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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 확실히 알아야 진실한 반성 가능하죠”

    “과거 확실히 알아야 진실한 반성 가능하죠”

    │도쿄 박홍기특파원│“역사의 진실로부터 배우는 것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 과거를 확실히 알아야 진실된 반성도 가능하다.” 일제 강점 당시 독립투사를 비롯, 조선 민중의 인권 옹호를 위해 싸웠던 변호사 후세 다쓰지(왼쪽·1880∼1953)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이케다 히로오(오른쪽·59) 감독의 설명이다. 제목 역시 ‘변호사·후세 다쓰지’다. ●내년 3월 완성… 일본·한국서 시사회 이케다 감독은 “암흑의 시대를 불굴의 용기로 맞섰던 후세 변호사의 일생을 급변하는 세계를 사는 요즘 우리들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면서 “후세 변호사의 조명을 통해 한·일 관계가 좀더 발전됐으면 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또 “90분 분량의 영화는 한·일강점 100년에 맞춰 내년 3월쯤 완성, 일본과 한국에서 시사회를 가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전문인 이케다 감독은 ‘헌법, 지금과 미래의 세대를 위하여’, ‘도쿄대공습·어린이들의 증언’, ‘풍요의 대지’ 등 인권·환경·평화의 메시지가 강한 영화를 제작했다. ●독립투사 변호 도맡아 두차례 옥고 후세 변호사는 지난 2004년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받은 인물이다. 1923년 일왕의 암살을 기도했다가 체포된 의열단원 박열 의사, 1924년 왕궁에 폭탄을 던졌던 김지섭 열사 등 독립투사들의 변호를 도맡았다. 또 동양척식회사의 농민수탈사건과 관련, 전남 나주를 직접 방문해 ‘합법적인 사기사건’이라며 거세게 항의, 총독부로부터 협의를 이끌어냈다. 정부로부터 세 차례에 걸쳐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한 데다 두 차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젊은이들에게 용기·감명 주기에 충분” 이케다 감독은 “후세 변호사의 ‘살아야 한다면 민중과 함께, 죽어야 한다면 민중을 위하여’, ‘옳고, 약한 자를 위해 나를 강하게 만들어라.’라는 말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변하지 않았다.”면서 “젊은이들에게도 용기와 감명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후세 변호사의 궤적을 밟기 위해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후세 변호사와 친분이 있었던 관계자 인터뷰, 전남 나주 방문 등을 계획하고 있다. 이케다 감독은 오는 31일 메이지대학에서 영화제작발표회를 갖는다. 아베 사부로 전 일본변호사연합회 회장을 비롯, 강덕상 재일한인역사자료관 관장 등 19명으로 영화제작 발기인도 구성했다. hkpark@seoul.co.kr
  • 친일 군인·경찰·예술인 재산도 환수

    10일 친일·반민족행위재산조사위원회는 친일 행위를 한 재산환수 대상자를 확대 선정해 다음달 15일 발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재산환수 대상자는 을사늑약 등 국권 침탈 조약에 관여한 대신과 조선총독부 고위 관계자, 중추원 의원 등 450여명의 일제치하 정부 고위직으로만 한정됐지만 이번에는 친일 활동을 한 군인과 경찰, 예술인 등도 대거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위는 “친일 정도가 중대한 이들을 별도로 선정하는 작업을 진행해 전원위원회 회의를 앞두고 있으며 각계각층의 인사가 포함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사위는 “인물 선정과 규모는 전원위가 결정할 사안”이라면서 “독립운동을 억압한 군인과 경찰, 위안부 모집을 선동·주도한 인물 등 반민족 인사가 주를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주말 데이트] 30년간 주말마다 박물관 찾는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

    [주말 데이트] 30년간 주말마다 박물관 찾는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

    친근한 모습이다. 국내 최대인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이라고 하기엔 그의 웃음이 참 소탈했다. 성품 역시 소탈해 사무동 6층 꼭대기 집무실에 앉아 있기보다 수시로 전시실로 내려오길 좋아한다. 손수 관람객들에게 역사수업을 하고 기념촬영도 곧잘 한다. 반면 그의 열정은 흉내내기 어려울 정도로 뜨겁다. 한국박물관 100주년을 맞아 올해 각종 기념사업을 펴고 있는 최광식(56) 국립 중앙박물관장을 1일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1909년 순종이 만든 ‘제실 박물관’이 시초 “100주년은 아무나 거쳐갈 수 없는 특별한 해입니다. 그 사명감에 다들 신나게 아이디어를 쏟아 내고 있습니다.” 바쁜 시기에 관장을 맡은 것이 부담스럽지 않으냐는 질문에 오히려 신나게 박물관 자랑을 늘어 놓는 것으로 대신한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는 ‘100주년’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하지만 최 관장은 “우리 정부도 없던 미군정 때나 일제총독부 시기의 박물관을 우리박물관 시초로 볼 수는 없다.”면서 1909년 11월1일 순종이 열었던 ‘제실 박물관’부터 시작된 한국박물관의 100년사를 줄줄이 늘어놓는다. “그때 박물관은 백성들이 궁궐로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었다는 의미가 더 큽니다. 한국의 박물관은 왕실이 시민사회를 받아들이며 시작된 거죠.” 국내 첫 박물관은 ‘왕실과 시민사회의 소통’이었다. 그러다가 일제와 6·25전쟁을 지나며 박물관은 조상들의 유물이 얼마나 있느냐를 따져 ‘국가정통성’을 보장해 주는 공간이 됐다. 지금도 사실 그와 별반 다르지 않겠지만, 최 관장은 이를 ‘국가브랜드의 상징’이라고 고쳐 부른다. ●‘기와청자 누각’을 세계적 상징조형물로 올해 100주년 사업도 ‘대한민국의 상징’으로 ‘뮤지엄 콤플렉스’를 조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현재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중심으로 어린이박물관도 함께 두고, 또 바로 건너 미군기지가 이전하면 공원까지 더해 복합적인 생태·문화 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그는 “조상의 기술대로 ‘기와 청자 누각’을 복원해 루브르의 ‘유리 피라미드’ 같은 세계적인 상징조형물을 만들고 싶다.”고 꿈을 밝힌다. 국가브랜드 말고도 “박물관은 문화콘텐츠의 보고”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유물을 둘러싼 원초적인 콘텐츠는 많은데 그걸 활용하지 못한다.”고 아쉬워했다. 이뿐만 아니다. 최근 들어 관람객들의 발길이 늘긴 했지만 박물관 문턱을 무슨 ‘숙제’처럼 여겨 한번 갔다오면 다시 찾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사실도 그렇다. 그는 “달마다 계절마다 박물관은 변하고 있다.”면서 “수학여행 같은 기회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박물관을 가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달마다 계절마다 박물관은 변합니다” 그 역시 첫 박물관 방문은 학창시절 수학여행때였지만 이후 재미를 붙여 지난 30년 동안 주말마다 박물관을 찾았다고 한다. 그는 “박물관은 가족·동료·친구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작품을 보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니 짧은 시간에 서로 인생관도 알 수 있어 ‘데이트코스’로도 그만이라는 것. 그는 “지금의 아내와도 주로 박물관에서 데이트를 했는데, 사학(고려대 한국고대사)을 전공한 내가 조금 더 유리한 위치에서 말을 이어 나갔다.”며 웃는다. 외국인들이 유물을 직접 보고 한국만의 독특한 역사문화를 알게 됐다고 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는 그는 지금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박물관을 찾아 스스로 불편사항을 점검한다. 집무실로 향하는 게 아니다. 관장이 아닌 관람자의 입장에서 전시실을 거니는 것이다. 30년된 버릇처럼. 글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서울광장] 조선왕릉, 그리고 숭례문/김성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조선왕릉, 그리고 숭례문/김성호 논설위원

