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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英왕세자비 케이트 미들턴, 누드쇼서 첫 솔로행사?

    英왕세자비 케이트 미들턴, 누드쇼서 첫 솔로행사?

    영국 왕세자비 케이트 미들턴이 지난 8일(현지시간) 윌리엄 왕자와 동행하지 않은 채 첫 공식 행사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미들턴은 이날 루션 프로이드(Lucian Freud) 전시회 프리뷰에 참석하기 위해 런던 시내의 국립초상화미술관(The National Gallery)을 찾아 1시간 동안 전시를 둘러보며 공식 일정을 소화했다. 루션 프로이드는 88세의 나이로 숨진 영국 유명 아티스트로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드라마틱한 후기 누드 작품들이 공개됐다. 이에 영국 내 각종 대중지들은 ‘케이트, 누드쇼에서 첫 솔로 행사를 가졌다’는 제목을 앞다투어 뽑았다. 또한 케이트와 관련해 빠질 수 없는 그녀의 패션에 대한 평가도 이어졌다. 대중지 데일리 미러는 “매우 추운 날이었음에도 케이트는 여전히 우아하고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며 “세련된 회색 코트에 심플한 블랙 하이힐을 신었다. 미래의 여왕다운 모습이었다.”고 평가했다. 런던=서울신문 나우뉴스 유럽통신원 윤정은 yje0709@naver.com 
  • [씨줄날줄] 모나리자의 눈썹/최광숙 논설위원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가 지난해 9월 평소와 달리 선명하고 강한 눈썹 문신을 하고 나타났다. 그 이후 그는 스마트폰 게임 앵그리버드와 닮았다며 ‘홍그리버드’라는 별명을 얻었다. 눈썹 문신은 대표적인 ‘관상 성형’ 중의 하나다. 단순히 인상을 좋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12월 디도스 사태가 터지면서 대표직을 물러났다. 관상학에서는 눈썹 모양으로 장래운을 점친다. 초승달 눈썹은 대인운이 좋아 출세길이 열리고, 눈썹이 끊기면 동분서주하나 결과가 미진하다고 한다. 일자 눈썹은 안정적이고, 팔자 눈썹은 두뇌가 명석하다고 한다. 눈썹 색깔이나 길이에 따라 운도 달라진다고 한다. 관상학 어디에도 눈썹이 없는 경우에 대한 설명은 없지만 굳이 쓴다면 풍파에 시달리는 험난한 인생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 천재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초상화인 ‘눈썹 없는’ 모나리자는 다르다. 전 세계 수많은 관람객들이 순전히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을 찾는다. 누드 모나리자, 진주 장식을 한 모나리자, 콧수염을 단 모나리자 등 라파엘로와 앤디 워홀 등 동시대 화가뿐만 아니라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화가들도 모나리자를 모방한 작품을 남겼을 정도로 미술사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모나리자의 매력은 여태껏 풀지 못한 신비스러운 수수께끼 때문인지도 모른다. 모델과 정확한 제작 시기, 야릇한 미소의 의미 등 온통 미스터리투성이다. 모델을 놓고는 피렌체의 부호 상인의 부인인 리사 게라르디니라는 얘기도 있고, 다빈치 자신의 자화상을 여성화시켰다는 의견도 있다. 가장 큰 논란은 모나리자 그림에는 눈썹이 그려지지 않았다는 거다. 이를 놓고도 눈썹을 뽑는 것이 당시 미의 기준이었기에 그렇다는 주장이 있다. 넓은 이마가 섹시하다고 해 눈썹 뽑기가 유행이었다는 설이다. 한 미술전문가는 특수 카메라를 사용해 분석한 결과, 원래 눈썹이 그려졌으나 복원 과정에서 지워졌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최근 모나리자와 똑같은 쌍둥이 모나리자가 발견됐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이 소장하던 모나리자 복제품은 16세기 초 다빈치의 제자가 그렸다고 한다. 스승의 작품을 따라 그린 이 모작품이 원작과 유일하게 다른 점은 눈썹이다. 원작에 없는 눈썹을 그렸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모나리자의 눈썹을 둘러싼 논쟁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깔깔깔]

    ●원스턴 처칠 경의 뛰어난 유머 어느 날 처칠의 비서가 일간신문을 들고 들어와 처칠 앞에서 그 신문사를 맹 비난했다. 그 이유는 처칠을 시거를 문 불독으로 묘사한 만평이 실렸기 때문이다. 처칠은 신문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기가 막히게 그렸군. 벽에 있는 내 초상화보다 훨씬 나를 닮았어. 당장 초상화를 떼어버리고 이 그림을 오려 붙이도록 하게.” ●난센스 퀴즈 ▶우유를 여섯 글자로 늘리면? 송아지 쭈쭈바. ▶소가죽을 입고 사는 황금벌레를 여섯 자로 하면? 우피 골드 버그. ▶슈퍼맨 가슴의 ‘S’자는 무엇의 약자인가?스판. ▶쓰레기통에 뚜껑이 항상 닫혀 있는 이유는? 먼지가 들어 갈까 봐.
  • 백만장자 정치인들을 보는 미국인들의 시각

    백만장자 정치인들을 보는 미국인들의 시각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은 수억 달러의 재산을 상속받은 부자였지만, 당시 그의 초상화는 미국의 가장 가난한 가정 거실에도 걸려 있었다. 넬슨 록펠러는 미국 최고 석유 부호의 손자였지만 그가 주지사 시절 뉴욕 흑인 식당에 나타나면 주민들이 앞다퉈 포옹 세례를 퍼부었다. 반면 지금 공화당 대선후보에 도전하고 있는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지난 21일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을 앞두고 경쟁자인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으로부터 “민심과 동떨어진 백만장자”라는 비판을 받은 뒤 지지율이 추락했다. 정치인의 부(富)에 관대하다고 알려진 미국인들이지만 부자 정치인이 민심과 동떨어진 행태를 보이면 호되게 돌아서는 성향이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30일(현지시간) 분석기사를 통해 보도했다. 미국에서 부자 정치인이 국민한테 ‘예쁘게’ 보이려면 사실 엄청나게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케네디는 2차대전에 해군장교로 참전함으로써 ‘부잣집 도련님’ 이미지를 벗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도 ‘과장된 상냥함’으로 계층을 초월한 인기를 얻었다. 반면 롬니는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한 실직여성이 불운을 토로하자 50달러를 건네면서 “나는 연설료로 37만 달러를 버는데 그것도 많은 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토론회에서 릭 페리 텍사스 주지사와 논쟁을 벌이다가 “누구 말이 맞는지 1만 달러 내기할까.”라고 제안하는 등 긍정적 부자 이미지를 쌓는 데 실패했다. 지난주 롬니의 참모진은 경제난으로 신음하는 플로리다 주민 8명과의 간담회를 마련했다. 그러나 롬니는 그들의 고통스러운 사연을 받아적기만 할 뿐 도움이 될 만한 경험담을 들려주지 못했고 포옹도 없이 악수만 하고 헤어졌다. 1992년 당시 조지 H 부시 대통령도 슈퍼마켓 계산대에서 바코드 장비를 보고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가 “서민들의 일상생활과 무관한 부자”로 낙인찍혀 곤욕을 치른 케이스다. 이를 교훈 삼은 아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아이비리그 출신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은 채 텍사스 시골 사람 이미지를 부각시켰고, 아버지와 달리 재선에 성공했다. 부시는 텍사스의 농장에서 청바지를 입고 트랙터를 모는 사진을 선전하는 한편 민주당 대선후보인 존 케리 상원의원을 윈드서핑을 즐기는 부자로 선거광고에 묘사함으로써 재미를 봤다. 소득불평등에 대한 미국인의 태도를 연구한 레슬리 매콜 노스웨스턴대 사회학 교수는 “경제난으로 고통받는 때일수록 부자 정치인에 대한 적개심이 깊어진다.”고 분석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처럼 ‘통 큰’ 기부를 하거나 많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업을 하는 것도 ‘인기 있는 부자’가 되는 방법이다. 게이츠는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가 1889년에 했던 경고를 따르고 있는지 모른다. “부자의 의무는 겸손하고 거만 떨지 않는 삶의 본보기가 되는 것이다. 사치와 치장을 멀리하고 당신에게 의존하는 사람들이 정당하게 요구하는 것을 기꺼이 제공하며, 남는 돈은 공동체를 위해 써라.”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황량했던 평양에 다시 생기가…”

    설을 맞은 북한의 표정을 전하는 AP통신의 평양발 기사가 지난 23일 송고됐다. AP통신은 ‘생기 넘치는 북한의 수도가 음력 설을 축하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설을 맞은 평양의 모습을 전했다. 지난 16일 평양에 종합지국을 개설한 이후 본격적으로 북한 소식을 전하는 신호탄이었다. 이 기사는 AP통신의 평양지국 취재 기자로 임명된 박원일 기자 명의로 작성됐다. AP통신은 이 기사를 통해 북한 주민들이 추위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을 추모하기 위해 23일 평양의 김일성광장에 대거 나왔다면서 새해를 맞아 형형색색의 꽃과 어린이들의 게임으로 북한 주민들이 설을 축하했다고 소개했다. 이 통신은 추모기간 이후 사라졌던 대형 김정일 초상화가 평양의 김일성광장에 다시 나왔고, 주민들이 줄을 서서 붉은 꽃을 바치며 김정일을 추모했다고 전했다. 또 지난 수주간 황량하고 어두침침했던 평양이 다시 여러 색으로 채워졌고, 많은 건물과 벽에는 ‘설’을 축하하는 포스터와 간판들이 내걸렸다고 보도했다. 평양 도심에 있는 보통문에는 새해를 축하하는 내용의 문구가 적힌 등이 걸렸고, 평양대극장 앞 광장에는 수백명의 어린이들이 나와 연을 날리고 전통놀이를 하며 추위를 녹였다고 전했다. 평양 주민들은 김정일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설 명절을 보통 때처럼 즐기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AP통신은 서방 언론사 중 최초로 지난 16일 평양에 종합지국을 개설했다. 한편 AP통신의 영상물만을 전문으로 송출하는 APTN은 이날 설을 맞은 평양의 모습을 담은 다양한 영상물도 송고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열린세상] 히틀러와 입학시험/김다은 추계예술대 교수·소설가

