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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64년만에 사형수 탈옥/20代 총탄 세례 피해 담장 넘어

    【오스틴 AFP 연합】 미국에서 64년 만에 처음으로 사형수 탈옥사건이 발생했다.탈옥자는 지난 92년 서해안 코퍼스크리스티시에서 레스토랑 주인 등 두 사람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중이던 마틴 거룰(29).휴스턴 북서쪽 130㎞ 지점의 헌츠빌 교도소의 철저한 보안시스템을 따돌리고 달아난 것은 지난 26일 자정쯤. 거룰은 동료 죄수 6명과 함께 취침점호를 마친 뒤 담요와 종이로 만든 큰 인형을 자기 침대에 뉘워놓고 레크리에이션 방으로 숨어 들었다. 이어 미리 준비한 사다리를 이용해 지붕으로 올라가 담장을 통해 탈출했다.이 과정에서 동료 죄수 6명은 붙잡혔으나 거룰은 총탄세례를 피해 담장 2개를 넘은 뒤 소나무 숲으로 사라졌다. 이 사건은 지난 34년 ‘보니­클라이드’갱단이 사형선고를 받은 조직원 3명을 탈옥시킨 뒤 처음.당시 탈옥수 1명은 5개월 후 경찰과 총격전 중에 사망했으며 나머지 2명도 체포돼 전기의자에서 처형됐다.관계당국은 헬기와 보트,적외선 열탐지기를 동원해 대대적인 수색작전을 펴고 있지만 거룰의 행방은 아직 묘연하다.
  • 權寧海씨 銃風 알고도 묵인/직무유기 추가 기소

    ◎李會星씨 의혹 계속 수사/검찰 수사결과 발표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은 韓成基씨(39·전 포스데이터 고문) 등 3명이 모의,실행했으며 權寧海 전 안기부장이 이 사건을 알고도 수사 지시를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의 동생 李會晟씨(52·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가 韓씨 등으로부터 총격요청계획을 보고받았은지와 韓씨에게 500만원을 건넸는지 여부 등 배후 의혹에 대해 계속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지검 공안1부(洪景植 부장검사)는 26일 이 사건에 대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韓씨와 吳靜恩씨(46·전 청와대 행정관),張錫重씨(48·대호차이나 대표) 등 3명을 국가보안법의 회합·통신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權 전 안기부장에게는 국가보안법의 특수직무유기 혐의를 추가해 기소했다. 또 吳씨가 한나라당 李會昌 후보의 선거운동을 위해 당시 청와대 행정관이던 조청래씨 등 4명과 함께 ‘비선참모조직’ 및 ‘전국 규모의 청년홍보단’을 구성·운영키로 하고 張震浩 진로그룹 회장에게서 활동자금 7,000만원을 받은 사실을 확인,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도 병합해 기소했다. 吳씨 등은 지난 해 12월 초 李후보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북한측에 휴전선 총격전 등 무력시위를 요청키로 공모,북한측의 朴충 등에게 이같은 뜻을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韓씨는 지난 해 12월10일 중국 베이징 캠핀스키 호텔에서 북한 아세아태평양 평화위원회 참사 朴충을 만나 자신을 ‘李후보의 특보’라고 소개한 뒤 “대선을 3∼4일 앞두고 TV화면이 잘 잡히는 판문점에서 무력시위를 벌여 긴장을 조성해달라”고 요청했다. 韓씨는 요청을 들어주면 새정부 출범 전까지 비료·영농자재 등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이틀 뒤인 12일 朴으로부터 “우리 공화국에 전문을 보냈는 데 회답이 없다”는 말을 듣고 귀국했다는 것이다. 權 전 안기부장은 韓씨 등의 이같은 행적에 대한 첩보를 입수하고도 퇴임때까지 수사지시 등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사건을 후임자에게 인계 조차 않는 등 은폐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韓씨가 안기부 조사에서 李會晟씨에게 무력시위 요청계획을 사전에 보고하고 베이징 여비조로 500만원을 받았다고 진술한 대목에 대해 수사했으나 韓씨는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이라고 진술을 번복했고 李會晟씨도 강력히 부인했다고 밝혔다.
  • 총격요청 수사결과­발표문 요지

