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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토] 가수 비, 제일 처음 찾는 곳은 어머니에게로

    [포토] 가수 비, 제일 처음 찾는 곳은 어머니에게로

    지난 2011년 10월 11일 현역으로 입대한 가수 비(본명 정지훈)가 10일 오전 서울 한강로 국방부에서 21개월간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했다. 비는 취재진과 팬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차량을 타고 급하게 떠났다. 홍보지원대 소속 병사 중 가장 먼저 전역 한 비는 연신 무거운 표정이었다. 비는 군대국방홍보원 홍보지원대원(연예병사)으로 근무하는 21개월간 근무 태만, 배우 김태희와 열애설에 휩싸이며 휴가 및 외박일수와 관련한 연예병사 특혜논란에 곤욕등 연예병사를 둘러싼 논란이 있었기에, 그의 전역은 모든 이에 관심의 대상이 되었기에 이날의 취재 열기는 더욱 뜨거웠다. 비의 향후 행보에 대해서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비는 큐브엔터테인먼트의 홍승성대표와 계약을 맺고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자’고 의기 투합했다. 앞으로의 비의 가요계 컴백이 어떤 모습일지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장고봉PD goboy@seoul.co.kr
  • “새벽녘 방이동 골목길 청소… 3년 전 초심 잃지 않겠다 다짐”

    “새벽녘 방이동 골목길 청소… 3년 전 초심 잃지 않겠다 다짐”

    1일 새벽 5시 30분. 박춘희 송파구청장이 방이동 골목길에 나타났다. 예의를 갖춘 단정한 정장 차림이 아니라 형광색 작업복에 장갑, 안전모까지 갖춘 모습이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구청 간부들이 아닌 환경미화원이었다. 취임 3주년을 맞아 박 구청장은 이들과 함께 청소를 시작했다. 방이2동 주민센터에서 방이먹자골목까지 700m 구간이었다. 길이로 따지자면 초라할 수 있다. 그러나 청소는 만만치 않다. 음식점과 술집이 몰린 곳이라 작업량이 많아서다. 박 구청장은 1시간 정도 미화원들과 함께 열심히 일했다. 청소가 끝난 뒤에는 1시간 동안 콩나물국밥을 먹으면서 미화원들의 애로 사항을 들었다. 예전 취임 기념식 때도 그랬다. 별다른 기념식을 치르기보다는 경로당이나 복지관을 찾거나 장애인재활작업장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이날은 길거리 청소로 3주년 기념식을 치른 셈이다. 박 구청장은 “지난 3년을 되돌아보며 평소 뵙기 어려운 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또 초심을 잃지 말자는 결심을 다독이기 위해 거창한 행사를 하기보다는 스스로 거리에 나왔다”면서 “이분들과 땀 흘렸더니 남은 기간 더 열심히 뛸 힘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글로벌 시대] 엘리자베스가 보여준 통치철학/윤영미 평택대 외교안보전공 교수

    [글로벌 시대] 엘리자베스가 보여준 통치철학/윤영미 평택대 외교안보전공 교수

    오늘날 전 세계 국가들 중에 한반도와 국토 및 인구 규모가 가장 유사한 나라는 영국(UK)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영국으로 하여금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 건설’을 가능케 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아마도 역사상 위대한 통치자들이 존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롤 모델이 되고 있는 지도자는 단연 엘리자베스 1세(1533~1603)가 아닐까 싶다. 영국 의회와 국민들로부터 최고의 추앙을 받았던 여왕은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미혼으로 통치권자에 올랐다. 여왕으로 등극하기까지 순탄하지 못한 노정도 경험했다. 당시 유럽 국왕들과 혼사를 기피하면서 그녀가 자주 했던 말은 “자신은 영국과 결혼했다”였는데, 조국에 대한 사랑과 충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녀의 진정한 위대함은 44년간의 오랜 재임 동안 영국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 달성에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영국을 세계의 중심국가로 부상시킨 것이다. 중상주의 정책을 펼쳤고, 세계 최강의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함으로써 아메리카 대륙을 비롯해 전 세계 무역루트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여왕이 이토록 강력한 성취를 거둘 수 있었던 요인은 바로 국내 정세 안정에 있다. 영국과 유럽 전역은 신교와 구교 간의 참혹한 종교전쟁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신교도였지만 가톨릭 신도와 의례를 탄압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민과의 ‘통합과 소통’을 통해 정치적 안정을 일궈냈다. 정치적 안정 없이 어떤 성취도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또 그녀의 뛰어난 통치스타일은 유능한 인재를 등용했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국정운영을 맡겼던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윌리엄 세실 경을 중심으로 측근들이 여왕을 보좌했고, 여왕은 그들을 신뢰하고 존중했다. 세실 경은 여왕 즉위 해부터 재임 말기(1598)까지 무려 40년간 최고행정관으로 보좌했다. 그는 종신총리에 가까운 책임과 권한을 부여받았다. 정치의 지속성과 안정성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가능했다. 그녀는 “보고 있지만 말하지 않는다”(I see, and say nothing)는 원칙을 고수했다. 자신이 직접 나서서 일일이 챙기는 것이 아니라 측근들을 통해 국정을 운영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들의 협력과 경쟁이 국정의 활력을 만들어냈다. 게다가 여왕은 국익을 위해 ‘실용주의적’ 외교정책을 견지했다. 강한 군대를 육성했지만 섣불리 군대를 동원하지 않았고, 국익에 도움이 된다면 이슬람국가와도 협력했다. 교황청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오스만튀르크와 무역협정(15 80)을 맺은 것이 그 한 예다. 무엇보다 통치자로서 여왕의 가장 큰 장점은 자신에게 엄정했고 잘못에 솔직했다는 점이다. 자신의 최측근이라도 잘못하면 처벌하는 데 반대하지 않았다. 그녀는 죽기 2년 전에 가진 의회연설에서 정부의 특혜정책으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잘못을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더 많은 지지를 확보했다. 위기를 솔직함으로 헤쳐 나간 셈이다. 필자를 포함해 누구나 직면하는 문제는 말과 행동, 의지와 능력이 늘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게다가 시간은 늘 사람의 말을 희미하게 만든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여왕이 남긴 “셈페르 에아뎀”(Semper Eadem, 항상 같기를)이라는 모토가 시대를 초월해 왜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국민행복 시대’를 선언한 박근혜 대통령 역시 초심을 잃지 않고 늘 의지와 각오가 한결같기를 기대해 본다.
  • [CEO칼럼] 초심으로 돌아가자/방한홍 한화케미칼 대표

    [CEO칼럼] 초심으로 돌아가자/방한홍 한화케미칼 대표

    우리는 1995년에 1인당 국내총생산(GDP) 1만 1472달러를 달성하면서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를 열었다. 홍콩은 1987년, 싱가포르 1989년, 타이완이 1992년에 1만 달러를 넘은 것과 비교하면 늦은 감도 있지만, 이를 통해 한국은 아시아의 4룡(龍)으로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추세를 몰아 그 이듬해인 1996년에는 선진국들의 협의체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고, 불과 10여년 후인 2007년에는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달성했다. 더불어 국내 몇몇 기업은 글로벌 선도기업으로 훌쩍 컸다. 그러나 최근 경제성장률은 2%대에 머물고 있다. 한때 바로 코앞에 와 있는 것만 같았던 국민소득 4만 달러는 구호로만 남았다. 이른바 성장통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성장통은 비단 국가의 경제성장 과정뿐만 아니라, 기업과 개개인의 성장 과정에서도 겪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과정이다. 더 크기 위해서는 아픔을 딛고 일어서야만 한다. 기업들이 아무리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차별적인 제품으로 중무장을 했더라도 급격한 성장을 한 뒤에는 일정 기간 정체기를 맞기 마련이다. 놀라운 성적으로 신인상을 수상한 운동선수도 2년차 징크스라 불리는 ‘소포모어 징크스’(Sophomore Jinx)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지구촌에 즐거운 한류 붐을 불러일으켰던 ‘강남스타일’의 가수 싸이도 글로벌 프로젝트라는 타이틀 하에 ‘젠틀맨’을 발표했지만 안타깝게도 이전의 흥행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성장통을 쉽게 극복할 방법은 없을까? 사실 그 답은 무척 간단하다. 바로, ‘초심’(初心)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초심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세상에 성공을 위한 왕도란 없다. 있다면 초심을 잃지 않는 마음가짐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가슴 뛰던 출발의 순간이 있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던 날, 군대에서 전역하던 날, 첫 출근을 하던 날, 결혼식장에 들어서던 날, 처음 자신의 가게 문을 열던 날처럼 가슴 설레던 그 순간의 결연했던 마음가짐을 유지할 수 있다면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이겨낼 수 있다. 또 이루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우선 해야 할 일은 기본을 돌아보는 것이다. 사람의 인생과 자주 비교되는 골프에서도 마찬가지다. 실력이 뛰어난 골퍼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느 날 갑자기 샷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장기간 슬럼프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새로운 기술을 연마하는 게 아니다. 더 좋은 장비를 구입하는 것도 아니다. 기본기를 다시 점검하는 게 최선이다. 그립은 제대로 잡고 있는지, 임팩트 순간에 고개는 들지 않는지, 하체는 흔들리지 않고 잘 고정되어 있는지를 하나하나 점검하고 바로잡아 나간다면 곧 예전의 실력을 되찾을 수 있다. 음식점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좋은 식재료를 쓰고 위생적으로 조리해야 한다. 이게 음식점의 기본이다. 음식 맛의 8할은 재료다. 재료가 좋으면 굳이 여러 가지 양념을 쓰지 않아도 된다. 그 기본에서 성패가 갈린다. 정부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8%로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 수치는 아시아 주요 10개국 가운데 9위에 지나지 않는 데다 내년 전망치(3.9%) 역시 10개국 중 꼴찌다. 한국경제가 아시아의 용 대열에서 이탈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하지만 지난 60여년의 한국경제 발전사가 시련 극복의 연속이지 않았던가. 전쟁의 상흔을 이겨내고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대한민국의 초심을 잊지 않고 되살려야 할 때다. 처음 그날을 떠올려 보자. 무엇인가 간절하게 원하는 목표가 있었고, 다시 하라면 못할 정도로 열심히 노력해서 그 목표를 성취했던 초심이 어떠했는지를 생각하자.
  • [기고] 공직자에게 ‘진정한 갑’은 ‘국민’/박계옥 국민권익위원회 부패방지국장

