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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광고] 총격전연출 박진감 강조

    KTF의 모바일게임 지팡(GG-PANG)이 최근 총격편 TV광고를 시작했다.총격편은 한 청년이 즐기는 모바일 총격게임이 너무 실감이 나서 주위 사람들이 실제 총격전이 벌어진 것으로 알고 도망간다는 이야기.호주 멜버른에서 촬영된 광고에는 30여명의 주연급 엑스트라가 등장, 총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연기를 펼쳤다.
  • 美, 주방위군에 난동자 사살권

    美, 주방위군에 난동자 사살권

    |워싱턴·뉴올리언스 이도운특파원 외신종합|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사상 최악의 재앙에 허덕이고 있는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시에 2일 새벽 방화로 의심되는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화학공장에서 터진 폭발은 시 전역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약탈과 방화, 총격전이 곳곳에서 벌어지는 등 사실상 시 전체가 무정부 상태에 빠진 가운데 먹을 물과 식량, 의약품이 턱없이 부족하고 이재민 구호와 대피 작업도 신속히 이행되지 않아 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다. 아직까지 원인과 피해 규모가 확인되지 않은 이날 폭발은 새벽 4시35분(현지시간)쯤 우범지역인 프렌치쿼터 지구에서 수㎞ 떨어진 미시시피강 동쪽 강변에서 하늘에 붉은색과 오렌지색 화염을 내뿜으며 시민들을 잠에서 깨웠다. 미 정부는 전날 주방위군에 난동자 사살 권한을 부여하는 등 초강경 태세에 들어갔다. 일부 시민이 서로 총격전을 벌이고 구호작전을 벌이는 군·경과 병원을 공격하는 일도 발생한 데 따른 것이다. 폭동 조짐마저 보이는 최악의 상황을 맞아 캐슬린 블랑코 루이지애나 주지사는 연방정부에 병력 4만명을 요청했다. 텍사스주 휴스턴 애스트로돔으로 이동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운집한 이재민 5만여명 중에는 한인 교포들도 다수 포함됐다고 휴스턴 총영사관측이 밝혔다. 뉴올리언스 한인 밀집지역인 매터리와 케너에는 최고 2.5m까지 찼던 물이 대부분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휴회 중이던 미 의회는 이날 밤 비상회의를 소집해 105억달러 규모의 긴급 구호자금을 구두 투표로 승인했다. 한편 우리 정부는 이날 피해 교민들을 위해 휴스턴 총영사관에 12명의 비상대책반을 설치하고 2명은 전날 뉴올리언스 현지로 급파했다. 외교부는 인명 및 재산 피해 현황을 영사콜센터(02-3210-0404)로 적극 알려 달라고 당부했다. dawn@seoul.co.kr
  • 아키하바라 가전상가 게임업체가 점령

    아키하바라 가전상가 게임업체가 점령

    |도쿄 특별취재팀|1999년 여름 일본 기타큐슈에 자리한 국제동아시아연구센터(ICSEAD)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한국은 점차 초고속인터넷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일본은 사뭇 달랐다. 당시 방문한 국제 규모의 연구센터엔 제법 빠른 속도의 인터넷망이 연결돼 있었지만 공공기관이나 가정에선 거의 대부분 전화선을 통한 ‘거북이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0년 전후 한국의 정보기술(IT) 산업이 초고속인터넷이라는 사회기반시설을 기반으로 폭발적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할 즈음 뒤늦게 출발한 일본 IT는 2005년 현재 한국을 위협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e재팬 전략’의 성공 한 나라의 IT 수준을 평가하는 기본 잣대로 초고속인터넷 이용 현황이 종종 거론된다. 일본의 초고속인터넷 가입자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1826만가구. 총무성 통계국 자료 등에 따르면, 이는 일본 전체 4937만가구의 37% 수준이다. 가입자 비율로 보면 지난 6월말 현재 전체 1533만가구 가운데 80%인 1220만가구가 가입한 한국에 뒤지고 있지만 규모로는 이미 2003년부터 한국을 추월했다. 포화 상태에 이르고 있는 한국에 비해 성장 여력도 크다. IT산업의 핵심 인프라인 초고속인터넷의 이같은 ‘초고속’ 보급은 일본 정부의 ‘e재팬(Japan) 전략’이 성공을 거둔데 따른 것으로 평가된다.1999년 실무진 검토를 시작으로 2001년 1월 본격 시작된 ‘e재팬 전략’을 주관하는 일본 정부의 IT전략본부 본부장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장기침체에서 허우적거리던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IT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정부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2001년 당시 ‘5년 내에 일본을 세계 최고수준의 IT국가로 만든다.’는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며 출발한 ‘e재팬 전략’에 대해 정부 담당자들은 “속도가 빠르고 값싼 인터넷을 사용토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e재팬 전략’을 담당하는 경제산업성 정보정책과 사카이 마사요시 과장보좌는 일본에서 인터넷 종량제가 사라진 상황을 예로 들었다. 종량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회사는 일본 굴지의 기업인 NTT였다고 한다. 그런데 2001년쯤 모뎀에서 비대칭디지털가입자회선(ADSL)으로 인터넷서비스가 바뀌면서 종량제는 거의 사라지고 월 정액제가 주종을 이루게 됐는데, 이는 ‘e재팬 전략’의 성과라고 그는 설명했다. 정부가 기업으로 하여금 요금을 강제로 내리게 하지는 않았지만 그같은 방향으로 유도했다는 뜻이다. 일본 정부 통계에 따르면,2001년 3월 1개월에 7800엔이었던 요금은 지난해 7월 2600엔으로 급격히 인하됐다. 같은 기간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수는 19배 이상 증가했다. ●IT를 이끄는 게임산업 IT정책을 담당하는 경제산업성 정보통신기기과 히라이 아쓰오 과장보좌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으로 탄탄한 인프라를 갖춘 IT산업을 이끄는 기업들에 대해 묻자 경제의 ‘거점’이란 뜻의 ‘플랫폼(platform) 기업’이란 신조어를 사용해 설명했다. 그는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문의 기업들이 IT산업을 이끌고 있어서 분야를 구분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지 않다.”면서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생산하는 기업을 높이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드웨어인 게임기와 소프트웨어인 게임프로그램을 동시에 만드는 소니(Sony)를 언급했다. 그가 선뜻 대표적 게임기업인 소니를 거론한 것은 게임산업이 일본에서 차지하는 위상 때문이다. 지난해 일본 컴퓨터엔터테인먼트협회(CESA)가 발간한 ‘2004 CESA 게임백서’에 따르면,2003년말 현재 일본 게임시장은 4462억 1800만엔(약 4조원) 규모였다. 경제전문지 포브스 일본판 7월호에서 일본 억만장자들에 포함된 재일교포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와 통신기업 히카리쓰신 등도 IT산업의 대표기업으로 평가받지만, 전문가들은 세계적 경쟁력을 인정받아온 일본의 게임기업들이 IT산업의 중추 역할을 맡고 있다는데 이견이 없다. 갈수록 높아지는 게임산업의 위상은 한때 최첨단 전자제품 상가로 이름을 날리던 도쿄 아키하바라의 변모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상점들이 최근 3∼4년새 플레이스테이션을 비롯한 게임 관련 점포들로 대체되고 있다.”는 아키하바라의 전자제품 상점 직원 미조베 교코의 말처럼 이미 게임이 아키하바라를 장악한 지 오래다. 그나마 남은 전자제품 상점들은 상당수가 전자제품뿐 아니라 향수와 여행 기념품까지 파는 잡화점 형태로 바뀐 상태였다. ●새로운 도전 온라인게임 정부의 ‘e재팬 전략’으로 구축된 초고속인터넷망과 게임산업이 만나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분야는 온라인게임이다.‘게임은 게임기로 즐기는 것이며 컴퓨터는 사무용 기기다.’는 인식이 뿌리깊이 박힌 일본의 엄청난 변화다. 아직까지 온라인게임이 게임시장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성장세는 눈부시다.‘디지털 콘텐츠 백서’에 따르면,2000년 9억엔에 불과했던 일본 온라인게임 시장 규모는 2003년 198억엔에 이어 지난해 382억엔을 기록하는 등 불과 4년 새 42배나 성장했다. 한국의 게임기업들이 온라인게임 분야의 기술적 우위를 앞세워 열도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현지 게임업체들도 앞다퉈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아직까지 그렇게 시장 규모가 큰 것은 아니다. 다만 온라인게임은 이용자가 서버에 접속하는 시간에 비례해 요금을 받기 때문에 복제품 범람으로 개발비도 건지기 어려운 중국에서도 수익을 내고 있다.”는 게임기업 남코(Namco)의 이시무라 시게이치 사장의 말은 온라인게임에 대한 일본 게임업계의 평가를 대변한다. surono@seoul.co.kr ■ “게임 업계 경쟁력은 돈 작년 200억엔 R&D 투자” |도쿄 특별취재팀| 한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비디오게임 ‘철권(鐵拳·일본명 데켄)’시리즈로 유명한 남코(Namco). 지난 5월25일 도쿄 오타구 야구치에 있는 남코 본사에서 이시무라 시게이치 사장을 만나 일본 게임산업 전반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세계적 경쟁력을 유지하는 비결로 연구 개발에 대한 끊임없는 투자를 들었다. 남코가 ‘기동전사 건담’ 등 캐릭터 장난감과 게임 ‘다마고치’로 유명한 일본 최대 완구업체 반다이(Bandai)와의 합병을 발표하고 20여일이 지난 시점이어서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합병 문제로 시작됐다. 게임업체 ‘세가(Sega)’와 슬롯머신업체 ‘사미(Sammy)’가 합병하는 등 일본 게임업계에선 지난해부터 짝짓기를 통한 몸집불리기 열풍이 불고 있다. 이같은 합병 바람은 출산율 저하에 따른 게임과 장난감 업계의 경쟁 격화가 주요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반다이와의 합병을 결정한 이유는. -출산율 문제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합병을 통한 시너지효과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반다이의 어린이 고객과 남코의 청소년 및 성인 고객이 합쳐질 것을 기대했다. 우리가 만든 게임을 즐긴 세대가 부모가 되고, 나중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돼서도 자녀는 물론 손자 손녀와 더불어 즐길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져 인생을 함께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일본 게임 경쟁력의 원천은. -돈이다. 돈을 많이 투자한 게임은 경쟁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1785억엔(약 1조 6300억원)의 연간 매출 가운데 200억엔가량을 연구개발비에 투자했다. 마케팅의 경우 특별히 정해진 비용은 없지만 10억∼20억엔 정도라고 보면 된다. ▶남코가 최근 10년간 집중적으로 투자한 부문은. -플레이스테이션이 출시되면서 철권 등 격투기와 총격전 등의 3차원(3D)게임에 많은 투자를 해왔다. 그 때문에 살아남지 않았나 싶다. ▶일본의 IT산업에 대한 전망과 게임업계와의 관계에 대해. -IT와 관련, 컴퓨터 운영체계(OS)는 마이크로소프트(MS)로 대표되는 미국 기업이 단연 앞서가고 있다. 하지만 컴퓨터 응용프로그램이나 주변기기 등에 있어서는 일본과 한국이 강점을 갖고 있다고 본다. IT와 게임산업의 관계를 보면, 예를 들어 게임을 더 재미있게 즐기려면 해상도 높은 화면을 제공하는 액정이 필요한데, 그런 액정이 개발되면 그런 화질로 즐길 수 있는 수준높은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 상호 보완적이다. ▶온라인게임 시장을 어떻게 보나. -아직 발표는 하지 않고 있지만 우리 역시 온라인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컴퓨터보다 게임기로 즐기는 게임 문화가 훨씬 먼저 정착된 일본은, 온라인게임 문화가 발달한 한국이나 중국과는 상황이 다르다. 하지만 우리도 온라인게임에 주목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즐기는 게임은. -(남코의 대표적 게임인 철권 등의) 격투기 게임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웃음). 자동차 운전게임을 좋아한다. surono@seoul.co.kr ●특별취재팀 한종태 국제부장(팀장), 황성기 사회부장, 이춘규 도쿄특파원, 주병철(경제부)·손원천·이언탁(사진부)차장, 안미현(산업부)·김상연(정치부)·황장석(국제부)·유지혜(사회부)·정연호(사진부)기자
  • 阿 모리타니 쿠데타

