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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자와 손숙을 위하여/임영숙(서울광장)

    대학시절부터 연극무대에 서기 시작하여 30년이 넘도록 연기생활을 해온 두 여배우 박정자(52)·손숙(50)이 왕년의 스타자매로 출연하여 자신(배우)을 연기하고 있다.지난 24일 서울 동숭동 소극장 학전에서 개막된 연극 「그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헨리 파렐작)는 배우가 무엇인지를 생각케 해주는 산뜻한 무대다. 우선 이 연극은 인기가 만든 하상에 갇힌 배우의 모습을 비극적으로 보여준다.『빌딩 청소부 보다 더 위험한 직업이 배우라는거 알아? 난 아직도 가끔 생각을 해.배우라는건 정말 얼마나 화려하고 가엾은 너울일까 하구.한순간의 박수와 환호,들끓는 인기가 거품처럼 허망하다는 것은 잘 알면서도 거기 매어 벗어날 수 없는 어리석은 마음,그게 배우지』우아하고 매력적인 배우로서 정상을 향해 달리다 어느날 갑작스런 사건에 의해 하반신 마비가 된 언니(손숙반)는 배우를 이렇게 정의한다. 배우로서의 길을 포기하고 불구의 언니를 돌보는 동생(박정자반)은 자신보다 뒤늦게 출발해서 더 성공한 언니에 대한 질투와 박탈감에 정신적으로황폐해져 언니를 거의 죽음에 이르도록 학대하는 가해자로 마지막 극적 반전이 일어날 때까지 그려진다. 연극속의 이런 배우들보다 사실 관객의 관심을 더 끌어 당기는 쪽은 극도로 대비되는 두 자매역을 맡은 우리의 두 배우다.연극밖의 배우 손숙도 연극속의 배우(언니)처럼 박정자 보다 늦게 데뷔했지만 아름답고 슬프고 멋진 여자주인공역을 주로 해왔다.반면에 박정자는 「위기의 여자」(86년)이전까지는 주역보다는 조연을 더 많이 해왔으며 연극속의 배우(동생)처럼 『예쁘고 매력적』이라는 평을 잘 듣지 못한 강렬한 개성의 연기자였다.그래서 그들의 연기는 실제와 연극이 뒤섞이는 듯한 박진감으로 다가온다.그들보다 더 그 역을 잘 연기해낼 배우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러나 두살 터울의 실제의 박정자·손숙은 「형님」「아우」하며 지내는 따뜻한 관계고 비슷한 부분도 서로 많이 나누어 가지고 있다.두 사람 다 글쏨씨가 뛰어나 공동수필집과 개인수필집을 냈고 영화와 방송에서도 활동하는 다재다능함을 지니고 있다. 연극관객의 저변확대를위한 나름의 「연극운동」도 두사람은 펼치고 있다.극장앞에 박정자 관객이 별도의 줄을 서고 김대중 전 민주당 대표가 손숙을 위해 3백장의 연극표를 산 것등은 그 운동의 결과라고 할 수도 있다. 박정자와 손숙 같은 연극배우를 가질수 있다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행복이다.연극을 하면서도 자신들이 아는 얼굴을 객석에서 찾아낼만큼 무대에 익숙한 그들은 푹 익어 감칠맛 나는 연기자들이다.토씨 하나라도 흐트러짐이 없는 완벽한 발성이라든가 군더더기 없는 동작 따위의 평가는 그들에겐 오히려 새삼스러운 것일 뿐이다. 「그 자매…」에서 그들은 연극이 배우의 예술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심리표현이 눈금처럼 정확하다』는 작가 정복근의 각색,14년 만에 무대에 돌아온 야무진 여성연출가 한태숙의 흔적도 만만치 않지만 두 배우가 아니면 이 연극이 지닌 브로드웨이 연극식의 재미는 결코 만들어 지지 못했을 것이다.어떤 연극철학이나 강한 메시지도 없는,흘러간 배우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2시간동안 재미있게 보게 만드는힘은 두사람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두사람을 잘 아는 연극인들 가운데는 그들의 힘이 연극무대 밖으로 낭비되는 것을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그 걱정이 기우가 되느냐 불행한 현실이 되느냐는 관객들에게 달렸다.『배우란 결코 혼자서는 위대해 질 수 없는 존재입니다.연극에서는 좋은 작품,좋은 연출,좋은 상대역,좋은 관객을 만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고 박정자는 말한 바 있다.많은 사람들이 좋은 관객으로 극장에서 그들을 만난다면 그들의 귀중한 힘은 낭비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다양한 가치가 존중되는 다원화된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좋은 연극배우를 진정으로 아끼는 일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일이며 성숙한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 오한트케 최신연극 「우리가 서로를 알지 못했던 시간」

    ◎대사 없이 관객과 교감/극단 무천 「혜화동 1번지」서 연말까지 공연/배우들 무언연기·음악·조명만으로 구성/관객 50명 제한… 무대 곳곳서 앉아 관람 대사가 없는 페터 한트케의 최신작 「우리가 서로를 알지 못했던 시간」이 중견연출가 김아라씨와 만났다.연극「관객모독」의 작가로 알려져있는 한트케의 이 작품은 무언의 상태에서 관객과의 교감을 시도하고 있다.극단「무천」이 혜화동 로터리에 위치한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763­6238)에서 관객을 50명으로 제한,지난 5일부터 오는 12월31일까지 공연중인 이 작품은 대사가 연극의 불가분의 요소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무언의 상태도 또다른 형태의 언어라는 극작가의 언어관이 반영된 작품으로 배우들의 무언의 연기와 극적 상황,음악과 조명등 기타요소들에 의해 연극은 구체화된다. 작품은 햇볕이 좋은 하오 공원을 배경으로 진행된다.따스한 햇볕을 쬐며 공원을 지나는 온갖 부류의 사람들을 구경하는 바보가 등장하고 미인,아이들 노부부 청소부 운동선수 단체관광객 주부등 2백여명의 인물이 배우 15명에 의해 연출된다.그냥 지나치는 이들을 보며 공원의 산책객인양 무대 여기저기에 앉게된 관객들은 다음장면과 또다른 만남을 기대하게 된다.끊임없는 반복과정을 통해 막연히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쉽고도 어려운 여행길에 동행하는 것이다. 10초에서 길어야 20초동안 관객들이 앉아있는 무대를 걸어다니는 것이 연기의 전부인 배우들.걸음걸이와 의상,행동만으로 인물의 성격과 특징을 표현해야하는 어려움을 털어놓는 배우들은 이번 연극만큼 연기수업에 도움이 된 작업도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꼭 격정적인 대사로,큰 몸짓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만이 연기가 아니라 인물의 특징을 뽑아내 집약적으로 연기하는 어려운 경험후에 각자가 내린 결론이다. 그런가하면 관객들은 극이 진행될수록 처음의 얼떨떨한 느낌에서 벗어나게 된다.강한 호기심으로 배우들을 기다리면서 저절로 연극의 일부가 되고 연극속으로 점점 빠져든다.신바람을 불러일으키는 탱고음악과 바람소리,낙엽 떨어지는 소리등이 귓가에 어른거리는채 극장밖을 나서면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자신도 모르는새 관심이 가는 것을 막을 수 없게된다. 언어라는 불완전한 매개체를 통해 존재의 무게를 담아낼 수 있을까 회의하는 연출가들.이 연극은 언어이전의 상태에서 그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는 이들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무용극과 침묵극등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대변해준다.
  • “바다의 청소부”/해삼 보호운동활발/미·스위스등 일부 국가남획반발

    ◎흙 먹은뒤 배출… 청정해역 유지 바다밑의 청소부 해삼을 보호하자는 운동이 미국과 스위스의 과학자들과 민간단체에서 일어나고 있다. 남미 에콰도르는 92년부터 올해 9월까지 해저생물을 보호하기 위해 해삼채취를 1년동안 금지했었으나 올해말부터 어로규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있어 생물학자들이 반대하고 있다.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섬에 자리잡고 있는 찰스 다윈연구소장 찬탈 부란탄박사는 해삼의 남획을 규제하지 않으면 연쇄먹이사슬이 되고있는 생선과 펭귄은 물론 가마우지등의 생물이 더 이상 살 수 없다며 에콰도르 정부는 해삼채취금지조치를 풀지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이에대해 어민들은 정부가 바다가재를 못잡게 하더니 해삼마저 잡지못하게 한다며 생업권을 보장하라며 항의하고 있다. 국제해삼채취업자들은 지난 70년대 미크로네시아의 해삼을 모두 잡아 멸종시키다시피 한뒤 88년에는 에콰도르의 태평양연안으로 이동했다가 92년 부터는 갈라파고스섬까지 진출했다. 이곳에서 잡히는 해삼은 현지에서는 1㎏에 1달러 밖에 되지않으나 홍콩에서는 40달러,서울에서는 80달러에 거래된다. 스위스에 본부를 둔 세계보존협회의 집계에따르면 이곳에서는 연간 1천2백만∼3천만개의 해삼이 채취되고 있어 인위적으로 보호하지 않으면 곧 씨가 마른다는 것이다. 생물학자들은 해삼이 바다밑에서 모래와 흙을 먹은뒤 배출하기때문에 청정 해역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일정량의 해삼이 서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에콰도르 정부는 섬주민들의 보트 34척이 6개월간 하루에 1천5백개의 해삼만 채취하도록 허용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일본과 코스타리카등의 어선이 들어와 허가없이 조업하고있고 에콰도르해군은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남미 대륙에서 6백마일 떨어진 갈라파고스섬은 크기가 하와이섬의 절반밖에 되지않으나 적도 바로 밑에 위치해 세계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않는 희귀 동식물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
  • 김 대통령·노동계대표 대화 요지

