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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과 나눔의 자선공연

    지휘자 함신익,테너 최승원,소프라노 김수정,바이올린 캐서린 조,피아노 윤선영씨.미국에서 활동중인 클래식 음악계의 스타급 연주자들로 자선공연 ‘98 사랑과 나눔의 콘서트’무대에 나란히 선다. 29일 하오 7시30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598­8277. KBS교향악단의 연주로 진행될 이번 공연의 수익금 전액은 정신지체장애인수용시설 ‘교남 소망의 집’ 재활시설 기금으로 쓰여진다. 92년 이래 매년 한차례씩 KBS교향악단을 객원 지휘해온 함씨는 현재 미국텍사스 애벌린 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예일대심포니 음악감독 겸 지휘자로 활동중인 중견 지휘자.또 최승원과 김수정씨는 각각 93년,95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주인공들이며 윤선영씨도 유명 콩쿠르 입상과 링컨센터 연주,음반활동 등 다방면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는 피아니스트. 최고의 첼로주자 로스트로포비치가 “음악을 아름답고 성숙하게 만들 줄아는 특별한 재능을 지닌 연주자”라고 극찬했던 캐서린 조는 최근 유망신예에게 수여하는 애브리피셔 커리어 그랜트상을 받기도 했다. 이날 연주곡목은 베르디의 ‘운명의 힘’서곡과 멘델스존 ‘바이올린협주곡 작품64’,생상 ‘피아노협주곡 제2번’,도니제티의 오페라 ‘루치아’중 아리아 등.
  • 첼리스트 鄭明和(이세기의 인물탐구:173)

    ◎사색을 길어올린 웅숭깊은 음색/선율마다 무르익은 서정성과 넉넉한 여유/테크닉보다 음의 조화 이뤄내는 경지 터득/80년대 음악 멀리하다 “삶의 목적” 깨달아/드로브자크 협주곡 백미… 제자양성에 보람 첼리스트 鄭明和의 손은 남자손보다 크다. 어깨도 남자처럼 넓다. 잘 생긴 용모에다 목소리도 밝고 건강하다. 시원시원하고 밝은 성격때문인지 음악도 스케일이 크고 넓고 심오하다. 단순히 넓고 클뿐만 아니라 톤에는 힘이 살아있고 음의 마디마다엔 유연하고 확고한 뼈대가 꿈틀거린다. 그에게선 발톱을 세운것 같은 독이나 과시감은 찾아볼수 없다. 단지 무르익은 서정성과 육화된 음악의 포도주가 내면에서 출렁거릴 뿐이다. 일상생활에서도 그는 타인에 대한 포용력과 너그러움으로 남의 잘못을 가려줄 줄 안다. 초면이라도 구면같이 굴고 좋은 환경에서 잘자란 숙녀답게 반듯한 예의와 부드러움을 잃지 않는다. 만사에 대범한 편이지만 음악에 관해서만은 치열성과 철저성이 대단하다. 승부근성이 투철하여 그가 이화여중에 다닐때는 친구 하나도 사귀지 못한채 낮과 밤은 온통 첼로연습으로만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전국남녀음악경연대회에서 첼로부문 1등상, 서울예고 재학중에 이미 두번의 개인독주회를 가졌고 고2때인 60년에는 한국학생문화사절의 일원으로 일본에 건너가 도쿄와 오사카 순회연주등 그의 이름은 ‘첼로의 천재’로서 소녀시절에 음악계의 중앙에 우뚝서는 존재였다. 오랜 연주경력탓에 그의 음악은 언제부턴가 외형보다 내면을 추구하게 되었고 테크닉보다는 음과 음의 연결로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어내는 능란한 경지를 터득하고 있다. 음악평론가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장인 이강숙씨는 ‘정명화의 음악은 팽팽한가 하면 느슨하고 여유로운가 하면 팽팽한 긴장감이 돋보이는 가운데 자신감에 찬 연주로 청중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평한다. 그는 과연 무리와 과장이 없이 음악의 ‘순리’를 존중하며 음악의 도리에 순종한다는 자세를 지킨다. 기교에 침몰하거나 장식음으로 청중을 혼도시키기보다 음과 음으로 보석타래를 꾸미듯이 장구하고도 값진 음악을 그때마다 선사해준다. 화사하게꽃가루를 뿌려대는 바이올린의 변화무쌍과는 달리 첼로만의 사색과 철학은 마치 동굴에서 길어올린 갖가지 원석처럼 장중과 비장미마저 풍긴다. 정명화를 새삼 설명할 필요는 없다. 서울 명동의 유명한 음식점이었던 고려정의 정준채씨와 이원숙씨 사이의 7남매중 딸로 둘째. 줄리아드음악원에서 첼로의 거장 피아티골스키를 사사했고 60년대 중반 뉴욕 링컨센터에서 첫연주를 가졌을때 뉴욕타임스는 ‘멋과 재능 그리고 기교의 연주가’로 평했고 워싱턴포스트는 ‘가장 보배로운 첼리스트’로 표현하여 지금까지도 이 찬사는 그를 따라다니는 대명사가 되고 있다. 그때까지 동생인 바이올린 정경화나 피아노를 치던 정명훈보다 정명화의 이름은 그들을 리드하고 있었고 그만의 음악적 매력으로 해 세계 첼로계에서도 선두그룹을 달리고 있었다. 파죽지세로 명성을 쌓던 시기인 66년, 고국에 돌아와 첫리사이틀을 열었을때 음악계의 대부이던 평론가 유한철씨는‘예의 타고난 활달함과 연주가다운 낙천성이 몸에 배어 다이내믹한 역성감(力性感)을 실감시켜주는 연주’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세계에 내놓아 자랑할수 있는 젊은이’로 정명화의 장밋빛 미래를 예고한 것도 그 무렵이다. 제네바국제음악콩쿠르에서 첼로부문 1등상을 수상하던 71년에 전세계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당시 AP통신 기자이던 具三悅씨와 결혼, 부군은 유엔 50주년 총괄국장으로 있다가 최근에는 유니세프총재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자녀는 꽃별과 꽃샘. 장녀 꽃별이 지난주 뉴욕에서 결혼했다. 80년대 로마에 머물던 시기에는 잠깐이지만 첼로연주를 멈춘 적이 있으며 가장 자신있게 연주하던 드보르자크 첼로협주곡마저 낯설게 느껴지자 문득 ‘좌절의 시간이 오히려 음악적으로 가장 성숙한 시기’, ‘첼로야말로 무덤까지 끌고갈 동반자이자 삶의 목적 자체임을 깨달을수 있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94년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교수로 재직하면서 같은해 8월 그는 실로 12년만에 고국에서의 독주회를 가졌고 작곡가 이영조가 그를 위해 작곡한 ‘첼로와 장구를 위한 도드리 1’ 연주는 또한번 음악계에 센세이셔널한 화제와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농현을 뜻하는 피치카토와 글리산도, 높은 음역에서 낮은 음으로 급격히 낙하하는 소리의 대비, 명상적인 지속음과 장식음등 우리만의 얼이 담긴 가야금과 거문고, 해금과 아쟁이 할수 있는 음악적 요소를 첼로로 펼치면서 우리의 소리를 세계음악언어의 반열에 올려놓는 계기를 만들었다. 과연 한국 첼리스트의 자존심과 실력을 마음껏 과시한 자리로 그가 연주를 끝냈을때 객석에서 길게 이어지는 박수갈채는 그칠줄을 몰랐다. 조용하게 데뷔한 연주자가 있는가하면 센세이셔널하게 등장하는 연주자도 있을 것이다. 조용한 강이라고 해서 모두가 깊은 것은 아니며 센세이셔널은 그만한 화제성과 가치성을 지닌다. 일찍이 세계의 매스컴으로부터 ‘발군의 테크닉과 명쾌한 해석, 특히나 그의 드보르자크 첼로협주곡은 보헤미아의 향수가 사무친 연주’라는 평과 함께 그의 연주는 지금도 고국의 땅을 밟는 순간의 탄성과 향수와 사랑이 간절하게 얼룩져 듣는 이의 심금을 뜨겁게 울린다. 어릴때는 피아노 성악 바이올린 사이에서 무엇을 전공할 것인가를 방황했고 20대에는 다른 사람의 연주를 들으면서 자신의 음악성과 장래에 대한 회의에 빠지기도 했으며 30대에 이르자 명성을 지키기에 급급했고 40대가 넘자 비로소 모든 치열성과 명성에서 벗어나 그는 진정한 음악인의 자유로움을 구가하고 있다. 그래선지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가 되어 조국과의 연대를 끈끈히 하고 제자들을 가르치게된것을 어느때보다 감사하고 행복과 희열을 느낀다고 말한다. 음악을 관조하고 무르익은 예술성을 내면에 삭이는 시기에 서서 그는 물이 흐르는 듯한 유연함과 여유로움으로 그만의 서조와 광채를 여전히 잃지않고 있다 □그의 길 ▲1944년 서울출생 ▲1961년 서울예고 졸업, 도미 ▲1961부터 줄리아드음악원 및 남가주립대졸업, 거장 레오나드 로즈, 그레고르 피아티골스키 사사 ▲1969년 미 닉슨 대통령 초청 백악관연주,로스앤젤레스필하모닉 협연 ▲1971년 제네바국제음악경연대회 최우수연주상 수상 ▲1972년부터 런던 BBC교향악단을 비롯, 런던필, 베를린 R IAS, 스위스로망드, 로테르담 워싱턴교향악단등과 협연(지휘 주빈메타 루돌프 켐페 안탈 도라티 줄리니등) ▲1976년 뉴욕 링컨센터 바이올린 정경화, 피아노 정명훈과 ‘ 3남매’연주,전미순회연주, 파블로 카잘스탄생 100주년기념연주 1982년 KBS교향악단초청 협연(세종문화회관 대강당) ▲1991년부터 정트리오 음악축제 ▲1994년 국악과의 만남독주회 ‘장구와 첼로를 위한 도드리1( 이영조작곡)’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1995년 UN창설 50주년 UN마약퇴치 친선 사절로 세계순회 연주 ▲1997년 뉴욕에서 유니세프주최‘북한 어린이돕기 모금음악회’ ▲1998년 워싱턴 케네디홀 뉴욕 카네기홀서 ‘나라사랑’음악회, 미국 버몬트 국제음악제연주, 이착펄먼 서머프로그램 참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빙교수 미국 ‘엑설런트 2000’상(92년) 청소년 차이코프스 키콩쿠르 최고지도자상(97년) 아름다운 소리 ‘한·꿈·그리움’(96년 CMI음반레이블 )출반
  • 베토벤피아노삼중주op97.‘대공’(명반과 함께하는 음악여행:3)

