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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라스노야르스크 유람선 「안톤 체호프」(시베리아 대탐방:55)

    ◎6∼9월 북극관광 12회 운항/3천t급 호화시설… 수영장·헬스클럽도/3백명 승선… 구소공산당 간부 즐겨 이용 시베리언들사이에 러시아의 작가 「안톤 체호프」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하지만 크라스노야르스크지방에서 「안톤 체호프」는 이제 더 이상 소설가의 이름이 아니다.3천t급 호화유람선­이 배의 이름이 바로 「안톤 체호프」이기 때문이다. 지난 78년 옛 소련이 오스트리아에 주문해 제작한 안톤 체호프는 그동안 공산당간부와 그들을 추종하던 관리들의 전유물이었다.이들은 해마다 크라스노야르스크에 모여 호화스런 파티를 벌였고 가족들과 이 배를 타고 시베리아대륙의 광막함과 대자연의 신비함을 만끽했다. 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페레스트로이카가 열렸고 고급관리와 공산당간부들의 행각이 차츰 사라지면서 이 배는 그대로 예니세이강 하안에 묶이는 듯했다.그러다가 지난해 외국과의 경제교류가 빈번해지면서 「주식회사 예니세이스크」라는 선박회사가 탄생했다.스위스의 미텔라우라는 관광회사가 이 회사의 설립을 도와주며 안톤 체호프를 서구의 호화유람선으로 개조한 것이다.이 회사는 연간 70만마르크에 안톤체호프호를 러시아로부터 임대,예니세이강을 본격 운항하는 유람선으로 사용하게 됐다.취재진이 크라스노야르스크항구에 도착했을 때 안톤체호프는 이틀정도 남겨놓은 올해 첫출항을 준비하기에 바빴다. ○관광객 50대이상 주류 선장 이반 티모베레비치씨(58)를 비롯한 승무원 37명은 출항에 앞서 각종 정비·점검에 임하고 있었다.관광객은 스위스측이 유럽 각국으로부터 모아 올 예정이었는데 첫운항 때의 손님은 1백70명정도라고 한 승무원이 귀띔해줬다.이 유람선의 최대 승선인원은 3백명정도였다.관광객들은 스페인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등 유럽각국에서 이미 6개월전부터 예약된 손님들이었다.젊은이들보다는 50대 이상의 나이든 관광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회사측의 설명이었다. 관광코스는 여객기와 기차·배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고 있었다.이 배로는 10∼11일동안 크라스노야르스크항구에서 예니세이강을 거쳐 북극도시 노릴스크·두진카까지 가는 것이다.두진카에 도착한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다시 모스크바로 여객기를 타고 이동하고 모스크바에서는 다시 기차로 상트 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를 여행하도록 스케줄이 짜여 있었다. 북쪽으로 항해하는 동안 처음 만나는 도시는 예니세이강과 퉁구스강이 교류하는 「예니세이스크」다.이 도시는 16 28년에 탄생한 시베리아의 고도다.예니세이스크 도시관광이 끝나면 유람선은 다시 북쪽으로 향한다.그러다 북쪽으로 향하는 것을 잠시 멈추고 동쪽 퉁구스강으로 빠진다.원시림으로 가득한 퉁구스강의 삼림지대,옛 원시인들이 살았거나 퉁구스족·예벤키족등 시베리언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는 모습을 놓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유람선은 퉁구스강을 빠져 나와 본류인 예니세이강을 항해하고 10일째 목적지인 두진카항구에 도착한다.관광사들은 두진카로의 도착시기를 6월 초쯤되도록 스케줄을 짠다.이때쯤이면 북극바다의 거대한 얼음덩이가 녹으면서 먼 바다로 떠내려가는 대장관­「유빙」을 맞기 위한 것이다.유빙을 보며 유람선 승무원들과 관광객들은 선상에서 샴페인을 터뜨린다.순식간에 유람선은 축제분위기에 휩싸인다.일부 러시아 관광객들은 유빙을 쳐다보며 자신의 소원을 기원하기도 한다. ○종업원 외국어 구사 특기 매년 6월초쯤 시작되는 안톤 체호프의 예니세이 관광은 9월말(겨울이 늦어지면 10월 초순까지)이면 끝이 난다.이후에는 시베리아에 겨울이 시작되면서 북쪽의 강이 얼어붙기 시작,배가 옴짝달싹 못하기 때문이다.따라서 안톤 체호프를 탈 수 있는 시기는 이 기간동안의 11∼12차례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 선장의 설명이었다. 안톤 체호프는 벌써 1년간의 예약이 모두 끝나고 이제 96년 관광객들의 예약을 받고 있었다.티모베레비치 선장은 지난 84년부터 이 유람선을 운항해 온 베테랑 선장이다.취재진은 그의 안내로 배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갑판을 통해 객실 내부로 들어섰다.객실복도,층계마다 금장식 샹들리에가 눈에 부셨다.깔아놓은 붉은 카펫하며 마치 일류호텔을 방불케하는 시설물을 갖추고 있었다.2층은 2명씩 들어가는 객실로 가득차 있었다.3층은 헬스클럽과 수영장,식당,디스코바 등이 들어서 있었는데 유람선의 종업원들이 이틀후면 출항할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수영장은 30t정도의 물이 들어가는 규모로 항해하는 동안 햇볕을 직접 쬘 수 있도록 지붕을 여닫을 수 있게 차양장치가 붙어 있었다. 디스코 바는 80여명이 들어가 즐길 수 있는 규모였다.디스코바 식당 등의 종업원들은 모두 20대 초반의 대학을 졸업한 아가씨들.이들은 모두 한가지 이상의 외국어 구사능력을 특기로 갖고 있었는데 영어에서부터 프랑스어 스페인어 일본어 이탈리아어등을 구사하고 있었다. 영화관이 있다는 4층으로 올라갔다.이곳에서는 시베리아에 관한 영화나 외국의 최신영화,시베리아에 대한 다큐멘터리물등을 상영하고 있었다.4층을 거쳐 배의 갑판이자 옥상으로 빠져 나왔다.옥상에는 각양각색의 비치파라솔이 그득했다.운항이 계속되는 동안 따분한 날이면 옥상으로 나와 일광욕을 즐기게끔 각종 서비스도 곁들여져 있었다. 유람선의 안전장치에도 귀가 솔깃해졌다.선장은 『초당 15m의 강풍,5m의 파고에도 흔들림이 없다』고 자랑했다.10여명이탈수 있다는 구조목선 24개를 비롯해 배의 수리를 위한 작업선이 유람선의 운치를 더했다.80년대 중반 옛공산당 정치국원이었던 리가초프,러시아의 첫우주유영인 옐리세예브가 이 배를 탄 적이 있었는데 배를 타본 뒤 이들은 한결 같이 『환상적』이라며 탄성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 러시아 연극계 「페테르부르크」 극단 선풍

    ◎50년 창단… 품격 높은 연기 펼쳐 신선한 충격/소 무너진뒤 번성… 미·이·일 등 순회서 극찬 페테르부르크의 한 극단이 품격 높은 연기로 모스크바 연극계를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주말인 21일 하오1시 모스크바 중심가의 유서깊은 타간스카야극장 앞.연극을 보러왔으나 미처 표를 구하지 못한 사람이 삼삼오오 모여 행여나 표를 구할까 두리번거리며 극장입구를 막고 있다.암표상도 함께 판을 친다.이 극장이 붐비는 것은 바로 최근 몇년 사이에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페테르부르크의 「말리극장」 소속 극단이 모스크바에 와 첫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즈베스티야등 현지 언론도 「말리가 모스크바 중심부를 강타하다」라는 제목으로 연일 문화면의 톱기사로 보도하고 있다. 1950년대 창단된 「말리극단」은 소련이 무너진 뒤 오히려 화려하게 번성해가는 유일한 지방극단.수도인 모스크바조차 대부분의 연극계가 경영난에 허덕이며 파산하고 있는 데 비한다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말리극단의 명성은 8년전인 87년부터 뉴욕·파리·도쿄등을 돌며 순회연기를 펼치면서 쌓여졌다.예술총감독 레브 도딘의 천재성,단원들의 절제된 연기,연기를 통해 조용하게 드러내지는 시대정신은 언제나 이들 극단을 일컫는 단골찬사였다 특히 이날부터 올려지는 「형제와 자매들」이란 작품은 미국·일본등 모두 10여개국 도시에서 대호평을 받았다.표트르 아브라모프의 소설을 각색한 이 작품은 소비에트 농촌을 무대로 펼쳐지는 「평범한 사람들의 진솔한 삶」을 담아낸 이들의 처녀작이자 성공작이다. 지난 83년부터 감독을 맡은 도딘은 연극에 대한 재능뿐만 아니라 지칠 줄 모르는 정력,영민한 예지와 통찰력으로 관객을 사로잡아왔으며 말리극단의 오늘의 명성 역시 그가 이룩해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도딘은 이어 90년 소비에트군생활을 폭로한 세르게이 칼레딘의 중편 「공병대」를 각색,「가우데아무스」를 무대에 올렸고 이듬해 91년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악의 꽃」을 각색해 무대에 올려 연달아 히트시켰다. 「가우데아무스」는 라틴어 「환락」에서 따온 것으로 탐욕으로 가득한소비에트군생활을 낱낱이 꺼내 폭로한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다.모두 19토막으로 구성된 이 극에서 배우들은 각기 「육체적 솜씨」와 음악적 재능을 한껏 뽐내고 있다.전작 10시간짜리인 「악의 꽃」은 19세기 거의 모든 나라의 젊은이 사이에 팽배해 있던 「죄의 씨앗」인 「혁명가의식」을 리얼하고도 절제 있게 그려냈다는 평이다.앞으로 3주간의 모스크바일정에서는 안톤 체호프의 「체리농장」과 러시아 현대소설가의 작품을 모은 「폐소공포증」도 함께 올려진다.이 모두는 94년에 처음 선을 뵌 작품이다.지난해 파리에서 처음 올려진 「폐소공포증」은 배우들의 누드와 외설스러움으로 가득한 연극이라며 비평가의 엇갈린 평가를 받기도 했다.르 몽드를 비롯한 파리의 언론은 『파리의 극장에서 본 가장 정열적인 무대였다』는 평가를 내린 반면 뉴욕 타임스등 미국의 언론에서는 『인기가 좋긴 했지만 춤과 노래,배우들의 쓸데없는 큰 소리로 어울어진 「잡기」였다』고 혹평하기도 했다.이 「폐소공포증」은 처음 무대에 올려진 페테르부르크의 관객조차 성나게 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모스크바 연극계에서는 이번 말리극단의 모스크바순회연기가 1년전 그루지아에서 온 루스타벨리극단이 모스크바에 준 「신선한 충격」이상의 바람이 몰아닥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BAM철도 시발지/타이셰트(시베리아 대탐방:31)

