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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류 통신] 중국인을 사로잡는건 스케일 아닌 인간냄새

    [한류 통신] 중국인을 사로잡는건 스케일 아닌 인간냄새

    두 달 가까이 한국의 한 학술재단 초청으로 고려대 외국인 교수 숙소에서 ‘신선 생활’을 하다 귀국해 보니 여름이 다 끝나 있었다. 상하이로 돌아와 대학에서 가깝게 지내는 교수들과 함께 ‘귀국보고회’ 겸 저녁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동북공정’에 대한 한국의 격렬한 반응과 최근 TV 등 공중파를 타고 있는 한국의 역사극들을 화제에 올리게 됐다. 동북공정에 대해 관련 전공자들이나 지식계층에선 어느 정도 알지만 중국의 일반인들은 전혀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의 TV나 신문 등 언론매체에선 전혀 이 문제를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사회주의 언론’의 특성도 작용했을 것이고 사실 관계자를 제외하곤 별다른 관심이 없기도 하다. 왜냐하면 중국은 주변국들과 수없는 영토분쟁을 겪었고 또 지금도 이곳저곳에서 진행형이며 중국의 일반 국민들이 상당히 탈정치적인 까닭도 있다. 그런데 이날 자리를 같이한 교수들은 연속극에 대해 많은 관심들을 보였다.‘대장금’을 비롯해 한국의 영화·연속극들에 빠진 재미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다. 이야기의 전개와 극의 반전, 등장 배우 등을 꼬치꼬치 캐물었고 극과 관련된 역사적 배경 등에 관심을 보였다.‘주몽’ ‘연개소문’ 등등. 역사극으로 말하자면 외람되지만 중국도 간단치 않다. 그 방대한 규모와 광활한 시간적·공간적 배경. 다양한 문화적 색채와 수많은 민족들이 뒤섞여 만들어나가는 ‘중화민족’의 역사…. 한국에서 대학물을 먹은 친한적인 ‘한국유학파’ 입장에서 보더라도 한국의 역사극은 정말 죽었다 깨어나도 중국 역사극의 스케일과 방대함에는 따라갈 수 없다. 한류가 중국인의 눈과 귀, 생각과 관심을 휘어잡고 있는 것은 그 스케일과 방대함에 있지 않다. 한류 연속극들의 힘은 그 중심에 인간이 서 있기 때문이다. 한 개인 한 개인의 구체적인 삶과 고뇌, 좌절과 극복. 그 개개인을 둘러싼 인간들간의 기대와 실망, 연민과 고독, 배신과 복수…. 한국의 연속극에는 인간 냄새가 가득하다. 중국인들은 그러한 구체적인 인간들의 삶의 여정과 인간적 체취를 사랑한다. 최근 한국의 역사극들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서울 체류 동안 그 역사극들을 보면서 한국의 강점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국가, 역사, 명분 등등. 거대함 속에서 우뚝서 있는 인간. 도도한 역사의 물결 속 주인공인 인간. 한국과 한국적인 것의 인간적임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쑨커즈 (중국 푸단대학 교수) ●한류통신은 이번 게재분을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생태농법에 ‘문화농법’까지 곁들여 포도밭 가꾸는 시인 류기봉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생태농법에 ‘문화농법’까지 곁들여 포도밭 가꾸는 시인 류기봉씨

    경기도 남양주시 장현리에서 17년째 포도농사를 짓는 ‘농부시인’ 류기봉씨. 고 김춘수 시인의 애제자이다. 스승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매년 9월이면 ‘포도밭 작은 예술제’를 연다. 올해는 포도수확도 좋아 행복한 9월이라며 활짝 웃는다. 오른쪽에 ‘김춘수 나무’ 앞에 생전의 친필시 ‘디딤돌’이 내걸려 있다. 오로지 정직을 흙에 묻어두고 산다. 농부는 아침일찍 포도나무에게 라디오의 시사대담 프로를 들려준다. 밤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할테니까. 해가 떠오르면 클래식 음악을 틀어준다.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C장조를 더욱 좋아한다. 거친 포도는 곧 부드러워지고 달콤해진다. 그래서 포도는 바람이 난다. 낮에는 민들레와, 달뜬 밤에는 달맞이꽃과 뜨겁게 포옹한다. 지난 주말이었다. 경기도 남양주군 진접읍 장현리, 한 농부시인이 17년째 가꾸는 포도밭에는 ‘아주 특별함’이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숙성된 포도냄새가 확 풍겨오더니 시큼한 여운이 어금니를 간지럽힌다. 포도밭을 지키는 하얀 진돗개가 그걸 아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꼬리를 흔들어 반긴다. 포도밭 한가운데서 천진한 아이들 소리가 들려온다. 그 곳으로 귀를 기울이며 다가갔다. 서울에서 왔다는 두 가족의 식구들이 신기한 듯 포도밭을 맨발로 걸어다니고 있었다. 또 아이들은 직접 포도를 따며 마냥 즐거워한다. 농부시인은 손님들에게 이렇게 설명한다. “여기는 자연농법만을 사용합니다. 빗물막이용 비닐하우스가 없고 농약을 전혀 쓰지 않지요. 자연상태에서 햇볕을 받고 자라야 단맛과 신맛이 잘 어우러집니다. 발효된 각종 풀과 한약재료를 지렁이한데 주면 지렁이가 배설하고, 포도나무는 그걸 먹고 이렇게 탐스런 열매를 만들어내지요. 또 자기 몸에서 나온 포도즙, 포도순도 먹이고 있습니다.” 이때 누군가가 이 광경을 무비카메라에 열심히 담고 있었다. 관심있게 쳐다보자 “저희는 대학생입니다. 단편영화를 찍고 있거든요.”라고 소개한다. 주제를 물었더니 ‘시가 있는 포도밭’이란다. 맞다. 포도밭, 농부, 시인, 달빛, 술, 시와 그림들만 하더라도 훌륭한 ‘단편영화’는 되겠지. 여기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로 가득채워진다. 우선 포도나무마다 시인들의 이름표가 붙어 있다. 그 옆에는 친필시가 내걸려 있어 발길을 붙잡는다. 포도밭 중앙에 2년 전 작고한 김춘수 선생의 시가 문득 눈에 들어온다.‘天使는 프라하로 가서 시인과 함께 즐거운 식사를 하고/반 고흐는 面刀날로 제 한쪽 귀를 베고 있었다./누가 가만 가만히 디딤돌을 하나하나 밟고 간다.’(디딤돌) 조정권 시인의 ‘포도와 당나귀와’도 걸려 있다.‘당나귀는 여름내내 언덕을 오르내리며 고된 물통을 져다 날랐습니다./포도밭의 포도알들이 알알이 익어가고 그 중에서 제일 크고 잘 익은 송이들은 그분의 몫이지요….’. 서정춘 시인은 ‘그가 포도를 따먹고 있다. 그녀의 젖꼭지를 똑, 따먹은 시늉으로….’라는 시구절이 눈길을 끈다. 이밖에도 노향림 문태준 이문재 정진규 박완서 등 내로라하는 문인들의 체취가 포도나무에 걸려 있어 말 그대로 ‘포도밭 시화전’이었다. 이뿐이랴. 포도밭에서는 매년 9월 첫째주 토요일 ‘포도밭 작은 예술제’를 개최해왔다.9년전 김춘수 시인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올해에는 지난 2일 이수익 고두현 이덕규 시인 등 20명의 문인과 독자 150여명이 참석, 성황을 이루었다. 시 낭송도 하고 라이브 공연 등 작은 음악회도 열렸다. 끝무렵에는 포도를 발로 밟아 포도주를 만드는데 이때 빚은 포도주는 다음해 예술제 행사때 쓰인다. 포도밭 주인 류기봉(42)씨. 농부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지난 93년 김춘수 선생의 추천으로 현대시학에 등단했다. 까닭에 생전의 김춘수 선생을 각별히 모셔 문단의 훈훈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동안 ‘장현리 포도밭’‘포도눈물’‘자주 내리는 비는 소녀 이빨처럼 희다’ 등의 시집을 연달아 발간,‘포도시인’이란 별칭도 생겼다. 최근에는 산문집 ‘포도밭 편지’를 펴내 ‘글수확’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또 ‘사단법인 흙살리기참여연대’에서 제정한 ‘2006년 흙사랑생명사랑 상’을 수상했다. 이날 오후 손님들이 돌아간 후 류 시인과 마주앉았다.9월은 1년 농사의 결실을 맺기도 하겠지만 아무래도 스승 김춘수 시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한 계절이다. 그래서 스승 얘기를 먼저 꺼냈다. 류 시인은 생전에 스승의 집을 일주일에 두번씩 꼬박꼬박 찾아 안부를 묻곤 했다.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매달 한번씩 누워 계신 스승의 묘지(경기도 광주)를 찾아 “스승님, 저 류군 왔습니다.”라고 큰 절을 올린 뒤 주위의 잡풀을 뽑고 돌아온다. 또 가끔 가평, 양평, 광주 등 함께 나들이했던 음식점에 가서 혼자 식사를 하며 생전에 스승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곤 한다. 프랑스의 한 시골마을 포도밭에 다녀온 얘기며, 돌아가시던 해에 “올해 포도 예술제 행사는 내가 직접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어 흥을 돋우겠어.”라고 했던 모습 등등을 생생하게 떠올린다. “다행히 선생님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눴을 때 녹음을 많이 해두었습니다. 그때도 줄줄이 받아적기만 하면 전부 주옥같은 시가 됐지요. 또 ‘류군 이거 가지고 가’하면서 대학때 깨알같이 적어두었던 메모노트 등 여러 흔적들을 제게 남겨주시고 떠나셨습니다.” 그래서 류 시인의 꿈은 ‘김춘수 문학관’ 설립이다. 이곳에 스승이 남겨준 문학적 유품을 전시할 생각이다. 포도농사를 열심히 짓는 것도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올해 포도농사는 어떻게 됐을까.“포도밭은 3000평되지만 출하용으로는 1000평정도밖에 안된다.”면서 나머지 2000평은 포도밭 분위기를 내는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는 작년과 달리 햇볕을 잘 받아서인지 수확량이 약간 늘어 매출액을 5000만원정도로 추산하고 있다.“유기농으로 재배한 지 10년된 나무들 중에서는 약 80%,5년된 나무에서는 50%가량이 튼실한 열매를 만들어내고 있지요. 보통 유기농으로 자리잡히려면 토양 자체가 바뀌어야 하기 때문에 보통 7∼8년은 걸립니다.” 그가 유기농법으로 바꾼 것은 1994년 어느날이었다. 밭에 제초제를 뿌리는데 풀들이 살려달라는 아우성같은 소리를 들었던 것. 그날로 생각을 바꿔 충북 괴산의 한국자연농업학교에 들어가 유기농법을 배웠다. 하지만 갑작스런 변화로 오히려 나무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열매들이 볼품없어지고 또 껍질이 두꺼워진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유기농법을 사용한 첫 해 수확량은 고작 200만원정도. 나무 10그루 중 겨우 1그루만이 열매를 맺었다. “유기농법으로 바꾼 후 포도농사가 자꾸 실패하자 김춘수 선생님이 하루는 이런 제안을 하셨지요.‘포도밭에다 그림도 걸어 놓고, 음악회도 열고, 시낭송도 하고, 문화상품도 곁들이면 어떻겠는가. 마침 자네도 시를 쓰면서 포도농사를 짓고 있으니 좋은 조건 아닌가.’라고 말입니다.” 스승의 권유대로 지난 98년 처음으로 ‘시인 류기봉 포도밭 시 그림전’을 열었다. 이는 유기농법에 이어 최초의 ‘문화농법’을 접목한 셈이다. 이후 해마다 20여명의 시인과 소설가들이 햇포도가 출하되는 9월초에 만나 작은 행사를 꾸준히 열고 있다. 일반인들에게도 소문이 나 올 9월에는 매주 200여명씩 찾고 있다. 원래 류 시인은 신학대학에 입학했지만 평소 시인이 되고픈 열망을 버리지 못해 수업만 끝나면 청계천 헌 책방을 자주 찾았다. 결국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시를 쓰는 ‘농부시인의 길’을 걸었다. “시 공부를 해서 시인 자격증(등단)을 땄지만 시는 돈이 안된다. 그렇다고 17년 농사했는데도 역시 돈이 안된다.”고 씁쓰레하게 웃는 농부시인. 하지만 “포도밭에 귀 기울자, 내 삶과 시가 꽃을 피웠다. 포도나무는 그렇게 내 삶의 뿌리이자 시감(詩感)의 원천이 아닌가.”라고 하며 구멍뚫린 밀집모자를 푹 눌러쓰고 다시 포도밭으로 향했다. km@seoul.co.kr 사진 김현호 제공 ■ 그가 걸어온 길 ▲1965년 경기 가평 출생 ▲83년 광동실업고 졸업 ▲85년 군입대 ▲90년 한국성서대학 외국어학과 졸업 ▲93년 고 김춘수 선생의 추천으로 ‘현대시학’에 등단 ▲98년∼현재 ‘포도밭 작은 예술제’개최 ●주요 작품 장현리 포도밭(2000년, 문학세계사), 자주 내리는 비는 소녀 이빨처럼 희다(04년, 글나무), 포도눈물(05년, 호미), 포도밭편지(06년, 예담) 등 ●수상경력 2006년 흙사랑생명사랑상 수상(사단법인 흙살리기참여연대 제정)
  • [일요영화]

