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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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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글라 대학서 총격전/2명 사망/두 학생조직 사제폭탄까지 동원

    【다카 로이터 연합】 방글라데시 라즈샤히대학에서 12일 새벽 총격전이 벌어져 2명이 죽고 1백여명이 부상당했다고 현지 경찰이 밝혔다. 경찰은 회교원리주의 정당인 국민당(JP)의 학생조직인 이스라미 차트라 시비르소속 학생이 집권 방글라데시민족주의당(BNP)의 학생전위조직인 자티야타바디 차트라 달(JDC) 소속 학생들이 머물고 있는 여관에 총격을 가하면서 양측간 치열한 총격전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양쪽이 리볼버권총과 엽총,다수의 수제폭탄을 사용했으며 피해자가 많았다며 아직도 교내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고 말했다. 라즈샤히대학은 다카에서 북쪽으로 2백70㎞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방글라데시 제2의 대학으로 1만5천여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는데 이날 총격전 뒤 무기한 휴교에 들어갔다.
  • 5개TV 폭력물서 하루 126명“사망”/불방송 검열제도 도입 논란

    ◎우파 52%·좌파 42% “삭제”/54% “각가정서 결정할 일”/45% “미제작물이 큰 문제” 프랑스에서 텔레비전 방송 검열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잦은 폭력장면 때문이다. 프랑스의 한 여론조사 기관은 온가족이 집안에 있을 수 있는 일요일인 지난 1월15일을 택해 0시부터 24시까지 하루종일 주요 5개 방송을 조사했다.그 결과 하루에 모두 1백26명이 사망하는 장면이 방영된 것으로 집계됐다. 어린이 만화영화·일반성인영화·다큐멘터리·뉴스 등에서 한시간당 5명이 숨진 꼴이다.또 크고 작은 총격전은 1백42번 일어났고 폭력을 동반한 난동은 1백53번,폭발 장면은 2백36번 방영됐다. 이런 폭력물의 80%는 미국에서 들여온 영화 등인 것으로 분석됐다.이에대해 검열제도를 도입해 미국식의 폭력장면을 삭제해야 한다는 국민은 응답자의 45%였다. 검열제도는 프랑스 사회에서 지난 90년 이후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문제이다.하지만 54%는 폭력물 시청 여부를 결정하는 일은 각 가정에서 해야할 문제라고 대답해 검열제도에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두드러진현상은 우파에 호의적일 수록 검열제도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좌파에 호의적이라고 응답한 사람 가운데 43%만이 검열제도 도입에 긍정적이었으나 우파에 호의적인 국민의 52%가 사전검열을 해햐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프랑스 문화계는 검열제도에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미국의 유명 영화감독이며 배우인 우디 앨런은 『방송매체에 전혀 반대하지 않으며 문제는 그 활용에 달려 있다』며 검열제도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또 작가 파스칼 브뤼크네씨는 『항상 텔레비전을 희생양으로 삼는 풍조가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미국은 텔레비전에서 폭력장면을 삭제하는 것보다 총기류의 판매를 강하게 규제하는 것이 사회문제를 줄이는 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또 그는 중요한 것은 우리 모든 세대에서 만연하는 타락과 허약함에 있다고 강조했다.
  • 보스니아 휴전 결렬 위기/회교정부­세계

    ◎사라예보서 올 최대 포격전/양측 포로 1백명 교환 【사라예보 AP 연합 특약】 보스니아정부와 세르비아계간의 평화적인 포로교환이 이루어진지 수시간만인 20일밤 사라예보의 양측 전선에서 올들어 가장 격렬한 총격전이 발생했다. 이날 총격전은 사라예보 내 그르바비카전선에서 발생했으며 바주카포와 로켓추진포탄이 동원됐다고 유엔평화유지군이 전했다. 이 폭력사태가 발생하기에 앞서 이날 약 1백명의 보스니아정부군 포로 및 세르비아계 포로가 평화적으로 교환됨으로써 휴전합의의 충실한 이행에 희망을 안겨주었으나 이날 밤 발생한 총격전으로 휴전이 무산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보스니아정부군이 먼저 발포함으로써 시작된 이날 총격전은 수시간 뒤 세르비아계가 반격함으로써 커졌으며 자정무렵 3번째 충돌에서는 올들어 가장 격렬한 공방전으로 커졌다고 UN평화유지군 대변인이 밝혔다.
  • 멕시코/농민소요 다시 격화/치아파스주/경찰과 총격전 벌여 5명사망

    【산크리스토발 데 라스카사스(멕시코) AP 로이터 연합】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주에서 10일 농장노동자 수백명이 시위를 벌여 주요도로를 봉쇄했으며 한 소도시에선 농민들이 읍사무소를 습격,경찰과의 충돌로 5명이 숨지는 등 소요가 재연되고 있다. 치아파스주정부 대변인은 과테말라와의 국경 근처 치코무셀로에서 10일 새벽 현지 농민과 야당인 좌익계의 민주혁명당(PRD) 행동대원들이 읍사무소를 점거하려다가 출동한 경찰과 충돌했으며 총격전으로 경관 3명과 PRD당원 2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최근 농민들은 집권 제도혁명당(PRI)의 치아파스 주지사 에두아르도 로블레도를 주지사직에서 축출하기 위해 공공건물 공격을 계속해 왔다. 지난 1년동안 무력 반정부 투쟁을 벌인 원주민 게릴라들은 로블레도 주지사가 작년 8월의 주선거때 속임수를 써서 주지사에 당선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정부측과의 평화회담 동의에 앞서 먼저 주지사 사임을 요구하고 있다.
  • 인 경찰­무장괴한 도심총격전/택시기사 등 9명 사망

