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초상화
    2026-03-16
    검색기록 지우기
  • 구글
    2026-03-16
    검색기록 지우기
  • 장례식
    2026-03-16
    검색기록 지우기
  • 독서
    2026-03-16
    검색기록 지우기
  • 25명
    2026-03-1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901
  • [시베리아 대탐방](5)국제화된 문화·예술도시 페름

    [페름 이도운특파원] 페름은 우랄 산맥 서쪽 기슭에 자리잡은 시베리아의대표적인 문화 도시다. 크고 작은 대학과 중앙광장의 오페라극장,남쪽 언덕의 박물관,까마 강변의쇼핑센터….페름시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상징물들이다. 특히 국립발레대학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모스크바 볼쇼이 발레단에서 활동하는 발레리나는 대부분 이 대학 출신이라고 한다.현재 한국 유학생은 없다고 대학 관계자는 말했다. 지난해 10월 30일 국립 페름대학을 방문했다.이곳에도 막 인터넷 바람이 불고 있었다.그러나 아직까지 학생들이 개인적으로 컴퓨터를 구입할만한 경제적 여유는 없다.그래서 만든 것이 인터넷실. 페름대 본관 2층의 강의실 두개를 터서 만든 인터넷실이 마련돼 있다.인터넷실에 설치된 컴퓨터는 IBM 데스크탑 50여개.학생들은 일주일에 네 시간씩이용할 수 있다.날마다 인터넷을 이용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학생의 대열이 인터넷실 입구에서 복도를 지나 계단까지 이어진다. 인터넷실의 책임자인 알렉세이 페를로프는 “이용료는 따로 없다”고 말하고 “하지만 전화 모뎀을 이용하기 때문에 속도가 늦다”고 설명했다.인터넷실에 컴퓨터를 제공한 인물은 미국의 조지 소로스라고 한다. 이날 밤 찾은 오페라 극장은 도시의 문화수준을 나타내줬다.입장료가 25루블,1달러에 해당한다.하지만 취재진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100루블을 지불해야 했다. 오페라의 수준은 모스크바에서 본 볼쇼이 오페라에 크게 뒤지지 않았다.중세 러시아 시대 몽골군과 전쟁을 벌이러 나간 ‘이고르’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그린 오페라의 관객 가운데 절반은 10대였다.그들은 어려서부터 부모와함께 오페라나 음악회를 즐기며 예술적 감각을 키워나간다.경제적으로는 어렵지만 정신적으론 풍요하게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찾아간 페름 박물관과 미술관에서는 다양한 표현양식의 그림을 만날수 있었다. 안경 낀 여자가 새침한 표정으로 돌아보는 모습을 사진처럼 담은 전신초상화와 머리깎는 남자의 무표정한 얼굴을 세세하게 묘사한 그림은 ‘인물을 저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하는 느낌을 줬다. 페름은 또 시베리아에서는 드물게 국제화된 도시다.16만4,000㎢의 면적에 300만명이 사는 페름 주에 미국,독일 등 외국과 합작해서 만든 기업이 360개나 된다. 10월29일 오전 페름 주의 국제경제국장인 조토프 스테파노비치의 사무실을방문했을 때 예상치 못한 광경이 벌어졌다.책상 위에 태극기와 러시아 기(旗)를 나란히 세워 놓은 것이다. 알고보니 페름시는 지난해 대구광역시와 자매결연을 맺었다고 한다.그 때 구한 것이겠지만 한국에서 온 기자와 만나는 자리에 태극기를 놓을 정도로 그들은 국제적인 감각을 갖고 있었다. 스테파노비치 국장은 석유 채굴과 석유화학,첨단기계 설비 제작,발전 등이주요산업이라고 소개했다. 석유 생산량은 1년에 1,000만t이며 석탄과 금,구리 등 광물도 매장량이 풍부하다.파타시움이란 이름의 비료가 화학공장에서 생산되며,로켓과 비행기부품도 만든다고 스테파노비치 국장은 설명했다. 그는 “전자와 통신 분야에서 한국기업과 협력하기를 원한다”면서 “모스크바를 거치지 말고 이곳으로 직접 오라”고 말했다.전자 분야의 협력,그리고 모스크바를통하지 않은 직접 투자 혹은 합작사업.그것이 시베리아의 모든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바라는 한국과의 협력 형태였다. 까마강이 도시를 가로지르는 페름시와 그 주변에는 2,000개가 넘는 호수가흩어져 있다.호수마다 경관이 매우 뛰어나다. 호수 주변의 숲속에는 호랑이와 곰도 산다고 한다. 페름주에서도 그 경관을 이용해 관광사업을 하려 하지만 자금과 노하우가없어 아직 일을 벌이지 못하고 있다.외국의 대형여행사와 손잡고 일하는 방안을 모색중이다.현재 시에 인접한 호숫가는 시민들의 주말 휴양지인 러시아식 주말 농장인 다차가 차지하고 있다. 페름은 UFO(미확인 비행물체)가 출몰한 지역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페름시에서 동쪽으로 150㎞ 떨어진 곳에 말룝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1983년 4월소수민족인 한티족이 사는 이 마을 상공에서 환한 빛이 내려오는 것을 바추린이라는 남자가 목격했다고 한다. 실제로 당시 시계가 2시간 30분이나 시간을 뒤로 돌리는 등의 이상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이런 사실이 알려져 그날 이후 미국과 폴란드 등 각국으로부터 과학자와 탐험가들이 찾아왔다.페름에서는 교사인 니콜라이 수보틴이 홈페이지(http://ufo.psu.ru)를 만들어 지속적인 연구를 하고 있다.수보틴은“지난 80년대까지는 정부에서 일부 예산을 지원하기도 했으나 90년대 이후경제난으로 지원이 끊겨 연구가 활성화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마도 국가적인 차원에서 연구를 하는 미국이 이곳에 대해 더 많은정보를 갖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dawn@ *페름대학생들 “인터넷·디스코가 우리 관심사” “인터넷과 디스코 테크” 예카테린부르그의 우랄공대 화학과 3학년생인 세리나 슈로바(19)는 요즘 대학생들의 관심사를 이렇게 두가지로 요약했다. 슈로바는 “러시아의 인터넷 사용인구는 전체의 3%로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면서 “너무 비싼 게 문제”라고 말했다.우체국에서 140루블을 내고인터넷 카드를 사면 하루 1시간씩 15일 정도 쓸 수 있다고 한다. 슈로바는 요즘 친구들과 자주 가는 디스코 테크가 ‘에크란’과 ‘인젤리옹’,‘엘도라도’라고 일러줬다. 이 가운데 엘도라도에가보았다.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호숫가에 세워진 2층짜리 카지노 건물의 윗층에 디스코 클럽이 있었다.200평 정도 되는 크기였다.무대 시설이나 조명은 ‘코파카바나’같은 80년대 서울 종로의 디스코 테크를 연상케 했다.1인당 30루블(1,300원) 정도의 입장료를 내면 맥주나 오렌지 쥬스 등의 음료를 제공 받는다.러시아의 대학생과 젊은이들은 보드카를 많이 마시지 않는다.맥주를 들고 다니며 음료처럼 마시는 광경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대형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탤런트 전지현이 전자제품 광고에서 춤을 출 때 배경음악으로 깔렸던 테크노 음악이었다.러시아 젊은이들은 키카크고 덩치가 좋다.그래서 그들의 춤을 추는 몸짓은 크고 화려해보인다.땀을뻘뻘흘리며 춤에 몰입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세계 공통인 것 같았다. 엘도라도를 나와 외국인을 주고객으로 하는 시내 중심부의 ‘말라히트’나이트 클럽을 들렀다.값만 비쌀뿐이지 그곳에서는 엘도라도와 같은 환희와 열기는 찾을 수 없었다. 국립 페름대 본관 2층의 언어학과 강의실.한국과 마찬가지로 러시아에서도어문학과 학생은 대부분 여학생들이다. 수업을 기다리던 3학년 마샤 마리아 빌라비예바는 영어에 관심이 많다.그녀는 “대학을 졸업하면 번역이나 통역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빌라비예바의 학우들도 영어와 남자친구,여행이 주요 관심사라면서 졸업한뒤 외국인 회사에 취직하기를 희망했다. 러시아의 여대생들은 대부분 미인이다. 비싼 옷이나 화장품은 없지만나름대로 멋을 잘 낸다. 국립우랄대에 다니는 한 학생은 “여대생의 반은 열심히 공부하고,반은 열심히 멋을 내서 돈 많은 노브리 로시스키(러시아의 신흥 부유층)와 결혼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러시아 대학가에서는 “여성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국립우랄대학의 한 여성학 교수는 강의시간에 “러시아 남자의 반은 감옥에 들어있고,나머지 반은 알콜중독자”라면서 “남자가 없으니 여자가 나서 러시아를 살려야 한다”고 열변을 토해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한국인 유학생 정영아(국제관계학부)·고향아(역사학부)씨는 전했다. 러시아에서는 17세가 되면 대학에 입학한다.그 전에 6,7세에 학교에 들어가 11학년의 초·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친다.20세 전후가 대부분 결혼을 한다.대학생 부부가 많다.학비와 생활비는 직접 벌지 않고 부모가 대준다.그래서러시아의 서민층 부모들은 생활고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 [대한매일 신춘문예] 심사평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10편의 작품중에 ‘점근금지’(김단),‘폭염’(황광수),‘이슬털기’(편혜영)를 인상깊게 읽었다. ‘접근금지’는 착상은 좋았으나 너무 작위적이고 플롯도 평면적이었다.허구의 현실을 진실처럼 만드는 것은 플롯이라는 점을 마음에 두었으면 한다.‘폭염’도 플롯을 안이하게 처리해서 작품의 신뢰성을 떨어뜨렸다.형의 죽음과 폭행범으로 구속된 동생,결말에서 아버지의 진실의 드러남이 그렇다.설명적 지문이 많은 것도 흠이었다. ‘달팽이’는 착상과 주제나 문장이 소설로서 수준에 이른 작품이었다.점포정리를 앞둔 지하 상가에서 초상화를 그리면서 수강생들을 지도하는 주인공의 내면 정황이,집념을 갖고 살아가는 그 주위 몇몇 인물들과 호응시켜 담담한 문장으로 그려내고 있다.그런데 긴 서두를 차지한 달팽이의 삽화가 자연스럽지 못했고,다른 인물들이 만들어 내는 에피소드들 간의 횡적인 관계가긴밀하게 이루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이슬털기’는 단편으로서의 모든 요건을 고루 갖춘 작품이었다.단아한 문장이 주인공의 모습을 닮으면서 소설의 흐름과 호응되었다.씻김굿 제차(祭次)에 따라 진행되는 플롯은 어찌보면 단조롭고 지루할 것 같은데도 서두에서결말에 이르기까지 탄탄하게 유지되었다.굿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죽은 남자와 주인공의 정황 등을 무리없이 처리한 점이 좋았다.흔한 소재인 ‘사랑의이야기’이면서 죽음과 탄생이라는 인간 존재의 근원 문제를 생각한 주제도신선했다.굿 장면에 너무 치우쳐서 소설의 주제를 흐리게 할 우려도 있고,남편의 외출에 대한 해명도 너무 암시적으로 처리되어서 아쉬웠다. 몇몇 작품에서 시도했던 사이버 공간에 대한 관심은 그 의도에 비하여 태도와 방식이 너무 안이하다.대부분 응모자들은 이야기와 소설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좀 더 진지하게 생각했으면 한다.지금까지 ‘잃어버린 사랑’이야기가많았던 점에 비해 올해에는 ‘가족’의 문제를 주제로 삼은 작품이 많았다는 점도 특이한 현상이었다. 요즘처럼 혼란스러운 시대에 그래도 소설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당선의 기쁨을 얻지못한 여러 응모자에게 전하고 싶다. 최일남·현길언
  • 호암미술관‘인물로 보는 한국미술’기획전

