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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남북대화 응할것”/한 외무 전망

    한승주 외무부장관은 30일 『미국 공화당의 상하양원 장악에도 불구하고 북·미 제네바합의를 변경하거나 대체에너지 부담을 한국에 떠넘기는 등 대외정책의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장관은 이날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에서 열린 정부와 민자당의 고위당정회의에서 이같이 말하고 『미국 공화당의 선거 승리로 외교·군사위 등에 보수적 인사의 진출이 예상되나 청문회 결의안 등을 통해 북한의 성실한 합의이행을 철저히 감시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장관은 이어 『공화당이 지배하는 미국 의회가 미국의 재정부담을 덜고 한국에 이를 떠맡기려 할 가능성은 예상되지만 대체에너지는 미국이 부담하기로 한·미간에 합의돼 있으므로 대체에너지를 한국이 부담할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다. 한장관은 『경수로 지원은 남북대화가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며 따라서 북한도 현재의 다른 얘기에도 불구하고 머지 않아 남북대화에 임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 「고향마을」 연작 조각전 개최 김창희씨

    ◎“한국적 삶의 아름다움 조형화”/“인간·자연은 일심동체” 입체적 표현 『제가 만들어내고있는 인체,특히 집합적인 인체는 우리가 늘 만날수 있는 일상적인 사람들입니다.그들속에서 한국적인 삶의 아름다움 또는 한국인의 정서를 이끌어 내려는 것입니다』 강남 쥴리아나 갤러리(514­4266)에서 초대전을 열고있는 조각가 김창희씨(서울시립대 교수)의 말이다. 근래 서울은 물론 뉴욕,동경,모스크바 등의 전시를 통해 주목받고 있는 김씨는 서구적인 방법에서 벗어나 우리다운 것으로 바꿔 보려는 끊질긴 집념과 시도를 보이고있는 작가.특히 최근의 추상화 작업은 괄목할 만하다. 『저의 추상작업은 90년대 들어 줄곧 다뤄온 「고향마을」의 주제를 조형적으로 더욱 농도짙게 표현하려는 새로운 시도입니다』 이같은 시도에 따라 기왕에 보여주었던 구상적 조형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하나하나의 조형물을 추상작업으로 개조해 나가고 있다는 설명이다.『인간과 자연은 별개가 아니라 일심동체임을 「고향마을」에서 설명하려했으며 최근의 추상작업은 그 주제를 설명적이기 보다는 우리에게 낯익은 조형요소를 끌어들여 무의식속에 파묻혀있는 감각의 인지들을 재생해 내려는 것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특히 김씨가 이번에 완성한 「고향마을」연작은 흙과 청동으로 어울어지는 흰색 페인팅의 작품들로 선과 면이 단순 명료하고 명쾌해 한층 입체감을 이루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김씨는 이번 전시에 이같은 작업의 「고향마을」외 「환상가족」,「환상여인」등 생명력 넘치는 근작 25점을 내놓았다.
  • 「세계화구상」 구체화/오늘 당정회의 개최

    정부와 민자당은 김영삼대통령이 「시드니 선언」을 통해 밝힌 「세계화 구상」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30일 하오 서울 삼청동 국무총리공관에서 고위당정회의를 열기로 하는등 장·단기 국가경영전략을 마련하는 일에 나섰다. 이영덕 국무총리와 이홍구 통일부총리,홍재형경제부총리등 관계 국무위원들과 김종필 민자당대표를 비롯한 당4역,정치·경제·사회문화 정조실장등 당정 고위간부들이 참석하는 이날 회의에서는 정치·경제·사회·문화등 각 분야에 걸쳐 정부가 추진해온 국제화 방안들을 근본적으로 재점검한 뒤 중·장기및 단기별,분야별 중점추진과제를 선정,강력히 실천하기로 다짐할 것으로 알려졌다.
  • 울주 대곡리 청동기시대 암각화(한국인의 얼굴:7)

