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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옐친, 프리마코프총리 해임

    ?媤凋뵀㈈?AFP AP 특약?屎만?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12일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총리를 경질하고 세르게이 스테파신 부총리 겸 내무장관을 총리서리로임명했다고 크렘린궁이 발표했다. 옐친 대통령은 이날 오후 텔레비전을 통해 발표한 성명을 통해 “프리마코프 총리가 9개월간의 재임 중 국정을 훌륭하게 운영해왔으나 러시아 경제를부흥시키는 데 실패했다”며 경제정책 실패가 주된 경질 이유라고 밝혔다.스테파신 총리서리는 옐친 대통령의 측근 중 한 사람으로 체첸전쟁을 주도한강경파로 알려져 있다. 한편 13일 두마(하원)는 옐친 대통령에 대해 정치,경제적 실정책임을 물어탄핵심의에 착수할 예정이다.
  • 독립의 봄 찾아 수십년간 피의 투쟁/지구촌 민족·종족 분쟁

    *쿠르드 4,000년간 나라없는 유랑민족 터키정부의 쿠르드인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의 체포로 쿠르드인 문제가 국제사회의 초점이 되고 있다.4,000여년동안 나라없는 슬픔을 겪고 있는 쿠르드인은 지구촌 최대의 유랑민족.‘중동의 집시’라는 별명에 걸맞게 2,200만명으로 추산되는 이들은 터키(1,200만명)를 비롯,이란(400만명)·이라크(400만명)·시리아(100만명)·아르메니아 등에 흩어져 살고 있다.쿠르드어를 사용하고 있으며,99%가 이슬람교를 신봉하고 있다. 해발 3,000m의 고원·산악지역에 위치한 쿠르드인 집단거주지 ‘쿠르디스탄’의 대부분이 터키 영토에 속하는 탓에 이들의 독립 요구는 터키 정부의 최대 현안이었다.수천년동안 오스만 터키제국 등 이민족의 지배를 받아온 쿠르드인은 1차대전 이후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어 독립국가 건설에 대한 희망을 가졌다.1920년 연합국과 오스만제국이 맺은세브르조약에서 쿠르디스탄을 국가로 승인한다고 규정한 탓이다. 그러나 23년 터키가 다시 군사강국으로 부상,이 조약은휴지조각이 돼 악연이 시작됐다.터키는 쿠르드인을 ‘산악 터키인’으로 부르며 쿠르드어 사용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주요 도시에서 쿠르드인의 고유의상을 입는 것까지도금지하는 등 철저히 탄압,쿠르드인의 증오심을 키웠다.이 때문에 74년 오잘란을 중심으로 쿠르드노동당(PKK)이 결성돼 반(反)터키 독립투쟁을 벌였다.PKK는 84년 이후 본격 무장투쟁을 전개,이 과정에서 3만명 이상의 희생자와 30만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해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쿠르드인의 끈질긴 추구에도 불구하고 독립국가 건설 전망은 밝지 않다.쿠르드인 내부적으로 분열된 데다 열강들도 자국의 이익에 따라 쿠르드인을 교묘하게 이용할 뿐,독립국가 건설에 미온적이다. *코소보 '분리독립'요구에 학살로 대응 새해 들자마자 신유고 연방의 세르비아 공화국은 남쪽 코소보주에서 분리독립을 외쳐온 알바니아계 주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수십명의 무고한 양민이 처참히 살해된 이 사건은 지난해 10월 가까스로 체결됐던 세르비아 정부측과 알바니아계 주민 간의 휴전협정을 일거에 무효화하면서 코소보 ‘피의 역사’가 진행중임을 여실히 입증했다.발칸반도의 새화약고 코소보 민족분쟁은 138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당시 막강 대국의 오스만 터키 제국은 세르비아 왕국의 근원지인 코소보를 점령,이곳에 이슬람교도인 자국내 알바니아계 주민들을 정착시켜 인구의 90%를 차지하게 했다. 그러나 20세기초 터키 제국의 지배가 끝난 뒤 코소보는 다시 기독교 신앙의세르비아에 편입됐고 이때부터 끊임없이 인종·종교 갈등을 겪게 됐다. 특히 지난 89년 ‘대(大)세르비아’를 주창한 밀로셰비치(현 신유고 대통령) 당시 세르비아 대통령이 코소보의 자치권을 박탈하고 알바니아어 사용까지 금하자 이곳 주민의 분리독립운동도 거세지기 시작했다.96년 알바니아계 무장단체 코소보해방군(KLA)의 등장은 이후 세르비아 정부군과의 유혈충돌을불러오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국제사회의 ‘무력 중재’로까지 이어진 코소보 사태는 지난 한해에만 2,000여명의 알바니아인들을 희생시켰는가하면 수십만명을 난민으로 떠돌게 하는등 참혹의 도를 더해갔다.방관적이던 국제사회도 프랑스 랑부예로 양측을 불러들여 평화회담을 벌이도록 종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 티모르,印尼서 내년 1월 독립허용 시사 23년간 인도네시아의 압제에 신음했던 동티모르에 최근 봄 소식이 잇달았다.그러나 독립의 진짜 봄이 올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지난 10일 인도네시아 정부는 92년 수감했던 동티모르 독립운동 지도자 사나나 구스마오를 석방했다.이어 11일 하비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2000년1월에는 더 이상 동티모르 문제로 시달리기 싫다”면서 동티모르 독립허용을 시사했다.석방된 구스마오는 가택연금 상태지만 인도네시아 정부와 독립문제를 협상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동티모르가 독립을 달성하기까지는 아직도 넘어야할 산이 많다.인도네시아 내에는 야당지도자 메가와티를 비롯한 강한 정치세력이 동티모르 독립을 반대하고 있어 인도네시아의 정세에 따라 현재의 분위기가 급변할 수있다. 인도네시아 동쪽 끝에 있는 동티모르는 400년 동안 포르투갈 식민지배를 받아오다 1975년 독립했으나 1년도 안돼 인도네시아의 27번째주로 강제 합병됐다. 이때 동티모르인 70만명 중 20만명이 학살당했다.인도네시아 정부의 심한인권유린이 자행되는 가운데 91년 180명이 희생된 ‘산타크루즈 대학살’과같은 독립투쟁이 이어졌다. 지난 96년 인도네시아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고발한 카를로스 벨로 주교와호세 라모스 호타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계기로 국제사회는 동티모르에 주목하게 됐으며,지난해 수하르토정권 축출 후 독립운동이 한층 거세졌다. *세계 주요 민족 분쟁 지역 [티벳]90년대부터 중국 자치구에서 분리독립하려는 움직임 표출.클린턴 미 대통령98년 중국방문 중 망명중인 달라이 라마와 대화를 할 것을 장쩌민 주석에게호소. [카슈미르]47년 인도,파키스탄 분리 후 귀속을 둘러싸고 2번 전쟁.89년후 분쟁격화 1만2천명 사망. [스리랑카 내전]인도 남부에서 이주한 힌두교의 타밀족 83년부터 분리독립 무장투쟁.5만명사망. [보스니아]4년간 20만명 사망한 내전이 95년말 협정체결로 종식됐으나 세르비아계 강경파 지도층 득세중. [바스크]이민족 스페인으로부터 분리독립을 요구해온 과격파 ETA(바스크 조국과 자유)가 지난해 말 30년만에 무기한 정전 선언. [체첸]러시아 정부와 분리독립 전쟁으로 3만명 사망.96년말 2001년까지 정전 합의. [나고르노·카라바흐]아제르바이잔 공화국 안에 섬처럼 있는 아르메니아족 거주지역.88년부터 아르메니아 공화국 귀속 투쟁. [키프로스]그리스계 80%,터키계 20%.83년 북부에 터키 승인한 독립국 생긴 후 그리스,터키 긴장고조. [르완다]94년 후투족 50만명 투치족 학살.200만명 난민. [브룬디]93년 이후 다수파 후투족과 소수파 투치족 항쟁 격화.97년 투치족 군사쿠데타 집권.
  • 옐친 탄핵안 새달 투표할듯