    한국미술 속에 투영된 ‘나’는 어떤 모습일까.새 밀레니엄이 다가오면서‘정체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호암미술관은 ‘인물로 보는 한국미술’ 밀레니엄 특별기획전을 서울 호암갤러리와 로댕갤러리 두 곳에서내년 2월말까지 장기 개최한다.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7,000년간의 우리 모습을 미술을 통해 되돌아본다는 의도의 이 전시회는 토우,조각,초상화,풍속화 등 다양한 미술작품 201점을 한 자리에 모았다.평면과 입체 작품을 함께 아우른 가운데 고미술 135점,근대미술 66점이 출품됐다.호암미술관 뿐 아니라 국립중앙미술관 등 14개 공사립박물관 및 개인소장품들로 이뤄졌다.이중에는 ‘윤두서 자화상’등국보 4점,보물 5점의 지정문화재가 포함되어 있다. 전시는 고미술 풍속화부터 시작된다.조선시대 예술적 품격을 갖춘 중요한장르로 발전한 풍속화는 인물 모습과 함께 사농공상의 생활정서를 잘 표현했다.이어 고미술 초상화 전시가 이번 기획전의 중심을 이룬다.조선시대 최고의 초상화로 꼽히는 ‘윤두서의 자화상’(국보240호)은좀처럼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 명품이다.왕의 어진을 그린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 한종유와 변상벽이 합작해 그린 김재로 초상도 나온다. 조선시대 양반 여인에 대한 초상화는 없지만 기품있는 기녀 등 조선여인들에 대한 그림이 전시된다.김홍도와 신윤복의 여인 풍속도에 이어 작자미상의 ‘미인도’가 시선을 끈다.이 그림은 윤두서의 자화상과 함께 해남의 녹우당에 비장되어오다 일본에 밀반출된 뒤 반환된 사연을 지니고 있다. 이어 현대미술 회화에 나타난 우리의 얼굴이 나온다.우리나라 최초로 서양화를 도입한 고희동의 자화상을 비롯, 구본웅 서진달 오지호 이쾌대 최영림장리석에서 임옥상 권순철 김호석 윤석남이 그려내는 현대적 인물이며 박래현 이인성 박생광 이종구 등의 풍속인물화가 곁들여진다. 입체조각품은 로댕갤러리에서 전시되는데 7000년전의 인면장식 조개에서 백남준의 작품까지 이어진다.만면에 머금은 웃음으로 ‘신라의 미소’로 불리우는 흥륜사지 출토의 인면문 수막새,본격적 인물상의 시작이랄 수 있는 삼국시대 불상,민간에서 조성된 조선시대 돌조각 등에서 한국인의 얼굴표정을살필 수 있다.근현대조각품으로는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비운의 작가권진규의 ‘지원의 얼굴’을 비롯,전뢰진 백문기 최종태 강관욱 등의 인물상을 볼 수 있다.(02)771-2381. 김재영기자 kjykjy@
  • 러시아 이상원화백 초대전

    [상트 페테르부르크=김재영기자] 국내 화단에서 외롭게 자기 길을 걸어온 이상원(63)화백이 세계적 명망의 러시아 미술관에서 초대전을 열고있다.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국립러시아미술관은 지난달 26일 외국인 생존작가로는 처음으로 한국의 동양화가 이화백을 초대해 전시회를 개최했다.오는 21일까지 열리는 그의 초대전 개막식에는 600여명의 러시아 미술팬들이참가,국내 개인전 오프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자발적인 열기를 뿜었다.이국립러시아미술관은 푸쉬킨,트레차코프,에르미타쥬와 함께 러시아 4대 미술관으로 꼽히며 러시아 미술품 37만점을 소장하고 있다. 장지에 수묵과 오일을 섞어 그린 그의 독특한 극사실주의 대작들이 5개 전시실을 가득 메웠다.70년대 후반부터 일관되게 그려온 구멍이 뚫린 마대 자루,마늘 더미,굵은 밧줄 무더기,눈 위에 새겨진 무한궤도의 대형트럭 바퀴자국 등의 ‘시간과 공간’ 시리즈와 함께 최근 시작한 어촌 사람들의 생생한 얼굴표정을 옮긴 ‘동해인’ 연작들이 나란히 걸렸다.먹과 오일을 교묘하게 배합하고사진같은 섬세한 붓질로 이루어진 극사실풍 그림들은 리얼리즘의 본고장인 러시아 사람들에게 ‘즐거운 충격’을 주었다. 학교를 다니지 못한 작가는 극장 간판장이로 출발해 초상화 전공의 상업화가로 이름을 떨쳤으나 마흔이 넘어 순수 미술로 전환했다.인맥이 없어 국내화단으로부터 무시당했으나 97년 러시아 연해주 주립미술관,98년 중국 베이징 중국미술관,올 여름 프랑스 파리 라 살페트리에르 개인전에서 하나같이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블라디미르 구세브 국립러시아미술관장은 “서구미술에 초점을 맞추었던 운영방식을 수정하면서 작가를 초대했다”고 밝히며 “작품에서 동양의 전통적 시선과 서양의 새로운 기술을 한꺼번에 볼수 있다.아방가르드로만 치닫는러시아 현대작가들에게 어떤 울림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한편 작가와는 초면인 이인호 주러시아 한국대사도 개막식에 참석,축하했다.
  • 신분한계 넘은 조선의 예술혼‘궁중화가전’

