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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열식의 「문화사업」/나윤도 문화부기자(오늘의 눈)

    2천년대 문화복지국가를 이루기 위한 우리 문화정책의 청사진인 「문화발전 10개년계획」이 발표일자를 서너차례나 연기하는 진통을 겪은 끝에 드디어 윤곽을 드러냈다. 이 계획은 올해부터 오는 99년까지 10년간 총 3조8천5백68억원의 엄청난 예산을 들여 「문화창조」「문화매개」「문화향수」「문화교류」 등 4개분야의 60여개 항목에 걸쳐 사업을 추진케되어 있어 우리문화 전반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또 그 기본방향은 향후 10년 동안에 구축하려는 다섯가지 문화의 틀을 제시하고 있다. 즉 「복지문화」「조화문화」「민족문화」「개방문화」「통일문화」가 그것이다. 추진전략은 「파문효과」「지열효과」「바람개비효과」「통발효과」「인화효과」「메아리효과」 등 조금은 추상적인 것 같지만 일목요연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계획을 보면서 선뜻 공감이 가지 않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문화정책들이 현란성 때문일까. 무슨 문화가 이다지도 요란스러우냐는 소리가 나올법도 하다. 정부의 시책을 독자들에게 상세히 알려야할 기자는 물론이고 이들 정책을 추진해 나갈 관계공무원들 조차도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추진해야 될지를 모르겠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문화부가 벌여놓은 많은 기발한 사업들중에 과연 장관이 바뀌어도 그대로 지속될 사업이 얼마나 있겠는가를 우려하는 소리 또한 높다. 이같은 우려는 그동안 장관이 바뀔때마다 조령모개식이 돼온 정부정책에 식상한 국민들이 『신설 문화부만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번 문화발전의 장기계획에서는 문화의 큰 방향을 잡아주는 「총론」보다 구체적 사업계획을 나열하는 「각론」에 너무 치중한 것 같다. 이것이 공감이 가지 않는 또하나의 이유다. 무려 4조원에 달하는 예산도 그 재원의 조달계획이 모호해 화려하게 내놓은 사업의 실현여부가 불투명하다. 21세기를 맞는 문화국민의 자세확립에 초점을 맞추어 시행가능한 사업을 잘 선별해 사명감을 갖고 추진 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으로 보인다.
  • 전쟁의 배경과 준비(새 실록 6ㆍ25:상)

    ◎중국 공산화에 고무… 김일성,남침 서둘렀다/동서냉전 한반도 유입이 「비극의 불씨」로/김일성,스탈린 지원 업고 모의 내약받아/애치슨 발언ㆍ미군철수로 「힘의 공백」초래/여순사건등 사회혼란도 평양오판 불러/소,야크기ㆍ탱크 1백대씩 공급… 북선 통치요원 미리 임명(서울신문 6ㆍ25 40주 특집) 지금으로부터 꼭 40년전인 50년 6월25일. 그날에 시작되어 53년 7월27일에 휴전된,37개월에 걸쳤던 한민족의 동족상잔을 흔히 한국전쟁이라고 부른다. 결코 되풀이 되어서는 안될 우리 근ㆍ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을 3회에 걸쳐 다시 써보려는 것이 이 연재의 목적이다. 제1회에서는 한국전쟁의 배경과 준비를,제2회에서는 한국전쟁의 전개를,그리고 제3회에서는 한국전쟁의 휴전성립과정과 그 유산을 각각 다루기로 한다. □약력 김학준 대통령사회담당보좌역 □1943년생. 인천출신 □서울대 정치학과,동대학원 졸업,미켄트주립대 정치학석사 □미피츠버그대서 「아시아 세력균형에 있어 한국통일」논문으로 정치학박사학위 □서울대 정치학과교수,미국버클리대 동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일본도쿄대 국제관계학과 객원교수 □12대 국회의원(구 민정ㆍ전국구) □「한국전쟁 발발에 있어 중공의 비개입」등 한반도 분단,6ㆍ25동란 등에 관한 주요 논문다수. 한국전쟁이 50년 6월25일에 일어난 것은 사실이나 그 뿌리는 아무리 늦게 잡아도 45년 8월15일 일제로 부터의 해방직후에 나타난 한반도의 분단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분단이 없었다면 전쟁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때 한국전쟁에 대한 설명이 한반도의 분단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당연하다. 한반도의 분단에서는 우선 열강의 권력정치라는 국제적 요인이 짙게 깔려 있다. 지정학적으로 볼때 동북아시아의 전략적 요충을 차지하고 있는 한반도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충돌하는 이 지역의 화약고로서 주변 강대국들의 수많은 각축을 불러 일으켰던 곳이다. 한말의 청­일 전쟁과 노­일 전쟁이 그 대표적인 보기들인데 여기서 결코 간과될 수 없는 점은 이러한 전쟁이 있을 때마다 열강은 한반도의 분할을 협상했다는 사실이다. 쉽게 말해 전략적으로 탐나는 한반도의 「독식」을 위해 이전투구격으로 싸우다가 승부가 분명해지지 않으면 「분식」을 시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두 전쟁 모두에서 일본이 궁극적으로 승리하면서 한반도는 일본의 「독식」아래 들어가고 말았다. ○세계의 열강들 “눈독” 일본이 패망하게 되면서,그리하여 일본이 한반도를 내놓지 않을 수 없게 되면서,열강의 「식욕」은 다시 한번 자극받게 되었다. 소련은 물론이거니와 중화민국도,그리고 당시는 아직 대륙을 차지하지 못한 중국 공산당조차 한반도에 대한 야심을 감추지 않았으며,영국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일본을 무력화시켜서는 안된다는 취지에서 은연중에 한민족의 완전한 독립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새로운 각축이 예견되는 두려워할 만한 상황에서,이 지역의 새로운 패자로 자리를 굳힌 미국은 미ㆍ소ㆍ영ㆍ중의 연합국이 함반도를 「공동관리」하게 되면 4강의 이해관계가 조정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미국은 한때 4강에 의한 공동점령 및 공동분할을구상하기도 했지만 마침내는 4강이 함께 참여하는 신탁통치로 기울어졌는데,「적당한 시기와 절차를 거쳐」 한민족에게 독립을 주겠다는 카이로선언과 포츠담선언은 미국의 그러한 뜻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러나 「적당한 시기와 절차를 거쳐」라는 원칙적 선언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청사진과 일정표를 연합국이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제의 항복을 접수하게 되었다. 일제의 항복이 예상보다도 훨씬 빨리 닥쳤던 셈인데,문제를 더욱 미묘하게 만든 것은 미군은 한반도에 진공할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소련군은 이미 한반도의 동북부로 진공해 들어오고 있는 숨가쁜 현실이었으니,여기서 미국은 한반도의 절반이라도 건져야겠다는 절박한 판단에서 북위 38도선에서의 분할점령을 제의했고 이 제의를 소련을 비롯한 나머지 연합국들이 받아들임에 따라 비극의 분단이 이뤄진 것이다. 이 처럼 열강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설킨 가운데서 한반도가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할점령됨에 따라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 사이에 벌어지는 국제냉전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게 되었으며,그것은 한국전쟁의 국제적 배경의 틀이되고 만다. 일제의 패망과 더불어 미국은 북위 38도선 이남의 한반도를,그리고 소련은 북위 38도선 이북의 한반도를 각각 군사적으로 점령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우리 겨레 사이에서 벌어진 이념적ㆍ사상적 대결이다. 즉 일제 치하에서 전개된 항일 독립운동을 특징지었던 좌ㆍ우익 투쟁이 해방된 한반도에서 재연된 것이다. 그것은 남한에서는 좌ㆍ우익 투쟁의 형태로,그리고 한반도에서는 남북한 대결의 형태로 나타났다. 이것은 한반도안에서도 냉전이 벌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국내냉전」은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국제냉전」과 얽히고 설키면서 48년에는 한반도에 2개의 「국가」가 세워지는 데 이바지하게 되고 한걸음 더 나아가 50년에는 한국전쟁이 일어나는 데 이바지하게 된다. 이렇게 볼때 한국전쟁이 준비되는 과정에는 국제적 요인과 국내적 요인이 동시에 복합적으로 개입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미서 「38선분할」제의 48년 8월15일 남한에서는 대한민국이 세워졌으며,곧이어 9월15일 북한에서는 이른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세워졌다. 이때 국가로서 국제적 공인을 받은 쪽은 대한민국이었다. 제3차 국제연합 총회는 48년 12월 대한민국을 국가로서 승인했으며 이를 계기로 많은 국가들이 대한민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기 시작했다. 반면에 북한에 대한 승인은 소련권에 국한됐다. 이러한 국제적 조처들이 끝나면서 미국과 소련은 각각 자신의 군대를 철수시켰다. 한반도에 국제적 힘의 공백이 형성된 상황에서 남한은 북진통일을 부르짖고 북한은 이른바 남조선해방을 외치는 가운데 무력충돌의 위험성은 높아갔다. 이때 남한이 방어적이었음에 반해 북한은 공세적이었다. 우선 남한의 경우 미국의 군사적ㆍ경제적 지원은 많지 않았다. 트루먼 민주당행정부는 북한이 남침할 위험성이 있다는 경고를 무시했으며,그러한 판단에 입각하여 50년 1월에는 애치슨국무장관의 기자회견을 통해 남한이 미국의 극동방위선에서 제외되어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입장을 표명했다. 이 애치슨선언이 소련과 북한의 지도자들에게 정확히 어떻게 해석되었는지에 대한 공식자료는 없으나 대체로 그들을 고무시켰을 것으로 풀이되어 왔다. 국내적으로도 어려움이 많았다. 48년 가을에 일어난 여순반란사건은 신생 대한민국의 기반을 심각하게 위협했으며,그것이 비록 진압됐다고 해도 반정부적 분위기가 차차 확산되면서 50년 5월30일에 실시된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남북협상파를 비롯한 반정부적 중도세력이 승리를 거뒀다. 안팎으로 문제들을 안고 있는 남한으로서 북진통일론은 대체로 미국에 대해 군사원조를 늘려달라는 외교협박용이거나 국민적 단합을 꾀하기 위한 상징조작용에 가까웠다. 이 시기의 대한민국정부의 1차적 관심은 오로지 안보에 있었다는 사실,즉 『어떻게 하면 북한으로부터 있을 수 있는 남침을 막아낼 수 있느냐』에 쏠려 있었다는 사실은 북진통일론이 한낱 구호에 지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49년 방소때 구체화 반면에 북한의 경우 소련으로부터의 군사적 지원이 활발했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것이 김일성의 두 차례의 소련 방문이다. 우선 49년 3월의 방문에서 김일성은 「조­소 경제ㆍ문화협력협정」을 얻어냈으며 이것을 계기로 남침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안을 세워 나간 것으로 보인다. 이무렵 중국공산당의 대륙제패 가능성은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이 되었고 그것은 북한의 지도층을 크게 북돋웠다. 중국공산당이 중국국민당을 대만으로 몰아내듯이 북한이 남한을 석권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강하게 갖게 되었다. 중국국민당이 쫓겨가도 미국이 아무런 구원조처를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북한으로 하여금 자신이 남한을 침략해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갖게 한 것으로 보인다. 마침내 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됐다. 북한 지도층의 사기는 크게 올라갔다. 이무렵 중화인민공화국은 자신의 인민해방군에 속해 있던 조선인 장교들과 병사들을 대거 북한으로 돌려보내기 시작했으며,이 귀환은 50년에 들어서면서 더욱 활발해졌는데 실전경험을 쌓은 이들이 이미 48년 2월에 발족한 북한 정규군에 편입되면서 북한군의 병력은 상당한 수준으로 향상되었다. 이 시점에 곧 50년 2월에 소련의 스탈린은 중국의 모택동과 더불어 모스크바에서 중ㆍ소 우호동맹조약을 체결했다. 배후의 두 공산대국이 군사동맹을 체결했다는 사실은 북한의 지도층을 다시 한번 고무시켰을 것이다. 여기서 김일성의 2차 소련방문이 이뤄졌다. 그는 비밀리에 스탈린을 찾아가 남침계획을 상세히 보고했다. 하나의 허점이 되어버린 남한은 크게 부풀려진 풍선과 같아서 칼로 한번 찌르기만 하면 그대로 터지고 말 것이라는 점,북한의 입장에 동조하는 남조선로동당(남로당) 잔존세력이 지하와 야산으로부터 호응봉기할 것이라는 점,그리고 미국의 개입이 없을 것이므로 짧은 시일안에 남한 전체를 공산화시킬 수 있다는 점 등등을 역설했다. 스탈린은 이미 귀국한 모택동에게 이 문제를 제기했다. 그렇다고 해서 전쟁계획 전체를 놓고 자세히 상의한 것 같지는 않고 그저 원론적인 수준에서 언급한 것 같다. 당시 30년 가까운 세월에 걸쳤던 내전을 겨우 끝냈기에 국내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던 모택동으로서 한반도에서의 전쟁계획에 대해 깊이 관여할 수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김일성이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조건아래 「미 제국주의자들」을 몰아내기 위한 「인민해방전쟁」을 일으킨다는 데 반대할 수 없지 않느냐고 대답한 것으로 보인다. 이 무렵 김일성은 모택동에 밀사를 보내 남침계획안을 원론적인 수준에서 알리면서 군사원조 가능한가에 대해 물었다. 모는 군사원조는 어렵다고 대답하면서도 남침계획안에 대해서는 원칙적인 입장에서 동의했다. 스탈린 스스로와 김과 모 사이의 3각대화를 종합한뒤 스탈린은 김의 계획을 지지하게 되었다. 미국과의 직접적인 군사대결은 어떻게 해서든지 피하겠다는 스탈린으로서도 이것만은 승산이 큰 계획이었다. 미국이 일본을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부흥시킴과 아울러 일본을 동북아시아의 강력한 반공기지로 만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은 전승국인 소련을 배제시킨 채 일본과 평화조약을 맺으려 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신속한 군사작전을 통해 미국이 개입하기 이전에 남한을 공산화 해버린다면,그것은 일본 국민들로 하여금 친소ㆍ친공의 길로 굴복하게만들 것이며,그렇게 되면 동아시아에서의 소련의 위신은 크게 올라가고 소련의 정치적ㆍ군사적 발판은 더욱 확실해질 것이었다. ○6월22일 준비 완료 마침 북한주재 소련대사 스티코프도 남침계획을 적극 지지했다. 소련군의 북한점령 3년동안 북한의 사실상의 지배자였고 김일성의 열성적인 후원자로서 북한주재 초대 소련대사가 된뒤 북한을 사실상 「총독」하던 정치장교 출신의 스티코프가 김의 남침계획을 뒷받침하자 스탈린은 50년 봄 남침계획을 최종적으로 승인하면서 북한에 대한 군사지원을 급진전시켰다. 그리하여 49년부터 50년 6월까지 소련이 북한에 공급한 무기는 정찰기 10대,야크전투기 1백대,폭격기 70대,탱크 1백대,중포 상당수에 이르렀다. 이러한 지원을 받은 북한은 50년 6월 현재 13만5천명의 지상군을 확보했으며 남한과의 접경지대에 대한 정예부대의 배치를 완료했다. 이때 남한의 병력은 정규군 6만5천명,해안경찰대 4천명,경찰 4만5천명이었고 장비는 불충분했다. 그만큼 남북한의 병력 수준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었기에 당시 북한 민족보위상(국방상) 최용건은 『비행기ㆍ탱크ㆍ전함과 현대무기로 무장된 인민군은 어떤 전투임무도 효과적으로 완수할 수 있고 조국의 통일과 독립의 적을 분쇄하기 위해 언제나 전투할 태세가 되어 있다』고 호언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북한의 구체적인 남침준비는 50년 6월14일부터 22일 사이에 마무리된 것 같다. 이 시기에 북한은 남한에서의 토지개혁과 새로운 법령제정에 대한 준비,그리고 남한의 주요지역의 통치를 담당할 행정요원들의 임명을 완료했다. 민족보위성은 6월15일자로 각 사단에 정찰명령 제1호를,6월22일자로 역시 각 사단에 전투명령 제1호를 내려보냈다.
  • 「북방바람」타고 거여의 자신감 고취/민자,지방당직자 연수 이모저모

