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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 Q&A] 베일 속 후계자… 北 권력승계 전망은

    [이슈 Q&A] 베일 속 후계자… 北 권력승계 전망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셋째아들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화됐지만 그를 둘러싼 많은 부분들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있다. 북한의 차기 통치자가 될 것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생년월일은 물론이고 얼굴조차 공개되지 않았다. 세계 최고의 정보력을 가진 미국조차 김정은에 대해 아는 것이 놀랄 만큼 적다고 고백하고 있다. 김정은을 둘러싼 크고작은 궁금증들을 문답형식으로 알아본다. Q 김정은의 얼굴은 언제 공개되나. A 빠르면 올 10월, 늦으면 201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에서 당 중앙기관 성원 및 제3차 노동당 대표자회 참가자와 기념촬영을 했으며, 김정은도 참여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9일 전했다. 그러나 사진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기념촬영까지 한 점으로 미뤄볼 때 곧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도 있다. 김정일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하루속히 북한 주민에 얼굴을 알려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 작업을 하는 게 유리하다. 따라서 10월10일 당 창건 65주년에 맞춰 김정은이 당의 주요 직위를 맡으면서 모습을 드러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김정일도 1980년 6차 당대회를 통해 후계자로 외부에 공식화된 뒤 공개행보를 시작했다. 반면 김정은이 우선 군부에서 입지를 확고히 다지는 데 주력할 것이란 얘기도 있다. 일본 아사히 신문은 28일 “북한이 강성대국 원년으로 선포한 2012년까지 김정은이 외부에 등장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2012년에 맞춰 혜성과 같이 모습을 드러내는, 일종의 신비주의 전략을 말한다. Q 김정은이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면 어떤 식일까. A 김정일 수행. 김정일이 아직은 엄연히 최고지도자인 만큼 전면에 나서거나 연설을 하기보다는 김정일을 수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얼굴을 드러내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도 아직까지 당·정·군의 공식행사에서 한번도 정식 연설을 한 적이 없다. 김정일이 공식행사에서 연설한 것은 1992년 4월 25일 조선인민군 창건 60주년 행사장에서 “영웅적 조선인민군 장병들에게 영광 있으라!”라고 간략하게 외친 것이 전부다. Q 김정은은 군부에서 인정을 받을까. A 쉽지는 않지만 가능. 아주 쉽지는 않겠지만 김정일의 구상대로 된다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한 마오쩌둥(毛澤東)의 어록을 가장 잘 실천하는 정권이다. 선군(先軍)정치란 말은 그래서 나왔다. 이번에 김정일은 김정은에게 첫 공식직함으로 ‘인민군 대장’이라는 군사칭호를 주고 유명무실했던 당 중앙군사위에 부위원장직을 신설해 김정은을 앉혔다. 또 리영호를 대장(별 4개)에서 차수(큰별 1개)로 초고속 승진시킨 뒤 김정은과 함께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임명함으로써 군부를 승계 과정의 제1 동반자로 중시한다는 점을 과시했다. Q 김정은과 후견역할을 한다는 고모 김경희의 사이는. A 나쁘지 않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김정일의 여동생이자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64)는 불같은 성격으로 알려진다. 아버지(김일성)와 오빠의 반대을 무릅쓰고 장성택과 결혼을 강행했을 정도다. 하지만 김경희는 김정일의 복잡한 여인 관계와 이복형제로 얽히고 설킨 김씨 왕가를 정리하는 데 수완을 발휘하면서 김정일의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진다. 김정일의 외도를 아버지 김일성이 모르게 처리하고, 김정일이 셋째 부인 고영희에 빠져있을 때 두 번째 부인인 성혜림을 모스크바로 추방한 것도 김경희의 작품으로 전해진다. 김정은이 이복형들을 물리치고, 권력을 이어받을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역할 때문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김정일이 조기에 사망할 경우 권력을 굳히지 못한 김정은과 남편 장성택 사이에 권력투쟁이 벌어질 개연성도 있다. 김정일이 이번에 매제인 장성택 뿐 아니라 김경희를 인민군 대장에 굳이 함께 임명하는 등 부부를 줄곧 동반 중용하는 것은 장성택을 완전히 신임하지 못하는 방증이라는 분석이 있다. Q 김정은 승계작업은 얼마나 빨리 이뤄질까. A 김정일의 건강이 변수. 김정일의 건강 상태를 감안하면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후계 절차는 크게 5단계로 진행된다. 1단계 당의 영도 절차(당대표자회 개최에서 확정), 2단계 후계자 중심의 당 체제 정비(인사재편 등), 3단계 대대적 우상화 사업 전개, 4단계 당 이데올로기인 주체사상이나 선군사상에 대한 해설권 장악, 5단계 대남사업에 대한 지도권 행사 등의 순이다. 이 중 김정은은 대략 3단계까지는 물밑으로 진척을 본 것으로 분석된다. 앞으로 4,5단계 작업을 본격화하는 등 박차를 가해 늦어도 2012년까지 속성 승계를 마무리할 전망이다. Q 북한이 집단지도체제로 갈 가능성은 없나. A 김정일의 조기 공백 올 경우 가능. 김정일이 예상보다 일찍 사망한다면 가능성이 없지 않다. 주체사상에 기반한 수령 유일 지배체제를 김정일이 선호하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러나 김정일의 조기 사망으로 권력공백이 생길 경우 그의 의도와 무관하게 집단지도체제 형식이 되면서 혼란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Q 김정은은 결혼했나. A 확인 불가. 확인된 것은 없지만 가능성은 있다. 김정은은 올해 나이 약 27세다. 저돌적 성격에 혈기왕성하다는 그인 만큼 어떤 식으로든 여자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도 24세 때에 첫 결혼을 했었다. 김정은이 결혼을 했더라도 부부동반을 하지 않는 북한의 특성상 쉽게 알려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사설] 3대세습 강행 北상황 안이한 대비 안된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기어코 3남 김정은으로의 권력 세습을 공식화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그제 김정은에게 인민군 대장 칭호를 수여했다며 이를 기정사실화했다. 어제 당대표자회에서도 유일 영도체계의 상속자를 가시화하는 조치를 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3대째 독재권력 세습은 근·현대 세계사에서 유례 없는 소극(笑劇)이다. 이로 인한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성에 철저히 대비할 때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째 권력승계는 민주화·개방화가 대세인 세계문명사의 흐름을 역류하는 퇴행이다. 봉건사회에서나 가능할 법한 ‘왕조 세습’은 세계 여론에도 희화적으로 투영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남북의 민족 구성원들에겐 웃어 넘길 블랙코미디일 순 없다. 북한주민의 삶을 더욱 피폐하게 하는 비극의 전주곡일 수도 있는 탓이다. 그 조짐은 북한이 여전히 ‘선군(先軍)주의’의 깃발을 내걸고 있는 사실에서 읽혀진다. 북한은 이번에 김정일의 친여동생인 김경희와 그의 남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측근인 최룡해에게도 대장 칭호를 부여했다. 선군주의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모토처럼 체제수호를 위해 군을 맨 앞자리에 두려는 발상이다. 혈족인 김경희·장성택 부부의 후견과 함께 선군주의의 깃발로 후계체제의 안정화를 꾀하겠다는 계산이라면 북한주민의 인권이나 기초생활 개선은 뒷전일 수밖에 없다. 당장 개혁·개방이나 비핵화를 택할 개연성은 희박한 셈이다. 이는 단기적으론 후계체제의 불확실성은 줄었지만, 중장기적으로 북한체제의 불안정성은 더욱 심화될 것임을 뜻한다. 속전속결식 후계구도 확립 그 자체가 김정일의 건강이상설을 뒷받침하는 징표이기도 하다. 그러지 않아도 누적된 경제난에다 배급체제의 붕괴와 화폐개혁의 실패로 북한주민들의 동요가 심상치 않다고 한다. 당·정·군 경력이 일천한, 20대 후반의 상속자 김정은이 끌고 가기엔 버거운 유산이다. 있을지 모를 북한발 소용돌이에 우리가 안이하게 대비해선 안 될 이유다. 차제에 한반도 정세의 급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북 전략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일각의 주장처럼 요란하게 레짐 체인지(북 지도부 교체)에 나서란 말이 아니다. 있음직한 모든 시나리오별 대응 태세를 조용히 완비하란 얘기다. 특히 북측이 후계체제를 다지기 위해 제2의 천안함 사태와 같은 의도적 긴장 조성에 나설 소지를 막아야 한다. 그러려면 인도적 지원이나 북의 개혁·개방을 촉진하는 협력에는 적극 나서되 군사적 도발에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
  • [北 김정은 3대세습 공식화] 3대세습 어떻게 가능한가

