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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비 어떻게 도망 다녔나/경비심한 시내·해안선 주변은 피해

    ◎산악지대로 잠입… 북으로 귀환 시도 무장공비를 수색 중인 군경이 19일 7명을 사살함으로써 전날 생포된 이광수(31)의 최초 주장대로 남파간첩이 20명이라면 1명을 빼고는 모두 일망타진됐다. 이들의 발견지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당초 이들이 설정했던 퇴로의 윤곽도 추정이 가능하다.한마디로 이들은 과거 6·25나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사태 때처럼 태백산 줄기를 타고 북한으로 되돌아가려고 했던 것 같다. 이같은 추정은 18일과 19일에 걸쳐 주민들에 의해 목격됐거나 총격전이 벌어진 장소의 이동경로,사체발견 지점,사살 지점,『태백산맥 가는 길이 어디냐』고 무장간첩이 물었다는 주민의 제보 등에서 확인된다. 잠수함이 좌초된 뒤 육상으로 탈출한 무장공비들은 사람들이 붐비거나 경비가 삼엄한 북쪽 강릉시내쪽과 동해 해안선을 피해 일단 남쪽으로 우회하기 위해 7번 국도를 넘어 산악지대인 괘방산으로 잠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고도의 훈련을 받은 침투조원들은 도주에 장애가 되는 승무조원 11명을 살해한 것으로 군당국은 보고 있다.이양호국방장관도 19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의 답변을 통해 『시체로 발견된 11명은 다른 공비가 AK소총으로 사살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를 뒷받침했다. 또 이들은 당초 예상과 달리 2∼3명 단위로 흩어지지 않고 5∼6명씩 떼를 지어 탈출을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상오 3명이 사살된 단경골은 전날 11명이 숨진 채 발견된 청학산에서 북서쪽으로 4㎞지점이고,다시 3명이 사살된 칠성산도 이곳에서 단경골로 향하는 북쪽 2㎞지점이기 때문이다. 한편 붙잡힌 이광수는 척후조 또는 후방경계병 등의 임무 때문에 일행과 거리를 둔 것으로 보인다.이광수는 해안에서 2㎞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강동면 모전리에서 생포됐지만 숨진 11명은 이광수의 생포시간보다도 훨씬 이른 상오 8시20분쯤 해안에서 5㎞가량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 이를 종합해 볼 때 무장간첩들은 일단 산줄기를 따라 만덕봉까지 남하한 뒤 다시 대관령쪽으로 나가 오대산,설악산을 타고 휴전선을 넘으려 했던 것 같다.
  • 돋보인 신고… 소탕 철저히(사설)

    강릉지역 북한 무장공비 침투사건은 우리 국민의 반공정신과 시민정신이 건재함을 확인시켜준 좋은 계기가 됐다.전혀 예기치 못한 가운데 벌어진 일이었지만 이 지역주민은 미리 대비한 양 무장공비 출현사실을 신속하고 지혜롭게 신고,군·경의 추격작전을 돕고 간첩을 생포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무장간첩 침투를 제일 먼저 경찰에 신고한 택시기사 이진규씨는 고속도로변에 앉아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스러워 공비들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어 승객을 내려준 뒤 현장을 다시 찾아가 살펴본 끝에 좌초한 잠수함을 발견했다.평소 간첩침투에 대한 경각심이 대단한 모범시민이 아닐 수 없다.또 자신의 집에 나타난 무장공비 이광수의 정체를 알아채고 옥수수 재배 등의 대화로 긴장을 풀게 한 뒤 재빨리 경찰에 신고,생포케 한 홍사근씨 부부의 기지와 신고정신도 돋보인다. 이밖에도 주민은 담배와 옥수수를 탈취해 달아난 공비의 위협도 무시한 채 즉각 수색대에 공비출현신고를 하고 공비들이 떨구고 간 의류등을 발견,신고하는 등 수색작전을적극 도왔다.참으로 마음 든든한 일이다. 그러나 주민의 신속한 대처와는 달리 군의 해안경비에 허점이 있지 않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무엇보다 북의 잠수함이 해안에 접근,무장공비 등 20여명이 침투하기까지 군이 이를 몰랐다면 해안경계망에 구멍이 뚫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신고를 받은 군의 대응이 민첩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현시점에서의 급선무는 달아난 잔당을 신속히 소탕하는 일이다.그것도 선량한 주민이 공비들에게 인질로 잡히거나 총격전에 휘말리는 등의 피해를 보지 않은 가운데 잔당을 모조리 소탕해야만 한다.그뒤 군의 경계태세에 잘못이 있었는지 여부를 면밀히 검토,허점이 있었다면 이를 시정하여 물샐틈없는 안보태세를 갖추도록 보완조치를 하는 것이 순서일 것으로 생각한다.
  • 적이다! 엎드려! 긴박의 15분/불사조부대 장병 공비사살 순간

    ◎공포 쏜 후 자수권유… 공비들 권총응사/포위망 좁혀 반격… 유탄 발사 후방차단 육군 산악군단 불사조부대 정하욱 소령(40)과 민원기(22)·번성훈 병장(23),안경복(22)·김용우 상병(22) 등 5명이 군용트럭을 타고 만덕산으로 향한 것은 상오 9시40분쯤. 송이버섯을 캐던 주민이 무장공비가 있다는 신고를 해온 것이다.상오10시쯤 만덕산 마을에 도착하자 한 주민이 『산 중턱에서 군인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고 추가 신고했다. 그곳은 우리 군부대가 수색중인 곳이 아니었다.정소령은 5명의 인원으로는 불안하긴 했지만 운전병 번병장까지 소총으로 무장시키고 지체없이 부대원을 이끌고 만덕산으로 올랐다. 1백50여m쯤 오른 상오10시15분쯤 나무 풀숲 사이로 짧은 머리의 남자 4명이 모여있는 것이 포착됐다. 정소령은 『적이다.엎드려라』고 소리쳤고 부대원들은 침착하게 일제히 나무와 바위 뒤에 엎드려 사격자세를 취했다. 공비들은 우리 군 부대원을 보고 재빨리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정소령이 공중에 대고 3발을 위협사격하며 『총을 버리고나와라』고 소리치자 공비들은 권총으로 응사하기 시작했다. 부대원들은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었지만 이들이 숨은 것으로 보이는 풀숲과 바위를 향해 일제히 총격을 퍼부었다. 『타타탕,쾅』 어렴풋이 한명이 도주하는 것이 보였다. 최고참 민병장이 후방차단을 위해 K-201 유탄발사기로 6발을 쏘았다.2명은 좌우로 돌아 공비들을 포위했다. 1인당 20∼30발정도씩 15분여정도 사격하자 적의 응사가 없어졌다. 상오10시30분쯤 부대원들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수색을 시작했다.3명이 머리와 가슴 등에 총상을 입고 숨진채 바위뒤에 쓰러져 있었다. 주변에는 소련제 TT 권총 1정과 탄피 20여개가 어지럽게 놓여있었다. 총성을 듣고 달려온 지원부대는 이미 달아난 공비를 추격하고 있었다.
  • 무장공비 침투 이틀 시간대별 상황 일지