    ◎그후,미래와의 따스한 대화 1.다른 악기들은 베토벤의 친구거나,친척,아니면 연인들이다.그러나 피아노는 베토벤 그 자신이다… 오늘 소개하는 음반의 피아노 연주자 유게네 이스토민은 그렇게 말했다.그리고,과연,1악장 벽두부터 이스토민의 피아노가 절묘하다.첫음과 둘째음 사이가 다른 연주보다 아주 미세하게 느린데,그 차이가 절벽을 이루면서 동시에 포괄한다.피아노 음은 무한히 영롱해서 마치 내비칠 듯하다,절벽을 품고 치열하게 따스한 대화정신이 탄생하는 과정을.곧이어 빠르지만 서두르지 않고,아니 매우 여유롭게 바이올린 선율이 통로를 마련한다.그것은 바이올린 연주사상 가장 부드럽고 온화한 통로다.그리고 연주자 아이작 스턴의 고유한 바이올린 음색이 가장 적확하게 들어맞는 대목이다. 마치 바이올린 선율이 스스로 제 육체를 기꺼워하는 듯.레너드 로즈의 첼로는 시작도 없이 밑도 끝도 없이 어느새 ‘온화의 무게’를 보태고. 그렇게 매우 짧은 순간에 광활하고 원대한 대화의 장이 마련된다.음악이 시간의 장르면서 시간을 극복하는,공간의 순간이다.피아노 삼중주는 무엇보다 대화의 장르다.그리고 베토벤의 피아노 삼중주 ‘대공’(대공 트리오)은이 방면의 최고 걸작.베토벤이 원했던 대화의 내용은 무엇이었던가.세 연주자는 그 ‘무엇’을 어떻게 당대화했는가.그러기 위해서 세 연주자 사이에어떤 대화가 필요했는가.대화는 어떤 고통을 겪고서 일상성(日常性)의 질(質)을 높여가는가? 2.1814년 4월 11일 빈의 로마황제 호텔 군(軍)자선음악회 리허설 공연장.베토벤이 직접 피아노를 잡고 있다.허름하지만 자세가 괴팍하게 느껴질 정도로 도도하다.청중은 문화계 저명인사와 귀족들.가 그렇게 연주된다.기대에 가득찬 청중의 얼굴에 점차 연민의 정이 어린다.베토벤의 연주는 형편이 없다.크게 쳐야 할 음절에서 건반을 너무 쾅쾅 두들겨대고 부드러운 대목은 너무도 미약해서 들리지 않는다. 초연(初演)은 그렇게 엉망으로 끝났다.그렇다.그는 귀가 먹은 상태였다.몇 주일 후 다시 직접 연주에 나섰지만 그게 마지막 연주가 되고 만다.아,베토벤.청년 시절 그의 작품은 기존의건반악기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그래.그때도 그는 건반악기를 ‘때려부수듯’ 연주했었지.그후 그의 음악은 표현력이 강화된 악기를 내내 요구해 왔고,새로 태어난 악기는 그의 음악으로 새로운 표현 영역을 개척해 오지 않았던가.44세 베토벤 청각 장애,아니 치매의 연주는 그래서 더욱 애처롭다. 그러나 우리가 베토벤을 위해 슬퍼할 것은 없다.그때의 청중들도 그렇다.그때 정작 베토벤은 ‘마음의 귀’로 연주했고 마음의 귀로 자신의 음악을 들었다.즉,그는 가장 이상적인 연주를 들었다.그리고 그 귀가 그후 13년 동안, 침묵의 세계에 귀를 기울이면서 이제껏 어느 작곡가도 넘보지 못한 만년(晩年)의 음악세계를 건설한다. 3.스턴,로즈,이스토민 세 연주자는 베토벤이 마음의 귀로 들었던 바로 그 연주를 재현한다.그리고 그,대화의,통로가 위대한 침묵의 저변을 이루는 광경도 보여준다. 1악장은 숭고한,끝없이 숭고한 고통에 단아한,끝없이 단아한 외모를 부여한다.공(空)인가? 아니다.단아함의 육화(肉化)다.공을 더욱공이게 하고 색(色)을 더욱 색이게 하는.무엇보다,그 조화를 심화시키는.2악장은 얼핏 가볍지만,위대한 20세기적 웃음의 경지를 여는 통로다.3악장은 1악장 공간(空間)의 시간화(時間化).고통의 시간이 아름다움의 영원성을 잉태하는 과정이다.다섯개의 변주(變奏)로써 생애를 다섯 번 심화­확대시키는.마지막 변주는 길고 가장 온전하다.그런데 그 말미에 자기파괴(自己破壞)가 감행되고 그것이곧바로 4악장 춤곡으로 연결된다. 의 4악장 구조는 침묵의 제련을 통해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합창교향곡)의 세계로 심화될 것이다.3악장 말미는 만년 현악4중주들의 난해한 경지를 연다.그것은 ‘신(神)=인간’의 경지와 ‘청각치매=죽음’의 경지를 결합하고 그 결합을 음악화하려는,그렇게 스스로 음악이 되어 죽음을 관류(貫流)하려는 모험에 다름 아니다.‘만년의’ 는 의 대척점에,그리고 피아노 소나타들은 현악4중주들의 대척점에 존재한다.그렇다.는 통틀어 베토벤 ‘만년작들’의 예감이고 교차로다.그런데도,매우 편안하고 깨끗하며 자애롭다.예언의 내용으로 스스로를 채우는 대신 대화의 완벽한 통로로 들어서는 까닭이다.그리고 이 점에서 는 만년작들보다 덜 위대하지만 더 음악적이다. 4.이 작품의 통로성(通路性)을 결정(結晶)짓는 또하나의 계기가 있다.루돌프 ‘대공(大公)’에게 헌정되었지만 이 작품은 프랑스 혁명 이래 급격히 부상한 시민계급,그리고 미래와 대화를 분명하게 겨냥한다.음악은 귀족 후원자를 잃고 시민계급의 극장 취향에 의지해야 했다. 그리고 진보는 얼핏 천박한 대중성을 동반한다.대중 취향에 영합할 것인가,아니면 고급한 예술성을 지키며 고립과 굶주림을 감수할 것인가? 얼핏(!)긴박한 이 질문에 베토벤은 음악적으로 또 예술­본질적으로 응답한다.그리고 예술성/대중성의 2분법을 일거에 깨부순다.그는 귀족들이 직접 연주를 즐겼던 아마추어리즘을 탈피한 고난도(高難度)의 작곡­연주기법과 심오하고 변증법적인 음악사상을 결합하면서 표피적인 대중성에 야합하지 않고 시민혁명의 시대정신을 일상화(日常化)하는 것이다. 그렇게,역사 속으로,진정한 진보 속으로,진정하게 음악적으로.그렇게 다시 통로가,통로인 채로,미래와 대화한다.일상적이고 대중적이며 진보적이고 예술적인 음악이 그렇게 탄생한다. 그 광경을 이스토민,스턴,로즈 세 연주자는 완벽하게 구현한다.미국으로 귀화한 러시아 연주 예술이 마침내 미국화하면서 세계로 광활하게 열리는 단계가 역사적으로 겹치는 까닭이다.아,그때는 그랬구나.작곡이든 연주든,우리는 이 예술가정신이 거의 불가능해진 시대에살고 있다.정작 우리가 슬픈 것 아닌가. 1970.녹음,1988 CBS CCK­7030 피아노:유진 이스토민 바이올린:아이작 스턴 첼로:레너드 로즈 ◎巨匠 3인/이스토민 스턴 둘다 美 귀화 러시아 출신/미국화 거쳐 세계로 유진 이스토민(1925∼ )은 러시아계의 미국인 피아니스트.커티스 음악원에서 호르쵸프스키와 제르킨에게 배웠다.데뷔는 1943년.스턴 및 로즈와 3중주단을 구성한 것은 1961년이다.1975년 카잘스의 미망인인 첼리스트 마르타카잘스와 결혼했다. 아이작 스턴(1920∼ )은 러시아 태생으로미국에 귀화한 바이올리니스트.1935년 데뷔한 후 온화한 바이올린 음영역을 넓히면서 하이페츠와 쌍벽을 이루는 연주자로 부상,노년에 이르면서 ‘스턴이 스턴을 능가했다’는 평을 들었다.그의 연주전집 음반이 Sony 레이블로 나와 있다. 레너드 로즈(1918∼1984)는 미국태생의 첼리스트.그 또한 커티스 음악원에서 공부했다.1934∼8년 토스카니니의 NBC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한 후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뉴욕필을 거쳐 솔로로 활동했다.1951∼62년 커티스,1947∼51년 및 1962~84년 쥴리어드 음악원에서 가르쳤고,린 하렐과 요요마가 그의 제자다.이 세사람이 3중주단을 구성한 것은 1961년.
  • 금호갤러리 어린이들만의 콘서트 갖는다

    ◎7월부터… 공개오디션 통해 선발 ‘연주자로 대성할 가능성은 대개 14살이전에 판가름난다’ 학교보다 피아노학원에 먼저 갈만큼 음악교육열은 높지만 연주가로서 가장 중요한 무대경험을 쌓을 기회가 전무하다는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갤러리콘서트로 새로운 연주풍토를 조성해온 금호갤러리가 이같은 현실을 감안,어린이 전용 클래식무대 ‘금호갤러리 영재콘서트’를 7월부터 마련한다. 제2의 정경화 장영주를 꿈꾸는 어린 예술가들에게 풍부한 무대경험을 제공,미래의 재목으로 키우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국내에선 처음. 금호갤러리는 3개월에 한번씩 공개오디션을 열고 재능이 뛰어난 14살 이하의 어린 연주자들을 선발하되 공신력 있는 국제 콩쿠르나 연주기량이 객관적으로 인정된 연주자는 별도로 초청할 계획이다.우선 첫 오디션은 6월10∼13일로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목관 금관 국악 등 기악분야. 7월7일 첫 무대의 주인공은 미국 줄리어드에서 바이올린을 공부하고 있는 9살짜리 이은신.4살때 바이올린을 시작했으며 지난해 유엔 개막연주회에서 초청받았고 ‘샌디에이고 영재 시리즈’에 최연소 독주자로 초청됐었다. 이어 지난해 차이코프스키 청소년국제콩쿠르 첼로부문 우승자 고봉인(7월14일)과 이 콩쿠르 피아노부문 2위 입상자 손열음(21일)이 출연한다.758­1204.
  • 슈베르트 D.956.(명반과 함께하는 음악여행:1)