    ◎“신경제 근로자 적극동참 필수”/김 대통령/“수입관세 올려 섬유업 경쟁력 높여야/교육·산재부문 재정지원 대폭 증대를”/노동계 김영삼대통령은 5일 저녁 박종근한국노총위원장과 산별노조위원장등 노동계 대표 24명을 청와대로 초청,만찬을 함께하며 신경제건설에 근로자들이 적극 동참해줄 것을 당부했다. 다음은 이날 회동의 대화요지. ▲김대통령=대통령취임후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앞으로도 내 자신이 변화와 개혁을 멈추지 않고 추진하겠습니다.그동안 우리사회의 일부에서는 자기만 생각하는 집단이기주의가 일어나고 있으며 이로인해 국민이 불안해 하고 경제에 주름살을 주고 있습니다.나는 임기중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변함없는 개혁을 통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과제를 해결할 것입니다.이것을 통해 경제를 살리겠습니다. ▲박종근노총위원장=우리들은 우리나라 경제가 이렇게 가도 되는가,노조가 집단이기주의에 빠져 있어도 되는가,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이런 우려를 하는 가운데 경총과 노총간의 임금합의를 보았습니다.노총산하 개별노조가 반발했지만 시대적 소명으로 합의했습니다. ▲김대통령=노총과 경총의 합의는 역사적으로 없는 일로 근로자들이 고통분담으로 나라를 살리겠다는 결단을 한 것으로 평가합니다.힘이 있어야 근로자들도 설득할수 있을 것입니다.노총의 위상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겠습니다. ▲송수일섬유노련위원장=섬유산업의 이직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수입관세를 올려 경쟁력을 높여주어야 합니다. ▲김준상항운노조위원장=하역근로자들의 상용고용은 기계화에만 허용하고 있는데 이로인해 대량 실업사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이해 당사자간의 협의를 통해 결정됐으면 좋겠습니다. ▲이남순금융노련위원장=새정부가 금융기관의 인사 자율화를 약속하고 은행들은 9명의 은행장 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있는데 여기에는 실질적인 종업원 대표가 참여해야 합니다. ▲김대통령=여은행원제의 폐지는 어떻게 됐습니까. ▲이남순위원장=남녀고용평등법에 따라 폐지됨으로써 여은행원들이 환영하고 있습니다. ▲조천복선원노련위원장=현대분규는 거친 기업주와 거친 근로자들이 부딪치기때문입니다.노총의 산별기구에 힘을 부여하여 일선노조를 통제할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박인상금속노련위원장=현대 노사문제는 정세영회장이 적극 나서서 풀든지 아니면 사장에게 전권을 주어 풀든지 해야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결국은 정부에게 공을 떠넘기게 됩니다.무노동 부분임금문제는 근로자의 입장에서 보면 크게 초점이 되지 않으며 실제로 임금의 5%만 보장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노동부장관에게 불만이 큽니다. ▲정영기관광노련위원장=대전 엑스포와 94년 한국방문의 해는 관광산업 활성화의 좋은 계기인 만큼 정책적 육성이 필요합니다. ▲김낙기연합노련위원장=관료조직의 경직성으로 공무원 봉급이 동결되니까 청소부등 노조원들의 봉급을 무조건 깎으라는 획일적인 지시가 내려왔습니다.고통분담도 좋지만 그같은 문제는 미리 당사자에게 동의를 구하는 형식을 취했어야 합니다. ▲이광남택시노련위원장=오늘 대전역에서 규탄대회가 있었는데 그것은 과거 정부여당이 부가가치세 유보,요금인상등 약속한것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오는 12일까지 정부여당의 답변이없으면 어려운 일이 발생할 것입니다. ▲김대통령=대전 엑스포는 올림픽보다 더 중요합니다.택시는 한 나라의 얼굴입니다.이번 엑스포를 전후해 건전한 택시문화가 정착되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김만호고무노련위원장=노동집약적이며 세계 일류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신발산업만은 살려야 합니다. ▲김규호외기노련위원장=외기노련노동자들은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에 따라 법률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국내 노동법의 적용을 받게 해주십시오. ▲김대통령=세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과거에는 대통령이 근로자와 기탄없이 얘기한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나는 정치자금을 한푼도 안받겠다고 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었으며 그 돈으로 기업투자를 늘리고 기술을 개발하며 근로자의 복지를 위해 쓰라고 했습니다.나는 5년후 아무런 선거를 치르지 않습니다.따라서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은 결코 펴지 않을 것이며 당당하게 사심없고 두려움 없이 다음세대를 위해 할것은 반드시 할 것입니다.앞으로 법을 안지키는 것은 절대로 용납치 않을 것이며 적당히 하는 것도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경제회생에 걸림돌이 있으면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겠습니다.
  • 최우수작에 「나무와 종이컵」/환경처/환경생활수기공모 당선작 발표

    환경처는 25일 서울신문사후원으로 실시한 환경생활수기공모 당선작 7편을 확정,발표했다. 최우수작에는 환경처장관상과 상금1백만원,우수작은 장관상과 상금50만원,가작은 장관상과 상금30만원씩이 각각 주어진다. 수도권 당선작의 경우에는 환경처장관이 직접 전달하고 지방소재 당선작은 해당지역 지방청장이 전수할 예정이다. 수상작품은 모아서 소책자로 발간,7월중 관계기관등에 배포할 계획이다. 수상작은 다음과 같다. ◇최우수작(1편)=나무와 종이컵(이상희 직장인·서울 성동구 화양동 47의58)◇우수작(2편)=▲학생부문­청소부(김혜리·경남 마산시 성호국교 5학년 8반) ▲일반부문­엄마는 못말려(조정미·부산시 동구 태종대국교 교사)◇가작(4편)=▲학생부문­자원재활용과 우리집(이미지·서울시 용산구 용산국교 5학년5반)작은애국자(박상미·부산시 동래구 사직여고 1학년8반)오늘도 유달산을 오르며(전현정·전남 목포시 목포여상 2학년5반) ▲일반부문­윗물은 맑은데 아랫물은 더럽네(이미자·주부·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원종동 362의 9)
  • 집시/극우파 득세에 박해설움(특파원코너)

    ◎동구몰락후 생활터전 잃고 방황/각국 추방 압력… 보스니아선 학살/문맹률 높고 응집력 약해 핍박의 표적 집시의 현실적 삶은 문학작품 또는 오페라에서의 낭만적인 모습과 똑같지는 않다.집시는 세상이 어지러울 때마다 박해의 대상이 되어온 서러운 민족이었다.공산주의체제가 무너진 뒤 배타적인 극우민족주의의 대두와 경제의 피폐로 동유럽 집시들의 삶은 고단해졌다.더욱이 가혹한 「종족 청소」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에서는 가장 취약한 대상이 이들이다. 집시의 숫자는 정확하지 않다.유럽에 6백만∼8백만,미국에 1백만이 있는 것으로 어림되고 있다.유럽 집시들의 대부분은 옛공산권인 동유럽에 있고 스페인과 남부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공동체 지역에는 약 1백만명이 있다. 동유럽의 집시들은 공산주의 체제 아래서는 핍박받지 않았으나 민족간의 증오가 괴질처럼 퍼지고 있는 요즈음에는 어디서나 극우파들의 과녁이 되어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특히 유고슬라비아 사태는 집시들에게도 참혹한 횡액이었다.보스니아에서 「종족 청소」라는 이름으로 집시들이 집단적으로 학살되었다. 체코에는 「집시 출입금지」라고 써붙인 술집이나 식당이 여기저기 생겼다.검찰은 몇달전만 해도 한나라이던 슬로바키아에서 넘어온 집시들의 추방을 강화하겠다고 공표했다.최근 몇달동안 폴란드·헝가리·루마니아에서 집시의 집 수백채가 극우분자들에 의해 파괴되었다.집시 박해는 독일과 스페인에도 번지고 있다 집시 박해는 오늘날만의 현상은 아니다.독일 나치 정권과 그 동조 세력들이 제2차 세계대전때 50만∼60만의 집시들을 처형했다.일부는 독일 다하우 수용소에서 살해되었고 일부는 폴란드·유고슬라비아·소련등의 거주지마을에서 학살되었다.프랑스의 비시 정권밑에서는 나치군에 넘겨지기 전의 집시 1만6천∼1만8천명이 임시 수용소에서 죽었다. 적 나치에 대항해서 싸워 목숨을 던진 집시들도 많았기 때문에 새로 성립된 공산 정권들은 대체로 집시들에게 호의적이었다.사회주의 정책의 시행으로 집시들의 빈궁한 생활형편도 점차 나아졌다. 집시는 10세기쯤 인도 북부에서 유랑을 계속해 유럽으로 왔다는 것이거의 정설처럼 되어 있다.집시하면 「유랑민족」이고 음악과 시와 춤과 점술에 능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요즈음의 집시들은 대부분 정착생활을 하고 있으며 회사 직원·청소부·광부 등의 월급생활자도 많다. 집시들의 대부분은 여전히 소외계층으로서 실업률·문맹률·사망률·범죄율이 매우 높다.불가리아 집시의 실업률은 60%이며 유고슬라비아 집시들의 문맹률은 70∼80%나 된다.배고픔때문에 아이들이 좀도둑질이나 매춘에 나서기 일쑤다. 동유럽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인한 정세불안 때문에 서유럽으로 이주한 집시들이 15만에서 20만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이들은 대개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에 주로 갔으며 다시 제3국으로 가기도 했다.이민 급증으로 골치를 앓는 독일이 루마니아와 92년 9월에 협정을 맺고 정치망명을 요청한 루마니아인을 모두 송환하기로 함에 따라 많은 집시들이 되돌아 가야할 운명이다.집시의 미국 이민은 금세기 초에 많았는데 개중에는 조상들이 해 오던 말장수 실력과 손재주를 살려 중고차 수리·매매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도 다수 있다고 한다. 범유럽적 집시조직은 1971년 처음 결성되었다.시인 슬로보단 베르베스키주재로 집시국제회가 멜그라드에서 열렸고 이것이 현존하는 「로마니 유니온」이라는 기구가 되었다.이 기구는 집시를 소수민족으로 인정해 줄것을 호소하고 있다.1990년에는 위기감을 느낀 유고와 루마니아 집시들이 네덜란드·스위스 접경의 독일 영토에 집시들이 거주지를 마련해 달라는 요청을 하여 잠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집시들은 유태인들의 처지와 비슷하기도 하지만 문자와 고유 종교를 가지지 않아 응집력이 약하고 국제적 발언권도 미미하다.이들의 서러움이 걷힐 날은 기약이 없다.
  • “규모 작지만 짭짤”… 중국 사기업 번창(특파원코너)

