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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샤갈/75년만에 교향 ‘방문’

    ◎22년 35세때 러 혁명후 탈출… 생애 마감때까지 불서 활동/스위스 손녀가 작품71점 벨로루시의 민스크서 전시회 마르크 샤갈이 고향인 벨로루시에서 쫓겨난지 75년만에 고향을 찾았다.유태인이면서 옛소련공화국인 벨로루시 태생인 그는 35세때인 1922년 러시아혁명후 소련을 탈출한다.당시 공산주의 당국으로부터 탄압을 피하려 외국으로 나가려는 지성인의 물결에 합류,이후 프랑스에 정착한다.그가 고향을 등지자 소련당국은 고향인 벨로루시는 물론 소련 전지역에서 그의 작품이 전시되는 것을 영구금지시켰다.물론 소련은 샤갈이 미처 갖고 나가지 못한 작품을 반출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샤갈의 작품이 고향을 다시 찾게 된 것은 스위스에 사는 손녀 메이어 그라버씨(55)의 주선때문이다.그녀는 『샤갈 작품의 정신세계는 알게 모르게 그의 고향이 표현돼 있어 고향을 찾지 않고는 그의 영혼을 달래주기 힘들었다』며 전시회의 의미를 설명한다. 6월 초부터 민스크박물관에서 시작된 전시회의 또 다른 의미는 이를 계기로 옛소련때문에 ‘문화 황무지’로 남을수 밖에 없었던 벨로루시 공화국에 국가자존심을 회복시켜줄 것이라는 점이다.아직도 상당수의 예술인들은 샤갈이 벨로루시에서 청소년기와 중년을 보냈다는 사실을 모른다.당시 소련당국은 그가 유럽으로 탈출하면서 모든 백과사전과 예술관련사전에서 그의 이름을 지웠거나 벨로루시태생이라는 것을 나타내지 못하게 한 때문이다. 샤갈이 고향 벨로루시에서 얼마나 탄압을 받았는가는 샤갈탄생100주년 기념을 즈음한 옛소련의 태도에서도 나타난다.1987년 이스라엘이 탄생100주년 기념전을 화려하게 열자,소련의 지방정부였던 벨로루시는 일부 백과사전편집진들에게 압력을 넣어 반유태인 논조로 글을 싣도록 강요했다.한 편집인이 법적소송을 걸다 강제사직 당했고 한 영화인은 샤갈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를 제작했으나 벨로루시정부는 시사회조차 갖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모스크바의 미술인들은 『우리가 알기론 샤갈이 레닌의 초상화를 그리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오히려 레닌이 머리를 숙이고 있는 그림을 그려 당국에서 추방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가 반공산주의자의 선봉이었음을 지적했다. 그라버씨가 가져올 작품은 구아슈 수채화물 8점,샤갈작품모음집에서의 수채화 4점,파리 현대미술관과 그의 생애 대부분을 보냈던 프랑스 니스의 샤갈미술관에서 빌려온 석판화 59점이다.샤갈이 해금돼 그의 기념관이 벨로루시 수도 민스크에서 동쪽으로 250킬로미터 떨어진 비테브스크 포크로브스카야거리 한 구석에 세워진 것은 1992년이었다.
  • 「경기 국보」 100여점 한자리에/경기도박물관 개관1주년 기념전

    ◎불교관련품·서예·회화류 등 다양 지난해 국내 첫 도립박물관으로 문을 연 경기도박물관이 박물관 개관1주년을 맞아 지난 21일부터 용인시에 소재한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경기국보」전시회를 열고 있다. 전국의 기관과 개인이 소장한 경기 문화재들을 한자리에 모아 보여주는 이 전시에는 국보 7점과 보물 23점,경기도 유형문화재 5건 등 70여건 100여점이 나와 있다.전시물들은 국립중앙박물관,국사편찬위원회,궁중유물전시관,한빛문화재단,국립문화재연구소,서울대·동국대·고려대·이화여대·연세대박물관,목아불교박물관과 개인소장가들이 대여한 것들.불교관련품 10여건,교서·전적류 15건,초상화(영정) 5건,서예·회화류 25건,도자기류 20건,경기도 소재 비문 탁본 8점과 부동산문화재 사진 15점 등으로 구성돼 있다. 경기도에서 생산됐거나 출토된 문화재,경기도와 관련된 사람이 제작한 문화재들로 구성된 전시물들은 경기인의 삶과 모습을 비롯해 멋과 솜씨,불교와 이상세계,정조대왕과 수원 화성의 연관성,경기도내 소재 부동산 문화재의 특성 등경기지역의 문화·역사와 특성도출에 이해를 돕도록 꾸몄다는게 박물관측의 설명이다. 전시물 가운데 광주 금사리계 가마에서 제작된 개인 소장의 국보 제263호 「청화백자산수화조문대호」는 양감이 풍부하고 모양이 준수한 조선시대 백자로 그 자태가 돋보인다.또한 양평군 강상면 신화리에서 출토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보 제186호 「금동여래입상」은 고구려 불상으로 추정되는 대형불상으로 도금이 거의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어 눈길을 끈다.(8월3일까지)
  • 만화같은 세상의 「만화잔치」에(박갑천 칼럼)

    지나간시대 어떤 높은양반이 신문에난 자신의 닮은그림(희화·만화)을보고 화를냈다.사람을 뭘로 봤길래 이리 그렸냐면서.만화란 특징을 부풀려 돋뵈게 하는 점이 초상화와는 다른법인데.만화같은 뼛성이었다고나 해두자. 사람들은 자신의 희화를 대체로 탐탁하게 생각않는 듯하다.버너드 쇼도 그중 한사람.그당시 만화가들은 수염달린 쇼의 얼굴을 즐겨그렸는데 쇼는 시큰둥했다.어느날 기자들에게 게정댄다.『사진은 80%가 당자얼굴이고 찍는 기교는 20%야.그림은 75%가 화가능력이며 본인얼굴은 20%정도고.만화는 어떤가.어린애장난이야.닮은일이 없거든.어느날 친구방에 가서야 날닮은 만화하나를 봤어.참혹해뵈긴 했지만 만화란 저쯤은 돼야한다고 생각했지.한데 그만화가 움직이더란 말야.자세히 보니 거울이더군』.이를두고 넉살좋다고 도리머리칠 일은 아니다.인생을 희화화한 독설가의 면모가 번뜩이지 아니한가. 「옐로 페이퍼」에대한 국어사전의 풀이는 『야비하고 저속한 선정적기사를 주로 다루는신문』.이른바 황색신문이다.영어에서는 옐로 저널(리즘)이라고도 한다.이말이 만화와 관계된다. 지금부터 1백년전 「뉴욕월드」지에 연재된 만화 「옐로키드」의 주인공은 노랑색옷 입은 소년.최초의 색채만화로 인기가 높았다.그러자 경쟁지 「선데이저널」이 그 만화작가 R F 아웃콜트를 빼내간다.부레끓은 「뉴욕월드」는 새작가를 찾아 그만화를 계속 연재했다.자연히 두신문 사이에는 불꽃튀는 경쟁이 벌어질밖에.인기를 위한 싸움의 핵심이 노랑옷이었기에 두신문은 「황색지」라 불리게되고 그게 오늘로까지 이어져 내린다. 물론 만화에는 시사만화만 있는건 아니다.풍속(역사)만화·가정만화·어린이만화 등이 교양·지식이나 사회상을 내용으로 다루어진다.그건 또 개그만화·SF만화·극화 등으로 그성격을 나눠볼수도 있겠고.오늘날에는 그것들이 동화에 의한 영화·텔레비전 만화로서 뿌리를 넓혀나간다.어린이때뿐 아니라 어른이 돼서까지 즐기게된 사회의 흐름 때문이다.콩켸팥켸 복대기는 이승의 삶이 만화같기에 그런다고 해두자. 「97서울국제만화잔치」가 한국종합전시장에서 열린다(8월14∼21일).50여개국이 참가하는 이잔치는 우리만화산업의 현주소를 가늠하면서 뻗어날 새로운 길을 내다보게도 한다는 뜻이 깊다.좋은 성과를 기대한다.〈칼럼니스트〉
  • 히틀러 등장 TV 껌광고 중단(조약돌)

    ◎주한 독 대사관 자제 요청따라 ○…아돌프 히틀러의 초상화가 등장하는 오리온제과의 「엔토피아」껌 TV광고가 주한독일대사관의 중지요청으로 방송에서 사라졌다. 「엔토피아」의 광고는 히틀러의 초상화위에 『만약 이 사람이 웃을줄 알았다면 현대사는 다시 쓰여졌을지 모릅니다』라는 광고문구가 나온뒤 히틀러가 웃는 모습을 컴퓨터로 합성한 것. 독일대사관은 지난 2일 클라우스 볼러스 대사 명의의 서한을 외무부에 보내 『반인류 범죄자인 히틀러를 등장시켜 과거사를 잊지 못한 희생자를 자극하고,범죄자를 단순히 희극의 대상으로 만들었다』면서 방송을 중지해줄 것을 요청했다.
  • 조선 이경윤의 「시주도」 노선비(한국인의 얼굴:105)

    ◎근엄하나 인저한 눈길에 도인의 풍모 조선시대 중기 그림에서 인물만을 앞세운 작품이 더러 있다.인물화 성격을 따 이경윤(1545∼1611년)의 「시주도」가 그것이다.그는 이와 비슷한 인물화로 「송별도」도 그렸다.초상화가 아닌데도 배경을 거의 무시한 「시주도」에는 세속에 물들어 보이지 않은 학덕 높은 선비 고사와 동자가 나온다.오늘날 역사소설의 삽화처럼 인물표정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이 그림은 화제부터가 사뭇 낭만적이다.사림세력의 성장에 따라 선비들의 정서가 한껏 푸근했던 시대배경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그렇듯 16세기의 선비정신이 짙게 깃들였다.그림의 매력을 다시 말하면,선비의 내면세계가 담긴 고매한 인품을 그려냈다는데 있다.화가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최립(1539∼1612년)은 그림 한쪽에 써넣은 글발에서 「그림속의 인물은 비범하고 속기가 없다」고 했다. 「시주도」는 선비가 돈이라는 깔찌에 걸터앉아 술단지를 받쳐들고 선 소년을 바라보고 있는 그림이다.바탕천에 술을 칠한뒤 먹물을 입힌 이른바 선염법으로 둥그스럼하게그린 언덕 말고는 배경이 아무 것도 없다.그래서 인물이 더욱 두드러지게 부각되었다.선비는 옷 둘레에 검은 천을 잇대어 꾸민 학창의를 입었다.몸뚱이는 희고 나래끝이 검은 두루미를 본떴다는 이 두루마기는 글줄이나 읽는 문사들이 즐겨 입은 옷이다. 주인공 선비는 근엄한 표정으로 술이 담긴 항아리를 내려다 보고있다.항아리를 받쳐 든 소년은 고개를 숙였지만 선비의 기색을 살피는 눈치다.눈을 치깔은 선비와 눈동자를 할긋 돌린 소년의 표정이 묘하게 대비되었다.그러나 선비의 얼굴은 근엄할 뿐 무섭지는 않다.심부름 하는 아이를 대하는 것이지만 마치 어린 손자를 내려다 보는 할아버지 눈매처럼 인자한 데가 있다.단지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술항아리를 들고 온 소년이 안쓰러웠는지도 모른다. 선비는 늘그막에 든 연고한 나이라서 머리숱이 아주 적다.그래도 함함하게 빗어 올리고 조그마한 치포관으로 상투만을 덮었다.그래서 도인같은 풍모도 우러났다.몇 가닥 남지않은 머리를 빗어올려 상투를 틀었기 때문에 그러지 않아도 높은 이마가 훤하게 드러났다.콧날이 젊을 때나 다름없이 여전히 우뚝한 선비는 그리 실하지 않은 수염을 점잖게 길렀다. 이경윤의 그림을 보고 「속기가 없다」고 한 최립은 이런 말을 덧붙였다.「그림의 작가를 만난 적은 없으나 인물에는 자신의 모습이 깃들여 있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 퀴리부인과 국립묘지/정준극 원자력연 책임기술원(굄돌)

