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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도공 후예 도고 서울대 초빙교수 “아직도 핏줄이 당긴다”

    조선도공 후예 도고 서울대 초빙교수 “아직도 핏줄이 당긴다”

    임진왜란 때인 1598년 전북 남원에서 수많은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갔다.400년 이상 흘렀다. 그 핏줄을 이어받은 도고 가즈히코(東鄕和彦·62)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뿌리찾기에 나섰다. 그는 규슈 가고시마현 미야마 마을에 정착, 지금도 14개 가마에서 그릇을 굽고 있는 조선도공들 가운데 박씨의 후손이다. 한·일관계는 물론 뒤엉킨 현대사의 한복판에 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던 도고 교수를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할아버지 시게노리 2차대전 때 외무대신 역임 도고 교수의 할아버지는 일본의 태평양전쟁 개전과 패전시 외무대신을 역임한 도고 시게노리다. 아버지도, 그도 고위외교관 출신으로 3대 외교관 집안이다. 도자기노예인 조선도공 박씨 집안 3대가 일본의 고위 외교직을 차례로 역임한 건 역사의 아이러니다. 시게노리는 원래 박무덕이었다. 부친 박수승 대까지 도자기노예 후예로서 모진 삶을 이어갔다. 그런데 메이지유신으로 차별이 심화됐다. 수승은 박씨란 성을 자신의 대에서 끊고 귀화했다.1882년생 시게노리가 5살 때이다. 수재 시게노리는 고향에서 중고교를 졸업한 뒤 도쿄대학에 들어가 독일문학을 공부했다. 그 뒤 외교관 시험에 합격했다. 독일 외교관시절 만난 그의 아내는 독일여자였다. 아이가 다섯 있던 그녀의 사별한 남편 게오르그는 조선총독부 건물을 기본 설계한 건축기사다. 시게노리는 독일과 소련 대사를 역임한 뒤 태평양전쟁 발발 당시인 1941년 외무상에 발탁되었다. 군부에 맞서 전쟁을 피하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외무상을 그만뒀으나 종전 직전인 45년 4월 외무상에 재기용됐다. 그때 일왕에게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라고 강력 주장, 조기종전으로 일본사람의 전멸을 피하게 했다는 칭송도 받았다. 시게노리는 A급 전범으로 20년 금고형을 선고받는다. 개전 반대 노력 등을 전범재판소가 평가, 사형은 피했다. 도고 교수는 “다섯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막연한 기억밖에 없다. 어머니, 형과 함께 가끔 스가모형무소로 면회갔을 때 낭하에서 검붉은 환자복을 입고 걸어나오던 모습을 기억한다.”고 회상했다. 시게노리는 미군병원에서 1950년 7월 숨졌다. 시게노리는 겉으로는 도공 박씨의 후손이라는 것을 숨겼지만 가보지 못한 조선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국장 시절 조선에서 최초로 외교관 시험에 합격, 일본 외무성 과장으로 부임했던 직원에게 자신도 조선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토로하며 격려하기도 했다. 시게노리는 현재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돼 있고, 무덤은 도쿄시내 아오야마묘지에 있다. ●DJ납치, 주한미군철수와 아버지 시게노리는 외동딸만을 두었다. 딸과 결혼한 자신의 비서관 출신 사위를 호적에 양자로 입적시켜 도고 후미히코라고 하게 된다. 후미히코의 한국사랑은 유별났다.1973년 한일 각료회의 때 외무성 심의관으로 한국을 방문, 김대중납치사건을 처리했다. 문세광의 74년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 뒤 한국을 재방문, 사건수습에 진력했다고 한다. 외무성 차관 때도 한국과 인연을 맺었으며 차관 사임 뒤 부부가 한국을 다시 방문해 판문점과 휴전선 부근의 남침용 땅굴을 보고, 한국의 안보 상황을 체험했다.77년 카터 전 미 대통령 시절에는 주미 일본대사로 카터가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하자 워싱턴 조야에서 “주한미군 철수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의 안보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설득, 한·일 공동외교를 폈다. 부친이 한국과 공동외교전을 폈다는 사실에 대해 도고 교수는 “거의 모르지만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본다. 아버지는 사무차관 때 중국 및 한국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맡으셨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참 오래 전부터(400여년전) 한국과 연결됐다.”고 독백처럼 말했다. 후미히코는 20여년 전, 부인은 10여년 전 숨졌다. ●남원의 박씨 집안 후손… 뿌리를 찾아나섰다 후미히코는 태평양전쟁 말기 노약자 소개정책에 따라 나가노현에서 태어난 쌍둥이 아들을 뒀다. 형 시게히코는 워싱턴포스트지 도쿄특파원을 하다 최근 퇴직했다. 특파원 시절에는 한국도 여러번 방문, 따뜻한 가슴으로 여러편의 기사를 작성해 신문에 실었다.“현재 퇴직후 공부중”이라고 한다. 도고 교수는 도쿄대학 출신 엘리트외교관이었다.17년간 러시아관계 일을 맡아 러시아어, 영어에 능통했다. 한국어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두마디만 할 수 있다. 두 아들(각각 34·30세)은 현재 일본의 회사에 재직중이다. 형도 아들만 둘이다. 도고 교수는 “내 핏속에는 독일인 피도 4분의1이 흐른다. 일부 조선인의 피도 흐른다.”며 자신의 정체성 문제로 고민도 많이 했다고 소개했다. 다만 “일본이 나의 유일한 조국”이라며 단호했다. 그러나 핏줄찾기 열의는 대단하다. 최근의 일본인들에게 핏줄의식은 없지만 자신에게는 “조금은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가 네덜란드 대사로 부임하기 전 고향 미야마 마을을 찾았다고 밝힐 때는 고향·핏줄을 중시하는 조선도공의 영향이 느껴졌다. 그의 조상들이 남원서 왔다는 것은 형의 ‘조부 시게노리’라는 책에 실려 있다.“한국에 있는 4개월 동안 반드시 가보고 싶다.”면서 남원과 ‘춘향전’,‘광한루’ 등이라고 적은, 소중하게 갖고 온 메모지를 보여주었다. 형 시게히코는 집안 대대로 내려온 조선시대 도자기 사발을 가보로 모신다. 자신도 미야마의 조선도공 출신 심수관씨로부터 받은 몇 개의 도자기를 도쿄 미나토구 한국대사관 근처 자택에 “소중히 보관중”이라고 소개했다. 한국과 연결된 끈들이다. ●현대사 소용돌이에 휘말리다 도고 교수는 2002년 초반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촉망받던 고위 외교관리였다.1997년 유럽아시아 국장이었다.98년 11월 조선도공들의 가고시마 정착 400주년 기념식장에 당시의 한·일 각료회의에 참석한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 김종필 한국 총리 등과 동석하는 큰 영광도 누렸다. 그 해에 ‘시게노리 기념관’이 생겨나는 등 고향 미야마 마을은 온통 조선도공의 열기였다고 회상한다. 특히 양국 총리와 외무장관 등이 시게노리의 동상 등을 방문했을 때는 마을의 지도자와 한국측 참석자들이 여러 차례 눈물을 흘리던 장면을 잊지 못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당시를 “아주 독특하고 역사적인 장면”이라고 묘사했다. 하지만 그는 복잡한 일본 현대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측근인 외무성의 사토 마사루가 2차대전 뒤 일·러간 현안인 북방4개 섬 일본 반환문제를 대화로 풀기 위한 노력을 시도하다가 2002년 구속되면서다. 그도 네덜란드대사 부임 8개월 만에 해임돼 유랑생활을 하게 된다. 지난해 6월 사토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기까지 4년 이상 일본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은 채 “조국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4개 섬 일괄반환론 틀 안에서 4개 섬의 귀속을 인정해주면 러시아가 언제까지 보유해도 무방하다는 ‘가나와 제안’을 추진한 것이 문제였다. 그것이 안 되면 우선 2개 섬 반환을 확실히 하고,2개 섬은 다음에 교섭하는 단계론을 펴다 우익 학자와 시민단체들의 맹렬한 공격에 사토가 구속되고 실무 추진 당시 상사였던 그는 해임됐다. 도고 교수는 “북방영토가 일본의 영토라는 원칙은 전후에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 단지 교섭 방법론이 문제였다.”며 당시에는 자신도 네덜란드에서 귀국하면 구속될 수 있다는 등의 흉흉한 소문이 돌아 일본행을 포기하고 네덜란드에 눌러앉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망명은 저널리즘적인 표현이다. 그저 일본이 싫어서 귀국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외무성을 퇴임한 뒤 네덜란드 라이덴대학에서 2년, 미국 프린스턴대학 2년, 타이완 단코대 4개월,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대학 6개월 등의 교수를 거쳤다. 지난 7월 유랑생활을 청산하고 부인과 함께 일본 도쿄에 주민등록을 해 영주키로 했다. ●“한국학생들 매우 논리적” 그는 미국에서 맺은 인연으로 이번 학기 초빙교수 자격으로 서울대에서 일주일에 3시간짜리 한 강좌를 맡고 있다. 한국 학생 20명과 외국학생 10명에게 한·일관계 등 동북아 외교 현안을 정면으로 가르친다. 도고 교수는 “한국 학생들은 감성적이지 않다. 매우 논리적이다. 이들이 한국지도부에 들어가는 날 한·일 양국관계는 매우 밝다고 본다.”고 자신했다. 학자, 시민단체 등 새로운 형태의 한·일 교류가 활발한 것도 반기고 있다. 후쿠다 야스오 총리 정권이 한·일 관계를 잘 해갈 것이라며 급한 국내과제를 해결, 일본 내부 반발을 해소해 정권기반을 다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이 최근 정치·경제적으로 ‘자신감’을 가진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평가했다. 자신감이 북한·일본과의 관계에도 반영되고 있다고 봤다. 대통령선거 뒤 한·일 양국이 정상간 셔틀외교를 재개하길 바랐다. 아울러 ‘일본은 없다’,‘혐한류’ 등 책이 출판돼 양국관계를 왜곡하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한다며 우려하기도 했다. 도고 교수는 일본이 한국,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 동북아시아 평화시대를 열어가기를 희망했다. 그러면서도 “일본사회가 우경화됐다지만 우경화되거나 반한사상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일본인은 건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역사의 흐름상으로 한반도는 통일될 시기를 맞았다.”고 분석했다. 이춘규기자 taein@seoul.co.kr ■도고 가즈히코 교수 ▲1945년 나가노현 출생(태평양전쟁말기 노약자의 소개정책으로 인해 모친이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에 거주중) ▲68년 도쿄대학 교양학과 졸업 ▲68년 4월 외무성 입성 ▲72년 모스크바 일본대사관 근무(모두 3차례 대사관 근무를 포함 소련과장과 유럽아시아국장 등으로 17년간이나 러시아관계 일을 맡음) ▲91년 워싱턴 일본대사관 총괄공사 ▲98년 외무성 조약국장 ▲99년 유럽아시아 국장 ▲2001년 네덜란드대사 부임 ▲02년4월 네덜란드대사 해임 ▲02년5월 일본을 떠나 유랑 ▲07년7일 5년 만에 일본 귀국 ●최근의 저서 ‘북방영토 교섭비록’(일어) ‘일본외교 1945∼2003’(영어)
  • [정종욱 월드포커스] 뿌리치기 힘든 종전선언의 유혹