    경기도 구리시의 건원릉, 즉 조선 건국조 태조의 능에는 슬픈 사연이 담겨 있다. 태조가 계비 신덕왕후의 소생 방석을 세자로 책봉한 데 앙심을 품은 태종이 일으킨 ‘왕자의 난’. 권좌에 오른 태종은 신덕왕후 옆에 묻히길 원했던 태조의 원을 철저히 묵살했다. 신덕왕후의 능 정릉을 파괴한 뒤 태조를 홀로 모신 쓸쓸한 무덤이 건원릉이다. 태종은 뒤늦게 회심(回心), 아버지 고향 함흥의 억새풀을 가져다 봉분에 심고 깍듯이 예를 갖췄다고 한다. 건원릉이 부자지간의 한이 어린 곳이라면 경기도 화성의 융릉, 즉 사도세자와 사도세자비 혜경궁홍씨 합장묘는 부자간 정이 담긴 효심의 결정이다. 정조가 뒤주 속에서 죽임을 당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해원과 복권의 상징으로 세운 게 융릉. 정조는 지금 서울시립대 터의 사도세자 릉을 화성으로 옮겨 세운 융릉을 틈틈이 참배했다. 상경길, 서울로 향하는 1번국도변 지지대고개에서 눈물짓곤 했다는 효심이 읽힌다. 조선 500년대에 세워져 전해지는 왕릉들은 ‘핑계 없는 무덤없다.’는 말대로 얽힌 사연이 각양각색이다. 후손들이 한결같이 사연 따라 깍듯한 제례를 올려옴도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선 왕릉 40기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에 등재된다고 한다. 조선 역대 왕릉 42기 중 북한 개성의 제릉·후릉을 뺀 모든 능이 일괄등재되는 셈이다. 9번째 세계유산을 갖게 된 소식에 달뜬 잔치 분위기가 역력하다. 그런데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조선왕릉을 등재권고한 이유를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만나게 된다. ‘유교적·풍수적 전통을 기반으로 한 독특한 건축, 조경양식과 함께 지금까지 제례의식 등 무형의 유산을 통해 역사의 전통이 이어진다.’는 점이다. 독특한 건축·조경양식이야 세계유산에 당연한 요소이겠지만 무형유산을 지켜온 노력은 우리전통의 문화적 양식과 보존정신을 높이 산 것이라 흐뭇하다. 9번째 세계유산 소식에 얹어 지난해 2월 국보1호 숭례문이 무너져 내린 비극을 떠올림은 지나친 노파심일까. 수도 한복판에 우뚝했던 민족 자존심이 순식간에 허물어지는 참상. 나라의 으뜸 문화재를 빼앗긴 상실감보다 더 뼈저린 아픔은 무관심과 무지다. 노숙자들의 빈번한 잠자리며 술판으로 변해 갔고 매뉴얼 하나 없이 속수무책 당해야 했던 무방비, 미련의 회한인 것이다. 이땅의 문화재 수난을 말하자면 어디 숭례문만의 일일까. 4년 전 양양의 1300년 고찰 낙산사가 산불에 잿더미로 변했고 전국 사찰에 즐비한 성보문화재의 도난, 훼손도 다반사다. 개발에 밀려 국가·지방문화재들이 무너져 내리고 관리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유구한 고택들이 방기되고 있다. 조선왕릉의 세계유산 등재 권고가 무색할 형편이다. 그제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1000만번째 관람객이 들었다. 2005년 조선총독부 건물을 헐고 ‘민족정신을 새 그릇에 담아 보자.’는 깃발 아래 세워진 지 3년 7개월만의 기쁜 소식이다. 금동미륵보살반가상이며 백제금동향로, 경천사지 10층석탑처럼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13만 5000여점의 찬란한 유산을 만나려는 발걸음의 집적이다. 우리 유전인자를 고스란히 담은 산물들이 어디 국립중앙박물관에만 있을까. 잔치가 아무리 좋아도 잔칫상의 귀한 그릇들은 챙겨야 한다. ‘숭례문 비극’의 교훈은 한 번으로 족하다. 아 숭례문.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사설] 93년 만에 한센인 손 잡은 총리

    그제 한승수 총리가 개원 93주년을 맞은 국립 소록도병원을 찾아갔다. 현직 총리가 한센병 환자들을 진료, 치료하는 소록도병원을 직접 방문하기는 정부 수립 후 처음 일이다. 한 총리는 이날 “100년 가까이 수많은 한센인이 겪어야 했던 한과 설움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라며 깊이 사과했다. “한센인들이 겪은 차별, 냉대에 종지부를 찍는데 더많은 관심을 기울이길 바란다.”는 국민들에의 당부도 잊지 않았다. 정부를 대표해 한 총리가 소록도병원을 방문한 것은 만시지탄이 있다. 소록도병원은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당하며 어렵게 살았고, 살고 있는 한센병 환자들에겐 아픔의 상징이다. 1916년 일제 때 조선총독부가 한센병 환자들을 격리, 집단 수용하기 위해 세운 자혜의원이 그 시초로 이곳에서 많은 환자들이 감금되거나 폭행당했고 임신중절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상황이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많은 한센병 환자들은 실상과는 달리 비정상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이다. 한 총리의 소록도 방문은 지난달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향해 정부차원의 1차 사과를 한 뒤의 일이다. 총리의 현장 방문이 1회성의 전시행정으로 멈춰선 안된다. 정부가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약속한 대책들이 결실을 볼 수 있도록 꾸준히 챙겨 봐야 할 것이다. 한 총리의 소록도 방문이 한센병 환자뿐 아니라, 독거노인·소년가장·결혼이주자 등 소외계층에 정부가 더 신경쓰고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 [학술·종교플러스]

