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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6) 경주 남산동 남산예길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6) 경주 남산동 남산예길

    경북 경주 시내에서 불국사 가는 길 오른편으로 나지막한 산이 길게 누워 있다. 바로 경주 남산이다. 그리 높지 않은 산(고위봉·해발 494m)이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우리의 문화를 대표하는 산이다. 신라시대 왕궁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남산으로 이름 지어진 이곳은 천년 전엔 부처님의 세상이었다. 산에서만 지금까지 절터 150개소, 불상 129체, 탑 99점 등이 발견됐다. 신라시대의 표현을 빌리자면 ‘멀리서 보면 줄지어 있는 탑신이 날아가는 기러기 떼처럼 보인다’고 했을 만큼 불교 문화가 꽃핀 곳이다. 산에는 이 밖에도 왕릉 13기, 산성터 4개소 등이 남아 있다. 2000년 산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은 당연한 결과다. 산 전체가 자연유산이 아닌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사례는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쉽지 않다. 천년이 지나도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가득한 남산 아래 예술가들이 모여드는 건 정해진 수순일지 모른다. 그중에서도 남산의 동쪽 중앙에 오목하게 위치한 남산동 남산예길은 자발적으로 모여든 예술가들이 하나의 마을을 이루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윤만걸 명장 기계 안 쓰고 숱한 돌 문화재 복원 마을이 들어선 동남산 자락엔 신라 불교미술의 걸작들이 특히 많이 남아 있다. 초기 불상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부처골 감실여래좌상, 거대한 바위 사방에 부처님의 세계를 환상적으로 조각한 탑골의 부처바위 마애불상군, 남산에서 현존하는 가장 완전한 불상으로 꼽히는 미륵골 석조여래좌상 등은 각각 신라 초기와 전성시대를 상징하는 예술품이다. 남산의 걸작 중의 걸작으로 꼽히는 칠불암과 신선암의 불상도 남산예길의 연장선상에 있다. 칠불암의 마애불상군은 남산의 유일한 국보이기도 하다. 천년의 유혹 때문인가. 지금은 석공 명장부터 도예가, 화가, 염색, 자수공예가 등이 이 길 위에 터를 잡았다. 이들 중 일부는 작업장을 갤러리로 오픈했다. 통일전 주차장에서 시작해 2시간 정도면 돌아볼 수 있는 이 길은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봄이면 파스텔톤의 봄꽃이, 여름이면 야생화와 들꽃, 가을이면 코스모스들이 반긴다. 특히 황금들판으로 변신하는 가을이면 은행나무길과도 어우러져 가히 환상이다. 남산예길이 속한 통일전 앞 은행나무 길은 가을이면 사진명소로 첫손 꼽힌다. 이 길 한가운데, 석탑교 지나 윤만걸 석공 명장의 작업장이 있다. 국보 감은사지 석탑과 나원리 5층 석탑, 보물인 남산의 천룡사지 석탑과 용장사지 석탑 등 경주 유수의 문화재들이 윤 명장의 손끝에서 복원됐다. 가능한 한 기계를 배제하고 손으로 직접 작업해 신라 석공의 후예라는 칭송이 붙는다. 2대째 명장을 꿈꾸는 그의 두 아들도 이 작업장을 기반으로 함께 일을 한다. 그의 이력을 조금이라도 알고 작업장을 방문하면 이곳에 굴러다니는 돌 하나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길은 윤 명장의 작업장에서 오른쪽 현각사 안쪽으로 꺾어져 실개천을 따라 이어진다. 약 10여 분 천천히 걷다 보면 두 도예작가의 작업실이 나란히 나타난다. 화려한 꽃무늬로 여심을 사로잡는 권은희 작가의 연도예와 단아하고 귀품 있는 백자가 주를 이루는 백성일, 이정은 부부 작가의 백암요다. 두 작가 모두 다른 스타일의 작품들을 활발히 선보이는 터라 도자기 문외한이라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끔 마당에서도 훤히 보이는 백암요의 장작 가마에 불이 피워지는 날이면 또 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백암요를 지나 5분 정도 더 걸어 올라가면 야선미술관이 나온다. 낮은 대나무 담장 안에 정갈하게 꾸며진 4채의 작은 한옥이 남산 전경과 기막히게 어우러지는 곳이다. 선화를 주 종목으로 하는 화가 박정희의 작업실 겸 전시관으로, 물감이 아닌 자연에서 얻는 흙이나 돌 등을 재료로 작업을 하는 독특한 그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도자기와 염색 등 다방면으로 재주가 많은 그의 작품들을 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남산 자락이 한눈에 들어오는 카페에서 좋은 재료로 만든 수제 차와 케이크를 들며 잠시 쉬어가기도 좋다. 다시 길은 소나무 외피 무늬로 특허를 얻은 김외준 작가의 청광도요, 목공예가 김종대 작가의 김종대 갤러리 등으로 이어진다. 경주 시내 한옥마을에서 염색공예체험관 노을빛 갤러리를 운영하는 신귀준 작가의 공간도 이곳에 있다. ●작은 연못 서출지는 신라 소지왕 때 조성 한옥들이 올망졸망하게 어우러지는 이 마을 안쪽 돌담길은 사계절 다른 정취로 정답고 아련하다. 마을 안쪽으로 서로 다른 두 개의 탑이 조화를 이루는 남산리 삼층석탑, 소리로 세상을 어루만진 스님의 이야기가 남아 있는 염불사지 등을 함께 구경하다 보면 길은 종착지인 서출지에 이른다. 이요당을 중심으로 봄이면 목련과 개나리, 여름이면 연꽃과 백일홍이 화려함을 뽐내는 작은 연못이다. 작지만 그 역사는 신라 21대 소지왕까지 올라가니 훌쩍 천년을 넘는다. 특이하게도 이곳에 자리잡은 많은 예술가의 고향은 경주가 아니다. 다른 곳을 헤매다가도 다시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윤만걸 명장의 말이 이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저 산 위에서 작업하다 내려다보는데 여기만한 곳이 없는 기라. 실개천 흐르고 누런 들판이 확 트여서 풍요롭고, 딱 여기다 싶데요.” 글 사진 여행작가 enkaykim@naver.com ■여행수첩 - 지역번호 054 →가는 길:경주 시내에서 7번 국도를 따라 통일전 방면으로 향한다. 통일전 주차장 이용. 버스는 터미널이나 경주역 앞에서 11번을 이용해 통일전 또는 현각사 앞에서 하차한다. 야선미술관은 오전 11시~오후 6시 문을 연다. 화, 수요일은 휴관. 백암도예, 연도예, 청광도요 등은 사람이 있을 경우엔 언제든 문을 열어주지만 미리 전화해 보고 가는 것이 좋다. →함께 가볼 곳:남산예길 가는 길목의 경북산림환경연구원은 주변 부지에 1만 5000여 점의 다양한 나무와 식물들이 심어져 사계절 눈길을 끈다. 야생화가 피는 초여름, 단풍 드는 가을이 가장 좋다. 경주 월성 뒤쪽 월정교에서 시작하는 남산 동쪽 둘레길인 ‘동남산가는 길’에선 남산 불교미술의 걸작을 만나볼 수 있다. 신라 초기 불상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부처골의 할매부처, 탑골의 마애불상군, 석굴암 불상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미륵골 석조여래좌상 등을 볼 수 있다. 소나무 숲과 어우러진 헌강왕릉, 정강왕릉, 서출지를 거쳐 남산동의 석탑까지 함께 돌아본다. 대부분의 길은 경주시에서 잘 정비했다. →맛집:여기당(743-2752)은 시래기밥과 전 등을 전문으로 하는 소박한 식당이다. 서출지 옆에 있다. 야선미술관 옆의 아라키(070-4212-6959)는 일본인이 직접 만드는 카레집으로 소문났다.
  • “산벚나무 피면 봄이에요”

    “산벚나무가 피면 봄, 참매미가 울면 여름, 구절초 향기가 나면 가을.” 국립공원관리공단은 3일 기후와 계절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계절 알리미 생물종’ 50종을 선정했다. 기후변화로 생물의 출현 시기와 생활 주기가 종전과 달라져 계절 예측에 혼란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절 알리미 생물종은 1991년부터 시작된 자연자원 조사로 확보한 국립공원 생물종 2만 183종을 대상으로 전문가 평가회의를 거쳐 선정했다. 식물 28종, 곤충 10종, 양서류 4종, 조류 8종으로 실질적인 계절 변화를 알려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공단은 설명했다. 계절별 발생 시기로 볼 때 초봄은 히어리·노루귀·복수초 등 13종, 봄은 산벚나무·호랑나비 등 10종, 초여름은 물레나물·모시나비 등 8종, 여름은 참나리·제비나비 등 8종, 초가을은 금강초롱꽃·고추잠자리 등 6종, 가을은 구절초·늦반딧불이 등 5종이 선정됐다. 계절 알리미 생물종은 계절별 발생과 개화 시기를 기준으로 분류한 뒤 기후변화 생물 지표종과 모니터링 대상종, 분포 지역 특이성, 대중성 등에 대한 전문가 평가를 거쳤다. 무등산·내장산·변산반도 등에는 봄을 알리는 야생화 복수초와 노루귀, 변산바람꽃 등이 2월 중순부터 피어났다. 신용석 국립공원연구원장은 “기후와 계절 변화에 민감한 생물종의 생태적 변화를 지속적으로 관찰해 국립공원뿐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기후변화와 생태계 변화를 예측하고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강원 화천 동지화 마을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강원 화천 동지화 마을