    【모스크바 AP 이타르타스 연합】 러시아 하원(국가두마)은 오는 11월 보리스 옐친 대통령에 대한 탄핵 결의안을 투표에 부칠지도 모른다고 겐나디 셀레즈 뇨프 하원의장이 17일 밝혔다. 셀레즈뇨프 의장은 94∼96년의 체첸내전 종식 실패와 91년 옛 소련 붕괴,93년 10월 의사당을 점거한 의회내 강경파에 대한 강제진압 등 3가지 사건의 책임을 물어 탄핵 소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레베드·야블린스키·주가노프/러시아 정국 주도 3인방

    ◎레베드/민족주의 색채 강한 국가적 영웅 러시아 군사령관 출신으로 강력한 카리스마의 소유자.공산당에 반대하는 자유주의적 애국주의자로 민족주의 성향이 강하다.지난 96년 10월 2인자로의 부상을 참지 못하는 옐친에 의해 국가안보회의 서기직에서 해임됐다.지난 5월 현직 지사를 압도적인 차로 누르고 시베리아의 크라스노야르스크 주지사에 당선됐다.92년 몰도바군과 러시아분리주의자들의 분규를 타결하고 96년 21개월간의 체첸 내전을 종식시켜 국가적 영웅으로 인식돼 왔다. 강력한 지도력과 이미지로 러시아가 혼란으로 치달을수록 인기가 오르고 있다. ◎야블린스키/지지계층 넓은 탁월한 경제학자 의회(하원)에서 41석을 점유하고 있는 개혁주의 성향의 야블로코당(黨) 당수.정치적으로는 민주자유주의,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주의에 입각한 온건 개혁주의자다.지식인과 기업인 등에 이르기까지 지지계층이 폭넓다. 금융위기 등을 정확히 예측,상황판단력을 인정받아왔다.90년 고르바초프 정권 말기 부총리를 지내면서 ‘500일 경제개혁안’을 입안,세계적인 각광을 받은 경제학자다.한때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주가노프/96년 대선서 고배… 연방 공산 당수 온건하고 합리주의적 성향을 지닌 러시아 연방 공산당 당수.지난 96년 대선에서 옐친과 결선투표까지 갔으나 박빙의 차로 패배했다.25∼30%의 기본 지지층을 갖고 있다. 90년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에 반대해 주류 연방 소비에트당에서 이탈한뒤 강경 러시아 공산당 정치국원으로 부상했다.93년 10월 옐친이 의회를 거점으로 한 보수파 진영을 탱크로 진압한 뒤 공산진영에서는 유일하게 총선에 참여했다.
  • 러 크라스노야르스크州知事 당선 레베드(뉴스의 인물)

    ◎2년여 정치공백 깨고 재기/차차기 대선 노리는 골수 민족주의자 17일 실시된 시베리아 크라스노야르스크주의 주지사 결선투표에서 당선된알렉산드르 레베드 전 국가안보위원회 서기(48)는 차차기 러시아 대선을 바라보는 야심찬 인물.그는 크라스노야르스크주의 2백80만 유권자중 65%가 참여한 이번 선거에서 57.22%를 득표,38.27%에 그친 발레리 주보프 현 주지사를 큰 차이로 물리치고 압승했다. 몰도바주둔 14군 사령관 출신인 그는 평소 드골이나 피노체트같은 강력한 군출신 지도자들을 존경하는 러시아 민족주의자로 정평이 나있다.‘강한 러시아’란 민족주의적 기치 아래 96년 대선에 출마했던 그는 당시 1차 투표서 3위(15%의 득표)를 차지,새로운 킹 메이커로 떠오르기도 했다. 실제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그때 레베드를 영입함으로써 호각지세를 이루던 겐나디 주가노프 공산당수와의 대결에서 승리했다.그러나 96년 8월,레베드가 2년을 끌어오던 체첸전쟁의 협상대표로 평화협정을 순조롭게 이끌어내며 인기가 치솟자 옐친은 그해 10월 ‘쿠데타 음모설’을 빌미로 그를 토사구팽의 제물로 삼아버렸다.한편에서는 그가 지나친 야심과 부족한 팀워크로 인해 옐친 측근들로부터 밀려났다는 설도 나돌았었다. 이후 정치권에서 완전 소외됐던 레베드는 아무 연고도 없는 중부 시베리아의 크라스노야르스크를 재기의 발판으로 선택했고 마침내 2년여의 정치적 공백을 깨고 러시아 대권까지 노릴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러시아인들에게 ‘기회, 또는 유배’의 상징으로 알려진 시베리아가 그에겐 바로 기회의 땅이 되었던 것이다.
  • 체첸공화국 국명 바꿔/이츠케리아 체첸共으로

    【모스크바 AFP 연합】 체첸공화국은 25일 국명을 이츠케리아 체첸공화국으로,수도 그로즈니를 조하르로 각각 개명했다. 체첸공화국 의회가 헌법 개정을 통해 국명과 수도명을 바꾼데 따른 이같은 조치로 모든 공문서 등에 새 이름이 쓰이게 될 것이라고 인테르팍스 통신은 전했다. 수도명 조하르는 체첸공화국 독립을 위한 무장항쟁 도중 지난 96년 4월 체첸 남부에서 폭사한 조하르 두다예프의 이름을 딴 것이다.
  • 민주주의로 가는 러시아/제프리 머렐(미래를 보는 세계의 눈)

    ◎러 민주화는 거역할수 없는 흐름/소련 붕괴 시작의 해는 1989년/옐친 대통령 당선이 대세 못박아/국가 통합 실패 러 정치인들 질타 【모스크바=유민 특파원】 “제프리 머렐(Geoffrey Murrell). 그만큼 러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꿰뚫고 있는 사람은 없다”영국의 브라이언 폴경이 ‘민주주의로 가는 러시아’란 책의 서문에서 저자 머렐을 평가한 대목이다.폴경은 이미 러시아 주재 영국대사를 역임한 적이 있어 머렐에 대한 이같은 평가는 권위를 갖는다. 머렐을 아는 이라면 누구라도 폴경의 지적에 동의하게 된다.머렐은 영국 외무성에서 ‘러시아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인물이다.외교관시절 대부분을 소련과 러시아 관련업무에 보냈다.러시아 최근세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로 일컬어지는 소련 공산주의의 붕괴 과정시기를 모두 목격하는 ‘행운’도 지녔다. ‘민주주의로 가는 러시아’(원제 Russia's Transition to Democracy)는 이같은 배경에서 나왔다.러시아어에 대한 탁월한 언어감각,소련시대 정치인들에 대한 머렐의 이해력은 그의 평가를 높이는 중요한 대목들이다.외교관의 현장감에다 분석력을 곁들임으로써 그는 책 전반을 하나의 주제로 꿰 뚫었다.“러시아가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도도한 흐름이다”. 머렐은 정치학계의 논란이 되고 있는 소련붕괴 시작의 해를 1989년으로 본다.당시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는 갈팡질팡거렸고 동유럽에서 개혁이란 낱말들이 봇물터지듯 터져나왔다.그는 소련붕괴를 완성시킨 사건으로 1996년 보리스 옐친대통령이 공산당 당수인 게네디 주가노프를 꺽고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것을 꼽았다.러시아가 민주주의로 이행하는데 있어 전환기가 되는 역사적 사건이란 평가다. ‘대전환기의 러시아:문제는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제1부는 다소 연대기적인 표현이지만 작가의 꼼꼼한 분석적 해석력이 돋보인다.변혁의 고통은 일반인들이 예견했던 것보다 훨씬 컸고,고르바초프와 옐친이 똑같이 상황을 악화시키는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도 지적한다.머렐은 그러나 두사람에게 대세는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강했다고 덧붙인다.이과정에서 ‘민주주의와 서방’이라는 단어는 러시아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됐다는 설명이다. 나토의 팽창 문제도 지적됐다.나토의 팽창은 ‘러시아의 베르사이유 콤플렉스’를 더욱 악화시킨다면서 서방의 ‘우월주의‘에 경종을 울린다.러시아에 대한 미미한 서방의 각종 지원이나 때놓친 지원 등에 대해서도 빠뜨리지 않고 있다. 머렐의 연대기적 역사서술에 대한 해석력은 돋보인다.이미 독자들이 각종 배경들은 잘 알고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했다.그의 스타일은 너무 전문적이어서 독자들이 사전에 러시아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최신 정보들을 알것을 요구하기도 한다.그는 화려한 문장도 없이 뼈대만 간단하게 서술하고 있다.머렐은 니나 안드레예바라는 이름을 아무런 배경설명도 없이 쓰는 ‘실수’도 범한다.개혁을 비난하는 그녀는 데이비드 렘닉의 저서 ‘레닌의 무덤’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알 수 없는 인물이다.그의 책은 그만큼 내용이 풍부하다는 이야기다. ‘민주주의로 가는 러시아’는 간결하지만 무미건조하지 않다.재미있으면서도 비밀스런 자료를 많이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옐친이 1990년 고르비의 개혁을 들어 ‘뱀과 고슴도치의 결혼’이라고 한 대목도 재미있다.1993년 개혁반대세력이었던 알렉산드르 루츠코이 전부통령이 이고르 가이다르 부총리팀의 개혁을 ‘핑크빛 맘보바지를 입은 젊은 아이들’로 표현한 대목에도 패러독스가 들어있다. 그러나 이 책의 정수는 ‘고르바초프에 대한 탐험’이랄 수 있다.머렐은 고르바초프의 ‘동기와 행동’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도 깊히 천착했다.고르비는 1991년 쿠데타 6개월전에 이미 정치적·이데올로기적 한계상황에 도달해있었다고 머렐은 적고 있다.그때 이미 통제력을 상실해있었고 그 자신이 ‘인질’이 돼 망설이고 있었다고 평한다.의심이 더해지자 그는 당연히 알고지내던 강경 공산주의자쪽에 붙었다.그는 동시에 알려지지 않은 민주주의 세력에 대해서도 이해하기 시작했다. 1993년 의회반란에 가담자 루츠코이와 하스블라토프 전하원의장에 대한 서술은 날카롭기 그지없고 이들의 공상에 대한 해독을 설득력있게 그려내고 있다.하지만현대 민주주의자들에 대한 비난도 설득력을 지닌다.국가분열을 통합시키는데 실패하고 있으며 일부 민주주의자들은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 뛰고 있음을 지적한다.자민당 당수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에 대해서는 그가 결국 KGB(옛소련비밀경찰)추종자임을 주장한다. 옐친에 대한 서술은 다소 실망스럽다.옐친대통령의 첫임기 시절은 허송세월로 보냈다고 할 정도로 비판적인 부분이 많다.정상외교에서 술에 취해 만남을 이루지 못한 일,근무시간의 잦은 음주,이유없는 퇴청 등으로 점철된 것이 그의 첫임기였다.머렐은 이러한 것들을 서술하긴 했지만 ‘왜?’에 대한 분석은 하지 않았다. ‘민주주의로 가는 러시아’라는 책을 계기로 체첸전쟁에 대한 새 사실들이 정리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1995년 체첸지도자 조하르 두다예프가 클린턴과 옐친대통령의 모스크바 정상회담을 깨뜨리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는 설,옐친의 정전명령을 거역한 쪽은 오히려 러시아군이었다는 설들이 이제는 설(열)아닌 ‘역사적 진실’로 정립돼 가고 있는 것도 이 책의 큰공적이다. 원제 Russia's Transition to Democracy:An Internal Political History,1989­1996. 서섹스 아카데미 프레스(Sussex Academic Press)출판.276쪽.32달러.
  • 러 마지막 황제 유해 선왕 품으로

