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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대지기 근무여건 개선 절실/안영일(소리)

    등대의 하루는 바다에 어둠이 깔리면서 시작된다. 40여년을 하루 같이 등대와 함께하고 있지만 매일같이 새로운 시작의 느낌으로 일을 시작하곤 한다.그러나 그러한 느낌은 그냥 느낌으로 끝날뿐 언제나 일을 마칠때쯤이면 무거운 마음이 어깨를 누르는 기분을 감출 수 없다. 그동안 사회가 발전한 만큼 이제 등대에 입문하는 후진들에게는 보다 개선된 근무여건아래서 해운발전에 일익을 담당한다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과거에는 전가족이 등대에서 함께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고독감에 시달린다거나 식생활에 어려움을 격는 일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은 낙도의 등대에도 변화의 물결을 가져오고 있다.바로 교육문제가 이 변화의 물결을 선도 하고 있다. 자녀들의 교육 때문에 유치원적령기 부터 온가족이 뭍으로 대이동을 하고 남는 것은 독신 직원들 뿐이다.더구나 염려 스러운 것은 오랜동안 절해 고도에서 독신으로 지내온 등대수들이 고립된 생활로 인해 퇴직후 사회에의 적응력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점이다. 35년을 이 직업에 종사했다고 치면 25년은 독신생활로 살아온 셈이다. 직장의 발전이 고급인력 확보에 있다면 항로표지관리소 즉 등대의 발전 또한 마찬가지이다.현재의 상황으로 고급인력 확보는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지금 급한 것은 근무조건의 개선이라고 생각된다.따라서 격주교대 근무제도를 도입함으로써 고급인력 확보와 항로표지발전에 기여함이 시급한 실정이다. 사회는 날이 갈수록 눈부시게 발전해 가는데 문명과 문화와는 단절된 절해고도에 바람과 파도소리만 들릴뿐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과거에는 유배지 같은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이것이 직업이라고 생각하며 체념하고 사는 형편이다.전국의 등대수들은 우리나라 경제활동의 생명줄인 해상로를 지키는 수문장이라는 긍지를 갖고 어려움을 참고 있다.
  • 첼리스트 전봉초씨(이세기의 인물탐구:11)

    ◎절교의 기량… 무대연륜 50년의 “악장”/「첼로의 선봉」답게 작품특성 능란하게 표현/음악에 대한 사명감으로 모든 활동 적극적/국내초연작품 즐겨 연주… 청중에 싱싱한 감동 전달 바다밑에서 울려나오는 듯한 깊고깊은 암청색 선율,원로연주가 전봉초씨의 첼로언어는 날이 갈수록 그 깊은 맛을 더해 그가 켜는 베토벤은 명철의 사색처럼 심오하고 그윽하다. 작품이 지닌 특성과 표정을 능란하게 구사하며 단순한 곡 해석만이 아닌 「낙장」의 대우로 존경받는 위치다. 무대에 선지 50년.일본 동경제국음악학교 시절 요미우리(독매신문)가 주최한 전일본 신인 선발연주회에 학교대표로 참가한 것을 첫무대로 그는 지금까지 독주회 20회,서울실내악회·실험악회·서울트리오와 그가 창단해서 이끌던 바크 합주단등 실내악연주 1백회이상,시향·KBS교향악단 협연 해외연주 등등 생생한 음악의 발자취가 산적해 있다. 돌아보면 스포트라이트에 점철된 세월,수천관중과 뜨거운 박수갈채와 꽃다발 속에서 슬픔이나 좌초없이 그는 순조로운 항로를 거쳤고 그래서 그의 인생과 예술은 탄탄한 금자탑을 이뤘다고 할 수 있다. ○순조로운 예술항로 그는 음악의 연륜만큼이나 무대를 알고 청중을 안다. 악기를 얼싸안고 무대에 서는 순간 객석의 분위기로 심상을 꿰뚫어 청중의 정곡을 이미 움직인다. 그가 연주에 임하는 자세는 마치 첫사랑의 열병을 앓는 문학청년과도 같은 미세한 열기가 느껴진다.그러나 그 정열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아닌 안으로 감춘 진주빛 화염,진지하고 결곡하게 테마의 핵심에 파고든다. 얼핏 보기엔 첼로라는 악기가 갖는 철학성을 내보인 듯 하지만 그의 언어는 얼마든지 풍성하여 불꽃같은 테크닉이 숨막히게 전개된다.작곡가의 의도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음악을 사랑하는 애틋한 애정이 전편에 넘쳐 그의 연주는 언제나 젊고 싱싱한 감동을 던져준다. 그는 또 첼로의 선봉답게 한국초연의 레퍼토리를 즐겨 선택한다. 61년 당시로선 획기적인 「현대음악의 밤」을 열어 힌데미트·드뷔시·베버 첼로소나타를 초연했고 65년엔 베토벤만을,그 다음엔 랄로와 생상스,10년전 독주회에서도 데르블로아「조곡2번」,바하 「아리오소」,포레 「비가」등 짧으나 까다로운 곡으로 「첼로만이 갖는 절교의 표현력으로 아름답고 우아하게 노래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 바이올린 박민종,피아노 정진우,첼로 전봉초등 서울대교수들로 이루어진 서울트리오는 50년대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초연곡을 정기연주하면서 한때는 하이페츠와 루빈스타인,피아티고르스키의 「백만불트리오」에 비유되는 황금기를 누렸고 조로가 심한 편인 음악계에 노익장 과시로 후배들에게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그는 어떤 시점에서 그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음악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으로 자신의 위치에 합당한 모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고 할 수 있다 . 87년 일본 교토회관 독주회이후 만5년만인 오는 4월29일(호암아트홀)음악생활 50주년을 기념하는 제21회 독주회를 앞둔 노대가의 심경은 요즘 착잡하기 이를데 없다. 43년 일본데뷔 이후 올해가 꼭 50년이 된다고 해서 후배·제자들이 마련해준 자리다. 그로서는 인생을 돌아보고 마무리하는 어쩌면 마지막 무대가 될지도 모른다.그래서는 아니지만 이번 연주는 여러가지 점에서 뜻깊은 의미를 지니게 될 것 같다.그는 연주때마다 앓던 심한 열병이 이번에는 전처럼 행복한 것만이 아님을 알고 있다. 「연주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갈고 닦은 음악인들의 종교의식」이며 그의 연주는 신에 대한 고백성사,청중은 그의 고백을 듣는 사제의 입장이고 그는 『솔직하고 진실하게 고통과 고뇌와 슬픔과 갈등을 샅샅이 드러내 보일 것』이라고 말한다.그리고 이번 고백성사는 어느때보다 숙연하리라는 예감이다. ○중3때 첼로 첫 연주 전봉초씨는 평남 안주에서 커다란 잡화상을 하던 전리순씨와 이해원여사의 아들 4형제중 막내로 태어났다.집안은 풍족한 환경으로 그는 맹산 북창국민교시절 형(전화황씨)의 친구이던 김동진씨에게 바이올린을 배웠다. 숭실중 2학년때 평양방송국 개국기념 프로에나가 마스네의 「타이즈의 명상곡」을 연주했고 3학년되던해 첼리스트 김태연씨의 첼로연주회에 갔다가 「첼로의 남성적인 깊은 소리」와 「혼의 선을 켜는 듯한 음색」에 빠져 첼로로 바꿨다.그당시 상황에선 음악을 마음껏 공부하기란 쉽지않았으나 일본화단의 거봉인 큰형 전화황씨의 도움과 격려로 그는 일본에 유학할 수 있었다. 유학시절은 찬란하고 화려했다.같은 유학생인 박민종 정희석 윤기선씨등과 한국인만의 4중주단을 조직,영친왕 저택에 드나들며 연주를 한적도 있고 한국인으로는 드물게 NHK교향악단 전신인 일본교향악단 도쿄송죽관현악단 수석주자로 활약,스승인 오무라(대촌묘칠)교수의 도움으로 강제 학병징집을 피해 만주 신경교향악단으로 건너갔다가 해방후 월남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단 한순간도 음악과 관련되지 않는 생활은 찾아볼 수 없다.지금도 1년 3백65일중 그는 2백일쯤은 음악회에 들른다.크고작은 음악회 모두는 그의 동료·후배·제자들의 행사이기 때문에 그는 이를 빼놓지 않는다. 또 친구들을 좋아해서 여러모임을 가지고 있고 어떤자리에서나 늘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예술원 회원중 술마시는 사람끼리의 수요회,또 첼리스트중 60세이상인 첼로동문회 OMC(Old Musician Club)등은 한달에 한번씩모이는 친목 모임들이다. 그는 검은 베레모에 벨트를 맨 더블보턴의 바바리코트가 잘 어울리는 「영국신사」지만 그래서 사교적이고 활동적이고 실천적이나 불의를 참지못하는 까다로운 성격탓에 「면도날」이란 별명을 듣고 있다. ○사교적·활동적 성품 79년 서울대음대학장시절 문교부가 예체능계 대학입시와 관련하여 「예능계 대학교수들이 개인레슨을 함으로써 부조리를 빚고 있는 점」을 지적,「개인레슨 엄단」을 발표하자 같은해 「음락세계」4월호에 「음악의 조기교육에는 실력있고 경험이 풍부한 대학교수가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예능계 대입공동관리제 실시에 앞서 문교부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있는가」를 조목조목 물어 매스컴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연주가이자 대학교수·음협이사장·예총회장을 두루 거쳤고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첼로로 활약하는 1백여명의 직계제자,훌륭하게 키운 그의 3남2녀중 장남(성일씨)콘트라베이스 차남(성환씨)바리톤·효성여대교수,장녀(미영씨)피아니스트·교원대교수 차녀(소영씨)첼리스트,그리고 3남(시문씨)만이 공대졸업후 금성연구소에 근무하는등 안팎으로 크게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러나 그는 『내가 생각한 것처럼 인생을 승리한 것도 성취한 것도 아니며 때로 심한 비바람에 시달렸어도 음악의 열정 때문에 그것이 비바람인줄 짐작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러기전 82년 낙단4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에서 그는 이런 말을 한적도 있다. 『나이를 먹으니까 공수래 공수거,세상사 여부운,이른바 「모든 고통을 낫게하는 감미로운 죽음」이 다가올 때까지 오로지 첼로에 전념하면서 유유자적하게 살고싶다』고. 그리고 두주일전인 지난 12월,그는 사랑하는 장남을 그의 눈앞에서 여의었다.시카고에서 콘트라베이스로 활약하던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에 한동안 망연자실,슬픔을 감추려할수록 그의 눈가에 통한이 서려 보는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인생이란 왔다가 가는 것.그가 나보다 먼저 갔을 뿐」 담담히 체념하면서도 떨리는 가슴을 주체치 못하여 그의 억양에는 처연한 오열이 실려있다.한 아들의 아버지이기 전에 예술가의 의연함과 긍지로 이를 이겨내려 애쓰지만 그의 그런 허탈감은 부모로서의 아픔일수밖에 없다. 우리 음악사에서 첼로선봉으로 커다란 획을 긋는 노대가의 이번 연주는 사랑하는 아들을 위한 연주일수도 있다.이번 연주에서 그는 평생동안 사랑해마지 않던 베토벤의 다섯개의 첼로 소나타와 바흐 무반주의 첼로조곡,바르토크의 루마니아 포크댄스를 암보로 들려준다. 아들의 영혼을 가슴에 묻은 첼로의 선율은 좀더 짙은 암청색을 띤채 비감을 정제시킨 관조의 경지를 보일수도 있다.그리고 첼로와 피아노가 주고받는 대화는 부자간의 사연인양 그날의 객석에 장탄식으로 여울질지도 모른다. □연보 ▲1919년3월18일 평남 안주에서 출생 ▲39년 평양 숭실중 졸업후 도일 ▲43년 일본 동경제국음락학교 졸업(Violin이인호,김동진,Cello김태연·대촌묘칠사사)재학중 일본교향락단 동경 송죽관현락단단원 ▲43∼45년 만주 신경교향락단단원(각부 수석진자로 구성된 현악4중주단 활동) ▲45년 지방순회연주중 북안에서 해방맞아 다음해 월남 ▲46년 고려교향락단 단원▲47년 서울교향락단 수석주자(서울실내악협회 창단 멤버) ▲48년 배재강단에서 제1회 첼로독주회이후 20회 ▲50∼53년 부산 피란지에서 실험락회 연주 20회 ▲52년 현제명씨 권유로 서울대 예술대 음락부 전임강사 ▲53년 서울트리오(첼로 전봉초 피아노 정진우 바이올린 박민종)창단 ▲54년 서울대 음대 학생담당 학장보 ▲58년 대한민국 문화사절단 일원으로 동남아 6개국 순회연주 ▲60년 제8차 IMC(국제음악회의)총회 한국대표로 파리UNESCO회의참석(동양에 있어서의 서양음악 주제발표) ▲65년 서울 바로크합주단창단(제21회정기연주후 바이올리니스트 김민에게 바통넘김) ▲67년 음악연주 25주년기념 KBS교향악단과 첼로협주곡 협연 ▲72년 서울대 4중주단 창단 ▲76∼79년 서울대 음대학장(재임시 동양음악연구소 창설) ▲79년 전봉초 교수 화갑기념 첼로오케스트라 연주회(국립극장대극장)지휘 ▲82년 낙단생활 40주년기념 전봉초첼로독주회 ▲84∼88년 서울올림픽 조직위 집행위원 ▲85∼88년 제13∼14대 한국음락협회 이사장 ▲85년 제21차IMC총회 한국대표(동독 드레스덴 기조연설) ▲87년 일본 교토 일한친선협회초청 첼로독주회(교토회관),제22차 IMC총회 한국대표(브라질) ▲88년 한국예술문화단체 총연합회(예총)회장 ▲91년 사단법인 아세아청소년 교향악단 한국지부장 ▲현재:사단법인 코리안심포니 이사장,사단법인 국제음락애호가협회 한국본부이사장,재단법인 안익태기념사업회 재단이사장,전쟁기념 사업회이사장,예술원 회원,이복련여사와 3남2녀. 5월 문예상 본상,대한민국예술원상,금관문화훈장,국민훈장동백장 음락의 주변,농현50년 낙수
  • 선택의 기로에 선 평양(정경문화포럼)

