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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 병사는 요가를 좋아해?

    요가가 전투력 향상과 자살 방지의 묘약? 파키스탄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카슈미르주에 주둔한 60만 인도군은 요가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게 됐다.최근 군 당국이 요가 수행을 의무화했기 때문이다.이 지역은 인도와 파키스탄 모두 영유권을 주장,2차례 전쟁을 치렀고,1989년부터 시작된 무장투쟁으로 4만 5000여명이 희생된 ‘서남아시아의 화약고’. 요가 의무화는 이렇듯 긴장할 수밖에 없는 지역에서 전투에 임하는 자국 병사들의 자살, 총기사고, 폭행사고, 정신질환 등이 가파르게 늘어난 데 따른 긴급 처방이라고 8일 일간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 등이 전했다. 딜리프 싱 카슈미르 스리나가르 주둔군 대변인은 “격화된 군사 작전으로 병사들이 정신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면서 “(군사 작전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요가를 도입했다.”고 밝혔다. 분리주의 무장세력과 격전을 벌이고 있는 스리나가르 하리니와스 제1대대 부대장 산자이 싱도 “과도한 긴장이 사고와 문제들을 불러일으키는데 요가는 이를 해소하고 자신을 통제하는 데 탁월한 효험이 있다.”고 소개했다. 인도 군인들은 다수가 카슈미르 분리를 지지하는 무슬림들에 둘러싸여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양순하게만 보이는 주민들이 언제, 어느 때 게릴라로 돌변해 자신들에게 총구를 겨눌지 몰라서다. 또 분리주의 무장세력, 파키스탄군과도 대치해야 한다.신문은 미군 특전사 요원의 말을 인용,“대테러전에 나선 군대가 전투력 향상을 위해 요가 수련을 받는 일은 좀처럼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효과를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군 당국은 요가 수련을 받는 병사들이 정신적 안정을 얻는 것 말고도 체중을 줄여 건강에 도움을 얻고 있어 큰 호응이 있다고 밝혔다.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美가정집 ‘좀비파티’ 총기난사로 7명사망

    영화 ‘스크림’의 마지막 장면처럼 광란의 파티가 무차별 살육으로 막을 내렸다. 미국의 20대 청년이 총기를 난사해 10명의 사상자를 낸 뒤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일어났다. 25일(현지시간) 미국 시애틀의 한 가정집에서 20여명의 젊은이가 밤새 파티를 벌이던 중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 가해자 포함, 7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경찰과 목격자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쯤 현장에서 6발의 총성이 울린 뒤 청년 1명이 총상을 입고 집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발견됐다. 이어 엽총을 든 청년이 출동한 경찰과 대치하다 자신의 목구멍에 총구를 집어넣고 방아쇠를 당겨 자살했다. 주민들은 총격 직후 얼굴에 페인트를 칠하고 머리를 물들인 젊은이들이 집 밖으로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다고 말했다. 이들은 검정색 옷에 시체처럼 분장하고 전자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이른바 ‘좀비 레이브’ 파티를 즐긴 것으로 알려졌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DY “총구 한나라로” GT “책임회피” 일축

    열린우리당내 중도성향의 의원 39명이 20일 ‘소통과 화합의 광장’ 모임을 발족시켰다. 김근태(GT)·정동영(DY) 두 라이벌 계파 사이에서 균형추 노릇을 하겠다는 얘기다. 모임은 임채정·유인태·원혜영 의원 등이 주도했다. 의사소통 구조가 취약했다는 반성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더구나 2·18 전당대회 초반부터 GT·DY가 거칠게 맞붙자, 내년 대선까지는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위기 의식도 작용했다. 유 의원이 “내년 (대권후보 경선에서)붙어야 할 사람들이 지금부터 붙어서는 당 꼬락서니가 어떻게 되겠느냐.”고 비판한 것이 그런 맥락이다. 원혜영 정책위의장도 20일 “이번 전당대회는 (대권후보)경선이 아니고, 본선은 더더욱 아니다.”면서 “5·31지자체 선거 이후에 또 지도부가 책임지라는 얘기가 나오면 결국 당의 소중한 자산인 두 사람을 모두 잃게 되는 것 아니냐.”고 완충지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광장의 출범을 의식한 탓인지 DY는 “총구를 한나라당에 돌리자.”며 ‘휴전’을 제의한 뒤 티격태격하던 모습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반면 GT는 한나라당 박근혜를 공동 타깃으로 삼자는 정 상임고문의 제안에 대해 “책임회피”라며 일축했다. 그는 이날 한 인터넷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내 좀 뻔뻔해졌다.”면서 “당 지지율이 반토막된 데 대해 당권파들이 책임져야 한다.”고 DY를 또다시 공격했다. 이어 “2002년 지방선거 참패 뒤 탈당 움직임도 있었다. 그와 유사한 참패가 오면 버금가는 상황이 온다고 걱정하는 당원이 많다.”고 지방선거 후 ‘탈당 사태’를 경고했다. DY는 “김근태 없는 우리당은 없다.”고 화해의 손길을 뻗쳤지만 GT는 “한가하다.”고 일갈했다.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되살아난 ‘유전무죄 무전유죄’

    거침없는 영화적 상상력이 통 크게 빛을 내는 작품이 19일 개봉하는 ‘홀리데이’(제작 현진씨네마, 감독 양윤호)이다. 영화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남겼던 탈주범 지강헌 사건(1988년)을 모티브로 한 액션 누아르.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로 들떠 있던 무렵, 온나라를 경악케 했던 희대의 인질극이 호기롭게 스크린으로 옮겨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지강헌을 연기한 이성재의 배우적 성가에서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하겠다. 불필요한 근육은 단 1인치도 남김없이 몸을 ‘깎은’ 그의 폭발적 에너지가 강렬하게 기억에 남을 누아르가 됐다. 강제철거 직전인 달동네 판잣집의 지강혁(이성재)을 첫 화면에 노출시킨 영화의 정조는 드러내놓고 비감하다. 지강헌의 가슴 아픈 복역 동기를 자세히 설명해주며 영화는 비정(非情) 누아르의 전형을 다듬어간다. 판자촌 강제철거 대치전에서 억울하게 동생을 잃은 지강혁이 징역 7년, 보호감호 10년형을 받고 들어간 교도소. 비열한 경찰 김안석(최민수)이 교도소 부소장으로까지 부임해 숨통을 조여오자 지강혁과 감방동료 일행은 이송 도중 무장탈주를 감행한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만날 수 있던 탈옥 소재가 정공법으로 국내 스크린에 구현됐다는 점만으로도 이 영화의 성취는 적잖다. 김안석의 총구에 동생을 잃은 지강혁의 복수심이 드라마를 끌어가는 근원적 에너지. 거기에 형량보다도 긴 보호감호제도 등 왜곡된 사회장치들을 고발하며 관객에게 동의를 호소한다. 몇십만원을 훔쳤다가 억울하게 10년 넘게 복역하는 죄수들의 사연을 일일이 나열하는 것도 그런 계산에서이다.560억원을 횡령하고도 7년형을 받는 대통령의 동생 이야기가 나올 즈음 지강혁 일행의 박탈감은 극에 달하고 자연스럽게 관객도 그들과 공분을 나누게 된다. 실화를 기본소재로 삼았으되 캐릭터간의 충돌에서 묘미를 찾는 액션물의 기본공식도 챙겼다. 지강혁과 그를 끈질기게 노리는 냉혈경찰 김안석의 대립각 덕분에 영화는 긴장과 탄력을 유지해간다. 하이라이트라 할 만한 지강혁 일행의 인질 드라마가 예상보다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사람을 해치지 않았던 지강혁 인질극의 ‘미덕’을 부각시킨 영화는 그래서 자칫 신파로 치우치는 불안감을 주기도 한다. 사회적 패자들의 상처를 에둘러 위로하며 비리에 찬 제도권력에 정서적 응징을 가하는, 고전적인 감동코드를 벗어나진 못했다. 한국형 누아르의 소재 영역을 과감히 확장시켰다는 점 등 전반적으로 박수를 받을 대목이 많은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압축의 묘미가 아쉽다. 보여주고 싶은 장면,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를 좀더 응축시켰다면 한결 더 탄력있는 휴먼액션이 될 수 있었을 법하다. 금니 반짝이는 비열한을 연기한 최민수의 투혼이 인상적이긴 하다. 그런데 ‘오버’의 이물감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스크린의 정서는 암울한 80년대를 흐르는데, 그 혼자 방금 할리우드에서 뛰쳐나온 것처럼 겉돈다.18세 이상 관람가.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이젠 축구팀도 채울수 없어요”