    ◎배후 등 공범 수사/한씨 “이회성씨에 보고” 진술 번복/피의자 3인 “총격요청 했지만 보고는 안했다” ▲수사배경=한성기가 안기부 조사 과정에서 이회성에게 무력 시위 요청 계획을 사전에 보고하고 경비 500만원을 지원받았으며 진로그룹 장진호 회장에게도 사전에 보고했다고 진술했다.오정은 한성기등이 이회창 후보 당선 시공을 인정받아 대가를 얻을 목적으로 범행에 이른점에 비추어 볼 때 추진 상황을 사전에 이후보 진영에 보고하였을 개연성이 높다고 판단돼 이회성 장진호 오정은의 비선조직과 통일부 안기부 관계자들을 상대로 배후 및 공범관계 수사를 계속해왔다. ○‘이 후보 지시’ 아직 못밝혀 ▲이회창 후보 수사 결과=오정은은 97년 10월 한성기로부터 진로의 부동산 매각과 화의신청을 도와주면 장진호가 박찬종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해 박찬종을 이후보 진영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사정비서관과 민정비서관에게 부탁했다.11월 하순 한성기와 함께 이후보의 승용차에 동승,박찬종 고문 자택까지 안내해 이후보와 박고문의 회동을주선하는 등 이후보와 지속적으로 접촉했다. 피의자 등이 모두 이후보의 휴전선 무력시위 요청을 지시받거나 보고한 사실이 없다고 극구 부인하고 있어 현재까지의 수사 결과로는 이후보가 지시했거나 보고받았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회성 관련 의혹=이회성은 대선기간동안 조선호텔 객실에서 한성기를 1회 만난 것은 사실이나 10여분 동안 선거에 관한 일반적인 이야기를 했을 뿐 무력 시위 요청 내용에 대해 사전 사후에 보고받은 사실이 없다고 극구 변명했다. 한성기는 안기부 조사에서는 97년 11월 하순 조선호텔에서 이회성을 만나 “이런 식으로 가면 대선에 절대 불리할 것 같다.4·11 총선과 같이 북풍을 일으켜 대선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야겠다”고 했고 12월 다시 만나 “북경에 가서 북풍을 일으켜 달라고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 죄송합니다”라고 했다고 진술했다.그러나 검찰에서는 그 진술을 번복했다. 결론적으로 한성기와 이회성이 단둘이 은밀히 만났다면 한성기가 자신의 공로를 인정받기 위해 출국전에 무력 시위를 요청할계획을 얘기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출국전 계획보고 가능성 또 한성기는 12월8일 조선호텔에서 이회성을 만나 북풍 요청 사실을 말하려고 했으나 사람이 많아 말을 다하지 못했고 이회성의 지시에 따라 진로그룹 장진호 회장을 만나 “북경으로 가서 북한 사람과 만나 무력시위를 요청하려 한다”고 말했다고 진술한 점 등을 종합하면 한성기가 중국 출국전에 이회성을 만나 무력 시위 요청 계획을 보고했을 의심이 가므로 보고 여부에 관해 계속 수사할 필요가 있다. 한성기는 안기부 조사시 이회성고문에게 무력 시위 요청 사건을 사전에 보고하고 경비조로 500만원을 받았다고 진술했으나 검찰에서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번복했다.이회성도 자금 제공 사실을 부인하고 있으나 진위에 관해서는 계속 수사할 예정이다. ○장진호씨가 자금 지원 ▲장진호 관련 의혹=장진호는 97년 10월 한성기 오정은으로부터 이회창 후보를 돕기 위해 비선 조직을 결성할 계획이니 자금을 지원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7,000만원을 지원했으며 12월 초순에는 한성기의 북한 주민접촉 신청에 필요한 각종 서류를 발급해 주고 한성기가 북경에서 북측 인사를 만나기로 했다는 사실을 사전에 보고받은 점이 확인됐다.장진호는 안기부 조사시 97년 12월초 한성기로부터 “12월10일쯤 북경을 방문해 북한측에 모종의 부탁을 하려 하는데 앞으로 휴전선에서 시끄러운 일이 생길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으나 검찰에서는 진술을 번복했다. 전후 사정을 종합해보면 장진호가 무력 시위 요청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였을 개연성이 있으나 장진호가 한성기 등에게 무력 시위를 요청하도록 지시했거나 자금 지원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아 계속 수사할 예정이다. ▲향후 수사 계획=피의자들은 검찰 송치후 배후 관련 부분을 제외한 범행을 대부분 시인했으나 사건이 정치쟁점화되고 신체검증과 구속적부심 등을 통해 자백을 번복하고 배후를 부인하고 있어 계속 수사해 진상을 규명하겠다. ◎범행 동기/이회창 후보 당선땐 승진·채무변제 등 기대 26일 검찰이 발표한 판문점 총격요청사건 중간수사결과 발표의 주요내용을 간추린다. 吳靜恩張錫重은 94년 현대종합상사 부장인 吳모씨의 소개로 알게된 뒤 吳靜恩은 張錫重의 대북 무역업에 관한 편의를 봐주고,張錫重은 북한관련 정보를 吳靜恩에게 제공했다.韓成基와 吳靜恩은 97년 고려대 언론대학원 최고위과정을 다니면서 알게 됐다. 吳靜恩은 별정직 공무원으로서 金泳三대통령 퇴임후의 신분유지에 불안을 느껴 韓成基와 함께 李會昌 후보 선거운동을 위한 비선조직을 구성키로 합의했다.한성기와 오정은은 97년 10월 진로그룹 張震浩 회장의 집을 방문하여 비선조직 운영자금 7,000만원을 제공받아 2,000만원은 韓成基가,5,000만원은 吳靜恩이 조직운영비로 사용했다. 피의자들은 대선 기간중 吳靜恩 韓成基가 李會昌 후보의 대선 승리를 위해 노력했음에도 李후보의 지지율이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이에 따라 張錫重이 97년 10월16일 북의 아세아 태평양평화위원회로부터 방북 초청장을 받고 추진하던 金順權 박사의 방북을 대가로 북한측에 96년 4·11 총선 직전에 발생한 판문점 무력시위와 같은총격전 등을 요청하여 보수세력의 지지를 결집시켜 李후보의 지지율을 제고키로 했다. 李후보가 당선될 경우 오정은은 청와대 별정직 3급 공무원으로서 현직 유지가 가능하고 승진 또는 출신지역에서 정계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는 기회를 삼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한성기는 안기부장 특보직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장석중은 대북사업 중 발생한 현대측에 대한 2억원의 채무변제 유예가 가능하고 앞으로 오정은 등을 배경으로 원활한 대북사업을 할 수 있는 등 충분한 보상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이와 같이 개인적 이익과 영달을 위하여 국기를 위협하는 판문점 총격요청 범행에까지 이르게 됐다. ◎총격요청 공모/“선거 이틀전 터트리면 야당서도 대응 못할것” 장석중은 북한에 농업용 자재를 제공하고 농산물을 받아오는 계약재배 사업을 성사시키기 위해 경북대 김순권박사의 방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오정은에게 김박사의 방북승인을 부탁했다.장석중이 현대에 대한 채무 2억원을 변제하지 못하고 담보물건에 대한 경매를 통보받는 상황에 이르러 오정은에게 그 해결을 부탁하자 오정은은 정·재계에 지면이 넓은 한성기를 장석중에게 소개했다. 오정은의 소개로 한성기 장석중이 만나 김박사의 방북을 고리로 현대의 대북사업을 지원함으로써 장석중의 현대에 대한 채무를 연기받는 방안을 논의하던중 오정은이 북한에 김박사를 보내면 장석중의 사업뿐 아니라 이번 대선과 관련해 활용할 수도 있을 것 아니냐고 제의했다. 이후 97년 11월 하순 오정은과 한성기가 만나 李후보 지지율 문제를 논의하다가 한성기가 국민회의 공작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은 휴전선 총격전인데 시시한 것 갖고는 안되고 한번 ‘쾅’하고 크게 터져야 한다고 말했다.이에 오정은은 만약 그런 사건을 일으키면 오히려 여당이 덮어쓸 가능성이 많다고 하자 한성기는 선거에 임박해 이틀 정도 하면 야당이 대응할 여유가 없다면서 내가 북경에 가서 북한사람들을 만나보겠다고 말했다. 97년 11월말경 삼청동 오복집에서 오정은 한성기 장석중이 만났다.이 자리에서 한성기가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서 4·11총선 때처럼 판문점에서 무력시위가 있어야 하며 홍보가 중요하므로 사전에 북측과 약속된 지점에 미리 카메라를 설치하여 북측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내려오는 장면을 실감나게 찍어 방영하면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라고 말했다.장석중이 그런 문제는 자신있다며 북한측과 한성기를 만나도록 주선해주겠다고 했다.또 장석중이 오정은에게 김박사의 방북승인 일정을 책임져 달라고 하자 오정은은 챙겨보겠다고 약속했다. 오정은은 통일원에서 김박사의 방북승인을 얻어내고 장석중은 한성기를 북경으로 안내하여 북측인물과 접촉을 주선하며,한성기는 북측인사들을 만나 대선 직전 북한군의 휴전선 무력시위를 요청하기로 역할을 분담했다. 97년 12월 초순 장석중이 북경 방문시 대선문제 등을 논의할 목적으로 북경 주재 북한 대외경제위원회 협력처장 리철운에게 전화하여 한성기를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고 소개하면서 김박사의 방북건은 틀림없이 이루어질 것이니 대선관련 요청 사항을 논의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다. 97년 12월9일 삼청동 오복집에서 3인이 만나 무력시위 요청에 관한 북한측과의 접촉상황 등을 최종점검하면서 만약 공안기관에 노출되면 김박사의 방북 등 남북교류 부분에만 목적이 있었다고 이야기하자고 약속했다. ◎권영해씨 직무유기/사건내용 알고도 자료인계 안해 권전안기부장은 97년 12월 한성기가 북경에서 북측 인사들을 만나 북측이 휴전선에 1개 소대를 보내 무력 시위를 일으키거나 김대중 후보의 친북활동 자료를 제공하여 주면 북한에 식량과 비료 등을 지원해주겠다고 언동했다는 보고를 받고 이대성 해외조사실장에게 진상 확인을 지시했다.이대성은 12월12일 중국에서 귀국하는 한성기를 김포공항에서 임의동행해 조사한 결과 한성기는 부인했으나 소지품 등을 통해 첩보가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이대성은 권영해에게 한성기 조사 결과와 동행한 장석중이 안기부 공작원이라는 사실을 보고했으나 권영해의 별도 지시가 없자 한성기를 석방했다. 권전안기부장은 첩보 내용의 신빙성을 확인해 한성기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했을 것으로 강하게 의심이 가는 상황이었고 특정 후보의지지율 제고를 위해 북과 내통해 휴전선에서의 무력 시위를 요청한 중대한 사안임을 인식했다.그런데도 대공수사실로 관련 첩보 및 증거물을 이첩하여 수사토록 하지 않고 퇴임시까지 아무런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아 사건의 암장을 기도,이후보의 당선을 음성적으로 지원한 것으로 보인다. ○장석중씨 사전인지 의혹 권영해는 범행의 동기에 대해 함구하고 있으나 특정 후보에게 불리한 사건에 대해 은폐하려한 점에 비춰 피의자에게 어떤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는지 그 동기를 추단해 볼 수 있다.권은 자신의 조사 지시로 범행이 확인됐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정권 교체후 새 안기부 수사팀에 본건 관련 자료를 공식 인계한 사실도 없을 뿐 아니라 부장의 지시가 없을 경우 수사 부서로 이첩되지 않아 수사가 이뤄질 수 없다는 점에 비춰 범의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이 후보당선 음성적 지원 특히 안기부에서 공작원인 장석중 등이 계획을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이유는 12월12일 귀국하자마자 안기부에서 조사받은 한성기가 다음날 북경에있는 장석중에게 안기부에서 모든 사실을 알고 있다고 알렸음에도 장석중이 상급자 공작관에게 이실직고하지 않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점 등 때문이다.이 점에 대해서도 계속 수사할 예정이다. ◎총격요청 경과/북 박충 만나 무력시위 부탁/“평양에 알아보겠다” 답변 97년 12월10일 오후 장석중 한성기가 중국 북경에 도착해 캠핀스키 호텔에 투숙했다. ▲1차 접촉=12월10일 오후 6시 한성기의 호텔 방에서 장석중의 전화를 받고 찾아온 북한 대외경제위 소속 리철운과 김영수를 만났다.이 자리에서 장석중은 한성기와 같이 북경에 온 목적은 첫째 김순권 박사 옥수수 계약재배건이며,둘째는 대선에 관한 특별한 사업이라고 밝혔다. 리철운이 무엇을 도와 달라는 것이냐고 묻자 한성기는 김대중 후보의 친북자료가 있는지 알아보고 그 자료가 있으면 부탁한다고 말했다.또 판문점 무력시위 요청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사람과의 회담 주선을 부탁했다. ▲2차 접촉=같은 날 오후 8시 캠핀스키 호텔 다방에서 한성기 장석중과 북한의 리철운 김영수,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 참사라고 소개한 박충이 만났다.한성기는 이 자리에서 현재 대선상황은 전쟁상황보다 더 심각하다면서 이회창 후보 특보 자격으로 북한에 왔다고 밝혔다.또 박충에게 우리가 요청하는 사항을 들어달라고 요청,박충으로부터 될 수 있는 대로 도와드리겠다는 답변을 들었다.이어 한성기는 박충과 따로 만나 TV화면이 잘 잡히는 판문점에서 무장군인들이 왔다갔다 하면서 무력시위를 하여 긴장을 조성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요청했다.또 요청을 들어주면 김박사를 북한에 보내주고 신정부 출범 전까지 비료,영농자재 등을 대가로 지원하겠다고 제의했다.박충은 내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니 평양에 전문을 보내 출국하기 전에 답변을 주겠다고 말했다. ▲3차 접촉=12월11일 오전 11시쯤 캠핀스키 호텔에서 한성기 장석중과 리철운 김영수 등이 만나 계약재배건 등 대북사업계획을 논의했다. ▲4차 접촉=12월12일 오전 8시30분쯤 같은 호텔에서 한성기 장석중이 북한의 박충 리철운 김영수를 만났다.이 자리에서 박충은 한성기가 말한 부분에 대하여 우리 공화국에 전문을 보냈으나 회답이 없다고 전했다.박충은 또 지금 답변할 수 있는 것은 현재 답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라는 통보를 했다. ◎결론/적과 내통 긴장 조성/자유민주주의 뒤흔든 사건 ▲사건의 성격=이번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은 제15대 대선중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공무원인 청와대 행정관 오정은과 진로그룹 고문 한성기 등이 재벌의 자금지원으로 비선조직을 가동,특정후보의 당선을 위해 북측인물과 내통,판문점에서의 총격까지 요청,국가의 안녕과 자유민주주의 뿌리를 뒤흔드는 가증스러운 사건으로 우리 사회의 기강이 극도로 문란해져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또한,‘권영해 전 안기부장의 특수직무유기 사건’은 국가최고정보기관의장이 총격요청사건을 수사에 착수도 하지 않아 대공정보·수사권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또 하나의 대표적 사건으로 지난 대선기간 중 일어난 ‘북풍’사건과 궤를 같이 한다. ▲검찰의 입장=‘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은 적과 내통해 긴장을 조성,보수계층을 결집시켜 대선에서 특정후보의 당선을 기도한 것으로국민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고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한 사건으로 역사적 교훈으로 삼기 위해 엄정하게 사법처리 했다. 관련자들은 소속 정당,신분,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하게 수사,배후관계 등과 관련,의심되는 부분이 적지 않았으나 증거법상 인정되는 부분에 대해서만 기소하였다. ▲향후 수사계획=북한과 관련된 사항이 많고,피의자들이 언론에 보도된 후 정치쟁점화되고 신체검증·감정절차,구속적부심 절차와 한나라당 소속 변호인들과 접견한 뒤 자신들의 범행을 부인,배후관계 등에 강한 의혹이 있음에도 수사 애로상 충분히 규명되지 못하고 증거법상의 제약으로 기소를 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나,▲혐의자들에 대한 공모,자금 지원 여부 ▲김순권 박사의 방북카드를 대가로 무력시위 요청 경위 ▲권영해의 특수직무유기행위와 정치권과의 연관관계 ▲판문점 총격요청을 전후한 한성기,장진호,이회성 등의 접촉과 관련한 일련의 의혹 등에 대해서는 수사를 계속해 진상을 철저히 규명할 것이다. 아울러,이 사건 수사와 관련해 제기된 가혹행위여부에 대해서도 인권옹호 차원에서 엄정하게 수사하겠다.
  • ‘총격’ 수사 중간발표를 보고(사설)

