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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HO&WHAT] 인류 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 승자는?

    [WHO&WHAT] 인류 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 승자는?

    “당신이 상상하는 최고의 행운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을 사람들에게 던지면 상당수가 ‘로또 당첨’을 얘기할 것이다. 1등 대박을 꿈꾸며 그렸던 수많은 ‘불가능’이 실제 눈앞에서 현실화하는 것. 그걸 보는 기분은 정말이지 어떤 것일까. 여기 로또보다 더 기막힌 행운의 주인공들이 있다. 무슨 일을 하려고 해도 불운이 겹치는 ‘머피의 법칙’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경험한 우연과 행운은 ‘돈’뿐 아니라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명예’까지 함께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역사는 이들을 행운아로 기록하지 않는다. 인류 역사를 바꾼 ‘위대한 발명가’ 또는 ‘과학자’, ‘고고학자’로만 기억할 뿐이다. 이번 주 서울신문 가상 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행운아를 뽑는 오디션을 개최했다. 심사위원은 샐리 앨브라이트가 맡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에게는 유리한 일만 생긴다고 자신하는 그녀,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주인공(멕 라이언 분)이자 ‘샐리의 법칙’을 탄생시킨 룰세터다.  무대에 오른 참가자들은 자기들이 경험한, 그러면서 그들 스스로 믿기 힘들었던 행운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세렌디피티’(우연한 행운)의 대명사가 된 그들의 얘기와 ‘아메리칸 아이돌’의 사이먼 코엘이나 ‘위대한 탄생’의 방시혁에 버금가는 샐리의 독설이 이어졌다. 샐리 : 무려 22년 만에(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는 1989년에 개봉), 그것도 이렇게 화려한 무대에 심사위원으로 초대돼 정말 영광입니다. 도대체 어떤 행운을 경험한 분들이 등장하실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데요, 첫번째 참가자 모시겠습니다.  (객석의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 샐리 : 으악! 할아버지. 이렇게 발가벗고 나오시면 어떡해요. 아르키메데스 : 허허. 설정이 좀 과했나. 나름대로 그 시절 분위기를 살려본 건데…. 난 인류 최초의 스트리킹 기록 보유자. 아니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이자 화학자이자… 뭐 암튼 과학자이자 철학가인 아르키메데스라고 하네만. ‘유레카’(Eureka)라는 신조어도 내가 만들었는데. 샐리 : 아. 역사책인지 과학책인지 들은 것 같긴 하네요. 근데 설마 스트리킹이 할아버지의 행운은 아니겠죠? 아르키메데스 : 뭐, 다들 아는 얘기라고 생각해서 스트리킹을 콘셉트로 잡아봤는데 아가씨 좀 무식한 거 아닌가. 실망인걸. 입 아픈 얘기를 또 하자면, 난 기원전 3세기 시라큐스의 목욕탕에서 인류사를 바꿀 발견을 했지. 친구이자 친척인 히에로 왕이 순금 왕관을 만들도록 세공사한테 시켰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딴 걸 섞었을 것 같았단 말이지. 그래서 나한테 그걸 조사해 달라고 하는데, 무게가 같으니까 알아낼 방법이 없었거든. 나라고 별 수 있나. 머리만 싸매고 있다가 목욕탕에 갔는데, 욕조에 몸을 담그는 만큼 물이 넘치는 걸 발견했지. 그 순간 난 벌거벗은 채로 미친 듯이 집으로 뛰어가면서 ‘유레카’를 외쳤지. 어라. 그게 무슨 발견인지 이해를 못하는 것 같은데. 금, 은, 동은 밀도가 다 다르잖아? 그럼 같은 무게가 됐을 경우에 부피가 달라지거든. 결국 금에 다른 걸 섞으면 무게가 같아도 넘치는 물의 부피는 달라지지. 이게 바로 ‘아르키메데스의 법칙’이라고 불리는 위대한 인류의 성과야. 샐리 : 아. 말씀하시는 동안 뒷조사를 좀 했는데요. 이 오디션의 가장 큰 평가요소가 ‘행운’과 ‘우연’인 건 알고 계시죠? 그런데 할아버지는 모래 위에 기하학 문제를 풀다가 로마 병사가 그걸 밟았다고 화내다가 세상을 뜨셨다면서요? 죄송하지만, ‘가장 어이없는 죽음’ 오디션에 나가시면 더 좋은 성적을 받을 것 같네요. 다음 참가자 나오세요. 단체 참가자군요. 양취위안 : 저희는 중국 시안(西安)에서 온 농부들입니다. 이름은 양씨인데, 별로 중요한 건 아니고. 음…. 샐리 : 오디션 무대가 낯설다는 건 이해합니다. 그래도 뒷 참가자들을 위해서 좀 더 간략하고, 빠르게 설명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양취위안 : 예. 1974년의 일인데요, 우리는 시안의 리산(驪山)에서 우물을 파고 있었습니다. 아주 가뭄이 심한 해였거든요. 알다시피 농사꾼이 제일 무서운 게 가뭄이잖아요. 그래서 수도 베이징(北京)에서 관리까지 와서 우리더러 우물을 파라고 막노동을 시키고 있었어요. 밑으로 4m쯤까지 바닥을 팠는데 갑자기 흙으로 만든 사람이 나오더라고요. 솔직히 벌 받을까봐 무서워서 도망치려고 했는데, 감독관이 계속 파라 그래서 파다보니 사람이 자꾸 나오고 길도 나오고 그랬죠. 샐리 : 그게 뭐였죠? 양취위안 : 그게 진시황제의 병마용이었어요. 한 2000년쯤 됐다고 하대요. 아직도 다 못 팠어요. 어림짐작으로 넓이가 55㎢쯤 된다더라고요. 샐리 : (짝짝짝) 참 대단한 발견들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돈은 좀 버셨나요? 양취위안 : 아뇨. 우리나라가 공산주의 국가이다보니 별다른 보상은 받지 못했어요. 다시 농부로 돌아갔죠. 다만 시안이 관광지로 각광받으면서 후손들이 지금은 덕을 좀 보고 있어요. 샐리 : 아, 안타깝습니다. 돈과 명예를 얻고 끝이 좋아야한다는 오디션의 취지에는 적합하지 않네요. 그리고 사실 고고학적인 발견에서 ‘농부’나 ‘우물파기’는 너무 식상한 감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도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나왔고, 성경해석의 열쇠였던 ‘사해(死海)문서’도 양치기 소년들이 동굴찾기를 하다 발견했거든요. 조심해서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다음 참가자는… 커플, 아니 파트너시군요. 아르노 펜지어스 : 안녕하세요. 전 아르노 펜지어스이고 이 친구는 로버트 윌슨입니다. 저희는 과학자이긴 한데, 사실 하는 일은 거의 안테나 개발자에 가까웠죠. 통신위성을 쏘고 나면 거기에서 나오는 전파를 잡는 전파 안테나를 만들었거든요. 1964년에 미국 뉴저지의 벨연구소에 있을 때 자꾸 잡음이 잡히더라구요. 그래서 안테나 위에 비둘기도 쫓아내고, 새똥도 치우고 별짓을 다했는데도 해결이 안 됐어요. 둘이서 계속 머리를 맞댄 끝에 그게 뭔지 알아냈습니다. 샐리 : 뭐였는데요? 펜지어스 : 그게 바로 150억년 전에 우주대폭발 ‘빅뱅’의 흔적인 우주배경복사였습니다. 안테나를 고치다가 우주 탄생의 증거를 찾은 거죠. 그 덕에 노벨상도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인생이 활짝 핀 거죠. 그 일이 없었으면 아직까지 어느 동네에서 안테나나 만들고 있었을 텐데 말이죠. 샐리 : 흥미롭긴 한데, 개념이 너무 어려워서 솔직히 마음에 와 닿지는 않네요. 거기다 빅뱅은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게 너무 많잖아요. 오늘 참가자 중 유일하게 두 분만 생존해 계신 분들이니, 다음 기회에 다시 오시면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 분 나오세요. 알프레드 노벨 : 난 앞에 나온 친구들이 받은 그 상을 만든 사람이오. 그 상 받는 게 평생의 소원인 사람들이 전 세계에 몇 억명은 될 걸. 샐리 : 아. 폭탄 제조의 1인자시군요. 근데 ‘우연’이나 ‘행운’과 어떤 관계가. 노벨 : 먼저 1800년대 중반에 제일 많이 연구됐던 폭탄이 니트로글리세린이었다는 사실부터 말해야겠군. 근데 이게 너무 불안정해서 활용이 쉽지 않았지. 맨날 터지고 사고 나고. 한번은 내 공장이 폭발하면서 동생도 죽고, 그 충격으로 아버지도 돌아가셨어. 그래서 난 결심했지. 원활한 철도공사를 위해 더 안전하고 강력한 폭탄을 만들겠다고. 그러던 중에 실험실에서 유리조각에 손가락을 베였고, 당시 치료약으로 쓰이던 콜로디온을 발랐어. 근데 그 끈적끈적한 콜로디온을 활용하면 폭약 제조가 좀 쉬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퍼뜩 들더라고. 그 결과 ‘폭발성 젤라틴’을 만들어냈지. 또 니트로글리세린 용기가 부식돼 새어나와 흙에 스며든 것을 보고는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었지. 샐리 : 둘 다 우연이자 행운이다, 이 얘기이신 것 같은데요. 살아계실 땐 항상 발명품들이 ‘우연’이라는 것을 부인하셨죠? 오디션 욕심은 알겠지만, 좀 모순이네요. 노벨상을 만들어서 인류 발전에 이바지하신 점은 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평생 고독하게 사셨고 수학자를 싫어해서 노벨상에 수학을 빼셨다는 얘기도 있던데. 노벨 : (묵묵부답) 샐리 : 암튼 만나봬서 영광이었습니다. 다음 분 나오시죠. 찰스 굿이어 : 전 미국의 발명가이자 사업가인 굿이어입니다. 저 때만 해도 고무는 계륵이었어요. 매력적인 재료이기는 한데 모양 변형이 쉽지 않았고 온도가 높아지면 굳어버리거나 부서져 버렸죠. 전 평생 이 일에 매달리면서 여러가지 물질을 섞어봤어요. 그러다가. 샐리 : 잠깐만요, 굿이어씨. 혹시 어디에 실수로 뭘 떨어뜨렸는데 그게 고무를 유용하게 만들어줬다. 뭐 그런 류의 얘기는 아니겠죠? 그러면 좀 전에 노벨씨 얘기와 너무 비슷해서 실망할 것 같은데요. 굿이어 : 그… 그게, 실은 유황을 실수로 고무랑 섞었는데, 녹지 않는 성질을 발견해서. 샐리 : 아. 됐습니다. 별로 창의적인 얘기는 아니군요. 여기까지만 듣겠습니다. (들어가는 굿이어 뒤에 대고) 근데 방금 그 굿이어씨 이름이 ‘굿이어 타이어’의 굿이어랑 같은 건가요? 흠~ 자 그럼 마지막 참가자 나오세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왜 내가 여기 나왔는지 잘 모르겠데. 난 평생 철저한 철학 속에서 살아왔다고 자부하는데, 이런 내가 우연을 논하는 자리에 서다니 영문을 알 수 없군. 샐리 : 아. 특별초대 손님 괴테님이시군요. 물론 파우스트 같은 문학적 성과나 철학적 성과를 우연이나 행운으로 폄훼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저희가 오늘 모신 것은 비교해부학의 선구자로서인데요. 괴테 : 아. 그거? 그렇지, 거기엔 좀 우연이 있지. 난 포유류와 사람이 같은 계보라는 증거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과학자이기도 했거든. 당시 학자들은 포유류 위턱의 앞부분에 있는 ‘간악골’이 사람에겐 없다는 이유로 포유류와 사람이 다르다고 주장했어. 그런데 내가 베니스의 한 공동묘지에서 태아의 유골을 보고, 사람의 간악골은 자라면서 점차 유착이 돼서 사라진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혀냈지. 뭐 내가 직접 해부를 하지 않고도 찾아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인류에겐 큰 축복이자 행운이지. 샐리 : 잠깐만요. 그 공동묘지에서 간악골을 찾아낸 게 사실은 괴테 당신이 아니라 하인이고, 당신은 그 공을 빼았았다는 얘기가 있던데요. 전후 사정을 설명하기가 애매하니까, ‘우연’으로 포장한 거 아닌가요? 괴테 : 아니 아니, 그럴 리가 있나. 다 나를 음해하는 주변 사람들과 말 옮기기 좋아하는 후세인들이 만들어낸 얘기라고. 난 불쾌해서 더 이상 이 자리에 못 있겠구만. 들어가겠네. 샐리 : 자~ 그럼 오늘 오디션을 정리하도록 하죠. 시대와 분야에 상관없이 내로라하는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아봤지만, 그 누구도 온전한 ‘행운’과 ‘우연’만으로 역사를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됐네요. 특히 많은 사람들이 우연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실제로는 그들의 노력에 의한 필연적 산물이라는 것도 확인됐습니다. 우승자는 없다고 해야겠죠?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우연과 행운의 과학적 발견 이야기(로이스톤 로버츠·안병태/도서出판국제) 역사를 다시 쓴 10가지 발견(패트릭 헌트·김형근/오늘의책) 우연한 발견을 위대한 발명으로(최달수/김영사) 우연의 법칙(슈테판 클라인·유영미/웅진지식하우스) 세계사를 바꾼 위대한 발명들(헬레인 베커·하정임/다른) 세계사를 뒤흔든 16가지 발견(구드룬 슈리·김미선/다산초당)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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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남 “예외 없는 청렴” 부구청장도 평가

    강남 “예외 없는 청렴” 부구청장도 평가

    강남구는 전국 최초로 부구청장을 ‘공직자 청렴도 평가’ 대상에 포함시킨 데 이어 지난 1일 국장급 이상 전 간부가 청렴 서약을 하는 등 ‘청렴 최우수 구 만들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4일 밝혔다. 이는 신연희 구청장이 지난해 취임 초부터 강조해 온 청렴 최우수 도시 만들기를 조속히 정착시키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구는 지난 1일 민선 5기 출범 1주년 기념식을 대신해 ‘청렴 서약식’으로 각오를 다졌다. 대치동 강남구민회관에서 열린 행사에서 국장급 이상 전 간부는 ‘정명불체’(正明不滯·정직하고 투명하면 일에 막힘이 없다)의 교훈을 솔선수범하기 위해 청렴 실천서에 서약했다. 이날 국장급 이상 간부들은 전 직원 앞에서 ‘어떤 경우에도 금품·사례·향응을 받지 않으며, 주변으로부터 청렴성을 의심받을 만한 일체의 행동을 하지 않겠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격언을 항상 명심하겠다.’ ‘정명불체의 교훈을 좌우명으로 삼겠다.’ ‘구민으로부터 사랑과 박수를 받는 공직사회를 만들겠다.’는 내용의 청렴 서약서를 낭독한 뒤 ‘57만 구민과 직원 앞에서 공직자로서 완벽한 청렴 실천을 엄숙히 약속한다.’는 내용에 서명했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서울시 시정개발연구원장을 역임한 제타룡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장이 참석해 특강을 했다. 그는 ‘세계 변화와 도시 창조 관리’를 주제로 한 특강에서 주민들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는 공직자상 확립과 공무원들이 가져야 할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사고에 대해 강의했다. 앞서 구는 지난달 초 5급 이상 전 간부를 대상으로 개인별 ‘공직자 청렴도 평가’를 실시하면서 전국 최초로 부구청장의 청렴도 평가도 포함시켰다. 청렴도를 직무 수행 과정의 청렴성, 사회적 책임 및 솔선수범, 준법성 등 3개 분야 23개 항목으로 나눠 평가했다. 세금 체납, 교통법규 위반, 징계, 재산세 불성실 신고 등 법규 준수 여부도 점수화해 반영했다. 구는 특히 내외부 평가단을 구성하면서 평가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전문가와 인허가, 계약 업무 관련자들을 외부 평가단에 포함시켰다. 신 구청장은 “앞으로 남은 3년도 초심을 잃지 않고 나갈 수 있도록 기념식을 대신해 청렴 서약식을 준비했다.”면서 “우리 구가 10년, 아니 20년 뒤에도 서울의 중심이자 대한민국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직무 청렴성을 높여 신뢰받는 공직자상을 확립하겠다.”고 강조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김무열 “5000원도 비싸, 무료공연 선뵈고 싶어”

