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총격
    2026-06-16
    검색기록 지우기
  • 아주대
    2026-06-1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201
  • IRA지도자/영군·경 철수요구/북아일랜드 구교도 탄압 중지도

    【더블린 로이터 AFP 연합】 아일랜드공화군(IRA)의 정치 조직인 신 페인당의 게리 애덤스 당수는 2일 북아일랜드의 구교도 지역에서 영국이 군대와 경찰을 철수시킬 것을 요구했다. 애덤스 당수는 이날 더블린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영국군과 경찰은 민족 지역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라며 영국이 즉각 비무장화 작업을 시작할 것을 촉구했다. 애덤스 당수는 IRA가 휴전을 선언한 이후 첫 기자회견을 갖기 직전 이같이 말하고 영국은 이번 휴전 선언을 계기로 불법 수색,체포를 중지하고 구교도를 억압하는 모든 종류의 악법을 폐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카톨릭계 주민 총격/신교단체,“자파 소행” 【벨파스트 AP 연합】 ‘북아일랜드의 신교계 과격단체 「얼스터 해방전사들(UFF)」은 1일 발생한 카톨릭계 주민에 대한 총격 사건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2일 주장했다. UFF는 언론에 성명을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 아일랜드공화군(IRA)이 선포한 휴전 첫날 카톨릭계 남자 1명이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은 자신들이 저지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격 사건은 IRA가 대영 투쟁 25년만에 선언한 역사적인 휴전 첫날 발생해 신교계 과격단체들이 IRA의 휴전 선언을 무효화시키기 위해 공세를 가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았다.
  • 비반군,한국인 7명 억류/민다나오 신성 공사장

    ◎군과 교전중 난입,인질극/“전원긴급대피 무사”/신성 【코타바토(필리핀) AP AFP 연합】 필리핀 회교반군들이 27일 남부 민다나오섬 코타바토시에서 건설공사중이던 한국인 근로자 7명과 필리핀인 30명을 인질로 잡고 군당국과 대치중이라고 현지 군당국 및 건설회사측 관계자들이 밝혔다. 이들은 모로회교해방전선(MILF)소속 무장괴한들이 이날 새벽 한국 건설회사 (주)신성측의 공사경비를 맡고 있는 정부 분견대원들과 총격전을 벌인뒤 마닐라 남쪽 8백50㎞ 지점의 카르멘 마을의 공사현장으로 퇴각했다가 이같은 인질극을 벌였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신성의 마닐라 주재 사무소 간부는 이날 코타바토 라디오방송인 DXMS와 가진 회견에서 한국인과 필리핀 고용인들이 무장괴한들에 억류돼 건물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군들은 정부군과 총격전을 벌이다 공사현장으로 밀려나 정부군이 철수하고 부상 동료들의 치료를 위한 앰뷸런스를 보내줄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정부군은 인질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게릴라들을 공격하지는 않고 있다. 한편 필리핀 당국과 한국대사관측은 근로자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반군들을 설득하는등 협상을 벌이고 있다. 모로민족해방전선(MNLF)에서 분리된 소규모 무장단체인 MILF는 지난 3월에도 이곳 공사현장에서 한국인 근로자들을 억류했다가 군인들의 포위망이 풀리자 곧바로 이들을 석방한 바 있으며 지난해 12월에도 8명을 인질로 붙잡았으나 협상끝에 풀어줬다. MILF는 거점지역에서 관개공사가 진행되자 신성측에 자신들을 경비요원으로 고용해줄 것을 요구해왔으나 군당국은 이를 반대해왔다. ◎“계속 무전 연락” 신성측은 필리핀 반군의 한국인 근로자 억류 외신보도와 관련,『필리핀 마닐라 지점의 서승원차장과 국제전화를 통해 알아본 결과,이재철 현장사무소 소장 등 현장 직원 7명은 교전이 시작된 즉시 공사현장에서 1㎞정도 떨어진 숙소에 대피,전원 무사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신성측은 또 『현재 이들 직원들은 마닐라지점과 계속 무전으로 연락하고 있으며 하오 6시가 지나면서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은 소강상태에 들어갔으나 만일의 사태에 대비,직원들은 바깥출입을 자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성측은 마닐라지점을 통해 필리핀당국과 한국 대사관에 근로자들의 안전책을 요구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신성은 이 지역에서 92년부터 오는 96년 완공을 목표로 6천4백만달러 규모의 댐건설공사를 하고 있다. 신성은 건설업체 도급한도액 순위 36위인 중견종합건설업체로 직원은 6백여명이며 60여명이 해외에서 일하고 있다. 한편 외무부는 이에대해 정확한 진상을 파악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이날 하오 현지공관에 긴급지시했다.
  • 이달의 독입운동가 양세봉장군/압록강 순시한 사이토총독 저격