    ◎“경찰에 희생” 택시조합 총파업 【뉴델리(인도) AFP 연합 특약】 인도의 경찰이 7일 임팔시의 한 병원에서 무장괴한과의 총격중 택시운전사 7명과 학생 1명및 다른 행인 한명을 숨지게했다고 프레스 트러스트 인도(PTI)가 보도했다. PTI는 중앙예비경찰(CRP)소속인 이 경찰관들은 병원에서 지난주 게릴라들에게 매복당해 부상당한 동료를 지키고 있던중 6명의 무장괴한들이 총격을 가하자 무차별적으로 응사했다고 말했다. PTI통신은 7명의 사망자들은 마니푸르 3륜 택시 회사 소속 운전사들로 택시요금을 받기 위해 기다리다 변을 당했다고 전했다. 마니푸르 3륜 택시조합과 정치인및 의과대학생들은 이날 총파업을 강행해 경찰은 시내일대에 15시간의 통금을 발표해놓은 상태다. 임팔시는 동부 마니푸르 주수도로 버마와 인접해 수십년동안 각기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나가족과 쿠키족간의 종족분쟁의 터전이 돼왔다.
  • 이군,팔인 4명 사살/올 두번째 충돌

    ◎「자치확대」 회담 “먹구름” 【베이트 리키아(요르단강 서안) 로이터 연합】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충돌이 잦아지고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군은 4일 요르단강 서안지역의 라말라에 있는 베이트 리키아 마을에서 팔레스타인인 4명을 사살했다고 이스라엘 보안소식통들이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현지의 작전부대가 팔레스타인 차량 한대의 공격을 받고 이스라엘병사 한명이 경상을 입은 뒤 이들에게 응사,차안에 있던 팔레스타인인 4명을 전원 사살했다고 전했다.사건 발생 후 이스라엘 병사들은 완전무장 차림으로 베이트 리키아를 수색했다. 이스라엘 라디오 방송은 사살된 4명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간의 평화협상을 반대하는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FLP)소속 행동대원이었다고 보도했다. 이보다 앞서 이스라엘군은 지난 2일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경찰관 3명을 사살한 바 있다.또 4일에는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경찰관이 총격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민간인 2명이 부상했다. 한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관리들은 4일 팔레스타인의 자치확대와 관련한 양측의 회담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 불,자국민 구출… 특수부대 투입 검토/불 여객기 피랍 이모저모

    ◎“처자식 있다… 살려달라”애원 경찰관 살해/범인들 기관단총 무장… 기내서 회교의식 프랑스 항공기를 납치한 범인들을 지휘한 인물은 알제리 회교원리주의 무장단체(GIA)소속 압둘 야히아로 밝혀져 회교무장단체의 과격성을 다시 한번 증명. 그는 프랑스에서 주요 테러범으로 지목하지 않았던 새로운 인물이라고 프랑스 방송이 정보부의 말을 인용,보도. 이들 납치범들은 당초 비행기의 이륙을 요구만 하다 25일에 들면서 이슬람구국전선의 2명을 석방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압데라마네 셰리프 알제리내무장관은 그같은 요구가 없었다고 부인해 그들의 요구사항은 다시 오리무중. ○…풀려난 승객들은 이들이 24일 상오 11시쯤 항공 정비사의 복장을 하고 막 활주로를 거쳐 이륙하려던 여객기를 세우고 총격전을 벌인뒤 비행기에 올랐으며 비행기를 억류하는 과정에서 2명을 사살한 것으로 밝혀졌다. 정비사복장을 한 범인들은 칼리니시코프소총과 기관단총·수류탄등으로 무장했으며 기내에서 회교도의식을 하기도 했다고 석방자들은 전언. 석방자중 10살짜리 딸아이와 함께 풀려난 한 여인은 살해된 알제리 사복경찰관이 죽기전 범인들에게 『제발 죽이지 말라,나는 결혼했고 아이가 있다』고 애원했으나 범인들은 그를 복도로 끌고 나와 머리에 총을 쐈으며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외쳤다고 전했다. ○…알제리 회교원리주의 무장단체(GIA)는 지난 92년 총선승리가 무효화된 뒤 대정부 무장투쟁을 벌리고 있는 회교원리주의 단체 가운데에서도 가장 과격한 급진성향의 무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던 야당의 이슬람구국전선(FIS)이 총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지원을 받은 알제리의 군부에 의해 집권에 실패하자 다른 세력에 앞서 대정부 투쟁을 선언했다. 이들은 이에 알제리군부를 도운 프랑스등 서방국가에 대한 보복의 일환으로 테러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지금까지 희생된 사람은 자국민을 포함해 모두 3만명을 넘어서고 있다는 추계이며 지난 10월에는 대우 현지합작법인의 강대현씨가 피살되기도 했다. ○…에두아르 발라뒤르 프랑스총리는 인질석방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긴급 발표. 프랑수아 레오타르 국방장관도 일제리 정부의 요청이 있을 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전언.피랍 여객기에는 외교관2명을 포함,프랑스인이 22명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들은 자국민을 위해 특수부대를 투입할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편 이날 사고직후부터 프랑스와 알제리를 오가는 모든 항공기운항이 취소됐다. ○…납치 여객기는 공항청사에서 2백여m떨어진 활주로에 멈춰서있는데 활주로에는 두개의 라이트만 켜져 있고 주변에는 군특수부대요원들이 배치된채 긴장이 고조된 모습. 범인들은 기내의 모든 전등을 끈채 밖을 감시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알제리군은 이들이 비행기를 이륙시킬 수 없도록 이동식트랩을 그대로 부착시켜 놓았다.
  • “홍콩서 총격전중 사망 강상보씨/경찰총탄에 맞았다”/홍콩신문 보도