    ‘김홍도와 궁중화가’전이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27일 개막,내년 3월19일까지 열린다. 이 전시회는 호암미술관이 지난해부터 펼쳐오고 있는 소장품 테마전의 4번째 행사.‘아미타’ ‘한국의 동물미술-새’ ‘한국의 동물미술-물고기’ 전등이 소장품전으로 치뤄졌다.조선시대 궁중화가인 화원들은 양반 출신들의문인화가와는 달리 중인 출신의 직업화가로서 하급 기술자 대우를 받았으며관직이 높아야 종6품에 그쳤다.그러나 이들이 이룩한 예술적 성취는 이러한신분적 한계를 뛰어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전시회는 조선 궁중화가들이 그린 다양한 종류의 작품들을 한자리에모았다.특히 조선 궁중화가의 대표 격인 단원(檀園) 김홍도(1745∼1806?)의작품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총 61건의 전시품 중 김홍도 작품이 15건에 이르며 국보 139호인 김홍도의 ‘군선(群仙)도’,국보 219호인 ‘청화백자 매죽문호’,보물 782호인 김홍도의 ‘병진년화첩’ 등이 들어 있다. 1층에는 화원들의 공적인 업무를 통해 제작된 작품들이 용도와 제작배경에따라 분류되어 선보인다. 궁중에서 사용되던 그림과 궁중화가가 장식무늬를그린 청화백자,궁중행사를 기념하여 그린 그림,궁궐도와 지도,초상화,교화를위한 감계화 등이다. 여기에는 김홍도가 책임맡고 제작했다고 여겨지는 화성능행도 병풍과 오륜행실도 삽화 등이 포함되어 있다. 2층에는 김홍도를 중심으로 이인문 이명기 김득신 이재관 장승업 안중식 등 조선시대 대표적인 화원들이 사적으로 주문을 받거나 스스로 흥취가 일어 그린 감상용 그림들이주로 전시된다.(0335)320-1800. 김재영기자
  • 연극계에도 거센‘性담론’바람

    영화 ‘거짓말’에서 탤런트 서갑숙의 성체험 에세이까지,올 한해 우리 사회를 강타한 성담론이 연극계로도 번지고 있다.20일부터 문예회관 대극장에서공연되는 극단 미학의 ‘뽕’(차범석 극본,정일성 연출)과 12일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무대에 오르는 우리극장의 ‘룰루’(프랑크 베데킨트 작,김종성연출)는,속칭 대학로 뒷골목의 ‘벗는 연극’과 달리 성을 진지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두 작품은 각각 1920년대 한국 하층민(뽕)과 19세기말 독일 상류사회(룰루)를 배경으로 성을 통해 본 다양한 인간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뽕’은 극단 미학의 대표 겸 연출가인 정일성씨가 우리의 정서와 전통을되살리려는 의도로 만든 ‘스토리 시어터(이야기 극장)’의 첫 작품.사실주의 작가 나도향의 단편소설로,배우 이미숙이 주연한 영화 등 스크린으로는여러차례 옮겨졌지만 연극무대에 오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투전에 눈이 멀어 밖으로 나도는 무능한 남편을 둔 안협집은 빼어난 외모로뭇사내들을 유혹한다.몸주고 돈버는 일에 재미를 붙인 안협집은 남편이 돌아오면 노름밑천을 주어 내보내기까지 하는데….영화 ‘뽕’이 워낙 ‘야한 작품’으로 소문난 탓에 어떻게 무대위에 형상화될지가 관심거리다.정일성씨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성을 생명력있게 묘사한 원작의 분위기를 최대한살릴 것”이라며 ‘품격있는 에로티시즘’을 자신했다. 동시통역사,영화배우,MC로 활약중인 지적인 외모의 배유정이 안협집으로 변신하고,연극배우 겸 탤런트 김명수가 남편역을 연기한다.무대장치는 가급적배제하고,배우의 연기에 집중한 새로운 형식의 연극으로 꾸며진다.28일까지. (02)745-9884. 19세기말 독일 표현주의 작가 프랑크 베데킨트의 희곡 ‘룰루’는 몸파는 여인 룰루의 입을 빌어 ‘여성성’과 ‘성의 해방’을 주장한다.적나라한 성묘사로 발표되자마자 판금됐던 이 작품은 지난 89년에야 해금됐으며,이후 독일·프랑스 등에서 오페라·무용 등으로 재창작됐다.10년전 원작의 일부분을초연했던 우리극장은 이번에 전체 4시간분량의 극을 절반으로 압축해 무대에 올린다. 12세때 양아버지 쉬고르에 의해 ‘거리의 여인’이 된 룰루는 쉐엔 박사를만나 상류사회에 발을 디딘다.쉐엔 박사는 룰루를 나이많은 골박사에게 시집보내고,룰루는 여유로운 생활에 만족하지만 곧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슈바르츠와 사랑에 빠지는 등 통제되지 않은 본능에 따라 행동한다.극중 룰루가 만나는 남자들은 여성을 성적 노리개로 취급하거나,명예·권력욕의 상징으로 여기는 등 이 시대 남성상을 대변한다. 연출자 김종성씨는 “인간의 욕망과 거짓된 도덕관 등을 보여줄 것”이라고말했다.등장인물들의 동물적 속성을 묘사하기 위해 프롤로그 20여분간 진행되는 동춘서커스의 묘기도 볼거리이다.20일까지.(02)2234-0586이순녀기자 coral@
  • 은평구, 패션거리 특화/ 22일부터 페스티벌 개최

    지금 연신내는 테크노바람 은평구 연신내 일대가 젊은이들의 문화와 패션공간으로 새롭게 꾸며질 전망이다. 은평구는 20일 연신내 일대를 특화된 패션거리로 가꾸기 위해 지역상가 단위로 개최해온 연신내 거리패션축제를 ‘테크노 페스티벌’로 확대,22일부터10일간 상가번영회와 공동으로 개최하기로 했다. 이 행사를 통해 특성있는 지역문화 창출은 물론 연신내 일대의 면모를 일신,이곳을 지역경제 활성화의 중심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은평구는 테크노 문화를 주도하는 계층이 청소년이라는 점을 감안,이번 행사를 ‘패션의 거리,테크노의 거리,새 천년의 거리 연신내’를 주제로 한 ‘청소년 문화해방축제’로 꾸미기로 했다. 이를 위해 테크노패션 설치미술제와 패션산업전,초상화전 등 전시회를 마련하고 거리예술공연,테크노댄스,테크노연극·영화제 등 공연행사도 다양하게선보일 계획이다. 또 은평문화인 축제,테크노메이크업 등 기존의 문화축제를 곁들이고 청소년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테크노걸 선발대회와 테크노가요제,댄스경연대회 등도준비했다. 은평구는 특히 페스티벌 기간중 ‘사랑의 옷 특가판매전’을 기획,수익금전액을 관내 양로원과 고아원,소년소녀가장 등에게 전달할 방침이다. 이배영(李培寧) 구청장은 “페스티벌 규모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연신내를특화거리로 육성하고 이를 통해 지역경제의 활성화도 이뤄낼 계획”이라고밝혔다. [심재억기자]
  • [대한광장] 워커선장 추적기