    [北 김정은 3대세습 공식화] 3대세습 어떻게 가능한가

    예상은 했었지만 막상 눈으로 보니 놀랍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와 공산사회주의 국가를 막론하고 세계 어떤 나라도 해내지 못한 3대 세습을 북한 김정일 정권은 결국 단행했음이 28일 공식화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어떻게 전 세계가 조롱하고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일을 감행할 생각을 했을까. 김정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소련 연방 붕괴 당시 레닌 동상이 허망하게 쓰러지는 것을 목도한 김정일은 후대(後代)의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무엇보다 두려워했을 법하다. 따라서 믿을 사람은 역시 핏줄뿐이라는 생각을 했고,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무리수를 뒀다고 볼 수 있다. 결국 그의 아버지 김일성 주석이 자신에게 권좌를 물려준 결정적 이유가 이번에도 그대로 작동한 셈이다. 절대권력의 속성은 세월이 흘렀어도 변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전 세계가 혀를 차는 3대세습을 북한 주민들은 수용할까. 속으로는 불만을 갖는 부류가 없지는 않겠지만 겉으로 조직적인 반발이 일어날 가능성은 현재로선 희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북한 사회는 그만큼 철저히 통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공산주의 국가였다 하더라도 합리주의와 계몽주의의 곁불이라도 쬤던 동구권에서는 소련 붕괴 후 독재정권을 향한 민중봉기가 가능했다. 하지만 북한 주민은 유교식 왕조시대의 전통에 외부에서 사회주의가 강제 이식된 공동체여서 자유와 인권의 개념이 약하다. 여기에 김일성 시대부터 체계적으로 가해진 주민들에 대한 세뇌와 총구를 앞세운 철권적 감시 시스템으로 조직적 봉기의 여력이 부재하다는 분석이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북한 주민들은 민중봉기를 조직화할 여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만약 김정일 정권이 무너진다면 남한의 10·26사태와 같은 식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세계가 갈수록 개방되는 추세에서 3대세습이 궁극적으로 성공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아무리 세뇌된 주민이라도 3대세습에는 선뜻 수긍하기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민들의 열악한 생활고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체제불안이 악화될 소지는 다분하다. 안 그래도 탈북 러시가 점증하고 있는 추세다. 김정일이 여동생 김경희 부부를 중용해 김정은을 옹위하는 구도를 구축한 것은 그만큼 3대세습이 간단치 않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이나영-이정진 ‘도망자’ 스틸사진 릴레이 공개

    이나영-이정진 ‘도망자’ 스틸사진 릴레이 공개

    KBS 2TV 수목드라마 ‘도망자’의 스틸사진이 연달아 공개됐다. 이나영과 비의 출연으로 방영 전부터 화제로 떠오른 ‘도망자’의 새로운 현장사진과 스틸 사진이 공개돼 시청자들의 기대를 고조시키고 있다. 앞서 마린룩, 로프액션 등으로 강도 높은 액션씬을 예고했던 이나영은 권총을 들었고, 이정진은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외사과 형사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시청자들은 신비한 눈빛 연기를 선보이며 누군가를 향해 총구를 겨눈 이나영의 모습에서 그간 여리고 착했던 이미지와 상반되는 강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고 입을 모았다. 이어 매서운 눈빛으로 형사들을 진두지휘하는 이정진의 모습에서는 베테랑 형사의 노련미가 느껴진다고 평했다. 한편 드라마 ‘도망자’는 한·중·일을 망라하는 블록버스터급 캐스팅으로 화제가 되고 있으며 아시아 각 도시에서의 로케이션 촬영을 통한 박진감 넘치는 추격전을 선보일 예정이다. 방영은 9월 예정. 사진=도망자에스원문전사 서울신문NTN 전설 인턴기자 legend@seoulntn.com 서울신문NTN 오늘의 주요뉴스 ▶ 이해우 “이민호 선배님처럼 되려면 열심히 해야죠”(인터뷰) ▶ 쌈디 ‘충격 과거사진’ 공개...삭발, 퍼머 등 헤어 변천 눈길 ▶ 정애리, 딸 최초 공개...친구같은 모녀 일상 ‘눈길’ ▶ 엠마 왓슨, 숏커트 파격 변신…록스타 연인 영향? ▶ ’우리 봉선이’는 사나운 개? 신봉선 검색굴욕 폭소 ▶ 이승기-신민아 서로 다른 ‘구미호’ 키스신 소감 눈길
  • [민간사찰 파문] 선진연대로 총구 돌린 민주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파문과 관련, 민주당의 전선이 확대되고 있다. 사찰을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윤리지원관실과 ‘영포 라인’를 넘어 공기업과 금융권 인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의심을 사고 있는 선진국민연대 쪽으로 공격의 화살을 이동시키고 있다. 여권 내 권력 투쟁을 역이용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선진국민연대는 지난 대선 때 당시 이명박 후보를 지원한 외곽조직으로 박영준 국무차장이 핵심 역할을 했다. 민주당은 박 차장을 민간인 사찰 사건의 배후로 지목하고 있다. 민주당 입장에선 박 차장이 선진국민연대와 ‘영포 라인’의 ‘공통 분모’인 셈이다. 민주당 진상조사특위 관계자는 7일 “이번 사건의 본질은 영포회가 아니다.”면서 “어떤 목적으로 광범위한 민간인 사찰을 자행했는지를 밝히는 것과 국정을 흔든 비선라인의 실체를 밝히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모 기업 경영진 및 KB금융지주 회장 선임에 영향력을 행사한 의혹이 있는 선진국민연대를 파헤쳐야 비선의 실체가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금융감독원 등에 자료를 요구해 금융회사에 선진국민연대에서 활동했던 인사가 ‘낙하산’으로 들어갔는지를 파악할 계획이다. 국회 정무위 소속 한 의원은 “선진국민연대 인사가 공기업과 금융회사의 집행임원 및 감사 또는 경영고문으로 임명됐다는 소문이 예전부터 많았다.”면서 “하지만 선진국민연대 명단을 파악하기가 힘들고, 금융회사가 구체적인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실체 파악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도 이날 “청와대와 한나라당 쪽에서 ‘박영준 차장의 횡포를 민주당이 막아 달라.’며 제보를 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박 원내대표는 “저수지 둑에 쥐구멍이 뚫린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면서 “민간인 불법사찰은 전 정권에 임명된 공기업 기관장들을 정리하고 자기 사람을 논공행상으로 심기 위해 시작됐지만, 지금은 권력투쟁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박 차장이 청와대 개편안을 작성해 청와대에 들어오겠다고 하니까 (여권 일각에서) 이를 막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인규 지원관의 불법사찰로 촉발된 영포회 파문이 박 차장이 주도한 선진국민연대 의혹,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인선 의혹 등으로 확산되는 배경을 여권 내부의 권력투쟁으로 지목한 것이다. 한편 민주당 진상조사특위 위원들은 청와대를 항의 방문해 박형준 정무수석을 만나 “대통령이 나서지 않으면 실체를 밝히기 어렵다.”며 민정수석과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업무 협조 체계 및 윤리지원관실의 보고를 따로 받아온 것으로 알려진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의 대통령 독대 여부에 대해 자료를 제출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박 수석은 “대통령이 이 비서관으로부터 보고받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 조영택 대변인은 “공정거래위원회는 사찰 피해자 김종익씨와 소속 회사에 대해 대표직 사임과 주식이전을 강요한 것으로 알려진 국민은행을 조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오늘 한국전쟁 60주년] “시산혈해 55일 전투… 다리에 6발 총상 지옥이었다”

    [오늘 한국전쟁 60주년] “시산혈해 55일 전투… 다리에 6발 총상 지옥이었다”