    ◎마을 간격 수백㎞… 끝없는 삼림지대로/쿠즈바스탄전 연결 철도,지난 65년 건설/9월초까지 휴가시즌… 가족 여행객 많아 시베리아 여행중 관광지마다 졸업여행을 온 단체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중학교만 졸업하면 여학생의 경우는 곧바로 결혼적령기(16∼18세)가 되고 남자는 어엿한 사회인이 되니 졸업여행이다 사은회다 해서 요란하게 기념식을 갖는 것이다. 모스크바를 떠난지 꼭 열흘째 되는 날 현지시간으로 상오10시10분 크라스노야르스크역을 떠났다.모스크바에서 출발한 특급 「러시아2호」를 다시 탔다.다음 행선지는 세계최대의 담수호를 만날 이르쿠츠크.시베리아여행중 최고의 경관을 구경할 구간을 지나게 된다.이르쿠츠크주로 진입하면서 모스크바와의 시차는 5시간으로 늘어나 마침내 한국과 같은 시간대가 됐다.모스크바와 한국과의 시차는 원래 6시간이지만 러시아전역에서 3월말부터 9월말까지 서머타임을 실시하기 때문에 시차가 지금은 5시간이다. ○차창밖은 초봄 풍경 크라스노야르스크 역을 벗어나며 차창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본격적인 타이가지대이다.크라스노야르스크 이전에 나타난 타이가는 숲이 아주 촘촘했다.반면 이제는 아주 성긴 숲이 계속되고 있다.베료자는 아직 잎을 달지 못해 헐벗은 겨울나무 풍경이다.체료무하도 꽃을 달지 못했고 타이가 침엽수 「리스트니차」는 이제 갓 연푸른 잎을 내밀기 시작했다.크라스노야르스크 시내를 벗어나며 차창밖으로는 갓 초봄의 정경이 펼쳐지고 있다.숲의 밀도가 떨어진 타이가 곳곳에 산불흔적이 보이고 철로변 양지쪽의 잔디밭에는 점심휴식시간인듯 철도노동자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초봄의 따스한 햇살을 즐기고 있다.동시베리아로 접어들며 느끼는 여행의 또다른 맛은 곧은 철길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기차는 구릉과 산허리를 이리저리 휘감으며 나아가 전혀 지루함을 느낄 수 없다.서시베리아에서는 그저 막막한 숲,대지만 보며 길이 일직선으로만 나있었다. 차창밖 타이가지대에는 사람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시베리아 인구의 80%는 중소,대도시에 모여있다.그래서 철로변에도 인가를 보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타이가지대로 들어가면 작은 마을들이 같혹 있지만 마을간 간격이 보통 수백㎞씩 된다.대시베리아철도가 완공되기 전인 18 90년 시베리아횡단여행을 했던 작가 안톤 체호프는 여행기에서 『타이가의 위력과 신비는 그것의 무서운 침묵이 아니라 그 끝을 알고 있는 생명체가 철새들 뿐 이라는 사실에 있다』고 썼다.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탄 열차는 객실 한칸에 양옆 2층으로 된 4명이 타는 침대차였다.2명씩 타는 최고급보다는 한결 서민적이고 값도 싸다.그런 탓인지 양옆으로 러시아인 이웃들이 많이 탔다.대부분 휴가를 받아 다른 도시의 부모친척을 만나러 가는 가족단위 여행객들이었다.러시아에서 휴가철은 보통 5월말부터 시작해 9월초까지 이어진다.직장마다 차이는 있지만 1개월∼2개월씩의 휴가가 주어진다. ○최고 2개월간 휴가 출발 30분만에 남부 아바칸에서 BAM철도의 출발점인 타이셰트로 연결되는 지선과 만나는 우야르역을 지났다.우야르에서 타이셰트까지는 두 선로가 1백㎞거리를 두고 거의 평행되게 달려가 타이셰트에서 합쳐진다.남쪽의 이 아바칸­타이셰트선은 시베리아철도가 붐비면서 지난 19 65년 건설됐는데 서쪽으로 쿠즈바스탄전과 연결되는 매우 중요한 산업철도다.아바칸에서 서쪽으로 사이아나산맥을 넘어 쿠즈바스까지의 구간은 많은 터널을 지나며 주변 경관이 빼어난 것으로 특히 유명하다. 아바칸을 지나고 얼마 안 있으면 칸스크역이 나타난다.「칸강변의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인구 10만명 내외의 작은 마을이지만 16 28년 요새로 건설돼 매우 오래된 마을로 유명하다.처음에는 변경수비를 맡은 에니세이 코작이 살았으나 17 17년부터 모스크바∼이르쿠츠크를 연결하는 시베리아 트랙(길)이 통과하면서 급작히 발달했다.「스파스카야」「페트로파블로프스카야」등 유서깊은 교회건물들이 많은데다 섬유·양초·비누 생산지로 꽤 이름높은 곳이다.아울러 이글스트롬·모자렙스키·살라비요프·발렌베르크등 이름난 데카브리스트들이 이르쿠츠크 유형길에 머문 것으로도 유명해진 마을이다. ○바이칼호 부근 도착 이튿날 상오8시30분 마침내 「자(뒷쪽)오제르느이(호수)」지역에 진입했다.드디어 바이칼호수와 연관된 이름이 나타난 것이다.낮12시40분에 클루치역을 지났다.모스크바로부터의 거리는 44 67㎞를 가리켰다.클루치는 「열쇠」라는 뜻으로 크라스노야르스크주가 끝나는 마지막역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마침내 여행을 시작한 뒤 13번째 주인 이르쿠츠크주로 들어섰다.비류사강을 지나며 곧바로 타이쉐트역을 지났고 이어서 기차는 다시 방향을 틀어 이르쿠츠크까지 한동안 남진을 계속한다.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도 훨씬 따뜻해졌다. 옆칸에는 북극해에 연한 튜멘주 영토내 야말­네네츠키 자치구에서 일하는 노동자 일가족이 타고있었다.부부가 8살난 딸아이를 데리고 있었는데 휴가를 맞아 하바로프스크에 사는 노부모를 찾아가는 길이라고 했다.47살이라는 이 건장한 노동자는 북부 혹한지대에 사는 노동자들의 애환과 생활을 재미있게 들려주었다.사진을 찍자고 하니까 기다리라고 한 뒤 문을 걸어잠그고는 무려 30분 이상 전가족이 옷치장을 하고난 뒤에야 사진촬영에 응하는 순박한 사람들이었다. 그는 지난 77년 콤소몰(청소년동맹)로부터 튜멘북부 건설현장에 참여하라는 요청을 받고 그곳에 간 뒤 도로·철도·공항건설·유전·가스개발등에 참여했는데 점점 더 북쪽으로 올라가 지금은 거의 북극해 바로 밑인 노브이 우렌고이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당시 오지 건설공사장 참여자들은 「까라차예바」라고 불렀는데 모두들 건설영웅 대접을 해주어 우쭐한 기분으로 일했다고 했다.지금도 「시베리아 나트바브카」라고 부르는 오지 특별수당 덕분에 타지역에 비해 월급이 2백50%나 된다.그러나 그동안 힘들게 벌어 저축한 돈이『최근 몇년 사이의 인플레로 제로가 됐다』고 그는 한탄했다. 그곳은 지금도 겨울이면 영하 50도를 밑도는 날이 많다고 했다.반면 한여름에는 영상 40도나 되는 무더위에 모기가 들끓어 일하기가 보통 힘드는 게 아니라고 했다.겨울에는 자고 나면 눈치우는 게 제일 큰 일이고 공기중 증기가 얼어붙어 불과 2∼3m앞도 내다볼 수 없는 날이 많다고 한다. 이런 오지에 살면서도 전가족이 구김살 없이 활달하고 친절한 심성을 지키고 있는 게 퍽 인상적이었다.발랴라는이름의 어린딸은 학교에서 배운 푸슈킨의 시를 졸졸 외워보였다.
  • 원로 연극인 장민호(이세기의 인물탐구:78)

    ◎평생을 연극으로 살아온 연기자의 대명사/파우스트 간판배우… 별명은 “파우스트 장”/이순신서 햄릿까지 어떤 배역도 무난히 소화/칠순이 눈앞에… 식을줄 모르는 열정으로 연기생활 『배우가 해야 할 최대 문제는 관객을 계속 끌고 나가는데 있다』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가수로 활약한 샬리아핀은 말한다.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연기에 대한 끝없는 욕심과 집념어린 정열을 불태우는 이가 있다면 국립극단의 원로배우 장민호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그는 평생을 연극으로 일관한 연기자의 대명사다.양심적이고 본질적인 그의 연기가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일시적인 경이감이나 전율만은 아니다.연기를 통한 인간정신의 승화를 그는 무대 곳곳에서 증명해 내고 있다.예의 「배우가 해야 할 최대 문제인 관객을 이끌어 나가는데」 한번의 실수나 실책이 있을 수 없다는 주의다. ○솔직하고 직선적 성격 그는 언제나 의욕적이다.성격은 명쾌하고 성급하며 솔직하고 직선적이다.항상 모범생과도 같은 이런 유의 성격이란 한가지 일에 몰두하면 끝장을 봐야만직성이 풀리게 마련이다.또한 철두철미하고 다혈질적인 기질로 인해 곧잘 흥분하거나 저항하거나 마찰을 빚기 십상일 것이다.그러나 「칼날처럼 날카롭고 정의감에 넘치건만」 막상 결단을 내려야할 순간에는 흑백을 가리거나 정면으로 대결하기보다 우회적인 유연성을 지니는 것이 남과 색다르다.이는 아마도 오랜 세월 어지러운 세파에 시달린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터득한 「삶의 지혜」일지도 모른다.또는 이북에서 혼자 월남해온 그로서는 사방의 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는 당연한 견제일 수도 있다.그래선지 국립극단에서 40년이 넘게 한 솥밥을 먹은 동료들도 『그의 속마음을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다만 무대에 서면 「온몸의 연기로 관객을 압도」하기 때문에 「배우가 연기를 잘한다면 모든 것은 침묵」일수밖에 없다. 그는 해방직후 황해도 신천에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서울에 왔다가 연극배우가 된 케이스다.20세되던 해 원예술좌가 공연한 성극 「모세」에서 타이틀 롤을 맡으면서 연극에 입문,그로부터 10년후 하유상의 「딸들자유연애를 구가하다」로 「노역」을 완성시키면서 「성공적인 연기자」의 반열에 올라섰다.이후 「대수양」「세종대왕」「성웅 이순신」에서 완곡하며 기질이 장대한 성군,「오델로」「맥베스」「줄리어스 시저」의 다이내믹한 개성,「밤으로의 긴 여로」「안네 프랑크의 일기」「햄릿」에서의 차분하고 섬세한 내면 연기 등 그에게 돌아오는 모든 배역을 「생생한 극중 인물」로 부각시키는데 한치의 허술함을 보이지 않았다.그중에서도 「역을 최후로 완성시키는 것은 디테일이 아니라 전체적인 진실성」이라고 믿는 그가 평자들에게 어필된 것은 단연 괴테의 「파우스트」를 들수 있다. ○66년에 파우스트 초연 66년 서항석 역 이해랑 연출로 초연된 「파우스트」에서 그는 학문과 지식에 실망한 노박사 파우스트가 현세적 향락에 침몰되는 과정을 고뇌에 찬 연기로 그려내었고 두번째는 8년후인 74년,순결한 헬렌과의 사랑에서 미마저 구하지 못한채 이상향을 꾀하는 허탈한 파우스트,또다시 84년 한독 1백주년 기념공연에서 독일의 저명한 기싱이 연출한 세번째「파우스트」에서는 지금까지 축적된 파우스트의 진면목을 함축하여 관객은 감전된 듯 박수갈채를 멈추지 않았었다.그때 이 연극을 연출한 기싱은 『그는 인물을 스스로 움직이되 얼굴 표정이 아닌 눈빛만으로 이미 단숙을 성립하고 있다』고 했다.즉 「고정된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을 붙들지 않으면 안된다는 긴박감에서 그는 감정을 절제하거나 적절히 노출하여 역이 가리고 있던 사상의 베일을 한장 한장 벗겨내고야만 것」이다. ­이것이 수많은 배를 띄우고 그리고 끝없이 높은 탑들을 불태운 얼굴이었던가.사랑하는 헬렌이여 단 한번의 키스로 불멸케 해다오.오! 그대는 무수한 별들의 아름다움으로 치장한 밤하늘보다 더 아름답구나­ 가슴속에 박힌 사랑을 고백하는 이 장면은 「드라마틱한 다이너미즘과 명쾌한 표현적 리듬,응축된 긴장감과 생명의 맥박이 충만」하여 이를 앞서 연출했던 이해랑씨는 『중진 장민호의 연기가 폭풍같은 성공을 거둔 근본 요인은 이러한 관념을 최후까지 지킨 지치지 않은 탐구의 결과』라고 못밖았다.이는 50년대 후반국산 영화붐으로 연극계가 부진하자 전 연극인이 분발하여 만든 「대수양」(김동인 작 박진 연출)을 보고 『그곳에 군계일학이 있었다』고 한 이진순씨의 지적과 맥을 함께하는 찬사이기도 하다.이로써 그는 「파우스트」간판 배우로서 평생동안 영광스러운 「파우스트 장」의 별명을 갖게 되었다. 배우는 무대위에서 기왕에 정해진 다양한 운명을 우리에게 보여준다.따라서 짙은 분장속에 감추어진 배우의 모습은 다시 그 자체가 그의 얼굴일수도 있다. 더구나 그의 묵직한 바리톤의 음색은 푸짐한 볼륨과 풍부한 음조의 변화,감정의 뉘앙스가 격하게 풍겨나와 어느 대목에서도 무기미를 느낄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마음속 깊이 스며드는 중후한 음의 압력은 라디오 드라마에서도 특출난 개성을 돋보여 67년부터 그가 해설자로 등장한 대하드라마 「광복20년」은 10년 장기 연속방송으로 장안의 성가를 높인바 있다. ○연출가로도 한때 활동 그는 배우일 뿐만 아니라 유치진의 「소」,체호프의 「봐냐 아저씨」를 무대에 올린 창조적 상상력이 풍부한 연출가이며연극적 감각과 지성을 겸비한 영화배우·TV탤런트이기도 하다.한때는 경화 프러덕션을 설립,그가 제작한 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는 60년대 초반 전례없는 흥행을 기록하기도 했으나 「인생만사 만능은 없다」는 교훈과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진리를 절감하고 그는 고향에 돌아오듯 무대로 돌아왔다. 그후 그는 하고싶지 않은 일에 참여한 적이 없다.간혹 주변에서 자서전을 내라거나 대학에서 강의를 부탁해 오거나 방송 대담프로그램등에서 초청하면 일언에 외면한다.「배우는 무대에서 말할 뿐」,연기와 무관한 일은 그에게 모든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가족은 산행 동반자인 부인 이영애(63)씨와 출가한 남매가 있다. 지금도 젊은 후배 연극인들 사이에서 대사를 가장 잘 빨리 외우고 「내가 만약 저 역할을 맡으면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를 간파하여 선명하고 강렬한 생명체를 그때마다 새롭게 탄생시킨다.또 주역에서 차츰 비켜나고 있지만 역이 크든 작든 「연기자는 계급이 없는 무관의 제왕」이라는 자부심과 열의로 자신의 위상과 예성을 의식하는 도도함으로 일관하고 있다. 다양한 인생편력을 체험하면서 자기의 가능성을 무한히 확대하려는 생의 충동은 그가 맡았던 파우스트의 일면이며 결국 「연극은 눈과 귀를 통해서 영혼까지 도달해야 된다」는 연극예술과 미와 환희를 이 세상에 가져다준,우리 연극사상 그는 투철한 한 존재에 틀림없다. 그리고 더이상 열띤 대사를 읊조리지 않아도 「오델로」의 이야고나 브루터스의 배반의 이미지를 물흐르듯 되살리는 경지에서 오늘도 그는 그만의 적광의 광채를 어두운 객석에 뿌리고 있다. 기 자 입 력 □연보 ▲1927년 황해도 신천 출생 ▲45년 월남,조선배우학교 졸업 ▲46년 서울중앙방송국 제1기 성우 ▲47년 원예술좌 입단,성극「모세」의 타이틀 롤로 데뷔 ▲50년 국립극장산하「신협」입단,유치진 작 연출「원술랑」 조우 작「뇌우」출연 ▲53년 국립극단 입단,오상원 작 「녹슬은 파편」이후 해마다 출연 ▲62년 드라마센터 개관 기념 셰익스피어 작 「햄릿」출연 ▲66년 괴테 원작 서항석 역 이해랑 연출 「파우스트」초연서주역,일본 일생극장 개관기념공연 참가 ▲67∼71년 국립극단 단장 ▲68∼89년 한국 연극협회 이사 ▲78년 세종문화회관 개관 기념 김의경 작 이진순 연출「북벌」 ▲79∼90년 국립극단 단장 ▲88년 조우 작 이해랑 연출「뇌우」 38년만의 재공연 주역 ▲현재∼예술원 회원,국립극단 원로배우,연극협회 자문위원 제1회 방송문화상(58년) 서울시문화상(63년) 한국연극영화예술상(68·73·78년) 연극평론가 협회상(79년) 대한민국예술상(81년) 목련장(82년) 대한민국 예술원상(88년) 예총예술문화상(89년) 연극­유치진 작 「자명고」(54년)를 비롯,「박쥐」「오델로」「느릅나무 그늘의 욕망」「딸들 자유연애를 구가하다」「인생차압」「시라노드 벨주락」「붉은 장갑」「세자매」「안네프랑크의 일기」「나의 고백은 끝나지 않았다」「뜨거운 양철지붕의 고양이」「빌헤름 텔」「죄와 벌」「결혼중매」「베니스의 상인」「이순신」(신명순 작 66년)「갈매기」「북간도」「수전노」「인종자의 손」「남한산성」「전쟁과 평화」「성웅 이순신」(이재현 작 73년)「세종대왕」「허생전」등 1백70여편과 영화 TV드라마 다수 출연.8월2일부터 「눈꽃」(11일까지 우봉규 작 김석만 연출 국립극장 대극장공연 예정).
  • 고도 키로프(시베리아 대탐방:19)