    7년 전 어느 한글신문에 ‘대미 관계개선 한국 번영에 필수적’이라는 잡문을 쓴 일이 있다.시간이 흐르면 사람의 생각도 달라질 수 있지만 그때 그런글을 쓴 것은 아직도 옳다고 생각한다.그때까지 미국의 대한(對韓)정책에 대한 지나친 사시(斜視)의 반성이기도 했다.그 글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그 해 1993년 1월은 지금까지 알고 있는 한 한국인과 미국인 교류 140년이되는 해로 1883년 1월 미국인 한 가족이 표류가 아니라 인도주의를 표방한방문으로 한국땅을 처음으로 밟았다.실제 보트를 내려 땅을 밟았다.한국인들은 ‘금발미녀’인 선장부인과 어린 네 살 짜리 사내아이를 보려고 미국배로 몰려와 구경하였고 미국술과 한국술을 교환해 마시며 파티를 갑판 곳곳에서열었다. 미국선원은 한국인의 인상에 대해 글도 지었다.미국배는 구출한 일본 표류선원 2명을 인도하고 갔다.당시 일본정부는 중국이나 조선에서 송환하는 일본인 표류민들은 받았으나 양인(洋人)이 송환하려는 일본인은 잘 받지 않았다.그리스도교에 오염됐을 가능성을 경계한 것이다.따라서 미국배의 우회송환은 매우 타당한 것이었다. 조선조정은 일본선원 두 사람에게 선물을 잔뜩 안겨 일본으로 송환했다.매우 아름답고 흐뭇한 사건이었으며 포함(砲艦)외교와는 거리가 멀었다.즉 조·미관계는 친선적인 접촉으로 시작됐다는 것이 중요하다.미국의 동아시아여러나라 접촉의 시작이 한 가족의 평화적인 방문으로 이루어진 예가 어디있는가 말이다. 그런데도 조·미관계는 잘 발전하지 못했다.세계 대세에 대한 조선조정의눈이 어두웠던 것도 큰 원인중의 하나였다.1853년 1월에서 140년이 되는 93년 1월 필자가 이 사건을 조명하려 했던 것은 당시 대두하는 듯 보였던 미국 우익의 ‘구미 제국주의 재긍정론’에 자극받아서였다.글의 부제(副題)를‘한·미접촉의 시작과 그 현대적 의미’라고 적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글은 “세계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을 이용해 이익을 추구해야 할 것이 역사적과제”라고 맺었다. 이 시각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그러나 여기서 다루려는 것은 역사적인 인물에 대한 나의 추적고심담이라기보다 아직도풀리지 않는 미국인 선장이 풍기는 수수께끼를 나눠보고 싶어서다.워싱턴 티 워커(Washington T.Walker)선장은 매우 성공적인 포경선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신문기사를 종합하면 그는 지략과 상업적 재능에 뛰어난 인물이었던 것 같다. 뉴 잉글랜드 뉴 베드포드라는 포경선 항구 부근에서 태어난 그는 어느 과부의 딸과 결혼했으나 그가 결핵으로 사망하자 동생과 결혼했고 그녀도 결핵으로 사망하자 막내동생과 결혼했다.막내동생도 결핵으로 사망했다.고심끝에찾은 그의 무덤에 세자매의 무덤이 나란히 있는 것이 가관이었다. 그가 포경여행과 한국에 데려온 여인은 두번째 부인으로 그녀를 매우 사랑했던 흔적이 많다.포경선 위에서 가축을 기르며 신선한 육류를 공급했다.때로는 소가 있는 섬에 상륙,소를 강탈하고 대금을 놓고 가곤 했다.그가 한국에 데리고 온 아들 헨리군도 사망했는데 역시 ‘결핵’이었다. 그는 한국행에 앞서 하와이 왕국 주둔 미국영사관과 접촉했는데 미국영사관쪽에서 한국행에 대해 어떤 주문을 했는지도 알수 없다.혹 한국과의수교가능성을 타진하라는 문건이 존재한다면 대단한 발굴이 될 것이다.미국의 ‘한국’에 대한 관심역사가 한 단계 올라가기 때문이다.남북전쟁이 한창일 때사망했는데 그의 사망기사는 어느 신문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매사추세츠 주정부 사망기록부에는 그의 사망기록이 있는데 ‘결핵’이 사망원인으로 돼 있다.이것도 수상하다.링컨정부의 비밀명령을 받아 모종의 해상작전에 종사하다가 전사했을 가능성(많은 포경선 선장들이 그랬다)과 남군과 밀무역을 하다가 어떻게 됐을 경우(이 경우에 그는 반역자가 되므로 신문에 날 까닭이 없다)등등 여러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금도 그의 무덤에 가끔씩 꽃을 놓고 가는 사람이 있다는 묘지관리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후손이 남아 있고 좀더 자세한 이야기나 초상화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워커선장은 한·미관계사에 워낙 중요한 인물이므로 이런 가능성에 희망을 품고 무엇이 걸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方善柱 한림대 객원교수 재미사학자]
  • 그림속으로 떠나는 몽골기행

    한국과 몽골의 문화를 한 눈에 비교해 볼 수 있는 풍물기행 성격의 이색전시가 경기도 용인시 기흥읍 상갈리 경기도박물관에서 펼쳐지고 있다.경기도박물관이 개관 3주년을 맞아 마련한 ‘초원의 대서사시-몽골유목문화대전’이 그것이다.몽골 유목민의 개방적이고 융통성 있는 생활양식과 다른 문화에 대한 포용성은 새 천년을 준비하는 우리로서는 한번 되짚어 볼만한 점.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몽골의 사계를 배경으로 생활풍습을 상세히 보여주는 민족지적인 회화 ‘몽골의 하루’(샤라브 작)가 선보여 주목된다.몽골의 대표적인 그림인 ‘마유주 축제’와 혁명투사 수흐바아타르의 초상화를 그린샤라브(1869∼1939)는 몽골인의 생활을 미세한 터치로 그려온 작가.샤라브는 풍자적인 풍속묘사로 유명한 플랑드르의 화가 브뤼겔에 견주어 ‘몽골의 브뤼겔’이라고도 불린다.평면회화 외에 샤먼의 의례복과 무구(巫具),젖을 뿌리는데 쓰는 의례용 도구 ‘차찰’,마유주(馬乳酒)를 따를 때 사용하는 가죽용기 ‘후눅’,여성용 안장인 에메엘,점성용 만다라 등 다양한민속용품들도 나와 있어 몽골 민족의 생활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고대 중국의 역사서 ‘한서(漢書)’는 유목민을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금수의 마음을 가진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그 이면에는 물론 유목민에대한 뿌리깊은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하지만 이번 전시를 보면 유목생활에따른 약탈은 생업의 일부일뿐 그들의 생활습속과 심성은 매우 정겹고 따뜻한 것임을 실감할 수 있다.8월22일까지.(0331)285-2011김종면기자
  • [데스크시각] 헤밍웨이와 ‘사람 냄새’

