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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 남구청서도 세금 착복/검찰,아파트 취득세 횡령 확인

    ◎은행도장 찍어 영수증 발급/「북구청」 관련 법무사 사무실 직원 연루 【인천=최철호·조덕현기자】 인천 북구청 세금착복사건을 수사중인 인천지검(주광일검사장)은 23일 취득세 착복사례가 북구청뿐만 아니라 남구청에서도 이뤄졌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남구청에까지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검찰은 이날 인천 남구 용현5동 윤성아파트 2개동 3백68가구의 주민들 가운데 대다수가 구청에 내지 못하도록 된 취득세를 구청 세무과에 직접 냈으며 영수증에는 담당구청명의의 영수도장이 아닌 은행의 이름이 적힌 도장이 찍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곳 주민들은 지난해 7월 입주한 뒤 취득세를 자진신고하기 위해 남구청 세무과에 직접 찾아가 세금을 냈으며 직원들이 영수증을 발급하면서 「경기은행 숭의동지점」이라는 도장을 찍어줬다고 밝혔다. 검찰은 취득세는 구청에서 고지서만을 발급,은행등 금융기관에 내도록 돼 있는 점과 남구청에 낸 세금의 영수증에 은행의 영수도장이 찍힌 것은 위조됐다는 것을 반증하는 증거라고 판단,관련자들을 불러 조사를벌일 계획이다. 검찰은 또 이 아파트외에 남구 옥련동 송도럭키아파트의 경우에도 상당수의 주민들이 구청에 직접 취득세를 낸 것을 밝혀내고 남구청이 북구청의 경우처럼 납세자들로부터 직접 세금을 받고 허위영수증을 발급해준 뒤 세금을 챙겼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수사하고 있다. 한편 남구 윤성아파트의 등록대행도 구속된 북구청의 양인숙씨(29)와 짜고 등록세를 횡령한 박모씨(35)가 소속된 이모법무사 사무실이 맡은 것으로 밝혀져 이 아파트에 발급된 등록세영수증도 위조돼 세금이 횡령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 추석 보름달 못볼듯/20일 전국에 비… 연휴내내 흐려

    올 추석에는 전국적으로 보름달을 보기 힘들 전망이다. 기상청은 13일 「추석연휴 기상전망」을 통해 『추석인 20일에는 전국적으로 비가 온뒤 개갰으나 청명한 날씨는 기대하기 어려워 보름달을 보기는 다소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기상청은 또 사실상 추석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인 17일에는 서울·중부이북 지방은 비온 뒤 개겠고 전국적으로 흐린 날씨를 보이는 것을 비롯,21일까지 연휴기간 내내 구름 끼고 흐린 날씨가 이어지겠다고 전망했다. 기상청은 특히 『20일쯤에는 기압골이 우리나라를 통과하면서 전국적으로 10∼20㎜의 비를 뿌리겠다』고 예보했다.
  • “가을장마” 새달 중순까지/기상청 예보/2∼3일 주기로 비뿌릴듯

    ◎중부 집중호우로 38명 사상 지난 28일부터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최고 3백92㎜까지 쏟아진 국지적 집중호우는 29일에도 일부지방에 계속된데 이어 30일까지 30∼80㎜의 비가 더올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29일 하오 5시 현재 『이번 비는 경기도 송탄의 3백92㎜를 비롯 장호원 3백8㎜,외사 2백97㎜,평택 2백83㎜,이천 2백3㎜,충주 1백73㎜,수원 1백60㎜,서울 82㎜ 등의 많은 강우량을 보였으며 이달초 태풍 더그가 제주지방에 폭우를 퍼부은 것을 제외하곤 올들어 한꺼번의 비로는 가장 많은 강우량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한편 기상청은 이날 『이번 비를 시작으로 앞으로 9월 중순 초반까지 2∼3일 또는 3∼4일을 주기로 비가 내리는 본격적인 가을장마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기상청은 『특히 가을장마 기간중 내리는 비는 지난 여름 사상 유례없는 폭염으로 서해의 수온이 평년보다 1∼2도 가량 높아져 28일 경기남부지방에 쏟아진 것과 같은 집중호우가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했다. 즉 중국에서 만들어진 저기압이 편서풍을 타고 우리나라 쪽으로이동하면서 수온이 높은 서해상의 수증기를 대량 흡수,강한 비구름대를 형성하면서 주기적으로 비를 뿌린다는 것이다. 기상청은 『따라서 우리나라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대륙 고기압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는 9월 중순 이후부터 청명한 가을 날씨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재산피해 39억원 중앙재해대책본부는 29일 경기·충청등 중부지방에 내린 집중 호우로 외국인 2명등 6명이 숨지고 32명이 부상한 것으로 잠정 집계했다. 또 경기도 송탄시및 평택시 일대 가옥 5백97가구와 경기및 충남·북지방 농경지 2천17㏊가 침수되고 도로 35곳 1.4㎞,하천 제방 36곳 4.1㎞가 유실되는등 39억4천3백만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 음식:중(서울 6백년 만상:51)

    ◎명절­계절별로 절식­시식 즐겨/한여름엔 밀·메밀로 만든 국수·전병 인기/입맛 잃기쉬운 환절기엔 사마주 빚어 마셔 「밥위에 떡」이라는 말이 있듯이 예나 지금이나 서울사람들은 떡을 대단히 좋아한다. 서울사람들은 특히 봉우리떡·상추떡·물호박떡·각색편등을 수정과·식혜등 음료를 곁들여 즐겼다.한여름에는 밀가루나 메밀가루를 사용해 만든 국수·밀전병·수제비등이 인기를 독차지했다.또 입맛을 돋우기 위해 죽·범벅·만두등을 많이 해 먹었다. 물자가 넉넉하지 못하던 해방전까지만해도 서울사람들은 보통날 먹는 음식과 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이 크게 달랐다. 특별음식은 절식과 시식으로 나뉘었다.절식은 명절에 차려먹는 음식이고 시식은 계절에 따라 나는 산물로 만드는 음식을 가리킨다. 절기마다 있는 명절때는 계절에 어울리는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설날에는 떡국·인절미·약식·수정과등이,정월대보름에는 오곡밥·묵나물·복쌈·귀밝이술등이,단오때는 수리취떡·제호탕·준치국등이,추석때는 햅쌀송편·토란탕·화양적·송이찜등이 푸짐하게 상에 올랐다. 명절에는 공통적으로 다과류를 만들어 먹었다.주·부식외에 별다른 군것질거리가 없던 시기에 한과는 별식이자 유일한 간식이었다.명절이 지난 뒤에도 한과를 벽장속에 깊숙이 넣어놓고 입이 궁금할 때마다 조금식 꺼내먹는 것은 그 당시 양반들에게는 커다란 낙이었다. 한과에는 약과·매작과·강정·다식·율란·조란·각색정과·섭산삼·앵두편등 종류가 제법 많았다. 옛 어른들은 「겨울날 화롯불에 녹인 인절미를 조청에 찍어먹는 기막힌 맛」을 얘기하지만 요즘 사람들이 그 맛을 실감해보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서울의 음식문화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술이다.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술은 일개 기호품이 아니라 음식 그 자체였다. 『한 고을의 일은 술에서 보고 한 집안의 일은 장맛에서 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술은 나라의 정치에서부터 집안의 제반사를 측정할 수 있는 문화적 척도이기도 했다. 서울사람들은 탁주·청주는 물론 찹쌀·멥쌀로 만든 양조주를 다시 증류한 소주등을 주로 마셨으며 절기마다 특이한 술을 빚어 마시기도 했다.정월 초하룻날에는 일년의 사기를 없애기 위해 산초·방풍등으로 빚은 도소주를 만들어 마셨으며 청명절에는 청명주를,여름에는 소주에다 꽃을 넣어 숙성시킨 과하주를,환절기에는 입맛을 돋우기 위해 사마주를 각각 빚어 마셨다. 이 시기에는 음식을 전문적으로 파는 음식점이 없었고 장터 한 구석에서 휘장을 쳐놓고 떡·국수·장국밥등 간단한 음식을 파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숙소를 겸한 주막에서는 걸쭉한 막걸리와 국밥·부침개·곰탕등 제법 다양한 음식을 준비해 지나가는 길손들의 발길을 묶어놓곤 했다. 전문적으로 음식을 파는 음식점이 생긴 것은 일제시대에 와서였다.
  • 전국서 천4백만그루 식수/어제 식목일