    ◎1천4백만개 등록… 올 50만개 창업/“농사꾼서 백만장자로”… 입지전 회자/한때 투기꾼으로 매도당하는 시련 겪기도 공산주의국가인 중국에서도 「개인기업」들이 번창,그 수가 급증하고 있다. 중국정부가 사회주의식 시장경제라는 경제정책을 추진하면서 생겨나기 시작한 사기업들은 예상되는 경제자유화폭의 확대와 함께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들 사기업 소유자중엔 가난한 농사꾼이나 청소부에서 일약 백만장자로 성장한 입지전적 인물도 적지 않다.요즘 중국언론으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는 북경의 무역업자 모우 키숑(52)은 「파리도 고기다」는 격언에 따라 조그맣게 시작한 사업을 지금은 자본금 1억원(1천9백만달러)의 큰 무역회사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아직 자본주의국가의 기준으로 볼때 기업이라 할 만큼 규모가 크지는 않다.현재 중국에는 1천4백70만개의 개인기업이 있으나 이들은 대개 7명이내의 인원으로 구성된 가족단위로 이뤄져 있다.올들어서만도 50만개의 개인기업이 새로 생겨났다.그러나 많은 개인기업들이 세금과 금융혜택을 받기 위해 소규모 집단농장으로 위장하고 있어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중국은 항공·철도·금융 등 국가기간산업과 주요 원자재의 생산 및 판매를 제외하고는 모든 분야에서 개인기업을 허용하고 있다.이 개인기업들은 해외지점을 설치할 수도 있다. 국영기업들이 비효율적이고 방만한 경영으로 약3분의1이 적자운영을 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개인기업들은 소규모이기는 하지만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속속 개발함과 동시에 알찬 경영으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숫적 증가와 함께 이들은 사업영역도 활발히 확대시켜가고 있다.현재로서는 개인기업의 4분의3이 소규모 상점·식당·수리점들이지만 건설·광고·첨단기술분야에까지 진출하고 있다. 아직 이들이 중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국민총생산(GNP)의 10%로 미미하지만 이들은 중국경제 전반에 활력소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의 개인기업은 지난 78년 경제개혁이 시작되면서 등장하기 시작했다.당국의 묵인하에 나타난 소수의 이들 개인기업은 그나마 89년 천안문사태 이후 한동안 「투기꾼」,「사기꾼」등으로 매도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불과 1년전만 해도 정통파 이데올로기세력들은 개인기업을 「신생 부르주아」라고 공격했다.또한 「착취자」라고 매도하면서 이들에 대한 새로운 계급투쟁을 부추기기도 했다.그러나 이러한 공격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등소평의 흑묘백묘론에 밀려나 버렸다.중국정부는 앞으로도 민간부문에 대한 통제를 더욱 완화해 나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붉은 자본주의 사기업」들은 아직도 여러가지 불이익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입장이다.이들은 은행융자를 받거나 원자재를 공급받는데 있어 여전히 애로를 겪고 있다.시장경제를 도입한 다른 공산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는 개인기업을 하려면 뇌물을 바치거나 연줄이 있어야 한다. 또한 개인기업들은 정부가 어느날 갑자기 국영기업으로 귀속시키는 포고령을 발동할 경우 보호받을 길도 막연하다.이것은 개인기업이 보다 활성화할 수 있는 길을 막고 있는 요인이다. 이러한 불안은 개인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조급증을 심어주고 있다.북경의 한 의류상은 『이것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당장 벌 수 있는 만큼 부지런히 벌고 싶다』고 말했다.
  • 철도 공안원 변재수 공안담당관(이런자리 저런일)

    ◎철도여객위한 “범죄 청소부”/치기배 단속서 청소년선도역까지 전담/범죄 갈수록 포악화… 업무도중 부상 많아 『명랑하고 쾌적한 열차여행을 위한 범죄없는 역을 만들자』 4만여명의 철도청공무원들 가운데 사법권을 갖고있는 3백19명의 철도공안원들을 총지휘하고 있는 변재수공안담당관은 아침마다 공안원회의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철도공안원들은 역구내와 열차안의 소매치기와 폭력사범 등 현행 형사범을 검거할 뿐 아니라 대합실의 잡상인·암표상·소란행위·부녀자희롱·강제기부요청 등 행정사범도 검거해야 한다. 또 무단상경한 가출 소년소녀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도록 선도하고 차표를 마련해주고 보호자에게 인도하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지난 1963년 철도공안제도의 도입으로 창설된 공안공무원들은 서울·대전·부산·순천·영주 등 5개 지방철도청별로 12개 분실과 18개 주재소를 두고 근무하고 있다. 전국의 주요역에 배치되어 있는 공안분실및 주재소에는 질서저해사범신고센터와 가출인상담소가 설치되어 있다. 경찰전문학교를 졸업한 무술경관출신인 변재수씨는 60년대초 장면총리를 경호하다 5·16이후 철도공안원이 되어 30년간을 한 직종에서만 근무하고 있다. 키 1백76㎝,몸무게 78㎏의 육중한 체격의 변씨는 『대부분의 공안원들은 대학출신이며 유도·태권도유단자』라며 『그러나 범죄행위가 날이 갈수록 지능화·포악화됨에 따라 공안원들이 업무수행중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지난해 공안원들은 강도5명,절도1백17명,폭력83명,기타풍속사범 2백31명을 검거,1백46명을 구속송치했다. 또 잡상인 1천5백28명,음주소란행위 1천4백66명,암표상 2백32명,기타 1만1천8백35명등 1만5천61명의 행정사범을 검거,3천24명을 즉심에 회부하고 8천5백78명을 훈방,3천4백59명을 경찰이나 군등 관계기관에 인계했다. 열차안에서 할머니·할아버지에게 수면제가 든 드링크류를 마시게 한뒤 실신시킨뒤 손가락의 금반지나 돈등 귀중품을 약탈하기도 한다. 변재수공안담당관은 『현재 전국의 총여객열차는 하루 1천4백24개 운행되고 있으나 3백여명밖에 되지 않는 공안원들이 모두 탑승할 수 없어 사고빈도가 높은 열차와 취약시간에만 기동단속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 현황(외국인 불법취업:1)

    ◎「3D업종」에 10만명 종사 추정/중국교포·비·방글라·네팔인 순/대부분 즉석 인력시장 통해 구직 급증하고 있는 외국인근로자들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노동력이동의 국제화추세속에 국내에도 이미 10여만명의 외국인이 취업을 목적으로 들어와 있으나 이들의 체류와 고용 또는 신분문제 등에 대한 아무런 제도적 장치가 없어 갖가지 사회적인 문제점이 야기되고 있다.특히 이들의 대부분이 관광이나 방문비자로 들어와 취업을 하는등 입국목적을 어기고 있으며 체류기간을 넘겨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는가 하면 국내 업주들은 이같은 약점을 빌미로 저임·혹사시키는 등 파행적 고용실태가 드러나기도 해 외국인 근로자문제는 갈수록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다.외국인 근로자들의 현황과 실태 그리고 문제점 및 대응책을 알아본다. 매일 아침 7시 쯤이면 서울역 지하철 매표구와 지하통로에는 남루한 옷을 입은 중국교포 5백여명이 일자리를 찾아 모여든다. 남대문과 서울역 주변의 허름한 숙소에서 라면이나 국수등 간단한 인스턴트식품으로 아침식사를 마친 중국교포들은 서울시민들의 바쁜 출근길에도 아랑곳없이 일자리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고 또는 일손을 구하는 사람을 찾아 기웃거리기도 한다. 같은 시각,지하철 동대문역 부근인 서울운동장앞.여기는 필리핀인들의 구직시장이다. 이들 외국인 취업자들은 건축현장이나 공장·식당의 부엌일,청소부,가정부 등 말이 통하지 않아도 되는 단순노동일에 주로 투입된다. 외국인 불법근로자가 국내 노동시장에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한것은 불과 1∼2년 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최근 국내고용구조악화에 따른 생산직인력부족현상이 심화되면서 국내기업주들이 미개발국가들의 저임금노동력을 선호하게 됨에 따라 중국교포를 비롯한 동남아시아국가들의 미숙련인력이 빠른 속도로 국내에 유입되면서부터이다. 불법취업 외국인 적발건수는 지난90년 1천1백98명에서 91년에 2천2백55명으로,지난해에는 무려 4만6천4백53명으로 늘어났다. 법무부출입국관리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파악된 불법체류 외국인근로자는 모두 7만여명. 국내거주 외국인 총17만명 가운데 산업기술연수생 5천명과 취업자 3천명등 합법취업자는 불과 8천명밖에 되지 않는데 비해 불법취업자는 합법취업자수의 9배가 넘는다. 그러나 생산업계와 노동계 일부에서는 불법취업자 수를 1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같은 외국인 근로자의 입국은 일본이나 대만에 비해서는 그 속도가 매우 빠른데도 이에대한 대응책이 없다. 지난해 당국에 자진신고해온 불법체류 외국인근로자 6만1천1백26명중 중국교포가 2만2천35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은 ▲필리핀(1만8천9백93명) ▲방글라데시(8천9백50명) ▲네팔(5천36명) ▲기타(6천1백12명)순이었다. 이들은 주로 국내근로자들이 취업을 꺼리는 소위 3D업종에 몰리고 있는데 섬유·기계·금속·화학·가구등 저임금 영세업체뿐만 아니라 유흥업소·건설잡역부·식당부엌일·가정부에서부터 농촌의 양계·양돈장에 이르기까지 일손이 달리는 부문에서 저임금 장시간노동을 강요당하고 있다. 이들을 고용하고있는 사업주도 제조업 1만5백82명,유흥서비스업 2백14명등 1만7백96명이나 된다. 이들의 입국경위도 초기에는 주로 관광이나 친지방문등을 목적으로 입국,한시적인 일자리를 구하는 식이었으나 최근에는 이들을 전문적으로 알선하는 업체까지 생겨나 조직적인 양상을 띠어가고 있다. 특히 중국교포들의 경우 주로 서울역과 봉래동·남대문주변,필리핀등 카톨릭 국가들의 경우 서울 자양동·구로동과 안산·인천·성남등 서울근교의 성당주변,방글라데시·파키스탄등 회교권의 경우 서울 한남동 이슬람사원이나 이태원주변의 중동음식점등을 거점으로 종교행사나 축제일을 전후해서 즉석 인력시장이 형성되기도한다. 이렇게 고용된 불법체류 외국인근로자들은 대부분 내국인에 비해 임금·근로조건등에서 차별대우를 받고 있지만 「불법」을 이유로 열악한 조건을 감내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한편 정부나 기업,노동계는 이같은 흐름이 대해 각각 현격한 입장차를 보이며 뚜렷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기업주들은 구인난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이들 불법체류 외국인근로자의 양성화와 외국인력 수입확대를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와 노총·전노협등 노동계는 이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법무부는 이들에 대한 단속강화와 단계적 출국을 거듭 강조하고 있고 노동부는 이들을 정규근로자로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지만 사실상 은연중 외국인근로자의 취업을 묵인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노동계의 경우도 절대 허용반대와 허용엔 반대지만 이미 입국해있는 사람들에 대해선 처우개선이 당연하다는 시각이 엇갈려 정부·기업·노동계의 합리적인 대응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 주부 이명자씨(봉사하는 삶:2)