    검찰은 지난 대선때 판문점에서 남쪽을 향해 총격전을 벌여달라고 북쪽에 요청한 吳靜恩·韓成基·張錫重씨를 국가보안법 위반(회합·통신죄)혐의등으로 구속 기소하고,총격요청 사실을 알았으면서도 이를 수사하지 않은 權寧海 전 안기부장을 특수직무유기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관심을 끌었던 李會晟씨에 대해서는 500만원 지원부분을 계속 수사할 계획이다.吳·韓·張씨는 단독 범행이라고 주장하지만 배후에 대해서도 수사를 계속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나라를 온통 뒤흔들었던 엄청난 사건의 수사결과를 보면서 우리는 몇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첫째,특정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적에게 총격전을 벌여주도록 요청한 사실은 국가 안위에 관한 엄청난 사건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수사 과정에서 고문의혹과 자작극 논란이 불거져나와 여야간의 정쟁거리로 변질됨으로써 본질이 희석되고 말았다.그러나 이 사건은 보충수사와 재판과정을 통해 실체적 진실을 철저히 밝혀내어 관련자를 엄단함으로써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한다.이는 굴절된 우리 정치사를 바로잡는 일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그동안에 보여준 안기부와 검찰의 처신이다.사건이 사건인지라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었다고 할지 모르나,이 사건이 지니고 있는 폭발력을 감안해서라도 안기부와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좀더 보안을 유지했어야 했다.사건의 성격상 3인방의 단독범행으로 보기 어렵고,문제의 3인방이 지난 대선때 한나라당 李會昌후보쪽과 긴밀한 접촉을 유지한 사실이 드러난만큼 ‘배후세력’에 대해 빈틈없는 완벽한 수사를 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수사과정에서 고문을 당했다는 주장이 불거져 나오는 바람에 사실여부와 관계 없이 사건이 정쟁거리로 변질된 것은 매우 유감이다. 이 사건에 대한 수사가 진행중에 있는데도 여권 일각에서 사건의 ‘배후’를 한나라당 李총재로 앞질러 지목하고 ‘李총재 배제론’까지 거론함으로써 야당의 사활을 건 정쟁으로 악화시킨 것은 유감이라 하지않을 수 없다.때문에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여권은 국정운영에 있어 부담을 안게된 것이다. 야당도 아직수사와 재판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사건을 더이상 정쟁거리로 삼아서는 안된다.3인방이 대선때 李후보 진영과 접촉을 유지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야당은 정치적 도덕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앞으로의 배후인물 수사에서도 어떤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지 두고 볼 일이다. 사건의 실체가 명백히 규명된 다음 관련자의 책임을 물어도 늦지 않다.
  • 총격전이 벌어졌다면?/한충목 열사 범추위 집행위원장(굄돌)

    지난 대통령선거 때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의 이회창후보가 비선조직을 통해 판문점에서의 총격을 요청했다는 안기부의 주장은 참으로 가공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일어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만약에 선거를 하루이틀 앞둔 상황에서 총격전이 발생했다면 국가 전체는 준전시 상태로 되고 국민은 공포에 질린 상태로 투표장에 가야만 했을 것이다. 기표소에서 붓뚜껑을 들고 우리 구민은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아마 열 중 아홉은 후보자의 공약이나 정견을 판단기준에서 제외시키고 유일하게 북을 상대로 한판 싸움을 벌일 수 있는 절대 반공주의자를 선택하리라는 상상은 너무 지나친 것일까? 1987년 6월항쟁의 성과로 이룬 대통령 직선 때 양김은 분열했다. 거기에다 KAL기 격추사건의 주범 김현희가 김포공항으로 들어오는 장면이 전국에 TV를 통해 생중계되었고 바로 며칠후 투표가 있었다. 선거결과는 노태우 후보의 승리였다. 만약에 양김이 분열하지 않고 단일후보로 선거에 나선 상황이라도 김현희가 등장했다면 단일후보가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을까라는 다소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지난 50년동안의 분단상황은 분단에 기생하는 권력층을 형성해왔고,지금도 그러한 상태는 지속된다. 통일이 없는 민주화나,민주화가 없는 통일에서는 모두 절름발이 민주화나 절름발이 통일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지난 군사독재 시절 반공으로써 국민을 길들이고,선거 때만 되면 간첩이 등장하는,그래서 현재 대통령이 되어 있는 분조차 한때는 용공조작에 시달린 사실은 이를 잘 말해준다. 4,000만 국민과 7,000만 겨레의 생명과 재산을 담보로 5년동안의 집권을 보장받으려 했다면 이는 천형에 처해도 부족할 민족적 반역행위다. 안기부의 고문설을 포함하여 이번 사건의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규명하고,관련 책임자를 엄하게 다스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李會晟씨 빠르면 오늘 소환/검찰