    폐교는 예술학교로 공터는 극장으로 극적 변신 강원 화천 동지화 예술마을은 대한민국 최북단 마을이다. 마을 북쪽 끝에서 다시 북쪽으로 불과 5㎞만 더 가면 민통선과 마주한다. 오지 중의 오지다. 일 년 열두 달 이곳의 변화라고는 계절이 바뀌는 것과 살고 있는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 간다는 것뿐일 정도로 조용한 곳이다. 그러던 마을에 2010년 10여명의 젊은이들로 구성된 연극 극단이 들어와 마을 남쪽의 옛 신명분교 터에 둥지를 틀었다. 6개월 뒤에는 예술가 부부가 들어와 마을 북쪽의 옛 율대분교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약 5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 동지화 예술마을은 전국에서 가장 신바람 넘치는 예술마을의 하나가 됐다. 동지화 마을은 화천읍에서 배머리교 넘어 북쪽으로 10여분 더 들어가야 시작한다. 마을은 더 없이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그만큼 사람들의 훼손이 적은 마을이란 뜻이겠다. ‘공연창작집단 뛰다’와 ‘문화공간 예술텃밭’이라고 적힌 간판 앞에 이르자 왠지 모를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문화공간 예술텃밭’은 극단 뛰다가 폐교를 일궈 조성한 이 공간의 새 이름이다. 5년 전 다 쓰러져 가던 학교 건물 한 채와 관사만 남아 있던 이곳에 제법 큰 여러 채의 건물이 옹기종기 들어찼다. 나지막한 언덕 위 학교 건물이었던 곳은 창작 스튜디오와 사무실로 변신했다. 운동장 한편엔 작지만 마치 로마시대 원형 경기장을 연상시키는 야외노천 극장이 생겼다. 또 제법 큰 다목적 극장도 새로 생겨 운동장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그 옆에 작은 창작 스튜디오가 있고, 다 쓰러져 가던 관사는 예술가들이 머무는 레지던시가 됐다. 운동장 입구 주차장 옆에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민박 건물 네 동과 그림책이 가득한 서재가 마련됐다. 일반인들도 머물 수 있는 곳이다. 이 공간은 학교 건물 아래쪽의 마을회관과 게이트볼장, 최근 문을 연 제2의 민박 건물, 극단 단원들의 개인 공간과 어우러져 동지화 예술마을 안에서도 작은 촌을 이루고 있다. 산업쓰레기 가득하던 학교는 5년 만에 전국에서 손꼽히는 문화공간이 됐다. 화천군의 지원과 극단의 노력, 마을 주민들의 응원이 만든 성과였다. 극단 또한 지역 주민들 속에 녹아들기 위해 청소년 연극교실, 군부대 대상 연극 프로그램, 화천군 문화예술회관 공연 등을 정기적으로 펼쳤다. 심지어 연극교실로 친해진 청소년들이 작은 극단까지 만들어 정기공연을 올리고 있다. 연극으로 산골의 무료함을 달래던 청소년들은 연극으로 새로운 꿈을 꾸기도 한다. 올해는 극단 소속 배우들의 도움을 받아 2명의 학생들이 연극 전공을 하기 위해 시험도 치렀다. 이 일대에 공간을 일구기 시작한 이듬해부터 펼쳐 온 ‘텃밭예술축제’는 지역의 명물이 됐다. 예술가들이 모여 저마다 자유롭게 자신의 예술을 펼치고 일반인들도 참여해 함께 무대에 공연을 올리기도 한다. 문화공간에는 다양한 예술가들이 국경을 초월해 드나든다. 레지던시에서는 이곳에 매료된 예술가들이 잠시 작업을 구상하거나 힐링하기 위해 머문다. 이제는 제법 소문이 나 타 지역의 학교 등에서 연극 힐링 프로그램을 받기 위해 마을을 찾기도 한다. ‘극단 뛰다’의 배요섭 연출은 “이 공간이 생기면서 여러 예술가들이 어우러져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할 수 있어 너무 즐겁다”고 말했다. 문화공간에 대한 총괄 기획과 관리를 맡고 있는 이민후 국장도 “무엇보다 지난 5년간 마을 주민들과 어우러질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올해는 극장에서 ‘극단 뛰다’의 정기 공연도 펼치고 아마추어들을 대상으로 한 연극 교육 프로그램도 확대할 예정이다. 또 민박을 ‘북 스테이’로 확장시켜 아이들과 어우러질 수 있는 그림책 가득한 공간으로 꾸며 갈 계획이다. ‘문화공간 예술텃밭’과 ‘극단 뛰다’가 조금 왁자지껄하게 마을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면 부부 예술가가 꾸려 가는 또 다른 공간인 ‘숲속예술학교’는 조용히 마을의 변화를 일구고 있다. 물고기 작가로 유명한 남편 이정인씨는 나무공예가다. 가구도 만들고 물고기를 모티브로 한 다양한 작품도 선보인다. 동화책 그림작가로 널리 알려진 부인 이재은씨는 섬세하면서도 화려한 현대미술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폐교였던 이곳은 두 예술가에 의해 미술전시관과 체험교실, 작은 카페로 탈바꿈했다. 언제 공간을 꾸미고 창작 활동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전시 공간은 컸고 작품도 다양했다. 자신들만의 작품 세계를 지역의 특성과 연계해 새로운 메시지로 전달하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두 예술가 덕분에 마을 버스정류장이나 을씨년스러웠던 마을 창고 등이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했다. 무엇보다 ‘극단 뛰다’보다 더 인적 드물고, 자연마저 고스란히 원형의 모습을 간직한 이곳에 미술로 활력을 불어넣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극단이 특정 계기를 통해 방문자와 만나는 데 비해 숲속예술학교는 언제라도 방문객들에게 공간을 개방하고 있다. 예술마을 입주자들은 5년이 지난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입을 모은다. 올해 민박 등과 연계해 지역 주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다양한 활동도 계획하고 있다. 앞으로 동지화 예술마을을 더욱 주목해야 할 이유다. 글 사진 여행작가 enkaykim@naver.com ■여행수첩(지역번호 033) →가는 길: 춘천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403번 또는 70번 국도로 갈아탄다. 내비게이션마다 가는 길이 조금씩 다를 수 있다. 문화공간 예술텃밭 442-3881. 숲속예술학교 미술관 관람은 오전 10~5시. 매주 월요일 휴관한다. →함께 가볼 곳 : 화천에 먼저 둥지를 튼 예술가는 작가 이외수씨다. 동지화 마을에서도 서쪽으로 약 30여분 더 들어간 다목리 감성마을에 이외수문학관이 있다. 거례리수목공원도 호젓하게 둘러보기 좋다. 화천강을 바라보며 서 있는 한 그루의 느티나무를 배경으로 아련한 풍경이 펼쳐진다. 야생화와 도자기가 어우러지는 동구래 마을은 늦은 봄 또는 초여름 들러보기 좋은 곳이다. →맛집: 화천에는 북한강변을 중심으로 민물 매운탕 집이 많다. 화천어죽탕(442-5544)은 잡고기 어죽탕이 맛있다. 콩과 감자를 이용한 요리도 발달했다. 콩사랑(442-2114)에서는 두부보쌈, 특선정식 등을 맛볼 수 있다.
  • 유아인, 패셔니스타의 광고촬영 현장

    유아인, 패셔니스타의 광고촬영 현장

    배우 유아인의 광고 촬영 현장이 포착됐다.프리미엄 컨템포러리 아웃웨어 ‘지프브랜드(Jeep brand)’가 유아인의 16SS 광고 촬영 현장을 공개했다. 패셔니스타로 알려진 유아인은 시선을 집중시키는 비주얼과 모델 못지 않은 포스로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벽하게 소화했다. 공개된 촬영에서 유아인은 다가오는 봄부터 초여름까지 가볍게 착용할 수 있는 데일리룩과 아웃도어의 개념을 접목시킨 SS시즌 패션을 선보였다. 지난 15FW 시즌에 이어 유아인과 지프브랜드(Jeep brand)의 조합이 이번엔 또 어떤 감각을 선보일지 주목되고 있다. 이번 ‘지프브랜드(Jeep brand)’16SS 광고촬영 현장 공개 컷에서 공개된 제품들은 전국 지프브랜드 매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유아인은 현재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 이방원역으로 출연중이며 영화 ‘좋아해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직감 좇은 붓질… 보이는 대로 보라

    직감 좇은 붓질… 보이는 대로 보라

    ‘정확히 이렇게 보이는 박스의 부감샷을 기준 삼아 새처럼 보이는 무엇과 함께’, ‘뇌신경학과 입자 물리학을 거쳐 다시 괴석이나 괴목 따위를 경험한 이후 어느 동양인에 의해 나올 수 있는 모던 토킹’, ‘아무도 믿지마’ …. 전위적인 시처럼 보이는 이 긴 문장은 추상화의 제목이다. 미술, 음악, 시, 영화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실험적인 예술활동을 펼치고 있는 백현진(44)이 서울 종로구 삼청로 PKM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고 있다. ‘들과 새와 개와 재능’이라는 생경한 타이틀을 단 전시에서 작가는 회화와 드로잉 신작 30여점을 선보인다. 음악 마니아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한국적 ‘아방팝’ 밴드 어어부프로젝트에서 보컬을 맡고 있는 백현진은 영화 ‘베테랑’과 ‘사도’의 음악감독 방준석과 함께 듀오 ‘방백’을 결성해 최근 음반을 내고 공연도 했다. 음악과 미술의 비중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음악 하는 도중에도 스마트폰 앱이나 종이에 그리고, 붓질을 할 때도 입으로는 흥얼거리며 작곡을 하기 때문에 딱히 구분할 수 없다”며 “초저녁이 밤이 되고 새벽으로 이어지듯이 20여년 동안 여러 장르를 동시에 하다 보니 이제는 무리 없이 물리적으로 잘 돌아간다”고 말했다. 그의 예술적 지향점은 ‘아무것도 안 하기’이다. 존재의 부정이나 의미의 부재가 아니라 그 너머를 표현하기 위해서다. “노래할 때나 붓질할 때는 가능한 한 아무 생각 없이 하려 한다”는 그의 회화는 도식적인 구성을 배제한 우발적인 도상과 현란한 색이 특징이다. 직감을 좇아가며 그리고 칠한 행위의 결과물은 묘한 긴장을 연출한다. 문학성 넘치는 언어구사력으로 소문난 싱어송라이터인 그가 이번 전시에서 보여 주는 작품의 제목도 흥미롭다. ‘딱딱한 콸콸콸’, ‘어릴 적 논밭 스케이트장 옆 비닐하우스에서 먹은 오뎅이 생각하는 초여름이라고 말 되어지는 한순간’, ‘어떤 동물에게 도구로 인식되기 이전의 물질’(작품) 등 상식을 깨는 것이 대부분이다. 작가는 “이른바 척하려고 한 것은 아니고 적확한 표현을 찾다 보니 길어졌다”면서 “나름대로 성의껏 만든 물건이고 어떻게 전달될지 모르지만 제목은 모두 없어도 된다”고 밝혔다. 전시장 한쪽 구석에서는 백현진이 매일매일 즉흥적으로 소리를 빚어내는 사운드퍼포먼스 ‘면벽’(Face the Wall)도 펼쳐진다. “칸막이를 없애듯이 서양의 12음계 틀에서 벗어나 주파수 자체만으로 구성했다. 작업하는 환경을 보여 주고 싶었다”는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잘 안 되는, 지극히 실험적인 ‘소리’다. 홍대 미대 조소과에 들어갔지만 3학기 만에 중퇴해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않았고, 그래서 자유롭다는 그는 “현대미술은 대단한 퀴즈가 아니다”라면서 “어떻게 봐야 맞다, 틀리다 고민하지 말고 그대로 감상하면 된다”고 말했다. 27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지구촌 최강 한파] 결국 온난화의 저주

    [지구촌 최강 한파] 결국 온난화의 저주

    서울(영하 18도)이 2001년 이후 15년 만에 최저기온을 나타낸 것을 비롯해 24일 강원 속초(영하 16.4도)와 제주 고산(영하 6.1도), 서귀포(영하 6.4도) 등 전국 곳곳에서 기상관측 이후 최저치 기록이 경신됐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지난달 초여름 같은 크리스마스를 맞았던 미국 워싱턴DC, 뉴욕 및 유럽 등도 냉장고 같은 혹한에 시달리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와 유럽, 미국 동부를 강타한 동장군은 ‘극소용돌이’(폴라보텍스)라고도 불리는 ‘북극진동’이라는 북극 대기순환 이상 변동에서 비롯됐다. 북극이 추울수록 북극 주위를 도는 제트기류가 강해 찬 공기가 아래쪽으로 내려오지 못한다. 그렇지만 지구온난화로 북극 공기가 따뜻해지면 제트기류의 힘이 약해진다. 제트기류가 약해지면 북극에 머물러 있던 찬 공기가 중위도 지역으로 내려오면서 북극 한파를 가져온다. 북극의 추위를 막아 주던 대형 장막이 사라진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번 혹한을 가져온 또 하나의 원인은 ‘우랄블로킹’이다. 기상학에서 블로킹은 특정 지역에 고기압이 발생해 오랜 기간 정체돼 저기압의 진행 경로를 방해하거나 역행시키는 것이 1주일 이상 지속되는 현상을 말한다. 카자흐스탄 북부에서 북극해까지 러시아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면서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를 이루는 것이 러시아의 우랄산맥이다. 가뜩이나 북극 상공의 제트기류가 약해져 중위도 지역까지 내려온 상황에서 기류의 흐름이 우랄산맥 동쪽에 생긴 고기압으로 막혀 굽이치면서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유럽, 미국 동부 등에 강추위가 들이닥친 것이다. 기상청은 이날 “25일 아침 최저기온도 영하 12도까지 떨어지고 낮에도 영하권에 머무는 곳이 많겠지만 26일 낮부터는 전국적으로 기온이 점차 올라 전국이 영상권을 기록하는 등 평년 기온을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해외여행 | [마리아나 원정대] Rota Blue 신이 숨겨 놓은 보석, 로타 블루

