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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악관 앞길 폐쇄 여부 고민(특파원 수첩)

    ◎총격사건계기 「대통령경호­시민통행권」 논란 지난 29일 하오(한국시간 30일 상오)한 청년이 백악관에 총격을 가한 사건은 「대통령의 경호와 시민의 통행권리」에 관한 문제를 새삼 제기하고 있다. 콜로라도주에 사는 올해 26살의 마틴 듀런은 중국제 SKS 반자동 소총을 클린턴대통령의 집무실이자 관저인 백악관을 향해 20∼30발을 난사했다.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범인은 이날 백악관 북쪽 앞길 펜실베이니아 거리의 인도에서 약 90m 떨어진 백악관을 향해 총을 쏘았던 것이다. 매일 수천명의 관광객들이 이 길을 걸으면서 철제 울타리를 통해 백악관건물을 관광한다.백악관 남쪽 사우스 론 쪽에서도 관광객들이 철제 울타리 바깥에서 백악관의 발코니를 배경으로 사진들을 찍는다.아침일찍 줄을 서서 기다려 백악관경내 관람권을 타면 낮무렵 백악관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워싱턴 관광명소 가운데 하나인 이 백악관 관광에는 외국인도 많지만 거의 절반 이상이 전국 각주에서 온 미국시민들이다.서부의 캘리포니아에서부터 남부의 텍사스에 이르기까지 미국민들 가운데 많은 수가 수도 워싱턴의 백악관 관광을 고대하고 있다. 총격사건 당시 클린턴대통령은 중동순방에서 돌아와 백악관 2층 거처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미식축구 중계를 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이날 백악관건물에 맞은 총탄 8발중 3발이 대통령이 쉬고 있는 건물에 맞았으나 다행히 인적 피해는 전혀 없었다. 백악관 경호실측은 이번 사건이 있기 전부터 대통령의 경호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백악관 북쪽 펜실베이니아거리의 15가와 17가 사이를 차단,일반의 통행을 통제할 것을 건의했다고 한다. 6주전인 지난 9월12일에는 한밤중에 현직 트럭운전사가 경비행기를 훔쳐몰고 남쪽 워싱턴기념탑 방향에서 백악관을 향해 가미가제 특공대식으로 돌진,대통령숙소 부근에서 박살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관저의 내부수리 때문에 펜실베이니아 거리 건너 영빈관 블레어하우스에 머물러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었다. 경비행기 돌진사건에 이은 이번 총기난사 사건은 백악관 경호에 대한 전반적 재검토를 강요하고 있고그 과정에서 펜실베이니아가의 일부 폐쇄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경호실측은 펜실베이니아가를 차를 타고 가면서 백악관을 향해 총격을 가할 수 있는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리언 파네터 백악관비서실장은 대통령의 경호와 시민의 대통령관저에 대한 접근 허용간에 최대한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경비행기 돌진사건 직후 『백악관은 국민의 집』이라고 강조했던 클린턴은 이날 총격사건에도 불구,예정대로 열린 백악관 만찬석상에서 『(공격용 총기의 휴대·판매를 제한한) 범죄방지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번 사건이 입증해 준다』며 자신이 적극 추진했던 이 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동요의 빛이 없었다. 워싱턴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펜실베이니아 거리를 걸으며 지척의 백악관을 바라보고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피부로 느낀다고 말한다.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 거리가 과연 폐쇄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 새로 밝혀진 「12·12」 6가지 사실