    [기고] 공직자에게 ‘진정한 갑’은 ‘국민’/박계옥 국민권익위원회 부패방지국장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가 지은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에 자물쇠를 쉽게 여는 열쇠장이에 관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열쇠장이는 너무나 쉽게 열리는 문을 보고 놀라는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 준다. “자물쇠란 정직한 사람들을 정직한 상태로 계속 남아 있게 하려고 달아 놓은 장치입니다. 세상 사람들 중 1%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아요. 또 1%는 어떻게든 자물쇠를 열어 남의 것을 훔치려 합니다. 나머지 98%는 조건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 동안에만 정직한 사람으로 남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계속 옳은 길을 갈 수 있도록 해주는 자물쇠와 같은 장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공직자에게 그러한 자물쇠와 같은 장치로 ‘공직자 행동강령’이 있다. 2003년부터 시행돼 올해 10년을 맞이한 공직자 행동강령은 공직자가 직무수행 중 당면하게 되는 갈등상황에서 추구해야 하는 바람직한 가치기준과 공직자가 준수해야 하는 행위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규정이다. 제정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골프나 식사접대를 규제하겠다고 하자 공직사회 내에서도 부정적인 의견이 표출되었다. 경조사 통지, 경조금품 제한에 대해서는 많은 공직자들이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고 선물수수 금지 대상에 꽃, 화분, 난 등을 제외할 것인지에 대한 공개토론회 과정에서 화훼단체 회원들이 집단으로 항의하는 사태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공무원 행동강령이 시행되자 접대, 경조사 등 공직사회의 문화가 바뀌어 갔다. 공직자들은 직무 관련자와 식사를 할 때 공무원 행동강령에 위배되지 않는지 먼저 생각하게 되었고, 위원회에는 일선 기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례가 행동강령을 위반하는지 확인하는 문의가 이어지는 등 공직사회의 윤리적 행동기준으로 정착되어 갔다. 하지만 국민은 공직자들이 일상에서 청렴하고 공정하게 업무수행을 하는지에 대해 여전히 의심을 품고 있다. 공직자들이 연루된 부패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있고, 고위공직자들의 성추행 등 처신에 문제가 되는 사례도 근절되지 않는다. 공직자들이 청렴하고 윤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아직도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이러한 신뢰의 위기 속에서 공직자 행동강령이 제대로 기능하는 것이 10주년을 맞이한 지금 더욱 절실하다. 단순히 3만원인 접대비 상한선과 5만원인 경조사비 상한선을 준수하는 문제가 아니라, 공직자 행동강령의 기본 원칙이 바로 서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 원칙의 첫 번째는 공익과 사익이 상충하는 경우, 공직자는 공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직무 관련자에게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어떠한 형태의 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공직자에게 주어진 권한은 국민을 위한 권한이어야 한다. 공직자에게 진정한 갑은 국민이고, 공직자는 을이다. 공직자 행동강령이 시행된 지 10년이 됐지만 아직 우리 공직자에겐 갈 길이 멀기만 하다. 공직자들이 처음 임용될 때의 초심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국민을 위하는 길을 계속 갈 수 있도록 공직자 행동강령이 자물쇠로서 그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 [정부 ‘서울 남북 장관급회담’ 제의] ‘박정희 유산’ 앞세워 박대통령에 구애

    [정부 ‘서울 남북 장관급회담’ 제의] ‘박정희 유산’ 앞세워 박대통령에 구애

    북한이 6일 우리 측에 포괄적 남북회담을 제의하며 7·4 공동성명을 언급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매개로 박근혜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7·4 공동성명은 1972년 박 전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공동으로 이뤄 낸 남북 간 첫 합의이자 그 후손들인 박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함께 풀어 가야 할 공동 유산이란 의미가 담겨 있다. 7·4 공동성명 발표 41주년을 남북이 함께 기념하자고 제안하면서 선친이 만든 7·4 공동성명의 의미를 박 대통령이 이어 주길 바란다는 메시지인 것이다. 박 대통령도 의원 시절인 2002년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하면서 7·4 공동성명 이행 의지를 확인했었다. 북한이 끊은 남북관계를 연결할 고리로 7·4 공동성명을 택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는 분석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당시를 상기시키면서 그 초심을 다시 살리려는 북한의 진정성도 알아 달라는 복합적 의미”라고 해석했다.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 등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의 남북관계만 강조해 왔던 북한이 박근혜 정부 출범을 맞아 2000년 이전의 남북관계까지 폭넓게 보기 시작한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7·4 공동성명은 지금 시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1항에는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통일 원칙이 명시돼 있고, 2항에는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신뢰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상대방에 대한 중상 비방 중지, 무장도발 중지, 군사충돌 사건에 대해 적극적 조치를 추진한다는 약속이 담겨 있다. 북한이 원하는 체제 안정, 개성공단 정상화의 근본 문제로 내걸었던 ‘한반도 전쟁연습 중단’ 등이 여기에 모두 포함돼 있다. 당시의 합의 내용에 대해 우리 정부의 암묵적 동의를 이끌어 내겠다는 북한의 정치적 의도도 담겨 있는 듯하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사설] 한류에 찬물 끼얹는 태권도 비리 씻어내야

    한 태권도 관장을 죽음으로 몰고간 판정 의혹이 결국 사실로 드러났다. 대한태권도협회가 그제 편파 판정으로 물의를 일으킨 심판을 제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협회는 문제가 된 경기의 동영상을 분석해 “특정 선수에 대한 경고의 공정성과 객관성에 문제가 있고, 주관적 판단에 따라 경고를 준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경기 종료를 앞둔 50초 사이에 무려 7개의 경고를 특정 선수에게 주어 경기 결과를 뒤집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셈이다. 앞서 이 태권도 관장은 “아들과 제자들이 오랫동안 특정 심판의 편파 판정으로 피해를 봤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명천지 21세기에도 여전히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 놀랍다. 시골 장마당의 야바위판에서도 지켜보는 눈이 무서워 저지르기를 주저할 만한 일이 대한민국 체육계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태권도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태권도는 그저 많은 사람이 즐기는 스포츠 종목의 하나가 아니다. 단순한 무예를 넘어서 한국인의 정신적 기반으로 자리잡은 태권도는 오늘날 전 세계를 풍미하는 한류의 원조가 아닌가. 세계 204개국에서 8000만명이 즐기는 태권도는 가수 싸이로 대표되는 K팝을 능가하는 한류의 본류이다. 한국이 원산지라는 사실을 세계 태권도인들에게 뿌리 깊이 각인시키면서, 영예는 각국이 골고루 나눠 갖는 태권도의 세계화 방식은 우리 문화 수출의 모범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더구나 최근에는 전 세계 태권도인이 합심협력한 결과 올림픽 퇴출 위기에서 벗어나 ‘글로벌 스포츠’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호기를 잡지 않았나. 이런 시점에서 드러난 우리 태권도의 감춰지지 않은 속살은 경기인들만의 오점이 아니라, 한국인 전체의 치부가 아닐 수 없다. 이제라도 태권도인들이 초심으로 돌아가 자존심을 되찾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종주국 지도자라는 자존심으로 무장한 태권도인이라면 하찮은 비리의 유혹쯤은 쉽게 뿌리쳐야 하지 않겠는가. 태권도가 경기인들만의 소유물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자부심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태권도가 한류의 원류로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기대한다.
  • [향토기업 특선] 섬유소재 ‘우단’ 생산 구미 ㈜영도벨벳