    ▷18일◁ ▲상오0시20분=택시운전기사 이진규씨 강릉에서 동해로 가던 중 수상한 젊은 남자 발견 ▲1시35분=이씨,강릉 앞바다서 잠수정 발견·신고 ▲2시=해안초소 박만권일병(24),강릉해안 남쪽 9㎞지점서 이상물체발견,소초장 양대길소위(24)에 보고 ▲2시5분=해당부대 전병력 해안경계투입 ▲3시40분=적 침투족적 발견,현장부대 「진돗개 하나」 발령 ▲4시55분=1함대 전투단 외곽차단조치,경비함 5척 대잠초계기 P3C 1대 출동 ▲5시=합참 위기조치반 소집,전군 경계·검문검색강화 ▲6시40분=침투인원 10여명내외 추정 유기물 발견(북한제 해당화껌 1통,권총탄약 4발) ▲7시15분=공군전투전력 운용 돌입(F4기 4대 대기) ▲7시20분=인근 해안도로에서 추가유기물 발견(황색구명조끼 1벌,국방색 항공점퍼 2벌,청색바지 1벌,녹색 티셔츠 4벌,권총·소총탄 75발,열쇠뭉치 1개,소형칼 1개,플라스틱볼펜 1개) ▲7시25분=좌초 잠수정 내부서 체코제 기관총 1정,탄약 75발,AK소총 1정,탄약 1백여발 발견 ▲7시30분=2군지역에도 「진돗개 하나」 발령 ▲10시=국방부,무장공비 침투사건 브리핑 통해 무장간첩선은 10∼12인승 잠수정이라고 발표 ▲10시55분=잠수정이 발견된 곳과 9㎞ 떨어진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임곡2리 김창수씨의 돼지막사 부근에서 총기를 든 간첩 2명이 길가던 주민 김춘식씨(40·고물상) 폭행 ▲11시10분=군 수색헬기,강동면 모전리 동해고속도로 제2터널 부근서 도주중인 무장괴한 2명 발견 ▲하오4시20분=국방부,좌초된 무장간첩선은 11∼12인승 잠수정이 아닌 21인승 소형잠수함이라고 수정 발표 ▲4시30분=군 수색대,강릉시 강동면 산성우리 청학산 중턱에서 청바지차림의 무장공비 11명 시체로 발견 ▲4시40분=무장공비중 인민무력부 정찰국 소속 이광수(31)가 강릉시 강동면 모전리 농가에서 경찰에 체포 ▲6시=국방부,이광수로부터 잠수함에 20명 승선해 있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고 발표 ▲9시=간첩 1명,강릉시 임곡1리 이규택씨 집에 들어와 옥수수 4자루,담배 2갑반,성냥 2갑 탈취후 도주 ▲9시45분=간첩 2명,강릉시 월호평동 공군비행장부근서 군·경과 15분간 총격전 ▲11시5분=공비 2명,강릉시 왕산면 목계리 대관령 바로 아래서 군경과 총격전 ▷19일◁ ▲상오10시15분=강릉시 강동면 임곡2리 영동탄광 뒤편 망덕봉 담경골서 교전끝에 공비 3명 사살 ▲하오2시10분=강릉시 강동면 언별리 칠성산부근에서 특전부대원 도주중이던 공비 3명 사살 ▲하오4시15분 무장공비 1명 사살
  • 동해 군시설 정찰이 목적/군당국,공비 침투의도 분석

    ◎어제 7명 사살… 잔당 추적/총19명 사망·생포… 아군 2명 부상 【강릉=특별취재반】 동해안 강릉 앞바다에 침투한 무장공비는 20여명으로 지난 15일 강릉 앞바다에 도착,요원 5명을 내륙에 투입해 강릉비행장을 비롯,동해안의 군사시설 등에 대한 정찰활동을 편 것으로 알려졌다. 이양호 국방부장관은 19일 국회 국방위에 참석,『생포한 이광수가 침투한 무장공비의 규모에 대해 대략 20명이라고 진술했다가 다시 25명이라고 말하는 등 횡설수설하고 있다』며 『현재 공비가 20명이 넘는 것으로 보고 작전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합참의 군사작전전문가들은 『이의 진술을 신뢰할 수 없다』며 『잠수함의 크기 등 여러 정황과 증거로 볼때 25명까지 침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군 수사당국에 따르면 이광수는 『잠수함이 지난 13일 상오 5시쯤 함남 흥남 북쪽 퇴조항을 떠나 15일 상오 1시쯤 강릉 앞바다에 도착,정찰조 5명을 내려놓았다』고 진술했다. 이어 『잠수함은 공해로 빠져나갔다가 17일 상오 4시30분쯤 침투 지점으로 돌아와 해안정찰활동을 하다가 하오 10시쯤 임무를 마친 정찰조 5명을 태운 뒤 북한으로 출발하려다 암초에 걸려 모두 내륙으로 도주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국군 전투복 등 발견 군 당국은 이와 관련,▲강릉비행장이 전방지역 초계활동과 적 항공기 요격업무 등을 맡고있는 점 ▲침투 공비들이 권총 등 개인화기만을 휴대한 점 ▲좌초된 잠수함에서 5백m쯤 떨어진 숲속에서 중위와 중사 등 국군복장과 M16 실탄 수백발이 발견된 점 등에 비추어 이의 진술이 상당한 신빙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으나 진위 여부는 계속 확인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군·경수색대는 이날 무장공비 잔당 7명을 추가로 소탕했다. 수색대는 상오 10시20분쯤 강릉시 강동면 만덕봉에서 15분간의 총격전 끝에 공비 3명을 사살한데 이어 하오 2시57분쯤 강동면 칠성산에서도 3명을 사살했다. 하오 4시26분쯤에도 공비 1명이 강릉시 강동면 산성우리에서 추적중인 수색대와 교전끝에 사살됐다.이 과정에서 173연대 2대대 5중대 소속 사병 2명이 무장공비가 던진 수류탄이 터지면서 부상을 입었다. 이로써 침투 공비 18명이 자살하거나 사살되고 1명이 생포됐다. 군당국은 그러나 이광수의 진술 번복에 따라 공비가 6명 정도 더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민·관·군 통합방위체제를 유지하며 수색작전을 펴고 있다.
  • 사라예보 한때 나토군 동원/「보」 총선 대체로 순조