    阿 모리타니 쿠데타

    |모리타니 AFP|마오야 시드 아흐메드 타야 모리타니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장례식 참석차 사우디를 방문한 사이 모리타니 군병력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국영 라디오-TV 방송국을 장악한 군병력은 3일 스스로를 ‘정의와 민주주의를 위한 군의회’라 부르며 전국 방송을 통해 쿠데타를 선언했다. 이들은 대통령 집무실과 정부 부처, 국영방송 등 주요 시설들을 점거했다. 타야 대통령 역시 1984년 사상자없는 쿠데타로 대통령직에 올라 선거를 통해 3번 연임됐다. 아프리카 대륙 북서부에 위치한 모리타니는 이슬람 국가로 타야 대통령은 이스라엘과의 교류 등으로 많은 이슬람 정적을 만들었다. 그의 20년 집권기간 동안 수많은 쿠데타 시도가 있었으며,2003년에는 수일간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새벽에도 10여발의 총성이 대통령 집무실 근처에서 울렸으나 출처는 알려지지 않았다.
  • 인도-­파키스탄 화해무드 ‘위기’

    인도 힌두교 성지에 테러 공격이 발생, 모처럼 조성된 인도와 파키스탄의 화해무드가 위협받고 있다. 5일 인도의 대표적 힌두교 성지인 아요디아에 무장괴한 6명이 침입, 폭탄을 던지고 경계 병력과 2시간 동안 총격전을 벌였다. 이 가운데 5명은 교전 중 사살됐으며,1명은 폭탄을 실은 차량에서 자폭했다. 아요디아는 힌두교 최고신 람(Ram)이 출생한 곳이라고 신자들이 주장하는 곳이다. 지난 1992년 힌두교도들이 아요디아에 있던 이슬람사원을 파괴하면서 유혈충돌이 빚어져 2000여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만모한 싱 인도 총리는 이날 예정됐던 수해지역 방문을 연기하고 긴급 각료회의를 소집했다. 싱 총리는 종교시설을 비롯한 국가 주요시설에 대한 경계 수위를 높이는 한편 두 종교의 화해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파키스탄 정부와 카슈미르의 최대 이슬람 무장단체인 헤즈브 울 무자헤딘은 이번 공격을 강력 비난하면서 자신들은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힌두교 강경파는 이 사건이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는 이슬람 무장단체의 소행이라면서 인도·파키스탄의 평화회담은 실패라고 주장했다. 하이데라바드에서는 파키스탄 국기를 불태우며 시위를 벌이던 힌두교도 20명이 체포됐다. 야당인 인도국민당(BJP)은 전국적으로 항의시위를 벌이고 아요디아가 위치한 우타르프라데시주(州)에서는 총파업을 실시할 것을 촉구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사건 주동자들이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난다면 양국의 평화회담은 궤도를 벗어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7억원 어치 황금의 배를 몰고 온 사나이

