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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한국여성 자화상] 서울여성 月임금 210만원… 男의 64%

    서울 여성 2명 중 1명은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경제활동에 참여해도 임금은 남성의 3분의2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7일 서울시가 ‘세계 여성의 날’(8일)을 맞아 발표한 ‘통계로 보는 서울 여성의 오늘’에 따르면 서울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08년 기준 51%로 남성의 73.7%보다 크게 낮았다. 경제활동 참가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도 여성의 경우 25~29세로 40~44세인 남성과 대조를 이뤘다. 서울 경제활동 참여자의 월평균 임금은 2007년 상반기 기준 285만 3251원이다. 이 가운데 여성의 월평균 임금은 210만 4158원으로 월평균 325만 3741원을 받는 남성보다 114만 9583원 적었다. 이를 임금비로 환산하면 여성 임금은 남성 임금의 64.7% 수준이다. 또 지난해 기준 서울 여성은 전체 서울 인구의 50.5%를 차지하고 있다. 65세 이상 여성 노령 인구는 68.8%로 남성(47.2%)보다 훨씬 높고, 노령화 속도도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 여성의 평균 초혼 연령은 29.3세로 10년 전보다 2.5세 상승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지붕킥’, 순재-자옥 커플 이색 웨딩사진 ‘폭소’

    ‘지붕킥’, 순재-자옥 커플 이색 웨딩사진 ‘폭소’

    결혼을 앞둔 귀여운(?) 노년커플 순재와 자옥이 특별한 웨딩사진을 찍었다. MBC TV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이하 지붕킥)의 순재(이순재 분)와 자옥(김자옥 분) 예비부부가 황혼 웨딩사진을 찍으며 본격적인 결혼 초읽기에 들어갔다. 지난 3일 ‘지붕킥’에선 웨딩드레스를 입고 소녀처럼 좋아하는 자옥과 턱시도로 멋을 낸 순재의 모습을 담았다. 이미 할머니가 됐지만 초혼인 자옥은 다양한 다지인의 웨딩드레스를 고르며 행복해했다. 순재는 점점 체력이 떨어졌지만 자옥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미소를 잃지 않았다. 특히 이날 순재-자옥 커플은 중세시대 백작 부인과 남작 부부로 변신해 시청자들을 폭소케 했다. 의상뿐만 아니라 금발 가발과 부채 등 다양한 장식품까지 사용하며 특별한 웨딩사진을 찍은 것. 방송을 본 네티즌들은 해당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을 통해 “순재와 자옥을 보면 세월이 흘러 나이는 먹어도 마음의 청춘만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순재-자옥 커플은 죽을 때까지 행복한 부부가 될 것 같다. 결혼식이 기대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MBC ‘지붕킥’ 방송화면 캡처 서울신문NTN 김경미 기자 84rornfl@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老産少産’ 산모 평균출산 31세… 평생 1.15명 낳는다

    우리나라 산모의 평균 출산 연령이 처음으로 31세에 진입했고, 지난해 출생한 아이들의 수가 2년째 감소하며 4년 만에 가장 적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산모의 출산 비중도 30대 초반(30~34세)이 43.4%로 가장 높아 출산이 늦어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지속적인 초혼 연령 상승에 따라 20대 후반의 비중은 35.2%로 전년보다 1.1%포인트 감소했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 출산율은 1.15명으로 전년보다 0.04명 줄었고,산모의 평균 출산연령은 31.0세로 전년보다 0.2세 높아지면서 1984년 이후 25년째 아이를 낳는 연령이 높아지는 추세를 이어갔다. 통계청은 24일 이런 내용의 ‘2009년 출생통계 잠정결과’를 내놓았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44만 5000명으로 전년보다 2만 1000명 줄었다. 이는 2005년의 43만 5000명 이후 가장 적은 것이다. 연령대별로 25~29세 산모의 출생아 수는 15만 6000명으로 전년보다 1만 3000명 줄어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다. 첫째 아이 출생은 23만명으로 전년보다 1만 2000명 감소해 총 출생 감소의 57.8%를 차지했다. 첫째 아이 출산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 출생 감소의 상당수를 차지한 셈이다. 합계출산율은 1.15명으로 전년의 1.19명보다 줄었다. 산모의 연령별 출산율(여자 인구 1000명 기준)은 20대 초반(20~24세)과 20대 후반(25~29세)의 경우 16.2명과 80.7명으로 전년보다 2.0명과 4.9명씩 하락했다. 반면 30대 후반(35~39세)의 출산율은 전년보다 0.9명 상승했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미셸 리 美 교육감 9월 결혼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미국 워싱턴 DC의 공교육 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계 미셸 리 교육감이 오는 9월4일 미 프로농구(NBA) 선수 출신인 케빈 존슨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 시장과 결혼한다. 16일 워싱턴포스트는 오랜 연인 사이로 지난해 약혼한 미셸 리 교육감과 존슨 시장이 미국의 노동절 주간인 9월 첫째 주에 결혼하기로 결정했으며, 아직 장소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리 교육감은 워싱턴포스트에 보낸 이메일에서 “(동·서부를 오가는) 결혼 생활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해 결혼 후에도 교육감 직을 계속해 나갈 뜻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워싱턴 시티 페이퍼’는 리 교육감의 결혼 날짜와 관련, “워싱턴 DC의 공립학교가 8월23일 개학을 하는데 공교육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리 교육감이 9월 초 결혼을 한다는 것은 현직에서 한 발 빼겠다는 뜻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리 교육감은 이혼한 전 남편과의 사이에 두 딸을 두고 있고, 존슨 시장은 올해 가을 결혼하면 초혼이 된다. 존슨 시장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미국 애리조나주 프로농구팀 ‘피닉스 선스’의 포인트 가드로 활약했다. kmkim@seoul.co.kr
  • 한국인 국제결혼, 초혼↓ 재혼↑

    한국인 국제결혼, 초혼↓ 재혼↑

    국제결혼에서 초혼 비중이 줄어든 반면, 재혼 비중은 갈수록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27일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인 남성과 외국인 여성의 결혼 건수는 2000년 6945건에서 2008년 2만 8163건으로 4배가량 늘어났다. 이 가운데 남성이 초혼인 비율은 2000년 75.1%(5219건)에서 2008년 64.7%(1만 8223건)로 감소했다. 재혼 비율은 24.6%(1708건)에서 35.3%(9930건)로 증가했다. 한국인 여성이 외국인 남성과 결혼한 건수도 2000년 4660건에서 2008년 8041건으로 72.6%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한국인 여성이 초혼인 비율은 62.6%(2916건)에서 58.2%(4683건)로 낮아졌지만, 재혼 비율은 36.4%(1697건)에서 41.5%(3337건)로 높아졌다. 남성과 여성이 재혼 대상으로 선택하는 배우자의 국적도 달랐다. 초혼에 실패한 한국인 남성과 지난해 결혼한 외국인 여성의 국적은 중국(58.8%), 베트남(22.4%), 필리핀(5.7%) 순이었다. 반면 재혼한 한국인 여성과 결혼한 외국인 남성의 국적은 일본(40.9%), 중국(38.0%), 미국(8.5%) 순이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견미리 “아이들도 재혼사실 몰랐다” 눈물고백