    미국에 가서 새롭게 느껴지는 것 가운데 하나는 ‘사람 냄새’다.어디를 가든지 그곳에 과거에 있었던 사람이건,현재 있는 사람이건,장차 있을 사람이건 그 냄새를 맛볼 수 있다. 미국민의 우상,케네디가의 막내격인 케네디 2세의 갑작스런 죽음에 온 미국이 훌쩍이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사람 냄새’ 때문이다.그래서 당사자 뿐아니라 그 부모의 묘소,별장까지 어디건 ‘케네디가’의 체취가 서려있는 곳이면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40년 가까이 미국민의 가슴 한편에 희망의 심볼로 자리잡아온 ‘케네디’의 상실은 경제적 호황에도 불구하고 미국민에게 만연돼 있던 세기말의 상실감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기도 하다. 올여름은 케네디 2세의 죽음에 가려 있지만 미국은 매년 7월이 되면 또하나의 사람 냄새에 흥건히 젖어든다.어네스트 헤밍웨이가 바로 그 장본인이다.2일은 1961년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날이고 21일은 1899년 그가 탄생한 날이다.그는 1차대전과 스페인 내란때 위생병과 종군기자 등으로 참전한 경험이 있고 다양한작품을 발표,1953년 퓰리처상,이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인 대문호로 성장했다. 헤밍웨이 추모행사는 크게 세 지역에서 대대적으로 전개된다.그가 출생하고 성장한 미중부 일리노이주 시카고 교외의 오크 파크,장년기 왕성한 집필욕을 불사르던 남서부 플로리다주의 키 웨스트,말년을 보내다 자살하고 마지막 부인과 함께 묻힌 북서부 아이다호주의 선 밸리 등이다. 이들 세지역에서는 각종 공연,전시회,문학회 등 저마다 특색 있고 다양한헤밍웨이 관련 행사들이 다투어 열리고 있다.선 밸리에서는 국제헤밍웨이학회도 개최된다. 또 그가 자주 가던 키 웨스트의 술집 ‘슬로피 조스 카페’는 7월 한달 내내 특별 공연과 특별 메뉴를 선보인다.‘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탈고하고 생을 마감했던 선 밸리의 호텔 ‘선 밸리 롯지’는 그가 묵었던 방(206호)에서 자고 그의 산책로 등을 답사하는 특별 패키지 상품도 내놓고 있다. 그밖의 도시에서도 헤밍웨이를 만나기는 어렵지 않다.워싱턴 스미소니언의초상화박물관에서는 헤밍웨이 사진전을개최하고,대도시의 서점들에서는 헤밍웨이 도서전과 특별코너 등을 설치해 사실상 전국적인 행사로 치러지고 있다. 헤밍웨이가 이처럼 미국민에게 대대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인물들의 역동성 때문이다.사냥꾼으로,낚시꾼으로,투우사로또 군인으로 그가 묘사해낸 주인공들의 용감하고 정열적이고 적극적인 삶의모습들은 미국을 20세기 들어 최고의 국가로 만든 힘의 원천이기도 했다. 헤밍웨이 100주년이 더욱 열기를 띠는 것은 냉전체제가 와해된 후 미국이유일 초강대국으로서 맞게되는 불확실성의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심성이 점점 나약해져가는 미국민 스스로의 자성의 외침인지도 모른다. 존 F.케네디 전 대통령은 미 알링턴 국립묘지 한복판에 ‘꺼지지 않는 불’로 살아 있다.그 불은 케네디 2세가 죽어도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이다.헤밍웨이도 형태만 다를 뿐이지 작품으로는 물론 기념관에도,선술집에도 영원히남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사람 냄새’로 가득차 있게 되는 모양이다.
  • ‘우리의 화가 박수근’ 展

    흰색·갈색·회색·검정색의 절제된 사용,그리고 화강암을 연상시키는 두꺼운 마티에르.‘민족의 화가’‘서민의 화가’로 불리는 박수근의 조형세계는우리 화단의 어느 누구와도 견줄 수 없을 만큼 독자적이다.“나의 그림은 유화이지만 동양화다”라고 스스로 말했듯이 그의 작품에서는 소박한 한국미가 느껴진다. 박수근 예술의 독자성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것은 그가 당대의 동료 화가들이 교육기관을 통해 아카데미즘을 답습한 것과는 달리,독학으로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만들어낸 것과 무관하지 않다.서울 호암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우리의 화가 박수근’전의 관람 포인트는 이러한 박수근 예술의 독자성을 이해하는 데 있다. 박수근은 회화의 재현적인 요소를 최대한 자제하고 대상의 본질만을 잡아내묘사한다. 또 서양화 기법을 우리 민족의 정서가 깃든 독자적인 마티에르 감각으로 소화해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제시한다.박수근은 황갈색 톤의 중간색을 많이 사용했지만 그의 그림 색깔을 한 마디로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다.그림 밑바닥에서부터 번져 올라온 복합적인 색조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그는많을 땐 열 번까지 물감을 겹쳐 올리고 지우고 긁고 하는 작업을 반복하면서작품의 완성도를 높여갔다. 그렇기에 그의 그림은 평면적인 느낌보다는 부각(浮刻)세공 같은 느낌이 강하다.그는 또한 서양화의 전통적인 기법인 원근법을 즐겨 쓰지 않았다.그래서 ‘그림 못 그리는 화가’란 소리도 들었다.그의 ‘소와 유동(遊童)’이라는 작품을 보면 그림 윗부분에 있는 소가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만 같다. 박수근의 그림 작업은 크게 젯소층,바탕칠하기,재질감 만들기,마무리 작업등 4단계로 나눠 볼 수 있다.그는 젯소(gesso)가 미리 발라져 있는 상품화된캔버스를 주로 사용했다. 젯소는 석고와 아교를 혼합한 회화 재료로,유화물감의 기름성분이 천에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고 발색효과를 높이기 위해 바르는 흰색 물감을 가리키는 말.이 젯소층 위에 모노톤의 물감을 바르고,화면에다시 물감을 칠한 뒤 붓으로 데생을 한다. 그 위에 붓과 나이프로 작업을 반복하면서 점차 두터운 화면을 만들어간다.그리고 끝으로 동양화에서의 갈필(渴筆)처럼 붓을 이용해 작품의 톤을 조정한다. 박수근 작품의 독자성은 이같은 방법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그의 일관된 소재의식에서도 찾을 수 있다.그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한다는 예술적 신념을 바탕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의 모습을 반복해 그렸다.그럼으로써 그들을 우리 민족의 집단초상화로 거듭나게 했다.아이를 업고절구질하는 여인, 좌판을 벌리고 행상하는 아낙,헐벗은 나목처럼 황량하기만했던 시대 풍경은 50∼60년대 그가 경험한 일상이었지만,돌이켜보면 그것은곧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저력이자 우리 민족의 초상화이기도 하다.그는 인고의 생활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결코 그것에 주눅들지 않는 강인한 한국의 여인상을 그렸다.반면 남성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르는 무룡태 정도로 묘사해 대조적이다. 1914년 강원도 양구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박수근은 가정 형편상 보통학교밖에 다니지 못했다.가난에 시달리던 그는 미8군 영내매점에서 관광용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소설가 박완서는 당시 미8군 매점 초상화부에서 ‘간판쟁이 박씨’로 불리던 그를 소재로 처녀작 ‘나목’을 썼다.박수근은 수술비용이 없어 백내장 치료를 미루다가 1963년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그가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도 실명에 따른 충격으로 폭음하다가 간과신장이 급격히 나빠졌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에는 유화 82점과 수채화 8점,스케치 35점 등 모두 125점이 나와있다.‘소와 유동(遊童)’‘나무와 두 여인’‘시장의 여인들’ 등 중·고교교과서에 실린 작품을 비롯 ‘귀가’‘아기보는 소녀’‘시장’등 대표작들이 모두 망라돼 있다.9월 19일까지 (02)771-2381김종면기자 jmkim@
  • [대한광장] 끈질긴 부패의 역사