    ◎신군부가 13일새벽 노국방 “체포”/11월 중순께 핵심들 사전계획/최대통령,총장연행 재가 거부/우경윤대령은 합수부팀 총격에 부상/1공수단등 신군부 병력 먼저 출동/전군통신 감청… 육본측 동태파악 검찰의 수사결과에서 새로 밝혀지거나 확인된 12·12 사건관련 사실들을 간추린다. ○우씨 누가 쐈나 ◇우경윤씨는 합수부 수사관의 총에 맞았다=12월12일 당시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총상을 입은 우경윤 범죄수사단장은 보안사 수사관들의 오인사격에 의해 피격됐다. 정씨를 연행한 합수부측은 우씨가 총장공관 경비병에 의해 선제공격을 당해 총격을 입었으며 만약 그같은 불상사가 없었다면 무력충돌이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검찰은 그동안 허삼수보안사인사처장,우씨,최석립33헌병대장 등을 상대로 정총장 연행과정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우씨가 피격된 경위에 대해서도 자세히 조사했다. 조사결과 정총장측 군인들중 유일하게 무장을 했던 총장경호장교 김인선대위는 보안사 수사관에 의해 이미 척추등에 중상을 입고 쓰러져신음하고 있었다.또한 최헌병대장은 자신이 이끌고 온 합수부측 병력을 지휘,총장공관 외부를 경비하던 경비병들을 무장해제시켜 바닥에 엎드리게 한 뒤 M16 소총으로 감시했다.공관현관앞 경비병들도 합수부측 병력으로 교체시켜 정총장 연행당시 공관외부도 합수부측에 의해 장악돼 있었다. 검찰은 『당시 공관 관리장교와 당번병 2명이 응접실로 들어와 정총장 연행을 제지하다가 부관실쪽에서 총성이 들리자 관리장교 등이 밖으로 뛰어 나가고 우대령이 이들을 뒤따라 나와 복도끝에서 총을 쏘다가 보안사 수사관의 오인사격에 의해 피격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연행재가 여부 ◇최규하대통령은 정총장 연행을 사전에 재가하지 않았다=최대통령은 전두환 합수본부장의 사전재가 요청을 거부한 것으로 밝혀졌다. 12·12 당일 하오6시43분쯤 전합수본부장은 이학봉중령을 데리고 보안사를 출발,총리공관에 도착한 뒤 접견실에서 최대통령에게 정총장이 김재규로부터 돈을 받는 등 10·26사건에 연루돼 있다는 새로운 사실이 발견돼 정총장을 연행조사하겠다고 보고했다. 최대통령은 『현직 계엄사령관을 연행,조사하는 것은 중대한 문제이므로 국방부장관의 보고와 의견을 듣고 신중하게 처리할 사항이라는 이유로 국방부 장관과 같이 와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는 것. 전두환합수본부장은 박정희대통령 재임시 보안사령관이 바로 대통령에게 보고한 전례를 들며 재가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대통령은 끝내 재가를 거부했다. 전합수본부장은 자파계열의 장성들이 집결해 있는 경복궁 30경비단장실로 돌아가 장성들에게 대통령의 재가거부를 설명했고 집단으로 재차 대통령 재가를 요청,다시 거부당하자 무력으로 군지휘계통을 제압하고 정총장을 강제연행했다. 이후 노재현국방장관마저 강제연행한 합수부측은 13일 하오 3시쯤 노장관과 신현확국무총리,최광수대통령비서실장이 배석한 가운데 대통령의 사후재가를 요청,『사태가 더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하기위해 재가하는 것이 좋겠다』는 노장관의 의견을 받아들여 대통령은 정총장연행 보고문서에 서명했다. 따라서 사태를 수습하는 의미에서 정총장 연행을 재가했더라도 이미 형성된 형사상 또는 행정상의 위법이 소급해 치유될 수 없다. ○반란계획 시점 ◇12·12사건은 11월중순 계획됐다=당시 정총장은 군의 정치불개입을 천명,비정규육사 출신장성을 중용했다.특히 전두환보안사령관은 10·26사건과 관련,직무유기 혐의로 구속된 이재전경호실차장의 석방과 이후락전중앙정보부장 출국허가문제 등을 둘러싸고 마찰을 빚고 있었으며 자신이 한직으로 좌천될 것이라는 설이 유포돼 있었다. 이에따라 전사령관은 11월중순쯤 유학성국방부군수차관보·황영시1군단장·차규헌수도군단장·노태우 9사단장 등과 접촉해 정총장에 대한 군내 여론을 탐문,정총장 연행·조사문제를 협의해 긍정적인 협의를 받아냈다.이어 12월7일 노사단장과 만나 김재규에 대한 1심재판이 12월 중순쯤 종결될 예정임을 고려,거사일을 12일로 결정했다. ○병력동원 선후 ◇12일 밤 군병력은 신군부측이 먼저 동원했다=전두환합수본부장등 신군부측은 최대통령이 노국방장관을 불러오라며 정총장 연행에 대한 재가를 거부하자 12일 하오 9시쯤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병력을 동원,육군 정식계통을 제압키로 했다. 이에따라 12일 하오 9시10분쯤 박희도1공수여단장은 이기용부여단장에게 병력출동 준비를 지시,9시45분쯤 1대대병력이 신월동 삼거리에 집결했다.당시 육본 수뇌부측은 신군부측의 이같은 군병력 동원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9공수여단 병력출동을 준비했다. ○노국방의 신병 ◇노재현국방장관은 신군부측에 의해 연행됐다=신군부측은 13일 새벽 2시40분쯤 국방부청사를 장악,청사내부를 수색,3시50분쯤 국방부 지하 상황실입구에서 노국방장관을 발견,체포한뒤 장관실로 연행했다. 연행된 노장관은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장관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신국무총리등과 함께 국무총리 승용차를 타고 총리공관으로 출발했다.그러나 새벽 4시10분쯤 보안사령부 정문에서 무장병력에 의해 강제 하차당했다. 노장관은 보안사령관실에서 전두환합수본부장등으로부터 정총장 연행,조사보고문서에 결재하라는 요구를 받고 사후 결재를 하더라도 그들의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판단,문서에 서명한 후 새벽 5시10분쯤 총리공관에 도착,신총리·최비서실장이 배석한 가운데 대통령에게 사태가 더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하기위해서는 재가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대통령이 서명했다. ○통신체계 장악 ◇신군부측은 12일 전군의 통신내용을 감청했다=12일 보안사 임시상황실은 감청활동을 강화,육본수뇌부의 수경사이동·육군참모차장과 특전사령관의 9공수여단 병력출동지시·수경사령관의 26사단 수도기계화사단 30사단 병력출동요청·김진기육본헌병감의 합수본부장 체포가능 여부타진 등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움직임을 자세히 파악해 대응함으로써 상황을 장악할 수 있었다.
  • 「12·12」 수사 장윤석 공안1부장 일문일답