    ◎남북기본합의서 성실한 이행 급선무/지식층불만·경제난 해소 절박한 시점 한동안 따뜻한 봄기운이 감돌던 한반도에 먹구름이 몰려 들고 있다.언제 천둥·번개와 함께 비바람이 휘몰아칠지 알수 없는 난기류에 빠져 있다. 91년12월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이 채택됐고 지난9월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는 기본합의서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부속합의서까지 발효됐으나 그이후 남북관계가 갑자기 냉각,한발짝도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일로 예정됐던 「남북화해공동위원회」를 비롯한 정치·군사·교류등 각분야의 공동위원회가 북측의 거부로 잇따라 무산됐는가 하면 쌍방군사당국의 직통전화개설도 실현되지 못했다.오는 12월21일 서울에서 열기로 예정된 제9차 남북고위급회담의 개최여부도 지금으로서는 불투명한 상태에 놓여 있다. 북한의 러시아주재대사 손성필은 지난 14일 우리정부가 팀스피리트훈련재개방침을 철회하지 않는한 제9차회담을 거부할 것임을 시사했다. 남북관계가 어째서 이처럼 냉각되고 말았는가.한편으로는 대화를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도발을 서슴지 않는 북한의 이중적인 대남책략때문이다.김일성주석이 북녘땅에 공산정권을 수립한 이후 단 한번의 수정도 없이 줄기차게 추진하고 있는 대남정책의 기본논리는 「하나의 조선」이다.이 논리는 남쪽에 친북단체를 조직,혁명역량을 축적한 다음 결정적인 시기에 이땅 전체를 적화통일해보겠다는 가당찮은 체제이념이며 북한으로서는 불변의 국가이념이기도 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최근 적발된 「남조선노동당간첩사건」이다.남북기본합의서는 서로의 체제를 인정,상호 비방·중상을 않기로 되어 있으나 평양당국은 기본합의서 발효이후 대남 비방·중상을 오히려 강화해 왔으며 급기야는 대규모의 간첩망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말았다.이 사건으로 구속된 간첩들은 그들의 죄과를 순순히 자백했다. 그런데도 평양당국은 이 사건을 우리정부의 자작극이라고 떼를 쓰면서 남북관계가 냉각된 책임을 오히려 이쪽에 전가하고 있다.그야말로 「도둑이 매를 든」꼴이다. 올해 중단했던 팀스피리트훈련을 내년에 재개하기로 한 우리정부의 방침은 북한의 도발에 대한 당연한 대응이며 그들이 남북기본합의서를 성실히 이행하고 책임있는 국제성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도록 하기위한 경고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 북한은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첫째는 권력승계의 문제이다. 북한 정무원 김영남외교부장의 최근 발언대로 그곳에서의 부자권력승계는 거의 끝난 상태이다.『정치·경제·외교·군사·문화등 모든 사업을 김정일이 한몸에 지니고 영도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도 알고 있다.그러나 문제는 카리스마에 있다.분단이후 47년간 북녘땅을 통치해온 김일성주석은 현대의 어떤 독재자보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다.때문에 정치적으로는 안정된 기반을 유지해 왔다.그러나 김정일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카리스마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80년 제6차 노동당대회에서 그를 후계자로 정한뒤 줄기차게 김정일우상화운동을 펼쳐 왔으나 그것이 성공했다는 징후는 찾아 볼수가 없다.아버지의 카리스마가 아들에게는 연결되지 못한 것이다. 지금 평양의 집권층에는 「경제개발을 위해서는 개방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테크너크랫 계층과 「개방은 체제자체를 붕괴시킬 우려가 있다」는 군부및 혁명1세대간 강·온파의 갈등이 내연되고 있으며 현재로서는 강경파가 득세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그러나 김정일의 고민은 집권층내부의 갈등보다 이른바 「인텔리계층」(약 1백50만명으로 추정)의 동향에 있다.그래서 요즈음 북한의 선전매체들은 「인텔리문제」를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지난 9월20일 평양방송이 인텔리계층의 충성과 효성을 강조한데 이어 10월6일 중앙방송은 인텔리계층의 체제반대투쟁의 위험성을 우회적으로 경고하기도 했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미국 컬럼비아대 제럴드 커티스 교수는 평양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생기를 잃은 체념의 도시」라고 묘사했는데 이것은 북한인텔리계층의 동향에 그대로 대입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란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이들의 체념이 분노로 폭발한다면 북한사회는 어떻게 되겠는가. 북한이 직면해있는 또하나의 어려움은 경제를 살리는 일이다.평양당국은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대일수교와 대미관계개선을 서두르고 있으나 핵문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그들은 국제원자력기구의 핵사찰을 핑계로 남북상호사찰을 기피하고 있으나 남북의 책임있는 당국자끼리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는 상호사찰실시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다.그런데도 이를 끝내 거부한다면 민족에 대한 배신이며 국제사회에서의 신의를 저버리는 파렴치한 소행이 아닐 수 없다. 평양의 집권층으로서는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어떤 방법으로든 핵무기개발을 추진하겠지만 그래서는 체제를 지탱하기 어렵고 경제를 살릴 수도 없다. 평양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우리는 평양이 슬기로운 선택의 결단을 내려주기 바란다. 그것이 지금으로서는 고뇌에 찬 선택이겠지만 언젠가는 올바른 선택이었음을 스스로 기뻐하는 날이 올 것임을 우리는 확신하고 있다.
  • 더 일하고 더 성숙된 「새마을」로(사설)