    맑고 깨끗한 세상의 건설은 한낱 이상에 불과한 일인가.세상이 언제까지 이처럼 썩고 병든 상태로 남아 있어야 하는지 생각하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일차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과제가 부패 문제임은 국민모두가 공감하는 바다.그 동안 지겨울 정도로 부패척결이다,공직자 사정이다 하면서 기발한 수단과 방법을 죄다 동원해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으니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오죽하면 전통적으로 상부상조의 문화적 향기가 스민 축의금이나 조의금까지 부패와 관련이 있다고 여겨 과장급 이상 공무원은 부조금을 받을 수 없게 하겠다는 정책 발상을 했겠는가.이를 감안한다면 우리사회의 도덕적 수준이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하는 절망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부패의 뿌리는 그만큼 깊고 질긴 것이다. 실학자 다산선생은 자기가 살던 세상을 “온 세상이 부패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天下腐已久矣)라 하여 썩고 부패한 지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라고 진단하였다.더구나 부패한 정도에 그치는 것이아니라 “썩고 문드러졌다”(腐爛)는 극단적 수사를 동원하여 당시 사회의 극심한 부패 실상을 아프게 고발하였다. 이는 부패가 이미 역사적이고 관행적인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고질화했다는뜻이다.언젠가 외국 잡지에서 한국을 포함한 중국 등 아시아 각국에서는 부패가 ‘풍습적’(habitually)으로 행해진다고 쓴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때 그 기사가 실감나게 다가왔는데 수십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그러한 느낌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 한심한 일이 아닌가. 옛날 중국 한(漢)나라때 일이다.궁녀 중에 왕소군(王昭君)이라는 천하절색이 있었다.얼굴도 미인이지만 품행까지 방정하여 황제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을 수 있는 궁녀였건만 끝내는 북방 흉노족의 추장에게 팔려가는 기막힌 처지를 당한 비운의 주인공이다.당시 황제들은 화공에게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리게 한 다음,그것을 보고 마음에 드는 여인을 골라 총애하였다.황제의 사랑을 기다리는 궁녀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생긴 간택 방식이었다.그런데 못생긴 궁녀들은 자신을 예쁘게 그려 달라고화공에게 뇌물을 바치는 일이 다반사였다 한다.평소 미모에 자신이 있던 왕소군은 화공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았다.화공은 그녀의 얼굴바탕은 예쁘게 그려주었지만 안면에 점을 찍어 곰보로 만들어 버렸다.이 때문에 왕소군은 추녀로 낙인 찍혀 흉노로 팔려갈 수밖에 없었다. 뇌물의 유무에 따라 결과가 사실과 달리 이처럼 현격하게 벌어지니 어떻게뇌물질이 끊어지겠는가.뇌물로 인하여 추녀도 미녀가 되고 미녀도 추녀가 되는 것이 한(漢)나라 때부터라면,2,0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뇌물의 역사(?)가 아니겠는가.자,그렇다면 그러한 효과를 지닌 뇌물의 역사를 누가,어떻게 해야 막을 수 있을까.해결해야 할 난제 중의 난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동양의 현인들은 청빈(淸貧)한 삶을 그처럼 강조했고,청백리들을 왕조마다 예우했건만 뇌물은 없어지지 않았고,부정과 부패는 줄어들지 않았다. 다산은 부패한 세상의 교정을 위해서 두 가지 원칙을 제안했다.하나는 인간의 의식개혁이요,둘은 법과 제도의 개혁이다. 다산은 의식개혁을 위해 공직자의 청렴정신과 청백리 정신을 수없이 반복해 강조한 바 있다.이제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며 실천 가능한 법제의 개혁을마련하여 부패방지의 기초를 세우고,공직자들이 국가에 정성을 바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자부심과 사명감을 심어줄 수 있는 실천적인 방안을 모색해야할 것이다.부패의 사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 나라,이제는 그 부패의 질긴 역사 고리를 끊을 때가 왔다.온 국민이 힘을 모으고 지혜를 짜내어 이번만은 반드시 이 작업을 성과 있게 만들어내자. [朴錫武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사장]
  • 전주시 朝鮮문화특구 지정 추진

    전북 전주시가 조선문화권 도시로 집중 육성된다. 22일 전주시에 따르면 경기전과 객사 등 조선시대 문화 유적이 많은 전주를 ‘조선문화권 도시’으로 육성하기로 하고 하반기부터 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해 이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시는 이에 따라 조선문화 특구지정을 조속히 추진하기로 하고 이태조의 어진(御眞·임금의 초상화)이 봉안된 경기전과 조선시대 여관으로 사용됐던 객사,전주 이씨 시조 묘인 조경단,전라감영 등의 시설을 확충하거나 새롭게 복원하기로 했다. 시는 또 실시설계 중에 있는 판소리 전용극장과 향토사 박물관에 대한 공사를 하반기부터 본격 추진하고 남문시장을 전통 재래시장화하며 전통한옥지구인 교동지역에 대한 환경개선사업을 벌여 나가기로 했다. 시는 이러한 공사에 총 5,000억원가량이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재원마련을 위해 중앙정부와 도에 국·도비 지원을 요청하기로 했다. 시 관계자는 “경주와 부여가 신라와 백제문화의 상징도시로 조성된 것처럼 조선시대의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 숨쉬는 전주를 조선문화도시로 집중 조성할 계획”이라며 “조선문화권 사업은 국가차원의 사업이므로 도와 정부의적극적인 지원을 받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 김구선생 추모 음악회등 보훈의 달 특집프로 다채

    KBS 등 방송사들은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의 마지막주말을 맞아 나라사랑의정신을 되새기면서 조국의 분단현실을 되돌이켜 볼 수 있는 대형이벤트를 마련한다. KBS 1TV는 백범 김구선생의 서거 50주년을 맞아 27일 오후 6시30분 서울 서대문 옛 형무소 터인 독립공원에서 ‘나라사랑 음악회’를 열고 이를 생중계한다. 공연은 김구선생의 대형 걸개 초상화를 배경으로,드라마에서 선생의 역할을 도맡아온 탤런트 이영후가 ‘나의 소원’을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어 이애주의 춤, 안숙선의 판소리, 관객 전원의 ‘애국가’ 합창,시인고은의 추모 자작시 낭송,뮤지컬 ‘명성황후’ 출연진의 ‘백성이여 일어나라’ 합창 등이 펼쳐진다. 또 SBS는 한국전쟁 발발 49주년인 25일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리는 세계불우어린이 돕기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의 공연을 TV생중계한다.중계시간은 오후 7시부터 11시 30분까지.
  • 극장 간판장이 출신 화가 이상원 佛미술계 입성

    극장 간판장이 출신의 화가가 프랑스 미술계에 입성한다. 한국화가 이상원(65)이 16∼29일 프랑스 파리 살페트리에르 전시장에서 한국화를 알리는 첫번째 전시회를 갖는다. 살페트리에르는 1656년에 세워진 유서깊은 성당.그러나 지금은 파리시가 관리하는 미술전시 공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크리스티앙 볼탕스키를 비롯,아네트 메사지·마리오 메르츠·장 샬르 볼레·레베카 혼 등 세계적인 작가들이 이곳을 거쳐갔다.이번 전시의 주제는 ‘흐르는 시간에 대한 시선’.쌍끌이 어선으로 상징되는 피폐한 어촌 사람들을 그린 인물화 ‘동해인(東海人)’ 등 30여점이 선보인다.모두 100호 이상의 대작들로 가로 5.5m에 이르는초대형 작품도 있다. 이상원은 젊은 시절 극장 간판장이와 초상화가로 삶을 경영했다.그 분야에서 만큼은 그를 따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독보적인 존재였다.안중근 의사의영정을 그린 것이 계기가 돼 고 박정희 대통령 내외 등 수많은 국내외 유명인물의 초상화를 그렸다.거만(巨萬)의 부도 모았다.그러나 이상원은 작고한노산 이은상 선생을 만나 순수미술의 길로 들어섰고 독학으로 화업을 일궈나갔다.74년 불혹의 나이에 국전에 입선했으나 곧 민전으로 돌아서 78년 제1회 동아미술제 동아미술상과 제1회 중앙미술대상전 특선을 차지하며 미술계의시선을 한몸에 모았다. 이상원의 작품은 극사실주의의 전형을 보여준다.그는 진지하고 처절한 삶의 현장을 카메라 렌즈보다 더 박진감 있게 잡아낸다.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카락 한 올까지 놓치지 않는다.그렇기에 그의 작품엔 흡인력이 있다. 거의 모든 작품을 현장작업으로 그리는 이상원은 “소재와 대상의 취재도중요하지만 만나는 인물들로부터 인생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현장작업을 중시한다”고 말한다.그는 20여년동안 1,000여점의 작품을 그렸지만 그 그림들을 절대로 팔지 않는다.소중히 간직해 훗날 자신의 전용미술관에 그대로 전시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김종면기자
  • 黃炳槿씨 전주박물관에 5,000여점 기증

