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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건 前총리 ‘탄핵기간 중 비망록’ 쓴다

    고건 전 국무총리만큼 요즘 권력무상을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지내고 퇴임한 뒤 삼청동 공관을 떠나던 날,공관 경비경찰의 환송을 받으며 나서는 사진이 몇몇 일간지에 실렸을 뿐이고,퇴임 며칠 후 가진 시민단체 대표들과의 모임도 다른 뉴스 속에 파묻혔다. 그런 고 전 총리가 지난 28일 출입기자들과 가진 호프데이(재임중 약속)에서 ‘탄핵기간 중 비망록’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무거운 짐을 벗은 때문인지 표정은 무척 밝았다. 그는 “책읽을 시간이 많아졌겠다.”는 한 기자의 말에 “책을 읽을지,책을 쓸지….”라고 말끝을 흐렸다.이어 “주제는 정했느냐.”는 질문에 “63일 비망록을 써야지.”라고 대답했다.물론 이 자리에서 비망록 출간 시기나 분량 등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가 나온 것은 아니다.그러나 전례없는 대통령 탄핵상황을 맞아 권한대행직을 수행하면서 겪었던 경험을 남겨두는 게 옳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행정 참고자료가 될 수 있고,기록으로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특히 사면법 개정안 처리,탄핵반대 촛불시위 대처 등 개별 사안에 대한 배경 설명은 물론,각료 제청권 행사 거부를 전후한 본인의 미묘한 심경변화 등이 담길 것으로 보여 벌써 내용과 수위에 관심이 쏠린다. 총리실 관계자는 “고 전 총리의 신중함을 생각해보면 이미 비망록에 어느 정도 담을 내용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한편 국무총리실은 30일 고 전 총리가 올해 1월부터 퇴임까지 5개월여 동안 업무추진비로 3억 9900만원을 썼다고 밝혔다.지난해에는 3월부터 연말까지 10개월 동안 4억 1600만원을 썼다.홈페이지(www.opm.go.kr)에 공개된 내역을 보면 민생현장방문 격려에 1억 8100만원(45.3%),민의수렴을 위한 간담회에 9400만원(23.6%),내외빈 접견시 기념품비 6600만원(16.7%) 등을 사용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
  • [사설] 국민연금 논란 뒷북만 칠건가

    한 네티즌의 문제 제기로 촉발된 ‘국민연금 반대 운동’이 촛불집회로까지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국민연금공단측은 네티즌이 유포시킨 ‘국민연금의 비밀’이라는 글이 안티조직의 선동이라고 몰아붙이고 있으나 홍보나 제도 개혁보다는 징수에만 골몰했던 정부와 공단측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본다.‘노후 완전 보장’이라고 했다가 ‘최소한의 노후 생계보장’이라고 말을 바꾸더니 2047년이면 연금이 고갈된다며 더 내고 덜 받으라고 하는 등 정부와 공단측이 불신을 자초한 것이다. 우리는 일부 잘못된 내용이 포함된 ‘국민연금의 비밀’이 한순간에 사이버 공간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된 사실에 주목한다.정부는 노령화 사회에 대비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으로 국민연금의 존립 가치를 역설하고 있지만 연금 가입자들의 폭넓은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지역가입 대상자의 46%가 실직·휴직·사업 중단 등의 이유로 납부 예외자이고,고소득자들은 노후 설계를 자율에 맡길 것을 요구하고 있다.게다가 직장 가입자들은 소득 파악률이 낮은 지역 가입자에 비해 손해라고 불만이다.특히 안티 단체들은 국민연금과 공무원·군인·사학연금 등 재정 지원 연금과의 형평성 문제를 들먹이며 국민연금 불신에 부채질하고 있다. 정부는 국민연금 납부 상·하한액을 상향 조정하고 잘못된 내용에 대해 해명에 나서고 있지만 불길이 쉽사리 잡힐 것 같지는 않다.이런 상황에서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도 기대하기 어렵다.지금이라도 노후의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기초연금제도를 도입하는 등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근본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9·11이후 달라진 美시위문화

    |워싱턴 백문일특파원|지난달 25일 워싱턴에서는 낙태의 권리를 주장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전국에서 수십만명의 시위자가 ‘워싱턴 몰’로 불리는 미 의회와 링컨 기념관 사이의 광장에 운집했다.1960년대의 반전시위 이후 최대 규모로 전해졌다. 그러나 시위가 4시간여 동안 진행됐으나 몰 이외에서 시위를 벌이는 행위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집회를 마친 뒤 백악관으로 이어지는 도로에서 거리시위를 벌였으나 이 역시 정해진 시간과 도로를 따라 차분히 진행됐다.경찰은 일요일을 맞아 관광을 나선 행락객들의 교통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게 간선도로를 차단하지는 않았다. ●교통장애와 소음피해 방지가 집회의 자유보다 앞선다 워싱턴 경찰국에서 17년간 근무한 한국계 경찰 조셉 오는 “헌법이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에 피해가 되지 않는 한도에서 법이 운영된다.”며 “예컨대 출퇴근 시간대에 시위자들의 시위는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에서처럼 밤에 촛불을 들고 시위할 수도 있으나 낮과 밤 가운데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낮부터 밤까지의 마라톤 시위는 불가능하다.시위 때문에 낮에 사무실에 오지 않는 사람들이 밤에 일할 기회를 주도록 해가 떨어지면 시위를 끝내야 한다.반대로 밤에 시위하려면 해가 지기 전에는 어떤 행사도 시작할 수 없다.주택지역이나 주택지역에 피해가 되는 곳에서는 어떠한 시위도 금지된다. ●최장 1년 전부터 시위가 예고된다 4월28일 의회 앞에서 열린 북한 자유의 날 시위는 5개월 전에 통보됐다.주관 단체인 북한자유연합이 지난 연말부터 인터넷과 메일 등으로 언론기관과 유관단체들에 알렸다.긴급한 사안에 맞춰 한국에서처럼 즉석 시위를 벌일 수도 있으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소를 물색하기가 쉽지 않다. 만약 반전(反戰)시위를 계획할 경우 다른 단체들이 비슷한 행사를 준비했다면 동일한 장소가 아니더라도 같은날의 시위는 허락되지 않는 게 보통이다. 워싱턴 경찰당국의 한 관계자는 “비슷한 이슈에 관한 시위는 먼저 신청한 단체나 조직에 우선권을 준다.”며 “자칫 작은 규모로 시작한 여러 시위가 합쳐져 시민생활에 큰 불편을 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그 때문에 각종 시위는 적어도 1∼2달 전,길게는 1년 전부터 당국에 허가 신청을 한다.지난달 열린 낙태 권리를 위한 시위는 지난해 6월에 허가를 받았다.당국의 허가를 얻기 위해서는 시위에 참가하는 총인원,시간,장소,집회가 끝난 뒤 이동하는 경로 등을 구체적으로 적어야 한다.고속도로에서의 시위는 100% 불허한다.고속도로를 차단하면 경찰이 무조건 체포한다. ●청소비 등 시위와 관련한 모든 책임은 주관단체가 진다 시위 도중 일어나는 사고나 불상사는 전적으로 주관단체의 책임이다.지정된 장소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시위를 벌이면 경찰이 붙잡아 즉결재판에 넘길 수 있다.물론 다소 융통성이 있으며 경찰은 정해진 시위장소에 공권력을 최대한 동원,시위자들을 보호한다.특히 거리시위에는 교통신호 체계를 시위 중심으로 바꿔 시위를 도와야 한다. 시위에 참가하지 않는 시민이 교통이나 소음 등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소송을 제기하면 사법당국은 허가된 장소라도 피해의 정도가 클 경우 주관단체에 책임을 물릴 수가 있다. 미국의 각 주나 카운티의 경찰당국은 이를 위해 소음피해에 대한 규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시위가 끝나면 각종 쓰레기들이 나오게 마련이다.미국에서는 시위 주변을 당국이 청소하지만 쓰레기 등의 수거비와 인건비는 관련단체에 추후 청구한다.보통 1만명이 참여할 경우 청소비로 2000달러 안팎이 든다고 한다. ●9·11 이후 까다로워진 시위 현장 지난달 워싱턴 시내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 및 세계은행 연차총회가 열렸다.세계화에 반대하는 단체들이 시위를 벌이는 행사로도 유명하다.그러나 올해에는 시위가 있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조용히 지나갔다. 당국이 시위를 허락하면서도 국가안보상의 이유로 반경 500m를 철저히 통제했다.이를 뚫으려고 돌진하면 경찰이 체포하겠다고 밝혔다. 테러리스트가 끼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엄포를 놓으며 강력 대처를 다짐했다.테러의 우려로 시민들이 당국의 방침을 적극 지지하자 결국 시위는 지지부진했다. 관공서 앞의 시위에는 가방의 크기를 제한한다.등에 메는 가방 정도는 허락하지만 여행용 가방은 검색을 받도록 했다.또한 폭탄 등을 투척할 거리 이내에서는 시위가 금지된다.피켓을 들 경우에도 쇠 파이프나 각목은 금지되고 30㎝ 안팎의 작은 막대기만 사용할 수 있다. 이같은 시위규칙을 어기거나 시위장소를 이탈하면 즉결심판에 부쳐 3일간의 구류와 함께 100달러의 벌금을 물린다.대규모 시위가 열릴 때에는 스타디움을 통째로 빌려 불법 시위자 수용에 대비하기도 한다.판사가 스타디움에서 즉결 법정을 연다. mip@seoul.co.kr 미국만큼 집회와 시위가 잘 보장된 나라도 없다.백악관,의회,외국 대사관 앞에서 미리 신청하면 얼마든지 시위를 벌일 수 있다.그러나 미국만큼 시위를 엄격히 통제하는 나라 역시 드물다.시위 관련자들이 ‘통제선(police line)’을 넘으면 즉각 체포하는 게 미국이다.시위로 불편을 받은 사람도 언제든지 시위자를 고발할 수 있다.특히 9·11 이후 테러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시위를 허용하는 조건이 상당히 까다로워졌다.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막대기로 피켓을 받치지 못하게 하고 가방의 크기도 제한한다.혹시 가방 안에 폭탄이 들었을까 해서다.시위를 허용하면서 국가안보라는 이유를 내세워 집회장소를 이중삼중으로 에워싸,사실상 원천봉쇄하기도 한다. ˝
  • [임영숙 칼럼] 탄핵, 그리고 5·18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 이후 첫외부행사로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은 광주와 탄핵을 이렇게 연결했다.“지난 3월 촛불시위를 TV로 보면서 선진 민주국가에서도 찾아 보기 힘든 평화적인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그것은 불의를 용납하지 않되 민주적인 행동도 포기하지 않았던 5·18 광주의 전통이 국민 가슴속에 살아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렇다.‘5월’ 또는 ‘광주’로 그냥 표현되기도 하는 5·18 민주화운동은 한국 민주주의 대장정의 획기적인 전환점이다.80년대 운동권을 지배하는 화두였던 ‘광주’는 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졌고 다시 지난해와 올해의 시청앞·광화문 촛불시위에 보통 사람들을 참여시킨 숨은 동력이었다.문학평론가 김명인씨는 이를 “너 지금 그 자리에 있는가”란 물음으로 압축한다.민주화 투쟁이전에,인간의 존엄을 위한 투쟁의 자리에 지금 참여하고 있느냐는 준엄한 질문이다. 2004년 3월12일 국회의 대통령 탄핵 역시 1980년 5월 광주처럼 일어나서는 안 될 국가적 불행이었지만 한국 민주주의 성숙을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국회의 탄핵안 가결에서 헌재의 탄핵기각 결정에 이르기까지 63일간은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어둡고 긴 터널이었으나 전화위복의 결과를 안겨 주었다.무리한 대통령 탄핵은 우선 한국 민주주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했다.평화적인 촛불시위와 별다른 혼란없이 국회 판갈이를 이뤄낸 총선은 시민사회의 성숙과 함께 민주주의 주체는 국민이란 사실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무엇보다 헌법적 질서와 체계에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법치주의를 되새기게 됐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법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고 법의 결정에 승복하는 훈련을 온 국민이 제대로 받으면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한단계 성숙한 셈이다. 헌재의 탄핵기각 결정문은 특히 헌법의 존재와 헌재의 중요성을 각인시켜주었다.교과서에 실린 추상적 개념으로만 기억돼 온 헌법과 삼권분립의 정신이 일상속의 구체적 사실로 가슴에 와닿게 했다.권위주의 시대를 지나오면서 은연중 무시되기도 했던 헌법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게 만들었다.대법원과 비교돼 한때 헌재 무용론이 제기된 적도 있지만 탄핵기각 결정문은 딱딱하고 난해한 판결문에 익숙한 이들에게 “아름답다”는 말을 들을 만큼 명문장이었다.결정문을 낭독한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의 얼굴처럼 편안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인 대통령이 헌법을 경시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권한과 권위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것임을 서릿발 같이 지적했다. 그러나 쉽게 망각하는 우리 국민이 탄핵을 통해 얻은 법치주의의 교훈을 얼마동안이나 기억할까.5·18기념식장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비표없이 검색대를 통과하려다가 제지 당하자 거칠게 항의했다는 것은 사소하고 경미한 일이지만 그 교훈이 아직 행동을 바꿀 만큼 체화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광주’와 탄핵은 민주화와 법치주의의 길을 열었다.민주화의 대장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듯이 법치주의 또한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다.이제 우리가 할 일은 탄핵의 교훈을 쉽게 잊지 말고 법치의 내용을 채워나가는 것이다.대통령을 비롯해 고위공직자와 정치인,일반국민 모두가 해야 할 일이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부터 헌법을 다시 읽고 법치의 정신을 가슴에 새기면서 습관적인 위법행위들을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법정기일내에 처리되는 경우가 거의 없는 예산안이나 지구당 폐지 문제 등만 해도 국회의원들의 법의식수준을 보여준다.소수의견 공개 여부로 논란이 된 헌재법 36조 3항을 비롯,탄핵심판 과정에서 드러난 법률적 미비점 등을 정비하는 기술적 보완도 시급한 일이다. 주필ysi@˝
  • 韓·美동맹 정말 이상기류 없나