    [일요영화]

    ●오조나 연쇄살인(XTM 밤3시55분) 제목에서 드러나듯 연쇄살인이 주요 모티프. 그렇다고 잔혹하거나 괴기스러운 것은 아니다. 마치 둘러쳐진 병풍처럼 연쇄살인은 하나의 배경이고, 사람들이 엮어내는 이야기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오다가다 만난 사람들이 품고 있는 사연이 겹쳐지는 영화다. 하기야 페스트나 왕이 우리를, 혹은 나를 죽일지 모른다는 위협이 ‘데카메론’이나 ‘아라비안 나이트’ 같은 재밌는 얘기들을 낳지 않았던가. 텍사스 10번 도로. 이 길 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우연찮게도 오가다 만난다. 서커스를 예술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서커스단에서 쫓겨난 ‘위트 로이’와 로이의 여자친구이자 전직 스트리퍼 ‘얼린’. 부끄러움을 잘 타는 성격인데 아내마저 죽어버려 더 고독해진 트레일러 운전기사 ‘오델 팍스’. 바다를 보며 죽고 싶다는 할머니를 모시고 가다 오델의 도움을 받는 인디언 여인 ‘레바’. 아버지의 장례식에 가지만 슬픔보다는 어떻게 하면 유산을 더 받을 수 있을까 골몰하는 자매 ‘라이스’와 ‘보니’, 그리고 그들과 동행하게 되는 정신과 의사 ‘알란’ 등. 마치 억겁의 인연이 쌓인 것처럼 얽히게 된 이들은 중간 기착지쯤 되는 오조나라는 마을로 향한다. 물론 이 도로 주변에 FBI가 뒤쫓는 연쇄살인범이 출몰하고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른 채…. 하룻밤새 일어나는 일인데다 모두 자동차 안에서 해결하는 영화임에도 다양한 인물과 이들이 풍기는 체취로 스크린을 꽉 채운다. 그래서 배우들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한 영화. 로이 역의 케빈 폴락을 비롯한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빛난다. 아무리 그래도 테마가 연쇄살인인데 범인은 잡아야 하지 않을까. 별빛이 쏟아지는 밤, 결코 허투로 들리지 않는 라디오방송 DJ의 멘트를 단서로 연쇄살인범의 꼬리라도 밟아보자.1998년작,100분. ●투쟁의 날들(MGM 오후8시20분) 성조기를 온 몸에 감고 사각의 링에서 자유주의 미국을 옹호했던 로키. 총 한자루 달랑 든 단신으로 수천명의 병사를 사살하는 괴력을 발휘했던 람보. 그 실베스터 스탤론이 1930년대 트럭운수노조를 이끌었던 노조지도자 자니역을 맡았다. 설정에서 짐작할 수 있듯 자니의 모델은 1930∼70년대 미국 노동운동의 전설, 그러나 아직도 실종 뒤 소식을 알 수 없는 지미 호파다. 그러나 나중에 나온 ‘호파’의 잭 니컬슨에 비해 실베스터 스탤론의 연기력이 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1978년작,145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문경길(상)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문경길(상)

    상주 옛길은 경북선(김천∼영주) 철로를 건너 문경시 모전동으로 들어선다. 곧바로 문경 시외버스정류장 앞에서 충북 보은군으로 통하는 국도 3호선과 만난다. 이어 공설운동장을 지나 1㎞쯤 거슬러 오르면 공평동 표석골 마을에 다다른다. 표석골은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당교(唐橋) 전투에서 승리한 뒤 전승기념비를 세웠다는 데서 유래됐다. 그러나 그때의 표석은 찾아 볼 수 없다. ●유곡 찰방역의 ‘둔전’ 공평·유곡들 이곳에서 문경새재로 가는 길은 올해 초 왕복 4차로로 넓혀져 시원스럽게 나 있다. 길 양쪽으로는 공평·유곡들이 온통 푸르름을 자랑하며 결실을 준비하고 있다. 이 들판은 유곡찰방 소속 1300여 역졸들의 군량을 충당하던 둔전(屯田)이었다. 둔전 북쪽 끝자락에는 장승백이 마을이 고즈넉하게 자리잡고 있다. 마을 앞 도로 중앙에는 ‘장승백이’ 표석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현재 장승은 없다. 63년전 이 마을로 시집왔다는 이분남(78) 할머니는 “마을 앞 길가에 조상대대로 세워졌던 장승은 올해 길이 확장되면서 사라졌다.”며 서운해한 뒤 “빨리 다시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선시대의 장승은 세워진 위치에 따라 그 역할이 달랐다고 한다. 동행한 안태현(40·민속학 전공) 문경새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길가의 것은 이정표 또는 경계 등의 구실을 했고, 마을 입구의 것은 주로 주민들의 신앙의 대상이었으나 전염병이나 역병 등을 물리치는 주술적 역할도 겸했다.”고 설명했다. 장승백이 마을을 벗어나 국도 3호선을 따라 곧장 가면 유곡동에 도착한다. 영남역지상의 유곡 찰방역이 있던 곳이다. 유곡역은 고려시대 개경을 중심으로 한 역도체계에서 상주도의 으뜸역이었다. 이 역은 덕통·낙동·구미·지보·소계역 등 지금의 문경을 비롯한 상주·의성·예천·안동·구미·군위·청송 등지의 19개 역을 관할했다. 이곳에는 역리 1238명과 노비 67명 등 모두 1305명이 소속됐었다. 상등마 2마리와 중등마 5마리가 배치됐다. 특히 유곡 찰방역의 규모는 문헌상 조선시대 찰방역 가운데 가장 자세히 남아 있다. 영남역지에는 유곡 찰방역의 경우 찰방이 역무를 총괄하는 행정 관서인 동헌 6칸을 비롯해 찰방이 잠을 자는 침소인 내동헌 및 사환고 각 4칸, 마구간인 마단 5칸, 천교정·내삼문·문루·형사청·사령청 각 6칸, 역리들이 실무를 보는 곳인 작청 10칸, 진휼창 20칸 등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상주도의 으뜸역 유곡 찰방역 안 학예사는 “찰방역 전체에 대한 상세 기록은 유곡 찰방역이 유일한 정도”라며 “따라서 복원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유곡동 한복판을 지나는 옛길변에는 관찰사 박문수, 어사 박이도 등 관리 15명의 선정비 또는 불망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70년대 새마을운동 당시 마을 아낙들이 빨래판으로 쓰거나 버려진 것들을 이곳에 모아 정비했다고 한 주민은 귀띔했다. 유곡역을 벗어난 옛길은 3번 국도 왼쪽 아래로 잠시 비켜난 뒤 불정동 원골에서 다시 만난다. 원골은 고려시대 원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원골로 불린다. 원골 앞을 지난 길손은 영강 상류지점의 견탄(犬灘)을 건너야 했다. 옛날 견탄 여울에는 개 모양을 한 큰 바위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견탄을 건넌 옛길은 대성광업소 직원 사택촌으로 잘 알려진 호계면 견탄 3리 입구에서 영강과 나란히 1㎞쯤 상류 불정마을 건너편까지 강변쪽으로 난다. ●한양길 최대 험로 토끼벼랑 이곳에서 수풀을 헤치고 산허리를 올라서면 관갑천 잔도(串甲遷 棧道)가 나온다. 일명 토끼벼랑(兎遷)으로 옛길상의 험로로 가장 악명(?) 높은 곳이다. 잔도는 강가의 험한 벼랑부분의 암반을 파서 낸 길을 말한다. 또한 토끼벼랑은 이곳에서 길을 잃은 고려의 태조 왕건이 토끼가 달아나면서 벼랑길을 열어 주어 진군했다는 데서 연유했다. 역시 동행한 엄원식(38) 문경시 학예사는 “토끼벼랑은 동래에서 한양으로 가는 옛길 중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라며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험난하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과연 잔도 400여m 전 구간은 전율을 느낄 만큼 위험하다. 폭이 1m 내외로 좁고 위쪽은 깎은 듯한 절벽이, 아래쪽은 70도 이상 경사진 낭떠러지이다. 마침 장마철인 관계로 길마저 미끄러워 다리를 후들거리게 한다. 잔도 끝부분은 바윗길로 표면은 금세 길손이 짚고 간 듯 반질거린다. 불현듯 얼마나 많은 길손들이 지나다녔으면 이처럼 반질반질해졌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잔도를 아슬아슬하게 빠져 나오면 고모산성이 자리하고 있다.1500여년전에 축조된 이 산성은 신라와 고구려의 접전지로, 둘레가 1.6㎞에 이른다. 산성은 막바지 복원공사가 한창이며, 탐방로도 말끔히 정비돼 있다. 산성 초입에서 몇 발짝 옮기면 돌고개가 나온다. 달리 ‘꿀떡고개’로 유명하다. 조선시대 과거객들에게 꿀떡을 팔았던 곳이라 해서 이름지어졌다고 한다. 인근 마성면 오천리 새터 주민들은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들이 꿀떡을 사 먹으며 과거에 붙게 해 달라고 기원했던 곳”이라고 들려줬다. 돌고개 옆 옛길가의 주막거리가 정겹다. 문경시가 올해 초 복원한 것이다. 주막은 2동의 초가와 헛간, 창고 등 옛 양식대로 지어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주막에는 주모가 없어 목을 축이거나 요기를 면할 수는 없다. 옛길은 돌고개를 넘어 눈앞에 펼쳐지는 문경새재로 향한다. 글 문경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길손들의 쉼터 ‘주막’ 주막은 우리 주위에서 사라져 가는 옛 풍물 중 하나이다. 선조들의 삶의 애환과 체취가 오롯이 묻어 있는 곳이어서 못내 아쉽다. 주막은 17세기를 전후해 국가 관할인 원(院·역의 기능을 보조하여 숙식을 제공하던 곳)이 기능을 상실하면서 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후 사상(私商)의 발달과 함께 본격화됐다. 주막집·탄막(炭幕)·주사(酒肆)·주가(酒家)·주포(酒鋪)·봉놋방이라고도 했다. 주막은 개인이 영리를 목적으로 운영했던 일반 여관으로 민초들이 단골고객이었다. 관리나 거상(巨商)들이 주로 출입했던 고급여관인 보행객주(步行客主)와는 구분됐다. 주막 또는 주막촌은 주로 시골장터와 삼거리 길목, 나루터 등 길손의 통행이 잦은 곳에 자리잡았다. 옛길에는 평균 4㎞ 간격으로 100여곳의 주막촌이 분포했다. 그러나 팔조령 등 험로지역에는 1∼2㎞ 간격으로 자리했다. 주막은 대개 한두 개의 침실과 술청을 갖춘 작은 건물로 형성됐으며, 식당·주점·여관 기능을 함께 했다. 또 상거래 장소이자 팔도의 소식과 문물을 교류하는 문화적 기능도 겸비했다. 메뉴로는 국밥이나 국수가 전부였고, 술도 탁주가 주종이었다. 방값은 음식 등을 사 먹고 잠을 자는 곳이라 별도로 받지 않았다. 대신 많게는 10여명씩 혼숙을 해야 했다. 잠자리는 선착순으로 아랫목·구석·마루를 차지했지만, 지위와 권세가 낮으면 순서와 상관없이 구석이나 마루로 밀려나야 했다. 주막은 경우에 따라서 부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하층민이 주로 이용한 주막은 도박꾼과 강도들로 득실댔다. 때문에 죄인 색출의 요지이기도 했다. 일부 주막의 주모들은 자신이 직접 몸을 팔거나 들병이(술병을 가지고 다니면서 술을 파는 장수)를 고용한 윤락업도 병행했다. 주막의 바깥 주인인 ‘식주인’은 관아의 끄나풀로 손님들의 동향을 정탐해 밀고하기도 했다고 한다. 주막은 보행에 의존하던 길손들의 문화가 70년대 이후 교통수단으로 대체되면서 급격히 사라졌다. 문경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씨줄날줄] 아름다운 길/육철수 논설위원

