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체조
    2026-06-16
    검색기록 지우기
  • 일몰
    2026-06-16
    검색기록 지우기
  • 단속
    2026-06-1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744
  • 北 “31일 인공위성 발사” 주장/美 “미사일 확실” 부인

    북한 외교부 대변인은 4일 하오 담화를 발표,지난 8월31일 함북 대포동에서 발사된 것은 “탄도미사일이 아니라 인공위성이었다”고 주장했다. 관계당국에 따르면 북측 대변인은 이날 담화에서 “인공지구위성 발사를 성과적으로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북한 중앙방송은 이날 지난달 31일 함북 화대군 무수단리(옛 명천군 대포동)에서 최초로 인공위성을 발사,지구궤도에 진입시키는데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중앙방송은 이날 “운반로켓트는 8월31일 12시7분에 함북 화대군 무수단리의 발사장에서 86도 방향으로 발사돼 4분53초만인 12시11분53초에 위성을 자기 궤도에 정확히 진입시켰다”고 전했다. 방송은 또 “지금 위성에서는 불멸의 혁명송가 ‘金日成 장군의 노래’ 등의 선율과 함께 ‘주체조선’이라는 모르스 전신부호가 27㎒로 지구상에 전송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 AFP 연합 특약】 북한이 지난 31일 발사한 것이 인공위성이라고 주장한 것과 관련,미국 정부는 북한이 발사한 것은미사일이라고 보고 있다고 미 국방부의 한 관리가 4일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이 관리는 “우리는 여전히 그것이 미사일이었다고 단언한다”고 북한의 주장을 부인하면서 미국 정부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사실을 최대한 빨리 재확인하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한나라 총재 李會昌씨/1차 투표서 55.7% 득표

    ◎대화정치 천명… 영수회담 제의 한나라당은 31일 서울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전당대회를 열고 李會昌 명예총재를 새 총재로 선출하고,趙淳 전 총재를 명예총재로 추대했다. 李총재는 경선 1차 투표에서 총 유효투표 7,326표 가운데 55.7%인 4,083표를 얻어 당선됐다.전체 대의원은 8,354명이다. 李漢東 후보는 1,554표(21.2%),金德龍 후보는 1,283표(17.5%),徐淸源 후보는 392표(5.3%)를 각각 얻었다. 이로써 李총재는 지난해 대선에서 패배한 뒤 명예총재로 물러났다가 8개월만에 다시 총재로 정치일선에 복귀했으며,그동안 과도체제로 운영됐던 한나라당도 李총재 중심의 지도체제를 이루게 됐다. 李총재는 총재 수락연설에서 “국익과 민생을 외면한 소모적인 대결정치를 끝내고 대화와 타협의 생산적인 정치를 펼치겠다”고 다짐했다. 李총재는 이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면 정부여당에 최대한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면서 “내일이라도 金大中 대통령과 만나 여야를 떠나 솔직하고 진지하게 국정을 논의할 용의가있다”고 영수회담을 제의했다. 이와 함께 “金대통령과 여당은 권력을 앞세운 야당파괴공작을 즉각 중단하고,야당을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존중해줄 것”을 촉구했다. 李총재는 또 빠른 시간 안에 부총재를 지명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은 李총재의 여야 영수회담 제안과 관련,“국난극복을 위해서도 여야간 대화는 필요한 일”이라면서 “내부에서 검토해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일단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 토종약초로 당뇨병 치료/신세대 한의사 박치완씨

    ◎전통처방에 산호초·조릿대 등 가미/체내유독물 제거 인슐린 분비 촉진 평생 식이요법과 체중조절을 병행해야하는 등 치료가 어려운 당뇨병을 우리의 토종약초를 이용해 치료,좋은 예후를 얻고 있다.난치병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신세대 한의사 박치완씨(33·강남경희한의원장)는 전통적인 한방약제에,토종약초를 가미한 당뇨치료법으로 혈당조절제나 인슐린주사를 쓰지 않고도 혈당을 정상치로 끌어내려 유지할 수 있다고 최근 밝혔다. 박씨의 당뇨 치료원리는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아 생긴 당뇨병 환자에게 인슐린을 보충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인슐린 분비가 제대로 안되는지에 초점을 맞춰 그 원인을 제거하는데 있다.박원장에 따르면 당뇨병 환자의 경우 대체로 소장과 대장속에 엔도 톡신이란 체내유독물이 많이 축적돼 있어 원활한 순환을 방해한다는 것. 따라서 이같은 독소를 제거해주면 췌장의 기능이 저절로 되살아나 어느 시기가 지나면 약이나 주사를 맞지않고도 정상의 혈당치를 유지한다는 설명이다.박원장이 쓰는 당뇨약재는 전통 한약처방인 천화분에,토종약초인 산호초,조릿대,제주도산 담쟁이덩쿨,선화삼을 가미해 독자적으로 만든 탕재. 이 약을 복용하면 시커먼 죽상형태의 변과 창피할만큼 많은 방귀와 함께 체내독소가 배출되면서 췌장이 제기능을 찾게된다.이때 증상에 따라 육미지황탕이나 인삼백호탕과 함께 복용하기도 한다. 특히 토종약초를 이용한 당뇨치료는 혈당을 정상치로 유지해줄뿐아니라 혈당조절제나 인슐린주사에 따른 저혈당쇼크 등 부작용이 거의 따르지 않는다. 이와함께 인슐린 분비는 원활하지만 세포저항성이 커져 인슐린의 효율이 떨어지는 경우엔 이를 저해하는 물질인 당삼출물을 체외로 빼주는 기공체조를 통해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다.512­7527
  • 한나라號 선장 李會昌씨 유력/31일 총재 경선… 후보들의 다짐