    전·노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판결이 얼마전 있었다.이에 따라 두 분은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여러가지 제외 사항중에서 특별히 관심을 끄는 부분은 이들이 작고하더라도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무릇 국립묘지에 안장된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단한 영광이 아닐 수 없다.나라를 지키다가 장렬하게 산화한 용사들,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던졌던 불후의 투사들,그리고 나라의 발전을 위해 헌신했던 여러 유공자들…. 그건 그렇고 한가지 국립묘지에 대하여 아쉬운 점이 있다.문화·예술 그리고 과학분야에서 나라의 위상을 크게 떨친 인물들도 작고후 이곳에 안장되므로써 만인의 추앙을 받을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영국의 국립묘지라고 할 수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는 만유인력을발견한 「뉴턴」을 비롯하여 오라토리오 메시아로 유명한 「헬델」,그리고 문호 「세익스피어」가 안장되어 있다.프랑스의 경우에는 더욱 감격적이다.파리의 판테웅에는 사상가인 「블테르」와 「루소」,문호 「빅토르 위고」외에도 저명과학자인 「라부아시에」와 수학자 「라그랑시」 등이 모셔져 있다.가장 최초에 판테옹으로 입주한 과학자는 저 유명한 「큐리부인」이다.큐리부인은 노벨상을 한번도 아니고 두번씩이나 받은 여성 과학자이다.그는 원래 폴란드 사람이지만 프랑스로 온 후 피엘 큐리라고 하는 과학자와 결혼했기 때문에 마담 큐리가 되었다.큐리부인은 지금부터 60여전전에 프랑스의 어떤 한적한 시골에서 작고했다.큐리부인은 교통사고로 그보다 일찍 세상을 떠난 부군의 묘소바로 옆에 안장되었다.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은 판테옹에 여성이 한 분도 없다는 것을 프랑스 온 국민과함께 극히 미안하게 생각하여 재작년 4월에 큐리부인을 판테옹의 반열에 모시도록 결정했다.프랑스 의회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판테옹에 안장되려면 반드시 대통령의 추천이 있어야 하고 의회의 승인을받아야 한다.이와함께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 화폐중에서 가장 고액인 5백프랑짜리 지폐에 큐리부인의 초상화를 넣어 새로 발행했다.5백프랑이면 우리 돈으로 대충10만원에 해당한다. 만일 우리나라에도 10만원권 지폐가 있다면아마 한보의 사과상자가 케이크상자 정도로 간편하게 줄어 들었을지도 모른다.그건 그렇고 우리나라 국립묘지에는 언제나 위대한 과학자가 모셔질지 궁금하다.우선은 그만한 자격의 과학자가 나와야겠지만 말이다.
  • 조선전기 문신 장말손의 영정(한국인의 얼굴:101)

    ◎하관이 좁아 날카로운 인상/예리한 눈매에 선비의 꼿꼿함… 옛날에는 얼굴그림인 초상화를 다른 말로 불렀다.상이나 초,또는 진영이나 영정,화상따위가 바로 초상화를 의미했다.어떻든 초상이라는 인물화는 조선시대 들어서 더욱 발전했다.건국 초기부터 유교를 지도이념으로 삼은데 그 원인이 있다.이를테면 유교에 바탕을 둔 보본사상은 자신들의 뿌리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에 하나를 초상화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다. 조선시대 초상화하면,관복을 입고 근엄한 자세로 의자에 앉은 이른바 정장관복의 전선교의좌상을 연상할 수 있다.15세기말에 그린 장말손(1431∼1486년)영정을 보면,그러한 구도의 초상화는 조선시대 전기에 이미 자리매김을 한 모양이다.세로 171㎝,가로 107㎝의 비단에 물감으로 그린 그의 초상화는 후손이 소장했다.작품성이 뛰어나 보물502호로 지정되었다. 얼굴은 왼쪽 볼과 귀를 드러낸채 오른쪽을 향했다.오른쪽 얼굴의 윤곽은 눈꼬리를 약간 비켜서면서 광대뼈를 지나갔다.그리고 얼굴 아래부분 하관이 빨라 날카로운 인상이 되었다.바로 뜬 눈과 날이 선 코가 역시 날카롭다.얼굴이 향한 쪽 정면에다 촛점을 맞춘 눈동자가 한점도 흐트러지지 않았다.예리한 눈이다.젊어서는 꽤나 총명하다는 말을 들었을 법한 얼굴이라 할 수 있다. 눈썹은 아직 웃자라지 않아 가지런하나,위엄이 들어간 용미에 가깝다.양미간과 눈 아래에는 잔주름이 졌다.그리고 인중 가장자리 좌우로 넓게 자리를 차지하고 삐쳐내려온 주름이 깊었다.꽉 다문 입 언저리에 그리 실하지는 않지만,수염도 알맞게 자랐다.턱수염은 거의 한 뼘은 자랐고 귀 앞 살쪽에 돋아나는 터럭 빈(윤)이 그런대로 터를 잡았다.유별나게 돋보이는 귀는 얼굴에다 한결 무게를 실었다. 검은색 사모 오사모를 쓰고 깃이 둥근 공복인 단령을 입었다.각이 진 단령은 얼굴 못지않게 날카롭다.단령속에 받쳐입은 벼슬아치의 평상복 창의는 귀밑까지 바짝 올라왔다.그리고 발받침에 올려놓은 두 발이 앞을 향했다.이는 15세기말 공신초상의 전형이거니와,공신도상이 조선 중기를 넘어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초상화속의 인물 장말손은 세조와 선종때를 거친 문신이다.1467년 세조13년에 이시애의 난을 누르는 공을 세워 적개공신 2등의 품위를 받았다.그리고 나서 1482년 연복군으로 책봉되었다.
  • 어린이날 망치는 장삿속/과소비 조장… 동심 멍든다

    ◎1주일 앞두고 호텔들 20만원대 이벤트/백화점·패스트푸드점 값비싼 경품 유혹 어린이 날을 앞두고 돈벌이에 급급한 얄팍한 상혼이 판을 쳐 과소비를 부추기고 동심을 멍들게 하고 있다. 유명 호텔에서는 15만∼20만원짜리 가족 동반 어린이 날 행사를 마련,인형전 등 전시회와 가족초상화 그려주기 등 이벤트를 곁들이고 가족이 함께 오면 20%의 할인 혜택을 주겠다고 선전하고 있다. 백화점들은 어린이 날 특수를 겨냥, 값비싼 외제 장난감 등을 쌓아놓고 어린이들에게 손짓하고 있다. 전국적인 체인망을 가진 대형 패스트푸드점들은 장난감과 컴퓨터 게임기 등을 경품으로 내걸고 어린이들을 유혹하고 있다. 또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각종 사설 학원이나 단체들도 참가비만 해도 5만원∼10만원씩을 받는 고궁·야외 사생대회를 급조,대대적으로 「손님」을 끌어 모으고 있다. 이같은 상술은 이미 수년전부터 시작됐으나 특히 올해는 더욱 극성을 부려 가뜩이나 불황으로 가계에 압박을 받고 있는 많은 부모들을 우울하게 만들면서 사회 전반의 과소비 억제 분위기를 해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어린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백화점들의 판매전략은 매우 다양하다. 「환경미술대회」 등 어린이 관련 행사를 가질 예정인 서울 모 백화점은 입상자수를 지난해보다 두배로 늘렸다고 대대적으로 광고하고 있다.참가자 수를 늘리겠다는 속셈에서다. 이 백화점은 특히 5월 1∼5일사이 현재 20여평인 완구백화점을 2배규모로 늘여 5∼8만원대의 조립용 로보트,18만원대의 컴퓨터 게임기,20만원대의 여아용 소꼽놀이세트,심지어 20만원대의 일본제 원격조정 자동차 등을 대대적으로 전시·판매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과소비 세일에 앞장서고 있다는 지탄을 받고 있다. 강남의 또 다른 백화점도 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어린이날 행사에서 입상하는 어린이들에게 「얼굴 페인팅」을 해준다고 선전하고 있으며 7만원 이상의 물건을 사면 복권식 경품을 나눠주겠다며 사행심까지 조장하고 있다. K치킨점,L·M 등 유명 패스트푸드점은 1만∼3만원까지 일정액 이상을 사면 로봇 장난감과 전자 게임기 등을 경품으로 나눠주고 있다.부모들은 장남감을 탐낸 어린 아이들의 성화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비싼 상품을 구입할 수 밖에 없다. 한 유명 피자전문점도 지난 16일부터 어린이 날까지를 「대 축제기간」으로 정하고 3만2천∼3만6천원짜리 값비싼 피자 세트를 주문하는 손님에 한해 컴퓨터 게임기 등을 나눠주고 있다. 휴일인 27일 자녀들과 함께 패스트푸드점을 찾은 주부 김미숙씨(36·서울 마포구 공덕동)는 『아이들이 경품으로 주는 장난감을 갖겠다고 졸라 어쩔 수 없이 3만원짜리 음식세트를 샀다』고 불평했다.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모임 상담연구원 이정희씨(25·여)는 『어린이날 자녀들이 졸라대는 것을 부모가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느냐』면서 『일부 악덕 업주들이 상술에 대처할 능력이 없는 어린이들을 현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이 단체는 최근 어린이용품이 백화점에서 수입가의 6∼8배 가격으로 팔리는 것을 밝혀낸데 이어 어린이날 바가지요금 등에 대해서도 조사에 나설 예정이다.
  • 페루 수도 리마(세계 문화유산 순례:28)

