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초상화
    2026-08-0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944
  • 中자금성 앞 의문의 차량 돌진 40명 사상… 폭탄테러 가능성

    중국의 심장부인 베이징 쯔진청(紫禁城·자금성) 앞에서 차량 한 대가 성 입구의 교각 보호대로 돌진해 4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관영 신화통신 계열의 신화망이 28일 보도했다. 사건은 이날 낮 12시 5분쯤 지프 차량 한 대가 톈안먼 광장과 자금성을 연결하는 금수교로 돌진해 다리 보호대를 들이받으면서 발생했다. 금수교는 개국 원수인 마오쩌둥(毛澤東)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 있는 자금성의 주요 출입구로 통하는 교각이다. 이 사건으로 차 안에 타고 있던 탑승객 3명과 자금성 주변에 있던 필리핀 여성 1명, 광둥성 출신의 중국인 관광객 1명이 사망하고 행인과 공안요원 38명이 중경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중경상을 입은 행인 중에는 필리핀 관광객 3명과 일본인 관광객 1명 등 외국인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인은 없는 것으로 공식 확인됐다고 한국 총영사관이 밝혔다. 사고 직후 소방차와 구급차, 공안차량 등이 현장에 긴급 출동했으며, 공안은 사고 직후 인근 지하철 톈안먼 동역과 서역을 폐쇄하고 현장 수사를 진행했다. 당국은 이번 사건의 테러 관련성 등에 대해 함구하고 있지만 사상자 규모와 현재까지 공개된 사건 경위 등을 놓고 볼 때 폭발물 테러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이날 타이완 빈과일보에 따르면 한 누리꾼이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 “지프에 폭발물이 실려 있었다. 이번 사건은 자살 폭탄 테러”라는 글을 남겼다가 당국에 의해 삭제됐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中 미술계의 이단아, ‘한국 화단’의 이웃이 되다

    中 미술계의 이단아, ‘한국 화단’의 이웃이 되다

    “그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 중국 작가가 이런 체제 비판적인 그림을 그려도 되는가 해서 놀랐다. 그림 속 여인은 마치 남자의 입술을 부르는 듯 탐스럽다.”(박서보 화백) “그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이런 큰 작가를 지닌 한국 화단은 이미 높은 수준에 올라 있다.”(펑정지에 화백) 지난 19일 밤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의 도립 현대미술관. 중국 화가 펑정지에(45)의 개인 초대전 개막식에 참석한 수백명의 관객 앞에서 한국의 박서보(82) 화백과 펑정지에 작가는 서로 주거니 받거니 칭찬하느라 바빴다. 펑정지에는 최근 자신의 네 번째 개인 작업실을 미술관 옆에 마련했고, 이곳에 작업실을 갖고 있던 박 화백과 길 하나를 놓고 이웃사촌이 됐다. 두 ‘거장’은 이미 수년 전부터 왕래하며 두터운 신뢰를 쌓아 왔다. 박 화백은 “중국을 방문했다가 그의 작품을 우연히 접했는데 어눌하고 투박한 화풍 속에 시대정신을 녹여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펑정지에가 이웃이 돼 앞으로 작품 활동에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펑정지에도 “서울 시내의 한 대형 갤러리에서 비공개로 마련된 작품전에서 박 화백의 작품을 처음 봤다. 이때부터 박 화백의 팬이 됐다”고 화답했다. 박서보가 이중섭, 박항섭, 허백련, 백남준 등과 함께 한국 근현대 미술의 대표 작가라면 펑정지에는 장샤오강, 쩡판즈 등과 함께 세계 미술계가 눈독을 들이는 중국의 스타 작가다. 한창 몸값을 올리며 아시아는 물론 유럽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는 펑정지에는 중국 베이징과 쓰촨, 싱가포르에 이어 최근 제주에 새 작업실(215㎡)을 마련했다. 예술인 28명이 정착한 제주 예술인마을에서 ‘물 건너온’ 해외 작가로는 처음이다. 그는 “작업실 주위에 한국의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많이 있어 영광”이라며 “새 작업실은 앞으로 작품 구상이나 작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생각하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도 펑정지에의 작업실이 건립된 기념으로 기획됐다. ‘펑정지에의 유우색(游于色)’이란 제목으로 회화, 입체, 설치 등 40여점의 작품을 오는 12월 7일까지 선보인다. 전시에선 하얀 얼굴에 두 눈동자가 사시처럼 쏠린 여인의 초상화와 ‘펑정지에 핑크’라고 불리는 강렬한 색채의 그림 등 대표작들을 만날 수 있다. 당나라 한시를 배경으로 그린 신작은 어눌한 원색의 화풍으로, 우리 민화를 떠올리게 한다.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은 “그의 작품은 급변하는 중국 사회의 불안을 반영하고 있다”면서 “현재진행형인 그의 화풍이 제주를 배경으로 또 어떻게 변화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펑정지에와 10년지기인 박철희 베이징 문갤러리 대표는 “중국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때 그의 작품전을 보러 다니다 친해졌다”며 “2년 전 여행차 함께 제주를 들렀을 때 그가 이곳에 작업실을 갖고 싶어 했는데 그 꿈이 실현됐다”고 설명했다. 이웃들은 벌써부터 펑정지에를 ‘봉정걸’이라 부른다. 김치찌개와 해장국을 좋아하는 그의 한자 이름을 그대로 읽은 것이다. 미술계에서는 펑정지에를 시작으로 중국 작가들의 제주 ‘원정 작업실’ 붐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한 화랑 관계자는 “문화 역량의 다변화 측면에선 해외 작가 유입이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도 있을 것”으로 평가했다. 글 사진 제주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시론] 거리예술을 감상하는 법/조선희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시론] 거리예술을 감상하는 법/조선희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길이 재미있어진다. 거리에 볼거리가 많아진다. 10월 들어 광화문 ·시청 일대에선 하이서울페스티벌, 서울드럼페스티벌, 서울아리랑페스티벌 등 거리축제들이 잇따랐다. 서울뿐만 아니라 여러 지자체들도 조금씩 성격이 다른 다양한 거리축제들을 벌이고 있다. 경기 과천, 고양, 안산이 모두 거리예술축제를 해오고 있다. 몇 해 전만 해도 ‘거리예술’은 일반인들에게 낯선 단어였다. 거리에서 초상화를 그려주거나 기타치고 노래 부르는 예술가들을 연상시키는 단어였다. 하지만 거리예술은 거리음악이나 미술뿐 아니라 거리극에서 스트리트댄스, 마술, 서커스, 퍼레이드, 불꽃공연까지 훨씬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다. 거리예술은 요 몇 해 사이 한국에서 가장 빠르게 진화하는, 가장 놀라운 변화속도를 보여주는 예술장르다. 그야말로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다. 이번 하이서울페스티벌 폐막 날에는 태평로와 서울광장에 각종 거리예술이 총출동했다. 그날 저녁 서울광장 상공에서 거대한 철제바퀴를 둘러싼 공중곡예를 멀리서 보며 프랑스나 스페인 공연팀인가 했던 나는 그것이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있는 ‘프로젝트 날다’의 신작인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또 젊은 부부가 리어카 위에 작은 집을 지어 끌고 다니며 아코디언, 피아노, 마두금을 치며 노래 부르고 풍선 바람 빠지는 소리로 ‘엘리제를 위하여’를 연주하는 ‘음악당 달다’ 역시 우리 거리예술의 변화무쌍함을 말해주었다. 지난 주말에는 선유도에서 거리예술장터가 열렸다.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이 함께 준비한 일종의 거리예술박람회인데, 선유도 곳곳에서 다채로운 거리극과 인형극, 마술쇼, 퍼레이드 등이 벌어졌다. 거리예술가들과 축제관계자, 정책담당자를 위한 쇼케이스이기도 했지만 공원에 나들이 나온 시민들에게는 뜻밖의 선물이었다. 가을 저녁의 싸늘한 강바람 속에 많은 시민들이 남아서 공연을 즐겼다. 음악, 무용, 연극 등 예술장르에 대해 고정관념을 가진 대개의 시민들에게 이 퍼포먼스들은 기상천외한 미적 체험이었을 것이다. 고급한 무대장치가 없는 거리극에서는 허접스러운 비닐봉지가 집이 되기도 하고 이불이 되기도 하고 배우들은 흙바닥에서 흙먼지 날리며 뛰고 구르고 관객들을 불러내기도 하고 관객들 사이로 비집고 들기도 한다. 거리예술은 공간의 한계, 표현양식의 틀을 초월해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만큼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극장공연과는 달리 입장료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재생산 시스템의 난점이 있다. 몇 군데 거리예술축제들에 초청되면 공연료를 받지만 이것은 최소한의 제작비와 활동비에 해당하는 것이라 대부분의 거리예술가들은 이른바 ‘알바’로 생계를 해결한다. 유럽의 도시에 가면 길모퉁이에서 바이올린 케이스나 모자를 놓고 공연을 하는 거리예술가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공연 도중이나 공연이 끝나면 행인들이 동전을 던져 넣는다. 거리의 연주자들 중에는 줄리어드음대 출신들도 더러 있다고 한다. 서울에도 요새 인사동이나 대학로에서 거리 연주자들을 이따금씩 볼 수 있다. 홍대 앞에는 버스커 공연이 하나의 지역문화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아직 한국에선 멀쩡한 음악대학을 나와 거리에서 연주하고 행인들의 돈을 받는 걸 부끄럽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시민들도 돈을 던져 넣는 것을 겸연쩍게 생각하기도 한다. 이제 가동 중지된 광진구 구의취수장을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에서 거리예술 창작센터로 조성하고 있다. 거리예술 창작센터는 시의적절할 뿐 아니라 늦은 감마저 있다. 이제 막 싹을 틔운 한국의 거리예술이 한때의 유행으로 시들지 않고 활짝 꽃피려면 공공 지원뿐 아니라 민간의 후원도 필요하다. 거리에서 예술가들을 쉽게 만날 수 있고 그들의 공연을 보면 약간의 사례를 하는 문화가 자리 잡게 되길 바란다.
  • 비석도 없이…잠든 모습마저 그는 겸손했다