    ◎눈물 부서져,광휘(光輝)로운…/베토벤 장례식후 유언으로 쓴 4악장/안개,흐느낌 영롱한 눈물 아! 베토벤 죽음의 安息/절정이 쇠한 미완성 아찔한 현기증… 음악 작품에는 작곡가의 혼이 있습니다.그의 삶이 있고 시대적 배경이 있습니다.명연주가가 그것을 살려 냅니다.金正煥 시인의 지상 음악감상실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1.바이올린,비올라,첼로.세 겹 현음(絃音)이 겹쳐 전설같은 안개가 형성된다마치 시작은 시간이 아니라 공간이라는 듯이.비장(悲壯)이 낮고 무겁다. 그러나 짧다.선율이 잠시 흐르다가 흩어질 틈도 없이 현악기들이 갈라진다.바이올린은 길길이 치솟고 첼로는 둔중하게 깔리고,비올라는 양자를 수습치 못한다.무언가 찢어진다.바이올린 음이 제 스스로 분리되어,하나가 아니고둘이다.아니 여럿이다.첼로 음은 무거운 채로 균열되고…. 음악은 그렇게 흐느낌의 생애를 시작한다.현악5중주 D.956번.슈베르트는이 작품을 생애 마지막 유언으로 썼다.1827년 3월 29일 베토벤 장례식에서그는 관을 옮겼다. 2.베토벤은 그에게 평생 거대한 벽이었다.비엔나의 한 카페에 베토벤은 늘같은 자리에 무뚝뚝하게 앉아 있었지만 슈베르트는 자기소개도 제대로 못하고 더듬거렸었다. 그러나 더 구체적인 슬픔의,원흉이 그의 몸 안에 도사리고 있었다.매독이그의 몸에 치명적으로 번진 상태였던 것.그런데,어떻게,아름다운 음악이? 그러나 그렇게 음악은 고통의 생애를 ‘고통스러울수록 아름답게’ 액정화(液晶化)하기 시작한다.이듬해 10월 2일 그는 피아노 소나타 세 편 ,하이네시에 곡을 붙인 가곡 여섯편을 라이프치히 출판업자에게 보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위대한 유언에 달하는 걸작이다.그러나 그 모두를 합해도 그가 ‘써 볼 참’이라고 덧붙인 현악5중주 한 편을 능가하지 못한다. 출판업자는 ‘노래’에만 흥미를 보였다.11월 19일 슈베르트는 31세로 숨을 거두고 현악5중주는 22년 동안 연주도 출판도 되지 못하다가 1850년 처음으로연주되고 1853년에 원고가 일부만 출판되었다. 3.슈베르트는,아니 음악은 그 운명을 알고,오로지 아름다움으로써 감내하기로 결심했던 것일까? 2악장 아다지오에서 기적이 일어난다.1악장의 서두,‘공간화했던 시간’이 장중한 주선율로 흐르고 제1바이올린과 첼로음이 묻어난다.그 묻어남은 정확히 눈물의,시야(視野)흐릿함과 자체(自體) 영롱함을 그대로 닮았다. 그렇다.눈물은 언제나 생애의 광경에 묻어난다.그것이 광경을 흐리지만 음악은 손에 잡히지 않고 귀에 들리고 귀는 마음에 가장 가깝고 그렇게 기억의최대 광경이 음악의 선율로 액정화되고 흐른다. 귀가 광경을 보고 눈이 선율을 듣는다.위대한 미완성,위대한 미완성….미완성이므로 더욱 감동적인 그러므로 몸은 지상을 떠나되 음악은 역사 속으로 스며드는,그렇게,미완성이므로 영원히 이어지고 포괄하는 순간이다. 물론 모든 예술이 그렇다.상상력은 손에 잡히지 않고 무한한 광경을 펼친다.조각 예술조차,우리가 손으로 만지기 전에,얼마나 무수한 광경을 펼치고있는가.다만 음악은,그 사실을 다시 예술의 시간으로 가시화(可視化)하며 흐른다. 4.슈베르트 현악5중주,2악장 아다지오.때는 불곰 러시아가 터키를 노리고 숫사자 영국이 그 러시아의 배후를노리던 1827년.제목조차 선율화하는 이 만파식적(萬波息笛)의 음악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펼쳐진다.전쟁의 참상과 인간 존재의 슬픔을 머금고.더욱 광활한 음악의 광경으로. 그 속으로 황혼녘,우리의 가장들이 귀가한다.일터를 찾지 못한,하릴 없는 가장들이.점차 황혼을 닮아가는 그들의 생애와 표정이 음악의 집으로 귀가한다.음악은 다시 묻어나고 무언가,슬픔이,지상에서 가장 찬란하게 반짝이다가 아름다운 희망으로 전화된다. 아,미완성.31세.모차르트보다 4년 더 짧았던 슈베르트의 생애.그러나 누가 그것을 안타까워하겠는가.그의 유언이 이리도 흐릿하며 영롱하고,간절하며 흥건한 것을. 3악장은 베토벤의 위대한 스케르초에 바치는 헌사다.그것은 베토벤의 언어로 베토벤을 뛰어넘으려 했던 자신의 시도가 허망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자신의 길을 펴가는 과정의,고백의 헌사다. 그래서,4악장은 슈베르트만의 출발.그러나 음악 안에 이미 죽음의 안식이 깃든다.되돌아오는 론도 무곡(舞曲) 형식 속에 그 형식이 발전한다.그렇게 그는 자신의 음악 속으로가라앉고,아찔한 현기증이 지나면 어느새 지상에 남은 자 벅찬 삶의 무게에 감동하고. 5.그래,이제 알겠다.왜 슈베르트가 (베토벤의) 현악4중주 아닌 현악 5중주를 유언의 형식으로 삼았는가를.현악4중주는 절정과 심화,5중주는 절정이 쇠하는 미완성의 경지고,그런 채로 ,펼쳐짐인 채로,현악기 음악의 끝이다. 현악6중주는 3중주의 2배에 불과한 까닭이다. 그리고,위 음반이 위대한 연주인 까닭도 그 미완성의 경지와 일맥상통한다.하이페츠의 바이올린이 예의 강성한 독재성을 스스로 무마시키며 현악5중주의 세계로 귀가한다.그리고 묻어난다.숱한 광경으로 묻어난다. 피아티고르스키의 첼로가 그런 그를 따스한 자궁으로 받아들인다.프림로즈의 비올라가 그 세계를 가장 겸손하게 주관하면서 나머지 두 무명(?)연주자를 위로 세운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가? 하이페츠와 ‘ 백만불 짜리 피아노 트리오’를 구성했던 불세출의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은 이렇게 유언했다.‘내 장례식 때슈베르트 현악5중주 2악장을 연주해다오…’ 놀라운 일이다.2악장에는 피아노가 없는데. □金正煥 시인 약력 △1954년 서울 출생. △서울대 문리대 영문과 졸업. △‘창작과 비평’통해 시인 등단. △자유실천문인협회 사무국장 역임. △‘황색 예수전’등 시집 다수.음악 관련 저술 ‘클래식은 내 친구’‘김정환의 클래식 이야기­음악이 있는 풍경’ 등 △라디오 클래식 음악 해설자 1년. ◎1961.녹음,1988.BMG 7964­2­RG/바이올린:야샤 하이페츠/비올라:윌리엄 프림로즈/첼로: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 현악5중주는 현악4중주 악기 구성(바이올린 2대,비올라 1대 첼로 1대)에다 비올라 혹은 첼로를 추가한다. 모차르트가 비올라를,슈베르트가 첼로를 추가한 대표적인 경우.슈베르트 이전에 보케리니가,이후에 본 윌리엄즈가 첼로를 추가했다. 야샤 하이페츠(1899∼1987)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미국에 귀화한 바이올리니스트.세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고 1911년 데뷔,그 이듬해에 니키쉬의 베를린필과 고난도의 차이코프스키 을 협연했다.1917년 미국 이주 및 카네기홀 데뷔 이후 반세기 넘게 바이올린의 제왕으로 군림했다.그의 전집음반이 BMG레이블로 나와있다.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1903∼1976) 또한 러시아 태생으로 미국에 귀화한 첼리스트.1921년 소련을 떠나 푸르트뱅글러의 베를린필 수석 첼리스트로 활동했다(1924∼28년).그 후 슈나벨,호로비츠,밀슈타인 등과 실내악 연주 호흡을 맞추다가 하이페츠를 만났다.정명화의 스승이다. 윌리엄 프림로즈(1903∼1982)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이자이에게 배우며 활동하다가 1937년 미국으로 이주한 비올리스트.1938년부터 1942년까지 토스카니니의 NBC심포니오케스트라 수석 비올라주자로 활동했다.
  • 소극장서 맛보는 실내악

    실내악의 참맛을 소극장에서. 서울 강남 소극장 두곳에서 실내악 잔치가 잇달아 열린다.신사동에 문 연 오퍼스홀의 개관기념 뮤직 페스티벌과 압구정동 유림아트홀의 5월 실내악 축제가 그것. 인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큰무대에서 가끔 열리는 실내악 연주회에 갔다가 목욕탕에 온듯 어쩐지 썰렁하게 울리는 공명에 재미를 못붙였다 해도 이번엔 느낌이 다를 수 있다.좁은 공간에 붙어앉아 들을수록 더욱 오밀조밀해지는 앙상블이 실내악의 매력이기 때문. 오퍼스홀은 음악학도 학부모 5인이 공동출자해 세운 클래식음악 전용 소극장.기념행사는 5월 한달간 다채로운 주제로 6회 열린다.△서울 목관5중주(14일) △서울 첼로 콰르텟(18일) △서울 하프 솔로이스츠(23일) △조이 오브 스트링(24일) △실내악 갈라 콘서트Ⅰ(26일) △실내악 갈라 콘서트Ⅱ(29일·이상 하오 7시30분).피아노 김대진,바이올린 김남윤,비올라 오순화,하프 강려진,클라리넷 오광호,소프라노 박정원 등 출연.543­5331. 올해로 8회째,유림 실내악 축제는 어느덧 유림홀의 대표 행사가 됐다. △12일 트리오의 밤 △13일 목관 음악의 밤 △14일 듀오의 밤(이상 하오 7시30분)을 펼치며 피아노 강충모,바이올린 피호영,플루트 송경화,첼로 홍성은 등출연.514­9600.
  • 라흐마니노프·엘가 그들 자신이 해석한 작품세계

    ◎‘굿’ 수출용 새 음반 11장 출반/각 1천장씩 국내 한정판매 지난 3월 OEM방식의 라이센스 음반을 제작,선보였던 ‘굿’이 신보 11장을 다시 내놨다.자크 티보 전성기의 바이올린 소품집,피에르 푸르니에의 생상스 협주곡,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이 연주한 쇼팽 야상곡·피아노협주곡 1,2번,부다페스트 현악 4중주단의 멘델스존 1번·브람스 5중주 1,2번등 탐낼만한 호연이 적잖다. 그 가운데 특히 시선을 끄는 것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1,3번과 엘가 첼로협주곡·교향곡 2번 두장.연주자의 이름을 찾아 그 겉표지의 깨알같은 글씨를 뒤질 필요는 없다.작곡가가 곧바로 지휘자이며 연주자인 음반이기 때문.희귀한 것은 좋지만 히스토리컬 음반의 공통 취약점인 음질이 음악듣는 즐거움을 상각해 가지 않을까.음반사측은 그런 우려라면 확실히 접으라고 주장한다.일본,네델란드의 첨단 재생기술로 잡음을 죽이고 속에 파묻혔던 음악신호를 선명히 되살려냈다는 것. ‘엘가가 지휘하는 엘가’를 타이틀로 한 엘가 첼로협주곡·교향곡 2번은 차례로 뉴 심포니,런던 심포니와의 28년,27년 녹음.협주곡 협연은 당대의 첼리스트 베아트리스 헤리슨이 맡았다.영국 작곡가 엘가 교향악의 세계는 유럽 본토의 선배 음악가 모차르트,베토벤 등등의 세계에 비해 덜 친숙한 것이 사실.이번 두 작품은 영국 향토색 물씬하면서 격식에서 한결 느슨한 엘가 음악의 진경을 엘가 자신의 해석으로 열어보여 준다는 점이 매력이다. 라흐마니노프가 들려주는 1,3번은 유진 올만디 지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의 39∼40년 녹음.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은 피아니스트들이라면 한번씩 거쳐가곤 하는 단골 레퍼토리.그런 피아니스트들에게 이 연주는 작곡자가 제시하는 참조답안쯤 될법하다.아무래도 고색창연하며 섬세함이 떨어지는 음질 탓에 특유의 푸근한 서정이 좀 묽게 느껴지지만 가지런하고 화사하면서도 폭발력 있는 연주가 들을만하다.수출용이지만 타이틀당 1000장씩 한정으로 국내판매도 한다.문의 921­8781.
  • 한국의 로렌초/任英淑 논설위원(外言內言)

