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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이인제의 대권3修/이목희 논설위원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이인제 의원의 정치적 아버지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이다. 작은 키에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을 듯한 다부진 분위기가 닮았다. 이 후보는 20년전 YS에 이끌려 정치에 입문, 사랑을 듬뿍 받았다.YS 후광으로 노동부 장관, 경기도지사를 역임했다.1994년 YS는 니혼게이자이 인터뷰에서 “깜짝 놀랄 세대교체”를 역설하며 당시 46세의 이 후보를 대권주자 반열에 올렸다. 1997년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 패배 후 그가 당을 뛰쳐나가려 하자 YS는 말렸다.YS의 동물적인 감각이 발동했을 것이다. 자식같은 이 후보가 탈당하면 정치장래가 암울해진다는 것을…. 그러나 이 후보는 YS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 오히려 한걸음 더 나가버렸다. 대구·경북표를 의식해 ‘리틀 YS’를 떠나 ‘리틀 박정희’ 이미지 부각에 주력했다. 이후 이 후보에게서 선거승복, 아름다운 패자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측과 손을 잡았음에도 2002년 경선에서 실패했고, 그 역시 불복했다. 무려 8차례나 당적을 옮긴 진기록 보유자가 되었다. 이념좌표도 혼란스러웠다. 가장 보수쪽에 위치한 정당에서 진보개혁을 표방한 정당까지 다양하게 옮겨 다녔다. 한때 장점으로 거론되던 빳빳한 분위기는 아집과 독선으로 비치기 시작했다. 명쾌한 말솜씨와 논리가 구차한 변명으로 들리곤 했다. 이 후보는 연말 대선을 앞두고 범여권 후보단일화의 한 축이 되었다. 이 후보의 정치역정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그의 출마를 상수(常數)로 보는 시각이 많다. 대권 3수(修)의 기회를 쉽게 포기하겠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내년 총선에서 공천을 노리는 민주당 원외위원장들이 그의 등을 강하게 떠밀고 있다. YS도 3수끝에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영 승산이 보이지 않으면 화끈하게 돌아서는 정치감각을 지녔다.3당합당 외에 크게 명분없는 일을 하지 않았다. 이 후보는 민주투쟁을 하던 때의 YS가 가르쳐준 정치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출마 고수나 후보단일화 어느 쪽을 선택하든 뚜렷한 명분을 갖추기 바란다. 대권 3수보다 중요한 것은 이미지 복원이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박근혜 “10년전 정치초심 변치 않았다”

    박근혜 “10년전 정치초심 변치 않았다”

    “이제 선거 시작하면 다 해야 되는 것 아니냐.”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선대위 고문으로 위촉된 박근혜 전 대표의 9일 발언이다. 박 전 대표는 이날 대구 달성군민운동장에서 열린 체육대회에서 선대위 고문으로서의 활동에 대한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선대위 고문 자리에 대한 의미 부여를 경계하는 눈치였다. 박 전 대표는 지난달 2일 달성군민체육관에서 열린 대구·경북 경선 선대위 해단식 이후 한달 만에 지역구를 방문했다. 한달 동안 그는 경선을 함께 치른 캠프 소속 의원, 정책자문단 등과 회동하거나 국회의원으로서 의정 활동에 집중했다. 박 전 대표는 “더욱더 바른 정치로 여러분의 성원과 기대에 보답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번 체육대회가 올해로 10회째가 되는데, 올해는 제가 달성 군민과 함께한 지도 꼭 10년이 되는 해다. 그간 힘들고 어려운 일들도 많았지만, 여러분 덕분에 흔들리지 않고 바른 길을 걸을 수 있었고 여러분 덕분에 제1야당 대표를 비롯해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다.”고 대회 인사말을 하며 이같이 말했다. 박 전 대표는 또 “10년 전과 비교하면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제가 정치를 처음 시작할 때의 초심만큼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면서 “어떻게 정치할 것인가 여러분에게 약속하고 저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그 마음은 변치 않고 간직하고 있다.”고 회상했다. 자주색 재킷과 베이지색 바지 차림으로 오전 일찍 승용차를 타고 대구에 도착한 박 전 대표는 행사장을 돌며 지지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그는 지역군민과 점심을 함께한 뒤 오후 2시쯤 귀경길에 올랐다. 행사에는 곽성문·서상기·유승민·이인기·이해봉 의원 등이 동행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특별성과급에 웃음꽃 핀 한화

    한화그룹이 모처럼 웃었다. 창립 55주년을 앞두고 모든 임직원에게 특별 성과급을 주기로 해서다. 지난해 ‘북핵 악재’로 취소해야 했던 불꽃 잔치도 올해는 예정대로 개최한다. 릴레이 봉사활동에도 시동을 걸었다. 그동안의 풀죽은 모습 대신 “다시 태어난 한화를 주목해달라.”고 당당하게 주문한다. 한화그룹은 9일 창립 55주년을 맞아 임직원들에게 기본급 50%의 특별성과급을 지급한다고 8일 밝혔다.1996년 10대 그룹 가운데 처음으로 연봉제를 도입한 이후 특별 성과급을 지급하기는 처음이다. 그룹측은 “올들어 각 계열사들이 눈에 띄는 경영 실적을 거두고 있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실적 개선에도 불구, 이런저런 악재로 임직원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진 점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에서 요양 중인 김승연 회장은 이날 전략기획실을 통해 발표한 기념사에서 “최근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저와 여러분 모두 크나큰 고초를 겪어야 했지만 이 또한 30년 전의 초심을 일깨워 한화가 더욱 크게 성장하는 전화위복의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한다.”며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올해는 김 회장이 경영에 합류한 지 꼭 30년 되는 해이다. 김 회장은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마부위침(磨斧爲針·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들 정도로 부단히 노력)의 각오로 격랑의 파고를 헤쳐왔지만 아쉬움도 많았다.”며 “과거의 족쇄를 끊어내고 모두가 소속 회사의 대표라는 주인의식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이 같은 의지를 실천하기 위해 그룹은 8일을 ‘한화 자원봉사 데이’로 정하고 연말까지 릴레이 자원봉사 활동을 펼친다. 첫 테이프는 남영선 사장 등 ㈜한화 임직원이 장애우들과 종이비행기를 날리면서 끊었다. 모태기업(화약)의 자존심과 기술력이 집약됐다는 세계불꽃축제는 13일 오후 7시30분 서울 여의도 한강 둔치에서 연다.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아프간 피랍자 석방 그후 한달(하)] “문제점 인식… 재단체제 바꿀것”

    [아프간 피랍자 석방 그후 한달(하)] “문제점 인식… 재단체제 바꿀것”