    김무열 “5000원도 비싸, 무료공연 선뵈고 싶어”

    김무열(29). 그를 지칭할 때는 뮤지컬 배우, 영화배우, 탤런트, 연극배우 등 여러 호칭이 사용된다. 장르야 어떻든, 그는 배우다. 특히 뮤지컬계에선 존재감이 남다르다. 우선 키 183㎝에 몸무게 71㎏의 ‘모델 몸매’다. 이미지도 요즘 대세인 ‘차도남’(차가운 도시남자)이다. 하지만 그의 공연을 본 사람이라면 멋진 외향보다 무대 위에서 쏟아내는 열정과 성실함에 더 반한다. 조직도 있다. 이름하여 ‘반상회’. 김무열이 신인이던 2006년, 동료 배우 김대명, 한지상과 함께 결성한 극단이다. 초심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해마다 사비를 털어 소극장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2007년 ‘강택구’를 시작으로 ‘물고기남자’(2008), ‘동물원이야기’(2009)를 선보였다. 올해는 일제 말기 소록도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그린 ‘한 놈, 두 놈 삑구타고’(이하 ‘한 놈’)를 선보인다. 1일부터 10일까지 서울 대학로 더씨어터에서다. 공연 준비로 분주한 그를 지난 28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티켓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10분 만에 전회·전석 매진됐다고 들었다. 가격이 착한(5000원) 덕분도 있겠지만 김무열 팬클럽이 조직적으로 움직인 것 아닌가. -하하. ‘반상회’의 취지에 많은 분들이 공감한 때문 아닐까. 티켓 추가 판매 요청이 많아 매회 20석씩 보조석을 놓기로 했다. 반상회 공연을 꾸준히 사랑해 주시는 관객들을 위해 예년보다 좀 더 크고 좌석이 편한 극장을 골랐다. 반상회가 이제 5년 됐는데 10년은 넘겨야 더 의미 있는 모임이 될 것 같다. 10년, 20년, 늘 하던 대로 지킬 것은 지켜 나가며 (관객에게) 보답하고 싶다. →작년에는 왜 건너 뛰었는가.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너무 많아서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절친했던 (박)용하 형도 세상을 떠났다(김무열은 박용하가 생전에 세웠던 기획사의 소속 배우였다. 고인과 영화 ‘작전’에도 함께 출연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좀 쉬고 싶었다. 반상회에 불참했는데 참고 기다려준 두 멤버와 관객들에게 빚을 졌다. ●“초심 잊지말자” 동료 김대명·한지상과 ‘반상회’ 결성 →‘한 놈’ 원작은 이만희 작가의 ‘호적등본’이다. 원작을 읽는 순간 올해는 무조건 이 작품이다, 했다는데. -작품이 갖고 있는 힘이 너무 좋았다. 세 명이 각각 10여편씩 읽고 검토했지만 이 작품으로 단박에 의기투합했다. 대본 연습 때 감정을 빼고 읽었는데도 울었다. (공연을)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크다. ●“워낙 힘 있는 원작… 대본연습 때 감정빼고 읽어도 눈물이” →등장인물, 공교롭게 세 남자다. -우연의 일치다(웃음). 세 남자 모두 한센병 환자다. 한 남자는 소록도에서 탈출하려고 갖은 애를 쓰고, 또 한 남자는 현실을 담담하게 관조하고, 또 다른 한 남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죽어가는 이야기다. →극 중 다른 두 남자(김대명, 윤석원)와의 호흡은 어떤가. -군대 간 한지상씨 대신에 윤석원씨가 들어왔는데 워낙 친하다 보니 서로의 단점을 거리낌없이 지적한다. 그러다가 싸운 적도 많다. 어제도 밤 늦게까지 연습하다가 버스가 끊겨 방을 잡아 같이 잤는데 서로의 연기에 간섭하다가 또 싸웠다. 그래도 너무 좋다. 하하. →가장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매일매일이 에피소드다. 요즘은 (연습장 근처의) 낙산공원에 나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연기 연습을 하고 있다. 은근히 재밌다. →연극,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 만능 엔터테이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장르는. -장르보다는 반상회 공연에 가장 마음이 많이 간다. 욕심이 넘쳐 점점 바라는 게 많아져 큰일이다.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넘어가는 과도기 같기도 하고 사춘기 같은 느낌도 있다. →관람료가 파격적이다. -좀 더 많은 분들이 부담 없이 보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책정했다.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시간적 비용을 생각하면 5000원도 비쌀 수 있다. 공연이 더 잘 돼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무료공연을 하고 싶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유덕열 동대문구청장 “집무실에 민원실 설치… 현장소리 경청”

    유덕열 동대문구청장 “집무실에 민원실 설치… 현장소리 경청”

    민선으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면서도 사인여천(事人如天·사람 섬기기를 하늘처럼 하라)을 좌우명으로 구민 입장에서 열린 구정을 펼치려고 애썼다. 매주 목요일 구민과의 대화를 통해 구민들을 만나고, 민선 2기 재임 때부터 집무실에 설치된 직소민원실을 통해 일상적으로 찾아오는 현장의 소리를 구정에 담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친절과 청렴을 바탕으로 한 눈높이 행정을 펼쳐 구민의 꿈을 실현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남은 임기에도 취임 당시 새긴 초심을 잃지 않고 미래를 열어가는 으뜸교육 도시,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는 복지행정의 실현을 위해 뛸 생각이다.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몸을 낮추고 균형잡힌 구정을 펼친 구청장으로 기억되고 싶다.
  • [사설] 포퓰리즘 공방 갈등 대화로 풀어라

    정치권과 재계가 날 선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서로를 향해 독설을 쏟아내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져 가는 형국이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재계를 대표해 연일 쓴소리를 내뱉으며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지난주 금요일 열린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과 경제5단체장 첫 간담회에서도 정치권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드높였다. 29일로 예정된 대·중소기업 상생 공청회의 출석도 사실상 거부했으며 다른 경제단체장들도 모두 불참할 것이라고 한다. 재계는 초과이익공유제, 감세 철회와 ‘반값 등록금’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다. 특히 감세 철회는 국가 경쟁력보다는 내년 선거를 의식한 불순한 의도에서 추진되고 있으며 ‘대기업 때리기’로 민심을 얻으려는 정치권의 의도적인 행동은 재계는 물론 국가경제에도 손상을 입힐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앞세웠던 현 정부가 초심을 잃고 경제단체장들의 국회 출석 요구 등 정치권의 무리한 요구에 침묵하고 있다며 더 이상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사사건건 각을 세웠던 여야는 재계의 반발에 대해서는 한목소리로 공세를 높이고 있다. 정치권의 친서민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 근거에 대해 분명한 해명이 필요하다며 공청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국정조사에 불러내겠다고 재계를 압박하고 있다. 그동안 감세와 고환율·저금리정책의 혜택을 누려 온 재계가 민생을 보듬으려는 정치권의 대안 제시를 포퓰리즘으로 매도하는 것은 후안무치라는 것이다. 표를 좇는 정치권과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재계의 갈등은 어쩌면 당연하다. 자신의 입장에서 본다면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하지만 서민들을 위한다면서 정작 서민들은 구경꾼으로 전락한 이러한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선심성 정책이 남발돼서도 안 되겠지만 정치권의 주장을 무작정 폄하하는 것도 잘못된 접근법이다. 지금은 감정을 가라앉히고 스스로의 허물을 먼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면 해법은 쉽게 도출할 수 있다. 정치권과 재계, 양측의 자제를 촉구한다.
  • 정·재계 맞붙었다

    정·재계 맞붙었다

    정치권과 재계가 맞붙었다. 양쪽은 법인세 인하와 반값 등록금 등의 쟁점을 둘러싸고 연일 ‘십자포화’를 주고 받고 있다. 내년 선거를 의식해 친서민 정책을 강화하는 정치권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경제 분야의 효율성 향상을 요구하는 재계는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온데 간데 없이 갈수록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양상이다. ■ 財의 반발 “정책결정 원칙 의심스럽다” “중요한 정책결정에서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순수하고 분명한 원칙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의문이다.” 최근 친서민 행보를 강화하고 있는 정치권에 대한 재계의 반발 강도가 거세지고 있다. 특히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GS그룹 회장)은 재계를 대표해 연일 쓴소리를 내뱉으며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허 회장은 2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과 경제 5단체장의 첫 상견례 자리에서 정치권을 겨냥한 발언을 이어 갔다. 허 회장은 지난 21일 정치권의 감세 철회와 반값 등록금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허 회장은 “경쟁국은 상법과 공정거래법 등을 경제 원리에 맞게 신중하게 운용하고 있다.”면서 “반면 우리 내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정치권의 정책 결정에 대해서는 “순수하고 분명한 원칙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법인세 감세 철회 등은 국가 경쟁력 향상이 아닌 선거를 의식한 불순한 의도에서 추진되고 있다는 재계의 시각을 에둘러 대변한 셈이다. 이에 앞서 23일에는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감세는 세계적인 추세로 투자 촉진과 자본의 해외 유출을 방지한다.”면서 “학교 무상급식 실시와 대학 반값 등록금은 선진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허 회장은 29일 열리는 대·중소기업 상생 공청회에 대한 정치권의 출석 요구도 사실상 거부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공청회는 전문가들과 경제 정책 등을 심도 있게 논의하는 자리인 만큼, 허 회장이 직접 참석하는 것보다 내부 전문가가 참석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공청회 출석 요구를 받은 다른 경제단체장들도 다들 불참하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허 회장은 지난 2월 전경련 회장에 취임한 직후 초과이익 공유제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 말을 아껴 왔지만 최근 소신 있는 발언 횟수가 부쩍 늘었다. 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의 회장으로 재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 등에는 할 말을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기업 때리기를 통해 민심을 얻으려 하는 정치권에 대한 재계의 반발’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MB정권 후반기의 최대 현안은 재벌개혁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현 정부가 최근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초심을 잃었다는 게 전반적인 시각”이라면서 “선거가 다가올수록 기업 논리와 배치되는 정책이 쏟아질 수밖에 없는 만큼,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법인세와 반값 등록금 등에 대해 정계와는 의견이 엇갈리지만 청와대와는 다르지 않다는 면에서 허 회장의 발언에 더욱 힘이 실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政의 역공 “먼저 자성한 뒤에 얘기하라” 정치권은 24일 재계의 반발에 맞서 강경 대응에 나섰다. 재벌총수의 국회 출석 문제, 포퓰리즘 논란 등에 대해 제도권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재계의 반발을 꺾어 놓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당장 국회 지식경제위는 오는 29일 예정된 대·중소기업 상생을 위한 공청회에 포퓰리즘 논란의 중심에 있는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을 비롯해 이희범 한국경영자총연합회장,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 주요 경제단체장을 모두 출석시키기로 했다. 지경위 소속 의원들은 “‘재벌 길들이기’는 아니다.”라면서도 경제단체장들이 불출석할 경우 출석의무가 부과되는 청문회로 격상하고, 이마저도 미흡하다면 국정조사와 국정감사 증인 출석을 종용할 태세다. 김영환 국회 지경위원장은 24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대기업의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MRO) 시장독식, 납품단가 후려치기, 하도급 불공정거래 등을 해소하는 것은 대·중소기업 상생의 핵심”이라면서 “정부조차 대기업 권력에 손을 못 대기 때문에 국회가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허 회장을 직접 겨냥해 “대기업과 재벌그룹들이 정치권에 바른 소리, 쓴소리, 요구할 것은 말하되 스스로 자성하고, 성찰하고, 돌아볼 때가 됐다.”면서 “자기 먼저 돌아보고 정치권에 대해서도 할 얘기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정세균 최고위원도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미래 경쟁력 유지를 위해 경제단체들과 기업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성찰해줄 것을 촉구한다.”며 재계를 압박했다. 한진중공업 노사갈등 사태와 관련, 조남호 회장의 청문회 증인 출석을 요구하고 있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김성순 위원장 역시 “조 회장의 진술을 꼭 들어야 한다. 계속 불출석한다면 국회법에 따라 고발조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계의 반발에 대한 역공에는 여야가 따로 없었다. 한나라당 안형환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재계가 정책을 판단하고 지적할 때는 전반적인 국민 여론과 현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을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 회장의 공청회 출석을 제안했던 정태근 의원도 “허 회장이 앞서 밝힌 대로 고용 촉진을 위해 감세가 필요하다면 왜 그런지, 대기업이 중소기업 상생을 위해 노력해 왔다면 어떤 부분들인지 공청회에서 설명하면 될 것”이라면서 “왜 출석을 꺼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핵심 관계자는 “관련 사안들은 각 상임위 차원에서 대응해갈 것”이라면서도 “다만 정치권의 친서민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 근거에 대해선 분명한 해명이 필요하다.”고 거들었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최고의 사랑’ 속 ‘구애정 패션’ 만든 박승건의 패션리더 제안

    ‘최고의 사랑’ 속 ‘구애정 패션’ 만든 박승건의 패션리더 제안

     “동대문시장에 갔더니 온통 ‘푸쉬버튼’을 베낀 제품에 ‘구애정 사진’으로 도배돼 있더군요. 처음에는 가슴이 뛰고 어쩔 줄 모르겠더니 나중에는 허탈해서 웃음만 나왔어요.”  화제 속에 23일 막을 내리는 드라마 ‘최고의 사랑’에서 일명 ‘구애정 패션’으로 뜬 ‘푸쉬버튼’ 디자이너 박승건(36)씨. 하트 모양 주머니가 달린 셔츠, 빨간 레이스 장식이 붙은 흰색 긴 원피스, 서스펜더(멜빵)를 뗐다 붙일 수 있는 바지 등 귀엽고 실용적이면서도 감각적인 ‘푸쉬버튼’의 옷은 ‘구질구질 비호감 연예인 구애정’을 연기한 공효진과 만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따라 입으면 아류 못 벗어나”  22일 서울 한남동 작업실에서 만난 박씨는 버버리·클로에 등 해외 명품 스타일에 꽂혔던 동대문이 자신의 카피 작품으로 뒤덮인 상황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그가 2003년 선보인 ‘푸쉬버튼’은 외국에서 먼저 인정받아 해외 판매량이 더 많은 디자이너 브랜드다. 2007년 프랑스에서 열린 전시회 ‘후즈 넥스트’ 참여로 시작된 해외 진출은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등 유럽은 물론 사우디아라비아, 덴마크에서도 ‘푸쉬버튼’ 옷을 만나볼 수 있을 정도로 성공했다.  특히 미국 뉴욕의 신진 디자이너 편집매장인 ‘픽시마켓’은 나중에 옷을 받고 입금부터 먼저 할 정도로 그의 옷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지금까지는 해외 판매량이 국내 판매량을 앞섰지만 ‘구애정 패션’의 인기몰이로 그 순서가 역전될 전망이다.  ‘최고의 사랑’이 방송되기 전인 지난해 11월에는 홈쇼핑에서 방송 9분 만에 1500여벌의 옷이 모두 매진돼 일찌감치 ‘대박’을 예고하기도 했다. 마돈나의 노래에서 영감을 얻은 ‘푸쉬버튼’이란 이름은 단추를 누르고 우리가 만든 패션의 세계로 들어오란 뜻이다.  박씨는 공효진처럼 ‘스타일리시하게’ 입고 싶어 하는 여성들에게 “옷은 입어 본 사람을 이길 수 없다. 일단 많이 입어 보라.”고 조언했다. 소비를 조장하는 게 아니라 여러 스타일의 옷을 입어 보고 자신의 체형에 맞는 옷을 찾아내란 것이다.  “공효진과 똑같이 입으면 아류가 될 수밖에 없어요. 패션은 도전입니다. 똑똑하고 현명하게 자신의 장점을 살려 멋스럽게 섞어 입는 능력을 키워야 해요.” ●가수·모델·스타일리스트 등 거쳐  패션에 대한 감각은 어려서부터 남달랐다. ‘김민제 아동복’의 색깔을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할 정도다. 어머니가 양장점을 한 영향도 컸다. 시대복장학원을 다니며 디자인 공부를 했다.  하지만 나이 서른에 ‘푸쉬버튼’을 시작하기 전까지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1994년에는 댄스 가수로 1집 앨범도 냈다. 그래도 방송보다는 무대 장치와 패션, 뮤직비디오에 더 관심이 많았다. 이후 모델, 작가, 스타일리스트로도 일했다.  지금은 신발 디자인도 같이 하는 ‘푸쉬버튼’의 뮤즈(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 공효진과의 인연은 박씨가 스타일리스트로 일할 때 시작됐다. 아무런 조건이나 이해 관계없이 공효진은 ‘푸쉬버튼’의 옷을 입었지만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며 브랜드가 소위 ‘뜨자’ 박씨는 양가적(兩價的) 감정을 밝혔다.  “10년 가까이 옷을 만들어 왔는데 ‘푸쉬버튼=공효진’이 돼 버렸어요. 우린 옷을 만들고 효진이는 우리 옷이 맘에 들었을 뿐인데.”  스타 마케팅으로 브랜드가 인정받은 것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이야기다. ●“축제 같은 옷 만들 터”  그가 추구하는 목표는 ‘축제 같은 옷’이다.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이른 상황이지만 박씨는 패션의 중심인 뉴욕에 매장을 내고 쇼를 하는 것보다는 ‘동료 직원들과 함께하는 유토피아’를 만드는 데 더 관심이 많다.  당장 올가을에 열리는 서울패션위크에 세 번째로 참여한다. 국내 최고의 편집매장으로 평가받는 꼬르소꼬모와의 협업도 예정돼 있다. ‘푸쉬버튼’에 대한 관심을 키우는 것보다는 초심을 잃지 않고 직원들과 일을 즐기는 게 더 중요하단다.  젊은 소비자들의 취향을 꿰뚫은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지도를 확보한 박씨는 분명 ‘패션 한류’를 이끄는 젊은 선두주자 중 한사람이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청춘을 ‘플레이’하다