    ◎「통합」당위성 부각,동질성회복 주력/최고위원 3인,연고지 바꿔 돌며 열기확산 독려 민자당은 6월초 서울 가락동 정치연수원에서 중앙당 및 전국 시도지부ㆍ지구당 간부에 대한 합숙 연수를 실시한데 이어 14일부터 김영삼 대표최고위원과 김종필 박준태 최고위원 등 고위당직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충북 도지부를 시작으로 시도지부 및 지구당 당직자 연수교육에 들어갔다. 총 5천7백여명을 대상으로 18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연수교육은 3당통합 이래 지구당개편 대회에 이어 두번째로 고위당직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는 대규모 행사로 계파간의 단합과 동질성 회복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김대표가 민정ㆍ공화계가 우세를 보이고 있는 강원ㆍ충북지역을,김종필 최고위원이 민주계의 아성인 부산ㆍ경남지역과 민정계의 본거지인 대구ㆍ경북지역을,박 최고위원이 공화계의 표밭인 대전ㆍ충남지역과 광주ㆍ전남지역을 순회ㆍ방문하는데서 연수교육이 겨냥하고 있는 목적을 단적으로 읽게 해준다. 이와 함께 한소 정상회담 이후 모처럼 상승세를 타고있는 집권여당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를 이 기회에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확산시켜 6월 임시국회에서 정국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계산도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보선패배 교훈으로”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은 이날 상오 청주의 충북도지부 강당에서 열린 이 지역 3백50여명의 지구당 간부연수에 참석,격려사를 통해 3당 통합의 당위성을 재강조하고 북방정책ㆍ임시국회 대책등을 상세히 설명한뒤 『용기와 자신을 갖고 국가의 장래를 이끌자』고 역설. 김대표는 이어 『소련ㆍ동구 등의 변화나 우리와 같은 분단국인 독일의 실질적 통일 등을 생각할 때 우리도 변할 수 밖에 없으며 3당 통합은 그 기초』라면서 『앞으로 우리들의 행동이 국가와 국민의 장래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 김대표는 『앞으로 국회운영 등에 있어서 할 것과 하지 않을 것을 명확히 구분,실천해 나가겠다』고 거여의 절제된 세과시가 있을 것임을 천명한뒤 『음성ㆍ진천 보궐선거 패배를 교훈으로 삼아 92,93년에는 이런 우를 되풀이 말자』고 다짐.김대표는 또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회담은 역사의 큰 장을 넘기는 것이며 멀지 않은 장래에 한소 국교정상화가 이룩될 것』이라면서 『일부에서는 북한에 대해서 걱정하고 있으나 멀지 않은 장래에 북한도 변하리라 확신한다』고 피력. 김대표는 『그런 의미에서 한반도에 닥쳐올 모든 문제에 여러 형태변화를 상정,충분히 대비해야 하며 이것이 바로 민자당에 주어진 중요 정치책무중 하나』라며 『곧 미래에 대한 용기와 꿈을 심어주는 청사진을 밝히게 될 것』이라고 예고.〈청주=이목희기자〉 ○“합당전 사고 청산을” ○…영남지역 당원교육에 나선 김종필 최고위원은 이날 부산 시민회관과 마산 한일여실고 강당에서 각각 40분간씩의 특강을 실시. 김최고위원은 이날 특강에서 『세상은 변하고 이 변화의 흐름위에서 현명하게 서야할 위치를 찾기 위해 합당을 했다』고 말하고 『아직도 밑바닥에는 합당이전의 사고를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나 이제는 새로운 걸음걸이를 해야한다』고 강조. 김최고위원은 이어 90년대에 우리가 해야할 일을 민주화 다지기,국민소득 3∼4배 배가,통일이라고 제시하면서 『이같은 3대 목표를 추진할 주체세력은 민자당과 여러분 밖에 없다』고 다짐. 김 최고위원은 특히 이날 특강지역이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의 영향력이 큰 곳임을 감안한 듯 『위로는 노태우대통령을 모시고 당에서는 김영삼 대표를 깍듯이 모시겠다』고 강조해 당원들로부터 박수세례.〈부산=김영만기자〉 ○7백여명 참석 성황 ○…이날 하오 광주시 서구 시민회관에서 열린 광주ㆍ전남지역 지구당 당직자 연수대회는 박태준 최고위원을 비롯,각지역 간부 7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예상보다 높은 열기속에 진행됐으나 대회장 주변 및 시내 곳곳에는 반민자당시위 등에 대비,전경들이 배치돼 대회장 분위기와는 대조적인 모습. 박최고위원은 격려사를 통해 『호남지역에서는 지금까지 여당이면서 여당이라고 말한마디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이젠 더이상 기죽어 지낼 이유도 없고 더이상 좌절속에 지낼 필요도 없다』고 지적하고 『정계일각에서 3당통합을 「야합」 또는 「호남배제」라고 매도하고있으나 통합 과정에서 평민당 측에도 진지하게 정치질서 재편의지를 타진했고 통합에 참석한 기존 정치인들은 기득권을 포기하면서 흔쾌히 결단을 내렸다』고 강조. 박최고위원은 이어 『최근 우리가 세계열강과 대등한 위치에서 자주적 정상외교를 펼 수 있었던 것도 내부적으로 3당 합당이라는 정치적 기적을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성공적인 한소 정상회담의 성과를 국내정치에 효율적으로 연결시켜 정치 사회적 안정 확립은 물론 통일에 대비하자』고 강조.〈광주=최태환기자〉
  • 실질경협 발진과 과제(한ㆍ소 새 시대:3)

