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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판 ‘國父 논쟁’

    러시아판 ‘國父 논쟁’

    ‘강한 러시아’를 꿈꾸는 블라디미르 푸틴(왼쪽·64) 러시아 대통령이 볼셰비키 사회주의 혁명을 이끈 소비에트연방의 창설자 블라디미르 레닌(오른쪽·1870~1924)을 정면으로 비판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의 지도자가 ‘건국의 아버지’ 레닌을 강하게 비난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푸틴은 그동안 유권자들을 의식해 러시아 역사와 관련한 발언에 신중을 기해 왔다. AP 등에 따르면 푸틴은 25일(현지시간) 러시아 남부 스타브로폴에서 지역 활동가들과 만난 자리에서 “레닌이 러시아에 ‘시한폭탄’을 안겼다”며 부정적 평가를 했다. 레닌이 소련을 이오시프 스탈린(1879~1953)이 주장한 단일국가로 만들지 않고 연방국가로 만든 것을 비판한 것이다. 이에 따라 연방국가들이 러시아로부터 독립하면서 영토 분쟁에 휘말리게 됐다는 의미다. 이어 “레닌과 볼셰비키 정부가 제정 러시아의 황제인 차르를 비롯해 로마노프 왕가의 가족과 신하들을 잔혹하게 처형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레닌이 수천 명의 러시아 정교회 성직자를 학살했다고 언급하면서도 목소리를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푸틴이 성역으로 여겨져 온 레닌의 통치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은 최근 러시아가 처한 상황과 관련이 깊다고 가디언은 분석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15개 위성국은 독립 노선을 걸었다. 최근 이들 국가 중 일부가 친서방 정책을 내세우면서 러시아의 안보는 치명타를 맞았다. 예컨대 크림반도에는 러시아 흑해함대의 모항인 세바스토폴이 자리하는데, 이 항구는 러시아가 지중해로 진출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다. 이런 까닭에 푸틴은 “(서방 제재로 인한) 지금의 러시아 경제 위기도 모두 레닌 탓”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푸틴은 스스로를 차르라고 칭할 만큼 제정 러시아에 남다른 유대감을 지녔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푸틴이 집무실에 로마노프 왕조의 4대 차르인 표트르 대제(1672~1725)의 초상화를 걸어 둘 만큼 절대왕정을 숭배한다는 것이다. 2000년 집권 이후 대통령과 총리를 오가며 16년째 권좌를 지켜 온 푸틴은 이미 안팎에서 차르로 불린다. 심지어 러시아 정교회에 막강한 권력을 부여해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차르로 볼셰비키에 살해당한 니콜라이 2세의 유해 확인 작업에 박차를 가하도록 했다. 2014년에는 러시아 전역에서 로마노프 왕조 400주년 기념행사를 열기도 했다. 이를 통해 러시아 국민이 과거 제정 러시아처럼 강한 러시아를 지향하도록 만들었다는 분석도 있다. 푸틴의 이 같은 발언이 예전 중국 지도부의 마오쩌둥(毛澤東)에 대한 문화혁명 비판처럼 확산될지는 미지수다. 레닌은 여전히 상당수 러시아 국민에게 국부(國父)로 여겨질 만큼 존경받고 있다. 지금도 방부 처리된 레닌의 시신이 러시아 대통령궁인 크렘린 바로 옆 붉은 광장에 나란히 안치돼 있을 정도다. 레닌의 시신을 옮겨야 하느냐는 물음에 푸틴은 “사회의 분열을 피하려면 이런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모호하게 답했다. 한편 연봉 11만 달러(약 1억 3000만원)인 푸틴의 재산이 400억 달러(약 48조원)에 이른다는 미국 중앙정보국의 비밀보고서가 나온 적이 있다고 BBC가 전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리얼한 여덟 시선… 살아 꿈틀대는 민중미술

    리얼한 여덟 시선… 살아 꿈틀대는 민중미술

    예술은 그 자체만으로도 좋지만 그 시대의 정치·사회적 흐름과 맥을 같이할 때에 더욱 의미가 있다. 시대정신을 담은 예술은 억압된 현실에서 분출력이 더욱 거세진다. 민주화의 격랑 속에서 1980년대 중반 진보적 미술인들이 활화산처럼 내뿜었던 민중미술과 리얼리즘 운동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올 한 해 국내 미술계에서 활발하게 펼쳐진다. 가나아트는 1980년대 한국 리얼리즘 대표작가 8명의 주요 작품 100여점을 선보이는 ‘한국 현대미술의 눈과 정신Ⅱ-리얼리즘의 복권’전을 연다.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28일부터 2월 28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전환의 시기였던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리얼리즘 미술을 재조명한다. 권순철, 신학철, 민정기, 임옥상, 고영훈, 황재형, 이종구, 오치균 등 역사와 현실, 현장성에 천착했던 리얼리즘 계열 작가들이 참여한 전시는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가 공동 기획했다. 유 교수는 “단색평면회화의 열풍이 지나간 1980년대 제도권 밖에서 군부독재에 항거하며 조형적으로 반항하거나 이념으로 무장한 민중미술계열 그룹과 묵묵히 리얼리즘을 고수한 작가군이 있었다”면서 “한국의 자생적 리얼리즘은 한 시대를 휩쓴 사조였지만 당시엔 인정받지 못했다. 작품의 예술성과 작업의 진정성이 제대로 평가받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 작가들에 대해 “80년대 변혁의 에너지와 흐름을 같이하지만 화가가 직업이었던 전업 작가, 대작에 대한 도전, 우직하고 고지식한 성격, 정통 회화 작가, 다른 사조에 흔들리지 않았던 공통점이 있다. 특히 이들은 테크닉의 달인들이었다”고 소개했다. 신학철은 근대사 시리즈와 농민시리즈로 잘 알려진 민중미술의 대표작가다. 그는 역사의 이미지와 농촌의 서정을 놀라운 필력과 콜라주기법으로 표현했다. 임옥상은 ‘붉은 웅덩이’, ‘어머니’에서처럼 리얼리스트로서 작가적 존재감이 강하게 드러나는 게 특징이다. 강원도 태백의 탄광마을에서 작업하는 황재형은 막장의 풍경과 인생 등 현장 정서를 포기하지 않는 작가다. 민정기는 이발소 그림 같은 친숙한 그림으로 소외라는 주제를 그려냈다. 프랑스에 거주하는 화가 권순철은 이미지의 해체로 인간과 사물의 본질에 접근하고, 핸드페인팅으로 유명한 오치균은 거친 마티에르로 이미지의 승화를 보여준다. 80년대 리얼리즘 미술운동 초창기인 1982년 태동한 예술가그룹 ‘임술년-구만팔천구백십이’의 창립 멤버였던 이종구는 농촌의 현실을 극사실기법으로 그려냈다. 쌀부대에 아크릴로 그린 농민의 초상화 연작은 프랑스의 미술평론가도 깜짝 놀랐을 정도로 예술성이 강한 민중미술의 고전으로 꼽힌다. 고영훈은 신문지나 책 등을 활용한 극사실적 리얼리즘을 보여준다. 유 교수는 1986년 진보적 미술인 150여명이 모여 만든 민족미술협회(민미협)의 상설전시 공간이던 그림마당 민(1994년 폐관)의 운영위원장으로 민중미술을 지지하는 평론 활동을 했다. 그는 “그림마당 민의 개관전 주인공이었던 목판화 작가 오윤 30주기를 맞아 ‘오윤과 그 친구들’이라는 제목의 대대적인 민중미술전을 열 계획도 있다”고 밝혔다. 이호재 가나아트 회장은 “해외 미술계에서 각광받고 있는 단색화 작가들은 대부분 80대이거나 작고한 작가들이다. 뜨거운 시대를 살았던 50~60대의 작가들을 통해 해외에 한국 미술의 다양함을 보여주고자 지난해 단색화에 이어 올해 리얼리즘 전시를 열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민중미술을 소개하는 전시들이 잇따라 열린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서소문 본관 2층 천경자 전시실 옆에 약 200㎡ 규모의 가나아트 기증작품 전시실을 4월 개설한다. 2001년 기증받은 민중미술 대표작 약 200점이 상설 전시된다. 서울시립미술관 북서울미술관에서는 5월 10일부터 약 2개월 동안 ‘사회 속 미술’전(가제)을 진행할 예정이다. 전시는 가나아트 기증작과 2~3세대 포스트 민중미술 작가들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학고재 갤러리는 민중미술 1세대 서양화가 주재환(3월)과 신학철(9월)의 전시를 열 계획이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몽유도원도, 왕의 심기를 건드리다

    몽유도원도, 왕의 심기를 건드리다

    옛 그림에서 정치를 걷다/허균 지음/깊은나무/256쪽/1만 6000원 왕과 사대부가 남긴 그림은 일반 풍속화와 다르다. 조선의 정치적 신념과 개인의 이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김홍도나 신윤복의 풍속화에 비해 딱딱하고 정적인 느낌을 주는 조선시대 왕들의 초상화인 어진부터 풍경화에 담긴 사대부 그림에는 퍼즐처럼 정치적 시대상이 숨겨져 있다. 이 책은 그 흔적들을 찾아 그림을 새롭게 읽는다. 15세기 조선화가 안견의 대표적 명작인 ‘몽유도원도’. 안평대군(1418~1453)이 꿈에서 본 도화원경의 이상향을 재현한 작품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이 작품은 안평대군과 수양대군 간 권력 쟁투의 비극적인 산물로 한때 금기시됐다. 안평대군이 도원을 거니는 꿈을 꾼 것은 1447년 4월 20일 밤. 안견이 몽유도원도를 완성한 건 사흘 후인 4월 23일이다. 지금의 시대에는 명작이지만 조선 시대에는 빛을 보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안평대군이 꿈을 꾼 시점은 세종의 맏아들 문종이 대리청정을 하던 권력 공백기였다. 1450년 문종이 왕위에 오르자 안평대군은 자신이 추천하는 인물들을 대거 조정에 등용시키며 실력자로 부상한다. 안평대군 세력은 세종을 보필했던 문인과 학자들이 중심이었고, 수양대군을 지지하는 무인 등 일파들과의 권력 투쟁은 필연적이었다. 안평대군은 그림 속 도원과 비슷한 풍경을 지닌 창의문 밖 현 부암동 인근의 무계정사에서 측근들과 회합을 하다 결국 수양대군에 의해 대역죄인이 되고, 강화도에서 사사(賜死)된다. 그 후로 몽유도원도 등 안평대군과 연관된 서화를 품평하거나 감상하는 것 자체가 세조 등 집권 세력의 역린을 건드리는 일이 됐다.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인 저자는 조선시대 집권층의 그림에는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할 것을 요구한다. 이를테면 몽유도원도는 단순히 꿈을 기록한 게 아니라 안평대군의 정치적 야망이 반영된 그림이라는 식이다. 그림에 덧붙여진 사대부들의 찬시들은 미래의 왕위를 꿈꾼 안평대군에 대한 충성 맹세였을 것이라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이런 관점에서 어진부터 사대부 그림에 담긴 정치적 의미를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 시대상을 세세하게 보여 준다. 조선시대의 어진은 정교한 세밀화였다. 어진은 실제 왕의 얼굴과 터럭만큼의 차이도 없이 그려졌다. 영조 어진의 경우 수염 한 올조차 틀리지 않고 최대한 정확하게 그리는 원칙을 따랐다. 사진 기술이 없던 시절 조선시대 임금의 얼굴을 유추할 수 있는 것도 어진 덕분이다. 오죽하면 산 사람 사이에 행해지는 예절인 작헌례(술을 가져가 권하는 행위)를 왕의 초상 앞에서 행했을까. 저자는 어진 역시 현 집권세력의 정통성과 권위를 확보하려는 정치적 목적으로 제작됐다고 분석한다. 1, 2차 난을 통해 권력을 잡은 태종이나 왕권 강화에 힘쓴 숙종, 개혁 정치로 문예 부흥을 이룬 영조 등이 역대 선왕의 어진 제작에 정성을 쏟은 이유이기도 하다. 풍경화나 정물화를 그렸던 문인화는 어떨까. 제주도에 유배된 추사 김정희가 그린 대표작이 바로 국보 제180호 ‘세한도’(歲寒圖)다. 헌종 집권기에 안동김씨 세력의 탄압을 받은 추사는 혹독한 고문을 당한 후 제주도에서 장장 9년간 외롭고 고통스러운 유배 생활을 하게 된다. 저자가 소나무와 잣나무를 주제로 그린 세한도는 제자인 역관 이상적의 지조와 의리를 상징하는 동시에 당쟁으로 희생된 자신을 향한 복잡한 심경을 표현한 ‘시’(詩)이자 ‘서’(書), 화(畵)라고 지적한다. 역적의 자손으로 전락한 김시의 ‘목우도’나 몰락한 세도가의 자손인 심사정의 ‘탁목조’ 모두 정치적으로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스스로의 탈출구인 동시에 가슴 속에 맺힌 울분을 삭이게 하는 정신적인 안식처였다. 저자는 말한다. 옛 그림을 감상하면서 화법이나 양식만 봐서는 실체적 진실에 다가설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림을 둘러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개인의 역사를 퍼즐 맞추듯 해야 비로소 그림에 대한 해석이 분명해진다는 가르침이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달라지고 소멸될 수 있는 예술품…전에 알던 인물들의 새로운 탄생