    매일 들려오는 이라크의 자살폭탄 공격 소식에도 우리는 그 공격 때문에 삶이 짓밟힌 이들의 얼굴을 제대로 들여다본 적도, 목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다. 뉴욕타임스에 사진을 기고하는 작가 애덤 내덜은 올 여름 몇주에 걸쳐 병원과 시체안치소 등을 뒤져 자폭테러로 가족과 친구를 잃은 이나 다친 이들을 만나 생생한 증언을 들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27일 한 면에 내덜이 찍은 사진 7장과 함께 이들의 안타까운 증언을 실었다. 내덜이 바그다드의 한 병원에서 만난 하더 레다(11)는 길거리에서 친구들과 축구를 하던 중 자폭공격으로 석유트럭이 폭파되는 바람에 얼굴에 화상을 입었다. 레다는 “동생들이 절대 밖에 나가 놀지 않도록 엄마가 늘 신경쓰라고 말씀드렸어요.”라고 말했다. 쌍둥이 동생을 모두 테러 탓에 잃은 무하메드 사타르(11)는 “예전엔 11명이 축구를 했는데 이젠 3대3 게임을 하고 있다.”며 “할아버지랑 저는 죽은 아이들이 눈에 띄지 않도록 집의 커튼을 치곤 한다.”고 했다. 병원 응급실에서 일하는 아메드 무타파르 박사는 “테러에 당한 경찰관이 이곳에서 죽자 그의 동료들이 의사와 간호사를 두들겨패고 응급실을 때려부쉈다. 몇달 후 그런 일은 일상이 돼버렸다.”고 진저리를 쳤다. 아메드 모아이다는 요르단 암만의 친척을 만나기 위해 바그다드를 떠났다가 길거리에서 미군의 총기 사격을 받아 뒷좌석의 아내와 딸이 죽는 장면을 지켜보아야 했다. 아들 함자만이 그와 함께 살아남았다. 그는 “왜 미군들이 우리에게 총구를 겨눴는지 지금도 모르겠다.”고 절규했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공공기관 총구매액 50% 내년부터 中企제품 사야

    내년부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정부투자기관 등 공공기관은 총구매액 중 50% 이상은 중소기업 제품을 사야 한다. 이중 중소기업청장이 지정·고시하는 제품이나 용역은 중소기업만 경쟁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 정부는 16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주재로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열고 공공조달시장에서 중소기업의 수주기회를 늘리기 위해 중소기업간 경쟁제도를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국무회의 상정을 앞둔 ‘중소기업진흥 및 제품구매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작업을 이른 시일내에 마무리할 방침이다.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눈에 띄네 이 얼굴] 원숙한 신인배우?

    [눈에 띄네 이 얼굴] 원숙한 신인배우?

    ‘웰컴 투 동막골’(감독 박광현, 제작 필름있수다)에 나오는 여러 배우들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배우가 임하룡(53)이다. 코미디언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그는 영화속에서는 철저하게 ‘신인배우 임하룡’에 충실하며 관객들에게 시종일관 웃음과 감동을 전달한다. 영화속에서 늙은 인민군 병사 ‘장영희’로 나오는 그는 처음 만난 동막골의 광녀(狂女) 강혜정을 향해 총구를 들이대는 동료에게 “동지, 머리에 꽃 꽂았습네다.”라며 슬며시 말리는 코믹 캐릭터다. 영화 하이라이트 부분 동막골 주민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감동 연기는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오랜 잔상으로 남는다. 이미 동명의 연극에서 ‘장영희’역을 경험한 그이지만, 착해 보이는 평안도 사투리를 완벽하게 구사하기 위해 평안도 출신 선생님을 통해 사투리 훈련을 하는 등 노력을 했다. 지천명을 넘긴 나이에 탄탄대로의 코미디언 인생을 버리고 가시밭길의 영화 인생을 택한 임하룡. 그가 영원한 ‘젊은 오빠’인 이유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사설] 軍, 잇단 알몸사진 공개에 제초제까지

    군에서 또 엽기적인 사건이 잇따라 터졌다. 알몸으로 기합받는 사병들의 사진이 인터넷 등에 90여장이나 공개된 데 이어, 해군 어느 부대에서는 한 사병이 제초제를 탄 보리차를 모르고 마셔 하마터면 큰 일 날뻔했다. GP 총기난사 사건으로 군이 발칵 뒤집히고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는 물론, 온 국민이 우려의 시선으로 군을 바라보고 있던 차에 또 이런 일이 벌어져 어처구니가 없다. 알몸기합이 군 곳곳에서 자행되는 것이라면 정말 큰 일이다. 군은 평시에도 지휘관을 중심으로 전우애로 똘똘 뭉쳐 전투력을 배가시킴으로써 유사시에 대비해야 할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다. 그런데도 이렇게 병사들의 생명과 인권을 무참하게 위협·유린하는 분위기에서 어떻게 국가와 국민을 위한 강한 군대가 육성될 것인지 의문스럽다. 더구나 전우들이 마실 식수에 불특정 다수를 겨냥해 누군가가 제초제를 탔다면 살상을 목적으로 한 이적행위가 아니고 뭐라고 설명할 길이 없지 않은가. 문제를 일으킨 군 장병들에게 묻는다. 과연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가. 수류탄과 총구는 아군을 향하고 전우를 인격적으로 마구 짓밟으며, 아무나 마시고 죽으라고 제초제를 타는 군인들이 과연 대한민국 국민과 국가를 위한 군대가 맞는가. 물론 이같은 사태가 빈발하는 데는 비뚤어진 병영문화와 병사들간 반목이 주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비이성적이고 참을성이 부족한 병사 개개인들과 병영을 화합으로 이끌지 못한 지휘관들의 책임 또한 가볍지 않다 할 것이다. 신체학대와 다를 바 없는 알몸 인권침해를 젊은 날 군생활의 한낱 장난거리로 여긴다면 군에 대한 애정과 신뢰는 접어야 할 것이다. 정부와 여당이 이같은 행위에 대해 최고 10년까지 징역에 처하도록 군형법·행형법을 개정키로 했다고 하나, 장병 스스로 병영문화 개선 노력이 먼저다. 군은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젊은이들에게 자부심을 갖도록 뼈를 깎는 아픔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
  • 한국전부상 ‘휠체어 55년’ 윤재철씨

