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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길영의 뾰족한 읽기] 이웃 나라를 아는 법/충남대 교수·문학평론가

    [오길영의 뾰족한 읽기] 이웃 나라를 아는 법/충남대 교수·문학평론가

    서양 문학을 연구하고 틈틈이 한국문학 평론을 하는 내게 친숙한 것은 서양 문화와 문학이다. 그 이유가 내가 영미문학을 연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요즘은 학교에서도 세계사를 필수로 배우지 않는다고 하던데, 오래전 학교에서 배웠던 세계사에서도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던 건 서양사와 서양 문화였다. 일면 이해할 만하다. 17세기 이래 세계사를 서양 문명이 선도한 것은 부인하기 힘들며 그 영향력은 여전하다. 특히 2차대전 이후는 미국이 두드러진다. 영문학 전공자로서 나는 미국 문학과 문화 혹은 그 이전 세계제국을 경영했던 영국에서 배울 건 배워야 한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내 경험을 돌아보면 그렇게 지리적으로 먼 서양 문화는 친숙하게 받아들이면서도 동아시아 이웃 국가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는 게 없다는 걸 동아시아 교류 관련 공동연구에 참여하면서 실감했다. 그 이유를 생각하게 된다. 제도권 교육에서 이웃 나라인 중국, 일본, 우리와 비슷한 식민지 경험을 지닌 베트남, 대만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과목이나 국가관 관계를 다룬 균형 잡힌 교육 과정을 찾기 힘들다. 균형 잡힌 교육이란 매사를 자국 중심으로만 바라보는 편협한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를 넘어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동아시아 전체의 시야를 갖도록 해야 한다. 그럴 때 동아시아 평화체제의 실마리가 생긴다. 특히 앞으로 그 중요성이 더해질 동남아시아에 대한 무관심과 무지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국가든 우리가 관계 맺는 상대에 대한 무지는 몰이해를 낳고 몰이해는 편협함을 낳는다. 편협한 인식에서 건강한 관계가 싹틀 수는 없다. 이웃 국가와 맺는 관계에서 문학예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특정 국가와의 관계가 좋지 않고 대립이 날카로울수록 그 문학을 읽고 배우는 것이야말로 평화를 만들어 나가는 가장 중요한 수단 중의 하나다. 문학이란 그 문학을 배태한 사회의 내면, 그 내면 정서의 흐름을 보여 주는 거울이다. 예컨대 러시아가 침략을 계속해 억압 체제로 가면 갈수록,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노예성을 척결하는 것을 그 문학의 존재 목적으로 여겼던 체호프의 작품들을 더 읽어야 하고 더 가르쳐야 한다. 그 작품 속에서는 침략과 억압의 나라가 아닌, 또 다른 러시아의 존재 가능성이 보이는 것이다.”(박노자, ‘문학인’ 2022년 가을호) 이웃 나라를 이해할 때 그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등을 아는 것은 필요하다. 나도 뒤늦게나마 중국, 일본, 대만을 공부하면서 그 나라와 한국의 관계, 공통점과 차이점을 배웠다. 그러나 거기에 더해 다른 나라를 깊이 이해하는 방도는 문학예술, 영화 등을 통해서다. 문학예술은 그것을 낳은 ‘사회의 내면, 그 내면 정서의 흐름을 보여 주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그 거울은 이웃 나라만이 아니라 그 이웃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도 비춰 준다.
  • 작은 역할은 없어…작은 배우만 있지

    작은 역할은 없어…작은 배우만 있지

    까만 무대 뒤에서 아직도 벌벌 떨어(손숙) 월급도 안 받는데 은퇴가 어디 있어(박정자) “작은 역할이란 없어요. 작은 배우만 있을 뿐이죠.”(윤석화) 연기 경력 도합 165년. 이름만으로도 중량감을 뽐내는 연극계 트로이카 배우 박정자(80), 손숙(78), 윤석화(66)가 새달 13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연극 ‘햄릿’의 단역으로 나서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28일 서울 강북구에 있는 연극 ‘햄릿’ 연습실에서 세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1962년 연극 ‘페드라’로 데뷔한 박정자는 올해로 데뷔 60주년을 맞았다. 1964년 연극 ‘상복을 입은 엘렉트라’로 데뷔한 손숙은 연극뿐만 아니라 드라마, 영화 등에서 활약해 왔다. 1975년 연극 ‘꿀맛’으로 데뷔한 윤석화는 배우뿐 아니라 제작·연출자로서도 인정받았다. 세 사람은 1985년 문을 연 소극장 산울림의 여성 연극 시대를 이끌었으며 이해랑 연극상을 줄이어(6회 박정자, 7회 손숙, 8회 윤석화) 받기도 했다. 또 이제는 고전이 된 ‘신의 아그네스’를 함께 했으며 2000년 이해랑 선생 11주기 추모 공연이었던 안톤 체호프 원작 ‘세자매’의 무대에 같이 올랐다. 손숙은 “이 어려운 연극계에서 서로 힘이 되니까 여기까지 온 게 아닌가 싶다”며 “동료보다 전우 같다”고 했다. 박정자는 “이런 동료를 갖는다는 게 쉽지 않고 서로가 귀한 존재”라며 “동시대를 같이 살고 있다는 게 참 고맙고 따뜻하다”고 말을 보탰다. 세 사람은 6년 전 이해랑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햄릿’ 공연도 함께 출연했다. 당시 박정자는 왕의 최측근 폴로니어스 역을, 손숙은 왕비인 거트루드 역을, 윤석화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버지를 잃고 결국 물에 빠져 죽는 오필리어 역을 맡았지만, 지금은 단역인 배우 1~3으로 등장한다. 윤석화는 “연극다울 것이라는 기대감만 있으면 행인을 해도 좋고 반대라면 주인공 역이라도 마다할 수 있다”며 “이전 역을 그대로 맡으면 편했겠지만, 이런 게 새로 작품 하는 묘미”라고 말했다. 세 사람은 ‘햄릿’과 같은 고전이 꾸준히 무대에 올라야 한다는 것에 입을 모았다. 윤석화는 “햄릿과 같은 고전 작품은 울림과 감동의 폭이 더 커질 수 있는 두께를 지니고 있다”고 했다. 손숙은 “우리나라 연극 환경이 고전을 올리기 쉽지 않다”며 “국립극장과 같은 곳에서 관객이 고전 연극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50~60년 동안 셀 수 없이 무대에 올랐지만, 여전히 떨린다고 고백했다. “무대에 오를 때마다 늘 새롭고 설레고 겁나요. 무대 뒤가 깜깜하잖아요. 거기서 엄청나게 떨어요”(손숙), “웃기지도 않아. 나도 떨어요. 이제 남은 건 이렇게 떠는 일밖에 없는 것 같아요. 책임감도 그렇고 (연극이란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박정자) 세 사람에게는 은퇴라는 단어는 여전히 요원해 보였다. “내가 뭐 월급, 보너스 받아 본 적도 없는데 은퇴가 어딨어요. 무대에 설 수 있을 때까지 은퇴는 없죠.”(박정자) “예전에 예순 살이 되면 은퇴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제는 할 수 있을 때까지 하고 싶어요.”(손숙) “일흔 살부터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걸요. 동네 꼬마 세 명이 관객이라고 해도 상관없어요. 언제 어디서든 제가 설 수 있는 무대, 나눌 수 있는 무대만 있으면 되는 거죠. 아마 천국에 가서도 나는 배우를 하고 있을 거예요.”(윤석화)
  • “작은 역할은 없어요, 작은 배우만 있을 뿐이지”…연기 경력 도합 165년, 연극계 트로이카

