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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렌타인 데이에 우리 결혼해요] 노준영(35)·최윤경(29)씨

    “老총각 노준영,이제 NO총각을 선언합니다!” 2년 전 어느 날 가장 존경하는 대학 지도 교수님이 학교가 아닌 한 카페로 불러내셨다.한걸음에 달려나갔더니 교수님 앞에 웬 아리따운 아가씨가 앉아 있는 게 아닌가.알고 봤더니 교수님이 두 청춘남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시려고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인 소개팅’을 주선하신 것이었다.혼기가 꽉 찬 나이에도 허구한 날 컴퓨터 모니터만 보고 사는 제자가 안타까우셨나…. 그녀의 첫인상.시원한 강바람 같고,탁 트인 푸른 들판 같은 느낌이었다.쾌활한 목소리,예쁜 미소,귀여운 행동 모두가 뇌리에 각인됐다.‘아,이사람!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제 인연이라는 확신도.하지만 그녀는 어찌나 도도한지 도통 애프터를 받아주지 않았다.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법.그 후부터 ‘노준영의 사랑 프로젝트’는 시작됐다. ‘틈새 파고 들기’,또는 ‘돌쇠의 마님 마음 열기’ 작전이었다.퇴근시간에 회사 앞에서 기다렸다 잠깐 얼굴 비추기,그녀의 저녁 약속 장소까지 동행해 주기,늘 웃는 모습 보여주기,표정 파악하며 이야기 들어주기,시시때때로 휴대전화 문자 보내기 등등.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그녀도 제 쪽을 바라보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났다.갖은 핍박에도 꿋꿋한 척했지만 사실 속은 숯검정처럼 타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는데,결국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완수했다. 지금 나의 예비신부는 우리의 스위트홈을 위해 인테리어를 구상 중이고,인터넷 요리사이트를 서핑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의 조리법을 익히고 있다.내가 정신적으로 힘들 때는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위로해 주고,몸이 피로할 때는 재치있는 입담으로 웃게 해준다. 14일 밸런타인데이에 노준영과 최윤경의 초콜릿처럼 달콤한 사랑의 이중주가 시작된다.저희의 앞날을 축복해 주시길…. 더불어,평생 짝꿍을 만나게 해주신 교수님께,이 지면을 빌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 뮤지컬 '페임’ 더블캐스팅 소냐·카밀라

    가수 소냐(24)와 카밀라(27)는 닮은 구석이 많다.타고난 가창력,이국적인 외모,넘치는 끼,그리고 가수 데뷔 후 활동 영역을 넓혀가는 도전 정신까지….뮤지컬 ‘페임’에서 이들이 주인공 ‘카르멘’ 역으로 선의의 경쟁을 하게 됐다는 소식은 그래서 더 흥미롭다. 소냐는 지난 연말부터 뮤지컬배우 김소향과 함께 더블캐스트로 두달 가까이 ‘페임’ 무대에 서고 있다.여기에 오는 15일부터 카밀라가 가세해 세명의 배우가 번갈아 ‘카르멘’을 연기하게 된 것.같은 무대에서 가수가 아닌 뮤지컬 배우로 맞붙게 된 두 사람의 심정이 궁금했다. 서울 올림픽공원안 한얼광장에 설치된 빅톱시어터 공연장에서 만난 소냐와 카밀라는 약속이나 한듯 서로에 대한 칭찬으로 말문을 열었다.“언니를 보면 부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예요.강하면서 부드러운 보이스는 정말 매력적이죠.게다가 예쁘고,섹시하고….특히 저 코 좀 보세요.정말 부럽지 않아요?”(소냐) “아빠 코 닮은 건데(웃음)….소냐는 진짜 노래를 잘해요.높은 음도 가성을 쓰지 않고 쉽게 소화하는 걸 보면 참 부러워요.”(카밀라) 둘은 지난해 11월 ‘페임’연습실에서 처음 만났다.벌써 네번째 뮤지컬 무대에 서는 소냐와 달리 지난해 앨범 ‘인트로스펙트’를 내고 가수로 데뷔한 카밀라는 첫 뮤지컬 공연이라 모든 것이 낯설었다.카밀라는 “소냐가 참 많이 도와줬다.”고 했고,소냐는 “언니가 몸이 예뻐서 무슨 동작이든 잘 따라했다.”며 웃었다.만난 지 얼마 안 돼 두사람은 금세 친해졌다.요즘은 하루에도 몇번씩 휴대전화로 안부를 확인하고,수다를 떨 정도로 허물없는 사이가 됐다. 지난 99년 가수로 데뷔한 소냐가 뮤지컬에 뛰어든 것은 우연이었다.노래 실력에 반한 뮤지컬 연출자 윤호진씨가 먼저 오디션을 제의했다.뮤지컬이 뭔지도 몰랐다는 소냐는 그저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 OK했고,처음 선 무대가 바로 ‘페임’ 초연이었다.이후 ‘페임’이 재공연될 때마다 ‘카르멘’은 항상 소냐의 차지였다.가창력과 함께 연기력까지 인정받은 소냐는 뮤지컬 ‘렌트’에서 주인공 ‘미미’로 열연하기도 했다.반면 카밀라는 스스로 문을 두드려 배역을 따낸 ‘자수성가’형이다.패티 김의 딸로 더 유명한 그는 가수 데뷔 이전부터 뮤지컬 무대에 대한 열망을 품었다.고교와 UCLA대학시절에는 뮤지컬동아리에서 아마추어 배우로 활동한 전력도 있다.“평소 뮤지컬을 하고싶다는 얘기를 주변에 많이 했는데 어느날 뮤지컬배우 이태원씨가 ‘페임’ 오디션이 있다고 알려줬어요.너무 하고 싶어서 당장 달려갔죠.” 마음은 금방이라도 무대에 설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문제는 한국어 대사였다.이탈리아계 아버지를 둔 카밀라는 한국말이 서툰 편.하지만 기죽지 않고 오히려 연출자를 설득했다.“이 작품을 꼭 하고 싶다.열심히 노력할 테니 지켜봐달라.” 하루에 7∼8시간씩 꼬박 석 달을 연습했다.엄마·이모를 붙들고 틈만 나면 대사를 주고받았다.드라마도 챙겨보고,거울을 보면서 혼자 오만가지 표정을 짓기도 했다.소냐와 김소향,두 배우가 무대에 오르는 걸 보면서 한층 의욕을 불태웠다.그리고 마침내 얼마전 연출자로부터 무대에 서도 좋다는 최종 허락을 받아냈다. 이쯤에서 소냐가 카밀라를 살짝 놀린다.“처음엔 대사를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어요.지금은 아주 좋아졌죠.하하.” 춤,연기,노래 중 어떤 것이 가장 어렵냐고 묻자 둘다 서슴없이 춤을 꼽는다.카밀라는 “춤 추는 장면 전까지는 잘하는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소냐 역시 “우린 댄서가 아니라 가수”라는 말로 위안했다. ‘페임’은 미국 뉴욕의 예술학교 라우라디아를 배경으로 스타를 꿈꾸는 청춘남녀의 꿈과 열정을 그린 작품.소냐와 카밀라 역시 스타를 꿈꾼다는 점에서 무대 속의 ‘카르멘’과 닮았다.‘카르멘’은 남들보다 빨리 스타가 되고 싶은 욕심에 학교를 뛰쳐나와 방황하다 마약중독자로 전락한다. 소냐는 “초연 때는 어두운 역할로만 인식했는데 갈수록 밝은 면도 보이더라.”고 분석했다.카밀라는 “소냐의 카르멘이 강한 이미지인 반면 내가 연기하는 카르멘은 좀더 부드러운 면을 강조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소냐는 지난 연말 방송국의 도움으로 20년 만에 미국에서 친아버지를 만났다.비록 아버지가 공연을 보러 한국에 오지는 못하지만 마음만은 날아갈듯 가볍다.공연이 끝나면 최근 발표한 4집 음반 홍보에 전념할 생각이다. 어머니 패티 김으로부터 아낌없는 지원을 받는다는 카밀라는 “첫 뮤지컬무대가 몹시 기다려진다.”고 했다.닮은 듯 다르고,다른 듯하면서도 닮은 두 가수 겸 뮤지컬 배우의 앞날이 주목된다.공연은 22일까지.1588-7890. 글 이순녀기자 coral@ 그림 이종원기자 jongwon@˝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가난한 富國’ 일본속 외국인들