    ◎침략자 유적에 가려 잉카의 영화는 전설로/정복자에 유린된 찬란한 「황금의 도시」/태양의 제전에는 이방인유적 번듯이/산마르틴 광장에는 유럽·남미문명이 함께 호흡 중남미 광대한 대륙에는 마야문명 말고 또다른 신비의 잉카(Inca)문명이 있다.그 문명의 중심지 페루로 떠나기에 앞서,마야문명을 뒤로 한다는 아쉬움에서 선인장으로 만든 술 데킬라 몇잔을 마셨다.지도로 본 리마는 멕시코시티에서 그리 멀지않은 것처럼 보였다.그러나 멕시코시티를 떠나 페루의 수도이기도한 리마까지는 비행기로만 꼬박 7시간이 걸렸다. 밤늦은 시각리마에 닿았다.경제사정이 어렵고 사회가 안정되지 않은 탓인지 숙소로 가는 도중에 만난 사람들 표정은 밝지 않았다.그러나 리마라는 도시 자체는 날이 밝은뒤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리마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역사유적지구라서 그야말로 고색창연했다.그런만큼 많은 유적들을 간직했거니와,스페인 식민지시절(1532년∼1824년)만들어진 건물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리마는 크게 산 마르틴(San Martin)광장을 중심으로 하는 구시가지와 20세기 들어 개발한 신시가지로 구분됐다.지금은 일종의 우범지역으로 변해버렸지만 구시가지는 한때 리마의 중심지였다.산 마르틴 광장 한가운데는 당당한 모습으로 말위에 올라앉은 남미 해방의 영웅 산 마르틴 장군의 동상이 우뚝했다.잉카와 스페인,오늘의 남미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산 마르틴 광장은 「히론 데 라 우니온」(Jiron de la Union)이라 이름붙여진 길을 따라 남쪽으로 통했다.약 1㎞에 이르는 이 길 주변에는 각종 상가건물이 빼곡히 들어섰다.마치 서울 명동거리가 연상됐다.길이 끝나는 곳에는 대통령궁·시청 청사 등이 관아가를 이루었고,바실리아 대성당 등 주요 건물들도 함께 자리했다. 대통령궁은 식민지시대 건축물 양식을 그대로 보여주었다.1532년 잉카제국을 무너뜨린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거처했던 곳이기도 했다.대통령궁은 항상 걔방돼 관광객들이 늘 붐볐다. 입구를 지나 중앙통로를 따라 들어섰다.2층의 대통령 집무실로 향하는 계단 양쪽으로 남미 해방의영웅 볼리바르 장군과 산 마르틴 장군의 흉상이 서있다.두 사람은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에서 각각 독립운동을 일으켜 남미대륙 전체에 해방의 기쁨을 안긴 인물들이다.그리고 그 아래 로비 대리석 바닥에는 잉카의 상징인 태양 문양이 각인돼 있었다.300년에 걸친 속박의 사슬을 끊어냈던 해방 당시의 모습을 상징한 것이다. 왼쪽으로 난 통로를 따라갔다.중간쯤에 170여년전 페루 최초의 대통령이 타던 프랑스제 마차가 고풍스런 모습으로 진열됐다.그리고 여러 개의 고급스러운 방이 주위를 빙둘러 이어졌다.1535년 스페인 특산물 타일로 장식한 화려한 벽화가 있는 접견대기실,남미 최고품인 니카라과산 나무 장식장 등으로 치장한 기자회견실도 그 주위에 있다.기자회견실에는 잉카제국 마지막 왕 망코의 둘째아들로 스페인에 맞서 최후까지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호세 가브리엘 곤도르칸키 케초아의 대형초상화가 걸렸다.베르사이유 궁전을 본따 장엄하고 화려한 바로크 양식으로 꾸몄다는 귀빈대기실은 관광객들이 탄성을 자아낼 만큼 호화스러웠다. 대통령궁 앞에서 날마다 벌어지는 위병교대식은 흥미로운 것이었다.매일 상오 11시30분이면 푸른색과 흰색 위주의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어린이들이 먼저 등장했다.어린이들이 전통민속춤을 추고나면 위병교대식이 진행됐다.그 의식은 근엄하기 보다는 국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려는 페루의 또다른 모습이기도 했다. 페루 역시 남미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카톨릭의 영향을 받아 성당 건축물들을 많이 남기고 있다.대통령궁 왼쪽에 자리잡은 바실리아 성당도 그중 하나다.1535년에 시공돼 남미 최초·최대의 성당이기도한 바실리아 성당은 1586년과 1746년·1940년 등 세차례에 걸쳐 지진을 겪고서도 끄떡없이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그래서 리마 사람들의 자랑이 대단했다. 이 성당에는 스페인 정복자 피사로의 미라가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채 유리관 안에 전시됐다.피사로는 1546년 자신의 심복의 손에 죽음을 맞았는데,미라 옆에는 고향에서 가져왔다는 한줌의 흙을 보관했다.정복자의 수구초심을 읽으면서 흥망성쇠를 안고 돌아가는 역사의 수레바퀴 소리를 듣는듯했다. 대통령궁에서 3블럭 정도 동쪽의 산 프란시스코(San Francisco)성당과 부속 수도원 역시 장관을 연출했다.1620년 바로크 양식으로 건축한 이 성당은,남미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힌다.성당 전면을 장식한 돌조각은 스페인의 세비야에서 들여온 것으로 그 아름다움은 극치를 이루었다.이 성당의 지하무덤 카타콤(Catacombs)은 유명했다.1788년에 지하 4층 규모로 만든 카타콤에는 성당건립에 기여한 사람들이나 성직자 4만여명이 잠들어 있다. 식민지시대 유적들에 가려 잉카의 흔적들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세계 어느 지역보다도 황금이 많아 엘도라도로 불렸다는 잉카제국.시내 중심가에서 동쪽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황금박물관」을 맨 먼저 들렀다.풍요로웠던 잉카문명의 역사가 어렴풋이나마 마음속에 들어왔다.태양이 신성한 숭배의 대상이었던 잉카인들에게 황금은 태양이 흘린 눈물을 의미했다. 잉카의 황금유물은 기원전(BC) 4세기에서 기원(AD)2세기까지 융성했던 비쿠스 문명에 뿌리를 두었다.그후 차빈·모체·나스카·와리·치무를 거쳐잉카문명기에 접어들어 더욱 활짝 피어났다.박물관에 전시된 목걸이·반지·코걸이·귀걸이·옷핀 등 장신구와 왕관·악기 등이 모두 황금제품이다.심지어 우의까지 금으로 제작한 것을 보면 황금을 다룬 솜씨인 연금술은 고도의 경지에 이르렀던 모양이다.그러나 풍부한 황금은 유럽 정복자들을 유혹했고,그 문명을 정복자들에게 내주는 비극을 불러들였다. ▷여행가이드◁ 페루의 화폐단위는 솔(Sol)로 미화 1달러당 2.2솔 정도다.시내에 크고작은 숙박시설이 많으나,안전을 고려해 호텔에 투숙하는 것이 좋다. 세비체·로모살타타·안티쿠초 등 페루 전통음식은 15달러로 조금 비싼 편.그러나 일반식당에서 당일 내놓는 메뉴를 주문하면 3달러 정도면 해결할 수 있다.한국식당의 웬만한 음식은 15달러 이상.물론 음료수와 물은 별도 주문이다.팁은 음식값의 10%.리마는 사막위에 세워진 도시인 탓에 지하철이 없고,출퇴근시간에는 교통난이 심한 편이다. 재미있는 것은 리마 시내를 돌아다니는 자동차의 30%정도가 한국산 자동차라는 사실이다.대통령궁이나 성당 등에 들어갈 때는 4∼5솔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 고려시대 안향 초상화(한국인의 얼굴:99)

    ◎기품어린 눈매에 인본주의 향한 열정이 고려시대 책에는 그림에 대한 기록이나 그림에 붙여놓은 글월인 제화시가 꽤 전해오고 있다.그럼에도 실물의 그림이 흔치 않아 그 흐름이나 화풍을 속속들이 들여다 보기는 어렵다.부처나 보살을 그린 종교화 성격의 불화를 빼고나면 고려회화는 몇 점에 지나지 않는다.공민왕이 그렸다는 두 점의 수렵도 이외에 신선과 학을 그린 그림,초상화 등이 고작이다. 초상화로는 안향(1243∼1306년)의 영정이 있다.경북 영주시 순흥 내죽리 소수서원이 소장한 이 초상화는 고려시대에 그린 그림을 조선 명종때 그대로 베껴 그린 모본이다.그러나 고려 초상의 전통을 보여주는 그림이어서 국보111호로 지정되었다.세로 37㎝,가로 29㎝ 크기의 비단 바탕에 물감을 써서 그린 본격 초상화다.누가 그렸다는 기록은 전혀 남기지 않았다. 요새 사람들이 마치 독사진을 찍는 것처럼 포즈를 잡았다.관복이 아닌 평상복 차림이지만 모자까지 갖추었다.모자는 천으로 만든 문라건인듯 한데,요즘 역사드라마에 나오는 문라건 보다는 춤이 좀낮았다.그리고 고려인들의 일상적인 겉옷 수포를 입었다.눈 높이를 약간 비켜서 위쪽에다 눈길을 준 초상의 주인공은 전체적으로 단정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고려의 선비다.어떤 볼룸이 들어가지 않은 평면의 초상화일지라도 사실적으로 보인다.눈썹과 눈,수염 등을 가느다란 선으로 꼼꼼이 처리했기 때문인 것이다.눈썹과 수염은 터럭 하나하나를 정성들여 그렸다.은행알을 닮은 눈매에는 쌍꺼풀이 지지 않아 눈이 더 없이 깔끔했다.그리고 동자가 맑아 기품이 어렸다.길어 보이는 코는 옅은 묵선을 그어 표현하고 입술은 얼굴색보다 더 붉은 색깔을 입혔다.맞물린 입술사이에 진한 묵선을 가로 그었다.그래서 과묵한 표정이 되었다. 이 초상화에서 만난 고려인 안향.고려불화에서 보아 온 불·보살들과는 달리 인간적인 얼굴로 다가왔다.그가 살았던 고려 후기는 위기의 시대였다.무신집권에서 비롯한 정치의 불안정,불교의 타락과 무속의 성행,몽고의 침탈 등이 위기의 실마리가 되었다.그러한 시대상황속에서 안향은 불교보다 주자학을 받아들여 이상을 실현코자 했다.특히 인재양성을 통해 인간이 지배하는 인본주의 사회를 꿈 꾸었던 것이다.그러고 보면 이 초상에는 자기수양의 그늘이 배어있다.
  • 주체철학의 행방/송상용 한림대 사학과 교수(굄돌)