    ◎“제정러시아의 유형지 ”… 아픈 역사 간직/옛이름은 비아트카… 숙청된 「키로프」 이름따/강건너 딩코보는 전통 진흙 인형으로 유명/카스트로마주의 치즈·버터는 러시아 최고의 명품 야로슬라블주가 끝나고 카스트로마주가 시작되고 있다.카스트로마주는 유원건설이 러시아 군인아파트를 짓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지난해 10월부터 모스크바의 유원건설 사무소 직원들은 조만간 준공식을 할 예정인데 그때는 모스크바에 상주하는 우리 특파원들을 초대해 볼가강에서 뱃놀이도 하자고 했었다.그러나 러시아측에서 준공검사를 잘 안해주고 애를 먹인다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그러다가 해를 넘겼고 연초 서울에서 유원건설 부도소식이 들려왔다.잘 마무리가 돼 유원건설 직원들이 객지에서 고생한 보람이 결실을 맺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차에서 첫밤 맞아 카스트로마는 카잔 타타르의 공격을 막기 위해 1536년 러시아군 요새로 시작된 도시다.유명한 데카브리스트(12월당원) 샤르아입스키가 시베리아 유형길에 잠시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그러나 카스트로마주에서 가장 손꼽히는 것은 역시 치즈·버터다.카스트로마 중북부 일대를 일컫는 볼로그다지방의 버터와 카스트로마 치즈는 단연코 러시아의 최고 명품이다.거기다 나무에 형형색색의 원색으로 채색해 만드는 독특한 인형·조각의 주산지인 추흘라마시도 이곳에 있다. 기차에서의 첫날밤이 지나갔다.몸이 고단한 탓인지 기차바퀴가 레일 위를 구르는 규칙적인 소리가 도움이 됐는지 쉽게 잠들 수 있었다.이튿날 아침 5시,현지시간은 6시에 키로프주의 수도 키로프역에 도착했다.주의 수도는 그 주의 이름을 쓰는게 원칙이다.예외로 레닌그라드주의 주도는 레닌그라드였는데 91년 주도 이름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바꾸면서 주 이름은 그대로 두어 약간 혼란을 주기도 한다.스베르들로프주 주도도 스베르들로프였는데 주도 이름만 에카테린부르크로 바뀌었다. ○모스크바서 1.600㎞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우랄산맥으로 연결하는 중요한 기능을 하는 페테르부르크­비아트카선 기차 한대가 맞은편 선로에 정차해 있다.이 노선은 1906년에 건설됐으며 우랄의 에카테린부르크를 출발해 키로프,부이,볼로그다를 거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연결된다. 비아트카는 키로프의 옛이름이다.20년대 중반부터 레닌그라드 제1서기로 노동자들의 사랑을 받던 흘리노프 키로프는 당시 당서열 3위의 인물이었다.키로프발레단도 그의 이름을 딴 것이고 러시아 전역에 그의 이름을 딴 대학,도시가 수없이 많다.그러나 스탈린이 그에 대해 경쟁의식을 갖게 되면서 그의 운명은 끝났다.35년 그가 피살됐을 때 그게 스탈린의 짓이었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키로프의 죽음은 당시 스탈린의 정적숙청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 도시 이름은 그가 피살된 직후 그의 이름을 따서 고쳐지은 것이다.공산당 멸망 이후 다시 이름을 고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주민들이 반대해 그대로 두었다.키로프는 또다른 역사의 아픈 기록도 남겨준다.제정 러시아 시절부터 시베리아유형의 시발점이 바로 이곳이었다는 점이다.혁명가 게르첸,소설가 살티코프 시체드린이 이곳에서 유형생활을 했다. 이런 역사의 기록과는 달리 이 도시를 흐르는 비아트카강 건너편 마을인 슬로보다 딩코보는 어린이 장난감 인형인 딩코보인형으로 유명한 곳이다.진흙으로 빚은 전통의상 차림의 인형인데 입으로 불면 예쁜 소리를 낸다. 키로프역을 지나 조금 더 달리면 프리 우랄,즉 우랄 앞마당으로 불리는 우드무르스키공화국으로 들어선다.이곳에서부터 사실상 우랄이 시작되는 것이다.지리적으로는 페름주부터 우랄이 시작되지만 경제적으로는 이곳부터 우랄로 간주한다.경제적으로 우랄쪽에 밀접히 관련됐기 때문이다.물론 산은 아직 나타나지 않는다.오직 평야·숲만 보면서 하루를 달려왔다.체료무하꽃은 이제 막 연두색 잎을 달고 꽃망울을 터뜨리는 참이다.이곳에서는 봄이 갓 시작되고 있다. 이른 아침 차창 밖은 온통 짙은 안개천지다.날씨가 차고 습기가 많아 생기는 현상이다.안개 속으로 키로프시민들의 다차지역이 촘촘히 보인다.초원이 좋아 우유산지로 이름높은 곳이다.철로변의 거리표는 모스크바로부터 1천62㎞를 가리키고 있다.모스크바시간 상오 7시25분.열차는 키로프주의 마지막 역인 팔룡키를 지나 우드무르스키공화국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우드무르스키공화국의 첫역은 「야르」라는 이름의 작은 역이다.「작은 계곡」이라는 뜻의 이 이름은 쳅차강과 레크마강 하구가 만나는 작은 계곡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은 것이다.예를 들어 동시베리아에 있는 크라스노야르스크는「아름다운 작은 계곡」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우드무르스키공화국에서 두번째 만나는 도시인 러시아 최대 버섯산지 글라조프도 「눈(글라즈)」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재미있는 이름의 도시다.도시가 언덕 위에 건설돼 사방을 다 볼 수 있다는데서 붙은 이름이다.20세기초 고리키·체호프와 함께 활동했던 우크라이나 작가 코롤렌코가 유형생활을 했던 마을이다. ○전형적 시베리아 도시 더 재미있는 곳은 이 공화국의 수도 이조프스크다.시베리아 도시들의 전형적인 탄생 여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18세기 에카테리나2세 여제때 이곳에 작은 메탈공장이 건설됐고 이 공장을 애워싸고 자보드(공장)라고 부르는 작은 마을이 시작됐다.「이조프스키 자보드」가 탄생한 것이다.이렇게 만들어진 도시들은 철도·도로가 놓이고 지리적 이점의 여하에 따라 융성하기도 하고 몰락하기도 한다. 인구 4만5천명에 불과하던 이조프스키마을은 2차대전중 모스크바·레닌그라드 지역에서 많은 군수공장들이 피란해옴으로써 결정적인 융성의 계기를 맞았다.전시 군수산업책임자인 우스티노프 원수가 이곳에 상주하며 이 피란공장들의 운영을 총괄했다.그래서 한때 이조프스크는 그의 이름을 따 우스티노프시로 불리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이조프스크시는 민족공화국인 이곳 우드무르족들의 문화·민족중심지이면서 동시에 산업도시인 복합도시가 됐다.이조프스크에서 동쪽으로 조금 나아가면 차이코프스키의 고향 보트킨스키가 있다.시바강을 끼고 있는 이 작은 고향마을 맞은편 큰 호수의 반대편 기슭에는 이 작곡가의 이름으르 딴 차이코프스키마을도 있다.60년대 카마강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며 도시를 만들어 그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 예니세이강/시베리아의 젖줄…대형수원4곳 가동(시베리아대탐방:13)

    ◎4천1백㎞ 남북관통… 원자재 보급 통로/“겨울 사냥·여름 낚시”… 관광지 개발 한창/주변에 백금·니켈 등 천연지하자원 풍부 『나는 예니세이같이 웅대한 강을 본 적이 없다.볼가강이 새색시같이 수줍음을 머금은 강이라면 예니세이 강은 청춘의 역동성이 흐르는 용사와도 같다』 ○몽고 서부산간서 발원 1890년 러시아의 작가 안톤 체호프는 시베리아를 여행하면서 예니세이강을 이처럼 묘사했다.고대 러시아말로 「큰 강」이라는 뜻의 예니세이는 전러시아를 통틀어 제일 큰 강이다.동사얀산맥과 몽골 서부산지에 수원을 둔 이 강의 전체길이는 4천1백2㎞.셀렝가강의 원류까지 포함하면 그 길이는 5천57㎞나 된다.이 강이 유명한 것은 규모가 커서 뿐만 아니다.시베리아 남단 사야노고르스크시에서부터 북단의 두진카시까지 시베리아 남북을 관통한다.이는 기차나 항공로를 빼고는 교통망이 제대로 없는 시베리아 지역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북쪽의 원자재를 남쪽으로,남쪽의 가공·완성품을 북쪽으로 보내는 주요 수송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항공로가 발달하기 전 이 강은 주요 도시를 오가는 교통로로 큰 구실을 해냈다.이 강은 세개의 큰 지류를 갖고 있다.니즈나야 퉁구스카,포트카멘나야 퉁구스카,앙가라강이 그것이다.이 지류들은 17세기 러시아인의 동방진출에 주요 루트가 된 이래 지금까지도 주요 교통로로 이용되고 있다.뿐만 아니다.예니세이는 유역면적이 2백58만㎦,연간유량이 6백24㎾나 돼 에너지 자원으로도 유명하다. 대표적인 곳이 시간당 전력생산량이 6백만㎾인 크라스노야르스크 수력발전소,사얀 수력발전소다.지류인 앙가라강에는 우스치 이림스크 수력발전소등 시간당 전력생산량이 수백만외㎾에 달하는 수력발전소가 네개가 된다.바이칼호에서 시작하는 앙가라강은 특히 강폭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해 수력발전에는 안성맞춤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크라스노야르스크의 발렌티나 체레조바 주경제부장관은『이 지역의 전력소비자들은 유럽지역보다 적어도 3분의 1이상 싼 가격에 전력을 공급받고 있다』면서 『정부에서도 앙가라강에 몇개의 수력발전소를 더 건설하는계획을 진행중에 있다』고 말했다. 예니세이강을 상류에서 하류까지 더듬어보면 주위에는 각종 천연자원이 널려있음도 한눈에 알 수 있다.강줄기를 따라 잘 발달된 많은 도시들은 대부분 천연자원의 분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크라스노야르스크항의 동서에 위치해 있는 아친스크와 칸스크는 수백㎞에 이르는 세계적인 갈탄산지.시베리아 철도가 오가는 이곳은 특히 생산층이 얇은 노천광으로 채굴비용이 적게 든다.싼 가격의 갈탄을 사용,대규모의 화력발전소가 곳곳에 위치해 있고 이들 전력을 이용한 화학공업 콤플렉스도 즐비하다. ○싼 값으로 전력 공급 크라스노야르스크항구의 오른쪽으로는 70∼80년된 목재화학기업 콤플렉스가 있다.여기서는 셀룰로오스·가구·합성고무·화학섬유를 생산한다.모두 이곳 주위에 깔려있는 삼림자원이 주원료다.강의 양쪽으로는 알루미늄광맥이 뻗어있어 전력산업을 이용한 알루미늄 산업기지로도 유명하다.크라스노야르스크 지방의 가장 오래된 도시 예니세이스크시는 한때 금채굴업자가 득실거리던 곳이다.현재는 하천운수업자들이 모여사는 평범한 도시다. 예니세이강과 퉁구스카강이 만나는 바이키트시는 순록농장이 밀집돼 있다.수천마리의 순록사육이 가능한 것은 초목이 무성한 넓은 평야지대이기 때문이다.최근 이 지역은 튜멘지역에 버금가는 오일층이 발견돼 주정부가 비밀리에 오일개발을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예니세이 최북단 도시인 두진카항은 북극바다와 강이 만나는 곳이다.서방의 그린란드와 알래스카가 위치한 위도 70도선상에 있는 곳이 두진카시다.이웃 노릴스크시는 니켈·백금·동등 러시아의 금속공장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니켈은 전러시아의 80%,백금은 1백%,동은 전러시아의 40%가 생산된다.이곳에서 생산되는 금속은 두진카항으로 옮겨져 일본·동남아시아·유럽쪽으로 수출되고 있다.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북쪽으로 1천7백㎞,두진카항에서 남쪽으로 3백60㎞쯤 떨어져있는 이가르카항은 주위에서 생산되는 원목을 크라스노야르스크등 대도시로 옮겨싣는 항구.수심이 깊어 북극의 해항선은 두진카항을 지나 이곳까지 거슬러 올라온다.이곳은 북극권의추운 기후와 인체에의 영향에 대한 상관관계를 연구하는「러시아실험의학연구소」가 자리잡고 있다. ○최근 대형유전 발견 예니세이강은 그자체가 훌륭한 관광자원으로도 평가받고 있다.러시아가 개방된지 얼마 되지않아 관광객의 숫자는 아직 많지 않지만 오래지 않아 미국의 알래스카지역만큼이나 관광객이 모여들것으로 이곳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콤스몰스크 프라우다지의 크라스노야르스크지부 바실리 넬류빈기자(38)는『원시림속에서의 사냥,여름·겨울강의 낚시,스키등은 서방에서 느끼는 것보다 훨씬 독특한 맛을 느낄 것』이라면서『관광비용이 적게들어 상대적으로 이곳과 가까운 한국·일본등 아시아에서의 관광투자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소개했다. 10여년전부터 예니세이강을 남북으로 오가는 대형 관광선이 강이 얼지않는 5월부터 11월까지 운항되고 있다.크라스노야르스크 남쪽의 슈센스코예는 레닌의 유형지가,아가르카남쪽의 투르한스크에는 스탈린의 유배지가 관광코스로 개발돼 있고 강을 따라 발달된 대부분의 도시 그 자체가 서방에서는 보기힘든 훌륭한 관광자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 노벨문학상과 문화외교/임영숙 문화부장(데스크 시각)