    [정종욱 월드포커스] 뿌리치기 힘든 종전선언의 유혹

    종전선언을 두고 말들이 많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 4일 발표된 남북정상회담 공동선언문이었다.‘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는 말을 두고 설왕설래가 시작되었다.3자가 되면 누가 빠지느냐는 질문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문제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종전선언이 구체적으로 거론된 것이 작년 11월 한·미 정상회담에서였고, 남북정상회담에서 이 문제가 거론될 것이라는 얘기도 정부 쪽에서 흘러나왔다. 그런데도 막상 종전선언의 주체가 누구인지 논의하지 않았다니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었다. 종전선언의 주체에 대한 시비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이번에는 선언을 언제 하느냐는 문제가 불거져나왔다. 청와대 안보실장은 종전선언이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기 위한 협상의 시작이라고 했지만, 외교부 장관은 평화체제를 협상하는 과정의 일부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종전선언을 하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협상이 시작될 것이라는 게 청와대의 입장인 데 비해, 외교부는 평화협정 논의를 위한 구체적 여건이 갖추어져 비로소 정전선언이 가능하다고 했다. 여기서 어느 쪽의 생각이 맞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청와대와 외교부가 똑 같은 문제를 각각 다른 입장에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라는 시각에서 문제를 본다. 청와대는 종전선언을 함으로써 한반도에서 전쟁을 종식시킨 대통령을 만들어보고 싶어하는 듯하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개발 그리고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종전선언까지 하게 되면 적어도 남북관계에서의 대통령의 업적은 대단한 것이 될 수 있다. 대통령이 역사에 보다 훌륭한 기록을 남기기를 원한다고 해서 인색해할 필요는 없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무리하게 일을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선언을 한 다음에도 한반도가 전쟁의 위협에서 크게 자유롭지 못하다면 선언은 우스갯거리가 되고 만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핵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북한이 핵 시설의 불능 단계를 끝내고 보유한 핵 물질을 모두 성실히 신고해야 한다. 금년 말까지 이런 일들이 끝날 것이라는 게 힐 차관보의 말이지만 아직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특히 최근 주변의 정세를 보면 걱정스러운 일이 한 둘이 아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제재조치를 강행하려 하고 있다. 이란이 핵시설을 건설하고 있고 이라크 반군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혼자라도 이란의 혁명수비대에 대한 제재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은행도 네 곳이나 자금을 동결했다. 게다가 미국 내에서는 다시 보수파들이 강경입장을 내놓고 부시를 압박하고 있다. 가장 위험한 것은 부시가 이란을 보는 시각이다. 그에게 이란은 미국을 파멸시키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불사하는 악의 축일 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상황을 5년 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당시와 유사하다고 말한다. 부시 자신도 얼마 전에 세계 3차 대전 가능성을 거론한 바 있다. 그래서는 안 되지만 중동 정세는 치솟는 기름값만큼이나 불안지수가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북한과 관련이 있는 시리아의 핵시설에 대한 의문이 다시 나오고 있다. 비관할 필요는 없지만 정말 신중해야 할 때이다. 종전선언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한반도에서 지난 반세기 이상 지속되어온 정전체제를 없애고 평화체제로 가는 새로운 길을 열어놓으려 하는 것이지만 주변의 여건은 그렇지 않다. 국제정치에서 선언처럼 화려하면서도 실속 없는 행동도 없다. 선언이 나쁠 거야 없지만 그것이 실속 있는 역사적 업적이 되기 위해서는 여건이 숙성될 때까지 기다리는 현명함이 있어야 한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 [외환위기 10년 그리고 미래] 당시 경제관료들 지금은

    [외환위기 10년 그리고 미래] 당시 경제관료들 지금은

    10년 전 외환위기에 맞섰던 경제관료들 가운데 일부는 ‘환란의 주범’으로 몰려 불명예 퇴진했으나 상당수는 공기업과 재계·관계·정계 등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Mr. 펀더멘털’로 불렸던 강경식 경제부총리는 2000년부터 동부그룹 금융보험부문 회장을 거쳐 지금은 그룹 상임고문직을 맡고 있다. 앞서 2002년부터는 세계적인 청소년교육전문비영리기관 ‘JA코리아’의 이사장직도 수행 중이다.1991년 자신이 만든 민간연구소 국가경영전략연구원(NSI)의 이사장도 17년째 맡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합의에도 불구, 취임 첫날 ‘IMF에 안 간다.’는 발언을 한 임창열 경제부총리는 성체줄기세포 신약개발 전문기업인 알앤엘바이오의 회장으로 있다.‘환란 소방수’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 그는 정치권에 입문,1998년 경기도 지사에 당선됐다. 강 부총리와 함께 경질됐던 김인호 청와대 경제수석은 ‘김인호경제연구소’의 대표로 있다. 지난 7월까지는 중소기업연구원장직을 수행했다. 97년 IMF 협상과 98년 1월 뉴욕 외채협상을 지휘했던 정덕구 재경원 차관보는 산업자원부 장관과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을 거쳐 현재 동북아연구재단(NEAR) 이사장으로 있다. 베이징인민대 초빙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김기환 당시 대외경제협력 특사는 서울파이낸셜포럼 회장이자 골드만삭스 국제고문직을 맡고 있다. 원봉희 재경원 금융총괄심의관은 법무법인 김&장에서 국제변호사로, 김우석 국제금융국장은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 사장, 김규복 금융정책과장은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으로 각각 있다. 이명박 캠프에서 ‘경제브레인’ 역할을 하는 인사도 적지 않다. 강만수 재경원 차관은 한나라당 경선 시절부터 이 후보의 경제공약을 책임졌다. 선거대책위원회 일류국가비전위 정책조정실장을 맡고 있으며 이 후보의 서울시장 시절에는 시정개발연구원장을 역임했다. 윤진식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도 이 후보 캠프에 둥지를 틀었다. 이 후보와는 고려대 경영학과 선후배 사이다. 이종구 재경원 은행과장은 이 후보의 정책특보로 있다. 김진표 은행총괄심의관은 정치에 입문, 교육부총리 등을 지내고 지금은 대통합민주신당 정책위의장으로 있다. 고위 경제관료나 공기업 임원으로 순항한 경우도 많다. 윤증현 재경원 금융정책실장은 금융감독위원장을 지냈다. 김석동 외화자금과장은 현재 재경부 1차관에, 임영록 자금시장과장은 재경부 2차관을 맡고 있다. 유재한 국민저축과장은 재경부 정책홍보관리실장을 거쳐 주택금융공사 사장으로 옮겼다. 허용석 재경부 차관보와 권태균 경제자유구역 단장은 당시 국제기구팀장과 외채대책팀을 이끌었다. 민간으로 간 사례도 많다. 변양호 재경원 정책조정과장은 2005년 토종자본인 ‘보고펀드’를 설립, 대표를 맡고 있다. 진영욱 국제금융과장은 한화증권 사장을 거쳐 한화화재 부회장으로 있다. 이종갑 자금시장과장은 삼화왕관 사장, 곽상룡 외화자금과 주무서기관은 삼성생명 전무로 변신했다. 외환위기를 경고했던 최공필 금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국정원에 몸담고 있다. 특별취재팀
  • ‘존재를 깨우는 정신의 힘’ 전시회