    ◎위엄 담긴 큰 입… 우두머리인듯/유난히 긴 코… 역삼각형 얼굴/옆에는 고래그림… 포경 입증 우리 민족은 BC 1000년쯤 부터 시작한 청동기시대에 접어들어 오늘과 같은 모습의 틀을 잡았다.신석기시대에 먼저 자리잡았던 인류와 좀 늦게 들어온 북방인종이 함께 민족을 형성해 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민족의 기원과 밀접한 신석기인과 청동기인들이 한 자리에 만들어 놓은 흥미로운 유적이 있다.경남 울주군 언양면 대곡리 반구동 태화강 상류 강가의 바위그림 유적이 그것이다.이들 두 인류는 시차를 두고 70m 높이의 바위벼랑 한 부분을 캔버스로 삼아 바위그림을 새겼다.그림은 높이 2.5m,너비 9m에 이르는 부분에 밀집되었다.띄엄띄엄 드물게 새긴 그림을 합뜨리면 가로로 29m나 길게 뻗쳤다. 바위그림은 신석기시대 부분과 청동기시대 부분이 뚜렷이 구분되고 있다.대곡리에 일찍 들어온 신석기인들 쪼기로 평면그림을 새겼다.내용은 고래를 중심으로 한 물짐승과 사슴 위주의 뭍짐승이 주류.고래떼 위쪽과 사슴떼 위쪽에는 각각 사람 하나씩을 배치했다.그두사람은 성기를 내민 남자들이다.자기 위력을 뽐내는 고래잡이꾼으로 여길 수 있는 그림이다. 그리고 뒤이어 들어온 청동기인들은 신석기인들과 수법을 달리한 선그림을 한 무더기로 새겼다.교미하는 멧돼지,거꾸로 뒤집힌 큰 고래,고래를 부위별로 나눈 그림,어딘가에 갇힌 짐승과 줄무늬가 난 짐승,사람 얼굴 등을 표현했다.사람을 다룬 인물상은 얼굴만을 클로즈업한 탓에 신석기인들이 새긴 인물상에 비해 표정이 훨씬 뚜렷하다. 이 청동기시대의 대곡리 사람 얼굴그림은 전체윤곽이 팽이모양의 삼각형이다.눈썹과 코가 유난히 길고 눈은 크다.얼굴윤곽이 삼각구도라는 점에서 턱이 뾰족해 보여야 할 텐데,턱이 빈약스럽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입가에 위엄이 담겼기 때문일 것이다.귀는 왼쪽 하나만을 달랑 새겼다.수염도 적당히 자라 얼굴이 범상치 않다.그래서 얼굴의 주인공을 대곡리 청동기인집단의 우두머리 쯤으로 보고 있다. 고래 그림에는 밭고랑 모양의 줄 여남은 개를 그어놓았다.이 고래는 1백50m나 가라앉는 잠수능력을 지녀 여간해서 잡기 힘든 고래다.큰 고래라고도 하고 수염이 많아 수염고래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오늘날 포경선들이 노리는 사냥감도 수염고래다.당시 대곡리 사람들도 수염고래를 잡아 먹거리로 쓰고,불을 밝힐 기름도 얻고 싶었을 것이다.이들은 실제 고래를 잡았다.고래를 부위별로 나눈 X­레이식 투시 그림을 바위에 새겨놓음으로써 고기 분배방식도 일찍 터득한 것으로 보인다.어쨌든 대곡리 청동기인들은 신석기시대 부터 이어진 포경전통을 가지고 있었다.대곡리에서 멀지않은 장생포는 얼마전만 해도 고래잡이 항구로 흥청댔다. 대곡리 바위그림에서 교미하는 멧돼지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풍족한 사냥은 반드시 번식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교미를 강조했다.특히 수컷의 웅크린 자세에다 힘을 주었다.선 쪼기로 X­레이식 투시수법으로 새긴 이 그림은 멧돼지 번식뿐 아니라 모든 사냥감의 번식을 빈 상징물로도 풀이될 수 있다.이같은 투시수법의 동물그림은 북구 스칸디나비아쪽에도 많이 나타난다. 바위그림에는 U자 모양의 선각 안에다 멧돼지,또는 호랑이로 보이는 짐승을 새겨 넣었다.이는 짐승을 함정에 빠뜨렸거나,짐승 길들이기 등으로 해석하는 그림.대곡리 바위그림 유적은 두 가지 기능을 지녔다는 결론에 도달한다.그 하나는 그림속의 얼굴 주인공과 같은 우두머리의 집전 사냥감의 풍요와 번식을 기원했던 제의유적이 아닌가하는 것이다.또 동물의 생태 등을 통해 샤냥기술을 가르친 교육장일 수도 있다.
  • 문민정부 1년9개월 성과와 과제