    ◎일부지역 투표소 총격·난민들 귀로 차단도 【사라예보 AFP AP 연합】 역사적인 보스니아 총선이 14일 일부지역에서 난민들의 고향복귀가 차단되고 총격사건이 일어나는 등 선거방해 행위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천명의 보스니아인들이 투표를 마치는 등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주로 난민들로 이미 세르비아나 크로아티아계 점령지역에서 투표를 마친 수천여명은 보스니아로 복귀하고 있다. 이날 사라예보에서는 약 1천명의 군중들이 시위를 벌이는 바람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이 동원되는 등 8개 투표소가 일시적으로 폐쇄됐으나 다시 투표가 이뤄졌다고 한 선거 관계자가 말했다. 아브도 헤비브 보스니아 회교­크로아티아연방 내무장관은 이날 보스니아 라디오방송을 통해 한 투표소와 경찰관에 대한 총격사건에도 불구하고 투표개시후 첫 2시간의 상황에 『대체적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이와 관련,보스니아 평화 중재자인 칼 빌트는 북부 브르치코시에서 『지금까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 이라크군,쿠르드 난민에 총격/이란접경서

    ◎5명 사망·150여명 부상 【테헤란·반(터키) AFP AP 연합】 이라크 군과 쿠르드민주당(KDP)게릴라들이 이라크 북부 이란 접경지역에 운집한 난민들에게 총격을 가해 1명이 숨지고 여러명이 부상했다고 이란 관영 IRNA통신이 12일 보도했다. 이 통신은 총격사건이 11일 하오 이란 쿠르디스탄주 마리반 근처의 바쉬마그 국경초소에서 발생했다고 전했다. 마리반주지사인 알리 야리는 IRNA와의 회견에서 이같은 총격사건이 벌어진 뒤 겁에 질린 난민들이 『알리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라고 외치며 이란 국경너머로 넘어 왔다고 말했다. 알리야리 지사는 이란 국경초병들은 이들 난민이 더 이상 공격을 당하지 않고 보호받을 수 있도록 이들을 바쉬마그 소재 난민수용소로 후송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전날인 10일에도 마리반 접경에서 이와 비슷한 총격사건으로 난민 4명이 숨지고 1백50여명이 부상했다고 덧붙였다.
  • LA 한인 또 강도에 피살

    ◎상점주인/대낮 3인조에 피격… 식당도 털려 【로스앤젤레스 연합】 로스앤젤레스 시내에서 50대 한인 상가주인이 30일 대낮 가게에 들어온 3인조 강도와 총격전을 벌이다 이들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이날 정오쯤 메인스트리트에서 상가 「트윈스 마켓」 주인 장익평씨(51·로렌하이츠 거주)가 손님을 가장해 가게에 들어온 2명의 강도와 권총으로 맞서다 여러 발의 총을 맞고 현장에서 숨졌다. 경찰에 따르면 범인들은 장씨에게 총격을 가한뒤 금품을 털어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공범과 함께 달아났다. 지난 7월초에도 환전업소를 경영하던 전주필씨가 4명의 무장강도와 총격전을 벌이다 숨지는 등 한달동안 2명의 한인 업주가 강도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한편 30일 밤 LA 교외 밸리의 한 한국식당에도 3인조 강도가 들어 식사중이던 손님들로부터 현금 5천여달러등 금품을 빼앗아 달아났다. 이들은 손님들의 주머니를 일일이 뒤져 현금과 귀중품을 빼앗고 현금출납기에 있던 돈도 꺼내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차를 타고 도주했다.
  • 「12·12」­「5·18」 선고/피고인별 양형 이유

    ◎전두환 피고/12·12­5·17­5·18 반란 수괴/2인자역·수천억 수뢰­노태우 피고/12·12 적극 가담… 군인사 문란케해­유학성·황영시·차규헌 피고/무장병력 동원·정 총장 연행 담당­허화평·허삼수·이학봉 피고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합수본부장으로서 12·12사건과 5·17,5·18사건(이하 12·12 등)의 수괴로서 군병력을 동원,군 내부질서를 파괴했으며,헌법질서를 문란케 해 국가안보에 위험을 초래했고 우리 헌정사를 크게 주름지게 한 점,군병력 동원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를 낸 점,피해자 및 유족들이 지금도 정신적·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군병력을 동원해 결국 대통령이 됨으로써 국민들에게 법 질서가 파괴되고 무시돼도 막강한 무력이나 권력 앞에서는 수수방관하고 결과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무력감과 좌절감을 갖게 한 점,대통령이 된 후 수천억원의 뇌물을 받고 그 대가로 일부 기업주에게 구체적인 이익을 허용하여 준 점 등,피고인이 범한 범죄 중 2종류는 법정형이 사형 뿐이고 7종류는 법정최고형이 사형이며,나머지 1종류는 법정최고형이 무기징역형인 죄로서 우리 형법이나 군 형법이 규정하고 있는 가장 중한 죄들인 점 등의 사정을 고려한다.집권 과정에 정당성이 결여돼 있는 마당에 대통령 재직중 경제적 안정과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례를 남겼고 퇴직 후 백담사에서 상당기간 외부출입을 하지 못한채 생활했다는 등의 사정이 있다해도 자신이 범한 죄의 법정최고형을 피할 수는 없다 할 것이다. ▷노태우◁ 12·12 등에서 모의 초기부터 깊이 개입하고 군병력을 동원하는 등 사건 2인자로서 적극 관여한 점,대통령이 된 후 수천억원의 뇌물을 받고 때에 따라서 기업주들에게 구체적인 이익을 허용해줬고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것을 바라보는 국민들에게 무력감 등을 갖게 함으로써 정신적 피해를 준 점 등,피고인이 범한 죄 중 1종류는 법정형이 사형 뿐이고,7종류는 법정최고형이 사형이며,나머지 1종류는 법정최고형이 무기징역형인 죄로서 중형을 면키 어려우나,12·12 등에 2인자로서 관여했고 직선 대통령으로 당선돼 재임중 북방외교,유엔가입 등 상당한 업적을 남긴점 등의 정상을 고려한다. ▷유학성·황영시·차규헌◁ 12·12에 적극 가담했고,5·17의 논의부터 결정까지 깊이 관여돼 있는 점,군 인사를 문란케 한 점에서 중형을 피할 수 없다.황영시는 12·12에서 자신의 병력을 동원했고 5·17에서 강경진압 입장을 고수한 점,차규헌은 12·12 등에서 병력동원을 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한다. ▷최세창◁ 12·12에서 공수부대를 출동시키고 직속상관인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하게 한 점,그 과정에서 특전사령관 비서실장을 사망케 하는 등 범행에 적극 가담한 점을 고려한다. ▷장세동◁ 자신이 책임자로 있는 제30경비단의 단장실을 12·12지휘부로 제공했고 직속상관인 수경사령관을 상대로 30경비단에 포탄을 장전케 하는 등,대응체제를 갖춰 저항함으로써 범행에 적극 가담한 점을 고려한다. ▷허화평·허삼수·이학봉◁ 12·12 등에 초기부터 깊이 관여한 점,특히 이학봉은 정승화 육참총장 및 재야인사 수사를 총지휘했고 허화평은 중요연락을 맡았으며 허삼수는 무장병력을 동원해 정총장을 연행하고 공직자 숙정을 담당한 점을 고려한다. ▷이희성·주영복◁ 사건 초기 모의에 배제됐고 당시 직분으로 인해 다소 수동적으로 가담한 점 등을 고려한다. ▷신윤희·박종규◁ 상관에게 총격을 가한 점에서 죄질이 좋지 않으나,직속상관의 명령을 존중하고 따르는 군 내부 질서를 고려한다. ▷정호용◁ 5·17의 초기부터 깊이 개입해 있고 특전사령관으로서 광주에 자신의 부대를 동원시키면서 5·17,5·18 범행에 적극 가담한 점을 고려한다.
  • 해외진출 기업 “직원안전 비상”