    6년전 나는 한국철학회 소광희회장과 함께 도쿄에 있는 조선대학교를 공식 방문했다.한민족철학자대회에 북한 철학자들을 초청하기 위해서였다.우리는 황장엽을 비롯한 북한의 지도급 철학자들에게 서울에 와서 주체철학을 맘껏 소개해 보라는 편지를 보냈다.그뒤 판문점을 통해 북한의 반응이 왔으나 대회 명칭문제로 교섭은 결렬되었다.끈질긴 남쪽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북철학자간의 대화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주체철학은 사람 중심의 세계관이라고 한다.사람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매력이 없지 않다.그러나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수령론에 이르면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더구나 주체철학은 대를 이어 수령의 후계자를 받들 것을 요구한다.모든 전체주의에 개인숭배가 있지만 북한같이 철저한 예는 찾을수 없다. 분열되기 전 유고슬라비아에서 티토는 민족의 영웅이었다.그런데 그의 고향 쿰로베치는 민속촌 비슷한 평범한 마을이다.어디를 가나 담배가게,술집에까지 어김없이 티토의 초상화가 걸려 있지만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난 정성임을 알 수 있었다. 킴 리엔에 있는 호치민의 생가도 꾸밈이 없기는 마찬가지다.학자 집안의 소박한 삶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호치민은 「박 호」(호 아저씨)라는 애칭이 말해 주듯이 검소한 생활로 일관했다.화장해 달라는 호의 유언을 거슬려 미이라를 만들어 거대한 「랑주틱」(주석릉)에 안치한 것은 그의 후계자들이었다.문화대혁명도 「천안문 학살」도 없었던 베트남에서 호치민은 영원히 인민의 추앙을 받을 것이다. 김일성이 창시했고 김정일에 의해 발전되고 있다는 주체철학은 실은 황장엽의 작품이라고 한다.북한의 원로 철학자이며 김일성왕조를 떠받쳐 온 이데올로그인 그가 서울에 와서 자신이 한 일을 어떻게 정당화할지 궁금하다.
  • 「등」이후 중국­동북아­세계:Ⅱ(지구촌 칼럼)

    ◎본사 지구촌칼럼 필진 4명 국내전문가 1명 공동진단/국제정세 영향/리처드 하스 미 브루킹스연 외교정책실장/당분간 대외마찰 최소화/정치안정·경제번영땐 영향력 확대 등소평의 죽음은 우리에게 대답보다는 질문을 더 많이 남기고 있다.그의 죽음은 중국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그리고 세계에는. 분명 등소평이 중국에 끼친 영향은 지대했고 지금도 지대하다.현재의 중국은 모택동보다는 등소평의 국가라고 말해도 결코 과장은 아니다. 그러나 중국의 미래는 탄탄대로라든가 분명하다는 것관 거리가 멀다.중국은 시장경제 변화의 도입과 세계경제와의 연계증대를 굳게 약속한 것처럼 보인다.그렇지만 등 시대에 이런 일들이 아주 점진적으로 이뤄진 사실은 곧 커다란 의문들이 상존함을 뜻한다.강택민 등은 힘있지만 비능률적이고 돈이 많이 드는 국영기업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그들은 또 광범위한 부패,정부보조금의 축소,경제활동에 대한 국가통제의 완화지속 등을 헤쳐나가야 한다.이런 방향으로 움직여 나갈 때에만 중국은 세계무역기구에 합류할 수 있고세계에서 성공적으로 경쟁할 수 있다. 중국의 정치적 미래는 한층 불확실하다.공산당이 정부를 지배하는 상황에서 합법적인 후계를 위한 공식절차도 없고 민중의 반정부 시위를 다룰 법조항도 별로 없다.시간이 지나면 무엇인가가 주어져야 한다.경제개혁에 고삐를 물리고 중국의 잠재적이며 정치적인 개혁을 제한할 어떤 것이 나오던가 아니면 중국 지도자들의 힘을 제한하는 어떤 것이 나오든가 해야 할 것이다. 이 질문이 답해지는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그러나 이것의 현실적인 파장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크다.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번영할 때만 중국은 국경선 너머로 심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국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장으로서는 등소평의 사망이 중국의 바깥 세계와의 관계에 미칠 충격은 작아 보인다.등소평이 몇년에 걸쳐 차근차근 퇴장한 결과로 그가 지목한 후계자들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세력 변수들로부터 지지를 얻을 시간을 가졌다는 사실은 의미깊다.후계는 그의 사망 이후부터가 아니라 이전부터 이뤄졌다. 그럼에도 등의죽음은 새로운 불확실한 상황들을 야기한다.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중국의 역사는 후계결정의 시기에 합법성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권위가 채 확고하지 못한 후계가능 인물들은 대담한 정책이나 폭넓은 타협책을 택하기를 꺼리게 된다고 일러준다. 이것은 결국 앞이 보이는 장래,최소한 올 가을의 당대회 이후 상당기간까지는 상황이 예전과 아주 비슷하게 돌아갈 것이란 점을 말한다.미국은 이 기간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미국에는 예의 주시와 분명성과 일관성과 현실주의가 요구되는 때이다. 미국정부가 인권에 관해 장기적인 접근법을 택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중국지도자들이 갑자기 세계인권 규약준수를 다짐하고 반정부 인사를 석방하고 감옥에 대한 국제사찰을 허용할 리는 없다.변화는 오로지 시간이 지나야만,경제개혁과 중국지도자들의 자신감 확대의 결과로서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공개적인 압박보다는 은밀한 재촉이 진전을 이뤄낼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국 관리들은 홍콩에 대해서도 현실주의자가 될 필요가 있다.홍콩의 이양은 시간표대로행해질 것이 확실하다.더구나 중국지도자들이 홍콩의 민주적 관행들이 계속되고 발전되도록 허용하리라고 기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중국은 그러나 그들의 홍콩에 대한 태도가 많은 미국인들의 중국관에 큰 영향을 줄 것이란 점을 알아야 한다. 또다른 민감 사안인 대만 문제에서 중국은 자기의 권리주장에 절대적인 자세를 견지할 것이며 국제사회가 대만 정부와 어떤 관계라도 맺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할 것이다.대만에 전투기를 판매하려는 미국의 계획도 큰 저항을 받을 것이다.우리는 중국 군사력이 대만을 위협할 능력을 시범보인 지난해의 긴장사태가 어떤 식으로든 재연되는 것을 목격할 수도 있다.그럼에도 미국은 대만에 대한 의무를 완수하고 흔들림없는 자세를 지켜야 한다. 그밖의 지역에 대해 중국이 어떻게 나올까는 덜 분명해 보인다.그이유는 등 사망 이전에 관련 정책들이 정해지지 않은 것이 주요 원인이다.그래서 중국이 북한 식량난 문제에 개입해 대량의 식량지원에 나설지는 확실치가 않다.하지만 미국은 전쟁을 피하고 북한의 어떤 붕괴사태도 관리될 수 있도록 상호정책 협의를 할 만큼 중국을 개입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동아시아 경제/노조에 신이치 일 아세아대학 교수/중국도약은 아주발전 “핵”/개혁·개방의 흐름 단절 안될것 혁명가 등소평옹이 타계했다.그가 남긴 업적과 역할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할 생각은 없지만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등이 주도한 개혁·개방정책은 사람들의 욕망에 불을 붙여 중국경제를 「거대한 용」으로 소생시키며 21세기에는 미국과 유럽,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제의 잠재적 「핵」으로서 세계경제 틀 안으로 진입시킬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그러한 것은 중국인들에게 강한 희망과 자신감을 가져다주었다.중국의 개혁·개방 흐름이 등소평의 죽음에 의해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경제가 시장경제로 이행함으로써 고도성장이 이룩됐다는 사실은 매우 시사적이다.인간의 욕망을 긍정하고 경쟁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시스템의 도입으로 경재발전이 가능하게 된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자본주의를 초월하는 것으로 등장한 사회주의경제 시스템이 사실은 규제의 덩어리로 발전을 저해했다는 것은 옛 소련이나 중국의 경험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의미로 등소평 사망직전에 일어난 북한의 황장엽 서기 망명사건은 상징적이다.주체사상의 창시자라고 하는 황서기의 망명은 김일성체제의 종언을 의미한다고 할수 있다.더욱 주목해야할 것은 북한이 경제적으로는 이미 붕괴했다는 점이다.황서기도 「사람을 굶기는데 무슨 사회주의인가」라고 지적했다.북한은 80년대말 배급제도가 기능하지않아 계획경제체제는 붕괴되고 말았다.망명자의 속출은 인민이 자기체제를 포기했음을 의미한다.「인간이 주체」라고 계속 주장해도 인민을 철저히 지도자에 복종시키고 감시하지 않을수 없는 체제에서의 경제발전은 어렵다는 것이 분명하다.그러한 북한에 경제원조를 얼마나 하더라도 그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에 지나지않는다.북한의 연착륙설은 환상이라고 말할수 밖에 없다. 그런데 위에서 지적한 중국경제의 세계경제로의 등장은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는 동아시아경제에 거대한 충격을 주고 있다.일본을 선두로 아시아의 신흥공업경제군(NIEs),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 경제발전이 차례로 당구와 같이 연쇄반응해온 동아시아에 있어서 중국이라는 거대한 기관차의 등장은 동아시아경제의 발전가능성을 더한층 높이는 것이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세계의 투자가의 눈이 아시아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중국경제의 거대한 가능성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론이 없을 것이다.그러나 중국경제가 앞으로 순조롭게 발전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있다.중국의 지금까지의 발전이 외자 유입에 주로 의존했다는 것은 명백하다.문제는 그 발전을 보다 내실있고 영속성 있는 것으로 할수 있는가하는 점이다.이를 위해서는 중국이 국제규범을 준수하고 경쟁원리에 의해 움직이며 투명성 있는 시장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런 의미로 ASEAN 국가가 중국에 투자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시장개방을 적극적으로 권장해온 것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그것이 ASEAN 국가의 계속적인 발전을 보증하고 있다.주목하고싶은 것은 그 문제가 ASEAN이나 중국에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미국경제의 재생,일본경제의 어려움이라는 대조적인 현상도 그점에 깊이 관련돼 있다고 말할수 있다.다시말해 규제완화 등 보다 매력적인 투자환경 정비를 추진한 미국 경제가 부활한 반면 그것이 불충분하고 대응이 늦은 일본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어떤가.김영삼 대통령 정권은 출범과 함께 종래의 권위주의적인 정책운영방식에서 탈피,「국민의 자발적 참여와 능동적 창의」를 원동력으로 하는 새로운 정책운영방식을 추구할 것을 분명히 했다.그러한 아이디어는 상술한 세계적인 움직임에 대응한 것으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한국경제의 약진은 그러한 아이디어의 실천에 의한 것이라고도 말할수 있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도 그 결과이다.그러나 한보철강 부정융자사건의 발생은 권위주의적 정책운영방식이 여전히 청산돼지 않은채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OECD가입에 따라 한국은 앞으로 보다 개방적이고 투명성 높은 정책운영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그것은 한국경제에 큰 고통과 마찰을 가져다 주겠지만 그러한 진통을 극복하여 한국경제는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탈바꿈할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동북아 정세/예브게니 바자노프 러 외교아카데미 부원장/일 대외영향력 확대 제동/한반도 균형유지정책 계속 추진 중국 고대의 진시황제가 죽었을때 각종 희귀보물에 덮인 지하궁전과 거대한 석조전사등이 만들어졌다.살아있는 짐승과 사람까지 제물로 바쳐지기도 했다.1976년 혁명지도자 모택동이 죽었을때는 수천만 중국인들이 눈물을 흘리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중국에는 모의 초상화가 거대한 물결을 이루었었다.그러나 중국개혁의 원로 등소평은 특별한 거만도 떨지않고 조용히 역사속으로 사라졌다.거의 모든 중국인들은 울지 않았다. 등소평의 그러한 죽음은 중국의 많은 진전을 나타내는 것이다.(서방처럼) 곧바로 죽음을 알리고 당국은 장례위원회를 구성,그에게 경건한 조의를 표시했다.수천년 중국역사를 더듬어 보면 개혁주의자들은 처참한 말로를 맞았다.독살을 당하거나 능지처참을 당하는 경우가 허다했다.개혁주의자들을 용인하지 않는 전통은 중국만 그러한 것은 아니다.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려는 많은 선각자들은 당대 많은 학대를 받아왔다.고대 그리스·로마가 그랬고 독일·프랑스·러시아·이란등 현대국가에서도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났다. 세계의 관심은 등이 사라진후 그가 추진한 개혁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첫번째 시나리오는 개혁의 중단이다.등의 개혁으로 심천 일부 해안지방의 도시들은 서방국가 도시 이상으로 성장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반체제인사들은 탄압을 받고 소수민족문제가 악화되고 있다.이런 문제들이 중국개혁에 장애물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더욱이 후계자 문제가 통치위기로 까지 이어질지 모른다.지배엘리트가 분열되고 이것이 지방 작은 도시까지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소수민족의 항거가 일부 국경에서 일어나고 있다.이것이 다시 대도시의 사회혼란으로 이어질지 모른다.1920∼1940년대 상황이 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일부는 러시아에서 동지를 구할 것이고 다른 일부는 미국과 미국의 협력자 대만에 손을 뻗칠지도 모를 일이다.이렇게 되면 중국은 더이상 한반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못할 것이다.힘도 없고 한반도문제에 간여할 욕심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등소평식 개혁이 무너질거라는 시나리오는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많은 어려운 문제가 있었음에도 중국은 이미 경제발전에서 두드러진 업적을 일궈냈다.가까운 장래에 「아시아의 큰 용」으로 변해있을지 모른다.홍콩이 반환되면서 용의 힘은 더 커질 것이다. 중국의 이러한 힘을 느끼는 쪽은 조만간 동남아시아가 될 것이다.이와함께 북경은 세계무대에서 정치적 군사적 입지를 확대하려는 일본의 영향력에 제동을 걸 것이다.중국과 일본은 동남아시아시장에서 주요 경쟁자가 될 것이다.이같은 두번째 시나리오 아래서 중국은 북쪽(러시아)에 대해 강경한 입장에 설 것이다.지금도 엄청난 수의 중국인 정착민들이 시베리아 지역과 극동지역으로 세력을 넓히고 있다.중국은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에 대해 러시아의 영향력을 대체하려 할 것이다.이렇게 되면 워싱턴과 모스크바,도쿄는 중국의헤게모니를 견제하기 위해 자연스레 뭉칠 것이다.그러나 동맹국가내 복잡한 사정때문에 실질적인 결속력은 강하지 못할 것이다.미국­일본의 무역분쟁,러시아­일본의 영토분쟁,미국­러시아의 유럽안보분쟁 등의 문제가 있다. 중국은 이러한 시나리오 아래서는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으로 남아있는한 북한쪽에 계속 남아있을 것이다.동시에 중국은 경제적 인센티브를 동원,한국을 가능한 한 미국과 떼어놓으려 할 것이다.두번째 시나리오에 상당수 전문가가 의견을 같이 한다. 그러나 이는 「제3의 시나리오」만 못하다.세번째 시나리오는 등소평식 개혁이 계속되며 중국은 안정과 경제성장을 지속한다는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은 남을 것이며 북경정부는 계속 현대화의 필요에 외교정책의 초점을 맞출 것이다.그러한 외교정책은 현실적이고 온건한 외교노선이다.이는 갈등과 대결을 피하면서 동·서방 모두에게 이로운 측면이 있다.이러한 전략의 틀내에서 중국은 한반도에 균형유지정책을 계속할 것이다.적대적인 두개의 한국을 가급적 머리를 맞대게 할것이다.북한이 만일 붕괴된다면 중국은 슬쩍 발을 떼내 현상에 순응할 수 있다.결론적으로 등의 사후에는 「제3의 시나리오」가 가장 이상적일 것으로 본다.
  • 「미라」 2천년 비밀 밝힌다/내시경 이용 세포조직 표본 분석키로