    견미리 “아이들도 재혼사실 몰랐다” 눈물고백

    최근 트로트 가수로 변신한 배우 견미리가 가족사에 관한 숨겨진 사실을 털어놨다. 29일 방송되는 tvN ENEWS에 출연한 견미리는 “아이들조차도 내가 재혼인 줄 몰랐었다.”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견미리는 “결혼에 대한 상처가 깊었기 때문에 다시 결혼 한다는 것은 상상이 안 갔다. 그런데 아이들한테 아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종갓집 장손이자 초혼이었던 두 살 연하의 남편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특히 아이들의 이야기가 나오자 견미리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견미리는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서 친아빠가 아닌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 생각할지 염려스러웠다. 큰 딸은 ‘우리, 아빠 아니었으면 정말 어떻게 살았을까?’라고 말하더라. 아이들이 밝게 자라준 것이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연하 남편의 아내로, 3남매의 엄마로 사는 ‘행복한 여자’ 견미리의 동안 유지비결과 45억 주식대박의 실체는 29일 오후 9시 tvN ENEWS를 통해 공개된다. 사진 = tvN 서울신문NTN 우혜영 기자 w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결혼부터 시켜주는 결혼정보회사

    결혼부터 시켜주는 결혼정보회사

    결혼정보회사의 서비스가 진화하고 있다. 초혼이든 재혼이든 결혼을 서두르는 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결혼정보회사이다. 하지만 결혼정보회사를 이용하려고 하면 그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회원의 자격에 따라 100만원에서 500만원 가량의 비용을 먼저 지불해야 한다. 결혼정보회사를 이용한다고 해서 반드시 결혼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결혼정보회사가 대체적으로 내세우는 성혼율은 약 20% 가량. 그렇다면 나머지 80%는 결혼에 성공하지 못한 채 적지 않은 가입비만 날리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사정이 이렇게 되니 선뜻 결혼정보회사를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이용에 대한 장벽이 크니 결혼정보회사를 이용하는 회원의 수는 적어질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원활한 만남 주선이 어렵게 된다. 특히 규모가 영세한 결혼정보회사의 경우에는 횟수때우기와 같은 부정적 행위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하였다. 만약, 결혼정보회사에서 맞선 주선을 통해 결혼부터 성사시킨 후 후불로 비용을 받는다면 어떨까? 회원의 입장에서는 고액의 가입비에 대한 부담 없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그 결과 성혼이 된 경우에만 비용을 지불하면 되므로 손해볼 것이 없다. 회사는 가입에 대한 장벽을 거둠으로써 많은 수의 회원을 확보할 수 있다. 또 가입비가 비싼 결혼정보회사의 문제점인 프로필이 우수한 남성 회원 확보에도 큰 도움이 된다. 프로필이 우수한 남성 회원의 경우 다른 기회가 많기 때문에 굳이 비싼 가입비를 내고 결혼정보회사를 이용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가입비에 대한 장벽을 없애면 다양한 만남의 기회를 찾기 위해 결혼정보회사를 이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결혼정보회사에서는 프로필이 우수한 남성 회원의 경우 가입비를 거의 면제하다시피 하고 있다. 회사의 입장에서 가입비를 받지 않으면 당장에는 손해가 될지 모르지만 우수한 회원의 확보를 통해 성혼율과 성혼수가 모두 높아지게 되면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이득이 될 수 있다. 이렇게 ‘가입비 없는 결혼정보회사’를 선언한 결혼정보회사는 웨디안. 연극인이자 전환경부장관을 역임한 손숙 대표가 운영하는 결혼정보회사로 잘 알려진 곳이다. 손숙 대표는 웨디안의 홈페이지(wedian.co.kr)에서 ‘결혼정보회사의 순기능을 살리고 대한민국의 저출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도록 회사를 운영하겠다’고 경영 이념을 밝히고 있다. 기존에도 후불제를 선언한 곳들이 있긴 하였지만 이렇게 대규모의 회사로는 웨디안이 처음이다. 후불제 방식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회원의 대량 확보에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초기 손실을 감수하고 마케팅을 할 수 있는 규모를 필수적으로 동반해야 된다는 의미에서 웨디안과 같은 대규모 결혼정보회사의 참여는 앞으로 결혼정보업계의 발전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하겠다. 출처 : 웨디안 본 콘텐츠는 해당기관의 보도자료임을 밝혀드립니다.
  • 옛 기무사터 미술전시장으로 변신

    옛 기무사터 미술전시장으로 변신

    국군기무사령부 옛터는 ‘보안사’와 ‘기무사’라는 이름으로 이어지면서 음습하게 군부권력이 탄생했고, 민간인 불법사찰과 인권탄압이 다반사로 이뤄지던 비밀스러운 곳이었다. 이제 ‘기무사’는 과천으로 이전을 했고 이곳의 문이 활짝 열렸다. 아트선재센터가 주관하는 미술기획전시 ‘플랫폼 인 기무사 2009’가 서울 소격동 165번지 옛 기무사 터에서 열린다. 국내외 아티스트 101팀이 참가해 200여점 이상의 작품을 설치·전시했다. 기무사 옛 건물을 국립현대미술관 분소로 활용하겠다는 정부의 결정이 나온 이후 첫 대규모 기획 전시인 셈이다. 예술총감독을 맡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의 김선정 교수는 “이번 전시에는 기무사라는 공간의 장소성과 역사성, 조형성을 반영한 작품들이 대거 출품됐다.”면서 “과거를 씻어 내고 미래로 연결되는 공간으로 탄생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의 제목은 ‘Void of Memory(기억의 덧없음)’이다. 중앙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마치 초혼(招魂)을 하듯 기무부대의 군가를 가사로 정가(正歌·한국전통음악인 정악의 한 장르)를 부르는 여자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작품을 설치한 이수경 작가는 “젊은 남자로 이뤄진 양기가 가득한 장소를 여성의 음기를 통해 씻어 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낡고 허름한 기무사 건물에서 유일하게 번듯한 2층 사령관실에는 임동식·이성원 작가가 조개와 새, 식물의 이미지를 통해 자유와 자연을 강조했다. 1960년대 스파이들의 활동을 손바닥만 한 뿌연 흑백 사진으로 보여 주는 도모코 요네다의 작업이 전시되고, 유토피아의 붕괴를 나타낸 이불의 4m 크기 ‘새벽의 노래(Audade)’ 등이 설치됐다. 남북한의 분단상황을 보여 주는 백승우의 사진작업과 스웨덴 마구누스 배르토스의 영상작업 등이 마련됐다. 김선정 총감독은 “금지됐던 장소에서 느낄 수 있는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오후 5~9시의 자유관람을 즐겼으면 좋겠다.”고 조언한다. 전시 3일부터 25일까지 오후 2시부터. 성인 8000원, 학생 4000원. (02)733-8945.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씨줄날줄] 新일본/김종면 논설위원