    미국 정부가 주한 미 2사단 병력의 이라크 파견을 전격적으로 결정,우리 정부에 일방 통보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한·미동맹에 이상기류가 형성된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에 대해 18일 내외신 정례브리핑에서 “국익을 위해서라도 추측 보도를 자제해 달라.거듭 부탁드린다.”며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미국이 지난 14일 비공식적으로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을 제안한 후 사흘 만에 전격적으로 이를 수용한 것이나,한·미간 공식 전달 채널의 격(格)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 양국 관계의 누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냐는 일부 여론을 부인한 것에 다름아니다.반 장관은 “근거없는 보도는 국내는 물론,한·미동맹 관계를 지켜보는 국제사회에 불필요한 오해를 부를 수 있으니 협조해 달라.”고까지 했다. 한 당국자는 “사흘 만에 결론을 내린 것은 미국측이 이라크 상황의 다급함을 긴급히 설명했기 때문”이라며 “관계부처간 협의를 거친 뒤 한·미 양국이 공동으로 발표하기로 예정됐었다.”고 말했다.언론에 사전 유출된 탓에,충분한 협의가 없었던 것처럼 보일 뿐이란 설명이다.한·미 관계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비쳐진 지난 92년,조지 부시 미 행정부가 7000명의 주한미군을 줄였을 때는 우리 사회에 별다른 동요가 일지 않았다.하지만 지난 2002년 ‘촛불시위’ 이후 반미정서가 확산되고 한·미동맹 강화 목소리가 위축된 최근 우리 사회는 미군 감축을 놓고 극단의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정부가 한·미 관계 이상없음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주한미군 이라크 전환] 정부 대응과 파장

    미국이 주한미군 일부를 차출해 이라크에 보내는 방안을 우리 정부에 통보해 오고,이것이 주한미군 감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이에 따라 최근 수년간 우리 사회의 화두였던 주한미군 감축과 한국의 안보능력 및 한·미 관계의 현주소 등을 되짚는 계기가 되고 있다.‘차출’ 소식이 전해진 17일 주가는 고유가 등 악재와 뒤섞여 한때 40포인트가 빠지는 폭락 장세를 보이는 등 ‘정서적’ 충격이 적지 않음을 보여줬다. 정부가 주력하는 것은 국민들의 안보불안 심리 최소화다.정부는 1년 전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부터 자주국방 또는 협력적 자주국방론을 전개하면서 주한미군 의존성을 탈피하려는 모습을 보여왔다.하지만 지금은 수천명의 주한미군이 이동하고 아예 감축될 경우 이것이 미칠 경제적 파장 등을 부심하며 ‘연착륙’을 시도하고 있다.정부는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 가능성 및 감축 가능성에 대해선 부인으로 일관했었다. 김숙 외교통상부 북미국장은 17일 브리핑에서 “주한미군은 시스템으로 봐야 하고 주둔 자체로 봐야 한다.”며 실제 군사력 공백은 크지 않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반면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는 “이 기회에 다 떠나라.”며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입장들도 상당수 올라오고 있다. 한 전문가는 “정부는 안보 과민증과 안보 불감증 사이에서 현실을 전달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면서 “안보 공백은 주한미군 감축 숫자에서 오는 게 아니라,한·미 양국 정부와 국민들간 신뢰 관계의 틈새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미국의 주한미군 차출배경을 어디에 둘 것이냐에 따라 지금의 한·미관계를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양국이 군사동맹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미측이 요청한 치안유지 병력보다는 평화·재건부대로 한정시키고 그나마도 파병 일정을 두달째 지연시키고 있는 것에 대한 대응으로 ‘차출’ 카드를 제시했다면 한·미관계는 이미 흔들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미 양국은 지난 2002년 말 촛불집회를 계기로 확산된 반미정서와 정부의 ‘자주외교론’,북핵 대응방법,이라크 파병,주한 미대사관 신축 문제의 협의과정에서 심심찮은 갈등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주한미군의 차출은 이라크 상황 악화가 만든 결과일 뿐 한·미관계 현주소의 방증으로 해석하지 말라고 주문한다.‘이라크 수렁’에 빠져 있는 미국 입장에선 전세계에 배치된 미군 가운데 주한미군이 현지 실전 투입가능한 최적의 군대란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정부 관계자는 “우리가 파병을 예정대로 했어도 차출은 불가피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주한미군 이라크 전환] 정부 대응과 파장