    달라지고 소멸될 수 있는 예술품…전에 알던 인물들의 새로운 탄생

    중국 현대미술의 중심지이자 세계 미술시장으로 도약하는 전략적 기지로 떠오른 상하이에서 한국 작가들이 주목받고 있다. 상하이에 진출한 한국 갤러리들도 작가 프로모션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학고재 상하이에서는 개관 2주년 기념으로 지난 19일부터 향기와 비누를 재료로 작업하는 조각가 신미경(48)의 중국 내 첫 개인전을 열고 있다. 서울대 조소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후 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작업하는 신미경은 ‘진기한 장식장’이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에서 자신의 커다란 장식장을 전시장에 옮겨 놓듯이 ‘트랜스레이션’ 시리즈 등 지금까지의 대표작들을 총망라해 중국 미술계에 선보인다. 작가의 이름을 알린 ‘트랜스레이션’ 시리즈의 많은 작품들은 16~20세기 유럽과 미국으로 수출하기 위해 제작된 중국의 도자기를 비누로 재현한 것이다. 원본을 떠 만든 가짜 도자기들이 신미경의 작품이 되어 다시 중국에 돌아온 것이다. 작가는 도자기의 화려한 문양을 직접 비누에 상감기법으로 일일이 새기고 채색해 도자기의 재질과 흡사하게 만든다. 작가가 복제하는 도자기는 서구의 시선으로 본다면 가장 중국적인 사물이지만 중국에서는 수출을 목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자신의 문화를 대변하는 사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작가는 “하나의 물건이 서로 다른 지역을 이동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듯이 도자기를 통해 이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번역과 해석의 문제를 제기하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200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또 다른 대표작 ‘화장실 프로젝트’에서 작가는 서양 고전조각상 혹은 동양의 불상 모양 비누조각을 공공 화장실에 비치하고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만지도록 한다. 녹아내리고, 뭉개지고, 떨어져나간 다양한 형상으로 변형된 것을 전시장으로 들여온다. 같은 비누이지만 장소가 달라짐으로써 만지거나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작가는 ‘소멸될 수도 있는 예술품’을 제시하면서 예술품의 정의와 해석에 질문을 던진다. 신미경은 2008년 난징트리엔날레와 베인징의 쏭좡미술관 그룹전에 참여하면서 중국에 이름을 알렸고 2013년 타이베이 미술관 개인전으로 주목을 끌었다. 학고재 우찬규 대표는 “아시아적 정서와 동시대 최첨단의 예술 감각으로 중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신미경 작가를 본격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면서 “중국 본토에서의 첫 개인전인 만큼 롱미술관, 하오아트미술관, M50예술특구, 상하이 당대예술관 등 상하이의 여러 예술공간에서 동시에 ‘화장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작가를 적극 프로모션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하이 학고재는 앞서 강요배 등 한국의 민중미술 작가들을 중국에 소개하기도 했다. 전시는 내년 1월 31일까지. 극사실주의 양식의 대형인물 초상화로 유명한 강형구(60) 작가는 상하이 현대미술관(SH MoCA)에서 최신작부터 지난 20년간의 방대한 작업을 펼쳐보이는 대규모 개인전을 열고 있다. 한국 미술계의 영향력 있는 생존 작가 중 한 명으로 전 세계를 무대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강 작가의 중국 데뷔전으로 내년 1월 16일까지 계속된다. 인민공원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상하이 현대미술관은 2005년 중국과 전 세계에 혁신적인 현대미술의 흐름을 선보이겠다는 목표로 설립된 이래 아시아 예술계에서 주목할 만한 이슈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전시공간이다. 아라리오갤러리 상하이가 지난 1년 동안 공들여온 작가 외부 프로모션의 첫 결실인 이번 전시에서는 합성리얼리즘 기법의 대형 초상화를 비롯해 흔히 볼 수 없었던 캐리커처와 조각까지 작가의 예술세계를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그의 초상화에는 미술사의 중요 인물뿐 아니라 엘비스 프레슬리, 클린트 이스트우드, 메릴린 먼로처럼 대중의 눈을 사로잡았던 스타들이 등장한다.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인물들은 작가에 의해 시선과 포즈, 단색 톤, 과장되고 확대된 세부묘사로 새로운 성격의 인물로 재탄생한다. 전시를 기획한 상하이 현대미술관의 왕웨이웨이 큐레이터는 “강 작가의 작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압도적이고 육중한 표현이 중국 미술관계자과 애호가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고 말했다. 강형구 작가의 또 다른 개인전이 베이징의 파크뷰그린 전시장에서도 열리고 있다. 내년 2월 26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당신이 몰랐던 루벤스 명작들

    당신이 몰랐던 루벤스 명작들

    17세기 유럽 최고 화가로 불린 피터르 파울 루벤스(1577~1640)의 대표 작품들이 대거 국내에 소개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기획특별전 ‘리히텐슈타인박물관 명품전-루벤스와 세기의 거장들’을 통해서다. 이번 기획전엔 대표적인 ‘루벤스 컬렉션’이자 유럽 최고의 왕립박물관 중 하나인 리히텐슈타인박물관의 소장품 중 회화, 조각, 공예, 판화, 태피스트리 등 120여점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리히텐슈타인공국은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사이에 자리잡은 인구 3만 7000여명의 작은 나라로, 오스트리아의 가장 오래된 귀족 가문이자 합스부르크 왕가의 핵심 세력이었다. 이들이 수집했던 미술품은 유럽 왕실 박물관 중에서도 손꼽히는 명작으로 르네상스 시대부터 바로크, 근대 비더마이어 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걸작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물관 측은 “이번 전시의 가장 중요한 테마는 루벤스에 대한 다각적 조망”이라며 “그동안 루벤스 작품들은 소묘나 드로잉, 일부 유화작만 국내에 소개됐는데 이번엔 루벤스의 대표작들을 포함해 대형 유화작품만 20점이 넘고 루벤스의 판화 작품이나 태피스트리 작품도 선보인다. 루벤스의 예술 여정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걸작들이 대거 전시되는 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4부로 구성됐다. 1부에선 ‘루벤스 컬렉션’으로 유명한 리히텐슈타인 가문의 예술품 수집 역사를 다룬다. 도메니코 구이디의 ‘성모 마리아 흉상’, 멜히오르 바움가르트너의 ‘캐비닛’ 등 르네상스 시대부터 근대 비더마이어 시대에 이르는 리히텐슈타인의 걸작들을 감상할 수 있다. 2부 ‘루벤스와 플랑드르의 거장들’에선 플랑드르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루벤스를 비롯해 루벤스 스튜디오 일원이자 유럽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안토니 반다이크와 야코프 요르단스의 작품들을 조명한다. 루벤스의 ‘클라라 세레나 루벤스의 초상’, 반다이크의 ‘제노바 귀족의 초상’, 요르단스의 ‘바다의 선물’ 등 여러 대작들이 국내 최초로 전시됐다. 3부에선 루벤스와 동시대에 활약했던 북부네덜란드, 이탈리아, 플랑드르 브뤼헐 일가의 작품들을 살펴본다. 박물관 측은 “17세기 플랑드르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북부네덜란드 사회의 모습을 짐작해 볼 수 있고 정물화, 풍경화, 초상화, 장르화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을 접할 수 있다”고 말했다. 4부에선 회화가 아닌 루벤스의 태피스트리와 판화 작품 등을 볼 수 있다. 루벤스의 생애를 다각도로 보여 주는 아카이브 공간을 마련해 ‘거장 루벤스’, ‘인간 루벤스’의 다양한 면모를 고찰할 수 있도록 했다. 내년 4월 10일까지, 관람료 5000~1만 3000원. 1688-9891.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왕들의 초상’ 근엄함 뒤에 숨겨진 역사·예술

    ‘왕들의 초상’ 근엄함 뒤에 숨겨진 역사·예술

    현실의 왕과 다름없이 높은 위상을 가졌던 조선 왕실 어진(御眞·왕의 초상화)의 위엄을 보여주는 전시가 마련됐다. 8일부터 내년 2월 14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2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조선 왕실의 어진과 진전(眞殿·어진을 봉안하고 의례를 행하는 건물)’ 특별전이다. 최종덕 국립고궁박물관장은 “조선 왕실 어진은 1954년 피난지인 부산의 보관 창고에서 일어난 화재로 대부분 소실돼 없어지고 일부 어진만 손상된 채로 남아 있다”며 “주요 어진들을 한자리에 모아 소개하는 이번 전시를 통해 예술 작품으로서의 어진의 가치뿐 아니라 조선 왕실 어진이 갖고 있는 위상과 상징적 의미를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6부로 구성됐다. 조선 왕실 어진 등 유물 100여점이 소개된다. 1부 ‘우리나라 어진과 진전의 역사’에선 관련 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 고려와 조선 시대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어진과 진전의 역사를 짚는다. 2부 ‘조선 시대 어진 제작 체계’에선 조선 시대 어진 제작 방식과 과정, 어진을 직접 그린 ‘어진화사’에 대해 살펴본다. 대표적 어진화사인 장경주의 ‘윤증 초상’과 이한철의 ‘흥선대원군 이하응 초상’, 이명기의 ‘채제공 초상’, 그리고 사대부 화가로 어진화사들을 감독했던 조영석의 ‘조영복 초상’을 통해 어진 제작 화가들의 인물화 실력도 감상할 수 있다. 3부 ‘또 한 분의 왕, 어진들’에선 현재까지 진전에 봉안된 유일한 어진인 전주 경기전의 ‘조선 태조 어진(청룡포본)’, 왕위에 오르기 전 젊은 영조의 모습을 보여주는 ‘연잉군 초상’, 영조의 51세 초상인 ‘영조 어진’, 철종의 31세 초상인 ‘철종 어진’, 채용신이 그린 것으로 전하는 ‘고종 어진’이 전시된다. 홍룡포본 ‘태조 어진’(1900년 모사본)과 ‘원종 어진’(1936년 모사본), ‘문조 어진’, 순종 서거 후인 1928년 김은호가 그린 ‘순종 어진’도 최초로 공개된다. 4부 ‘어진 봉안 공간 진전’에선 태조 진전, 영희전, 창덕궁 선원전 등 주요 진전들을, 5부 ‘어진 봉안용 회화’에선 2005년 국립고궁박물관 개관 이후 처음으로 전시되는 ‘모란도 병풍’과 ‘일월반도도 병풍’을 접할 수 있다. 6부 ‘진전 의례’에선 태조 진전인 개성 목청전과 창덕궁 선원전 등 진전 의례에 사용됐던 다양한 종류의 의물과 기물들을 영상과 유물을 통해 소개한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현대미술로 풀어낸 ‘이산가족’