    ◎행려자 등에 무료이발봉사/식당 「하상 바오로의 집」 한귀퉁이 빌어/악취나는 머리 직접 감겨주고 다듬어/열심히 사는 삶서 많은것 배워… “부업 있어야 계속될텐데…” 『그분들에게서 나는 냄새를 의식했을때 생각했습니다.내 정신에서는 더욱 악취가 나고 있구나…』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안 행려자들을 위한 식당인「하상 바오로의 집」.한끼 음식값이 2백원,그나마도 없는 사람에겐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이 식당 한 귀퉁이에서 꾀죄죄한 차림의 행려자와 알코올중독자,전과자,무의탁 노인들의 머리를 무료로 깎아주고 있는 이명자씨(47)의 말이다. 이씨는 커튼과 의자 몇개로 급조한 이 식당 「이발소」를 월요일 상오 10시쯤이면 어김없이 가위 빗등 이발도구가 담긴 헝겁가방을 들고 찾아와 하오 2시까지 20여명의 고객(?)을 항상 웃는 얼굴로 맞는다. 이씨의 고객은 대부분 시장안 창고나 바람이 막힌 골목길에서 잠을 해결하는 이들이다.서로 술을 먹고 싸워 온통 상처가 난 흉칙한 얼굴로 찾아오기도 하고 몇달동안 머리를 감지 않아 먼지와때가 엉겨붙어 빗이 잘 들어가지 않는 사람도 있다. 머리빗기 조차 힘든 이들을 이씨는 식당 옆 화장실로 데리고가 머리를 직접 감겨준후 이발을 한다. 이씨의 봉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매주 수요일엔 천호동 「강동프란체스코의 집」에 있는 행려자·영세상인·결식아동을 위한 무료급식소에서 이발봉사를 하고 한달에 한번 경기도 광주시 중증장애자들의 집 「작은 프란체스코의 집」도 찾아간다.또 정기적이진 않으나 경기도 여주에 있는 장애자들 수용시설인「라파엘의 집」에 이따금씩 들러 이발봉사를 한다.이곳은 이씨말고 다른 봉사자가 정기적으로 찾아보기 때문이다. 이씨가 이발봉사의 길에 들어선것은 지난 87년.19살때 이발사가 된 이씨는 미장공인 남편과 열심히 돈을 모은 끝에 87년 천호동에 대지 25평 건평 10평짜리 자랑스런 「내집」을 마련하고 이발사직을 은퇴했다.서비스업종인 이발사일은 30대 중반을 넘기면서는 계속하기 힘들어 파트타임 청소부로 생업을 바꾼 것이다.그해 카톨릭에 입문하면서 20년동안 익혀온 이발기술을 썩히지 않고 남을 위해 일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한 수녀의 소개로 둔촌동에 있던 중증 장애자의 집 「살레시오의 집」과 경기도 광주시의「작은 프란체스코의 집」,마천동성당의 「애덕의 집」에서 무료이발을 해주기 시작했다. 『제가 이발을 해주는 사람들가운데는 시장에서 구걸하거나 지겟짐을 나르며 번돈을 술마시는데 다 써버리는 이들도 있지만 엄마없는 자식들을 고등학교까지 보내는 등 열심히 사는 이들도 있습니다.그들의 삶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또 하상바오로의 집을 위해 팔다 남은 두부나 생선을 내놓는 시장상인들,장애자들의 머리를 감겨주는 봉사자등 여러사람이 함께 도우며 사는 모습에서 오히려 제가 봉사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씨의 남편은 건축경기 부진으로 지난해 10월이후 실직상태다.그 자신의 파트타임 청소부일도 지난 90년부터 끊겨 생활이 어렵지만 그의 봉사의 손길은 그치지 않고 있다. 이씨의 올해 소망은 가락동 「하상 바오로의 집」안에 이발을 하기전·후에 머리를 감을 만한 세면시설이 갖추어졌으면 하는 것과 봉사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파트타임 청소원자리를 다시 얻는것.이씨는『스스로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들을 멸시하지만 말고 그들 입장에서 한번더 생각해주는 따스함이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 생겼으면 한다』며 해맑은 얼굴로 말했다.
  • 독일/무기밀매상 활개친다(특파원 코너)

    ◎동구·구소 핵원료·미그기 등 거래/정보국선 밀무역 중개기지화 우려/“조직 범죄단 소행” 수사에 총력 독일은 분단시절 동서진영간 첩보활동 중심지였으나 통일이후 동구 무기밀거래 중개중심지가 되고 있어 독일정보국(BND)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무기 판매자들은 동구국 출신자나 여행객들인데 이들은 경제적 이유로 독일서 구매자를 물색하다 BND 정보망에 걸려 적발됐다.밀거래 대상품목 가운데는 핵무기제조용 중수소도 포함되어 있어 시민들을 놀라게 했다. 빌레펠트검찰은 지난주 86년 독일로 이주한 독일계 폴란드 청소부(42)와 그녀의 아들(22)을 불법무기거래혐의로 기소,재판이 현재 진행중이다.이들 모자는 올해초 항공전문지에 각종 소련제 미그기를 팔겠다는 광고를 게재,정보기관의 감시를 받아오다 거래직전 적발됐다. 수사결과 이들 모자는 지난해 고향 폴란드를 방문했을때 평소 안면있는 폴란드 공군장교 2명이 찾아와 서구 박물관이 전시용으로 구입을 원하는 미그기를 제공할테니 구입희망자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더라는 것.이들이 판매하겠다고 제의한 전투기는 미그 17,21,23기등 3종류였다. 대당 가격은 1만3천마르크(6백50만원)에서 3만마르크(1천5백만원)로 대당 판매중계료 1천달러를 추가한다는 조건이었다.항공팬이기도 한 아들은 독일 「항공리뷰」지에 광고를 게재하고 「구입즉시 운행가능,기관포 포함」이라고 선전했다. 흥정을 하다 법정에 선 증인은 이들 모자가 미그기말고도 카라스니코프 기관단총은 한정에 92달러,최신형 T72탱크는 1백24만달러에 공급할 수 있다고 제의했다고 말했다.그러나 이들 모자는 미그기는 폐기처분된 것으로 비행이 불가능한 것이었으며 기관단총과 탱크는 흥정이 이루어지도록 과장해서 말한 것 뿐이었다고 주장했다. 세관당국 추적결과 실제로 이들 모자가 공급키로 한 미그 21기 한대가 트럭에 실려 지난 5월 폴란드에서 스위스 제네바로 수송되었으며 다시 독일과 폴란드국경 괼릿츠에서 수입허가서와 수송증명서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실이 밝혀졌다. 한편 베를린 경찰은 최근 핵연료를 판매하려던 폴란드인과 오스트리아인 각각 2명을 체포했다.이들은 우라늄 1.78㎏과 세시움 137 약간을 암시장에서 4백만 마르크에 판매하려한 혐의.경찰은 핵연료 암거래 정보를 입수,바짝 긴장해 기동반을 편성해 범인을 검거하고 핵연료를 압수했다.그러나 경찰이 이들 핵물질들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농축도가 떨어져 핵무기나 핵연료로는 사용할 수 없는 저질품으로 밝혀졌으며 시중가격으로는 수천마르크 정도 가치밖에 없는 것으로 평가했다.이들은 동구의 한 핵연구소직원이 이들 핵물질을 독일에서 팔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구매자를 물색했다고 진술했다.또 지난 3월에는 뮌헨근교서 중수소 3㎏을 팔려던 2명의 러시아인이 경찰에 검거되는등 최근 동구로부터 무기나 핵물질을 독일에서 거래하려는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경찰은 대부분의 경우 동구와해이후 핵연구소나 무기분야 종사자들이 재고품이나 폐기물을 서구서 비싼 값에 팔아 한 몫 잡으려는 조직범죄로 보고 수사중이다.검거된 사람들은 이 분야에 전문지식이 거의 없는 하수인에 지나지 않지만 그 배후에는 전문적 판매공급망이 별도로 있는것으로 분석돼 BND와 경찰은 무기불법거래단속과 핵물질유출 차단이라는 차원에서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 “궂은 일 내 차지” 동사무소 근무고집 21년(이런 공무원)