    해외여행 | [마리아나 원정대] Rota Blue 신이 숨겨 놓은 보석, 로타 블루

    ​로타 남쪽 해안의 스노클링 포인트. 배에서 바다로 직접 뛰어들기 때문에 수심이 깊지만 물은 맑기만 하다​로타섬에서 배를 타고 20여 분만 나가면 세상에서 가장 푸른 바다를 만나게 된다●Rota Blue신이 숨겨 놓은 보석, 로타 블루 글 이종철로타의 모든 것들. 예쁜 돌과 나무, 느림보 코코넛크랩, 돌돌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가 더욱 성스러운 성 프란치스코 성당, 예쁘고 예쁜 사람은 사실 로타를 수식하는 장식에 불과하다. 흔히 섬에서는 도화지에서 점을 찾듯 떠 있는 것에 집중하지만 로타에선 그 ‘점’이 입고 있는 옷이 더 아름답다. 바다 이야기다.로타의 모든 관광지는 바다에 이르러서는 끝이 난다. 툴툴거리는 픽업트럭을 타고 뒤돌아서면 바다만 남는다. 색과 향만 남아서 그립고, 그리워서 그리운 곳이 로타의 바다다. 스위밍 홀이나 테테토 비치도 좋지만, 가장 추천하고 싶은 바다는 로타 특유의 바다색 ‘로타 블루’가 끝없이 펼쳐진 앞바다다. 이 포인트를 안내해 준 것은 로타 유일의 스쿠버 센터인 루빈Rota Scuba Center Rubin이었다.루빈의 주인이자 그 자신도 다이빙광인 히로시씨Rubin Hiroshi Yamamoto는 전 세계 다이빙 포인트 대부분을 다녀봤다. 그러다 금단의 영역에 가까운 로타까지 이끌려 왔고, 로타의 물색에 반해 이주까지 해서 현재는 스쿠버 다이빙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바다’가 바로 로타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뛰어들기 위해, 가장 자주 그 행복을 누리기 위해, 지구가 아껴 두고 있던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그는 로타에서 배 두 척의 선장이 됐다.스노클링 준비 과정은 야속할 만큼 간단했다. 발 사이즈만 재면 끝이다. 사이즈를 재고 심호흡을 할 새도 없이 건조하게 예쁜 픽업트럭에 올라타야 했다. 배가 내릴 포인트에서 숨 돌릴 새도 없이 사다리를 타고 요트로 옮겨 탔다. 10분도 채 안 되는 시간, 배는 저 멀리 웨딩케이크 산이 보이는 만 앞에 정박했다. 이내 잠수용 사다리가 내려졌고, 히로시씨는 보물이라도 보여 주겠다는 듯 웃었다. 뛰어들라는 신호였다.처음엔 입만으로 숨 쉬는 게 익숙지 않았다가 호흡이 진정되고 나니 그제야 깊은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걸어서 들어갔던 스노클링 포인트들과 다르게 넓고 깊었다. 초고화질 TV에서나 보던 그 물고기들. 아마 그것보다 조금 더 깊고 투명하고 진하게.로타 블루는 초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파타야나 사이판의 바다색과 다르다. 깊은 가을색에 가깝다. 진한 남색에 아주 약간의 형광 녹색을 떨어뜨린 그런 색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열대어는 많지 않았지만 도저히 빠져나올 재간이 없을 만큼 아름답다. 이대로 영원히 살고 싶을 만큼 청명해서, 다시 배 밖으로 올라오는 순간 히로시 씨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스노클링을 마치고 돌아와, 로타 유일의 일본식당 도쿄엔에서 공수해 온 도시락을 먹었다. 사전에 신청해 둔 점심이다. 수온이 적절한 로타섬이지만 장시간 다이빙을 한다면 저체온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열량을 보충하는 것이 좋다.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고기, 생선, 햄버그스테이크 등이 식단이다. 만일 느끼한 음식에 질렸다면 로타 특산품인 핫소스를 부탁해도 좋다.‘로타 블루’ 투어의 마지막 일정은 트롤링이었다. 트롤링은 전통 낚시법인 끌낚시가 발전한 것으로 배를 타고 빠른 속도로 달리며 미끼를 작은 물고기처럼 보이게 하여 참치, 청새치 등 태평양의 대형 어종을 잡는 것이다. 매번 대형 어종을 잡을 순 없지만, 참치는 로타를 비롯한 북마리아나 제도, 하와이, 필리핀 등 주로 태평양 근해에서만 잡히는 것을 고려했을 때 나쁘지 않은 도박이다. 만약 성공한다면 배 위에서 바로 떠 주는 참치회를 먹을 수 있는 기회다. 아쉽게도 원정대에게는 그런 기회가 오지 않았지만 신나게 물보라를 일으키며 로타 블루 속을 내달렸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장비를 청결히 관리하느라 분주한 루빈의 직원들전문가가 트롤링 낚시줄을 조금씩 감거나 풀어 고기를 유인하고 있다바다가 좋아 로타에 정착했다는 일본인 히로시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바다로 향한다Rota Scuba Center Rubin스쿠버 다이빙 가이드, 탱크, 웨이트, 벨트, 음료 등이 포함돼 있다. 1탱크 $70, 2 탱크 $110, 3 탱크 $150, 4 탱크 $190. 야간 다이빙 $80. 패디(PADI) 라이선스 과정 오픈 워터 $520, 어드밴스드 오픈 워터 $400 스노클링 호텔 픽업 포함, 장비 대여, 60분 $45. 보트 대여 4명 기준, 2시간 $350, 3시간 $450. 호텔 픽업 포함. 트롤링, 지깅, 스노클링, 선셋 크루징 등에 적합하다. P.O.Box1278, Liyo, Rota, MP96951 +1 670 532 5353 www.rotarubin.com●Visit Rota비밀의 섬에서 만난 비밀스러운 열정의 밤 글 구효영Visit Rota! 종교, 음식, 음악, 춤이 담긴 축제 로타는 고요했다. 비밀의 섬, 천혜의 휴양지로서 두 팔 벌려 관광객을 환영하고 있는 곳이긴 하지만, 로타 리조트에 도착할 때까지 이렇다 할 음악소리도, 주민들의 웃음소리도 들려 오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피에스타, 특별한 축제기간 중이라는 말도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급할 거 없었다. 본격적인 축제는 저녁에 열린다니.우선, 어떤 행사인지부터 알아야 했다. 로타의 축제는 3월과 10월 둘째 주, 이렇게 일 년에 두 번 열리는데, 10월의 축제는 프란치스코 데 보르하San Francisco de Borja 성인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차모로어로 ‘비스타 루따Bisita Luta’, 즉 ‘비지트 로타Visit Rota’라 부르며 약 5일 동안 종교의식(토요일에 진행된다)뿐 아니라 음식, 음악, 춤 등이 다양하게 어우러진 주민들의 파티로 진행된다.페이스페인팅을 한 소녀제식훈련시범을 보여 주고 있는 로타의 학생들기대하시라! 로타가 보여 주는 반전의 모습 피에스타가 열리는 장소는 차모로 빌리지Chamorro Village의 로타 라운드 하우스Rota Round House. 역시나 대표 축제다운 모습이었다. 낮에는 낚시 대회가 열렸고 저녁이 되자 공연장과 인근 거리에는 댄스 경연대회, 밴드 공연 등으로 활기가 넘쳤다. 차모로족의 이색적인 전통춤과 노래를 기대하는 것은 관광객의 상상일 뿐, 실제 댄스와 밴드 공연은 현대적이고 미국적이었다. 그만큼 피에스타의 현장은 기대 이상으로 다채로웠다. 공연을 지켜보는 관객들의 반응도 콘서트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뜨거웠다. 화려한 조명은 공연장을 밝게 밝혔고, 간단한 식사와 소소한 간식들도 판매하고 장난감이나 생필품도 판매하는 작은 장터도 열렸다. 삼삼오오 모여 있던 젊은이들은 가볍게 맥주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몸을 흔들었고 아이들은 솜사탕을 물고, 때로는 비누방울을 만들며 해맑게 웃었다. 가장 큰 물고기를 잡은 낚시왕에게 주어지는 상금이 무려 1만달러라니, 소박한 축제의 큰 반전이 아닐 수 없었다.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낯설지만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코코넛 원료로 만든 떡을 튀긴 ‘부니엘로스 마나’, 밀가루 반죽에 새우를 넣어 바싹 튀긴 ‘엠파나다’는 별미 중의 별미. 만약, 원정대처럼 운이 좋다면 마음씨 좋은 가이드 아저씨가 손수 만든 코코넛 찹쌀떡 ‘야피기기’도 맛볼 수 있다.‘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하고 싶어 로타를 방문했다면 제대로 잘 찾아온 것이다. 원주민들이 건네는 따뜻한 웃음으로 무미건조했던 표정은 밝아지고, 피에스타가 선사하는 뜻밖의 선물로 무거웠던 어깨는 한결 가벼워질 것이므로.▶mini interview -사진 이진혁“로타의 역사와 문화를 만나세요!” 에프라임 로타시장Efraim Manglona Atalig (Rota Island Mayor) ‘비스타 루따Bisita Luta’는 로타의 역사와 문화가 녹아든 유일한 축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타뿐 아니라 사이판, 티니안의 주민들, 또 로타를 방문하는 다양한 국적의 여행객들도 자연스럽게 참여해서 맛있는 음식, 신나는 음악과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로타의 시장으로서, 피에스타를 마리아나를 대표하는 행사로 발전시키고 싶은 욕심이 있고, 로타가 더 이상 비밀의 섬이 아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곳이 되길 바랍니다. 원정대 여러분도 꼭 다시 한 번 방문해 주세요!“서로 안부도 묻고 신앙도 나눈답니다.” 아이비ivy, 발레리valerie 로타섬 주민‘비스타 루따’는 로타에서 열리는 가장 큰 축제에요. 종교적인 의미에서 시작됐지만, 모든 로타 주민을 만날 수 있는 우리만의 축제이기도 합니다. 매년 우리는 이곳에 모여 서로 안부도 묻고, 종교적인 의식에도 참여하는데요. 여러분도 함께해 주세요!●Resort달콤한 나의 파라다이스로타 리조트 & 컨트리클럽Rota Resort & Country Club글 임지원시리도록 푸른 ‘로타 블루’의 바다를 왼쪽에, 여린 녹색의 잔디를 오른쪽에 끼고 잘 다듬어진 진입로로 들어서면서 벌써 이 공간이 마음에 쏙 들었다. 듬성듬성 야자수가 높은 정원에는 플루메리아와 히비스커스가 가득했다. 붉게 핀 꽃송이가 잘 어울리는 곳이다.탁 트인 로비에 내려서니 웃는 얼굴의 직원이 다가와 향기를 풀풀 풍기는 찬 물수건을 건네준다. 어느새 뜨거워진 손에 쥐어진 젖은 수건은 불타는 날, 물 한 모금보다도 더 달콤했다.로타 리조트 & 컨트리클럽은 로타섬에 하나뿐인 리조트 시설이다. 오션뷰Ocean View와 가든뷰Garden View로 구성된 57개의 넓은 객실은 모두 빌라 형식이다. 최소 2개의 침실로 가족여행에 최적인데다가 한적하고 평화로워 조용히 여유를 즐기기에도 좋다. TV와 금고, 냉장고부터 칫솔과 드라이기까지 각종 어메니티 또한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으며, 깔끔한 내부는 아늑한 느낌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오랜 친구의 집처럼 편안하게 손님을 맞이한다. 객실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래도 커다란 창이다. 잘 정돈된 거실을 가로질러 발코니로 향하는 창을 열면 별안간 남태평양이 와르르 쏟아져 들어온다. 아찔한 햇살에 정신마저 아득하다.게다가 리조트는 내부에 웬만한 편의시설은 다 갖추고 있어 하루쯤 리조트에 머물며 휴식을 취하기에도 좋다. 레스토랑은 2곳이지만 체감으로는 그 이상이다. 퍼시피카Pacifica는 로타 리조트의 메인 레스토랑으로 현지식을 비롯해 한식·일식·양식 등 다양한 메뉴를 제공한다. 어떤 메뉴를 골라야 할지 고민 된다면 ‘우리 집보다 낫다’는 호평을 받은 김치 한 조각과 함께 얼큰한 해물라면 한 그릇을 비워 보는 것도 좋겠다. 바로 우측에 위치한 티키티키TikiTiki에서는 석양을 바라보며 바비큐 파티를 즐길 수 있다. 인원수에 맞춰 미리 예약만 하면 애피타이저, 샐러드부터 각종 야채와 해산물, 스테이크에 디저트까지 바비큐 요리가 코스로 제공된다. 허기가 가신 후에도 먹음직스럽게 그을린 바비큐를 앞에 두고 포크를 내려놓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어쩌면 과식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로비 뒤편에 자리한 야외 수영장에는 선 베드와 파라솔이 준비되어 있으며 잘 관리되어 언제나 맑은 물이 찰랑인다. 18홀로 구성된 골프 코스 또한 리조트의 자랑거리다. 한국의 잔디와 같은 품종의 잔디를 심어 익숙한 환경에서 골프를 즐길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이외 로타섬 투어와 스노클링, 트롤링 등 해양 액티비티는 프런트 데스크에서 예약할 수 있다.로타 리조트는 과연 작고 아담한 파라다이스였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웃음이 번지는 아늑한 객실, 맛있는 요리, 친절한 직원은 로타의 기억을 더욱 빛나게 한다.Rota Resort & Country Club +1 670 532 1155 www.rotaresortgolf.com 야외수영장 09:00~19:00 Nature Spa 12:00~22:00 매점에서 로타 핫소스와 한국 컵라면, 물, 음료수, 맥주, 간단한 스낵 등을 판매한다.야자수나무와 선베드가 있는 로타 리조트 수영장은 바닥도 파란색이다로타 리조트는 빌라 형식이라 객실이 넓고 키친 시설도 있다객실은 파스텔톤으로 깔끔하고 아늑하다​프런트의 포토존. 얼굴만 쏙 내밀면 로타의 원주민이 된다에디터 천소현·손고은 기자 취재 트래비 마리아나 원정대 취재협조 마리아나 관광청 www.mymarianas.co.kr
  • 슈퍼 엘니뇨의 장난…영상의 북극점