    현대미술로 풀어낸 ‘이산가족’

    남북 분단 상황에서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는 이산가족 문제를 현대미술 작업으로 풀어낸 전시회가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열리고 있다. 미디어아티스트 임민욱(47)은 ‘만일(萬一)의 약속’이라는 제목으로 설치미술과 비디오 작업을 통해 남북 분단의 시대와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를 반추한다. 숨 가쁜 도시근대화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사라진 장소와 사람들, 그리고 시간에 의해 마모된 삶과 기억을 퍼포먼스와 다큐멘터리가 결합된 독특한 방식의 영상으로 담아온 작가의 중간 회고전 성격의 전시다. 전시장 로비에 해당하는 글래스파빌리온 중앙에 설치된 신작 ‘시민의 문’은 4대의 대형 컨테이너 문을 연결해 제작한 설치조형물이자 사운드작업이다. 전시장 중앙에는 백두산 천지와 한라산 백록담의 지형을 형상화한 구조물에 남북한 대표 건축물이 한데 뭉쳐서 올라앉아 있는 ‘통일등고선’(오른쪽)이 설치돼 있다. 어느 미지의 땅을 연상시키는 작품은 분단국가로서 한국의 고유한 상황과 그로 인한 모순과 상처에 주목해 온 작가의 오랜 인식을 반영한다. 전시 제목이기도 한 ‘만일의 약속’(왼쪽)은 1983년 KBS 이산가족찾기 특별생방송의 장면들을 재배치한 몽타주 영상작품이다. 최근 유네스코 기록유산에 등재됐을 만큼 한국 현대사의 주요사건으로 기억되는 이 방송에서 1만명이 넘는 6·25 전쟁 이산가족들이 상봉했다. 400시간이 넘는 기록적인 방송분량과 방대한 아카이브에도 불구하고 10만명이 넘는 신청자의 사연은 아쉽게도 역사 속에서 잊혀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작가는 “고등학교 시절이던 1983년에 진행됐던 이산가족찾기 특별생방송은 미디어 작가로서 잊을 수 없는 사건”이라며 “미디어의 제한된 프레임에 모두 담아낼 수 없었고, 찰나로 잊혀졌던 인물들의 모습을 좀 더 긴 시간 초상화처럼 되돌아볼 수 있도록 몽타주 분할화면 기법과 사연판을 실어나르던 카메라의 움직임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2채널 비디오 프로젝션으로 두 화면이 마주하고 있는 이 작품은 화면에 비친 주인공들이 한눈에 한 핏줄임을 알 수 있을 만큼 닮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임민욱은 이화여대 서양화과에서 수학하고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조형예술 학교를 졸업했으며,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광주 비엔날레, 이스탄불 비엔날레, 리버풀 비엔날레 등에 참여했으며 2007 에르메스 미술상, 2010 제1회 미디어아트 코리아 상을 수상했다. 전시는 내년 2월 14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고종은 ‘이미지 세상’ 선구자였다

    고종은 ‘이미지 세상’ 선구자였다

    이미지와 권력/권행가 지음/돌베개/336쪽/2만 3000원 고종(1852~1919)이 통치한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는 전통미술이 지속되는 가운데 유화나 사진 같은 새로운 매체들이 도입되면서 시각문화에 변동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이런 매체를 누구보다 먼저 접할 수 있었던 고종은 전통 양식의 초상화인 어진(御眞)부터 유화, 사진, 삽화, 판화에 이르기까지 역대 왕 중 가장 다양한 형태의 이미지를 남겼다. 조선왕조 내내 진전에 봉안되어 아무나 볼 수 없었던 왕의 초상이 아무나 볼 수 있는 이미지가 된 것이다. ‘이미지와 권력’에서 저자는 “고종이 통치하던 시기는 일본과 서양 제국주의 압력 속에서 근대 국가 체제를 갖춰 가야 했던 전환기였다”며 “고종은 왕조의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해 궁중 화가가 그린 어진 전통을 활용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대내외에 가시화하기 위해 새로운 시각매체를 적극 활용했다”고 주장한다. 고종은 미국과 수호통상조약을 맺은 지 2년 뒤인 1884년 서양인 퍼시벌 로웰의 카메라 앞에 서게 된다. 시대적 상황에서 외교적, 정치적 행위로 외국인에게 자신의 모습을 재현하도록 한 것이다. 이때 촬영된 고종의 초상은 1894년 청일전쟁 무렵부터 프랑스의 ‘르 프티 파리지앵’을 비롯한 서구의 대중매체를 통해 본격적으로 유포되기 시작했다. 아마추어 화가이자 여행가인 헨리 새비지 랜도어가 1895년 출간한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에 왕의 이미지를 소개했고 휴벗 보스, 조세프 드라 네지에르 등에 의해 그림이나 삽화로 만들어졌으며 이러한 이미지는 엽서나 기념품으로도 제작됐다. 고종은 이미지를 통해 서양인들에게 조선의 왕으로서 자신이 갖는 다양한 위엄과 상징의 의미를 전달하려 애썼다. 명성황후 시해 이후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을 땐 상복을 입은 모습을 촬영하도록 함으로써 외부에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알리고 국왕의 건재를 알리려 했다. 하지만 당시 서구 열강의 다양한 매체에 반복되어 등장한 조선의 왕은 무능하거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왕비는 팜 파탈의 이미지로 재현됐으며 이는 조선을 바라보는 서구의 시선이기도 했다. 저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고종과 순종뿐 아니라 황실 이미지의 생산과 유포의 주도권이 전적으로 일본인의 손으로 넘어갔다고 말한다. “고종의 초상 만들기는 실패로 끝났다”면서도 “국내의 이미지 활용 역사에서 고종의 초상은 그 기원의 자리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조총련 前간부 “대북 종속 끊고 김일성父子 초상화 철거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의 전직 간부가 이 단체의 대북 종속 관계 단절을 집행부에 촉구해 조선총련 내부에서 파문이 일고 있다. 24일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히로시마 지방에서 선전간부 등을 지낸 고충의(70·도쿄 거주)씨는 지난달 중순 도쿄에서 열린 조선총련 산하 상공회 70주년 기념행사에서 ▲일본인 납치 피해자를 전원 귀환시킬 것 ▲모든 시설에서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초상화를 철거할 것 등을 요구하는 제언서를 배포했다. 허종만 조선총련 의장이 수신자로 명시된 이 제언서에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반대할 것 ▲북한과의 종속 관계를 끊기 위해 조직의 간부는 조선노동당의 당적을 이탈하거나 당원이 아닌 사람이 맡을 것 ▲재일조선인계 신용조합을 거쳐 사라진 방대한 자산의 행방과 그 책임을 분명히 할 것 등을 요구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더불어 북한의 납치 문제와 개인숭배 등에 대해 ‘이상한 것은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는 조직으로 전환할 것을 호소하면서 “더이상 죄를 쌓지 말라”고 요구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일본인 납치를 시인한 2000년대 초반 이후 일본 사회에서 재일조선인에 대한 인식은 급격히 악화됐고, 이런 상황에서 조선총련의 대북 종속에 불만을 가진 내부 목소리가 그동안 존재해 왔다. 그러나 이처럼 실명으로 불만을 표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산케이는 지적했다. 이 제언서는 배포 도중 회수됐고, 배포자 고씨는 제명 통보를 받았다. 고씨는 산케이와의 인터뷰에서 “납치 피해자 관련 뉴스를 볼 때면 모순을 느꼈지만 말을 할 수 없었다”며 “실현은 어렵더라도 스스로 경계하는 마음을 담아 목소리를 높임으로써 변혁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행동이)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이 안을 채워 주세요

    이 안을 채워 주세요

    강북구는 국채보상운동 통문, 김구 선생 혈투사, 대한독립운동과 임시정부 투쟁사 등 근현대사 유물을 수집한다고 16일 밝혔다. 구는 지난 1월 44억여원의 예산을 투입해 북한산 자락 수유동에 근현대사기념관(조감도)을 착공했으며 내년 3월 완공 예정이다. 근현대사기념관을 운영할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는 98점의 전시유물을 정해 본격 수집에 나섰다. 민족문제연구소는 동학운동 당시 북접의 최시형이 발행한 첩지(문서), 관동창의대장 차첩(의병대장의 문서), 국채보상운동 통문(문서), 김구 주석 최근 언론집, 김구 선생 혈투사, 여운형 선생 투쟁사, 대한독립운동과 임시정부 투쟁사, 순국선열혈투사 등 98점을 전시유물로 정했다. 구한말부터 정부 수립 전후와 4·19혁명까지의 근현대사 관련 유물을 갖고 있는 개인이나 문화재 매매업자, 법인은 강북구 문화체육과(02-901-6204)로 연락하면 판매할 수도 있다. 도굴품, 도난품 및 문화재 관련 사범은 판매가 불가능하다. 사발통문, 오방색군기, 손병희 초상화, 을사조약문, 정미7조약문, 병합조약문, 순종의 칙유, 데라우치 유고, 헤이그특사 위임장, 만국평화회의보, 대동단결선언문, 무오독립선언서, 2·8독립선언서 등 전시에 필요하지만 구입이 불가능한 유물은 독립기념관 등 9개 기관으로부터 복제해서 갖추게 된다. 박겸수 구청장은 “역사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시점에서 근현대사기념관은 시민과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 주고 애국심을 키우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근현대사기념관은 북한산둘레길 수유탐방지원센터 뒤편 4·19길에 연면적 951㎡,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로 세워진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한글 사랑한 외솔의 정신 ‘한글 특화’ 기념관서 만나자