    [주한미군 이라크 전환] 정부 대응과 파장

    미국이 주한미군 일부를 차출해 이라크에 보내는 방안을 우리 정부에 통보해 오고,이것이 주한미군 감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이에 따라 최근 수년간 우리 사회의 화두였던 주한미군 감축과 한국의 안보능력 및 한·미 관계의 현주소 등을 되짚는 계기가 되고 있다.‘차출’ 소식이 전해진 17일 주가는 고유가 등 악재와 뒤섞여 한때 40포인트가 빠지는 폭락 장세를 보이는 등 ‘정서적’ 충격이 적지 않음을 보여줬다. 정부가 주력하는 것은 국민들의 안보불안 심리 최소화다.정부는 1년 전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부터 자주국방 또는 협력적 자주국방론을 전개하면서 주한미군 의존성을 탈피하려는 모습을 보여왔다.하지만 지금은 수천명의 주한미군이 이동하고 아예 감축될 경우 이것이 미칠 경제적 파장 등을 부심하며 ‘연착륙’을 시도하고 있다.정부는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 가능성 및 감축 가능성에 대해선 부인으로 일관했었다. 김숙 외교통상부 북미국장은 17일 브리핑에서 “주한미군은 시스템으로 봐야 하고 주둔 자체로 봐야 한다.”며 실제 군사력 공백은 크지 않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반면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는 “이 기회에 다 떠나라.”며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입장들도 상당수 올라오고 있다. 한 전문가는 “정부는 안보 과민증과 안보 불감증 사이에서 현실을 전달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면서 “안보 공백은 주한미군 감축 숫자에서 오는 게 아니라,한·미 양국 정부와 국민들간 신뢰 관계의 틈새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미국의 주한미군 차출배경을 어디에 둘 것이냐에 따라 지금의 한·미관계를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양국이 군사동맹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미측이 요청한 치안유지 병력보다는 평화·재건부대로 한정시키고 그나마도 파병 일정을 두달째 지연시키고 있는 것에 대한 대응으로 ‘차출’ 카드를 제시했다면 한·미관계는 이미 흔들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미 양국은 지난 2002년 말 촛불집회를 계기로 확산된 반미정서와 정부의 ‘자주외교론’,북핵 대응방법,이라크 파병,주한 미대사관 신축 문제의 협의과정에서 심심찮은 갈등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주한미군의 차출은 이라크 상황 악화가 만든 결과일 뿐 한·미관계 현주소의 방증으로 해석하지 말라고 주문한다.‘이라크 수렁’에 빠져 있는 미국 입장에선 전세계에 배치된 미군 가운데 주한미군이 현지 실전 투입가능한 최적의 군대란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정부 관계자는 “우리가 파병을 예정대로 했어도 차출은 불가피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시민들 “예상했던 결과…상생 정치 펴라”

    헌법재판소가 14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기각하자 시민들은 “예상했던 결과”라며 대부분 환영했다.노 대통령이 폭넓은 상생의 정치를 펴주기를 바라는 주문도 잇따랐다. ●노사모,광화문에서 ‘노란 촛불집회’ 노사모와 국민의힘 등 ‘친노’성향 단체 회원과 시민 1300여명은 이날 오후 6시30분부터 4시간 남짓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촛불집회를 갖고 노 대통령의 복귀를 반겼다.이들은 ‘국민승리’라고 적힌 카드와 촛불을 한손에 들고 “노무현 대통령님 보고 싶었습니다.”라고 외쳤다. 참석자들은 노란 바탕에 ‘대통령님 힘내세요.뒤에는 국민이 있습니다.’,‘국민의 대통령,국민이 지켰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리본이 달린 샴페인을 터뜨렸다.이들은 또 부활을 상징하는 삶은 달걀 1만여개에 “국민 여러분 고맙습니다.노사모”라고 적힌 노란 스티커를 붙여 시민들에게 나눠줬다.행사에 참석한 회사원 김정숙(29)·영미(24)씨 자매는 “TV를 통해 기각선고 장면을 보고 너무 기분이 좋아 집회에 나왔다.”면서 “오늘이 가장 기쁜 날”이라고 기뻐했다. 광주지역 노사모 회원과 시민 100여명도 오후 7시부터 광주 충장로 삼복서점 앞에서 축하행사를 가진 것을 비롯,부산·수원·목포·울산 등 서울을 제외한 전국 5곳에서 500여명이 촛불집회를 가졌다. 앞서 민주노총,참여연대 등 550여개 단체로 이루어진 ‘탄핵무효 부패정치 청산을 위한 범국민행동 준비위원회’는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당 등은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헌재 앞에서 선고를 기다리던 북핵저지시민연대 등 우익단체 회원 20여명은 기각 결정이 내려지자 격앙된 목소리로 “인정할 수 없다.”,“대통령은 스스로 물러나라.”고 외쳤다.박찬성(49) 탄핵지지국민연대 공동대표는 “선고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뒤 대통령 퇴진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양한 반응과 주문으로 온라인 후끈 온라인도 뜨겁게 달아올랐다.포털사이트 다음이 ‘헌재의 탄핵소추안 기각 판결에 대한 의견’을 묻자 8만 1963명의 응답자 가운데 49.4%인 4만 527명이 ‘환영하지만 탄핵을 발의했던 3당은 사과해야 한다.’는 답을 골랐다.이어 30.7%인 2만 5196명이 ‘환영한다.과거를 묻고 상생의 정치를 펼쳐야 한다.’고 답했다.13.9%인 1만 1378명은 ‘반대의견이지만 판결은 받아들인다.’,5.9%인 4862명은 ‘잘못된 판결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을 찾은 ‘북한산’은 “앞으로 다시는 구설수에 오르지 말고 국정에 매진해 빛나는 지도자가 돼달라.”고 당부했다.반면 코리아닷컴의 ‘진실을 보고자’는 “노 대통령의 문제된 언행이 모두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고 꼬집었다. ●봉하마을 주민들 잔치 분위기 노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주민 100여명은 ‘대통령 탄핵기각 환영’이라고 쓴 현수막을 들고 일제히 만세를 부르며 기각 결정을 반겼다.돼지고기와 국밥 등을 나눠 먹으며 기뻐하는 잔치분위기 속에 일부 노사모 회원은 ‘당당한 대한민국의 당당한 대통령 노무현’이란 현수막과 ‘국민여러분 감사합니다’란 글귀가 적힌 노란 풍선을 흔들었다.조용효(48) 이장은 “각하됐다면 더없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경제 살리기 전념 당부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논평을 내고 “앞으로 국정운영의 중점을 경제 활성화를 통한 민생안정에 두어야 한다.”면서 “경제계는 적극적 투자로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경총은 “대통령은 기업투자 활성화와 노사관계 안정이 경제회생에 가장 중요한 만큼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고 국정을 운영해 주기를 당부한다.”고 말했다. 장세훈 김효섭기자 shjang@seoul.co.kr˝
  • [사설] 갈등 접고 이제 국력 결집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기각 결정을 내렸다.헌정사상 초유의 국정 불안과 사회적 갈등을 야기했던 63일간의 탄핵정국이 마침내 막을 내린 것이다.결론부터 말하자면 탄핵정국이 모두가 승복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로 마무리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그 시작은 어둡고 참담했으나 그 끝에 이르러서는 상생과 화합의 길을 제시했다는 점이 무엇보다 반갑다.탄핵사태는 진정한 승자도 없고,패자도 없다.또 승자와 패자가 있어서도 안 된다.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성숙 과정에서의 진통,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헌재의 탄핵소추안 기각 결정 의미는 크게 보면 의회민주주의의 절차 존중,법치주의 확립,국민이 부여한 대통령에 대한 민주적 정당성과 헌법 수호자로서의 책임을 들 수 있을 것이다.헌재가 헌법정신과 법관의 양심에 따라 내린 결론은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이 기꺼이 받아들이기에 충분하다.헌재의 결정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는 여야 각 정당들의 반응도 당연한 것이다.다만 헌재가 역사적 결정을 내리는 마당에 법률적 근거가 미약하다는 이유로 소수의견을 밝히지 않은 것은 다소 아쉬움으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탄핵정국의 와중에서 우리 정치와 사회는 엄청난 변혁을 겪었다.국정은 불안했고,시민사회는 갈등과 편가르기로 뒤숭숭했던 것이 사실이다.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이러한 불안들을 성숙한 시민역량으로 극복했다.국민들은 총선을 통해 국가의 안정과 정치권의 반성을 강도높게 요구했다.또 차분히 기다렸다.청와대와 노 대통령측도 충분히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야당들도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국정공백을 최소화하려는 정부의 노력도 돋보였다.탄핵정국이 국정안정의 발목을 잡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로 인해 국정과 민생이 우려한 만큼 파탄지경에 이르지 않은 것은 우리 모두의 축복일 것이다. 이제 탄핵기각 결정 이후가 더 중요하다.대통령 직무정지 63일간이 헛된 시간이 아니라 국가발전을 위한 진통으로 승화시키려면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이 많다.대통령과 정치권,시민사회는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 지금보다 더 무거운 책임감으로 맡은 바 소임을 다해야 한다.노 대통령과 청와대는 헌법과 국익의 수호자로서의 그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지난날의 공과나,책임공방은 이제 의미가 없다.헌재의 결정에서도 드러났듯이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주권을 위임받아 나라의 중심에서 민주주의와 법을 수호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다.법과 질서의 토대위에서 국익을 챙기고 민생을 살리는 것이 바로 대통령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인기와 여론에 좌우되는 통치가 아니라,민심과 국익을 우선하는 정치를 펼쳐야 할 것이다. 여야 정치권도 탄핵정국이라는 수업료를 톡톡히 지불했다고 본다.탄핵정국과 총선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민심은 한마디로 상생정치를 펼치라는 것이다.탄핵정국으로 국정을 불안하게 한 책임은 모두 정치권에 있다.인기위주의 정치,여론을 볼모로 한 편가르기와 힘겨루기 정치는 이번 결과를 교훈삼아 과감하게 추방해야 한다.민심과 민생을 살피는 정치여야지 여론을 좌지우지하려는 정치여서는 곤란하다.17대 국회에서는 대화와 타협,민생 우선의 정치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정부와 기업,근로자 등 경제주체들도 정치적 위기가 해소된 만큼 경제살리기에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지금의 경제위기가 탄핵정국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지만 국제경쟁에 발빠른 대처를 하지 못한 것은 정치불안에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머리를 맞대고 경제살리기에 전념해야 한다.특히 정치권이 개혁의 방법론과 이념에 대한 논쟁으로 시간을 끌어 경제주체들의 발목을 잡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경제살리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선 순위다.대통령과 정부는 과감하게 주도권을 쥐고 경제 국익을 챙겨야 할 것이다. 탄핵정국 이후 촛불시위와 반대시위에 따른 국론분열 등 시민사회가 보여준 태도는 다소 염려스러운 부분도 있었지만 충돌없이 잘 참아준 것은 성숙한 시민사회의 승리다.이제 이같은 자신감을 거울삼아 시민사회가 국익과 민생에 대한 감시자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이제 나아갈 길은 국민화합과 전진이다.˝
  • [탄핵기각] ‘법과 여론사이’ 절묘한 선고