    인간과 자연을 잘 어울리게 이어주는 끈은 ‘길’이 으뜸이 아닐까 싶다.‘산’과 ‘강’도 친밀하나, 그건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저절로 생긴 것들이다. 그러나 길은, 사람이 자연과 어우러져 발자국을 남겨야만 제구실을 하게 된다. 인간의 숨결과 체취가 한번도 스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길은 엄밀히 따져서 없다. 그래서 길은 인간과 자연이 서로 만나 이루어낸 ‘접점’과도 같은 것이다. 인간끼리의 ‘소통’이라는 깊은 의미도 지녔다. 인생이 길에 비유되는 것도 이런 친밀감이 바탕이다. 꼬불꼬불한 길, 울퉁불퉁한 길, 죽 뻗은 신작로는 우리네 인생들과 너무 닮았다. 하지만 좁고 꼬불꼬불하고 울퉁불퉁한 길에는 인정과 여유, 특히 자연의 정경과 여운이 담겨있다. 이런 길은 유독 인간만 맞아들인다. 따라서 산길, 들길처럼 사는 인생이라고 해서 슬퍼하거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 속도와 경쟁 같은 ‘이물질’이 끼어들 틈이 없는 것만도 훌륭한 인생이 아닌가. 인공의 길은 멀리 2300년전 고대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엔 길이 침략과 권력의 상징이었다. 로마는 소금운반로를 마찻길로 바꾸어 놓았다. 세계 요로를 연결하는 길을 수십만㎞ 닦았고, 일부 도로에는 아스팔트를 깔고 배수로까지 설계했단다.“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거저 나온 게 아니다. 반면 현대식 도로는 차량이동과 물류운반에 무게를 두고 있다. 당연히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길의 본래 모습이 아니다. 걸어서는 얼씬도 할 수 없고, 터널이다 교량이다 해서 산을 뚫고 강을 가로질렀으니 자연도 상처투성이다. 이런 각박함을 깨달았는지, 최근 건설교통부는 전국의 ‘아름다운 길’ 100곳을 선정했다. 미관·역사성·기능성을 고려했다고 하나, 역시 인간과 자연의 조화가 높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 바다와 섬을 벗삼은 남해의 창선·삼천포 대교, 가로수가 멋들어지게 울창한 담양의 메타세쿼이아길, 영남 선비들의 땀방울이 맺힌 문경새재,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으뜸인 덕수궁 돌담길 등이 여기에 꼽혔다. 길에는 인생이 있다는데, 아름다운 길에는 ‘아름다운 인생’이 있을 법도 하다. 이번 여름휴가엔 아름다운 길, 아름다운 인생을 찾아 홀가분한 마음으로 길을 떠나보자.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순한 소주’ 싸움 2라운드

    ‘처음처럼’의 두산주류BG와 ‘참이슬’의 진로가 2라운드 소주 광고 전쟁을 시작했다. 지난 2월 양사가 소주의 알코올 도수를 내리면서 시작한 ‘순한 소주’ 1차 광고 마케팅 이후의 2차전이다. 참이슬은 누적 판매 100억병 돌파를 내세웠고, 처음처럼은 출시 100일동안 이어온 신선한 돌풍을 컨셉트로 잡았다. 두산의 처음처럼은 이영아를, 참이슬은 남상미를 내세웠다.1차 광고전때 두산이 알코올 도수 20도인 처음처럼을 출시하자 진로는 기존의 참이슬을 20.1도로 업그레이드하면서 순한 소주 광고전이 시작됐다. 순한 소주 광고전의 핵심은 건강이다. 순한 소주 출시당시 ‘인간은 태어날 때는 알칼리였다.’며 처음처럼이 알칼리수 소주 이미지를 부각하며 포문을 열었다. 이에 진로는 ‘대나무 숯에서 4번 걸러 깨끗한 소주’란 이미지의 참이슬 광고를 통해 방패를 갖다댔다. 광고전 2라운드는 판매 물량쪽으로 이어졌다. 두산의 처음처럼이 최근 출시 100일만에 누적 판매량 210만상자(6300만병)로 같은 기간의 자사 제품 ‘산’이나 경쟁사의 ‘참이슬’보다 2배 이상 높다고 자랑했다. 이에 맞서 진로는 지난달 25일 참이슬 출시 7년7개월만에 100억병의 누적 판매량을 달성한 ‘국민 소주’임을 내세우며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양사의 신경전이 팽팽하다. 두 업체는 이번에 동갑내기 연예인을 내세웠다.2차전은 처음처럼의 이영아가 참이슬의 남상미에게 도전장을 내밀면서 시작됐다. 남상미가 지난해 참이슬의 ‘이슬여인’ 얼굴로 뽑힌 반면 이영아는 지난 3월 처음처럼의 ‘알칼리소녀’로 뽑혔다. 광고전은 제품 순도보다는 간판 모델을 내세운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다. 두 모델은 84년생으로 22세이지만 연예계 선배는 남상미. 남상미가 ‘여인’의 성숙미를 물씬 풍기는데 비해 이영아는 10대 소녀처럼 신선하고 발랄한 이미지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영아의 처음처럼 광고는 기존의 소주 광고가 성숙한 여자 모델이 술을 권하는 포즈로 ‘같이 한잔 하고 싶다.’는 느낌을 강조한 것에 비해 ‘인간은 태어날 때는 알카리였다.’는 선언적인 카피로 시작한다. 푸른색 배경, 하얀 옷차림의 모델 이영아가 새롭고 신선한 탄생의 의미를 전달한다. 반면 붉은 색상이 강조된 주황색 옷을 입은 남상미는 따뜻한 느낌이 들게 한다. 어찌보면 녹색 배경에 주황색 옷을 입은 남상미가 성숙한 여인의 체취를 물씬 풍긴다. 특히 100억병 돌파 이후 심장병·소아암 등 난치병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를 돕기로 한 ‘스마일 어게인’ 행사를 펴고 있다. 광고에서도 이를 강조하고 있다. 알칼리수의 신비함에 푸른색의 신선함을 보여주는 ‘알칼리걸’ 이영아와 주황색 의상에 성숙미를 풍기는 ‘이슬여인’ 남상미의 대결, 더욱 치열해질 소주 전쟁 2라운드 결과가 기대된다.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儒林(637)-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20)

    儒林(637)-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20)

    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20) 두보의 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없더라.” 순간 퇴계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흘렀다. 갑자기 부질없는 행위를 하였다는 지난날의 회한 때문이었다. 허락된다면 두향이가 보내온 치마폭을 불태워 없애버리고 싶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음이었다. 두향은 편지에서 ‘소첩이 보낸 옥매를 잘 받았다는 표시로 일필하여 보내 달라.’고 간곡히 청하지 않았던가.‘하오면 나으리께서 살아 계오신 체취와 훈향을 맡을 수 있어 안심할 것이다.’라고 애원하지 않았던가. 그날 밤. 망설이던 퇴계는 마침내 두향이가 보내온 치마폭에 단시를 써 내린다. “相看一笑天應許 有待不來春欲去” 두향이를 위해 쓴 퇴계의 문장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서로 보고 한번 웃은 것 하늘이 허락한 것이었네. 기다려도 오지 않으니 봄날은 다 가려고 하는구나.” 퇴계가 쓴 그 구절은 논어에 나오는 ‘낙연후소(樂然後笑)’란 문장에서 인용하여 온 것이었다.‘유가귀감(儒家龜鑑)’으로 전해 내려오는 그 문장의 뜻은 다음과 같다. “옛날 현인은 때가 된 후에 말하여 사람들이 그의 말을 싫어하지 않았고, 즐거운 일이 있은 후에 웃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웃음을 싫어하지 않았고, 옳은 의리가 있은 후에 취한지라 그 취함을 싫어하지 않았다.(古賢時然後言 人不厭其言 樂然後笑 人不厭其笑 義然後取 人不厭其取)” 즉 두향이와의 사랑을 ‘즐거운 일이 있은 후에 서로 보고 한번 웃은 것(相看一笑)’이므로 옛날 현인들의 일로서도 거리낄 것도 없고, 하늘의 뜻과도 어긋나지 않은 하늘이 허락한 것. 얼핏 보면 사사로운 것 같지만 하늘, 즉 천명이 허락한 운명적인 사랑이라는 의미심장한 내용을 담고 있는 문장이었던 것이다. 결론적이지만 그로부터 2년 후. 퇴계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두향은 강선대 위에서 몸을 던져 남한강 푸른 물에 낙화하여 죽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때 두향은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리고 물속에 뛰어들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두향이가 얼굴을 가렸던 치마는 퇴계가 두향에게 이별의 정표로 준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두향이가 뛰어들었던 남한강은 워낙 물살이 급한 천탄(淺灘)이라 두향의 몸은 사흘 만에 강물 위에 떠올랐다고 한다. 떠오른 두향의 몸은 아마도 퇴계가 써준 전별시가 마지막으로 감싸고 있었을 것이다.
  • 儒林(636)-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19)