    ◎기아자 기술훈련원장 사건 계기로 본 실태/분쟁지역·오지진출 늘며 납치·피살 빈번/현대·대우 돌발사태 대비 긴급지침 시달 중국 연길시 박병현 기아자동차 기술연구원장 피살사건 이후 해외 분쟁지역이나 치안부재지역에 진출한 국내기업들의 파견 임직원 안전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현대건설은 이 사건 이후 안전환경관리부가 중심이 돼 대책을 마련,해외현장근로자들에게 혼자 여행하거나 일행과 동떨어진 행동을 자체해줄 것을 골자로 한 안전지침을 전달할 예정이다. (주)대우는 17일 장영수 회장의 특별 지시에 따라 해외현장의 안전에 만전을 기하라는 긴급 지침을 파키스탄 도로공사현장 등 모든 해외현장에 내렸다.또 비상연락망을 긴급히 정비하고 해외에서의 돌발사태에 대비토록 했다. 우리 기업의 주재원이나 근로자의 피해는 최근 곳곳에서 발생했다. 기아자동차 박 이사 피살사건 발생 이틀전인 지난 14일에는 타밀 반군의 활동근거지인 스리랑카 자프나지역에 인접한 트링코말리시에서 한국통신기술(주) 공사현장에 수발의 수류탄이 투척됐다.다행이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반군들이 우리 근로자들을 표적으로 삼은 점에 대해 다른 업체들도 긴장하고 있다. 또 지난 94년 10월 12일에는 (주)대우가 알제리와 합작으로 건설한 알제리힐튼호텔의 부사장인 강대현씨가 현지에서 괴한들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이 사건 이틀뒤인 14일에는 홍콩에서 출장 근무중이던 한국전자계산의 강상보 과장이 강도에게 납치됐다가 숨졌다. 같은해 11월에는 중국에 출장간 삼호물산 식품사업본부 대리 이상봉씨가 투숙중인 상해시 한 호텔에서 피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94년 9월에는 신성건설 근로자 7명이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에서 반군단체인 모로이슬람교해방전선(MILF)에 납치됐다가 9일만에 풀려나는 등 해외에서 우리 업체 임직원들의 크고 작은 인명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해외건설협회의 관계자는 『대부분의 해외 건설현장은 집단으로 생활하기 때문에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며 『그러나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르는 위해에 대비해야 하며 특히 1∼2명의 주재원만 파견한 곳은 안전지대를 막론하고 정부나 회사차원에서 신변보호를 위한 종합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중,노사분규 조사단 파견/광동·강소성등 5개 지역/전인대 상부위

    【홍콩 연합】 중국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도입과 함께 노사분규가 급증,사회적 안정을 해치고 경제성장의 저해요인이 되고 있다고 홍콩 신문들이 15일 중국 노동부와 중화전국총공회(노총격) 관계자들을 인용,일제히 보도했다. 노동부 고위관리들은 작년 1월 노동관계법이 발효됐는데도 노동쟁의가 1년전보다 70%이상 증가했고 특히 집단쟁의가 두드러졌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총공회의 장국상부주석은 작년 한햇동안 발생한 노동쟁의 중재 건수는 모두 3만3천건으로 이중 2만5천건이 집단 노동쟁의라고 밝히고 45만명의 노동자가 쟁의에 참가했다고 덧붙였다.노동쟁의 건수는 1년전에 비해 74.6% 늘어났고 참가 노동자수는 50% 증가한 것이다. 이밖에 작년 한햇동안 법정에 소송이 제기된 쟁의 건수는 2만8천2백85건에 달했는데 법원 관계자들은 예전에는 연간 노동쟁의 소송 건수가 1만건 정도였다고 말했다. 한편 이백용 노동부장은 중국 노사분규의 증가는 외국기업·사기업·향진기업 등이 노동자들의 권익을 해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국유기업의 쟁의증가율은 30%인 반면 이들 기업은 증가율이 60∼70%인 점이 이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중국 의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상무위는 이같은 노동쟁의 증가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광동성,강소성,길림성을 포함한 5개지역에 조사단을 파견키로 했다.
  • 구동독 국경수비대 조사/탈출자에 총격 책임 규명

    ◎독 검찰,1천명 대상 【베를린 연합】 옛동독 국경수비대원 1천여명이 통일 전 베를린 장벽 탈출자에 대한 총격과 관련,조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독일의 디 벨트지가 12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쉐프겐 베를린 검찰청장의 말을 인용,베를린 장벽 및 옛 동·서독 국경지역에서 발생했던 총격의 책임자 추적이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면서 향후 수년간 1천여명의 옛동독 국경수비대원들을 상대로 조사를 벌일 것이라고 전했다.
  • 「12·12」 「5·18」 26차 공판/증인신문 지상중계