    ◎‘총격요청’ 제보자 조사서 정황 확인/오늘 고문여부 추가 감정 서울지검 공안1부(洪景植 부장검사)는 13일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과 관련,배후 의혹을 받고 있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동생 회성씨(52·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를 이르면 14일 소환·조사키로 했다.검찰은 이씨를 소환하는대로 구속된 한성기씨(48)로부터 총격요청 계획을 사전 또는 사후에 보고받았는지,한씨가 베이징으로 떠나기전 여비조로 500만원을 줬는지 여부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이날 구속된 한씨가 ‘북측에 총격전을 요청하러 중국에 간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안기부에 알린 제보자 강씨를 소환했다. 검찰 관계자는 “안기부측에 결정적인 제보를 한 제3의 인물을 불러 총격 요청설을 들을 당시의 정황 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고문의혹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형사3부(鄭東基 부장검사)는 16일쯤 한나라당 공동 변호인단을 상대로 고발인 조사를 한 뒤 가혹행위를 한 혐의를 받고 있는 안기부 직원 12명도 차례로 소환할 예정이다. 한편 서울지법 형사31단독韋賢碩 판사는 이날 韓씨와 張錫重씨(48)에 대한 추가 신체감정을 14일 오전 10시 422호 법정과 서울대병원에서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서울대병원의 추천을 받아 신경외과·정형외과·방사선과 등 세분야의 감정인 4명을 지정,14일 오전 법정에서 韓·張씨에 대한 감정인 신문을 마친 뒤 서울대병원으로 옮겨 정밀감정을 실시한다.
  • 법사위 자료로 본 銃風 쟁점

    ◎고문­출퇴근 시키며 조사했다.반죽음 상태서 허위자백/총격요청­한씨 북측에 준 명함 확인.단지 희망사항… 논의안해 ‘판문점 총격요청사건’과 관련,안기부의 수사 내용과 구속된 吳靜恩씨(전 청와대 행정관)·張錫重씨(대호차이나 대표) 등 세사람의 주장은 총격 요청에서부터 고문 여부에 이르기까지 상당 부분 엇갈리고 있다. 안기부는 吳씨 등이 지난 9일 구속적부심에서 혐의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나서자 10일 수사경위 등을 담은 자료를 국회 법사위원들에게 발송했다. 양측의 주장을 간추린다. ▷수사착수 배경◁ 안기부는 지난해 12월10일 ‘진로그룹 고문’이라고 자처하는 韓成基씨가 중국 베이징에서 북측 요원을 만나 한나라당 李會昌 후보의 특보라고 소개하면서 판문점 총격전을 요청했다는 첩보를 입수,이틀 뒤 공항에서 韓씨를 연행해 조사했다.韓씨가 극구 부인함에 따라 조사를 중지했다가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당시 서류 등을 정밀 검토한 결과 韓씨 등이 李후보에게 보고한 것으로 보이는 보고서 11건과 韓씨가 북측 요원에게 건네준 명함 등을 확인했다.이에 따라 ‘韓씨가 지난해 12월 李후보의 당선을 위해 북측에 총격도발을 요청하려고 베이징에 갔다’는 지난 8월의 韓씨 친구 제보가 사실임을 확신하게 됐다. 吳씨 등의 주장은 다르다.吳씨는 韓씨가 ‘李후보의 지지율이 답보인 상황에서 병역시비 등을 잠재우려면 북한이 무력시위라도 해주면 좋을 텐데…’라며 희망사항을 말한 적은 있지만 총격요청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張씨도 ‘총격사건 모의’는 안기부의 고문에 못이겨 허위자백한 것이라고 말했다.베이징에서 북측 요원인 이철운 등을 만난 것도 북한 동향 등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고 반박하고 있다. ▷고문◁ 안기부는 가혹행위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안기부 공작원인 張씨는 세차례에 걸쳐 출퇴근하면서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았을 뿐 아니라 지난 달 5∼7일 동안 韓씨의 진술을 토대로 반증자료를 제시하자 “그동안 속여와 미안하다”며 오히려 사과까지 했다는 것이다. 안기부는 또 ‘재소자 건강진단부’ 등을 증거로 제시하며 韓씨 등은 조사 당시 아픈 곳을 호소한 적도 없었고 신체상태도 정상이었다고 고문주장을 반박하고 있다.반면 吳씨는 지난 달 8일 체포된 이래 2∼3일 동안 수사관 9∼10명에게 가슴과 뺨 등을 수차례 맞아 반죽음이 된 상태에서 허위자백했다고 주장했다.
  • 검찰 “24일 사건전모 밝힐 계획”/‘銃風’ 수사 이모저모

    ◎변호인 접견 싸고 검찰­野 마찰/국과수,韓·張씨 신체감정 착수 검찰은 7일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과 관련,정치권 공방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듯 수사 내용에 대해 함구로 일관하면서도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의 동생 會晟씨의 소환시기에 대해서는 “이번 주를 넘길 것 같다”고 말해 수사에 어려움이 있음을 내비쳤다. ○…朴舜用 서울지검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한나라당 소속 변호사들이 韓成基·張錫重씨 등에 대한 접견을 매일 밤낮으로 요청하고 있어 수사가 진전되지 않는다”면서 “韓씨가 會晟씨로부터 500만원을 건네받았다는 의혹부분은 아직까지 확인조차 못했다”고 말했다. 朴지검장은 이어 “韓씨등 북풍공작에 관여한 ‘3인방’이 최근에는 북측에 총격전을 요청했다는 사실까지도 부인하고 있어 會晟씨의 소환은 이번주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수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李廷洙 서울지검 1차장은 “공안사건을 브리핑한 관례가 없으며,특히 검찰이 수사내용을 브리핑하면 정치권의 북풍공방이 과열될 수 있다”면서 기자들의 정례브리핑 요구를 일축한 뒤 “그러나 吳靜恩씨 등의 기소 만기일인 오는 24일에는 사건의 전모를 밝힐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나라당 洪準杓·金映宣 의원 등은 이날 오후 서울지검을 방문,張씨 등에 대한 변호인 접견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하자 “변호사가 피의자를 접견하는 것은 헌법에도 보장된 권한”이라면서 “검찰이 헌법을 침해하면서까지 변호인 접견을 거부하는 것은 증거능력이 없는 조서를 강압에 의해 작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웅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이날 韓씨와 張씨에 대한 신체감정에 본격 착수했다. 지난 5일 법원에서 실시된 韓·張씨에 대한 신체감정을 토대로 정밀분석을 하면 이번 주 안에 고문 여부에 대한 대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부위의 조직검사를 못해 육안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망자라면 조직검사를 통해 피하지방이나 근육층의 정확한 상황을 분석할 수 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 ‘총격’ 현장 TV방영도 모의/검찰,韓成基씨 조사

    ◎북과 구체 장소·날짜 논의/이회성씨 주내 소환키로 서울지검 공안1부(洪景植 부장검사)는 6일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과 관련,한나라당 李會昌 총재의 동생 會晟씨(53·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를 이르면 7일 불러 韓成基·張錫重씨 등으로부터 총격요청 계획을 보고받았는지 여부를 조사키로 했다. 검찰 관계자는 “韓·張씨 등이 지난해 12월10일 중국으로 떠나기 전 李會晟씨에게 총격요청 계획의 일부를 보고하고 50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으므로 李씨에 대한 소환조사가 불가피하다”면서 “대선 이후 李씨와 韓씨 등의 접촉이 증거인멸을 위한 시도였는지에 대해서도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특히 韓씨가 지난해 대선 직전 북측에 총격도발을 요청하면서 총격장소와 시기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했는지 여부도 조사중이다. 韓씨는 지난해 12월10일 중국 베이징 캠핀스키 호텔에서 북한 ‘아태위’ 朴모 참사 등을 만나 판문점 공동경비 구역에서의 총격전을 요청했으며 이를 미리 설치한 카메라로 찍어 국내 TV를 통해 방영하면 ‘(대선에) 결정적으로 유리하게 된다’고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韓씨는 朴참사 등에게 국민회의측이 대응할 시간적인 여유를 주지 않고 북풍공작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대선 3∼4일 전인 지난해 12월 14일이나 15일에 총격을 해 달라는 등 총격전 날짜까지 지정해 준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안기부는 이날 韓씨가 총격을 요청하면서 朴참사 등에게 건넨 ‘신한국당 李會昌 총재 특별보좌역 韓成基’라고 새겨진 명함 사본을 공개했다. 검찰은 또 안기부가 지난달 12일 전 청와대 행정관 吳靜恩씨의 집에서 압수한 대선보고서 15종과 관련,吳씨 등을 불러 대선 당시 한나라당 李會昌 후보에게 보고서가 전달된 경위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吳씨는 지난해 11월 초부터 한달 동안 ‘비선조직’과 주 3∼4차례 정도 모여 ‘대통합 정치의 구현’ ‘주요 인사와의 접견 및 협력유도’ ‘합동토론회 대응 방안’ ‘주요정보 보고’ 등의 문건을 작성한 뒤 李후보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서울지법은 지난 3일 밤 한나라당 공동변호인단이 제출한 증거보전신청 가운데 신체검증을 우선 실시한 데 이어 5일 오후 321호 법정에서 洪承徹 판사 심리로 韓·張씨에 대한 신체감정을 실시했다. 감정에서는 법원이 지정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李漢榮 법의학과장(40)이 외상부위와 상처 발생 경위 등에 대해 문진(問診)과 시진(視診),사진촬영 등을 했으며 李과장은 추후 감정 보고서를 법원에 제출키로 했다.
  • 검찰 수사 쟁점별 중간 점검/北에 총격요청은 사실로 판명