    슈퍼 엘니뇨의 장난…영상의 북극점

    북극에서 가장 추운 장소는 아니지만, 한겨울의 북극점은 평균 영하 수십 도 이하의 강추위가 지배하는 혹한의 장소이다. 그런데 지난 2015년 12월 마지막 주에는 이변이 발생했다. 12월 30일에는 북극점 인근 지역의 무인 관측기기에서 영하 1도에서 영상 2도 사이의 포근한 기온이 관측되었다. 예를 들어 세계 기상 기구가 87.45°N 위치에 설치한 관측 기기에는 0.7 °C의 온도가 기록되었다. 기상학자들에 의하면 이는 북극점 부근의 평균 기온인 영하 26도보다 최소 20도 이상 높은 고온이다. 한겨울에 서울이 봄이나 초여름 날씨를 보이는 것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다. 과학자들은 이와 같은 이상 고온 현상이 강력한 엘니뇨와 연관이 있다고 보고 있다. 엘니뇨에 의해 공기의 흐름이 바뀌면서 따뜻한 공기가 평소보다 훨씬 높은 위도까지 올라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린란드 인근의 배핀 섬에서는 12월에 눈 대신 비가 내리는 기상 이변이 발생하기도 했다. 물론 지구 온난화 현상도 이런 이상 고온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될 수 있다. 산업 혁명 이후 지구의 평균 기온은 거의 섭씨 1도가량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지구의 모든 지역이 비슷하게 온도가 올라간 것이 아니라 특히 북극권의 온도 상승이 더 빨라서 이 지역에서 기상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북극해의 면적은 2015년 9월 11일 역대 4번째로 작은 면적인 441만㎢ 기록해 1981년에서 2010년 사이 평균면적보다 181만㎢ 이 더 작아졌다. 물론 기온이 상승하면서 북극해의 얼음 면적이 계속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런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2015년 말 역사적인 파리 기후 조약이 체결되었지만, 당장에 온실가스를 급격하게 줄일 수는 없어서 한동안 이와 같은 기상이변은 계속될 것으로 우려된다. 고든 정 통신원 jjy0501@naver.com
  • 슈퍼 엘니뇨의 장난…북극점의 고온 날씨

    슈퍼 엘니뇨의 장난…북극점의 고온 날씨

    북극에서 가장 추운 장소는 아니지만, 한겨울의 북극점은 평균 영하 수십 도 이하의 강추위가 지배하는 혹한의 장소이다. 그런데 지난 2015년 12월 마지막 주에는 이변이 발생했다. 12월 30일에는 북극점 인근 지역의 무인 관측기기에서 영하 1도에서 영상 2도 사이의 포근한 기온이 관측되었다. 예를 들어 세계 기상 기구가 87.45°N 위치에 설치한 관측 기기에는 0.7 °C의 온도가 기록되었다. 기상학자들에 의하면 이는 북극점 부근의 평균 기온인 영하 26도보다 최소 20도 이상 높은 고온이다. 한겨울에 서울이 봄이나 초여름 날씨를 보이는 것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다. 과학자들은 이와 같은 이상 고온 현상이 강력한 엘니뇨와 연관이 있다고 보고 있다. 엘니뇨에 의해 공기의 흐름이 바뀌면서 따뜻한 공기가 평소보다 훨씬 높은 위도까지 올라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린란드 인근의 배핀 섬에서는 12월에 눈 대신 비가 내리는 기상 이변이 발생하기도 했다. 물론 지구 온난화 현상도 이런 이상 고온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될 수 있다. 산업 혁명 이후 지구의 평균 기온은 거의 섭씨 1도가량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지구의 모든 지역이 비슷하게 온도가 올라간 것이 아니라 특히 북극권의 온도 상승이 더 빨라서 이 지역에서 기상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북극해의 면적은 2015년 9월 11일 역대 4번째로 작은 면적인 441만㎢ 기록해 1981년에서 2010년 사이 평균면적보다 181만㎢ 이 더 작아졌다. 물론 기온이 상승하면서 북극해의 얼음 면적이 계속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런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2015년 말 역사적인 파리 기후 조약이 체결되었지만, 당장에 온실가스를 급격하게 줄일 수는 없어서 한동안 이와 같은 기상이변은 계속될 것으로 우려된다. 고든 정 통신원 jjy0501@naver.com
  • “우리 마을에 산타 살고 있어” 북유럽 ‘원조’ 경쟁

    성탄을 맞은 전 세계가 ‘크리스마스앓이’를 하고 있다. 산타의 고향으로 알려진 북유럽에선 ‘원조’ 산타의 집을 가리자며 핀란드와 스웨덴, 노르웨이 등이 경쟁에 불을 댕겼다. 이상 고온으로 무산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대신해 38년 만의 ‘크리스마스 보름달’이 지구촌 밤하늘을 비출 것이란 반가운 소식도 들려 왔다. AP는 23일(현지시간) 자국에 산타클로스가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북유럽 국가들의 이야기를 비중 있게 다뤘다. 핀란드에선 어린이들이 북쪽 황무지 코르바툰투리에, 스웨덴에서는 작은 마을 모라에 각각 산타가 살고 있다고 믿는다. 또 노르웨이 어린이들은 수백년 전 태어난 산타가 오슬로 협만 드뢰백의 바위 밑에 산다고 배우며, 덴마크에서는 자치령인 그린란드에 있다고 배운다. 산타클로스의 고향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셈이다.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한 곳은 핀란드이다. 1920년대 한 라디오 방송 진행자가 “‘귀의 산’인 코르바툰투리에 산타가 살고 있어 모든 아이의 소원을 들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이 전 세계로 전파를 타면서 믿음이 깊어졌다. 공영방송인 YLE는 1960년부터 매년 붉은 망토를 두른 산타클로스가 순록이 끄는 썰매를 타고 자신의 통나무집을 나서 전 세계로 향하는 영상을 방영해 왔다. 테마공원인 ‘산타 마을’이 자리한 유럽 최북단인 핀란드 로바니에미에는 매년 전 세계 어린이들이 보낸 50만장 가까운 편지가 도착한다. 이 마을에선 산타클로스가 비서들의 도움을 받아 산타 도장이 찍힌 답장을 어린이들에게 보낸다. 해마다 30만명 가까운 관광객이 몰리면서 관광 수입만 매년 2억 1000만 유로(약 2690억원)에 달한다. 스웨덴 중부의 모라에는 ‘산타 월드’가 자리한다. 올해에만 산타를 찾는 40만장의 편지가 답지했고, 5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산타의 집, 오로라 호수, 난쟁이가 사는 집 등 볼거리도 풍성하다. 이 밖에 노르웨이 오슬로에선 매년 세계에서 가장 성대한 크리스마스 전야제와 박람회가 열린다. 덴마크에서는 코펜하겐 시청 앞 광장에 세계에서 가장 큰 크리스마스트리가 점등되고, ‘크리스마스 올드 타운’이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이같이 충만한 성탄 분위기와 달리 이슬람국가인 브루나이와 타지키스탄, 소말리아는 잇따라 종교적 이유로 크리스마스 금지령을 내렸다. 동남아 산유국인 브루나이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기독교 명절인 크리스마스를 기념할 경우 최대 5년의 징역형에 처하겠다고 밝혔다. 소말리아에선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의 표적이 될 수 있다며 관련 행사를 금지했다. 미국 동부에선 제트기류가 불러온 ‘이상 고온’이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망쳤다. 북동부 도시의 수은주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워싱턴DC·리치먼드 영상 22.2도, 뉴욕·필라델피아 20.5도로 초여름 날씨 속에서 크리스마스를 맞게 됐다. 성탄 트리 매출은 급감한 반면 아이스크림 매출은 특수를 빚을 것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반면 UPI는 ‘빅 문’, ‘러키 문’ 등으로 불리는 크리스마스 보름달이 이상 고온으로 망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보상해 줄 것이라 내다봤다. 크리스마스 보름달은 1977년 이후 38년 만으로, 미국 동부 시간으로 25일 오전 6시(한국시간 25일 오후 8시) 절정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6년 전 칠성파와의 ‘그날’… 쇠락의 단초가 될 줄 아무도 몰랐다