    ◎李會昌­‘1차서 승리’ 장담속 긴장/金德龍­黨 결속·재집권 위해 헌신/李漢東­최후까지 黨과 함께 운명/徐淸源­계보·줄세우기 정치 타파 거대 야당 ‘한나라호(號)’의 ‘선장’은 누가 될까. 총재 경선에 나선 李會昌 李漢東 金德龍 徐淸源 후보는 30일 각각 기자회견이나 간담회를 갖고 막판 지지를 호소했다. 李會昌 후보가 1차 투표에서의 승리를 장담하고 있는 반면 나머지 세 후보는 2차 투표까지 염두에 두고 표몰이를 계속하고 있다. 후보 기호순으로 31일 경선에 임하는 다짐과 각오를 들어본다. ▷李會昌 후보◁ 세 후보와 달리 공식 기자간담회를 갖지 않았다. 대신 여의도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총재경선에 임하는 각오와 소회를 피력했다. 李후보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누가 당 총재가 되든 강한 야당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당이 단합·화합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당원의 뜻을 저버리고 대국민 약속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李후보는 “지난 일주일 동안 전국을 돌며 대의원들을 접촉해 보니 대부분 당이변해야 한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며 “특히 처지가 어려운 지역일수록 야당의 확실한 위상을 찾아주길 바라고 있었다”고 귀띔했다. 그는 “당원들의 기대와 요구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1차투표에서 55∼60%를 득표,무난히 승리할 것으로 자신하면서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李漢東 후보◁ 李會昌 후보를 직접 겨냥해 공세를 퍼부었다. 李후보는 “유감스럽게도 이번 전당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3가지 기본조건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과장된 ‘대세론’과 명분없는 ‘줄세우기’,李會昌후보와 李基澤 총재권한대행의 밀약설,‘李會昌­金潤煥­李基澤’ 3인의 밀실합의설 등을 공략했다. 李후보는 “당내 민주화를 짓밟는 패권주의 정치행태와 불공정 경선,분열과 갈등을 부추기는 당권분할 의도 등은 3金정치의 표본이며 정치권의 환골탈태를 바라는 국민 여망을 저버리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자신과 관련한 ‘金大中 대통령 접촉설’이나 ‘경선패배 후 탈당설’등을 “허무맹랑한 흑색선전”이라고 단정하고 “마지막까지 당과 운명을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다. 1차에서 1위를 확보,최종 승리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金德龍후보◁ 金후보는 “여권이 인위적 정계개편을 노골화하고 있는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당이 깨지지 않게 하는 것”이라며 “여권의 패권주의에 단호히 맞서 당의 결속과 재집권을 위해 헌신하는 총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일부 후보를 겨냥,“독선적 자세로 ‘쫓아낼 사람,쫓아내겠다’고 호언하거나 내각제 개헌 문제 등으로 경선 이후 정치 행보가 불투명한 후보에게는 표를 주어서는 안된다”며 “위대한 ‘대의원 혁명’을 확신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만에 하나 총재가 되지 않는다 해도 당을 지키며 원칙과 정도의 길을 가겠다”고 경선 결과에 승복할 뜻을 분명히 했다. 1차투표에서 40% 안팎의 득표율로 2위를 확보,2차투표에서 역전하겠다는 전략이다. ▷徐淸源 후보◁ 徐후보는 “우리 당은 이제 더이상 몇몇 계파 보스의 정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면서 “이른바 ‘대세론’이라는 것은 한낱 허구에 불과하며,‘대세’가 있다면 특정인이 총재가 되는 대세가 아니라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대세”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徐후보는 “개인의 기득권이나 지키고 적당히 타협할 생각이 있었다면 경선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총재가 되면 계보정치와 국회의원들을 줄세우는 구태정치,돈쓰는 정치,지역감정을 자극하는 정치를 없애겠다”고 강조했다. 또 “경선에서 패배하더라도 당에 끝까지 남아 제목소리를 내겠다”고 다짐했다. 1차에서 25%의 득표로 2위를 차지,2차투표에서 ‘이변’을 기대하고 있다. ◎D­1 캠프별 움직임/대의원 숙소 돌며 한표 호소/反李 3후보 연대 강력 시사 ‘8·31 전당대회’를 하루 앞둔 30일 한나라당은 행사준비를 하느라 바쁜 하루를 보냈다. 총재경선에 나선 네 명의 후보들도 자정이 되도록 지방에서 올라온 대의원들의 숙소를 돌며 한 표를 부탁했다. ○李會昌 후보 표 점검 계속 ○…李會昌 후보에 비해 ‘세불리’를 인정하고 있는 李漢東 金德龍 徐淸源 후보 등 3명은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대의원 혁명’을 역설했다. 이들은 2차투표까지 가면 ‘반 李會昌표’가 결집해 ‘대의원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해 ‘3人 연대’가 무르익었음을 시사했다. 반면 李會昌 후보는 여의도 부국증권빌딩 사무실에서 辛卿植 비서실장,梁正圭 河舜鳳 金鎭載 의원,尹汝雋 전 환경부장관 등 핵심참모들이 참가한 가운데 전략회의를 갖고,표점검을 계속하는 등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핵심참모들과 맨투맨작전 ○…지방에서 올라온 대의원 6,000여명은 한강호텔,팔레스호텔,올림픽파크텔 등 42개 숙소에 묵었다. 4명의 후보는 핵심 참모들과 함께 밤 늦게까지 이들 숙소를 돌며 ‘맨투맨식’작전을 폈다. 그러나 대의원들은 후보들에게 전당대회의 후유증을 최소화할 것을 주문하는 등 경선보다는 앞으로 당의 진로에 대해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고속도휴계소서 선거운동 ○…金德龍 후보는 다른 후보들과는 달리 경부고속도로 천안휴게소에서 지방 대의원들을 맞는 이색 선거운동을 펼쳐 눈길을 모았다. 이어 잠실 롯데월드에서 수도권지역 대의원 1,000여명(후보측 주장)이 참가한 가운데 필승 전진대회를 갖고 ‘대의원 혁명’을 다짐했다. ○…鄭昌和 사무총장을 비롯한 사무국 직원들은 행사장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전당대회 예행연습을 갖는 등 행사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31일 전당대회는 조촐한 식전행사에 이어 孟亨奎 의원의 사회로 성원 보고,徐廷和 전당대회의장의 개회선언,총재 선출순으로 진행된다. ○…명예총재와 부총재 지명문제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아 상당한 진통을 예고하고 있다. 당초 李會昌 후보의 부정적인 시각으로 부총재 지명문제가 전대 이후로 연기된 듯 했으나 세 후보의 반발로 일단 방향을 선회했다. 31일 상오 8시 당무회의에서 재론키로 했으나 결과는 미지수다.
  • 한나라 오늘 총재 경선

    한나라당은 31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전당대회를 열고 총재 경선에 나선 李會昌 李漢東 金德龍 徐淸源 후보 중 1명을 총재로 선출한다. 경선에서는 1차 투표에서 참석 대의원의 과반수 표를 얻은 후보가 총재로 당선된다.그러나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안 나오면 1,2위 득표자끼리 2차 결선투표를 실시한다.전체 대의원은 8,384명이다. 30일 당 관계자와 각종 여론조사 등에 따르면 李會昌 후보가 다른 후보들을 크게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이변이 없는 한 李후보의 당선이 유력하다. 李會昌 후보측은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를 자신하고 있는 반면,李漢東 金德龍 徐淸源 후보 등 세 진영은 2차 결선투표에서 ‘대의원혁명’을 통해 역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각 후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지지를 호소한 뒤 밤 늦게까지 서울 시내 지구당을 돌며 득표활동을 벌였다.
  • 햇볕정책으로 남북관계 빙하 녹이자/李榮浩(발언대)

    새 정부의 대북정책 노선인 햇볕정책의 기조는 북한에 대한 포용확대와 변화유도를 통해 남북 기본합의서 체제로 가는 길을 마련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있는 것 같다. 그러나 북한의 본성이 ‘침략적’이란 견지에서 또는 북한에 대한 적대감,혐오감에서 북한을 고사(枯死)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적지않은 사람들은 ‘햇볕’을 북한 ‘살리기’로 인식하고 ‘북한은 벗을 옷도 없다’고 비아냥거렸을지도 모른다.아마도 이런 항간의 쟁론을 잠재우기 위해 안보담당 고위 당국자는 햇볕정책의 목표가 ‘폐쇄통제사회,명령형 계획경제,대남혁명을 위한 군사적 대결’이라는 북한의 ‘외투를 벗기는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밝히고 있는지도 모른다. 반대로 북한은 이들 목표를 자신이 벗어야 할 ‘외투’가 아니라 ‘뼈와 살(북한체제의 기본골격)’이라 여기고 햇볕정책을 흡수통일의 음모라고 경계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이렇게 안팎으로부터 북한‘살리기’ 아니면 ‘죽이기’라고 협공당하고 있어 햇볕정책은 그 장래가 순탄치않아 보인다. 더구나 북한이 침투·도발할 때마다 강풍수단이 불가피할 것이며 그때마다 북한 옷벗기기는 갈팡질팡한다는 인상을 국민들에게 심어줘 자칫 정부나 정책에 대한 신뢰감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북한이 햇볕정책을 경계하는 한 햇볕정책 아래 추구하는 남북문제의 풀이는 자칫 원점에서 맴돌 가능성이 적지않다. 어차피 햇볕과 강풍의 사용이 불가피하다면,햇볕정책의 목표는 북한 ‘옷벗기기’보다는 남북한 사이에 얽힌 빙하녹이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현명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빙하를 녹이는 것은 따뜻한 햇볕뿐 아니라, 살속 깊이 한기를 느끼게 하지만 잔설을 녹이는 세찬 봄바람도 있지 않은가. 만일 햇볕정책을 통해 남북한 사이에 얽힌 빙하를 조금이나마 녹일 수 있다면,우리 보통 사람들이 이웃 나라 드나들듯 북한을 드나들 수 있을만큼 남북간 불신과 적대감만이라도 좀 사그라진다면,우리 국군이 나라를 든든히 지켜주는한,북한이 개인독재를 하든,계획 통제경제와 집단주의적 폐쇄사회를 고집하든말든 그것은 그들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인가. 물론 우리국군이 나라를 든든히 지켜야하는 것을 전체조건으로 해야한다.
  • APEC 청소년 과학 축전/올림픽공원서 14일 개막

    세계 12개국에서 참가한 500여명의 과학 꿈나무들이 벌이는 과학 큰 잔치인 제1회 ‘APEC(아시아 태평양경제협력체) 청소년과학축전’이 14일 7일 동안의 일정으로 막이 올랐다. 이날 상오 10시 서울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열린 개막식에는 金鍾泌 국무총리서리,姜昌熙 과학기술부장관 등 APEC회원국 대표단과 정부,국회,과학기술계,교육계 관련 인사,다토 누어 아들란 APEC사무총장 등이 참석했다. 金총리서리는 축사에서 “아·태지역 청소년들이 과학기술의 중요성과 가치를 깨닫고 국경과 언어의 장벽을 넘어 하나가 된다면 지구촌은 밝은 미래를 약속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기간중 주행사장인 서울 올림픽공원내 역도경기장과 체조경기장,한얼광장과 88잔디마당에는 과학실험코너와 각종 과학전시관 등이 설치,운영된다. 마이크로 로봇 축구대회와 물로켓 발사대회 등도 열린다.
  • 폐교 문예산실로 거듭난다/창작 스튜디오로 활용