    “1950년 8월 다부동 일대는 그야말로 시산혈해(屍山血海)를 이뤘어. 당시 참상은 필설로는 도저히 표현 못 할 정도로 잔인했지.” 6·25 전쟁 발발 60주년을 앞둔 24일 경북 칠곡 다부동 전투에 참가했던 여준구(80·다부동 전투 구국용사회 본부 사무총장)옹과 함께 역사의 현장을 찾았다. 여옹은 “이곳을 찾으면 언제나 만감이 교차해. 55일간 밤낮 없이 벌인 사투를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지지만, 전우들이 이곳을 사수했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뭉클하지.” 그는 1950년 7월15일 자진 입대했다. 20살 때였다. 경산국민학교에서 10여일간의 짧은 훈련을 받고 상주 함창 전투에 투입됐다. 하지만 그가 속했던 국군 제1사단(사단장 백선엽 장군)은 바로 후퇴해야 했다. “북한군이 파죽지세로 남하하는 바람에 국군은 순식간에 다부동까지 밀려났어. 그 때가 8월 초였지.” 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국군과 미군은 다부동에 최후의 방어선을 쳤다. 대구 북방 22㎞에 있는 다부동은 북서쪽은 유학산, 동쪽은 가산으로 둘러싸여 협곡을 낀 천혜의 방어선이었다. 이 일대를 적에게 넘겨주면 대구와 부산을 내주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특히 8월15일까지 부산을 점령하라는 김일성의 독전(督戰) 명령을 받은 북한군이 주력 사단을 집중 투입, 총공세를 펼쳤다. 국군과 미군 역시 사력을 다해 방어했다. 먼저 국군 1사단과 북한군 3개 사단간에 혈전이 붙었다. 뺏고 뺏기는 혈전이 55일간 이어졌다. 소총수였던 여옹은 “하루에도 고지의 주인이 서너 차례씩 바뀌기도 했어. 미군 항공기가 도와주는 낮에는 우리가 고지를 점령했고 밤이 되면 빼앗겼지. 한 번 전투가 벌어지면 산 정상이 2~3m 낮아질 정도로 포탄과 총을 쏴댔지. 총구가 벌겋게 달아오를 때까지 쏘고 또 쏘다가 정신을 잃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 전우가 북한군의 총탄에 맞아 쓰러지면 미쳐서 날뛰고….” 그는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면서 국군과 북한군, 미군의 시체가 수북히 쌓였고 삼복더위에 시체가 썩어 악취가 진동했어. 개울물은 항상 피로 검붉은 색을 띠었지.”라고 회상했다. 한국전쟁사에 따르면 8월1일부터 9월24일까지 다부동 전투에서만 북한군 2만 400여명, 한국군 1만여명이 전사했다. 그도 다리에 6발의 총상을 입는 중상을 당했다. 밤샘 혈투를 벌이는 데 지급된 식량은 주먹밥 하나였다. 그런데 날이 새면 주먹밥 6~7개가 돌아왔다고 했다. 보급 사정이 좋아서가 아니라 전우들이 야간 전투에서 그만큼 전사했기 때문이었다. 시체를 치우다 피범벅이 된 손으로 주먹밥을 먹어야 했고 타들어가는 목을 축이기 위해 철모에 오줌을 받아 마셔야 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었고 아비규환의 연속이었다고 전했다. 이곳에서 당시의 치열했던 전쟁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처절한 전투 현장이었던 유학산 기슭으로 중앙고속도로와 국도 5호선이 시원하게 뚫렸다. 계곡에는 공장과 민가들이 빼곡히 들어찼다. 여옹은 “청소년들은 6·25 전쟁을 모르고, 기성 세대조차 이를 잊고 있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면서 “6·25의 실상을 바로 알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전우들을 지금 세대가 따뜻하게 안아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 사진 칠곡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5·18민주화운동 30주년] 80년 5월의 광주…그날 무슨일이

    1988년 국회 5공청문회를 통해 5·18의 진실이 조금 드러났다. 명예 회복과 책임자 처벌, 피해자 보상도 이뤄졌다. 하지만 핵심 쟁점인 발포명령자는 아직껏 미궁이다. 1980년 5월 광주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5월17~18일 17일 오후 9시40분 임시국무회의가 비상계엄확대 선포안을 의결했다. 신군부는 곧 전국 대도시에 군대를 투입했다. 7공수여단 2개 대대가 전남대와 조선대에 배치됐다. 18일 오전 10시쯤 전남대 정문에서는 휴교령이 내려진 줄 모르고 등교한 학생들이 “전두환은 물러가라.”며 구호를 외쳤다. 계엄군은 진압봉을 휘두르며 해산에 나섰다. 10여명의 학생이 다치고, 나머지는 시내로 진출했다. ‘5월항쟁’의 신호탄이었다. ●5월19~20일 광주는 전날 벌어진 공수부대의 ‘만행’으로 공포와 분노의 도시로 변했다. 19일 오전부터 금남로에는 대학생·시민 2000~3000명이 나와 군경과 대치했다. 11공수여단 3개 대대가 가세했고 젊은 사람들이 무차별 폭행당했다. 시내 병원들은 부상자로 넘쳤다. 20일부터는 3공수여단 1100여명이 추가 파견됐다. 하지만 전날과 달리 M16 소총에 착검도 하지 않았다. 말씨도 공손했다. 금남로에는 10만여명의 인파가 운집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MBC방송국 등이 불탔다. 밤 11시쯤 광주역 부근에서 총성이 울렸다. 차량을 앞세워 저지선을 돌파하려던 시위대를 향한 첫 발포였다. ●5월21일 새벽이 돼도 군중들은 물러설 줄 몰랐다. 세무서·파출소 등이 검은 연기로 뒤덮였다. 전날 광주역 발포로 숨진 시체 2구가 시민들의 손에 넘어왔다. 오전부터 수만명의 인파가 금남로를 꽉 채웠다. 오후 1시 정각. 전남도청 옥상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때맞춰 계엄군의 총구가 일제히 불을 내뿜었다. ●5월22~25일 날이 밝자 광주는 ‘해방구’로 변했다. 사실상 무정부상태였다. 시민군은 치안유지를 맡는 등 ‘자치 활동’에 들어갔다. 주민들은 주먹밥을 해다 날랐다. 각계 원로가 참여한 ‘5·18수습대책위원회’가 구성됐으나 ‘결사항전’을 주장한 강경파가 주도권을 잡았다. 이 기간 단 한 건의 범죄도 발생하지 않았다. ●5월26~ 27일 26일 새벽. 마침내 계엄군은 탱크를 앞세우고 시내로 진입했다. 원로 수습위원들이 최후 담판을 시도했으나 무산됐다. 27일 새벽 4시쯤 도청 안에서 첫 총성이 울렸다. 특공대는 5시10분쯤 시민군을 완전 진압했다. 항쟁지도부가 머물렀던 상황실 등은 피로 물들었다. 열흘간의 항쟁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사설] 안보구멍 민·관·군 협력체제로 메워라

    어제 이명박 대통령이 건군 이래 처음으로 전군 주요 지휘관회의를 주재했다. 천안함 참사의 배후가 북한이란 정황이 짙어져 가는 가운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혈맹’격인 중국을 방문 중인 긴박한 상황에서였다. 이 대통령은 국가안보총괄점검기구를 구성해 위기관리시스템의 재정비를 약속하면서 군의 전방위 개혁을 주문했다. 그러나 우리는 천안함 침몰이 상징하는 국가안보상의 허점은 민·관·군이 혼연일체가 되어야만 온전히 메울 수 있다고 믿는다. 천안함 사태가 안보 태세 전반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하는 계기가 되어야 함은 불문가지일 것이다. 작전 중인 초계함이 경계에 실패해 피침된 뒤 즉각적 대응은커녕 공격 배후조차 제때 집어내지 못한 일이 어디 보통 상황인가. 그래서 군의 긴급대응태세와 보고지휘체계, 정보 능력 등이 군 개혁의 과제로 집약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사후약방문이지만 청와대 안보특보 신설이나 국방개혁안의 수정 등도 응당 지켜져야 할 약속이다. 잠수함과 특수부대 등 북의 비대칭전력을 통한 게릴라식 기습에 대비하는 역량을 기르는 것도 과제다. 군사적 차원의 안보 인프라 구축 못지않게 중요한 게 느슨해진 안보의식을 다잡는 일이다. 이 대통령은 군의 매너리즘을 지적하며 “국민들도 불과 50㎞ 거리에 장사정포가 우리를 겨누고 있음을 잊고 있다.”고 첨언했다. 민·관·군의 협력이 군기강 확립만큼 중시돼야 할 근거다. 민간 어선이 천안함 함미를 먼저 찾아냈듯이 말이다. 안보에 도움이 되는 민간의 역량이 크게 신장하고 있으니, 이를 끌어내야 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안보 이슈마저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한다. 군함이 침몰하고 함께 사는 공동체에 물이 새고 있는데 내부 폭발설 등 근거 없는 유언비어성 주장으로 분열을 자초한 일은 자성해야 한다. 일사불란하게 외적에 대응해도 시원치 않을 터에 총구를 안으로 돌려서야 될 말인가. 군이 천안함 참사 초기 대응 과정에서 갈팡질팡한 사실은 통렬히 지적되어야 하고 책임도 물어야 한다. 하지만 더욱 타기해야 할 일은 ‘천안함 국난’을 두고 지방선거에서 어느 당이 유리할 것인지 주판알을 튕기는 행태다. 나라가 무너진 뒤 여야, 진보·보수가 어디 따로 존재할 수 있겠는가.
  • 마약거물 인터뷰 주간지 괴한이 ‘싹쓸이’ 매진?

    마약거물 인터뷰 주간지 괴한이 ‘싹쓸이’ 매진?