    일본의 제1야당인 민주당이 30일 실시되는 중의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을 누르고 정권교체를 이룰 가능성이 높다. 일본 열도뿐 아니라 우리 또한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민주당이 내세우는 노선이 사뭇 진일보한 것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조치 가운데 하나가 야스쿠니 신사를 대신할 별도의 국립 추도시설을 건립하겠다는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는 1869년(메이지 2년) 천황을 위해 내란에서 죽어간 일본인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초혼사(招魂社)로 출발, 10년 뒤 야스쿠니 신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현재 야스쿠니 신사에는 240여만명의 전몰자 위패가 ‘신’으로 모셔져 있다. 1978년 태평양전쟁 당시 총리인 도조 히데키 등 A급전범 14명을 합사해 전쟁범죄자도 일본인들이 추앙하는 신으로 격상됐다. 일본 내전으로 사망한 1만 5000여명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이 침략전쟁 중 죽은 군인이다. 한마디로 군국의 침략사상이 종교화된 현장이 바로 야스쿠니 신사인 것이다. 그러니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공식 참배에 한국 등 피침략 국가들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는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 사과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의 정신을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계승하겠다며 과거사 문제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이 과연 아무도 가지 않은 그야말로 파천황(破天荒)의 길을 갈 수 있을까. 민주당은 자민당에서 탈당한 우파그룹부터 사회당 계열의 좌파까지 다양한 세력이 정권쟁취를 위해 한 지붕 아래 모인 무지개 정당이다. 국민적 컨센서스를 떠나 내부 합의 자체가 쉽지 않다. 내년 7월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도 변수다. 독도 문제에 대해 자민당과 마찬가지로 일본 땅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등 다분히 ‘일본적’인 역사인식을 지니고 있는 점도 꺼림칙하다. 언제 어디서 일본인의 핏속에 면면히 흐르는 강고한 내셔널리즘의 DNA가 힘을 발휘할지 모른다. 하토야마의 ‘신(新)일본’ 선언. 우리는 전통처럼 이어져온 일본 지도층 망언의 계보학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그들의 고질적인 역사 건망증을 증오한다. 하지만 광복 64돌, 오늘만큼은 그냥 일본을 믿어 보고 싶다. 김종면 논설위원 jmkim@seoul.co.kr
  • 미혼여성 ‘평범’ 기준은 연봉 4334만원의 남성?

    많은 미혼 남녀가 이상형을 물으면 ‘평범한 사람이면 된다’고 답한다. 하지만 설문조사 결가 그 평범의 기준이 결코 평범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정보업체 듀오는 지난달 16~30일 미혼남녀 63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남성의 91.7%(232명), 여성의 83.7%(323명)가 ‘나의 배우자는 평범한 사람이면 된다’고 응답했다.  평범한 남성 배우자를 묻는 문항에서 여성응답자들의 답변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조건은 ‘대졸’(95.9%), ‘신장 175~180㎝’(47.4%), ‘전세 거주’(51%), ‘연봉 4000만~5000만원’(43%)으로 조사됐다.  남성 응답자들은 평범한 여성 배우자의 기준이 ‘대졸’(78.3%), ‘신장 160~165㎝’(70%), ‘전세 거주’(61.3%), ‘연봉 2000만~3000만원’(58.9%)’이라고 답했다.  전체 남녀 응답을 평균값으로 계산하면 ‘신장 174.4cm,연봉 4334만원의 대졸자’가 평범한 남성이고, ‘신장 162.6cm, 연봉 2808만원의 대졸자’가 평범한 여성인 셈.  하지만 이러한 ‘평범하다’는 기준은 통계청에서 제시하는 대한민국 평균과 다소 거리가 있다.  통계청(국가통계포털·KOSIS)의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평균 초혼 연령인 31.7세 미혼남성 신장은 173㎝이고,대학교 졸업 이상 학력의 미혼남성의 연봉은 2994만원(월 급여 249만5000원)이다.  또 평균 초혼 연령인 28.3세 여성의 평균 신장은 161㎝이고 대졸 여성의 연봉은 2103만6000원(월 급여 175만3000원) 수준이다.  여성들이 생각하는 평범한 남성의 연봉은 한국 평균치보다 1300여 만원 높고, 반대로 남성들은 한국 평균치보다 700 만원 가량 높은 연봉을 ‘평범한’ 여성의 연봉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키도 각각 대한민국 평균치보다 남자는 1.4㎝, 여자는 1.6㎝ 큰 키를 ‘평범한’ 배우자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마디로 미혼남녀 모두 ‘평범’ 보다는 높은 눈높이로 배우자를 찾는 셈이다.  한편 ‘평범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는 질문에 미혼 남성의 82.6%(209명)는 ‘나와 비슷한 조건의 여성’이라고 답한 반면, 미혼 여성의 56%(216명)는 ‘나보다 뛰어난 조건의 남성’이라고 답해 대조를 이뤘다.  양보할 수 없는 배우자 선택 조건으로도 남성은 ‘성격’(40.7%), ‘신장 등 외모’(30.4%)를 꼽고, 여성은 ‘가치관, 인생관’(36.5%), ‘성격(29%)’ 순으로 답했다.  또 미혼 남성의 91.7%(232명), 여성의 85%(328명)는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라고 답했다.  듀오의 장채희 커플매니저는 설문결과에 대해 “그저 평범한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때로 가장 힘든 기준이 될 때가 많다.”며 “평범한 사람은 ‘모든 것을 두루 갖춘 인재’라는 공식이 성립되니 원하는 배우자에 대해 구체적인 고민을 하여 상대를 찾는 것이 ‘성공적인’ 결혼에 빨리 이를 수 있는 비결”이라고 조언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여성근로자 42% 임시직 남성 23%의 1.9배 달해

    여성근로자 42% 임시직 남성 23%의 1.9배 달해

    임금 근로자(회사원) 100명당 여성은 43명이 상용직(통상 정규직)이다. 반면 남성은 65명으로 여성의 1.5배에 이른다. 하지만 임시직으로 가면 이 비율이 역전돼 여성(43명)이 남성(23명)의 1.9배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빠르게 늘었지만 남성과의 비정규직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외무고시 합격자중 64%가 여성 6일 통계청이 발표한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 임금 근로자 686만 8000명 가운데 상용직은 295만 4000명으로 전체의 43.0%였다. 남성은 전체 933만 8000명 중 605만 3000명으로 64.8%였다. 반면 임시직 비중은 여성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총 293만 5000명으로 상용직과 거의 같은 42.7%의 비중을 보인 반면 남성은 214만 4000명으로 전체의 23.0%였다. 일용직의 비중은 여성 14.3%, 남성 12.2%였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50.0%로 2006년(50.3%) 이후 2년째 하락했다. 그러나 남녀 차이는 10년 전인 1998년(남성 75.1%-여성 47.1%)의 28%포인트에서 지난해 23.5%포인트로 좁혀졌다. 경제활동 참가 여성은 연령별로는 25~29세가 69.3%로 가장 높았고 40~44세 65.9%, 45~49세 65.8%, 50~54세 60.3% 순이었다. 98년에는 20~24세(66.1%)가 가장 높았던 것과 대조적이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 및 평균 초혼연령이 높아진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공무원 합격자 중 여성 비율은 외무고시가 65.7%로 가장 높았고 행정고시 51.2%, 사법시험 38.0%였다. ●60세 이상 고령여성 100만명 이상 더 많아 올해 총인구 4874만 7000명에서 여성은 49.8%인 2426만 5000명으로 남성보다 21만 6000명 적지만 60세 이상 고령층은 여성 415만 7000명, 남성 313만 6000명으로 여성이 100만명 이상 많다. 여성 가구주 비율은 374만 9000명으로 전체 가구 수(1692만명)의 22.2%를 차지했다. 2003년 20.6%로 처음 20%를 돌파한 뒤 줄곧 높아지는 추세다. 남아선호 사상이 희박해지면서 출생성비(여아 100명에 대한 남아 출생수)는 2007년 기준 106.2명을 기록, 사상 최저로 떨어졌다. 98년 110.2명에서 꾸준히 낮아진 것으로 정상 출생연비(통상 103~107명)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된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가기] ☞일자리 구하는 방법도 남녀 차이 나네 ☞MB 재산 기부하기까지 ☞숫자로 풀어본 올 상반기 채용시장 ☞음식점 잔반 재활용 단속 첫날 동행해보니 ☞불황에 인심 각박 걸핏하면 “법대로” ☞[수능의 맥을 잡아라] 외국어·사탐
  • 2029년 서울여성 半이 50세 이상