    ◎“임무 받고 출동때 부대원들에 실탄 지급”·“차량통행 저지해도 계속 다가와 사격”­김광택 증인/“승용차에 대한 총격 어떻게 발생했나”­재판장 12·12 및 5·18사건 제26차 공판이 1일 서울지법 제417호 대법정에서 열렸다.지난 6월27일 제17차 공판이래 마지막 공판은 김광택 당시 20사단 61연대 2대대 6중대장에 대한 증인신문으로 시작됐다.채택증인 91명중 40명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날로 마무리 됐다. ○김광택 증인 ▲박봉식 검사=증인이 소속됐던 20사단 61연대 2대대 6중대는 80년 5월21일 하오6시 광주와 목포간 도로를 봉쇄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죠. ▲김증인=그렇습니다. ▲박검사=임무를 부여받고 출동할 때 실탄을 수령해 부대원들에게 지급했습니까. ▲김증인=그렇습니다. ▲박검사=5월21일 밤 10시10분쯤 효천역 부근에서 도로 차단임무를 수행하던중 목포쪽에서 차량 6대에 탑승한 시위대와 교전한 적이 있습니까. ▲김증인=있습니다. ▲박검사=5월22일 새벽 1시쯤 같은 지역에서 근무하던중 광주쪽에서 버스 5∼6대를 타고 오는시위대와 교전한 적이 있습니까. ▲김증인=예. ▲박검사=5월22일 상오 8시30분쯤 효천역 부근에서 광주쪽에서 오던 승용차 1대에 총격을 가해 왕씨 성을 가진 사람을 사망케한 사실이 있습니까. ▲김증인=먼저 총을 뺐기때문에 총격을 가했습니다. ▲김영일 재판장=5월22일 상오 8시쁨 승용차에 대한 총격은 어떻게 발생했습니까. ▲김증인=사병이 차량통행을 막으려 해도 계속 다가와 사격을 했고 총격이 끝나고 가보니 승용차에 탄 4명이 모두 사망했으며 그중 1명이 총일 갖고 있었습니다. ○최규진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당시 11공수여단 62대대 4지역대장이던 증인은 5월21일 하오 1시 전남도청앞에서 11공수여단 병력이 장갑차와 버스를 타고 돌진해 오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최증인=알고 있습니다. ▲김부장검사=5월24일 하오 2시븜 증인의 부대가 주남마을에서 송정리 비행장으로 철수하던중 효천역 부근에 이르렀을때 매복중이던 보병학교 병력이 증인의 부대에게 90미리 무반동총으로 사격을 가했습니까. ▲최증인=그렇습니다. ▲김부장검사=당시 보병학교병력이 신분확인이나,사전경고를 했습니까. ▲최증인=폭도로 오인해서 사전경고는 없었습니다. ▲김부장검사=증인은 보병학교 병력의 당시 총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최증인=잘못된 상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서익원 변호사=사병들에게 실탄을 분배한 시점은 언제입니까. ▲최증인=구체적으론 기억이 나지 않으나 5월 21일쯤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상균 증인 ▲박태식 검사=당시 20사단 62연대 2대대 5중대장이던 증인이 소속돼있던 2대대는 80년 5월21일 하오 광주 서구 화정동소재 광주통합병원 앞돌고개로 출동해 시위대와 대치한 사실이 있지요. ▲이증인=그렇습니다. ▲박검사=다음날인 22일 하오 연대로 부터 광주통합병원을 확보하라는 지시를 받고 통합병원쪽으로 이동하던중 이를 저지하던 무장시위대와 민가지역에서 교전한 사실이 있나요.또 당시 대대장의 지시에 따라 병력들은 응사를 하면서 통합병원으로 이동했나요. ▲이증인=교전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대장의 발포지시가 있었던것이 아니고 상대편에서 발포함에 따라 병사들이 스스로 자위권을 위해 총을 쏜 것으로 생각합니다. ▲서익원 변호사=5월22일 돌고개 작전 전후에 자위권 발동 지시나 관련지침을 받은 사실이 있나요. ▲이증인=총기 사용은 지시가 있을 때까지 절대 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또 출동에 앞서 중대장과 병사들의 작전에 임하는 자세애 대한 설명도 있었습니다. ▲서변호사=당시 총기를 일체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만 있었고 총기사용 허가는 22일 통합병원으로 이동할 당시 이후의 일이지요. ▲이증인=그렇습니다. ○박종규 증인 ▲이부영 검사=당시 3공수여단 15대대장이던 증인은 3공수여단 병력이 5월22일 새벽 0시40분 광주교도소 앞에서 시위대와 교전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시위대의 서종덕등이 총상으로 사망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박증인=알고 있습니다. ▲서익원 변호사=광주에 있을 동안 정호용 특전사령관이나 상급부대로부터 자위권 발동 지시를 받거나 계엄사령관의 자위권천명 방송을 본적이 있습니까. ▲박증인=지시를 받거나 방송을본적은 없었고 광주교도소로 이동하고난뒤 교도소에 뿌려진 삐라를 보고 알았습니다. ○박준병 증인 ▲이부영 검사=당시 20사단장이던 증인은 5월22일 광주 효천역앞에서 20사단 병력이 승용차에 총격을 가해 민간인 3명을 사살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박증인=알고 있습니다. 시신을 광주 국군 병원에 인계했습니다. ▲이검사=5월26일 광주 재진입 지시는 최종적으로 누가 했습니까. ▲박증인=전교사령관이 내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세동 증인 ▲김수연 변호사=달시 특전사 작전참모였던 증인은 광주사태 기간 정호용 특전사령관을 수행해서 광주에 내려간 사실이 있습니까. ▲장증인=세차례 수행했습니다. 5월21일과 23일,26일 세차례 내려가 각각 다음날 올라왔습니다. ▲이부영 검사=7공수여단장이 전교사에 머문 사실을 알고 있죠. 7공수 33대와 35대대는 31사단에 작전배속돼 여단장에게는 작전 지휘권이 없는데도 7공수여단이 전교사에 상황실을 만든 사실은 틀림없죠. ▲장증인=상황실인지 여단장의 통신축선을 유지하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상황판과 무전기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 장세동 피고­국선변호인 「불협화음」/26차 공판 이모저모