    비석도 없이…잠든 모습마저 그는 겸손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마법의 푸른 지팡이가 있어. 그 지팡이는 이 골짜기에 묻혀 있단다.” 소년은 큰형이 들려준 푸른 지팡이 이야기에 매료됐다. 이후 푸른 지팡이를 평생의 화두로 삼고 살았다. 죽기 전 지팡이가 묻혀 있다던 골짜기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행복은 사람을 위해 사는 곳에 있다”며 민중에 대한 사랑과 휴머니즘을 실천했던 러시아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1828~1910)의 이야기다. 지난 6일(현지시간) 교보문고 독자 25명은 톨스토이가 평생 좇았던 푸른 지팡이의 골짜기를 찾았다. 톨스토이가 태어나 자라고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 곳. 모스크바에서 남쪽으로 200㎞ 떨어진 툴라시 인근의 작은 마을 야스나야폴랴나다. 모스크바에서 세 시간여를 꼬박 달려간 ‘순례자’들을 맞이한 것은 은빛 자작나무 행렬이었다. 수직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러시아 국목(國木) 옆에는 톨스토이의 부인 소피야 안드레예브나가 개량했던 100여종의 사과나무 사이로 말들이 순하게 풀을 뜯고 있었다. 야스나야폴랴나는 톨스토이가 19세 때 어머니에게 물려받아 60년간 산 터전이자 그의 첫 소설 ‘유년시절’을 포함해 ‘안나 카레니나’, ‘전쟁과 평화’ 등 대부분의 작품이 탄생한 요람이다. 현재 전체 면적은 4㎢지만 톨스토이가 상속받았을 당시에는 12㎢에 이르렀으며 하인만 330여명을 거느렸다. 독자들을 안내한 모스크바국립대 김진성(36·러시아 문학 전공) 박사는 “야스나야폴랴나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막심 고리키, 안톤 체호프, 이반 투르게네프 등이 줄지어 찾은 곳으로, 러시아 예술가들에게는 성지와도 같다. 불안이 팽배했던 세기 말, 톨스토이가 제시하는 미래가 궁금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톨스토이가 살았던 2층짜리 흰 저택은 그의 몸만 빠져나간 듯 유품 4000여점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오래된 장서들의 퀘퀘한 냄새가 묵직하게 전해졌다. 15개 언어를 구사했던 톨스토이가 소장했던 책은 39개 언어 2만 2000여권에 이른다. 2층 응접실로 올라가니 러시아 유명 화가 이반 크람스코이와 일리야 레핀이 각각 그린 45세, 59세 때의 톨스토이 초상화가 형형한 눈빛으로 관람객들을 맞이했다. 집필실에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그의 작품 대부분이 쓰여진 책상과 눈이 나빠 182㎝의 장신을 한껏 구부리고 앉았던 작은 의자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저택을 빠져나와 숲길을 얼마나 헤치고 갔을까. 사람 하나가 누우면 꼭 맞을 크기의 장방형 봉분이 솟아 있었다. 대문호는 어릴 적 형들과 뛰놀던 골짜기의 흙과 한 몸이 되어 있었다. 비석 하나 없는 흙더미를 덮은 야생화가 겨우 그곳이 ‘묘지’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최대한 간소하게 장례를 치러 달라는 그의 뜻을 반영한 것이다. 귀족으로 태어났지만 농노들을 위해 자신이 태어났던 대저택을 팔고, 말년에는 저작권과 재산 소유권까지 사회에 환원하려 했던 그다운 선택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객사’라는 비운을 맞았다. 82세이던 1910년 아내와의 불화로 집을 떠난 지 열흘 만에 간이역의 역참지기 집에서 폐렴으로 숨을 거뒀다. 삶뿐 아니라 죽음으로도 무소유와 청빈, 평화와 박애 정신을 실천한 그의 무덤 앞에 선 독자들은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이번 기행에 동행한 정호승(63) 시인도 무덤에서 쉽사리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삶의 결과는 죽음인데 대문호의 무덤에 비석도, 십자가도 하나 없는 걸 보니 감동이 큽니다. 관리를 따로 하지 않았다면 지금은 흔적조차 없었을 테지요. 죽어서의 모습이 그렇게 겸손하다면 그가 생전에 정화된 삶을 살려고 얼마나 노력했을까요.” 교보문고와 대산문화재단의 공동 주최로 열린 러시아 문학기행은 러시아 대표 문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시간이다. 기행은 모스크바에서 ▲고려인 3세 러시아 작가 아나톨리 김의 강연 ▲알렉산드르 푸시킨·안톤 체호프 박물관 방문에 이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 ‘전쟁과 평화’ 배경지 견학 ▲도스토옙스키 박물관 관람 등으로 진행됐다. 글 사진 야스나야폴랴나(러시아)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北 쌍꺼풀 수술에 3달러… 눈썹·입술 문신도 성행”

    북한에서 단돈 3달러만 있으면 쌍꺼풀 수술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성형수술이 성행한다는 탈북자의 증언이 6일(현지시간) 알려졌다. 2010년 한국으로 탈북한 20대 초반 여성 윤미나씨는 미국의 북한 전문 인터넷 매체 NK뉴스에 “북한에서 쌍꺼풀 수술과 눈썹, 입술 문신은 흔한 편”이라면서 “쌍꺼풀 수술은 2~3달러만 있으면 할 수 있는데, 이는 쌀 1~1.5㎏ 값”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돈이 없는 경우 투명 테이프를 눈꺼풀에 붙여 쌍꺼풀을 만드는 여성들도 있는데, 이는 금방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고 했다. 또 “코 수술은 값이 비싸기 때문에 일부 부유층만 하며, 남한같이 턱뼈를 깎는 큰 수술이 북한에는 아예 없다”고 했다. 그녀는 “내가 여고생이었던 2000년대 초 북한에서 눈썹, 입술 문신이 크게 유행했다”면서 “당시 친구들 중에는 아프다며 결석하고 성형수술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성형수술을 받는 학생이 늘어나자 감독관이 불시에 교실에 들이닥쳐 얼굴을 검사하는 게 다반사라고 한다. 윤씨는 “북한에서는 성형수술이 불법이라 성형수술로 적발된 학생들은 반성문을 써내거나 이틀간의 노동교화형에 처해졌다”면서 “어떤 학생들은 학교 건물을 짓는 데 필요한 시멘트나 페인트를 내라는 징계를 받았다”고 했다. 때문에 당국의 눈을 피해 의사들이 직접 여성들의 집을 방문해 성형수술을 해준다고 한다. 그러나 기술이 정교하지 못해 쌍꺼풀 수술한 눈이 부자연스럽거나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윤씨는 전했다. 그녀는 “북한에 있을 때 화재현장에서 김일성 초상화를 구하다 얼굴에 화상을 입은 여군을 김정일이 외국에 보내 성형수술한 일화를 들었기 때문에 선진국의 성형 기술이 발전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그래서 남한에 처음 왔을 때 성형수술이 성행하는 것을 보고 많이 놀라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다만 “수술한 티 없이 자연스럽게 수술하는 남한의 정교한 성형기술은 놀랍다”고 했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다빈치가 그린 ‘사라진 초상화’ 500년 만에 발견

    다빈치가 그린 ‘사라진 초상화’ 500년 만에 발견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예술가이자 과학자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 500년 만에 발견돼 그 진위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근 다빈치 연구자이자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 카를로 페드레티는 “스위스 비밀금고에 숨겨져있는 그림이 다빈치가 직접 그린 작품”이라고 주장했다. 61cm x 46.5cm의 이 초상화는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교양있는 여성이자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했던 이사벨라 데스테(1474-1539)를 그린 것이다. 특히 다빈치는 1499년 데생용 연필로 데스테의 스케치를 남긴 바 있으며 이 작품은 현재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전시중이다. 그러나 스케치 외에 실제 초상화는 발견되지 않아 다빈치 작품 중 최고의 미스터리로 남았다. 페드레티 교수는 “처음 그림을 보고 한 눈에 다빈치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면서 “탄소 측정결과 르네상스 시대 그린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어 “초상화의 입가를 보면 다빈치 작품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면서 “최고의 명작인 ‘모나리자’에 앞서 그린 세기의 걸작”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 그림은 400여점의 명화를 소유한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가족의 것으로 감정을 의뢰하는 과정에서 세상에 알려졌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스마트폰을 기름종이처럼, 그림그리기 앱 ‘애니스케치’

    스마트폰을 기름종이처럼, 그림그리기 앱 ‘애니스케치’

    최근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인 주식회사 오션즈가 손그림을 연습할 수 있는 앱을 출시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림그리기 앱 ‘AnySketch(애니스케치)’는 종이가 얇고 투명해 잘 비치는 기름종이를 다른 그림 위에 덮고 그림을 베끼는 원리 이용해 다른 이미지를 그대로 옮겨 자신의 그림으로 그릴 수 있도록 한다. 작동 원리도 간단하다. 앱에 내장된 이미지나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사진을 불러온 후 화면에 띄우면 이미지 속 외곽선을 제외한 배경의 투명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된다. 투명도를 높이면 배경이 투명하게 변하면서 배경에 스마트폰 카메라 렌즈에 비치는 모습이 투영된다. 사용자는 자신이 원하는 정도로 투명도를 설정한 뒤, 스마트폰을 고정하고 렌즈를 통해 화면에 나타나는 자신의 손을 보며 화면 속 외곽선을 따라 그림을 그리면 되는 것이다. 실제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종이에는 아무 것도 나와있지 않지만 사용자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보게 되는 화면에는 그림을 따라 그릴 수 있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이 나타나기 때문에 따라그리기를 하는 듯한 효과를 준다. 이러한 방식으로 사용자는 ‘AnySketch’를 이용해 애니메이션을 따라 그리거나 실제 모습과 흡사한 풍경화와 초상화를 그릴 수 있다. ‘AnySketch’는 ‘그림을 더 잘 그리고 싶다’는 개발자의 평범하고 개인적인 소망에서 시작된 앱이다. 평소 애니메이션을 좋아해 직접 그리고 싶지만 그림에 소질이 없어 고민하던 개발자는 어릴 때 따라 그리기를 할 때 많이 사용하던 기름종이의 원리에 착안해 ‘AnySketch’를 만들게 됐다. 오션즈 관계자는 “평소에 그림을 그리고 싶지만 미술을 배울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이 ‘AnySketch’를 통해 그리기를 연습해 그림에 대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개발자의 소박한 소망에서 시작된 ‘AnySketch’ 앱에는 큰 의미를 담은 컨텐츠가 포함돼 있기도 하다. 바로 독도에 대한 개발자의 관심과 바람을 앱 속 이미지에 표현한 것이다. ‘AnySketch’ 앱 안에는 따라그리기용 이미지로 우리나라 지도가 내장돼 있는데 개발자는 독도가 대한민국 땅이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의도로 한반도 지도의 독도를 특히 더 선명하게 표기해 놓았다고 한다. 단순하지만 참신한 작동 원리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AnySketch’은 특별한 마케팅 홍보를 진행하지 않았음에도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일본과 미국에서 다운로드가 급증하고 있다. 오션즈는 최초 버전에 대한 피드백을 반영해 다른 여러 국가의 지도와 다양한 그림, 기능을 포함한 업그레이드 버전을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AnySketch’는 앱에 내장된 이미지와 즉석에서 찍은 사진을 따라 그릴 수 있는 무료버전과 이전에 찍어 놓은 사진을 불러내는 기능이 추가된 유료버전으로 이용할 수 있다. 구글플레이와 애플앱스토어에서 ‘AnySketch’로 검색하면 다운로드 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황금의 제국’ 주연 고수 “탐욕·복수…실제 저라면 시작도 안했죠”

    ‘황금의 제국’ 주연 고수 “탐욕·복수…실제 저라면 시작도 안했죠”

