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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민 통행로·초록 쉼터로… 폐도의 부활

    주민 통행로·초록 쉼터로… 폐도의 부활

    꼬불꼬불한 도로를 곧게 펴면 교통사고를 한층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짧은 구간일 경우 반원 모양으로 남는 자투리땅은 쓸모없게 되기 십상이다. 지방자치단체 등 소유자가 매각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 새 도로가 생기거나 선형 개량·확장을 거쳐 차량 통행이라는 주목적을 상실한 기존 길, 즉 폐도도 일부를 남겨 재활용하지 않으면 흉물로 전락하고 만다. 바로 옆에 도로를 새로 뚫으면서 생긴 폐도를 길로 착각, 자동차를 잘못 운전해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방치했다가는 위험 요인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이렇게 아주 작지만 위험한 폐도가 여러 사람을 위해 재활용되고 있다. 지자체가 관리하는 도로 총연장 14만 6935㎞ 가운데 폐도는 모두 전국 622개 지점 200.2㎞에 이른다. 재활용 사례를 용도별로 살펴보면 주민 통행로 279곳 115.3㎞(57.6%), 녹지대나 공원 등 여가부지 활용 160곳 42.2㎞(21.1%), 주차장 및 도로 관리 장비품 보관소 활용 48곳 19.3㎞(9.6%)다. 기존 부지를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대개 5억원 안팎의 저예산 사업에 속한다. 이 밖에 미활용이 135곳 23.4㎞(11.7%)다. 30일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정부는 위험도로 구조개선사업을 벌여 지자체에 예산을 지원한다. 충북 제천시는 신동 640-70 도로 선형 개량(굽은 곳을 반듯하게 만드는 것)사업을 통해 폐도 부지를 공원으로 꾸며 호평을 듣고 있다. 지자체와 정부가 힘을 합쳐 이웃한 주민들이 산책과 운동 등을 하며 건강을 챙기고 지나가던 통행인들도 잠시 들러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한 공간이다. 경북 문경시는 동로면 마강리 490 일대 폐도 부지 1260㎡(382평)에 아담한 정자를 세워 눈길을 끈다. 야간 안전을 위해 조명탑과 편안한 의자 등을 설치했다. 아울러 고장을 알리는 효과를 겨냥해 ‘문경 오미자’와 나무 장승도 들여놓아 손님을 맞고 있다. 또 충남 천안시는 바이오 산업단지 근처인 동남구 동면 송연리 126 일대 폐도에 휴게시설을 갖춘 소공원과 지역 특산물인 오이를 형상화한 시내버스 승강장을 마련했다. 행자부 관계자는 “마을 진입로, 운전자 휴식 공간, 도로 관리용 제설 및 터널 관리 시설 등으로 잘 활용되도록 협조체계를 다잡겠다”며 “국내외 사례를 연구해 신재생 에너지 설비 설치, 생태 숲 조성 등 토지의 가치를 증대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24] 까치밥, 똘레랑스 그리고 정신건강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24] 까치밥, 똘레랑스 그리고 정신건강

    한 때 우리 사회에서 ‘똘레랑스(Tolerance)’라는 말이 회자됐었지요. 프랑스 사람들이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이 아닌 타자, 자기 것이 아닌 다른 문화과 관습을 능동적으로 포용한다는 것인데, 저는 오래 전 홍세화씨의 책에서 이 말을 실감나게 접했습니다. 이 말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것은 이타적인 삶, 타자를 위한 배려가 부럽기도 했고, 그렇게 너그러운 그들의 삶에 자꾸 낯설게만 투영되는 ‘나’와 ‘내 주변’의 옹색한 현실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저의 이런 생각이 한 때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한 유럽의 강대국들이 전세계에 이식시킨 패권적 이념에 길들여진 식민적 속성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국을 ‘신사의 나라’로 여기지도 않고, 프랑스 문화가 재밌을지언정 우월하다고 믿지도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국부(國富)나 인종적 특성이 부러운 게 아니라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그들의 열린 자세가 부럽고, 그로부터 발원한 그들의 치열하면서도 자유분방하고, 발랄하면서도 격조가 있는 삶의 자세를 부러워합니다. 아마 그런 그들의 삶이 상당 부분 똘레랑스와 결부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게 필자의 생각입니다.  ●가지지 못한 자의 아름다운 나눔 언제부턴가 우리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매몰되어 살아 왔습니다. 그 정도가 지나쳐 톨레랑스의 가치를 알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마치 ‘문명 밖의 문명’처럼 낯설거나 이질적으로 비치기도 할 것입니다. ‘나만 좋으면 된다’거나 ‘항상 내가 우선’이라는 이 몰염치한 습속은 일제 암흑기와 한국전쟁 등 독하지 않으면 살아 남기 어려운 핍진한 환경을 헤쳐나오면서 체득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바둑의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먼저 내 말을 살린 뒤 상대방의 말을 공격하라)’라는 격언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구명도생부터 해야 했으니, 그 참담한 삶 속에서 다른 사람이나 다른 것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던 것이지요.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옛말에서 보듯, 항상 궁핍하고 불안정한 일상 속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챙겨야 했고, 그렇게 아등바등 뺏고, 감추며 살았지만 쌀독은 항상 비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들 했으니, 그런 터수에 언감생심 무언가를 베풀면서 사는 여유를 갖는다는 게 호사이고 꿈일 뿐이었지요. 그렇다고 우리네 삶이 똘레랑스와 전혀 무관했던 것은 아닙니다. 아니, 우리 조상들은 유럽의 똘레랑스보다 훨씬 본원적인 베풂을 알았고, 그런 가치를 존중했습니다. 가진 자의 시혜보다 가지지 못한 자의 배려가 더 아름다운 것은 먹고 쓰고 남은 것을 덜어 주는 것이 아니라 당장의 허기와 필요를 덜어야 하는 일이고, 최소한의 자기 몫을 쪼개는 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았고, 그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이는 개국 이래 단 한번도 국통이 끊이지 않았던 장구한 역사가 증언하는 사실입니다. 시골집 뒤란의 늙은 감나무 가지 끝에 매달린 ‘까치밥’은 또 어떻습니까.  ●‘오로지 주고자 했던’ 까치밥의 철학 ‘초록이 지쳐 단풍 들더니’ 가을이 깊어져 갑니다. 이슬이 서리로 변하면서 이내 살풍경한 겨울이 되어 온 산야를 흰눈이 뒤덮을 무렵이면 텅 비어 삭막한 풍경 가운데에다 마치 누군가 작심하고 붉은 물감으로 방점이라도 찍어놓은 듯 선연한 붉음이 눈길을 끌곤 했지요. 바로 까치밥입니다. 가을걷이의 마지막은 감을 따 갈무리하는 것인데, 개량되기 전의 예전 감은 겉이 붉어보여도 속살을 베어물면 여간 떫지 않았습니다. 그걸 따모아 항아리나 석작 속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가 달디 단 홍시가 되면 하나씩 꺼내 먹곤 했던, 요긴한 겨울 군입거리였지요. 요즘의 개량종 단감과 달리 예전의 토종 감나무는 집안의 조왕신 같은 것이어서 크게 키워 비바람을 막고, 시원한 그늘도 드리우며, 먼 동구밖에서 봐도 한 눈에 우리 집임을 아는 장소성까지 부여했으니 감나무가 바로 산이고, 정자이며, 스카이라인이고, 랜드마크였지요. 스무 척, 서른 척 키를 키운 탓에 감을 딸 때면 큰 가지를 타고 올라가 간짓대로 투덕거리곤 했는데, 해거리를 하지 않을 때는 워낙 많이 열려 그걸 따는 것도 일이었습니다. 정신없이 따다 보면 어느 새 가지가 텅 비고, 꼭대기 가지 끝에 잔챙이 감이 서른 개, 마흔 개씩 남습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그건 까치밥하자. 그만 내려와라”시며 일을 매조졌지요. 아닌 게 아니라 날이 추워 먹거리가 마땅찮으면 까치가 가지 끝에 내려앉아 남은 감을 쪼곤 했는데, 그래서 까치밥이라고 불렀겠지요. 찬서리에 익어서 더 붉어진 까치밥이 얼음 들어 푸르딩딩한 하늘을 배경으로 매달린 모습을 보노라면 문득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곤 했는데, 그런 느꺼운 마음이 미물에게라도 뭔가를 베풀 수 있다는 은전의 여유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까치를 위해 가지 끝에 감을 남겨두는 일은 어떤 강제나 규율도 없이 온전히 스스로 결정하는 있이었는데, 지금보다 훨씬 궁핍하게 살았던 예전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표도 나지 않게 그런 덕성을 실천함으로써 스스로의 체온을 느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루 하루 끼니 걱정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빈 콩밭에 ‘참새 몫’으로 수수목을 남겨두거나, 대보름날 정성껏 무친 나무새를 이것 저것 바가지에 덜어 소에게 먹일 턱이 없지요. 까치든, 소든 사람에 견주면 하찮은 미물이고 축생인데도 말이지요. 우리의 핏속에는 미물일지라도 곁에 머무는 것이면 무엇이든 챙기고 걱정해주는 미덕이 있었습니다. 제 목구멍으로 무엇을 넘겼는지도 모를 궁핍 속에서 살면서 그런 짓이 가당키나 하냐고 생각한다면 조상들의 정신세계를 더 찬찬히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들이 넉넉하지 못한 것도 맞고, 그래서 짜디 짠 자반 한입 못 먹어보고 해를 넘기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그걸 그다지 아쉽게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는 말처럼 살림이 요족해 육고기를 줄창 먹고 살았다면 간사한 입맛이 남아 ‘땡기기라도’ 했겠지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원래의 삶이 안빈(安貧)에 길들여진 탓에 배만 채울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했지요. ‘사흘 고기맛을 못 보면 소증 난다’는 말은 덜 떨어진 권문세가의 논다니들 말이지, 하냥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살았던 사람들의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까치 같은 미물까지 챙기며 살았으니 그걸 먼 유럽의 똘레랑스와 견준다는 게 오히려 이상합니다. 유럽의 똘레랑스가 관습과 제도의 결과라면, 우리의 나눔은 태생적인 끌림의 결과이니까요. 예전에 흔했던 보시(布施)는 어떻습니까. 불교의 수행법으로, 베푸는 모든 행위를 이르는 보시는 불가에서 이타정신(利他精神)의 정점으로 이해합니다. 더러는 보시를 복을 받기 위해 하는 ‘이기적인 이타’라고도 보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설령 보시를 하면서 되받을 일을 생각했더라도, 그 복이라는 게 실체도 없고, 아무도 담보할 수 없는 불확실한 대가여서 거기에 기대 자기 것을 나눌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보다는 자기 것을 나누면서 스스로 위로받기 위해 ‘복’을 생각했다는 게 현실적이지요. 마찬가지로 까치밥 역시 ‘오로지 주고자 했던’ 아가페적인 나눔의 실천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서구의 똘레랑스 정신을 ‘우리는 갖지 못한 포용이자 관용’이라고 부러워만 할 일은 아니지요.  ●정신 건강 혹은 영혼의 안식 이치가 그렇지 않습니까. 프랑스의 똘레랑스는 1789년의 대혁명 이후에 사회적 통합을 위해 주창한 근대화의 기제 속에서 체화된 개념인데, 우리의 그것은 어떤 이념이나 사상도 작용하지 않은 자연발생적 정서였고, 또 모르긴 해도 자연의 모든 것에 정령이 깃든다는 원시 토테미즘과도 무관하지 않을 터이니 비록 우리의 정서가 반듯하게 각이 잡혀 세련되지 못하고 투박하단들 제도적 산물인 똘레랑스와 같은 선에서 견준다는 게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 까치밥을 보면서 궁핍하지만 영혼이 건강하게 사는 지혜를 배웁니다. 지혜라고 했지만, 대단한 사유나 거창한 논리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그냥 물이 흐르듯, 아니면 밥 먹고 숨 쉬듯 자연스럽게 마음의 부름에 따르면 되는 일이고, 거기에 대단한 결심이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하지요. 필자가 어렸을 때의 경험입니다. 유월 더운 날, 온가족이 나서 산비탈 보리밭에서 보리를 베고 있었지요. 거진 다 베어갈 무렵, 갑자기 까투리 한 마리가 요란하게 꿩꿩 거리며 나대는 게 아니겠습니까. 시골에 흔한 게 꿩이라 대수롭게 여기지도 않았는데, 그 때 할머니가 허리를 펴시더니 “오늘은 여기서 손 털자”고 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직 베지 못한 보리가 예닐곱 평이나 남았는데 마치자는 말에 다들 의아해 하자 할머니는 “저 쪽에 새끼를 쳐놨길래 꿩이 저 난리지”라며 “한 이레면 새끼 데불고 나갈테니 그 때 와서 마저 베면 된다”고 확실하게 선을 그으시더군요. 집안 어른 말씀에 가타부타할 수도 없어 그렇게 일을 마쳤는데,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보리밭에 다녀 오신 아버지가 “꿩이 산으로 갔는지 둥지가 비었더라. 내일 가서 남은 보리 정리하면 되겠다”고 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돌이켜 생각하면, 할머니는 그 일을 통해 우리에게 두 가지를 가르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하찮은 꿩이라도 새끼를 거느릴 때는 해코지해서는 안 된다는 공생의 철학이 하나이고, 보리밭 어름에서 꿩이 우짖는 걸 보고 사연을 헤아릴 줄 아는 지혜가 둘입니다. 보리야 며칠 뒤에 베어도 축날 일이 없으니 흔쾌히 그리 한 것이지만, 그렇더라도 나 아닌 남을 생각하는 일은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할머니와 어머니는 김장김치나 간장·된장 등을 넉넉하게 준비해 이웃들과 나누기도 했는데, 그렇게 나눈 뒤에는 항상 “전답이 넉넉치 않아 가을이라고 거둔 것도 없을텐데, 겅개라도 좀 나누니 맘 편하다”며 기꺼워들 하셨지요. 그래선지 할머니는 그 시절의 여건을 생각하면 무병장수하셨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집안 일을 하시는 등 강건하셨습니다. 그게 어디 제 할머니만의 일이겠습니까. 살림이나 품성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확실히 예전에는 다들 그렇게 나누고, 살피며 살았습니다. 그런 삶은 확실히 건강했습니다. 필자가 낳고 자란 마을이 100여호 쯤 됐는데, 치매를 겪은 노인은 딱 두 사람만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더러는 ‘노망’이니 ‘망령’이니 수근대기도 했지만, 삼이웃이 너나 없이 돈독했고, 우애가 깊었지요. 그러니 온 마을이 떵떵거릴 만큼 크게 잘 사는 집은 없었어도 굶주릴 일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오고가다 마주치면 살갑게들 인사를 나눴고, 철부지들이라도 위, 아래를 알았습니다. 쌀독이 비면 아무 집에나 찾아가 손을 벌렸고, 장날이 되어 뭐든 돈을 바꾸면 식량을 곧 되갚았습니다. 농투산이들 사이에 흔한 물꼬싸움을 해도 악다구니가 없었습니다. 늙수그레한 노친네들이 다툴 일 없도록 거중조정을 해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더러는 앓거나 다치기도 했지만, 젊은 나이에 폐병으로 요절한 누구를 빼고는 흉변이랄 게 거의 없었습니다. 그 시절엔 다들 가난을 팔자라고 여겼으니 유리걸식하는 처지만 아니라면 그걸 딱히 불행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차고 넘치지는 않았지만, 욕심이 없으니 많든 적든 자기 처지가 요족하다고 여기며 살았고, 그런 중에 서로 보듬고 나누었으니 심화를 끓이거나 안달복달할 일도 없었지요. ●“당신은 건강한 삶을 위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지금이야 ‘칠십 청춘’이라고들 하지만, 예전에는 태어나 육십갑자를 다 채우고 맞는 환갑이 흔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환갑잔치는 놀이판이기도 했지만 혈족들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평생 농삿일로 허리가 굽은 채 환갑을 맞은 마을 어르신이 말합니다. “내가 육십평생을 어떻게 살았는지 모를 일이다. 한눈 안 팔고 살아 전답도 장만했고, 자식 대학도 보냈는데, 그러느라 허리는 휘고 낯바닥은 감탕이 되었지만 못 살았다는 생각은 안 든다. 헤프지도 않았지만, 필요할 땐 인심도 쓰면서 산 덕분에 죽어서 연옥은 면할 듯도 하고…”. 그 어르신은 술로 목을 축인 뒤 말을 이어갑니다. “나야 배우지 못해 세상의 이치를 알 턱이 없지만, 사는 게 별것 아니다. 혼자 사는 세상이란 없으니 형제끼리는 우애로, 이웃끼리는 정으로 살믄 될 일이다. 죽고 사는 것이야 인력으로 어쩔 수 없으니 그건 걱정할 것 없고, ‘나 하나 잘하믄 세상이 다 좋은 것이다’고 믿고 살았는데, 진짜로 내가 그렇게 살았는지는 나보다 식솔들과 이웃 지기들이 더 잘 알 일이다.” 건강하게 사는 많은 조건들 중에서 당신은 무엇을 첫 손에 꼽겠습니까.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각자 주관적인 판단이 있을 뿐이지요. 무섭다는 암도 피하고 싶고, 암 아니라도 안 아프고 살기를 바라기도 할 것입니다. 어떤 이는 죽을 때까지 자기 몸 자기가 건사하기를 바랄 것이고, 또 어떤 부류는 돈 좀 많이 모아 쭈글거리지 않은 노후를 보내고 싶어할 수도 있습니다. 모두 옳고, 부러운 바람이지만 저는 여기에 한 가지만 보태고 싶습니다. 스스로 가진 능력 이상을 거머쥐려는 욕심은 좀 덜고, 가진 것 조금이라도 떼어서 베풀며 살았으면 하는 소망이 그것입니다. 물론 의무감으로 할 일은 아니고, 떼돈 들여 큰 일을 벌이자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어버이가 그러셨듯이 감나무 가지 끝에 까치밥 몇 알 남겨두거나 꿩의 처지를 살펴 보리 베는 일 며칠 늦춰주는 그런 일을 하며 살자는 뜻입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자기 배만 채우려 하지 않고 욕심을 덜어내는 일이며, 자기 주장만 하지 않고 이기의 벽을 허무는 일이며, 좀 번거롭더라도 남의 처지나 형편에도 한번쯤 따뜻한 눈길을 주는 배려입니다. 빨갛게 언 발가락을 털어가며 겨울을 나야 하는 까치 등속의 미물에 대해 갖는 측은지심이 어디 불가(佛家)만의 가르침이겠습니까. 그 사소하다 못해 하찮기까지 한 까치밥에서 서구의 똘레랑스에는 없는 ‘우리다운 나눔과 배려’의 원천을 봅니다. 그럴 수 있다면 조금씩 베풀면서 남들의 따뜻한 시선 속에 머무는 것, 그리고 편안한 자기 위안을 얻는 것, 그런 삶이 건강한 삶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정신세계가 강퍅하지 않고 풍요로워서 갈수록 환자가 늘어난다는 우울증이나 착란, 도착 그리고 치매까지도 사회적 유병률이 훨씬 낮아질 것이고, 그런 변화가 우리들 개개인의 건강으로 확인되지 않겠습니까. 병이야 의사가 고치는 것이지만, 병문(病門)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니까요. 베풀며 산다고, 여유롭게 산다고 모든 병마를 피해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정신의 세계만큼은 훨씬 정갈하고 넉넉해질 것이며, 그렇게 살다보면 흔히 말하는 세상의 번뇌와도 조금은 멀어지게 되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병마도 피할 수 있어 우리의 삶이 더 따뜻하고 안온할 것이라는 믿음, 그것이 마음의 병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양지가 되지 않겠습니까. jeshim@seoul.co.kr
  • [아하! 우주] ‘가족 단위 혜성’이 공전하는 이상한 외계 별 포착