    ◎조선혁명군 이끌고 만주서 항일투쟁/일군과 2백차례 혈전… 밀정에 살해돼 『나를 따라 생명을 각오하는 동지들은 손을 들어주십시오.조국광복군과 동만백만동포의 생명을 두 어깨에 짊어진 우리는…』 1932년 조선혁명군사령관 벽해 양세봉장군(1896년6월5일∼1934년8월12일)이 만주 흥경현에서 일제 관동군과 대회전을 갖기에 앞서 동료 독립운동가들에게 행한 연설의 일부다. 양장군은 이 전투를 포함,일제와 밀정들에게 붙잡혀 순국한 34년까지 2백여차례이상 혈전을 치른 신화적인 무장항일투사였다. 선생은 30년대 만주지역에서 활약한 최후의 독립군 명장으로 항일독립운동사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선생이 독립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26세때인 22년부터.이전에도 3·1만세 시위운동을 펼치는등 독립운동에 참여했으나 이즈음부터 무장독립운동가로 본격 활약하게 된다.선생은 의주·삭주 경계의 천마산을 근거지로 해 항일투쟁을 전개하고 있던 무장단체 천마산대(대장 최시흥)에 가입,창성군 대유동 경찰서와 금광사무소·영림창을 습격하고군수물자를 빼앗는등 기염을 토했다. 5백여명의 대원으로 구성된 천마산대는 유격전을 능숙하게 구사하면서 일제에 위협을 가하던 단체였다. 선생은 천마산대가 일제의 대대적인 「토벌」로 활동불가능 상태에 빠지자 여러 독립운동단체들이 연합해 구성한 대한통의부등에서 의용군으로 활약했다. 대한통의부 의용군이 발전해 참의부가 결성되자 제3소대장에 임명된 선생은 24년5월 국내진입작전을 전개,평북 초산군·강계군에서 일경과 교전해 수명을 사살했으며 압록강을 순시하던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재등실)일행에 총격을 퍼부어 일제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선생은 일제의 배후조종을 받은 마적단의 습격으로 통의부 신팔균총사령이 전사한뒤 통의부·대한군정서·의성단등이 정의부로 확대통합되자 정의부 의용군 중대장에 임명돼 일경·친일분자의 처단에 앞장섰다. 정의부는 김동삼선생을 의장으로 지역군사·재정·행정·교육·사법등 모든 부문을 국가체제에 맞춰 틀을 짰다. 선생은 이어 만주지역에서 벌어진 좌우합작운동의 영향으로 정의부를주축으로 여러 독립운동단체들과 연합해 민족유일당 조직동맹을 결성,이 동맹이 다시 조선혁명당으로 발전하자 소속 부대인 조선혁명군 부사령의 중책을 맡게 된다. 조선혁명군은 30년대 적기관을 습격하고 밀정을 처단하는 한편 대중조직및 거점확보를 위해 특수공작원을 국내로 특파하는등 독립운동사에 맹활약을 펼친 것으로 기록돼있다. 선생은 31년 일제가 중국 동북지방을 침략한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한·중 공동대응을 위해 중국인 실력자 왕동헌의 요령 농민자위군과 협의해 연합부대를 편성했다. 이런 가운데 32년 조선혁명당은 비밀간부회의를 열었으나 정보를 입수한 일경의 급습으로 간부 83명이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선생은 이 사건을 계기로 조선혁명당의 총사령에 취임하는 동시에 혁명투사 양성을 위해 조선혁명당이 설립한 속성사관학교 명예교장에 추대된다. 선생은 또 중국 의용군 총사령 이춘윤과 요령 민중자위군 결성 협정을 체결,일제와 2백여차례에 걸쳐 혈전을 치렀다.32년3월 신빈현 남쪽에서 벌어진 일제 관동군과의 접전에서선생의 부대는 일군의 주둔지를 빼앗는 전과를 올렸다. 같은 달 하순 일제가 폭격기까지 동원해 반격전을 펼치자 선생은 한중연합군 1만여명을 투입,치열한 전투 끝에 일제를 물리치는 억센 투혼을 발휘하기도 했다. 한중연합군은 그러나 관동군이 두달후 세력을 재결집,대대적인 공세를 가해옴에 따라 10월까지 5개월동안 여러차례 전투를 치렀으나 일제 공군력에 밀려 주공격력을 잃게 된다. 선생은 이에 따라 다음해인 34년1월 조선혁명군 재건을 위해 총사령에 취임,같은해 5월 황해도 사리원경찰서를 습격하는등 유격전에 나선다. 조선혁명군은 이어 장개석의 국민군에 도움을 요청하는 한편 흥경현 진주령에서 일본군 병력수송기차를 습격,수십명을 사살하고 경기관총·대포등을 노획하기도 했다.또 1개 대대병력으로 기습해온 일군을 물리치고 오히려 추격전을 펼쳐 일군 80여명을 사살한다. 선생은 그러나 34년 평소 혁명군을 지원해온 중국인을 만나기 위해 환인현 소광구 골짜기로 나갔다가 일제 밀정등의 총격을 받고 장렬하게 순국한다.이 중국인은일제 밀정의 꾐에 빠져 변절하고 선생을 인적드문 골짜기로 유인한 것이었다. 일제는 후에 선생의 묘를 파헤치고 시신에세 목을 떼어 가져가는 만행을 저지르는등 잔악상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조선혁명군은 선생의 순국이후 급격히 세력이 위축돼 소규모 유격전으로 독립군의 명맥을 유지하는데 그쳤다. 선생은 동지는 물론 주민들로부터도 존경을 받은 명장이었으며 항일무장투쟁사에서 김좌진·홍범도등과 함께 3명장으로 손꼽히고 있다. ▷고침◁ 7월의 독립운동가 이준열사는 1859년1월12일 출생,1907년7월14일 순국했기에 바로 잡습니다.
  • 북의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라(사설)

    김일성사망이후의 일사불란한 듯한 김정일 권력세습 진행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최근동태가 어째 심상치 않다.그럴리야 없겠지만 북한사회의 동구식 붕괴가 이미 시작된 조짐은 아닌가.의구심을 갖지 않을수 없다. 북한건설부장관 조철준의 차남이며 김일성대학강사인 조명철씨에 이어 이번에는 강성산총리의 사위이자 의회산하 무역회사부사장 강명도씨가 북을 버리고 한국의 품으로 귀순해왔다.휴전선 비무장지대에선 25일 북한군 병사들끼리의 총격전까지 목격되었다고 한다.김정일의 동태도 주목된다.국가주석 및 당총서기직승계 공식선언이 늦어지고 있으며 27일 「승전기념일」행사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옛소련 붕괴후 우리는 탈북귀순자를 많이 보아왔다.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시베리아 벌목공이거나 한만국경 인근의 가난하고 고통받던 북한주민들이었다.북한 고위층의 비호를 받으며 잘살 수 있는 기득권계층,그것도 고위층의 아들·사위같은 친인척은 없었다. 또하나의 있을수 있는 귀순이요 총격사건으로 간단히 생각하고 소홀히 넘길 일이 결코아니라 생각한다.우리는 동구붕괴와 독일통일의 과정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있다.그것은 주민들의 대탈출에서부터 시작됐었다.아시아,특히 북한은 동구와는 다를것으로 예상되어 왔지만 아무래도 예사롭지가 않다.북한도 마침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인가. 우리는 북한사회의 갑작스런 동요나 붕괴 또는 흡수통일을 원하지 않고있다.그로인한 난민사태와 파탄의 경제를 떠맡아야 하는등의 부담때문이다.우리가 가장 바라는것은 북한 스스로의 질서있는 민주화 개방·개혁과 경제의 개선이다.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희망이며 현실은 기대를 따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우리가 원하건 않건 상관없이 북한의 붕괴와 그로 인한 흡수통일이 하나의 불가피한 현실로서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것을 애써 외면하려 할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자세로 대응해야 할것이다.붕괴와 흡수통일이 불가피하다면 그것도 적극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것이다.일본과 중국은 북한의 붕괴와 난민사태에 대한 대책을 이미 강구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지고있다.우리도 충분한대비가 있어야 할것이다.흡수통일의 가능성에 대비한 실천계획까지도 마련해두어야 할것이다.북한에서 일어날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충분히 대비하는 계획과 준비가 있어야 할것이다. 탈냉전시대의 북한은 핵문제와 경제파탄에 권력세습등 불확실성의 온갖 요인들을 다 안고있다.특히 귀순자들이 회견에서 밝힌 북한 핵개발의지와 이미 5기를 보유하고 곧 양산체제에 들어갈 것이라는 충격적 사실은 우리의 새로운 북핵 대응을 요구하는 한반도 안보불확실성 심화의 위협적 요인이 아닐 수 없다.
  • 월드컵 자살골 콜롬비아선수 피살/술집주차장서