    ◎30곳서 산불… 임야 35㏊ 태워 제49회 식목일이자 청명인 5일 정부와 국회,각종 사회 단체,기업과 시민등 1백67만여명이 전국의 산과 들을 찾아 7천여◎에 1천4백여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김영삼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경내에 산딸나무 10년생과 백송 7년생을 각각 한 그루씩 식수한 뒤 독림가,임업 후계자 등 2백여명과 함께 경기도 광릉 임업시험장을 찾아 전나무와 잣나무 8년생 3천 그루를 심었다. 산림청은 지난 달 21일부터 오는 20일까지 한달동안을 나무심는 기간으로 정하고 전 국민 한 그루 나무심기 운동을 벌이고 이 기간 중 전국에서 3만㏊의 산림에 7천4백만그루의 나무를 심을 계획이다. ◎성묘객 담뱃불 화인 식목일인 5일 하루동안 전국에서 23건의 산불이 나 임야 25여㏊를 태웠다. 이날 낮 12시쯤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울대리 야산에서 산불이 발생,임야 7천5백여평을 태운뒤 1시간30분만에 진화됐다.또 이날 하오 1시40분쯤 경기도 남양주군 조안면 능내리 천주교공원묘지에서 성묘객이 버린 것으로 보이는 담뱃불로 산불이 발생,임야 6천평과 묘 5백여기를 태웠다.
  • 때이른 초여름 날씨/어제/서울 27.4도… 청주 30도 육박

    ◎내일부터 평년기온 되찾을듯 식목일이자 청명인 5일 청주지방의 최고기온이 29.6도까지 오른 것을 비롯,전국 대부분 지방의 최고기온이 20도를 넘어 때이른 초여름 날씨를 보였다. 청주지방의 이날 최고기온은 평년보다 무려 12.9도나 높은 것이다. 이밖에 서울지방 역시 펑년보다 12.7도나 높은 27.4도를 기록한 것을 비롯해 의성 29도,온양 28.7도,대구 28.5도,수원 27.5도 등의 최고기온을 나타냈다. 4월초에 이처럼 높은 기온을 보인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기상청은 이날 『최근 며칠동안 남풍계열의 따뜻한 바람이 계속 불어오고 북쪽의 찬 공기가 제트기류에 의해 차단돼 기온이 급상승했다』고 밝히고 『7일쯤부터는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비가 내려 평년기온을 되찾겠다』고 전망했다.
  • 오늘 식목일/건조주의보 계속 발효

    식목일이자 청명인 5일과 한식인 6일은 전국이 대체로 구름 끼는 가운데 일부지방에 약간의 비가 오겠다.따라서 나무를 심거나 조상의 산소를 찾는데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겠다. 그러나 4일까지 6일째 발효중인 건조주의보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므로 산불예방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기상청은 4일 『5일은 고기압의 영향을 받겠으므로 중부·호남지방은 구름이 조금 끼고 영남지방은 가끔 구름이 많이 끼겠으나 제주지방은 흐리고 비가 조금 오겠다』면서 『아침기온은 6∼10도,낮기온은 18∼23도로 전날과 비슷하거나 조금 낮겠다』고 예보했다.
  • 산불 조심합시다(사설)

    3·1절 휴일인 지난 1일 전국에서 13건의 산불이 일어나 10㏊의 산림을 잿더미로 만들었다.건조주의보가 내려진 「산불조심기간」(3월1일∼5월31일)의 첫날 산불비상이 걸린 것이다. 날씨가 건조한 봄철이면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는 산불이지만 최근 몇년 사이 계속 산불이 늘고 대형화되고 있는 추세여서 올 봄에도 산불이 크게 번지지 않을까 염려스럽다.산림청 통계에 의하면 지난 91년부터 산불이 해마다 늘어나 그해 1백39건 발생에 4백29㏊의 산림이 불탔고,92년엔 1백80건에 6백40㏊,93년엔 2백78건에 1천7백52㏊의 산림이 불탔다.해마다 산불피해가 50∼1백50%씩 늘고 있는 것이다.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꾸준한 치산녹화사업으로 겨우 가꾸어낸 우리의 「푸른산」이 6·25동란 직후의 「민둥산」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끔찍한 참사를 빚어냈던 얼마전의 미국 로스앤젤레스 산불이 그랬듯이 산불은 기후조건에서 비롯된다.요즘처럼 건조한 날씨에는 산불이 일어나기 쉬운 것이다.우리나라 산불이 봄철에 집중발생(78%)하는 것은 그런 기후조건 때문이다. 그러나 산불의 직접적 원인은 우리들의 부주의나 실수 또는 방화에 있다.지난해 산불의 대부분은 입산자 실화(46%),논·밭두렁 소각(25%),성묘객 실화(6%),어린이 불장난(4%) 때문이었다.따라서 너나 할것없이 산불조심을 하는 것이 산불을 예방하는 길이다.앞으로 날씨가 따뜻해지면 등산·행락객이 산을 더욱 많이 찾을 것이고 식목일·청명·한식일등에도 많은 사람들이 산에 오를 것이다.산에서의 취사금지등 산불예방규정을 철저히 지키고 그 위반자에 대한 엄격한 처벌이 시행되도록 해야겠다. 관계당국도 산불예방과 진화대책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물론 산림공무원들이 비상근무체제에 돌입했고 산불취약지 입산통제강화,논·밭두렁 계획적 소각,조기발견 조기신고체제 강화,진화조직보강 및 진화능력배양등 산림청이 나름의 대책을 세워놓고는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계속 지적돼온 부족한 인력과 장비가 개선되지 않은 상태여서 그같은 대책들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 미심쩍다.날로 대형화하는 산불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헬리콥터도 필요한만큼 확보하지 못하고 기본장비인 동력펌프마저 부족해서 관계공무원과 농민들이 곡괭이나 삽으로 산불진화에 나섰다가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예산부족으로 산불전문소방대를 운영하는 것은 어렵다 하더라도 진화장비의 확충과 현대화는 이루어져야 하며 내무부·산림청·소방서·군등의 산불진화공조체제가 미리 마련돼야 할 것이다.
  • 기인작가 이외수 「감성사전」 출간/단어 200개 풍자풀이

    ◎특유의 철학·기발함 행간가득 표출 작가는 흔히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르다고들 한다.작가특유의 감성으로 표현되는 이같은 시각은 그래서 작품속의 문장이나 단어로 표출될때 일반인이 간과하기 쉬운 생명력을 갖춘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설때가 많다. 우리 문단의 기인으로 통하는 작가 이외수씨가 화제소설 「벽오금학도」를 낸지 1년여만에 감성으로 단어를 풀어낸 작품집 「감성사전」을 도서출판 동숭동에서 펴내 화제다. 이씨가 춘천의 한 농가에서 그동안 길러오던 머리마저 깎아버린채 1년간의 몰두끝에 내놓은 「감성사전」은 일상에서 그냥 지나치기 쉬운 사물과 단어 2백개를 꼼꼼한 시각과 재치있는 풍자로 풀이해 낸것으로 눈길을 끌어모은다. 표제 그대로 사물과 언어의 실체를 작자가 갖고 있는 감성의 특이함으로 해석해 놓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씨에게 있어서 「예술」은 『술중에서는 가장 독한 술이다.영혼까지 취하게 한다.예술가들이 숙명처럼 마셔야하는 술이다.모든 예술작품은 그들의 술주정에 의해서 남겨진 흔적들이다.거기에는신도 악마도 존재하지 않는다.오직 아름다움만이 존재할 뿐이다』로 풀어진다.또 「시」는 『석탄속에 들어있는 목화구름』이며 「가을」은 『영혼마저 허기진 시인의 일기장 갈피로 제일 먼저 가을이 온다.고난의 세월끝에 곡식들이 익는다.바람이 시리고 하늘이 청명해진다.낙엽이 진다.세월도 진다.제비들이 집을 비우고 국화꽃이 시든다.허기진 시인의 일기장 갈피로 무서리가 내린다.가을이 끝난다.가을이 끝나도 외로움은 남는다』로 서술되고 있다. 그런가하면 상투적이지만 밝음의 철학과 함께 전광석과 같은 기발함도 실려있다. 「다리」는 『떠나기 위해서 만들어놓은 건널목이 아니라 돌아오기 위해서 만들어놓은 건널목/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길의 관절/땅끝까지 이어진 해후의 사다리』이며 「출발점」은 『과거를 끊어낸 자리.미래의 생장점.윤회의 매듭점.다시 돌아오기 위해서 떠나는 자리.인생의 모든 새벽』이다.또 「불행」은 『행복이라는 이름의 나무밑에 드리워져 있는 그 나무만한 크기의 그늘이다.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그 그늘까지를 나무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로 풀어지기도 한다.
  • 김백봉무용단/“하와이 나들이”