    내일까지 한·일 불교대회 ●제30차 한·일불교대회가 12일부터 14일까지 사흘에 걸쳐 경기도 여주 신륵사에서 개최된다. 대회에서 조계총 총무원장 지관 스님과 일본 정토종 광명사법주 미야바시 쇼겐 스님을 비롯한 양국 300여명이 모여 학술세미나와 법회를 연다. 특히 올해 대회는 한·일 불교 민간교류 30주년을 맞아 신륵사에 30주년 기념비를 세운다. ‘조선총독부… ’ 국제학술회의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은 15일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에서 ‘통치와 정치 사이, 조선총독부 관료의 내면과 현실’을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연다. 일본 내 조선식민지배 연구의 개척자인 미야타 세쓰코 가쿠슈인대 객원연구원이 기조발제를 하고, 김제정 경인교대 강사가 ‘1920~30년대 조선총독부 경제관료의 조선인식’을, 장신 연세대 강사는 ‘조선총독부 인사정책과 조선인 경찰’을 주제로 발표한다. ‘지구촌 빈곤… ’ 생명포럼 ●평화방송·평화신문과 천주교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 운동본부는 21일 서울 명동성당 꼬스트홀에서 제2회 ‘생명포럼’을 개최한다. 이번 포럼은 창립 21주년을 맞아 ‘지구촌 빈곤과 생명의 위기, 어떻게 극복하나?’를 주제로,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지구촌 빈곤과 생명위기를 진단하고 효율적인 해외 원조 방안을 모색한다.
  • 일제 용산 총독관사 방만 무려 30개

    일제 용산 총독관사 방만 무려 30개

    ‘일제시대 고위 관리들은 어떤 집에서 살았을까.’ 일제시대 관사(官舍)는 경비가 삼엄했고 대부분 소실돼 모습을 알기 어렵다. 하지만 국가기록원이 최근 발간한 ‘일제시기 건축도면 해제Ⅱ’에는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던 관사들의 건축도면이 실려 있어 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번에 공개된 관사 도면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용산총독관사. 용산관사는 일제가 우리나라에 지은 3개의 총독관사 중 가장 화려했던 건물로 알려져 있다. 2대 총독인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가 군사령관 재임 시절인 1908년 러·일전쟁 이후 남은 군비로 지었다. 워낙 웅장했던 탓에 막대한 건물 유지비가 들어 총독이 실제 살지 못하고 연회 등에만 이용됐다. 용산관사는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었고 6·25전쟁 때 소멸되는 바람에 지금껏 내부구조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국가기록원의 도면 등에 따르면 연건평이 2000㎡(약 606평)에 달하고 방만 30개가 넘는, 관사라기보다는 하나의 작은 궁전이었다. 당시 일제 최고 건축가였던 가타야마 도쿠마(片山東熊)가 2층 건물인 이 관사를 네오바로크풍으로 멋스럽게 꾸몄다. 또 정문에서 관사 현관까지는 드넓은 정원을 만들고 잔디와 각종 나무를 심었다. 전봉희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용산관사 도면의 존재가 확인된 것은 처음”이라면서 “일본에서도 도면에 큰 관심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총독 이하 다른 고위 관료들의 관사는 등급별로 규모가 정해져 있었다. 칙임 1~2등급(현 도지사급) 관료들은 100평 이상에 방 8개(거실 2개)인 곳에서 생활했고, 다른 관료들은 등급별로 20~100평의 관사에서 살았다. 대부분의 관사는 서양식과 일본식이 혼합된 형태였지만 난방만큼은 우리나라 고유의 온돌을 사용한 것이 눈에 띈다. 기록원의 자료에 따르면 일제가 1923년까지 우리나라에 지은 관사는 1880호에 달했다. 현재 국가기록원은 당시 관사 도면 1442장을 소장하고 있고 이번에 일부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사설] 이참에 뒤틀린 교통문화 바로 세우자

    대통령직속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는 어제 국토해양부, 경찰청과 함께 마련한 ‘교통문화체계선진화방안’과 ‘보행문화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에 따르면 보행은 좌측통행에서 우측통행으로, 차량은 좌회전 후 직진우선에서 직진 후 좌회전으로 각각 바뀐다. 우리 몸에 밴 교통관습의 혁명적 변화라 할 만하다.사람이나 자동차의 통행방향과 통행원칙을 정하는 이유는 흐름을 순조롭게 하기 위해서다. 1905년 대한제국은 우측통행 원칙을 정했지만, 1921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좌측통행으로 변경됐다. 1946년 미 군정청이 차량은 우측통행으로 되돌리면서 사람의 걷는 방법까지 강제할 수 없다며 좌측통행 그대로 둬 오늘에 이르렀다. 지난 2007년 서울 송파구가 차를 등지고 걷는 좌측보행시 사고율이 우측보행보다 1.6배나 높다며 지자체 차원에서 우측보행 운동에 나선 이래 3년 만의 결실이다. 보행방식 하나 바꾸는 데 무려 88년의 세월이 걸렸다. 유달리 교통사고가 잦고, 차가 막히고, 교통질서가 엉망인 우리의 뒤틀린 교통문화를 선진형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에너지 절감, 온실가스 저감, 교통사고 감소로 5조원 이상의 경제적 비용절감은 덤이라고 한다. 문제는 오랫동안 익숙해진 우리의 보행 및 운전습관을 바꾸는 일이다. 어느 정도 혼란과 불편이 불가피하다. 시행에 앞서 충분한 여론수렴과 교육·홍보는 물론 시범운영을 해야 한다. 제도와 방향이 아무리 좋아도 몸에 익은 것을 일거에 고치기란 어려운 법이다.
  • 88년만에 우측보행 복귀

    88년만에 우측보행 복귀

    일제시대 이후 88년간 이어져 온 보행자 좌측통행 문화가 바뀐다. 빠르면 2011년부터 교차로의 4색 신호등이 없어지고 3색 신호체계로 바뀌는 등 교통신호체계도 전면 개편된다. 대통령직속 국가경쟁력위원회는 29일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12차 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의 ‘교통운영체계 선진화방안’을 보고했다. 현행 좌측통행 문화는 1905년 대한제국 시절의 우측통행 규정을 1921년 조선총독부가 일본과 똑같이 차량과 보행 모두 좌측통행으로 바꾸면서 88년간 지속돼 왔다. 1946년 미군정이 차량은 우측으로 바꿨지만, 보행자 좌측통행은 그대로 유지해 혼란을 겪어 왔다. 국토해양부와 경찰청이 마련한 개선안에 따르면 지금까지 작은 도로에서만 가능했던 비보호 좌회전이 앞으로는 3차로 이하 교차로에선 원칙적으로 허용된다. 비보호 좌회전을 허용하려는 것은 기존 신호주기가 교통흐름 개선에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 때문이다. 비보호 좌회전을 허용하는 선진국은 신호등을 남북직진→동서직진 2현시(顯示)로 운영해 신호주기가 60~120초 수준이지만 우리나라는 좌회전 신호가 더해져 남북직진→동서좌회전→동서직진→남북좌회전의 4현시로 운영해 주기가 140~150초로 늘어난다. 경찰은 비보호 좌회전 허용에 따른 대책으로 좌회전 차량과 반대편의 직진 차량이 충돌할 위험을 줄이기 위해 도심 제한 속도를 시속 50㎞로 낮출 계획이다. 또 현행 신호체계로는 사거리에서 차량이 우회전한 직후 보행자가 건너는 건널목과 만날 때 보행자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 점을 감안, 우회전 차량 전용 신호등도 도입하기로 했다. 경찰은 특히 좌회전 또는 직진·좌회전 동시신호를 직진신호보다 먼저 주는 신호등 운영 방식을 변경해 직진신호를 다른 신호보다 우선시해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서울시정연구원은 교통체계가 개편되면 신호대기시간 절약에 따른 경제적 효과 2조 9000억원, 에너지 절감효과 1조 3000억원, 이산화탄소 감축효과 2800억원, 사고감소 효과 4800억원 등의 편익이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보고 듣고 즐기세요]