    ◎「경제 신대륙」 진출의 발판 구축/정부레벨 통상창구 통해 투자여건 개선/우주ㆍ항공등 기초ㆍ첨단분야의 협력 유망/대금결제 지연등 걸림돌… 외국기업 사례연구를 주춤하던 소련과의 경협이 본격적인 발진채비를 갖추고 실질적인 협력국면에 접어들었다.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한소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제까지 크게 봐서 탐색단계에 그쳤던 양국간 경협은 이제 터놓고 거래할 수 있는 고차원의 실천단계로 발전하게 됐다. 대소경협의 내용을 교역과 투자로 나눠 볼때 국내업체들은 그동안 소련진출을 하면서도 현지 자본투자보다는 상품의 교역에 치중해 왔었다. 이는 외교관계가 수립돼 있지 않은 현실에서 섣불리 자본투자를 했다가 정치적인 요인이나 그밖의 다른 이유로 투자한 회사가 문을 닫을 경우 보상받을 수 있는 통로가 없었기 때문에 그만큼 투자에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더욱이 소련이 외환부족으로 총 10억달러에 가까운 상품대금을 결제하지 못하는 가운데 우리나라에도 3천만∼4천만달러의 미수금이 발생,국내업체들이대소진출에 다소 회의를 갖던 분위기에서 한소정상간의 전격대좌는 정치ㆍ외교적 측면에서 소련에 대한 경제적 불안감을 씻어주는 청량제같은 느낌을 던져주고 있다. 따라서 한소정상의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국교정상화를 통해 대소경협을 정상궤도로 진입시킬 수 있는 과감한 발판을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사실 경협만을 놓고 볼때 급한 쪽은 우리측이 아니라 소련측이라고 할 수 있다. 소련은 지금 개혁의 와중에서 생필품이 모자라 국민들이 가능한한 모든 물품을 닥치는 대로 사모으는등 생필품 사재기에 혈안이 돼 있을 정도로 경제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대소경협의 필요성이 적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최근 국내업체들은 미국ㆍEC(유럽공동체) 등 주요 수출시장에서 신기술개발 미흡및 가격경쟁력의 약화로 수출시장을 잠식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시장규모나 잠재성면에서 소련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한국경제의 「신대륙 발견」으로 평가될 수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소련은 기술협력의 파트너로서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우주ㆍ항공 등 기초ㆍ첨단기술분야에서는 미국과 함께 세계에서 최첨단의 기술수준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소련의 기초과학기술과 우리의 응용기술및 자본이 효과적으로 결합한다면 훌륭한 경협관계를 이뤄나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같은 한소경협의 이상향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앞에 가로놓인 걸림돌이 수없이 많다. 소련이 우리와의 관계개선으로 경협의 실리를 추구하고 있으나 양측 체제의 상이성,인식의 차이,소련의 외환부족및 대금결제지연 등을 감안하면 그리 빨리 실질적인 경협관계를 구축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입장에서 소련시장은 대단히 생소하다. 국내업계에 소련바람이 불면서 많은 업체들이 대소 투자진출을 위해 여러 프로젝트를 검토하고 추진했으나 현재로서는 지난 3월 현대ㆍ삼성물산ㆍ대우ㆍ럭키금성ㆍ대한항공 등이 모스크바지사를 설치하고 진도모피가 모스크바에 모피판매점을 개설한 것밖에는 대소투자에 관한 가시적인 성과는 없는 실정이다. 그만큼 다른 경쟁국에 비해 소련시장에 대한 체계적이고 심층적인 연구와 정보수집이 미흡한 것이다. 이같이 된 데에는 한소간에 투자보장협정,이중과세방지협정 등이 체결돼 있지 않아 투자에 대한 제도적 보장장치가 미흡한 것이 큰 원인으로 꼽힌다. 또 소련측에서 합작투자 제의를 해와도 현실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 있지 않고 루블화의 태환성미비및 과실송금에 대한 소련측의 보장책이 미흡하기 때문에 실질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한소 정상대좌로 국교가 수립되고 정부간 통상교섭창구가 생기면 이제까지 양국경협의 걸림돌이었던 투자보장협정과 무역협정 등 각종 경제관련 협정이 타결되고 이제까지 활용이 곤란했던 수출보험제도나 구상무역도 상당히 용이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문제는 국내기업들이 「장미빛 청사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일본을 비롯한 외국기업의 대소 진출사례를 점검해보고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이 중요한 것같다. 통계에 따르면 소련내 외국투자는 총 1천5백건 정도로,이가운데 서비스관련투자가 80∼90% 정도인 반면 제조업투자는 10%를 조금 넘고있다. 특히 돈벌이라면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일장기를 휘날리는 일본의 대소투자가 10건정도에 불과한 현실은 열악한 대소 투자환경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현재 국내기업들이 모스크바지사를 모두 호텔방에 둘 정도로 사무실과 주거공간 확보가 힘들며 전화 한 대를 설치하려면 1년이상이 걸린다. 소련이 우리측에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 50억달러 차관제공설도 따지고 보면 수출연체대금 해결과 가전제품 등 소비재구입을 위한 것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소련경제는 악화돼 있다. 우리의 입장에서 한소경협은 소련과는 달리 국교정상화 다음가는 우선순위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대소진출은 가시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수산업ㆍ호텔 등 서비스분야및 소비재산업에 대한 합작투자부터 시작하고 소련 국내뿐 아니라 제3국으로의 공동진출,3국간 거래관계형성 등 다양한 방법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특히 자연의 제약,기술의 애로가 많은 시베리아자원개발 참여는 처음에는 소규모투자 또는 선진국과의 공동진출단계로부터 출발해야 하며 성급한 기대는 절대금물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 「새 세계질서」 창출의 서막 올릴까/정종욱(서울시론)