    ◎“기소유예는 국가공헌 고려한 결론”/군권장악에 그쳐 내란죄는 적용안해/1백50명 진술 청취… 자료부족 애먹어 12·12 고소·고발사건의 수사 주임검사인 장윤석서울지검 공안1부장과의 일문일답. ­전두환·노태우 전직 대통령에 대해 기소유예결정을 내린 이유는. ▲지금까지의 수사 결과를 종합해 결정했다.결정 과정에 대해 얘기할 수는 없다.결정은 수사결과에 따른 것이다.두 전직 대통령의 국가에 대한 공헌은 물론 법률적·정치적·사회적 요소들을 신중히 검토해서 내린 결론이다. ­일부에서는 전두환·노태우 전직대통령과 박준병 당시 20사단장등 피고소인에 대한 기소유예가 이미 예견된 결과라는 말도 나오는데. ▲국민들이 생각한 바와 같이 결정됐다면 국민 정서에 맞게 최대 공약수를 찾은게 아닌가.앞서한 말중에 「정치적 고려」는 「정치적 술수」가 아니라는 점을 밝혀둔다. ­12·12사건은 결국 5·18과 제5공화국 탄생등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내란죄에 해당하는 국헌문란이 아닌가. ▲이번 검찰 수사는 12·12사건에 국한된 것이다.국헌문란을 목적으로 한 내란죄에 대한 결론을 내린 바가 없다는 점을 확실히 해둔다.12·12사건의 전후 결과에 대해 연관지울 수 없다.국헌문란의 목적은 정권탈취등의 목적이어야 하지만 국헌 질서와 제도를 일부 거역했다고 해서 모두 내란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궁국적으로는 정권을 잡지 않았는가.「성공한 쿠데타」에 대한 면죄부는 아닌가. ▲모의 과정·행위·실행범위등 모든 관련성에 대해 조사를 했다.그러나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범위를 넘지 않았다는 판단을 했다.즉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군의 주도권을 잡자 입지가 곤란해진 소장파들이 자신들의 몰락을 우려해 일으킨 것이다.예를 들어 병아리를 훔쳤다고 해서 병아리를 팔아 돼지를 사고 또 소를 사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할수 있겠는가. ­최규하전대통령은 조사하지 못했는데. ▲최전대통령의 조사거부로 당시 재가문제나 총리실 상황에 대해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그러나 당시 총리실 공관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의 진술을 들었기 때문에 진상규명에는 전혀 하자가 없었다. ­당시 12월13일 최전대통령이 사후재가 할 당시 전두환합수본부장이 권총을 찬 채로 있었다는 말도 있는데 이는 강압에 의한 재가를 입증하는게 아닌가. ▲대통령에게 강요와 협박을 했다는 점은 없다.전두환 합수본부장이 계엄하에서 전투복 차림에 권총을 지닌 것은 사실이나 접견실에서 권총을 차고 있었던 모습을 본 사람은 없다. ­정승화육군참모총장 연행을 담당했던 우경윤대령이 총에 피격됐는데 누가 쏜 총에 맞은 것인지 확인했는가. ▲구체적으로 누구의 총인지는 모르나 당시 경비병·당번병·가족등 정총장측 사람으로부터 총격을 받지 않았음은 명백하다. 이 부분은 「12·12가 정총장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우발적인 충돌」이라는 합수부측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피고소인에 대한 죄명에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합수본부장은 형법상 「반란수괴」라는 용어가 사용됐는데. ▲「수괴」라는 용어는 법전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전두환대통령등 피고소인측이 항고나 재항고등을 한다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처리할 것이다.12·12사건의 공소시효가 오는 12월 12일까지이기 때문에 충분하다. ­수사를 시작할 때 각오는. ▲12·12사건의 진상규명에 선입견을 갖지 않고 철저히 밝힐 수 있는데까지 밝히려 했다. ­이 사건을 수사하며 어렵거나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나름대로 조사할 것은 다했다고 생각한다.고소인과 피고소인을 포함,1백50여명의 진술을 들었다.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시간이 너무 흘러 당사자들의 기억이 부정확한데다 또 이들이 관련자료를 잃어버리거나 아예 버린 경우가 있었다는 것이다.그러나 수사팀은 당사자나 참고인·자료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조사하고 검토했다.
  • 일,불법총기 소지 확산 골치

    ◎권총 6만정 나돌아… 올 발포사고 189건/이달 30대환자 전철총격난동으로 충격 치안이라면 세계 제일이라고 자랑하던 일본 사회에서 총기 사고의 공포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25일 아침 출근시간 도쿄시내 전철 게힝큐코선 아오모노요코쵸역에서 한 30대 남자가 출근길의 시민에게 권총을 쐈다.복잡한 출근길의 시민들은 크게 놀라 긴급 대피하는 소동을 벌였다.총을 맞고 병원에 후송돼 끝내 숨을 거둔 사람은 도립병원 의사로 밝혀졌다.유력한 용의자는 옛 환자로서 폭력단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원한 관계로 일어난 「그저 그런」 사건이지만 일본사회는 이번 사건을 두고 이제 폭력단 뿐아니라 일반 시민사회에도 총기가 깊숙이 침투하고 있음을 절감하는 분위기다. 일본은 미국에 체류하다가 2명의 청소년들이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나자 미국사회의 총기 사고문제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면서 예방을 위한 미국정부의 노력을 촉구하기도 했으나 이제 일본도 남의 나라 나무랄 처지가 못된다. 올들어 9월말까지 일본 전국에서 일어난발포사건은 1백89건.사망자는 22명,이 가운데 일반 시민은 7명이다.경시청은 발생건수와 피해자 모두 사상 최악이라고 말하고 있다.일본경찰은 민간에 퍼져 있는 권총이 무려 5만∼6만정 정도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사회에 이처럼 총이 민간에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92년 폭력단대책법 시행후.이 법의 시행전 폭력단 등에서 「규제가 실행되면 총기확산의 우려가 있다」고 말한 것이 불행하게도 적중했다.폭력단에 공급하던 밀수무기의 판로는 수요자인 폭력단이 위축되면서 일반시민 쪽으로 돌려졌다.이 때문에 폭력단이 총기의 80∼90%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 요즘은 70%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그만큼 일반시민의 소지 비율이 높아진 것이다. 총기 밀거래 가격도 권총이 지난해 3월 65만엔선에서 올해 30만엔선으로 떨어지는 등 지난해보다 절반 정도로 내려가고 구입도 쉬워졌다.무기공급도 밀수가 대부분이었으나 최근 한 건설노동자가 집에서 13정이나 만들어 놓았다가 적발되는 등 국내서의 총기 불법 제조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 노벨상 수상 오에겐자부로 “반한 편견주의자”