    ■ 연극·뮤지컬 ●레인맨 24일~8월2일 SM아트홀. 자폐증 형과 까칠한 동생의 형제애를 그린 더스틴 호프만, 톰 크루즈 주연의 동명 영화를 무대로 옮겼다. 임원희, 이종혁 출연. 3만~4만원. (02)2051-3307. ●경성에 딴스홀을 허하라 5월24일까지 아리랑소극장. 1930년대 조선총독부가 금지한 댄스홀을 되찾으려는 모던보이, 모던 걸들의 이야기. 실제 사건을 토대로 했다. 1만 5000~2만원. (02)2278-5741. ●15분23초 23일까지 LG아트센터. 1992년 공연 하루 전 리허설 진행중 무대가 무너져 20여명의 배우가 다친 실제 사고를 모티브로 한 서울예술단의 댄스뮤지컬. 3만~6만원. (02)2005-0114. ■ 클래식·국악 ●정명화 40년 음악인생의 멋과 혼 22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첼리스트 정명화의 국제무대 데뷔 40주년 기념 음악회. 2만~5만원. (02)518-7343.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 I & II 21일 오후 7시30분, 24일 오후 8시 LG아트센터. 서울시향 상임작곡가 진은숙이 선택한 현대음악의 향연. 21일 5000~1만원, 24일 5000~3만원. (02)3700-6300. ●국악관현악 명곡전IV 26일 오후 4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박범훈의 사물놀이 협주곡 ‘신모듬’, 이찬해의 한국드럼을 위한 협주곡 ‘어머니의 굴곡’ 연주. 2만~5만원. (02)2280-4115~6. ●화음 프로젝트와 클림트의 만남 5월13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전 11시·오후 6시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클림트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음악 등 연주. 3만원(전시관람료 포함). (02)780-5054. ■ 전시 ●월전미술상 수상작가 초대전 29일까지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제 1회 수상자인 오용길을 필두로 김보희, 김대원, 조환, 이왈종, 조춘자 등 수상작가들의 한국화가 전시. 월요일 휴관. (031)637-0033. ●김지명 개인전 22~28일 인사아트센터. 컬러 아크릴릭 판을 이용해 높낮이가 서로 다른 수백 개의 자그마한 박스를 조합한 작품 20점. 색깔들의 조화에 주의할 것. (02)736-1020. ●김계완 개인전 30일까지 필립강갤러리. 독일 쾰른에서 열린 아프페어에서 주목받고 있는 젊은 작가로, 베토벤 인물상을 쿠킹호일로 감아싼 뒤 구겨진 표면에 나타난 빛의 반사를 극사실주의로 그린 베토벤 시리즈 11점. (02)517-9014. ■ 대중음악 ●색소폰 연주가 조슈아 레드맨 콘서트 26일 오후 7시 LG아트센터. 4만~8만원. (02)2005-0114. ●재즈그룹 포플레이 내한공연 26일 오후 7시 경기도 문화의전당 대공연장. 2만~6만원. (031)230-3440. ●윤수일 밴드 전국 투어 25일 오후 7시 고양 아람누리 아람극장. 5만 5000~9만 9000원. 1588-9053. ●이승환 오리지널 콘서트 25일 오후 6시 고양 어울림누리 어울림극장. 7만 7000~9만 9000원. 1566-1369.
  • 女독립운동가 김 알렉산드라 등 56명 포상

    러시아 이주 한인 2세 출신으로 연해주와 시베리아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한 김 알렉산드라 여사 등 56명이 훈장 등 포상을 받는다. 국가보훈처는 9일 “13일 열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제90주년 기념식을 맞아 중국과 러시아 등에서 활동한 독립유공자 56명에게 건국훈장과 건국포장, 대통령표창을 각각 수여한다.”고 밝혔다.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는 김 알렉산드라 여사는 러시아 지역의 대표적 여성 독립운동가로 1918년 이동휘 선생 석방 운동을 하고 하바롭스크에서 한인사회당 조직을 주도했다.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의 민사령에 의한 호적 등재를 끝까지 거부한 독립유공자에게는 가족증서를 수여한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뉴스 다큐 시선] 점자의 세계