    한국전부상 ‘휠체어 55년’ 윤재철씨

    “전쟁에서 총칼을 겨누었던 참전군인들이 먼저 화해해야 남북 대립을 풀 수 있습니다.” 6·15공동선언 5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10일 남측 대표단으로 확정된 윤재철(72·서울 영등포구 대방동) 상이군경회 고문의 소회 속에는 회한과 기대가 동시에 묻어났다. 윤 고문은 1950년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그해 11월 연천지구 전투에서 ‘양 대퇴부 절단’이라는 중상을 입었다.55년 동안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오면서 다시는 동족 상잔의 비극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고 한다. 1993년부터 8년 동안 상이군경회 회장을 맡는 동안 2000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에 회원단체로 가입하기까지 주변의 많은 반대에 부딪혀야 했다. 대표적인 보수단체에서 민족 공조를 주장하는 것에 의아해하는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총구를 겨누었던 북측과 화해하는 일에 동참할 이유가 있느냐며 반대하던 회원들을 달래는 일이 급선무였다. 윤 고문은 “우리가 먼저 적대적인 감정을 풀지 않으면 영원히 분단국가로 살아야 한다.”라고 전국을 돌며 설득했다.2002년과 2003년 2번의 방북을 결정하면서도 전쟁 희생자가 북측과 교류해 손해날 짓을 왜 하느냐는 거부반응을 이겨내야 했다고 한다. 윤 고문은 앞서 1997년 세계제대군인연맹총회(WVF)를 서울에 유치할 당시에도 북측과 교감있는 스웨덴에 도움을 요청해 북측에 참관자격을 주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고 한다. 이 모든 노력은 전쟁이 싫었기 때문이다. 남북간 교류협력이 탄탄해지는 것을 보며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거역할 수 없다는 것도 윤 고문의 확신에 힘을 보탰다. 이념과 사상 대립은 또다시 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윤 고문의 생각이다. 이번 방북길에서는 북측의 전쟁 희생자들을 찾아 실상을 파악해볼 계획이다. 윤 고문은 “진보와 보수로 나눠 갈등만 키우지 말고 숙명적으로 우리 민족은 같이 살 수밖에 없다는 통큰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미스터&미세스 스미스 17일 개봉

    “으이구∼저 웬수!” “귀신은 뭐 먹고사나.”하며 하루에도 몇번씩 죽일 듯 으르렁거리다가도, 한 이불 속으로 들어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 부부 사이. 영화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Mr. & Mrs. Smith·17일 개봉)는 이같이 ‘따로 국밥’이지만,‘칼로 물베기’인 부부 관계의 진리를 욕설과 비방 대신 총과 폭탄을 동원해 화끈하게 깨우쳐주는 영화다. 일단 할리우드 최고 섹시 남녀 배우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가 극중 부부로 뭉쳤다는 것만으로 영화는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영화 ‘본 아이덴티티’를 통해 연출력을 인정받은 덕 리먼 감독이 든든하게 뒤를 받치고 있으니 올 여름 최고의 화제작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다. 첫 장면부터 시선을 끈다. 영화는 호쾌한 액션과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하고 있지만, 카메라는 나란히 소파에 앉아 부부 상담을 받는 존 스미스(브래드 피트)와 제인 스미스(안젤리나 졸리) 부부의 퀭한 얼굴부터 쫓는다.“섹스는 얼마나 자주 해요?”(상담의사) “1∼10점으로 말해요?”(존) “1년에 한번이면 1점인가요?전혀 안 하면 0점이에요?”(제인) “주말도 포함되나요?”(존) 이들은 결혼한 지 5년인지 6년인지도 분간하기 힘들 만큼 권태기에 빠진 부부. 겉으로는 건축업자와 컴퓨터 전문가로 위장하고 있지만, 실상은 각각 60명과 312명을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한 서로 다른 조직의 라이벌 킬러들이다. 서로의 신분을 모른 채 첫눈에 반해 결혼한 이들은 출근해서는 각자의 타깃을 쫓는 베테랑 킬러로, 임무를 마치고 퇴근해서는 자상한 남편과 사랑스러운 아내로 아슬아슬한 이중생활을 해오던 터다. 하지만 부부는 역시 부부. 타깃을 향한 총구는 여전히 식을 줄 모르지만, 서로를 향한 애정은 이미 식을 대로 식어 버렸다. 이런 그들에게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 우연히 동일한 타깃을 제거하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같은 현장에서 맞닥뜨린 것. 특급 킬러들끼리 맞붙었으니 양쪽 다 제대로 임무를 완수할 리는 만무하다. 일을 망친 둘은 결국 서로의 정체를 알아차리게 된다. 더 기막힌 것은 업친 데 덥친 격으로 각각의 조직으로부터 48시간 내에 서로를 제거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 스미스 부부는 두 조직의 ‘공공의 적’이 돼 서로에게 무자비한 총질과 폭탄 투척을 해댄다. 마치 영화 ‘터미네이터 2’에서 두 터미네이터가 한데 맞붙어 싸우는 장면을 연상시키듯 둘은 기관총, 바주카포 등을 들고 처절한 육박전을 벌이며 주변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든다. 하지만 이 잔인한 싸움은 결코 잔인하게 보이지 않는다. 감독은 그 와중에서도 두 섹시 스타의 매력을 고스란히 스크린 위에 수놓았다. 손에 땀을 쥐는 위기 순간에도 화려한 의상과 섹시한 몸동작 등 볼거리를 교묘하게 녹여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특히 감독은 영화속 섹시미의 원천인 안젤리나 졸리를 심하게 ‘망가뜨리지 않는’영악함을 보였다. 졸리는 브래드 피트보다 한 수 위로 그려진다. 둘 사이 싸움의 주도권도 그러하지만, 졸리는 영화 ‘툼레이더’의 잔상을 떠올리듯 피트보다 더 지적이고 킬러적인 냄새를 풍긴다. 하지만 피트도 손해볼 것은 없다. 오히려 반 박자 늦은 남자의 모습에서 친근하고 로맨틱한 사람 냄새가 폴폴 풍겨나는 것은 당연한 일. 영화 촬영 당시부터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의 열애설이 도마에 오른 영화답게 사상 초유의 쿨하고 섹시한 부부 싸움이 스크린 위에 직설화법으로 펼쳐진다. 둘은 영화속에서 현실을 향해 이렇게 외치는 듯하다.“사랑하려면 우리처럼 해라.” 15세 관람가.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5분 데이트 (1) - 이영임

    5분 데이트 (1) - 이영임

    「멕시컨·모드」가 깜찍히도 어울리는 미스 조흥은(朝興銀) 이영임(李英任) 양 깜찍하게도「멕시컨·모드」가 어울리는 이 아가씨는 하루 2~3천만원의 현찰을 주무르는 행복한 아가씨다. 창구를 지키고 있는 이 아가씨의 이름은 이영임. 1949년 광주산이다. 인천 인화여상을 졸업한 후 지난 7월 1일 면접시험을 거쳐 입행(入行). 160cm의 키에 약간 그을은 듯한 피부색, 도톰한 입술이 무척 이국적이다. 멕시코의 명우(名優)「마리아·펠릭스」를 연상케 하는 크고 검은 눈이 이 아가씨의 미(美)의「포인트」다. 우수(憂愁)에 젖은듯한 눈매가 바로「멕시코」아낙네들을 닮았다. 『첨엔요 많은 돈을 만지니까 즐겁더니 이젠 화폐가치로 보이질 않고 숫자로만 보여요. 틀리면 봉급에서 변상해야 하거든요』 - 만약 아가씨 앞에 복면의「갱」이 나타나 총구를 겨눈다면? 『우선 쌩긋 웃어주죠. 그리곤 수고하십니다-하고 몇 마디 말을 건네다 슬쩍「윙크」를 해주죠. 그럼 얼떨떨할 것 아녜요? 그때 우리 주임님이「갱」뒤에서 몽둥이로 꽝! 하면 …』 월급은 수당까지 합쳐 1만 9천원 정도. 이것저것 제하고 손에 들어오는 건 1만 6천원 가량인데, 시집준비로 10만원짜리 적금을 붓고 나머지는 용돈으로. 모자라지 않느냐는 물음에 자기 나이나 경력에 비해 오히려 좀 많은 것 같단다. - 시집은? 『딸 넷, 아들 하나라서, 아버지 어머니는 2, 3년안으로 보내시겠대요』 취미는 뜨개질. 사실은「스튜어디스」가 되고 싶었단다.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은 이태리 명우의 이름인「○○○·○○」. 자신도 그 여배우를 제일 좋아한다고. 그러고 보니 짙은 눈매, 육감적인 입술이 무척 닮았다. ※ 뽑히기까지 10월 12일「멕시코·올림픽」이 그 막을 올린다. 그래서 우선 첫 표지는「멕시컨·무드」를 살리기로 했다. 조흥은행 섭외과와 인사과가 주동이 되어 5백여 여행원을 놓고 인기조사결과「미스·朝興銀」후보로 뽑힌 아가씨는 2명. 한 아가씨는 중역진(重役陣)서, 이 아가씨는 평행원(平行員)들이 추천했다. 직접 창구에 앉아 있다는 것과 남성행원들이 모두 이 아가씨를 추천한 것, 그리고 이국적인 이 아가씨의 분위기가「미스·朝興銀」이 되게 했다. ★ 신사가 뽑은 퀸 ★ ※ 공모요령 종업원 백 명 이상의 기업체 또는 집단을 단위로 그 직장에 근무하는 여직원들 중에서 제일 예쁘고 상냥하고 인기 있는 아가씨를 골라 주시면 됩니다. 선발은 미혼 여직원들 중(학력 고졸이상) 10명 안팎의 후보를 내어 전체 남성 직원들의 무기명 비밀투표 득표순위로 3명을 선발해 주시면 됩니다. 본사에 투표결과를 알려주시면 곧 행운의 세 아가씨에「카메라·테스트」를 실사, 그 중 가장「카메라」를 잘 받는 아가씨를「신사가 뽑은 퀸」으로「선데이 서울」표지에 소개하게 됩니다. ※ 일류 디자이너 총동원 <의상> 뽑힌 아가씨의 용모와 계절에 맞추어 본사에서 부탁 드린 일류「디자이너」들이「아이디어」를 총동원, 차례로 새롭고 멋진 의상을 꾸밉니다. <미용> 역시 본사가 지정한 일류 미용실에서 촬영 당일 미용을 담당, 여러분의「신사가 뽑은 퀸」을 더욱 아름답고 돋보이게 매만져드립니다. [ 선데이서울 68년 9/22 제1권 제1호 ]
  • [시론] 광주의 역사적 진실 규명해야/김정훈 전남과학대 일문학 교수