    ◎미ㆍ소정상 대좌에 「한반도」도 기대 크다 지난 30일 워싱턴에서 개막된 미소 정상회담은 90년대의 국제정치가 갖는 최대의 고민이 무엇인가를 입증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큰 교훈을 남기고 있다. 지난해 12월 몰타회담이 열렸을 때만 해도 이번 회담에 대한 낙관적 기대와 바람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정당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미소간에 전략무기감축협상(START)이 성공하여 장거리 핵폭탄이 지금보다 반이상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또 인류 역사 이래 가장 반인간적 살상도구라 불리는 화학무기를 이 지구상에서 아예 추방해 버리려는 거창한 구상도 전혀 허망한 생각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고르바초프는 20세기를 평화의 시대로 만들어 금세기 최대의 역사적 인물로 평가받고,부시는 부시대로 92년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 거뜬히 재선의 영광을 안을 것으로 예측했었다. ○무거운 표정의 워싱턴 그러나 지난 5개월동안의 기간은 청산과 창조가 얼마나 다른 것인가를 보여주었다. 청산 역시 쉬운 것은 결코 아니지만청산보다 창조가 몇배나 더 어려운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시켜준 것이다. 쉽게 말해 청산은 있는 것을 그저 때려 부숴 없애버리면 되지만 창조는 새 건물을 지을 때처럼 청사진을 만들어 골격도 세우고 내부도 치장해야 하는 하나의 종합예술이기 때문이다. 2차대전 후 세계질서를 유지시켜온 것은 미소가 지배하는 패권체제였다. 그리고 미소 양국의 패권을 지속시켜 준 것은 핵무기로 상징되는 엄청난 군사력이었으며 이에 바탕한 군사동맹이었다. 나토와 바르샤바가 가장 대표적 예가 된다. 따라서 부시와 고르바초프가 전략핵무기의 50%를 삭감하기로 한 것은 삼손이 자신의 머리를 깎아버린 것처럼 스스로 패권의 뿌리를 뽑아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결단이었다. 동구의 몰락은 바르샤바 동맹체제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었으며 가상 적을 놓쳐버린 나토 역시 존재이유를 재설정해야 할 입장이 되었던 것이다. 이번의 미소 정상회담이 갖는 아이러니는 고르바초프와 부시가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 아니라 상당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무거운 표정으로 헤어져야 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냉전의 구질서를 과감히 청산하는 성과는 거두고 있지만 이에 대신할 새로운 질서의 창출에 있어서는 이번 회담의 성공이 극히 의문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의 주요의제로는 통독문제를 포함한 유럽의 장래문제,START협정,유럽에서 재래식 군사력감축(CFE)협상,미소간의 경제협력개선,소련 내부의 소수민족운동,그리고 한반도와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지역문제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중 START에 관해서는 상당한 성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3만2천개 이상에 달하는 미소가 보유하고 있는 장거리 전략핵탄두의 30∼50%를 감축한다는 합의가 있을 것이다. ○「유럽장래」의 장애물로 유럽의 재래식 군사력감축문제도 장애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중요한 원칙에 대한 사실상의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결렬과 같은 극한 상황은 아예 상상할 수 없다. 문제는 유럽의 장래에 관해 양국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있어 접근점을 찾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사실이다. 유럽의 장래는 통일독일의 장래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으며 이것은 다시 냉전 이후의 국제질서를 형성하는 보다 더 중대한 문제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새로운 질서의 창출은 낡은 질서의 몰락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서 새 것의 창출없는 옛것의 몰락은 혼란과 무질서만 초래할 뿐인데도 미소간에 새 질서에 대한 입장이 깔려있는 것이다. 소련의 소수민족 독립문제도 예측은 했지만 그 심각성을 정확히 평가하지는 못했다. 고르바초프에 대한 소련관료와 국민들의 반발과 저항도 정치ㆍ경제개혁이 성공하면서 점차 수그러들 것이라고 믿었지만 경제는 오히려 고르바초프 집권이전보다 더 나빠지고 있으며 관료와 국민들의 반발과 불신도 더 심각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고르바초프의 정치생명이 당장 위험에 직면해 있는 게 아니라 그의 개혁정책이 성공할 전망이 몰타회담때보다도 오히려 낮아지고 있으며 따라서 유럽의 장래와 통일독일에 대한 그의 신축성이 오그라들 수 밖에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 고르바초프는 소련 국내정치에서도 낡은 질서의 타도에는 성공했지만새로운 질서의 창출에는 실패는 아니라 할지라도 결코 성공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고르바초프를 맞는 워싱턴의 표정이 밝지만은 못하다는 사실이나 그와 마주 앉은 부시의 태도가 다소 경직되어 있다는 사실이 이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통일독일이 중립국이어야 하며 나토와 인연을 단절해야 한다는 고르바초프의 주장을 부시가 받아들일 수는 없다. 나토 밖에 존재하는 통일독일은 나토와 독일을 궁극적으로는 경쟁의 관계에 서게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통일독일의 실현이 예상보다 훨씬 빠른 템포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무작정 시간을 끌 수도 없는 사정이다. 45년전 얄타에서 루스벨트와 처칠과 스탈린이 모여 결정한 전후 질서의 구도는 냉전과 함께 그 내용이 변질되는 불행을 겪었다. 이제 그 변질되었던 전후질서가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려는 노력이 본격화하고 있다. 워싱턴회담이 그 시작을 알리는 신호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새로운 질서창출에 있어 중요한 관건을 쥐고 있는 소련과 독일이 다른 의미에서 시간과 싸우고 있다. 소련은 개혁정책을 둘러싸고 생존을 건 투쟁을 하고 있으며 독일는 통일의 꿈이 실현되는 날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유럽과 새로운 세계질서에서 자신의 모습이 보다 굳건한 지위를 갖도록 애쓰고 있다. 소련이 낡은 질서의 상징이라면 독일은 새질서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새 질서 아득한 한반도 이러한 유럽의 움직임이 한반도에 대해 갖는 의미는 대단히 중요하다. 워싱턴회담에서 한반도 문제가 깊은 토의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 아니다. 유럽의 변화는 낡은 질서의 타도와 새 질서의 창출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아직도 한반도에서는 새 질서의 윤곽이 구체화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낡은 질서가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낡은 질서를 부숴버리기전에 새 질서를 그려내야 할 것이다. 새 질서가 구체화하기 전에 낡은 질서가 급격히 몰락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는게 워싱턴회담의 교훈이라 할 수 있다.
  • 재정긴축 통해 물가안정 부축/올 예산 5천억 절약

    ◎정부,「90년 예산절감운용 추진」방안 확정/본예산 일반회계의 2.3% 규모 정부는 재정긴축을 통해 물가안정을 유도하기 위해 90년 예산에서 5천억원을 절감 또는 배정유보키로 했다. 이는 본예산 일반회계의 전체규모 22조6천8백94억원의 2.3%에 해당한다. 정부는 10일 경제기획원에서 정부 전부처 예산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예산자문회의를 열어 이같은 내용의 「90년 예산절감운영추진」방안을 확정했다. 이 방안에 따르면 경상경비 및 사업비에서 2천억원,원화절하로 인한 환차 추곡수매가 추가인상 요인 등으로 발생한 예산추가소요분의 자체흡수로 1천억원 등 모두 3천억원을 절감하게 되며 올 상반기중 배정할 계획이었던 주요사업비 가운데 2천억원은 하반기로 배정을 유보했다. 이에 따라 경제기획원은 경상경비는 국내여비ㆍ수수료ㆍ출연금ㆍ연료비 등에서 평균 5%씩,사업비도 시설비ㆍ자산취득비ㆍ용역비 등을 중심으로 평균 5%씩 일률적으로 절감키로 했다. 경제기획원은 또 당초 상반기에 예산배정을 계획했던 사업 가운데 ▲건축자재를 대량소비하는 사업 ▲청사진ㆍ개축비 등을 하반기로 배정유보키로 하고 배정유보 대상사업은 관계부처간의 협의를 거쳐 추후 확정짓기로 했다. 정부가 회계연도중 예산절감운용을 추진한 것은 지난 82년이후 처음으로 82년에는 일반회계 9조7천억원의 약 2.8%에 해당하는 2천8백50천억원을 절감했었다.
  • 「정치통합」… 경제이은 유럽의 새 변혁

