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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전총리,공관서 “공직정리” 짐 챙겨/야인 첫날 이모저모

    ◎아침에 찾아온 큰 아들 오히려 위로/오늘 사저로 이사… 화분등 미리 옮겨 이회창전국무총리의 야인 첫날은 공직생활 마무리 일정으로 시작되었다. 이전총리는 23일 아침 9시30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광화문 정부종합청사로 출근,대회의실에서 총리실 직원들의 이임인사를 20여분동안 받고 이임인사차 기자실에 들러 심경의 일단을 『앞으로 다시는 공직과 인연을 맺을 생각이 없다』는 말로 표현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정부의 개혁정책은 앞으로도 올바른 방향으로 성공해야 한다』면서 개혁의 성공을 기원했다. 개혁정책의 성공에 국가의 진운이 달려있다는 그의 지론이 다시한번 확인됐지만 「재상」으로서의 공직생활은 마감되고 평범한 야인으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이전총리는 곧바로 총리공관으로 돌아와 부인 한인옥여사(56)에게 짐을 꾸리라고 말하고 자신도 개인적으로 사용하던 물건들을 챙겼다. 이전총리는 이날 아침 일찍 큰아들 정연씨(31)등 가족들이 찾아왔을때에 오히려 그들을 위로할 정도로 담담했다고 한 측근이 전했다.이날 하오 이임사 내용을 논의하러 총리공관을 찾았던 이흥주총리비서실장도 『노타이셔츠 차림으로 무척 평화스러운 모습이었다』고 이전총리 근황을 전했다. 이실장은 『이전총리가 일요일인 24일 상오 구기동 사저로 이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비워둔 구기동 풍림빌라 가동 1층 사저는 하루종일 옛주인맞이 준비를 하느라 부산했다.공관직원들은 서울1트3109호 검은색 쏘나타승용차로 이전총리가 아끼던 오디오세트와 비디오등 가전제품과 옷가지를 실어 날랐다.난초화분도 8박스분량이나 옮겨왔다. 세간에 비친 이미지를 의식해서인지 자신을 「알부남」(알고보면 부드러운 남자)이라던 그는 『옛집에서 푹 쉴 생각뿐』이라고 한 측근이 전해주었다. 그는 사표를 제출해 수리가 된 뒤에도 「알부남」의 면모를 잃지 않았다.22일 하오7시쯤에는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친구의 환갑잔치에 부인 한여사와 함께 참석,친구의 환갑을 흔쾌히 축하해 주었다.한여사의 표정은 굳어있었으나 그는 별 내색을 하지 않았다.오히려 같이온 친구 6쌍의 부부들이 부자연스러워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전총리는 회갑모임에서 나온뒤 종로구 명륜동2가 75 부친 이홍규씨(89·변호사)댁에 들러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주기도 했다. 그는 소문난 효자다.매주 토요일에는 부친을 방문,가족모임을 갖고 시중의 여론을 듣는다.대쪽같은 소신이 가족모임을 창구로 해 유지돼 왔다는 게 친지들의 공통된 얘기다. 그러나 토요일 가족모임인 23일 저녁 모임은 가족들로부터 『고생했다』는 격려를 듣는 자리로 변할 수 밖에 없었다.이전총리는 이 자리에서도 별다는 얘기는 하지않고 그저 가족들의 얘기만을 묵묵히 들었다는 후문이다. 이전총리의 본격적인 야인생활은 아마 25일 신·구총리 이·취임식이 끝나야 시작될 것 같다.
  • 총리 전격경질… 청와대·총리실 표정

    ◎수표수리·후임지명 30분새 매듭 “충격”/“최근 언행은 통치권 훼손행위”/청와대/“나도 이제는 좀 쉬어야지… 담담/총리실 김영삼대통령의 22일 이회창국무총리 사표수리및 이영덕부총리겸통일원장관의 후임지명은 불과 30여분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져 청와대 관계자들은 물론 일반부처에서도 놀라움과 충격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들이다. ▷청와대◁ ○…김대통령은 이날하오 주례회동을 끝내고 돌아간 이전총리가 황영하총무처장관에게 사임서를 제출했다는 보고를 받은 직후인 하오5시7분쯤 박관용비서실장과 이원종정무·이의근행정수석,주돈식대변인을 급히 집무실로 불러 이전총리의 사표수리와 후임 이영덕통일부총리 지명사실을 발표하도록 지시. 이에 따라 주대변인은 5시24분쯤 춘추관 소회견실에서 석줄짜리 발표문을 낭독했으나 전격적인 사표수리 배경에 대해서는 함구. 이같은 전격성은 김대통령이 최근 이전총리의 최근 언행에 대해 감정적으로 매우 손상을 입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해석하는 분위기가 지배적.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전총리가 하오4시부터 40분동안 주례회동을 마친 뒤 총리실로 돌아가 황총무처장관에게 사임서를 제출한 것으로 미뤄볼 때 주례회동에서의 상황을 짐작할수 있지 않느냐』고 말해 이전총리가 최근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와 관련된 언행 때문에 김대통령으로부터 질책을 받았으며 이 때문에 사표를 제출했음을 시사. ○…이전총리의 발언에 대한 청와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느껴진 것은 이날 상오11시 무렵. 전날까지 논평을 하지 않았던 청와대 당국자들이 『무슨 불만이 있는지 우리는 모르고 있다』『아무소리나 막해도 되는 것이냐』하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던 것. 그러나 청와대 당국자들마저 이날 바로 사표제출과 수리가 이루어질 것으로는 예상치 못했던 상태. ▷총리실◁ ○…이전총리의 사임은 김대통령과의 주례회동 말미에 전격적으로 결정된 듯. 이전총리는 김대통령으로부터 전날의 발언에 대해 질책이 있자 이를 사임요구로 받아들여 사임의사를 표명,김대통령이 이를 접수한 직후 이영덕통일부총리에게 후임임명을 전화로 통보했다는 후문.이전총리는 하오4시45분쯤 청와대를 나서면서 카폰으로 황영하총무처장관에게 사직서를 써서 청와대에 전달할 것을 지시. 하오4시55분쯤 집무실에 도착한 이전총리는 청와대에 자신의 사직서를 제출하고 돌아온 황장관·이흥주비서실장과 잇따라 면담. 이전총리는 이어 비서관과 조정관들을 소집,사표를 냈음을 알리고 강형석공보비서관에게 기자실에 알리도록 지시. 이전총리는 하오6시10분쯤 사진기자들의 플래시세례를 받으며 이비서실장과 함께 삼청동 공관으로 직행했다가 하오6시40분쯤 이세중대한변협회장등이 주최하는 경기고동문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부인 한인옥여사와 외출. 갑작스러운 총리경질에 대해 이비서실장은 『어제 간부회의가 무거운 분위기속에서 진행되기는 했지만 이전총리가 사표를 낼 줄을 몰랐다』고 뜻밖이라는 반응. 총리실의 한 관계자는 『이전총리가 여러 차례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이날 사표를 제출하려고 한 것은 아닌 것 같다』면서 『김대통령과의 회동에서 김대통령이 이전총리의 국정장악의도에 제동을 걸었고 그에 따라 이전총리가 사직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 총리실 직원들은 대부분 『정말로 열심히 일을 해보려고 한 분』이라고 아쉬움을 표시하면서 그동안 총리실 주도로 추진해온 사업들이 차질을 빚을 것을 우려. ○…이날 퇴청에 앞서 이전총리는 사의소식을 듣고 집무실 앞으로 몰려든 20여명의 사진기자들을 위해 담담한 표정으로 잠시 포즈를 취해주기도. 이전총리는 기자들이 사의배경을 묻자 『별로 할말이 없는데….나도 이제 쉬어야지』라고 짤막하게 답변. 이전총리는 「스스로 사의를 표명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물론이지요』라고 말하고 『다음에 만납시다』라고 인사. 이전총리는 기자들이 엘리베이터까지 따라가 질문공세를 퍼붓고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자 웃으며 『다칠라』 『넘어진다』를 연발. 그러나 「청와대에선 경질로 발표했는데」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묵묵부답. ▷통일원◁ ○…통일원은 이영덕부총리가 총리로 발탁됐다는 소식을 접하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 전직원들이 일손을 놓은 채 그 배경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 통일원 직원들은 남북문제에 정통한 이부총리가 총리로 옮겨감에 따라 그 동안 통일원·외무부·안기부·청와대비서실로 분산된 대북정책을 일관성있게 조율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 특히 이신임총리서리와 호흡을 맞춰온 통일원 핵심간부들은 통일원의 위상도 덩달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면서 벌써부터 후임 통일부총리를 점치기도. 통일원 주변에선 신임 통일부총리로 이신임총리서리와 호흡을 맞출 수 있는 보수적 성향의 인물이 물망에 오르면서 L교수와 전직 L통일원장관 등이 조심스럽게 거명. 당사자인 이신임총리서리도 이날 하오 청와대측으로부터 통보를 받고 알았을 정도로 철저한 보안 속에 전격적으로 인사가 이뤄진 탓인지 이신임총리서리는 기자들의 회견 요청에 한동안 응하지 않다 송영대차관 등 주요 간부들과 구수회의를 가진 뒤 간단한 소회를 피력. ◎“내각 장악·대통령보좌 미흡이 원인”/민자/“정치적 불행”… 내각 총사퇴를 촉구/민주/정치권 어떻게 보나 ▷민자당◁ ○…민자당에서는 이전총리의 전격 경질에 대해 충격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월권으로 비쳐질 만큼 「지나칠 정도의 소신」이 직접 배경이 된 문책성 인사로 해석. 이와 함께 이전총리의 사표 제출및 수리,후임자 지명의 수순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데 대해 『청와대측의 사전준비가 있었던 게 아니냐』고도 추정. 김종필대표는 이날 하오 당사 집무실에서 총리경질 소식을 보고받고 『알았다』고만 말하고 더 이상의 언급을 회피.김대표의 한 측근은 『김대표에게 이같은 사실을 보고하자 미리 알고 있는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전해 공식적인 경질발표에 앞서 청와대측으로부터 언질이 있었음을 시사.이 측근은 『어제 캐나다총독을 위한 청와대만찬에서 이전총리가 인사를 하는 모습이 평소 같지 않은 듯했는데 결국 이렇게 돼 충격을 받았다』고 피력. 문정수사무총장은 『문책성 같다』고 말하면서 『이전총리가 내각을 잘 장악해 단합을 이끌어 대통령을 보좌해야 하는데 대통령중심제 아래서 그런 기대에 잘 부응하지 못한 것 같다』고 경질원인을 분석.문총장은 이어 『새 총리는 덕망과 경륜을 갖춘 친화력이 뛰어난 분으로 내각을 슬기롭게 이끌어 갈 것으로 믿는다』고 기대. ▷민주당◁ ○…민주당은 이전총리의 경질을 「충격」으로 받아들이면서 앞으로 정부안에 보수세력의 목소리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우려. 김원기대표권한대행은 이날 하오 이전총리의 사임소식을 듣고 급히 마포당사에 나와 『이총리의 경질은 김영삼대통령 정치의 가장 큰 불행』이라면서 『결국 유아독존적인 김대통령의 1인정치가 이총리의 소신을 수용하지 못한 것』이라고 총리경질의 성격을 규정. 김대표대행은 『이총리는 역대총리 가운데 헌법이 부여한 총리의 권한을 충실히 지키려고 가장 노력한 사람』이라고 전제,총리의 각료제청권을 들어 『이번 총리교체가 문책성 경질인 만큼 내각은 총사퇴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 이부영최고위원은 『이번 총리경질은 김영삼정부의 개혁후퇴를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면서 『앞으로 양식있는 관료들과 지식인을 비롯한 대다수 국민들의 현정부에 대한 이반현상이 예상 된다』고 우려. 한편 민주당은 23일 상오 최고위원회의에 이어 김대표대행의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총리경질과 상무대 의혹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등 현안에 대한 당의 입장과 대응방안을 밝힐 예정.
  • 「선특사교환」 철회/이 통일부총리/핵 최우선 해결은 불변