    말 많은 문화계에서 그는 가장 존경 받는 어른 가운데 한분이다. 악기은행을 만들어 과다니니 바이올린,마치니와 롤카 첼로등 명기(名器)를 젊은 음악도들에게 공짜로 빌려주고 해외에서 활동하는 연주가들에겐 몇년씩 항공권(우대항공권)을 무료 제공한다.또 줄리아드등에서 공부하는 한국학생들에게 연간 3만달러가 넘는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의 ‘우대항공권’ 혜택을 받은 음악가는 30여명으로 지휘자 鄭明勳,피아니스트 白建宇,소프라노 曺秀美 등 유명 연주자들은 대부분 그 수혜자다.한 사람 몫의 좌석을 차지하는 덩치 큰 악기를 운반해야 하는 첼리스트에겐 비행기 표를 2장씩 지급할 만큼 섬세하기도 하다.주변에서는 이 비행기표 값만해도 5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문화예술에 대한 그의 이같은 후원은 아무 조건 없이 생색 내지 않고 이루어 진다.그래서 문화계 밖에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현악4중주단을 창단,한국의 대표적인 실내악단으로 키우고 세계 45개 도시에서 연주회를 갖기도 했다.품격있는 향토문화전문지를 20여년째 발간해 오고 있고 학술상·예술상도 제정했다.미술관을 마련하고 그 미술관에서 음악회를 열기도 한다. 서울시청이 새 청사를 짓고 옮겨 가면 그 자리에 음악당을 지어 서울시에 헌납하겠다는 아름다운 꿈을 지니고 있고 회갑을 넘긴 나이에 피아노와 첼로 레슨을 받은 젊은 정신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금호그룹 명예회장인 그가 예술의 전당 이사장으로 선임됐을 때 “국민의 정부 인사중 가장 멋진 인사”라는 평가가 문화계 일각에서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朴晟容씨가 4일 예술의 전당에 30억원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국제통화기금(IMF)체제 아래서 시들어 가는 문화계에 단비와 같은 소식이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 70년대 건축가 고(故) 金壽根을 ‘한국의 로렌초’로 소개한 바 있다.공간 사랑을 중심으로 한 그의 문화예술 후원 작업을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황금기를 이룬 메디치가의 로렌초에 비유한 것이다.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가업을 굴지의 기업으로 키운 후 동생에게 맡기고 문화예술 후원자로 나선 朴회장은 90년대의 로렌초인 셈이다.
  • 3人3色/바흐 ‘무반주 첼로모음곡’

    ◎카잘스­바흐 해석 原典으로 꼽혀/클레망­활기 넘친 간결한 무곡風/요요마­부담감 없는 회화적 느낌 ‘첼로의 성서’로 통하는 바흐 무반주 첼로모음곡.“피아노피스로 옮겼더니 건반위의 손 모양도 가장 이상적으로 나오더라”는 교본의 모범이자 첼로를 가장 잘 아는 연인의 손길이 더듬어낸 듯 갈수록 웅숭깊은 울림이 깊은 동굴앞에 앉은 것만 같다. 현(絃) 주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정복하고 싶어하고 그래서 음반도 부지기수인 곡.마침 세 첼리스트들의 녹음을 나란히 국내시장에서 만날 수 있게 됐다.1930년대 파블로 카잘스,58년 장 막스 클레망,그리고 요요마의 최신보(最新譜)다.한결같이 내로라 하는 연주자들의 사연 있는 음반들.‘또 바흐야’하며 식상해 하기 전에 바흐를 대하는 여러가지 각도,개성들에 귀를 열어보자. 거장 카잘스는 20세기초까지 묻혀 있던 무반주 첼로모음곡을 발굴해내 바흐를 세상과 이어준 ‘매파’.학구파 카잘스의 이 녹음은 그래서 바흐 해석의 원전이라 할 의미를 지닌다.수입상 굿 인터내셔널이 한국상표 ‘모노폴리’로 라이센스해 내놓은지 좀 됐다.그 묵중한 접근,진지한 해석 등은 크고 작은 미스터치와 매끄럽지 못한 음질을 감내하며 새겨듣기에 충분한 미덕들. 한편 클레망의 것은 희소성 때문에 많은 이들이 탐냈던 버전.본디 녹음을 즐기지 않았던 연주자라 LP시대부터 입소문만 감질나게 돌았던 그 음원을 이번에 데카에서 찾아내 시원하게 해갈해줬다.춤곡 모음곡인 이 작품을 바흐가 춤추라고 쓰지는 않았을 거라는게 대체적 추측이지만 카잘스의 전통에 닿아 있다는 클레망의 연주는 왠지 ‘무곡풍’이라는 느낌이 강하다.레가토로 이어가기보다 끊어치기로 정리하는 간결함이 승해서일까.아뭏든 클레망의 활끝을 따라가다보면 숨가쁘게 선회하는 발걸음들,선율의 굴곡속에 숨어있는 축제의 묘한 활기가 훅 끼쳐온다. ‘바흐로부터의 영감’이라는 부제를 붙인 요요마의 신보는 무용·건축가,영화감독 들과의 비디오 작업이 병행된 ‘회화적 바흐’(본보 3월 31일자).요요마의 트레이드 마크인,누구에게나 친화감을 주는 미소처럼 이번 음반 역시 어느 것보다 나긋나긋하고 매끄럽게,누구나 따뜻이 들을 수 있는 바흐의 말랑말랑한 옆모습을 끄집어 내고 있다.
  • 싱그러운 봄밤의 실내악 축제

    【孫靜淑 기자】 새로 시작되는 한 주,음악무대 주역은 단연 실내악 차지.예술의전당 실내악축제(20∼25일 서울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금호현악사중주단 공연(2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등 실내악 폭죽이 일제히 터져오른다. 실내악은 웅장미나 초절기교 보다는 밀접하게 대화하며 판을 짜나가는 아기자기한 맛이 묘미.따라서 실내악에 홀릴 줄 아는 이들은 섬세함을 포착해내는 열린 귀의 소유자들이다. 3년만에 부활하는 실내악축제는 국내 유수 실내악단들이 자기만의 개성으로 하루씩 장식하는 무대.20일 한국 페스티벌 앙상블이 테이프를 끊고 21∼25일까지 차례로 비르투오즈 현악사중주단,아울로스 목관5중주단,서울신포니에타,허트리오,앙상블 무지카,비하우스 첼로앙상블이 나선다.페스티벌 앙상블은 곡 하나를 두개 장르로 다르게 접근해본다.일례로 ‘송어’를 가곡으로 들은뒤 피아노5중주로 다시 듣는것. 한편 외교사절로,초청으로 세계를 누벼온 금호현악4중주단의 화두는 현악4중주 바이블이라는 베토벤.서울 공연은 지난 6일부터 훑어온 전국투어의 종점으로 베토벤 현악4중주 7번,9번 등 중량감있는 레퍼토리를 선보인다.A석 1만원,B석 7000원의 ‘가격 현실화’도 매력.758­1202.
  • 제임스 먼로(美國의 대통령 문화:18)