    [열린세상] 히틀러와 입학시험/김다은 추계예술대 교수·소설가

    한 청년이 화가의 꿈을 안고 오스트리아 빈으로 흘러들었다. 1907년 가을, 빈 조형예술아카데미 소속 일반화가 학교에 입학시험을 치르게 된 18세의 그 청년은 아돌프 히틀러였다. 그는 ‘낙원으로부터의 추방’ 등 실기시험에는 합격했으나, 2차 면접에서 실패하고 만다. 풍경화나 건축화에는 뛰어났지만, 초상화에는 소질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얼굴을 그리지 못하는 사람은 화가가 될 자질이 없다고 면접관들이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최근 동유럽 여행 때, 오스트리아와 폴란드의 서로 다른 현지 가이드들이 히틀러에 대해 들려준 공통된 내용이다. 히틀러는 입학시험에 불합격하고도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고, 3류 화가 노릇을 하면서 빈에서 외로움과 배고픔을 견디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군대에 가야 하는 나이가 되었고 이를 거부하다 군사재판에 출두하게 된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이 터졌을 때는 독일 군대에 자원입대를 하는데, 이것이 파시스트 히틀러 행로의 시작이었다. 만약 히틀러가 예술아카데미 입학시험에 합격했다면? 나치당의 운명과 독일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독일의 오스트리아 합병, 체코 및 폴란드 침공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발발, 프랑스 점령, 덴마크 장악, 러시아 진격과 패배 등 전 세계가 전쟁과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휩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大) 독일의 야망 아래 자행된 유대인 대량 학살도 없었을 것이다. 역사의 연쇄적 영향에 의해 우리는 전혀 다른 21세기를 맞고 있을 것이다. 히틀러가 화가가 되었다면 예술의 지형도도 달라졌을 것이다. 당시 오스트리아 제체션(분리파)의 중심에 있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영향과 에곤 실레 등과의 교우관계를 통해 히틀러는 표현주의 화가로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랬다면 여행객들은 폴란드의 오슈비엥침 수용소(‘아우슈비츠’라는 표현은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하고 난 후 독일식 발음으로 바꾼 것이다)가 아니라 히틀러 미술관으로 즐거운 발길을 옮기게 됐을지도 모른다. 화가 히틀러의 인생살이와 예술을 다룬 책이나 영화 ‘페인터’가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독일에 대한 저항으로 오스트리아인들 사이에 애창되던 에델바이스를 트랩 대령의 입을 통해 부르게 했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히틀러가 세계적인 화가가 될 수도 있었고 그래서 역사가 다른 길로 흐를 수도 있었으리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요즘 각 대학들에서 입학시험이 진행되고 있어서이다. 얼굴을 그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히틀러를 예술 밖으로 내친 면접관들이 실수를 한 것인지, 히틀러에게 진정한 예술혼이 없음을 알아챈 그들의 선견지명을 놀라워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히틀러가 입학시험에 불합격한 것은 사실이지만, 초상화 때문이라는 근거는 확인하지 못했다. 단지 풍경화 속에 건축물과 배경만 있을 뿐 사람이 그려지지 않아서 “면접관들은 회화과 대신 건축과 입학을 추천했는데, 고등학교 졸업장이 필수인 과정을 당시 히틀러는 중학교를 중퇴했기에 낙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니, 초상화는 현지인들의 입으로만 전해지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오슈비엥침 수용소 관람 후, 가이드는 버스 안에서 폴란드의 유명한 유대계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라프 스필만의 이야기를 다룬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를 틀어주었다. 유대인 피아니스트는 독일 장교와 오이지 통조림 앞에서 절체절명의 연주를 하게 되는데, 그 곡이 쇼팽의 발라드 1번이었다. 영화가 끝난 후 폴란드 현지 한국인 가이드에게 낯선 나라에 정착하게 된 계기를 물어보았다. 대학입학시험 때 자신이 획득한 점수가 한국외국어대 폴란드어과를 선택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대학입학시험이 한 개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지형도를 바꾼다는 것을 히틀러뿐만 아니라 평범한 가이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입시철이다. 인간과 세계의 미래를 향한 지극히 중대한 기획이 진행되고 있다. 눈에 보이게, 보이지 않게 수많은 선택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그 선택의 결과들을 가까운, 혹은 먼 미래에 보게 될 것이다.
  • [‘우클릭’ 하는 일본 교육도 보수·우경화] 도쿄都 “조선인 학교 보조금 지급 없다”

    일본 도쿄도(都)가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계열 조선학교에 대한 보조금을 예산에서 누락시키기로 결정했다. 16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도쿄도는 지방의회에 심의를 요구할 2012 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 예산에 조선학교 보조금 항목을 넣지 않기로 했다. 도쿄도는 지난 1995년부터 조선학교에 보조금을 주기 시작했고, 2009년에는 도내 10개교에 4억 7000만엔(약 70억 5940만원)을 지급했다. 하지만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공격을 계기로 그 해 2400만엔으로 줄어든 보조금 중 일부를, 2011년에도 보조금 2300만엔 중 상당액의 지급을 미뤘다. 지금까지는 예산 편성은 해 놓고 지급을 미뤘지만, 2012회계연도에는 아예 예산에서 빼기로 한 셈이다. 도쿄도와 오사카부 등은 고교 역사교과서에 ‘일본 당국이 “납치 문제”를 극대화해’라거나 ‘한국이 1987년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을 날조했다.’는 표현이 있다는 점 등을 문제 삼았다. 이후 조선학교가 이들 표현을 삭제·수정하자 “고교 교실에 김일성·김정일의 초상화를 걸어 놓는 등 교육 내용이 정치적으로 중립적인지 여전히 의문이고, 조총련이 학교 보조금을 유용한다는 의혹도 있다.”며 보조금 지급을 미뤄 왔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北 ‘김정일 미라’ 부친옆 영구보존

    北 ‘김정일 미라’ 부친옆 영구보존

    북한이 전 최고지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후 ‘우상화’에 착수했다. 김 위원장 시신을 김일성 주석과 나란히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에 미라로 보존하고 생일을 ‘광명성절’로 새로 제정하기로 했다.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은 12일 특별보도를 통해 “주체의 최고성지인 금수산기념궁전에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를 생전의 모습으로 모신다.”고 공표했다. 북한이 발표한 ‘생전의 모습’은 김 위원장의 시신도 김 주석처럼 미라로 영구 보존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절대권력을 행사한 부자의 시신을 모두 미라로 영구 보존하는 건 여타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전례가 없다. 북한은 김 위원장의 생일인 2월 16일을 광명성절로 지정하기로 결정했다. 광명성은 김 위원장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북한은 1998년과 2009년 발사한 장거리 로켓 발사체를 각각 ‘광명성 1호’ ‘광명성 2호’로 명명했었다. 김 위원장에 대한 사후 우상화는 부친인 김 주석 사망 때보다 신속히 진행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김 주석의 생일은 1994년 사망 후 3년이 지난 1997년부터 ‘태양절’로 지정됐다. 그동안 김 위원장 생일은 별도 명칭이 없었다. 또 국가안전보위부와 군부대 등 3~4곳에 있는 김 위원장 동상도 일반 주민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주요 광장에 새로 건립하기로 했다. 북한 주요 도시에 영생탑을 건립하고 김 위원장의 ‘태양상’(초상화)도 설치하기로 했다. 이번 발표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의 단독 명의라는 점도 주목된다. 태양절 제정 때는 당중앙위원회, 당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정무원 등 당과 국가기구가 공동명의로 발표했었다. 통일부 당국자는 “당 정치국이 김정은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의 최고사령관 추대에 이어 이번 특별보도도 주도했다는 점에서 김정은 체제에서 당이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일련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김 부위원장이 최근 김원홍 당조직담당 부국장을 대동하고 평양 시내 건설현장을 시찰한 것으로 파악했다. 김 부위원장의 경제 시찰은 장례식 이후 처음으로 ‘포스트 김정일 체제’에서 본격적으로 민생 행보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26일 TV 하이라이트]