    ◎니콜라이 2세,볼셰비키 처형 80년만에/7년간 과학적 검증… 황실성당 안장키로 【모스크바=유민 특파원】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2세와 가족들이 볼셰비키 혁명대원들에 의해 총살된지 꼭 80년만인 오는 7월17일 선왕들이 묻혀 있는 상트 페테르부르그 피터폴 성당에 안장된다. 이들의 유해는 91년 우랄지방 예카테린부르그시에서 발굴된 뒤 진위 여부를 놓고 지난 7년 동안 논란이 계속돼 왔으며 과학적인 검증방법이 총동원되는 등 국제적인 관심을 끌어왔다. 보리스 넴초프 제1부총리가 이끄는 ‘유해진위조사팀’은 지난 2일 “91년 발굴된 유해는 니콜라이2세와 그 가족들인 것으로 최종 확인됐으며 이에 따라 7월 17일 피터대제 이후 로마노프왕가 후손들이 묻혀 있는 ‘피터성당’에 묻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조사팀은 95년에도 이들 유해가 마지막 황제 가족의 것임을 확인했으나 러시아 정교회측이 ‘과학적인 검증이 더 필요하다’는 견해를 내놓아 최근까지 검증작업이 계속돼 왔다.확인작업에는 러시아 미국 영국 스위스 등의 화학분석 전문가 수십명이 동원돼 정밀 유전자 감식을 했으며 체첸 전쟁때 시신확인을 위해 쓰였고,세계최고를 자랑하는 최첨단 성분 분석기기(러시아제)도 투입됐다. 문제는 이와 관련한 여론,특히 러시아정교회의 입장이다.정교회는 교회와 황권이 공산혁명의 피해자라는 관점에서 그동안 마지막 황제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져왔다.일부 정교회에서는 니콜라이2세를 ‘성인’의 반열에 올려놓을 정도다. 정교회 사제단은 정부결정이 나자 “정부결정에 따를 것이며 안장때 러시아정교 예식을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사제들과 러시아 밖의 정교회인사들은 그러나 “정교회측이 니콜라이2세에 대한 시성식을 예정하고 있는데 만에 하나 ‘가짜’임이 드러나면 거짓숭배에 대한 파장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며 신중한 결정을 정부에 촉구했다. 니콜라이황제와 부인 알렉산드라,5명의 자녀,하인들은 1917년 10월 혁명 발발후 시베리아 유배지인 예카테린부르그까지 끌려갔으며 이듬해 7월 17일 예카테린부르그 이파티예프가의 지하실에서 볼셰비키 혁명 저격수들에 의해 총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체천 독립선포/체첸회교공으로 명명

    【모스크바 연합】 아슬란 마스하도프 체첸공화국 대통령은 5일 이날부터 체첸공화국의 명칭을 ‘체첸회교공화국’으로 명명한다고 선포했다. 마스하도프는 “우리는 독립을 쟁취했으며 이제 새로운 국가가 됐음을 선포한다”고 말했다고 이타르타스통신이 보도했다.
  • 러시아·서방 진정 ‘밀월관계’인가/예브게니 바자노프(지구촌칼럼)

