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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장쑤성 금속공장 폭발…69명 사망 (종합3보)

    중국 장쑤(江蘇)성 쿤산(昆山)시의 한 금속공장에서 2일 오전 7시37분께(현지시간) 폭발 사고가 나 3일 현재까지 69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 신화통신과 중국중앙(CC)TV 등 관영 언론에 따르면 이번 사고로 44명이 즉사했고 25명은 병원으로 옮겼으나 결국 목숨을 잃었다. 1차 집계 결과 부상자도 187명에 달한다고 쿤산시 당국은 밝혔다. 부상자 대부분의 화상 부위가 몸 전체의 90% 이상인데다 경상자의 경우도 50% 이상이어서 추가 인명피해 발생 가능성이 큰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사고는 쿤산시 개발구에 있는 중룽(中榮)금속제품유한공사(중룽금속) 생산공장의 자동차 휠 광택 공정이 이뤄지는 작업장에서 발생했다. 작업장 공기 중 분진 농도가 지나치게 높은 가운데 불꽃이 일면서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추정됐다. 사고 당시 공장에는 총 264명이 근무 중이었으며 주말을 맞아 추가 근무를 하던 근로자가 많아 희생자 규모가 컸던 것으로 조사됐다. 공안 당국은 이 회사의 회장과 사장 등 책임자 5명을 구류조치한 뒤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사고 직후 소방당국이 긴급 출동해 현장 구조작업을 벌였지만 대규모 사상자 발생을 막지는 못했다. 중룽금속은 미국 GM의 하청업체로 알루미늄 합금, 전기도금 등을 전문으로 하는 대만계 외자기업이라고 신경보(新京報) 등은 전했다. 대만 국민당은 이날 대륙 사무부 구이훙청(桂宏誠) 주임을 통해 마잉주(馬英九) 주석이 전하는 희생자와 가족들에 대한 깊은 애도와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번 사고로 사상자가 대거 발생함에 따라 기업들의 부실한 공장관리 실태가 또 한번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부상자 구조에 전력을 기울이고 사고 원인을 철저히 밝히는 동시에 사업장 안전조치도 한층 강화할 것을 지시했다. 중국 국무원은 사고 직후 왕융(王勇) 국무위원을 대표로 하는 사고대책반을 현장에 급파, 사고 수습과 원인 조사 등을 지휘하도록 했다. 국가안전생산감독관리총국도 양둥량(楊棟梁) 국장을 사고현장에 파견하고 국내의 분진 폭발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사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최고인민검찰원도 검사를 파견, 장쑤성 검찰원 등과 함께 협력 수사를 벌이도록 했다. 사고 이후 쿤산에 있는 팍스콘(중국명 푸스캉<富士康>) 등 40여개 기업들도 자체적으로 생산을 중단하고 작업장 안전실태 점검에 들어갔다. 텅쉰(騰迅)은 “쿤산 팍스콘 공장에서도 대규모 희생자는 초래되지 않았지만 유사한 분진 폭발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다”면서 “팍스콘 청두(成都) 공장에서는 2011년 5월 분진 폭발사고로 3명이 숨지고 15명이 부상했었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는 사고 수습 후 외자기업을 비롯한 취약 사업장에 대한 대대적인 안전관리 강화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쿤산 시민들은 사고 발생 직후 자발적으로 헌혈에 나서고 촛불집회를 통해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기도 했다. 사고로 인해 남편이 중상을 당한 한 여성은 여동생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등 안타까운 사연들도 속출하고 있다. 그동안 중국에서는 크고 작은 ‘산업재해’로 인해 상당한 인명피해가 초래된 바 있다. 앞서 지난해 6월에는 지린(吉林)성 닭 가공공장에서 화재가 일어나 121명이 목숨을 잃었고, 같은 해 11월에는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 경제기술개발구에서 국유기업인 중국석유화학이 관리하는 송유관이 폭발해 50여 명이 숨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빛 메아리’ 현상 보여주는 ‘별난 초신성’ 발견

    ‘빛 메아리’ 현상 보여주는 ‘별난 초신성’ 발견

    허블 우주망원경이 지구로부터 약 1억8000만광년 떨어진 한 은하 속에서 ‘별난 초신성’을 확인했다고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최근 발표했다. NGC 2441로 알려진 이 은하는 기린자리 북쪽에 있는 나선은하다. 1882년 독일 천문학자 빌헬름 템펠이 처음 관측한 이 은하의 거의 중심에 있는 한 초신성이 매우 흥미롭다는 것을 천문학자들이 밝혀냈다. 1995년 처음 발견돼 SN1995E로 이름 붙여진 이 초신성은 la형으로 분류된다. la형 초신성은 백색왜성이 쌍성계를 이루는 동반성의 물질을 자신이 불안정해질 때까지 빨아들여 격렬한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모든 백색왜성은 똑같은 질량이 됐을 때 평형이 깨진다. 이는 이들이 모두 똑같은 고유 밝기를 가진 초신성을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초신성은 우주에서 거리를 측정하는 표준 촛불(촉광)으로 이용된다. 하지만 SN1995E는 또 다른 방법으로도 유용할 수 있다고 한다. 최신 관측에서 이 초신성은 ‘빛 메아리’라는 현상을 보여줄 수 있음이 나타났다. 빛 메아리는 우리가 보는 방향으로 빛이 먼지 때문에 산란·반사해 메아리처럼 보이게 만드는 현상이다. 허블은 2006년에 어느정도 선명해져 가는 SN1995E를 관측했다. 선명도가 높아지는 것은 초신성의 빛이 주변을 둘러싸는 구형의 먼지 껍질 때문에 산란됐음을 의미한다. 이런 메아리는 초신성과 같은 천체의 ‘근처 환경’과 초신성 폭발 전 ‘원래의 별’에 관한 특징을 탐사하는데 이용할 수 있다. 만일 SN1995E가 빛 메아리를 나타내고 있다면 이를 보여주는 la형 초신성은 지금까지 SN1991T와 SN1998bu라는 두 초신성 밖에 없었으므로 극소수 분류에 속하게 될 것이다. 사진=NASA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사회 모순에 맞선 한국의 대중 그들은 누구인가

    사회 모순에 맞선 한국의 대중 그들은 누구인가

    대중의 계보학/김성일 지음/이매진/352쪽/2만원 스페인 철학자 오르테가 이가세트는 대중이 장악한 권력을 정치적 진보가 아닌 문명 퇴보로 판단하고, 이들의 움직임을 반란(Revolt)이라고 했다. ‘집단지성’의 저자인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레비는 대중의 양상을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에서 ‘우리는 생각한다’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확실한 것은, 대중의 움직임은 오늘의 현상이라는 점이다. “고지식한 지식인과 부패한 정치인, 그리고 무능력한 공무원과 신자유주의 후광으로 기세등등한 자본가”들이 맺은 동맹과 정면 충돌한 대중은 세계 곳곳에서 다양하게 드러난다. 이 같은 물살은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시민교육을 강의하는 김성일씨는 신간 ‘대중의 계보학’에서 지난 100여년 동안 한국에서 형성된 대중의 지층을 촘촘히 살핀다. 자신의 박사 논문 가운데 이론적 배경을 살리고 나머지를 재구성했다. 저자는 2002년을 한국에 ‘새로운 대중’이 출현한 시기로 본다. 무질서와 폭력, 마비된 이성으로 규정된 대중이 자율적인 질서와 규범을 만들며 집단행동을 실천했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가 들끓던 2008년은 대중의 결집이 정점에 달한 시점이다. ‘이전 대중’의 시초는 19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가 발견한다. 근대식 학교가 들어서고 출판 사업이 발전하면서 지식의 주체가 된 ‘근대적 대중’이 형성됐다. 그 한 축인 모던보이와 모던걸은 절실한 미래보다는 자유분방하고 유행을 좇는 소비의 주체였다. 또 다른 축은 민권에 대한 열망을 드러낸 저항의 주체로서 동학농민전쟁, 만민공동회, 3·1운동, 사회주의운동 등을 이끌었다. 1960년대 들어 경제근대화와 도시화가 추진되면서 대중의 의미는 달라졌다. 국가가 주도한 경제개발과 반공이데올로기 속에 대중은 ‘산업역군’과 ‘반공주의자’로 호명됐다.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바닥에 깐 이 말은, 박정희 정권의 취약한 정당성에 대한 의심과 저항을 무마하기 좋은 수단이 됐다. 1980년대 들어서 비참한 노동 현실을 공론화한 노동자와 학생들을 중심으로 대중 운동이 구축되고 폭발했다.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정권의 폭력성을 체감하고, 1987년 6월 항쟁으로 대중이 국가권력에 맞선 저항 주체로 나섰다. 책은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자리 잡은 신자유주의 속에서 자기계발의 주체가 된 대중부터 인터넷이 확산된 뒤 새로운 저항 세력으로 떠오른 디지털 신인류까지 변화상을 차근차근 따지면서 촛불집회에 다다른다. 2002년 벽두에 터진 ‘오노 사건’(김동성의 금메달 박탈 사건)은 사이버 공간을 반미의 공간으로 채우면서 사회적 결속을 다지고, 월드컵 길거리 응원전은 축제처럼 결집을 형성했다. 그해 미선이 효순이 촛불집회는 길거리 응원전의 정치적 승화로 평가했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에서 계급·계층·세대·성별을 초월한 대중은 하향식 계몽과 지도가 아닌 상향식의 자발적인 참여로 변화했다. 그러나 한편 대중의 진화는 맹목적 애국주의와 왜곡된 포퓰리즘이라는 “모순적인 모습”도 보이고 있다. 저자는 “대규모 대중 결집은 한국 사회의 모순과 억압 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연구해야 하는 주제”라면서 “대중 연구는 지금 여기 대중의 삶을 짓누르는 부당한 권력과 자본에 맞서는 정치적 기획”이라는 의미를 강조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지난 100여년간 한국 대중운동의 흐름을 분석한 ‘대중의 계보학’에서 저자는 2002년을 ‘새로운 대중’이 출현한 때로 봤다. 그해 월드컵 길거리 응원전(왼쪽)에서 축제를 열듯 결집한 대중은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오른쪽)에서는 신자유주의 정책 반대 등 의제를 설정하며 대중운동을 발전시켜 나갔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 집단행동 움직임…광우병 집회 재현되나

    철도노조의 파업과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촉발한 사회 참여 운동이 온라인을 통해 더욱 크게 확산될 전망이다. 오늘의 유머, 뽐뿌, 엠엘비파크와 같은 국내의 대표적 커뮤니티 사이트 회원들이 집단행동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오늘의 유머’ 이용자 ‘밀크대오’는 22일 ‘대한민국 온라인 커뮤니티 사전공지’라는 제목으로 “할 수 있다면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 시작하려 합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대규모 소셜 페스티벌을 통해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것을 알리고자 합니다”는 글을 올리고 유명 커뮤니티 사이트간의 연합을 제안했다. 이 글은 ‘뽐뿌’, ‘엠엘비파크’, ‘여성시대’, ‘레몬테라스’, ‘독하고 도도한 여성들’과 같은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로 옮겨진 뒤 폭발적인 댓글과 추천을 받으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이들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에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선 전례가 있어 이번 철도파업이 노사정 갈등을 넘어 또다시 전 국민적인 시위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커뮤니티 사이트 연합 운동은 아직 구체적인 행동계획은 잡히지 않은 채 개략적인 실무를 진행할 운영진만 구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앞서 ‘소울드레서’, ‘쌍화차 코코아’, ‘뽐뿌’ 이용자들은 라면, 초코파이, 핫팩 등을 철도노조에 전달하며 파업지지 의사를 표명해왔다. 따라서 이번 연합 운동이 지금까지의 단순지원을 넘어 응집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철도 파업 분수령… 노조 ‘파업 동력’ 유지할지 관건