    새마을운동은 우리의 근대화를 이끌어온 가장 확실한 정신적 원동력이었다.우리에게서 자생하여 우리에게서 꽃핀 세계적인 정신이 「새마을정신」이다.이 정신이 격변의 시대를 겪으며 다소 퇴색해온 것은 우리의 커다란 손실이었다.더구나 오늘날에 이르러 우리에게는 이 새마을정신이 절실하게 긴요해지고 있다.어제 9일에는 전국새마을지도자 대회가 있었다.아직도 순수한 열정으로 새마을정신의 실천에 헌신하고 있는 많은 지도자들이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그들에게 새마을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기대해보게도 한다. 근면과 자립을 근본으로 하는 도덕적 가치창출의 정신인 새마을정신의 종주국인 우리가,오늘에 이르러 힘들고 어렵고 더러운 일을 싫어하여 실직자는 늘지만 일할 사람은 없고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나태한 사회가 되어간다는 것은,그리하여 정신적 위기를 겪는 사회로 전락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은 부끄럽고 슬픈 일이다. 그러므로 새마을운동이 『빈곤과 체념을 극복하는 지혜와 용기를 보통사람들에게 불어넣은 새바람의 정신운동으로 근대화 과업의 성취를 위한 원동력이었음』을 치하하면서 이 정신의 새로운 실천과 사회도덕성 함양을 강조한 노태우대통령의 대회치사내용에 우리도 전적으로 공감한다.우리가 축적한 이 소중한 정신운동에 새로운 점화가 하루 빨리 이뤄지기를 우리는 바란다. 22년전 출발 당시의 새마을운동이 원초적이고 일차원적인 지난날의 가난과 실의에서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일을 사명으로 했다면 지금 우리가 요구하는 새마을정신은 보다 성숙되고 세련된 미래정신이라고 할수 있다.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으로 첨예한 갈등이 상존하는 나라가 기적적인 경제발전을 실현하고,더이상 세계사의 주변국에 머물기를 거부하며 선진대열에 진입하려던 우리가 의외의 복병처럼 당면한 위기를,극복할 수 있는 실천덕목을 새시대의 새마을운동은 실현시켜야 할 것이다. 조금 더 일하고,조금이라도 아끼고,자율력을 길러 민주시민정신을 실천하는정신자세가 지금 우리에게는 절박하게 요청된다.그것은 바로 새마을정신의 기본이다.특히 소비자경제시대를 살면서 환경문제가 살아남는 조건인 이 시대는 개인의 각성이 전체의 운명과 직결되는 시대다.그런 우리에게는 새마을정신의 척추인 금욕적 도덕성이 절박하게 필요하다.우리의 이같은 삶의 노력을 이끌 수 있는 정신운동으로 새마을운동이 새롭게 거듭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 불감증이 더 두렵나니(박갑천칼럼)

    새벽에 뒷산 봉우리를 돌고 내려오다가 한들거리는 들국화를 본다.그것을 보면서 국화의 계절이구나 함을 새삼스레 느낀다.가을이 짙어가는데 그걸 지금껏 못느꼈다니.까닭은 「국화 불감증」에 있었던 것 아닌가 생각해 본다.지금 세상에서 국화가 어디 가을꽃이던가.봄이고 여름이고 볼수 있는 꽃.국화는 관념 속의 가을꽃일 뿐이다.그래서 제철에 핀 들국화를 보면서야 국화가 가을꽃임을 떠올리게 된 것.이렇게 사람에게 불감증을 심은 전천후 국화는 그 특유한 향내마저 잃어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불감증이란 말은 본디 의학용어.사전을 뒤적여 보면서 함부로 쓰기는 좀 거북한 말이구나 싶어지기도 한다.넓은 의미로는 접근욕과 성교욕이 감퇴된 경우를 말하고 좁은 뜻으로는 특히 여성들이 성행위에 따르는 쾌감을 못느끼는 경우를 이른다고 한다.거기에는 또 육체적·정신적인 원인이 각기 있다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이 말이 일반용어로 쓰이면서는 세상사에 대한 느낌이 없거나 둔한 경우를 이른다.의학용어에서의 성적인 부분을 세상사로갈음해 놓은 것.그러므로 의학용어로 생각할 때 쓰기가 좀 쑥스러워진다는 것뿐 굳이 못쓰잘 것도 없다.말이란 그렇게 개념을 새끼쳐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가령 야단법석(야단법석)같은 말만 봐도 그렇다.불교에서 야외에 강단을 차린 법좌(법좌)를 일렀던 것이 출발인데 그 자리가 시끄러웠던 것만을 따서 일반용어로 쓰고 있다.그런 사례는 물론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불감증은 두 측면에서 생각해 볼수 있겠다.첫째는 고마움등 긍정적 사상(사상)에 대한 불감증.너무 일상적이다 보니까 당연지사가 되어 고마움을 잊는다.공기나 물의 고마움,부모의 은혜 등등이 그것.사람들은 커다란 섭리의 은혜까지도 곧잘 잊고 지내는 것이 아니던가.하기야 서시(서시)같은 미인 아내를 둔 사내는 여성의 아름다움에 불감증이 된다고 한다.그 결과 장화·홍련의 계모 허씨(허씨)같은 몰골하며 성깔의 여자한테 빠져든다던가. 두번째가 모든 반가치·반사회 행위에 대한 불감증이다.세상이 험악해져 가면서 갖은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나는가 하면 끔찍스럽고 추잡한 불륜사건도 꼬리를 문다.부정부패도 횡행하고.이런 범죄행위들이 너무 자주 그리고 날이 갈수록 흉포화·지능화함에 따라 감응하는 신경들도 무디어져 간다.갈수록 면역이 되면서 불감증에 빠져들어가게 한다. 불감증의 형태에도 두 측면이 있다고는 하겠다.정말로 아무것도 못느끼게 된 경우와 느끼면서도 스스로의 정신건강을 생각해서의 체념.양식(양식)과 도덕성이 마모(마모)되면서 더욱 이기화(이기화)·무관심화 해가는 시류 따라 불감증의 폭은 넓어져 갈것이다.그러나 사회병리 현상 그것보다도 어쩌면 더 두렵다고 해야 할 이 불감증.「사회적 쾌감」의 회복에 불감증 다스리기도 중요한 몫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건만….
  • 악덕에 볼모잡힌 장의(사설)

    유명 종합병원 영안실이 허가도 받지 않은채 장례식장으로 운영되고 있고 고시가격같은 것은 무시된채 바가지요금으로 운영되다가 무더기로 적발 구속되었다.우리가 알기로 장의업자들의 이런 횡포는 족히 수십년은 넘은 고질적인 부조리다.시신을 볼모삼는 장의업의 횡포는 우리사회에서 전혀 새로울 것이 없게 되었다. 상을 당하는 일은 우리 누구에게나 창황중의 「큰일」이고,일을 수습해야 하는 상주는 예법상으로 「죄인」이므로 속사에 아는체를 하기가 어려워 애당초부터 따져가며 일을 치르게 되어 있지않다.이런 구조적인 약점들이 이 분야의 업종들로하여금 악덕과 불법을 조장한 요인이라고 할수 있다. 이번에도 폭리로 횡포를 부려온 몇몇 불법업체가 구속까지 되었지만 그것으로 장의업의 부조리가 고쳐지지는 못할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더구나 10월1일부터 장례식장 및 장의사 이용요금이 자율화되면 이나마의 단속근거마저 없어져,현상은 더 나빠질 수도 있다.단속하고 풀어주는 소극적인 대응만으로는 한계에 이르렀으므로 이제야말로 근원적인대책이 시급해졌다. 장례는 살아가면서 누구도 피하지 못하는 인륜의 대사다.이런 일이 업자의 손에만 놀아나게 되어 있는 것이 부조리를 낳는 원천적인 요인이다.장의업을 특수한 계층이 맡는 「궂은 일」로만 치부하여 근대적 산업구조에 포함시켜 오지 못한 우리의 관습때문에 웬만한 부조리는 오랫동안 표면화되지도 않았고 당하는 사람들도 체념해 왔다.그런 관행들이 부조리의 질긴 뿌리를 굳혀왔고 폐쇄적인 독점영업으로 성장시켜 오기도 했다.거기에 불합리한 가격 정책의 부조리까지 합쳐져서 고시가격은 명색뿐이게 되었고 수십배의 부당요금에도 급하고 경황이 없는 유족들은 저항도 못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담당행정의 미숙으로 독점의 특혜를 누릴 수 있는 독소적 요인까지 용인해 온 결과가 되었다.신규로 장의업을 허가 받기 위해서는 염사의 자격을 갖추기위한 교육평가를 의무화하고 있는데 이를 평가하는 업무를 전국 장의사협회가 맡게 하고 있으므로 신규 영업을 그들이 얼마든지 차단할 수있게 하고 있는 것도 그중 하나다. 독점을 법으로비호받으며 가격은 얼마든지 임의로 우려낼수 있고,거의 모든 고객이 경황이 없어서 따져보지도 못하고 「효」의 미덕을 핑계삼아 온갖 강요를 다해도 꼼짝없이 들어야 하며 일과성 불행이므로 아프터서비스나 사후관리의 요구도 받지않는 영업이니 횡포와 악덕이 판칠 요인은 넘친다. 이런 구조적이고 필연적인 요인들을 방치한채 대증적이고 일시적인 감독이나 단속쯤 아무리 해보아야 고쳐지기는어렵다.업종이 개방되어 선의의 경쟁이 가능해야하고 주거공간의 변화에 맞는 장의공간이 복지차원에서 개발되어 도시 영세민이나 시민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일도 시급하다.이같은 제도적 장치의 개발은 묘지제도의 정리를 위해서도 시급하다. 악덕을 뿌리뽑는 일은 근본적으로 그것의 온상이 만들어지지 않게 제도부터 정비하는 일과 지속적인 감시와 견제가 병행하는 일로만 가능하다는 평범한 이치를 다시 한번 강조해 둔다.
  • “나머지 수배자도 곧 항복”검찰 낙관/정보사땅사기 마무리수사 안팎