    ◎“16강탈락 불만” 괴한들 총기난사 【보고타 AP 로이터 연합】 미국 월드컵 본선 대미국전에서 자살골을 넣어 조국에 패배를 안겨준 콜롬비아 국가대표팀의 수비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27)가 2일 새벽(현지시각) 총격을 받아 사망한 사건이 발생,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콜롬비아팀의 예선 탈락으로 일찌감치 귀국했던 에스코바르는 이날 새벽 3시30분쯤 동북부 메데인시의 한 술집 주차장에서 일단의 청년들과 말다툼을 벌이다 총격을 받았으며 사건후 이 지역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으나 숨지고 말았다. 에스코바르는 모두 12발의 총알을 맞은 것으로 밝혀졌으나 당시 현장에 같이 있던 그의 여자친구는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았다. 에스코바르와 말다툼을 벌인 3명의 청년들은 에스코바르와 그의 여자친구가 승용차에 오르자 주위를 에워싸고 월드컵에서의 자살골 문제를 거론하며 시비를 벌이다 갑자기 총격을 가한 뒤 2대의 지프차에 나눠타고 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콜롬비아 경찰은 최근 국가대표팀이 귀국후 축구도박사들과 마약조직들로부터 몇차례살해위협을 받았던 점을 중시,에스코바르의 피살이 이들과 관련됐는지 여부를 파악하는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 인 국방부 「한국전포로 감시」 비록 입수 공개