    막대한 현상금이 걸린 마약카르텔 두목과 인터뷰에 성공한 잡지가 가판대에 걸리기도 전에 매진됐다. 하지만 잡지는 “애써 만든 책이 다 팔려버렸다.”며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재고 없이 팔렸지만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고 있는 이 잡지는 멕시코의 주간지 ‘프로세소’. 잡지가 이런 말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 4일 발행된 이번 호에서 프로세소는 멕시코 마약계의 거물 이스마엘 마요 잠바다(사진)와의 인터뷰를 실었다. 표지에는 잠바다와 ‘프로세소’의 베테랑 기자가 나란히 선 사진을 게재했다. 공을 들인 만큼 기대도 컸다. 하지만 잡지는 가판대에 오르지도 못했다.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잠바다가 무대로 삼고 활개치고 있는 멕시코 북부 시날로아 주(州)에서 잡지를 풀 때였다. 지국이 잡지 200권을 첫 도매상에 넘긴 후 남은 물량을 운반할 때 갑자기 권총을 무장한 괴한들이 나타났다. 총구를 들이밀면서 “남은 잡지를 한꺼번에 팔라.”고 요구했다. 지국은 남은 1600여 권을 고스란히 전량 괴한들에게 팔아야 했다. 재고는 단 1권도 남지 않았지만 괴한들이 잡지를 독식하는 바람에 단독인터뷰는 빛을 내지 못했다. 시날로아 주 마약계의 1인자로 알려진 잠바다는 미국에 마약을 밀매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미국은 그에게 현상금 500만 달러(약 60억원)를 걸었다. 멕시코 당국은 5만 규모의 군과 경찰을 시날로아에 투입, 일대에서 활개치는 잠바다의 마약카르텔과 전쟁에 치르고 있지만 잠바다는 당국을 비웃듯 잡히지 않고 있다. 시날로아를 무대로 암약하는 잠바다 카르텔 등이 지난 3년간 자행한 살인사건은 1만5000건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잠바다는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마약이 부정부패만큼이나 사회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마약근절은 절대 불가능하다.”면서 “내가 죽거나 체포되어도 미국을 향한 마약거래는 결코 중단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문성근 “작은 연못에서 한국영화 미래 봤다”

    문성근 “작은 연못에서 한국영화 미래 봤다”

    문성근(57)은 미안하다고 했다. 한국 영화 발전을 위해 제대로 역할을 해냈는지 항상 가슴이 쓰리다고 했다. “후배들을 볼 면목이 없다. 우리 영화판을 지켜내는 데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담배 한 대를 꼬나물고 긴 한숨을 내쉰다. 새달 15일 개봉하는 영화 ‘작은 연못’으로 돌아온 문성근을 만나봤다. 무엇이 그를 고개 숙이게 만들었을까. ●작은 연못은 전쟁 그 자체에 대한 반성 작은 연못. 전쟁 영화다. 1950년 7월. 한반도 허리에 있는 충북 영동군 산골짜기 대문바위골. 미군이 패하면서 전선은 읍내까지 내려오고 마을에 피란령이 내려진다. 주민들은 피란길에 오른다. 미군이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7월 땡볕 아래 꾸역꾸역 남하하는 사람들. 하지만 믿음과 달리 그들 머리 위로 폭탄이 떨어지고 병사들은 이들을 향해 난사를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은 도대체 총구가 왜 자기들에게 향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쓰러져 간다. 한국 현대사의 씻을 수 없는 상처 ‘노근리 학살 사건’이다. 이데올로기가 뭔지도 몰랐던 우리 농민들. 하지만 그들은 피를 흘려야 했다. 그렇다. 전쟁은 끔찍했다. 종족 싸움이든, 종교 분쟁이든, 이권 혈투이든, 이데올로기 대립이든,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문성근은 말한다. “충돌이 일어나면 민간인이 가장 많이 죽는다. 어떤 형태의 전쟁이든 정당성은 없다. 그게 작은 연못의 메시지다.” 문성근은 원래 노근리 참사에 관심이 많았다. 평소 알고 지내던 AP통신 기자는 “노근리 보도로 퓰리처상을 받은 동료 기자(AP통신 기자)가 왜 한국에서 노근리 참사를 다룬 영화가 나오지 않는지 의아해하더라.”고 전했다. 때마침 이상우 감독이 노근리 영화를 만든다고 했다. “이 감독 자신도 실향민이라 그 누구보다 분단의 현실에 가슴 아파했다. 그래서 좋은 영화가 만들어질 거라 믿었다.” 노근리 유족들을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눴다. 참사 때 눈이 먼 할머니 이야기, 부모를 다 잃고 혼자 살아온 사람의 사연…. 영감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영화를 찍었다. 송강호, 문소리, 유해진 등 특급 스타들이 출연료를 받지 않고 함께 하겠다고 나섰다. 동지애였다고 했다. “제작비가 부족하다 보니 도움이 절실했다. 자연히 배우들도 찾기 어려웠고. 뜻밖에 충무로를 이끌어가는 간판 배우들이 나서줬다. 특히 출연배우 중의 한 사람인 김뢰하의 공이 컸다. 자신의 친정인 대학로 연극계에 ‘좋은 영화를 만든다. 도와달라.’고 일일이 전화를 돌렸다. 모두 흔쾌히 와 줬다.” 영화가 ‘반미’(反美) 느낌이 난다고 슬쩍 찔렀더니 문성근은 이내 진지해진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라더니 “정말 그렇다면 그 사람은 편협한 관점을 지닌 것”이라고 점차 목소리를 높인다. “공격하는 미군들도 고민한다. 그들도 평생 무거운 짐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지만 문제는 전쟁이다. 총을 쏜 사람이 중국군이든, 북한군이든 뭐가 달라지나. 누구를 대입해도 똑같다. 그 잔혹성을 말하고 싶었다.” ●송강호·문소리 등 톱스타들 노개런티 자진합류 문성근은 지금의 영화판에 아쉬움이 크다. 책임 의식도 느낀다. 1999년 영화진흥공사가 영화진흥위원회로 재탄생했을 당시 그는 부위원장을 맡았다. 어떻게 하면 한국 영화산업을 부흥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다. 특히 2000년대 초반부터 중·후반까지 한국 영화가 전성기를 누렸을 당시, 그 전성기의 좋은 산업 구조를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점이 후배들에게 못내 미안하다. “대형 배급사가 밀려 들어오자 영화인의 힘이 약해졌다. 이걸 막지 못했다. 결국 영화인은 계약 관계에서도 항상 약자가 돼 버렸다. 산업구조 안에서 하부구조로 전락해 버렸다. 힘의 균형이 무너져 버린 거다.” 그는 항상 영화인들이 뭉쳐 그 힘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영화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배급사가 있어야 한다는 구체적인 방향도 제시했다. 하지만 잘 안 됐다. 영화인들이 안주했던 것도 문제였지만 대형 배급사의 힘이 너무 강했다. “결국 그 문제점이 지금 드러나고 있다. 영화계의 다양성이 죽어가고 있지 않나. 영화인들은 이런 현실에 질려 버렸다. 그래서 다들 힘이 빠졌다.” 하지만 문성근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문성근은 작은 연못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 속에서 한국 영화의 미래를 봤다고 했다. 영화인들의 구애 속에 국내 최고의 컴퓨터그래픽(CG) 회사인 ‘모팩 스튜디오’에서 무보수로 작업을 해줬다. 물론 개봉 뒤 수익은 흥행성적에 따라 나눠 갖는다. 촬영장비 업체들도 선뜻 나섰다. 덕분에 40억원 규모의 영화를 10억원에 해결했다. “작은 연못을 찍을 때 후배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했다. 하지만 좋은 대본을 가지고 영화인들 스스로 투자를 받고 이렇게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다. ‘우리가 집단으로 붙어보자. 무슨 영화인들 못하겠냐.’고 말하면서.” ‘4대강 사업’ 반대 다큐멘터리를 찍는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문성근은 아니라고 했다. 다만 하고 싶은 말은 많다고 했다. “정부를 믿고 싶다. 하지만 더 시급한 사안이 있지 않을까. 아직도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 무상급식도 해야 하고…. 할 일이 많다. 그걸 먼저 생각해 주길 바랄 뿐이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오늘의 눈]실종자 가족 모욕한 軍/김상연 정치부 차장