    ◎방학 맞은 여고생들 재판 참관 “눈길” 12·12 및 5·18사건의 피고인과 증인들을 상대로 한 사실심리가 1일의 26차공판으로 사실상 막을 내렸다. ○…5개월에 걸친 「마라톤 재판」이 막바지에 접어든 이날 방청석에는 방학을 맞은 여고생 3∼4명이 나란히 앉아 재판과정을 지켜봐 눈길. 대원외국어고 김수현양(17)은 『역사적인 재판을 직접 보는 것이 살아있는 공부라고 생각해 반 친구들과 함께 방청하게 됐다』고 소감을 피력. 전남대 송기숙 교수 등 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 문인 10명도 공판시작 20여분 전부터 일찌감치 방청석에 자리잡고 재판과정을 유심히 지켜봤다. ○…박종규 피고인은 증인신문 말미에서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 진술강요나 협박을 받은 사실이 있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한참동안 뜸을 들이다 다분히 감정적인 목소리로 『그렇다』고 답변.박피고인은 『나이도 어린 검사가 「이 사람아,그게 아니잖아」,「당신,밤새워 조사받아도 좋아?」라는 등 반말조의 말을 해 모욕감을 느꼈다』며 『협박은 아니지만 검찰로부터 자백을 유도받은 사실이 있다』고 주장. ○…장세동피고인은 국선변호인의 신문내용이 헬기의 내부구조등 지엽적인 문제로 흐르자 『변호인께서 무엇을 물어보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퉁명스럽게 답변해 변호인과 「불협화음」을 내기도. ○…현역군인(육군 중령)으로 증언대에 선 김광택 전20사단 61연대 6중대장은 『당시 시위대를 진압하면서 검문에 불응했을 경우 경고­하퇴부 조준사격이라는 수칙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고 진술,계엄군이 무차별 진압을 했다고 증언. ○…최규진 전11공수여단 62대대 4지역대장은 증언을 마친뒤 『계엄군으로 참가한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며 숙연한 표정. 최씨는 80년 5월24일 보병학교 병력이 철수중인 자신의 부대에 총격을 가한 사건과 관련,『사전에 아무런 신분확인 조치없이 중화기로 공격을 받아 많은 희생자가 났다』며 『육군장교로서 한없이 부끄러운 일이었으며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회고. ○…김영일재판장은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12·12 국정조사 국방위원회 7차회의록 등 20여점과 12·12 사건당시사용된 38구경 권총탄환·M16 소총탄환 등 5점의 압수물을 증거로 채택. 특히 우국일 전보안사 참모장의 업무일지와 일기사본이 증거물에 포함됐으나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5공전사」는 피고인들이 모두 채택에 부동의,증거로 채택되지 않았다.〈박은호·김상연 기자〉
  • 가정의학의 김우룡씨 「꿈꾸는 낙타」(저자와의 대화)

    ◎성과 속이 함께하는 「업의 땅」 인도/생활고에도 비어있는 인도인의 마음/온갖 오욕 씻으려 기도하는 심성 조명 『혼의 힘이 문화를 만들어 가는 곳,지구상에 그런 곳이 아직 남아 있다면 그곳은 바로 인도 땅일 겁니다』 최근 인도기행 산문집 「꿈꾸는 낙타」(행림출판사)를 낸 가정의학 전문의 김우룡씨(40)는 『인도는 고대와 현대,성스러움과 일상이 함께 부대끼고 노래하는 「카르마(업)의 땅」』이라고 규정한다. 한때 신춘문예 열병을 치르는 등 문학에의 꿈을 버리지 못하던 그가 델리행 비행기에 처음 몸을 실은 것은 93년 여름.그후 세차례에 걸쳐 인도를 떠돌던 그에게 영혼의 개안을 안겨준 것은 뜻밖에도 침묵의 사막을 뒹구는 미친 낙타다.『세상에 낙타만큼 순한 얼굴을 한 짐승이 또 있을까요.끝간데 없는 사막의 단조로움….그 사막만을 평생 보고 살아가야하는 낙타의 모랫빛 망막을 상상해 보세요.사막의 낙타는 더위에,또 외로움에 지쳐 곧잘 미쳐버립니다.미친 낙타는 이내 사막의 구릉 너머로 끌려가 네 다리가 잘리죠』 그는 인류문명사의 큰 흐름에서 소외된 모든 존재를 낙타,혹은 「미친 낙타」라는 이름으로 바꿔 부르고 싶다고 했다.세상이 온통 1등만을 향해 달려가고,모두가 탐욕스런 「근육질의 마음」들로 번들거리지만 이 시대에 정작 필요한 것은 꿈꾸는 낙타의 마음,곧 「비어있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눈물겨운 생활고에 시달리는 인도는 서양의 어느 사진작가의 말대로 「지상의 지옥」일지도 모릅니다.하지만 인간의 온갖 오욕을 씻어내기 위해 기도하는 인도인들을 보면 「지옥의 땅에서 천상을 꿈꾸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어요』 자신이 직접 찍은 60점의 흑백사진과 30편의 에세이가 어우러져 있는 이 책은 오늘날 인도가 처한 현실과 인도인의 생활상을 속속들이 보여준다.회교분쟁 지역인 서북인도 카슈미르 주에서 정부군과 회교반군이 벌이는 총격전 현장,원시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라자스탄의 사막,봄베이의 슬럼가,레닌의 포스터가 그대로 걸려 있는 서뱅갈주의 시골 철도역,바닥에 주저앉아 술을 마시는 헛간같은 술집 등…. 『인도는 결코 가난하지 않습니다.그들의 얼굴표정을 보십시오.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사는 한국인의 얼굴보다 국민소득이 3백80달러 밖에 되지않는 인도인의 얼굴에서 더 큰 여유와 평온이 읽혀지지 않습니까.물질을 이기는 것이 정신입니다』 『인도인의 얼굴에 너나없이 평화가 깃들어 있는 것은 그들의 청정무구한 종교적 심성때문』이라고 진단하는 그는 인도 전국을 걸인 행색으로 떠도는 수십만명에 이르는 사두(힌두교의 방랑승려)들에게서 고통의 흔적을 발견하기 힘들듯,심지어 「불가촉천민」의 얼굴에서 조차 찌든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덧붙인다. 「인도명상기행」(폴 브렌튼),「인도방랑」(후지와라 신야),「델리」(쿠시완트 싱)등 인도 관련책은 거의 다 읽었다는 그는 조만간 인도를 다시 한번 둘러본 뒤 「인도사진집」을 펴낼 계획이다.〈김종면 기자〉
  • 「이」,팔인 거주지 전면봉쇄/전영토 추방령

    ◎아라파트 “합의사항 위반” 비난/네타냐후 “민간인에 테러 자행 강력대응” 【예루살렘 AFP 연합】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무장대원의 총격으로 이스라엘 민간인 2명이 피살됨에 따라 그간 부분적으로 해제돼 온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등에 대한 봉쇄조치를 전면 확대했다고 이스라엘군이 26일 발표했다. 군대변인은 이날 새벽 1시 이스라엘 민간인에 대한 총격사건이 발생한 뒤 팔레스타인 거주지역에 대한 전면적인 봉쇄 조치에 들어갔으며 『이스라엘 영토내에 있는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해 귀가명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이스라엘 군병력이 팔레스타인 거주지역 주변에 대한 순찰을 강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은 지난 2월 회교 과격분자의 연쇄 폭탄테러가 발생한 뒤 취해온 팔레스타인 거주지에 대한 봉쇄조치 중 일부를 해제해 놓고 있었다.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당국 수반은 이스라엘인에게 총격을 가한 사건에 관해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고 밝히고 이스라엘 당국의 전면 봉쇄조치 재부과가 『합의된 사항에 대한 또다른 위반』이라고 비난했다. 한편 베나민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 민간인 피살사건과 관련,보안군에 대해 동원 가능한 최첨단 수단을 이용해 『범인색출에 최선을 다할 것』을 지시했다고 이스라엘 라디오 방송이 전했다. 네타냐후는 또 아라파트에 대해 『테러를 자행하는 단체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일부라 해도 이들 모든 단체에 대처해 줄 것』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새벽 차를 타고 달리며 총격을 가한 범인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이스라엘 당국은 범인이 요르단강 서안에서 이스라엘로 잠입한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FLP)소속 무장대원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리비아/반정부 시위대에 발포… 20명 사망/트리폴리 축구장서