    ◎「늦게 온 청년」서 조선인을 강도·강간·살인자로 묘사 누가 뭐라고 하든,노벨 문학상 쯤 되면 수상자가 어느 나라의 누구이든 일단 축하해 주는 것이 기본 예의겠지만 금년도 노벨 문학상의 경우에는 축하만으로 끝날 수 없는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다. 일본은 각종 노벨상을 이미 8개나 받았고 이번에 오에 겐사부로(대강건삼낭)가 받은 노벨 문학상만도 1968년 장편 「설국」으로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천단강성)에 이어 두번째가 된다. 일찍이 사르트르가 노벨 문학상을 거절한 바 있고 노벨 문학상을 수상해야 반드시 세계적 작가로 평가된다고만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국이 아직까지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노벨상 하나도 타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히 문화적 손실임에 틀림없다. 오에 겐사부로는 가이코 다케시(개고건)와 더불어 일본 전후세대를 대표하는 작가이므로 그의 수상은 수긍되면서도 한편 의외라는 느낌도 없지 않다.한국에도 그만한 정도의 작가는 있다든지 한국 펜클럽이 추천한 원로 서정주씨를 제치고 그가 수상했다는 데서 의외라는 것은 아니다.그 보다는 오에의 작품이 얼마나 각국에 널리 읽히고 알려진 작가였느냐 하는 것도 있고 또 그보다는 오에 자신이 픽션적인 자서전이라고 한 그의 장편 「늦게 온 청년」(1962년)의 도처에 표출하고 있는 반조선인 감정이 우리를 우울하게 하기 때문이다.강도·강간·살인(총격)·주정 등의 악행은 조선인에게 배역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데 재일 교포들이 일본에 이주하여 고생하고 있는 과거의 역사적 배경을 고려한다면 비록 허구일지라도 인물 설정의 편견을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또 스웨덴 한림원 심사위원들이 이 작품을 읽었는지 읽고 어떻게 평가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인권과 양심의 차원에서도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지난 8월,한국 펜클럽이 주최한 국제 세미나에는 노르웨이의 비평가이며,노르웨이 최대의 일간신문인 「아프텐포스텐」지의 칼럼니스트인 하콘 하르켓씨가 참가했다.비록 사석이긴 하나,화제가 노벨 문학상에 이르자,하르켓씨는 94년도 노벨문학상은 일본이 유력하다며,일본의 작가까지 거명했다.그때는 예사로 듣고 흘려 버렸지만,막상 노벨문학상의 뚜껑이 열리자 하르켓씨의 말이 충격적으로 되살아났다. 스웨덴 펜클럽 회장과도 친한 사이인 하르켓씨의 말은 자기의 개인 의견이라기보다는 스웨덴 한림원 주변에 떠돌게 마련인 여론이나 소문을 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이 추측이 맞다면,스웨덴 한림원 주변에도 오피니언 리더들이 있을수 있고,적어도 오피니언 리더들에 의한 여론 형성을 위하여 비단 일본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들이 자국의 작가와 작품 세계를 홍보하고,또 그 홍보에 필요한 정보도 탐문하는 활동,즉 로비활동이 가능함을 알 수 있다.노벨상을 위한 각국의 로비 활동은 스웨덴 주재 자국의 대사관이거나 문화원이 주축이 될 것이다.그런데,과묵한 탓인지는 모르나 스웨덴 주재 한국 대사관은 그러한 문화 외교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도 또 문화 외교 담당관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 차제에 우리는 왜 노벨문학상을 못타는가 하는 물음을 강력하게 재기해야 한다.스포츠에 투자하고 있는 예산의 몇 퍼센트를 문화예술에 투자하고 있는가,국립 번역원 같은 기관이 있는가,한국 문학의 해외에서의 출판,연구,홍보 활동에 얼마나 지원하고 있는가­이러한 물음을 뼈아프게 제기하면서 이제부터라도 새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 버스 총격후 추락케/34명 사망·11명 부상/인 쿠키족 게릴라

    【뉴델리 AP 연합】 인도 북동부 마니푸르주의 쿠키족 과격분자들이 19일 주도 임팔로부터 45㎞ 떨어진 코틀랑에서 52명이 탄 버스 한대를 강제로 세운후 이를 골짜기로 떨어트려 34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했다고 PTI통신이 20일 밝혔다. 미얀마와 접경한 마니푸르주로부터의 보도에 따르면 중무장한 쿠키족 게릴라들은 이날 도로변에 매복해 있다 버스를 기습,길가에 세우고 운전사와 승객 6명만 내리게한 후 버스에 마구 총질을 하고는 나머지 45명이 탄 버스를 낭떠러지에서 계곡으로 밀어 떨어트렸다는 것이다. 이날 희생된 사람들은 친정부적인 쿠키족과 오랫동안 유혈분쟁을 계속해오고 있는 나가족 분리주의 반군들로 신원이 확인됐다. 마니푸르주 인구 1백80만명의 20%와 25%를 각각 차지하는 쿠키족과 나가족은 미얀마국경지대에서 충돌을 빚고 있다.
  • 파키스탄 카라치시/종교분규 23명 사망

    【카라치 AFP 연합】 파키스탄 항구도시 카라치에서 지난 이틀간 인종·종교 폭력사태가 발생,모두 23명이 사망했다고 경찰소식통들이 18일 밝혔다. 경찰과 무장괴한이 시아파회교도들의 집회에 기습공격을 가해 5명이 숨진 17일에 주로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또 산발적 총격으로 카라치일대에서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 “홍콩서 총격전중 사망 강상보씨/경찰총탄에 맞았다”/홍콩신문 보도

    【홍콩 연합】 홍콩에 업무차 출장와 홍콩 경찰과 범인간의 총격전 끝에 피살된 한국인 컴퓨터 프로그래머 강상보씨(31)는 홍콩 경찰이 사용하는 총탄에 맞았다고 홍콩의 영자지 스탠더드가 15일 1면 머릿기사로 보도했다. 스탠더드지는 홍콩 경찰의 「고위 수사관들」이 강씨에게 명중된 2발의 총탄들중 하나는 경찰이 사용하고 있는 38구경 권총의 총탄이었다고 이 신문에 밝혔다고 말했다.
  • 알제라/군정반대 테러격화/회교강경파/도심 차량폭파 잇따라

    【알제 UPI AFP 연합】 대우그룹 강대현 부사장(56)이 총격을 받고 사망한 알제리 수도 알제에서 12일 밤 (현지시간) 다시 6번째 차량폭탄이 터져 알제리 군사정권에 대한 회교원리주의자들의 공세가 유례없이 강화되고 있다. 알제리 보안당국은 이날 아침 수도 알제의 대학교와 법무부 건물 앞 등에서 5대의 차량폭탄이 터져 4명이 숨진데 이어 하오 10시30분쯤 시내 중심부에서 다시 6번째 차량폭탄이 터졌으나 부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혐의자 2명을 붙잡아 조사중이라고 말했다. 이날 연쇄 차량폭탄 테러는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회교원리주의자들이 고도의조직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 데다 수도에서 백주대로에 테러를 감행할 정도로 대담했다는 점 때문에 알제리 군사정부의 심리적 충격은 컸다. 알제리 전문가들은 이날 테러가 회교원리주의자들의 대정부전략이 강화됐음을의미하는 것으로 테러분자를 제압 중이라는 정부측 주장은 설득력을 잃고있다고 분석했다.
  • 홍콩출장 한국회사원 피살/한국전자계산 강상보과장