    코레일 이사회가 10일 예고한 대로 수서발 KTX 법인 설립을 의결하면서 철도파업이 ‘분수령’을 맞았다. 철도민영화의 전 단계로, 철도 노조가 줄곧 반대해 온 수서발 KTX법인 설립이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을 맞았기 때문이다. 노조 집행부가 파업 명분으로 내세웠던 이사회를 저지하지 못하면서 ‘파업 동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파업 장기화 여부를 가르는 관건이다. 노조는 즉각 철도 민영화의 시발점이 되는 코레일 이사회 강행 및 의결을 규탄하며 강력한 투쟁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한 코레일은 4000명이 넘는 파업 참가자 전원을 직위해제하는 등 강경 대응으로 맞서고 있고 이에 부담을 느낀 노조원들의 이탈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코레일 관계자는 “이사회가 마무리됨에 따라 파업 참가자의 업무 복귀가 늘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2009년 11월 8일간 진행됐던 파업의 심각한 후유증을 경험한 노조원들의 불안감도 무시할 수 없다. 당시 파업으로 조합원 1만 2000명이 징계를 받았고 197명이 무더기로 해고됐다. 이 가운데 50명은 복직하지 못했다. 더구나 인력 확보, 해고자 복직 등을 이유로 파업을 했던 2009년과 달리 이번에는 정부가 파업에 앞서 일찌감치 ‘불법 파업’으로 규정하고 강경 대응을 하고 있는 것도 부담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결국 파업 장기화 여부는 열차 운행의 직접적인 책임을 맡고 있는 기관사의 조기 복귀 여부에 달려 있다. 철도노조원 2만여명 중 기관사는 4500여명인데, 현재 기관사의 절반 정도가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관사들이 한두 명씩 복귀를 시작하면 파업의 동력이 급격하게 약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철도노조는 현재까지는 오히려 투쟁 강도를 높여 나가고 있다. 노조는 이날 서울역 광장에서 열리는 철도민영화 저지 범국민 촛불대회를 시작으로 11일 민주노총 경고연대파업 결의대회, 오는 14일 철도노동자 상경투쟁 계획을 밝혔다. 18일로 예고된 서울지하철노조의 파업까지 끌고 간다면 지금과는 다른 메가톤급 폭발력을 보이며 파업이 장기화할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철도산업계 관계자는 “이사회의 결정으로 파업의 강도가 약해질지 아니면 오히려 장기화 국면을 초래할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다”면서 “파업 명분은 약해졌지만 정치권, 시민단체의 가세 등 외부변수가 더해지면서 노조 집행부가 결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열린세상] 한미 전략동맹 추진은 글로벌 협력으로/정서용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열린세상] 한미 전략동맹 추진은 글로벌 협력으로/정서용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윤창중 전 대변인 문제로 인해서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성과가 반감되는 듯하여 안타깝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 첫 공식 해외 방문지로 동맹국이 된 지 60년이 된 미국을 택하였고, 여기서 한·미동맹을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새로운 발전방안이 제시되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기존 군사안보 동맹으로부터 한반도 평화통일, 동북아 평화협력 그리고 지구촌 평화와 번영에 공동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협력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1960년대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이자 분단국으로 미국의 원조와 보호 없이는 생존이 어려웠다. 그러나 이제는 세계 5위 자동차 생산국이자 강남 스타일로 대변되는 문화 선도국으로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핵안보정상회의 그리고 글로벌녹색성장기구의 국제기구화 주도, 녹색기후기금 사무국을 유치하면서 개도국이 본받고자 하는 모델로 성장하였다. 따라서 박 대통령의 제안은 우리의 성공을 바탕으로 미국과 긴밀한 협력을 통한 파트너 리더십 발휘가 가능해졌다는 자신감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 향후 양국 간의 협력은 군사문제를 넘어서서 다양한 분야에서 추진될 것이다. 이전에야 치열한 국가 간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군사동맹이 중요했다. 그러나 이제는 지구촌에서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국가들 간에 기후변화, 환경오염, 재난, 테러와 같은 글로벌 문제에 대한 공동 대응은 물론 다양한 경제, 사회, 문화적 협력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과제는 한·미 간의 파트너 리더십을 어떻게 구체화해 나갈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박 대통령은 한·미 간의 협력을 한반도, 동북아, 지구촌 전체로 나누어서 언급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구분이 미국 입장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좀 더 따져봤으면 좋겠다. 한반도 신뢰 구축, 동북아 평화협력 추진은 관계 당사국들 간에 협력 사업 추진을 통하여 추진되어야 한다. 그런데 물리적으로 존재하고 있지 않은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미국이 적극적으로 우리와 협력을 하는 경우, 자칫하면 국내의 반미 감정을 부추기고 북한·중국 등 주변국에 대한 주권 간섭으로 비쳐질 가능성도 있다. 출범 후 약 1년 만에 이미 양국에 혜택을 주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이명박 정부에서 출범 직후 반미 감정으로 인한 촛불 시위로 많은 사회적 비용을 야기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북한과의 신뢰 구축을 위한 DMZ 평화공원 추진, 북한의 산림녹화 사업, 백두산 화산 폭발에 대한 대응에는 미국이 내놓고 참여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오는 2017년쯤 우리와 중국은 물론 북한의 참여도 예상되는 황해 해양환경 보호를 위한 지역기구로서 황해위원회 설립이 예상되는데, 미국이 직접 당사자로서 참여하면 당장 중국이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태 이후 한국, 일본, 중국 간에 동북아 차원의 원자력 안전 협력체제에 대한 논의 과정에 미국을 포함시키는 것은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한·미 동맹의 포괄적 전략동맹으로의 확대 발전은 양국이 전략적으로 긴밀하게 협력할 수 있는 이슈에 대한 창조적 글로벌 협력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북한의 산림녹화에 필요한 재원은 우리나라에 본부가 있는 녹색기후기금(GCF)에서 북한을 포함한 개도국들의 산림보호 관련 어젠다를 놓고 한·미 간에 공조함으로써 마련할 수 있다. 동북아 차원에서 테러와 원자력 안전의 문제는 워싱턴과 서울에서 열렸던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집중적으로 다뤘던 어젠다였다는 점에서 핵안보정상회의를 통한 한·미 간의 공조가 매우 효과적일 것이다. 지구촌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 열쇠를 쥐고 있는 온실가스 다(多)배출국가인 중국, 미국, 그리고 일본이 한·미 간의 적극적인 협력의 바탕 위에서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와 유엔 기후변화 협상을 통하여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동북아는 물론 지구촌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한·미 간의 포괄적 전략동맹을 위한 창조적 아이디어를 기대해 본다.
  • [2012 대선 인맥 대해부] 문재인의 사람들(하)

    [2012 대선 인맥 대해부] 문재인의 사람들(하)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경선 캠프 외부에도 많은 실질적·잠재적 지지 세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자리 잡고 있다.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팬클럽으로 조직된 노사모는 현재 12만 3400여명의 홈페이지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구분하지 않고 폭발력 있는 조직력을 보여 줬다. 2004년 노 대통령 탄핵반대 촛불시위,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협상 관련 광우병 파동 촛불시위, 2009년 용산참사 규탄 촛불시위 등에서 어김없이 목소리를 높였다. 노사모 회원들은 노무현과 문 후보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번 대선에서도 온·오프라인에서 문 후보의 든든한 지지세력이 되고 있다. 최근에도 이들은 민주당 경선에서 문 후보가 1위를 할 때마다 소식을 타전하며 문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노사모 대표였던 배우 명계남, 권해효씨 등을 비롯해 예술·문화계 등에 포진한 노사모 또는 친노사모계 유명 연예인들이 대선을 앞두고 공개 지지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안도현 시인, 공지영 소설가 등도 문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정봉주 민주당 전 의원의 인터넷 팬카페인 ‘미권스’(정봉주와 미래권력들)도 문 후보의 든든한 지원 세력이다. 미권스는 최근 문 후보 공개지지를 두고 내홍을 겪기도 했지만 대선이 다가올수록 문 후보로 결집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재 회원수만 20만명이 넘는다. 아직 공개 지지를 선언하지 않은 민주당 의원들도 잠재적 문 후보의 사람들이다. 특히 문 후보와 ‘동기’인 민주당 내 초선 의원들은 문 후보의 든든한 조력자로 거듭날 가능성이 높다. 김광진, 배재정, 서영교, 은수미 의원 등이다. 아직 중립을 유지하며 지지 입장을 밝히지 않은 민주당 내 중진 의원들도 머잖아 당의 공식 후보인 문 후보에게 합류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노사모 등 문 후보에 대한 외곽 지지 세력은 기존의 ‘친노’ 프레임을 벗지 못했다는 점이 대선에서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들이 팬클럽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에 ‘지지 성향’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중립 성향의 유권자들에게 오히려 거부감을 안겨 줄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비판을 받아야 할 일에도 맹목적인 지지를 보냄으로써 역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그럼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 때문에 ‘친노 브랜드’는 여전히 흥행을 보증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문 후보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열린세상] 위기의 시대, 국가위기관리시스템 구축해야/김현석 국가경영연구원장

    [열린세상] 위기의 시대, 국가위기관리시스템 구축해야/김현석 국가경영연구원장

    현재 지구상의 모든 개인이나 국가는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다양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위기는 양면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잘 처리하면 기회가 되고, 잘못 처리하면 그야말로 위기가 된다. 우리의 노력으로 다가오는 위기를 막기는 어렵지만 우리가 어떻게 준비하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피해를 줄일 수는 있다. 국가위기란 국민의 생명과 재산, 국가의 주권과 영토, 국가를 구성하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국가의 핵심요소나 가치에 중대한 위해가 가해질 가능성이 있거나 가해지는 상태를 말한다. 즉, 테러·전쟁 등 군사적 안보 위기, 자연재난 위기, 정보통신·금융·교통·운송·전력·원전 폭발 등의 핵심기반 위기 등이 국가위기에 포함될 수 있다. 이러한 국가위기의 특징은 발생 원인이 복합적이고, 돌발적이기 때문에 예측이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국가위기는 지속기간이 짧지만 한번 발생하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는 반면, 관련 부처가 많아 짧은 기간에 대응책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최근 우리가 겪는 풍수해, 지진, 국제테러, 구제역, 연평도 도발, 해운대 오피스텔 화재, 일본의 지진에 따른 원전 방사능 누출 등 일련의 사태를 통해 국민의 안전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고 있다. 이외에도 글로벌 경제 위기로 말미암은 국내 실물경제 위축, 부동산 가격하락, 가계부채 증가 등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특히 이명박(MB) 정부 초기에 미국산 소고기 수입문제로 야기된 촛불사태는 일시적으로 국가경영의 공백을 가져올 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따라서 위기징후를 잘 예측하고 준비하는 상시예방시스템을 구축하는 동시에 국가위기가 발생할 경우 국가의 가용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범국가적 위기관리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국가위기관리시스템 구축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하드웨어 측면에서 살펴보면, MB 정부는 과거 국가안전보장회의(NSC)로 통합된 국가위기관리시스템을 외교안보와 재난관리로 분리해 외교안보는 청와대가, 재난관리는 행정안전부가 담당하도록 했다. 그러나 구제역 파동이나 연평도 사건 등을 통해 통합관리시스템의 미비, 관련 기관의 위급 시 행동 매뉴얼 준비 부족 및 훈련 부족 등으로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었다. 따라서 청와대의 위기관리상황실, NSC, 안보관계장관회의,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 행정안전부의 비상기획위원회 등을 통합 관리할 수 있는 위기관리사령탑(control tower)을 청와대에 신설하여 국가위기를 총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국가위기 관리체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국가위기와 관련된 모든 조직 간 연계·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현행 국가위기관리 관련 조직, 법, 제도를 체계적으로 정비하여야 한다. 현행 국가 위기관리 관련 법규는 헌법, 비상대비자원관리법,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민방위기본법, 통합방위법, 계엄법, 국가전시지도지침, 국가위기관리지침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 정부 부처의 다양한 법령과 행정조직이 제각각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합하여 효율적으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상위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개별위기에 대한 각 정부부처와 관계기관들의 기능을 체계화하여 국가위기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유기적인 협력 하에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행정시스템을 구축한 후 부처별 표준 매뉴얼을 정교하게 만들고, 이에 따른 훈련을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가의 위기관리시스템은 사후 복구보다는 위기 발생 전의 예방체제를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 따라서 국가적 위기의 징후를 판단하고 그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연구, 분야별 위기사례의 수집·분석 그리고 예측 및 대응방안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국가위기와 관련된 현황과 문제점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전문 인력의 양성 및 훈련 등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다음 정부는 이러한 모든 것들을 포괄하는 완벽한 국가위기시스템을 구축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함으로써 국민의 보다 평안한 삶을 보장해 주길 기대한다.
  • 비판과 비방 사이