    2029년 서울여성 半이 50세 이상

    저출산 현상에다 고령화 추세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20년 후에는 50세 이상의 여성이 서울 전체 여성의 절반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30일 서울시민에 대한 각종 통계를 제공하는 웹진 ‘e-서울통계(25호)’에 따르면 현재 50세 이상 여성은 전체 여성의 28.7%로 20년 전(13.6%)보다 큰 폭으로 늘어났다. 이런 추세라면 20년 후인 2029년에는 50대 여성들이 무려 47.8%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현재 15~49세 가임여성 연령층은 20년 전(62.0%)보다 줄어든 57.2%로 2029년에는 41.7%로 더 감소할 전망이다. 이는 저출산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서울의 여성인구는 현재 505만 6000명으로 남성인구(498만명)보다 약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전체 남녀의 성비와는 반대다. 여성의 평균 초혼 연령은 지난해 기준으로 29.3세로 남성(31.7세)보다 2.4세 적다. 1990년과 비교하면 초혼 연령이 여성은 3.8세(25.5→29.3세), 남성은 3.4세(28.3→31.7세) 각각 높아졌다. 만혼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셈이다. 서울 여성 1명이 출산하는 자녀 수(합계출산율)는 1970년 3.05명에서 꾸준히 감소해 2005년에는 0.92명까지 낮아졌다가 2006년 0.97명, 2007년 1.06명으로 증가했다. 서울 여성의 평균 수명은 82.7세로 남성(76.1세)보다 6.6세 높게 나타났다. 또 여성 경제활동 인구는 216만 6000명, 경제활동 참가율은 51.0%로 각각 나타났으며 취업자 중 전문·관리직 종사자는 24.8%를 차지했다. 임금근로자 중 임시·일용직 비율은 44.7%로 남성(28.9%)보다 높게 나타났다. 여성들의 저임금 상태가 별로 나아지지 않는 것으로 풀이된다. 가구의 생계를 책임지는 여성가구주는 1980년 27만 5000명에서 올해 86만명으로 3배가량 증가했으며 전체 가구 중 24.4%를 차지했다. 가정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느끼는 서울 여성은 51.4%로 남성(41.2%)보다 다소 높게 나타났다. 가정내 가사 분담은 부인이 주로 하고 남편이 약간 돕는다는 경우가 59.3%로 가장 많았다. 이어 부인이 전적으로 책임지는 경우(28.0%), 공평하게 부담(11.5%) 순으로 나타났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7년 구상 두 달 작업끝에 쇼팽 곡에 가사 선물했죠”

    “7년 구상 두 달 작업끝에 쇼팽 곡에 가사 선물했죠”

    ‘즉흥환상곡’, ‘이별의 곡’, ‘야상곡’…. 지극히 아름답고, 서정적이라 콧노래조차도 덧붙이기 조심스러운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작품들이다. 올초 나온 음반 ‘쇼팽과 소녀(Chopin and The Girl)’는 여기에 과감하게 가사를 씌운 노래로 채워졌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뮤지컬 배우로 잘 알려진 이소정(36). 그는 오는 29~3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에서 이 노래들을 선사한다. “다섯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는데, 특히 쇼팽 곡을 좋아했죠. 쇼팽으로 뮤지컬, 영화 등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고요. 구상은 7년쯤 했나봐요.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노래겠다 싶어서 보컬 음반을 냈습니다.” 3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이소정은 음반에서 나지막하게 노래하던 그 목소리로 운을 뗐다. “쇼팽의 작품을 고르고, 가사를 붙이는 등의 작업에는 꼬박 두 달이 걸렸어요. 어떤 가사가 잘 어울릴까, 어떤 단어를 고를까, 이 곡에는 한글이 나을까 영어 가사가 나을까 등등 생각할 게 너무 많았거든요.” 노래는 쇼팽 작품의 멜로디나 코드 변형 없이 다가가기 쉽게 불렀다. 가사는 미국과 일본 시장까지 고려해 대부분 영어로 썼다. 쇼팽의 전주곡 4번과 연습곡 5번에는 한글 가사를 넣었다. 녹턴 9번에는 프랑스어 가사로 부르기도 했다. 피아노 소나타 2번 ‘장송곡’에 덧댄 김소월 시인의 ‘초혼’을 제외하고, 모든 가사는 직접 썼다. “원래 글 쓰는 것을 좋아해요. 아직도 초등학교 때부터 쓴 일기가 그대로 남아 있고요. 몇년 동안 영어 동화 시리즈도 기획하면서 이미 한 작품은 써놓은 상태고…. 구상 중인 책도 있는데, 곧 출간할 수 있을 걸로 보입니다.” 그야말로 ‘다재다능’하다.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4대 뮤지컬로 꼽히는 ‘미스 사이공’의 주인공 ‘킴’을 맡으면서 ‘실력파 뮤지컬 배우’로 활동한 그는 이제 이 타이틀을 내려놓을 계획이다. “벌써 무대에 선 지 10년이 훌쩍 넘었어요. 이제는 인생의 전환점을 찾아야겠다 싶었죠. 하지만 노래하는 게 너무 좋고, ‘노래하는 이소정’이 아닌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어요. 노래는 계속 부를겁니다.” 공연 제목인 ‘이소정, 쇼팽을 노래하다’는 이런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쇼팽의 폴로네이즈 6번 같은, ‘너무 좋아하지만 수록하지 못한’ 음악은 이번 공연에서 협연하는 피아니스트 소린 크레시운이 대신 들려준다. 어떤 공연이 될지 묻자 그의 성격처럼 대답도 군더더기 없이 명쾌하다. “좋은 노래를 편하게 감상하고, 이소정과 이야기하는 자리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서울광장 노란 물결…‘상록수’ 등 들으며 먼 길 떠나