    [시론] 광주의 역사적 진실 규명해야/김정훈 전남과학대 일문학 교수

    가해자의 참회와 사과도 없는데, 어찌 무턱대고 용서와 화해로 가슴 한복판에 자리잡은 응어리를 풀어헤치란 말인가.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모두 요란스레 찾아들었다. 여당, 야당 가릴 것 없이 한결같이 당시 민주화를 위해 희생된 영령들의 넋을 달랜다며 짙푸른 5월의 광주에 발길을 들여놓았다. 하지만 그들이 떠나고 난 뒤 허탈감에 온몸이 뒤틀리는 것은 어째서일까? 광주를 찾은 386정치인들이 도우미가 딸린 단란주점에서 유흥 잔치를 벌였다던 소식에 분노를 삼키던 기억이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건만 뇌리에서 그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대권을 꿈꾸는 서울시장이 5·18국립묘지 유영봉안소에서 참배하고 나오다 파안대소했다는 보도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사소한 문제로 본질을 흐리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민주화를 위해 희생된 영령들의 넋을 달래기 위함이라면 광주시민들에게 총구를 들이밀고 방아쇠를 당기게 한 발포 명령자가 누구인지 역사적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정치적 이해관계로 요란을 떨며 다들 희생당한 영령들의 사연을 듣고 위로하기 위해 5·18 묘역을 순회한다지만 정녕 광주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누구에 의해 짓밟히고 뭉개졌는지 ‘용서와 화합’이라는 미명하에 아직도 규명이 되지 않고 베일에 가려진 부분이 존재하고 있는 만큼 광주의 5월정신은 그 숭고한 역사적 의미가 채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해가 가고 정권이 바뀌었건만 여전히 소외받고 낙후된 지역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해서 광주시민들이 어떤 특혜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국토균형발전’이라는 현 정권의 정책에서 우선권을 부여받으려 한다거나, 혹은 핍박받았던 역사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광주시민에 대한 모독이다. 생각해 보라. 아직도 밝혀야 할 진실이 남아 있는데 망월동 5월 영령들에게 부끄럽지 않단 말인가. 가해자의 참회와 사과도 없는데, 어찌 무턱대고 용서와 화해로 가슴 한복판에 자리잡은 응어리를 풀어헤치란 말인가. 제6회 광주인권상을 수상한 인도네시아의 와르다 하피즈 여사는 “광주는 아시아의 등대와 같은 곳으로 어둠 속에서 수많은 배와 사람들에게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고 하며 “광주정신은 앞으로도 꺼지지 않고 영원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해외에서도 5월의 정신을 잊지 않고 그 가치를 배우고 민주주의의 성지인 광주를 추앙하고 있건만 광주시민들에 대한 명예회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 분노하는 것이다. 정부에서는 그동안 군 과거사 문제와 관련하여 ‘실미도 사건’과 대학생들의 강제징집을 야기한 ‘녹화사업’을 대상으로 진상규명에 임한다는 공언을 반복해왔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는 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되면 그 위원회에서 발표할 안건이라며 결정을 유보해왔다. 드디어 군 관계자 5명과 민간인 8명 등 총 13명으로 군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하는데, 과연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상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질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위원회에서는 당연히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진상규명 대상에 포함시켜야 하며 하루속히 성역 없는 진상조사에 착수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국방부에서 직접 망월동 5·18묘지의 관리를 맡겠다고 나서서 광주시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아직 진상의 배경과 최초발포명령자가 명확하게 밝혀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국방부가 국방부장관 명의로 국회에 ‘국립묘지에 관한 기본법안’을 제출, 입법예고한 것이다. 그런 후 4·19나 3·15 묘지와 함께 공동관리를 추진하고 있다는데, 군 관련 희생자들과 민주영령들 묘지의 성격을 동일시하여 관리하겠다니 어느 나라에 있을 법한 일인가. 그보다 국방부는 역사적 진실을 제대로 규명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매캐한 최루가스와 김밥을 눈물로 삼키며 항거하던 민주영령들과 광주시민들의 명예회복을 위해서 말이다. 김정훈 전남과학대 일문학 교수
  • [방현석교수의 테마로 읽는 호찌민] ④ 호찌민 떠나던 날