    儒林(636)-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19)

    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19) 편지는 끝맺음으로 치닫고 있었다. 퇴계는 묵묵히 편지를 읽어 내렸다. “마지막으로 소첩이 한 가지 청이 있어 나으리로부터 받은 정표로 함께 보내드리나이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 나으리의 존안을 직접 뵈올 수는 없사오나 소첩이 보낸 옥매를 잘 받았다는 표시로 일필하여 주시옵소서. 하오면 소첩은 나으리께서 살아계오신 체취와 훈향을 맡을 수 있어 하루하루 연명하는 불안 속에서 마침내 마음을 다잡고 안심할 수 있겠나이다. 나으리, 부디 옥체 만강하옵소서. 할말이 태산처럼 많사오나 이만 줄이겠나이다.” 편지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보낸 사람의 이름도 없는 무명의 편지였다. 그러나 퇴계는 그것이 누구로부터 보내온 편지인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미 날은 저물어 방안은 어두웠으나 퇴계는 불조차 켤 염두도 못내고 잠자코 완락재에 앉아 있었다. “선생님” 문밖에서 인기척이 일었다. “선생님, 방안에 계십니까.” 분명히 방안에서 나들이 한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도 불을 켜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는 스승의 안부가 걱정되는 듯 제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있네.” “불을 밝혀 드릴까요, 선생님.” “그렇게 해주시게나.” 제자가 무릎걸음으로 들어와 부싯돌을 그어 초에 불을 밝혔다. 그러자 완락재는 홀연히 밝아졌다. “우물물을 더 떠다 드릴까요.” “됐네.” 짧게 퇴계는 대답하였다. “혼자 있고 싶으니 나가보시게나.” “알겠습니다.” 제자가 물러가자 퇴계는 노인이 가져온 물건을 끌어당겼다. 흰 치마였다. 퇴계는 그 치마를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두향이가 입던 흰 속치마가 아니었던가. 단양에서의 마지막 밤. 퇴계는 두향이가 입던 치마폭에 정표로 두보의 시 한수를 적어 주었던 것이었다. 두보는 평소에 퇴계가 가장 좋아하던 시인. 두향의 이름이 비록 기명이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두보의 성과 같음을 기억하고 있다가 헤어지는 별리의 정표로 다음과 같은 두보의 시 한수를 적어 주지 아니하였던가. “死別已呑聲 生別常惻惻” 퇴계는 두향이가 보내온 정표를 펼쳐 보았다. 비록 20여년의 세월이 흐르기는 하였지만 치마폭에서는 여전히 낯익은 육향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흰 속치마에는 마치 어젯밤의 일이련 듯 퇴계가 써준 별시가 생생하고 선명하게 묻어 있었다.
  • “전쟁영웅 큰아버지 부대서 복무하고 싶어”

    “조국을 위해 헌신하신 큰아버지의 체취가 서린 부대에서 복무를 하고 싶습니다.” 6·25전쟁 당시 북한군 전차를 육탄저지하는 전공을 세워 대한민국 최초로 태극 무공훈장을 받은 고(故) 심일 소령의 조카가 큰 아버지가 근무했던 부대에서 군복무를 하게 됐다. 고 심 소령의 막내 동생인 심승택씨의 아들로, 지난 20일 경기도 의정부 육군 제306보충대대에 입소한 심상무(20) 훈련병이 그 주인공이다. 심씨는 입소 후 “조국을 위해 장렬히 산화한 큰아버지의 높은 뜻을 이어가고 싶다.”며 고 심 소령이 소속됐던 6사단에서 근무 하고 싶다는 의사를 부대측에 표시했다. 부대측은 이에 고 심 소령의 호국정신을 기리는 한편, 유가족에 대한 예우차원에서 심씨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에 따라 심씨는 앞으로 5주간의 신병교육을 받은 후 자신의 큰아버지가 근무했던 6사단 7연대 전투지원중대에 배치될 예정이다. 육군사관학교 8기인 고 심 소령은 6·25 당시 제6사단 7연대 57㎜ 대전차 중대에 소속돼 전차를 앞세우고 밀려오는 북한군에 맞서 적의 SU-76 자주포 2대를 화염병과 수류탄으로 파괴한 전쟁영웅이다. 장남이었던 고인에 이어 차남과 삼남도 6·25 때 각각 경찰과 학도병으로 목숨을 바쳐 고인의 일가는 대표적인 호국보훈 가족으로 평가받고 있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이슬람 문명과 도시] (11) 아랍인 영혼의 고향 바그다드

    [이슬람 문명과 도시] (11) 아랍인 영혼의 고향 바그다드

    바그다드에 들어서니 만감이 교차한다. 인류 문명의 시원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였고, 중세에 세계를 호령했던 아랍이슬람 제국의 수도였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천일야화’의 탄생지에 도착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한편으로는 옛 영광의 흔적은 온데간데없고 가난과 공포와 절망에 찌들린 시민들의 눈동자에서 서글픔을 느낀다. 유유히 흐르는 티그리스강은 바그다드가 겪은 영욕의 세월을 가슴에 묻은 채 바그다드인들의 눈물과 한을 싣고서 때로는 검푸른 물결을, 때로는 황금 물결을 이룬다. #‘신의 축복´ 받은 바그다드 바그다드는 신의 축복을 듬뿍 받은 도시다.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의 풍부한 수자원, 비옥한 토양, 동서무역의 요충지, 전략적 요새 등 천혜의 조건을 두루 갖춘 도시다. 게다가 현대에 들어서는 세계 제2의 석유매장량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바그다드는 불행한 땅이 되어버렸다. 신의 축복이 보이지 않는 시샘을 불러온 것일까? 바그다드의 슬픈 운명은 1258년 몽골의 침략으로 도시가 초토화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1958년에 주권을 완전히 회복하기까지 꼬박 700년이 걸렸다. 잃어버렸던 700년의 대가는 너무 혹독해서 이라크의 재기는 몸부림에 그칠 때가 많았다. 바그다드의 잃어버린 세월은 아랍인들이 잃어버린 세월이다. 바그다드는 중세 아랍이슬람 제국의 수도로서 아랍 문화의 기틀을 확립하여 발전시킨 곳이다. 아랍이슬람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를 누렸던 바그다드는 아랍인들에게 긍지의 원천이며 영혼의 고향이다. 바그다드에는 찬란했던 과거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유적들이 많다. 이들의 면모를 곰곰이 살펴보면 고대와 현대가 서로 맞닿은 느낌이 든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숨결, 지구라트 기원전 3000년경 인류 최초의 도시국가를 세웠던 수메르 왕국의 유적을 비롯해서 바빌론 왕국과 아시리아 왕국, 신바빌로니아 왕국의 유적들이 당시의 숨결을 들려준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남긴 대표적 문화유산은 신전탑인 지구라트(Ziggurat)와 설형문자, 다양한 인장들, 대형 석상과 부조 등이다. 지구라트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다신숭배 사상을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이다. 피라미드 형태로서 흙벽돌이나 석회석으로 지어진 이 신전탑은 3층으로 구성됐고 전면 중앙에 계단이 있다. 이라크에는 약 30개의 지구라트가 있는데, 바그다드에서 북서쪽으로 30㎞ 떨어진 지점인 아가르고우프에 가면 대형 지구라트를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기원전 1500년쯤 바빌론 왕국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자연 석회석으로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지구라트 주변에는 신전, 왕궁, 마을, 시장 등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메소포타미아인들의 생활의 구심점이었음을 알 수 있다. #수니파 모스크, 시아파 모스크 이라크는 수니파 국가이지만 실제로는 시아파 인구가 훨씬 많다. 시아파의 주요 성지들이 이라크에 있기 때문이다. 바그다드에는 어디를 가든 수니파 모스크와 시아파 모스크를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수니파 모스크는 알 아드함 모스크이다. 바그다드 서쪽 알 아드하미야 구역에 위치한 이 모스크는 이맘 아부 하니파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됐다. 이맘 아부 하니파는 이슬람 4대 법학파 중 하나인 하나피 학파의 창시자로서 766년에 타계했다. 그로부터 300년 뒤인 1066년에 그의 묘소를 안치하는 모스크가 지어졌는데 이것이 알 아드함 모스크이다.1000년에 가까운 세월의 풍상 속에서 이 모스크는 파괴와 보수의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며 수니파 무슬림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있다. 한편 대표적인 시아파 모스크로는 카디마인 모스크를 꼽을 수 있다. 바그다드 북부 교외의 카디미야 구역에 위치한 이 모스크는 2개의 황금색 돔과 4개의 황금색 미나렛이 화려함과 신비를 자아내며 장엄한 위용을 떨치고 있다. 이 모스크는 시아파의 이맘이었던 무사 알 카딤과 무하마드 알 자와드의 묘소를 안치한 곳으로 사파위조 페르시아가 이라크를 통치하던 시기인 1515년에 건립됐다. 카디마인 모스크는 2005년 2월에 발생했던 폭탄 테러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당시의 폭탄 테러는 시아파의 최대 종교기념일인 아슈라 전야에 발생하여 사건의 배후로 수니파가 지목됐다. #‘천일야화’ 추억 깃든 아부 누와스 바그다드 시내를 걷다 보면 마치 ‘천일야화’의 한 장면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인류가 탄생시킨 이야기 문학의 보고(寶庫)로 많은 이들의 가슴에 낭만과 신비를 선사한 ‘천일야화’의 고향이 바로 바그다드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신밧드의 모험’,‘알라딘과 요술램프’,‘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모두 이곳에서 탄생했다. 카라카데 거리에 즐비한 카펫 상점들 앞을 지날 때는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나는 알라딘이 당장이라도 나타날 것 같다. 티그리스강을 따라 조성된 아부 누와스 거리에는 ‘천일야화’의 두 주인공 샤흐리야르 왕과 샤흐라자드 왕비의 대화 장면이 조각상으로 재현되어 있고, 알리바바 광장에 가면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이야기에서 지혜로운 여종이 도둑들이 숨은 항아리에 기름을 붓는 장면이 재현되어 있다. ‘천일야화’의 추억은 아부 누와스 거리에서 특히 새록새록 묻어난다. 아부 누와스는 이 작품에서 수없이 아름다운 노래를 읊었던 시인이 아니던가! 술과 여인과 사랑을 주제로 시를 읊으며 당대를 풍미했던 그는 아랍 세계의 이태백이었다. 아부 누와스 거리는 옛 시인의 체취를 간직한 채 오랜 독재와 전쟁, 가난에 지친 이라크인들에게 한 가닥의 여유를 선사하고 싶어한다. 또한 아부 누와스 거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전통요리 마스쿠프다. 마스쿠프는 티그리스 강에서 잡아올린 민물고기 등을 갈라 편 후 내장을 제거하고 장작불에 구워 갖은 양념으로 조미한 요리다. 귀한 손님 접대 음식으로 많이 쓰이는 이 요리는 투르시(절인 고추 또는 오이)와 곁들여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이라크 주권회복 상징 ‘자유 기념비´ 바그다드에는 정치적 사건을 기념하거나 정치 이념을 강조하는 조형물들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1958년 혁명을 기념하는 ‘자유기념비’다. 알 타흐리르 광장 중앙에 위치한 ‘자유기념비’는 1958년 7월14일 혁명을 기념한다. 이 기념일은 수십년간 영국의 대리자 역할을 해온 왕정을 붕괴시키고 이라크인들이 주권을 찾은 날로 높이 평가된다.14개의 동판주조물로 이루어진 대형 부조에는 혁명을 유발한 사건들, 혁명장면, 혁명 후의 평화로운 삶 등이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시간적 순서에 따라 묘사되어 있다. 이라크는 근대에 서구 식민지배로부터 가장 먼저 독립한 아랍 국가로서 일찍이 현대화와 산업화를 추진했고, 교육·과학·문화 등의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그러나 수차례 전쟁은 이라크를 아랍 국가 중 최하위 후진국으로 전락시켰다. 많은 역사가들은 바그다드를 ‘불사조의 도시’라고 칭한다. 혹독한 전란과 자연재해로 잿더미가 된 후에 어김없이 회생 했기 때문이다. 평화의 도시 바그다드에 하루빨리 평화가 정착되어 ‘불사조´의 역사를 다시 한번 기록하길 염원한다.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20) 한국철학과 그 교육의 필요성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20) 한국철학과 그 교육의 필요성