    ◎고대 이집트 왕조의 가계·질병 등 연구 이집트 미라의 세포조직을 분석해서 고대 이집트 왕조의 결혼 풍습,미라 사이의 친자관계를 밝히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영국 과학잡지 「뉴 사이언티스트」 최신호에 따르면 카이로에 있는 이집트 박물관,맨체스터박물관,미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국제의료서비스 협회등은 내시경을 이용,미라에서 추출한 세포조직(혈액,근육,내부장기) 표본을 분석함으로써 이집트 미라의 2천년동안 감춰진 비밀을 풀 계획이다. 우선 첫번째 프로젝트는 역학연구.맨체스터의 성 마리아 병원,프레스턴 왕립병원,맨체스터대학 생물학자들은 공동으로 고대 이집트의 주혈흡충증에 대해 연구하게 된다. 몇몇 미라에서 발견되는 이 병은 주혈흡충(blood fluke)의 알이 일으키는데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기생충의 항체를 통해 이 질병이 어떻게 시간이 지나면서 증감했는지를 연구한다. 또 DNA 지문을 이용,여러 이집트 왕조들 사이에 일어났던 근친상간이 어느 정도였는지,파라오들이 고대 이집트의 나머지 인구들과 얼마나 유전자가 섞여있는지도 확인할 계획이다. 연구가 성공하면 순금 부장품으로 유명한 비운의 파라오 투탄카멘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알수 있다. 투탄카멘의 아버지로 현재까지 가장 많이 회자된 인물은 이단자 파라오 아크나튼.하지만 그의 미라는 남아 있지않다.아크나튼은 훗날 초상화에서 얼굴이 수척하고 허벅지와 배가 볼록 나온 것으로 기괴하게 그려져 있을 뿐이다. 이것은 「프뢸리히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유전질환때문인 것으로 보이는데 만약 투탄카멘이 이번 조사에서 프뢸리히 증후군의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 아크나튼이 그의 아버지일 것이라는 추정은 한층 신빙성을 갖게 된다.
  •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을 보고(객석에서)

    ◎연극화 시도 자체가 돋보인 고전·정통극 벽에 걸린 도스토예프스키 초상화를 비추던 조명이 무대로 옮아가면서 연극 「까라마조프의 형제들」(극단 신화)의 막은 올라간다. 러시아 연극계 기술진의 도움으로 꾸민 화려한 무대,의상,민속음악 등은 관객의 눈과 귀를 시종일관 붙들어맨다.이어 오랜만에 연극무대에 선 장민호(조시마 장로),윤주상(까라마조프가의 아버지 표도르)의 정제된 연기도 앞으로 펼쳐질 연극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다. 표도르가 살해당하기까지가 1막,표도르의 사생아이면서 까라마조프가에서 하인으로 일하는 스메르자코프가 살인범으로 밝혀지고 까라마조프가가 몰락하게 되는 과정이 2막이다.도스토예프스키의 마지막 작품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워낙 방대한 양과 다중적 의미를 가진 원작이라 그동안 연극을 만들려는 시도조차 없었다.따라서 이번 연극은 번역극 우려먹기와 웃기기에 혈안이 된 졸속극 만연한 우리 연극계에서 그 시도는 높이 평가받을만하다. 하지만 의욕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았다.「까라마조프…」는 3시간동안 계속되면서 관객의 눈을 모았다가 풀어주는 흐름을 타지 못한다.따라서 관객들은 경직된 기분으로 그저 앉아있을 뿐이다.특히 1막은 화려한 무대를 좀 더 보여주겠다는 의도인지 암전이 많아 극의 흐름이 끊기는 일이 잦다.또 내용을 많이 압축한 탓에 대사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아 연극의 장면장면이 쪼개져 머리에 입력된다. 그나마 내로라하는 연기자들이 모인 덕분에 연극을 살렸다는 느낌이 들었다.장민호 윤주상 김학철 김규철 정경순 박지일 등 출연자들이 정확한 발음과 몸동작으로 개성있는 연기를 선보였다.특히 스메르자코프를 맡은 박지일의 연기가 돋보였다.그동안 지적인 연기를 주로 해온 그가 콤플렉스에 가득찬 얼굴로 다리를 절며 표도르를 저주하는 말을 내뱉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까라마조프…」을 계기로 관객들이 진심으로 몰입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고전」「정통」극이 많이 나오길 기대해본다.2월2일까지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공연.
  • 불/미테랑 1주기 흠집내기 경쟁

    ◎측근들과의 갈등·부정적인 면 폭로 책 발간/“정권욕 눈멀어 공산주의와 제휴” 헐뜯기도 8일은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대통령이 숨진지 꼭 1년째 된다.그의 사망 1주기를 맞아 프랑스에서는 재평가작업이 활발하다. 주로 측근들에 의한 재평가작업은 그러나 미테랑에게 그리 명예스럽지 않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공화국의 「군주」로 군림해온 그의 비밀에 대한 폭로주의가 난무하고 있다. 1주기를 맞아 발간된 책은 2권.「마지막 미테랑」은 조르주 마크 베나무라는 기자가 미테랑의 모습과 내면세계를 그린 책이다. 베나무 기자는 미테랑의 허락을 받아 거의 함께 생활하면서 2년동안 미테랑을 지켜볼 수 있었다.베나무 기자는 미테랑이 발라뒤르,로카르 전총리들과 자크 들로르 전 유럽연합집행위원장,의사 등에 대해 가졌던 언잖은 기분 등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하루는 미테랑이 어두운 얼굴빛을 하면서 미국과 경제전쟁을 하고 있다고 중얼거리는 말까지 기자는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숨겨놓은 딸 마자린에 대한 기사가 나가던 날 가족끼리의대화도 그대로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어 지나친 폭로주의라는 비난도 제기된다. 또다른 작품은 알렝 뒤하멜이라는 작가가 쓴 「예술가의 초상화」.이 책은 예술을 좋아했던 미테랑이 이제는 더이상 영웅적이지 않고 무기력한 미테랑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한때 레지스탕스였던 미테랑은 20년 뒤에는 정권욕에 눈멀어 공산주의자와 손을 잡게 됐다고 저자는 비난한다.그에게는 전략은 없고 전술적인 모사만이 있었다고 미테랑을 헐뜯는다.
  • “새해벽두 전시회 봇물 애호가들 마음 설렌다”