    ◎강도에 납치… 경찰과 총격전중 참사 【홍콩 연합】 홍콩에 업무차 출장온 한국인이 인질로 납치됐다가홍콩경찰과 중국제권총으로 무장한 범인간의 20여발에 걸친 총격전끝에 피살돼 충격을 주고있다. 14일 새벽1시께 홍콩섬 에버딘에서 홍콩경찰과 무장인질범간에 격렬한총격전이 벌어져 업무차 출장와 호텔로 돌아가다 범인에 인질로 붙잡힌 서울 용산구갈월동 8의61 소재 컴퓨터전문회사인 한국전자계산주식회사(대표이사·조동민)의 시스템사업본부 강상보과장(31)이 이마와 심장에 각각 1발씩의 총탄을 맞고 숨졌다.범인도 2발의 총탄이 명중돼 사망했고 홍콩경찰관 3명이 부상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강씨는 지난달 29일부터 동료 4명과 함께 출장와 홍콩섬 랜드마크빌딩 32층의 조흥은행 자회사이자 홍콩현지법인인 조흥금융유한공사(사장·박희영)내에서 밤늦게 프로그램 설치작업을 하고 14일 새벽 30분께 동료들과 헤어져부근 호텔로 돌아가던중 범인에 납치됐다. 이들은 이달말까지 작업을 끝내기 위해 자주 밤늦은 시간까지 일해왔다. 사망후 몸에서 나온 신분증조사 결과 중국에서 지난 90년 홍콩으로 건너온 중국인으로 드러난 범인 장조우(23)는 구룡반도 첨소추이의 스타페리 부두옆에서 13일 밤11시10분께 여자를 희롱하고 달아나다 밤늦게까지 인파가 붐비는 첨사추이에서 경찰과 제1차 총격전을 벌인뒤 추적을 피해 홍콩섬으로 달아났다. 그는 홍콩도 랜드마크 인근 태자빌딩옆에서 근무중이던 경찰을 위협해 또 한자루의 총과 12발의 총탄 및 무전기를 빼앗은 뒤 부근 YWCA호텔로 귀가하던 강씨가 타고 지나가던 택시를 세워 택시기사 및 새로 납치한 여자 1명 등 3명의 인질과 함께홍콩도 남쪽 해변가로 도주했다. 경찰은 이 택시를 경찰차로 추적해 장이 앞이 막힌 거리에 이르러 더갈길이 없게되자 그와 제2차 총격전을 벌였으며 이때 여자인질과 택시기사는 재빨리달아났으나 강씨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범인과 함께 사망했다.
  • 부인,“어젯밤 안부전화 왔었는데”/참변 강상보씨 주변 스케치

    ◎강씨,선천성 소아마비… 낙천적 성격/해외출장자 잇단 사고로 “안전비상” 최근 두달새에만도 8월말 필리핀에서 (주)신성의 한국인 근로자 7명이 회교반군들에게 억류됐다가 8일만에 풀려났고 지난 12일 알제리에서 대우그룹 현지법인 부사장 강대현씨가 괴한들의 총격을 받아 사망한데 이어 14일 다시 홍콩 출장중이던 강상보씨의 총격 피살사건이 일어나는 등 해외업무 수행중의 돌발적 사고가 자주 발생하자 가족은 물론 정부와 해당 업체들이 출장자 안전문제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강씨의 피살소식이 전해진 서울 노원구 월계동 성북빌라 A동101호 강씨 집에는 동갑내기 부인 최순자씨(31)가 아빠의 사망사실도 모른채 어리둥절해하는 외아들 명지군(5)을 끌어안고 넋을 잃은듯 통곡했다. 최씨는 『어제 저녁에도 안부를 묻는 국제전화가 왔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이야…』라며 오열했고 비보를 듣고 달려온 친척들은 『회사일 때문에 늘 바빴지만 평소 자상한 가장의 모습을 보여줘 아들이 엄마보다 아빠를 더 따를 정도였다』며 울먹였다. 선천성 소아마비로 장애인인 강씨는 86년에 최씨와 연애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려왔다. ○…강씨는 86년 경남대 전산과를 졸업하고 제주 그랜드호텔 전산부에서 근무하다 89년 이 회사로 옮긴 뒤 직장일로 바쁜 가운데서도 광운대 대학원 전산학과를 다니는 등 집념어린 학구열과 성실한 근무자세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동료 성미경씨(31·여)는 『소탈하고 낙천적인 성격의 강과장은 소프트웨어 개발팀의 주역으로 평소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 대우 중역 알제리서 피살/강대현부사장/괴한,승용차에 총기난사

    ◎회교과격분자 소행인듯 【알제 AFP 연합】 외국인에 대한 회교과격분자들의 테러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알제리에 진출한 주식회사 대우의 강대현상무가 12일 괴한들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강대현상무는 이날 아침 7시(한국시간 12일 하오 3시)수도 알제동쪽의 해안도시 보르즈 엘 바리에서 승용차에 탄 채 머리에 두발의 총을 맞고 사망했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사고 당시 강상무의 운전기사는 인근 가게에서 신문을 사러 잠시 자리를 떴었는데 이때 한 괴한이 가게뒤에서 달려나와 차 유리창에 대고 강상무를 쏘았다고 목격자들은 말했다. 목격자들은 괴한이 사고 직후 몇미터떨어진 곳에 있던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고 말했다. 주식회사 대우는 현재 알제리에서 자동차판매와 호텔관련 산업에 손을 대고 있으며 알제리경찰과 정부에 자동차를 판매하고 있다. 알제리 회교과격분자들은 작년 10월 모든 외국인은 출국치 않으면 『급사할 것』이라는 최후통첩을 발표했으며 그 이후 강상무외에도 모두 63명의 외국인이 살해됐다.
  • 예루살렘/총기난사 15명 사상/평화회담 주선 미 국무장관 숙소인근