    청춘을 ‘플레이’하다

    2009년 1월 음악영화 ‘원스’로 유명해진 프로젝트 밴드 ‘스웰시즌’의 내한공연이 열린 서울 세종문화회관. 로비에서 버스킹(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관객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공연)을 펼친 무명 밴드가 ‘스웰시즌’의 글렌 핸서드 눈에 띄어 즉흥적으로 특별출연자로 무대에 올랐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이 현실이 된 것. 그리고 그 얘기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무명 밴드의 영화 같은 첫 무대까지의 이야기 3인조 모던록 밴드 ‘메이트’의 결성 이전부터 데뷔까지를 담은 음악영화 ‘플레이’(23일 개봉)는 그렇게 시작됐다. 2009년 10월쯤 제작사의 제안을 받은 남다정(31) 감독은 연습실과 공연장으로 멤버들을 쫓아다니며 시나리오를 세공했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청춘들이 속을 다 내보이기엔 길지 않은 시간. 6개월 만에 나온 첫 시나리오는 그들의 얘기를 온전히 담지 못해 폐기했다. 1년이 지나고 비로소 시나리오가 완성됐다. 영화에 극적 사건이나 아찔한 반전은 없다. 주인공들은 청춘의 동의어처럼 박제화된 패기나 열정과도 거리가 멀다. 사랑도, 인간관계도 미숙한 탓에 끊임없이 머뭇거린다. 모든 걸 설명하지도 않는다. 여백을 채우는 건 그들의 음악이다. 남 감독과 두 주연배우 정준일(28·건반 보컬), 이현재(23·드럼)를 지난 13일 서울 계동의 카페에서 만났다. 또 다른 멤버 임헌일(28·기타 보컬)은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중이다. 이 영화로 장편 데뷔를 한 남 감독은 “영화사 제안을 받기 1주일 전에 한 TV프로그램에서 이들을 처음 봤다. 언젠가 음악영화를 한 편 하고 싶었던 데다 또래의 고민을 담을 수 있어 더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을 졸업한 남 감독은 3년간 시나리오를 쓰고 공모에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자신의 삶과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숱한 밤을 지새운 ‘메이트’의 고민이 다르지 않다고 느낀 것. 처음 영화 얘기를 들었을 때 정작 ‘메이트’는 시큰둥했다. 정준일은 “처음에는 동의를 안 했다. 무명시절을 딛고 앨범을 막 냈던 터라 음악에 충실하고 싶었다. 뭔가를 얻으면 다른 일은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현재 역시 “우리 같은 신인 밴드를 영화로 만들어 뭐 하느냐는 생각도 들었고 다음 앨범을 준비하느라 바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 즈음은 ‘좋아서 만든 영화’(2009), ‘소규모아카시아밴드 이야기’(2010), ‘조금만 더 가까이’(2010) 등 인디음악 뮤지션을 내세운 영화가 쏟아져 나오던 때였다. 정준일은 “보통 음악영화라면서도 음악은 곁가지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공감하기 어렵다.”면서 “가난한 밴드 지망생들이 배를 곯고 밴드를 결성하고, 구성원들이 갈등을 겪다 결국 성공한다는 식의 판에 박은 기승전결은 피하자고 했다.”고 설명했다. 비전문 배우와 신인감독의 조합이라 우여곡절도 많았다. 정준일은 “내가 첫 촬영이었는데 전혀 준비를 안 했다. 의상 정도만 준비했다.”면서 “뭣 모르고 과도하게 설정하면 영화에 방해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말했다. ●아찔한 반전·극적인 기승전결은 없어 가장 열심히 준비한 이는 임헌일이라는 게 감독과 동료들의 증언이다. 이현재는 “헌일이 형은 상대 여배우(정은채)와 호흡을 맞추는 장면을 집중적으로 준비했다.”면서 “상대가 전문 배우라고 해도 너무 밀리면 자존심이 상하니까 그랬던 것 같다.”고 대변했다. 임헌일은 유일하게 수줍은 키스신을 찍은 ‘배우’다. 막상 완성품을 보고난 뒤에는 보람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모양이다. 남 감독은 “되게 부끄럽다. 발가벗고 무대 위에 혼자 선 느낌”이라면서도 “이 친구들의 모습을 오롯이 담은 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정준일은 “재밌었고 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면서도 “내 연기를 보면 왜 저것밖에 못했을까 싶기도 하다.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현재는 “지금은 어색하고 창피하지만 영화를 생각하면 언제든 초심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거의 2년을 아옹다옹(?)했으니 정도 든 눈치다. 남 감독이 “언니(영화평론가 남다은)가 영화를 보더니 ‘니가 그렇게 낭만적인 사람인지 몰랐다’고 하더라.”라고 말하자, 내내 말을 아끼던 시니컬한 이미지의 정준일이 치고 들어왔다. “쓱 보면 감독님 외모가 미녀는 아니고, 시크한 프랑스 여자 같은데 술 마시면 낭만적이고 소녀 같은 면도 있다.” 남 감독은 “쉽게 친해지는 성격들은 아닌데 지금 보면 흐뭇하다.”며 ‘수습’에 나섰다. 인생의 출발점에 선 것은 남 감독이나 ‘메이트’나 마찬가지일 터. 남 감독은 “1930년대 신여성의 치명적 사랑을 다룬 본격 치정영화 시나리오를 준비 중”이라면서 “나중에 결혼하면 힘들 테니까 지금 찍어야 한다.”며 웃었다. 정준일은 “‘메이트’의 음악에서 록의 색깔을 덜어낸 솔로 앨범이 늦어도 가을에는 나올 것 같다.”면서 “내 음악을 제일 잘 아는 (이)소라 누나에게 조언을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앨범 나오고 공연 몇 번 하다가 연말쯤 군대에 가야 한다. 더는 연기가 안 된다.”고 덧붙였다. 조각 같은 외모(미국인 할아버지를 둔 혼혈 3세)로 데뷔 전부터 모델 생활을 병행했던 이현재는 “재즈 세션도 하고 모델도 좀 할 것 같다.”면서 “연기는, (잠시 생각하더니) 내가 할 수 있는 캐릭터란 게 뻔하지 않겠나.”라며 고개를 젓는다. 멤버들의 군 복무로 3년쯤은 ‘메이트’ 활동이 어렵다. 팬들은 이후가 궁금할 법하다. 정준일은 “연인관계도 그런데 하물며 밴드 멤버끼리 영원을 약속하는 건 의미가 없다.”면서 “팀을 유지하려고 음악을 하는 게 아니고 음악을 위해 팀이 존재한다. 열정이 있다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재도 “각자 영역을 터치하지는 않는다. 메이트로는 언제든 뭉칠 수 있다.”고 거들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88만원세대의 ‘아름다운 나눔’

    88만원세대의 ‘아름다운 나눔’

    ‘88만원 세대’는 버겁다. 대학생 때는 고액 등록금에 절망하고, 막상 대학을 졸업해서는 꿈쩍도 않는 취업문 앞에서 좌절한다. “꿈도 희망도 없이” 그들은 청춘을 갉아먹으며 살아야 한다. 사회를 위해 뭔가를 하고 싶어도 생각뿐이다. 당장 먹고사는 게 발등의 불인데 다른 일에 마음을 나눌 여유가 있을 리 없다. 그런 88만원 세대가 모여 만든 장학회가 어려운 처지의 청소년들을 돕겠다고 나섰다. 이달 초 트위터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주인공은 ‘젊음이 젊음을 돕는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3년째 활동중인 ‘빛솔장학회’다. 거창한 재단을 두고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명망가나 재벌기업의 후원도 업지 않은 자그마한 빛솔장학회가 조금씩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학회의 시작은 2009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장인 박건수(28)씨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꺼낸 말이 불씨가 됐다. “주변에 힘들게 공부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앞으로 대학에 갈 청소년들을 위해 우리가 뭔가 할 수 있었으면 좋을 텐데….” 박씨의 말에 친구들은 흔쾌히 동의했다. 뜻을 모은 친구들의 권유로 다른 ‘가난뱅이 젊은 독지가’들이 모여들었다. 그렇게 해서 2009년 3월 빛솔장학회가 발족했고, 첫 번째 장학생을 선발했다. 명색이 장학회이지만 기금 마련은 쉽지 않았다. 발족 당시 대학생이었던 회원들은 아르바이트와 과외로 번 돈을 쪼개 한 달에 3만원씩 차곡차곡 모았다. 사회에 나가서 해도 될 일이었지만 이들은 때를 가리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성공하기를 기다리거나 기성세대를 바라보기보다, 젊은 우리가 스스로 부닥쳐 보자는 생각이 컸다.” 박씨의 설명이다. 어느덧 회원 10명 중 9명이 사회인이 됐지만, 모두가 초심을 지키고 있다. 기금이 빠듯해 지금까지는 공부방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 활동을 주로 해 왔다. 공부방에 다니는 청소년들을 모아 진로상담과 그에 맞는 학업 설계를 해 준 것이다. 그 와중에도 주머니를 털어 한 학기에 한 명씩 장학생을 선발해 지원했다. 장학금을 직접 전달하기보다 장학금으로 청소년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했다. 디자이너를 꿈꾸는 청소년에게는 디자인학원 수강증을 끊어 줬고, 관련업계 종사자와의 만남도 주선했다. 지금까지 4명의 장학생을 배출했고, 훨씬 많은 공부방 청소년들이 빛솔장학회의 도움을 받았다. 빛솔장학회는 최근 트위터를 통해 11명의 장학생을 선발하고 있다. 이들은 장학회의 도움을 받은 청소년들이 대학생이 되어 다른 청소년을 돕는 이른바 ‘젊음이 젊음을 돕는’ 순환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기금이 더 모이면 장학회 내에 대학생 모임을 만들어 장학회를 거친 청소년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할 생각이다. 박씨는 “결코 넉넉하지 않은 젊은이들이 만든 장학회인 만큼 기존 장학회들과 달리 젊은이들이 할 수 있는 참신한 나눔문화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88만원 세대의 아름다운 반란이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