    “몇 주, 혹은 몇 달 만에 이교도의 종교와 사고를 바꿔놓겠다는 공격적 복음주의 선교에선 경험쌓기 이상의 의미와 성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분당샘물교회 봉사단원들에 대한 비자발급을 도운 책임을 지고 물러난 분당샘물교회 박은조 목사의 후임으로 지난 14일 한민족복지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박종화(62·경동교회 당회장) 목사. 박 목사는 아프간 피랍 석방 한달을 맞아 2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어려운 상황에서 중책을 맡았다.”며 “그러나 최근 드러난 문제점을 분명히 인식해 재단의 체제를 대폭 바꿀 것”이라고 밝혔다.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선교는 중단할 수 없는 당위의 문제입니다. 문제는 조건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때 동기가 불순해지고 큰 문제를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민족복지재단은 재정경제부에 등록된 비정부기구(NGO)로 주로 대북지원 활동을 벌여왔지만 이번 사태 때 봉사단원들의 비자발급을 도왔다는 이유로 좋지 않은 인식을 남겨 안타깝다.”는 박 목사는 “어쨌든 사태에 깊숙이 관여한 만큼 깊은 책임감을 토대로 체질개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달 전 손인웅(덕수교회) 목사를 비롯한 중진 목사 6명과 함께 자기중심적이고 독선적인 한국교회의 선교 봉사활동을 비판, 문제점을 공식 시인한 목회자답게 선교와 관련된 재단활동 방향에서도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병원과 유치원, 카불대학 컴퓨터학과 지원 기술자 등 아프가니스탄의 한국인 봉사자 31명은 모두 철수했습니다. 하지만 아프간에서 순수한 사랑의 봉사를 펼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직·간접적인 활동을 재개할 것입니다. 물론 현지인들과의 철저한 파트너십이 전제입니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Seoul In] 19일 창의혁신동아리 실적 발표

    강북구(구청장 김현풍) 19일 오후 3시 구청 행복대강당에서 ‘2007 창의혁신 학습동아리’를 연다. 학습동아리들이 4개월 동안의 성과와 추진 실적을 발표하고 업무개선을 위한 아이디어를 내는 자리다. 발표 내용은 ▲초심으로 업무처리 ▲도시·건축 불만족 민원 해소 방안 ▲찾아가는 맞춤형 고객서비스 ▲드림랜드 웰빙식품 마을 ▲길을 통한 강북구 알리기 등이다. 사례 발표는 연극, 동영상 등 개성있게 표현된다. 행복혁신추진단 901-6857.
  • [이종현의 나이스 샷] 골프공 선택에 스코어 달렸다

    ‘골프 공을 알고 선택하면 싱글, 모르고 선택하면 초심자’란 말이 있다. 대개 클럽 선택에 있어 매우 까다롭고 신중하나 공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다. 대부분 골퍼는 ‘누가 줘서’,‘가격이 싸서’ 골프공을 쓰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의 핸디, 파워, 감(感)에 따라 선택해 쓰면 분명 더 좋은 스코어를 낼 수 있다. 골프공 구조는 가운데 있는 핵(코어)을 중심으로 반발력과 탄성이 다른 물질을 씌워 만든다. 핵을 포함해 몇 가지로 구성되었느냐에 따라 2피스,3피스,4피스로 구분한다.1피스 공도 있지만 대부분 연습장용이다. 일반적으로 2피스 공은 거리용으로 초심자와 보기플레이어에게 권하는 경우가 많다.3피스,4피스는 거리보다는 스핀량이 많아 싱글골퍼와 프로가 컨트롤을 위해 많이 쓴다. 반드시 초심자에게 2피스, 싱글과 프로에게 3피스가 좋다고 말할 수 없다. 프로의 경우 정확도와 숏게임 능력이 좋아 그린 컨트롤이 용이한 3피스를 쓰는 것이다. 그러나 프로도 자신의 느낌에 따라 2피스를 선호하는 경우도 많다. 반대로 초보자와 보기플레이어 가운데도 부드러운 터치 감을 선호해 3피스를 사용하기도 한다. 따라서 골퍼 스스로 거리, 컨트롤, 감 중에 무엇을 우선으로 하는지에 따라 공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 또 하나, 최근 들어 거리·컨트롤과 함께 컴프레션(Compression)으로 구분해 공을 사용하는 골퍼들이 늘고 있다. 컴프레션이란 볼에 가한 압력에 따라 90(Soft)과 100(Hard),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컴프레션 수치가 낮을수록 공은 더욱 소프트해 져 타구감과 컨트롤이 좋다. 이런 추세에 맞춰 컴프레션 70공이 나왔고 요즘엔 50까지 선보였다. 내년에는 컴프레션 0공까지 출시된다. 컴프레션은 공의 탄성과 거리, 스핀에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컴프레션이 낮아질수록 회전력이 높아지며 탄도 역시 높다. 보통 스윙 스피드가 빠른 프로들은 컴프레션 100공을 쓴다. 하지만 타이거 우즈는 90을 쓰기 때문에 이 역시 자신의 감이 우선 돼야 한다. 골프공의 탄도는 공의 종류, 타격시 헤드스피드, 클럽의 로프트 각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흔히 골퍼들은 공이 높이 뜨면 클럽 탓을 하는 경우가 많다. 클럽의 영향이 크겠지만 공의 영향도 만만치 않다. 따라서 어떤 공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스코어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라운드 전 연습장과 전문가를 찾아 자신에게 맞는 공을 찾아보는 것도 골프를 더 재미있게 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레저신문 편집국장 huskylee1226@yahoo.co.kr
  • [책꽂이]

    ●중국사상사-도론 사상사의 서술방법(갈조광 지음, 이등연·심규연·양충렬 옮김, 일빛 펴냄) 일빛 출판사는 기존의 중국사상사의 연구 패러다임을 크게 바꾸어놓은 5권짜리 ‘중국사상사’를 펴낼 예정. 이 책은 도론(導論)이라는 부제처럼 ‘중국사상사’가 어떻게 쓰여졌는지를 가르쳐주는 길잡이 글이다. 지은이는 베이징대학 출신의 칭화대학 교수.1만 2000원.●최초의 남자(스펜서 웰스 지음, 황수연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1987년 모계로 유전되는 미토콘드리아DNA 분석을 바탕으로 인류 최초의 여성이 약 20만년 전 리카 대륙에 살았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유전자지리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지은이는 부계로만 전달되는 성염색체인 Y염색체에 주목하여 인류 최초의 남성 아담을 추적한다.1만 8000원.●이스탄불-유럽과 아시아를 품은 제국의 도시(존 프릴리 지음, 민승남 옮김, 민음사 펴냄) 그리스 도시국가 비잔티움 시대부터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을 거쳐 현대에 이르는 이 도시의 역사와 생활상을 담았다. 영화 ‘노팅힐’에서 여행전문서점 주인인 휴 그랜트가 줄리아 로버츠에게 추천한 책이다.2만 5000원.●철학지도 그리기(데릭 존스턴 지음, 김영희 옮김, 지식나이테 펴냄) ‘18명의 대표 철학자와의 만남’이라는 부제처럼 그리스의 소크라테스, 플라톤부터 20세기의 사르트르, 데리다에 이르는 철학자를 소개하고 있다. 철학에 입문하겠다고 마음먹은 초심자들에게 철학이란 어떤 것이며, 어떤 철학자가 어떤 사상을 이야기했는지를 간결하고 명쾌하게 보여준다.1만 1000원.●스파크(린 휴어드·존 U. 베이콘 지음, 홍대운·이창근 옮김, 김용관 감수, 랜덤하우스 펴냄) 언론인인 베이콘은 올해 ‘퀴담’으로 한국에 첫선을 보인 캐나다 ‘태양의 서커스’에 들어가 직접 곡예를 배웠다. 그 과정에서 300여명과 인터뷰해 ‘태양의 서커스’의 성공 비결을 찾아냈다.1만원.
  • [NPB] 승엽 30홈런 친다