    ●과학카페(KBS1 밤 11시 40분) 한국은 1955년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맺고 기술력 확보를 위해 해외에 유학생들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정부 부처 산하에 원자력과가 설립되었고, 1958년에는 원자력법을 제정하고 원자력원도 설립한다. 원자력연구소를 별도로 두어 연구용 원자로 ‘트리가 마크 2’를 들여오는 등 원자력 연구의 기초를 다지는데…. ●브레인(KBS2 밤 9시 55분) 순임이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강훈의 고집으로 어려운 수술이 시작되고, 최고의 실력자 김상철이 수술을 집도한다. 첫 사랑 덕기를 보내고 쓸쓸한 은숙은 회의 노트에서 대식이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발견한다. 한편 순임을 살리기 위해 강훈이 표적 항암제를 불법 투약한 사실이 임상시험 윤리위원회에 알려지게 된다. ●빛과 그림자(MBC 밤 9시 55분) 빛나라 쇼단 지방순회 공연에 쇼단의 간판가수인 유채영(손담비)이 갑자기 합류한다. 그로 인해 쇼단의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사기가 높아져간다. 쇼단은 여수로 내려간다. 기태에게 방을 배정 안 해 주자 기태를 마음에 두고 있는 채영은 자기 방을 내주면서 배려한다. 한편 쇼극단 일을 배우고자 기태는 가두 홍보에까지 나선다. ●아침드라마 위험한 여자(MBC 오전 7시 50분) 도희는 동민에게 자신이 동민의 친엄마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하지만 동민은 이미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자신의 엄마는 여전히 연숙뿐이라고 말한다. 친엄마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동민의 말에 도희는 좌절한다. 용수는 소라를 찾아와 인터넷 사건에 대해 강 회장에게 말하겠다고 협박하는데… ●동물일기(EBS 밤 8시) 밥도 물도 먹지 못한 채 길 위에 버려진 안타까운 유기견들. 스타 가족이 임시로 보호했다가 영원한 가족을 찾아준다. 한기범 가족에게 임시로 맡겨졌던 복순이가 드디어 새로운 가족을 만났다. 복순이의 행복한 보금자리와 영원한 가족을 공개한다. 소중한 내 친구 프로젝트 3탄에서는 꿍이를 소개한다. ●명불허전(OBS 밤 10시) 따뜻한 마음으로 나눔을 실천해 온 구세군 역사연구소 김준철 소장. 생전 처음으로 방송을 통해 그의 인생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집안의 심한 반대로 구세군이 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봉사를 통해 나눔을 실천하려고 평생 노력했다 하는데…. 김 소장의 삶을 ‘차인태의 명불허전’에서 함께 들여다본다.
  • [北 김정은시대] 28일 김정일 영결식 ‘김일성 전례’ 따를듯

    [北 김정은시대] 28일 김정일 영결식 ‘김일성 전례’ 따를듯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마지막 가는 길은 1994년 김일성 국가주석의 방식을 그대로 따를 것으로 보인다. 사망 발표 전 특별방송을 예고하고 차기 지도자가 사실상 장의위원장으로 첫 참배하는 등 지금까지의 장례절차도 김 주석 때와 같다. 따라서 영결식 등 남은 장례절차도 김 주석의 전례를 따를 가능성이 크다. 김 위원장의 영결식은 그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에서 오전 10시에 시작해 1시간 안팎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영결식에 앞서 장의위원장인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고위간부를 대동하고 아버지 김 위원장의 영구(靈柩)를 한 바퀴 돌며 마지막으로 조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석단에는 김 부위원장과 당·정·군 고위간부들이 자리한다. 영결식에서는 의장대장이 영결 보고를 하면 김 위원장의 시신을 실은 영구차가 육·해·공군 및 노농적위대의 명예의장대 앞을 지나고, 조포와 조총 24발이 발사되며 의장대의 분열이 이어진다. 분열이 끝나면 김 위원장의 대형 영정을 앞세운 운구 행렬은 김일성광장을 향해 거리행진을 시작한다. 거리행진 때는 군악대 차량이 선두에서 ‘김정일 장군의 노래’와 장송곡 등을 연주한다. 이어 김 위원장의 대형 영정과 김 위원장의 영구를 실은 대형 리무진 등 차량이 뒤를 따른다. 금수산기념궁전을 나선 영구는 평양의 보통강변을 따라 금성거리~영흥네거리~비파거리~혁신거리~전승광장~영웅거리~천리마거리~충성의다리~통일거리~낙랑다리~청년거리~문수거리~옥류교 등을 지나 김일성광장에 도착한다. 김일성광장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돌며 평양 주민에게 작별인사를 고한 뒤 만수대언덕과 개선문광장을 지나 시신의 영구보존 장소인 금수산기념궁전으로 다시 돌아가면 영결식은 마무리된다. 김 위원장의 영구가 지나는 평양시내 연도에는 수많은 주민이 운집해 고인을 애도하며 통곡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대내외에 결속을 과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결식 다음 날인 29일 오전 10시에는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중앙추도대회가 열린다. 김 부위원장이 정중앙에 선 주석단 정면에는 검은색 띠를 두른 김 위원장의 대형 초상화가 걸리고 광장 국기게양대에는 조기가 걸린다. ‘김정일 장군의 노래’가 연주되고 김 부위원장의 위임을 받아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원 또는 당 중앙군사위원 가운데 한 명이 추도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추도사가 끝나면 군인, 노동자, 농업근로자, 재외동포 등을 대표하는 인물들의 추도연설이 이어진다. 대회 폐막 직후에는 북한 전역에서 사이렌이 울리고, 모든 주민은 3분 동안 묵념을 한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디지털 스케치북에 신사임당·김홍도처럼 옛 그림 그려볼까요?

    디지털 스케치북에 신사임당·김홍도처럼 옛 그림 그려볼까요?

    올 한 해 미술계에서는 옛 그림이 큰 인기를 끌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초상화, 삼성리움미술관과 간송미술관의 풍속화에다 동산방화랑이 공개한 작품들을 보려고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국립극단에서는 가무악극 ‘화선 김홍도’를 선보이기도 했다. 해서 마련된 것이 ‘안녕하세요! 조선 천재 화가님’이다. 서양미술에 상대적으로 익숙한 우리 아이들에게 전통 그림은 어떻게 그려졌는지 알려주고 직접 실습해 볼 수 있게 만든 전시다. 이를 위해 옛 명작을 오늘에 적합한 방식으로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는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을 끌어들였다. 디지털 스케치북에 그림을 직접 그려 보거나 상호작용적인 요소를 넣었다. 가령 나비가 그려진 신사임당의 초충도에 다가서면 수백 마리의 나비가 날아들었다가 다시 사라진다. 또 TV병풍도 배치해 옛 그림을 더 친숙하게 느끼게 해 준다. 옛 그림에 쓰였던 부감법와 제발문에 대해서도 일러준다. 부감법은 하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듯 시점을 잡아서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다. 제발문은 시서화를 통일시했던 조상들이 그림과 맞아떨어지는 글을 어떻게 썼는지를 일러준다. 전시 총감독은 이일수 작가가 맡았다. 이 작가는 몇 해 전 ‘이 놀라운 조선 천재 화가들’이란 책을 냈다. 전시는 이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했다. 내년 3월 4일까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1만~1만 1000원. (02)515-3377.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긴박한 G2] “北 안정 안되면 대량 난민 유입”

    중국이 질서정연하게 김정일 국방위원장 추모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21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 자칭린(賈慶林) 정협주석, 리커창(李克强) 부총리, 허궈창(賀國强)·저우융캉(周永康) 상무위원이 조문을 마침으로써 북한의 공식발표 이틀 만에 최고지도부 9명 전원이 김 위원장을 조문했다. 관영 언론들의 보도 역시 상당히 ‘정돈’된 양상이다. 중국중앙(CC)TV 등이 매시간 주요 뉴스로 평양 등의 추모 분위기를 상세히 보도하면서 중국인들의 ‘반(反)김정일 정서’를 잠재우고 있다. 아울러 북한의 새 지도자로 떠오른 김정은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의 ‘권위’ 등을 집중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김 위원장 사망 발표 직후 우왕좌왕했던 모습과는 판이한 대응이다. 최고지도부가 ‘김정은 영도체제’를 인정하면서 북한의 조속한 안정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는 가운데 양제츠 외교부장은 한·미·일 외무장관과 잇따른 전화통화 등을 통해 북한체제 안정을 위한 외교라인의 국제 공조를 주도해 가고 있다. 사실 초기만 해도 중국 역시 ‘혼돈’ 그 자체였다. 북한의 공식발표 후 17분이 지나서야 관영 언론들이 1보를 내보냈고, CCTV는 얼마나 당황했던지 인공기와 김 위원장 초상화를 불태우는 자료화면을 사용했다가 황급히 삭제하기도 했다. 일각에서 중국 역시 북한 측 공표 전에 김 위원장 사망 사실을 통보받거나 인지하지 못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런 여러 정황 탓이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양 부장이 중국 측 조전을 오후 늦게 북한 공관원을 불러 전달한 것이 사전 미통보에 대한 중국 측의 ‘불쾌감’을 표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북한의 신속한 안정을 원했다. 중국 최고지도부가 한반도의 안정을 통한 대북 영향력 유지가 현 시점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판단을 신속히 내리고 모든 역량을 모으고 있다는 게 베이징 외교가의 판단이다. 한 소식통은 “중국은 북한이 혼란에 빠져 대량 난민이 북·중 국경을 넘어오는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안정이 중국 최고지도부의 희망 사항인 동시에 가장 큰 고민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북·중 관계의 안정을 해칠 수 있는 보도를 막기 위해 김 위원장 사망 이후 공산당 중앙선전부가 관영 매체들의 북한 관련 보도를 사전에 철저히 검열하고 있다고 한 소식통은 전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평양 표정…보안원 질서유지 절제된 참배 행렬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사실이 공식 확인된 19일 북한 전역은 애도 분위기에 휩싸였다. 이날 평양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음에도 거리 곳곳에 시민들이 나와 김 위원장과의 작별을 슬퍼했고 상점들도 일찍 문을 닫았다. 북한 조선중앙TV는 정오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전한 뒤 낮 12시 30분에 장송곡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북한 주민들은 평양 시내 곳곳의 김정일 초상화와 김일성 동상 앞에 줄을 서 차례로 애도의 뜻을 표했다. 시내 전역에는 조기가 내걸렸다. 슬픔에 잠긴 평양 시내의 모습은 외신 카메라에도 잡혔다. 중국 CCTV가 촬영한 시내 영상에 등장한 군복 차림의 한 평양 시민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연방 훔치며 말을 잇지 못했다.평양주재 미국 APTN과 영국 로이터TV가 현지에서 전송한 화면에는 사복 보안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거리의 참배 행렬 사이에서 질서 유지를 하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전체적으로는 지난 1994년 김일성 사망 당시에 비해 절제된 애도를 보였다. 북한 내에서 이 밖에 별다른 동요는 감지되지 않고 있다. 교도통신은 평양시내 분위기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북한 당국은 평양의 외국 대사관 측에 본국 외교관의 북한 방문 계획을 취소할 것을 통보했고 외국 기업에는 현재 북한에 체류 중인 방문자를 일주일 안에 출국시키라고 요구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김정일 사망…中관영 CCTV, 인공기 소각장면 방송