    【홍콩 연합】 홍콩에 업무차 출장와 홍콩 경찰과 범인간의 총격전 끝에 피살된 한국인 컴퓨터 프로그래머 강상보씨(31)는 홍콩 경찰이 사용하는 총탄에 맞았다고 홍콩의 영자지 스탠더드가 15일 1면 머릿기사로 보도했다. 스탠더드지는 홍콩 경찰의 「고위 수사관들」이 강씨에게 명중된 2발의 총탄들중 하나는 경찰이 사용하고 있는 38구경 권총의 총탄이었다고 이 신문에 밝혔다고 말했다.
  • 홍콩출장 한국회사원 피살/한국전자계산 강상보과장

    ◎강도에 납치… 경찰과 총격전중 참사 【홍콩 연합】 홍콩에 업무차 출장온 한국인이 인질로 납치됐다가홍콩경찰과 중국제권총으로 무장한 범인간의 20여발에 걸친 총격전끝에 피살돼 충격을 주고있다. 14일 새벽1시께 홍콩섬 에버딘에서 홍콩경찰과 무장인질범간에 격렬한총격전이 벌어져 업무차 출장와 호텔로 돌아가다 범인에 인질로 붙잡힌 서울 용산구갈월동 8의61 소재 컴퓨터전문회사인 한국전자계산주식회사(대표이사·조동민)의 시스템사업본부 강상보과장(31)이 이마와 심장에 각각 1발씩의 총탄을 맞고 숨졌다.범인도 2발의 총탄이 명중돼 사망했고 홍콩경찰관 3명이 부상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강씨는 지난달 29일부터 동료 4명과 함께 출장와 홍콩섬 랜드마크빌딩 32층의 조흥은행 자회사이자 홍콩현지법인인 조흥금융유한공사(사장·박희영)내에서 밤늦게 프로그램 설치작업을 하고 14일 새벽 30분께 동료들과 헤어져부근 호텔로 돌아가던중 범인에 납치됐다. 이들은 이달말까지 작업을 끝내기 위해 자주 밤늦은 시간까지 일해왔다. 사망후 몸에서 나온 신분증조사 결과 중국에서 지난 90년 홍콩으로 건너온 중국인으로 드러난 범인 장조우(23)는 구룡반도 첨소추이의 스타페리 부두옆에서 13일 밤11시10분께 여자를 희롱하고 달아나다 밤늦게까지 인파가 붐비는 첨사추이에서 경찰과 제1차 총격전을 벌인뒤 추적을 피해 홍콩섬으로 달아났다. 그는 홍콩도 랜드마크 인근 태자빌딩옆에서 근무중이던 경찰을 위협해 또 한자루의 총과 12발의 총탄 및 무전기를 빼앗은 뒤 부근 YWCA호텔로 귀가하던 강씨가 타고 지나가던 택시를 세워 택시기사 및 새로 납치한 여자 1명 등 3명의 인질과 함께홍콩도 남쪽 해변가로 도주했다. 경찰은 이 택시를 경찰차로 추적해 장이 앞이 막힌 거리에 이르러 더갈길이 없게되자 그와 제2차 총격전을 벌였으며 이때 여자인질과 택시기사는 재빨리달아났으나 강씨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범인과 함께 사망했다.
  • 파리 한밤 총격전/경찰 등 10명 사상

    【파리 로이터 AP 연합】 프랑스 파리에서 4일밤 젊은 남녀 한쌍이 경찰 총기를 탈취한 뒤 차량을 빼앗아 시내를 질주하면서 경찰과 총격전을 벌여 경찰 3명과 택시운전사 1명이 숨지고 경찰 3명 등 6명이 부상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 중국/“총기범죄 급증”… 새 골칫거리