    ◎카다피 아들 경호원들,관중에 난사 【카이로 로이터 연합】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의 한 축구경기장에서 지난 9일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아들 경호원들이 관중들에게 발포,적어도 20명이 사망했다고 서방 외교관 및 야당 소식통이 14일 밝혔다. 한 외교관은 당시 경호원들이 축구 경기 도중 반정부구호를 외치는 관중들에게 사격을 가해 약 50명이 숨졌으며 관중들도 이에 대응 사격을 하는 등 총격전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소식통들은 이로 인해 관중들이 혼비백산한 채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수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말하고 거리로 나간 관중들은 외국인 소유의 자동차에 돌을 던지고 반정부구호를 외쳤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또 그날 밤 경찰이 시내 곳곳의 도로들을 봉쇄하는 등 경계활동을 펼쳤으나 이튿날인 10일에는 별다른 소요가 없이 조용했다고 전했다.
  • 팽개친 버스(외언내언)

    최근 워싱턴 포스트지는 수도 워싱턴의 교통정체가 한계에 왔다며 그 주범으로 백악관일대에 마구 주차한 버스를 들었다.백악관 북측 큰길인 펜실베이니아 애비뉴가 잦은 총격사건으로 봉쇄된뒤 백악관을 찾는 관광객을 싣고온 버스들이 백악관 좌우편 도로에 마구잡이로 주차하는 바람에 차량이 뒤엉켜 시내 전체의 교통체증을 유발한다는 지적이다. 지방경찰의 관광버스 단속에는 한계가 있다.워싱턴의 1년 직·간접 관광수입은 무려 70억 달러(한화 5조6천억원 상당).47명 정원의 관광버스 한대가 하루 호텔·식당에 떨구는 돈이 평균 7천달러(5백60만원)다.어찌 함부로 딱지를 떼고 몰아내겠는가.그래서 워싱턴의 관광버스 기사들은 느긋하다. 이와는 다른 이유지만 서울의 버스 기사들도 법규에 대해서는 느긋하다.아예 무신경이다.고달픈 3D업종이라 기사 구하기가 쉽지 않다.함부로 대할 수 없다.핵심 대중교통수단이라 별도의 차선까지 주고 특별대우로 모시는 판이다.웬만한 교통법규는 안중에도 없다.다른 운전자들의 공포의 대상이다.가득 태운 승객이 볼모여서 신호는 안중에 없이 과속으로 달리는 출근길 버스를 세워 단속한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요금은 올랐지만 서비스는 항상 그 타령이다. 지난 9일 종로구 원남동에선 승용차와 가벼운 접촉사고를 낸 버스 운전사가 실랑이끝에 버스를 그대로 방치한채 견적을 떼러 가버렸다.안하무인이다.그 바람에 출근길이 1시간20분이나 막히는 소동이 빚어졌다.연쇄적으로 길이 막힌 수천,수만대의 차량이 길거리에서 버린 휘발유값은 얼마며 그 많은 사람들이 빼앗긴 시간은 또 얼마인가.응급환자라도 있었더라면 어찌 되었겠는가.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버스를 방치한 운전사의 무신경,철면피는 차치하고 이런 사태가 1시간이상 가도록 버려둔 경찰은 또 어떤가.구속은 딱하지만 사고만 나면 멱살잡이를 하는 풍토,버스의 횡포가 없어지도록 따끔한 일벌백계는 필요할지 모르겠다.〈황병선 논설위원〉
  • 「12·12」­「5·18」 20차공판/검찰 증인보충신문 지상중계