    ◎“미완의 구상”… 어떻게 추진될까/국가마다 이해달라 전도 불투명/시장단일화와 병행,외무회담서 실무접촉/“민족정통성 침해 우려” 이견조정이 급선무 더블린 유럽공동체(EC) 정상회담에서 공식화된 유럽의 정치적 통합문제는 앞으로 동구개혁사태 못지않은 국제적 관심사로 등장할 전망이다. 유럽의 정치통합은 성사됐을 경우는 물론 추진과정에서 부터 국제정치질서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판단된다. EC12개 회원국 정상들이 여섯시간의 토의끝에 만들어낸 공동성명은 유럽의 정치통합을 추진해 나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그 내용만 가지고 정치통합작업의 앞길에 청신호가 떨어졌다고 판단하기에는 이른감이 있다. 『안된다』는 반대의 목소리가 아직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EC의 정치통합이란 현재 진행중인 경제ㆍ금융통합작업과 함께 정치분야에서 까지 통합을 이루어 「하나의 유럽」 건설의 꿈을 실현시켜 보자는 것이다. 이 문제는 얼마전 헬무트 콜 서독총리와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에 의해 처음 제기됐었다.그동안 시장 단일화의 원년을 「1993년 1월1일」로 잡아놓고 작업을 추진해온 불ㆍ독은 정치통합의 일정도 거기에 맞추어 진행시켜 나간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특히 이들은 금년말에 열리는 경제ㆍ금융통합작업과 관련한 정부간 회의와 병행하여 정치통합 정부간회의도 열자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통합에 대해 자세한 사항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구체화된 청사진이 제시된 일도 없고 이번 공동성명에서도 실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국가연합형태를 추구하는지 아니면 연방국가모습을 꿈꾸고 있는지 명확치가 않다. 다만 외교ㆍ안보문제에 대해 공동의 정책을 수립,통일된 행동을 취해 나간다는 정도가 밝혀진 내용의 전부이다. 더블린회담의 공동성명은 정치통합에 관련된 제반사항들에 대한 분석ㆍ검토작업이 즉각 착수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 분석ㆍ검토작업은 EC외무장관회의에서 담당,두달안에 보고서를 내도록했으며 오는 6월말에 열릴 정례 EC정상회담에서 이를 다룬다는 것이다. 정치통합문제만을 가지고 이번 더블린 정상회담의성과를 논할때는 성공적이라는 분석과 실패작이라는 엇갈린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시장통합작업을 앞장서 이끌어온 불ㆍ독측은 정치통합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라고 흡족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외상회의의 분석ㆍ검토 ▲6월 정상회담에서 구체안 마련 ▲12월 정부간 회의를 통해 정치통합추진 일정을 시장단일화작업 일정에 맞춘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측에서는 공동성명 내용이야말로 정치통합 움직임에 쐐기를 박자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즉 정상회담은 정치통합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외무장관회의에 넘긴데 불과하며 보다 책임이 덜한 외무장관회의에서 불가판정을 내리거나 시간끌기 작전을 펼 경우 정치통합제안은 그냥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회담결과에 대해 마거릿 대처 영국총리는 『만족하다』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다른 의견이 없었다』는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적극적인 찬성이 아니며 우선 그냥 따라간다는 얘기이다. 정치통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개념정립을 위해 외무장관들에게 연구ㆍ검토시키자는 것까지 반대할 이유는 없다는 생각인 것이다. 정치통합은 국가의 주권과 국가의 정통성과 관련된 문제이니만큼 어느 나라도 이를 잃거나 훼손당하기를 희망하지 않고 있는 현 단계에서는 다분히 수사적인 표현에 그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으며 안보관련분야에 대해서도 나토가 이미 통합된 안보기능을 수행하고 있어 또다른 군사적 통합기구가 필요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런 수준의 정치통합은 필요가 없으며 국가의 존엄성,국민주권이 대폭 EC로 이전되는 방식의 정치통합은 용납될 수 없다는게 영국의 입장이다. 우선 정치통합의 개념정립이 시급하다. 반대론자들이 우려하듯 「하나의 국가」 형태를 추구하는가 아니면 보다 느슨한 결속력을 지니는 국가연합 방식 또는 형식적으로만 정치통합의 모양을 갖추는 어떤 형식을 취할 것인가를 찾아내야 한다. 또한 추진 방법에 있어서도 「유럽의회의 권능을 강화하는 방안」(서독) 「각료회의의 영역을 넓히는 안」(프랑스) 「집행위원회의 정치적 의사결정권과 기능을 보강하는방안」(집행위)등 나름대로 내놓고 있는 정치통합추진방법을 결정해야 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영국을 제외한 EC의 정치통합가능성에 회의를 표시하면서 결국은 변질되고 느슨해진 정치통합방안이 제시되면 영국도 끝까지 반대의 입장에 서기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대처총리의 반대 목소리속에 담겨있는 이유가 아니더라도 정치통합에 따를 문제점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시장단일화작업을 시작한지 5년여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직 성사여부가 불분명한 현상을 감안하면 정치통합은 더 오래갈지도 모른다. 그래서 『93년 1월1일 시장단일화가 완성되는 날 정치통합도 가능할 것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NO』라는 대답이 이유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 사법제도 개혁의 방향(사설)

    대법원의 「사법제도 개혁을 위한 연구계획」은 담고 있는 내용이 혁명적이라고 할 정도여서 비상한 관심을 끌게 된다. 그것은 건국 이후 40여년간을 유지해온 법원의 조직과 운영방법 등 현행 사법제도의 기본골격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겠다는 것이라 그 결과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연구계획의 골자는 지금까지의 관료,권위주의적인 사법운영을 시민중심적으로,일반시민들의 편익위주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선 평가할 만하다고 여긴다. 또한 이 사법제도의 대개혁안은 대법원이 민주화 추진과 함께 급변하고 있는 국제정세에 발맞추어 2천년대에 대비한 장기적인 안목에서 사법행정의 선진화를 꾀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만한 것임에 틀림없다. 지금까지 우리의 법원은 일반시민들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라는 인식을 주어온 게 사실이다. 관료적ㆍ고답적ㆍ권위적이라는 비난이 여기에서 생겨났다. 재판은 으레 오래 걸리는 것이고,비용이 많이 들고,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법원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은 그것이 시민들과 함께 있지 않고 언제나 그 위에서 존재하는 것처럼 돼 왔기 때문이다. 재판의 신속화나 사법부에 대한 신뢰회복 등이 논의되고 지적돼 온 것도 이런 요구 때문이었다. 관할지역이나 법관에 따라 형량에 차이가 나고 법적용의 문제로 법관의 자질문제가 심심찮게 제기되어온 게 현실이기도 하다. 더구나 산업사회의 발전으로 인한 복잡해진 이해관계에 따른 문제의 해결과 해소를 위해 특수전문법원의 설치를 많은 사람들은 그동안 기대해왔다. 이같은 여러 현실을 고려해 볼 때 이번의 개혁안에 포함된 ▲양형기준제 ▲간단한 사건을 처리하는 민원창구식 법정신설 ▲전문재판부 설치 ▲1심의 단독판사제 ▲순회심판소 설치 ▲가정법원 확대 등은 대체로 일반인들이 느껴온 불편을 없애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여 채택될 경우 좋은 반응을 받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 계획안은 각국에서 좋다고 하는 방안을 모두 포함하고 있고 또 실제로 지금까지 제기되어온 것들을 모두 망라하고 있다는 문제를 갖고 있다. 대법원의 발표안이 어디까지나 연구계획안이고 테마에 지나지 않고 있음을 잘 알고 있으나 모든 방안을 교과서식으로 다 나열하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우리의 현실을 외면한 탁상공론적인 방안에 그치게 할 염려를 주고있다. 이점 충분한 고찰이 있기를 당부한다. 구체적으로는 법조일원화제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 일정한 법조경력과 연륜이 있는 변호사,검사 또는 대학교수 중에서 법관을 임명하는 문제는 자칫 판사의 지위를 이들보다 상대적으로 높이게 되고 또 변호사,검사가 법관이 될 경우 특정인이나 집단의 이해관계를 대신할 부작용이 없지 않다. 10년 후 정식판사로 임명하는 판사보제도 법관수급에 차질을 가져온다는 측면에서 이의 보완대책이 있어야 하겠다. 문제는 앞으로 사법제도의 개혁은 사법부의 선진화에 중점을 두고 연구를 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현실이 충분히 고려되고 2천년대의 우리의 위상에 알맞는 대개혁의 의지가 담겨져 있어야 한다.
  • 교정사의 새장… 청주여자교도소