    ◎북에 추가사찰 조속수용 촉구/북벌목공 원하면 모두 귀순 허용 정부는 15일 교착상태에 빠진 북한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북한 3단계회담에 앞서 남북 특사교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선특사교환」원칙을 철회했다. 정부는 이와함께 러시아 벌목장을 탈출한 북한노동자들이 망명을 희망할 경우 적법한 절차를 거쳐 희망자 전원을 국내에 데려오기로 했다. 이영덕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이날 상오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에서 제2차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를 주재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은 정부방침을 발표했다. 이부총리는 발표문을 통해 『북한의 태도는 특사교환을 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극명하게 입증해 주고 있다』고 지적하고 특사교환을 더 이상 추진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천명했다.그러나 『핵문제를 최우선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이부총리는 이어 『비핵화공동선언에 입각한 상호사찰 실시를 위한 남북대화가 진행돼야 한다』고 말해 적절한 시기에 고위급회담과 핵통제위 재가동 등으로 남북대화를 추진할 뜻을 시사했다. 이부총리는 앞으로 『남북대화추진과 관련한 문제는 한미간에 협의해 새로운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히고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추가 핵사찰을 조속한 시일내에 수용할 것을 촉구했다. 정부는 이같은 방침을 토대로 16일 내한하는 로버트 갈루치 미국무부차관보와 미­북3단계회담 개최문제 및 남북대화 재개시기 등 북한핵문제 해결방안을 폭넓게 협의할 예정이다. 이부총리는 또 러시아내 북한벌목공 문제와 관련,『정부는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탈출자 본인이 망명을 희망할 경우 적법한 절차를 거쳐 희망자 전원을 국내에 데려오기로 방침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 북핵 정부입장 조율/오늘 안보정책회의

    정부는 15일 상오 이영덕부총리겸 통일원장관 주재로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에서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를 열고 유엔 안보리의장성명 이후 북한의 동향을 종합점검하고 북한핵문제해결을 위한 정부입장을 정리한다.
  • 「…부산항에」(외언내언)

    유명한 시인에게 시비가 있듯이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들에겐 노래비가 세워진다.대중가요는 대중의 기쁨과 슬픔을 대변하면서 한 시대의 국민정서,또는 사회상까지를 표현하고 있다.일제때는 나라잃은 국민들의 슬픔과 한을 담은 애절한 노래들이 많이 불려졌었다.지금도 진한 애수가 묻어나는 「타향살이」「황성옛터」「나그네설움」등이 다 그런류의 노래들이다. 노래비로는 유달산 중턱에 세워진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 그 효시일듯.69년의 일이다.「낙화유수」등 숱한 히트곡을 남긴 남인수의 노래비는 87년송추에,고복수의 「타향살이」노래비는 91년 울산에 세워졌다.지금도 애창되고 있는 백년설의 「나그네 설움」은 92년 그의 고향인 경북 성주에 건립되었다. 이들의 노래비는 주인공의 작고후에 세워진 것이 공통점.그런데 우리시대의 슈퍼스타로 군림하고 있는 가수 조용필의 노래비가 부산 해운대에 세워진다고 한다.새겨질 노래는 「돌아와요 부산항에」.『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형제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우네』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우리국민은 말할것도 없고 일본에서도 대히트를 했던 그의 대표곡이다.지금은 연변에 사는 우리동포들도 이 노래를 부르며 고향생각에 눈물짓는다고 한다. 조용필이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처음 부른것은 72년.그러나 발표직후에는 반응이 별로 신통치 않았다.그러다 75년 일본 조총연사람들의 모국방문이 허용되면서부터 『목메어 불러봐도 대답없는 내형제여』란 노랫말이 기폭제가 되면서 삽시간에 퍼져나갔다.한맺힌 이별과 만남의 절규가 이 노래를 정상으로 올려놓았다. 부산의 향토연구민간단체인 「부산을 가꾸는 모임」은 대리석과 청동으로 된 이 노래비를 5월7일 제막할 예정이다.『부산을 소개하는 대표적 노래로 이 지역의 애틋한 정서가 듬뿍 배어있어 영원히 기억될 노래』라는 것이 건립자들의 변이다.
  • 조계종 사실상 양분/어제 승려대회/「범종추개혁회의」 출범