    그의 눈은 부와 권력의 추악한 이면을 파고든다. 시청자들은 그가 부와 권력을 거머쥐는 것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하지만 더러는 그의 눈이 품은 욕망의 광기를 두려워하기도 한다. 한없이 맑고 부드러웠던 그의 눈빛은 이처럼 복잡하고 다채로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17일 종영을 앞둔 SBS 월화드라마 ‘황금의 제국’의 고수(35) 이야기다.그가 TV에서 보여왔던 이미지는 주로 반듯하고 부드러운 로맨티스트였다. 영화에서는 ‘백야행’(2009), ‘초능력자’(2010) 등을 통해 강렬한 캐릭터에 도전해 왔지만 드라마 ‘순수의 시대’(2002),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2009) 등에서는 아련한 눈빛으로 여심을 뒤흔들었다. 그랬던 그가 4년 만의 브라운관 복귀작인 ‘황금의 제국’에서는 부와 권력을 쥐기 위해 싸우는 ‘태주’를 연기했다. 1990년부터 2010년까지 격동의 한국 경제사를 배경으로 태주는 가난한 법대생에서 냉철한 기업가로 성장했다.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극 속에서 그는 거대 그룹의 수장 자리를 놓고 재벌 가족과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힘 겨루기를 하고 있다. 드라마 종영을 앞두고 최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그에게서는 홀가분함보다 여전한 긴장감이 엿보였다. “저로서는 처음 해보는 장르였어요. 또 드라마에서는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도전이었죠. 한없이 욕망을 좇는 태주를 연기하는 제 모습이 어떨지 스스로도 많이 궁금했고, 시청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궁금했어요.” 그는 ‘즐거우면서도 치열하게 고민하며 연기했던 작품’이라고 돌이켰다. 식탁에서의 대화로 부와 권력의 행방이 결정되는 재벌가에서 인물들은 철학적이고 의미심장한 말들을 무기로 기싸움을 벌인다. “평소 말할 때보다 목소리를 몇 배는 더 낮게 깔아야 했어요. 거기에 호흡이 긴 문어체 대사를 하니 마치 연극 무대에 선 느낌이었습니다.” ‘황금의 제국’은 20년의 세월을 단숨에 관통한다. 대사 하나를 놓치면 다음 회를 따라잡기 힘들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 20년에 걸친 태주의 변화를 제대로 그리는 게 시청자들의 집중을 이끌어내는 관건이었다. 그리고 고수는 극적인 캐릭터의 변신 속에서 태주라는 인물에 설득력을 부여했다. 그 비결은 캐릭터를 변화시키되 현실성 있게 그 폭을 조절한 거였다고 설명했다. “권력에 집착하는 태주에게서 극적인 효과를 얻으려면 어릴 적 모습은 해맑고 순수해야 한다고들 했지만 제 생각은 그 반대였어요. 엄청난 야망을 좇는 태주를 자연스럽게 묘사하기 위해선 대학생 시절의 태주도 다소 경직된 캐릭터로 다듬어야 한다는 판단이었죠.” 태주는 권력에 희생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그 권력을 가지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역시 무소불위의 권력 자체가 돼 간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자신의 살인죄를 뒤집어씌우는가 하면, 강제 철거로 아버지를 잃은 상처가 있으면서도 자신의 사업이 위기에 처하자 강제 철거를 지시하기도 한다. 자신이 실제로 태주였다면 어땠을지 물었다. “저라면 시작도 안 했죠. 물질, 힘, 황금 그런 것들을 바라지도 않아요… 하지만 끝에는 태주가 모든 걸 가졌으면 좋겠어요. 아버지가 희생당한 강제 진압을 지시한 사람이 누군지 밝혀내고, 그 사람을 제치고 자신의 초상화를 회장 자리에 한번쯤은 걸어봤으면 해요.” 그는 드라마가 방영되기 전 제작발표회 때 “돈을 많이 버는 것과 돈은 없어도 행복하게 사는 것 중 어느 게 성공한 삶인지 모르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종영을 앞둔 지금은 그 답을 찾았을까. “황금을 손에 쥔다면 삶이 편하기는 하겠죠. 하지만 황금을 쥐기까지의 기싸움은 정말 피곤하더라고요. 그저 소박한 식탁 앞에서 즐겁게 식사할 수 있는 그 삶이 더 나은 것 같아요.”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먼로 사망 6주전 누드 사진집, 4000만원에 낙찰

    먼로 사망 6주전 누드 사진집, 4000만원에 낙찰

    20세기 최고의 섹스 심벌인 메릴린 먼로(1926~1962)의 누드 사진들이 경매에서 4000만원이 넘는 고가에 팔렸다.미국 CBS 뉴스는 10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프리맨 옥션하우스에서 열린 경매 행사에서 먼로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촬영한 사진집 ‘마지막 유혹’(The Last Sitting)의 특별판이 예상가(1만 달러)의 4배가 넘는 4만 1250달러(약 4475만원)에 팔렸다고 보도했다. 이 작품은 1962년 6월 먼로가 미국의 유명 사진가 버트 스턴(1929~2013)과 로스앤젤레스의 유명 호텔인 ‘벨 에어’ 스위트룸에서 찍은 사진 가운데 10장을 추린 것이다. 당시 먼로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 사흘 동안 잠도 거의 자지 않고 초상화와 누드 사진 등 2571장을 찍었다. 먼로는 6주 뒤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스턴은 1982년과 2000년에 이 사진들을 모아 책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생전 스턴은 “먼로와 호텔 방에 함께 있는 생애 단 한 번뿐인 경험이었다”고 사진 촬영 당시 소감을 밝힌 바 있다. 스턴은 먼로의 사진이 경매에 부쳐지기 직전인 지난 6월 83세의 나이로 뉴욕에서 사망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미술·전시] “포르노 속 누드라도 예술”

    [미술·전시] “포르노 속 누드라도 예술”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이 가장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한영욱(51) 작가는 미술계의 대표적인 늦깎이다.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갖은 고생 끝에 40대에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지방대 미술학과를 나온 그는 잘나가던 미술학원 원장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을 돌아보니 한없이 허전했다. 2004년 이것저것 다 정리하고 무작정 서울로 왔다. 빚을 청산하니 남은 돈은 달랑 10여만원. 그림을 그려 지하철역 입구에서 팔았다. 그러다 공부 욕심이 발동해 홍익대 미대에 편입했고 내친김에 대학원까지 마쳤다. 2006년에는 각종 미술대전을 휩쓸며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했다. 초기 작품들은 개를 실감 나게 그린 것들이다. 순전히 바람에 휘날리는 털을 묘사하는 게 재미있어서였다. 그런데 개의 순진무구한 표정을 읽다가 차츰 사람의 얼굴 쪽으로 관심 영역을 넓혀 갔다. 2010년 홍콩에서 열린 소더비 경매에선 낙찰 추정가의 5배가 넘는 7000여만원에 초상화가 팔리기도 했다. 그는 여전히 사람을 그리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이부터 노인까지 맑은 눈에 영혼이 밴 생생한 표정을 담는다.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한 눈망울은 인간의 고독과 삶의 숭고함, 끝없는 욕망 등을 압축하고 있다. 비결은 독특한 표현 방식이다. 알루미늄판을 날카로운 철촉이나 전동 드릴로 긁어내 스케치한 뒤 그 위에 유화를 덧입혀 다시 긁어냈다. 긁는 데만 하루 19시간씩 꼬박 열흘이 걸리기도 한다. 대신 그림이 빛에 번쩍이기라도 하면 사진인지 그림인지 도무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모델은 인터넷을 뒤져 찾아낸 익명의 인물들이다. 거리 사진에서 손톱만큼 살짝 얼굴을 내민 노숙자의 얼굴을 확대해 수개월씩 연구한 뒤 새로운 인물로 창조한다. “10년에 한 번 만날 수 있을 법한 표정의 사람들을 인터넷에선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요즘엔 주변 인물로 조금씩 관심이 옮아간다. 신작인 ‘마더’는 아픔을 안고 살아온 새어머니의 삶을 표현했다. “스스로 사진을 모두 불태워 버린 그분의 결혼식 사진을 어렵게 친척집에서 구했다”면서 “결혼이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 상상했던 젊은 시절, 새어머니의 얼굴을 그리며 눈물이 맺혔다”고 말했다. 사람의 몸에도 부쩍 관심이 늘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숨만 간신히 부여잡은 80대 노인이나 죽은 듯 무표정한 얼굴로 누워 있는 젊은 여성의 벗은 몸이 대상이다. “누드를 겨우 4점 그렸을 뿐인데 나만의 것을 찾았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할 정도다. 이 중 젊은 여성의 누드화는 한 포르노 사이트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작가는 “포르노라 할지라도 인간의 몸을 아름답게 표현했다면 예술”이라고 했다. 조만간 70, 80대 노부부의 때 묻지 않은 벗은 몸도 그림으로 남길 예정이다. 작가는 “내 인물화는 여전히 인간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잃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독특한 예술관을 가진 작가의 신작 20여점은 오는 14일까지 서울 강남구 청담동 박영덕화랑에서 ‘삶’을 주제로 전시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美 ‘1020세대’로 북새통… K팝의 힘 실감

    美 ‘1020세대’로 북새통… K팝의 힘 실감

    지난 25일(현지시간) 찾아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내의 메모리얼 스포츠 아레나. 1984년 하계 올림픽이 열렸던 이곳에 한국의 문화 및 서비스, 제품을 소개하는 큰 장(場)이 섰다. 이곳에서 ‘대박’이라고 한글이 적힌 모자와 역시 한글로 등판에 ‘제시카’ ‘로빈’ 등 자신의 이름을 적은 현지 10~20대들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피부색이 다양한 이들이 ‘소녀시대’는 물론 뜬 지 얼마 안 된 걸그룹 ‘크레용팝’의 무대 의상을 똑같이 입고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맞춰 군무를 추다가 CJ 한식 브랜드 ‘비비고’의 비빔밥과 농심 ‘신라면’을 익숙한 듯 먹거나 현대자동차의 ‘벨로스터’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모습은 사뭇 뿌듯한 감정을 일으켰다. 할리우드로 대변되는 ‘소프트파워’ 강국인 미국에서 CJ그룹이 올해 두 번째로 개최한 한류 마켓 페스티벌 ‘K-con 2013’은 산업적인 측면에서 한류의 가능성을 확인한 현장이었다. 작년보다 규모를 2배 키워 75개 기업의 100개 부스가 차려진 행사장은 미국의 ‘1020세대’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발랄한 청소년들 사이에서 만난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의 입에서 ‘샤이니’ ‘엑소’ 등 한국 아이돌 그룹의 이름이 줄줄이 나오는 것처럼 신기한 일이 또 있을까. 16살 소녀 섀넌을 따라온 던(77)과 바브 러더(69)는 “손녀딸이 2년 전부터 K팝에 푹 빠진 이후 코리아타운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일상이 됐다”고 말했다. 그림에 소질이 있어 엑소 멤버 전원을 똑같이 그린 대형 초상화를 들고 나타나 주변 또래들의 환호를 한몸에 받은 섀넌은 “언젠가 한국에 꼭 갈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다양한 세대, 인종을 소통케 하는 K팝의 힘은 생각보다 강했다. K-con의 하이라이트로 행사 2일째인 25일 열린 한류 콘서트 ‘엠카운트다운 What’s up LA’로 LA는 또 한 번 들썩였다. 티켓값이 작년보다 3배나 뛰었는데도 1만 1000석이 순식간에 매진됐다. 관객의 80%가 미국인으로 300달러나 하는 VIP석의 경우 1200석이 판매 개시 10분 만에 동나기도 했다. 콘서트를 포함해 이틀 동안 K-con을 찾은 인원은 2만명을 훌쩍 넘는다. 첫 행사에서 K-con의 잠재력을 엿본 현대자동차와 미국 통신사 버라이존 등 2곳은 올해도 공식 후원사로 적극 참여했다. LG, 농심, 아시아나항공 등 국내 대기업뿐 아니라 국내 중소기업 20여곳도 당당히 부스를 차리고 현지 고객과 소통하는 기회를 얻었다. 특정 문화 행사와 기업의 브랜드 및 제품 마케팅이 한 장소에서 이뤄지는 ‘컨벤션 비즈니스’가 세계적인 추세로 떠오른 가운데 CJ그룹이 처음 시도하는 K-con의 의미는 남다르다. K팝을 원동력으로 음식, 패션 등 다른 산업으로 한류를 확산시킬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K-con은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의 아이디어다. 몇 년 전 이종 종합격투기 대회인 UFC 경기장을 찾았던 이 부회장은 그곳에서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유수의 기업들이 자사의 브랜드와 제품을 알리고 소통하는 현장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CJ그룹의 노희영 브랜드 전략 고문은 “가장 즐거울 때 접하는 제품이나 브랜드는 늘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며 K팝을 원동력으로 삼은 K-con에 대해 밝은 전망을 내놨다. 지난해보다 협찬 액수가 7배나 뛰어 올해 손익분기점을 넘어섰지만, K-con은 단기간의 수익보다는 충성도 높은 미래의 소비자를 길러 내기 위한 투자로 본다. CJ는 K-con을 단계적으로 해외시장에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내년부터 일본·중국에서 연 3~4회 개최한 이후 2020년까지 동남아와 유럽까지 K-con의 자장을 넓혀 나간다는 방침이다. 행사를 참관한 서울대 경영학과 김상훈 교수는 “콘텐츠 제작에서부터 배급·유통까지 하는 CJ그룹이 컨벤션 비즈니스의 적임자로 한류 산업의 불씨를 잘 피웠다”며 “K-con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는 참여 기업 수를 늘려 CJ만의 컨벤션이 아니라 ‘코리아 컨벤션’으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로스앤젤레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다이애나비가 살아있다면 이 모습?…52세 초상화 공개

    다이애나비가 살아있다면 이 모습?…52세 초상화 공개

    고(故)다이애나비가 살아있다면 이같은 모습일까? 지난 1990년 다이애나비의 초상화를 그린 유명 화가 이스라엘 조하르(68)가 최근 자신의 그림을 직접 ‘업데이트’해 눈길을 끌고 있다. 다이애나비의 16주기를 추모하며 그린 이 초상화는 살아있다면 올해 52세가 됐을 그녀의 모습을 상상한 작품이다. 조하르는 “그녀가 너무 나이들어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면서 “살아있다면 할머니가 됐겠지만 그만큼 우아해 졌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하르는 특히 1990년 당시 다이애나비의 초상화를 그렸던 순간을 털어놨다. 조하르는 “당시 다이애나비가 너무 자신감이 부족해서 그림 그리기가 힘들었다” 면서 “오랜시간 동안 그녀가 얼마나 매력있는 여자인지 설명해주기 바빴다”고 말했다. 한편 뛰어난 외모로 전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았던 다이애나비는 찰스 왕세자의 외도와 외로웠던 왕실 생활을 견디다 못해 1996년 이혼했으며 이듬해 8월 31일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英 ‘로열 베이비’ 조지 왕자 10여년 후 모습은?