    [명인·명물을 찾아서] 한글 사랑한 외솔의 정신 ‘한글 특화’ 기념관서 만나자

    지난 14일 울산 중구 동동 ‘외솔 최현배 선생 기념관’. 초등학생들이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최현배(1894~1970) 선생의 삶과 업적을 메모하고, 한글 탁본과 틀리기 쉬운 한글 문제풀이 등으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2010년 3월 문을 연 외솔 기념관과 생가를 찾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기념관 일대에는 한글마을도 조성되고 있다. 한글과 역사를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체험공간이다. 외솔 기념관과 생가는 2010년 3월 23일 동동 613 일대에 문을 열었다. 기념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1개 동으로 건립됐다. 생가 3개 동도 복원됐다. 한글학자이자 교육가, 독립운동가로 한글연구와 보급에 평생을 바친 외솔 선생의 업적을 기리려는 것이다. 전국 유일의 한글학자 기념관이자 한글박물관이다. 이곳에서는 주민과 함께하는 한글 교육, 문화 및 체험프로그램 등이 진행되고 있다. 최현배 선생은 1894년 울산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를 창립하고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만드는 등 한글 보급과 교육에 힘썼다. 해방 이후 교과서 행정의 기틀을 잡았고, 한글학회 이사장과 연세대 부총장을 지내는 등 활발한 교육활동을 펼쳤다. ‘우리말본’, ‘한글갈’ 등의 저서를 남겼다. 외솔 생가 복원과 기념관 건립 사업은 2001년 말 울산시 문화재위원회에서 선생의 생가터를 ‘울산시 기념물 39호’로 지정한 이후 2002년 10월 생가복원위원회를 구성하면서 본격화됐다. 많은 사람들이 선생의 유품과 관련 자료를 기탁하면서 2008년 3월 착공해 2009년 9월 준공했다. 기념관은 외솔의 업적과 유품, 저서 등으로 채워진 전시관과 영상실, 한글교실 등으로 만들어졌다. 선생의 저서와 한글 관련 서적 1만여점, 타자기·초상화 등 유품 30여점 등이 1층에 전시돼 있다. 2층 다목적 강당에서는 노인 등을 대상으로 한글교실을 운영한다. 문화해설사가 상주하면서 관람객들에게 외솔 선생의 업적 등을 설명해 준다. 휴관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기념관에 가면 최현배 선생의 동상(높이 2.5m)이 방문객을 가장 먼저 맞는다. 한복을 입고 오른손에 안경, 왼손에 책을 든 모습이다. 정문에 들어서면 오른쪽 전시관부터 관람을 시작한다. ‘나라사랑의 길’, ‘한글갈’, ‘우리말 큰사전’, ‘조선민족갱생의 도’ 등 선생의 대표 저서와 지팡이, 노트, 타자기, 직접 쓴 원고 등 주요 유품이 자리를 잡고 있다. 전시관 코너를 돌면 선생이 방에서 책을 보는 모습과 일제에 의해 3년간 감옥살이를 하는 상황을 재현한 밀랍 인형을 만난다. 전시관 벽에는 ‘한글갈’, ‘우리말 큰사전’, ‘나라사랑의 길’ 등 선생의 주요 저서를 설명하고 흥업구락부사건, 조선어학회수난사건, 교육자의 길, 한글기계화 등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보여주는 글과 사진으로 가득하다. 2층은 다목적 강당으로 사용된다. 노인 한글교실과 토요 문화학교 등이 열린다. 강당을 내려와 밖으로 나가면 초가집이 눈에 들어온다. 외솔 선생이 1894년 태어나 1910년 경성고등보통학교로 진학하기 전까지 실제로 살았던 생가를 복원한 집이다. 안채, 아래채, 부속채 3개 동으로 이뤄진 생가는 아궁이와 가마솥, 장독대, 담, 디딜방아까지 세세하게 재현했다. 기념관은 울산시 지정 제1종 전문박물관으로 등록됐다. 울산지역 전문박물관은 외솔 기념관을 비롯해 울산박물관, 암각화박물관, 울산대 박물관, 대곡박물관, 장생포 고래박물관, 외솔 기념관, 울산해양박물관, 울산옹기박물관, 울주민속박물관 등 모두 9개다. 기념관 건립 이후 주변에 한글을 모티브로 한 건물들도 늘고 있다. 매년 10월 한글날 행사도 열려 주민들의 자부심을 높이고 있다. 또 이달 중 기념관 인근에 외솔 도서관(한옥도서관)이 개관한다. 지상 1층으로 된 외솔 도서관은 조선시대 교육기관인 서원의 느낌을 최대한 살린 전통 한옥 형태로 지어지고 있다. 이곳에는 한글 관련 자료를 비롯해 다양한 일반 서적도 비치된다. 도서관 기능뿐 아니라 주변에 은행나무를 심고 돌계단, 흙길 등을 만들어 시민들의 쉼터로 활용될 전망이다. 외솔 기념관은 한글문화 확산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따라서 중구는 기념관을 확대한 한글마을을 조성하고 있다. 한글마을은 기념관의 취지에 맞게 한글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는 마을, 역사문화를 느낄 수 있는 마을, 체류하며 느낄 수 있는 마을 등 4개 주제별로 만들어지고 있다. 병영사거리에서 서동사거리까지 1250m 구간에 한글상징 가로등 46개와 잔디등 12개를 설치했다. 기념관 입구 주차장 일대에 설치한 정육면체 모양의 잔디등에는 선생의 저서인 우리말본 머리말 내용을 표기했다. 외솔 생가와 기념관을 중심으로 한글을 테마로 한 ‘외솔 탐방길’도 조성되고 있다. 이 길을 걸으면서 선생의 한글 사랑을 기리고 한글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려는 것이다. 외솔의 생가를 중심으로 병영교회, 병영초등학교 주변 1㎞ 구간에 조성되고 있다. 이 길에는 한글을 형상화한 벤치와 조형물이 들어서고, 자음과 모음을 형상화한 보도블록이 설치된다. 구 관계자는 “나라 사랑의 얼이 깃든 이곳에 평생 한글 사랑에 헌신한 외솔 선생의 한글마을이 조성되면 한글을 사랑하는 내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명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탐방길이 조성되면 외솔 생가와 병영성 등을 연결하는 2㎞ 구간의 도심 둘레길이 새롭게 구축돼 관광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생가 주변인 병영 사거리에서 병영성 지하터널 입구까지 840m 구간의 모든 간판도 한글로 교체한다. 연말까지 이 일대 163개 점포와 상징물을 한글거리에 맞게 바꿀 예정이다. 한글로 완전 교체가 어려운 외래어 간판은 한글과 외래어를 병행 표기하고, 한글의 크기를 키운다는 방침이다. 한편 외솔의 고향인 병영(동동)은 울산 3·1운동 순국열사 위패를 모신 ‘삼일사’, 병사를 양성하던 경상좌도 ‘병영성’, 울산 3·1운동 본거지인 ‘병영초등학교’, 병마절도사 공덕비가 있는 ‘병영1동 주민센터’ 등이 있다. 나라 사랑의 정신을 간직한 지역으로 꼽힌다. 글 사진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소비의 神’ 마윈

    ‘소비의 神’ 마윈

    24시간 동안 알리바바의 온라인 쇼핑몰 톈마오(티몰)에서만 무려 912억 위안(약 16조 5227억원)의 상품이 판매되는 대기록을 남긴 채 중국 ‘광군제’(光棍節·싱글데이)는 끝이 났다. 지난 11일 하루 동안 보여준 광적인 소비는 디플레 직전에 몰렸던 중국 경제에 ‘단비’가 됐다. 무엇보다 시진핑(習近平) 정부가 추진해온 생산 중심에서 소비 중심으로, 오프라인에서 온·오프 통합(O2O·Online to Offline)으로의 경제 체질 개선이 성공 가능성을 보였다는 데 중국은 크게 고무됐다. 광군제를 6년 만에 전 세계 소비 축제로 승화시킨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馬雲)은 마침내 신의 경지에 올랐다. 실제로 많은 전자상거래 상인들은 ‘소비의 신’ 마윈의 초상화를 제단 위에 올려놓고 “재고 없게 해 주세요”, “반품 없게 해 주세요”, “악플 없게 해 주세요”라며 주문을 외웠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2일자 사설에서 “11·11 빅세일은 경제 구조의 대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면서 “특히 사상 처음으로 티몰에 농민 업체 8000여개가 입주해 큰 실적을 올린 것은 제조업은 물론 농업도 온·오프 통합 경제의 흐름에 합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관영 환구시보는 “이른바 BAT(알리바바, 바이두, 톈센트)는 중국 경제개혁에 동력을 불어 넣는 ‘민영 기관차’”라면서 “이들은 더 많은 분야에서 정체된 국유기업을 추월할 것이며, 정부는 공정경쟁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알리바바에 격려 메시지를 보낸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국무회의에서 “모든 제품은 결국 소비자를 위한 것”이라면서 “소비자의 선택을 제한할 게 아니라 국내 제품의 품질을 높이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마윈은 “이번 행사의 성공은 단지 알리바바의 성장을 상징하는 게 아니라 중국 내수의 잠재력을 보여줬다”면서 “중국 경제가 앞으로 5~15개월은 어려움을 겪겠지만 5~15년간은 상상을 초월하는 발전을 이룰 것”이라고 자신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新국토기행] 충남 부여