    [아하! 우주] ‘가족 단위 혜성’이 공전하는 이상한 외계 별 포착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행동으로 천문학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외계 별 ‘KIC 8462852’. 지구로부터 약 1400광년 거리에 있는 이 항성에 관한 최근 소식이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공식 웹사이트에 25일(현지시간) 소개됐다. 천문학자들은 지난 2011년과 2013년 케플러 우주망원경을 사용해 지구와 비슷한 크기의 외계행성을 찾는 ‘케플러 미션’ 도중 갑자기 극단적으로 어두워지는 특별한 이 별을 관측했다. 당시 이 외계 별은 평소의 80% 정도밖에 안 되는 밝기로 어두워졌고 이는 천문 관측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때문에 연구자들은 이 별이 어두워지는 원인을 두고 ‘무언가’가 그앞을 가리고 있다고 추정했다. 우선 그럴듯한 설명으로 별 주위에는 가족 단위의 혜성이 무더기로 공전하고 있다는 가설이 지난 9월 연구논문으로 발표됐다. 이때 또 다른 원인으로 행성이나 소행성이 충돌로 생긴 많은 파편이 이 별 주위를 돌면서 가렸을 수도 있다는 이론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미국 아이오와주립대의 천체물리학자인 마시모 마렝고 박사팀은 스피처 우주망원경을 통해 얻게 된 자료를 사용해 앞서 나온 가설의 신빙성을 뒷받침했다. ‘천체물리학 저널 레터’(The Astrophysical Journal Letters) 최신호에 실린 이 연구논문에서 이 별을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적외선상의 빛으로 관측 연구하는 것이다. 참고로 케플러 망원경은 이 별을 가시광선 상에서 관측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이 별을 가린 물체가 행성이나 소행성 사이 충돌로 발생한 파편이라면 별 주위에서 적외선이 초과하는 것이 감지돼야 한다. 먼지처럼 부스러진 미세한 암석은 적외선 파장에서 감지되기에 알맞은 온도를 갖고 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이번에 연구진은 적외선을 감지할 수 있는 스피처 우주망원경을 사용했다. 스피처 담당자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의 마이클 베르너 박사는 “스피처는 별 주위 먼지에서 적외선 방출을 감지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피처를 사용해도 별 주위 먼지에서 적외선이 초과하는 것을 감지하지는 못했다. 이는 행성이나 소행성 충돌로 생긴 암석이 아니라 온도가 낮은 혜성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 혜성은 공전 주기가 매우 길고 공전 궤도가 편심성이 크기 때문에 가능한 이론이라는 것이다. 즉 2011년 케플러 미션 당시 이 별의 빛을 가렸던 천체는 가족 단위의 혜성의 선두인 매우 큰 혜성일 수 있다. 이후 2013년에는 나머지 혜성 파편이 별빛을 다시 차단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마렝고 박사는 이 별의 사례를 확신하기 위해서는 추가 관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KIC 8462852는 매우 이상한 별”이라면서 “이번 사례는 처음 펄서를 발견했을 때를 떠올린다”고 설명했다. 마렝고 박사가 처음 발견한 펄서는 그때까지 아무도 본 적이 없는 이상한 신호를 방출했다. 이 첫 신호를 발견했을 당시 ‘작은 초록외계인’(Little Green Men)이 보내는 신호라고 생각해서 ‘LGM-1’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하지만 이 신호는 결국 펄서라는 천체가 방출하는 자연적인 현상으로 밝혀졌다. 마렝고 박사는 “우리는 아직 이 별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면서 “하지만 이는 이 별을 매우 흥미롭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NASA/JPL-칼텍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추신수 1억원 ‘연타석 기부 홈런’

    추신수 1억원 ‘연타석 기부 홈런’

    메이저리거 추신수 선수가 작년에 이어 올해 또 다시 1억여원을 쾌척하며 따뜻한 나눔 행보에 나선다. 추신수 선수는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26일 오전 10시15분부터 10시45분까지 서울 중구 무교동 어린이재단 본부 11층 대회의실에서 기부금 1억 1000만원을 전달할 예정이다. 지난 2011년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홍보대사로 위촉된 후 지속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진행해온 추신수 선수는 지난해 성금 1억원을 기탁하며 체육 유망주 및 환아 다섯 가정을 지원한 바 있다. 이번에 지원할 성금은 추신수 선수의 기부와 함께 스포츠용품 전문회사 나이키에서 의류를 지원하며 마련됐다. 이날 전달식에서 추신수 선수는 부인 하원미씨와 함께 참석해 야구 꿈나무 김신호(19·부산동의대 1)군과 미래의 레슬링 국가대표를 꿈꾸는 신영철(17세·전남체고 2)군에게 직접 후원금을 전달하며 아이들의 꿈을 응원한다. 후원금은 김군과 신군 외에 도움이 필요한 인재양성아동 및 환아를 지원하는 곳에 사용될 예정이다. 또한, 올 한 해 동안 추신수 선수에게 후원금을 전달받으며 하키 선수의 꿈을 키우고 대학에 합격해 내년 초 입학을 앞두고 있는 두효정(19, 대구과학대 레저스포츠학과 입학 예정)양이 깜작 방문해 추 선수 부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할 예정이다. 이명선 전문기자 mslee@seoul.co.kr
  • 남다른 기부철학, 국내 아기물티슈 브랜드 베베숲 주목!

    남다른 기부철학, 국내 아기물티슈 브랜드 베베숲 주목!

    아기나 어린이를 위한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이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특히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지고 아동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민간 기업 차원의 후원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글로벌 기업 ‘탐스’의 경우 신발 한 켤레가 팔릴 때마다 또 다른 한 켤레를 아프리카 등에 있는 어려운 어린이에게 기부하는 후원 활동을 펼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세계적인 보험 금융서비스 기업인 알리안츠는 세이브더칠드런과 파트너쉽을 맺고 1995년부터 국내외 심장병 어린이들의 수술비를 지원해오고 있다. 국내 아기용품 브랜드들 중에서는 베베숲이 눈에 띈다. 프리미엄 아기물티슈 베베숲은 최근 이른둥이 후원을 위한 SAFE-B 에디션 출시를 예고하고, 판매 수익금의 일부를 서울대학교병원 어린이병원 후원회에 기부해 이른둥이들을 위해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베베숲은 이번 이른둥이 후원뿐 아니라 아동학대 예방 및 아동인권 보호를 위해 많은 사회공헌활동을 진행해왔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함께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아이사랑 1만 서명’ 캠페인을 진행해 서명 하나당 물티슈 1개를 기부했으며 아동 보행자 및 유모차 안전을 위한 캠페인에 참여해 라이트 스티커를 배부하기도 했다. 이 같은 베베숲의 시회공헌 활동은 회사 자체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 SAFE-B의 일환들이며 SAFE-B 프로젝트는 프리미엄 아기물티슈 ‘베베숲’이 아기와 부모 모두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자체적으로 진행 중인 프로젝트다. 이 밖에도 베베숲은 매년 태아와 임산부를 위한 태교콘서트 및 음악회를 후원해오고 있으며, 산모교실, 산후조리원 등을 후원하고 있다. 한편, 아기 물티슈 브랜드 베베숲은 건강한 아기 피부를 구현하기 위해 베베숲만의 특별한 Baby Skin LAB 솔루션을 구축, 전문 연구원과 피부과 전문의로 구성된 전문 연구진의 끊임 없는 다양한 연구를 통해 제품의 성능을 높여 아기 피부에 적합한 제품을 개발해오고 있는 프리미엄 물티슈 제조 회사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낯선 동식물 모형들, 신선한 충격

    낯선 동식물 모형들, 신선한 충격

    현대미술은 캔버스가 아닌 다양한 매체에 다양한 방식으로 작가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관람자에게 색다른 감동을 안긴다. 그런 점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의 한 명으로 꼽히는 벨기에 출신의 설치미술가 카르스텐 휠러(54)의 개인전이 25일부터 서울 삼청로 PKM갤러리에서 열린다. 농업과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고 식물병리학 연구소에서도 근무한 경력이 있는 과학자이자 예술가인 휠러의 작품은 관람객과 공간, 관람객과 작품 간의 상호 소통을 유도하면서 원초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실험적인 성격이 강하다. 2000년 프라다 재단 전시에서 선보인 ‘거꾸로 선 버섯 방’은 붉은 빛깔의 독버섯들이 거꾸로 매달린 채 관객을 홀리듯이 천천히 회전하는 작품이다. 2006년 런던 테이트모던의 터바인홀에 설치했던 대형 미끄럼틀 ‘테스트 사이트’와 2011년 뉴욕 뉴뮤지엄 개관전에서 선보인 미끄럼틀은 유쾌하고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공간에 대한 관람객의 인식을 뒤흔들며 설치미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2010년 광주비엔날레에서는 거울로 이뤄진 7개의 자동문 설치작업을 통해 주목을 받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인지도와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며 순간적으로 새로운 공간에 고립되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마주함으로써 관람객은 주인공이 된 듯한 흥미로움과, 끊임없이 확장과 축소를 반복하는 공간에 갇히는 두려움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경험하는 작품이다. 국내에서 열리는 휠러의 첫 개인전인 이번 전시는 ‘50%’라는 제목으로 휠러의 근작과 신작 등 20여점을 선보인다. 그의 대표 조각작품 시리즈로 꼽히는 ‘자이언트 트리플 버섯’ 시리즈는 대형 버섯모형으로 흰색 점이 있는 새빨간 광대버섯과 다른 종류의 버섯으로 이뤄져 기이한 분위기를 준다. 샤머니즘 역사 속 광대버섯의 향정신성 성분과 주술적 맥락에서 영감을 받은 작업으로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또 다른 문화 존재의 가능성과 문명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모든 것이 거꾸로 보이는 고글 ‘업사이드-다운 고글’과 보라색 ‘문어’, 초록색의 기이한 동물 모형 작품 또한 대상과 장소에 대한 낯선 경험을 제공한다. 현재 스웨덴 스톡홀롬에서 작업 중인 카르스텐 휠러는 뉴욕 뉴뮤지엄, 밀라노의 프라다 재단, 런던 테이트 모던, 프랑스 디종의 르 콩소르시엄 등 각국의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으며 2003년,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와 2010년, 2014년 광주 비엔날레에 출품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눈앞의 장관만 봤니 하늘위 가을도 보자