    [향토기업 특선] 섬유소재 ‘우단’ 생산 구미 ㈜영도벨벳

    ㈜영도벨벳은 국내외 벨벳(Velvet) 업계가 인정하는 ‘강소기업’이다. 경북 구미시 원미동에 있지만 세계 최고·최대의 벨벳 생산 및 수출 1위를 자랑한다. 이탈리아의 벨루티 가문이 발명한 벨벳은 짧고 부드러운 솜털이 있는 천 실크로 이탈리아에선 벨루토, 일본에선 비로드로 불리고 우리에겐 우단(羽緞)이란 이름으로 친숙한 섬유 소재다. 영도벨벳의 전신은 1960년 대구 평리동에서 창업한 영도섬유다. 창업과 함께 독일과 일본에서 밀수되던 벨벳을 국내 처음으로 자체 개발에 촉망받는 기업으로 떠올랐다. 이후 50여년간 벨벳만 전문으로 제조해 왔다. 국내외에서 벨벳 수요가 늘면서 회사는 초창기부터 성장의 물살을 탔다. 현재는 전체 매출 중 95% 이상을 해외에서 올리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보다 세계에서 더 잘 알려졌다. 영도 벨벳은 위용도 당당한 세 마리의 독수리가 그려진 ‘쓰리 이글’(Three Eagle) 브랜드를 달고 120개국으로 수출된다. 세계 원단 사상 ‘제1호 브랜드 마케팅’으로 기록됐다. 예나 지금이나 주된 수출국은 중동과 중앙아시아, 중남미 지역이다. 특히 아랍인에게 영도 벨벳 제품은 최고의 혼수예단이라 중동지역은 최대의 수출 전략지다. 이탈리아의 ‘조르조아르마니’, 미국의 ‘앤클라인’ ‘탈보트’, 스페인의 ‘자라’, 일본의 ‘이토추패션’등 세계 일류 패션 브랜드는 수십년째 영도 벨벳 제품만을 고집하고 있다. 최근 들어 중국이 수출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 바탕에는 벨벳 분야 20여개의 특허를 획득한 영도만의 우수한 제품 기술력과 노하우가 있다. 영도 벨벳은 일본산보다 품질은 우수한 반면 단가는 낮아 제품 경쟁력이 뛰어나다. 유연성과 탄력성이 풍부한데다 물세탁도 가능한 장점도 지녔다. 검은색 일변도에서 빨강, 노랑, 파랑 등 다양한 색깔을 입힐 수 있는 첨단 벨벳이다. 물론 회사는 혹독한 시련도 겪었다. 1995년 최신형 직기 150대를 도입한 지 불과 2년 뒤인 1997년에 닥친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부도 직전까지 몰리기도 했다. 이유순 이사는 “영도벨벳의 최대 무기는 세계 최대 규모의 벨벳 생산시설과 최고 수준의 연구인력 20여명으로 운영되는 자체 연구소”라고 소개했다. 회사는 벨벳 소재를 활용한 액정표시장치(LCD)용 러빙(rubbing)포 개발로 재도약의 나래를 활짝 펴고 있다. 2008년 세계 최초의 아세테이트 재질 러빙포를 개발, 세계시장 점유율을 확대해 가고 있다. 이 제품 역시 기존 세계시장을 휘어잡은 일본 제품보다 공정이 간편하고 가격이 저렴한 반면 LCD의 시야각과 명도, 색상구현, 터치감은 월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LCD 패널 제조에서 핵심소재부품인 러빙포는 스마트폰과 TV, 모니터 등에 들어가는 LCD 화질을 선명하게 하고 제품 수명을 늘려주는 역할을 한다. 영도벨벳의 LCD용 러빙포는 현재 전세계 시장에서 점유율이 미미하지만 향후 5~10년 내에 50% 수준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영도벨벳은 올해 매출액을 지난해보다 50억원 늘어난 400억원으로 기대한다. 특히 러빙포 매출은 지난해보다 5배 늘어난 50억원을 예상한다. 영도벨벳은 가족친화형 기업으로 유명하다. 집이 없는 직원들에게 집을 제공해 주고 자녀 출산·양육비 및 장학금 지원 등 각종 복지시책을 편다. 지역사회 공헌활동도 활발하다. 2011년부터 매년 대구·경북지역 학생 108명에게 장학금을 주고 자투리 원단을 활용한 나눔 프로젝트인 ‘어메이징 벨벳’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09년에는 구미시장학재단과 계명대에 각각 1억원씩의 장학기금을 내놓기도 했다. 회사 관계자는 “영도벨벳은 ‘쓰리이글’이라는 명품벨벳 브랜드로 세계시장에서 자리를 굳혔지만 임직원들은 창업 때의 초심을 잊지 않고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미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위기의 공공의료] 초심으로 돌아가자

    [위기의 공공의료] 초심으로 돌아가자

    지난해 7월 영국 런던 올림픽 개막식장에선 간호사 600명이 침대 수백대를 끌고 나온 게 화제가 됐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에 해당하는 국가보건서비스(NHS)를 형상화한 공연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8년부터 시행된 이 무상의료 제도를 영국인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잘 보여준 장면이었다. 이런 NHS의 명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보고서가 지난 2월 발간됐다. NHS 산하 보건위원회가 2년이 넘는 조사를 거쳐 발표한 이 보고서는 스태퍼드 병원에서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최대 1200명에 이르는 환자들이 경영진과 의료진의 직무유기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보고서의 한 대목은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병원 직원이 모자라는 참에 간호사를 줄인 것을 보면 병원 이사회에 심각하게 문제가 있었다 … 병원 이사회 기록을 보면, 온통 인력감축으로 인한 경제효과 얘기만 있다.” 한국 의료제도는 NHS에 한참 못 미친다. 하지만 NHS에 비할 바 없이 ‘시장 패러다임’이 막강하다. 공공병원 병상수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이 75%, 미국이 25.8%인 반면 한국은 10.4%에 불과하다. 불필요한 척추수술이나 무릎수술, 갑상선 초음파 등 과잉진료가 일반화돼 있다. 이런 현실에서 그나마 힘겹게 적정진료로 균형추를 맞추는 것이 지방의료원을 비롯한 공공의료라고 할 수 있다. 가령 2009년 신종플루가 유행할 때 민간병원은 물론이고 국립 서울대병원조차 환자 격리병원 지정에 반발한 가운데 정부정책을 수행한 곳은 지방의료원과 보건소 등이었다. 지방의료원은 수익이 나지 않는 응급의료나 감염병 대처 등 공공의료사업을 수행하는 반면 민간병원처럼 이익을 남기는 진료는 하지 않는다. 지방의료원 진료비는 규모가 같은 민간병원에 비해 입원 진료비는 71% 수준, 외래 진료비는 74% 수준이다. 더구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투자하는 시설과 장비 비용은 고스란히 지방의료원 부채로 계산한다. 적자는 필연적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지방의료원에 대해 독립채산제를 적용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정기적인 운영진단을 통해 단기 순익을 평가하고 적자가 많은 지방의료원에는 ‘경영개선’을 요구한다. 수익을 위해 지방의료원은 공공성과 수익 사이에서 길을 잃어가고 있다. 일부 지방의료원에선 의사성과급과 연봉제까지 도입했다. 환자를 더 많이 진료하게 해서 경영성과를 높이자는 취지였지만 공공병원 특성상 성과는 나지 않고 의사들의 자긍심만 떨어뜨렸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공공의료가 위기라면 그것은 공공의료기관이 공공성을 충분히 살릴 수 있도록 받쳐주지 못하는 제도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국립대가 인력과 교육, 장비 등을 지방의료원에 지원하는 공공의료기관 네트워크 구축을 강조하면서 국립대병원과 지방의료원 관리체계를 일원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서울 구청장 受賞 2제] 고재득 성동구청장 ‘지식경영인대상’

    [서울 구청장 受賞 2제] 고재득 성동구청장 ‘지식경영인대상’

    고재득 서울 성동구청장이 ‘제25회 대한민국 지식경영인대상’에서 지방자치단체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성동구는 고 구청장이 지난 3일 서울 프리마호텔에서 미래지식경영원과 사단법인 한국재능기부협회가 주관하는 ‘지식경영인대상’에서 지방자치부문 대상을 받았다고 7일 밝혔다. 고 구청장은 4선 구청장으로서 오랜 재임 기간 동안 지식경영에 기반을 둔 혁신적인 제도개선으로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주민과 가까이 소통하며 대민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는 등 구정발전을 이끌었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고 구청장은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지식정보화 사회에 맞게 혁신적인 노력으로 구정 발전을 도모하고 ‘더불어 사는, 온정이 넘치는’ 사회 만들기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조현석 기자 hyun68@seoul.co.kr
  • [의정 포커스] 김병진 강서구의원, ‘저소득층 납골당’ 등 알찬 서민정책 만든다

    [의정 포커스] 김병진 강서구의원, ‘저소득층 납골당’ 등 알찬 서민정책 만든다

    “조례를 만들거나 예산을 심의할 때는 항상 서민의 입장에서 파악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서울 강서구의회 김병진(52) 의원은 6일 “초심을 잃지 않고 항상 서민들의 입장에서 의정활동을 펴겠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의 이름 앞에는 ‘서민의 친구’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법안을 제안 발의할 때나 5분 신상발언을 할 때 항상 자신을 서민의 친구라고 소개하면서 자연스레 이 같은 별명이 생겼다. 그는 “스스로를 서민의 친구라고 소개하는 것은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펴겠다는 다짐”이라면서 “성실한 일꾼, 약속을 잘 지키는 소시민 등을 붙여 봐도 서민의 친구가 제게는 가장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의정생활도 서민 중심이다. 서울제물포터널 공사가 지지부진하자 조속한 착공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경인고속도로 때문에 40여년간 생활의 불편을 느끼고 있는 이들은 신월동과 화곡동의 서민들”이라면서 “앞으로도 조속한 착공을 위해 힘을 쏟겠다”고 다짐했다. 장사시설과 봉안시설 설치를 자치구 조례로 제정해야 한다고 제안한 것도 그였다. 그는 “빠르게 변화하는 장묘문화에 자치구가 빠르게 대응해 구립봉안시설을 매입하거나 임대하여 관리해야 한다”면서 “특히 독거노인이나 저소득층에 저렴한 비용으로 공급하는 등 어려운 처지에 놓인 서민에게 도움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행정사무를 감사할 때도 감사방향을 서민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는 시행된 정책이나 행정처분이 얼마나 많은 서민을 포용하고 있는지, 특정 계층에 국한된 정책은 아닌지, 서민적 입장에서 파악하고 또 접목했는지를 감사한다. 예산심의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민의 시각에서, 서민적 입장에서, 서민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가 예산 편성에 있어서 중요도를 파악하는 그의 관점이다. 그의 좌우명은 서민이 행복한 강서구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우리 구는 서울에서 서민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자치구”라면서 “앞으로 서민을 대표하는 일꾼으로 서민을 대표해 목소리를 높이는 데 주저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조현석 기자 hyun68@seoul.co.kr
  • [커버스토리-불법 온라인 도박의 함정] 5000원 베팅해 120만원 대박… 불행의 시작 사채까지 쓰며 수천만원 빚더미…“돈·꿈 다 잃었다”