    6년 전 칠성파와의 ‘그날’… 쇠락의 단초가 될 줄 아무도 몰랐다

    “형님, 칠성파 아이들이 단체로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뭔 일이 터질 것 같은데요. 우리도 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2009년 11월 11일 오후 4시. ‘범서방파’ 두목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김태촌(당시 61세)이 출소하기 6일 전이었다. 범서방파 실세인 나모(당시 43세)씨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자신의 사무실에서 부두목급인 정모씨로부터 이런 보고를 받았다. 나씨는 ‘김태촌의 후계자’로 불리며 2000년 이후 고문 직책을 맡아 범서방파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온 인물이었다. “빨리 애들 대기시켜.” 나씨의 지시가 떨어지자 정씨를 비롯한 부두목급 조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긴급 소집된 200여명의 조직원이 강남구의 한 식당 앞에 모여들었다. 그들이 타고 온 검은색 차량에는 30㎝ 길이의 회칼과 알루미늄 야구방망이 등 무기들이 실려 있었다. 같은 시간 강남 인근에서는 칠성파 조직원 80여명이 모여 범서방파를 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국내 3대 폭력조직 중 하나인 범서방파와 부산 최대 폭력조직인 칠성파 간에 전쟁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그 대결로 범서방파가 쇠락의 길을 걷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양측의 대치는 다음날 저녁까지 이어졌지만 ‘전쟁’ 직전 경찰이 출동하면서 가까스로 충돌을 피했다. 그러나 양측의 상처는 컸다. 경찰은 이때부터 범서방파를 집중적으로 쫓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에는 부두목급 김모(48)씨를 비롯한 간부급 조직원 8명을 구속하고 5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사건이 일어난 지 6년 만인 지난 10월 나씨가 범죄단체 구성 등 혐의로 검거되면서 범서방파는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김태촌의 양아들로 알려진 김모(42)씨도 나씨보다 앞선 지난 4월 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된 터였다. 조직의 자금줄인 해외 원정도박을 운영·알선하던 조직원들이 줄줄이 검찰에 붙잡히면서 범서방파가 사실상 와해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범서방파 -칠성파 충돌 피한 후 경찰 타깃… 조직원 줄줄이 잡혀 범서방파의 전신은 전남 광산군(현 광주광역시 광산구) 서방면에서 이름을 딴 서방파다. 또 다른 폭력조직인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65)과 쌍벽을 이루며 80년대 주먹계를 평정했던 김태촌은 1975년 서방파의 행동대장을 시작으로 폭력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후 1977년 ‘번개’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박종석(당시 34세)을 두목으로 하고 자신은 부두목을 맡으며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 세력을 확장했다. 1989년 초여름 서방파의 행동대장 격인 정모씨가 회칼로 난자당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김태촌은 정씨의 장례식에 조직원 150여명을 집결시켜 서방파의 위세를 과시했다. 이어 경기 파주시에서 300여명의 조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축복기도 대성회’라는 종교 행사를 가장한 옥외 집회를 열었다. 사실상 범서방파의 결성식이었다. 조직을 정비한 김태촌은 본격적으로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서 세를 넓혀 가기 시작했다. 주로 서울 강남과 경기 일산 일대를 중심으로 유흥업소 운영 및 도박장 개장 등을 통해 자금을 마련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범서방파 김태촌·양은이파 조양은 ‘쌍벽’… 80년대 주먹계 평정 범서방파는 조직 기여도와 나이 등을 고려해 서열을 정했다. 검찰은 이들의 서열을 ‘행동대장급→부두목급→수괴급→고문급’의 순으로 매긴다. 조직 내 예절과 행동강령은 엄격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범서방파 조직원들은 선배를 보면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해야 한다. 선배와 대화할 때는 항상 ‘형님’에다 말끝에 ‘요’자를 붙이도록 했다. 선배 앞에서는 절대 담배를 물어서도 안 되고 언제 어디서건 전화를 바로 받아야 한다. 식사를 할 때도 나이 순서대로 일어서서 90도로 먼저 선배에게 인사한 뒤 숟가락을 들어야 한다. 다른 조직폭력배들 앞에서 기죽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선배들이 인사를 시켜 주기 전에는 모른 척해야 하고 싸움이 붙었을 때 절대로 물러서면 안 된다. 신규 조직원들은 합숙 생활까지 하며 이런 예절 교육을 받았다. 단합을 강조하기 때문에 조직 ‘식구’들의 경조사에는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 조폭들은 조직원들의 결혼식이나 장례식에 대거 참석해 세를 과시하는 경우가 많다. 경조사 당사자 밑의 후배들은 전원 동원돼 손님을 영접한다. 평소 ‘줄빠따’ 등으로 조직원들의 ‘군기’를 잡아 배신과 이탈을 방지했다. ●행동강령 엄격·합숙 생활하며 예절 교육… 선배엔 90도 인사 범서방파를 말할 때 라이벌 양은이파를 빼놓을 수 없다.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과 김태촌의 숙명적인 만남은 197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의 조폭계는 토착 세력인 ‘신상사파’가 장악하고 있었다. 신상사파라는 이름은 두목인 신상현(83)이 육군 헌병대 상사 출신인 데서 비롯됐다. 그러나 서울을 중심으로 경제성장의 과실이 집중되면서 호남 지역의 ‘젊은 피’들이 대거 상경해 신상사파와 맞붙게 됐다. 1975년 1월 당시 범호남파 계열 ‘오종철파’의 행동대장이던 조양은은 조직원 3명과 함께 신상사파 신년회가 열린 명동 사보이호텔 커피숍을 습격했다. 이 사건으로 신상사파는 서울 중심가를 범호남파에 내줬고, 조양은은 범호남파 실세로 부상했다. 이듬해 3월 번개파 행동대장이었던 김태촌은 무교동 엠파이어호텔 후문 주차장에서 조양은의 보스 오종철(당시 27세)을 기습해 부상을 입혔다. 조양은과 김태촌은 이때부터 숙명의 라이벌이 됐다. 결국 1980년대 서울 지역은 양은이파와 범서방파, 뒤늦게 세력을 구축한 이동재(65)의 ‘OB파’까지 ‘3대 호남 조폭’이 분할 점령했다. 그러나 김태촌의 계속된 수감 생활로 범서방파의 세력은 점차 약화된다. 게다가 1990년 노태우 대통령의 ‘범죄와의 전쟁’ 선포 이후 쇠락의 길을 걸었다. ●2000년대 기업형 조폭 변신… 2013년 김태촌 사망 후 흔들 범서방파는 2009년 김태촌 출소에 맞춰 ‘함평식구파’를 흡수하며 조직 재정비에 나섰다. 유흥업소와 대부업체 운영, 건물 유치권 분쟁 등에 뛰어들어 조직 자금을 마련하며 재기를 노렸다. 2000년대는 조폭들의 범죄 수법이 금융·기업사냥 영역으로 확장된 시기이기도 하다. 범서방파도 기업형 조폭으로 변신을 시도했다. 김태촌의 양아들 김씨는 거액의 사채를 끌어와 무자본 기업 인수·합병(M&A) 수법으로 위조지폐 감별기 제조사를 사들인 뒤 회사 돈 200억원을 빼돌리는 지능적 범죄를 저질렀다. 해외로 진출해 마카오, 베트남, 필리핀 등지에서 도박장을 운영하고 손님들을 알선하며 거액의 돈을 챙기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는 듯했다. 그러나 2013년 1월 김태촌이 사망하면서 범서방파는 또 한번 흔들리기 시작했다. 김태촌의 양아들 김씨와 후계자 나씨마저 올해 연이어 구속 기소됐다. 최근에는 해외 원정도박 일당도 대거 구속되면서 범서방파는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검찰 “평소 합법적 사업… 언제든 신종 불법 뛰어들 가능성” 그러나 조직의 ‘뿌리’까지 뽑히는 건 쉽지 않을 것으로 검찰 등은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최근에는 조폭들이 평소에는 합법적인 자기 사업을 하다가 행사나 특정 시기에 집결했다가 다시 사업으로 돌아가는 등 ‘꼬투리’를 최대한 잡히지 않는 식으로 세력을 유지한다”며 “당분간 조직이 약화될 순 있어도 언제든 신종 불법 사업에 뛰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귀띔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사이언스 톡톡] “일개미 세상에서도 일은 하는 놈만 해요”

    [사이언스 톡톡] “일개미 세상에서도 일은 하는 놈만 해요”

    아, 진짜 열 받네. 그동안 나만 게으르고 나쁜 곤충으로 만들더니 자기들은 나보다 훨씬 더 심하잖아. 이런 사기꾼들 같으니라고.너무 화를 내다가 내 소개가 늦었군. 나, 베짱이야. 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에 나오는 바로 그 베짱이. 여름철에 열심히 일하는 개미들을 비웃으며 나무 위에서 노래만 부르다가 겨울이 오자 먹을 것이 없어 개미한테 음식을 구걸한다는 얘기는 어릴 때부터 들어서 잘 알고 있겠지. 이솝 아저씨가 쓴 그 우화 때문에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는 게으르고 개미는 부지런하다는 오해를 갖게 된 것은 정말 억울해. 우리는 봄부터 초여름까지 애벌레로 지내다가 9~10월에 성충의 모습으로 나타나거든. 그리고 주로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이기 때문에 낮에 일하는 개미들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거든. 다행히 최근 미국 과학자들이 그런 오해를 풀어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지 뭐야. 미국 애리조나대 대니얼 샤르본 박사와 안나 던하우스 박사는 5개 개미 집단 250마리의 행동을 하루 6회씩 2주 동안 관찰한 결과를 ‘행동 생태학 및 사회생물학’ 최신호에 발표했어. 관찰 결과는 그동안 오해를 뒤집는 반전이야.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일개미는 일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지. 관찰한 일개미 중 2.6%만 열심히 일하고 71.9%는 쉬엄쉬엄 일을 하는 등 농땡이를 치고 있었으며, 25.1%는 아예 일을 안 하고 있다지 뭐야. 나도 개미들이 우화에서처럼 부지런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거든. 그런데 왜 그렇게 일을 안 하는지는 물어봐도 대답을 해주지 않으니 나도 잘 모르겠어. 그동안 과학자들은 일개미가 이름처럼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나 봐. 그 때문에 과학자들은 일개미가 교대 작업을 하면서 다음 차례가 올 때까지 쉬는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지. 독일 레겐스부르크대 토머 크자츠케 박사는 ‘게으른 개미들의 몸집이 열심히 일하는 개미들보다 더 큰 것을 보면 다른 집단과 전쟁에 대비하는 개미들일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지. 이번 애리조나대 연구팀은 게으른 개미들은 너무 어리거나 늙어서 일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더군. 이번 연구가 나에 대한 오해를 얼마나 풀어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사이언스 톡톡] “일개미 세상에서도 일은 하는 놈만 해요”

    [사이언스 톡톡] “일개미 세상에서도 일은 하는 놈만 해요”

    아, 진짜 열 받네. 그동안 나만 게으르고 나쁜 곤충으로 만들더니 자기들은 나보다 훨씬 더 심하잖아. 이런 사기꾼들 같으니라고.너무 화를 내다가 내 소개가 늦었군. 나, 베짱이야. 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에 나오는 바로 그 베짱이. 여름철에 열심히 일하는 개미들을 비웃으며 나무 위에서 노래만 부르다가 겨울이 오자 먹을 것이 없어 개미한테 음식을 구걸한다는 얘기는 어릴 때부터 들어서 잘 알고 있겠지. 이솝 아저씨가 쓴 그 우화 때문에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는 게으르고 개미는 부지런하다는 오해를 갖게 된 것은 정말 억울해. 우리는 봄부터 초여름까지 애벌레로 지내다가 9~10월에 성충의 모습으로 나타나거든. 그리고 주로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이기 때문에 낮에 일하는 개미들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거든. 다행히 최근 미국 과학자들이 그런 오해를 풀어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지 뭐야. 미국 애리조나대 대니얼 샤르본 박사와 안나 던하우스 박사는 5개 개미 집단 250마리의 행동을 하루 6회씩 2주 동안 관찰한 결과를 ‘행동 생태학 및 사회생물학’ 최신호에 발표했어. 관찰 결과는 그동안 오해를 뒤집는 반전이야.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일개미는 일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지. 관찰한 일개미 중 2.6%만 열심히 일하고 71.9%는 쉬엄쉬엄 일을 하는 등 농땡이를 치고 있었으며, 25.1%는 아예 일을 안 하고 있다지 뭐야. 나도 개미들이 우화에서처럼 부지런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거든. 그런데 왜 그렇게 일을 안 하는지는 물어봐도 대답을 해주지 않으니 나도 잘 모르겠어. 그동안 과학자들은 일개미가 이름처럼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나 봐. 그 때문에 과학자들은 일개미가 교대 작업을 하면서 다음 차례가 올 때까지 쉬는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지. 독일 레겐스부르크대 토머 크자츠케 박사는 ‘게으른 개미들의 몸집이 열심히 일하는 개미들보다 더 큰 것을 보면 다른 집단과 전쟁에 대비하는 개미들일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지. 이번 애리조나대 연구팀은 게으른 개미들은 너무 어리거나 늙어서 일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더군. 이번 연구가 나에 대한 오해를 얼마나 풀어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65년째 ‘고향없는 추석’… 쌓이는 이산 세월에 그리움만 켜켜이