    지난주의 글(19회) 말미에 나는 초등학교에서부터 철학교육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번뇌가 보리를 찾는다는 불가의 말처럼, 현실의 어려움이 철학의 길을 가게 한다.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는 사람은 철학과 보리를 구하려 하지 않는다. 초등학교부터 철학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만큼 현재 한국인이 마음의 풍토병을 깊이 앓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철학은 의술도 아닌데 마음의 풍토병을 고칠 수 있나? 이 병은 약에 의해서 고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병은 한국인의 마음의 역사가 공동운명처럼 남긴 흠결이고 습기를 말한다. 그 역사는 국사학자들이 말하는 연대기적인 역사기술이 아니라, 한국인의 마음이 표출한 구체적 욕망들이 공동의 무의식적 성향을 형성한 것을 말한다. 지난주에 다루어진 열광의식과 추상의 정신도 한국적 풍토병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앞사람들이 쌓은 업적과 공로를 인정하지 않고 다 무시하고 허물어 버리는 습관이 있는 것 같다. 정치에서도 앞 정권이 해놓은 것은 다 부정하고 다시 새롭게 출발하려 한다.‘제2의 건국’ 등과 같이 한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거를 일소하고 새롭게 건국하자고 역설한다. 개인적으로 학자들이 선대의 덕을 안 보고 혼자 자수성가한 것처럼 떠드는 경향이 있다. 자수성가의 위험성은 독불장군(獨不將軍)의 태도와 같다. 한국인들은 독불장군의 행세를 하는 일반적 풍토병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혼자서는 장군이 안 되는데, 혼자서 장군이라고 하며 크게 떠들지만 힘이 없다. 해외에서도 어떤 장사로 재미를 보면 다 같이 그 장사를 하는 바람에 결국 모두 망하게 된다고 한다. 그 사람은 그렇게 돈을 벌게 하고 나는 다른 방식으로 길을 찾지 않는다. 또 해외 한인들의 약점을 잡아 가장 괴롭히는 것이 같은 동포라는 말을 나는 들었다. 한국인들이 적수공권의 찌든 가난에서 출발하여 지금 세계 11대 무역국가의 반열에 올라섰음에도 불구하고, 왜 자기 나라에 대한 긍지를 못 갖고 틈만 나면 해외 선진국으로 이민 가고픈 마음을, 그것도 중산층 이상에서 내는가? 한국은 세계사에서 드물게 종합적으로 성공한 나라다. 과거를 뭉개는 풍토병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절실하게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속물주의자들은 자기 개인의 이기적 출세밖엔 관심이 없고, 급진주의자들은 단박에 완벽한 사회가 이루어질 것을 요구해서 우리가 쌓은 업적은 눈에 안 보인다. 세상에 한꺼번에 다 달성되는 사회가 어디에 있는가? 왜 한국인들은 정이 많으면서 모르는 사람들에 대하여 불친절한가? 마치 예절이 없는 것처럼. 애국심은 있으나 애국의 구체적 방법을 모르는 것 같고, 인정은 풍부하나 다른 이들을 구체적으로 친절하게 배려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다. 우리끼리 서로 흑백심리로 이전투구를 하는 바람에 다른 나라와 대처할 능력을 상실하는 경우도 없다고 못하겠다. 마음의 병은 마음이 알아야 고쳐진다. 마음의 병은 무명(無明)에서 온다. 무명은 무지의 다른 이름이다.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자기 마음의 병을 모르고 날뛴다. 각자가 자기 마음을 가장 잘 안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자기를 정당화하려는 어리석은 마음의 행태에 지나지 않는다. 누가복음(23:34)에서 예수님이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의 하는 짓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십자가상에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하는 짓이 얼마나 탐욕과 화의 독성으로 어리석은 짓을 하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의 스타일이 너무 자연스러우므로 자기 체취를 모르듯이 자기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른다. 이처럼 무명이 가장 커다란 마음의 병이다. 자기를 모르는 무명은 자기의 성격에 대하여 거리두기를 하지 않는다. 의식의 모든 활동은 이 성격의 무의식적 스타일을 통하여 표출되기에 인간은 자기의 성격이 지닌 흠결과 습기를 모른다. 이것이 무의식적 업장이다. 그 업장은 같은 역사적 환경에서 산 사람들에게 비슷하게 형성된 공동습기와 같으므로 이것을 하이데거는 공동운명(destiny)이라고 불렀다. 각자는 다 개성을 띠고 있지만, 한국인이라는 공통적인 성격의 창문과 그 틀을 통하여 세상을 보고 판단하므로 그 공통 성격은 한국인의 의식 활동을 제약시키는 집단무의식의 구조와 다르지 않다. 이것을 불교에서 공동업(共同業)이라 부른다. 이 공동업은 한국인의 의식활동을 움직이게 하는 습기의 경향과 같고 저장된 심적 기질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 공동업의 장애를 반성해서 씻어내지 않고서는 아무리 좋은 기획과 구상이 있더라도, 그것은 사상누각의 공사에 불과하겠다. 한국철학은 한국인의 공동업의 무명을 깊이 자성케 하는 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저 공동업이 풍토병이 되어 우리를 부자유스럽고 불행케 한다. 그것이 한국인의 말과 생각과 행동을 어떤 색깔로 채색한다. 그 동안 나는 철학자로서 책을 통해 익힌 철학이론과 한국인으로서 삶에서 느낀 경험과의 어긋남으로 철학적 초점 불일치를 겪어 왔었다. 이론으로 익힌 철학일반의 논리적 보편성과 한국적 삶의 경험이 말하는 실존적 특수성과의 괴리로 늘 자신 없이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나는 방황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나는 때로는 주자학의 용어대로 종본이언(從本而言=본질에 따라 말하기)으로 철학의 보편적 본질을 우선시하기도 하고, 때로는 종사이언(從事而言=사실을 먼저 생각해서 말하기)으로 한국적 사실의 인식을 먼저 사유의 중심으로 잡기도 했다. 그러나 종사이언으로 철학을 전개하면, 나는 어딘지 모르게 보편적 철학의 엄청난 권위의 무게에 눌려 목소리가 자신 없이 기어 들어가는 형국을 안 느낄 수 없었다. 나의 대학시절 은사인 박종홍(朴鍾鴻)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아 한국철학은 한국인의 행복을 구가케 하는 길을 보여주는 정신의 작업이라고 나는 늘 생각했었다. 내가 한국인의 행복을 구가하는데 도움이 되는 철학적 길닦기에 몰입하면 할수록, 나는 나의 몰입이 보편적 이론의 승화로 이어지지 않는 것 같아서 늘 유치한 감상주의적 주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답답한 심정을 가눌 수 없었다. 인생의 후반부에서 나는 극적인 전환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서양 해체철학의 도움으로 불교와 노장사상의 철학적 진수를 알게 되었다는 데 있다. 그리고 늘 이론적으로만 타당하다고 여겼던 율곡의 이통기국(理通氣局=보편적 理는 氣의 작용으로 특화됨)의 사상(13회 글)을 이제 내가 나의 진리로 계합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나는 불교와 노장사상의 가르침에 의지해서 마음의 철학을 이통기국화(理通氣局化)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옛날처럼 철학적 진리의 논리적 보편성과 주어진 한국적 사실로부터 철학하기와의 사이에 어떤 괴리도 느끼지 않는다. 철학은 결국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길을 닦아가는 것이고, 그 마음의 병은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의 어떤 차이도 없고 결국 시공적 인연의 차이에서 생긴 다양한 마음의 병들이 실존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철학은 그 마음의 무의식적인 공동운명의 무명을 자각케 하는 ‘길닦기’(opening-way)와 같다는 것이다.‘길닦기’는 하이데거 후기철학의 용어로서, 그것은 고향인 존재의 본성이 사는 마을로 되돌아가는 마음의 길을 닦는 것을 뜻한다. 심적인 습기로 응어리진 병은 가장 급선무로 무명의 자각과 함께 본성에의 길로 나아가는 ‘길닦기’에서 치료가 시작된다.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마음의 무의식적 병은 그 병을 자각하는 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병은 사람들의 마음이 미혹해서 생긴 환상이기 때문이다. 환상의 악몽이 우리를 괴롭히듯이 환상이라 하여 힘없는 것이 결코 아니다. 물론 그 환상의 자각은 남이 알려주는 정보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스스로 뼈저리게 부자유와 불행의 공동질곡을 참회하면서 일어나는 깨달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본성의 길닦기로 우리가 회심하게 된다. 공동업은 즉 한국인의 마음의 공동습관과 같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이 역사 속에서 인연 따라 지은 반복적인 마음의 경향이므로, 그것을 지우는 것은 그 업을 깊이 인식하면서 참회하는 것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불교의 유식학은 가르치고 있다. 그러기 위하여 고요히 우리를 깊이 반조(返照)하게 하는 철학교육이 급선무다. 무엇이 철학이고, 어떻게 철학교육을? 동서고금의 제 철학이론의 진열이 철학인가? 철학은 어떤 특정한 정치이념의 주입이 결단코 아니다. 이것은 인간을 어떤 특정한 가치관의 노예로 만드는 것이다. 동서고금의 제 철학이론의 진열이 자료로는 좋으나, 구체적으로 우리의 살(13회 글)이 느끼는 실존적 아픔을 풀어주지 않는 이론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지금까지 국사학은 있었지만, 한국사에서 한국인이 반복적으로 느낀 마음의 현재완료적 업을 진솔하게 말해 본 적이 있었는가? 우리는 우리의 숙업(宿業)을 위선적 가식없이 구체적 사실로서 솔직히 숙고해 보려고 하지 않고, 명분상 추상적 가치관의 캐치 프레이즈로서 정치권력을 등장시킨다. 그래서 정치권력이 바뀔 때마다 한바탕 한(恨)의 칼바람이 일어난다. 이것이 다 공동업의 멍에가 되어서 우리를 짓누른다. 한의 칼바람 앞에서 피고가 되지 않으려고 정치투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수단방법을 안 가린다. 한국철학은 먼저 반복되는 한국인의 공동업을 깨뜨리도록 마음의 자각과 ‘길닦기’를 하는 학문이고, 그 교육은 마음에서 참회와 ‘길닦기’를 실행하는 데에 있겠다. 그러기 위하여 역사적 무명의 자각과 그 자각이 마음에 깊이 새겨지도록 마음의 격정을 다스리는 평정의 지혜를 초등생부터 점진적으로 내면화시켜 나가는 데 있겠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전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독일의 역사적 운명에 대한 자각을 떠난 적이 없었다. 그는 편년체적인 역사학(Historie)과 역사적인 공동운명의 자각으로서의 역사학(Geschichte)을 엄밀히 구별했다. 한국철학도 한국인의 공동운명의 업이 우리를 억누르는 질곡이 아니라, 우리를 향상시키는 비약의 근거로 작용케 하는 ‘길닦기’가 되어야겠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깔깔깔]