    눈앞의 장관만 봤니 하늘위 가을도 보자

    갱 영화 ‘밀러스 크로싱’의 첫 장면. 조붓한 숲길을 따라 주인공이 걷고 있다. 그의 시선은 숲 위 쪽에 고정돼 있다. 만추에 이른 나무들. 누렇게 물든 나무 끝에 파란 하늘이 걸려 있다. 이 장면 보자니 머리가 띵하다. 여태 본 적 없는 신선한 카메라 앵글 때문이다. 숲에 들면 늘 앞만 봤다. 머리 들어 나무 위 세상을 보려 한 적은 사실 드물다. 늘 가던 숲도 시각을 바꾸면 다르게 보인다. 촬영감독의 카메라는 그걸 말하려는 것이지 싶다. 어느덧 가을도 끝자락. 가을 보내는 의식 치르기 딱 좋은 곳이 대전에 있다. 장태산 메타세쿼이아 숲이다. 초록의 서슬 퍼랬던 메타세쿼이아가 ‘단풍 엔딩’의 끝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가을 가기 전 그 숲 찾거든 부디 머리 들어 하늘 한 번 바라볼 일이다. ‘밀러스 크로싱’은 저 유명한 코언 형제 작품이다. 경쟁작 ‘대부 3’에 밀려 고전하긴 했지만, 1990년 미국 개봉 당시 갱 영화의 수작으로 평가 받았던 영화다. ‘밀러스 크로싱’은 갱들의 은어로 ‘배신자의 처단 장소’를 뜻한다. 보스의 여자를 사랑한 2인자, 결말이야 뻔하다. 하지만 오해는 마시라. 휴양림은 영화처럼 어둡지 않다. 외려 영화가 그랬듯 ‘반전’의 풍경들을 여기저기 안배해 뒀다. 곳곳이 ‘인증샷’ 찍을 곳이고, 연인끼리 밀어를 속삭일 만한 곳도 수두룩하다. 장태산 휴양림 가는 길은 시골 외갓집을 찾아가는 것처럼 고즈넉하다. 소똥 냄새 가득한 들판도 지나고 가을색 윤슬 빛나는 저수지도 만난다. 그 길 끝에서 만난 숲.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갈색 옷 갈아입고 이방인을 맞고 있다. 숲에 들면 객의 마음은 들뜬다. 어딜 먼저 찾아야 하나.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라. 당신은 그저 바람이 일러주는 대로 따라만 가면 된다. 휴양림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메타세쿼이아 숲이다. 산자락 어디서든 메타세쿼이아가 펼쳐둔 수직세상과 만나게 된다. 나무들이 일렬로 늘어선 전남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과는 또다른 느낌이다. 이 모습 보고 입 벌려 경탄하지 않을 사람은 아마 묵언수행 중인 스님뿐이지 싶다. 메타세쿼이아 숲은 1973년 한 독림가가 사재를 털어 조성했다. 1991년 국내 최초 민간휴양림으로 지정받았으나, 경영난 탓에 경매에 넘겨졌고, 2002년 대전시가 이를 매입해 운영하고 있다. 현재 휴양림에서 자라고 있는 메타세쿼이아는 6000그루가 넘는다. 가장 키가 큰 나무는 38m(2012년 기준)에 이른다고 한다. 메타세쿼이아는 산소나무로 알려져 있다. 그루당 약 70㎏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300㎏이 넘는 탄소도 저장한다고 한다. 그러니 이들이 내뿜는 공기의 양은 또 얼마나 많을까. 굳이 피톤치드 운운하지 않아도 숲에 들면 단박에 알게 된다. 숲 안 공기가 얼마나 달고 맑은지 말이다. 숲속 벤치에 큰 대자로 누으니 그제야 메타세쿼이아의 전체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짙은 갈색으로 변한 메타세쿼이아 잎이 가을꽃을 닮았다. 바람 한 줄기 불면 참빗 닮은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밀러스 크로싱’ 가는 길도 딱 이랬다. 장태산 휴양림의 명물은 ‘숲속 어드벤처’다. 새의 눈높이에서 숲을 볼 수 있게 만든 구조물이다. 숲속 어드벤처는 에코 로드와 스카이 타워로 구성됐다. 에코 로드는 나무 사이에 철재로 만든 산책로다. 나무의 3분의2쯤 되는 15~17m 높이를 따라 조성돼 ‘중층의 숲’을 체험할 수 있다. 폭은 1.8m 안팎. 전체 길이는 556m다. 에코 로드 끝은 스카이 타워다. 철골 구조의 원형 전망대다. 높이는 27m. 아파트 7층 높이다. 철골로 만들어진 탓에 사람들이 오갈 때마다 진동이 느껴진다. 혹시 와락 품에 안겨 오는 ‘여친’을 기대한다면 난간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어 보시라. 오금이 저리는 스릴을 맛볼 수 있다. 장태산을 한 바퀴 도는 둘레길이 조성돼 있다. 전체 길이는 10.2㎞로 다소 길다. 가급적 길이가 짧은 휴양림 등산로(3.2㎞)를 따라 돌아보길 권한다. 이마저도 길다면 관리사무소에서 산림문화휴양관 쪽으로 올라 형제바위를 돌아본 뒤 내려오는 코스도 있다. 이 경우 1~2시간 정도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등산이 싫더라도 형제바위까지는 다녀와야 한다. 스카이 타워보다 더 멋진 전경과 마주할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된비알이라 다소 품은 들지만, 20분 안팎이면 충분히 오를 수 있다. 글 사진 대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장태산 휴양림(www.jangtaesan.or.kr)은 입장료와 주차료를 받지 않는다. 휴양림 내에선 취사 금지다. 오토캠핑장이나 바비큐 시설도 없다. 간이 매점은 있다. 도시락을 싸가거나 휴양림 초입의 식당에서 해결해야 한다. 휴양림에서 숙박도 할 수 있다. 홈페이지에서 매달 1일 밤 12시부터 예약을 받는데, 워낙 인기가 많아 방 구하기가 쉽지 않다. 숲 체험 학습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역시 홈페이지에서 접수한다. 애완동물은 데려갈 수 없다. 관리사무실 (042)270-7883.
  • 부산벡스코 20주년 포럼

     부산 전시·컨벤션센터인 벡스코는 오는 12월 5일 창립 2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행사와 사업을 추진한다고 17일 밝혔다.  먼저 20일 벡스코 오디토리움에서 ‘제11회 이홍렬의 樂樂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이 페스티벌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공동으로 마련하는 자선행사로, 부산지역의 마이스(회의·인센티브 관광·국제회의·전시회) 종사자와 시민 등 2000여명을 초청해 벡스코의 뜻 깊은 날을 함께 축하할 예정이다. 이어 27일에는 벡스코, 한국관광레저학회, 부산관광컨벤션포럼 등이 공동으로 개최하는 ‘벡스코 창립 20주년 기념 부산 컨벤션 포럼’이 열린다. 이번 포럼은 국내외 학자와 컨벤션 관련 전문가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아시아에서 세계로 뻗어나갈 부산 MICE 산업, 그 방향은?’이란 주제로 깊이 있는 논의를 통해 부산 마이스 산업의 미래 방향성을 제시하고, 벡스코의 경쟁력 강화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벡스코 20년사’도 발간된다. 벡스코는 이를 통해 지난 20년간 벡스코가 걸어온 발자취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앞으로 벡스코가 나아갈 지표로 삼을 예정이다.  오성근 벡스코 대표이사는 “벡스코는 부산 시민들의 사랑과 믿음을 자양분 삼아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으며, 월드 전시·컨벤션센터’를 비전으로 하는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생명의 窓] 11월의 가을 편지/이재무 시인

    [생명의 窓] 11월의 가을 편지/이재무 시인

    십일월을 사랑하리/곡물이 떠난 전답과 배추가 떠난 텃밭과/과일이 떠난 과수원은 불쑥 불쑥 늙어 가리/산은 쇄골을 드러내고 강물은 여위어 가리/마당가 지푸라기가 얼고 새벽 들판 살얼음에/ 별이 반짝이고 문득 추억처럼/첫눈이 찾아와 눈시울을 적시리/죄가 투명하게 비치고/ 영혼이 맑아지는 십일월을 나는 사랑하리 - 졸시, ‘십일월’, 전문 달빛 화면에 자판을 두들겨 대던 귀뚜라미도 탈고했는지 울음 그친 지 오래고, 그토록 빼곡하게 들어찼던 가을이 하나둘 산하를 빠져나가는 십일월은 이래저래 오는 것보다 가는 것들이 더 자주 눈에 밟혀 괜스레 마음 스산해지는 달입니다. 그늘이 고여 어두워지는 골짜기에서 갓 태어난 바람은 자신이 지난 자리에 소소하게 족적을 남깁니다. 맑고 시린 물이 산과 하늘을 품어 쉴 새 없이 흘러가는 계곡에 와서 나는 문장 연습을 하다 돌아오고는 합니다. 십일월은 의붓자식 같은 달입니다. 시월과 십이월 사이에 엉거주춤 낀 십일월엔 난방도 안 들어오고 선뜻 내복 입기도 애매해서 일 년 중 삼월과 함께 가장 춥게 밤을 보내야 하는 달입니다. 더러 가다 행사가 있기는 하지만 메인은 시월이나 십이월에 다 빼앗기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허드레 행사나 치르게 되는 달입니다. 괄호 같은, 부록 같은, 본문의 각주 같은 달입니다. 산과 강에 깊게 쇄골이 드러나는 달입니다. 저녁 땅거미 혹은 어스름과 가장 잘 어울리는 달입니다. 물속 돌처럼 공기가 단단해지는 저녁 공원 벤치에 앉아 뿌리 근처로 내려앉는 이파리들을 긁어모아 부어오른 발등을 덮어 봅니다. 바람결에 위태롭게 그네를 타던 홍자색 열매 하나가 자진하듯 가지를 떠나 보도블록 틈새로 얼굴을 뭉개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니 생산이 없기는 나 또한 마찬가지여서 한여름 밤 수은등에 몰려든 날벌레들의 날갯짓처럼 붕, 붕, 붕 시간의 낭비로 분주했을 뿐 진리에 닿지 않는 날들뿐이었습니다. 소용에 닿지 않는 무위의 나날들이 나를 더욱 지치게 하고 우울감에 젖게 합니다. 죄가 투명해지고 나는 마른 손으로 까칠해진 얼굴을 몇 번이고 버릇처럼 쓸어 봅니다. 단풍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그녀들은 목 놓아 울려고 길고 긴 초록의 터널을 무심하게 걸어왔습니다. 붉은 추억으로 남은 여자들이 어깨 들썩이며 신명나게 울음의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눈치코치 보지 않고 안으로, 안으로 고이 쟁여 온 울음의 꾸러미들을 꾸역꾸역 꺼내 놓은 뒤 명태처럼 잘 마른 몸들을 또 한기 속으로 밀어 넣을 것입니다. 한 보름 그렇게 가을을 활활 울고 나면 닦아 놓은 놋주발인 양 하늘도 황홀하게 윤이 날 것입니다. 십일월은 억새꽃의 달이기도 합니다. 맑고 푸르고 높고 밝은 하늘을 푹 적셔서 숯불 다리미가 다녀간 광목으로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능선 일대에 한 획, 한 획 능란하게 일필휘지하는 수만 자루의 붓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지랑이 어지러운 이른 봄부터 서리 내리는 늦가을까지 울퉁불퉁 맨발로 걸어온 한해살이를 그렇게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쓰고 나면 바람이 와서 지우고 쓰고 나면 또 바람이 와서 지우고 있습니다. 공중을 나는, 눈 밝은 새들이 따라 읽다가 때마침 마려운 똥으로 억새꽃들이 써 대는 문장에 쉼표와 마침표를 찍기도 합니다. 만 권의 책을 읽고도 시끄러운 사람의 생애를 도리질 치며 거듭 부인하는 하늘 아래 가장 두꺼운 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온으로 몸이 추워지는 십일월 나는 영혼의 방에 주황빛 불을 켜 두겠습니다.
  • 붙는 옷 날씬한 아빠… ‘깔’맞춤 멋쟁이 오빠

    붙는 옷 날씬한 아빠… ‘깔’맞춤 멋쟁이 오빠

    옷장을 열었는데 소매와 목깃이 낡은 검은색 코트, 유행 지난 패딩점퍼뿐이라면 퇴근길에 남성복 매장에 한 번 들러보자. 몇 년 새 확 달라진 외투들이 당신을 맞을 것이다. 마네킹이 입은 옷을 쓸어보니 캐시미어가 섞인 반질반질한 코트가 분명한데 발열, 방풍 기능이 있어 아웃도어 의류만큼 방한성이 좋다고 직원은 설명한다. 비즈니스 캐주얼 복장이 보편화된 덕에 정장 재킷 대신 입을 수 있는 누빔(퀼팅) 재킷도 다양하다. 거위털을 넣고 누벼 어지간한 추위에도 입을 수 있다. 격식을 갖추는 자리나 나들이 길에도 두루 입고 싶다면 길이가 좀 더 긴 패딩코트를 고르면 된다. 40~50대 중년 남성은 겨울옷차림에 조금만 신경 쓰면 센스 있는 ‘꽃 중년’으로 거듭날 수 있다. 남성 대부분은 나이가 들수록 배가 나오면서 체형이 달라진다. 흔히 뱃살을 감추고 편하게 입으려고 큰 치수의 옷을 선택하는 실수를 범한다. 이지은 LF 신사총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는 “몸에 달라붙는 느낌의 옷을 입는 것이 훨씬 날씬하고 키가 커 보인다”면서 “붙는 옷이 불편하다는 것은 잘못된 편견이며 적당히 타이트한 옷이 오히려 활동하기 편하다”라고 말했다. 재킷은 넉넉하고 밋밋한 스타일보다 허리 부분이 몸쪽으로 약간 들어가고 일반 재킷보다 허리선이 위에 잡힌 옷을 입으면 날씬해 보인다. 얼굴이 커 보이고 볼록한 배에 시선을 모으는 3버튼 재킷보다 2버튼 재킷을 입는 것이 낫다. 젊어 보이는 가장 쉬운 방법은 옷 색깔을 맞추는 것이다. 꽤 많은 중년 남성이 젊어 보이려고 노랑, 빨강, 초록처럼 밝은색을 코디하곤 한다. 과한 원색은 활기를 주기보다는 촌스러워 보이기 십상이다. 화려한 색은 무채색 옷에 포인트 색상으로 활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빨강 대신 채도가 낮은 와인색을 입거나 초록보다 다소 어두운 풀색을 선택하면 세련된 느낌을 연출할 수 있다. 외투의 안감이나 재킷의 끝단에 포인트 컬러나 무늬가 있는 아이템을 고르면 은근한 멋이 난다. 외투 안에 입는 옷으로는 단색의 터틀넥 니트가 제격이다. 단정한 느낌을 줄 수 있다. 셔츠를 입어야 한다면 보온성을 위해 니트스웨터를 함께 입는다. 흰 셔츠에 검은색 라운드 또는 브이넥 니트를 입으면 무난하다. 격자무늬 셔츠를 입었다면, 셔츠의 포인트 색상과 같은 색의 넥타이로 옷차림을 완성한다. 셔츠 위에 니트 아이템을 겹쳐 입으면 굳이 넥타이를 매지 않아도 된다. 카디건이나 지퍼로 여닫는 니트스웨터를 셔츠 위에 걸칠 수도 있다. 아저씨 티를 내고 싶지 않다면 카디건 단추를 모두 채우지 말고 한두 개만 채우도록 한다. 같은 이유로 지퍼를 목 끝까지 올리는 것도 피한다. 양현석 브루노바피 디자인실장은 “재킷을 연회색이나 베이지처럼 밝은색으로 골랐다면 스웨터나 카디건은 감색이나 검정처럼 짙은 색으로 입어 밋밋한 느낌을 줄이고, 반대로 재킷 색이 어두우면 안에 입는 옷은 밝은색을 택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액세서리로 겨울옷차림에 활기를 더할 수 있다. 따뜻한 느낌을 주는 소재와 색상을 사용하는 게 포인트다. 스웨이드 구두와 니트 머플러, 행커치프를 붉고 노란 색 계열로 통일하면 된다. 가끔은 과감하게 ‘젊은 오빠’ 스타일에 도전해 보자. 이현정 갤럭시 디자인실장은 “젊은 느낌을 강조하고 싶다면 주황, 빨강, 갈색 등의 스웨이드 재킷이나 무스탕, 길이가 짧은 바지 또는 발목으로 내려올수록 통이 좁아지는 테이퍼드 팬츠로 세련된 분위기를 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이보다 더 맑을 수 있을까, 자연도 사람도

