과거와 미래가 싸우고 있는데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갈등한 당신의 삶에서 작은 용기를 얻고자 한다”며 “당당하게 현재를 살다 간 당신을 등불 삼아 저도 험한 산길에 난 작은 오솔길을 걸어보겠다 다짐한다”고 했다. 이동식 현창회 회장은 “아사카와의 마음을 일본인도 많이 알게 돼 한국과 일본이 더 좋은 친구로 새로운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현창회 간사를 맡고 있는 함재경씨는 “한일이 정치 문제로 시끄러워도 민간 교류는 계속되어야 한다”며 “코로나가 끝난 만큼 내년에는 일본에서도 더 많은 인원이 추모식에 참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이 신문이 어떤 의도를 갖고 추모식을 보도했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조선의 숲을 이토록 푸르게 살리는 데 공헌했고, 조선 백자의 아름다움에 반한 일본인의 마음과 그의 말만 돌아보고 싶다. “피곤으로 지쳐 있는 조선이여, 다른 사람을 따라 흉내를 내기보다 갖고 있는 중요한 것을 잃지 않는다면, 멀지 않아 자신으로 찬 날이 올 것이다.”
  • ‘마한사 복원 이끌어온 나주’,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최적지

    ‘마한사 복원 이끌어온 나주’,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 최적지

    국립 마한역사문화센터(이하 센터)의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사라져버린 기록 때문에 묻혀왔던 마한 역사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센터 건립을 계기로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센터 건립지 선정을 둘러싸고 벌써부터 지역간 소모적 경쟁이 우려되고 있다. 기록이 멸실되면서 땅에 묻힌 마한 역사가 전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지금으로부터 106년 전 이루어진 한 발굴결과 때문이었다.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의 역사를 파악하기 위해 추진한 고적조사단이 조선 전역의 유적을 조사하다가 나주 반남에 있던 고분군을 발굴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발굴도중 반남 신촌리 9호분에서 금동관과 금동신발을 비롯한 지배층의 위세품이 다량 출토된 것이다. 그때는 공주 무령왕릉이나 경주 금관총의 발굴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때였으므로 한반도 내에서 최상위 지배자의 상징인 보관 寶冠이 나주 반남에서 최초로 발굴된 것이었다. 반남고분군의 발굴성과는 당시 학계와 일반 시민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던졌다. 고구려나 신라유적일 리도 없고 백제의 중심지도 아닌 나주 반남에서 어떻게 이런 최상위 지배자의 장식 위세품이 다량으로 묻혀있느냐는 의문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시작된 반남고분군에 대한 관심은 지금까지 100년이 넘도록 면면히 이어지며 마한역사 복원의 중심 동력을 만들어왔다. 나주 반남고분군이 마한사 재인식의 출발점이자 상징적 유적으로 알려져 온 이유이다. 센터 건립대상지 선정에서는 이처럼 유치희망 지역사회들이 가진 마한단계 유적의 규모나 상징성, 유적 집중도 그리고 출토 문화재의 중요도 등이 객관적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마한의 고지라고 할 수 있는 경기‧충청‧전라지역 안에서 나주 반남고분군이 갖는 상징성과 마한 연관성을 뛰어넘는 유적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센터 건립지 선정에서 또 하나 고려해야 할 점은 해당 지역사회가 보유한 인프라에 기반한 연계 시너지 효과이다. 이에 대하여 지역 균형발전 차원에서 관련시설을 분산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자연자원을 활용한 산업개발과 마찬가지로 인문자원을 활용한 인문학 사업도 활성화를 위해서는 특정 영역에 강점이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선택하고 집중해야 한다. 그것은 국가 역량강화를 위한 피할 수 없는 대원칙이다. 반남고분군을 중심으로 이미 나주 지역에는 국립나주박물관이나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그리고 복암리고분전시관 등 마한관련 핵심 연구‧활용시설들이 자리잡고 운영되고 있다. 이렇게 마한 기관들이 나주에 포진하게 된 것은 나주가 마한유적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대상 지역사회가 보여온 마한역사문화 현창사업에 대한 의지와 헌신도 엄정하게 옥석이 가려져야 한다. 국립기관 유치를 목적으로 근래 몇년 동안 급조된 유치운동을 펼쳐온 지역과 마한 역사유산에 대한 애착으로 오랜 세월동안 보존현창사업에 땀 흘려온 지역이 엄정하게 판별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도 일제강점기로부터 모진 풍상을 겪으며 백년이 넘도록 마한유적 보존에 애써 온 나주 반남과 복암리일대 지역사회 그리고 나주시 문화행정의 열정은 충분히 평가받을 만 하다.
  • [씨줄날줄] 강제동원 vs 강제징용/황성기 논설고문

    [씨줄날줄] 강제동원 vs 강제징용/황성기 논설고문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이 강제동원 판결을 확정한 날 정부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 명의의 대국민 입장문을 발표한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 관한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며… (중략) 정부는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길 희망한다.” 300자도 안 되는 짧은 입장문은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는 정부 입장을 천명했다. 하지만 국제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던 정부는 입장문대로 범정부TF를 구성하고 외교적 해결책을 모색한다. 정부 TF가 대책을 마련했지만 문재인 정권이 끝나는 날까지 문제가 타결되기는커녕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우리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행 등으로 양국 관계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문 정권이 ‘강제동원’을 방치한 탓에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한 배상과 사죄가 늦어진 것은 물론 일본 부품을 쓰는 기업에까지 피해가 미쳤다. 또 하나, 강제동원으로 수렴되고 있던 용어가 이 전 총리의 입장문을 계기로 행정부에서 강제징용으로 쓰면서 혼란을 일으켰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정부가 말하는 ‘징용’은 1944년 9월 국민징용령에 따른 것이다. 그들 입장에선 합법적 행위였다. 일본은 그래서 ‘징용공 문제’라 부르다가 일본 정부의 책임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구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로 바꿨다. 일본은 1938년 5월부터 ‘할당 모집’, 1942년 2월부터 ‘관 알선’, 1944년 9월 이후 ‘국민징용’으로 노동력을 강제동원한다.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정책실장은 “세 가지 모두 일본 정부와 조선총독부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국가 권력에 의한 강제동원이라는 점은 동일하다”고 강조한다. 강제징용이라는 표현을 쓰면 여러 강제동원 중 일본 정부가 합법이라고 우기는 ‘징용’에 국한되고 오해를 살 소지도 크다. ‘강제동원’은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같은 법률, 대법원 판결,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재단은 물론 학계에도 정착됐다. 정부가 강제동원 해결책을 내놓으면서 동원과 징용을 혼용하던 언론들도 동원 쪽으로 옮겨 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통령실과 외교부, 몇몇 언론은 언뜻언뜻 ‘강제징용’을 사용하고 있다. 적절치 않다. 행정부의 정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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