    [뉴스 다큐 시선] 점자의 세계

    시각장애인들은 올록볼록한 6개의 점을 사용해 읽고 씁니다. 그들은 매끈한 종이 위에 잉크로 쓴 글자를 묵자(墨字)라고 부릅니다. 맹인들에겐 이 묵자야말로 침묵하는 글자, 보이지 않는 글자입니다. 점자에는 세상과 소통하려는 맹인들의 열정이 담겨 있습니다. 종이 위에 솟은 점들이 반질반질해질 때까지 손때와 땀을 묻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6개의 점을 통해 세상을 보는 사람들, 그들의 열손가락을 따라가 봤습니다. ‘도도도독’ ‘탁탁탁’ ‘톡, 톡’ 서울 강북구 수유동 한빛맹학교 3학년1반 교실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소리다. 오전 10시10분, 2교시 영어수업이 한창이다. 오늘은 음식 이름을 영어로 적고 발음해 보는 시간이다. 아이들은 검은 점판과 뾰족한 점필을 꺼내 알파벳을 찍기 시작했다. 시선은 책상이 아닌 허공을 향해 있었다. 점판에 종이를 끼운 다음 아이들은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점을 찍어 나간다. 읽을 때는 종이를 뒤집어 볼록하게 튀어나온 점을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더듬어 읽는다. 최성문 교사가 “로스트 비프. r, o, a…f. ‘구운 쇠고기’라고 한글 뜻도 써보세요.”라고 말한다. 빠른 속도로 점필을 놀리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지윤이(9)는 머뭇거리기 일쑤다. 지윤이가 “f가 몇 번이었지?”라고 혼잣말을 하자, 옆에 있던 준성(8)이가 냉큼 “1, 2, 4!”라고 알려준다. 6점의 위치번호를 가르쳐 준 것. 지윤이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프레시 피시(fresh fish)’에서도 알파벳을 까먹은 지윤이는 “h는 몇 번이야.”라고 묻는다. 준성이는 “1, 2, 5”라고 소리쳐 답해 준다. ●머리 희끗한 60대 정용설씨 주경야독 7살 때 뇌수술을 받은 뒤 후유증으로 시력을 잃은 지윤이는 맹학교에 1년 늦게 입학했다. 다른 아이보다 점자를 늦게 익힌 탓에 실력이 반 친구들에 비해 처지는 편이다. 지윤이는 “점자를 처음 배울 때는 ‘아야어여’ 모음이 어려웠어요. 시험을 많이 보면서 괜찮아졌는데 영어 점자는 또 다르니까 헷갈려요.”라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또 다른 교실에서는 머리가 희끗한 60대 노인과 30대 남성이 더듬더듬 점자책을 읽고 있었다. 어른이 된 후 시력을 잃은 중도실명자들을 위한 직업재활학급이다. 점자는 물론 침구, 안마 등의 과목을 2년간 이수한 뒤 직업안마사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교육과정이다. 서민택(36)씨와 정용설(60)씨는 이달 초 한빛맹학교에 입학했다. 2005년 각막혼탁 판정을 받고 시력을 완전히 상실한 서씨는 “5년 전부터 혼자 책을 보면서 점자를 조금씩 배웠어요. 손끝의 감각을 익혀 보려고 했지만, 말처럼 쉽지 않네요.”라면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서씨의 꿈은 시각장애인을 위해 교회를 세우고 목회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는 “30년 넘게 정안인(正眼人·비시각장애인)으로 살았기 때문에 굳이 점자를 익히지 않아도 생활에 지장은 없어요. 하지만 맹인의 삶을 이해하려면 점자와 안마업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정용설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체력검사를 하는데 100m 달리기 결승지점의 깃발이 보이지 않았단다. 그 후로 시력이 차츰 나빠져 중학교를 중퇴하고 농사를 지었다. 바쁘게 일하다 보니 점자를 배울 필요성을 못 느꼈던 정씨는 나이가 들자 공부 욕심이 생겼다. 그러던 차에 2007년 성북복지관에서 처음 점자를 접하게 됐다. 정씨는 “점자를 배우는 재미가 쏠쏠하긴 한데 나같이 손에 감각 없는 늙은이한테는 어려워. 젊은 애들이 한 달 걸려 읽을 책을 우리는 석 달 동안 읽어야 해.”라고 말했다. 푸념을 늘어놓는 동안에도 그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뭉툭하게 닳아버린 몽당연필 같은 손가락 끝으로 일본어 교과서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묵자도서 워드파일 입력후 점자로 번역 지윤이와 정용설씨가 보는 점자책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질까. 서울 강동구 암사동의 한국점자도서관을 찾아가 궁금증을 풀었다. 1969년 세워진 도서관은 점자도서를 제작하고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매달 30~40권의 책이 제작에 들어간다. 첫 단계는 4층 자료입력실에서 이뤄진다. 입력봉사자들이 묵자도서의 내용을 일일이 키보드로 쳐서 워드파일로 저장한다. 보통 한 명이 한 권을 입력하는 데 1~6개월이 걸린다. 입력된 파일은 점역 소프트웨어를 통해 1초 만에 점자로 번역된다. 점역교정사가 점자 맞춤법에 맞게 교정을 보고 나면 제판 단계로 넘어간다. 1층 인쇄실에서 알루미늄 판에 기계로 점자를 새긴다. 판 사이에 종이를 끼운 뒤 롤러로 밀어 요철을 만든다. 그 종이를 모아서 제본하면 한 권의 점자책이 완성된다. 한 권을 만드는 데 최소 4~6개월이 걸린다. 지난해 8월 출간된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은 올 2월에 완성됐다. 베스트셀러인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지난해 11월에 출간됐지만 현재 자료 입력 중이다. 6~7월은 돼야 점자책으로 볼 수 있다. 시각장애인들은 6개월 늦게 신간을 받아보는 셈이다. ●박경리의 ‘토지’ 무려 99권 차지수 정보서비스 팀장은 “일반 묵자책 1권이 점자책 3~4권으로 불어난다.”고 말했다. 점자는 초성, 중성, 종성을 풀어쓰기 때문에 한 면에 들어가는 글자가 많지 않다. 일반도서 30쪽 분량이 점자도서 150쪽에 육박한다. 조정래 대하소설 ‘한강’은 10권이지만 점자책으로는 총 60권 분량이다. 총 21권인 박경리의 ‘토지’는 무려 99권에 달한다. 따라서 점자책이 부피가 크고 무거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가볍다. 가벼운 백상지를 쓰기 때문에 책 한 권이 120g에 불과하다. 점자는 음악을 표현하는 데도 쓰인다. 한빛맹학교 3층에 있는 관악합주실은 매주 수·금요일이면 아름다운 악기소리로 가득 찬다. 40명의 시각장애인 학생단원으로 구성된 ‘한빛 브라스앙상블’의 연습날이기 때문이다. 김용복 감독의 지휘로 단원들이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OST 음반을 연주했다. 팀파니, 큰북 등으로 구성된 타악기 파트와 트럼펫, 트럼본, 튜바 등의 관악기 파트가 감미롭고 조화로운 연주를 보여 줬다. 멜로디를 담당하는 ‘퍼스트 트럼펫’ 노종훈(18)군의 연주는 단연 돋보였다. 노군은 맨 앞줄에 앉아 구슬땀을 흘리며 악기를 불었다. 트럼펫 소리는 청아했다. 중1 때 음악을 시작한 노군은 트럼펫에 흥미와 소질을 보이면서 올해 한빛맹학교 음악전공과에 진학했다. 고3 때 점자 악보를 접하면서 그의 연주가 확 달라졌다. 이전에는 녹음된 테이프를 듣고 음을 무작정 외워야 했다. 그러나 5선보와 음표 등을 6점으로 표기한 점자악보를 읽을 수 있게 되면서 악보에 적힌 표현기법을 고스란히 살려 연주할 수 있게 됐다. 노군은 “소리에 깊이가 묻어나기 시작했어요. 악보에 드러난 작곡가의 의도까지 표현할 수 있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여전히 악보 읽는 게 서툰 그는 매주 3시간 음악점자 수업을 듣는다. 노군은 “음악교사가 되어 시각장애인은 물론 정안인에게도 음악을 가르치고 싶어요. 그러려면 악보를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죠.”라며 미소를 지었다. 한빛맹학교에서 음악이론 강의를 맡은 이명신(40) 강사는 “악보는 음악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법이자 도구입니다. 글을 모르고 문학에 대해 말할 수 없듯이 악보를 모르면 음악을 안다고 하기 어렵지요. 특히 맹인 음악가에게 점자악보는 자신의 음악을 발견하고 찾아가는 길이 돼줍니다.”라고 말했다. 글ㆍ사진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루이 브라유, 세계 최초 6점체계 창안… 송암 박두성, 한글 점자 ‘훈맹정음’ 반포 루이 브라유(Louis Braille)는 1824년 세계 최초로 6점 체계의 점자를 만들어 보급한 ‘점자의 아버지’다. 그로부터 약 100년 뒤인 1926년 한글 점자를 창안한 송암 박두성은 ‘맹인의 세종대왕’으로 불린다. 루이 브라유는 1809년 프랑스 파리 인근의 시골마을 쿠브레에서 태어났다. 브라유는 세 살 때 마구 제작자였던 아버지의 작업실에서 송곳으로 왼쪽 눈을 찔렸다. 이 사고로 오른쪽 눈도 감염돼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파리왕립맹학교에 들어간 브라유는 12살 때 바르비에 장교가 군사용으로 고안한 12개의 점자를 접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자신의 눈을 멀게 한 아버지의 송곳을 이용해 6개 점자를 창안했다. 6점 체계는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고 한번에 모든 점의 위치를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브라유는 직접 만든 점자가 채택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43세 때 결핵으로 숨을 거뒀다. 그의 이름인 브라유(braille)는 ‘점자’라는 뜻으로 불리고 있다. 한국 맹인들에게 빛을 가져다 준 송암 박두성은 1888년 인천 강화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3년 조선총독부 제생원 맹아부에 들어가 시각장애인 교육에 평생을 바쳤다. 일본어 점자책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던 박두성은 한글 점자의 필요성을 깨닫고 1920년 점자 연구에 착수했다. 1926년 조선어 점자연구회를 조직하고 ‘훈맹정음’을 창안, 반포했다. 박두성은 연구에 몰두한 나머지 실명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가 ‘맹인의 세종대왕’이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다. 한결같이 맹인교육에 헌신했던 박두성은 1963년 세상을 떠났다. 올해로 루이 브라유 탄생 200주년을 맞았다. 우정사업본부는 1월4일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송암이 훈맹정음을 반포한 11월4일은 ‘점자의 날’로 기려지고 있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인감증명 폐지 검토