    ◎증비서류검토등 공소 미비점보완에 주력/김영호 “내가 무슨 염치로…” 변호사 선임 포기 ○“발표 서두르지 않아” ○…정보사부지를 둘러싼 거액사기사건의 마무리수사를 벌이고 있는 검찰은 그동안 피해액의 행방을 상당부분 밝혀내는등으로 「배후설」등이 난무하던 「의혹」이 가라앉고 있는데다 미확인부분의 사용처도 속속 밝혀지자 느긋한 표정. 검찰이 수사결과를 되도록 서둘러 발표하려다 오는 24일쯤 발표하기로 한것도 『수사과정에서 제기됐던 갖가지 의혹을 거의 해명한 상황에서 지엽적으로 확인이 덜된 부분을 덮어두고 서둘러 발표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의견에 따른 것이라고. 이번수사를 총 지휘하는 서울지검 특수1부 이명재부장검사는 20일 이와관련,『수배된 5명을 끝까지 추적하고 나머지 20억원의 행방까지 모두 밝혀낸뒤 구속된 7명을 기소하게될 24일쯤 사건전모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설명. 검찰은 이에따라 그동안 수집된 영수증·회계장부등 증빙서류를 일일이 검토하고 구속된 피의자들을 불러 공소에 필요한 미비점을 보완하는 등의 막바지 정리수사를 펴는 모습. ○…검찰은 공개수배된 민영춘씨(40)등 5명의 행방과 관련,『조만간 이들 가운데 한두명의 신병을 더 확보할 수 있을것』이라고 밝혀 일부수배자들로부터 자수의사가 전달돼 왔음을 강력히 시사.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날 『성무건설회장 정건중씨(47)등 「3정」과 명화건설회장 김인수씨(45)가 제발로 들어왔듯 수사전말이 드러나고 도망가봐야 소용없다는 판단을 하게되면 나머지 수배자들도 곧 「항복」할 것』이라고 낙관하는 표정. ○…지난 8일 구속된 전 합참군사연구실 자료과장 김영호씨(52)는 『앞으로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검찰관계자가 전언. ○“내죄는 내가 아는데…” 이 관계자는 김씨가 조사를 받으면서 『내죄는 내가 아는데 무슨 염치로 변호사를 선임하겠느냐』고 반문하면서 『나는 어차피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하는등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명화건설회장 김인수씨가 정보사부지관련 사기사건에 앞서 지난 90년 성남에서도 임야를 형질변경 해주겠다며 정부소유토지처분담당직원을 사칭,15억원에 이르는 돈을 사취한 사실이 20일 밝혀지자 김씨를 수사해온 서울지검관계자들은 『김씨는 그런 사기를 하고도 남을 인물』이라고 촌평. 이 관계자는 『김씨는 지난 84년에도 검찰간부를 사칭해 음식점·구멍가게 등에서 34만원어치의 음식·술·담배 등을 무전취식한 혐의로 입건됐던 인물』이라면서 『김씨가 변한점이 있다면 사기액수가 커지고 사기대상이 음식서 나라의 땅으로 「대형화·기업화」됐다는 점일뿐』이라고 한마디. ○“사기죄 추가” 반색 ○…사문서위조혐의로 구속된 국민은행 정덕현대리(37)가 그동안 알려졌던 오피스텔 구입비 2억원말고도 성무건설회장 정건중일당으로부터 7억4천여만원을 더받은 사실이 밝혀지자 검찰은 『정대리도 정씨 일당과 한패임이 드러난 만큼 정대리에게 사기죄를 추가적용하는데 문제가 없어졌다』고 반기는 기색. 정대리는 특히 이 돈가운데 절반이 넘는 4억원을 압구정동과 신사동 등지의 화랑등에서 남관화백의 90호짜리한국화와 십장생도등 수천만원짜리 동·서양화와 전통공예품 72점을 사들였으며 모두 모으면 트럭 2대분에 해당한다고. 한 수사검사는 『정대리가 일정한 기준없이 이것저석 「돈되는」미술품을 마구잡이로 사들인 구매행태를 보면 예술품에 대한 조예나 고상한 취미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가격상승을 노린 투기목적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논평. ○…이번 사건을 주도한 합참간부 김영호씨(52)의 개인비서격인 임환종씨(52)가 20일 자수함으로써 막바지에 이른 수사가 다시 활기를 띠는 모습. 임씨는 김씨의 심복역할을 한데다 김인수(40)·정건중씨(47)일당과의 다리역할을 한것으로 알려져 사건의 전모를 밝히고 의문점을 규명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검찰은 기대. 국방부장관의 고무인과 정보사령관 명의의 합의각서를 위조한 공로(?)로 김인수씨가 명화건설 부사장까지 맡긴 임씨는 사기등 전과12범에 사건이 표면화되기 직전에도 원유순씨(49)를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인 인물.
  • 일제만행 폭로에 법정 “숙연”/일서 정신대 첫 공판

    ◎소복차림 할머니 「50년 피맺힌 한」절규/“「인도에 관한 죄」 적용 위안부 보상을” 1일 상오 일본 도쿄지방재판소 713호 법정.하얀 소복을 입은 할머니가 법정 증언대에 섰다.그 할머니는 일제때 강제로 끌려간 한국인 전종군위안부.종군위안부 등이 제기한 피해보상소송의 역사적인 첫 공판이 열린 것이다. 할머니는 증언대에 섰지만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할머니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법정을 가득 메운 하얀 소복의 다른 피해자들도 숨을 죽였다.할머니는 끓어오르는 분노를,마치 종군위안부시절의 고통을 참고 견뎌내었듯이,안으로 삭이는 듯했다. 할머니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그러나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하지만 할머니의 모기만한 목소리는 광야의 아우성보다 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할머니는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로 일본의 비인간적인 전쟁범죄를 증언했다.일본의 죄악을 증언하는 할머니는 고통스러워했다.차마 하고싶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일까.할머니의 얼굴에는 공허가 흐르고 있었다.어떤 피해보상도 자신의 빼앗긴 삶을보상해줄 수 없다고 체념한 듯했다.그러나 그것은 사실이다.50년간 「침묵의 한」을 강요당한 할머니의 고통은 무엇으로도 보상될 수가 없다. 할머니의 고통은 한사람만의 고통이 아니다.수많은 한국의 젊은 여성들이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똑같은 고통과 침묵의 한을 강요당해 왔다.인천에 사는 이 할머니와 함께 8명의 전종군위안부및 징용,징병으로 끌려갔던 32명등 41명의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회원들은 지난해 12월과 지난 4월 1인당 2천만엔의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도쿄지방 법원에 냈다. 피해보상소송의 첫 공판이 열린 이날 해방 47년만에 비인간적인 종군위안부 강제연행에 관한 일본의 죄악이 최초로 일본법정에서 폭로됐다.한국인 피해자들은 2차대전후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 나치전범을 처벌하는데 적용된후 국제적 관습으로 확립된 「인도에 대한 죄」(Crimeagainst Humanity)를 적용,피해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제1차 공판이 끝난후 한국인 피해자들은 재판소 옆에 있는 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전종군위안부였던심미자할머니는 토요일이면 30∼40명의 일본군 「공중변소」가 되었던 자신의 아픈 과거를 절규하며 일본의 반성을 촉구했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는 성명을 발표,『일본은 국제공헌을 구실로 유엔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안을 만들어 아시아에 다시 일본군대를 파견하려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과거 죄악의 청산 없이는 일본은 어떤 명분으로도 국제공헌을 할 수 없는 나라』라고 강조했다. 유족회 회원들은 이날 하오 도쿄 중심에 있는 히부야공원에서 대중집회를 가졌으며 3일에는 나고야,4일에는 오사카,교토 등에서 1차 공판보고집회를 가질 예정이다.
  • 「움직이는 국악원」,포항 세명고를 찾다

    ◎고교생들,북장단 맞춰 “얼씨구” 합창/조용하던 객석이 흥보가에 환성 터져/“우리소리 진수 만끽”… 사인요청 줄이어 공연이 모두 끝난뒤 국악원 사물놀이단원들은 사인을 받기위해 무대앞에 몰려있는 1백여명의 여학생들을 피해 뜀박질하듯 강당앞에 서있는 버스에 올랐다. 그러나 이미 버스안을 가득 메운채 먼저 연주를 끝낸 다른 단원들의 사인을 받고있는 학생들을 발견하자 체념한 듯 자리에 앉아 내미는 종이마다에 서투른 사인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15일 하오 경북 포항의 세명고교 강당에서는 국립국악원의 「움직이는 국악원」공연이 열렸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강당안의 분위기는 이 공연이 이날 아침에야 갑작스럽게 결정되어 연주자와 청중 모두 마음의 준비가 덜 된 탓인지 조금은 어수선했다. 그러나 공연이 끝난뒤 연주자와 청중들은 모두 「새로운 발견」을 했다는 뿌듯함을 느끼는 듯 했다. 「움직이는 국악원」프로그램은 지방주민들,특히 낙도와 산간 오지의 주민들에게 제대로된 문화를 접하게 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것으로 국악원 연주단은 예정대로라면 이날 울릉도에서 연주회를 갖기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폭풍주의보로 울릉도로 떠나기로 한 14일 배가 출발하지 못해 연주단은 포항에서 발이 묶였고 15일에도 출항이 불가능해지자 대신 연주할 장소를 서둘러 물색한 끝에 찾아간 곳이 세명고교였다. 단원들은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울릉도에서 좋은 연주를 하기 위해 긴장을 하기도 했지만 사실 여간해서 가볼 수 없는 울릉도의 비경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학생들도 그랬다.학생들은 이날 아침 담임선생님으로부터 국립국악원이 찾아와 연주회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환호성을 울렸었다. 그러나 그 환호성은 한 학생이 말한대로 모처럼 오후수업이 없어졌다는 기쁨의 표현이었지 국악원 연주단에 대한 기대 때문이 아니었다는 해석이 옳을 것이다. 국악을 많이 접해보지 않았다면 어른들에게도 인내를 필요로 하는 관악합주곡 「함녕지곡」이 김응서씨의 집박으로 연주될 때만 해도 좀처럼 분위기는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하루미씨의 궁중무용 「춘앵전」과이금희 조경희씨의 경기민요에 이어 황지일씨의 대금독주 「청성곡」이 연주가 끝나자 「국악이라는 것이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들어보면 좋아질 수도 있는 것」이라는 듯 자세를 고쳐앉고 연주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시나위연주에 이어 명창 김일구씨가 김청만씨의 북장단에 맞추어 흥보가 가운데 한 토막을 걸찍하게 늘어놓자 학생들도 김명창이 가르쳐준대로 『얼씨구』『잘한다』등 서투른 추임새를 「남발」하는 등 흥겨워했다. 마지막 순서인 사물놀이가 끝났을 때 1천8백명의 남녀 학생은 한 목소리로 환호성을 울렸다.학생들은 물론 단원들의 찜찜했던 마음도 한꺼번에 풀리는 순간이었다. 사인을 받기 위해 버스로 몰려든 학생들을 바라보며 한 중견단원은 『한 이삼십년 전에도 공연이 끝나면 분장실로 몰려드는 소녀들을 돌려보내느라고 바빴다』며 옛날을 회상했다. 그러자 한 젊은 단원은 이렇게 말했다.『그 소녀들과 이 학생들은 달라요.이 학생들은 외국가수가 노래부르는 것을 보려고 죽기까지 한 바로 그 세대들인데요』 그러면서 그는 『문화소외층은 울릉도같은 섬이 아니라 바로 입시의 중압감에 쪼들려 있는 바로 우리 이웃의 청소년들이라는 사실을 이 공연에서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움직이는 국악원」은 단원들의 요청에 따라 16일에는 대구의 경상여고에서 예정에도 없던 공연을 한번 더 가졌다. 국립국악원 연주단은 지난 85년에도 울릉도에서 연주회를 가지려다 태풍에 발이 묶여 돌아섰던 적이 있다고 한다. 이승렬 국립국악원장도 16일 예정에는 크게 어긋났지만 뿌듯한 연주회를 모두 마친뒤 울릉도 주민들에게 미안하다면서 「삼고초려」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울릉도연주는 꼭 실행하겠다고 말했다.
  • 아마추어가 쓴 PC안내서 인기