    “작은 역할은 없어요, 작은 배우만 있을 뿐이지”…연기 경력 도합 165년, 연극계 트로이카

    “작은 역할이란 없어요. 작은 배우만 있을 뿐이죠.”(윤석화) 연기 경력 도합 165년. 이름만으로도 중량감을 뽐내는 연극계 트로이카 배우 박정자(80), 손숙(78), 윤석화(66)가 새달 13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연극 ‘햄릿’의 단역으로 나서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28일 서울 강북구에 있는 연극 ‘햄릿’ 연습실에서 세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1962년 연극 ‘페드라’로 데뷔한 박정자는 올해로 데뷔 60주년을 맞았다. 1964년 연극 ‘상복을 입은 엘렉트라’로 데뷔한 손숙은 연극뿐만 아니라 드라마, 영화 등에서 활약해 왔다. 1975년 연극 ‘꿀맛’으로 데뷔한 윤석화는 배우뿐 아니라 제작·연출자로서도 인정받았다. 세 사람은 1985년 문을 연 소극장 산울림의 여성 연극 시대를 이끌었으며 이해랑 연극상을 줄이어(6회 박정자, 7회 손숙, 8회 윤석화) 받기도 했다. 또 이제는 고전이 된 ‘신의 아그네스’를 함께 했으며 2000년 이해랑 선생 11주기 추모 공연이었던 안톤 체호프 원작 ‘세자매’의 무대에 같이 올랐다. 손숙은 “이 어려운 연극계에서 서로 힘이 되니까 여기까지 온 게 아닌가 싶다”며 “동료보다 전우 같다”고 했다. 박정자는 “이런 동료를 갖는다는 게 쉽지 않고 서로가 귀한 존재”라며 “동시대를 같이 살고 있다는 게 참 고맙고 따뜻하다”고 말을 보탰다. 세 사람은 6년 전 이해랑 선생 탄생 100주년 기념 ‘햄릿’ 공연도 함께 출연했다. 당시 박정자는 왕의 최측근 폴로니어스 역을, 손숙은 왕비인 거트루드 역을, 윤석화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버지를 잃고 결국 물에 빠져 죽는 오필리어 역을 맡았지만, 지금은 단역인 배우 1~3으로 등장한다. 윤석화는 “연극다울 것이라는 기대감만 있으면 행인을 해도 좋고 반대라면 주인공 역이라도 마다할 수 있다”며 “이전 역을 그대로 맡으면 편했겠지만, 이런 게 새로 작품 하는 묘미”라고 말했다.세 사람은 ‘햄릿’과 같은 고전이 꾸준히 무대에 올라야 한다는 것에 입을 모았다. 윤석화는 “햄릿과 같은 고전 작품은 울림과 감동의 폭이 더 커질 수 있는 두께를 지니고 있다”고 했다. 손숙은 “우리나라 연극 환경이 고전을 올리기 쉽지 않다”며 “국립극장과 같은 곳에서 관객이 고전 연극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50~60년 동안 셀 수 없이 무대에 올랐지만, 여전히 떨린다고 고백했다. “무대에 오를 때마다 늘 새롭고 설레고 겁나요. 무대 뒤가 깜깜하잖아요. 거기서 엄청나게 떨어요”(손숙), “웃기지도 않아. 나도 떨어요. 이제 남은 건 이렇게 떠는 일밖에 없는 것 같아요. 책임감도 그렇고 (연극이란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박정자) 세 사람에게는 은퇴라는 단어는 여전히 요원해 보였다. “내가 뭐 월급, 보너스 받아 본 적도 없는데 은퇴가 어딨어요. 무대에 설 수 있을 때까지 은퇴는 없죠.”(박정자) “예전에 예순 살이 되면 은퇴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제는 할 수 있을 때까지 하고 싶어요.”(손숙) “일흔 살부터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걸요. 동네 꼬마 세 명이 관객이라고 해도 상관없어요. 언제 어디서든 제가 설 수 있는 무대, 나눌 수 있는 무대만 있으면 되는 거죠. 아마 천국에 가서도 나는 배우를 하고 있을 거예요.”(윤석화)
  • 제19회 부산국제연극제 10일 개막...19일까지 8개국 70개 작품 공연

    제19회 부산국제연극제 10일 개막...19일까지 8개국 70개 작품 공연

    부산 최대 공연예술축제인 제19회 부산국제연극제가 10일 개막했다.19일까지 열흘 간 열리는 올해 부산국제연극제에는 한국을 비롯해 콜롬비아, 스페인, 독일, 핀란드, 스위스, 이스라엘 등 8개 나라 70개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올해 개막작은 극단 실험극장의 ‘에쿠우스’(EQUUS)가 선정됐다. 이 작품은 피터 쉐퍼의 원작을 가장 잘 살린 역대 최고의 연극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폐막작은 안톤 체호프의 단편 소설을 각색한 극단 물결의 ‘귀여운 여인’(The Darling)으로, 이번 부산국제연극제 무대가 첫 공연이다. 개막작 ‘에쿠우스’는 10·11일, 폐막작 ‘귀여운 여인’은 18·19일 영화의 전당 하늘극장에서 열린다.올해 부산국제연극제 공연은 영화의 전당을 비롯해 해운대문화회관, APEC나루공원, 하늘바람소극장, 공간소극장, 열린 아트홀, 소극장 6번출구, 레몬트리소극장 등에서 열린다. 온라인 플랫폼(유튜브, 네이버 TV 등)에서도 공연을 볼 수 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여파로 온라인 플랫폼에서 진행했던 거리극 경연 프로그램 ‘다이나믹 스트릿’을 올해는 APEC나루공원, 영화의전당 야외광장에서 진행한다. 부산국제연극제 조직위원회는 지역 예술인들에게 공연 기회를 제공하고 청년 공연예술단체의 작품 발굴 및 지원을 위해 ‘청년지원 챌린지’, ‘청년연극제’ 등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도 마련해 운영한다고 밝혔다. 고인범 부산국제연극제 집행위원장은 “공연예술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프린지, 아트마켓 등 참여 프로그램을 늘리는 등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며 시민들과 소통하는 축제의 장을 만드는데 노력했다”고 말했다.
  • 삶, 그 회한의 무대 오롯이 담은 분장실