    19일 북한 중앙TV발표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소식이 전 세계에 걸쳐 보도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의 우방국인 중국 관영방송에서 북한 국기(인공기)와 김정일의 초상화가 소각되는 장면이 방송돼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발 중국 신문 대기원시보와 일본 로켓뉴스24 보도를 따르면 이날(19일) 오전 11시 30분께 중국 CCTV 뉴스가 김정일 사망 소식 보도 중 일부 시민이 북한 국기와 김정일의 초상화를 소각하는 장면을 자료화면으로 방송했다. 이들 매체에 따르면 이 같은 장면은 이날 CCTV가 김정일의 사망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그의 경력을 소개하는 도중 15초가량 방송됐다. 당시 화면을 보면 중국의 여성 아나운서는 담담하게 원고를 읽고 있어 당시 방송국에서는 해당 장면이 방송됐는지 알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본 중국의 네티즌들은 해당 방송사 게시판에 “정치적인 실수다.”, “중대한 사고가 발생했다”, “전율이 느껴졌다”, “고의가 아니냐?”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편 이 영상의 원본은 2시간 반 만에 삭제됐지만 이미 각국의 네티즌을 통해 유포됐으며, 유튜브 등 해외 사이트 등에도 게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뉴스팀
  • Estonia 발트해를 적시는 찬란한 노래