    [新국토기행] 충남 부여

    백제의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고, 종내 멸망의 처절한 아픔을 맞았던 고도(古都). 충남 부여군은 백제 문화의 고갱이가 남아 있는 옛 도읍이다. 부여는 백제 사비시대의 수도로 일본 아스카문화를 전수해 지금도 해마다 일본인 수만명이 자신들의 고향으로 여겨 찾는다. 백제 유적지가 가장 풍부히 보존된 곳이기도 하다. 백제가 멸망한 뒤 의자왕이 당나라로 끌려갈 때 백성들이 몰려와 통곡한 금강변 양화면의 유왕산은 여전히 슬픔을 머금고 있는 듯 처연해 보인다. 당나라에서 병사한 의자왕의 묘를 찾아 고국으로 모시려다 흔적조차 못 찾고 중국 북망산의 흙을 파와 능산리고분에 가묘를 쓸 수밖에 없었던 부여군의 노력은 그 슬픔의 또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지난여름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부여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고풍스러운 백제 유적에 롯데리조트와 아웃렛 등 현대시설이 어우러지면서 연간 방문객이 1000만명에 이르는 등 백제 전성기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백제 수도가 옮겨왔을 만큼 물산도 풍족하다. 금강 줄기 백마강이 옥토를 만들어 양송이버섯과 밤이 전국 최대 생산량을 자랑하고, 방울토마토와 멜론 등 시설농업 천국이다. 볼거리 >> ●백제 왕궁터·부소산성·정림사지 등 세계문화유산 관북리 유적은 백제 왕궁터가 있던 곳이다. 건물터, 공방시설, 도로, 연못 등이 확인됐다. 부소산성은 백제의 마지막 왕성이다. 정치의 중심지고, 최후의 방어진지였다. 당시에는 사비성으로 불렸다. 둘레 2㎞가 넘는 성 안에 낙화암, 사자루 등 많은 유적이 있다. 나성은 수도를 보호하기 위해 쌓은 둘레 8㎞의 성으로 시가지 외곽을 둘러싸고 있다. 지금은 약간의 흔적만 남아 있다. 정림사지는 백제의 중심 사찰이 있던 자리다. 5층 석탑 등이 남아 있다. 백제가 수도를 옮기면서 창건해 멸망하면서 화재로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탑과 금당 등이 남북 일직선으로 배치돼 백제 가람의 전형을 보인다. 능산리고분군은 왕과 왕족의 무덤이 있는 데다. 백제 후기 묘 형태를 알 수 있는 전형적인 석실분들이다. 찬란한 백제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백제금동대향로(국보 287호)가 1993년 발굴돼 엄청난 반향을 불러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연못 ‘궁남지’ 백제 무왕이 634년 궁궐 남쪽에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연못이다. 기록은 “연못을 파고 20여리 수로를 내 물을 끌어들였다. 물가에 버드나무를 심고 가운데에 섬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신선과 불로초가 살고 황금궁궐이 있는 중국의 전설 속 이상향인 삼신산을 본떴다고 한다. 궁남지는 통일신라 문무대왕 때 만들어진 경주 안압지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일본 정원 문화의 원조가 됐다. 서동(무왕)의 탄생 설화와 신라 선화공주 사이의 사랑 이야기가 깃든 곳이기도 하다. 1965년 3분의1 규모로 복원됐다. 군은 2002년부터 이곳에 연꽃을 심어 여름철마다 ‘부여 서동연꽃축제’를 열고 있다. 7~8월 궁남지에는 홍련, 백련, 수련 등 갖가지 연꽃이 활짝 피어 사람들을 황홀하게 한다. ●백제 왕궁 재현한 첫 역사단지 ‘백제문화단지’ 백제 왕궁을 재현한 첫 역사단지다. 1994년 착공됐으나 예산 등 문제로 17년 후인 2010년 완공됐다. 백제시대의 다양한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왕궁인 사비궁, 대표 사찰인 능사, 계층별 주거문화를 보여주는 생활문화마을, 개국 초 궁성인 위례성, 묘제 등이 있다. 2006년 문을 연 백제역사문화관은 전국 유일의 백제사 전문 박물관으로 갖가지 전시실을 갖추고 있어 문화대국이었던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천재시인 김시습이 말년에 머물다가 세상 떠난 곳 ‘무량사’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이 되자 평생 은둔한 천재시인 매월당 김시습이 말년에 머물다가 세상을 떠난 곳으로 유명하다. 김시습 영정(보물 1497호)이 있다. 외산면 만수산 기슭에 위치한다. 언제 창건했는지 정확하지 않으나 신라 말 범일 국사가 세웠고, 수차례 공사를 거쳤다고 전해진다. 고려 때 크게 재건됐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됐다. 이후 극락전 등이 다시 세워졌고, 조선조 명승 진묵대사가 거처했었다. 극락전과 석등, 오층석탑, 미륵불괘불탱 등 보물이 많지만 호젓한 분위기가 가을에 잘 어울려 나들이 장소로 좋다.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촬영지 ‘서동요테마파크’ 요즘 인기 있는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촬영지다. 원래는 2005년 서동과 선화공주의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그린 첫 백제 드라마 ‘서동요’의 오픈세트장으로 조성됐다. 이후 ‘대풍수’, ‘태왕사신기’, ‘계백’, ‘조선총잡이’ 등 인기 드라마 촬영도 일부 이곳에서 이뤄졌다. 부지 1만여평에 백제·신라왕궁, 왕궁촌, 태학사, 하늘재, 저잣거리가 조성돼 있다. 계백 장군이 태어난 충화면 천등산 자락에 있어 경관이 수려하다. 세트장을 둘러싼 덕용저수지 주변 산책로는 백미다. 세트장 옆에 청소년수련원이 있어 숙박이 가능하고 짚라인 등 모험시설도 갖추고 있다. ●‘신동엽문학관’엔 옷·신분증·도장·편지·육필 원고 전시 ‘껍데기는 가라’를 쓴 신동엽(1930~69) 시인이 부여읍 동남리 출신이다. 생가 옆에 있다. 문학관에 시인이 입던 옷, 신분증, 도장, 편지와 함께 육필 원고 대부분이 전시돼 있다. 시인의 딸이 아버지를 그린 초상화도 있다. 묘는 능산리 앞산에 있다. 경기 파주에 있던 것을 1993년 옮겼다. 서사시 ‘금강’ 등 치열한 창작 속에서 1960년대 김수영과 함께 빼어난 참여시의 지평을 활짝 열었던 현대문학의 거인이 작고한 지 24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시비는 1970년 시인 박두진·구상과 소설가 최일남 등이 참석한 가운데 백마강 기슭에 세워졌다. 문학관은 매년 봄 신동엽 시인 전국 고교 백일장, 가을에 문학축제를 열어 시인의 시 세계를 기리고 있다. 먹거리 >> ●서동·선화공주 이야기 깃든 연잎밥과 마밥, 그리고 백련차 세 가지 모두 서동(무왕), 선화공주와 관련이 있다. 연잎밥은 찹쌀과 밤, 대추, 잣을 연잎에 싸서 찜통에 쪄낸 밥이다. 연잎 향기가 은은히 배어 있다. 고소하고 찰기도 있다. 연잎에 철분, 비타민 E가 풍부해 성인병 예방에 좋다. 서동이 선화공주의 향수를 달래주려고 배를 띄워 놀았다는 궁남지에 연꽃이 지천이어서 부여 주민들이 이를 따다가 밥을 해먹은 데서 유래한다. 연꽃은 선화공주의 ‘선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연꽃으로 만든 백련차도 부여의 대표 식음료다. 절에서 스님들이 수양할 때 많이 마셔 삶을 음미하면서 즐기는 차로 제격이다. 마밥은 달콤한 마를 넣어 지은 밥이다. 마는 서동의 트레이드 마크다. 생마와 달리 마밥은 담백하고 고소하다. ●조선조 때 왕가에 진상한 물고기 ‘우여회 ’ 위어, 웅어 등 다른 이름도 많지만 부여에서는 ‘우여’라고 부른다. 봄이 오면 금강하굿둑에서 성어가 돼 돌아온 우여를 그물로 잡는다. 이때에는 주로 강어귀에서 머물기 때문이다. 몸길이가 30㎝ 정도로 잔 비늘에 빛깔이 은색을 띤다. 조선조 때 왕가에 진상한 물고기라고 해서 진귀하게 여긴다. 우여를 잘게 썰어 채소와 갖은 양념을 넣어 버무리면 고소하고도 매콤한 맛이 입맛을 사로잡는다. 백제 의자왕도 즐겨 먹었다고 전해진다. 재미있는 것은 백제가 망한 뒤 당나라 군사들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돌 밑에 숨어 의리를 지켰다고 해서 ‘의어’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점이다. 자양강장 효과가 있어 몸이 허해지는 봄철 보양식으로 부여의 여러 식당에서 팔지만 맛을 볼 수 있는 때가 매년 4~5월에 그쳐 아쉬움이 있는 음식이다. ●방울토마토·양송이버섯·멜론·수박·딸기 등 부여 8미(味) 부여군이 지정해 키우고 있는 방울토마토, 양송이버섯, 멜론, 수박, 딸기, 밤, 표고버섯, 오이를 일컫는다. 일조량이 풍부해 하나같이 맛이 뛰어나고, 색깔도 좋다. 백마강변 농토여서 토질이 비옥하고 물 빠짐이 좋아 작물이 잘 자란다. 군에서 공동 출하하는 등 품질관리를 철저히 한다. 공동 브랜드 ‘굿뜨래’로 판매하고 인기도 높다. 특히 양송이버섯은 전국 생산량의 45%에 이른다. 방울토마토는 13%, 표고버섯은 11%, 수박은 8%로 대부분 전국구 특산물이다. 수박은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단물이 풍부하다. 게다가 전국 생산량의 20%인 밤은 ‘맛밤’으로 가공돼 전국 슈퍼마켓, 편의점 등에서 인기가 선풍적이다. 중국산과 달리 밤 고유의 맛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여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유서 깊은 역사의 도시... 동양의 파리 ‘호치민’

    유서 깊은 역사의 도시... 동양의 파리 ‘호치민’

    - 고풍스러운 야경은 호치민 인민위원회 청사에서 베트남 호치민은 베트남 경제를 주도하는 상업도시로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고층 건물과 고급 주거 단지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19세기 말부터 약 80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프랑스의 지배를 받으며 세워진 유럽풍 건축물들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며 호치민의 관광 중심지를 형성하고 있다. 프랑스식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노트르담 대성당, 중앙우체국, 인민위원회 청사는 프랑스 식민지의 아픈 역사를 문화로 승화했다는 평을 이끌 만큼 호치민 시내에서 조화로운 풍경을 이루고 있다. 천 년 역사의 호치민을 ‘동양의 파리’로 거듭나게 한 이 세 건축물은 시내 중심부에 위치해 있으며, 모두 도보로 이동 가능하다. ▶프랑스에서 직접 공수한 자재로 만들어진 노트르담 대성당노트르담 대성당은 호치민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힌다. 프랑스는 침략한 도시의 중심에 성당을 건립했는데, 노트르담 대성당도 그 중 한 곳으로 식민통치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1862년부터 시작하여 1880년까지 진행 된 대대적인 건설로 노트르담 대성당은 완공까지 총 18년이 소요되었다. 무엇보다 사용된 건축 자재 모두 프랑스에서 직접 공수한 것들이다. 특히, 마르세유(Marseille)의 빨간 벽돌로 이루어진 외벽은 그 기품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고딕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혼합된 노트르담 대성당은 높은 아치형 천장과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를 특징으로 한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프랑스의 노트르담 대성당과 흡사한 외형을 지니고 있다. 도심에 우뚝 솟은 첨탑과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외관은 많은 여행객들의 사랑을 받아오고 있으며, 매주 일요일에는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줄을 서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콜로니얼 양식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명소, 중앙우체국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나오면 바로 건너편에 시선을 사로잡는 건물이 있다. 바로 에펠탑을 설계한 구스타프 에펠(Gustave Eiffel)의 걸작물로 평가되는 중앙우체국이다. 1866년부터 1891년에 걸쳐 완공된 이곳은 베트남 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건축물 중 하나다. 중앙우체국은 식민지에서 본국의 양식을 반영하면서 해당 풍토에 맞는 독자적 스타일을 일컫는 콜로니얼(Colonial) 양식의 대표 건축물이다. 높은 아치형 천장에 넓고 긴 내부는 기차역과 흡사해 파리의 오르세(Orsay) 미술관을 떠올리게 된다. 화려한 외관과 내부이지만, 정면에 호치민 주석의 대형 초상화를 걸어두어,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베트남 사람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중앙우체국에서는 각 지역 및 나라로 우편과 소포를 보낼 수 있고, 기념우표도 구매할 수 있어 많은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장소가 되었다. ▶야경이 일품인 고풍스러운 느낌의 호치민 인민위원회 청사중앙우체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위치한 호치민 인민위원회 청사는 호치민의 랜드마크다. 인민위원회 청사 역시 식민지 시절에 공회당으로 만들어진 건축물로서, 중후하며 고풍스러운 느낌을 간직하고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붉은 외벽과 다르게 인민위원회 청사는 베이지색 외벽에 하얀 대리석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부로 출입이 불가능하지만, 청사 앞을 공원으로 꾸며 놓아 쉬어가기에도 좋다. 청사 주변은 무엇보다 아름다운 야경으로 유명하여, 늦은 저녁에도 사진 촬영을 하는 관광객들로 붐비는 장소이다. 야경을 편히 구경하고 싶다면 청사 좌측에 있는 렉스 호텔(Rex Hotel)을 방문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과거 전쟁 시 장교클럽으로 사용된 공간으로 호텔 옥상에 위치한 루프탑 가든에서 내려다 보는 야경은 호치민의 매력에 다시 한번 빠져들게 할 것이다. 호치민 여행은 베트남의 대표적인 저가 항공사인 비엣젯항공과 함께 합리적인 가격과 편리한 서비스로 즐길 수 있다. 현재 인천-하노이 직항 노선을 운영 중인 비엣젯 항공은 11월 7일부터 인천-호치민 직항 노선도 주 7회 운영할 예정이며, 오는 11월11일부터 18일까지 초특가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항공권을 최저 9,000원부터 판매하는 이번 프로모션은 매일 오후 2시부터 4시 사이에 진행되며, 비엣젯항공의 인천~하노이 및 인천~호치민 노선이 포함된다. (세금 및 유류할증료 미포함) 이번 프로모션 항공권은 비엣젯항공의 홈페이지(www.vietjetair.com), 모바일 사이트 또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구입 가능하며, 2015년 12월 1일부터 2016년4월 30일까지 사용 가능하다. 더불어 우선 탑승, 무료 기내식, 비즈니스 클래스 라운지 등의 혜택이 제공되는 비엣젯항공의 스카이보스(Skyboss) 패키지를 이용한다면 더욱 편안한 여행이 될 것이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천경자 화백의 최고가 작품 ‘초원Ⅱ’ 보러갈까