    불과 몇개월전.러시아와 서방국가 사이에는 한때 새로운 냉전분위기가 감돌았다.많은 러시아 정치인들은 러시아에 우호적이면서 동시에 서방에 ‘대적할’파트너를 찾았다.중국과 이란 이라크 등이 그들이다. ○나토팽창 상당히 제한 이러한 경향은 씻은듯이 사라졌다.우선 크렘린은 지난 5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협정을 체결했다.나토팽창의 규모,속도가 상당히 제한됐고 러시아는 지도국가로서의 정치적인 이득을 취했다.또 다른 괄목할만한 외교적인 성과가 잇따랐다.위기로 치닫던 우크라이나와의 관계가 정상화됐고,얼마되지 않아 전통적으로 적대관계였던 일본과의 관계가 한층 개선됐다.러시아는 공식적으로 일본과 미국의 방위조약을 처음으로 인정했고 일본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에도 찬성했다.일본은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 가입반대의사를 철회했으며 지난 6월 미국 덴버에서 열린 선진7개국정상회담(G­7)에 러시아가 포함되는데 큰 역할을 해주었다.이른바 ‘G-8’은 옛소련이 무너진 뒤 상심해 있던 러시아에 자긍심을 다시 불러 일으켜주었다.현재 서방과의 관계에 대해 러시아정부나 언론들은 한결같이 낙관적이다.서방측은 러시아의 ‘야망’을 충족시키려 각종 제스처를 취하고 있고 러시아에 대규모 신용차관,직접투자를 행하기 시작했다.이러한 경향이 나타나는 것은 러시아 내부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옐친정부는 젊고 실용주의적 사고를 가진 경제학자 혹은 행정가들로 젊은 내각진용을 새로 짰다.정부 정책결정은 주로 추바이스 제1부총리나 넴초프 제1부총리가 주도적으로 한다. 이들은 시장경제개혁에 앞장서는 한편 개방되고 자유주의적인 외교정책을 구사한다.공산·민족주의세력에 강한 반기를 든다.젊은 개혁자의 손아귀에서 예산이 대폭 절감되고 합리적인 조세제도가 채택됐다.유류,전력,철도등 다른 기간시설을 민영화,경쟁력을 갖추게 했다.체첸공화국과의 싸움도 멈췄고 체첸정부에 대해 더 이상의 적대감을 갖지않게 했다.마침내 크렘린은 이들 젊은 개혁주도세력의 덕택으로 서방,나아가 다른 발전된 선진공업국과의 협력의 물꼬를 튼 셈이다.서방쪽에서 보자 서방국가들은 크렘린내 개혁세력이 자리를 잡자 긍정적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옐친과 러시아정부를 접촉하면서 점차 신뢰와 융통성을 가져나갔다. ○미·일 방위조약 인정 러시아의 이같은 새로운 경향들은­1990년 초기에 그랬던 것처럼­곧장 중국,인도,아랄해주변국,이란,아프가니스탄 등의 국가들을 무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크렘린은 점점 현명해지고 있고 정치전략과 경제적 이익을 고려할 때 그럴 수는 없다.이들 국가와의 관계강화가 곧 바로 서방과의 관계악화를 의미하는 것 또한 아니다.구체적으로 한국의 경우를 보자.한국과의 관계의 경우 러시아에선 누구나 지속적이고 한층 협력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한다.모스크바정부는 이같은 역동적인 극동지역 이웃과 경제관계를 촉진하는데 큰 관심을 보인다. 대우,삼성,현대는 이미 러시아의 상품인 듯 경쟁국 일본상품을 따돌리며 러시아시장을 주름잡는다.그러면서 크렘린은 한국의 조기통일을 진실로 열망한다.왜냐면 강한 한국만이 극동에서 중국,일본과 세력균형을 이루게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러시아는 서방국이 벌이는 평화적인 한반도 4자회담노력을 환영했고 남북한간 점진적인 화해와 협력을 원한다.모스크바와 서울정책의 유사성은 한반도 문제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아시아·태평양지역과 나아가 세계무대에서 둘은 상당한 정책의 유사성을 공유한다. ○한반도 조기통일 열망 그렇다면 러시아와 서방은 그 관계가 전성시대인가.그렇지는 않은 것같다.국내외적으로 여러 잠복해 있는 문제를 보자.우선 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등 발틱해의 옛소련공화국 국가들이 나토에 편입하려 하고 있다.2,3년후 실제 그렇게 되면 러시아는 북대서양조약기구와 맺은 조약을 전면 파기할 것을 위협하고 있다.또 러시아가 급진적인 아랍국가,중국등에 무기판매를 한층 강화하면서 러시아와 서방국간에 긴장감이 조성될 수 있다.크렘린과 서방은 동유럽국가들과 우크라이나,그루지아,아제르바이잔 등 독립국가연합국가들의 문제에 있어서도 의견충돌이 예상된다. 러시아 국내적으로,야당세력인 공산주의와 민족주의세력들이 끊임없이 옐친정부를 괴롭히려 들 것이다.서방이 러시아를 조종하는 사이 러시아는 더욱 종속되고 약해지며 러시아의 국익이 손상된다고 이들은 보고 있다.야당지배의 의회는 전략무기제한협정,각종 군축협정에 사사건건 반대하고 있는 실정이다.서방과의 관계발전에 치중하다 보면 국내개혁이 다소 늦춰질 수도 있다. 이러한 부정적인 움직임들의 강도는 향후 러시아 경제안정,사회상황에 달려 있을 것이다.만일 크렘린이 러시아의 경제안정과 사회위기를 다소나마 구조하는데 성공한다면 정권에 대한 반대는 약해질 것이기 때문이다.러시아의 모든 것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개혁의 성공여부에 달려있다고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 러 강제이주 한인 복권시켜야/강상호(기고)

    ◎러·한국서 모두 소외… 부당한 처우 60년째 지속 ‘조선민주통일 구국전선’은 90년 이후 북한에서 탈출했거나 망명한 전북한 고위당·관료출신들이 만든 단체로 ‘반김일성·김정일’을 구호로 북한의 민주화를 촉구하고 남북통일에 도움이 되고자 만든 단체.강의장이 주장하는 ‘복권’은 러시아,중국에 강제이주된 한인 2,3세들이 이주되기 전의 옛터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하며 ‘강제이주’에 대한 정신적 물질적 대가가 지불되어야 함을 의미한다.〈편집자주〉 올해가 1937년 옛소련 원동지역에 살던 한인들이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된 지 꼭 60주년이 되는 해이다.이 사건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우리민족 전부에 막대한 불행과 모욕을 심어준 사변이었다.아무런 법적 근거없이 한민족 전체를 탄압한 사건이었다. 당시 일제는 소련에 대해 무력침공을 준비하고 있었다.소비에트정부는 한인들이 일본편에 가담하리라고 지레 짐작했다.1937년 봄.당시 비밀경찰측은 한인으로 구성된 일본스파이에 대한 공개재판을 실시하면서 한인이주공작에 들어갔다. 일본은 한국을 침략한 뒤 한인가운데 주구들을 매수,소련에 스파이로 보냈었다.소련은 그런 ‘주구’들을 한인 40만명과 한 횡렬에 세워 동일시 했다.소련정권을 세우기 위해 한인들은 러시아 빨치산들과 피를 흘린 적이 있지 않은가. 당시 나는 극동 포시에트구역 공청위원회 비서로 일하고 있었다.그해 7월.구역 당위원장,국경경비사령관등이 소련과 중국·한국 국경지역을 시찰하고 ‘국가의 원조에도 불구하고 한인들이 경제계획을 완수하지 못한다’고 억지를 부렸다.그리고 8월.당위원회 조직부 부부장이 한인을 ‘깊은 후방’으로 이주시킨다는 정부결정을 통고했다.일본의 무력침공이 있으면 일본스파이를 적발하고 그들과 한인들을 구별하기 힘들기 때문에 이주시킨다는 것이다. ○권리·자유 박탈상태로 이주 이주의 기본조건은 한인들의 권리를 제한하고 자유를 박탈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거주·이전의 자유를 빼앗았고 한인을 군대에서 제외시켰으며 한인 철도관련 종사자를 모두 내쫓았다.어쨌든 한인들은 정든 고향을 등지고원동지방을 떠났다.나와 가족들은 화물객차를 타고 8월에 출발,10월 중순에야 타슈켄트에 도착했다.물론 객차안은 방한장치,급수시설,화장실도 없었고 짐짝처럼 쭈구린채 실려 도착했다.아이들은 대부분 감기에 걸려 기력을 잃어갔다. 새로운 지방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았는가.카자흐스탄의 동카자흐주에서 아무라리야 하류 누쿠스에 이르기까지 한인들에게 주어진 땅들은 온통 황야나 진펄이었다.장마와 폭풍이 몰아닥친 가을과 겨울,이주는 시작됐다.모기떼가 구름처럼 모여들었고 전염병이 사납게 전파됐다.학질,이질,백일해,홍역이 수많은 한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아동사망율이 무척 높았다.삼림이 없어 한인들은 주거시설을 갈탄으로 짓고 온돌을 놓아 추위를 막았다. ○평균주의 박해에 제2 이동 1938년 봄.한인들은 ‘죽고 사는 것도 여기뿐’이라면서 황야를 개간하기 시작했다.밀과 사탕무우를 심었고 나쁘지 않은 수확을 거두었다.이후 진펄에 배수로를 파서 땅을 건조하게 한 다음 벼도 심었다.1939년에는 높은 벼수확을 거둬 여기서 한인들이 살수있다고 확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1937년∼38년 소련 경찰들이 어렵게 뿌리내려 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의 한인마을을 덥쳤다.많은 한인들을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어 갔다.수많은 과부들과 고아들이 생겨났다.업친데 덥친 격으로 한인들이 좋은 실적을 일궈내던 한인 콜호즈가 실적이 별로 없는 주변 러시아인이 운영하던 콜호즈와 강제 합병되기 시작했다.이른바 ‘평균주의’ 때문에 한인들은 자신들의 실적으로 다른 러시아인을 먹여 살리면서 쪼들리기 시작했다.한인들은 다시 자신의 노동으로만 살 수 있는 곳을 찾아 하나 둘 제2의 고향을 떠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와 북카프카스로 많은 한인들이 소작인으로 팔려갔다.양파·수박농사에 일생을 바치기도 했다.강제이민이 유랑민이 되었고 다시 타향에 가서 계절노동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체첸·칼리크인 오래전 복권 60년이 지난 오늘날.원동에서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한인들은 아직 복권되지 못하고 있다.한인과 비슷한 이유로 이주했던 체첸인,칼리크인들은 오래전에복권됐다.러시아 각처에 퍼져있는 한인들은 본국인 한국으로부터도,러시아로부터도 모두 기억의 저편으로 건너가고 있다.우리는 부당하게 역사적으로 처리된 이 문제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죄없는 징병,모욕을 경험한 우리들은 정치,경제적으로 복권이 되어야만 한다.그리하여 민족문화,모국어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 최신작 영화 퍼레이드/호암아트홀 오늘부터 8개국 미개봉작 상영