    ◎문화부 내년 시범설치/예술인 창작의욕 부축 폐교가 창작스튜디오로 활용된다. 문화관광부가 창작공간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작가들에게 폐교 등 사장된 공간을 제공하기로 한 것. 문화부는 우선 내년까지 수도권과 충청권,영·호남권 등 권역별로 1∼2개소의 창작스튜디오를 시범설치한 뒤 이를 각 시도로 확대해나가는 한편 지방자치단체와 문화예술단체,민간기업이 추진중인 창작공간사업도 계속 지원할 방침이다. 창작스튜디오는 작품활동 위주의 창작공간과 전시 및 공연·강좌·세미나 등의 다목적 공간,인터넷 등 정보통신과 비디오 필름 서적 등을 갖춘 자료실,예술체험과 작품제작실습을 위한 학습체험공간,화장실·주방·숙박시설을 갖춘 휴게공간 등으로 꾸며진다. 이들 스튜디오는 3가지 유형으로,작가의 성향과 주민의 문화수요 등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예정이다. A형은 회화실·판화실을 갖춘 평면조형 위주이고,B형은 목조형실·철조형실·단조실로 구성된 입체조형 위주,C형은 유리공예실과 도예실·금속장신구실 등의 창작공간을 갖춘다. 작품제작에 필요한 각종 기기와 기구,설비 등은 공통적으로 갖춰진다. 지금까지는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문예단체가 농촌지역의 폐교에 창작실을 운영하고 있으나 시설과 장비 등의 미비로 제구실을 다하지 못했다. 창작스튜디오가 본격 운영되면 창조적인 작품활동의 산실이 될 뿐 아니라 학생들에게 소중한 예술체험 학습장으로,또 다양한 프로그램이 펼쳐지는 지역 문화예술의 교류장터로,주변 문화공간과 문화유적이 연계된 새로운 문화관광명소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 문화부는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폐교 가운데 600개가 활용 가능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창작스튜디오의 운영은 지자체에 맡기되 관리는 문화예술단체나 스튜디오 입주자들에게 위탁할 예정이다. 현재 문예진흥원이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창작스튜디오는 2곳. 충남 논산시 양촌초등학교의 장원분교,강화군 불은면의 신성초등학교 등에 설치돼 있다. 지금까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추진되어온 문화예술분야 투자는 도서관 박물관 문예회관 등 주로 주민 문화향수권 확대에집중돼 왔다. 그러나 이번 창작스튜디오는 생산자를 위한 즉,문화예술인들의 창작의욕 고취와 작품활동 여건 조성에 주력하면서 주민들의 문화예술 활동의 참여를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이는 지난 76년 폐교된 초등학교 건물을 개조한 미국의 비영리 미술공간을 모델로 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는 매년 4천여명이 활용하는 70여개의 창작스튜디오가 폐교에 설치돼 운영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에도 30여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美/호황경기 주춤/소득·저축 증가율 두달 연속 하락

    ◎제조업 생산지수도 49%로 위축 호황을 누려오던 미국 경제가 주춤거린다. 성장률이 둔하되고 있고 소득도 감소하고 있다. 아시아의 경제위기에다 GM사의 파업 탓이다. 미국 상무부가 최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올 2·4분기중 미국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1.4%에 그쳤다. 이는 1·4분기의 5.5%보다 크게 낮은 것이다. 미국 구매관리협회(NAPM)도 암울한 통계를 내놓았다. 구매관리협회의 자체조사 제조업 지수가 6월의 경우 49.6%였다. 7월에는 49.1%로 더 떨어졌다. NAPM 제조업지수의 50% 이상은 경기 확장을,50% 미만은 위축을 뜻한다. 이 지수가 두달 연속 떨어진 것은 22개월만에 처음이다. 소득 증가율 둔화도 두드려지고 있다. 2·4분기의 마지막 달인 6월에는 개인소득이 0.2% 증가하는데 그쳤다. 5월에도 0.4%로 높지 않았지만 6월들어 더 떨어졌다. 개인저축 증가율도 0.2%에 그쳤다. 4월의 1.1%이후 두달 연속 내림세다. 미국 경제의 멈칫거림은 아시아가 경제위기에 빠지면서 수출이 감소됐기 때문이다. GM사 파업도 적잖게 거들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6월중 수출은 8%나 적어 졌지만 수입은 11.9%나 많아졌다. 54일동안이나 지속된 GM사 파업도 미국 경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국내 총생산 성장률을 1% 포인트 떨어 뜨렸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미국 경제가 다시 상승 기류를 탈 것이라지만 대부분은 아시아 경제 위기가 극복되지 않는한 저성장 기조에서 벗어 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 여야 ‘경성리스트’ 공개 공방

    ◎여권­“연루설 의원명단 유출은 명예훼손”/야권­“우리당엔 없다” 對與공세 수위 높여 국민회의 자민련 한나라당 등 여·야가 30일 다수의 정치인이 경성그룹 특혜대출과 연루됐다는 설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특히 한나라당이 여권 정치인이 다수 연루된 것으로 파악됐다며 이들의 명단을 공개하는등 공세를 펴자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국회의장 선거를 앞두고 세불리를 느낀 한나라당의 치졸한 정치공세”라며 맞받아쳤다. ▷여권◁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한나라당이 연루설이 나도는 의원 명단을 공개한 데 대해 발끈했다. “정치인 수사는 증거가 없어 종결키로 했다”는 검찰 입장이 나오자 두 당 모두 명단을 공개한 한나라당 金哲 대변인을 명예훼손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국민회의는 “자체조사 결과 우리당 의원은 한 사람도 관련자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누구든지 근거없는 내용을 적시해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민련은 경성그룹이 충청권에 기반을 둔 기업이라는 점 때문에 긴장감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거명된 의원들은 대부분 사실무근임을 강조했다. 충청권 실세인 K의원은 “지난 2월 경성그룹 계열 대전매일사장과 정치부장이 찾아와 경선건설 추가 대출을 부탁하기에 은행에 전화를 건적은 있다”면서 “그러나 금품수수는 일체 없었다”고 말했다. ▷야권◁ 상오 여의도 당사 2층 기자실에서 金哲 대변인이 주요당직자회의 결과를 발표하던 도중 李康斗 총재비서실장이 급히 쪽지를 전달했다. 金대변인은 “우리 당에서 파악한 경성리스트의 명단은 이렇다”며 12명의 이름을 읽었다. 국민회의 의원 3명,전의원 2명,자민련 의원 5명,국민신당 1명,전직장관 1명 등이다. 지도부는 거명된 ‘경성 리스트’에 당 소속 의원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자 안도하면서 관련 인사들의 명단을 실명 공개,대여(對與)공세의 호재로 삼으려 했다는 후문이다.
  • ‘행복의 나라’ 한대수(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5)