    [오늘의 눈]실종자 가족 모욕한 軍/김상연 정치부 차장

    26일 밤 천안함 침몰사고는 발생 30여분 만에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군의 보고체계는 비교적 무난하게 작동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 중에서 가장 먼저 보고받아야 마땅한 천안함 승선 장병들의 가족은 보고라인에서 배제됐다. 아들을 열달 동안 배 안에 품고 20년 넘게 키우느라 골수가 다 말라버린 어머니들은 TV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뉴스만으로 아들의 생사를 짐작해야 하는 가족들의 불안과 공포는 가히 고문이라 할 만큼 서서히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이었다. 평소 아들이 천안함을 탄다는 사실만 알고 있던 한 어머니는 그 밤중에 여기저기 수소문해 “천안함이 몇 대 있느냐.”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고, “천안함은 한 대뿐이다.”라는 소리에 실신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채 봉두난발로 경기 평택시 해군 2함대사령부로 들이닥친 가족들은 “(군 당국으로부터) 전화 한 통 못 받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책임 있는 간부가 나타나지 않자 이들은 바리케이드를 뚫고 안으로 쳐들어갔다. 그 앞을 아들과 같은 나이 또래의 병사들이 총구를 겨누며 막아섰다. 그 병사들의 조준은 군법에 의하면 정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성을 상실한 총구는 무너져가는 제국의 깃발처럼 허망해 보였다. 가족들에 대한 모욕은 해군 측이 생존자와 실종자 명단이 적힌 종이 쪽지를 전단지 나눠주듯 배포할 때 절정에 달했다. 그것은 흡사 대입 합격자나 아파트 분양 당첨자를 알려주는 모습과도 닮아 있었다. 그곳에서 실종 장병들의 목숨은 종이 한 장만큼이나 하찮게 보였다. 병사가, 그리고 그 가족이 이렇게 욕을 당하면 군 수뇌부 역시 그쯤되는 집단으로 인식된다는 점을 아무래도 모르는 모양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모욕한 뒤에야 남으로부터 모욕을 받는다는 옛 중국 성현의 말씀은, 오늘날에도 동방의 이 나라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carlos@seoul.co.kr
  • “총이 휘어지네?”…한국형 ‘코너샷’ 개발

    “총이 휘어지네?”…한국형 ‘코너샷’ 개발

    시가전이나 건물 안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굴절형 화기’가 국내 기술에 의해 개발됐다. 국방과학연구소(ADD)는 23일 육군ㆍ방위사업청ㆍ경찰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굴절형 화기 개념구현 연구개발 발표회’를 열고 국산 굴절형 화기의 시연회를 가졌다. 굴절형 화기는 총몸은 그대로 놔둔 채 총구만 좌우로 돌려 사격할 수 있는 장비를 말한다. 엄밀히 따지면 굴절형 화기는 총이 아닌 총에 장착하는 일종의 액세서리다. 굴절형 화기 자체는 사격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비 앞쪽의 꺾어지는 부분에 권총을 장착해 적을 공격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국산 굴절형 화기에는 ‘K-5’ 9㎜ 권총과 CMOS 센서를 이용한 카메라, 접안식 디스플레이, 전자식 격발장치 등이 탑재됐다. 굴절형 화기는 모퉁이가 많은 시가지나 실내에서 전투를 벌일 때 그 진가가 발휘된다. 기존의 총들은 모퉁이 너머로 병사가 몸을 드러내 적을 찾아야 한다. 만약 그 곳에 적들이 매복하고 있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굴절형 화기를 사용하면 몸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 단지 총구를 꺾어 밀어넣으면 된다. 총구 아래에는 카메라가 장착돼 있기 때문에 몸을 드러내지 않고도 적을 찾아 사격할 수 있다. 이런 특징으로 시가전이 잦은 이스라엘과 미국은 2005년에 ‘코너샷’(Corner Shot)이라는 굴절형 화기를 공동으로 개발해 사용중이다. 우리나라도 굴절형 화기의 유용성에 주목하고 코너샷을 수입해 707특임대 같은 일부 특수부대에 지급했으나 일선에서 다양한 개선요구가 제기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산 굴절형 화기는 이런 요구를 반영해 개발됐다. 기존의 코너샷은 총몸에 달린 액정화면을 통해 촬영된 영상을 확인한 것에 비해 국산 장비는 얼굴에 직접 걸치는 접안식 디스플레이를 통해 영상을 볼 수 있다. 또 레이저 표적 지시기와 손전등이 기본 장착돼 있어 어두운 실내나 야간에도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지 않고 적을 공격할 수 있다. 서울신문 M&M 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영화 ‘포화 속으로’ 막바지 촬영 현장속으로

    영화 ‘포화 속으로’ 막바지 촬영 현장속으로

    “회색 선이 1번이고 까만 선이 2번이야. 헷갈리면 안돼.” 스태프들이 전선을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폭탄이 터지는 효과, 총알이 쏟아지는 효과를 내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저 멀리 ‘자유를 빼앗는 괴뢰도당을 물리치자’, ‘조국을 팔아먹는 북한괴뢰도당’이라는 플래카드가 펄럭인다. 어떤 이는 허물어진 벽에다 빨간색 페인트를 뿌린다. “자, 잘 들으세요. 오른손 검지를 방아쇠 울에 갖다대고 왼손은 총열을 가볍게 잡습니다. 당장 달려갈 수 있게 왼발은 앞굽이, 뒷발은 쭈욱 펴고 총구는 위로 하세요.” 한 스태프는 북한군 복장을 한 보조 연기자들에게 연기 지도를 하고 있다. 북한군 장교 옷차림의 차승원이 뒤를 돌아다본다. “내가 빵~ 쏘면 그때 공격이야. 와~ 하고 뛰어가면 돼.” 보조 연기자들이 한껏 입을 모은다. “네!” 반대편에서는 전문식 무술감독이 국군 장교 차림새의 김승우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개머리판을 어깨에 바짝 대고 쏘다가 총알이 안나오면 버리고 권총을 꺼내서 쏘는 겁니다. 안전장치 풀어주시고, 오른팔은 더 들어주세요.” 한 스태프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아까 시체 역할 했던 분들 다시 앞으로 나오세요. 아까처럼 누우세요. 자, 나머지 인민군들은 뒤로 갑니다. 카메라까지 뒤로 뒤로~” “스태프들 빠져주세요. 올 스탠바이, 감독님 슛 갈게요.” 마침내 이재한 감독이 힘껏 소리친다. “레디, 액션!” ‘두두두두두’ 국군 진지에 있던 M-1919 라이트머신건 2정이 불을 뿜는다. 여기저기서 총알이 튀는 효과와 폭탄이 터지는 효과가 잇따른다. 잠시 반격하던 국군이 부상병을 데리고 슬금슬금 물러났다. 차승원이 하늘을 향해 권총을 들고 발사하자, 대기하고 있던 북한군이 퇴각하는 국군을 쫓아 돌격한다. 이재한 감독의 목소리가 울린다. “컷!” 지난 19일 경남 합천군 용주면에 위치한 합천영상테마파크에서는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 ‘포화 속으로’의 막바지 촬영이 한창이었다. 1950년 8월 낙동강과 포항 일대에서는 한국전쟁의 명운을 건 국군과 북한군의 처절한 전투가 펼쳐졌다. 영화는 당시 교복을 입은 채 포화 속으로 뛰어들어 북한군과 하룻밤 새 12시간을 맞섰던 학도병 71명의 실화를 다룬다. 지난해 12월 촬영을 시작(크랭크인)해 이달 말 작업을 마친다(크랭크업). 한국전쟁 발발 60년을 맞아 전쟁 영화들이 여럿 제작되고 있는 가운데 오는 6월 가장 먼저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음악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드렸는데 진지하고 깊은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라 고민을 많이 했다. 한 번은 인터넷에 ‘탑 학도병’이라는 검색어가 올라와 있기에 클릭해 보니 ‘탑이 도대체 무슨 병이 걸렸냐.’는 글이 달린 것을 봤다. 아이돌 가수로서 어린 친구들에게 잊혀져 가는 60년 전 기억을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전달하게 된 것 같아 열심히 하고 있다.”(탑) 권상우가 소년원 대신 전쟁터를 택한 문제아 갑조 역을, 빅뱅의 탑이 학도병을 이끌어야 했던 모범생 장범 역을, 김승우가 학도병들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인 강석대 대위 역을, 차승원이 북한군 766유격부대 박무랑 대장 역을 맡아 화제를 모으고 있다. “실제 전쟁터에는 영웅이 없다고 하는데 우리 영화가 그렇다. 독보적인 영웅이 없다. 전쟁과는 이해 관계가 없고 이념도 없는데 희생당하는 모습들이 많다. 작은 희생이 모여 결국 오늘날 우리가 잘살고 있다는 점을 느꼈으면 한다. 탑 군의 학도병이 빨리 나았으면 한다. 하하하”(김승우) 순제작비만 113억원이 투입되는 블록버스터이기도 하다. 100여m에 이르는 포항 시가지 재현에는 실제 건축 자재를 써서 30여채의 건물을 짓는 등 12억원이 들어갔다. 최대 500명의 보조 연기자를 동원하기도 했다. 이날 주인공 네 명이 처음으로 한꺼번에 마주치는 전투 장면을 찍는 데만 폭약 200㎏, 촬영용 총알 1만여발이 사용됐다고 한다. “최근 들어 잘 안된 작품이 많았는데 그런 시기에는 시야가 좁아진다. 조급해하지 않고 넓은 시야로 보려고 할 때 만난 작품이다. 교복을 입고 나온 작품이 모두 잘됐다. 이번 영화도 (‘말죽거리 잔혹사’처럼) 엔딩 장면이 옥상이다. 감정의 높낮이가 큰 캐릭터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토해낸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찍고 있다.”(권상우) 전문식 무술감독에게 톱스타 4명 가운데 누가 액션 연기가 뛰어나냐고 물었더니, 권상우와 탑은 젊고 몸이 빠르기 때문에 치고 받는 격투 장면에서 돋보이고, 김승우와 차승원은 총을 사용하는 장면이 많은데 카리스마와 파워가 대단하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남자 배우로서 규모가 큰 전쟁물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국경의 남쪽’에 이어) 다시 북한 사람 역을 하게 됐는데 독특한 뉘앙스에 카타르시스를 느낄 때도 있다. 같은 민족이지만 적으로 나오는 사람들에게 페이소스가 있다.”(차승원) 재미교포로 미국 뉴욕대에서 영화를 전공한 이재한 감독은 미국 사회의 한인 갱을 조명한 ‘컷 런스 딥’으로 데뷔했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와 ‘사요나라 이츠카’를 찍었고, 오우삼 감독의 ‘첩혈쌍웅’ 할리우드 리메이크판 연출자로 발탁돼 할리우드 입성을 앞두고 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포화 속으로’의 전투 장면 같은 경우 3차원(3D) 입체영상 전환도 고려하고 있다고 이 감독은 귀띔했다. “학도병 71명의 캐릭터는 새롭게 각색했지만 전쟁 과정이나 경위는 사실 그대로다. 전작에 멜로 영화가 많았지만 전쟁 영화와 대작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어서 전혀 생소하지 않다. 전쟁은 인간을 가장 적나라하고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는 소재다. 이념보다 인간에 초점을 맞춰 밀어붙이고 있다.”(이재한) 합천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무슨 영화 볼까]