    [커버스토리-불법 온라인 도박의 함정] 5000원 베팅해 120만원 대박… 불행의 시작 사채까지 쓰며 수천만원 빚더미…“돈·꿈 다 잃었다”

    사방이 환했다. 저녁을 먹고 컴퓨터에 앉은 것 같은데 12시간이 금세 지났다. 눈은 퀭했고, 빨갰다. 재떨이의 담배꽁초는 수북했다. 사설 스포츠토토는 끊을 수 없는 마약 같았다. 간밤에도 그랬다. ‘손해본 것만 만회하면 바로 나와야지’라며 로그인했다. 저축은행에 이어 대부업체까지 손을 벌려 마련한 돈이었다. 반전을 꿈꾸며 클릭을 거듭했지만, 해가 밝았을 때는 다시 빈털터리였다. 3년째 되풀이 된 불면의 밤. 청년은 “돈과 시간, 꿈과 건강과 인간관계까지 모든 걸 잃었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19일 인터뷰에 응한 서울대 졸업생 김용진(가명·28)씨는 사설토토에 빠져 지낸 지난 3년을 힘겹게 곱씹었다. 시작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사설토토를 즐기는 친구를 보고 재미 삼아 시작했다. 2010년 가을, 프로야구 포스트 시즌 때였다. 어차피 학교 수업 끝나면 집에서 매일 야구를 보는 그였다. 딱 5만원 걸었을 뿐인데 짜릿함은 배가 됐다. 투수의 공 하나, 타자의 방망이질 한 번이 달리 보였다. 스포츠의 세계가 무한해지는 느낌이었다. 이후 김씨는 종종 사설토토를 했다. 전보다 흥미진진하게 스포츠 중계를 볼 수 있었다. 중독되기 시작한 건 첫 베팅 후 3개월이 지났을 무렵. 여느 때처럼 푼돈을 걸었는데 대박을 쳤다. 프로농구(KBL)·여자농구(WKBL)·미국프로농구(NBA) 몇 경기의 승패, 언더-오버, 핸디캡 등 12개 결과를 모두 적중시킨 것이다. 베팅한 돈 5000원은 채 1분이 안 돼 현금 120만원으로 통장에 꽂혔다. 심장이 펄떡거렸다. 씀씀이는 점점 커졌다. 쉽게 번 돈인 만큼 부담 없이 마구 질렀다. 며칠 뒤에는 농구 언더-오버에 걸었던 100만원이 285만원으로 돌아왔다. 김씨는 “초반에 그렇게 몇 번 따니까 힘들게 직장생활 할 필요 없이 사설토토로 돈을 벌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회상했다. 승산이 있다고 믿었다. 행운에만 의존하는 도박이 아니라 공부하면 정복할 수 있는 주식 같았다고 했다. 사전정보가 있고 그 정보를 세밀하게 분석한다면, 본인만 잘한다면, 충분히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전문 돈벌이로 사설토토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불행의 시작이었다. 김씨는 변수와 이변이 적고 베팅종류도 많지 않은 해외 축구를 집중적으로 팠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는 기본이고, 덴마크·핀란드·칠레·크로아티아·파라과이·에스토니아·사우디아라비아 등 제3세계 축구까지 닥치는 대로 챙겼다. 경기를 본 게 아니었다. 실시간으로 변하는 배당률과 씨름했다. 상대전적, 홈·원정 승률, 주요 선수 컨디션 등을 꼼꼼하게 살폈다. 경기정보가 빼곡한 분석사이트(베트익스플로어러, 오즈포털)와 외국 베팅업체 사이트(벳365, 188벳, 윌리엄힐),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인 모든 경기의 점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라이브스코어 사이트를 분주하게 오갔다. 공책에 베팅업체별 적중률, 배당률의 흐름·변화주기 등을 빼곡하게 적으며 자기만의 비책을 만들었다. 그렇게 추려진 통계 정보로 항상 경기시작 1분 전에 베팅했다. 한 경기에 20만~30만원씩, 확신이 있을 땐 최대 베팅금액인 100만원을 걸었다. 평일엔 6~7경기, 주말엔 10경기를 분석해 다양한 조합으로 베팅했다. 최고 1000만원을 딴 적도 있었지만 바로 베팅에 쓰거나 유흥비로 탕진했다. 몇 번의 ‘잭팟’은 흔히 말하는 초심자의 행운이었다. 환희보다 탄식과 분노, 오기가 일 때가 더 많았다. 사설토토는 ‘돈 먹는 하마’였다. 김씨는 인생에서 열심히 해서 정복하지 못할 건 없다고 믿었고 그렇게 살아왔다. 재수 1년만에 수능점수 120점을 끌어올려 서울대에 입학한 의지의 사나이였다. 분석 결과가 빚나가 돈을 잃을 수록 오기가 생겼다. “내가 호구 같이 돈을 뜯기고 있다는 기분을 참을 수 없었어요. 이기고 싶었고, 이길 수 있을 것 같았죠.” 야무지게 부딪혔지만 매번 돈을 잃었다. 평범한 대학생 용돈으로는 적자 폭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돈이 필요했다. 인터넷으로 계좌를 조회하다 부모님이 김씨 이름으로 붓던 적금을 발견했다. 적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농협에서 100만원씩 야금야금 빼냈다. 대출한도액 1500만원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그래도 끊을 수 없었다. 저축은행에서 금리 25%짜리 대학생 신용대출로 600만원을 빌렸다. ‘잭팟’ 한 번이면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을거란 생각에 갇혔다. 번번이 실패. 결국 김씨는 지난해 11월, 무려 30% 이자를 내야하는 일본계 대부업체에서 200만원을 빌렸다. 더러는 땄지만, 대부분 돈을 잃었다. 빚은 2500만원까지 늘었다. 김씨는 눈이 침침해질 때까지 담배를 뻐끔거리면서 불면의 밤을 보냈다. 친구들과 낄낄대면서 마시던 소주도 전혀 생각이 안 났고, 연애도 귀찮게만 느껴졌다. 때론 ‘내가 지금 뭐하는거지?’ 하는 자괴감이 들어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김씨는 “생활은 피폐했고, 항상 비참했다. 밤일을 하니까 인간관계가 단절됐고, 결국 고독함의 극치를 맛봤다”고 회상했다. 더러운 기분을 잊으려고 더욱 토토에 매진했다. 악순환이었다. 매일매일 그만하려고 노력했다. 심지어 사이트 비밀번호는 ‘akwlakr’. 키보드를 한글로 치면 ‘마지막’이란 뜻이다. 굳게 마음먹고 사이트 탈퇴신청을 한 적도 있다. 회원가입된 상태면 자제하기 힘들 것 같아 아이디(ID)를 없애달라고 업체 측에 요청했지만, 계정은 2주가 지나도 안 없어졌다. 끊임없이 유혹메시지가 왔다. 아침마다 후회와 공허함을 느끼면서도 김씨는 저녁이면 어김없이 사이트에 접속했다. 손을 털게 된 계기는 어머니였다. 적금을 담보로 친동생에게 돈을 빌려주려던 어머니는 김씨가 이미 대출을 받아갔단 사실을 알게 됐다. 지난 2월 말의 일이다. 사실이 발각된 뒤 김씨는 일주일간 집을 나가 방황하다가 다시 돌아와 무릎 꿇고 빌며 “주식에 손을 댔다”고 둘러댔다. 빚 2500만원도 있다고 털어놨다. 순간 위기는 모면했지만, 어머니의 눈물은 내내 잊히지 않았다. “엄마 얼굴을 떠올리니까 다 되더라”고 했다. 김씨는 그날 이후 사설토토를 끊었다. 그는 지난 3년을 어떻게 정의할까. “친구들은 다 취업해서 번듯한 회사를 다니는데, 나는 뭐했나 싶어요. 갈 데까지 갔는데 도박의 마지막은 엄청난 외로움만 남더군요. 공허하고 황폐하고 고독하더군요. 해봤자 별거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앞으론 남들보다 두 배로 열심히 살겁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저자와의 차 한잔] ‘나는 아직 엄마가 되려면 멀었다’ 낸 교육컨설턴트 박대진씨