    Estonia 발트해를 적시는 찬란한 노래

    Estonia 발트해를 적시는 찬란한 노래 “에스토니아에 일주일간 여행을 간다고요? 하루면 다 보는 곳 아닌가요?”라고 에스토니아를 여행해 본 사람들이 말했다.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발트 3국 중 하나’라는 사실만 알아도 실은 에스토니아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에스토니아는 더 이상 변방이 아니다. 당신의 다음 유럽 여행지로 꼽아두어도 에스토니아가 전혀 손색이 없는 이유를 소개한다. 글·사진 최승표 기자 취재협조 에스토니아관광청 www.visitestonia.com 핀에어 02-730-0067 www.finnair.co.kr @Tallinn탈린 재래시장에서 발견한 에스토니아 “너희들은 왜 이렇게 영어를 잘하니?” “글쎄…. 우린 작은 나라니까.” 25살, 앳된 얼굴의 가이드 카티Kati의 짧은 대답에는 많은 뜻이 함축돼 있었다. 15세기 이후, 50년 이상 독립국가로 존재해 본 적 없는 작은 나라 에스토니아. 덴마크, 스웨덴, 독일, 러시아 등 열강들에게 종속당해 온 시절을 고스란히 반영하듯, 에스토니아 곳곳에는 혼재된 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다. 여행을 하면서 ‘대체 무엇이 에스토니아의 고유한 문화인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사실 에스토니아는 운명적으로 고유의 것을 창조하기보단 받아들이고 재생성하는 데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지정학적으로 교역의 거점이었고, 강대국들의 텃밭이었던 까닭이다. 그럼에도 세계에서 가장 적은 인구가 사용하는 자신들만의 언어, 에스토니아어를 유지해 온 나라. 그 나라 사람들은 유달리 자존심이 강했다. ‘왕년을 회상하는’ 방식의 자존심이 아니라 지금을 소중히 여김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발트 3국의 하나인 에스토니아는 문화적으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와 많이 다르며, 언어와 민족은 북녘의 핀란드와 유사하다. 젊은이들이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가진 것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와 다른 점이다. 소련에서 독립한 후, 가파르게 경제 성장을 구가해 온 에스토니아는 MSN 메신저와 스카이프Skype를 개발한 IT 강국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탈린은 물론 지방 소도시의 식당에서도 대부분 무선 인터넷을 무료로 제공할 정도다. 발트 3국 중 유일한 유로 사용국가이기도 하다. 에스토니아의 혼재된 문화는 재래시장에서 극명하게 느낄 수 있다. 발틱역Baltic Station 맞은편에는 러시아식 재래시장이 매일 열린다. 앤티크 제품부터 채소, 과일, 생필품까지 50여 개 상점이 문을 여는데 탈린 시내와는 전혀 다른 구소련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차가운 사람들의 표정마저 시계를 20년 전으로 돌린 것만 같다. 발틱역에서 트램으로 한 정거장 거리에 자리한 옛 공장터 ‘키르부투르크Kirbuturg’에서는 매주 토요일이면 벼룩시장이 열린다. 누가 사 입을까 싶은 낡은 옷가지부터, 고장난 라디오까지 어딘가 익숙한 시장 풍경이 펼쳐진다. 여름철이면 구시가지의 시청광장에서는 민족 장터도 수시로 열린다. 탈린이 고대부터 교역의 중심지였음을 상징하듯 광장에는 주변 국가의 전통 의상을 입고, 전통 음식과 수공예품을 가지고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처럼 다채로운 전통 시장을 체험하려면 반드시 주말을 끼고 탈린을 여행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언덕에 올라 부엌을 들여다보아라” 탈, 린. 입에 감기는 발음마저 고혹적인 도시다. 어떤 합리적 연관성도 없지만 그 이름에선 묘한 여성성이 느껴진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시가지Old Town의 풍경 또한 그러하다. 덴마크인들이 11세기에 이주해 오면서 도시의 면모를 갖춘 탈린은 13세기에 한자동맹의 중심도시로 번영을 누렸다. 거친 장사꾼들이 드나들며 만들어진 도시가 지금 이처럼 매혹적인 모습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관광지로 변모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중세시대에 탈린은 상인과 일반인들이 거주하던 저지대와 영주나 귀족들이 거주하는 고지대로 나뉘었다. 저지대에는 과거 길드 상인들의 건물들이 식당, 카페, 기념품 상점들로 용도가 바뀌어 보존되고 있으며, 고지대에는 교회와 각국 대사관을 비롯해 부유층의 집들이 있으니 그 모습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탈린은 도시 전체가 평평한 지형으로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톰페아 언덕Tompeaa Hill이 해발 40m밖에 되지 않아 도보 여행을 즐기기에 좋다. 구시가지는 어느 입구로 들어서든 풍부한 볼거리를 만날 수 있지만 비루 성문Viru gate에서 도보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성문을 통과해 100m 즈음 들어가면 북유럽에서 유일하게 고딕 양식으로 만들어진 구시청사와 시청광장이 펼쳐진다.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광장 주변 노천카페에서 음식과 차를 즐기는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시청광장 부근에는 1422년에 문을 열고, 10대째 내려오는 약국이 있고, 카타리나Katariina 골목은 중세 분위기를 가장 원형에 가깝게 유지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부엌을 들여다보아라Kiek in de Koik’라는 엉뚱한 이름의 포수대에는 탈린 성곽의 역사를 알려주는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탈린 시내를 조망하기 좋은 톰페아 언덕에는 제정 러시아 시절의 역사를 반영하는 알렉산데르 네프스키 교회가 화려한 위용을 뽐내고 있다. 이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돔 성당도 있다. 성당 내부에는 교회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장식품들이 가득해 어수선한 느낌을 주는데 현재는 중세시대의 유물 전시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에스토니아인들은 종교에 큰 관심이 없는 까닭에 교회를 드나드는 사람들은 관광객이 대부분이다. 혹자는 구시가지를 하루에 세 번, 둘러봐야 한다고 말한다. 한가한 이른 아침, 이슬 낀 자갈길을 걸어 보고, 한낮에는 박물관, 교회 등을 들러보고, 저녁에는 화려한 조명으로 물든 야경을 감상하고, 라이브 카페와 클럽에서 젊은 탈린을 만나 봐야 한다. 구시가지에는 살 만한 기념품도 많다. 먼저 발트 지역의 명물인 호박Amber을 매우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구시가지에는 인력거에서 중세 복장을 한 아리따운 여인들이 아몬드에 다양한 향신료를 첨가해 그 자리에서 직접 볶아서 판매하는 가게를 종종 볼 수 있다.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으니 선물용으로 훌륭하다. 1 탈린 구시가지 시청광장은 만남의 장소로 유명하다. 13세기 한자 무역시대의 건축물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2 구시가지 곳곳에는 젊은 여인들이 중세 복장을 입고 에스토니아 전통 간식인 볶은 아몬드를 판매하고 있다 3 구시가지는 도보 여행에 좋다. 비루 게이트 입구에서 세그웨이Segway를 빌려 탈 수도 있다 4 탈린 구시가지에는 재치 넘치는 디자인의 간판들이 가득하다 5 구시가지는 시간대에 따라 전혀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인적이 드문 이른 아침, 이슬에 젖은 자갈길을 걸으면 중세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느껴진다 Festival 전국민이 합창을 하는 나라 노래를 사랑하는 민족들은 많지만 노래를 통해 혁명을 이룬 역사를 가진 민족은 드물 것이다. 에스토니아는 소련이 붕괴되기 전인 1988년, 혁명 기간 중 약 30만명의 시민들이 집결해 소련의 통치에 반대하며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의 일환으로 광장에 모여 노래를 불렀다. 당시 소련은 경제가 붕괴되고 있는 상황에서 시위를 진압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1991년 결국 독립을 이뤄내기까지 에스토니아는 반폭력 독립운동으로 일관했으며, 소련을 해체시키는 기반을 이뤘다. 비폭력 저항운동의 역사는 발트 3국이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1989년 3국 국민들은 탈린에서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까지 인간 띠를 만들어 소련 체제의 부당함을 전세계에 알렸고 자유를 외쳤다. 25만명이 만든 인간 띠는 ‘발트의 길’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이 사건은 유네스코에도 유산으로 등재됐다. 에스토니아인들의 노래 사랑은 역사가 꽤 깊다. 탈린에서는 1869년부터 5년에 한번씩 송페스티벌Estonian Song Festival이 개최되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에스토니아인들은 합창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탈린에서 만난 여성들에게 ‘당신도 음악을 좋아하나요?’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여성들이 ‘물론이죠. 송페스티벌에 나간 적도 있답니다’라고 답했다. 인구 40만의 작은 도시, 3만명이 합창을 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무대에 한번쯤 서 보지 않은 이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구 소련 시절, 오케스트라 지휘자였다가 이제는 탈린관광안내사무소에서 일을 하는 티나Tiina씨는 “1988년, 우리는 결코 약하지 않은 민족이라는 사실을 노래로 세계에 보여주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노래의 힘을 신봉하는 듯 느껴졌다. 올해의 유럽 문화 수도로 선정된 탈린에는 축제가 끊이지 않고 있었다. 9월 말, 우리보다 앞서 단풍으로 물든 탈린에서는 디자인 축제와 재즈 축제가 한창이었다. 에스토니아 재즈 밴드의 공연이 펼쳐진 한 클럽에 인파가 몰려들었다. 맥주 잔을 들고 조용히 음악을 즐기던 중년의 남성에게 별 뜻 없이 말을 걸었다. “어디에서 오셨나요? 재즈를 좋아하시나 봐요”, “저는 독일에서 온 교사입니다. 탈린에만 3일째인데 재즈 축제 때문에 왔죠. 에스토니아의 수준 높은 음악문화에 매료됐답니다.” 리듬에 맞춰 잔뜩 흥에 취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진지하게 기타리스트의 연주에 몰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1 2011 유럽의 문화수도로 선정된 탈린에는 축제가 끊이지 않는다. 에스토니아인들은 모두 노래부르길 좋아한다 2 재즈페스티벌을 관람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 구시가지의 유명한 극장 본 크롤Von Krahl에서 기타 트리오의 연주가 펼쳐졌다 3 1869년부터 시작된 에스토니아 송페스티벌은 3만명이 합창을 펼치는 장관을 연출한다. 에스토니아는 구소련에 대항해 노래를 부르며 저항한 역사를 갖고 있기도 하다 4, 5 2008년 ‘올해의 유럽 박물관’에 선정된 현대미술관 쿠무KUMU는 중세 미술작품부터 최근의 미술 조류를 반영하는 작품까지 다양한 시대를 아우르고 있다 6 제정 러시아 시절, 표트르 대제가 아내를 위해 선물한 여름 궁전, 카드리오르그 공원의 미술관에는 낭만주의 시대의 명화들이 전시되어 있다 Museum 표트르 대제가 아내에게 선사한 궁전 문화 수도 탈린에는 세계에 내놓을 만한 미술관도 있다. 18세기 제정 러시아 시절, 표트르 대제가 아내인 캐서린 1세를 위해 헌사했다는 카드리오르그 공원Kadriorg Park에는 화려한 궁전과 미술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올드타운에서 약 2km 떨어져 있는 공원 일대는 오크 나무와 라일락 나무로 울창한 숲과 호수가 조성되어 있어 시민들의 안락한 쉼터로도 이용되고 있다. 목조로 된 바로크 양식의 궁전은 공원의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으며, 지금은 미술관으로 쓰이고 있는데 궁전 내부에는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러시아의 16~19세기 미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대형 홀에는 낭만주의 시대의 명작들이 다수 전시되어 있어 미술 애호가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공원 뒤켠에는 화려한 꽃들로 수놓여진 정원이 자리하고 있다. 이 공간은 웨딩 촬영과 파티를 위한 공간으로도 애용된다고 한다. 카드리오르그 공원에서 얕은 언덕을 따라 오르면 석회석으로 지어진 뾰족한 외관이 인상적인 현대 미술관 쿠무KUMU를 만날 수 있다. 2006년에 문을 연 에스토니아 최대의 미술관으로, 2008년 ‘올해의 유럽 박물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주변의 자연 지형과 어우러진 디자인과 독특한 내부 설계는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 할 만하다. 7개 층에 전시된 작품은 종류도 시대도 매우 다채롭게 구성된 것이 런던의 테이트모던Tate Modern을 연상시킨다. 상설 전시관에는 18세기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 에스토니아 화가들의 미술 작품들이 전시돼 있어 에스토니아 화풍의 변화와 함께 민중들의 삶의 궤적까지 간접적으로 읽을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2차 독립(소련 붕괴) 때까지의 작품들도 별도로 전시되어 있다. 이 전시관의 작품에는 소련 체제 하에 접어들면서 공산주의 사회로의 급격한 변화가 생생하게 반영되어 있다. 60년대부터 모더니즘, 팝아트, 극사실주의 등 당시 유행하던 화풍이 에스토니아라는 특수한 현실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읽어내는 것도 흥미롭다. 이외에도 매우 실험적인 장르의 미술, 조각, 설치 예술 작품들이 곳곳에 전시돼 있어 한나절을 박물관에서 보내도 다 볼 수 없을 정도다. 1 시청광장에서 아몬드를 볶고 있는 에스토니아 소녀의 모습 2 탈린 구시가지의 교회나 성벽의 첨탑은 독특한 디자인으로 개성을 뽐내고 있다 3 톰페아 언덕에서 내려다본 구시가지의 모습. 멀리 발틱해, 핀란드만으로 나아가기 위한 항구도 보인다 4 중세 분위기의 레스토랑 올데한자Olde Hansa는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 중 하나다 @Lahemaa National Park 라헤마 국립공원 숲, 바다, 늪, 대저택 그리고 완벽한 자연 많은 이들이 에스토니아를 하루 혹은 이틀만 여행하는 것은 ‘탈린 너머의 에스토니아’를 발견하지 못한 까닭이다. 탈린에서 출발해 러시아 방향으로 향하는 1번 도로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가면 전혀 다른 세상에 다다를 수 있다. 때묻지 않은 늪지대와 울창한 삼림, 중세시대 영주들의 호화로운 저택들이 어우러져 있는 라헤마 국립공원은 1971년 구소련이 지정한 최초의 국립공원이다. 그 화려하던 소련이, 그것도 전성기인 70년대에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는 사실만으로 왠지 그럴싸하지 않은가. 신발끈을 바짝 조이고 늪지대에서 이색 하이킹을 즐겨 보자. 조금 여유가 있다면 중세 영주의 집에서 스파를 즐기며 근사한 하룻밤을 보내는 것도 좋겠다. Viru Bog Trekking 늪지대를 엉금엉금 걷는 재미 에스토니아의 6개 국립공원 중 라헤마 국립공원은 탈린에서 접근성이 가장 좋다. 바다와 숲을 동시에 즐길 수 있으며, 중세 영주들의 집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어 탈린과 함께 여행하면 최상의 궁합을 이룬다. 