    ■ 리키(드라마·판타지/12세 관람가) 감독 프랑소와 오종 줄거리 7살짜리 딸 리자와 싱글맘 케이티(알렉산드라 라미). 단둘이 살아가는 이들은 혹시 모를 이별과 소외로 두려움에 떨며 산다. 과거의 버림받은 마음은 결코 떨쳐질 생각을 하지 않고 그래서 함께 있으면서도 헤어짐을 미리 생각하며 그에 대한 대처를 고민한다. 이런 가운데 케이티는 파코(세르지 로페즈)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위기감은 더욱 높아만 간다. 케이티는 물론 리자조차 언젠가는 새아빠가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함을 갖고 살아간다. 이런 와중에 비범한 아기 ‘리키’가 태어난다. 이들의 인생은 어떻게 바뀌어 나갈까. 감상 가족을 바라보는 기발한 상상력! ■ 바비(드라마/15세 관람가) 감독 에밀리오 에스테베즈 줄거리 1968년 미국 LA 앰버서더 호텔, 60년대 미국 사회를 대변하는 그들이 있었다. 이상주의자 로버트 F 케네디 상원의원의 캘리포니아 대선 예비선거 사무소가 차려진 앰버서더 호텔. 분주하게 움직이는 참모와 선거원들, 마약을 한 선거 자원봉사자, 은퇴를 앞둔 도어맨, 전화교환원과 불륜에 빠진 총지배인과 그의 아내, 결혼을 앞둔 젊은 예비 부부, 한물간 여가수와 남편, 꿈에 그리던 다저스 경기를 보려는 주방보조와 주변 사람들. 환호 속에서 파티장을 빠져나가던 케네디를 향해 총구가 겨눠지고 이들의 운명은 엇갈린다. 감상 끝까지 잔잔하게 가는 게 관전 포인트. ■ 어웨이 위 고(코미디·드라마·로맨스/15세 관람가) 감독 샘 멘데스 줄거리 오랜 연인 버트(존 크래신스키)와 베로나(마야 루돌프)는 얼마 남지 않은 출산을 준비하며 그들 앞에 펼쳐질 인생에 대한 걱정과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버트의 부모는 앞으로 2년간 해외에서 살기로 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한다. 더 이상 그곳에 머무를 이유가 없어진 두 사람은 태어날 아기와 함께 살아갈 완벽한 장소를 찾기 위해 각자의 지인들이 살고 있는 곳을 방문해 보기로 한다. 먼 거리만큼이나 서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여행에서 그들은 과연 어떤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감상 잔잔함. 그리고 향긋함.
  • [기획 한국군 무기⑧] 세계 최초 복합소총 K-11

    [기획 한국군 무기⑧] 세계 최초 복합소총 K-11

    2008년 5월, 국방과학연구소(ADD)와 협력업체들은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무기를 세상에 선보였다. 이 날 세계 최초의 복합형 소총인 ‘K-11’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군의 성능평가를 거쳐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개발에 착수한 지 8년 만의 일이었다. K-11 복합소총은 간단히 말하면 20㎜ 유탄발사기와 5.56㎜ 소총을 통합한 무기다. 물론 단순히 유탄발사기와 소총을 통합한 무기라면 이미 ‘M-203’이나 ‘K-201’ 같은 무기도 있다. 하지만 K-11 복합소총은 좀 더 특별하다. K-201 유탄발사기가 별도의 격발장치가 있는 것에 비해 K-11 복합소총은 방아쇠 하나로 유탄과 소총을 같이 사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총은 조정간으로 유탄(폭발탄)과 소총(안전, 점사, 단발)을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K-11 복합소총의 가장 큰 특징은 20㎜ 유탄에 있다. 이 총의 20㎜ 유탄은 기존과 다른 지능형 유탄으로 충격·지연·공중폭발 신관을 탑재하고 있다. 보통 이들 신관을 선택하기 위해선 장전하기 전에 신관을 교체하거나 탄 자체를 바꿔야지만 K-11 복합소총의 20㎜유탄은 그럴 필요가 없다. 하나의 신관이 이 역할을 모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수는 스위치로 신관의 종류를 선택하고 방아쇠만 당기면 유탄이 총열을 지나갈 때 선택된 신관과 거리정보 등이 전기신호를 통해 자동으로 입력된다. 예를 들어 적들이 300m 전방의 바위 뒤에 숨었을 때 ‘공중폭발 신관’과 ‘거리 300m’를 선택하고 유탄을 쏘면 정확히 그 바위 위에서 탄이 폭발하는 식이다. 이 과정은 총몸 위에 있는 탄도 컴퓨터가 수행하며 목표와의 거리에 따른 탄도와 발사 자세 등을 고려해 더욱 정확한 정보를 유탄에 입력시킨다. 이 밖에 열영상장비가 내장된 2배율의 주·야간 겸용 조준경과 레이저 거리측정기도 통합돼 있어 유효사거리 내에서는 100%에 가까운 명중률을 보여준다. ◆ K-11와 미국의 XM-29 K-11 복합소총은 미국의 ‘OICW’계획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OICW는 차세대 개인화기 개발 계획으로 미국은 이 계획에 따라 ‘XM-29’라는 복합소총을 개발 중이었다. K-11은 5.56㎜ 소총과 20㎜ 지능형 유탄을 쓴다는 점에서 XM-29와 기본 개념이 비슷하다. 하지만 XM-29는 2005년에 개발이 중지됐다. 당시의 미군은 테러와의 전쟁으로 막대한 전비를 부담하고 있었고 XM-29 복합소총 역시 목표성능을 달성하지 못해 개발기간이 연장되면서 최초 1만 달러로 예상된 가격이 세 배 이상 올라가 버렸기 때문이다. 탄을 장전했을 때의 무게도 목표였던 6.8㎏를 초과해 8.2㎏이나 나갔다. 하지만 미국의 실패는 결과적으로 K-11 복합소총에 도움이 됐다.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실패 원인을 분석해 개발에 반영했기 때문이다. K-11 복합소총은 경량화를 위해 20㎜유탄발사기의 장전방식을 ‘볼트액션’(Bolt Action)을 채용했다. 이 방식은 쏠 때마다 장전 손잡이를 당겨줘야 하는 수동이지만 반자동인 XM-29보다 약 1㎏의 무게를 줄일 수 있었다. 저격에 가까운 정밀한 공격을 하는 지능형 유탄을 빠르게 연사할 이유도 적었다. 또 XM-29 복합소총은 소총(KE 모듈)과 유탄발사기(HE 모듈)를 분리할 수 있는 것에 비해 K-11 복합소총은 이 둘을 단일화했다. XM-29는 독립적인 구조를 갖추느라 무게와 가격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각각의 장단점은 있었지만 K-11이 경량화와 비용상승을 억제하는데는 성공했다고 평가된다. ◆ K-11 복합소총 제원 길이 : 860㎜ 무게 : 6.1㎏(탄창없이), 7㎏(탄창포함) 사용탄약 : 5.56 x 45㎜탄(KM193, K-100탄), 20㎜ 공중폭발탄 총구속도 : 약 920m/s(K-100), 약 600m/s(20㎜ 공중폭발탄) 유효사거리 : 약 600m(K-100), 약 500m(20㎜ 공중폭발탄) 탑재장비 : 열영상카메라, 탄도컴퓨터, 레이저 거리측정기 서울신문 나우뉴스 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기획 한국군 무기⑥] ‘살아있는 전설’ K-6 중기관총