    감나무 밑에 입 벌리고 누운 채 익은 감이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사람을 우리는 어리석고 게으른 사람의 상징으로 표현하고 있다.노벨문학상을 향한 지금까지 한국문학의 열망이 바로 「감나무 밑에 입 벌리고 누운 사람」의 형국이 아니었는가 싶다.적어도 스웨덴에서 본 한국문학은 그런 것이었다. 노벨문학상을 주관하는 스웨덴 한림원에 수상후보를 추천하는 기관중 하나인 스웨덴 펜클럽의 주요인사도,스톡홀름의 유력일간지 문화부장이나 문학평론가도 한국문학에 대해서는 거의 깜깜한 상태다.지난 69년 「순교자」의 김은국씨가 한국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후보로 추천된 이후 우리는 해마다 노벨상이 발표될 때면 한국문학이 노벨상을 타게 될 날을 은근히 기다려왔다.그런 우리 희망과 노력의 성과를 노벨상의 본거지인 스웨덴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다. 에귄 슐긴 스웨덴 펜클럽부회장은 『한국 문학작품을 읽어본 적도 없으며 이름을 기억하는 한국작가도 없다』면서 『스웨덴어나 영어로 번역된 한국소설이나 시가 있느냐』고 물어왔다.스웨덴 신문 가운데서 문화면 특히 문학비평란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는 스벤스카 다그블라데트의 문화부장 페터 루터슨씨도 한국문학을 전혀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이 신문에 문학비평을 기고하고 있는 평론가 마츠 갤레르펠트씨만이 『몇년전 한국의 시작품을 모은 시화집을 읽은 적이 있다』고 말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그러나 한국문학에 대한 그의 기억은 『봄·여름·가을·겨울등 계절의 변화를 다룬 작품들이 많았던 것같다』는 것 이상을 넘어서지 못했다. 한국문학에 대한 이같은 무지에 비해 일본문학에 대한 그들의 이해는 폭 넓고 깊었다.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일본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 거의 대부분을 그가 수상자로 결정되기 전에 읽었다고 그들은 말했다.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은 스웨덴어로 4종이 번역·출판돼 있는데 스톡홀름에서 버스로 한시간쯤 떨어진 곳에 있는 박스 홀름이라는 작은 도시 책방에도 그의 책 2종이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진열돼 있었다.게다가 오에보다는 또 다른 일본작가 엔도 슈샤쿠가 스웨덴에 더 널리 알려져 있고 올해 노벨상을 그가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문학이 저 홀로 아무리 훌륭하다 할지라도 외국독자와 문학전문가 사이에서 알려지지 않는다면 노벨상을 받기 어렵다.톨스토이·체호프·입센·프루스트·카프카·릴케등 당연히 노벨상을 받아야 할 작가들을 스웨덴 한림원이 외면한 적이 많고 제3세계문학에 인색하다고 해서 『그까짓 노벨상』하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노벨상은 우리 문학의 국제화와 세계화를 위해 꼭 넘어야 할 산이다. 노벨상을 향한 우리 노력이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문예진흥원과 한국재단등에서 그동안 한국문학의 해외소개를 위해 번역·출판(약 60종)작업과 번역문학상제정등 노력을 해왔다.그러나 그 성과는 스웨덴 현지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미미하다.지금까지의 노력이 양적으로 충분하지 못했고 효율적이지도 못했다는 이야기다. 스웨덴 문화계 인사들은 『세계각국이 한국경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만큼 문화에도 관심을 갖도록 하라』고 충고한다.한국문학의 해외소개에 기업투자를 유도하라는제안도 있었다.번역·출판에만 그쳐서는 한국문학 보급이 어려운 만큼 한국문학을 번역·출판하는 출판사에 과감한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한국문화센터나 북센터를 스톡홀름에 세우는 방안도 제시했다.스웨덴에서는 영어가 거의 모국어만큼 잘 통용되는 만큼 스웨덴어 번역이 어렵다면 영어번역이라도 많이 하라고 귀띔해주기도 했다. 그들의 우정어린 충고 가운데는 『투옥작가가 있는 나라는 노벨상을 받을 수 없다』는 말도 있었다.스웨덴 한림원 회원인 요란 만크비스트가 직접 번역하여 스웨덴에 소개한 중국작가 베이 다오(북도)는 유력한 수상후보로 꼽혔으나 천안문사태이후 수상권에서 멀어졌다는 것이다. 세계 10위권에 이르는 무역대국이자 출판대국에 걸맞는 문화외교를 이제는 펼쳐야 할 때다.그런데 스웨덴 한국대사관에는 공보관도 없다.노벨상을 겨냥해 스웨덴주재 대사관에 과학기술담당 외교관까지 파견한 일본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이런 상황에서는 노벨상이라는 감은 10년 세월이 흘러도 우리 입속으로 굴러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 체호프 원작 「바냐아저씨」/미·영·호서 동시 영화화

    ◎제목·시대·장소 모두 달라… 연말 개봉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호프의 대표적인 희곡 「바냐 아저씨」가 미국과 영국,그리고 호주등 세나라에서 거의 동시에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체호프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바냐 아저씨」는 체호프가 말년인 1890년대에 쓴 희곡 가운데 하나로 세기말에 풍미했던 염세주의와 지적 회의등을 담으면서 인간의 내면적인 심리를 잘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돼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권위있는 연극무대에 올려진다. 세나라에서 거의 동시에­연말쯤­개봉될 「바냐 아저씨」영화는 제각기 다른 이름을 달고 있는데 미국에서는 「42번가의 바냐」,영국에서는 「8월」,호주에서는 「시골생활」등으로 붙여졌다. 같은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이 영화들은 각기 다른 이름만큼이나 작품에 대한 해석과 시대및 장소 설정이 달라 세계의 관객들은 벌써부터 흥미 속에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타계한 명배우 로렌스 올리비에가 지난 62년 바냐역을 맡은 영화는 당시 화제작으로 꼽혔다. 이번에 미국에서는프랑스인 루이 말감독의 연출로 월레스 숀이 바냐역을 맡았다.영국서 만들어지는 영화는 앤소니 홉킨스가 감독겸 바냐역을 맡고 배급은 그라나다영화사가 한다.호주판에서는 마이클 블랙모어 감독에 존 하그리브스가 열연한다. 몰락해가는 부농의 가족들이 겪는 정신적인 방황과 갈등은 영화들에서도 물론 대부분 살려진다.등장인물은 주인공인 한많은 가장 바냐와 요사스런 아내 옐레나,그리고 딸 소냐,이기적인 늙은 대학교수등 4명이고 금전과 사랑이 이야기의 두 기둥이다. 올해 세개의 「바냐 아저씨」영화가 동시에 만들어지는 것은 우연의 일치지만 체호프 희곡의 문학적 불후성을 입증하는 사건으로 간주되고 있다.
  • 송년무대 대결/연극배우협회 「만드라 골라」/24일까지,국립국장

    ◎연극연출가협회 「갈매기」/오늘∼15일,문예회관/「만드라…」 중세 유럽의 도덕성·개인 윤리관 풍자/「갈매기」 3인 연출… 젊은세대의 비극성 조명 한국연극배우협회(회장 박웅)와 한국연극연출가협회(회장 윤호진)가 각각 송년공연을 마련했다.배우협회는 3일부터 국립극장 소극장(274­1151)에서 우리에게는 「군주론」으로 알려져있는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의 희극 「만드라골라」를 24일까지 공연한다.15 18년경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마키아벨리가 남긴 유일한 희곡으로 「군주론」의 사상을 문학작품으로 옮겨놓은 것 같다는 평을 듣고 있다.제목인 만드라골라는 흰독말풀이라는 뜻으로 극중에서는 속임수의 수단으로 이용된다.중세 유럽국가들의 도덕성과 개인의 윤리관을 풍자한 이 작품은 늙은 판사의 젊고 아름다운 아내에게 반한 젊은 청년이 주위 책략꾼의 도움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손에 넣게된다는 내용이다.단 전통적인 희극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여주인공이 남편을 배반할 의사가 전혀 없는 매우 정숙한 여자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배우협회의 송년공연인만큼 우리 연극계의 기라성같은 배우들이 총출연해 보기드문 앙상블을 연출한다.심재찬씨 연출로 이진수 박웅 오영수 정진각 한상미 이현순등이 출연한다.배우협회는 오는 13일 하오1시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연극배우들의 오늘과 내일」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도 개최할 예정이다.공연시간은 하오4시·7시. 한국연극연출가협회는 「연기자 재훈련을 겸한 연출가 워크숍」을 오는 4일부터 15일까지 매일 하오4시 7시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공연한다.지난 91년부터 매년 겨울 실시해오고 있는데 올해에는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를 3명의 중견 연출가들이 바꿔가며 연출한다.「연출가 겨울워크숍」은 특히 한 작품을 여러명의 연출가들이 각자의 작품해석에 따라 달리 무대에 올리기 때문에 관객은 비교관극을 통해 연극에 대한 새로운 묘미를 맛볼 수 있다. 젊은 세대가 자신 앞에 펼쳐진 삶속에서 침몰해가는 출구없는 비극성을 그리고 있는데 쉬지않고 소리를 내며 무엇인가를 찾다 결국 총에 맞아 박제되는 갈매기는 극속의사건을 상징적으로 암시한다. 김영환(4∼7일),류근혜(8∼11일),유재철씨(12∼15일)가 돌아가며 연출하며 합평회와 함께 남녀 연기상 수상자도 선정할 예정이다.「연출가 워크숍」은 한국연극연출가협회가 매년 봄 실시하는 「신춘문예당선작 공연과 단막극공연」과 함께 가장 비중있는 행사로 지금까지 브레히트의 「코카서스의 하얀 동그라미 재판」과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공연했다.
  • 연극연출가 유덕형(이세기의 인물탐구:36)