    ●방귀 *당황:여러 사람과 같이 있는데 방귀가 나오려고 할 때. *다행:그 순간 먼저 뀐 사람의 냄새가 풍겨 올 때. *황당:그 사람의 냄새에 내 방귀를 살짝 얹으려 했는데 소리나는 방귀일 때. *기쁨:혼자만 있는 엘리베이터에서 시원하게 한 방 날렸을 때. *감수:역시 냄새가 지독했을 때 (음, 나의 체취쯤이야). *창피:냄새가 가시기도 전에 다른 사람이 탔을 때. *고통:둘만 타고 있는 엘리베이터에서 다른 사람이 지독한 방귀를 뀌었을 때. *울화:방귀 뀐 사람이 마치 자기가 안 그런 양 딴청 피울 때. *고독:방귀 뀐 사람이 내리고 그 사람의 체취를 혼자 느껴야 할 때. *억울:그 사람의 체취가 채 가시기도 전에 다른 사람이 타며 얼굴을 찡그릴 때.
  • [Leisure+α] 오감만족 상하이 4일 여행

    자유투어는 시·청·미각은 물론 촉각과 후각까지 만족시키는 상하이 4일 상품을 만들었다. 운하와 호수의 도시로 일컫어지는 동양의 베니스 ‘주장(周庄)에서 ‘시각’을, 발마사지 체험에서 ‘촉각’, 상하이에서 맛보는 음식으로 ‘미각’을, 상양시장에서 청각’뿐 아니라 상하이 임시정부청사 등에서 느끼는 도시의 체취에서 ‘후각’을 만족시키는 재미난 여행이다. 매일 출발하며 49만 9000원이다.(02)3455-0006,www.freedom.co.kr
  • 대체 취득 부동산 비과세 대폭 축소

    8·31 후속 부동산 대책의 일환으로 대체 취득 부동산에 대한 비과세 범위가 앞으로 대폭 축소된다. 이는 국가 수용 뒤 지급되는 부동산 보상비 중 상당부분이 서울 등 대도시로 유입,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행정자치부는 30일 당정 협의에서 대체 취득 부동산의 비과세 인정 범위를 같은 시·도 지역이나 경계가 맞닿아 있는 타 시·도의 시·군·구로 축소하는 방향으로 지방세법을 개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4월이나 6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되면 효력이 발생한다. 지금까지는 공익사업으로 부동산 등이 매수·수용·철거될 경우 보상금을 받은 뒤 1년 안에 전국 아무곳에서나 대체 부동산을 사더라도 보상금 범위 내에서 비과세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다른 시도에서 취득하는 부동산 모두를 투기성 자금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대체취득 부동산의 규모나 취득자의 재산이 일정 정도 이하면 계속 비과세 혜택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행자부 관계자는 “서민들에 대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여러 의견들을 반영해 개정안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클릭 지구촌 이곳!] 파리 독신자 카페

    [클릭 지구촌 이곳!] 파리 독신자 카페

    “냄새가 남녀의 만남과 별로 관계가 없을 것 같지만 뇌와 곧바로 연결된 감각이 바로 후각이기 때문에 사랑의 감정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손목, 목, 옷깃 등을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열심히 느낌을 적는다. 그러는 사이 어색한 분위기는 눈 녹듯 사라진다.20세에는 달리는 기차에 뛰어 올라타듯 쉽게 사랑을 시작하지만 30대 중반을 넘기면 그냥 역에 앉아 다음 기차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고 만다.” 파리 시내의 유서깊은 생쉴피스 성당 맞은 편에 있는 ‘카페 드 라 메리’는 여느 카페와 크게 다른 점이 없다. 그러나 매주 월요일 저녁이면 이곳의 2층은 독신자들에게 짝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사랑의 카페(cafe de l’amour)’로 변한다. 봄을 재촉하듯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20일(현지시간) 저녁. 오후 8시가 가까워지면서 다양한 연령대의 남성과 여성들이 한두 명씩 모이기 시작했다. 직업과 연령은 다양하지만 ‘독신’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는 이들이다. 상당수는 서로 이미 얼굴과 이름을 알고 있는 듯 반갑게 안부를 묻기도 한다. 절반 정도는 소문을 듣고 처음 찾아 온 사람들이다. 2년째 ‘사랑의 카페’를 진행하고 있는 베네딕트는 능숙한 솜씨로 “지금 들어 오신 남자 분은 저쪽 여자 두분 앞에 앉으시죠.”라며 남자들과 여자들이 적당히 섞어 앉도록 자리를 배정해 준다. 이날 참가자는 남자 15명, 여자 15명 등 30명. 우연히도 이날 모인 남녀의 숫자는 같았다.‘사랑의 카페’는 독신자들을 위한 자리다.7유로(약 9000원)만 내면 누구든 참가할 수 있다. 자주 오는 단골들은 아예 5회짜리 쿠폰을 갖고 있다. 이 경우 참가비는 6유로. 프랑스에는 독신자가 무척 많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3가구당 1가구, 파리 시내에서만 2가구당 1가구가 독신자 가구다. 독신자들을 위해 보름마다 다양한 이벤트를 주선한다는 애니(파티 매니저)는 “매년 12만 건이나 되는 이혼이 독신자 수를 더욱 증가시킨다.”면서 “폐쇄되고 개인주의적인 도시생활이 독신자들을 더욱 고립시킨다.”고 말한다. 독신자들은 인터넷의 만남 사이트나 직업적인 소개소를 통해 새로운 이성을 만나 사귄다. 하지만 ‘사랑의 카페’처럼 직접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상대방을 찾는 사람들도 점점 늘고 있다. 밸런타인데이를 하루 앞둔 지난 주 월요일(13일)에는 60여명이 ‘사랑의 카페’를 찾았다. 절반은 2시간 내내 서 있어야 했을 정도였다. ●토론으로 진행되는 단체 데이트 ‘사랑의 카페’는 남녀가 만나 선을 보는 자리지만 이름, 나이, 직업, 취미를 물으며 대화를 이어 나가는 서먹서먹한 우리식의 맞선이나 그룹 미팅과는 거리가 멀다. 단번에 짝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베네딕트의 진행에 따라 자유스럽게 특정 주제를 놓고 의견을 나눈다. 토론식으로 진행되는 단체 데이트라고 할 수 있다. 파리에서 한때 유행했던 철학카페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베네딕트는 “워낙 말하기 좋아하는 프랑스인들이라 그런지 언제나 토론은 활기를 띤다.”고 말했다. 사랑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에 관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면서 이성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기회를 갖는다. 토론의 주제는 블로그(http:///cafedelamour.blogspirit.com)을 통해 미리 알린다. 이날의 주제는 ‘냄새’. 베네딕트는 “냄새가 남녀의 만남과 별로 관계가 없을 것 같지만 뇌와 곧바로 연결된 감각이 바로 후각이기 때문에 사랑의 감정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분홍색 종이를 남자들에게, 파란색 종이를 여자들에게 각각 나눠준다. 상대방의 냄새를 맡아보고 첫 느낌을 적으라는 것이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람들은 옆에 있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손목, 목, 옷깃 등을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열심히 느낌을 적는다. 그러는 사이 어색한 분위기는 눈 녹듯 사라진다. 그 다음은 냄새와 얽힌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는 순서. 발레리(35)는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지만 운동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그의 체취가 너무 강해 헤어졌다.”고 말했다. 클로딘(32)은 “냄새에 반해 한 남자와 데이트를 시작한 적이 있는데 실제로 만나 보니 내가 가졌던 이미지와 완전히 딴판이었다.”며 그다지 길지 않았던 연애담을 털어놓았다. 남자들의 냄새에 대한 반응은 여자들보다 덜 민감하다. 이날 자리를 함께한 아로마테라피스트 마리는 “냄새는 사랑의 감정을 일으키는 중요한 도구”라며 “이성에게 호감을 갖는 경우 나쁜 냄새도 참을 만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 냄새는 상당히 예민하게 감정을 얽매이게 한다.”고 설명했다. ●열린 마음으로 베네딕트는 “다른 사람의 체취를 수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과 같다.”면서 “우선 마음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 순서는 질 로카의 시 낭송. 올해 68세인 이 시인 역시 독신이다. 그는 토론이 진행되는 것을 들으며 즉석에서 시를 지어 참가자들에게 선사한다. 이렇게 2시간 정도 토론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참가자들은 조심스럽게 상대방 관찰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눈치다. 하지만 맘에 드는 이성이 있더라도 당장에 달려가 데이트를 신청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직접 연락번호를 묻기보다는 베네딕트를 통해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한다. 베네딕트는 당사자에게 조심스럽게 그 뜻을 전하고 ‘오케이(OK)’가 나면 서로에게 상대방의 연락처를 알려주는 식으로 만남이 이뤄진다. 이렇게 해서 지난 2년동안 수많은 만남이 이뤄졌다. 한 커플은 결혼에까지 골인했다. 4개월 전부터 매주 월요일이면 ‘사랑의 카페’를 찾는다는 뤼크(37·부동산업)는 “20세에는 달리는 기차에 뛰어 올라타듯 쉽게 사랑을 시작하지만 30대 중반을 넘기면 그냥 역에 앉아 다음 기차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고 만다.”며 “이곳에서는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좋은 짝을 찾을 수 있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에서 여자 친구 카미유(43)를 만나 요즘 데이트 중이다.6년 전 이혼하고 현재 혼자 살고 있다는 크리스티앙(49·사업)은 1년째 이 카페의 단골이다. 그는 “마음에 드는 여성들이 몇몇 있지만 아직까지 데이트를 신청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다음 월요일에도 ‘사랑의 카페’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글 사진 파리 함혜리특파원 lotus@seoul.co.kr
  • [클릭 지구촌 이곳!] 베이징 벼룩시장 판자위안