    누군가에게 그들은 알록달록 그림이 가득한 옛날 책에 불과했다. 그래서 오랜 시간 그냥 도서관 한편에 놓인 채 잊혀져 있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그들은 민족문화의 정수였다. 수백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조상들의 삶과 생활을 알 수 있는 역사의 기록이었다. 그들이 145년의 세월을 건너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에 있던 외규장각 도서들이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그들은 이제 옛 사람의 후손들에 의해 다시금 숨결을 되찾고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이다. 30여년에 걸친 우리의 노력이 비로소 결실을 맺었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세지도 못할 만큼 많은 우리의 유산들이 외국에서 이 땅을 그리워하고 있다. 서울신문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외규장각 도서의 귀환을 축하하는 연회장으로 달려갔다. 그 자리에는 전 세계의 유명한 ‘약탈(掠奪) 문화재’도 모습을 나타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과 같은 신세였던 외규장각 도서를 부러워하면서…. 그들이 저마다 고향을 향한 ‘수구초심’(首丘初心)을 얘기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덕분입니다. 물론 아직까지 ‘대여’(貸與)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는 게 아쉽지만, 저와 제 가족은 다시는 이 땅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휘경원(徽慶園) 원소도감의궤(園所都鑑儀軌)가 건배사를 시작하자, 참석자들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1993년 휘경원 의궤가 홀로 파리 국립도서관을 떠나 한국으로 갈 때 다들 그 뒷모습을 보며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그후로 18년. 휘경원 의궤의 뒤를 이어 자신들도 금의환향한 것이 스스로 믿기지 않는 그들이었다. 1866년 강화도를 떠난 지 무려 145년 만이다. 휘경원 의궤가 파티장을 둘러본 후 다시 말을 이으려는 찰나, 문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문이 열리자 일단의 무리들이 들어왔다. 어디선가 떨어져 나온 듯한 조각 뭉치부터 미라 머리까지 괴기스럽기 그지없었다. 표정에는 부러움이 가득했다. 조각상이 대표로 말을 꺼냈다. ●엘긴 마블 축하드립니다. 한국 국민들의 승리라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는 조선왕실의궤처럼 다른 나라에 무참히 끌려간 인류의 유산들입니다. 세계 최고의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매일 얼굴을 팔면서 살고 있지만, 한순간도 고향을 잊어본 적이 없죠.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하는 설움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의궤가 너무 부럽고 해서 함께 찾아왔습니다. ●휘경원 의궤 감사합니다. 우선 이쪽으로 앉으시죠. 여기 계신 손님들이 잘 모르실 수도 있어 간략하게들 자리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엘긴 마블 안녕하세요. 전 그리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장식입니다. 기원전 440년 무렵에 만들어졌고, 인물 360여명과 말 219마리로 구성돼 있어요. 제 치욕스러운 이름은 영국 외교관인 엘긴 브루스에서 비롯됐습니다. 19세기 초 터키의 그리스 지배 당시에 저희를 몽땅 긁어모아서 영국으로 옮겨왔죠. 대수집가로 추앙받는 경우도 있던데, 정말 어이없는 일이죠. 저희 가족은 ‘파르테논 마블스’로 불려야 마땅합니다. 성스러운 신전의 장식물을 떼어 와 감상하려 한 약탈자의 이름을 붙이다니요. 아마 가능하기만 했다면 파르테논 신전을 통째로 가져오고도 남았을 테죠. 현재 저희 가족은 대부분 대영박물관에 있고, 일부는 루브르박물관에도 있습니다. ●휘경원 의궤 파르테논 마블님은 문화재 반환운동의 대부로 유명하시죠. ●파르테논 마블 가만있자…, 그게 1960년대였을 거예요. 런던을 무대로 영화를 촬영하던 여배우 멜리나 메르쿠리가 저희가 대영박물관에 있는 걸 보고 통곡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메르쿠리는 1981년 문화부 장관이 되면서 정부와 전 국민을 상대로 반환운동을 벌였고, 1994년 세상을 뜰 때까지 한시도 운동을 쉬지 않았어요. 지금도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은 메르쿠리 이름으로 된 호소문을 받게 됩니다. ●휘경원 의궤 그리스에도 우리나라 박병선 박사 같은 분이 계셨군요. 그 얘기는 조금 있다가 더 듣기로 하고, 그 옆에 계신 분도 역시 영국에서 오셨죠? ●로제타스톤 안녕하세요. 전 기원전 196년에 만들어진 프톨레마이오스왕의 공덕비입니다. 1799년 나폴레옹 원정군이 로제타(현재의 라시드) 마을에서 요새를 쌓다가 발견했죠. 뭐 신기한 돌이다 싶어 슬쩍 프랑스로 가져오려고 했는데, 2년 뒤 영국군과의 전투에서 프랑스가 패하면서 영국 소유가 됐죠. 이 전투에서 프랑스가 이겼으면 아마 지금 제 거처는 대영박물관이 아니라 루브르박물관이 됐을 겁니다. 전 세계 교과서에 제 이름이 나오지 않는 곳이 없을 테지만, 전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어요. 수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존재라고 할까요. 이집트 상형문자, 민용(民用)문자, 그리스어 등 세 가지로 쓰여 있어 상형문자 읽는 방법을 현대에 전달했죠. 물론 제 고향인 이집트에서는 절 돌려 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습니다. ●오벨리스크 여기서 오랜 친구 로제타스톤을 만나니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전 고대 이집트 왕조 때 태양신의 상징으로 세워진 기념비입니다. 보통 신전 앞에 쌍으로 있고 수십개가 만들어졌는데, 지금 고향에 있는 애들은 6개에 불과하고 외국에 더 많아요. 뉴욕, 파리, 런던에 하나씩 있고 이탈리아에는 무려 16개나 있습니다. 오벨리스크를 무슨 열강의 상징쯤으로 여긴 때문이겠죠. 심지어 뉴욕과 런던의 오벨리스크는 원래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라는 이름으로 투트모세 3세가 만든 한 쌍입니다. 파리 콩코드 광장의 오벨리스크는 이집트 룩소르에 있는 람세스 2세 오벨리스크의 나머지 한쪽이고요. 게다가 더 놀라운 건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우리가 운반을 위해 다 쪼개졌다는 거죠. 상처 입고 신음하는데 보기만 좋으면 다인가요. ●휘경원 의궤 뒤쪽에 계신 아리따운 여자분과 용맹한 전사님은 누구시죠? ●네페르티티 흉상 저 역시 고대 이집트 출신이에요. 이집트 최고의 미녀로 클레오파트라와 어깨를 나란히 한 것으로 알려진 네페르티티 왕비의 모습을 하고 있죠. 1912년 독일오리엔트협회 조사단이 공방터에서 발견해 지금은 베를린 국립미술관에 있습니다. 말이 조사단이지 마구잡이로 파헤쳐서 가지고 오면 그만인 시절이었죠. 이집트 최고 미녀의 조각이자 최고의 조각상으로 평가받는 저를 정작 이집트의 후손들은 볼 수 없는 셈이죠. ●토이 모코 전 집으로 돌아갈 날을 받아놓고 기다리고 있는 뉴질랜드의 토이 모코입니다. 마오리족 전사가 전투에서 사망하면 정신을 기리기 위해 문신을 새겨 머리를 보관하던 전통에서 비롯된 일종의 미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세기 중반에 유럽에서 소장품으로 인기를 끌면서 아예 마오리 전사에게 문신을 새긴 후 목을 자르는 일까지 벌어졌죠. 그 당시 500여개가 해외로 유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1992년부터 뉴질랜드 정부가 저희를 찾기 위해 노력한 결과 지금까지 300여개가 돌아갔습니다. 그나마 고향에 돌아가기 쉬운 건 아마 저희는 문화재라기보다는 개인의 수집에서 비롯된 기념물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겠죠. ●휘경원 의궤 저희가 돌아오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죠. 누구보다 재불 사학자인 박병선 박사의 역할이 컸습니다. 1979년 파리국립도서관에서 저희들을 찾아냈고, 이를 고국에 알렸죠. 프랑스 내 지식인층에 약탈문화재의 고국 반환을 주장하면서 30년 넘게 외롭게 싸워오고 계십니다. 여러분들 역시 고국에서 수많은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데,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뭐죠? ●오벨리스크 자랑스러운 그들의 박물관이 약탈문화재로 가득차 있다는 점 때문이겠죠. 그들은 조상들의 유산을 돌려 달라는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고 있습니다. 루브르의 이집트 천궁도를 비롯한 이집트 유물들도 대부분 도굴된 물건이지요. 마치 장물(贓物)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꼴입니다. 우리 오벨리스크를 가장 많이 소유한 이탈리아는 정작 우리 요구는 무시하면서 자기네 로마 유적은 돌려달라고 떠들고 있어요. 역지사지라는 말도 모르나봐요. 심지어 약탈국 정치인들은 대놓고 “하나둘씩 돌려주다 보면 루브르나 대영박물관은 텅 비게 될 것”이라고 떠들기까지 합니다. 남의 나라 문화재를 강제로 뺏거나 훔쳐다 놓고 그게 할 소리입니까. ●로제타스톤 맞습니다. 관람객들은 마땅히 우리의 단순한 역사적 가치 이외에 언제 어떻게 훔쳐서 이 나라에 왔고, 그 나라에서 돌려 달라는 운동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는 사실, 또 전 국민들의 소망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알 권리가 있습니다. 제가 이집트에서 만들어졌고 이집트 상형문자의 역사를 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사실이지, 대영박물관에 있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중요하지는 않잖아요. ●휘경원 의궤 뭐 사실 그렇습니다. 유명하면 포기하기 더 힘들겠죠. 만약 저희 의궤들이 프랑스인들이 보기에 로제타스톤이나 오벨리스크처럼 중요하고 자랑스럽게 여겼다면 돌아오지 못했을 수도 있겠네요. ●네페르티티 흉상 프랑스나 영국 정부가 항상 말하죠. 우리가 문화재 보존에 대해 최고의 노하우를 갖고 있고, 돌려받을 국가를 믿기 힘들다고 말입니다. ●파르테논 마블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자 핑계일 뿐입니다. 반환운동이 시작된 후 그리스 정부는 아테네에 영국 박물관 분관을 지어 저희를 전시하자고 영국에 제안했고, 그 전시실은 실제로 대영박물관에 견줘 손색 없이 지어졌죠. 하지만 영국 정부는 아직까지 외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둘씩 돌려주는 선례를 만들다 보면, 아직 먹고사느라 조상의 문화에 관심이 적은 동남아시아 국가, 중남미 국가들이 나중에 떼로 달려들 것이 겁나기 때문이겠죠. ●휘경원 의궤 박 박사가 저희를 찾아냈을 때 저희는 폐지 더미 속에 묻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보관과 연구능력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한문을 읽고 조선의 문화를 이해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저희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겠습니까. 실제로 145년 동안 프랑스 사람들은 저희의 0.1%조차도 파악하지 못했고, 분류조차 못했으니까요. 오늘 이 자리에 걸음해 주신 각국의 약탈 문화재 여러분. 우리 의궤의 반환 축하 역시 이른 감이 있습니다. 한국 역시 아직까지 18개국에 7만여점에 가까운 조상의 문화재가 외국을 떠돌고 있습니다. 문화재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있는 소망이 실현되는 날. 다시 한번 진정한 축하의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약탈 그 역사와 진실(샤론 왁스먼·오성환/ 까치) 위대한 유산 74434(위대한유산 제작팀/ 지식의숲) 조선을 죽이다(혜문/ 동국대출판부) 오벨리스크(권염흠/ 스틸로그라프) 미학 오디세이 (진중권/ 휴머니스트) 클레오파트라의 바늘 (김경임/ 홍익출판사)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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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행복과 믿음/박광철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열린세상] 행복과 믿음/박광철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다가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이지 않다. 저 산 너머 어딘가에 있어 찾아가야 한다고 막연히 생각할 뿐이다. 행복이란 기분에 해당하는 느낌으로, 사람이 살아가면서 만족과 기쁨이 충만하여 흐뭇한 상태를 일컫는다. 행복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단계에 걸쳐 특정한 기운이 지속되는 경우에 나타난다. 사람은 어떤 일이나 사안에 흥미나 열성을 갖게 되면 기분이 매우 좋아지며 신명이 일어난다. 이것이 즐거움으로 이어지고 마음 가득히 만족스러운 기분이 밀려오면 다시 흥분되고 상쾌한 느낌으로 전이되는 가슴 벅찬 현상, 즉 기쁨이 솟아나는데 이러한 꽉 찬 기쁨을 행복이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행복은 부정의 기운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긍정의 기운에서만 나타난다. 긍정의 기운은 사람을 주관하는 마음이 육신의 두뇌에 저장되어 있는 자료들을 꺼내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판단할 때 작동되는 마음가짐으로, 어떤 사실이나 주장 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조화로운 마음자세를 말한다. 나와 너의 개념에서 비롯되는 소유와 무소유의 상대적 양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안이든 처음부터 나의 입장뿐만 아니라 상대방까지 이해하려는 자세에서 긍정의 기운은 작동한다. 마음자세는 이해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낮추고 너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나만의 세상이 아니므로 너를 위해 양보할 수 있고 내가 손해볼 수 있다는 너그러움을 발현시키는 긍정의 힘이 확고해야 한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란 말이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이루어지지 않을 때 하늘의 뜻이 7할이요 노력은 3할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자조(自嘲)하는 말이다. 이 말은 청나라 포송령(蒲松齡)이 쓴 ‘요재지이’(僥齋志異)라는 작품집에 나오는데, 포송령은 사람의 행로는 하늘이 미리 정해 버리기 때문에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으므로 이것을 운으로 받아들이라고 설명한다. 어찌 보면 그것도 운명이니 집착을 버려 체념해야만 긍정의 기운에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일면이 은연중에 엿보이기도 한다. 운(運)이란 용어는 칠천년 전부터 우리 민족에게 전해 내려오는 천부경(天符經)에 나타난다. 아마도 가장 먼저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경전에서 운은 하늘이 정해준 행로가 아니고 사람이 올 때 갖고 온 기운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람이 주관자로 태어날 때 가지고 온 초심의 기운 중 7할만 사용하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배우고 익힌 기술 3할이면 무엇이든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운칠기삼은 패배자가 읊조리는 푸념이 아니라 승자가 어떤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함축된 모습으로 이해해야 한다. 요즈음 길 가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어깨가 늘어져 보인다. 왠지 신나는 기운이 느껴지질 않는다. 사회 전체적으로 무엇인가에 지쳐 있어 무겁고 부정적인 기운만이 감돌고 있을 뿐 눈을 돌려 재미있게 몰입할 즐거운 일거리가 보이질 않는다. 해마다 수능시험 때만 되면 따뜻하던 날씨가 추워지면서 변덕을 부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학생을 비롯하여 부모·형제 등 수백만명의 기운이 일시에 근심으로 움츠러들어 하늘의 파장을 부정적 기운으로 끌어당기면서 만들어지는 현상이다. 마찬가지로 작금에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을 보면 하나같이 너와 나 간의 책임 전가를 위하여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기운을 작동시켜 싸움에 젖어 있다. 무엇을 위한 것일까?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믿지 못하는데 행복이란 것이 다가올 수 있다고 보는 것인가? 이 사회에 서로를 위하여 양보하고 의지하는 아름다운 믿음의 마음자세를 심어줄 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지고 고통스러운 다툼에 연연하는 슬픈 자들의 자화상으로 채워지고 있는 것인가? 정녕 같이할 수 있는 행복은 저 멀리 손짓하는 신기루인가? 그래도 행복은 마음먹기에 따라 곁에 둘 수 있다는 긍정의 기운을 키우고 그것을 우리 모두 믿어보자.