    ◎실험·전위적 무대로 연극계에 선풍/갈등­대립 이원성 강조… 살아있는 예술 추구/70년대 「알라망」「초분」으로 국제적 명성얻어/“작품마다 충격과 감동” 호평… 81년 「산씻김」이후 긴 침묵 서울예전 학장실에는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은빛쇳조각으로 만든 해와 달과 별과 지구모형이 문을 열고 닫을때마다 미세하게 움직인다.아마도 외부공간에 설치되어 있었다면 햇빛따라,구름따라 좀더 현란한 변화를 보였을지도 모른다.또는 모빌의 움직임에서 금속성의 차가운 음향이 들렸을지도 모른다.그러나 모빌은 실내공간에 고요히 고정되어 절제된 미동만으로 색다른 소우주를 형성해내고 있다.이것이 바로 유덕형연극의 내면세계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이 모빌은 물론 오리지널은 아니다.미국에서 본 칼더의 작품을 그가 본떠서 만들어 걸어놓은 것이다. 그는 남산을 배경으로 한 창을 등지고 앉아 태양을 둘러싼 행성의 움직임을 때때로 조용히 응시하고 있다.뭔가 새로운 것을 탐색하고 모색하려는 기미다.그러나 그의 의중을 꿰뚫어 알 사람은 그곳에는 한사람도 없다. 60년대말 한국 연극계에 회오리를 몰고온 그는 70년대와 80년대를 잇는 10여년 참으로 많은 감동과 충격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그리고 그의 행적을 논할 때마다 「새로움」이라든가 「최초」 또는 「충격」은 그를 둘러싼 당연한 수식어가 돼버렸다. ○젊은 연출가에 찬사 첫번째 충격은 해럴드 핀터의 「생일파티」다.이 연극에서 그는 이제까지 우리가 보아온 다른 연극과는 달리 무대전체가 싱싱하게 살아움직이는 생동감을 살렸다.사이키델릭 조명과 숨가쁘게 전개되는 율동,그가 연극에서 추구해마지않던 이원성의 문제가 여기서도 제기되어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연극의 재미를 고조시켜 나갔다.이른바 물질문명과 기계문명,황금만능주의 속에서 한 인간이 무기력하게 세뇌당하는 과정을 입체추상으로 그리고 있다.관객 또한 연극의 화려함을 새삼스럽게 확인할 수 있었다. 매스컴도 한국연극계의 거목인 동랑의 2세로서가 아니라 한 재능있는 젊은 연출가의 지적탐험과 실험정신에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냈다.그러나 보수주의와 리얼리즘 연극을 고수하려는 일부 계층의 부정적인 시각이 교차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빛과 소리와 움직임의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초분」에 이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또한번 센세이셔널한 화제를 뿌렸다. 「초분」의 첫번째 공연은 극도로 제한된 극한상황에서도 무대의 확대가능성,무대조작의 자유분방함이 시도되었고 질서와 혼란이라는 대립개념을 앞세워 주술적인 대사와 침묵,행동 또는 움직임과 정지에 대한 실험이 변증법적으로 이어졌다.해탈과 열반,샤머니즘과 토테미즘,다양한 색깔의 조명은 시각연극,움직이는 연극,살아있는 회화의 무대를 한층 강조해주었다. 이번에도 평자와 각 매스컴이 「초분」호평 일변도였으나 그의 부친인 동랑은 전혀 이와 의견을 달리했다. 『너는 관객을 친구로 생각지 않는다.너무나 많은 것을 한꺼번에 보여주려는 것은 관객을 모독하는 일이다』 그러면서도 아들의 철저한 실험정신을 내심 사랑한 그는 『겪어야 할 아픔이라면 철저하게 겪으라』는 충고를 잊지 않았다. 그는 다음해인74년 이 연극을 가지고 뉴욕공연길에 올랐다. 여전히 갈등대립의 이원적 요소를 강조하면서 한국공연에서의 모던댄스를 고도로 절제된 동양무술로 바꾸고 음과 양 제의적 동작과 시적 무대만으로 한국어를 모르는 미국인의 가슴을 일시에 움직였다. ○연극의 새방향 제시 세계적 연극이론가인 그로토프스키와 로열셰익스피어 극단 연출가 피터 부룩은 『새로운 연극이 찾고 있는 방향을 성공적으로 제시』했음을 명쾌하게 호평했다.이 뉴욕공연중 그가 그처럼 존경하던 부친의 타계소식에 접했고 그는 끝내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단지 『연극인이면 언제나 무대에 남으라』던 부친의 평소 소신대로 그는 그시간에 무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그는 다시 다음해 세번째 「초분」을 공연했다.이번에는 관객의 지적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초분」이 지닌 무수한 대립의 감정을 미련없이 깨뜨려버렸다. 예를 들어 조명도 흑과 백의 콘트라스트로,의상도 흑백,선·리듬·시간과 공간·무게의 모든 다이내믹스까지도 철저히 파괴해버렸다.앞의 두 공연을 미련없이 무효로 돌려버리게 됐을때 그는 비로소 성숙을 느꼈다.아마도 연륜과 체험의 대가없이는 다다를 수 없는 깨달음일 것이다.이제 일반관객도 그의 실험극들에 대해 좀더 친근감을 느끼는 듯했다. 그는 시종 「충격」과 「실험정신」 「전위정신」이 깃든,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어디까지나 완벽주의와 예술지상주의를 꾀하려는 자세로 작품에 임한다.아마도 신들린 상태가 아니라면 감히 누구도 꿈꾸지 못했을 다양한 시도를 그는 죽을 힘을 다해 밀어붙인 것같다. 충격도 그렇지만 그는 수많은 「최초」를 기록하고 있다.69년 미국에서 돌아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연출작품발표회」를 가진 것과 2년후 필리핀 마닐라 카링거 앙상블극단 초청으로 「알라망」연출,국제극예술협회(ITI) 명예회장 로자몬드 길더여사로부터 『이 연극은 피터 부룩도 질투할만하다』는 세계무대에서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73년 ITI 모스크바총회때 한국대표로는 처음 공식참가하게 되자 그는 한때 세계적인 뉴스메이커로 떠올랐다.소련 입국소식은 국내 주요신문들의 1면을 장식했고귀국후엔 각신문에다 소련방문기와 소련에서 찍어온 사진을 연재했다. ○동낭선생의 큰 아들 그는 우리 연극사에서 비중있는 위치인 동낭 유치진선생과 희곡작가인 심재순여사의 3남매중 장남.누나부부도(유인형·안민수씨)도 연극연출가다. 한때는 과학문명시대에 대비한다는 자세로 연대 전기공학과에 입학했으나 도무지 적성에 맞지 않아 영문과로 다시 전과,음악·발레·그림·사진찍기에 집착했고 미국 유학시절에는 무대장치를 만드는 아르바이트로 학교에 다녔다.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외에 그에게 영향을 준 사람은 영상연극의 기수인 로버트 윌슨.브루클린음대 아카데미서 막올린 「요시프 스탈린 생애와 시대」는 저녁 7시에서 다음날 아침 7시까지 이어진 12시간짜리 공연으로 시각적·청각적 공간,어느 순간에도 보이는 것,들리는 것으로 일관된 특이한 무대로 감명받았다. 연극에서는 그가 아무리 한국전통을 강조할 때라도 언제나 실험적·전위적이란 말이 따라다니게 마련이며 그것은 아마도 「창조하는 자」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자」라는 최대의 찬사일 것이다.그럼에도 그는 이번이 마지막 작품이라는 각오로 작품에 임하고 작품이 끝날 때마다 바닥이 보이는 듯한 절망감에 빠진다. 그의 연출에서의 이원성처럼 그는 성격·처세·취미에서 이중구조 내지 복합삼각주와도 같은 형태를 띤다. 헌칠하고 깨끗한 외모에 만년청년같은 모습,지금도 블루진과 하얀 터틀넥에 골덴자켓이 어울리고 마음에 드는 토론이나 의견을 말할 때는 점점더 목소리가 고조되어 온힘으로 말하고 한번 입을 다물면 말을 잃은 소년처럼 우울한 구석을 비치기도 한다.이따금 「크레믈린」이란 별명을 듣지만 일상생활이나 예술에서 미혹이나 현혹은 없다.예의가 바르고 지적이며 낯가림이 심한 편. 미국유학시절 트리니티대에서 만난 부인 제니스 유도 본래는 아동극 연출가.그와는 문화·풍속·민족 모든 것이 다른 이질이란 점에 호감을 느꼈고 그는 신비한 것,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좋아한다. 연대신방과를 나온 아들 태균(23)은 뉴욕대서 연극연출,딸 미아(20)는 브라운대서 오페라연출을 공부하고 있다. 사람은 두가지일을 똑같이 잘할 수 없다는 결론 때문에 그는 「산씻김」이후 긴 침묵을 지키면서 아시안게임·88서울올림픽·대전엑스포등 행사와 여러 연극의 조명에만 손댈뿐 아직 다음 작품에 대한 구상은 칼더의 모빌을 바라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러나 지금 그는 학교라는 연극을 연출하고 있다.그곳에 있는 학생과 교수들이 그에겐 등장인물이고 스태프다.학교의 프로그램 모두가 극중사건이다.정말 학교마당에선 옆에 있는 사람은 아랑곳없이 대사연습에 열중한 학생들과 밤낮없이 왁자지껄하다.더구나 예술전문대 학장이란 문화운동을 할 수 있는 자리다.미국에서 종족음악 강의를 하겠다고 국악을 소재로 한 작곡을 부탁해오면 사람을 부르고 중매를 서기도 한다. ○무대 조명에만 손대 그런중에도 작품에 대한 집착은 핵심에 도사려 있다. 인간이 변하면 얼마나 변하나,극단적인 이상주의 추구는 어디까지인가,예술에서의 완성은 있는가.결국 그가 추구하는 것은 살아 움직이는 회화의 세계,그러나 내용·색깔·동작·대사 모든 것을 절제하고 생략한 맨 마지막 정점.그의 예술의 끝은 태양을 응시하던 카뮈의 요나처럼 어쩌면 무대위에 「점」하나를 찍는 일일지도 모른다. ▷연보◁ ▲1938년 1월 서울출생 ▲1962년 연세대 영문학과 졸업 ▲1966년 미 트리니티대 대학원 연극학과 졸업 ▲1968년 미 예일대 연극대학원 박사과정 ▲1963년 미 댈라스 연극센터연구단원(체호프 「세자매」,셰익스피어 「코미디 오브 에러스」연출) ▲1966년 캐나다·미국연극계 시찰 ▲1967년 미국교육연극연합회(AETA)회원,뉴욕 레인즈 무대미술제작요원,엘비 「작은앨리스」,포드 「빨간인디언」,오스본 「성난 얼굴로 돌아보다」연출,마이클 케인 「라생문」연출·장치·의상·조명(댈라스시어터 센터서 4개월장기공연) ▲1969년 극단드라마센터 상임연출가 ▲1970년 서울연극학교교장 ▲1971년 국제극예술협회(ITI)런던총회 한국대표참석 및 필리핀 연극제참가 ▲1973년 ITI 모스크바총회 한국대표참석 및 제3분과 이란연극제참가 ▲1974년 서울예술전문학교 교장 ▲1976년 ITI 베네수엘라 총회 한국대표참석 및 유엔주최 「환경의 해」세미나 및 페스티벌,캐나다밴쿠버회의 참석 ▲1977년 유엔주최 「세계어린이의 해」 기념행사 준비위원국 뉴욕회의 한국대표 ▲1979·81년 제3세계 연극연구소(TWITAS)뉴욕회의 운영위원회 참석 ▲1969년 유덕형 연출작품발표회,김종달작 「갈색 머리카락」,브르크작 「낯선 사나이」,유치진작 「자아비판」등 연출(드라마센터),윤대성작 「미친 동물의 역사」(70년),해럴드 핀터작 「생일파티」(70년),필리핀 마닐라 카링거 앙상블극단 「알라망(Alhamang)」연출(71년),동랑레퍼토리 오태석작 「초분」(73·74년 뉴욕·75년 서울),오태석작 「태」(74년),유치진작 「마의 태자」(75년),동랑레퍼토리 미국 및 유럽 순회공연(77년),최인훈작 「봄이 오면 산에 들에」(80년),이현화작 「산씻김」(81년)등 연출,연세대 개교 100주년 기념공연 「한여름밤의 꿈」(85년),동랑청소년극단 윤대성작 「방황하는 별들」(85년)「꿈꾸는 별들」(86년),오닐작 「밤으로의 긴 여로」(88년),88예술단창단공연 오태석작 「새불」등 조명. 서울세종문화회관 운영위원,국제극예술협회(ITI)한국본부부위원장,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AESTE)한국본부이사,예술의 전당 건립추진위원회 위원,한국방송공사 자문위원,서울올림픽조직위 문화식전국장,서울올림픽 폐회식 제작단장,대전엑스포 전문위원 현재 서울예술전문대학장 동아연극상,서울신문 문화대상,마닐라시장 문화표창상,한국연극 영화예술상,중앙문화대상
  • 땀의 의미 점검하는 여름으로(박갑천칼럼)