    검은색 계통의 양복에다 단정하게 넥타이를 맨 옷차림이 깔끔한 느낌을 준다.키는 1백60㎝정도 였으나 다부진 체격이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는 성품임을 금방 알수 있다.가슴에 단 「친절봉사 1백일운동」이라는 리본에서 그가 민원창구의 모범 공무원임도 알게한다.한 통의 주민등록초본을 떼는것부터 혼인 출생 전입 전출등 각종 신고에 이르기까지 주민들의 민원을 처리하는 곳이 바로 일선 동사무소 민원창구다.그래서 「민원」이 「민원」이 되기가 쉬운 곳이기도 하지만 지금껏 동사무소 근무만을 고집해오고 있는 공무원이 대구시 남구 대명1동사무소 사무장 강신반씨(54)이다. ◎“친절봉사는 이렇게” 강신반씨(대구 대명1동 사무장)/“주민접촉이 즐거움” 「민원」 현장 찾아가 해결/청소부하다 시험합격… 「공부방」 열어 보답/“웃는 얼굴이 첫째” 아내 사별 썰렁한 집서 아침마다 거울보고 연습 올해로 공직생활은 만21년.이 기간을 모두 동사무소에서만 보낸 그였지만 오히려 그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느끼고 있다.그가 근무한 동은 대명3동 4동 9동5동 10동 1동등 6개동. ○우편처리도 주선 『20년이상 공무원생활을 해온 제가 상급관청에서의 근무가 승진등에서 유리하다는 것을 모를리 있습니까? 다만 외길을 걷다보니 말단의 민원업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어 일선 동사무소를 떠날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는 여러동을 거치면서 호적·병무·새마을·회계·총무업무 등 동사무소내의 일은 안해본 것이 없다.주민들과 가장 많이 접촉하는 곳이어서 그만큼 주민들로부터 많은것을 배울수가 있었다고 했다. 강사무장의 고향은 경남 함양군 지곡면 창평리.빈농의 셋째아들로 태어나 고향에서 중학교만를 마치고 고교에 입학원서까지 냈으나 가정사정으로 중도에 포기해야만 했다. ○민원서류 대필도 그는 군대를 제대한지 3년뒤인 64년에 큰형수의 소개로 결혼을 했지만 막상 시골에서 살려고 하니 부쳐 먹을 밭뙈기도 변변찮아 68년에 대구로 왔다. 『고향을 떠나 낯선 대구로 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못배운 한을 자식에게는 물려주지 않겠다는 결심에서였습니다』 대구에 와서 아는 사람의 소개로 대명3동의 청소부로 들어갔다.이것이 그를 공무원의 길을 걷게 한 계기가 됐다. 70년 9월에 성실하고 근면한 그의 근무자세를 지켜본 동사무소 직원들이 공무원시험에 응시해 보라고 해서 시험에 응시,무난히 합격해 그해 11월 공무원이 됐다. 그는 공무원이 되자 우선 민원인들의 어려움이 뭔가를 자세히 알려고 노력했다.70년대만 해도 문맹자들이 많았던 탓에 자신의 집번지도 모르고 간단한 신고서도 제대로 작성하지 못하는 민원인들이 많았다고 했다.그래서 그는 이들의 대서업무를 도맡아 처리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혼인·출생·사망신고 등 본적지에 직접 가야 하는 민원은 해당지역 동과 면사무소에 우편으로 협조요청해 처리해주기도 했다. 이밖에도 그가 한 일은 많다.우범지역의 주민들을 설득해 자율민방위대를 조직했는가 하면 동사무소 회의실을 영세민학생 공부방으로 활용하게 했으며 자신이 직접 참가해 이동민원실을 운영하기도 했다. 또 영남대학 병원장에게 부탁해 관내 영세민들이 무료진료를 받게 주선했으며 지역유지들에게 호소해 관내경로당의 후원회를 조직,매년 노인들에게 경로잔치도 열어주었다.그는 「민원」이 「민원」이 안되도록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고했다.웃는 얼굴에 침 뱉으란 법 없다고 먼저 민원인이 오면 미소로 맞이하면 된다고 했다. ○이동 민원실 운영 『주민들이 찾아오면 우선 미소를 지어야지요.저는 잘 생긴 얼굴이 아니라 처음엔 아무리 웃어보이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죠.그래서 매일 아침마다 아무도 모르게 거울앞에서 「김치」하고 웃는 연습을 했습니다. 그리곤 다른 동료들에게도 친절봉사는 먼저 웃는 낯으로 대하는 것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의 이같은 주민을 위한 봉사정신은 지난75년 6살된 셋째아들이 청소차에 치여 횡사한데 이어 이 충격으로 부인 이삼순씨마저 병을 얻어 10년이상 앓다 지난해 타계하는등 불운이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하나도 흐트러짐없이 꿋꿋하게 이어져오고 있다. ○자녀모두 장학생 『아내의 치료비를 대는데 월급이 거의 다들어가고도 모자라 천신만고끝에 장만했던 15평짜리 한옥을 처분해야 했었습니다.장학생으로 경북대 물리학과와 일문과에 다니던 큰아이 석립(27)이와 둘째아이 석대(23)의 학업도 차례로 잠시 중단해야만 했어요』 이런 불행속에서도 주민을 만나면 늘 웃는 낯으로 대해야 했고 그것이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는 자식들이 너무 고마웠다고 했다.당시 국민학교에 다니던 막내딸 지혜양(16)은 어머니 대신 부엌일을 혼자 해냈다고 했다.그래서 그는 공무원으로서 자신의 직분을 다할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그가 아들들에게 더욱 미안해하는데는 그만한 사유가 더 있다.석립군은 학력고사에서 3백10점을 받았고 석대군도 2백90점이 넘었으나 어려운 가정사정을 돕겠다면서 스스로 서울대를 포기하고 지방대에 지원했기 때문이다. 그가 주위사람들로부터 『자식농사 잘 지었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것도 이때문이다. 그는 지금도 60여만원의 월급 가운데 절반이상을 부인 치료비를 대느라 진 빚을 갚고 주택부금도 부어야 하기때문에 빠듯한 생활을 하고있지만 출근하면 언제나 정겨운 민원인들이 있고 퇴근하면 사랑스런 자식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어 행복하다면서 활짝 웃는다.
  • 「악마의 시」번역 일 교수 피살

    ◎쓰쿠바대 이가라시… 목등에 자상/이슬람관계자 「사형집행」가능성 영국소설가 루시디의 「악마의 시」를 일본어로 번역한 쓰쿠바(축파)대학 비각문화학과 조교수 이가라시 히도시(구십강일·44)씨가 12일 상오 대학구내에서 피살체로 발견돼 경찰이 번역자에 대한 「사형집행」이 아닌가보고 수사중이다.이가라시조교수는 이날 상오8시10분쯤 이바라기켄(자성현)쓰쿠바시에 있는 쓰쿠바대학 인문사회학계 A동 7층 엘리베이터 문앞에서 목과 안면,양팔 등을 예리한 흉기로 찔린채 쓰러져 있는 것을 청소부가 발견했다. 이가라시조교수는 지난해 2월 「악마의 시」일본어판을 신천사에서 출판했다.이 출판사에는 책이 발매되기전부터 이슬람관계자들의 데모가 있었으며 출판기념회가 열렸던 2월13일에는 회장인 외국인기자클럽에서 파키스탄인이 이탈리아인인 프러모터를 구타,현행범으로 체포되기도 했다.
  • “파병 아닌 파견”의 패러독스/강수웅 도쿄특파원(오늘의 눈)

    일본에서는 8월15일을 「종전기념일」이라고 부른다. 전쟁에 패배한 날이 아니라 단순히 전쟁이 끝난 날일 뿐이라는 것이다. 패전으로 상처받은 국민적 자존심을 더 이상 건드리지 않으려는 배려에서 지어낸 「어휘의 속임수」일지 모른다.이것을 반드시 나쁘다고만은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이러한 정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경제대국 일본이 가능하지 않았는가고도 생각해 본다. 그러나 이번 소해정 파견에 있어서만은 경우가 좀 다르다. 일본정부는 이를 「파견」이라고 말한다. 자위대가 해외에 처음으로 본격출동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자위대의 해외파병은 아니다』라고 우긴다. 일본정부는 이번 조치에 대해 『일본 선박의 항해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서,무력행사의 목적이 아니며 헌법상 금지된 해외파병도 아니다』라며 평화국가의 이념을 견지하는 데는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이례의 성명을 발표했다. 그 법적 근거로서는 자위대법 제99조 잡칙 「기뢰 등의 제거」를 들어 이번 「파견」이 현행법의 테두리내에서 행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법적 근거는 미비하기 짝이 없다. 자위대법 99조는 전수방위를 주창하는 동법 제3조에 비추어 보더라도 『소해정을 걸프해역에 파견하는 것은 법해석의 일탈』이라는 지적이 집권 자민당내에서조차 나오고 있다. 또 99조의 입법정신은 그 활동범위를 일본 근해에 한정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 같은 법률의 확대해석을 기초로 한 기정사실의 중첩은 자위대의 활동범위를 무제한 넓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도 대두되고 있다. 어쨌든 이케다 유키히코(지전행언) 방위청 장관은 소해모함 1척,소해정 4척,보급선 1척과 승무원 5백10명으로 구성된 대선단에 대해 26일 출동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당당한 「파병」이다. 전투행위가 없다고 해서 군인의 신분이 민간인으로 바뀌는 것이 아닌 것처럼,자위대원은 무엇을 하든 자위대일 뿐,「청소부」는 아니니까 말이다.
  • 경찰대학차가 뺑소니/여중생 역살/경찰,사흘째 늑장수사

    【용인=김동준기자】 지난 22일 상오7시10분쯤 경기도 용인군 기흥읍 신갈리 신갈 쇼핑센터 옆길에서 경찰대학 소속 서울4마 7834호 코란도 승용차가 등교하던 기흥중 1년 김경선양(15·기흥읍 하길리 426)을 치어 숨지게 한뒤 그대로 달아나 말썽을 빚고 있다. 목격자 김모교사(50·여·신갈국교)에 따르면 이날 학교앞 도로에서 교통정리를 하고 있는데 김양이 길을 건널때 신갈 4거리에서 경찰대학쪽으로 달리던 사고 차량이 김양을 치고 그대로 달아났다는 것이다. 김양은 사고후 인근을 지나던 박모씨(24·회사원·기흥읍 상갈리)에 의해 병원으로 옮기던중 숨졌다. 사고당시 이 차안에는 짧은머리에 트레이닝복을 입은 운전사와 여자 2명이 타고 있었으며 이 차는 경찰대학 간부들의 출퇴근용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할 용인경찰서는 『사고차량이 뺑소니 차량으로 인정돼 정확한 단서를 잡기위해 수사중』이라고 말하고 경찰대학측은 『사고당시 소속차량이 청소부 아주머니 2명을 태우고 사고지점을 통과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한편 김양의 가족들은 『목격자 진술 등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도 경찰이 사건처리를 늦추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 혈우병 딛고 세무대에 합격/“면학만세” 검정고시 이귀병군

    ◎고교중퇴… 검정고시선 수석영예/“올바른 세무공무원의 길 걸어갈터” 난치병인 선천성 혈우병과 가난이라는 역경을 이겨내고 지난 8월 대입검정고시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했던 이귀병군(20·강동구 풍납1동 172 삼화연립 4동201호)이 26일 세무대 내국세과에 합격했다. 강동구 천호동 화랑종합시장에서 야간경비원으로 일하는 아버지 이연홍씨(49)와 외환은행 연수원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어머니 김영순씨(42)의 3형제 가운데 맏아들인 이군은 어렸을 때부터 선천성 혈우병을 앓아왔다. 이군은 배재고 2학년때까지 어머니 등에 업혀 일주일에 한두차례씩 학교에 다녔으나 3학년에 올라갈 무렵인 지난 88년 2월 혈우병이 도져 학교를 중퇴했었다. 고교를 중퇴한 뒤 한때는 크게 낙담하기도 했으나 아픔을 참아가며 지난 2월 검정고시 전문학원에 등록해 8월에 검정고시를 치렀었다. 『대입 검정고시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한 뒤 남들처럼 서울대에 응시할 생각도 해보았으나 가난에 쪼들리는 어려움 때문에 기숙사가 제공되고 학비가 면제되며 취직이 보장되는세무대를 택했다』는 이군은 『국민들이 세무공무원에 대해 갖는 나쁜 선입관을 깨뜨리고 올바른 공무원상을 심는 청백리의 길을 걸어 나가겠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 대처,“인생은 65세부터 다시 시작”