    삶, 그 회한의 무대 오롯이 담은 분장실

    새달 12일까지 여자 배우 버전 공연그 후 남자 배우들이 바통 이어받아 배우들 배역·무대 향한 갈망 쏟아내 걸작 대사 통해 저마다의 사연 풀어무대 뒤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배역을 잠시 내려놓고 오롯이 한 인간으로 돌아온 배우들을 엿볼 수 있다. 멀리서는 화려하게만 보이는 누군가의 삶이 평범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하다는 공감에 이르며 신비감보다 동병상련을 느끼기도 한다. “배우는 참 아름다우면서 고통스러워. 어려운 길이지”라는 배우의 독백과도 닮았다. 서울 대학로 자유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분장실’은 인간으로서의 솔직한 배우들의 모습을 비춘다. 러시아 문호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가 공연 중인 한 극장의 분장실. 중년의 여배우는 니나 역을 맡은 젊고 생기 넘치는 후배 배우가 마냥 부럽다. A는 무대 위 배우에게 대사나 동작을 알려 주는 프롬프터를 하느라 대사는 완벽히 꿰고 있어도 무대엔 몇 번 서지 못했다. 키가 크고 목소리가 예쁘지 않다는 이유 등으로 주로 남자 단역을 맡았고 그마저도 대사도 없었다. 그래서 연기엔 자신이 없지만 누구보다 진지하게 연극을 탐구한다. 호기심과 애교가 많은 B는 ‘갈매기’ 속 니나를 간절하게 꿈꾼다. 어색한 톤으로 애매하게 니나를 연기하는 C가 그저 부럽고 못마땅하다. 가뜩이나 긴장이 가득한 분장실에 C의 프롬프터 D가 등장하며 갈등이 극도로 커진다. ‘분장실’은 지난 4월 별세한 일본의 유명 극작가 시미즈 구니오의 대표작으로 1977년 초연 이후 일본에서 누적 상연 횟수가 가장 많은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무엇보다 작품의 백미는 배우들이 무대와 배역에 대한 갈망을 쏟아 내며 극 중 극으로 이따금씩 등장하는 고전 명작들이다. 네 명의 배우들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체호프의 ‘갈매기’, ‘세 자매’ 등 걸작 속 대사와 주요 장면들을 통해 저마다의 사연을 풀어낸다.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각색해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몸담았던 A의 시간을 설명하는 등 친밀감도 높다. 매체를 넘나들며 탄탄하고 깊은 연기를 해 온 실력파 배우들이 A(서이숙·정재은 분)와 B(배종옥·황영희 분)를 통해 보여 주는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재치 있는 연기 속에는 설움과 아픔이 있고, “무대에서 20년을 버틴 여자” C(우정원·손지윤 분)의 솔직한 토로는 행복하지만 잔인하기도 한 여배우의 삶 그대로를 표현한다. 무언가에 집착하듯 베개를 안고 다니는 D(이상아·지우 분)의 모습도 우리 안에 있다. 극 후반 A와 B의 존재가 반전으로 드러난다. 수십년을 분장실에서 머물도록 무대를 갈망하던 이들은 용기를 내 무대에 올라 관객과 마주한다. “연극의 3대 요소는 희곡, 배우, 그리고 관객”이라는 진리를 작품 시작과 끝에 상기시키는 이유를 무대에 오른 배우들의 표정으로 다시 한번 읽을 수 있다. 공연은 다음달 12일까지 여자 배우 버전으로 이어지고 다음달 17일부터는 박민성, 유승현, 정원영, 유희제 등이 참여하는 남자 배우 버전으로 분장실 이야기를 펼친다.
  • [문화마당] 좋은 출판사를 넘어 위대한 출판사로/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문화마당] 좋은 출판사를 넘어 위대한 출판사로/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현대문학’ 800호가 나왔다. 1955년 1월 창간해 66년 8개월 동안 어림잡아 소설 4000편 이상, 시 6000편 이상, 산문 4000편 이상이 약 24만쪽 지면에 실렸다. 이남호 고려대 교수의 말처럼 “한국 현대문학의 팔만대장경”이라 부를 만한 위업이다. 무엇보다 이 잡지가 지면을 얻기 어려운 신인들에게 기회의 장을 열어 주었다는 것을 잊을 수 없다. 기념호에 실린 짧은 소설 35편과 시 36편은 그 다채로움의 압축일 것이다. 각자의 색깔로 문학의 하늘에 쏘아 올린 불꽃놀이 같았다.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도 출간됐다. 1986년 러시아 문학 전문 출판사로 시작해 외국 문학 출판에서 일가를 이룬 것을 기념했다. 카프카, 오웰, 헤밍웨이, 울프, 카뮈, 푸시킨, 조이스, 체호프 등 절정의 명작이 수록됐다. 외국 문학 출간은 곧 한국어의 확장이다. 우리와 다른 세계를 체험하고 상상하며, 우리가 생각지 못한 것을 사유하면서 우리 언어 세계가 풍부해지는 것이다. 독특한 세계를 확보한 수많은 작가가 그동안 이 출판사를 통해 국내 독자에게 첫선을 보였다. 얼마 전 나온 민음사 55주년 기념 도서는 ‘책 만드는 일’이라는 소책자였다. 1966년 5월 창사 이후 근무한 민음사 전현직 직원이 ‘책 만드는 일의 고통과 보람’을 성찰하고 기록했다. ‘글의 가치와 책의 정가라는 안과 밖의 조건’에서 ‘책을 거쳐 각자 가고 있는 자기만의 길’을 보여 줬다. 책을 통해 한 사람과 다른 사람을 이어서 ‘영원의 다리’를 놓으려는 ‘불멸의 메신저’인 편집자들의 목소리가 이 책에 수천 겹으로 메아리치고 있었다. 적당히 좋은 출판사, 한순간 주목받는 출판사는 많다. 책 하나가 우연히 ‘터지는’ 바람에 돈방석에 오른 출판사도 더러 있다. 그러나 시대를 뛰어넘어 오랫동안 번영하는 ‘위대한 출판사’는 극히 드물다. ‘위대하다’는 평가를 얻기도 어렵거니와, 설령 정음사나 삼중당처럼 위대한 출판사 반열에 올랐더라도 경영을 잘못하면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는 게 현실이다. 또는 2세 경영으로 넘어가면서 타락하고 몰락해 존재감조차 없는 곳으로 전락하게 되는 일도 무수하다.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에 따르면, 장기적으로 좋은 성과를 낸 위대한 기업들은 단기 목표 달성을 위한 혁명적 변화를 자주 시도하기보다, 잘 훈련된 직원들이 큰 목표를 공유하면서 실적을 꾸준히 쌓아 간 곳이었다. 이들은 무엇보다 내부 인재를 중시하고, 다른 기업에서 실적을 낸 인재를 욕심내지 않았다. 또한 가혹한 현실 속에서도 고슴도치처럼 일관성 있게, 자신이 잘할 수 있는 한 가지 일에 집중했다. 위대한 출판사 역시 비슷할 것이다. 좋은 출판사를 넘어서 위대한 출판사가 되려면 무엇보다 출판의 한 분야에 집중하면서도 꾸준히 성공을 거두어야 한다. 이는 직원 전체가 공유하는 문화적 신념 없이 달성 불가능한 임무다. 단기 성과에 얽매여서 정체성을 저버린 채, 이 분야 저 분야를 기웃대고 유명 저자 확보에 몰두하면 곤란하다. 위대한 출판사는 위험을 견디면서 미래 가치를 지닌 낯선 저자한테 투자함으로써 자기 분야를 유망하게 만든다. 따라서 감식안이 있는 편집자를 길러 내고, 그가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장을 열어 주며, 오랫동안 그와 함께할 수밖에 없다. 한 분야에서 저자와 독자의 신뢰를 받는 전문 편집자의 존재는 무엇보다 중요한 성공 요소이기 때문이다. 올해 창비 역시 55주년을 맞고, 내년엔 문학동네가 30주년을 맞는다. 어려운 현실에서도 수많은 출판사가 위대한 출판사로 도약하려 애쓰고 있다. 모두에게 응원을 보낸다.
  • 러시아 걸작 원전에 충실한 번역… 19세기 대문호 감성에 더 가깝게

    러시아 걸작 원전에 충실한 번역… 19세기 대문호 감성에 더 가깝게

    도스토옙스키·톨스토이·체호프 작품해외문학 중 인기 많고 독자층 두꺼워원문 그대로 즐기고 싶다는 수요 반영특정한 시기 작품들 편중 출판은 문제 세대를 넘어 꾸준히 사랑받는 러시아 대문호들의 고전문학 작품이 최근 잇달아 번역 출간됐다. 러시아 고전문학 독자층이 두텁고 원전에 충실한 번역을 요구하는 고급화된 수요를 반영한 것이다.창비는 ‘죄와 벌’로 유명한 천재 작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1821~1881)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그의 생전 마지막 작품 ‘까라마조프 형제들’을 3권으로 나눠 출간했다. 1880년 출간된 이 책은 러시아 소도시의 지주 까라마조프가 살해된 뒤 세 아들에게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아 인간 존재와 세계에 대한 탐구의 결정체로 평가받는다. 작가는 추리적 기법을 활용해 벌인 탐색과 심판의 과정을 생생히 그려 냈다. 번역을 한 홍대화 경남대 교수는 주석을 꼼꼼히 달았고, 러시아 정교 사제들에게 자문해 작품에 반영된 종교 관련 용어를 보충하며 이해를 높였다.스피리투스는 러시아 단편 소설의 선구자로 불리는 안톤 체호프(1860~1904)의 단편소설집 ‘자고 싶다’를 출간했다. 기 드 모파상, 에드거 앨런 포와 함께 세계 3대 단편 작가로 꼽히는 체호프는 사소한 일상에 유머와 풍자를 더해 비극적 유머로 승화시킨 인물로 평가된다. 이상원 서울대 교수가 번역한 이 책은 아기를 돌보는 13세 소년의 시각에서 폭력과 저항을 담은 표제작 ‘자고 싶다’(1888) 외에 ‘관리의 죽음’(1883), ‘삶에서 하찮은 일’(1886) 등 9편의 단편을 담았다.‘부활’, ‘전쟁과 평화’ 등 대작을 남긴 거장 레프 톨스토이(1828~1910)가 인생과 정치에 대한 통찰을 담은 사상 선집 ‘비폭력에 대하여’는 바다출판사에서 나왔다. 세상의 변혁을 꿈꿨던 작가는 1904년과 1905년에 걸쳐 남긴 세 편의 에세이로 인권의 존엄성과 비폭력, 반전 평화를 호소한다. 러일전쟁을 목격한 그는 전쟁 없는 세상을 위해 국가 조직에 생명과 자유를 무조건 희생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박미정 경북대 강사가 번역을 맡았다. 중역이 아닌 러시아어 원전에 기반을 둔 번역본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국내 러시아 문학 출판의 경향이 여전히 19세기 대문호 위주로 편중돼 있다는 건 아쉬운 지점이다. 김현택 한국외대 러시아어과 교수는 “러시아어가 유럽 언어 가운데 한국어로 의미를 전달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졌다는 점에서 원전에 충실한 번역이 꾸준히 나오는 것은 이들 대문호에 대한 고정 독자층의 수요를 반영한다”며 “다만 ‘브랜드’ 있는 대문호만 좇는 편협성은 극복할 과제”라고 말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해외 문학 가운데 러시아 고전이 가장 인기가 많지만, 국내 출판계가 19세기 대문호들의 작품에 편중돼 중복 출판하는 경향은 역량 낭비”라며 미하일 숄로호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류드밀라 페트루스카야 등 현대 러시아 문학의 주축을 이루는 작가를 발굴해 지평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불멸의 ‘러시아 대문호’ 고전 잇단 출간… 19세기 작가 편중은 한계