    英 ‘로열 베이비’ 조지 왕자 10여년 후 모습은?

    임신 때 부터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던 영국 왕실의 윌리엄(31) 왕세손과 캐서린(31) 세손빈의 아들 조지 왕자의 10여년 후 예상 모습이 그래픽으로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 미국 출신의 유명 초상화 아티스트 린 월드론 박사는 조지 왕자의 틴에이저 모습을 예상한 이미지를 공개했다. 과거 다이애나 비와 마릴린 먼로 등 유명인의 초상화를 제작한 바 있는 윌드론 박사는 유전, 라이프스타일, 개성, 환경 등의 조건을 고려해 이같은 초상화를 내놨다. 공개된 이미지를 보면 전체적으로 잘생긴 외모에 코와 눈은 엄마를, 턱과 입은 아빠를 닮은 것이 특징이다. 윌드론 박사는 “왕가의 유전적 특징 등 모든 정보를 포함시켜 이 디지털 초상화를 완성했다” 면서 “이 초상화는 단지 예상 이미지일 뿐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만든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에 앞서 지난 21일(이하 현지시간) 태어난 왕자 조지 알렉산더 루이스(George Alexander Louis) 출산을 놓고 영미권 언론들이 과열된 보도 경쟁을 벌여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최근에는 왕세손비의 출산 후 체중 조절에 대한 보도까지 이어지자 조 스윈슨(35) 여성·평등부 장관은 지난 28일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사진=TOPIC / SPLASH NEWS(www.topicimages.com)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응답하라, 노르웨이 2013