    7억원 어치 황금의 배를 몰고 온 사나이

    자유를 보상 받은 방진호(方震昊)「총좌(總佐)」의 현주소는 전쟁이 한창 막바지에 이른 1950년 10월 14일 새벽 - 인천 앞바다에는 자욱한 아내를 헤치면서 북괴기가 펄럭이는 50「톤」급 발동선 한 척이 소리없이 미끄러져 들어왔다. 갑판 위에는 괴뢰군 총좌(대령급) 한 사람을 둘러싸고 20명의 북괴장교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대한민국 만세」를 목청이 터져라 소리쳐 부르고 있었다. 자유를 찾아 남하한 조그마한 발동선. 그러나 이 발동선에는 시가 7억원 상당의 금괴 1「톤」반이 실려 있는 황금의 배였다. 18년 전 영웅, 오늘은 왕초(王草) 거부(巨富)의 꿈 대신「평애원장(平愛院長)」 괴뢰군 방진호 총좌. 부하장교 20명과 황금덩어리를 싣고 자유를 찾았던 이 영웅은 자기와 자기 부하가 자유를 찾은 대신 황금은 몽땅 대한민국 정부에 바쳤다. 그러나 정부는 이 영웅의 값진 행위에 보답하기 위해 1억 3천만환(현화 1천 3백만원)을 보상금으로 지급했다. 1억 3천만환의 거액을 쥐고 거부의 꿈을 지닌 채 한때 군에서 문관으로 있다가 53년 가을 홀연히 자취를 감추어 버린 지난 날의 영웅 방진호 총좌는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오늘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경기도 평택군 송탄읍 신장(新場)리 경부선철도 연변에 30채의 집이 오밀조밀하게 들어서 있는 평애원. 고아원겸 양로원인 이곳에서 넝마주이 왕초라는 별명을 가진 50대의 허수룩한 한 사나이가 조용히 과거를 되씹으며 살아가고 있다. 평애원 원장인 이 사나이 - 이 사람이 바로 황금의 배와 부하장교 20명을 데리고 자유를 찾았던 지난 날의 영웅 방진호씨(49)이다. 1억 3천만환의 보상금 태풍 사라호로 일장춘몽 한때 거부의 꿈을 지니고 전남 목포 근해에서 간석지를 막아 염전을 만들었지만 예기치 않았던 「사라」호 태풍으로 방대한 염전을 하루 아침에 잃어버린 채 알거지가 되어버린 방씨. 그 후 이곳에서 넝마주이들을 모아 스스로 넝마주이 왕초로 전락(?)해버린 이 사나이의 기구한 운명은 글자 그대로 파란만장의 연속이다. 평안북도 신의주가 고향인 방씨는 해방 전 만주국 안동현(安東縣)에서 측량학원을 수료한 뒤 집안현(輯安縣)의 건설국 기사로 취직, 기구한 운명의 첫발을 내디뎠다. 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누렸던 방씨는 그곳 요릿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요릿집 종업원「요리명」이라는 중국 사나이와 친히 사귀기 시작했다. 타향에서의 고독도 풀 겸「요리명」과 술자리도 같이하여 손님과 종업원의 관계가 아닌 서로의 심금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친구가 되어버린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이국땅에서 해방을 맞은 방씨에게는「요리명」을 사귄 덕분으로 하루 아침에 큼직한 감투가 굴러들어왔다. 며칠 전까지 요릿집 종업원 행세를 하던 중국 공산당의 거물「요리명」이 집안현 수석(首席)의 자리에 있으면서 방씨를 집안현 평양변사처장(平壤辯事處長:영사)으로 임명한 것이다. 벼락감투를 뒤집어 쓴 방씨는 46년 2월 평양에 부임했다가 그 해 11월에는 소위 북조선인민위원회 조직에 관여, 평양철도경비사령부 총책 유경수(柳慶洙)중장(김일성의 매부)의 부책(副責)으로 중용되었다. 그 후 괴뢰정권의 내무성 정치보위부 직속기관인 진남포(鎭南浦)제련소 총책으로 영전한 방씨는 6·25 동란을 이 자리에서 맞았다. 원래부터 투철한 공산주의 사상자가 아닌 방씨는 차차 자유에의 향수를 느끼기 시작, 기회만 있으면 남하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뜻이 같은 부하장교 20명을 포섭한 방씨는 이왕이면 당시 진남포제련소에 보관되어 있던 백금 3「톤」, 금 1「톤」반, 수은 70「톤」까지 같이 싣고 자유를 찾기로 결심했다. 드디어 50년 10월 한창 패주에 정신 없던 괴뢰정권은 방총좌에게 진남포제련소의 금과 수은을 만주 여순(旅順)으로 운반하라는 긴급지시문을 띄웠다. 이 지시문을 받은 방총좌는 때가 왔다고 느꼈다. 3개월 전부터 탈출 모의를 진행해오던 부하 20명과 비밀회의를 거듭한 끝에 D「데이」를 10월 10일 밤 11시로 정했다. 10월 10일 밤 11시. 칠흑같이 어두운 진남포 부두에는 50「톤」급 발동선 2척이「엔진」소리마저 죽여가며 조용히 와 닿았다. 북괴 경비병 10여 명의 엄중한 감시 아래 한 척에는 황금 1「톤」반이 실려지고는 또 한 척에는 백금 3「톤」과 수은 70「톤」이 실려졌다. 방총좌와 부하장교 20명은 황금이 실린 앞배에 탔다. 배 두 척이 진남포항을 벗어나 망망한 서해에 들어서서 한 시간쯤. 선수를 중공방면으로 막 돌리려는 찰나. 방총좌는 선장의 뒷머리에 권총을 갖다 대고 조용히 그러나 엄숙하게 명령했다. 『선수를 남쪽으로 돌려라!』 이 때 경비병 10여명이 반항, 조그마한 발동선에선 교전이 벌어졌다. 20분만에 싸움은 방총좌의 승리로 끝나고 10여명의 경비병은 서해에 수장되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해전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총격 소리를 들은 북괴경비정 한 척이 추격, 또다시 해상총격전이 벌어졌다. 간신히 경비정의 추격을 벗어나 연평도 앞바다에 도달했을 때 수은과 백금을 실었던 뒷배가 총탄에 구멍이 뚫려 애쓴 보람도 없이 바다 깊숙이 수장되어 버렸다. 진남포를 떠난 지 나흘 만에 방총좌는 수은과 백금은 바다에 수장되었지만 부하장교 20명과 황금 1「톤」반을 이끌고 무사히 목마르게 그리던 자유를 찾은 것이다. 53년 봄 1억 3천만환의 거액을 쥔 북괴총좌가 아닌 민간인 방진호씨는 거부의 꿈을 안은 채 전남 목포 근해에서 간석지를 막아 염전을 만들었지만 4년간의 피땀나는 노력도「사라」호 태풍으로 일장춘몽 빈털터리가 되어버렸다. 수장(水葬)한 백금 3톤 수은 70톤 꼭 찾고 말겠다는 게 소원 돈하고는 인연이 없는 방씨. 이때부터 인생을 덤으로 생각한 방씨는 남을 위해 살기로 작정했다. 57년 가을 무작정 찾아온 것이 지금 그가 살고 있는 경기도 평택군 송탄읍 신장리 일명「쑥고개」라는 미(美)기지촌 주변이었다. 방씨는 우선 손수 흙벽돌을 찍어 경부선 철도연변에 조그마한 집을 짓고 거리에서 방황하는 걸인 20명을 수용했다. 1개월이 지난 뒤 평애원이라는 간판이 내걸리고 식구도 1백여 명으로 불어났다. 11년이 지난 오늘날 평애원은 30채의 집이 들어섰고 식구도 372명으로 불어났으며, 평택과 방성(彭城) 두 곳에는 분원도 마련됐다. 그 동안 이곳을 거쳐간 원생 중에는 현역 육군대위가 있는가 하면 수백만원을 치부한 어엿한 실업가도 10여명이나 된다는 것. 원장으로 보다는 넝마주이 왕초로 더 알려진 방씨. 방씨의 유일한 소원은 자유를 찾아 남하하던 당시 연평도 앞바다에 아깝게 수장되어버린 백금 3「톤」을 꼭 찾고 말겠다는 것이다. <수원 = 한의교(韓義敎)씨> [ 선데이서울 68년 10/13 제1권 제4호 ]
  • “우즈베크사태 진상 조사해야”

    우즈베키스탄의 혼란한 정국이 정부에 의해 장악돼 가는 가운데 유혈사태의 객관적 조사를 요구하는 비난의 목소리가 국내외에서 높아지고 있다. 루이즈 아버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은 18일(현지시간) “수많은 인명이 희생된 이 사건은 국제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비극”이라며 국제사회의 독자적인 조사를 촉구했다. 잭 스트로 영국 외무장관은 BBC방송에 출연, 국제기구와 언론이 전면적인 진상 조사를 벌여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미 국무부 리처드 바우처 대변인도 “정부군이 수많은 시민을 살해했다는 것이 점점 확실해지고 있다.”며 우즈베크 정부를 비난했다. 이날 우즈베크 주재 외교관들과 외신기자 등 60여명의 외국인조사단이 3시간여 동안 안디잔을 방문했지만 우즈베크 정부가 사건현장 조사 및 주민과의 접촉을 막아 아무 소득이 없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우즈베크 야당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의 퇴진과 과도정부 수립,3개월 내 대선 실시 등을 요구했다. 자유농민당 당수는 이번 사태로 831명이 숨졌다고 밝혔으며, 다른 야당 당수는 1500명 이상이 희생됐다고 주장했다. 또 우즈베크 정부는 19일 ‘이슬람국가 건설’을 주장하는 반군측이 점령하고 있던 키르기스스탄과의 접경도시 카라수에 1000여명 규모의 군대를 투입, 반군 지도자 바흐탸르 라히모프 등 간부 3∼4명을 체포하고 통제권을 회복했다고 밝혔다. 목격자들은 총격전은 벌어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편 문하영 우즈베키스탄 주재 한국대사는 안디잔 외곽의 대우자동차 공장은 조업이 중단됐으며, 이곳에서 일하던 교민 등 15명은 지난 16일 안전한 곳으로 대피했다고 밝혔다. 장택동기자 외신 taecks@seoul.co.kr
  • [14일 TV 하이라이트]

    ●청춘! 신고합니다(KBS1 오후 5시) 100회 특집으로 육·해·공 전군 장병들이 한자리에 모여 경연을 펼치는 ‘전군 장기자랑 특집’으로 진행된다. 국방부 신관 강당에서 펼쳐진 ‘전군 장기자랑’에서는 노래, 댄스는 물론 칵테일 쇼, 마술, 우슈까지 전군을 대표하는 최고의 9팀이 나서 각양각색의 장기자랑을 펼친다. ●솔로몬의 선택(SBS 오후 6시50분) 나이트클럽 웨이터의 계속되는 홍보 문자메시지 때문에 남편과 별거하게 됐을 때 여자는 웨이터에게 위자료를 받을 수 있을까. 차량의 파손이나 분실물에 대해서 책임지지 않는다는 표지판이 붙어 있는 유료주차장에서 차량 속 물건을 도둑 맞았을 경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지도 알아본다. ●라이프n조이(YTN 오전 8시20분) 국내 최대 규모에, 가지각색 수만가지의 꽃들을 감상할 수 있고 다양한 부대행사도 가득한 꽃 식물원이 가족나들이 코스로 인기를 얻고 있다.18개의 대형 온실로 연결된 온실꽃밭 ‘아산 세계 꽃식물원’과 칠갑산 산자락을 끼고 야외에 조성된 ‘청양 고운 식물원’을 찾아간다. ●석가탄신일 특집 다큐멘터리(EBS 오후 9시) 스물두 살에 출가해 해인사와 송광사에서 공부한 법등 스님은 호주 유학길에 공부보다 더 큰 과제를 떠안게 된다.100여명의 불자가 있는 호주의 한국 사찰인 정법사에서 대중 포교업무를 책임지게 된 것이다. 호주에 온 지 3년, 법등 스님은 또 다른 앎의 세계를 보게 된다. ●제5공화국(MBC 오후 9시40분) 정승화 총장의 강제연행 도중 총격전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전두환은 급히 보안사로 돌아간다. 김진기는 모든 일이 전두환의 계획에서 비롯된 일임을 직감하고 총리공관 경호대장 구정길에게 전두환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사태를 파악한 장태완은 30경비단장 장세동을 찾는데…. ●위험한 사랑(KBS2 오전 9시) 수완이 원서를 내고 면접을 본 뷰티숍은 바로 세진이 경영하는 곳이다. 둘은 자신들을 둘러싼 운명을 모른 채 경영자와 피고용인으로서 첫 만남을 갖는다. 한편, 세진의 뷰티숍에 대한 보강공사 때문에 세진을 찾아온 정현은 수완을 알아보고 아는 척을 하지만 수완은 피한다.
  • 빈 라덴 꼬리 잡힐까