    “선거법 위반이지만 탄핵할 만큼 중대하지는 않다.” 결론적으로 국민들의 여론과 헌법재판소의 최종결론은 일맥상통했다. 주선회 주심 등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지난 3월12일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송부돼 올때 부터 “헌법과 법률에 따라 판단하겠다.”고 공언해 왔다.1988년 헌재 설립 이후 탄핵심판 사건이 처음이었던 만큼 미국 등 사례 외에는 참고할 만한 ‘판례’도 없었다. 그럼에도 헌재 재판관들의 말대로 ‘헌법과 법률에 따라’ 내린 탄핵심판의 최종 결론은 국민들의 뜻과 마찬가지로 ‘기각’이다.그렇다면 헌법과 법률 외에 헌재 결정에 영향을 미친 다른 요인은 없을까.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기 직전인 3월11일 갤럽 등 여론조사기관의 조사 결과는 국회의 탄핵소추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54∼65%로 찬성한다는 여론의 두배에 달했다. 촛불집회가 한창일때는 ‘탄핵무효’에 70% 이상의 국민이 동의하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4·15 총선’ 결과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압승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됐다. 이런 이유에서 헌재 재판관들의 결정에 여론이 상당한 작용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실제 대한변호사협회,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의 법조계 단체는 물론 학술단체협의회,법학교수모임 등 학계에서도 잇따라 탄핵소추의 부당성 및 ‘사유 경미’ 등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고,법리적 견해를 담은 ‘의견서’를 여러차례 헌재에 제출했다. 그러나 헌재는 여론의 다수를 점유한 ‘각하’는 취하지 않았다.국회가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하는 과정의 적법성에는 하자가 없었다는 것. 헌재는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의결하는 과정에서 피청구인인 노 대통령에 대한 충분한 조사와 심사를 거치지 않고,의견제출 기회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적법절차’에 위배된다는 상당수 법조계 인사들의 견해에도 불구,국회법 규정 등에 따라 국회의 ‘손’을 들어줬다. 박홍환기자 stinger@˝
  • [탄핵기각] 본지 사설 통해본 탄핵과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소추 국면이 파국으로 치닫지 않고 마무리된 것은 정치권의 당리당략에 흔들리지 않은 국민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총선과 맞물리면서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는 정치권의 무리수가 여야를 막론하고 판치는 상황에서 정치적 편향성을 갖지 않은 ‘건전한 소수’의 방향 제시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대다수 한국 언론이 이념적·정치적 지향성을 보이는 상황에서 독립언론으로 다시 태어난 서울신문의 중심이 분명한 사설은 탄핵 국면 내내 국민 일반의 정서를 대변했다. 서울신문은 야당의 대통령 탄핵 움직임이 가시화되던 3월6일 ‘정략적 탄핵 철회하라’는 제목의 사설을 썼다.야당이 주장하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선관위의 선거 중립 의무 준수’ 요청은 탄핵사유가 되기에는 미흡하다는 것이다.“총선전략적 차원에서 국가를 위기국면으로 몰고간다면 되레 야당이 역풍을 맞을 것이 자명하다.”는 충고는 결국 현실로 나타났다. 대통령과 청와대에도 반성을 촉구했다.노 대통령의 지나친 총선 관련 발언과 측근비리로 정권 역시 국민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헌법재판소가 14일 “노 대통령이 공무원의 선거법 중립의무를 위반하고,선관위의 선거법 위반결정에 유감을 표시하여 헌법수호 의무를 위반했지만,파면할 정도의 사유는 되지 않는다.”고 밝힌 결정 내용은 국회의 탄핵 발의 이전부터 서울신문 지면에서 예고되어 있었던 셈이다. 국회가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하기 하루 전인 3월8일에는 대통령이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대통령이 총선 관련 의사표시를 굽히지 않고 야권과 기싸움을 벌이는 모습은 지나치다는 것이다.탄핵안이 가결된 다음날인 3월13일자 사설 ‘나라가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의회 권력의 폐해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상황”이라면서 “그러나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국회의 탄핵 결정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법치주의 원칙을 강조했다. 국민들에게도 자중을 호소했다.3월17일자 ‘탄핵 촛불집회 오래 끌면 안된다’는 “촛불집회는 여중생 추모시위가 그랬듯 ‘사회적 카타르시스 시스템’으로 용인됐던 것”이지만 “탄핵 국면에서는 촛불집회를 통해 나타내려고 하는 내용이 이미 충분히 표현됐다.”고 지적했다.탄핵 찬성 집회도 벌어지는 마당에 자칫 ‘분란의 불쏘시개’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걱정이었다. 탄핵 국면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사설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토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4월28일자 ‘마지막까지 파행 겪는 탄핵 심판’은 수사기록 제출 공방이 결정에 승복하지 않는 분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노력할 것을 당사자들에게 촉구했다.결정을 목전에 둔 5월12일 “헌재가 소수 의견을 재판관의 실명까지 밝힘으로써 정치적 판단을 배제했음을 끝까지 실증해 보일 의무가 있다.”고 강조한 것 역시 후유증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헌재의 결정이 내려진 5월14일자 사설은 “결정이 어떻게 나든 승자는 없다.”는 한마디로 탄핵 국면을 정의했다.결국 서울신문과 헌법재판소의 생각은 다르지 않았고,그것이 국민 일반의 생각이었다. 서동철기자 dcsuh@˝
  • 광화문촛불 14일 다시켠다

    서울 광화문에서 촛불집회가 한 달 만에 다시 열린다. 참여연대,전국민중연대,민주노총,전농,여성단체연합 등 전국 351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이라크 파병반대 국민행동’은 14일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팔루자 학살·반인권적 포로학대 규탄,추가파병철회 촛불한마당’을 갖는다.또 22일과 29일,다음달 5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촛불집회를 열 예정이다.촛불집회는 총선 직후인 지난달 17일 ‘탄핵 무효’를 주장하는 시민들에 의해 열린 바 있다. 국민행동은 12일 “이번 집회에는 시민사회단체 회원과 일반시민 등 1500여명이 참석,미국의 이라크 점령 중단과 파병철회 등을 촉구할 예정”이라면서 “안치환·조PD 등의 공연을 비롯,문화제 형식으로 치를 것”이라고 밝혔다. 김효섭기자 newworld@˝
  • 시민단체 ‘脫정치’ 나섰다