  • [WHO & WHAT] ‘위험천만 美우주왕복선의 비행’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 & WHAT] ‘위험천만 美우주왕복선의 비행’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이달 28일 인류과학의 큰 별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미국의 우주왕복선 애틀랜티스호가 플로리다 케네디 우주센터를 박차고 올라 마지막 비행을 하고 나면 파란 하늘이 아닌 까만 우주를 날아다녔던 ‘스페이스 셔틀’은 박물관에서 관람객들과 여생을 보내게 된다. 1981년 4월 12일 컬럼비아호가 처음으로 하늘을 난 이후 챌린저, 디스커버리, 애틀랜티스, 엔데버 등 대항해시대 유명 탐험선들에서 이름을 따온 5형제가 비행한 횟수는 총 135회. 거리는 8억 5000만㎞에 이른다. 그러나 우주왕복선의 탄생이 사기극에 가까웠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69년 대통령에 오른 리처드 닉슨은 막대한 예산이 투자되는 우주개발 계획을 탐탁지 않아 하며 항공우주국(나사)을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나사는 한번 쏘면 재사용할 수 없는 로켓 대신 얼마든 재활용이 가능한 우주왕복선을 제작하겠다고 제안했고, 이에 솔깃한 닉슨은 이를 받아들였다. 심지어 나사는 1주일에 1회, 연간 50회씩 비행이 가능하다고 닉슨을 속였다. 우주왕복선은 ‘돈 먹는 괴물’이었다. 한번 사용한 부품은 대부분 교체해야 했다. 지금까지 미국이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에 투입한 돈은 1500억 달러(약 162조원)가 넘는다. 1986년에는 챌린저호가 발사 73초 만에 폭발하는 장면이 전 세계로 생중계됐고, 2003년에는 컬럼비아호가 귀환 중에 역시 폭발하면서 미국과 과학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가상 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 이번 호 주인공은 퇴역하는 우주왕복선 3대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먼(1918~1988)이다. 아인슈타인과 함께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로 꼽히는 파인먼은 ‘파인먼씨 농담도 잘하시네’ 등 저서를 통해 대중과 호흡하는 학자로 이름을 떨쳤다. 특히 1986년 챌린저호 폭발 사건의 조사위원회에 참여, 원인을 규명하기도 했다. 우주왕복선을 만난 파인먼은 그들이 얼마나 위험한 비행을 했는지 그 비밀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파인먼:이렇게 무사히 만나게 돼 반갑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애틀랜티스를 제외하고는 이제 편히 쉴 일들만 남았네. 엔데버 자네는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 만들어졌는데, 나 같은 물리학자가 왜 우주왕복선의 모임에 나타났는지 궁금하지 않나? 엔데버:제가 1992년에 태어났으니까 1988년에 돌아가신 선생님을 뵐 기회가 없었죠. 그래도 그 명성만큼은 익히 들었습니다. 1986년 챌린저 형님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조사위원회인 로저스위원회(국무장관을 지낸 윌리엄 로저스가 당시 위원장을 맡았다.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위원장의 이름을 따 위원회 이름을 부른다. 부위원장은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이었다)에 참여하셨죠? 그때 얘기를 좀 듣고 싶은데요. 파인먼:사실 나한테도 우주왕복선은 TV로나 보던 존재였지. 그래서 처음에 나사에서 전화를 받았을 때는 거부할 생각이었어. 그런데 집사람(기네스 파인먼)이 “모두가 몰려다니면서 정치를 할 게 뻔한데, 제대로 조사를 할 사람이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했고, 난 멍청하게 우쭐해서 그 말을 받아들였지. 디스커버리:그래도 사고 원인을 찾아내셨잖아요. 파인먼:글쎄. 세상에는 내가 챌린저가 발사되던 날의 기온이 크게 낮았고, 그 때문에 연료통의 틈새를 메우는 고무 O링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해 연료가 유출됐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으로 알려져 있지. 하지만 그 문제를 처음 알아낸 것은 국방부의 커티나 장군이었어. 난 단지 그 문제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애썼을 뿐이지. 애틀랜티스:선생님이 다른 사람들이 회의를 하는 동안 얼음물을 달라고 해서 실제로 O링을 넣어 뒀다가 보여 줬던 그 장면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공개회의였는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일부러 그러신 건가요? 파인먼:아무도 나한테 O링을 주지 않았는데, 회의장의 모형에 O링이 있었고 그걸 실험할 수 있는 곳이 거기뿐이었거든. 사실 조사 과정에서 나사와 관련 회사들이 얼마나 일을 엉망으로 하고 있는지를 뼈저리게 느꼈고, 수많은 부분을 감추려 하고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어. 챌린저 폭발의 원인이 단순히 O링 때문이라고만은 할 수 없지. 디스커버리:이제 뭐 다 지난 일이고 정권도 여러 차례 바뀌었으니 구체적으로 좀 얘기를 해주시죠. 파인먼:120일이 조금 넘는 조사기간 동안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얘기는 “거기에 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랑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라는 말이었지. 누군가 자기들을 파헤치고 다니는 게 불편했던 것이지. 무엇보다 우주왕복선은 사람이 만들고 탄 물건 중에 가장 위험했거든. 너희들은 실제로는 폭탄이나 다름없지. 우주왕복선의 설계상 사고 확률은 100~450회 비행당 1건으로 돼 있어. 군용기가 2만 2000회 비행당 1회, 민간 여객기가 100만건당 1회로 계산되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 말도 안 되게 높은 위험도지. 그런데 나사는 이걸 민간 여객기와 같은 100만분의1이라고 발표했거든. 엔데버:어떻게 그런 계산이 나왔죠? 파인먼:“우주왕복선에는 사람이 타기 때문에 더 안전하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 때문이야. 숫자 조작을 한 거지. 실제로 우주공간에서의 임무를 제외하고, 비행과정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착륙할 때 바퀴를 꺼내는 버튼 하나를 누르는 것밖에 없거든. 그 밖에도 부품들에 생기는 문제를 규정 변경을 통해 허용치로 바꾸거나 엔진 터빈에 생긴 균열도 ‘파괴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용 가능으로 판정하기도 했어. 조사 과정에서 보니까 엔진, 부품, 연료 등 많은 부분에서 현장 기술자들이 발사를 반대했는데 윗선에서 묵살했더라고. 디스커버리:그런데 왜 무리해서 발사를 한 거죠? 파인먼:챌린저가 폭발한 1986년 1월 28일은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연두교서 발표가 예정돼 있었지. 영화배우 출신답게 쇼를 좋아했던 레이건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챌린저호의 우주인과 교신을 하려고 했던 게 무리한 발사의 원인이었다고 봐야지. 특히 챌린저에는 일반인이었던 과학교사 매컬리프 부인이 타고 있었는데 극적 효과로는 최고였겠지. 챌린저가 얼마나 무리한 발사를 하는지 알고도 탔을 만큼 매컬리프 부인이 용감했는지는 별개로 쳐야겠지만 말야. 애틀랜티스:결국 그때 나사와 관련된 여러 가지 제안을 하셨고, 실제로도 많은 개선이 이뤄졌잖아요. 그런데 2003년에 큰형님인 컬럼비아호가 또 불행한 사고를 당했어요.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거죠? 파인먼:그건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여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우주왕복선이 워낙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 같군. 외부적으로는 발사 단계에 타일이 떨어져 나가면서 돌아올 때 열을 견디지 못해 폭발했다고 하던데. 일각에서는 나사가 1990년대 후반에 구조조정을 심하게 하면서 관리와 정비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하더구먼. 자, 사고 얘기는 이쯤에서 마치고, 이제 30년간의 우주비행을 마치고 각자의 안식처(디스커버리는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국립항공우주박물관, 엔데버는 캘리포니아과학센터, 애틀랜티스는 플로리다 케네디우주센터)로 옮겨지게 됐는데 마지막으로 각자 일생에서 가장 보람찼던 순간을 되돌아볼까? 디스커버리:전 ‘지구의 눈’으로 불리는 허블 우주망원경을 1990년 4월에 우주로 올려놨죠. 사람들이 총천연색 우주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된 것은 제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지금까지 우주왕복선 5대가 기록한 우주비행 135회 중 39회가 제 차지였습니다. 애틀랜티스:저 역시 허블망원경의 수리 작업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2003년 2월 컬럼비아 형님이 허블망원경을 수리하고 돌아오다가 사라진 이후 나사는 “국제우주정거장(ISS) 이외에는 우주왕복선을 보내지 않겠다.”고 선언했죠. 하지만 미국 과학자들은 물론 전 세계에서 허블망원경을 계속 보게 해 달라는 운동이 벌어졌고, 그 결과 제가 다시 허블망원경으로 향할 수 있었죠. 그리고 전 가장 마지막으로 하늘을 난 우주왕복선으로 역사에 남을 겁니다. 이달 말 비행으로 말이죠. 엔데버:하늘에 떠 있는 가장 큰 인공구조물인 ISS는 제가 주도한 작품입니다. ISS 내 우주인 투입이나 우주인들이 체류하는 데 필요한 물품 공급, 배터리 교체, 로봇 팔 설치 등이 모두 저를 통해 이뤄졌죠. 2007년에는 저를 타고 우주로 간 우주인들이 선생님이 돼 지구의 아이들에게 과학교실을 열기도 했죠. 이젠 모두 지나간 추억이 됐지만 말이에요. 언젠가 제 후배들이 태어난다면 이런 얘기들은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의 에피소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저희 형제들과 수백명의 우주인들이 만들어낸 도전의 역사는 영원할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파인먼:우주를 날아서 비행기처럼 자유롭게 활주로에 착륙한다. 정말 공상과학 소설 같은 얘기를 현실에서 보여준 자네와 나사의 과학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네. 물론 보이저(1977년 발사된 나사의 행성 탐사선. 목성과 토성을 찍었고 현재 태양계 끝에 도달해 있다)처럼 사람들의 기대를 뛰어넘어 태양계 밖 미지의 세상을 탐험하지는 못했지만 말이야. 하지만 난 여전히 자네들이 여기에서 나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한다네. 위험한 비행을 하며 형님 둘(컬럼비아·챌린저)을 먼저 보내고 자네들은 살아남지 않았는가 말일세. 우주왕복선이 이뤄낸 수많은 업적보다 내가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들의 죽음이, 세상에 홍보용으로 전락한 과학이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낳는지 보여 줬다는 점이라고 말하겠네. 아직도 지구 어딘가에서는 그런 일이 계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일세. 오늘 즐거웠어. 각자의 자리에서 미래의 과학자들에게 더 많은 교훈을 주기 바라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리처드 파인먼(1918.5.11~1988.2.15)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미국의 이론물리학자로 양자전기역학을 재정립한 공로로 1965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 20세기의 거시 물리학이 아인슈타인으로 대표된다면, 미시 물리학은 파인먼의 영역. 금고털이와 드럼 연주, 그림에 재능이 있었고 형식과 권위를 거부했던 것으로 유명. ●도움말 주신 분 이주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우주과학팀장 정홍철 스페이스스쿨 대표 이학명 과학칼럼니스트 ●참고문헌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리처드 파인먼·김희봉/ 사이언스북스) 남이야 뭐라 하건!(리처드 파인먼·홍승우/ 사이언스북스) 우리는 이제 우주로 간다(채연석/ 해나무)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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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감원, 국민에 사죄하고 뼈깎는 자세로 쇄신해야”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3일 금감원 직원들을 상대로 자성론을 폈다. 권 원장은 이날 배포된 내부 소식지 ‘금감원 이야기’에서 “왜 국민이 금감원의 실수에 대해 그토록 너그럽지 않은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고 화두를 던졌다. 그러면서 “금융회사와 금융소비자 사이에서 공정성을 잃은 적은 없는지, 진정성을 가지고 국민을 대했는지 뼈를 깎는 심정으로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금감원이 설립 이후 최대 위기상황을 맞았다고 강조하며 “철저한 자기반성의 토대에서 원점에서부터 근본적으로 쇄신해야 한다. 금융시장뿐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금융감독원이 되는 게 가장 큰 목표”라고 말했다. 특히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는 금감원의 신뢰와 평판에 직결되는 과제이기 때문에 빈틈없이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금감원의 업무가 국민의 행복과 재산을 지키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직원들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업무에 대한 사명감과 자부심, 국민의 심부름꾼으로서 일한다는 공복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권 원장은 “최근 일련의 사태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면서 “국민에게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사죄하고 앞으로 뼈를 깎는 자세로 철저히 쇄신해 나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감독기구는 태생적으로 칭찬을 듣기 어렵고 비난을 받기 쉬운 조직이지만 프로의 자세로 공명정대하게 업무를 처리한다면 박수를 받을 수 있다.”고 격려하기도 했다. 최근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관련해 권 원장은 ‘적수역부’(積水易腐·고인 물은 반드시 썩게 마련)라는 고사성어를 언급한 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면서 “대규모 인사이동이 불가피하다. 권역·부서 간 이기주의를 타파하고 나 자신의 이익보다 조직과 국가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 달라.”고 주문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농협의 경제사업 활성화 배추·양파 수급안정 추진”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곤욕을 치렀던 서규용 신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2일 오후 취임식을 갖고 공식 업무에 들어갔다. 서 장관은 2001년 김동태 장관 이후 10년 만에 처음 나온 내부 출신 장관이다. 2002년 한·중 마늘 파동으로 차관직에서 물러난 지 9년 만의 금의환향인 셈이다. ●FTA 발효 대비 보완책 마련할 것 서 장관은 취임식에서 “처음 공직생활을 시작할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다 함께 잘사는 행복한 농어촌 건설’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는 “농림수산식품산업이 지속가능한 산업이 되도록 치밀하게 준비하겠다.”면서 “미국,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 발효에 대비해서 현재 추진 중인 국내 보완대책을 면밀히 점검해 보완하고 우리 농식품 수출이 확대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청문 과정 큰 아픔 느껴” 눈시울 서 장관은 “농협이 농업인을 위한 조직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농협법 개정에 따른 후속조치를 차질없이 추진하겠다.”면서 “농협중앙회의 사업구조 개편을 착실히 준비하고 농업인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판매할 수 있도록 농협의 경제사업을 활성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배추·양파의 가격안정을 위해 자율적인 물량감축, 정부수매, 소비촉진 등 수급안정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서 장관은 취임식 후 기자실에 들러 약식 간담회를 갖고 장관직에 오른 소감과 국회 인사청문 과정에서 느낀 소회를 밝혔다. 그는 “29년간 공직에 몸담으면서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했는데도 청문회 과정에서 말할 수 없는 아픔을 느꼈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2002년 한·중 마늘 파동 때 농림부와 외교통상부가 싸우고 있었는데 책임은 없었지만 고민 끝에 조직과 국가를 위해서 그만둔다고 했다.”면서 “오로지 농업·농촌이 잘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농업인 정부불신 해소가 급선무 그는 “지금은 농림수산식품부가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생각한다.”면서 “농업인들이 정부에 대해 갖고 있는 불신을 해결하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구제역 사태 관련 보도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사람에게 전혀 영향이 없는 것이 구제역인데도 일본에서는 전문지에서만 크게 다룬 반면 우리는 전부 신문 1면 아니면 경제면 톱으로 써서 국민들이 불안해했다.”면서 “여러분들이 한 자 한 자 쓰는 것이 국민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는 만큼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달라.”고 주문했다. 한편 서 장관은 3일 오후부터 문경 양파 주산단지, 안동 구제역 매몰지, 4대강 사업현장을 거쳐 4일 새벽에는 부산 공동어시장을 방문하는 등 당장 현장 행보에 나선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데스크 시각] 걷기열풍과 지자체가 해야 할 일/최병규 사회2부 차장