    ◎한인 이민 90돌 기념… 하와이 불은사주지스님 초청/28일 「화관무」 「부채춤」 등 전통춤 공연 하와이에 있는 한국인 사찰 주지스님이 한국 전통무용단을 초청해 한국인의 하와이이민 9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을 가질 예정이어서 현지 교포들의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하와이의 불은사주지 김자은 스님은 전통무용단인 김백봉무용단을 초청,오는 28일 두차례에 걸쳐 하와이 세인트 루이스고교내 마미야극장에서 현지교포들을 위한 특별공연을 마련한다. 이번 공연은 이민 90주년을 기념하는 한국인 주최의 행사중 가장 큰 규모여서 더욱 눈길을 끌고 있다. 이번 공연을 주선한 김자은스님은 18세에 강원도 검봉사에 입산,수도하면서 고 박금슬씨로부터 승무·법고·탈춤등을 사사한 무용인출신. 지난 67년 문공부 주최의 무용콩쿠르에서 차석상을 받아 그때부터 무용협회와 친숙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특히 불자인 김백봉씨와는 아주 가까운 사이로 이번 공연도 김씨가 지난해 하와이에 들렀을때 김자은스님이 하와이 공연을 제의,김씨가 선뜻 응해 어렵지않게 이루어진 것. 한편 이번 공연무대인 마미야극장은 지난 10월 피아니스트 백건우씨가 피아노독주회를 가진 곳이어서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김백봉무용단은 이 마미야극장에서 「청명심수」라는 주제로 전통무용과 창작무용을 선보일 예정. 1·2부로 나누어 1부는 「화관무」「장고춤」「부채춤」과 함께 김자은스님이 특별출연하는 창작춤인 「참회」로 꾸며지며 2부에선 김백봉씨를 비롯해 이 무용단의 단원 7명이 무대에 올라 「예와 삶의 교향곡」이라는 주제로 삶속에서의 은혜로움과 고마움을 표현한 산조를 선사한다.
  • 대마도에서 일기도로/박성수(일본속의 한국문화:11)

    ◎통신사 숙소 간곳없고 3개의 주춧돌만…/섬전체가 40여호… 일행5백명이 머물던곳/정사 최운사 파도에 희생… 사당 세우고 숭배 대마도에서 이끼섬(일기도)까지는 비틀호라는 쾌속정이 다닌다.이 배를 타면 불과 1시간정도 걸려 이끼섬에 도착하지만 재래식 배를 타면 3시간은 족히 걸린다고 한다.바쁜 일정이어서 쾌속정을 타고 대마도를 떠나기로 했다.우리나라 부산과는 정반대쪽으로 가는 것이며 옛날 통신사들이 지나가던 바로 그 뱃길이었다. 『이끼섬에 도착하면 카쓰모토(승본)항을 찾아 가십시오』 떠나는 우리에게 아비류씨는 이렇게 일러주면서 일기교육청 사람까지 소개하여 주었다.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본 시리즈 8회 「일기도와 고려교」)가쓰모토항은 일기도 북단에 있는 작은 어항으로 통신사 일행이 꼭 1박내지 2박을 하고 일본 본토로 떠나던 곳이다. ○배 뒤집어지기 일쑤 옛날 통신사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대마도에서 아침 9시에 떠나서 저녁 4시쯤에 가서야 일기도 가쓰모토항에 도착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가장 어려운 길목이 바로 이항구의 어구를 가로막고 있는 3섬의 사이를 지날 때라고 했다. 이 3섬 사이를 흐르는 바닷물은 두 갈래 물줄기가 마주쳐서 사납게 부딪치는 곳이어서 자칫하면 배가 뒤집어지고 만다.그래서 40여척의 위선들이 나와서 통신사일행을 무사히 항구까지 인도해가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마중나오는 배가 없어서 어이없이 이 물목에서 조난사고가 발생했다.그 희생자가 최운사(최운사)라는 통신사였다.「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원년(1419년)의 대마도 정벌보다 25년전인 태조 5년(1396년)에 대마도와 일기도)를 한꺼번에 정벌한 일이 있었다.그때 일본측에 사신을 보내서 사후에 양해를 구하였는데 최운사는 그때의 정사였다.불행하게도 그는 몹시 배멀미를 알아 배만 탔다하면 쓰러졌다. 최운사가 탄 배가 마침 이 물목에 다다랐을때 해가 떨어져 캄캄한 밤이었고 파도가 사정없이 뱃전을 쳐서 그만 배가 뒤집어졌다. 배안의 사람들은 다행히 모두 뛰쳐나와 살았으나 최운사 한 사람만은 일어나지 못해 죽고 말았다.기록에는 최운사가 아랫사람들을 너무 엄하게 다스려서 인심을 잃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업고 나오지 않았다고 그 슬픈 사인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고마운 것은 이곳 일기도 사람들이 이 섬에다 돌을 쌓아 굴을 만들어 사당을 세웠다는 것이다.이름하여 최회례사사당이라 했는데 세종2년에 일본으로 파견된 회례사 송희경은 25년전 조난당했던 최운사의 흉사를 회고하면서 이런 슬픈 시를 지어주었다. 『동쪽 바다 외딴 섬에 작은 신사 있어/내 여기 와 분향하고 술 한잔을 올리네/적막한 그의 충심을 묻는 이 없고/성난 파도만 내리치는구나』 ○낯익은 돌담 아직도 우리를 안내하여준 향토사가 중상사행씨는 이 고사를 잊지 않고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지금도 저 섬에 사당자리가 남아 있습니다.우리가 어릴때만 해도 저 물목이 지나는 모든 어선들이 사당을 향해 절했습니다』 우리 기록에도 이 사당을 위인들이 오래도록 숭상했다고 되어 있는데 한가지 중상사행씨가 잘못 본 구절이 발견되었다.그것은 최운사가 배멀미때문에 쓰러져 간 것이 아니라 술에 취해서 자다가 죽었다고 설명한 부분이다.정사가 함부로 배안에서 술을 마시지 않은 것은 기록상 분명한데 중상씨는 그 점을 무시했던 것이다.술에 취해 죽은 사람을 누가 그렇게 오래도록 숭배해주었겠는가. 아무튼 세종2년에 이 물목을 지나게된 송희경도 죽었다가 살아났다.그래서 그는 읊기를 『죽을 고비 넘기고 나서 선창에 기대어 서니/감개가 무량하여 서로 얼굴을 쳐다보면서 더 눈물지었네』라고 실토하였다. 가쓰모토(승본)의 본래 이름은 가제모토(풍본)였다.이름 그대로 바람과 파도의 본고장이었던 것이다.그러나 우리가 이 항구에 도착하던 날 바람은 전혀 없었고 하늘까지 청명하여 더 이상 바랄 나위가 없었다. 『그런데 통신사를 맞은 숙소는 어디 있습니까』 『성모방에 있습니다』 웬 성모가 이 마을에 있는가 생각하면서 중상씨를 따라 승본총을 돌아서 건너편 동네를 찾아갔다.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중상씨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민가가 들어차서 옛 숙소건물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러나 주춧돌만은 버리지 않고 보존하고 있습니다』 주춧돌이라도 남아 있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었다.기록에는 통신사의 숙소가 성모방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항구 저편에도 지어져서 이마을 전체가 통신사 숙소로 가득차 있었다는 것이다. 통신사 일행이 5백명인데다가 대마도 사람 1천5백명이 따라 붙었으니 당시 40여호에 지나지 않았던 이 마을에 2천명이나 한꺼번에 들어닥쳤던 것이다.그러니 통신사를 위해 지은 숙소가 이마을에 가득찰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헐려 주춧돌 3개가 동회사무실로 보이는 작은 건물 처마밑에 빗물받이로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바로 성모사 입구였다. 그런데 또 한가지 중상씨가 발견하지 못한 것이 이곳에도 있었다.성모사로 들어가는 골목에 너무나 우리 눈에 익은 돌담이 높이 쌓여 있었다.이 돌담이야말로 그 옛날 통신사들이 묵고 간 숙소의 돌담이었던 것이다.지금은 그 안에 민가가 들어 앉아 마치 자기집 돌담처럼 시침을 떼고 있으나 우리의 눈은 속일수 없는 일이었다. 이끼 낀 검은 돌이 수백년은 되어 보였고 쌓은 솜씨 또한 요즘 기술과는 거리가 멀었다.새삼스레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역사가의 바른 길이라 생각하면서 문제의 성모사로 들어섰다.성모란 누구인가.바로 신공황후를 가리켜 성모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갑자기 긴장감이 감돌았다.
  • 조각가 유영교씨(이세기의 인물탐구:39)