    응답하라, 노르웨이 2013

    대자연 속 일상을 누리는 시간 응답하라,노르웨이 2013 산이 깊다는 역사학자 유홍준의 표현은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었다. 노르웨이의 피오르는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산세가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바닷물과 거의 직각을 이루며 굽이굽이 이어졌다. 그리고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산속 작은 마을에는 사찰 대신 작은 교회가 어김없이 서 있었다. 신의 작품 앞에서 신음만 번지는 인간은 몸과 마음으로 자연의 위로를 받아들였다. FIORD 피오르 몸과 마음이 깨어나다 두어 해 연속 어렵게 만든 휴가를 서운하게 마쳤다. 무슨 영문인지 세계적인 도시에서 내도록 하품을 하며 멍하니 서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던 것이다. 그 멋진 상징물 앞에서도 시큰둥하고 줄이 긴 전시장에선 기다릴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여행에 관한 한 공항부터 조증에 걸린 양 들뜨는 사람에겐 퍽 당황스러운 증상이었다. 뜬금없이 지난 기억을 떠올리는 건 그에 대한 진단을 이곳 노르웨이 피오르에서 내리게 된 탓이다. 출발 전 과로나 장거리 비행, 빡빡한 현지 스케줄 등 조건은 다를 게 없는데 현장을 대하는 마음과 정신이 놀랍도록 명료하다. 그러니까 여행도 인연 못잖게 적절한 타이밍이 중요한 법이다. 이제 와 돌이켜보니 전후 사정은 생각도 않고 무리해 대도시를 찾은 게 화근이었던 듯하다. 노르웨이는 복지와 행복지수, 국민소득 등의 선두주자로 대단히 익숙한 이름이지만 여행지로 따지자면 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해 심리적 거리감이 느껴지는 곳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전 국민이 아는 노르웨이어가 있다. 지리 시험 주관식 문제의 정답으로 꼭 한번은 등장했던 바로 그 이름 ‘피오르fjord’가 노르웨이 단어다. 그러니까 노르웨이로 향한다는 건 사전적 정의 그대로 ‘빙하의 침식으로 만들어진 골짜기에 바닷물이 들어와서 생긴 좁고 기다란 만’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수도 오슬로부터 북단의 트론하임까지 노르웨이에는 수많은 피오르가 존재한다. 그 어디를 택하더라도 후회 없는 여정을 보장하지만 굳이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송네피오르Sognefjord나 하당에르피오르Hardangerfjord를 추천한다. 피오르에 몸을 맡기다 미르달Myrdal역에서 플램Flam행 열차에 탑승했다. 산악 지역 주민들의 이동을 돕기 위해 건설된 이 철로는 무려 20년의 공사 기간이 소요된 것으로 유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미르달에서 플램까지 거리는 20km에 불과하지만 해발 차가 860m에 달한다. 과장을 보태면 굽이굽이 산세를 거의 수직으로 내려가는 셈이다. 각종 매체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찻길이라 찬사를 보낸 곳답게 열차 밖으로 펼쳐지는 풍광이 가히 환상적이다. 기차는 숱한 터널을 지나며 지그재그로 회전하느라 천천히 달리는 데 비해 객차 안 다국적 승객들은 왼쪽과 오른쪽 창문을 오가느라 분주하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도 카메라를 내려놓지 못하는 승객들을 위해 중간에 5분간 정차 구간이 있다. 해발 699m 청명한 쿄스포센Kjosfossen폭포 앞에서 잠시 내려 선 여행자들은 감탄사를 내려놓고 깊은 숨을 들이쉬며 찰나의 여운을 만끽한다. 해발 2m 플램역에 도착하면 지나온 풍경이 꿈이었나 싶게 몽환적이다. 기차역에서 바로 눈앞에 보이는 고풍스런 건물이 프레타임Fretheim호텔로 플램 철도와 더불어 플램의 상징이 되는 곳이다. 인구 500명 남짓의 이 조그만 마을로 유럽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이 찾아오는 까닭은 바로 피오르의 비경을 목도할 수 있는 ‘피오르 사파리’를 경험하기 위해서다. 19세기 말에 지어진 프레타임 호텔은 피오르를 찾아오는 여행자와 함께 성장해 현재는 전통과 모던 객실 중에서 선택해 머물 수 있다. 객실 번호 대신 노르웨이의 대표적 이름이 붙은 전통 객실이든, 비스듬한 삼각 지붕이 매력적인 모던 객실이든 플램 특유의 푸근함만은 다르지 않다. 전통을 중시하는 마을답게 노르웨이 고어古語를 포함한 독특한 책을 소장한 자체 도서관을 운영하며, 또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훈제용 스모킹룸이 남아있는 것도 흥미롭다. 이제 드디어 피오르에 몸을 맡길 차례다. 구명조끼를 겸하는 큼직한 방한복을 입고 배에 오르는 마음이 자못 두근거린다. 놀랍도록 잔잔한 물 위로 미끄러지듯 배가 나아가면 좌우로 우뚝 솟은 절벽의 단면이 펼쳐진다. 배가 속도를 높일수록 절벽과 천연 스키 슬로프, 순도 백프로의 폭포와 알록달록한 마을, 뾰족한 첨탑이 있는 교회 등이 다가왔다가 뒤편으로 멀어진다. 머리 위에는 천사의 머리띠마냥 구름이 살포시 걸려 있고 산봉우리 하나를 지나면 또 다른 봉우리들이 배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플램에서 출발한 배가 닿는 이곳은 풍광이 특히 빼어난 네뢰피오르와 아울란피오르로 노르웨이 최대 피오르인 송네피오르의 지류다. 물 위를 날 듯 달리노라면 서울에서 가져온 문젯거리들은 어느새 툭툭 바다 밑으로 털어 버리게 된다. 피오르 여행의 최고 시즌으로 꼽히는 7월과 8월 사이에는 보다 다양한 피오르 사파리 구간과 하이킹 코스가 열리므로 원하는 루트를 선택해 즐기는 호사도 부릴 수 있다. 육지에 발을 딛고 다시 펼쳐 본 노르웨이의 지도는 배를 타기 전과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이처럼 노르웨이의 주인공은 단연 대자연이다. 하지만 이 자연이 위대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건 평생을 살아온 자신의 조국을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한 애인 보듯 사랑하며 가꾸는 노르웨이 사람들 덕분일 게다. 보기에 따라선 더없이 척박한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면서 동시에 즐기고 또 사랑하는 노르웨이 사람들로 인해 노르웨이는 오늘도 반짝반짝 빛난다. 일상이 풍요로운 노르웨이의 도시들 노르웨이의 대자연에서 가슴 속 고민들을 툭툭 털어냈다면 이제 발길은 사람의 흔적을 찾아 도시로 향할 차례다. 불황에 허덕이는 이웃 유로존과 달리 보편적 복지와 호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노르웨이의 도시들 속으로 들어가 보자. OSLO 오슬로 불황을 잊은 노르웨이의 심장 오슬로는 노르웨이 제1의 도시이자 수도지만 숨 막히는 인파나 위압적인 마천루는 찾아볼 수 없다. 또한 파리의 에펠탑이나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런던의 빅벤 같은 상징물로 연결되는 장소나 건축물도 없다. 그래서 순위 놀이에 익숙한 관광객들은 오슬로의 지도를 펼치고 잠시 머뭇거린다. 그런 서열을 매기기에 오슬로는 지극히 수평적인 도시다. 효과적인 마케팅 기법은 아닐지 모르겠으나 현지인의 삶에 관심이 많은 여행자라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300개가 넘는 호수와 200여 개의 공원이 있는 오슬로에서 자연과 인공의 경계를 찾는 것은 무의미한 일 같다. 그래서 오래도록 오슬로는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도시로 유럽 전역에 알려져 왔다. 한데 최근 몇년 사이 오슬로는 이런 자연 위에 예술적 색채를 깊게 덧입고 있다. 오슬로 시정부가 펴낸 2013년 가이드북에서 안내하는 52개의 어트랙션 중 대부분이 ‘뮤지엄’ 등 예술의 꼬리표를 달고 있는 것만 봐도 이들이 어디에 중점을 두고 있는지 짐작할 만하다. 인구 50만의 작은 도시 규모를 생각해 보면 대단한 비율이다. 게다가 시 전역에 흩어져 있는 이런 예술 공간은 여행자만을 위한 관광 명소가 아니라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즐기는 공간이다. 매일을 살아가는 시민들의 일상에 여행자가 슬쩍 발을 들여놓는 셈이라고 할까. 실제로 만만찮은 무게의 예술가들이 이곳 오슬로를 배경으로 삶과 예술을 고민했다. 화가 에드바드 뭉크Edvard Munch와 조각가 구스타프 비겔란드Gustav Vigeland 그리고 극작가 헨리크 입센Henrik Ibsen 등이 대표적이다. 특별히 올해는 뭉크 탄생 150주년으로 오슬로 전역이 떠들썩하다. 이를 기념해 뭉크박물관과 국립박물관은 특별전 준비가 한창이다. 유년시절부터 성인이 된 이후까지 어머니와 형제들의 죽음을 차례로 지켜봐야 했던 뭉크는 불안과 고독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격렬한 색감과 왜곡된 형태로 표현해냈다. 6월2일부터 시작된 뭉크 특별전은 1903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 작품은 국립박물관에서, 이후 작품은 뭉크 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다. 특별전은 오는 10월13일까지 계속된다. 오슬로의 햇살을 만끽하기 가장 좋은 곳은 도심의 북서쪽에 위치한 비겔란 조각 공원이다. 로댕의 영향을 받았지만 특유의 섬세함으로 인간의 고뇌를 표현해냈다는 평가를 받는 그의 작품 200여 점이 정문에서 후문까지 길 양옆으로 늘어서 있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주제로 작업한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탑 모양의 ‘모노리스Monolith’. 제작 기간이 13년이나 걸린 것으로 전해지는 이 대작은 121명의 남녀노소가 위로 올라가려 애쓰는 모습이다. 태어나 성장하고 늙어 가는 인생을 표현했다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어찌 되었든 조급증에 지친 사람이라면 이 앞에서 잠시 서성이게 될 것이다. 이 공원에서 시선과 마음을 훔치는 것은 비단 비겔란의 작품뿐이 아니다.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이곳에선 오슬로 시민들의 행복한 일상을 쉽게 엿볼 수 있다. 2008년 개장한 오슬로 오페라하우스는 노르웨이에서 드물게 호들갑스런 화제를 낳았던 곳이다. 설계자 스뇌에타의 유명세나 고가의 대리석과 화강암, 세계 최고 수준의 음향 시설 등 호사스런 부연 설명은 차치하더라도 노르웨이의 상징인 피오르를 형상화한 구조는 이방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비스듬한 경사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새 지붕 위에 서게 되는 독특한 구조의 오페라하우스는 유리 안으로 들여다보이는 내부 시설만큼 바다를 향한 전망도 아름답다. 여름 기운이 더 완연해지면 오슬로 시민들은 이곳에서 피크닉을 즐기며 발레와 오페라 등을 만끽할 게다. 오페라하우스 인근인 오슬로 중앙역에서 왕궁에 이르는 칼 요한슨 거리가 오슬로 최대 번화가다. 이 번화가를 중심으로 노벨평화상 수상식이 열리는 시청사와 수상 만찬이 열리는 그랜드 호텔, 그리고 국회의사당과 오슬로 대성당, 국립극장, 입센 뮤지엄 등이 조밀하게 자리하고 있다. 매년 12월이면 이 조용한 도시는 노벨평화상 수상식으로 소란스러워진다. 헛갈리는 이들을 위해 잠시 짚고 넘어가자면 평화상을 제외한 여타의 노벨상 시상식은 모두 스웨덴에서 거행된다. 오직 노벨 평화상만 이곳 오슬로에서 진행된다. 그 까닭을 두고는 설이 분분한데, 이유야 어찌 되었든 매년 세계 평화에 공헌한 이들을 맞이하는 것은 분명 가슴 벅찬 일일 게다. 그래도 명색이 수도인데 조금은 더 왁자한 자극을 원한다면 도심 북동쪽에 위치한 마탈렌Mathallen을 추천한다. 마탈렌은 건축자재 공장과 타이어 공장을 거친 뒤 방치되었던 낡은 건물을 레노베이션해 음식 백화점으로 살려낸 ‘잇플레이스’다. 3층 구조물인데 1층에 30여 개 상점이 오밀조밀 모여 있고 2·3층은 테두리에만 독특한 성격의 업장을 배치했다. 산업시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인테리어나 다채로운 음식의 변주를 보고 있노라면 흡사 뉴욕의 첼시 마켓이 떠오른다. 각각의 가게들은 좋은 품질의 식재료와 음식을 판매한다는 자부심이 가득하다. 또 요리강습과 실습, 푸드 페어 등 음식에 관한 다양한 행사도 진행 중이다. 공원에서, 뮤지엄에서, 레스토랑에서 마주친 오슬로 시민들이 빠뜨리지 않고 언급한 몇 개의 단어가 있다. 가족, 자연, 오늘 그리고 행복. 너무 당연해서 자주 잊고 사는 그것들에 콕콕 방점을 찍는 이 현명한 도시. 우리가 오슬로를 여행할 때 놓지 말아야 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BERGEN 베르겐 과거의 영화는 지금도 계속된다 세상 어디나 있는 라이벌 도시는 이곳 노르웨이에도 있다. 오슬로보다 먼저 수도였던 노르웨이 제2의 도시 베르겐. 도시 면적은 비슷하지만 인구로 보면 오슬로의 절반 규모인데도 베르겐 사람들은 오슬로를 마치 철없이 혈기 넘치는 어린 동생 보듯 한다. 상주인구가 25만에 불과한 이 작은 도시는 그러나 연중 문화 행사가 빼곡해 유럽 전역에서 밀려드는 문화 탐욕가들로 넘쳐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매년 5월 말 열리는 ‘국제 페스티벌’로 10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노르웨이 최대 문화 축제다. 노르웨이 국왕이 참석해 개막 테이프를 자르는 이 축제를 직접 즐기기 위해서는 적어도 반년 전에 호텔을 예약해야 할 정도란다. 실제로 이곳은 14~16세기 런던, 브뤼헤 등과 함께 유럽을 대표하는 한자 동맹의 주요 거점이자 북유럽 최대의 물류 무역항이었다. 특히 대구와 소금 거래로 유명세를 떨쳤는데, 당시 이곳에서 거래되는 물량이 북유럽 최고였다니 베르게너의 자부심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닌 듯하다. 선원과 상인으로 넘쳐나는 왁자한 부둣가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브리겐Bryggen, 삼각형의 뾰족한 지붕이 열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사실 본래의 목조 건축들은 수차례의 화재로 소실과 복원을 반복했다. 특히 1702년 대화제로 일대는 완전히 잿더미가 되었는데, 20세기 들어 사료를 바탕으로 세심하게 복원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브리겐은 1979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과거 말린 대구를 보관하던 창고 자리는 현재 다양한 예술가들의 공방과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 등으로 운영되고 있다. 동화 같은 브리겐의 예쁜 정면 얼굴을 볼 수 있는 곳은 항구 건너편 어시장이다. 시장이라고 부르지만 세련된 건물 안에 자리한 쾌적한 공간이다. 바닷가재와 대구, 캐비아까지 다양한 해산물이 요리하기 좋게 손질되어 있다. 해산물뿐 아니라 질 좋은 노르웨이 치즈와 버터, 수공예품도 판매한다. 또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따뜻하고 고소한 생선스프와 짭조름한 생선튀김도 여행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이 도도한 도시는 어느 계절에 방문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기억을 안고 돌아갈 수 있겠다. 연중 270일이나 비가 내리는 이 도시는 하루에도 먹구름이 끼었다가 햇살이 반짝였다가 우박이 내렸다가 다시 청명하게 개는 변덕스런 일기를 선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잦은 비 덕분에 베르겐은 청정한 노르웨이에서도 유난히 깨끗한 도시로 명성이 높다. 이 깨끗한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보려면 플뢰엔FlØyen 산 전망대에 오르면 된다. 산의 경사면을 따라 놓인 레일 위를 날아오르듯 부드럽게 이동하는 푸니쿨라Funicular에 몸을 실으면 약 7분여 만에 320m 높이 정상에 다다른다. 탁 트인 전망대의 시야는 그야말로 ‘파노라마 뷰’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듯하다. 호수와 항구, 피오르와 도심이 한데 어우러진 베르겐의 모습이 그야말로 거칠 것 없이 펼쳐진다. 오슬로에 에드바드 뭉크가 있다면 베르겐에는 에드바드 그리그Edvard Grieg가 있다. 물론 이런 이분법적인 구분은 바람직하지 않다. 뭉크 역시 이곳 베르겐에서 상당 부분 영감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며, 그리그가 베르겐을 떠나 있었던 시간도 제법 길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르겐에서 그리그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그는 누구보다 노르웨이적 색채가 짙은 음악가로 명성이 높은데, 우리에게도 익숙한 ‘페르귄트 모음곡’ 중 ‘솔베이지의 노래’를 들어 보면 당시 식민 상황이던 조국에 대한 그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하다. 그리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원하는 만큼 음악을 공부하고 작업하면서 오페라 가수였던 아내 니나와 평생을 해로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남모를 아픔이 있었으니 어린 딸을 잃고 그 아이를 평생 그리워하며 살았다. 그리그 부부가 30대 중반부터 여름철에 지냈던 생가가 바로 베르겐 외곽에 있는 트롤하우겐이다. 북유럽에서 요정을 가리키는 ‘트롤하우겐’은 노르웨이 사람으로는 눈에 띄게 단신이었던 그리그의 별명이기도 했는데, 그의 집이 지금도 요정의 정원으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그리그 부부가 합장된 묘가 있는 이곳에는 그들이 사용했던 스타인웨이 피아노와 악보, 편지, 초상화 등의 흔적이 남아있다. 집에서 바다로 스무 걸음쯤 내려간 곳에 한 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만한 작은 오두막이 하나 있는데 바로 복원한 그리그의 작곡실이다. 그리그는 바다로 향한 창문을 중심으로 피아노와 책상, 오선지와 펜 등 최소한의 물건을 비치해 두고 곡을 썼다. 그리그 사후 이 작곡실을 복원할 때 전해지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아내 니나에게 최종 점검을 받는 중에 니나가 갑자기 집으로 뛰어가더니 두꺼운 악보집을 가져다 피아노 의자에 놓았다고 한다. 이것 없이 그리그의 작곡실은 완성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153cm의 단신이었던 그리그는 피아노를 칠 때 두꺼운 악보집을 깔고 앉아야 편하게 건반을 두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작곡실과 함께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을 갖춘 200석 규모의 콘서트홀이 자리하고 있다. 자연과 예술이 이렇게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곳에서 어떤 음악이 울려 퍼진들 감동적이지 않을까. 글 Travie writer 김정은 사진 Travie writer 김정은, 트래비CB, Travie writer 노중훈 취재협조 노르웨이관광청 www.visitnorway.com ▶travie info 항공 현재 우리나라에서 노르웨이까지 직항 정규 노선은 없다. 핀에어, KLM 등 주요 유럽 항공사가 1회 경유로 오슬로와 베르겐을 당일 연결한다. 언어 공용어는 노르웨이어지만 노르웨이 사람들은 1~2개의 외국어에 익숙하다. 영어가 가능한 여행자라면 노르웨이에서 언어 때문에 불편을 겪을 일은 거의 없다. 전기 220V이며 한국과 플러그 모양도 동일하다. 화폐 노르웨이 크로네Krone를 사용하며 공식적인 표기는 NOK이나 줄여서 kr로 표기한다. 1크로네가 약 200원 정도. 유로존이 아닌 만큼 유로화는 거의 통용되지 않는다. 여행자가 피부로 느끼는 물가는 상당히 비싼 편이라 카페에서 마신 커피 한 잔이 약 1만2,000원, 편의점에서 구입한 생수 한 병이 약 6,000원이었다. 날씨 백야가 시작되는 6월부터 10월 초까지는 날씨가 화창하고 청명해 그야말로 노르웨이 여행의 황금시즌이라 할 만하다. 오슬로의 7월 평균 낮 최고기온은 21.5도. 음식 바이킹의 후예답게 생선을 즐겨 먹는데 식탁에 자주 오르는 메뉴가 대구와 청어, 연어 등이다. 이와 더불어 빵과 감자의 소비량이 높다. 농지 비율이 낮기 때문에 야채나 과일의 생산량이 미미한 대신 목축업이 발달해 버터와 치즈 등 유제품의 품질이 좋다.
  • 가짜 위안화 판쳐요 마오쩌둥 잘 보세요