    이승엽(31·요미우리)이 3년 연속 30홈런을 향해 방망이를 곧추세웠다. 이승엽은 지난 5일 도쿄 메이지 진구구장에서 열린 일본프로야구 야쿠르트전에서 3년 연속 20홈런을 일궈냈다. 부상 속에서 나온 기록이어서 기뻐할 만도 하지만 그럴 틈이 없다. 초심의 자세로 3년 연속 30홈런에 곧바로 도전장을 던진 것. 요미우리는 6일 현재 46경기를 남겼다. 이승엽은 91경기에서 20개를 터뜨려 4.6경기당 1개꼴로 홈런을 기록했다. 산술적으로 30홈런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승엽은 지바 롯데 시절인 2005년 30개, 요미우리로 이적한 지난해 41개를 쏘아올렸다. 특히 이승엽은 후반기에 대포가 살아나 기대를 더한다. 후반기 개막전인 지난달 24일 요코하마전에서 2방을 시작으로 12경기에서 5개를 폭발시켰다.2.4경기당 1개꼴로 전반기보다 2배 가량 홈런이 늘었다. 더욱이 이승엽에게 홈런수는 요미우리 주포라는 자존심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올시즌은 오가사와라 미치히로(25개), 다카하시 요시노부, 아베 신노스케(이상 24개)에 이어 팀 4번째로 20홈런을 달성, 자존심이 상했다. 이승엽은 특유의 오기가 발동한 상태다. 왼손 엄지 통증이 심해 후반기 개막 전에 수술까지 거론됐지만 오히려 맹타를 휘둘러 일본 언론과 코치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주위에서 안된다고 하면 정말 안되는지 오기가 더 생긴다.”고 말할 정도다. 손가락에 고무링을 낀 채 고통 속에서도 투혼을 발휘하는 이승엽이 흠집난 자존심을 회복할지 주목된다.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내가 바로 으뜸 공무원] 강서구청 예산팀 최기웅씨

    “여보세요. 홈지기님이시죠. 여기 ○○군 예산 담당자인데요. 예산결산하고 1원 단위로 남는 것은 어떻게 처리하나요.” 26일 강서구청 기획공보과 예산팀에 근무하는 최기웅(44·행정7급)씨는 하루 3∼4통씩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 걸려오는 문의전화를 받느라 분주하다. 전화가 오는 곳은 광역시부터 외딴 섬의 면사무소까지 다양하다. 대부분 예산이나 회계 실무자들이 아리송하게 느끼는 문제들이다. 업무시간이 끝나면 카페 Q&A난에 올려진 질문에 답글을 단다. 최기웅이란 이름보다 ‘홈지기’란 아이디가 더 유명한 그는 온라인상에서 ‘예산·회계의 달인’으로 통한다. 예산회계실무(cafe.naver.com/gangseogu.cafe)와 ‘사업예산제도 포럼’(cafe.naver.com/ebudget) 등 그가 운영하는 예산관련 인터넷 카페 때문이다. 최씨의 예산관련 경력은 고작 3년. 전문가라 부르기엔 소박하지만 10년 넘은 베테랑들도 막히면 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며 예산과 회계분야 업무를 집요하게 공부한 덕이다.2004년 5월 그는 예산팀으로 발령받은 지 한달 만에 ‘예산회계실무 카페’를 만들었다. “제가 잘 모르니까 서로 묻고 대답하며 공부하자는 뜻이었어요. 그런데 자꾸 관심을 갖다 보니 자연스럽게 많이 보고 배우는 계기가 됐어요.” 처음에는 강서구청 직원들이 전부였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전국 지자체에 근무하는 직원 640명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카페엔 공무원이면 누구나 알아야 할 예산 및 회계에 관한 실무 중심의 자료와 업무처리 요령 등의 노하우가 이어진다. 그의 카페활동은 예산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구청마라톤동호회, 구청공무원자원봉사단, 서울시 예산동아리 바른셈, 지자체공기업포럼 등도 그가 만든 인터넷 커뮤니티. 회원 수가 무려 1600명을 육박한다. 지난해 6월부터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에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매달 두 차례 ‘예산절차와 회계실무’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직접 제작한 예산교재와 실제 사례를 바탕에 둔 강의는 인기 상종가다. 그의 억척스러움은 소문이 파다하다. 일직근무 중 흉기를 들고 슈퍼에 잠입한 강도를 직접 검거해 경찰에 넘긴 일화는 유명하다. 자원봉사담당으로 근무할 때에는 ‘자원봉사 문자메시지(SMS) 번개시스템’을 개발해 2003년 태풍 매미,2004년 폭설피해 지역 등에 모두 21회에 걸쳐 1100명의 자원봉사자를 파견했다. 당시 전국자원봉사센터 가운데 최대규모였다. “입사해 동사무소에서만 근무하다 1996년 청소행정과로 발령이 났는데 능숙하게 일처리를 못하는 제 자신이 얼마나 무능하고 한심하게 느껴졌는지 몰라요. 업무를 따라잡으려고 거금을 주고 노트북을 구입해 집에서 새벽까지 공부했어요. 힘들다고 느낄 땐 초심을 생각하곤 합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32) 유일의 ‘ㅡ’자형 영천 자천교회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32) 유일의 ‘ㅡ’자형 영천 자천교회