    ◎‘먼로 독트린’ 천명… 미 외교정책 기틀 확립/재임전 국무­전쟁장관 자격 영과 전쟁서 승리/성실과 결단력으로 재선… 평화­번영시대 열어 【프레데릭스버그(美 버지니아주)=羅潤道 특파원】 미국의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1817­1825)는 1823년 유럽 열강으로부터의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간섭 배제를 천명한 ‘먼로 독트린’을 통해 신생 미합중국의 독자적 외교정책 기틀을 확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독립전쟁의 영웅으로 독립초기 신생국의 체제정비에 심혈을 쏟았던 버지니아왕조의 막내이자 건국세대(Founding Fathers)의 마지막 대통령을 역임한 그는 두차례 임기 내내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특히 그는 신생국가로써의 국내외적 불안정을 씻고 평화와 번영을 가져온 ‘호감의 시대’(Eraof Good Feelings)를 전개시켜 미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대통령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학중퇴 독립전쟁 참전 영국으로부터 독립의 기운이 무르익던 1758년 버지니아주 웨스트모어랜드의 개척농 아들로 태어난 그는 총명했으며 16세 되던 해에윌리엄스버그에 있던 당시 버지니아 식민지의 최고 명문이던 윌리엄&메리 대학에서 수학했다.그러나 2년후 독립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대륙군 소위로 참전,뉴욕전투,저먼타운전투 등에서 용맹을 떨침으로써 특진을 거듭,1778년 전쟁이 끝날때는 계급이 중령까지 올랐다. 특히 먼로는 당시 버지니아 주지사 토머스 제퍼슨(3대 대통령)에 의해 남부 미군의 현황파악을 위한 연락관으로 임명받아 활약했으며 이후 줄곧 제퍼슨의 오른팔 역할을 했다.전쟁이 끝난후에는 제퍼슨의 지도로 변호사 시험에 합격,프레데릭스버그에서 개업했다.제퍼슨과 먼로의 우정은 16년의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죽을때까지 계속됐다. 이어 먼로는 1782년,24세의 약관에 버지니아 주의회 의원으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으며 이듬해에는 대륙회의 의원으로 선출돼 3년간 활약한뒤 잠시 정계를 떠나 변호사일에 주력했다.그러나 1790년 연방 상원의원에 진출,제퍼슨,매디슨(4대 대통령)과 함께 민주공화당을 결성,알렉산더 해밀턴의 연방주의당에 맞섰다. 그는 프랑스와 영국주재 대사를 맡는등 외교관으로 활약했으나 이렇다할 결실은 거두지 못했다.1794년 초대 워싱턴 대통령에 의해 프랑스대사로 임명돼 프랑스와의 관계강화에 노력했으나 프랑스혁명 신봉자인 그의 노골적인 친프랑스 언동은 워싱턴의 분노를 사게돼 2년만에 소환되고 말았다.그는 다시 1803년 제퍼슨 대통령에 의해 영국대사로 임명됐으나 역시 본국정부 의도와 다른 무역협상을 벌임에 따라 다시 소환되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후에 먼로는 제퍼슨에 의해 루이지애나 식민지 구매협상 대표단장으로 프랑스에 파견됐다.1천500만달러에 당시 미국영토 2배에 달하는 영토를 구매토록하는 협상을 나폴레옹과의 담판에서 성사시킴으로서 협상력을 과시했다.또 매디슨에 의해 국무장관에 임명된 그는 1812년 영국에 선전포고,전쟁에 돌입했다.그러나 워싱턴이 함락되는등 전세가 불리해지자 자신을 전쟁장관에 임명해줄 것을 요청,국무와 전쟁 겸임장관이 된 그는 탁월한 지휘역량을 발휘,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전쟁이 끝난후 매디슨 행정부 말기는 전례없는 평화와 번영을 누리게 됐고 그 주역인 먼로의 인기는 치솟았다.대사로 프랑스·영국을 오가는 사이사이에 두차례 버지니아 주지사를 역임한 경력도 갖춘 그는 자연스레 민주공화당의 대통령후보로 1816년 선거에서 당선,매디슨의 뒤를 잇게 됐다. 59세에 대통령에 취임한 그는 어느 대통령보다도 다양한 공직경험을 갖추고 있었으며 거기서 생성된 그의 정치감각은 탁월한 각료 임명으로 나타났다.국무장관 존 퀸시 애덤스(6대 대통령),전쟁장관 존 칼훈,재무장관 윌리엄크로포드,법무장관 윌리엄 워드 등은 지성적이고 뛰어난 능력과 함께 단합이 잘돼 환상의 진용으로 평가됐다.더우기 먼로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과 굳센 결단력은 모든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했다. 먼로는 남부와 서부 등을 광범위하게 여행하며 국민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그의 인기는 더욱 치솟아 1820년 실시된 두번째 선거에서는 232표중 231표를 얻어 만장일치로 당선된 조지 워싱턴에 이어 최다 득표로 재선되는 기록을 세웠다. 먼로는 퇴임후 리스버그의 오크힐에서 거주했으나경제적 어려움으로 고통을 겪었으며 5년후 부인 엘리자베스가 죽자 뉴욕의 딸 집으로 옮겨 쓸쓸한 말년을 보내다 1831년 7월4일,73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퇴임후 곤궁… 사저 매각 먼로의 유적으로는 현재 프레데릭스버그의 박물관,사저이던 샬롯빌의 애쉬론,리스버그의 오크힐 등이 보존돼 있다.변호사 사무실이 있던 건물에 들어선 박물관은 먼로독트린을 초안하던 책상 등 다양한 유품들이 진열되고 있다.또한 애쉬론 사저는 퇴임후 경제난으로 팔았던 것을 1931년 박애주의자 제이 존스가 구입,일반에 공개했다.1974년 존스 가족은 그의 모교인 윌리엄&메리 대학에 이를 기증,이 대학이 박물관과 함께 관리하고 있다. 먼로는 제퍼슨,매디슨과 매우 가깝게 지냈으며 특히 제퍼슨은 자신의 사저인 샬롯빌의 몽티첼로 인근에 ‘지적공동체’(intellectual community)마을의 설립을 위해 이들을 모여살도록 권고,애쉬론을 먼로에게 소개했으며 매디슨의 사저 몽펠리에도 이 부근에 있다. ◎먼로 지명/도시·학교·산·교회 등 238개/워싱턴·링컨과 함께 도시지명 ‘빅3’ 【프레데릭스버그(美 버지니아주)=羅潤道 특파원】 미국의 도시들은 역대 대통령의 이름을 딴 지명들이 많다.신대륙으로의 이주자들이 정착,새 도시를 건설할때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대통령이나 위인들의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다.먼로 지명은 워싱턴,링컨과 함께 미대통령 가운데 도시명으로 가장 많이 쓰인 ‘빅3’로 알려져 있다. 워싱턴 지명이 49곳으로 가장 많고,링컨은 45,먼로는 44,제퍼슨은 41 순으로 나타나 있다.이 숫자는 미자동차협회(AAA)가 최근 발행한 ‘로드 아틀라스’에 나타난 지명을 기준으로 한것이기 때문에 산·강·호수 등 자연의 이름과 학교·역 등 공공기관의 이름까지 합하면 실제로 대통령 이름이 사용되고 있는 경우는 훨씬 많다. 먼로박물관이 펴낸 먼로 지명 연구 책자인 ‘먼로,USA’에 따르면 미국내 ‘먼로’가 들어가는 지명은 모두 238개에 달한다.그리고 미국 해방흑인들이 세운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의 수도 ‘먼로비아’와 남극해의 먼로섬 등 미국 밖에도 존재한다. 미국내 50개주중 36개주에 흩어져 있는먼로 지명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도시이름으로 26곳이 있다.인구 40명인 노스 다코타주의 소읍에서부터 인구 5만5천인 루이지애나주의 먼로시까지 다양하다.우리의 군에 해당하는 카운티 이름은 모두 18곳으로 인구 9천명의 미주리주 먼로카운티에서 인구 71만명의 뉴욕주 먼로카운티까지 그 규모가 제각각 이다. 먼로 지명이 가장 많은 주는 오하이오로 35곳이 있고,다음은 인디애나 23,일리노이 19,미주리 17,아이오와·펜실베이니아 13,버지니아 11 순을 기록하고 있다.자연지명으로는 강·호수명 10곳,산 6,숲 2,협곡 2,다리·전망대 1곳 등이 있고 교회 7곳,학교 3곳 등도 있다.
  • 클래식 라이센스음반 국내 제작 붐

    ‘값은 절반,귀 희열은 두배로’ 달러값이 치솟아 음반수입에 브레이크가 걸리자 수입사들이 앞다퉈 라이센스음반 제작에 나섰다.외국 마이너 레이블에서 음원을 사와 국내에서 찍는 이 음반들은 아이템 자체에 마이너들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고스란히 담겨 제품 대비 가격이 현저히 대중적인지라 의기소침해진 레코드 숍 판매대에 즐거운 비명을 돌려주고 있다. 선봉대는 ‘굿’.수입만 하던 ‘굿 인터내셔널’이 사업을 확장한 경우로 ‘포노 엔터프라이즈’‘탁투스’‘아츠’ 등 유럽 독립 레이블에서 음원을 들여와 국내에서 판을 찍어낸뒤 해외에 역수출까지 하게 됐다.국내시장용은 ‘모노·폴리’,수출용은 OEM방식으로 레이블을 단다.모노·폴리 상표 1호인 카잘스 ‘바흐 무반주첼로조곡’은 얼마전까지 부동의 판매 1위를 지켰던 히트작.앞으로 매달 ‘모노·폴리’2종,OEM음반 10종씩 신보를 축적해 갈 계획. 크나퍼츠부쉬,푸르트뱅글러 등 명지휘자의 희귀녹음을 수입,음반 마니아들에게 친숙했던 ‘명음’도 라이센스로의 다각화에 나섰다.그동안 수입사로 인연 맺어온 ‘타라’,‘M&A’ 등의 음반이 대상.곧 54년 필하모니아를 지휘한 푸르트뱅글러의 ‘베토벤 교향곡 9번’이 스타트를 끊고 나단 밀스타인의 바이올린 협주곡집 등이 줄줄이 대기중이다. 얼마전 덴마크 드라마 주제곡 ‘어부의 노래’를 자체상표로 제작해 불황을 날려버린 ‘C&L’도 마찬가지 경우.역시 본격 클래식에까지 라이센스 레퍼토리를 넓혀갈 전략을 세워두고 있다.
  • ‘흥행보증’ 음반 줄줄이 출반

    ◎정트리오·장한나 알라냐·오이스트라흐/이름만 들어도 기대되는 유명 음악가들 수두룩 IMF칼바람에 움츠린채 선율에 목말랐던 이들에게 4월 해갈의 봄바람이 분다.음반사들 ‘알짜’신보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 EMI가 먼저 동면에서 깨어났다.4월 새 회계연도 시작과 함께 구름낀 지난 대차대조표를 날려보낼 폭탄을 잇달아 쏘아냈다.EMI의 ‘보물’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의 ‘베르디 아리아집’과 한국시장의 ‘보증수표’ 장한나의 ‘하이든 첼로협주곡’이 그것. ‘베르디 아리아집’은 알라냐가 선보이는 베르디 아리아 모음.‘에르나니’‘운명의 힘’‘아이다’‘일 트로바토레’‘오델로’‘멕베드’ 등 베르디의 산과 계곡을 두루 탐사했다.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의 베를린 필 반주.‘하이든 첼로 협주곡 C·D장조’는 장한나의 두번째 음반.생상스,차이코프스키 등을 담은 첫음반이 한국에서 워낙 히트했기에 이번 음반도 ‘따논 당상’아니겠느냐는게 주변의 관측.시노폴리 지휘로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협연. 도이치그라모폰에서는 ‘국민 음악가족’ 정트리오의 베토벤 음반을 비장의 무기로 꺼낸다.메인 디쉬는 ‘트리플 콘체르토’.‘로망스’ D장조,f단조가 보태지며 ‘오보에,플루트,피아노 협주곡’에선 갈루아 형제가 관을 떠맡는다.정명훈 피아노와 지휘,정명화 첼로,정경화 바이올린.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협연. 멜로디아 레이블을 수입하게된 한국 BMG는 전설적 바이올리니스트 오이스트라흐의 에디션을 들여왔다.로체스트벤스키 지휘 ‘차이코프스키·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이 넘버의 교과서 같은 명반.‘바르토크·쇼스타코비치 소나타’‘브람스·프랑크 소나타’는 명 피아니스트 리히터가 반주,그 앙상블이 솔깃하게 한다.이밖에 ‘브람스·드보르작 협주곡’‘소품집’까지 모두 5장 1세트.‘소품집’은 라이센스 제작해 따로 팔기도 한다. 소니뮤직의 요요마 ‘바흐 무반주첼로모음곡’도 재미 있다.요요마는 무반주모음곡을 84년 일찌감치 녹음했지만 새 녹음은 정원 디자이너,배우,무용가,아이스댄서 등 다채로운 예술가들과 함께 뮤직 비디오까지 만들었다.1번부터 6번까지 한사람씩 파트너가 돼 바흐 음악세계를 영상으로 표현하며 그 LD는 여름쯤 수입된다.
  • 예술종합학교 13세 첼리스트 고봉인군(세계 최고에 도전한다:9)