    ◎총무원 점거 밤새 대치/서암종정 불신임 결의/총무원측,승려대회 결의 수용 거부 대한불교 조계종 승려 2천여명은 10일 하오1시 서울 조계사에서 서옹 전종정등 원로·중진스님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전국승려대회」를 열어 서암종정에 대한 불신임과 서의현총무원장의 모든 공직박탈을 결의했다. 그러나 총무원측은 승려대회를 금지한 서암종정의 유시를 들어 승려대회의 결의사항을 무시하고 현 종헌·종법상의 권한을 계속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승려대회사상 최대 규모로 열린 이 대회에서 참석자들은 원로회의가 이날 상오 의결한 서암종정 불신임을 추인했다.원로회의 스님 13명 가운데 8명은 이날 상오9시 서울 삼청동 칠보사에 모여『종정이 원로회의에서 결정한 승려대회를 중지하라고 일방적으로 유시를 내려 종헌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종정 불신임을 의결했었다. 승려들은 또 현집행부를 대신해 종단개혁을 추진할 기구로「범종단개혁회의」를 결성,의장에 월하 통도사방장,부의장에 종하 중앙종회의장과 설조 종회의원을,상임위원장에 탄성 공림사조실을 뽑았다. 대회를 주최한 범종추측은「범종단개혁회의」가 본사주지·선원대표·승가대교수·포교사·범종추관계자등 1백∼1백20명으로 구성돼 2∼6개월동안 한시적으로 운영되면서 ▲현집행부의 해산과 업무이전 ▲종헌·종법 개폐 추진 ▲사찰운영제도 개선등 종단개혁을 주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회에는 서옹전종정말고도 원로회의 위원 가운데 혜암의장직무대행,응담·비용·원담·승찬·도견·지종스님등 7명과 범종추 상임대표 청화,전총무원장 탄성등 원로·중진스님 30여명이 참석했다. 대회에 참석한 서옹전종정은 법어를 통해『불교개혁은 시대적 사명』이라고 강조하고『종단개혁이 성취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승려대회 참석자들도「불교개혁 선언문」을 채택해『한국불교는 오랫동안 은둔의 관행과 종권다툼의 병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자성하고『이 세계에 새로운 삶의 가치와 삶의 질서를 제시하는 불교개혁의 길로 나아갈 것』을 다짐했다. ◎경찰,승려해산 시도 10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열린 전국승려대회에 참석한 범승가종단개혁추진회(범종추) 승려 1백20여명은 대회를 마친 뒤 하오 4시55분쯤 조계사내 총무원 건물에 난입,집행부측 승려들을 몰아내고 5층 건물 가운데 1·2·3층을 한때 점거하고 새벽까지 농성을 벌였다. 경찰은 이들을 모두 강제해산시키려 했으나 총무원측 승려 50여명이 자신들까지 해산될 경우 범총추측 승려들이 건물을 전부 점거할 것이라며 동시해산에 반대,대치상태가 계속됐다. 경찰은 범종추측 승려들이 건물에 진입한뒤 양측 승려들이 충돌할 당시 기물을 파손하거나 난폭행위를 한 혐의로 범종추측 승려 75명과 총무원측 승려 56명등 모두 1백31명을 연행했으며 이들 가운데 범법자를 가려 사법처리 할 방침이다. 경찰은 이날 하오 5시쯤 범종추측 승려들이 총무원 건물에 난입하자 13개 중대,1천5백여명을 조계사 앞마당에 모여 있던 범종추측 승려 7백여명을 격리시킨 뒤 건물을 점거한 승려들에 대한 해산작전에 들어갔었다. 이 과정에서 범종추·총무원측 승려,경찰사이에 충돌이 발생,보성스님(진관음사 주지)등 승려 10여명과 제1기동대 소속 최우성의경(19)등 경찰관 2명이 중상을 입는등 2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 「통일안보 조정회의」 가동/정부/핵문제 등 대북정책 총괄·조율

    ◎미도 북한문제 전담 고위조정팀 발족 한미 양국은 7일 북한핵문제를 포함한 대북한정책을 일관성있고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각각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와 고위정책조정팀을 구성했다. 정부는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가 발족됨에 따라 8일상오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에서 이영덕부총리겸 통일원장관 주재로 첫 회의를 열어 북한핵문제를 포함한 대북정책 전반을 점검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통일외교안보에 관한 모든 현안을 조정회의에서 종합적으로 검토,부처간 혼선을 방지하고 정책을 일관성있게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이부총리는 이날 회의를 마친 뒤 『신설된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는 대북정책 전반에 걸쳐 각부처의 의견을 포괄적으로 조정하는 역할를 할 것』이라면서 『특히 한 부처의 현안을 통일안보정책의 전체구도에서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앞서 김영삼대통령은 7일 안보관계장관 조찬회의를 주재하면서 대북정책을 일관성있게 추진해나가기 위해 통일부총리·외무장관·국방장관·안기부장·대통령비서실장및 외교안보수석으로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를 구성하라고 지시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는 통일부총리가 주동이 되어 최소 주1회이상 소집하며 구성원중 누구라도 회의소집을 요청하면 즉각 회의를 여는 기민성을 가지라고 당부했다. ◎북핵대사에 갈루치 【워싱턴=이경형특파원】 클린턴미대통령은 7일 북한핵 정책에 관한 관계부처간 입장을 협의 조정,추진해나갈 「고위정책조정팀」을 구성토록 지시하고 그 의장겸 북한핵전담대사에 로버트 갈루치 국무부 정치군사담당차관보를 임명했다.
  • 바람직한 역사의 방향/변태섭(일요일 아침에)

    요새 신문이나 방송들은 모두가 새로운 국사교과서 개편안에 대한 논란으로 떠들썩하다.특히 현대부분 용어에 대하여는 학계 뿐 아니라 정치계까지도 비판의 소리가 요란하다. 이 개편안을 작성한 「국사교육 내용전개준거안 연구위원회」는 사방으로부터 공박을 받아 몹시 난처한 모양이다.몇년전 이와 유사한 작업을 맡아 곤혹을 치른 바 있는 나로서는 남의 일같지 않은 동정이 간다. 86년 문교부의 「국사교육심의회」의 책임을 맡아 새 국사교과서의 집필방향을 제정하였을 때도 역시 각계로부터 혹독한 공박을 받았다.이번의 문제점이 주로 현대부분이고 진보주의사관에 비판이 가해진데 반하여 당시의 문제점은 고대부분이고 재야사학자들의 국수주의사관으로부터 비난을 받은 점이 대조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때 재야사학자들은 끈기있게 자기들의 학설을 교과서에 반영하 것을 요구해 왔다.단군을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든가,고조선의 영역이 만주 뿐 아니라 황하 또는 산동반도까지 이르렀다는 주장등이 대표적인 예였다. 이러한 국수주의적인 역사인식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다는 느낌이 든다.오히려 근래에는 재야사학자 뿐 아니라 문인이나 의사 등 역사학과는 무관한 사람들까지도 가세하고 있는 형편이다.이들 비력사학자들의 역사서술은 오늘의 정통사학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역사연구가 역사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님은 물론이다.오히려 역사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국민들이 역사에 관심을 갖고 그 나름대로 연구를 한다는 것은 역사학계로 볼때 고무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그러나 그들의 역사서술이 한국사를 왜곡하고 국민들을 오도한다면 이는 결코 방치할수 있는 일이 아니다. 역사연구의 주역은 아무래도 대학 사학과에서 역사학연구에 대한 엄격한 교육을 받고 과학적인 역사연구의 경험을 가진 전공학자라야 함은 상식적인 일이다.문헌을 고증하는 방법이나 역사인식의 방법론 같은 역사연구의 기초지식을 쌓은 후에 역사서술에 손을 대야 비로소 학문으로서의 역사학은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런 역사학의 기초지식도 없는 사람은 정통사학에서 볼 때 문외한일수 밖에 없다.좋게 표한하여 「아마추어 사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이들의 만용에 가까운 무책임한 역사서술은 역사전공자의 눈에는 지극히 위험하게 비치는 것이다. 그들은 대개 한국사를 미화하려는 경향이 있다.공자가 우리민족의 조상이고 한자가 우리 고유의 문자라고 우긴다.고대일본이 우리 조상들에 의하여 나라가 세워지고 그들의 고대문화는 전적으로 우리의 전수에 의한 것이라 주장한다.일반국민으로 볼 때는 기분 좋은 학설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결코 과학적인 한국사는 아닌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북한학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얼마전의 뉴스에 의하면 평양에서 단군의 유골이 발굴되었는데 전자측정 결과 5천년 전의 것으로 판명되어 단군이 실존인물임이 증명되었다는 것이다.5천년 전이라면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에 해당하는데 어떻게 청동왕관을 지닌 단군의 실존이 가능하였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국수주의사관과 더불어 이번 국사교과서 개편안에서 문제가 된 진보주의사관에 대하여도 우리들은 한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있을 것 같다.이번 개편안은 각계의 비판과 건의가 받아들여져서 별 문제없이 처리되는 듯 하지만 국사학계 일각에 일고 있는 진보사관에 대하여는 우리 스스로의 반성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역시 역사학은 엄격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실증과 그 사실에 대한 객관적인 의미부여가 생명이라 생각된다.어떤 고정된 이념을 미리 설정하고 그에 맞추어 역사를 해석한다면 그것은 허구적이 될 우려가 있다.역사학의 이데올로기화는 역사학의 본질을 퇴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역사학계는 냉정한 자기 성찰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이제 한국사학계의 새로운 방향은 국수주의적 역사인식과 함께 진보주의적 역사인식에서도 자기를 보호하는데 있다고 생각된다.
  • 백제의 불교미술(백제를 다시본다:10)