    태양의 계절은 곧 땀의 계절이다.더구나 내일이 초복이니 복중으로 들어서는 시점이다.후텁지근하고 불쾌지수는 높아진다.밖에만 나갔다하면 땀이 줄줄 흐른다. 땀은 99%가 수분이다.그밖에 염분·칼륨·요소·유산등이 들어있다.땀을 내는 땀구멍(한선)의 수는 우리의 경우 2백30만개 정도라고 한다.여름날 보통생활을 할때 약3ℓ쯤 흘리고 과격한 운동을 하는 경우라면 그 정도에 따라 훨씬 많아진다. 체온상승을 막아주는게 땀이다.그래서 무한증에 걸리면 여름에는 체온이 40도 정도로 올라가기도 한다.냉수욕을 하거나 찬물 적신 속옷이라도 입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워진다.땀구멍 없는 개가 여름을 괴로워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입벌리고 혀내밀어 헉헉거리면서 특수한 호흡법으로 타액을 기화,방열시켜 더위를 이겨내는 형편이다. 이 땀이라는 말에는 생리현상으로서의 분비물 이상의 우의(우의)가 담겨있기도 하다.부지런히 일하고 노력하라는 뜻으로 땀을 흘리라고들 말해오지 않은가.가령 체호프의 희곡「세자매」의 제1막에서 하는 이리나의 대사도 그것이다. 『이봐요,이반 로마노비치.나는 다 알고 있어요.인간은 노력하지 않으면 안돼요.누구나 얼굴에 땀흘리며 일하지 않으면 안돼요.오직 여기에만 삶의 의의와 목적·행복·기쁨이 있어요.…』 땀 예찬론이다.육당 최남선도 그런 뜻으로「땀」이라는 수필을 써놓고 있다. 『…만고천하 인문발달의 공적자치고 누가 피서·피한을 철찾아 하고 불한불열한 때에만 일하였더란 말이뇨.세계의 문명이 땀방울의 덩어리진 것이라 할수 있을진대 무수한 인인지사의 더위를 더워하지 아니하고 흘린 땀이 그 절반이상임을 짐작할지니…』.최육당은 우리가 과연 땀흘리기를 좋아하는가,많이 흘려놓았는가,많이 흘리고는 있는가고 묻는다. 사람들은 땀을 흘리지 않으려 한다.그러면서 선풍기로는 모자라 에어컨을 달아놓고 틀어젖힌다.그 결과 전력사용량 최고치를 여름마다 경신해온다.그렇게 땀을 덜흘리게 된대신 냉방병이라는 새로운 병명을 만들어놓기도 한다.사람들은 차츰 여름에는 땀을 흘려야 건강에 좋다는 뜻을 잊어간다.땀의 교훈 땀의 덕목도아울러 잊어간다. 이 삼복의 터널을 나면서 땀의 의미를 점검해보는 여름으로 삼아야겠다.땀을 흘려야 한다.땀내를 향수로 맡을수 있어야 한다.땀방울이 맺어주는 과실만큼 확실한 것도 없다는 진리를 터득하게 돼야겠다.
  • 「러」중견작가 최신작「줄」첫선/개념주의 문학 기수 소로킨의 대표작

    ◎물건 사기위해 줄서있는 사람들 얘기 중견 러시아 소설가의 최신 작품이 국내에 처음 번역,소개된다.그 작품은 우리에게는 생소한 「개념주의 문학」의 기수로 꼽히는 블리지미르 소로킨(38)의 대표 장편소설 「줄」.「세계의 문학」 93년도 봄호에 김희숙교수(서울대)의 번역으로 선을 보인다. 공식·비공식문학과는 구분되는 개념주의 문학이라는 독자영역을 확보하고 있는 소로킨은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의 잠재의식에 대한 탐색을 시도해온 작가.이번에 소개되는 소설「줄」은 19 85년 프랑스에서 출간될때 선풍을 일으켰던 작품이다.물건을 사기 위해 이틀 밤낮없이 일도 포기하고 줄 서 있는 사람들의 뒤엉킨 목소리들로 이뤄져있다. 화자의 텍스트는 물론이고 희곡 지문같은 설명도 전혀 없어 소설이기 보다는 방송극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형식이 독특하다.줄은 전체주의 문화의 상징이며 집단의식의 가장 순수한 표현형태이며 개체를 집단의식속에 합병,종속시킨다.「줄」은 종속과 수동,행동과 결단을 무력화시키는 기다림으로 표현됐다. 모스크바 개념주의는 1970년 중반 비공식 예술계열의 작가들에 의해 시작됐다.「예술의 본질은 대상이 아니라 예술에 대한 예술가의 개념에 있으며 대상은 그것에 종속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개념주의문학은 비공식문학과는 달리 이데올로기로 과적된 현실에 자신들이 매몰되어 있다는 자각에서 출발한다.공식문학의 바깥에 서는 문학이면서 공식문학의 구조를 자신의 구조로서 재구성하고 반성하는 개념문학은 반체제문학이나 자유문학과는 사뭇 다르다. 이번에 번역된 소로킨의 「줄」을 계기로 양차대전이후 러시아문학의 새 흐름을 대변하는 현대문학작품들의 국내 소개가 한층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이와함께 이미 국내에 번역·소개돼있는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체호프 투르게네프 파스테르나크 솔제니친 솔로호프등 기라성같은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도 원판본에 입각해 원작의 문학적 진수를 최대한 살린 새 번역본으로 소개될 날도 멀지 않았다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 원작의 향기 그대로…/고전문학 번역출간 잇따라

    ◎베스트셀러작가 최신작 위주서 탈피/출판사들 앞다퉈 참여… 전집으로 완역/셰익스피어·괴테·장자 등 동서양 망라 「책의 해」를 맞아 외국의 고전들이 잇따라 전집으로 완역돼 독서계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다.90년부터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 번역문학출판은 미국등 구미 베스트셀러작가들의 최신 작품들과 단행본 위주에서 벗어나는 경향을 보인다.「아라비안 나이트」「펠로폰네소스 전쟁사」「헤르만 헤세전집」에 이르기까지 대상이 광범위하게 확대됐다. 최근 번역문학의 특징은 외국문학의 원전 또는 고전격이랄 수 있는 작품들의 번역과 세익스피어 도스토예프스키 괴테 헤세등 작고한 외국작가들의 전집발간으로 간추릴 수 있다.우선 「이솝우화」「걸리버 여행기」에 이어 「천일야화」로 알려져있는 리처드 버튼원작의 「아라비안 나이트」(범우사간)가 뽑힌다.김병철 중앙대 명예교수의 7년간의 번역작업끝에 오는 3월 10권을 완역을 목표로 한 이 작품은 1차분 5권이 이미 출간됐다.「아라비안 나이트」는 문학도를 위한 기본도서일뿐 아니라다이제스트판만 접했던 독자에게는 원전의 문학적 향기를 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이밖에 기원전 사람이 동물로 변한 신화들만을 모아놓은 「메타 몰포시스」(오비디우스 편역)와 그리스·로마 신화집,「펠로폰네소스 전쟁사」(2권)등이 올해안에 번역·출간될 예정이다.현암사에서도 「장자」를 자세한 주석을 달아 새로 번역해 내놓은데 이어 「노자」「한시」「벽암록」등도 차례로 펴낼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지난해 괴테전집(총28권)출간으로 전집출판에 뛰어든 현대소설사는 올해부터 오는 94년까지 모두 21권으로 「헤르만 헤세전집」출간도 병행한다.헤세전집에는 소설 시뿐 아니라 동화 산문 평론 논문등이 총망라돼 명실상부한 전집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민음사도 이달안에 출간되는 「맥베드」를 시작으로 셰익스피어전집을 내놓는다.연세대 최종철교수가 번역한 「맥베드」는 운문으로 되어있는 원작의 묘를 그대로 살려 「우리나라 번역수준을 한단계 높였다」는 것이 출판사측의 주장이다.대표희곡 13∼15작품을 선정,1차적으로 출간한다.또내년초에 첫 작품을 낸다는 목표로 체호프전집 번역작업에도 착수했다. 러시아문학을 주로 번역·출판하고 있는 열린책들은 오는 6월 마야코프스키전집(모두 4권)발간에 이어 수년동안 준비해온 도스토예프스키전집을 오는 10월부터 2년 예정으로 모두 20권으로 펴낼 계획이다.개인전집번역출간은 지난 91년 나온 「장 그루니에전집」(청하·23권)을 기점으로 활발해져 그후 니체전집(청하)「제임스 조이스전집」(6권)「카뮈 전집」(책세상)등으로 이어졌다. 한편 범우사는 10∼15,6세기 고전문학번역으로 다른 출판사들과의 차별화를 노리고 있다.번역작업에 들어간 「리베룽겐의 노래」샘족의 신화등 아랍문화권의 고전번역이 바로 그것이다.유수 출판사들의 활발한 원전번역에 대해 이영준 민음사주간은 『수익사업의 차원을 떠나 고전들은 제대로 된 번역문으로 읽혀져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한다.그러면서 『이런 추세라면 10년내에 일본의 번역문학수준과 어깨를 같이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전문번역가의 수준도 높아지고 수적으로도 늘었지만 우리말과 외국어를 모두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인력부족은 우리번역문학의 숙제로 남아있다.
  • 희곡작가 박조열씨(이세기의 인물탐구:12)