    ◎97차이코프스키 청소년 콩쿠르 1위/입문 3개월만에 미 인디애나음대서 독주회/96년 서울시향과 협연­이화 경향콩쿠르 1위/“첼리스트겸 하버드대 인류학 박사 요요마 같은사람 되고 싶어요” “무대에 서서요?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여기 온 사람들에게 나눠줘야지 하고 생각하지요.1등해야 하지 않느냐고요? 너무 기대하고 잘하려 하면 오히려 잘 안될 때가 많잖아요” 커다란 안경을 쓰고 짐짓 어른스럽게 말하는 고봉인군.고작 열세살 먹은 어린 첼리스트다.만화영화 주인공처럼 초롱초롱한 눈매의 봉인이가 지난해 9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열린 차이코프스키 청소년 콩쿠르에서 1등했을때 기뻐한 것은 봉인이네만이 아니었다.일찌감치 봉인이를 ‘될성부른 떡잎’으로 점찍었던 선생님들,음악계 사람들은 물론이지만 첼로 배우는 친구들이 더욱 반기고 부러워했다.악기하다 조금만 재능이 보이면 유학 보따리 싸기 바쁜 터에 봉인이는 3년간 국내서만 공부해 여건 좋다는 외국아이들을 다 제쳤기 때문이다. ○첼리스트 정명화씨가 소개 봉인이라고처음부터 국내에 ‘눌러앉기’가 그리 쉬웠던 건 아니다.지난 95년 3월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예비학교 시험 초등부 첼로부문에서 유일하게 뽑혀 첫 학기를 다닐 때만 해도 갈등이 많았다. 레슨 한번 받겠다고 대전 집에서 서울 학교까지 일주일에 한번씩 기차타고 왔다갔다하는 봉인이를 지켜보며 엄마 백승희씨는 애처로움을 떨칠 수가 없었다.아빠 근무지를 따라 미국서 살때 월반할 정도로 공부도 잘하던 아이였는데….음악을 계속 시킨다 해도 본고장 미국으로 도로 데려가야 하는 것 아닐까.갈등하던 백씨를 붙든 이는 첼리스트 정명화씨였다. 예술종합학교 시험때 봉인이를 ‘발견’한 정씨는 조바심내는 백씨를 “공부는 기초가 잘돼 있으니 나중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하지만 이런 음악적 재능을 개발도 안해보고 썩힌다면 너무 아깝잖느냐”고 달랬다. 그리고 예술종합학교 장형원 교수를 소개해 줬다.그에게서 체계적 레슨을 받으면서 봉인의 숨은 음악성도 단비맞은 풀포기처럼 차츰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봉인이는 음악성도 뛰어나지만성취욕과 집중력이 대단하다.이미 자기표현,자기 음악세계를 갖추고 있는 조숙한 아이인데다 머리도 명석하다.예민하고 섬세한 데가 있으면서도 워낙 침착해 자기와의 싸움을 잘해낼 거라 믿는다”(장형원 교수). 봉인에겐 첼로를 쥐어주며 연습하라고 채근한 사람은 없었다.봉인이 내면의 선천적 음악성이 스스로 첼로에게 다가가게 했다.첼로를 처음 들은 건 맨하탄서 살던 6세때.피아노를 전공한 엄마가 사다준 카잘스 연주의 ‘베토벤소나타’ 음반을 통해서였다.그리곤 어느날부턴가 “첼로를 배우게 해 달라”고 엄마를 조르기 시작했다. “첼로가 뭔지도 모른 채 들었어요.굵직한 저음이 그렇게 멋있을 수 없더라구요.몸집 큰 악기라 더 좋았지요” 그러나 엄마는 난처했다.누나가 바이올린 시작한 지 6개월쯤 지난 때였다.원래 누나한테 음악을 시키고 싶었던 터라 봉인이 뒷바라지까지는 힘에 부쳤던 것.엄마는 탁 털어놓고 말했다.“지금 돈이 없단다.아빠 직장따라 인디애나로 이사 가면 시켜줄게” 결국 봉인이는 초등학교 2학년인 8세때 처음 첼로 활을 쥐게 됐다.미식축구며 보이스카웃 활동 등에 몰려다니는 틈틈이 동네학원에서 말 그대로 취미수준의 레슨을 받았다. 활달하고 과학에 소질있고 유달리 꼼꼼한 편이지만 또래처럼 개구장이 소년이던 봉인이가 첼로의 문 안으로 성큼 들어선 건 이듬해인 94년.누나를 인디애나 음대 여름음악캠프에 등록시킨 엄마가 맡길 데 마땅찮은 봉인이를 함께 끌고 들어간 게 계기가 됐다. 전문레슨과 곳곳에 널린 음악적 자극 속에서 봉인이는 정작 누나를 제치고 두각을 나타냈다. ‘늦깎이’ 입문에다 공부도 짧았는데 껑충껑충 발전하는 속도에 선생들이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여기서 3개월 배워 10월 인디애나 음대에서 독주회를 열 정도였다. ○러 전문가 “선천적 음악성” 그해 12월 4년반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귀국,95년 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한 봉인이는 96년 4월 서울시립교향악단 협연 오디션 합격,5월 이화 경향 콩쿠르 첼로부문 1등 등 잠재력을 잇달아 폭발시켰다.배운 기간도 짧은데 차이코프스키 청소년 콩쿠르에 참가하기로 한 건 이런 괄목상대할 성장을 눈여겨본 선생님들의 채근 때문이었다.그해 3회째를 맞은 차이코프스키 청소년 콩쿠르는 역사는 짧았지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의 청소년부문이라는 명성때문에 만만찮았다.봉인이는 경험이나 쌓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출전했다. 1차예선에서 봉인이는 41명중 40번째 순서를 뽑았다.한명이 몇곡씩을 릴레이로 연주하는 터라 봉인이가 무대에 나설 때쯤 객석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이 지루함을 뚫고 박수가 터져 나왔다.41명중 봉인이만 유일하게 박수를 받았다.연주장을 나서니 사인해 달라며 수첩을 내미는 어른들이 있었다.국내에서 따라갔던 관계자들이 이때 이미 “네가 일등이다”고 입을 모았다.“길지도 않은 경력으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선천적 음악성을 타고났다”는 게 현지의 평이었다. 그런 칭찬들에 묻혀 막상 봉인이는 지극히 어른스럽다. “그런데 연주자는 자기 자신에게 만족을 못하는가 봐요.연주 끝나면 모자란 점,아쉬운 점만 떠올라요.저는 늦게 시작해서 고치기 힘든 습관이 많은 편이예요.콩쿠르 가서 다른 연주자들을 들어보면 제가 부족한 걸 잘할 때 부럽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다른 아이들 같으면 백지위에 한창 미래를 그렸다 지웠다 할 나이.봉인이의 꿈은 이미 세계적 첼리스트로 결정돼 버린걸까. “꿈이요.레슨 때문에 많이 빠지는 학교를 친구들처럼 맨날 다니고 싶어요.그리고 저는 요요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젊을 때부터 실력있는 첼리스트였지만 하버드대학에서 인류학 박사를 따기도 했거든요.첼로도 좋지만 과학실습도 좋아하고 아버지처럼 의학을 연구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그중 뭘 선택할지 이 모든 걸 다하게 될지 그건 아직 모르죠” ◎‘예술의 산실’ 한국예술종합학교/입학자격 음악적 재능만 기준 ‘절대평가’/93년 개교… 정원 따로 없고 실기위주 지도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예종) 음악원 예비학교에는 정원이 따로 없다.한두명일 때도 있고 해에 따라 아예 안 뽑고 넘어갈 수도 있다.오로지 음악적 재능만 기준삼는 ‘절대평가’를 고수해 왔기 때문.일단 뽑히면딴 데 신경쓸 필요없는 고밀도 음악공부가 보장된다. 93년 7월 예비학교가 개설됐을 때 주위에서 반신반의한 것은 실기만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예종 방침에 대한 반발의 연장선상이었다.공부는 집어치우고 예능만 배운다니 그래서 사람이 되겠는가.이같은 한국적 우려가 눈쌀을 찌푸리게 했다. 하지만 5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동안 예비학교 학생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바뀌었다.각종 콩쿠르 상위입상자 명단에 예비학교 꼬리표가 줄줄이 따라붙으면서부터였다.국제 기악,무용 콩쿠르 입상자 가운데도 학교 아이들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이것은 교육자,공연관계자 등은 물론 음악을 지망하는 학생이나 학부모들에게까지 신선한 자극이 됐다.남의 땅에 건너가 김치와 된장찌개 향수에 시달릴 필요없이 한국에서도 국제적 음악가가 될수 있다는 것.그야말로 꿈같은 이상이었다.그런데 예비학교 학생들이 다른 나라 아이들을 눌렀다는 소식이 전해오면서 이것이 새로운 ‘가능성’으로 다가왔다.지금은 콩쿠르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토종 국내 경력으로만 된 연주회 팸플릿을 뿌리며 세계무대를 누비지 말란 법이 있겠는가. 예종 이강숙교장은 “적어도 타성에 젖은 한국 예술교육을 반성하게 하고 몇몇 기관이 안일하게 독점하던 예술교육에 경쟁을 불러들였다는 점만은 예종 교육의 분명한 성과”라고 말했다. 예종 음악원이 대학과정이라면 예비학교는 초·중·고생들을 대상으로 한다.학교공부는 알아서 해결하고 일주일 하루 레슨을 포함,음악공부만 철저히 시킨다. 예비학교 주임 김대진 예종 교수는 음악 인재들이 서로 자극을 주고받으며 함께 발전하도록 도와주는 환경을 강점으로 꼽았다.“이론수업을 실기에 연계시키는 교육,경험을 쌓게 하는 공개발표회가 학교의 특성입니다.스스로 생각하고 자라날 수 있게 음악적 상상력 키우기에 역점을 두죠” 이교장은 “아이들이 음악속에서 마음껏 헤엄치며 음악을 모국어처럼 체화하도록 돕는 게 예비학교의 임무”라고 말했다.
  • 미 버지니아대 ‘아카데미 빌리지’(세계 문화유산 순례:63)