    경북 영천시의 보현산 자락에 자리잡은 한옥형태의 자그마한 자천교회(화북면 자천3리·경상북도지방문화재 문화재자료 452호). 남아 있는 유일의 ‘一’자형 교회로 교회건축사에선 빼놓을 수 없는 독특한 예배 공간을 갖추고 있다. 건축의 독특함에 얹어 영남지역 교회사에서도 중요한 교회. 교인이 고작 30명 남짓하지만 1903년 건립된 뒤 이 지역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파했던 신앙 요람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경동노회에 소속되어 한때 주일예배 때 300여명이 예배당에 모일 만큼 교세가 컸던 교회. 하지만 6·25전쟁 직후 인근의 상송교회가 분가한 데 이어 입석교회가 독립했고 1970년대 목회자의 신앙 문제로 화북교회(합동)로 또 한 차례 갈라진 상처를 갖고 있다. 오랜 풍상 속에 교세는 형편없이 사그라졌지만 경북 동부와 동북지방 복음의 씨앗을 싹틔운 신앙 요람으로 끊임없이 회자된다. ■ 신점균 자천교회 담임목사 “성장과 발전도 필요하지만 초심을 살린 신앙열정을 키워나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지난 2001년 자천교회에 부임해 6년째 신자들의 예배와 신앙을 묵묵히 이끌고 있는 신점균(52) 담임목사. 교인 30명의 작은 교회지만, 초기의 변함없는 모습과 믿음을 간직한 신앙 요람을 지키는 것에 매우 만족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지은 지 100년을 넘긴 교회가 400여개 있지만 옛 모습을 온전하게 지키고 있는 교회는 열 손가락을 꼽을 정도입니다. 이 교회들은 대부분 교세가 보잘것없이 쇠락했지요. 하지만 이 교회들이야말로 초기 교회의 신앙을 되살릴 수 있는 중추입니다.” “1907년 한국사회와 교회에 큰 변혁을 몰고왔던 평양대부흥운동의 큰 뜻은 회개”라고 거듭 강조하는 신 목사. 그는 대형화, 물량화로 치닫는 교회들은 선교에 앞서 개인적인 회개를 생각해야 하며 그 첨병역할을 ‘때묻지 않은 초기 교회’들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인들이 적어 교회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소외감을 느끼지만 반면에 자부심이 큽니다. 자천교회 같은 초기의 작은 교회들이 순수한 신앙을 토대로 교류한다면 기독교 문화와 영성 차원에서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100년을 견뎌낸 기와지붕 자천교회의 역사는 미국인 선교사와 서당 훈장의 우연한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주인공은 바로 ‘영남지방의 어머니교회’라는 부산 초량교회를 세운 미국 북장로교 소속 배위량(W.M.Baird) 선교사의 처남인 안의와(J.E.Adams) 목사와, 경주의 작은 마을 선비 출신인 자천교회 설립자 권헌중 장로. 배위량 선교사의 뒤를 이어 영남지역 선교 책임을 맡아 대구에 들어온 안의와 목사는 경북 동부와 동북지역 선교여행에 나섰다고 한다. 같은 시기 경주에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던 서당 훈장 권헌중은 일제의 착취와 압박을 피해 고향을 떠나 대구로 가던 길이었다. 각자 다른 목적으로 길을 떠났던 두 사람이 만난 게 1897년 지금의 영천시와 청송군의 경계지인 노귀재에서다. 서당 훈장의 식견 때문이었을까. 권헌중은 상당히 열린 의식을 갖고 있었던 인물이었던 것 같다. 안의와 목사에게 감화를 받아 대구로의 이사를 포기한 채 이삿짐을 내려놓고 영천 자천리에 초가삼간을 구입해 세운 게 자천교회의 모태이다. 초가 사랑방을 예배당겸 서당으로 써 낮에는 한문을 가르치고 저녁에는 성경을 공부했는데 당시 교인이라야 서당에 다니는 문동들과 권헌중을 따라온 노비와 머슴이 전부였다. 앞장서 상투를 자르고 데리고 있던 노비들의 문서를 불태워 자유의 몸으로 해방시키는 등 개방적이었던 권헌중에게 감화된 신자들이 늘어나면서 교회 건물을 키워야 했다.1903년 기와지붕을 얹은 목조 건물로 다시 세웠는데 지금의 자천교회는 당시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당시 다른 교회와 마찬가지로 주민들의 반대에 부닥쳐 교회를 세우기까지 여간 애를 먹은 게 아니었다. 결국 주민들에게 면사무소를 지어주고서야 교회를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기와지붕을 인 목조 예배당에 들어서면 일(一)자형 공간이 완연하다. 동네 목수들이 천장이며 보, 기둥들을 모두 만들었다고 하는데 울퉁불퉁한 목재들이 아주 투박하게 놓이고 이어졌지만 모양새와는 다르게 아주 탄탄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아치형 공간을 만들어 선교사석과 설교자석을 두고 바로 앞에 강대를 놓았는데 남녀가 따로 앉아 예배를 보도록 신자석 가운데 칸막이를 쳤다. 남녀 신자석을 갈랐던 초기 교회들에서 대부분 휘장으로 공간을 구분한 것과는 달리 아예 나무 칸막이를 만들어놓은 게 특이하다. 물론 남녀 신자들은 서로를 볼 수 없고 설교자만 남녀 신자들을 모두 볼 수 있도록 한 장치이다. 일제시대 철거된 채 예배가 진행되어 오다가 지난 2005년 복원공사를 거쳐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출입문도 왼쪽은 남자, 오른쪽은 여자 신도가 따로따로 드나들도록 각각 냈는데 여자 신도 출입문을 2개나 만든 것은 당시 여 신도들이 더 많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 신자석 뒤쪽에 두 개의 방을 낸 것도 이 교회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 남녀 신자들이 따로따로 모여 예배를 드리고 성경공부도 하도록 방을 낸 것인데 역시 일제시대 때 없어졌던 것을 2005년 발굴조사를 거쳐 복원해 놓았다. 교회 안에서 ‘남녀칠세부동석’의 풍습을 살리면서 신앙을 이어가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지금도 간혹 고령의 신자들은 부부가 함께 와서도 예배를 볼 때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앉는다고 한다. 예배당 지붕을 넓고 평평한 ‘우진각’ 형태로 얹은 것도 특이하다.‘우진각’ 지붕은 전통 한옥의 대문에 흔하지만 독립 건물에 쓰여진 것은 흔치 않다. 건물 네 면에 지붕면을 만들어 귀마루(내림마루)가 용마루에서 만나도록 한 것인데 일(一)자형 예배공간을 넓게 쓰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 같다. 영천지역은 6·25전쟁 중 격전지로 유명한 곳. 모든 집들이 포화를 맞아 폐허가 되다시피했는데 교인들이 평평한 교회 지붕에 올라 흰 횟가루로 십자가를 그리고 ‘CHURCH(교회)’라 표시해 폭격을 피했다고 한다. 당시 영천 화북면 지역에선 이 자천교회와 교회 바로 옆 한옥만 폭격을 받지 않은 채 지금까지 남아 있다. 예배당 건물과 골격은 옛 모습 그대로지만 초기 교회에 있었던 성물은 신자석 뒤쪽 방 한 귀퉁이에 보존해 놓은 작은 강대상이 전부.1930년대 영천군의 ‘세번째 부자’로 통했던 자천우체국장 김영대의 어머니가 헌금한 당시 돈 70원으로 일본에서 ‘야마하’ 대형 풍금을 들여와 찬송 반주에 썼다지만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 알 수 없다. 당시 교인들은 이 풍금에 맞춰 ‘삼천리반도 금수강산’과 ‘만왕의 왕’이란 찬송을 즐겨 불렀다고 한다. 그 때만 하더라도 찬송가가 보급되지 않아 한지에 찬송을 붓글씨로 크게 써 흑판에 걸어놓고 불렀다. 마을에 찬송이 울려 퍼지자 ‘독립운동가들이 부르는 불온한 노래’로 여긴 일경이 금지곡으로 막아 이후 해방 때까지 불리지 못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서울의 한 신자가 헌금을 해 종과 종각을 지어놓았지만 일제의 강출로 모두 철거되었다. 노귀재에 우연히 뿌려진 한 알의 ‘복음씨앗’이 어려움 속에서 신앙의 꽃을 활짝 피워냈던 자천교회.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의 광풍에 휩싸여 교적부며 회의록 등 초기 교회의 모든 자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교회사에선 선 굵은 복음의 요람지로 우뚝 서 있다. 그렇게 이어진 신앙내력 때문일까.1930년대 교회에 풍금을 들여놓게 한 천석꾼 김영대의 아들(2007년 작고)이 2006년 교회 앞 한옥 4개동과 대지를 교회에 증여하는 역사가 생겼다.6·25전쟁 중 교회 앞에 있어 폭격을 피할 수 있었던 바로 그 한옥이다. 교회측으로선 여간 반갑고 은혜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교회 옆 텃밭을 더 매입해 예배당을 중심으로 한 문화재 관람과 수련장, 한옥체험의 장을 묶는 성역화 사업을 차분하게 진행하고 있다. kimus@seoul.co.kr
  • ‘스타PD’ 출신 경인TV 사장 내정 주철환씨