    ◎측근들과 송별연서 「철의 여인」다운 고별사/재단운영·회고록 집필 등 바쁜 일정 보낼 듯 영국역사상 가장 긴 11년간 총리직을 맡아온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다우닝가 10번지를 떠나는 절차는 신속하면서도 평범하다. 짐꾼들이 그녀의 사물을 끌어내고 있는 동안 대처는 새로 차릴 사무실용품을 사기 위해 쇼핑을 시작했다. 『어머니는 장차 회고록을 쓰시겠지요. 그렇지만 지금 당장은 이삿짐 빨리 꾸리는 법에 대한 안내서를 쓸 수 있을 거예요』­짐싸기를 거들던 딸 캐롤(37)은 TV기자가 대처총리의 장래계획을 묻자 이같이 말했다. 그러나 전임자들에 비하면 대처가 받아놓은 6∼8일 후의 이사날짜는 아주 느긋한 편이다. 대처가 밀어낸 노동당의 제임스 캘러헌 전 총리의 경우 지난 79년 5월3일 대처가 총리로 취임하자마자 하루도 안돼 관저를 비워줘야만 했다. 의회와 지척인 다우닝가 10번지의 17세기 건물을 채우고 있는 가구와 은제·식기·샹들리에·유화 등 값진 물건들은 대부분 국가재산이지만 11년반 동안이나 한 주인이 써온만큼 옷가지외에 물건도 늘어났다. 대처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수많은 상자에 차곡차곡 쌓인 개인문서들로 이는 모든 출판업자들의 꿈이라 할 수 있는 「철의 여인의 회고록」의 기초자료가 될 것이다. 이밖에 사퇴발표 후 전세계로부터 그녀의 문앞에 보내진 1천여개의 꽃다발과 하루 1천여통씩 쌓이는 지지자들의 편지도 새로운 이삿짐 목록으로 추가됐다. 대처 총리는 26일 밤 측근보좌관으로부터 청소부에 이르는 2백명의 총리실 직원들을 위해 송별연을 베풀었다. 이 자리에서 그녀는 『인생은 예순다섯부터 시작된다. 나는 이제 미래를 위해 일할 것』이라고 선언,사임을 발표하면서 눈물을 흘리던 때와는 판이한 면모를 과시했다. 세실 파킨슨 운수장관에 따르면 대처총리는 각료들에게 퇴진결정을 발표할 때 울었으며 다른 3명의 장관들도 따라서 눈물을 흘렸고 나머지 각료들은 침묵속에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는 것. 대처의 장래계획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추측만 난무하고 있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일에 빠지는 그녀의 성격으로 미루어 1만7천5백파운드(3만5천달러)의 연금이나 받으며 에드워드 히드 전 총리처럼 불만에 가득찬채 평범한 의원노릇을 하지만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일각에서는 그녀가 여왕으로부터 백작부인 작위를 받고 상원에 나와앉아 지루한 의사일정을 지켜보고 있게 될 것이라는 추측도 있고 모유럽은행을 운영할 것이라는 소문도 있지만 보좌관들은 그녀가 런던 중심부에 개인사무실을 구해 대처리즘으로 불리는 자유시장 정치철학을 실현하기 위한 재단을 운영하지 않을까 전망하고 있다. 대처는 지난 85년 런던에서 동남쪽으로 약 11㎞ 떨어진 곳에 40만파운드(80만달러)를 주고 2층집을 장만,앞으로는 이곳을 거처로 삼게된다. 딸 캐롤은 「어머니가 지난 12년동안 한번도 슈퍼마켓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식료품을 잔뜩 주문했다면서 『어머니가 총리직은 물러났지만 진짜 은퇴할 것으로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 잠롱시장식 청백리/송정숙 본사 논설위원(서울칼럼)

    잠롱 방콕시장이 인기배우처럼 서울을 다녀갔다. 그가 강연을 하러 갔던 대학에서는 입추의 여지없이 몰려든 대학생들이 「잠롱!」을 연호했고,사인공세를 펴는 바람에 진로가 막히는 지경도 이뤘다고 한다. 잠깐 기회를 얻어 가까이서 바라본 그의 인상은,여분의 살이 전혀없는 몸매와 보리빛 살갗,낡은 작업복의 모습에서 수행중인 수도사같은 것이었다. 미담을 많이많이 만들며 성자가 되는 꿈을 꾸는 다소 기인같은 인상도 품고 있었다. 범인이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은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나,그러나 그는 현직 시장이다. 8백만 시민이 살고 있는 거대한 현대도시의 시장이다. 그는 서울에 초청되어 와서 한국공직자들의 부패상에 대해 준열한 충고도 했다고 한다. 그의 청렴정도라면 그럴 자격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는 현직 시장이다. 자기도 공직자인 남의나라 시장에게서 그런 충고를 듣는 일은 서글프다. 서울에서 열린 어느 환영잔치에서 그가 「서울시장」으로 출마하면 당선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농담을 하자 청중들이우뢰같은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이 대목은 「아마도 동감」을 나타낸 것이었으리라고 풀이한 문필가도 있었다. 문득,만약에 지방자치제가 실시되어 민선시장을 뽑게 되었을 때 「잠롱시장」을 흉내내어 위선적 행각를 하는 「가짜 잠롱」이 출현한다면 그걸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당선되어 「잠롱식」 청백사로 인기만을 얻고 시정에는 별 기여를 하지 않는다면…. 그렇다고 잠롱 방콕시장이 무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에 관해서는 「미담만을 한없이 만들고 다니는 사람」의 행적만이 알려졌으므로,그가 얼마큼 능력있게 근대도시행정을 수행해 나가는지는 잘 모르겠다. 잠롱시장의 소문을 처음 외신으로 접했을때,그의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행적은 참으로 신기하고 존경스러웠다. 그런 잠롱시장을 통해서 연상되는 방콕시는 가난은 하지만 깨끗하고 절도있게 살 수 있는 평화롭고 소박한 도시같았다. 사람의 연상작용이란,때로 터무니없이 무책임하고 어리석기까지 한 것 같다. 지난 여름,한 모임이 그곳에서 열려 처음으로 방콕에 가 보았다. 그 도시에서 1주일쯤 있는 동안,단 한번도 그곳이 잠롱을 시장으로 둔 도시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던 사실을,이번의 「잠롱시장 서울나들이」를 통해서야 상기했다. 「잠롱시장의 방콕」과 「직접 가본 방콕」은 전혀 별개의 도시처럼 무의식속에 새겨져 있었음을 비로소 깨닫고 실소를 머금고 말았다. 매연이 세계에서 몇째 안가도록 심각하고,세계의 차종이란 차종은 다 수입되어 굴러다니는 듯한 도심의 쳇증은,아무리 겸손하게 말해도 서울보다 나을 것이 없다. 무질서한 야시장에 가짜 외제상품이,우리 이태원상가는 『저만큼 가라!』고 할만큼 쌓여있다. 도심 한복판에 적나라한 그림과 실물이 호객을 하는 유흥가가 즐비한데 안에는 옛날 대만에 있던 특수구역과 방불한 연기와 무대가 있다고 한다. 그것이 실제의 방콕이었다. 일본의 백화점들이 진출하여 금싸라기 같은 요지에 엄청난 쇼핑센터를 지어놓고 성업중이며 온갖 국제상표들이 제휴하여 진출해 있다. 기술이전 문제같은 것으로 까다롭게 따지지 않고 싼 노임만을 팔고 있기 때문에 외국인투자자가 아주 유리해한다고 한다. 우리처럼 부품수가 「10」외 하이테크 산업사회를 지향하여,깨인 머리로 민주화를 지향하는,만만치않고 따지기 좋아하는 시민수준도 아닌 것 같았다. 유니세프 보고에서 『15세 미만 소녀의 매춘이 가장 심각한 도시』로 지목되고 있는 이 도시가,11년째 부부생활도 하지 않고,월급의 대부분을 청소부와 가난한 사람에게 대주며 감동적인 금욕생활을 하고 있는 잠롱시장에게 해결을 고대하고 있는 현실문제는 너무도 많아 보인다. 우리도 부정부패에는 이제 넌덜머리가 나는게 사실이다. 민선이든 임명이든,우리가 원하는 서울시장이 부정하고 부패한 것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 시장이 수도사처럼 살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기왕이면 그렇게 금욕적이고 청결하게 살기를 바라기는 하지만,그것이 도저히 어려울 터인즉 봐주기 위해서라는 뜻이 아니다. 공직자의 역할이 성자같다고 해서 「좋은 공직자」일 것이라는 기대는 온당하지가 않다는 뜻이다. 서울시장쯤 되는 공직자라면 국제적 교양과 품위를 유지해야 하는 직위다. 걸맞는 사택과 어울리는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 시민의 자부심과도 관계가 있다. 하루 한끼만 먹으면서 근검절약하여 일부 가난한 이를 돕는 일보다는 조찬회ㆍ만찬회 등의 외교까지 충분히 하여 시의 위상도 높이고,품위에 적절한 환경에서 좋은 정책을 구상하여 많은 시민의 삶의 질을 개선해주기를 바란다. 그러기에 합당한 대우와 능력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건강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좋은 아버지,유능한 남편,멋있는 가장이 될 수 있어야 상식적이고 양식있는 시민생활도 파악하고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개발 때문에 생업에 지장을 받는 사람들이 가슴아파서 도심조성 자체를 유보하는 성직자같은 시장 보다는 최선의 대안을 찾아내어 주변서민대책도 세우고 개발계획도 관철할 수 있는 유능한 공직자가,보다 많은 시민을 위할 수 있다. 더욱이나 다가올 지방자치시대에 표와 연결된 인기를 조성하기에 더 많은 공을 들이는,미담행정만 눈독들이는 공직자가 생긴다면 그건 참 곤란한 일일 것 같다. 잠롱시장은 방콕시장이다. 그를 빗대어 서릿발같이 우리 공직자를 질타하는 인사들이 활자매체에도 전파매체에도 수두룩 했었다. 「내 탓이오」 대신 남의 탓에만 서슬이 퍼런듯한 그런 힐책 때문에 건강하게 창의적으로 자기 직분에 임하고 있는 유능한 공직자들까지 참담하게 기운 빠지는 서글픔을 맛보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우리에겐 뜻있고 성실하며 유능한 숨은 공직자가 얼마든지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렇지 않다면 잠롱시장이 배우러왔다는 우리의 『…근면성과 인내심 그리고 단결력으로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나라로 부상한 한국』은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잠롱 방콕시장은 분명히 훌륭하다. 그러나 부정부패 안하고 유능한 공직자가 우리에게는 더욱 소중한 사람들이다.
  • 민ㆍ군 손잡고 “통일기원 대행진”