    ◎李 총재 개입·對北지원 의혹/‘고문 조작’ 주장 새 이슈화 지난해 대선 당시 한나라당 李會昌 후보의 ‘비선 조직원’이 북한측에 판문점 총격을 요청했다는 검찰과 안기부의 수사발표로 정국이 엄청난 회오리에 휩싸였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은 韓成基(39·포스데이터 비상임고문)·張錫重씨(48·대호차이나 대표) 2명이 지난해 12월10일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측 관계자 3명에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총격전을 일으켜줄 것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는 당국의 발표와 피의자들의 진술이 일치한다. 모의에 가담한 吳靜恩(46·전 청와대 행정관)는 이와 별도로 대선 관련 보고서를 李會昌 후보측에 15차례나 제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다만 李會昌 총재나 측근이 ‘총격전 요청’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는지 여부가 논란의 핵심이다. 여기에 안기부 커넥션의 실재 여부,수사 과정에서 피의자들이 고문을 받았는지 여부 등도 관심의 대상이다. 검찰과 안기부의 수사내용과 피의자들의 주장을 쟁점별로 짚어본다. ▷李會昌 총재측 인지 여부◁李會昌 총재의 동생 李會晟씨가 지난해 대선 당시 吳씨와 韓씨를 수십 차례 접촉했고 韓씨가 베이징으로 갈 때 500만원을 건넸다는 것이 안기부의 발표다. 검찰은 會晟씨가 ‘총격전 요청건’에 대해 미리 보고를 받았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일부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吳씨 등은 지난해 11월 초부터 12월 초까지 주 3∼4회 정도 모임을 갖고 대선 관련 보고서를 李총재측에 15차례 제출했다. 특히 吳씨는 李후보의 출근때 승용차에 동승해 직접 보고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李총재는 이에 고맙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韓씨는 특히 신한국당 朴燦鍾 고문이 대선과정에서 신한국당과 국민신당을 놓고 저울질할 때 李會昌 후보가 직접 朴고문을 만나 당 잔류를 설득해야 한다며 會晟씨에게 李會昌·朴燦鍾 면담 주선을 자처한 뒤 지난해 12월 초 吳씨와 함께 李후보를 만나 朴고문 집으로 안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韓씨 등은 자신들이 李후보의 비선조직이 아니며 會晟씨로부터 여비를 받았다는 것도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이라고 주장했다. 韓씨는 변호인과의 면담에서 대선 당시 진로 張震浩 회장의 권유에 따라 金大中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朴燦鍾씨를 국민신당에 입당시키기로 했고 이를 위해 張회장이 준 20억원을 朴씨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영국에 체류 중인 朴씨는 그러나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안기부 개입 의혹◁ 전직 안기부 고위관리 등에 따르면 張씨는 안기부가 관리해 온 공작원으로 암호명은 ‘아미산’이었다. 그렇더라도 張씨 등이 군사작전을 요청하면 북측이 이를 받아들일 정도로 비중을 인정받았겠느냐는 것이 의혹 가운데 하나였다. 상대방인 북한측 관계자의 격(格)도 의문의 대상으로 지적됐다. 그러나 張씨 등은 독자적으로 북측 관계자와 접촉한 것이 아니며 안기부 관계자의 협조 또는 묵인 아래 거래할 수 있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지난번 북풍공작 수사 때 옛 안기부 간부 등이 옷을 벗은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검찰은 안기부의 개입의혹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고문 의혹◁ 張씨의 동생 錫斗씨와 韓씨의 변호인은 이들이 안기부에서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사과정에서 무릎을 꿇은 채 구타를 당해 무릎에 상처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사무실 등에서 촬영한 신체 사진을 증거로 제시했다. 고문이 사실이라면 張·韓씨의 진술은 증거 효력을 잃게 된다. 안기부는 이에 대해 張씨 등이 구치소에서 통증을 호소하거나 진료를 받은 사실도 없다는 점 등을 들어 거짓주장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7일 안기부에서 조사를 받은 張씨가 수사관과 저녁식사를 하고 노래방까지 갔다며 언론에 이 업소를 공개했다. 張錫斗씨는 그러나 “안기부 관계자가 형에게 ‘독한 술을 먹고 자면 멍이 풀린다’고 해 억지로 술을 마시고 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북 커넥션 의혹◁ 검찰은 96년 4·11총선 직전 판문점 무력시위 이후 재미교포 金양일씨가 중간에 나서 현대그룹을 통해 3만t 가량의 밀가루를 북한에 전달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선거를 6일 앞둔 4월5일 판문점에서 발생한 무력시위의 배경에도 모종의 ‘뒷거래’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여당은 139석 획득이라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당시 현대측은 金泳三 정부와의 불편한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돈을 댄 것으로 알려졌다. 의혹의 핵심은 북풍사건에 연루된 재미교포 金양일씨가 우리 정부 누구의 지시로,무슨 이유 때문에 북한에 밀가루를 보내는데 앞장섰느냐는 점이다.
  • 국민안보의식 해이 우려/丁海龜 세종硏 연구위원·정치학(기고)

    ◎권력장악 노린 ‘적과의 내통’ 충격 보도된 바에 따르면 지난 15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 李會昌 후보의 비선 조직이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인사를 만나 판문점에서 총격전을 일으켜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좀더 구체적인 사실이 보다 분명하게 밝혀져야겠지만,현재 보도 내용대로라면 충격적인 일이다. 이미 우리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특정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안기부까지 개입된 ‘북풍(北風)사건’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아직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이와 유사한 사례가 더 있으리라는 의구심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래도 설마했던 것이 우리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러므로 선거승리를 위해 ‘적과 내통’했을 뿐만 아니라 항상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도는 판문점에서 총격전까지 요구했다는 것은 해도 너무 했다는 생각 뿐이다. 한편 이번 일이 여야 정쟁이 가장 극심하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개되었다는 점도 미심쩍은 일이다. 물론 사건의 수사과정상 정치와는 무관하게 공개된 것이라고 검찰은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여야가 ‘서울역 집회 방해사건’ 등을 놓고 대치중인 상황이 아닌가. 아무튼 적에게 총격전을 요구하는 일이나 여야의 끊임없는 정쟁 등 속된 말로 ‘막가파’식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오늘날 우리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하는 사실들이 있다. 언젠가부터 권력을 위해서는 모든 수단을 다할 수 있다는,이를테면 ‘적과의 내통’뿐만 아니라 적에게 총격전까지 요구할 수 있는 ‘권력물신주의’가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그 누구를 지적하기 이전에,지난 몇번의 선거를 통해 권력을 향한 줄서기가 얼마나 성행했는지 우리는 익히 안다. 하나의 단적인 예지만 이러한 사태들이 우리 사회의 도덕적 해이를 얼마나 재촉했는가. 특히 정치권에서 남북관계를 이런 식으로 일상적으로 이용할 때 궁극적으로 국민 안보의식의 해이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적극적 도발을 ‘정치권 사주’로 치부해버리는 분위기가 생길까 걱정된다. 또 하나 지적하지 않으면 안될 것은 이 사건에 거론된 인물들이 비교적 젊은 사람들로 이른바 똑똑하고 잘나가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했음에도 자기 책임을 넘어선 국제통화기금(IMF)고통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그 고통분담에 땀흘리고 있다. 그러나 권력 주변에 맴도는 똑똑한 친구들의 ‘한탕주의’가 언젠가부터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외면적으로 탈독재 민주화가 이뤄졌음에도 민주적 절차와 규칙을 만들고 이를 지키기보다는 독재시대보다 더못한 정치행태를 반복하고 있는 우리 정치문화도 그 공동책임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실 권력 장악을 위해 적과의 내통까지 마다하지 않은 정치문화는 명분도 실리도 없는 이전투구의 정쟁만을 이어가는 현재의 정치문화와도 연결되어 있는지 모른다. 사건의 내용이 공개된 이상,정부와 검찰은 분명한 진상을 밝히고 그 책임자를 처벌해야 하며,동시에 그 과정에 정략적 동기가 개재되어 있다면 그에 대해서도 마땅히 책임을 묻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 대선때 北에 ‘총격요청’ 李후보 비선조직/李會昌씨 동생 자금유입