    불멸의 ‘러시아 대문호’ 고전 잇단 출간… 19세기 작가 편중은 한계

    세대를 넘어 꾸준히 사랑받는 러시아 대문호들의 고전문학 작품이 최근 잇달아 번역 출간됐다. 러시아 고전문학 독자층이 두텁고 원전에 충실한 번역을 요구하는 고급화된 수요를 반영한 것이다.창비는 ‘죄와 벌’로 유명한 천재 작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1821~1881)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그의 생전 마지막 작품 ‘까라마조프 형제들’을 3권으로 나눠 출간했다. 1880년 출간된 이 책은 러시아 소도시의 지주 까라마조프가 살해된 뒤 세 아들에게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아 인간 존재와 세계에 대한 탐구의 결정체로 평가받는다. 작가는 추리적 기법을 활용해 벌인 탐색과 심판의 과정을 생생히 그려 냈다. 번역을 한 홍대화 경남대 교수는 주석을 꼼꼼히 달았고, 러시아 정교 사제들에게 자문해 작품에 반영된 종교 관련 용어를 보충하며 이해를 높였다.스피리투스는 러시아 단편 소설의 선구자로 불리는 안톤 체호프(1860~1904)의 단편소설집 ‘자고 싶다’를 출간했다. 기 드 모파상, 에드거 앨런 포와 함께 세계 3대 단편 작가로 꼽히는 체호프는 사소한 일상에 유머와 풍자를 더해 비극적 유머로 승화시킨 인물로 평가된다.이상원 서울대 교수가 번역한 이 책은 아기를 돌보는 13세 소년의 시각에서 폭력과 저항을 담은 표제작 ‘자고 싶다’(1888) 외에 ‘관리의 죽음’(1883), ‘삶에서 하찮은 일’(1886) 등 9편의 단편을 담았다.‘부활’, ‘전쟁과 평화’ 등 대작을 남긴 거장 레프 톨스토이(1828~1910)가 인생과 정치에 대한 통찰을 담은 사상 선집 ‘비폭력에 대하여’는 바다출판사에서 나왔다. 세상의 변혁을 꿈꿨던 작가는 1904년과 1905년에 걸쳐 남긴 세 편의 에세이로 인권의 존엄성과 비폭력, 반전 평화를 호소한다. 러일전쟁을 목격한 그는 전쟁 없는 세상을 위해 국가 조직에 생명과 자유를 무조건 희생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박미정 경북대 강사가 번역을 맡았다. 중역이 아닌 러시아어 원전에 기반을 둔 번역본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다만 국내 러시아 문학 출판의 경향이 여전히 19세기 대문호 위주로 편중돼 있다는 건 아쉬운 지점이다. 김현택 한국외대 러시아어과 교수는 “러시아어가 유럽 언어 가운데 한국어로 의미를 전달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졌다는 점에서 원전에 충실한 번역이 꾸준히 나오는 것은 이들 대문호에 대한 고정 독자층의 수요를 반영한다”며 “다만 ‘브랜드’ 있는 대문호만 좇는 편협성은 극복할 과제”라고 말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해외 문학 가운데 러시아 고전이 가장 인기가 많지만, 국내 출판계가 19세기 대문호들의 작품에 편중돼 중복 출판하는 경향은 역량 낭비”라며 미하일 숄로호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류드밀라 페트루솁스카야 등 현대 러시아 문학의 주축을 이루는 작가를 발굴해 지평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열린세상] 유시민과 ‘검은 수사’/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열린세상] 유시민과 ‘검은 수사’/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안톤 체호프의 ‘검은 수사’는 몇 번씩 곱씹어 읽는 단편 소설이다. 잘생기고 학식이 높아 존경받는 코브린 박사는 신경쇠약으로 인해 자신을 길러 준 페소츠키와 그의 딸 타냐가 사는 농장으로 가 휴식을 취한다. 여기서 코브린은 그가 만들어 낸 환영, 곧 검은 옷을 입은 백발의 수도승, 즉 검은 수사를 반복적으로 보게 된다. 이 검은 수사는 코브린을 ‘신이 선택한 자’, ‘영원한 진리를 추구하는 천재’, ‘공공선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자’로 칭송한다. 이 ‘고귀하고 행복한 운명’이라는 환상은 그를 흠모하던 타냐와 결혼하면서 잠시 중단된다. 그러나 도시로 돌아온 코브린은 안락한 생활에 만족하지 못해 검은 수사를 다시 보게 되자 농장으로 가서 휴식을 취한다. 검은 수사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코브린은 자신의 고결함과 천재성을 인정해 준 검은 수사를 못 보게 됐다며 오히려 타냐와 페소츠키를 계속해서 힐난하고, 타냐와 이혼한다. 어느 날 해변의 호텔에 머물고 있던 코브린은 페소츠키가 죽었으며 이 모든 불행이 그 때문이라고 저주하는 타냐의 편지를 읽는다. 이제 드디어 자신의 평범함을 깨달은 코브린에게 검은 수사가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천재라고 말한다. 두려움, 공포, 슬픔, 경이, 환희 속에 그의 심장은 죄어 오고 그는 피를 토하며 얼굴에 행복한 미소를 띤 채 죽는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검은 수사’가 있고 성공적인 삶이란 어쩌면 이 ‘검은 수사’를 적절히 피하는 데 있는지 모른다. 불행히도 우리 시대의 지식인이자 ‘평범한 천재’ 유시민이 ‘검은 수사’에 걸려들었다. 아니 집권세력 전체가 이 ‘검은 수사’에 걸려들었다. 유시민은 검찰이 노무현재단의 계좌를 추적했다는 주장은 잘못이었다며 “과도한 정서적 적대감에 사로잡힌 논리적 확증편향”이라고 사과했다. 한동훈 부장과 윤석열 검찰총장은 유시민, 친문·친노 세력에게 ‘악마화’됐고 이는 “누구와도 책임을 나눌 수 없고 어떤 변명도 할 수 없는” 부끄러운 작태였다. 이렇게 한 시대의 지식인이 갔고 한동훈이라는 ‘검은 수사 사냥꾼’이 왔다. 공공선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자라는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법무부와 ‘친문언론’ 또한 ‘검은 수사’에 걸려들었다. 한동훈 검사와 채널A 기자를 엮어 보려는 시도는 통하지 않았고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해 그를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회심의 한 방도 빗나갔다. 오히려 문재인 정권은 검찰에 대한 과대망상적 피해의식과 논리적 확증편향으로 정당성에 치명타를 입었고 차기 정권 창출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검찰개혁이 중요한 과제지만 이것이 정권의 명운까지 걸며 해내야만 했던 시대적 과제였을까? 시민은 정부의 부동산정책 대실패로 고통과 실의에 빠져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자영업자들은 생존을 건 사투를 벌이고 있고 청년들은 구직난과 실업난에 울분을 토하고 있다. 기다리던 코로나19 백신은 아직 오지 않고 사회 양극화는 사상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런 비참한 상황에서 ‘검은 수사’에 걸린 집권세력에게 다음 정권을 줄 수 없다는 민심이 거세지고 있다.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 자신은 아직 ‘검은 수사’에 걸려들지 않은 듯하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말실수를 몇 마디 했지만 그럭저럭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주변에 ‘검은 수사’에 걸려든 인사들이 너무 많고, 추미애ㆍ윤석열 갈등을 추인하는 실수도 했다. 코브린은 검은 수사와 사랑에 빠져 파국을 맞았지만, 문 대통령은 ‘위대한 대통령’이라거나 ‘문재인 보유국’이라고 칭송하는 세력과 결별해 파국을 피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5년 대통령 임기후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간다는 인식과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박근혜·이명박 정권이 엉망이어서 이 평범함조차도 위대해 보일 것이다. ‘검은 수사’의 묘미는 농장과 딸을 맡길 유일하고 신뢰할 만한 사윗감으로 코브린을 맞은 페소츠키와, 코브린을 완벽한 남편감이라고 확신한 타냐조차도 검은 수사에 걸렸다는 사실이다. 집권세력, 친문언론, 친문 지지자 모두 이 부녀와 유사하다. 검은 수사에 빠지면 어떤 비판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권유한다. 차라리 체호프의 ‘검은 수사’를 읽어라. 얼굴에 행복한 미소를 띤 채 죽지 않기 위해서.
  • 연작 소설처럼… 여성들의 ‘일상 속 이야기’ 줌인·줌아웃

