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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봉오동전투의 잊혀진 영웅, 최운산 장군을 아시나요”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봉오동전투의 잊혀진 영웅, 최운산 장군을 아시나요”

    ‘장군의 손녀’ 최성주가 말하는 잊혀진 장군 ‘최운산’“99년 전 봉오동전투는 당시 세계 최강이라던 일본 정규군과 싸워 이긴 빛나는 전과입니다. 굶주리고 헐벗은 파르티잔 특히 홍범도(1868~1943)·김좌진(1889~1930) 같은 영웅이 화승총으로 매복을 잘 해서 이긴 것이 아니라 우리 독립군이 체계적으로 훈련받고 무기와 군장비를 잘 갖췄기 때문에 이긴 겁니다. 수천 명에 달하는 우리 독립군이 어떻게 무장하고, 체계적으로 훈련받을 수 있었을까요? 여기에는 잊혀진 영웅 최운산(崔雲山·1885~1945) 장군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당시 사진사를 동원해 전쟁 현장을 촬영했던 준비된 전쟁이었습니다. 만주 무장독립운동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해야 하는 이유이지요.”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최성주(61) 이사를 최근 한 모임에서 우연히 만났다. 자신이 장군의 손녀라며 봉오동·청산리 전투에서의 최운산 장군의 역할에 대해 설명했다. 학교에서 익히 배웠던 ‘홍범도·김좌진 장군의 영웅담’과는 결이 달랐다. 기자만 최운산 장군에 대해 모르나 싶었지만 최 이사는 “역사학자조차 최운산 장군의 역할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하기에 지난 22일 서울신문사에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에서 최 이사는 노트북을 들고와 현장에 다녀왔던 사진과 관련 서류들을 보여줬다. 이 봉오동 전투의 총사령관은 그의 형인 최진동(崔振東·1883~1941), 참모장은 최운산이고, 홍범도·김좌진은 그 부대의 연대장이었다고 말했다. 최 이사는 “그동안 우리 학계에서는 봉오동 전투 현장이 수몰됐다고 했지만 실제 전투가 있었던 곳은 봉오저수지를 10km 정도 거슬러 올라간 곳”이라고 말했다. 최 이사는 거의 해마다 전투지를 답사한다고 했다. “봉오동전투 사진사 동원한 준비된 전쟁전투 모습 3장…임정에 보냈다는 기록만”- 봉오동전투 당시 현장을 촬영했다고?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 최진동이 국민회에 보낸 공문(‘기안104’) 기록만 남아 있습니다. 그때 찍은 사진은 전해지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기록을 보면 ‘봉오동전쟁 전황 촬영사진 3매, 상해를 보낼 예정. 별지 전쟁 촬영 사진 3매는 제2남지방의 박준재씨가 전쟁 당시 실시 전황을 보고 촬영한 것이다. 이것은 임시정부로 보내서 석판으로 인쇄하여 세계에 선전하려는 것인데 보신 뒤에 반송하기 바란다.’고 적혀 있습니다. 번역해서 문서로 남아있는 것을 역사자료실에서 찾은 것입니다. 최운산 장군은 당시 종군기자라고 할 수 있는 전문 사진사를 동원해 기록을 남기도록 했던 겁니다. 그만큼 준비가 철저했던 거지요.” - 당시 돈이 있다고 무기를 살 수는 없었을 겁니다. 우리 독립군이 어떻게 무장했을까. “최운산 장군이 러시아와 무역거래를 하고 있던 관계로 지속적으로 무기를 구입해 왔습니다. 그러나 뒷거래로 수천명이 무장할 무기를 확보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을 겁니다. 봉오동·청산리 전투에서 우리 독립군은 소련에 배속됐던 체코 군의 무기로 무장한 겁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소련은 체코군을 동쪽 끝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귀국시킵니다. 이들이 장기간에 걸쳐 러시아 대륙을 횡단해 1918년 말에 동쪽 끝에 도착합니다. 체코군은 무기는 필요 없고, 고향으로 돌아갈 여비가 필요했던 것이지요. 반면 우리 독립군은 대량의 무기 확보가 절실한 상태였습니다. 무기가 있어도 돈이 없었거나, 돈이 있어도 무기를 파는 데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었겠지요. 하늘의 뜻인지 최운산 장군에게 재력이 있었고, 체코군은 무기보다 현금이 더 필요했지요. 체코군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산 무기로 무장했다고 하니 우리 독립군도 당시로서는 최신의 미국 무기를 갖췄다고 봅니다.” “독립군들, 귀향하는 체코군 무기로 무장독립군들의 무기 구매 대금 출처는 최운산1920년 토지 팔아 5만원 마련… 무기 매입”- 막대한 무기 구입 대금은 어디에서 나왔나. “이 부분이 만주 무장독립운동 연구에서 가장 미진한 부분입니다. 우리 집안에서는 최운산 장군이 지원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의병 수준의 독립군 통합 부대원들을 훈련하고 무장시키기 위해 1920년 1월 최운산 장군이 석현의 대규모 토지를 5만원에 팔아 그 돈으로 대한북로독군부 부대원 전원을 완전무장시켰습니다. 당시 5만원은 전투기 한대 가격이라 합니다. 최운산 장군의 부인인 김성녀(金性女·1894~1975) 할머니가 1969년 남편의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을 하면서 밝힌 장비를 보면 ‘대포 10여문, 기관총 수십정, 수류탄 수천개, 장총 천여정, 권총 수백정, 실탄 수만 발’을 갖췄다고 합니다. 당시 훈련소 격인 사관연성소 병사 1인당 무장 상태를 보면 ‘소총 1정, 실탄 500발, 수류탄 1개, 좁쌀 6되, 짚신 1족이었다’는 일제의 밀정보고서도 있습니다.” - 최운산 장군, 얼마나 부자였나. “간도 제1의 거부였죠. 부를 일군 배경으로 중국이 토지 정리사업을 할 때 엄청난 규모의 황무지를 헐값에 불하받았습니다. 이를 조선 동포들과 함께 개간해 옥토로 바꿔 신한촌(新韓村)을 만들었습니다. 김성녀 할머니가 생전에 말씀하시길 ‘우리 땅은 사흘을 둘러봐도 다 못 본다.’고 하셨습니다. 1960년대 우리가 부산에 살 때 봉오동전투에 참전한 부하 한 사람이 국제시장에서 우연히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이 할머니께 인사와 우리에게 이야기하길 ‘최운산장군의 땅 면적이 이 부산의 6배였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콩기름공장·국수공장·주류공장·성냥공장·비누공장·과자공장을 비롯한 다수의 생필품 기업을 운영했습니다. 또 대곡상이자 축산업자로 한 번에 수백 마리의 소를 창춘이나 훈춘으로 몰고 가서 팔았답니다. 이 소떼와 곡물은 러시아 군대 식량으로 들어갔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이게 연결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한 최재형(1858~1920) 선생이 소고기를 러시아군에 공급했다고 하는데 두 분의 관계를 유추해볼 수 있겠습니다. 최운산 장군은 오늘날 삼성과 비견 되는 재벌이었지만 40여년에 이르는 무장 독립운동으로 그 막대한 재산을 거의 다 소진했습니다. 말년에 남은 것이라고는 살고 있던 집과 그에 딸린 수남촌 토성리 일대의 땅 뿐이었습니다.” “최운산… 간도 최고의 갑부이자 대지주부산 6배 넓이 땅 소유…무장투쟁에 소진”- 최운산 장군, 정확한 이름은 어떻게 되나. “일본군의 눈을 속이자면 변장이 필수였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여러 개를 썼습니다. 어릴 때는 최명길(崔明吉), 장작림 군벌에 있을 땐 중국식의 최풍(崔豊), 간도 제1의 거부로서 경제활동을 할 때는 최만익(崔萬益), 무장투쟁을 할 때는 최문무(崔文武)·최빈(崔斌)·최운산(崔雲山)을 사용했고, 러시아에서 무기를 밀매할 때는 최고려(崔高麗), 중국 장사꾼으로 위장해 첩보활동을 할 때 최복(崔福)을 사용했습니다. 8개의 이름을 가졌지만 모두 한 사람입니다. 얼마나 복잡다단한 삶을 사셨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청년 시절, 장작림 군벌서 군사지식 습득중국군 이직시 자위대 조직…私兵 100여명” - 무법천지 만주에서 대규모 재산 지키자면 자위대가 필수였겠다. “최운산 장군은 청년 시절, 중국 동북3성 지배세력인 장작림(張作霖·1875~1928) 군벌에 들어갔습니다. 전투에서 장작림의 목숨을 구해준 적도 있어 장작림의 절대적 신임을 얻었습니다. 이때 형 최진동, 동생 최명순과 함께 3형제가 중국군에 복무하면서 군사 지식과 군조직 운영을 익히며 만주군벌과 혈맹의 관계를 맺은 겁니다. 최운산은 조선인과 중국인의 다리 역할을 하면서 양쪽의 신뢰를 다졌습니다. 그러다가 1912년 최운산 장군이 중국군을 이직하고 마적떼로부터 조선인의 생명과 재산 보호 명목으로 자위부대 구성하겠다고 했을 때 장작림이 기꺼이 허락해준 겁니다. 그가 사병(私兵)을 모집할 때 1개 중대 이상의 병력이 따라 나왔다 합니다. 100명이 넘는 규모라 처음부터 정규 군대와 같은 편제를 갖추었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몇 명의 중국 사병이 포함된 이 자위부대가 대한민국 국군의 작은 씨앗일지도 모릅니다. 도독부(都督府)의 복장은 중국군과 같은 색깔이어서 잘 구별되지도 않았답니다. 독립군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자 1915년엔 봉오동 산중턱을 벌목하고 개간해 연병장과 막사를 지어 독립군들을 훈련시켰습니다. 이때가 500명이 넘었습니다.” “3·1운동 후 열혈청년들 간도로 몰려 들어6개월 과정 군사학교인 사관연성소도 창설안무·홍범도 등과 함께 대한북로독군부 창설”- 대한북로독군부 창설 과정은. “1919년 3·1운동 이후 임시정부가 상해에서 수립되었습니다. 최운산 장군은 임시정부를 받아들이고 자신이 운영하던 670명의 자위부대를 대한민국 첫 정식 군대 대한군무도독부(大韓軍務都督府)로 재창설합니다. 그때 중국 지방정부에서 일하고 있던 최진동, 최치홍 두 사람도 대한군무도독부에 합류합니다. 사령관인 부장(府長)에 형인 최진동 장군을 추대했습니다. 자신은 참모장으로 재정 등 군대 운영의 전반을 책임졌지요. 병참을 맡은 겁니다. 동생 최치홍도 참모로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최운산 장군은 자신의 소유지인 서대파에 대한북로군정서를 창설합니다. 3·1운동 이후 간도로 들어오는 열혈 청년들은 계속 늘어났습니다. 이들을 모두 받아들여 다음해에 6개월 과정의 군사학교인 사관연성소를 십리평에 설립했습니다. 최운산 장군은 북로군정서 무장과 사관연성소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군자금으로 상당한 규모의 재산을 소진하였습니다. 임시정부는 1920년을 독립전쟁의 원년으로 선언했습니다. 일본군과 본격적인 독립전쟁을 치르려면 대군단을 이루어야 한다는 판단을 한 최운산 장군은 만주의 독립군 모두에게 무기와 식량, 군복 등 군자금 일체를 제공하기로 약조하여 본격적인 대통합을 이뤄냈습니다. 북만주의 대소 독립군부대가 모두 합류했고 최종적으로 안무(1883~1924)의 국민회군,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에 최씨 형제의 군대를 합쳐 독립군 통합부대를 만들었습니다. 명칭은 大韓北路督軍府(대한북로독군부)였고, 통합 서약서에 서명 날짜는 대한민국 2년 즉 1920년 5월 19일이었습니다. 국민회, 신민회, 광복단 등을 비롯한 크고 작은 독립부대가 대한북로독군부 기치로 모였습니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군인의 신분으로 전투에 임했던 것입니다.” - 봉오동전투 상황은.“통합을 이룬 대한북로독군부는 두만강을 건너 일본 헌병대를 습격하는 등 국내 진공작전을 펼치며 실전 훈련을 쌓아갔습니다. 봉오동을 중심으로 통합부대 대한북로독군부의 세력이 커지고 있었기에 당시 일제는 독립군 토벌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정보전으로 이를 파악한 우리 독립군은 마을 주민을 미리 대피시키고, 연대별로 각 산에 주둔하고 산능선을 따라 참호를 파고 매복했습니다. 거의 100년이 지난 지금도 봉오동전투 현장에 가면 낙엽이 가득 차있는 참호를 볼 수 있습니다. 1920년 6월 7일 새벽 일본군 1개 연대 이상의 병력이 봉오동으로 쳐들어왔습니다. 봉오동을 둘러싼 산에서 맹렬한 총격전이 벌어졌고 이어서 봉초봉 아래에선 백병전까지 벌어졌습니다. 이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억수같이 내렸습니다. 돌멩이만한 우박이 떨어지고 뿌연 안개가 앞을 가렸던 거죠. 우리 독립군이 짙은 안개와 비,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승세를 굳힐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후퇴하던 일본군이 지원부대 일본군을 독립군으로 오인해 서로 총격전을 가해 더욱 많은 사상자가 났습니다.” “봉오동전투서 적군 500여명 사살…기존보다 많아청산리전투는 봉오동전투 연장… 6일간 교전”- 봉오동 전투 전과는. “전과에서도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차이가 많이 납니다. 김성녀 할머니가 낸 진정서를 보면 ‘적군 사살이 500여명, 중상자 700여명, 경상자 1000여명입니다. 노획물자는 대포 4정, 기관총 수십 정, 장총 500여정, 탄환 수만 발에 수류탄 다수’라고 기록합니다. 홍범도 일지에도 일본군 사망자가 500명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의 기록에는 여전히 일본군 전사 157명, 중상 200여명, 경상 100여명으로 축소돼 있습니다. 우리의 피해가 거의 없다고 했지만 독립군도 사망자 수십명과 다수의 부상자를 냈다고 김성녀 할머니가 증언합니다. 총상 환자 치료를 위한 의사가 부족해 애를 태웠고, 용정 제창병원에 의사를 보내달라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독립군 지도부는 주민들의 무고한 희생을 줄이고, 더 많은 독립군이 편하게 활동하기 위해 연해주로 이동할 것을 결정합니다. 4000여 명에 이른 독립군들이 부대별로 이동하던 중 일본군이 그해 10월 21일 청산리에서 따라 잡아 전투를 벌인 게 청산리전투입니다. 청산리전투는 하루 전쟁이 아니라 대한북로독군부의 여러 부대가 6일 동안 치른 전쟁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는 청산리전투가 별개의 전투가 아니라 봉오동전투의 연장전이라 생각합니다.” “최운산, 6차례 옥고…이름 8개 사용광복 40일 전 평양 장남 집에서 사망”- 최운산 장군, 역할에 비해 많이 잘못 알려졌다. “만주 무장독립운동이 몇몇의 영웅담 위주로 신화화 한 것이 가장 큰 잘못이라 생각합니다. 굶주리고 헐벗은 파르티잔들이 겨우 화승총으로, 청나라 및 러시아에도 이긴 세계 최강의 일본군에 승리했다는 것이 우리 역사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역사학계도 언론도 처음의 잘못된 기록을 계속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류의 논문을 낸 역사학자를 직접 만나 물어보면 ‘앞선 논문을 인용했을 뿐’이라고 합니다. 역사학계가 정말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최운산 장군 그 뒤 어떻게 됐나. “연해주에서 자유시참변을 겪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무장독립운동을 계속합니다. 1930년대에도 우수리강전투, 나자구전투, 대황구전투, 도문대안전투, 안산리전투, 대전자령전투에 참전했습니다. 그러다가 일본에 유학 중이던 장남 최봉우(일명 최치영·1922~2001)가 학도병 징집을 피해 고향 봉오동으로 돌아왔다가 일제에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러다 죽을 지경에 이르자 장례나 치르라며 내주었습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최봉우가 평양으로 숨어들자, 아버지 최운산장군이 아들을 보러 왔다가 고문 후유증으로 해방 40일 전인 1945년 7월5일 평양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최운산장군은 1924년~1926년 3년간 투옥된 것을 시작으로 1939년 일본 경찰서 습격과 군자금 모집, 창씨개명 거부 등으로 10개월간 감옥에 갇힌 것까지 일생동안 모두 6번 옥고를 치렀는데, 매번 심하게 고문을 당해 수레에 실려 나오곤 했습니다. 가족들도 그가 언제 감옥에 갔다 왔는지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유공자 인정 조건 뒷돈 요구에 주먹 날려1977년 서훈…동생 최치홍은 여태 안 돼”- 정부는 최운산 장군의 역할 일찍 인정해줬나. “1961년 1월 최운산이 독립유공자로 선정됐다는 통보를 정부로부터 받고 총무처로 아버지 최봉우가 갔더니 담당공무원이 ‘뒷돈’을 요구하더랍니다.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모든 가산을 독립군 무장에 썼는데…. 참을 수 없는 모욕감에 아버지가 그 공무원에게 주먹을 날렸습니다. 그 이후론 독립유공자 선정에 번번히 밀려났습니다. 십수년동안 미운털이 박혔던 게지요. 아버지는 생전에 ‘내가 욱하는 성질을 못 이겨 할아버지의 독립운동을 가렸다’며 후회하곤 했습니다. 그 후 할머니가 1969년에 진정서를 냈지만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지 못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2년 뒤인 1977년에야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셨습니다. 같이 독립운동한 동생 최치홍은 100년이 지난 올해까지도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지 못했습니다.”- 설명을 듣고 보니 김성녀 할머니도 큰 역할을 했다. “저도 할아버지의 삶을 살펴보다보니 할머니의 역할이 과소평가됐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할머니는 독립운동가를 내조한 차원을 넘어 무장 독립운동의 한 축이었습니다. 할머니가 남편의 독립유공자 선정을 위해 낸 진정서를 보면 독립운동을 내조한 정도에서는 알 수 없는 당시 북로독군부의 조직 현황과 봉오동전투의 전과를 꿰뚫고 있었습니다. 봉오동전투를 바로 앞두고 최운산 장군이 집에 계시지 않을 때 도착한 중요한 정보는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가 없어 직접 산속의 본진으로 올라가 정보를 전달했습니다. 또한 군사들이 없을 때 집으로 쳐들어 온 마적들을 향해 직접 총을 쏘고 일꾼들을 독려해 무장 강도들을 물리쳤다고 합니다. 물론 주민 부녀자들을 동원해 군복제작과 세탁 등 의복을 조달하고 식사를 준비했지만, 한 끼에 3000명분의 식사를 마련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지난해 김성녀 할머니에 대해 독립유공자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장군의 부인 김성여도 무장독립운동 한 축무장독립운동사, 영웅담서 벗어나야 할 때”-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가 결성됐다. “우리 5남매는 만주 무장독립 운동의 역사가 제대로 정리되기를 기다렸습니다. 후손들의 주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역사가들의 연구가 깊어지면 언젠가 역사가 바로 서리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난 여태까지 바로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잘 못된 기록이 반복되고,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저희가 직접 일제 문서를 찾고, 봉오동전투와 최운산 장군의 삶을 역사학자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반가워하면서 학술적 재조명이 필요한 일이니 기념사업회를 설립하라고 조언해주었습니다. 셋째인 제가 60대입니다. 독립전쟁의 현장을 직접 본 사람의 증언을 들은 마지막 세대일 것입니다. 우리 남매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주 무장독립운동의 역사를 올바로 기록하고자 뜻이 맞는 분들을 중심으로 2016년 기념사업회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집안 자랑이 아니라 수많은 독립군들이 함께 지켜낸 만주의 무장독립전쟁의 진실을 전하고 싶을 뿐입니다. 영웅담 위주의 독립운동사를 넘어서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내년이 봉오동전투 100주년이다. 계획한 행사는. “사실 최운산 장군이 잘 알려진 분이 아니라 정부 지원금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5남매가 비용을 갹출해서 학술세미나 개최나 봉오동 답사 등 필요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손주들도 나이가 들어 경제활동에서 물러나 있으니 기념사업회 활동에 필요한 기금을 마련이 어려워 필요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올해는 당시 독립군이 사용한 무기를 살펴보는 학술세미나를 열고 7월 5일 국립현충원에서 순국 74주기 추도식을 개최합니다. 100주년이 되는 내년엔 봉오동전투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행사와 최운산 장군을 연구한 책을 한 권 펴내려고 준비 중에 있습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바텐더 출신 미 최연소 여성하원의원, 사무실 직원들에게 생계임금 보장 파격 선언