    [데스크 시각] 걷기열풍과 지자체가 해야 할 일/최병규 사회2부 차장

    벌써 12년 전의 일이다. 운 좋게도 미국 연수의 호사를 누린 지 두 달째 되던 어느 토요일. 미주리주립대학이 있는 작은 시골 도시 컬럼비아를 6개월 먼저 경험하고 있던 모 신문사 선배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자전거 타러 가지 않을래? 케이티 트레일(Katy Trail)이라고 멀지 않은 곳이 있는데….” 트레일이라니. 그저 ‘산책로’로만 알고 있던 생경한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그냥 길이 아니라 ‘특정 목적을 위해 따라가는 기나긴 길’이란다. 뜻을 곰곰이 뜯어 보니, 목적과 수단이 분명하고 또 길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튿날 그 선배를 따라나선 자전거 하이킹은 마을을 끼고 도는 미주리강을 따라 네 시간 이상 이어졌다. 주변 이야기를 주섬주섬 모아 봤다. 이 자전거 길의 길이는 무려 365㎞나 됐다. 서쪽 캔자스시티 조금 못 미친 곳에서 시작해 동쪽 세인트루이스 직전까지 굽이굽이 이어졌다. 과거엔 철길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1986년 10월 클린턴이라는 마을에서 마지막 열차를 떠나 보낸 미국인들은 이후 철길을 자전거 길이자 도보 길로, 또 승마 길로 바꿔놓았고, 주립공원으로 지정했다. 10여년 전 생소했던 보통명사 트레일이란 단어는 이제 우리 주변에서 흔하고도 익숙한 말이 됐다. 제주 올레길과 북한산·지리산 둘레길 등 주로 걷기 코스를 아우르는 고유명사로 자리매김했다. 어디 그뿐이랴. 최근엔 친환경 탐방 코스를 자랑한다는 누리길도 뛰어들었다. 지역에 따라 이름도 톡톡 튄다. 강원 바우길을 비롯해 변산 마실길, 고창 질마재길, 영덕 블루로드, 무등산 옛길, 안동의 퇴계오솔길, 강화 나들길, 남해 바래길, 군산 구불길 등 일일이 입에 올리기도 숨이 벅찰 정도다. 이 정도면 ‘미주리-캔자스-텍사스’(MKT)를 약칭했다는 미주리의 케이티 트레일이란 이름은 우리나라에선 명함도 못 내민다. 어쨌든 걷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지금도 경향 각지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는 이 트레일 덕에 몸과 발 모두 호강하고 있는 셈이다. 몇년 전 제주 올레길을 시작으로, 걷기에 대한 욕구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 ‘걷기 열풍’은 주민들의 건강 욕구와 수요를 기꺼이 감당하려는 각 지방자치단체들의 개발 노력이 보태지면서 ‘태풍급’으로 바뀌었다. 혹시라도 숨어 있을지 모르는 자치단체장들의 선심성 여부는 일단 제쳐두자. 지난해 9월 개통된 북한산 둘레길 확장에만 올해 92억원의 예산이 더 투입될 예정이다. 길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우리는 왜 걸으려 하는 것일까. 걸그룹과 립싱크가 점령한 TV에서 이른바 ‘나가수’가 진정한 노래를 갈망하는 노래 팬들의 한숨과 눈물을 짜내는 것처럼, 길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이 사회에서 ‘느림의 미학’을 실행케 하는 무대다. 2주일 전, 엿새 동안 마주한 제주 올레길과 한라산 둘레길은 12년 만에 이뤄진 트레일과의 재회였다. 하루 평균 15~16㎞의 길을 걸었으니, 모두 90㎞ 안팎의 길을 따라간 셈이다. 걷기 좋은 계절, 평일이었지만 길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런데 이상했다. 마치 순례길에 떠밀려 온 것 같았다. 연신 시계를 쳐다보며 정해진 코스를 정해진 시간 안에 마치려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당초 그렇게 시작된 길은 아니었다. 걷는 이도 그렇지만, 특히 길을 만드는 주체도 마찬가지다. 제주 올레길의 성공 이후 각 지자체들은 ‘길은 돈이 된다.’는 명제에 자극받아 너도나도 트레일 만들기에 나섰다. 넉넉지 못한 살림을 펴보려는 자구 노력의 일환이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길은 다니지 않으면 금세 잡초로 덮여 사라진다는 점. 길은 사람들이 밟고 다녀야 길이다. ‘구불길’이든, ‘바래길’이든, 길을 만들 때의 초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은은한 화롯불처럼 오래가는 길이 되어야 한다. 방법이야 그들의 몫이다. 불씨는 재 속에 묻어야 오히려 꺼지지 않는 법이다. cbk91065@seoul.co.kr
  • [WHO&WHAT] 미켈란젤로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미켈란젤로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고교생 야가미 라이토는 어느 날 한 권의 노트를 집어든다. 라이토는 이 노트에 이름과 방법을 적으면 그 사람이 그대로의 운명을 맞게 되고 결국엔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사신 류크가 인간계로 떨어뜨린 ‘데스노트’였던 것이다. 다양한 규칙을 숙지한 라이토는 노트를 활용해 범죄자가 없는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실천에 옮기기 시작한다. 라이토가 활동하기 시작한 뒤 전 세계의 범죄율은 70% 이상 줄고, 인터넷과 사회 구성원들은 그를 ‘키라’라 부르며 신(神)으로 추앙하기 시작한다. 2003년 일본의 주간 소년점프에 연재되기 시작한 오바타 다케시와 오바 쓰구미의 만화 ‘데스노트’는 인간의 본성에 도전한 공전의 히트작이다.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된 이 작품의 독자들은 막강한 힘을 가진 데스노트를 한 번쯤 소지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마련이다. 악행을 한 사람이 응징을 당하도록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 안토니오 살리에리(1750~1825), 토머스 앨바 에디슨(1847~1931), 로버트 스콧(1868~1912).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의 이번 주 주인공들은 능력과 업적 면에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천재들이다. 타고난 재능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용기를 지니고 있었지만 이들은 ‘라이벌’로 인해 마음껏 행복을 누리지 못한 비운의 주인공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본인의 노력이 또 다른 사람에 의해 한순간에 무너지는 고통, 패배자라는 주변의 시선,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갈등과 콤플렉스. 이들에게 가상의 데스노트를 쥐어주면 어떤 내용을 적을까. 위대한 천재들을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한 라이벌들을 살펴봤다. “흉내쟁이에 촌뜨기 라파엘로” - 미켈란젤로 “라파엘로(1483~1520)가 미술에서 이룬 모든 것은 바로 나한테서 얻은 것이다.”(미켈란젤로의 회고문 중에서) ●주요 내용 정말 괘씸하기 짝이 없다. 라파엘로가 바티칸 교황 집무실 벽에 그린 ‘아테네 학당’에 날 그려 넣었단다. 그것도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같이 더럽게 못생긴 인물로 말이다. 겉만 번드르르하게 아테네 학당이라는 이름을 붙였지, 가죽장화나 옷이나 전부 지금 시대 복장인데 눈 가리고 아웅도 유분수지. 얼굴까지 똑같이 그려 놨으니 아예 대놓고 욕 먹이는 짓이 아닌가. 내가 얼마나 자기를 싫어하는 줄 뻔히 알고 있을 텐데 옆에서 내가 시스티나 천장화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이런 일을 벌이다니. 무엇보다 기분 나쁜 건 벽화의 주인공인 플라톤으로 내 필생의 라이벌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그려 놓았다는 거다. 우르비노(이탈리아의 시골) 출신의 촌뜨기가 처음 볼 때부터 기본이 안 됐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예술가라면 무릇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야 하는 것 아닌가. 라파엘로 저놈은 어릴 때부터 나랑 다빈치 작품 중에서 좋은 것들을 골라 베끼는 데만 혈안이 돼 있더니 이젠 그걸 조금씩 바꿔서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건 그냥 모방이자 습작 화가지. 후세 사람들이 저놈 그림이랑 내 그림을 같은 높이에 걸어 놓으면 어떡하나 심히 걱정된다. 라파엘로는 분명히 자기 고향 선배이자 후견인인 브라만테(1444~1514·성베드로 성당 설계자)와 짜고 날 파멸시키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시스티나 예배당 프로젝트만 해도 그렇다. 나보고는 20m나 되는 높이의 천장에 그림을 그려 넣으라고 하고, 라파엘로한테는 편하게 집무실 벽화를 맡기다니. 난 조각가이지 화가가 아닌데도 말이다. ●해설 괴팍하고 추남이었던 미켈란젤로는 잘생기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가진 라파엘로를 평생의 원수로 생각했다. 특히 라파엘로와 브라만테가 서로 짜고 자신을 고난에 빠뜨린다고 믿었다. 자기보다 8세 어렸던 라파엘로가 37세에 요절한 후에도 각종 기록에서 증오심을 나타냈다. “가증스런 교류전기 찾은 테슬라” - 에디슨 “니콜라 테슬라(1856~1943)가 만든 가증스러운 교류(交流)의 위험을 알려 주려면 사람들에게 직접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1885년 에디슨이 직원들에게) ●주요 내용 큰일났다. 결국엔 교류가 이기고 마는 것인가. 세르비아 출신 과학자 한 명을 단지 똑똑하다는 소문만 듣고 고용했다가 내 평생의 성과가 날아가게 생겼구나. 난 전기를 싼값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고안해 주겠다는 테슬라의 말에 잠깐 마음이 흔들렸을 뿐이다. 테슬라가 내 발명인 직류(直流)와는 전혀 다른 교류를 발견한 걸 인정할 수 없어서 돈을 주지 않은 것인데, 그놈이 웨스팅하우스와 손을 잡았다. 난 한 방향으로 흐르는 직류가 무엇보다 안전하다고 믿었다. 그렇지 않은가. 예측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으니. JP 모건이 자신의 대저택에 내 설비를 깔았을 때만 해도 영광은 내 것이라 믿었는데 일개 직원 나부랭이가 이 모든 걸 망쳐 버렸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지난 수십 년간 벌어진 세 차례의 싸움에서 난 모두 졌다. 솔직히 잔머리를 좀 굴렸다는 점은 인정해야겠지. 교류를 이용해 개와 고양이를 죽이는 공개실험도 해 봤고, 사형을 집행하는 전기의자도 만들었다. 제길. 도끼 살인마 케믈러가 즉사하지 않고 구워지는 바람에 언론의 뭇매를 맞았고, 내 업적의 집대성인 제너럴일렉트릭(GE)이 만국박람회장의 조명설비 입찰에서 테슬라와 웨스팅하우스에 패하기도 했지. 마지막 승부처로 삼았던 나이아가라폭포 조명 설비에서도 웨스팅하우스가 GE를 눌렀고, 모든 이들은 교류를 전기로 인식하게 되겠지. 남은 건 하나뿐이다. 머리는 좋지만 사회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테슬라가 더 이상 인구에 회자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 뭐 큰 노력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 날씨를 변화시키는 장비, 순간이동 장치 등이나 만들겠다고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으니. 1700만 달러나 되는 교류 로열티를 포기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난 이미 테슬라를 사업적인 부분에서는 경쟁상대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곧 잊혀지고 난 영원한 발명왕으로 남을테니까. ●해설 1915년 테슬라와 에디슨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결정됐지만, 테슬라는 이를 거부했고 시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테슬라는 무선통신, 유도전동기, 교류발전기, 변압기, 전동기 등을 개발했고 미국 전기전자학회는 테슬라에 대해 “그의 작업 결과를 없앤다면 자동차들이 멈출 것이며, 도시들이 깜깜해지고 공장들이 쓸모가 없어질 것이다.”라고 칭송했다. “소문만 무성한 탕아 모차르트” - 살리에리 “당신도 알고 있죠. 모차르트(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를 내가 독살했다는 얘기.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임종 직전의 살리에리가 피아니스트인 이그나츠 모셰레스에게) ●주요 내용 내가 풋내기 모차르트를 죽였다고? 모차르트를 죽여서 내가 그 영광을 가로채기라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미 나는 황제의 음악가이자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에 있는데, 자기 능력을 주체조차 못하는 애송이를 죽여 무슨 이득이 있다는 건가. 이게 다 모차르트가 천재라고 떠드는 소문이 과장돼 벌어진 일이란 말이다. 솔직히 모차르트가 훌륭한 음악가인 건 맞다. 나처럼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하나 밟아 가는 성장 과정을 순식간에 뛰어넘었으니까. 5세에 작곡을 하고 10세도 안 돼 연주회를 다녔다는 얘기 때문에 내가 직접 연주회장에 찾아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신은 그에게 능력에 걸맞은 인품을 주지는 않았다. 작곡을 아무리 잘하면 뭘 하나. 궁정생활을 영위할 최소한의 자제심도 없는데. 그 낭비벽과 문란한 사생활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의 아름다운 음악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음악가로서 나 역시 그의 재능이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 역시 하이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오라토리오를 지휘했고, ‘악성’으로 불리는 베토벤이 나를 위해 세 곡의 소나타를 바칠 정도로 인정받은 사람이란 말이다. 천재와 노력파 같은 과장된 소문으로, 내 영광스러운 일생을 모욕해서는 안 된다. ●해설 영화 ‘아마데우스’는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독살했다는 러시아 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희극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당시 유럽 전역에 이 같은 소문이 퍼졌지만, 역사적으로 독살설은 근거 없는 소문이었고 모차르트는 그 스스로 신장병과 요독증을 앓고 있었다. 소문에 상처받은 살리에리는 죽는 날까지 이를 괴로워했다. “날 속이고 남극점 먼저 간 아문센” - 스콧 “영국인으로 최선을 다했으나 불운은 이기지 못했다.” (스콧이 자국민에게 보낸 편지) ●주요 내용 로알 아문센(1872~1928·노르웨이), 나쁜 거짓말쟁이 같으니라고. 북극을 탐험한다고 나를 속이더니 결국 상대를 안심시켜 놓고 남극점에 먼저 도착하기 위해 헛소문을 낸 것이었나. 북극 탐험과 관련된 자료를 넘겨주겠다는 내 호의를 거절하고, 전화도 안 받을 때 이미 알아챘어야 하는 건데. 어쩐지 로버트 피어리가 이미 북극점을 정복한 상태인데 왜 또 거길 가겠다고 한 건지 이상하긴 했다. 남극점을 정복하겠다는 내 기자회견과 신문기사를 보며 아문센은 얼마나 코웃음을 쳤을까. 이런 곳에서라도 대영제국을 이겨보겠다는 그 얄팍한 수를 읽지 못하고 신사답게 정정당당히 승부하려던 내가 멍청했지.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불과 35일이다. 난 아무도 정복하지 못한 그곳에 영국 국기를 꽂는 것을 평생 꿈꿔 왔는데, 그곳에는 노르웨이 국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인류가 남극점을 정복하는 데 수천 년이 걸렸는데 그 최초의 영광은 고작 한 달 남짓에 영원히 북유럽의 바이킹에게 넘어가는구나.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내 실수였다. 말을 끌고 남극에 오다니. 사람의 동반자인 개한테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겠다는 내 발상이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동료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와중에 나 역시 마지막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인류 최초’라는 이름이 결코 신사다운 행동으로만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죽기 전에야 깨달았다는 것이 아쉽다. ●해설 군인이었던 스콧은 1904년 남극에서 660㎞ 지점까지 접근한 기록을 세우며 국가적 영웅이 됐다. 그러나 7년 뒤 첫 남극 도달의 영예를 아문센에게 빼앗기고 죽음을 맞았다. 현재 남극점에는 연인원 1000명 이상이 상주하는 ‘아문센·스콧 기지’가 자리잡고 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서적] ▲서양미술의 걸작(양정무/네이버 오늘의 미술) ▲미술시간에 가르쳐주지 않는 예술가들의 사생활(엘리자베스 런데이·최재경/에버리치홀딩스) ▲빛의 제국(질 존스·이충환/양문) ▲모차르트 컨스피러시(스코트 마리아니·이정임/노블마인) ▲발트슈타인 소나타(이재규/21세기북스) ▲정재승의 도전 무한지식(정재승/달) ▲아문센과 스콧(피에르 마르크·배정희/비룡소) ▲남극의 대결 아문센과 스콧(라이너 K 랑너·배진아/생각의 나무)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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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하다 청강아’…조선족 언론, 시(詩)도 게재