    서영훈 미래사회와종교성연구원 이사장은 ‘우리안의미래 연수원’ 개원 첫돌을 맞아 ‘존재를 깨우는 정신의 힘’ 전시회를 북한강변에 있는 경기도 가평 가일미술관에서 20일부터 11월14일까지 연다. 조상 서울예술대학 초빙교수와 류연복 열린문화 이사, 효림 실천승가회 공동의장이 초대화가로 참여하며, 수익금은 연수원 운영에 쓰인다.
  • [인사]

    ■ 해양수산부 ◇과장 전보 △총무팀장 류영하△항행안전정보팀장 김병수△수산정책과장 박호근 ◇4급 승진△감사관실 박판돌 이진오△정책홍보관리실 노진학 최명범△해양정책본부 최익현 천재흥 김철성 석영국△해운물류본부 허삼영△인천지방해양수산청 김성수△국제협력관실 박성우△항만국 남재헌 장만붕△어업자원국 김태기△동해어업지도사무소 임순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승진 △교원연수실장 이선영■ 한국화학연구원 △연구정책부 연구기획팀장 최영민■ 가천의과대 △교양학부 초빙교수 겸 재단기획국장 양승현■ 푸르덴셜투자증권 ◇지점장 전보 △목포 金平坤△부천 朴晳浩
  • [정종욱 월드포커스] 중국 공산당 17차 대회의 숨은 의제

    [정종욱 월드포커스] 중국 공산당 17차 대회의 숨은 의제

    어제(9일)부터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16·7중전)가 시작되었다. 이 회의가 끝나면 15일부터 제17차 당 대회가 열려 새 중앙위원들을 선출하고 이들 중앙위원이 다시 정치국원과 정치국 상무위원들을 선출함으로서 앞으로 5년 동안 중국을 이끌어 나갈 새로운 지도부의 구성이 완성된다. 형식적으로는 중앙위원회가 당의 최고 지도기구이지만 실제로는 정치국 상무위원회가 전권을 쥐고 모든 결정을 하기 때문에 9명의 현 정치국 상무위원 가운데 누가 살아 남고 누가 새로 선출될지에 대해 벌써부터 많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그동안 많은 개혁을 했지만 지도부 선출은 여전히 비밀에 싸여 있다. 이미 결정이 내려졌지만 그 내용이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을 수도 있고 반대로 아직도 최종 명단을 놓고 밀고 당기는 힘겨루기가 진행 중일 수도 있다. 후자가 사실이라면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 같은 절대 권력자가 최종 결정을 내리던 시대와는 달라 지금은 집단지도체제를 구성하고 있는 지도자들이 서로 양보하고 타협해야 하는 상황이라 그런지 모른다. 지금까지 드러난 상황을 종합해 보면 이번 대회에서 후진타오에 대한 견제세력이 완전히 거세되지는 않겠지만 그의 권력 기반은 더욱 강해질 전망이다. 우선 균형발전과 친환경적 개발을 강조하는 그의 과학발전관과 조화로운 사회 담론이 이번 대회에서 당헌 개정을 통해 당의 새로운 지도 이념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그의 당내 위상이 반석 위에 오르게 된다. 그를 견제하는 세력이 늘어난다 해도 그가 추진하는 정책은 흔들리지 않게 된다. 또한 정치국 상임위에 들어오는 반대 세력이 늘어난다 해도 그 수가 그리 대단치는 않을 것이고 결속력도 옛날 같지 않을 것이다. 이미 장쩌민은 이 대회가 끝나면 자신에게 자문을 더 이상 구하지 말라면서 완전한 정계은퇴를 선언했다는 설도 있다. 부정부패로 상처를 입은 상하이방 내에서도 이탈자가 많이 생겼고 태자당도 정책의 동질성에 바탕을 둔 정치집단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래서 이번 대회에서 중요한 것은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반 후진타오 세력이 얼마나 될 것인가가 아니다. 이번 대회의 가장 중요한 숨은 의제는 정치개혁이고 후진타오가 앞으로 본격적 정치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정치적 세력 기반을 확고히 할 수 있느냐가 핵심적 관전 포인트이다. 지금까지의 정치개혁은 당내 개혁이었다. 직선제가 확산되고 당 외 인사들의 제도권 진입이 늘어났지만 이는 당의 권력독점에 대한 불만을 무마하기 위한 체제 수용적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제한적 해법은 통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집정능력의 강화가 아닌 정권창출의 능력을 키워야 한다. 권력의 공유가 아닌 권력의 창출에 대한 점차 거세지는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공산당이 기득권을 포기하고 발가벗은 채 광야에서 유권자들의 자유로운 선택에서 살아 남을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성공하면 공산당의 장기 집권이 가능해질 것이고 중국의 부상도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후진타오가 이런 정치개혁의 적임자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가 내세우고 있는 과학발전관을 보면 그가 여전히 충실한 실용주의적 공산주의자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만약 그가 아니라면 그런 5세대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그것은 가능하게 하는 것이 후진타오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런 5세대 지도자를 뽑아서 앞으로 5년 동안의 시험 기간을 거쳐 2012년에 있을 18차 전당 대회에서 권력의 정상에 올려 놓고 정치개혁을 추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것이 이번 대회에서 본격적으로 개막될 후진타오 시대의 핵심적 과제이다. 정종욱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 [2007 남북정상선언] ”서해평화협력지대 합의는 3通 물꼬 튼 것”