    바텐더 출신 미 최연소 여성하원의원, 사무실 직원들에게 생계임금 보장 파격 선언

    “리더십은 우리의 선택에서 출발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저는 저를 위해 일하는 직원 누구도 연간 5만 2000달러(약 5828만원) 이하의 소득을 버는 사람이 없도록 결정했습니다.” 바텐더 출신의 미국 최연소 연방하원의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30·여)가 자신을 위해 일하는 직원들에게 연간 5만 2000달러(약 5828만원)의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르테즈 의원은 지난 22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미 의회전문지 롤콜 웹사이트에 게재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의 ‘생계임금’ 외침은 그녀의 사무실에서 시작된다’는 기사 링크를 소개하며 “(5만 2000달러는) 미 의회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초봉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코르테즈 의원은 미 연방의회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임금을 지급하기 위한 예산이 2010년 수준을 밑돌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의회 직원들의 임금 수준은 연간 3만 달러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생활임금 계산기 사이트(livingwage.mit.edu)에 따르면 워싱턴DC에서 성인 1명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필수 임금은 연간 3만 6944 달러다. 이 가운데 주거비만 연간 1만 8000 달러를 차지한다. 의회전문지 더힐에 따르면 코르테즈 의원의 사무실은 여전히 직원 채용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코르테즈 의원 사무실의 홍보책임자인 코빈 트렌트는 18명이 함께 일하게 될 것이라고 롤콜에 밝혔다. 코르테즈 의원은 지난해 12월 인턴 직원들에게 최소 시간당 15달러를 지급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초봉 3500만원 ‘광주형 일자리’ 극적 타결…노사상생 첫발

    반값 임금 등 사회적 타협에 기반한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30일 극적으로 타결됐다. 광주시가 사업 모델을 개발한 지 5년, 현대차가 투자의향서를 제출한 지 7개월 만이다. 광주시와 현대차는 완성차공장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투자협약식을 31일 오후 2시 30분 정부 요인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시 청사에서 갖는다. 각계 인사 28명으로 구성된 광주시 노사민정협의회는 이날 오후 시청 중회의실에서 회의를 열고 노사 핵심 쟁점인 ‘임금 및 단체협상 5년 유예’ 조항을 보완하는 내용의 노사상생발전협정서 별도 부속 조항을 의결했다. 구체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현대차가 노동조합법 등 관련법에 명시된 노동계의 임·단협 요구와 쟁의권 등을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당장 투자협약식과 완성차 공장 설립이 가시화될 전망이다. 협약안에는 광주형 일자리의 핵심인 적정 임금, 적정 노동시간, 노사 책임경영, 원·하청 관계 개선 등 4대 원칙이 담긴다. 주 44시간 근무에 연봉은 평균 3500만원이다. 지자체는 상대적인 부족분을 주택·교육지원 등 사회임금을 통해 보전할 방침이다. 광주시는 투자협약식을 마친 뒤 2021년 상반기까지 광산구에 조성 중인 빛그린산단 내 62만 8000㎡ 부지에 자기자본 2800억원, 차입금 4200억원을 들여 완성차 합작법인을 세운다. 시는 법인 자본금 7000억원 중 자기자본금 2800억원의 21%인 590억원, 현대차가 19%인 530억원, 나머지 4200억원을 금융투자자 모집 등으로 충당한다. 그러나 노사민정협의회에 노동계 중심인 민주노총이 불참한 것은 ‘옥에 티’로 꼽힌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아파트 경비원 새해 되자마자 일자리 잃고 자영업자 폐업하거나 무인 키오스크 설치

