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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신문 2011 신춘문예-희곡 당선작] 아빠들의 소꿉놀이/오세혁

    [서울신문 2011 신춘문예-희곡 당선작] 아빠들의 소꿉놀이/오세혁

    ●등장인물 꾸부정 지금 막 해고된 초보 해고자. 40대 후반. 키 크고 꾸부정하다. 대머리 해고된 지 1년이 넘은 베테랑 해고자. 40대 후반. 키 작고 대머리다. 단발 꾸부정의 아내. 40대 초반 파마 대머리의 아내. 40대 중반 *연출에 따라 남편들이 부인들의 역할을 겸하는 2인극이 가능하다. ●시 간 현대 ●무 대 놀이터. 놀이터를 구체적으로 꾸밀 필요는 없다. 그네 두 개만으로도 연출이 가능하다. 바닥에 모래가 깔려 있으면 좋다. #1 해가 질 무렵의 저녁, 놀이터. 양복 차림의 남자가 힘없이 놀이터로 걸어 들어온다. 고개를 푹 숙이고 꾸부정한 모습으로 보아 무언가 고민이 있는 듯하다. 꾸부정한 이 남자, 그네에 주저앉는다. 멍하니 한참을 앉아 있다가 무언가 결심한 듯, 벌떡 일어난다. 꾸부정 (어색하게) 여…… 여보… … 나 오늘, 해, 해, 해고……. 고개를 흔들며 그네에 주저앉는다. 그러다가, 다시 벌떡 일어난다. 꾸부정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여보, 훌쩍, 나 오늘 해고당했어. 머리통을 때리며 그네에 주저앉는다. 그러다가, 다시 벌떡 일어난다. 꾸부정 (호탕하게 웃으며) 사랑하는 여보! 나! 오늘 짤렸어! 멋지지? 하하하! 머리를 쥐어뜯으며 주저앉는다. 한참을 그렇게 쥐어뜯다가, 무언가 결심한 듯, 결연히 일어나 열정적인 독백을 시작한다. 꾸부정이 열심히 말하는 동안, 양복 차림의 대머리가 천천히 걸어 들어와 옆에 있는 그네에 앉아 시계를 들여다본다. 자기 상상에 빠진 꾸부정은 대머리를 눈치채지 못한다. 꾸부정 여보. 우리가 결혼한 지 이십 년이 넘었구나. 단칸방으로 시작해서 전세를 거쳐서 우리 집을 갖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어. 비록 평수는 작지만 우리 집이라는 게 중요하지. 애들도 건강하게 잘 컸어. 얼마 안 있으면 큰애는 대학에, 작은애는 고등학교에 가겠지. 이 정도면 우린 잘 산 거야 그렇지? 당신,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어. 아니? 뭐라고? 내가 제일 고생 많았다고? 십오 년을 변함없이 회사에 다녀주어서 고맙다고? 때론 가기 싫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했을 텐데 가족을 위해서 고생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고? 아이, 당신도 참 부끄럽게…… 뭐라고? 이제 나이도 먹고 간도 안 좋을 텐데 생각 같아서는 한 몇 년 푹 쉬었으면 좋겠다고? 이럴 수가, 당신이 나를 이렇게까지 생각해주다니! 정말 고마워 여보! 하하하하……말이 나와서 말인데 여보……사실……내가……오늘……회사에서. 대머리 (불쑥) 소용없을 겁니다. 꾸부정 (화들짝)네 넷? (돌아본다) 아니, 언제부터 거기? 대머리 죄송하군요. 들으려고 들은 건 아닙니다만. 꾸부정 괘 괜찮습니다. 그런데 방금……소용없다고……. 대머리 (단호) 네, 소용없습니다. 불쌍하게 말하든 호탕하게 말하든 부드럽게 말하든 소용없습니다. 해고라는 단어가 입에서 나오는 순간 부인께서는 엄청난 쇼크를 받으실 겁니다. 부인이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휘청거리거나 털썩 주저앉거나 뒤로 넘어가게 될 겁니다. 부인이 건강하신가요? 꾸부정 아……아니요, 혈압이 조금. 대머리 혈압이라, 뒤로 넘어가겠군. 꾸부정 새……생각해보니 골다공증도. 대머리 뒤로 넘어져서 뼈가 부러지겠군. 꾸부정 얼마 전부턴 심장이 답답하다고. 대머리 뒤로 넘어져서 뼈가 부러진 다음 호흡 곤란을 일으키겠군. 꾸부정 뭐……뭐라구요! 대머리 집이 몇 층이죠? 꾸부정 시……십오층인데? 대머리 완벽하군요. 해고라는 말을 꺼내는 순간 선생의 부인은 혈압이 높아져서 뒤로 넘어지고 골다공증으로 뼈가 부러진 다음, 심장 이상으로 호흡 곤란을 일으킬 겁니다. 놀란 선생은 어떻게든 해보려 하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혈압과 뼈와 심장이 동시에 문제를 일으켰거든요. 우물쭈물하다가 선생님은 119에 전화를 하겠죠. 119 요원들은 잽싸게 아파트에 도착하지만 선생님의 집은 십오층입니다. 마침 엘리베이터가 맨 꼭대기 층에 있군요. 요원들이 계단을 뛰어올라 옵니다. 일층 이층 삼층 사층 선생의 부인은 점점 호흡이 가빠집니다. 오층 육층 칠층 더더욱 가빠집니다. 팔층 구층 부인의 의식이 점점 없어집니다. 십층 십일층 선생이 말합니다. 여보, 조금만 참아. 십이층 십삼층 선생이 다시 한 번 말합니다. 여보, 제발 조금만 더 참아. 그렇게 십사층을 지나고 십오층에 도착해 마침내 선생의 집으로 왔을 때 선생의 부인은 이미……. 꾸부정 (이야기에 몰입해 있다가)아……안 돼! 안 돼! 여보오! 꾸부정, 털썩 쓰러진다. 대머리 그렇다고 말을 안 할 수는 없겠죠. 해고는 해고니까요. 이왕이면 부인의 컨디션이 최상일 때, 119가 바로 올 수 있는, 뒤로 넘어가도 뼈가 부러지지 않을만한 장소에서 하시죠. 부드러운 모래라든가……이 놀이터가 딱이로군요. (다시 그네에 앉아 시계를 들여다본다) 한참의 정적. 꾸부정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시죠? 대머리 사실 저도 해고잡니다. 꾸부정 동업자…… 아니…… 동반자셨군요. 대머리 벌써 1년이 넘었습니다. 꾸부정 고참…… 이시네요. 혹시……선생님 부인께서도 뒤로? 대머리 아니요. 꾸부정 뼈가? 대머리 전혀. 꾸부정 호흡 곤란이라든가. 대머리 천만에요. 멀쩡합니다. 멀쩡함을 넘어 건강하죠. 김치찌개에다 밥을 두 그릇이나 비운 다음, 남은 찌개를 밥통에 넣고 비벼먹으니까요. 꾸부정 ……대단하군요. 대체……비결이……. 대머리 간단합니다. 해고됐단 얘기를 안했으니까요. 꾸부정 그, 그럼? 대머리 계속 다니는 줄 압니다. 꾸부정 아니 그게 일 년 넘게 가능한가요? 대머리 보통 사람은 불가능합니다. 꾸부정 하지만 선생님은? 대머리 전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영특, 기특,똑똑, 비범이란 말을 달고 다녔으니까요. 한마디로 머리가 좋았죠. 꾸부정 (대머리의 머리를 한참 쳐다본다) 대머리 지금, 대머리 주제에 머리가 좋아봤자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셨죠? 꾸부정 그……그럴 리가. 대머리 어쨌든, 저 정도의 두뇌라면 충분히 속이는 게 가능합니다. 분명한 원칙 규칙 법칙만 확립한다면 말이죠. (시계를 가리키며) 이 시계도 그런 원칙 중의 하납니다. 퇴근시간 여섯시, 전철 타고 내리면 여섯시 삼십분, 역 앞에서 버스 타고 동네까지 오면 여섯시 오십분, 동네에서 아파트까지 오는 데 여섯시 오십오분, 아파트에서 우리 집까지 오면 딱 일곱시, 그렇지만 시간을 너무 딱 맞춰 오면 이상하니까 적당하게 일곱시 삼분 정도……마침 지금이 일곱시 삼분이군요. 더 늦으면 어색합니다. 그럼 이만. 대머리, 일어나서 가려고 한다. 꾸부정 (벌떡 일어나며) 자……잠시만요. 대머리 ……. 꾸부정 저한테도 그……원칙 규칙 법칙을 가르쳐 주시면 안 될까요? 대머리 (위아래로 훑어보며) 딱 보니 보통 사람이시군요. 불가능합니다. 꾸부정 (앞을 막아서며) 부탁드립니다. 대머리 일반인이 범접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닙니다. 꾸부정 스승님으로 모시겠습니다. 대머리 미안합니다. 늦으면 의심합니다. (가려고 한다) 꾸부정 (바짓가랑이에 매달리며) 제발요, 제발. 이렇게 빕니다. 우리 집사람이 뒤로 넘어가고 뼈가 부러지고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 사람은 저 같이 별 볼일 없는 사람이랑……결혼을 해준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그렇게 되는 건 절대 안 됩니다. 조금이라도, 일분일초라도 더 웃게 해주고 싶습니다. (무릎 꿇으며) 허락하실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겠습니다. 무릎 꿇은 꾸부정을 계속해서 지켜보는 대머리. 꾸부정, 점점 다리가 저려온다. 대머리 다리 저리죠? 꾸부정 ……조금. 대머리 이쯤 되면 좀 봐주지 저 대머리 진짜 독한 놈이다,라고 생각하셨죠? 꾸부정 그……그럴 리가요? 대머리 다리 저리면, 꼼지락하세요. 꾸부정 아……아닙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대머리 괜찮습니다. 꼼지락하세요. 꾸부정 그럼……조금만 꼼지락을. 꾸부정, 슬며시 꼼지락거린다. 대머리 (시계를 들여다본다) 시간이 꽤 지났군요. 어중간한 시간입니다. 지금 들어가면 뭔가 부조리합니다. 이럴 때는 회식을 한 것처럼 아예 늦게 들어가는 게 좋은 방법이죠. (전화를 건다) 나야, 별일 없지? 부장님이 딱 한잔만 하자고 하시네. 당신도 알잖아 부장님이 회사일 힘들면 나한테 털어놓는 거. 일찍 갈 테니까 밥은 먼저 먹어. (전화 끊자마자 가방에서 반병 정도 남은 소주를 꺼내 한 모금 마신다) 회식이라고 했기 때문에 입에서 술 냄새가 나야 됩니다. (오징어 다리를 꺼내 우물우물 씹는다) 술 냄새만 나면 이상하니까요. 자, 그럼, 훈련을 시작해 볼까요? 꾸부정 (기쁨) 저……정말이십니까? 대머리 시간이 없으니까 3단계로 요약 학습을 하죠.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꾸부정 (차렷 자세로) 옛! 대머리 가장 중요한 1단계는, 변화입니다. 꾸부정 변화? 대머리 많은 해고자들이 그 사실을 숨기려고 하지만 대부분 들킵니다. 왜일까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떠한 행동의 변화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한숨을 쉰다든가, 소파에 푹 주저앉는다든가, 밥 먹다가 숟가락을 멈추고 한참을 멍하니 있는다든가, 밤이 깊도록 식탁에서 소주를 마신다든가, 아들한테 사립대 말고 국립대로 가는 건 어떠냐고 한다든가, 잠자리에서 등을 돌린 후 웅크리고 잔다든가, 자다가 자기도 모르게 흐느낀다든가. 이런 변화들이 해고를 들키는 가장 큰 이유죠. 꾸부정 (감탄) 그렇군요. 대머리 변화되지 않는 것. 일상적인 평범함을 유지하는 것.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꾸부정 (감탄의 연속) 으음……. 대머리 이론만 가지고는 감이 안 옵니다. 실전훈련을 해보죠. 이 놀이터가 집이고 제가 부인이라고 설정을 해봅시다. 선생은 회사 일을 마치고 막 퇴근한 상탭니다. 바깥에서 벨을 눌러보세요. (꾸부정이 멍하니 있자) 시간 없습니다. 빨리. 꾸부정 (얼떨결에) 예…… 옛! (바깥으로 달려 나가) 띵동! 대머리 (부인 흉내) 당신 왔어? 밥은? 꾸부정 (대머리를 한참 바라보다가) 풉……. 대머리 ……. 꾸부정 그게……집사람이 대머리라고 생각을 하니까 너무 웃겨서……. 대머리 ……. 꾸부정 죄……죄송합니다. 제대로 하겠습니다. 띵동! 대머리 당신 왔어? 밥은? 꾸부정 아, 먹었어. 대머리 (손을 잡으며) 고생 많았지? 꾸부정 …… 흐흑. (흐느낀다) 대머리 뭡니까? 왜 울죠? 꾸부정 (흐느끼며) 집사람이 손을 잡아주니까 갑자기 미안하고, 고생만 시킨 것 같고, 젖은 손이 애처롭고……. 대머리 어허, 이러니까 들키는 겁니다. 마음을 강하게 먹으세요. 돌부처처럼! 꾸부정 네……넷! 돌부처! 다시 하겠습니다. 띵동! 대머리 당신 왔어? 밥은? 꾸부정 (과장되게) 밥? 먹었지! 아주 많이! 대머리 (손을 잡으며) 별일은 없었어? 꾸부정 (더더욱 과장되게) 별일은 무슨, 평소랑 또오오옥 같았어 하하하하! 대머리 잠깐, 왜 이렇게 들떠 있죠? 회사에서 좋은 일이 있었나요? 꾸부정 아니요. 대머리 월급날입니까? 꾸부정 아니요. 대머리 부인 생일인가요? 꾸부정 아니요……별일 없었는데 대머리 그런데 왜 그렇게 오버를 합니까? 별일 없었는데 그렇게 오버 하면서 별일 없었다고 하니까 마치 별일이 있는 것처럼 보이잖아요? 꾸부정 아……거기까지는 차마. 대머리 자, 눈을 감으세요. 상상을 해봅시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고 반복적인 회사의 하루, 위에서 눌리고 밑에서 치이고 정리해고의 소문이 뒤숭숭하게 들려오고, 선생은 그 틈바구니에서 간신히 하루를 버티고 퇴근을 합니다. 지하철이 붐빕니다. 버스가 막힙니다. 심신이 지쳐있습니다. 터덜터덜 걸어옵니다. 그 상황에서 초인종을 누릅니다. 띵동! (부인 목소리) 당신 왔어? 별일 없었지? 꾸부정 (상상하다가 정말 지친 듯, 무심하게) 뭐, 똑같지 뭐. 대머리 나이스! 그겁니다! 하니까 되잖아요? 꾸부정 아? 정말? 정말 되네? 환호하는 꾸부정. 대견한 듯 지켜보는 대머리. 대머리 (느닷없이) 당신 왔어? 별일은? 꾸부정 (재빨리) 뭐, 똑같지 뭐. 하이파이브 대머리 당신 왔어? 별일은? 꾸부정 (능숙하게) 뭐, 똑같지 뭐. 하이파이브 대머리 당신 왔어? 별일은? 꾸부정 (완전 능숙) 뭐, 똑같지 뭐.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대머리. 대머리를 부둥켜 안는 꾸부정. 암전. 암전을 감싸는 작은 멜로디. #2 불이 켜지면 꾸부정이 초조한 듯 그네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이상하게도 잠옷 차림. 그의 발밑에 수북이 쌓인 담배꽁초들. 대머리가 체육복 가방을 들고 놀이터로 들어온다. 그네에 타고 있는 꾸부정을 의식 못한 채 양복바지와 윗도리를 벗는다. 아아, 그 속에 입고 있는 축구 유니폼. 대머리 (부인에게 전화하는 듯) 나야. 사내 축구대회가 이제 끝났어. 오늘은 두골밖에 못 넣었어. 부장님은 후보였지 뭐. 밥?……부장님이 같이 먹자고는 했는데…… 정 그렇다면 집에서 먹지 뭐. 금방 갈게. 전화를 끊고, 곧바로 모래밭에 뒹굴며 유니폼을 더럽히는 대머리. 만족한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꾸부정을 발견하고는 놀란다. 대머리 뭐……뭡니까? 꾸부정 오랜만……입니다 스승님. 대머리가 꾸부정을 잡아채어 그네 밑으로 숨는다.(숨어질 리가 없으니 웃기다) 대머리 오랜만? 헤어진 지 하루 만에 만났는데 오랜만이라구요? 꾸부정 오랜만은……아니네요. 대머리 이 놀이터는 제가 찜했으니까 다른 놀이터에서 시간을 때우라고 몇 번을 말했습니까? 꾸부정 그건……알지만. 대머리 대체, 40대의 못생긴 남자 둘이 놀이터 그네에 앉아 있다는 게 주민들이 봤을 때 얼마나 평범하지 않은 일인지 모르시는 겁니까? 꾸부정 ……. 대머리 방금, 솔직히 이 대머리보다는 내가 더 잘생겼는데 라고 생각하셨죠? 꾸부정 그……그럴 리가. 대머리 (쌓여있는 담배를 본다) 맙소사, 이 아까운 담배. 이 담배값이면 김밥이 두 줄이거늘…… 왜 이런 비행을 일삼는 겁니까? 혹시…… 걸린 겁니까? 꾸부정 ……. 대머리 세상에, 하루 만에 걸리다니……시키는 대로 안 했죠? 꾸부정 아…… 아닙니다. 배운 그대로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변수가 있었어요. 대머리 변수라니요? 꾸부정 스승님께 배운 1단계를 계속 되뇌면서, 심호흡을 하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 대머리 순간? 꾸부정 첫째 둘째가 쪼르륵 달려오더라구요. 그러고는 갑자기……. 대머리 갑자기? 꾸부정 아빠 생일을 축하한다면서 첫째 놈이 어깨를 주무르고 둘째 놈이 노래를 부르는 거예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이러면서 .(갑자기 목이 멘다) 대머리 세상에……본인 생일인지도 몰랐나요? 꾸부정 저는 집사람이랑 애들이랑 부모님이랑 장인 장모랑 부장님 상무님 전무님 사장님 생일밖에 모릅니다. 대머리 ……. 꾸부정 자식들이 생일노래를 불러주는데 어떤 아빠가 목이 안 멥니까. (흐느낀다) 대머리 잠깐, 이상하군요. 선생 말대로 대한민국의 모든 아빠들은 자녀들이 생일을 챙겨줄 때 웁니다. 자녀들의 생일 축하에 감동한 아버지가 고개를 돌리고 조용히 운다. 이건 튀는 게 아닌데? 평범한 건데? 꾸부정 조용히 운 게 아니라……. (갑자기 바닥에 뒹굴며 통곡한다) 대머리 음 ……그렇게 울었군요. 꾸부정 (끄덕이며 계속 통곡) 대머리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나 할 법한 울음을 생일 축하를 받는 자리에서. 꾸부정 (더 크게 통곡) 대머리 가족들은 가장의 뜬금없는 대성통곡에 당황했을 테고. 꾸부정 (그야말로 대성통곡) 대머리 그래서……그 다음 행동은? 꾸부정 갑자기 부끄러워져서…… 도망치듯 안방으로 들어왔습니다. 대머리 도망치듯 이라, 이런. 꾸부정 그러고는 저도 모르게 안방 문을 잠그고. 대머리 맙소사. 꾸부정 밖에서 두들겨도 열어주지 않다가 . 대머리 하느님. 꾸부정 눈을 떠보니 아침이더군요. 대머리 ……부인은? 꾸부정 ……거실에서. 대머리 ……. 꾸부정 눈을 뜨자마자 너무 당황스러워서……몰래 집을 나왔습니다. 대머리 씻지도 않고, 드라이도 안 하고, 더군다나……잠옷 차림. 꾸부정 공원에 계속 숨어 있다가 시간 맞춰서 나온 겁니다. 스승님…… 저 어쩌죠? 대머리 일반인이 범접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라고 그렇게 얘기했거늘. 꾸부정, 흐느낀다. 대머리, 눈을 감은 채 한참을 말없이 서 있다가 천천히 축구 유니폼을 벗는다. 속옷 차림으로, 꾸부정에게 축구 유니폼을 건네는 대머리. 대머리 회사원인 남자가, 씻지도 않고 드라이도 안 하고 나왔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그러나 체육대회를 했다면 알리바이가 생기죠. 입으세요. 꾸부정 ……하지만……스승님도……. 대머리 저는…… 심판 봤다고 하겠습니다. (가방에서 호루라기를 꺼내 목에 걸며) 이건……다음 달에 쓸 거였는데……. 꾸부정 이 은혜……잊지 않겠습니다. 스승님. 대머리 들어가자마자 아버님 사진을 꺼내세요. 꺼내자마자 사진 부여잡고 우세요. 어제 선생은, 돌아가신 아버님 때문에 울었던 겁니다. 꾸부정 (경이로움) 과연……스승님은……. 대머리 이제, 뒹구세요! 꾸부정, 열심히 모래바닥에 몸을 뒹군다. 암전. 암전을 감싸는 작은 멜로디. #3 불이 켜지면 단발머리를 한 여성이 놀이터에 서 있다. 그녀는 양손에 커다란 가방을 들고 있다. 단발 (냉랭하게) 여보, 솔직히 말 안 하면 나, 집 나갈 거야…… 짤렸지? 그네 위에 주저앉는다. 다시 벌떡 일어난다. 단발 (울먹이며) 당신 나 죽는 꼴 보고 싶어? 빨리 말해? 짤렸지? 그네 위에 주저앉는다. 다시 벌떡 일어난다. 단발 (화통하게) 호호호호! 괜찮아 여보! 딱 보니까, 짤렸네? 호호호호!! 힘없이 주저앉는 단발머리.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천천히 일어나 차분하게 독백을 시작한다. 단발머리가 독백을 하는 동안 파마머리를 한 여성이 조용히 들어온다. 그러고는 옆 그네에 앉아 벼룩신문을 보기 시작한다. 단발 (이성적으로) 여보, 나 당신과 지금까지 함께 했고 앞으로도 함께할 거야. 당신도 알겠지만 우린 부부야. 부부가 뭔데? 비밀이 없는 게 부부야. 내가 열을 셀 동안 당신이 끝까지 비밀을 말 안 해준다면 나……집 나갈 거야. 이게 당신의 마지막 기회야. (눈을 감고) 하나, 둘, 셋, 넷……. 파마 (불쑥) 대답 안 할 거예요. 단발 (화들짝) 네 넷? 파마 그쪽 아저씨한테 짤렸냐고 추궁해도 대답 안 할거라구요. 단발 ……. 파마 오히려 추궁하면 추궁할수록 그쪽 아저씨는 위험해질 거예요. 단발 위험해……진다구요? 파마 남편 성격이? 단발 조금……소심해요. 파마 소심하다라……열을 세자마자 바로 집을 뛰쳐나가겠네. 단발 약간 다혈질이기도. 파마 다혈질이라……바로 옥상으로 올라가서 뛰어내릴 수도 있겠네. 단발 조금 고전적인 면도. 파마 고전적이라……고전적으로 약국마다 돌면서 수면제를 살 수도 있겠네. 단발머리, 비틀거리다가 그네에 주저앉는다. 파마 너무 걱정하진 말아요. 