    “퇴직하면 일본을 떠나고 싶다.” 일본의 한 대학에서 영미 비교문학을 가르치는 폴(60)은 자칭 ‘아시아를 사랑하는 미국인’이다.6년쯤 남은 정년 때까지 일하고,그후에는 동남아쯤으로 거주지를 옮길까 생각 중이다.청춘 때부터 맺은 아시아와의 인연을 끊을 생각은 없다.두 차례의 유학,대학교수 생활을 합쳐 25년간 일본에 체재중이지만 정년 이후는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이처럼 외국인이 일본에 살기란 그리 쉽지 않다고 한다.살면 살수록 어려운 것이 일본 사회라는 말이 실감난다는 게 일본 속의 외국인들의 말이다.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일본인,일본 사회는 어떨까. |도쿄 황성기특파원|2001년 일본에 특파원으로 온 베이징일보의 리유촨(34) 기자도 임기는 4년이지만 “임기를 다 채울 생각은 없다.”고 한다.그는 일본에 체류하는 중국인 주재원의 상당수가 “나와 비슷한 생각”이라고 덧붙인다. 일본에서 MBA를 따고 외국계인 시티그룹에서 일하는 터키인 구비라이(30)도 일본에 온 지 7년이 넘었지만 일본생활에 젖어 들었다고 생각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소득은 높아도 생활수준은 낮아 얼마전 휴가를 이용해 베이징에 다녀 온 리유촨은 오랜만에 싸고 맛있고 푸짐한 중국 요리를 실컷 먹고 돌아왔다고 자랑한다.“물가가 도쿄의 7분의 1정도인 베이징에서 모처럼 해방감을 느꼈다.”는 그는 엔을 위안으로 환산하는 버릇이 도쿄 체재 3년인데도 아직도 남아 있다고 빙긋 웃는다. 베이징에 방 3칸짜리 아파트(70㎡)를 소유하고 있는 그는 방 1∼2칸짜리의 좁은 집에서 외식도 자주 즐기지 못하는 일본인들이 전혀 부럽지 않다.“의식주란 게 인간의 기본인데 그런 점에서 도쿄 사람보다 베이징,상하이 사람이 훨씬 생활의 질이 높은 것 같다.” 도쿄의 월 9만 5000엔짜리 원룸(25㎡)에 살고 있는 구비라이는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만 터키 경제가 별로 좋지 않아서 고민 중”이다.그렇지만 “터키에 가면 인생이 더 즐거울 것은 분명하다.”고 못박는다. 도쿄에 놀러온 여동생으로부터 비좁은 집에서 사는 자신의 모습에 “불쌍하다.”는 말을 들었다는 구비라이의 고향집은 서민층인데도 거실 하나만 해도 지금의 도쿄 월세집보다 넓다. ●이해하기 힘든 일본인,일본 사회 외국인들에게 일본,그리고 도쿄는 불가사의한 일 투성이다. “거리에서 어린이 목소리를 듣기가 어렵다.”는 구비라이.“터키는 물론이고 잠시 일한 적이 있는 싱가포르에서도 어린이들로 시끄러울 정도인데 도쿄에서는 통학시간 말고는 전차는 물론 거리에서조차 어린이 보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그는 “일본 어린이들이 워낙 조용해서인지,가정교육을 엄하게 시켜서인지,아이 덜 낳기로 어린이 숫자가 줄어들어서인지,7년이 지난 지금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술과 음식을 즐기는 리유촨에게 일본인의 음주습관은 도통 이해가 안된다.“술이 사람과 사람을 친해지도록 하는 촉매제라는 점은 중국과 같지만 오후 6시부터 이튿날까지 몇집을 돌며 마시는 일본인 친구들과 어울리기에는 내 몸이 일단 견뎌나지 않는다.”고 말한다.“중국인이라면 한 가게에서 맛있는 음식과 좋은 술을 시켜 놓고 느긋하게 먹고 마시고 얘기하다 대개 밤 9시,10시면 집에 돌아간다.” 그런 그에게는 부인이 잠들 때까지 집 근처 선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돌아가는 어느 일본인 친구가 이해하기 힘든 존재다.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미네소타 대학 조교수로 근무하다 일본의 A대학으로 1981년 이직한 폴은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A대학의 교수회에 들어갈 수 없었던 일이 못내 서운하다. “일본인 교수들은 나에게 ‘당신은 교수회에 들어갈 의무가 없다.’고 말했는데,그 말이 ‘교수회에 들어갈 의무도 없지만 들어갈 권리도 없다.’는 뜻이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는 A대학의 복잡한 파벌,인간관계,외국인 차별을 견디기 힘들어 6년 뒤 신생 B대학으로 옮겼다. 영국 유학경험이 있는 미국계 통신사의 일본인 여기자 가오리(30)는 “장관을 취재하러 남자 카메라맨과 함께 가면 남자를 먼저 소개하고 나를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남성중심 사회라 어쩔 수 없다.”고 씁쓸히 웃는다. ●정확하지만 효율과 속도는 떨어져 일본사회가 친절하고,정확하지만 생각보다 효율이 낮은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리유촨은 “서비스가 좋지만 사람을 많이 기다리게 하는 일본인,일본사회가 답답하다.은행에 돈을 바꾸러 가면 바쁜 시간에는 기다리는 것은 당연하다.” 면서 “그러나 일본의 은행직원들은 기다리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전혀 서두르는 기색도 없다.중국에서 그랬다가는 ‘빨리 하라.’고 욕을 얻어먹기 십상이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5년간 외교관 생활을 마치고 재작년 일본에 귀국한 스즈키(30·가명)도 “한 동안은 ‘문화 충격’에 짜증을 낸 적이 한두차례가 아니었다.”고 털어놓는다. “새 집에 놓을 가재도구를 장만하러 백화점에서 쇼핑하고 배달을 부탁했더니 한국 같으면 당일이나 이튿날 배달해줄 것을 ‘1주일쯤 걸린다.’는 얘기를 듣고 화가 치밀어 견딜 수 없었다.” ●곳곳에 스며든 미의식·서비스 이해하기 힘든 사회구조,파고들기 힘든 인간관계이지만 “칭찬을 하고 싶은 것도 많다.”(구비라이)는 것이 외국인들의 속내이기도 하다. 4년전 도쿄 시내에 튀니지 요리점을 연 제리비 몬디르(33)도 “일정한 거리를 지켜주면 내 생활을 침범하지 않는 일본인들이 쌀쌀하게 생각될 지 모르지만 난 오히려 그런 점이 편하다.”고 말한다. 구비라이는 “터키에서는 규칙이 있어도 잘 지키지 않는데 일본사람은 잘 지킨다.학교에서 배운다기보다 집에서부터 버릇이 든 것 같다.”고 나름대로 풀이한다. 규칙을 잘 지키는 일본인들을 치켜세우기는 리유촨도 마찬가지.“운전하면 언제 어디서 사람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베이징과는 달리 마음 편하게 운전할 수 있어 좋다.” 일본에서 오래 산 폴의 생각은 보다 깊다.“룰을 중시하는 일본 사회에는 집단을 소중히 한다든가,버릇없이 굴면 안된다든가,표면적인 화(和)를 어겨서는 안된다든가 하는 그런 이면의 룰이 있다.”는 분석. 처음은 친일(親日)이었다가,시간이 지나 지일(知日)로,지금은 일본에 대해 “무덤덤하게 변했다.”는 폴은 그래도 “조그만 것에 마음을 쓰고,패션감각이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일상생활의 미적 감각은 여전히 좋아한다.”고 덧붙인다. marry04@˝
  • 인천시립극단 신임 예술감독 정진씨

    “‘한명회’로 출연한 게 요즘 말하는 대박이었지.인생역전이라고나 할까.나이 마흔 세살에 처음 생긴 목돈 5000만원을 탈탈 털어 소극장을 열었으니 집사람이 좋아했겠어.망했지.모처럼 돈 좀 만지나 기뻐했던 집사람에게 미안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무대에서 까먹고 있어.세상 물정을 모르는 거지.” 서울 중구 충정로 문화일보홀 분장실에서 만난 연극배우 정진(63)씨는 연극 ‘아름다운 사람들’의 마지막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헐렁한 바지춤 사이로 비집고 나온 내복을 추스르는 모습은 막걸리 한사발을 마시면서 구수한 입담을 막 쏟아낼 듯한 영락없는 시장 상인이었다.연극에서도 그는 재개발의 위기 앞에서 혼란을 겪는 영등포시장 상인들의 상처와 아픔을 보듬어 안는 상조회 회장 역을 맡았다. 방송 드라마에서 맡았던 조선의 모략가 ‘한명회’로 올드팬들에게 기억되는 그는 이 무대를 마지막으로 예순을 넘긴 나이에 새로운 인생 도전에 나선다.고향인 인천의 시립극단 예술감독으로 임명된 것이다.40여년 연기 외길을 걸어온 그에겐 무대에서 하는 일이지만 일종의 외도인 셈이다.시립극단에서는 연출뿐만 아니라 행정 책임까지 맡는다.평생 단 한번도 월급을 받아본 적 없는 그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월급쟁이 공무원’직이다.정씨는 인생 2막을 축하해줄 ‘커튼콜’을 듣고 싶어한다. ●시립극단에 실험정신의 물길 열겠다 어느새 원로배우가 된 정씨는 사실 70년대부터 소극장 활동을 해 왔다.극단 신협과 원방각,현재 몸담고 있는 제작극회에 이르기까지 그는 연극배우의 고향 같은 소극장을 지켜왔다.그가 지난 84년 인천에 자비를 털어 만든 연극 전문소극장은 인천 지역 연극계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지금도 인천 구월동에서 공연전용 카페인 ‘진 씨어터’를 운영하고 있다. 시립극단 예술감독직 지원 마감일까지 그는 꽤 망설였다.연기자로서 포기해야 할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시립극단을 지휘하면서는 고집을 버릴 생각이다.예술감독이라고 해서 자신의 색깔만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오히려 더 많은 연출가들을 초빙해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겠다고 한다. 정씨는 “실험적인 무대부터 중후한 무대까지 다양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면서 “나를 벗어날 수 없는 작품은 만들지 않겠다.”고 말했다.또 “내가 추구하는 예술적 개성만 강요할 게 아니라 세상의 흐름을 좇아 도랑을 치고 물길을 열면서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감각의 스타일을 창조할 기회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연극판의 세태에 대한 아쉬움은 감추지 못했다.자본의 논리가 연극계를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 불만을 표시했다.관객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정씨는 “경제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연극판에 흥행이란 좀처럼 없어요.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죠.90% 이상이 공짜 관객이죠.따지고 보면 연극을 만드는 사람이 관객인데 이런 현실에서 작품성보다 돈이 되고 안 되고의 기준이 무대를 지배합니다.” 그는 시류와 인기만을 좇는 연기자들도 반성해야 한다고 말한다.지난해 9월 노숙자 문제를 다룬 창작극을 연출했던 그는 후배 연기자의 모습에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꼈다.무대에 오르기로 했던 연기자가 TV 드라마에 섭외된 뒤 펑크를 낸 것.그는 “연기자는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는 공인이라고 생각해야 돼요.개인의 삶에 제약이 될지 몰라도 받아들여야죠.연기자니까요.연출자와 작가,배우가 관객들과 만남을 약속한 것이 바로 연극이에요.” ●미완성 인생이라 연기에 더욱 집착 60학번인 정씨는 동국대 연극영화과 1기 출신이다.79년 TV 드라마에 처음 단역으로 출연할 때까지 20여년 동안 연극무대를 전전했다.무일푼 연극쟁이로 청춘을 보내던 정씨는 서른 아홉살에야 동네에서 얼굴을 익힌 부인 김현규(58)씨와 결혼했다. 배우로 이름을 처음 알리기 시작한 것은 드라마 제1공화국에서 ‘김희갑’ 역할을 맡고부터였다.그러다 지난 84년 ‘설중매’에서 개성있는 한명회를 소화해 내면서 배우 생활의 전환기를 맞았다.각종 단막극에서 개성있고 선 굵은 연기를 선보였다.예상치 못한 인기를 얻게 됐지만 정씨는 연기자로서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속내를 털어놓았다.그는 “배우는 끝없이 변신해야 하는데 한명회라는 고정 이미지를 깨지 못한 건 반성할 부분”이라고 말했다.희곡도 직접 집필하고 있다.그가 쓴 ‘일요일의 마네킹’은 창작극으로 공연되며 호평을 받았다. 그의 아들 한별(25)씨와 딸 한울(24)씨는 연극을 전공하며 아버지의 길을 잇고 있다.“부모님한테 허락받고 내 길을 걸어가지 않았는데 내 허락이 중요합니까.” 그는 자녀들의 인생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철칙을 갖고 있다. 늘 미완성 인생이어서 더욱 연기에 집착하게 된다는 그는 예술에 정년이 따로 없다고 말한다.그는 “평생 서민의 모습을 연기했고 나 역시 서민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서 “그들의 애환을 다루는 인물극으로 밑바닥 인생들의 아픔을 달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밝혔다. 그는 현재 인천문화예술회관 개관 10주년 기념작을 준비하고 있다.예술감독 ‘정진’으로 보여줄 첫 작품은 1947년에 처음 공연됐던, 해방 이후 밑바닥 서민들의 삶을 그린 ‘혈맥’이라는 시대극이다. ■ 프로필 ▲41년 인천 출생 ▲60년 인천 동산고 졸업 동국대 연극영화과 제1회 입학 ▲66년 월남전 참전 ▲68년 이해랑 이동극장 순회 공연 ▲72년 극단 원방각 활동 ▲73년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사람 출연,햄릿 다시 태어나다 연출 ▲84년 인기 사극 설중매와 베스트극장 등 TV드라마 출연 ▲2002년 연극카페 진씨어터 운영 ▲2004년 인천시립극단 예술감독 내정 안동환기자 sunstory@˝
  • [무슨 영화 볼까]