    비판과 비방 사이

    4·11 총선이 다가오자 트위터·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사실상 ‘총선 게시판’으로 바뀌었다. 지난 2월 공직선거법의 개정으로 폴리터리안(Politterian, 정치인·트위터사용자의 합성어)들이 지지 후보의 당선을 위해 움직이면서부터다. 리트위트(Retweet·퍼나르기)를 이용한 조직적인 낙선운동도 본격화됐다. 3일 트위터에는 온통 선거 관련 글로 가득 찼다. 파워 폴리터리안들은 특정 후보 지지를, 후보자들은 ‘트친’(트위터 친구)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나는 꼼수다’ 패널인 김용민 서울 노원갑 야권단일후보는 “여론조사 결과 10% 포인트 정도 열세로 나타났습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절실합니다.”라고 띄웠다. 이 글은 822회나 리트위트되면서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전여옥 국민생각 비례대표 후보는 “보수의 불씨”,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트친님들이 주변분들 설득해 주세요. 별로 어렵지 않아요~.”라며 트위터로 선거운동을 폈다. 트위터를 통한 낙선운동도 벌어졌다. ‘세대별 노조’인 청년유니온은 “기억하자 찍지 말자 ‘청년5적’-청년유니온이 선정한 BIG5 낙선 대상! 홍준표/김종훈/이재오/차명진/김진표-무한RT(리트위트) 고고씽~!!”이라는 글로 네티즌들을 끌어들였다. 영화 ‘부러진 화살’에 등장한 변호사의 실제 모델인 박훈 변호사는 “단 한 사람만 낙선되기를 원한다면? 나라 팔아먹은 FTA 행동대장 김종훈!”이라는 주장을 쏟아내기도 했다. SNS 활용은 후보자들의 필수적인 선거운동 방식이다. 비용이 들지 않을뿐더러 범위나 횟수에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에게 선거 운동의 자유를 보장해 준다는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트위터상에서 드러나는 정치적 견해가 한쪽으로 편향되게 보일 수 있지만 트위터 공간은 모든 후보자와 네티즌에게 똑같이 열려 있는 만큼 공평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낙선을 목적으로 특정 후보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하거나 비방하는 글을 올릴 경우가 문제다. 또 내용의 진위를 떠나 파급력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보수 쪽인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이날 트위터에서 김용민 후보를 겨냥해 “포르노배우 수준도 안 되는 정치 양아치”, 유시민 공동대표에게 “친노종북이 권력에 눈이 뒤집혀 궁금했는데 마치 화산폭발 앞두고 뱀떼가 설치는 격”이라고 비난했다. 진보 쪽인 한웅 촛불인권연대 변호사는 “의사가 수술을 위해 메스를 대는 것이 ‘참여정부의 공무원 직무감찰’이고, 조폭이 이권을 위해 칼부림하는 것이 ‘MB정권의 불법 민간인 사찰’이다. MB정권의 물타기는 마치 조폭이 의사에게 ‘너도 칼 썼잖아’ 하고 따지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중앙선관위 측은 “허위사실공표죄, 후보자비방죄 등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정도로 처벌 기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네티즌들의 주의가 요구된다.”면서 “선거법상 문제가 되는 글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SNS에는… “포르노에다 뱀떼·양아치까지”

    SNS에는… “포르노에다 뱀떼·양아치까지”

    4·11 총선이 다가오자 트위터·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사실상 ‘총선 게시판’으로 바뀌었다. 지난 2월 공직선거법의 개정으로 폴리터리안(Politterian, 정치인·트위터사용자의 합성어)들이 지지 후보의 당선을 위해 움직이면서부터다. 리트위트(Retweet·퍼나르기)를 이용한 조직적인 낙선운동도 본격화됐다. 3일 트위터에는 온통 선거 관련 글로 가득 찼다. 파워 폴리터리안들은 특정 후보 지지를, 후보자들은 ‘트친’(트위터 친구)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나는 꼼수다’ 패널인 김용민 서울 노원갑 야권단일후보는 “여론조사 결과 10% 포인트 정도 열세로 나타났습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절실합니다.”라고 띄웠다. 이 글은 822회나 리트위트되면서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전여옥 국민생각 비례대표 후보는 “보수의 불씨”,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트친님들이 주변분들 설득해 주세요. 별로 어렵지 않아요~.”라며 트위터로 선거운동을 폈다. 트위터를 통한 낙선운동도 벌어졌다. ‘세대별 노조’인 청년유니온은 “기억하자 찍지 말자 ‘청년5적’-청년유니온이 선정한 BIG5 낙선 대상! 홍준표/김종훈/이재오/차명진/김진표-무한RT(리트위트) 고고씽~!!”이라는 글로 네티즌들을 끌어들였다. 영화 ‘부러진 화살’에 등장한 변호사의 실제 모델인 박훈 변호사는 “단 한 사람만 낙선되기를 원한다면? 나라 팔아먹은 FTA 행동대장 김종훈!”이라는 주장을 쏟아내기도 했다. SNS 활용은 후보자들의 필수적인 선거운동 방식이다. 비용이 들지 않을뿐더러 범위나 횟수에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에게 선거 운동의 자유를 보장해 준다는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트위터상에서 드러나는 정치적 견해가 한쪽으로 편향되게 보일 수 있지만 트위터 공간은 모든 후보자와 네티즌에게 똑같이 열려 있는 만큼 공평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낙선을 목적으로 특정 후보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하거나 비방하는 글을 올릴 경우가 문제다. 또 내용의 진위를 떠나 파급력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보수 쪽인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이날 트위터에서 김용민 후보를 겨냥해 “포르노배우 수준도 안 되는 정치 양아치”, 유시민 공동대표에게 “친노종북이 권력에 눈이 뒤집혀 궁금했는데 마치 화산폭발 앞두고 뱀떼가 설치는 격”이라고 비난했다. 진보 쪽인 한웅 촛불인권연대 변호사는 “의사가 수술을 위해 메스를 대는 것이 ‘참여정부의 공무원 직무감찰’이고, 조폭이 이권을 위해 칼부림하는 것이 ‘MB정권의 불법 민간인 사찰’이다. MB정권의 물타기는 마치 조폭이 의사에게 ‘너도 칼 썼잖아’ 하고 따지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중앙선관위 측은 “허위사실공표죄, 후보자비방죄 등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정도로 처벌 기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네티즌들의 주의가 요구된다.”면서 “선거법상 문제가 되는 글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사회변혁 의지 강남좌파가 中民 해당”

    “사회변혁 의지 강남좌파가 中民 해당”

    “그게 바로 ‘중민’이죠. 보수가 늘 한탄하는 게 그거잖아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다는 것.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뭡니까. 중상류에 속해 있지만 하층민에 대해 늘 부채의식을 가지고 그들을 위해 무얼할까 고민하는 거잖아요. 보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다고 한탄하다가, 진보가 진짜 고민하고 행동하면 위선적인 좌파라고 낙인 찍어 버립니다. 지나치게 이념적으로, 대립적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은 바로 보수 그들 자신이에요.” 중민과 ‘강남 좌파’에 대해 묻자 한상진(67)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한 교수의 트레이드 마크는 중민(中民)론이다. 중산층 개념이 소득수준을 기초로 귀속감을 묻는 사회통계조사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중민은 거기다 하나 더 추가한다. “자신이 거둔 성공과 발전이 자신만의 노력이나 자질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희생에 근거해 이뤄졌다는 자의식을 가진” 사람들이다. 민중을 전면에 내세우되 민중은 아닌 이들이다. 중산층을 정말 계급적인 이해관계에 충실한 보수적인 중산층과 부채의식을 가진 중민층, 두 계층으로 나눈 뒤 중민에게 사회변혁의 힘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 중민론을 한 교수가 1987년에 내놨다. 민주화투쟁 와중에 온갖 변혁이론들이 쏟아져 나올 때다. 그때 민중에 의한 변혁 가능성을 부정했다. 이론적으로 마르크스 역사철학에 대해 “어떤 집단도 변혁 주체로서 특권적 지위를 선험적으로 부여받지 못한다.”고 선언했다. 노동계급의 전위성 운운하던 때 이런 이론을 내놨으니 엄청난 비판도 받았다. 하나 현실 사회주의권 붕괴는 중민론에 판정승을 안겼다. 한 교수는 ‘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을 만들었다. 2010년 정년퇴임 뒤 본격적 연구를 위해서다. 지난 30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재단 사무실에서 첫 세미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한 교수는 중민론을 한 단계 더 격상시킨 ‘제2근대화론’을 들고 나왔다. 그간의 급격한 근대화를 반성해 보자는 차원이다. 반성이긴 하되 근대화를 포기하진 않는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과는 다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비판만 할 뿐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못해서”다. 한 교수는 “근대화의 문제점은 실패해서가 아니라 너무 성공적이어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진단한 뒤 “그로 인한 문제 역시 근대성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물론 제2근대화의 중심에도 중민이 있다. 세미나에서 나온 발표와 질의, 응답을 문답으로 재구성했다. →1987년 이후 25년이 흘렀다. 1987년 체제의 해체가 요즘 화두다. 백낙청 서울대 교수는 2013체제를 얘기하고 있다. 1987년 중민론을 제창한 입장에서 어떻게 보나. -2013체제라는 얘기가 나오게 된 배경과 취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하고 동의한다. 그런데 올해 총선과 대선이라는 현실정치적 일정과 맞물려 있다 보니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느낌이 든다. 대신 1960년대 근대화 이후 우리는 어떤 결실을 맺었고, 어떤 상처를 안고 있으며, 앞으로 우리는 어떤 단계에 진입해야 하는가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더 포괄적이고 큰 문제라고 본다. 제2근대화를 얘기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 제2근대화에서는 박정희와 김대중이 화해해야 한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중민론은 시민사회의 합리성을 전제로 한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믿음에 기초한 것 아닌가. 더구나 요즘 아이들은 지나칠 정도로 개인화되고 있는데. -이전 세대와 현재의 디지털 세대를 지나치게 단절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촛불시위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여러 움직임 등이 대표적 현상이다. 우리 아이들은 나름대로 판단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잠재력을 지나치게 과신해서는 안 되겠지만, 지나치게 과소평가해서도 안 된다. 관건은 그런 요소들을 어떻게 잘 이끌고 나가서 전면에 내걸 수 있느냐다. 그걸 잘 소화해낼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중민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다른 차원에서 우석훈이 제기한 ‘88만원 세대’에 대한 의견은 어떤가. 중민들도 결국 기득권 세력화됐다는 게 88만원 세대의 주장 가운데 하나인데. -기득권화됐다고 보지 않는다. 여전히 중민적인 자의식이 강하게 남아 있다고 본다. 기득권화됐다는 것 역시 세대 간 단절론에 지나치게 기대고 있다. 몇몇 인물들의 정치적 부침이 아니라 세대의 기층에 깔린 정서 같은 것을 봐야 한다. 이제까지 축적된 자료를 보면 보수적 중산층과 중민층은 50대50 정도의 비율이었는데 지금은 중민층이 압도적으로 늘어가고 있다. 지금 세대와 충분히 함께할 수 있다. →어떤 사회현상을 볼 때 대립이나 모순을 지나치게 희석하는 것 아닌가. -나는 거꾸로 말하고 싶다. 계급적 이해관계 때문에 알력이 생겨서 갈등하고 투쟁하겠지만 그 현상적으로, 폭발적으로 터져나오는 것 못지않게 수면 밑에 있는 의식을 봐야 한다. 부채의식, 공동체의식 같은 것이다. 그 부분을 찾아내고 지원해 계급갈등이나 투쟁을 내부에서부터 해체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모호성은 있다. 시민들이 변화의 욕구를 자연스레 표출하면, 책임 있게 대응해 성과를 내는 제도정치의 능력도 따라줘야 한다. 그러기에는 아직 제도정치의 역량이 낙후됐다. 그럼에도 중민을 기초로 한 지각변동은 이미 시작됐다고 본다. 글 사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 종언의 시대를 살아가기/이강진