    울산 아파트 경비원 해고 62% 찬성 편의점 업주 “심야영업 포기할 판” 새 계약서 쓴 근로자 “10만원 인상” “지난해 초봉 기준으로 직원 월급 220만원을 줬는데 이제 250만원을 줘야 한다. 지난해 초에 이어 이번에도 직원을 줄일 수밖에 없다. 이제 사장이 가게에 출근하지 않고 운영하던 시대는 끝났다. 처음 일하는 사람이나 경력자나 똑같은 월급을 줄 수밖에 없다.” 지난해 시간당 7530원이던 최저 임금이 8350원으로 인상된 첫날인 1일 편의점과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부터 일자리를 구하는 구직자까지 곳곳에서 하소연이 터져 나왔다.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울산 중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경비원 30명 중 22명(73.3%)이 새해 첫날부터 일자리를 잃기도 했다. 이 아파트에 사는 1613가구 중 619가구(38.4%)가 ‘경비원 해고’ 투표에 참여했고 이 가운데 62.2%(385가구)가 찬성표를 던졌다. 관리사무소 측은 “경비원 감축으로 가구당 경비비(32평형 기준)를 5만 5000원에서 2만 1000원으로 줄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일부 아파트 주민들은 “아이들 등·하교 안전 관리와 택배 업무, 쓰레기장 관리 등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나”라며 “경제적인 논리로만 결정할 게 아니다”라고 맞서 갈등이 예고된 상황이다. 네이버의 한 자영업자 커뮤니티에는 “도저히 최저임금을 감당하지 못해 폐업신고하고 왔다”는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그동안에도 월급 주고 나한테 돌아오는 돈 몇십만원으로 직원들 몰래 대리운전하면서 유지해 왔는데 앞으로 대리운전만 하려고 한다”고 심경을 전했다. 편의점 업주 등 다른 자영업자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서울 마포구에서 편의점을 운영 중인 박모(57)씨는 “심야 영업을 포기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면서 “지난해에도 최저임금이 크게 올라 평일에는 야간근무자 1명만 따로 두고, 낮에는 아내와 번갈아 가며 매장 근무를 해 버텼는데 추가로 시급이 올라 야간에 가게를 운영하면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외식 프랜차이즈업체 가맹점을 운영하고 있는 점주 이모(43·여)씨도 가게 영업을 시작한 지 2년 만인 올해부터 매장에 무인 키오스크(무인결제시스템)를 들여놓기로 결정했다. 이씨는 “키오스크 기계값으로 600만원 정도 지출했는데, 계산해 보니 인건비를 월 200만원 이상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주위에 다른 가게 사장님들도 지난 연말부터 키오스크 도입을 고민하고 있는 분들이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반면 인건비 상승으로 미소 짓는 근로자들도 있었다. 대형마트의 시식코너에서 일하는 한 협력사 직원은 “지난해부터 자리가 줄어들 것이란 얘기가 있었지만 아직까진 변화가 없었다”면서 “인상된 최저임금이 적용된 첫 근무날이라고 계약서를 다시 썼는데 10만원 정도 올라 내심 기쁘다”고 말했다. 서울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서울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첫 연봉 2996만원·정규직 비율 98%…이 정도는 돼야 ‘청년친화 강소기업’

    첫 연봉 2996만원·정규직 비율 98%…이 정도는 돼야 ‘청년친화 강소기업’

    임금, 일·생활 균형, 고용 등 호평 청소년 선호기업 1127곳 공개 서울에 31%…경기에 30% 집중대전에 있는 무인시스템 개발업체 ‘유콘시스템’은 ‘젊은 기업’이다. 직원들 평균연령이 34세밖에 되지 않는다. 그만큼 자유로운 분위기를 자랑한다. 불필요한 야근은 하지 않는다. 맡은 일만 제때 끝내면 자유롭게 퇴근할 수 있다. 직원의 컨디션을 조절하면서 창의적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서다. 연봉은 대졸 초임 기준 3000만원 정도다. 명절상여금을 비롯해 개인 자동차 보험료도 지원해 준다. 독서, 볼링, 야구 등 각종 동호회 활동도 회사 차원에서 지원해 준다. 회사 직원 강승묵(28)씨는 “다른 중소기업과 비교했을 때 직원 복지가 좋고 회사 분위기도 밝아 만족스럽게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기 성남에 있는 보안전문업체 ‘피앤피시큐어’ 직원들은 1년에 한 번씩 해외로 워크숍을 떠난다. 분기마다 ‘무비데이’를 정해 가족·친구들과 함께 영화도 본다. 직원 간 친목을 다지려는 취지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직원이 많은 만큼 결혼과 임신, 출산 관련 복리후생 제도도 잘 갖춰져 있다. 일할 때는 집중하되 퇴근할 때는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리를 떠날 수 있다. 한 직원은 “회사에서 직원 복리후생에 신경을 많이 써 근로환경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이 두 회사처럼 대기업은 아니어도 청년이 선호하는 요소를 고루 갖춘 ‘청년친화 강소기업’을 선정해 13일 발표했다. 임금, 일·생활 균형, 고용안정 등 각 분야마다 좋은 점수를 받은 기업 700곳을 정한 뒤 중복된 업체들을 묶어 1127곳을 공개했다. 임금 우수기업으로 선정된 업체들의 1년차 평균 연봉은 2996만원이었다. 임금 수준이 가장 높은 곳은 초봉이 4500만원이나 됐다. 5년 뒤 임금 상승률은 평균 29.1%, 5년차 사원의 평균 연봉은 3891만원이었다. 전체 청년친화 강소기업 가운데 351곳(31.1%)은 서울에 있다. 이어 경기 345곳(30.6%), 대전·충청·세종 131곳(11.6%) 순이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초봉 5000만원대 현대모비스도 최저임금 위반…상여금은 최저임금에 제외 탓

    초봉 5000만원대 현대모비스도 최저임금 위반…상여금은 최저임금에 제외 탓

    대졸 신입 사원의 연봉이 5000만원을 넘는 현대모비스가 최저임금(시급 7530원)을 충족하지 못해 시정 지시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모비스는 입사 1~3년 차 정규직 임금이 올해 최저임금 기준에 미달해 고용노동부로부터 최근 시정 명령을 받았다. 국내 대기업 중 최저임금 위반으로 제재를 받은 경우는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현대모비스가 최저임금 위반에 걸린 것은 최저임금법의 제도적 맹점 때문이라는 지적이 높다. 현대모비스의 임금은 기본급과 상여금, 성과급으로 구성돼 있다. 상여금은 기본급의 100%를 매달 홀수 달에 지급해 왔다. 현행 최저임금법은 매달 주기적으로 주는 돈만 최저임금으로 간주한다. 이 때문에 격월로 지급되는 상여금은 최저임금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상여금·성과급 등을 뺀 입사 1~3년 차 현대모비스 사무직·연구원의 월 기본급을 시급으로 환산하면 6800~7400원 정도로 올해 최저시급 7530원에 미치지 못한다. 한편 현대모비스의 대졸 신입 사원의 연봉이 약 5700만원으로 상위권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올해(7530원)보다 10.9%가 오른 8350원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초봉 5000만원’ 현대모비스 최저임금 미달로 시정 조치

    대졸 신입사원의 연봉이 5000만원 수준인 현대모비스가 최저임금 기준 미달로 고용노동부의 시정지시를 받았다. 9일 현대모비스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최근 현대모비스의 일부 정규직 직원들의 임금이 올해 최저임금 기준에 미달했다는 이유로 시정지시를 내렸다. ●시급 환산 땐 6800~7400원 그쳐 현대모비스의 입사 1~3년차 사무직·연구원의 월 기본급이 성과급 등을 빼고 시급으로 환산할 경우 6800~7400원에 그쳐 올해 최저임금인 시간당 7530원에 미달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내년 1월 1일부터 최저임금이 시간당 8350원으로 올해 대비 10.9% 오르고 나면 현대모비스의 경우 4년차 사원부터 대리 1년차까지도 환산 시급 7600~8200원으로 최저임금에 못 미치게 되는 등 위반 대상 기업이 크게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따라 현대모비스는 기존의 취업규칙을 변경해 상여금 지급 시기를 월 1회로 조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저임금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현재는 홀수달에만 100%씩 지급하는 상여금을 매달 50%씩 지급하도록 바꾸기로 한 것이다. 앞서 국회는 지난 5월 상여금도 매달 지급될 경우에는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되도록 법률을 개정했다. ●노조 측 “왜곡된 임금체계 개선해야” 한편 연봉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대기업에서도 최저임금 미달 사례가 나오면서 재계에서는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올해 최저임금은 전년 대비 16.4% 인상됐다. 내년까지 2년 연속 두 자릿수로 오를 경우 기업의 실질적인 지급 능력을 넘어설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한 노동계 관계자는 “기본급을 적게 주고 수당을 부풀리는 왜곡된 임금체계 때문에 나타나는 부작용”이라면서 “이번 기회에 기업 임금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초봉 5000만원’ 현대모비스, 최저임금 위반한 이유

    ‘초봉 5000만원’ 현대모비스, 최저임금 위반한 이유

    대졸 신입사원 연봉인 5000만원 정도인 현대모비스가 일부 직원의 임금이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정부의 시정지시를 받았다. 격월로 지급하는 상여금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9일 현대모비스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최근 이 회사 일부 정규직원의 임금이 최저임금보다 모자란다며 바로 잡을 것을 지시했다. 입사 1~3년차 현대모비스 사무직 및 연구원의 월급에서 성과급을 제외한 뒤 시급으로 환산하면 6800~7400원으로 올해 최저임금인 시간당 7530원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모비스는 홀수달에 100%씩 주던 상여금을 매월 50%씩 지급하도록 취업규칙을 바꿔 정부 지시에 따르기로 했다. 상여금도 매월 정기적으로 지급한다면 최저임금 계산에 포함될 수 있다. 대기업들은 이번 사례를 근거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대기업에도 피해를 줬다며 볼멘소리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저임금은 올해 16.4%, 내년 10.9%로 2년 연속 두자릿수로 인상될 예정이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광주형 일자리, 노사 화합으로 車 산업 혁신·일자리 늘리기라는 근본 정신 되찾아야”