    ●태극기 휘날리며 장르/예매율 전쟁액션/91.6%(15세) 감독/배우는 강제규/장동건·원빈·이은주·공형진 어떤 줄거리 6·25전쟁 ‘전우’가 돼버린 형제의 비극. 이래서 좋아 ‘실미도’를 보며 흐느꼈다면,이번엔 펑펑 울지도…. 이래서 별로 기교없이 단선적인 드라마 전개. 홈피 반응은 “스포일러 글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장동건 ●실미도 장르/예매율 액션드라마/4.9%(15세) 감독/배우는 강우석/설경구·안성기·정재영·임원희 어떤 줄거리 북파 공작부대원들의 실화를 복원한 영화. 이래서 좋아 설경구의 검증된 연기력,정재영의 업그레이드된 연기력. 이래서 별로 지나치게 신파적인 느낌. 홈피 반응은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더라.” ●말죽거리 잔혹사 장르/예매율 액션드라마/1.4%(15세) 감독/배우는 유하/권상우·이정진·한가인 어떤 줄거리 70년대말 ‘이소룡 세대’의 청춘 회고록. 이래서 좋아 첫사랑으로 성장통을 앓는 ‘애잔한’ 권상우. 이래서 별로 ‘친구’와 ‘품행제로’를 벤치마킹한 듯 익숙한 설정들. 홈피 반응은 “386세대에 보내는 마지막 시!”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 장르/예매율 팬터지 액션/1.1%(12세) 감독/배우는 피터 잭슨/일라이저 우드·비고 모텐슨 어떤 줄거리 절대반지를 파괴하기 위한 프로도의 마지막 모험길. 이래서 좋아 입이 딱 벌어지는 스펙터클 전투장면. 이래서 별로 30분은 잘라도 좋겠다 싶게 늘어지는 전투. 홈피 반응은 “몇십년 뒤 ‘절대반지’란 말에도 가슴설렐 것” ●자토이치 장르/예매율 사무라이 액션/0.3%(15세) 감독/배우는 기타노 다케시/기타노 다케시·아사노 다다노부·오구스 미치요 어떤 줄거리 악당 칼잡이단을 물리치는 맹인검객 활약기. 이래서 좋아 기타노 다케시의 표정연기는 맹인역할에 딱! 이래서 별로 눈을 질끈 감게 만드는 잔인한 칼부림. 홈피 반응은 “부산영화제에서 보고 얼마나 흥분했는지!” ●피터팬 장르/예매율 팬터지드라마/0.3%(전체) 감독/배우는 P J 호건/제이슨 이삭스·제러미 섬터 어떤 줄거리 사랑과 눈물의 비밀로 피터팬의 연인을 구해라. 이래서 좋아 원작을 충실히 해석한 피터팬 캐릭터. 이래서 별로 디즈니의 예쁘장한 만화영화가 아니라는 사실. 홈피 반응은 “…” ●베이직 장르/예매율 액션스릴러/0.2%(15세) 감독/배우는 존 맥티어넌/존 트라볼타·새뮤얼 잭슨 어떤 줄거리 미국 특수부대 요원들의 총격전 사망사건 진상 밝히기. 이래서 좋아 과연 누가 누구를 죽였고 어느쪽 말이 맞을까? 이래서 별로 지나친 반전에 뒤집기 묘미가 오히려 반감. 홈피 반응은 “…” ●안녕!유에프오 장르/예매율 로맨틱코미디/0.1%(전체) 감독/배우는 김진민/이범수·이은주·봉태규 어떤 줄거리 시각장애인 여성과 ‘순진남’ 버스운전사의 사랑이야기. 이래서 좋아 달동네를 배경으로 한 따뜻하고 소박한 멜로. 이래서 별로 진부하게 늘어지는 ‘고전적’스타일의 연출. 홈피 반응은 “음악이 너무 좋아 OST 사고 싶어요.”˝
  • '말죽거리…´ 떡볶이집 아줌마-반갑다 애마부인

    청춘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주인공 권상우를 오랫동안 기억하게 만드는 장면에는 뭐가 있을까.이건 어떨까.팬들을 가슴뛰게 만들었던 떡볶이집의 그 정사.청춘스타 권상우의 동정을 빼앗으려 했던 떡볶이집 아줌마. ‘애마부인 3’으로 알려진 왕년의 에로스타 김부선(43)이 ‘말죽거리…’로 가볍게 재기에 성공했다.하지만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 전까지 많은 관객들은 그를 쉽게 알아보지 못했을 것같다.가슴이 푹 파인 후줄근한 민소매 티셔츠에 화장기 없이 파리한 맨얼굴.떡볶이,튀김 접시를 무심한 듯 나르면서도 알게 모르게 극중 10대 주인공들의 성적 팬터지를 자극하는 역할이다. 그녀를 입에 올린 문제의 장면은,권상우의 동정을 뺏으려다 미수에 그친(?) 대목.짝사랑하는 여자친구(한가인)와 절친한 친구(이정진)의 키스를 목격한 뒤 의기소침해서 찾아온 권상우를 ‘뜨겁게’ 유혹하다 실패한다. 아주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한 그녀는 문제의 장면에서 작심하고 왕년의 실력을 발휘하려 했다.하지만 단 한번의 NG도 없이 감독의 OK사인이 떨어져 오히려 안타까워 했다는 후문.그녀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시사회 직후 권상우가 귀까지 빨개져서는 이런 해명까지 했을까.“저는 선배님이 하라는 대로만 했어요.” ‘애마부인 3’(당시는 ‘염혜리’라는 이름으로 활동)를 보고 팬이 돼버린 유하 감독은 고민없이 그녀에게 역할을 맡겼다.몇 장면 나오지 않는 조연이지만,그녀는 기대치 이상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셈이다.1989년 대마초사건에 연루돼 화면에서 멀어졌고,사생아를 낳아 혼자 키우는 등 굴곡진 세상을 살아온,‘잊혀진 이름’이었다. 황수정기자 sjh@˝
  • [김후년의 클럽하우스]하체의 중요성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대한이 바로 어제 같은데 벌써 입춘,봄의 문턱에 들어섰다.조만간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이 성큼 다가올 태세다.콧등을 스치는 바람 속에 즐기는 라운드의 유혹은 뿌리치기 힘든 일.슬슬 필드 나들이를 준비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때다.그러나 추위로 움츠렸던 몸을 추스르지 않고 나설 순 없다.자신의 몸부터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골프에서 ‘하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뿌리깊은 나무가 강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듯 하체가 튼튼해야 비로소 안정된 스윙을 기대할 수 있다.오른쪽 다리는 파워를 축적하기 위해 몸을 비트는 백스윙의 버팀목이며 왼쪽 다리는 백스윙 도중 축적한 힘을 다운스윙 이후 공에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벽이다.안정된 하체의 토대 위에서 상체를 회전해야 거리와 방향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골퍼들은 가까운 거리마저 걷지 않는 ‘Door to door’의 생활에 익숙해져 있다.하루 1㎞ 이상 걷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특히 추운 날씨엔 더 심해졌을 것이다.하체는 부실해지게 마련.아무리 청춘이라고 우겨도 갱년기를 지난 노년기의 몸일 것이다. 시즌 개막을 대비하기 위해 몸 만들기에 나설 시기다.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는 것이지만 바쁜 일상 생활을 이유로 그것이 쉽지 않다면 일단 출퇴근할 때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할 것을 권한다.기대 이상의 효과를 얻을 것이다. 계단 오르내리기는 골프여왕 박세리의 성공 신화를 낳은 원동력이다.박세리는 코끼리 다리에 비유될 만큼 튼튼한 하체를 지니고 있다.어린 시절 육상 선수였던 그는 골프를 시작한 이후 하체를 단련하기 위해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는 연습을 반복했다.특히 1층에서 위로 올라간 후 맨 위층부터 다시 계단을 뒤로 내려오는 연습을 거듭한 결과 튼튼한 하체를 가지게 됐다.하체 단련은 물론 집중력을 강화시킨 뛰어난 연습 방법이다.이 연습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는지는 그 누구에게도 체력이 뒤지지 않는다던 그의 아버지마저 “중간에 포기했을 정도였다.”고 훗날 토로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실8㎞의 거리를 걸어야 하는 라운드 도중 좋은 스코어를 내려면 이처럼 튼튼한 하체가 필요하다.하체가 부실하면 금방 피곤해지고 스윙이 엉망으로 되기 일쑤다.동반자의 탄성을 자아내는 빨랫줄 같은 파워 드라이브 샷은 하체 단련을 위한 연습이 없으면 결코 기대할 수 없다. 골프 칼럼니스트 golf21@golf21.com
  • [이경기의 스크린 1인치]Yesterday Yes a day

    샹송 가수로 널리 알려진 제인 버킨은 팝 음악계에서 소녀 같은 천진난만함과 중년 여성만이 풍길 수 있는 관능미를 동시에 겸비한 묘한 매력의 가수라는 평판을 듣고 있다. 프랑스 가요인 샹송의 보급을 위해 헌신한 그녀는 특이하게도 영국 런던 태생.시인이자 작곡가,가수 겸 배우로 1960∼70년대 주가를 높였던 세르주 갱스브루와 ‘카나비스(Cannabis·1970)’에 함께 출연하면서 마침내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이를 계기로 버킨은 프랑스를 근거지로 영화배우 겸 가수로 두각을 드러낸다.대표적 히트곡 중의 하나이자 남편 갱스브루와 듀엣으로 부른 ‘난 나보다 당신을 더욱 사랑합니다(Je t’aime moi non plus)’는 애초 BB라는 애칭을 갖고 있었던 브리지트 바르도를 위해 작곡했던 노래.그렇지만 BB보다 더욱 매력적인 버킨을 만나면서 갱스브루가 변심해 이 곡을 버킨에게 바쳤다는 뒷이야기를 남겼다. 이 곡은 탄광촌 인부들이 산업 합리화 조치로 졸지에 실직자가 되자 여성 전용 클럽의 누드 댄서로 나선다는 피터 카타네오 감독의 ‘풀 몬티(The FullMonty·1997)’에서 허름한 창고에서 누드 댄서로 나설 중년 남자들을 대상으로 춤 솜씨를 테스트하는 오디션을 볼 때 흘러나와 팝 애호가들의 구미를 당겨주었다.노래 속에서 남녀가 주고 받는 다소 선정적인 메시지와 음색 때문에 버킨의 고국인 영국 팝계에서는 한동안 외설 팝송으로 공개 금지당하는 조치를 받았다. 실비아 크리스텔 주연의 ‘엠마뉴엘’(1974)로 유럽 영화계에 성애 영화 붐을 불러일으킨 저스틴 재킨 감독이 여세를 몰아 상류층 중년 부인이 직업 여성을 불러들여 동성애를 즐긴다는 ‘마담 클로드(Madame Claude·1977)’를 발표했다.남성 관객들의 오금을 저리게 한 이 영화에서 테마곡으로 사용된 곡이 버킨의 ‘Yesterday Yes a day’.이 곡은 지금도 386세대들에게는 버킨의 매력을 반추시켜 주는 팝송으로 기억되고 있다. 1977년 그룹 비지스가 가성(Falsetto) 창법을 가미시킨 주제곡을 삽입시켜 전세계 음악계에 디스코 열풍을 불러일으킨 히트작이 ‘토요일 밤의 열기’.이 영화 히트 덕분에 70년대 후반 전세계 영화가에서는 디스코아류작이 수십편 쏟아졌다. 그 중 로버트 클레인 감독의 ‘Thank God It’s Friday’(1978)도 디스코 황제 자리를 노리고 클럽에서 노래와 춤 솜씨를 과시하려는 청춘 남녀의 풍속도를 담은 음악 영화. 1968년 결혼해 한평생 계속될 것 같았던 버킨과 갱스브루는 80년 합의 이혼해 남남이 된다.재능 있는 두 연인 사이에서 탤런트가 탄생했다.그녀가 바로 ‘귀여운 반항아’로 80년대 국내 흥행가를 장식했던 샤롯 갱스브루. 숱한 연예가 뉴스를 만들어냈던 버킨은 세월의 무상함을 떠올려주듯 올해 58세로 초로의 여인으로 변했다.그녀는 2월7일 내한 공연을 통해 주옥 같은 히트 영화 음악을 들려줄 채비를 하고 있다. 영화 칼럼니스트
  • 뮤지컬 ‘맘마미아’를 보고/무대·객석 벽 무너뜨린 ‘댄싱 퀸’