    ◎검찰,韓成基씨에 500만원 전달 확인 검찰과 안기부는 1일 지난해 대통령선거 직전 한나라당 李會昌 후보의 ‘비선(秘線)조직’이 李후보의 당선을 위해 북한측 인사에게 ‘판문점에서 총격을 가해줄 것’을 요청한 사실을 확인,수사중이라고 밝혔다. 서울지검 공안1부(洪景植 부장검사)는 지난달 25일 안기부가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 송치한 전 청와대 행정관 吳靜恩씨(46)와 전 포스데이터 비상임고문 韓成基씨(39),대북교역업자인 ‘대호차이나’ 대표 張錫重씨(48) 등 3명을 상대로 범행 동기와 한나라당 지도부의 개입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韓씨가 지난해 9월 李후보의 측근을 만나 선거운동을 지원하기로 약속한 사실을 밝혀내고 李후보가 韓씨의 범행을 보고받았는지를 집중적으로 추궁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李후보의 선거를 돕던 동생 李會晟씨가 韓씨에게 500만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 돈이 이들의 ‘공작’에 사용됐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李會晟씨는 그러나 “전혀 그런 사실이없다”고 부인했다. 검찰은 또 吳씨의 외삼촌이 한나라당 朴모의원이라는 점을 중시,朴의원의 관련 여부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한나라당 지도부의 개입 여부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광범위한 수사를 펼쳐 오는 22일쯤 기소 시기에 맞춰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韓씨는 지난해 12월10일 중국 베이징 캠핀스키호텔에서 張씨의 소개로 북한 대외경제위원회 참사관 李철운(44) 金영수(64),북한 대남공작기관인 통일전선부 산하 아태위원회 朴충(50) 등을 만나 “현재 李후보의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다. 선거 3∼4일 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우리 군과 총격전을 해달라”고 요청한 혐의를 받고 있다. 韓씨는 총격전의 대가로 북한측에 비료등 경제적 지원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韓씨 등은 그러나 12월12일 李철운 등으로부터 “평양에서 지시가 없어 지금 답을 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귀국했다. 조사결과 韓씨는 지난해 11월 중순 吳씨와 함께 대선후보 지지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하다 李후보의 당선이 어려울 것으로 보이자 대북교역사업을 하는 張씨를 끌어들여 이같은 모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韓씨는 이에 앞서 지난해 9월 해외여행 도중 李후보의 측근을 만나 李후보의 선거운동을 도와주기로 약속한 뒤 ‘李후보의 비밀정책 특보’라고 내세우며 다닌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 관계자는 吳씨와 張씨가 ‘옥수수 박사’로 불리는 경북대 金順權 교수의 방북을 추진하면서 통일부의 승인없이 중국에서 북한측 인사를 접촉한 혐의로 지난달 9일과 17일 각각 안기부에 구속돼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이같은 사실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韓씨는 지난달 17일 별개의 사건과 관련,사기혐의로 구속됐다.
  • “大選 승리 특단대책 필요” 3인 숙의

    ◎李 후보 비선조직 총격요청 재구성/청와대행정관 오씨 대북사업가 장씨 만나 ‘지지율 올리기’ 구상/北 인사 3명과 접촉 대가로 경제지원 약속 “어렵다” 응답에 귀국 정가에 또다시 북풍파문을 몰고온 ‘판문점 총격요청 사건’의 핵심인물 3인의 행적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안의 핵심은 과연 한나라당 李會昌 후보진영이 吳靜恩씨(46) 등 3인의 ‘비선조직’ 구성 및 대북접촉 사업 추진을 보고받았거나 지원한 일이 있는지 여부다. 검찰과 안기부가 밝힌 내용을 중심으로 사건을 재구성해 본다. 지난 해 9월 해외여행을 하던 韓成基씨(39)는 우연히 李후보의 측근인사를 만나 李후보 지원을 약속하고 수시로 대선관련 정보와 여론을 보고해 왔다. 韓씨는 J그룹의 고문으로 행세하며 정·관계인사를 사귈 목적으로 K대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같은 해 11월 초 대학원 동기인 청와대 민정비서실 행정관 吳씨를 만나 대선 이후의 자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李후보를 만나야 한다고 설득해 함께 李후보의 집 앞에서 李 후보에게 인사를 한 적도 있다. 이때 비선조직 구성 및 운영사실을 보고했다. 대선 직전까지 이들은 각종 정보와 李후보의 이미지 개선 등에 대한 15건의 보고서를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11월 중순 이들은 대선후보 여론조사 결과,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것으로 나타난 李후보의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선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같은 달 20일쯤 평소 吳씨에게 북한관련 정보 등을 제공해오던 대북교역 사업가 張錫重씨(48)가 합류,북한이 金大中 후보의 당선을 원하지 않는 만큼 무슨 일을 저지를 것이며 이를 대선에 활용하기 위해 북측인사를 만나 판문점 총격시위를 요청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때 張씨는 북한이 간절히 원하는 ‘옥수수 박사’ 金順權씨의 방북에 현대그룹을 연결시켜주면 자신이 갖고 있던 빚을 유예받을 수 있겠다며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張씨는 북한에서의 농작물 계약재배권을 획득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 이들은 張씨가 북한측과 접촉창구 역할을 맡고 吳씨는 통일원을 통해 金박사 방북사업 승인을 책임지고 韓씨는 張씨의 현대 채무문제를해결하기로 하는 등 역할을 분담했다. 이들은 북측과 접촉하기 전에 통일원의 승인이 나서는 안된다고 보고 베이징에 가기 전에 방북승인이 나지 않도록 吳씨에게 당부하는 등 치밀함을 보였다. 張씨는 지난 해 12월10일부터 사흘간 韓씨를 베이징에 데려가 캠핀스키호텔에서 북한 대외경제위원회 소속 리철운(44),김영수(64)·북한 대남공작기 구인 통일전선부 산하 아태위소속 박충(50세 가량)을 은밀히 접촉해 국내의 정치 경제 상황 등을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張씨는 ‘李후보 비밀정책특보’라고 적힌 명함을 건네면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우리 군과 총격전을 벌여줄 것”을 요청했다. 韓씨는 이때 북측에 비료 등의 경제적 지원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韓씨등은 이틀동안 북한의 답변을 기다렸으나 ‘이번에는 어렵겠다’는 북의 답변을 듣고 그대로 귀국했다.
  • “경악” 철저한 진상규명 촉구/여권 반응

    ◎“한나라 수뇌부 몰랐을지 의구심”/이회창 총재 겨냥 공세수위 높여 여권은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 李會昌 후보 비선조직의 판문점 총격전 사주 의혹과 관련,경악을 감추지 못하면서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특히 지난 정권 때부터 청와대에 근무하다 지난 6월 퇴직한 민정비서실 吳靜恩 행정관 이름이 등장하자 놀라움을 표시했다. ▷청와대◁ 청와대는 한나라당의 수뇌부를 겨냥하면서 진상 파악에 초점을 맞췄다. 朴智元 대변인은 “참으로 놀랍고 비통한 심정까지 든다”며 “대선 당시 한나라당 수뇌부가 몰랐을지 의구심이 든다”고 몰아붙였다. 특히 朴대변인은 지난 3월 초 吳씨를 불러 96년 4·11 총선 당시 부천 소사에 출마한 자신을 낙선시키려는 흑색선전물 제작에 관여했는지를 물은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그는 “모두 용서할테니 사실대로 얘기해보라”며 다그쳤으나 吳씨가 부인했다고 전했다. 李範觀 민정비서관은 “본인이 사표를 냈다”고 말해 불똥이 청와대로 튀는 것을 차단했다. 그러나 吳씨가 사표를 내기 전 안기부에서 J그룹 고문 韓成基씨를 수사하면서 吳씨에 대해서도 수사를 시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회의·자민련◁ 국민회의 鄭東泳 대변인은 “이번 사건은 북풍공작의 절정에서 일어난 범죄행위”라며 “한나라당 李총재는 이번 사건에 대한 인지 여부를 해명하고 북측과 접촉한 인사들이 李총재와 어떤 관계인지를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鄭대변인은 “이번 사건은 한나라당 의원과 안기부 간부,후보 비선조직 등 여권인사와 공안기관이 총동원돼 벌인 범죄행위로서 국민과 역사앞에 고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민련 邊雄田 대변인도 “李총재는 세도사건 의혹에 이어 적과의 내통 의혹까지 받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국민의 지도자나 야당의 총재로 있을 자격이 없다”고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 敵의 총격을 부탁하는 세력(사설)