    가짜 위안화 판쳐요 마오쩌둥 잘 보세요

    한국인이 중국 현지에서 위안화 위조지폐(위폐)로 피해를 보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에서 위안화 위폐를 받았다고 국내 은행에 접수된 신고 사례는 165건에 달한다. 위안화 위폐 신고는 2004년만 해도 10건 안팎이었지만 2006년 40건, 2008년 102건으로 늘었다. 최근 국내 은행에 신고된 외화 위폐는 미국 달러화가 3분의2로 가장 많고, 나머지는 위안화다. 국내 은행은 실제 유통되는 위안화 위폐가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억선 외환은행 위변조대응센터 차장은 “위폐 신고는 유통량의 5% 정도”라면서 “지폐를 주고받을 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별도 장비 없이도 위폐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위안화 위폐는 4가지 특징으로 구별할 수 있다. 마오쩌둥(毛澤東) 초상화 인쇄 상태, 은화(隱畵·숨은 그림), 액면 숫자의 색깔, 시각장애인용 점자의 느낌이다. 위폐는 마오쩌둥 초상화의 붉은색 잉크 번짐이 심해 진하고 거칠다. 지폐의 좌측 중앙 부분을 빛에 비추면 나타나는 마오쩌둥 은화는 진짜 지폐의 경우 뚜렷하게 나타나지만, 위폐는 검은 편이다. 왼쪽 아래에 보이는 액면 숫자(100) 역시 진짜 지폐는 보는 방향에 따라 색상이 변하지만, 위폐는 그렇지 않다. 오른쪽 아래의 시각장애인용 점자를 손끝으로 만져보면 위폐는 진폐와 달리 오톨도톨하지 않다. 박 차장은 “환전할 때 될 수 있으면 위폐가 적은 소액(50위안, 10위안 등)으로 바꾸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면서 “금액이 많지 않으면 지폐에 일련번호나 별도 표시를 작게 해놓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60년간 오로지 연필로만 그려낸 인고의 나날들

    60년간 오로지 연필로만 그려낸 인고의 나날들

    철권통치로 서슬 퍼렇던 1970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서울 미도파화랑에서 열린 원석연(1922~2003) 화백의 개인전을 찾았다. 박 전 대통령은 큼지막한 종이에 그린 개미 그림을 바라보다가 새마을 운동의 구호인 ‘근면, 자조, 협동’을 떠올리며 격려했다. 원 화백의 입가에는 쓴웃음이 감돌았다. 그에게 개미는 빈곤하고 고달픈 사회상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고뇌의 흔적이었다. 그림 속 수백 마리의 개미 떼가 아웅다웅 다투는 주변에는 개미들의 몸통에서 떼어진 다리가 처참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원 화백의 이름이 화단에 각인된 것은 ‘개미’ 연작 덕분이다. 실물 크기로 정밀하게 그려진 수백, 수천 마리의 개미 떼가 탄성을 자아낸다. 개미 그림은 6·25전쟁 피란 시절 비롯됐다. 전쟁의 비인간적인 단상을 탱크의 바퀴 자국이 깊게 파인 길에 누군가 벗어 놓은 고무신 한 짝, 그리고 참혹한 개미 떼의 모습으로 그려냈다. 개미 떼뿐만이 아니다. 줄에 엮인 굴비나 마늘 그림은 순수하지만 알 듯 모를 듯 고즈넉한 외로움과 슬픔을 불러온다. 거미줄에 걸린 벌레를 노려보며 나뭇가지 위에 걸터앉은 새 그림에는 ‘외로운 녀석’이란 이름을 붙였고 멍하니 한 곳을 응시하는 귀여운 강아지의 처량한 모습을 담은 그림은 ‘고독한 녀석’이라 불렀다. “내 모습이 꼭 저렇다”며 자화상이라고 했다. 말년에는 호미, 엿가위, 칼 등의 쇠붙이를 즐겨 그렸다. 영원할 것 같은 쇠붙이도 녹슬고 뭉개져 낡은 모습을 띤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역시 자신의 처지를 빗댄 것이다. 이중섭과 교류하며 현실 세계의 아픔을 개미, 새, 닭, 개, 생선 등을 통해 주로 표현했다. 60년 가까이 오로지 연필로만 그림을 그린 원 화백의 10주기 추모전이 20일부터 다음 달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열린다. ‘이색 작가’ ‘열외적인 작가’로 불린 원 화백은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예술인으로 유명하다. 오광수 미술평론가는 “일정한 소속의 화랑도 없고 주변에 사람도 많지 않았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연필과 종이로만 살아온 삶은 인고의 나날로 점철됐다”고 말했다. 원 화백은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났으며 15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그림을 배웠다. 22살 때 귀국해 1947년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런 그가 박 전 대통령과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주한 미국 공보원에서 근무하다 1963년 도미해 닉슨 전 대통령의 초상화를 그렸다. 1960년대 후반에는 정처없이 전국을 누비다가 경북 구미에서 발견한 허름한 초가를 화폭에 옮기려다 건장한 사내들에게 쫓겨 나오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의 생가였다. 추모전에는 박 전 대통령 생가 그림도 걸려 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대화한다던 터키 총리 하루만에 최루탄 진압

    터키에서 반정부 시위가 12일째로 접어든 11일(현지시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는 ‘무관용’ 원칙을 천명하며 시위대에 대한 강경 진압을 예고했다. 이날 여당인 정의개발당(AKP) 국회의원들에게 한 연설에서 에르도안 총리는 “이번 사건은 이제 끝났다. 더는 관용을 (시위대에) 보이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시위가 ‘폭력의 악순환’ 양상으로 바뀌고 있다”며 “민주적 요구를 위해 투쟁하는 것은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전날 터키 정부는 에르도안 총리가 12일 시위대 대표와 회동할 예정이라고 발표해 사태 해결에 대한 기대를 모았으나 하루 만에 강경한 태도로 돌변, 반정부 시위가 재점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지난 1일 이번 시위가 촉발된 탁심광장에서 철수했던 경찰은 이날 오전부터 진압 차량 2대를 동원, 광장 인근에서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을 향해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며 진압에 나섰다. 시위대도 경찰을 향해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맞섰으나 속수무책이었다. 탁심광장 뒤편의 게지공원으로 물러난 수천명의 시위대는 텐트 수백 개를 설치한 채 타이이프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계속했다. 휘세인 무틀루 이스탄불 주지사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우리의 목적은 광장 주변에 있는 현수막과 동상을 제거하는 것”이라면서 “게지공원과 탁심광장은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탁심광장은 ‘타이이프(총리) 사임’, ‘입 닥쳐, 타이이프’라고 적힌 현수막으로 뒤덮였으나 모두 철거됐다. 경찰은 대신 터키 국기와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케말 파샤의 초상화를 내걸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심장에 대한 연민… 삶에 대한 찬가

    심장에 대한 연민… 삶에 대한 찬가

    “시가 써지지 않는 기간은 삭막하고 목마른 시간이지요. 어느 때인가 그림자처럼 시가 잡히면 몇 달간 몇 편을 쓰게 되는데 젊을 땐 그게 반갑고 같은 키에서 손을 덥석 잡는 심정이었는데…. 이젠 노쇠에서 오는 고달픔에 시가 나의 초상화처럼 뼈마디 마디마다 아파와요.” 수화기 너머 시인의 입말은 그대로 시어(詩語)였다. 1953년 첫 시집 ‘목숨’을 낸 지 60주년. 첫 시집의 환력(還曆)을 맞은 김남조(86) 시인에게 왜 아직도 시 앞에 낮게 엎드리냐고 묻자 돌아온 답이었다. ‘하여 이번에도/나는 용서할 입장 그 아니고/용서받을 처지라고/기죽어 머리 끄득이느니/시여 한평생 나를/이기기만 하는 시여’(나의 시에게5) 최근 17번째 시집 ‘심장이 아프다’를 펴낸 시인은 6일 전화통화에서 “시에 대한 사념도 상처를 곁들이며 잡히는 것”이라며 “근래 나의 시는 진단서와 처방전을 붙여오는 듯하다”고 했다. 시가 나보다 더 상처 입고 아픈 것이라 깨달으니 시 앞에 겸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신간의 제목과 표제시는 모두 ‘심장이 아프다’다. 시인은 모든 동물과 식물이 지닌, 생명의 시초에서부터 마지막 그 순간까지 간단없이 뛰어야 하는 심장에 대한 연민을 토로했다. 그러나 그것은 바꾸어 말하면 유한한 인생에 대한 찬가다. ‘심장이 이런 말도 한다/그리움과 회한과 궁핍 고통 등이/사람의 일상이며/이것이 바수어져 물 되고/증류수 되기까지/아프고 아프면서 삶의 예물로/바쳐진다고/그리고 삶은 진실로/이만한 가치라고’(심장이 아프다) “살아서 느끼는 궁핍, 목마름, 고통이 있더라도 사람들과 연분을 맺고 아름다운 과일의 껍질을 벗기고 안 가본 새로운 땅에 발을 딛는 한, 삶이라는 선물은 고통의 총합을 감하고도 남는 가치이지요. 나 역시 남은 날이 많지 않다는 오늘에 이르니 모든 게 절실하고 아까워요.” “종교적 경건함과 신성 탐구, 그것을 지상의 사랑으로 연결하고 결속하는 상상력”(유성호 문학평론가)은 그의 시 속에 녹아 있는 ‘인장’ 같은 테마다. 시인은 이번엔 오히려 신에게 기도를 해 달라고 간절히 의탁한다. 노 시인의 시선은 참으로 멀리까지 갔다.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휩쓸리고 할퀴어진 생명을 향한 구원과 치유의 메시지다. ‘이제는/신께서 기도해주십시오/기도를 받아오신 분의 영험한 첫 기도를/사람의 기도가 저물어가는 여기에/깃발 내리듯 드리워주십시오/(…중략) 어질어질, 가물가물한 저희에게/최소한 이 한 말씀의/천둥 울려주십시오/“내가 알고 있다 내가 참으로 알고 있다”고/오오 하느님’(신의 기도)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장애화가와 시립병원의 아름다운 동행

    장애화가와 시립병원의 아름다운 동행

    30도를 웃도는 때 아닌 무더위에 화가도 모델도 구슬땀을 흘린다. 칠순을 넘긴 환자는 초상화 모델이 처음이다. 조금이라도 젊고 예쁘게 그려주길 바래서인지 환자복을 벗고 집에서 입던 예쁜 옷으로 갈아입었다. 평소 안 바르던 립스틱도 예쁘게 바르고, 딸의 화장품도 잠시 빌렸다. 뇌졸중으로 몸의 오른쪽 부분은 편마비를 호소한다. 이 때문에 오랜 시간 앉아있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화가만큼이나 집중력을 발휘한다. 화가도 쉴 새 없이 한곳만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분주히 마커 펜을 돌려댔다. 일반적인 화가라면 모델을 배려하기 위해 안부인사라도 건 낼법하지만, 한곳에 집중하는 것도 버겁다. 화가는 일반인과 약간 차이가 있는 아웃사이더 아티스트(자폐 작가)다. 화가 김태호(27)는 어린 시절부터 자폐를 앓았다. 한 번도 정규 미술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지만, 누구보다도 그림 그리는 재미를 안다. 한번 펜을 잡으면, 한 두 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를 만큼 무섭게 집중한다.정밀화는 아니지만 모델의 특징을 정확히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족히 한 시간 30분이 흘렀다. 분주히 지나간 시간의 결과물이 탄생했다.난생 처음 초상화 모델로 참여한 전경자(74)할머니는 “투석 받으랴, 재활치료 받으랴, 힘든 투병생활 인데다가 백발에 주름도 많은 내 모습으로 모델을 할 수 있을까 많이 망설였었다”면서 “하지만 더 많이 아프기 전에 나의 모습을 하나쯤은 남겨야겠다는 마음에 1시간 30분 정도 모델이 된 기분으로 초상화를 그리게 됐다”고 말했다. 화가도 매우 만족한 눈치였다. 처음 병원 문을 들어설 때는 낮선 풍경에 살짝 당황하기도 한 듯 아빠의 손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종이와 펜을 든 화가 김태호는 지체 없이 자신의 끼를 발휘했다.화가 김태호는 비영리예술단체 ‘로사이드’ 소속의 작가다. 로사이드는 독자적으로 창작활동을 하는 사회적 소수자들을 발굴하고, 이들의 작품을 세상과 소통시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로사이드의 아트서포터들이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함께 작업 활동을 하며 세상과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로사이드는 최근 서울시 북부병원과 협력관계를 맺고 또 다른 세상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병원 1층 로비의 복도를 활용해 병원을 이용하는 환자나 보호자, 지역주민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아웃사이더 아티스트의 작품을 소개하는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현재 북부병원 갤러리에 전시중인 작품도 김태호 작가의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지난 1월 뉴욕에서 열린 ‘Outsider Art Fair’에도 초청받아 전시 될 만큼 수준 높은 작품들이다. 여기에 매월 둘째·넷째주 목요일에는 환자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함께 그리는 풍경’을 진행한다.북부병원 직원들도 두 팔을 걷었다. 직원들은 자발적 참여를 통해 매월 정기후원을 진행하고 있으며, 로사이드 아티스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권용진 북부병원 원장은 “로사이드와 전사적 협력을 통해 세상의 작은 편견을 깨는 데 일조하고 싶었다”면서 “약간의 ‘차이’가 일상적인 ‘다름’으로 인식되는 일들이 더 이상 없기를 기대해 본다”고 말했다.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이탈리아 북부 이야기 Italy, eataly, italo③Emilia Romagna 에밀리아 로마냐주