    [2007 남북정상선언] ”서해평화협력지대 합의는 3通 물꼬 튼 것”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4일 공동서명한 ‘2007 남북정상선언’은 남북간 신뢰회복과 경제협력 강화를 넘어 한반도 비핵화와 종전선언 추진 의지를 명시함으로써 향후 남북관계뿐 아니라 동북아 정세 전반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불러올 전망이다. 정종욱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와 지난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을 수행했던 황원탁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특별대담을 통해 2007 남북정상선언의 의미와 향후 남북관계의 변화상을 점검한다. 대담은 서울신문 김인철 정치담당 부국장 사회로 진행됐다. 사회=김인철 정치담당 부국장 1.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사회 2007남북정상선언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새로운 질서 구축에 의미 있는 진전이 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정종욱 교수 정상회담이 시작되기 전 단계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품었던 최대 기대치는 6·15공동선언을 훨씬 더 뛰어넘어 남북평화번영의 대장정을 이룰 역사적 문건이 나오는 것이었다.2차세계대전 뒤 유럽 35개국이 상호 국경선을 인정키로 합의한 1975년 ‘헬싱키 선언’에 비교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6·15 선언이 화해·협력과 통일을 위한 문건이었다면, 이번 선언은 평화와 민족번영문제에 대해 남북 정상들이 합의를 이룬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황원탁 전 수석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은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정상이 회동함으로써 남북관계가 대결과 갈등 관계에서 화해와 협력 관계로 전환되는 분수령이 됐다는 역사적 상징성을 가졌다. 이후 남북관계에 진전이 있었지만, 북핵문제가 터지고 북·미관계와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진전되지 못한 측면도 있었다.6·15 공동선언에 명시된 김 위원장의 답방이 이뤄지지는 않았지만,7년 만에 정상회담의 맥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회담이 남북관계를 발전시킬 ‘새로운 엔진’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많다. ●정 교수 합의내용을 보자면, 상당히 자세하게 기술돼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문안 조정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 이유일 것이다. 남북한 민족·경제협력과 관련해 범위가 좁아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선언문에 ‘법률적·제도적 장치를 정비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대목이 있는데, 북한 노동당 규약과도 관련이 있겠지만 (국가보안법 철폐와 관련해)국내에서도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으로 보인다. ●황 전 수석 전반적으로 이번 합의 내용은 아주 잘 되었다고 본다. 애당초 목표로 삼았던 평화정착 문제에 있어서 많은 진척이 있었고, 공동번영을 위한 대책들도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문제들이 합의문으로 나왔다.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2.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사회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가 합의됐다. 동시에 문산∼개성공단간 화물열차 통행이 보장됐다. ●정 교수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연계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게 NLL을 재논의·재설정하는 부분이라면 민감한 문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토 개념이나 안보 개념에서 국민 정서와 거리가 있다고 본다. 북한 해군본부가 있는 해주는 경제적인 의미를 갖는 항구라기보다는 군사항의 기능을 하고 있다. 해주 직항 항로 통과를 허용한다면 민간 선박에 한정되는 것인지, 군함을 주로 이야기하는 것인지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이다. 문산에서 개성까지 수송 목적 경의선을 개통하는 것까지 함께 생각해 보면 통행·통관·통신이라는 ‘3통’의 새로운 물꼬를 트는 측면에서 평가할 수 있다. ●황 전 수석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르면 남북간 해상경계선을 협의하게 돼있다.NLL에 대해 북한은 재설정을 주장하는 반면 우리는 평화를 정착한다는 차원에서 공동활용 방안을 모색해 보자는 입장이다. 우리는 이를 지난번 국방장관회담에서 제시했지만, 북측은 부정적으로 나왔다. 어떤 형식으로든 원만하게 NLL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이대로 가면 계속 분쟁의 불씨로 남을 뿐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도 DMZ 북방에 있다. 모두 북한의 주공(주력부대)이 위치했던 지역이지만, 지금은 남측과의 협력지대가 돼 있다. ●정 교수 기본적으로 NLL 문제는 유엔사령부가 결정하고 관행을 통해 북한이 받아들이며 북방한계선 역할을 해왔다. 이를 조정해 다시 선을 긋는다는 것은 정전체제에 대한 수정을 뜻할 수도 있다. 북한의 의도가 정전체제에 대한 변경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러나 체제 수용을 전제로 남북한이 합의해 수역을 평화적으로 공동활용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본다. ●황 전 수석 새 달에 총리급 회담을 하기로 한 것은 군사적 신뢰 구축을 중심으로 한 군비통제문제를 넘어 평화체제와 관련된 문제를 총괄해 다루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정전협정체제에서 평화체제로 전환하려면 전쟁종결선언이 있어야 하고, 평화보장을 위한 조치도 있어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함께 다룰 문제라는 뜻이다. 이런 문제를 다루기에 장관급 회담은 부족하니까 총리회담에서 총괄하자는 뜻이 담긴 듯하다. ●정 교수 종전선언과 관련해 관계국 회의를 한다는 합의가 나왔다. 지난해 11월 하노이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과 관련 논의를 했었는데, 이를 남북 정상이 합의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 다만 총리회담에서 종전선언의 세부내용에 대해 과연 무엇을 하려는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데 총리회담에서 얼마나 논의 돼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회담을 ‘수시로’ 열겠다는 것은 기대하던 반가운 소식이다. 형식적인 정상회담보다, 정상이 만나 실무적인 문제를 얘기하겠다고 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방북할 때 언급한 “차분하고 실효있는 정상회담”을 기대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갖게 한다. 다만 2000년 정상회담 이후 7년 동안 기다렸는데 공동선언문에 명시된 답방이 이뤄지지 않은 것과 관련해 ‘수시로’라는 표현이 오히려 서울 답방이 이뤄지지 않은데 대한 면죄부를 주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황 전 수석 남북정상회담은 남북간 현안을 풀어 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틀이라는 데 아무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수시로 만날 수 있는 것은 못 된다. 여건이 대단히 중요하다. 지금까지 7년 동안 끌어온 것은 여건이 조성되지 못해서다. 정상회담을 주기적으로, 정기적으로 못박기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수시로 만나 협의하기로 한 것은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자주 만나야 하고, 만나기 위한 여건을 만드는 게 보다 더 중요하다. ●정 교수 여건을 만드는 일은 중요하다. 지금까지 남북정상회담이 두 번 열렸는데, 북한 입장에서 보면 같은 사람이 남한 대통령 2명을 만난 것으로 남한 대통령 임기 중에 한번 만나는 꼴이 됐다. 차기 대통령하고도 현안이 있고 여건이 성숙하면 만날 수 있다고 하는 의지 표명이라고 볼 수 있는 게 아니냐. 바람직한 발전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3. 남북 ‘종전선언’ 추진 ●사회 남북이 ‘종전선언’을 위한 관련 당사국 회의를 개최키로 합의했다. 실현가능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황 전 수석 지난해 6자회담 ‘9·19 공동성명’에서 한반도에 영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관련 당사국과 별도 포럼을 통해 이 문제를 다루기로 했다. 이번 남북정상선언의 당사국 회의 조항에는 남북한 평화체제 문제를 남북이 주도적으로 다뤄 나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총리가 당사국회의를 주최하겠다는 것도 그런 면에서 중요하게 평가할 점이 아니겠느냐.6자회담에만 맡기고 따라가는 형식은 안 된다. 주도적으로 하겠다는 부분을 평가해야 한다. 현실성을 묻는다면, 충분히 있다고 답하겠다. 노무현 정부가 임기말이라는 점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본다. 이미 6자회담에서 관련 당사국 회의를 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한국이 안 한다고 해도 6자회담 틀 안에서 논의할 문제다. 미국 입장 등을 고려해 보면 생각보다 이번 합의가 현실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년에 임기가 끝나는 부시 대통령으로서도 임기 안에 이번과 비슷한 행사, 즉 북·미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생각을 할 가능성이 높다. 4. 양측 협상전략 평가 ●사회 차기정부에서 이번 남북정상선언 합의사항이 바뀔 수도 있다고 일부 국민들이 얘기한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합의가 휴지조각이 될 수 있지 않느냐에 대한 질문이다. ●정 교수 민주주의 국가인 남한에서 정권이 바뀌는 것은 상식적인 얘기다. 정권이 바뀐다고 정상회담의 합의 내용이 백지화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다만 6·15 선언에서 합의한 5가지 사항 가운데 지켜지지 않은 것이 있는 데서 볼 수 있는 것은, 정상회담의 추진과정과 합의내용은 국민적 지지를 받아야 그 이행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정이 투명하지 않거나, 국민들이 모르던 새로운 사안이 터져 나온다면 차기 정부에서 합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 남북정상회담 기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태도와 발언 등에 이목이 집중됐다. 특히 3일 김 위원장이 회담을 하루 연장하자고 제안했다가 철회하기도 했다. 양측 협상전략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황 전 수석 김 위원장이 오전 회담을 마치고 회담 연장을 제의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우리측에서 먼저 제의해 성사됐음을 감안하면, 오전 회담에서 아무래도 북한보다는 우리측이 많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지 않았겠느냐. 북측에서 정상회담에 참석한 참모는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유일했다. 그러니 남측이 제안한 안을 갖고 검토할 필요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이에 대해 우회적으로 거절 의사를 밝힌 남측의 대응은 적절했다. ●정 교수 김 위원장의 예상밖 제안은 남북정상회담과 북한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본다. 김 위원장은 본인이 결정하면 북한에서 모든 것이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최고통수권자와 다른 의미의 절대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짐작이 이번 그의 발언에서 확인됐다는 느낌이다. 남측의 대응은 적절했다. 정리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그렇게 새 역사가 씌어졌다

    [2007 남북정상회담] 그렇게 새 역사가 씌어졌다

    이벤트다. 금단의 군사분계선을 넘음은 분명한 정치적 이벤트다. 통속적 명칭으로는 이벤트지만,‘정치적 의례’다. 금단과 금기를 넘어섬은 일종의 통과의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떤 의례도 격식과 절차가 필요하고, 종교적인 환상 같은 그 무엇도 필요한 법이다. 그동안 비행기, 배, 자동차, 철도 모두가 오고갔다고 해도 사람이 직접 걸어서 가는 것만 못하다. 도보로 분계선을 넘어갔음은 금단과 금기의 마지막 선이 무너졌음을 뜻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 마지막 선이 사라졌음을 내외에 천명한 셈이다. 군사분계선은 1953년 7월27일에 성립한 ‘한국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관념적 경계선일 뿐이다. 한갓 관념의 선에 불과하던 분계선이 강철처럼 굳어지자, 이 금단의 선을 넘음은 죽음 그 자체를 의미했다. 남북을 오고간 무수한 시대의 ‘간첩’들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월남’과 ‘월북’의 경계선을 오고간 이들이 탄생했다. 분계선을 ‘월북’하고,‘월남’함으로써 이에 연루된 수많은 이산가족들이 민족 최대의 디아스포라를 겪으면서 반세기 이상을 고통으로 채워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었음은 분명히 ‘대통령의 월북’이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이자 두말할 것 없이 군통수권자이다. 군통수권자가 군사분계선을 걸어넘었음은 강철같은 분계선이 그 순간 무너져 내렸음을 상징시켜주는 극적인 행위다. 군통수권자가 분계선을 걸어넘음으로써,155마일 철책선과 남북을 겨눈 벙커의 총부리들이 서로를 겨눌 명분 자체가 무색하게 된 것이다.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 대통령제에서의 대통령의 행위는 헌법적 행위다. 휴전협정의 상징인 군사분계선을 대통령이 걸어서 넘었음은 단순한 도보여행이 아니다. 걸어서 선을 넘는 과정을 전세계의 언론이 생중계함으로써 유일한 분단국 한반도에서 분단선을 없애겠다는 의지가 각인됐다. 철책선 대신 평화선 선택이라는 고도의 전략적 사고가 만천하에 새겨진 것이다. 이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걸어서 ‘월북’하고 ‘월남’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장벽은 무너질 것입니다.”라는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처럼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이다. 좀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월북’‘월남’ 자체가 옛말 사전으로 밀려나리라. 분계선의 존재자체가 의미없는 것이 되었으니 월북이나 월남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으로부터 7년, 분계선이 그어진 시점으로부터는 무려 54년 만의 일이다. 그러나 정작 넘는데는 찰나의 시간이 걸렸을 뿐. 고통과 압박, 숨죽임과 억누름이 반세기 이상을 흘렀지만 이를 깨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문득 깨닫고 보니 그 찰나의 순간이 바로 54년이었다. 백범 김구선생이 1948년 금단의 선을 넘어갔다. 금단의 열매를 딴 정치적 죄로 그는 암살을 당했다. 그로부터 59년,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국군최고통수권자가 걸어서, 당당히 금단의 선을 넘었다. 역사는 민족의 지난한 고통속에 이뤄진 2007년 10월2일 오전 9시5분의 찰나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2007년 10월2일 아침, 그렇게 한민족의 새 역사가 군사분계선 위에 씌어진 것이다. 주강현 제주대 초빙교수·통일문화학회 공동대표
  • ‘씨알’ 새달 5일 창립