    빈 라덴 꼬리 잡힐까

    “지난 2년여 동안 알 카에다에 가한 것 중 가장 치명적인 일격.” 파키스탄 당국이 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3인자 아부 파라지 알 리비를 체포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한 미국 관리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체포됨으로써 9·11테러를 주도한 오사마 빈 라덴의 도피 행각도 종착점에 다다른 것 아니냐는 기대 섞인 전망이 나왔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도 “대 테러전에서 거둔 결정적 승리”라고 치하하며 “미국은 물론 자유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위험한 적이 제거됐다.”며 파키스탄 당국의 노고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리비아 출신인 알 리비는 빈 라덴과 아이만 알 자와히리에 이은 조직내 세 번째 거물로 9·11테러 주모자 중 한 명인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가 지난 2003년 3월 체포된 후 파키스탄내 알 카에다 조직을 이끌어왔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알 리비를 알 카에다의 대외작전 책임자로 분류하고 있으며 그가 빈 라덴이나 자와히리와 지속적으로 접촉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빈 라덴 추적을 지휘하는 한 고위 관계자는 “가장 가까운 측근 중 한 명인 만큼 그로부터 빈 라덴과 자와히리에 대한 새로운 단서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일 파키스탄 정보 요원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알 리비와 외국인 1명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총격전이 벌어졌으며 둘 중 여성 전통 복장인 부르카로 여장한 남자가 도주해 민가에 숨어들기도 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이 남자는 지붕을 뚫고 들어온 요원에게 체포됐다. 현재 알 리비는 헬기를 이용, 수도 이슬라마바드로 옮겨져 모처에서 보안군의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알 리비는 심문이 시작되자 처음에는 대화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파키스탄 관리는 “몇 시간이나 침묵했지만 결국 자신이 알카에다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며 “우리가 그의 신원에 대한 확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별 도리가 없었다.”고 전했다. 정보 당국은 “알 리비가 많은 사람과 은신처를 알고 있기 때문에 빈 라덴 추적에 도움이 되는 여러 단서를 이미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파키스탄 당국이 배포한 사진속 알 리비의 얼굴 피부가 훼손된 것은 햇볕에 오랜 시간 노출된 후유증으로 보인다고 AP는 보도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이슬람 과격운동 이집트서 불붙나

    중동지역에서 비교적 치안이 안정된 것으로 여겨져온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외국 관광객을 겨냥한 자살폭탄 공격과 총격전이 2시간 간격으로 발생했다. 이번 사건으로 범인 3명이 모두 숨지고 외국인 관광객 4명 등 9명이 다쳤다. 지난달 7일 이후 또다시 외국인을 겨냥한 테러인데다 여성이 테러에 직접 가담한 것도 전례가 없어 관광대국 이집트가 큰 충격에 빠졌다. 당국의 거듭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자생적 이슬람 과격단체들이 갈수록 행동수위를 높이고 있어 90년대말 자취를 감춘 이슬람 과격운동이 되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2시간 간격 관광객 겨냥 테러 이날 오후 3시15분쯤 카이로 국립박물관 근처 다리에서 한 남자가 뛰어내리며 사제폭탄을 터뜨려 이스라엘인 부부 등 외국인 4명과 이집트인 3명이 다쳤다. 내무부는 이 남자가 지난달 7일 관광객이 즐겨 찾는 칸 엘 칼릴리 시장에서 폭탄테러를 저질러 프랑스인 2명과 미국인 1명을 희생시킨 단체에 연계된 이합 유스리 야신이며 경찰 포위망이 좁혀오자 이같은 짓을 저질렀다고 발표했다.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이번엔 야신의 누이동생과 약혼녀가 얼굴을 히자브로 가린 채 폭탄테러 현장에서 3㎞쯤 떨어진 올드 카이로구역의 사이다 아이샤 모스크 근처에 정차된 관광버스를 향해 총기를 난사했다. 경찰은 두 여인이 자살했다고 발표했으나 목격자들은 경관 총에 맞아 숨졌다고 주장하는 등 혼선이 빚어졌다. 이집트인 2명이 다쳤을 뿐 관광객 피해는 없었다. ●과격 이슬람운동 재연될까 전전긍긍 사건 발생 직후 ‘순교자 압둘라 아잠 여단’이란 생소한 이름의 단체가 이슬람 사이트에 올린 성명을 통해 “지난해 10월 시나이반도 폭탄공격에서 순교한 이들의 희생에 값하고, 경찰의 무차별 연행에 대한 보복으로 공격을 감행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이집트 무자헤딘 그룹’ 명의의 성명도 동일 사이트에 등장했다. 실제로 이집트 당국은 지난해 폭탄테러 직후 4000여명을 무차별 연행, 아직도 수십명을 감금하고 있고 다른 조직사건까지 포함하면 전체 구금자는 1만 6000명에 이른다. 이집트에선 지난 1992년부터 약 6년간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테러가 끊이지 않았다.97년 9월 카이로 국립박물관 앞 타흐리르 광장에 서있던 관광버스에 화염병이 날아들어 독일인 9명이 숨졌고 같은 해 11월 룩소르 신전 앞에선 총격으로 외국인 58명 등 62명이 희생됐다. 그러나 그 후 잠잠했던 외국인 겨냥 테러가 지난달 7일 칸 엘 칼릴리 시장 사건 이후 되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알 아흐람 정치전략연구소의 테러문제 전문가 디아 라슈완 박사는 최근 일련의 테러가 가족이나 친구 등으로 구성된 소규모 그룹의 소행이며 분노심에서 공격을 단행했을 뿐 진정한 조직을 갖추진 못했다고 보았다. 그러나 다른 분석가들은 ‘자마아 알 이슬라미야’나 이슬람지하드와는 다른 새로운 세대의 과격단체가 결성돼 행동에 나섰을지 모른다며 대책 마련을 주문하고 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황장석기자의 아시아 창] 태국, 인권 무시한 마약 전쟁

    탁신 치나왓 태국 총리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마약 복용자가 인구의 5%에 이르는 상황을 개선하겠다는 것이지만 벌써부터 인권 침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2003년 첫번째로 치른 마약 전쟁에서 그는 “마약밀매상이 갈 곳은 감옥이나 무덤뿐”이라고 말하며 경찰의 무자비한 인권 침해를 용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 정부는 6월까지 마약 복용자를 6만명 이하로 줄이고 연말까지 ‘마약 청정국가’로 만들겠다고 지난 11일 공표했다.2003년 1차 마약 전쟁, 지난해 2차 전쟁에 이어 이번이 세번째다. 태국의 마약 문제는 ‘전쟁’이란 단어를 사용할 만큼 심각하다. 유엔 자문기구인 국제마약통제부(INCB)에 따르면, 태국 인구의 5%가량인 300만여명이 필로폰 알약인 ‘야바’를 복용한다. 마약은 대부분 미얀마에서 제조돼 곧바로 태국 국경을 거쳐 밀수되거나 라오스, 캄보디아 등을 통해 반입되고 있다. 태국과 라오스, 미얀마의 국경지대는 ‘마약왕’ 쿤사가 악명을 떨치던 ‘골든 트라이앵글’. 마약 문제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인권 침해 우려가 나오는 것은 과거 마약 전쟁에서 피의자들이 재판과정도 없이 경찰에 의해 사살되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2002년 태국에서 살인사건 사망자 수가 한달 평균 200명이었던데 비해 2003년 2∼4월 1차 마약 전쟁 기간 중 2월 한달에만 1100여명이 숨지는 등 3개월간 3000여명이 숨졌다. 경찰은 당시 7월까지 경찰의 총격으로 숨진 피의자는 129명이었고 마약상들이 서로 총격전을 벌이다 숨졌다고 밝히고 있지만 국제사면위원회와 언론 등은 사망자 대부분이 정부의 용인하에 경찰에 의해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경찰이 당시 검거 자료로 사용한 블랙리스트에는 마약과 관련없는 사람들도 상당수 포함됐다고 인권단체와 언론 등은 지적하고 있다. surono@seoul.co.kr
  • [월드 이슈-中·印 갈등씻고 손잡나] 23억 ‘친디아’ 팍스아메리카나 맞선다