    ◎건군 42돌… 탈춤ㆍ농악등 「한마음축제」/20만 연도시민 색종이 뿌리며 환호/한강선 거북선취항식ㆍ항공시범도 「국민과 함께 국군과 함께」 「하나되어 통일로」라는 주제로 열린 건군 제42주년 국군의 날 행사가 1일상오 여의도 광장에서 거행됐다. 특전사 장병들의 고공 낙하와 태권도 시범으로 시작된 이날 행사는 육ㆍ해ㆍ공군 장병들의 분열과 88탱크 등 한국형 각종 신예장비 등이 위용을 자랑했고 F16기 등의 편대 비행 등 2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여의도 기념행사가 끝난뒤 도보부대와 기계화부대장병들은 이날 하오3시 남대문과 시청앞 광화문에 이르는 시가행진을 벌였다. 시가행진을 하는동안 20여만명의 시민들이 연도에 나와 태극기를 흔들며 장병들을 격려했고 프레스 센터 등 고층빌딩에서는 오색종이를 날려 축하해 주었다. ▷기념식◁ 오색찬란한 육ㆍ해ㆍ공군 각급 부대기와 경축 애드벌룬이 펄럭이는 가운데 시작된 기념식은 노태우대통령이 이상훈국방부장관과 정인균제병지휘관의 안내로 육ㆍ해ㆍ공군ㆍ예비군ㆍ학군단ㆍ기계화부대를 차례로 사열하면서 시작됐다. 사열을 마친 노태우대통령은 정호근합참의장에게 이날 창설된 새로운 합참본부기를 수여했다. 1천여명의 특전사장병들이 태권도시범과 격파묘기를 보이자 기념식에 참석했던 10만여 시민들이 박수갈채를 보내며 환호했다. 이어 육군항공대의 헬리콥터 선도비행,도보부대 및 기계화부대 분열,공군 E5E팬텀,F16의 편대비행에 이어 민ㆍ군 합창단의 「아! 대한민국」합창으로 기념식에 모두 끝났다. 기념식과 분열이 끝이 난 다음 벌어진 식후행사에는 올림픽부대장병 1천여명이 벌인 올림픽개막식때 규모의 고놀이를 시작으로 남사당놀이와 평택농악,북청사자놀이,양주별산대놀이,봉산ㆍ강령탈춤 등을 추어 축제분위기를 자아냈다. ▷시가행진◁ 도보부대는 하오3시 50여대의 헌병사이드카부대를 앞세우고 남대문을 출발,시청앞을 거쳐 세종로 네거리까지 1.2㎞를,기계화부대는 남대문∼시청앞∼세종로∼종로∼동대문까지 4㎞를 행진했다. 기계화부대뒤에는 9t트럭 6대를 민ㆍ군화합,민족자존,자유체제수호 등 각종 상징조형물로 꾸며 각계 각층의 보통사람 54명과 장병 38명 등 92명을 태운 호국대행렬이 뒤따랐다. 시청앞에 마련된 사열대에는 정호근합참의장과 이진삼육군,김종호해군,한주석공군참모총장 등 군지휘부와 소년소녀가장ㆍ우체부ㆍ청소부ㆍ어머니회원ㆍ노인회원 등 보통사람 5백여명이 자리잡고 박수를 보내며 늠름한 국군장병들의 행진을 지켜봤다. ▷한강축제◁ 이날 한강변선착장과 고수부지 등 4곳에서는 공군과 해군주관으로 4개 행사가 있었다. 낮12시부터는 동부이촌동 고수부지에서 해군이 제작한 거북선취항식이 거행됐으며 하오3시부터 5시30분까지는 여의도 고수부지에서 공군주관으로 동력행글라이딩시범ㆍ무선모형항공기시범ㆍ조종사생환구조시범 등 한강 공중축제가 있었다. 잠원동 선착장에서는 해군의 특전대시범과 LVT시범이 있었고 잠원수영장에서도 상오9시부터 모형함선만들기와 모형함선 속도경주 등이 벌어졌다.
  • 몸에 밴 안일… 삐꺽거리는 「개혁」