    ◎「팔」 자치 반대 「하마스」 소행 【예루살렘 AFP AP 연합】 이스라엘 점령지역에서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자치를 반대해온 무장세력들이 예루살렘 번화가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수류탄을 던져 휴가나온 이스라엘 여군 등 2명이 사망하고 미국 외교관 1명을 포함,13명이 부상당했다고 이스라엘 경찰당국이 10일 밝혔다. 이스라엘 경찰당국에 따르면 9일 자정 조금 못미쳐 유흥가인 예루살렘 서부 유태인지역 나할라 시바 보행전용구역에서 팔레스타인인 2명이 보행인들을 향해 소총을 난사한뒤 수류탄을 던졌으며 이들 괴한은 부근에 있던 경찰과 총기를 소지하고 있던 행인들의 반격을 받아 현장에서 숨졌다는 것이다. 사건발생당시 인근 킹 데이비드 호텔 부근에는 이스라엘과 시리아간의 평화회담 주선을 목적으로 중동을 순방중인 워런 크리스토퍼 미국 국무장관 일행이 묵고 있었다. 사건 발생 직후 팔레스타인 자치를 반대해온 무장단체인 「하마스」는 한 국제통신사에 서한을 보내 지난 90년 10월8일 이스라엘 경찰들이 예루살렘 알 아크사 사원에서 팔레스타인인 17명에게 총격을 가한데 대한 보복으로 이번 사건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 파리 한밤 총격전/경찰 등 10명 사상

    【파리 로이터 AP 연합】 프랑스 파리에서 4일밤 젊은 남녀 한쌍이 경찰 총기를 탈취한 뒤 차량을 빼앗아 시내를 질주하면서 경찰과 총격전을 벌여 경찰 3명과 택시운전사 1명이 숨지고 경찰 3명 등 6명이 부상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 아제르 국회부의장/무장괴한 총격 사망

    【바쿠 로이터 연합】 아피야딘 잘릴로프 아제르바이잔 국회부의장과 하이다르 알리예프 대통령의 측근 보좌관이 29일 밤 각각 무장괴한들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으며 이에따라 30일 수도 바쿠에 비상경계 상태가 선포됐다. 라술 줄리예프 국회의장은 국영 TV와 회견에서 무장 괴한들이 잘릴로프 부의장과 알리예프대통령의 보좌관 샴시 라지모프를 저격,사망케 하고 달아났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암살사건들은 아제르바이잔의 정권을 탈취하려는 반역자들이 최근 정부가 카스피해 유전개발을 위해 국제 컨소시엄과 계약을 체결한데 반대하며 저지른 것』이라면서 알리예프대통령의 정적들을 비난했다.
  • 중국/“총기범죄 급증”… 새 골칫거리

    ◎불법무기 범람탓… 2년간 39만정 압수/라이터모양의 초미니 권총도 나돌아 개혁개방의 부작용으로 사회기강이 이완되고 있는 가운데 불법총기류의 증가와 총기를 이용한 범죄,사고가 중국의 새로운 골치거리가 되고 있다. 국경무역지대와 개혁개방구에서는 불법무기를 이용한 조직범죄가 급증하고 있는가 하면 이들 무기를 이용한 강력사건도 잇따르고 있다.특히 북경 등 대도시지역에서도 이로 인한 사건사고가 발생하기 시작해 중국 공안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추석공휴일이던 지난 20일 상오 북경의 외국인 집단거주지역 부근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은 단발적 사건이었지만 중국당국이 치안안전지대라던 북경에서 그곳도 건국기념일을 앞두고 비상경계령이 내려진 가운데 벌어진 사건이란 점에서 중국인들에게 충격과 걱정을 더해주고 있다. 이날 상오 7시20분(한국시간8시20분) 무렵 북경의 외국인 집단거주지역인 조양구 건국문외 아파트단지 외곽을 가로지르는 이환로에서 버스를 타고가던 신원미상의 중국인이 갑자기 버스에서 권총을 꺼내 승객들에게 총을 쏜 뒤 달아나다 불과 5분도 못돼 쫓아온 경찰들과 총격전을 벌인 사건이 발생한 것.목격자들은 이 과정에서 이란국적의 외교관과 최소한 8명이상의 외국인이 사망하고 30여명이 부상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범인은 사살됐으며 범인의 총기입수 과정 등에 초점을 맞춰 사건을 조사중이라고 말하고 있다.중국공안부의 한 관계자는 사회기강 이완과 불법무기류의 확산으로 이같은 사고가 계속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중국에선 정부의 각종 대책에도 불구하고 불법총기류의 조직적인 제조와 판매,그리고 일반층에까지 무기류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중국공안부는 지난 2년동안 모두 39만여정의 불법무기류를 압수했지만 대량의 총기류가 사회로 흘러들어오고 있는 등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어 집중단속하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공안당국은 비밀공장을 차려놓고 총기를 만드는 것은 물론 일부 총기류 생산회사들이 계획량보다 더 많은 양을 만들어 암시장에 빼돌리는 일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또 지난 2년동안 압수된 총기가운데 7천2백정은 군대에서 나온 것이라며 군대에서 흘러나온 총기류도 적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또 최근엔 라이터 등 생활용품으로 위장한 초미니형 총기류도 등장,공안당국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고 있다.지난달 21일 심천공안당국은 나호구 봉봉로의 한 가라오케에서 라이터,만연필,플래시 등으로 위장한 초미니형 특수권총 매매상들을 일망타진했다고 밝혔다.당국에 따르면 한자루에 4백위엔(4만원상당)에 거래하기로 된 이 특수권총은 4m 밖에서도 인명살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당국은 이 특수권총이 장춘에서 심천까지 일반 물품을 가장해 운송해 왔으며 배후에 대규모 관련 조직이 개입돼 있다고 말하고 있다. 중국공안당국은 불법무기류의 제조,유통,소지자에 대해서는 단속과 처벌을 강화,사회안정의 차원에서 뿌리뽑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중국내의 불법무기류의 확산은 쉽게 근절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아이티 긴장 고조/주민 수백명 무기고 탈취

    ◎병영·경찰서 습격… 한때 치안마비 【포르토프랭스·카프아이시앵 AP AFP 연합】 아이티주둔 미군과 현지 무장요원들이 24일 총격전을 벌여 무장요원 10명이 사망하는 등 미군 상륙후 첫 유혈사태가 발생한데 이어 25일에는 수백명의 현지인들이 군병영과 경찰서 등을 습격해 총기 등을 탈취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양측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유혈사태후 아이티주민 수백명은 이날 북부 항구도시 카프 아이시앵소재 대규모 무기고 등을 장악하고 총기류 등을 탈취했으며,주요 군병영과 경찰서 요원들이 이들의 습격을 피해 도주,치안이 부분마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한때 공포탄으로 보이는 총성이 울리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주민들은 무기를 자발적으로 반납한 것으로 보이며,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관측됐다. 경찰관서 등지에서 총성이 울리자 미해병대 병력이 주요 군병영에 쇄도,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병영을 장악한데 이어 시전역에 검문소 등을 설치해 본격적인 치안유지에 들어갔다.
  • 미­아이티 총격전 9명 사망/미군 1명 부상