    ◎7세기초 반가사유상 “동양 최고” 평가/금동 등신불… 자비미소 살아있는듯/석불재료는 6세기 납석에서 화강암으로 발전/최초 금동불상은 6세기 선정인좌상… 공예기술 바탕 걸착 양산 백제는 비록 영토는 크지 않았지만 일찍이 그 문물은 동아시아에서 작으면서 빛을 발하는 금강석 같은 존재였다. 백제는 고구려와 거의 같은 시기의 서기384년에 불교를 중국의 동진으로부터 전해받았으나 불상이 본격적으로 조성된 것은 150여년이 지난 6세기초부터였다.한성시대(4세기초∼475년)나 웅진시대(475∼538년)에도 불교사찰들이 건립되었으나 아직까지 이 두 도읍지에서 백제불상이 발견된 예는 없다.그런데 웅진시대에는 양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양의 연호를 따서 대통사가 건립되는등 몇 유적에서 웅진시대의 기와가 발견되고 있다.또 최근 발굴된 무령왕릉에서는 묘실내부 전체를 연화문전으로 장식하고 왕과 왕비의 두침과 족침에 연화화생을 표현하는 등 극락왕생의 염원을 강렬하게 나타내고 있다. ○극락왕생 염원 표현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 웅진시대에 예배대상인 불상이 마땅히 조성되었어야 한다.그러나 지금까지 공주지방에서 웅진시대의 불상은 단편조차 확인되지 않고있다.그 이유는 무엇일까.현 단계로는 어떠한 추측도 할수없다.고구려의 경우도 539년에 만든 연가칠년명금동여래립상이 현재로는 가장 오랜 불상이니 이로 미루어 백제도 6세기초,그러니까 다시 부여로 서울을 옮긴 사비시대(538∼660년)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불상의 조성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가장 오래되었다는 서울 뚝섬에서 출토된 5세기의 청동제 선정인좌상은 백제것이 아니고 중국제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받아들인 불상은 그와 같은 선정인불상인듯 한데 실제로 사비시대에 가장 오래되었다고 보이는 불상은 두 손을 배에서 모은 부여군 규암면 신리 출토 선정인좌상이었다.그 만듦새는 투박하고 서툴러서 인체를 표현하는 불상제작이 얼마나 어려웠던가를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백제는 곧 그동안 축적된 금속공예기술을 바탕으로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중국의 북위 내지 동위시대의 불상양식을반영한 훌륭한 불상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즉 부여 정림사지 출토 납석제삼존불좌상,서산군 운산면 보원사지출토 금동여래립상,부여 군수리사지출토 납석제여래좌상과 금동보살립상,부여군 규암면 신리 출토 금동보살립상등이 그것이다.모두 백제의 초기 불상을 대표하는 것들이다.이들 불상은 힘있고 우아한 모습은 그당시 중국불상을 능가할 정도이며 더 나아가 백제 특유의 조형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이 가운데에서도 특히 부여 군수리사지출토 김동보살립상은 온화한 미소,날카로운 천의의 표현,적절한 신체의 비례등 자신있는 기술을 바탕으로 백제특유의 정채를 보여주는 백제불상의 백미라 할수 있다. 특기할 것은 백제는 일찍이 납석이란 석재를 써서 불상을 조각한 일이다.부여지방에 많은 납석으로 불상을 조각한 것은 중국에도 없는 일이며 우리나라에서도 백제가 처음이었다.납석은 희고 약간의 빛을 발하므로 백제인들은 옥석대신 납석을 써서 옥제불상의 효과를 내려한것 같다.또 납석은 그리 단단하지 않으므로 정교하게 조각할수 있었다.그리하여 백제인은 작은 불상뿐만 아니라 예산 화전리 사면석불처럼 등신대의 납석제 불상까지도 조성하기에 이르렀다.그러므로 거대한 납석덩어리의 네 면을 다듬어서 네면에 불상을 새긴 예산의 사면불은 백제의 석불로서는 기념비적이라 할만하다. 7세기에 접어들면 백제는 불교미술의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660년 백제가 망하기까지 중국의 북재,수,초당의 불상양식을 반영하는 불상들이 만들어졌다.7세기초의 불상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저 유명한 국보83호 금동련화관사유상이다.북재에는 백옥으로 만든 20㎝내외의 작은 사유상들이 많이 조성되었으나 백제에서는 등신대의 크기로 만들어 독립적인 예배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백제인들은 사유상에 온갖 힘을 기울여 백제나름의 조형성을 살렸다. ○손가락마다 생동감 아마도 이 금동사유상은 우리나라 삼국시대 불상가운데 가장 위대한 걸작이라 할만하며 더 나아가 동양의 그당시 고대불상에서 이에 견줄만한 것이 없다.소년의 애띤 얼굴엔 잔잔한 자비의 미소가 흐르고 검지와 중지를 살짝 뺨에 댄 오른손가락과 왼쪽 무릎에 올린 오른 다리의 발목에 내린 왼손가락은 마디 마디가 생동감에 차있어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대좌에 느러뜨려진 보살의 옷자락은 자유분방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가 미풍에 약간 휘날리듯 표현되어 있어서 역시 생동감을 주고있다.이 사유상은 이와같이 전체적으로 풍부한 양감으로 생명력을 살리고 있어서 하나의 예술품으로 영원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흔히 이 사유상은 일본의 경도 광륭사 목조사유상과 비교되고 있다. 두 불상은 비슷한 점들이 많아 광륭사상이 백제에서 건너간 것이라 하나 다른 점들도 많아 일본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있어서 연구과제로 남아있다. 한편 7세기에는 화강암이란 새로운 재료를 써서 불상을 조각하였다.화강암 역시 그 당시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조각재료로서 채택하지 않던 소재인 것이다.화강암은 경도가 강하고 입자가 굵어서 표면처리를 매끄럽게 처리하기 어려우므로 조각하기에 부적당하였다.그러나 백제인들은 우리나라에 많은 화강암을 이용하여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석탑을 건립하고대형불상을 조성하였으니 이 역시 우리나라에서 백제가 처음으로 착상한 것이다.불상의 경우 전북 정읍 신천리 석조여래립상이 원각상으로 조각되었을뿐 대체로 암벽에 불상을 새긴 마애불이 조성되었다.말하자면 처음에 납석을 재료로 썼으나 부서지기 쉬운 석질이므로 화강암이란 재료를 선호하게 된 것이라 생각된다. ○신앙 자유롭게 표현 그 대표적인 예가 태안 마애삼존불과 서산 마애삼존불이다.태안 삼존불은 보주를 손에 든 작은 보살상을 가운데 두고 양옆에 우람한 모습의 아미타상과 약사여래를 둔 삼존형식인데 이러한 도상은 다른 나라에 없는 것이다.또 서산 삼존불도 중앙에 여래립상이 있고 좌우에 사유상과 보주봉지보살립상이 협시하고 있는 특이한 도상이다.두 예가 모두 조각기법이 우수하고 독특한 도상이어서 7세기에 이미 독자적 조각기법을 개발하고 백제특유의 신앙내용을 자유롭게 표현하였음을 알수 있다. 백제는 중국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중국의 영향을 받았으나 독창력을 발휘하여 화강암이라는 재료로 석탑형식과 양식을 확립하였을 뿐만 아니라 불상에 있어서 백제나름의 형식과 양식을 발휘하였다. 백제미술은 단순하고 단아하며 정밀하고도 생명감이 있다.또 그 풍토성처럼 부드럽고 고요하여 적조미가 있다.그러나 애석하게도 백제는 그 문화가 절정에 이르렀을때 망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백제미술은 요절한 천재와 같다. ◎반가사유상/삼국 독자적 신앙배경서 유래/싯다르타태자 사색 모습… 2점 국보 지정 삼국시대 불상의 형식은 불교 수용경로에서처럼 중국의 유행과 깊은 연관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6세기 전반 중국에서 성행하던 미륵·석가는 6세기 후반에 삼국의 불상에 반영됐다.상당한 시간적 거리를 두고 들어왔다. 그러나 불교가 삼국의 대중적 신앙으로 발돋움한 7세기에는 중국의 유행과 관련이 없는 독자적인 불상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불상이 있다면 반가사유상이다.반가사유상은 중국에서는 거의 소멸해버린 서기 600년을 전후해 삼국 모두에서 가장 중요한 불상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그 이유가확실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불교가 토착화되는 과정에서 형성된 우리의 독자적인 신앙적 배경이 아닌가 한다.반가사유상의 유행에 대한 미술사학자들의 견해는 대개 이런 쪽으로 일치하고 있다. 반가사유상은 깊은 사색에 빠져 있는 싯다르타태자의 모습이다.인간과 우주에 대한 깊은 통찰의 자세를 조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싯다르타태자는 이같은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됐다.그러나 사유상은 인간을 구원하는 절대자는 아직 아니다.그럼에도 중요한 예배의 대상이었다.한국인은 「깊은 사색을 통한 깨달음의 성취」라는 불교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절대자가 되기 이전 사색의 단계까지를 서슴지 않고 경배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이 시대 사유상에 대한 숭앙은 세계미술사에 길이 남을 뛰어난 조각품들을 남겼다.바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보 78호 「금동일월식반가사유상」과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국보 83호 「금동삼산관반가사유상」이다.
  • 북 탈영등 사회기강 해이 심화/통일원 분석