    이보다 더 맑을 수 있을까, 자연도 사람도

    라오스는 보석의 ‘원석’ 같았다. 손 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매력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특히 남부 지방은 아직 관광객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아서인지 때묻지 않은 야생 그대로의 자태를 뽐냈다. ‘무(無)오염 지대’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었다. 한-아세안센터가 주최한 라오스 문화관광 프로모션 워크숍 참석을 겸해 4박5일간 동남아시아 ‘힐링’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는 라오스를 체험했다. ●왓푸, 앙코르와트를 탄생시키다 라오스 남부 참파사크주의 팍세까지 한국에서부터 11시간 25분 걸렸다. 직항이 없어 태국 방콕을 경유했고, 폭우로 사바나켓에서 30분을 연착했다. 일행들 사이에서 “와~ 빡세다(힘들다)”, “팍세에 오기 참 빡세다”는 농담 아닌 농담들이 자연스럽게 쏟아졌다. 이보다 더 맑을 수 있을까. 라오스의 첫인상은 이랬다. 공기는 투명했고, 풍경은 선명했다. 파란 하늘과 이 하늘을 품은 호수, 초록색 수풀이 우거진 산은 ‘지상 낙원’다웠다. 카메라의 LCD 화질을 의심케 하는 풍경이다. 유네스코 지정(2001년) 세계문화유산이자 라오스 최대 성지인 왓푸. 팍세에서 자동차로 45분 걸린다. ‘미니 앙코르와트’로도 불리는 왓푸는 12세기경 들어선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보다 300년 앞선 9세기경 지어졌다. 크메르 제국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힌두교 사원으로 지어졌지만 15세기경에는 불교 사원으로 바뀌어 현재는 두 종교의 문화가 뒤섞여 있다. 석조 건축물에 새겨진 섬세한 문양과 시바신 등의 형상은 왕코르와트와 똑같다. 왓푸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앙코르와트에서 찍었다고 속여도 의심하기 어려울 정도다. 매년 2월 왓푸 축제가 성대하게 열린다. 왓푸 사원에서 동남아시아의 ‘젖줄’인 메콩강까지는 직선거리로 2㎞다. 건축물 사이로 대로가 뚫려 있다. 이 고대의 길을 따라 가면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닿는다고 한다. 길 양편에는 사람 키 높이의 링가(흰두교에서 다산을 상징하는 남근상)가 잔뜩 늘어 서 있다. 해발 1416m의 푸카오산이 배경으로 더해져 왓푸의 수려한 자태가 완성된다. 푸카오산 기슭에 있는 신전에 올라 메콩강을 바라보면 일대 장관이 펼쳐진다. 물론 세계 최대 규모 사원이자 아시아를 대표하는 유적지인 앙코르와트에 비하면 솔직히 초라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앙코르와트의 모태가 됐다는 점에서 묵직한 의미가 더해진다. 왓푸가 없었으면 앙코르와트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10세기 전후에 오늘날 비행기로 1시간 거리를 두고 똑같은 양식의 건물이 들어섰다는 점도 불가사의한 대목이다. ●가슴 뻥 뚫리는 폭포, ‘풍미작렬’ 라오스 커피 라오스 남부 볼라벤 고원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폭포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탓판, 탓유앙, 탓참피, 이투 폭포가 대표적이다. 이 중에서 낙폭이 큰 탓판 폭포가 으뜸으로 꼽힌다. 브이(V)자 모양으로 떨어지는 양 갈래 폭포수는 마치 설탕 가루가 쏟아져 내리는 듯하다. 가슴이 뻥 뚫린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낙수 지점에선 일곱 빛깔 선명한 무지개가 부끄럽게 얼굴을 내민다. 탓유앙 폭포는 중간에 굽이가 있는 ‘2단 폭포’다. 워터파크에 있는 ‘워터 슬라이드’가 연상된다. 내려가는 길은 상당히 미끄러워 조심해야 한다. 비 온 뒤 폭포수가 거셀 때 폭포 가까이 다가갔다간 단 3초 만에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될 수 있다. 볼라벤 고원 곳곳에 커피 농장이 있다. ‘라오스 커피’가 아직 귀에 익지 않아서 그런지 생소하게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라오스 커피는 커피 맛 좀 봤다는 이들의 엄지손가락도 치켜세우게 하는 훌륭한 맛을 자랑한다. 깊은 풍미와 함께 살짝 감도는 과일향이 매력적이다. ‘다오 커피’와 ‘시숙 커피’가 유명하다. ●순수와 느림의 미학이 있는 곳 라오스 사람들의 성격은 평화로운 라오스 풍광을 쏙 빼닮았다. 얼굴에 ‘착하다’라고 써 있다. 보통 세계 어디에서나 외국인은 바가지 대상자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가격 흥정도 스트레스다. 하지만 라오스에서는 가격을 흥정하는 일이 즐겁다. 툭툭(오토바이 삼륜차)을 탈 때, 야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생각보다 쉽게 양보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난감해하는 표정에서는 수줍음마저 느껴진다. 물론 바가지 안전지대는 아니다. 시장에는 호객 행위가 없다. 다가가서 보든 말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라오스어나 태국어가 아니면 통하지 않아서였을까. 거리를 느릿느릿 어슬렁어슬렁 활보하는 개, 소, 돼지, 고양이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사람이 다가가도, 차가 지나가도 피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기지개를 폈다가 또 잠이 든다. 동물도 사람만큼 순수하다. 라오스의 순수함은 느림과 한 ‘패키지’다. ‘느림’이라 쓰고 ‘여유’라고 읽는다. 프랑스식 레스토랑에선 라오스식 느림의 미학을 오롯이 맛볼 수 있다. 식사 시간이 길기로 유명한 프랑스식 식습관에 라오스인의 느긋함이 더해지니 기다림 자체가 무의미하다. 10명의 손님 앞에 한 종류의 음식이 차례로 놓이는 데만 8분이 걸린다. 맥주를 시키면 일일이 컵에 따라 주는 것도 라오스만의 독특한 문화다. 자동차들도 거북이 운전을 한다. 라오스 외곽 도로에서 추월해 달리는 차는 100% 외국인이 탄 차량이다. 메콩강의 석양은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메콩강을 바라보며 라오비어를 마시는 게 가장 큰 행복”이라는 현지인의 말이 절로 와 닿는다. 체코 맥주 기술로 만들어진 라오비어는 동남아시아 10개국 맥주 가운데 최고로 꼽힌다. 다시 말해 라오스는 ‘힐링’의 공간이다. ‘빨리빨리’에 익숙하고 스트레스에 찌든 한국인에겐 더할 나위 없는 치유제다. 눈에 보이는 장엄한 풍경들이 질병 자체를 치유하는 양방(洋方) 힐링이라면, 화려하진 않지만 단아한 자연과 여유로운 분위기는 체질 개선을 도모하는 한방(韓方) 힐링이다. ●에코 투어리즘으로 즐기는 힐링 이런 라오스를 피부로 느끼면 느낄수록 마음이 조금씩 무거워진다. “문명의 손길이 조금만 닿으면 동남아시아 최고의 힐링 여행지로 부상할 수 있겠다”는 생각과 “그래도 라오스만큼은 친환경적 순수함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쉴 새 없이 충돌한다. 관광객을 배려해 관광 상품을 개발하고 숙박 시설을 지으면 환경이 훼손된다. 그렇다고 가만히 내버려 두면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아질 수 없다. 왓푸만 해도 그렇다. 역사적 의미는 엄청나지만, 어찌 보면 널브러져 있는 폐허 같기도 하다. 관광객들을 위한 표지판을 찾기도 쉽지 않다. 이처럼 관광 개발과 환경 보호가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다는 건 정설로 여겨진다. ‘제로섬 게임’이자 딜레마다. 라오스 정부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한-아세안센터가 라오스와 친환경 ‘에코 투어리즘’ 실현을 목표로 머리를 맞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에코 투어리즘은 한마디로 관광객 유치와 생태계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묘책이다. 2000년 이후 새로운 관광 트렌드로 확산됐다. 천혜의 자연 환경과 함께 순수성을 유지하고 있는 라오스엔 제격이다. 라오스가 생태계와 고대 유적지의 훼손을 최대한 억제하면서도 동남아 여행 ‘핫플레이스’로 떠오를 수 있을까. 에코 투어리즘의 ‘윈·윈 효과’가 기대된다. 글 사진 참파사크(라오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양백지간 숨 넘어 갈 비경… 경북 영주 고치령·마구령

    양백지간 숨 넘어 갈 비경… 경북 영주 고치령·마구령

    흔히 ‘양백지간’(兩白之間)이라 부른다.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를 일컫는 표현이다. 큰 산 두 개가 포개진 곳이니 당연히 고개도 많을 수밖에. 그 가운데 경북 영주에 멋진 고개가 숨어 있다. 고치령(古峙嶺·770m)과 마구령(馬驅嶺·820m)이다. 죽령옛길 등 유명한 길을 두고 굳이 생경한 산골짝을 찾으라는 이유? 첫째, 덜 알려져 한적하다. 둘째, 정상까지 찻길이 나 누구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셋째, 고갯길 따라 꼬리치는 단풍이 빼어나다. ■ ‘고개’ 소백과 태백 사이 그 어디쯤 붉은 빛 얼굴 빼꼼히 내밀어 영주에서 충북 단양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은 크게 세 곳이다. 첫 번째는 저 유명한 죽령이다. 영남 선비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한양으로 향하던 관문이다. 죽령에서 동쪽으로 살짝 방향을 틀면 고치령이다. 여기가 두 번째로, 소백과 태백을 나누는 고갯마루다. 세 번째는 가장 동쪽의 마구령이다. 주로 단양, 강원 영월 쪽의 민초들이 영주 부석장을 보기 위해 넘나들던 고개다. 예부터 길이 험해 주로 등산객들만 알음알음 찾던 곳인데, 길이 좋아진 지금도 찾는 이 드문 건 마찬가지다. 경북의 오지로 꼽히는 영주에서도 오지에 속하는 지역이니 별로 볼 게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한데 오해다. 길은 조붓하고, 숲을 휘감는 공기는 달다. 이즈음 붉게 물든 고갯길은 ‘자체발광’의 경승지다. 그뿐이랴. 고개를 내려서면 부석사, 소수서원 등 영주의 대표 볼거리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 굽이돌아 가는 길 그 어디쯤 산신령 된 금성대군 계실까 고치령은 단산면 좌석리가 들머리다. 부석사 못미쳐 소백산 연화동 계곡 바로 옆으로 옛길이 놓여 있다. 고개를 넘으면 마락리, 조금 더 가면 단양 영춘면이다. 길 자체로만 보자면 마구령 쪽이 더 현란하다. 굽돌아가는 길의 모양새도 그렇고, 단풍나무 개체수도 많다. 한데 고개를 넘는 운치는 고치령이 한결 낫다. 좌석리 지나 정상까지 5㎞ 정도 숲과 계곡이 펼쳐져 있다. 길은 유순하고 차량도 뜸해 적요하기 그지없다. 11월 중순께면 누렇게 물든 낙엽송이 그림처럼 아름답다고 한다. 아직 일러 초록빛이 대부분이지만, 그마저도 아름답다. 고치령 정상에는 산령각이 세워져 있다. 태백산 산신령이 됐다는 단종과 소백산 산신령이 된 금성대군을 함께 모신 곳이다. 이 고개 따라 순흥에 유배됐던 금성대군의 단종복위 운동도 숨 가쁘게 진행됐을 터다. 고치령 너머는 마락리다. 말이 떨어질 정도로 비탈이 심하다 해서 이름지어 졌다. 이즈음 마락리는 단풍이 절정이다. 마락리를 벗어나면 단양 영춘면 의풍리다. 정감록에 십승지지(十勝之地) 가운데 하나로 꼽혔던 곳. 강원 영월과 충북 단양, 경북 영주가 이 마을 인근에서 경계를 맞대고 있다. ■ 벼랑을 휘돌아 그 어디쯤 한 깃든 불길이 타오른다 마구령은 부석사 인근 임곡리에서 남대리로 넘어가는 고개다. 장사치들이 말을 몰고 다녔던 고개라 마구령이라고 불린다. 현지 주민들은 ‘매기재’라고도 부른다. 경사가 급해 논을 매는 것처럼 오르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이름만큼 고갯길은 험하다. 길은 좁고 발밑으로 깎아지른 벼랑이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다. 한데 풍경은 참 곱다. 한 굽이 돌 때마다 단풍나무가 마중을 나오고, 두 굽이 돌 때면 울울창창한 낙엽송 숲이 배웅하자며 나선다. 남대리에 들면 주막거리를 알리는 커다란 표지석이 눈에 띈다. 마구령을 넘어다니던 선비며 장사치들이 쉬어 가던 주막들이 이 일대에 꽤 많았다는 뜻일 터다. 오래전 주막 봉놋방에 모여 앉아 술추렴을 벌였을 장돌뱅이들과 땔감이며 약초 등을 이고 진 촌무지렁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임곡리 쪽에 다 쓰러져 가는 옛집이 한 채 남아 있다. 옛 주막 건물이라고 하는데, 진위는 불분명하다. 영주까지 가서 단종 복위운동의 붉은 발자취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순흥에서 부석사 쪽으로 가다 단곡교 건너기 직전에 좌회전해 단곡2리 마을로 가다 보면 두레골 서낭당이 나온다. 이 숲에 금성대군을 모신 신당이 있다. 신당 안에 금성대군의 피가 묻은 돌이 있다고 한다. 순흥 사람들은 매년 정월대보름이면 신당에서 수소를 잡아 제를 올린다. 금성대군의 포한이 깃들어서인지 주변보다 훨씬 붉은 단풍숲과 마주할 수 있다. 글 사진 영주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지역번호 054)] →가는 길:중앙고속도로 풍기 나들목을 나오자마자 우회전, 첫 번째 네거리에서 다시 우회전하면 부석사 가는 931번 지방도이다. 부석사 방향으로 계속 달리다 단산면 옥대리 삼거리에서 좌석리 표지판을 보고 좌회전하면 고치령 길이다. 고치령 정상을 넘어서면 비포장길이다. 다소 울퉁불퉁한데 승용차도 그리 어렵지 않게 지날 수 있다. 마구령은 고치령에 견줘 한결 낫다. 고치령에서 마락리로 내려선 뒤 단양 의풍리에서 우회전해 935번 지방도로 갈아탄 뒤 곧장 가면 된다. 순흥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 부석면사무소 지나 부석4거리에서 좌회전해 올라가다, 두봉교에서 콩세계과학관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해 곧장 올라가면 마구령이다. 한데 여정의 효율성으로 따지자면 고치령, 마구령 순으로 돌아보는 게 순리다. →맛집:순흥 쪽에선 묵밥이 유명하다. 이웃한 봉화 등에서 생산된 메밀로 묵을 만들어 낸다. 도회지 묵밥처럼 미끌거리거나 입에서 겉도는 듯한 식감이 덜하다. 순흥묵집(632-2028)은 소수서원 방향 주유소 옆, 전통묵집(634-4614)은 순흥면사무소 인근에 있다. 주전부리는 기지떡이 좋겠다. 기지떡은 흔히 술떡이라고 불리는 ‘증편’의 사투리다. 술로 반죽한 멥쌀가루를 찐 뒤 대추 등 고명을 얹었다. 순흥기지떡(631-2929)이 이름났다. 순흥사거리 초입에 있다. 부석사 관광단지 내 종점식당(633-3606)은 산채비빔밥으로 이름난 집이다. →잘 곳:풍기 쪽에 깔끔한 모텔들이 많다. 풍기관광호텔(637-8800), 코리아나호텔(633-4445) 등이 깨끗하다. 여정의 피로는 소백산풍기온천(604-1700)에서 푸는 게 좋겠다.
  • 아프간 난민에 절반은 여성으로… 캐나다 43세 총리의 ‘파격 내각’