    ◎조선 왕실그림… 15C 북구판화… 한국의 누드화…/조선왕실 그림전­화려한 벽화·일원오봉도 등 80여점/조선 전기 국보전­몽유도원도 등 임란까지의 202점/뒤러와 동시대 판화전­원본작품 80점 등 120점 국내 첫 공개/한국누드미술 80년전­최초의 누드화 「해질녘」 등 100점 선봬 조선시대 왕실그림과 15세기 북유럽 작가들의 판화.그리고 조선전기의 문화재와 한국의 누드­. 새해 벽두,굵직굵직한 대규모 전시회가 미술에 관심있는 이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해마다 이때쯤이면 미술계는 이렇다할 이슈나 전시가 없어 썰렁한 분위기에 젖어들지만 올해는 큼직한 전시들이 동시에 열려 예년과 달리 풍성한 느낌을 전해준다. 서울 예술의 전당 미술관 제1전시실(580­1611)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누드미술80년전」(12일까지)을 비롯해 호암갤러리(771­2381)에서 마련되고 있는 「조선전기국보전」(2월11일까지),과천 국립현대미술관(503­7744)에서 진행중인 「뒤러와 동시대작가판화전」(31일까지),궁중유물전시관(753­2582)에서 개최중인 「조선왕실그림전」(26일까지) 등. 모두 흔히 볼 수 없는 귀한 전시들이다.이 전시들의 내용을 살펴본다. ▷한국누드미술 80년전◁ 지난 80년간 한국의 작가들이 그려온 누드작품중 대표작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국내 최초의 누드화인 김관호의 작품 「해질녘」(1916년)을 비롯,근·현대의 대표적인 작가 60명의 평면 회화작품 100점을 연대순과 작품별로 구분해 보여주고 있다.우리나라 최초의 누드화로 평가받는 김관호작 「해질녘」을 복제해 소개하며 누드화의 대가로 불리는 김흥수 화백의 「낙원의 봄」「인생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구본웅의 「여인」 등이 모두 화제작이다. ▷조선전기 국보전◁ 조선 개국때부터 임진왜란까지 200여년에 걸친 조선전기 문화유산을 전반적으로 조망해볼 수 있는 자리.일본 천리대에 소장돼 있는 조선전기 최고의 그림으로 평가받는 안견 그림 「몽유도원도」와 세종시대 그려진 작가미상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일본 용곡대 소장)를 비롯해 「고사관수도」(강희안작),「묵포도도」(황집중작)와 「화조구자도」(이암작)「청화백자매문죽호」,「조선방역지도」 등 서화 62점,서예·전적류 22점,나전·일반공예 25점,도자기 65점,불교미술품 28점 등 170건 202점이 나와있다. ▷뒤러와 동시대작가 판화전◁ 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의 대표적인 판화작가 4인전.15세기 이후 인쇄술에 종속된 판화를 독립 예술장르로 격상시킨 알브레히트 뒤러의 원본 판화작품 80점을 비롯해 같은 시기에 뒤러와 함께 활동한 한스 발둥 그리인,루카스 크라나흐,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 등 독일 작가 4인의 판화 120점 출품.독일 브레멘 미술관 판화실 소장품을 들여와 소개하는 자리로 서양미술사의 거봉인 화가이자 판화가인 알브레히트 뒤러의 원본 판화는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것들이다. ▷조선왕실 그림전◁ 조선왕실의 격조를 담고있는 회화류 80여점을 통해 조선시대 궁중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왕실을 화려하게 치장한 벽화와 어좌뒤에 친 임금의 위엄을 드러내는 일월오봉도,선명한 채색의 각종 화조도,불로장생물 열가지를 그린 십장생도,왕실의 여러 행사를 다룬 반차도,의궤도 등 기록화와 임금의 어진 등 인물화와 정조대왕이 부친 사도세자 능으로 행차하는 과정을 그린 8폭짜리 병풍그림 「화성능행도」와 영조대왕의 연잉군 시절 초상화 등이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다.
  • 「한 디아스포라」 22일 「그늘진 공간」 공연

    ◎해외입양·혼혈아들의 「핏줄찾기」/영어강사·기지촌 인권운동가 등 체험 바탕/“우린 누구인가” 정체성 회복 복합무대 꾸며 「우리는 누구인가」 한국인의 핏줄을 가졌지만 나라 밖을 떠도는 해외입양아·혼혈아·해외동포가 복합예술공연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찾아나선다. 한국의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뜻의 단체 「한 디아스포라」가 오는 22일 하오3시 서울 장충동 경동교회내 열린 공간인 소극장 「여해」에서 갖는 「그늘진 공간」이 그 무대다. 2시간남짓한 이 공연에는 김은숙(25)·조미희(28)·에리코 이케하라(28)·김명분(26) 등 4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김은숙(리아 식)은 생후 3개월에 미국에 입양돼 대학을 졸업한 뒤 현재 서울대 어학연구소에서 영어강사로 근무하고 있으며,조미희(나탈리 레모인)는 1세때 벨기에로 입양,브뤼셀대학을 나와 현재 유럽으로 입양된 한국사람의 생부모를 찾아주는 「유로코리안리그」와 한국에서 태어난 예술가그룹인 「카멜레온즈」에서 활동하고 있다.에리코 이케하라는 미군인 흑인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13세에 미국으로 입양됐다.김명분은 한국에서 나고 자라 본인이 디아스포라는 아니다.그러나 동두천 기지촌 여성을 위한 모임인 두레방에서 일하며 혼혈아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갖게 돼 이 모임에 참석했다. 원래 알고 지내던 이들은 지난 6월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국제인권단체 「토지는 목숨」의 행사를 계기로 디아스포라모임을 만들게 됐다.이 행사에서 일본 입양아와 혼혈아들이 한섞인 몸짓을 풀어내는 것을 보고 우리에게도 이같은 장이 있어야 한다고 의견을 모은 것. 「그늘진 공간」에서 이들이 표현하는 양식은 단순하지 않다.두 가지 이상의 나라·인종·문화를 경험한 디아스포라이기에 복합매체만이 자신들의 감정을 담을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김은숙은 자신의 삶을 담은 슬라이드를 배경으로 창작시 「갈 수 없는 고향」을 읊은 다음 사물놀이가락에 맞춰 즉석에서 춤을 펼쳐볼 계획이다.조미희는 자신의 복합성을 담은 그림 6점을 소개하고 해설을 곁들인다.한국을 처음 방문한 뒤 그린 「새로운 세계」,친엄마를처음 본 감동을 표현한 「떠오르는 초상화」,이 세상에서 나의 공간을 찾고 싶은 갈망을 그린 「그리고 너는,넌 어디에서 왔니」 등이다. 김명분은 『양갈보의 자식』이라고 손가락질받는 아이를 안으며 지은 시 「경원선 기차안에서」를 낭송하고 이케하라는 창작희곡 「세가지의 비극」을 바탕으로 음악·영화·무용·연극이 섞인 복합무대를 꾸민다.
  • 건축가 김원(이세기의 인물탐구:113)