    ‘아바(ABBA)여,다시 한번’.아바 음악과 함께 청춘을 보낸 중장년 세대건,전설속의 팝그룹으로만 기억하는 아바 이후 세대건 상관 없었다.30년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생명력 넘치는 아바 음악의 마력에 무대와 객석의 구분은 물론,세대간 벽도 순식간에 무너졌다. 지난 25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막올린 뮤지컬 ‘맘마미아’(사진)는 지난해 5월 한국 공연 제작발표회 이후 8개월을 손꼽아 기다려온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일주일간의 프리뷰 공연에서 다져진 완성도있는 무대는 영국 런던 오리지널 공연에 견줘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을 만했다. 99년 영국 초연 이후 미국,독일,일본 등 이미 여러 나라에서 흥행성을 검증받았다는 점에서 ‘맘마미아’한국 공연의 성공적인 안착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터다.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혼성그룹 아바의 음악이 지닌 대중성,기발한 아이디어와 더불어 인생의 깊이를 담은 줄거리,기능성과 세련미를 동시에 포용한 무대세트는 ‘맘마미아’를 세계적인 대작으로 꼽는데 부족함이 없게 했다. 때문에 이번 한국 공연의 성공 여부는 우리 배우들의 역량과 우리 관객들이 얼마나 잘 호응해줄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결론적으로 첫 공연은 무대든 객석이든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줬다.3주간의 ‘지옥’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주연 배우들의 기량은 예상보다 뛰어났다. 특히 세 여주인공 박해미(도나),전수경(타냐),이경미(로지)의 열연은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끈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수차례의 정밀한 번역 과정을 거친 한국어 가사도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매끄러웠다. 관객들의 공도 컸다.여타 뮤지컬과 달리 ‘맘마미아’는 관객이 함께 움직여야 비로소 완성되는 참여형 공연의 성격이 강하다.1막까지 다소 뻣뻣했던 관객들은 2막에 접어들면서 자연스럽게 박수 장단을 맞추고,어깨를 들썩이며 공연에 몰입했다.모든 관객이 자리에서 일어나 ‘댄싱 퀸’‘워털루’를 합창하는 커튼콜 무대는 본공연을 압도하는 대미로 꼽을 만하다. 그렇다고 ‘맘마미아’가 단지 신나게 즐기기 위한 공연만은 아니다.친근한 노래와 화려한 춤 이면에녹아 있는 감동적인 메시지가 없다면 아마도 이렇게 호응을 얻진 못했을 것이다. 모녀간의 애증,중년 여성들의 우정,그리고 청춘의 자아찾기라는 주제야말로 아바 음악에 버금가는 만국 공통어이기 때문이다.4월18일까지.1588-7890. 이순녀기자 coral@
  • [나의 건강보감] 화가 황순칠 씨

    그가 필자를 데려간 곳은 화실 근처 아파트 단지 귀퉁이에 있는 쌈지형 체육공원이었다.그곳에서 윗도리를 벗더니 주저없이 철봉으로 몸을 날렸다.족히 70㎏은 돼보이는 몸이 가볍게 리듬을 탔다.어느 순간,철봉을 타고 솟구치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돈다.한참을 그렇게 매달려 몸을 달군 그가 가뿐하게 내려섰다.“화가의 일이 건강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그렇지 않습디다.한번 영감이 밀려오면 앉은 자리에서 날밤 새는 건 예사고,직장인들처럼 시간을 자로 재듯 쪼개서 쓸 수 없어 건강에 대해 더 절박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화가들이기도 해요.아,누군들 건강이 중요하다는 걸 모르기야 하겄습니까?” ●날밤새는 게 예사인 화가… 건강 더 절박해요 화가 황순칠(49).그가 지난 95년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 ‘고인돌 마을’의 잔상이 어지러운 세상에 짧지만 날카로운 비명으로 날아가 박혔다.“이유는 모르지만 나는 흰색이 좋다.어쩌면 온갖 색으로 덧칠된 추한 세상의 본디 모습일 수도 있고,그런 세상에 던지는궁극의 메시지일 수도 있다.어떻든 이유는 모르지만 나는 흰색이 좋다.” 그의 세계는 희다.배꽃처럼 시리게 희다.캔버스에 온통 검정을 담고,보라를 그리고,노랑을 덧칠해도 여전히 그는 희다.그의 세계가 희고,그의 생각과 발상이 모두 희어서다.살펴보니 시원하게 밀어붙인 그의 머리도 텅 비어 희다.뿐만 아니라 그는 이름도 희다.광주의 화실에서 만난 그는 대뜸 이렇게 물었다.“빡빡 민 머리를 뭐라고 하는지 아시요?” “뭐라나,배코?” “배코,그걸 쫌 빨리 해보쑈.” “배코,배코,그래도 배콘데요.” “그것이 내 이름이요.” 그러면서 그는 너털웃음을 토해냈다.그는 백호(白乎)를 아호로 쓴다.즐겨 읽는 논어에서 얻었다.말 그대로 희다는 뜻 아닌가.어떻든 그는 희다. 모든 화가들이 그렇듯 그도 ‘내 것’을 찾아 수많은 길을 헤맸다.“제가 처음부터 흰색에 빠진 것은 아닙니다.저도 젊어서는 사실적인 그림을 많이 그렸어요.동양의 전통 색조인 오방색을 즐겨 쓴 적도 있고요.그러다가 9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무채색으로 바뀌어 저의 ‘흰색 시대’가 시작되는데,색이 그림의 본질은 아니지만 화가의 이상을 나타낸다고 보면 지금의 제 미술적 충동은 확실히 흰색에 가깝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동양화의 남종화를 거론했다.“남종화는 모든 세속적 욕망을 걸러낸 수묵의 그림입니다.모르긴 해도 인간을 지배하는 가장 세속적인 욕망 두 가지를 든다면 아마 물욕과 명예욕일 건데,화가로 산다는 것은 이런 욕심을 어느 정도 포기하거나 유예한다는 것을 뜻합니다.이런 정서가 배꽃 흐드러지는 내 그림 속에 담겼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겠지요.저는 지금도 나주 배밭에 가 그림을 그리노라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알 수 없는 행복감을 느낍니다.아마 ‘쾌(快)’라고 부를 수 있는 희열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역동적인 건강한 삶의 활력은 ‘흥과 쾌' 그렇다고 그가 물욕이나 명예욕을 초월한 초인은 아니다.비록 가난하지만 그림값을 두고 흥정하는 일을 가장 싫어하는,어찌보면 좀 막힌 듯하지만 자신의 창의와 노고에 대한 자부심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범부(凡夫)인 제가 욕망에서 벗어나다뇨? 저도누구 못잖은 욕망을 갖고 삽니다.다르다면 저의 명예욕은 그림에 있다는 겁니다.제가 느끼는 절대적 행복은 남을 의식하지 않고 저만의 미적 감흥을 느끼는 일입니다.” 서예가로 출발해 서양 화단에 변화를 몰고 온 그를 두고 일부에서는 “하던 일이나 하지.”라며 냉소를 보이기도 했다.그러나 그런 사람들까지도 그의 거침없고 지칠 줄 모르는 실험이 한국 화단의 묵은 발상을 깨우는 자극임을 부인하지는 않는다.“제가 지난 90년부터 삭발을 해오고 있는데 가난하지,가진 것 없지,오로지 그림 한길에 내 삶을 바쳐야 하는데,하는 듯 마는 듯 해서야 되겄습니까.그래서 머리 깎았어요.실험이든 뭐든 계기가 필요해섭니다.” ●체조선수처럼 손바닥에 굳은살 박여 그의 일상은 역동적이다.그처럼 미적 영감을 찾아 현장을 누비는 화가도 흔치 않다.군에 입대해 훈련소에서 ‘뺑뺑이’를 돌 때도 다른 사람들 다 텅텅 나가 떨어질 때 그만 독야청청 버텨냈다.이처럼 활동지향적이고 역동적인 그의 건강비결 중 첫손에 꼽히는 것은 바로 마음에서 키우는 ‘흥’과‘쾌’다.“흰색을 주조로 하는 지금의 제 그림이 힘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그 바탕에는 주체하기 어려운 힘이 똬리를 틀고 있는데,바로 ‘흥’과 ‘쾌’가 준 선물이라고 봅니다.” 더러는 등산도 하고 가끔씩은 수영으로 심신의 약을 삼지만 그의 ‘흥’,‘쾌’에 어울리는 운동은 철봉이다.인간이 다른 문명의 힘을 빌리지 않고 날 수 있다면 아마 철봉에 매달리는 그 순간이 아닐까 합니다.저의 철봉 이력은 어린 시절 초등학교로 거슬러가야 하지만 본격적인 화가로 나서면서 제대로 틀을 갖췄다고 봐야지요.” 외롭거나 노할 때,그리고 재밌거나 심지어는 심심해서 좀이 쑤실 때도 철봉에 매달린 덕분에 그의 손바닥에는 체조 선수처럼 굳은 살이 옹심이처럼 박여 있었다. “그래도 건강은 마음에 있습니다.자신감을 잃지 않고 낙천하며 사는 것,그리고 스스로 다른 사람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건강의 조건이라고 믿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모색하는 인간이라고 했다.이는 곧 부단한 도전이기도 하다.그의 책상 머리맡에 먹으로 그려 놓은 글귀,‘Be prepared for surprise.’(남들을 놀라게 할 수 있도록 준비하자.)가 노도처럼 와닿았다.앞으로도 세상을 놀라게 할 영원한 청춘의 화가 황순칠. 글·사진 광주 심재억기자 jeshim@ 디스크·관절질환에도 좋아요 “언젠가 허리가 안 좋다는 지인에게 철봉을 권했지요.두고 봤더니 그이가 철봉을 오래 하지는 못하더군요.몸에 좋든 아니든,혼자 하는 운동에 흥미를 붙이기가 쉽지는 않죠.” 그러나 철봉에 대한 그의 열성은 각별했다.어려서는 평행봉도 곧잘 해 지금도 철봉 하는 김에 자주 평행봉에 매달리기도 한다.“체계적으로 배운 운동도 아니고,그래서 고난도의 기술을 구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전 철봉을 무척 좋아합니다.” 그가 내세우는 철봉의 장점에 귀가 솔깃해졌다.“인근 학교나 아파트 놀이터면 만족스러운 운동장이지요.따로 시설비를 들이지 않으면서도 전국 어디서든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철봉에 매달리다 보면 온 몸이 나긋나긋 유연해지면서 척추 등 전신의 뼈가 새로 줄을 서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현대인에게 많은 디스크나 관절질환도 철봉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그래요.디스크 환자들 재활 훈련 받을 때도 철봉 하잖아요?” 지금도 팔씨름만큼은 누구와 붙어도 자신있다.철봉으로 근력을 다진 덕분이다.물론 배우면서 이를 부러뜨리는 등 어려움도 겪었지만 그때의 두려움만 떨치면 철봉에 매달려 하는 운동이라 다칠 염려가 거의 없다는 것도 철봉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키 168㎝,몸무게 68㎏의 탄탄한 몸을 가진 그는 지금도 아침,점심 그리고 저녁 하루 세번씩 철봉에 매달려 하늘과 땅을 번갈아 본다.건강을 얻는 철봉이지만 어쩌면 그는 철봉에 매달려 바로 서기와 거꾸로 서기를 반복하면서,바로 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삶,그들이 엮어가는 지난한 미학 공동체를 꿈꾸는지도 모른다. 심재억 기자
  • [이경기의 스크린 1인치] 청춘영화의 단골 ‘치킨 게임´