    아프간 난민에 절반은 여성으로… 캐나다 43세 총리의 ‘파격 내각’

    4일(현지시간) 제23대 캐나다 총리에 공식 취임한 쥐스탱 트뤼도와 함께 출범한 자유당 내각이 구성의 파격성으로 화제를 모았다. 특히 민주제도부 장관이 된 아프가니스탄 난민 출신 여성 메리엄 몬세프(30) 의원은 트뤼도 내각의 ‘참신함’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손꼽혔다. 몬세프는 아프간 서부 헤라트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부친이 아프간과 이란 간 발생한 총격 중 사망해 편모슬하에서 아프간과 이란 국경 지역에서 살았다고 허핑턴포스트가 전했다. 1996년 11살이던 몬세프는 모친과 함께 파키스탄, 요르단을 거쳐 캐나다에 난민 신분으로 입국했다. 몬세프는 “전쟁이 끝나기만을 희망하며 살았지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었다”고 아프간에서의 생활을 회상했고, 캐나다 피터버러에 정착한 뒤 인상에 대해 “초록색 잔디가 있고 사람들이 미소 짓고 있었다”고 추억했다. 몬세프는 탈레반 치하의 아프간에서 공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어머니로부터 영어를 배웠다. 하지만 캐나다에 정착하던 초기 몬세프는 영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고향과 다른 기후와 문화에 녹아드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향수병에 걸리기도 했지만, 주위 이웃과 자원봉사자가 도운 덕분에 지역 사회에 적응할 수 있었다. 몬세프는 지난해 피터버러 시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좌절했고, 올해 총선에서 트뤼도가 이끈 자유당 열풍에 힘입어 초선 하원의원이 됐다. 몬세프는 “여성 문제, 임금 평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취임 일성을 밝혔다. 한편 이날 출범한 캐나다 내각은 15명씩 남녀 동수로 이뤄진데다 여성의 경우 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남성의 경우 신진부터 거물급 정치인까지 망라돼 포함됐다. 여성 각료를 많이 기용한 데 대해 트뤼도 총리는 “시대가 2015년이기 때문”이라고 짧게 설명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해외여행 | 다시 피가 돈다-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바이칼 호수까지