    ◎“중공군 포로 송환 막아라”/대만공작팀 극비리 침투/반공교육후 “말 안들으면 처형” 위협/포로들 난동 잦아… 인 사령관 납치도 한국전쟁은 1953년7월27일 휴전협정조인으로 막을 내렸다.그러나 실제로 전쟁은 송환을 거부한 2만3천명 포로의 처리문제를 놓고 이른바 「총성없는 전쟁」으로 6개월간 처절하게 계속됐다.판문점일대 비무장지대에서 벌어진 유엔군진영과 북부군(북한인민군·중공의용군)진영의 치열한 설득전과 이들의 심판을 맡은 인도의 철저한 중간입장고수는 2차대전후 네루중립주의 첫실험의 성공이라는 현대사적 의미를 부여받기도 했다.서울신문은 한국전쟁발발 44주년을 맞아 당시 송환거부포로 설득작전에 관한 내용을 담은 책인 「주한인도관리군활동사」(History of the Custodian Force of Indiain Korea:1953∼54)를 최근 인도현지에서 입수,발췌소개한다. ▷인도군첫해외파병◁ 휴전협상이 한창 진행중이던 53년5월8일 미국이 인도측에 송환거부포로 관리를 위한 인도군 파병가능성을 타진해왔다.이미 인도는 이들을 지휘감독할 5개 중립국송환위(NNRC)의 의장국을 맡기로 돼 있었기 때문에 네루총리는 파병을 수락했다.8월5일 R K 네루외무차관,관리군사령관 토라트소장,사르다르 싱 인도적십자사무총장등 3명으로 구성된 선발대를 파견,도쿄의 유엔군사령부와 개성의 북부군사령부를 거쳐 구체적인 임무와 병력규모등을 협의했다. 인도군의 총규모는 6개 보병대대와 각종 부속대로 6천명.9월28일 제5진의 인천항 도착으로 이동을 모두 끝냈다.그러나 당시 이승만대통령은 인도군의 한반도상륙을 금지시켰기 때문에 유엔군측은 인천에서 판문점까지 헬기로 이동할 것을 제의했다.동아시아의 모든 미군헬기를 동원,5명씩 수송했는데 모두 1천3백회의 출격을 기록한 사상최대의 헬기작전에서 다행히 사고는 단 한건도 없었다. ○통정리에 텐트촌 ▷새 포로수용소◁ 통정리일대에 유엔군이 건설한 막사는 5백명을 수용할 수 있는 캠프 7∼10개씩을 1개구역으로 하는 7개의 구역으로 나눠져 중공군 3개,북한군 2개,송환희망자격리수용소 1개,병원용 1개소씩으로 할당됐다.캠프는 17개의 막사와 식당·목욕탕·화장실텐트등 모두 20개의 텐트로 구성됐다.냉난방은 물론 전깃불과 온수공급이 완벽했다. 미군측은 이곳에 3만명의 식수및 생활용수공급을 위해 50만갤런상당의 물탱크를 설치했고 임진강으로부터 모두 31㎞의 대형송수관을 매설했다.전기공급을 위해 발전소 12개를 건설했으며 전체 생필품공급을 위한 대형보급창고도 세웠다.또한 설득장및 설득자대기소,송환표명포로수용을 위한 막사등 설득관련막사 10여동이 별도로 건설되었다.이들 전체지역은 하나의 거대한 도시를 이루고 있었다. ▷포로수에의 의문◁ 포로의 숫자는 포로교환협정에 따른 것으로 인도군의 입장에서 관여할 바는 아니었다.그러나 양측의 휴전협상이 처음 시작된 51년7월26일당시까지 유엔군측은 12만1천명의 북한군과 중공군포로를 억류하고 있었으며 이 가운데 4만1천명이 송환을 거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북부군측은 6만5천명의 유엔군 생포를 주장했으며 그 가운데 5만명이 자발적으로 북한인민군과 중공의용군에 합류했다고 밝혔다.이같은 주장은 유엔군측이나 공산군측모두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의 우월성에 손상을 입는 것이기 때문에 용납할 수가 없었다. 휴전협정조인후 33일간 양측은 포로교환을 실시,유엔군측은 7만5천8백명을,북부군측은 1만2천7백60명을 상대방측에 넘겨주었다.그리고 9월25일까지 인도군이 넘겨받은 포로는 유엔군으로부터 북한군 7천9백명과 중공군 1만4천7백4명,북부군으로부터 한국군 3백35명(여군5명 포함),미군 23명,영국군 1명등 모두 2만2천9백63명이었다. 유엔군으로부터 인도받은 숫자는 남한정부의 6·18 반공포로석방으로 1만7천여명이 도망간 상태여서 어느정도 타당성 있는 숫자로 받아들여졌다.그러나 북부군으로부터 인도받은 숫자는 터무니없는 것이었다.자발적으로 귀순해왔다는 5만명을 제외하고도 나머지 1만5천명중 유엔군측으로 송환되지 않은 수가 2천3백여명에 달하는데도 아무 설명이나 명단제시조차 없이 3백여명만 인계했던 것이다. ○총격사건 두차례 ▷포로들의 저항◁ 양측 사령부로부터 포로의 인계는 9월10일 시작돼 25일에 모두 끝났다.그들은 막사마다 리더를 선출,자치적으로 움직였으며 자체 취사를 했다.일과는 상오6시 기상하여 하오9시30분 취침에 들 때까지 대부분 운동과 오락으로 진행됐다. 첫날 중공군포로 가운데 7명이 대열을 이탈하여 송환을 요청해온 것을 비롯하여 밤에 철조망을 뚫고 번의를 요청해오는 포로들이 많았다.이같은 자발적 이탈자들의 증가로 포로측과 인도군측은 점점 사이가 벌어지게 되었다. 본격적인 설득작전은 포로 인계인수가 끝난 뒤 26일부터 시작될 계획이었다.그러나 문제는 마지막날인 25일 발생했다. 날이 밝자 각 캠프의 포로들은 인도군에게 「납치」해간 원추를 즉각 돌려보내줄 것을 요구하며 대규모시위를 벌였다.그들은 반인플래카드를 내걸고 돌을 집어던지며 강력히 저항했다.이 와중에서 토라트사령관이 포로들에게 억류되는 사태가 발생했다.먼저 억류된 그류왈소령의 구출협상을 벌이기 위해 캠프를 찾은 토라트사령관과 브두와르중령·싱소령등 12명이 순식간에 5백명에게 포위된 것이다. 부사령관 싱준장은 즉시 무장병력을 출동시켜 캠프전체를 에워싸고 사령관일행의 즉각석방을 요구했다.그리고 유엔군사령부에 협조를 요청하는등 순식간에 긴장이 감돌았다.그 사이 페인탈여단장은 특공대를 동원,극비의 구출계획도 세워놓고 있었다. 지루한 시간이 흘렀고 대화의 진전이 없는 가운데 마침내 토라트사령관의 기지로 포로대표를 설득,상황은 끝나게 되었다.그러나 그후에도 10월1일과 2일 두차례 총격사건이 발생,수십명의 사상자발생등 긴장상태지속으로 첫설득회는 10월15일에 가서야 가능했다.반면에 북부군측에 억류돼 있던 포로들은 규율이 잡혀 있었으며 공산주의에 몰입해 있는 듯했다. ▷대만의 선전전◁ 탈출해온 원추는 대만정부가 단 한명의 중공군포로도 대륙으로 송환시킬 수 없다는 장개석총통의 신념에 따라 조직적으로 포로설득에 개입했음을 폭로했다. 휴전협상이 진행중인 동안 중공군포로들이 수용돼 있던 제주도수용소로 대만정부는 포로들의 교육을 위한 두개의 공작팀을 침투시켰다.각각 12명과 6명으로 조직된 공작팀은 대만의 외교부·정보부·국민당등 각처에서 엄선된 심리전전문가들이었다. 이들은 포로막사로침투해 반공강연을 했고 누구든지 대륙으로 돌아간다면 공산당이 그를 죽여 사지를 절단한 뒤 반공에 대한 본보기로 삼을 것이라고 겁을 주었다.그들은 어떻게 공산당의 설득을 피할 것인가를 가르쳤다.한사람의 이탈도 막기 위해 8∼9명으로 소그룹을 조직,송환의사를 나타내는 포로들을 목졸라 처치해버리는 방법까지 가르쳤다. 송환위대표들로부터 질문을 받을 때는 오직 『대만으로 가고 싶다』는 말만 할 것을 강조했고 포로개개인들에게 「TAIWAN」이라는 영문글자도 가르쳤다. ○88명 제3국 선택 ▷설득완료◁ 12월23일까지 90일간 주어진 설득기간중 실제설득이 이뤄진 날은 10일에 불과했다.설득받은 포로는 전체의 15%에 불과한 3천4백69명이었으며 설득후 송환을 요청한 자는 모두 1백37명,그나마 공산군측 억류포로중에는 한명도 없었다.여기에 설득을 기다리지 않고 막사탈출등으로 송환을 희망한 2백38명(공산군측 포로 8명 포함)을 더해 최종적인 송환희망자는 모두 3백75명.결국 설득작전은 양측사령부와 송환위·인도군등이 엄청난 인원과 물량을투입한 작전치고는 별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90일간의 설득기간이 끝난 후에도 양측은 포로들의 추가설득을 위해 설득기간을 늘려줄 것을 요청했다.그러나 송환위측은 협정에 규정된대로 이 포로들은 30일간의 정리기간을 가진 뒤 54년1월22일자로 포로의 신분이 아닌 자유인의 신분으로 되돌아감을 다시한번 강조했다. 마침내 1월20일 상오8시부터 인도군은 포로들의 인계를 시작했다.다음날 새벽3시까지 모두 19시간 2만1천8백39명이 유엔군측으로,3백47명이 북부군측으로 인계됐다.이 가운데 북한군 74명,중공군 12명,남한군 2명등 88명은 제3국을 택했다.
  • 부강 1등국이 흉악범 1등국이라(박갑천 칼럼)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마침내 철의장막과 죽의장막을 걷어낸 지구촌 강자가 아닌가.지구촌 어디선가 고뿔만 들어도 가만있지 못하는 나라.『착한 미국인이 죽으면 파리에 다시 태어나고 악한 미국인이 죽으면 미국에 태어난다』(아나톨 프랑스)고 이죽거리기도 하지만 힘세고 가멸진 지구촌 거인은 역시 미국이다.한번 재채기에 바이러스가 온지구촌에 깔릴 정도로. 그렇다 해도 유엔이 펴낸「94인간개발보고」를 보자니 부럽다는 생각은 싹가신다.부강1등국만이 아니라 흉악범죄에서도 1등국임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살인·강간·폭력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나라라지 않은가.92년의 경우 1천4백만건 범죄로 인한 피해액이 4천2백50억달러(국방비도 2천9백억달러인데)에 이르렀다니 놀랍다.과연 부자나라답다고나 할까.특히 날마다 어린이가 20명 꼴로 총격당해 죽어간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이같은 미국의 범죄는 그리스신화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아킬레스건을 생각케 한다.구약성서에 나오는 장사 삼손의 머리칼을 떠올리게도 하고.불사신과도 같았던 아킬레우스에게도 발뒤꿈치힘줄의 약점이 있었다.그는 파리스의 화살에 그곳을 맞고 죽는다.나귀의 턱뼈로 블레셋사람 1천명을 쳐죽이는 괴력의 삼손 또한 힘의 원천인 머리칼을 잘리자 이빨빠진 호랑이 꼴로 되어버리던것.미국이라는 골리앗에게서 그런 약점을 본다.이 약점이 파멸로 이어질수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겠다. 장주가 조릉의 밤나무숲에서 깨닫는 얘기가「장자」(장자:산목편)에 나온다.­커다란 까치 한마리가 장주의 이마를 스치고 날아가 밤나무에 앉는다.장주는 얼른 다가가서 탄알을 잰다음 엿본다.그나무의 그늘에서는 한마리 매미가 울고 있는데 사마귀(당랑)가 그걸 노리고 있고 아까 날아간 까치는 그 사마귀를 노리고 있었다.까치가 장주의 노림을 모르는 점은 매미·사마귀의 경우와 다를바 없다.모두가 자기의 처지를 잊고 눈앞의 이익에만 몰두해 있는데 실망하면서 탄알을 버리고 달려가자 밤나무숲 관리인은 밤도둑인줄 알고 쫓아온다.그로부터 사흘후 그날 일에 대한 인저(인차)의 물음에 장주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외부의 사물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진정한 자기몸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마치 흐린물에 반해서 맑은 연못물을 잊은 것과도 같이』 이 장주의 말은 거인 미국의 처지 그것이라고도 하겠다.그뿐 아니라 오늘의 인류 모두의 얘기로 된다고도 할것이다.눈앞의 이끗에 정신을 팔면서 그보다 천배 만배 소중한 것을 잃어가고들 있지 않은가.흉악범이 활개치는 사회라면 강자·부자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 미 살인·강간·폭력 최다국 “오명”/유엔보고서 지적