    ‘장하다 청강아’…조선족 언론, 시(詩)도 게재

    지난 27일 방송된 MBC ‘스타오디션-위대한 탄생’(연출 서창만·이하 위대한 탄생)에서 최종 우승한 중국 연변 출신 백청강에 대한 조선족 언론들의 반응이 폭발적이다. ’길림신문’, ‘연변일보’, ‘동북아신문’ 등 조선족 언론들은 백청강이 ‘위대한 탄생’에서 우승하자 이 사실을 대서특필했다. 특히 한 조선족 언론은 백청강을 위한 시(詩)도 게재했다. 길림신문은 “대학시험을 10일 앞둔 조선족 고3 학생들도 펜을 놓고 텔레비전을 응시하며 청강이를 응원할 정도였다.” 며 “이는 백청강 한사람의 승리가 아닌 어려서부터 부모들과 떨어져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많은 조선족 청소년들의 승리”라고 전했다. 또 동북아신문은 ‘백청강의 ‘위대한 탄생’은 한국민 모두의 승리!’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백청강의 탄생은 먼저 한국민의 승리다. 이질문화에 배타적이던 한국민이 타자를 1등으로 뽑아줄 수 있는 나라로 성숙했음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특히 이 신문은 ‘장하다! 청강아’라는 시를 게재해 눈길을 끌었다. 이 시에는 ‘폄하와 따가운 시선에 과감히 핸디캡을 던지고 우승의 황금빛 월계관을 차지한 너. 장하다 청강아, 초심을 기발로 날리며 정상으로 도전하거라...’ 의 내용이 담겨있다. 한편 백청강은 29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꿈을 쫓아가면 결국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며 “앞으로 가수로서 활동해 나갈 생각이지만 아직 기획사나 앨범 등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15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이라는 시간의 흐름. 찬란했던 르네상스의 중심지 이탈리아 피렌체와 일제 강점기 아시아의 소국(小國) 조선이라는 공간과 위상의 차이. 이 시대를 살았던 두 명의 사람이 있었다. ‘위대한 메디치’로 불리며 이탈리아, 아니 중세 유럽을 통틀어 가장 화려했던 가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로렌조 메디치(오른쪽·1449~1492)와 자국의 역사책에조차 등장하지 않는 간송(澗松) 전형필(왼쪽·1906~1962). 겉으로 보이는 배경으로는 너무나 다르지만 이들에겐 엄청난 ‘돈’과 예술을 알아보는 ‘혜안’(慧眼)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공통점은 각각 피렌체 우피치미술관과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의 형태로 오늘날 우리에게 ‘인류의 유산’을 향유할 기회를 남겼다. 만약 그들이 막대한 재산을 흥청망청 쓰는 데만 골몰했다면, 또는 재산을 늘리는 데만 관심을 가졌다면 중세미술사와 한국미술사는 다시 쓰여져야 했을지도 모른다. 가상 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 이번 주의 주인공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으로 꼽히는 로렌조 메디치와 전형필이다. 막대한 재산을 문화유산에 아낌없이 쏟아부은 이들의 노력이 어떻게 시작됐으며,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그 결과로 우리는 어떤 혜택을 누리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 서양미술사에만 관심을 갖다가 지난주 간송미술관을 다녀온 후 한국미술의 전통과 매력에 흠뻑 빠진 직장인 윤정은(33·여)씨가 궁금한 점을 모아 인터뷰에 나섰다. →<윤정은> 두 사람 모두 젊은 나이에 상상을 초월하는 재산을 물려받았다. 도대체 어떤 가문이었고 재산 규모는 얼마나 됐나. -메디치 내 증조할아버지인 토스카나 대공(大公) 코지모는 피렌체인들 사이에서 ‘국부’라는 명예로운 호칭으로 불렸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은행업을 통해 그야말로 돈을 긁어모으다시피 했다. 가문의 수장이 됐을 때 내 나이 고작 20세였다. 당시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다. 특히 우리 가문은 직물산업의 핵심이었던 ‘백반’(양모 세척제)을 움직였고 메디치 은행의 주요 고객은 유럽 각국의 왕실과 교회였다. 당시 우리가 얼마나 많은 돈을 갖고 있었는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냥 피렌체가 메디치였고, 피렌체의 모든 것은 메디치 가문의 재산이었다고 이해하면 된다. -전형필 일제 강점기에 와세다대 법대를 다니던 중 아버지의 부음을 들었다. 서울 일대는 물론 경기도, 황해도, 충청도를 지나면서 우리 집안 땅을 밟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만석꾼 집안이었다. 미곡상을 했는데 내가 24세에 물려받은 논은 4만 마지기(800만평)에 달했다. 1년에 소작농으로부터 쌀 2만 가마니(1만석)를 거둬들였는데, 이를 당시 기와집 값으로 환산하면 150채 정도였다. 현재 서울 아파트 가격으로 환산하면 매년 450억원이 들어왔다는 얘기다. 논을 몽땅 판다고 가정하면 6000억원 정도였는데, 이건 그냥 단순한 수치 환산이고 당시 논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면 훨씬 더 가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조선총독부 기록에 따르면 1년에 나만큼 버는 조선인은 43명에 불과했다. →<윤정은> 역사적으로 많은 재산이나 권력을 물려받은 사람들은 흥청망청 쓰다 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한국의 재벌 집안만 봐도 그런 사례를 많이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실패하지 않았고, 젊은 나이에도 큰 실수를 하지 않았다. -메디치 할아버지 코지모의 영향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피렌체에는 당대 최고의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모여 있었고, 난 그들과 토론하는 법을 배웠다. 10대 때부터 이미 유럽 각국에서 피렌체를 대표하는 외교관 역할을 수행한 덕에 외국어에도 능통했다. 로마어에 비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그리스어까지 능통하게 구사했을 정도였으니. 내 신분은 공식적으로는 돈이 많은 시민이었지만 피렌체 안팎에서 피렌체를 대표하는 인물로 인식됐고, 그렇게 살았다. 물론 금욕적인 삶을 지향하지는 않았다. 난 바람둥이였고, 수많은 애인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권력자에게는 그런 게 큰 흠이 되지 않았다. -전형필 난 원래 경성에서 대학을 다니며 조선어문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변호사가 될 것을 강권하셨고, 그 덕분에 일본에서 대학을 다녔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만든 법을 연구한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가업인 장사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무엇보다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해도 부모의 상을 당한 상황에서 본인이 즐기는 데 그것을 쓰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윤정은> 두 사람 모두 예술을 사랑했는데 특히 수집(蒐集)에 관심이 많았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메디치 ‘위대한 로렌조’라는 호칭과 달리 난 콤플렉스가 많았다. 심한 주걱턱이었고, 아랫입술이 윗입술을 덮었다. 코도 낮았고 목소리는 거칠었다. 하지만 난 비올라와 류트(당시의 현악기), 승마술, 매사냥까지 섭렵했고 유려한 글솜씨로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시 예술에 대한 조예는 못난 겉모습을 덮고도 남을 정도였다. 특히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은 예술가를 지원해 그들의 작품이 자신을 찬양하도록 했는데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다만 난 할아버지나 아버지, 다른 귀족들과는 좀 달랐다.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내는 일 이외에 고대 미술품을 수집하고 동양의 예술품에도 관심이 많았다. -전형필 일제 강점기라는 당시 사회상에서 난 무엇을 해야 할지에 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무엇보다 휘문고보 시절 은사였던 고희동(1886~1965·서양화가) 선생과 3·1 만세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었던 위창 오세창(1864~1953·서예가) 선생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다. 두 분은 내가 어릴 때부터 책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내가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왔다. 고 선생은 나에게 “글을 읽으면서 학문을 닦는 선비가 아니라, 조선의 문화를 지키는 선비가 되라.”는 조언을 해 주셨다. 그 결과 나는 왜놈들 손으로 넘어가는 우리 서화와 전적을 지키는 선비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위창 선생은 나에게 ‘간송’이라는 호를 주셨고, 내 수집활동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어떤 작품을 모아야 하는지, 어떤 눈을 갖춰야 진품을 구분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말이다. →<윤정은> 돈으로 물건을 수집하는 것은 사실 취미로 볼 수도 있는 일이다. 재산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는데, 다른 목적은 없었나. -메디치 (웃음) 난 상인이었지만 정치인이기도 했다. 정치인에게 100% 순수한 호의라는 게 존재한다고 생각하나. 1482년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밀라노에 보내고 1488년 안토니오 다 산갈로를 나폴리에 보냈다. 그 공국들에 내가 후원하던 예술가를 보내는 게 좋은 작품을 선물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볼 수 있을까. 호의를 베풀면서 실은 정치를 한 거였다. 솔직히 내가 예술가를 후원한 돈은 대부분 내가 피렌체의 공직을 겸하면서 공금으로 썼다. 내 재산은 오로지 내 수집품을 모으는 데 집중적으로 썼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에 대한 환상이 좀 깨지지는 않았나. -전형필 왜 수집에 나섰느냐고 위창 선생이 물었을 때 난 “서화 전적과 골동은 조선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조선이 언젠가 독립될 것이란 믿음이 없었는데도 수집을 계속했을지는 나도 자신이 없지만, 난 반드시 독립될 것으로 믿었다. 1933년 성북동에 터를 구해 미술관을 지은 것도 독립이 됐을 때 후손들에게 우리 문화의 힘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본으로 팔려 갔던 고려석탑을 다시 사 오면서 난 한번 유출된 문화재가 고국으로 돌아오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해방된 후에는 이전처럼 문화재를 수집하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일제에 더 이상 빼앗길 염려가 없어진 후에는 조선 사람이 모은 것은 모두 조선 것이기에 해방 후에는 문화재를 찾아오는 일에만 전념했다. →<윤정은> 소장품들에 대해 묻겠다. 두 사람의 노력은 우피치와 간송 미술관으로 남았지만 두 사람 모두 박물관의 개관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메디치 우피치는 영어로 하면 ‘오피스’(사무실)를 뜻한다. 그곳은 내 증조부 코지모의 집무실이다. 물론 내가 가장 주목받기는 하지만 우피치 수집품은 우리 가문 전체의 공이다. 14~16세기 르네상스 화가부터 17~18세기 바로크와 로코코에 이르기까지 소장 규모 자체는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다. 조토의 ‘성모자’, 다빈치의 ‘수태고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등 도록으로도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우피치를 박물관의 관점에서 본다면 나 이후로 200여년이 지난 후 메디치가 최후의 후손이었던 안나 마리아 루드비카가 가장 큰 공을 세웠다. 그녀는 모든 재산을 토스카나 공국에 기증하면서 단 하나의 조건만을 남겼다. “전 세계 사람들 모두가 피렌체에서 메디치가의 보물을 볼 수 있도록 어느 것도 피렌체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전형필 간송미술관에는 ‘훈민정음 해례본’, ‘청자운학문매병’ 등 12점의 국보와 10점의 보물이 있다. 1937년에는 영국 변호사 개스비에게서 청자 20점을 40만원에 사기도 했다. 당시 서울 기와집 400채 값이었다. 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가격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 가치는 후손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고, 그것이 원래 내가 수집을 시작한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잡스러운 그림을 그린다고 폄하됐던 겸재 정선(1676~1759)을 화성(畫聖)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을 내 최대의 성과로 생각한다. 그럼 내가 묻겠다. 지금 간송미술관에서 당신은 어떤 기분을 느끼나. →윤정은 당대 최고의 좋은 자재로 지었다는 미술관이지만 세월의 흔적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1930년대의 근대식 2층 건물과 창틀에는 현대미술관처럼 멋진 조명도 없고 첨단 잠금장치도 없다. 화장실 냄새도 코를 찌른다. 아이들이 유리에 온갖 손자국을 내며 코를 박고 보는 모습은 유럽 미술관의 풍경과 너무나 달랐다. 하지만 너무 많은 것들을 전시하지 않아서 좋았고, 온전히 우리 것이라는 것이 더 좋았다. 내가 보고 있는 전시품이 엄청난 가치가 있다는 생각보다는 조상의 것이라는 사실이 먼저 느껴졌다. 바티칸이나 루브르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친구들에게 꼭 말해 주고 싶다. 간송미술관에 가면 간송이라는 사람과 그가 남긴 뜻이 마음으로 전해진다고 말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그래픽 이혜선기자 okong@seoul.co.kr ■ 참고서적 간송 전형필/이충렬/김영사 조선의 그림수집가들/손영옥/글항아리 간송 선생님이 다시 찾은 우리 문화유산 이야기/최완수·한상남/샘터 조용헌의 명문가/조용헌/랜덤하우스코리아 메디치 머니/팀 팍스·황소연 옮김/청림출판 메디치‘의 음모/피터 왓슨·김미형 옮김/들녘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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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지도한 최홍만, 격투기서 피투성이 되니 가슴 찢어져…”

    “내가 지도한 최홍만, 격투기서 피투성이 되니 가슴 찢어져…”