    [노 前대통령 국민장] 서울광장 노란 물결…‘상록수’ 등 들으며 먼 길 떠나

    추모객들은 영결식을 마친 고인의 운구행렬을 쉽사리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29일 낮 12시23분쯤 영결식을 마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은 오후 1시로 예정된 노제(路祭)를 치르기 위해 경복궁 앞뜰에서 동십자각을 거쳐 세종로와 태평로를 지나 시청앞 서울광장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인도에 있던 추모객들이 도로로 몰려들면서 걸어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광화문에서 서울광장까지 가는데 1시간 이상 걸렸다. 당초 경찰은 장례행렬의 이동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 인도 안쪽으로 폴리스라인을 설정했지만 추모객들이 몰리면서 이들에게 길을 내줘야 했다. 운구 행렬이 서울광장에 도착할 무렵인 오후 1시20분쯤에는 세종로 네거리부터 숭례문 앞까지 도로 전체가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려는 18만여명의 시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시민 몰려 운구행렬 10분거리 1시간 걸려 양쪽으로 운구행렬을 둘러싼 추모객들은 영구차에 노란 풍선과 노란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작별인사를 고했다. 장의위원회가 준비한 만장 2000여개도 모습을 드러냈다. 만장에는 ‘내 아이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가르칠 위인’, ‘약자의 편에 선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님 이 땅에 다시 오시어 다시 한번 대통령이 되소서’, ‘당신과 함께 미래를 오늘로 만들겠습니다, 걱정 버리십시오’ 등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고시 준비생인 오동길(27)씨는 “집안이 보수적이어서 임기 내내 노 대통령을 대변하느라 집안싸움을 많이 했는데 막상 돌아가시니 부모님이 ‘큰 족적을 남기고 가셨다.’며 아쉬워했다.”면서 “정쟁 없는 곳에서 편히 쉬시기를 바랄 뿐”이라고 소망했다. 프레스센터 앞 서울신문 전광판을 통해 영결식을 지켜보던 ‘박쥐’의 박찬욱 감독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칸에서 들었는데 너무 안타까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노제는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40여분간 열렸다. 노제는 총감독을 맡은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행사 시작 선언과 고인의 영혼을 부르는 초혼 의식으로 시작됐다. 이어 국립창극단의 ‘혼맞이 소리’, 국립무용단의 ‘진혼무’, 안도현·김진경 시인의 조시 낭독, 안숙선 명창의 조창, 묵념, 고인의 유언 낭독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노제는 오후 2시쯤 고인이 평소 좋아했던 노래로 알려진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모두 합창하면서 마무리됐다. 이때 건호·정연씨는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이후 고인의 영구차는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아침이슬’,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이 울려퍼지는 애도의 거리를 따라 천천히 서울역으로 향했다. 노제 본행사에 앞서 서울광장에서는 낮 12시 무렵부터 방송인 김제동씨의 사회로 가수 양희은·안치환·윤도현씨가 목 놓아 고인을 추모하는 노래를 부르며 고인의 운구를 맞았다. 노 전 대통령의 유족과 함께 운구행렬을 뒤따르던 민주당 의원들은 “대통령이 돌아가실 때까지 뭘 했냐.”는 시민들의 원망과 질타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노 전 대통령 지켜낸 광장 광화문 네거리~서울광장 일대는 ‘정치인 노무현’을 전 국민에게 알리고 ‘대통령 노무현’을 만들고 지켜낸 곳으로, 1987년 6월 전두환 군사정권에 맞서 독재 타도, 호헌 철폐로 넘쳐났던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노 전 대통령 역시 당시 시민들과 함께 ‘독재타도’를 외쳤고 이듬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6대 대통령 당선 이후 2004년 탄핵으로 위기에 봉착했을 때 지지자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그를 지켜낸 곳이기도 하다. 이런 추억 때문인지 서울광장 일대에는 오전 7시40분쯤부터 추모객들이 모여들기 시작, 고인의 굴곡 많은 인생을 눈물과 통곡으로 달랬다. 오전 9시쯤 접어들면서 거대한 노란 풍선, 노란 모자 등 온통 노란색으로 광장이 물들었다. 오후 1시쯤엔 추모객이 18만여명(경찰추산, 주최측 50만여명)으로 늘어났다. 추모객들은 노란색 햇빛 가리개 모자를 쓰고, 얼굴에는 노란색 스티커도 붙였다. 노란 귀걸이와 머리띠를 하고 온 대학생 김수진(22·여)씨는 “노제에 참석하라며 교수님이 강의를 휴강했다.”면서 “인터넷에 떠도는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을 보고 젊은이들이 ‘노간지’라며 열광했었는데 이제 그런 소탈한 모습을 볼 수 없게 돼 안타깝다.”며 울었다. 경기도 성남에서 온 김시중(41)씨는 “민주화운동을 함께했던 동지였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은 386세대에 남다른 의미로 남는다.”면서 “노 전 대통령이 남기신 유지를 받들어 지역감정 등 분열을 넘어서 통합의 시대가 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만장 2000여개 펄럭이며… 운구행렬이 노제가 치러진 서울광장을 벗어나는 동안 주변의 추모객들은 민주당 김근태 상임고문, 박영선 의원 등에게 “살아 있을 때는 외면하더니 이제야 따라다니느냐.”며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다. 행렬은 오후 2시45분쯤 남대문을 지나 3시쯤 2000여개의 만장을 펄럭이며 서울역에 도착했다. 서울역 광장을 가득 메운 추모객들은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이 보이자 ‘노무현’을 크게 연호하며 울먹였다. 당초 운구행렬은 오후 2시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남대문 주변 교통흐름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인파가 몰려들어 1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다. 서울역에서 수원 연화장으로 향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추모객들은 서울역을 지나서도 운구행렬을 놓아주지 않고 하염없이 따라 걸었다. 1년4개월 전 임기를 마치고 노 전 대통령이 미소 지으며 걷던 서울역 계단과 광장은 이날 고인을 배웅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서울역 앞에 마련된 정부 분향소에는 이날 오후 3시 현재 누적 조문객 수가 6만 5000여명이나 됐다. 서울 화곡동의 직장에서 지하철을 타고 분향하러 온 김도경(43)씨는 “삶도 죽음도 한 조각이라는 유서 내용이 가슴을 적셔 분향소에 들렀다.”고 말했다. 대학생 원미라(22·여)씨는 “국장과 달리 국민장은 휴일이 아니어서 교수님들과 의논해 오늘 하루 휴강했다.”면서 “시대가 고통을 겪고 있지만 사람은 아프지 않도록 힘을 모으겠다고 방명록에 썼다.”고 말했다. ●경찰 주차시도에 시민들 물병 등 던져 운구행렬을 떠나보낸 추모객들은 다시 서울광장에 삼삼오오 모여 노래를 부르며 고인과의 이별을 슬퍼했다. 오후 3시30분쯤 경찰 버스 4대가 서울 프라자호텔 맞은편 서울광장 가장자리에 주차를 하려 하자 일부 추모객들이 물통 등을 던지며 강력히 반발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버스 1대와 경찰 지휘차량 1대가 일부 파손됐고 세종로에서는 추모객들과 경찰의 신경전이 밤늦도록 계속됐다. 경찰은 밤늦도록 추모객들의 귀가를 촉구하는 안내방송을 내보냈고, 이에 맞서 추모객들은 차량 위에 설치된 마이크로 한 사람씩 번갈아가며 추모사를 쏟아내 고인의 서거를 안타까워했다. 서울 유대근·수원 오달란기자 hunnam@seoul.co.kr