    [방현석교수의 테마로 읽는 호찌민] ④ 호찌민 떠나던 날

    1954년, 디엔비엔푸에서 패한 프랑스가 물러간 다음 베트남 북쪽에서는 총성이 멈췄다. 호찌민은 즉시 ‘먹고 사는’ 문제 해결에 집중했다. 모든 정책과 사업은 현장에서 결정됐다. 호찌민 노선이 대중의 감정과 현실로부터 벗어나지 않았던 이유는 그 자신이 언제나 대중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다. 호찌민의 제2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까오방 사람들은 호찌민이 주석이 된 다음 다시 찾아왔을 때를 잊지 못한다. 까오방의 당 서기장은 성대한 음식으로 호찌민을 대접했다. 그러나 호찌민은 화를 내며 “당신이 다 먹으라.”고 자기 앞의 음식 접시를 모두 당서기장에게 밀어주었다. 그리고 물었다.“지금 까오방성의 인민들이 어떻게 먹고 있느냐.” 밖에서는 기근으로 사람들이 쓰러지고 있었다. 그 뒤 호찌민은 지방시찰 때마다 도시락을 싸갔다. 예정된 코스를 불쑥불쑥 벗어나서 방문에 대비한 어떤 준비도 헛수고로 만들어버렸다. 가뭄이 든 남딘성 이옌마을을 예고없이 찾은 호찌민은 갈라터진 논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몇 바가지의 물이라도 대려고 바닥이 보이는 개울을 바가지로 긁고 있는 아낙네를 비키게 한 호찌민은 직접 물을 펐다. 그러나 갈라진 논의 틈새조차 채울 수 없었다. 이 때 호찌민은 관개수로사업을 구상했다. 하노이 북부 3개성에 걸친 ‘박흥하이 관개수로사업’이 시작된 것. 삽과 들것, 수레에 의존한 이 건설운동은 디엔비엔푸에 이은 또 하나의 기적이었다. 이 공사과정에서 수동식 컨베이어벨트를 비롯한 수많은 운반도구들이 발명됐다. 호찌민은 전쟁에서 발휘되었던 베트남인의 창의성과 애국심을 생산운동으로 이끌어냈다. 하노이 북부 3개성을 가뭄에서 해방시킨 이 공사과정이 담긴 기록영화 ‘박흥하이에 물이 들다’에 1959년 모스크바영화제는 다큐부문 최고상을 안겼다. 이 영화의 감독 부이딘학은 현장을 방문한 호찌민을 네 차례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한 번은 물이 들어오는 것을 찍고 있는데 인기척이 느껴져서 돌아보니까 호 아저씨가 오고 있었어요. 카메라를 돌려서 아저씨를 찍으려는데 갑자기 난리가 났어요. 일하던 사람들이 아저씨를 알아보고 마구 몰려드는 거예요. 곡괭이, 삽을 든 채로 말입니다. 당황한 경호원들이 놀라서, 연장을 들고 달려들면 아저씨는 어떻게 하느냐고 소리쳤지만 소용없었어요. 와,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달려오는데, 가까이 올수록 더 빨라지는 거예요.” 하노이의 한국식당 춘하추동에서 만난 부이딘학은 마치 어제 일처럼 말했다. “이때 호 아저씨가 재빨리 옆에 있던 나무에 올라가는 거예요. 그리고는 손을 흔들면서 이렇게 소리쳤어요. 호 아저씨 여기 있다. 다들 봤지. 봤으면 이제 자기 자리로 가서 일하자.” 그러나 호찌민의 인민생활 향상정책은 10년이 지난 1964년이 되면서 중대한 도전에 처했다. 미국은 이미 국민들조차 등을 돌린 사이공정권의 응오딘지엠을 제거한 뒤 직접 베트남에 개입할 구실을 찾고 있었다. 미국과의 전면전이 불러올 ‘재앙’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았던 호찌민은 이를 피하려 했다. 하지만 1964년 8월, 통킹만을 항해하던 미국항모가 공격당했다는 이유로 미국은 북폭을 감행했다. 이 때 국제정세도 좋지 않았다.‘수정주의’ 논쟁으로 등을 돌린 소련과 중국은 베트남에 한쪽을 선택하라고 강요했다. 호찌민은 국제 사회주의 진영의 단결을 호소하며 중립을 지키려 했지만 당시 반소파였던 서기장 레주언을 비롯한 당의 실세 그룹은 의견이 달랐다. 호찌민의 오른팔 보응우옌잡은 대중적 지지와 호찌민의 적극적인 변론으로 무사했지만 그외 측근들은 레주언 그룹에 밀렸다. 그의 뜻과 달랐음에도 ‘항미전쟁’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인민들에게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 일은 여전히 호찌민의 몫이었다. 호찌민이 처음 유서를 쓴 것은 1965년 5월19일,75회 생일 때였다. 자신의 건강이 미국과의 전쟁이 끝날 때까지 견뎌낼 수 없다고 예감했기 때문이다. “미국에 대항하는 우리의 투쟁, 민족 해방을 위한 우리의 투쟁에 많은 역경과 희생이 따른다 해도 우리가 승리할 것임은 분명하다. 만약 그날이 온다면 나는 우리의 동지들, 전사들과 함께 남쪽에서 북쪽까지 순회하며 노인들과 젊은 청년들을 만나려던 참이었다. 국민을 대표해서 우리의 우호국을 방문하여 미국과의 전쟁에서 우리를 지지해준 그들의 노고에 감사의 말을 전할 작정이었다. 당나라의 위대한 시인 두보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 했다. 올해 나는 일흔다섯이다. 나는 그 얼마 되지 않는 ‘자고로 드문’ 사람에 속한다. 마음은 아직도 거뜬하지만 육체는 갈수록 점점 쇠약해지고 있다. 그야말로 자연의 섭리다. 그러니 그 누가 혁명을 위해 더 오래 살라고 내게 말할 수 있겠는가.” 호찌민은 죽음을 예감한 뒤 남부지방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 미국과 전쟁이 한창이던 남부에 꼭 가보고 싶어했다. 그러나 남부전선 방문은 제지당했다. 그러자 1968년 레주언에게 직접 편지를 썼다. “친애하는 레주언 동지! 동지들은 내 건강을 생각해서 나를 멀리 보내는 것을 허락지 않습니다. 그러나 환경을 바꾸어 바닷바람을 마시고 투쟁하는 인민들 속에서 생활한다면 오히려 내 건강이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입니다.10일간 준비해 6일 동안 해로를 통해 남부에 닿은 다음 육로로 3일을 가면 남부전선에 닿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언제쯤 출발할 수 있는지 내게 알려주기 바랍니다.”- B(Bac/아저씨)로부터- 호찌민이 레주언에게 애걸에 가까운 편지를 쓰면서까지 남부에 가려 했던 이유는 남부 민중들에 대한 부채감 때문이었다. 프랑스가 물러가면서 제네바협정이 체결되자 남부혁명가들은 호찌민이 있는 북을 선택했다. 사이공 정권은 남부에 남은 이들의 가족을 줄줄이 처형했다. 미국과의 전쟁이 터진 뒤 북부 청년들은 그 유명한 ‘호찌민 루트’를 타고 남부전선으로 내달렸다. 수많은 북부청년들은 호찌민루트에서, 남부전선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들 모두가 ‘호찌민’이라는 이름에 기꺼이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이었다. 그런 때에 일흔이 넘은 나이를 이유로 후방에서 자연사한다는 것은 호찌민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레주언은 끝내 호찌민의 여행을 허락하지 않았다. 1969년 호찌민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졌다.79회 생일을 며칠 앞둔 5월10일, 호찌민은 해마다 손을 보아온 유서를 다시 꺼내 마지막으로 가필했다. 그 내용은 세금감면을 비롯한, 전쟁이 끝났을 때 농민·노동자들에게 주어져야 할 민생대책들이었다. 전선에서 싸운 전사들에 대한 예우도 매우 구체적으로 썼다. 전쟁은 막바지에 다다랐지만 자신이 그 때까지 살아있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호찌민의 유서 최종본에는 20년을 훌쩍 넘는 기간 동안 전쟁을 견디고 있는 인민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무거운 책임감이 담겨 있다. 베트남 인민들은 수십년 동안 프랑스 탱크의 캐터필러 소리와 미국 폭격기의 굉음, 이웃과 친척 중에 누군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며 살아야 했다. 인민들은 단 하루도 따뜻한 밥을 먹고 편안한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항전을 이끌어온 호찌민은, 미안했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한 항전은 참으로 위대했으나 위대함을 감당하기 위해 지불해야 했던 베트남 인민들의 희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가혹한 것이었다. 그 희생은 베트남 인민 자신들을 위한 것이었으나 희생해서 싸우자고 호소한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호찌민이었다. 그해 8월12일 호찌민의 건강은 더 악화됐다. 당과 정부, 군대의 핵심부는 이미 호찌민의 죽음에 대비하고 있었다. 남부의 전선사령부가 파견한 대표단은 호찌민루트를 타고 하노이를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8월18일 호찌민은 비서 부끼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주석관저,10평짜리 목조주택의 계단을 올라갔다. 마지막 걸음이었다.8월24일, 호찌민의 방은 병실로 변했다. 당의 정치위원들과 군사지도자들이 병문안을 왔다.5평도 채 안 되는 호찌민의 방안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가장 무더운 8월이었고 에어컨은 없었다. 비서 부끼는 호찌민의 머리맡에 앉아 계속 부채질을 했다. 호찌민은 손을 움직일 수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스스로 먹고 마시려 했다. 간호사 오안이 시중드는 것도 사양했다. 대신 다른 것을 부탁했다. “노래나 하나 불러줘.” 호찌민이라고 외롭지 않았을까. 그에게는 단 한 점의 혈육도 없었다. 라디오 소리만 방안을 채우고 있었다. 호찌민은 라디오를 계속 켜두라고 했다. 최후의 순간은 다가오고, 호찌민은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호찌민이 겨우 잠깐 잠이 든 것을 보고 비서 부끼는 라디오를 끈 다음 그도 잠깐 눈을 붙일 요량으로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그 때 뒤에서 힘겹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부끼 어이.(부끼야)” 놀라 몸을 돌렸을 때 호찌민은 라디오를 다시 켜라고 손짓했다. “아저씨, 왜요? 오랜만에 눈을 붙이시기에 쉬시라고 껐는데요.” 호찌민은 손을 저었다. “그래도 사람소리가 들려야지…….” 9월2일 오전 9시45분, 호찌민은 숨을 거뒀다. 가장 가까운 측근이었던 비서 부끼와 보응우옌잡 장군이 그 곁에서 울고 있었다. 호찌민은 이미 임종과정을 찍지 말고 화장하라고 유언했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창밖에서 몰래 호찌민의 최후를 찍고 있었던 군대영화사 팜꾸옥빈의 촬영팀은 호찌민이 눈을 감은 뒤에야 방안에 들어설 수 있었다. 소령으로 예편한 팜꾸옥빈은 호찌민이 자리에 누운 순간부터 임종하는 때까지 전 과정을 비밀리에 촬영했다는 사실을 집으로 찾아간 필자에게 밝혔다. 호찌민의 시신은 영구 보존처리되었고 그 장면도 모두 기록됐다. 장례절차까지 담은 이 필름은 최고지도부의 결정에 따라 편집하지 않은 원본 그대로 비밀리에 보관되어 있다. 공개된 부분도 있지만 원본 가운데 20분 분량도 채 안 되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베트남의 당과 정부는 호찌민 서거일도 9월2일에서 하루 늦춘 3일이라 발표하고, 이 사실을 오랫동안 비밀에 붙여왔다. 팜꾸옥빈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9월2일은 1945년 호 아저씨가 베트남독립정부를 수립한 날이었어요. 호 아저씨가 돌아가신 것만도 우리에게 엄청난 충격인데 거기다 날짜가 9월2일이라고 하면 9월2일에 호 아저씨가 세운 나라도 뒤따라 망한다는 적의 심리전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호찌민이 눈을 감은 뒤 베트남에는 사흘 밤낮으로 비가 내렸다. 베트남 전역에서 울음소리와 눈물이 이어졌다. 남부 정권의 수도 사이공에서도 모든 상가가 철시했다. 장례기간 동안 베트남 전역에서 절도사건을 비롯한 불미스러운 사고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남부의 대통령 우옌반티우조차 정중한 조의를 표해야 했다. 그토록 호찌민을 헐뜯었던 미국 언론들도 애도를 표시했다. 뉴욕타임스는 호찌민을 표지인물로 세우고 장문의 조사를 내보냈다.‘지금 살아있는 민족주의자 가운데 그만큼 불굴의 정신으로 오랫동안 적의 총구 앞에 버티고 서 있었던 사람은 없다.’고. 그런 호찌민이 죽어서 남긴 것은 10평 남짓한 목조주택 한 채와 몇 권의 책이 전부였다.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 살다가 무엇도 남기지 않고 떠났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bang80@jowoo.co.kr ●자료 사진을 협조해주신 주한베트남대사관과 베트남통신사(VNA)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애써주신 베트남통신사 부주이흥 서울지국장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방현석교수의 테마로 읽는 호찌민] “호찌민을 정말 아십니까”