라헤마 국립공원은 대체로 평지에 가까워 가벼운 하이킹이나 자전거 타기, 바다에서의 카약이나 카누 등을 즐기기에 좋다. 하이킹의 경우, 다양한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산책로가 잘 형성되어 있어 지도만 있으면 다니기에 불편함이 없다. 해변에서부터 늪지대까지 다채로운 산책로가 있으며, 에스토니아에 서식하는 비버Beaver를 구경할 수도 있는 산책로도 있다. 국립공원에는 50여 종의 포유류가 있다고 하지만 산책 중 이들을 만날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양한 산책로 중에서도 늪지대(혹은 습지) 산책로를 선택했다. 습지 하이킹으로 유명한 곳은 비루Viru Raba 지역이다. 공원에 이르자 침엽수림이 내뿜는 공기가 신선하면서도 묵직하게 폐 속으로 침투했다. 숲 속으로 몇 걸음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전신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산소의 밀도가 높았다. 그러나 비루 습지 산책로의 주인공은 침엽수림이 아니었다.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몇백 미터를 들어가자 갑자기 하늘이 뻥 뚫리고 일견 잔디처럼 보이는 평원이 훤하게 펼쳐졌다. 맨땅에 뿌리를 내린 침엽수가 20m는 족히 넘는 키를 자랑하는 데 반해 늪지대에 나 있는 나무들은 큰 것이 3m 수준이었다. 무릎 높이의 나무 한 그루도 실은 수십년을 자란 것이라고 하니, 흙과는 전혀 다른 습지의 생태가 신기하기만하다. 이곳에서는 습지 위로 걷다가 발이 잠기는 위험에 처할 수도 있고, 식물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통나무를 깔아놓은 3.5km 산책로를 걸어야만 한다. 산책길 중간중간 만날 수 있는 작은 연못은 물고기가 서식할 수 없을 정도로 맑아 수영을 즐기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국립공원에는 840종에 달하는 식물군을 볼 수도 있으며, 찰스 다윈이 가장 좋아한 식물이었다는 식충식물도 곳곳에 있어 살아있는 과학교실로 활용되고 있다. Manor House 중세 독일 영주처럼 쉬어 볼까 라헤마 국립공원에서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재미는 중세 영주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매너하우스Manor House를 구경하는 것. 개인적으로 지난 3월, 영국 코츠월드 지방의 매너하우스를 개조한 호텔에서 머문 경험이 있는 터라 매너하우스에 꽤나 매료가 된 상태였다. 유럽의 어느 나라를 여행하더라도 적어도 하룻밤 정도는 지방의 매너하우스에서 머물러 봐야 한다는 일종의 로망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만큼 높은 기대치를 갖고 찾아본 에스토니아의 매너하우스. 영국의 그것에 비해 절대 뒤쳐지지 않는 화려한 정원과 럭셔리한 분위기를 자랑했다. 특히 라헤마 국립공원의 3대 매너하우스로 불리는 팔름세Palmse, 사가디Sagadi, 비훌라Vihula는 전혀 다른 개성을 간직하고 있다. 팔름세 매너하우스는 노랑, 주황으로 채색된 바로크풍 건물이 9월의 낙엽과 어우러져 웅장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팔름세는 화려한 정원이 뒤뜰에 펼쳐져 있고, 박물관, 공방, 와인 판매점, 카페, 식당 등이 한 데 모여 있다. 특히 메인 건물에는 18세기 에스토니아 영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초상화, 낡은 피아노, 벽난로, 널찍한 테이블이 있는 살롱 등이 잘 보존되어 있어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1749년 독일 영주가 살던 사가디 매너하우스는 야생동물, 희귀식물 등 국립공원의 생태를 잘 보여주는 전시관Forest center을 보유하고 있다. 가장 모던한 모습으로 재탄생한 매너하우스는 비훌라. 16세기에 지어져 오랜 역사를 자랑함에도 골프코스를 갖추고 있고, 스파, 워터파크 등의 시설은 물론 인접한 해변에서 카야킹, 말타기 체험 등 다양한 체험 스포츠가 가능하다. 에스토니아인들은 누구나 로맨틱한 매너하우스에서 웨딩 촬영을 하고 결혼식을 올리는 것을 꿈꾼다고 한다. 결혼식을 마친 후, 남편이 참나무 한 그루를 매너하우스에 기증하며 아내의 이름을 적은 종이를 뿌리와 함께 묻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참나무가 변치 않는 사랑을 상징하는 까닭이다. 1 습지의 생태는 일반적인 숲과는 전혀 다르다. 특히 이끼류의 식물이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다 2 라헤마 국립공원은 살아있는 과학교실이다. 어린 학생들이 선생님을 좇아 공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3 국립공원은 바다를 면하고 있다. 북극 빙하를 타고 온 퇴적물과 암석들로 해변 지역의 생태 또한 독특하다 4 라헤마 국립공원에는 군데군데 호수가 형성되어 있다. 물이 너무 맑아 물고기가 살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5, 6 비훌라 매너하우스Vihula Manor house는 가장 모던한 모습으로 재탄생한 중세 영주의 대저택이다. 에스토니아인들은 매너하우스에서 웨딩 촬영 및 예식을 올리는 것을 동경한다고 전해진다 @Parnu패르누 여름 수도에서 잘 먹고 잘 쉬기 에스토니아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그저 춥기만한 나라’라는 것.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바로 아래 있고, 유라시아 대륙의 서북쪽 끄트머리에 있으니 그런 오해가 있을 법하다. 겨울철에는 영하 20~30도는 예사이고, 오후 3시면 어두워지는 혹독한 겨울나라의 면모를 보이지만 6~8월은 영상 30도 가량의 온화한 날씨에 밤 11시가 넘어도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의 나라로 변모한다. 고로 에스토니아를 여행하기 가장 좋은 철은 여름이며, 남쪽의 해변도시 패르누Parnu는 여름 여행의 백미로 꼽힌다. 탈린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2시간을 달려 패르누에 도착했다. 거리상 129km밖에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탈린에 비해 공기가 훨씬 온화한 느낌이다. 패르누는 ‘에스토니아의 여름 수도’라는 수식어처럼 널따란 백사장이 있는 해변을 끼고 있다. 9월 말, 해변에는 산책을 나온 몇몇 사람들만 눈에 띄었을 뿐 백사장은 하얗게 비어 있었다. 그렇다고 패르누의 여행 시즌이 마감된 것은 아니었다. 패르누에는 19세기부터 스파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해 자국민뿐 아니라 스칸디나비아와 동유럽 지역에서도 스파를 즐기기 위한 여행객이 연중 끊이지 않는다. 스파를 전문으로 하는 대형 리조트도 곳곳에 자리하고 있고,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종류의 스파와 마사지, 트리트먼트를 받을 수 있으니 에스토니아 여행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다. 패르누에서는 건강을 위한 웰니스 스파Wellness Spa와 치료 목적의 메디컬 스파Medical Spa를 모두 체험할 수 있다. 스트랜드 호텔Strand Hotel & Conference에서 진흙팩 트리트먼트를 받았다. 75분 동안 사해 머드를 온 몸에 바르고 나니 피부가 수분을 단단히 머금었고, 노폐물과 몸의 피로가 말끔히 사라진 듯했다. 유럽에서 이 정도의 서비스를 받고 39유로(약 6만2,000원)만 지불하면 된다는 사실도 새삼 놀랍다. 1시간 동안 진행되는 오일 마사지 등도 30유로 선에서 받아 볼 수 있다. 스파 에스토니아Spa Estonia와 같은 메디컬 스파 호텔에서는 각종 질병 진단을 10유로 수준에서 받아볼 수도 있다. 이외에도 중국식 마사지, 태국식 마사지부터 벌꿀 마사지까지 취향대로 마사지를 즐길 수 있다. 그로테스크한 호텔을 가득 채운 선율 패르누는 완벽한 휴양을 위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음식도 단순히 먹고 배부르기 위한 차원이 아니라 우리 몸에 유익한 오거닉 푸드가 어울린다. 형형색색의 목조 건물들이 아름다운 올드시티에는 문을 연 지 2년 만에 에스토니아 50대 식당으로 선정된 오가닉 카페 ‘마헤딕Mahedik’이 최근 주목을 받고 있어 찾아보았다. 탈린에서 수십년간 호텔에 종사했던 에비 큐식Evi Kuusik씨는 오가닉 푸드에 대한 관심을 갖고 고향인 패르누로 돌아와 가게를 열었다. 직접 농부들로부터 채소와 육류를 구매하고, 어부들로부터 생선을 공급받아 신선한 재료와 빼어난 맛으로 순식간에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연어 샐러드와 엘크 고기로 만든 파스타를 맛보았다. 과일주스부터 디저트로 먹은 파이까지 몸에도 좋은 것이 맛까지 훌륭했다. 큐식씨는 “사실 오가닉 푸드라는 게 대단할 게 없어요. 패르누에서 어릴 적부터 먹어 왔던 것을 되살리는 일을 한 것뿐이죠”라고 맛의 비결을 이야기했다. 이 식당의 사장은 큐식씨의 딸 에벌린Evelin Kuusik이다. 흥미롭게도 그녀는 한국에서 패션모델로 활동했다고 한다. 빼어난 미모의 모녀가 운영하는 마헤딕에서는 일주일에 한번씩 피아노, 클라리넷 등의 소박한 공연도 열린다. 흥미롭게도 이 낯선 땅, 그것도 조그만 마을에서 한국과 인연을 맺은 사람을 또 한 명 만났다는 사실을 그저 행운이라고 해야 할까? 패르누에서 가장 유서 깊은 럭셔리 호텔 아멘데 빌라Ammende Villa에서 묵는 밤. 운이 좋게도 영국의 유명 기타리스트인 제이슨 카터Jason Carter의 공연을 보게 됐다. 그는 평양에서 공연을 했던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음악으로 북한 사람들의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북한’을 여행한 경험을 관객들과 공유했는데, 공연이 끝나고는 ‘남한’에서 온 나와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눴다. 그리곤 이메일을 보내 왔다. 북한을 여행한 경험을 더 소상하게 얘기해 주고 싶다는 메시지와 함께…. 결국 제이슨 카터 덕분에 그의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됐을 뿐 아니라 패르누에서의 추억도 더욱 애틋하게 간직하게 됐다. 유명 뮤지션의 공연을 보는 것도 큰 행운이었지만 영화에서나 봤음직한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대저택, 그러니까 무대 뒤편에는 뿔 달린 사슴 박제가 걸려 있고, 마룻바닥을 밟을 때마다 삐걱이는 소리가 들리는 이방의 공간에서 멜랑꼴리한 음악을 듣는 기분이란 참 기묘했다. 공연이 끝나고, 방으로 돌아왔다. 널찍한 욕조에서 반신욕을 즐기고, 자작나무 향이 짙게 풍기는 핀란드식 사우나에서 피곤을 풀었다. 에스토니아에서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포근하고 로맨틱하게 저물었다. 1 패르누는 ‘에스토니아의 여름 수도’라는 명성에 걸맞게 잘 먹고, 잘 쉬기 위한 모든 문화가 자리잡혀 있다. 최근에는 오가닉 푸드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 2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스파를 체험할 수 있는 스트랜드 호텔 & 스파 3 가정집을 연상시키는 안락한 분위기의 카페 4 여름철이면 패르누는 전국에서 모여든 휴가객과 북유럽 여행객들로 붐빈다. 고운 백사장이 넓게 펼쳐진 해변에서는 여느 휴양지에 비해 상업적인 냄새가 덜 느껴진다 5 패르누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아멘데 빌라. 1905년 독일인 부호가 딸의 결혼식을 위해 지었으며, 이제는 사우나 달린 객실, 유명 아티스트의 공연이 펼쳐지는 럭셔리 호텔로 변모했다 6 도심 가운데에 자리한 작은 공원에는 참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밀도 높은 산소를 내뿜고 있다 7 소박한 분위기의 카페 풍경 Travel to Estonia ▶에스토니아 여행팁 탈린 카드Tallinn Card 탈린 여행의 필수품이다. 6시간(12유로), 24시간(24유로), 48시간(32유로), 72시간용(40유로)이 있으며, 카드 한 장이면 대중교통, 박물관, 스파·사우나 입장은 물론 가이드 투어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탈린 호텔과 라헤마 국립공원 투어 등은 할인이 가능하다. 탈린관광청 웹사이트(www.tourism.tallinn.ee/fpage/tallinncard)에서 사전 구매도 가능하며, 주요 호텔 및 관광안내소에서 구매할 수 있다. 전압 우리나라와 같은 220V를 사용한다. 화폐 1유로는 약 1,601원(10월 기준). 크룬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기후 6~8월에는 최고기온 30도 정도로 따뜻하며, 11월부터 3월까지는 평균 기온이 영하로 매우 추운 편이다. 여행을 하기에는 5~9월 사이가 좋다. 무선인터넷 에스토니아는 EU 국가 중에서도 IT가 가장 발전된 나라다. 대부분의 호텔과 식당에서 WIFI를 무료로 제공한다. ▶Food 영부인이 재유행시킨 검은 빵 에스토니아는 열강들의 통치를 받은 역사가 긴 만큼 음식 문화도 다양하다. 최근에는 대통령 영부인이 흑빵을 굽는 모습이 TV에 노출되면서, 이 전통 빵이 큰 유행을 타고 있다. 어느 식당을 가든 흑빵을 먹어 볼 수 있다. 탈린 시청광장에 자리한 올데 한자Olde Hansa는 15세기 한자 시대의 분위기로 에스토니아 전통식을 제공하는 가장 유명한 식당이다. 각종 곡물과 육류, 북유럽에서 즐겨 먹는 연어의 맛도 훌륭하지만 인테리어부터 음악, 점원들의 복장까지 완전히 중세풍으로 연출해 이색 체험 차원에서도 추천할 만하다. www.oldehansa.ee 라헤마 국립공원 내에 자리한 어부들의 마을 ‘알트야Altja’에 있는 에스토니아 전통식당 알트야 코르츠Altja Korts는 앞바다에서 잡힌 청어요리가 주를 이루며, 막걸리 맛과 흡사한 러시아식 전통음료인 크바스Kvass의 맛이 훌륭하다. www.altja.ee ▶Hotel 이왕이면 핀란드식 사우나 달린 호텔 탈린에서는 올드타운을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곳에 호텔을 잡는 게 편리하다. 수영장, 사우나를 무료로 제공하는 호텔이 많으니 예약 전 확인하는 게 좋다. 올드타운 비루 게이트 앞에 위치한 노르딕 호텔 포럼Nordic Hotel Forum이 가격, 접근성, 서비스 면에서 추천할 만하다. www.nordichotes.eu 패르누에서도 사우나, 스파 시설 여부를 확인하는 게 좋으며, 도시의 역사를 대변하는 아멘데 빌라Ammende Villa는 아르누보풍의 웅장한 분위기 속에서 수준 높은 서비스를 체험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www.ammende.ce FINNAIR 에스토니아로 가는 가장 빠른 길 우리나라에서 에스토니아로 가는 직항은 없지만 항공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핀에어를 이용하는 게 최선이다. ‘유럽으로 가는 가장 빠른 항공사’인 핀에어는 서울과 헬싱키를 9시간 만에 연결하며, 헬싱키에서 탈린까지는 35분만에 연결된다(헬싱키에서 페리를 이용할 경우, 탈린까지 2~3시간이 소요된다). 핀에어는 설립 이후 단 한번도 안전 사고를 일으킨 적 없어 매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항공사로 선정되고 있으며, 각종 매체로부터 ‘북유럽 최고 항공사’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항공사 TOP 5’에 꼽히기도 했다. 개인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은 물론 개인 노트북 연결 콘센트 및 USB 연결장치를 탑재하고 있고, 비즈니스석에는 180도 젖혀지는 침대형 좌석을 도입했다. 특히 한국 승무원 탑승, 비빔밥, 불고기 등 한식 기내식 제공, 한국어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등 한국 승객들을 배려한 기내 서비스는 한국 승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헬싱키 반타 공항 역시 유럽 공항에서는 최초로 한국어 표지판을 설치해 환승 및 공항 이용의 편의성을 한층 높였다. www.finnair.co.kr 02-730-0067
  •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제주 김만덕 기념관 추진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제주 김만덕 기념관 추진