    정부가 부동산이나 금융거래 시 신원확인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인감증명을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행정안전부는 18일 인감증명제도를 폐지하고 대체수단을 마련하기 위해 학계와 전문가,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이르면 다음달부터 두 달간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감제도는 직인을 통해 부동산 매매나 이전 등 각종 업무에서 본인이나 대리인 여부를 확인하는 제도로, 지난 1914년 조선총독부가 우리나라의 경제활동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강제 도입했다. 때문에 일제 잔재 청산 차원에서 인감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행안부는 지난 2006년에도 인감제도 개선을 위한 TF팀을 운영했지만,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해 인감증명이 필요한 민원을 800여 건 줄이는 것으로 제도를 개선했다. 현재 한 해 동안 발급되는 인감증명서는 60만여통에 달하며, 이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은 5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행안부 관계자는 “아직 공식 논의 단계는 아니며, TF팀의 활동기간이 끝나야 인감 존폐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평생 조선백자연구 日人 영화로

    평생 조선백자연구 日人 영화로

    │도쿄 박홍기특파원│일제강점기에 조선의 문화 연구에 선구적인 업적을 남긴 아사카와 다쿠미(1891∼1931)의 발자취를 다룬 한·일 합작영화 ‘백자같은 사람(白磁の人)’이 14일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갔다. 영화는 1994년 에미야 다카유키가 쓴 동명 전기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강점 100년이 되는 내년 개봉될 예정이다. 아사카와는 ‘조선옷을 입고 조선말을 쓰고 조선의 흙이 된 일본인’으로 불리고 있다. 야마나시현 출신으로 24세 때인 1914년 조선총독부 산림과 임업기술사로 한국에 건너온 뒤 조선 문화에 매료됐다. 한옥에 살며 조선 전통 도자기의 아름다움에 심취해 최초의 조선백자 연구서인 ‘조선도자명고’(朝鮮陶磁名考)를 저술했다. ‘조선 도자의 귀신’으로 불릴 정도였다. ‘조선의 종이연구’, ‘조선의 멍석’ 등에 대한 민예품 연구서도 냈다. 1931년 5월 41세에 급성폐렴으로 숨을 거둘 때까지 17년 동안 한국에서 살았다. 조선의 흙이 되고자 했던 유언대로 현재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 메가폰은 영화 ‘하치이야기’로 이름난 고야마 세이지로(68) 감독이 잡았다. hkpark@seoul.co.kr
  • “농림부 장관이 왜 넥타이 매나”

    “농림부 장관이 왜 넥타이 매나”

    │오클랜드(뉴질랜드) 이종락특파원│뉴질랜드를 국빈 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이 3일 농업 개혁을 화두로 내걸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뉴질랜드에 도착하자마자 오클랜드 식물식품연구소로 직행했다. 이번 일정은 지난 1984년 농민단체 주도로 성공한 농업개혁에 힘입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뉴질랜드 농업을 벤치마킹하기 위한 취지에서 마련됐다. 이 대통령은 연구원에서 열린 현지 민·관 농업관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뉴질랜드 농업개혁의 성과를 높게 평가한 뒤 여전히 정부 지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우리 농업의 변화 필요성을 여러차례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한국 농촌도 많이 발전했는데 아직 투자에 비하면 농산물 경쟁력이 썩 높지 않다.”면서 “농업개혁 전의 뉴질랜드와 같이 한국 농촌은 여전히 (정부) 지원을 받아서 하는데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뉴질랜드에 도착하기 전 대통령 특별기 내에서 수행원들과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도 “고령화 얘기를 자꾸 하지만 요즘 다 기계로 농사를 짓는데 (농업을) 선진화·합리화하면 된다. 나이 60은 청년인데 고령화 이야기를 하지 말고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농업개혁을 위한 강력한 의지를 거듭 주문한 셈이다. 이 대통령은 이번 순방에 수행한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에게 “왜 농림부 장관이 외교통상부 장관과 같이 넥타이 매고 양복 입고 다니느냐.”고 농담성 질책도 했다. 현 정부들어 농림부장관이 해외 순방을 수행한 것은 처음이다. 철저한 농업 개혁을 위한 사전 조치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이 대통령은 시내 호텔에서 열린 교포 간담회에서 “우리 국민은 위환위기 때 금모으기를 하는 등 위기를 만날 때 힘을 모으는 특수한 DNA가 있다.”며 “그 정신이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이번 위기에는) 노동자, 노동조합도 임금을 줄여서라도 잡 셰어링(일자리 나누기)을 하자고 한다.”며 “기업, 노동자, 정부, 국민이 합심해 일자리를 지키자는 나라는 세계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저녁 뉴질랜드 총독 관저에서 열린 존 키 총리 초청 만찬에 앞서 뉴질랜드의 한국계 골프 선수인 대니 리(19·본명 이진명)를 만나 격려했다. 이 대통령은 대니 리에게 “차세대 타이거 우즈가 꼭 돼라. 곧 더 좋은 뉴스를 만들어 달라.”고 격려했다. 대니 리는 지난해 미국 아마추어 골프대회에서 우승한 데 이어 지난 2월 유러피언 투어 조니워커 클래식에서 역대 최연소로 우승하면서 뉴질랜드의 ‘골프신동’,‘국민영웅’으로 급부상한 선수다. 이에 앞서 이 대통령은 오클랜드 전쟁기념관 내 무명용사탑을 찾아 헌화, 참배한 뒤 아난드 사티아난드 뉴질랜드 총독의 관저에서 열린 현지 전통방식의 국빈 공식 환영식에 참석했다. jrlee@seoul.co.kr
  • 네이버 3·1절 다음날 이토 히로부미를 ‘세계의 인물’로