    해외여행 | 다시 피가 돈다-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바이칼 호수까지

    ‘러시아’라는 세 글자가 내 속에서 퍼 올리는 건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음습하고 도덕적인 문학적 상념, 아침이면 의례처럼 볼륨을 높이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축축한 자조에 딱 들어맞는 ‘안나 게르만’의 로망스, 시적인 위로를 주는 ‘샤갈’의 그림들, 어감마저 차가운 ‘소련’이라는 이름, 저항의 로커 ‘빅토르 최’ 그리고 뜻도 모른 채 외던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과 무자비한 해체의 역사…. 그 거대한 땅덩이의 체취를 맡고서야 알았다. 러시아의 실체는 도표화된 관념보다 몽롱하고, 드물게 아름답다는 것을. 편협한 인식을 뒤로한 채 ‘떠난다’는 것이 얼마나 심장 뛰는 일인지를.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 아시아도 유럽도 아닌, 러시아 “‘스파시바спаси?бо’라고 해요!”블라디보스토크 도착 사인이 떴을 때, ‘고맙습니다’가 러시아어로 무엇이냐고 묻는 타이완 승객에게 스튜어디스가 말했다. 그녀는 친절하게 ‘시’에 강세를 줘야 한다는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그 순간부터 ‘스파시바’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롭스크를 거쳐 이르쿠츠크를 지나 바이칼에 이르기까지 내가 아는 유일한 러시아어가 되었다. 지도 위에서만큼 러시아연방이 기세등등해 보일 때도 없다. 호주보다 두 배 이상 큰,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진 이 나라에서 프리모르스키 지방을 찾을 때는 손가락 방향을 오른쪽으로 한참 이동시켜야 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연해주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프리모르스키 지방의 중심도시다. 분명 이국인데, 거리에는 늘씬한 금발의 미녀들이 넘치는데, 왠지 낯설지가 않다. 그건 아마 DNA에 박힌 기억 때문일 게다.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시대를 지나고 1900년대 초 민족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곳도 여기니까. ‘동방을 지배하라’는 뜻에서 짐작하듯 작은 변방도시에 불과했던 블라디보스토크에 러시아가 부여한 의미는 노골적이다. 겨울에도 연안이 심하게 얼지 않는, 부동항 블라디보스토크는 1년 내내 항만의 기능을 유지할 수 있어 전략적 항구도시와 군항으로는 적격이었다. 극동함대 사령부 등 해군기지가 주둔하고,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원조물자가 옮겨지는 거점이기도 했으며, 극동 지역 외교와 상업의 중심지로도 활약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함정 10여 대를 격침시켰다는 잠수함 C-56(‘C’는 러시아어로 ‘에스’라고 읽는다. ‘중형급’이라는 표시)은 찬란했던 전장을 회고하는 구소련의 늙은 해군처럼 해양공원 앞 뭍에서 긴 휴식에 들어 있었다. 길이 77m의 이 강철 영웅에겐 엔진을 돌리던 승조원들의 함성은 사라지고 그들이 남긴 훈장과 어뢰, 기관총을 자랑하는 게 유일한 일과가 되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6.5m 좁은 폭, 그 안의 희박한 공기 탓인지 머리가 띵해져 잠수함에서 나왔다. 옆으로 용사들의 넋을 위로하는 ‘영원의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누군가 붉은 카네이션을 놓고 머리를 조아리는데 마침 뒤편 기도소에서 종이 울린다. 1941년과 1945년을 오르내리던 그 소리는 전쟁이 가당키나 하냐는 듯 평화로웠다. 1891년,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였던 니콜라이2세의 황태자 시절, 그의 방문을 기념해 세웠다는 개선문은 불과 몇 걸음 뒤다. 왜소한 풍채를 화려하게 치장한 그 건축물은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천성을 숨기고 자신만만한 ‘척’했다는 황제의 운명과 닮아 보였다. 혁명 후 파괴된 것을 고증을 거쳐 복원했다 해도 원형을 되찾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나 보다. 제정러시아의 문장이던 쌍두 독수리는 개선문 꼭대기에서 볼 수 없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세련되고 번화한 스베트란스카야 거리Svetlanskaya Street. 횡단보도의 초록 불은 바뀌는 순간 이미 9를 세고 있다. 으름장 놓는 선생님 같은 신호등을 째려보며 잰 발길을 놀려야 하는 일이 잦았다. 100년도 넘는 바로크양식의 건물들이 자리한 가로수 길을 걷고 있자니 막연히 ‘여긴, 유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거만하리만치 딱딱한 표정의 러시아인들을 보고 그 생각은 접기로 한다. 유라시아주의를 바탕으로 강대국을 재건한다는 국가의 외교정책에 이바지하듯, 아시아도 유럽도 아닌 이곳은 오로지 극동 러시아라는 자존감을 유지하고 있다. 스베트란스카야로부터 두 블록 떨어져 자리한 중앙광장은 소비에트 정권 수립을 위해 싸운 병사들을 기리는 동상만이 생생할 뿐, 혁명전사광장이라는 옛 이름은 의미 없어 보였다. 금요일이면 주말시장이 열리고 신년축제와 기념일 퍼레이드 등 이벤트의 무대가 된 지 오래다. 과거에도 지금도 이곳에서 집회는 계속되지만 혁명에서 놀이로 그 주제는 완전히 바뀌었다. 전설만 남은 영웅들의 흔적 블라디보스토크 둘째 날, 신한촌부터 찾았다. 신한촌은 일본에 의해 침탈된 국권회복을 위해 국내외 지식인들이 모여 결의를 다졌던 장소다. 고종이 파견한 헤이그 특사 중 한 명인 이상설, 상하이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였던 이동휘, 전설의 의병장이었던 홍범도를 비롯해 신채호, 안중근, 안창호 등 수많은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 아파트촌 어귀에 도착했을 때, 그곳이 신한촌 터라는 것을 눈치 챌 길은 보호 철책에 둘러싸인 ‘연해주 신한촌 기념탑’이 전부였다. 한인들이 살길을 찾아 연해주 땅을 처음 밟은 것이 1863년. 블라디보스토크가 극동 해군기지로 부상하면서 그들은 군항에서 작업인부로 일했다. 처음 자리 잡은 곳은 시내 중심부였다. 하지만 콜레라가 발생하자 시당국은 1893년 서쪽 아무르만 해안가로 한인들을 이주시키고 그곳을 ‘까레이스카야슬라보드카한인촌’, 우리말로는 개척리開拓里로 불렀다. 이후 1911년, 또 한 번의 위생 문제로 북쪽 2km 떨어진 라게르 산비탈로 이주한 한인들은 ‘노바야까레이스카야슬라보드카신한촌’를 형성했고, 이전의 거주지는 구한촌이라 불리게 되었다. 1914년, 신한촌은 3,000명이 거주하며 점차 자리를 잡아 갔지만 1937년, 스탈린이 극동에 살던 한인 17만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키면서 신한촌의 한인들 역시 카자흐스탄 등지로 이송되고 그 자리는 유럽과 러시아 노동자들의 차지가 되었다. 길이가 다른 커다란 세 개의 석조물. 가운데는 한국, 왼쪽은 북한, 오른쪽은 고려인을 포함한 해외 한민족을 상징한다는 기념탑 앞에서 조국의 미래를 밤새워 고민했을 독립 영웅들의 절절함을 가늠해 보기란 쉽지 않았다. ‘민족의 최고 가치는 자주와 독립…’이라는 기념탑의 글귀는 길 잃은 아이처럼 애처롭고 속상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블라디보스토크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독수리 둥지’라는 뜻의 오리노예 그네즈도 산 정상은 214m에 불과하지만 도시에서 가장 높다. 계단을 올라서니 러시아의 키릴문자를 만든 아우 키릴로스와 형 메소디오스 형제의 동상이 십자가를 들고 블라디보스토크를 굽어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가니 바다 위에는 2012년 APEC 정상회담에 맞춰 완공한 루스키섬까지 이어진 금각만 대교가 장쾌했다. 서울 남산에서처럼 연인들이 자물쇠를 걸며 사랑을 맹세하는 건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결혼 촬영이 한창인 신랑신부가 난간 틈을 비집고 자물쇠를 채우는 동안 신부보다 예쁜 들러리는 뭇 남자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아무르만 해변공원까지는 걸었다. 노천카페에 앉아 블라디보스토크의 명물인 메드베드카곰새우를 주문했다. 비릿하고 고소한 맛이 찬 맥주와 묘하게 어울렸다. 체 게바라가 그려진 티셔츠에 네덜란드 맥주를 마시는 청년들, 일본산 오토바이를 타고서 CF의 한 장면처럼 등장한 처녀들, 낚시를 즐기는 부부…. 히죽대며 그들의 모습을 훔치는 사이 새우껍데기만 자꾸 쌓여 갔다. ●하바롭스크Khabarovsk 시베리아횡단열차에서의 하룻밤 하바롭스크까지 가는 열차 출발 시간은 저녁 9시. 서둘러 짐을 챙기고 블라디보스토크 기차역으로 향한다. 지는 해에 순종하며 기차역이 차분히 물들고 있었다. 1907년부터 5년에 걸쳐 지어졌다는 기차역은 제정 러시아의 건축양식으로 제법 낭만적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출발지이자 종착지다. 이곳에서 모스크바까지의 거리는 9,288km. 플랫폼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철로를 달렸다는 증기기관차도 보였다. 출발은 저녁 9시인데 플랫폼의 시계는 오후 2시를 가리킨다. 철도역의 모든 시간표는 모스크바가 기준이라는 것을 깜빡했다. 난민처럼 바닥에다 가방을 열어 젖히고 주섬주섬 필요한 물건만 미리 챙겼다. 출발시간이 다가오자 승무원은 여권과 승차권을 확인하고 탑승을 종용했다. 9번 칸, 객실번호 6호 23번. 4인 1실, 양쪽으로 2층 침대가 놓인 객실 ‘쿠페’는 좁았지만 불편함은 없었다. 서서히 열차가 움직이고, 시간이 지나야 시원해질 것이라는 차장의 말처럼 에어컨은 30분이 지나서야 제 기능을 발휘했다. 하바롭스크 도착은 내일 아침 8시. 무궁화호보다 더 느린 기차를 타고 밤새 11시간을 달려야 한다. 하얀 자작나무숲, 영화 <닥터 지바고>에 나올 법한 눈보라, 잠들지 않는 백야. 시베리아횡단열차에 엄청난 로망을 품은 사람들은 흔히 이런 것들을 상상한다. 러시아에 오기 전, 몽골을 거쳐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탔다는 친구는 말했다. “러시아 애들은 책만 읽고 얘기도 가족들끼리 소곤소곤. 같이 보드카 마시자던 러시아 아저씨 아니었으면 심심해서 아마 미쳐 버렸을 걸!” 모스크바까지 꼬박 달리는 이들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열차에서의 하룻밤만으로 그 기분은 짐작하고도 남았다. 낮도 아닌 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래야 반사되는 객실 내부가 전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산 가이드북을 뒤적이다 음악을 듣고, 러시아 사람들은 무엇을 하나 복도를 기웃대다가, 키릴문자가 새겨진 맥주를 마시고 남은 소시지 3개를 승무원에게 내미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은 없었다. 다행히 수다 떨 일행들이 있어 시간은 잘 갔다. 잠자리는 생각보다 아늑했다. 꺾이는 철로마다 침대가 심하게 덜컹대긴 했다. 하지만 낮에 흘린 땀이나 미처 못 지운 바지의 소스 자국, 떡진 머리도 문제될 게 없는데 그게 무슨 대수라고. 잠결에 2층 침대로부터 커튼콜처럼 내려왔다 올라가는 이불에 깜짝깜짝 놀라거나, 변기가 막힌 줄도 모르고 30분을 화장실 문 앞에서 참던 일만 빼면. 창문 너머 흘러가는 자작나무 사이로 스미는 햇빛을 보고 잠에 빠졌는데, 곧 정차한다는 소리에 허둥지둥 이불을 박차고 객실 문을 열어젖힌다. 열차가 멈춘 곳. 하바롭스크였다. 조금 더 머물고 싶던 도시 하바롭스크는 1991년 블라디보스토크가 개방되기 전까지 극동지역의 중심지였다. 이제는 그 영광을 물려줬지만 하바롭스크는 마치 권세를 내려놓은 자가 여유를 즐기듯 유유자적했다. 이 도시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레닌광장 북쪽에 자리한 청동 레닌상이다. 레닌이 사망한 이듬해인 1925년에 세워졌다는데 러시아 대부분의 지역에서 레닌의 동상이 철거된 데 반해 블라디보스토크와 이곳에서는 아직 건재하다. 레닌이 굽어보고 있는 광장은 하바롭스크의 행정 중심지다. 동쪽으로 하바롭스크주 정부청사가 보였다. 아침을 맞은 광장에는 벤치에서 조용히 휴식을 즐기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비둘기가 사람보다 많았다. 레닌광장 아래로 아무르스키 거리를 쭉 따라가면 길은 아무르 강변의 콤소몰 광장까지 잇닿는다. 콤소몰은 구소련 시절 공산주의 청년 정치조직의 이름이다. 광장에는 혁명 전사들의 모습이 조각된 오벨리스크가 굳건하고, 꼭대기에 소비에트를 상징하는 별이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광장 위 우스벤스키 성당이다. 성모승천성당으로 불리는 그곳은 소비에트 시절 파괴된 후 2001년 다시 동화 같은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아무르강이 눈앞인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걸음을 재촉했다. 총 길이만 2,800여 킬로미터. 몽골에서 발원해 하바롭스크를 거쳐 오호츠크해로 흐르는 아무르강은 중국에서는 흑룡강이라 부르는 그 강이다. 전망대 앞에는 강에 이름을 제공한 시베리아 초대 총독 무라비요프 아무르스키의 동상이 있는데, 여행지에서 만난 아무르라는 이름들은 죄다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향토박물관은 잠시 비를 피하기에는 맞춤이었다. 연해주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박물관으로 본래 이름은 ‘그라제코프 주립 자연사박물관’. 이 역시 설립자의 이름을 딴 것이다. 122년의 전통이 축적된 내부에는 시베리아 메머드, 아무르 호랑이, 원주민인 나나이족과 우데게이족의 생활모습 등 하바롭스크주의 역사와 자연, 민속 등 자료 15만 점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구관에는 소비에트 시절과 관련한 물품들만 전시되어 있는데, 포스터부터 장신구까지 세월의 때가 묻은 낯설고 이색적인 소소함이 눈길을 끌었다. 강을 따라 북쪽에 다다르니 또 다른 아름다운 러시아정교회 성당이 자리했다. 프레오브라젠스키 성당은 황금색 돔과 새하얀 성당이 질서정연했고 내부는 황홀했다. 천장에 그려진 그리스도와 네 명의 사도, 정면 6층 제단의 성모와 성인들의 모습을 새긴 이콘(성상화)은 다른 세상의 것인 듯 신비롭고 이질적이었다. 이콘에 향했던 눈길은 머리를 가리고 촛불을 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서 한참을 머물렀다. 진지하고 경건했다. 그 경배의 몸짓 뒤에서 할 것이라고는 숨소리를 죽이는 것 외에는 없었다. 시베리아횡단철도TSR. Trans Siberian Railroad시베리아횡단철도는 모스크바에서 시작해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연결하는, 총길이 9,288km의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다. 1891년에 착공해 1916년에 완공됐다. 90여 개의 도시를 거치는 동안 시간대만 7번이 바뀌고, 지나는 역만 60여 개다. 급행열차를 타면 일주일이 걸린다. 열차의 출발과 도착시간은 모스크바가 기준이다. 열차의 객실 등급은 1등석인 2인 1실의 ‘룩스Lyux’, 2등석 4인 1실의 ‘쿠페Kupe’, 3등석 6인실의 ‘플라츠카르타Pratskartny’와 지정 번호가 없는 8인 좌석의 ‘옵스치Obschy’로 나뉜다. 룩스와 쿠페는 객실이 분리되어 있지만 3등석은 객실 구분 없이 개방되어 있다. 콘센트가 있는 것은 1등석 객실뿐이다. 2등석은 객실 내부 말고 복도에 네 개, 화장실 밖과 안에 각 한 개씩 있다. 멀티 탭을 가져가면 도움이 된다. 열차 칸마다 뜨거운 물이 비치되어 라면이나 커피를 먹을 수 있다. 열차 한 칸당 두 명의 승무원이 교대근무하며 객실을 살피고 간단한 먹을거리도 판매한다. 술과 담배는 규정상 금지되어 있지만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다. 흡연자들은 보통 역에 정차할 때마다 내려 담배를 피우고 재빨리 오른다. 러시아 철도청 www.rzd.ru 러시아정교회 러시아정교회는 988년 블라디미르 대공에 의해 비잔티움의 동방정교를 받아들여 민족신앙과 결합한 종교다. 러시아정교회 건축양식의 가장 큰 특징은 독특한 양파 모양의 돔 ‘루꼬비짜’다. 눈이 많이 오는 러시아에서 눈이 쌓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 외에도 기도가 하늘에 닿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흰색과 황금색은 러시아정교회 초기의 가장 기본이 되는 색채로 흰색은 평화와 순결, 황금색은 신성을 상징한다. 예배는 사제는 있지만 설교는 하지 않고, 의자 없이 서서 참여한다. 또 악기의 반주 없이 오로지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성가를 부른다. 러시아정교회가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된 것은 고르바초프에 의해 1990년 소련 최고회의에서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법을 의결한 후부터다. ●이르쿠츠크Irkutsk 아! 바이칼 비행기가 이르쿠츠크에 도착한 시간은 자정 무렵이었다. 이르쿠츠크는 바이칼 호수를 가기 위한 관문. 둘러 볼 겨를 없이 아침이면 또 길을 떠나야 한다. 설렘과 염려를 교차시키느라 잠은 쉬 들지 못했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호의 들머리까지는 버스로 3시간 반. 부리야트족 자치구인 우스찌아르다를 스치는 동안에는 가을을 준비하는 스텝짧은 풀로 뒤덮인 초원이 길게 이어졌다. 어렴풋이 호수가 시야에 들어올 무렵 버스가 멈춘 곳은 사휴르따 선착장이다. 목적지인 알혼섬을 가기 위해 철부선에 올랐다. 배는 물살을 가른 지 30분도 되지 않아 사람들과 자동차를 섬에 부려놓았고, 세상사 다 겪은 아이처럼 옹골찬 ‘우아직러시아 군용차량을 개조한 4륜 승합차’이 벌써 마중 나와 있었다. 운전기사 안톤은 숙소가 있는 후지르 마을까지 한 시간을 달려야 한다며 돌투성이 길을 망설임 없이 내달렸다. 요란한 진동 모터 위에 앉은 듯 엉덩이는 시종 덜덜거렸다. 바이칼 호수가 품은 22개의 섬 중 알혼은 가장 크고,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섬이다. 거제도의 두 배쯤 되는데, 다섯 개 마을의 주민 1,500명 가운데 대부분은 후지르 마을에 모여 산다. ‘알혼’은 부리야트 원주민어로 ‘태양이 비추는 땅’이라는 뜻이다. 연 강수량이 200mm에 불과해 스텝과 사막 그리고 화강암과 침엽수림이 전부다. 그 황량함을 심장처럼 품은 바이칼호수를 향해 원주민들은 ‘바이칼은 서 있는 불. 아직도 그 불은 식지 않고 있다’며 경외심과 두려움을 표현해 왔다. 숙소에 짐을 내리고 부르한Burkhan 바위가 보이는 언덕으로 갔다. 신성한 곳임을 알리는 13개의 세르게 신목. 조상신들이 모이는 곳을 지나니 검푸른 호수 앞으로 정좌한 두 개의 지엄한 바위가 보였다. 샤머니즘의 성지로 알려진 바로 그 자리다. 주위에는 히말라야에서 방금 내려온 성자 같은 복장을 한 외국인들이 손을 맞잡고 명상에 잠겨 있었고, 가부좌를 튼 채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는 이도 보였다. 무엇이 그들을 이곳으로 이끈 건지 모르겠지만 초자연적 존재와의 교류도, 북방 몽골인종의 시원이 서린 곳이라는 학설도, 부리야트인의 피를 이어받은 칭기즈칸의 무덤이 있다는 전설도, 그 순간 눈앞에 펼쳐진 바이칼 호 자체보다 신성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우아직은 섬의 가장 북쪽 하보이곶으로 달렸다. 날카로운 송곳니 모양을 한 절벽. 그곳에서 보는 바이칼은 호수가 아니라 바다, 그것도 대양이었다. 경계도 모른 채 펼쳐진 호수는 텅 빈 채 근원에 닿을 듯 아스라해서, 차라리 공허했다. 그날 밤, 호숫가에 앉아 마신, 수심 200m의 바이칼호 물로 만들었다는 보드카는 파도소리와 함께 목젖을 뜨겁게 타고 흘렀다. 떠나기 전 호수를 꼭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새벽 5시 혼자 숙소를 나섰다. 인기척 없는 마을을 두리번대며 방향을 가늠하고는 그 언덕에 다시 올랐다. 부르한 바위 앞, 잠이 덜 깬 호수는 몸을 뒤척였고 바람은 초연했다. 그리고…. 영원한 작별인 양 호수에 건넨 말은 이것뿐이었다. “스파시바… 바이칼.” ▶travel info AIRLINE대한항공에서 블라디보스토크와 이르쿠츠크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노선의 출발편은 매일 인천에서 오전 10시10분에 출발해 오후 1시50분에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고, 귀국편은 오후 2시50분에 출발해 오전 7시10분에 인천에 도착한다. 이르쿠츠크 노선은 12월25일부터 1월15일까지 동계노선을 주 2회(월·금요일)씩 총 6회 운항할 예정이다. 출발편은 저녁 8시50분 인천에서 출발, 밤 12시5분에 이르쿠츠크에 도착하고, 귀국편은 새벽 2시30분 출발, 오전 7시10분 인천에 도착한다. 인천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2시간 10분, 이르쿠츠크까지는 3시간 40분이 소요된다. SHOPPING알까기 인형 ‘마트료시카’19세기 말에 탄생한 나무로 만든 러시아 인형으로 엄마를 뜻하는 러시아어 ‘마티’에서 유래했다. 일본 전통인형인 ‘다루마’에서 영감을 얻어 1891년 러시아 민속공예화가 세르게이 말루틴이 처음 디자인했다고 전해진다. 둥근 몸통 안에는 작은 인형들이 겹겹이 들어 있는데, 일본정부에 선물하려고 만든 1세트 72개가 들어있는 대형 마트료시카는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시대에 따라 외형도 변해서 만화영화의 캐릭터나 대중음악가, 스포츠 스타나 정치인의 얼굴을 담은 마트료시카도 볼 수 있다. 가격은 싼 것은 대개 400~700루블 정도이지만 디자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FOOD국민음식 ‘보르쉬’와 ‘샤슬릭’ 러시아의 음식은 슬라브 전통에 서유럽과 몽골, 중앙아시아와 카프카스지역의 영향을 받아 대개 짜고 달고 신, 자극적이고 복합적인 맛이다. 대표적인 슬라브 전통음식인 ‘보르쉬’는 감자, 당근, 양배추에 비트와 토마토로 색을 낸 스프다. 샤슬릭은 러시아어로 ‘꼬치구이’라는 뜻이다. 이름보다는 맛 ‘오물‘오물은 바이칼호에서만 서식하는 토착 물고기다. 생긴 것은 우리의 청어와 닮았다. 회나 탕, 튀김, 샐러드 등 다양하게 먹는 방법이 있는데 자작나무에 훈제한 오물이 가장 인기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항구 마을 리스트비얀카에는 오물을 파는 가게들이 잔뜩 있다. 가시가 적고 비리지 않아 담백하다. 39°도 41°도 아닌 40° ‘러시안 보드카’러시아를 대표하는 술, 보드카Vodka는 러시아어 ‘물voda’에서 유래되었다. 감자나 옥수수, 보리 등을 원료로 한 증류수로 무색, 무취, 무미다. 러시아 속담에 ‘4,000km는 길도 아니고 영하 40도는 추위도 아니며 40도가 아니면 술도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19세기 후반, 원소주기율표를 만든 러시아의 화학자 멘델레예프가 가장 입맛에 잘 맞고 숙취를 일으키는 불순물이 제일 잘 걸러지는 최상의 알코올 도수가 40%라는 것을 발견했다. 보드카의 나라 러시아에서도 밤 11시부터 오전 8시까지 공공장소에서의 음주를 금지하고 있으며, 밤 10시부터 오전 10시까지는 도수 15% 이상의 주류 판매도 금하고 있다. MUSEUM연해주의 모든 것 ‘아르세니예프 향토박물관’1890년 개관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규모가 큰 박물관이다. 1906년 구시베리아 상업은행 건물로 옮겨졌는데, 아르세니예프는 연해지방을 서방에 알린 탐험가의 이름이다. 3층 건물 안에 연해주의 자연과 지리, 민속학, 고고학 사료들과 동식물 표본집, 화폐 등 약 20만 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주제가 딱히 구분되지는 않았지만 한국관에서는 지역에서 발굴된 발해의 유물을 볼 수 있다.20 Svetlanskaya Str. Vladivostok +7 4232 414 082 100루블평일 09:00~18:00, 토·일요일 09:00~17:30 HOTEL바이칼호 바로 옆 ‘바이칼로프 오스트록’알혼섬의 후지르 마을 입구에 있는 나무로 된 시베리아 전통가옥 형태의 숙소다. 2013년 문을 열었는데 114개의 객실에 250명을 수용할 정도로 알혼섬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깔끔하다. 특히 바이칼 호수 바로 앞에 위치해서 객실과 레스토랑에서 호수가 보이고 새벽에도 밤에도 산책을 할 수 있는데다, 부르한 바위까지도 도보로 20분 거리다. 7, 8월 성수기 스탠다드 트윈룸의 경우, 아침식사 포함 1박에 4,500루블(약 8만원), 화장실과 샤워실은 객실 3개가 있는 한 층에서 공동으로 사용한다. 욕실용품은 비치되어 있지 않다. 호숫가에서 바비큐를 할 수 있도록 그릴과 장작, 숯 등 일체의 도구도 대여해 준다. 666137, Russia, Irkutsk Region, Olkhonskyi District, Village Khuzir, Street Pribreznaya, 3+7 3952 404 202 www.baikalovostrog.ru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이세미 취재협조 대한항공 www.koreanair.com 참좋은여행 www.verygoodtour.com
  • 해외여행 | 태국-어둑한 마음에 볕을 러이Loei의 마법