    ◎불법무기 범람탓… 2년간 39만정 압수/라이터모양의 초미니 권총도 나돌아 개혁개방의 부작용으로 사회기강이 이완되고 있는 가운데 불법총기류의 증가와 총기를 이용한 범죄,사고가 중국의 새로운 골치거리가 되고 있다. 국경무역지대와 개혁개방구에서는 불법무기를 이용한 조직범죄가 급증하고 있는가 하면 이들 무기를 이용한 강력사건도 잇따르고 있다.특히 북경 등 대도시지역에서도 이로 인한 사건사고가 발생하기 시작해 중국 공안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추석공휴일이던 지난 20일 상오 북경의 외국인 집단거주지역 부근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은 단발적 사건이었지만 중국당국이 치안안전지대라던 북경에서 그곳도 건국기념일을 앞두고 비상경계령이 내려진 가운데 벌어진 사건이란 점에서 중국인들에게 충격과 걱정을 더해주고 있다. 이날 상오 7시20분(한국시간8시20분) 무렵 북경의 외국인 집단거주지역인 조양구 건국문외 아파트단지 외곽을 가로지르는 이환로에서 버스를 타고가던 신원미상의 중국인이 갑자기 버스에서 권총을 꺼내 승객들에게 총을 쏜 뒤 달아나다 불과 5분도 못돼 쫓아온 경찰들과 총격전을 벌인 사건이 발생한 것.목격자들은 이 과정에서 이란국적의 외교관과 최소한 8명이상의 외국인이 사망하고 30여명이 부상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범인은 사살됐으며 범인의 총기입수 과정 등에 초점을 맞춰 사건을 조사중이라고 말하고 있다.중국공안부의 한 관계자는 사회기강 이완과 불법무기류의 확산으로 이같은 사고가 계속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중국에선 정부의 각종 대책에도 불구하고 불법총기류의 조직적인 제조와 판매,그리고 일반층에까지 무기류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중국공안부는 지난 2년동안 모두 39만여정의 불법무기류를 압수했지만 대량의 총기류가 사회로 흘러들어오고 있는 등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어 집중단속하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공안당국은 비밀공장을 차려놓고 총기를 만드는 것은 물론 일부 총기류 생산회사들이 계획량보다 더 많은 양을 만들어 암시장에 빼돌리는 일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또 지난 2년동안 압수된 총기가운데 7천2백정은 군대에서 나온 것이라며 군대에서 흘러나온 총기류도 적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또 최근엔 라이터 등 생활용품으로 위장한 초미니형 총기류도 등장,공안당국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고 있다.지난달 21일 심천공안당국은 나호구 봉봉로의 한 가라오케에서 라이터,만연필,플래시 등으로 위장한 초미니형 특수권총 매매상들을 일망타진했다고 밝혔다.당국에 따르면 한자루에 4백위엔(4만원상당)에 거래하기로 된 이 특수권총은 4m 밖에서도 인명살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당국은 이 특수권총이 장춘에서 심천까지 일반 물품을 가장해 운송해 왔으며 배후에 대규모 관련 조직이 개입돼 있다고 말하고 있다. 중국공안당국은 불법무기류의 제조,유통,소지자에 대해서는 단속과 처벌을 강화,사회안정의 차원에서 뿌리뽑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중국내의 불법무기류의 확산은 쉽게 근절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아이티 긴장 고조/주민 수백명 무기고 탈취

    ◎병영·경찰서 습격… 한때 치안마비 【포르토프랭스·카프아이시앵 AP AFP 연합】 아이티주둔 미군과 현지 무장요원들이 24일 총격전을 벌여 무장요원 10명이 사망하는 등 미군 상륙후 첫 유혈사태가 발생한데 이어 25일에는 수백명의 현지인들이 군병영과 경찰서 등을 습격해 총기 등을 탈취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양측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유혈사태후 아이티주민 수백명은 이날 북부 항구도시 카프 아이시앵소재 대규모 무기고 등을 장악하고 총기류 등을 탈취했으며,주요 군병영과 경찰서 요원들이 이들의 습격을 피해 도주,치안이 부분마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한때 공포탄으로 보이는 총성이 울리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주민들은 무기를 자발적으로 반납한 것으로 보이며,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관측됐다. 경찰관서 등지에서 총성이 울리자 미해병대 병력이 주요 군병영에 쇄도,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병영을 장악한데 이어 시전역에 검문소 등을 설치해 본격적인 치안유지에 들어갔다.
  • 미­아이티 총격전 9명 사망/미군 1명 부상

    ◎“아리스티드 복귀” 수천명 시위 【카프 아이시앵 AP 로이터 연합】 아이티 주둔 미해병대원들이 24일 하오7시쯤(현지시간) 북부 항구도시 카프 아이시앵에서 현지 무장요원들과 총격전을 벌여 무장요원 9명이 사망하고 미해병대 통역요원 1명이 부상했다. 이번 총격전은 미해병대가 지난 19일 아이티에 상륙하기 시작한 이래 인명이 희생된 첫 유혈충돌로,미군과 현지 무장세력들간에 긴장이 점증하는 가운데 발생한 것이다. 카프 아이시앵 주둔 미해병대 사령관 스티브 하틀리대령은 소대병력이 경찰서부근을 순찰하던중 밖으로 뛰쳐나온 무장요원들과 몇마디 주고받은 뒤 총격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순찰소대의 마이크 아네트 상병은 『무장요원 4명이 경찰서밖으로 나오다 우리를 발견,무서운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총기를 난사했으며 우리도 응사했다』고 말했다. 이날 총격전으로 현지 경찰관이나 경찰서 소속 민간인으로 추정되는 아이티인 9명이 숨졌으며,미해병대 통역요원 1명도 다리부상을 입었으나 중상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총성이 울리자 미신속대응군은 인구 7만5천명의 이 도시를 봉쇄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즉각 취했다.
  • 중국무장탈영병 총기난사/북경 중심가서… 8명 사망·30명 부상