    ◎자연·인간 하나로… 청수한 공간 조성/하나의 작품 맡겨지면 환경을 먼저 생각/KOEX·독립기념관 등 대형 프로젝트 단골 『내가 자리에 있는지 없는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점심시간이 되어도 밥먹으러 가자거나 퇴근시간에 술한잔 하자는 사람도 없었다』 건축가 김원이 대학졸업후 김수근건축연구소에 다니던 안국동시절의 초상화다.아침에는 일찍 나와서 사무실 청소에다 난로에 불을 지피고 선배들이 출근하기 전에 도면을 그려나갈 80자루 이상의 연필들을 깎아서 갈아놔야 했다.참으로 참담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는 수많은 책들을 읽을수 있었다.「건축철학」에서 「공간심리학」「네덜란드의 종합국토계획」에 이르는 방대한 독서를 할수 있었고 일본책을 읽기위해 혼자서 일어공부를 하기도 했다.이것이 모태가 되어 후에 자신만의 독특한 건축용어를 구축하게 되었다. 어쩌다가 일이 주어지면 선배들은 「서울대학에선 이렇게 가르치느냐?」고 힐난했다.1년이 지나서야 구석에 틀어박혀 책만 읽고있는 그를 발견한 김수근씨가 67몬트리올 박람회 한국관 프로젝트를 맡겼다.이 기간동안 그는 최대의 능력을 발휘해 나갔다.여수수족관 정부종합청사 조선호텔을 설계하거나 여의도종합개발 과학기술연구소설계에 참여하고 70오사카 엑스포 한국관 설계를 담당했다.인내로써 신뢰를 쌓으면서 성공적인 안국동시대를 거쳤다. 대학생활은 허무와 방황의 나날이었다.경기고에 다닐때는 조각가를 꿈꾸면서 천재조각가 권진규의 지도를 받기도 했으나 부친 타계후 혼자서 2남3녀를 키운 어머니의 권유로 서울대공대 건축공학과에 진학했으나 대학은 「서울대생은 당연히 한국 건축계의 지도자가 돼야한다」는 자부심만을 키워주었고 전문교육이 아닌 「자율교육」을 유도하고 있었다.이 방법이 마음에 들지않아 강의실밖에서 빙빙 돌다가 걸핏하면 산에 오르거나 「술독」에 빠져 비분에 찬 논쟁만을 일삼았다. ○고교시절 조각가 꿈꿔 건축가 김원은 결국 지난 30년동안의 건축실무와 경험에서 「건축은 유행가처럼 히트하는 것이 아니며 건축가는 영웅일수 없다」는 진리를 터득했다.그리고 『사람이 어디에 사는가하는 것은 어떻게 사는가 하는것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어디에 살고있느냐 하는 것은 바로 나자신이 어떻게 사느냐의 반영이기 때문」이다.그래서 하나의 프로젝트가 맡겨지면 「환경을 생각하는 건축」을 위한 다방면의 연구에 들어간다. 영화진흥공사의 종합촬영장을 설계할 때는 모스크바 모스필름스튜디오 부다페스트의 마자르필름 이탈리아의 치네치타(시네시티) 등 세계 30여군데의 촬영장을 꼼꼼히 돌았다.국악당을 맡았을때도 황병기 박동진등 국악 관련자와 독주자 합주자 지휘자 무용가들을 고루 만나 인터뷰하는데만 6개월이 걸렸다.가야금연주에서 「은쟁반에 옥구슬을 굴리는 소리」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어떤 극장조건이 가장 이상적인가.길놀이와 뒷풀이를 위해 객석과 무대간의 유리감을 줄이고 안방같은 극장,혹은 마당같은 무대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결론을 얻어냈다. ○가장 문학적인 건축가상 그가 자신의 아이디어와 창의력을 마음껏 구사한 작품은 단연 보석전문점인 명보랑의 빙갤러리를 들수 있다.남산에서 하얏트호텔입구에서있는 이 첨단건물은 도시의 숲속에 파묻힌 한아름의 다이아몬드처럼 낮에는 종일 태양빛에 빛나고 밤에는 별빛아래 영롱하다.국내에선 낯선공법인 멜로 시스템을 적용한 노출된 내장마감과 하얀 알루미늄판으로 외곽을 덮으면서 지붕도 벽도 창문도 구별없이 건물전체가 수정처럼 각진채 「먼 우주를 향해 떠가는 비행체」 또는 「현대추상회화」같은 이미지를 떠올린다.그외엔 주한 러시아연방대사관이 큐빅(정육면체)형의 독특한 외곽시도로 시선을 모았고 화순 남평에 짓고있는 광주가톨릭신학대학이 내년 7월로 완공을 앞두고 있다. 그는 본래 서울 북아현동에서 청전 이상범 소정 변관식 이당 김은호등 화단의 대가들이 드나들던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났다.외무부 부산출장소에 파견된 부친을 따라 국민학교를 부산에서 다녔고 공부는 물론 음악 미술 글짓기에서 재능을 보여 어릴때는 「신동」소리를 듣기도 했다.지금도 건축뿐 아니라 뛰어난 건축이론과 건축수필로 오늘의 건축에 대한 문제점을 유려한 필치로 전개하여 올 「문학의 해」기념 「가장 문학적인 건축가상」을 받았다. 건축가들의 대부분이 「대장간에 칼이없다」는 식으로 자신의 주택을 갖지못한 것과는 달리 그는 67년 이미 정릉꼭대기에다 자신의 집을 직접 지은 일이 있고 3년전에는 종로구 동숭동에 자신의 건축설계사무소인 「광장」빌딩을 신축,지금은 10년전에 다시 지은 옥인동 자택에 살고있다.부인 박정애씨와의 사이엔 남매,두주불사의 애연가다. 그는 시인같고 대학의 청년강사같은 인상을 풍기고 있지만 풍수지리의 대가로도 이름이 높다.일본의 유명한 야기충언은 그의 저서 「한국의 풍수사들」에다 김원을 특별하게 따로 다루고 있고 독립기념관과 국립예술종합학교를 이문동 중정자리에 추천한 것도 바로 김원 자신이다. 그의 사고력은 「어느때는 넓은 물과 같고 어느때는 깊은 산속같다」는 말을 듣는다.건축가 공일곤에 의하면 『하나에 파고들면 끝장을 내고야마는 건축계의 몇안되는 완벽주의자의 한사람』이다.그러면서도 하나의 건축을 이룰 때마다 「불사불루」,지나치게 사치하지 않고 그러면서 누추하지 않은 누구나 「애정」을 가질수 있는 부드럽고 청수한 공간을 조성한다. ○풍수지리연구회장 역임 김원은 수많은 우여곡절과 어려움을 딛고 이제 건축계의 기린아로 우뚝 서있다.76년이래 독립 설계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시대를 앞장서는 수많은 작품을 이룩하였고 80년대이후 대규모의 정부프로젝트에 참여하여 그의 업적은 신문지 한장이 모자랄만큼 「한 일」과 「할 일」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건축계의 엘리트로 상징되는 그의 위상은 지금 가장 왕성하고 의욕적으로 자신에게 축적된 모든 것이 용해되어 창작품으로 흘러나오는 시기다.그의 꿈은 자연과 인간이 완전히 일체감을 이루는 「자연속의 건축」을 이루는 일이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 그는 항상 도전하고 연구하고 고뇌하는 엘리트의 모습을 변치않고 있다. □연보 ▲1943년 서울 출생 ▲65년 서울대 공대 건축공학과 졸업 ▲65∼70년 김수근 건축연구 소근무 ▲73∼78년 이대 및 동대학원 출강 ▲76년 건축연구소 「광장」 개소 ▲79∼89년 한국풍수지리연구회 회장 ▲82년 제1회 대한민국건축대전 초대작가(해마다 출품),독립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종합기획위원 ▲84년 예술의 전당 건축설계 자문위원 ▲85년 「세계현대건축가 101인」(일본 가지마 출판사 선정) ▲87∼95년 한국건축가협회 이사 및 도시계획분과위원장 〈현재〉 한국건축가협회·한국실내디자인학회·한국인테리어디자이너협회 명예이사,건축환경연구소「광장」 및 도서출판「광장」대표,대한건축학회 정회원,국제박물관협의회(ICOM)정회원 〈작품〉 67 조선호텔계획,엑스포 70 (일본 오사카)한국관,한국종합전시관(KOEX),박경리기념관,독립기념관,국립국악당,명보낭(빙갤러리),경주 신라민속촌,영화진흥공사 종합촬영소,통일연수원,외무부 외교센터,서울원서동 불교박물관,주한러시아연방국대사관,분당시범단지공동주택외 성당 수도원 신학대 등 200여점 〈저서〉 건축평론집 「우리시대의 거울」,수상집 「한국현대건축의 이해」 「빛과 그리고 그림자」외 논문다수 〈수상〉 한국건축가협회 작품상(79·80·81·82·83·85·86··91·95년)한국인테리어 디자이너협회작품상(84년) 엄덕문건축상(91년) 「문학의 해」기념 「가장 문학적인 건축가상」(96년)
  • 시인·무용평론가 김영태(이세기의 인물탐구:105)

    ◎춤을 찾아 떠도는 문단의 보헤미안/공연장마다 출현… 화제작 대본 직접 쓰기도/시작·평론·그림 쉼없는 행보… 작품집 40권 김영태는 언제나 공연장주변에 서 있다.10년전이나 20년전 보다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외환은행에 다닐 때는 직업상 신사복 차림을 할수 밖에 없었으나 직장을 스스로 떠난 지금 그는 복장부터가 마음껏 자유로워졌다. 「내 키는 1미터 62센티인데/모리스 라벨의 키는 1미터 52센티 단신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라벨과 나」란 시의 첫구절처럼 크지 않은 체구에다 말투에는 전혀 힘이 들어있지않고 머리를 약간 외로꼰 담배피우는 모습이 그의 이미지다.「접시,호리병,기묘한 찻잔을 수집하기/화장실 한구석 붙박이/나무장안에 빽빽이 들어찬/향수진열 취미도/나와 비슷합니다/손때묻은 작은 소지품들이(누에문양 포켓수건이나 열쇠고리까지)/제자리에 있어야하고」. 실제로 그가 30여년을 살던 종로구 사직동집은 골동소품에서 인형과 이색적인 찻찬,책과 1천3백여장이 넘는 LP판들이 온통 도배를 한듯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고 책과커피향이 어울리는 코펠리아무대의 분위기였다. 천성적으로 치밀하고 꼼꼼한 그는 작은 낙서한장 버리지 않았고 지난 30년간의 족적을 「Ma Vie(나의 인생)」란 책으로 묶어 자신의 모든 것을 낱낱이 정리해 보이고 있다.66년에 직접 손으로 쓴 결혼청첩장이며 김구용 박목월 김춘수 신석정 황동규 마종기 권옥연이 보내온 친필 엽서,오영수 휘호,조병화의 소묘,그가 그린 포스터 프로그램 책표지에 이르기까지 먼지도 버리지않는 섬쩍함이 섬뜩하다. 그런 그를 생전의 김현은 「초속주의자」 혹은 「좋은 의미의 딜레탕트」라고 했고 같은 문학평론가인 김인환은 「미학추구자,김종삼 이후 문단의 마지막 보헤미안」으로 부르고 있다.또 캐리커처에 능한 소묘가·무용평론가·시인으로서 모름지기 「우리시대의 삼절」로 찬사된다.그는 스스로를 『아름다움을 훔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의 소묘와 평론에는 그나름의 새롭고도 빛나는 색채가 들어있다.시와 춤과 그림을 동시에 작업하는 과정에서 「춤과 그림은 그의 시의 내용이며 시와 춤은 그의 그림의 내용」이기 때문이다.그의 시는 대부분 아름다운 대상을 순간의 떨림속에서 태어나게 하면서 「어느 때는 목청 높은 대담한 사설조로 상황에 대한 해학적 음성」을 펼치기도 한다. ○꼼꼼한 성격의 수집광 시인 김승희는 「저 탐미의 괴물」을 향해 『현대인의 반타이타니즘을 그는 한컵 가득 독약처럼 마시지만 그러나 그는 독약 때문에 죽지는 않는다』고 꼬집는다.피아노와 그의 발레그림들은 「언뜻 팔에 힘을 빼고 흐느적흐느적 술취한 듯이 비틀거리는 선의 파격적인 굴절이나 데포르마시옹으로 외계의 간섭에 맞서는 야유의 메시지」이다. 발레리나가 턴을 하는 찰나나 도약 직전을 섬광 같은 솜씨로 포착하면서 막연한 형태의 생략과 색채의 요점을 「부호와 관념만으로」 남기고 있다. 그는 종로구 필운동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강북을 떠나본 적이 없는 서울토박이다.종로바닥에서 유명했던 「김인기 포목점」의 김인기씨가 그의 조부이고 부친은 장사나 이재에는 취미가 없는 김종화씨로 일본 무사시노미대 출신. 화가로 활동하진 않았으나 부친의 영향을 받아 미대에 진학했고 홍대재학중 박남수 추천으로 문단에 나와 그동안 시집만도 15권,끊임없이 쓰고 끊임없이 발표하여 산문집·무용평론·무용자료집·시론집·소묘집·음악평론집 등 40권에 이른다. 연극 음악평에도 손댔으나 그에게 맞는 것은 무용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봄에는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춤작가 12인전」에서 현대무용가 이정희가 그의 「남몰래 흐르는 눈물」을 무용화한 「풍경」에 10여분간 특별출연,커피를 갈고 스탠드를 켜며 담배 피우는 마임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무대에 펼쳤다. 그외 최현의 「비상」,전홍조의 「멀리서 노래하듯」,박명숙의 「결혼식과 장례식」「잠자며 걷는사람 잠자며 걷는나무」 등 무용공연에서 화제가 됐던 작품들은 거의 그가 대본을 썼거나 그의 시에서 빌린 것이고 책표지 포스터 프로그램과 수많은 캐리커처와 무용가·작가를 위한 헌시를 썼다. 그는 무용인들의 닳아빠지지 않은 순결한 심성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그중에서도 특별히 최현과 절친하다.까다로운 사람은 까다로운 사람과 통하 듯이 춤이아름다운 실력있는 이 원로와는 음악매니아로서 의기투합 한다. 자유로운 그는 틈틈이 여행을 즐긴다.해외에서 무대에 올려진 중요한 공연을 보기 위해 무용단의 해외공연에 따라나서거나 여행적금으로 가장 아름다움 춤이 있는 지구상의 모든 곳을 떠돌아다닌다.3년 전에는 슈투트가르트에서 강수진이 「로미오와 줄리엣」주역으로 데뷔하는 공연에 참관했고 올해도 세차례나 밖에 다녀왔다. 그는 『철저하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만 찾아다닌다.나는 보통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문득 이 세상을 떠날 때 무언가 내흔적을 남기고 싶다』고 한글에서 밝히고 있다.과연 그가 좋아하는 것만 찾아다니는 「움직이는 극장」「사시사철 춤보러 다니는 구경꾼」으로서 그는 예술가다운,시같은 삶을 살고 있음에 틀림없다.더구나 인형제작가인 부인 정복생과 두아들이 미국에 유학후 뉴욕에 머물러버리자 20년 가까이 혼자서 동부이촌동의 아파트에 살고 있다. ○「춤작가 12인전」 특별출연 그래선지 그의 최근 연작시인 「남몰래 흐르는 눈물」은 읽는 이의가슴에 한줄기 흐르지 않는 눈물을 삼키게 한다.「무엇이 이제까지 나인가/질문을 하지만 답이 없습니다/시험지에 답못쓰는 답답함/눈물을 흘릴줄 몰라도/흐르는 눈물이 답입니다」.윌리엄 제임스의 「슬프니까 우는 것이 아니라 우니까 슬퍼진다」는 사실을 체험으로 증명해보이는 시이다. 김인환은 『비트겐슈타인이 수학자란 수학의 언어놀이에 참여하는 사람이라고 했듯이 김영태는 시와 춤,그림과 음악을 가지고 논다』고 말한다.놀이가 빨리 끝날까 두려워 그는 「아껴가며 음미하면서 논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몸과 마음이 모두 폐품이고 서향창에 어쩌다가 헹군 헝겊천사」라고 고백하면서 부드러운 검은색의 헐렁한 외투에 숄더백과 벙거지차림으로 오늘도 어김없이 공연장에 나타난다.그리고 그에게 떠오르는 이미지들에 고통과 환희,비참과 영광의 색채를 칠함으로써 「그의 시의 이미지들은 중립적인 경쾌함 대신 현실의 중압감을 버티려는 환상」으로 독자에게 읽혀진다. 그의 아호는 「지푸라기」라는 뜻의 「초개」다. 한달이면 50여차례 공연을 보러가고 낮에는 혜화동글방에서 집필,「삶은 소진하다 가는것」이라는 그의 행보는 그의 자작시 「허행초」처럼 어딘가에 구속당한데 없이 유유하고 자적하다.일찍이 김수영시인이 지적한대로 「예술적 냄새가 너무 짙은」 김영태 초상화는 그의 소원대로 주변사람들에게 독특한 탐미의 이미지를 새기고 그래서 그의 흔적은 이 검은 도시의 밤하늘에서 별빛처럼 영롱하게 빛난다. □연보 ▲1936년 서울 출생 ▲57년 경복고 졸업 ▲59년 「사상계」지 시추천 ▲61년 홍대 서양화과 졸업 ▲65년 첫시집 「유태인이 사는 마을의 겨울」 출간 ▲68년 외환은행 조사부 입사,극단 자유극장 동인,첫번째 산문집 「공기의 모든 부분속에서」 출간 ▲71∼95년 개인전 6차례 ▲75년 「12인의 인성을 위한 대사더듬기」(백병동 작곡)공연 ▲76년 단막극 대본 「이화부부」(이원경 연출공연) ▲80년 미술잡지 「선미술」 주간 ▲81년 음악펜클럽 총무간사 ▲82년 한국무용평론가회 회원 ▲84년 판뮤직페스티벌 「대사더듬기」재공연,일본국제무용콩쿠르 심사,서양화 10인전(낙산공방) ▲85년 첫번째 무용평론집 「갈색 몸매들,아름다운 우산들」출간,「객석」·국립극장·영화진흥공사 자문위원 ▲88년 단막극 「이화부부」현대무용으로 공연(배정혜 안무,정성조 음악) ▲89년 한국무용평론가회 회장,동아무용콩쿠르 심사 ▲90년 서울무용제 운영심사위원 ▲91년 음악평론집 「음의 풍경화들」 출간,외환은행퇴 직 ▲93년 한·일댄스페스티벌도쿄공연 참가,윤덕경무용단 중국공연 동행 ▲96년 무용자료집 「풍경을 춤출수 있을까 Ma Vie」출간,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출강 시집 「남몰래 흐르는 눈물」 등 15권,산문집 「핀지콘티니가의 정원」 등 9권,무용평론집 「멀리서 노래하듯」 등 6권,소묘집 「선의 나그네」 등 6권,총40권. 현대문학상(72년) 시인협회상(82년) 서울신문 문화예술평론상(89년) 예음공로상(94년) 현대무용진흥회 공로상(95년)
  • 「위대한 김일성…」아직도 곳곳에 구호·초상화(북한은 지금…:6)