    [저자와의 차 한잔] ‘나는 아직 엄마가 되려면 멀었다’ 낸 교육컨설턴트 박대진씨

    사교육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시대의 엄마들은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사교육에 높은 관심을 보인다. 명문대에 보내려는 욕망 때문이다. 그런데 매년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60만명의 아이들 중 명문대학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아이들은 대략 5% 내외다. 나머지 95%의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교육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박대진씨가 신간 ‘나는 아직 엄마가 되려면 멀었다’(센추리원 펴냄)를 통해 사교육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으면서 엄마들을 위한 방향과 대안을 제시한다. “일반적으로 엄마들에겐 임신과 동시에 아이를 양육하는 데 필요한 자원이 축적됩니다. 출산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와 아이 사이에 맺어지는 무한 신뢰와 애정, 사랑 등이 바로 엄마의 자원이지요. 또 엄마는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이 자원을 소비합니다. 문제는 엄마의 욕망은 무한하지만 그 자원은 유한한 데 있습니다.” 일례로 아이의 건강을 생각해서 균형 잡힌 식단을 제공하고 사랑과 관심으로 보살피는 일은 자원을 축적하는 것이지만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공부를 가르치는 일은 소비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좋은 엄마, 현명한 엄마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원의 양을 제대로 파악해 효율적으로 분배할 줄 안다”면서 “그 작은 차이가 엄마와 아이와의 관계 형성은 물론 신뢰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고 이에 대비하는 일은 좋은 엄마가 되는 길 중 하나라는 것. 사교육의 현실을 잘 이해하는 것도 그런 차원이다. 사교육은 중하위권이 아닌 상위권 학생을 위한다는 것을 간과한 채 아이가 성적이 떨어지면 무조건 학원부터 보내려고 욕심을 내는 엄마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공부 좀 해라’, ‘너 커서 뭐가 되려고 그래?’,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등 과거 부모님한테 들었던 말들을 우리는 그대로 아이들에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엄마나 아이가 답답해지며 하루 12시간씩 공부를 많이 하고 있음에도 만족스럽지 못하고 있지요. 집중력이 점점 떨어지고 산만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부 순위만으로 인생이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순간 불행은 시작되기 때문에 ‘엄마의 욕망을 일단 멈추고 아이를 가졌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강조한다. 아이가 행복하려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아이가 그것을 찾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의 욕심이 아이를 지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아이의 꿈과 나의 꿈을 혼동하는 것은 아닐까. 과연 지금 행동이 진정 아이의 행복을 위한 것일까” 등을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고 덧붙인다. “엄마들은 사실 억울하다고 말하지요. 잘못된 학벌 위주의 사회, 수년 동안 자리를 못 잡고 시행착오만 되풀이하는 대학 입시 제도, 바로 서지 못하는 공교육, 돈버는 데만 혈안이 된 학원들은 놔두고 왜 자신들만 갖고 그러느냐고 항변합니다. 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요.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사교육을 주도하는 사람도 엄마요, 현실적으로 바꿀 수 있는 주체도 엄마뿐이죠. 엄마의 생각만 조금 바뀌어도 아이에겐 충분합니다.” 저자는 프랑스 소르본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홍익대, 한국외국어대, 숙명여대와 교육대학원에서 불문학을 가르쳤다. 영어 학원을 직접 운영하면서 많은 엄마와 아이들이 겪고 있는 교육문제와 답답한 현실을 체감했단다. 저서로는 ‘어느 한국인의 작은 반란’ 등이 있다. 글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사진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 소극장 “객석 70% 채워야 본전”… 정부지원은 별 따기

    소극장 “객석 70% 채워야 본전”… 정부지원은 별 따기

    최근 공연계를 식겁하게 한 일이 있었다. 서울 종로구 동숭동의 뮤지컬센터에서 공연 개막을 사흘 앞두고 공연장 출입이 전면 통제된 것이다. 시공사와 시행사의 갈등이 고조된 탓이다. 이 건물 시공사인 D기업은 건물주 A기업에서 받지 못한 공사비 미지급분 140억여원에 대해 1일부터 유치권을 행사하겠다고 고지했고, 배우와 스태프들의 공연장 출입을 전면 통제했다. 제작사 측이 서울중앙지법에 낸 공연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져 다행히 공연은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결정으로 공연장 사용이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다. 재판부가 “사용방해의 금지를 명하는 기간은 뮤지컬 공연의 종료일까지로 한정한다”고 덧붙였기 때문이다. 지난달 대학로 학전그린소극장이 문을 닫았다. 연출가 김민기가 이끄는 극단 학전의 보금자리로, 17년 동안 5000회가 넘는 공연을 열어 온 대학로의 명소였다. ‘지하철 1호선’을 비롯해 ‘의형제’, ‘빨래’까지 다양한 뮤지컬을 올리면서 소극장 뮤지컬의 산실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래서 단순히 극장이 하나 사라진 것쯤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소극장을 중심으로 생성된 대학로에서 소극장 학전이 사라지는 것은 분명 대학로에 불어닥친 또 하나의 위기 신호로 보는 시각이 많다. 연극계에서는 “1920년대 신연극이 시작된 이후 계속 위기라는 말이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최근 다양한 형식으로 불거진 대학로 공연계를 향한 압박은 “새로운 생존 방안을 찾을 때”라는 것을 보여 준다. 현재 대학로에 있는 중·소극장은 130여개에 이른다. 거의 대부분이 150~200석 규모의 극장이다. 이곳에서 매일 공연이 올라가고 있다. 그런데 순수연극은 많지 않다. 순수연극을 하기에는 극장 대관료가 너무 비싸다. 한국공연예술센터가 운영하는 대학로예술극장이나 아르코예술극장은 하루 대관료가 공연과 연습이 각각 30만원 선이다. 서울연극협회가 지원하는 설치극장 정미소나 실험극장 예술공간서울의 경우는 20만원 안팎이다. 하지만 대부분 소극장은 대관료가 50만~60만원에 이른다. 이것도 150석 규모에, 객석이라고는 계단식 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는 수준의 극장이 이 정도다. 기본 3주 공연을 하려면 대관료만 1000만원을 훌쩍 넘긴다. 평균 티켓 가격을 2만원으로 봤을 때 하루 관객 30명만 들면 대관료를 뽑을 수 있지만, 소극장 작품이라도 공연 제작비가 상당 규모라 객석 점유율을 70%는 넘겨야 손익분기점을 겨우 맞출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들 수 있는 대중적인 작품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코미디나 로맨스, 성인물 비중이 커지는 이유다. “연극 한 편을 올리기 위해 다른 일을 하면서 1년 동안 종잣돈을 마련해야 한다”고 토로한 한 극단 대표는 “순수연극인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사회 의식을 녹여낸 연극을 올려도 관심을 갖는 사람이 드물다. 3주 정도 공연하면서 매일 절반 정도 객석을 채웠는데도 수익은커녕 대관료만 겨우 냈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배우 출연료, 무대비용, 진행비 등 나머지 제작비는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그렇다고 소극장 대관료를 낮추도록 강요할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건물주가 소극장을 자체 운영하는 경우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대부분 소극장은 임대해 들어간 경우다. 최근 10년 사이 대학로 일대 지가가 2배 가까이 상승하면서 임대료는 더 뛰었다. 2년 전만 해도 월 임대료 500만원 정도였던 한 소극장은 계약 갱신 시점을 앞두고 800만원으로 올랐다. 연간 운영비가 1억원을 육박하게 된다. 문 닫는 소극장이 속속 생기는 이유다. 배우 김갑수가 운영하던 배우세상소극장(2006년 개관)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지난해 5월 문을 닫았고, 새 주인을 맞았다. 배우 겸 연출가 고(故) 박광정이 꾸렸던 극단 파크의 거점이었던 정보소극장(1993년 개관)도 지난해 말 운영주가 바뀌었다. 각각 배우 중심의 연극을 내세우고, 순수연극의 전초기지라는 의미 있는 공간이어서 아쉬움이 컸다. 대관료와 임대료의 수직 상승과 맞물려 대학로 공연계는 늘 ‘위기’라는 꼬리표가 달리는 상황이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공연예술이 성장할 수 있도록 대학로 생태계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 정부와 공공단체의 지원은 필수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2009년부터 예술전용공간지원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피부로 와닿지 않는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의 지원을 받은 공연장이 공연단체에 대관료를 받지 않고 공연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간접지원 형식이다. 작품 선정에 공연장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지원 폭도 턱없이 좁다. 공연예술 분야의 창작을 활성화하기 위해 시작한 창작 팩토리 사업의 경우 지난해 연극, 무용, 오페라 등을 통틀어 43개 작품만 선정됐다. 서울연극협회에 소속된 극단이 250여개인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좁은 문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동준 서울연극협회 정책분과이사는 “정부가 2009년에 마련한 지원정책은 순수예술의 지원 여부를 시장논리에 맡기는 것이었다. 자생력이 약한 순수예술계에는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파이 자체를 키울 수 없다면 정부가 제대로 지원해야 한다”면서 “공연장의 의미와 성격, 역사성을 따져서 우선적으로 지원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삼일로예술극장(서울 중구 저동), 산울림소극장(서울 마포구 서교동)처럼 순수공연예술의 상징으로 여겨질 수 있는 곳을 먼저 지원해 꼭 가야 할 공연장으로 인식되도록 하는 식이다. 단체나 연극동인 등 협동조합 형태로 극장을 운영하는 방식도 대안으로 고려할 만하다. 공연예술계의 체질 개선도 필요하다. 김민섭 세실극장 대표는 “꾸준한 연구와 실험을 통해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연극계의 본질이 사라지고 자본과 상업주의에 휩쓸리는 게 현실”이라면서 “대형 뮤지컬이나 대극장 연극, 스타들에만 관심과 후원이 집중되는 현상은 순수예술계가 극복해야 할 가장 고질적인 문제”라고 꼬집었다. “새로운 시대정신과 연극 양식 추구를 기치로 내걸고 시작한 소극장 운동의 초심으로 돌아가 창작 인큐베이팅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부와 공공단체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CEO 칼럼] 해현경장/박상진 ㈜한양 부회장