    천경자 화백의 최고가 작품 ‘초원Ⅱ’ 보러갈까

    종로구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하반기 기획전 ‘미인(美人): 아름다운 사람’이 열리고 있다. 특히 이 전시에는 지난 8월 세상을 떠난 것이 뒤늦게 밝혀진 천경자(1924~2015) 화백의 작품 가운데 경매에서 12억원의 최고가 낙찰액을 기록했던 ‘초원Ⅱ’(1978) 등 작품 7점이 포함돼 관심을 모은다. 서울미술관 측은 “미인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준비하던 중 공교롭게도 천 화백의 별세 소식을 듣게 됐다”며 “여성작가가 그린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자는 취지에서 한국의 대표 여성작가인 천 화백의 작품도 전시작에 포함시켰는데 묘하게 그 시기가 맞닿았다”고 말했다. 전시는 과거에서 현재까지 ‘미인’을 표현한 동서양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진정한 아름다움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그 의미를 돌아보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피카소, 샤갈, 르누아르, 마리 로랑생 등 서양 거장이 각각 그린 여인의 초상화를 볼 수 있다. 국내 작가들로는 유화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많이 그려진 장르 중 하나인 인물화와 누드화 등이 소개된다. 권옥연, 김기창, 김덕용, 김명희, 김원숙, 김흥수, 문학진, 박항률, 박영선 등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여기에 근현대 화단을 대표하는 천 화백의 작품도 관람객을 만난다. 작가의 강렬하고 대담한 색상의 인물화 등이 특별 추모공간에서 소개된다. 1974년작 ‘고(孤)’는 외로움과 고독에 쌓인 한 여인의 침묵을 담아내고 있다. 머리에 화려한 꽃 장식을 한 여인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보이는데 자신의 고독함을 잊고자 애써 웃음 짓는 작가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 듯하다. 작가가 자신의 초상화처럼 생각했다는 1989년작 ‘청혼’에는 아름답게 치장했지만 내면에는 고독과 슬픔을 간직한 것처럼 보이는 여인의 모습이 보인다. 천 화백이 뉴욕의 아파트에 걸어놓고 매일 바라봤던 작품이라고 미술관 측은 설명했다. 1967년 월간 ‘주부생활’ 4월호에 기고됐던 드로잉 ‘여인’도 공개된다. 수묵화 작업인 그의 드로잉은 강한 화풍이 돋보이는 작품들과는 달리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붓 터치가 이색적이고 우수에 젖은 눈매가 두드러진다고 미술관은 부연했다. 한 여인의 주변을 꽃으로 장식한 ‘청춘’(1973), 정면을 응시한 ‘테레사 수녀’(1977)도 함께 전시된다. 한편 천 화백 작품 중 최고가로 낙찰된 작품 ‘초원Ⅱ’는 현재 추정가가 22억원이라는 게 서울미술관의 설명이다. 전시는 내년 3월 20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피난민’과 골목길 산책… ‘김광석’과 동네 한 바퀴

    ‘피난민’과 골목길 산책… ‘김광석’과 동네 한 바퀴

    골목엔 사람의 체취가 강하게 담겨 있다. 아이들에겐 딱지치기나 구슬치기 등의 놀이를 통해 사회성과 경쟁심의 묘한 경계를 체험하던 곳이었다. 마음에 둔 소녀의 골목 안쪽 집을 사람들 눈 피해 은근히 다녀오던 비밀의 통로이기도 했다. 어른들에게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터다. 출근의 ‘좌절’과 퇴근의 ‘기쁨’을 담장 곳곳에 새겨 뒀겠지. 그렇게 골목은 비좁지만 경쟁과 다툼, 서정 등 온갖 종류의 감성이 넘나드는 공간이었다. 감성에 시간이 덧대지면 서사가 되고 역사가 된다. 대구에 그런 골목이 있다. 세월이 더께로 내려앉은 골목이다. 낡고 허름한 공간에 불과했지만 스토리텔링의 옷을 입히고 나니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이른바 대구 근대골목이다. 대구는 한국전쟁 때 수많은 사람이 피난처로 삼았던 곳이다. 한국전쟁의 포연이 비껴갔다는 얘기다. 특히 대구 중구의 경우 도시화와 재개발 열풍마저 피해 갔다. 이는 부산, 대전 등의 원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 덕에 일제강점기 때부터 지금까지 흔적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다. 대구 근대골목은 이런 골목길을 주제별로 나눠 관광코스로 개발한 것이다.골목길 투어는 제1코스 경상감영달성길부터 제5코스 남산 100년 향수길까지 모두 5개 구간으로 나뉜다. 가장 유명한 건 제2코스 근대문화골목이다. 길이는 1.64㎞에 불과하지만 건물이며 길 등이 거대한 노천박물관을 이루고 있어 제대로 보려면 2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들머리는 계명대 동산의료원과 신명여고다. 여기가 그 유명한 청라언덕이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으로 시작하는 가곡 ‘동무생각’에 나오는 그 언덕이다. ‘푸를 청’(靑)에 ‘담쟁이덩굴 라’(蘿)자를 쓰는데, 이는 언덕 위에 있는 세 채의 선교사 사택 담을 타고 올라간 담쟁이덩굴을 보고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가곡 가사에 ‘백합 같은 내 동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는 작곡가 박태준(1900~1986)이 짝사랑하던 신명여고 여학생을 뜻하는 표현이다.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 사라진다’고까지 했으니 여학생에 대한 연모의 정이 대단히 깊었던 듯하다. 당시 박태준과 교분이 두터웠던 시조시인 이은상이 그의 심정을 담아 시를 썼고 여기에 박태준이 곡을 붙였다.청라언덕에는 1905~1910년 사이에 지어진 선교사 주택이 남아 있다. 한식과 양식이 조합된 건물로, 일제가 대구읍성을 허물고 나온 돌이 일부 건축자재로 쓰였다. 이 가운데 의료 박물관으로 이용되는 챔니스 주택은 계성학교 2대 교장인 레이너와 챔니스 등의 사택으로 이용됐고, 선교 박물관인 스윗즈 주택은 계명대 초대 학장이었던 캠벨 등 선교사들의 주거 공간이었다. 스윗즈 주택 옆엔 사과나무 세 그루가 자라고 있다. ‘대구 사과’의 효시가 됐던 사과나무의 3세목이다. 1899년 동산의료원 초대 원장인 존슨 선교사가 미국에서 3개 품종의 사과나무를 들여와 사택 뜰에 심어 키웠고, 이 중 미주리 품종만 자라 동산의료원 주변으로 보급한 것이 대구를 사과 주산지로 만든 계기가 됐다고 한다.곧이어 3·1 만세운동길. 90개의 계단으로 이뤄진 오르막길이다. 계단을 내려와 횡단보도를 건너면 계산성당이다. 1918년 서울 명동과 평양에 이어 한국에서 세 번째로 세워진 성당이다. 이 성당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한국전쟁 중이던 1950년 12월 결혼식을 올렸다. 김수환 추기경 역시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계산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성직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계산성당 오른쪽 길가 담벼락에는 국채보상운동을 통해 국권회복을 꿈꾼 민족운동가 서상돈,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의 모자이크 초상화와 벽화, 시 등이 그려져 있다. 골목 안쪽엔 용케 재개발 위기를 모면한 서상돈, 이상화 고택이 나란히 붙어 있다. 이어 옛 제일교회와 약령시, 종로, 진골목, 화교소학교 등 격동기 대구의 근대문화 흔적들이 펼쳐진다.골목길 투어에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을 빼놓을 수 없다. 1996년 서른셋 나이에 세상을 등진 ‘비운의 가객’ 김광석을 현재로 소환하는 공간이다. 대구의 한 문화기획단체가 도시화의 뒤편으로 밀려났던 전통시장과 골목길을 재창조하기 위해 ‘김광석 테마’를 도입했는데 이게 여러 세대의 공감대를 얻으며 이른바 ‘대박’을 쳤다. 원래 4코스에 속한 길인데, 코스 완주 여부에 상관없이 꼭 찾아봐야 할 곳이다.골목에 들면 그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대개 그렇듯 그의 노래의 끝자락은 영혼의 위로에 가닿지 않던가. 애잔한 노래가 대부분이지만 듣다 보면 절로 가슴이 움직여지고 어느샌가 행복해진다. 그러니 이제 갓 이등병 계급장을 단 군인이며 겨우 서른 즈음에 이른 젊은이, 중장년층과 60대 노부부 등이 나이와 세대를 가리지 않고 그의 노래를 통해 위로를 받는 것일 게다.팁 하나. 김광석길 관광안내소, 서문시장 관광안내소는 반드시 들르자. 간간이 설문조사 등의 이벤트를 진행하는데, 참여한 이들에게 전통시장상품권 등을 선물로 준다. 사실상 현금이나 다름없어서 서문시장 등에서 ‘먹방 투어’를 즐길 때 제법 요긴하게 쓰인다. 물론 관광안내책자를 받아 오는 것도 잊지 말자.팔공산 동화사는 달 뜬 밤에 찾으면 좋다. 낮의 소란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적요해진 절집 뜨락을 온전히 자신만의 것으로 삼을 수 있다. 동화사가 깃든 대구 동북쪽 지명은 대개 고려 태조 왕건과 관계가 깊다. 예컨대 왕산(246m)은 후백제와의 전투에서 패한 왕건이 지나간 산, 곱창골목으로 이름난 안지랑은 왕건이 앉아서 깜빡 잠이 든 곳, 은적사는 꿈에 나타난 노인이 대피하라고 알려 준 절집이란 식이다. 반야월은 왕건이 허겁지겁 도망가다 이쯤이면 안심해도 되겠지 하고 하늘을 보니 반달이 떴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앞산전망대는 대구를 굽이돌아 가는 낙동강과 대구 도심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쉽게 올라 일망무제의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대구의 밤 풍경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다만 케이블카가 연장 운행되는 금~일요일에만 가능하다. 야경을 여유 있게 감상하고 등산로를 따라 걸어 내려올 수도 있지만 그리 권할 만한 코스는 아니다.글 사진 대구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여행수첩]→가는 길:근대골목 투어 때 꼭 정해진 들머리를 이용할 필요는 없다. 2코스의 경우 서문시장 쪽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 대구 지하철 3호선(모노레일) 신남역 6번 출구로 나와 7분 정도 걸으면 시작된다. 동산의료원 쪽에서 접근하면 청라언덕 등 하이라이트 부분부터 되짚어 나오게 된다. 시청 홈페이지나 전화로 해설을 신청하면 문화관광해설사와 동행하며 상세한 설명을 무료로 들을 수 있다.(053)661-2624. 골목에 얽힌 내력 등이 적힌 ‘도심문화탐방 골목투어’ 지도는 반드시 가져가야 한다. 대구 중구청, 혹은 골목길 안내소 등에서 얻을 수 있다. 모노레일 출발지는 수성못역이다. 대구 10미 가운데 하나인 막창골목과 가깝다. 서문시장에서 먼저 요기를 하겠다면 서문시장역, 김광석길을 먼저 가겠다면 대봉교역에서 내린다.→맛집:대구에서 맛봐야 할 게 ‘대구 10미’다. 이 가운데 납작만두, 누른국수(칼국수), 찜갈비, ‘야끼’(볶음)우동, ‘뭉티기’(생고기), 복어 불고기, 따로국밥 등 7가지를 서문시장과 골목길 투어 코스 주변에서 맛볼 수 있다. 특히 조선 시대 3대 시장 가운데 하나였다는 서문시장은 ‘먹방 투어’를 꿈꾸는 이들이 놓쳐서는 안 될 곳이다. 값싸고 맛있는 음식들과 만날 수 있다.
  • [서울 핫 플레이스] 광진구 ‘건대 앞’