    인터넷 포털 네이버가 3·1절 다음날 ‘오늘의 세계 인물’ 코너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선정했다가 누리꾼들의 성토가 쏟아지자 서둘러 내렸다.  네이버는 홈페이지 메인 하단에 있는 ‘오늘의 세계 인물’ 코너에 매일 새로운 인물을 선정해 일생과 명저를 소개해오고 있는데 지난 1일 3·1절에는 아무런 인물도 선정하지 않고 2일 우리 민족에게 침략의 원흉으로 손꼽히는 이토 전 조선총독부 초대 통감을 선정한 것.  네이버는 누리꾼들의 항의가 쏟아지자 “원세훈 시인이 원래 안중근 의사를 소개하려 했지만 마침 이날이 1906년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조선총독부 통감에 부임한 날이란 점을 알고 갑자기 바꿨다.”면서 침략 원흉을 미화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글에는 특별히 일본 메이지정부의 최고 지도자 중 한 명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이토 전 통감을 근대화의 영웅으로 미화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누리꾼들은 3·1절 다음날 이런 내용이 올라온 것은 문제라고 개탄했다.누리꾼 ID ‘heartles091*’는 “아무리 세계 인물을 소개하는 코너라도 그렇지 3.1절 바로 다음 날 이런 인물이 나오다니 너무 했다.”고 안타까워 했고 ‘btaij*’는 “오늘 같은 날은 독립 투사를 소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edge13*’는 “3·1절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우리나라 최대의 포털 사이트에서 왜 이런 인물을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적었다.  물론 “세계의 ‘훌륭한’ 인물‘이 아니라 단지 ‘세계의 인물‘에 지정된 것 뿐”이라며 너무 흥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sksn200*‘는 “안중근 의사는 우리나라에서는 위인이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테러리스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며 “한마디로 입장 차이다.한명의 인물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시선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다른 기사 보러가기] 군경, 6·25때 ‘형무소 집단학살’ 576명 확인돼 이제는 ‘명품 다큐’ 아닌 ‘매스티지 다큐’ WBC 개막 앞두고 생중계하라 누리꾼 청원 올라
  • [28일 TV 하이라이트]

    ●그것이 알고싶다(SBS 오후 11시10분) 지금 벌이고 있는 사업은 ‘다단계가 아니라 재테크다.’ 라고 강조했던 조희팔. 조희팔 사기 관련 다단계 법인은 알려진 것만 전국에 80여개. 피해액은 4조원가량으로 추산된다. 밀항 때에도 양쪽 가방에 현금을 가득 싣고 다니며 재력을 과시했다는 조희팔, 그의 실체는 무엇인가? ●역사추적(KBS1 오후 8시) 1919년 9월2일 오후 5시, 서울 남대문 역. 조선 제3대 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齋藤實)가 열차에서 내려 마차에 올라타자마자 누군가가 던진 폭탄이 터진다. 폭탄은 사이토 마코토 신임 총독의 목숨을 겨냥했다. 검거된 폭탄 투척자는 놀랍게도 65세의 노인. 그는 누구이며 왜 폭탄을 던진 것일까? ●내사랑 금지옥엽(KBS2 오후 7시55분) 세라는 단 둘이 만나자는 신호의 말에 들뜨고, 평소 꼭 해보고 싶던 데이트였다며 함께 케이블카를 타고 행복해한다. 그런 세라의 모습을 지켜보며 가슴 아파하던 신호는 고민 끝에 자신에게 아들이 있다며 파혼하자고 말한다. 보리와 동호는 즐거운 첫 외출을 하고 동호는 보리에게 정식으로 청혼을 한다. ●천추태후(KBS2 오후 10시15분) 숭덕궁주 황보수는 김치양에게 김원숭 상단의 조선을 잡아들이라 명한다. 황보수와 강조는 잡아들인 조선에게서 김원숭이 왕송을 해치려한 주범임을 자백받으려 하지만, 조선은 끝내 입을 열지 않는다. 이에 강감찬은 황보수에게 차라리 조선을 김원숭에게 보내고, 왕송의 안전을 보장받으라 한다. ●찾아라! 맛있는 TV(MBC 오전 9시) 대한민국 대표 줌마테이너! 이경실과 김지선. 그녀들의 유쾌 통쾌 거침없는 수다가 ‘맛있는 초대! 스타 맛 집으로’ 에서 펼쳐진다. 최고의 스타를 위한 특별 맞춤 밥상 ‘황금밥상’. 맛은 기본, 스트레스까지 한 방에 날려 줄 우럭의 새로운 변신. 송대관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우럭 음식은 과연 무엇일까? ●효도우미 0700(EBS 오후 5시10분) 어려서부터 유난히 몸이 약했던 김정윤 할머니. 웬일인지 흐릿했던 시야와 빈혈증, 그리고 120㎝에서 멈춰버린 키. 혹여나 가족에게 폐가 되지는 않을까, 짐이 되지는 않을까 그렇게 할머님은 자신의 가정을 꾸리는 소박한 꿈조차 포기한 채, 부모님이 손수 지은 초가집 안에 자신을 숨기고 평생을 살아가고 있다. ●토마토(YTN 오전 8시25분) 트렌드로 자리잡은 동안. 사람들은 각진 얼굴, 퀭한 눈, 늘어나는 주름보다는 백옥 같고 생기 있는 피부로 좀 더 어려 보이기를 원한다. 무엇보다 자연스럽게 웃는 얼굴이 동안의 출발이긴 하지만, 최근에는 간편한 시술로도 동안 미인이 될 수 있다. 보다 건강하고 젊어 보이는 동안으로 변신하는 비법을 공개한다.
  • 옛 서대문 형무소 최초 건축도면 발견