    ◎배우는 과정의 실수·어려웠던점 사례별로 정리/PC는 내친구/삼성 김용진씨등 5인 집필/컴퓨터길잡이/어려운 용어 한글화 시도 “신선” 최근 컴퓨터 전문가가 아닌 일반직장인에 의해 쓰여진 PC(개인용 컴퓨터)안내서가 인기를 끌고 있다.삼성물산에 근무하고 있는 김용진씨등 5명이 쓴 「PC는 내 친구」(희성출판사)와 연세대등에서 중문학을 강의하는 조관희씨가 쓴 「인문사회과학도를 위한 컴퓨터 길잡이」(도서출판 민족통일) 등이 그것이다. 특히 「PC는…」는 3월말 초판 3천부를 발행한 뒤 독자들의 반응이 좋아 곧이어 재판 3만부를 찍어낼 예정. 이처럼 비전문가가 쓴 컴퓨터 안내서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지은이들이 컴퓨터를 배우면서 궁금하게 생각했던 점들에 대한 친절하고 평이한 해설을 하고 있기 때문.지은이들은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적도,학원에 다니며 배운적도 없이 직접 많은 책을 뒤지면서 컴퓨터를 알게 됐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컴퓨터가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서점의 컴퓨터 서적 매장을 찾았던 많은 사람들은 결국 자신에게알맞는 안내서를 구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 씁쓸한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입문서의 대부분이 시작단계부터 전문용어를 사용하거나 독자에게 일정 수준이상의 기본지식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때문에 독자들은 아예 컴퓨터에는 소질이 없는 것으로 체념해 버리거나 기초지식을 쌓지 않고 곧바로 이용에 들어가곤 한다. 또 컴퓨터를 이용해 논문을 써 본 사람이거나 게임을 해본 사람도 여전히 컴퓨터에 대한 소외감은 피할 수 없는 것이 현실.전문가에 의해 개발된 소프트웨어를 활용,컴퓨터의 몇 가지 이용방법을 터득했을 뿐인 경우가 많다.더우기 컴퓨터를 치다가 작동미숙으로 에러가 난 경우 처치방법을 몰라 하루종일 쩔쩔매는 경우도 적지 않다. 「PC는 내 친구」는 초보자를 비롯,일정 수준에 이른 이들이 컴퓨터분야의 전반을 조망할 수 있게 배려한 안내서이다.이 책을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김용진씨는 『컴퓨터분야의 숲을 볼 수 있도록 7∼8권의 책을 한 권으로 압축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일단 5백쪽에 이르는 두껍기에 걸맞게 다른 안내서에 비해 기초분야 설명이 충실하다. 「컴퓨터 길잡이」는 중국문학을 전공한 지은이가 컴퓨터를 구입해 사용하면서 느껴왔던 답답함을 안내서를 통해서도 해결하지 못했던 것을 감안,후학들을 위해 요점식으로 정리해 놓은 안내서.특히 이 책은 컴퓨터 용어의 한글화를 시도,많은 용어를 괄호안에 넣어 동시에 수록함으로써 신선감을 주고 있다. 한편 「PC는 내친구」를 펴낸 삼성물산의 김용진·조연창·민경식·전제완·이태신씨 등 5명은 이 책의 판매수익금을 낙도와 벽지의 어린이들,장애자들에게 PC를 보내는데 쓰기로 뜻을 모았다.이들은 근무부서가 다르면서도 PC에 대한 남다른 관심때문에 「PC매니악」이란 사내 연구모임을 구성,활동하고 있다.
  • 중국,대만과 경협주력/금세기 통일 사실상 체념/홍콩신문 보도

    【홍콩=최두삼특파원】 북경당국은 금세기안에 대만과의 통일을 달성하려했던 당초의 목적을 사실상 체념하고 당분간 쌍방간의 경제관계 강화에 주력하기로 대대만 정책을 변경했다고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지가 4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대만 최대 일간 연합보 보도를 인용,이같은 중국당국의 대만통일문제에 대한 입장의 변화는 국가주석 양상곤이 최근 북경서 소집된 대대만 문제 고위급회의에서 행한 발언에서 확인됐다고 밝혔다.연합보 보도에 따르면 양상곤은 당과 정부의 대만문제관계 간부 및 관리들이 참석한 이 회의에서 『90년대에 대만과 통일을 이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고 말하고 『현재 우리가 주력해야 할 주요과업은 대만과의 경제교류를 증진시키고 되도록 많은 투자를 유치시키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양의 이같은 발언은 북경당국의 대대만 정책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음을 시사하는 것으로,양은 작년에 열린 이와 유사한 회의에서 『대만과의 평화적 통일달성은 중국 공산당이 90년대에 이룩해야 할 중대 과업』이라고 강조한바 있다. 연합보는 북경당국이 지난 3월 회의에서 대만과의 통일에는 장시간이 소요되며 복잡하고도 어려운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전반적으로 인식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문학작품 영상화작업 활발(문학)

    ◎작년 개봉 방화 90여편중 40여편이 소설원작/인기소설은 흥행성공에도 큰몫/“영상매체에 굴복” “도약의 전기” 논란/표현방법 차이로 원작자·감독 불화도 문학작품의 영상화작업이 활발하다. 지난해 국내에서 개봉된 90여편의 방화 가운데 「은마는 오지 않는다」(안정효 원작),「경마장 가는 길」(하일지 원작)등 40여편이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문학작품이 영화의 젖줄이 돼 가고 있다.외국의 경우 소설의 영화화 비율이 15∼30%정도인데 비해 한국은 50%에 육박,영화의 소설의존 현상이 두드러진다.방송드라마의 경우에도 「여명의 눈동자」(김성종 원작),「동의보감」(이은성 원작)등 미니시리즈를 비롯,지난해 TV문예극장,MBC베스트극장이 새로 신설됨으로써 원작소설의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다.이같은 증가세는 영상시대가 급속히 진전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더욱이 「경마장 가는 길」의 경우 20여만명의 관객을 동원,불황 영화계에 활력을 주고 있어 앞으로 소설이 영화의 기본 소재를 제공할 뿐 아니라인기소설의 경우 흥행의 담보역할까지 해낼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소설의 영화화는 두 매체간의 본질적인 표현방법의 차이,감독의 해석권 때문에 종종 원작자와 감독간의 불화거리가 되기도 했다.즉 원작소설과 영상작품과의 거리는 지속적인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는데 소설의 영상화작업이 늘어나면서 최근 국내작가들의 영화에 대한 인식이 많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자신의 작품을 영상작품의 원작으로 기꺼이 내주었던 많은 작가들은 설사 영상작품이 못마땅하게 만들어졌더라도 직접적인 불만을 표하는 경우가 드물고 인쇄매체와 영상매체간의 차이를 인정한다.특히 시간상의 이유와 영상매체에의 무지 등을 이유로 제작에 관여하는 작가는 극히 적으며 내심으로는 원작에의 충실을 바라면서도 이미 그것이 불가능한 것으로 체념하고 있다.이는 영상매체가 성장과정에서 상당부분을 문학에 의존했었다는 역사적 사실이나 지난 36년 영화화된 「무정」을 두고 원작자 이광수와 영화감독 박기채가 벌였던 논쟁으로부터 최근 「가자 장미여관으로」를 두고 원작자 마광수씨와 제작진간에 있었던 해프닝에 이르기까지의 문인과 영화인간의 반목을 무색케 하는 것으로 활자매체와 영상매체간의 미묘한 알력의 완화를 상징하는 것이다. 자신의 소설 대부분이 영화화 되었던 소설가 이문렬씨는 『영화는 내것이 아니니만큼 대범하게 생각한다』고 말해 영화의 원작수용에 대한 불만을 시사했다. 이씨는 방송극화된 「황제를 위하여」가 『우스꽝스럽게 만들어졌다』,「영웅시대」가 『괜찮았지만 배역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그러나 원작이 연기,감독의 해석,기계 등으로 함께 구성되는 영화의 4분의 1의 몫이라고 전제한 이씨는 자신은 최초의 아이디어 제공자일 뿐으로 영상화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실제로 그는 자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절반도 못봤을 정도라고 덧붙였다.이씨는 원작과 영화와의 거리를 만드는 요인으로 벗기기 등의 충무로 영화계의 관습,예술적 안목이 그리 높지 못한 제작자,활자매체와 영상매체간의 표현방법의 차이를 들었다. 지난 1월 소설 「하얀 전쟁」을 영화화하는 베트남 촬영현장에 다녀왔던 소설가 안정효씨는 『원작은 소설이고 영화는 영화다』라며 자신의 베트남 동행은 전쟁당시의 사정이나 현실적인 세부사항을 조언하기 위한 것이었지 원작자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밝혔다. 영화 「경마장 가는 길」의 시나리오작업 등 영화제작 현장에 활발히 참여했던 소설가 하일지씨도 촬영현장에서 자신이 했던 연기의 방향이나 분위기 지도가 조언이었을 뿐이라며 감독의 고유한 영역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밖에 「분례기」의 방영웅씨,「우리는 중산층」의 박영한씨,「유년의 뜰」의 오정희씨 등은 자신의 작품을 영상화한 방송드라마에 만족을 표시한 반면,「검은 양복」의 채희문씨,「만취당기」의 김문수씨는 불만족을 각각 나타냈는데 불만족한 경우라도 두 매체간의 본질적인 표현요소의 차이에 따른 원작의 변용수용은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같은 현상을 두고 영상시대에 영상매체의 위력에 문학이 굴복한 것이라는 성급한 추측이 나오는가 하면 원작소설의 영화화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전기로서 문인과 영화인간의 공감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소설원작과 영화의 분명한 차이에 대해 『소설원작을 영화화하는 작업이 원작을 그대로 영상에 베껴내는 작업이 아닌 만큼 소설을 영상이라는 언어로 표현하는 작업은 이미 원작소설과 무관하다』고 영화평론가 김은주씨는 말했다.김씨는 또 『원작소설을 각색하여 영화화한 것이라도 원작소설과 영화는 서로 어떤 구속도 받지 않는 완전히 독립적인 작품으로 이해돼야 한다』(「문학정신」3월호)고 강조했다.
  • “살인마 처단하라” 주민들 분노/김동준 사회3부기자(현장)