    ◎돌로 빚어내는 생명력… 인간미 “물씬”/풍만한 인체·단순화된 형태의 구상 즐겨 표출/연속 국전특선… 완벽한 조형술로 정상의 명성/요즘은 고난·번뇌 초월한 「평화의 표정」 형상화에 집착 「인생은 석재다.그것으로 신의 모습을 조각하든가 악마의 모습을 새기든가 모든것은 자유다.그러나 다만 생명이 깃든 조각인가?」이는 영국철학자 허버트 스펜서의 말이다. 유영교는 강한 석재로 생명이 깃든,살아있는 사람의 표정을 만드는 작가다. 알찬 마스(양괴)와 신선한 정감표출의 단아한 나부상,예술가가 품은 그 어떤 상념도 돌이라는 재료에 의해서 표현되지 않는것은 없다는 것이 그의 신조다. 그는 작품화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해 끊임없이 데생하고 데생한다.또는 수채화로 그리거나 유화나 파스텔로 그린다.그리고 하나의 회화로서 만족할만한 결과를 보였을때 이번엔 점토로 이를 빚는다. ○실패확률 거의 없어 형태의 완성과 완벽성을 석고 모형으로 경험한다음 비로소 돌작업에 들어가기 때문에 실패의 확률은 거의 없다.표정조차도 이미 모형에서 이미지를 또렷하게 살려내고 있다. 그러나 그가 그린 그림이 조각에 닮아있으면 그것은 대부분 성공적인 것이지만 만일 조각이 그림에 닮아있을땐 이건 낭패일수밖에 없을 것이다.작품에 관한한 완벽추구자이며 영원히 만족을 모를수도 있다. 작품에서 그가 중점적으로 파고드는 테마는 언제나 인간의 이야기다.인간의 고뇌하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여러형태의 모습을 어디서 찾느냐는 것과 이런 이야기들을 어떻게 조각으로 표현하느냐는 것이 과제다. 같은 고뇌라도 성자의 고뇌인가 범상한 인간의 가족애적인 것인가.사랑도 신의 사랑과 남녀의 사랑,자비는 베풀때와 베풀음을 받은 은총일때가 다르듯이. 한때는 구도자나 수도자의 얼굴을 만들기도 했다.또는 어둡고 그늘진 어부나 농부의 삶에 찌든 표정이 그의 작품의 한 구릉을 이루기도 한다.그러나 「삶의 이야기」시리즈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아들을 보고 기절한 어머니의 모습,가톨릭의 고통과 고난과 수난은 끝이 없음을 그는 새삼 느낄수밖에 없었나보다. 이에비해 경주 불상에서 온화한 평정의 모습을 발견했다.미술이론을 모르는 이름모를 석공이 원만함과 무심과 풍요를 그려낸 것이다. 이때부터 헤르만 헤세의 「싯달타」를 다시 읽고 노자·장자에 심취하면서 초탈·초월의 경지를 갈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풍만감이 넘치는 인체에다 반가사유상의 양식을 적용한 극기와 무상,번뇌를 떨쳐버린 초월적 명상,마음의 갈등씻긴 평화로운 표정을 작품마다에 햇살처럼 아로새겨 나갔다. 유영교는 데뷔때부터 지금까지 비교적 순탄하게 일류작가의 대열에서 한치도 뒤처진 적없이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예술가의 한 사람이다. ○첫 개인전 찬사 일색 아직 대학2학년때인 66년 국전 3회 연속 입선,이어서 목우회 공모전서 문공부장관상 국전 국무총리상 국회의장상 국전 연속특선으로 삼십을 갓넘긴 나이에 국전추천작가·초대작가등 남보다 배나 빠른 정상가도를 똑바로만 달려왔다. 추천작가가 되던해인 77년 첫개인전과 함께 수많은 찬사·호평에 둘러싸여 다음해 이탈리아로 유학,국립로마미술아카데미와 르네상스 조각의 본고장으로 일컬어지는 카라라에서도 거장 에밀리오 그레코와 페레클레 파시니를 사사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때 「지중해」 「일드 프랑스」의 작가인 마욜과 아르프,오슬로의 후로그넬 공원에 있는 비게란드의 화강암으로 된 「조각군」을 보고 그는 자신의 구상조각에 대한 집착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부조에서 환조에 다다른 아르프의 아르 콩쿨레(구체예술)를 수용하면서 구상·추상 사이를 넘나들다가 차츰 추상의 경지를 뛰어넘어 그만의 구상인체에 망설이지 않고 정착할수 있었다.진위를 가릴수없는 모호한 추상의 세계보다 손으로 만져지는 구상세계가 그의 투명한 성격에도 거부감이 일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그가 아끼는 재질인 대리석도 인체의 아름다움과 당당함,사유와 풍요를 표현하는데 어떤 부족감도 없었다. 2년전 선보인 성숙·풍요·동반 시리즈에 이어 최근에는 점점 더 불교적으로 된 작품의 표정들이 무심을 지나 열반의 경지를 보이는 것이 그 좋은 예다. 더구나 밑그림이 철저하게 뒷받침된 표정들은 하나하나가 서로 다르고 하나하나마다에 생동감이 담긴다.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텅빈 무심이 아니라 청순이라든가 순백·환희가 눈부신 것도 특징이다. 고흐의 해바라기 같은 이미 다른 작가가 그려온 소재를 그는 그 나름대로의 천진무구를 강조하여 행복의 꽃다발로 재창조한 경우도 있다. 미술평론가 김복영은 이를 「회고」와 「번안」의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유홍준은 『살아숨쉬는 듯한 생명체의 덩어리』라든가 자신의 작품을 되물으며 의식을 심화시켜 나가는 자세는 『예술의 성실성』내지 『예술의 진지함』이라 평하고 있다. 그의 작업장은 금강 남쪽,충남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에 자리잡고 있다.그가 살고 있는 대전시내에서 버스로 20분거리.많은 조각가들이 교외별장과도 같은 아기자기한 건물을 지닌 것과는 달리 야산을 깎아 만든 2천평 대지에 세운 이 간이작업장은 거대한 석물공장을 방불케한다. 10t의 무게를 들어올릴수 있는 빔설치,돌을 썰거나 마광할수 있는 전기모터와 체인 블록,바이트와 드릴과 리머와 탭 등 수백가지의 절삭공구들과 마당구석구석에 사람의 키만한 대리석 화강암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는 이리나 문경,여수를 돌며 자연석을 직접 사오기도 하고 이탈리아 대리석을 현지에서 주문해다 쓰기도 한다. 남들이 직장에 출근하는 것처럼 아침8시에 도시락을 싸들고 출근,데생에서 흙반죽,석고 뜨고 돌자르고 드릴로 뚫고 다듬고 깎고 하루종일 돌가루와 흙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채 중노동에 시달리다 밤9시가 넘어서야 귀가한다. 사방이 청명한 가을인 요즘,드넓은 벌판엔 외딴 작업실에서 내는 그의 기계소리 돌을 다듬는 소리외엔 주변은 온통 적막강산이다. 간간이 브론즈나 나무를 다루기도 하지만 돌만이 갖는 차갑고 강한 느낌,정발 하나하나로 확실하게 작가의 손에서 작업이 끝나는 확인은 돌이 아니고서는 맛볼수 없는 희열의 하나다. 유영교의 가장 특징적인 점은 그 어떤 경우에도 세속에 물들거나 부당함에 타협하지 않는 결벽증이다. 일찍이 그가 국전추천작가가 됐을때 화단에서 까다롭기로 유명한 평론가 원동석씨는 「평론가 10인이 추천하는 신예작가」의 한 사람으로 유영교를 추천하면서 「아집이나 고집때문이 아니라 그의 천성적인 순결과 자신감은 세파에 쉽사리 물들거나 외세에 섣불리 휩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대로다. 스승·선배들에게 예의 바르지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끝까지 관철하고 자신의 작품에 대해 엉뚱한 말을 들으면 그의 의도를 명료히 제시하여 시정을 요구한다. 또 대학의 전임강사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가르치는데 시간을 뺏기다보면 그의 예술을 할수 없기 때문이다. ○세속의 욕망을 거부 돈이 될수 있는 모뉴망이나 설치미술등의 주문에도 응하지 않는다.건물주의 몰취미에 억지로 맞추기도 싫고 번거로운 계약과정이나 브로커들이 중간에 끼는 것도 마땅치 않다. 그는 언제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작품,온 몸과 마음으로 몰두할수 있는 대상에만 철저하게 파고든다. 그는 충북 제천군 청풍면장이던 유상종씨와 정효옥여사의 5남매중 장남으로 태어났다.면소재지이긴 하지만 국민학교 3학년때 마을에 들어온 버스를 처음 볼만큼 산골동네에서 투박하게 자라났다. 국민학교때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하고 충주고 2학년때 홍대가주최한 전국고교미술실기대회에서 1등상 수상.그날 조각실에서 작업복을 입고 흙을 만지는 선배들의 모습을 그린 것이 계기가 되어 후에 조각과를 지망하게 됐다. 이탈리아 유학중 그곳의 조각가들이 야외작업장을 가진 것을 부러워한 나머지 고향청풍에다 작업장을 짓는 것이 소원이었으나 충주댐 건설로 고향이 수몰되어 목원대교수인 부인 이은기씨(서양미술사)를 따라 86년 대전에 정착했다.슬하엔 3남매. 유영교조각은 양감의 풍요에서는 마욜,극도의 단순한 형태추구면에서는 때때로 아르프에 비유되기도 하지만 그가 다다르고 싶은 것은 순연한 조각이다. 그러나 연전에 그의 작품전을 보고 이탈리아 카라라 아카데미 교수이자 평론가인 피에르 카를로 산티니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형태면에서는 영혼의 영원과 가치에 대한 신념』,『작업의 전과정에서 보여주는 것은 투명한 영감의 세계』라고. 남보다 빨리 화단에 입문해서 일사천리로 예술의 정상에 이른 것처럼 그는 남보다 빠르게 그가 원하는 순정한 순연의 경지에 이미 이르고 있음을 산티니는 예고하고 있는것 같다. □연보 ▲1946년 충북 제천 출생 ▲1964년 충주 고교졸업 ▲1965년 홍대 미대조각과 입학 ▲1966∼68년 국전연속3회 입선(대학재학중) ▲1969년 홍대 미대졸업 ▲1975년 국전 특선 ▲1976년 국전 특선,홍대대학원 졸업 ▲1977년 국전 추천작가및 초대작가,전국조각가초대전 목우회초대전출품 ▲1977년 제1회 개인전(미술회관) ▲1978년 제2회 개인전(진화랑),이탈리아 로마 미술아카데미 유학 ▲1980년 제3회 개인전(로마) ▲1980년 제4회 개인전(진화랑) ▲1982년 제5회 개인전(미라노),국제청년작가 야외전(미라노) ▲1983년 제6회 개인전(현대화랑) ▲1984년 이탈리아 로마 미술아카데미 조소과졸업(거장 에밀리오 그레코 펠리클레 화시니 사사),한국조각가 13인전 한·이조각가교류전,재이한국조각가전출품 ▲1985년 재이한국조각가15인전,토스카넬로의조각전,국제청년조각가전 ▲1986년2월 귀국개인전(제7회·강남현대화랑) ▲1986년10월 제8회 개인전(현대화랑) ▲1987년 이탈리아 문화원개원기념 초대전,재이 한국조각가초대전(갤러리 현대및 이탈리아 뤼기 루소) ▲1988년 제9회 개인전(현대화랑),현대조각 초대전 ▲1991년 제10회 개인전(현대화랑) ▲1992년 제11회 개인전(갤러리 신현대)홍대및 목원대 서울교대강사 현재 충남대 예술대 출강 미술회관 개관기념초대전·한국 현대조각초대대전·목우회초대전·평론가10인이 추천한 신예작가초대전·한국구상조각회 로마전 주관·국제청년작가 야외전·한이조각가교류전·한국조각가협회전및 해마다 홍익조각회전·한국구상조각회전·국전초대작가전·현대미술초대전·원로중진조각초대전·MBC구상조각대전·대한민국 미술대전초대작가 국내외 그룹초대전에 수십차례 참가 목우회공모전 동아일보사장상·목우회공모전 문교부장관상·국전국무총리상·목우회공모전 최고상·국전 국회의장상 수상 국립현대미술관 호암미술관 어린이대공원 워커힐미술관 럭키·금성사옥 제천시청 한일은행본점 한흥증권본점 남해화학 대전교구장 아라리오미술관 신라호텔 야외조각 전시장
  • 조선 서예 절정기 작품 한자리에/예술의 전당서