    ◎연극계에 신풍일으킨 “지적작가”/발표하는 작품마다 주옥편·문제작·수작 일색/특유의 표현력으로 주제부각… 관객들 매료/「오장군의 발톱」으로 백상예술상대상·희곡상 수상 박조열이란 이름은 몰라도 희곡 「오장군의 발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이 희곡은 74년당시 예륜의 「공연불가」판정으로 연극계를 떠들썩하게 했고 88년 해금되어 문예극장대극장 무대에 올려졌을때 「역시 박조열 희곡」 찬탄을 금치못하게 했다. 탄탄한 극적 구성과 그 소재의 특이성,해학적이라 할 작가특유의 언어 표현의 탄력성은 여전한 저력을 과시했다. 그의 작가적 자존심은 연극의 어디에서도 잔재주를 부리거나 관객에게 아부하지 않는다.진지하게 대상에 정면 대결하면서 작품이 의도하는 바를 연극속에 용해시켜 설득력있게 관객의 심금을 움직이게 하고있다.어떤 소재를 어떤 시각으로 다루던 극의 테마를 작품 전편에 도도하게 깔고있으면서도 지성의 감성을 잃지않는 것도 대단하다.감상과 정조에 탐닉한 나머지 작품의 객관성을 파괴하는 일도 없다.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무대를 바라보면서 한정된 공간속에서 빚어지는 여러종류의 갈등을 저나름대로의 시각으로 판단하게 한다.그는 연극의 격조뿐아니라 이를 감상하는 관객을 그만큼 존중해주는 작가다. 연극계데뷔 28년만인 91년,첫희곡집 「오장군의 발톱」을 펴냈을때 평소 그를 총애해 마지않던 연극계의 원로 여석기씨는 그의 희곡집출간을 「기특하다」고 표현했었다.「기특하다」는 표현을 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첫째는 지독하리만큼 「과작」인 그가 과연 「책한권」이 될만한 분량의 희곡작품을 썼느냐는 것이다.두번째는 「남달리 깐깐하고 결벽성이 강한 그가 자작품을 모아 한권의 책으로 엮어 세상에 선보이겠는가」하는 평소의 그의 사람됨과 성품을 꿰뚫어 알고있는 입장에서의 소견이다. 어쩌면 수년후로 미루거나 또는 영영 이루지 못했을 이 창작희곡집은 그를 아끼는 후배들의 권유와 강요에 못이긴 소산인 셈이다. ○30년간 쓴 희곡 9편뿐 박조열은 연극계에 몸담은지 30년동안 단 9편의 희곡을 썼을 뿐이다. 단9편의 희곡만으로 그는 연극계의두드러진 존재가 되었고 그의 희곡은 어떤 누구의 작품보다 많이 연극무대에 올려졌다.이는 뛰어난 작품성과 글에 대한 완벽주의,확고한 주관의 작가정신 때문임을 새삼스럽게 거론할 필요는 없다.세속적인 것에 대한 일체의 거부,불의와 뻔뻔스러움을 용납치않는 단호한 의지는 희곡을 쓰지않는 동안의 여러 글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그 좋은 예로 그의 대표작이자 문제작인 「오장군의 발톱」을 들수있다. 「오장군­」은 문예진흥원이 주는 첫번째 창작희곡지원작가로 선정되어 쓴 작품이다. 성은 「오」이고 이름은 「장군」인 이 땅의 무식하고 가난하고 순수한 심성을 지닌 한 농부와 군대에 간 아들 걱정으로 잠못이루는 따뜻하고 다감한 이땅의 모든 어머니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뚜렷한 명분없이 단지 주인공이 「소총병」이며 「반전」과 관련된 대목이 삽입됐다는 이유만으로 이 연극은 연습도중 발이 묶여 긴 어둠속에 사장됐었다. 공연이 좌절됐다는 실망도 실망이지만 이에 충격받은 작가는 이때부터 창작의욕을 잃고 붓을꺾다시피 긴 칩거에 들어갔다. 그 이전까지는 그의 희곡이 무대에 올려질 때마다 관객의 호응과 평자들의 주목을 받아 그때마다 「정신세계가 풍요로운 지적 작가」로 지적되곤 했다. 데뷔희곡인 「관광지대」는 당시의 국시인 「유엔을 통한 남북통일 정책을 위반」했고 「미국 대표를 냉소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논란되면서 대학극의 단골 레퍼토리가 되는등 젊은 연극도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또 작가로 하여금 「희곡의 재미」를 체험케하여 극작을 평생의 직업으로 삼게된 계기가 되게했다. 다음작품인 「토끼와 포수」는 달리 설명을 하지않아도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작품의 하나다.이 연극은 「우리 연극계에 일대 신풍을 일으킨 무대」로 평가받았다. 속도감있게 전개되는 극진행과 대사와 대사의 숨막힐 듯한 불꽃대결,연극만의 특권인 대사해학과 동작변화의 반전시도는 관객의 시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이 연극은 김정옥연출로 극단 민중극장이 초연하여 동아연극상대상·연기상·극본상을 휩쓸었고 지금도 각 극단들이,그리고 지방극단·대학극에서 다투어 무대에 올리고 있다. 이렇게 발표하는 작품마다 「주옥편­문제작­수작」일색이었다.그중에서도 「목이 긴 두사람의 대화」는 이른바 우리연극에서의 반연극·불조이극의 시범이라 할수있는 극작법이 특징이다. 통일문제가 극도로 터부시되던 시절,그 벽을 뚫기위한 방법으로 동문서답식의 모호성과 추상성을 의도적으로 구사하여 작품이 말하려는 진의를 맨끝장면에서 관객이 깨닫게하는 은유법으로 극을 만들어나갔다.이 연극을 통해 관객들은 흥미롭고도 자극적인 새로운 관극경험을 할수 있었다. ○흥미롭고도 자극적 「오장군­」의 「공연불가」방침에 못지않게 그를 분노케한 것은 오장군에 대한 연극계의 비겁한(?)침묵이었다.그것이 부당한 판정임을 알면서도 누구하나 부당함을 말하려하지 않았다. 생계수단으로 방송극에 손대는 동안에도 그는 그에게서 「연극」을 빼앗아간 분노가 앙금처럼 가슴에 남아 이를 회복하겠다는 일념에 불탔다.정신적으로 왕성하던 시기에 혼신의 힘을 쏟아 희곡에 손댔고 얼마든지 샘물처럼 글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에,누군가 그를 가로 막아버린 것이다.창작의 샘물줄기를 잔혹하게 절단시켜버린 것이다.그는 비수같은 노여움을 죽이고 오로지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드디어 86년 연극협이 처음 설치한 극작분과위 초대위원장에 추대되자 먼저 「규제 작품」들을 구제하는데 총대를 메기로 결심했다. 「남북문제」 「통일문제」에 대한 규제의 한계가 불투명하고 기껏 「단어 한자」에 신경을 곤두세우려는 그 법자체가 설득력이 없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래서 첫번째 시도로 그해 「한국연극」(4월호)에 「표현에 대한 한계장황과 개선책」공개서한을 발표했다. 글 자체는 부드러웠으나 「공연법자체가 헌법에 위반되는 법률」임을 전제,「공연윤에서 윤리적으로 잘못된 부분들을 가시적인 잣대로 규제하려들기보다 이를 오히려 자정기능에 맡기라」고 은근히 꼬집었다. 이를 기화로 신문·방송과 각분야전문지들은 일제히 「표현의 자유」를 다투어 보도하는등 이를 다각적이고도 집중적으로 조명하기에 이르렀다.그는 제11회 서울연극제 심포지엄에서도 『표현의 자유란 무엇인가를 적극적으로 생각하자』고 역설,이어서 「한국연극」 「공간」 「예술과 비평」지 등에 같은 논조의 글을 발표,일본연극전문지 「신극」에도 이후 4년간 한국연극계 동향에대한 평문을 기고하여 일반과 전문기관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당위성과 인식을 일깨우는데 앞장섰다.그는 표현의 자유를 부르짖기 위해 일본 동경대 교수인 오쿠다이라 야스히로(오평강홍)의 「표현의 자유」(전3권)등의 저서를 구입하여 밤새도록 세밀분석으로 독파한 것으로 알려지고있다. ○1·4후퇴때 월남 88년 비로소 긴 어둠에 갇혔던 「오장군­」이 「햇빛」을 보게 되었다.그리고 극단 미추의 손진책 연출로 어렵게 막올린 「오장군­」 공연은 그의 가슴속의 울분을 속시원히 씻어줬을 뿐만아니라 전례없는 대호평으로 그해 백상예술상대상의 영광을 안겨주었다.그는 연극계에 돌아왔다.그처럼 아끼고 사랑해온 연극계 중심부에서 이제는 리더의 위치로 우뚝 서게 되었다. 박조열은 함남함주에서지주의 외아들로 출생,문학하는 친척이 집안에 있어 쉽사리 문학적 분위기에 빠져 들어갔다.도스토예프스키와 안톤 체호프,버나드 쇼와 몰리에르에 심취하여 그때까지는 막연히 소설가를 꿈꿨을뿐 극작가가 되리라곤 상상치 못했었다. 고향에서 중학교 교사로 있다가 「지주신분」을 숨긴 것이 드러나 산간오지로 좌천되면서 월남을 결심,1·4후퇴때 흥남부두에서 남쪽으로 가는 LST에 승선했고 묵호항 정착후 육군에 지원,12년간의 군복무시절의 삽화를 정리한 것이 연극 「오장군­」이다. 험준한 산악 최전방 소대원으로 근무하던 51년,허약체질인 그가 고된 산중의 강행군을 견디다못해 「자결」을 결심하려던 순간,어디선가 그를 황급히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는 「자결한 아들의 소식」을 듣게될 어머니의 한을 생각하면서 어려운 고비를 넘긴 과거를 간직하고있다. 그때 산중의 목소리는 「생사조차 알길없는 당신의 외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가이없는 정념이 천리길 첩첩산을 넘고 휴전선 지뢰밭을 넘어」그에게 와닿는 순간이었음을 그는 생생하게 기억하고있다. 그는 남편을 존경하고 믿는 부인 최선분여사(58)와 공부잘하는 외아들(현섭씨·31·서울대 대학원 박사과정)과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어머니 그리운 마음」에 밤새도록 술 마시며 눈물지을 때가 잦다고 말한다.그리고 고향을 등진지 40년이 지난 오늘도 어제일처럼 손에 잡히고 눈에 밟히는 두고온 산하,고향의 얼굴들이 잊힐리야 없다.따라서 남북통일문제는 그의 희곡속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커다란 기둥줄기가 될수밖에 없음을 이해할 만하다. 그는 요즘 15년만에 국립극장 가을공연 위촉작품과 태평양국제연극제를 위한 새 희곡 집필에 들어가 있다.그의 손으로 찾은 「표현의 자유」이후 주제를 마음껏 펼칠수 있는 최초의 작품이 될것이다.작가의 사명감과 투철한 작가정신,깐깐하고 곧고 불의와 세속을 거부하는 그의 작품세계는 연극의 자존심을 돌이켜 아마도 또하나 우리에게 「자랑스러움」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된다. □연보 ▲1930년10월 함남 함주군 하조양면 지주인 박승훈씨와 최한익여사의 1남4녀중 장남 ▲47년함남중학(구 함남고보)졸업 ▲49년 중등교원 자격시험합격(문학),원산공업학교교사­마전리중 전근 ▲50년 흥남철수때 월남,육군지원입대이후 12년간 군복무 ▲63년 육군예편,드라마센터 연극아카데미 연구과정(극작수업),단막희곡 「관광지대」(단막희곡 28인선 수록) ▲64년 장막희곡 「토끼와 포수」극단 민중극장 초연 ▲65년 희곡 「소식」극단 민중극당 초연 ▲66년 단막희곡 「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극단「탈」초연 ▲67년 단막희곡 「불임증 부부」(저승에서 만난 부부)극단 「탈」초연 ▲70년 희곡 「흰둥이의 방문」 ▲74년 희곡 「오장군의 발톱」예륜 「공연불가」판정 ▲75년 여석기씨와 함께 한국극작워크숍 창설 ▲76년 희곡 「가면과 진실」(문예진흥원 창작희곡지원작가),희곡 「조만식은 아직도 살아있는가」 ▲79년 한국최초의 FM 음악드라마 「음락가의 소상」(11개월 집필) ▲80년 독립투쟁과 사상분열사를 다룬 장편다큐멘터리 「땅의 아들들」(10개월 집필) ▲83년 일본연극계 견문 ▲86년 한국연극협회 극작분과위원회 초대위원장 ▲88년 「오장군의 발톱」해금(극단 미추 초연) ▲89년 ITI(국제연극협회)헬싱키총회 참석 ▲92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산하 세계문학 연구소 심포지엄에서 「한국연극계의 글라스노스치」강연,일본마에바시(전교)예술제 심포지엄서 「한국의 현대연극」강연,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태평양국제연극제 극단 미추의 「오장군의 발톱」공연참관 ▲88∼현재 숭의여전 문창과 출강 동아연극상 대상(희곡상),제8회 대한민국 방송대상,백상예술상 대상(희곡상) 「오장군의 발톱」「총독 돌아오다」「한국현대단막극선」
  • 「장꾼」 나무랄 일은 못되나(박갑천칼럼)

    흥선대원군(흥선대원군)이 몰락한 지 8년만에 임오군란(임오군란)을 수습하고 다시 정권을 잡는다.그러자 그동안 코빼기도 안보이던 실각 전의 심복 한 사람이 비윗장 좋게 나타나 문안인사를 올린다.그렇게 괘씸할 수가 없다.그래서 짐짓 모른체를 한다. 『거,뉘신고?』 『예,소인은 장꾼이올시다.윗장 서면 윗장에 가고 아랫장 서면 아랫장으로 가는 장꾼이지요.대감께서 장을 거두신 다음 다른 장터에 좀 가 있었습니다』 솔직하고도 기지(기지)에 찬 이 엉너리.본디 호걸풍인 대원군이고 보면 이에 파안대소했다던가. 이 같은 장꾼의 생리가 카멜레온의 변신.초록색 풀위에서는 초록색으로,갈색 껍질의 나무 위에서는 갈색으로 변한다.그것도 대단히 빨리.체호프의 단편 「카멜레온」의 주인공 오추멜로프 경찰서장이 그런 사람.흐류겐을 문 개에 대한 결정을 10여분 사이에 다섯번이나 변경하는 것이니 말이다.무원칙하고 추종만 하는 아첨 근성 때문.초라니 오두방정을 떤 짓이었다.하지만 그게 다 어려운 세상 살아 나가기 위한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던가.그렇다.장이 선 곳이면 이끗 찾는 장꾼은 모여들게 마련이다.윗장 서면 초록색 옷을 입고 아랫장 서면 갈색 갓을 쓰고서.이익 있는 곳이라면 어딘들 못갈 것인가.그게 동물의 본능인 것을.깊은 산속의 배설물로도 어디선가 ×파리가 날아오는 까닭이 거기 있다.물론 그 이익될 요소가 없어지면 떠나는 것 또한 당연해진다. 이렇게 이익 좇는 생태에 대해 「한비자」(한비자:설림편)는 이렇게 지적한다.­『뱀을 보면 누구나 놀라고 배추벌레를 보면 누구나 섬뜩해 한다.하건만 그 뱀과 비슷한 장어를 어부는 눈깜짝않고 잡으며 배추벌레와 닮은 누에건만 여자들은 아무렇지 않게 집어든다.이익이 된다 할 때는 누구나 용자(용자)가 되는 것이다』.세상사 기미를 꿰뚫어본 말이다. 이익이 된다 할 때는 때로 비굴해지고 때로 ×파리도 되며 때로 용자로도 된다.그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세상살이.그러는 사람들을 타매(타매)할 만한 자격의 사람이 이승에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다.그렇긴 하지만 그러지 않을만한 사람들에 의해 도가 지나치게 저질러질 때는 제 주제잊고서 문득 구역질이 난다는 것도 사실이다.요근자에 보여주고 있는 일부 정치인들의 새둥지 틀기 이합집산(이합집산)에서도 그걸 느낀다.오추멜로프 같은 거푸거푸의 변신에 웃으며 누에를 집어 올리는 위선의 「용자」들.대원군 찾은 「장꾼」에게선 그래도 양심을 느낄 수나 있었지.구역질은 마침내 복통으로 변한다. 자연이 보여주는 후조(후조)의 계절.끼륵끼륵,기럭기럭,걸걸.고니·오리·기러기·도요새·양지니….하늘에서 물에서 운다.마치 「사람 후조」를 체읍하는 듯.
  • 창작극 「부자유친」 출연 정진각씨(인터뷰)

    ◎“사도세자 미워한 영조심리묘사에 초점” 『20년 가까이 연극을 하고 난 지금에서야 연극이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그래서 그런지 바로 지금부터 배우로서의 제 인생이 시작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는 16일까지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공연되는 목화레퍼토리컴퍼니의 「부자유친」(오태석작·연출)에서 희극적이면서 냉엄한 성격의 영조역을 맡아 호평받고 있는 연극배우 정진각씨(41). 『후궁의 자식이었던 영조가 후궁에게서 얻은 사도세자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옛 상처가 되살아나는 것같아 한편으로는 안쓰러우면서도 아들을 더 미워했던 것 같습니다.영조의 이와 같은 복합적인 심리적인 갈등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자 애썼습니다』 지난 74년 「춘풍의 처」로 연극무대에 데뷔한 뒤 20년 가까이 「아프리카」「태」「자전거」「필부의 꿈」등 30여편의 연극에 출연하면서 오태석씨와 줄곧 함께 작업을 해온 그는 극단 목화의 없어서는 안 될 대들보. 서울 대광고를 졸업하고 해사에 지원했다 실패한 뒤 친구들의 권유로 연극을 시작한 정씨는 이제 그만의 개성있는 연기로 관객들을 사로잡는 타고난 「광대」로 꼽힌다. 『창작극만을 고집하지는 않습니다.인간내면의 오욕칠정을 끌어내는 연극,표변하는 인간의 심리를 파헤친 연극이라면 어떤 것이든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그리고 기회가 닿는다면 체호프나 셰익스피어등 사실주의 연극작품들도 해보고 싶구요』.그는 그러나 「감자」나 「메밀꽃 필 무렵」등과 같은 작품속에서 묻어나는 우리의 한국적인 정서를 후배들과 관객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가장 급선무라고 말한다. 길가에서건 지하철에서건 일상생활속에서의 경험들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머리속에 기억해 놓는 연극인으로서의 몸에 밴 생활습관이 연기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그는 배우로서의 무대경험을 살려 언젠가는 작품연출을 해보고 싶다고 털어놓는다.
  • 셰익스피어 「태풍」·체호프 「세자매」/서구고전극 국내무대 오른다