    사이공 함락과 함께 막을 내린 베트남전이 30일로 꼭 종전 30주년을 맞는다. 적으로 마주섰던 한국과 베트남은 이제 미래를 향한 동반자가 됐고, 한국산 첨단제품과 ‘한류’가 베트남을 휩쓸고 있다. 하지만 베트남의 국부(國父)이자 베트남전의 ‘또다른 주역’인 호찌민은 여전히 우리에게 낯설고 궁금한 인물로만 남아 있다. 호찌민(1890~1969)은 과연 어떤 인물일까. 지난 1994년부터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에서 활동해 왔으며, 현재 회장직을 맡고 있는 방현석(44) 중앙대 교수(문예창작과)의 현지 취재 등을 통해 잘 알려지지 않은 호찌민의 삶을 5월2일부터 5회에 걸쳐 조명해본다. 베트남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거국적인 승전기념 행사가 열리고 있다. 지난해는 디엔비엔푸에서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낸 승전 50주년이었다. 올해는 미국을 물리치고 사이공을 접수한 승전 30주년이다. 또 일본으로부터 주권을 되찾은 지 6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호아저씨는 우리의 사업 속에 살아 있다.’ 박 호(Bac Ho/호아저씨). 베트남 사람들은 호찌민을 그렇게 부른다. 당의 서기장도, 씨클로 운전사도 그렇게 부른다. 프랑스·미국과의 전쟁을 거쳐온 노인들도 그렇게 부르며, 아직 젖비린내가 가시지 않은 아이들도 그렇게 부른다. 살아서보다 죽어서 더 큰 존경과 사랑을 받는 지도자를 우리는 그리 많이 알지 못했다. 성공한 많은 혁명가들은 빠르게 권력으로 변했고, 또 그만큼 빨리 지워졌다. 그런 면에서 호찌민은 예외적이고 아주 특별한 인물이다. 조국의 독립과 혁명을 위해 고스란히 일생을 바치고 맨 손으로 세상을 등진 그를 향한 베트남인들의 존경과 사랑은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심지어 적들로부터도 존경을 받았던 인간 호찌민의 매혹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호찌민만큼 많이 알려진 동시에 그토록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진 인물도 아마 드물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몇 종류의 번역된 평전과 함께 호찌민이 소개되었지만 체제와 이념, 시대를 넘어서 지속되는 그의 매혹을 제대로 설명해주지는 못했다. 베트남전 종전 30주년을 앞두고 필자는 한 달 동안 베트남에 체류하며 호찌민의 주변 사람들을 만났다. 호찌민의 생애를 둘러싼 알려지지 않은 많은 사실과 일화들을 확인할 수 있도록 도와준 베트남의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과거에, 우리는 베트남과 서로 총구를 겨눈 적이 있다. 지금, 우리와 베트남은 서로에게 매우 중요한 통상교역국가가 되어 있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베트남의 역사와 문화를 너무나 모르고 있다. 서로를 모른 채 총을 겨눈 것도 비극이지만 서로를 모르는 채 하는 교류도 자랑은 아니다. 베트남을 이해하는 지름길은 호찌민이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데 있다. 호찌민을 이해하는 일은 베트남이 경험한 분단의 상처를 이해하는 일이다. 우리가 어떻게 상처를 줄이고 통일을 이뤄야 하며 세계와 친구가 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경제플러스] “올 중기제품 56조원규모 구매”

    중소기업청은 올해 공공기관의 중소기업 제품 구매 규모는 모두 55조 9975억원이라고 18일 밝혔다. 이는 지난해보다 4.6% 증가한 것이며 공공기관 총구매액(81조 7044억원)에서 중소기업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63.4%)보다 5.1%포인트 높아진 68.5%이다.
  • [16일 TV 하이라이트]