    호암아트홀은 13일부터 21일까지 8나라의 미개봉 우수작 9편을 매일 한편씩 상영하는 ‘신작영화 퍼레이드’를 벌인다.상영시각은 상오11시20분부터 하루 다섯차례,관람료는 5천원이다.문의 (02)318­0147. 상영작과 일정은. ▲콜리야(13일)=올해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최우수외국영화상 수상작.체코 작품. ▲변검(14일)=지난해 도쿄국제영화제 최우수감독상.중국. ▲설득(15일)=제인 오스틴 원작의 영국영화. ▲뽀네뜨(16일)=네살바기가 베니스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화제작.프랑스. ▲비성(17일,원제 Cry,the Beloved Country)=클린턴 미국대통령 부부와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이 격찬한 남아공 작품. ▲코카서스의 죄수(18일)=톨스토이 원작을 러시아와 체첸 사태에 도입해 만든 수작.체첸. ▲네바다(19일)=사막을 무대로 자아를 찾아 떠도는 여성의 이야기.미국. ▲프랭키 스타라이트(20일)=운명과 별을 주제로 눈부신 영상과 벌제된 대사가 돋보이는 영국영화. ▲일요일의 이변(21일)=10대 소녀의 성장과정을 세심하게 그린 여감독의 작품.노르웨이.
  • 러 최고위급 정보책임자 피랍/잉구세티아공서

    ◎무장단체 소행… 국경봉쇄 검거나서 【모스크바 AP AFP 연합】 러시아 최고위급 정보 책임자와 그 보좌관이 11일 분리독립 움직임 등 치안상태가 불안한 러시아 남부 잉구세티아 공화국에서 무장단체에 납치됐다고 러시아 연방보안국( FSB)이 밝혔다. 알렉산드르 즈다노비치 FSB 대변인은 FSB 잉구세티아 지부 책임자 유리 그리보프와 그의 보좌관 세르게이 레베딘스키가 납치됐다면서 납치범 검거에 “필요한 모든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잉구세티아 당국은 납치 단체의 정체를 파악,탈출을 막기 위해 국경을 봉쇄하는 한편 헬기를 동원해 검거 작전에 돌입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분리주의 움직이 거세게 일었던 체첸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조그만 공화국인 잉구세티아에서는 러시아인이나 외국인들의 납치 사건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 부활/데이비드 렘닉(미래를 보는 세계의 눈)