    ◎“물좀 주소 물좀 주소 목마르오/시대의 갈증 노래했는데…”/68년부터 명동·대학가 활동/통기타·청바지 문화 선도/2집 앨범 “체제전복” 낙인찍혀/75년 渡美… 음악활동 계속/지난달 일시 귀국 에세이 출간/“개인무대 갖는게 작은 소망” 1975년 한 해를 마감하는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무렵인 12월 어느날 김포공항 대합실.긴 머리에 청바지 차림의 한 청년이 초췌한 모습으로 뉴욕행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한국 가요계에 파문을 일으키며 청년문화를 주도하던 가수 韓大洙(50)였다.미국 유학후 숨가쁘게 살았던 한국에서의 생활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지나갔다.자신의 음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 땅의 분위기가 한스럽기만 했다.채 피어나기도 전에 꺾여진 꽃처럼 자신의 음악을 가슴에 묻은 채 한대수는 그렇게 훌쩍 한국을 떠났던 것이다. 짧은 활동기간에 비해 뚜렷한 인상을 남긴 이색적인 경력의 싱어 송라이터.통기타와 자유의 청년문화를 생겨나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당시 트로트와 사랑타령 일색이던 대중가요를 뿌리째 뒤흔들며 젊은이들의 우상이 됐던 가수 韓大洙.그는 왜 한국을 떠나야만 했을까. 어린시절부터 남달리 굴곡이 많은 개인적인 삶을 살았던 그였다.핵 물리학자인 아버지의 실종으로 7살때부터 줄곧 조부모와 함께 살았다.10살때 미국으로 이주해 3년간 미국생활을 한뒤 돌아와 한국에서 중학교를 마쳤다.17세때 미국에 사는 아버지의 소재가 확인돼 다시 미국으로 옮겨 고교를 다녔지만 적응하지 못한채 방황의 10대를 보냈다.韓씨의 재능은 이때 발견된다.상담교사의 도움으로 시와 노래를 쓰기 시작했다.나중에 국내에서 히트했던 ‘행복의 나라’‘그날까지’‘옥의 슬픔’같은 노래들이 모두 이때 쓴 것이다.고교졸업후 뉴햄프셔 대학 축산과에 진학했으나 적성이 맞지않아 중퇴,뉴욕 사진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귀국한 게 1968년 초.이때 한국의 가요사는 다시 쓰이게 된다.당시 국내 가요계는 트로트가 지배하던 시기.국내에선 처음으로 싱어 송라이터로 데뷔한뒤 발로뛰는 음악인의 생활로 접어든다.서울 무교동의 ‘세시봉’과 명동의 ‘오비스캐빈’에서 청바지,가죽장화 차림에 통기타 하나들고 포크록을 소개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이듬해인 69년 이렇다할 공연무대에 서기엔 아직 무명가수였던만큼 대학가를 돌기 시작했다. 총학생회장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공연을 의뢰해 축제기간중 이화여대와 서울대,서강대,부산대 강당공연을 통해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이때 언더그라운드 가수로 인상지워지게 됐다.그리고 그해 겨울 그 유명한 서울 남산 드라마센터 공연.그때만해도 드라마센터는 고상한 장르의 유명인들에게만 공연이 허용되던 곳.무명의 대중가수가 무대에 오른 것 자체가 화제거리였다.평소 韓씨의 음악에 매료된 팬들이 어렵게 마련한 데뷔 콘서트였다. 벼르고 별렀던 무대였던 만큼 혼신을 다한 공연이었다.이틀 공연 모두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대성공이었다. 74년 군에서 제대하고 나니 유명해져 있었다.자신이 곡을 쓰고 金敏基가 부른 ‘바람과 나’,楊姬銀이 부른 ‘행복의 나라’가 인기곡으로 불려지고 있었다.신세계레코드사에서 앨범제작 의뢰가 들어왔다.그래서 만든 첫 앨범이 ‘멀고 먼 길’이다.너무나도 반가운 제의라 하루만에 녹음을 모두 마쳤다.‘물좀 주소’‘행복의 나라’‘바람과 나’등 수록곡들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들불처럼 번져갔다.그리고 1년도 채 안돼 시련이 닥쳐왔던 것이다. 75년 가을 두번째 앨범을 만들었다.코리아헤럴드 기자로 재직중일 때였다. 기자로 일하면서 오후엔 남모르게 레코드 취입을 하느라 코피를 쏟기가 일쑤였다.마침내 레코드가 나왔다.이제 자신의 음악을 인정받는 뿌듯함에 마냥 들떠 있었다.기쁨은 채 2주가 못돼 좌절로 바뀌었다.당시 문공부에서 레코드 수거령이 떨어졌다.체제전복적 음악이란 낙인이 찍혔다.첫 앨범 ‘멀고 먼 길’도 함께 묶였다. “‘물좀 주소’등 히트곡들이 대학생들 사이에 번져가면서 정치·사회상 황에 맞물려 당국의 곱지않은 시선을 받았던게 사실입니다.당국이 ‘물좀 주소’에선 물고문을 연상했던 것 같아요.두번째 앨범은 표지가 문제였지요.녹슬은 철조망에 고무신이 걸려있는 모습인데 한국적 정서와 민중을 상징한 것이지요.죄수(철조망)가 흰 고무신을 신으니 박해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었지요” 동양방송과 기독교방송 음악프로 출연도 막혔다.어쩔 수 없이 명륜동 자취방에서 직접 노래하고 녹음한 테이프를 만들어 매장에 내다 팔았다.테이프는 열악한 음질에도 불구하고 불티나게 팔려나갔다.이 테이프는 첫 앨범 취입 전부터 하나 둘씩 만들었던 것으로 이렇게 만든 테이프만도 100여개가 넘는다.하지만 그것도 잠시뿐.감시망이 좁혀지면서 테이프 제작도 할 수 없게 됐고 더이상 설 땅이 없어졌다.마침내 미국행을 결심했다. 이후 줄곧 뉴욕에서 살면서 시·사진·음악활동을 계속했다.89년 ‘무한대’,90년 ‘기억상실’,91년 ‘천사들의 담화’ 등 레코드도 세 집을 냈다.종전의 분위기와는 달리 자신의 삶을 담은 노래들이다.지난해 가을엔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록그룹 10개가 참가한 록페스티벌에도 참가했다.80년 일시 귀국해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약식 공연을 가진지 17년만의 무대였다.그리고 지난달 잠시 귀국해 자전적 에세이집을 냈다.자신의 모든 것을 담은 기록이다. 75년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는 韓씨는 이렇게말한다.“그 시대 정책 자체에 반감을 가진 적은 없습니다.어느 나라나 국가정책과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정신은 엇갈리기 쉽지요.당시 정부의 목적의식을 흐리는 활동이 제재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문화예술인들이 심한 갈증을 느끼는건 당연했구요. 오랫동안 나를 못봐온 팬들을 위해 개인무대를 갖고 싶습니다” ◎사연들/장막을 걷어라 너의 좁은 눈으로 이세상을 더 보자/철조망 유신압제 상징 이유/‘고무신’·‘첫 앨범 잇따라 판금/‘행복의나라’ 희망 메시지 가득한데 68년 귀국후 세시봉과 오비스캐빈에서 시작된 韓大洙의 국내 음악활동은 불과 7년만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 귀국전 미국 생활에서 반문화운동(카운터 컬쳐 무브먼트) 경향의 포크록에 심취했던 만큼 국내에서의 활동도 자연스럽게 자유와 젊음으로 대변되는 이 음악으로 시작됐다.미국 고교시절 답답한 생활을 노래에 담은 노래들이 70년대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금지곡이 된 것은 우연의 일치다.대학가를 돌면서 언더그라운드 가수로 인상지워지고 금지문화의 한 주역이 된 것도 사실상 노래말의 상징성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물좀주소’와 ‘행복의 나라로’는 그의 대표적인 노래.“물좀 주소 물 좀 주소/목마르요 물좀 주소/물은 사랑이요 나의 목을 간질며/놀리면서 밖에 보내네/아 가겠소 난 가겠소/저 언덕위로 넘어 가겠소/여행도중에 그 님 만나 본다면/난 살겠소 같이 살겠소”(물좀 주소).“장막을 걷어라/나의 좁은 눈으로 이세상을 더 보자/창문을 열어라/춤추는 산들바람을 한번 또 느껴보자/가벼운 풀밭 위로/나를 걷게 해주세/봄과 새들의 소리/듣고싶고 울고 웃고 싶소/내마음을 만져줘/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행복의 나라로) 유신정권의 압제 아래서 자연스럽게 현실 비유적인 내용으로 인식될 수 있었고 대학가에선 더욱 인기가 좋았다.물은 갈증을 해결하는 그 무엇이며 행복의 나라는 답답한 상황으로부터의 탈출과 희망의 의지가 역력한 상징임에 틀림없다.특히 金敏基 楊姬銀 등 사회성짙은 노래를 주로 불렀던 이들에 의해 불려지면서 자연스럽게 화살이겨냥됐고 마침내 철조망과 흰 고무신을 표지 사진으로 쓴 ‘고무신’ 앨범으로 피할 수 없는 족쇄가 채워진 것이다.‘자유의 길’‘병든 고아’‘술 취한 여자’‘물좀 주소’ 등 노래마다 일일이 검열을 당했고 레코딩까지 허락됐던 앨범 몰수는 韓씨를 떠나게 만들고야 말았다. ◎그의 길 ▲48년 부산출생. ▲64년 부산 경남고교 입학. ▲65년 미국 롱아일랜드 고교로 전학. ▲66년 뉴햄프셔 대학 수의학과 입학. ▲67년 뉴욕 사진학교에서 사진 전공. ▲68년 귀국.작사·작곡가·가수로 데뷔. ▲69년 드라마센터 공연. ▲70년 군입대. ▲74년 첫 앨범 ‘멀고 먼 길’ 발표. ▲75년 두번째 앨범 ‘고무신’ 발표,금지.미국으로 돌아감. ▲89년 ‘무한대’ 발표. ▲90년 ‘기억상실’ 발표. ▲91년 ‘천사들의 담화’ 발표. ▲98년 현재 뉴욕에서 사진작가및 창작활동중.자전적 에세이 출간.
  • 신중현:下(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3)