    ◎개천서 시체가방 나오자 몸서리 유괴범에 의해 끔찍하게 살해된 이득화군(8)의 사체인양작업이 있은 11일 상오7시.경기도 수원시 평동 4차선도로 중보교 아래 서호천변은 간밤에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뿌린 때문인지 더욱 을씨년스럽고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수사관들이 이 삭막한 다리밑에서 사체인양작업을 시작한지 10분쯤 됐을 때 안개가 짙게 깔린 개천 물속에서 설마했던 한가닥 기대(?)를 무참히 뭉개버리고 득화군의 사체가 담긴 청색 여행용 가방이 올라왔다. 가방을 건져내던 수사관들은 그동안 밤낮없이 수사에 매달려왔기 때문에 일종의 개가를 올린 승리감에 도취해야할 판이지만 이번만은 모두가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사체 인양작업을 지켜본 주민들도 너나할것 없이 범인의 말대로 물속에서 가방이 나오자 처참한 광경에 『이럴 수가…』하며 더이상 할말을 잊었다. 『저 어린것을 어찌 저렇게 할 수 있을까』「인면수심」의 현장을 지켜보던 많은 주민들은 범인의 천인공노할 범행에 다시한번 치를 떨었다.사체인양장소에 있던 범인 문승도(23)도 득화군의 시체를 보자 제정신이 들었는지 고개를 돌려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땅바닥만 바라보던 범인 문은 자신이 득화군을 죽인 흉악범이라는 사실이 확연해지자 모든 것을 체념하는 듯했다. 그는 한참뒤 흥분한 주민들이 『저놈 죽여라』고 소리치는 사이 수사관들에 이끌려 호송차에 오르면서 다시 한번 개천바닥을 돌아봤다. 한 수사형사는 범인을 호송차에 태우며 성난주민들을 향해 이렇게 설명했다. 『사회전체에 물든 금전만능,한탕주의와 인명경시풍조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저희 경찰도 범인을 잡았다는 기쁨보다는 득화군을 살려내지 못한 것이 더 없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안개자욱한 새벽길을 달려가는 호송차를 뒤로 하며 기자는 어린 생명을 담보로 한 흉악범죄에 몸이 저절로 떨렸다.
  • 초점 잃은 추곡가 논쟁/구본영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만추의 서정이 그윽한 들녘에 선 농민들의 가슴속은 황량하다.UR협상을 둘러싼 농산물 개방압력의 파고는 날로 높아 가는데 정치권이 농촌을 살릴 장기적인 비전 제시보다는 정략적인 추곡수매가 인상논쟁에만 골몰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농촌에 대한 소득보상과 생산비인상을 감안해 추곡수매가와 수매량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민주당측의 주장은 「단기적으로는」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8백50만섬만 수매한다 하더라도 3천7백억원의 추가 재원이 필요하고 이같은 추가부담은 야당측이 팽창예산시비를 벌이고 있는 내년 예산에서 끌어다 써야 할 판이다.게다가 양곡보관상의 문제점도 간단치 않다.10월말 현재 정부양곡 재고량이 1천4백50만섬에 달해 적정재고량을 무려 7백50만섬이나 초과하는등 보관능력이 한계에 도달했고 정부미 재고의 대종을 차지하는 통일미의 판로는 끊긴지 오래이다.더욱이 산지가와 정부수매가의 차이로 민간유통기능이 마비상태에 이르렀고 추곡가가 물가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도외시할수도 없는 일이다.길게 보아 농업구조조정정책의 가속화로 농촌인구를 점차 줄이고 영농기계화와 경제성있는 작목의 집중육성으로 경쟁력을 기르고 쌀등 NTC(비교역적 관심사항)품목을 제외한 농산물수입을 점차 개방하는 것 이외에는 우리 농촌과 경제를 동시에 살릴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엄연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정치인에게는 금세기의 석학 버트런드 러셀의 다음과 같은 경구를 들려주고 싶다.『자기 자신의 진실을 들여다보는 태도에는 어떤 체념이 깃들어 있다.이러한 체념은 처음엔 괴로울지 모르지만 결국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빠지는 절망과 환멸을 막아준다』 캠플주사와 같은 추곡가 인상으로만 농촌을 장기적으로 살찌울 수 없으며 야권일각의 맹목적인 UR협상 반대구호만으로 우리 공산품의 해외 판로와 농촌생존권을 동시에 보장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다. 진실로 나라의 백년대계를 생각하는 정치인이라면 우선 농촌유권자들에게 환심을 사는데만 급급해 추곡가 인상논쟁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농업구조조정 정책을 성공시켜농촌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 전 김일성 통역관겸 고위외교관/고영환은 말한다:3

    ◎세습 절차만 남긴 평양 권부/개혁파,있지도 않고 설땅도 없다/오진우등 혁명1세대 이미 노망기 보여/서모 김성애·이복동생 김평일 외면 당해 얼마전 남한언론들이 김일성의 후처 김성애의 사진이 로동신문에 게재됐다는 외신보도에 관심을 표명한 것을 보았다.김성애의 사진공개는 한마디로 김정일의 지휘가 확고부동함을 시사해주는 것이며 동시에 김정일이 서모 김성애와 그 이복동생들을 괄시한다는 서방언론들의 비판을 의식,김정일의 이미지를 바꾸려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을 깔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김의 권력승계와 관련,김성애와 김평이등 이복형제,그리고 혁명1세대들의 반발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나 이는 과정에 불과하다. 김정일의 이복형제들에 대한 견제와 관련해선 이런 일화가 있다. 지난 82년 당시 당정치보위부장이던 김병하가 하루 아침에 「부화」(연애)및 사치등의 죄목으로 목이 뎅강 날아갔다.그는 당시 김정일로부터 그의 이복형제들인 김평일 김영일등에 대한 사찰명령을 받고 『수령님이 살아계시는데 차마 그럴 수 있느냐』고반발했다 숙청을 당한 것이다. 불가리아대사인 김평일은 외교관회의 참석때마다 꼿꼿한 자세를 보여 눈초리가 살아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으나 역시 권력의 주변을 맴돌고 있을 뿐이다.올해 37살인 그는 김일성을 쏙 빼닮은 정치가적 풍모와 명석한 두뇌회전으로 북한주민들로부터는 인정을 받고있다.그러나 적출이 아니란 이유로 김정일의 박대가 심하다보니 『불쌍하게 됐다』는 식의 동정외엔 아무런 도움을 받지못하고 있다. 그는 불가리아주재대사로서 『나도 지도자동지의 명을 받고 근무하는데 왜 나만 빼고 일을 처리하느냐』고 부하직원들을 호통치지만 어느 누구도 그와 접촉하거나 업무보고를 하려들지 않는다.김평일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당조직지도부 10호실에 접촉보고서를 상세히 제출해야하는등 철저한 감시를 받기 때문이다. 이복여동생 김경일의 남편 김광섭 체코주재대사는 「눈동자가 초첨을 잃고 머리는 땅만 쳐다보고」있을 정도로 외교무대에서의 역할을 아예 포기한채 체념속에 살아가고 있다. 이렇듯 김성애를 비롯,그 이복형제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심한 견제를 받아 대항력을 잃고 있으며 지지세력도,욕망도 갖고있지 않다. 이들외에 친인척들로 대외경제위원회 위원장 김달현(김일성과 5촌간),김창주(농업담당부총리 김일성의 작은 아버지 김형록의 일남),김봉주(직총중앙위 위원장〃 이남),김선주(만경대혁명학원 정치부장 〃 삼남)등이 있으나 권력핵심과는 거리가 먼 곳에서 김부자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을 뿐이다.당국제부장 김용순이 친인척이라는 설은 근거가 없다. 북한에도 개혁파와 보수파간의 갈등이 있으며 혁명1세대,특히 군부원로들이 김정일의 권력승계에 불만을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이 또한 서구적 발상에서 나온 추론에 지나지 않는다. 혁명1세대의 대부격인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의 경우 73년 김정일이 당조직·선전선동담당비서로 임명됐을때 터져나온 최용건 당시국가부주석등의 불만을 임춘추·허담등과 함께 잠재운 공로로 줄곧 권력서열 3위의 자리를 지켜왔으나 최근 「노망기」가 심해 『저 오진우가 빨리 죽어야지.인민군대 망하갔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로지휘능력을 잃고 있다.그는 지난해 김정일의 지시로 군이 동계훈련을 준비하자 『이 따위는 와해.내가 처리하갔어』라고 장담했다가 김으로부터 『왜 안하느냐』는 추궁을 받자 『이놈들아 왜 준비를 안하느냐』고 부하들을 다그쳤다.이에 부하들이 『부장동무가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반발하자 『내가 언제 그랬느냐.이놈들이 내가 나이를 먹었다고 놀리는구나』고 짜증을 내는등 망령기를 보였다고 외교부대표단과 함께 지난해 자이르에 왔던 군관계자가 전했다. 호위총사령관 이을설도 김일성이 주최한 한 만찬에서 김의 질문에 엉뚱하게 답변,좌중이 웃음을 참느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이처럼 70대를 넘어선 거의 모든 혁명1세대들은 이제 김일성의 옛 동지로서 김의 배려아래 이름뿐인 직위를 유지하며 노후를 즐기고 있을 뿐이다. 북한사회에는 또 엄밀한 의미의 개혁파도 존재하지 않는다.지난 87년 인민경제대학 공업경영학 강좌교원들이 중국식 「가족책임제」농업방법(일종의 토지임대제도)의 도입을 건의,테크노크래트의 한사람인 김환 화학및 경공업위원장이 이를 김정일에게 올렸다가 김의 분노를 사 서열 10위에서 50위로 내려앉은 적이 있다. 이후 경제부처의 테크노크래트들이나 고급당학교 이론가들,그리고 모든 관료들이 『현재도 나는 승용차도 타고 잘먹고 잘사는데 화를 자초할 필요가 있느냐』며 조용히 시키는 일만 하고 있다. 한편 김정일의 권력승계와 관련,소련은 물론 여러모로 못마땅하다는 내색을 숨기지 않고 있지만 중국은 이미 그가 북한의 실세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으며 강력한 지지를 보내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옳다.중국은 이 바탕위에서 중국·베트남·북한을 잇는 아시아사회주의 동맹권을 형성,소련식 개혁과 개방의 거센 파고에 맞서려는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권력기반이 확고한 만큼 김정일의 권력승계는 불변의 사실이다.다만 그 시기는 93년 가을쯤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92년중 80회를 맞는 김일성의 생일을 건국이후 최대의 행사로 치르려는데 모든 힘을 쏟을 것이다.또 「고추장에 쌀밥」이라는 기본적 욕구를 채울 수 없는 경제적 사정도 무리지만우방국의 축하사절단을 한해에 두차례나 부를 수도 없다. 따라서 7차 당대회는 제3차 7개년 경제계획이 완료되고 일·북한 수교협상이 마무리돼 50억달러로 기대되는 배상금이 지급될 내년 하반기중에 열릴 가능성이 높다. 이때쯤 북한은 일본측의 배상금으로 빈사상태에 빠진 경제에 긴급수혈을 실시,어느정도 숨을 돌릴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7차 당대회를 통해 당총비서직을 승계하는 한편 새로운 경제계획및 주요 정책노선도 발표할 것으로 짐작된다.
  • 가짜 무공해식품의 반륜성(사설)