    ‘광주형 일자리’가 표류하고 있다. 생산량이 일정 규모에 이르기까지 임금 및 단체협약을 유예한다는 조항을 두고 현대자동차와 노동계가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이 표면적인 이유지만, 기저에는 전세계에 몰아치는 자동차 산업의 위기와 변화, ‘광주형 일자리’에 오히려 일자리를 빼앗길 수 있는 다른 지역의 위기감, 국내 자동차산업의 고질적인 노사 간 불신 등 복합적인 배경이 깔려 있다. 서울신문은 이승협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와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익위원인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게 ‘광주형 일자리’의 해법을 물었다. “광주형 일자리는 잊어라”라는 회의적인 주문과 함께 “그럼에도 불씨를 살려 성공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엇갈렸다. 그러나 노사 간의 신뢰와 화합으로 자동차 산업의 생산 혁신을 이루고 일자리를 늘린다는 ‘광주형 일자리’의 근본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데에는 견해가 일치했다. ▶생산량이 35만대에 이를 때까지 임단협을 유예한다는 조항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신입 초봉이 연간 3500만원이라는 것 역시 노동계가 ‘저임금’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승협 교수(이하 이 교수) : 광주시가 지역 노동계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아 현대차와 논의하는 과정에서 초봉 3500만원, 5년간 임단협 유예라는 조항이 나왔다. 이런 조건은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가 경제 특구를 만들어 해외기업을 유치할 때 내놓을 만한 조건이다. ‘무파업 도시’를 만들어 줄테니 우리 지역에 공장 세워달라고 홍보하는 것인데, 노동법 위반이라는 점에서 쉽게 꺼내기 힘든 카드다. 지금의 광주형 일자리는 노사 간 신뢰와 타협을 통해 생산 현장을 혁신한다는 근본 정신에서 멀어진 채 광주시의 현대차 공장 유치전으로 전락했다. 노동계는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이같은 조항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물론 현대차 역시 기존 공장과 마찬가지로 노조 리스크를 떠안아야 한다면 투자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합의점을 찾기 힘들 것이다. 이항구 선임연구위원(이하 이 연구위원) : 미국 자동차산업이 위기를 극복한 배경 중 하나가 ‘이중임금제’다. GM은 파산 이전인 2003년 이중임금제를 도입했다. 기존의 근로자들은 임금을 동결하고 신규 채용되는 근로자들은 기존 임금의 절반 수준으로 낮추고 이들에 대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기 전인 2007년 임단협에서도 이중임금제를 지속하기로 합의했다. 비록 GM이 2009년 파산신청을 했지만 2014년까지 11년간 이중임금제를 운영하며 오히려 전체적인 고용은 정상화됐다. 박지순 교수(이하 박 교수) : 임단협 유예 조항은 법적 구속력은 없다. 엄밀히 말해 제3자인 광주지역 노동계가 합의했다 해도 공장에 새로 채용된 근로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교섭을 요구하면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형 일자리라는 실험을 성공시키기 위해 노동계와 현대차가 이견을 좁힐 필요는 있다. 독일의 ‘아우토 5000’은 노동계의 양보로 이뤄진 것이다. 노동계는 광주형 일자리의 당사자인 청년들을 위해 통크게 양보해야 한다. 현대차 역시 노동계의 양보가 있다면 ‘5년간 임단협 유예’라는 허들을 조금 낮추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GM의 구조조정에서 알 수 있듯 전세계 자동차 산업은 구조조정을 통해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등 미래차로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가 지금의 자동차산업에 부합하다고 보는가? 이 연구위원 : ‘광주형 일자리’의 논의 초기에는 전기차 및 수소전기차 공장을 짓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지금은 경형 SUV 공장으로 바뀌었다. 경형 SUV는 국내에서는 수요가 사실상 없다. 신흥국에는 일부 수요가 있으나 공장이 완성돼 차량을 양산할 시기에는 이미 중국 기업들이 가성비를 앞세워 장악할 것이다. 광주형 일자리가 구상됐던 2014~2015년은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이 연간 450만대를 생산하던 호황기였지만 지금은 연간 400만대에도 못 미치는 위기 상황이다. ▶‘광주형 일자리’는 반드시 실현돼야 하는가? 이 교수 : ‘광주형 일자리’라고 불리는 지금의 계획은 접는 게 맞다고 본다. 다만 전국 어느 지역에서든 지역 단위로 돌아가 노사 간의 자발적인 사회적 대화를 통해 생산의 혁신과 일자리 늘리기라는 목표를 실현할 수는 있을 것이다. 사측은 노조가 받아들일 수 있는 임금과 근로 체계, 작업환경을 제시해 노조에 확신을 줘야 하고, 노조도 사측과의 상생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오랜 시간동안 논의하고 검토해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며, 합의가 되지 않는 부분은 지자체와 정부가 나서 보조해주는 방식으로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위원 : 지금은 광주형 일자리를 잊고 자동차 산업의 구조조정을 준비해야 한다. 당장 내년 봄이면 부품사들의 줄도산을 시작으로 엄청난 위기가 닥쳐올 것이다. 공장 설립에 투입되는 자금으로 구조조정에 대응해야 한다. 이러한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노사 간의 대타협이 절실하다. 노사 분규를 줄이고 인력 감축을 최소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노사가 만들어가야 한다. 일자리를 나누고 해고되는 인력을 재교육해 미래차 산업에 투입하는 청사진이 필요하다. 박 교수 : ‘광주형 일자리’라는 ‘옥동자’를 어떻게든 만들어냈으면 한다. 자동차 산업의 위기 속에서 생산성 혁신을 이루고, 지역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광주형 일자리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현대차와 노동계가 보다 큰 그림을 보고 과감한 배팅을 할 필요가 있다. ▶‘광주형 일자리’에서의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박 교수 : 광주시가 주도하고 현대차와 노동계는 마지못해 끌려가는 분위기다.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아우토 5000’을 실현하기 위해 당시 슈뢰더 독일 총리가 산업계와 노동계를 끈질기게 설득했다. 정부가 양대 노총과 현대차를 설득해 대승적인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돈있는 집 자녀는 초봉부터 다르다”…세습되는 직업 지위

    “돈있는 집 자녀는 초봉부터 다르다”…세습되는 직업 지위

    “부자 부모를 둔 자녀가 더 좋은 일자리를 얻고, 돈도 잘 벌 것”이라는 세간의 추측은 보통 주변 ‘엄친아·엄친딸’(엄마 친구의 아들·딸을 줄인 말로 집안은 물론 성격, 머리, 외모 등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남녀를 일컫는 말) 사례를 근거로 둔다. 최근에는 이런 추측을 데이터로 입증한 자료가 여럿 나오고 있다. 부자 부모들은 고액 사교육과 입시 정보 등을 통해 자녀들의 유명대 진학을 돕고, 이를 발판삼아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도록 하는 게 일반적 패턴이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전략만 동원하진 아니다. ‘돈있는 집 자녀는 초봉부터 다르다’는 통념이 얼마나 맞는 얘기인지, 또 부유층은 자녀에게 직업 지위를 물려주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살펴봤다. ●고소득 부모 둔 자녀 첫월급 226만원…저소득 자녀는 169만원 한국교육개발원이 최근 낸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대학경험과 노동 시장 지위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의 소득에 따른 자녀의 초봉 차이는 뚜렷하다. 연구진이 고용정보원의 ‘대졸자 직업이동 경로 조사’ 데이터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부모의 월 소득이 1000만원 이상(2014년 기준)인 대학 졸업생의 첫 일자리 임금은 월평균 226만 1200원이었다. 부모 월 소득이 500만~700만원 사이인 대졸자는 첫 월급이 191만 5800원, 300만~400만원인 대졸자는 첫 월급이 182만 3000원이었다. 부모 월 소득이 100만~200만원 사이인 대졸자의 첫 월급은 평균 169만 8600만원이었다. ‘부자 부모 밑에 고연봉 자녀 있다’는 공식은 보통 ‘학벌’이라는 징검다리를 밟고 만들어진다. 같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부모 소득이 낮은 집단(200만원 이하)의 자녀 중 서울 4년제 대학 진학 비율은 7~8% 정도인 반면 부모 소득이 상대적으로 높은 집단(500만원 이상)의 자녀 중 서울 4년제 대학에 간 비율은 25~30%였다. ‘대학 졸업장도 만성 취업난 앞에 쓸모없게 됐다’는 푸념이 나오지만, 여전히 조금은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부모들이 쓰는 전략은? 사교육·귀천의식 자극 논문 ‘청년층 노동시장 이행의 계층화에 관한 연구’(중앙대 김종성 박사)를 보면 부자·엘리트 부모들의 자신의 직업 지위를 자녀에 물려주는 일상화된 전략이 잘 분석돼있다. 김 박사는 전략 분석을 위해 계층을 대표하는 20~30대 청년 취업자 33명을 심층 면담했다. 면담 대상자 다수가 공통적으로 말한 전략은 부모가 어려서부터 자녀에게 “직업에 귀천이 있다”는 의식을 끊임없이 주입하는 방식이다. 윤리적으로 바람직한 방법으로 볼 수는 없지만 실제 이런 방식으로 자녀의 목표의식을 자극하는 부모가 적지 않다. 공공기관 직원 A(27·여)씨는 어린 시절 부모가 했던 말이 지금껏 기억난다. 판사 아버지와 의사 어머니는 TV에 여의사, 여성 변호사 등이 나오면 딸을 불렀다. “봐봐, 너도 저런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 여자도 좋은 직업 가져야 대접받는 세상이야.” 딸의 진로계획서 희망직업란에 어머니가 직접 ‘변호사’라고 쓰기도 했다. 변리사인 B(32·여)씨도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직업에도 다 귀천이 있는 거야”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딸과 병원에 갈 때마다 “의사 선생님 참 멋있지? 가운도 좋고. 너도 나중에 꼭 의사돼야 해”라고 강조했다. 이씨는 “소득이 높은 변리사를 직업으로 택한 건 부모님의 영향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교육도 직업 지위 대물림에 빠질 수 없는 전략이다. 대입 전형이 복잡해지면서 정보력이 중요해졌는데 ‘정보 전쟁’은 보통 엄마들이 도맡는 경우가 많다. 이때 고액 컨설팅 업체 등 사교육의 도움을 받는 일도 흔해졌다. 대형 학원이 부족한 지방에서는 서울의 스타 강사를 고액에 데려와 그룹과외를 하기도 한다. 영어 교육을 위해 엄마·아빠를 따라 외국에 3~4년 머물다 들어오는 일도 흔해졌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라 그 자녀들의 초봉 차이도 크지만, 이후 급여 차가 더 벌어지는게 문제다. 부모의 지원이 든든하다면 자녀들은 취업 뒤에도 경력 계발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경영학 석사(MBA) 유학 등 재력을 기반으로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는 덕에 발전 가능성이 높다. 반면, 직업지위가 낮은 부모의 자녀들은 대기업 등 원하는 기업에 입사하면 거기서 목표가 사라져 정체되는 경우가 많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연 매출 5억원 편의점 사장님, 연봉 2500만원 실화입니까