    ◎‘한국적 록 만들기’ 父子 한길 큰 위안/‘대마초’이후 23년 무대 잃은 음악 인생/궁핍보다 더한 고통으로 좌절·방황/분별없는 외래가요 범람 못내 가슴아파 “형광등이 비추는/천장을 보면서/눈을 떴다가 감았다/밤을 새우네/그여자는 지금쯤/무얼하고 있을까/이리둥굴 저리둥굴/혼자 생각하네/아침이 오면/붉은 태양이/나의 마음을/달래 줄텐데/길고 긴 이밤이/언제나 지나가나…” 기다림이 애틋하게 사무친 申重鉉씨의 노래 ‘긴긴 밤’. 마치 3년뒤 영어의 몸이 될 것을 예견이라도 한 듯 답답한 심경을 담아낸 72년도 발표곡이다. 노래말처럼 붉은 태양과 함께 아침이 밝았으면 좋으련만 운명의 신은 그에게서 얼굴을 돌렸다. ‘대마초 가수’로 서울 서대문 구치소에 갇혀 있던 기간은 4개월. 4개월이 마치 4년만 같이 여겨졌다. 수많은 밤을 뜬 눈으로 보내야만 했던 지난 날들이 악몽만 같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했던가. 마른 하늘에 뜬금없이 내려친 날벼락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예고된 비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76년4월. 지난 연말 구치소에 들어갈 때의 추위는 가시고 봄기운이 온누리에 퍼져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예전의 자유로움을 용납하지 않았다. 가요계,방송국,음악감상실…,그가 설 땅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빼어난 작곡가이며 기타연주가이기도 했던 록 가수 申重鉉의 인생은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가수에게 활동중지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것. 유신정권의 혹독한 간섭 아래서 금지인생을 살아내기란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모든 공연이 철저히 막혔고 방송에서도 그의 목소리는 들을 수가 없게 됐다. 구속 전부터 1∼2곡씩 방송에서 사라지더니 구속과 동시에 통째로 금지곡이 돼버렸다. 당연히 음반판매도 막혔다. 어쩔 수 없이 악기를 몽땅 팔아야 했고 반포동 28평짜리 아파트를 청산해 동작동,방배동,문정동 셋방을 10여차례 옮겨 다녔다. 노래뿐만 아니라 작사·작곡에서도 한창 인기를 누리다가 좌절을 맛본 터라 하루하루를 견뎌내기가 더욱 힘이 들었다. 사람을 피해 낚시터와 산을 다니며 마음을 달래려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용산 미8군 무대에 다시섰다. 끼니를 마련하기 위해 부르는 노래가 슬펐다. 3개월만에 그만두고 경기도 송탄으로 잠적,음악을 함께하던 친구들과 어울리며 시름을 달랬다. 기지촌의 미군들을 상대로 가끔씩 노래를 불렀는데 간섭이 없어 마음은 편했다. 감옥에서 나온지 3년이 지난뒤인 79년 활동중지가 풀렸지만 세상은 너무나도 많이 변해 있었다. 우선 생활이 쪼들리다 보니 음악활동을 시작할 여유가 없었다. 악기도 남아 있는게 없었다. 무엇보다도 독재정권의 탄압이 가져온 삭막함이 견디기 힘들었다. “방송이 들려줄 이렇다할 대중음악이 없었어요. 금지의 태풍 속에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지요. 당연히 흘러간 노래나 뽕짝풍이 판을 쳤고 대중들의 귀도 이런 음악에 순치돼 있었습니다. 50년대의 문화가 다시 살아났다고나 할까요” 대학가에도 춤곡과 디스코 선풍이 몰아쳤고 춤추는 문화의 유행으로 대중음악 자체가 표류했던 시기. 외래문화와 트로트가 휩쓸리면서 방향을 잃고 흘러만 가던 상황이었다. 신씨가 끼어들 틈새가 보이지가 않았다. 이미 가수 신중현이 설 땅은 허물어졌던 것이다. “당시 방송국에서 저와 제 음악을 이해하던 몇몇 프로듀서들이 저의 재기를 위해 무던히 애를 썼지만 허사였습니다. 잊혀진 가수와 음악을 되살리기가 그렇게도 힘들 줄 몰랐습니다. 아니 어찌보면 그런 음악환경에서 제자신이 멀어지기를 바랐다고 할 수도 있지요” 79년 이후 공식적인 콘서트는 단 한번도 열리지 못했다. 그러니까 75년 겨울 ‘구치소 신세’를 질때부터 지금까지 23년간 신중현의 무대는 없었던 셈이다. 방송엔 ‘가뭄에 콩나기’식으로 가끔씩 출연했다. 지금은 출연제의가 완전히 끊겨 있다. 방송국 입장에서도 사연많은 ‘대마초 가수’에 걸맞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87년 그의 음악이 해금된지 올해로 11년째. 수원여대에서 주2회씩 현대음악 강의를 맡고 있고 밤에는 가락동 50평짜리 지하 작업실에서 자신이 만들고 불렀던 곡들을 녹음·정리하고 있다.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200여명의 출연진이 무대에 서는 대형 록 콘서트를 지난해 말부터 준비해왔는데 IMF바람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음악인생을 결산하는 마지막 콘서트를 꿈꾸고 있지만 여의치가 않다. 그나마 아들 3형제가 아버지의 뜻을 따라 한국적인 록만들기에 뜻을 두고 한 길을 걷는게 큰 위안이다. “세살짜리 꼬마부터 80세 노인까지 모두 좋아할 수 있는 대중음악이라면 어떨까요. 그러려면 수준이 있어야 하고 음악성도 갖춰야 합니다. 방송이 주도하는 요즘 대중음악은 상업성에 치우쳐 문화적인 측면을 무시하기 일쑤지요” 한국적인 가락을 록에 담기 위해 평생토록 고민했다는 신씨. 그는 분별없는 외래문화 유입이 독재정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문화의 맥이 순탄하게 이어졌으면 지금 이처럼 혼란스럽진 않을텐데…. 국적없는 음악은 위험합니다. 우리만의 고유성을 담은 음악이 필요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과거 독재정권의 문화탄압은 치명적이었다고 봅니다” ◎사연들/4t트럭 분량 악기 생계위해 팔아치워/레코드社 박대 서운 동료 손가락질 처연 75년 신씨가 구속되기 전만 하더라도 학생층이 주로 모이던 ‘이브’를 비롯,서울 명동과 종로의 음악감상실 5∼6곳에서는 고정적으로 신씨의 콘서트가 열렸다. 그러나 묶이고 난뒤엔 사정이 달랐다. 업소들은 신씨의 접근을 아예 봉쇄했고 레코드회사와 방송국은 문전박대로 일관했다. J레코드사와 K레코드사는 30대 이상의 연령층이면 지금도 기억하는 당시의 내노라는 음반사들. J사는 유류파동때 어려움을 겪다가 ‘미인’히트로 살아났고 K레코드사 역시 신씨의 노래들로 유명해진 대표적 레코드사다. 셋방을 전전할 때 레코드사를 찾아가 몇차례 도움을 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방송국도 마찬가지. 신씨가 묶이자 신씨의 노래들을 앞다투어 뺐고 녹화 필름도 모두 폐기해 버렸다. KBS,MBC 등 3개 공중파 방송사엔 신씨의 구속전 필름,레코드 등 관련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생활고에 지쳐 마침내 악기를 팔기 시작했다. 농군에게 소가 가장 큰 재산이라면 음악인에겐 악기가 그럴 것이다. 당시 국내에서 신씨만큼 귀한 악기를 많이 갖고 있던 음악인도 드물었다. ‘먹고 살기’위해 청산한 악기만도 1톤짜리 트럭 4대분은 족히 된다고 한다. 73년 영국에서 사들여온 530와트 용량의 ‘마샬’ 앰프를 팔땐 며칠간 잠을 못이루었다고 한다. 마샬은 당시 국내에 1대밖에 없었다. ‘미인’을 히트시킨 ‘신중현과 엽전들’이 쓰던 것으로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참기 힘든 것은 자신의 처지를 가장 잘 이해해야 할 동료 음악인들의 배신. 우연히 커피샵에서 만난 동료들이 정보부 요원과 함께 자신에게 손가락질하며 능멸할 땐 회의감마저 들었다고 한다. 서울 가락동 신씨의 지하 작업실 한 쪽 벽엔 시계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 시간에 얽매이기 싫어서 아무렇게나 걸어 놓은 것이라는게 신씨의 설명. 그러나 억울하게 빼앗긴 시간들을 애써 찾으려는 듯한 인상이 짙다. ◎금지곡 연보 ▲69년 9월27일 ‘어떻게 해’(김상희 노래) ▲70년 7월6일 ‘미칠듯한 마음’(임성훈) ▲71년 7월25일 ‘못 견디겠어’(지연) ▲74년 12월7일 ‘나는 몰라’(신중현과 엽전들) ▲75년 7월5일 ‘거짓말이야’(김추자) ‘나비같은 사랑’ ‘두 남편’ ‘저기 저 소리’(장미리)‘세상에 만약 여자가 없다면’(김명희 서영옥 이다연) ▲75년 7월6일 ‘미칠듯한 마음’(임성훈) ▲75년 8월4일 ‘가나다라마바’(김정미) ‘너와 나’ ‘담배꽁초’‘바람’ ‘이건 너무 하잖아요’(김정미) ‘미인’ ‘생각해’ ‘저 여인’ ‘할 말도 없지만’ ‘나는 너를 사랑해’(신중현과 엽전들) ‘그리워’(김명희) ▲83년 11월7일 ‘설레임’(신중현과 엽전들)
  • 장은증권 고객재산 13일부터 지급