    ◎작업거부·조기퇴근 움직임도 송영대통일원차관은 30일 최근의 북한동향과 관련,『북한에선 현재 탈영병이 늘어나는등 사회일탈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송차관은 이날 상오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에서 열린 통일고문회의(의장 민관식)에 참석,이같이 밝히고 『북한에선 최근 작업을 거부하거나 조기에 퇴근하는 등의 움직임도 있다』고 덧붙였다. 송차관은 이어 북한핵문제와 관련,『유엔안보리의 1차 조치후 일정기간 다변적인 대화노력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미·북간 막후 실무접촉이 가동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송차관은 또 『오는 4월6일로 예정된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 핵문제와 남북관계의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서 그들의 입장을 밝힐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통일고문회의는 이날 통일원으로부터 「북한핵문제와 관련 대북정책 추진방향」이라는 보고를 들은 후 토론을 벌였다.
  • 북한 군사동향 분석/안보장관 간담회

    정부는 25일 상오 이회창국무총리 주재로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안보장관간담회를 열고 김영삼대통령의 일본·중국방문기간에 북한의 군사동향을 분석하고 유사시 위기관리대책을 논의했다. 이병대국방부장관과 김덕안기부장은 이날 회의에서 『북한은 현재 전군에 비상령을 내리고 있고 비상통신점검,방호시설증가와 함께 주민여행증 발급중지,전쟁불가피론 선전,대남적개심 고취등 긴장된 사회분위기를 보이고 있다』라고 보고했다고 오린환공보처장관이 밝혔다. 이총리는 『김대통령의 일본·중국방문기간은 물론 핵문제가 대화해결의 틀을 벗어나 유엔안보리 제재의 단계로 접어들 가능성에 대비,강도높은 대북경계와 한·미연합방위체제의 강화등 완벽한 대비태세를 유지하라』고 지시했다. 이날 회의에는 이총리와 한승주외무·이국방·오공보처장관및 김안기부장·천용택비상기획위원장·박관용청와대비서실장·송영대통일원차관등이 참석했다.
  • 일본서 돌아온 청동 자루솥/출토지·유출경로 “아리송”

    ◎1926년 경주 서봉총서 공식발굴 추정/국립발물관 소장품과 달라… 남분 도굴품 일수도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간 경북 경주시 노서동 서봉총 출토품으로 보이는 청동자루솥(청동초두)이 우리나라로 다시 돌아와 학계의 관심을 끌고있다.그 이유는 19 26년 당시 스웨덴 황태자 구스타프 아돌프가 참관한 가운데 공식 발굴된 서봉총유물이 어떤 경로를 통해 일본으로 빠져나갔느냐에 있다.문제의 청동자루솥은 국내 수집가인 진이근씨(47·부산시 중구 중앙동2가)가 최근 일본으로부터 들여와 24일 공개한 것. 소장자가 수없이 바뀐 이 유물의 보관상자 표면에는 「경상북도 경주 서봉총일구이육년 청동산량수류초두」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이어 책이름으로 여겨지는 지나고동정화」라고 써넣은 뒤 이같은 사실을 로슈(능추)가 썼다고 덧붙여놓았다.그래서 첫 소장자 로슈가 누구냐에 초점이 모아지지만 일본 역대 컬렉터 중에는 로슈라는 아호를 가진 인물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누가 어떤 경로를 거쳐 처음 청동자루솥을 소장하게 되었을까.궁금증이 더욱 증폭될 수 밖에 없다.이에 대해 일본학계는 다만 심증적으로 「지나고동정화」저술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왜냐하면 청동자루솥 보관상자 기록속에 「지나고동정화」가 언급되었기 때문이다.이 저술의 지은이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있는 일본 고고학 초창기의 학자.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60년대 초반까지 금동유물 전문학자로 활약했다. 이에대해 서봉총발굴에 참여했던 일본 원로고고학자 아리미츠(유광교일·84)씨는 자루솥이 한 점밖에 출토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그 한 점이라는 것은 현재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다른 청동자루솥.그러나 서봉총은 2개의 무덤이 쌍으로 붙은 표주박모양의 무덤(표형분)이고,남분이 파괴된 상태에서 북분을 발굴했기 때문에 남분 도굴품일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돌아온 청동자루솥은 항아리모양의 몸통 한가운데에 띠를 둘렀고,말굽형 발이 셋 달린 삼발이.그리고 봉황머리의 주둥이와 속이 빈 4각막대형 손잡이,산양 머리모양의 뚜껑꼭지가 돌출되었다.주둥이 반대쪽의뚜껑 가장자리와 몸통사이를 여닫이 경첩으로 연결했다. 이 유물을 살펴본 동국대 정명호교수(고고학)는 뚜껑이 달아나지 않도록 고착시킨 경첩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서봉총 출토 청동자루솥과 바로 다른 점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서봉총의 본래 명칭은 경주지역 고분 일련번호에 따라 부여된 노서동129호분.발굴을 참관한 황태자의 나라 스웨덴(서전)과 출토유물인 금관의 봉황장식에서 각각 한자씩을 따서 서봉총으로 명명했다.그 유명한 금관(경주박물관소장)과 지금은 잃어버린 연호인 「연수원년」과 「신묘년삼월」이라는 새김글자가 든 은합,금제허리띠 등이 출토되었다.새김글씨에 따라 AD451년경 고신라의 무덤으로 보고있다. 어떻든 흘러나간 유물이 되돌아왔다.그러나 청동자루솥에 대한 모든 수수께끼가 풀리지는 않았다.그래서 국내 학계는 보고서용으로 가져갔다가 내놓지 않은 서봉총 출토유물일 수도 있다는 주장을 폈다.
  • 혁신적 농업기술(백제를 다시본다:9)