    가짜 식품사건은 우리에게서 식상할만큼 끝이 없는 이야기다.그리고 이번에는 가짜 무공해농산물 차례가 되었다.이 역시 이미 언급돼오고 있던 품목이지만 4일자 본지보도를 보면 그 꼴이 심히 우려될 뿐 아니라 가관이라는 느낌까지 준다.상인들이 아니라 농민들까지도 무공해라는 상자의 상표를 3백50원씩 주고 사 붙이기만 하면 「무공해식품」이 되고 이를 또 백화점과 대형슈퍼들까지 참여해서 50%씩의 값을 더 얹어 폭리를 취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특급호텔 식품도 위생적으로는 무책임하기가 이를데 없다는 결과까지 나왔다.보사부가 16곳이나 적발하여 공개한 내역을 보면 이들 특급호텔이 유통기간이 지난 식품을 제조판매하는 것은 그저 평범한 상습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면 이런 사태는 이제 우리에게서 하나의 관행이고 풍조처럼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그러나 지금 어느나라 사회에,도대체 생명에 직결돼 있는 식품을 가짜로 통용시키고 있는곳이 있는가.이것은 결국 선진·후진의 의식에 관한 사안이 아니고 인명존중의 기본적인 인륜적 태도자체가없다는 문제가 된다.단순한 상도덕의 과제도 아니고 이 사회가 가진 근본적인 삶의 부건전성을 표징하는 것이다. 더 터무니없는 것은 이런 가짜 식품을 유행처럼 사주고 있는 소비자의 지식과 지혜의 수준이다.우리의 환경오염 현실에서 이미 문자 그대로 무공해식품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은 공지돼 있다.지난 3월만해도 농촌진흥청이 이에 대한 구체적 자료를 내놓은바 있다.무공해식품을 표방하고 재배하는 농산물에 있어서도 그 재배과정을 보면 90%가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고 있고 64%는 제초제까지 쓰고 있음을 조사에서 확인했다. 뿐만아니라 우리의 농토전반에 화학비료사용은 지금 미국의 3·5배라는 사실도 알려져 있다.3·5배 덜 쓴 미국의 농산품도 수입과정에 농약잔류검사를 하면 언제나 문제가 되고 있음을 상기할때 우리농산품은 그 어느것이나 잔류검사같은 것을 굳이 해볼 필요도 없이 걸리게 되어 있다. 포괄적인 환경오염 관점에서는 더 불가능한 것이 무공해식품이다.무엇보다 환경오염은 국지적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대기오염은 수질오염과직결돼 있고 수질오염은 또 토양오염과 한덩어리다.토양만해도 고체상태인 흙과 액체상태인 지하수,기체상태인 토양 공기로 구성된다.산성비를 맞은 토양을 따지기전에 그동안 농약을 얼마나 퍼부었는가를 감안하면 오히려 얼마쯤 체념하고 오염의 현실을 감수하는 태도까지 가져야 하는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 와중에서 내 돈만 벌고 내 건강만 지키면 된다는 반륜의 시류를 만들고 있다.이런 풍조로 우리가 세계에 나서고자 하는 선진의 풍모는 만들어 낼 길이 없는 것이다.뿐만 아니라 단순한 생활의 지혜도 없는 국민이 된다.상대적으로 저공해식품 밖에 있을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마저 버리고 비싸게 사먹는 태도야말로 소비자 스스로 창피하게 느껴야할 부분이다.식품사기에 가장 적절한 대책은 우선 이를 사먹지 않는 국민의 행동이다.
  • 외언내언

    해마다 이맘 때면 노오란 먼지가 하늘을 가리는 황사현상이란 것이 일어난다. 작년에도 4월8일부터 수 일간 계속되었다. 중국대륙의 황토먼지가 편서풍을 타고 날아와 일으키는 자연현상. 금년에도 5월까지는 아직도 봄이 남았으니 한두 차례 지나갈 것이 틀림없다. ◆황하유역의 흙먼지와 함께 벼멸구 등 해충을 싣고와 눈병도 내고 농작물에 병충해도 퍼뜨리는 불청객쯤으로 알고 있었다. 태초 이래 되풀이되어온 자연현상이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일. 하던 것이 이제는 자연 탓만 하고 체념할 수 없게끔 사정이 달라지게 되었다. 자연 아닌 사람이 만드는 공해도 실려오기 때문. 황사는 노오란 먼지로 눈에 보이기나 하지만 인간공해의 오염대기는 눈에 보이지도 않으면서 3백65일을 매일같이 불어온다니 문제는 심각하다. ◆중국에선 언제부턴가 「공중귀」란 말이 흔히 쓰이고 있다는데 대기오염으로 내리는 산성비를 두고 붙인 이름. 「하늘귀신」이라니 잘도 붙인 이름이란 생각도 든다. 눈에 보이지 않게 대기를 오염시키고 산림을 망치며 토질을 파괴하는가 하면 강과 호수의 물도 못쓰게 하니 무서운 귀신임엔 틀림없다. 우리나라에선 페놀이라는 「수중귀」가 강물을 망쳐 소동이 났지만 중국의 「공중귀」도 인간공해. ◆중국은 발전 등 공업용,가정용 할것없이 유황성분이 많은 석탄이 주된 연료. 70년대부터 시작된 급속한 공업화로 석탄소비는 급증하는 추세. 질소산화물과 함께 산성비를 만드는 2대 원흉인 유황산화물을 만드는 것이 이 석탄의 배기가스. 연간배출량이 80년대 중반에 이미 1백5백만t으로 일본의 20배를 초과할 정도. ◆한반도 맞은 편의 연안공업지대를 중심으로 공업화가 가속되면 대기오염은 더욱 심해질 것이고 그 중국공해의 「공중귀」들이 황사처럼 황해를 건너 온다고 생각하면 끔찍한 생각이 든다. 이미 강화·백령도 등은 물론 일본에서까지 중국 산성비의 영향이 측정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한다는 남북한과 일본 중국 소련을 포함하는 국제환경조약 체결 등 대응을 서둘러야 할 것 같다.
  • “되찾은 공영개발” 밝아진 「수서」

    ◎「특별공급 백지화」 발표이후 현장을 가다/“물려받은 땅 무주택자에 혜택 다행”/주민들/“다른 택지 찾아봐야죠”… 체념속 순응/조합원/이젠 주민들도 호의… 본격공사로 부산/건설회사 서울의 마지막 노른자위 땅으로 불리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 수서지구 일대. 한동안 택지특혜분양으로 전국을 「수서한파」속으로 몰아넣었던 이 마을에도 서울시의 택지특별공급 전면백지화 방침이 확정,발표되면서 따뜻한 봄소식과 함께 점차 평온을 되찾아 가고 있다. 야트막한 대모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아늑한 분지형태의 이곳은 6·25 전쟁때에도 포화에 휩쓸리지 않았을 만큼 서울 외곽에선 외진 지역으로 한눈에 봐서도 「천혜의 땅」임을 알게해 주는 곳이다. 이곳 수서지구 43만여평의 8%에 해당하는 3만5천5백여평이 바로 재벌의 검은 돈에 정치인과 공무원이 놀아나 특혜분양했던 문제의 땅이었다. 포크레인,덤프트럭 등 중장비 30여대가 늘어서 있는 마을 어귀를 지나면 따뜻한 봄볕이 내리쬐는 공터에서 노는 아이들과 분주히 오가는 부녀자들에게서한결 밝아진 표정을 읽을 수 있다. 수백년전부터 대대로 살아온 집과 논밭 등 삶의 터전을 택지공영개발이라는 시책에 따라 서울시에 내준 주민들은 그래도 처음엔 당국의 방침에 호의적이었으나 어느날 갑자기 「힘있고 돈깨나 쓰는」 재벌과 몇몇 특정이익집단이 부정한 방법으로 땅을 차지했을때는 분노와 배신감으로 연일 울분을 터뜨려야했다. 다행이 이같은 비리가 폭로되고 관련자들이 모두 법의 심판을 받게 됐으며 뒤늦게나마 당국이 부동산투기 차원의 특혜분양을 백지화시켜 일반주택 청약예금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방침을 바꾸기로 하자 주민들의 노여움은 어느정도 가라앉았다. 마을 초입 비닐하우스에 차려져 있는 「수서·일원지구 개발반대투쟁위원회」 사무실에는 3일 봄바람이 약간 찬 날씨에도 불구,10여명의 주민들이 모여 다소 환해진 얼굴로 앞으로의 이주·생계대책을 의논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5대째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는 염창남씨(48)는 『조상들의 피와 땀이 얼룩져 있는 땅이 부정을 저지른 검은 손으로부터 멀어져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함께 있던 주민들도 『지난 89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개발에 반대해오긴 했지만 어차피 개발될 땅이니 만큼 힘없고 돈없는 무주택 서민에게 새로 짓는 집이 골고루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89년 12월부터 이 지역 택지조성공사를 맡아온 동부건설 현장사무소 직원들도 활력을 되찾고 있었다. 「수서의혹」이 시작되면서 공사를 중단하다시피 했지만 이제는 인부들도 일부는 팽개치다시피 버려두었던 중장비를 끌고 현장에 나갔고 나머지는 장비수리 등을 하며 다가올 본격적인 공사에 대비하느라 분주했다. 현장감독관 권혁효씨(44)는 『처음 수서문제가 크게 부각되자 주민들이 그들의 땅을 부당하게 빼앗겼다며 실력으로 공사를 저지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면서 『특별분양 백지화 방침이 확정발표된 뒤부터 주민들의 태도가 호의적으로 변했을 뿐더러 인부들도 신명나게 일할 분위기가 됐다며 좋아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서파문」이 좀체 가라앉지 않자 한때 일손을 놓았던 한보그룹의 직원들도 『위기에 빠진 회사를 우리가구하자』며 일요일에도 직원 일부가 정상출근,밀린 업무처리에 열중했다. 직원들은 또 특별분양 백지화 방침이 확정됐음이 알려지자 『차라리 잘된 일』이라며 『정회장 개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해왔던 회사체질을 개선하는 좋은 계기로 삼자』며 서로를 격려하는 분위기다. 또 직원들은 특별분양 백지화에 따라 26개 주택조합에 물어야 하는 1천1백여억원의 위약금 때문에 자칫 회사가 도산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다가 회사측에서 법정관리신청을 하는 등 대책을 수립하자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주민 박동안씨(42)는 『농사만 지어온 사람들이 택지분양권만 받으면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느냐』고 반문하면서 『분당원주민에게 그랬듯이 우리들에게도 상가분양권 등 생계책을 세워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서택지를 특별분양받았던 모금융기관 주택조합의 한 간부는 『한보의 로비사실이 밝혀지면서 모든 조합원이 부동산 투기꾼으로 비쳐져도 말한마디 못하는 등 억울한 점이 많았다』면서도 『일부에서는 백지화방침이 위법이라며 소송을 내겠다고 하지만정부방침을 받아들이고 다른 택지를 구할 수밖에 없는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이번 사건으로 주택조합제도상의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난 만큼 하루빨리 관련제도를 고쳐 다시는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새 경제팀에 거는 기대와 과제(사설)