    ‘금융 시장을 볼모로 한 치킨 게임’ 얼마전 LG 카드 해법을 놓고 정부,채권단이 한치 양보없이 팽팽한 대립을 벌였을 때 어느 언론에 나온 제목이다. 치킨 게임.해마다 봄,가을 임금 및 제반 복지 후생 문제를 놓고 노사가 벌이는 협상 단계에서 단골로 언급되는 단어중의 하나다.일명 ‘겁쟁이 놀이’ 로도 알려져 있다. 이 용어를 대중화시킨 것은 제임스 딘 주연의 ‘이유 없는 반항’ 이다.1955년 만 24세의 나이로 요절한 제임스 딘은 지금도 ‘은막의 반항아’로 각인된 불멸의 스타다. 그의 출세작중의 하나인 ‘이유 없는 반항’ 에서 교내 불량 서클 버즈(코리 앨런) 일당이 짐(제임스 딘)이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알게되자 그에게 담력을 시험하자고 시합을 제안하는데 그것이 바로 치킨 게임(chicken game)‘이다. 절벽을 향해 전속력으로 차를 몬 다음 차가 절벽 아래로 추락하기 직전에 뛰어 내리는 이 게임은 절벽에 가장 가까이 접근한 뒤 뛰어 내리는 이가 승리하는 목숨을 담보로 한 위험한 게임이다.흔히 ‘치킨’은 미국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겁쟁이를 지칭하는 속어.여기서 파생된 치킨 게임은 마피아단이 치열하게 대립하다가 모두 공멸하는 것을 막기 위해 호적수인 두 명이 일단 나서서 상대방을 향해 자동차를 몰고 질주한 뒤 먼저 브레이크를 밟는 쪽이 패배하는 담력(膽力) 시합으로 응용했다고 한다. ‘이유 없는 반항’에서 주디(내털 우드)는 남자 친구 버즈(코리 앨런)가 치킨 게임을 벌이다 죽은 뒤 짐과 급격히 가까워 진다.짐은 주디를 향한 자신의 연정을 드러내기 위해 그녀의 이마에 입맞춤을 한다.이때 ‘왜,이마에 하느냐?’고 주디가 반문하자 짐은 ‘난,그렇게 하는 것이 좋아!’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한국 영화중 박종원 감독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는 달려오는 기차를 바라보고 철로에 누워 있다가 먼저 일어나는 쪽이 패배한다는 내기 승부를 벌이는 장면이 보여졌는데 이는 ‘치킨 게임’을 응용한 담력 겨루기라고 할 수 있다. 반 디젤을 스타덤에 올려준 롭 코헨 감독의 ‘분노의 질주(The Fast and the Furious)’에서도 심야에 토레토,폴크스바겐 제타,닛산 맥시마,스카이라인 등 명차를 몰고 청춘 남녀가 자동차 질주 시합을 벌이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것도 현대화된 치킨 게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외 ‘토요일 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 (1977년)에 이어 1970년대 디스코 음악 영화 붐을 주도한 ‘그리스·Grease’는 1950년대 캘리포니아주 한 고등학교가 배경.여름 해안가에서 우연히 만나 풋풋한 감정을 교환한 대니(존 트라볼타)와 샌디(올리바아 뉴튼 존).학교 최대 행사인 댄스 경연 대회장에서 대니와 샌디는 한팀으로 출전해 결승전까지 진출한다.그렇지만 대니가 관여하고 있는 티버즈의 라이벌인 스콜피온즈 무리들의 리더인 차차의 방해로 눈앞에서 우승을 놓치고 만다.이 사건을 기회로 티버즈와 스콜피온즈 팀원들은 하천 강둑에서 절벽 끝까지 자동차를 몰고 추락 직전에 차에서 내려 담력을 겨루는 치킨 게임을 벌인다. 이처럼 할리우드 및 국내 하이틴 소재 영화에서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청춘들의 기질을 드러내는 설정으로 치킨 게임이 단골로 등장하고 있다.
  • 원빈, 영화사에 억대 맞소송

    영화배우 원빈(사진·28)씨가 15일 “위조된 계약서로 출연금지 가처분을 신청하고,손해배상을 청구,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영화사 ㈜필름무이를 상대로 1억 5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맞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원빈씨는 소장에서 “필름무이는 영화출연 계약서가 위조됐다는 사실을 알고도,계약이행을 요구,압박했다.”면서 “대중에게 왜곡된 사실이 알려질까봐 전속계약을 해지하고 계약금 5억원마저 돌려줬는데도 영화사는 소송을 냈다.”고 주장했다. 또 “피소 사실이 알려져 각종 광고 및 영화출연 계약이 줄어들고 있다.”면서 “정신적 고통과 경제적 손실을 보상하라.”고 덧붙였다.영화사 필름무이는 원빈씨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촬영후 ‘맨발의 청춘(가제)’에 출연키로 한 계약을 어겼다며 손해배상 소송과 함께 다른 영화출연을 금지하는 가처분신청을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은주기자
  • 2004 승부를 건다/탁구간판 유승민

    14일 서울 강남의 한 체육관.아직 앳된 티에 머리에 염색을 한 청년이 탁구대 앞에서 흰 탁구공을 쉴새없이 때리고 있었다.한겨울인데도 푸른색 유니폼은 어느새 땀에 흠뻑 젖었다.그러나 얼굴에는 즐거운 표정이 가득했다.유승민(사진·22·삼성카드)에게 탁구는 친구이자 애인이다.탁구공 ‘짬밥’만 벌써 15년째다. ‘탁구 신동’으로 각광을 받으며 태릉선수촌에 입성한 지 어느새 9년.2000시드니올림픽에 이어 두번째로 오는 8월 ‘꿈의 무대’인 아테네올림픽에 출전한다.그러나 올해는 사뭇 각오가 남다르다.최근 국제탁구연맹(ITTF) 랭킹 10위에 오르면서 한국 남자탁구의 에이스 자리를 굳혔다. 가장 어려운 상대는 세계최강 중국 선수들.종종 뒷심 부족으로 역전패하곤 했다.지난해 12월 그랜드파이널스에서 세계 2위 왕리친을 꺾는 등 ‘공화증(恐華症)’을 어느 정도 넘어섰지만 세계 1위 마린을 선두로 한 ‘만리장성’은 여전히 높은 벽이다.그래서 요즘 중국 선수들을 겨냥,몸쪽 공 공략과 막판 집중력 높이기에 힘쓰고 있다.심리훈련도 시작했다.시드니올림픽 복식에서 중국에 패하면서 4위에 그친 악몽을 떨쳐내기 위해서다. 경기대 스포츠경영학과 2년생인 그는 초등학교 교사인 여자친구와 인터넷 서핑을 즐기는 ‘N세대’.가끔씩 친구들과 서울 강남역 근처 유흥가로 ‘원정’을 가는 평범한 ‘20대 청춘’이다.그러나 말투나 분위기는 천상 30대를 앞둔 관록의 선수다.유승민은 “어릴 때부터 10살 이상 많은 (김)택수형,(이)철승이형의 조언을 들어서인 것 같다.”면서 “친구들도 ‘애어른’이라고 놀리지만 놀땐 다른 애들과 똑같다.”고 밝게 웃었다. 이제까지는 탁구 신동이라는 명성을 증명해 보이지 못했다.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단 한 차례도 우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그러나 ‘무소’처럼 정상을 향해 꾸준히 발걸음을 옮기는 ‘성실함’을 갖췄다.88서울올림픽 때 유남규가 거둔 단식 금메달의 쾌거를 다시 기대케 하는 이유다.유승민은 “올림픽 금메달은 평생의 목표”라면서도 “아테네올림픽을 후회하지 않을 대회로 만들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두걸 기자 douzirl@
  • 이통3사 ‘번호이동’ 광고전쟁