    [CEO 칼럼] 해현경장/박상진 ㈜한양 부회장

    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로서 요즈음 경제 상황을 보면 무거운 마음이 앞선다. 세계경제가 불황에 빠지면서 국내 기업들도 악전고투에도 불구하고 그에 따른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몸담고 있는 건설업계의 경우 지난 30여년 동안 한 번도 겪지 못한 극심한 침체에서 빠져나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과거에 화려한 이력을 자랑했던 건설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쓰러져 가는 현실 속에서 과연 어떠한 마음 자세로 현실을 직시하고 타파해 나가야 할 것인가. 어쩌면 모든 경영자가 지닌 고민 중 하나일 테지만 가슴이 답답하다. 중국 옛 성현들이 남긴 말에 나오는 ‘해현경장’(解弦更張)이란 고사성어가 생각난다. 해현경장은 한나라 시절 학자인 동중서가 황제인 무제에게 올린 ‘현량대책’ 중 하나로, 초심의 자세를 강조한 말이다. 동중서가 진언하기를 “거문고를 연주할 때 느슨해져 소리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일이 심해지면 반드시 줄을 다시 풀어서 단단하게 고쳐 매어야 제대로 연주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애초의 마음으로 돌아가 개혁해야 하는데도 실행하지 않으면 대현(大賢)이라 하더라도 잘 다스릴 수 없는 것이다”라며 부패한 세습으로 얼룩진 진나라를 그대로 답습하려는 한을 비판한다. 황제에게 전면 개혁을 권고한 동중서의 해현경장에 대한 말의 의미는 느슨한 거문고 줄처럼 초심을 잊어버리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이들에게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뛰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하나의 기업이나 개인이 성장해 주변으로부터 인정받는 최고의 위치까지 올라가고, 커졌을 때 이를 바라보는 우리는 큰 희열을 느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시점이 그 기업에는 가장 위험한 시기이기도 하다. 바로 그 시점에 현실에 안주하고 기득권적인 생각에 사로잡힌다면, 추락의 위기는 더욱 빨리 다가오기 때문이다. 어제의 1등이 오늘의 1등이 아니고, 어제의 꼴찌가 오늘의 꼴찌라 할 수 없다. 불과 몇 달 전의 첨단 기술이나 이슈 메이커가 하루아침에 쓸모없는 것이 돼 버리는 세상이다. 한순간이라도 자만하는 순간, 나태해지는 순간 그 기업의 경쟁력은 순식간에 사라지게 된다. 그렇다면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경영자라면 기업을 처음 일으킬 때를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다. 돈이 없고 기술도 없던 원점의 시절, 그때를 돌이켜 보고 그때 품었던 뜻과 마음을 되새겨야 한다. 모든 것을 처음 시작할 때의 눈으로 보고, 열려 있는 마음으로 다가가자. 작은 일도 쉽게 여기지 말고 중요하게 생각해 보자. 그리고 다시 창업한다는 각오로 뛰어야 한다. 임직원들은 맨 처음 그토록 원하는 취업을 이뤘을 때의 마음을 기억하자. 간절하게 입사하고 싶었던, 목표가 뚜렷했던 그 시절을 생각해 보자. 원하는 곳에서 일하게 된 지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당시 가지고 있던 간절함과 두근거림은 어느 순간 굉장한 안도감으로 바뀌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곳에서 시작을 꿈꾸던 그 마음 그대로 남아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우리는 얼마나 맨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 있나, 오늘 이 자리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스스로 항상 자문해 보고 채찍질해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급변하는 환경과 어려운 경제 상황을 극복하고 더 나은 기업, 더 나은 자신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항상 초심으로 돌아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재정비하고 개선해야 한다. 느슨해진 마음을 다시 다잡고, 초심의 자세로 무장한다면 지금의 수많은 어려움은 불청객이 아닌 또 하나의 기폭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위기는 더 나은 내일을 이루게 해 줄 반가운 기회라는 사실도 가슴에 담아 두자.
  • temple stay ‘참된 나’를 찾는 행복한 여행③전나무 숲길 걷기 월정사

    temple stay ‘참된 나’를 찾는 행복한 여행③전나무 숲길 걷기 월정사

    전나무 숲길 걷기 월정사 전나무길에 마음을 내려놓다 전나무들이 나를 위로해 줄 거라곤 생각치 못했다. 기분 좋은 향기를 뿜어내는 나무들 사이로 도반과 함께 천천히 걸었다. ‘좋다. 참 좋다.’ 맘엔 절로 치유의 싹이 움텄다. 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평창군 진부행 버스를 타고 2시간 30분을 달려가 다시 평창군 진부면에서 한 시간에 한 대씩 다니는 시내버스로 갈아타야 만날 수 있는 오대산 월정사는 다소간의 어려움을 감내하고서라도 찾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오대산 국립공원 안내사무소를 지나 펼쳐지는 전나무 숲길도 월정사의 백미거니와 물이 너무도 맑아서 열목어가 산다는 금강연이 월정사 앞으로 굽이굽이 흐르고 있어 운치를 더한다. 오대산은 신라 자장율사가 지혜의 상징 문수보살이 사는 산으로 믿기 시작한 이래 우리나라에서 불교성지로 이름을 알렸는데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된 적멸보궁 상원사와 이웃하고 있어 불자라면 관심 있게 보았을 국내 대표 사찰이다. 고려시대 초기 10세기경 부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건립된 국보 48호 팔각구층석탑과 <조선왕조실록> 등 귀중한 사서를 보관하던 오대산 사고史庫가 남아 있다. 강원도를 찾은 주말, 깊은 산골은 적막했고 여전히 눈발이 흩날렸다. 오대천은 꽁꽁 얼어붙었다. 월정사 템플스테이 사무국 지월당을 찾으려면 절의 가장 안쪽 끝으로 가야 한다.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의 숙소인 성적당, 제월당, 토월당 등은 매우 깨끗하고 정갈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지난해 배용준이 월정사 템플스테이를 다녀간 뒤 일본인들의 방문도 늘고 있다. 그도 여기 선방에서 묵고 새벽예불을 드리고 울력으로 월정사 9층석탑 옆 대웅전 마당을 쓸었다고 말해 주면 그렇게 좋아한다고 템플스테이 담당자가 귀띔해 주었다. 하룻밤을 머물게 된 성적당은 스님들의 선방을 마주보고 있어 문 여닫는 소리며 발자국소리, 소등시간에 특히나 주의가 필요한 곳이다. 온돌로 훈훈하게 데워진 방바닥이 뜨끈하게 달아올라 금세 노곤해졌다. 성적당 5번방에서 다홍색 생활한복으로 갈아입고 옷가지와 짐을 정리했다. 먼저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은 20시간 동안 행자로 분해 절하는 법, 절 생활 수칙을 배운다. 말과 행동을 줄이고 차수(두 손을 배 앞에 겹쳐 모은 자세)를 하며 경내를 조용히 질서 있게 이동할 것을 다짐받는다. 산사의 저녁은 빨리 찾아왔다. 공양간에선 단기출가자들이 공양게송을 외었다. “마음의 온갖 욕심을 버리고 이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깨달음을 이루고자 공양을 받습니다.” 미국에서 온 크리스티나와 앰버, 캐나다인인 캐서린도 밥을 두 번씩 펐다. 절에만 오면 배가 고픈 게 나만 그런 건 아니었나 보다. 저녁공양 후 모든 식기와 수저는 자신이 씻어 반납해야 한다. 물론 잔반도 없어야 한다. 절에서는 누구도 자신의 일을 대신해 주지 않는다. 지도법사 해인스님은 불안하고 화날 때, 슬플 때일수록 함께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자신을 낮춰 하심下心하라 했다. 새벽 3시30분 도량석을 담당하는 스님이 목탁을 치며 앞마당을 지났다. 가장 큰 법당인 적광전에서 행해지는 예불에 참여한 뒤 서별당에서 108배와 자신이 만든 연꽃등에 촛불을 켜고 명상의 시간을 갖는다. 죽비소리에 맞춰 절을 하다 보면 어느새 108배는 끝나 있다. 이후엔 가부좌를 틀고 10분간 참선하는 시간을 가진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아침공양 후엔 담당 스님과 함께 전나무길을 걸으며 암자를 순례하는데 이 시간이 백미다. 월정사 입구에서 오대산 일주문까지 이어진 1km의 전나무 숲길은 우리나라에서 부안 내소사, 남양주 광릉수목원과 함께 3대 전나무숲길로 손꼽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전나무에서 싸-하게 퍼지는 피톤치드향은 맡는 순간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추운 곳에서 잘 자란다는 전나무는 상처가 났을 때 ‘젖’이 나온다고 하여 젖나무로 부른 데서 비롯됐다 한다. 평균 수령이 80년이 넘는 전나무 1,800그루가 그 위용을 뽐내고 있어 천년의 숲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단기출가학교 입학생들과 스님들은 매일같이 이 길을 걷는데 여름날이면 금강연, 오대천 가에 앉아 명상을 하기도 하고 삼보일배 등 수행을 이어나가기도 한다. 산사를 찾는 데 사실 큰 마음가짐이 필요한 건 아니니 편안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겨 보자. 월정사 전나무 숲에선 누구나가 위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1 월정사 전나무 숲길은 우리나라에서 아름다은 숲길로 손꼽히는 곳이다 2 템플스테이 기간, 경내에서는 두 손을 모으고 조용히, 질서 있게 다녀야 한다 글·사진 강혜원 기자 취재협조 하나투어 02-2127-1566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travie info 월정사는 외국인 템플스테이가 가능한 전국 15개 사찰 가운데 하나로 외국어통역사가 전 일정을 함께하며 영어로 된 설명자료, 해설을 제공한다. 이곳에서는 과학적 명상과 예술을 통한 심리치료, 통찰대화가 결합된 독특한 방식의 ‘Art Your Mind’ 명상 프로그램을 3월15일부터 2박3일간 진행한다(1기). 미술도구를 만져 본 적 없는 그림초보자, 명상수업이 처음인 초심자들도 지도강사의 안내에 따라 쉽게 참여할 수 있다. 참가비 1인당 16만원이며 인터넷으로 신청하면 된다. 주소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63 문의 033-339-6606~7 woljeongsa.org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의정 포커스] 이재진 강남구의회 운영위원장