    연작 소설처럼… 여성들의 ‘일상 속 이야기’ 줌인·줌아웃

    홍상수·연인 김민희 함께한 7번째 작품서사 요소 배제… 단편소설 3개 이은 듯옛 인연 ‘불쑥’ 찾아가 서투른 관계 맺기‘찌질한 남자’는 영화 전개 큰 영향 안 줘홍상수 감독에게 은곰상을 안긴 베를린국제영화제의 집행위원장 카를로 샤트리안은 그의 영화를 두고 “에리크 로메르나 우디 앨런과의 비교를 멈추고, 안톤 체호프에 관해 얘기할 때가 됐다”고 했다. 안톤 체호프가 누구인가. 풍자와 유머, 애수가 담긴 명단편으로 유명한 러시아의 소설가다. 지금껏 홍상수가 빚어낸 영화들은 길이는 장편이어도 작법은 단편소설에 가까웠다. 서사가 배제된, 거친 줌인·줌아웃을 반복하며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 작은 파문들을 들여다본다. 영화(17일 개봉) ‘도망친 여자’는 남편과 꼭 붙어 지내던 여자 감희(김민희 분)가 그가 출장을 간 사이 옛 인연들을 만나러 다니는 이야기다. 감희 시점에서 차례로 영순(서영화 분), 수영(송선미), 우진(김새벽)을 만나 펼치는 에피소드는 단편 소설 3개를 이은 연작처럼 보인다. 감희의 인생에서 이들이 오랜만이라면, 이들에게는 감희가 ‘불쑥’이라 소통은 매끄럽지가 않다. 채식을 주로 하는 영순에게 감희는 고기를 사고, 머리를 자른 감희에게 영순은 “집 나간 고등학생 같다”고 한다. 한때 같이 ‘까불고 놀았던’ 수영에게 자신의 옷 한 벌을 선물하지만, 수영은 ‘썸 타는 윗집 남자’와 돈 자랑을 하며 크게 감희에게 감사하지도 않는 것 같다. 서투른 관계 맺기를 시도하는 감희는 여자들이 연대하는 방식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을 항의하러 찾아온 이웃 남자를, 영순은 함께 사는 룸메이트 여성과 점잖지만 결연하게 맞받는다. 이웃 취준생이 감희에게는 불청객처럼 느껴지지만, 영순에겐 담배를 함께 태우고 애환을 나누는 이웃이다. 이 과정에서 홍상수 영화 특유의 ‘찌질한 남자’는 한참 주변화됐다. 고양이가 불편하다며 항의하는 이웃, 하룻밤 잔 것으로 매달리는 남자 등 뒷모습으로만 나타날 뿐, 영화의 전개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마지막 우진과의 만남이 감희에게는 극적이다. 작은 영화관을 운영하는 우진은, 우연히 만난 감희에게 옛 일을 사과한다. 우진의 남편인 정 선생(권해효 분)은 감희의 옛 연인이다. 정 선생과 간만의 해후에서, 감희가 내뱉는 언사들은 그간의 여정이 무의미하지 않았음을, 그사이 감희가 성장했음을 나타낸다. 영화는 홍 감독에게 스물네 번째 장편이고, 연인이자 페르소나인 김민희와 함께한 일곱 번째 작품이다. 그들의 사랑이 공개돼 세간의 지탄을 받은 후, 홍 감독의 세계관은 어느새 ‘김민희 연작 소설’처럼 이어져 온다. ‘도망친 여자’는 더욱 여성을 전면에 세웠으되, 찌질한 남자로 대표되는 일련의 남성상, 어딘가 모르게 부유하는 여성 주인공이 동어 반복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의 영화를 계속 보아 온 국내 팬들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홍상수가 써내려간 ‘김민희 연작소설’… 영화 ‘도망친 여자’

    홍상수가 써내려간 ‘김민희 연작소설’… 영화 ‘도망친 여자’

    홍상수 감독에게 은곰상을 안긴 베를린국제영화제의 집행위원장 카를로 샤트리안은 그의 영화를 두고 “에리크 로메르나 우디 앨런과의 비교를 멈추고, 안톤 체호프에 관해 얘기할 때가 됐다”고 했다. 안톤 체호프가 누구인가. 풍자와 유머, 애수가 담긴 명단편으로 유명한 러시아의 소설가다. 지금껏 홍상수가 빚어낸 영화들은 길이는 장편이어도 작법은 단편소설에 가까웠다. 서사가 배제된, 거친 줌인·줌아웃을 반복하며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 작은 파문들을 들여다본다. 영화(17일 개봉) ‘도망친 여자’는 남편과 꼭 붙어 지내던 여자 감희(김민희 분)가 그가 출장을 간 사이 옛 인연들을 만나러 다니는 이야기다. 감희 시점에서 차례로 영순(서영화 분), 수영(송선미), 우진(김새벽)을 만나 펼치는 장면들은 단편 소설 3개를 이은 연작소설 같다. 감희의 인생에서 이들이 오랜만이라면, 이들에게는 감희가 ‘불쑥’이라 소통은 매끄럽지가 않다. 채식을 주로 하는 영순에게 감희는 고기를 사고, 머리를 자른 감희에게 영순은 “집 나간 고등학생 같다”고 한다. 한때 같이 ‘까불고 놀았던’ 수영에게 자신의 옷 한 벌을 선물하지만, 수영은 ‘썸 타는 윗집 남자’와 돈 자랑을 하며 크게 감희에게 감사하지도 않는 것 같다. 서투른 관계 맺기를 시도하는 감희는 여자들이 연대하는 방식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을 항의하러 찾아온 이웃 남자를, 영순은 함께 사는 룸메이트 여성과 점잖지만 결연하게 맞받는다. 이웃 취준생이 감희에게는 불청객처럼 느껴지지만, 영순에겐 담배를 함께 태우고 애환을 나누는 이웃이다. 이 과정에서 홍상수 영화 특유의 ‘찌질한 남자’는 한참 주변화됐다. 고양이가 불편하다며 항의하는 이웃, 하룻밤 잔 것으로 매달리는 남자 등 뒷모습으로만 나타날 뿐, 영화의 전개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마지막 우진과의 만남이 감희에게는 극적이다. 작은 영화관을 운영하는 우진은, 우연히 만난 감희에게 옛 일을 사과한다. 우진의 남편인 정 선생(권해효 분)은 감희의 옛 연인이다. 정 선생과 간만의 해후에서, 감희가 내뱉는 언사들은 그간의 여정이 무의미하지 않았음을, 그사이 감희가 성장했음을 나타낸다. 영화는 홍 감독에게 스물네 번째 장편이고, 연인이자 페르소나인 김민희와 함께한 일곱 번째 작품이다. 그들의 사랑이 공개돼 세간의 지탄을 받은 후, 홍 감독의 세계관은 어느새 ‘김민희 연작 소설’처럼 이어져 온다. ‘도망친 여자’는 더욱 여성을 전면에 세웠으되, 찌질한 남자로 대표되는 일련의 남성상, 어딘가 모르게 부유하는 여성 주인공이 동어 반복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의 영화를 계속 보아 온 국내 팬들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이은혜의 책 사이로 달리다] 나이 든 저자들

    [이은혜의 책 사이로 달리다] 나이 든 저자들

    지난해 한 저명 학자가 방한해 강연을 했다. 한 시간 뒤 청중 질문을 받았는데, 한 젊은 독자가 “선생님 예전 책에서 고전에 대해 이런 내용을 언급하셨는데요”라며 질문했다. 그러자 학자는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요? 책을 하도 많이 써서 기억이 안 나네요”라고 재치 있는 농담으로 위기를 모면했지만, 노년의 학자를 바라보는 젊은이의 얼굴에는 당황, 안타까움이 비쳤던 반면 이해심과 동질감은 없었다. 젊은이는 노인을 바라볼 때의 심리가 이질감에 훨씬 가깝고, 가까운 미래에 자신도 그와 같이 되리라는 생각을 잘 하지 못한다. 얼마 전에는 한 저자의 북토크에 참여했는데, 그는 책을 볼 때는 돋보기를 썼다가 청중을 볼 때는 돋보기를 벗고, 다시 돋보기를 쓰고 또 벗는 분주한 손놀림으로 독자들의 집중력을 흩뜨렸다. 누구에게나 닥치는 노안 때문에 그에게 이전엔 눈이 돼 주었던 안경이 근거리 글씨를 볼 때는 까만 점박이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다. 그는 자신이 쓴 글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더듬거리며 읽었다. 체호프의 소설 ‘지루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명예교수 스체파노비치다. 그는 고매한 학자로서 평생 굉장한 지적 성과를 쌓았는데, 소설은 늘어진 피부에다 걸핏하면 짜증 내고 극도로 예민한 노인이 된 모습에만 집중한다. 젊은 시절의 기억력은 그에게서 빠른 걸음으로 달아나 버렸다. 과거 애처가였던 그는 지금은 “뚱뚱하고 굼뜬 아내를 바라보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 하고, 제자를 “학술적인 멍텅구리”라 평가하며 동료 교수의 부고를 듣고는 “그는 학문의 주인이 아니라 하인”이었다고 일갈한다. 하지만 그는 두려워한다. 박사 후보생이 자신을 보는 눈빛에서 “내 음성과 내 오종종한 체형과 신경질적인 몸짓에 대한 경멸”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무너지는 내면이 “노예에게나 걸맞은 것”이라며 수치스러워한다. 나이 든 저자를 대하는 독자와 편집자는 이제야 막 그의 원고나 책을 읽기 시작한 터라 아직 그의 늙음을 목격할 준비가 안 됐다. 일부 나이 든 저자는 눈이 잘 안 보여 저자 교정을 생략하기도 하는데, 빨간펜 표시가 없는 그들의 새하얀 교정지는 낯설기만 하다. 이런 모습이 비관적으로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나이 들면 사람은 반성적이 되곤 하는 데다 글 자체가 또한 자기반성적 매체이므로 글 쓰며 나이 먹는 이들이 보이는 각성은 뼈를 때린다. 특히 그들은 숱하게 쓰고 읽어 온 것이 어쩌면 ‘표절’일 뿐일지 모른다고 겸허히 말한다. 꿈에서 “모두가 나를 비난한다. 네 시는 표절이라고”(장이지)라거나 “뜻과 소리의 부스러기 정도로만 차이 나게도 물론 우리는 작품 도둑들”(조연호)이란 시구는 한때 자신의 글솜씨에 감탄했을 나르시시즘적 모습을 벗고 범상한 존재임을 고백한다. 사회운동가 파커 파머는 노년에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내가 초기에 쓴 글을 보라! 나는 그 시궁창 같은 글을 다시 읽을 때,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 글들은 이제 보니 ‘다음절(多音節)의 배설물’ 같은 것이었다. 나는 한때 60~70대에 이른 사람들과 그들의 글을 선호했는데, 세상을 다 가진 듯 덤벼드는 풋내기의 젊음보다 전체를 꿰뚫는 통찰력,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중심, 피상적이지 않은 비판, 그간 이룬 독서의 산맥들이 경탄을 자아냈기 때문이다(물론 젊은 세대 관점에서는 유연성 없는 것처럼 여겨지리라). 노인들은 걸핏하면 ‘회상’에 잠기는 약점을 지니지만, 속으로 내 ‘심리적 고물’을 버리고 싶다는 바람을 갖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지난 몇십 년간 더 위로 쌓으려던 성취를 내려놓으며 자신이 넘어지는 걸 인정하고, 삶의 속도보다는 단순함과 생명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어 한다. 그래서 그들은 나이가 들어서 쓰는 걸 절제하거나 소박하게 쓰기도 하는데, 그런 ‘담백한 시듦’이 노년의 방식인 것이다.
  • [씨줄날줄] 마라탕과 대왕카스텔라/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마라탕과 대왕카스텔라/박록삼 논설위원