    연 매출 5억원 편의점 사장님, 연봉 2500만원 실화입니까

    서울 강서구 주택가에서 2년 3개월째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A(36)씨의 연 매출은 5억원이 넘는다. 하루 140만~150만원의 매출을 올리는데다 직원 4명을 두고 일하는 A씨는 언뜻 속 편한 ‘사장님’처럼 보이지만 실제 연봉은 대기업 대졸 신입사원 초봉에도 못 미치는 2500만원에 불과하다. 최근까지 편의점 점포 2곳을 운영했지만 경기 침체,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한계에 몰려 몇 개월 전 점포 하나를 정리했다. A씨의 지난 6월 매출 분석을 통해 편의점 수익구조를 분석했다.A씨는 주택가 단독주택 1층을 빌려 49.5㎡(15평) 규모의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다. 중심 상권에서 벗어나 그나마 임대료가 비교적 저렴한 150만원 정도의 점포를 얻었다. 인근 중심 상권 임대료는 400만~500만원 수준이다.A씨는 평일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는 직접 편의점에서 일한다. 나머지 시간에는 아르바이트생 4명에게 맡긴다. 아르바이트생은 평일 야간(오후 9시~오전 6시)과 주말 주간 2명(7시간씩) 2명, 야간 1명(10시간)을 쓰고 있다. 이렇게 나가는 인건비만 400만원이다. A씨는 “지난해까지 하루 9시간씩 일했지만 올해 최저임금이 14.6%가량 올라가며 인건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하루에 15시간씩 근무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A씨 점포의 지난달 매출액은 부가세를 제외하고 약 4270만원 정도다. 매출 규모만 놓고 보면 적지 않은 액수다. 하지만 제품 구입비와 가맹수수료, 카드 수수료, 인건비, 임대료, 잡비 등을 제외하고 지난달 A씨가 번 순수익은 210만원에 불과하다. A씨의 수익을 계산해보면 지난달 매출액 4270만원 가운데 73.1%인 3120만원이 제품 구입 원가다. 여기서 가맹 수수료로 310만원을 냈다. 가맹수수료는 점포가 73%, 본사가 27% 가져가는 구조다. 통상 점포가 71~73% 가져가도록 계약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가맹수수료는 총 매출에서 따지는 게 아니라, 매출총이익(전체 매출에서 상품 원가를 뺀 금액)에서 산정한다. 다시 말해서 A씨의 경우 4270만원에서 3120만원을 제외한 약 1150만원의 27%가량을 가맹수수료로 지급한 것이다. 여기에 카드수수료로 65만원이 빠져나갔다. 전체 매출액의 1.5%에 이르는 금액이다. 이렇게 만져보지도 못하고 자동적으로 빠져나가는 돈을 제외하고 A씨의 통장에 들어온 돈은 760만원이다. 여기서 다시 인건비 400만원과 점포 임대료 150만원, 기타 잡비 15만원을 제외하고 A씨가 최종적으로 가져간 돈이 210만원이다. 하루 15시간, 주 5일 75시간을 근무하고 가져간 돈은 전체 매출액의 4.9% 수준이다. A씨의 수입을 시급으로 계산하면 시간당 2500원에 불과하다. A씨는 “보통 물가상승률이 있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상권이 그대로인 이상 연 매출이 1.5~2.0% 정도는 올라야 작년만큼 유지했다고 보는데, 올해는 매출이 말 그대로 제자리”라면서 “매출은 제자리인데 인건비가 15%씩 뛰어오르니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다른 편의점도 사정은 비슷하다. 강남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B씨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야간에는 문을 닫을까도 생각했지만, 본사와의 특약 조건 때문에 야간에 영업을 하지 않으면 본사의 전기료 지원이 끊기고 추가배분율이 삭감되는 등 월평균 100만원을 손해 보는 셈이라 포기했다”면서 “만약 내년에도 정부 혹은 본사에서 별다른 지원책 없이 최저임금이 현안대로 인상될 경우 아르바이트생을 줄이고 주 7일 근무를 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편의점주를 압박하는 요인은 인건비 외에 매출 가운데 상당액을 차지하는 가맹 수수료와 카드 수수료의 부담도 크다. 편의점가맹점협회(전편협)은 현재 가맹본부에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업종별·지역별 차등적용과 함께 가맹본사에 지불하는 가맹 수수료 인하, 근접출점 방지 대책, 정부의 카드 수수료 분담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전편협은 “가맹 수수료를 인하해 점주가 가져가는 비율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편의점업계에서는 편의점주뿐 아니라 가맹 본부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CU, GS25, 세븐일레븐, 이마트24, 미니스톱 등이 속한 한국편의점산업협회 관계자들은 “편의점 본사들이 올해 최저임금 인상을 앞두고 상생안을 내고 점주들을 지원한 후 영업이익률이 1%대로 떨어지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편의점 5개사의 영업이익률은 1~4%대였으며, 올해 최저임금 인상 후 1분기 영업이익률은 0~1%로 낮아졌다는 것이다. 카드 수수료 인하와 관련해서는 카드사들도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골목상권 또는 영세자영업자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카드 수수료 인하가 대책으로 거론되면서 지난 10년간 카드 가맹점 수수료는 실질적으로 9차례 인하됐다는 것이다. 2007년 상한 수수료가 2.30%(연 매출 4800만원 미만)에서 2017년 0.80%(3억원 이하)로 떨어지면서 ‘역마진’을 우려할 판국이라는 호소다. 가맹점주들은 생존을 위해서는 현재 같은 브랜드만 250m 이내 신규 출점을 않는 근접출점 금지를 전 편의점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 측에서도 “근접 출점 제한은 공정위에서 담합 행위로 정해 놓은 사안이라 본사들 간 논의조차 위법 행위가 될 수 있다”면서 “근접출점 방지를 위한 업계 규약을 마련해 공정거래위원회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검토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맹 본사들은 또한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담배의 세금 관련 카드 수수료 인하도 최저임금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안으로 꼽았다. 편의점 점포 수 증가로 인한 과당 경쟁도 어려움을 겪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2012년 영업이익률 5~7%를 기록하던 국내 편의점 본사들의 영업이익률은 2% 밑으로 떨어졌다. ‘편의점 왕국’으로 불리는 일본은 여전히 5~10%의 높은 영업이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가맹점 수수료 때문일까. 한국에서 편의점주가 임대료를 부담하는 경우 대략 35% 정도 수수료를 내지만 일본 점유율 1위인 세븐일레븐은 약 43%의 수수료를 거둬간다. 일본 세븐일레븐은 점포의 70%가량을 본부가 직접 임차하고 있어 수수료율이 더 높다. 하지만 일본은 수수료를 낮춰주는 경우가 많고, 보조금도 적지 않다. 프랜차이즈비교닷컴에 따르면 일본 세븐일레븐에서 월 매출 1500만엔(약 1억 5000만원)을 내는 매장은 상품단가(1100만엔)와 제품 폐기(50만엔) 등을 빼면 매출은 450만엔 정도다. 일본 정부의 노동 정책 강화에 따라 임금이 오르자 지난해 9월부터 세븐일레븐은 특별수수료 1%를 낮춰줬다. 24시간 영업하면 2%를 더 낮춰준다. 이 경우 수수료를 13만 5000엔을 줄일 수 있어 점포는 450만엔 가운데 261만엔을 로열티로 낸다. 5년 이상 넘은 점포는 최대 3%를 더 줄여준다. 일본 편의점의 전기료에는 누진제가 적용되지만, 전기료의 80%를 본사가 부담한다. 게다가 일본과 한국의 점포당 인구수는 격차가 크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는 1300명당 1개, 일본은 2200명당 1개꼴이다. 일본 프렌차이즈 체인협회에 따르면 지난 5월까지 전국 점포수는 5만 5438개. 지난해 5월 대비 1.4% 늘어나는 데 그쳤다. 레드오션화된 시장에서 더 이상 출혈 확장을 자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최저수익을 보장한다. 세븐일레븐의 경우 24시간 영업점에 연간 2000만엔 총수입을 보장한다. 매월 우리 돈으로 1450만원 정도를 보장해주는 셈으로 여기서 운영비를 빼도 수입이 안정적이다. 한국의 편의점당 하루 매출은 150만원 내외지만, 일본은 3배가 넘는다. 대만도 한국의 2배 수준이다. 국내 업계도 최저수입 보장제가 있지만 임대료를 포함해 매월 500만원 수준이다. 여기서 인건비와 전기료, 임대료까지 내야 하고, 1~2년만 보장되는 초기 정착금 개념이다. 우리나라는 1개 점포로 수익을 얻기 어렵기 때문에 1명의 점주가 많은 점포를 내게 된다. 약 30%의 점포는 다점포 점주의 소유로, 점주 1명당 평균 2.5개를 보유했다고 알려진다. 일본은 가입 조건도 까다롭다. 처음 가맹점을 낼 때는 여러 개를 낼 수 없다. 세븐일레븐은 60세 이하의 건강한 사업주를 포함해 부모, 자식, 형제, 자매 등 친척 2명이 경영에 전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만든 ‘모범거래기준’에 250m 내에 편의점을 추가로 내지 않도록 권고했지만, 2014년에 사라졌다. 결국 2014년 하반기부터 국내 편의점 출점이 급증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4인 가족 560만원 빠듯한 생활에도 벌써 퇴직하는 민간 친구들보다 든든”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4인 가족 560만원 빠듯한 생활에도 벌써 퇴직하는 민간 친구들보다 든든”

    큰 집·좋은 차 욕심 버린 지 오래 연금·저축 등 노후 큰 걱정 안해저는 5급 25호봉 서울시 공무원입니다. 1991년 9급으로 시작했습니다. 당시 초봉은 36만원이었지요. 부모님은 무조건 공무원시험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지금처럼 경쟁이 치열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공무원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하니 그 돈으로는 생활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시골 출신 공무원의 서울살이는 만만치 않았습니다. 거기에 결혼까지 해서 애가 생기니 가계는 더욱 쪼들렸고, 그래서 서울시 공무원이 광명에서 전세살이를 시작했습니다. 돌고 돌아 서울로 입성하는 데 꼬박 17년이 걸렸습니다. 애들 학교 문제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인 여건이었습니다. 민간 기업에 취직한 친구가 부러웠습니다. 아내도 어떤 땐 은행에 입사한 친구 남편과 비교하곤 해서 부부싸움을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벌써 27년째가 됐습니다. 승진도 하고 애들도 커서 지금 아들 둘이 대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큰돈을 모은 것은 아니지만 서울에 내 집 갖고 살고 있고 살림살이도 그런대로 견딜 만합니다. 세전으로 월 618만 6900원을 받습니다. 기본공제 152만 1000원 떼고 복리후생비 48만원, 초과근무수당 48만 2000원 등을 합하면 월평균 제 손에 들어오는 것은 561만 7910원입니다. 여기에 연간 100만원 조금 넘는 복지포인트가 있습니다. 제 지출은 월 250만원쯤 듭니다. 자녀 용돈으로는 1인당 60만원씩 120만원, 융자금 상환 50만원, 경조사비 40만원, 저축 100만원 하면 560만원쯤 들어갑니다. 월급에 맞춰서 사는 것 같지만 빠듯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큰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애들 결혼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정년이 남아 있고, 퇴직 후에도 공무원연금이 있기 때문입니다. 벌써 회사를 그만둔 친구들과 비교하면 더 그렇습니다. 애들 취직하고 나면 4~5년은 이 급여로 저축하면서 삶을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더 큰 집, 더 좋은 차 욕심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공직사회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접은 꿈입니다. 그래도 공무원이 천직이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김성곤 논설위원 sunggone@seoul.co.kr
  • 인성·일본어·빠른 준비…일본 취업 ‘아베’ 하세요

    인성·일본어·빠른 준비…일본 취업 ‘아베’ 하세요

    “일본 기업은 토익, 자격증 등 ‘스펙’을 보는 한국과 달리 협동성, 소통능력, 성장 배경 등 인성을 주로 본다. 예컨대 할아버지·할머니와 같이 살았다거나 축구·럭비·야구부 등 단체생활을 한 지원자는 높은 가점을 얻는다. (일본 유통업계 근무 K씨)●일본 채용 절차·문화 파악하라 일본 현지 기업에 취업하려면 이른바 ‘아베’(A.B.E)를 기억하라는 조언이 나왔다. 즉 인성(Attitude)·일본어 능력(Better communication)·빠른 준비(Early bird) 세 가지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일본경제단체연합회와 13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콘퍼런스센터에서 ‘일본 취업 이렇게 준비하자’ 세미나를 열었다. 일본 기업 인재상을 소개한 유현주 퍼솔코리아 해외취업부 일본대표는 “일본은 즉시 투입될 수 있는 전력보다는 교육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인성을 갖춘 인재를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통상 3월 시작해 9~10월 끝나 두 번째 필요조건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인문계·이공계 모두 비즈니스 수준의 일본어 능력을 갖춰야 한다. 또 발 빠른 준비도 중요하다. 일본 오릭스그룹에 입사를 앞둔 박재섭씨는 “일본 특유의 채용 절차와 문화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며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이력서, 필기시험, 면접 등을 준비해야 취업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일본은 채용이 통상 3월에 시작돼 9~10월 마친다. 전경련이 올 일본 주요 기업 102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자동차(2868명), 건설업(2245명), 은행업(2221명), 전자기기(2153명), 보험업(2063명) 순으로 채용 인원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한국 청년들이 취업을 원하는 업종은 서비스, IT(정보통신), 판매유통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목표 기업의 채용 규모 분석이 선행돼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리크루트 슈트’인 검은 정장 착용 발표자들은 일본 취업 때 유의사항 5가지도 전했다. ▲기업설명회 자주 참석 ▲‘리크루트 슈트’로 불리는 정형화한 검은 정장 착용 ▲면접대기실 내 행동 등도 당락을 결정할 수 있는 만큼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또 취업 후엔 대졸 평균 초봉이 21만 5472엔으로 한국보다 높지 않고 이직에 보수적 문화 등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은 “한국은 실업난을, 일본은 구인난을 겪는 만큼 한국의 일본 취업은 모두 이기는(win-win)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퍼블릭IN 1주년] 공직 비추는 창…국민 소통의 길