    [월드 이슈-中·印 갈등씻고 손잡나] 23억 ‘친디아’ 팍스아메리카나 맞선다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친디아(CHINDIA·중국과 인도의 합성어)’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1962년 국경분쟁 이후 43년간 앙숙으로 지낸 양국이 지난 11일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와 만모한 싱 인도 총리의 정상회담을 통해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한 것이다. 항공, 교육, 과학기술, 관광, 문화교류 등 다양한 부문에서 전방위적인 협력에 착수한 것이다. 인구 23억(중국 13억, 인도 10억)의 두 아시아 거인이 약속대로 손을 맞잡을 경우, 아시아 지역안보와 국제무역 환경에 큰 변화가 일 전망이다. ●중국, 인도 앞세워 미국의 포위전략 돌파 두 나라의 화해로 ‘아시아 안보 지형’에 일대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중국 입장에서 인도와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구축은 시시각각 조여왔던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의 일각을 돌파했다는 의미가 적지 않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중앙아시아, 인도 등과의 협력을 통해 중국 서부지역에 대한 포위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것이 중국 군사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지난달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아시아 순방 당시 인도와의 군사협력 강화를 약속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러시아와의 전통적 우방관계인 인도에 대해 러시아의 영향력을 축소하고 가상 적국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였다. 향후 미국과 인도는 미사일 방어체계(MD)를 비롯한 안보분야는 물론 첨단기술 및 경제·에너지분야 협력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인도에 F-16 전투기와 패트리엇 미사일 방어체계,PC-3 해상 초계기 등의 첨단무기 판매를 결정했다고 중국 관영 주간 ‘세계보(世界報)’ 최근호가 보도했다. 그러나 중국은 인도와의 최대 걸림돌인 국경분쟁의 정치적 해결이란 원칙에 합의하면서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켰다. 미·일 동맹을 주축으로 하는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 일대 타격을 준 것이다. 적어도 중국은 인도를 친미 국가로 기울지 않게 했고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팍스아메리카나(미국 중심의 세계지배)’에 맞선 ‘다극화 전략’에 시동을 걸었다. ●美 아시아 전략에 일대 타격 베이징 우주항공대학 국제전략연구소 장원무(張文木) 교수는 “중동 페르시아만과 말라카 해협 사이에 위치한 인도는 전략적 요충지”라며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중앙아시아 진출에 인도 역시 강한 압력를 느끼고 있어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 여지는 많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중국의 당근전략이 보다 구체화되고 있다. 원자바오 총리는 중·인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은 인도가 유엔과 국제무대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것을 이해하고 지지한다.”며 인도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 지지를 분명히 했다. 그는 “인도의 소프트웨어와 중국의 하드웨어를 마치 파고다(탑)를 쌓듯이 결합시키면 두 나라는 ‘아시아의 세기’를 열어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기적으로 양국간 FTA(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위한 기초작업에 착수했고 지난해 137억달러였던 양국의 교역액을 2010년까지 300억달러로 확대키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홍콩 아주시보(亞州時報)는 두 나라가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경분쟁 ▲중·인·미 삼각관계 등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인도의 줄타기 외교 인도 역시 미·중간 파워게임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국익을 극대화시키는 ‘줄타기 외교’를 시작했다. 아시아 대국을 꿈꾸는 인도는 일본과 싱가포르 등과 손잡고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동진(東進) 전략’을 추진 중이다. 지난 40여년간의 폐쇄경제에 종지부를 찍고 매년 6% 안팎의 경제성장을 지속,2050년 ‘라이벌 중국’을 따라잡겠다는 ‘청사진’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인도가 중국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지만 동맹관계까지 발전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국과 아시아 패권을 다투는 일본도 최근 인도와의 관계개선에 무척 신경을 쓰고 있다. 카말 나스 인도 통상장관은 13일 “최근 인도와 일본의 교역이 지지부진한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며 일본의 대인도 투자 확대를 요청했다. 이에 화답하듯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도 이달 말 인도를 방문할 예정이다. 일본 총리의 인도 방문은 5년 만에 처음이다. 일본은 지난해 전체 ODA(공적개발원조)의 24%인 11억 4000만달러를 인도에 제공하며 인도에서의 시장확대를 노려 왔다. 인도는 중국과 미국의 ‘파워게임’을 활용하고 중국 역시 인도를 앞세워 미국의 대중 포위전략을 견제하겠다는 ‘3인 4각의 전략 외교’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oilman@seoul.co.kr ■ 양국 경제협력의 미래 중국과 인도의 전략적 접근이 가속화되고 있는 분야는 경제분야다.11일 뉴델리서 발표된 ‘델리 선언’을 구체화해 나가기 위한 후속 조치들이 이어지고 있다. 두 나라는 우선 오는 10월 이전에 경제무역 및 과학기술 공동위원회 개최를 위한 실무준비에 착수했다. 과학기술과 금융시스템 분야에서 별도의 협력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정보 교환, 인적 교류 등도 준비하고 있다. 중국은 한 발 앞선 인도의 정보통신기술(IT)과 금융·서비스업 분야의 노하우 전수를 희망하고 있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인도 방문 후 처음 찾은 곳이 실리콘밸리인 방갈로르인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원 총리는 이 자리에서 “중국의 하드웨어와 인도의 소프트웨어를 합치면 세계 IT업계를 석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항공우주·생명공학 분야도 시너지효과 기대 원자력, 항공우주, 생명공학 등에서도 양국은 서로 주고 받을 것을 찾으면서 ‘동반 상승’을 꾀하고 있다. 기술 이전과 관련, 선진국들의 견제를 받고 있는 동병상련 입장에서 서로 연합을 통해 기술을 교류하고 시장을 공유해 이같은 봉쇄를 뚫겠다는 전략이다. 과학기술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기술합작지도 위원회의 발족과 올해내 상호 첨단기술교류회의 개최 등도 같은 맥락에서 추진되고 있다. 가시화되는 에너지 및 자원 협력도 대표적인 협력 분야다. 양국은 일단 원 총리의 방문을 계기로 에너지 및 자원 협력 등 공동 대처의 발판을 놓았다는 평가다. 국제 석유시장에서 원유확보를 위한 입찰경쟁 자제 및 해외유전 공동개발 등에 의견접근을 봤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지금까지 원유 공급량의 각각 40%와 70%를 해외에 의존하는 중국과 인도는 국제 석유시장에서 입찰경쟁을 벌이다 가격상승 부담 증가란 자충수를 둬 왔다. ●2008년까지 교역액 200억弗로 확대 인도의 마니 샨카르 아이야르 석유장관은 지난 2월 “중국과 인도의 경쟁으로 다른 나라들의 배만 불려왔다.”며 양국간 협조체제 구축의 필요성을 지적한 바 있고 중국측의 호응도 받았었다. 중국 3대 철강회사 가운데 하나인 중국 우한철강의 경우 주 수입원인 호주 BHP사가 철강석 가격을 올리자 인도로 수입원을 다원화할 움직임을 보인 것도 이같은 흐름과 맥이 통한다. 인도는 이와 함께 쌀, 포도 등 농작물의 중국 수출길도 열었다. 두 나라의 지난해 교역액은 137억달러. 전년보다 79%나 늘었다. 지난 1991년 2억 6400만달러에 비하면 폭발적인 증가세다. 교역액을 2008년까지 200억달러로 늘리겠다는 것이 두 나라의 목표다. 양국간 무역액이 연간 200억달러인 인도·미국간의 무역액을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석우기자 swlee@seoul.co.kr ■ 中·印 갈등의 역사는 국제사회에서 앙숙으로 알려진 중국과 인도의 갈등은 역사적으로 그리 멀리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1950년대까지만 해도 비교적 평화로운 관계를 이어온 두 나라가 총부리를 들이대게 된 것은 국경분쟁 때문이었다. 현재 양국이 분쟁 중인 지역은 서쪽 카슈미르 일부인 악사이친과 동쪽 아루나찰 프라데시이다. 악사이친의 히말라야산 국경을 두고 1962년 10월 발발한 양국 전쟁은 40여일 만에 중국의 대승으로 막을 내렸고 중국은 인도가 점유했던 악사이친을 빼앗아 버렸다. ●1962년 국경분쟁이후 앙숙관계 악사이친은 현재 중국의 자치주인 신장(新疆)과 티베트를 잇는 고속도로가 나있는 전략 요충지이다. 중국은 아루나찰 프라데시도 점령했지만 병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지리적인 문제점과 국제적 비난 등을 고려해 곧 철수했다. 하지만 해당 지역의 선조가 현재 중국의 자치주인 티베트에서 왔다는 점 등을 들어 아직까지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영국, 인도 식민지배가 분쟁의 씨앗 두 나라간 국경 분쟁의 씨앗을 뿌린 당사자는 영국이었다. 인도를 식민지로 삼았던 영국은 티베트와 접한 인도의 북방 국경선을 명확히 정하지 않았다. 인도가 독립을 하고 중국이 1950년 티베트를 자치주로 강제 편입시키면서 시작된 양측의 갈등은 1950년대까지는 외교적으로 무마되는 듯 보였지만, 산발적 총격전이 일어나다 1962년 전쟁으로까지 이어졌다. 전쟁은 또 다른 갈등을 불러왔다.‘인도 역사상 최대의 치욕’으로 기록된 전쟁 패배 이후 인도는 핵무기 개발 등 전격적인 국방력 증대에 나섰으며 중국은 인도를 견제하기 위해 인도의 숙적 파키스탄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지원했다. ●티베트 문제가 또 다른 갈등 불러 티베트 문제도 두 나라가 충돌을 거듭해온 부분이다. 인도는 중국으로부터의 티베트 독립을 외치는 달라이 라마가 1959년 봉기에 실패하자 자국 내 다름살라에 망명정부를 수립하게 해주었다. 티베트가 중국에 강제 편입됨에 따라 사라져 버린 중국과의 지리적 완충지대를 복원하도록 지원한다는 의미가 컸다. 하지만 양국은 가장 큰 쟁점인 국경 문제의 경우 1962년 전쟁 이후에 설정된 ‘실질적 국경선(LAC)’은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특히 지난 10여년 간 실무협상을 이어왔다는 점에서 이번 양국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합리적 해결’을 대전제로 구체적인 타협안을 이끌어낼 것으로 전망된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독도, 알아야 지킨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을 명시한 교과서들이 최근 일본 정부의 검정을 통과했다. 이는 그동안 ‘망언’으로 치부해 왔던 것과 차원을 달리한다. 이제 그들은 자국 청소년들에게 독도 영유권 귀속의 논리를 가르칠 것이고, 사전 지식이 없는 학생들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다. 따라서 이젠 우리도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목소리만 높일 것이 아니라 왜 우리땅인지, 일본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억지인지 체계적 논리적 지식을 갖출 필요가 있다. 마침 최근 독도 영유권 논쟁이 뜨거워지면서 관련 도서들이 잇달아 출간되고 있다. 독도 역사와 독도 관련 분쟁의 역사를 다룬 것부터 목숨을 걸고 독도 지키기에 나섰던 이들의 이야기, 지도로 본 독도 영유권 논쟁 등 다양한 내용을 아우르는 것들이다. ●CD로 듣는 독도 이야기(문철영 지음, 경세원 펴냄) 이 책은 단국대 역사학과 문철영 교수가 KBS 라디오 사회교육방송의 ‘역사이야기’란 코너에서 나누었던 대담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대화하듯 쉽게 풀어낸 내용이어서 독도 영유권 문제의 윤곽을 더듬고 맥을 짚기에 매우 효과적이다. 책에 따르면 한·일간 독도 영유권 문제가 불거진 것은 이번까지 크게 세번이다. 울릉도·독도는 512년 신라에 복속된 이후 우리의 영토로 지속되다가 1693년 첫번째 충돌이 일어났다. 당시 극심했던 왜구의 피해 예방차원에서 조선 조정이 공도(空島)정책을 취한 틈을 타 일본 어선들이 울릉도에 출몰하면서 조선 어선들과 큰 충돌이 벌어진 것. 그러나 이때 어민 대표인 안영복의 활약으로 도쿠가와 막부는 1699년 울릉도·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최종 확인해주게 된다. 두번째 논쟁은 일본에서 정한론(征韓論)을 표방한 메이지정부가 들어서면서다. 일본 내무성은 약 5개월에 걸쳐 울릉도·독도 문제를 재조사했으나, 역시 조선 영토라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최고 국가기관인 태정관에게 보고했다. 태정관도 이를 바탕으로 1877년 최종 지령문을 내무성에 내렸고, 내무성은 이를 시마네현에 통보했다. 책은 1905년 일본 정부가 일방적으로 독도를 주권이 미치지 않는 ‘무주지’로 규정, 자국 영토에 편입시키고,2차대전에서 패전후 연합국과 맺은 조약의 애매성을 구실로 지금까지도 억지주장을 펴는 과정을 소상히 살핀다. 대담 내용을 담은 CD도 있다.1만원. ●일본 고지도에도 독도 없다(호사카 유지 지음, 자음과 모음 펴냄) 지은이는 일본인 출신으로 한국에 귀화한 세종대 일어일문학과 교수. 그는 독도가 한국 땅임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일본의 주장만을 들으면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믿어버릴 만큼 논리와 자료를 정교하게 꾸미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적극적인 자세로 일본이 내세우는 주장을 논파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지도다. 일본은 1693년 한·일 어민들간의 충돌때 도쿠카와 막부가 조선의 영토로 인정한 것은 울릉도일 뿐 독도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1837년 에도막부로부터 독도까지 간다는 도해 허가증을 받고 울릉도까지 넘어간 상인이 사형에 처해진 일을 내세우며, 이는 자국의 영토인 독도에 대한 항해를 일본이 허용했음을 주장한다. 이에 대해 한국은 에도막부가 도해허가증을 내줄 때는 일본인이 해외에 나가는 경우였으므로 독도를 조선 영토로 인정해 허가증을 발행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제3자까지 완벽하게 설득할 수 있는 논리와 자료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지도다. 책에선 우선 ‘대일본국군여지전도’와 ‘개정대일본도’,‘교정대일본여지전도’ 등 에도시대에 작성된 상당수의 지도에 독도가 빠져 있는 점을 주목한다. 독도에서 일본 방향으로 가장 가까운 오키섬은 그려져 있으나 독도는 표기하지 않았다는 점은 바로 독도를 조선영토로 인정한 증거라는 것이다. 또 ‘대일본전도’‘관판 실측전도’ 등 메이지시대의 지도도 마찬가지다. 총 17장의 일본 고지도를 통해 독도가 역사적·국제법적으로 한국 영토임을 밝히고 있다.1만 3500원. ●한국독립의 상징 독도(양태진 지음, 백산출판사 펴냄),아, 독도수비대(김교식 지음, 제이제이북스 펴냄) ‘한국독립의 상징 독도’는 독도의 지세와 생태는 물론 512년 신라에 복속된 이후의 독도 관리상황을 일목요연하게 기술하고 있다. 또 지도와 지명, 영유권과 관련한 일본측의 주장, 독도문제의 본질, 독도 수호인 안영복과 홍순칠 등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다. 특히 독도를 영토분쟁화하려는 일본 우익인사들이 포진한 일본 국회 중의원과 참의원, 시마네현 의회에서 거론돼온 내용을 상세히 밝히고 있다.1만 5000원. ‘아, 독도수비대’는 1950년대 조직된 ‘독도 의용수비대’의 활약을 뼈대로 한 실화소설이다. 전쟁의 혼란을 틈타 일본인들이 독도에 상륙, 한국 어부들을 방해하고 테러를 가하는 등 침탈행위를 일삼자 젊은이들이 수비대를 조직해 방어에 나서는 이야기다. 홍순칠 대장을 비롯해 유원식, 정원도 등 6·25 참전 경험이 있는 혈기 왕성한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무단으로 상륙한 일본인들을 쫓아내고, 일본 영토 표지를 철거, 일본 순시선과 여러 차례 총격전을 벌이는 과정이 드라마틱하게 표현되어 있다. 독도의 동도 암벽의 ‘한국령’이라는 표식도 이들이 새긴 것이다.9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독도 의용수비대 활약상 재조명