    종언의 시대를 살아가기/이강진 1. ‘저항’의 시대와 그 기원 누군가 제게 2000년대 문학에게 주어질 단 하나의 이름을 꼽으라 한다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그것을 ‘저항의 시대’라고 명명할 것입니다. 물론 이 저항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저항’의 기표, 이를테면 세계에 대한 저항이나 주체를 둘러싼 폭력들에 대한 투쟁 등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최근의 문학이 보여주는 강렬한 ‘저항’들은, 오히려 역사적 투쟁이 끝났다는 저 냉엄한 현실과 맞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제 말을 의아하게 생각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실제로 지난 몇 해간 문학은 끊임없이 그가 떠맡을 수 있는 정치적 가능성들에 대해 고민해왔고, 또 우리 앞에 그 실천적 노력을 내놓았으니 말입니다. 실은 저의 고민도 이곳에서 출발합니다. 최근 갑작스럽게 대두된 ‘시와 정치’에 대한 격렬한 저 논쟁의 배경에는, 과연 일반적인 평가에서처럼 단지 촛불시위나 용산참사와 같은 문학 외적인 요인만이 작용했던 것일까요?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러한 진단은 문학이 예술적인 층위에 안주하면서도 대중적 관심을 추수하는, 일종의 권위적 시장주의를 드러냈다는 음울한 기억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적인 관심사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반응이라고 보기에, ‘시와 정치’논쟁은 지나치게 끈질기고 또 적극적이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단순한 사회적 정세 이상의 무언가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여기에, ‘저항의 시대’가 숨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2000년대 들어서 낯선 감각과 새로운 어법으로 무장한 젊은 시인들이 ‘집단적’으로 출현했다고 말한다. 이들의 출현과 반응, 이 집단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다. 소통불능의 자폐적이고 이기적인 문학이라는 신랄한 비판이나 조금만 더 자아 밖으로 나오라는 애정 어린 충고에서부터, 여러분이야말로 ‘도래’할 문학적 민중이 될 거라는 뜨거운 격려에 이르기까지, 상이한 반응들의 폭발에 정작 시인들은 당황했다. 새로운 시들을 둘러싼 이 논의들은 여러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나를 난감하게 만드는 문제, 즉 문학과 윤리 또는 미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 영원 회귀하는 질문들 그리고 그 대답들로 느껴진다.(진은영, ‘감각적인 것의 분배: 2000년대의 시에 대하여’, ‘창작과 비평’ 2008년 겨울호. 69쪽) 문학이 고민하는 정치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시와 정치’논쟁의 기폭제가 되었던 진은영의 ‘감각적인 것의 분배: 2000년대의 시에 대하여’에서부터 이미 드러납니다. 하지만 시가 미학적인 완성을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직접적으로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귀결은, ‘문학과 윤리 또는 미학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 영원 회귀하는 질문들’에 대한 당연한 정답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글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진부한 결론이 아니라, 오히려 ‘2000년대의 시에 대하여’라는 그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어째서 진은영은 특정한 것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낯선 시들의 출현으로부터 시의 정치성에 대한 고민을 읽어냈던 것일까요? 80년대와 결별한 후 정치에 대한 반동적인 면모를 보여 왔던 문학이, 촛불시위와 용산참사를 목격한 후 뒤늦게 정치성에 대한 필요를 느꼈다는 해석은 지나친 음모론같이 보입니다. 반면에 이 글의 출발점이었던 ‘젊은 시인’들을 주목하는 순간,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진은영이 가진 문제의식이란 현실과 문학 사이의 괴리에 대한 즉흥적인 고민이 아니라, 포스트모던 담론 이후 등장한 새로운 시에 대한 오래된 고민이었던 것입니다. 랑시에르의 결론부터 먼저 말하자면, 문학을 비롯한 예술 전반의 문제는 ‘감각적인 것을 분배하는’ 문제이며 그런 면에서 예술은 필연적으로 ‘정치’와 관계한다―책제목 ‘감각적인 것의 분배: 감성론과 정치’라는 말 자체에 이미 그의 문제의식과 결론이 압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진은영, 앞의 글, 71쪽) 진은영이 소개한 랑시에르의 감성론은, 미적 자율성의 이름으로 정치를 함께 담보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이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당시 문단에서 이 이론을 열렬하게 환영했던 데에는, 혹시 ‘시와 정치’에 대한 고민과는 별개의 이유가 있지는 않았을까요? 저는 그것이 우리 문학이 직면했던 거대한 과제,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을 넘어설 방법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어디까지나 ‘근대문학’이며, 근대의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일종의 상상적 권위에 불과하다는 이 충격적인 선언 앞에 당시 우리 문단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때마침 유령처럼 배회하던 ‘문학의 위기’에 대한 우울과 겹치면서, 가라타니의 종언론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폭탄으로 다가왔던 까닭이죠. 한참 후에야 가까스로 정신을 추스른 비평가들은, 이후 너나 할 것 없이 앞을 다투어 ‘문학의 종언-이후’에 대한 갖가지의 견해들을 내놓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나는 더 이상 문학에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습니다’라는 가라타니의 태도가 지나치게 자극적인 종언의 기표일 뿐이라거나, 그가 논의하는 내용이 일본문학만의 특수한 상황을 전제하고 있다는 식의 비생산적인 사족에 그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애초에 가라타니가 종언을 이야기한 맥락이 문학의 소멸을 말하는 비관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가라타니가 문학에 요구한 것은 종언을 받아들이고 그 이후에 전개될 ‘종언의 시대’를 살아가는 태도였습니다. 이것은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표제를 내걸었음에도 실제로 그가 집중적으로 조명한 것이 세계자본주의의 전개양상이었던 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요. 따라서 문학에 대한 기대를 그만두겠다는 그의 말은, 철저하게 ‘근대문학’에 부여된 상상적 층위의 정치적 역할과 그 권위에 기대지 않겠다는 뜻으로 이해되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가라타니에게 문제의 핵심은 ‘정치’에 있었지만, 당시 우리 문단은 그것을 성급하게 ‘문학’에 국한시키며 오해를 낳은 셈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렇게 급조된 대응담론이 아니라, 고진이 ‘종언’을 선언한 이후에 등장했던 우리의 문학 그 자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2. ‘정치’의 자유, ‘정치’로부터의 자유 ‘근대문학의 종언’이 등장했던 해는, 우리 문단에서 ‘미래파’라는 새로운 바람이 막 불기 시작하던 시기였습니다. 처음 그 갑작스러운 등장에 대해 보내던 우려와 달리, ‘미래파’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을 환영하는 이들과 비판하는 이들 모두에게 중심담론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새로 등장하기 시작한 시인들이 과거와 같이 (담론화하기 쉬운)특정 논의의 틀 안에 규정되는 일이 드물었던 까닭도 있었겠지만, 미래파 논의가 이토록 빠르게 문단의 중심담론으로 부상한 데에는 분명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죠. 이후 전개된 ‘미래파 논쟁’의 주된 핵심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과연 ‘미래파’란 존재하는가, 둘째는 이들이 진정으로 우리 시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사실 하나가 숨어있습니다. 논쟁에 참여한 거의 모든 이들이, 별다른 합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새로움’을 보여준다는 데에 동의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미래파 논쟁’이 얼마 지나지 않아 기세가 한풀 꺾였던 것에 비해,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시적 ‘새로움’에 대한 믿음은 ‘미래파’라는 분류가 유명무실해진 지금까지도 굳건히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단순히 최근 젊은 시인들의 시적 작업을 분석하여 그것이 ‘미래파’의 증거가 되느냐를 따질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 우리 문단에 이러한 논의가 등장했고 또 불붙었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일인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 시의 미래는 이들이 적어나갈 것이다. 이들에게는 80년대 시인들이 걸머져야 했던 역사와 시대에 대한 채무의식이 없고, 90년대 시인들이 내세운 그럴듯한 서정, 고만고만한 서정이 없다. 그 대신에 다른 게 있다. 그리고 이들의 시는 무엇보다도 먼저, 재미있다.(권혁웅, ‘미래파: 2005년, 젊은 시인들’, ‘미래파’, 문학과지성사, 2005. 149~150쪽) 가라타니는 문학의 종언을 가져온 중요한 전제로서, 이제 더 이상 문학이 현실의 ‘정치’나 ‘실천’을 대리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반면에 권혁웅은 ‘채무의식’이 없어짐으로써 우리 시가 시적인 새로움을 폭발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을 마련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두 사람의 차이로부터 시의 ‘새로움’이 가진 기원을 엿보게 됩니다. 이제 시는 80년대적인 ‘역사와 시대에 대한 채무의식’, 즉 ‘실천’이라는 기표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당당할 수 있는 자유를 획득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의 현실이 80년대의 시가 직면했던 폭력적인 억압을 그대로 내재하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현실의 억압이 보이지 않게 되면서, 시는 더 이상 불가능한 실천을 상상적으로 담보하던 과거의 역할을 해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더는 ‘우리에게/아무도 총을 겨누지 않는’(진은영, ‘70년대産’) 사회가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여전히 존재하는 폭력들과 맞설 것을 요구받습니다. 가라타니가 ‘정치의 자유’로 인해 발생한 이 모순적 상황을 종언의 원인으로 인식했다면, 우리는 이 모순된 상황을 ‘정치로부터의 자유’를 획득한 후 겪는 일시적인 홍역으로 여겼습니다. 저는 바로 이 분기점이야말로 어째서 진은영이 랑시에르의 감성론을 급히 ‘수혈’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설명해준다고 봅니다. ‘시와 정치’에 대한 논의는 ‘정치로부터의 자유’를 획득한 ‘새로운’ 시가, 어떻게 여전히 남아있는 저 정치에 대한 요구를 떠맡을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직접적으로 정치적이면서도 첨예하게 미학적이’고 싶다는 진은영의 고백에는, 전자에 의한 ‘실천’의 획득과 후자에 의한 ‘새로움’의 향유를 동시에 소유하고픈 욕망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바로 이곳에서, 제가 진은영이 랑시에르를 소개한 배경에 ‘근대문학의 종언’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숨어있다고 말한 이유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시적인 ‘새로움’에 대한 요란한 환영, 심지어는 강박적인 것으로마저 여겨지는 저 ‘새로움’에 대한 추수는 단순한 예술사조의 변천이나 시대적 흐름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의지로 얻어낸 것이 아니었던 ‘정치로부터의 자유’에 대한 강한 채무감에서 기인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대다수의 논의들은 ‘채무의식’의 극복이 ‘새로움’의 원동력이라고 말해왔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였던 셈이지요. 아마도 신형철은 이러한 진실에 일정 부분 닿아 있는 듯 보입니다. 그가 황지우의 시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야기하는 미학과 정치의 논의는, 앞선 것들과는 조금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렇게 아주 엄밀한 의미에서, 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이 한몸이었던 사례가 우리 시사(詩史)에 있는가? 물론 있었다. 예컨대 황지우의 시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가. 그의 시가 대표적으로 보여준, ‘회의하면서 긴장하는’ 그 언어의 배후에는 권력에 의한 커뮤니케이션의 억압이라는 외적 상황이 있었다. 할 수 있는 말과 해야만 하는 말의 분열 속에서, 언어의 회의 혹은 언어의 긴장은 (시인 자신의 의지나 역량에 힘입은 바 못지않게) 상당부분 ‘역사적으로’ 성취되었다. 덕분에 그의 시는 첨예하게 미학적이면서 동시에 직접적으로 정치적일 수 있었다.(신형철, ‘가능한 불가능’, ‘창작과 비평’ 2010년 봄호, 375쪽) 과연 최근 우리 시는 80년대의 채무의식을 ‘극복’하였을까요? 신형철은 여기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는 과거의 시가 정치를 떠맡을 수 있었던 원인이 현실정치의 불가능함에 있었다는 가라타니의 견해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날 ‘시’와 ‘정치’가 확고한 동반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데에는, 시인이 가진 분노의 감정이 미학의 이름을 통해 고스란히 정치적 정념의 형태로 분출될 수 있었던 역사적 맥락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신형철 또한 이 이상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실패하고 맙니다. 새로운 시와 비평에 대한 요구가 ‘아무도, 적어도 시에서는, 그 어떤 발화도 억압하지 않는’ 오늘날의 상황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그가 제시하는 방향이란 ‘첨예하게 미학적인 시들에서 우선 그 미학적인 것의 핵심을 정확하게 읽어내고, 그 이후에 거기에서 정치학적인 것까지를 읽어내는 일’에 그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치적’인 것과 ‘정치학적’인 것을 구분하는 신형철의 화법에서, ‘실천’의 강박과 ‘새로움’의 강박을 서로 다른 것으로 떼어놓으려는 시도를 명백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들이 지니는 동일성을 철저하게 인식하고 또 인정하지 않는 이상, ‘시와 정치’는 영원한 제자리걸음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3.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정치를 ‘고유한 주체의 합리성에서 유래하는 특정한 행위 양식’으로, 시를 ‘주체가 스스로의 자유 안에서 건네는 내밀한 고백’이라고 정의할 때, 시와 정치가 본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명백해 보입니다.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시인을 거부했던 이유는, 시가 가지는 본연의 속성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이었던 데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훌륭하게 완성된 공동체에게 시는 위협적인 존재가 됩니다. 왜냐하면 시가 가지는 힘이란 공동체의, 세계의 질서가 보지 않으려 하는 것들을 목격함으로써 얻어지기 때문입니다. 정치의 과정 또한 이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논의하던 랑시에르의 표현을 빌자면, ‘정치는 권력 행사가 아니’며, ‘정치는 그 자체로, 즉 고유한 주체 때문에 현실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세계의 상징체계 속에 ‘없음’으로 규정된 ‘자리-없음’(placelessness)들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실재의 공간이라고 말했던 라캉의 언명과 동일한 맥락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정치란 처음부터 통치 과정(치안)의 바깥,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만이 가능한 행위인 셈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바깥의 존재양식이야말로 시와 정치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임을 입증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놓쳐버린 권위’라고 생각했던 과거 문학의 정치성을 되돌아보면, 그것들이 방금 이야기한 ‘정치’와는 사뭇 다른 층위에 있었다는 것을 알아내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정치적인 시’라고 불러온 것들은, ‘정치’의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치적인 것’에 더욱 가깝게 다가서 있었던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어떤 것은 실체가 있는 폭력들에 맞서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였고, 다른 곳에서는 도래할 혁명을 향해 나아갈 것을 소리 높여 외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신형철도 이미 지적했듯이, 과거 우리 시들이 ‘정치적인 것’에 대한 행동을 통해 스스로의 정치적 역할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역사적 맥락에 기댄 결과였습니다. 