    다석 유영모(1890∼1981)와 바보새 함석헌(1901∼1989)은 기독교와 과학정신·동양종교사상을 아우르며 영성과 평화를 함께 바라본 종교인이면서 ‘삶의 철학자’로 통한다. 오산학교 설립자이자 3·1독립운동 주역인 이승훈의 제자 유영모는 ‘특권 양반사상이 나라를 망쳤다.’는 판단 아래 민중을 주체로 세워 섬기는 민주사상을 제시한 인물.“진인(眞人)의 경지인 노자의 화광동진(和光同塵)을 햇볕에 그을린 농부의 얼굴에서 본 뒤 땀흘려 일하고 사랑으로 섬기는 삶을 살고자 농촌으로 들어가 살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민주화와 비폭력 평화운동의 사상가인 함석헌의 스승이기도 하다. 그런 두 사람이 줄곧 강조한 것은 바로 씨알, 즉 민중이다. 유영모와 함석헌은 3월13일 한날에 태어나고 사망 날짜도 2월3일과 4일로 하루 차이였다. 같은 생각과 삶 만큼이나 나고죽는 날까지도 같았던 이들이다. ●종교계·학계 등 인사 대거 참여 두 사람이 생전 강조한 이 씨알사상을 전파하기 위한 재단법인 씨알(이사장 김원호 유미특허법인대표)이 다음달 5일 오후 4시 장충동 우리함께빌딩 2층 강당에서 창립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한다. 지난 8월30일 창립이사회를 연 데 이어 지난 18일 서울시로부터 재단법인 인가를 받았었다. 재단법인 씨알은 유영모, 함석헌의 씨알사상을 널리 알리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씨알들의 정신문화운동과 환경조성, 씨알사상 전승발전을 위한 기반조성, 씨알상 제정운영을 통한 씨알 삶 따라살기 등이 그 일들이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의 정신을 따르는 학계·종교계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상임이사 박재순 목사를 비롯해 이사인 김철호 KAIST 경영대학 초빙교수, 육순종 목사(성북교회 담임), 정양모신부(다석학회 회장), 감사인 김종생 목사(예장통합 사회봉사부 총무)가 그들이다. 여기에 정진섭 변호사, 김흥호 목사(다석사상연구회회장), 류승국 교수(전 한국정신문화원장), 문동환 목사(한신대 명예교수), 서영훈 전 적십자사 총재, 원경선 풀무원 설립자, 유인걸 성천문화재단 이사장, 한승헌 전 감사원장, 김수중 한국양명학회회장, 김조년 한남대 교수, 박노자 오슬로대학 교수, 박영호 다석학회 고문, 변진흥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사무총장, 서유석 대한철학회 부회장, 송인창 동양철학회 회장,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명예교수, 이병창 한국철학사상연구회장, 이정배 한국조직신학회 회장도 들어 있다. ●다석전집 출간·세계평화사상 연구사업 서둘러 이들이 가장 벼르는 것은 다석전집 출간. 다석일지를 포함한 유영모의 모든 저작물에 낱말풀이와 주해를 붙여 다석연구의 토대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함석헌의 세계평화사상 연구사업도 큰 과제. 종교, 문명에의 근본적 반성과 성찰을 담고 있는 함석헌의 사상이 인문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보고 학술진흥재단과 공동진행할 계획을 세워놓았다. 두 사람의 철학은 흔히 성경말씀(계명, 아가페 사랑)뿐만 아니라 그리스철학과 서구 근대철학의 로고스(이성), 동아시아의 길(道), 한민족의 한 사상을 아우르는 종합적 사상으로 평가받는다. 따라서 두 사람의 복잡한 철학 연구에는 전문학자들의 모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 수렴을 통해 매월, 격월, 혹은 절기별 각 분야 전문가모임을 가질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내년 7월로 예정한 세계철학대회 ‘함석헌, 유영모 사상 발표회’는 가장 먼저 치러야 할 대규모 행사. 박재순, 김성수, 김영호, 김흡영, 박노자, 박영호, 양현혜, 윤정현, 이규성, 이기상, 이정배, 정대현, 김경재, 정양모, 허우성의 발제를 한글과 영문으로 출판할 계획이다. ●씨알상 제정·‘사상 발표회´ 추진 유영모와 함석헌의 씨알사상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이들을 격려하기 위한 씨알상을 제정, 매년 말 수여하며 두 사람의 생몰일에 즈음해 씨알생명평화문화제도 정기적으로 열어나간다. 한편 다음달 5일 창립식 자리에서는 강연회가 열려 김흥호 목사(‘유영모와 함석헌’)와 류승국 교수(‘씨알사상에 대해’)가 발제할 예정이다. 재단법인 씨알의 김원호 이사장은 “한국의 근현대사는 아래로부터의 민주화 진행과 민중 삶속으로의 깊숙한 기독교 유입의 특징을 갖는다.”면서 “유영모와 함석헌은 한국 근현대의 이런 문명사적 상황과 사명을 깊이 자각해 주체적이고 세계적인 정신과 철학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이춘성의 건강칼럼]의료인의 경력 과대포장

    일부 유명인사들의 학력 위조가 드러나면서, 이런 현상이 사회 각 분야에 만연되어 있지 않나 걱정하는 분들이 많다. 의료계의 경우는 과연 어떨까? 면허증을 취득해야 하므로 학력 위조는 힘들 것으로 생각된다. 대신 경력이나 업적을 교묘하게 과장하는 경우는 꽤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외국의 명문 대학병원에서 일주일 정도 어깨 너머로 보고 와서는 이력서에 ‘○○대학병원 연수(硏修)’ 식으로 당당하게 쓰는 경우를 본다. 또 특정 수술법을 알려주는 세미나에 제 돈 내고 1∼2일 정도 참석한 뒤 그 수술법 연수과정을 ‘수료’했다고 경력란에 집어넣기도 한다. 이를 꼭집어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과장된 표현임은 누구나 다 안다. 경력 과대포장의 가장 두드러진 예는 외래교수, 교환교수, 초빙교수 등 각종 교수 타이틀을 남발하는 일이다. 외래교수라는 직함은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대학 내·외과 등의 교실 출신이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타이틀로 변질됐다. 자신이 원하여 외국 대학병원을 일정기간 방문하거나 배우고 와서는 교환교수 타이틀을 거리낌없이 쓰는 경우도 있다. 해당 대학병원이 알면 자빠질 노릇이다. 또 강의 한두 번 하고 초빙교수라는 낯간지러운 표현을 쓰기도 한다. 필자가 아는 한 국내외 유수의 대학병원에서 교환교수, 초빙교수 제도를 실질적으로 운용하는 곳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대학교수보다 실력이 뛰어나거나 훌륭한 논문을 쓰는 개원의들이 왜 굳이 교수라는 타이틀을 앞세우려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업적 과장도 적지 않다. 특정 수술 성공률을 월등하게 높여 보고하는 경우가 한 예다. 남들은 50% 미만의 성공률을 보고하는데 어떤 이는 90% 이상의 성공률을 기록했다고 주장한다. 실상을 알고 보면 성공률을 분석하는 통계의 고의적 오류를 악용했음이 명백함에도 이에 개의치 않고 자랑스럽게 거짓 실적을 떠벌리기 일쑤다. 우리 사회가 성숙해져 굳건한 신뢰기반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학력 위조뿐 아니라 경력이나 업적의 과대포장에 대해서도 철저한 검증과 상응하는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서울아산병원 정형외과 교수
  • [정종욱 월드포커스] 화려한 전쟁 폐막식의 함정