    지난해 말 대선 직전에 한나라당 李會昌 후보의 비선(秘線)조직이 북한군에게 판문점에서 총격을 가해오도록 요청했다는 검찰 수사발표와 “이 사건은 당시 청와대 비서실 일부와 李會昌 한나라당 총재의 측근들이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고위 사정당국의 확인내용은 일각을 다투어 적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 아들딸들의 등에 비수를 꽂는 천인공노할 범죄행위다.여전히 대남적화 야욕에 혈안이 되어 있는 북한군에게 총격전을 해오도록 요청했다는 것은 과연 이들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닌 우리 국민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검찰은 96년 4·11총선 직전 북한군이 판문점으로 무장병력을 대거 이동시킨 것도 선거판세에 영향을 주기 위한 당시 여권의 공작결과가 아니냐는 의혹을 갖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한다.굳이 이를 따지지 않더라도 선거때마다 吳益濟 편지사건,尹泓俊 기자회견 등 북풍조작으로 북의 안보위협을 걱정하는 국민의 보수심리를 자극해 선거국면을 집권세력에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갔던 것을 기억한다.이들 세력은 계속해서 정권을 유지할 것으로 자만하며 불법을 저질러왔다.국민의 정권교체 열망에 힘입어 金大中정부가 들어섰기에 망정이지 만에 하나 성공하지 못했다면 이런 죄악들이 계속 묻히며 또 저질러졌을 것이다. 북측과의 상호 의존적 적대관계,나아가 적과의 내통관계는 결국 부패권력을 구조화했다.부패권력은 이를 온존시키기 위해서뿐 아니라 자신들의 비리와 치부를 감추기 위해 계속 국민을 속이는 파렴치를 범했다.이들은 정권을 재탄생시킨 전리품으로 인사독점은 물론 이권 챙기기에 혈안이 되었다.이러한 불법이 반세기 가까이 자행되면서 부패커넥션에 의한 병든 기득권 세력이 양산돼 오늘의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를 불러왔고,국민에게는 무한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그런데도 반성은 커녕 그간 누적된 적폐를 청산하기 위한 국민정부의 개혁과 사정작업에 도처에 덫을 놓고 방해를 하고 있다. 이번 판문점 총격 유도사건은 민족정기와 오도된 가치관을 바로잡는다는 차원에서 철저히 가려내야 한다.한나라당은 벌써부터 李會昌 죽이기라느니 모함이라느니 물타기를 시도하고 있지만 이는 결코 정쟁 사안이 아니다.판문점 총격유도 사건은 얼마전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된 의원 비리 수사와는 근본적으로 질이 다르다.국가의 정체성을 유린한 ‘적과의 내통’을 흐지부지했다가는 나라가 제대로 설 수 없다.검찰은 배후에 대해서도 철저히 수사해 위법자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그것만이 그같은 죄악이 두번 다시 나오지 않는 방책이 되며,후진 정치문화의 모순과 폐단을 척결하는 길이 될 것이다.
  • ‘세계 4대 화약고’ 폭발 위기

    ◎이란·아프간­‘외교관 살해’ 불씨… 전면전 조짐/콩고共 내전­주변국 대리전 양상… 전투 치열/알바니아사태­野지도자 피살 계기 내전 치달아/인도네시아­反政시위 격화 무정부상태 우려 지구촌의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특히 요즘들어 상황이 악화돼 자칫 세계 평화를 밑바닥부터 흔들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란은 15일 전군에 군사행동 준비령을 내려 이웃 아프가니스탄과의 일전에 대비했다. 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반군과 정부군이 사생결단을 치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알바니아와 인도네시아에서는 서로 다른 정치 견해 때문에 연일 유혈소요사태가 벌어져 수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이란·아프간◁ 이란과 아프가니스탄과의 갈등이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15일 전군에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세력에 대한 공격 준비를 명령했다. 이란 지도부는 아프간과의 국경지역에 7만명의 병력과 탱크 등 중무기를 배치하고 공격 임박을 강조,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아프간의 집권세력인 탈레반도 이날 이에 맞서 무력공격이 발생할 경우 이란의 도시들을 공격,보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두나라 사이의 분쟁은 아프간의 탈레반 군인들이 이달초 9명의 이란 외교관을 살해함으로써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탈레반이 아프간 북부지역을 장악하면서 점령지에 잔류해 있던 이란 외교관과 기자 11명을 억류하고 이 가운데 9명을 살해한 것이다. 탈레반측은 이란이 반(反)탈레반 연합세력을 지원하고 이미 축출된 부르하누딘 랍바니 전(前)정권을 인정하는 등 적대적 입장을 취하는데 대해 강경반응을 보여왔다. 두나라의 대립에는 회교의 두 종파인 시아파와 수니파사이의 갈등이 깔려 있다. 시아파 이란은 수니파인 탈레반정권이 미국과 수니파국가인 사우디 아라비아 및 파키스탄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리자가 돼 이란의 영향력을 위축시킬 것을 경계하고 있다. ▷콩고민주共◁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이 두달 가까이 계속되면서 정부군과 반군의 전투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정부군은 15일 반군들이 지난 8월 봉기한 고마시(市) 50㎞ 앞까지 육박했다고 밝혔다. 고마는 콩고 동쪽 르완다와의 접경지역에 위치,내전기간동안 반군세력 운동본부 노릇을 해온 곳으로 정부군이 이 일대까지 진군한 것은 내전 이후 처음이다. 정부군은 한때 파죽지세의 반군에 밀려 지난달 26일 수도 킨샤사를 내주고 카빌라 대통령이 피신하기도 했다. 그러나 잠비아,짐바브웨,앙골라 등 주변국 지원에 힘입어 회복세로 돌아섰다. 고마 사수에 사력을 다하고 있는 반군은 르완다,우간다의 지원을 받고 있어 내전은 ‘아프리카 국제전’ 양상을 띄고 있다. 정부군은 6시간동안 반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나 고마 점령에는 실패했고 공항과 라디오방송국 등 주요 시설도 탈환하지 못했다. 한편 반군측은 수단이 킨두시(市) 전방기지사령부에 군인 2,000명을 파견하며 정부군측에 가담했다면서 명백한 내정간섭이라고 비난했다. ▷알바니아◁ 야당 지도자 피살사건으로 촉발된 알바니아의 반정부 시위사태가 자칫 내전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살리 베리샤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야당 시위대 3,000여명은 15일에도 정부의 시위금지 명령을 무시한채 수도 티라나에서 시위를 계속했다. 이날 시위는 정부가 또다른 폭력사태를 막기 위해 일부 무장 시위대들에 무기를 버릴 것을 명령한 가운데 강행했다. 지난주말 발생한 야당지도자 아젬 하즈다리의 피살로 시작된 반정부 시위는 파토스 나노 총리의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대들이 의사당과 방송국을 점령,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는 등 폭동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최소 8명의 시위자가 사망하고 80명이 부상했다. 한편 나노 총리는 자신의 퇴진보다도 야당측이 먼저,무기를 버릴 것을 요구하며 더이상 사태를 좌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반면 야당측은 나노 총리가 사임하지 않을 경우 시위를 계속해 나가겠다고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인도네시아◁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유혈시위 사태가 날로격화되면서 희생자가 속출하고 있다. 하비비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며 시작된 대학생 등의 반정부 시위가 약탈과 살상으로 이어지며 자칫 무정부상태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곳곳에서는 굶주린 군중들이 쌀과 다른 주식류들을 훔치기 위해 떼지어 몰려 다니며 상점,농장,창고 등을 약탈하는 폭동사태를 연출하고 있다. 수도인 자카르타에서는 15일 군중의 격렬한 소요사태로 상점과 집들이 불탔으며 3명이 사망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남부 셀레베스와 동부 자바에서도 14일과 15일 이틀동안 물가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가 계속되면서 약탈행위로 3명이 목숨을 잃고 수십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보도됐다.
  • 콩고共 쿠데타 발생/首都 킨샤사서 탱크동원 총격전