    옛 서대문 형무소 최초 건축도면 발견

    서대문형무소가 최초 건축도면에 따라 원형대로 복원된다. 이는 지난달 서대문형무소의 건축도면이 발견된데 따른 것이다. 그동안 진행됐던 서대문형무소 보수 공사가 복원으로 방향을 바꿨다. 지난달 15일 발견된 건축도면은 서대문형무소의 1936년도 원형 도면이다. 격벽장(수감자 체육시설), 구치감(미결수 수용소) 등의 모든 시설현황이 나와 있다. 형무소로서의 완전한 형태를 갖춘 도면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대문·서울시·문화재청 747억원 들여 복원 추진 서대문구는 24일 “서울시, 문화재청과 함께 이 도면을 토대로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도면은 구가 형무소역사관 종합발전계획을 수립, 추진하던 중 국가기록원에서 발견됐다. 구는 서대문형무소 보수사업을 위해 지난해 10월 자연환경연구소에 학술용역을 맡겼다. 연구소가 국가기록물을 검토하던 중 이 도면을 찾은 것이다. 문화재청이 523억원, 서울시가 224억원을 투입하고 서대문구가 총괄 공사를 맡아 원형 그대로 되살리기로 했다. 사적 324호인 서대문형무소는 근현대사 격동기의 수난과 민족의 한이 서려 있는 역사의 현장이자 독립운동에 대한 일제의 대표적 탄압기관이다. 서대문구 의주로 247(현저동 101번지)에 있다. 지난 한해 57만여명이 이곳을 찾아 독립투사의 발자취를 더듬었다. 살아 있는 역사교육의 현장이다. 구는 이달부터 설계에 들어가 2020년까지 복원사업을 마칠 예정이다. 형무소역사관 원형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대한제국 관보(국가의 공고 기관지)와 조선 총독부 관보, 국가기록원 총독부 기록물 등 각종 사료와 도면 문헌조사에 역점을 두었다. 또 광복회와 독립운동 관련단체,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고증절차를 진행하는 계획을 세웠다. ●3·1절 맞이 체험행사도 마련 복원사업은 크게 3단계로 나뉘어 추진된다. 1단계 사업은 2011년까지 시행된다. 구는 총 144억원을 들여 청사 외벽 백색타일을 없애고, 벽돌을 이용해 원형대로 재구성한다. 현재 역사관에 소장된 무쇠솥 등을 이용해 취사장을 복원한다. 수용자들의 운동시설인 격벽장을 다시 만들어 체험시설로 활용한다. 또 독립운동가 유족과 유품 기증자 증언을 토대로 영상물도 제작한다. 2015년까지 진행될 2단계 사업에서는 주차장을 지하화하고 지상에 공장터, 담장, 망루 등을 다시 설치한다. 2020년 마무리될 3단계 사업에서는 전시시설뿐 아니라 교육, 학술세미나 공간을 확대한다. 구는 이와 함께 제90주년 3·1절을 맞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다음달 1일 오후 1시30분, 오후 3시30분에 독립만세 재현 체험행사가 준비돼 있다. 예약하면 독립운동가 복장으로 독립선언서 낭독에 참여할 수도 있다. 이밖에 OX 문제 풀기, 음악회, 얼굴에 태극기 그려넣기, 태극기 그리기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신상영 서대문구 문화체육과 팀장은 “형무소 복원사업이 끝나면 서대문구가 역사·문화 관광 명소로 한층 발돋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일제가 궁궐 이렇게 훼손” 설계도면 첫 공개

    “일제가 궁궐 이렇게 훼손” 설계도면 첫 공개

    일제 강점기에 진행된 신축·개조 사업을 통해 창덕궁, 덕수궁, 경복궁 등 우리 전통 양식의 궁궐이 어떻게 훼손되고 변형됐는지를 보여주는 설계도면이 무더기로 공개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은 1906년부터 1936년까지 작성된 궁궐 관련 도면 122종과 고종 황제 홍릉 조성 등 의례 관련 19종, 가옥 33종 등 총 174종의 원본 도면을 실은 ‘근대건축도면집’을 26일 펴냈다. 이 도면들은 일제 통감부와 총독부의 지휘 아래 있던 궁내부와 이왕직에서 작성한 것으로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자료다. 도면에는 창덕궁 인정전 주변의 행각(行閣)을 복랑(複廊)에서 전각 형태로 고치고, 주위에 복도를 신설해 알현소로 조성하는 계획이 담겨 있다. 또 순종황 제의 침전이었던 대조전 일원이 1917년 화재로 소실되자 그 자리에 서양식 침전인 내전양관을 지으려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창경궁 전체 평면도에는 창경궁을 동물원, 식물원, 박물원 등 세 영역으로 개조하는 안이 포함됐다. 한중연 윤진영 연구원은 “일제가 궁궐 신축·개조사업을 실시하면서 궁궐의 기능을 완전히 무시한 채 편의에 따라 다른 용도로 변경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고종 황제의 홍릉 조성과정을 그린 도면과 순종 황제의 국장 자료 등이 포함된 의례 관련 도면은 일제 강점기에 진행된 황제릉 조성사업의 실체를 엿보게 한다. 또 가옥 관련 도면은 17세기 중반에서 19세기 말까지 한성부의 주거모습을 명확히 파악할 수있는 자료로 주목받고 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일제 강점기에 진행된 황제릉 조성사업에 관한 사료인 순종 유릉의 정면도.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 입시전쟁 해법은 명문대 늘리기?

    해마다 200여명의 아이들이 성적 때문에 자살하는 나라, 대학입시일이면 출근 시간이 늦어지고 경찰이 출동하는 등 전국이 살얼음판이 되는 나라, 진보와 보수 구분 없이 ‘기러기 아빠’ 신드롬에 시달리는 나라…. 촌철살인적 비판으로 한국사회의 가려운 곳을 긁어온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이번엔 입시전쟁에 메스를 들이댔다. ‘입시전쟁 잔혹사’(인물과 사상사 펴냄)는 한국 특유의 연고주의, 입신출세 문화와 얽혀 기형적으로 발달해온 학벌주의 사회의 연원을 역사적·구조적으로 파고든다. 저자에 따르면 입시전쟁 양상은 이미 조선시대 초기부터 성행했다. 과거시험의 출세도구화, 족집게 과외와 치맛바람, 시험 관련 부정부패, 과거 합격자의 서울 편중 현상 등 현대와 꼭 닮은 행태들이 당시에도 극심했다. 세속적 성공으로서의 출세라는 개념이 사용된 건 1920년대 중반부터. 책에 인용된 최봉영의 설명을 들으면 알 수 있다. 그는 “조선시대에 추구된 입신양명은 국가라는 무대가 전제돼야 하기 때문에 국가를 잃은 식민지에서는 불가능했다. 따라서 식민지 백성이 추구하는 것은 양명이 아니라 출세였다.”고 말한다. 1924년 조선총독부가 설립한 경성제국대학은 권력기관 진출의 유일한 통로가 됨으로써 조선인들 사이에 출세 경쟁을 유발시켰다. 1950년대 들면서 문제는 더 커졌다. 높아진 교육열로 출세는 학력만으로는 충분치 않게 됐고, 1960~1970년대를 거치면서 ‘학력은 기본, 학벌이 좋아야 한다.’는 게 상식이 됐다. 경성제대의 부지와 건물, 재학생을 그대로 흡수한 채 1946년 출발한 서울대는 정체성에 대한 치열한 반성이 없었기에 출세지향주의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더불어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한국형 ‘1극 소용돌이 체제’도 날이 갈수록 강화됐다. 저자는 학벌의 독과점 반대, 서열의 유동화 지지, 경쟁의 합리화를 지지한다. 그는 “지금 내 주장을 실현하는 데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장애는 ‘서울대 폐교’라거나 그에 준하는 근본주의적 대안 이외엔 그 어떤 타협도 하지 않으려는 ‘진보적 근본주의자들’”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대안으로 현재의 명문대를 미국의 아이비리그만큼 확대할 것을 제시한다. 현재의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가리키는 조어)는 소수정예화하고 사회 각 분야 엘리트의 출신대학 구성이 다양화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SKY를 향한 병목현상이 완화될 뿐만 아니라, “SKY의 기존 인해전술이 사라진 공백을 놓고 다른 대학들이 치열한 경쟁을 함으로써 범국민적 차원의 ‘패자부활전’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1만 3000원.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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