    국립 중앙박물관은 28일 오전 본관 강당에서 최근 국립 전주박물관에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5,000여점의 문화재를 기증한 황병근(黃炳槿·65·우리문화 진흥이사회 이사장)씨에 대한 기념행사를 갖고 이를 언론에 공개했다. 황씨는 붓을 손에 쥐고 쓰는 필법인 악필(握筆)로 유명한 석전(石田) 황욱(黃旭)선생의 셋째아들로 선친의 서예작품 418점과 자신이 평소 모은 서화류348점,간찰(簡札·편지)류 1,283점,고고미술품 및 민속품류 639점 등 5,006점을 기증했다.집안의 종손 황병무(黃炳茂·국방대학원 안보문제연구소장)씨가 소장하고 있던 황기산(黃箕山)선생 초상화 등 4점도 함께 기증했다. 기증품 중에는 1억원을 호가하는 석전의 18폭 병풍 적벽부 등도 포함돼 있어 전체 기증품의 가격은 수십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황씨는 “문화재는 모든 사람이 공유할 때 가치있고 의미있는 것”이라면서 “선친의 기념관이 마련돼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전주박물관은 다음달 21일부터 7월18일까지 석전선생의 유작을 중심으로 기증유물특별전을 갖고 오는 2001년 완공되는 사회기념관에 석전기념실을 만들어 상설 전시할 계획이다. 지난 93년 96세를 일기로 타계한 석전은 일반적인 서법의 맑고 담담한 글씨였으나 수전증이 온 70대 이후에는 기교가 배제된 악필로 전환했으며 80대중반 오른손을 완전히 쓸 수 없게 되자 왼손 악필을 구사했다. 임태순기자 stslim@
  • 러시아 현대회화 거장 라즈드로긴 초대전

    러시아 현대회화의 거장 이고리 A.라즈드로긴(76)의 초대전이 11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진화랑·진아트센터에서 열린다.(02)738-7570 전시작품은 러시아 현대미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오라니엔 바움문’‘피터궁전의 오솔길’‘페초르 수도원’‘푸쉬킨 사원’‘파블롭스크 궁전’‘시베리아 판타지’‘친구들’ 등 30여점.그가 특히 평가받고 있는 분야는 초상화다.러시아 곳곳을 여행하면서 만난 평범한 일반사람들이 모두 훌륭한 그림 소재다.라즈드로긴의 초상화는 단순한 인물그림이 아니라 인물을 주제로 한 내면적 직관의 회화라는 평.그는 자신의 예술적 영감은 러시아의 정겨운 풍경과 역사적 유적,그리고 ‘작은 창조자’로서의 인간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한다.라즈드로긴은 러시아의 문화 수도로 불리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출신으로 일리야 레핀 미술조형 건축대학의 교수이자 러시아 공훈 예술가다.
  • 반 고흐 마지막 자화상 930억원에 팔려

    【뉴욕 AFP 연합】 빈센트 반 고흐가 말년에 그린 자화상이 19일 뉴욕크리스티경매장에서 7,150만2,500달러(약 930억원)에 팔렸다. 1889년 고흐가 어머니의 생일선물로 그린 ‘수염없는 예술가의 초상’이라는 제목의 이 자화상은 그의 마지막 자화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금껏 최고가로 거래된 고흐작품은 ‘가헤트박사의 초상화’로 8,250만달러였다. 한편 이날 경매에서 인상파의 거장 폴 세잔의 1904년도 작품 ‘검은 성(城)’은 1,155만2,500달러(150억원)에 매각됐다. 두 작품 모두 지난 91년 사망한 야케스 쾨르퍼 전 BMW 회장 소장품이었다.
  • 親日의 군상:3/3·1문화상과 皇國예술인(정직한 역사 되찾기)