    [정종욱 월드포커스] 화려한 전쟁 폐막식의 함정

    전쟁은 원래 개막식이 없다. 지금부터 공격을 시작한다고 외치면서 전쟁을 하는 국가는 아무도 없다.2차 대전 때 독일의 프랑스 공격이 그랬고 일본의 진주만 공격도 그랬다. 모두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기습공격이었다. 그러나 개막식은 없어도 폐막식은 있는 게 또한 전쟁의 특징이다. 일본이 항복한 후 미주리 호 함상에서 열렸던 패전 예식은 장엄했다. 유럽의 전승기념식도 축제 그 자체였다.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엄청난 재산 피해를 초래한 전쟁이 끝난 것을 축하보다 애도해야 할 일이지만 승자의 교만인지 인간의 교활함인지 종전을 항상 축제로 마무리해 온 게 지금까지의 인류역사였다. 남의 말 같이 여겨지던 그런 종전식이 이제 한반도에서 우리의 일로 다가오고 있다.54년 전에 체결되었던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의식이 잘하면 내년 중에 거행될 수도 있다. 물론 전제가 붙어 있다. 무엇보다 북한이 부시가 말한 대로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핵시설을 불능화시켜야 한다. 우라늄 농축과 이미 만들어 놓은 핵물질도 성실하게 신고해야 한다. 바로 그런 일을 위해서 중국과 미국과 러시아의 전문가들이 어제부터 북한 영변에 있는 핵시설들을 돌아보고 있다. 이번 주말 이들 전문가가 돌아와서 방문 결과를 보고하면 이를 토대로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다시 만난다. 북한을 테러지원국과 적성국가 명단에서 빼고 북한에 에너지 백만 t을 제공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이다. 모두 쉬운 일들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6자회담은 이제 미국과 북한의 양자회담으로 사실상 전락해 버렸다. 힐과 김계관이 만나 현안을 풀면 6자가 모여 이를 추인하고 반대로 6자회담이 난관에 봉착하면 북·미 접촉에서 문제를 풀게 된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이미 미국은 2년 전부터 북한과의 평화협정을 부시 임기 내에 체결하기로 작정하고 구체적 방법을 검토해 왔다고 한다. 바닥으로 추락한 부시의 외교업적을 회복하는 유일한 탈출구가 바로 북한이었던 것이다.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부시가 악의 축 김정일을 만나 악수하고 한국전쟁의 종언을 선언, 평화협정에 서명하게 되면 이것 하나만으로도 지금까지의 모든 실수를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기막힌 업적이 될 수도 있다. 클린턴도 임기 말에 그토록 하고 싶어 했던 일이었다. 클린턴뿐 아니라 33년 전 월남전의 비밀협상을 공개하면서 평화가 손끝에 닿았다(peace is at hand)고 의기양양하던 닉슨을 능가할 수도 있다. 북한도 미국과 손발을 맞추고 있으니 더할 나위가 없다. 문제는 우리 입장이다. 잘못하면 화려한 한국전 폐막식에 들러리 서는 격이 될 수도 있다. 엄격히 따지면 한국은 평화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다. 휴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전선언에 서명한다는 아이디어가 나온 것이다. 중요한 것은 종전선언이든 평화협정이든 그것만으로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를 보장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참된 신뢰 위에 서있지 않은 종전선언은 모양 좋은 의식행위에 불과할 뿐이다. 평화협정이 체결된다 해도 시작일 뿐이다. 외교에서는 모양이 중요할 수 있지만 안보에서는 모양보다 실속이 중요하다. 중요할 뿐 아니라 생명과도 같다. 남북정상회담이 이제 3주 앞으로 다가왔다. 정부는 정상회담에서 평화선언이나 남북연합에 합의하는 구상을 검토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평화선언이든 종전선언이든 평화협정이든 남북연합이든 모두 마찬가지로 빈약한 내실을 감추기 위한 모양치레가 되어서는 안 된다. 모양에 치중하게 되면 결국 진정한 평화나 통일의 길은 더 멀어질 수도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도 더 불안해질 수 있다. 모양보다 내실 있는 정상회담을 기대해 마지않는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 탤런트 최불암씨 세명대 초빙교수로 임용

    탤런트 최불암(본명 최영한)씨가 충북 제천에 있는 세명대 초빙교수로 임용됐다. 세명대는 10일 최씨가 2학기부터 1년간 방송연예학과에서 학생들에게 연기를 가르친다며 이같이 밝혔다. 첫 강의는 11일 민송도서관에서 ‘연기인생 40년’이란 공개특강으로 이뤄진다. 최씨는 1967년 KBS드라마 ‘수양대군’으로 데뷔해 ‘수사반장’‘전원일기’ 등 드라마와 영화, 연극에 출연해 왔다. 제천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로스쿨 유치전 이렇게 준비한다](3)조선대

    [로스쿨 유치전 이렇게 준비한다](3)조선대

    조선대는 로스쿨 유치에 대학 생존의 ‘사활’을 걸었다. 실패했을 경우 호남 사학 명문의 위상 추락은 물론 대학 전체가 침체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조선대가 로스쿨 준비에 내건 분야는 ‘문화전문 법조인 육성’이다. 문화중심도시를 지향하는 광주시 등 지역사회와 호흡을 함께 하는 법조인을 양성하기 위한 것이다. 조선대는 대학 중 과감한 투자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보에도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예술인·영화인·문인 초빙 강의 확대 조선대는 21세기 굴뚝없는 산업으로 불리는 문화산업 전문인력 육성에 역점을 두기로 했다. 변호사뿐만 아니라 문화정책을 수립하는 공무원·기업인 등 각계에 필요한 인력을 공급하겠다는 취지다. 문화 전문인력 육성을 선언하면서 다른 경쟁 대학과 차별화도 꾀하고 있다. 이는 문화산업 분야의 ‘파이’가 갈수록 커지고, 관련 송무를 전담할 변호사 수가 늘어날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조선대는 이를 위해 예술·영화·문인협회 등의 회원이 법대 강의를 담당할 수 있도록 ‘초빙교수제’를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또 지난해 8월 ‘문화법·정책연구소’를 개설하고 이를 기념하는 학술대회도 열었다. 전문 인력이 배출될 경우 광주시가 추진 중인 ‘문화수도’ 육성 사업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랜 기간 과감한 투자가 강점 조선대는 ‘로스쿨 제도 도입’이 거론되기 시작한 문민정부 시절부터 이에 대비했다. 1994년 법대 건물을 신축하고, 당시 지방대로서는 처음으로 전용 모의법정을 마련했다. 장학재단 설립을 위해 최근에는 300억원의 기금을 출연해 별도 예산으로 관리하고 있다. 2005년 15억여원이 투입된 로스쿨 학생 전용 기숙사인 ‘황금추관’을 지역 독지가로부터 기증받기도 했다. 지난해엔 옛 학생회관 건물 리모델링해 법대 도서관을 마련하고 장서 4만 5000여권을 갖췄다. ●교수 1인당 학생 수 9~10명으로 교수진은 사법연수원을 모델로 삼고 있다. 조선대는 최근 법원과 검찰 등 현직 경험이 있는 실무형 전임교수 7명을 추가로 특채했다. 이론과 실무 강의를 맡게 될 교수는 현재 20여명에서 33명 정도로 늘릴 방침이다. 교수 1인당 학생수를 9∼10명으로 유지하기 위한 조치다. 세계 유명 로스쿨과 교수, 학생 교류프로그램 운영에도 소홀하지 않는다. 처음 도입되는 로스쿨인 만큼 이를 시행 중인 나라의 경험을 배우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미국 워싱턴대학(시애틀 소재), 일본 와세다대학·시즈오카대학 로스쿨 등과 교수·학생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추진 중이다. ●고문단·후원회 등 외곽지원 체제 구축 최근 개략적인 로스쿨 틀이 갖춰지면서 로스쿨유치추진위원회(위원장 김주훈 총장)를 중심으로 실무적인 활동을 강화하고 나섰다. 이성렬 전 대법관을 중심으로 고문단과 후원회를 구성, 각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이들은 정부의 심사 기준안을 분석하고 모자라는 부분을 채우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총동창회도 로스쿨장학기금 마련 1동문 1계좌 모금운동을 펴는 등 유치에발벗고 나섰다. 학교 관계자는 “동문·학부모·교수·학생 등 구성원 모두가 로스쿨 유치에 한마음”이라며 “대학의 미래가 걸린만큼 이를 반드시 성공시켜 지방 사학 명문대로 재도약 하겠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정종욱 월드포커스] 한·중 수교 15주년과 중국 중독증/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정종욱 월드포커스] 한·중 수교 15주년과 중국 중독증/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한국과 중국이 국교를 정상화한 지도 모레 24일로 15년이 된다. 그동안 양국관계는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수교 당시 63억달러였던 교역이 올해는 1500억달러에 육박하고 양국 간의 방문자도 600만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중 한국 유학생이 7만명, 기업체는 4만여개에 달한다.7만명이 모여 살고 있는 베이징의 왕징(望京)을 비롯하여 칭다오·톈진·상하이 등에는 한인촌도 있다. 정치분야에는 3부 수장의 상호교류가 정착되었고 중국이 그토록 주저했던 군사분야에서의 협력도 차츰 본격화되고 있다. 물이 차면 도랑이 생긴다(水到渠成)는 수교 당시의 비유를 빌리면 양국 간에는 이제 고랑이 넘쳐 바다가 생긴 셈이다. 앞으로의 변화는 더 빨라질 것이다.2010년 이전에 교역 2000억달러, 방문객 1000만명 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중국에의 무역의존도가 3분의1이 넘고 20∼60세의 한국인 두 명 중 한 명이 매년 중국을 다녀오고, 미국 유학생보다 중국 유학생들이 더 많고, 중국어와 영어가 똑같은 비중의 외국어로 취급되는 현상이 수교 20주년 안에 우리 앞에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 중국 인구가 15억명에 육박하고 그 많은 인구가 모두 여유 있는 삶을 향유하는 샤오캉(小康) 사회가 실현되는 수교 30주년이 되는 해에는 한국의 중국 의존도가 경제뿐 아니라 정치·외교·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압도적이 될 수 있다. 이때쯤 한국은 중국 중독증 환자가 될 수도 있다. 중독증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독도 적당히 먹으면 약이 될 수 있다. 어떤 약은 독이 되고 어떤 독은 약이 되기도 한다. 지금처럼 국제사회가 밀접한 상호의존의 관계를 맺고 있는 세계화의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강대국이나 약소국이나 모두 서로 얽혀 있다. 문제는 어떻게 얽혀 있느냐이다. 상호의존관계가 어떤 것인가에 따라 중독증은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고 반대로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 냉전시대처럼 상호의존이 진영 간의 극한 대립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면 중독증은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병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며칠 전에 있었던 러시아의 행동은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핵폭탄을 싣고 다니도록 된 러시아의 장거리 전략폭격기가 태평양의 미군 전략 요충인 괌 가까이 비행했다는 것은 미국의 군사적 우위에 도전할 수도 있다는 푸틴 대통령의 오기와 자신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지난주 상하이협력기구가 실시한 ‘평화임무 2007’이라는 합동군사훈련이다.6년 전 중국과 러시아가 중심이 되어 만든 이 상하이협력기구는 4개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회원국이지만 지금까지 옵서버로 참여해온 파키스탄·이란·몽골 등도 조만간 정식 회원국이 될 예정이다. 극단적인 경우 이 기구가 미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인도로 연결되는 남방 군사 협력 네트워크에 대한 대항마적 성격을 띨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미국과 일본의 일부 전략가들은 벌써 그런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다. 우리로서는 냉전시대를 상기시키는 새로운 진영적 대결 구도를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상호의존적 공동체의 등장이다. 서로 편을 갈라 경쟁하고 대립하는 세력 균형적 질서보다 공존·공영하는 다원적 상호의존의 지역공동체가 우리의 목표이다. 수교 15주년을 맞는 한·중 관계는 이제 성년기에 접어들었다. 앞으로의 한·중 관계는 이런 지역공동체 형성에 기여하고 그 속에서 심화 발전될 때 비로소 그 진정한 가치가 발휘될 수 있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 [정종욱 월드포커스] 남북 정상회담이 역사에 남으려면/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정종욱 월드포커스] 남북 정상회담이 역사에 남으려면/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남북 정상회담이 18일 앞으로 다가왔다. 대선 이벤트니 한반도 평화 이벤트니 하면서 정치권이 떠들고 있지만 국민 반응은 대체로 차분한 편이다. 너무 오래 기다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1차 정상회담 이후 지난 7년 동안 남북관계에 실망했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이번 정상회담의 이면에 숨어 있을지도 모를 정치적 계산이나 ‘음모’에 대한 의구심 때문일까? 그러나 이에 대한 정답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끝내고 8월30일 돌아오는 대통령 일행을 맞이하는 서울의 분위기가, 평양의 분위기 못지않게 따뜻하고 고무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만남을 위한 만남이 갖는 상징성은 첫번으로 끝났다. 이 회담이 한반도에서 핵의 망령을 말끔히 걷어내고, 분단의 고통을 해소하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한 정전체제를 항구적 평화구도로 바꾸는 착실한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을 때 비로소 2차 남북 정상회담이 대한민국 역사의 값진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쉽지 않기 때문에 차분한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개인의 역할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승부사적 기질이 강한 대통령이나 통 큰 지도자도 마찬가지이다. 역사는 인간이 만들어간다지만 이번 회담의 결과는 대부분 이미 결정되어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회담의 구조가 그렇고 회담에 나서는 양측의 계산이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객관적 한계를 무시하고 무언가 만들어내기 위해 무리한 합의를 추진한다면 이는 상대가 파놓은 덫에 빠지는 결과가 되기 쉽다. 이번 회담에서 다루어질 큰 의제는 핵문제와 평화정착과 경제협력이다. 남측의 입장에서는 핵과 평화에, 북측의 입장에서는 경제협력에 더 비중을 두고 싶어할 것이다. 결국 핵과 평화가 경제와 절충해서 타협하는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이 많다. 민족의 공멸을 초래할 핵무기는 만들지도 않고 보유하지도 않겠다는 합의가 나오기를 기대해 보지만, 북측이 핵문제를 풀어갈 상대가 미국이라는 기존의 전략을 바꿀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9·19 성명과 2·13 합의를 존중하겠다는 분명한 약속을 받아내는 것만 해도 대단한 성과가 될 것이다. 여기에 한반도 평화선언이라고 포장할 수 있는 불가침과 평화공존의 약속이 더해진다면 이번 회담은 역사적 사건이 될 수도 있다. 다음 정권의 몫이긴 하지만, 이런 합의가 나올 수 있다면 웬만한 규모의 대북지원 약속도 국민은 수용할 수 있다고 본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대한민국 국민이 갖고 있는 몇가지 작은 기대가 있다. 첫째 ‘우리 민족끼리’의 원칙이 국제공조를 배제하는 협의의 자주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남측을 민족공조의 틀에 묶어둔 북한만의 일방적 국제공조는 더욱 안 될 것이다. 둘째 강한 힘보다 부드러운 힘의 중요성이다. 선군정치의 기치를 내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북한 동포들의 기본 생활은 보장되는 민생경제 정책을 고대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합의될 민족공영이 그런 점에서 새로운 출발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7년 전에 약속한 서울 답방을 지키지 못한 점에 대한 해명이다. 사과나 변명이 필요한 게 아니라 가까운 시일 내로 서울 답방을 실현시키겠다는 다짐이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평양에서의 남북 정상회담은 이번으로 끝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뿐만 아니라 이런 국민적 기대가 허무한 실망으로 변한다면 차후의 남북관계는 그야말로 예측불능의 혼란 속에 빠질 것이라는 점을 꼭 기억해 주기 바란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 [정종욱 월드포커스] 아베의 참패와 아시아 외교의 실종