뛰쳐나가면 잡으면 되고 옥상 문은 잠가놓으면 되고 약 먹어도 응급실이 있으니까. 그래도……상처는 남겠죠. 돈 없어도 살지만 자존심 없으면 못사는 게 남자니까. (일어나며)그럼 이만. 단발 저……저기……. 파마 ……. 단발 어떻게……그렇게……잘……. 파마 우리 아저씨도 짤렸거든요. 그것도 1년째. 단발 그쪽 아저씨가 혹시……뛰쳐나가셨나요? 파마 전혀. 단발 혹시 옥상에서? 파마 전혀. 단발 혹시 약을? 파마 전혀,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건조하고, 재미없고, 대머리고. 단발 그게 어떻게 …… 가능하죠? 파마 모르는 척 했거든요, 해고당한 걸. 단발 모르는 척……그게……그렇게 쉽게……. 파마 평범한 주부들은 안 돼요. 어느 정도 비범해야만 가능하죠.(시계 본다)늦었네요. 잠시 후면 우리 아저씨가 이 놀이터로 올 거예요. 항상 여기 들렀다가 시간을 맞춰서 퇴근한 척하거든요. 파마머리, 벼룩시장을 챙겨서 집으로 걸어가는데. 단발 사모님! 파마 ……. 단발 저도……저도 비범하게 만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파마 일반 주부가 범접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에요. (다시 걸음을 옮기는데) 단발 (무릎 꿇으며) 부탁이에요, 사모님. 저희 남편이 때때로 소심하고 때때로 한심하고 때때로 답답하기는 하지만……좋은 사람이에요. 오로지 집이랑 애들이랑 저밖에 모르는……그 사람이 옥상으로 올라가거나 약을 사러 돌아다니는 건 상상만 해도 끔찍해요. 그 사람이 계속해서 맘 편히 집으로 오게 만들어주고 싶어요. (무릎 꿇으며) 부탁드려요! 한동안의 정적. 파마 제자로 받아주면……가끔 소금 설탕 간장 같은 거 빌려줄 수 있어요? 단발 그럼요! 파마 맛있는 반찬 하면 나눠줄 수도 있고? 단발 그럼요! 파마 그쪽 애들 통닭이나 피자 시켜주면 우리 애들도 불러 먹일 수 있고? 단발 그럼요! 파마 좋은 마음가짐이에요. 제자님이 그렇게 해주면 나도 제자님한테 그렇게 해주겠어요. 서로 서로 나눔으로써 감소된 경제력을 최대한 이겨내는 거예요. 단발 방금, 제자라고? 파마 그래요. 제자로 받아주겠어요. 단발 (큰절) 스승님! 파마 (대머리에게 전화하는 것일까) 여보, 퇴근하는 중이지? 미안한데 올 때 계란 좀 사다줘요. 동네 슈퍼 말고 꼭 유기농 파는 데로 가서, 그래 큰길가에 있는, 고마워요. (전화 끊는다) 우리 아저씨가 놀이터로 오는 시간을 지연시킨 거예요. 수업을 해야 하니까 단발 그런 깊은 뜻이! 그럼 저도 전화할까요? 파마 비싼 거 말고, 계란이나 당근처럼, 싸면서도 깐깐하게 골라야 하는 걸로, 그래야 남편에게 부담이 안 가면서 시간도 벌어지니까. 단발, 꾸부정에게 열심히 전화한다. 파마, 대견하게 지켜본다. 통화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수업에 들어가는 두 사람. 파마 상태 체크부터 해보죠. 그쪽 아저씨가 해고당했을 거라는 판단을 하게 된 이유는? 단발 그게……집에 왔을 때만 해도 평소랑 똑같았어요. 별일 없었냐고 물어보니까. 파마 “뭐, 똑같지 뭐.” 라고 했죠? 단발 (놀란다) 그걸 어떻게? 파마 그게 1단계니까요. 단발 그런데 그날이……남편 생일이었거든요. 그래서 애들이 노래를 불러줬어요. 그런데. 파마 그쪽 아저씨가 한참을 가만있다가 대성통곡을 한 거죠? 단발 맞아요! 파마 그러다 울먹이면서 안방으로 뛰쳐들어갔을 테고. 단발 맞아요! 파마 문을 잠가놓고 밤새 안 열어주다가 다음 날 아침에 잠옷 바람으로 나갔는데 들어올 때는 축구 유니폼을 입고 들어오더니 아버님 사진을 꺼내놓고 울지는 않던가요? 단발 맞아요! 그것도 멀쩡히 살아계신 아버님을……. (흐느낀다) 파마 분석을 해보니, 짤린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 나오는 증상이네요. 지금이 가장 위험할 때에요. 걸릴까 말까 말할까 말까 집에 들어올까 말까를 가장 고민할 때죠. 단발 그……그러면……어떻게? 파마 제자님이 실력을 발휘할 때인 거예요 일명 ‘모른 척’의 실력을. 단발 모른 척의 실력? 파마 생각해봐요. 남편들이 “아, 걸릴지도 모르겠구나.”라는 생각을 언제 하게 될까요? 단발 글쎄……. 파마 바로 ‘눈빛’이에요. 단발 눈빛? 파마 가장들이 고달프고 괴로운 하루를 보낼 수 있는 힘이 뭘까요? 그건 바로 가족들의 눈빛이에요. 힘들게 일을 마치고 돌아 왔을 때, 자신에게 향하고 있는 가족들의 애정 어린 눈빛. 그럴 때 가장들은 힘을 얻는 거예요. 단발 아! 그렇다면, 앞으로 그 눈빛을 더 열심히 보내주면 되겠네요? 파마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요. 그건 그 사람들이 ‘일’을 할 때잖아요. 단발 ……. 파마 지금은 일을 못 하고 있는 상태죠. 일을 못 구해서 미안하고 돈을 못 버니까 미안하고, 그런 가슴 아픈 상태에서 집에 들어왔는데 가족들이 애정 어린 눈빛을 보낸다고 생각해봐요. 어떻겠어요? 단발 (서서히 깨달음을 얻는다) 아아……. 파마 애들이 노래를 불렀을 때 그쪽 아저씨가 왜 대성통곡을 했는지 알겠죠? 단발 (깨달음) 이제야 알겠습니다. 스승님. 파마 그렇기 때문에 그 1단계가 바로 ‘눈빛 돌리기’ 인 거예요. 단발 눈빛 돌리기! 파마 시간이 없으니 바로 실전으로 들어가 봐요. 남편이 퇴근한 척하고 집에 들어왔어요. 대꾸를 해 보세요. “여보, 나 왔어.” 단발 (눈빛을 의도적으로 피하며) 으……응……별일 없었어? 파마 그렇게 어색하게 눈빛을 돌리면 의도적으로 피한다는 느낌이 바로 오잖아요. 단발 그렇네요. 파마 다시 한 번 해봐요. “여보, 나 왔어.” 단발 (처음부터 딴 데를 보며) 응, 별일 없었지? 파마 그렇게 처음부터 딴 데를 보면서 얘기하면 냉랭해져 있다는 느낌이 들잖아요. 단발 아아…… 어렵네요. 파마 눈빛을 피하되, 의도적이지도 냉랭하지도 않게 자연스러운 느낌으로 피해야 되는 거예요. 상상을 해봐요. 남편이 집에 왔을 때 눈빛을 돌리고 있을만한 자연스러운 무엇. 단발 자연스러운 무엇이라……. 파마 시범을 보여주죠. 역할을 바꿔 봐요. 단발 (남편 흉내) 여보, 나 왔어. 파마 (뒤돌아 요리하는 척) 왔어? 계란 사왔어? 단발 (계란 건네주는 척) 응, 여기. 파마 (계란 받자마자, 다른 곳으로 가며) 빨래가 다 됐나? 당신은 빨리 씻어. 단발 (씻으러 가는 척) 응, 그래. (씻으러 들어갔다 나온 듯) 다 씻었는데? 파마 (식탁을 가리키는 듯) 밥 차려놨어. 단발 당신은? 파마 당신 기다리다 배고파서 먹었어. 아이고, 내 정신? 드라마 녹화해 놨는데. (거실로 달려가는 시늉) 단발 (껄껄 웃는다) 허허 당신도 참! (편하게 밥을 먹는 시늉을 하다가) ……어머? 한 번도 안 마주쳤어요! 파마 그리고 자연스럽죠? 단발 남편 입장에서도 정말 자연스럽고 편하겠어요! 파마 이 1단계를 여러 가지로 조합해서 써먹으세요. 요리-빨래-드라마, 드라마-요리-빨래 같은 식으로. 여기서 중요한 건, 요리가 맨 마지막에 가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밥을 같이 먹게 되고, 같이 먹게 되면 눈이 마주치게 되니까. 단발 (경이로움) 스승님……. 파마 통닭 시키면, 꼭 우리 애들 불러줘요. 단발이 파마를 껴안는다. 암전. 암전을 감싸는 작은 멜로디. #4 불이 켜지면, 꾸부정이 한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대머리를 기다리고 있다. 대머리가 생일 때 쓰는 고깔모자를 쓰고 천천히 걸어온다. 꾸부정 스승님! 대머리 (고깔모자가 부끄러운 듯) 오늘, 생일이거든요. 오늘 컨셉은 직원들이 해준 생일파티 컨셉입니다. 1년에 한번밖에 못 써먹는 게 아쉽긴 하지만…… (꾸부정의 상태를 보고) 좋아 보이는군요. 꾸부정 그럼요! 집사람이 완전히 속아 넘어갔습니다. 우연의 일치이긴 하지만 집에 갈 때마다 빨래를 하거나 요리를 하거나 드라마를 보고 있더라구요. 눈이 안 마주치니까 더더욱 마음이 편합니다. 하하하하! 대머리 참으로……대단한 우연의 일치로군요. 꾸부정 네? 대머리 아닙니다. 그런 우연이 겹칠 때가 있죠……저도 그랬으니까. 어쨌든 다행입니다. 꾸부정 (비닐봉지를 내밀며) 저어……이거……. 대머리 이건? 꾸부정 스승님 생신 선물입니다. 대머리 ……해고자들끼리는……경조사를 모른 척 하는 게 불문율인데……. 꾸부정 그건 알지만, 스승님의 생신이니까요. 자판기 커피를 서울역에서 영등포 쪽으로 옮기니까 50원이 절약되더라구요. 그걸 두 달 동안 모아서 산 겁니다. 대머리, 천천히 봉지를 열어본다. 그 안에는 소주 한 병이 들어있다. 꾸부정 한 달 치 회식 아이템입니다. 대머리 ……직원들도……챙겨준 적 없었는데……선물……. 꾸부정 ……약소합니다. 한동안 말없이, 소주병을 만지작거리는 대머리. 대머리 (분위기 전환) 흠흠, 두 달이 지났으니 2단계로 들어갈 차례로군요. 꾸부정 그 생각을 하니까 두근거려서 잠이 안 왔습니다. 대머리 배우고 익히면 때때로 즐겁지 아니하죠. (선물 받은 소주를 따서 권하며) 일단, 한 모금 하시죠. 꾸부정 하지만……이건 스승님의 대머리 오늘은 제 생일이니까 특별히 보름치만 마시죠 (오징어 다리 네 개를 꺼내며) 안주도 사치스럽게 1인당 무려 두 개씩. 소주병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맛있게 소주를 마시는 두 남자. 대머리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뭐라 생각하십니까? 꾸부정 글쎄요, 명함? 대머리 (고개 흔든다) 꾸부정 그럼, 양복이나 작업복? 대머리 이렇게 물어보죠. 직장에 다니는 이유가 뭡니까? 자아실현 같은 뻔한 답 말고. 꾸부정 돈을 벌기 위해서죠. 돈을 벌어야 가족들 먹여 살리고 집도 사고. 대머리 그렇습니다. 돈, 바로 월급이죠. 직장을 다닌다는 가장 큰 증거는 바로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입니다. 꾸부정 (이마를 치며) 아아 그렇구나. 대머리 선생이 그 어떤 실수나 튀는 행동을 하더라도 월급을 꼬박꼬박 가져다주는 한 쉽게 의심받지 않습니다. 1단계보다 더 강력한 2단계는 바로 ‘월급’입니다. 꾸부정 월급이라……무슨 수로 월급을……. 대머리 퇴직금과 저축과 비자금을 포함하면 얼마나 됩니까? 꾸부정 한……삼천 정도……. 대머리 적군요. 꾸부정 당겨쓰는 바람에……. 대머리 월급은? 꾸부정 이백이 조금……. 대머리 적군요. 꾸부정 성과급제 인지라……. 대머리 봅시다, 재취업의 목표를 일 년으로 잡았을 때, 총자본 삼천에서 하루 용돈 만원 곱하기 365해서 빼면 2635만원. 중간 중간 부인과 아이들 생일 선물 챙겨주고, 가끔 부모님 외식도 시켜드리고, 아프면 병원 가야되고, 친구 만나면 술 한잔도 해야 되니까 100만원 빼면 2535만원. 이걸 열두 달로 나누면 211. 25만원. 딱 맞아떨어지는군요. 꾸부정 이럴 수가! 이토록 맞아 떨어지다니! 대머리 아직 감탄은 일러요. 변수를 따져봅시다. 올해 안에 큰돈 들어갈 가능성이 있는 것들이 뭐가 있죠? 꾸부정 음……올해 봄에 어머니 금니를 해드리기로. 대머리 돈 더 모아서 내년에 임플란트 해드린다고 하세요. 꾸부정 음……올해 여름에 가족들하고 제주도를. 대머리 돈 더 모아서 내년에 하와이 가자고 하세요. 꾸부정 처제가 연애를 하는데 가을쯤 결혼하고 싶다고. 대머리 어떻게든 둘이 깨지게 만드세요. 꾸부정 겨울에 큰애가 수능을 보는데 그럼 대학 등록금을. 대머리 어떻게든 재수하게 만드세요. 꾸부정 이럴 수가! 이토록 쉽게 해결되다니! 선생님은 천재예요! 대머리 지금 당장, 은행으로 가서, 입금 하세요. 꾸부정, 대머리를 부둥켜안는다. 암전. 암전을 감싸는 작은 멜로디. #5 불이 켜지면, 단발과 파마가 그네에 앉아있다. 단발은 통닭을, 파마는 장조림 통을 들고 있다. 그들의 발밑에는 반쯤 남은 소주병(남자들이 마신)이 남아있다. 단발 다 먹으면 살찐다고 애들한테 강제로 뺏어 온 통닭이에요. 파마 우리 애들 좋아하겠네. 이건 우리 엄마가 보내준 장조림이야. 단발 이 귀한 걸. 파마 미국산일 거야. 단발 찬밥 더운 밥 가릴 때가 아니죠. 두 여자, 웃는다. 단발 (소주병을 내려다보며) 회식을 보름치나 빠뜨려놓고 갔네요. 불쌍한 그이. 파마 남은 보름은 축구대회로 때우겠지. 모래판에 뒹굴고 있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파. 단발 이번 달엔 월급을 두 번이나 입금했더라구요. 파마 우리 아저씨는 실수로 우리 딸한테 입금한 적도 있어. 두 여자, 웃는다. 파마 월급날이니까 당당하게 들어오겠네. 오랜만에……하자고 할지도 몰라. 단발 어머, 스승님도. 파마 안 좋아도……좋은 척해 줘야지 뭐. 단발 난 그냥……좋은데. 파마 역시, 젊구나. 두 여자, 웃는다. 파마 (소주병 집으며) 이 회식 보름치는, 우리가 마시자구. 곗날이었다고 하지 뭐. 단발 곗날이라……짤린 지 1년 넘은 곗날. 파마 난 2년. 두 여자, 한참을 웃다가, 사이좋게 소주를 나눠 마신다. 파마 그 아저씨들…… 앞으로 1년 버티기도 간당간당할 거야. 퇴직금은 한계가 있지. 단발 우리 남편은…… 당겨썼을 텐데. 파마 중간에 큰돈 들어갈 일 있으면 알아서 짤라줘. 어머니 금니라든가 제주도로 떠나는 가족 여행이라든가 자식들 학자금이라든가 동생 결혼식 같은 것들 있잖아. 단발 어머? 어떻게 그렇게 잘 아세요? 파마 사는 게 비슷비슷하니까 돈 들어가는 것도 비슷비슷하겠지 뭐. 단발 정말이지……스승님은. 파마 대놓고 짜르면 의심하니까 자연스러워야 돼. 나 같은 경우는 뉴스를 많이 활용해. 요즘 뉴스에 경제 어렵다는 얘기 많이 나오잖아. 등록금에 목숨 끊고 효도 못 해 목숨 끊고 결혼 못 시켜줘서 목숨 끊고……그런 뉴스 나올 때마다 호들갑을 떠는 거야. “어머머머, 저걸 어떡해? 우리라고 안심하면 안 되겠네. 여보, 경제도 어려운데 당분간 허리띠 좀 졸라맵시다.” 그럼 남편이 그러겠지. “그래도……할 건 해야 되잖아?” 그럼 이러는 거지. “그거 안 한다고 당장 죽어? 다 내년에 합시다. 금니는 임플란트로, 제주도는 하와이로, 그리고 첫째 너는 조금만 더 공부하면 ‘인 서울’ 가능해. 그냥 재수해. 그리고 동생 결혼식은……으이그 나 그 남자 맘에 안 들어!” 두 여자, 배꼽을 잡다가, 다시 기분 좋게 마시는 소주. 파마 자기도…… 빨리 일을 구해야 돼. 단발 ……그래야죠. 파마 일을 구할 때도 튀지 말아야 돼. 집에만 있으니까 갑갑하다, 옆집 엄마들이 마트에 가서 일하니까 돈도 벌어 좋고 심심하지도 않아서 좋지 않느냐, 일도 엄청 편하다더라…… 물론 편하지는 않지……자존심도 많이 상하고……. 단발 ……. 파마 그래도 마트를 구하면 다행이야. 술집을 돌면서 전병을 파는 아줌마들도 있어. 단발 ……. 파마 더 심하면……도우미로 나서는 거지. 단발 ……. 파마 남자들도 마찬가지야……일을 도저히 못 구하면 아빠방 같은 데로 가기도 하거든. 알지? 그, 남자 도우미 같은……. 단발 ……. 파마 대단한 거야……그렇게 해서 가족이 유지되니까. 단발 대단하네요……저로서는 엄두도 못 낼……. 파마 더 지나면……엄두가 날 거야……. 단발 ……. 파마 ‘뭐든’이라는 단어가 중요해. 뭐든. 단발 ……뭐든. 파마 2단계가 바로 그 ‘뭐든’ 이야. 단발 ……. 파마 (벼룩시장을 건넨다) 생일 축하해. 선물이야. 단발 ……고마워요. 파마 꼼꼼히 읽어 보면 일을 구할 수 있을 거야. (소주병을 들고) 마시자고……곗날인데 말없이, 소주를 마시는 여자들. 암전. 암전을 감싸는 작은 멜로디. #6 불이 켜지면, 꾸부정이 축구 유니폼 차림으로 모래판에 열심히 뒹굴고 있다. 잠시 후,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대머리. 그러나, 대머리가 아니다. 윤기 흐르는 리젠트 헤어스타일에 삐까번쩍한 양복, 광나는 구두. 그러나, 왠지 어색한. 어찌 보면 우스꽝스러운. 꾸부정 스승님! …… 머리가? 대머리 가발입니다. 꾸부정 결혼식이라도? 대머리 (대답 없는 미소) ……이제, 완벽하게 홀로서기를 하셨군요. 꾸부정 스승님 덕분이죠……덕분에 집사람이 뒤로 자빠지지 않을 수 있게 되었네요.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어머니 금니도 가족들 여행도 다 내년으로 미뤄졌어요. 처제는 결혼 상대가 갑자기 마음에 안 들고 아들놈은 갑자기 ‘인 서울’을 노리겠다더군요. 4년제도 힘든 놈이……. 대머리 그건 정말로……완벽한 행운이군요. 꾸부정 예……그야말로 완벽한……. 대머리 ……. 꾸부정 집사람이 일을 시작했어요. 집에만 있으니까 심심하다면서. 대머리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겠군요. 꾸부정 전병을 팔고 있더라구요……술집을 돌아다니면서. 대머리 ……. 꾸부정 심심하다고 할 만할 일일까요……전병을 파는 게……. 대머리 ……. 꾸부정 ……심심해서겠죠……분명……. 좋은 건지, 씁쓸한 건지 모를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그네를 타는 두 남자. 대머리 마지막 3단계를 배울 차례로군요. (양주를 꺼낸다) 양주 한잔 하시죠. 꾸부정 양주가……어디서? 대머리 (대답 없는 미소) 졸업 선물입니다. 어떠한 영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양주를 받아 마시는 꾸부정. 대머리 3단계는 ……시간입니다. 꾸부정 ……시간. 대머리, 그네에서 일어나 놀이터를 천천히 거닌다. 대머리 어릴 때 놀이터에서 소꿉놀이를 하면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꾸부정 ……. 대머리 의사도 됐다가 선생님도 됐다가 과학자, 대통령, 경찰관, 소방관, 백화점 사장, 옷가게 사장, 슈퍼마켓 사장……그렇게 소꿉놀이를 하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시간이 더 많으면 나는 더 많이 놀 수 있을 텐데, 이렇게 생각했죠. 시간이 많다는 게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는 걸……이제야 깨닫게 되는군요. 꾸부정 ……. 대머리 선생님이 해고된 순간부터 선생님에게는 엄청난 시간이 생겼습니다. 이제 선생님은 직장을 구할 때까지 평범함을 연기하기 위해서 엄청난 양의 시간과 싸워야 합니다. 늦잠을 잘 수 없습니다. 출근 하는 척해야 되니까요. 밖에서 시간을 때워야 합니다. 퇴근 시간이 되어야 집에 갈 수 있으니까요. 밥도 혼자 먹어야 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직장에서 먹으니까요. 비싼 걸 먹으면 안 됩니다. 돈이 없으니까요. 꾸부정 ……. 대머리 동네 주변에 있으면 안 됩니다. 아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으니까요. 극장도 있고 피씨방도 있고 커피숍도 있지만 갈 수 없습니다. 돈이 드니까요. 아침이 되면 꾸역꾸역 밖으로 나가서 저녁이 될 때까지 아는 사람 없는 곳에서 돈 안 드는 방법을 택해서 시간을 죽여야 됩니다. 시간이 많다고 책을 읽어서도 안 됩니다. 취직을 위해서 교차로 벼룩시장 가로수만 죽어라 읽고 읽고 또 읽어야 합니다. 매일매일 그런 시간과 싸워야 됩니다. 그게……마지막 3단계입니다. 꾸부정 ……. 대머리 (놀이터를 둘러 본 후) 어릴 때는 이 놀이터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지만 이제는 그럴 수도 없습니다. 놀이터에서 대머리의 어른이 미끄럼틀을 타고 있으면 웃기잖아요……어른이니까……. 꾸부정 ……. 대머리 (시계를 본다) 이제 가야겠군요. 저도 오늘은 축구대회라고 한지라 ……. 대머리, 가발을 벗고, 비까번쩍한 양복을 벗으면, 그 안에 입혀져 있는 유니폼. 그 상태로 모래바닥에 사정없이 뒹굴고, 꾸부정도 말없이 뒹굴고. 꾸부정 (뒹굴면서) 스승님……우리…… 소꿉놀이 한다고 생각하면 되겠죠? 어릴 때처럼? 대머리 (역시 뒹굴면서) 우리 같은 중년의 가장에겐……조금은 괴로운 소꿉놀이군요. 그런데……어릴 때 소꿉놀이 할 때는 왜 한번도……회사원 역할을 안 했을까요. 꾸부정 ……. 대머리 시시해서였을까요? 꾸부정, 말없이 더욱 열심히 뒹굴고, 대머리도 그런 꾸부정을 보며 더더욱 열심히 뒹굴고……. 암전. 잠시 후 들려오는 초인종 소리. 그리고, 동시에 들려오는 두 남자의 목소리. 목소리 나 왔어…… 별일은 무슨…… (심호흡을 한번 하고) 뭐, 똑같지 뭐. 작은 멜로디. -막-
  • 우리 아이는 무슨 생각할까