    [의정 포커스] 이재진 강남구의회 운영위원장

    “주민 현안 문제 해결과 함께 의정 살림도 꼼꼼하게 살피겠습니다.” 이재진(51) 강남구의회 운영위원장은 4일 “구의회의 살림을 챙기는 운영위원장으로서 의원 모두가 생산적이고 전문적인 의정활동에 매진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제6대 후반기 운영위원장에 선출된 뒤 의원들이 관심 분야의 전문기관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비를 현실화했고, 의원 워크숍과 세미나 개최, 지방의회와의 활발한 교류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구의회가 5년째 의정비를 동결해 주민들의 신뢰를 받는 데 기여했으며, ‘강남구의회 20년사’ 발간을 마무리했다. 아울러 주민을 위해 회의실을 개방하고 청소년모의의회를 지원하는 등 열린 의정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공부하는 의원’으로도 유명하다. 2010년에는 강남구가 3년여 동안 초과 납부했던 부가가치세 13억 4000만원을 환급받는 단초를 제공했다. 그는 “사무감사를 통해 부가가치세 초과 납부 문제를 찾아 해당 부서에 법리 검토를 요구했다”면서 “부가가치세법에 대해 공부하고, 관련 전문가에게 자문해 초과 납부 문제를 찾아냈다”고 말했다. 지역 현안 해결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다. 지난해 주민들의 휴식처인 매봉산 도곡근린공원 내 산책로가 폭우 등으로 훼손되자 곧바로 구에 건의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정비했다. 올해는 도곡근린공원 산책로 정비와 녹화사업 추진을 위해 서울시로부터 7억원의 예산을 배정받는 데 역할을 하기도 했다. 특히 주민 의견이 배제된 채 공연장으로 계획됐던 도곡1동 다목적문화센터 건립에 대해 주민 의견을 수렴해 정보문화도서관으로의 설계 변경을 요구하면서 100억원의 예산을 절감했고, 도곡동 골프로데오 거리가 특화거리로 지정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는 “남은 임기 동안에도 초심을 잃지 않고 지역 현안 해결과 주민 복지, 소외 계층을 위한 사안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주민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조현석 기자 hyun68@seoul.co.kr
  • [커버스토리] 대통령 취임식에 담긴 정치학… 취임사 키워드

    [커버스토리] 대통령 취임식에 담긴 정치학… 취임사 키워드

    오는 25일 오전 11시 박근혜 당선인은 대통령 취임식 단상에 선다.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으로서 그 자리에서 밝힐 취임사에는 가까운 미래 대한민국의 모습과 시대정신, 현실적 과제의 해결 방안, 국정철학 등이 오롯이 담긴다. ‘새 시대, 새 희망, 새 바람’이란 취임식 구호처럼 새 정부의 방향과 모습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채 새로운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18대 대통령 취임식의 대주제는 ‘통합과 전진, 국민의 삶 속으로’다. 취임사를 직접 챙기고 있다는 박 당선인은 대선 때부터 ‘국민 대통합’과 ‘국민 행복’ 등을 자주 언급하고 강조했던 만큼 취임사에서도 이를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15분가량 준비된 취임사의 열쇠 말은 역대 대통령들처럼 ‘국민’이 될 전망이다. 서울신문이 역대 대통령의 취임사를 경영 컨설팅업체 리비젼컨설팅에 의뢰해 ‘낱말 구름’(워드 클라우드) 방식으로 분석한 결과 ‘국민’이 가장 많이 언급된 것으로 22일 조사됐다. 184회가 쓰여 압도적이었다. 윤보선·최규하 대통령을 제외한 8명의 역대 대통령들의 취임사에서 조사와 형용사 등을 빼고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의 빈도순에 따라 분류했다. ‘국민’이라는 용어가 국가주의적이라는 이유로 ‘인민’ ‘공민’ 혹은 ‘국가시민’이라는 말로 바꾸자는 일부 학계 또는 시민사회의 주장도 있었지만 대통령에게 있어 ‘국민’이라는 단어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어휘였다. 두 번째로 많이 쓰인 단어가 ‘사회’였는데 89회로 ‘국민’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통령직을 막 시작하는 이들의 초심 속에 ‘국민’의 무게감이 어느 정도인지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그 뒤를 이어 ‘정부’(83회), ‘세계’(68회), ‘시대’(63회), ‘경제’(60회) 등도 자주 언급됐다. 개별 대통령 취임사의 한복판에도 ‘국민’이 있다. 노태우 대통령이 44회로 가장 많이 썼다.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라는 슬로건처럼 ‘시대’(21회)와 ‘사람’(15회)도 자주 사용했다. 김대중 대통령 역시 ‘국민의 정부’를 표방한 만큼 ‘국민’을 38회 언급해 가장 많았다. 또 국제통화기금 위기 상황을 반영하듯 ‘경제’(23회), ‘극복’(11회)도 낱말 구름 중심부에 자리잡았다. 반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취임사에는 ‘국민’이라는 단어와 비슷한 뜻으로 ‘사람’ ‘백성’ 등의 말이 각각 8회, 5회 등장했다. 건국 상황이었던 만큼 ‘정부’(8회)와 ‘책임’(7회)도 강조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13회) ‘민족’(10회)보다 ‘사회’(15회)라는 용어를 더 많이 썼고, 이명박 대통령도 ‘우리’(26회) ‘사회’(21회) 등의 단어를 ‘국민’(15회)보다 더 많이 사용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20회) 못지않게 ‘평화’(18회)와 ‘세계’(13회)를 자주 언급했다. 남북 교류협력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대정신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18대 대통령 취임식 엠블럼으로 ‘대한민국과 한민족의 역사와 전통’을 가장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전통 삼태극 문양’과 ‘역동의 힘, 새로운 힘’을 의미하는 ‘회오리바람’, 그리고 ‘시작, 울림, 국민의 희망’을 상징하는 ‘큰 북’의 이미지가 모티브로 활용됐다. 취임식 엠블럼에 봉황이 사라진 것은 16대 대통령 취임식 때부터다. 대통령 취임식은 국가와 역사 앞에서 그 엄중한 책무를 되새기는 첫걸음이다. 대한민국 5년의 희망과 미래를 함께 꿈꾸는 자리다. 박정희 대통령 가족으로서 다섯 차례나 대통령 취임식 단상에 앉았던 경험을 가진 당선인으로선 역대 어떤 대통령보다 역사의 무게와 시대적 요구를 곱씹을 것이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커버스토리] 시대의 거울이자 국민 향한 다짐…10명의 대통령 초심 지켰을까