    [정종욱 월드포커스] 아베의 참패와 아시아 외교의 실종

    지난 일요일 실시된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야당인 민주당에 사상 초유의 참패를 당했다. 책임론이 불거져 나오고 아베의 퇴진 요구도 만만치 않다. 작년 9월에 사상 최연소 총리로 화려하게 등장한 아베가 취임 10개월 만에 정치적 위기를 만난 셈이다. 총리직은 고수할 것이라는 게 아베의 공식 입장이지만 당분간 일본 정국은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선거의 주된 쟁점은 아베 총리 주변 인물의 스캔들을 비롯해서 연금관리와 중앙과 지방의 소득 격차 등 국내 문제들이었다. 지난 몇년간 실시한 경기회복 정책이 도시에 집중된 결과 지방 거주민들의 소득이 줄어들었다. 또 연금기록 잘못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당했다. 잘못된 연금기록 건수가 5000만건에 달했다고 한다. 내가 낸 연금이 어디로 갔느냐고 따지는 유권자들에게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아베의 약속은 공허할 수밖에 없었다. 자민당의 전통적 표밭인 농촌에서 민주당 후보들이 무더기로 당선되고 60세 이상의 연금생활자들이 자민당을 외면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걱정스러운 것은 앞으로 일본 정치가 표류하는 가운데 정작 강력한 지도력으로 밀어붙여야 할 개혁 정책이 실종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특히 외교 정책이 그렇다. 새로운 외교노선의 정립은 일본에서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현안이다. 전후 일본 외교는 항상 수동적이고 소극적이었다. 변화를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수용하고 적응하는 소극적 자세로 일관해 왔다. 그런 면에서 일본은 탁월한 재능을 과시했다. 고이즈미(小泉純一郎) 총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세계 전략 변환으로 안보환경이 급변했지만 그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해서 한국과 중국 등 이웃과의 관계를 극도로 악화시키면서 오로지 미국에만 매달렸다. 아시아가 중요하다면서도 실제로는 아시아를 벗어나 구미에 다가가려 한 게 일본 외교의 핵심이었다. 그래서 아베가 아시아 중시 외교를 표방했을 때 일본의 새로운 외교노선에 대한 기대가 커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취임하자마자 중국과 한국을 방문함으로써 아시아 외교의 단초를 열어갔던 것도 그런 기대를 부추기는 데 일조를 했다. 과거사 문제에서 새로운 입장을 내놓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베의 이런 행동은 일단 참신한 변화로 평가받았다. 물론 아베의 아시아 중시 외교가 이 지역의 평화와 안보에 도움이 되고 새로운 질서 수립에 기여할 것인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가 2010년까지 헌법을 개정해서 일본의 경제력에 걸맞은 외교·군사적 역할의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했을 때에도 주변 국가들은 이를 경계하면서 일단 지켜보자는 쪽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헌법 개정과 집단자위권 확보는 이미 대세로 굳어졌다. 누가 정권을 잡아도 추진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본의 군사력 강화가 지역의 평화와 안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도록 유도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는 게 아시아의 미래를 걱정하는 지식인들의 생각이기도 했다. 일본이 미국과의 동맹에 매달려 한국과 중국을 적대시하고 편 가르는 일을 중지하지 않으면 지역의 평화와 번영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아베가 그런 일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정치적 경험은 부족하지만 오히려 참신하고 이상지향적 인물이었기에 일본 외교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줄 것을 기대했다. 아베의 선거 패배가 일본의 아시아 외교 실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를 기대한다. 정종욱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 오산리유적 박물관 26일 개관