    ‘번호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한아름 선물 받아가세요.’,‘따라가봐야 쓸모없는 선물 뿐이랍니다.’ 새해 첫 날부터 이동통신 번호이동성제도가 시행되면서 SK텔레콤·KTF·LG텔레콤 이동통신 3사간 고객 모셔오기가 치열하다.당연히 3사의 광고 경쟁도 전쟁을 방불케 한다.011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KTF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지난 5일부터 방송을 타기 시작한 KTF의 ‘퀴즈 페스티벌 광고’는 이례적으로 자사 식별번호인 016·018 대신 011을 광고에 등장시켜 쓰던 번호 그대로 KTF로 옮겨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유명모델 내세워 고객 시선끌기 길거리농구 우승 전력이 있는 남자모델이 농구 묘기를 보이면서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고 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여성 고객이 통화를 하면서 요리를 기다리고 있다.‘지금 이분은 쓰던 번호 그대로 KTF로 이동해 좋은 서비스를 받고 있습니다.이 분의 번호는 무엇일까요?’라는 내레이션이 나온 뒤 ‘11’이 새겨진 상의를 입은 남자는 농구공을 옆구리에 끼고,여자가 기다리던 요리는 동그란 스테이크 옆에새우 두마리가 나란히 놓여 있다.011이다. KTF의 공세는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됐다.번호이동성제도 시행을 앞두고 SK텔레콤 고객을 끌어오기 위해 ‘추천합시다’를 선보인 것이다. 기존모델 조한선과 SK텔레콤 ‘June’ 광고 모델이었던 예학영을 등장시킨 이 광고는 011을 쓰던 친구가 016으로 따라온다는 광고 개념을 모델의 이동으로 연결시켰다. 두 회사의 신경전은 MBC 청춘시트콤 ‘뉴논스톱 3’에 출연했던 조한선과 ‘뉴논스톱 4’에 출연중인 예학영이 절친한 사이인 데다,‘퀴즈페스티벌’ 레스토랑 여자 모델이 SK텔레콤 ‘네이트’ 모델이었던 조하얀이라는 데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LG텔레콤도 협공을 펼치고 있다. 지난 1일부터 ‘SPEED 011’의 SPEED 부분을 지우개로 지우고 대신 ‘상식이 통하는’이라는 LG텔레콤의 기존 광고문구를 적어 넣는 ‘지우개’ 광고를 내놓았다. ●가입땐 “40% 약정할인” 공세 지면광고에서는 SPEED위에 ‘가입만 하면 최대 40%까지 할인되는’이라는 문구를 적은 ‘포스트’을 붙여 ‘011=SPEED 011’이라는 통념을 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두 회사의 파상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 SK텔레콤이 아니다. SK텔레콤은 지난해말부터 선물꾸러미를 잔뜩 안고 있는 남자가 엘리베이터를 탄 뒤 중량 초과로 ‘삐’ 소리가 나자 선물은 버리고 탄다는 광고를 선보이고 있다.곧이어 버려진 선물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번호는 이동할 수 있어도 품질과 자부심은 이동할 수 없습니다.’는 메시지가 KTF나 LG텔레콤으로 옮겨 선물을 잔뜩 받아봐야 다 쓸모없다고 비꼬고 있다. ●“선물보다 품질 우선 서비스” 한발짝 더 나아가 SK텔레콤은 남자모델(이시환)이 바나나 껍질을 벗긴 뒤 속은 버리고 껍질만 먹는 광고를 내놓았는데 역시 ‘중요한 것은 껍데기(번호)가 아니라 속(품질과 서비스)’이라는 주장을 역설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광고 대행사 관계자들은 “번호이동성제도 초기에 고객을 선점해야 하기 때문에 광고도 공격적인 내용을 띠게 됐다.”면서 “설날까지는 이같은 ‘광고대리전’이 계속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류길상기자 ukelvin@
  • ‘이태백 시대’의 희망가

    20대 젊은이들은 요즘을 스스로 ‘이태백 시대’라고 일컫는다.이태백은 ‘이십대 태반은 백수’라는 뜻이다.계속되는 경기 불황에다 심각한 취업난을 빗대 자신들의 상황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하지만 ‘이태백 시대’에도 절망보다는 희망,좌절보다는 도전을 선택해 앞길을 스스로 열어 나가는 젊은이도 적지 않다.나만의 색깔로 활로를 찾고 있는 것이다. 사원 4명의 벤처회사를 운영하는 ‘사장님’ 조형욱(29)씨의 갑신년 새해맞이는 남다르다.새해 꿈은 지난해 8억원이었던 연 매출액을 10억원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내게 가장 적합한 길을 찾아야” 조씨의 일터는 건국대 벤처창업지원센터내 10평 남짓한 사무실이다.‘라임시스템’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각종 소프트웨어를 하청,개발하고 있다. 건국대 컴퓨터공학과 3학년을 다니다 휴학한 지 1년 만인 지난 99년 12월 이 곳에 둥지를 틀었다.4년 남짓 조씨는 거의 매일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지난해에는 국악의 선율을 영화에 삽입하는 시뮬레이션을 가능케 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업계의비상한 관심을 끌기도 했다. 사원들은 모두 공채한 20대 고졸 출신이다.“사원들도 나를 보고 10년 뒤 자기 모습을 상상하며 희망을 느꼈으면 합니다.” 교내 그룹사운드 ‘옥슨’의 드러머로 2년 남짓 활동한 이색경력도 갖고 있다.군 복무때 행정병으로 근무한 것이 진로를 바꾸게 된 계기가 됐다. “내가 하고 싶은 음악에는 한계가 보이는데,하기 싫은 기안문 작성 등에는 엄청난 소질을 보이는 거예요.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은 별개라는 걸 느꼈습니다.성공하기 위해 좋아하는 일을 접고 잘하는 일을 택했죠.” 조씨가 휴학을 결심했을 때 지도교수와 부모는 말렸다.하지만 “학점도,영어점수도 시원찮은데 졸업해 봤자 취직할 수 있는 곳은 뻔하다.”며 창업을 강행했다.처음에는 경험 부족으로 납품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조씨는 “매번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멋모르게 대시하는’ 청춘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돌아봤다. 조씨는 취업난을 겪는 다른 20대에게 “자기가 원하는 일을 꼭 해야겠다는 ‘절실함’을 가져야 한다.”면서 “막연한 도피책이나 대안으로 일을 선택해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조언했다.특히 대학 졸업생들에게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단 몇분 만이라도 제대로 고민한 뒤 목표를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외봉사경력이 ‘먹히는’ 새해가 될 거예요” 다음달 졸업하는 조선대 정치외교학부 4학년 최미란(24·여)씨는 올해 관광업계에 취업하는 게 목표다.입학 동기들보다 졸업이 1년 늦어졌지만 초조해하지는 않는다.최씨는 “취업전쟁에서 ‘나만의 경력’이 통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라며 활짝 웃었다.지난해 다른 친구들처럼 ‘취업준비’에 매달리지 않고 휴학한 뒤 해외로 눈을 돌렸다.세계청년봉사단(KOPION)이 주최하는 해외봉사 활동을 다른 대학생 3명과 함께 떠났다.부모는 “유학도 아니고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데 꼭 지금 갈 필요가 있겠느냐.”고 만류했다.반면 일부 친구는 “제대로 배우고 오라.”며 격려하기도 했다.우려와 기대를 뒤로한 필리핀행은 최씨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나의 미래에 ‘왜’라는 질문을 던질 수있는 소중한 계기가 됐습니다.무조건 취업을 해야 한다는 조급함을 버릴 수 있게 됐죠.” 최씨는 지난해 3월부터 5개월 동안 필리핀 마닐라 마카티에서 아이들에게 그림과 피아노를 가르쳤다.익숙지 않은 피부색의 아이들이나 다른 대원들과 부대끼며 생활하는 것이 처음엔 낯설었다.최씨는 그러나 “나중에는 오히려 사람을 만나고 적응하는 것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면서 “새로운 도전에 큰 용기와 힘을 얻게 됐다.”고 밝혔다. 유지혜기자 wisepen@
  • [나의 건강보감] 국문학자 김열규 교수