    KBS1 ‘인물현대사’(오후 10시)는 8일 ‘독도 수호! 그것은 또 다른 전쟁이었다-독도 의용수비대’를 통해 50년 전 독도를 수호하기 위해 나섰던 독도 의용수비대를 다시 조명하는 시간을 갖는다. 1954년 11월21일, 독도로 접근해오던 일본 함정이 폭격을 당한다. 당시 독도는 치안 공백지대. 일본 함정을 향해 공격을 했던 이들은 군경이 아니라,33인의 울릉도 청년으로 구성된 독도 의용수비대였다. 독도 의용수비대는 1953년 4월 홍순칠 대장을 비롯해 유원식, 정원도 등 6·25 참전 경험이 있는 청년 33명으로 결성됐다.6·25의 혼란을 틈타 일본의 독도 침범이 잦아지자 이들 민간인이 분연히 나섰던 것.1956년 12월 경찰에 인계할 때까지 이들은 무단으로 상륙한 일본인을 축출, 일본 영토표지를 철거하고 일본 순시선과 여러차례 총격전까지 벌였다.1953년 8월에는 독도 암벽에 ‘한국령’이라 새기고 독도 수호의 결의를 다졌다. 방송은 당시 의용수비대원 가운데 정원도, 이필영, 이규현 대원과 함께 직접 독도에 들어가 당시의 치열했던 독도전투를 생생히 재구성한다. 이를 통해 무기라고 해야 고작 박격포 1문, 기관총, 소총이 전부였지만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뭉쳤던 이들의 업적을 재평가하는 기회를 갖는다. 당시 대장이었던 홍순칠씨는 독도에서의 생활을 수기로 남겨놓았다. 그의 육필 수기를 통해 그들의 힘겨웠던 3년8개월간의 생활도 되짚어볼 예정이다. 이와 함께 1955년 제작된 영화 ‘독도와 평화선’에 담긴 의용수비대원들의 모습도 공개한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美 고교생 총기난동 10명사망

    미국 미네소타주의 15세 고교생이 21일(현지시간) 집에서 조부모를 살해한 뒤 자신이 재학중인 학교에서 총기를 난사,7명을 숨지게 하고 자신은 경찰과 총격전 끝에 숨진 채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미네소타주 북부 레드레이크 고교에서 발생한 총기난동 사건으로 범인 제프 바이스를 포함,10명이 숨지고 최소 14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학교에서 숨진 이는 경비원 1명과 여자 교사 1명, 범인 포함 6명이었다. 이번 사태는 지난 1999년 5월 교사 12명 등 13명을 살해하고 23명을 다치게 한 콜로라도주 컬럼바인고교 총기 난동 이후 미국서 발생한 최악의 총기 사건이다. FBI는 범인이 학교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경비원을 쐈으며 이후 출동한 경찰과 복도에서 총격전을 벌였다고 밝혔다. 범인은 경찰을 피해 한 교실로 숨어들어 학생들을 쏘고 자살한 것으로 보인다. 현장에 있던 학생인 손드라 헥스트롬은 범인이 웃으면서 학생들을 향해 총을 흔들며 겨누다가 방향을 갑자기 돌려 다른 사람을 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범행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다. 바이스는 4년전 아버지를 총기사고로 잃었고 어머니마저 다른 지역 병원에서 암 투병중이어서 조부모 밑에서 외롭게 지내온 것으로 전해졌다. 주도(州都) 세인트폴에서 북쪽으로 390㎞ 떨어진 레드레이크 인디언 보호구역 안에 있는 이 학교에는 모두 300여명이 재학중이었다. 이 지역은 치피완 인디언의 근거지로 주 안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이다. 지난해 1월 이곳 주민들이 총기를 소지한 채 경찰서를 습격해 FBI 등이 진압한 바 있다.3년 전에는 법무부가 이 지역에서 마약과 총기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기도 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씨줄날줄] 생명을 위한 물/육철수 논설위원