    [기획 한국군 무기⑥] ‘살아있는 전설’ K-6 중기관총

    국군에는 1921년에 처음 등장해 지금까지 당당히 현역을 지키고 있는 무기가 있다. ‘K-6 중기관총’이 그 주인공이다. K-6 중기관총의 원형은 미군의 ‘M-2HB 중기관총’으로 그 역사가 9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은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투기에 장착해 쓰던 ‘M1917 기관총’의 위력을 강화하고자 12.7x99㎜ 탄과 함께 ‘M-1921 중기관총’을 개발한다. 이 기관총이 1933년에 ‘M-2HB’란 이름으로 미 육군에 정식 채용돼 지금까지 쓰이고 있다. 두 기관총은 총열의 냉각방식이 수랭식에서 공랭식으로 바뀐 것과 경량화가 이루어졌다는 점을 빼면 구조와 작동방식이 거의 같다. K-6 중기관총은 이 M-2HB를 개량한 것으로 ‘잠금턱방식’을 채용해 총열을 약 5초만에 교체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기존의 M-2HB 중기관총은 ‘나사회전식’이라 달궈진 총열을 석면 장갑을 착용하고 교체해야 했다. 때문에 시간도 오래 걸리고 화상의 위험도 있었다. 미군도 이 점을 개선한 QCB(Quick Change Barrel)형을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국군은 6·25전쟁 이후 미국제 M-2HB 중기관총을 써왔으나 1988년 이후로는 K-6 중기관총을 쓰고 있다. 사용탄약과 구조, 성능이 동일하기 때문에 별 문제 없이 전력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K-6 중기관총은 1654㎜에 이르는 길이와 37.7㎏이라는 무게 때문에 주로 고정식으로 운용되거나 차량에 거치되어 쓰인다. 이 기관총은 K-77 지휘장갑차와 K-30 비호 대공포, 최근 실전배치된 K-21 보병전투장갑차를 제외한 거의 모든 기갑차량에 장착돼 있다. 해병대에서는 수송용 트럭에도 일부 장착해 운용하고 있다. 해군도 제 1 연평해전 이후 참수리급 고속정에 K-6 중기관총을 2정씩 장비하고 있다. ◆K-6 중기관총의 잠재력 ① K-6 중기관총으로 저격을? K-6 중기관총은 37.7㎏이라는 듬직한(?) 무게와 1143㎜에 달하는 총열 길이 덕분에 명중률도 매우 뛰어나다. 분당 발사속도도 450~600발로 그리 빠르지 않아 숙련된 사수라면 한 발씩 끊어 쏘는 것도 가능하다. 실제로 K-6 중기관총과 동일한 성능을 가진 M-2HB는 약 2280m 거리의 적을 저격한 적이 있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7년 미 해병대의 카를로스 해스콕(Carlos Hathcock)이라는 저격수가 기관총에 스코프를 장착하고 세운 기록이다. 영국과 아르헨티나가 벌인 포클랜드전쟁 때도 아르헨티나군은 언덕 위에 M-2HB 중기관총 진지를 설치하고 다가오는 영국군을 향해 저격을 시도했다. 큰 피해를 주진 못했지만 쏠 때마다 영국군의 진격을 멈추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② K-6 중기관총으로 헬기-장갑차를? K-6 중기관총이 쓰는 12.7 x 99㎜탄은 애초부터 전투기용으로 개발됐기 때문에 사거리와 위력이 매우 뛰어나다. 때문에 국군을 비롯한 대부분의 군대에선 이 기관총을 대공용으로 쓰고 있고 실제로 4~5정이 화망을 이룰 경우 장갑이 빈약한 수송헬기에겐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또 철갑탄(AP탄)이나 철갑소이탄(API탄)을 이용하면 ‘M-113’급의 장갑차를 충분히 파괴하거나 작동 불능으로 만들 수 있다. ◆ K-6 중기관총 제원 길이 : 1654㎜ 무게 : 37.7㎏(총몸) 사용탄약 : 12.7 x 99㎜탄(보통탄 KM33, 철갑탄 KM2, 철갑소이탄 KM8, 철갑소이예광탄 KM20, 예광탄 KM17, 고압탄 KM1) 발사속도 : 450~600발/분 총구속도 : 930㎧ 총열 : 1143㎜(8조 우선) 급탄방식 : 탄띠 급탄방식(좌우 선택 사용가능) 유효사거리 : 1930m 최대사거리 : 6765m 서울신문 나우뉴스 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기획 한국군 무기②] ‘보병의 애인’ K-2 소총

    [기획 한국군 무기②] ‘보병의 애인’ K-2 소총

    80년대 중반 이후 군 생활을 했다면 한 번쯤은 ‘K-2’라는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군대를 가지않은 않은 사람들에게 이 이름은 히말라야의 산 이름이나 스포츠용품 메이커로 들리겠지만, 예비역들에겐 ‘애인같이’ 소중히 다뤄봤을 국군의 주력소총 이름이다. K-2 소총은 1984년 이후 수십만 정이 생산돼 전군에 보급됐다. 공군 및 해군의 일부와 육군의 후방부대만이 아직 ‘M-16A1 소총’을 사용 중이다. 이는 K-2가 부족해서라기보다 M-16A1이 많기 때문으로 보는게 정확하다. 전투경찰들도 K-2를 지급받기 때문이다. K-2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추진한 자주국방의 일환으로 1972년부터 개발이 시작됐다. ‘차기소총개발계획’에 따라 XB-1에서 XB-6까지의 시제품이 제작됐고 이 중 XB-6이 선정됐다. XB-6은 다시 XB-7을 거쳐 지금의 K-2에 이르게 된다. 개발시기만 보면 ‘K-1A 기관단총’보다 빠르지만 K-1A가 먼저 양산된 탓에 K-2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총은 한국인의 체형이 맞도록 개발됐기 때문에 크기를 줄이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길이가 970㎜로 M-16A1보다 2㎝가량 줄어들었으며 접철식 개머리판을 채용해 개머리판을 접었을 때는 길이가 730㎜밖에 되지 않는다. 다만 3점사 기구와 접철 등으로 무게는 300g가량 더 나간다. K-2의 정식명칭은 ‘K-2 돌격소총’(Assault Rifle)이다. ‘돌격소총’은 반동이 약한 소구경탄을 사용하는 자동화기를 가리키는 말로,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각국의 주력화기로 자리 잡으면서 기존의 ‘소총’과 구분이 모호해졌다. 대표적인 돌격소총으로는 구소련의 AK-47과 미국의 M-16시리즈가 있다. 사용하는 탄은 5.56㎜ NATO탄으로, K-2의 강선은 7.3인치당 1회전이라는 회전율을 갖고 있어 ‘KM193탄’과 신형 ‘K-100탄’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 만약 K-2에 신형탄을 사용하면 유효사거리가 600m로 대폭 늘어난다. K-100탄은 탄자(彈子)가 구형인 KM193탄에 비해 0.4g가량 더 무겁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소에는 K-1A와의 탄약호환성을 고려해 유효사거리가 460m인 KM193탄을 사용한다. K-1A가 KM193탄에 맞는 12인치당 1회전의 회전율을 갖기 때문이다. K-100탄을 K-1A에서 사용하면 탄도가 불안정해 명중률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 K-2에 대한 선입견 1) K-2는 M-16A1의 개량형이다? 우리나라는 베트남전을 통해 처음 M-16A1을 접해본 후 이 총을 역설계해 도면을 만들어냈다. 불법복제를 한 셈이다. 이후 원래 제작사인 미국의 ‘콜트’(Colt)에서 면허생산권을 따내긴 했으나 그만큼 우리나라의 총기제작기술이 부족했던게 사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M-16A1과 K-2를 관련 없다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이 두 소총은 작동방식이 다르다. M-16A1이 가스직동식인데 반해 K-2는 가스피스톤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는 동구권에서 많이 사용하는 AK-47과 같은 방식으로, M-16계열을 제외한 대부분의 돌격소총은 이 방식을 채용하고 있다. 2) K-2는 M-16A1보다 안맞는다? 총열제작기술의 부족으로 열에 약하고 명중률도 떨어진다는 논리다. 하지만 과거에 쓰이던 M-16A1 역시 K-2를 만든 대우정밀에서 제작했고, 오히려 K-2가 더 나중에 제작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모든 총기들이 그렇듯 K-2도 잘 쏘면 잘 맞는다. 특히 K-2는 원형 가늠쇠를 채용해 초보자들도 쉽게 조준할 수 있다는 평을 받는다. 특히 총구 위에 달린 가스압조절기를 통해 발사속도와 반비례해 반동을 조절할 수도 있다. 3) 개머리판이 불량이다? K-2의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인 접철식 개머리판은 많은 군 장병들의 원성(?)을 사는 단골 소재다. 재질이 플라스틱인 탓에 충격에 약하고 원하지 않아도 개머리판이 접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 대부분은 관리소홀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같은 회사에서 만든 것인데 K-2만 약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또 사용하면서 개머리판 고정나사가 헐거워진 것을 방치하면 틈이 벌어져 덜그럭 거리거나 쉽게 접히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 밖에 부품이 마모되거나 피로가 누적된 경우도 있다. K-2가 M-16A1을 대신해 ‘보병의 친구’가 된지도 벌써 15년이 지났기 때문이다. ◆ K-2 소총 제원 길이 : 730㎜ / 970㎜(개머리판을 펼쳤을 때) 무게 : 3.26㎏(탄창이 없을 때) 사용탄약 : 5.56 x 45㎜ NATO탄(제식명 KM193, K-100) 강선 : 6조 우선(7.3인치당 1회전) 발사속도 : 약 700~900발/분 총구속도 : 약 960m/s(KM193), 약 920m/s(K-100) 유효사거리 : 약 460m(KM193), 약 600m(K-100) 서울신문 나우뉴스 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기획 한국군 무기①] K-1A 기관단총