    강원 양양 오산리유적은 한국 신석기시대 연구의 메카나 다름없는 곳이다.1977년 남대천에서 가까운 자연호수인 쌍호(雙湖)를 농지로 전용하기 위해 작업을 벌이다 토기와 석기가 무더기로 나왔다. 이후 6차례에 걸쳐 지표조사를 거쳐 서울대 조사단은 1981년부터 1987년까지 본격적인 학술발굴조사를 벌이게 된다. 오산리유적에서 나온 유물은 탄소연대측정 결과 하한이 지금으로부터 8000년전인 BC6000년으로 나왔다. 당시까지만 해도 한반도의 신석기는 연해주를 기원지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연해주보다 1000∼2000년이 앞서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신석기 문화 전파 경로를 규명하는데 결정적인 자료로 평가받으면서 오산리유적은 1997년 사적으로 지정되고, 선사박물관 추진 계획도 본격화된다.2001년 11월 착공된 선사박물관 건물은 2005년 9월 완공됐다.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이 내부 전시시설을 마무리하고 26일 정식으로 문을 연다. 쌍호에서 신석기유적을 처음 확인한 지 30년만이다. 박물관 내부는 1080㎡의 전시실을 비롯하여 기획전시실, 수장고, 세미나실로 이루어졌다. 오산리를 비롯한 일대의 유적에서 출토된 선사유물 450점을 전시하는 등 영동지역의 선사문화 양상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2009년까지는 100억원을 더 들여 체험시설과 탐방로도 설치한다. 양양군은 26일 오후 2시 열리는 개관식에서 오산리유적의 발굴을 주도한 임효재(한국전통문화학교 초빙교수) 전 서울대 교수와 유적의 보존에 공이 큰 고경재 전 양양문화원장 등에게 감사패를 주기로 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부고]

    ●손준철(국회 정무위원회 전문위원)씨 모친상 21일 대구 파티마병원, 발인 24일 오전 8시 (053)959-4441●유완영(한국정보통신대 초빙교수)순영(사업)근영(재미 의사)은영(광주광기술원장)씨 모친상 임상규(국무조정실장)이정용(호남대 교수)씨 빙모상 2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4일 오전 8시 (02)3410-6926●이동춘(전 포항제철 부사장)동윤(전 쌍용화재 이사)동진(전 롯데냉동 대표)씨 부친상 황선국(전 효성물산 이사)씨 빙부상 2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4일 오전 8시 (02)3010-2263●서보성(증권예탁원 과장)보건(리스앙주화장품 지점장)보익(한누리투자증권 선임연구위원)씨 부친상 21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24일 오전 6시 (02)392-3299●조인태(건축설계사)씨 부친상 박상영(수도약품 상무이사)씨 빙부상 21일 경주 동산병원, 발인 24일 오전 7시 (054)770-9476●이민훈(동서한능서당 훈장)씨 상배 진규(전 미국 조지아대 교수)경규(숙명여대 법대 〃)씨 모친상 심왕돈(한국공항 상무)씨 빙모상 21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24일 오전 6시 (02)392-0699●최훈구(울산농협 지역본부장)씨 빙모상 21일 전북대병원, 발인 24일 오전 10시 (063)250-2451●김대중(중도일보 정치팀장)씨 모친상 21일 대전 평화원장례식장, 발인 24일 오전 8시 (042)250-9000●박현진(LG전자 선임연구원)현영(위즈 실장)씨 모친상 전금주(위즈아이엔씨 대표)양인호(잉크나라 〃)씨 빙모상 2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3일 오전 9시50분 (02)3010-2291●임헌무(전 충남 공주 명구의원 원장)씨 별세 명수(임명수치과의원 원장)성조(전 공주영상대 교수)광수(전 한전 팔달소장)동수(임신경정신과의원 원장)씨 부친상 재빈(프라임치과의원 원장)씨 조부상 2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3일 오전 8시 (02)3410-6902●이종주(체르멧아시아 대표)종호(한양증권 강동지점 부장)씨 부친상 규성(증권선물거래소 상무)씨 형님상 2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3일 오전 8시30분 (02)3010-2294●노우래(스포츠칸 취재기자)씨 부친상 22일 일산 백병원, 발인 24일 오전 8시 (031)910-7444●김재찬(전 장성군청 경영기획실장)재학(전 나주시청 근무)재윤(부경엔지니어링 이사)재철(광주전남발전연구원 기획연구실장)씨 부친상 22일 광주 그린장례식장, 발인 24일 오전 9시30분 (062)250-4412●김평윤(전 한국일보 부사장)씨 별세 정길(재일사업가)씨 부친상 오카 다카히사(재일사업가)씨 빙부상 22일 오전 9시 제주 서귀포의료원, 발인 25일 오전 7시.(064)730-3610
  • [정종욱 월드포커스] 힐과 강석주가 의기투합하면/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정종욱 월드포커스] 힐과 강석주가 의기투합하면/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한반도 주변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미국의 힐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해서 환대를 받았고 이달 초에는 중국의 양제츠(楊潔) 외교부장이 역시 평양을 방문해서 김정일 위원장을 면담했다. 그리고 이달 중순쯤 시작될 영변 핵시설의 폐쇄와 봉인을 감시할 국제원자력기구 대표단의 방북을 앞두고 오늘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이 서울을 방문한다. 그뿐 아니다. 다음주에는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만나고 8월 초에는 필리핀에서 아세안지역포럼(ARF)을 계기로 6자회담 외무장관 회담이 개최될 가능성이 있다. 외무장관 회담 다음으로는 더 굵직한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동안 물밑에서 거론되던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도 구체화될 수 있다. 이미 부시 미국 대통령은 북한에 종전선언의 서명을 제의한 바 있다. 라이스 장관의 방북이나 종전선언 서명은 바로 미국과 북한의 관계정상화와 직결된다. 왜 이렇게 서둘까? 우선 협상의 주역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 쪽에서는 북핵문제 주도권을 라이스와 힐이 쥐고 있다. 과거 클린턴 정부 때의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이나 갈루치 차관보와는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다. 크리스토퍼와 갈루치가 점잖고 꼼꼼한 협상전문가라면 라이스와 힐은 선이 굵은 투사형에 가깝다. 정치적 야망도 있다. 밀어붙여서라도 협상을 타결시켜 역사에 남는 인물이 되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북한에서는 강석주 부부장이 얼마전 국방위원이 되었다. 북한의 최고 권력기구인 국방위에 그가 들어갔다는 사실은 그가 핵문제 해결의 전권을 맡았음을 뜻하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에도 북한주재 대사와 외교부장이 모두 미국통으로 교체된 바 있다. 사람뿐 아니라 국내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부시에게는 이라크에서의 실패를 만회할 필요가 있고 김정일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들 정도로 북한 경제가 악화되었다. 내년의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북핵문제의 조기 타결을 바라는 중국의 압력도 점차 강도가 더해지고 있다. 물론 북핵문제가 단시일 내에 해결될 수는 없다. 폐쇄와 봉인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해도 그 다음이 산 넘어 산이다. 핵문제는 핵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의 관계정상화, 일본인 납북자 문제, 한반도 평화체제 등 많은 난제가 얽혀 있다. 그래서 미국은 포괄적 해법을 시도하고 있다. 제기된 사안들을 한꺼번에 묶어서 일괄타결하겠다는 것이다. 이 방법은 1990년대 초 북핵 1차위기 때 강석주가 이미 사용한 바 있다. 힐도 평양방문 때 이 방법을 제기했다고 한다. 포괄적 해법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적어도 협상이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특히 부시와 김정일의 신임을 딛고 힐과 강석주가 의기투합하면 한반도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우리로서는 바로 이 점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심한 경우에는 우리를 빼놓고 미국과 북한이 밀실에서 흥정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친구도 입장이 달라지면 남이 될 수 있다. 이미 과거에 경험한 일이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북핵문제에 매달려 왔다. 그러다 보니 하루라도 빨리 핵에서 벗어나고 싶은 국민적 열망이 생겼다. 정부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국가 존망이 달려 있는 안보문제는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침이 없다. 무엇보다 사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북핵문제의 본질은 핵이 아니라 북한 체제이다. 북한 체제가 변화하지 않으면 완전한 핵 해결은 불가능하다. 핵에만 매달리지 말고 보다 넓게 보아야 한다. 정부의 신중한 대응이 있기를 기대한다. 정종욱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 [사고] ‘열린세상’ 필진 일부 바뀝니다

    서울신문 오피니언면의 고정칼럼 ‘열린세상’의 필진 일부가 7월1일부터 바뀝니다.22명의 전문가들이 앞으로 6개월 동안 분야별로 번뜩이는 진단을 내놓을 것입니다. 폭넓은 시각과 분석을 담은 ‘열린세상’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바랍니다. 저명한 동물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의 ‘인간견문록’과 홍순영 전 통일부총리의 특별칼럼이 새로 게재됩니다. 이와 함께 세상살이를 잔잔하게 풀어보는 소설가 한승원씨의 ‘토굴살이’, 국제정치 뉴스를 심층 조망하는 정종욱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의 ‘월드 포커스’, 대선국면을 정밀 분석하는 김형준 명지대 교수의 ‘정치비평’을 번갈아 게재합니다.●열린세상 필진(무순)김헌태(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인하대 겸임교수) 윤성이(경희대 교수·인터넷정치) 김종배(시사평론가) 이준한(인천대 교수·비교정치) 이성형(이화여대 교수·국제정치) 서원석(행정60년연구기획단장) 조환익(수출보험공사 사장) 최병서(동덕여대 교수·문화경제) 이상묵(삼성금융연구소 상무) 문인철(정치경제평론가) 김정식(연세대 교수·화폐금융) 정문성(울산대 교수·물리) 강경근(숭실대 교수·헌법) 강지원(변호사·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상임공동대표) 류재명(서울대 교수·지리교육) 김용하(순천향대 교수·금융보험) 김형태(변호사) 황규호(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진중권(중앙대 겸임교수) 김정란(상지대 교수·시인) 차동엽(신부·천주교 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장) 성석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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