    말이 통하지 않는 아기는 초보 부모에게는 인생 최대의 숙제다. ‘우리 아이의 머릿속’(앨리슨 고프닉 지음, 김아영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은 세 아들의 어머니이자 미국 UC 버클리대 심리학 교수인 저자가 수십 년간 아이의 인지능력을 연구한 결과를 담았다. ‘마음의 이론’ 연구 창시자 가운데 한 명인 고프닉은 아이들이 어떻게 타인과 공감하는지 규명하고 아이들이 관찰·실험 등 과학자들과 같은 방식으로 학습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러한 연구 업적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EBS의 다큐멘터리 ‘아기 성장 보고서’에서 상세하게 다루어지기도 했다. 아이를 대상으로 한 여러 실험 가운데 아이의 이마에 스티커를 붙이고 거울을 보게 하는 것이 있다. 생후 18개월 이상이 된 아이들은 거울을 보고 자신임을 알아보며 스티커를 떼려고 한다. 이 실험을 한층 더 깊이 있게 다룬 결과도 있다. 아이가 노는 모습을 비디오로 촬영하고 도중에 아이 몰래 이마에 스티커를 붙인다. 다음에 촬영된 비디오를 아이이게 보여주면 세 살짜리 아이는 비디오 속의 아이가 자신임을 알아보지만 스티커를 뗄 생각은 하지 못한다. 반면 다섯 살짜리 아이는 즉시 이마의 스티커를 뗀다. 저자는 아이들이 다섯 살 이후에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통합하는 자아의 개념을 형성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유년기의 상처는 평생 지울 수 없다는 가정을 입증하는 사례로 널리 알려진 ‘루마니아 고아들’에 대해서도 고프닉은 다른 가능성을 언급한다. 니콜라이 차우셰스쿠의 독재 기간에 루마니아의 고아원에 버려진 아이들이 있었다. 이 아이들은 신체적으로 학대를 받지는 않았지만 심한 사회적, 감정적 결핍을 겪었다.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안아주거나 이야기하거나 사랑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몇 날 며칠 침대에 혼자 누워 있어야만 했다. 체제가 무너지고서 고아들의 끔찍한 상황이 밝혀지자 서너 살이 된 아이들은 영국의 중산층 가정에 입양되었다. 이들은 신체적으로 왜소했고 심각한 정신지체 증세를 보였으며 말도 거의 하지 못했다. 이중 몇몇은 장애에서 절대로 회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섯 살쯤 되자 또래 수준을 따라잡은 아이들도 있었다. 저자는 ‘루마니아 고아들’의 이야기는 회복되지 못한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추느냐, 회복된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회복된 아이들에게 맞출 경우, 유년기의 상처도 치유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엄마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갓난아기의 눈빛에는 사랑과 도덕의 근원이 담겨 있다. 세 살짜리 아이의 터무니없는 흉내 내기 놀이는 우리가 어떻게 미래를 상상하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내는지 설명해 준다. ‘우리 아이의 머릿속’은 일반적인 자녀교육서가 아니라 아이의 정신세계가 어떻게 어른과 다른지 총체적으로 규명한다. 1만 5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강남권 보금자리주택 분양가 3.3㎡당 924만~1056만원 확정