  • “가지마세요”…떠나는 서울광장엔 노란 물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가 열린 29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는 수많은 추도객이 운집,마지막 가는 운구행렬을 아쉬워 했다.시민들은 목이나 팔에 노란색 스카프를 두르고,노 전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종이 모자와 노란 풍선 등을 흔들며 고인을 애도했다.  이날 낮 12시10분쯤 경복궁 앞뜰에서 영결식을 마친 노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은 경복궁 앞 동십자각을 거쳐 광화문으로 이동했다.경찰 사이드 카를 앞세우고 노 전 대통령의 대형 영정을 모신 승용차가 천천히 뒤를 따랐다.이어 노 전 대통령의 유해를 실은 운구차가 뒤따랐다.영결식 참석자들도 검은색 상복 차림으로 운구차 뒤를 따라 광화문으로 이동했다.  시민들은 광장 주변에 설치된 대형 화면 등을 통해 영결식과 장례 행렬이 이동하는 장면을 지켜봤다.운구차를 따라 이동하면서 “미안합니다” “가지마세요” 라며 오열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유해가 이동하는 동안 서울광장에서는 방송인 김제동씨가 사회로 가수들의 추모 공연이 진행됐다. 가수 안치환씨는 통기타를 치며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마른 잎 다시 살아나’ 등 애잔한 추모곡을 부르자 많은 추도객들이 흐느끼기도 했다.  이어 가수 양희은씨는 ‘상록수’를 불렀다.이 곡은 노 전 대통령이 대선 광고에서 직접 기타를 치면서 불렀던 곡.자리한 추도객들은 노 전 대통령의 애창곡인 이 노래를 함께 따라불렀다.  록밴드 YB는 추모곡으로 ‘후회없어’와 ‘너를 보내고’를 불렀다.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던 YB의 윤도현씨는 공연 중 “노 전 대통령의 홈페이지 제목이 ‘사람사는 세상’이었다.그분은 떠났지만 이 노래를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추모 공연은 노래패 우리나라가 부른 ‘광화문 연가’로 마무리됐다.  마지막으로 사회자인 김제동씨는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유서의 내용에 대한 답변 형식의 추모사로 행사 종료를 알렸다.김제동씨는 추모사 도중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우리 스스로를 원망하면서 남은 큰 짐은 우리가 운명으로 안고 반드시 이뤄 나가겠다.그분은 우리 가슴 속에 한줌의 재가 아니라 영원토록 살아있는 열정으로 간직될 것이다.”라며 울먹이기도 했다.  노제는 노 전 대통령의 운구차가 서울광장에 들어선 뒤 공식적으로 진행됐다.노제에서는 노제의 총감독을 맡은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혼을 부르는 초혼 순서가 진행된 뒤 국립창극단이 향로를 들고 ‘혼맞이소리’를 하며 영구차를 한 바퀴 돈 뒤 무대에 올랐다.고인의 넋을 달래는 ‘진혼무’가 진행되는 가운데 시인 안도현씨와 김진경씨가 고인을 추모하는 조시를 낭독했다.  이어 시인 도종환씨의 사회로 장시아 시인의 유서 낭독, 안숙선 명창의 조창,진혼무가 이어져 고인의 넋을 위로했다.노 전 대통령이 생전 좋아했던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합창하며 노제는 끝났다.운구 행렬은 이어 태평로를 거쳐 서울역까지 30분 가량 도보로 이동하며 시민들의 배웅을 받았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가지마세요”…떠나는 서울광장엔 노란 물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가 열린 29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는 수많은 추도객이 운집,마지막 가는 운구행렬을 아쉬워 했다.시민들은 목이나 팔에 노란색 스카프를 두르고,노 전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종이 모자와 노란 풍선 등을 흔들며 고인을 애도했다. 이날 낮 12시10분쯤 경복궁 앞뜰에서 영결식을 마친 노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은 경복궁 앞 동십자각을 거쳐 광화문으로 이동했다.경찰 사이드 카를 앞세우고 노 전 대통령의 대형 영정을 모신 승용차가 천천히 뒤를 따랐다.이어 노 전 대통령의 유해를 실은 운구차가 뒤따랐다.영결식 참석자들도 검은색 상복 차림으로 운구차 뒤를 따라 광화문으로 이동했다. 시민들은 광장 주변에 설치된 대형 화면 등을 통해 영결식과 장례 행렬이 이동하는 장면을 지켜봤다.운구차를 따라 이동하면서 “미안합니다” “가지마세요” 라며 오열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유해가 이동하는 동안 서울광장에서는 방송인 김제동씨가 사회로 가수들의 추모 공연이 진행됐다. 가수 안치환씨는 통기타를 치며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마른 잎 다시 살아나’ 등 애잔한 추모곡을 부르자 많은 추도객들이 흐느끼기도 했다. 이어 가수 양희은씨는 ‘상록수’를 불렀다.이 곡은 노 전 대통령이 대선 광고에서 직접 기타를 치면서 불렀던 곡.자리한 추도객들은 노 전 대통령의 애창곡인 이 노래를 함께 따라불렀다. 록밴드 YB는 추모곡으로 ‘후회없어’와 ‘너를 보내고’를 불렀다.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던 YB의 윤도현씨는 공연 중 “노 전 대통령의 홈페이지 제목이 ‘사람사는 세상’이었다.그분은 떠났지만 이 노래를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추모 공연은 노래패 우리나라가 부른 ‘광화문 연가’로 마무리됐다. 마지막으로 사회자인 김제동씨는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유서의 내용에 대한 답변 형식의 추모사로 행사 종료를 알렸다.김제동씨는 추모사 도중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우리 스스로를 원망하면서 남은 큰 짐은 우리가 운명으로 안고 반드시 이뤄 나가겠다.그분은 우리 가슴 속에 한줌의 재가 아니라 영원토록 살아있는 열정으로 간직될 것이다.”라며 울먹이기도 했다. 노제는 노 전 대통령의 운구차가 서울광장에 들어선 뒤 공식적으로 진행됐다.노제에서는 노제의 총감독을 맡은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혼을 부르는 초혼 순서가 진행된 뒤 국립창극단이 향로를 들고 ‘혼맞이소리’를 하며 영구차를 한 바퀴 돈 뒤 무대에 올랐다.고인의 넋을 달래는 ‘진혼무’가 진행되는 가운데 시인 안도현씨와 김진경씨가 고인을 추모하는 조시를 낭독했다. 이어 시인 도종환씨의 사회로 장시아 시인의 유서 낭독, 안숙선 명창의 조창,진혼무가 이어져 고인의 넋을 위로했다.노 전 대통령이 생전 좋아했던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합창하며 노제는 끝났다.운구 행렬은 이어 태평로를 거쳐 서울역까지 30분 가량 도보로 이동하며 시민들의 배웅을 받았다. 글 /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영상 / 멀티미디어기자협회 공동취재단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발인에서 안치까지… 마지막 여정 스케치