    ●불멸의 이순신(KBS1 오후 9시30분) 이순신의 승첩장계를 받은 조정은 전란 발발 이후 첫 승첩소식에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된다. 선조는 이순신을 가선대부에 봉하고 휘하 장수와 병졸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교지를 내린다. 반면 경상우수사 원균에게는 비망기를 내려 전장에서 함부로 준동하지 말 것을 이른다. ●그린 로즈(SBS 오후 9시45분) 커다란 선물을 기대하던 세사람은 진대인의 경호원들에 의해 끌려 나간다. 밀실에 갇힌 정현은 불이 났다고 거짓말을 해 경호원을 따돌린다. 진대인의 이마에 총구를 겨눈 정현은 진대인이 미동도 하지 않자 무릎을 꿇는다. 다음날 진대인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세 사람에게 성찬을 베푼다. ●라이프n조이(YTN 오전 9시20분) 우리 민족에게 유난히 친숙해서 문학소재의 단골손님이기도 한 아름다운 꽃 진달래와 동백꽃. 국내 최대의 군락지를 이뤄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곳이 있다. 축제가 한창인 여수 영취산 진달래와 장흥 천관산의 동백꽃 향을 따라 색깔있는 테마여행을 떠나본다. ●지금도 마로니에는(EBS 오후 10시50분) 김지하가 도망 다니는 사이 정보부에서는 김지하가 숨어있는 곳을 대라며 김맹모를 끌고 가 전기고문을 가하고 이로 인해 김맹모는 반신불수가 된다. 한편으론 김지하의 어머니인 정금성을 앞장 세워 김지하를 찾아다니며 김지하를 압박한다. 김중태 등이 잡히면서 재판이 시작된다.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MBC 오후 7시) 성시경, 정형돈, 유니, 은지원 4명의 각기 다른 연애심리 이야기가 펼쳐진다. 오랜만에 4집 앨범으로 돌아온 로맨틱 가이 성시경이 자신이 정형돈과 동갑내기라는 소문의 진실을 밝힌다. 은지원은 원래 듀엣으로 기획되었던 젝키가 6명이 된 그룹 탄생 비화를 공개한다. ●용서(KBS2 오전 9시) 인영은 새로 온 아줌마를 몰래 불러 내 수민이 본부인이 아니라는 사실과 그간에 일어난 일들을 들려 주게 되고 아줌마는 수민의 뻔뻔함에 혀를 찬다. 한편 형우의 회사 사정은 갈수록 나빠져 밤늦게 술에 취한 채 들어와 수민에게 넋두리를 하고, 수민은 형우의 방에서 밤을 새게 되는데….
  • ‘인질 미군’은 인형

    이라크 무장단체가 인질로 잡았다고 주장하는 미군은 가짜이며 미국에서 제조된 장난감 인형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장난감회사 ‘드래곤 모델 USA’는 1일 두바이의 웹사이트에 올려진 사진에서 무장단체가 납치했다고 밝힌 미군 존 애덤은 자신들이 ‘코디’라는 이름으로 제작한 인형으로 보인다고 로이터통신에 밝혔다. 이 회사의 리암 쿠삭 판매본부장은 “코디의 제작 과정에 참여했기 때문에 모습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웹사이트 상의 미군은 분명히 미군 특수부대원으로 제작된 코디라고 자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진에서 존 애덤이라는 미군을 겨냥하고 있는 총도 자신들이 코디의 부속품으로 제작한 플라스틱총 M4 소총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앞서 자신들을 ‘무자헤딘 대대’라고 밝힌 이라크 무장단체는 미군 군복을 입은 채 손이 등뒤로 묶인 남성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 사진을 웹사이트에 올리면서 “우리는 미군 ‘존 애덤’의 많은 동료를 죽인 뒤 그를 납치했다.”면서 72시간 안에 이라크 포로들을 석방하지 않으면 이 인질을 살해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미군측은 “이라크 내에서 실종된 미군은 없다.”고 밝혔다. 유세진기자 yujin@seoul.co.kr
  • 儒林(274)-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儒林(274)-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절대 권력은 지상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갖기 마련이다. 절대 권력은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지위가 만드는 것이다. 힘은 인간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지위에서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절대 권력자는 그 지위가 가진 힘의 매력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절대 권력자는 자신이 발휘하는 힘이 절대선이라는 함정 속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가져야 하는 윤리의식과 도덕주의는 태생부터 권력과는 상충되는 것이다. “법과 정의는 제우스신과 나란히 앉아 있다. 권력을 가진 이가 하는 모든 일, 그것은 그대로 법이고 정의일 수밖에 없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나오는 이 구절은 권력의 속성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는 명언인 것이다. 인류가 낳은 3대 성인 중의 하나인 공자의 현존도 위나라의 영공을 변화시킬 수 없었으며, 노나라의 권신이었던 계씨들에게 정의를 심어주지 못하였다. 하느님의 아들이었던 예수를, 수천 년간 메시아를 기다려온 유대인들이 바로 하느님을 모독한다는 역설적인 죄를 뒤집어씌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아이러니처럼 위대한 완성자였던 공자의 충고도, 설득도 그 무렵 정치가들의 마음에 전혀 윤리의식을 심어주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오직 ‘권력을 가진 이가 하는 일이 곧 법이고 정의일 뿐이다.’라고 말한 플루타르크 영웅전의 기록이 오히려 권력의 속성을 드러내고 있는 진리인 것이다. 공자조차 이루지 못한 왕도정치를 그보다 2000년 후에 감히 권력에 접목시키려 하였던 조광조.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던가, 아니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예지자였던가. 예지자라면 비록 실패하였다 하더라도 후세에 깊은 영향을 주어 서서히 세상을 변화시키는 밑거름이 되었어야 할 텐데 조광조의 순교에도 왕조 500년의 권력은 전혀 변화되지 않고 있음이다. 어디 왕조뿐이겠는가.21세기의 오늘날에도 여전히 정치는 권력을 가진 자가 제정하는 법과 정의에 의해서 왜곡되고 있음이니. 권력은 여전히 총구(銃口)에서 나오고, 힘은 여전히 독재에서 출발하고 있음인가. 그에 비하면 이퇴계(李退溪:1501~1570). 조광조보다 불과 18년 늦게 태어난 이퇴계는 같이 공자의 유교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조광조와는 전혀 그 성격을 달리한다. 조광조가 공자의 정치적 이상을 현실에 접목시키려 하였던 실천적 제자라면 이퇴계는 공자의 말년 6년 동안에 집중된 학문과 사상을 계승발전시킨 동양최고의 학문적 제자이다. 불교가 인도에서 시작되어 당나라의 선종을 거쳐 발전되어 오다가 우리나라가 낳은 최고의 성인, 원효(元曉)에 이르러 불교의 정수가 매듭지어진다. 마찬가지로 유가사상이 2500년 전 중국에서 시작되었으나 유교의 정수도 해동의 이퇴계에 의해서 매듭지어졌으니, 인류사상 최고의 정신문화의 유산인 불교와 유교가 모두 우리나라의 두 거인에게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우리나라를 변방의 작은 소국이라고 자괴할 수 있을 것인가. 원효와 퇴계를 낳은 세계 최고의 정신문화 선진국. 이퇴계의 위대함은 조광조와는 달리 유가사상에만 전념하여 공자의 사상을 성리학으로 완성하였던 것이다. 퇴계는 평생 동안 79번이나 벼슬자리에서 스스로 사퇴하였다. 본명이 이황(李滉)이었던 그가 퇴계라는 호를 지은 것도 말년에 자신의 고향인 토계( 溪)로 돌아와 마을이름을 퇴계라 고치고 더 이상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세상과 완전히 손을 끊겠다는 의지를 논어에 나오는 ‘조정에서 물러나다(退朝)’에서 따온 ‘물러갈 퇴(退)’자를 사용했던 데서 비롯된 것이다.
  • [‘박정희 저격사건’ 문서 공개] 당시 수사 맡은 김기춘의원