    이탈리아 북부 이야기 Italy, eataly, italo③Emilia Romagna 에밀리아 로마냐주

    Emilia Romagna 에밀리아 로마냐주 우아한 유네스코 도시들 이탈리아처럼 많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가진 나라는 없다. 그래서 그 타이틀마저 식상할 때가 있지만 막상 그 중요한 인류의 유산 앞에 서면 스스로가 얼마나 행운아인지를 알게 된다. 페라리보다 멋진 페라라에서, 손톱만한 유리조각들에 존경심을 품게 되었던 라벤나에서, 나는 무척 행운아였다. Unesco City 1 이상적인 르네상스 도시 페라라 Ferrara 포 강변에 자리한 페라라는 15~16세기에 막강한 세력을 자랑했던 에스테 공국의 보금자리로, 예술가들에 대한 활발한 후원으로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지로 번성한 곳이다. 도시의 규모를 확대할 필요를 느낀 에스테 가문의 헤르쿨레스는 1492년 비아지오 로세티Biagio Rossetti에게 그 임무를 맡겼다. ‘유럽 최초의 근대 도시’의 탄생이었다. 그리고 500여 년의 시간이 흐른 후 1995년 페라라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르네상스 시대의 도시계획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구불구불 휘어진 골목이 복잡하게 중첩되어 있는 중심지구와 북쪽의 확장된 주거지역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도시의 삶을 유통하고 있었다. 헤르쿨레안 에디션Herculean Addition으로 불리는 확장된 주거지역에서 로세티가 세운 랜드마크는 디아만티궁Palazzo dei Diamanti은 벽면이 8,000개가 넘는 피라미드 모양의 대리석 포석으로 이뤄져 일명 다이아몬드궁으로도 불린다. 당시 유럽의 부자들이 이주하여 살기 시작했던 이 주변은 지금도 모두 부유한 주택지구다. 넓은 해자 때문에 마치 호수 위에 떠 있는 듯 보이는 에스텐성Castello Estense은 1385년부터 200년간 개축이 계속된 도시의 상징이었다.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이는 이 성은 원래 도시의 북쪽을 수비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에스테 가문이 주거지를 이 성으로 옮기면서는 민중의 발란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어둡고 습한 지하 감옥이 아직도 남아있다. 거친 외관에 비해 내부는 점점 귀족의 화려한 생활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탈바꿈해 나갔다. 회랑을 세우고 대리석 발코니, 정원을 만들었다. 부속 건물에는 놀이와 유희를 테마로 한 카밀로 필리피의 프레스코화가 귀족의 호사스런 취미를 보여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산 조지오 페라라 대성당 앞에는 상인들과 장을 보러 온 사람들도 빈틈이 없었다. 아랫부분의 로마네스크 양식과 윗부분의 고딕 양식이 조화를 이루는 대성당의 파사드만 겨우 볼 수 있었다. 도시 중심과 확장된 주거 지역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가장 쉽게 확인하는 방법은 자전거 여행이다. 페라라는 인구당 자전거 보유 대수가 가장 많은 도시로도 유명하다. 평평한 지형 덕분이기도 하고, 자동차보다는 자전거가 더 편리한 도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자전거를 타고 9km 성벽 외곽을 따라 도시를 한 바퀴 도는 것이 페라라 사람들의 자전거 산책이다. 성 둘레에 커다란 나무를 심고 자전거 도로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Unesco City 2 살아있는 모자이크 라벤나Ravenna 라벤나의 전성기는 페라라보다 1,000여 년은 더 거슬러 올라간다. 5세기부터 8세기 사이에 3번이나 수도(서로마 제국, 동고트, 비잔틴 제국)의 지휘를 누렸던 도시다. 그 영광의 흔적이 8개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남아 있고 그중에서 2개를 직접 볼 수 있었다. 초기 기독교시대의 보물로 꼽히는 바실리카 산 비탈레Basilica of San Vitale의 내부도 모자이크로 라벤나를 다시 탈환한 동로마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안과 그의 부인 테오도라가 그려져 있다. 빛이 바래지 않은 모자이크화 속에서 황제와 여왕은 여전히 화려했고 여자들의 컬러풀한 의상도 그대로였다. 빛이 잘 드는 날이면 더욱더 찬란하게 빛난다고 했다. 이 세계문화유산에 영감을 받은 샤넬의 디자이너는 라벤나 스타일의 쥬얼리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갈라 플라치디아의 원형무덤Mauseleum of Galla Placidia을 설명하는 한 단어는 보석상자다. 평범하고 둔해 보이기까지 하는 내부와 달리 어두운 내부에는 찬란한 보석처럼 알알히 생생한 모자이크 그림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금박 위에 반짝이는 유리들은 때론 별이고, 때론 꽃이고, 때론 사람이 된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라벤나로 신혼여행을 왔다가 이곳의 모자이크를 보고 ‘나이트 & 데이’라는 곳을 작곡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비잔틴 시대의 황실 판사들의 초상화를 비롯해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알 수 있는 모자이크들이 천장 전체를 덮고 있다. 물론 바닥도 돌 카펫, 즉 모자이크로 덮여 있었다. 라벤나 사람들이 가지는 모자이크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일주일 동안 40시간을 수료하면 되는 모자이크 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골목어귀마다 붙어 있는 도로명 표지판을 모두 모자이크로 바꾸는 작업은 안나 피에타씨Anna Fietta의 지휘아래 이루어졌다. 그녀의 공방 겸 숍에서는 다양한 모자이크 작품과 재료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라벤나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또 하나의 자부심은 중세 최고의 서사시인 <신곡>의 저자, 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다. 정치적인 이유로 고향 피렌체로 돌아가지 못하고 19년 동안 망명 생활을 했던 그는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그가 죽은 후에야 베네치아는 유골을 되찾으려 했지만 라벤나는 유골을 빼돌려 가면서 지켜냈다. ▶travie info 꼬는 것이 실력, 빠네 페라라레제 맛에 대한 선입견을 줄 수 있으므로 이 빵의 모양을 다른 동물이나 곤충에 비교하는 일은 삼가겠다. 사진에서 보이는 대로 사지가 꼬인 빵이다. 제빵사가 실력을 한껏 뽐내기 위해 만들기 시작했다는 이 빵은 1536년부터 귀족의 만찬 테이블에 오르기 시작해 지금까지도 ‘세계 최고의 빵’이라는 찬사를(이탈리아 사람들에게) 듣고 있다. 하지만 정말 맛있는 페라라 빵을 위해서는 이 지역의 물과 밀가루뿐 아니라 습도마저 필수라고 하니 본토에서만 그 맛을 느낄 수 있나 보다. 맛있는 빠네 페라라레제를 기본빵으로 제공하는 레스토랑 겸 식료품점 쿠시나 부테가Cusina Butega는 그릇의 소리만 듣고도 금이 간 것을 알아차리는 숙련된 종업원들만큼이나 자부심을 가져도 좋은 에밀리야 로마냐 음식을 제공한다. Cusina Butega | 주소 Corso Porta Reno 26/28 Ferrara 문의 +39 0532 209174 www.cusinaebutega.com 이탈리안의 점심식사, 피아디나 이탈리안의 일상적인 점심메뉴가 된 피아디나Piadina는 라벤나의 자랑이기도 하다. 얇고 평평한 밀가루 빵 위에 재료를 넣고 말아먹는 피아디아는 간단하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샌드위치와 비슷하다. 하지만 라벤나의 카페 까데뱅Ca’ de’ Ven에서 맛본 ‘원조’ 피아디나는 샌드위치 재료가 아니라 그 자체로 맛있는 빵이었다. 밀가루에 라드돼지기름를 듬뿍 넣어 만든 반죽을 팬에 구워 만들기 때문에 적당히 기름지면서도 쫄깃했다. 라벤나 관광청 사람들이 선택한 이 레스토랑은 15세기에 세워진 유서 깊은 건물에 어울리는 앤티크 선반과 서가, 에밀리아 로마냐 지역의 엄선된 와인 등으로 이 지역의 전통과 문화를 품위 있게 보여주는 곳이다. Ca’ de’ Ven | 주소 Via Corrado Ricci, 24-48100 Ravenna 문의 +39 0544 30163 www.cadeven.it ● 이탈리안 식탁의 기본 너무 흔해서 쉽게 먹는 김치가 사실은 상당한 정성의 산물이듯, 흔하게 먹었던 파스타가 사실은 상당한 인내심의 산물이었고, 빵이나 찍어 먹던 발사믹 식초에도 명품이 따로 있었다. 커피에도 역사가 있고, 치즈는 시간의 산물이다. 알고 먹으니 다른 맛. 더 진하고 고소하고 감사한 맛! Boun Giorno! Torino Caffe 토리노의 아침, 바로크 시대의 건축물이 많은 격자형 도시의 골목을 기웃거리다 110년 전부터 산 카를로 광장 귀퉁이에 자리잡은 카페 토리노에 들어갔다. 마롱 글라세Maron Glaces·설탕시럽을 입힌 밤와 잔두이야Ganduia·헤이즐넛초콜릿의 먹음직한 모양새에 넋을 잃고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드니 천장 모서리에 이런 말이 새겨져 있었다. “a little too much is just enough for me.조금 넘치는 것이 내게는 충분한 것이다.” 그 순간 내게 든 생각은 ‘커피 한잔을 더 마셔도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래, 결핍보다는 약간의 과잉을 ‘충분’의 기준으로 삼아 보자! 단테의 희곡에 나온다는 이 문장을 나는 이번 이탈리아 여행을 위한 계시로 받아들였다. 한결 죄책감 없는 마음으로 두 번째 커피를 위해 라바짜 카페Lavazza cafe 1호점을 찾아갔다. 110여 년 전 토리노에서 시작된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이고 감각적인 커피 광고로 유명한 커피 브랜드답게 내부의 인테리어도 강렬했다. 그러나 그 현란함 속에서도 이탈리아 할머니들은 색 바랜 느낌이 아니었다. 토리노의 명물 커피라는 비체린Bicerin(에스프레소, 초콜릿, 뜨거운 우유거품을 층층이 섞은 커피)을 영접할 기회는 없었지만 충분히 족한 마음이 들었다. 내 노년의 어느 날, 아침 9시의 풍경이 저러하길. 그것은 카페인보다 진한 각성이었다. Caffe Torino | 주소 Piazza San Carlo 204 10100 Torino 문의 +39 011-5451118 슬로시티, 슬로치즈 브라 소믈리에도 만났고 바리스타도 만나 봤지만, 치즈감별사는 처음 만났다. 그 장소는 브라Bra였다. 이 도시를 설명하는 두 단어는 ‘슬로푸드’와 ‘슬로시티’다. 패스트푸드에 대항하여 일어나기 시작한 슬로푸드 운동의 세계연맹(1989년 결성) 본부가 브라에 설치됐다. 그리고 슬로푸드 운동의 연장선에서 브라는 슬로시티 1호(1999년)로 지정됐다. 대표적인 슬로푸드 치즈. 브라는 2년에 한 번씩 세계치즈축제가 개회되는 곳이기도 하다. 이 도시에서 1920년부터 3대째 치즈 숙성 사업을 이어오고 있는 지오리토Gilolto 가문의 피렌조Fiorenzo씨(사진 왼쪽)도 매번 이 축제에 참가해 엄성된 브라치즈를 내놓는다. 