    서울광장 노란 물결… ‘상록수’ 등 들으며 먼 길 떠나 ●눈물 참던 건호·정연씨 끝내 오열 낮 12시23분쯤 영결식을 마친 노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은 오후 1시로 예정된 노제(路祭)를 치르기 위해 경복궁 앞뜰에서 동십자각을 거쳐 세종로와 태평로를 지나 시청앞 서울광장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많은 추모객들이 몰리면서 걸어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광화문에서 서울광장까지는 한시간 가까운 이상이 걸렸다. 당초 경찰은 장례행렬의 이동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 인도 안쪽으로 폴리스라인을 형성했으나 추모객들이 몰리면서 이들에게 길을 내줘야 했다. 양쪽으로 운구행렬을 둘러싼 시민들은 영구차에 노란풍선과 노란비행기를 날리며 작별인사를 고했다. 장의위원회가 준비한 만장 2000개도 모습을 드러냈다. 만장에는 ‘내 아이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가르칠 위인’, ‘약자의 편에 선 대통령’ 등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오동길(27)씨는 “집안이 보수적이어서 임기 내내 노 대통령을 대변하느라 집안싸움을 많이 했는데, 막상 돌아가시니 부모님이 ‘큰 족적을 남기고 가셨다.’면서 아쉬워하셨다.”면서 “정쟁 없는 곳에서 편히 쉬시기를 바랄 뿐”이라고 밝혔다. 프레스센터 앞 서울신문 전광판을 통해 영결식을 지켜보던 ‘박쥐’의 박찬욱 감독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칸에서 들었는데 너무 안타까웠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노제는 운구행렬이 도착한 오후 1시20분부터 40분여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노제는 총감독을 맡은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행사 시작 선언과 고인의 영혼을 부르는 초혼 의식으로 시작됐다. 이어 국립창극단의 ‘혼맞이 소리’, 국립무용단의 ‘진혼무’, 안도현·김진경 시인의 조시 낭독, 안숙선 명창의 조창, 묵념, 고인의 유언 낭독 등 순으로 진행됐다. 노제는 오후 2시쯤 고인이 평소 좋아한 노래로 알려진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모두가 합창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때 노건호, 정연씨는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기도 했다. 이후 고인의 영구차는 추모객들이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아침이슬’,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을 합창하는 가운데 장례행렬이 재정비되는 서울역으로 향했다. 노제 본 행사에 앞서 서울광장에서는 영결식이 끝나가는 낮 12시 무렵부터 방송인 김제동씨의 사회로 가수 양희은과 안치환, 윤도현이 ‘상록수’ 등 고인을 추모하는 노래를 부르는 ‘여는 마당’이 열렸다. ●‘사랑으로’ 합창 부르며 노제 마무리 이날 추모객들로 가득 찬 광화문 네거리에서 서울광장 일대는 ‘정치인 노무현’을 전 국민에 알리고 ‘대통령 노무현’을 만들고 지켜낸 곳이었다. 1987년 6월 전두환 군사정권에 맞서 독재 타도, 호헌 철폐를 외치는 6월항쟁의 물결이 넘친 곳이다. 노 전 대통령 역시 이때 시민들과 함께 ‘독재타도’를 외쳤고 이듬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6대 대통령 당선 이후 2004년 탄핵으로 위기에 봉착했을 때에는 지지자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그를 지켜낸 곳도 이곳이었다. 이런 추억 때문인지 이날 서울광장 일대는 경찰이 서울광장의 일반인 진입을 막는 차벽을 철수한 오전 7시40분부터 추모객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운구행렬이 서울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고 있는 오전 9시쯤에는 광장을 가득 메웠다. 오후 1시쯤엔 추모객이 18만명(경찰 추산, 50만명 주최측)으로 늘어났다. 추모객들은 노란색 햇빛 가리개 모자를 쓰고, 얼굴에는 노란색 스티커도 붙였다. 하늘로 떠오른 노란색 풍선들도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을 향한 그리움을 담아 멀리 떠나보내는 듯했다. 노랑귀걸이와 머리띠를 하고 온 대학생 김수진(여·22)씨는 “노제에 참석하라며 교수님이 휴강해주셨다.”면서 “인터넷에 떠도는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을 보고 젊은이들이 ‘노간지’라며 열광했었는데 이제 그런 소탈한 모습을 볼 수 없게 돼 안타깝다.”며 울었다. 경기도 성남에서 온 김시중(41)씨는 “민주화운동을 함께했던 동지였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은 386세대에 남다른 의미로 남는다.”면서 “노 전 대통령이 남기신 유지를 받들어 지역감정 등 분열을 넘어서 통합의 시대가 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예정보다 1시간 늦게 서울역 도착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 운구 행렬은 2시45분쯤 남대문을 지나 오후 3시쯤 2000여개 만장들을 펄럭이며 서울역에 도착했다. 서울역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은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이 보이자 ‘노무현’을 크게 연호하며 울먹였다. 운구행렬은 이곳에 오후 2시 도착 예정이었으나 남대문 주변 교통통제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민들이 몰려들어 예정보다 1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다. 서울역에서 수원 연화장으로 향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시민들은 서울역을 지나서도 운구행렬을 놓아주지 않고 하염없이 따라 걸었다. 고작 1년 4개월 전 임기를 마치고 노 전 대통령이 걸어오르며 미소지었던 서울역 계단은 이날 노 전 대통령을 영원히 배웅하는 사람들로 가득찼다. 회사원 장진우(33)씨는 “지난해 배웅할 때는 우리가 계단 밑에 있었는데 이제는 대통령께서 계단 밑에 계신다.”면서 “눈물이 나서 더 이상 말을 못하겠다.”며 자리를 피했다. 한편 서울역 앞에 마련된 정부 분향소에는 이날 오후 3시 현재 누적 조문객 6만 4997명이 분향했다. 서울 화곡동 직장에서 전철을 타고 분향하러 온 김도경(43)씨는 “삶도 죽음도 한조각이라는 유서 내용이 가슴을 적셔 일부러 분향소에 들렀다.”고 말했다. ●오후 6시 지나서야 수원 연화장 도착 노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추모행렬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운구행렬은 오후 6시가 지나서야 수원 연화장에 도착했다. 노 전 대통령의 유지대로 화장이 이뤄진 수원 연화장 역시 온통 노란 물결이었다. 연화장으로 가는 길목에는 노란 풍선과 리본, ‘당신은 우리의 영원한 대통령입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바람에 나부꼈다. 오후 1시부터 노란색 모자를 쓰고 노란 스카프를 두른 1000여명의 시민이 연화장 내부 승화원(화장장)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시민들은 야외에 설치된 대형스크린으로 영결식과 노제를 지켜보며 눈물을 훔쳤다. 주부 박현선(41)씨는 “대통령께서 가시는 마지막 길이 외롭지 않도록 배웅하러 나왔다.”면서 “뜨거운 가마 속에서 계셨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김인규(56)씨는 “지난 7일동안은 슬픔의 힘으로 버텼지만 내일부터 무슨 힘으로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권양숙 여사와 유족들의 앞날도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화장은 2시간여에 걸쳐 마무리됐다. 향나무에 담긴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이날 연화장에서 4시간여 고속도로를 달려 이날 밤 봉하마을로 돌아갔다. 유골함은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로 안치됐다. 향후 사저 옆 장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김해 박정훈 김승훈 이재연·수원 오달란 서울 유대근기자 hunnam@seoul.co.kr 영상 / 멀티미디어기자협회 공동취재단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설경구·송윤아, 조용한 결혼 ‘진짜 이유’