    [커버스토리] 시대의 거울이자 국민 향한 다짐…10명의 대통령 초심 지켰을까

    비장하고 숭고했다. 그 자리에 선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눈빛은 한결같이 국가와 민족, 국민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일념으로 이글거렸다. 1948년 대한민국 초대 정부 출범 이후 모든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국민의 기대와 환호속에 국민을 위한 멸사봉공을 다짐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시작 때의 감격은커녕 비극으로 끝을 맺었다. 부하의 총탄에 맞고 숨졌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아니면 쓸쓸하게 해외로 망명했거나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감옥에 갔다. 이틀 뒤면 열한 번째 대통령이 취임한다. 임기를 마친 뒤 더욱 행복해하고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역대 대통령의 취임식과 취임사를 되짚어 본다. 5년 전인 2008년 2월 25일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식장에서 ‘섬기는 정부’를 만들겠다고 호언했다. 취임식 진행 역시 그에 충분히 호응했다. 무대 위는 국민대표와 각 나라 정상급 인사, 재외동포, 해외기업인 등 외빈에게 내주고 무대 아래에 새 정부 장관 후보자, 청와대 수석 내정자들의 자리를 만드는 파격을 선보였다. 지금껏 취임식 중 가장 많은 6만 405명이 참석한 것으로 공식 집계됐다. 대통령의 권위적 모습을 없애기 위해 취임식 엠블럼에도 봉황 문양 대신 ‘태평고’(태평소+북)를 집어넣었다. 장소는 국회의사당 앞 광장이었다.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식이 늘 이렇게 성대하고 화려했던 것은 아니다. 60여년 전에는 모든 게 처음이었다. 준비 일정은 숨가빴고 모습은 투박했다. 입헌민주주의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순정함과 독립국가를 만들려는 치열함이 그 원동력이었다. 1948년 7월 1일 제헌의회는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했고, 17일 헌법을 공포했다. 그리고 20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이승만을 선출했다. 그해 7월 24일 오전 10시 당시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던 옛 조선총독부 건물인 중앙청 광장에서 첫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다. 애국가 제창, 국기에 대한 경례,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취임사 등이 지금에야 뻔한 의례로 여겨지지만 입헌민주국가 건설의 새 역사를 쓰는 참석자들에게는 엄숙하고 가슴 벅찬 걸음걸음이었다. 해방된 대한민국의 첫 번째 대통령의 취임사는 비장했다. 그는 “내 집을 내가 사랑하고 보호하지 않으면 필경은 남이 주인 노릇을 하게 된다”면서 “과거 40년 동안의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국민에게 주문했다. 1960년 4·19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붕괴된 후 민의원, 참의원 합동회의에서 2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윤보선은 8월 13일 국회의사당(현 서울시의회)에서 취임식을 가졌다. 윤 대통령의 취임사는 ‘대통령 취임사’가 아닌 ‘대통령 인사’로 표기됐다. 그는 “4월혁명으로부터 정치적 자유의 유산을 물려받은 제2공화국 정부는 이제 국민이 잘먹고 잘살 수 있는 경제적 자유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이를 위해 “독재가 뿌렸던 반민주성과 부패독소를 조속히 제거하고, 과감한 혁신행정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이른바 ‘셀프 훈장’으로 논란이 됐던 무궁화대훈장 수여식은 이때 처음으로 이뤄졌다. 1961년 5·16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의 취임식은 1963년 12월 17일 오후 2시 중앙청 광장에서 열렸다. 취임식 참석 인원은 3373명이었다. 무궁화대훈장이 대통령과 함께 영부인에게도 수여된 것은 이때부터다. 무궁화대훈장을 목에 건 박 대통령은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조국의 근대화라는 막중한 과업을 앞에 두고 있다”며 ‘민족의 대단합’을 호소했다. 이날 취임식은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맞아 숨지기까지 5대 17년에 걸친 장기집권의 서막이었다. 격동의 현대사 한가운데에 놓여 있던 1980년 9월 1일 열린 11대 전두환 대통령의 취임식은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진행됐다. 그동안 사라졌던 대통령 찬가가 다시 불렸다. 전 대통령은 목에 무궁화대훈장을 걸고 붉은색 어깨띠(대수)까지 두르고 등장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개헌 의사를 천명했고, 1981년 2월 개헌을 한 뒤 본격적인 5공화국 시대를 열었다. 국정지표로서 ‘우리 정치풍토에 맞는 민주주의 토착화’, ‘진정한 복지국가 이룩’, ‘정의로운 사회 구현’, ‘교육혁신과 문화창달로 국민정신 개조’를 내세웠다. 특히 범국민적인 사회정화운동을 전개해 나가겠다고 천명했다. 이듬해 전 대통령은 개정 헌법에 의해 새로 구성된 대통령선거인단의 간접선거에 의해 다시 대통령에 선출됐고 1981년 3월 3일 12대 대통령 취임식을 가졌다. 1987년 6월 항쟁은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13대 노태우 대통령 취임식에서부터 무궁화대훈장을 목에 걸거나 어깨에 두르고 나오는 모습은 없어졌다. 예포 발사와 국립국악원의 국악이 취임식에 처음 등장했다. 장소도 체육관을 벗어나 국회의사당 앞 광장으로 옮겨졌다. 참석자들도 2만 5000명으로 확 늘어났다. 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자신을 ‘저’로 칭했다. 이승만·윤보선·박정희 대통령은 ‘나’로 표현했고, 최규하·전두환 대통령은 ‘본인’으로 자신을 나타냈다. 6월 항쟁으로 국민이 따낸 직선제 개헌에 의해 당선된 만큼 자신을 국민 개개인의 눈높이에 맞추겠다는 표시였다. 노 대통령은 국민이 주인된 국민의 정부임을 강조하고, 고도성장의 열매가 골고루 미치는 정직하고 정의로운 분배를 실현하겠다고 역설했다. 또 이념과 체제가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내용의 북방외교도 강조했다. 14대 김영삼 대통령 취임식에서는 ‘환경’의 가치를 내세웠다. 재생용지로 초청장을 만들었고, 꽃가루 뿌리기와 풍선 날리기를 없앴다. 길가에서 태극기를 흔들어대는 시민동원도 중단했다. 취임식 참가자는 3만 8000명으로 늘었다. 김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문민 민주주의’를 내세우며 그 전까지 군 출신 대통령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그는 핵심 국정 지표로 ‘신한국 창조’를 내걸고 이를 위해 부정부패 척결, 경제 회복, 국가 기강 정립을 내세웠다. 1998년 2월 25일 15대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서부터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꽃동네 주민, 독도경비대원, 마라도 주민, 대학생, 전방 소대장, 청년 노동자 등 국민 대표들이 처음으로 취임식 무대로 올라갔다.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 속에 취임한 김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새 정부는 ‘참된 국민의 정부’임을 선포하고, 대한민국이 모든 분야에서 좌절과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한 뒤 총체적인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특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동전의 양면이고 수레의 양바퀴와 같다면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병행하겠다고 약속했다. 2003년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은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난 지 불과 일주일 뒤에 열려 경건한 분위기였다. 윤도현밴드의 공연을 취소한 것이 그 상징이다. 취임식에서는 운동권가요와 일반가요, 클래식, 국악 등을 적절히 조화시켰다. 4만 8500명이 참석했는데 이 중 절반 가까이인 2만여명이 일반 국민이었다. 각계각층 국민대표 50명을 국회의원, 외빈 등과 나란히 앉을 수 있게 했다. 참여의 가치를 앞세운 노 대통령은 지방분권, 동북아시대의 중심국가로의 도약, 한반도의 평화 증진을 주요 지표로 내세웠다. 임창용 전문기자 sdragon@seoul.co.kr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현오석 “징벌적 배상제·대기업 규제강화” 이동필 “농어촌 석면지붕 국가가 교체를”

    현오석 “징벌적 배상제·대기업 규제강화” 이동필 “농어촌 석면지붕 국가가 교체를”

    경제부총리 후보자인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징벌적 배상제와 대기업 규제 강화 등을 주장했던 것으로 나타나 재계가 긴장하고 있다. 현 후보자를 비롯해 새 정부 장관 후보 중에는 연구기관 소속이 유난히 많다. 이들이 과거 논문 등을 통해 제안한 주장을 살펴보면 앞으로의 정책 방향 등을 가늠해 볼 수 있다. 19일 KDI 등에 따르면 현 후보자는 2011년 7월 ‘공정사회 구현을 위한 경제사회 정책의 기본방향’ 보고서를 통해 대·중소기업의 불공정 거래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 정책이 일회성 캠페인에 머문 것은 교섭력 격차 때문”이라면서 “상생·협력 유도를 위한 메커니즘 설계보다 대기업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한 규제 강화가 효과적”이라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처벌적 성격을 지닌 3배 손해배상제도, 중소기업 사법 구제 제도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판사 수 증원도 제안했다. 그는 “서민들이 값싸고 편하게 사법기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판사 인력을 늘려야 한다”며 “1980년대 초 판사당 본안 사건 수가 500여건에서 지난 30년간 900건 수준으로 급증했다”고 지적했다. 이동필(현 농촌경제연구원장) 농림축산부 장관 후보자는 2010년 6월 ‘농어촌 슬레이트 지붕의 실태와 대책방향’ 보고서를 통해 “농어촌 지역의 석면 슬레이트 지붕은 경제 개발 과정의 부산물인 만큼 교체 비용을 국가가 전액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슬레이트 철거 비용의 30%는 자비 부담이 원칙이다. 슬레이트 주택 주민 중엔 영세민이 많아 교체 작업이 더딘 상태다. 이 후보자는 최근까지도 이 문제를 계속 제기해 청문회를 통과하면 곧바로 실행에 옮길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인 방하남 노동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2008년 5월 건설 현장 근로자 991명을 설문조사해 그 결과를 토대로 ‘일용직 근로자 실업급여제도’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는 “새벽 인력시장 등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한 고용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문조사 결과, 비공식 경로를 통한 고용은 85%나 됐다. 방 후보자는 “복잡한 실업급여 신청 절차도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는 2008년 1월 이명박 정부 출범을 앞두고 ‘해양수산부의 해체가 몰고 올 파장’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는 수산과학원을 민영화하면 안 되는 이유로 ▲인건비·이윤 등 추가 비용 발생 ▲정보생산자 이윤 추구 욕구 및 국민 정보 불신감 고조 ▲민감한 정부의 국가 관리 부재 등을 꼽았다. 하지만 2009년 수산과학원은 결국 일부 민영화됐다. 서영복 행정개혁시민연합 사무총장은 “연구위원 때와 장관 때의 생각이 꼭 같을 수는 없겠지만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면서 “연구기관의 자율성과 독립성도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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