    ◎이황·한석봉 등 180명 명품 전시 중국에서 건너온 서예필법이 우리 고유의 예술로 발전,찬란한 절정을 이룬 조선중기의 서예작품들이 이달말 가을 정취 그윽한 서울 예술의 전당으로 일제히 나들이를 한다. 국내유일의 서예전문 전시관인 예술의 전당 서예관이 오는 26일부터 다음달 21일까지 계속하는 「조선중기 서예전」이 바로 화제의 행사. 예술의 전당 미술부가 작년 6월부터 1년5개월여에 걸친 준비끝에 개최하는 이번 전시에는 퇴계 이황,고산 황기로,원교 이광사,한석봉등 당대의 명필 1백80여명의 작품2백여점이 소개된다. 이중 이황의 「퇴도선생필법」은 보물548호로 지정된 귀중한 문화재이며 율곡 이이의 「친필서간문」,황기로의 「초서시고액자」,한석봉의 「영낭호첩」등도 보물급에 준하는 희귀자료로 10여점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다. 작가및 작품선정은 국내최고의 한학자 청명 임창순씨(전문화재위원장)와 최완수 간송미술관학예연구실장,한국서예사가 이완우씨(정신문화연구원)등 세명이 맡았다. 전시작은 국립중앙박물관,서울대박물관,성균관대박물관등 공공기관 소장품과 기타 70여명의 개인소장품들로 구성돼 있다. 역사학자들이 규정하고 있는 조선중기는 중종에서 숙종에 이르는 시기로 건국주체세력인 관학파들이 4대사화를 통해 퇴진하고 향촌사회에서 서원과 향약을 근거로 활동하던 사림파가 정치·사회·문화전면으로 부상하던 시기. 따라서 서예도 초기의 조맹부체가 극복되고 한석봉에 의해 독자적인 석봉체로 개발돼 국서체로 발전한다. 또 17세기 중반에 들면서 옥동 이서­공제 윤두서­백하 윤순을 거쳐 원교 이광사에 이르러 동국진체가 완성돼 조선고유의 서법으로 자리를 잡는다. 주최측은 서예의 이같은 시대적 변화를 쉽게 파악하도록 ▲송설체의 조선화 ▲초서의 명가 ▲석봉체의 형성과 전개 ▲명인들의 시서와 간찰 ▲양송체와 전예의 전통 ▲다양한 서풍의 발전 ▲동국진체의 맥락이란 7개의 소주제로 작품을 분류했다.
  • 「알과 탄생」전/“생명의 신비 발산” 눈길