    금융감독위원회는 6일 업무가 정지된 장은증권의 고객재산 910억원을 오는 13일부터 고객에게 지급한다고 밝혔다. 자체조사 결과 장은증권 직원들이 퇴직금 207억원을 받기 위해 李大林 대표이사에게 ‘강압적인 행위’를 한 것으로 드러나 노조대표를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금감위는 이와 함께 고객재산 보호를 위해 13일부터 고객예탁금 195억원과 환매채(RP) 150억원,수익증권 판매액 665억원 등 910억원의 고객재산을 13일부터 돌려주기로 했다. 환매채와 수익증권은 대주주인 장기신용은행에 처분해 현금화하는 방안을 강구중이며 고객예탁금이 부족하면 예금보험공사나 장기신용은행의 지원을 받아 대지급하기로 했다.
  • CNN 오보 사과/美軍 신경가스 살포 보도

    ◎조사 결과 “증거 불충분” 【워싱턴 AP AFP 연합】 미국의 세계적인 케이블 뉴스방송 CNN이 2일 지난달 방영된 ‘미군의 독가스 사린 사용’과 관련한 보도를 전면취소하는 사과방송을 내보내 그동안 수많은 특종과 신속보도로 쌓은 명성에 먹칠했다. CNN은 지난달 7일 미군이 지난 70년 베트남전쟁 기간중 라오스에 수용된 미군 탈영병들을 제거하기 위해 치명적인 신경가스를 투하했다는 보도를 특종보도했었다. 하지만 방송후 미국방부와 베트남전 참전용사들로부터 보도내용에 대한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자 CNN은 최근 자체조사를 벌였으며 그 결과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고 밝혔다.
  • 여성상대 출장 영업 ‘남봉다방’ 등장

    ◎건장한 10∼20대 고용… 술시중·윤락까지 다방 여종업원이 차를 배달하며 ‘출장 윤락’을 하는 일반 티켓 다방과는 달리 남자종업원을 고용,여성 고객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속칭 ‘남봉다방’ 7곳이 최근 검찰에 적발됐다. 2일 광주지검 순천지청에 따르면 전남 순천과 광양 등 일부 중소도시를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는 남봉다방은 ‘오봉돌이’라는 은어로 통하는 10대 후반∼20대 초반의 남자종업원들을 고용,여성 고객들을 상대로 술시중이나 윤락행위를 시킨다는 것이다. 오봉돌이의 주요 고객은 술집 마담·여종업원 등이나 아파트에서 커피를 시켜놓고 이른바 ‘고스톱’을 할 때 시중을 들게하는 가정주부도 끼어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을 부를 때 기본요금은 1시간에 3만원,윤락을 하면 별도의 화대가 지급된다. 순천지청 趙權卓 검사는 “오봉돌이는 신체조건이 좋은데다 전문대졸 이상의 고학력 소지자들”이라면서 “IMF 사태로 대졸자 취업이 어려워지자 이들이 이런 곳에까지 발을 들여놓는 것 같다”고 말했다.
  • 5개銀 퇴출 “호미로 논둑 막은것”/금융기관 구조조정 손익계산서

    ◎정리비용 50조… 안하면 부실채권 연말 112조/국민부담 의식해 더 미루면 “가래로도 못막아” 금융기관 구조조정의 손익계산은 어떻게 될까.부실 금융기관 정리에 따른 정부의 막대한 재정부담으로 국민들이 입을 피해만을 의식해 손을 놓아야 하는 건가. 금융기관 구조조정에 따른 비용·손익(Cost­Benefit)을 산술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쉽지 않다.하지만 구조조정을 중도 포기하거나 흐지브지할 경우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은 정부가 현재 추진 중인 금융기관 구조조정에 따른 비용보다 훨씬 커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구조조정을 추진하는 플러스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이다. 전 금융기관 구조조정에 쓰일 비용은 퇴출은행 5개(17조5,000억원)를 포함해 50조원이다.부실채권 매입에 25조원,증자(增資) 지원에 16조원,예금보험 공사를 통한 예금 대(代)지급 9조원 등으로 올 하반기에 40조원,내년에 10조원의 국채를 발행해 조달하게 된다. 구조조정에 투입되는 비용은 채권발행 물량 50조원과 그에 따른 이자부담, 채권발행 물량 증가에 따른 시장금리인상 효과 등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전체 비용은 50조원+a다. 그러면 구조조정을 추진하지 않을 경우엔 어떤 손실을 입을까.금융감독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현재 우리나라 전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규모는 은행권 48조2,000억원과 제2금융권 32조9,000억원 등 81조원(부실여신 56조5,000억원+부실 유가증권 24조6,000억원)이다.총 대출금의 10.5%에 해당된다. 여기에다 요주의(6개월 미만 연체) 여신을 합하면 부실채권은 112조원으로 늘어난다.그런 데다 부동산과 주가하락 등의 요인을 감안하면 올 연말에는 부실채권 규모가 이 보다 훨씬 커질 전망이다.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 금융기관 구조조정에 드는 재원을 충당하려는 것은 엄청난 부실채권 규모 때문에 금융기관들이 100% 자체조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주식·부동산시장의 침체로 증자를 하거나 부동산을 처분해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인 데다,외자도입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외국의 경우에도 금융 시스템의 조기 안정을 꾀하기 위해 초기에는 적극적으로 정부 재정으로지원했다. 이처럼 만신창이가 된 금융기관을 수술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우리경제는 성장할 수 없게 된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일본이 8년째 불황을 겪고 있는 것은 금융기관 부실 채권을 방치하고 구조조정을 추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부실채권이 늘어나면 은행들은 자기자본비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기업에 대출을 해주지 않게 되며 그로 인해 경제는 성장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단순하게 생각해 경제성장률을 1%포인트만 떨어뜨린다고 해도 97년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4조3,000억원 가량의 손해를 보게 된다.성장률이 떨어지면 그만큼 실업자를 양산하게 된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올 1·4분기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3.8%였지만 만약 금융위기 여파가 없었다면 2∼3% 정도의 성장률은 기록했을 것”이라며 “금융기관 부실화를 영원히 방치할 수는 없기 때문에 구조조정을 과감하게 추진하는 길 밖에 없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을 추진하지 않을 경우 입게 될 피해는 이 뿐만이 아니다.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은 우리나라 금융기관의 신용등급을급격히 떨어뜨릴 수 밖에 없게 되며 그럴 경우 해외차입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차입하더라도 매우 높은 수준의 가산금리를 물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국제사회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로 평가받게 돼 장기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은 엄청나게 커진다. 당장 눈에 보이는 부담만을 감안해서 머뭇거려서는 안되며 고통을 감수하면서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당위성이 여기에 있다.
  • 재구성해본 鄭周永씨 訪北 7박8일