    강남권 보금자리주택 분양가 3.3㎡당 924만~1056만원 확정

    서울 강남권 보금자리주택 분양가가 900만원대로 결정됐다.이번에 분양되는 강남 세곡(A2 블럭)과 서초 우면(A2 블럭)은 보금자리주택 지구에서도 ‘알짜’로 꼽히는 곳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보금자리주택지구 서울 강남 세곡지구의 분양가를 3.3㎡당 924만~995만원으로, 서초 우면지구는 964만~1056만원으로 확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사전예약 당시 평균 예상분양가는 강남 세곡이 1030만원 서초 우면이 1150만원이었다. 당초보다 6~13% 낮아진 것이다. LH는 그린벨트가 해제된 택지를 사용했기 때문에 분양가가 예상보다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LH 관계자는 “대모산 중턱 임야를 많이 활용한 강남지구의 분양가 하락폭이 서초보다 상대적으로 더 컸다.”고 말했다. 물량은 강남 세곡이 273가구, 서초 우면이 385가구로 총 658가구다. 공급이 늘어난 것은 사전예약 당첨자 중 자격미달자 물량 293가구가 추가됐기 때문이다. LH는 내년 1월 17~ 18일 양일간 사전예약 당첨자를 대상으로 본청약을 받고, 20일부터 31일까지 특별공급과 일반공급 대상자를 상대로 차례로 분양신청을 받는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높은 벽’ 행정법은 先 개념정립 後 판례 공부