    [클릭 지구촌 이곳!] 베이징 벼룩시장 판자위안

    |베이징 이지운특파원|판자위안(潘家園)에서는 ‘무엇이 있느냐.’는 것보다는 ‘무엇이 없느냐.’는 물음에 답하기가 훨씬 쉽지 않을까. 공설운동장만한 곳을 가득 메운 좌판과 온갖 잡동사니 더미를 보고난 뒤 떠오른 생각이다. 위안샤오제(元宵節·대보름)를 하루 앞둔 지난 11일 판자위안 골동품시장(潘家園舊貨市場). ●서울 인사동+황학동 벼룩시장 떠올라 서울 인사동과 닮은 점도 있으나 그것만으론 설명이 부족하다. 여기에 ‘황학동 벼룩시장’을 하나쯤 더 얹어야 할 듯하다. 이른바 벼룩시장과 만물시장 성격이 뒤섞인 게 베이징의 인사동으로 알려진 ‘류리창(琉璃廠)’과의 차이점이다. 토·일요일에만 문을 여는 점도 마찬가지다. 베이징 동남쪽 마천루 한 가운데 남은 옛 건물의 솟을 대문에 들어서니 한가운데 정사각형을 이룬 대형 철제 구조물 4개가 눈에 들어온다.1개의 크기가 족히 대형 농수산물 공판장 1개쯤은 되어보인다. 주변을 2층짜리 목조 상가가 두르고 있다.2∼3년쯤 전에는 없던 구조물이다. 한때 철거의 위기를 맞았으나 외국인의 반응이 좋자 정식 건물이 지어지고 상인들이 입주하기 시작했다. 이전의 정취가 퇴색됐다는 아쉬움도 있다. 베이징 최대의 벼룩시장에서 물품을 나열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마는, 고가구·도자기·악기·수공예품·장신구·의류·모자·각종 그림·축음기·도서 등이 즐비하다.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의 옛날 사진부터 초기 공산당의 각종 이념 서적도 널려 있다. ●흥정은 기본… 잘 고르면 진품 골동품도 게다가 흥정도 있다. 예컨대 지압용 호두를 살라치면, 벌써 “청나라 건륭황제가 사용하던…”으로 시작하는 노점상을 만나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200여년이 넘었다는 얘기다. 건륭황제는 청나라 최전성기를 이룬 황제로 중국인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사람 가운데 하나다. 물론 예전에는 진품도 많았다고 한다. 시장엔 근·현대 중국의 체취가 가득하다. 최소한 3세기가 공존하고 있다는 데는 별 이견이 없는 듯하다. “(과거에는)안목있는 사람과 같이 와서 옥이나 벼루같은 제품들을 골라가면 횡재하곤 했다.”는 귀띔도 있다. 요즘에는 판자위안에는 진품은 많지 않고 얼치기 골동품이 늘었다고 한다. 골동품상들의 싹쓸이로 이젠 좋은 물건들이 예전과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줄었다는 얘기다. 어떤 이들은 아예 모두 가짜 취급을 한다. 하지만 어떤 전문가가 아닌 다음에야, 여행의 추억을 되살리는 장식용 물건이나 선물 한 두점을 챙겨오는 데는 충분한 곳이다. 한창 유행을 타고 있는 경극의 탈도 다양하고, 시안(西安)을 가지 않아도 각종 크기의 병마용(兵馬俑)을 구할 수도 있다. 여자를 도망가지 못하게 발을 쌌던 비단 전족도 있다. 아쉬운 게 있다면 주말에만 문을 연다는 점이다. 일정이 빡빡한 한국 관광객들에게 이 곳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장을 돌아나오면서, 마지막으로 들른 고(古)가구 상점들은 한국을 휩쓸고 있는 중국산 고가구 열풍을 떠올리게 했다. 관심이 있는 사람이 마침 베이징을 찾을 기회가 있다면, 한번 들러 시장조사를 해볼 일이다. jj@seoul.co.kr
  • 유부녀가 카바레서 녹아날때

    유부녀가 카바레서 녹아날때

    돈많은 30대 유부녀(有夫女)들을 춤바람으로 유혹, 정을 통하고는 공갈로 돈을 후려내던 상습공갈범 일당 5명이 법망에 걸려들었다. 이른바「제비족」으로 불리는 이들은 한 유부녀를 꾀어내는데 성공하면 그 유부녀를 통해 친목계를 조직, 연쇄적으로 다른 유부녀들을 꾀어내 같은 숫법으로 돈을 후려낸 지능적 공갈범들. 황홀한「탱고·리듬」과 억센 사나이의 체취에 이끌리다 보면 어느새 휘감아 드는 검은 손길. 이 검은 손길의 정체는? 느지막이 춤을 배운 홍(洪)춘자(가명·40)여인은 이 날도 두 춤 친구들과 어울려 서울 미도파(美都波)「카바레」를 찾아 들었다. 1시간쯤「파트너」가 없어 의자에 앉아 있을때 한젊은이가 손을 내밀었다. 35,36세쯤 되었을까? 헌칠한 키에 말쑥한 용모. 자신도 모르게 홍여인은 그 청년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그러나「플로어」에 나서자 홍여인은 또한번 놀랐다. 그사나이의「스탭」이 어찌나 빠르고 멋이 있는지 「리드」를 따라가기 힘들 정도. 「파트너」를 바꾸지 않고 몇곡이고 계속해 춤추었다. 10시가 지나고 11시가 가까웠다. 「라스트·블루스」의 감미로운「멜로디」가 흐르자 사나이의 손길은 억세게 홍여인을 끌어 당겼다. 『다시 만나 뵐 수 없을까요?』이미 홍여인의 자제력은 어디론가 사라진 다음. 홍여인은 순순히 그 사나이와의 재회를 약속했다. 다음은 정해진「코스」. 두번째 만날땐「키스」,세번째 만났을땐 춤이 아니라 거의「패팅」이었다. 네번째 만났을땐 같이「카바레」를 나선 두사람의 발길이 자연스럽게 여관으로 향했다. 이날 밤 홍여인은 젊은 사나이의 품속에서 내일의 두려움을 잊은채 육욕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이것이 68년11월의 일. 남녀관계란 한번 넘으면 그만. 둘은 B여관 S여관들을 전전하며 애정행각을 즐겼다. 그러던중 홍여인은 같이 춤을 배운 최(崔)영희(가명·38·가정주부)여인을 사나이에게 소개했다. 사나이는 자기 친구라면서 권영수(權永洙)(37·은행원)란 사나이를 최여인의「파트너」로 소개했다. 최여인과 권의 경우도 마찬가지. 어떤 때는 두 쌍이 함께 한방에서 자기까지 했다. 그러던중 지난 5월초 사나이는 홍여인을 다시 유혹했다. 여관방을 전전할 것이 아니라 전셋방이라도 얻어 살림을 차리자는 것. 이미 젊은 제비에게 미쳐버린 홍여인은 오산(烏産)에서 갑부로 알려진 남편 황(黃)모(47.가구상)씨에게 달려가 15만원을 훔쳐 서울로 올라왔다. 이 날부터 둘은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었다. 이제 공갈극의 제1막은 끝나고 제2막이 오를 차례. 홍여인을 꾀어낸 춤의 명수는 바로 임준철(林俊喆)(38·수배중). 임에게는 5년전부터 동거해오던 내연의 처 송재숙(宋在淑)(35·구속)이 있었다. 송은 홍여인의 남편인 황씨를 찾아가 홍여인이 자기에게 15만원 빚이 있는데 갚지도 않고 숨어버렸다고 대어 들었다. 난처해진 황씨는 송에게 아내를 우선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송은 홍여인이 임과 달아난 곳을 안다면서 3만5천원의 돈을 뜯어냈다. 여기 공갈행동대로 동원된 것이 임의 친구이자 한 패거리인 전영렬(全英烈)(34·전과(前科)2범·구속) 김찬보(金贊普)(33·前科2범·구속) 송낙준(34·가명·수배중)의 3명. 방면에 걸쳐 공갈로 한 몫보아 온 상습 공갈범들로 여겨지고 있다. 더욱 이들은 유부녀들을 낚아들이는 방법으로 한 여인을 유혹하는데 성공하면 다음엔 그 여인을 통해 친한 친구들을 포섭, 친목계를 조직했단다. 그리곤 계원들을 차례차례로 유혹, 그들로 부터 금품을 긁어냈다고. 현재까지 드러난 이들 일당의 피해자는 약 35명에 달하고 있는데 이중엔 현직 모고관의 부인까지 끼여 있다니 30대 가정주부들의 춤바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만하다. 검찰에 의하면 이러한 유부녀 유혹 공갈단은 서울시내에 만도 7개파가 조직적으로 활동해왔다는 정보를 입수, 그 계보를 파악, 전원 검거할 방침이다. 이들 공갈단의 중요한 호라동무대는 소위「아르바이트·홀」로 알려진 서울의「카바레」들. 그들은 이중에서 돈이 많은 유부녀들을 점 찍어 미리 뒷 조사(가정상황·경제능력등)까지 해 둔 다음 유혹에 착수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행동대와 공갈대로 구분되는데 행동대는 얼굴이 좋아야 하고 춤의 명수라야 한다. 공갈대는 기관원, 형사등을 사칭하며 행동대의 유혹에 걸려든 유부녀나 그 유부녀의 남편에게 공갈, 협박으로 돈을 뜯어내는 역할을 맡는다. 그래서 이 여자는 때로 행동대의 아내가 되는가 하면 피해자의 남편앞에 나타나면 피해자의 친구로 둔갑하기도. 이번 사건으로 검찰에 소환된 피해자 유부녀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이런 일, 남편은 절대 모르고 있으니 제발 사건화 말아주세요』하며 오히려 공갈범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고있다는 것. 실제로 이번 사건의 피해자중 한 사람인 최여인의 남편은 아직도 아내의 부정을 모르고 있다고. [ 선데이서울 69년 6/15 제2권 24호 통권 제38호 ]
  • [서울이야기] (34) 도시마케팅