    예술 속 리얼리즘은 여러 모순을 가진 사회 속 고통받는 인간 존재의 비루함을 담아낸다. 하지만 리얼리즘은 단순한 현실의 재현이 아니다.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등을 따지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다. 현실을 예술로 형상화하다 보면 자칫 부조리극이 되곤 한다. 실제 우리네 삶은 이성과 합리의 가치로 설명하기엔 부족한 부조리적 요소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삶과 예술의 통찰을 담은 안톤 체호프의 희곡 ‘갈매기’가 그렇다. 갈매기처럼 비상을 꿈꾸는 여주인공에게 남주인공은 자신이 쏴 죽인 갈매기를 보여 주며 이상을 꺾게 한다. 하지만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남주인공이다. 부조리함이야말로 ‘진짜 리얼리즘’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2017년 한국 사회에 불어닥친 ‘대왕카스텔라 열풍’은 자영업자들에게 희망의 키워드였다. 하루 매출 200만원 안팎이라는 입소문이 전해지며 1000개가 넘는 가게들이 순식간에 생겨났다. 프랜차이즈만 17개에 달할 정도였다. 하지만 한 종편TV의 고발 프로그램에 나온 다음날 그 열풍은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매출이 80~90% 줄어 울상이라는 뉴스 뒤 아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자영업자들의 희망을 배반한 일종의 ‘블랙코미디’와 같은 현상이었다. 오죽하면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 속 부잣집 지하에서 기생해야 하는 빈곤한 가장 두 사람이 한결같이 대왕카스텔라 창업에 나섰다가 실패한 인물로 묘사됐을까. 삶이 부조리하니 예술 역시 덩달아 부조리한 모습으로 풀어 갈 수밖에 없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기생충’ 속 서민의 삶이 ‘희비극’으로 펼쳐지는 것은 필연이었다. 서민들 삶의 부조리함은 대왕카스텔라 흥망의 우스꽝스러움에 머물지 않았다. 배달 전문 탕수육 창업 때도 그랬으며, ‘치맥 열풍’에 기대 전국적으로 8만개가 넘게 성행하는 치킨집 역시 매년 6200개가 새로 생기는 속에서 8000개가 문을 닫는다. 최근 전국 방방곡곡에 빼곡히 들어서는 ‘마라탕’(麻辣?) 또한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격이다. 당장 맵고 얼얼한 맛에 흠뻑 빠지게 만든 이 중국 음식이 대왕카스텔라의 길을 가게 될지, 아니면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자영업자들은 근본적으로 ‘을’이다. 프랜차이즈 본사에 막대한 로열티를 내고, 건물주의 임대료 상승 압박에 시달리며, 배달앱에 수수료를 줘야 한다. 그렇다고 가맹 본사에 맞서기 쉽지 않고, 건물주와는 일대일 계약이라 더더욱 쉽지 않다. 하릴없이 최저임금 탓을 하는 게 부조리한 ‘을의 삶’이다. youngtan@seoul.co.kr
  • 역대 가장 자세하다…블랙홀의 ‘먹방 과정’ 최신 시뮬레이션으로 공개

    역대 가장 자세하다…블랙홀의 ‘먹방 과정’ 최신 시뮬레이션으로 공개

    블랙홀에 관한 역대 가장 자세한 시뮬레이션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덕분에 이 천체가 어떻게 물질을 흡수하는지 그 수수께끼가 40년 만에 풀릴지도 모른다. AFP통신에 따르면, 미국 노스웨스턴대와 영국 옥스퍼드대 그리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 등이 참여한 국제 천체물리학 연구진이 시행한 최신 시뮬레이션 연구로 블랙홀의 생성과 성장 구조를 밝혀내는 데 몇 걸음 더 다가가게 됐다. 블랙홀은 커다란 별이 자기 중력 때문에 붕괴할 때 생긴다. 사실 검은 구멍이라는 이름과 달리 엄청나게 밀도가 높은 천체로 너무 강력한 중력을 지녀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다. 특히 이 천체는 가스와 먼지 그리고 천체 파편 같은 물질을 흡수할 때 그 주변에 ‘강착원반’을 생성한다. 이는 중력에 의해 찢긴 많은 양의 입자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것으로 강력한 빛을 내뿜는다. 지난 4월 ‘이벤트 호라이즌 망원경’(EHT) 프로젝트 연구진이 사상 처음으로 관측한 블랙홀 이미지에서 중심 주위에 나타난 흐릿한 후광이 바로 강착원반이다. 하지만 강착원반은 블랙홀의 적도면에서 거의 항상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고 알려졌다. 1956년과 1972년 두 차례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유일한 사람으로도 유명한 물리학자 존 바딘(1908~1991) 박사는 천체물리학자 야코뷔스 페테르손(1946~1996) 박사와 함께 1975년 회전하는 블랙홀은 기울어진 강착원반의 내부 영역이 실제로는 블랙홀의 적도면과 일렬로 늘어선다는 이론을 세웠다. 하지만 지금까지 어떤 모델로도 정확히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알아낼 수 없었다. ‘왕립천문학회월간보고’(MNRAS) 최신호(5일자)에 게재된 연구논문에 따르면, 연구진은 그래픽처리장치(GPU)로 대량의 자료를 분석해 블랙홀이 강착원반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시뮬레이션했다. 결정적으로, 이런 접근 방식은 자기장 난류를 설명하는 계산적 능력을 연구진에게 부여했다. 자기장 난류는 서로 다른 입자들이 강착원반 안에서 서로 다른 속도로 회전할 때 발생하는 것으로, 이런 전자기 효과가 물질을 정확히 블랙홀 중심에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시뮬레이션에서는 물질이 블랙홀로 흡수될 때 필요한 것으로 생각되는 추가적인 마찰을 수동적으로 예측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번 모델에서는 이런 마찰을 예측할 필요가 없다고 연구에 참여한 알렉산더 체호프스코이 박사(노스웨스턴대)는 밝혔다. 이와 함께 이번 시뮬레이션에 자기장을 도입할 때 실제로 자기장에 의해 불안정성이 생기고 그 결과 강착원반이 블랙홀 중심으로 떨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또 체호프스코이 박사는 비록 이는 사소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블랙홀이 얼마나 빨리 회전하는지에 직접 영향을 줘 그 결과 블랙홀은 주변에 있는 은하에 직접 어떤 영향을 주게 된다고 설명했다.이번 모델의 시뮬레이션을 보면 중심에서 분수처럼 확산하는 가스와 자기장이라는 두 종류의 제트를 지닌 강착원반이 생성된다. 이때 강착원반 바깥 부분은 기울어져 있지만 안쪽 부분은 블랙홀의 적도면과 완벽하게 정렬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끝으로 체호프스코이 박사는 “이전에는 자기장과 강착원반 속 난류 그리고 와류 등 물질과 상호작용하는 모든 요인을 고려했을 때 이런 것이 정렬 효과를 없앨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연구에서는 실제 작용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강착원반 안쪽 부분이 실제로 블랙홀과 정렬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써 블랙홀이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 더욱더 자신 있게 예측할 수 있게 됐다고 체호프스코이 박사는 덧붙였다. 사진=노스웨스턴대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모터바이크 탐험가 김현국씨 네 번째 유라시아 횡단 나서는 뜻