    ◎92년 1,400만건… 피해액 4,250억불/어린이 매월 20명 피살… 불안 증가 미국은 세계에서 군비지출 규모가 가장 크고 살인,강간,폭력이 제일 많이 일어나는 나라인 것으로 1일 유엔보고서에서 밝혀졌다. 「94 인간개발보고」는 세계각국이 군비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고 있는 반면 개인의 안전은 날로 위협받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 보고에 따르면 미국은 매년 국방비로 2천9백억달러를 지출하고 있으나 지난 92년의 경우 범죄로 인한 피해액은 4천2백50억달러에 달했으며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지난 92년 미국에서는 1천4백만건의 범죄가 경찰에 접수됐으며 노동자 2백만명 이상이 신체적 공격을 당했고 6백50만명이 물리적 폭력의 위협을 받았다. 또 어린이 20명이 매일 총격으로 인해 숨졌으며 93년에는 15만건의 강간사건이 일어났다. 미국에서 마약복용에 사용되는 돈은 개발도상국 80개 이상의 소득을 합친 것보다 많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지난 80년대에 실질소득이 3% 떨어지고 인구의 15% 이상이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는 『흑인들의 경우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며 『일례로 백인의 3분의1이 일산화탄소 오염지대에 살고 있으나 흑인은 50% 이상에 이르며 흑인의 실업률은 백인의 2배』라고 지적했다.
  • 신팔균선생/항일비밀결사 「대동청년단」 이끌어(이달의 독립운동가)

    ◎충북 진천에 사립학교 세워 인재 양성/만주망명후 독립군 총지휘… 일 괴롭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1910년이후 수많은 선열들이 국권회복을 위해 줄기차게 항일투쟁을 벌여왔다. 동천 신팔균선생은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조국광복의 제단에 바친 대표적인 애국선열로 손꼽히고 있다. 선생은 김좌진,홍범도,김동삼등과 함께 만주를 무대로 항일독립전쟁을 전개한 무장이다. 선생은 부친이 한성부판윤과 좌변포도대장등을,조부가 금위대장·삼도수군통제사·형조와 병조판서를 지낸 명문가출신으로 임오군란이 일어나던 1882년 서울 정동에서 출생했다. 가문의 전통에 따라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교한 선생은 육군참위로 임관,강계 진위대에서 첫 근무를 했다. 선생은 1909년 대한제국군대가 해체되자 인재양성에 힘을 쏟기로 하고 충북 진천에 사립 보명학교(현 이월국교 자리)를 세웠다. 이와함께 전국 각지의 애국지사들과 긴밀한 연락을 갖고 80여명으로 항일비밀결사 대동청년단을 결성,항일무장독립운동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는데도 성공했다. 대동청년단은 국권회복을 위한 지하단체로 광복때까지 은밀한 활동을 벌였다. 이 단체가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보안 때문이었다. 이들은 처음 단체를 출범하면서 단원이나 단명등에 관한 사항은 일절 문자로 표시하지 않으며 경찰등에 체포될 경우 다른 단원을 연루시키지 않는다는 「피의 서약」을 맺었다. 선생은 1910년 마침내 경술국치로 대한제국이 종지부를 찍고 일제통치가 시작되자 무장항일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선생은 일단 만주로 망명,독립운동 단체 중광단에 가입했으며 3·1운동에 앞서 만주 동삼성의 민족지도자 38인 가운데 1인으로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 선생은 이어 만주 서간도의 독립군 양성학교인 경학사의 후신인 한주회 소속 독립군단 서로군정서에 가입,군단무관학교인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후진교육을 맡았다. 당시 교관으로는 일본육사출신인 지청천과 김경천,한말 무관출신인 김창환등이 학생을 지도하고 있었다. 이 학교 졸업생들은 청산리독립전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선생을 비롯한 애국투사들의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3·1운동을 전후해 만주지역에는 50여개의 독립군단이 조직됐으며 이들은 각각 일제에 전쟁을 선포하고 일제 주재소와 헌병대등을 습격하는등 맹렬한 독립투쟁을 전개했다. 선생도 서로군정서의 독립군을 이끌고 수시로 일제 군경과 치열한 총격전을 가졌으며 친일주구들을 처단하는등 용맹을 떨쳤다. 독립군부대는 그러나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에서 1천여명의 병사를 잃은 일제가 이에 대한 보복으로 만주지역의 한인들을 무차별 살육하는등 초토화작전으로 맞서자 어쩔 수 없이 근거지를 이동하게 된다. 당시 김좌진의 북로군정서와 홍범도의 독립군 연합부대는 북만으로 옮겼으며 선생이 활약하고 있는 서로군정서,대한독립단등은 남만의 홍경현으로 이주했다. 1922년 봄,남만에 있던 독립군부대들은 강력한 독립군단의 조직을 위해 기존 부대를 해체,대한통군부를 결성했으며 이 통군부는 그해 가을,북만의 독립군부대까지 결합시켜 대한통의부로 새로 출발했다. 선생은 1923년 대한통의부 의용군사령관에 임명돼 독립군병력을 총지휘하게 된다. 이 의용군은 5개중대와 유격대,헌병대로 조직됐으며 각 중대는 5백∼9백명의 병력으로 구성됐다. 의용군은 당시 압록강 접경에서 일제와 치열한 접전을 펼쳤으며 국내에도 잠입,게릴라전으로 일제를 괴롭혔다. 남아있는 기록을 보면 이 의용군은 1923년 1월 유격대원 7명이 평북 창성군 후평주재소를 습격,일경을 사살하는등 무수한 전과를 남겼다. 선생은 그러나 1924년 7월 홍경현 밀림에서 야외군사훈련중 중국 마적 3백여명의 급습을 받고 총격전을 벌이다 총에 맞아 쓰러져 42세로 운명했다. 선생은 『일제와 싸우다 죽으려했더니 중국사람과 싸우다 죽는구나』라고 외치며 안타까워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선생을 숨지게 한 마적들은 사후 일제의 사주를 받은 장작림 군벌부대와 경찰들로 밝혀졌다. 한편 선생이 순국할 당시 서울 셋방에서 만삭의 몸을 이끌며 살고 있던 부인 임수명여사는 남편의 전사소식을 듣고 쓰러져 운명,일가족이 조국독립에 몸을 바친 셈이 됐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추서했다.
  • 예멘 남­북군 대격전/도시근교서/수백명 숨져 내전위기