    ◎“한국적 정서 담은 명상과 사색의 자리” 한국적 정서를 근간으로 하는 명상과 사색의 전람회. 청명한 가을빛에 어울리는 한 전시가 서울 청담동 박영덕화랑(544­8481)에서 열리고 있어 미술애호가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시는 뉴욕에서 활동하고있는 중견화가 이병용씨의 「알과 탄생」전(15∼29일). 전시장 공간을 들어서면 조용히 다가오는 그림들이 번잡한 일상에 지친 관객의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게한다. 참선과 무상의 세계. 이 작가가 과연 미국 뉴욕에서 캔버스를 메워나가는 작가인가를 상상키 힘들게 하는 화면들이 관객에게 묘한 동질감과 아울러 쾌감을 안겨준다. 대형 한지를 매재로 하여 생명의 근원이며 상징인 「알」을 표현하고있는 작가는 마치 서구미학이 난립하는 요즘 화단풍조를 질타하듯 독특한 한국인의 감성이 깊이 밴 여유있고 구수한 화폭을 제시하고있다. 연한 바탕의 화면속에서 「알」이 살아있는듯 생명의 본질을 뿜어내는 이씨의 작업을 두고 미국의 저명한 미술평론가 엘레노어 하트니는 『그의 작품 하나하나에서 보여지는 기분좋은 평정감과 여백의 미는 무상의 세계로 귀속돼진다』고 평했다.
  • 시민의식 실종과 쓰레기(사설)

    준플레이오프 3차전이 열린 5일의 잠실구장은 라이벌인 LG와 OB의 숙명적인 대결로 흥분의 도가니를 이루었다.두팀의 연고지가 모두 서울인데다 준플레이오프 전적도 1승1패여서 최종일인 이날 경기에 대한 야구팬들의 열기는 대단했다. 청명하고 드높은 가을하늘아래 펼쳐지는 백구의 향연은 또 얼마나 가슴 설레게 하는 일인가.그러나 밤 9시가 지나서 끝난 야구장 관중석은 그야말로 거대한 쓰레기 집하장이었다.빈 깡통·도시락 용기·음식찌꺼기·종이컵·비닐봉지·담배꽁초 등 온갖 쓰레기가 통로마다 가득히 널려 있는 걸 볼 수 있었다.시민의식의 완전실종을 보여주는 삭막하고 눈살 찌푸려지는 현장이었다. 이날 입장객 3만1천여명이 버린 쓰레기는 50여t,8t 트럭 6대분이 넘는다.65명의 청소원들이 새벽5시까지 7시간동안이나 치워야 했다고 한다.이것이 우리 국민들의 시민의식인가.그리고 공중도덕에 관한 자화상인가 싶어 부끄러움이 앞선다. 잠실구장내에는 1백50개의 쓰레기통이 비치되어 있다.또 2년전에는 입장객에게 쓰레기 수거용 비닐봉지를나누어 준적도 있었으나 아무런 효과를 보지못해 지금은 폐지하고 있다는게 관리사무실측 설명이다.프로야구가 창설된지 올해로 12년째,그러나 경기장의 쓰레기 공해는 조금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지난 추석연휴때 고속도로변이나 국도변에 무작정 버려졌던 쓰레기더미를 보면서 우리는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탄식을 마지 않았다.김영삼대통령이 어제 제창한 쓰레기수거등 「국토대청결운동」도 사라진 시민의식의 복원을 강조한 것이다. 우리는 지난 88년 서울올림픽을 훌륭하게 치러낸 경험을 가지고 있다.그 당시 국민들은 경기장에서 질서를 지키며 수준높은관전태도 로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크게 기여했었다.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겠다는 국민적인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서울올림픽에서 보여준 국민의 선진의식은 그뒤 불행하게도 우리 생활속에 침윤·계승되지 못한채 증발하고 말았다. 일본은 64년 도쿄올림픽을 치르고 난뒤 국민의 질서와 공중의식이 확연히 높아졌다고 한다.질서와 공중도덕이란 점에서 우리는 올림픽을 통해 얻은 것을 허무하게 잃어버린 셈이다.응원하는 팀이 지고 있다 해서 응원도구나 심지어 소주병까지 그라운드에 내던지는 관전태도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관전에도 절도와 세련된 매너가 필요한 법이다.경기장의 넘치는 쓰레기­그것은 서울올림픽 정신의 재현으로 충분히 해결될것이다.
  • 한가위 달/“커 보이는건 맑은 대기 때문”

    ◎추석 계기로 알아보는 달 이야기/밀·썰물 현상에 영향… 나이 40억살 추정/예부터 숭배대상… 아폴로 착륙후 베일 벗어 30일은 일년중 달이 가장 밝게 뜬다는 음력 8월 한가위.두둥실 떠오른 한가위 달을 바라보던 생활의 시름을 잊고 수확을 감사하는 때이다.한가위 달을 벗삼아 가정에서 어린이들과 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관찰하는 시간을 가지면 뜻깊겠다. 한가위 보름달 한가위 보름달이 유난히 크고 가깝고 밝게 보이는 이유눈 무엇인가? 천문학자들은 보름달이 다른 때보다 더 크게 뜨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다만 우리가 크게 느낄 뿐이라는 것이다.달이 도는 궤도는 거의 원에 가까운 타원형이므로 달이 지구 주위를 돌때 달과 지구상의 거리는 거의 같을 뿐 아니라 보름달 일때 거리가 오히려 더 멀리 떨어져 있을 때도 있다는것.달이 크고 밝은 느낌을 주는 것은 습하고 무더운 한여름이 지나고 습도가 낮아져 날씨가 청명해진 탓이라는 분석이다. 세계 여러나라에서 달은 태양과 함께 숭배되었다.이집트에서는 학문과 예술의 신으로,인도에서는 세상을 비취 어둠과 재앙으로부터 인간을 지켜주는 신으로 숭상됐다.농경민족이었던 우리나라에서는 달에 대한 관심이 커 그 징후를 보고 여러가지를 점치기도 했었다. 그러나 달은 1609년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이용,인류역사사상 처음 달에서 검은 바다를 찾는데 성공한 이후 서서히 베일을 벗기 시작했다.1969년 미국의 아폴로 우주선이 달에 착륙한뒤부터 서서히 오랜 침묵에서 벗어나고 있으며 갈릴레오우주선등은 볼수 없었던 달의 뒷면사진을 전송해오고 있다.달은 지구의 유일한 위성으로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으며 지구 주위를 도는 천체이다.지구에서 달까지의 평균거리는 38만4천4백여㎞ 지구와 태양간의 거리의 약4백분의 1이다.달의 표면면적은 지구의 14분의 1이며 부피는 49분의 1인 소형위성이다. 달에는 물이 없어 달에서 물을 찾는 노력을 하고 있으나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물만 발견되면 우지인의 활동등을 도울 최적의 우주기지로 꼽힌다. 달의 나이는 어느정도 일까? 71년 7월 아폴로 15호 우주선이 달의 바다 동남단 아페닌산맥의 히들리계곡에 착륙,윤반해온 암석을 분석한 결과 약40억5천만년전의 것으로 분석됐다.과학자들은 이 돌을 창세기의 돌이라 이름붙였다.달의 중력은 지구의 6분1일.지구상에서는 60㎏되는 사람도 달에 가면 10㎏정도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달은 스스로 빛을 받아 반사하기때문에 태양의 위치에 따라 밝고 어두운 삭막현상이 나타난다.또 달이 지구보다 훨씬 작은 위성이지만 지구와 가까운 거리에 있어 달의 조석작용이 지구상의 밀물썰물 현상에 영향을 미치기도한다.달을 잘 관찰하려면 먼저 육안으로 관측한후 달의 월면도를 놓고 쌍안경,망원경을 이용해 달의분화구를 관찰하는 방법이 좋다.쌍안경이나 망원경등을 이용해 달을 볼때 보름달이 너무 밝아,빛을 감소시키는 필터나 셀로판지를 대는 것이 좋다.
  • 여류명창 성창순씨(이세기의 인물탐구:35)