    ‘스타 프로듀서’ 출신인 주철환(52)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가 5일 OBS(One·Our·Open Broadcasting System) 경인TV의 초대 사장에 내정됐다. 경인TV는 이날 사장후보추천위원회와 이사회를 잇따라 열고 사장직에 응모한 후보 11명 가운데 주 교수를 대표이사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주 교수는 “설렘과 두려움이 반반”이라면서 “하지만 이제껏 해왔던 것처럼 진심을 가지고 임하면 마음을 움직이는 CEO가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방송사 PD로 17년, 대학교수로서 7년 반을 보낸 그는 그동안의 여정이 스쳐 지나가는 듯 감회에 젖는 듯했다. “올해가 ‘퀴즈아카데미’를 연출한 지 꼭 20주년입니다. 늘 창의성과 친화력을 중시하던 초심으로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그러다 보면 ‘행복한 사람은 일터가 놀이터’라는 평소의 신념도 실현할 수 있겠지요.” 1983년 MBC에 입사한 그는 예능국 프로듀서로 ‘퀴즈 아카데미’,‘우정의 무대’,‘일요일 일요일 밤에’등 간판 프로그램을 맡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며 맡은 프로그램마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또 교수로 재직하는 동안에도 교육방송(EBS) 라디오에서 ‘주철환이 만나는 세상’이라는 코너를 진행하는 등 언론ㆍ방송계를 오가는 활발한 활동을 벌여 왔다. 주 교수의 대표이사 내정은 한국 민영방송 사상 처음으로 공모 추천에 의한 것.OBS 경인TV 이사회는 주 교수가 시청률을 본궤도에 올려 놓는 것은 물론 주주간 이해 대립과 소송 등의 과제도 풀어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 교수는 주주총회 의결 절차를 남겨 놓고 있지만 11일 OBS 경인TV로 첫 출근한다. 그는 “CEO는 준비된 모험”이라면서 “무엇보다 방송사 사장으로서 새로운 CEO의 모델을 구현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평창, 아쉽지만 잘했다] 평창 ‘올인’ 했던 삼성·두산 침통

    [평창, 아쉽지만 잘했다] 평창 ‘올인’ 했던 삼성·두산 침통

    현대·기아차그룹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가 무산되면서 국민들의 관심이 ‘여수’로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룹 관계자는 5일 “초심으로 돌아가 2012 엑스포(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해 더욱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미스터 엑스포’로 불릴 만큼 여수 엑스포 유치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정몽구 회장도 ‘평창 상황’을 보고받은 뒤 끝까지 만반의 준비를 기울일 것을 지시했다. 최종 결과는 11월말에 나온다. 평창에 ‘올인’했던 삼성과 두산은 이날 하루종일 침통한 표정이었다. 삼성의 한 임원은 “글로벌 지역감정에 당했다.”며 허탈해했다. 유럽표(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가 유럽(러시아)으로 갔다는 얘기다. 또 다른 임원도 “막판에 분위기가 심상찮다는 보고가 (과테말라)현지에서 들어왔지만 모든 면에서 평창이 객관적으로 우세했기 때문에 설마 했다.”면서 “하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유치 성공에 대비해 예약했던 신문의 광고도 그래서 취소하지 않았다. 축하 광고를 제품 광고로 대체했을 따름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기도 한 이건희 삼성 회장은 과테말라 총회에 가기에 앞서 브라질 등 남미를 발로 누비며 한표를 호소했었다. 이 회장은 낯가림이 심한 편이다. 그런데도 평창을 위해 프레젠테이션에 나섰다. 그가 평창에 쏟은 애정과 집념의 깊이를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두산그룹도 허탈해하기는 마찬가지다. 한 임원은 “IOC 위원인 박용성 회장이 올초 사면되기도 전부터 물밑에서 열심히 뛰었는데 (패배 결과가)믿기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한 재계 인사는 “삼성도 실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언뜻 봐서는 1등 삼성의 이미지에 타격 같지만 삼성공화국으로 몰아가는 질시 여론을 막고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 일각에서는 “삼수(三修)에 도전하자.”는 주장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그간 쏟은 8년 준비 세월도 아깝지만 무엇보다 경제효과가 크다는 점을 들어서다. 평창의 성공을 전제로 추산한 생산유발 효과는 11조원, 고용유발 효과는 약 15만명이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개방형 ‘홍보전문가’ 3분의2가 공직 떠나