    ‘높은 벽’ 행정법은 先 개념정립 後 판례 공부

    어떤 일이든 첫 도전은 어렵고 막막하기 마련이다. 많은 과목과 방대한 분량을 공부해야 하는 공무원시험은 특히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연말 방학을 맞아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려는 대학생들의 발길이 수험가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어떤 교재를 선택해야 할지,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몰라 학원만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다. 초보 수험생들을 위해 공무원 시험 전문 에듀스파와 함께 내년도 국가직 9급 공무원(일반행정) 시험 학습 전략을 짚어본다. 정채영 남부행정고시학원 국어강사는 첫 교재 선택 시 되도록 다양한 종류의 교재를 훑어본 뒤 자신에게 가장 맞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공무원 시험 국어 교재의 기본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라면서 고교 국어 교과서와 공무원 시험 교재를 병행해 본다면 초기에 국어 기초 지식을 쌓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정 강사는 “교재 선택 시 고민 없이 단순히 많은 수험생이 보는 교재를 선택한 뒤 자신의 공부 유형과 맞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수험생들이 많았다.”면서 “자신에게 맞는 기본 교재 한 권을 정한 뒤 다양한 문제풀이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가는 것이 효과적이다.”라고 말했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단원별로는 크게 국어 생활, 비문학, 문학 등으로 나눠 국어 생활은 어문 규정과 어휘, 어법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비문학은 독해 문제의 유형을 파악해 원리를 익히는 연습을 해야 한다. 문학은 많은 작품을 폭넓게 접하는 게 최고의 학습 전략이다. 특히 1960~70년대 이후의 현대 시, 고전의 현대어 풀이, 작품 지문의 고유어 및 한자 표기에도 주의해야 한다. 올해 시행된 국가직 영어 시험은 대체로 문법은 쉽게 출제됐으나 숙어나 관용어구의 쓰임을 파악해야 하는 문제가 다소 까다로웠다는 평가다. 독해는 지문의 길이가 전반적으로 길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따라서 독해가 영어 시험의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리라 영어 강사는 “기본 이론정리보다 문제풀이를 통해 이론을 정리하려는 수험생들이 많은데, 이는 크게 잘못된 학습 전략”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문제풀이 기간이 조금 늦어지더라도 기본서를 두 번 정도는 정독해야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론정리 없는 문제풀이는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영어 공부의 첫걸음인 어휘는 별도의 공부 시간을 정하는 것보다는 조금씩이라도 매일 반복해, 고사장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익혀야 한다. 수험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독해는 초보 수험생이라면 많은 지문을 읽는 것보다는 한 지문을 여러 번 반복해 보는 것이 효과적이다. 같은 지문을 계속 읽으면서 지문의 구조를 익혀 비슷한 유형의 다른 문제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수의 수험생들은 한국사를 암기과목으로 여겨 단순히 사건의 연도와 제도 등을 외우는 방법으로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선우빈 한국사 강사는 “최근 한국사 문제는 단순 암기형 문제보다는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로 구성돼 단순 암기 학습으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선 강사는 초보 수험생이라면 선사시대부터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전반적인 큰 틀을 잡는 데 집중하고, 어느 정도 흐름을 익힌 수험생은 조선 후기부터 근현대사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하는 수험생들은 고교 역사 교과서의 역사 자료 등 주요 도표 및 사진, 자료 등이 많이 수록된 기본서를 선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중국의 동북공정 등과 관련된 한국사와 함께 최근 정세가 급변하고 있는 북한과 관련된 역사도 꼼꼼하게 정리해야 한다고 전했다. 행정법은 법학과 행정학을 전공하지 않은 수험생들에게는 가장 높은 벽으로 느껴지는 과목이다. 법이라고 해서 나열된 법조문을 암기하려 든다면 학습에만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과목인 만큼 행정법 전반의 체계에 대한 골격을 세운 뒤 판례와 법조문 등 세부적인 살을 붙여 나가야 한다. 김진영 행정법 강사는 “판례를 묻는 문제는 해마다 비중이 커지고 있다.”면서 “판례의 사실 관계와 판례가 가지는 시사성 등 판례 및 법조문에 대한 세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김 강사는 “판례와 법조문의 적용은 행정법 관련 개념을 정확하게 정립해야만 가능하다.”며 “공부 초반에 점수가 잘 오르지 않는다고 조급해하지 말고 기본서를 반복해 보면서 큰 틀을 익히는 공부를 선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도움말 에듀스파
  • 외국 근로자 늘려 인력난 해소 경기도 북부 경제 활성화 기대

    경기도 제2청은 북부 지역 섬유업체 인력난 해소를 위해 외국인 도입 확대를 고용노동부에 건의한 결과 올해 외국인 근로자가 당초보다 1만 3000명이 늘어 3만 4000명으로 확대됐다고 28일 밝혔다. 도는 앞서 경기 북부 섬유산업 육성·발전계획의 일환으로 두 번에 걸쳐 북부지역 353개 섬유업체에 대한 기업애로 전수조사를 했다. 그 결과 업체 대부분이 OEM 방식의 저임금과 3D 업종으로 인해 내국인의 취업 기피 현상이 나타났으며, 외국인은 외국인력 도입 쿼터제와 불법체류자 단속으로 고용이 불안했다. 북부 지역 섬유업체 평균 인력부족률은 평균 40%로 소요 인력 10명 가운데 4명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었다. 도2청은 지난 2월 외국인 근로자 도입 확대를 중앙부처에 공식 건의해 이 같은 성과를 얻었다. 도 관계자는 “외국인 근로자 도입 확대로 경기 북부 지역 353개 업체의 부족인력 2270여명의 충원이 가능해져 낙후된 경기 북부 지역의 산업발전 및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했다. 장충식기자 jjang@seoul.co.kr
  • 광주 R&D특구 내년 1월 지정될 듯

    광주 지역의 산업지도를 바꿀 R&D(연구·개발) 특구가 내년 1월 지정될 것으로 보인다. 강운태 광주시장은 28일 이와 관련 “중앙 관계 부처 협의가 끝나는 1월 하순쯤 특구 지정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광주는 대덕과 달리 연구와 산업을 아우르는 개방형 특구로 육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광주시는 이를 위해 공청회·주민 의견 수렴 등을 거쳐 지난달 특구 구역을 당초보다 축소 재조정한 뒤 연내 지정을 요청했다. 그러나 정부가 ‘광주 특구’를 ‘대구 특구’와 동시에 지정·고시하기로 하면서 지금껏 지연돼 왔다. 광주시는 오는 2015년까지 첨단 1·2·3지구와 신룡지구, 진곡지구, 장성 남면 일대, 나노산단 등 18.73㎢에 R&D 특구를 조성한다. 시는 이곳 일대를 연구단지 중심의 대덕 R&D 특구와 달리 생산복합단지 및 한국과 중국, 일본의 공동 투자 지역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주로 지역 전략 산업인 광(光) 분야의 융복합산업, 신재생 에너지·나노 분야 등의 연구소와 기업체 등이 들어선다. 시는 오는 2025년까지 R&D 특구 조성과 기업 유치 등을 통해 15조원의 경제 유발 효과와 3만여명의 고용 창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당초 50여㎢를 특구로 지정할 계획이었으나 연구소·관련 기업 입주 등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특구 면적을 확대하기 위해 우선 18㎢ 정도로 구역을 조정했다.”며 “1단계(2011~2015년)로 국비 등 4800여억원을 투입해 과학기술 인프라 구축과 정주 환경 조성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유통플러스]

    롯데칠성, 정통 이탤리언 커피 2종 롯데칠성음료가 페트 용기에 담은 커피 엔제리너스 ‘카라멜 마키아토’와 ‘에스프레소 라떼’ 등 2종을 출시했다. 정통 이탤리언 스타일 에스프레소 커피와 1등급 우유가 들어 있다. 무균 환경의 상온에서 음료를 채우는 어셉틱(무균 생산) 시스템을 적용해 커피 고유의 맛과 향을 그대로 살린 것이 특징이다. 230㎖, 1500원. 훼미리마트, 홍진경표 반찬 4종 출시 편의점 보광훼미리마트는 연예인 홍진경의 이름을 붙인 소규격 반찬 ‘더찬’ 4종을 선보였다. 오징어진미채, 땅콩멸치조림, 양념깻잎, 마늘쫑무침 등 익숙한 반찬으로 구성됐다. 식사 한끼 분량으로 50g씩 포장해 2500원에 판매한다. 내년 1월 18일까지 홈페이지에서 ‘더찬’ 구매 영수증 행운번호를 입력하면 추첨을 통해 ’더김치’ 3kg(200명), ‘더만두 8종 세트’(100명)를 증정한다. ‘마트 대신 옥션’ 개편 옥션(www.auction.co.kr)은 오프라인 매장의 물품 진열대에서 쇼핑하는 느낌을 살리도록 ‘마트 대신 옥션’ 코너를 개편했다. 마트 대신 옥션은 옥션이 대형마트 상품군과 관련된 할인전, 구매 혜택을 한데 모아 전략적으로 운영하는 코너다. 오프라인 매장의 물품 진열장과 같은 동선을 구현한 것이 가장 큰 특징으로 1만여개의 상품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게 했다. 아워홈 쌀떡국떡 출시 종합식품기업 아워홈은 다가올 설을 맞아 ‘손수 정성가득 쌀떡국떡’을 출시했다. 전통 시루 방식으로 제조해 찰지고 쫄깃한 맛이 특징이다. 쇠고기 떡국, 참치 떡국 등의 재료법도 소개해 요리 초보자들도 쉽게 떡국을 조리할 수 있도록 했다. 떡국 외에도 곰탕, 라면 등 다양한 음식의 재료로 이용할 수 있다. 1㎏, 3300원. 11번가 테디베어 코너 열어 SK텔레콤 오픈마켓 11번가(www.11st.co.kr)가 정품 테디베어를 판매하는 ‘테지움 전문관’ 코너를 열었다. 제주 테디베어 박물관에 전시된 6캐럿의 다이아몬드 왕관을 써 화제를 모은 1억 2000만원 상당의 ‘헤라 테디베어’를 비롯해 드라마, 인기 연예인 협찬 테디베어 등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오픈을 기념해 30% 할인 행사를 진행한다.
  • MB “檢 변화 부응하려면 피나는 노력”

    MB “檢 변화 부응하려면 피나는 노력”

    이명박 대통령은 20일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는 검찰이 되고자 한다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법무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검찰이라는 조직은 외부의 변화에 느리게 적응하는 조직문화가 있어, 이것을 깨뜨리지 않으면 빠르게 변화·진화하는 세계 모든 트렌드(추세)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은 “내년 1년은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검찰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그러자면 스스로 자기개발에 전력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행히 검찰 스스로 많은 변화를 추구하고 있어 국민이 검찰의 변화를 읽기 시작했고, 노력을 하는구나 하는 인식을 주고 있다.”면서 “그러나 이것은 아주 초보적인 단계”라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은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데 제자리에 있으면 제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후퇴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면서 “시대 변화와 진화 속도에 맞는 여러분의 자기계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검찰이 10년 후에 대한 준비를 하는 게 좋겠다.”면서 “검찰이 스스로 변화하게 되면 국민들의 신뢰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국가 정체성과 관련, “분단된 나라에서 국가 정체성을 지키면서 경제를 발전시켜 나가는 데는 특수한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국가 정체성을 지키는 것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상반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가 정체성을 지켜 나가는 일에 여러분이 역할을 해야 하고, 자신감을 갖고 일을 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교통(질서)을 위반해도 부자가 놀러 가다 위반하는 것과 없는 사람이 먹고살기 위해 위반하는 경우 법은 아마 똑같이 적용될 것”이라면서 법을 집행하는 데 있어서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도 당부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1982 ‘트론’ vs 2010 ‘트론’, 더 강해진 비주얼 디지털 신세계를 보았노라