    ◎러시아의 부패 해부와 미래 예진/사기·범죄·뇌물·폭력·빈곤의 고리끊기는 “시간이 약” 체르노미르딘 러시아 총리는 4년전 취임 당시 재산이 2천8백만 달러였다.그러나 최근 그의 재산이 50억달러라는 천문학적 규모로 늘어난 것으로 알려지면서 세계적인 졸부(?)가 됐다는 비아냥을 듣고있다.말할 것도 없이 러시아의 정·관계가 그만큼 썩었다는 반증이다. 최근 러시아 국정의 난맥상을 지적하고 이같은 난맥상이 일정기간이 지난뒤에는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한 저서 「부활(Resurrection)」이 출간돼 시선을 끌고 있다.저자는 지난 80년대이후 워싱턴 포스트와 뉴요커의 모스크바주재 특파원을 지낸 데이비드 렘닉(David Remnick). 렘닉은 그의 책에서 러시아의 권력은 표류하고 있으며 예측할 수없고 부패했다고 적고있다.지난해 옐친 러시아 대통령의 재선은 새로운 계층의 소수 지도자들의 부상이란 특징을 가지고 있다.즉 은행가들과 언론재벌,산업가들이 옐친의 재선을 도왔으며 이들은 그 대가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었다.이들은 크렘린궁의 보직들을 차지하고 방송및 사업상 인허가를 취득했다. 사기와 범죄,뇌물의 횡행이라는 옐친통치의 특징하에서 눈에 띄는 수혜를 받은 사람들가운데는 체르노미르딘 총리가 있다.그는 1백만 에이커의 토지와 36만5천명의 종업원을 간진 세계최대의 민간회사 가즈프롬의 주식 1%를 갖고있다.옐친의 비서실장 추바이스는 사유화운동을 주도해 그와 그의 친구들을 살찌게 했다.모스크바의 스톨리치니 은행의 총재 스몰렌스키는 『모든 종류의 인허가를 내주고 있는 정부관리들은 자신들의 사무실에 그에 상응하는 정가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옐친시대동안 빈곤률은 치솟았다.평균기대수명은 곤두박질 쳤고 살인률은 미국의 두배,유럽국가들보다는 수배나 된다.언론이 옛소련 시절보다 자유롭기는 하나 옐친 동료들의 손에 장악돼 있는 국영 TV는 옐친을 다룰 경우 극히 신중하고 아첨하기조차 한다.그동안 도덕적인 권위를 제공해온 러시아의 지식인들도 대부분 침묵하거나 외국회사의 대표 또는 고문등으로 이권챙기기에 합류하고 있다.의회는 무력화되었고 사법부는 실질적으로 효력을 상실했다.러시아 인구는 1억4천7백만명에서 95년 90만명이나 감소했다.러시아인들의 건강상태도 매우 나쁘다.모스크바의 경우 젊은이의 50%는 병역의무를 수행하기에 부적합하다.고등학교 졸업자의 15%만이 건강한 것으로 분류될 정도이다.2세이하 4백50만 유아의 절반이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또한 직접적인 건강문제는 아니지만 명백히 삶과 죽음의 문제인 체첸전쟁은 10만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어쨌든 부활에서 묘사된 러시아의 풍경은 생생하다.루츠코프 모스크바 시장은 모스크바 오페라를 쇄신하고 많은 아파트를 짓는 등 모스크바를 위해 좋은 일들도 했다.그러나 그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최고의 가치는 돈있는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사치와 향락인 것처럼 보인다.그가 재미없는 사회생활에 대해 불평하자 그를 위한 고급사교클럽이 만들어졌다.그러는 사이에 모스크바의 값을 매길수 없을 만큼 비싼 보물들이 괸리감독 소홀로 망가져 가고 있다.의견을 전달하는 잡지들도 쇠퇴하고 있다.작가들은 자신들이 문화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을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문학작품의 생산량 또한 크게 감소했다. 그의 책에는 범죄조직들의 힘에 관한 재미있는 구절들도 있다.이 조직들은 17세기 러시아의 도로등을 장악했던 폭도들을 연상케한다.범죄조직들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만연하는 혼동으로부터 이익을 얻고있다.유명한 경제 칼럼니스트 미하일 레온티에프는 『이곳의 상황은 남미의 콜롬비아보다도 더 나쁘다』고 말한다.그는 법이 실제로 시행되지 않기 때문에 적법과 불법사이에는 아무런 경계도 없다고 지적한다. 렘닉은 러시아가 물려받은 불행을 묘사하는데 능숙하지만 나쁜 소식만을 다루지는 않고 있다.그는 또한 옛소련이 지난 91년 붕괴된 이래 달성된 성공도 들고있다.즉 러시아에 일정한 성공과 구원을 가져온 개인들의 노력과 진정한 민주주의 제도를 가져본 적이 없는 땅에 싹튼 민주제도를 성공으로 꼽고있다. 한때 미국과 더불어 세계를 주도했던 강력한 국가가 어떻게 그처럼 빠르게 붕괴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아직 풀리지 않고 있다.러시아의 미래상에대해서는 지금까지 출간된 그 많은 책들에도 불구하고 아직 학자들간에 일치된 견해가 없다.러시아가 더 악화될 것이라는 구체적 증후들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전통적 지혜는 나쁜 상황도 일정기간이 지나면 나아진다는 것이다.렘닉은 런던 경제학파의 일원인 리차드 라야드를 인용,서기 2020년에 러시아는 멕시코,폴란드,브라질,헝가리 등의 나라를 앞지를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이것이 비합리적인 견해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랜덤 하우스(Random House)간행.398쪽.25.95달러.
  • 나토 확대를 보는 미·러시아 시각(지구촌 칼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러시아가 14일 나토에 옛 동구권 나라들을 가입시키기로 합의했다.이는 유럽대륙에서 군사적 대결이 아니라 화해와 협력의 새시대가 열리고있음을 실감케해 주는 「역사적 사건」임에 틀림없다.그러나 이 문제와 관련,한때 동서양대 블럭의 맹주였던 미국과 러시아의 입장은 국내외 여러 사정을 이유로 적지않은 마찰을 예고하고 있다.서울신문의 지구촌 칼럼니스트인 미·러 양국 전문가의 특별기고를 통해 나토확대가 갖는 의미와 앞으로의 문제점들을 짚어본다.〈편집자주〉 ◎리처드 하스 미 브르킹스연 외교정책 연구실장/미,러 역할 인정… 이익 보장해야 성공/번복땐 미의 신뢰성·유럽안보 막대한 타격 오는 7월초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16개 NATO(북대서양조약기구)회원국 정상들이 회동할 때 폴란드,헝가리,체코 그리고 어쩌면 이외 몇몇 나라들이 나토 합류를 권유받을 것이다.나토창설 50주년인 99년까지 이들을 정식 회원으로 만든다는 복안이다. ○99년까지 정식가입 추진 나토 동맹관계의 확대를 주장하는 쪽은 무엇보다 옛공산 바르샤바 조약기구 일부 국가들의 민주적이며 서구지향적 변화를 확고히 하고,또한 러시아의 정치적 불안정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나토확대를 반대하는 견해도 만만찮다.회원국 확대는 나토의 전체합의 도출을 어렵게 만들며 미가입국들의 안보를 약화시키고 현재도 문제가 되고 있는 국방예산의 증액 필요성을 높인다는 것이다.또한 나토를 동쪽으로 확대하는 일은 러시아의 강한 반발을 초래,러시아로 하여금 다시 유럽의 분열을 도모하도록 부추길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런 비판은 상당한 타당성을 갖고 있긴 하지만 결정적인 논거는 되지 못한다. 확대하면 나토의 응집력이 떨어진다는 말은 옳다.그러나 나토 회원국들의 동맹관계는 이미 느슨한 상태다.실제 나토 회원국들은 긴급사태가 일어날 경우에 한해 집단적으로 결속해 이에 대응한다.또한 러시아의 다른 인접국들은 비록 확대된 나토의 국외자로 남아있더라도 「평화를 위한 동반자」 정책에 의해 상당한 안보를 확보할 수 있다.한편 확대 나토의 재정부담은 소화할 수 있는것이어서 여러 나라 예산에 중대한 문제를 야기시키지는 않을 것이다.나토와 미국이 어떤 방식으로 이 확대 사업을 꾸려 나가느냐에 따라 러시아의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 다른 중요한 사실이 있다.나토 확대는 이를 번복할 경우 커다란 대가를 치러야 할 정도로 이미 진전이 돼왔다.이를 마무리하지 못하면 미국의 신뢰성과 확고부동한 신념을 지키는지 여부에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될 것이다.특히 중동부 유럽은 막대한 타격을 입는다.마찬가지로 중요한 사실은 미국이나 서구가 러시아의 반발을 당해내지 못해 확대 방침을 철회한 것으로 비춰져 아주 나쁜 전례가 된다.계속 밀고 나가는 것이 되돌아 가는 것보다 더 싸게 먹힌다고 할 수 있다. ○신용과 능력 극대화해야 따라서 진정한 문제는 나토의 확대 여부가 아니라 그 방법이다.나토의 확대는 나토의 신용과 능력을 극대화하면서 러시아의 적대감 및 러시아의 정당한 이익에 대한 위협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나토로서는 잘하면 올 여름 나토와 러시아간의 협정서를 옐친 대통령이 러시아두마(의회)에 상정할 때 일이 잘 풀리도록 할 수 있는 몇가지 일들을 해줘야 한다.유럽재래식무기 협약(CFE)이 냉전이후의 정치·군사적 현실을 반영해 빠른 시일내에 재협상 되어야 한다.나토는 새 회원국들이 위협받지 않는한 이들 영토에 재래식 및 핵무기를 배치해서는 안된다. 러시아에 유익한 신호를 보낼 다른 기회도 있다.러시아 핵해체 경비에 대한 추가지원이 그 좋은 예다.러시아를 G-7에 보다 긴밀하게 연합시키는 것,한반도나 중동문제 외교협상에서 러시아에게 보다 눈에 띄는 역할을 부여하는 것도 추천할만한 방안이다. ○러 핵해체경비 추가 지원 그러나 이달 27일까지 나토­러시아 합의서에 도달할 일념으로 러시아의 비위를 너무 맞추는 것도 위험이 숨어있다.서구는 러시아한테 나토 가입을 요구해서는 안된다.범유럽적 차원에서 러시아가 포함되는 안보 틀은 바람직하지 않다.러시아가 포함되면 나토는 실질적인 동맹체제로서의 의미를 상실해 버린다.커다란 위협을 잠재적으로 안고 있는 국가를 포함시킬 경우,나토는 미국과 유럽을 잇는 강력한 기구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한층 중요한 점은 나토가 러시아를 안심시키기 위해 새 가입국은 「2등」 신분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등의 약속을 해선 안된다는 것이다.새 국가들에 재래식,핵무기를 배치할 의사가 없음을 표명하더라도 그럴 가능성을 완전히 배재해서는 안된다. 또한 다음에 새 회원국을 추가로 받아드릴 가능성을 지금 부정하는 것도 현명치 못하다.추가 확대는 1차 확대를 이룬 이후에 논의토록 해야 한다.나토의 확대는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으로서 이해 되어야 하며 나토는 러시아의 반응을 보고 부분적으로 자신의 장래 모습과 방향을 취할 것이다.러시아는 이 점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리 야블린스키 러시아 전 경제부총리/러 동진 가속… 중·인과 관계강화 나서/미 등 서방,옐친지지­정정불안 대비 2중행동 미국의 정치학자 레온 아론은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부활 가능성이 끝났기 때문에 미국은 이제 러시아를 중요한 경제 라이벌로 간주할 것이라고 했다.그는 국익을 다투는 과정에서 두 나라는 얼마든지사이가 악화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사실 러시아와 서방,특히 미국과의 관계는 많이 악화되어 왔다.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동유럽으로의 확장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확장 결정으로 관계 악화 러시아의 정치 경제가 불안한데도 왜 서방은 현재의 러시아대통령을 지지하는가.서방은 러시아의 현 정부를 지지하면서도 왜 냉전의 산물인 군사블럭을 확대하려 드는가. 페레스트로이카와 함께 러시아에서 경제 개혁이 시작되자 서방국가들은 인본주의 견지에서 러시아의 민주적 변화를 지원했다. 러시아가 안정된 시장경제 체제를 확립하는 것은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가 바라는 일이기도 하다.옐친 정부가 시장경제개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92년 서방의 지원은,러시아 국민들이 서방국가의 납세자에게 감사해야할 매우 시기 적절한 것이었다.하지만 서방지도자들의 당시 입장은 러시아의 변혁프로그램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단지 옐친을 지지한 것 뿐이다. ○서구행동 신의없는 태도 옐친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해가며 체첸전쟁을 일으켰을 때도 서방은 옐친의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했다.지금도 러시아 정치인들이 대통령의 헌법 위반을 계속 지적하는데도 서방은 조용하다.왜 그런가.이는 러시아개혁에 정치·재정적으로 연루된 사람들이 서방의 정책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이다.서방의 상당한 금전들이 현 러시아정부에 「투자」돼 있다.고위직을 차지하고 러시아 과학자들이 연구개발을 하는데도 서방의 돈이 개입돼 있다.더 솔직히 말하면 러시아의 변혁은 흔들리고 있다.소수 몇명의 독점정치의 횡포가 계속된다.이는 과거 중앙집권적인 공산당 독재에 뿌리를 둔 것이다. 92년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서방과 그 언론들은 러시아의 개혁,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평가한다.그러면서도 서방국가들은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속해 있던 나라들을 결국 나토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하고 있다. 이런 서구의 입장은 신의 있는 태도라 할 수 없다.서방국가 지도자들이 러시아를 예측 불가능하고 위험한 나라로 보고 있다는 표본이다.아직도 철의 장막에서 자신을 지켜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새기구 결성 이용할 수도 결국 서방국가 지도자들은 러시아의 사태 악화에 대비,나토 확장을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이는 유럽과 다른 나라들의 안보에 대한 해결책이라고 볼 수 없다. 서구유럽,미국,한국,중국 그리고 러시아의 안보 우선순위는 질과 양적 측면에서 각기 다를 것이다.그러나 다음 세가지 국제적인 위협 만큼은 모두 같을 것이다.핵무기와 이에 준하는 무기의 위협,국제 테러리즘과 조직폭력 문제,환경재앙 등이 그것이다.러시아의 정치·경제 개혁이 성공하지 못하면서 이러한 국제적 위협들이 러시아에서 점증하고 있다.누가 뭐래도 러시아,서방들에게 사활이 걸린 것은 이같은 위협들일 것이며 미래에도 당분간 변동은 없을 것이다.이같은 국제적인 위협에 대해 나토를 확장하고 러시아를 고립시킨다는 것은 적절한 해결책이 아니다. 오늘날 러시아가 군사적 갈등을 일으킬,아니 일으킬 수 있는 나라로 보이는가.나는 나토의 동진과 새 회원국의 확보가 러시아에 어떤 군사적인 위협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하지만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서방의 나토 확장 정책 때문에 러시아정부는 외부위협을 국민들에게 과장하며 산적한 국내문제,실정으로부터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러시아 지도자들은 물론 공산·민족세력들 마저도 나토확장을 나토에 대응할 새기구를 탄생시키는데 이용할 태세다.러시아의 군 일각에서는 유럽을 미래의 위협으로 간주해 작전 할 계획도 갖고 있다. 나토의 확장은 러시아의 동방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나토의 확장정책은 러시아로 하여금 동방의 여러 국가들과 관계 증진에 나서게 하고 있다.「나토합의」에도 불구,크렘린 관계자들은 『나토의 대응방식에 따라 우리는 중국과 인도,심지어 이란과도 관계발전을 상응시켜 나갈 것』이라고 주장한다.로디어노프 국방장관은 만일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하면 중국을 지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최근 북경을 방문해 말한 적이 있다.러시아의 동방정책은 나토 확장정책이 만들어 놓은 것으로 나토동진에 대한 대응방식이라는 말이다.나토 확대는 당장 러시아에 위협을 갖다 주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냉전시대를 부활시키는 계기를 가져다주는,원칙적으로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 러­체첸 종전협정 체결/옐친­마스하도프“4백여년 적대관계 청산”