    ◎수전벼농사 중국보다 더 발달/농용저수지 벽골지 1천만평 규모/뛰어난 토목기술 입증… 철제 농기구도 개량해 사용/6∼8세기경 많은 기술자들 일본에 건너가 「농업혁명」 일으켜 무령왕릉이 발굴되었을 때 우리는 거기서 백제의 찬란한 문화와 과학기술을 만나게 되었다.그 기막히게 아름다운 전돌(타일)의 제조기술과 금속 장식품들의 뛰어난 제작 솜씨는 6세기초의 공장 기술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단계에 이르고 있는 것이었다.그 세련된 디자인과 그것을 흙과 불의 조화로 빚어낸 과학과 기술은 백제를 새롭게 조명하기에 충분했다. ○제철·제련기술 우수 그리고 최근에 또 하나의 놀라운 백제의 기술적 산물과 만나게 되었다.지난해 12월에 부여 능산리 백제유적에서 발굴된 김동용봉봉래산향로라고 문화재 전문가들이 이름 지은 청동향로가 그것이다.고고학자들과 미술사학자들은 6∼7세기 공예품 중에서 최고의 걸작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그 아름다운 디자인과 생동하는 조각 솜씨를 완벽하게 청동으로 부어낸 주조기술은 그러한 평가를 받기에부족함이 없다.금으로 도금해서 황금색으로 빛나는 향로의 화려한 모습에서 우리는 백제 공장 기술의 또 다른 측면을 발견하게 된다. 백제는 삼국 중에서 과학 기술과 문화 예술이 앞섰던 나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백제에 관한 과학기술 관련 기록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 몇가지밖에는 찾아볼 수 없다.유물과 유적도 적다.자료는 오히려 중국과 일본에 더 많다.특히 「일본서기」에는 백제의 과학기술에 관한 수많은 기록들이 남아 있다.백제의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고대 일본에 건너가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전해주고 가르쳤는지를 생생하게 기술하고 있다.백제의 영향은 고대 일본의 문화적 성장에 절대적인 것이었다. 천문·역법과 지리학,점성술 등의 고대 과학이 백제의 학자들에 의해서 일본에 전해지고 교육되었고,의약학이 전수되었다.역박사·역박사·의박사 등 교수와 같은 직책의 학자가 일본에 파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큰 사찰을 짓고 탑을 세우기 위해서 그 일을 가르치고 감독하는 전문기술직 교수인 노반박사·와박사 등이 백제에서 건너갔다.이러한 과학자와 전문기술자의 관직인 박사는 「삼국사기」에 신라의 기록에만 나타나는데,백제에도 있었다는 사실이 일본의 사서에 나타나 있는 것이다. 백제의 제철·제련 기술과 금속 공예기술이 우수했다는 사실도 일본의 사서와 유물에 의해서 입증되고 있다.칠지도라는 4세기의 철제 칼이 그것을 말해 준다. ○둑 둘레 2.2㎞ 호수 칼 양쪽에 3개씩 가지칼이 달려있는 길이 75㎝의 칼 양면에 새겨진 61자의 금상감으로 된 명문에는,이 훌륭한 칼이 백제에서 위왕에게 하사하여 후세에 오래도록 전해지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뜻이 적혀 있다. 이렇게 백제는 과학기술의 선진국이었다.그리고 백제의 과학기술은 혁신적 농업기술을 바탕으로 해서 전개된 것이었다.백제의 문화가 높은 수준에 이르게 된 것은 백제의 농업기술이 크게 발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많다.가난하고 배고프고 메마른 땅에서보다는 넉넉하고 배불리 먹고 사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산수가 좋은 땅에서 문화의 꽃이 핀다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느냐는 생각이다. 학자들은 4∼5세기경에 있었던 백제 농업기술의 발달이 고대의 농업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획기적인 것이었다고 말한다. 백제 사람들은 그들 나름의 벼농사기술을 전개하였다.그 당시 벼농사를 짓는 기술은 중국이 제일 앞서 있었다.그래서 중국 화남지방의 벼농사법은 중국 대륙과 이어진 다른 나라들에서는 그대로 행해지고 있었다.그러나 백제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그들은 중국 화북지방의 발달된 밭농사의 농경기술을 화남지방의 벼농사법에 도입하여 한반도 서남부의 논(수전)농사를 발전시켰다. 백제는 넓은 평야와 비옥한 토양을 가진 나라였다.게다가 풍부한 수량을 가진 하천들이 그 땅을 흐르고 있었다.그러나 한반도는 1년의 강수량이 여름 석달에 편중되어 있고 벼농사를 짓는데 가장 중요한 시기인 봄에는 가물기가 일쑤여서 늘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다.백제의 기술자들은 그 문제를 수리시설의 개발로 해결해 냈다. 둑을 쌓아 물도 가두고 도랑도 파서 그 물을 필요할 때 논에 대는 방법이었다. 김제 땅의 벽골지논 그 대표적인 시설로 유명하다.「삼국사기」에 의하면,벽골지는 330년에 만들어졌는데 그 둘레가 1천8백보라고 했다.그러니까 둑의 둘레가 2.2㎞나 되는 큰 인공호수를 만든 것이다.김제를 그 때에는 벽골이라 했기 때문에,벽골에 둑(제)을 쌓아 만든 인공호수라고 해서 벽골지(지)라고 부르게 되었다.그 호수의 남쪽이 호남지방,서쪽이 호서지방이다. 우리나라 내륙지방에서 가장 큰 호수인 이 벽골지는 지금도 호남평야의 전천후 농업을 실현시키는 농업용 저수지니까 그 때 이 호수를 만드는 역사는 정말 국력을 기울인 큰 공사였을 것이다.기록에 의하면 이런 저수 수리시설의 아이디어는 이미 다루왕 6년(33년)에 남쪽에서 벼농사를 시작할 때부터 있었다고 한다. ○논바닥·수로 등 발견 이러한 수리시설 기술의 전개는 백제의 토목기술과 맞물리는 것이다.관개 수리 공사의 활발한 전개는 수전 경작지를 크게 확대할 수 있었다.「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 무왕 때(7세기 전반)의 인공호수 공사는 최근에 있었던 부여 궁남지 유적 발굴 조사로 많은 사실이 확인되면서 그 기술수준이 평가되고 있다.백제의 토목기술자들은 6세기에서부터 백제가 패망한 뒤인 8세기에 이르는 동안 일본에 건너가서 많은 대규모의 관개 수리 공사의 기술 지도를 했다는 일본의 기록과도 연결되는 것이다. 궁남지 유적의 발굴 조사로 드러난 6∼7세기 때의 논의 유구는 관개 수리 기술과 관련된 백제 농업기술의 수준을 확인하고 조명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그리고 또 하나 백제인이 개발한 혁신적 농업기술이 있다.뛰어난 금속기술을 바탕으로 철제 농기구를 만든 것이다.호미와 괭이를 주로 쓰던 농업에서 소가 끄는 쟁기를 써서 논밭을 가는 농업으로의 발전은 획기적인 기술 향상이었다.백제의 기술자들은 쇠로 만든 쟁기의 보습 모양을 개량했다.백제 땅에 알맞는 보다 효율적인 보습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러한 백제의 농업기술과 토목기술은 일본에 건너가서 일본의 고대 농업에 혁명을 일으켰고,그 영향은 산업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적 변혁으로까지 파급되었다. ◎벼농사 발달과정/1세기초 도입 4세기경 보편화/궁남지서 한국최고의 수전유구 발굴 백제는 삼국가운데 가장 비옥한 땅을 차지했다.그래서 농업을 기반으로 국가경제력을 한껏 키워나갔을 것이다.특히 사비시대는 백제가 마한사회를 통합한 시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남쪽 평야지대 모두가 백제경영권에 들어가 있었다. 평야지대는 논농사에 의한 도작농업을 필연적으로 발전시킨다.여기에는 관개를 위한 농업토목기술이 반드시 수반되었다.백제가 사비로 천도했을 무렵은 벼농사가 보편화된 가운데 농업토목도 상당수준에 이른 시기가 아니었나 한다.그이유는 1세기초반에 이미 벼농사를 장려했다는 기록에서 찾아진다.「삼국사기」백제본기는 「다루왕6년(AD33년)2월 영을 내려 남쪽 주군에 벼농사를 시작케 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리고 AD330년에는 벼농사에 필요한 용수확보책으로 오늘날 전북 김제에 벽골제를 쌓는다(삼국사기).최근 벽골제 수문지 2개소에 대한 발굴결과에 의하면 제방의 높이는 4.3m,윗변의 너비 7.5m,밑변의 너비 17.5m로 밝혀졌다.현대의 수준측정법을 적용한 만수면적은 37㎦(1천1백20만평)로 계산되어 당시 토목기술이 고도로 발달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 부여 궁남지 도수로 확인발굴에서 논바닥과 수로,수로와 관련한 방천및 물막이시설을 발견했다.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최고의 논 유구로 볏짚도 함께 발굴되었다.이 논유구는 6세기후반∼7세기초에 이르는 사비시대 벼농사 흔적이라 할수 있다. 백제가 남부 곡창지대를 경영권에 넣어 경제력을 축적할 수 있었던 기반은 선사시대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했다.BC2세기경 호남지방에서 벼농사를 지었다는 사실은 전북 부안 소관리와 고창 송요리에서 출토된 민무늬 토기 밑바닥의 볍씨자국에서 드러난다.그리고 부여 부소산 군창지 출토 숯쌀은 7세기경 쌀이 군량미로 쓰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청동기시대 암각화 발견/경주서/인물상 등 26가지 새겨져

    【경주=이동구기자】 경주시 석장동 서천강변 김장대 바위벽에서 BC3세기 청동기시대의 인물상과 화문 암각화가 발견돼 선사시대 회화및 생활 풍속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유적조사팀이 최근 발견한 금장대 암각화는 높이 1.8m,너비 9m 크기의 바위벽에 방패형 동기와 화문,머리부분에 깃털을 장식한 인물상등 26컷이 무더기로 음각된 것으로 경주지역에서 최초로 발견됐다.암각화가 발견된 지역은 경주시를 외곽으로 흐르는 서천과 북천이 합쳐져 형산강을 이루는 곳으로 신라시대 8경의 하나인 「김장락안」으로 알려진 곳이다. 암각화를 조사한 동국대 김길웅교수(고고미술학)는 『금장대의 암각화가 울진군 언양면 대곡리와 고령군 양전리 암각화와는 다른 독특한 인물상으로 고대 생활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 좋은가정 실천연,제1회 사례발표회 열어

    ◎“행복한 가정 이렇게 만들었어요”/10개 가정 뽑아 모범적 생활모습 청취 제1회 행복한가정 사례발표회가 21일 서울 삼청동 한국출판문화협회 대강당에서 좋은가정만들기 실천운동협의회 주최로 열렸다. 올해 유엔이 정한 세계 가정의 해를 맞아 「한국의 좋은 가정」이란 주제로 열린 이 발표회에서는 한국의 모범가정으로 뽑힌 10가정이 사례를 발표하고 「좋은 가정 만들기」를 범국민적 캠페인으로 펼쳐나가기로 했다. 이날 모임에서는 가족회의로 가족간의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김경범씨 가족과 가족신문을 만들며 가족의 중요성을 깨닫는 전창렬씨 가족 등이 사례발표를 해 많은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또 4대가 고향을 지키며 170년간을 살아온 채수찬씨 가족,삶의 공동체인 농장을 함께 가꾸어온 임정도씨 가족의 사례발표도 큰 호응을 얻었다. 한편 이날 발표회에서는 대회장인 한국인간교육원 유달영회장의 축사와 함께 한국청소년개발원 한승희박사의 「새로운 가정상과 부모의 역할」에 대한 기조강연이 있었다.한박사는 『아이들에게 좋은말을 많이 하면 할수록 부모의 행동은 초라해진다』면서 자녀지도의 첫걸음은 부모가 말을 행동으로 실천하는데서부터 비롯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좋은가정만들기 실천운동협의회는 한국적인 가정의 모습을 창출하기 위해 사단법인 한국인간교육원과 가정의 행복을 만드는 모임인 「한울타리 가족」의 연합으로 만들어진 모임이다.
  • 능산리 금동향로 “금빛 신비” 캐낸다