이 지역의 200여 가구가 생산하는 치즈를 감별하고, 특별한 치즈로 숙성해 내는 것이 그의 일. 서늘한 지하 저장고는 치즈 특유의 콤콤한 냄새가 진동했다. 최소한 6개월 이상 숙성시킨 치즈를 두로Duro라고 하고 1년 이상 주기적으로 올리브 오일을 덧발라가며 숙성시키는데 지오리토에서는 보통 3년 정도 숙성시킨 치즈를 유럽, 미국, 일본 등지에 수출하고 있다. 어떤 치즈들은 홍어로 치면 흑산도보다 진하다는 나주 홍어쯤 되는데, 그럴수록 마니아들은 더 환장하게 마련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지오리토만의 독창적인 치즈는 브라취크braciuk였다. 질 좋은 치즈를 네비올로Nebbiolo, 바르베라Barbera 등 피에몬테 지역 품종의 포도껍질에 파묻어 적어도 3개월 이상 숙성시킨, 말하자면 ‘취한’ 치즈다. 그래서 이름도 취한drunken을 뜻하는 지역 방언인 ‘취크ciuk’다. 와인 향기와 함께 톡 쏘는 듯한 맛은 지금도 입 안에서 맴돈다. 피오렌조 지오리토Fiorenzo Giolito | 주소 Via Monte Grappa, 6-12042-Bra(CN) 문의 +39 0172 412920 www.giolitocheese.it 내가 만든 파스타 볼로냐 요리학교 ‘요리의 수도’라고도 불리는 볼로네제를 대표하는 메뉴는 미트소스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 ‘볼로네제 소스 파스타’다. 소스의 비법까지야 배울 틈이 없었지만 파스타를 만들어 볼 기회는 있었다. 수많은 파스타 종류 중 도전할 종목은 토르텔리니Tortellini였다. 밀가루와 계란 30개만으로 치댄 반죽으로 피를 만들고 속을 채운 이 파스타는 그 생김새 때문에 비너스의 배꼽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손가락의 한마디만큼 작은 토르텔리니를 만들기 시작했다. 어렵다기보다는 흥미를 잃기 쉬운 노동집약적 요리였다. 체험자들의 얼굴에 지겨운 기색이 비치자 곧 응용코스로 대형 토르텔리니 만들기가 시작됐다. 같은 요령이지만 물만두만큼 사이즈가 커지자 다시 속도가 붙었고 그만큼 식욕도 빠르게 상승했다. 체험을 끝내고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갈증을 푸는 동안 드디어 고기 육수에 끊여 낸 토르텔리니가 냄비째 나왔다. 3가지 이상의 파스타 요리가 나온다는 말에 양을 조절하려 했으나 자제하기 어려울 만큼 토르텔리니는 맛있었다. 볼로냐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교실이자 레스토랑인 베키아Vecchia Scuola의 성공은 알레산드라 Alessandra Spisni씨의 명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생파스타 실습을 책임지는 유쾌한 남자, 알렉산드로씨(사진)는 그녀의 동생이다. 전문가 코스부터 일주일 코스, 점심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Vecchia Scuola Bolognese | 주소 via Galliera 11 40121 Bologna Italy 문의 +39 0516491576 www.lavecchiascuola.com 회장님의 식초 모데나 발사믹 모데나의 식초를 기준으로 한다면 이 세상 모든 식초는 인스턴트다. 포도 외에 어떤 첨가물도 들어가지 않는 전통방식의 발사믹 식초를 만드는 과정은 순전히 시간의 응축이기 때문이다. 10월에 수확하여 깨끗하게 씻은 포도를 으깬 후 만 하루 동안 푹 끊여낸 포도액은 저장고로 옮겨서 배럴에 담긴다.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는 5~8개의 배럴들은 ‘가족’이라고 불린다. 그런 가족들이 한 서른 세트쯤 될까. 그리 넓지 않은 2층 저장고는 서늘하면서도 시큼한 공기로 채워져 있었다. 18세기부터 가족을 위해 만들기 시작한 식초는 이제 가문의 중요한 사업이 되었다. 같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식초라고 해도 사용하는 저장통의 목재가 다르기 때문에 맛도 모두 다르다. 구멍이 뚫린 배럴에서 증발하고 숙성되면서 응축된 발사믹 식초가 한 단계씩 작은 통으로 옮겨지면서 증발을 계속하여 식탁에 오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짧게는 12년, 길게는 수백년이다. 포도 원액들이 섞이므로 사실 아무도 그 정확한 연도를 알 수는 없다. 모 호텔 홍보담당자의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모데나의 식초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그룹의 회장님이 먹는 식초다. 그러나 아무리 재벌이라고 해도 욕심껏 모데나의 식초를 구매할 수는 없다. 18세기부터 시작된 이 마을의 식초 담그기는 소규모의 가내 수공업으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방문했던 곳에서도 연간 생산량은 500~600병 정도라고 했다. 시간이라는 것에 맛이 있다면 모데나의 발사믹 식초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시고, 달고, 진한 감칠맛. 마지막 몇 방울만 떨어뜨려도 샐러드를, 빵을, 치즈를 완전 다른 요리로 만드는 신의 한수 같은 맛 말이다. 품질인증(P.D.D)을 받은 모데나 전통 발사믹 식초의 가격은 100ml들이 한 병에 12년산 40유로, 25년산은 70유로다. 다른 식초와 비교하자면 고가지만, 그 오랜 시간으로 나누어 생각하자면 오히려 저렴하게 느껴진다. www.balsamico.it ●이방인처럼 쇼핑하고 이탈리안처럼 먹어라 할인과 세금 환급이라는 ‘이방인 쇼핑 특권’을 꼭 누려야 할 나라는 말할 것도 없이 이탈리아다. 아무래도 홈그라운드 브랜드들이 상대적으로 품목도 다양하고 사이즈 선택의 폭도 넓다. 디자이너 아웃렛 맥아더글렌의 장점이 두드러지는 곳도 이탈리아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살바토레 페라가모(피렌체), 프라다(밀라노), 불가리(로마), 돌체앤가바나(밀라노), 질샌더(밀라노), 베네통(트레비조) 등은 부연이 필요없는 브랜드다. 여행가방으로 유명한 브릭스(올지아테 코마스코), 여성 핸드백으로 유명한 코치넬리coccinelle(파르마), 남성복 브리오니(펜네)와 투스카니 스타일 패션 브랜드 고뗄리Gotelli(세라발레)는 이탈리아에서 꼭 노려야 하는 쇼핑리스트다. 의류와 보석뿐 아니라 향수, 화장품, 스포츠용품, 가정용품 브랜드들도 다양하게 입점해 있다. 동일 매장에서 154.94유로 이상을 지출하면 구입 금액에서 최대 15%를 다시 환급까지 받을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누려야 할 또 하나의 특권은 음식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방인처럼 말고 이탈리안처럼 먹기를 권한다. 버거킹을 대신해 선택할 수 있는 간단한 요리도 그리 비싸지 않고, 와인 한잔을 곁들이는 것도 이탈리아이기에 꼭 누려야 할 호사다. 노벤타 디 피아베 Noventa di Piave Designer Outlet 펜디Fendi, 아르마니Armani 등의 제품이 비교적 원활하게 공급된다는 소문이 있는 곳으로 뉴욕의 패션 블로거들, 베니스 비엔날레의 작가들이 놓치지 않는 매장이다. 베니스에서 30분, 파도바에서 1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여름마다 음악 페스티벌 등의 문화행사도 개최한다. 주소 Via Marco Polo 1 30020 Noventa di Piave 문의 +39 0421 5741 찾아가기 베니스 트론체토 광장 앞에서 매일 오전 10시에 셔틀버스(왕복 15유로)가 출발한다. 산 도나 디 피아베San Dona di Piave에서도 왕복 버스를 운행한다. 세라발레 디자이너 아웃렛 Serravalle Designer Outlet 이탈리아 북동쪽 리구리아 해안 지역의 건축 양식에서 영감을 받은 이 쇼핑몰은 이탈리안의 감성을 잘 전달하는 쇼핑 공간이다. 유일하게 불가리가 입점해 있다는 점에서 불가리 마니아에게는 필수방문지로 꼽히는 곳. 베네통 매장의 규모도 크다. 밀라노에서 1시간, 제노바에서 3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주소 Via Della Moda,1-15069 Serravalle Scrivia 문의 +39 0143 609000 www.mcarthurglen.it ●두 개의 시간이 만나다 일주일 동안 이탈리아 북부를 누볐다. 지도를 펼쳐 놓고 헤아려 보니 피에몬테, 베네토, 에밀리아 로마냐의 3개 주에 걸쳐 있는 11개의 도시와 마을이었다. 도시의 중심에서 중심부로, 재빠르게 우리를 이동시켜 준 이탈리아 열차 시스템을 충분히 활용한 덕택이다. 직접 타본 이딸로에는 두 가지 속도가 존재하고 있었다. 페라리를 닮았다는 명품 초고속 열차의 경쾌한 속도감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라면, 그로 인해 한층 여유로워진 마음으로 풍경을 즐기거나 맥주를 마시는 것이 기차 안의 풍경이다. 마치 빠르게 달리는 기차가 외부의 시간을 흡수하여 내부로 전달해 주는 것이 아닌가 싶은, SF적 상상을 해보게 된다. 창밖을 보며 이런 공상을 펼치는 것도 기차 여행이 주는 쏠쏠한 재미일 것이다 . 시간의 경계를 넘나들 정도로 미래적이어서 그런지 이딸로의 경쟁 상대는 기차가 아니라 비행기다. 물론 종목은 속도가 아니라 서비스 경쟁이다. ‘격의 없는 매너’로 유명한 유럽 항공사 승무원이 아니라 상냥하고 또 예쁘기도 한 우리나라의 승무원이 연상되는, 그런 친절함을 위해 철저하게 서비스 교육을 한 덕택이다. 영어구사 능력도 모두 수준급이다. 그들의 서비스를 듬뿍 받을 수 있는 곳이 ‘까사 이딸로Casa Italo’다. 이딸로 전용 대기실이자 안내데스크 겸 예약센터인 이곳은 이딸로 특유의 컬러인 벨벳 레드와 실버가 어우러지는 우주적인 공간이다. 심플한 픽토그램과 벽면에 내장된 키오스크 들은 디자인, 성능, 서비스 등 모든 면에서 초고속 열차의 새로운 기준을 세우려는 진보적인 이딸로의 노력이 시각화된 결과물이다. <월페이퍼>가 주관한 2013년 디자인 어워드에서 ‘올해의 생활 향상’부분을 수상하기도 했다. 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이탈리아정부관광청 한국사무소 02-775-8806, 레일유럽 한국사무소 02-3789-6110, 맥아더글랜 한국사무소 02-553-0822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피에라 피지Piera Pizi 밀라노역 스페셜리스트 “여기 있는 서비스 직원들은 모두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고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밀라노에 있는 2개의 역을 오가면서 총괄업무를 담당했는데 좋은 피드백을 많이 들었어요. 저는 예전에 호텔에서 일했었는데 이딸로의 서비스는 호텔에 못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경쟁 상태는 항공사 승무의 수준의 친절과 서비스죠. 하지만 요금은 무척 합리적인 수준입니다. 시장 조사를 통해서 더 많은 승객들이 이딸로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거든요. 참! 이딸로 열차에서 제공되는 슬로푸드 스낵도 잊지 말고 맛보세요.” ●mini interview 찾아가기 밀라노(오전 10시, 오후 1시30분)와 토리노(오전 9시)에서 세라발레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