    【사나 AP AFP 연합】 구남북예멘 군대간에 27∼28일 이틀간 수도 근교에서 다수의 탱크를 동원한 격렬한 전투가 벌어져 수백명이 숨졌다고 남예멘측 관리들과 외교소식통들이 밝혔다. 이번 무력충돌과 관련,아덴 소재 국방부의 한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충돌이 계속될 경우 전투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돼 내전으로 비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즉각 휴전을 선포할 것을 촉구했다. 외교소식통들은 양측이 27일 수도 사나에서 약 60㎞ 떨어진 암란에서 수백대의 탱크를 동원하는 격전을 벌여 85대 이상의 탱크가 파괴됐으며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는데 사망자중에는 18명의 민간인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수도 사나 중심가에서는 하산 모하메드 마키 제1부총리가 총격을 받아 부상하고 수행중이던 3명의 경호원이 사망하는가 하면 국회의장과 회교당당수의 자택부근에서 폭탄차량이 터지는 등 예멘정국은 혼란 상태로 치닫고 있다.
  • 북핵·미사일 다룬 소설 미서 불티

    ◎“장비 밀수” 북한첩보단과 전투 그려/「악당전사… 」 NYT지 베스트셀러 7위 북한의 핵문제가 계속 국제적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일본극 우파와 북한이 제휴,미국으로부터 토마호크 미사일과 핵무기제조에 필요한 장비를 밀반입하려는 계획을 미해군특수부대가 사전에 저지시킨다는 내용의 소설 「로그 워리어Ⅱ­붉은 세포」(ROGUE WARRIORⅡ­RED CELL)가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있다. 뉴욕 타임스지 지난 10일자 베스트셀러 소설부문 7위에 올라있는 「붉은세포」는 미해군 특수부대 「붉은세포」의 창설자이며 지휘자였던 주인공 마칭코가 공금횡령의 유죄판결로 1년의 감옥형을 마치고 프리랜서로 활동을 재개하는데서부터 시작된다.그는 옛상관인 한 경비회사 사장으로부터 도쿄 나리타공항의 경비상태를 확인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테러리스트로 가장해 밤중에 공항에 침투한다.거기서 그는 뜻밖에도 수상한 물건을 옮기고있는 북한첩보요원들과 부딪쳐 총격전을 벌이게된다.그리고 그는 북한과 일본의 극우파가 핵무기제조에 필요한 장비를 미국으로부터 극비리에 밀수입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마칭코는 해군에 강제소환되고 그는 자신이 만들었던 「붉은세포」를 이끌고 북한과 일본의 밀수저지에 나서게 된다. 「대일본」을 꿈꾸는 극우파의 히데오 이키가미는 몇몇 미국인과 결탁,미해군기지로부터 훔친 미사일을 극우파 소유의 회사 「마츠코」란 간판을 이용해 한 운송업체의 컨테이너에 숨겨 일본으로 들여온다.미사일등은 다시 북한으로 옮겨졌다가 일부 핵무기제조장비는 떨어뜨리고 미사일등은 청진에서 북한산으로 위장,북한잠수함편에 일본으로 들여오려다 마칭코팀에 의해 청진앞바다에서 일망타진된다는 줄거리다. 주인공과 이름이 같은 작가 리처드 마칭코는 해군중령 출신으로 현재는 미정부와 기업체를 주고객으로 경비업무를 청부맡아 하는 회사의 사장이며 공동작가 존 와이스만은 첩보물을 주로 쓰는 직업소설가. 시몬 앤드 슈스터사간 값 22달러.
  • “중국군·경찰 선박에 총격/승객 사살후 엔진 불태워”

    ◎홍콩지,「대만인참사」 원인 폭로 【홍콩 연합】 중국은 24명의 대만관광객이 떼죽음을 당한 「천도호사건」의 주범으로 군인과 경찰관들에 혐의를 두고있으며 사건당시 총탄이 발사되고 흉기와 선박까지 동원돼 범죄가 자행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홍콩의 중국전문 월간지 동향 최신호가 15일 수사결과를 폭로했다. 이날부터 발매되기 시작한 동향 4월호는 지난 87년 중국과 대만이 교류를 개시한 후 양측관계를 가장 악화시킨 「천도호참사의 비밀을 파헤친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사건수사본부인 「천도호사건전안판」이 국무원(중앙정부)에 올린 수사보고서를 인용,이 사건의 주범으로 군인과 경찰이 혐의를 받고있으며 이들중 10명이상이 재물을 빼앗기 위해 계획적으로 총기와 흉기,칼 및 선박까지 동원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는 범인들이 선원 6명과 대만 여행객 24명,관광안내원 2명등 32명을 강제로 배 밑바닥으로 가게한 후 엔진을 파괴하고 불을 질러 이 배에 탄 사람들을 통해 사건이 알려지는 것을 근원적으로 막으려했다고 말했다. 수사본부는 이미 15명의 사건 관련자들을 확보해 수사중이며 이들의 신분은 비밀에 부쳐져있다고 동향은 말했다.
  • 북노동자의 탈출 경로(무너지는 생지옥 시베리아 북한벌목장:5)