    ◎학문­주거­자연 어우러진 ‘환상의 캠퍼스’/1826년 미 3대 대통령 제퍼슨이 직접 설계 완공/판테온 신전 본뜬 ‘로툰다홀’ 앞에 ‘파빌리온’ 배치 【샬롯빌(미버지니아)〓나윤도 특파원】 워싱턴 DC 남부에 위치한 버지니아주 최고 명문으로 알려진 버지니아대학(UVA)의 대표적 상징으로 돼 있는 ‘아카데미 빌리지’는 학문과 주거와 자연 3자가 한데 어우러진 이상적인 대학캠퍼스의 정형을 이루고 있다. 미국 건국의 일등공신 토마스 제퍼슨이 180여년전 자신의 학문적 이상을 펼치기 위해 고향인 버지니아주 중동부 샬롯빌에 건립한 이 대학은 건국 초기의 대학으로 우드로 윌슨 대통령,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 등 정치인은 물론 작가 애드가 앨런 포,요즘 최고 인기 앵커우먼인 NBC­TV의 캐티 쿠릭 등각 분야에서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이 UVA를 미국내 일류대로 만들었다면 이 대학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바로 제퍼슨에 의해 직접 설계되고 이름지어진 캠퍼스인 ‘아카데미 빌리지’ 때문이다.이는 대학이 학문 자체뿐만 아니라 학문을 위한 모든 부대조건까지 갖춘 완벽한 공간이 되도록 최초로 시도했다는 점에서 인간적 측면의 고려없이 학문적 측면만 강조하고 있는 현대의 대학들에 많은 것들을 시사하고 있기도 하다. ○“완성도 가장 높은 건축” 따라서 이 빌리지는 1976년 독립 200주년을 기념,미국의 대표적 건축가 모임인 미건축연구소(AIA)에 의해 미국 건축역사상 가장 중요하고,또 완성도가 높은 건축물로 선정됐다.이어 87년에는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에 의해 포괄적 문화의 가치를 인식한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빌리지는 셰난도 밸리의 동쪽 산맥군인 블루 릿지 마운틴 기슭,락피시 계곡의 빼어난 주변경관의 이점을 한껏 살려 설계됐다.건국초 3대 대통령을 지낸 제퍼슨의 ▲교육자로서의 비젼 ▲건축가로서의 재능 ▲원예전문가로서의 기술 등이 한데 어우러져 노년기에 접어든 그의 인간적 완숙미가 배어난 작품으로 설명되고 있다. 제퍼슨은 죽기 직전 자신의 묘비명에 ‘독립선언서 기초자’‘종교자유를 위한버지니아장전 기초자’‘버지니아대학 설립자’ 등 세가지 타이틀만을 새겨달라고 당부했을 정도로 이 대학 건설을 대통령직보다도 더 자랑스럽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대통령 재임(1801­09)중 또하나의 그의 건축가적 기질을 대표하는 걸작품으로 샬롯빌 고향농장에 몽티첼로라 이름 지은 자신의 집을 건축한바 있는 제퍼슨은 퇴임후 교육자로서의 열정을 불태우기 위해 1817년 10월6일 이 대학의 첫삽을 떴으며 모두 9년 걸려 26년 완공됐다.기공식 자리에는 그의 고향 후배들이기도 한 당시 대통령 제임스 먼로,직전 대통령 제임스 메디슨 등이 참석,3·4·5대 대통령이 나란히 초석을 놓았다. 한글자모의 티읕(ㅌ)자를 거꾸로 세운 모양의 아카데미 빌리지는 가운데 직사각형 잔디밭인 ‘론’(Lawn)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원형건물인 ‘로툰다’(Rotunda)홀을,동·서 양쪽으로는 회랑으로 길게 연결된 ‘파빌리온’(Pavillions)이 건설돼 있다.또 각각 뒷편으로는 모양이 다른 정원과 그 건너편에 파빌리온과 나란히 또 한줄씩의 건물로 된 ‘레인지’(Ranges)가세워져있다.론 남쪽은 블루 릿지 마운틴 쪽으로 탁 터져 제퍼슨의 이상인 인간정신의 무한한 진보를 상징하고 있다. 로마 판테온 신전을 본따 절반 크기로 지은 로툰다홀은 당시 도서관으로 사용됐으며 그 밑에는 강의실이 위치했다.또 파빌리온은 I부터 X까지 로마숫자 번호가 붙은 10채의 2층건물이 동서로 5채씩 서 있으며 주로 교수들의 주거와 연구실 공간으로 활용됐다. ○기공식 3∼5대 대통령 참석 뒷편의 레인지에는 ‘호텔’이라 이름 붙은역시 2층건물이 A부터 F까지 6채가 동서로 3채씩 있어 학생식당과 특별활동룸,학교 오피스 등으로 사용됐다.그리고 파빌리온과 호텔들을 연결하는 방들은 학생 기숙사로 쓰였다. 이들 각 건물과 방들은 모두 회랑으로 연결돼 비나 눈 등 자연의 영향에 관계없이 모든 구성원들이 항상 밀접히 지낼수 있어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들이 함께 살며 함께 연구하는 제퍼슨의 학문공동체 이상을 실현시킬수 있었다.특히 파빌리온과 레인지 사이의 10개의 정원은 모두 각각의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으며 중앙의 ‘론’과 함께 학문공동체에 충분한 자연의 휴식공간을 제공토록 했다. 로툰다홀의 도서관은 1930년대 다른 곳으로 옮겨졌으나 나머지 건물들에는 오늘날에도 일부 교수들의 주거와 대학원생들의 기숙사로 쓰이고 있으며 특별활동룸 등 학교생활의 중심으로 여전히 활용되고 있다.이중 일부는 성적이 좋은 학부 4학년생에게도 제공된다. ○학문 필요한 휴식공간 제공 이들 건물이 낡고 욕실 화장실 등이 떨어져 있어 불편한 점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이곳에 방을 얻는 것을 학생들은 큰 명예로 생각하고 있다고 학교관계자는 설명했다. 이제 학교규모는 엄청나게 커져 1825년 개교 당시 40명이던 학생수는 1만8천명으로,제퍼슨에 의해 처음 임명됐던 8명의 교수는 오늘날 1천7백명으로 증가했다.또 이 대학의 전부였던 아카데미 빌리지도 이제 캠퍼스 한 귀퉁이로 밀려나게 됐다.그러나 그의 학문공동체 정신은 오늘날 컴퓨터시대와 조화를 이루어 수업,연구,행정,학생활동 등 대학의 모든 분야가 컴퓨터로 연결된 ‘전자 아카데미 빌리지’라는 이름으로 그대로 살아 있다. ◎여행가이드/워싱턴서 남서쪽 200㎞… 부근엔 미 대통령 3명 사저­농장도 워싱턴 남서쪽으로 200㎞m 가량 떨어져 있으며 승용차로 약 2시간 걸린다.66번 고속도로를 타고 40여㎞ 서쪽으로 달린뒤 29번 국도로 샬롯빌까지 가면된다.이 길은 고속도로는 아니지만 가운데 넓은 분리대와 4차선으로 시원하게 뚫려 있어 버지니아 시골분위기를 만끽하며 달릴수 있다.이 근처에는 제퍼슨의 몽티첼로 이외에,약간 못미쳐 제임스 메디슨의 사저 몽펠리에와 제임스 먼로의 농장 애쉬 론 등이 있다.또 서쪽의 스톤턴에는 우드로 윌슨 생가도 있어 이 일대는 미 대통령문화의 진수를 맛볼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 한국페스티벌앙상블 ‘동종의 악기 늘리기’

    ◎악기특성 살린 음악실험 같은 노래라도 독창,중창,합창이 다르다.악기도 그럴것은 불문가지.피아노만도 한대냐,두대냐,네대냐에 따라 표현영역과 색채감이 확 달라진다. 늘 새로운 음악실험에 몰두해온 한국페스티벌앙상블이 ‘동종의 악기 늘리기’를 16∼21일 서울 한국페스티벌앙상블홀에서 갖는다.제목 그대로 한종류의 악기를 한대서부터 여러대까지 추가해가면서 악기특성과 표현의 변화를 살펴보는 음악제.▲16일 바이올린 ▲17일 플루트 ▲18일 클라리넷 ▲19일 인성 ▲20일 오보에 ▲21일 첼로를 주제악기로 정해 한국 작곡가들의 창작곡을 소개한다.한국페스티벌앙상블이 현대음악 소개 일환으로 지난 89년부터 열어온 ‘20C 음악축제’ 일환.문의 739­3331.
  • 토머스 제퍼슨(미국의 대통령 문화:11)