때문에 이제부터 시가 추구해야 할 정치성이란 랑시에르의 진단과 같이 본래적인 의미의 ‘정치’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최근의 논의는 단순히 이전과 다른 ‘정치’의 정의에만 집중한 나머지, 스스로 경계할 것을 주장했던 전위적 언어에 대한 맹신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비평가들은 ‘감성의 분할’이라는 개념을 통해 그것을 벌충하려 하였으나,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을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혹독한 비판을 받았던 ‘텅 빈 해체’의 문제를 그대로 답습하는 오류를 저지르고 말았던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 시 비평의 영역에서 그동안 관성적으로 제기되어온 ‘소통’에 대한 요구가 지닌 본질적 문제점은, 개인과 사물 세계를 ‘자명한 것’들로 번역하려는 ‘투명성’에 대한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오히려 시적 공간에서 보존해야 할 것은 개인과 사물의 불투명성이며, 빛의 언저리에 드리워진 기이한 그림자와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아닐까? (…) 그러므로 낯선 현전의 형식들에 직면해 여전히 소통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비평이 우선 대결해야 하는 것은, 텍스트 자체라기보다는 오히려 의사소통 공동체의 지평에 나타난 저 낯선 얼룩을 깨끗이 지우고자 하는 순백을 향한 비평 자신의 욕망이 아닐까? (함돈균, ‘균열, 불면, 기화, 그리고 여백은 어떻게 정치적인 것이 되는가’, ‘얼굴 없는 노래’, 문학과지성사, 2009, 133쪽) 함돈균이 내놓은 ‘불투명성’의 문제의식은 이러한 오류를 확연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명한 것’과 ‘투명성’을 추구하는 질서란 개인과 사물을 명확하게 재단함으로써 그것들을 교정하고 규정지으려 하는 힘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랑시에르가 ‘세계의 감성분할행위’라고 불렀던 것과 동일한 행위를 뜻하지요. 언뜻 생각하기에 이들에 대한 저항이란 혁명의 의지를 내포하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세계의 규정들을 무화하는 시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저항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려한 수사와 문장들을 걷어내고 함돈균의 주장을 다시 읽어보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집니다. 그가 비평이 나아가야 할 목표로 제시하고 있는 ‘비평 자신의 욕망’과의 대결이란, ‘낯선 얼룩’을 보존하고 ‘불투명성’을 획득하는 작업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함돈균이 이것을 결국 우리들이 직면한 ‘낯선 현전의 형식’에 대한 옹호를 위해 주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의 논리는 세계에 대한 전위의 저항을 제시한 이후에 실제로 태어나고 있는 ‘낯선 형식’들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새롭게 출현한 시들을 ‘낯선 현전’과 ‘낯선 형식’으로 명명한 뒤, 이들에게 ‘소통의 문제를 제기하’는 태도의 반동성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비단 함돈균만이 보여주고 있는 문제가 아니며, 전반적인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이 공통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문제점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그의 논리적 모순을 합리화해줄 수는 없을뿐더러, 오히려 우리 문학담론 전체의 병폐를 폭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한마디로 해체나 전위를 통한 저항의 대부분은, 다분히 사후적인 평가를 위해 ‘만들어진’ 정치성이었던 셈입니다. 백낙청은 자신의 글에서, 시의 정치성에 대한 논의들이 가지는 이러한 환원론적 오류에 대해 일침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통상적인 의미의 윤리 내지 도덕을 거부하는 것 자체가 문학의 진정한 윤리임을 강조하는 데 머물 경우 그것은 구체적인 정치현실과 무관한 또하나의 정언명령을 발하는 것밖에 안 된다.’(백낙청, ‘우리시대 한국문학의 활력과 빈곤’, ‘창작과비평’ 2010년 겨울호, 20쪽)고 강조합니다. 그의 이러한 지적은 매우 정확한 것이어서, 대부분의 논의들이 가지는 정치성이 단지 제스처에 불과한 껍데기라는 것과 함께, 이제는 그러한 논의방식들이 하나의 새로운 정형이 되어가고 있음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백낙청은 그 너머로 논의를 이어가지 못한 채, ‘동아시아 전통에서 말하던 도덕, 즉 도(道)와 ‘도의 힘’으로서의 덕(德)에 대한 사유가 실종되고 만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며 방향을 선회합니다. 그의 글에서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정확히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가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도(道)는 노자의 ‘道’ 개념으로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규정적 명명을 거절하는 상태로서의 이 개념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적 사고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부분이지요. 그리고 덕(德)을 일종의 공동체적 당위성, ‘세계-내-존재’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합의점으로 바라본다고 할 때, 우리는 백낙청의 이 진술이 포스트모더니즘 담론들의 한계를 재차 강조하고 있음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즉 ‘동아시아 전통에서 말하던 도덕’을 이야기함으로써, 포스트모더니즘이 도달할 수밖에 없는 허무주의가 앞뒤 없이 계속된 막무가내식 해체의 결과임을 꼬집는 셈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백낙청의 지적은 매우 합당함에도 불구하고 선명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 지적을 어디까지나 ‘모더니즘 논의’의 문제로 국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백낙청은 (모순을 드러낸)이들과 달리 ‘다른 흐름’들이 있음을 주장하며, 그것의 구체적 성과로 자신이 전개해 온 리얼리즘 논의를 들고 있습니다. 한국적인 리얼리즘 논의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면, 랑시에르의 감성론보다 훨씬 우리의 현실에 밀착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논쟁적인 문제제기를 피하기 위해 자세한 검토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역시, 마구 가거나 너무 가서는 잘 갈 수가 없다’는 경구적 발언을 인용하는 백낙청의 태도로부터, 우리는 자신이 발전시켜온 리얼리즘론의 우월함을 주장하는 그의 함의를 어렵지 않게 발견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문학이 직면한 문제가 이전부터 계속되어온 리얼리즘 대 모더니즘의 구도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전에 없던 시적 변화들은 문학이 직면한 고민을 그대로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모더니즘 논의’로 한정짓는 태도는 여전히 ‘시’와 ‘정치’를 별개의 것으로 보려는 자세를 드러내고 있는 셈입니다. 강동호는 이러한 오류를 극복하고 정치성의 논의를 상당 부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그는 재현행위가 가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한계를 오롯이 인정하고, 그 실패로부터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한 우회로를 탐색하기 시작합니다. 시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여기까지인지도 모른다. 시의 잠재적 정치성을 긍정적 어법인 잠재성의 정치로 바꾸는 일은 오롯이 독자에게 남겨진 몫일 것이다. 아울러 저 시적 언어들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찾아주는 것, 즉 시의 유물론적 조건을 탐사하고 그것을 현실의 언어로 변환시키는 ‘목숨을 건 비약’(salto mortale)을 감행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비평가의 몫이다. 이러한 작업은 오늘날의 미학과 사회적 현실 간의 상관도를 상세히 규명하는 사회학적 분석에 해당하며, 이를 근거로 이 세계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던지는 복화술사의 정치에 속할 것이다. (강동호, ‘존재론적 비명으로서의 시적인 것’, ‘창작과비평’ 2009년 가을호, 312쪽) 시의 언어는 삶을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는 없지만, 그것이 처한 시공간을 써냄으로써 제 기능을 수행한다는 그의 주장이 기존의 ‘텅 빈 해체’와 결별할 수 있는 것은, ‘시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여기까지인지도 모른다’는 진실에 과감하게 다가서는 태도가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궁극적으로 강동호가 ‘비평의 의무’라고 여기고 있는 ‘시의 유물론적 조건’을 탐색하는 행위란, 어디까지나 시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예외성 너머에서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시가 세계에 대한 어떠한 물리적 강제를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양식을 이끌어내기 위한 선전이 되는 순간, 그것이 이미 시로서의 생명력을 상실한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와 시인에게 ‘예술가의 의무’라는 이름하에 불가능한 것들을 요구하는 일이란 기만에 다름 아닌 셈입니다. 물론 제가 여러분에게 ‘시는 정치적일 수 없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시가 가진 예외성을 인정하는 것은, 오히려 강동호가 지적했듯 오로지 시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는 초석이 됩니다. 왜냐하면 시의 예외적 속성에 대한 고의적인 망각이란, 시가 ‘정치적인 것’에 봉사할 것을 요구하는 논리의 한가운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현실정치에 대해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는 시를 가지고 통치행위에 연관된 영향력을 고민하려다 보니, 우리 시는 필연적으로 스스로의 불가능성을 은폐하고 왜곡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신형철이 말한 ‘역사적 맥락’이 소멸한 지금, 더 이상 망각의 방법은 통용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문학은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있을 수밖에 없다는 자신을 첨예하게 인지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조건’들을 낳았던 본래의 ‘정치’로 회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4. ‘상상적 대리자’에서 ‘상상의 대리자’로 앞서 저는 새로운 시대에 요구되는 문학의 의무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이분법적 구분을 모두 넘어서는 것으로만 가능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은 모더니즘-리얼리즘의 이분법적 구도를 해체하자는 맥락의 이야기가 아니라, 분리된 담론으로 여겨져왔던 각각의 한계들을 한번에 조망하고, 그것들을 총체적으로 극복할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가라타니는 자유로워진 ‘정치’의 시작이 ‘문학의 종언’을 가져왔다고 했지만, 제 생각은 약간 다릅니다. 기실 오늘날 우리 문학이 직면한 위기는 달리 보면 ‘정치’의 위기이기도 했습니다. 격렬한 투쟁의 시대가 이미 지나갔음에도, 우리에게 ‘80년대적 실천’은 커다란 그림자가 되어 여전히 드리워져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해 두 가지 과제를 오늘의 정치에 요구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지난 역사를 통해 이미 민주화를 달성했다는 승리의 착각을 극복하는 일이며, 다른 하나는 투쟁의 과정을 경험하며 우리에게 각인된 ‘실천’의 기표에 대한 강박을 벗어던지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두 과제는, 흥미롭게도 문학이 직면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의 유입 이후, 이제까지 문학은 더 이상 대문자로 적어야 할 정치행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 위를 내달려왔습니다. 지금에야 그 유행이 거의 수그러들었지만, 몇 해 전만 하더라도 ‘거대담론이 사라졌다’는 구호가 굉장한 인기를 얻었음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지요. 그러나 80년대의 투쟁이 맞서왔던 억압의 구조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사회의 깊은 이면에 내재된 채 현존하며, 오히려 더욱 교묘한 전술로 우리를 구속하고 있습니다. 허용된 자유의 형태로 드러나는 자본주의의 자유는 문학이 겨냥할 만한 명확한 적대를 제공하지 않았지요. 이후 문학은 진퇴양난의 고민에 휩싸였던 것입니다. 해체주의의 대안적 담론을 추수하자니, 그것은 이미 ‘거대담론의 붕괴’라는 잘못된 필요조건을 요구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고, 과거의 실천적 구호를 답습하자니 오히려 그 적대행위 자체가 초자아적 정언명법이 되어 주체를 구속할 뿐이었습니다. 확고한 결단이 불가능했던 문학은 결국 두 가지 사이에서 모호하게 표류하였고, 그 결과 등장한 것이 기형적인 ‘미래파’의 규정과, 그들의 부족한 정치성을 벌충할 ‘시와 정치’의 논의였던 셈입니다. 흑백논리의 모순을 회색이 되어 피해보고자 한 것이죠. 그러나 이러한 자기합리화는 문학의 생명력을 더욱 옥죄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며, 가라타니의 진단대로 문학은 독자들에게 더 이상 스스로의 권위를 내세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몇몇 비평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미적 모더니티의 운명’으로 설명해보려는 시도를 했지만, 그것이 억지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은 그들 자신이 더욱 잘 알고 있었을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문학이 지향해야 할 진정한 방향성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문학이 철저하게 현실정치의 바깥에 존재하는,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의 역할을 재인식할 것을 주장합니다. 과거의 문학이 불가능했던 정치의 ‘상상적 대리자’ 역할을 통해 권위를 획득했다면, 이제부터 문학은 그것을 넘어서서 현실정치의 불가능한 감성을 떠맡는 ‘상상의 대리자’가 됨으로써 그것을 넘어서야만 하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벤야민은 이미 1929년에 이러한 개념의 기초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초현실주의자들이 그 ‘공산주의자 선언’이 오늘날에 내리는 지령을 파악한 유일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들의 얼굴 표정을, 매분 60초 동안 째깍거리는 자명종의 숫자판과 맞바꾸며 짓고 있다. (발터 벤야민, ‘초현실주의’, ‘발터 벤야민 선집 5’, 길, 2008, 167쪽) 오늘날의 문학은 현실정치가 절대로 수행할 수 없는 두 가지의 역할을 짊어짐으로써 스스로의 정치성을 획득해내야 합니다. 우선 첫째는 ‘정치적인 것’들에 발목이 잡혀 있는 현실정치를 대신하여 ‘정치’만의 고유한 미래적 지향을 상상하는 일입니다. 수많은 조건들의 제약을 받는 ‘실천’을 대신하여, 문학은 자신의 자유로움을 통해 ‘정치’가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아나키스트적 상상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억압의 구조가 주관적 폭력에서 객관적 합리성으로 이행된 이상, 현실정치의 조직적인 치밀함만으로는 저 합리성을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문학은 이들에게 객관을 넘어설 상상력을 부여함으로써, 저 ‘정치’에 부재하는 ‘미래에의 의지’를 대신하는 역할을 부여받는 것입니다. 벤야민에게 ‘초현실주의자’로 상징된 예술가의 의무가 다음 시대로부터의 지령을 파악하는 것이었듯이, 시인이 세계를 조망하는 소실점들을 거부할 수 있는 자유란 처음부터 저 상상력을 지켜내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문학에 부여된 두 번째 역할은, 우리 주변의 ‘얼굴 표정’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바라보는 일입니다.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역사는 한 번도 진보하지 않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친부살해를 통해 권력구조를 뒤집은 형제는 결국 그들 중 한 사람이 아버지의 권좌에 앉음으로써 권력을 더욱 강하게 재생산하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혁명’을 자처했던 지난 역사의 모든 변화들은, 대개 그 결과가 새로운 지배구조를 낳는 반복을 가져왔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문학이야말로 이러한 역사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는 최후의 희망이 됩니다. 이제까지의 혁명이 다시 권력이 된 까닭은, 그 전개과정 안에서 필연적으로 소외되는 이들을 끌어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학은 현실정치의 과정이 미처 목격하지 못하는 그늘에까지도 자신의 시선을 가져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문학이야말로 모두를 끌어안을 영구한 혁명, 벤야민이 희구했던 단 한 번의 진보를 완성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사명을 띠고 있는 것입니다. 어떠한 수식을 붙인다 하더라도, 문학이 감행하는 정치란 처음부터 예외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문학이야말로 라캉적 ‘없음’이 된 자리들, 상징체계에서 추방된 이들과 초대받지 않은 미래를 세계 속에 드러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세계의 감성분할을 재분할하는, 상징계를 넘어설 ‘미학적 예술 체제’의 실재인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시와 정치’에 대한 논의가 이제 끝났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 MB ‘반값’ 공약 → 황우여 재점화 → 정치권 포퓰리즘 공방