    해외여행 | 태국-어둑한 마음에 볕을 러이Loei의 마법

    어쩔쏘냐. 삶이 내 뜻대로만 흘러갈 수 없으니, 스트레스가 쌓이고 불안에 흔들릴 때도 있는 법이다. 문제는 가슴에 쌓인 덩어리들을 어떻게 내보내냐는 것이다. 먹먹함에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찾아오면 그대 러이를 찾아가길. ‘겨우?’ 의심이 갈 법한 소소한 의식들이지만 당신을 구름처럼 가볍게 할 능통한 명약이 그곳에 있다. 태국 동북부 산악지대에 자리하고 있는 러이는 방콕에서 약 500km 떨어져 있다. 자동차로는 약 7시간이나 걸리는 지역이지만 태국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하면 1시간이면 충분하다. 가장 여행하기 좋은 시즌은 겨울이다. 라오스, 버마(현재 이름은 미얀마) 등의 국가와 근접해 있기 때문에 여러 양식의 문화를 한꺼번에 접할 수 있다.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버마를 견제하기 위해 라오스 왕자와 아유타야 공주가 혼인을 통해 손을 맞잡고 이 지역을 상징적인 평화의 지역으로 만들었다. 덕분에 건축물에 전통 아유타야 방식은 물론 라오스식 건축 양식이 섞여 있단다. 물론 지역 주민들 또한 라오스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많다고. ●단사이Dan Sai 단사이는 피타콘 페스티벌이 열리는 단사이는 러이 지방의 소도시다. 30분~1시간 안팎의 자전거 투어로 마을 곳곳을 둘러볼 수 있는데, 마을 병원에서 시작해 피타콘 뮤지엄까지 이어지는 길은 가이드가 함께해 골목길을 거쳐가기 때문에 러이 사람들의 생활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매력적이다. 자전거 투어는 1회에 약 15~20달러면 충분하다. ▶러이의 마법 주문 1 무서운 표정 하지 말아요 음모라도 꾸민 듯이, 해가 바뀌자마자 안 좋은 일들이 겹쳤다. 보드를 타다가 생애 처음으로 뼈가 부러져서 한달 넘게 깁스를 했다. 출장으로 떠난 유럽에서 휴대폰을 분실했고, 지인과는 끝장까지 볼 요량으로 치열하게 싸웠다. 이번엔 또 무슨 불행이 기다리고 있을까. 자조 섞인 기대감으로 시작한 여행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내리쬐는 태양, 내 마음에도 태양의 흑점처럼 부글부글 화가 끓고 있었다. 방콕에서 국내선을 타고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러이에서 나 못지않게 화난 얼굴을 한 피타콘Phi Ta Khon 마스크를 만났다. “귀신의 형상을 한 피타콘은 이 마을의 상징이자 나쁜 기운을 의미합니다. 매년 6월에는 피타콘 페스티벌이 사흘간 크게 열리는데, 나쁜 기운을 몰아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설명을 들으며 왓 폰 차이Wat Phon Chai 마을의 피타콘 박물관Phi Ta Khon Museum으로 들어서자 사람 상반신만한 크기의 피타콘 마스크가 표독스러운 표정을 하고 노려보고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해 6월27일경에 사흘간 열리는 피타콘 페스티벌은 마을 주민들은 물론 태국 전역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큰 축제다. 피타콘 마스크를 쓴 이들이 마을 사람들을 놀리듯이 행진하고, 사람들은 환호하며 어울리면서 평화와 안녕을 기원한단다. 축제가 가까워지면 마을 학교에서 모인 아이들은 피타콘 마스크를 만드는 데 여념이 없다. 아이들이 만든 피타콘 마스크는 정의 앞에서 호되게 당할 것만 같이 순수함이 숨어 있다. 진짜 무서운 귀신을 그려 주겠다, 마음먹고 붓을 집어 들었다. 뾰족뾰족 날이 선 손놀림으로 완성한 마스크는 내 심정 그대로다. 포악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붓을 내려놓자 마음은 한결 평안하다. 쌓여 있던 화가 마스크로 옮겨 간 것일까. 외지인들의 방문에 마을 사람들은 피타콘 페스티벌을 맛보기로 보여 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타콘 코스튬을 하고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한다. 허리춤에서 흔들리는 방울 소리와 마스크의 현란한 색깔이 와글와글 펼쳐지는 동안 신기하게도 엉켜 있던 마음이 설렁설렁 풀어지고 있었다. ▶러이의 마법 주문 2 위로의 말이 상냥해 고민을 직접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문제는 더욱 쉬워진다. 이곳엔 ‘자꾸안’이라 불리는 정신적 지주가 있다. 자꾸안은 신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존재다. 사람들은 질병이 생기거나, 집안에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 자꾸안을 찾아와 고민과 희망을 전하고 자꾸안은 그것을 기도를 통해 신에게 전달한단다. 나중에 소원이 이루지면 다시 돌아와 자꾸안에게 감사 인사를 올리는 것이 예의다. 자꾸안의 집에 들어가 마련돼 있는 종이에 소원을 적었다. ‘좋은 일이 생기게 해 주세요.’ 어차피 못 알아볼 테니 그동안 고민했던 것들을 주절주절 덧붙였다. 자꾸안에게 통역사가 간단히 내용을 전하자 잘 전달하겠다는 자꾸안의 답이 되돌아온다. 잘될 거라는 격려와 함께. 자꾸안의 집을 나서는데 괜히 발걸음이 가볍다. 명확한 답을 받은 것도 아니건만 잘될 거란 말이 든든하다. 마을 사람들도 이런 마음일 테다. 고민을 들어주고 격려를 받는 것만으로도 지친 마음은 재생의 힘을 얻는다. ▶러이의 마법 주문 3 비움의 길, 성인을 따라가는 길 불교인구가 95%에 달하는 태국에서는 단기간 출타를 하는 것이 낯선 풍경은 아니다. 태국의 왕 또한 왕이 된 후,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가 약 15일을 보냈다. 큰 일을 앞두고 마음을 정진하기 위해, 혹은 건강을 위해 잠시 동안 출가한단다. 기간은 본인이 정할 수 있다고. 우리나라의 템플스테이가 범인의 신분으로 며칠 동안 불교를 체험할 수 있는 단기 프로그램이라면, 태국의 것은 정말 스님이 되었다가 다시 세속의 범인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마침 피타콘 뮤지엄 주변에서 출가를 앞둔 이들을 위한 의식이 열렸다. 오늘의 주인공은 젊은 청년 한 명과 중년의 남자 두 명이다. 온 마을 사람들이 다 모인 듯 바글바글한 절 뒤뜰에는 들뜬 목소리들이 가득하고, 태국 최신 가요일 법한 음악이 크게 울려 퍼진다. 새하얀 옷을 차려 입은 주인공들은 가만히 식을 기다리고 있다. 연꽃 한 송이를 들고, 파르라니 깎은 머리를 천으로 가리고서. 각자 다른 이유로 출가를 결심했겠지만 모두 결연한 표정이다. 즐거움을 감추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과는 다르게 어쩐지 비장한 느낌마저 든다. 연이은 불행에 지쳤던 때라 의식을 기다리는 이들을 보며 괜한 기대감이 생겼다. 한 번쯤 시도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스쳐간다. 이때까지 있었던 문제들은 마음속에 쌓아두고 있는 것들이 많아서 생긴 것이 아니었을까. 불교의 이야기대로 마음을 비울 수 있다면 좀 더 행복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의식을 기다리는 이들도 마찬가지 기대를 품고 있을 터였다. 주인공들과 마을 사람들이 탑돌이를 시작한다. 온갖 축복의 말들이 쏟아진다. 행운을 의미하는 작은 동전들을 사방팔방에서 하늘로 던지고, 꽃가루까지 날린다. 그야말로 완전한 축복의 순간. 햇빛을 가리는 넓은 차양으로 호위를 받는 세 명의 주인공들은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걸었다. 복작복작한 가운데서도 이들에게서는 형형하게 빛이 나는 것만 같다. 그들의 여정에서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기를. 덕분에 나도 힘을 얻는다.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 방법은 놀랄 정도로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 말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치앙칸Chiang Khan 치앙칸은 메콩강 줄기를 따라 들어선 치앙칸에서는 새로운 차원의 태국 여행이 가능하다. 치앙칸을 둘러싼 자연을 느끼는 에코투어리즘이 유명하기 때문. 무엇보다 치앙칸의 명물은 ‘햇빛’인데, 일출과 일몰 시간이 되면 하늘이 오색으로 물든다. 메콩강에 비치는 노을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치앙칸에는 정갈하게 보존된 2~3층 높이의 전통 가옥들이 긴 골목을 형성하고 있는데, 마치 전통양식을 살려 보존해 둔 일본 골목을 찾아온 것처럼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저렴한 게스트하우스가 많고 소박하게 즐길 수 있는 유흥거리가 많아 태국의 대학생들이나, 유럽 관광객이 많이 찾아온다. 이곳의 매력에 빠져 길게 머무르는 여행자들도 많다고. 직접 만든 작은 소품들을 파는 숍, 파삿 체험을 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 이태원 골목에 숨어있을 법한 예쁜 카페 등이 주를 이룬다. 뻔한 기념품이 아니라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독특한 물건이 많기 때문에 주머니가 넉넉하다면 과감히 지를 것을 추천한다. 강 주변의 레스토랑에는 저녁 늦은 시간까지 주홍빛 전등 밑으로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가 흘러나온다. 강 쪽으로 난 산책로에 서면 언제이건 여유롭고 조용하게 메콩강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마음을 쉬게 하고 싶은 사람에게 양손 엄지 척. 꼭 가보시라. ▶러이의 마법 주문 4 메콩강에 흘려 보낸 마음 출가 의식 때 우연찮게, 혹은 필연적으로 손에 날아들었던 행운의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치앙칸으로 이동했다. 흑점처럼 타오르던 마음은 여정이 계속되면서 이미 작은 불길로 잦아든 지 오래다. 동행인들은 치앙칸에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줄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넓은 메콩강 위에 나쁜 기운들을 쏟아낼 수 있을 거란다. 태국 전통 가옥들이 오밀조밀 들어선 치앙칸에 도착하자마자 골목길 안쪽의 작은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간다.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플로팅 오브젝트를 만드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태국어로 ‘파삿 로이 코Pasard Loy Kror’라고 불리는 플로팅 오브젝트는 태국인들이 나쁜 일이 생기면 행하는 의식에 사용되는 것이다. 파삿에 촛불을 켜고 강 위에 흘려 보내면서 나쁜 기운도 같이 흘려 보내는 것. 태국 사람들은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면 파삿을 만들어 강으로 나선단다. 재료는 모두 자연에서 난 것이다. 대나무 줄기를 꺾어 틀을 잡고 대나무 잎으로 바닥을 만든다. 그리고 왁스 꽃으로 장식하고 사방에 작은 초를 꽂아 완성한다. 파삿을 완성하면 모두 동그랗게 둘러앉아 간단한 의식을 치른다. 등 뒤로 명주실을 크게 돌려 원을 만들고 짧은 기도를 한 뒤 등 뒤의 실을 무릎 앞으로 넘겨 가져온다. 나에게 있었던 나쁜 기운이 원을 따라 파삿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조심조심 양손으로 바삿을 들고 메콩강으로 간다. 자칫 우습게 보일 수도 있는 의식이었다. 누군가 ‘이 까짓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애타던 자에게는 이 과정과 행위들이 더없이 황홀한 순간이었다고 하면 믿으시려나. 강 위에 파삿을 띄우는 행위는 상상하는 것보다 더 뭉클한 것이었다. 공들여 만든 나의 파삿에 촛불을 켜고 메콩강의 흙빛 물 위에 올린 뒤 밀어냈다. 그때부터다. 찬찬히 마음이 해방감에 젖어 들었다. 정말로 파삿 안에 나의 나쁜 기운이 담긴 것처럼 말이다. 파삿을 물에 띄우고 나면 다시 보지 말아야 한다는 법칙에 따라 시선을 돌렸다. 멀리 누군가 띄운 걱정들이 어둑어둑한 강 물 위에서 반짝이며 흔들흔들 떠다니고 있었다. ▶러이의 마법 주문 5 비운 자리엔 반짝이는 행운을 담아 마음을 비웠으니 좋은 기운을 채울 차례다. 이른 새벽 숙소 앞에 작은 바구니를 들고 자리를 잡았다. 새벽마다 공양을 하는 스님들에게 보시하기 위해서다. 이곳에서 보시는 일상과 같다. 매일 새벽마다 사람들은 골목길을 따라 앉아 스님들을 기다린다.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이런 풍경에 여행자도 동참할 수 있도록 보시할 음식과 전통 옷을 준비해 주기도 한다. 지금까지 참여했던 많은 의식들이 모두 나쁜 기운을 없애기 위한 것이었다면, 보시는 행운을 얻기 위한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스님에게 보시를 하면서 좋은 기운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주황색 승복을 걸친 맨발의 스님들이 자박자박 걸어온다. ‘좋은 일이 생기게 해 주세요.’ 기도하는 마음으로 흰 쌀밥 한 줌, 과자 한 봉지를 바구니에 담는다. 스님들은 때때로 멈춰서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며 행복을 기원해 준다. 새벽의 고요함 속에 중얼중얼 서로의 축복을 기원하는 순간이다. 이 경건한 의식은 쉬웠지만, 더없이 뿌듯한 것이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치앙칸에서의 보시가 마음을 정갈하게 만드는 것이었다면 반나파낫 타이담 문화마을Ban Na Pa Nat Taidam Cultural Village에서의 체험은 마음속에 반짝이는 기쁨을 채우는 시간이었다. 치앙칸에서 한 시간 거리인 반나파낫 타이담은 직조 기술로 유명한 마을. 100여 년 전 라오스에서 이곳으로 옮겨 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때문에 태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그중에서도 집집마다 창과 문에 걸어 놓은 각양각색의 모빌이 가장 눈에 띈다. 색색의 실을 얇은 대나무 가지에 꼬아 만든 모빌은 ‘행운’을 의미한다. 행운이 들어오길 바라는 마음에 창과 문에 걸어 둔단다. 벼가 자라는 시기, 농사일이 한가해지면 이곳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천을 짜거나 모빌을 만들며 시간을 보낸다. 덕분에 보통의 시골마을이 초록 일색이라면 이곳은 노랑, 빨강, 분홍 등 생기 넘치는 색이 가득하다. 실로 만든 공예품일 뿐인데 마음을 빼앗긴 것은 그 때문이다. 작은 나무에 걸려 바람에 흔들리던 모빌은 그 존재만으로도 즐거운 기운이 넘쳤고, 그 기운이 나에게도 전해졌던 것이다. 괜히 기분이 좋아져 콧노래가 절로 나올 지경이었으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행운을 가져다 주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놀라운 행운이 나를 가득 껴안았다. 여행 중 잃어버린 귀한 물건을 공항에서 찾았던 것. 올 초부터 이어졌던 불행의 또 다른 연장선상이 될 뻔했던 분실 사고가 그야말로 ‘기적적으로’ 해결된 것이다. “이건 정말 대단한 행운이야.” 함께했던 사람들이 축하의 인사를 건넬 때, 같이 기도했을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가득 찼다. 그리고 짧은 여행에서 참여한 의식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미신 같거나, 소박했을지언정 절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 순간들이. ▶travel info AIRLINE태국 수도인 방콕에서 러이행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자동차로는 7시간이 걸리지만, 비행기를 이용하면 1시간 안에 이동할 수 있다. 타이항공, 녹에어, 에어아시아 등이 러이행 국내선을 운행하고 있다. Restaurant란창 가든 바 & 레스토랑LanChang Garden Bar & Restaurant단사이 마을 인근의 모던 태국식 레스토랑. 생선, 고기, 야채 등 다양한 태국 요리를 선보이는데 기름지지 않고 깔끔한 맛이 특징이다.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의 까다로운 입맛도 사로잡은 곳이다. 아주 고급스러운 분위기는 아니지만 플레이팅에도 세세하게 신경을 쓰는 등 정찬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Muang Loei, Loei, Thailand 42000 +66 42 833 733 www.facebook.com/pages/LanChang-Garden-Bar-And-Restaurant Hotel푸파남 리조트 & 스파Phu Pha Nam Resort & Spa시내와 조금 떨어진 숲 속에 위치하고 있다. 목조건물로 내부 인테리어에서도 나무의 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창밖으로 푸른 숲의 기운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1층에 자리한 레스토랑은 나무에 둘러쌓인 큰 테라스가 있어 여유롭게 아침을 즐기기에 좋다. 다만 모기를 조심할 것. 음식은 기교 없이 담백하다. 태국 음식이 낯선 사람이라도 부담없이 도전 해 볼 수 있다. 252 Moo 1, Koakngam, Amphur Dansai, Loei 42120, Thailand +66 42 078 078 www.phuphanam.com 더 올드 치앙칸 부티크 호텔The Old Chiang Khan Boutique Hotel치앙칸에서는 메콩강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숙소를 정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곳은 메콩강 방향으로 난 숙소인데다, 100년 역사의 태국 전통 건물을 호텔로 만들었다. 손때 묻은 전통 가옥이 주는 넉넉함은 물론 일출이 시작되거나 노을이 지는 때, 호텔 곳곳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있으면 평화로운 기분이 마음을 촉촉하게 적신다. 현대식이 아니기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자잘한 것들이 있지만 그쯤은 이곳이 주는 기쁨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다. 치앙칸 골목이 시작되는 입구에 자리하고 있어 야시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즐길 수 있다는 것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288, Chiang Khan, Chiang Khan District, Loei 42110, Thailand +66 42 822 119 www.theoldchiangkhan.com Stupa프라 탓 스리 송 락Phra That Sri song Rak 1560년대 태국의 아유타야 왕국과 라오스 비엔티안 지방의 스리 사타나카나헛 왕국이 평화 협정을 맺고 만들었다는 사리탑이다. 사리탑은 신발을 벗고 입장할 수 있는데, 한낮에는 바닥이 뜨거우니 양말을 꼭 준비하는 것이 좋다. 일반적으로 탑돌이를 할 때는 시계 방향으로 돌지만, 이곳에서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돈다. 몸의 왼쪽에 있는 심장을 사리탑과 더 가깝게 두기 위해서다. 큰 수트파 사방으로는 마을 사람들이 만든 대나무 공예품들이 쌓여 있다. 그것이 이곳 마을 사람들이 스투파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Temple왓 너라밋 위파타사나Wat Neramit Wipattasana대리석으로 지은 태국 방콕의 마블템플에서 모티브를 얻어 20여 년 전 만들어진 사원이다. 러이의 특산품인 분홍 대리석을 썼다. 치앙센 양식과 수코타이 양식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부처상은 은혜로운 미소와 함께 자비 넘치는 표정으로 완성됐다. 러이 지방 아티스트가 8년에 걸쳐 벽을 따라 그렸다는 벽화에서부터 중앙에 찬란한 황금빛으로 빛나는 부처상까지, 꼼꼼히 둘러볼수록 그 정성이 남다르다. 명상하는 사원이므로 여행자 또한 발소리와 목소리를 죽여 승려들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글·사진 차민경 기자 취재협조 태국관광청 www.visitthailand.or.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해비치 호텔 제주, 제주관광대상 수상