    ◎거의가 모스크바 잠입… 망명 요청/요즘엔 밀항하려 블라디보스토크 몰려/한국행 어려워지자 러시아 여인과 결혼시도 늘어/①여권위조→기차→모스크바→한국대사관 ②하바로프스크·아무르→중앙아시아→서울 ③모스크바→인접한 동구원 국가→한국공관 ④브라디보스토크→부산행 배·한국총영사관 시베리아에 있는 북한벌목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줄을 이어 탈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벌목장의 노동조건이 「돼지우리」처럼 열악하고 노동자의 인권이 「개만도 못하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러시아와 북한의 벌목재협정이 늦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또 이를 해소하려는 협상과정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돼 있기도 하다. 그러나 좀더 살펴 보면 북한노동자들이 벌목장을 탈출하는 까닭은 단순히 열악한 노동조건과 참을 수 없는 인권유린 때문만은 아니다.가장 큰 이유는 노동자들이 「북한 밖의 세계」를 만났다는데서 찾아야 한다.안에서 살았던 북한사회와 밖에서 본 북한사회는 그야말로 천국과 지옥만큼의 차이가 난다는 것이 취재과정에서 만난 탈출노동자들의 한결같은 증언이었다.몇달씩 산속에 묻혀 나무를 베어야 하는 벌목현장보다 시내에 있는 목재공장에서 탈출자가 더 많이 나오는 것도 그들이 러시아사회와 더 많은 접촉을 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경제적인 이유다.지난 80년대까지만 해도 러시아의 벌목장에서 3∼5년만 일하면 냉장고와 오토바이 재봉틀 선풍기같은 가재도구를 한아름씩 사가지고 돌아갈 수 있었다.말하자면 몇해 고생한 대신 한밑천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소련이 붕괴되면서 경제의 혼란으로 물자가 귀해지자 러시아정부는 물자유출을 금지시켰다.더군다나 러시아에서 돌아간 노동자들은 따로 감시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이 밝혀져 노동자들은 이래저래 일할 의욕을 잃게된 것이다.그러다 보니 「남한사정은 어떤가」 싶어 한국방송을 듣는다든지 외국영화를 본다든지 러시아여인을 만난다든지 술을 마시고 김일성부자의 욕을 한다든지 하는 일들이 생긴다.그리고 그런 사실이 알려지면 안전요원들에게 조사를 받게된다.일단 조사를 받게되면 소명의 기회가 없다.마침내 『북한에 돌아가서 정치범수용소에 가느니 차라리 탈출을 하자』는 마음을 먹게 된다. ○최종목적지는 서울 또 하나는 이미 벌목장을 탈출,서울로 가는데 성공한 노동자들의 사례를 벌목노동자들이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남한방송을 통해서,또는 마음을 터놓는 동료에게서 듣는 그들의 삶이 탈출을 유발하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는 것이다. 벌목장을 탈출한 북한노동자들이 꿈꾸는 최종목적지는 대부분 서울이다.그러나 서울에 가기 위해 밟고 있는 탈출경로는 서로 다르다. 벌목노동자들의 탈출루트는 크게 4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하바로프스크등지로 나가 여권을 위조해 비행기나 기차편으로 모스크바로 가는 것이다.모스크바에 가서는 한국대사관에 망명을 요청하고 도움을 청한다.일부는 러시아의 인권위원회와 법률가협회 법무부 외무부등에 망명을 신청하기도 한다.그러나 한국정부가 북한노동자에 대한 처리방침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어 이들에게는 낙심천만인 일이다. 러시아도 한때 이들의 망명신청을 긍정적으로 검토했으나 최근 신청자가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91년에 망명을 신청했는데 지금까지 회답을 받지 못한 노동자도 많다. 이런 현실 때문에 대부분의 탈출자는 고려인(한국계 러시아주민)들이 모여사는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크와 카자흐로,또 일부는 사할린으로 흘러들어가 다음 기회를 엿보게 된다. 우즈베크와 카자흐는 러시아로부터 분리된 독립국가이지만 아직까지는 러시아국내와 마찬가지로 출·입국이 자유롭다.이들은 고려인 사이에 숨어 막일을 하고 농사도 지으며 마지막 탈출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한다.일부는 이곳에서 고려여인과 결혼해 정착하기도 한다. ○망명신청 회답없어 또 하나의 탈출경로는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이다.중국으로는 이곳 벌목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북한에서 기근을 견디지 못해 넘어가는 사람도 수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나 중국은 러시아와는 사정이 또 다르다.이들을 붙잡아 북한측에 넘겨주기도 한다.따라서 중국으로 넘어간 노동자가 남한으로 오기는 사실상 어렵게 된다. 벌목장탈출노동자들은 헝가리와 루마니아 폴란드등 동구권국가로 숨어 들어가 현지 한국공관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그러나 근래에는 그리 알려진 사례가 없다. 최근 벌목장을 탈출한 북한노동자들이 몰리는 곳은 극동러시아의 오랜 군항인 블라디보스토크이다.블라디보스토크는 지난 91년까지만 해도 내국인이라도 비자를 받아야 갈 수 있는 통제된 지역이었다. 92년 1월부터 러시아정부가 내외국인에게 통행을 개방함에 따라 이 도시는 엄청난 변화를 맞고 있다.극동 러시아의 유일한 불동항이라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와 한국 일본 중국 베트남 호주등 인접국가들과의 무역중심지가 되고 있다.블라디보스토크와 부산을 오가는 여객선은 일주일에 4∼7차례나 있으며 최근에는 서울에서 여객기도 날아들기 시작했다.한국의 동신중공업이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을 국제공항으로 확장하는 공사를 벌이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거센 변화의 과정에서 항구의 이권을 차지하려는 자생적 폭력집단이 나타나기 시작했다.이들은 현재 3개파의 마피아조직으로자라났다.마피아들의 세력다툼은 갈수록 치열해져 지난달 한낮에 블라디보스토크공항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지난 2월에는 기관총으로 무장한 일단의 마피아가 중앙아시아 여행객을 태운 전세버스를 도시 진입로에 세우고 현금과 귀중품을 모조리 강탈해가는 사건도 일어났다.이때문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밤8시가 넘으면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일부에서는 경찰의 일부도 마피아와 연루돼 있으리라고 의심하고 있다. 바로 이 마피아들을 통해 부산으로 가는 배에 오르려는 북한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그 사례는 최근 언론에도 보도됐었다.배를 타는데 얼마가 드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큰 액수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이 때문에 탈출노동자들은 돈이 필요하다. ○마피아에 돈줘 부탁 탈출노동자들은 어느정도의 달러와 루블을 몸에 지니고 있다.그러나 도망자 생활을 하다보면 며칠이 지나지 않아 무일푼이 되고 만다.따라서 탈출노동자들은 고려인등 탈출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다.그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사할린에서는 탈출한 벌목노동자가 자기를 숨겨준 고려인을 살해하고 돈을 훔쳐 달아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었다.하바로프스크에서도 탈출한 벌목노동자가 고려인의 집에 숨어있다 주인이 나간 사이 살림살이를 몽땅 털어가버린 일이 일어났다. 탈출노동자들은 고려인사회 안에서도 경원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블라디보스토크주재 한국총영사관은 현지에 거주하는 고려인과 한국에서온 종교인,기업인등에게 『탈출노동자를 돕는 것은 좋지만 무조건 그들을 신뢰하지는 말라』고 조심스런 처신을 당부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기자가 만난 탈출노동자 최모씨는 러시아여인과 동거를 하고 있었다.블라디보스토크에 탈출한 벌목노동자들이 모이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총영사관이 있기 때문이다. 탈출노동자들은 초조한 목소리로 총영사관에 전화를 걸어 망명가능성을 묻기도 하고 직접 찾아오기도 한다.그러나 총영사관에서는 본국정부의 방침이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도와줄 수 없다고 설득,이들을 돌려보낸다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출노동자들은 끊임 없이 블라디보스토크로 몰려들고 있다.그곳에는 한걸음 뒤에서 그들을 돕는 「보이지 않는 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소문소문으로 잘 듣고 있기 때문이었다.
  • LA거주 한인교포 히스패닉계에 총격

    【로스앤젤레스 연합】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한인교포 가게에서 4일 과자를 훔치던 히스패닉계 10대 1명이 교포가 쏜 총에 맞아 중태에 빠졌다. LA 린우드 소재 찰리스 마켓주인인 교포 마이클 김씨는 이날 가게에서 과자를 훔쳐 달아나던 히스패닉계 10대 2명을 발견하고 쫓아갔으나 이들이 흉기를 들고 대항하자 총을 쏴 이들중 1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 우경윤씨 방문조사/검찰,「12·12」 관련