    물값이 기름값보다 더 비쌀 것 같은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카타르 등 중동의 석유부자 나라에서 물장사를 하면 얼마 안 가서 깡통을 차기 십상이다. 반면 해마다 대홍수로 물이 지천으로 넘치는 방글라데시나 인도에서 식수사업을 벌이면 떼돈을 벌 수 있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빈부의 차이 때문이다. 물 기근국가군(群)에 속하는 중동 산유국들은 1970년대부터 오일쇼크로 벌어들인 수천억달러를 퍼부어 바닷물을 생활용수로 바꾸는 담수시설을 갖춰 놓았다. 이들 나라는 용수의 50%를 담수로 해결한다. 식수는 우유·기름·야채·고기 등과 함께 생필품으로 분류돼 수입하더라도 관세가 없어 거의 원가로 공급된다. 생필품은 국왕이 국민에게 하사(下賜)하는 일종의 ‘시혜품’이어서 물값은 ℓ당 30원 정도다. 산유국이지만 가난한 북아프리카의 리비아는 사정이 좀 다르다. 이 나라에선 유엔의 경제제재를 받던 몇년전까지, 우리 기준으로 보면 참 소박하게도,500㎖들이 페트 물병 2통이 외국인들의 검문소 통과용 뇌물로 쓰였다. 물 한 병을 얻으려고 총격전을 벌여 사람을 죽이기도 예사다. 방글라데시나 인도는 경제력이 모자라 댐건설이나 담수화를 엄두도 못낸다. 강수량 때문에 생고생을 하면서도 정작 마시고 생활용수로 쓸 만한 물을 저장하지 못해 늘 물기근에 시달린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은 약 14억㎦로, 땅덩어리 전체를 2.7㎞ 깊이에 잠기게 할 정도인데도 이처럼 국가별 경제력과 관리역량에 따라 물의 가치는 천차만별이다. 22일은 제13회 세계 물의 날이다. 주제는 ‘생명을 위한 물(Water for Life)’로 정해졌다. 오는 2050년이면 세계 인구가 90억명에 이르고 이 중 24억명이 물 부족에 직면한단다. 국지적 물전쟁은 이미 수차례 있었고,21세기 전쟁은 물 때문에 일어날 것이라는 섬뜩한 예견까지 나온다. 여차하면 물과 생명을 맞바꿀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물 부족국가군에 포함된 우리나라는 2011년쯤 12억㎥의 물이 모자란다고 한다. 중동 산유국만큼 돈도 없는 나라여서 정부가 재정을 털어 물을 공급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텐데, 물 때문에 난리칠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지금부터라도 물을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겨야 뒤탈이 없을 것 같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시리아군 7일부터 철수

    레바논 주둔 시리아군이 7일부터 동부 베카계곡으로 철수를 시작할 것이라고 레바논 국방장관이 6일 밝혔다. 이같은 주장은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지난 5일 시리아군의 2단계 철군 계획을 밝힌 지 하루 만에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압둘 라힘 무라드 레바논 국방장관은 7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열리는 양국 지도부 회의가 끝나면 곧바로 마운트 레바논과 북부지역 주둔 시리아군이 동부 베카계곡 쪽으로 철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라드장관은 이같은 철군이 2∼3일안에 완료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에밀 라후드 레바논 대통령을 비롯한 양국 고위 관리들은 다마스쿠스 회담에서 철군 관련 세부사항을 논의할 예정이다. 아사드 대통령은 앞서 5일 의회 연설을 통해 시리아군이 2단계 재배치를 통해 시리아 국경 내로 철수할 것이며 양국 관계자들이 이번주 이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아사드 대통령은 시리아군이 철수하더라도 레바논에서의 시리아 역할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영국과 유럽연합(EU), 러시아 등은 아사드 대통령의 철군 발표에 대해 “일단 긍정적”이라며 조심스러운 환영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 등은 곧바로 불만과 실망이라는 반응을 나타냈다. 보안요원들을 포함한 즉각적인 완전철군이 이뤄져야 한다며 압박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레바논에서도 반응이 엇갈렸다. 기독교계 대표적 야당지도자 왈리드 줌블라트는 “긍정적 출발이 될 수 있다.”며 환영했다. 하지만 아민 게마옐 전 대통령은 완전철군 여부가 확실하지 않다고 했고 망명지도자 미셸 아운은 “유엔 결의안을 회피하려는 (아사드의) 숨은 뜻을 잘 파악해야 한다.”며 불신을 드러냈다. 한편 베이루트에서는 이날 친시리아, 반시리아 시위대간에 충돌이 일어나 총격전까지 발생, 기독교계와 이슬람계간 대립이 다시 내전으로 비화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부추겼다. 유세진기자 yujin@seoul.co.kr
  • [22일 TV 하이라이트]

    ●어여쁜 당신(KBS1 오후 8시25분) 스키장에서 돌아온 기준은 인영에게 스키장에서 찍은 사진을 휴대전화로 보내며 들떠한다. 그런 가운데 기준이 자꾸 희주를 따돌린다는 사실에 조바심이 난 기준 엄마는 아들의 약혼을 닥달하고, 인철의 집으로 들이닥친 미정은 식구들 앞에서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김용만 신동엽의 즐겨찾기(SBS 오후 11시5분) 웃찾사 무대 뒤에 숨겨진 비밀을 폭로하는 ‘스타투표 눌러눌러’. 김용만과 신동엽이 김신영을 등에 업고 격렬하게 몸부림을 치는 그녀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김신영 바가지 머리의 비밀, 귀염둥이 이종규 아버지의 사연, 김형은의 얼짱 사진 등을 공개한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40분) 정부측 민병대와 저항군이 싸우면서 애꿎은 국민들만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곳. 휴전을 했어도 오히려 총격전은 그 전보다 3배 이상 늘었다.42년간의 영국 식민지 때부터 남북간 갈등이 계속돼 독립된 지금까지 남부 저항군과 북부 정부군 사이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아프리카 수단을 찾아간다. ●문화센터(EBS 오전 11시) 가족 구성원들의 조그마한 노력으로 웃음과 행복이 넘치는 가정을 만들어보자. 다양한 율동과 함께 할 수 있는 간단한 동요를 배우는 것으로 문을 연다. 이밖에도 철사옷걸이와 헌스타킹 등의 폐품을 이용해 멋진 놀이 도구도 만들 수 있다. 철사옷걸이 라켓을 만들어 공 던지기 대결을 펼쳐본다. ●굳세어라 금순아(MBC 오후 8시20분) 정완의 일로 몸져 누워 있던 정심은 노 소장이 정완을 호되게 패자 속상해한다. 금순 역시 정완으로부터 연락이 없자 밤새 뒤척거린다. 정완을 불러앉혀 놓은 노 소장은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묻고, 정완은 금순이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을 거라고 말한다. ●용서(KBS2 오전 9시) 형우의 만류도 듣지 않고 수민의 집으로 향하던 순복은 길에서 수형이와 마주친다. 꿈에도 그리던 친손자를 다시 찾은 기쁨에 수형이를 껴안고 눈물을 흘리던 순복은 그대로 수형이를 데리고 택시를 탄다. 뒤늦게 쫓아 온 수민은 간발의 차로 순복과 수형이가 탄 택시를 놓치는데….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공공의 적2’ 모델된 심재륜 전 고검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공공의 적2’ 모델된 심재륜 전 고검장