    ◎정통연출·실험성 가미등 방법론 다양/원작이 갖는 메시지 충실히 전달해야 다양한 시각의 서구 고전극 무대가 잇달아 마련돼 눈길을 끈다. 최근 2∼3년사이 「오셀로」「맥베스」「베니스의 상인」등 셰익스피어의 작품공연횟수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올해들어 괴테의 「파우스트」와 에우리피데스의 그리스비극 「트로이의 여인들」이 현대식으로 번안,공연된데 이어 체호프의 「세자매」와 셰익스피어의 「태풍」이 7월무대에 올려진다. 러시아 극작가 체호프의 4대희곡가운데 하나인 「세자매」는 극단 여인극장에 의해 1∼8일 문예회관대극장(762­52 31)에서 원작에 충실한 정통적인 연출로 공연되고 셰익스피어의 「태풍」은 공연집단 두레의 창단작품으로 3∼31일 동숭아트센터 소극장(741­33 91)에서 우리 고유의 연희양식과 감정에 대입시킨 실험적인 무대로 공연된다. 19 00년에 씌어진 「세자매」는 러시아혁명을 앞둔 시대적 격변기에 모스크바에서의 즐거웠던 시절을 회상하며 언제가는 다시 돌아가 행복하게 살수 있으리라는 꿈을 갖고 지방도시에 내려와 사는 퇴역군인의 세딸과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이작품은 체호프가 밝히고 있듯이 비극이라기 보다는 희극으로 일상생활의 어려움과 끊임없이 좌절되는 꿈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꿈과 이상을 간직한 채 꿋꿋하게 살아가는 세자매를 통해 낙관적인 미래를 제시한다. 강유정씨가 연출하고 김민정 박승태 정경순이 세자매로,이호재씨가 시골학교 교사인 둘째사위역으로 출연한다. 한편 공연집단 두레의 「태풍」은 화해와 평화라는 원작의 주제만 살려놓고 시·공간적 배경과 주인공등을 모두 우리의 것으로 바꿔놓은 새로운 시도가 눈에 띄는 무대. 마법의 섬 이어도에 동생 아라불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도망쳐온 백제의 왕 아사달이 딸 아랑과 살고 있다.어느날 서라벌의 여왕과 아들,아라불이 탄 배가 태풍으로 조난을 당한다.태풍은 복수의 칼을 갈아온 아사달과 낮도깨비가 마법의 힘을 빌려 일으킨것이다.이어도에 도착한 조난자들은 온갖 고생끝에 아사달을 만나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게되고 화해의 상징으로 아랑과 서라벌의 왕자가 결혼한다는 내용이다. 마당극·창극·오페라를 주로 연출한 장수동씨가 번안·연출을 맡았다. 최근의 잇단 고전극 공연은 「세자매」처럼 고전의 해석에 있어 원작에 충실한 중견 연출가들의 정통적인 방법과 기국서의 「햄릿」,이윤택의 「맥베스」등 30∼40대 연출가들의 실험적이고 현대적인 재해석무대,그리고 공연집단 두레처럼 우리의 민족극 양식에 원작을 대입시켜 「우리의 얼굴을 한 셰익스피어」로 만들려는 방법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어 연극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김윤철교수(세종대)는 『고전극들이 자주 무대에 올려지는 것은 바람직하나 지금까지 공연됐던 작품들 대부분이 부분적인 현대화작업에 그쳤거나 원작의 정신을 정확하게 전달하는데에는 실패해 아쉽다』고 지적하고 『현대화·우리화라는 명분보다는 주제나 양식적인 면에서 원작을 대신하는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연극적인 대안을 마련·제시할수 있어야 우리의 연극문화로 용해될 수 있을것』이라고 말했다.
  • 노대통령·고르비,크렘린대좌 2시간15분(모스크바 여로)

    ◎“모스크바여 영원하라” 노어인사에 박수/푸시킨 시구 인용… “지금은 기적의 순간이다”/“한국젊은이 고속전철 타고 시베리아 올 날 멀잖았다” ▷정상회담◁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역사적인 모스크바정상회담은 14일 상오 11시1분(한국시간 하오 5시1분)부터 2시간15분 동안 크렘린궁내의 소련연방최고회의 건물 4층 대통령회의실인 올드 레드룸에서 진행. ○화기 넘친 분위기 노 대통령이 먼저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건네자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밤새 편히 지내셨느냐』고 물었고 이에 노 대통령은 『아주 편안하게 잘 지냈습니다』라고 대답. 양국 대통령은 사진기자들의 요청을 받고 잔뜩 웃음을 머금은 표정으로 손을 맞잡고 잠시 포즈. 노 대통령은 본격회담에 앞서 고르바초프의 얼굴사진이 큼지막하게 표지에 실린 「페레스트로이카」 한국어판 책 1권을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선물. 노 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우리의 만남이 한반도의 얼음을 깨는 일』이라고 언급했던 점을 상기시킨 뒤『나의 이번 모스크바방문이야말로 양국 관계에 봄을 열고 씨앗을 뿌려 양국민 모두가 풍성한 열매를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시대를 열 수 있기를 바란다』고 희망.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회담과정에서 17일부터 열리는 소련최고인민회의 준비와 관련한 자신의 연설문 마무리 문제와 소련 국내문제를 둘러싼 여러 첨예한 대립과 논쟁상황 등을 숨김없이 털어 놓았는데 노 대통령은 자신의 6·29민주화선언과정에서의 어려웠던 과정을 설명하며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위로. 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냉전체제 와해 등 최근의 변화와 페만사태 등에 관해서도 의견을 교환. 노 대통령이 우리 정부의 한반도 평화통일 방안에 대해 설명하자 전적인 지지와 동감을 표시했던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과거에는 강대국이 자신의 의지를 약소국에 강요하던 시대가 있었으나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고 단언.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구라파에 평화가 왔듯이 아시아에도 평화가 와야 하며 모든 문제를 군사력을 사용,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물론 아시아는 유럽과 여러 조건이 다르다. 그러나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시아에서도 평화의 질서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노벨평화상 수상자답게 「평화」를 강조하면서 한반도의 긴장완화,평화정착이 아태지역 평화의 관건임을 거듭 확인. 한편 김종인 경제수석은 정상회담에 앞서 카운터 파트인 마슬류코프 제1부수상과 30분 동안 별도 협의를 가졌다. ○올 노벨상 수상 축하 ▷공식만찬◁ ○…노 대통령은 이날 하오 7시부터(한국시간 15일 새벽 1시) 약 1시간30분 동안 진행된 고르바초프 대통령 주최의 공식만찬에 참석. 노 대통령은 만찬사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올 노벨평화상 수상을 축하하고 『이는 각하께서 용기와 신념,탁월한 지도력으로 온 인류의 한결같은 소망을 실현하고 있는 데 대한 세계의 평가를 반영한 것』이라고 피력. 노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대통령 각하 내외분의 건강과 행운을 위하여,소련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그리고 한소간의 영원한 우의를 위하여 축배를 들자』고 제의하고 「발쇼예 쓰빠시바」(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인사. ○…소련에서의 첫 밤을 보낸 노 대통령은 14일 상오 10시(한국시간 14일 하오 4시) 크렘린궁 외곽의 알렉산드로프스키 공원내 무명용사묘에 헌화하는 것으로 이틀째 일정을 시작. ○무명용사묘에 헌화 메드베데프 대통령위원회 위원과 소콜로프 주한 소련 대사의 안내로 알렉산드로프스키 공원에 도착한 노 대통령은 스미르노프 모스크바 주둔군 사령관의 영접을 받은 뒤 3군 의장대를 사열. 노 대통령이 의장대를 사열하는 동안 군악대는 차이코프스키의 진혼곡을 연주했는데 선두의 헌화병은 소련군의 독특한 걸음걸이로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 이어 노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 노태우」라고 쓰인 붉은 색 리본이 달린 화환을 무명용사묘에 헌화하고 양국 국가가 울려퍼지는 동안 중절모를 벗어 묵념. 이날 헌화에는 최호중 외무,박필수 상공,김진현 과기처 장관과 이홍구 대통령정치특보,김종인 경제수석비서관 등 수행원들이 참여. ○…노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는 14일 하오 고르바초프 대통령 부인 라이사 여사의 안내로 크렘린궁내 박물관을 둘러본 뒤 30여 분 간 환담. 김 여사는 박물관에 도착해 미리 대기하고 있던 라이사 여사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는데 13일 공식환영행사에서 이미 한차례 만난 탓인지 친근감있게 가벼운 포옹을 교환. 두 대통령 부인은 박물관장과 함께 러시아 황실의상과 칼 등 무기들이 진열된 전시장을 둘러보고는 궁전내 파인애플룸에서 자녀·의상·부군에 대한 내조 등을 화제로 환담 후 기념촬영. ○…노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는 13일 저녁 9시(현지시간)의 TV뉴스를 통해 소련국민들에게 처음 소개돼 관심이 집중. 이날 TV에 소개된 노 대통령 방소 관련화면은 공항도착 장면과 크렘린궁내의 공식환영행사 등으로 약 4분간에 걸쳐 방송. ○「크라시바야」 연발 소련 체신부에 근무하는 실라 니콜라에바씨(여·40)는 TV를 보면서 「크라시바야」 「오친 크라시바야」(대단히 아름답다)를 연발. 그녀는 한복의 맵시와 김 여사가 가진 조용하고 아름다운 분위기가 잘 조화돼 환상적이라고 감탄. 소련국민들의 미에 대한 정서는 유럽보다 동양인들의 그것에 더 가까운 것으로 설명되곤 한다. 소련인들의 이런 정서 때문에 김 여사가 보여주는 특유한 분위기는 그 동안 소련을 방문했던 어느 나라의 퍼스트레이디보다 더 강렬하게 소련인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는 것 같다. ◎「임양 구속」,대북정책 역행 아닌가/법질서 무시한 행동은 처벌 마땅 ▷모스크바대 연설◁ ○…노 대통령은 이어 하오 3시30분부터 모스크바대학을 방문,교수·학생들을 상대로 「냉전의 벽을 넘어,평화와 번영을 향하여」라는 제목으로 2시간 동안 연설. 노 대통령은 『모스크바대학이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많은 개혁의 지도자들을 배출했다』고 경의를 표하고 투르게네프·곤자로프·체호프·칸딘스키 등의 문호와 벨린스키·게르첸·웨르나드스키·켈디쉬 등 이 대학 출신 사상가와 학자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 노 대통령은 『이 대학이 낳은 문호 곤자로프는 러시아인으로는 첫 한국견문록을 남겼다』고 「인연」을 강조하고 『그는 길에 깊이 패인 수레바퀴 자국들을 보고 한국인이 근면하고 생활력이 강한 것을 알았으며 신기하게도 가난한 사람까지 시를 쓸 만큼 학식이 있었다고 썼다』고 설명. 노 대통령은 『우리 국민은 우리 두 나라의 새로운 만남을 시인 푸시킨이 노래한 「기적의 순간」처럼 경이로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야 뽀옴뉴 추우드노예 므그노베니예/뻬레 더 므노이 야비일라시 뜨이」(나는 기적의 순간을 기억합니다. 그것은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라고 러시아말로 푸시킨의 시구절을 인용. 노 대통령은 『나는 서울을 출발한 한국의 젊은이들이 고속전철을 타고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모스크바의 젊은이들과 어울려 스톨홀름으로,파리로,이스탄블로 여행을 떠나는 내일이 올 것을 확신한다』는 말로 연설을 끝내고 「마스끄바,베치나야 찌베 슬라바」(모스크바여,영광이 영원하여라) 「발쇼에 쓰빠시바」(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러시아어로 인사. 노 대통령은 연설을 마치고 3명의 학생으로부터 임수경양 처벌과 국가보안법 폐지,한소 경협과 개발도상국에서의 경제발전 문제,청소년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즉석 답변. 노 대통령은 첫번째 질문 학생이 『대북정책을 재검토하겠다고 했는데 평양축전에 참석한 여학생을 엄벌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하겠느냐』고 물은 데 대해 『우리 정부는 학생이 북한을 방문할 수 있게끔 절차를 만들어 놓고 있다』면서 『그러나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몰래 다녀온 데 대해서는 우리뿐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도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담담하게 답변. 노 대통령은 이어 『만약 북한에서 남한을 몰래 다녀갔다면 10배 20배의 벌을 받았을 것』이라고 부연설명했고 학생들은 이에 박수로써 호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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