    【북경=이석우특파원】 건국문외 외교관단지와 인접한 북경시내 중심가의 이환로상에서 20일 아침 자동소총을 든 무장탈영병 1명이 지나는 행인들에게 총기를 무차별 난사,적어도 8명이 사망하고 30여명이 부상했다고 북경시 공안당국이 밝혔다.그러나 한국인 피해자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관영 신화통신은 사망자 가운데 이란외교관과 그 아들등 2명의 외국인이 포함돼 있으며 범인은 긴급출동한 경찰과 총격전을 벌인 끝에 현장에서 사살됐다고 전했다. 이번 사건은 오는 10월1일 건국 45주년 기념일과 이달말로 예정된 중국공산당 제14기 중앙위원회 제4차 총회를 앞두고 북경시내의 경계가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벌어져 충격을 더하고 있다.
  • 안무장군/봉오동·청산리대첩의 얼굴없는 주역(이달의 독립운동가)

    ◎국민회군 조직,김좌진·홍범도와 연합/회령·강양동 일군 습격… 국내 진입 시도/모아산서 일기습받아 피랍… 42세 순국 안무장군(1883년 6월29일∼1924년 9월7일)은 김좌진·홍범도장군등과 함께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대표적인 무장항일투사이다. 호가 청전인 안장군은 함북 경성에서 출생,1889년 대한제국 진위대 병사로 입대해 하사관을 거쳐 교련관으로 근무한 정규군인이다. 안선생은 1907년 8월1일 일제가 대한제국군을 강제해산한데 따라 잠시 고향에서 체육교사로 일하다 1910년 8월 경술국치를 맞아 북간도로 망명,독립운동가로 나서게 됐다. 선생은 이동휘가 활약하고 있던 북간도 명동에 도착한뒤 동지들과 대한국민회를 조직하고 예하에 국민회군 3백명을 편성,사령관으로 취임했다. 선생은 1919년 만세운동으로 독립운동의 열기가 높아지자 다른 독립운동 지도자들과 힘을 모아 본격적으로 무기반입·독립군 훈련을 펼쳤다. 당시 대한국민회는 북간도 각지에 10여개의 지방회와 80여개의 지회를 두는등 한창 세력을 확대해가고 있었다. 대한국민회는 세력이 확산됨에 따라 산하 군사조직으로 홍범도의 대한독립군과 선생의 국민회군등 2개 조직을 두게 된다. 바로 이 부대들이 항일무장투쟁사에서 가장 빛나는 전투의 하나로 손꼽히는 북간도 봉오동 전투를 치른 주역이다. 봉오동 전투는 일제가 중화기를 동원,국내진입을 꾀하는 독립군부대를 토벌하려는데 맞서 독립군이 일제를 일패도지시킨 전투이다. 1920년 5월28일.무장독립단체들은 국내진입작전을 펼치기 위해 대한군북로도군부를 조직하고 병력을 화룡현 봉오동에 집결하기 시작했다. 당시 모인 병력은 홍범도와 안무계의 5백50명등 모두 1천2백명이었으며 무기는 기관총 2문·총기 1천1백정·수류탄등 1백개등에 불과했다. 먼저 이들 무장독립군은 같은해 5·6월 두차례에 걸쳐 함북 회령과 강양동의 일제초소를 공격,국내진입 가능성여부를 타진했다. 일제는 이에 따라 나남 주둔 19사단의 보병대대 및 기관총대 1개대대로 「월강추격대대」를 편성,중국땅으로 건너와 「독립군토벌작전」을 감행했다. 독립군은 공격에 나선 일제의 주력을봉오동으로 유인,4시간여에 걸친 포위전 끝에 일제를 물리치는데 성공한 것이다. 당시 상해 임시정부 정무원은 『적군의 사자 1백57명·중상 2백여명·경상 1백여명이요,아군의 사자 4인·중상 2인』이라고 피아 피해상황을 밝혔다. 안장군이 이 전투에서 맹활약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봉오동 전투는 일군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일제는 이 전투를 계기로 독립군의 전력을 재평가,이른바 「간도지방 불령선인 초토계획」을 본격적으로 수립하게 됐다. 일제의 대대적 작전을 감지한 독립군은 안장군의 국민회부대를 화룡현 이도구지역으로 이동시키고 김좌진의 북로군정서와 홍범도의 대한독립군등도 이도구와 삼도구 서북지방의 밀림지대로 기지를 옮기도록 했다. 당시 집결한 병력은 사상 최대규모인 2천여명에 이르렀다. 독립군은 이런 배치로 유명한 청산리대첩에 대한 준비를 갖춘 것이다. 청산리대첩은 김좌진·홍범도·안무 3장군의 부대등이 연합,이·삼도구 서북쪽 심산 밀림지대에서 일제 「토벌군」2만여명과 밤낮 구별없이 6일동안 치른 전투이다. 독립군은 이 청산리대첩에서 일제를 철저히 괴멸시키는 대성공을 거두었으나 일제 19사단이 추가로 출동할 움직임을 보임에 따라 다시 더멀리 밀산으로 이동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독립군은 밀산이 너무 비좁은 지역이라 장기주둔하기 곤란하다는 판단아래 러시아 연해주 자유시(하바로스크 위쪽 알렉세호스크)로 이동했다가 일제와의 불화를 우려한 러시아로부터 큰 타격을 받고 주력을 잃는 비극을 겪게 됐다. 러시아는 1921년 6월 일제의 요구에 따라 독립군을 무장해제키로 하고 장갑차를 동원해 갑자기 독립군부대를 공격한 것이다. 당시 피해상황에 대해 간도지방 한국독립단에서 발표한 「자유시사변에 대한 성토문」은 『독립군 2백72명이 전사하고 9백17명이 포로로 붙잡히는 대참변을 당했다』고 적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안장군의 부대는 별다른 피해를 받지 않고 북간도로 돌아왔다. 안장군은 독립군의 재기를 위해 활약하던중 1924년 9월6일 일경의 습격으로 모아산부근에서 총격전을 벌이다 총상을 입고 체포된뒤 다음날 42세의 일기로장렬하게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영정마저 남기지 못하고 조국광복의 제단에 목숨을 받친 선생의 일생은 무장독립운동사에 길이 빛나리라.
  • 비억류 근로자 7명 석방/반군과 협상 타결