    가파르게 치솟던 대학 등록금이 정치적 이슈로 떠오른 것은 지난 2006년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반값 등록금’이라는 표현의 공약을 내놓으면서부터다. 그러나 정권이 출범한 뒤 정부는 반값등록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6조원이라는 엄청난 재원이 필요하다며 난색을 나타냈다. 시민단체와 대학생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등 굵직한 사회적 현안에 매달린 탓에 반값등록금에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았다. 물론 ‘등록금 1000만원 시대’, ‘미친 등록금’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듯 반값등록금 문제가 제기되기는 했지만 별다른 폭발력을 갖지 못했다. ●학생·시민단체 3년만에 촛불시위 그러다 지난 5월 황우여 의원이 한나라당 원내대표로 취임하면서 반값등록금 논쟁은 본격화됐다. 황 대표는 “대학 등록금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선정해 최선의 안으로 만들겠다. 최소한 반값으로 인하했으면 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민주당에서는 “반값등록금은 올해 초 이미 민주당의 당론으로 채택된 바 있다.”고 밝혀 정치적 공방이 가열됐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반값등록금 요구는 빠르게 번져 나갔다. 대학생과 학부모, 시민단체 등은 피켓시위를 거쳐 거리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5월 말부터는 3년여 만에 촛불시위가 청계천에서 벌어졌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나라당은 당정협의를 통해 ‘대학등록금 부담 완화를 위해 저소득층 장학금을 확대한다.’는 방안에 합의했지만, 민심은 ‘무조건적인 반값등록금’을 촉구하며 끝없는 평행선을 달렸다. 야권이 시위에 동참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됐다. 청와대와 정부는 재원 마련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한나라당이 내놓은 ‘2014년까지 30% 명목 등록금 인하’안은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라는 내부의 거센 반발만 불러일으켰다. ●여야 6월 임시국회 논의 불발 결국 여야는 6월 임시국회에서 등록금 인하 논의를 본격화했지만 지난달 임시국회까지도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대신 교과부와 기획재정부 등 정부차원의 논의가 시작됐고, 당정협의를 거쳐 8일의 ‘대학등록금 부담 완화 방안’이 마련됐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20대, 정치를 묻다] “무관심요? 정치가 해결 못한 취업 걱정하느라…”