    ◎송복교수 소ㆍ동구 학술 기행 특별기고/대부분 공장 주 40시간 가동에 불과/“힘든일 왜 하나”… 농부도 주말엔 휴무/뇌물 없인 일처리 안돼… 사회기강 급속 붕괴/지식인 푸대접 심해… 청소부 봉급이 신문사 사장보다 많아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는 성공할 것인가. 페레스트로이카의 운명은 세계의 향방은 물론 아시아 한반도의 운명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다음은 최근 2주간 소ㆍ동유럽을 방문,페레스트로이카의 현장을 살펴보고 돌아온 본사 논평위원 송복교수(연세대ㆍ사회학)의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사회학적 진단 특별기고문이다. 근래에 많은 사람들이 소련을 다녀왔고 또 동구 여러 나라들을 보고 왔다. 이 다녀 오신 분들의 사회주의 사회의 실상에 대한 사실적인 표현이나 느낌도 거개가 일치해 있다. 평소 사회주의 사회나 그 이데올로기에 대해 어떤 태도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었건 그 사실에 대한 인식에는 대차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세상은 있는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보는 대로 있다」라는 미국 초기 사회학자 윌리엄 토머스의 명구가 있다. 사람들은 자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어서 그것을 세상의 실체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사회에 대해서도 처음 부정적 견해를 가진 사람은 부정적 사실만 보고 왔을 것이고 반대로 긍정적 견해를 가진 사람은 긍정적인 사실만 보고 왔을 것이다. 그런데 소련이나 동구사회에 관한한 보고 싶은 것만 보았건,보기 싫은 것은 애시당초 보지 않았건 관계없이 대체로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 특징인 것 같다. 그것은 첫째로 소비재가 아주 귀하다는 것,그래서 일상생활이 힘들다는 것. 둘째로 사회관계에 부드러운 기가 없고 윤기가 없고 활기를 그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 셋째로 사람들이 너무 느리다는 것,바쁜 것도 없고 안달하는 것도 없고 그리고 성취동기가 전혀 부여되어 있지 않다는 것. 넷째로 너무 관료주의화해 있다는 것,그 어느 사회보다 관료주의의 병리가 골수에까지 깊이 박혀져 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 다섯째로 그러면서 너무 부패해 있다는 것,도덕적 기강이 관료사회에서나 일반 시민사회에서나 다같이 급속히 무너져 가고 있다는 강한 인상을 던져준다는 것,대개 이런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총체적으로 흔히 말하는 「소비에트 엑스페리먼트」(Soviet Experiment)가 실패한 것이라는 결론을 어느 시각에 입각해 있는 사람들이든 다 같이 내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1917년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난 이후 70수년간 인류사회 최초로 소련이 시도한 공산주의사회의 실험은 그 실험 3세대가 지난 오늘날의 결과에서 보면 그것이 하나의 결과이든 조짐이든 어쨌든 실패했다는 결론을 다같이 도출해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살아 있는 공산주의 최고 이론가로 자타가 공인하는 어니스트 만델(Ernest Mandel)의 최근 저서 「페레스트로이카를 넘어서(Beyond Perestroika)」에서도 꼭 같이 지적되고 있다. 누가 보든 궁금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은 도대체 그동안 뭘 「어떻게 했길래」 저러고 있느냐는 것이다. 「어떻게 했기에」 미 제국주의자들의 맥도널드 빵을 사먹기 위해 1㎞ 이상의 줄을 서 있어야 하고 「어떻게 했기에」 미 제국주의자의 말보로담배가 자기네 돈(루블)값보다 오히려 더 귀하고 더 태환성이 높아 보이고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미 제국주의자들의 TV 프로가 텔레비전에 비치기만 해도 하던 일을 멈추고 저렇게 넋이 빠져 보고 있는냐는 것이다. 담배를 사기 위해서,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서,감자나 과일을 사기 위해서 옷을 사기 위해서,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저렇게 긴 줄을 서 있어야 하고 누구나 비닐백을 한 둘씩 상시로 들고 다니면서 줄만 보이면 뭘 사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 필요도 없이 저렇게 무작정 긴 행렬에 끼어서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그런 생활의 연속이 일과의 시작이며 끝이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한 통계에 의하면 소련 전가정주부들이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서 줄서 있는 시간은 연 3백억 시간이나 된다고 밝히고 있다. 대개의 가정주부들은 하루 2시간 이상을 꼬박 줄서는데 바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어 있다. 그 3백억 시간의 생산손실이 얼마나 될 것인가. 그러나 그것을 계산하지도 않고 계산할 필요도없고 더구나 생산과 연관해서 계산하는 개념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이 나라의 생활습성처럼 보인다. 건물 도로 전철로 공원시설 등 사회간접자본도 모두 마찬가지다. 지을 때는 거창하고 웅장하기 더할 데 없이 지었을 것이다. 과연 큰 나라답게 웅대하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모두 지어져 있다. 아마도 국가예산으로 국가가 관장해서 짓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거대하기는 해도 위용이 없고 오래된 것 같기는 한데 고풍스러움을 찾기가 어렵고 공사기간이 결코 짧았던 것 같지는 않은데 날림으로 보인다. ○관료주의 병리 극심 더구나 안을 들여다 보면 속빈 강정처럼 건물 관리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1∼2㎞에 이르는 거대한 상가를 지어 놓고도 안은 텅텅 비어 있고 거기에 부서진 것 허물어진 것 망가진 것은 일체 손대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다. 호텔시설도,그것도 외국손님들로차 있는 손꼽히는 호텔도 변기통이 새어도 그냥 내버려 두고 문이 부서져 있어도 그냥 내버려 두고 있다. 국가는 예산이 없고 개인은 그것이 어디 내것이냐는생각에서 일 것이다. 참으로 「만인의 것은 누구의 것도 아닌 것」인가. 이 사회는 마치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움직이고 증명하기 위해서 존속하는 사회로 느껴진다. 이 증명은 농촌에서도 그대로 입증되고 있다. 호텔내에서의 식사나 호텔 밖에서의 식사나 이 광활한 농업지대에서 생산되는 채소라는 것을 식탁에서 구경할 수가 없다. 그 이유를 캤더니 지금 소련 농장에서 채소의 60%가 출하되지 않고 밭에 심어진채 그대로 썩고 있다는 것이고,곡물은 10%가 그런 상태라는 것이다. 국가는 운송시설 냉동시설이 모두 부실해서 손 쓸 여력이 없고 농부는 그것이 「내 것도 네 것도 아닌데」 무엇하러 따가운 햇살에 수고로움을 끼칠까 보냐이다. 자본주의사회의 농부들처럼 기를 쓸 이유도 없고 안달할 필요도 없다. 고추값이 떨어진다고 고추를 자동차에 싣고 여의도 광장에서 농성하는 한국의 농사꾼은 이나라 농부들의 눈으로 보면 실성한 사람들이나 하나도 진배가 없다. 왜 그렇게 살 것인가이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농사를 짓고 무엇하려고 그렇게한푼의 값을 더 올려 받으려고 애를 쓰는냐이다. 더구나 토ㆍ일요일의 이나라 농부들은 밭에서 절대로 일하지 않는다. 모스크바 근교의 어느 농촌마을을 돌아다녀도 토ㆍ일요일 이틀동안 들판에 나와 일하는 농부는 그 어느 한 사람도 그림자조차 구경할 길이 없다. 이는 불가리아의 그 넓은 농업지대에서도,유고의 그 많은 농촌마을에서도 조금도 다르지 않다. 농사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때(시)라는 것이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없는 것인지 해당이 안되는 것인지 어쨌든 토ㆍ일요일은 어디든 일하지 않는다. 정말로 마르크스의 이상대로 「능력껏 일하고 필요에 따라 갖는 것」인지,고전 경제학파들의 주장대로 「능력에 따라 일은 하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가지려고만 하는 것」인지,자본주의 사회와는 너무나 다른 풍습도를 볼셰비키혁명 70수년동안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어제가 아니고 또 오늘도 아니고 내일이다. 글라스노스트는 「개방」하자는 것이고 페레스트로이카는 「개편」하자는 것이다. 어디를 향해서 개방하고 어떤 문제를 새로이 개편ㆍ개혁하자는 것인가. 지금까지 소련ㆍ동구에서 시도해 온 교환방식은 시장메커니즘으로,소유는 사소유로,관리는 기업경영체계로,생산은 소비재 위주로 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서구사회를 준거로 해서 모든 것을 서구식으로 바꾸어 보자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그 길은 너무나 길고도 험난한,그러면서 성공이 전혀 보장이 되지 않는 길이라는 것을 그 누가 이 사회를 얼핏 보든 선뜻 짐작할 수 있는 길이다. 첫째로 이 사회는 개방하면 더빨리 부패할 것이라는 것이다.지금도 도덕적 위기를 어디서든 맞고 있다. 개방하면 그 위기는 일로상승할 것이다. 지금까지 전체주의적 사회주의의 안정은 도덕적 안정감에서 왔다. 그 누가 그 얼마나 부패해 있든 정보통제로 사람들은 부패의 종류를 잘 인식치 못했고 그 수준을 제대로 측량치 못했다. 그러나 개방은 남의 부패를 가장 먼저 인식시키고 그 수준을 실제보다 수배로 과장해서 측량시킨다. 그래서 어떤 사회든 개방과 동시에 정보흐름이 자유화되면서 예외없이 부패가 역상승으로 가속화했다. 이 부패의 속도도 문을 닿아놓은 기간과 정도에 비례했다. ○빵등 소비재난 최악 더구나 이 전체주의적 사회주의의 폐쇄사회에 자본주의의 물결이 홍수져가면서 가장 먼저 들어간 것은 자본주의의 장점이 아니라 가장 타기되어야 할 결점들이다. 애들이 밖에서 다른 애들과 섞여 놀때 부모가 아무리 사회화시켜도 못된 것을 먼저 배워 온다.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모스크바 국제공항에서 카트를 쓰려해도 말보로 담배 한값을 먼저 내야 쓸 수 있고,호텔 청소부도 담배나 스타킹을 미리 테이블 위해 얹어 놓아야 청소를 제대로 해준다. 이것이 어디 밑바닥에서 일하는 그들에게만 한정된 것이랴. 저변에서 상층에 이르기까지,교육수준이 낮은데서 높은데를 가릴 것 없이,무슨 안개처럼 덮여 있는 듯하다. 어디를 가나 뇌물을 주어야 하고 어디로 가든 암달러상이 있다. 둘째로 노는데 모두 이력이 나 있다는 것이다. 공장은 1주 30시간에서 40시간 일하는 것이 보통이고,일거리가 많아도 40시간 이상 일하는 곳은 찾아 보기 어렵다. 그것도 농촌에서와 마찬가지로 토ㆍ일요일은 반드시 논다. 그리고 1일 6시간 일하든 8시간 일하든 5일 일하는 중에도 정작 일하는 시간은 2시간 뿐이고 나머지 시간들은 대부분 잡담으로 채워진다고 한 관리자는 말한다. 이 관리자는 잡담도 노동의 하나라고 조크인지 진실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리고 이 노동하는 주중에도 담배를 사기 위해서,감자나 과일을 사기 위해서 길가의 긴행렬에 가담해 줄 서 있다면 결근하는 것도 허용된다는 것이다. 하긴 줄서는 것도 고된 노동임엔 틀림없다. 아마도 한국사람의 경우 줄서는 것은 그 어떤 고된 노동보다 고된 행동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줄서기 위해서 결근하는 것도 합리화될 수 있을지 모른다. 어쨌든 줄서기 위해선 결근해도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선 상상을 불허하는 극히 희귀한 노동현상이 이 나라의 노동관행이다. 고르바초프의 말대로 「아무리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는 사회」­열심히 일해서 더 많이 벌고,더 많은 업적을 내서 더 많은 냉산성을 올리자는 성취동기는 이 나라에선 이미 사라진지 오래인 것 같다. 소유에 대한 욕망도여느사회와는 판이하게 달라져 있다. 현재 사는 아파트를 싼 값으로 사서(2백50달러 미만) 개인소유화하라고 해도,그것을 왜 사냐고 반문한다. 지금 이대로 살아도 죽을 때까지 이 아파트에서 살 수 있고,더구나 국가에서 수리비까지 부담하는데 왜 그것을 사서 그 돈을 쓰고 그 고생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어쩌면 에덴동산이 그런 것인지,어떻게 보면 낙원에 사는 사람들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참으로 순박하고 순진하고 그리고 착해 보인다. 저런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보는 그 악마구리 같은 경쟁문화­비단 한국사회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사회에서 보아지는 경쟁문화가 심어지고,경쟁행위가 주도적 행위로 등장했을때 이 사회가 어떻게 요동칠 것인가. 미상불 대혼돈과 고통이 말할 수 없이 따르는 소용돌이가 전국 각지에서 넘쳐 흐르게 될 것이다. 셋째로 지식인의 푸대접이다. 교수나 의사 기자가 노동자보다 월급이 훨씬 적다. 보통 공부많이한 지식인은 한달 2백50루블이고 노동자는 3백50루블,당관료는 4백루블이 되어 있다. 불가리아에서는 신문사 사장이 5백레바를 받는데(8레바가 1달러),청소부가 7백레바를 받는다고 했다. ○암달러상 거리활개 불가리아 칼 마르크스 대학의 손체브(Rasdoslav Tsonchev)교수에게 그 차이의 합리성을 따졌더니 노동자가 주도세력이 돼 있는 나라의 당연한 결과라고 했다. 그러나 노동자의 생산성은 아무리 올라도 3배가 오르기 어려운데 새로운 기술과 상품을 개발하고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는 지식인의 경우 그 생산성은 열배 백배 심지어는 무한대로 확대해 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들에게 아무런 인센티브 없이 어떻게 발전을 가속화하려 하는가. 그러나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리고는 손으로 마르크스 석상을 가리켰다. 칼 마르크스대학의 높이 세운 마프크스 석상의 큰 마르크스 이름에 학생들이 페인트로 곱표(×)를 크게 치고 무어라고 불가리아어로 갈긴 낙서를 보라는 신호이다. 그것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우리는 마르크스를 싫어한다」는 말이라고 했다. 모스크바대학 교수들도 요사이 모스크바 대학생들도 한결같이 비판적이되어 간다고 조심어린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인ㆍ학생들의 부르짖음이 노동자들의 분노를 얼마나 야기시키고 있는가. 루마니아에서의 광산노동자들의 데모학생 살해수가 그것을 밑받침하고 있다. 지식인들의 인센티브는 좀체 유발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산업화를 촉진해 갈 것인가. 소련에서의 개방화와 개혁화는 모스크바 까마귀를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는 것만큼 어려울지도 모른다. 모스크바 까마귀는 도시에서 관광객이 던져주는 빵조각을 먹고 혹은 쓰레기통이나 뒤지며 쉽게 쉽게 살고 있다. 우리네 갈가마귀처럼 멀리 하늘을 높이 높이 비상하지도 않고 먹이를 찾아 끼옥끼옥 울며 아귀다툼을 벌이지도 않는다. 색깔도 우리 까마귀와는 달리 목과 배ㆍ등 일부가 오히려 회색으로 보인다. 주둥이와 우는 소리는 까마귀 그대로이다. 그러나 그 까마귀는 야성이 없고 사람을 두려워할 줄도 모른다. 배가 고프면 고픈대로,부르면 부른대로 게으르게 살고 있다. 그들이 어떻게 본성을 되찾을 것인가. 정녕 되찾게 할 필요가 있을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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