    ◎부소산 맞새김장식 아말감수은법 사용/향로로 6세기 제작,같은 기법일 가능성/문화재연,신라·가야 등 고대유물 도금 분석 세기적 보물로 떠오른 부여 능산리 출토 김동용봉봉래산향로가 발산하는 찬란한 금빛깔의 신비가 벗겨질 것인가.이 물음에 대한 해답이 곧 나오게 되었다.문화재연구소가 비슷한 시기의 다른 고대 금동유물 도금분석을 마침으로써 백제금동유물 도금술을 밝힐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문화재연구소가 최근 도금분석을 마무리한 고대 금동유물은 모두 20점,백제유물 3점,신라유물 7점,가야유물 1점,백제및 통일신라유물 3점,기타 6점 등으로 되어 있다.분석자료로 사용된 유물은 관,투구와 갑옷,말장식,불구,방울,일반장식 등의 금동제품.이들 유물에 대한 도금분석결과 거의가 「아말감수은법」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냈다. 금이 수은에서 녹으면 수은과 같이 액체가 되기 때문에 이를 청동제품에 칠하는 방법이 아말감수은법.수은에 용해된 금물을 칠한 뒤에는 수은의 비등점인 3백75℃까지 열을 가한다.이때에 수은은 증발해버리고 금피막만 남게 되는데,몇 차례 같은 방법을 되풀이 해야 완벽한 도금이 된다는 것이다.이번 분석에서 가야시대의 불구인 금동소탑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이같은 도금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 가운데 부여 부소산성출토 맞새김장식품은 능산리 출토 금동향로와 같은 시기에 해당하는 백제유물로 여겨지는 금동제품.부소산 출토 맞새김장식(투조장식)역시 이번 문화재연구소 분석결과 아말감수은법 도금제품으로 가려졌다.도금피막의 두께는 1.5∼18㎛.특히 도금표면은 균일하고도 치밀한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도금술이 상당 수준이었음을 입증했다. 도금층에 대한 금·은의 비율분석에서는 금이 95.3%,은이 0.2∼4.7%로 조사되었다.이는 고순도의 금을 사용한 흔적인 동시에 사비시대 정련기술의 우수성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그래서 부여 능산리에서 지난해 연말 출토된 금동향로가 발굴 당시 찬란한 금빛깔을 머금고 있었던 까닭도 바로 사비시대 도금술과 정련기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다. 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연구실 강대일박사팀은 능산리 출토김동용봉봉래산향로에 대한 도금분석에 착수했다.자연발생적으로 떨어져나온 도금편을 샘플로한 비파괴분석방법으로 도금분석을 진행하고 있다.향로자체가 완벽한 상태로 출토되어 유물의 물성과 도금술은 물론 연대,제작기법까지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그동안의 도금분석연구결과를 토대로 4월 초순까지 분석작업을 마무리 짓는다.
  • 「21일이전 특사」 무산/북,절충안 거부… 19일 8차 접촉

    【판문점=구본영기자】남북한은 16일 상오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제7차 실무접촉을 갖고 특사교환문제를 논의했으나 의견접근을 보지 못해 오는 19일 8차 접촉을 갖고 절충을 계속하기로 했다. 우리측은 이날 접촉에서 특사교환 절차에 관한 타협안을 제시했으나 북측은 12일의 6차 접촉에서 제시한 「공동보도문」발표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우리측이 내놓은 타협안을 거부했다. 우리측 송영대 수석대표는 첫 발언을 통해 『우리측이 귀측의 의견을 충분히 고려한 절충안을 제시한 것은 쟁점문제를 조속히 타결하고 특사교환날짜를 확정해 절차문제를 모두 매듭짓기 위한 것』이라고 북측의 성의있는 태도를 촉구했다. 송대표는 이어 특사 임무에 대한 북한측 주장 가운데 「전민족대단결도모」와 「민족자주성을 지키는 문제」등을 모두 포괄,「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원칙에 기초한 조국통일 실현문제」로 하자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북측 박영수대표단장은 그러나 「쌍방이 특사교환 실현의지에 관해 원칙적으로 합의했다」는 내용의 공동보도문을 발표하자고 거듭 주장하면서 특사의 임무와 교환순서및 체류일정에 관한 기존입장을 고수했다. 송대표는 접촉이 끝난뒤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측이 절충안 제시도 없이 공동보도문이라는 장애물을 가지고 나온데 대해 실망했다』면서 『그러나 원칙을 견지하면서 대화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 “북의 실무접촉 무성의 유감”

    ◎이 총리/「특사」 무산땐 「팀훈련」 재개 시사 이회창국무총리는 10일 난항을 겪고 있는 남북특사교환을 위한 실무접촉과 관련,『북한이 과연 특사를 교환할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면서 『이런 식의 모양만을 갖추기 위한 회담이라면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이총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은 한국을 배제한채 미국과의 2자회담에서 남북한간의 현안을 해결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총리의 이같은 발언은 북한이 앞으로의 실무접촉에서도 성실성을 보이지 않을 때는 우리가 대화를 중단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총리는 『북한은 좀더 진지한 자세로 회담에 임해 특사교환이 남북한 당사자간의 대화에 의해 해결돼야 한다』면서 『지금까지 진행된 5차례의 회담 결과를 놓고 볼 때 회담의 필요성에 회의를 느낀다』고 덧붙였다. 이총리는 『이같은 발언은 북한의 태도에 대한 강한 유감의 표명』이라고 설명했다. 이총리는 북한의 특사교환 거부로 팀스피리트훈련이재개되고 미국과 북한간의 3단계 고위급회담이 연기될 가능성에 대해 『지난 2일 미국과 북한의 동시발표때 특사교환을 팀스피리트훈련의 중단과 3단계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명시했다』면서 『이는 한국과 미국간 협의의 결론』이라고 강조했다. 이총리는 『팀스피리트훈련 재개 여부는 6차 접촉이 끝난 뒤에나 언급할 문제일 뿐 아니라 군사상의 문제로 가능성과 시기를 단언하기 어렵다』면서도 『전제조건이 이행되지 않을 때는 팀스피리트훈련이 재개될 수도 있다는 국방부측의 발표는 실제로 재개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에 앞서 이날 상오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이총리주재로 이영덕통일부총리 한승주외무부장관 이병대국방부장관 김덕안기부장 정종욱청와대외교안보수석 이흥주총리비서실장등이 참석한 가운데 통일관계고위전략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 정부는 오는 12일로 예정된 남북한 6차실무접촉에서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4개항의 요구조건에 강력히 대처하고 특사교환의 조속한실현을 촉구하기로 결정했다.
  • 특사교환 9일 다시 절충/어제 남북실무접촉

    ◎북측 4개조건 제시 실질토의 못해/“올 「팀」 훈련 중단”/국방부 발표 【판문점=구본영기자】 남북한은 3일 상오 10시 판문점 우리측 지역 「평화의집」에서 특사교환을 위한 제4차 실무접촉을 가졌으나 북한측이 패트리어트미사일 반입중지등 2개항의 요구조건을 추가 제시함에 따라 실질적인 토의에 들어가지 조차 못했다. 양측은 그러나 오는 9일 상오10시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제5차 실무접촉을 갖고 특사교환문제에 대한 절충을 계속하기로 했다. 지난해 10월25일 3차 접촉이후 4개월여만에 재개된 이날 접촉에서 송영대 우리측 수석대표는 특사교환 절차에 대한 북한측 주장을 대부분 수용하는 합의서 수정안을 제시하고 특사의 조속한 교환을 촉구했다. 송대표는 특사의 임무로 ▲비핵화 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돌파구 마련 ▲남북 기본합의서 이행 ▲정상회담 개최문제 ▲평화통일 실현 ▲기타등 5개항을 제시, 이 부분에 관한 북한측 주장을 거의 그대로 수용했다. 북측은 그러나 지난해 3차례의 접촉에서 내건 핵전쟁 연습중지와 국제공조체제포기등 2개 조건 이외에 ▲패트리어트미사일 반입중지 ▲김영삼대통령의 발언해명등도 요구해와 절차문제는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북측 박영수수석대표는 『핵을 가진자와는 악수할 수 없다』는 김대통령의 발언을 철회하고 패트리어트미사일 반입을 중지할 것을 계속 요구하면서 특사교환 합의서안은 아예 제시하지 않았다. 북한측은 그러나 4개항의 요구사항이 특사교환의 전제조건이냐는 우리측의 질문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표명을 하지 않은채 『특사교환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사항』이라고 주장했다. 이에대해 송대표는 『실무접촉에서는 특사교환의 절차만을 논의하는 것이 적절하다』면서 『귀측의 요구사항 제시는 부당하고 부적절할 뿐아니라 불필요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송대표는 접촉을 마친뒤 이날하오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측은 북측 주장을 대부분 수용하는 특사교환 합의서 수정안을 제시했다』면서 『그러나 북측은 합의서안 조차 제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송대표는 『북한은특사교환을 조기에 실현하려는 의지가 희박한 것으로 본다』면서 『그러나 오는 21일 이전에 반드시 특사의 교환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북한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핵사찰 완료 조건부 정부는 3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이 성공적으로 완료되고 남북간에 특사교환을 통해 핵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협의가 이루어진다는 전제하에 올해 팀스피리트(TS)한미연합군사기동훈련을 실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국방부 김영철대변인은 이날 외무부 관계자등이 참가한 가운데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TS훈련 조건부중단을 공식발표했다.
  • 미·북 뉴욕합의/한·미 일단 유리한 고지