    ◎유람선 서명… “4,500만 최고의 선물”/16일­판문점 넘어 평양행… 모란봉초대소서 첫밤/19일­10년만에 밟은 고향땅서 망향의 회포 풀어/20일­금강산 방문… 北과 유람선사업 추진 합의/21일­원산 산업시설 시찰… 합작타당성 구체조사/23일­“할일 다했다” 9월 재방북 기약하며 귀로에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7박8일의 북한 방문을 마치고 23일 돌아왔다. 그와 동행했던 방북단 15명이 전하는 얘기와 관련보도를 엮어 鄭 회장의 북한 체류 8일을 재구성한다. 그냥 지나칠 뻔 했다. 모든 게 변해 있었다. 흘러간 50년이 남긴 흔적을 찾으러 두 눈은 더욱 가늘어져만 갔다. 그러기를 잠시….무언가가 갑자기 시선을 확 잡아당겼다. 감나무. 鄭周永 회장은 19일 이렇게 고향을 찾았다. 강원도 통천 아산리. 분단의 오랜 세월은 기억 속의 고향마저 앗아갔다. 하지만 고향을 떠나며 심어놓은 그감나무 만은 그 자리에 있었다. 鄭 회장이 설레이는 가슴으로 판문점을 넘은 것은 16일. 宋虎景 조선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과 鄭雲業 민족경제협력연합회 회장이 밝은 표정으로 맞았다. 서로의 얼굴이 상기됐다. 벅찬 가슴을 추스리기도 전에 방북단은 평양일행과 평양으로 자리를 옮겼다. 만수대 의사당에서 金容淳 조선 아·태평화위 위원장과 담화를 나눈 뒤 저녁에는 목란관으로 자리를 옮겨 연회를 가졌다. 金위원장은 “잘 키운 소를 선뜻 건네 줘 감사하다”며 “통일의 길을 열 수 있는 힘을 모아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鄭 회장을 비롯한 현대 방북단은 “자주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남북경협의 물꼬를 이 자리에서부터 제대로 터보자”고 화답했다. 모란봉 초대소에서의 첫날 밤을 설레이는 마음에 뒤척이며 보낸 鄭 회장은 17일 평양교예극장에서 종합교예공연을 보는 것으로 이틀째 일정을 시작했다. 혁명과 기백을 강조하는 북한 특유의 공연이 낯설었다. 고향 방문과 금강산 개발사업 등에 대한 상념으로 공연이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공연이 끝난 뒤 일행은 아·태평화위와 民經聯 등 북측 고위 관계자들과 만나 금강산 개발 등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유람선 사업과 고선박 해체,자동차 합작,제 3국 건설 공동진출,서해안 공단개발,통신사업 등 무엇하나 중요하지 않은 사업이 없었다. 3일째도 평양이었다. 18일 국제친선전람관을 둘러보고 묘향산을 찾았다. 깎아만든 듯한 절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19일 鄭 회장은 마침내 고향땅을 밟게 됐다. 평양에서 원산까지 비행기를 탔다. 다시 통천까지는 육로와 해로가 함께 이용됐다. 승용차뿐 아니라 요트도 동원됐다. 앞선 공연관람과 묘향산 비경의 눈요기 등 기타 일정에서의 소회는 통천땅의 아늑함과 인척들의 환대엔 견줄 일이 아니었다. 감개무량했다. 사흘전 판문점을 넘을 때만 해도 담담하던 북한방송들도 이날만은 “약 10년 만에 다시 고향을 찾은 명예회장 일행은 감개무량함을 금치 못하면서 친척들과 감격적인 상봉을 했다”며 요란을 떨었다. 돌멩이 하나,잡풀 하나 하나를 붙들고 유년시절의 기억을 되짚어 갔다. 1915년 11월25일 통천군에서 가난한 농부의 7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 그는 지금이미 팔순을 넘긴 노신사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소년이었다. “이게 내 고향이든가”“그래요 이곳이 바로 우리 고향입니다” 동생들과 큰아들 夢九씨 등 4명과 함께 한 잠자리는 모란봉초대소와는 그 느낌이 달랐다. 89년에 이어 두번째 고향 땅을 밟은 鄭 회장은 9년전보다 가슴이 더 절절했다.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내 집 드나들 듯이 오갈 수 있는 시절은 언제나 다시 올까”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경협사업에 대한 꿈을 다지고 또 다졌다. 형제들과 큰 아들이 망향의 회포를 푸는 동안 나머지 일행들은 경협사업협의에 몰두했다. 통천에서의 하룻밤은 훌쩍 지나가 버렸다. 이른 시일안에 꼭 다시 찾을 것을 기약하며 고향의 흙내음나는 그 땅과 풋풋한 정이 뚝뚝 묻어나는 그 사람들과 이별해야 했다. 고향 사람들은 인삼차와 토속주,대로 엮어 만든 모자 등을 정성어린 손길로 일행에 쥐어주며 아쉬움을 달랬다. 鄭 회장은 89년 방북때 그랬던 것 처럼 “꼭 다시 오겠다”고 다짐하며 입고 있던 와이셔츠를 그대로 두고 고향을 뒤로 했다. 20일에 찾은 곳은 금강산. 더없이 잘생긴 절경을 보는 순간 일행은‘이 산을 반드시 개발해야 한다’는 각오를 다시금 다졌다. 샅샅이 살폈다. 안개때문에 멀리 볼 수는 없었지만 민족 최대의 비경을 자랑하는 금강산임에는 틀림없었다. 기기묘묘한 일만이천 봉우리가 방북단 일행을 황홀경으로 몰아 넣었다. 일행은 “어서 통일을 이뤄 온겨레가 이 절경을 구경할 수 있도록 해야할 텐데…”라며 입을 모았다. 일행은 鄭 회장의 9월 재방북과 금강산 유람선 투어사업 성사를 위한 실무협의에 고삐를 바짝 당겼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7박8일의 일정이지만 남쪽으로 돌아가기 전에 내놓을만한 선물은 이것이 최고라는 판단에서였다. 마침내 북측 고위관계자와 금강산 유람 사업화를 위한 협력에 힘을 모으기로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유람선사업 계약서에 서명한 것이다. ‘이제 온 겨레가 금강산을 볼 수 있게 됐다”는 부푼 희망을 안은 채 21일 원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방북 6일째. 6·4차량종합기업소 등 여러 산업시설을 둘러보며 합작사업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기회를 가졌다. 현지 관계자들과 시설규모와 투자 필요성 등에 이르기까지 대화가 쉼없이 이어졌다. 마지막 날인 22일. 비행기 편으로 평양에 되돌아 왔다.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을 참관했다. 한 꼬마가 안겨준 꽃다발에 鄭 회장은 환한 웃음을 지었다. 인척들도 만나고,성묘도 했고,금강산 개발사업도 잘 마무리될 것 같고. “나름대로 할 일은 다 했구나”하는 마음이 일었다. 金正日을 만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9월이 기다리고 있다. 저녁 인민문화궁전에서 마련된 연회에서 鄭 회장은 연설을 통해 “하늘과구름,땅이 하나로 통하는 가깝고도 먼 고향에 오니 꿈만 같다”고 했다. “너무도 정답고 따스한 가슴의 문을 열어주어 진심으로 감사한다”고도 했다. “부강한 나라를 창조하기 위해 새 이정표를 세우고 우리 민족이 힘을 모아 출발하자”고 당부하고 “남과 북이 협력해 조국의 번영을 이룩하고 상호협력사업을 토대로 분열을 버리고 통일과 화해로 가는 광명의 길을 웃으면서 함께 가자”고 역설했다. 23일 아침 鄭 회장은 다시 판문점으로 향했다. 金 아·태위원회 위원장은 “9월에 다시 봅시다. 金正日 장군께서 그때는 꼭 만날 것이란 뜻을 전하셨다”며 추가 방북에 무게를 실었다. 9월,금강산은 황금색으로 반기리라.
  • 골다공증/40대 이후 정기검진 필수

    ◎여성 발병률 남성의 6배/작은 충격에도 쉽게 골절/호르몬 요법·칼슘섭취 효과 젊었을땐 괜찮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작은 충격에도 골절상을 잘 입는다.뼈가 약해진다는 말로 표현됐던 현상들로 바로 골다공증에 따른 증상이다. 최근 골절상을 입어 치료를 받았던 이희호 여사도 근본원인은 골다공증에 의한 부상으로 드러나 중년이상의 여성들에게 골다공증에 대한 경각심을 새롭게 해 주고 있다. 50세이상 여성은 두 사람중 한 사람,또 60세 이상에선 네 사람중 한 사람꼴로 골다공증에 의한 척추압박골절을 겪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여성에겐 그만큼 발병 위험도가 높은 성인병인 셈이다. 대한골다공증협의회 주관으로 25∼28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릴 제1회 ‘세계 골다공증 심포지엄’을 계기로 골다공증의 증상과 예방,치료법을 알아본다.(도움말=성균관대의대 삼성제일병원 내과 한인권 교수,아주대의대병원가정의학과 이득주 교수) ▷증상◁ 골다공증은 골량이 정상인보다 낮아지는 골격계 질환으로 폐경기를 전후한 여성에게 잘 생긴다.말 그대로 ‘구멍이 많은 뼈’란 뜻으로 골다공증이있는 사람은 뼈 조직이 가늘어지고 구멍이 많아져 작은 외부의 충격에도 쉽게 뼈가 부러진다. 여성의 발병률이 남자의 6배 정도로 높아 일반적으로 부인병으로 여긴다.여성은 35세를 정점으로 골밀도가 매년 1%씩 감소하기 시작,폐경을 전후해 급속히 떨어져 골다공증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이는 골손실을 막는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이 폐경기 이후 급격히 감소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골다공증에 걸려도 어느 시기까지는 특별한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으며 시간이 경과하면서 등이나 허리에 둔한 통증과 피로감이 올 수 있다.그러나 증상이 심하다고 금방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고 골절을 입고나서야 알게되는 경우가 많다. 골다공증에 의한 골절이 주로 생기는 부위는 대퇴부 척추 손목 등.대퇴 골절의 경우 환자중 5∼20%가 1년안에 사망하고 50%는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할 만큼 심각한 고통을 겪는다. 골다공증 위험군은 △가족중 골다공증 환자가 있거나 폐경이 일찍 된 여성(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폐경 연령은 48.8세) △키가 작고 마른 사람 △앉아서 주로 생활하는 사람 △스테로이드와 같은 약물을 많이 복용했거나 술,담배,커피를 많이 한 사람 △출산 경험이 없는 여성 등.발병 위험률이 높기 때문에 예방과 조기 검사가 필수적이다.따라서 적어도 40대 이후가 되면 정기적인 검진과 여러가지 예방법을 통해 골다공증에 걸리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한다. ▷예방◁ 약해진 골절을 대신할만한 치료법이 없으므로 예방이 중요하다.충분한 칼슘섭취와 운동이 가장 바람직하다.폐경 전후 여성의 하루 칼슘 섭취량은 1,000㎎.우유나 치즈 요구르트 달걀 멸치 등을 많이 먹도록 한다. 그러나 칼슘 섭취만으론 해결되지 않으므로 반드시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운동도 맨손체조나 수영,요가보다는 등산이나 조깅,자전거 타기,에어로빅 등을 하루에 30분이상 1주일에 3일이상 지속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진단과 치료◁ 진단 방법으로는 손목뼈에다 하는 골밀도 측정방법과 컴퓨터촬영법 등이 있다. 치료에는 여성호르몬 대체요법이 가장 보편적으로 활용되고 있다.폐경후 5년 이내에 적절한 호르몬 치료를 하면 80% 이상의 척추골절을 예방할 수 있다.이미 골다공증이 진행된 경우라도 칼시토닌이나 에스트로겐으로 치료하면 어느 정도 골밀도를 높일 수 있어 증상호전에 도움이 된다. 여성호르몬 치료의 부작용이 한때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에스트로겐과 프로제스테론을 함께 복용하면 자궁내막암의 경우 발생률을 오히려 감소시킨다는 결과가 보고됐다.
  • 납치·폭행·생매장… 경영난 기업인 ‘두번 울리기’