    참여정부들어 공직에 들어온 ‘홍보전문가’의 3분의 2 가량이 재계약을 하지 않고 공직을 떠날 처지인 것으로 나타났다.2년의 계약기간을 마치고 재계약에 성공한 사람도 있지만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자리를 옮기거나, 부처에서 재계약을 원하지 않아 재계약이 되지 않은 사례가 더 많다. 때문에 현재 상당수의 부처에선 새로운 ‘홍보맨’을 찾고 있다. 민간기업으로 자리를 옮긴 홍보맨들은 “공무원조직이 자율성이 없어서 답답하다.”고 했고, 재계약을 한 홍보맨들은 “초심을 유지할 것”을 당부했다. ●4급-5급 80여명 공직입문 홍보전문가로 공직에 입문한 사람들은 대략 80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대부분 4급 또는 5급으로 2005년 4∼7월 사이에 공직에 발을 들여놨다. 부처 자율로 선발해 관리하다 보니 전체 몇 명이 진입했는지, 재계약 상황은 어떠한지 등을 자세히 알 수 없다. 처음 2년간 계약을 했고, 그후 평가를 해 최대 3년까지 재계약할 수 있도록 제도화했다. 때문에 개방형 홍보맨들은 대부분 재계약 여부가 결정됐거나 계약기간 만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는 스스로 재계약을 포기했거나 부처로부터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아 공직을 떠날 처지에 놓였다. 사회부처의 한 홍보팀장은 “3분의1만 재계약에 성공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다른 곳으로 옮기려는 사람들도 경력관리차원에서 일단 재계약을 하려는 분위기가 있다.”면서 “상당수의 부처에서는 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행정자치부, 법무부, 산업자원부, 국방부, 보건복지부, 국가청렴위원회, 소방방재청 등은 재계약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재정경제부와 건설교통부, 과학기술부, 해양수산부, 중앙인사위 등은 새로운 인물을 찾고 있다. ●민간→공직→민간으로 옮기기도 민간에서 들어온 홍보전문가 가운데 민간기업으로 다시 자리를 옮겼거나 공직 내에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기자 출신으로 재경부 홍보팀장을 맡았던 남대희씨는 삼성으로 자리를 옮겼다. 중앙인사위 홍보팀장을 한 변형섭씨는 주택금융공사 홍보팀장으로 갈아탔다. 교육부 홍보기획팀장을 지낸 이용백씨는 국방홍보원장으로 영전했다. 해양경찰청 홍보팀장을 맡았던 한혜진씨는 외교통상부 정책홍보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시어머니 많고, 자율성이 없어” 사회부처의 홍보팀장을 맡았던 A씨는 “개방형 홍보팀장이라고 해서 창조적이고 자율적인 자리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자율성이 거의 없다.”는 소감을 피력했다. 그는 또 “정부홍보평가에 모든 업무의 기준을 맞추다 보니 환경 자체가 제한적이었다.”면서 “업무가 지겨울 정도로 지루한 면이 많았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홍보업무에 ‘시어머니들’이 너무 많다. 부처가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거의 없다.”면서 “언론보도가 나오면 실무선에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도 위에서 대응을 하라고 한다.”며 답답해했다. 역시 민간 기업으로 이직한 B씨는 “신분 자체가 2년 계약직이다 보니 불안했다.”면서 “2년을 한 뒤에 3년까지 연장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대부분 1년단위로 연장을 하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B씨는 “재계약일이 다가오면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고 일용직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많은 당사자들이 근무시간에 일손을 놓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고 다녔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B씨는 또 “홍보팀장과 홍보관리관 모두를 개방형으로 했으면 승진을 목표로 더 열심히 일했을 것”이라면서 “일반직들은 다 승진을 하는데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은 공직 내의 다른 곳으로 진출할 곳이 없어 답답했다.”고 말했다. 2년간 더 계약을 한 C씨는 그러나 “재계약에 성공한 사람들은 기존의 공무원과 차별성을 찾으려는 부처의 요구에 부응한 사람들로 보면 된다.”면서 “전문가가 공직에 들어온 뒤 기존 공무원과 같이 행동하는 것은 공무원들도 싫어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일부에서는 개방형을 선발하면서 이참에 자기사람을 심으려는 경향도 보였다.”면서 “이런 것은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D씨는 “지난 2년간 조직원과 인화를 위해 비용과 투자를 많이 했으며 투자한 비용과 시간이 아까워 이직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또 “이제는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D씨는 “그동안 조직원과 ‘인화’를 위해 노력을 했지만 공직에 ‘동화’하려고는 하지 않았다.”면서 “공직에 처음 들어올 때의 컬러와 하고자 하는 생각을 유지하는 것이 공직사회나 공직에 들어온 전문가 모두에게 유익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조덕현 윤설영기자 hyo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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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형준 정치비평] ‘잃어버린 10년’ 논쟁의 허와 실

    [김형준 정치비평] ‘잃어버린 10년’ 논쟁의 허와 실

    노무현 대통령은 6·10항쟁 20주년 기념사를 통해 ‘민주세력 무능론’을 정면으로 반박했다.“지나간 기득권 세력들이 수구 언론과 결탁해 끊임없이 개혁을 반대하고, 민주세력 무능론까지 들고 나와 개발독재의 후광을 빌려 정권을 잡으려 하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진보진영 일부에서는 ‘민주세력이 무능한 게 아니라 집권세력이 무능한 게 문제’라는 논리로 ‘집권세력 무능론’을 제기했다. 한국정치학회가 최근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한 국민정치의식조사에서는 ‘집권세력 무능론’이 대세라는 민심이 확인되었다.87년 민주화 이후 20년 동안 4명의 전·현직 대통령의 지도력에 대한 평가에서 10점 만점 기준으로 김대중 대통령(DJ)이 평균 5.36점으로 가장 높았다. 그 다음으로 김영삼 대통령(4.10점), 노무현 대통령(3.97점), 노태우 대통령(3.82점) 순이었다. 국민설득, 외교능력, 위기관리 등 9개 평가분야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단 한 분야에서도 1등을 차지하지 못한 반면, 김대중 대통령은 전 분야에서 수위를 차지했다. 특히 ‘경제발전’ 분야에서 노무현 대통령(3.66점)은 외환위기로 온 국민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던 김영삼 대통령(3.87점)보다 낮은 평가를 받으며 꼴찌였다. 이는 노무현 정부 4년간 우리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한 해도 빠짐없이 세계 평균 GDP 성장률을 밑돌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추론된다. 민주세력을 대변한다는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이처럼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는 것은 통치 능력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여하튼 민심에 투영된 결과로만 보면,DJ 지도력에 대한 높은 평가로 ‘진보 세력이 집권했던 10년은 경기침체와 사회갈등 심화로 잃어버린 10년’이었다는 한나라당 주장은 틀렸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의 지도력에 대한 민심의 부정적인 평가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은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되찾은 10년’이었다.”는 DJ의 주장도 역시 틀렸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노 대통령은 ‘민주세력 무능론’을 반박하면서 대선에 개입할 정당성을 찾는 데 골몰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과는 달리 자신의 지역 기반이 없고, 대선과 총선이 맞물려 있는 구조 속에서 퇴임 이후에도 정치를 계속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보호할 세력을 확대·강화할 필요성을 느꼈고, 이것이 친위세력으로 ‘참여정치평가포럼’을 만들게 하는 요인으로 작동했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노대통령의 납득하기 어려운 비정상적인 행보는 DJ의 훈수정치에 대항해 친노 세력을 결집하려는 의도도 다분히 깔려 있다. 의도야 어쨌든 대통령이 대선에 개입해 북 치고 장구 치는 모습은 본인뿐만 아니라 국가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권력은 오로지 선거를 통해서만 창출된다. 그런데, 선거가 공정하지 못하면 창출된 권력은 정통성(legitimacy)을 잃게 된다. 따라서 공정한 선거를 방해하는 사람은 아무리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고 해도 결국 민주주의 파괴세력으로 낙인찍혀 국민들로부터 버림받게 된다. 더구나 ‘반칙 없는 사회 건설’은 참여정부의 핵심 국정 철학이다. 그런데 임기 말 대통령이 느닷없이 “선거법의 중립 조항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위선적 제도”라고 떠들어대는 것은 ‘선거에서 반칙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지금 노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민주세력 무능론’을 반박하고 소모적인 ‘선거법 위헌 논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국정 철학의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반칙 없는 공정한 선거’를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래야만 ‘집권세력 무능론’을 잠재우고 퇴임 후에 국가 원로로서 당당한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 교수
  • 전유나 양 “짜릿~ 아무래도 난 전투조종사 체질”