    ◎민족 짓밟고 해방후 민족상까지 받아 ‘3·1문화상’이라는 상이 있다.1960년에 제정돼 올해로 39회째 수상자를 냈다.3·1문화재단(이사장 文仁龜)에서 주관하는 이 상은 대한유화 창업자 李庭林(작고)씨가 제정한 것으로 시상분야는 학술·예술·기술 등 세 분야.재단측이 밝힌 이 상의 제정취지는 “조국광복을 지향하여 거족적으로 발양된 위대한 3·1정신을 영원히 기념하여……”다.상 이름에도 ‘3·1’이 들어가고 또 매년 3·1절 당일 시상식을 갖는 것으로 봐 이 상은 3·1정신을 길이 계승할 목적으로 제정된 것이 분명하다.그런데 이 상의 역대 수상자·심사위원 중에는 일제 당시 친일 단체에서 활동했거나 친일 작품을 남긴 예술가 상당수가 포함돼 있다.예술분야 수상자중 13명,심사위원 중에는 20여명(일부 수상자와 중복됨)이 이에 해당된다.그들의 면면과 구체적인 일제시대 행적을 살펴보자. ◎상받은 예술인 13명의 친일행적은…/문인·화가 등 30여명 ‘위대한 3·1정신’ 왜곡/식민정책 전위대 역할… 청년 징병 내몰아 우선 예술분야 수상자가운데 문학가는 趙演鉉(13회)·安壽吉(14회)·白鐵(17회)·毛允淑(21회)·崔貞熙(24회)·李周洪(28회)등 6명,미술가는 李象範(4회)·金景承(5회)·金殷鎬(6회)·金仁承(9회)·朴泳善(10회)·金基昶(12회)등 6명,음악가는 金聖泰(22회) 1명이다. 문학 분야의 趙演鉉은 대학 재학시절부터 친일 잡지 ‘동양지광’에‘동양에의 향수’(1942년 5월),‘아세아부흥론 서설’(42년 6월)등 친일성향의 평론을 썼다.이중 아세아부흥론 서설은 ‘동양지광’이 현상공모한 ‘지상(紙上)결전 학생웅변대회’에서 3등으로 입선한 작품으로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을 찬양하고 이 땅의 청년학도들이 아시아부흥의 투사로 나설 것을 부추긴 내용이다.‘북간도’로 유명한 소설가 安壽吉은 친일 문학잡지 ‘국민문학’(42년 2월)에 발표한 ‘원각촌’ 이외에도 ‘벼’,‘북향보’등의 친일성향의 작품을 쓴 바 있다. 평론가 白鐵은 작품보다는 친일단체에서 활동이 두드러졌다. 그는 친일 문인단체인 조선문인협회(회장 李光洙) 상무간사, 국민총력조선연맹 참사를 지냈으며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학예부장 시절 친일 미술가 沈亨求(해방후 반민특위에 의해 구속됨)와 함께 조선미술가협회 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여류문인으로 이 상을 수상한 사람은 毛允淑,崔貞熙 두 사람이다.이들은 모두 조선문인협회에서 활동하였으며 41년 2월27일 부민관(현재 서울시 의회 건물)에서 개최된 조선임전보국단 주최 ‘결전부인대회’에 참석해 강연을 했다. 아동문학가로 활동한 李周洪 역시 상당수의 친일 작품을 남겼다.그는 친일 잡지인 ‘동양지광’에 수필 ‘청년과 도의’(43년 7월)를 비롯해 단편소설·시 등도 남겼다.그는 유일하게 사후에 이 상을 수상했다. 미술계의 친일논쟁은 해방직후부터 시작됐다.문화예술인의 최초 조직이었던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산하 조선미술건설본부는 金殷鎬·金基昶·金景承·沈亨求·李象範·尹孝重 등을 친일 미술가로 규정,회원에서 제외시킨 바 있다.이들의 대다수는 41년 2월21일 결성된 조선미술가협회에서 활동하였다. 이 단체는 ‘황민문화’ 건설을 목적으로 조선문인협회·보도사진협회 등 11개예술단체와 더불어 국민총력조선연맹 산하단체로 활동하면서 전람회 수익금을 국방헌금으로 내놓기도 했다.43년 1월9일∼17일 정자옥(丁子屋·일제 당시 현 미도파백화점 자리에 있던 백화점)에서 ‘애국백인일수(愛國百人一首) 전람회’를 열어 그 수익금을 국방헌금으로 내놓은 것이 그 예다. 미술가로서 첫 수상자인 李象範(4회)은 沈亨求와 더불어 국민총력연맹 문화부 문화위원을 지냈으며,金景承·金仁承 형제는 조선미술가협회에서 평의원을 지냈다. 특히 金仁承은 朴泳善과 함께 선일(鮮日)합작 미술단체인 단광회(丹光會) 회원으로도 활동하였다. 단광회는 43년 3월 징병제 실시를 앞두고 회원 21명이 4개월에 걸쳐 공동으로 ‘조선징병제 실시’(100호 규모)를 제작,제1회 단광회 유화전에 출품하였는데 나중에 이 그림은 조선군 애국부를 경유하여 군에 헌납되었다. 순종(純宗)의 초상화를 그린 金殷鎬 역시 조선미술가협회에서 활동하였으며 37년 중일전쟁 무렵에는 조선여성들이 당시 용산 사단사령부 모 일본군 장성에게 금비녀·금반지 등을 바치는내용의 ‘금채봉납도(金釵奉納圖)’를 그리기도 했다.金基昶은 최근까지도 친일논쟁이 있었던 인물로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등의 친일성향의 그림을 그린 바 있다. 음악가로는 金聖泰가 유일하다.그는 玄濟明 등과 함께 ‘가창지도대’,‘경성후생실내악단’등 친일 음악단체에서 활동하였다.이 단체들은 ‘음악보국음악회’,‘비행기헌납 음악대연주회’등을 개최,황민음악을 보급하였다. ◎‘역사의 심사’받아야 할 심사위원은… 3·1문화상의 역대 심사위원 중에도 20여 명의 일제 식민정책 협력자들이 포함돼 있다.이들중 申奭鎬와 李丙燾는 총독부·조선사편수회에 근무하면서 조선역사를 왜곡하고 식민사관을 뿌리내린 장본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의료계의 鄭求忠과 尹日善도 학병권유 논설을 쓰고 시국강연회에 참석했다. 白樂濬은 친일 ‘기독교신문’의 산파겸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경제학자 高承濟는 ‘국민문학’과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등에 수많은 친일 평론을 남겼다.언론인 高在旭은 경성배영(排英)동지회와 전조선배영동지회연맹에서 상무이사를 지냈으며 여류 교육가 高凰京은 金活蘭·毛允淑 등과 같이 각종 친일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문인중에서는 金八峰·朴鍾和·兪鎭午·郭鍾元 등도 다소 차이는 있으나 모두 친일 논설·작품을 남겼고 극작가 柳致眞·徐恒錫,음악가 金元福(피아니스트) 등도 모두 친일 예술활동을 한 적이 있다.柳致眞의 경우 친일 행적이 문제가 돼 고향 충무에 세워졌던 그의 흉상이 95년 주민들에 의해 철거됐다. ◎“아니! 이럴수가…” 독립유공자 심사까지/‘식민학자’ 등 10여명 18년간 활동 독립유공자에 대한 정부차원의 포상은 지난 62년 군사정부가 6·25 전상자를 위한 ‘군사원호법’을 제정하면서 시작됐다.정부는 독립국가로서의 면모를 세우고 독립유공자들의 공로를 후세에까지 전한다는 취지에서 매년 광복절 등 역사적 기념일에 이들에 대한 포상을 실시해 왔다. 현재까지 독립유공 공로로 포상을 받은 국가유공자는 모두 8,514명(외국인 40명 포함)이다. 그런데 그동안 정부의 독립유공자 포상을 둘러싸고 이런 저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역대 독립유공 서훈자 가운데 ▲친일 기관·단체 등에서 활동한 사람이 포함돼 있다거나 ▲가짜 독립운동가에 대한 포상 ▲서훈자가 서로 뒤바뀐 경우 ▲형평에 어긋난 포상 등의 논란이 있어 왔다.또 이들중 일부 친일 경력자가 국립묘지에 안장돼 민족정기를 훼손하고 있다는 주장과 함께 역대 독립유공자 심사위원중에도 친일 단체나 기관 등에서 활동한 인사가 일부 포함됐었다는 지적도 있다. 첫 포상이 실시된 62년도 이후 80년까지의 역대 심사위원 중에는 10여명(일부 중복자 포함)의 일제 식민정책 협력자가 포함돼 있다. 1962년 문교부 산하 독립유공 공적조사위원회의 위원 7명(위원장 포함)가운데 申奭鎬·李丙燾라는 이름이 들어 있다.申奭鎬는 1930년∼37년의 총독부수사관보(修史官補)를 거쳐 37년부터 수사관으로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했으며,李丙燾는 1925년∼27년에 총독부 수사관보,이후는 촉탁으로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했다. 1963년에는 내각사무처 독립운동유공자 상훈심의회에서 심사를 맡았는데 심사위원 22명 중에는 4명의 친일인사가 들어 있다.高在旭·申奭鎬·柳光烈·李甲成 등이 그들이다.高在旭은 1937년 7월 12일 결성된 경성배영동지회와 같은 해 8월5일 결성된 전조선배영동지회에서 상무이사를 지냈다.柳光烈은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편집국장과 조선임전보국단 평의원,조선언론보국회 이사 등을 역임하면서 친일논설 및 친일 시국해설 다수를 발표한 언론인이다.李甲成은 상해서 밀정노릇을 했다는 주장이 있다. 1968년에는 총무처 독립유공자 상훈심의회가 심사를 맡았는데 심사위원 21명중 高在旭·白樂濬·申奭鎬·柳光烈·李丙燾·李瑄根·洪鍾仁·金聲均 등 8명의 친일 기관·단체 등에서 활동한 인사가 들어 있다.白樂濬은 친일 ‘기독교신문’의 산파겸 편집위원을,李瑄根은 만주국 협화회의 협의원을,洪鍾仁은 ‘매일신보’의 사회부장과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이사를 지낸 사람이다.金聲均은 조선총독부 경무국 도서과(언론·출판 검열담당)에서 근무한 기록이 있다. 1977년 원호처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회의 심사위원 11명 가운데도 柳光烈·李殷相 등 2명이 포함돼 있는데 李殷相은 만주에서 발행되던 친일지 ‘만선일보’에 몸담았던 인물이다. 독립유공자 심사위원에 포함된 친일 경력자 논란은 1980년까지 계속됐다.이 해 원호처의 독립유공자 심사위원 11명 중에는 申奭鎬가 ‘끈질기게’ 포함돼 있다.그는 62년 첫 심사부터 63년,68년,80년도에 걸쳐 독립유공자 심사에 참여했었다. 친일파연구에 일생을 바친 고(故)林鍾國씨는 “독립운동가의 공적을 논하는 자리나 대일(對日)외교 무대 등에는 친일파들이 나서서는 안될 자리”라고 강조한 바 있다.
  • 중진 이상원씨 베이징 中國미술관 초대전

    ◎삶에 지친,그 무상함이란… 중진화가 이상원씨가 중국 북경에 있는 중국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갖는다(8월2일까지).‘한국저명화가 이상원 작품전’이 그것. 이씨는 이 전시에서 대형 회화작품 30점을 선보인다. 올해를 ‘중국 국제미술의 해’로 정한 중국 정부가 개방 이후 국가차원에서 국제간 미술교류를 위해 기획한 세계 각국의 유수 미술작품전시의 일환으로 마련된 것이다. 독특한 극사실주의적인 화풍을 구사하는 이씨는 한국화단에서는 예외적인 인물. 독학으로 그림공부를 했고 직업초상화가로 명성을 쌓은 뒤 순수회화로 전환한 특이한 경력 때문이다. 그의 대상은 주로 폐선,폐타이어,공사장의 잔해물,각종 어구,자동차 바퀴자국,마대 등 쓸모없이 버려진 것,또는 새로 싹이 트는 감자나 고목 등이었다. 이를 통해 삶의 무상함,즉 생성과 소멸이라는 실존의 한계상황을 보여주고자 했다. 주요전시작인 ‘동해인(東海人)’ 시리즈에서도 그의 철학은 일관성을 보여준다. 고기잡이를 천직으로 여겨온 어부들의 지친 표정을 통해 ‘생성과 소멸’의 법칙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