    ◎김정일 「유훈통치」로 권력보전 3년째/「인덕정치」 등 새용어로 통치철학 부각 안간힘/속도전론으로 경제개입… 성장 되레 뒷걸음질 김일성은 죽었어도 그의 통치이념은 여전히 북한을 지배하고 있다.중국과 러시아의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북한땅에는 김정일에 대한 충성구호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그러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만세」,「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지교시를 철저히 관철하자」 등의 김일성의 구호와 그의 대형초상화가 곳곳에 내걸려 북한주민을 「독려」하고 있었다. 연길에서 만난 북한전문가들은 김정일이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바탕으로 「남조선 해방」과 「미제국주의 분쇄」라는 논리로 물리적 강제력을 동원,반대세력을 숙청하는 방법을 통해 북한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다고 관측한다.『주체사상의 출발은 지난 50년대 옛 소련시절 스탈린 격하운동과 60년대 중반의 중·소분쟁에 위기의식을 느낀 김일성이 「홀로서기」를 강조하며 고안한 하나의 외교노선에서 시작됐다』고 서울신문과 합동조사에 참여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심지연 경남대교수는 분석한다. 그는 『「사상의 주체」 「경제의 자립」 「국방의 자위」 등을 추가하면서 3대혁명소조운동을 통해 주체사상으로 끌어올렸다』고 덧붙인다.김정일은 바로 이 혁명소조운동을 통해 김일성을 우상화하고 후계자로서 위치를 공고히 한 덕분에 주체사상을 수정이나 격하할 수 없는 입장인 셈이다. 중국 사회안전부의 한 관계자는 『카리스마가 없는 김정일로서는 섣불리 새로운 통치이념을 내세우기보다 유훈통치라는 「김일성의 우산」아래 숨는 게 권력보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항일투쟁경험이 없다는 게 김정일우상화의 최대약점』이라며 『이 점을 아는 북한당국이 주민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베푼다는 「인덕정치」등 새로운 용어를 발굴,김정일의 통치철학으로 부각시키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그는 전한다. 지금의 상황에서 김정일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통치이념을 강조하기보다 주민에게 밥을 배불리 먹여주는 경제난해결이다.그러나 김정일이 경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북한경제는 오히려 급속히 내리막길을 걸었다.하바로프스크에서 만난 북한경제전문가는 『김정일은 60년대 후반 북한학계의 통설이던 경제규모가 커지면 발전속도가 느려진다는 「균형발전론」을 비판하며 인민의 혁명적 열의만이 발전을 가져온다는 「속도전론」을 내놓으면서 경제에 개입했다』며 『속도전론은 74년 벌어진 「70일 전투」를 통해 실물경제에 도입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구호위주의 속도전론은 경제의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기술혁신의 바탕인 창의력을 말살함으로써 경제난을 부채질하는 근본원인이 된 탓에 개혁·개방 없이는 경제난해소가 요원한 상태다. 북한의 대남정책도 색깔이 없는 듯했다.북한은 유화와 강경(전)을 적절히 구사하는 「양면전략」으로 성과를 거뒀다.겉으로는 남북공존을 강조하면서,속으로는 통일전선전술로 남조선해방노선을 강화하고 한반도문제는 미국과의 직접대화를 통해 푼다는 이중적인 대남정책을 추진해온 것이다. 북한전문가들은 그러나 김정일이 체제유지의 기반을 어느 정도 확보하면 강경한 입장으로 급선회할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한다.그가 75∼78년 사이에 대남비서를 지내는 동안 판문점 도끼만행사건과 버마 아웅산 테러사건,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 등의 사건주역을 맡은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번 무장공비 침투사건도 같은 맥락으로 추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합동조사에 참가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신종대 책임연구원은 『김정일은 남한에 대해 강경기조 아래 공작을 시도해야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그가 주도한 대남정책은 장기구상이라기보다 즉흥적인 발상이 더 많은 것같다』고 분석한다. 김정일의 통치이념은 앞으로도 김일성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같다.부자승계 자체가 기존이념의 유지를 전제로 한 것인 데다 후계자로 부상한 이후 여러 정책의 입안·집행에 영향력을 행사하는등 그의 정책노선은 김일성노선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김일성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완수해야 한다고 강조해온 점도 체제변화를 막는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참여교수 시각/대남정책의 방향/정치적 긴장 조성/경제교류는 확대/이중노선 견지/한석태 경남대교수·한국정치 남북한의 국력격차가 점차 현격하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대남정책은 과거 공세적 정책에서 수세적 내지 공존적 정책으로 변모하고 있다.그리하여 북한은 1990년대 들어 남한과의 교류와 협력에 매우 적극적인 태도변화를 보여주었다. 비록 최근 북한이 나진·선봉 투자포럼에 남한측의 참가를 무산시키기는 했지만,그동안 경제 회생의 일환으로 남한 기업인들의 참여와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유화적 제스처를 지속적으로 구사해 왔다.서방 자본으로부터의 수혈을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남한 자본의 유치가 갖는 「전략적 가치」를 고려할 때 그와 같은 북한의 태도에는 앞으로도 큰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태도 이면에 북한은 여전히 「남조선 해방」을 통한 통일이라는 종전의 정책목표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 있다.이번 「무장공비 침투사건」은 북한이 무력통일이나 남조선혁명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버리지 않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실례라 할 것이다. 그러면 최근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이러한 양면적 태도는 어디에서 연유하며,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우선 이와 같은 북한의 「양면적 태도」는 대미수교를 의식,미국이 점차 북한의 주적 범위에서 제외되는 상황에서 체제단속과 주민통제를 위해 외부와의 적당한 긴장과 대결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이제 북한체제의 재생산을 위한 「적대적 의존관계」는 주로 남한에 집중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북한이 끊임없이 대남 긴장국면을 조성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이 남한과의 적대적 의존관계의 유지 필요성과는 대조적으로 북한은 체제유지 및 생존전략상 남한과 무조건 긴장관계를 유지하거나 사실상 남한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는 점이다.즉 북한체제를 위기로 몰고 있는 경제의 회생을 위해서는 남한과의 일정한 관계개선과 경제특구에의 남한 참여가 필요하다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따라서 북한의 대남정책이 「이중전략」을 포기하지 않는 한 남북한간의 유화­경색국면이라는 일진일퇴가반복되겠지만,남한과의 정경분리 차원의 교류·협력 또는 제한적 개방은 앞으로도 꾸준히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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