    [20대, 정치를 묻다] “무관심요? 정치가 해결 못한 취업 걱정하느라…”

    20대는 변화를 가장 많이 겪는 시기다. 수능을 본 후 대학에 들어가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가지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때는 단연 20대 무렵이다. 이 같은 자기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기 바쁘다보니 20대는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평을 받아왔다. 하지만 20대가 정치 문제에 관심이 많고 영향력 있음은 지난 2008년 촛불시위, 지난해 6·2 지방선거, 최근 등록금 투쟁까지 이어져 보여주고 있다. 왜 20대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됐는지 그 이유를 다양한 20대의 목소리를 통해 들어봤다.   서울 상계동에 사는 대학원생 권모(28)씨는 지난달 말 석사 논문을 발표했다. 열심히 해 왔던 공부를 마치고 얻은 성과에 기뻐해야할 때지만 권씨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이 크다. 권씨는 “박사까지 가는 게 목표지만 그때까지 들어갈 돈이나 미래 등을 생각하면 취업준비를 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가고싶어서 대학원을 생각했지만 대학원 졸업을 앞둔 현재 그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권씨는 “정치인들은 20대가 정치에 관심없어 문제가 있다는 듯이 말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20대를 그렇게 만든 것은 다름아닌 기존 정치인들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원하는 일을 하고 싶어도 현실에 치이고 그렇게 아등바등 사는 동안 정치 문제에 관심을 갖지 못하게 됐다는 뜻이다. 정치인들이 심각한 청년 실업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못하고 20대만 비판하는 게 더 나쁘다는 의미다. 권씨는 “현재 반값등록금 시위도 새로울 것은 없다. 그동안 20대의 고민 중 하나였던 등록금 문제가 곪았다가 터진 것일 뿐이다. 정치인들이 이를 통해 20대의 폭발력을 깨달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국민을 위해 뛰는 정치인이 없나요”  “정치 문제 관심많죠. 집을 사려고 해도 집값 등등을 결정하는 게 모두 정치 논의에서 만들어지는 정책에서 이뤄지니까요.”  서울 방화동에 사는 신모(27)씨는 전자기기를 만드는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한 신씨는 현재 계장 직함까지 달고 있다. 하지만 신씨는 앞으로가 불안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신씨는 “고졸이기 때문에 그 이상으로 승진하기가 어려워 이직을 고려하든지 공부를 더 해야할 것 같다.”면서 “결혼을 생각하면 집도 마련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하려면 이직은 나중 일이라 고민스럽다.”고 설명했다. 신씨는 정치는 이런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주기는커녕 자신들의 이해관계만 따지는 것 같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일본 정치드라마 ‘체인지’를 보면 젊은 총리가 권력 다툼보다는 사소한 문제라도 국민들을 위해 애쓰는 모습이 나온다. 신씨는 “드라마를 보면서 많이 공감했다. 저런 대통령이 나올 법도 한데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씁쓸했다.”며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서울 망원동에 사는 회사원 김모(28·여)씨는 지난해 말 취업했다. 늦은 사회생활 진출이어서인지 김씨는 많은 고민을 안고 있었다. 아직도 남성 중심적인 회사 분위기, 결혼 문제, 커리어를 쌓는 문제 등 너무 많은 고민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도 많다고 했다. 물론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졌지만 여성으로써 느끼는 한계도 크다고 말했다. 커리어를 쌓으려면 결혼을 미룰 수밖에 없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게 되면 커리어를 쌓을 기회는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는 이러한 여성으로서 겪는 문제를 해결해줘야 하지만 심각한 문제라고만 할뿐 해결책을 내놓지 않아 답답하다고 했다. 김씨는 “정치에 관심 없다. 이유는 내가 안고 있는 고민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치권에서 여성을 위해, 20대를 위해 수많은 정책을 내놓아도 피부에 와닿지 않고 그저 말뿐인 정책인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게 어찌보면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불안한 미래, 정치가 책임져야”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못해요. 불안한 미래에 가늘고 길게 갈 수 있는 안정적 직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어요.” 한국외대 법학과 4학년 장모(22·여)씨의 꿈은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것이다. 하지만 장씨는 공기업 준비를 위해 올해 초부터 휴학했다. 부모님은 장씨에게 여자로써 사회생활 하기에는 공기업이 안정적이라고 강조했고, 장씨는 부모님에게 자신의 꿈 조차 말 할 수 없었다고 했다. 현재 금융 관련 자격증을 따 뒀고, 꾸준히 토익을 보면서 점수를 올리고 있다. 다음주에는 인도네시아로 10일 동안 해외봉사활동을 나간다. 장씨는 “해외봉사활동은 관심있었던 분야이기도 하고 또 나중에 이력서에 뭔가 한 줄이라도 더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무리해서 간다.”고 설명했다.  정치 문제에 관심많은 장씨는 지난해 있었던 지방선거 때도 주변 친구들에게 꼭 투표하길 강조했다. 투표 같은 기본적인 권리도 행사하지 않고 정치가 나쁘다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그랬던 장씨도 요즘에는 정치권이 답답하다고 느끼고 있다. 등록금 문제 해결을 위해 친구들과 거리에 나서고부터다. 장씨는 “취업을 하기 위해 대학에 갔지만 높은 등록금 때문에 대학 조차 제대로 못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요. 원래 정치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열린세상] 하인리히 법칙과 키시미江의 교훈/문명재 연세대 언더우드 행정학 특훈교수

    [열린세상] 하인리히 법칙과 키시미江의 교훈/문명재 연세대 언더우드 행정학 특훈교수

    모든 정부는 성공해야 한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현 정부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밖에 없으나 누구나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혼신을 바쳐 국정에 임하고 박수를 받으며 퇴임할 수 있기를 바란다. 대통령은 2013년 2월 25일 퇴임하는 순간까지 부패 문제로 국정이 표류하지 않도록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대통령이나 행정부가 정치권의 표(票)퓰리즘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사를 앞둔 집안처럼 어수선하다면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불안해지기 십상이다. 또한 청와대의 정치적 구심력이 점차 저하되는 상황에서 친인척·측근 비리가 불거지거나 공직자 비리가 누룩같이 번진다면 정치적 소용돌이가 일파만파로 거세질 게 뻔하다.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게 있다.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오듯이 세상의 모든 일은 징후가 있다는 것이다. 미 해군장교 출신의 하인리히가 보험감독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5만여건의 산업재해 관련 통계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법칙이다. 그는 사망사고 한 건이 발생하기 전에 평균 29건의 부상사고가 생기고 300건 정도의 경미한 사고가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2008년도 중국 쓰촨성에서 대형 지진이 발생하기 전에 이를 감지한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가 한꺼번에 이동했던 현상도 하인리히 법칙의 예시로 제시되곤 한다. 대형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반드시 조짐이 있다는 얘기다. 이는 반대로 사고의 조짐을 미리 감지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면 큰 사고를 막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한 달 전에 불거진 부산저축은행 영업정지사태는 부실금융이라는 경제문제를 넘어서 정치적 폭발력을 지닌 정·관계 로비가 얽힌 금융비리 문제로 증폭되었다. 처음엔 금융감독원에 대한 감독 소홀과 전관예우 관행에 대한 질타가 쏟아지다가 점차 로비의혹과 관련하여 전·현 정권의 몇몇 인물이 거론되기 시작하였다. 급기야는 현직 감사위원이 구속되었고 전 청와대 비서관이 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는 등 정치권으로 비리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이를 두고 책임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도 만만찮다. 연이어 터지는 비리문제를 보면서 하인리히 법칙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과민반응일까. 하인리히 법칙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하나씩 터져 나오는 비리의 원인과 연결고리를 철저하게 파악하고 예방적 기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공직자가 꽃과 열매를 한손에 쥐려고 할 때 사회적 질타가 따른다. 권력과 이익을 나누는 지혜가 필요하다. 정치권의 자성도 전제되어야 한다. 비리 문제에 대한 철저한 단속과 함께 청와대의 중심잡기도 중요한 숙제이다. 정치권이 복지나 교육과 관련된 이슈를 선점하기 위하여 ‘표퓰리즘’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청와대는 국익에 닻을 내리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 최근 반값 등록금 논쟁에서도 마찬가지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의식한 정치권은 현실보다는 표심에 고민하며 무차별 대안을 쏟아내고 있다. 일부 언론의 포퓰리즘적 보도가 기름을 부어댔다. 그 와중에 대학은 탐욕스러우면서도 무책임한 공공의 적으로 내몰렸다. 대학들은 연구 활성화와 국제화를 통하여 세계적 대학으로 성장하라는 사회적 요구를 힘겹게 따라가다 반값 등록금 문제로 자괴감에 빠져 있다. 한동안 정치투쟁과 거리를 두고 있었던 대학생이 자신들의 이해와 관련된 등록금 문제가 태풍의 눈으로 등장하자 촛불집회로 모였다. 민주화 이후 잠잠해졌던 대학의 정치투쟁적 유전자를 자극하는 조짐이다. 시간에 내몰려 성급한 정책결정을 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청와대가 정책의 키를 잘 잡아야 하는 이유다. 미국의 플로리다 중부에는 꾸불꾸불 남북으로 흐르는 키시미 강이 있다. 허리케인으로 인한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하여 정부는 166㎞에 달하는 강을 90㎞의 반듯한 모양으로 바꾸는 10년간의 대규모 채널화 공사를 추진하였다. 그러나 홍수예방을 위한 해결책이 습지와 주변 생태계를 파괴하게 되자 결국 1992년부터 지금까지 본래 강의 모습으로 바꾸는 복원공사를 하고 있다. 어제의 성급한 해결책이 더 큰 문제를 야기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하인리히 법칙과 키시미 강의 교훈을 맘에 새겨 성공하는 정부가 되길 바란다.
  • 靑 새 참모진 시험대…‘촛불’ 주시

    청와대가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혹시나 ‘제2의 광우병’ 사태로 번질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6·9 개편으로 새로 출발한 청와대 참모진에게는 이번 사태가 첫 번째 시험대인 셈이다. 대학등록금 인하 논쟁이 3년 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싼 먹거리 안전성 논란처럼 전 국민이 관심을 갖는 이슈라는 점도 부담이다. 촛불시위에 야당 지도자들까지 참가하기로 하면서 정치투쟁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판단도 하고 있다. 정부나 청와대도 등록금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인정한다. 때문에 촛불시위를 계기로, 정부는 반대하고 야권은 찬성하는 쪽으로 분위기를 몰고 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대학등록금을 세금으로 지원하는 문제 등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서로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광우병 때처럼 단번에 걷잡을 수 없는 폭발력을 지닌 이슈로 확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오늘 시위가 분수령이 될 것 같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반값 등록금에 대해서는 여전히 유보적인 상황이다. 단기적으로는 학자금 대출금리 추가인하 등 대안을 추진하면서, 장기적으로는 대학 구조조정이 선결돼야 해결될 문제로 보고 있다. 한나라당이 먼저 결론을 낸 뒤 당·정 협의에 들어가면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할 사안이라는 것이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지역 염원 외면… 정책 불복종·낙선운동 할 것”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발표에 대구, 경북, 부산, 경남 등 해당 지역 시·도민들이 모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주민들은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며 강력 투쟁을 예고했다. 신정택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은 30일 “한계에 직면한 김해공항의 독자적인 가덕도 이전을 위해 민자와 외자 유치가 필요하면 온 힘을 다해 부산시를 지원할 것”이라고 전했다. 신공항유치 범시민비상대책위원회 등 시민단체들은 촛불 시위와 총선 낙선 운동 등 대정부 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박인호 가덕도유치범시민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대국민 사기극을 벌인 정부 당국에 분노와 실망을 금할 수 없다.”면서 “앞으로 대규모 규탄대회와 촛불 집회, 각종 정책 불복종 운동, 책임 추궁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대정부 강경 투쟁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부산자갈치시장의 상인 윤재웅(55)씨는 “20년 전부터 사업을 추진해 왔으며 대통령이 공약한 신공항 건설이 정치권 논리에 밀려 백지화된 것은 정부가 지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회사원 김진헌(52)씨는 “이럴 거라면 무엇 때문에 수백억원을 들여 용역을 하고 입지 평가 실사를 하는 등 부산을 떨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서 “20년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데 대한 보상을 누가 해줄 것인가. 선거 때 표로 심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과 경쟁을 했던 엄용수 밀양시장도 “국민을 우롱한 정부에 대해 믿음도 없고 지방자치도 말살돼 더는 일할 수 없기 때문에 시장직을 사퇴하겠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엄 시장은 동남권 신공항 밀양 유치에 시장직을 걸겠다고 여러 차례 선언한 바 있다. 다만 그의 주변에서는 전격 사퇴라기보다 정부에 대한 항의 발언으로 이해한다. 박광길 신공항밀양유치추진단장은 “각본에 맞춘 짜맞추기식 정부 발표는 국민의 수준을 낮춰 본 것으로, 말문이 막히게 하는 충격”이라면서 “공항문제연구소 설립, 신공항건설 모금운동 전개 등 전략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대구시의회 오철환·경북도의회 박기진 동남권신국제공항유치특별위원장은 “한마디로 황당하고 정부의 대국민 사기극에 놀아나 광대 노릇을 한 것이 부끄럽다.”면서 “정부가 지역민의 염원을 외면한 채 신공항을 백지화하는 것은 영남권의 생존권을 짓밟는 것으로, 이런 정부를 어떻게 믿고 살아야 할지 서글프다.”고 비난했다. 강주열 밀양유치시·도민결사추진위원장도 “100점 만점에 40점도 안 나오는 국책사업은 들어본 적이 없다.”면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를 외면한 채 의문투성이 결과를 내놓은 정부에 맞서 4개 시·도 시민단체는 대규모 궐기대회를 비롯해 정책 불복종 운동을 벌여 밀양공항을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구·울산시, 경북·경남도 의회는 신공항 건설 백지화를 즉각 철회하고 동남권 신공항을 조기에 건설할 것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4개 시·도 의회는 성명서를 통해 “183명의 의원과 영남권 1300여만 주민은 신공항 건설 백지화라는 사기극을 결코 용납할 수 없으며 신공항 건설이 이루어질 때까지 투쟁할 것을 천명한다.”고 밝혔다. 이들 시·도 의회는 정부가 뒤늦게 신공항 건설을 백지화한 사유를 국민에게 공개하고 책임자는 사죄하라고 주장했다. 창원 강원식기자·전국종합 kws@seoul.co.kr
  • “건물 종잇장처럼 흔들려… 세상 종말 온 줄 알았다”