    65년째 ‘고향없는 추석’… 쌓이는 이산 세월에 그리움만 켜켜이

    북녘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의 명절은 늘 반가움보다 그리움이 먼저다. 북한 원산 출신인 원로 소설가 이호철(83)씨도 지난 65년간 고향 없는 추석 명절을 지내왔다. 10월 20~26일로 예정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앞두고 이씨가 가족과 고향을 향한 애끓는 심경을 글로 썼다. 예술원 회원인 이씨는 2000년 8월 첫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여동생을 만났다. 나는 1950년 12월, 북한의 원산에서 18세 어린 나이로 가족 곁을 떠나 혼자 부산에 닿았다. 그렇게 부두 노동, 제면소 직공, 미군기관 경비원 등으로 전전하다가 1955년부터 작단에 데뷔, 소설가로 60년을 살아오면서 83세가 되기까지 그동안 어느 한순간도 고향 쪽을 잊은 일은 없었다. 하여 2000년 첫 이산가족 상봉 때, 누이동생 생일이 동짓달 초아흐레이고 남동생 생일이 3월 초엿새임을 말하자, 50년 만에 만났던 누이동생도 엄청 놀라던 것이었다. 이렇게 나는 50년 넘어 줄곧 고향 쪽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18세에 홀로 北가족 떠나 부산서 생활 특히 추석날이면 더 싱숭생숭하여 하숙방에 혼자 벌렁 누워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두 누나들과 남동생, 여동생을 한 분 한 분 차곡차곡 그리며 혼자 눈물 섞어 망향에 잠기곤 했었다. 그렇게 더러는 이미 10년 전에 고인이 된 후배 소설가 한남철이 일부러 추석날이면 어김없이 나를 위로한답시고 찾아와, 같이 막걸리를 마시기도 했었다. 적선동, 사직동, 청운동 하숙 시절에 그랬었다. 하지만 혼자서 곰곰 생각해 보면, 조금 묘해지기도 하였다. 실은 내가 북에서 어렸을 때는 추석보다는, 봄날 한식날을 더 귀히 여겨 그네 놀이나 씨름판이 벌어지기도 하였었는데, 이 남쪽에서는 한식보다는 추석날을 더 명일로 치지를 않는가. 하지만 실제로 나 같은 사람으로서 망향에 잠기기에는 양명한 봄날인 한식날보다, 낙엽도 우수수 떨어지는 추석 때가 한결 더 어울려 보이기는 하였었다. 더구나 내 고향 원산은, 흔히 우리나라에서 살기 좋은 고장으로 으뜸으로 꼽는다. 그리고 두 번째는 전주, 세 번째는 평안도 박천…. 이것이 언제부터 내려오는 속설인지는 모르지만, 이 밖에도 주택가로 가장 좋은 곳으로는 강원도 강릉과 황해도 해주, 그리고 함경도의 함흥을 친다고 한다. 실제로 원산은 동해 바다를 끼고 있고, 바로 남쪽으로는 안변 평야가 자리해 있어 질 좋은 쌀과 사과 생산지로도 알려져 있다. 가까이 약수터가 있는 석왕사와 금강산, 총석정 등 주위에 명승지가 많고, 태백산맥의 시작인 황룡산도 둥그렇게 솟아 있고, 명사십리와 송도원 해수욕장도 일찍부터 널리 알려져 있다. ●살기 좋고 질 좋은 쌀·사과로 유명한 내고향 원산에서 동해안 남쪽으로 고성까지가 300리, 다시 그 고성에서 강릉까지가 300리, 그 600리 해안이 기가 막힌 명승지였음은 옛날부터 소문이 나 있다. 지금은 그 고성도 남북 분단의 휴전선 안으로 들어 있어 황량한 풀밭으로 변해져 있을 뿐이지만. 그리고 다시 북쪽으로 두만강 끝머리까지의 동해안도 절경으로 소문이 나 있는데, 그 해산물들은 일단 원산으로 모아져서 서울과 평양으로 기차 편으로 운송이 되어, 품팔이 일꾼들도 원산의 인심이 후하다며 원산을 유독 좋아들 하였었다. 그 무렵에는 주문진이나 강릉, 삼척 등의 해산물도 원산과 양양까지 통하던 동해선 기차를 통해 일단은 원산에 모였었다. ●1949년 가봤던 연천… 지금도 그대로 1949년 초여름이던가, 나는 북에서 고 2 때 38선 근처 연천의 한탄강 유역 농촌을 열흘 정도 돌면서 벌인 행사에 동원되어 시 낭독도 하고 노래도 불렀었는데 그 어느 날 저녁은 밤중에 전곡의 한탄강 경계선까지 콩밭 속을 살금살금 다가갔다가 강 건너 남쪽의 국방군이 쏘아대는 ‘딱 궁’ 하는 총소리도 들어 보고, 이튿날 낮에는 전곡 읍내의 인민군 병사들이 우글거리는 삼엄한 분위기도 엿보았었다. 이번에 그 근처를 모처럼 돌아보았더니 그 근처 농촌 모습은 그 옛날과 그다지 달라진 것은 없어 보였고, 연천 읍내의 사진관 앞에서 동료 학생 하나와 사진을 찍었던 자리 근처도 그대로였음을 확인했지만 그때 같이 사진을 찍었던 그 동료 학생은 그 뒤 월남하지 못했음을 아쉬움 섞어 쓰디쓰게 되씹었다. 서울에서 원산까지의 거리는 220㎞, 우리네 이수(里數)로는 550리이다. 그러니까 서울서 전주까지의 거리, 서울서 영동까지의 거리다. 바로 요만한 거리임에도 지난 65년 동안 한 번 가 볼 엄두나마 내기는커녕, 편지 한 장 주고받을 수 없으니 사람살이 한평생에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 65년째 ‘고향없는 추석’…쌓이는 이산 세월에 그리움만 켜켜이

    65년째 ‘고향없는 추석’…쌓이는 이산 세월에 그리움만 켜켜이

    북녘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의 명절은 늘 반가움보다 그리움이 먼저다. 북한 원산 출신인 원로 소설가 이호철(83)씨도 지난 65년간 고향 없는 추석 명절을 지내왔다. 10월 20~26일로 예정된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앞두고 이씨가 가족과 고향을 향한 애끓는 심경을 글로 썼다. 예술원 회원인 이씨는 2000년 8월 첫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여동생을 만났다. 나는 1950년 12월, 북한의 원산에서 18세 어린 나이로 가족 곁을 떠나 혼자 부산에 닿았다. 그렇게 부두 노동, 제면소 직공, 미군기관 경비원 등으로 전전하다가 1955년부터 작단에 데뷔, 소설가로 60년을 살아오면서 83세가 되기까지 그동안 어느 한순간도 고향 쪽을 잊은 일은 없었다. 하여 2000년 첫 이산가족 상봉 때, 누이동생 생일이 동짓달 초아흐레이고 남동생 생일이 3월 초엿새임을 말하자, 50년 만에 만났던 누이동생도 엄청 놀라던 것이었다. 이렇게 나는 50년 넘어 줄곧 고향 쪽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18세에 홀로 北가족 떠나 부산서 생활 특히 추석날이면 더 싱숭생숭하여 하숙방에 혼자 벌렁 누워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두 누나들과 남동생, 여동생을 한 분 한 분 차곡차곡 그리며 혼자 눈물 섞어 망향에 잠기곤 했었다. 그렇게 더러는 이미 10년 전에 고인이 된 후배 소설가 한남철이 일부러 추석날이면 어김없이 나를 위로한답시고 찾아와, 같이 막걸리를 마시기도 했었다. 적선동, 사직동, 청운동 하숙 시절에 그랬었다. 하지만 혼자서 곰곰 생각해 보면, 조금 묘해지기도 하였다. 실은 내가 북에서 어렸을 때는 추석보다는, 봄날 한식날을 더 귀히 여겨 그네 놀이나 씨름판이 벌어지기도 하였었는데, 이 남쪽에서는 한식보다는 추석날을 더 명일로 치지를 않는가. 하지만 실제로 나 같은 사람으로서 망향에 잠기기에는 양명한 봄날인 한식날보다, 낙엽도 우수수 떨어지는 추석 때가 한결 더 어울려 보이기는 하였었다. 더구나 내 고향 원산은, 흔히 우리나라에서 살기 좋은 고장으로 으뜸으로 꼽는다. 그리고 두 번째는 전주, 세 번째는 평안도 박천…. 이것이 언제부터 내려오는 속설인지는 모르지만, 이 밖에도 주택가로 가장 좋은 곳으로는 강원도 강릉과 황해도 해주, 그리고 함경도의 함흥을 친다고 한다. 실제로 원산은 동해 바다를 끼고 있고, 바로 남쪽으로는 안변 평야가 자리해 있어 질 좋은 쌀과 사과 생산지로도 알려져 있다. 가까이 약수터가 있는 석왕사와 금강산, 총석정 등 주위에 명승지가 많고, 태백산맥의 시작인 황룡산도 둥그렇게 솟아 있고, 명사십리와 송도원 해수욕장도 일찍부터 널리 알려져 있다. ●살기 좋고 질 좋은 쌀·사과로 유명한 내고향 원산에서 동해안 남쪽으로 고성까지가 300리, 다시 그 고성에서 강릉까지가 300리, 그 600리 해안이 기가 막힌 명승지였음은 옛날부터 소문이 나 있다. 지금은 그 고성도 남북 분단의 휴전선 안으로 들어 있어 황량한 풀밭으로 변해져 있을 뿐이지만. 그리고 다시 북쪽으로 두만강 끝머리까지의 동해안도 절경으로 소문이 나 있는데, 그 해산물들은 일단 원산으로 모아져서 서울과 평양으로 기차 편으로 운송이 되어, 품팔이 일꾼들도 원산의 인심이 후하다며 원산을 유독 좋아들 하였었다. 그 무렵에는 주문진이나 강릉, 삼척 등의 해산물도 원산과 양양까지 통하던 동해선 기차를 통해 일단은 원산에 모였었다. ●1949년 가봤던 연천… 지금도 그대로 1949년 초여름이던가, 나는 북에서 고 2 때 38선 근처 연천의 한탄강 유역 농촌을 열흘 정도 돌면서 벌인 행사에 동원되어 시 낭독도 하고 노래도 불렀었는데 그 어느 날 저녁은 밤중에 전곡의 한탄강 경계선까지 콩밭 속을 살금살금 다가갔다가 강 건너 남쪽의 국방군이 쏘아대는 ‘딱 궁’ 하는 총소리도 들어 보고, 이튿날 낮에는 전곡 읍내의 인민군 병사들이 우글거리는 삼엄한 분위기도 엿보았었다. 이번에 그 근처를 모처럼 돌아보았더니 그 근처 농촌 모습은 그 옛날과 그다지 달라진 것은 없어 보였고, 연천 읍내의 사진관 앞에서 동료 학생 하나와 사진을 찍었던 자리 근처도 그대로였음을 확인했지만 그때 같이 사진을 찍었던 그 동료 학생은 그 뒤 월남하지 못했음을 아쉬움 섞어 쓰디쓰게 되씹었다. 서울에서 원산까지의 거리는 220㎞, 우리네 이수(里數)로는 550리이다. 그러니까 서울서 전주까지의 거리, 서울서 영동까지의 거리다. 바로 요만한 거리임에도 지난 65년 동안 한 번 가 볼 엄두나마 내기는커녕, 편지 한 장 주고받을 수 없으니 사람살이 한평생에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 “해수면 100 여년뒤 1m 상승…주요도시 잠긴다” NASA 경고

    “해수면 100 여년뒤 1m 상승…주요도시 잠긴다” NASA 경고

    해수면 상승으로 전 세계에 닥칠 재앙적 상황이 기존 최악의 시나리오 또는 그 이상이 될 것으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전망했다. NASA는 이르면 100년, 늦어도 200년 안에 해수면이 1m 이상 높아져 도쿄나 싱가포르 등 세계 주요 도시들이 물에 잠겨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존의 믿을만한 최신 데이터는 2013년 유엔 기후변화 정부 간 위원회(IPCC) 보고서다. IPCC는 당시 금세기 말까지 해수면이 1~3피트(30.5~91.5cm)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온실가스 방출량과 기후변화 등 여러 요인에 따라 연간 0.35~1cm 가량씩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NASA가 최신 데이터들에 근거해 미국 대학 주요 전문가 등과 공동 분석해 지난주 발표한 전망은 이보다 더 암울하다고 CBS를 비롯한 미국 언론 매체들이 29일 보도했다. 20세기 100년 동안 지구 해수면 상승폭은 약 20.3cm, 연평균 2.03mm였다. NASA가 1992년 이래 23년 동안 위성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세계 해수면이 평균 7.38cm 높아졌다. 연평균 상승폭이 3.21mm로 훨씬 높아진 것이다. 더욱이 상승 속도가 길수록 높아지고 있다. NASA는 IPCC 전망치 중에서도 최악의 것(91.5cm 상승)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그보다 더 나쁠 수도 있다고 상황을 평가했다. IPCC의 기존 전망은 기온 상승으로 빙상 표면이 녹는 것만을 계산했다. NASA의 이번 연구는 빙상 테두리가 갈라져 붕괴하고 융해되는 점까지 충분히 고려했다는 점이 우선 다르다. 해수면 높이 상승의 원인은 크게 해양 수온 상승, 북극해 그린란드와 남극 얼음층 해빙, 기타 산악지대와 알래스카 빙하 해빙 3가지다. 각각 미치는 영향은 대략 3분의 1씩이다. 연간 소실되는 극지 빙상은 수백기가(giga)톤이나 되며 이로 인해 해수면이 매년 1mm 가량 높아진다. 기가톤은 10억톤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단순히 얼음대륙의 표면만 녹는 게 아니라 끝부분이 기둥처럼 갈라지며 무너져 내리면서 바다를 떠돌며 녹는게 더 문제다. 특히 북극지역에 인접한 그린란드 얼음층이 매우 빨리 녹고 있어 심각하다. 언제가 될지, 실제 이뤄질지 모르지만 그린란드 빙상이 다 녹으면 해수면이 60m나 높아진다. 올해 초여름 그린란드의 거대 빙상 제이콥스헤븐이 갈라져 바다로 떠내려가며 녹고 있다. 제이콥슨헤븐 빙상만 완전히 녹아도 세계 해수면이 0.5m나 높아진다. NASA의 이번 발표 자료엔 그린란드 등의 빙상 소실과 해수면 상승을 인공위성 등으로 정밀 촬영하고 분석한 결과가 포함돼 있다. 연합
  • ‘북한도발·메르스·가뭄’ 국운 예언 적중 화제, 승원철학원 정동근 원장