    생명을 키우는 햇빛과 대지를 감싸는 바람,그 앞에 맨몸으로 서서 깊게 호흡을 가다듬는다.해송숲 삼림에서는 솔향기가 번져나고,푸른 하늘의 새들은 날갯짓이 편하다.이윽고 대자연의 정기에 온몸이 말갛게 익을 무렵,가뿐한 걸음으로 흙길을 밟아 귀가한다.풍욕(風浴),말 그대로 ‘바람욕'이다. “햇살과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노라면 걸음의 숨가쁨이나,차가운 겨울바람이 왜 자연의 축복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거기서도 그냥 앉아 있는 건 아니다.마른 수건으로 전신을 가볍게 문지르면 금세 온몸이 따뜻하게 달아올라 한겨울에도 추위를 느끼지 못한다.바람의 끝,매운 삭풍도 거친 숨결을 누그러뜨리는 경남 고성의 한적한 남해바닷가,거기에 ‘있고도 없는 도깨비'처럼 그는 홀로 서 있었다. ●일흔 넘긴 나이에도 검버섯 하나 없어 김열규(71) 교수.일흔을 넘긴 그의 얼굴에서 속진의 기름때같은 끈적임은 찾아 볼 수 없었다.유리알처럼 맑은 얼굴에는 그 나이면 훈장처럼 번지는 검버섯 하나 자리하지 않았다.“며칠 전 친구를 만났는데 날 보고 물어요.‘왜 그렇게 건강한가,비결은 뭔가.’그래 이렇게 말했지요.내 어깰 만져봐라.부드럽지 않나.대자연에 묻혀 사니 어깨에 힘 줄 일도 없고,긴장할 인간관계도 없다.이렇게 살면서 건강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거지.” 그가 “속되고 욕되다.”며 표표히 서울을 떠나 고향인 이곳에 정착한 게 지난 91년이니,벌써 12년째 한 걸음 뒤편에서 넉넉하게 세상을 관조하고 있다.“91년 서강대를 떠나면서 40년 서울생활을 함께 털어냈어요.험한 문명의 변화에 몸이 따라가질 못하더라고요.천성이 예민해 위·십이지장궤양도 심했고,또 감기를 몸에 달고 살았지.의사가 찬바람에 민감한 ‘콜드알레르기’라며,서울을 떠나 사는 게 유일한 치료법이라고 해요.도리없지.아내에게 난 고향으로 돌아갈테니 알아서 하라고 그랬죠.”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는 일도 버거웠고,자꾸만 가라앉는 몸도 예사롭지 않았던 그는 작심하고 김해 인제대로 옮겨 정년을 맞았다.이곳에서 그는 바쁘다.바람과 햇빛,그리고 철마다 자태를 바꾸는 꽃과 새를 만나야 하고,오솔길을 걸으며 세상과 소통하는 사유의 시간을 갖는 것도 빠뜨릴 수 없는 그의 일과이다. ●12년전 서울 떠나 귀향… 고성에 정착 그에게 귀향은 새 삶의 출발점이었다.“여기 와서야 서울사는 동안 나의 생체 리듬과 자연의 리듬이 맞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어요.지금은 나를 철저하게 자연에 맞추며 삽니다.의사가 수술하라던 속병도 거진 나았고,알레르기도 걱정없어요.‘더 일찍 낙향했더라면…’하는 아쉬움도 없지 않습니다.”이렇게 그를 바꾼 것은 자연의 힘이었다.그 중에서도 그는 ‘풍욕(風浴)'과 ‘절식(節食 혹은 時食)'을 ‘건강 비결'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풍욕과 함께 그가 자연의 섭리를 체득한 또다른 비결은 절식.풀어서 얘기하자면 제 철 음식을 골라먹는 ‘자연식 섭생법'이다.“섭리에 순응하는 삶이란 자연에 맞서 중뿔나게 모를 드러내지 않는 것입니다.도시에서는 계절 파괴란 말이 유행이지만,그건 자연성에 대한 왜곡일 뿐입니다.지천에 널린 계절음식으로 주린 속을 채우는 일이야말로 자연의 질서를 사랑하는 일인데,나물은 물론 어류도 다 제 철이 있어요.여기에서는 식탁에 오른 음식 만으로도 금방 계절을 느낍니다.”그러면서 익숙하게 구절초나 산능금 같은 이름을 외워 보였다. ●속병·알레르기 사라져 “더 일찍 낙향할걸…” “철마다 산과 들을 누비며 나물 캐고,꽃과 산과일을 따는 게 제 일입니다.매화,찔레꽃,인동초,비파꽃과 산수유,비파,유자는 잘 말려 녹차에 띄우거나 과일차를 달이고,들국화와 쑥부쟁이, 구절초는 목욕물에 띄우죠.”그는 지금도 저녁 8시면 따뜻한 물에 야생초를 담근 뒤 30분간 반신욕을 하며 일과를 정리한다.“아랫배가 잠길 정도로 따뜻한 물을 채운 뒤 꽃향기 속에서 편하게 복식호흡을 하며 ‘반가운 사람의 노크’처럼 깊고 깨끗한 잠을 맞습니다.그런 뒤 바로 잠자리에 들면 7∼8시간쯤 넉넉하게 깊은 잠을 자게 됩니다.”더러는 이런 생활을 호사라고 여길지 모르지만,전원생활이라는 게 움직인 만큼 얻는 것이어서 그런 일마저도 보람이라고 했다. 전원으로 귀향해 살았던 도연명의 삶이 이랬을까.바쁠 일 없어 아침 햇빛에 온 바다가 치자빛으로 물들 무렵,산까치나 붉은배새매의 노래를 들으며 느지막이 잠자리에서 일어나거나 달빛이 산야에 넘치는 날이면 잔잔한 물소리를 밟으며 갯가를 소요 하는 일.때론 옛 친구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이렇게 속삭인다.“이 사람아,내가 왕일세.” 그의 또다른 즐거움은 사철 발을 풀어놓는 일.“서울 살면서 안타까웠던 일 중 하나가 발바닥을 퇴화시키는 일이었어요.발바닥은 예민하고 중요한데도 도회에 살다 보면 죽도록 혹사시키고 숨도 못 쉬게 틀어막잖아요.전 가끔 맨발로 몽돌해변을 걷거나 보리밭을 밟곤 합니다.초록이 귀한 겨울에 싱싱한 보리싹을 맨발로 밟는 그 삽상한 쾌감,상상이 됩니까.” ●맨발로 해변·보리밭 걷고 매일밤 반신욕 국문학자로 민속학과 문화해석 분야에서 독보적 지위를 구축한 그는 지금도 줄기차게 한국의 문화와 한국인의 정체성을 천착하고 있다.석좌교수로 있는 계명대에서는 매주 지역 주민과 교수들까지 수강하는 공개강의를 하는가 하면,농익은 학구열도 젊은 시절 못지 않아 새해 벽두에는 한국인의 정체성에 돋보기를 들이댄 역저 ‘한국인의 화와 화병'을 선보인다. 그는 자신의 사전에 ‘고통’이나 ‘스트레스’는 없다고 했다.“사는 일이 고통인데 그걸 피할 수 있겠습니까.고통을 시인하고 기꺼이 수용하는 삶,그것이 건강한 사회의 출발점이라고 믿습니다.우리 사회의 고질인 사회윤리의 붕괴,남에 대한 배려가 없고,돈과 권력에 매몰되는 현상도 그렇게 극복될 수 있지 않을까요.” 광기와 탐닉의 시대,모든 인간이 제삼자로 존재하는 혼돈 속에서도 우리가 길을 잃지 않는 것은 “사랑과 자유 없이는 모든 것,심지어는 종교까지도 악마일 뿐”이라는 니콜라이 베르자예프의 예언을 믿으며 한사코 사람에게로 길을 내는 등대 같은 그가 있어서다. 고성 글 심재억기자 jeshim@ 사진 왕상관기자 skwang@ ■김열규 교수의 풍욕법 김열규 교수의 풍욕은 하루하루 자신을 비우는 작업이다.비오는 날만 빼고는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다르다면 겨울에는 햇볕 속에 나앉고,여름에는 솔그늘에 들어 따가운 햇볕을 피하는 정도다.점심 식사후 온몸 가득 햇살을 받으며 나서는 풍욕산책.보드라운 흙길을 밟으며 땀이 밸 만큼 빠른 걸음으로 솔밭길을 걷다 양지녘에 이르면 겉옷을 모두 벗고 바윗등에 앉아 맨살로 햇볕을 받는다.“풍욕 중에 가끔씩 쌓인 솔잎을 발로 뒤집으면 확,하고 다시 솔향기가 퍼지곤 합니다.내 풍욕은 일광욕과 삼림욕,산책과 명상이 어우러진 건데 중요한 것은 그 순간,머리 속에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다는 겁니다.‘멍’하게 앉아 오로지 바람소리,새소리만 듣습니다.” 그는 이를 철학에서 말하는 ‘부정이 없는 이상향’이라고 정의했다. 30∼40분을 걸은 뒤 20분 정도 하는 풍욕과 절식 덕분에 그는 감기를 잊고 산다.날마다 활력이 넘쳐 글을 쓰거나 먹고 자는 일이 마냥 즐겁다.살이 맑은 것도 풍욕과 절식 때문이다.풍욕길에 나서는 그의 손에는 항상 망원경이 들려 있다.망원경을 통해 이름모르는 새들과 ‘희열의 눈맞춤’을 하기 위해서다.그가 풍욕을 ‘새소리목욕’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섭생도 자연에 가까워 자연에서 나는 것을 자연스럽게 먹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이를테면 아침식사는 제 철의 나물과 채소,식초를넣어 만든 즙과 우유,그리고 잣이나 호두 같은 견과류로 대신합니다.식탐은 하지 않고 조금 적다 싶을 때 숟가락을 놓는데,양이 적은 대신 가려서 먹지요.” 키 169㎝,몸무게 57∼58㎏의 단구인 그가 “이제야 꿈과 이상에 다가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건강이라는 걸 알겠다.”며 담박하게 웃는다.아직도 학문에 관한 한 ‘바람둥이’랄 만큼 지적 호기심을 억제하지 못하는 ‘청춘의 노학자’,그에게서 배우는 것은 건강을 목적으로 하는 삶이 아니라 건강 이후의 이룸이었다.그가 말하지 않는가.“지금도 내 분야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고 싶지 않다.”고. 심재억기자
  • 다국적 청춘들 재기발랄 해프닝/새달1일 개봉 ‘스페니쉬 아파트먼트’

    ‘온도가 높으면 선도(鮮度)가 떨어진다?’ 새해 1월1일 개봉하는 ‘스페니쉬 아파트먼트’(L'Auberge Espagnole)는 통념을 뒤집고 이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은,신통한 프랑스산 코믹드라마다.시간이 갈수록 감성의 온도가 올라가는데도 화면을 처음 대할 때의 신선함이 끝까지 유지된다. 영화의 주요공간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기숙사 아파트.주위의 권유로 오랜 꿈인 작가를 포기하고 공무원 취직공부를 하기 위해 25세의 프랑스 청년 자비에(로맹 뒤리스)가 뒤늦게 합류한 공간이다.세계 곳곳에서 온 젊은 남녀학생들이 함께 사는 아파트는 갖가지 재료들이 뒤섞여 부글부글 끓고 있는 스튜냄비 같다.서로 다른 사고방식,문화적 차이 등으로 재기발랄한 해프닝들이 꼬리를 물고 터진다. 영화는 자비에를 구심체로 가지를 뻗어나간다.홀어머니와 여자친구 마틴느(오드리 토투)의 만류를 뿌리치고 유학을 왔으니 마음이 편할 리 없다.낯선 이국생활에 적잖이 방황하는 그에게 가장 큰 위안처는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프랑스인 신혼부부.그러나 유부녀 안네소피(주디스 고드레쉬)와 자주 만나면서 성적 환상에 사로잡히고 결국 넘지 못할 선을 넘고만다. 벨기에,영국,스페인,독일,이탈리아,덴마크 등 다국적 청춘들이 부대끼며 엮어내는 영화의 최고 매력 포인트는 하나하나 제 몫을 다하며 살아 있는 캐릭터들.영국에 두고온 남자친구 몰래 바람을 피우다 기숙사를 발칵 뒤집어 놓는 웬디,매사에 깔끔하고 정확해야 직성이 풀리는 독일인 ‘범생이’ 토비아스,늘 지저분해서 잔소리를 바가지로 먹는 이탈리아인 알렉산드로….모두 웬만한 영화 주인공으로도 손색이 없을 만큼 성격이 뚜렷하다.특히 영국에서 놀러온 웬디의 말썽쟁이 남동생 윌리엄(케빈 비숍)은 영화를 배꼽잡는 코미디로 띄워올리는 ‘히든 카드’. 이국땅에서 다국적 젊은이들이 빚는 사랑과 우정,갈등 등을 소재로 삼은 영화는 내내 경쾌한 톤을 유지한다.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몇가지 메시지는 야무지게 전달한다.언어장벽으로 극명히 드러나는 문화적 간극,조금씩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해가는 젊은이들의 우정 등은 영화가 생각없는 코미디가 아님을 입증한다.질펀한 성적 농담으로 말초신경만을 자극한 채 고민하지 않는 국산 코미디 영화들을 반성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프랑스로 돌아와 마틴느와 헤어진 자비에가 마지막 진로를 선택할 즈음에는 청춘의 비애가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를 두고두고 기억하게 할 또 하나의 주요장치.영국 록그룹 라디오헤드의 애상짙은 선율 ‘No Surprises’가 반복되면서 청춘영화의 미묘한 떨림은 한껏 증폭된다. 황수정기자 sjh@
  • “영사기 소리 못들으면 잠도 안와요”/영사기사협회 안치수 이사