    시민운동의 지각변동이 시작되고 있다.참여정부 출범 이후 부패·무능 정치인 청산 등 정치개혁에 주력하던 시민단체들이 최근 잇따라 ‘탈정치’를 선언하고 나섰다.앞으로 시민단체들은 정치분야 활동을 줄이는 대신 민생문제와 주민자치·경제개혁·환경분야 등 각 단체의 특성에 맞는 분야에서의 ‘전문화’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시민단체의 이같은 방향 설정은 17대 총선을 통해 구악(舊惡) 정치인들이 상당수 ‘물갈이’된 데다 민주노동당의 제도권 진입 등 정치 지형의 변화가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그동안 진보적인 의제 설정을 독점해오던 시민단체들이 ‘영역 조정이 필요하다.’는 자체 판단을 내리고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분야 활동 대폭 축소 10일 시민단체들에 따르면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환경운동연합 등 대표적인 국내 시민단체들이 정치분야의 활동을 축소하는 대신 민생현안 등 부문의 활동을 강화키로 했다. 이같은 탈정치 움직임은 17대 총선이 분기점이 됐다.낙선운동을 주도한 ‘2004 총선연대’는 지난달 해체하면서 “17대 총선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낙선운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총선연대 관계자는 “유권자들이 무능·부패 정치인을 판단해 퇴출시킬 정도로 의식이 충분히 성숙된 만큼 앞으로는 시민단체가 주도해 낙선운동은 벌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다른 요인도 있다. 총선연대에서 활동했던 시민단체 관계자는 “총선에서 나타난 무분별한 낙선·당선운동 등 시민단체의 지나친 정치개입이 시민단체의 순수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게 제기됐던 것도 사실”이라면서 “특히 민노당의 원내 진출 등 정치지형이 바뀐 만큼 정치분야에서 시민단체의 입지는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대표적 시민운동가인 박원순 변호사(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와 최열 환경운동연합 대표 등도 최근 잇따라 시민운동의 방향성 변화를 주문하기도 했다.‘권력감시’에서 ‘개별 시민운동의 전문화’로 중심축을 옮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참여연대가 지난 7일 서울 동숭동 흥사단 강당에서 ‘탄핵,촛불,총선 그리고 한국사회의 새진로’를 주제로 연 토론회에서도 진보정당의 원내진출과 탄핵사태를 전후한 시민사회의 변화 그리고 이에 따른 향후 시민운동의 방향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전개됐다. 이날 토론회에서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이번 17대 총선을 계기로 정치지형의 변화가 시작돼 시민운동은 정당과 잠재적 경쟁관계에 들어간 만큼 역할 재조정이라는 과제에 봉착했다.”면서 “지금까지의 종합적인 시민운동은 전문화된 감시운동으로,정치적 시민운동은 주민자치운동으로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할 조정’ 서두르는 시민단체 시민단체들은 이같은 기조 아래 저마다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오는 9월 창립 10주년에 맞춰 운동방향의 변화와 조직 재정비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권력감시 기능에도 충실하면서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 확대,빈곤 문제해결,파병결정 철회 및 남북관계 진전,국가보안법 폐지 등에 주력할 방침이다.정치·민생·외교·안보 분야를 중심으로 한 활동방안도 별도로 마련 중이다.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실장은 “시민운동이 그동안 민주정치 정상화에 관심을 두고 권력을 감시해왔다면 이제는 정치적 지형 변화를 반영,사법권력 등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거나 성장 일변도 정책으로 더욱 심각해지는 빈곤문제 해결 등 문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경실련은 17대 총선이후 수차례 내부 토론을 거쳐 정치과제보다 민생·경제과제 중심의 시민운동에 주력한다는 기존 방침을 재확인했다. 신용불량자와 비정규직,실업문제 등 민생과 밀접한 문제에 주목하고 교육문제와 관련한 태스크포스를 꾸리는 등 새로운 운동과제도 적극 발굴할 예정이다. ●민생과제 중심 운동 전개 고계현 경실련 정책실장은 “정치문제는 기본 논평에만 충실하고 민생과제 중심의 운동을 전개할 예정”이라면서 “정당이 찾지 못하는 벤처적 이슈를 의제화시키고 시민생활과 밀착되고 각론에 강한 운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환경운동연합은 국회의원들이 참가하는 국정정책자문위원회를 17대 국회 출범에 맞춰 새롭게 구성하되 국책사업·생태연구·환경법률 등으로 연구분과를 구성,전문성을 강화하는 한편 국회와 실질적 협조체제를 구축할 방침이다. 인권운동사랑방 등 인권단체들은 자문기능 강화 등을 통해 전문성을 강화하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과 국가보안법 개정 및 폐지를 위한 법안청원·입법운동,입법 공청회,의정 모니터 활동 등을 활발히 진행할 계획이다. 의문사유가족대책위나 민족문제연구소 등 기타 단체들도 정치권과 연계해 의문사진상규명법,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법 개정을 위한 활동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시민단체의 외연을 더욱 넓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조현옥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대표는 “시민운동의 방향은 전문화된 감시운동과 주민운동,신사회운동 등 큰틀에서 진행돼야 한다.”면서 “특히 시민운동이 이제는 국제사회의 의제들과도 보조를 맞춰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지자체 ‘원전센터 유치전’ 재점화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원전센터 유치운동이 재점화되고 있다.이달 말 ‘원전센터 유치 주민청원기간’ 만료를 앞두고 전국 5∼6개 자치단체에서 유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전북 고창군 해리면 광승리 주민들은 지난 1일부터 주민청원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해리면 이장단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주민서명운동에는 한국수력원자력㈜도 원전센터의 안전성을 홍보하는 등 공개적으로 지원에 나서고 있다. 전남 완도군 생일면 생일도와 군외면 주민들도 지난달부터 서명에 들어가 과반수의 찬성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완도지역 주민들은 원전센터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대전 원자력기술연구소 등을 잇따라 견학하는 등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영광원전이 있는 전남 영광군 홍농읍 주민들도 유치청원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그러나 영광지역에서는 유치반대운동도 거세게 일고 있어 자치단체가 주민들의 유치청원에 어떤 입장을 보일지 미지수다. 원전센터 유치에 나섰던 전북 부안군 위도면 주민들도 위도주민들만으로 주민투표를 실시하지 않을 경우 유치의사를 철회하겠다고 산업자원부 등에 주민청원서를 제출했다. 부안지역 찬성단체들은 국내외 시찰,읍·면별 순회설명회 개최 등 유치 여론몰이에 나서고 있다. 전북도는 ‘원전센터 바로알기’등 각종 홍보물을 제작해 부안주민들에게 배포하는 등 홍보전에 돌입할 예정이다. 부안군은 침체된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원전센터 유치밖에 없다며 주민투표 유권자 5만 3000명의 3분의 1인 2만명 참여 확보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반면 부안지역 반핵단체들은 지난달 22일부터 ‘목요촛불시위’를 재개하고 조직 재집결에 나서고 있다. 강원지역에서도 삼척·울진지역에서 찬성주민과 단체를 중심으로 유치청원 서명운동을 벌일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편 산업자원부와 과학기술부 등은 오는 11일 강원도를 시작으로 12일 대구시,13일 광주시,14일 전북도에서 정부 합동설명회를 열 계획이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열린세상] 상생의 공동체를 위해/정현백 성균관대 교수·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관용과 공존을 위해서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이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려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2002년 말 대선 이후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정치·사회적 갈등은 모든 국민을 지치게 만들었다.물론 이런 갈등에 불을 붙인 것은 정치권이었고,제 정당 간의 비생산적 쟁투는 급기야 탄핵 결의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이어졌다. 이제 대다수 의원들이 물갈이된 17대 국회,돈 들지 않는 선거를 통해 당선된 새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의 소망은 소모적인 정쟁을 끝내고,민생을 해결하는 국회,깨끗하고 합리적인 국회로 거듭나는 것이다.그런 점에서 3일 정동영 열린우리당 대표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만나서 “구 정치종식,민생·경제우선”의 기치 아래 정치·사회적 협약을 맺은 일은 환영할 만하다. 상생의 정치는 먼저 정치엘리트 집단에서 시작돼야겠지만,이에 못지 않게 국민 사이에서도 상생의 공동체를 만들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이 일어나야 한다.지난 몇 년 동안 우리 사회는 마치 두 개의 서로 다른 민족이 공존하는 듯이 보였다.이들은 각기 다른 정보 네트워크를 지니고 있고,각기 다른 가치관과 행동방식을 내면화했다.이는 때로는 젊은이와 나이 든 세대,때로는 보수와 진보세력,때로는 지역 간의 갈등으로 나타났다.이중에서도 가장 절망적인 현상은 이 두 집단은 서로 다른 언로를 가졌을 뿐 아니라 최소한 인정해야 할 객관적인 사실조차 자신의 입장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이런 상황에서는 최소치의 합의를 통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원색적인 감정대립 속에서 ‘내가 이기느냐,네가 이기느냐.’의 양자대결적 사투가 벌어질 뿐이다.이런 현실을 개탄하면서 여기저기에서 ‘상생’의 공동체를 만들려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지난 4월30일 ‘평화포럼’이 여야 정치인과 시민단체 대표자를 모아 상생의 정치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워크숍을 진행한 것이 그 좋은 예다. 국민 사이에,정치가 사이에 ‘상생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첫째로 여기저기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상생이라는 용어는 서로의 차이를 절충하자는 의미로 읽어서는 안 된다.관용과 공존을 위해서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이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려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서구의 평화교육운동에서 강조하는 ‘타자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듣는 태도(active listening)’나 ‘상대방을 그 특유의 문화적 맥락에서 이해하기’ 등이 대단히 중요하다.그러나 인권존중,평화실현,민주주의와 같은 보편적인 가치에 위배되는 상대방의 태도는 과감히 거부해야 한다.다시 말해서 상생의 정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부패정치,지역주의,이미지 정치 등은 과감하게 반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상생의 공동체를 위해서는 절차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어느 사회도 보수와 진보,신·구세대 사이의 갈등이 사라진 곳은 없다.그러나 격앙된 감정적 대립을 벗어나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간에 게임규칙을 정하고,이를 서로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또한 이를 위해서는 활발한 사회적 토론이 필요하다.탄핵소추안 가결이 민주주의의 원래 취지에 비추어 절차상으로 정당하였는가? 탄핵무효를 외치는 촛불행사는 과연 불법적인가? 건강한 사회라면 탄핵찬성과 무효 사이의 양분법적인 대결만이 아니라 세심한 절차에 대한 토론이 필요하다.우리 사회에서 지난 몇 년 사이에 진행된 심각한 사회적 갈등요인,예를 들면 새만금 간척,부안 핵폐기장 설치문제,이라크 파병문제 등도 절차적 민주주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여기에 덧붙여 ‘갈등해소와 관용교육’과 같은,서구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평화교육 방법론이 한국사회에도 적극적으로 도입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상생의 공동체를 위해서는 언로의 이원화 문제가 극복돼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한국 언론이 그 특유의 선정성을 극복하고,균형 잡힌 보도를 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한국을 잘 아는 외국 특파원들이 지적하는 대로,한국의 언론에서는 사실보다 주장의 비중이 너무 크다.거의 모든 언론 매체들은 기사 속에 자신의 가치관을 녹여내고 있다.이런 언론 보도가 국민들 사이의 갈등을 더욱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이제 국민들 역시 언론 보도를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는 성찰적인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정현백 성균관대 교수·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 “이라크파병 철회” 1만인 시국선언