    ◎“아리스티드 복귀” 수천명 시위 【카프 아이시앵 AP 로이터 연합】 아이티 주둔 미해병대원들이 24일 하오7시쯤(현지시간) 북부 항구도시 카프 아이시앵에서 현지 무장요원들과 총격전을 벌여 무장요원 9명이 사망하고 미해병대 통역요원 1명이 부상했다. 이번 총격전은 미해병대가 지난 19일 아이티에 상륙하기 시작한 이래 인명이 희생된 첫 유혈충돌로,미군과 현지 무장세력들간에 긴장이 점증하는 가운데 발생한 것이다. 카프 아이시앵 주둔 미해병대 사령관 스티브 하틀리대령은 소대병력이 경찰서부근을 순찰하던중 밖으로 뛰쳐나온 무장요원들과 몇마디 주고받은 뒤 총격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순찰소대의 마이크 아네트 상병은 『무장요원 4명이 경찰서밖으로 나오다 우리를 발견,무서운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총기를 난사했으며 우리도 응사했다』고 말했다. 이날 총격전으로 현지 경찰관이나 경찰서 소속 민간인으로 추정되는 아이티인 9명이 숨졌으며,미해병대 통역요원 1명도 다리부상을 입었으나 중상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총성이 울리자 미신속대응군은 인구 7만5천명의 이 도시를 봉쇄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즉각 취했다.
  • 중국무장탈영병 총기난사/북경 중심가서… 8명 사망·30명 부상

    【북경=이석우특파원】 건국문외 외교관단지와 인접한 북경시내 중심가의 이환로상에서 20일 아침 자동소총을 든 무장탈영병 1명이 지나는 행인들에게 총기를 무차별 난사,적어도 8명이 사망하고 30여명이 부상했다고 북경시 공안당국이 밝혔다.그러나 한국인 피해자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관영 신화통신은 사망자 가운데 이란외교관과 그 아들등 2명의 외국인이 포함돼 있으며 범인은 긴급출동한 경찰과 총격전을 벌인 끝에 현장에서 사살됐다고 전했다. 이번 사건은 오는 10월1일 건국 45주년 기념일과 이달말로 예정된 중국공산당 제14기 중앙위원회 제4차 총회를 앞두고 북경시내의 경계가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벌어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
  • 전 전대통령 「국민께 드리는 말씀」 요약