    【모스크바 연합】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과 아슬란 마스하도프 체첸대통령은 12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러시아­체첸 평화및 상호관계협정」을 정식 체결했다. 「러시아­체첸 평화 및 상호관계협정」을 체결한 직후 옐친대통령은 『이 협정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면서 『이로써 지난 4백년간 러시아와 체첸간에 이어져 왔던 전쟁의 불길은 꺼졌다』고 강조했다. 옐친 대통령은 이어 『우리는 체첸공화국과 오직 평화적인 방법만 사용해 관계를 맺을 것이며 특히 경제부문에 있어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옐친 대통령은 쟁점이 되고 있는 체첸분리독립문제에 대해 『이번 협정에는 체첸의 지위문제에 대한 언급은 없다』고 못박음으로써 체첸이 러시아영토의 일부라는 기존의 입장을 버리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 “군 강경파 권력 독점”/러 극동첩보기관 북 정세 보고내용

    ◎경제정책 실패·황 망명으로 당 약화/김정일 게릴라전에 자신감… 군 공감/불만세력 조직력 결여… 폭동 어려워 식량위기에 몰리고 있는 북한이 위험한 행동을 벌일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도쿄신문은 10일 북한내의 움직임에 대한 러시아 극동지역 첩보기관의 보고서를 인용 「김정일체제 등장 이래 노동당과 인민군,첩보기관 등 3대 권력기관간 균형이 무너지고 정권유지를 위해선 전쟁도 불사한다는 군 강경파가 득세하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고 보도했다.다음은 이 기사의 요약. ▷인민군◁ 김일성 주석이 죽은 직후 김정일비서와 군의 관계는 군 간부 일부가 김의 승계에 강하게 반대해 좋지 않았다.특히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은 강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오부장의 후임인 최광원수도 김과 관계가 악화돼 무대에서 사라지게 됐다.최광 원수는 현재의 군사력으로 전쟁이 일어나면 패한다고 보았다. 이후 김비서의 주변에는 조명록 군총정치국장 등 차세대 군간부가 들어가기 시작했다.이들의 영향인지 모르나 김정일은 게릴라전 준비를 전조직에 지시하는 등 강경노선을 주장하기 시작했다.95년 5월에 내린 지시에서 김은 『한미와의 전쟁에서 80%의 국민이 죽어도 남은 20%의 국민은 행복하게 될 수 있다』,『강한 무기를 가진 소국은 대국을 격파할 수 있다』고 까지 말했다. ▷첩보기관◁ 고 김일성 주석의 빨치산동지가 소련의 KGB를 본따 만든 조직으로 체계는 KGB 그대로다.50년대는 사회안전부의 보안국이었지만 73년에 국가보위부로서 주석직속의 기관이 됐다. 국경경비대와 12만명의 특수부대가 있는 외에 스파이를 동원해 전국민이 국가지령에 따르는가 여부를 체크하는 방첩국이 있다.하지만 이 조직도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그 증거는 국경경비대가 최근 군으로 이관됐다는 점이다.황장엽 비서를 비롯,외교관의 망명 등이 급증,실정이 쌓인 것이 영향을 미쳤다. 88년까지는 모스크바에서 훈련을 받은 직원이 많은 등 러시아와의 관계가 강했지만 소련 붕괴후에는 이것이 없어졌다.황비서 망명사건후 나홋카 주재 북한 총영사관에서 러시아어를 할줄아는 직원 전원이 본국으로소환됐다.이들의 망명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노동당◁ 경제난이 심화되며 이에 대한 문책 등으로 당의 힘도 약해졌다.대신 힘을 키우고 있는 것은 군인.김정일 비서와 늘 행동을 함께 하는 측근 보좌관은 조명록 원수를 비롯해 김영춘 총참모장,현철해 대장,김하규 대장,박재경 대장 등 대부분이 군간부가 점하고 있다.국가의 안정을 위해 의지할 곳은 군뿐이라는 김정일의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다.이 보고서는 김정일 측근들은 체제유지를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한다. 특히 김정일은 게릴라전에 자신을 보이고 있다.게릴라전의 주력이 지난해 잠수함 사건을 일으킨 특수부대다.또한 지하시설을 대규모로 건설해서 전쟁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북한은 주민이 대규모 폭동을 일으켜 성공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고 전하고 있다.92년에 육군의 한 연대가 폭동을 일으켰지만 전원이 체포돼 병사는 총살,장교는 산 채로 가솔린으로 태워 죽였다.그 위 중국 국경부근에서 기아폭동이 있었지만 생존자 전원이투옥됐다. 만일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 것인가.미군은 공중폭격,포격 등으로 평양 등을 전멸시킬수 있지만 지하시설 공략은 어렵다.걸프전때 미군은 특수부대를 제외하고는 이라크영토에 들어가지 않은 것처럼 지상군을 투입할 수 없다.북한영토로 특수부대를 투입하더라도 체첸분쟁처럼 대단히 어려운 게릴라전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 러 전 부총리 예고로프 사망

    【모스크바 AP 연합】 러시아 연방정부의 체첸 자치공화국에 대한 군사개입을 주도했던 니콜라이 예고로프 전 러시아부총리가 25일 오랜 지병끝에 모스크바 중앙병원에서 사망했다고 러시아정부가 26일 발표했다.향년 45세. 남부 러시아의 스타브로폴 지역의 한 국영농장 책임자로 공직을 시작한 예고로프는 출세가도를 달려 94년에는 옐친 대통령에 의해 국가 및 지역정책 담당 부총리에 임명돼 체첸문제를 전담했다.
  • CIS장래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알렉산더 바자노프(지구촌칼럼)