    [‘박정희 저격사건’ 문서 공개] 당시 수사 맡은 김기춘의원

    육영수 여사를 저격한 혐의로 1974년 8월15일 낮 중앙정보부에 체포된 문세광은 다음날 오후까지도 입을 굳게 다물었다. 중정 요원들은 여권에 적힌 일본인 이름 말고는 문세광의 인적사항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이때 중정부장의 법률보좌관으로 파견 중이던 서른 다섯살 ‘김기춘 검사’가 투입됐다. 신직수 중정부장의 명이었다. 김 검사는 링거를 꽂은 채 누워 있던 문세광에게 첫 질문을 던졌다.“‘자칼의 날(The day of the Jackal)’을 읽어 봤는가.” 하루 종일 묵비권만 행사하던 문세광이 그제서야 눈을 번쩍 뜨더니 “네. 혹시 센세(선생님)도 읽어 보셨습니까.”라고 되물었다. 김 검사는 빙그레 웃으며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고 답한 뒤 “혁명을 하기 위해 왔다면서 이렇게 비겁하게 입을 다물면 되겠는가. 당당하게 밝힐 것은 밝히라.”고 추궁했다. 그러자 문세광은 입을 열어 범행을 자백하기 시작했다. 검찰총장·법무부장관을 지낸 한나라당 김기춘 의원이 20일 기자들과 만나 설명한 문세광 수사 뒷얘기다. 그는 “‘자칼의 날’은 프랑스의 샤를 드골 대통령 암살 미수사건을 담은 추리소설로 사건 보름 전쯤 대천 해수욕장에 휴가차 내려가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 수사에 응용해 봤다.”고 전했다. 또 “문세광은 38구경 권총을 분해한 뒤 라디오에 넣어서 공항 검색대를 통과했는데, 소설 주인공도 장총의 총구를 라디오에 숨겨 들여왔다. 암살자에겐 교과서 같은 책”이라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문세광은 나중에 육 여사가 숨졌다는 말을 듣고 ‘정말 미안하다. 잘못했다.’고 참회했다.”면서 “젊은 나이에 포섭이 됐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이어 “이것은 살인 사건일 뿐 정치적으로 악용할 소지는 없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한편 당시 서울지검 공판부장으로 수사 실무책임자이던 정치근 변호사는 “문은 처음에는 ‘빨리 죽여 달라.’는 말만 하다가 나중에 ‘한국군에 입대하겠으니 살려만 달라.’며 삶의 집착 같은 것을 보였다.”고 회고했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그 영화 어때?] 웰컴투동막골 촬영현장

    햇살이 채 스며들지 못한 산자락 응달엔 언제 내렸는지 알 수 없는 하얀 눈이 군데군데 웅크리고 있다. 차 한대 겨우 들어가는 울퉁불퉁한 좁은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니 기와를 얼기설기 이어 지붕을 만든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작은 마을 ‘동막골’이 눈앞에 펼쳐진다. 한국 근현대사를 통틀어 가장 피비린내났던 상처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평화로워 보이는 그 곳. 강원도 평창군에 자리잡은 영화 ‘웰컴 투 동막골’(제작 필름있수다)의 세트장인 이 마을에서, 국군·인민군·연합군이 이념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아름다운 팬터지를 그리고 있었다. #덩실덩실 마을 축제에 귀청 찢는 총소리가… 모닥불이 모락모락 연기를 날리는 마을의 정자나무 근처엔 한참 흥겨운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전쟁이 일어났는지조차 모르는 마을사람들과 그들에게 동화돼 함께 어울리는 군인들. 이들은 전투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오게 된 연합군 조종사 스미스(스티브 태슐러), 길 잃은 인민군 수화(정재영), 국군 탈영병 현철(신하균)의 일행들이다. 음악이 흐르고 슛 사인이 들어가자 30여명의 마을 사람들과 10여명의 어린아이들이 덩실덩실 춤을 춘다. 하지만 이내 귀청을 찢는 듯한 총소리가 판을 깬다. 동막골에 추락한 미군기가 피격됐다고 오인한 한·미연합군이 쳐들어온 것. 총구를 들이댄 채 “이 X새끼들아.”“Shut up”“빨갱이 어딨어?”등의 목소리가 뒤섞이고 마을사람들도 우왕좌왕한다. 참다 못한 현철은 국군을 공격하고, 수화도 연합군 두 명을 처리한다. 어디에 눈을 둬야할지 모를 정도로 순식간에 수십명이 뒤엉켜 긴장감 넘치는 액션신. “컷. 누구 다친사람 없나 확인해 주세요.”이내 무술감독이 동작들을 점검하러 나선다. 연합군 역의 외국배우들을 앞에 두고 급한 맘에 손짓발짓을 다 동원한다.“턱 탁(치는 동작), 드르륵(총소리) 알겠어요?” 그 짧은 틈을 타 까까머리를 한 아역배우들은 모닥불 앞에서 작은 나뭇가지를 불쏘시개 삼아 불장난을 하느라 신났다. #“연극과 다른 팬터지와 비주얼 돋보일 영화” 평창군의 세트장은 10억원을 들여 넉 달에 걸쳐 폐광촌으로 버려진 야산을 다듬어 길을 내고 개울을 만들고 집을 짓고 나무를 심어 완성시켰다. 이은하 PD는 “관광단지로 조성할 계획으로 평창군에서 아낌없는 지원을 했다.”고 말했다. 세트장을 둘러보다 영화의 원작자이자 2년전 같은 제목으로 연극무대에 올렸던 장진 감독을 만났다. 연극과 많이 달라느지냐고 묻자 “연극만 하겠어요?”라며 웃더니 이내 영화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박광현 감독에게 잘 맡긴 것 같아요. 한국전쟁을 정말 감각적으로 찍었습니다. 영화는 한국 최고를 향해 가고 있어요. 나도 각본상 받을 수 있을 것 같고…(웃음)” 박광현 감독은 CF 감독 출신으로 옴니버스 영화 ‘묻지마 패밀리’의 ‘내 나이키’편을 연출한 바 있다. 박 감독은 “연극과 이야기의 큰 구조는 바뀌지 않지만 동막골이란 공간의 팬터지를 더 많이 살렸다.”면서 “공중전을 포함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비주얼과 영상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영화는 1월중 크랭크업해 내년 5월쯤 개봉할 예정이다. 평창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한지붕 세븐스타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엔 유독 주연배우가 많다. 영화가 공식적으로 이름을 내세우는 주연배우만 7명. 화려한 스타는 없지만 모두 연기력이 검증된 실력파 배우들이다. 국군은 신하균 서재경, 인민군은 정재영 임하룡 류덕환, 연합군은 스티브 태슐러가 맡았고 마을 여성 역에 ‘올드보이’의 강혜정이 유일한 홍일점으로 가세했다. 특히 정재영 신하균 임하룡은 연극에 이어 같은 역할로 다시 스크린에 얼굴을 내미는 것. 정재영은 “머리에 흉터가 깊이 나서 딱 보면 ‘사람 여럿 죽였구나.’싶은 외모지만 알고 보면 따뜻하고 바보스러운 역”이라고 소개했고, 신하균은 “연극보다 디테일이 살아난 캐릭터로 큰 이야기를 전달하는 연기의 앙상블에 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여러 영화에서 ‘반짝’ 출연에만 그쳤던 임하룡은 “겁많은 군인역으로, 내년엔 신인상에 도전해 보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스티브 태슐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공개 오디션을 통해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배우.“밤낮으로 열심히 일하는 한국 스태프의 성실함에 놀랐다.”는 그는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는 아름다운 이야기와 친절한 현장분위기에 감동을 받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순박한 동막골을 상징하는 여일 역의 강혜정은 “첫 촬영 때 모니터를 보고 ‘우리 영화가 이런 색깔을 가졌구나.’라는 생각에 설다.”면서 “한마디로 ‘때깔’이 아주 좋은 영화”라고 말했다. 3개월간 동막골의 세트장 근처에서 함께 숙식을 해결하면서 저절로 ‘팀워크’가 생겼다는 이들.“이렇게 현장 분위기가 좋은 영화가 잘 되는 것 같다.”는 정재영의 말대로 한바탕 흥겹고도 감동적인 연기의 앙상블이 펼쳐지길 기대한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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