    ◎독립선언서 기초한 ‘미 건국의 일등공신’/“지도자의 민중 불신은 정부 불신 초래” 철학 실천/직접설계 건축한 사저 세계문화유산 지정 보존 【샬롯빌(미버지니아주)=나윤도 특파원】 “언론이 자유스럽고 모든 사람이 그 언론에 접할수 있을 때 우리 모두는 안전해진다.”미국 건국의 1등 공신으로 추앙받는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열렬한 자유언론의 신봉자였다. 특히 그의 정치철학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민중에 대한 신뢰’사상은 미대통령의 국민사랑과 국민존중 정신의 기원이 되고 있다. 그는 국무장관 출신으로 후임 대통령이 된 제임스 메디슨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의 자유를 보존하기 위해 확실히 의존할수 있는 유일한 것은 민중뿐”이라고 강조하며 “지도자의 민중에 대한 불신은 민중의 정부에 대한 불신을 가져온다”는 소신을 피력했다. 특히 책을 좋아해 ‘걸어다니는 도서관’이라는 별명을 얻기까지한 그는 자신의 집에 넓은 도서관을 만들어 6천여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이 책들은 1814년 영국군의 워싱턴 침공으로 불탄 미의회도서관을 재건할때 밑거름이 됐다. ○‘걸어다니는 도서관’ 별명 버지니아 서부 셰난도 밸리의 아름다움을 뒤로하고 펼쳐진 샬롯빌은 버지니아 중서부 최대의 도시로,명문 UVA(버지니아대학)가 위치한 교육도시이자 건국초기 3명의 대통령을 배출시킨 미 역사의 중심지로 유명하다. 워싱턴에서 서남쪽으로 뻗어나간 29번 도로를 따라 2시간 가량 달려가면 샬롯빌에 이르러 제퍼슨의 사저인 ‘몽티첼로’가 나온다.그 인근에는 미헌법의 아버지인 4대 대통령 매디슨의 사저 ‘몽펠리에’와 유럽 간섭을 배제하고 자주외교를 천명한 몬로독트린으로 유명한 5대 제임스 몬로의 ‘애쉬론’농장 등이 자리잡고 있어 이 일대는 조지 워싱턴을 비롯 모두 8명의 대통령을 배출,건국초기 버지니아왕조라는 말을 탄생시킨 현장이기도 하다. 1776년 미독립선언서의 기초자로 유명한 제퍼슨 대통령은 역대 42명의 미대통령중 가장 재능이 많고 지식이 풍부했던 대통령으로 꼽히고 있다.그는 건축가이자 발명가로 유명했으며 또 저술가,음악가로도 당대 최고의 경지를보일 정도로 다양한 능력의 소유자 였다.정치경력 측면에서도 주의원,연방하원의원 등 의회직을 비롯,주지사,대사,국무장관,부통령 등을 역임한 가장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이태리어로 ‘작은 산’ 이라는 뜻의 몽티첼로는 제퍼슨이 어린시절 뛰어놀던 자신의 농장 한가운데 있는 작은 언덕에 우뚝 서있다.그가 직접 설계하여 지은 이 집은 인간의 삶과 주거공간을 가장 이상적으로 결합시킨 건축물로 평가되고 있다.집과 정원과 농장이 함께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 몽티첼로는 그의 또하나의 걸작품인 UVA의 아카데미 빌리지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보존되고 있다. 미독립의 기운이 싹틀 무렵인 1743년 버지니아의 부유한 개척농가에서 태어난 제퍼슨은 당시 명문이던 윌리엄&메리 칼리지를 졸업하고 24세에 변호사 시험을 패스한뒤 10년동안 주의원으로 활약했다.75년부터 76년까지는 대륙회의에 버지니아 대표로 참석,독립 달성을 위해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그후 버지니아 주지사와 프랑스대사를 지냈다. ○퇴임후 버지니아대학설립 특히 프랑스혁명을 현지에서 직접 겪은 제퍼슨은 귀국후 인간의 권리를 더욱 강화하는 ‘권리장전’ 등 헌법수정안을 통과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된 그는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좋은 정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그가 생각한 좋은 정부는 국민들이 자기사업을 자유로이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가능한한 작고 약한 정부라고 생각했다.그리고 영국군과의 전쟁을 치르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난 국채의 상환을 위해 엄격하게 내핍하는 간소한 정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29세때 결혼한 부인 마르타의 10년만의 죽음은 그에게 큰 마음의 상처를 안겨주었으며 이후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1남5녀의 자식을 키웠다.그는 백악관에 홀아비로 입성한 첫대통령이었으며 큰 딸 마르타가 8년동안 퍼스트레디의 역할을 맡았다. 대통령 퇴임후 몽티첼로로 돌아온 제퍼슨은 후세 교육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 버지니아대학을 설립했다.그는 가장 이상적인 아카데미 빌리지의 설계뿐아니라 교수진 선발,커리큘럼 등도 만들었으며 초대 총장을 역임했다.특히 후임 대통령이 된 메디슨과 몬로 등 고향 친구들과는 한동네에 살며 버지니아대 총장까지도 돌아가며 할 정도로 한평생 교분을 나누며 살았다. 그는 말주변이 없어 연설에는 곤혹을 치렀지만 뛰어난 문장력으로 글쓰기를 좋아해 퇴임후에도 1년 평균 1천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 받았다.정부통령으로 있으면서도 경쟁관계로 사이가 나빴던 2대 대통령 존 아담스와는 나중에 화해하여 다시 친하게 지냈으며 독립선언 50주년이 되던 1826년 7월4일 같은날 죽는 우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제퍼슨은 자신의 묘비명에 미독립선언서의 기초자,버지니아 종교자유장전의 기초자,버지니아대학 설립자를 기록해줄것을 유언으로 남겼다.그는 대통령으로서의 역할보다도 이들 역할에 더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건축가로도 탁월한 능력”/“인간의 삶­주거공간 이상적 조화/불 대사 재직시절 독학으로 터득”/제퍼슨 기념재단 이사장 다니엘 조던 【샬롯빌(미버지니아주)=나윤도 특파원】 몽티첼로를 관리하고 있는 토마스제퍼슨 기념재단 이사장 다니엘 조던 박사는 버지니아대 역사학과 교수로 제퍼슨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대통령 제퍼슨에 대한 평가를 설명해달라. ▲라이딩스의 조사에 따르면 42명의 미대통령중 4위로 나타났다.다른 조사들도 빅 쓰리(링컨,워싱턴,프랭클린 루즈벨트)와 비슷한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마운트 러시모어의 4명의 대통령상에도 포함돼 있다.워싱턴이 건국의 아버지라면 제퍼슨은 건국의 1등공신 이다. ­제퍼슨의 능력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무엇인가. ▲건축가로서의 능력을 제일로 꼽을수 있다.프랑스대사로 파리에 있는 동안 독학으로 터득한 그의 건축에 대한 안목은 인간의 생활 양태와 주거공간의 조화를 실현시킨 것으로 탁월한 것이었다.몽티첼로의 집안 및 정원 배치,버지니아대 아카데미 빌리지의 학문공간과 생활 공간과의 연계는 뛰어난 것이다.피라미드,만리장성 등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보호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그는 7개국어를 이해할 정도로 해박했다. ­제퍼슨의 몽티첼로 생활은. ▲1772년부터 1826년 사망때까지 54년을 살았다.퇴임후에는 독서와 발명에 몰두하며 농부로서 정원가꾸기에 심혈을 기울였다.그러나 다소 사치스러운 생활로 곧 생활의 어려움을 겪게 됐으며 의회도서관 화재시 책을 2만4천달러에 판것도 그 때문이다.그는 메디슨,아담스 등 친구들과의 서신교환을 좋아해 모두 1만9천여통의 편지를 남기고 있다. ­워싱턴의 제퍼슨 기념관은 언제 건립됐나. ▲1943년 4월13일 제퍼슨의 200주년 탄생일에 봉헌됐다.워싱턴 포토맥강가에 제퍼슨의 동상과 어록 등을 새겨놓은 둥근 기념관이 우뚝 서 있으며 수많은 관람객으로 붐비고 있다.
  • 불법과외 음대교수 2명 적발

    ◎시간당 8만∼12만원 받고 입시생 실기지도 서울시교육청은 1일 음대 지망생들을 상대로 불법 실기과외를한 현직 교수 2명 등 4명을 적발,서울지검에 고발하는 한편 교수 2명의 명단을 소속 대학에 통보했다. 시교육청에 따르면 H대 이모교수(42)는 지난 해 5월부터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오피스텔에서 예술계 중학교인 Y학교 학생 3명과 S예고 학생 3명 등 8명에게 월 4시간씩 바이올린 개인지도를 해주고 시간당 8만∼12만원씩을 받았다. J대 나모교수(57)도 지난 해 11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집에서 자신이 출강하는 S예고 3년생 2명 등 음대 입시준비생 5명을 상대로 월 2차례씩 첼로교습을 해주고 시간당 10만원씩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로부터 과외를 받은 학생들의 부모는 회사대표를 비롯,회계법인 대표,정부투자기관 직원,금융사 간부 등 대부분 사회지도층 인사였다. 함께 적발된 이모씨(37·대금연주자)도 지난 해 1월부터 잠원동의 오피스텔에서 K예고생 등 4명을 상대로 월 30만원씩을 받고 대금 강습을 했으며,배모씨(45·무직)는 지난해 12월 고 1년생 6명에게 수학과외를 했다.
  • 경희대 이종영 교수의 ‘비하우스 앙상블 음악교실’

    ◎‘재미없는 음악’ 놀이로 친해지기/기능위주 아닌 열린교육 지향… 어른반도 개설/어린이집·유치원 등 방문해 파견교육도 실시 친구들이 은별이의 바이올린 활을 감췄다. 술래가 된 은별이가 활을 찾아나선다.탁자 속에 숨겼을까,다가가니 친구들의 바이올린이 일제히 소리를 죽인다.이번엔 방향을 틀어 장농쪽을 향한다.그러자 모두들 바이올린을 크게 울린다.다가가면 갈수록 소리는 더욱 커진다. 아,이쪽이구나.장농문을 여니 바이올린 활은 그 속에 들어있다. 피아노 안 배워본 아이들이 없을만큼 음악교육 과열인 우리나라.하지만 ‘연주하는 기계’를 만드는 테크닉 위주 교육이 대부분이다.아이들은 학원에 조금 다니다 금새 싫증을 느껴 음악자체를 멀리하기 십상.경희대 이종영 교수(첼리스트)가 꾸린 사단법인 비하우스 앙상블 음악교실(2월2일 개원예정,02­593­9851)은 이런 기능위주 연습교육의 대안을 찾는 곳.놀이를 통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음악과 친해지는건 물론,창의성·사회성까지 키우는 열린교육을 지향한다. 미국 인디애나 음대에서바이올린 교육을 전공,비하우스에서 강의를 맡는 지유진씨는 위의 ‘활찾기 놀이’를 “친구가 감춰둔 활에 가까워지면 포르테(강음),멀어지면 피아노(약음)를 연주하는 과정에서 악상을 익히며 곤경에 처한 친구를 힘을 모아 돕는 협동심도 함께 배우는 음악 인성교육의 예”라고 소개했다. 이런 이색 음악교실의 개원 공신은 경희대 이종영 교수.평소 전문가 키우기 커리큘럼 일색의 풍토가 못마땅했던 터라 음악을 생활 일부로 친근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교육기관을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은 진작부터 먹어왔다.막상 일을 시작하고 보니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음악인들이 뜻밖에 많았다.교육자 인력풀도 무궁무진할 것 같았다.비싼 외화들여 외국유학까기 한 뒤 놀고있는 음악도들이 넘쳐나는 실정이기 때문.무대만 고집하지 말고 조금만 인식을 바꿔 아이들 교육에 관심을 돌리라고 설득하는 것도 이씨 몫이었다. 우여곡절끝에 출범케 된 음악교실은 각대학 교수·강사 등 막강한 강사진에도 불구,더 많은 아이들이 음악의 즐거움을 누리게끔 수강료를 낮은 수준에서 유지할 계획.세부종목은 첼로,바이올린,영어로 배우는 첼로교실,영어로 배우는 바이올린 교실,팝피아노,솔페이지(시창·청음),타악,음악통론 등.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 현장을 방문해 강의하는 ‘파견교육’도 실시한다.어린이반과 별도로 ‘음악교실’ 일반인반도 개설할 예정.학원 선생님들을 재교육하는 전문지도자반도 연다. 이씨는 “음악은 연주자나 전문가만이 아닌 모든 이들을 위한 축복이다.어릴 때 음악과 친해지면 평생 친구를 얻는 셈”이라면서 “한사람의 영재보다 음악의 풍요로움을 음미할줄 아는 백사람을 내는게 우리 교육의 목표”라고 말했다.
  • 친근한 선율과 함께하는 신년맞이 음악회

    IMF한파속에 신년맞이 음악회도 ‘구조조정’ 대상이기는 마찬가지. 예년에 비해 수도 줄었거니와 규모의 거품을 뺀 내실,내핍 기획이 두드러진다. 예술의전당이 16∼17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개최하는 98 신년음악회(580­1132)가 대표적. 국양악 합동으로 며칠간 이어지던 예년의 호사를 걷어내고 레퍼토리로 승부를 걸었다. 베르디 ‘개선행진곡’,드보르작 ‘사육제’,슈트라우스 ‘봄의 왈츠’,안익태 ‘코리아 환타지’ 등 친근한 선율로 힘찬 새해를 연다. 연주는 KBS 교향악단. 첼리스트 고봉인,피아니스트 백혜선,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 등의 협연순서와 국악인 장사익,바리톤 고성현도 곁들여진다. 음악계의 히트상품 청소년음악회를 접붙인 신년연주회도 방학한 학생들이가 볼만하다. 경희대 이종영 교수가 이끄는 비하우스 첼로 앙상블 ‘청소년음악회’(2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2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391­2822)는 파헬벨,엘가,슈베르트,림스키 코르사코프 등이 메뉴. 소프라노 유미숙씨가찬조,빌라 로보스의 아리아,‘그리운금강산’을 부른다. ‘하성호와 함께하는 이야기가 있는 신년 청소년음악회’(16∼19,21∼23,25,30∼2월3일,서울정동극장·773­8960)는 각종 클래식소품,영화음악,가요,가곡 등을 서울팝스오케스트라의 연주,지휘자 하성호씨의 해설로 들려준다. ‘98 청소년을 위한음악회’(2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3142­2186)는 클래식 방송작가 김강하씨의 해설로 유명 오페라 아리아들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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