    “짜릿했어요. 아무래도 전 전투조종사 체질인가 봐요.” 23일 오전 강원 원주시 공군 제8전투비행단. 생애 첫 전투기 탑승 체험을 마치고 활주로로 내려선 ‘소녀 조종사’ 전유나(14·충북 제천여중 2년) 양은 마치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라도 타고 내린 것처럼 들뜬 표정이었다. 함께 탔던 ‘여성 전투조종사 1호’ 박지원(29) 대위는 “나이에 비해 체력과 담력이 대단하다. 전투조종사의 ‘싹’이 엿보인다.”고 귀띔했다. 유나 양은 이날 당초 소망대로 전투기를 타고 창공을 누비지는 못했다. 대신 이륙 직전까지 활주로를 질주하는 ‘하이 택시’(high-taxi·고속질주)를 경험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유나 양의 체력이 비행시 가해지는 중력을 견뎌 내기엔 아직은 무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나 양은 평소 동경했던 ‘언니 전투조종사’와의 만남만으로도 마냥 행복해 보였다. 이들의 만남은 지난달 유나 양이 만14세 13일의 나이로 초경량비행기 조종자격시험에 합격한 것을 계기로 이뤄졌다. 전투조종사가 되고 싶어하는 유나 양의 포부를 전해들은 공군이 4명의 여성 전투조종사들이 근무하고 있는 8전투비행단으로 유나 양을 초청한 것. 충북 제천에서 직접 조종해 온 경량기 ‘빙고 912호’에 올라 집으로 향하기 전, 유나 양은 “언니들처럼 실력있는 조종사가 되기 위해서는 더 공부하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의지를 다졌다. 박 대위 역시 짧은 만남이 아쉬웠던지 입던 조종복을 선물한 뒤 “비행을 시작하던 당시의 초심을 되짚어 보게 해 줘 고맙다.”며 유나 양을 꼭 안았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사설] 상지대 판결, 비리사학 면죄부 아니다

    정부가 선임한 사립대학의 임시이사들이 일방적으로 정식이사를 선임한 것은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비리연루 등으로 정상운영이 어려운 사학을 정부가 한시적으로 관리할 수 있지만, 학교의 정체성까지 바꿀 권한은 없다는 판단이었다. 재판부내에서도 찬반이 엇갈렸다고 한다. 하지만 다수의견에 따른 최종 판단은 존중해야 한다고 본다. 다만 사학들이 이번 판결을 두고, 마치 비리까지 면죄부를 받은 양 오해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사학의 자율성은 보장하되 비리는 추방해야 한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사학의 정체성과 자주성은 존중해야 한다는 헌법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정부가 선임한 임시이사에 의한 정식이사 체제로의 전환이 사학운영의 자유를 영구적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다. 대법원은 그러나 “이번 판결로 전 이사장 등 옛 이사들이 정식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것은 아니다.”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전 이사장은 정식이사 선임 때 의견 개진 등의 역할이 주어질 뿐이라는 설명이다. 이같은 판단취지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학들은 벌써부터 개정 사학법이 마치 위헌 판결이나 받은 양 해석하고, 사태를 호도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려스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김문기 전 상지대이사장은 판결 직후 “사필귀정이다. 초심으로 돌아가 학교를 되찾겠다.”고 했다. 각종 비리 의혹으로 학교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던 장본인으로서 가벼운 언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진중치 못한 처사가 대학을 또다시 분규의 소용돌이로 몰고가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이번 판결로 상지대와 비슷한 상황의 몇몇 대학도 법적 다툼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부는 이번 판결취지에 맞게, 새로운 이사선임 절차를 준비하길 당부한다.
  • 삼성생명 설계사 8년 연속 보험여왕 비결은

    삼성생명 설계사 8년 연속 보험여왕 비결은

    삼성생명이 17일 연 ‘보험연도상’에서 대구지점 예영숙(49) 설계사가 8년 연속 보험여왕에 올랐다. 모든 설계사가 보험여왕이 되길 꿈꾸지만 한번 달성도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보험업계의 신화로 불러도 좋을 듯하다. 예씨는 지난 한해 동안 신계약 221건, 수입보험료 233억원을 기록, 웬만한 보험영업소 이상의 실적을 이뤘다. 특히 올해는 모든 영업채널을 통합해 연도상을 시상했는데도 예씨가 다시 여왕을 차지했다. 예씨는 수입을 선뜻 밝히지 않았다. 그렇지만 10억원이 넘을 것이라고 주변에서는 추정한다. 대기업 CEO보다 많은 수준이다. ●작년 신계약 221건·수입보험료 233억 보험영업을 시작하기 전 그녀는 글짓기교실을 운영하는 평범한 주부였다. 남편 회사 사택에서 살던 그녀는 주위에서 가장이 불의의 사고를 당해 가정이 어려워지는 것을 여러 번 지켜 봤다. 그러던 중 남편이 든 보험을 확인하러 삼성생명 영업소에 들렀다가 보험이 예기치 못했던 상황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주위에 이를 알려야겠다는 마음에 1993년 보험영업을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보험을 사랑하는 초심(初心)이 그녀의 첫번째 성공 원인이다. 당시 설계사에 대한 인식은 나빴다. 예씨는 “고객들에게 ‘다르다.’는 말을 듣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에 차별화 전략을 구사했다. 연고 판매보다는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했다. 저축성과 연금보험에 주력하던 그녀에게 1999년 종신보험 판매 시작은 위기였다. 오후 7시 이전에 모든 업무를 끝내고 3∼4시간씩 금융 전반을 공부했다. 당시에는 생소했던 ‘재정 컨설턴트’ 개념을 고객들에게 적용하면서 2000년 보험여왕에 올랐다. 고객의 다양한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서 더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에 2년을 더 공부에 매진,‘연속’ 보험여왕의 터전을 닦았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끊임없는 노력이 두번째 성공 원인이다. ●보험사랑·차별화·끊임없는 노력이 성공 원인 일을 하면서는 “내가 고객이라면 어떤 설계사에게 마음을 열까.”를 고민한다. 그래서 고객의 이야기에 묵묵히 귀를 기울인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자세 또한 그녀의 성공을 도왔다. 여기에 글쓰기 경력과 가족애가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그녀는 KBS문학작품 공모전과 진주문학상 시(詩) 분야에서 당선된 적이 있다.“현재 상황과 앞으로 전개될 상황, 그리고 이에 따른 대책을 상상해서 정리해 낼 수 있는 능력이 글쓰기를 통해서 길러진 것 같다.”고 회고한다. ●“가정에 충실해야 진짜 성공한 것” 그녀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가정으로도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선택은 자유로웠지만 가정에는 자존심이 아닌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설계사로서의 성공도 보람되지만 가정에도 충실했다는 것에 제일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예씨의 바람은 고객 2000명에게서 받은 사랑을 후배 FC(설계사)와 소외계층에게 나눠 주는 것이다. 매월 신인 설계사를 위한 교육과정에 꼬박꼬박 참석해 강의를 하며, 소년소녀 가장과 독거노인·장애인 후원에도 열심이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교단창립 100주년 성결교회 다짐