    [기획 한국군 무기①] K-1A 기관단총

    군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총이 있다면? 군대를 갔다 온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K-1A 기관단총’을 꼽는다. 가볍기 때문이다. 물론 가볍기로 치면 권총이 최고겠지만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일반 보병은 권총을 지급받을 수 없기 때문에 가벼운 K-1A를 선호한다. K-1A는 슬라이드식 개머리판과 짧은 총열 덕분에 전체길이가 653㎜밖에 되지 않는다. 개머리판을 펼쳐도 838㎜로 K-2 소총보다 짧다. 무게도 2.87㎏으로 K-2보다 400g 이상 가볍다. 이 총은 크기가 부담스러운 기갑병이나 통신병, 특전사를 위해 개발됐기 때문이다. K-1A는 1976년부터 개발에 들어가 1981년부터 양산을 시작한, 우리나라 최초의 자체개발 총기다. 이전에 쓰던 미국제 M-3 기관단총(일명 그리스건)이 노후되면서 이를 대체하기 위해서 서둘러 개발됐다. 처음 양산된 K-1은 지금과 생김새와 기능이 달랐다. 총구에는 나팔형 소염기가 달려 있었고 연발과 단발만 가능했고 3점사 모드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나팔형 소염기는 화염이 크게 발생하는 등 문제점이 지적돼 곧바로 현재의 원통형 소염기로 교체됐다. 명중률 향상과 탄약낭비를 줄이기 위해 3점사 모드도 추가됐다. 특히 원통형 소염기에는 발사반동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 오른쪽 위를 향해 3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이러한 개량을 거친 후 이름 뒤에 ‘A’를 붙여 지금의 K-1A가 됐다. 이후 기존에 생산된 K-1들도 모두 개량돼 현재는 K-1A만이 쓰인다. K-1A는 5.56㎜ NATO탄을 사용하기 때문에 엄연히 말해 ‘기관단총’은 아니다. 기관단총은 경찰특공대에서 주로 사용하는 ‘MP-5’와 같이 권총탄을 사용하는 총을 분류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래들어 K-1A와 같은 ‘단축형 돌격소총’(Carbine)들이 많아지면서 이들도 기관단총으로 분류된다. ◆ K-1A에 대한 선입견 K-1A에 대한 가장 큰 선입견은 ‘안 맞는다.’이다. 총열이 짧기 때문에 명중률이 떨어진다는 논리다. 하지만 특전사 대원들의 사격을 보면 신기에 가까운 명중률을 보여준다. 가벼운 무게와 철심형 개머리판 등의 이유로 반동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나 기본적으로 ‘잘 쏘면 잘 맞는’ 총이다. 다음은 K-1A는 K-2 소총의 단축형이라는 것. 하지만 K-1A는 가스작동식, K-2는 가스 피스톤 방식으로 작동방식이 다르다. K-2가 먼저 개발을 시작하긴 했으나 K-1A가 개발을 더 빨리 마치고 양산됐다는 점도 ‘단축형’이 아니라는 증거. 다만 아랫총몸 등 일부 부품이 호환되는 것은 사실이다. ◆ K-1A 제원 길이 : 653㎜/ 838㎜(개머리판을 펼쳤을 때) 무게 : 2.87㎏(탄창이 없을 때) 탄약 : 5.56 x 45㎜ NATO탄 (국군 제식명 KM193) 강선 : 6조 우선(12인치당 1회전의 회전율) 발사속도 : 약 700~900발/분 총구속도 : 약 820m/s 유효사거리 : 약 250m 제작사 : 대우정밀 서울신문 나우뉴스 최영진 군사전문기자 zerojin2@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씨줄날줄] DMZ 평화벨트/진경호 논설위원

    콜로라도강의 거센 물줄기가 무려 4억년을 휘감아 돌며 만들어낸 대협곡 그랜드캐니언. 동서 446㎞에 걸쳐 펼쳐진 이 협곡은 2000여종의 식물을 비롯해 지구상에서 가장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으로 꼽힌다.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1700년대 스페인의 군인들처럼 그랜드캐니언을 발견한 사람이 적지 않았겠으나, 본격적인 탐험을 통해 이를 세상에 알린 이는 미국의 존 웨슬리 파월이다. 1869년 일이다. 그 뒤로 39년이 지난 1908년. 미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친환경주의자로 꼽히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이곳을 국립기념지로 지정했다. 그러나 그 뒤로 앞다퉈 달려드는 개발업자와 미 의회의 집요한 저항을 뚫고 이곳을 국립공원으로 묶어두기까지는 무려 11년을 더 끌어야 했다. 지난해 11월 경기도 연천 등지의 서부지역 비무장지대(DMZ)의 생태계를 살피던 환경부 민·관 합동 조사단은 희한한 경험을 했다. 조사단을 태운 차량이 10m 앞까지 다가갔건만 두루미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꿈쩍 않기로는 삵도 마찬가지였다. 조사단을 옆에 두고도 풀섶에 납작 엎드린 채 꿩만 노려볼 뿐이었다. 사람을 본 적이 없고, 그래서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지도 모르는 그들 앞에서 머쓱해진 건 조사단일밖에. DMZ를 생태·평화벨트로 조성하겠다고 정부가 밝혔다. DMZ를 따라 강원도 고성에서 인천 강화까지 495㎞의 민통선 지역에 자전거길을 내고 생태관광지와 탐방코스를 개발한다고 한다. 2012년 생태관광이 세계 관광의 25%를 차지할 것이라니, DMZ는 그야말로 블루오션임에 틀림없다. 56년간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분단의 현장이다. 152개 희귀종을 비롯한 1900여종의 동·식물이 인간의 총구 앞에서 평화롭게 공존한다. 말 그대로 스토리를 갖춘 테마관광의 황금어장이다. 한데 두루미와 삵도 그리 생각할지 모르겠다. 생태를 보전하면서 관광을 개발하는 형용모순을 이뤄내겠다는 정부의 야심찬 포부가 그저 경이롭다. “그냥 있는 대로 두세요(Leave it as it is!)” 날것의 그랜드캐니언을 후손에게 헌사한 루스벨트가 106년 전 한 말이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건슈팅 게임 ‘바이오하자드’, 두 번째 국내 출사표

    건슈팅 게임 ‘바이오하자드’, 두 번째 국내 출사표

    건슈팅 게임 ‘바이오하자드’가 국내에서 두 번째 총구를 겨눈다. 게임업체 캡콤엔터테인먼트코리아는 닌텐도 Wii(위)용 ‘바이오하자드 다크사이드 크로니클즈’를 오는 11월 중에 자막 한글화해 발매한다. ‘바이오하자드 다크사이드 크로니클즈’는 ‘바이오하자드 엄브렐러 크로니클즈’의 후속작 격인 게임이다. 이 작품은 시리즈 중에서도 인기가 높은 ‘바이오하자드2’, ‘바이오하자드 코드명 베로니카’를 수록했으며 레온과 크라우저를 동료로 삼아 게임을 진행한다. 단순히 총을 난사하는 것에서 벗어나 지형지물을 이용하고 커맨드 액션을 통해 위기를 탈출하는 등 다양한 캐릭터 움직임을 제공한다. 전작이 어려웠던 점을 개선해 ‘이지’(Easy) 모드 이용시 자동으로 조준하는 기능을 추가했으며 파트너가 게임에 관여하는 2인 1조 시스템으로 협력 진행을 강조했다. 서울신문NTN 최승진 기자 shaii@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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