    「12·12」고소·고발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공안1부(장륜석부장검사)는 1일 사태 당시 정승화육참총장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총격을 받아 관통상을 입었던 우경윤전육군범죄수사단장을 방문조사했다. 검찰은 우씨가 부상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점을 감안,강남구 논현동 우씨의 개인사무실을 방문,정총장 연행과정및 총장공관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게 된 경위 등을 조사했다.
  • 불 법정에 선 나치일가/파리=박정현(특파원코너)

    ◎“전범” 투비에 부인·자녀도 증인 신세 프랑스 마르세유의 한 재판소에는 한 가족이 법정에 섰다. 그것도 중죄재판소에서다.2차대전의 나치 협력자인 올해 79세의 폴 투비에가 종전49년만에 법정에 선 것이다.그의 부인 베프테(69)와 아들 피에르(44),딸(46)은 증인 자격으로 나왔다. 투비에는 나치독일하의 괴뢰정권인 비시정부가 1943년 만든 민간보안대의 리옹지역 대장을 지내면서 독립운동가와 유태계 프랑스인 탄압에 앞장선 인물이다.전쟁이 끝나자 투비에는 자취를 감췄으나 궐석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었다. 은둔생활을 해오던 투비에는 지난 89년 니스의 한 수도원에서 검거 됐고 64년 제정된「반인류범죄 불말소법」에 의해 기소돼 법정에 서게 된 것이다.투비에는 동료의 죽음에 보복하기 위해 리옹의 거리에서 무차별 총격을 가해 시민7명이 목숨을 잃게하는등 잔학상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그의 재판도 이같은 피해자 친지들과 인권단체등의 숱한 진정에 따라 이뤄진 것이고 사형을 촉구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그의 가족들은 전후50년가까운 투비에의 도피생활때문에 자신들이 견디기 어려웠다고 진술했다.투비에의 부인은 21살이던 지난46년 당시 오빠를 찾아온 투비에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으며 71년 퐁피두대통령이 사면을 내린 직후의 6개월이 결혼생활 가운데 가장 행복했었다고 회고했다.그의 아들과 딸들은 「항상 쫓기는 생활을 해야만 했고 이름과 주소등 신원이 공개되는 바람에 학업을 포기할수 밖에 없었다」면서 「가족의 미래는 아버지의 석방여부에 달려 있다」고 선처를 호소했다.온갖 고생을 한 가족들의 처절한 진술이 계속되는 동안 당사자인 투비에는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듣기만 했다.투비에 공판이 속개될 오는 6월6일엔 노르망디 상륙작전 50주년 기념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리고 작전에 참가했던 퇴역군인등 8백여만명이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동시에 유럽에서는 아직도 전범과 투비에같은 나치 협력자들에 대한 조사와 심판이 한창이다.역사의 심판은 50년이란 세월의 흐름에 상관없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 우경윤씨 금명조사/「12·12사건」 관련

    「12·12」고소·고발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공안1부(장륜석부장검사)는 28일 정승화육참총장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총격을 받고 관통상을 입었던 당시 육군범죄수사단장 우경윤씨를 이번주중 방문조사키로 했다.
  • 남아공 ANC/줄루족 시위대에 발포/ANC본부 습격과정 총격 발생

    ◎27명 사상… 폭력사태 확산 【케이프타운 외신 종합】 남아공 최대 흑인 정치단체인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소속 경비대원들이 28일 다음달로 예정된 다인종 총선에 반대하는 줄루족 시위대를 향해 발포,27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남아공 경찰이 밝혔다. ANC의 칼 니이하우스 대변인은 줄루족 무장 시위대가 요하네스버그 시내의 ANC본부 건물을 습격하려 했으며 이 과정에서 총격이 발생했다고 확인하고 그러나 시위대가 먼저 발포했다고 주장했다. 목격자들은 ANC본부 건물 주변에 사상자들이 쓰러져 있다고 전했으며 한 목격자는 ANC측의 발포이후 9구의 사체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수천명의 줄루족 주민들이 참가,4월26일부터 28일까지 실시될 총선에 반대하면서 나탈주와 콰줄루에 줄루족 자치왕국 수립을 허용해줄 것을 요구하면서 발생한 이날 시위는 정치폭력이 주요 도시로 확산되는 경향을 보여 준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밖에도 요하네스버그 도심 10여곳에서 총격이 벌어져 5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경찰과 목격자들이 전했다.
  • 헤브론 등 점령지시/이군,팔시위대 총격/25명 부상

    【헤브론(이스라엘) 로이터 연합】 헤브론학살사건후 처음으로 통금이 부분해제된 26일 헤브론을 비롯한 일부 점령지에서 이스라엘군과 유태인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시위대들과 충돌,적어도 25명이 부상했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이스라엘 군인들과 정착민들은 헤브론,나블루스,툴카렘등 3개지역에서 각각발생한 이 충돌사태에서 돌로 대항한 수백명의 팔레스타인들에게 사격을 가했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 멕시코 여 대선후보 피살/유세도중 총탄 2발 맞아

    ◎정국 긴장 고조… 혐의자 현장서 체포 【멕시코시티 AP 로이터 연합】 멕시코의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시되던 집권 제도혁명당(PRI)의 루이스 도날도 콜로시오 후보(44)가 23일 북부 국경도시 티후아나에서 선거유세도중 괴한의 2차례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고 대통령실 대변인이 23일 밝혔다. 이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에게 콜로시오 후보가 유세도중 머리와 복부에 한차례씩 총상을 입고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으나 수술도중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콜로시오 후보의 암살 동기에 대해서는 즉각 알려지지 않고 있다.멕시코 대선은 오는 8월 21일로 예정돼 있었다. 이번 암살사건은 연초 남부 인디언 농부들의 무장봉기로 가뜩이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던 멕시코 정국에 긴장을 더해 줄 것으로 예상된다. 아즈텍 TV 방송을 비롯한 현지 언론들도 콜로시오 후보가 병원으로 후송,즉각 복부수술을 받은뒤 부상정도가 심한 뇌수술에 들어갔으나 이날 하오 11시쯤(이하 현지시각) 수술대위에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살리나스 대통령은 콜로시오 후보가 숨지기직전 국영 라디오방송을 통해 짤막한 성명을 발표,이 사건을 『치욕적인 행위』라고 규정하고 『오직 조국을 위해 봉사하려던 숭고하고 선량한 인간에 대한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이어 검찰총장에게 이번 사건의 정확한 진상을 규명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번 암살사건과 관련,과거 장례회관 직원이었던 올해 23세의 마리오 아부르토를 암살기도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했다고만 밝히고 더이상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한편 살리나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28일 콜로시오를 집권 제도혁명당의 대통령후보로 지명했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