    [퍼블릭IN 1주년] 공직 비추는 창…국민 소통의 길

    ●‘국내 첫 공무원 매거진 ’ 성장의 열매 맺길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퍼블릭인은 국내 첫 공무원 전문 페이지로 공직사회에 초점을 둔 신선한 기획으로 관심을 받았다. 국민들에게 공직사회를 알리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봄에 씨앗을 뿌리고 여름 내내 가꿔 가을 추수를 기다리는 농부처럼 퍼블릭인도 발전하고 변화해 성장의 열매를 맺길 바란다. 기사 한 줄과 사진 한 장이 사회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명감으로 소임을 다해 달라. 국민 삶 나아지는 공직 현장 다루길 기대●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그간 국민 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책정보뿐 아니라 국민을 위해 땀 흘려 일하는 공직자들의 이야기를 꾸준히 소개한 노고에 감사드린다. 올해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과 치매국가책임제 등을 통해 국민의 삶이 나아지는 현장 이야기와 24시간 발로 뛰고 있는 공직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주시길 기대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사랑과 신뢰를 받는 퍼블릭인이 되길 바란다. 공무원을 가까운 이웃ㆍ친구로 느끼게 해줘●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공무원의 진솔한 모습을 가감 없이 전해주는 퍼블릭인 창간 1주년을 축하한다. 이 페이지가 매주 소개하는 공무원의 생생한 직장 이야기 덕분에 국민들이 공무원을 과거보다 더욱 가까운 이웃이자 친구로 느끼게 됐다. 10년 뒤에도 100년 뒤에도 공무원들 기쁨과 애환을 계속해서 전달해주길 기대한다. 국민과 공무원을 하나로 이어주는 편안한 소통통로 역할을 해주기 바란다. 유익한 정보ㆍ진솔한 이야기 공감돼 애독●김용진 기획재정부 제2차관 지난해 2월부터 퍼블릭인은 매주 공직사회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하고 있다. 항상 유익한 정보와 날카로운 통찰로 공직자뿐 아니라 일반 국민도 널리 공감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기사들이 실려서 꾸준히 읽어 왔다. 특히 부처 대변인 출신 공직자를 다룬 지난해 11월 26일자 기사는 바로 나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해 더더욱 가슴에 깊이 와 닿았다. 공직사회ㆍ국민 이어주는 플랫폼 돼 달라●이인호 산업통상자원부 차관 퍼블릭인을 통해 공직사회 현재를 살펴보고 앞으로의 트렌드 변화를 읽고 있다. 지난 1년간 퍼블릭인은 창이자 거울이었다. 독자들은 퍼블릭인을 통해 공직사회 골목골목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공무원도 스스로를 이리저리 비춰보며 옷매무새를 매만질 기회를 얻었다. 앞으로도 참신한 구성과 젊은 시도로 공직사회와 국민을 이어주는 ‘이해와 소통의 플랫폼’이 돼 달라. 104만 공무원 맞춤 정보지 항상 응원할 것●손병석 국토교통부 1차관 104만 공무원들의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담아온 ‘퍼블릭 IN’ 창간 1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퍼블릭인은 공직사회의 다양한 소식을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소통 창구이자, 공직자들에게 맞춤형 정보를 제공해주는 국내 최초 공무원 전문 매거진으로서 그 역할을 해왔다. 앞으로도 퍼블릭인이 국민들 관심과 사랑 속에 더욱 발전하길 기원하며, 항상 관심 갖고 응원하겠다. 알찬 기획으로 비판적 공직 감시자 역할을●강준석 해양수산부 차관 매주 월요일이면 공직사회 여러 모습을 다른 매체보다 한 발짝 깊숙이 들어가 다루고 있어 퍼블릭인을 매우 관심 있게 본다. 최근 공직사회에 불고 있는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 이슈 등을 수시로 다뤄 시의성이 높다는 생각이다. 앞으로 공직사회가 더욱 신뢰받고 투명해질 수 있도록 비판적 감시자 역할을 다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욱 알찬 기획과 내용으로 무장해 달라. 적극행정 등 기획, 능동적 공직 동기 부여●김판석 인사혁신처장 각 분야에서 묵묵히 일하는 100만 공무원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기 위해 노력해 온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특히 ‘적극행정’ 기획보도를 통해 적극행정으로 국민의 불편을 해소하고 다양한 혜택을 만들어 낸 ‘국민 감동사례’를 알려 능동적으로 일하는 공직문화를 조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국민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숨은 공복들이 조명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공직 길라잡이…직장내 성추행 등도 다루길●김외숙 법제처장 공직에 갓 입문하다보니 공무원 사회가 다소 낯설었다. 퍼블릭인을 읽으며 공무원의 솔직하고 생생한 이야기를 엿볼 수 있어서 애독하고 있다. 퍼블릭인 덕분에 공직사회가 돌아가는 방식과 공무원 애환 등을 좀더 자세히 알 수 있어 좋았다. ‘직장 내 성희롱·성추행 없는 건전한 공직사회 만들기’처럼 조금은 민감하지만 반드시 개선돼야 할 주제도 심도 있게 다뤄주면 좋겠다. 현장 울림 전달…공직사회 긍정 변화 이끌어●한승희 국세청장 국내 언론 최초로 공무원을 위한 프리미엄 매거진을 표방한 퍼블릭인 덕분에 지난 1년간 공직사회에 긍정적인 변화가 생겨났다. 퍼블릭인은 한국 사회가 바뀌길 바라는 국민 눈높이를 제대로 반영해 공직사회와 국민 간 소통의 다리이자 동반자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심도 있는 목소리로 공직사회 현장의 울림을 전하는 최고 페이지로 발돋움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퍼블릭인 보며 공직사회 올바른 여론 파악●지철호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지난 1년간 퍼블릭인이 공무원들 인식과 일상을 소개해줘 공직사회 올바른 여론을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퍼블릭인이 공무원이 간부에게 쉽게 꺼내기 힘든 이야기를 대신 해주고 부처 내 소통을 촉진하는 가교 역할도 맡아주길 바란다. 또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공무원 스스로 전문성을 키우고 업무에 몰입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도록 조언도 부탁한다. ●김성재 국무총리비서실 공보실장 겸 대변인 그간 공직사회를 보도하는 언론의 시선은 따갑기만 했다. 공무원 집단은 폐쇄적이고 무능하며 탐욕적 권력집단 정도로 묘사됐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연재된 퍼블릭인은 공직사회에 온기와 활기를 찾게 하는 데 초점을 줬다. 그동안 잘못 알려지거나 덜 홍보된 공직사회 여러 모습을 생생하게 읽을 수 있던 연재 보도들이 특히 좋았다. ●이계문 기획재정부 대변인 공무원을 다룬 기사는 많지만 이들의 희로애락까지 다룬 기사를 거의 없는 현실에서 퍼블릭인이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앞으로도 생생한 공무원 얘기를 읽는 재미를 계속 느끼고 싶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나 국제교류재단을 통해 한국에서 연수를 받는 개발도상국 출신 공무원이 적지 않다. 퍼블릭인에서 그런 공무원을 다룬 기획기사도 써보면 어떨까 한다. ●임창빈 교육부 대변인 퍼블릭인은 공무원들이 직접 털어놓지 못한 속내를 솔직담백하게 전달해줘 진짜 정보가 된다. ‘그 시절 공직 한컷’ 같은 꼭지는 과거 공직사회 데이터베이스를 열어보는 듯한 소소한 재미도 준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세종과 서울, 과천, 대전 등에 청사가 나뉘어 있는데, 각 청사별 독특한 문화나 공무원의 애환 등을 취재해 보여주는 것도 의미있는 작업이 될 것 같다.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 지난 1년간 공무원 삶의 현장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서울신문 노고를 높이 평가한다. 덕분에 사회 각 분야에서 묵묵히 일하는 공무원에 대한 막연한 편견도 상당부분 개선됐다. 외교부는 지난 1년 동안 퍼블릭인 ‘해외로부터의 편지’ 코너를 통해 전 세계 180여개 국가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외교부 직원들 소식을 국민에게 소개할 수 있어 더없이 소중한 기회였다. ●문홍성 법무부 대변인 지난 1년간 공직자들 삶을 깊이있게 다뤄 이들의 진솔한 모습을 잘 전달했다. 특히 공무원의 행복지수와 승진제도, 공무원 연금, 정부조직 개편, 개방직 공무원, 공무원 순직, 은퇴, 육아휴직, 청탁금지법 시행 등 관가에서 꼭 필요한 알찬 정보와 읽을 거리를 충분히 제공해 왔다. 앞으로도 공직사회 발전을 이끌고 국민에게 바람직한 공직자상을 알리는 본연의 역할을 다 했으면 한다. ●김성호 행정안전부 대변인 퍼블릭인만큼 공직사회에 대해 자세하게 다루는 지면은 지금껏 없었다. 청탁금지법 같은 공직사회 핫이슈는 물론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 관심사인 공무원 초봉, 세종청사 이전을 앞둔 부처 직원들이 궁금해하는 세종시 소식까지 그야말로 ‘공직사회 A부터 Z’까지 모두 다뤘다. 퍼블릭인 덕분에 공무원에 대한 국민의 과도한 오해와 편견이 다소 줄어들었다고 생각한다. ●이형훈 보건복지부 대변인 지난 11월 퍼블릭인에 게재된 ‘부처의 입 대변인들의 희로애락’ 기사가 특히 인상 깊었다. 21명 현직 대변인에 대한 소개와 대변인을 역임한 우리 선배들 이야기는 독자들의 흥미와 관심을 이끌기에 충분했다. 정부 부처 대변인의 소임과 사명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좋은 기회였다.  ●황보국 고용노동부 대변인 퍼블릭인이 공직사회 내부를 주제로 다루다보니 읽다보면 업무에도 큰 도움이 된다. 공무원들이 직접 말하지 않는 속내를 파악할 수 있어 공직 내부 여론과 정부 정책을 바라보는 이들의 솔직한 생각도 알 수 있어 유익했다.  ●김중열 여성가족부 대변인 퍼블릭인이 공직사회 숨은 뒷이야기부터 훈훈한 일상까지 소개해 재밌게 읽고 있다. 특히 다른 정부부처 상황이나 관가의 전반적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부처 내부 소소한 부분까지 기사가 되는 것을 보면 공직사회에 대한 서울신문의 취재력이 탁월하다는 것을 매번 느낀다. 공직사회의 성평등과 여성 대표성 제고, 워라밸 등 여성·가족분야도 많이 다뤄줬으면 한다. ●김의승 서울시 대변인 오랜 기간 공직사회는 그들만의 세상으로 치부됐다. 서울신문이 국내 최초로 내놓은 공무원 섹션 퍼블릭인은 그런 목마름을 채워준 단비 같았다. 서울신문의 독보적 콘텐츠인 ‘자치·정책고시’ 뉴스를 특화하고 공직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보태 언론의 새 장르를 열었다.  ●하변길 관세청 대변인 초기부터 기획이 잘 짜여져 있어서 전반적인 지면 포맷이 안정돼 있다는 느낌이다. 앞으로는 호흡이 긴 시리즈도 어떨까 한다. 예를 들면 지난달 29일자 대전청사 20주년 관련 커버스토리의 경우 세종청사 정착에 주는 시사점 등을 주제별로 짚어보는 시리즈로 기획됐으면 좋았을 것 같다. 초기 대전청사 기획자들과 현재 세종청사 기획자들간 좌담 같은 것도 흥미있을 것 같다.
  • 액션 아닌 코믹물…뉴질랜드 경찰 채용 영상 화제

    액션 아닌 코믹물…뉴질랜드 경찰 채용 영상 화제

    “범죄에 맞서 싸우고 싶다”, “마을의 안전을 지키고 싶다” 등 경찰관을 목표로 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물론 경찰관이 되려면 사명감으로 임해야겠지만, 조금은 가볍고 친근하게 경찰을 알리는 영상이 인터넷상에 공개돼 화제가 되고 있다. 뉴질랜드 경찰은 24일 페이스북 공식 페이지에 70명이 넘는 현역 경찰관이 등장하는 채용 영상을 공개했다. 액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긴장감 넘치는 배경음악과 함께 경찰관들은 범죄자를 잡기 위해 컨테이너가 즐비한 창고 밖에서 작전을 준비한다. 그런데 한 여성 경찰관이 손가락으로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하자 배경음악을 연주하고 있던 경찰 밴드는 연주를 중단한다. 즉 이 장면서 영상의 장르는 액션이 아니라 코믹임을 알 수 있다. 추적 신이 시작되자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경찰관이 바뀌는데 인종마저 다르다. 이는 출신지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뉴질랜드의 안전을 지키고 있음을 시사한다. 범죄자를 추적하는 중에도 횡단보도를 힘겹게 건너는 노인을 돕거나 자동차의 엔진에 이상이 생겨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운전자를 돕는다. 경찰견도 출동하고 경찰 고양이(?)도 임무에 투입된다. 그리고 마침내 체포된 범죄자로 개가 등장하며 영상은 끝이 난다. 즉 가볍고 친근한 홍보 영상을 통해 경찰 지원을 독려하는 것이다. 해당 영상은 공개되자마자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하루 만에 조회 수 200만 회를 돌파, 지금까지 494만 회를 넘어섰다. 반응 역시 뜨겁다. 좋아요(추천) 4만2000개, 댓글 1만1000개, 공유 6만6000회를 기록하고 있다. 채용 안내 홈페이지를 보면 뉴질랜드 경찰의 초봉은 5만 6100뉴질랜드 달러(약 4170만 원)다. 그야말로 매력적인 직업임이 틀림없다. 사진=뉴질랜드 경찰 채용/페이스북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우리銀 손태승 대행체제로…임추위 구성 연기