    “건물 종잇장처럼 흔들려… 세상 종말 온 줄 알았다”

    주말을 앞둔 11일 오후 일본 열도는 지진관측 역사상 최대 규모인 8.8의 강력한 지진에 이어 규모 6.0~7.4의 여진이 동북부 지방에서 잇따라 수십차례 발생하면서 패닉 상태에 빠졌다. 평상시 지진 대비가 철저한 일본이지만 최고 10m에 이르는 상상을 초월하는 강력한 쓰나미의 파괴력과 잇단 여진에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선박과 차량, 건물이 쓰나미로 역류하는 바닷물에 휩쓸려 큰 피해가 발생했다. 통신과 교통이 두절되고 도호쿠 지방 전역이 정전까지 되면서 일본 열도는 최악의 혼란에 빠졌다. 특히 미야기현의 해안도시인 게센누마는 강진 발생 이후 초대형 쓰나미가 덮쳐 도시 전체가 궤멸상태에 놓였다. 인구 9만명의 이 도시는 면적 절반가량이 물에 잠겼으며 나머지 절반은 강진 이후 화염에 휩싸였다. 또 지진과 쓰나미의 직격탄을 맞은 미야기현 최대 도시인 센다이 역시 초토화됐다. ●도호쿠 6.0~7.4 여진 수 십차례 쓰나미의 여파로 도쿄 등 수도권 주변의 전철과 지하철의 운행이 전면 중단됐다. 센다이공항이 물에 잠겨 1100명이 고립됐다. 전면 폐쇄됐던 도쿄 나리타공항은 11일 밤늦게 출발하는 항공편만 제한적으로 운항을 재개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도쿄 시내는 대중교통이 마비돼 걸어서 귀가하는 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집에 가지 못한 학생들과 직장인들은 시내의 학교와 회사 사무실에서 밤을 지새웠고, 가족들의 안전을 확인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전문가들은 이번 지진의 진원이 통상의 지진처럼 하나의 ‘점’이 아니라 ‘면’으로 구성돼 있어서 진원지 지역 전체가 튀어 올라 그 충격으로 태평양 연안에 상당한 쓰나미가 닥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여진이 계속 이어지고 이에 따른 쓰나미의 추가 발생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NHK 등 일본 언론들은 긴급방송을 통해 “강한 쓰나미 위험이 있다. 해안가 주민들은 내륙으로 이동하기 바란다. 튼튼한 건물 3층 이상에 대피해 있어야 한다.”고 거듭 경고했다. ●도쿄 대피소 가족확인 북새통 진앙에서 381㎞나 떨어진 도쿄에서도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도쿄에서는 오후 규모 4~5의 여진이 잇따라 발생하고, 도쿄만 일대에는 쓰나미 경보가 추가로 내려졌다. 도쿄 주변 도로 대부분이 파괴됐다. 귀가하지 못한 시민들을 위해 시내에 긴급 대피소가 마련됐다. 도쿄 시내 거리는 걸어서라도 집에 가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포토]최악의 대지진…일본열도 아비규환의 현장 4년 전부터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브라질 여성 타바타 헤이스 폰친스(23)는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 건물들이 종이처럼 흔들렸다.”며 당시 끔찍했던 상황을 전했다. 남편과 11개월 된 딸과 함께 도쿄에 사는 타바타는 “갑자기 건물이 흔들리며 큰소리가 들리고 건물이 심하게 흔들렸다.”면서 “세상의 종말이 온 것처럼 생각됐고,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고 말했다. 도쿄 아카사카에서 중국 식당을 하는 하타 이데카슈(36)는 “지금까지 이렇게 강력한 지진은 경험해 본 적이 없다.”면서 “아직까지도 충격으로 떨리고 무섭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의 도쿄 현지 직원인 오카무라는 “일본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지진에 익숙한 일본인들이 이처럼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은 매우 드물다.”면서 “오늘 지진은 이전의 것들과는 차원이 달랐다.”며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진의 진원지에서 가까운 미야기현 센다이의 인명 및 재산 피해가 가장 컸다. 인구 100만명의 도호쿠 지방 행정·경제·문화 중심지인 센다이는 이번 지진 및 쓰나미로 센다이공항과 농경지 상당수가 침수됐고 수백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정전으로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인 센다이 시내에는 미처 대피하지 못한 주민 3만명이 공공시설 등에 대피해 있다. 촛불과 구호식품에 의존하며 불안한 밤을 보냈다. 곳곳에서 화재가 발생해 더욱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미야기현과 시오가마시 경계에 있는 석유화학 콤비나트가 화재로 대규모 폭발이 일어났다고 전했다. ●도호쿠·간토 845만 가구 정전 대형 쓰나미의 여파로 미야기현, 마가타현, 이가타현, 후쿠시마현 등 도호쿠 지방 6개 현에서 440가구, 간토지방 405만 가구 등 845만 가구가 정전됐다. 미처 집계되지 않은 곳을 감안하면 정전 가구는 1000만채를 넘을 것으로 전망이다. 일본소방청에 따르면 58곳에서 크고 작은 화재가 발생했다. 이와테현에서는 가옥 300여채가 파괴됐다. 오후 5시 40분 도쿄의 하네다 공항이 폐쇄됐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나리타 공항에는 관광객 등 1만 3000여명, 하네다공항에는 1만 1000여명의 발이 묶여 있다. 쓰나미로 건물 일부가 침수된 센다이 공항에도 관광객과 공항 직원, 피난한 인근 주민 등 1100여명이 고립돼 있다. 또 11일 승객 100명을 태운 선박이 쓰나미에 휩쓸려 간 것으로 전해졌다. 지바현 코스모 석유회사의 저장탱크에서는 가스누출로 폭발이 일어나면서 화재가 발생했다. 도쿄 인근 해안에 위치한 가나가와현에서는 주택이 무너져 수십명이 중상을 입었고 미야기현 게센누마 초등학교에서는 쓰나미가 덮쳐 건물 3분의1이 침수되면서 피난해 있던 주민 수백명이 건물 3층으로 긴급대피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서울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빅토르 최’ 20주기 러 곳곳 추모행사

    ‘빅토르 최’ 20주기 러 곳곳 추모행사

    옛 소련에서 활동했던 전설적인 록가수 빅토르 최 사망 20주년을 맞은 지난 15일 러시아 곳곳에서 그를 기리는 추모 행사가 이어졌다고 러시아 국영 리아노보스티가 이날 전했다. 빅토르 최가 태어나 활동했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추모객 수백 명이 그의 무덤을 찾아 공식 추모행사를 가졌다. 모스크바 중심가에 있는 ‘빅토르 최를 추모하는 벽’에서도 수백 명이 모여 그의 사진 앞에 꽃다발을 바치고 촛불을 밝히며 그가 불렀던 노래를 함께 불렀다. 팬들이 꽃을 앞다퉈 사면서 인근 상점의 꽃이 바닥날 정도였다. 1962년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카자흐스탄 출신 고려인 2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최는 성적부진을 이유로 예술학교에서 퇴학당한 다음 해인 19세에 소련 최초의 록그룹 가운데 하나인 키노(Kino)를 결성해 보컬과 기타리스트로 활약했다. 서구 록 음악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면서도 독특한 러시아 선율을 창조해 냈다는 평가를 받는 그의 음악은 특히 저항과 자유의 메시지를 담은 가사로 소련 젊은이들 사이에서 주목 받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활동 초기엔 소련 정부와 대립하기도 했다. 페레스트로이카가 한창이던 1990년 6월 모스크바 레닌 스타디움에서 개최한 콘서트에는 6만여명이 운집하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같은 해 8월15일 순회공연차 방문한 라트비아 수도 리가에서 의문의 교통사고로 27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숨졌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시론]다른 세대의 얘기에도 귀 기울여야/조일영 한국교원대 국어학 교수

    [시론]다른 세대의 얘기에도 귀 기울여야/조일영 한국교원대 국어학 교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얼마나 실제적인가. 가상현실을 소재로 한 영화 ‘매트릭스’나 ‘아바타’, 그리고 조작된 세계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우롱당할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영화 ‘트루라이즈’ 등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가상적이거나 조작된 세계일 수도 있다는 상상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인간은 원초적 삶에서 멀어질수록 가상적 삶에 의지하여 살게 된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는, 비약해서 말하면, 인류 초기의 사람들보다 비사실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과거의 체험을 토대로 현실에 대한 인식을 구성하고 또 미래의 일에 대해 예측을 하는 과정에서 문명이 발달할수록 사실세계에 기초한 삶은 줄어들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사실세계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도 타인에 대한 가상을 통해서 전개된다. 그런 가상들에 대한 확신과 타인과의 공유 정도에 따라 신뢰, 신념, 이념 등의 사회적 믿음들이 생겨난다. 또 그런 믿음들의 현실성에 따라 추정, 상상, 환상, 망상 등으로 변해간다. 그러나 그런 믿음이 순탄하게 지속되지 않을 때, 즉 혼자만의 헛된 믿음이었음이 분명해질 때 혹은 집단적인 환상에 불과했음이 드러날 때 인간들은 서로에 대한 놀람과 실망, 경우에 따라서는 분노와 배신감에 치를 떨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개인 상호간에 일어나는 것은 일상의 다반사이고 여파가 개인 간에 그치지만 집단적인 가상으로 증폭되면 우리의 이성은 압도되어 종종 사실에 대한 검토나 추적을 포기하고 폭발적인 감정을 따르기 쉽다. 역사적으로도 그런 집단심리가 긍정적인 형태로든 부정적인 형태로든 폭발한 예가 많이 등장한다. 최근의 우리 한국 사회도 그런 유사한 경험을 했지 싶다. 민주화운동, 월드컵 응원, 촛불시위 등이 아마 그런 가상들에 대한 열광 혹은 분노가 표출된 예로 보인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정치권에서 간절히 편승하고 싶어 하는 경험들이기도 하다. 최근 평소 가깝게 느끼던 386세대 교수와 술 한 잔을 나누면서 오랜만에 세대 차이를 넘어 마음껏 논쟁을 펼쳤던 적이 있었다. 평소 잘 어울리긴 했지만 모든 걸 넘어서 그날만큼 솔직하게 의견을 격렬하게 주고받았던 적이 이전에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그날 그가 쏟아 놓은 이야기에 약간의 서운함과 단절감을 느꼈었던 것도 사실이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앞선 세대에 대해 불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나이 먹었다고 무조건 구세대로 치부하는 상황이 억울하기도 했지만 우리가 그렇게 불신을 받을 만큼 잘못 살았던가 하는 생각에 허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얼마 후 또 바뀌게 되었는데 그 말을 한 세대조차도 다음 세대로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받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를 또 다른 세대에 속하는 교수로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사회의 대체적인 흐름이 ‘-는 무조건 싫다’, ‘-는 무조건 좋다’는 판단 준거의 압박 속에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최근의 선거에서 나타난 분위기들과 무관하지 않다. ‘그 무엇’ 때문에 싫은 것이야 뭐라고 할 수 없지만 ‘그 무엇’이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냥 인상이 싫어서’라든가 ‘하는 짓이 미워서’라든가 하는 감성적 평가가 어떤 중요한 결정에 중요한 근거가 된다는 것은 참 위험한 일이다. 하긴 필자부터도 그런 오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도 어떤 젊은 교수가 지난 정권 기간 내내 당시 최고 권력자를 무조건 싫어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이제는 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겠다고 하는 말을 듣고 조금씩이나마 나아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조금 위안이 되기도 했었다. 물론 그것은 필자가 좋게 해석한 것일 뿐이고 말한 사람은 정반대의 의도가 있음을 모르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문제는 각각의 세대에 속한 이들이 다른 세대의 얘기는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요는 ‘환상 속의 그대’들로부터 ‘그대 안의 나’를 발견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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