    [서울이야기] (34) 도시마케팅

    아이 러브 뉴욕(I ♥ NY), 예스 도쿄(Yes Tokyo), 하이 서울(Hi Seoul), 다이나믹 부산(Dynamic Busan), 컬러풀 대구(Colorful Daegu), 홍콩의 드래곤(Dragon), 싱가포르의 멀라이언(Merlion), 진주의 논개, 대구의 패션이, 제주의 돌이와 맹이, 임금님표 이천쌀, 금산의 인삼, 부여의 굿뜨레 공동브랜드, 하이서울페스티벌, 부산국제영화제, 광주비엔날레, 춘천인형극제, 강릉단오제, 인사동 대학로 문화지구, 광주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원주와 나주의 혁신도시….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도시 이미지 슬로건과 상징 캐릭터에서, 지역특산품과 브랜드, 축제와 이벤트, 문화특구와 문화도시, 지역특화 사업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와 방법은 달라도 거의 모든 도시들이 독특하고 매력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더 많은 관광객과 주민과 기업을 유치함으로써 도시발전을 도모하려는 이른바 도시마케팅(City or Urban Marketing) 전략들이다. ●도시마케팅과 서울 문화도시 도시발전 전략의 핵심수단으로서 지역의 독특한 문화와 장소성이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이 점차 커지면서 도시 혹은 장소마케팅에 대한 관심 또한 급격히 증대하고 있다. 도시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구체적이며 살아있는 삶터, 즉 장소들의 집합이다. 도시마케팅은 이러한 장소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해석해 새롭게 기획하고 생성하는 장소정체성 만들기에서 시작한다. 그것을 토대로 문화콘텐츠를 만들고, 상품화·브랜드화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바로 도시마케팅이자 도시브랜드 경영이라 할 수 있다. 서울도 이러한 도시마케팅 전략 수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서울의 이미지와 정체성을 향상시키고, 문화관광과 문화산업을 통해 경제적 파급효과를 창출하며, 삶의 질과 결, 정체성이 묻어나는 도시커뮤니티를 창출하는 것, 그것이 서울마케팅이 추구하는 도시발전의 문화적 내용이다. ●서울마케팅의 출발, 문화월드컵의 도시에서 세계 일류도시 Hi Seoul로 서울 도시마케팅의 출발은 2002년 월드컵이다. 서울시는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지렛대로 삼아,21세기 세계의 중심도시로서 서울의 위상을 정립하고, 방문객들에게 가고 싶고, 기억하고 싶고, 다시 찾고 싶은 서울로 이미지를 개선하여 도시관광역량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시민들에게도 자랑과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시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여 새천년 새서울을 건설하는 것을 장기 비전으로 제시하였다. 이러한 비전을 달성하는 이미지 전략으로서 문화월드컵을 표방하였고,2000년 발표된 문화월드컵 준비 종합계획안에서 처음으로 장소마케팅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아울러 2001년 6월 여러 부서에 분산되어 있던 도시마케팅 관련 업무를 총괄기획, 점검, 조정, 추진하기 위해 ‘도시마케팅 추진반’을 부시장 직할 기구로 마련함으로써 서울마케팅의 조직 기반을 정립하였다. 월드컵을 마치고 민선 3기에 들어서면서 서울마케팅은 기존의 CI(City Identity) 중심의 이미지 전략에서 본격적인 브랜드 전략으로 전환한다. 바로 2002년 10월 선포된 ‘Hi Seoul’ 이미지 슬로건 브랜드다.1971년 서울의 상징물(개나리, 은행나무, 까치)에서 시작된 CI 전략은 1996년 역사와 활력의 인간도시를 상징하는 서울 휘장 선정을 거쳐,1998년 자랑스러운 서울시민을 상징하는 왕범이 캐릭터 개발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통합적인 도시이미지 브랜드로의 자리매김은 Hi Seoul 슬로건에서 사실상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Hi Seoul은 지역간 계층간 격차가 커서 공동체 의식이 부족한 서울의 균형발전과 시민화합을 도모하는 사랑스러운 서울(Lovely Seoul), 배타적이고 불친절한 서울을 개방적이고 친근하게 만드는 친근한 서울(Friendly Seoul), 국제수준에 미달하는 교통·경제·환경·행정을 세계 일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고품격 서울(High Seoul)을 만들어 서울을 세계 일류도시로 끌어올리겠다는 서울시의 비전을 담고 있다. ●서울마케팅 조직 믹스 전략-마케팅 전담조직 시스템의 정비 이러한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서울마케팅을 전담해 추진할 조직이 필요하다. 서울시는 서울시와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민관협의체가 서로 연계된 민·관·연 조직 믹스 전략을 추진해왔다. 우선 서울시 내에 서울마케팅을 전담하는 ‘마케팅 담당관’을 2002년 7월에 만들었다.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임시기구로 만들었던 도시마케팅 추진반을 상설조직화한 것이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는 서울마케팅 연구를 전담하는 ‘서울마케팅연구센터’를 2002년 10월에 만들었다. 이 역시 월드컵 당시 정책 지원을 맡았던 월드컵지원연구단을 확대 개편한 것이다. 민관협의체로는 ‘서울컨벤션뷰로’를 2004년 12월에 설립하였다. 아직 3자가 밀접한 연계 활동을 추진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지만, 정부와 연구소와 민간기관이 파트너십을 이루는 도시마케팅 조직 시스템의 전례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한 언론기관에서 실시한 대한민국 마케팅 베스트 사례 선정에서 서울시는 정치행정마케팅 분야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서울마케팅 브랜드 전략-노래브랜드에서 공간브랜드까지 서울마케팅의 상품브랜드들은 다양하게 기획되고 있다. 무엇보다 Hi Seoul 대표 슬로건을 활용한 이미지통합 브랜드들을 들 수 있다. 가수 보아와 김도향을 통해 만들어 전화대기음과 방송에서 사용하고 있는 ‘서울의 빛’‘서울 징글송’과 같은 하이서울송 노래브랜드를 비롯해,2003년 서울의 대표축제로 기획돼 올해부터 서울문화재단이 주관하여 개최하는 하이서울 페스티벌 축제브랜드, 패션과 정보통신, 문화콘텐츠 등 서울형 산업에 종사하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공동 홍보와 마케팅을 지원하는 하이서울 공동브랜드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고구려 시대 한강의 이름을 활용한 수돗물브랜드 ‘아리수’, 조선시대 통금해제 타종의 명칭을 따온 시청의 시계브랜드 ‘바라’도 작지만 서울을 마케팅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서울마케팅 브랜드로서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서울이라는 공간 그 자체, 즉 서울 시민들의 삶의 체취가 녹아 있는 장소들로 이루어진 공간브랜드(혹은 하드브랜드)들이다.‘열린 청계 푸른 미래’를 대표 슬로건으로 별도의 장소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있는 청계천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서울그린트러스트를 만들어 시민 주도로 조성한 서울숲과 다양한 문화행위들이 일어나는 서울광장도 서울의 대표적인 공간브랜드들이라 할 수 있다. ●서울마케팅 타깃 전략-시민, 관광객, 기업을 잡아라 서울마케팅의 타깃은 시민과 관광객, 기업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 특히 서울을 동북아 비즈니스의 중심도시로서 기업하기 좋은 도시이미지를 창출하기 위한 기업 타깃의 투자유치 마케팅이 집중적으로 추진돼 왔다. 서울시내에 투자유치담당관과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해주는 BIZ 119 및 외국인지원센터를 만들고, 다양한 외국인투자협의체(SIBAC,FIAC,STM 등)를 만들어 외국 기업가들과 상시적인 소통 채널로 이용하고 있다. 또한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에 디지털 관련 산업을 유치하고, 외국인전용아파트 건립을 추진 중이며, 여의도에는 서울국제금융센터를 건립하기 위한 협약을 체결한 상태다. 최근에는 서울컨벤션뷰로를 출범시켜 컨벤션 마케팅과 관광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 ●서울마케팅 채널 전략-스포츠마케팅에서 하이서울홍보대사까지 서울마케팅 수단 혹은 방법으로는 우선 스포츠를 활용한 스포츠마케팅 채널을 들 수 있다.FC 서울 축구구단을 만들고,LG 트윈스, 두산 베어스, 삼성 썬더스,SK나이츠 등 서울연고 프로스포츠 팀들과 협약을 맺어 Hi Seoul 브랜드를 활용한 예를 들 수 있다. 그 외에 하이서울 외국인 마라톤대회나 월드 사이버게임과 같은 스포츠이벤트를 통해 다양한 계층에 서울의 이미지를 알려나가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마케팅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시 통합 홈페이지를 구축하고, 하이서울뉴스와 하이서울 알림이를 통해 실시간 서울소식을 전달하고 있으며, 서울을 사랑하는 시민모임인 서울사랑 커뮤니티가 사이버공간에서 활동 중이다. 미디어를 통한 서울마케팅, 즉 미디어 PPL(product placement) 채널 전략도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서울시 홍보팀장 역할을 하는 주인공이 TV 드라마를 통해 서울을 홍보하기도 하고(일요시트콤 ‘아가씨와 아줌마 사이’), 서울의 야경을 촬영하게 하여 하이서울 브랜드를 영화에 노출시키거나(영화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 서울의 주요 공간들을 영화의 배경으로 활용하게 하는 등(영화 ‘서울공략’)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최불암, 조수미, 보아 등을 비롯한 18명의 하이서울홍보대사를 위촉해 서울이미지 홍보의 채널로 활용하는 전략도 주요한 서울마케팅 채널이라 할 수 있겠다. ●서울마케팅의 과제 다시 월드컵의 해가 밝았다.2002년 월드컵이 서울마케팅의 초석을 놓게 한 계기가 되었다면, 이제 서울마케팅의 기본목적과 정신을 시민과 함께 되새기며,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이며 조직적인 서울마케팅 전략의 토양과 기틀을 확립해야 하지 않을까. 서울의 이미지보다는 정체성과 진정성을 더 생각하는 마케팅, 서울시민의 삶에 신명나고 즐거운 혼을 불어넣는 마케팅(즉,Soul in Seoul)을 기대해본다. 월드컵때 그랬던 것처럼…. 이무용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도시사회연구부 부연구위원
  • [길섶에서] 연하장/임태순 논설위원

    연초라서 그런지 연하장이 심심치 않게 배달된다. 이메일 또는 우편물로도 받는다. 우편으로 연하장을 받으면 우편배달부 아저씨들이 지난 연말과 연초에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카드나 연하장을 받으면 뭔가 좀 허전하다는 느낌이다. 보내는 사람의 정이나 체취, 온기가 덜하다. 철 지난 연하장 가운데 무릎을 치게 만든 것이 하나 있었다. 보내는 사람의 이름이 두개 적힌 것 외에는 여느 카드나 연하장과 다름없는 평범한 것이었다. 당연히 부부의 이름이라는 짐작이 들었지만 신년인사 겸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하나는 부인의 이름이라는 말과 함께 평소에도 친척이나 친지들에게 편지 등 소식을 전할 때에는 부부의 이름으로 보낸다는 답변이었다. 여풍당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회 각계에서 여성의 약진이 두드러지지만 아직도 많은 아내, 또는 어머니의 이름은 남편, 또는 아버지의 이름 뒤에 묻히는 것이 현실이다. 연하장을 보낸 이의 부인을 본 적이 없었지만 남편과 나란히 적혀있는 이름에서 그들 부부의 사랑과 행복이 새록새록 전해져왔다. 가정의 행복을 주위에 전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중의 하나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 새해 온라인 집필 시작한 유홍준 문화재청장

    “창덕궁에는 400여년 전 호랑이가 나타났고, 인왕산에는 120여년 전까지도 호랑이를 볼 수 있었답니다.” 베스트셀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저자인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오랜만에 펜을 들었다. 이번에는 오프라인 책이 아니라 문화재청이 홈페이지(www.cha.go.kr)를 통해 1일부터 연재를 시작한 ‘국민과 함께하는 문화유산 이야기’(가칭)코너를 통해서다. 유 청장은 일주일에 한차례 정도 이 코너를 통해 우리 문화유산에 얽힌 재미있는 역사적 내력과, 문화재 이해를 위한 정보 등을 알기 쉽게 풀어쓸 예정이다. 미술과 문학의 역사를 넘나들며 선인들의 삶의 체취를 씨줄과 날줄로 엮은 ‘21세기판 문화유산 이야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유 청장뿐 아니라 소재구 국립고궁박물관장, 김봉건 문화재연구소장과 문화재청 직원들도 필자로 참여한다. 이들은 문화재 보수·수리 등에 얽힌 뒷이야기 등을 생생하게 전달할 예정이다. 유 청장이 첫 글의 소재로 삼은 것은 ‘창덕궁과 호랑이’. 지난해 12월 창덕궁관리소가 발간한 ‘창덕궁 600년’에 실린 ‘조선왕조실록’에 소개된 호랑이의 출현을 읽으면서 느낀 소회를 담았다. 그는 “선조40년(1607년) 등 수차례 창덕궁에 호랑이가 나타났고 북악산에서 잡혔으니 어릴 적 듣던 ‘인왕산 호랑이’ 전래민요도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 “지난해 10월에는 멧돼지가 창덕궁에 나타나 훗날 ‘창덕궁 700년’ 책에는 호랑이 대신 멧돼지 출현에 대한 글이 실릴지 모르겠다.”고 적었다. 한편 문화재청은 오는 20일까지 ‘문화유산 이야기’코너 명칭을 공모, 당선작 1편과 가작 2편에 각각 30만원,10만원씩 포상한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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