    ◎피랍 8일만에 안전지대 이동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 코타바토시 부근 댐 건설공사현장에서 필리핀 정부군과 회교반군간 교전으로 고립돼 있던 신성 소속 한국인 근로자 7명이 8일만인 4일 하오 2시30분(한국시간) 현장을 무사히 빠져나와 안전지대로 이동했다고 외무부가 밝혔다. 외무부에 따르면 이들 한국인 기술자 7명은 전원 건강상태가 양호하며 필리핀 군당국이 제공한 군용기편으로 마닐라로 이동할 계획이다. 외무부는 『이들의 안전지역 이동은 코타바토주지사일행이 3일 하오 회교반군 책임자들과 만나 우리 건설근로자의 철수 등에 합의한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지난달 27일 코타바토시 북부 카르멘마 마을에 있는 댐 건설현장 부근에서 모로회교해방전선(MILF)반군이 정부군과 총격전을 벌이자 건설현장 숙소에서 대피한채 고립돼 있었다.
  • 비반군,한국인 7명 억류/민다나오 신성 공사장

    ◎군과 교전중 난입,인질극/“전원긴급대피 무사”/신성 【코타바토(필리핀) AP AFP 연합】 필리핀 회교반군들이 27일 남부 민다나오섬 코타바토시에서 건설공사중이던 한국인 근로자 7명과 필리핀인 30명을 인질로 잡고 군당국과 대치중이라고 현지 군당국 및 건설회사측 관계자들이 밝혔다. 이들은 모로회교해방전선(MILF)소속 무장괴한들이 이날 새벽 한국 건설회사 (주)신성측의 공사경비를 맡고 있는 정부 분견대원들과 총격전을 벌인뒤 마닐라 남쪽 8백50㎞ 지점의 카르멘 마을의 공사현장으로 퇴각했다가 이같은 인질극을 벌였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신성의 마닐라 주재 사무소 간부는 이날 코타바토 라디오방송인 DXMS와 가진 회견에서 한국인과 필리핀 고용인들이 무장괴한들에 억류돼 건물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군들은 정부군과 총격전을 벌이다 공사현장으로 밀려나 정부군이 철수하고 부상 동료들의 치료를 위한 앰뷸런스를 보내줄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정부군은 인질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게릴라들을 공격하지는 않고 있다. 한편 필리핀 당국과 한국대사관측은 근로자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반군들을 설득하는등 협상을 벌이고 있다. 모로민족해방전선(MNLF)에서 분리된 소규모 무장단체인 MILF는 지난 3월에도 이곳 공사현장에서 한국인 근로자들을 억류했다가 군인들의 포위망이 풀리자 곧바로 이들을 석방한 바 있으며 지난해 12월에도 8명을 인질로 붙잡았으나 협상끝에 풀어줬다. MILF는 거점지역에서 관개공사가 진행되자 신성측에 자신들을 경비요원으로 고용해줄 것을 요구해왔으나 군당국은 이를 반대해왔다. ◎“계속 무전 연락” 신성측은 필리핀 반군의 한국인 근로자 억류 외신보도와 관련,『필리핀 마닐라 지점의 서승원차장과 국제전화를 통해 알아본 결과,이재철 현장사무소 소장 등 현장 직원 7명은 교전이 시작된 즉시 공사현장에서 1㎞정도 떨어진 숙소에 대피,전원 무사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신성측은 또 『현재 이들 직원들은 마닐라지점과 계속 무전으로 연락하고 있으며 하오 6시가 지나면서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은 소강상태에 들어갔으나 만일의 사태에 대비,직원들은 바깥출입을 자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성측은 마닐라지점을 통해 필리핀당국과 한국 대사관에 근로자들의 안전책을 요구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신성은 이 지역에서 92년부터 오는 96년 완공을 목표로 6천4백만달러 규모의 댐건설공사를 하고 있다. 신성은 건설업체 도급한도액 순위 36위인 중견종합건설업체로 직원은 6백여명이며 60여명이 해외에서 일하고 있다. 한편 외무부는 이에대해 정확한 진상을 파악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이날 하오 현지공관에 긴급지시했다.
  • 북의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라(사설)