    최각규 부총리를 경제총수로 한 경제내각이 출범했으나 새 경제팀에 거는 기대와 바람은 과거와 달리 저조하고 둔감한 듯 하다. 나라를 온통 뒤흔들어 놓은 수서사건의 충격파가 아직 가셔지지 않은데다가 사람이 바뀌었다고 해서 정책의 획기적인 변화가 있겠느냐는 체념적 분위기가 새 경제팀에 대한 기대를 반감시켜 놓은 것같다. 제6공화국 출범이후 잦은 경제팀 교체와 경제정책의 잇따른 변화가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성을 저상시켜온 점 또한 새 경제팀에 대한 기대 절하의 요인이 되고 있다고 하겟사. 경제팀에 대한 「평가절하」는 앞으로 경제정책의 효과를 낮추는 부정적인 작용을 한다는 점에서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한 것이다. 나라경제가 어렵고 정국이 혼란하면 할수록 새 경제팀에 거는 바람이 많아야 하고 기대가 커야 옳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최부총리는 『경제는 안정과 성장,국제수지가 마의 삼각관계에 있어 어느 하나만 택일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조화가 절대 필요하다. 그러나 최근 국내경제 상황으로 보아서는 우선 안정이중요한 과제라고 본다』고 취임소견을 밝혔다. 최부총리의 판단은 올바르고 당연한 방향으로 여겨진다. 민주화라는 전례없는 정치적 변혁기에 있어 물가안정은 유신시대나 권위주의시대의 안정과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경제가 정치를 지배하는 시대에 있어서는 성장이 체제유지의 원동력이 되지만 정치가 경제를 지배하는 시대는 안정이 체제유지의 필수적 요건이 된다. 이번 수서사건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질타가 컸던 이면에는 물가불안을 비롯한 불안심리가 적지 않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새 경제팀은 안정을 성장을 위한 종속변수로 보던 과거 정권의 개념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새팀은 남미에서 보듯이 물가불안이 체제유지를 위태롭게 한다는 사실에 보다 철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민주화시대의 체제유지의 근간은 안정이고 그 다음은 분배의 공정이라는 것이 하나의 가설이다. 민주화시대 또하나 경제정책의 근간은 자본주의 경제의 운행원리인 경쟁에 대한 공정한 룰(규칙)을 정하는 일이다. 수서사건과 같은 비리의 뒷면에는 특혜라는 공정치 못한 법칙이 개재되어 있었다. 권위주의 시대에는 정경유착에 의한 특혜가 가능했었다. 그러나 민주화 시대에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정부가 할 일은 경쟁이라는 게임의 룰을 올바르게 정하고 공정하게 감시하는 경제환경을 정착시키는 것이다. 새 경제팀은 만의 하나라도 정부가 모든 경제계획의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추진하려는 과거적 발상과 사고를 가져서는 곤란하다. 경쟁을 촉진하고 공정하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금융실명제와 토지공개념강화 등 제도개혁을 꾸준히 추진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그리고 일단 추진한 정책을 중도에서 자주 변경하는 일이 있어서는 참으로 곤란하다. 우리경제는 민주화와 함께 국제화의 과정을 걷고 있다. 대미 통상마찰과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등 경제외교 현안이 산적해 있다. 새 팀은 이 경제외교에 대한 역량을 강화하기 바란다. 우리는 진심으로 새 경제팀에 보다 많은 기대와 성원을 보내고 싶다.
  • 「수서의혹」 막바지 수사 이모저모

    ◎“희생양” 발뺌하다 물증대자 “정치자금”/정 회장,“모의원은 깡패와 다름없어”/“이 의원 「양심선언」 신문보고 베낀듯” ○…수서지구 택지특별분양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 가운데 김종인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과 이상배 행정수석비서관이 16일 하오9시9분쯤 서울3 마7107호 검정색 슈퍼살롱승용차로 삼청동 검찰청별관에 도착,구속된 평민당 이원배의원이 주장한 「청와대 비서진 관련설」의 진위여부 등에 대해 조사받았다. 김수석비서관 등 2명은 검찰청사 별관으로 들어갈때 승용차 뒷좌석에 타고 있었으며 이들을 태운 차량이 별관후문 10m쯤 떨어진 지점에 이르자 자동후문이 열렸고 곧바로 차량이 쏜살같이 안으로 들어갔다. ○시간지나자 자백 ○…서소문 대검청사 15층 조사실에서 철야조사를 받은 여야의원들은 14일 검찰출두 당시 『국회의원을 이렇게 취급할 수 있느냐』며 당당한 모습을 보이던 것과는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풀이 죽어 15일 새벽부터는 혐의사실을 차츰 시인하기 시작했다고. 의원들은 14일처음 수사를 받기 시작했을 때는 담당검사들을 향해 고함을 치는가 하면 『민족과 국가를 위해 일한 사람을 이렇게 대접할 수 있느냐』며 딴전을 피우다 수사 검사들이 증거를 들이대면 「정치자금이었다」고 오리발(?)을 내밀더라는 것. ○…이원배의원을 조사한 한부환 중수부2과장은 『이의원이 검찰조사과정에서 「양심선언문」을 작성해둔 사실을 진술했었다』고 밝히고 그러나 『이의원의 양심선언내용은 사실과 다른 것이 많으며 지난 2월4일자 신문에 보도된 의혹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해 이의원이 신문내용을 보고 작성한 듯하다』고 설명하기도. 한과장은 또 『「양심선언」 내용이 유서와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의원이 직접 「양심선언」을 작성한 뒤 자살하려고 했으나 서울에서는 농약을 구할 수 없어 자살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최명부 대검중수부장은 16일 하오8시30분쯤 구속된 평민당 이원배의원의 「양심선언」이 나오자 급거 기자회견을 자청. 최중수부장은 이의원의 「양심선언」 내용에 대해 해명을 하다가기자들이 정회장의 진술서를 공개해 줄것을 요구하자 『수사서류는 공개할수 없다』며 이를 거부하다 제갈융우 중수부1과장의 메모쪽지를 전달받고 『정회장이 보완조사를 받기위해 때마침 청사안에 있으니 기자단 간사 2명이 직접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즉석에서 제의하기도. 최부장은 그러나 곧이어 한부환 2과장이 건네준 또다른 메모쪽지를 받아들고는 『정회장과의 대면은 없었던 걸로 해달라』고 태도를 돌변. 검찰은 이날 20여분동안 계속된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에게 정보가 노출될 것을 우려한듯 중수부장과 과장들 사이에 3차례에 걸쳐 메모쪽지 필담으로 의견을 나누는 등 이의원의 「양심선언」 공개로 급작스레 벌어진 상황에 무척 당황해 하는 모습. ○“정치 희생양 됐다” ○…이원배,김태식 두 평민당의원은 민자당의원들이 도착하고 난 뒤 각각 하오3시와 하오4시쯤 동료의원과 보좌관·당원들을 데리고 차례로 검찰에 출두,『정치 조작극의 희생양이 됐다』 『국회의원을 이렇게 취급할 수 있느냐』며 검찰수사에 강한 불만을 토로. ○오용운위원장은 소환될 당시와 마찬가지로 심경 등을 묻는 질문에 체념한 표정으로 침묵으로 일관하다 기자들이 계속 대답을 요구하자 『죄송합니다』라고 짤막하게 한마디만 한 뒤 청사를 떠났다. ○…하오4시55분쯤 영장이 집행된 이원배의원은 계속된 철야조사탓인지 다소 수척한 모습이었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면서도 『집에서 발견된 1억9천만원은 수서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처음부터 돌려주기 위해 보관해왔다가 검찰에 소환되자마자 임의제출했다』고 주장하기도. 이의원은 또 나머지 2억원의 행방을 묻는 질문엔 『정회장이 평민당에 성금으로 전달해달라고 부탁해 권노갑의원에게 전달했다』며 『김대중총재도 이같은 사실을 보고 받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대답. 이의원은 그러나 『이번 사건이 문제가 된 것은 택지매입과정과 조합결성의 위법성 때문이며 돈을 건네받은 부분은 청와대나 민자당 평민당 모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자신이 받은 돈이 정치자금임을 계속해 주장. ○…장병조 이규황씨 등 2명도 하오5시부터 5분 간격으로 영장이 집행됐으나 이들은 『죄송합니다』며 짤막하게 말한 뒤 고개를 떨구고 구치소로 향했다. ○“얼마나 시달렸으면” ○…정회장은 검찰에서 조사를 받는도중 의원들에게 뇌물을 건네준 부분에 대해 진술하면서 모의원을 『어휴 그 깡패』라고 지칭하며 치를 떨더라고 한 수사관이 전언. 또 모의원에 대해서는 일자 면식도 없는 처지에 돈을 달라고 했다며 「나쁜×」라고 무심결에 내뱉었다는 것. 이를 두고 한 수사관계자는 『정회장이 이들로부터 얼마나 시달렸으며 조사받으면서 그같은 표현을 썼겠느냐』고 나름대로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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