    ◎2백15명 수용중 5년이상 복역수만 42%/교도관들 모두 여자… 금남의 구역 한복 등 갱생교육… 심성순화 큰 몫/간단한 기초화장도 허용… 가야금ㆍ서예교육도 실시 『감방생활 10년만에 샴푸로 머리를 감고 로션과 콜드크림까지 바를 수 있게 됐으니 믿어지지가 않아요. 더군다나 몇달 있으면 가야금ㆍ서예까지 배워준다니…. 모쪼록 새사람이 되어 세상에 나가야지요』 한순간의 실수로 「살인」이라는 큰 죄를 짓고 오랜세월을 옥에서 보낸 중년여인 김모씨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보다는 새 교도소에서의 새 생활에 대한 갱생의 희망이 가득했다. 27일 우리나라 교정사상 처음으로 여자전용교도소로 문을 연 청주여자교도소. 전국 교도소에서 형이 확정된 여자수형자를 집결 수용,여성에게 적합한 갱생교육훈련을 중점적으로 실시 한다는 계획아래 지난해 12월4일부터 여자수형자를 수용하기 시작해 이날 정식개소한 것이다. 여자전용교도소를 설치하게 된 것은 그동안 각 교도소에서 여자수용실(여사)만을 별도로 두었을뿐 남자수형자들과 다름없는 「대접」을 함에 따라 여자수형자들이 「여성다움」을 잃을 수 밖에 없는 폐단을 없애려는데 뜻을 두고 있다. 새로 개소한 여자교도소는 남자교도관들조차 얼씬 거릴 수 없는 철저한 「금남의 구역」이다. 4.5m높이의 환담벽이 사방을 에워싼 청주교도소에서는 이날부터 잿빛 수의 를 걸친 여성기결수 2백15명이 「새생활」을 시작했다. 이들은 절반이상이 살인ㆍ상해치사ㆍ폭행치사ㆍ강도 등 의 강력범들이고 42%가 5년이상을 선고받은 장기복역수들로 별도수용계획에 따라 최근 각 교도소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사람들이다. 기혼자도 75%나 돼 일반수형자들과 함께 생활하기에는 여러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은 실정이었다. 그래서 교도소측은 다른 교도소와는 각별한 배려를 해나갈 예정이다. 개소에 앞서 지난 4개월동안 여자수형자를 이곳에 수용해 여성에게 적합한 교정행정을 펴온 결과 난폭했던 수형자들이 상당히 온순해지고 부정적ㆍ소극적이던 사고방식도 적극적인 것으로 변해가는 등 적지않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최효숙교감(35ㆍ여)은 설명했다. 『여자들만 있는데로 옮겨간다는 소리를 듣고 덜컥 겁부터 났습니다. 여자한테는 여자가 더 모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지난 81년 강도살인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공주교도소에서 9년동안 복역하다 지난달 9일 이곳으로 이감돼온 고모씨(35)는 『전에 있던 곳보다 이곳의 규율이 더 엄격해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으나 이제는 모든 일을 여성위주로 해나가는 것이 마음에 든다』고 청주생활의 소감을 털어놨다. 이곳의 하루는 해뜰무렵인 상오6시30분 기상음악소리와 함께 시작된다. 기상과 함께 3명씩 쓰는 2.18평 크기의 거실철문 70여개가 일제히 열리면서 세수하고 머리감고 빗질하고 방청소하느라 분주해진다. 이곳으로 옮긴뒤부터는 기초화장품에 한해 화장도 할수 있도록 허용돼 짧은 시간에 잽싸게 화장하는 사람도 많다. 이어 애국가제창,재소자준수사항 및 안전수칙 복창 등 「출역행사」를 마치고 나면 7시30분. 아침식사를 마친뒤 각 공장으로 내려가 8시부터 12시까지 전자부품조립ㆍ봉제완구만들기ㆍ한복만들기 등의 작업을 하고하오 역시 5시까지 같은 작업을 한다. 작업을 끝내고 저녁식사를 한뒤 씻고 나면 8시. 이때부터 하루중 가장 편한 취침시간이다. 아직은 초창기라서 이들의 생활은 매우 단조롭지만 법무부의 의욕적인 계획에 따라 앞으로는 재소자들의 심성을 순화시키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할 예정이다. 문경화 초대소장(48)은 『지금은 전자부품조립ㆍ봉제완구 등 위탁공장과 한복ㆍ봉제공장 등 직영공장만 운영하고 있지만 오는 7월부터는 자수ㆍ미용ㆍ한복ㆍ봉제ㆍ조리 등 5개 특별활동을 추가운영하고 지역교화위원들의 도움으로 가야금ㆍ서예 등 취미활동도 시킬 계획』이라고 청사진을 펼쳐보였다. 현재로서는 기본의약품만 갖추었을뿐 의료기구가 미비하다든가 의무과장이 공석중인 것 등 여느 교도소와 마찬가지로 의료시설의 허술한것이 큰 아쉬움이다.
  • 기대되는 한ㆍ소 수교(사설)

    한국과 소련간의 정치적 관계가 눈에 띄게 긴밀해짐에 따라 멀지 않은 장래에 수교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전망은 소련을 방문 중인 김영삼민자당최고위원이 22일(한국시간) 고르바초프대통령과 극비회담을 했고 노태우대통령의 친서를 전했으며 소련의 사실상 제2인자인 야코블레프공산당정치국원과의 회담에서 한소 양국대통령간의 정상회담을 제의한 데서 보다 확실해지고 있다. 우선 김영삼­고르바초프회담은 아직 그 구체적 내용이 밝혀지지 않았으나 소련의 최고책임자가 미수교국 집권당 최고위원을 직접 만나 의견을 나눈 것 자체가 이례적인 것이다. 이는 상대를 공식 인정한 것이며 한소관계 개선과 특히 수교문제에 대한 소련의 전진적 자세를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이 자리에서 김최고위원이 노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고 야코블레프에게 제의한 양국정상회담 문제를 다시 제기했을 것으로 보여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친서에 정상회담 제의가 포함되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고 소련측도 이 문제에 대해 아직 공식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정상회담은 우리가 적극적인 자세를 가졌고 소련측이 이에 대해 아무런 거부반응이 없는 것을 보면 기대할 만한 사안이라 할 수 있다. 관계개선을 위한 극적인 돌파구로 정상외교가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이었다는 과거의 예들을 보더라도 노태우­고르바초프 정상회담이 이루어진다면 수교뿐만 아니라 보다 진전된 양국관계가 이루어질 것이다. 수교 전의 만남은 수교를 전제로 한 만남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소수교에 거는 우리의 기대는 크다. 왜냐하면 이것이 한반도의 안정,나아가 통일추진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치적으로 북한에 편향됐던 소련의 자세가 보다 공평해질 것은 물론 교조적 냉전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북한의 고집스런 행태를 직ㆍ간접으로 변화시켜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을 모색토록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리라는 예상이 충분히 가능하다. 또 한중간의 관계개선과 수교에 보다 좋은 영향을 줄 것이며 이렇게까지 되면 남북관계는 호전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울러 다른 미수교국과의 국교에도 힘이 되고 유엔가입이라는 외교목표달성도 손쉬워질 것이다. 이제는 한소수교와 정상회담을 위한 외교채널의 마지막 노력이 배가되어야 할 때이다. 두 나라간에는 이미 영사관계가 이루어져 있지만 이 영사처뿐만 아니라 가능한 채널을 총동원하여 수교시점을 당겨줄 것을 기대한다. 최호중외무장관의 체코및 불가리아와의 수교협정체결도 한소수교 분위기를 고양시킬 것이지만 한소 외무장관 회담의 조기개최에 노력하고 이에따른 대응전략준비에도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사실 소련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중요부분은 경제협력의 강화이다. 이미 「현대」의 정주영명예회장이 50억달러 규모의 시베리아 석유화학단지사업과 임산개발 등에 참여할 계획을 발표했고 그밖에 여러 기업에서 소련에 진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번 김최고위원의 방소에 상의회장 등을 대동한 뜻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나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되는 보다 짜임새있는 협력 청사진을 만들어 제시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 외언내언

    서방지도자 가운데 제일 먼저 고르바초프를 알아보고 높이 평가한 것은 영국의 대처수상이었다. 소 공산당서기장에 취임하기전 영국을 방문한 그를 보고 대처는 『함께 일을 해나갈 만한 인물로 보인다』고 평가했었다. 공산당지도자 같지 않은 세련된 옷매무새와 언행에 웃는 얼굴의 미남형인 그에게서 느낀 여성다운 호감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그보다도 반공투사답게 그때 벌써 그에게서 탈공산주의의 냄새를 맡았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11일로 그 고르바초프가 소 공산당서기장에 취임한지 꼭 5년이다. 그리고 대처가 예감했던 대로 그는 그동안 세계가 아는 공산주의와는 거리가 먼 엄청난 개혁사업을 벌여 왔다. 페레스트로이카(개혁),글라스노스트(개방),노보에미슐레니(신사고),데모크라티자티아(민주화) 등의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그의 사업은 레닌이후 70년의 공산주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어가고 있다. ◆공산당권력독점 포기가 이루어지고 대통령중심제 개혁으로 빠르면 12일쯤 고르바초프대통령이 탄생할 모양이다. 경제면에서도 자본주의 방식이 도입됐으며 동유럽은 해방되고 미소협력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일을 시작하고 벌이는데는 일단 성공했으나 수습하고 정착시키는데는 큰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 경제는 악화하고 소연방은 붕괴되려 하고 있다. 한마디로 고르바초프 소련의 미래는 불확실하고 불안하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페레스트로이카는 지난 5년동안 우리를 위기와 무정부상태,그리고 경제적 파탄으로 몰아 넣었을 뿐』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으며 그나마 안정은 있었던 옛날에의 향수마저 일고 있다고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보도하고 있다. ◆『그는 청사진 없는 즉흥건축을 하고 있으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비판도 있다. 그가 지탱할 수 있는 것은 일을 너무 엄청나게 벌여놔 누구도 그를 대신해 사태를 수습할 자신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는 평도 있다. 『잘못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으나 그게 두려워 아무 일도 않는것은 최대의 과오』라고 그는 반박하고 있다. 그가 진정 새로운 「소련혁명의 아버지」로 성공할지 세계의 염려스런 시선이 쏠리고 있다.
  • “타협의 신정치”… 안정통치 기반구축/6공 2년… 치적과 과제