    ‘북한도발·메르스·가뭄’ 국운 예언 적중 화제, 승원철학원 정동근 원장

    일촉즉발의 한반도가 남북의 ‘무박 4일’동안의 마라톤 협상 끝에 큰 위기를 넘긴 가운데, 올 초 국운발표에서 북한의 도발을 예견한 한 젊은 역리학자가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에도 세월호 사건을 예견해 관심을 끈 바 있는 승원철학원 정동근 원장(사진)은 올 2월에 개최된 ‘2015 을미년 국운발표 콘서트’에서 “북한이 표면적으로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이면에 도발을 할 준비를 하고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정동근 원장은 “당초 북한 도발 시기를 가을쯤으로 예상했는데, 그보다는 보름가량 빨라졌다”며 “북한도발 위기는 음력 10월까지는 지속될 가능성이 있으니, 예의주시해야 한다. 다만, 전쟁으로 가진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남북 정세뿐 아니라 정치부문에서도 “협조와 공존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내부적으로 반발을 한다. 지난해보다 대통령의 주변인을 인해 곤혹을 치를 수 있다”고 예견한 바 있다. 실제로 여당 내 유승민 사건과 박근령 부부의 친일·종북 발언 등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정원장은 또 천재지변으로 ‘국내 지진과 가뭄을 조심하라’고 예언했다. 올해는 봄 가뭄과 여름 마른 장마로 인해 강원도를 비롯한 충남 이북지방에는 댐 저수율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고 비상급수 지역이 확대되는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제부문에서는 ‘대기업도 비상이 걸릴 것이며, 각 가구당 부채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가구당 부채는 해마다 늘어 6천만원 수준까지 이르렀다. 소득도 늘어났지만, 빚을 갚느라 쓸 돈이 없어지고 있다. 지난해 발생한 세월호 사건과 관련, “세월호 안에 아직 시신이 남아 있다. 빨리 인양해서 가족의 품으로 보내야 할 것으로 본다. 인양 시기를 당겨야 국가의 재난이 잠잠해질 것으로 생각된다.”고 조언했다. 이 발언도 지난 8월 19일부터 세월호 인양을 위한 첫 수중조사가 시작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 원장은 “을미년은 백호대살을 품고 있어 우울하다. 진전없고, 시끄러운 상충의 해가 될 것이다. 을미년의 미토(未土)는 더운 흙이라 건강이 우려되는 해이기도 합니다”라고 예언해, 늦 봄과 초여름 대한민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메르스’에 대해 경고하기도 했다. 서울 강남에서 10여 년째 철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정 원장은 역학에 기초한 사주분석을 토대로 답답한 삶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인생의 진로와 답변을 주고 있다. 최근에는 종합일간지 오늘의 운세에 띠별 운세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문의 02)501-3837. 뉴스팀 seoulen@seoul.co.kr
  • 해외여행 | 중국 구이린Guilin-풍경 그 너머의 고장

    해외여행 | 중국 구이린Guilin-풍경 그 너머의 고장

    억만년의 시간이 빚어낸 경치를 시인묵객들은 천하제일이라 예찬했고, 구이린계림, 桂林을 보지 않고 산수를 논하지 말라고 누군가는 으스댔다. 그러나 마주한 그곳에서 시선을 파고든 건 산과 물의 품에 안긴 사람들이었다. 장엄한 풍광도 삶의 터전일 뿐인 그들은 전통을 잇고 현재를 수긍하며, 리장리강, 漓江처럼 담담히 흐르고 있었다. 순한 웃음을 주던 그 얼굴들이 쉽게 잊혀질 것 같지 않다. 구이린桂林을 여행하기 전 기원전 214년, 진나라 시황제가 처음 도시를 세운 구이린은 광시좡족자치구 북동부에 있다. 수려한 경관은 익히 유명하고 특히, 몇년 전부터는 수십 개의 풍경구를 새로 개발하고 교통까지 편리해져 국제관광도시로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 주고 있다. 구이린은 아열대 기후라 기온이 높고 일 년 내 비가 자주 온다. 크게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곳이라지만 실제 체감 온도는 그렇지 않다. 습기 탓에 훨씬 덥게 느껴지고 비가 내린 후에는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다. 5월 말의 기온이 34℃ 정도였는데 체감온도는 40℃처럼 느껴졌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이기 때문에 가볍게 보지 말고 여행시에는 계절에 맞는 준비물을 잘 챙기도록 한다. 흔히 계수나무 꽃이 피는 가을을 여행의 최적기로 꼽는다. 룽지티톈의 경우 10월 둘째 주쯤 추수를 하기 때문에 황금 논을 보기 위해서는 중국 내 인파가 몰리는 첫째 주는 피하는 것이 좋다. ●구이린桂林 계수나무의 숲 잦은 비에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이 일 년에 고작 60일이라는 구이린. 출국 전부터 중국 기상청 예보에 온통 신경이 쏠렸건만. 6월을 앞둔 구이린의 하늘은 머리 위로 폭염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동하는 내내 차창에 코를 박았다. 종일 집안으로 향기가 스민다는 꽃이 피기에는 이른 시기였지만 계수나무는 초여름 무성한 녹음을 뿜고 있었다. 건물 사이 기괴한 봉우리들이 시선을 끌었고 수많은 오토바이들이 그 사이를 무심히 내달렸다. 구이린은 몇년 사이 빠르게 변화해 왔다. 특히 광시廣西좡족자치구의 교통 요지로서, 잘 정비된 도로에 리장漓江, 샹장湘江의 물길은 광저우와 홍콩, 마카오까지 이어진다. 숲을 이룰 만큼 계수나무가 많다는 뜻을 가진, 구이린에서 가장 오래된 수령 110년의 계수나무 부부수가 있는 곳은 징장왕청靖江王城이다. 징장은 구이린의 옛 지명으로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왕위에 오르면서 장손인 주수겸을 왕으로 임명해 구이린에 파견했다. 왕청은 징장왕의 저택으로 명나라 5년에 착공해 완성까지 20년이 걸렸다. 현재 광시사범대학 왕청캠퍼스로 사용 중인 징장왕청은 시내에서도 중심에 있었다. 견고한 성벽과 네 개의 성문은 당시 그대로지만 종묘, 정자, 누각 등 대부분의 건물들이 중일전쟁1937~1945년 때 파괴되어 1947년 재건한 것이다. 역사전시실로 꾸며진 청윈뎬承云殿에는 12대에 걸친 성의 역사를 모아 놓고 있으며 한 켠에서는 작은 공연도 펼쳐진다. 그 뒤 국학당으로 사용 중인 침궁 앞으로 학생들이 오간다. 우거진 나무터널을 지나 걸음은 두슈펑獨秀峰에서 멈췄다. 66m 높이에 불과한 이 석회암 봉우리는 이름처럼 홀로 우뚝 솟아 있는데 정상에서 보이는 멋진 전경은 과거 명인들의 동경이었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석각이다. 당나라 이래 136개나 되는 석각이 봉우리 곳곳에 숨은 그림처럼 새겨졌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송나라 후기 때 문인이던 왕정공王正功이 직접 새긴 시다. ‘구이린의 산수가 천하의 으뜸桂林山水甲天下’이라는 유명한 문장이 그 시 속에 있다. 젊은이들과의 연회에서 흥에 겨워 쓴 시의 한 구절이 구이린을 대표하는 말로 대대손손 기억되리라는 것을 왕정공은 짐작이나 했을까.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더위에 지쳐 있다 쾌재를 부른 것은 루디옌蘆笛岩에서다. 루디옌은 시내에서 7km 떨어진 광명산에 있는 동굴로 전체 2km 중에 개방된 곳은 500m 정도다. 18℃를 유지한다는 동굴 안은 정말 시원했다. 눈사람, 부처, 사자, 수정궁 등 기이한 형상의 종유석과 석주, 석화가 색색의 조명 아래 영롱한 자태를 드러냈고 안내원의 설명이 어김없이 이어졌다. 동굴은 정말 신비로웠지만 여기저기 판매를 목적으로 잘려 나간 종유석을 보는 기분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대자연의 예술궁전’이라는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것은 분명하다. 구이린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평범했던 낮과 달리 밤의 구이린은 화려하게 변신한다. 대표적인 곳이 량장쓰후兩江四湖다. 량장쓰후는 시내를 감싸 흐르는 리장과 타오화장桃花江의 물줄기를 도심의 룽후龍湖, 산후杉湖, 구이후桂湖, 무룽후木龍湖와 연결해 만든 해자라고 할 수 있다. 네 개의 호수는 당나라 당시에도 구이린의 해자였다. 샹산象山공원도 량장쓰후 부근에 자리한다. 흔한 유원지를 떠올리는 분위기 탓에 명성과 달리 조연으로 전락했던 그 코끼리 모양의 돌산은 차라리 밤이 되자 주연의 자리를 되찾은 듯 보였다. 산후 앞 선착장에서 유람선의 차례를 기다렸다. 물 위로 량장쓰후의 랜드마크인 일월쌍탑日月月雙塔이 반짝인다. 금탑은 태양, 은탑은 달을 뜻한다. 유람선이 제 속도를 내고 룽후를 지나는 오른쪽으로는 룽후공원의 밤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 조명에 파묻혀 웃고 있다. 함께 손을 흔들었다. 속도가 줄어든 것은 중간 지점 구이후 부근에서다. 재현된 옛 선박모형 앞에서 가마우지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전통낚시 퍼포먼스가 연출되고 있었다. 날개가 있지만 날지 못하는 가마우지는 긴 목과 주둥이를 이용해 재빠르게 물고기를 잡는다. 배는 다시 미국 금문교 모양의 다리 아래를 지난다. 모두 열 아홉 개나 되는 량장쓰후의 다리 중에는 이처럼 세계 유명 다리를 본뜬 것도 많아 교량박물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뱃놀이의 풍류는 당을 거쳐 송宋대에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많은 호수와 강이 있는 구이린은 수로가 발달해 뗏목과 배를 이용한 뱃놀이가 꾸준히 이어져 왔다. 하지만 경제성장을 위해 개발이 진행되면서 수질은 나빠지고 하천의 체계는 무너졌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 1998년의 량장쓰후 프로젝트다. 강과 호수를 연결하고 공원 녹지를 조성했으며, 다리와 길을 만들고 수질을 정화하는 작업을 거쳐 2002년, 지금의 량장쓰후를 탄생시켰다. 덕분에 도심의 생태환경 질은 높아졌고 오늘날 쾌적하게 밤의 풍류를 즐기게 된 것이다. 유치하다 싶을 만큼 화려한 조명들로 몽롱한 사이, 수변 무대 앞에서 유람선이 갑자기 멈춰 선다. 음악과 함께 민속공연이 한창이었다. 감상도 잠시, 출발 지점을 향해 다시 뱃머리를 돌린다. 배 안. 어여쁜 한족 아가씨가 익숙한 우리 노래를 비파로 연주하는 동안 한 시간여의 현대판 뱃놀이가 끝나 가고 있었다. ●룽성 龍勝 눈물로 일군 천국의 계단 구이린에서 77km. 광시와 후난湖南성 접경에 자리한 룽성으로 향한다. 정확히 말하면 룽성 각족各族자치현 허핑和平향, 그곳에 있는 룽지티뎬龍脊梯田이 목적지다. 룽지티톈은 우리가 흔히 다랭이 논이라 부르는 계단식 논이 산 전체를 덮고 있는 곳이다. 두 시간 반 만에 버스가 매표소 앞에 도착했다. 여기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을 또 가야 한다. 세차게 비가 내렸고 험한 산길 아래는 물줄기가 운무에 쌓인 계곡을 휘감았다. 멀미가 슬슬 올라올 무렵 멈춘 곳은 훙야오红瑶족의 부락인 황뤄야오자이黄洛瑶寨. 60가구, 약 500명이 이곳에 모여 산다. 야오족은 수난의 역사를 가졌다. 원명元明시대 봉건통치자들의 압박을 피해 대규모 야오족이 남쪽으로 이동했고, 특히 명대 97년간은 군대까지 동원한 유혈진압에 시달렸다. 훙야오족이 룽지티톈에 정착한 것도 이 무렵이다. 다채로운 자수를 수놓은 붉은색 옷을 입는 훙야오족은 여인들의 긴 머리가 유명하다. 머리카락 평균 길이는 1.7m, 가장 긴 사람은 2.1m나 된다. 다섯살 때부터 기른 머리를 성인식 때 귀밑까지 자르고는 다시 평생 기른다. 자른 머리카락은 뭉치로 잘 보관해 뒀다가 결혼 후 자녀를 낳으면 틀어 얹는데 그것을 반발盤髮이라 한다. 그리고 머리를 손질할 때 빠지는 머리카락을 모아 뒀다가 또 하나의 반발을 만든다. 예쁘게 틀어 올린 머리는 지금의 머리에 두 개의 머리채를 묶어 비로소 완성된 스타일이다. 훙야오족이 이토록 애지중지 머리를 기르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머리카락이 부귀영화와 장수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부락으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흔들다리를 건너야 했다. 10여 명씩 우산을 든 채 한 손으로 출렁대는 다리를 부여잡고 뒤뚱대며 건넜다. 발아래로 비에 불어난 물살이 아찔했다. ‘천하제일장발촌’이라는 표지석을 지나 들어선 민속공연장에는 훙야오족 문화의 면면이 공연으로 펼쳐진다. 전통차인 유차를 마시며 여인들이 그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감아올리는 퍼포먼스를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남성 관객과 함께 연출하는 결혼 풍습도 흥미롭다. 마음에 드는 남성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꼬집고 남성이 여성의 발등을 살짝 밟는 것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다. 공연은 부락에서 가장 나이 많은 81세의 할머니가 창가에서 긴 머리를 빗는 것으로 막바지에 이른다. 놀랍게도 흰머리가 하나도 없다. 훙야오족은 쌀뜨물을 발효시킨 물로 계곡에서 머리를 감는다는데, 일평생 검고 윤기 나는 머릿결을 지니고 있는 비법일지도. 노동이 흐르는 산등성이 풍경 71.6km2라는 가늠하기도 힘든 면적의 룽지티톈은 해발 1,916m 룽지산 자락을 380m부터 높게는 1,180m까지 뒤덮고 있다. 크게 진컹티텐金坑梯田과 핑안티텐平安梯田으로 나뉘는데, 핑안은 좡壯족의 거주지이고 진컹은 훙야오족의 거주지다. 그들은 13세기 원나라 때부터 이 방대한 개간 작업을 시작해 청나라 초기에 완성했고, 지금까지 대를 이어 살고 있다. 방향은 진컹티톈 쪽이었다. 3년 전 설치된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기로 했다. 천천히 고도가 높아지고 창밖으로 논이 물결친다. 20분 후, 드디어 가장 높은 진푸딩金佛頂 전망대다. 막 비가 그친 희뿌연 산자락에 온통 용이 춤을 춘다. 논 사이사이 다자이, 신자이, 좡지예 등 부락들이 그림처럼 박혀 있고, 장대한 선율로 흐르는 곳곳에서 모심기가 한창이다. 룽지티톈에는 ‘황금빛 부처의 정수리’라는 진푸딩 외에도 8개의 전망대가 더 있다. ‘달과 일곱 개의 별’, ‘천국으로 향하는 천개의 계단’ 등 저마다 낭만적인 이름을 지녔다. 위대한 이 풍광은 땀과 정성으로 일군 것이라기보다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의 결과라고 하는 것이 차라리 옳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카메라를 내려놓기 힘든 매력적인 예술작품이기 전에 돌투성이 산을 일구며 죽음과 맞서 온 이들의 삶의 터전인 것이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이 역설적인 아름다움 앞에서는 그저 말을 잊을 뿐이다. ●싼장 三江 시의 고향, 노래의 바다 또 하나의 소수민족을 만나러 싼장 둥족자치현으로 향한다. 소수민족들이 흔히 그렇듯 이들 또한 한족, 몽고족, 만주족 등 주류의 핍박을 피해 이 변방의 산간벽지에서 거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8개의 부락이 모여 산다는 정양촌 입구. 촌락 입구에서 제일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청양펑위차오程陽風雨橋, 이름 그대로 바람과 비의 다리다. 길이 64.4m에 폭 3.4m, 높이는 10.6m에 이르는 이 다리는 실용성을 넘어 뛰어난 조형미와 아름다운 자태로 세계적으로도 건축양식의 걸작이라 평가받는다. 1916년부터 12년이 걸려 완성됐는데 중국 정부의 중점보호대상문물로 지정되어 있다. 청양펑위차오는 맨 아래에 5개의 청석으로 기둥을 받치고 그 위에 삼나무로 몸체를 만든 후 탑 모양의 정자를 지붕으로 올린다. 다리 내부는 긴 복도 형태다. 놀라운 것은 쇠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나무를 서로 맞물려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펑위차오風雨橋는 둥족 마을 어디에나 있다. 현에만 모양이 다른 다리가 100개도 넘는다. 부락과 부락의 경계, 강이 있는 자리에 세우는 펑위차오는 교량의 기능 외에도 영혼을 달래고 액을 막아 복을 기원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또 다른 펑위차오인 허룽河龍교를 지나니 핑자이平寨다. 이 부락에는 고루鼓樓 신축 공사가 한창이었다. 펑위차오와 함께 둥족 문화를 상징하는 고루는 공동체의 중심역할을 담당하는 곳이다. 고루를 지을 때는 모두가 힘을 보태고 돈이나 물건을 기부하기도 한다고. 점심은 관샤오冠小촌에서 바이자옌百家宴을 베풀어 성대한 대접을 받았다. 바이자옌은 귀한 손님이 오면 집집마다 대여섯 가지의 음식을 만들어 모여 접대하는 손님맞이 잔칫상인데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전통복장을 한 둥족 여인들이 줄을 맞춰 서서 고음과 저음이 섞인 음색으로 환영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들의 환대는 노랫가락을 타고 둥족은 노래하기를 좋아하는 민족이다. 아무 때고 권해도 막힘없이 한 자락을 뽑아낸다. 고유문자가 없는 그들이 노래 속에 역사와 신화를 담아 문화적 전통을 이어온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둥족 사회가 ‘시의 고향이자 노래의 바다’라는 서정적 칭호를 갖게 된 것도 민족의 서사를 전승하는 방법이 노래였기 때문이다. 고루 앞 광장. 군무와 함께 연회가 시작된다. 대나무로 만든 관악기인 루성蘆笙이 갖가지 소리를 내며 광장을 울리고, 이들이 모시는 대모신 싸마薩瑪를 상징하는 우산을 들고서 여인들이 질서정연하게 춤을 춘다. 햇살처럼 사방으로 퍼진 우산살이 마을의 재앙을 막아 준다고 믿는다. 공연이 끝날 때쯤 여인들이 서둘러 음식을 나르기 시작했다. 상 하나에 두 가정이 만든 음식이 놓이는데 얼핏 봐도 백 가족은 돼 보인다. 둥족은 자신의 집에서 만든 음식상 앞에 앉아 그 자리에 마주 앉은 손님과 함께 식사를 나눈다. 특이한 것은 한자리에서 식사를 마치는 것이 아니라 젓가락을 들고 상을 돌면서 각각의 손맛을 볼 수가 있다. 개구리튀김이나 메뚜기볶음이 앞에 있다고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거다. 상마다 반겨 주는 얼굴들을 외면할 수 없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연신 받아먹었다. 여기저기서 권주가가 끝날 때까지 권하는 술잔을 연거푸 들이켜 곤혹을 치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배를 두드릴 때쯤 마지막 순서는 뚜어예多耶다. 강강술래처럼 음악에 맞춰 모두가 손을 잡고 도는 춤으로 화합의 뜻이 담겨 있다. 연회가 끝났다. 돌아 나서는 등 뒤에서 그들이 또 이별 노래를 부른다. 괜히 목이 메어서 결국 뒤돌아 손 한 번 흔들지 못했다. 바람소리 같고 새소리 같은 그 노래 때문이다. 소수민족 중국에는 한족 외에도 55개의 소수민족이 있다.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한족에 비해 다른 민족들은 10% 미만에 불과하다. 중국 정부는 1952년 소수민족정책 시행 이후 5개 자치구와 30개 자치주, 120개 현에서 소수민족 자치를 허용하고 있는데 가장 인구가 많은 민족은 1,800만 의 좡족으로 광시에 많다. ▶travel info GUILIN Airline 아시아나항공 ‘인천-구이린’ 직항편이 현재 매주 목, 일요일 20:30에 출발하고 ‘구이린-인천’은 04:55 인천 도착이다. 에어차이나항공은 김포에서 베이징을 경유해 구이린까지 운항한다. 직항 소요시간은 약 4시간, 경유시 ‘김포-베이징’은 1시간 40분, ‘베이징-구이린’은 약 3시간이 소요된다. TEA 유차油茶 좡족, 둥족, 묘족, 야오족은 복장이나 음식 등 비슷한 풍습이 많다. 그중 하나가 유차다. 구이린의 유차는 궁청 야오족유차, 룽성 둥족유차, 신안유차로 나뉘는데 유차를 만들고 마시는 것을 ‘타打유차’라고 한다. 만드는 방법은 보통 현지에서 나는 차를 살짝 볶아 생강, 마늘, 쪽파 등을 넣고 물을 부어 끓인 후 걸러낸다. 그리고 기름에 튀긴 찹쌀 위에 부어 낸다. 감기를 치료하고 고된 노동 후, 체력회복을 위해 마셔 왔다는 유차는 손님이 오면 꼭 권한다. 훙야오족과 둥족 모두 환영의 뜻으로 유차를 냈는데 둘 다 비슷했다. 맛은 마치 식용유가 섞인 누룽지처럼 약간 애매하다. MUSICAL 둥족의 사랑이야기, 줘메이坐妹 <줘메이>는 둥족의 풍속을 연출한 대형 뮤지컬이다. 현 중심에 자리한 공연장, 둥샹냐오차오侗鄕鳥巢는 새의 둥지를 형상화한 둥근 형태로 천장이 없다. 줘메이는 둥족 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서막을 포함, 전체 6장의 구성 안에서 전통과 현대적인 감각을 조화시켜 춤과 노래로 엮어낸다. 특히 펑위차오와 전통가옥, 흐르는 강 등 둥족의 생활터전을 연출한 무대와 출연자들의 화려한 의상이 볼거리다. www.zuomeisj.com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이세미 취재협조 중국국가여유국 www.visitchina.or.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진짜 돈 ‘찢어’ 예술작품 만든 中 남성 화제