    ◎“유학성씨가 「최 대통령 곧 하야」 전해”­김종환 증인/“김재규 내란목적 살인 증거 없었다”­양병호씨/“선제공격 진술 보안사서 강요 받아”­김인선씨/전씨 합수부에 모든 보고 하도록 조치­김진기씨/노재현 장관 명령으로 출동병력 복귀­박동원씨 12·12 및 5·18사건의 제20차 공판이 8일 상오10시 서울지법 제417호 대법정에서 열렸다.공판개정과 함께 이양우·한영석 변호사 등 전두환·노태우 피고인측 변호인단이 사임계를 제출,30분간의 휴정을 거쳐 검찰이 양병호 전 대법원 판사를 상대로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양병호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80년 1월말 보안사 장교가 증인을 찾아와 김재규 내란사건의 상고를 기각해줄것을 요청한 사실이 있지요. ▲양증인=그렇습니다. ▲김부장검사=80년 5월20일 상고심에서 증인 등 6명의 대법원판사가 내란목적 살인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상고를 기각하는 소수의견을 냈는데 그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양증인=내란목적 살인으로 볼 만한 증거가 없었습니다. ▲김부장검사=그후 증인은 같은해8월3일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연행돼 3일간 고문을 받으면서 소수의견을 냈다는 이유로 사표를 강요당했지요. ▲양증인=그렇습니다. ▲김부장검사=보안사를 나온 후 당시 이영섭 대법원장을 찾아갔더니 소수의견을 냈던 나머지 5명도 사표를 냈더라는 말을 했지요. ▲양증인=맞습니다. ▲김부장검사=소수의견을 냈던 증인등이 강제사직을 당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양증인=그 사람들(보안사측)은 내란목적 살인으로 인정했고,우리는 내란 목적 살인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하니까 왜 반대하느냐며 그랬던 것으로 압니다. ▲김부장검사=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양증인=80년 1월말 법원을 출입하는 육군소령이 찾아와서 상고기각을 요청했었는데 『판사 모두가 합의해야 한다』며 거부하자 밉게 봐서 그런 것같습니다. ○김인선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12.12당시 정승화 육참총장 경호 장교였던 증인은 당시 입은 총상으로 순천향병원에서 2개월간 치료를 받은 후 퇴원,보안사 서빙고분실로 끌려가 15일간 조사를 받았습니까. ▲김증인=그렇습니다.제가 우경윤대령 등에게 먼저 총을 쏴 총격전이 발생했다는 진술을 강요받았습니다. ▲김부장검사=증인은 당시 총을 쏜 사실도 없고 총 쏠 여유도 없었지요. ▲김증인=그렇습니다. ○김진기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12.12당시 육군본부 헌병감이었던 증인은 10.26사건으로 10월27일 비상계엄이 선포된 뒤 계엄사령부 치안처장을 겸직하게 되었나요. ▲김증인=그렇습니다. ▲김부장검사=비상계엄 선포후 치안본부,중앙정보부 등지에서 계엄사 치안처로 올라오던 각종 정보보고가 11월 중순부터 갑자기 중단된 사실이 있었나요. ▲김증인=그렇습니다.나중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모든 보고를 합수부로만 하도록 조치를 취했기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김부장검사=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체포하겠다는 생각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김증인=대통령이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총장공관에서 총격전을 벌인 것은 명백한 반란이며 당시 상황은 내란이나 다름 없는 것이었습니다. ○김종환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80년 5월14일 내무부장관이던 증인은 신현확국무총리에게 시위상황을 보고하면서 “경찰력만으로는 시위진압이 한계에 달했다”고 말했고 관계장관 회의에서도 같은 내용을 발언을 한 사실이 있지요. ▲김증인=관계장관 회의에서는 그런 발언한 적이 결코 없습니다. ▲김부장검사=8월10일 롯데호텔 식당에서 유학성 피고인이 증인에게『최규하 대통령이 곧 하야할 것같으니 통일주체국민회의를 주재해달라』고 말한 사실이 있지요. ▲김증인=당시 유피고인이 정보제공 차원에서 그런 말을 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동원 증인 ▲이재순 검사=수경사령관 작전참모로 근무한 증인은 79년 11월16일부터 같은해 12월12일까지는 장태완 장군을,79년 12월13일부터 80년 8월20일까지는 노태우 장군을 수경사령관으로 모셨습니까. ▲박증인=그렇습니다. ▲이검사=장사령관이 술에 취한채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명령을 내렸습니까. ▲박증인=그렇지 않습니다.원래 성질이 급한데다 불의를 보면 성격이 더 급해져서 그렇지 당시에 내린 지시는 모두 합리적인 것이었습니다. ▲이검사=수경사병력을 출동시켰다가 조재현 국방부 장관의 명령을 듣고 병력을 복귀시켰습니까 ▲박증인=그렇습니다. 하지만 노장관이 명령을 한 것은 새벽 2시였고 장사령관이 병력을 대기시킨 것은 새벽 1시30분이어서 30분정도 병력을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성환옥 증인 ▲이재순 검사=당시 육군본부 헌병감실 기획과장이던 증인은 12월 8일에서 10일 사이 허삼수 보안사 인사처장과 우경윤 육본 범죄수사단장으로부터 2차례에 걸쳐 정승화 총장 연행에 대한 협조를 부탁받고 보안유지를 위해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지요. ▲성증인=그렇습니다. ○김만기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증인이 위원장으로 군무하던 중보위 사회정화위원회가 중정·검찰·경찰·보안사 등에서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고위급 숙정자 15명,B급 1백64명으로 분류했습니까. ▲김증인=그렇습니다. ▲김부장검사=허삼수 피고인도 국보위 사회정화위원회에 참석,숙정대상자 결정과 사회정화분과위원장 선정에 관여했습니까. ▲김증인=북정대상자 결정에는 참여했지만 사회정화분과위원 선정에 참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 신·최씨가 밝힌 정 총장 연행 재가과정

    ◎“최 대통령 전씨측 재가건의 완강 거부”/전씨에 “무슨 일을 이따위로 하나” 질책/불가피 했다는 점 남기려 시간도 명시 신현확 전 국무총리는 1일 법정 증언에서 12·12 당시 신군부가 정승화 육참총장을 연행한 것은 직속상관에 대한 하극상이라고 진술했다. 최규하 대통령이 정총장 연행을 재가할 때 신군부측의 협박이나 강압 분위기는 없었다고 밝혔다.최광수 대통령비서실장도 이를 시인했다. 신씨는 12월12일 하오 7시쯤 개각을 협의하기 위해 총리공관으로 갔다.최대통령으로부터 『조금 전에 전두환 합수본부장이 다녀갔는데 10·26사건 관련 혐의로 정총장을 연행해 조사하겠다며 재가를 요청해 국방부장관의 결재 없이는 재가할 수 없으니 절차를 밟아오라고 했다』고 말했다는 것.신총리는 『잘 하셨다』고 답변한 뒤 30분쯤 뒤 비서실 관계자로부터 『정총장이 연행됐다』는 보고를 들었다. 최대통령은 『무슨 일을 이 따위로 처리하느냐』며 전씨에게 화를 내며 질책했다.최대통령은 즉시 경위를 알아보라고 지시,총격전 사실을 알게됐다. 하오 9시30분쯤 전두환·유학성피고인 등이 2차로 재가를 요구했다. 최대통령은 『재가를 받기 전에 행동한 것은 위법이다.국방부 장관을 데려오라』고 재가를 재차 보류했다.신총리는 『집단적인 재가요청 행위는 있을 수 없고 예의에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전씨 등이 돌아간 뒤 최대통령은 『이 친구들이 무슨 일을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다.법을 무시하고 일을 처리하면 나라가 안된다고 걱정했다』고 털어놨다. 한편 최비서실장은 『2차 재가 요청시 장성들로부터 공관을 방문하겠다는 사전연락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신총리는 13일 상오 2시30분쯤 노재현 국방장관과 통화,『총리공관으로 빨리 들어오라』고 지시한 뒤 상오 3시30분쯤 노국방부장관을 데리러 국방부로 갔다.국방부 건물은 유리창이 깨지는 등 총격전의 흔적이 역력했다.노 국방장관이 한참후 정총장 연행보고서(보안사가 작성한 것)를 들고 최대통령을 찾아왔다.그는 『더 큰 혼란을 예방하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각하께서 재가해주시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건의했다.숙의 후 최대통령은 재가를 하며 「05:10 AM」이라고 명시하고 서명했다. 신씨는 재가 당시 최대통령과 함께 육본의 정식지휘계통이 와해된 사실을 몰랐다고 진술했다. 신씨는 5·17과 관련,『최대통령은 전군주요지휘관 회의에서 결정한 건의사항 중 비상기구 설치와 국회해산 문제를 사실상 거부했다』고 말했다. 최실장은 『최대통령이 5월18일 계엄군의 투입과 27일 광주재진입작전시 사전에 승인했었는지도 알 수 없으며 현지 지휘관이 판단할 일』이라고 밝혔다.그는 또 『80년 7월30일 하오 6시부터 5시간 동안 청와대 본관 1층에서 김정렬 전 국방부 장관(작고)이 최대통령와 요담했으나 하야를 설득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고 진술했다.〈박선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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