    모터바이크 탐험가 김현국씨 네 번째 유라시아 횡단 나서는 뜻

    모터바이크 탐험가 김현국(51,당신의 탐험 대표 겸 세계탐험문화연구소 소장) 씨가 네 번째 유라시아 대장정 ‘아시안 하이웨이 6호선(AH6) 트랜스 유라시아 시리즈 4’를 떠난다. 오는 26일 부산을 출발, 국도 7호선을 따라 북상해 동해까지 간 다음 블라디보스토크~시베리아~모스크바~암스테르담까지 왕복 2만 5000㎞를 달리게 된다. 8월 26일까지 3개월 여정을 계획하고 있다. 조금 더 자세히 여정을 소개하면 블라디보스토크~하바로프스크~치타~이르쿠츠크~크라스노야르스크~노보시비르스크~옴스크~예카테린부르크~카잔~모스크바~상트 페테르부르크 (22일 소요), 탈린~리가~빌뉴스~바르샤바~베를린~암스테르담(4일 소요)에 이른다. 돌아오는 길은 로테르담~브뤼셀~파리~제네바~밀라노~그라츠~부다페스트~ 바르샤바~빌뉴스~레제크네~모스크바에까지 이른 다음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이용해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른 다음 동해~부산~광주(64일 소요)까지 돌아오는 일정이다. 분단으로 고립된 섬이 돼버린 한국이 대륙과 연결되는 국제고속도로 네트워크는 두 가지다. AH 1호선은 일본에서 시작돼 부산과 서울, 신의주와 베이징, 동남아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며, AH 6호선은 부산에서 시작해 7번 국도를 따라 올라가다가 북한 원산과 나진. 선봉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른 뒤 시베리아를 지나 유럽의 끝인 로테르담까지 하나의 길로 이어진다. 김씨의 이번 대장정 주요 목표 역시, 이전과 마찬가지로 러시아를 중심으로 유라시아 대륙횡단도로에 대한 자료, 그 길을 따라 만들어지는 변화들에 대한 자료를 반복적으로 구축하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그의 과거 유라시아 횡단 이력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한러 수교 이후 러시아에 매력을 느껴온 그는 1890년 안톤 체호프가 우편배달 마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한 보고서를 보고 감명받은 데다 마침 즉석복권 당첨으로 모터바이크를 살 수 있게 된 것이 계기가 돼 이듬해 시베리아 횡단에 나섰다. 1만 2000㎞를 혼자 횡단했다. 2001년 터키부터 일본까지 실크로드 대장정으로 잠깐 ‘외도’를 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 많은 자료를 꼼꼼히 확보했다.2014년 AH6 트랜스 유라시아를 모터바이크로만 2만 6000㎞ 이동했다. 돌아올 때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바이크를 실어 9288㎞, 배로 1800㎞를 이동했다. 역시 혼자서 해냈다. 2017년 AH6 트랜스 유라시아를 두 번째로 시도하다가 계획을 변경했다. 직장인이 14일 정도 휴가를 쓰고 당장 떠날 수 있는 거리로 바이칼 호수까지, 다시 말해 시베리아 횡단으로 축소했다. 인터넷 상으로 인사를 나눴던 아홉 명과 동해항에서 만나 블라디보스토크항으로 이동한 뒤 7000㎞의 유라시아 대륙횡단도로에 대한 자료를 축적했다. 따라서 이번이 트랜스 유라시아 네 번째가 된다. 2010년에 러시아횡단도로가 완성되면서 자동차 이동량이 많아지면서 끝이 없는 대륙의 길을 따라 주유소가 들어서며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와 자동차 정비소, 휴게소와 트럭 운전사들을 위한 샤워 시설 등이 들어서 자료를 구축하고 있으며, 휴게소 안을 채우는 세계 각지의 제품들 목록을 자료로 만든다. 중앙아시아의 다디단 과일이 북극권에서 필요한 비타민을 공급해주기 위해 툰드라 지역까지 올라가 있는데 카자흐스탄 침칸트에서 생산된 수박이 3000㎞ 떨어진 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까지 어떻게 이동하는지 자료로 만들고, 자동차 물류회사가 등장하는데 자동차를 통한 물류의 이동이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어떤 경쟁력을 갖고 있는지 자료로 만들 계획이다. 또 러시아 연방의 부랴트 공화국의 수도 울란우데역 근처에서 호객하는 최신형 봉고 차량들이 열차보다 빠르고 저렴한지 점검해 자료를 만든다. 아울러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업을 통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4000㎞ 구간의 문화 자원을 자료화한다. 김씨는 더불어 모터바이크만으로 유라시아를 횡단하는 한국인들이 일년에만 수백 명을 넘어서고 있다며 이런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 캠핑카를 이용해 여행하려는 이들을 위해 자료를 축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11개의 시차와 180개 이상의 민족으로 이루어진 러시아 구간에 많은 기회와 위험을 사전에 파악하고 여행에 나서도록 돕는 역할도 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씨는 “러시아와 인연을 맺은 24년의 세월,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 교통수단인 모터바이크를 이용해 한반도로부터 확장된 공간으로서의 유라시아 대륙을 경험하길 간절히 바라왔다”면서 “이제 캠핑카 시대가 열리면 유라시아 대륙을 그저 소비하며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대륙이 주는 기회를 자신의 밑거름으로 삼는 일에 내 노력이 쓰였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등 올해의 연극 ‘베스트3’ 선정

    한국연극평론가협회는 ‘2018 올해의 연극베스트3’를 선정해 3일 발표했다. 남산예술센터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과 극단 ‘하땅세’의 ‘그때, 변홍례’, 두산아트센터의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 등 3편이다. 장강명 소설 원작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평론가협회는 “각색 작업의 섬세함과 더불어 그것이 연극적으로 충분히 구현됐다는 점, 사회성 짙은 작품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 온 연출이 한 걸음 더 발전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때, 변홍례’는 “다양한 형식적 실험의 집합체”,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은 “원작자인 안톤 체호프의 장점이 살아 있고, 그것을 현재 우리 현실에 부합하도록 담아 냈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시상식은 17일 서울 대학로 상명대 문화예술대학원에서 진행된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여성 해방 다룬 인형의 집, 지금 한국에 딱 맞는 작품”

    “여성 해방 다룬 인형의 집, 지금 한국에 딱 맞는 작품”

    “입센은 ‘인형의 집’을 통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도 시의적절하게 맞아떨어지는 작품이죠.”서울 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 연출을 맡은 러시아 연극연출가 유리 부투소프(57)는 “저에게도 이제 이 작품을 다룰 적절한 시기가 됐고, 마침 ‘인형의 집’ 안에 담긴 문제들이 한국에서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며 “이 두 가지가 맞아떨어졌다”고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5일 서울신문과 만나 “‘인형의 집’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모두 다 담고 있다”고 말했다. 부투소프는 러시아 최고 권위의 ‘황금마스크상’을 수상하는 등 러시아를 대표하는 연출가로 꼽힌다. 2008년 한국 무대에 올린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는 원작을 뒤집는 파격적인 연출로 화제가 됐다. 그는 현재 러시아 최고 극장으로 발돋움한 모스크바 바흐탄고프 극장의 수석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다. ‘인형의 집’은 순종적인 여성 ‘노라’가 자신의 굴레를 깨닫고 남편과 아이들을 떠나는 여성 해방 이슈를 담고 있다. 1879년 발표 당시 유럽 사회에 큰 논란을 일으켰다. 부투소프는 ‘미투 사건’ 등 국내 연극계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지인들을 통해 이미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건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한다”고 말을 아끼면서도 일본 위안부 문제 등을 예로 들며 “(한국 사회가) 여성의 자유와 지위를 위해 더 큰 목소리를 내야 하고, 다양한 운동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10년 전 한국에 왔을 때보다 여성의 자유가 조금 더 커졌음을 느낀다”며 “느리게라도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부투소프는 ‘인형의 집’ 출연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과정에서 배우들과 개별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언제나 배우 오디션을 직접 본다”면서 “두 달 이상 배우들과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이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나. 예술을 하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서로 잘 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국가들과 달리 러시아에서는 연극이 시민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부투소프가 몸담은 바흐탄고프 극장 역시 지난 시즌 관객 수가 30만명에 달했다. 그는 “모스크바에 연극전문학교가 설립된 게 100년이 넘고, 이 같은 역사가 바로 러시아 연극의 힘”이라며 “러시아로 유학을 온 한국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는데, 정말 놀라운 재능을 갖고 있다. 이들이 연극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한국에서도 만들어지기를 바란다”고 조언했다. 이번 공연은 6~2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진행된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고려인 애환 담긴 곳… 베이스캠프서 2시간 반 ‘최장거리’

    고려인 애환 담긴 곳… 베이스캠프서 2시간 반 ‘최장거리’