    김일성사망이후의 일사불란한 듯한 김정일 권력세습 진행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최근동태가 어째 심상치 않다.그럴리야 없겠지만 북한사회의 동구식 붕괴가 이미 시작된 조짐은 아닌가.의구심을 갖지 않을수 없다. 북한건설부장관 조철준의 차남이며 김일성대학강사인 조명철씨에 이어 이번에는 강성산총리의 사위이자 의회산하 무역회사부사장 강명도씨가 북을 버리고 한국의 품으로 귀순해왔다.휴전선 비무장지대에선 25일 북한군 병사들끼리의 총격전까지 목격되었다고 한다.김정일의 동태도 주목된다.국가주석 및 당총서기직승계 공식선언이 늦어지고 있으며 27일 「승전기념일」행사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옛소련 붕괴후 우리는 탈북귀순자를 많이 보아왔다.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시베리아 벌목공이거나 한만국경 인근의 가난하고 고통받던 북한주민들이었다.북한 고위층의 비호를 받으며 잘살 수 있는 기득권계층,그것도 고위층의 아들·사위같은 친인척은 없었다. 또하나의 있을수 있는 귀순이요 총격사건으로 간단히 생각하고 소홀히 넘길 일이 결코아니라 생각한다.우리는 동구붕괴와 독일통일의 과정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있다.그것은 주민들의 대탈출에서부터 시작됐었다.아시아,특히 북한은 동구와는 다를것으로 예상되어 왔지만 아무래도 예사롭지가 않다.북한도 마침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인가. 우리는 북한사회의 갑작스런 동요나 붕괴 또는 흡수통일을 원하지 않고있다.그로인한 난민사태와 파탄의 경제를 떠맡아야 하는등의 부담때문이다.우리가 가장 바라는것은 북한 스스로의 질서있는 민주화 개방·개혁과 경제의 개선이다.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희망이며 현실은 기대를 따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우리가 원하건 않건 상관없이 북한의 붕괴와 그로 인한 흡수통일이 하나의 불가피한 현실로서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것을 애써 외면하려 할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자세로 대응해야 할것이다.붕괴와 흡수통일이 불가피하다면 그것도 적극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것이다.일본과 중국은 북한의 붕괴와 난민사태에 대한 대책을 이미 강구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지고있다.우리도 충분한대비가 있어야 할것이다.흡수통일의 가능성에 대비한 실천계획까지도 마련해두어야 할것이다.북한에서 일어날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충분히 대비하는 계획과 준비가 있어야 할것이다. 탈냉전시대의 북한은 핵문제와 경제파탄에 권력세습등 불확실성의 온갖 요인들을 다 안고있다.특히 귀순자들이 회견에서 밝힌 북한 핵개발의지와 이미 5기를 보유하고 곧 양산체제에 들어갈 것이라는 충격적 사실은 우리의 새로운 북핵 대응을 요구하는 한반도 안보불확실성 심화의 위협적 요인이 아닐 수 없다.
  • 신팔균선생/항일비밀결사 「대동청년단」 이끌어(이달의 독립운동가)