    [스포츠서울닷컴] 호쾌하고 인자한 이만기의 미소 속에서 지나온 세월의 희로애락과 씨름에 얽힌 환희와 씁쓸한 마음이 교차했다. 후배 강호동과 특별한 인연은 그래서 더욱 소중한 모양이다. 프로야구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며 42회에 걸쳐 열린 천하장사 씨름대회는 씨름계 내분과 함께 힘의 씨름으로 넘어가면서 재미없다는 말을 듣게 됐고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결국 2004년을 끝으로 천하장사 씨름대회는 막을 내렸다. 이후 체급별 장사대회만 열리고 있다. ◆ 대중의 씨름 외면, 이만기는 예견했다 ”시대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하고, 국내에서 글로벌로 넓혀진 것처럼 스포츠 문화도 청소년들 뿐 아니라 30~40대 계층도 참여형으로 바뀌었어요. 1980년대부터 이미 그런 흐름이 있었죠. 씨름도 그에 맞게 변화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어요.” 그는 씨름에 대한 대중의 외면을 예상했다. 글에서 그림으로, 그림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애니메이션에서 영상으로 변한 이 시대에 씨름판은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바빴다. 이만기는 2006년 민속씨름동우회 회장으로 재직하던 중 씨름 행정 개혁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한국씨름연맹으로부터 제명당했다. ”스포츠 팬들은 제게 힘을 실어 주셨어요. ‘왜 이만기를 버리느냐’고요. 잘난 척처럼 비쳐질 수 있었어요. 하지만 순수하게 우리 씨름을 살리고자 하는 목적의식이 분명했죠. 선수들이 이종격투기(K-1)로 빠져나가는 것도 안타까웠고요.” 당시 천하장사 타이틀을 박탈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었다. 하지만 이만기의 씨름 개혁 의지는 분명했다. 현실에 맞는 스포츠, 스포츠 팬들에게 사랑 받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해 줄 수 있도록 찾아가고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되기를 바란 것이다. ”씨름의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지요. 스포츠 팬들이 요구하는 것은 달라졌어요. 씨름계가 뼈를 깎는 노력으로 전체적인 틀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씨름을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우리 전통 문화의 관점에서 살려야 해요.” 이만기의 이 같은 진심이 통했을까. 5년이 지나고 지난달 11일 대한씨름협회를 비롯한 관련 단체들은 이철우 의원(한나라당)이 주최한 씨름 활성화 및 세계화 방안 토론회에서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국내 5개 씨름 단체가 하나의 목소리를 내자는 것이다. ”씨름 단체가 지금까지 많았어요. 이제는 하나된 목표로 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협의체를 구성했어요. 씨름 발전의 초석이 되었으면 합니다.” ◆ ‘후배’ 최홍만 K-1 진출, “처음에는 씁쓸했어요” 자연스레 후배 장사들의 K-1 진출 이야기가 오갔다. 이만기는 그 중 대표 격인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을 2003년 여름 지도한 바 있다. 최홍만의 소속팀 LG투자증권의 차경만 감독이 대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이만기에게 여름 방학동안 특별 지도를 해줄 것을 부탁한 것이다. 당시 이만기는 대학 씨름부 감독을 겸임하고 있었지만 프로선수를 지도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될성부른 떡잎이라 여기고 성심 성의껏 기술을 전수했다. 그리고 그해 최홍만은 천하장사에 오르는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2005년 소속팀의 해체와 동시에 일본 이종격투기(K-1)에 진출해 화제를 뿌렸다. ”씁쓸했죠. 후배들이 씨름으로 밥벌이가 어려워서 K-1으로 넘어간다는 것은 선배로서 비통한 마음 그 자체였어요. 무엇보다 천하장사가 격투기 무대에서 피투성이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찢어졌죠.” 후배들이 더욱 좋은 환경에서 좋은 대접을 받기 위해 더 뛰었더라면 천하장사의 위상을 이처럼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았을 것 같다는 마음을 좀처럼 지울 수 없었다. “결국 이해를 했어요. 우리 선배들이 특별히 해 준 것이 없으니까…. 이해를 하게 되더라고요” ’대답은 이만기다’는 유행어가 나올 정도로 1980년대 이만기는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또한 당시 운동선수로는 드물게 CF 섭외가 줄을 잇는 등 스타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씨름판에서 이만기의 스타성을 살릴 스타 마케팅은 없었다. ”우리 시절에는 스타 마케팅 개념 자체가 없었어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죠. 모래판에서 이겨도 준비된 세리머니가 아닌 포효였죠.(웃음) 덩치 좋은 사람들이 우렁차게 내뱉는 ‘파이팅’ 소리나 각종 액션 등이 이론으로 정립된 것은 아니었지만 스포츠 팬들에게 각인이 됐죠. 저 같은 경우 결승전에서 이기면 모래도 던지고, 만세도 하고, 기도도 했어요.(웃음)” ”선수들의 그러한 행동 하나하나가 팬들이 보는 시각에서는 외적인 기준이 될 수 있죠. 모래판에서 씨름을 잘한다는 것도 있지만 행동 하나하나가 관심거리에요. 예전에 박광덕 씨가 선수 시절에 보여 줬던 람바다 춤처럼 후배들도 자신만의 색깔을 가져야 해요.” ◆ 20년의 교수 생활…”대학생 된 아들 덕에 공감대 생겨” 이만기는 현역 은퇴 후 학문에 눈을 떠 교수로서 후학을 가르쳐 왔다. 새벽을 좋아할 만큼 스스로 동이 트면 하루를 계획하고 강의를 준비한다. 그가 지혜를 다지는 시간은 바로 새벽이다. 어느덧 교수 생활도 20년이 됐다. 씨름 선수에서 연구자와 교수로 걸어 온 그간의 시간이 이만기의 또 다른 정체성이기도 하다. ”(은사님께서 교수직을 권유하셨다고 하던데?) 천하장사를 하고 나서 학교(경남대) 은사님 한 분을 찾아뵈었어요. 그런데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 ‘만기야, 너는 앞으로 문무를 겸비해라. 감독이나 코치보다는 공부를 했으면 좋겠구나’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또 다른 세상이 올 것이라고요. 그 말씀을 아주 좋은 뜻으로 받아들였죠. 제 인생의 길을 열어 주신 분이에요. 말씀 한마디가 큰 빛이었고 희망이었죠.” 최근 은퇴를 선언한 ‘후배’ 이태현은 용인대학교 격기지도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대선배 이만기를 따라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우고자 나섰다. “아주 좋은 일이죠. 저와 김경수(건동대)에 이어 민속씨름 선수 출신으로는 세 번째로 교수가 됐어요. 현장감을 바탕으로 이론을 접목해서 정말 좋은 제자를 길러 냈으면 좋겠어요. 특히 씨름 분야의 학문적인 연구를 많이 해 줬으면 좋겠고요.” 슬하에 두 명의 아들을 둔 이만기는 첫 째가 올해 대학에 입학했다.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들과 또래가 됐다. “아들이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는 제자들을 그저 젊은 세대로만 봤어요. 그런데 아들과 또래라고 생각하니까 자식처럼 공감대가 생기더라고요.(웃음) 잘 가르쳐서 사회가 요구하는 사람으로 키워 내고 싶고, 체육을 선택한 것에서도 절대 후회하지 않도록 하고 싶어요.” 이십대의 열정을 다 바쳤기에, 그 소중한 시간을 절대 헛되이 보내게 하고 싶지 않다. 이만기 스스로가 지식을 쌓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았고 체육을 넘어 문화계에서 큰 몫을 하고 있듯이 제자들에게도 희망과 용기를 심어 주는 전도사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 ◆ ‘방송인’ 이만기의 삶 “예능은 안 맞는 것 같아요” 이만기는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씨름판보다 오히려 방송에서 더욱 익숙하다. KBS 예능 프로그램 스펀지, 비타민과 함께 케이블 TV에서 방영됐던 ‘샅바 인터뷰’ 등에서 그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체육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기자, 연구원, 방송 해설가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고 있어요. 저 역시도 교수를 하고 있지만 그동안의 방송 생활을 통해서 새로운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했어요. 지금은 스펀지 하나만 하고 있지만 후배들에게 다양한 계층과 다양한 분야에서 선배가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요.” ”그런데 예능 프로그램에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요.(웃음) 팬들이 얌전한 이미지로 봐 주셔서 곤란하네요. 제가 30대쯤 됐어도 장난도 많이 쳤을 텐데.(웃음) 예능은 아무래도 30~40대 계층에는 사각지대에요. 그래도 제가 스펀지나 1박2일, 무릎팍 도사 등에 출연했는데 사실 중년 나이치고는 드물잖아요? 옛 향수를 떠올리면서 재미있어 하시더라고요. 살아온 비하인드 스토리도 있으니까.” 이만기는 2008년 KBS N을 통해 ‘이만기의 샅바 인터뷰’를 진행했다.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스포츠 분야별 대표 선수들을 만났다. “사실 섭외가 어려워서 (프로그램을) 오래 하지는 못했어요.(웃음) 유명 선수들의 스케줄 조정부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진행도 다소 미흡했고요. 하지만 좋은 경험이었어요” 자신이 씨름계 정상에 섰듯이 체조 여홍철, 펜싱 남현희 등 각 분야의 1인자들과 만남은 매우 특별했다. 그들을 통해 자신의 열정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샅바 인터뷰’에 출연한 선수들은 모두 자기를 제어할 줄 알고, 인내할 줄 알았다. 그 역시 와 닿는 내용이 매우 많다는 걸 느꼈다. 그렇기에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다. ”(박찬호 선수 팬이라고 들었는데) 네, 아주 좋아합니다. 한국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10승 이상을 올린다는 것이 정말 힘들거든요. 개인적으로 젊은 친구가 일찌감치 미국으로 건너가 유명 선수들을 삼진 아웃시키는 모습이 멋졌어요. 지금은 선수로서 노장이 됐지만 일본에서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만기는 지난해 김해시생활체육회장으로 취임했다. 이어 경남문화재단 대표이사로도 선출됐다. 씨름에서 생활체육으로, 생활체육에서 문화계로 활동 분야를 넓히고 있다. 그가 바로 이 시대의 진정한 슈퍼맨이 아닐까. 씨름은 이만기를 세상과 만나게 한 샘이었다. 그렇기에 씨름에 대한 열정의 초심을 잃지 않고 있는 듯 보였다. 이제 이만기는 ‘이만기 브랜드’로 스포츠와 문화 예술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촉매로 거듭나고 있다. 모래판 위에서 눈부시게 당당했던 그가 다시 샅바를 고쳐 매고 선 곳은 더 큰 모래판이다. 인생이라는 모래판 위에서 그가 또다시 펼칠 시원한 들배지기 승리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아직도 많은 분들은 이만기 선수라고 합니다. 그만큼 저와 씨름은 뗄 수 없는 운명적인 관계죠. ‘코리언 레전드’로 뽑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우리 씨름을 더 알리고 나아가 교수로서 21세기에 필요한 인재들을 양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스포츠서울닷컴 독자 여러분들도 건강하시고 건승하세요.” <글 = 김용일 기자, 사진 = 문병희 기자> 스포츠서울닷컴 스포츠기획취재팀 기자 kyi0486@media.sportsseoul.com
  • [WHO & 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 & 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그대의 돈을 책 사는 데 써라. 황금과 지성을 얻을 것이다.’ ‘남자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 책처럼 나쁜 평가를 찾아보기 힘든 존재도 없다. TV와 게임이라면 기겁하던 부모들도 책을 읽는 자식의 모습에 흐뭇해하고, 책을 읽는다고(물론 수업시간에 교과서 이외의 책을 보는 것은 예외다) 혼나는 경우도 드물다. 책은 하나의 활자로 똑같이 찍혀 나오지만 읽는 사람에 따라 그 가치가 수도 없이 달라지는 독특한 존재다. 책을 통해 성공의 실마리를 잡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 위해 책을 뒤적이는 사람이 있다.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 책을 사 모으는 사람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책에는 ‘베스트셀러’라는 왕관이 씌워진다. 베스트셀러에는 시대와 유행이 반영된다. 1980년대 초반 시(詩)의 시대를 거쳐, 2000년대에는 경영학 책이 각광받았고 최근에는 인문학책이 부활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가상인터뷰 ‘Who & What’(후 앤드 왓) 이번 회에서는 어느 직장 여성의 서재에 꽂혀 있는 베스트셀러들이 새로운 친구를 맞게 되면서 벌이는 소동을 희곡 형식으로 풀어 봤다. 출간 당시에 주목 받은 책들이 실제로는 어떤 애환을 겪는지, 또 시간이 흘러가며 잊혀지는 책의 모습은 어떠한지를 들어 봤다.   ========================================================================  ●등장인물  -장혜진. 책을 좋아하는 32세 직장 여성. 빌려서 보기보다는 직접 사서 소장하는 스타일    ●등장도서  -정의란 무엇인가(정의)/ 마이클 샌델/ 김영사/ 2010  -아프니까 청춘이다(청춘)/ 김난도/ 쌤앤파커스/ 2010  -셰익스피어 4대 비극(비극)/ 찰스 램/ 성우/ 1984  -곰돌이 푸(푸)/ 앨런 밀른/ 아름드리/ 1995  -시간의 역사(시간)/ 스티븐 호킹/ 청림출판/ 2000  -성공하는 사람의 7가지 습관/ 스티븐 코비/ 김영사/ 1994  -신의 물방울(물방울)/ 기바야시 신/ 학산문화사/ 2007  -오만과 편견(오만)/ 제인 오스틴/ 민음사/ 2003  -호밀밭의 파수꾼(파수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문예출판사/ 1998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세계)/ 김우중/ 김영사/ 1989  -수학의 정석(정석)/ 홍성대/ 성지사/ 1992  -성경/ 모세 외/ 성서원/ 2008  -해리포터 시리즈(포터)/ J.K.롤링/ 문학수첩/ 1999  -홀로서기/ 서정윤/ 청하/ 1987  -그 외 책들    ●시간=2011년 5월 15일 저녁부터 이튿날 새벽 1시 무렵    ●장소=책장 여럿과 책상 하나로 가득 찬 좁은 방. 책장은 빼곡히 차 있고, 책상 위에는 컴퓨터가 놓여 있다.    #1  저녁 7시. 외출을 다녀온 혜진이 방으로 들어서며 불을 켠다. 손에 든 종이가방에서 책(정의, 청춘)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이어 책장을 둘러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혜진/ 책을 더 이상 꽂을 공간이 없잖아. 정리해서 될 일이 아니네. 다음 주에 회사에서 바자회를 한다는데 좀 내놔야겠네.    손에 종이가방을 든 채로 불을 끄고 방을 나간다.    #2.  밤 11시. 천천히 불이 켜진다. 책장에서 책들이 하나둘씩 등장해 새로 온 책들 쪽으로 다가간다.  ▲포터/ (촐싹대며) 또 왔어. 어떻게 밖에 나가기만 하면 새 책을 사 갖고 오냐. 내일이면 누군가 쫓겨나겠는데.  ▲정의/ (천천히 일어서 주변을 둘러본 후 딱딱한 목소리로) 서점에 나가는 순간 입양될 거라고 하더니 정말 그러네. 하루 만에 팔려오다니. 안 그래, 청춘?  ▲청춘/ (패기 넘치는 목소리로) 생각보다는 책이 많네. 주인이 책을 좋아하나 봐. (포터를 쳐다보며) 거기 안경 낀 학생. 이 집 분위기는 어때?  ▲포터/ (순간 멈칫하며) 학생이라니. 이래 봬도 당신보다 열살 이상 위라구. 뭐 아무튼 살을 부대끼며 계속 살게 될 테니 그 정도로 하고. 이 집 주인은 회사원인데, 책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사람이우. 보아하니 당신들이 정의와 청춘인 모양인데 요새 계속 산다산다 하더니 결국 왔구먼.  ▲정의/ 그런데 서 있을 곳도 없어 보이네.  ▲포터/ (심각한 표정으로) 그래서 당신들을 마음껏 반길 수 없는거유. 새로운 책이 오면 여기 중 누군가는 방을 빼야 한다는 거지.  ▲청춘/ (화들짝 놀라며) 그래요? 미안해서 이걸 어쩌나.    이때 구석에서 초라하고 늙은 모습의 ‘비극’이 천천히 걸어나온다. 온화한 모습이다.    ▲비극/ 아무도 자네들을 미워하지 않는다네. 마음의 양식이라는 둥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둥 우리를 떠받드는 것 같지만, 책 팔자는 주인 맘이라오. 많이 팔린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니고, 무조건 오래됐다고 책장에서 밀려나는 것도 아니고. 얼마 전 이 집에 왔던 재테크 서적은 베스트셀러라고 뻐기더니 이틀 만에 재미 없다고 어디론가 사라져 갔지.  ▲정의/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모습으로) 난 좀 다를 거유. 한국에서만 100만권이 넘게 팔렸거든요.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 얘기는 들어보셨나 모르겠네. 소설이나 재테크 책처럼 날 취급하면 안되죠.    여기저기서 키득키득대는 소리가 들린다.    ▲포터/ (한쪽으로 뛰어가더니 ‘시간’을 두드려 깨운다) 형님 등장하실 시간이에요. 강적입니다.    ‘시간’이 천천히 일어난다. ‘정의’ 쪽을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드러누워 잠든다.    ▲정의/ (얼어붙은 목소리로) 저 분이 누구신데요?  ▲비극/ 스티븐 호킹 교수가 쓴 ‘시간의 역사’라네. 전 세계적으로 1000만부 이상 팔린 친구지. 저 친구의 유일한 문제는 어렵다는 거야. ‘역사상 가장 안 읽힌 베스트셀러’라는 칭호까지 얻었지. 주인도 몇 번 시도하다가 실패하고는 저 상태로 계속 잠만 자고 있어. 똑같은 과학책이라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화려한 사진 때문인지 열심히들 읽었는데. 쯧쯧.  ▲정의/ 그럼 처음부터 사질 말았어야죠.  ▲비극/ 어허. 책은 단순히 지식을 전파하는 도구가 아니라네. 사는 사람의 허영이나 욕망도 반영하고 있는 존재지. 남들이 읽었다면 읽어보고 싶고, 남들이 내가 그 책을 읽었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원하기도 하지. 내 보기엔 자네의 정의론도 호킹의 물리학과 별로 달라보이지 않네만.    ‘정의’, 갑자기 시무룩해져 주저앉는다. 이때 ‘청춘’이 나선다.    ▲청춘/ 그럼 여기 계속 있는 책은 공통점이라도 있는 건가요?  ▲비극/ 그거야 주인 따라 다르긴 한데. (‘포터’를 가리키며) 저 친구는 형제 23명이 이 집 책장에 있어. 워낙 유명해진 덕분에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있는데, 개봉 때마다 주인이 줄거리가 기억이 안 난다며 다시 꺼내지. (옆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오만’을 쳐다보며) 저 숙녀분 역시 형제들이 다 이 집에 있지. 주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제인 오스틴이거든. (‘청춘’에게 귓속말로) 오스틴이 사실은 글을 정말 못 썼고, 편집자가 엄청나게 고쳤다는 얘기를 듣고는 주인이 상심하기도 했어.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오며) 여기 이 친구는 ‘성공하는 사람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인데. ‘청춘’ 자네의 조상쯤 되지. 물론 이 집 주인도 그렇지만, 이 책을 읽고 실제로 성공했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네. 여기 이 날씬한 친구는 ‘홀로서기’라고 아주 감성이 예민해. 한때 한국에도 시집이 베스트셀러 1위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산증인이야.  ▲청춘/ (가장 위쪽을 가리키며) 저기 저분은요? 같은 분들이 여럿인데요?  ▲비극/ (‘청춘’을 손끝을 따라가다가 황급히 눈을 내리깐다) 아.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이자, 기본적으로 몇 개씩 갖게 된다는 ‘성경’이라는 분이야. 굳이 분류하자면 역사책이신데, 최소한 60억권 이상은 팔리셨다더군. 겉표지부터 가죽이신데다 지퍼로 몸을 감싸고 계셔서 대화는 주인하고만 하시지.    ‘비극’이 힘들어하며, ‘포터’를 향해 손끝을 까닥인다.    ▲포터/ 저 옆에 하얀 표지에 두꺼운 분은 ‘정석’인데, 한국 고등학생들의 필수 참고서 같은 거지. 근데 전 세계 100대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다는 거 아니야. 4000만권쯤 팔렸고, 아직도 매년 100만권 가까이 팔리지. 머리쪽에 때가 많이 탄 것은 사람들이 매번 새로운 마음 어쩌고 하면서 처음 부분만 집중적으로 봐서 그렇대. (‘세계’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며) 아니 저 분도 아직 계셨네. 한국 자서전의 시조쯤 되는 분인데, 대기업 회장님이 쓰신 책이지. 근데 그 기업이 망하고 그러면서 절판됐다던데. 그 옆에 우울한 표정의 친구는 ‘파수꾼’. 그냥 성장소설일 뿐인데, 테러범이나 사이코패스들의 범행현장에 자꾸 발견되는 통에 괜한 오해를 사고 있는 불운한 책이지.  ▲청춘/ 저기 곰돌이 그려진 책은요?  ▲포터/ ‘곰돌이 푸’. ‘어린왕자’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같은 친구들은 다른 집에서는 애들이 크면 다 버리던데, 이 집 주인은 시집올 때 가져왔거든.  ▲청춘/ 저런 동화책들은 얼마나 좋을까요. “그후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다.”는 뻔한 얘기만 해도 다들 예뻐라 하잖아요.  ▲포터/ 그게 그렇지가 않더라고. 쟤 결말이 크리스토퍼 로빈이 크면서 더 이상 푸와 숲속 친구들을 찾지 않게 되는 거더라고. 사실 백설공주도 원래는 왕비를 데려다가 뜨거운 불판에서 맨발로 춤을 추게 했다나 뭐라나.    이 때 ‘정의’가 벌떡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나온다.    ▲정의/ 다 좋은데 쟤는 도대체 뭡니까. (정의가 가리킨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물방울’이 있다.) 만화책 나부랭이는 왜 있는거죠?  ▲포터/ (‘물방울’ 쪽으로 뛰어가 앞을 가리고 ‘정의’를 향해 혀를 내민다.) 너도 정신 차리려면 멀었다. 책의 가치는 주인이 정하는 거라고 그렇게 얘기했는데. 지금까지 와인에 대한 어떤 책도 얘만큼 많은 정보를 주진 못했다구. 니가 아무리 베스트셀러라도, 팔리는 순간 니 운명은 주인 맘이야. 주인이 외면하면 넌 그냥 종이쪼가리라니까.    이때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책들 황급히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순식간에 암전된다.    #3.    잠옷 차림의 혜진 들어와 불을 켠다. 책장을 살핀다.    ▲혜진/ 잠이 안 오는데 책이나 읽어야지. (구석에서 ‘시간’을 발견한다.) 이 책이 아직도 있었네. (웃음) 오랜만에 한번 다시 도전해 볼까. 뭐 읽다 보면 잠이라도 오겠지.    혜진 불을 끄고 시간을 들고 퇴장한다. (끝)   ※도움말 주신 분 : 김현정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담당 북마스터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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