    해비치 호텔 제주, 제주관광대상 수상

     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 제주(이하 해비치)가 4일 제주 관광산업 발전에 기여한 업체를 대상으로 진행된 ‘2015 제주관광대상’에서 종합부문 대상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해비치는 글로벌 행사 개최를 통해 내, 외국인에게 제주를 알리고, 아트 페스티벌 등을 개최해 제주의 문화와 공연 발전에 기여했으며, 협력사 직원 채용으로 제주 지역 고용 안정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 받았다. 특히 2007년부터 9년째 열리고 있는 제주 평화포럼에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 존 하워드 전 호주 총리, 반기문 UN 사무총장, 리샤오린 중국 인민 우호협회 회장 등 세계 유명 인사들을 초청하는 등 해마다 뚜렷한 성과를 내왔다. 또 제주의 문화와 공연 예술 발전을 위해 8년째 ‘해비치 아트 페스티벌’을 개최, 해마다 전국 3000여명의 문화 예술인 및 관계자가 제주의 문화 현장을 방문하고, 심포지엄, 문화 마트 마켓, 쇼케이스 등을 통해 활발한 문화 교류의 장을 만들도록 환경을 조성해왔다. 아울러 지난해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제주지역본부와 함께 도내 소외계층 아동을 돕는 캠페인을 여는 등 기부 문화를 알리고, 연말 토크 콘서트 등 행사로 성금을 전달하는 등 제주 도민을 위한 후원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민 해비치 대표는 “제주도를 대표하는 호텔로서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과 문화를 알리는데 앞장서 왔다”며 “앞으로도 사명감을 갖고 제주도를 알리고, 제주도와 함께 상생하며 발전해 나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첫 베트남 진출 한화생명, 박퐁 마을에 보건소 신축 지원

    첫 베트남 진출 한화생명, 박퐁 마을에 보건소 신축 지원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차를 타고 2시간 이상 가야 하는 호아빈성 까오퐁현 박퐁 마을에 지난달 30일 마을잔치가 열렸다. 이 지역에 하나밖에 없는 보건소가 새 단장을 했기 때문이다. 한화생명이 올해 초부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함께 보건소 설립을 추진한 결과다. 오렌지 농사로 생계를 꾸리는 박퐁 마을 주민들은 주변에 병원이 없어 아이를 낳거나 갑자기 아프면 모두 보건소를 찾지만 네 칸짜리 낡은 건물엔 보건소 간판만 붙어 있을 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새 보건소에는 건강검진실, 응급실, 분만실, 입원실 등 8개 보건시설과 약품이 갖춰졌다. 진료를 맡고 있는 부이티항(32·여)은 “이전에는 보건소가 있어도 막상 몸이 아픈 환자가 발생하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고 위생도 엉망이었다”면서 “앞으로는 10㎞ 이상 떨어진 시내까지 찾아갈 필요가 없어 다행”이라며 활짝 웃었다. 2009년 국내 생명보험사 최초로 베트남 시장에 진출한 한화생명은 하노이, 호찌민, 다낭 등 주요 도시를 거점으로 49개 영업망을 구축하고 있다. 수입보험료가 2009년 16억원에서 지난해 227억원으로 14배 이상 급증했다. 2013년부터는 주거 지원과 보건·의료 지원 사업도 해오고 있다. 특히 헌혈 등 현지 설계사들의 자발적인 봉사 활동으로 인지도도 올라가고 있다는 게 한화생명 측의 설명이다. 백종국 한화생명 베트남법인장은 “앞으로도 사회공헌 활동 등을 통해 베트남인들에게 사랑받고 존경받는 한국 기업이 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하노이(베트남)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씨줄날줄] 천경자 문화훈장 논란/서동철 수석논설위원

    프랑스의 국가훈장 레지옹 도뇌르는 훌륭하게 자기 인생을 경영한 사람의 증표쯤으로 높이 평가된다. 이 훈장은 내국인뿐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준다. 외국인이라면 프랑스 사람보다 훈장을 받은 것을 훨씬 더 큰 영예로 여길 수도 있다. 이 훈장을 받은 한국인은 생각보다 많다. 가야금병창의 인간문화재인 안숙선 명창이 1998년, 영화 ‘초록 물고기’와 ‘오아시스’, ‘밀양’을 연출한 이창동 감독이 2004년 4등급에 해당하는 ‘오피시에’를 각각 받았다. 이 감독이 레지옹 도뇌르를 받은 것은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직후이니 문화 부처 수장 경력도 수훈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 것이 분명하다. 가장 낮은 5등급 ‘슈발리에’ 수훈자는 낯익은 사람들이 많다. 파리 바스티유오페라의 음악감독을 역임한 지휘자 정명훈과 동양적 사상을 기반으로 한 단색 작업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화가 이우환, 영화감독 임권택의 이름이 보인다. 두 번째 등급인 ‘그랑도피시’는 조중훈 전 한진그룹 회장이 받았을 뿐이다. 세 번째 등급인 코망되르의 수훈자도 박태준 전 포스코 회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으로 모두 기업인이다. 훈격(勳格)을 정하는 데 문화보다 정치·경제 논리를 우위에 놓은 꼴이지만, 이의를 제기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의 문화훈장은 영역을 국한하지 않는 레지옹 도뇌르하고는 성격이 다르다. 그럴수록 문화훈장의 격을 놓고 종종 벌어지는 논쟁은 더욱 문화적이라고 할 수 없다. 지난 8월 미국에서 세상을 떠난 천경자 화백의 경우가 그렇다. 정부는 엊그제 천 화백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줄 것인지를 논의했지만 추서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미술계는 물론 평소 미술에 큰 관심이 없어도 독특한 작품 세계를 이룬 천 화백의 개성 있는 작품을 인상 깊게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1998년에는 90점 남짓한 자신의 작품을 서울시에 기증하고 저작권을 위탁하는 모범을 보인 그다. 천 화백이 1983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이후 예술적 성취나 업적에 논란이 있었다는 문화체육관광부의 논리도 억지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떠난 예술가의 업적은 한 시기가 아니라 평생을 뭉뚱그려 판단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도 문체부는 귀담아들어야 한다. 정부의 결정이 세상의 일반적인 판단과 다르다면 설득력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예술적이지 않은 이유로 예술가를 평가하기 시작하면 남아날 예술가는 많지 않다. 정부는 금관문화훈장 서훈 여부를 천 화백이 벌였던 세상과의 말싸움이 아니라 그의 예술적 성취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 천 화백 자녀들도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천 화백이라면 금관문화훈장에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했겠느냐는 것이다. 이미 세상이 인정한 천 화백이 아닌가. 서동철 수석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월드피플+] ‘87세’ SNS 스타 할머니가 전하는 희망

    [월드피플+] ‘87세’ SNS 스타 할머니가 전하는 희망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을 증명한 80대 노인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CNN, 피플지 등 다수 매체에 소개된 주인공은 올해 87세인 배디 윙클. 그녀가 하루아침에 스타로 등극한 것은 다름 아닌 인스타그램 덕분이다. 곧 90세를 앞두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뛰어난 패션 감각을 자랑하는 배디 윙클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패션화보를 능가하는 사진들을 올려 스타로 등극했다. 형광빛이 도는 초록색 운동화와 총천연색의 티셔츠를 매치하는가 하면, 젊은 여성도 소화하기 힘든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쓴 채 카메라 앞에서 웃음을 짓기도 한다. 현재 배디 윙클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170만 명. 언론에 소개된 이후에는 더 빠른 속도로 팔로워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배디 윙클의 ‘SNS 절친’은 할리우드의 악동으로 불리는 마일리 사이러스다. 배디 윙클과 마일리 사이러스는 화려한 프린팅의 의상을 입고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기도 했고, 두 사람의 사진은 수 십 만명의 네티즌들로부터 ‘좋아요’를 받았다. 하루하루를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살아가는 그녀지만, 그녀가 SNS 스타로 ‘데뷔’하기까지는 여러 아픈 사연들이 있었다. 수 년 전, 배디 윙클의 남편은 35번째 결혼기념일 당일 불의의 자동차 사고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16년 전에는 46살의 아들이 암으로 사망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녀는 “나는 남편과 아들을 잃고 혼자서 괴로워하고 비통해하는 것에 지쳐있었다. 새로운 나의 모습이 필요했다”면서 “우연히 20대 손녀딸의 옷을 입었는데 매우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이 모습을 SNS에 올렸는데 뜻밖의 반응들을 만났다”고 전했다. 그녀의 SNS에서는 그저 ‘패션’에만 그치지 않고 희망을 전달하려는 배디 윙클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입증하며 노년을 즐겁게 보내고자 하는 그녀의 모습에,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네티즌들이 ‘좋아요’를 보내고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색에 담은 선 삶을 닮은 손

    색에 담은 선 삶을 닮은 손

    깊은 숲 같은 초록, 밤하늘 같은 보라…. 짙고 선명한 바탕색에 도드라진 선들은 간결하지만 힘이 넘친다. 마티스의 작품에서 본 듯한 악기를 연주하는 여인, 꽃을 든 여인의 초상, 춤을 추는 무희의 모습을 담은 화가 오천룡(73)의 그림을 보다 보면 선과 손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간다. ●“형태·색의 본질 찾아 끊임없이 변화 추구” 경남 창원의 세솜갤러리에서 ‘선(線) 유화’ 작품과 함께 화가 경력 50년 기념전을 하고 있는 재불 화가 오천룡은 “선은 50여년간 형태와 색의 본질을 찾아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 온 결과”라며 “선을 위주로 그림을 하면서 다양한 손의 표정에 자연스레 집중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람은 손에 자신의 흔적을 남깁니다. 손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을 알 수 있어요.” 그의 그림이 손에서 출발하는 이유다. 그는 선명한 색으로 바탕을 칠한 뒤 짙은 색 혹은 흰색의 두꺼운 선으로 드로잉을 한다. 그 위에 금을 그어 홈을 판 뒤 어두운 색이나 검은색을 입힌다. 이때 17세기 베네치아의 화가들이 사용했던 반짝이는 안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윤곽이 더욱 또렷해 보인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추상화가로 화단에 데뷔한 그가 프랑스로 건너간 것은 서른 살 때인 1971년. 프랑스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고 싶은 마음에 구상으로 회귀했던 그는 낙엽의 다채로운 색에 집중하는 시기를 거쳐 지금의 선에 집중하게 된다. 70대 중반을 맞은 그의 작품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자유롭고 에너지가 넘친다. 선의 힘과 색의 힘이 조화를 이룬 작업을 할 수 있는 비결을 묻자 “걷기와 고전음악”이라고 답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프랑스에서 랑도네라고 하는 걷기에 참여합니다. 7~8시간 정도를 자연 속에서 걷다 보면 머릿속에 있던 모든 고정관념이나 잡념이 사라지고 원초적인 상태가 될 수 있어요.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마치 원시인 같은 상태로 돌아간 뒤에 붓을 잡습니다. 작품을 하는 동안 늘 음악과 함께합니다.” ●젊은 작가들에 전시 데뷔 기회도 제공 오 화백은 정헌메세나 회장이라는 직함도 갖고 있다. 정헌메세나는 친구인 동일방직 대표 서민석 회장과 뜻을 모아 만든 예술 지원 재단이다. 2004년부터 유럽 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만 35세 미만 한국 청년 작가들과 프랑스 내에서 활동하는 35세 미만 프랑스 청년 작가를 대상으로 매년 한 명씩 선발해 작가상을 수여하고 전시회를 열어 주고 있다. 그는 “예술가와 세상을 이어 주는 다리 역할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젊고 유능한 작가들에게 전시 데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며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수상자들이 작가로 성장해 가는 것을 볼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전시는 11월 27일까지.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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