    ◎충북 진천에 사립학교 세워 인재 양성/만주망명후 독립군 총지휘… 일 괴롭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1910년이후 수많은 선열들이 국권회복을 위해 줄기차게 항일투쟁을 벌여왔다. 동천 신팔균선생은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조국광복의 제단에 바친 대표적인 애국선열로 손꼽히고 있다. 선생은 김좌진,홍범도,김동삼등과 함께 만주를 무대로 항일독립전쟁을 전개한 무장이다. 선생은 부친이 한성부판윤과 좌변포도대장등을,조부가 금위대장·삼도수군통제사·형조와 병조판서를 지낸 명문가출신으로 임오군란이 일어나던 1882년 서울 정동에서 출생했다. 가문의 전통에 따라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교한 선생은 육군참위로 임관,강계 진위대에서 첫 근무를 했다. 선생은 1909년 대한제국군대가 해체되자 인재양성에 힘을 쏟기로 하고 충북 진천에 사립 보명학교(현 이월국교 자리)를 세웠다. 이와함께 전국 각지의 애국지사들과 긴밀한 연락을 갖고 80여명으로 항일비밀결사 대동청년단을 결성,항일무장독립운동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는데도 성공했다. 대동청년단은 국권회복을 위한 지하단체로 광복때까지 은밀한 활동을 벌였다. 이 단체가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보안 때문이었다. 이들은 처음 단체를 출범하면서 단원이나 단명등에 관한 사항은 일절 문자로 표시하지 않으며 경찰등에 체포될 경우 다른 단원을 연루시키지 않는다는 「피의 서약」을 맺었다. 선생은 1910년 마침내 경술국치로 대한제국이 종지부를 찍고 일제통치가 시작되자 무장항일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선생은 일단 만주로 망명,독립운동 단체 중광단에 가입했으며 3·1운동에 앞서 만주 동삼성의 민족지도자 38인 가운데 1인으로 대한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 선생은 이어 만주 서간도의 독립군 양성학교인 경학사의 후신인 한주회 소속 독립군단 서로군정서에 가입,군단무관학교인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후진교육을 맡았다. 당시 교관으로는 일본육사출신인 지청천과 김경천,한말 무관출신인 김창환등이 학생을 지도하고 있었다. 이 학교 졸업생들은 청산리독립전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선생을 비롯한 애국투사들의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3·1운동을 전후해 만주지역에는 50여개의 독립군단이 조직됐으며 이들은 각각 일제에 전쟁을 선포하고 일제 주재소와 헌병대등을 습격하는등 맹렬한 독립투쟁을 전개했다. 선생도 서로군정서의 독립군을 이끌고 수시로 일제 군경과 치열한 총격전을 가졌으며 친일주구들을 처단하는등 용맹을 떨쳤다. 독립군부대는 그러나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에서 1천여명의 병사를 잃은 일제가 이에 대한 보복으로 만주지역의 한인들을 무차별 살육하는등 초토화작전으로 맞서자 어쩔 수 없이 근거지를 이동하게 된다. 당시 김좌진의 북로군정서와 홍범도의 독립군 연합부대는 북만으로 옮겼으며 선생이 활약하고 있는 서로군정서,대한독립단등은 남만의 홍경현으로 이주했다. 1922년 봄,남만에 있던 독립군부대들은 강력한 독립군단의 조직을 위해 기존 부대를 해체,대한통군부를 결성했으며 이 통군부는 그해 가을,북만의 독립군부대까지 결합시켜 대한통의부로 새로 출발했다. 선생은 1923년 대한통의부 의용군사령관에 임명돼 독립군병력을 총지휘하게 된다. 이 의용군은 5개중대와 유격대,헌병대로 조직됐으며 각 중대는 5백∼9백명의 병력으로 구성됐다. 의용군은 당시 압록강 접경에서 일제와 치열한 접전을 펼쳤으며 국내에도 잠입,게릴라전으로 일제를 괴롭혔다. 남아있는 기록을 보면 이 의용군은 1923년 1월 유격대원 7명이 평북 창성군 후평주재소를 습격,일경을 사살하는등 무수한 전과를 남겼다. 선생은 그러나 1924년 7월 홍경현 밀림에서 야외군사훈련중 중국 마적 3백여명의 급습을 받고 총격전을 벌이다 총에 맞아 쓰러져 42세로 운명했다. 선생은 『일제와 싸우다 죽으려했더니 중국사람과 싸우다 죽는구나』라고 외치며 안타까워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선생을 숨지게 한 마적들은 사후 일제의 사주를 받은 장작림 군벌부대와 경찰들로 밝혀졌다. 한편 선생이 순국할 당시 서울 셋방에서 만삭의 몸을 이끌며 살고 있던 부인 임수명여사는 남편의 전사소식을 듣고 쓰러져 운명,일가족이 조국독립에 몸을 바친 셈이 됐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추서했다.
  • 북핵·미사일 다룬 소설 미서 불티

    ◎“장비 밀수” 북한첩보단과 전투 그려/「악당전사… 」 NYT지 베스트셀러 7위 북한의 핵문제가 계속 국제적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일본극 우파와 북한이 제휴,미국으로부터 토마호크 미사일과 핵무기제조에 필요한 장비를 밀반입하려는 계획을 미해군특수부대가 사전에 저지시킨다는 내용의 소설 「로그 워리어Ⅱ­붉은 세포」(ROGUE WARRIORⅡ­RED CELL)가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있다. 뉴욕 타임스지 지난 10일자 베스트셀러 소설부문 7위에 올라있는 「붉은세포」는 미해군 특수부대 「붉은세포」의 창설자이며 지휘자였던 주인공 마칭코가 공금횡령의 유죄판결로 1년의 감옥형을 마치고 프리랜서로 활동을 재개하는데서부터 시작된다.그는 옛상관인 한 경비회사 사장으로부터 도쿄 나리타공항의 경비상태를 확인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테러리스트로 가장해 밤중에 공항에 침투한다.거기서 그는 뜻밖에도 수상한 물건을 옮기고있는 북한첩보요원들과 부딪쳐 총격전을 벌이게된다.그리고 그는 북한과 일본의 극우파가 핵무기제조에 필요한 장비를 미국으로부터 극비리에 밀수입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마칭코는 해군에 강제소환되고 그는 자신이 만들었던 「붉은세포」를 이끌고 북한과 일본의 밀수저지에 나서게 된다. 「대일본」을 꿈꾸는 극우파의 히데오 이키가미는 몇몇 미국인과 결탁,미해군기지로부터 훔친 미사일을 극우파 소유의 회사 「마츠코」란 간판을 이용해 한 운송업체의 컨테이너에 숨겨 일본으로 들여온다.미사일등은 다시 북한으로 옮겨졌다가 일부 핵무기제조장비는 떨어뜨리고 미사일등은 청진에서 북한산으로 위장,북한잠수함편에 일본으로 들여오려다 마칭코팀에 의해 청진앞바다에서 일망타진된다는 줄거리다. 주인공과 이름이 같은 작가 리처드 마칭코는 해군중령 출신으로 현재는 미정부와 기업체를 주고객으로 경비업무를 청부맡아 하는 회사의 사장이며 공동작가 존 와이스만은 첩보물을 주로 쓰는 직업소설가. 시몬 앤드 슈스터사간 값 22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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