    ◎청부폭력조직 무더기 검거/9개파 67명… 조직강령 만들고 합숙훈련/검찰,기업폭력 신고센터 설치… 강력 단속 IMF 시대를 맞아 실직자 등이 포함된 새로운 ‘기업형 청부폭력 조직’이무더기로 적발됐다. 서울지검 강력부(朴英洙 부장검사)는 16일 ‘봉영파’ 두목 林憲福씨(44)등 청부폭력조직 9개파 67명을 적발해 林씨 등 48명을 범죄단체조직 및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韓年熙씨(51·여)등 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李모씨(27) 등 15명은 수배하고 생선회칼 석궁 등 흉기 38점을 압수했다. 林씨는 지난 해 1월 경기 일산 신도시 주변에서 폭력배와 실직자 등 16명을 끌어들여 기업형 청부폭력 조직을 결성한 뒤 채권자 韓모씨의 청탁을 받아 李모씨를 납치한 뒤 “빚 2,000만원을 빨리 갚지 않으면 가족을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는 등 폭력을 일삼은 혐의를 받고 있다. 봉영파는 지연이나 학연으로 뭉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권에 개입할 목적으로 결성됐다.조직폭력배·마약판매책·폐기물 불법매립조직 등을 조직원으로 삼았으며 조직강령을 만들고 합숙훈련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기동성을 위해 중형차 3대도 마련했다. 특히 행동대원 金大植씨(22)는 전국 폭력배 200여명의 연락처가 적힌 ‘깡패수첩’까지 가지고 다니며 필요할 때마다 폭력배를 동원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기창파’ 吳기창씨(26)등 3명은 4월 채무자로부터 300만원을 받지 못하게 되자 채무자에게 돈을 빌려주도록 소개한 金모씨(45)를 잠실대교 부근 한강 공사장으로 끌고가 마구 때린 뒤 한강에 던져 빈사 상태에 빠뜨리기도 했다. 경기 남양주지역의 ‘동문파’ 林東文씨(33)등 3명은 건설공사 하청업자로부터 사무실 임대료를 받지 못하자 하청을 주고 있는 金모씨(47)를 찾아가 “임대료를 대신 갚으라”며 공사용 망치로 머리를 내리 쳐 뇌와 눈에 치명적 상처를 입혔다.金씨를 때린 崔모씨는 실직을 당한 뒤 동문파에 가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학봉파’ 두목 金옥식씨(50)등 8명은 지난 4월 도박빚 2,000만원을 받아내기 위해 姜모씨(52·여)를 한 밤중에 공동묘지로 납치,집단 구타한 뒤 삽으로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하겠다고 협박했다. 서울지검 강력부는 이날 경제난을 틈타 기업 등을 상대로 한 청부폭력이 조직화·흉포화함에 따라 ‘기업폭력 상담·신고센터’(536­3333,FAX 536­9327)를 설치했다.
  • 육아공동체 통해 대안 찾는다

    ◎EQ개발 장난감 만들기,병났을때 민간요법…/‘내일임산부기체조교실’이 모태/수도권·서울 이어 지방에도 생겨/영재교육 지양 ‘창의적 인격체’ 초점 아기가 한번 젖꼭지를 물면 놓을 생각을 않는 건 왜인지,먹는 족족 토하는데 괜찮은지.초보 엄마치고 이런 문제로 고민해 보지 않은 이가 없다.하지만 평촌에 사는 김정선씨(30)는 육아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고 아기 키우기가 마냥 수월만 했던 행복한 경우.평촌,산본 인근에 사는 또래 엄마들과의 ‘육아모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임의 모태가 된곳은 ‘내일임산부기체조교실’(이하 내일교실) 안양지부 0343­55­7896).태교와 건강한 출산의 방편으로 일주일 세시간씩 기체조를 하러 모인 산모들이 출산 이후까지 만남을 이어오면서 지금의 ‘육아모임’으로 발전했다.김씨가 이곳에 첫발을 들인 97년 하반기엔 임신부들이 마침 다들 초산의 서투른 처지였기에 서로 챙겨 주면서 친자매처럼 가까워질 수 있었다. 처음엔 친목 성격이 짙었다.마음맞는 여섯명이 아기 안고 서로의 집을 돌아다니며 차 마시고 수다를 떨었다.고만고만한 아기 키우는 처지라 화제가 자연스레 육아문제로 흘렀다.엄마마다 이유식,유아용품,병고치는 민간요법등 알짜 정보 보따리를 풀어놓곤 했다.여럿이 정보를 나누다보니 혼자서는 쩔쩔매던 문제들이 절로 풀렸다.너무 좋아서 이들은 정규행사로 발전시켜 보자고 뜻을 모았다.그래서 지난달부터 화요일엔 ‘아기 스포츠 클럽’,금요일엔 ‘동화읽기모임’을 꾸리며 일주일에 두번씩 얼굴을 맞대고 있다. 내일교실 안양지부에서 이같은 자생적 ‘육아모임’이 생겨난 건 지난해 11월이 처음.지금은 이 지역만 6팀으로 늘었고 서울지부에서 2팀,부산,대구지부에서도 몇팀이 생겨났다. 내일교실은 요 몇년 새 임신부들사이에 기체조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건강한 출산문화운동을 주도해 온 곳.이들이 ‘육아모임’을 일으키기로 한 건 ‘출산건강’이라는 그간 목표는 어느 정도 이뤘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자연스레 아기를 건강한 사회인으로 키우기 위한 운동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여기고 있던 차에 자발적 모임들이 먼저 나타났다. ‘육아모임’은 아직은 초기단계.서로 자연스런 유대가 중요하기에 참여도 기체조교실 수강생끼리로 제한돼 있다.소모임별로 추구하는 바도 다르다.어떤 데서는 EQ개발 장난감 만들기,어떤 곳은 모유수유 등이 관심사다.어떤 팀은 요즘의 조기 영재교육이 아닌,아이를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인격체로 키울 수 있는 대안교육 모색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팀별로 그때그때 가장 절실한 문제를 스스로 정해 해결을 모색해 가는 것.내일교실쪽에서는 두달에 한번쯤 전체모임을 열어 큰 물줄기만 잡아준다. 내일교실 실장 권현정씨는 “‘육아모임’은 엄마들의 육아공동체다.미래사회에서 사람이 제 역할을 하려면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관심많은 엄마들이 구성원이다.물론 앞으로 채워가야 할 내용이 더 많다.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 활동은 제도권 교육,더 나아가 사회구조를 건강하게 바꾸는 힘이 되길 지향한다.다음세대 창조에 가장 중요한 사람,엄마들이 세력화해 세상을 좋게 바꾸려는 초석과도 같다”고 말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