    ◎동·서편제 통달한 판소리의 달인/혼신 다한 소리인생 40년… “한 서린 득음” 정평/빼어난 성조·변화무쌍한 음색에 관객 매료/서예·국악기에도 깊은 조예… 「심청가」로 인간문화재에 성창순은 본래 강산제 「심청가」로 인간문화재가 된 여류명창의 한사람이다.음이 낮고 처절한 「심청가」는 전곡이 지나치게 구성지고 구슬퍼서 극장공연 첫날에는 소리하는 이들이 기피하는 곡이기도 하다.그러나 일명 서편제로 불리는 성창순 「심청가」는 4시간반의 완창을 변화무쌍하고도 맛갈지게 구사하여 지루감을 없앤 것이 특징이다. 부친 심봉사를 그리워하며 심황후가 기러기편에 편지쓰는 대목에서 「한자쓰고 눈물짓고 두자쓰고 한숨쉴제 눈물이 먼저 떨어져 글자마다 수묵이 되어」는 이조가곡과도 같은 우아미와 품격을 지녀 독특한 성음이 빼어난 것으로 손꼽힌다. 애절한 계면조뿐아니라 흥부가중에서 「놀부심술타령」 「제비로정기」 「왼갖비단타령」등 숨막히게 전개되는 자진몰이 휘몰이 속에다 우람지고 담대한 가락을 얹어 「달기가 승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흥·청의 심맥 고수 그는 판소리는 넘어가는 가락과 내뽑는 목청에 흥과 청을 담아 판소리의 심맥인 「흥청거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정신을 지키고 있다.그래서 그의 무대는 언제 어디서나 흥취가 넘치고 그의 연희는 유유하고 자적하다. 최근 몇년간은 남도락에 심취하여 지난봄 국악대공연에서는 느린 육자배기에다 잦은 중몰이장단,개구리타령으로 절정을 이루더니 흥타령에서 축 늘어진 후 진도아리랑으로 활기를 되찾는 신명나는 한마당을 펼쳤었다. 「사람이 살면은 몇백년을 살드란 말이냐 죽음에 들어서 남녀노소가 있느냐 살아생전에 객기로 맘대로 놀아볼거나」 가사의 끝이 「거나」나 「구나」로 끝나는 육자배기는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곡이면서도 잘 부르려면 가장 어려운 곡으로 「그의 육자배기는 늦은 진양조장단에 한이 듬뿍 배어 멋으로 일렁이는 유장한 가락이 일품」이라는 것이 황병익교수(이대)의 말이다. 지난 6월에는 KBS홀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관현악과 판소리 「춘향가」의 협연을 갖기도 했다. 이「춘향가」관현악곡은 작곡가 김희조씨가 성창순명창과의 협연을 위해 8개월간에 걸쳐 재구성하여 편곡한 것으로 생소한 관현악연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황하거나 머뭇거리는 기색없이 마치 수만군을 거느린 여중호걸처럼 2시간30분의 완창을 당당한 풍모로 이끌어나갔다. 한복차림에 쥘부채,고수 한사람의 북장단에 의존하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판소리의 색다른 멋과 음악적 변화를 보인 역시 돋보인 무대로 지적된다. 북반주에 맞춘 판소리공연에서는 즉흥적인 「아니리」와 「발림」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지만 엄격한 제한을 받게 되는 관현악연주에도 그는 대로를 가로지르는 곧고 시원한 통큰소리,익살과 애조와 애원의 성음치레로 관객의 흥겨움을 흥청망청 당겨주었다. 타고난 재능과 기량이 번뜩이는 재인과는 달리 그는 끈질긴 노력과 집념으로 자신을 발전시키고 운명을 개척해온 입지전적인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한번 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해내고야 말며 「죽으면 죽었지 2등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오기와 배짱이 그것이다. ○예향 광주서 출생 그의 판소리 입문부터가 말못할 우여곡절과 파란만장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는 지나가는 길손도 단가 한마디씩은 부른다는 전남의 예향 광주에서 태어났다.부친은 권번에서 북을 가르치던 명고수 성원목씨.어릴때부터 북장단을 즐기고 동네 굿구경에 날저무는 줄 모를만큼 예살(예살)이 거센 편이었으나 부친은 이를 극구 말려 걸핏하면 매맞기 일쑤,집안에 갇히기가 일쑤였다.그렇다고 해서 중간에 포기하거나 기죽을 그가 아니었다.오히려 부친에게 『나는 소리를 배우겠소,그렇지 않으면 집을 나가든지.어쨌든 시집이나 가서 고생하는 여자는 되지 않을 거요』하고 맞섰다.그리고 몇날을 울며불며 밥을 굶고 몸져눕자 「딸자식 하나 없는 셈치고」 부친이 져주었고 광주 북동에 있는 소리선생에게 소리를 배우게 해주었다. 그러나 이번엔 선생이 『저아이는 소리에는 소질이 없으니 잘 키워서 시집이나 보내라』고 했다.대경실색을 할 일이었으나 그는 내색없이 『소질이 없기는 왜 없어.두고보라지,내가 못해낼 줄 알고?』 이러고 학교를 때려치우고는김연수창극단에 입단해버렸다.그때 나이 15세.그러나 여기서도 소질을 인정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그시절에 만난 오정숙·박옥진은 스승으로부터 장래성을 인정받고 있는 유망주로 죽어도 남에게 뒤질 수 없는 그의 심경은 못내 참담하기만 했다. 『두고보자.지금은 너희가 나보다 나은 줄 알지만 여기서 물러날 내가 아니다』 그들의 소리연습을 엿보면서 그는 한편으로는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다.악기라면 다소 자신이 있었다.어릴때부터 부친의 북장단이 귀에 익어 어떤 악기도 낯설거나 불편하지 않았다.가야금·거문고·칠현금을 배우는 동안에도 그는 소리한번 제대로 배우고 말겠다는 집념을 떨치지 못했다.그렇게 4년을 보내고 5·16직후 국극단이 해산해버리자 서울로 올라왔다. 단성사근처 와룡동에 정착하여 박초월씨에게 거문고를 배우다가 소문으로만 듣고 있던 만정 김소희씨의 문하에서 동편제소리인 강산풍월과 심청가 바디를 넘겨받는 과정에서 생전처음 『갈고 닦으면 좀더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칭찬을 들었다.그후 김소희씨의 권유로 보성소리를 배우기 위해 전남 보성군 회천면 도강재에 있는 정응민선생을 찾아나섰다.보성소리는 판소리 서편제중 전남 보성을 중심으로 연고를 맺고 있는 소리꾼들만의 소리제로 우조·평조·덜렁제·경두름제의 다양한 음색과 감칠맛이 특색이었다. 율포해수욕장에서 인적없는 여우고개를 넘어야 하는 30리길 산골,밥상을 갖다놓으면 물이 줄줄 흘러내릴만큼 바닥이 기울어지는 누추한 단칸방에서 그는 그를 구제하는 소리의 진수에 빠져 모진 고생을 감내하는 뼈저린 과정을 거쳤다.하루 15시간에서 어느때는 18시간,삭신이 늘어지고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듯했으나 불에 구운 왕소금으로 부운 목을 달래면서 그는 오로지 소리에만 매달렸다. 눈속에 발이 푹푹 빠지는 혹독한 겨울,여름내내 4개월동안 긴장마가 계속되는 궂은 날씨에도 기울어진 방에 앉아 목청을 뽑던 고된 수련과 공력은 이제는 그의 일생일대 아름다운 추억일 수밖에 없다.그로 인해 박유전∼정응민∼그의 아드님인 정권진으로 이어지는 보성소리계보에 4대째로 「소리호적」을 올리게 되었고 그는 부친이 소리를 배우지 못하게 했을 때처럼 또다시 두다리를 뻗고 대성통곡 했다.이번엔 남들이 듣고 있는 명인·명창 칭호가 그에게도 무관하지 않다는 감동과 기쁨의 눈물이었다. 보성에서 서울에 올라왔을 때는 대꼬챙이처럼 말라서 이번엔 하성이 나오지 않았다.숨돌릴 사이도 없이 그는 곧바로 환갑이 다된 박록주선생을 모시고 안양에 있는 삼막사로 들어갔다.쇠약해질대로 쇠약해 있었으나 몸속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오히려 힘이 되었다. 스승은 『명랑하게 불러라.소리는 미련해야만 한다.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가르쳤다.그리고 인분을 먹어야만 낼 수 있다는 소리를 너는 네 집념과 오기로 백일만에 끌어냈다고 말했다.그는 마침내 한스럽고도 깊고 장려한 그러나 구슬처럼 청명한 소리를 얻어내고야 만 것이다.진양조 여섯박자를 능란하게 엮어낼 수 있게 되자 그는 「적벽가」에 나오는 한문의 뜻을 알기 위해 이번엔 우전 신호렬선생에게 서예와 한문을 배웠다.마음이 밝아지자 눈도 밝아지는 듯했다. ○청명한 소리 얻어 68년부터 명창대회에 나가기 시작하여 수많은 해외공연,75년 남원 춘향제때는 우산을 쓴 관중들이 빽빽이 늘어선 마당 한가운데로 나가 심청가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소리에 자신이 취해 빗소리도 관중의 술렁거림도 들리지 않았었다.그리고 내게서 빠져나간 소리가 관객의 가슴속에 전달됐다가 다시 내몸속으로 들어오는 자유자재로운 차원을 경험할 수 있었다.이른바 「소리가 앵기면서」 솟구치는 환희가 분류처럼 가슴 한복판을 꿰뚫듯이 흘러내렸다. 이제 동편제 서편제의 갈래를 성큼 뛰어넘어 모든 난관을 딛고 일어선 초월의 경지,요즘은 소리속에 온자한 깊이가 배어들고 있는 시기다.더구나 지난해 4월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결혼한 부군 양명환씨가 모든 뒷바라지를 책임지고 있어 마음 편하게 「소리」만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그가 이루고 싶은대로 모든 소원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듯 그는 명창 칭호에 손색이 없는 반듯한 예술가의 단행을 평생 지키고 싶은 또하나의 소원을 지니고 있다. ▷연보◁ ▲1934년 1월10일 전남 광주출생 ▲1950년 광주여고1년때 김연수 창극단입단,조선국극단등 여성국극단에서 창극 활동 ▲1955년 공기남선생에게 「심청가」2년 사사,한만갑제 거문고 김난주씨에게 사사,강태홍제 가야금 원옥화씨에게 사사,춤광대 김영철씨에게 칠현금 사사 ▲1961년 만정 김소희씨에게 「심청가」「흥보가」3년간 사사 ▲1964년 전남 보성 정응민씨에게 강산제 판소리(박유전판)「심청가」「춘향가」「수궁가」사사 ▲1965년 박록주씨에게 안양 삼막사에서 백일공부 ▲1965년부터 우전 신호렬씨에게 한문과 서예 사사 ▲1968년 신인서예전 서예부 특선,제17회 국전 서예부 입선,국악협회 주최 명창대회 「춘향가」로 세종상 ▲1969년 김소희씨와 일본 교포위문공연 ▲1975년 일본 오사카에서 판소리「흥보가」「민요」공연,유럽지역 순회공연(파리∼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 ▲1977년 「심청가」완창(4시간30분) 서울시민회관별관 ▲1979년 「춘향가」완창(5시간30분) 세종문화회관대강당 ▲1980년 일본 와세다대학서 「심청가」공연 ▲1981년 제1회 대한민국 국악제에서 「심청가」완창공연 ▲1984년 신재효100주년기념공연 「춘향가」공연(국립극장 대극장) ▲1985년 「춘향가」전판공연(국립극장대극장),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보유자 후보자 지정·국악협회 이사 ▲1988년 「심청가」 서독 쾰른음대 초청공연 ▲1990년이후 해마다 국악대공연 ▲1991년 강산제 판소리「심청가」로 인간문화재 지정,미국 카네기홀에서 「심청가」「춘향가」공연 ▲1992년 「심청가」완창(국립극장)과 예술의 전당 야외음악당 공연,일본 도쿄서「심청가」공연,대한민국 국악제 독창,사단법인 새한전통예술보존회 설립·이사장취임 ▲1993년5월 호주 브리즈번 세계음악제에 한국대표로 출연,6월 KBS국악관현악단과 「춘향가」완창공연,부산문화극장에서 판소리 5마당 큰잔치 「심청가」공연,7월 새한전통예술 보존회 설립기념 「민족예술국악대공연」 ▲1977년부터 국악고·추계예술대·단국대·전남대 출강 KBS 제1회 국악대상 수상·국악부문 방송대상 수상 「춘향가」「심청가」「흥보가」(오아시스레코드사 출반)
  • “저온·쾌청”… 초가을 날씨 5일째