    1982 ‘트론’ vs 2010 ‘트론’, 더 강해진 비주얼 디지털 신세계를 보았노라

    우연의 일치일까. 한참 오래 전 만들어졌던 영화의 속편을 만드는 게 올해 할리우드의 유행이었던 것 같다. 지난여름 디지털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 3’가 나왔다. 2편이 나온 지 11년 만이었다. 가을에는 올리버 스톤 감독이 23년 만에 ‘월스트리트’ 후속편 ‘월스트리트:머니 네버 슬립스’를 내놓았다. 대미는 ‘트론:새로운 시작’(TRON: Legacy)이 장식한다. 시대를 앞서 갔다는 평가를 받은 ‘트론’이 나온 지 28년이 지나서다. ‘트론:새로운 시작’은 새 역사를 쓸 수 있을까. 한국 관객과는 오는 30일 만난다. ●최초의 디지털 영화로 평가받다 1982년은 공상과학(SF) 영화사에서 매우 흥미로운 시기다. 그 해 6월 스티븐 스필버그의 ‘E.T’가 개봉하며 세계를 뒤흔들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와 존 카펜터 감독의 ‘괴물’까지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들이 줄줄이 쏟아졌다. 그리고 7월 문제작 ‘트론’이 등장한다. 앞서 1977년 SF의 신기원을 쓴 ‘스타워즈’가 있었다. SF라 당연히 컴퓨터그래픽(CG)을 많이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당시 ‘스타워즈’의 시각효과는 미니어처, 특수분장, 화면합성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CG는 반란군 내에서 데드스타 구조를 브리핑하는 장면에 초보적인 수준으로 잠깐 쓰였다. 그런데 ‘트론’은 15분 분량 235컷을 CG로 도배했다. 실사 화면과 손으로 직접 그린 애니메이션을 입힌 점도 놀라웠다. 지금 보면 오래된 컴퓨터 게임 그래픽으로 보이지만 빌 게이츠가 IBM의 의뢰를 받아 개인용 컴퓨터 운영체제 ‘도스’를 개발할 즈음이던 당시로서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비주얼에 신경 쓴 나머지 이야기는 빠뜨린 것 같다.”는 쓴소리를 들으며 흥행에선 참패했으나 최초의 본격 디지털 영화로 평가받으며 영화사의 한자락을 차지했다. 전 세계 시각효과 종사자들에게 수많은 영감과 영향을 줬음은 물론이다. ●28년이 지나 야심만만 2편 등장하다 컴퓨터 천재 케빈은 자신의 공을 가로채 회사 최고경영자(CEO)가 된 상사에 대한 증거를 찾다가 사이버 세계로 전송된다. 인공 지능 마스터 컨트롤 프로그램(MCP)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로마 검투사처럼 목숨을 건 ‘디스크 배틀’을 벌이던 케빈은 현실 세계의 동료인 앨런이 만든 프로그램 트론을 만나게 되고, 사이버 세상을 자유롭게 만들기 위한 모험을 한다. 1982년 ‘트론’의 얼개다. 28년을 건너뛴 2편은 케빈의 아들 샘이 펼치는 모험담이다. 회사 회장 자리에 오른 케빈은 샘이 어렸을 때 돌연 실종된다. 20여년이 흐른 뒤 샘은 우연히 아버지의 연구실을 발견하고는 역시 사이버 세상으로 빨려들어 간다. 그곳에서 케빈과 재회한 샘은 새로운 적에 맞서 악전고투를 벌인다. 2편은 1편에 견줘 세계관이 확장되고 내용이 촘촘해졌다. 사이버 신세계 ‘그리드’에서 케빈은 창조주로 격상된다. 스스로 생겨난 프로그램 종족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드’의 새로운 지배자의 면모와 1편에선 주인공 격이었으나 2편에선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트론의 존재 등이 흥미를 돋운다. 2편은 아버지와 온·오프라인 아들 사이에 초점을 맞춘다. 로맨스도 섞인다. 그럼에도 이야기가 낡고 평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론’ 이후 ‘트론’을 바탕으로 더 복잡하고 깊은 세계를 만들어낸 작품이 수도 없이 등장한 탓이 크다. 21세기 영상 혁명으로 평가받는 ‘매트릭스’도 이야기 뼈대는 ‘트론’과 매우 유사하지 않은가. ●확장된 세계관·진화한 비주얼 상상을 초월한 비주얼을 보여줬던 1편이라 2편에서도 자연스레 시각적인 부분에 관심이 쏠린다. 1편처럼 충격을 줄 정도는 아니지만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기에는 충분하다. 사이버 세계는 웅장한 풍광을 드러낸다. 번개가 치고 폭풍이 몰아친다. 거대한 산과 절벽이 등장하기도 한다. ‘트론’의 상징이기도 한 발광 슈트는 단순하지만 미래적으로 디자인됐다. 하얀색, 파란색, 은색, 주황색, 빨간색, 노란색 등 빛의 향연이 빚어내는 장면들도 인상적이다. 빛의 벽으로 미로를 만들어내며 전투를 펼쳐 1편에서 가장 돋보이는 장면을 만들어 냈던 오토바이 ‘라이트 사이클’은 5세대로 진화해 유려한 유선형 몸체를 뽐낸다. 라이트 사이클을 만들어 내던 도구인 ‘바톤’은 이제 여러 가지 탈 것과 맞춤형 무기로 변신하며 쓰임새가 늘었다. 1편에는 없었던 오프로드용 2인승 자동차 ‘라이트 러너’도 시선을 잡아 끈다. 프로그램들을 포획하는 비행선 ‘레코그나이저’와 한줄기 빛 위를 모노레일처럼 오가는 화물선 ‘솔라 세일러’는 21세기형으로 업그레이드돼 등장한다. 1편에서 주인공들을 맹추격하던 탱크는 2편에선 나오지 않는다. 1인용 전투 비행기 ‘라이트 제트’가 그 자리를 대신하며 박진감 있는 공중전을 보여준다. ●세월을 건너 뛴 배우들의 명연기 세월을 건너 뛴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즐거움도 있다. 한물 간 컨트리 가수를 연기했던 ‘크레이지 하트’로 올해 초 미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던 제프 브리지스가 1편에 이어 케빈과 클루의 1인 2역을 맡았다. 역대 가장 긴 시간 간격을 두고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 1편 초반 케빈이 만든 프로그램으로 잠깐 등장했던 클루는 2편의 핵심 캐릭터로, 젊은 시절 제프 브리지스의 얼굴이 디지털 3D를 활용한 첨단 기술로 입혀졌다. 앨런과 트론을 연기했던 브루스 박스라이트너도 다시 등장하지만 역할이 대폭 줄었다. 샘 역할은 ‘포 브라더스’의 개럿 헤들런드가 꿰찼다. 전편의 감독이었던 스티븐 리스버거는 제작자로 참여하고 건축학도 출신 조지프 코신스키가 메가폰을 잡았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광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 육상 홍석만 장애등급에 발목… 金 빼앗기나

    광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 육상 첫 금메달을 딴 휠체어 육상의 ‘간판’ 홍석만(35) 의 금메달 박탈 여부를 놓고 한국선수단과 대회 조직위원회의 힘겨루기가 2라운드에 돌입했다. 지난 14일 광저우 아오티 주경기장에서 열린 육상 남자 800m(T53) 결승에 출전한 홍석만은 모든 이가 기대했던 대로 금메달을 따냈다. 그러나 이튿날 2위에 그친 일본의 히로미치 준이 “홍석만의 장애 등급을 재고해 달라.”고 요구했고 이를 받아들인 대회 조직위원회가 당초보다 덜한 T54로 등급을 재판정, 금메달 반납을 요구했다. 대회 홈페이지 메달 집계는 물론 기록까지 삭제됐다. 그러자 한국선수단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장춘배 단장은 “홍석만은 베이징올림픽에서도 T53등급으로 2관왕에 올랐다. 설사 등급 조정을 인정하더라도 메달 세리머니까지 끝난 마당에 이를 소급 적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전례는 없었다.”며 반론을 폈다. 선수단은 16일 항의서를 공식적으로 조직위에 제출했다. 그러나 조직위는 “메달을 반납하지 않을 경우 출국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번 대회 한국선수단이 출전한 종목은 모두 19개. 이 가운데 특히 육상과 수영은 장애 등급 분류가 다양하고 복잡하다. 육상은 트랙(T)에서만 21개, 수영(S)은 14개 등급에 이른다. 반면 사격과 양궁은 3개 등급으로 간단하다. 대부분의 종목에서 등급을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가 관리하지만 각 연맹의 주관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체계가 일천한 탓이다. 더욱이 이번 대회를 개최한 중국이 “선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일부 종목의 등급을 통폐합해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장 선수단장은 “개최국 중국의 독주와 텃세, 등급의 통폐합으로 인한 혼란, 여기에 메달이 박탈될지도 모르는 일련의 사태로 인해 당초 목표였던 종합 3위도 위태롭게 됐다.”며 한숨을 지었다. 한편 한국은 16일 현재 금메달 15개와 은메달 24개, 동메달 22개를 따 태국을 밀어내고 종합 4위에 복귀했다. 광저우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무상급식 무산시키고 외유성 연수는 강행

    강원도의회 의원들이 무상급식 예산 지원은 무산시키고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예산은 챙기며 외유성 해외여행까지 강행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도의회 기획행정위 의원들은 1900여만원의 예산으로 17일부터 9일 동안 다문화가정 고향과 선진 의료기관을 방문한다는 취지로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를 다녀온다. 하노이 다문화가정 방문 등 취지에 맞춘 일정은 짧게 끼워 넣었을 뿐 하롱베이국립공원·앙코르와트·파타야·꼬란 산호섬 자유체험·새벽사원 견학 등 관광 일색이다. 동계올림픽 홍보활동도 방문 목적에 포함 했지만 일정 어디서도 홍보활동은 찾아 볼 수 없다. 교육위와 사회문화위 의원들은 각 3000만원 안팎의 예산으로 20일부터 7박 9일 동안 이집트, 그리스, 터키 유럽을 다녀올 계획이었다. 명목은 교육분야에 대한 선진지식을 체득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겠다는 취지였다. 파르테논 신전 등 명소와 관광지 방문이 대부분이고 그나마 무상교육과 관련이 있는 아테네와 이스탄불 교육청, 이스탄불 국립초등학교 방문은 잠깐 끼워 넣었다. 시민단체와 여론으로부터 ‘외유성’ 해외연수라는 질타를 받자 일정을 취소했다. 강원도 의회는 본회의에서 도 무상급식 예산 91억 7430억원 가운데 25억원은 저소득층 급식 확대 지원금으로, 15억원은 친환경 쌀 지원 사업으로 배정했을 뿐이다. 이 밖에 도의원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사업 예산까지 챙겨 ‘해도 너무한다.’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 도청 안에 걸리는 미술작품의 임차료를 당초 연간 5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올려 편성하는가 하면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특정신문의 예산을 당초보다 올려 1억 9000여만원으로 편성하기도 했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충남 초등생도 내년부터 무상급식

    예산분담 비율을 놓고 갈등을 빚었던 충남도와 도교육청이 내년부터 2014년까지 연차적으로 초·중학교 무상급식을 실시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이번 합의로 초·중생 21만 7296명이 무상급식 혜택을 받는다. 충남도와 도교육청은 15일 도청에서 ‘초·중학교 친환경 무상급식 협약’을 체결하고 식재료비, 운영비, 인건비 등 무상급식에 필요한 예산분담을 도와 교육청이 6대4로 각각 분담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다만 자치단체의 재정부담을 고려해 내년에는 양쪽이 5대5로 똑같이 분담하고 도에서 급식시설 현대화 비용으로 10억원을 추가 지원한다. 양측은 무상급식을 연차적으로 실시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초등학교에서 전면 실시한다. 내년 무상급식 예산은 624억원으로 자치단체와 교육청이 312억원씩 부담한다. 2012년은 총 696억원이지만 분담률이 달라져 교육청 부담액은 278억원으로 준다. 2013년은 811억원, 2014년은 1049억원으로 이 중 도교육청 부담 예산은 각각 324억원과 420억원에 이른다. 충남도는 자치단체 전체 분담액 중 도내 16개 시·군에 70%를 부담하라고 제안했으나 일부 시·군에서 “너무 많다.”는 의견이 제기돼 다음주 중 시·군 관계 직원들과 만나 분담률 문제를 재논의할 계획이다. 도는 당초 내년도 무상급식 사업비 624억원 가운데 도와 교육청 분담률을 4대6으로 정한 뒤 예산을 편성해 도의회에 제출했으나, 교육청이 “재정형편상 60%를 지원하기 어렵다.”고 계속 반발하자 지난 14일 밤 마라톤협상 끝에 교육청 부담률을 40%로 줄여 전격 합의했다. 안희정 지사는 “무상급식 시행은 수업료만 면제하는 의무교육의 초보 수준을 벗어난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강원도 핵심복지사업 차질 불가피