    ‘몸은 나뉘었지만 마음은 하나로´ 교단 창립 100주년을 맞은 성결교회가 이 교회 초기의 신앙 정체성 찾기를 선언하고 나섰다. 대대적인 100주년 기념행사를 통해 초심을 회복하고 교회 본연의 ‘빛과 소금’을 되찾아 대사회적인 운동에 적극 나서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성결교회는 지금은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총회장 이정익 목사)와 예수교대한성결교회(예성·총회장 신화석 목사)) 등 두 개의 교단으로 나뉘었지만 원래는 한 지붕 아래 살았었다.1907년 당시 경성부 종로 염곡(무교동)에서 시작한 ‘동양선교회 복음 전도관’이 그 모태다. 일본 도쿄성서학원을 졸업한 김상준과 정빈이 귀국해 셋방을 얻어 개설한 복음전도관에서 5월30일 창립집회를 연 것이었다. 도쿄성서학원은 미국인 코만과 길버른이 ‘요한 웨슬레’의 성경적 복음신앙을 이어받아 동양 모든 나라에 ‘성결의 복음’을 전한다는 사명 아래 ‘동양선교회’를 조직하고,1901년 일본 도쿄에 설립한 전도자 양성기관. 성결교회의 창립자 김상준과 정빈은 동양선교회의 정신을 한국에 전한 최초의 전도자인 셈이다. 국내 개신교의 거대 교단이 대부분 외국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져 성장한 공통점을 갖는 것과는 달리 성결교회는 이처럼 한국인에 의해 창립돼 복음을 전해온 최초의 자생교단으로 주목받아왔다. 그런 때문인지 이 교회의 신도와 목회자들이 갖고 있는 자부심은 아주 크다. 현재 기성에 소속된 교회는 2740여개, 신자 수는 72만 4000여명에 달한다. 예성은 이에 비해 조금 규모가 작아 1100여개 교회에 50만명의 신도가 적을 두고 있다. 복음전도관에서 성결교회로 이름을 바꾼 것은 1921년. 이후 자생교단의 특성을 내세워 교세를 키워왔으나 1950년대 후반부터 국내 개신교계에 몰아친 폭풍에 휘말려 분열의 운명을 맞게 되었다. 당시 한국의 교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보수와 진보의 갈등에 빠졌으며, 성결교회도 이같은 분위기에서 조선기독교연합회(NCC)와 복음동지회(NAE) 가입을 놓고 의견이 갈려 1961년 두 집살이를 시작했다. 교단이 다른 만큼 100주년 행사도 따로따로 치를 예정. 우선 기념행사를 예성은 20일 오후 경기도 안양 성결대학교 대운동장에서, 기성은 27일 오후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각각 갖는다. 행사는 따로따로 열지만 목표는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 기성은 이날 감사예배와 함께 교회의 사회봉사활동 확대에 초점을 맞춘 100주년 비전과 대사회 사명 선포, 장기기증 및 헌혈 서약서 전달식을 마련한다. 목회자 2000명, 교인 30만명을 목표로 장기기증의 생명나눔운동을 펼치고, 노숙자와 생활보호대상자를 위한 사랑나눔운동도 벌여나간다. 예성의 기념대회에선 전세계 36개국에 파견되어 있는 선교사와 평신도 2만여명이 참석해 감사예배와 100주년 선언문 낭독을 하게 된다. 전국교회에서 서약한 장기기증서 전달, 일본군 위안부와 북한 어린이를 위한 성금 전달도 있을 예정이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사이버 개인정보보호 최선 이완된 조직 다잡기도 시급”

    황중연(53) 신임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 원장은 30일 취임 직후 “초심(初心)으로 일하겠다.”고 밝혔다. 걸어온 30년 공직생활 기간과 공직에 첫발을 디뎠던 초년때가 오버랩됐다는 이유를 달았다. 황 원장은 아직 업무보고를 받지 않았다며 먼저 조직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정통부가 역점 시책으로 잡은) 사이버상의 개인정보보호 등에 보다 더 신경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해킹, 바이러스 방지 등을 위해 관련 정부기관과의 업무협력 강화를 강조했다. 그는 이날 취임사에서도 직원들에게 “지식정보사회가 되면서 개인정보보호가 상당히 중요해졌고, 정보보호도 국민의 요구수준에 맞춰 조정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KISA는 최근 ‘내홍’을 겪었다. 정통부 산하(출연)기관인 KISA는 발족 10년이 된 국내 유일의 민간 정보보호 전문기관. 직원은 270명 정도다. 하지만 예산운영과 관련한 잡음, 전 원장과 관련한 내부 직원의 투서 등으로 조직이 많이 이완돼 있다는 안팎의 지적이다. 그의 조직관리가 주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4만 2000명을 거느린 우정사업본부의 수장으로 있을 때 조직을 추스르면서, 사상 최대 매출과 이익을 달성하는 등 역량을 인정을 받았다. 황 원장에게 주어진 일은 많아 보인다. 사기가 떨어진 조직을 다잡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사이버테러 공격 예방 등의 강화로 24시간 근무체제가 돼 직원들의 일의 양이 늘어났다. 근무 인력의 운용 문제다. 정규직이 많지 않아 조직의 전문성이 지속되지 못하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영세한 보안업체들의 자립기반 마련도 과제이다.500개 정보보호 업체가 있지만 안철수연구소 등 몇몇 기업을 빼면 영세하다. 처음부터 그가 이곳의 적임자란 말이 나온 것도 이들 일과 무관치 않다. 이런 사안들을 생각해서인지 그는 ‘직원이 하나가 되는 직장’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직원들의 말을 많이 듣겠다.”고도 했다. 최근 불거진 ‘조직의 상처’를 빨리 아물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그는 이를 위한 ‘채찍과 당근’을 갖고 있는 듯했다. 그는 이날 “주 1회든, 월 1회든 경영공시를 하도록 준비해 달라.”고 간부들에게 특별히 주문했다.6월부터 이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터놓고’ ‘가슴으로’ 일하자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임기 3년간 그의 ‘초심’이 어떻게 조직에 연결될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황 원장은 1977년 행시 20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체신부(현 정통부) 장관 비서관, 정통부 공보관, 우정국장, 전파방송관리국장, 부산체신청장, 서울체신청장, 우정사업본부장을 역임했다. 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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