    [서울 핫 플레이스] 광진구 ‘건대 앞’

    수백개가 넘는 술집과 식당. 비교적 저렴한 물가. 술 한잔하기에 천혜의 환경을 가진 이곳. 바로 건대 앞이다. 그런 이유로 ‘건대 앞에서 보자’는 말은 ‘오늘 술 한번 제대로 마셔 보자’는 말로 통한다. 그랬던 건대 앞이 최근 몇 년간 다양한 공연문화시설이 만들어지면서 능동로를 중심으로 서쪽은 청춘의 공간으로, 동쪽은 30·40대 직장인과 가족의 공간으로 재편되고 있다. 김기동 광진구청장은 이곳을 “젊은이들의 청춘을 불태우는 공간과 가족이 가을 산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공존하는 곳”이라고 자랑했다. [어디까지 가 봤니] ●‘건어물녀’ 1개 사단이 와도 문제없다… 미용실만 185곳 ‘뷰티로드’ 길의 시작을 어디서 하면 좋을까. 만약 20대 여성이라면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 4번 출구에서 출발하기를 권한다. 이곳을 시작으로 능동로를 따라 건대입구역까지 약 900m 구간은 가칭 ‘뷰티로드’로 불린다. 이곳에 밀집한 미용실만 185곳이고 이발소는 17곳, 피트니스·요가 등 스포츠센터 26곳, 뷰티마사지숍 10곳, 네일아트숍 19곳, 속눈썹관리숍 2곳이 자리를 잡고 있다. 10년째 건대 앞에서 일하고 있다는 미용사 강모(34)씨는 “1990년대 후반만 해도 50~60곳 정도가 있었는데, 이후 미용실의 메카인 이화여대 앞의 임대료가 폭등하면서 비교적 임대료가 저렴한 이곳으로 미용실이 몰려들게 된 것”이라며 “최근에는 이곳도 월세가 많이 오르면서 점점 세종대 쪽으로 뷰티로드가 확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게가 많아지면서 가격은 내려가고 서비스는 좋아졌다. 3000원으로 앞머리를 자를 수 있는 곳부터 딱 1명의 손님만 받는 1인 미용실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숍들이 즐비하다. 건국대 행정학과 3학년 최모(21)씨는 “건어물녀 1개 사단도 이곳만 지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델처럼 꾸밀 수 있다는 농담도 있다”고 말했다. ●하루 평균 6만여명 찾는 최신 식당·술집… 강남서도 찾아오는 ‘불금’ 뷰티로드에서 머리를 하고 옷도 한 벌 사다 보면 어느새 건대입구역 2번 출구에 도착한다. 이곳부터는 골목 탐험이 재미나다. 수백개의 식당과 술집이 밀집한 골목 안쪽은 하루 평균 유동인구만 6만 1000여명에 달한다. 특히 유동인구가 10만명을 훌쩍 넘기는 금요일 밤이 되면 ‘남녀상열지사’가 수십편은 연출된다. 이곳 식당과 술집의 특징은 유행에 민감하다는 것. 이곳에서 전복요리집을 운영하는 김모(36)씨는 “한때는 닭갈비가, 한때는 닭발이, 또 한때는 주꾸미집이 가득했다”면서 “대부분의 고객이 젊은층이다 보니 음식의 유행도 가장 빠르게 찾아왔다가 가장 먼저 사라진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감주’라고 불리는 ‘감성주점’이 이곳을 휩쓸고 있다. 한양대 3학년 김모(21)씨는 “술집과 클럽의 중간 형태”라면서 “최근 유행 음악이 나오는데, 거기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하고 그러다 눈이 맞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자연스러운 부킹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이 제한이 만만찮다. 대부분 20대 중후반을 커트라인으로 출입을 금하는데, 엄격한 곳은 만 26세부터 출입이 안 된다. 먹고 마시는 곳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4월 광진구가 골목 한쪽에 만든 야외 공연장 ‘청춘뜨락’은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에 아카펠라와 힙합, 포크, 재즈, 록밴드 공연, 마술, 팬터마임 등 다양한 공연이 열리는 버스킹(거리 공연)의 명소가 됐다. 맥줏집을 운영하는 한모(42)씨는 “가끔은 프로가 아닌가 할 정도로 실력 있는 밴드의 공연이 열릴 때도 있다”면서 “작은 공연장이 들어서고 나서 골목의 분위기가 좀 더 문화적으로 바뀌었다”며 웃었다. ●컨테이너박스 200개 쌓은 ‘커먼그라운드’… 힙합·랩 공연 아지트 부상 건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200m 정도 걸어 나오면 영국 런던의 박스파크나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컨테이너파크처럼 컨테이너를 이용해 쌓아 올린 쇼핑몰을 만날 수 있다. 40피트 컨테이너박스 200개를 겹겹이 쌓은 커먼그라운드에는 비주류 패션 브랜드숍 56개와 한식·일식·태국요리 등 16개의 식당이 있다. 건물이 조금 다르게 생겼다고 핫플레이스가 될 수는 없다. 이곳을 진짜 핫하게 만드는 것은 컨테이너건물 가운데 빈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는 대학생 동아리를 비롯해 청년들이 자신들이 하고 싶은 공연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커먼그라운드 관계자는 “공연 장르는 커버댄스부터 힙합, 랩 등 다양하다”며 “입소문을 타면서 요즘엔 공연을 하려면 줄을 서야 할 정도”라고 귀띔했다. ●화양동 분수광장부터 이어진 공연·프리마켓… ‘한국 몽마르트르’ 꿈꾼다 청춘을 불태우는 서쪽길과 달리 동쪽은 가족과 한적하게 문화를 즐기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먼저 가 볼 곳은 화양동 분수광장 앞에 설치된 아트브리지 무대다. 이곳에선 토요일 오후 7시 30분이면 실력파 인디밴드들이 공연을 펼친다. 올해로 벌써 4년째가 되면서 유명해져 이제 무대에 서려면 오디션을 먼저 통과해야 한다. 구 관계자는 “홍대의 밴드 연주 공간이 줄어들면서 공연할 곳을 찾지 못한 인디밴드들이 오디션에 많이 참가한다”며 “최근 수준이 높아지면서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드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아트브리지 무대를 지나 건대입구역 쪽으로 내려오면 젊은 예술가들이 수공예품을 파는 프리마켓을 만날 수 있다. 보통 금요일과 토요일에 오후 4시부터 9시까지 열리는데 날씨에 따라서 시간이 단축되기도 한다. 프리마켓에는 초상화를 그려 주는 이들부터 자체 디자인한 가방과 지갑, 도자기 그릇 등을 판매하는 사람도 있다. 가끔 도자기를 만드는 물레를 체험하는 팀도 참석하는데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다. 프리마켓 관계자는 “과거 70팀까지 올 정도로 프리마켓 참가자가 많았는데, 요즘은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거리가 만들어지면서 50~60팀 정도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광진구는 세종대에서 건대에 이르는 이 길을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처럼 예술과 문화가 흐르는 곳으로 만들 계획이다. 구는 최근 광진문화회관 앞에도 시민들이 연주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건대 앞 사거리를 지나 한강공원으로 쭉 내려오면 자벌레를 만날 수 있다. 어린이도서관과 수족관, 곤충전시관, 작품전시관 등으로 구성된 자벌레는 그 모양이 ‘자벌레’를 닮아 지어진 이름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한강 풍경은 ‘엄지 척’이라고 할 만하다. [뭘 먼저 먹어 볼까] 먹을 것이 차고 넘치는 건대 앞. 농담처럼 100만 가지의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까닭에 무엇을 먹을지 고르는 것이 더 어렵다. 또 빠르게 식당가가 바뀌기 때문에 자칫 인테리어만 보고 들어갔다가는 폭탄을 맞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동네에서 잘 먹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먼저 눈에 띄는 골목은 양꼬치거리다. 중국인들의 이주가 늘면서 만들어진 이 630m 길이의 골목에는 100여개가 넘는 양꼬치집이 성업을 하고 있다. ‘양러우촨’(羊肉)이라 불리는 양꼬치의 가격은 1인분에 1만원~1만 2000원 수준. 1인분을 시키면 10개의 양꼬치가 나온다. 여기에 중국에서 건너온 칭다오 맥주를 한잔 추가하면 더 좋다. 중국 정통 양꼬치는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느끼한 음식이지만 건대 앞 양꼬치는 기름기를 줄이고 중국음식 특유의 향도 줄였다. 양꼬치뿐만 아니라 만두와 전병을 비롯해 다양한 중국 가정식을 판매하는 식당도 있다. 구청 공무원들은 이곳에 있는 송화반점과 매화반점을 자주 이용한다고 한다. 두 번째로 추천할 만한 곳은 커먼그라운드의 옥상 식당가다. 이곳에는 16개의 식당이 있는데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 커먼그라운드 광장에 세워진 푸드트럭에서 파는 수제 햄버거와 감자, 맥주를 서서 먹다 보면 마치 여행을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6500원짜리 햄버거에 3500원을 더하면 세트로 먹을 수 있다. 광장에는 한국식 타코를 파는 가게와 추로스와 음료 등 간식거리를 파는 곳도 있다. 옷가게가 즐비했던 로데오거리에 숨어 있는 맛집도 있다.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은호초밥과 화덕피자와 떡볶이를 함께 먹을 수 있는 퓨전음식점 ‘바나바나’가 인기를 끌고 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서울 핫 플레이스] 광진구 ‘건대 앞’

    [서울 핫 플레이스] 광진구 ‘건대 앞’