    지난 4월 2일 러시아와 벨라루시아는 옛소련 부활의 전조로 보이는듯한 협정을 맺었다.다음달에는 두나라가 각각 통합에 대한 국민여론을 수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토론과정을 거쳐 여론수렴 후 5월3일 두 정상은 공식적으로 협정을 체결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협정 막판에 옐친 대통령이 협정초안의 대폭수정을 요구했고 이 때문에 루카센코 대통령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는 점이다.이는 바로 옛소련국가들의 모임인 독립국가연합(CIS)의 통합과정이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 하는 전조에 다름아니다.기본적으로 러시아는 옛소련국가들과 통합하는 쪽을 선호한다.옛소련이 무너지면서 많은 경제난관이 시작됐고 러시아의 35 인종이 분열돼 나갔다.이산가족이나 친구들과의 해후도 어렵게 됐다.관세와 무역장벽,에너지문제 등도 파생됐다.민족주의자와 공산주의자에 속하는 많은 러시아인들은 초강국의 지위를 상실하고 러시아가 2등국가로 전락한 사실에 무척 애석해 한다.초강국에 대한 미련이 통합을 재촉하는 변수다. ○러­벨로루시 통합 옐친 대통령과 주변사람들은 CIS국가와의 통합을 가속화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다.옐친은 1991년 소련을 해체시킨데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장본인이다.영토가 축소되고 초강국 지위를 상실시킨 연유로 옐친 대통령은 괴로워해왔다.체첸전쟁을 일으킨 것은 애국자로서 자신의 지위를 다시 세우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그렇지만 그는 전쟁에서 졌다.옐친은 이제 전쟁이 아니라 옛 소련국가와의 통합을 시도하면서 러시아를 강국의 지위로 복원시키기를 원한다.가장 쉬운 목표가 벨라루시아와의 통합이다.벨라루시아는 인종·언어·문화적으로 러시아와 비슷하기 때문이다.벨라루시아인들은 「통합=삶의 질의 향상」으로 보며 미래복지의 상징으로 본다. 통합과정은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초안협정」을 맺은 날 러시아의 모든 언론은 통합에 반대한다는 입장에 섰다.옐친의 상대가 루카센코같은 독재자의 초상이라면 반대해야 한다는 소리가 더욱 높았다.옐친쪽에서 보면 초안에 따라 구성될 지도자들이 대부분 반개혁적·친공산주의적 인물이어서 이대로 통합했다간 옐친 자신이 밀려날 수 있는 소지도 있다. 향후 최종문안을 정리할 때 크렘린당국은 CIS의 운명을 배려해야 한다.자칫 설득력이 없는 통합을 추진하면 CIS국가들은 오히려 러시아로부터 이탈할 소지가 많다.벨라루시를 제외한 다른 CIS국가들은 어렵사리 찾은 자신의 주권을 한결같이 강조한다.러시아가 옛소련을 닮는듯한 지도력을 내보이면 매우 민감해지며 러시아가 행여 내정간섭을 할지 모른다고 의심한다. ○당분간 갈등 되풀이 실제로 러시아와 CIS국들간의 관계는 악화일로에 있다.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은 우크라이나에 넘겨준 크리미아반도를 다시 요구한다.크렘린당국은 흑해함대문제와 무역관계규정,에너지공급문제를 놓고 우크라이나와 실없는 협의만 펼친다.러시아는 카자흐스탄정부가 인구의 36%를 차지하는 러시아인을 박해하는데 못마땅해 한다.역으로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인들이 인종갈등을 일으키며 CIS정책에서 차별당한다고 비난한다.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 카라바흐같은 큰 땅을 놓고 대립을 계속중이며 그루지아는 러시아가 분리주의자운동을 부추기고 있다고 불평한다. CIS국가들 사이에는 당분간 경제·사상·인종·종교·문화·역사적 갈등이 되풀이될 것으로 보인다.CIS 모든 국가를 휩쓰는 현재의 위기 역시 통합에 별로 도움이 안된다.일단 독립한 CIS국가들은 CIS국경 밖에서 그들 나라에 번영을 갖다주는 파트너를 찾는다.우크라이나와 아르메니아 그리고 그루지아는 미국 등 서방국가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카자흐스탄,아제르바이잔,우즈베키스탄은 터키나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같은 「성공적인」 회교국에 눈길을 돌린다.한국과 일본 중국은 CIS국가가 가장 관계를 가지고 싶어하는 국가군에 속한다.CIS국가간 무역거래가 뜸해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러시아의 대외무역에서 CIS국가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20% 정도다.때문에 서방분석가들은 CIS를 가리켜 「영혼이 없는 육체」에 비유하기도 한다. ○상호협조 통해 해결 하지만 나는 CIS의 장래가 비관적이라는데는 동감하지 않는다.많은 문제가 있지만 이 공동체는 미래가 있다고 보여진다.실제로 옛소련국가들은 서로를 필요로 하고또 통합을 필요로 한다.그들은 수세기 동안 한지붕 아래서 살았다.인구구성도 서로 복잡하게 섞여 있다.우크라이나 고위관리의 반이 러시아인이며 그 반대도 그렇다는 예가 있다.매우 유사한 문화적 전통이 계속됐다.지정학적으로도 가깝다.경제도 상호의존적이었다.자원이나 기반시설을 공유했었다.이는 서로 잘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이라는 것이다.이들 사이의 군사·정치적인 문제들은 상호협조와 노력을 통해 해결될 것으로 본다.이들의 운명은 상호의존적이며 세계 다른 어느 나라들도 CIS 자신만큼 CIS국가들을 돌볼수 없다.미래의 통합환경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시간과 러시아의 경제부흥이라고 본다.새 국가들이 주권을 공고히 하고 이들의 경제가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할 때 통합에 대한 무게도 분명히 실릴 것이다.
  • 텐트 7만개 소실… 5시간만에 진화/사우디 메카 화제 안팎

    ◎인도인 150명 등 250여명 사망·2천명 부상 ○…이슬람교의 성지 메카 남쪽 5㎞에 있는 미나 평원.알라신을 경배하기 위해 2백만명의 회교순례자들이 운집했다.그러나 이슬람교도들의 성스러운 성지순례는 죽음의 지옥으로 변했다.15일 상오 11시45분(한국시간 하오 5시45분).미나 평원이 갑자기 불길에 휩싸이며 회교도들의 순례는 다시 참사의 불행으로 바뀌었다. 파키스탄인들이 머물고 있던 지역에서 발생한 불은 강한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야영지 전체로 번져나갔다. 불은 7세기에 예언자 마호메트가 마지막 설교를 했던 아라파트산에서 16일 열리는 새벽 기도회 하루전에 발생했다.회교도들은 순례의 절정인 새벽기도회 참석을 준비하고 있었다. ○…회교 성지 메카 외곽의 야영지에서 15일 가스 폭발로 발생한 화재로 인도인 150명을 포함해 250여명이 사망하고 2천명 이상이 부상했다고 한 인도관리가 16일 밝혔다. 이 관리는 이날 긴급구조센터에서 『사망자가 약 250명,부상자는 2천명에 달하며 이들 대부분이 아시아인이라는 얘기를(사우디 당국으로부터)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망자중 약 150명이 인도인이며 나머지는 파키스탄,방글라데시,태국 등지에서 온 순례자들이라고 덧붙였다. ○…사우디당국은 불이 나자 헬기와 소방차를 동원 진화에 나섰으나 불은 7만개의 텐트를 거의 다 태우고 5시간이 지난후 진화됐다.사우디는 메카에 있는 모든 병원에 비상동원령을 내리고 거처를 잃은 수십여만의 순레자들을 위해 1만여개의 천막을 급히 준비했다. ○…성지순례(Hajj)는 회교도들의 일생에 한번은 하도록 돼 있으며 이번 성지순례에는 체첸 대통령,터키 총리,방글라데시 총리,수단 총리 등도 참석했다. ○…성지순례 참사는 이번 만이 아니라 과거에도 여러번 발생했다.지난 95년에도 천막촌 화재사고로 3명이 숨지고 99명이 부상했으며 94년에는 압사사고로 2백70명의 순례자들이 목숨을 잃었다.90년에는 또 순례자들이 좁은 터널로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1천4백명 이상이 질식사했으며 87년에는 이란인 순레자들과 사우디 경찰의 충돌로 4백2명이 숨졌다.〈메카·미나(사우디 아라비아) 외신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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