    이라크 주둔 미군의 포로 학대 행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여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종교·여성·학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정부의 이라크 파병안 철회를 요구하는 비상시국선언이 나오는 등 파병에 반대하는 시민사회의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전국민중연대와 참여연대,환경운동연합 등 350여개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이라크파병반대 비상국민행동은 3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회원로와 각계 인사 1만 571명이 참여한 이라크 파병철회 촉구 비상시국선언을 발표했다. 국민행동은 선언문에서 “미군이 민간인 학살과 포로 학대 등 야만적 인권유린 행위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는데도 한국이 파병을 고집하는 것은 한국인과 이라크인 모두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것”이라면서 “정부 여당은 추가 파병방침을 철회하고 이미 파견된 서희·제마부대를 즉각 철수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다음달 17대 국회 개원 전까지 온·오프라인 상에서 파병안 철회를 요구하는 범국민청원운동에 돌입하는 한편,오는 14일부터 매주 주말 광화문 일대에서 미군에 의해 희생된 이라크 민간인들을 추모하는 촛불문화제를 열기로 했다. 국민행동은 또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이사장과 최열 환경연합 대표,리영희 한양대 석좌교수,정현백 여성단체연합 대표,가수 윤도현씨 등 각계 인사 50여명으로 국민청원대표단을 구성,각 당 대표와 국회의원 당선자들과의 면담을 통해 이라크 파병철회안 상정을 요구키로 했다. 이세영기자 sylee@˝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6)통일을 기다리는 건봉사 불이문(不二門)

    불교에서 불이(不二)는 크게 세 가지 뜻을 지닌 것으로 가르쳐 온다. 첫 번째는 다르지 않은 것,같음,한 몸을 말한다.그 다음은 둘이 대립하지 않는 것,두 가지가 평등한 것을 말한다.상대와의 차별을 넘어선 절대 평등의 경지,대립을 멀리한 뛰어난 이치를 추구한다.세 번째는 앞의 두 경우가 경전의 이론적 해석을 통하여 관념 세계의 본질을 밝히려는 것과 달리,실천적인 상태를 추구한다.그리하여 불이(不二)란 상대의 마음이 되는 것을 뜻하고 거기 도달하기 위해 고행 정진한다. 무릇 웬만한 사찰에는 이같은 뜻의 불이문(不二門)이 세워져 있다.수많은 불이문 중에서 금강산 건봉사(乾鳳寺)의 불이문은 단연코 다른 불이문들과는 차별화되는 매우 특별한 내력을 지니고 있다.오늘은 금강산 건봉사의 전설적인 역사와 함께 이곳 불이문을 감상하기 위해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로 떠난다. 바야흐로 진달래꽃이 심심산천에 불을 놓아 아름다움을 향한 소리 없는 소리가 강원도 산과 들에 뿌리 없는 봄바람 나무를 휘젓는다.옛사람들이 이르기를 양간지풍(襄杆之風)이요 통고지설(通高之雪)이라 했다.즉 양양과 간성은 바람이 많고,통천 고성엔 눈이 많이 온다는 뜻을 제법 그럴싸한 문자풍으로 읊조렸는데,오늘은 고성 땅에도 봄바람이 폭풍처럼 인다.고성 땅은 서쪽의 태백 준령과 동쪽의 비취빛깔 동해 수평선을 지방의 특성으로 꼽을 만큼 서쪽은 지대가 높고 동쪽은 낮은 들판으로 장엄했다.이런 지형을 두고 조선시대 이곳 현감을 지낸 이식(李植)은 ‘높은 산에는 눈이 희끗희끗 남아 있는데,바닷가 흰모래밭에는 벌써 해당화가 지고 있구나.’하고 노래했었다. 건봉사는 대한민국에서 금강산 이름을 앞에 거느린 유일한 사찰이다.한때 우리나라 사대명찰(四大名刹) 중 하나였으며,강원도의 모든 절을 거느렸던 호국불교를 대표하는 매우 큰 도량이자 불교 미술의 박물관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유구한 역사와 화려하고 굵직 굵직한 승려들의 처소였었다. ●6·25전쟁 치열한 전투현장 되기도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사명대사가 이곳에서 의승군(義僧軍)을 일으키기도 했다.허망하게 붕괴되어 패주하는 조선군대를 대신하여 조선의 운명을 구원한 의승군의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 건봉사다.경전과 목탁 대신 칼과 몽둥이를 들고 중생구원을 실천한 1000여명의 승려들이 군사훈련을 했다. 건봉사는 평소에도 700여명 승려들이 수행하던 전국 최대규모의 사찰이었고,1500년 동양불교의 민중구제에 대한 불멸의 증험 도량이었다.이곳 수행자와 불교 신도들이 이루어 낸 여러 종교적 성취와 영험들은 한국 불교의 자존심이었다. 이같은 건봉사는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 6·25의 상처가 가장 잔혹하게 남은 곳이기도 하다.3000 칸이 넘는 거대한 건봉사가 역사의 회오리 속에 빨려 든 것은 해방되던 해부터였다.건봉사는 3·8선 이북에 속했다.소련군이 들어와 인민위원회가 생기고 북한 정권이 세워지자 반종교정책이 강행되었다.무상몰수 무상분배 원칙의 토지개혁으로 건봉사 소유 토지가 몰수되고 종교활동이 금지되자 승려들은 남쪽으로 피신해왔다.1950년 한국전쟁이 터졌다.건봉사는 1951년 4월부터 휴전이 될 때까지 2년 동안 적군과 아군이 물고 물리는 일대 접점지역의 중심무대가 되었다. 1951년 5월10일 당시 건봉사는 금강산 줄기를 따라 후퇴하는 북한군의 중간집결지였다.유엔군 공군과 미8군 소속 한국 1군단,국군수도사단 기갑연대의 합동공격이 시작되었다.유엔군 전폭기 편대가 폭격을 시작하여 건봉사 핵심 건물들이 불타고 수많은 국보들이 모조리 파괴되고 불타버렸다.1951년 6월 이후부터는 중국군의 5월 공세에 맞선 국군 3군단과 1군단의 이른바 건봉산전투가 건봉사를 사이에 놓고 16차례의 공방전을 벌였다. 국군이 쏘아댄 포탄만 10만 발이 넘었고 미7함대의 함포사격과 공군기까지 가세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1951년 6월의 건봉산 전투로 건봉사는 국군에 의하여 점령되었다.이곳 수행자들과 마을 주민들은 모두 속초 이남으로 강제 이주되고 그때까지 형체가 남아 있던 몇몇 사찰 건물은 국군부대의 막사로 이용되었다. 사찰 빈터에는 천막을 짓고 이 일대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소나 보급 전진기지로 삼았다.주둔 부대는 겨울이 되자 사찰 건물의 목재를 뜯어내어 난방용 화목으로 썼다.기둥과 건물 곳곳의 목재들은 이렇게 자취를 감추어 갔다.전투 양상에 따라 교차 투입되면서 건봉사에 주둔했던 국군부대로는 수도사단,3사단,5사단,8사단,9사단,11사단,15사단,육본직할81야포대 등이었다.1953년 7월27일 휴전후에도 건봉사는 군부대 막사로 사용되었는데,1954년 9월 주둔중이던 국군부대의 촛불에 의한 실화로 남아 있던 건물들이 불타버렸다.이 때의 화재로 더 이상 주둔시설로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주둔 부대는 건봉사를 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다.그때부터 건봉사는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는 민통선 안에서 철저한 폐허로 변해갔다. ●1988년까지 민간인 출입통제구역 1988년까지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었지만 이곳의 역사를 아는 문화재 도굴꾼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땅속에 매몰되어 있는 불교미술품과 문화재를 훔쳐내기 시작했다.임진왜란 때 양산 통도사에 보관 중이던 부처님의 치아 사리를 왜군들이 빼앗아 일본으로 가져갔던 것을 사명대사가 되찾아와서 건봉사에다 보관해 왔다.이런 사실을 아는 도굴꾼들의 집요한 접근으로 마침내 도굴당했다.그때까지 남아 있던 수많은 석조 조형물들이 밀반출되어 서울의 부잣집 정원석으로 사용되고,울창하던 아름드리 소나무들은 군부대에 의하여 도벌당했다.군부대에서는 비무장 지대의 경계에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워 엄청난 양의 소나무를 베어 민간업자들에게 팔아넘기기도 했다.특히 1967∼1968년 고성군에 의한 대대적인 벌목으로 사찰경내는 황무지가 되었다. 그렇게 베어내고도 아직 남아 있는 몇 그루의 소나무들을 보면 이곳 소나무들이 겪은 수난의 역사가 새삼 떠오른다.원래 솔숲이 울창하기로 유명했던 이곳은 일제 때 동경대학 연습림이 되면서부터 수난이 시작되었다.그때 일본의 목재업자들은 이곳 좌우 산골짝에서 수령 수백년되는 아름드리 소나무를 벌채하여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발구’라는 기계로 실어 날랐다.이곳 소나무들은 모두 일본으로 실려가서 일본 귀족들의 집을 짓는데 사용되었다.그때 동경대학 연습림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한국의 소나무들을 베어 일본으로 실어가는 이른바 민족경제 수탈을 연습하던 것이었음을 알 수 있겠다.아무튼 이같은 일제와 한국전쟁의 포화속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 하나 있다.그 엄청난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총상 하나 크게 입지 않고 살아 남은 건물이 다름 아닌 불이문이었다. ●만일염불회… 민중불교의 성지 원래 건봉사는 우리나라 불교 역사상 가장 이채로운 종교적 체험을 하던 도량이었다.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가 그것이다.1만일 동안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는 기도를 통하여 아미타불을 직접 만나고 극락에 오르는 좀체 믿기 어려운 수행이었다.758년부터 시작된 이 특이한 수행에는 수천 명이 함께 참여했는데,무려 27년여 동안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집단으로 수행하는 이 모임은 1908년까지 이어져 내려왔고,건봉사는 한국 민중불교의 성지로 자리잡게 되었다.누구든,그 신분이나 재산,성별이나 유·무식에 걸림없이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실천적 평등관이 이곳에서 1000년이 넘게 시도되었던 것이다. 지금 기적처럼 남아 있는 불이문은 남북이 이념이나 체제를 뛰어 넘는 평등,서로의 고통과 아픔을 안아주고 치유해쥬는 실천적 공존을 통하여 통일 민족이 이루어지는 날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불이문을 찾던 날,불이문 오른편에 서 있던 산벚꽃나무 꽃잎이 기도에 대한 응답인 듯 분분히 흩날리고 있었다.통일은 상대의 마음이 되어주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의 완성이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6)통일을 기다리는 건봉사 불이문(不二門)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6)통일을 기다리는 건봉사 불이문(不二門)