    안치수(61)씨는 손바닥만한 영사실에서 청춘을 보냈다.미아리 미도극장,돈암동 동도극장,신설동 동보극장,을지로 국도극장·계림극장·명보극장,서대문 동양극장,종로 단성사·파고다극장·세기극장(지금의 서울극장)…. ●딴 작업 꿈꿔본 적 없으니 천직이죠 다른 삶에 대한 미련같은 건 한줌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그럴 겨를도 없었다.손에서 필름을 내려놓은 날이 하루라도 있었던가.43년을 한결같이 영사기사를 천직이라 믿어 의심치 않은 삶이다. 그의 요즘 일터는 태릉사격장 내 자동차극장이다.의정부 집에서 일찌거니 저녁상을 물리고 나와 새벽 1,2시까지 영화를 내리 튼다.“따로 정년이 없는 직장 아닙니까.” 이력이 날대로 나서 한쪽 눈을 감고도 척척 해낼 수 있는 일.쩌렁쩌렁한 입체음향이 아니라 FM주파수를 탄 스테레오 사운드를 듣고 있으면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디지털에 점령당하기 전 흑백영화 시절의 추억이 되살아나서다. “옛날 영사기사들이 진짜야,진짜.내가 한창이던 1960,70년 대엔 카본을 태워 그 빛을 필름에 투사시켜 스크린에쐈더랬어요.빛이 일정하게 나오도록 카본을 고르게 잘 태우는 일이 여간 까다롭지 않았어요.요즘 필름은 손이 베일 정도로 견고하지만 그땐 왜 그렇게 쉽게 바스러졌는지.까딱 한눈 팔다가는 카본 불이 필름에 옮겨붙어 낭패보기 십상이었다니까요.” 그의 얘기는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어린 토토가 알프레도 할아버지의 영사실에서 필름을 만지다 불을 냈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매일 영화 본다는 말에 그 자리서 OK 서울이 고향인 그가 영사일과 인연을 맺은 것은 서울공고 2학년이던 1960년 4·19 혁명이 있고난 얼마 뒤.뒤숭숭한 분위기에서 결석을 했던 어느 날,미아리 미도극장 앞을 얼쩡대다 매표소 직원의 한마디에 인생을 걸어버렸다. “돈이 없어 초대권만 들고 머쓱하게 섰는데 매표원이 ‘너,매일 영화 볼래?’ 하더군요.뭐에 씌웠나 봅디다.그 자리에서 오케이 해버렸으니 말이에요.” 기계 만지는 일에는 막연히 자신이 있었다.그러나 세상에 말랑말랑한 일이란 없는 거였다.선배 영사기사의 양말,속옷을 빨아주는건 기본 일과.밤잠이 모자라 필름을 돌려놓고 꼬박꼬박 졸고 있을라치면 벼락같이 ‘정신봉’이 날아와 혼줄을 빼놓곤 했다. 꾀가 나서 영사실을 비웠다가 소동이 난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한번은 아래쪽 사무실에서 귀한 요리를 시켰다길래 한참 자리를 떴다가 난리가 났죠.영화 한편을 상영하려면 20분짜리 필름 대여섯권을 이어돌려야 하는데,이미 틀었던 필름을 그것도 거꾸로 걸어놓고 갔던 거라.야유에 욕설이 터지고 청년들은 휘파람을 불어대고….”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절로 난다.1960,70년대엔 아무리 대작이라 해도 요즘처럼 필름을 수백벌씩 뜨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필름이 다 돌아가면 그 즉시 자전거를 타고 이웃극장에 첩보작전 펴듯 전해줘야 하는 일이 허다했다.그러니 영사사고가 끊일 새 없었을 수밖에. “요새는 카본 대신 쿠세논이란 전구를 씁니다.밝기가 일정하니 예전처럼 스크린이 벌개졌다가 퍼래졌다가 할 일이 없어요.필름 재료도 좋아져서 화면이 툭툭 튀거나 주룩주룩 비가 오는 일도 없지요.” ●아들에까지 기술 대물림그래도 옛 시절이 좋았다.새 영화가 한번 들어오면 진득하게 감상할 여유도 있었다.상영작이라야 일주일에 고작 2편쯤이었다.‘성 춘향’‘옥이 엄마’‘여로’‘미워도 다시 한번’‘빠삐용’‘호소자’ 등 장기흥행작들은 절로 술술 대사가 외워지기도 했다.“너나없이 멀티플렉스로 건물을 뜯어 높이고,관객수가 신통찮으면 가차없이 간판을 떼버리는 요즘 극장풍토엔 숨이 찬다.”고 말한다. 한평생 ‘영사 밥’을 먹고났더니 묘한 버릇이 생겼다.“필름 돌아가는 소리를 못 들으면 잠이 잘 안 올 지경”이다.오죽할까.아들에게까지 기술을 대물림해줬다.목동CGV 극장의 영사기사실장인 안성진(36)씨가 그의 아들.“군대가서 좀 편안히 지내라고 16㎜ 영화 트는 기술을 가르쳐 줬는데,(아들이)그걸 평생직업으로 삼을 줄은 몰랐다.”며 웃는다. 아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든든한 힘이 되는 것같다.“요즘같은 세상에 좋아하는 일을 정년없이 마음놓고 할 수 있다는 것만도 축복 아니겠느냐?”며 “최근엔 대졸 출신의 영사기사도 많아지는 추세”라고 말한다.●언제나 현역이고 싶다 영사기사(영사기능사)의 초임은 지역과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보통 월 200만원을 웃도는 선.영사기능사 자격증을 따는 데는 자격제한이 따로 없다.필기·실기시험을 준비하려면 한국영사기사협회가 대치동교육장에서 실시하는 강습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여성들의 관심도 부쩍 높아져 현장에서 뛰는 여성기사가 21명이나 된다. “영사실 장비들도 점차 디지털로 교체되고 있어요.영사기사 한사람이 여러대의 영사기를 작동시킬 수가 있으니 고용증가폭은 그리 많지는 않을 거에요.뜻이 있으면 서둘러야 됩니다.멀티플렉스 등으로 스크린수도 늘고 있고,지역문화공간도 꾸준히 확충되고 있으니까요.” “언제나 ‘현역’이고 싶다.”는 그는 올해 부천국제영화제에서도 주요 작품을 틀었다.한국영사기사협회 이사다. 황수정기자 sjh@
  • “교단 35년 ‘목월’ 아들임을 잊은적 없어”/내년 2월 정년퇴임 앞둔 박동규 서울대교수

    “교단 생활 35년 동안 ‘시인 박목월’의 아들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30년이 넘도록 서울대에서 현대시와 현대소설을 가르쳐 온 서울대 국문과 박동규(朴東奎·사진·64) 교수가 내년 2월 강단을 떠난다. 박 교수는 박두진,조지훈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일제 말기에 우리의 정서를 지켜온 박목월(朴木月) 시인의 아들.1961년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1969년부터 서울대 강단에 섰다. 박 교수는 소설가 황순원(黃順元)의 아들로 올해 가을 학기에 은퇴한 황동규(黃東奎) 전 서울대 국문과 교수와 함께 우리 문단에서 보기 힘든 ‘부자(父子) 문인’이다.그만큼 아버지에 대한 정도 각별하다.박 교수는 “‘박목월 시인의 아들’이라는 호칭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해왔다.”고 회상했다. 박 교수는 수업 도중 유난히 선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지난 2월 박목월 시인에 얽힌 추억과 유년 시절의 기억을 담은 ‘내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이라는 수필집도 펴냈다.박 교수는 “선친은 ‘교수는 학생들과 함께공부해야지 행정이나 자리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셨다.”면서 “그 말을 항상 가슴에 담고 살아서인지 35년 동안 학과장 한 번 못해봤다.”고 미소를 지었다. 박 교수가 가장 좋아하는 시도 선친의 ‘가정’.‘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로 시작하는 이 시는 목월의 가족에 대한 따뜻한 정이 구절마다 배어 있다.박 교수는 지난 주말 한 TV 대담에서 “읽을 때마다 생활의 어려움과 자식들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 가슴 깊이 다가온다.”면서 눈물까지 글썽이기도 했다. 박 교수는 평생의 절반을 넘게 20대 ‘청춘’인 학생들과 가까이 있었다.그 덕분에 외모는 60대지만 마음만은 젊은이다.제자들과 함께 자주 가는 곳은 노래방.전국 해변을 돌며 시낭송회까지 가질 정도로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도 좋다.“퇴직한 뒤에도 마음 맞는 제자들과 수필집도 내고 전국을 돌며 마음껏 놀 생각”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요즘 대학생들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박 교수는 “요즘은 직업을 갖는 ‘징검다리’로 대학에 다니는 학생은 많아졌으나 대학에서 ‘사는’ 학생들은 적어진 것 같다.”면서 안타까워했다. 박 교수의 남은 과제는 선친이 남긴 시 전문 월간지 ‘심상(心像)’의 전통을 이어나가는 것.요즘은 편집인으로 서울 서초동 심상 사무실에서 거의 살 정도다. 박 교수는 “25년째 해 왔던 심상 제작은 나의 존재 근거”라면서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제목으로 지난해 12월부터 준비해 온 아버지의 회상집 출간에 전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두걸기자 douzirl@
  • 깜찍발랄 여중생의 ‘사춘기’/ KBS2 새 드라마 ‘반올림#’

    ‘사춘기’ ‘나’ ‘성장느낌 18세’를 기억하는지.깨지기 쉽고,상처받기 쉬운 청소년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내 호평을 받았던 성장 드라마들이다.한때 봇물처럼 쏟아지던 청소년 드라마들이 언제부턴가 안방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29일 오후 5시50분 첫 방송하는 KBS2 ‘반올림#’(책임프로듀서 장성환)은 2001년 ‘학교’시리즈 이후 모처럼 만나는 청소년 드라마다.이전의 청소년물이 주로 남학생을 대상으로 했던 것에 비해 ‘반올림’은 여중생의 시각으로 바라본 드라마라는 점에서 신선하다. 주인공은 중학교 2학년인 열다섯살 옥림.공부 잘하는 언니와 쌍둥이 남동생 사이에서 자기 위치를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하고,요즘 들어 부쩍 소꿉친구 욱이가 야릇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소녀다.옥림은 남들보다 초경은 늦게 시작했지만 스스로 정신연령은 스무살이라고 생각한다.드라마에는 깜찍발랄한 옥림을 중심으로 또래들의 순수한 이상과 꿈,갈등을 담는다. 옥림역에 캐스팅된 고아라(사진·15)는 이번이 데뷔작인 신인.실제로 중학교 2학년인 그는오디션에서 250대1의 경쟁을 뚫고 당당히 주연을 낚아챘다.새침해보이는 전형적인 도회풍의 외모와는 달리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경남 진주,전남 광주 등지를 오가며 자란 탓에 털털하고 솔직한 성격이다.어릴 때부터 워낙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한 ‘무대체질’이어서 카메라 앞에서도 별로 떨리지 않는다는 당찬 소녀다.올초 광주에서 열린 SM엔터테인먼트 공개 오디션에서 대상을 차지한 뒤 서울로 올라와 현재 회사 숙소에서 또래 동료들과 함께 연기와 춤,노래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 “금요일부터 화요일까지 하루 평균 4시간씩만 자고 강행군을 하고 있어요.잠을 좀 못자는 것 빼고는 연기하는 게 재밌어요.앞으로 잘 할 자신도 있고요.” 청소년 드라마는 배두나 안재모 장혁 하지원 임수정 같은 청춘 스타의 산실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그가 이들의 뒤를 이어 스타의 길에 안착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탤런트 강석우가 은행 과장인 아버지,이응경이 교육에 관심 많은 어머니로 출연하고,오햇님 박훈정 현정은 등 새 얼굴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순녀기자 co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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