    우리銀 손태승 대행체제로…임추위 구성 연기

    예보측 이사 임추위 포함 관건 행장자격 외부로 넓힐지 주목 금융당국, 채용추천제도 점검 온·오프라인서 비리 신고 받아 우리은행이 채용비리 의혹으로 사퇴한 이광구 행장 대신 손태승 글로벌 부문장 대행 체제에 돌입했다. 우리은행 이사회는 조만간 차기행장 인선 작업에 본격 돌입할 예정이다. 금융당국은 14개 국내 은행의 채용추천 제도를 집중 점검하고 있다. 이번 주부터는 금융권 채용비리를 전담해 접수하는 온·오프라인 창구를 만들어 신고를 받는다.우리은행 이사회는 5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후임 대표이사가 선출될 때까지 손 부문장에게 행장 업무를 위임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이 행장이 사퇴 의사 표명 이후 출근을 하지 않기로 해 현재 임원 중 가장 선임인 손 부문장이 업무 권한을 위임받은 것이다. 이사회는 관심이 쏠렸던 임추위 구성은 다음 이사회로 미루기로 했다. 관건은 예금보험공사 측 비상임 이사가 임추위에 포함되는지 여부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민영화에 성공했지만 18.78%의 지분을 가진 예보가 여전히 1대 주주다. 지난 1월 민선 1기 은행장 선출 땐 과점주주 사외이사 5명만으로 임추위를 구성했다. 이번에 예보 측 이사가 포함된다면 ‘관치로 돌아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임추위 구성 이후 차기 행장후보 자격 요건을 ‘최근 5년 전·현직 임원’에서 외부 인사로까지 넓힐지도 관전 포인트다. 이 행장의 사퇴와 관계없이 금융당국은 금융권 채용 시스템 전반에 대한 점검을 이어 간다는 방침이다. 금융당국은 14개 국내 은행에 자체 점검을 할 때 기준으로 삼을 체크리스트를 배포했다. 은행들은 이달 말까지 채용추천 운영 여부와 채용추천을 받는 경우 요건이나 절차, 내규가 있는지를 점검해 금융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자기소개서에 가족 등 배경 기재 여부, 필기·면접시험 절차와 비밀 유지 시스템 등도 점검 대상이다. 채용청탁 관련 내부처리 절차가 있는지 등도 살핀다. 각 은행은 점검 결과 채용 시스템에 미비한 점이 있으면 이에 대한 보완책도 마련해야 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각 은행의 점검 결과를 보고 필요하면 채용시스템의 적정성에 대해 현장 점검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잇따라 채용비리 의혹이 불거진 금융감독원과 우리은행 등 금융기관들의 급여 실태 등에도 관심이 쏠린다. 금융권은 오래전부터 ‘신의 직장’으로 불렸다. 금감원 직원의 1인당 평균 보수액은 2015년 기준 9574만원에 달했다. 월평균 798만원을 받는다는 얘기다. 같은 해 임금근로자 월평균 소득 329만원의 2배가 넘는다. 대졸 신입사원 연 초임도 평균 4171만원이었다. 은행 직원들의 급여도 금감원 못지않다. 지난해 기준 우리은행의 1인당 평균 급여는 8000만원이다. 씨티은행 9300만원, 신한은행 8400만원 등 수준이다. 은행권 대졸 신입사원 초봉도 5000만원 내외로 높은 편이다. 자녀 학자금은 물론 개인연금이나 의료비도 지원하는 등 복지 혜택도 잘 갖춰져 있다. 은행권 공개채용 경쟁률이 100대1에 육박하지만 누군가는 ‘전화 한 통’에 특혜 채용됐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취업 준비생들의 허탈함과 분노가 확산되고 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국책硏 연봉 최대 2.5배 격차…조세재정硏 박사급 1.5억 최고

    국책硏 연봉 최대 2.5배 격차…조세재정硏 박사급 1.5억 최고

    국책연구기관에 따라 연봉 격차가 최대 2.5배까지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26일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이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서 받은 ‘2016년 23개 국책연구기관 연봉 현황’에 따르면 조세재정연구원의 박사급 평균 연봉이 1억 4993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반면 평균 연봉이 가장 적은 곳은 청소년정책연구원으로 5885만원에 불과했다. 23개 기관의 박사급 평균 연봉은 8650만원, 평균 초봉은 5820만원으로 각각 집계됐다. 석사급 평균 연봉은 한국교육개발원이 766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689만원으로 가장 적었다. 또 행정직의 평균 연봉은 한국교통연구원(7839만원)이 가장 많고 통일연구원(5029만원)이 가장 적었다. 세종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독일남자, 아시아 각국 돌며 낮에는 구걸, 밤에는 유흥업소