    설경구·송윤아, 조용한 결혼 ‘진짜 이유’

    “조용한 결혼식? 스타라고 유난 떠는 것 아니에요” 28일(오늘) 오후 5시 서울 방배성당에서 톱스타 커플 설경구와 송윤아가 웨딩마치를 울린다. 이와 관련해 설경구의 소속사 고위 관계자는 서울신문NTN과의 전화통화에서 “결혼식을 웨딩업체에 맡기지 않고 본인들이 직접 소박하게 준비했다.”며 “가족들끼리 조촐하고 조용하게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소속사 측이 언론의 사진촬영을 통제한다고 알려졌는데, 성당 외부가 아닌 지하통로나 다른 통로를 통해 결혼식장으로 이동할 예정이어서 신랑과 신부의 외부 노출 자체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다른 관계자는 “고(故) 노 전 대통령 서거 애도 분위기 때문에 조용히 결혼식을 진행한다고 알려졌지만, 사실 결혼 날짜가 정해졌을 때부터 조용한 결혼식을 치를 계획이었다.”면서 “설경구 송윤아 뿐 아니라 양가 부모님도 조용한 결혼식을 원했고 성당에서 하는 미사 형식의 결혼이어서 더 조용히 진행되길 바랬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이어 “‘얼마나 대단한 분들이길래 사진도 못 찍게 하냐’고 말하시는 기자분들도 있는데 스타라서 완전한 비공개 결혼식을 하려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스타들의 결혼식이 비공개로 진행되는 경우에는 웨딩홀 외부에 포토월(존)을 설치해 동료 연예인들의 사진은 촬영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마저도 허용되지 않는다. 또 다른 연예계 관계자에 따르면 설경구가 초혼이 아니라는 점도 조용한 결혼식을 바라는 이유 중 하나다. 방배성당 관계자는 “성당 공간이 너무 비좁아 포토존을 설치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고 전하기도 했다. 한편 두 사람의 신혼 집은 서울 논현동의 한 빌라로 알려졌으며 신혼여행은 설경구가 6월부터 촬영하는 영화 ‘용서는 없다’ 이후로 연기될 예정이다. (사진=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홍정원 기자 cine@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혼인건수 감소 속 재혼은 늘어

    혼인건수 감소 속 재혼은 늘어

    2003년 이후 줄곧 증가해온 연간 혼인 건수가 지난해 5년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결혼이 점점 늦어지면서 지난해 초혼연령이 남자는 31.38세, 여자는 28.32세로 높아졌다. 25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8년 혼인통계’에 따르면 혼인 건수는 32만 7700건으로, 2007년 34만 3600건에 비해 4.6% 감소했다. 2003년 30만 3000건, 2004년 30만 9000건, 2005년 31만 4000건, 2006년 33만 1000건에 비하면 적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쌍춘년 효과 등으로 2007년 혼인이 크게 늘어난 때문에 지난해 감소폭이 상대적으로 커졌다.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인 조(粗)혼인율은 6.6건으로 전년보다 0.4건 줄었다. 남녀 모두 초혼은 5%대의 감소율을 보였지만 재혼은 남자 0.1%, 여자 1.4%가 각각 증가했다. 재혼이 전체 혼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남자 17.5%, 여자 19.2%였다. 평균 초혼연령은 남자가 31.38세로 전년 대비 0.27세, 여자는 28.32세로 0.23세 높아졌다. 평균 재혼연령도 남자 44.98세, 여자 40.31세로 각각 0.17세와 0.23세 늦어졌다. 전체 혼인에서 차지하는 연령대별 비중은 남자는 30대 전반(30~34세)이 33.8%로 가장 높았고 이어 20대 후반(25~29세) 32.8%, 30대 후반(35~39세) 14.1%, 40대 전반(40~44세) 6.2% 순이었다. 여자는 20대 후반이 47.6%로 거의 절반을 차지했고 30대 전반 21.1%, 20대 전반 11.4%, 30대 후반 7.8% 순이었다. 초혼 중 남자가 연상인 부부는 전체의 70.4%로 전년보다 1%포인트 줄었다. 10년 전인 1998년의 78.3%에 비해서는 8%포인트가량 낮아진 것이다. 반면 여자가 연상인 경우는 전체의 13.7%로 0.7%포인트 증가했다. 98년의 9.6%보다 4%포인트 이상 높아졌다. 동갑인 경우도 15.9%로 전년보다 0.3%포인트 상승했다. 나이 차이는 남자가 3~5세 연상인 커플이 27.9%로 가장 많았고 남자 1~2세 연상 26.0%, 동갑 15.9%, 남자 6~9세 연상 10.6%, 여자 1~2세 연상 10.2%, 남자 10세 이상 연상 5.9%, 여자 3~5세 연상 2.8% 순이었다. 외국인과의 혼인은 3만 6204건으로 2000년의 1만 1605건보다는 3배 이상 늘었지만 2006년 이후 3년째 감소세를 보였다. 한국 남자와 외국 여자의 혼인은 2만 8163건이었다. 이 중 신부의 국적이 중국인 경우가 1만 3203건(46.9%)으로 가장 많았고 베트남 8282건(29.4%), 필리핀 1857건(6.6%)이었다. 한국 여자와 외국 남자의 혼인은 총 8041건으로 신랑의 국적은 일본 2743건(34.1%), 중국 2101건(26.1%), 미국 1347건(16.8%)이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106세 신부’와 ‘37세 신랑’의 러브스토리

    말레이시아의 106세 할머니와 37세 ‘꼬마 신랑’ 커플의 이색 러브스토리가 네티즌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중국 셴다이콰이바오(現代快報)에 따르면 지난 2005년 당시 103세의 할머니 ‘우쿠두’는 34세의 총각 ‘모하메노’와 결혼식을 올리고 정식으로 부부가 됐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들의 결혼을 믿지 않았지만 이들이 3년 동안 부부로서 달콤한 신혼을 보내는 모습을 본 뒤 그들을 인정하게 됐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할머니 신부’가 이번이 22번째 결혼인데 반해 신랑은 초혼이라는 것.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의 재산을 탐낸 결혼이 아니냐’는 추측을 던지자 모하메노는 “나는 절대 돈을 보고 결혼하지 않았다. 내 아내는 가진 재산이 거의 없다.”며 일축했다. 신혼을 보내고 있는 두 사람은 “사랑해서 결혼했을 뿐”이라며 “비록 나이 차이는 많이 나지만 긍정적인 태도로 인생을 보면 어렵지 않다.”고 만혼의 ‘비법’을 밝혔다. 할머니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게는 20명의 아들이 있다. 손자도 십 수 명이며 심지어는 증손주도 있다.”면서 “어떤 자손들은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난 여생을 웃으며 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젊었을 적 마음 그대로 남편을 대하고 있다. 아내로서 식사를 준비하고 집안일을 하는 등 여느 부부와 다를 것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실제로 ‘고령’의 아내를 돌보는 일은 서른 네 살 ‘어린’ 신랑의 몫이다. 그는 “보통 부부들처럼 가끔은 싸우기도 하지만 다른 남편보다 2배 더 많이 보살펴 주려 노력한다.”면서 “병들고 아픈 한이 있더라도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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