    ◎「5공 멍에」 벗고 비능률적 4당체제 타파/부단한 경제개혁ㆍ민생치안 확립 급선무 노태우대통령이 25일로 취임 2돌을 맞았다. 지난 2년간이 6공화국의 기반을 닦은 통치토대 구축단계였다면 남은 임기 3년은 본격적인 통치에 가속력을 붙여 나가는 집권결실단계라고 할 수 있다. 노대통령의 집권 1기에 해당하는 지난 2년의 치적은 한마디로 민주주의의 하부구조라 할 수 있는 정치제도분야에 있어 민주화를 구축한 것이다. 6공출범과 함께 오랜 권위주의 통치체제는 점차 붕괴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국민들의 욕구는 엄청난 폭발력으로 분출했다. 역사의 전환기에 흔히 나타나는 사회기강 해이현상이 두드러졌고 이 과정에서 공권력은 무력화되었다. 과격한 노사분규가 빈발했고 급기야는 자유민주주의체제 도전ㆍ전복세력까지 등장했다. 더욱이 4ㆍ26총선으로 헌정사상 처음으로 초래된 4당체제의 여소야대는 정쟁과 5공청산문제로 일관,전환기적 혼란상황을 더욱 부채질했다. 노대통령은 이같은 상황을 맞아 인내와 자제 그리고 대반전의 결단으로 정치위기를 극복했다. 한동안은 무능과 방치로 여겨질 만큼 혼란상황에 대처를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힘에 의존하는 강경 대응수단을 선택하지 않고 국민의 각성과 공감대가 이뤄지는 때를 기다렸다가 전격적으로 통치의 기반을 구축했던 것이다. 6공출범의 원죄처럼 노대통령 정부의 멍에가 되어왔던 5공청산문제를 작년 「12ㆍ15」 여야 대타협으로 매듭을 지었다. 또한 정치가 생산적이 되지 못하고 걸핏하면 교착상태에 빠지게했던 여소야대의 4당구조 정국을 타파하여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의 통합을 이룩해냄으로써 안정적인 통치를 위한 정치의 틀을 마련했다. 5공청산ㆍ3당통합을 통해 노대통령은 비로소 본격적인 집권구상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통치체제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년은 또 6ㆍ29선언 실천의 연장선상에서 정치제도의 민주화는 물론 언론ㆍ인권분야에서도 괄목할만한 진전을 보였다. 6공정부의 최대 외교치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북방정책도 헝가리 폴란드 유고슬라비아와의 수교,소련과 영사관계 수립,중국과의 교류,교역협력관계 구축 등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 노대통령의 집권5년이 앞으로 역사에 어떻게 기록되고 평가되느냐는 지금부터 시작되는 남은 임기3년 동안에 무엇을 이룩하고 무엇을 남기느냐에 달려있다. 그런 의미에서 집권결실단계의 과제는 크게 보아 민주ㆍ번영ㆍ통일의 목표에 얼마나 근접하게 다가가느냐 하는 것이다. 각종 법령ㆍ제도의 민주화와 함께 정치운영,경제,사회 각분야에 실질적인 민주화를 어떻게 정착시켜 나가느냐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예를 들어 흑백논리에 의한 투쟁과 대결의 정치를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로 끌어 올리고 자유민주주의의 바탕이 되는 건강한 시민사회를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다. 번영을 위해서는 안정위의 개혁을 부단히 추구해야 한다. 또 지역간,계층간,세대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모든 정책수단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 이미 노대통령은 경제정의 실현을 위해 토지공개념 확대,금융실명제의 단계적 실시,종합토지세제의 도입 등 경제적 개혁조치를 추진하고 있으나 과연 굴절없이 본래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주택 2백만호 건설,서해안개발사업,농어촌종합대책,고속전철건설 등 전국의 반나절권 교통망 구축,교육개혁 등도 적극 추진하고 있으나 차질없이 이뤄질지 아직은 장담할 수 없다. 통일의 기반조성도 공산국가의 개혁,개방과 자유화 추세로 주변 여건은 좋아졌지만 북한의 고집스런 폐쇄성 때문에 계속적인 남북 신뢰회복의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대통령이 당장 해결해야할 당면과제도 결코 적지 않다. 3당통합으로 정치가 나라발전의 걸림돌이 되는 일은 없어질 것이라고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특정지역의 고립화라는 문제를 안고 있으며 비록 민자당이라는 하나의 정당으로 모이긴 했지만 3정파가 얼마나 조화를 이뤄 결속될지도 불투명하다. 또 노사ㆍ이념간의 대립이나 갈등이 계속 내연하고 있고 경제의 하강은 좀처럼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밖에 민생치안,교통난해소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노대통령은 집권 3년째를 맞아 우선은 당면 경제위기부터 풀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금년 6월까지는 실시될 것으로 보이는 지방의회선거를 어떻게 우리 민주주의의 한단계 도약의 계기로 만드느냐도 당면과제라 할 수 있다. 집권전반기의 노대통령이 「물대통령」으로 불리었다면 후반기의 노대통령은 확실히 국정을 장악,2천년대의 청사진을 실현할 수 있는 강력한 「불대통령」으로 불리기를 기대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노대통령이 지금까지 진실로 때를 기다렸다면 그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된다. 여소야대의 족쇄도 풀어졌고 나아가야할 목표도 분명히 정해진 이상 과감한 실천력만 뒤따르면 남은 임기 3년은 성공적으로 수행될 것 같다.
  • 공동 국제공항 건설/양독,베를린 남쪽에

    【동베를린 AP 연합】 서독의 루프트한자 항공과 동독 국영 인터플루크 항공은 연간 3천만명이 이용할 수 있는 국제공항을 오는 2005년까지 베를린 남쪽에 공동으로 건설할 계획이라고 양 항공사 사장이 19일 밝혔다. 양사는 또 합동 전세기 회사를 시작하고 다른 지역에서의 협력을 강화키로 합의했다. 두 항공사 사장들은 신국제공항 건설계획 청사진은 오는 95년까지 마련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베를린 남부에 위치할 이 공항은 지하철로 시내 중심가와 연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 신당창당 새달 본격 착수/김영삼ㆍ김종필 총재 24일 구체발표

    민주당은 오는 30일 김영삼총재의 신년기자회견을 갖고 신당창당의 방법과 절차를 포함한 정계개편의 구체적 청사진을 제시하고 2월부터는 본격적인 신당창당작업에 들어간다고 18일 밝혔다.〈관련기사3면〉 강삼재대변인은 이날 이같이 밝히고 『정계개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6월 지자제실시를 전제로 한 것』이라며 지자제실시 연기 가능성을 부인하는 한편 『정계개편은 시기를 두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대만 형성되면 단시일에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영삼총재는 이와관련,오는 24일쯤 서울시내 모음식점에서 공화당 김종필총재와 회담을 갖고 신당추진등 정계개편의 구체적 내용등에 관해 협의한 뒤 이를 공동발표문 형식으로 밝힐 예정이다.
  • 출범한 문화부에의 당부(사설)

    신임 문화부장관의 의욕적인 문화정책 구도가 밝혀졌다. 과연 출중한 말솜씨를 가진 장관답게 현란한 수사와 번득이는 창의가 넘칠만큼 그득한 구상들이 우리를 황홀하게 했다. 오랫동안 물질위주의 「잘살기 운동」에만 골몰해 왔던 우리는 어느날 문득 사막처럼 황폐해진 삶의 주변과 그로인해 재생불량성 질환에 걸린듯한 정신문화의 빈곤을 깨닫고 당황하기에 이르렀다. 잘살되 참으로 사람답게 잘사는 길을 서둘러 마련하지 않으면 경제적 삶이 조금 발전했다 하더라도 아무 뜻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문화부의 출범은 그 깨달음에서 비롯된 합의의 결실이다. 그 문화부를 이끄는 새 장관이 모처럼 찬란한 문화입국의 청사진을 마련하여 의욕적인 발걸음을 내딛게 된 것에는 기대와 격려를 보낼 일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장관답게 용어 하나도 진부하고 낡은 것은 치워버리고 갖가지 새 말을 찾아내고 만들어 냈다. 「까치소리」 「문화주의 새사업 벌이기」 「문화발전 열고개 넘기」 「문턱없이 일하기」 「생색안내고 일하기」 「사심없이 일하기」「이끼입히기」 「두레박놓기」 「부지깽이 되기」 등의 신조어가 난무한다. 화려하게 나열된 이 문화백화들이 번득이는 재능의 소유주인 이어령장관의 즉흥적인 발상에서만 우러난 것이 아니기를 우리는 바란다. 문화부의 발족을 계획하는 단계에서 충분한 실현성을 검토해가며 기초가 놓이고 토목이 이루어진 진행사업 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달변인 장관이 신들린 듯이 열거하는 「문화운동」을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가꾸지 않고 내던져졌던 온갖 문화의 구슬들이었다. 가꾸고 꿰기만 하면 영롱한 본디의 빛을 발휘하여 보석이 될 수 있는 구슬들이다. 「문화부」가 해주어야 할 일은 이 구슬들을 꿰어 보배가 되게 하는 일이다. 미개한 아프리카 신생공화국 정치지도자가 문명국에 나들이를 왔다가,더운물 찬물이 좔좔 쏟아지는 수도꼭지를 보고 탄복하여 귀국하는 짐보따리에 수도꼭지를 몇백개씩 싸가지고 갔다는 일화가 있다. 맑고 깊은 수원이 있고 그것을 소독하고 가열처리해서 꼭지까지 연결하는 상수도시설이 있지 않고는 수도꼭지만으로는 「물」을 형수할 수 없다. 우리가 문화부에 기대하는 것은,풍경 아름다운 계곡에 흐르고 있는 수원의 한 갈래나,까마득한 강상류의 발원의 확인만도 아니다. 또한 주물로 잘 만들어진 수도꼭지나 문명한 나라에서 개발한 신식 물뿌리개가 달린 희한한 세면기만도 아니다. 깊고 풍요하게 담아진 넉넉한 수원과 그 철철 넘치는 생명의 물을 개체의 꼭지에까지 전해주는 상수도시설,수조에 옮겨 적당한 온도로 데워까지 주는 중간과정의 시설들을 이뤄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문화부」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우리에게 문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비록 「빈집」이 될 우려를 동반하기는 했어도 상당량의 하드웨어도 이뤄져있다. 그런 뜻에서 신임장관이 내세운 「속채우기 운동」은 마땅한 생각으로 보인다. 어디에 어떤 구슬이 내던져져 있고,어디에 어떤 수원의 줄기가 묻혀있는지를 찾아 우선 착실한 개념설계를 하여,있는 것부터 찾아 유효하게 지원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시작부터 어쩐지 너무 화려한 수사를 만난 것만 같아 공연히 부실감이 든다. 이런 노파심을 씻어주는 문화부이기를 기대한다.
  • 통일문제 기적 바라선 안된다/정종욱 서울대 교수(서울시론)