    불교에서 불이(不二)는 크게 세 가지 뜻을 지닌 것으로 가르쳐 온다. 첫 번째는 다르지 않은 것,같음,한 몸을 말한다.그 다음은 둘이 대립하지 않는 것,두 가지가 평등한 것을 말한다.상대와의 차별을 넘어선 절대 평등의 경지,대립을 멀리한 뛰어난 이치를 추구한다.세 번째는 앞의 두 경우가 경전의 이론적 해석을 통하여 관념 세계의 본질을 밝히려는 것과 달리,실천적인 상태를 추구한다.그리하여 불이(不二)란 상대의 마음이 되는 것을 뜻하고 거기 도달하기 위해 고행 정진한다. 무릇 웬만한 사찰에는 이같은 뜻의 불이문(不二門)이 세워져 있다.수많은 불이문 중에서 금강산 건봉사(乾鳳寺)의 불이문은 단연코 다른 불이문들과는 차별화되는 매우 특별한 내력을 지니고 있다.오늘은 금강산 건봉사의 전설적인 역사와 함께 이곳 불이문을 감상하기 위해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로 떠난다. 바야흐로 진달래꽃이 심심산천에 불을 놓아 아름다움을 향한 소리 없는 소리가 강원도 산과 들에 뿌리 없는 봄바람 나무를 휘젓는다.옛사람들이 이르기를 양간지풍(襄杆之風)이요 통고지설(通高之雪)이라 했다.즉 양양과 간성은 바람이 많고,통천 고성엔 눈이 많이 온다는 뜻을 제법 그럴싸한 문자풍으로 읊조렸는데,오늘은 고성 땅에도 봄바람이 폭풍처럼 인다.고성 땅은 서쪽의 태백 준령과 동쪽의 비취빛깔 동해 수평선을 지방의 특성으로 꼽을 만큼 서쪽은 지대가 높고 동쪽은 낮은 들판으로 장엄했다.이런 지형을 두고 조선시대 이곳 현감을 지낸 이식(李植)은 ‘높은 산에는 눈이 희끗희끗 남아 있는데,바닷가 흰모래밭에는 벌써 해당화가 지고 있구나.’하고 노래했었다. 건봉사는 대한민국에서 금강산 이름을 앞에 거느린 유일한 사찰이다.한때 우리나라 사대명찰(四大名刹) 중 하나였으며,강원도의 모든 절을 거느렸던 호국불교를 대표하는 매우 큰 도량이자 불교 미술의 박물관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유구한 역사와 화려하고 굵직 굵직한 승려들의 처소였었다. ●6·25전쟁 치열한 전투현장 되기도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사명대사가 이곳에서 의승군(義僧軍)을 일으키기도 했다.허망하게 붕괴되어 패주하는 조선군대를 대신하여 조선의 운명을 구원한 의승군의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 건봉사다.경전과 목탁 대신 칼과 몽둥이를 들고 중생구원을 실천한 1000여명의 승려들이 군사훈련을 했다. 건봉사는 평소에도 700여명 승려들이 수행하던 전국 최대규모의 사찰이었고,1500년 동양불교의 민중구제에 대한 불멸의 증험 도량이었다.이곳 수행자와 불교 신도들이 이루어 낸 여러 종교적 성취와 영험들은 한국 불교의 자존심이었다. 이같은 건봉사는 우리나라 사찰 중에서 6·25의 상처가 가장 잔혹하게 남은 곳이기도 하다.3000 칸이 넘는 거대한 건봉사가 역사의 회오리 속에 빨려 든 것은 해방되던 해부터였다.건봉사는 3·8선 이북에 속했다.소련군이 들어와 인민위원회가 생기고 북한 정권이 세워지자 반종교정책이 강행되었다.무상몰수 무상분배 원칙의 토지개혁으로 건봉사 소유 토지가 몰수되고 종교활동이 금지되자 승려들은 남쪽으로 피신해왔다.1950년 한국전쟁이 터졌다.건봉사는 1951년 4월부터 휴전이 될 때까지 2년 동안 적군과 아군이 물고 물리는 일대 접점지역의 중심무대가 되었다. 1951년 5월10일 당시 건봉사는 금강산 줄기를 따라 후퇴하는 북한군의 중간집결지였다.유엔군 공군과 미8군 소속 한국 1군단,국군수도사단 기갑연대의 합동공격이 시작되었다.유엔군 전폭기 편대가 폭격을 시작하여 건봉사 핵심 건물들이 불타고 수많은 국보들이 모조리 파괴되고 불타버렸다.1951년 6월 이후부터는 중국군의 5월 공세에 맞선 국군 3군단과 1군단의 이른바 건봉산전투가 건봉사를 사이에 놓고 16차례의 공방전을 벌였다. 국군이 쏘아댄 포탄만 10만 발이 넘었고 미7함대의 함포사격과 공군기까지 가세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1951년 6월의 건봉산 전투로 건봉사는 국군에 의하여 점령되었다.이곳 수행자들과 마을 주민들은 모두 속초 이남으로 강제 이주되고 그때까지 형체가 남아 있던 몇몇 사찰 건물은 국군부대의 막사로 이용되었다. 사찰 빈터에는 천막을 짓고 이 일대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소나 보급 전진기지로 삼았다.주둔 부대는 겨울이 되자 사찰 건물의 목재를 뜯어내어 난방용 화목으로 썼다.기둥과 건물 곳곳의 목재들은 이렇게 자취를 감추어 갔다.전투 양상에 따라 교차 투입되면서 건봉사에 주둔했던 국군부대로는 수도사단,3사단,5사단,8사단,9사단,11사단,15사단,육본직할81야포대 등이었다.1953년 7월27일 휴전후에도 건봉사는 군부대 막사로 사용되었는데,1954년 9월 주둔중이던 국군부대의 촛불에 의한 실화로 남아 있던 건물들이 불타버렸다.이 때의 화재로 더 이상 주둔시설로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주둔 부대는 건봉사를 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다.그때부터 건봉사는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는 민통선 안에서 철저한 폐허로 변해갔다. ●1988년까지 민간인 출입통제구역 1988년까지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었지만 이곳의 역사를 아는 문화재 도굴꾼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땅속에 매몰되어 있는 불교미술품과 문화재를 훔쳐내기 시작했다.임진왜란 때 양산 통도사에 보관 중이던 부처님의 치아 사리를 왜군들이 빼앗아 일본으로 가져갔던 것을 사명대사가 되찾아와서 건봉사에다 보관해 왔다.이런 사실을 아는 도굴꾼들의 집요한 접근으로 마침내 도굴당했다.그때까지 남아 있던 수많은 석조 조형물들이 밀반출되어 서울의 부잣집 정원석으로 사용되고,울창하던 아름드리 소나무들은 군부대에 의하여 도벌당했다.군부대에서는 비무장 지대의 경계에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워 엄청난 양의 소나무를 베어 민간업자들에게 팔아넘기기도 했다.특히 1967∼1968년 고성군에 의한 대대적인 벌목으로 사찰경내는 황무지가 되었다. 그렇게 베어내고도 아직 남아 있는 몇 그루의 소나무들을 보면 이곳 소나무들이 겪은 수난의 역사가 새삼 떠오른다.원래 솔숲이 울창하기로 유명했던 이곳은 일제 때 동경대학 연습림이 되면서부터 수난이 시작되었다.그때 일본의 목재업자들은 이곳 좌우 산골짝에서 수령 수백년되는 아름드리 소나무를 벌채하여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발구’라는 기계로 실어 날랐다.이곳 소나무들은 모두 일본으로 실려가서 일본 귀족들의 집을 짓는데 사용되었다.그때 동경대학 연습림이란 이름을 붙인 것은 한국의 소나무들을 베어 일본으로 실어가는 이른바 민족경제 수탈을 연습하던 것이었음을 알 수 있겠다.아무튼 이같은 일제와 한국전쟁의 포화속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 하나 있다.그 엄청난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총상 하나 크게 입지 않고 살아 남은 건물이 다름 아닌 불이문이었다. ●만일염불회… 민중불교의 성지 원래 건봉사는 우리나라 불교 역사상 가장 이채로운 종교적 체험을 하던 도량이었다.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가 그것이다.1만일 동안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는 기도를 통하여 아미타불을 직접 만나고 극락에 오르는 좀체 믿기 어려운 수행이었다.758년부터 시작된 이 특이한 수행에는 수천 명이 함께 참여했는데,무려 27년여 동안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집단으로 수행하는 이 모임은 1908년까지 이어져 내려왔고,건봉사는 한국 민중불교의 성지로 자리잡게 되었다.누구든,그 신분이나 재산,성별이나 유·무식에 걸림없이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실천적 평등관이 이곳에서 1000년이 넘게 시도되었던 것이다. 지금 기적처럼 남아 있는 불이문은 남북이 이념이나 체제를 뛰어 넘는 평등,서로의 고통과 아픔을 안아주고 치유해쥬는 실천적 공존을 통하여 통일 민족이 이루어지는 날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불이문을 찾던 날,불이문 오른편에 서 있던 산벚꽃나무 꽃잎이 기도에 대한 응답인 듯 분분히 흩날리고 있었다.통일은 상대의 마음이 되어주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의 완성이다.
  • [집중탐구 5黨의 ‘길’] (4) 한나라당 (下 )‘개혁적 우파’로 이념논쟁 봉합