    조선시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제주의 대표적인 여성상인 김만덕(1739∼1812년·초상화)의 정신을 기리는 기념관 건립사업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제주도는 제주시 건입동 사라봉공원의 모충사 남쪽 2만 263㎡ 부지에 내년부터 2014년까지 140억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2층, 전체면적 2808㎡의 김만덕기념관을 짓는 사업을 확정했다고 31일 밝혔다. 기념관에는 김만덕의 생애를 소개하고, 영정·유품·기록물 등을 보여 주는 기념관을 비롯해 굶주림을 체험하는 기아체험관, 기부문화의 소중함을 배우는 나눔교육관, 나눔광장, 야외공연장 등이 들어선다. 김만덕은 1794년 제주에 흉년이 들자 전 재산을 털어 산 곡식을 나눠주면서 도민들을 굶주림에서 구해 정조로부터 내의원에 속한 여의 가운데 으뜸인 ‘의녀반수’라는 벼슬을 받았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조선학교 돈줄죄기…日, 보조금 27%↓

    일본이 재일본 조선인 총연합회(조총련) 계열 조선학교의 반일·사상 교육을 문제 삼아 27개 광역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 1억 5000만엔(약 22억 3000만원)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24일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조선학교가 있는 27개 도도부현(都道府縣)은 2009년에 5억 4973만엔을 보조금으로 줬지만, 2010년에는 4억 243만 9000엔만 지급했다. 1년 새 보조금이 1억 4729만 1000엔(26.8%) 줄었다. 조선학교의 고교 역사 교과서가 일본인 납북 문제에 대해 ‘일본 당국이 납치 문제를 극대화해 반조선인 소동을 키우고 있다.’고 기술하거나 1987년 북한이 자행한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를 ‘한국의 날조’라고 쓴 점 등이 문제가 됐다. 특히 오사카부(府)는 ‘교실에서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초상화를 떼어내고 조총련과 관계를 끊으라.’는 조건을 내건 뒤 이를 거부한 학교에는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조선학교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드는 것도 보조금 감소의 한 원인으로 거론된다. 지방자치단체 보조금과 별개로 조선학교 고교 과정을 수업료 무상화 대상에 포함할지를 두고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19개 도도부현 의회는 중앙 정부에 반대 의견을 표시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제 2의 모나리자?” 다빈치 초상화 추정작품 발견

    ‘모나리자’에 버금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또 다른 초상화가 세상에 나올까. 영국의 미술역사학자가 다빈치가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초상화를 공개했다. 옥스퍼드 아카데믹(Academic)의 마틴 켐프 박사는 1998년 뉴욕 경매에서 1만 4000파운드(2500만원)에 개인 수집가에 팔린 초상화 한 장이 사실은 다빈치가 그린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이 작품이 다빈치의 초상화로 밝혀진다면 그 가치는 엄청나다. 당초 이 그림은 폴란드에서 발견된 책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던 작품이었다. 이후 찢겨져 따로 거래됐다. 그림의 제목은 ‘왼쪽을 바라보는 소녀의 머리’(Head of a Young Girl in Profile to the Left)로, 주인공이 비앙카 스포르자(Bianca Sforza)로 전해졌다. 비앙카는 다빈치의 후원자였던 루도비코 스포르자의 딸로, 1496년 그녀가 갈레아조 산세베리노와 결혼을 하자 다빈치가 축하의 의미로 이 그림을 그려줬다는 것. 이후 월쇼 국립도서관에 쭉 보관됐다고 AP통신이 덧붙였다. 켐프 교수는 “이 초상화가 다빈치의 지장이 찍혀 있을 뿐 아니라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 공 통적으로 보이는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빈치의 초상화가 확실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켐프 교수의 견해는 미술계에 전반의 동의를 얻진 못했다. 진품에 대한 논란 때문에 다음 달 런던 국립미술관에서 열리는 특별전에서도 걸리진 못하게 됐다. 이에 켐프 교수는 “이 작품에는 더 없이 정확한 증거들이 숱하게 포함돼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가을단풍처럼 화선지에 물든 선인의 삶