    ◎반군 주요도시 3곳 장악 【킨샤사 AP DPA 연합】 3일 콩고공화국 동부지역 투치족 주둔군이 로랑 카빌라 대통령 타도를 선포,주요 3개 도시를 장악했다고 발표한 가운데 수도 킨샤사에서는 투치족과 카빌라 충성파 사이에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이날 콩고 동부 고마시의 실바인 음부치 사령관은 지역 라디오를 통해 족벌정치와 그릇된 통치를 이유로 카빌라 대통령을 권좌에서 축출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또 고마시 소식통들도 지난 96년과 97년 사이 카빌라의 집권을 도왔던 르완다 출신의 바냐물렝그 투치족이 지지를 철회하고 고마 등 동부 3개 도시를 장악했으며 이 과정에서 카빌라측 군인 4명을 사살하고 50명의 수감자들을 풀어줬다고 전했다. 한편 킨샤사시에서는 투치족과 카빌라 충성파 사이에 2일부터 2개 군막사를 둘러싸고 총격전이 계속된 가운데 거리에는 탱크가 배치되고 시민들에게 외출을 삼가라는 정부발표가 있었다. 카빌라 대통령은 지난 달 27일 자신의 집권을 도왔던 투치족 계열의 3천5백명 르완다군에게 외국군의 주둔에 대한내부불안을 이유로 철수를 명령한 바 있다.
  • 용감한 美 의원들/崔弘運 논설위원(外言內言)

    동맹군을 이끌고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을 무찔러 워털루 전투에서 최후 승리를 거둔 웰즐리 웰링턴(1769.5.1∼1852.9.14)은 런던에서 있은 개선식에서 오늘까지 전하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워털루의 승리는 이튼교정에서 이루어졌다”라고. 헨리 6세가 1440년 나라의 핵심 지도자로 키울 우수한 학생 70명을 위해 만든 학교가 바로 이튼 칼리지다. 전교생 1,200명이 넘는 오늘까지도 왕실 장학생 70명은 오피단(Oppidan)으로 불리는 일반학생과 달리 연간 1,000여만원이나 되는 기숙사비와 학비일체를 면제받는다. 설립목적대로 영국을 이끈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대부분 이학교 출신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귀족이나 상류층의 반열에 들어 있으나 나라가 위급할 때 제일 먼저 달려나가 자신을 바친다. ‘왕과 국민의 영원한 공복(公僕)’이라는 이 학교의 변함없는 가르침이 이들을 이렇게 책임감 강한 지도자로 길러낸 것이다. 이는 서양 선진국 사회의 지도자들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신념이며 생활자세이기도 하다.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다. 사회지도층 인사로서 지켜야 할 의무와 도덕률을 어김없이 지키기에 항상 존경을 받는다. 지난 24일 총기 난사사건이 일어났던 미국 의사당에서 보여준 미국 국회의원과 경찰관들의 희생적이며 의연한 자세도 바로 이 정신의 실천임을 깨닫게 한다. 사건 현장 사무실의 주인인 공화당 수석부총무 톰 들레이 의원은 한바탕 난동을 부리다 총상을 입은 범인 러셀 유진 웨스턴 2세가 총을 계속 겨누고 있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공포에 떨고 있던 관광객들과 직원들을 안전하게 대피시켰다. 의사출신인 공화당의 빌 프리스트 상원의원은 연설을 마치고 지역구로 가던 길에 총격전 소식을 듣고 의사당으로 되돌아가 쓰러진 경찰관 2명과 범인을 응급조치했다. 그는 또 나중에 범인 웨스턴을 후송하는 응급차에 함께 타고 가며 인공호흡을 계속 해 주기도 했다. 의회경찰을 관장하는 빌 토머스 위원장도 총성이나자 몸을 숨기기는 커녕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가 관광객과 직원들을 진정시키고 사후 수습을 주도했다. 2명의 희생자를 낸 경찰도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모범을보여주었다. 의회는 이런 아수라장이 됐던 의사당을 계속 개방하겠다고 밝혀 또 한번 국민들의 신뢰를 쌓았고. 바로 이들이 한 사회를 이끌고 나라 전체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유전면제(有錢免除) 무전현역(無錢現役)’풍토의 우리 사회와 너무 대조적이다.
  • 美 의사당 공포의 총격전 3분

    ◎40대 정신병자의 소행… 의원용 출입구로 잠입/관광객들 놀라 혼비백산… 2명 죽고 2명 부상 【워싱턴=金在暎 특파원】 미국 워싱턴시 한복판에 있는 국회 의사당에서 24일 하오 4시쯤(현지시간) 한 괴한이 총기를 난사하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범인은 이날 관광객들로 붐비던 의사당 1층 건물의 하원 공화당 부총무 톰 딜레이 의원사무실에 침입해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의회 경찰관들이 즉각 응사했고 이 과정에서 경찰관 2명이 숨지고 범인과 여성 관광객 1명이 부상했다. 범인은 정신병을 앓고 있는 러셀 웨스튼(41)인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밝혀졌다. 사고 당시 하원은 본회의를 열고 있었고,상원은 산회했었으나 여름 휴가철을 맞아 의사당을 구경하러온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톰 딜레이 부총무의 대변인 존 피허리는 “하오 4시쯤 범인이 공화당 부총무 사무실에 들어와 총을 마구 쏘아댔으며 20발의 총성을 들었다”고 말했다. 범인이 침입했을 때 딜레이 부총무는 사무실 안에 있었으나 무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3분간에걸쳐 범인과 경찰관이 총격전을 주고 받는 동안 의사당을 구경하던 관광객들이 놀라 우왕좌왕하며 급히 건물 밖으로 뛰쳐나오는 큰 소동이 벌어졌다. 사고현장은 주변에 하원 공화당 간부들의 사무실이 모여있는 곳으로 범인은 의원들의 출입구를 이용,부총무실에 침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이번 사건과 관련,일단 범인은 현장에서 총상을 입고 체포된 1명 뿐인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범행동기와 공범여부 등에 관한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 의사당은 83년 폭발물이 터지는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으며,걸프전 이후 테러리스트들의 공격 가능성과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건물 폭파사건 등을 계기로 출입자들에 대한 보안검색을 대폭 강화해왔다.
  • 北 잠수정 침투­왜 내려왔나

    ◎북의 두 얼굴… ‘대화’ 뒤의 ‘도발’ 재확인/무장간첩 침투·군사훈련 목적 추정/군당국 조사 끝나야 의도 드러날듯 22일 속초 앞바다에서 발견된 북한 잠수정은 끊임 없는 북한의 무력도발 의지를 다시금 일깨워 주었다. 아직까지는 북한의 유고급 잠수정이라는 사실만 알려졌고,무장공비가 타고 있었는지,어떤 의도로 침투했는지는 군 당국이 조사 중이어서 확실한 북한의 목적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합참의 고위관계자는 “23일 판문점 군사정전위에서 장성급 회담이 재개되는 등 남북화해 분위기가 다소간 조성된 상황에서 무장 침투용으로 섣불리 예단하기는 어렵다”면서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정확한 의도를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의 잠수정이 우리 영해에서 발견되었고 또 걸린 그물을 찢고 달아나려 했다는 점에서 군사적 목적의 침투임이 분명해 보인다.북한은 96년 9월 26명의 무장공비가 탄 상어급 잠수함이 강릉 앞바다에 침투했고 상륙한 무장공비들이 두달이 넘도록 총격전을 벌이며 저항했다.당시 잠수함의 임무는 공작조를해안에 상륙시키는 것이었다.이번 침투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날 발견된 잠수정은 레이더 탐지가 어렵고 잠수 및 발진속도가 빨라 북한이 정찰 및 침투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유고급 잠수정이다.따라서 북한은이 잠수정을 이용해 우리 해안 지역을 정찰하거나 무장간첩 또는 고정간첩을 침투시키려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하지만 공작조를 태우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한 훈련 목적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예인 당시 잠수정에는 3명 정도가 탄 것으로 알려졌다.유고급 잠수정에는 2∼4명의 승무원과 8∼10명의 공작조를 태울 수 있는 점으로 미루어 공작조를 침투시킨 뒤 돌아가는 길에 발견됐을 가능성도 있다.군과 경찰은 강원도해안 일대와 산악 지역에 대적태세를 갖추고 비상경계근무에 돌입했다. 결국 북한의 잠수정 발견은 북한이 대외적으로는 대화 제스처를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전쟁준비에 몰두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도 대북 경수로건설사업 등 남북간의 경제협력은계속되던 상황이었다. 북한은 53년 이후 휴전선에서의 도발,무장공비 침투 등을 통해 남한을 교란시켰고 70년 이후에만도 309차례,90년 이후에만도 15차례나 해상과 육상을 통해 무장간첩을 침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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