    수백개가 넘는 술집과 식당. 비교적 저렴한 물가. 술 한잔하기에 천혜의 환경을 가진 이곳. 바로 건대 앞이다. 그런 이유로 ‘건대 앞에서 보자’는 말은 ‘오늘 술 한번 제대로 마셔 보자’는 말로 통한다. 그랬던 건대 앞이 최근 몇 년간 다양한 공연문화시설이 만들어지면서 능동로를 중심으로 서쪽은 청춘의 공간으로, 동쪽은 30·40대 직장인과 가족의 공간으로 재편되고 있다. 김기동 광진구청장은 이곳을 “젊은이들의 청춘을 불태우는 공간과 가족이 가을 산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공존하는 곳”이라고 자랑했다. [어디까지 가 봤니] ●‘건어물녀’ 1개 사단이 와도 문제없다… 미용실만 185곳 ‘뷰티로드’ 길의 시작을 어디서 하면 좋을까. 만약 20대 여성이라면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 4번 출구에서 출발하기를 권한다. 이곳을 시작으로 능동로를 따라 건대입구역까지 약 900m 구간은 가칭 ‘뷰티로드’로 불린다. 이곳에 밀집한 미용실만 185곳이고 이발소는 17곳, 피트니스·요가 등 스포츠센터 26곳, 뷰티마사지숍 10곳, 네일아트숍 19곳, 속눈썹관리숍 2곳이 자리를 잡고 있다. 10년째 건대 앞에서 일하고 있다는 미용사 강모(34)씨는 “1990년대 후반만 해도 50~60곳 정도가 있었는데, 이후 미용실의 메카인 이화여대 앞의 임대료가 폭등하면서 비교적 임대료가 저렴한 이곳으로 미용실이 몰려들게 된 것”이라며 “최근에는 이곳도 월세가 많이 오르면서 점점 세종대 쪽으로 뷰티로드가 확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게가 많아지면서 가격은 내려가고 서비스는 좋아졌다. 3000원으로 앞머리를 자를 수 있는 곳부터 딱 1명의 손님만 받는 1인 미용실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숍들이 즐비하다. 건국대 행정학과 3학년 최모(21)씨는 “건어물녀 1개 사단도 이곳만 지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델처럼 꾸밀 수 있다는 농담도 있다”고 말했다. ●하루 평균 6만여명 찾는 최신 식당·술집… 강남서도 찾아오는 ‘불금’ 뷰티로드에서 머리를 하고 옷도 한 벌 사다 보면 어느새 건대입구역 2번 출구에 도착한다. 이곳부터는 골목 탐험이 재미나다. 수백개의 식당과 술집이 밀집한 골목 안쪽은 하루 평균 유동인구만 6만 1000여명에 달한다. 특히 유동인구가 10만명을 훌쩍 넘기는 금요일 밤이 되면 ‘남녀상열지사’가 수십편은 연출된다. 이곳 식당과 술집의 특징은 유행에 민감하다는 것. 이곳에서 전복요리집을 운영하는 김모(36)씨는 “한때는 닭갈비가, 한때는 닭발이, 또 한때는 주꾸미집이 가득했다”면서 “대부분의 고객이 젊은층이다 보니 음식의 유행도 가장 빠르게 찾아왔다가 가장 먼저 사라진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감주’라고 불리는 ‘감성주점’이 이곳을 휩쓸고 있다. 한양대 3학년 김모(21)씨는 “술집과 클럽의 중간 형태”라면서 “최근 유행 음악이 나오는데, 거기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하고 그러다 눈이 맞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자연스러운 부킹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이 제한이 만만찮다. 대부분 20대 중후반을 커트라인으로 출입을 금하는데, 엄격한 곳은 만 26세부터 출입이 안 된다. 먹고 마시는 곳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4월 광진구가 골목 한쪽에 만든 야외 공연장 ‘청춘뜨락’은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에 아카펠라와 힙합, 포크, 재즈, 록밴드 공연, 마술, 팬터마임 등 다양한 공연이 열리는 버스킹(거리 공연)의 명소가 됐다. 맥줏집을 운영하는 한모(42)씨는 “가끔은 프로가 아닌가 할 정도로 실력 있는 밴드의 공연이 열릴 때도 있다”면서 “작은 공연장이 들어서고 나서 골목의 분위기가 좀 더 문화적으로 바뀌었다”며 웃었다. ●컨테이너박스 200개 쌓은 ‘커먼그라운드’… 힙합·랩 공연 아지트 부상 건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200m 정도 걸어 나오면 영국 런던의 박스파크나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컨테이너파크처럼 컨테이너를 이용해 쌓아 올린 쇼핑몰을 만날 수 있다. 40피트 컨테이너박스 200개를 겹겹이 쌓은 커먼그라운드에는 비주류 패션 브랜드숍 56개와 한식·일식·태국요리 등 16개의 식당이 있다. 건물이 조금 다르게 생겼다고 핫플레이스가 될 수는 없다. 이곳을 진짜 핫하게 만드는 것은 컨테이너건물 가운데 빈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는 대학생 동아리를 비롯해 청년들이 자신들이 하고 싶은 공연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커먼그라운드 관계자는 “공연 장르는 커버댄스부터 힙합, 랩 등 다양하다”며 “입소문을 타면서 요즘엔 공연을 하려면 줄을 서야 할 정도”라고 귀띔했다. ●화양동 분수광장부터 이어진 공연·프리마켓… ‘한국 몽마르트르’ 꿈꾼다 청춘을 불태우는 서쪽길과 달리 동쪽은 가족과 한적하게 문화를 즐기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먼저 가 볼 곳은 화양동 분수광장 앞에 설치된 아트브리지 무대다. 이곳에선 토요일 오후 7시 30분이면 실력파 인디밴드들이 공연을 펼친다. 올해로 벌써 4년째가 되면서 유명해져 이제 무대에 서려면 오디션을 먼저 통과해야 한다. 구 관계자는 “홍대의 밴드 연주 공간이 줄어들면서 공연할 곳을 찾지 못한 인디밴드들이 오디션에 많이 참가한다”며 “최근 수준이 높아지면서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드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아트브리지 무대를 지나 건대입구역 쪽으로 내려오면 젊은 예술가들이 수공예품을 파는 프리마켓을 만날 수 있다. 보통 금요일과 토요일에 오후 4시부터 9시까지 열리는데 날씨에 따라서 시간이 단축되기도 한다. 프리마켓에는 초상화를 그려 주는 이들부터 자체 디자인한 가방과 지갑, 도자기 그릇 등을 판매하는 사람도 있다. 가끔 도자기를 만드는 물레를 체험하는 팀도 참석하는데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다. 프리마켓 관계자는 “과거 70팀까지 올 정도로 프리마켓 참가자가 많았는데, 요즘은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거리가 만들어지면서 50~60팀 정도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광진구는 세종대에서 건대에 이르는 이 길을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처럼 예술과 문화가 흐르는 곳으로 만들 계획이다. 구는 최근 광진문화회관 앞에도 시민들이 연주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건대 앞 사거리를 지나 한강공원으로 쭉 내려오면 자벌레를 만날 수 있다. 어린이도서관과 수족관, 곤충전시관, 작품전시관 등으로 구성된 자벌레는 그 모양이 ‘자벌레’를 닮아 지어진 이름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한강 풍경은 ‘엄지 척’이라고 할 만하다. [뭘 먼저 먹어 볼까] 양꼬치·수제 버거·타코… ‘글로벌 푸드코트’ 따로 없네 먹을 것이 차고 넘치는 건대 앞. 농담처럼 100만 가지의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까닭에 무엇을 먹을지 고르는 것이 더 어렵다. 또 빠르게 식당가가 바뀌기 때문에 자칫 인테리어만 보고 들어갔다가는 폭탄을 맞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동네에서 잘 먹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먼저 눈에 띄는 골목은 양꼬치거리다. 중국인들의 이주가 늘면서 만들어진 이 630m 길이의 골목에는 100여개가 넘는 양꼬치집이 성업을 하고 있다. ‘양러우촨’(羊肉)이라 불리는 양꼬치의 가격은 1인분에 1만~1만 2000원 수준. 1인분을 시키면 10개의 양꼬치가 나온다. 여기에 중국에서 건너온 칭다오 맥주를 한잔 추가하면 더 좋다. 중국 정통 양꼬치는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느끼한 음식이지만 건대 앞 양꼬치는 기름기를 줄이고 중국음식 특유의 향도 줄였다. 양꼬치뿐만 아니라 만두와 전병을 비롯해 다양한 중국 가정식을 판매하는 식당도 있다. 구청 공무원들은 이곳에 있는 송화반점과 매화반점을 자주 이용한다고 한다. 두 번째로 추천할 만한 곳은 커먼그라운드의 옥상 식당가다. 이곳에는 16개의 식당이 있는데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 커먼그라운드 광장에 세워진 푸드트럭에서 파는 수제 햄버거와 감자, 맥주를 서서 먹다 보면 마치 여행을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6500원짜리 햄버거에 3500원을 더하면 세트로 먹을 수 있다. 광장에는 한국식 타코를 파는 가게와 추로스와 음료 등 간식거리를 파는 곳도 있다. 옷가게가 즐비했던 로데오거리에 숨어 있는 맛집도 있다.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은호초밥과 화덕피자와 떡볶이를 함께 먹을 수 있는 퓨전음식점 ‘바나바나’가 인기를 끌고 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청나라 건륭제 ‘황귀비 초상화’ 205억원...역대 최고가

    청나라 건륭제 ‘황귀비 초상화’ 205억원...역대 최고가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순혜황귀비(純惠皇貴妃) 초상화가 7일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1억 3740만 홍콩달러(약 205억 3000만원)에 낙찰됐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중국 황실 초상화로는 역대 최고가. 순혜황귀비의 유일한 전신 초상화인 이 작품은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으로 청나라의 궁정화가가 된 낭세녕(郞世寧, 주세페 카스틸리오네)이 그린 것으로, 베이징 구궁박물관 컬렉션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라고 니콜라스 차우 소더비 아시아 부회장은 설명했다. 이날 경매에서 이 초상화는 입찰자들의 열띤 경쟁 끝에 익명의 홍콩 수집가에게 낙찰됐다. 당초 낙찰 예상가는 6000만 홍콩달러(약 89억6500만 원). 순혜황귀비는 23살인 건륭 원년(1737년)에 서복진(庶福晉, 비첩)에서 순빈(純嬪)으로, 건륭 2년에는 순비(純妃)로, 건륭 10년에는 순귀비(純貴妃)로 올랐고 사망하기 직전인 건륭 25년(1760년)에 황귀비로 진봉(進封)됐다. 황귀비는 황후(皇后)에 준하는 으뜸 후궁의 지위를 말한다. 중국 황실 초상화에 관한 이전 기록은 역시 궁정화가 낭세녕이 그린 순혜황귀비의 반신 초상화로 2012년 5월 홍콩 경매 당시 3986만 홍콩달러(약 59억5900만원)를 기록했다. 또한 이날 경매에서는 ‘카슈미르의 보석’이라 불리는 27.68캐럿의 카슈미르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 반지가 5228만 홍콩달러(약 78억2000만 원)에, 영국 귀족 카우드레이 자작부인이 소유했던 희귀한 천연 회색 진주 목걸이는 4100만 홍콩달러(약 61억4000만 원)에 각각 낙찰됐다. 사진=소더비 제공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희귀 회색진주 42알 목걸이 무려 61억원 낙찰

    희귀 회색진주 42알 목걸이 무려 61억원 낙찰

    한때 영국 귀족이 소유했던 희귀한 천연 회색 진주 목걸이가 7일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4100만 홍콩달러(약 61억4000만 원)에 낙찰됐다고 AFP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천연 회색 진주로는 역대 최고가. 이 목걸이는 영국 카우드레이(Cowdray) 자작부인 레이디 피어슨(Pearson)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수집한 아이템 중 하나로 알려졌다. 프랑스 보석·시계업체 소시에떼 까르띠에가 천연 해수 회색 진주 42개를 사용해 만든 것. 쿽친이우(郭進耀) 소더비 아시아 부대표는 “천연 해수 회색 진주가 경매에 나오는 것은 매우 드물며, 게다가 나폴레옹 손녀와 연관이 있다고 알려진 42개의 최고급 회색 진주 목걸이는 현존하는 유사 제품 중에서도 확실히 최고의 명품”이라고 강조했다. 애초 낙찰 예상가인 700만 홍콩달러의 6배에 달하는 거액에 낙찰받은 이는 전화로 참여한 홍콩의 한 개인 수집가로 알려졌다. 목걸이는 카우드레이 자작부인이 1932년 사망한지 5년 만인 1937년 처음 경매에 나왔다. 자작부인은 보석 외에 가구와 미술품 컬렉션으로도 알려졌다. 이후 이 목걸이는 2012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 335만 홍콩달러(약 5억 1100만원)에 낙찰됐다. 또한 이날 경매에서는 ‘카슈미르의 보석’이라 불리는 27.68캐럿의 카슈미르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 반지가 5228만 홍콩달러(약 78억2000만 원)에,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황귀비(皇貴妃) 초상화가 1억 3740만 홍콩달러(약 205억5000만 원)에 각각 낙찰됐다. 사진=ⓒAFPBBNEWS=NEWS1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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