    가을단풍처럼 화선지에 물든 선인의 삶

    가을 단풍만큼이나 화선지를 다채롭게 물들인 조상의 숨결전이 잇따르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초상화의 비밀’로 첫 테이프를 끊었다. 지난달 27일 전시 시작 이래 9일 현재 1만 706명이 다녀갔다. 간송미술관의 ‘인물풍속대전’, 리움미술관의 ‘조선화원대전’이 그 뒤를 잇는다. 비교하자면 이렇다. 중앙박물관 작품은 선비정신을 중시하다 보니 그림에 서릿발 같은 위엄이 넘친다. 대신 정물화 같아 재미가 덜하다. 반면 간송의 작품들은 일상의 소소한 잔재미를 크로키처럼 잽싸게 잡아챘다. 그래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림 속으로 뛰어들어 한데 어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리움의 작품들은 그림 속으로 뛰어들기보다 그림을 뒤에 배경으로 두고 운치 있게 즐기고 싶게 만든다. ●간송미술관 ‘인물풍속대전’ 한량들의 놀이 풍경을 담은 ‘연소답청’(年少踏靑)을 보면 과연 혜원 신윤복(1758~?)이다 싶다. 기어이 기생을 자기 말에 태우고 직접 끌고 다닌다. 세도가 자제 같은데 여자에 ‘미치니’ 종 노릇도 마다 않는다. 그래서 왼쪽 뒤편의 말도, 모자도 뺏긴 채 따라가는 종의 표정이 재밌다. 제 주인이 흥에 겨워 난장 놀음을 하는데 맞장구치기도 그렇고, 말리기도 그렇다. 그 난감함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백인산 학예연구위원의 설명이 재미있다. “혜원의 아버지가 화원화가였던 신한평(1735~1809)인데, 이분이 일흔 넘게 사시면서 생계를 모두 해결했습니다. 그러니 신윤복은 왈자패들하고 어울려 속 편히 놀았던 것 같아요. 단원(김홍도)의 풍속화를 왕이 보는 그림이라 단정했다면, 신윤복은 자기가 먹고 놀던 모습을 그대로 그렸으니 퇴폐적이고 흥겨운 거지요.” 미인도를 비롯해 널리 알려진 신윤복의 그림들이 지금까지 화사하게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도 고관대작 자제들과 어울렸던 덕분에 좋은 재료를 쓸 수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단다. 김후신(1735~?)의 ‘통음대쾌’(痛飮大快)도 유쾌하다. 제목 그대로다. 배경을 빌딩으로 바꾸고 등장인물에게 양복만 입혀 두면 2차, 3차를 외치며 도심 뒷골목을 다니는 현대인과 같다. 겸재 정선(1676~1759)에서 시작된 진경산수화의 참맛을 내세우는 간송미술관답게 ‘어초문답’(漁樵問答)을 비교해보는 맛도 쏠쏠하다. 낚시꾼과 나무꾼의 문답이라는 ‘어초문답’은 성리학의 대의를 밝히는 내용 때문에 조선 유학자들에게 중요한 창작 모티프가 됐다. 해서 이전의 어초문답은 중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데 반해 정선의 어초문답은 인물, 배경, 옷매무새가 모두 조선풍이다. 16~30일. 무료. (02)762-0442. ●리움미술관 ‘조선화원대전’ 1층 전시장에는 왕의 행렬, 궁중 행사, 어진(임금 초상화) 등을 배치했다. 위엄을 갖춘 공식적인 모습이라는 점에서 중앙박물관 전시에 가깝다. 인물화에 있어서는 김홍도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명기(?~?)의 ‘오재순 초상’도 볼 수 있다. 지하 전시장은 간송과 같은 풍속화로 넘어간다. 전시장을 독특하게 분할하는 칸막이들이 맨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한옥 마을을 돌아다니는 듯한 느낌을 관람객에게 주기 위한 설정”이란다. 간송이 민속적인 느낌이 강하다면 리움은 중국적인 냄새가 짙다. 화원화가들이 왕실과 사대부의 주문을 받아 그림을 제작한 만큼 아무래도 작은 화첩보다 규모가 크고 화려해지기는 하지만 진경 그 자체보다 ‘그들의 취향’에 맞춘 듯한 분위기가 강하다. 전시의 가장 큰 장점은 요즘 스마트폰에 쓰이는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옛 그림을 자유자재로 확대해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가반차도’(動駕班次圖)는 가로 길이만 10m에 이른다. 김두량(1696~1763)과 김덕하(1722~1772)가 함께 그린 사계산수도(四季山水圖)는 길이가 2m에 가깝지만 폭은 8㎝가 채 안 된다. 이런 그림을 상세히 볼 수 있도록 부분 확대 또는 축소 시스템을 갖춘 것이다. 진시황 무덤의 병마용이 똑같은 인물이 없다는 점에서 찬탄을 불러내듯 확대해서 들여다본 사람과 풍경 역시 모두 달라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13일부터 내년 1월 29일까지. 4000~7000원. (02)2014-6900. ●한국학중앙연구원 ‘영조대왕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이 ‘영조대왕전’을 여는 이유는 민국의 이념 때문이다. 최근 연구 성과를 모아 보니 영조가 이미 민국의 이념을 내세웠다는 데서 시작했다. 6000점에 이르는 영조 관련 소장 자료 가운데 민국의 면모를 드러내는 300여점을 추려냈다. 영조 어진을 비롯해 숙종의 병이 나은 것을 기념해 열린 잔치 모습을 그린 ‘숭정전 진연도’ 등이 공개된다. 11월 20일까지. 무료. (031)709-8111.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中 신해혁명 100주년 “위대한 중화부흥” 제창

    중국 공산당이 쑨중산(孫中山·쑨원)을 강력하게 끌어안으며, 그의 계승자를 자처했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9일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신해혁명 100주년 기념대회 연설을 통해 ‘위대한 민족 영웅, 위대한 애국주의자, 중국 민주혁명의 위대한 선구자’로 치켜세우며 ‘쑨중산 선생’을 17차례나 언급했다. 인민대회당 무대에는 쑨중산의 대형 초상화가 내걸렸다. ●후 “쑨중산” 17차례 언급… 공적 치하 후 주석은 “100년 전 쑨중산 선생이 이끈 신해혁명은 중국의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변화를 이끌어냈다.”면서 “신해혁명의 폭발은 당시 중국 인민들의 민족독립과 중화 부흥의 소망을 집중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쑨 선생의 서거 이후 공산당은 그의 바람을 이어받아 노력한 끝에 신민주주의 혁명의 승리를 거둬 인민이 주인이 되는 중화인민공화국을 성립하고 민족 독립과 인민국가 수립의 역사적 임무를 달성했다.”면서 “공산당은 쑨 선생의 사상을 발전시켜 현대국가화의 이상을 실현해 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후 주석은 신해혁명이 양안 동포의 공동 자산이라고 강조한 뒤 “함께 손잡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에 힘을 보태자.”고 타이완을 향해 적극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지난 7월 1일 공산당 창당 90주년 기념대회에서 마오쩌둥 전 주석을 6차례 언급한 것과 비교하면, 후 주석의 이날 쑨중산 집중 언급은 놀랄 만하다. 공산당의 외연을 신해혁명과 쑨중산으로까지 넓히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실제 후 주석은 중국 공산당이 ‘선구자’들의 포부를 실현하고 발전시키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후 주석은 또 23차례나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언급함으로써 ‘중화부흥 공정’을 향후 중국 공산당의 최대 역점 과제로 삼을 것임을 시사했다. 중국은 신해혁명 100주년을 앞두고 수십편의 영화와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을 집중 상영하면서 신해혁명과 공산당 및 중국특색 사회주의의 ‘연결고리’ 전파에 온힘을 쏟아왔다. ●토론회 취소 등 저항정신 확산 경계 하지만 2009년 건국 60주년, 지난 7월의 창당 90주년 때와는 달리 주요 거리나 공항 등에 신해혁명 100주년을 알리는 현수막 등은 내걸리지 않았다. 주요 대학의 신해혁명 토론회와 ‘오페라 쑨중산’의 베이징 공연은 취소됐다. 쑨중산과 신해혁명으로 대표되는 ‘저항정신’의 확산을 경계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일부 공산당 좌파들은 지난 1일 건국기념일 인민일보 사설에 마오쩌둥이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는 등 소홀히 취급되고, 대신 쑨중산이 부각되는 것에 대해 당내에서 강력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해혁명 100주년을 계기로 공산당 내부의 이념투쟁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전조로 읽힌다. 신해혁명은 청조 타파와 공화정 수립의 기치를 내걸고 진행된 민주혁명으로, 2000년 넘게 이어온 전제 왕정의 종식을 가져왔다. 1911년 10월 10일 우창(武昌) 봉기를 시작으로 한달여 만에 13개 성이 독립을 선언하는 등 파죽지세로 진행돼 이듬해 1월 1일 쑨중산이 중화민국 건국을 선언하고 임시 대총통으로 취임했다. 하지만 곧바로 군벌 위안스카이(袁世凱)가 권력을 장악해 신해혁명은 미완성인 채 1919년 5·4운동 때까지 극심한 혼란이 이어졌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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