    한국 대표팀의 F조 두 번째 멕시코와의 경기는 인구 113만명으로 러시아 10대 도시에 들어가는 로스토프나도누에서 치러진다. 러시아 문학과 음악 배경에 잔잔한 물결로 자주 등장하는 돈강이 유유히 흐르는 곳에 자리했다. 긴 도시 이름은 러시아 북동부 로스토프와 구분하기 위해 ‘나도누’를 붙였는데 쉽게 말해 ‘돈강의 로스토프’란 뜻이다. 모스크바에서 1109㎞ 떨어져 있어 비행기로 2시간 정도 걸린다. 대한민국 베이스캠프가 차려지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조별리그 세 경기를 치르는 경기장 가운데 가장 멀어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돈강 하류와 마니치강 유역을 가로질러 넓은 범람원이 펼쳐진다. 돈강 유역의 볼고돈스크에는 대규모 원자로 생산공장이 있다. 볼가강으로 이어지는 볼가돈 운하와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등 카프카스 지역과 러시아 중앙지대를 연결하는 철도, 석유 및 가스 송유관이 지나가 ‘카프카스의 관문’으로 통한다. 농업의 발달로 밀과 보리 옥수수, 해바라기, 겨자, 멜론 등이 많이 생산되고 무연탄, 철광석 등 천연자원도 풍부하다. 표트르 대제(재위 1682~1725)의 딸 엘리자베타 여제가 1749년에 세운 무역도시다.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찾았을 때의 감동보다 더한 즐거움을 안긴다는 길손들의 체험담이 숱하다. 유려한 강변 풍경과 멋진 체메르니츠키 교량, 고색창연한 제정 러시아 건물들이 조화를 이뤄서다. 196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미하일 숄로호프(1905~1984)의 대하소설 ‘고요한 돈강’이 이곳을 무대로 제정 러시아로부터 달아나 독립을 꿈꿨던 코사크 민족의 슬픈 역사를 담았다. 스탈린 시대 연해주에서 이곳으로 강제 이주해 쌀 농사 등을 강요받은 고려인이 무려 2만 5000명에 이르러 지금도 이곳에 드리운 애환과 삶의 흔적을 되짚어 보는 것도 뜻깊겠다. 흑해와 연결되는 아조프해와 가까워 습한 대륙성 기후로 6월 평균 기온이 섭씨 22도로 따듯하다. 6~7월 비 오는 날은 나흘, 강수량도 70㎜ 정도로 경기를 하거나 관람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여건을 제공한다. 습도는 63%, 해발 고도는 50m밖에 안 된다. 멕시코와 결전을 펼칠 장소로 지난해 개장한 ‘로스토프 아레나’는 4만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이곳에선 E조, A조, D조 예선 한 경기씩과 16강전 한 경기가 열린다. 현재 러시아 프로축구 FC 로스토프의 홈 구장으로 쓰이고 있다. ’신태용호’를 응원하러 로스토프나도누를 찾는 이라면 표트르 대제가 멀지 않은 아조프 해변에 세운 당찬 계획도시 타간로그도 들러보자. 극작가 안톤 체호프(1860~1904)의 고향이어서 여기저기 그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아울러 위대한 시인 알렉산드르 푸슈킨(1799~1837)이 산책한 아조프 해변을 거니는 것도 좋겠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대학로, 31일간의 연극 열전

    대학로, 31일간의 연극 열전

    윤영선 작가 유작 등 4편 초연 ‘툇마루…’ ‘그때, 변홍례’ 눈길창작·번역 초연극부터 엄선된 수작들을 만날 수 있는 축제인 서울연극제가 28일부터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열린다. ‘연극은 대학로다’를 주제로 31일간 펼쳐지는 제39회 서울연극제에선 초연작 4편, 재연작 6편 등 총 10편이 무대에 오른다. 국내 작가의 초연작으로는 기존 연극 형식을 부정하고 자신만의 극작법과 실험 정신으로 고독한 인간 존재를 그려 온 극작가 겸 연출가 윤영선(1954~2007)의 유작이 눈에 띈다. 극단 놀땅의 ‘쥐가 된 사나이’(5월 18~27일)는 그가 남긴 미완의 희곡을 무대에서 완성한 작품이다. 어단비 작가, 윤시중 연출이 참여한 극단 하땅세의 ‘그때, 변홍례’(5월 18~27일)는 1931년 일제 치하 대저택에서 발생한 의문의 살인사건을 풀어간다. 프랑스 소설가 기 드 모파상의 작품을 1인칭 모노드라마로 만들어 낸 극단 피악의 ‘오를라’(5월 18~27일)와 일본 신예 작가 오가와 미레이의 블랙코미디를 다룬 극단 행의 ‘깊게 자자, 죽음의 문턱까지’(5월 4~13일)도 국내 관객과 처음으로 눈을 맞춘다. 프로젝트 아일랜드의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5월 1~13일)와 디렉터그42의 ‘4 four’(5월 4~13일)는 번역극으로 초연의 호평에 힘입어 재연 기회를 맞았다.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는 체코 작가 페트르 젤렌카의 작품으로, 광기를 소재로 현대인의 고독을 발칙하게 다룬 블랙코미디다. 제63회 일본 문부과학대신상 수상작인 ‘4 four’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혼란 속에서 범죄피해자 유족들을 통한 사형제도의 문제를 다룬 실험작이다.다시 무대에 오르는 창작극 가운데는 역사적 사회적 사건을 다룬 작품들이 시선을 끈다. 연쇄살인마로 나오는 만화 속 주인공과 일본군 위안부를 접목한 극단 반의 ‘이혈(異血)-21세기 살인자’(5월 4~13일), 2008년 초연된 후 10년 만에 새롭게 재구성한 상상두목의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슬픔’(5월 4~13일)은 5월 광주를 소재로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이 밖에 안톤 체호프의 단편 소설 ‘공포’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그린피그의 ‘공포’(5월 4~13일)와 등장인물들의 세밀한 심리 묘사가 빛난 아르케의 ‘툇마루가 있는 집’(5월 4~13일)은 지난 2월 공연에서 평단 및 관객의 큰 호응을 받았다. 연극제 동안 배우들과 함께하는 ‘희곡 읽기’, 연출가·작가가 참여하는 ‘관객과의 대화’, 25개 극단의 무료 공연인 ‘프린지: 제14회 서울창작공간연극제’, 거리 퍼포먼스 ‘달걀인간의 일상’ 등 다채로운 즐길거리도 펼쳐진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연극리뷰] 러시아 동시대극 ‘발렌타인 데이’

    [연극리뷰] 러시아 동시대극 ‘발렌타인 데이’

    어떤 기억은 온몸에 각인된 채 사람을 떠나지 않는다. 처음 마음을 나눈 연인과의 추억 같은 것이 그렇다. 처음으로 겪은 설렘만큼 강렬한 것은 없을 터이니. 예술의전당이 기획공연으로 선보인 연극 ‘발렌타인 데이’(14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는 이처럼 누구나 오래 앓는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다.‘21세기 러시아 연극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극작가 이반 비리파예프 모스크바 프락티카 극장 예술감독이 2009년에 발표한 희곡이 원작으로 국내 초연이다. 주로 막심 고리키, 안톤 체호프 등 19~20세기 러시아 작가의 희곡이 소비됐던 국내에 모처럼 등장한 러시아 동시대 연극이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연극예술원에서 연기와 연출을 공부한 김종원 연출가가 번역과 연출을 맡았다. 작품은 평생 한 남자에 대한 그리움에 사로잡힌 여인 발렌티나가 겪는 감정의 속살을 들여다본다. 열여덟 살에 처음 만난 동갑내기 발렌티나와 발렌틴의 사랑은 부모님의 반대로 이어지지 못한다. 스무 살이 된 발렌틴은 발렌티나가 결혼을 한다는 거짓 소식에 절망하고, 자신에게 끝없는 관심을 보여 온 카차와 결혼한다. 15년 뒤 다시 만난 발렌티나와 발렌틴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지만, 발렌틴은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홀로 남아 60세 생일을 맞은 발렌티나는 끝내 이루지 못한 사랑의 기억을 붙잡고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간다. 작품은 발렌티나의 60번째 생일날인 현재에서 시작해 18세, 20세, 35세, 40세 등 과거를 되짚으며 꿈, 상상을 넘나든다.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이 작품이 특별한 건 농익은 사랑의 언어를 전하는 배우들의 섬세한 감정 연기 덕분이다. 배우 정재은과 이명행이 발렌티나와 발렌틴을 연기하고 이봉련이 카차를 맡았다. 감각적인 무대 미학 역시 주제를 돋보이게 한다. 과거 발렌틴의 집이었지만 현재는 발렌티나와 카차가 함께 사는 공동주택인 무대는 공원, 길, 수영장으로 시시각각 변한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눈과 바닥을 나뒹구는 낙엽, 방에 있던 물건들이 무대 한가운데 바닥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 등 다양한 시각적인 장치로 극적 효과를 더했다. 1만 5000원~5만 5000원. (02)580-1300.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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