    ◎“「12·12」는 사회 평온… 쿠데타 아니다” 주장/전 총장측이 먼저 자의적 부대 출동/보안사,내전 막으려 대응병력 동원 90년대도 반이 지나고 몇년 안있어 21세기를 맞이하게 되는 이 시기에 제가 70년대의 「12·12사태」에 대해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12·12는 박정희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시해된 「10·26」사건과 관련해서 용의자인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사건입니다. 범인은 대통령을 제거한뒤 자기계열의 군부세력을 이용해서 계엄령을 선포하여 사태를 장악하고 혁명위원회를 구성,정권을 탈취하려 했습니다. 김재규 스스로 털어놓고 확인한 이러한 「3단계 혁명계획」은 10·26의 성격이 내란사건임을 분명히 밝혀 주고 있습니다. 정씨는 김재규와 동향이며 호형호제하는 친밀한 관계로 김재규의 추천으로 참모총장이 되었고 10·26 당일에는 범행장소인 안가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로 인접해 있는 50m의 지척거리에서 수분에 걸쳐 수십발의 총성이울렸는 데도 평생 총격소리를 들으며 살아온 그가 대수롭지 않은 오인사격으로 생각했다고 억지를 쓰고 있습니다. 사건직후 김재규로부터 대통령의 유고사실을 알게 됐으면 육군참모총장 직책을 맡고 있는 정씨로서는 우선 그 엄청난 사건의 사실여부를 확인하고 진상과 경위를 알아보는 일이 급선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김재규를 의심하면서도 그와 같은 차를 타고 그가 하자는대로 황급히 현장에서 벗어났습니다. 육군본부로 이동한 뒤에도 군과 휴전선의 이상동향을 알아보고 일단 긴급상황이 없는 것을 확인했으면 곧바로 정상적 조치들을 취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범행현장 별채에서 김재규를 대기하고 있었던 사실과 그 곳에서 보고 들은 일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보안을 유지하라는 김재규의 지시대로 대통령권한대행(국무총리)과 상관인 국방부장관에게도 수시간 동안 보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김재규의 내란계획이 실패로 판단될 때까지는 사태추이를 살피며 김재규의 뜻대로 움직여주는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였던 것입니다. 그는 계엄사령관이 된 뒤에는 『박대통령의 서거는 애석하지만 국가와 국민전체의 불행은 아니다』고 김재규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김영삼·김대중·김종필씨가 대통령이 되려고 하면 쿠데타를 해서라도 막겠다』고 정치적 저의를 드러냈습니다. 내란사건에 대한 수사는 바로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목적이었습니다. 소장이 대장을 연행했으니 「하극상」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도 있으나 이 사건은 수사담당자가 범법용의자를 조사한 일로 이해해야 합니다. 범인이 권부의 한 축인 중앙정보부장이었다는 사실,관련용의자인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이 바로 용의자 수사를 위한 영장발부권자(계엄사령관)였다는 사실등 통상적 방법과 순리적 절차에 따라 용의자를 연행·수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대통령의 재가를 밟는 절차에 하자가 있었지 않나 의문을 품는 분들이 있고 사전재가가 나기 전에 정총장을 연행한 것도 시비가 될 수는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미리 연행계획을 보고한 바 있고 처음에는 재가가 난뒤에 정총장을 연행할 계획이었습니다.재가에는 국방부장관의 배석이 필요했으나 국방부장관은 대통령께서 직접 전화로 출두를 지시했음에도 두차례나 도피·잠적함으로써 그 시간 만큼 재가가 늦어진 것입니다. 합수부측이 처음부터 쿠데타 목적으로 전투병력을 출동시켰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정총장을 연행할 때에는 수사관과 수사관을 돕기 위해 합수부에 이미 배속돼 있던 헌병들만 동원했을 뿐입니다. 나중에 다른 부대가 출동하게 된 것은 국방부장관의 도피잠적으로 군지휘계통에 공백이 생긴 가운데 정총장 계열의 일부 지휘관들이 먼저 군통수체계를 무시한채 자의적으로 부대를 출동시킨데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습니다. 정총장측 지휘관들은 합수부와 대통령 경호부대인 30경비단을 향해 포격을 명령했는데 이는 청와대와 대통령이 머물고 있던 총리공관등이 있는 특정지역까지 사정권에 포함시키는 위험천만한 만행이었습니다. 서울 중심가에 미사일 발포까지 명령한 저들의 난동에 대해 보안사령부는 무고한 시민들의 피해를 예방하고 사태가 내전이라는 국가적 위기상황으로 치닫지 않도록 대응병력을 출동,난동지휘관들을 체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어디까지나 「김재규의 10·26내란사건 관련 용의자를 조사하기 위해 연행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우발적 충돌사건」일 뿐입니다. 12·12사태 다음날에도 대통령께서는 건재하셨고 헌정질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으며 행정부·국회·사법부나 국민생활에 아무런 변화나 영향이 없었습니다.동서고금을 통틀어 이러한 사태를 「쿠데타」라고 하거나 「군사반란」이라 한다는 얘기는 들어 본 일이 없습니다. 그당시 우리의 생각은 순수했고 우리의 판단과 행동은 정당했습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몇몇 개인의 자의가 아니라 필연적 인과에 따라 굴러가며 10·26이라는 반인륜적 사건이 실패로 돌아간 것도 12·12의 결단에 힘입은 역사의 필연적 귀결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정승화·장태완씨,전씨측 「석명서」 반박/“계염사령관 불법 체포… 분명한 반란행위”/대통령 경호병력 사전결제없이 교체/정/무단 서울진입 무장병력 진압은 당연/장 정승화전육군참모총장은 15일 하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쌍용아파트 자택에서 전전대통령측이 검찰에 제출한 답변서에 대해 『반성은커녕 지금까지도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늘어놓는 자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면서 『법정 말고는 어디서도 아무말도 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내가 가만히 있으면 저들의 뻔뻔한 거짓말을 인정하는 꼴이 돼 말문을 털어놓는다』면서 당시의 이야기를 꺼냈다. ­전전대통령측은 우선 정전총장의 내란방조의혹에 대해 김재규가 육본벙커로 오는 도중 차안에서 박정희전대통령의 시해사실을 알렸는데 이를 따지지 않은 점을 들고 있다. ▲그날 하오7시20분쯤 김재규중앙정보부장이 와이셔츠차림으로 뛰쳐나오며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한 것은 사실이다.다급한 김에 김부장에게 「외부소행이냐 내부소행이냐」를 물었으나 김부장이 「나도 정신이 없어서 자세한 것은 모르겠다」고 해 혼란스러운 상황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더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당시 신군부측은 정전총장이 차안에서 김재규와 앞으로 계엄이 내려질 경우 어떤 부대를 동원할 것인지에 대해서까지 상의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차안에서 김부장이 「대통령이 돌아가셨으니 이 내용에 대해 철저히 보안을 유지해야 하고 계엄령을 내려야 할 텐데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어본 것은 사실이다.일국의 대통령이 돌아가신 비상상황에서 사후수습책이 마련될 때까지는 보안을 지켜야 하지만 참모총장으로서 동원가능한 부대를 염두에 두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전전대통령측은 시간을 끌면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는 기회주의적 자세를 보였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터무니없는 흉계다.김재규와 육본벙커로 돌아오자마자 전군에 비상을 걸어 북한의 남침에 대비토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라고 지시했다.또 자체방위력이 없는 육본을 방어하기 위해 9공수에 출동을 명령했다.전방부대는 북한병력의 움직임에 대응해야 한다고 판단,양평에 있던 20사단에 대해 서울로 이동할 준비를 시켰다.장태완수경사령관을 불렀는데 1시간후쯤 육본벙커로 왔다. ­김재규가 대통령을 시해한 범인이라는 사실을 언제 알았는가. ▲그날밤 11,12시무렵 김비서실장으로부터 범인이 김정보부장이란 이야기를 처음으로 전해 듣고 김진기헌병감에게 체포토록 명령했다.수사관들을 차출하는등 준비에 1시간가량 걸렸을 것이다.체포한 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에게 넘기라고 지시했다. 신군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내가 김재규와 한통속이었다면 왜 나와 사이가 좋지도 않던 보안사령관에게 수사토록 했겠는가. ­전두환전대통령등 12·12관련자들의 행위가 불법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나는 당시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국가적인 비상사태를 수습하도록 권한을 위임받은 계엄사령관이다.전두환의 합수부도 따지고 보면 법에 명시된 기관이 아니라 대통령 시해범 색출이라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참모총장의 권한중 일부를 위임해준 것에 불과할 뿐이다. 국민들이 언제 전두환일파에게 참모총장의 공관을 무력으로 점령해 계엄사령관을 체포할 권한을 줬느냐. 그것도 대통령을 경호하고 있던 헌병대병력을 자기들 수하의 부대로 교체하고 사전결재를 9시간이나 미루고 감금상태에서 사후결재를 한 것이 어떻게 합법이냐. 또 12·12사태당시 수경사령관이었던 장재향군인회장(63·종합11기)도 전전대통령의 석명내용에 대해 『한마디로 어처구니없다』면서 『지휘계통 없이 불법적으로 서울시내에 들어온 무장병력은 당연히 진압해야 하며 이 진압행위를 반란이라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정치군인들의 궤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1개분대이상 규모의 무장병력이 서울시내에서 돌아다니려면 24시간이전에 참모총장의 사전승인을 얻어야 하고 반드시 헌병과 함께 다녀야 한다』면서 『수경사령관은 통보가 없는 병력에 대해서는 즉시 연행하거나 포획·사살하도록 임무가 부여돼 있다』고 당시 임무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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