    사건의 서곡은 ‘석양의 폭탄주’에서 시작됐다. 무림의 고수들이 만났다. 전직 고검장 출신의 검객(檢客)과 스크린의 마술사. 술잔을 거푸 들이킨다. 시계바늘을 돌린다. 고민에 빠진다. 마침내 생각의 나무, 그 뿌리에서 뭔가 나온다. 느낌표와 마침표. 마술사가 무릎을 탁 친다. 얼마후 영화 ‘실미도’가 개봉됐다.1000만 관객을 훌쩍 돌파했다. 아무도 예상못했다. 사람들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이라고 했다. 사건은 계속됐다.‘공공의 적’이라는 이름으로. 심재륜(61) 전 고검장. 늘 따라붙는 수식어만 해도 간단치 않다.‘항명파동1호 검사’‘조폭과의 전쟁’‘현직 대통령 아들 구속’‘한보사건’‘장영자 어음사기사건’. 또 있다.“검찰이 이 지경이 된 것은 대통령 책임이오.”라는 직격탄을 날린 통제불능의 사나이. 우리나라 검찰수사의 대표적 ‘강력통’이며 ‘특수통’이다. 별명은 ‘심통’이다. 고집이 센 데다 성이 ‘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다름아닌 대박을 조언하는 ‘영화 코치’라는 점이다. 그렇다. 강우석 감독작품인 ‘실미도’와 ‘공공의 적’ 시리즈에서 적극적인 자문역할로 대형사고(?)를 터뜨렸다. 영화 ‘실미도’에서는 실미도 사건 의 현장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심 전 고검장은 사건 당시 인천시 부평의 특전사에서 군법무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사건이 나던 날인 주말 오후, 외출을 나가던 중 불과 몇십미터 지근거리에서 실미도를 탈출한 병력의 차량을 목격하게 됐다. 아울러 군병력과의 총격전도 직접 지켜볼 수 있었다. 때문에 정래혁 국방장관이 발표한 ‘무장공비’ 운운은 믿지도 않았다. 최근에 개봉된 ‘공공의 적2’에서는 사실상 전편에 걸쳐 자문역할을 했다. 이 영화에는 꼴통검사(설경구)에서 검사장까지 등장한다. 영화의 주인공이 검사라는 점도 최초이지만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내부를 처음으로 공개한 것도 심 전 고검장의 역할이 컸다. 특히 영화의 주된 흐름인 사학재단의 비리를 파헤치는 것과 조폭검거 등의 장면에서는 그의 냄새가 풀풀 난다. ●실미도 등 강우석감독 영화 자문 서울 서초동의 ‘심재륜 변호사 사무실’에서 심 전 고검장을 만났다. 최근 개봉된 영화 ‘공공의 적2’에 대한 얘기가 가장 먼저 나왔다. “원래 ‘공공의 적’이란 해방직후에 등장한 단어지요. 좌익쪽에서는 ‘인민의 적’으로 표현했습니다. 현대적 개념의 공공의 적은 사회전체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람, 즉 사회적으로 타도해야 할 대상을 말하지요. 영화 시사회를 봤는데 강우석 감독이 스토리구성을 잘한 것 같아요. 관객 500만명은 족히 넘지 않을까요.(웃음)” 강우석 감독과는 어떤 인연이 있는지 궁금했다. 강 감독은 평소 “심 전 고검장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는 표현을 자주해왔다. 이에 심 전 고검장은 “항명파동 직후 (자신은) 정부와는 부정적 이미지였지만 강 감독은 (영화사의)고문을 맡아달라고 선뜻 제의해왔다.”면서 “이 과정에서 폭탄주를 마시며 서로 더욱 친해졌다.”고 대답했다. 아울러 “실미도 사건 때의 현장목격담,‘공의 적1,2’를 제작할 때 강력부장과 중수부장 시절의 경험담 등을 많이 들려주었다.”고 부연했다. 그렇다면 ‘공공의 적2’에 등장하는 꼴통검사와 강력부장은 심 전 고검장의 모델이냐고 물었다. 그는 “(내가)초대 강력부장 출신이다. 그렇게 봐도 틀린 것은 아니다.”며 웃었다. 또 강 감독뿐만 아니라 설경구 등 제작진들과도 여러차례 저녁자리를 가지면서 조언을 해주었다고 덧붙였다. 시나리오를 쓴 작가도 검사장의 태도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고 말했다.(심 전 고검장은 술자리에서 강 감독을 ‘강간독’으로, 설경구를 ‘경구피임약’이라고 농이 섞인 별명을 지어주었다며 웃었다. 어느정도 친하게 지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폭탄주는 가득 채워야 부정부패가 없거든요. 칠부니 팔부니 하면 형평성이 어긋납니다. 술자리에선 선배와 후배를 평등하게 대접해야 합니다. 또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시기 때문에 탁자 밑에 쏟지 못하지요. 폭탄주는 투명하고 정직합니다.” 그는 “폭탄주를 마시고 2차 술자리를 하게 되면 주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1차에서 끝내도록 권유한다.”고 말했다. 폭탄주가 널리 보급된 것은 85년 이후이며 원조는 박희태 의원이라고 귀띔했다. ●개혁은 기본과 근간 흔들지 말아야 이번에는 사법개혁에 관한 질문을 했다. 그는 ‘개혁’이라는 말은 위정자들이 합리화하기 위한 단어에 불과하다고 전제했다. 아울러 개혁에는 ‘제도개혁’과 ‘인적개혁’이 있지만 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개혁을 하려면 기본과 근간을 흔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장기간 실험을 거치면서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우리나라 사법시험은 소수의 합격자들만을 일생동안 편하게 지내게 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지만 해방이후 오늘날까지 국가가 버틸 수 있는 지주대로써의 역할을 해온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면서 최근들어 1년에 1000여명씩 법조인이 양산되다보니 선비정신이 갈수록 퇴색되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가 사법시험을 치를 때는 달랑 5명만 뽑았다고 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플리바게닝 도입과 관련, 그는 “우리나라 법체계상 정당한 방법이 될 수는 없다.”면서 “배신논리가 법으로 보장받아서는 안 된다. 동양적 윤리로 볼 때 아들이 아버지를 배신하는 꼴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고 주장했다. ●박종철고문 조작 등 대형사건 지휘 그는 1944년 1월 충북 옥천 읍내에서 4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그가 두 살 때 세상을 떠났다. 선친은 교장으로 퇴임한 교육자였다. 그는 어린 시절 대부분을 대전에서 보냈다. 대전중학에서 3학년 1학기까지 다니다가 2학기때 보험회사에 취직한 형을 따라 서울로 올라왔다. 상경후 그는 동성중학을 졸업한 뒤 서울고에 진학했다.5·16의 영향으로 62년 서울대 법대를 진학할 때 정원이 300명에서 160명으로 줄어들어 더욱 좁은문을 통과했다. 졸업 이듬해에 제7회 사법시험에 차석으로 합격했다. 연수과정인 서울대 사법대학원은 수석으로 졸업했다. 이후 1972년 정식으로 서울지검 검사로 발령받아 1993년 검사장으로 승진할 때까지 우리 사회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다뤘다. 박종철군 고문치사 은폐조작사건, 비행선 부정도입사건, 오대양집단자살사건, 부산 초원복집사건도 그가 진두지휘한 사건이었다. 이밖에도, 서방파의 두목 김태촌씨, 양은이파의 두목 조양은씨,OB파의 두목 이동재씨를 비롯한 폭력조직 3대 패밀리를 소탕한 것도 그였다. 그는 1978년 서른네살 때 결혼했다. 주례는 민복기 대법원장이 맡았다. 신부는 큰 누님 친구의 딸인 공혜경(55)씨. 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으며 10년간 한양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심 전 고검장은 음악과 미술도 좋아하고 촌철살인의 농담실력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 지난 2002년 33기 사법연수원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가장 존경받는 법조인으로 뽑히기도 했다. 그의 투명성과 인자함,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성격 등이 각인돼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소외되고 억울한 편린들을 많이 봅니다. 인간생명의 존중함, 신체의 자유 등에 대해 새삼 배우고 반성하고 있지요.” 검찰생활 30년, 그는 “수사는 한마디로 종합예술”이라고 표현했다. 아울러 후배검사들에게 ▲피의자를 굴복시키지 말고 ▲조그마한 절차는 상사에게 양보하고 ▲외압이 들어올 것을 대비해 속도조절을 할 필요가 있으며 ▲집착하거나 너무 서둘러서도 안된다는 등의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의 좌우명은 思無邪/德不孤必有隣/和而不同이다. 즉 생각함에 사악함이 없고, 덕을 베풀면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 또한 화합하되 뇌동하지 않아야 한다의 뜻이다. ■ 그가 걸어온 길 ▲1944년 충북 옥천 출생 ▲1962년 서울고등학교 졸업 ▲66년 서울대법대 졸업 ▲67년 제7회 사시합격(차석) ▲69년∼72년 육군법무관(대위) ▲69년 서울대법대 대학원 졸업 ▲72년 서울지검 검사 ▲82년 밀양지청장 ▲90년 서울지검 강력부장 ▲92년 서울지검 3차장 검사 ▲93년 대검 강력부장 ▲94년∼97년 대전·광주·인천지검 검사장 ▲97년 대검 중앙수사부장, 대구고검 검사장 ▲2001년 대검 고검장(본부근무) ▲2001년 부산고검 검사장▲2002년∼변호사심재륜법률사무소 ■ 저서=사법대학원제도와 운영 km@seoul.co.kr
  • 印尼 정부·반군 교전… 구호 비상

    쓰나미 최대 피해지역인 인도네시아 아체에서 총격전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구호단체들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일시적인 휴전 상태에 돌입했던 정부군과 반군이 사실상 교전을 재개한 것으로 보인다. 9일 새벽 아체주 주도(州都) 반다아체 유엔 구호본부 인근 아체경찰청 부청장 집에 반군이 총격을 가했다고 경찰이 밝혔다. 사실 확인은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양측간의 휴전 협약이 깨진 징후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어 구호단체의 안전에 비상이 걸렸다. 경찰과 유엔은 총격이 구호본부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었고 반군이 외국인을 목표로 삼은 경우가 없었다고 밝혔지만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경찰은 “지난 5일 아체 북부 이재민 수용소 부근 세우누둔 마을에서 정부군이 반군과 1시간가량 전투를 벌여 2명을 사살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아체주의 자치독립을 요구하며 정부를 상대로 싸워온 반군은 쓰나미 피해를 입은 뒤 곧바로 휴전을 제의, 전투를 중단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정부군이 구호 활동을 빌미로 반군을 소탕하려 한다.’거나 ‘반군이 정부군을 다시 공격했다.’는 언론 보도가 잇따르는 등 사실상 교전이 재개된 상황이다. 한편 아체에서는 의약품 등의 구호물품이 턱없이 부족, 전염병이 빠르게 퍼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에서 활동중인 인도네시아 의사 호세 리잘은 “호흡기 질환과 설사, 장티푸스, 피부병, 폐렴 환자들이 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8일 전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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