    강원도가 핵심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교육과 일자리 창출을 통한 복지 관련사업이 전면 또는 부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강원도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새해 강원도 세입·세출 예산안 및 기금운용 계획안에 대한 심의를 통해 친환경 무상급식 예산 91억 7430만원을 전액 삭감했기 때문이다. 예결위는 대신 저소득층 급식 확대 지원 예산으로 25억원을 배정하고 친환경 쌀 지원에 당초보다 2억여원을 증액한 15억원을 배정했다고 13일 밝혔다. 또 일자리 창출을 위한 18개 시·군 특화사업 예산 90억원 가운데 30억원을 삭감하고, 경로당 운영비 지원 10억 9700만원은 도와 시·군이 3대7의 비율로 분담하는 것으로 수정했다. 전체적으로는 친환경무상급식 등 18개 사업에서 모두 160억 6340만원을 삭감하고 이를 저소득층 급식 확대 지원 등 76개 사업 예산으로 전환하며 3조 3251억원 규모의 도 예산을 사실상 확정했다. 삭감된 주요 예산은 ▲친환경무상급식 91억 7430만원 ▲시·군 특화사업 30억원 ▲엑스포타워 관람환경 조성 4억 5000만원 ▲지방의료원 시설장비 보강 3억 5000만원 등이다. 도는 이같이 무상급식과 일자리 창출 등 민선5기 강원도정의 핵심 사업 예산 삭감으로 정책 목표가 실종된 꼴이 돼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새해 예산 가운데 증액된 예산은 ▲초등학생 기초회화 지원 6억 3180만원 ▲소외지역 학력향상 지원 13억 9500만원 ▲노인일자리 창출 3억 600만원 ▲새농어촌건설운동 우수 대표 모델마을 선정지원 15억원 등이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시론]FTA 축산업 선제적으로 대응해야/최세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글로벌협력연구본부장

    [시론]FTA 축산업 선제적으로 대응해야/최세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글로벌협력연구본부장

    우리나라는 이미 45개국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타결했다. 이 가운데에는 미국, 유럽연합(EU) 27개국, 아세안 10개국, 인도 등 세계 주요 경제권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칠레, 미국과의 FTA 협상에서는 몸살을 앓았다. 특히 미국과는 심각한 갈등 속에 2007년 4월 2일 협상이 마무리된 상태였다. 따라서 한·미 FTA는 재협상이라는 과정 없이 양국 국회의 비준을 거쳐 이행에 들어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재협상을 계기로 우리 사회는 다시 한·미 FTA에 대한 찬반논쟁이 한창이다. 반대론자들은 우리의 일방적 양보로 이익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에 비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한·미 FTA로 잃는 것과 얻는 것을 냉정히 따져보고 판단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재협상에서 양보한 것이 얻은 것보다 크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미국이 2007년 협상 타결 당시보다 더 얻고 우리가 얻는 것은 줄어들었다고 해서 협상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우리 속담과 비슷한 논리이다. 우리가 얻을 몫이 줄었다고 해도 우리에게 이득이 되면 하는 것이 옳다. FTA 협상에서 항상 화두가 되는 것은 농업이다. 농업 가운데에서도 축산업이 가장 피해가 큰 부문이다. 검역을 이유로 우리나라가 쇠고기, 돼지고기, 낙농품 등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는 나라가 많지 않고 관세율도 낮기 때문이다. 필자는 미국이 한·미 FTA에서 국내적으로 가장 큰 논란이 된 자동차 문제를 거론할 경우 우리는 당연히 농산물 문제를 거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가 사료용 곡물 등 우리의 필요에 의해 수입하는 농산물을 제외하면 미국이 가장 민감하게 여길 품목은 쇠고기, 오렌지, 돼지고기 등이다. 이 가운데 우리가 돼지고기를 협상 카드로 사용한 것은 적절한 것으로 판단된다. 돼지고기는 쇠고기와 같이 확실히 차별화된 시장을 형성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축산물 가운데서도 수입산과의 경쟁이 가장 치열한 품목이고, EU와의 FTA에서도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재협상 결과, 우리나라는 자동차에서 얻을 이득이 감소하지만 돼지고기에서는 대략 1500억원 정도의 피해를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 업계는 기대했던 이득이 줄어든다고 해서 반대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여전히 찬성하고 있다. 양돈업의 피해도 당초보다 줄어들기 때문에 2007년 결과보다는 개선된 것이다. 미국, EU와의 FTA 이외에도 호주, 뉴질랜드 등과의 FTA도 계속될 것이고, 이러한 FTA에서도 역시 축산업이 피해가 큰 업종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우리나라 축산업은 시장 개방을 전제로 경쟁력을 키워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칠레 FTA로 큰 피해를 우려했던 과수농가들은 국내 보완대책으로 오히려 좋아졌다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한·칠레 FTA 대책으로 과일 선과장 건설, 과수원 관·배수시설, 비가림시설, 생산성 낮은 과원 폐업 등에 1조 2000억원의 투·융자 정책을 실행하였고, 생산자들은 이를 생산성과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기회로 활용했다. 축산업도 한·미 FTA 협상을 경쟁력 향상의 기회로 활용하는 데에 힘을 쏟아야 한다. 정부는 한·미 FTA 대책으로 2008년부터 10년간 20조 4000억원의 투·융자를 집행하고 있다. 한·미 FTA가 이행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가고 있다. 올해에도 1조 5000억원의 한·미 FTA 예산이 집행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축산업 경쟁력 강화 예산은 4600억원에 달한다. 추가적으로 정부와 국회는 한·EU FTA 대책 예산도 조속히 집행될 수 있도록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여 어려움에 처한 축산 농가 지원에 최선을 다하기를 기대한다.
  • ‘인도양의 진주’ 몰디브 포시즌 쿠다후라…여기선 3가지를 잊어라

    ‘인도양의 진주’ 몰디브 포시즌 쿠다후라…여기선 3가지를 잊어라

    한국인은 ‘점’을 찍으며 관광을 한다지요. 셔터를 눌러대며 껍데기만 새기기 바쁩니다. 그리고선 재빨리 다른 곳으로 움직이죠. 아로새길 여유가 있기나 했을까요. “나 거기 갔다왔다.”는 자랑만 한가득입니다. 하지만 요즘 바뀌고 있답니다. ‘점’이 아닌 ‘선’을 긋는, 새로운 여행의 낭만이 생긴 거죠. 지리산 둘레길, 제주도 올레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등반…. 이게 더 멋져 보입니다. 목적이 아닌 과정으로서, 관광이 아닌 여행의 참의미를 깨닫게 된 거죠. 인도양 중북부, 적도 남쪽까지 남북으로 760㎞, 동서로 128㎞의 해역에 1190여개의 자그마한 산호섬이 뿔뿔이 흩어져 있는 이 나라는 리조트 천국입니다. ‘인도양의 진주’ 몰디브지요. 섬들이 워낙 작다 보니 섬 하나에 리조트 하나가 자리합니다. 섬 구석구석을 돌아봐도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점’을 찍기에도, ‘선’을 긋기에도 부족합니다. # 동아시아 로맨틱투어 대명사… 서양인 가족단위 관광객도 북적 몰디브에서라면 점이든 선이든 따로 고민할 까닭이 없겠다.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작은 산호섬, 점을 찍고 선을 긋다보면 ‘면’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바람이 부는 대로, 햇살이 비치는 대로 그렇게 여유를 느끼면 된다. 몰디브의 매력은 형형색색의 산호나 에메랄드 윤기 흐르는 파도뿐만이 아니다. 시간 그 자체다. 여정을 재촉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시간의 배웅을 받으며, 신발을 벗고 모래 위에 누워버리면 족하다. 수도 말레에서 보트를 타고 25분가량 바다 위를 떠가다 보면 쿠다하라 섬의 ‘포시즌 리조트’에 닿는다. 직항이 생기면서 비행시간도 9시간 안팎에 불과하다. 어렵지 않은 길이다. 선착장 또한 공항 지척이다. 관광국가답게 사람들은 웃음을 달고 산다. 해연을 뚫고 가는 보트의 길목, 가무잡잡한 현지인이 물수건 하나를 챙겨준다. 그렇게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고 나면 바닷바람이 이내 피부를 간질인다. 포시즌 쿠다후라는 한국인에겐 허니문 장소로 꽤 유명한 곳이다. 평생 한번뿐인 허니문, 첫날밤의 설렘을 안고 먼 거리를 마다 않고 찾아 온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가족단위 관광객이 더 많다. 대부분 서양인이다. 아무래도 동아시아에는 로맨틱의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는 곳이다 보니, 가족 여행지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선입견 때문인 듯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꼭 그렇지도 않아 보이는데 말이다. 포시즌 쿠다후라의 숙소는 ‘천국’이다. 비치 방갈로 58채, 워터 방갈로 38채가 있다. 개인 수영장이 마련된 비치 방갈로는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에 제격이다. 전 객실이 바다를 보고 있다. 주변의 무성한 식물들이 밀림의 풍광도 자아낸다. 워터 방갈로는 멋드러진 라군(산호초 때문에 섬 둘레에 바닷물이 얕게 된 곳) 위에 있는 수상 객실이다. 객실에서 계단을 타고 내려오면 투명한 바다가 살에 닿는다. 이렇게 96개 객실에 400명의 직원이 근무한다. 방 하나에 4명의 직원이 달라붙는 셈이다. 한국인 직원 2명도 상주하며 의사 소통을 돕는다. 포시즌 쿠다후라는 조용한 리조트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레포츠 천국이다. 몰디브 최고의 다이빙 장소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리조트에서 운영하고 있는 파디(PADI) 센터에서 스릴 넘치는 다이빙을 맛볼 수 있다. 물론 전문 강사도 있다. 이곳의 홍보자료에 다이빙 얘기가 맨 앞에 있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서핑도 재밌다. 초보자들도 1시간만 배우면 서핑보드 위에 설 수 있다. 물론 앙증맞은 열대어들과 함께하는 스노클링의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레포츠를 즐기다 몸이 뻐근해지면 스파를 받는다. 포시즌 쿠다후라에는 신비의 ‘스파섬’이 있다. 농구장 두세개를 합친 듯한 아담한 크기다. 이 안에 덩그러니 스파 건물만 있는 게 재밌다. 엎드리면 침대 아래로 바닷 속 풍경이 펼쳐진다. 열대어들이 떼지어 다닌다. 어둑해질 때면 선셋 피싱(일몰 낚시)이나 돌핀 크루즈(돌고래 유람선)로 눈요기를 한다. 섬 주변에는 돌고래들이 나 보란듯 몸을 꼬아대며 점프를 한다. 수십, 아니 수백마리의 향연이다. 빨갛게 상기된 하늘과 돌고래의 모습이 겹쳐질 때면 감히 사진을 찍기 민망할 정도로 장엄하다. 렌즈를 통해 보는 건 대자연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 # 총천연색 산호 유명… 보두후라에선 현지인의 참모습이 리조트는 형형색색의 산호로도 유명하다. 속사정을 들어보니 리조트에서 직접 산호를 기르기도 한단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면서 몰디브에서 천연 산호를 보는 게 쉽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호는 해양 생태계뿐만 아니라, 쓰나미 등 해양 재난 시에도 섬을 지켜주는 버팀목이 돼 준다고 한다. 해양 생물학자가 리조트에 상주하며 직접 관리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순수과학을 전공해서는 밥벌이조차 막막한 우리로선 꿈도 못꿀 말이다. 쿠다후라의 이웃 섬에는 현지인들이 생활하고 있는데, 여기가 또 인상 깊다. 보두후라란 섬이다. 보트로 5분이 채 안 걸린다. ‘큰’이란 뜻의 ‘보두’와 ‘섬’이란 뜻의 ‘후라’가 합쳐졌다. 즉 ‘큰 섬’이란 뜻이다. 참고로 ‘쿠다’는 ‘작은’이란 뜻이니, 리조트가 있는 곳은 ‘작은 섬’이란 뜻이다. 사실 리조트 천국인 몰디브에서 현지인들의 삶을 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보두후라에는 몰디브의 참모습이 숨쉬고 있다. 자연을 벗삼아 뛰어 노는 현지 아이들이 있고, 사진을 찍으려 하자 부끄러운 듯 웃으며 고개 돌리는 아낙네들이 있다. 이슬람 국가답게 높게 솟은 모스크는 섬의 가운데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몰디브에서라면 의무감에서 여행을 할 필요는 없다. 시간에 연연할 이유도 없다. 형형색색 산호초가 있고, 무리지어 노는 열대어가 있고,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파도소리도 있다. 신선이 따로 있을까. 글 사진 몰디브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여행수첩 ▲가는 길 대한항공에서 직항 전세기가 월·목요일 주2회 운행하고 있다. 인천에서 말레공항까지 9시간 정도 소요된다. 저렴한 항공편을 원할 경우 쿠알라룸프르와 싱가포르, 도쿄를 경유하는 노선을 이용해도 된다. ▲기후와 시차 몰디브는 연중 고온 다습한 열대기후다. 연평균 24~30도이며 5~10월은 강수량이 비교적 많은 편. 건기인 11~4월이 여행의 적기다. 시차는 한국보다 4시간이 늦다. 또 일부 리조트는 몰디브 시간보다 1시간 빠른 리조트 타임을 적용, 한국보다 3시간 느린 경우가 많다. 포시즌 쿠다후라도 리조트 타임을 적용한다. ▲화폐 루피(Rufiyaa)를 쓰지만 대부분 미국 달러가 통용된다. 신용카드도 사용할 수 있다. 다만 리조트 물가가 꽤 높은 편이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는 하는 게 좋겠다. ▲비용 항공과 숙박 등급에 따라 다르지만 ㈜클럽 아일랜드는 포시즌 쿠다후라를 최저 240만원에 제공하고 있다. 4~10월에는 1박을 무료로 제공한다. 숙박에는 조식이 포함돼 있다. 스노클링이나 크루즈 등 레크리에이션 프로그램은 별도의 비용이 추가된다. (02)512-5211. ▲기타 이슬람 국가인 몰디브 입국 시 술 반입이 금지돼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리조트에서 술을 판다. 전기 코드도 한국과 모양새가 다르지만 220V 어댑터가 방에 비치돼 있기 때문에 불편함은 없다. 인터넷 서비스도 제공된다.
  • 경기도-수원시, 광교 개발이익금 활용 마찰