    독일남자, 아시아 각국 돌며 낮에는 구걸, 밤에는 유흥업소

    아시아 각 국을 돌며 낮에는 구걸, 밤에는 유흥업소를 전전하던 독일 남성에 대해 태국 정부가 입국 금지 명령을 내렸다. 28일 태국 정부는 자국에서 낮에는 병자 행세를 하며 구걸을 하고, 밤에는 태국의 유흥 업소를 전전한 해당 남성에 대해 자국 입국 금지 및 추방 조치를 했다고 중국 관찰자망은 보도했다. 해당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아시아 각 국에서 벤자민으로 불리던 이 남성은 올해 32세의 독일 국적자로 알려졌다. 그가 처음 구걸을 하게 된 계기는 지난 2014년 베이징에서 자신의 오른쪽 다리에 심각한 부종을 얻으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오른쪽 발목에 심각한 부종을 앓았던 벤자민은 베이징 도심을 전전하며 구걸을 했고, 서양 남성이 구걸하는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중국인들의 기부 금액이 상당해지자, 그는 구걸로 번 돈으로 유흥업소를 전전하기 시작했다고 현지 언론은 설명했다. 실제로 당시 베이징 일대에서 이 남성이 구걸로 모은 금액은 하루 평균 1000위안(약 20만 원)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4년제 대학교 졸업생이 대도시에서 취업 후 지급받는 평균 초봉 수준이 3000~4000위안이라는 점에서 이 남성이 구걸로 버는 수익은 상당한 수준이다. 문제는 해당 남성이 수 년 동안 중국, 태국, 필리핀, 캄보디아, 일본, 말레이시아 등 다수의 아시아 국가를 전전하며 낮에는 구걸, 밤에는 유흥업소를 전전하는 생활을 지속했다는 점이다. 그의 이 같은 행각은 그가 운영하는 sns 사이트에 유흥업소 여직원과 함께 촬영한 사진들을 게재하면서 꼬리가 밟혔다. 그는 아시아 각 국을 여행하며 수차례 씩 만남을 가졌던 유흥업소 여직원들과의 사진을 자신의 소셜 네트워크 게정에 게재했는데, 해당 사진이 네티즌에 의해 발각된 것이다. 더욱이 2014년 9월 그는 태국에서 ‘독일로 돌아갈 차비를 잃어버렸다’ 구걸 행각을 통해 모은 성금으로 유흥 업소 여직원과 파타야로 여행을 떠난 사실이 추가로 발각돼 네티즌들의 공분을 산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사실이 알려지자, 중국과 태국의 네티즌들은 분노했고 이 남성에 대해 태국 정부는 이날 추방 및 입국 금지 조치를 발표했다. 이와 함께 중국 네티즌들은 온라인 상에서 그의 사진을 공유, ‘그가 다시 베이징에 나타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려고 해도 돈을 주어서는 안 된다’, ‘선량한 시민의 돈으로 유흥업소를 전전하고, 아시아 각 국의 국민을 조롱한 이 남자에게 자비심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유학비 3억 쓰고도 월급은 86만원…‘하이구이’ 호시절 다 갔네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유학비 3억 쓰고도 월급은 86만원…‘하이구이’ 호시절 다 갔네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에서 중·고교를 졸업한 샤오린(小林·26)은 호주에서 대학을 마친 ‘하이구이’(海歸·해외 유학파)다. 그녀의 부모가 사업을 했지만 집안 형편은 그리 넉넉하지 않은 편이었다. 부모는 집을 팔아 마련한 돈 150만 위안(약 2억 5768만원) 가운데 120만 위안을 샤오린의 유학 비용으로 썼다. 6년 만에 공부를 마치고 지난해 말 귀국한 그녀는 곧바로 일자리를 알아봤다. 여섯 군데에 이력서를 냈지만 면접에서 모두 쓴잔을 들었다. 한 면접관은 “유학을 했다는 사람들의 이력서를 많이 받았는데 당신은 이것 말고 다른 장점은 없습니까?”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다른 면접에서는 “회사 월 급여가 2000위안이고 나머지는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로 지급한다”, “26살인데 다른 업무 경험은 없느냐”, “이 업무를 보는 데 중국 내 인맥이 많으냐” 등의 황당한 얘기만 듣고 면접장을 빠져나왔다.올해 초 부모의 도움으로 한 국유기업에 입사해 월 급여 5000위안를 받는 샤오린은 “회사의 명성이나 급여, 후생복리 등에 대한 기대치를 최대한 낮췄다”며 “우리 회사에도 해외 명문대 출신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녀는 유학을 준비하기 위해 1년간 10만 위안을 썼고 호주에서 6년간 대략 180만 위안을 지출했다. 현재의 급여 수준으로는 유학 생활에서 쓴 돈을 회수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 뉴욕대에서 다큐멘터리 제작 관련 석사 학위를 받고 지난여름 베이징으로 돌아온 루시 류(28)는 창업을 택했다. 베이징에서 가장 유명한 다큐 제작업체에 합격했지만 연봉이 기대 이하여서 입사를 포기했다. 이 업체가 제시한 연봉은 15만 위안으로 매달 1만 2500위안 정도다. 그는 “유학비로 100만 위안을 쓴 것을 생각하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연봉이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나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라며 “(해외 유학을 다녀온) 내 친구들 중 상당수는 취직도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하이구이들이 취업난에 시달리며 취업하더라도 기대 이하 수준의 급여를 받는 등 애물단지 신세로 전락했다. 귀국하는 해외 유학생이 가파르게 늘어나는 데 비해 경제성장률 둔화로 오히려 일자리는 줄어드는 바람에 취업 경쟁이 치열해진 까닭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중국 도시쾌보(都市快報) 등은 지난 17일 샤오린처럼 유학하고 돌아온 하이구이가 중국에서 기대에 걸맞은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며 “하이구이는 ‘하이다이’(海待·취업 대기자)라는 조롱거리가 됐다”고 보도했다. SCMP에 따르면 하이구이들의 평균 초봉은 2007년 월평균 1만 위안 수준을 웃돌았으나, 지난해에는 6000위안 선으로 40%나 떨어졌다. 취업컨설팅업체 즈롄자오핀(智聯招聘) 조사에서도 초봉이 월평균 6000위안 이하인 하이구이는 절반에 가까운 44.8%다. 6000~8000위안인 하이구이는 22.7%, 8000~1만 위안과 1만~2만 위안인 하이구이는 각각 13%와 13.7%로 조사됐다. 2만 위안 이상을 받는 하이구이는 5.8%에 그쳤다. 지난해 중국 대졸자들의 평균 초봉이 월평균 4800위안인 점을 감안하면 하이구이와 본토 대졸자 간 연봉 차이가 별로 크지 않다. 200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선망의 대상이던 하이구이는 취업이 보장됐고, 고액의 연봉을 받으며 결혼 상대자 1순위로 꼽혔다. 그들의 신세가 10년 만에 ‘상전벽해’(桑田碧海)로 바뀐 것이다.이에 따라 실제 수입과 자신의 기대치가 일치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기대치보다 높다는 응답자는 1%에 그쳤고 기대 수준과 일치한다는 응답자는 30.1%였다. 반면 기대치보다 낮다는 응답자는 68.9%에 이른다. 하이구이의 30.3%는 해외 유학 비용을 버는 데 3~5년이 걸릴 것이라고 답했고 22.5%는 5~10년, 17.5%는 10년 이상이 필요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하지만 1년 미만이 될 것이라고 본 하이구이는 5.6%에 그쳤다. 하이구이 연봉 폭락의 근본적인 원인은 해외 유학생 수가 단기간에 너무나 많이 늘어난 것이다. 귀국 후 글로벌 투자은행과 다국적 기업 등에 취업해 고액의 연봉을 받을 꿈에 부푼 중국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유학길에 오르며 10년 새 유학생 수는 급증했다. 중국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누적 하이구이 수는 265만 1100명에 이른다. 작년 한 해 해외로 유학을 떠난 학생은 54만 4000명이고, 43만 2500명이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다. 80% 가까이가 유학을 마치고 중국 본토로 돌아온 셈이다. 특히 2007년에는 미국과 유럽 등의 고용시장이 호전돼 유학 후 중국으로 돌아오는 젊은이가 4만 4000명에 그쳤다. 귀국 유학생 수로만 따지면 10배로 늘어난 셈이다. 외국 유학 경험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취업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따라 하이구이는 유학을 다녀왔는 데도 취직하지 못한 채 놀고 있는 ‘하이다이’라는 말이 생기고, ‘하이다이’(海帶·다시마)로까지 불리며 입길에 올랐다. 중국 국내 취업시장 사정도 경제성장률 둔화 등으로 악화되면서 하이구이의 설 자리를 좁아지게 한다. 지난해 770만명에 이르는 대졸자 상당수가 택배 등 단순노무직으로 취업하는 실정이다. 2013년 81%에 이르던 대졸자 정규직 취업 비율은 갈수록 낮아져 2015년에는 77%로 떨어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귀국한 유학생의 상당수는 기대에 못 미치는 낮은 연봉의 일자리를 제안받고, 어쩔 수 없이 이런 일자리를 받아들인다고 SCMP가 전했다. 하이구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예전만 못하다. 과거에는 성적이 우수한 인재들만 정부 장학금을 받아 해외 유학을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경제발전으로 소득수준이 높아져 유학 바람이 불면서 하이구이의 실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다는 지적이 많다. SCMP는 “해외 유학이 실력보다 돈에 좌우되기 때문에 돌아오더라도 좋은 직장을 보장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중국 대입시험인 가오카오(高考)를 피하기 위해 도피차 유학을 선택하는 학생이 많다는 시각도 이를 부추긴다. 중국 매일경제신문(每日經濟新聞)은 “해외 유학이 실력보다는 돈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중국에 돌아오더라도 좋은 직장을 보장받을 수 없다”고 보도했다. 한 네티즌도 “해외 유명 대학이라고 하더라도 유학생에 대한 조건이 크게 완화된 곳이 많기 때문에 중국 대학 출신보다 우수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이 때문에 중국 기업들은 채용할 때 해외 유학 경험이 있다고 해서 더이상 가산점을 주지 않는다. 이들이 외국어에 능통한 것도, 전문지식이 뛰어난 것도 아니라는 인식에서다. 리이판(李?凡) 유학 컨설턴트는 “해외에서 학부 과정을 마치고 돌아온 하이구이와 국내 일반대학 학부 졸업생을 비교하면 하이구이가 오히려 열세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중국 사회와 정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인맥도 별로 없어 이들의 취업을 어렵게 한다. 중국 기업의 한 인사 담당자는 “상사나 소비자들이 원하면 무조건 행동에 나서는 중국의 기업 문화와 달리 하이구이는 해외에서나 통하는 윤리, 도덕, 투명성, 실력 우선주의를 운운하며 동료들과 종종 마찰을 빚는다”고 말했다. 그래도 해외 석·박사 학위가 있거나 귀국 전 직장 경험이 있다면 중국 본토 대학 졸업생보다 취업이 훨씬 더 잘되고 급여도 높은 편이다. khkim@seoul.co.kr ■이 기사는 서울신문 인터넷 홈페이지에 연재 중인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goo.gl/sdFgOq)의 전문을 만날 수 있습니다.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애물단지로 전락한 중국 해외유학파들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애물단지로 전락한 중국 해외유학파들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에서 중고교를 졸업한 샤오린(小林·26)은 호주에서 대학을 마친 ‘하이구이’(海歸·해외유학파)이다. 그녀의 부모가 사업을 했지만 집안 형편은 그리 넉넉하지 않은 편이었다. 부모는 집을 팔아 마련한 돈 150만위안(약 2억 5768만원) 가운데 120만위안을 샤오린의 유학 비용으로 충당했다. 6년 만에 공부를 마치고 지난해 말 귀국한 그녀는 곧바로 일자리를 알아봤다. 여섯 군데에 이력서를 냈지만 면접에서 모두 쓴잔을 들었다. 한 면접관은 “유학을 했다는 사람들의 이력서를 많이 받았는데 당신은 이것 말고 다른 장점은 없습니까?”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다른 면접에서는 “회사 월 급여가 2000위안이고 나머지는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로 지급한다”, “26살인데 다른 업무 경험은 없나요?”, “이 업무를 보는데 중국내 인맥이 많으냐” 등의 황당한 얘기만 듣고 면접장을 빠져나왔다.  올해 초 부모의 도움으로 한 국유기업에 입사해 월급여 5000위안를 받는 샤오린은 “회사의 명성이나 급여, 후생복리 등에 대한 기대치를 최대한 낮췄다”며 “우리 회사에도 해외 명문대를 출신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녀는 유학을 준비하기 위해 1년 간 10만위안을 썼고 호주에서 6년 간 대략 180만위안을 지출했다. 현재의 급여 수준으로는 유학생활에서 쓴 돈을 회수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 뉴욕대에서 다큐멘터리 제작관련 석사학위를 받고 지난 여름 베이징으로 돌아온 루시 류(28)는 창업을 택했다. 베이징에서 가장 유명한 다큐 제작 업체에 합격했지만 연봉이 기대 이하여서 입사를 포기했다. 이 업체가 제시한 연봉은 15만위안으로 매달 1만 2500위안 정도다. 그는 “유학비로 100만위안을 쓴 것을 생각하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연봉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녀는 “나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라며 “(해외 유학을 다녀온) 내 친구들 중 상당수는 취직도 못하고 있다”며 위안으로 삼았다.  중국의 하이구이들이 취업난과 취업하더라도 기대 이하 수준의 급여를 받는 등 애물단지 신세로 전락했다. 귀국하는 해외 유학생들이 가파르게 늘어나는데 비해 경제성장률 둔화로 오히려 일자리는 줄어드는 바람에 취업 경쟁이 치열해진 까닭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중국 도시쾌보(都市快報) 등은 17일 샤오린처럼 유학하고 돌아온 하이구이가 중국에서 기대에 걸맞는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며 “하이구이는 ‘하이다이(海待·취업 대기자)’라는 조롱거리가 됐다”고 보도했다. SCMP에 따르면 하이구이들의 평균 초봉은 2007년 월평균 1만 위안 수준을 웃돌았으나, 지난해에는 6000위안 선으로 40%나 떨어졌다. 취업컨설팅업체 즈롄자오핀(智聯招聘) 조사에서도 초봉이 월평균 6000위안 이하인 하이구이는 절반에 가까운 44.8%이다. 6000~8000위안인 하이구이는 22.7%, 8000~1만위안과 1만~2만위안인 하이구이는 각각 13%와 13.7%로 조사됐다. 2만 위안 이상을 받는 하이구이는 5.8%에 그쳤다. 지난해 중국 대졸자들의 평균 초봉이 월평균 4800위안인 점을 감안하면 하이구이와 본토 대졸자 간 연봉 차이가 별로 크지 않다. 200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선망의 대상이던 하이구이는 취업이 보장됐고, 고액의 연봉을 받으며 결혼 상대자 1순위로 꼽혔다. 그들의 신세가 10년 만에 ‘상전벽해’(桑田碧海)로 바뀐 것이다.  이에 따라 실제 수입과 자신의 기대치가 일치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기대치보다 높다는 응답자는 1%에 그쳤고 기대 수준과 일치한다는 응답자는 30.1%였다. 반면 기대치보다 낮다는 응답자는 68.9%에 이른다. 하이구이의 30.3%는 해외유학 비용을 버는 데 3~5년이 걸릴 것이라고 답했고 22.5%는 5~10년, 17.5%는 10년 이상이 필요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하지만 1년 미만이 될 것이라고 본 하이구이는 5.6%에 그쳤다.  하이구이 연봉 폭락의 근본적인 원인은 해외유학생 수가 단기간에 너무나 많이 늘어난 탓이다. 귀국 후 글로벌 투자은행과 다국적 기업 등에 취업해 고액의 연봉을 받을 꿈에 부푼 중국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유학 길에 오르며 10년 새 유학생 수는 급증했다. 중국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누적 하이구이수는 265만 1100명에 이른다. 작년 한 해 해외로 유학을 떠난 학생은 54만 4000명이고, 43만 2500명이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다. 80% 가까이가 유학을 마치고 중국 본토로 돌아온 셈이다. 특히 2007년에는 미국과 유럽 등의 고용시장이 호전돼 유학 후 중국으로 돌아오는 젊은이가 4만 4000명에 그쳤다. 귀국 유학생 수로만 따지면 10배로 늘어난 셈이다. 외국 유학 경험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취업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따라 하이구이는 유학을 다녀왔는 데도 취직하지 못한 채 놀고 있는 ‘하이다이’라는 말이 생기고. ‘하이다이(海帶·다시마)’로까지 불리며 입길에 올랐다.  중국 국내 취업시장 사정도 경제성장률 둔화 등으로 악화되면서 하이구이의 설 자리를 좁아지게 한다. 지난해 770만명에 이르는 대졸자 상당수가 택배 등 단순노무직으로 취업하는 실정이다. 2013년 81%에 이르던 대졸자 정규직 취업 비율은 갈수록 낮아져 2015년에는 77%로 떨어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귀국한 유학생의 상당수는 기대에 못 미치는 낮은 연봉의 일자리를 제안받고, 어쩔 수 없이 이런 일자리를 받아들인다고 SCMP가 전했다.  하이구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예전만 못하다. 과거에는 성적이 우수한 인재들만 정부 장학금을 받아 해외 유학을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경제발전으로 소득 수준이 높아져 유학 바람이이 불면서 하이구이의 실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다는 지적이 많다. SCMP는 “해외 유학이 실력보다 돈에 좌우되기 때문에 돌아오더라도 좋은 직장을 보장받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중국 대학수능 시험인 가오카오(高考)를 피하기 위해 도피차 유학을 선택하는 학생들도 많다는 시각도 이를 부추긴다. 중국 매일경제신문(每日經濟新聞)은 “해외 유학이 실력보다는 돈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중국에 돌아오더라도 좋은 직장을 보장받을 수 없다”고 보도했다. 한 네티즌도 “해외 유명 대학이라고 하더라도 유학생에 대한 조건이 크게 완화된 곳이 많기 때문에 중국 대학 출신보다 우수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이 때문에 중국 기업들은 채용할 때 더 이상 해외 유학 경험이 있다고 해서 가산점을 주지 않는다. 이들이 외국어에 능통한 것도, 전문지식이 뛰어난 것도 아니라는 인식에서다. 리이판 유학 컨설턴트는 “해외에서 학부 과정을 마치고 돌아온 하이구이와 국내 일반대학 학부 졸업생을 비교하면 하이구이가 오히려 열세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중국 사회와 정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인맥도 별로 없어 이들의 취업을 어렵게 한다. 중국 기업의 한 인사담당자는 “상사나 소비자들이 원하면 무조건 행동에 나서는 중국의 기업 문화와 달리 하이구이는 해외에서나 통하는 윤리, 도덕, 투명성, 실력 우선주의를 운운하며 동료들과 종종 마찰을 빚는다”고 말했다. 그래도 해외 석박사 학위가 있거나 귀국 전 직장 경험이 있다면 중국 본토 대학 졸업생보다 취업이 훨씬 더 잘 되고 급여도 높은 편이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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