    진짜 돈 ‘찢어’ 예술작품 만든 中 남성 화제

    진짜 돈을 ‘찢어’ 예술작품을 만든 중국의 한 남성이 언론에 소개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충칭상바오 등 현지 언론의 17일자 보도에 따르면, 중국 충칭 용촨구에 사는 30대 남성 허페이치(何佩栖)는 자신이 취미로 모으던 외국 지폐들을 잘게 찢은 뒤 이 조각을 오려 붙여 ‘초여름의 아름다움’ 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풍경화에 가까운 이 작품에는 아름다운 나비와 꽃, 나뭇가지들이 생생하게 표현돼 있으며, 종이, 그것도 ‘진짜 지폐’를 이용해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기 않을 정도로 정교하다. 허씨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평소 유럽이나 아시아 국가들의 지폐를 모으는 취미가 있었으며, 그간 모은 지폐 1000장을 이용해 이 작품을 완성했다. 각각 약 10위안(한화 약 1800원)정도의 액면가를 가진 지폐 1000장을 모두 합치면 수 만 위안에 달하지만, 그는 이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예술의 혼’을 표현하는데 모두 썼다. 그가 진짜 돈을 찢어 이 작품을 만드는데 걸린 시간은 약 6개월. 허씨는 “모든 지폐는 ‘진짜’임을 확인받은 것”이라며 “평소 지폐 모으는 것을 좋아했고 예술에 관심이 많아 이 작품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를 본 일부 네티즌들은 “만약 진짜 돈을 찢어 만든 것이라면 법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냐”는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지만, 허씨는 이에 대해 “중국 법률은 중국 인민폐에 한해 적용되는 것이므로 외국 화폐의 훼손과 위법은 무관하다”고 반박했다. 한편 허씨는 수 만 위안을 들여 만든 이 작품을 팔지 않고 개인 소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길섶에서] 상선약수(上善若水)/구본영 논설고문

    기후변화의 부작용이 이토록 심각한 건가. 절기상으로는 장마철인데도 소양강댐조차 바닥을 드러내기 일보 직전이라는 소식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 예년과 달리 덥지만 유달리 건조한 날씨가 오래 이어지고 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아 국민적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중동 지역에서 발원한 메르스가 숙주인 낙타도 없는 우리나라에서 기승을 부리는 까닭이 새삼 궁금하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습도가 높은 곳에서는 오래 생존하지 못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소견이라고 한다. 우리의 초여름 날씨가 알게 모르게 건조하기 짝이 없는 중동을 닮아 가고 있는 게 마음에 걸리는 이유다. 그래서 기후든, 다른 무엇이든 갑자기 부자연스럽게 바뀌는 것이 큰 재앙의 전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일 게다. 단번에 뭔가를 이루려는, 터무니없는 욕심은 화를 부르기 마련이란 점에서다. 문득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4자 성어가 뇌리를 스친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가르침이다. 그렇다. 물처럼 자연스럽게 흐르는 삶이 최선이 아니겠는가.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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