    경기도가 광교신도시 내 도청 신청사 이전 비용을 신도시 개발이익금으로 충당하는 방안을 내놓자 수원시가 반발하고 나섰다. 8일 경기도와 수원시 등에 따르면 도는 지난달 2일부터 24일까지 도청사 이전의 타당성 등을 재검토한 뒤 현재 최종 종합검토보고서를 마련했다. 도지사 결재를 앞두고 있다. 최종 종합검토보고서에는 도청사 이전 여부와 이전 확정시 청사 규모, 재원 확보 방안과 건립 시기 등 구체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도는 당초보다 청사 규모를 축소해 신축하기로 가닥을 잡고 2012년까지 기본 및 실시설계 등 모든 행정절차를 마친 뒤 2013년 착공에 들어가는 안을 보고했다. 도는 이 보고서에서 청사를 이전하는 것과 관련해 청사 건립 재원 마련 방안을 3~4가지로 검토하면서 이 가운데 광교신도시 개발이익금을 활용하는 것을 하나의 방안으로 잡고 있다. 도청사가 신도시 기반시설에 속하는 만큼 개발이익금 일부를 청사 건립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논리에서다. 또 도청사 신축 이전을 당초 계획대로 할 것을 요구하는 광교신도시 입주 예정자들도 도청사 신축 이전에 1조 2000억원으로 추산되는 광교신도시 개발이익금을 사용하는 것을 용인할 수 있다는 입장을 도에 전달한 바 있다. 이에 광교신도시 공동시행자인 수원시는 “도청사는 신도시만의 기반시설이 아니다. 광교와 주변지역 기반시설 조성에 쓸 개발이익금을 도청사 이전비용으로 전용해서는 안 된다.”고 난색을 표하고 있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광교 개발이익금을 도청사 건립에 짓겠다는 도의 발상이 황당하다.”면서 “광교 사업지구의 90%의 땅이 수원지역이고, 여기에서 발생한 개발이익금은 광교와 수원의 부족한 공공시설 건립에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염 시장은 특히 “도에서 협의가 들어온다 해도 검토할 대상이 되지 않는다.”면서 “도가 신도시 개발이익금이 아니면 도청사 이전도 어렵다는 논리를 펴 공동시행자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도 관계자는 “재원 확보 방안 중 하나로 광교 개발이익금을 활용하는 안도 포함돼 있으나 최종 결정된 것은 아니다.”면서 “이 경우 개발이익금 사용에 대한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고, 공동시행자와 협의도 남아 있다.”고 말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은평 증산5구역 아파트 공급

    서울시는 7일 은평구 증산동 195 일대 증산5 재정비촉진구역에 2016년까지 최고 30층짜리 아파트 28개동 1704가구를 건립하는 내용의 계획안을 9일 고시한다고 밝혔다. 11만 2573㎡의 증산5구역은 시가 소형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지난 3월부터 시행한 ‘재정비촉진지구 내 주택재개발사업 용적률 상향계획’이 적용된다. 이를 근거로 기준용적률이 당초 190%에서 210%로, 상한용적률이 235.0%에서 263.7%로 각각 높아졌다. 이에 따라 전용면적 60∼85㎡는 당초보다 31가구 감소한 반면 60㎡ 이하는 174가구 늘어나 전체 가구 수는 당초 1561가구에서 143가구 증가했다. 임대주택은 270가구에서 292가구로 22가구 늘어났다. 증산5구역 아파트는 탑상형과 판상형 등 다양한 형태로 배치된다. 내부 보행통로를 통해 북측 어린이공원과 남측 녹지가 연결된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책꽂이]

    ●페이스북-초보자가 알아야할 모든 것(임문영 지음, 이지스퍼블리싱 펴냄) 글로벌 소셜네트워킹 서비스인 페이스북을 상세히 배울 수 있는 매뉴얼. 간단할 것 같으면서도 다가갈수록 다양한 페이스북의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답답해 속 터지는 초보자의 질문 10가지’, ‘페이스북의 기본기 1시간 완성’이라는 각 장의 제목처럼 ‘컴맹’도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 1만 4800원. ●아!마켓!돈(윤만하 지음, 나남 펴냄) 한국은행에서 30년을 근무한 금융전문가의 금융위기 대응론. 책 제목처럼 국제금리와 환율전쟁은 아마겟돈 전투를 연상시킨다는 게 저자의 얘기다. 책은 금융위기로 많은 나라가 희생되고 있지만 위기 뒤 더 큰 기회가 찾아올 수 있다고 조언한다. 2만원. ●윤재환의 신부여팔경(윤재환 지음, 스펙트럼북스 펴냄) 한·중·일 비교문화연구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저자가 20여년 동안 백제의 수도였던 부여를 답사하고 안내해온 결과물이다. 빼어난 여덟곳의 경치를 담은 그림 형식을 빌려 부여를 들여다보고 있다. 임옥상, 김억, 허진 등 화가 17명, 박재동, 이희재, 오세영 등 만화가 13명의 붓에서 살아난 금성산, 부소산, 백제탑, 궁남지 연꽃, 무량사 매월당 등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1만 5000원. ●꿈PD 채인영입니다(채인영 지음, 샨티 펴냄) 드림 프로듀서, 즉 ‘꿈 PD’를 자처하는 저자가 고민과 아픔을 가지고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을 상담해온 정신과 의사로서의 27년 경험을 살려 사람들에게 꿈을 찾아주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쓴 책이다. 저자는 꿈꾸는 자만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꿈을 포기하는 것도, 꿈을 이루는 것도 부모 자식 간에 대물림되는 경향이 많다는 지적이 인상 깊다. 1만 3000원.
  • 경기 공공기관 이전 부지 매각 ‘골치’

    부동산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지방으로 이전하는 경기지역 공공기관 부지 매각이 삐걱거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이전 비용 마련을 위해 부지를 아파트용지 등으로 용도 변경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일 경기도와 국토해양부 공공기관지방이전추진단에 따르면 도내 52개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옮기기 위해 2012년 말까지 지자체나 일반에 부지 매각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현재 매각이 성사된 곳은 용인 조달청 품질관리단 등 6개 기관에 불과하다. 매각이 결정된 기관 가운데 조달청 품질관리단(2개 필지, 1만 9696㎡)과 여주 국립원예특작과학원(2만 8965㎡), 고양 국립수산물품질검사원(4549㎡)은 모나미와 하림, 파리크라상,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 각각 54억∼362억원에 팔렸다. 또 수원 국립농업과학원(4942㎡)과 도로교통공단(1898㎡)은 각각 66억원과 46억원에 수원시가 매입하기로 했다. 안양 국립수의과학검역원(5만 6309㎡)의 경우 안양시가 1292억원에 사들이기로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안양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과 국립식물검역원, 국립종자원 등 3개 기관은 2차례 유찰되며 재감정 평가로 당초보다 72억원 떨어진 647억원에 한국자산관리공사의 온비드를 통해 일괄 매각하기로 하는 등 대부분 공공기관이 부지 매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 주택건설에 따른 사업성이 보장되지 않아 건설사 등이 부지 매입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공공기관 부지 매각이 장기간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이전비용 마련에 차질을 빚는 것은 물론 매각 지역의 슬럼화도 예상되는 만큼 분할 매각 등 다양한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공공기관 이전에 따른 후속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데다 자치단체장의 고유권한인 이전부지 용도변경을 위한 도시관리계획권마저 중앙정부가 갖고 있어 자치단체의 불만을 사고 있다. 경기개발연구원 김제국 선임연구위원은 “공공기관 이번 부지 활용에 대해 정부가 명확한 입장이나 원칙을 제시하지 않고 있어 정부가 이전 비용 마련을 위해 부지를 용도 변경할지도 모른다는 지자체의 우려가 공감대를 얻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이럴 경우 수도권 공간구조를 왜곡하고 과밀화를 심화하는 등 공간질서를 파괴해 삶의 질을 낮추게 될 것”이라며 “이는 수도권의 질적 발전과 국토균형발전이라는 정책목표와도 상충된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경기도는 “공공기관 매각이 지연되면 결국 아파트용지로 팔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전부지에 대해 지자체가 도시관리계획 등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공공기관이전특별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는 공공기관 이전 특별법을 통해 이전부지 활용계획이 지방자치단체의 도시관리계획에 반영될 수 있도록 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女談餘談] 고3 남 동생의 수능, 그리고 부모의 마음/김정은 정치부 기자

    [女談餘談] 고3 남 동생의 수능, 그리고 부모의 마음/김정은 정치부 기자

    2001년 11월 7일. 200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날이었다. 그해 수능은 언론에서 ‘널뛰기 수능’, ‘난이도 쇼크’라 평가할 정도로 전년도에 비해 어렵게 출제됐다. 수능 날 아침, 집안 식구들의 신경은 오롯이 내게 집중됐다. 아버지 승용차에 다섯 식구들이 모두 몸을 싣고 고사장으로 향했다. 당시 10살,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막내 남동생은 졸린 눈을 비비며 “큰누나, 시험 잘봐.”라고 응원했다. 용돈을 모아 전날 미리 사 놓은 찹쌀떡과 합격엿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차에서 내리려는 내게 선물했다. 교문을 들어서는데 가족들이 더 긴장한 것이 역력히 느껴졌다. 어머니는 1교시 언어영역 시험이 치러진 뒤 방송에서 ‘올해 언어영역이 예년에 비해 어려웠다.’는 뉴스를 듣자마자 차를 몰고 시험장 앞으로 달려오셨다. 수험생인 딸보다 본인이 더 긴장하셨던 어머니는 제2외국어영역이 끝날 때까지 시험장 앞에서 라디오 뉴스를 들으며 6시간 내내 큰딸을 기다렸다. 어머니는 오후 7시쯤 시험을 보고 나오는 딸의 모습이 시야에 보이자 저 멀리서 손을 흔드셨다. 이후 딸을 부둥켜 안고 연신 “우리 딸, 너무 고생했어”라고 말씀하시며 쓰다듬어 주셨다. 9년의 시간이 지났다. 10살 코흘리개 남동생은 어느덧 고3 수험생이 됐다. 어머니는 지난 9년 동안 큰딸, 작은딸 수능을 치렀다. 그래서일까. 올해 어머니는 베테랑 고3 학부모의 모습을 보여 주셨다. 초보처럼 긴장하지 않으셨고, 침착하게 동생의 수험 생활을 도왔다. 하지만 수능 당일이었던 지난 18일, 막내를 시험장에 보낸 뒤 조용히 근처 1567m 높이의 태백산에 올라 기도를 드리고 오셨다. 수능 당일만큼은 많이 긴장하셨던 것 같다. 수능 이후부턴 온·오프라인 입시 박사를 자처하고 계신다. 각 대학의 홈페이지를 찾아 입시전형을 살피고, 입시 설명회가 있다고 하면 지역을 막론하고 찾아다니신다. 분명 과거보다 진화한 모습이다. 어머니뿐이랴. 전국의 고 3학부모 모두가 같은 마음과 행동일 것이다.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이름 앞에 ‘부모’가 붙는 순간, 그들은 나를 버리고 남을 위해 산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해 주는 입시철이다. kimj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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