    ◎북한변화 너무 낙관하면 오류 범할지도 지난 10일 노태우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내놓은 대북제의는 전향적 자세를 취하면서도 북한을 궁지에 몰아넣는 일방통행식의 내용들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김일성이 신년사에서 주장한 남북한 자유왕래와 전면개장이 현실성이 없는 것이지만 그 기본취지를 수용하는 진취적 입장을 보였으며 특히 팀스피리트훈련의 규모를 감축시켜 북한의 주장을 수용한 것은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성취에 기여하는 중대한 발전으로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다. ○전향적 통일정책 현황 인적교류와 군사적 신뢰구축 이외에도 금강산개발과 체육분야의 협력등 남북이 합의만 한다면 당장이라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구체적 제안들이 제시되고 있어 6공화국이 지난 2년 동안 통일문제에 대해 과시해온 현실감각과 적극적 자세를 다시한번 확인시켜주고 있다. 사실 6공화국이 내세울 수 있는 치적으로 가장 두드러진 것이 북방정책과 통일정책이라는 점에 대해 크게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다소의비난과 볼멘 소리가 있긴 했지만 북방정책은 냉전의 벽을 뚫고 동구공산국가들을 우리의 외교무대 위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그것은 공산권 내부의 개혁과 개방에 힘입은 바가 적지 않았지만 동시에 동구의 급격한 변혁을 앞질러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외교적 개척정신이 한층 돋보이는 참신한 변화였다.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오히려 당연한 일일지 몰라도 당시만 해도 과감한 발상과 결연한 실천을 요구하는 벅찬 도전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북방의 개척은 통일정책에서 유연성과 자신감을 갖게 했고 북의 입장을 보다 진보적으로 수용하게 하는 바람직한 결과를 낳았다. 자신감이 지나쳐서 오만과 과신으로 보이기도 하고 유연성이 도를 넘어 일방적 양보처럼 비추어지기도 했지만 6공의 대북정책이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아왔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어지러운 국내정치에 비교하면 북방정책과 통일정책은 구름사이로 비쳐나오는 한 줄기 햇살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제 80년대를 역사속에 묻고 새로운 90년대를 맞아 대통령이 연두회견에서 통일문제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비극과 고통의 세기를 마감하는 마지막 연대를 맞아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된 민족공동체를 완성하려는 실천적 의지를 다짐하려는 것이 국민 모두의 한결같은 염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염원이 이루어지려면 몇가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할 것이다. ○북이 문열어야 가능 무엇보다도 우선 공산권 내부의 변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남북관계의 개선과 한반도에서의 평화성취는 북한이 얼마나 변화하느냐에 달려있다. 북한이 그 닫힌 문과 마음을 열고 세계와 남한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우리가 아무리 관계개선을 추구하고 통일을 염원한다 해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최근 동구를 휩쓸고 있는 변혁의 물결이 언젠가는 북한에도 밀어닥칠 것으로 보려는 희망과 기대가 우리들 사이에서 커가고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북한의 변화 가능성을 지나치게 낙관하는 오류를 범할 위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북한이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는 주장은 아니지만 스스로 바뀌지 않는 한 우리가 아무리 변화를 희망하고 추구한다 해도 한계가 있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망각해서도 안될 것이다. 동구의 변화는 서구가 동구의 변화를 유도했기 때문이 아니라 서구가 스스로를 잘 관리하고 유지했기 때문이다. 서구의 성공이 동구의 변화를 가져온 가장 위력적인 촉매제였다. 마찬가지로 북한의 내부변화를 실현시킬 수 있는 최선의 길은 남한 스스로의 성공에 있다.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완성하고 경제적으로 성장과 복지가 조화를 이루어 낼 때 북은 지금의 상태로 외부와 단절된 채 주체의 왕국으로 계속될 수는 없을 것이다. 남쪽에서 달동네가 없어지고 재야가 제도권내의 목소리로 흡인될 수만 있다면 김일성이 신년사에서 휴전선 이남에 콩크리트 장벽이 있다는 억지 주장을 해도 이를 믿을 사람이 점차 줄어들게 될 것이다. ○기적은 내부서 찾아야 특히 위험스런 일은 남쪽의 부족한 성공을 보충하거나 호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통일정책이 오용되는 것이다. 남북이 서로 개방하고 교류하며 그러는 사이에 통일을 앞당기는 일은 80년대나 90년대나 변함없이 인내와 자제가 요구되는 장기적 과제이지 연대가 바뀌었다고 해서 갑자기 그 가능성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통일정책이 구름사이로 비춰지는 한 가닥 햇살이라 해도 구름 자체가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빛과 그림자는 엄연히 구별되는 것이다. 통일문제에 관해 당연히 진취적이며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뭔가 기적이라도 생겨날 것 같은 인상을 주어서도 안될 것이다. 기적은 우리 내부의 정치ㆍ경제에서 먼저 일어나야 한다. 우리가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에서 통일문제 못지않게 정치ㆍ경제분야에서도 많은 구체적 청사진이 나오기를 기대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연설과 질문이 보여준 차이를 결코 가볍게 넘길 수는 없는 것이다. 통일문제를 다룸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이 정말 변화하지 않으면 안될 역사적 시점이 다가왔을 때를 대비하여 북한에 대한 연구와 지식을 축적시켜 나가는 일이다. 훌륭한 통일정책이 있기 위해서는 충분한 재정지원과 뜨거운 성원이 뒷받침된 성숙한 통일연구가 있어야 한다. 연구없는 정책은 단견과 졸속을 면할 수 없다. 그동안 북한연구가 적지않게 진행되어 왔고 많은 연구소와 전문가가 존재하고 있지만 서로 연계되지 않은 가운데 간헐적인 활동만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게 우리의 솔직한 실정이다. 정부가 통일문제를 90년대의 최우선정책으로 삼고 있다면 이에 상응하는 북한연구에 대한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서독의 전독문제연구소에는 수백명의 전문가들이 동독연구에 전념하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베를린의 기적을 가져온 비결이었음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 정치발전의 새 구도(사설)

    노태우대통령과 세 야당 3김총재와의 개별회담이 추진되고 있어 향후 정국과 관련,주목된다. 그 성사여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정치 지도자들간에 허심탄회한 대화가 이루어지고 이것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새로운 정국의 전개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영수회담의 개최는 우선 시기적으로 매우 적절하다. 우리는 지난 연말까지 5공청산 문제를 정치적으로 매듭짓고 전진과 발전의 새로운 90년대를 열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 속에서 지난해 마지막날 국회 5공ㆍ광주특위 연석회의를 통해 전두환 전임 대통령의 증언을 들었다. 그러나 여야의원들과 증인 모두의 미숙으로 뒷맛이 씁쓸한 결과를 빚었다. 이런 뒷맛을 줄이고 90년대에야말로 잘해나가야겠다는 국민적 각오와 의지를 북돋워주기 위해 여야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같은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는 「1노3김」이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본다. 현실적으로 이들이 각 정당의 구심점이며 사실상 정치권에서 막강한 힘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방법으로 가장 좋은 것이 영수회담이다. 각당 총재는 이미 지난해 12ㆍ15 영수회담을 통해 5공청산 문제에 대한 대타협을 마련한 바 있다. 또 파란을 가져왔던 전씨증언 이후 노대통령이 지난 3일 5공청산 종결을 선언했고 3김총재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종결」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국민적 에너지를 모아 새 시대를 만들어나가기에 미흡해보인다. 정치권,특히 정치지도자들이 새로운 청사진이나 계획을 내놓고 국민적 합의를 창출해나가는 의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과거 당리당략 위주의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씻기 위해서라도 이같은 대화모임이 하루빨리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에서는 여야간의 어떤 쟁점을 푸는 형식이 아니고 당면한 민주화의 방향이나 장래의 정치구도,또는 정치상의 창출에 논의의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민주화 방안으로는 오는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법안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특히 여야가 우선적으로 다루기로 합의한 안기부법과 국가보안법의 개폐문제와 지방자치단체 의원선거법 문제가 제기되겠지만 「법적 청산」이다,뭐다 하면서 새로운 정략적 쟁점을 만들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를 보는 안목에서 다루어지고 처리되어야 할 것이다. 지자제 문제는 주요한 민주제도의 새로운 정착에 유념하여 지역정당의 병폐를 줄이고 여성ㆍ농민 등의 참여기회가 확대되는등 참다운 「풀뿌리 민주주의」가 되도록 하는 데 역점을 두어나가야 한다. 정치발전 문제는 역시 현재의 여소야대 4당체제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정당체제가 안고 있는 비능률과 불합리,그리고 정쟁의 요소 등을 감안하여 새로운 정당구조로의 개편이 반드시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현재의 4당체제가 띠고 있는 지역 편중성과 이념ㆍ정책보다는 인맥 위주의 후진성을 띠고 있기에 이를 시정하려는 노력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다만 이러한 노력은 그동안 우리 모두에게 나쁘게 작용했던 정치 지도자들의 사욕과 파당주의에 대한 겸허한 반성에서 출발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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