    ◎「팀훈련 중지카드」로 핵사찰 확보/한·미/3단계회담 집착… 남북대화 약속/북한/3국의 손익계산서를 뽑아보면 지난달 26일 미국과 북한이 뉴욕에서 합의한 4개항에 대한 우리와 미국·북한의 「손익계산서」를 쓴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와 미국이 「약간」 이익을 본 것 같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따라서 북한이 「조금」 손해를 본 듯하다.그러나 북한은 합의문에 「막판 뒤집기」를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아 언제고 상황이 바뀔 수 있다고 보는게 옳다. 한쪽의 일방적 승리로만 끝날 수 없는 이유는 협상의 성격에서 비롯된다.한승주외무부장관은 북한과의 핵협상을 『제로섬게임이 아닌 넌제로섬게임』이라고 말한다.누가 완전히 이기거나 지는 게임이 아닌 서로 주고 받는,즉 서로 이익이 되는 게임이라는 것이다.이는 핵협상에서 서로 얻고자 하는 것이 꼭 상치되는 것이 아니라 보완적인 측면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그래서인지 한장관을 비롯한 정부관계자들은 뉴욕 4개 합의사항에 대해서도 이같은 공식을 적용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 두나라는 이번 핵협상의 기본목표를 ▲핵확산 금지를 위한 북한의 핵투명성 보장 ▲남북관계의 개선에 두고 있다.북한이 원하든,원하지 않든 협상을 이 방향으로 이끌어가려 한다. 그러기 위해 이번 합의에서 두가지를 북한에 줬다.하나는 올해 팀스피리트훈련의 중지이고,다른 하나는 미국과 북한의 3단계회담 재개 약속이었다.대신 합의문대로라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과 남북 특사교환을 위한 실무접촉을 얻어냈다.물론 이는 북한이 한국과 미국 두나라에 양보한 것이다. 먼저 각각의 무게를 따져보면 팀스피리트훈련 중지는 북한이 얻었다기 보다 한미 두나라가 이를 이용,사찰 수용을 받아냈다는게 정확할 것 같다.왜냐하면 한미는 이미 2년전 이를 격년제로 실시하기로 한데다,올해는 예산도 배정하지 않는 등 원래부터 실시 의사가 별로 없었다.결국 북한이 공개발표를 요구하자 이를 역이용해 IAEA의 사찰 실시를 받아낸 셈이다.애초부터 「없었던 것」을 줌으로써 한반도 위기상황의 초래를 막고,핵투명성 확보에 한발짝 더 다가선것으로 볼수 있다. 미국과 북한의 3단계회담 재개 약속도 비슷하다.이미 두차례나 열린바 있고,북한을 가능한 한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려는 우리로서도 3단계회담의 재개를 원하고 있는 상황이다.더구나 이 회담은 지난해 12월29일 이미 재개를 합의한 상태였다.우리가 이 「카드」로 얻은 것은 특사교환을 위한 실무접촉이다.만일 특사교환까지 이뤄진다면 우리는 보다 주도적인 입장에서 북한의 개방과 핵문제의 해결을 유도할 수 있는 효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북한이 다 잃은 것은 아니다.언제고 꼬투리를 잡아 중단할 수 있는 남북 실무접촉의 재개를 약속함으로써 팀스피리트훈련의 중지와 3단계회담의 재개 약속을 문서화 하는데 성공했다.또 한미 두나라의 끈질긴 요구에도 불구,「특사교환 실시」를 합의문에 명시하지 않았고 사찰도 「담보의 연속성 보장을 위한 것」으로 규정해 여전히 「칼자루」를 손에 쥐었다고 할 수 있다. 합의문에 따르면 IAEA의 북한핵 사찰이 어려운 상황에 빠질지도 모른다.소식통들은 북한이 손익을 재보다 여차하면 판을 뒤엎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특사교환,순조로운 사찰등 진행과정이 「이면 약속」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때 한미 두나라가 「55」라면 북한도 최소한 「45」는 얻은 셈이라고 할 수 있다. ◎공휴일 불구 관련부처 긴급전략회의/북 수정제의 소식에 대기중 대표팀 “씁쓰레”/남북대화 관련부처 이모저모 정부의 외교·안보·통일부처 관계자들은 1일이 공휴일임에도 불구,정상근무를 하면서 남북한 특사교환을 위한 실무접촉에 관한 전략을 수립하느라 부산하게 움직였다. 정부 관계자들은 미국과 북한 사이에 이미 합의된 이날 실무접촉이 무산된데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이틀 뒤인 3일 실무접촉을 갖자는 수정제의가 온 것이 일단은 다행이라는 반응이다. ▷총리실◁ ○…이회창국무총리는 이날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3·1절 기념행사가 끝난 뒤 삼청동 공관에 머물면서 북한측의 전화통지문이 왔는지를 수시로 확인. 이흥주총리비서실장과 김시형행정조정실장도 세종로 종합청사에 출근,상황을 예의 주시. ○이 총리,수시로 확인 이총리는 이날 상오 11시10분쯤 북한으로부터 3일 상오 10시 실무접촉을 갖자는 수정제의가 오자 하오 2시부터 삼청동 공관에서 긴급 통일·안보관계 고위전략회의를 여는 등 기민한 대응. 이날 회의에는 이영덕통일부총리,한승주외무,이병대국방장관과 김 덕안기부장,정종욱청와대외교안보수석이 참석해 북한측이 합의사항을 깼음에도 우리가 팀스피리트 훈련중지 선언등 합의사항을 그대로 이행할지 여부를 집중 논의. ▷통일원◁ ○…남북대화 주무부서인 통일원은 이날 북한의 대남 전화통지문을 수신하는 남북연락사무소 관계자 뿐만 아니라 이영덕부총리,송영대차관,구본태남북회담사무국장등 주요 간부들이 전원 비상대기 상태에서 북측 회신을 기다리며 실무접촉이 연기될 때등에 대비한 대응책을 검토. ○“따질것은 따져야” 이날 상오 특유의 「회담복」인 짙은 감색 양복을 입고 출근,하오에라도 혹시 실무접촉이 이뤄질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던 우리측 실무접촉 대표인 송차관은 상오 11시10분쯤 북측이 3일로 실무접촉 연기를 수정제의해오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씁쓸한 표정. 송차관은 『북한이 1일 실무접촉에 응하지 않은 것은 일단 약속을 깬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면서 『실무접촉이 이뤄지더라도 북한측에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는게 정부의 입장』이라고 언급. 송차관은 그러나 특사교환을 위한 실무접촉을 오는 3일 갖자는 북한측의 회신에 대해 『회신내용을 볼때 특사교환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북측이 특사교환의 전제로 삼았던 이른바 핵전쟁연습 중지와 국제공조체제 포기등을 사실상 철회한 점을 주목. 한편 송차관은 이날 통일·안보관계장관 고위전략회의가 끝난뒤 『IAEA사찰과 실무접촉이 이뤄짐과 동시에 팀스피리트훈련의 조건부 중단을 발표하기로 합의된 만큼 팀스피리트훈련의 중단 발표는 실무접촉이 이뤄진 뒤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강경한 자세. ▷외무부◁ ○…한승주장관을 비롯,최동진차관보,장재용미주국장,김삼훈핵담당대사등 관계자들이 아침 일찍부터 사무실에 출근해 남북한 특사교환문제에 대한 구수회의를 계속. ○아침 일찍부터 출근 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이 이미 합의된 1일의 실무접촉을 파기할 가능성이 처음부터 높았다』면서 『이는 북한이 아직도 남북한 관계의 개선에는 소극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 외무부는 이어 워싱턴 주재 공관을 통해 미국 정부와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북한이 약속을 어긴데 대해 미국이 어떠한 반응을 보여야되는지를 놓고 협의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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