    한나라당이 보수를 ‘포기’했다. 30일 한나라당은 당선자 연찬회의 이틀간의 격론 끝에 내놓은 ‘국민께 드리는 글’에 ‘보수’라는 단어를 단 한 글자도 넣지 않았다.당초 대변인실에서 작성한 초안에는 한나라당은 “지킬 것은 반드시 지키고 고칠 것은 수시로 보수(補修)하는 ‘국민적’ 보수(保守)가 되겠다.”고 약속하려 했다. ●“이념을 버리자.” 이틀간의 연찬회는 이념 논쟁이 핵이었다.한나라당 당선자들은 ‘보수’를 화두(話頭)로 서로 다투고,고민했다.어떤 이들은 ‘신보수,발전적 보수로 보수를 지켜야 한다.’고 호소했고,어떤 이들은 “중도로,왼쪽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이같은 충돌 와중에 일부는 “이념을 버리자.”고 제안했다.한나라당이 대국민 선언에서 ‘보수’라는 단어를 택하지 않은 것은 이처럼 복잡한 기류의 결과물이다. 이날 전체회의에서 박진 의원은 “왜 보수를 하는지 국민에 대한 논리적 설득이 없으면 혼란을 야기한다.”고 주장했다.김광원 의원은 “새로운 보수의 탄생을 알리는 대국민 홍보를 하자.”고 제안했다.“신보수,선진 보수의 고고한 탄생을 알리면서 TV나 미디어를 통해 ‘촛불’ ‘노란옷’ ‘붉은 악마’ 등으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정치실험에 대한 도전도 해보자.”고 역설했다.홍준표 의원은 “당의 정체성 시비가 일고 있으나,분명히 ‘개혁적·중도·우파 정당’이라고 정강에 나와 있다.그런데도 왜 이런 논쟁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혀를 찼다. 그러나 원희룡·남경필 의원 등은 “당의 정체성과 (이념적으로 갈) 길에 대해선 결론이 나와 있다.더 이상의 이념논쟁은 무의미하다.”면서 좌로의 이동을 주장했다.정두언 당선자도 이에 동조하면서 ‘민주개혁당’이라는 새 당명도 내놓았다. ●“이념도 패션이다.” 이런 가운데 토론은 어느 틈엔가 “이념논쟁을 그치자.”는 쪽으로 흘러갔다.유정복 당선자는 “정체성과 이념만 갖고는 국민 설득이 힘들다.”고 지적했다.권오을 의원은 “국가 선진화에 중점을 둔 실용주의 노선을 취하자.”고 말했다. 심재철 의원은 “가급적 우리 입으로는 보수라는 말 쓰지 말자.”고 제안했다.“국민들은 보수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그래서 합리적 실용주의를 추구한다고 접근하는 게 어떠냐.”고 했다.권철현 의원은 “진보·보수 논쟁은 불필요한 논쟁이 됐다.한국에서 보수는 가치를 잃었다.”고 단언했다.그는 “태극기가 패션이 됐고,촛불시위도 패션이다.진보 또한 패션인 만큼 우리가 낡은 패션을 고집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보수’를 뺐지만…. ‘보수’를 뺀 채 연찬회는 막을 내렸지만,한나라당이 앞으로 이념 논쟁에서 자유로워질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한국의 정치지형은 중도우파를 벗어날 수 없다.”는 박형준 당선자의 말을 빗대보면,한나라당 역시 보수 또는 우파를 벗어날 수 없는 원천적·생래적 문제 때문이다.또한 “더 이상 이념논쟁은 무의미하다.”는 의원들의 사상적 지향점도 자세히 보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열린우리당이 ‘왼쪽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할 것’으로 예상했다면,한나라당에서는 양쪽 깜빡이가 오락가락 켜지며 우왕좌왕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국가보안법과 파병문제,각종 대북정책에 이르기까지 당내에서는 이념 논쟁이 더욱 가속될 것이라는 얘기다.박진 의원도 “여당의 실용주의 노선 때문에 한나라 입장과 역할이 어려워졌다.”고 전망했다. 여기에 지도체제 논란,야당 역할론,당명 교체,신당 창당론,원내정당화 문제 등 당내 각종 현안은 이념논쟁을 통해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많다.대국민 성명에서 한나라당 당선자 일동은 “치열하게 토론하고 마침내 한 배에 올랐다.”고 표현했지만,이들은 저마다 사공이 되려는 모습이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김병준 지방분권위원장 “촛불시위가 의원 수십명 역할”

    이정우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은 27일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승리한 것은 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요구”라고 주장했다.그는 열린우리당의 워크숍 강연에서 “개혁은 시대의 역사적 과제인데 지금까지 제대로 개혁하지 못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개혁이냐 성장이냐를 놓고 싸움을 붙이는 사람도 있지만 개혁을 미루고 성장만 하면 열 걸음도 못 간다.”면서 “선진국도 성장하려고 끊임없이 개혁한다.”고 개혁의 당위성을 설명했다.또 “성장과 분배는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면서 “10·29부동산 대책도 비싼 땅값을 낮춰 기업의 투자여건을 개선하고,빈부격차도 해소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식”이라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세계화 시대에 살아 남으려면 개혁과 개방의 양날개로 날아야 한다.”면서 “한나라당은 개방에 적극적이지만 개혁에는 소극적이고,반대로 민노당은 개혁에는 적극적이지만 개방에는 소극적이기 때문에 두 당과 때로는 협조하면서 험한 파도를 지혜롭게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참여정부는 개혁성과 지방분권화,장기주의,사회 통합,원칙 고수 등을 추구해 역대 정부와 차이가 난다.”면서 “지금은 숱한 비난을 받고 있지만 나중에 가면 그 비난이 잠재워지고,참여정부만한 것이 없다는 역사적인 평가가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병준 정부혁신 지방분권위원장은 “시민이 권력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지배의 대상,통치의 대상이 되는 상황을 시민단체가 용납하지 않으며,실제로 시민사회와 민간부문이 거버닝파워(governing power)를 발휘하고 있다.”며 “촛불시위를 주도한 시민단체가 국회의원 수십명의 역할을 해냈다.”고 평가했다. 성경륭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사회통합의 틀을 유지하면서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면서 “상대편에 앞서 자신부터 개혁했는지,국민의 동의를 구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양양 박지연기자 anne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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