    ◎복더위 무색… 예년보다 3∼10도 낮아/오호츠크해 고기압 탓… 주말까지 계속 30도를 오르내리던 전국의 기온이 최근 크게 떨어져 5일째 이상저온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병의원과 약국에는 때아닌 감기환자들로 붐비고있으며 긴 소매와 겉옷을 걸친 시민들도 부쩍 늘었다. 또 남산에서 인천앞바다가 보일 정도의 청명한 날씨도 3일째 계속되고 있다. 기상청은 20일 『한랭다습한 오호츠크해고기압이 발달하면서 찬기류가 영동지방까지 유입돼 지난달 29일부터 낮최고기온이 예년보다 3∼10도가량 낮은 이상저온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기상청은 이같은 현상이 지난 16일부터 서울등 중서부지방에도 나타나고 있으며 주말인 오는 24일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7일의 경우 서울지방의 낮최고기온은 20.7도로 예년의 28.1도보다 7.4도가 떨어졌으며 대전은 21.5도로 7.2도,강릉은 19도로 9.5도,광주지방은 3.7도가 낮았다. 기상청은 『17일 많은 비가 내리면서 대기중에 떠도는 먼지등 부유물질이 씻겨 내려가 시정(시정)거리 35∼40㎞의맑은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면서 『이같은 현상은 평상시 15㎞의 시정거리에 비춰 1년중 극히 드문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저온현상과 10도가 넘는 일교차로 병의원과 약국에는 평소보다 30%나 많은 감기환자들이 찾고 있다. 내과전문의들은 『이번 감기는 고열이 나거나 편도선이 붓고 콧물이 나는 것이 특징이며 심할경우 기관지염·중이염등의 합병증도 유발할 수있다』면서 『충분한 휴식과 운동을 통해 감기를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 파란 서울하늘(외언내언)

    침침하던 눈이 갑자기 맑아진것 같다.서울을 둘러 싼 북악의 연봉이 손을 뻗치면 잡힐듯 가까이 보이고 남산과 북한산에선 멀리 인천앞바다까지 선명하게 보인다.이처럼 맑고 푸른,아니 푸르다 못해 파란 서울 하늘을 보는 것이 도대체 얼마만인가. 계속된 장마비가 잠시 멈춘 18,19일의 청명한 날씨는 서울 대기오염의 심각성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비가 오거나 안개낀 날도 아닌데 한강다리에서 남산도 잘 보이지 않고 하늘이 온통 희뿌옇던 것이 얼마나 비정상적인 것 이었던가 일깨워 주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멕시코시티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공기 나쁜 도시로 규정한 서울에 살면서도 우리는 서울 공기에 너무 길들여져 정상적인 것이 어떤 것인지도 잊어버린채 살아 왔다.서울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호흡기 질환과 피부질환을 유발하는 위험수준의 대기오염,주한 미군에겐 건강에 좋다는 새벽 조깅이 오히려 위험한 것으로 알려진 현실을 우리는 실감하지 못했다.광화문을 중심으로 반경 10㎞지역의 바위에 이끼가 사라진지 오래라는 관련학자들의 주장도,암의 발생에 관련 깊은 벤조피렌의 대기중 농도가 비흡연가들에게 하루 담배 한갑을 피우는 만큼의 피해를 주고 있다는 연구보고도 무심코 지나쳐왔다.이런 공기속에서는 『심장과 폐와 뇌의 손상이 우려된다』고 WHO가 이미 지적한바 있건만. 18,19일 서울의 시정거리는 35∼40㎞.장마비가 서울공기의 오염물질을 쓸어 가기전엔 10㎞정도였고 겨울 스모그가 심할 때는 1㎞에 불과할때도 많았다. 서울 대기오염의 주범은 아황산가스와 오존.석탄연료 사용에 의한 아황산가스는 줄어들고 있는 추세나 자동차 배기가스에 의한 오존오염은 계속 늘고 있다.대기오염에 관한한 우리 모두 가해자이자 피해자이다.침침한 눈을 밝게 하고 맑고 푸른 하늘을 계속 보기 위해선 우선 자동차 안타기 운동이라도 벌여야 되지 않을까 싶다.
  • 장마 일단 후퇴/어제 초복 맑음

    주말 많은 비가 내린뒤 일요일이자 초복(초복)인 18일 서울등 대도시지방에서는 한때 청명한 날씨를 보이며 장마가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기상청은 이날 『장마전선이 제주도 남쪽해상까지 후퇴,당분간 소강상태를 보이겠으며 오는 22일쯤 또 한차례 전국이 영향권에 들겠다』고 밝혔다. 기상청은 또 이날 상오 서울지방등에는 17일 내린 많은 비에 먼지등 대기부유물질이 씻겨 내려가면서 시정(시정)거리 35∼40㎞(평상시 15㎞)의 연중 드문 청명한 날씨를 보였다고 밝혔다. 한편 초복인 이날 전국의 낮최고기온은 20∼28도로 예년보다 다소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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