    ◎실명제 바탕 지속적 내실성장/환경·도덕성회복 큰 이슈로 부각/학생시위 줄고 관공서·경찰서 문턱 낮아져 ▷생활개혁 사회◁ 지난달 20일 하오 고려대 교양관 앞마당에서는 학생 20여명이 모여 도덕성 회복에 비중을 둔 학교측 교육개혁안을 맹렬히 비난하고 있었다. 그러나 집회에 참석한 몇몇 학생회 간부들만 공청회 개최등을 주장하며 열을 올리고 있을 뿐 다른 학생들은 눈길 한번 주지않고 도서관이나 강의실을 찾아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문민정부 출범이후 아주 흔히 볼 수 있게 된 대학가의 풍경 가운데 하나다. 정부의 개혁작업으로 「정치개혁은 정부에,교육개혁은 대학에 맡기자」는 심리가 학생들사이에 널리 퍼지면서 대학가에는 경실련학생회 같이 오히려 생활개혁이나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는 「신운동권」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반대를 위한 반대」식의 구태의연한 투쟁 중심의 운동은 더이상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한총련의 한 간부는 이를 두고 『학생운동권의 복지부동시대』라며 변화를 솔직히 시인했다. 지난해 슬롯머신사건등 세찬 사정바람으로 경찰 간부들이 도마에 올라 『만만한게 공무원』이라는 자조섞인 목소리도 있었지만 민생치안을 맡고있는 경찰서 분위기도 갈수록 달라지고 있다. 종로경찰서 형사2반 장모경장(35)은 『일선 형사의 근무체제 개선으로 유명무실했던 비번제가 정착되는등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쉰다는 인식이 퍼져 업무 능률이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경찰의 문턱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낮아졌다.담당형사가 피의자에게 호통을 치거나 서로 시비를 따지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들고 보호실폐지와 긴급구속장제도입으로 피의자들의 인권침해 소지도 크게 줄어들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5년째 가구 대리점을 경영하는 이모씨(33)는 요즈음 세상바뀐 것을 실감하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1∼2년전만 해도 관할 세무서직원들이 정기적으로 찾아와 휴가비·떡값조로 얼마씩 챙겨 갔지만 언제부턴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고 했다. 실제 관공서 주변 다방·음식점에서 급행료등 명목으로 봉투를 주고 받던 풍경도 옛날얘기가되어버렸다. 한때 「받던 사람」이나,「주던 사람」 모두 이제는 당연히 「없는 것」으로 여겨 검은 돈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종로구 삼청동에서 10년째 구멍가게를 하고 있는 김모씨(45·여)는 『동사무소직원들이 빗자루를 들고 직접 거리에서 청소를 하고 주택가 담벼락에 붙은 벽보를 정리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게 됐다』며 흐뭇해 했다. 과거에 볼수 없었던 공직사회의 「발로 뛰는」 확인·현장행정의 정착도 주요한 변화다. 항공기 추락과 페리호 침몰,성수대교 붕괴,유람선화재 등 과거 개발경제시대의 유산을 털어내듯 대형사고가 잇따르면서 하위직 공무원에서 장관에 이르기까지 「발로 뛰는」 풍토가 차츰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2년여 걸친 문민정부의 제살을 도려내는 개혁작업이 조금씩 사회전반에 성과를 쌓아가고 있다. ◎“경쟁력 제고” 경제/산업구조 조정… 올 8%성장 전망/규제 대폭 완화… 기업 자생력 길러/제조업가동률 등 각종지표 “파란불” 침체됐던 경기가 문민정부의 출범과 함께 생산과 투자·수출 등에걸쳐 전반적으로 회복돼 활황국면을 보이고 있다.신경제 5개년 계획의 시행 및 금융실명제의 단행,과감한 규제완화 등 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일련의 시책들이 결실을 거두고 있다. ▷좋아진 경기◁ 경제기획원 종합과의 H서기관은 이달로 경제기획국에 계속 근무한지 꼭 4년4개월이 된 실무 베테랑. 6공과 문민정부의 경제정책을 두루 경험한 그는 요즘 즐겁다.경기가 하강곡선을 그렸던 6공때 기업에 대한 특별 설비자금 지원 등 각종 아이디어를 짜내느라 제대로 퇴근도 못하고 고초를 겪었던 일이 먼 옛날 일만 같다.요즘은 경기가 너무 좋아 오히려 과열로 치닫지나 않을까 걱정하며 안정화 시책 추구에 여념이 없다. 산업생산의 호조로 제조업 가동률이 높아지고 실업률이 낮아지는 등 경기가 전반적으로 순조롭다.경기의 확장국면이 적어도 96년 상반기까지는 이어질 것이라는 통계청의 예측도 나왔다. 현 추세대로라면 올 경제성장률은 8.1%에 이를 전망이다.지난 해 성장률이 5.6%에 불과했던 데 비하면 상승세가 두드러진다.연초 시끄러웠던 소비자물가는지난 9∼10월 두달 연속 내림세로 돌아서 올들어 10월까지 5.3%에 그쳤다.억제 목표선인 6% 달성은 무난할 듯 하다. 문제가 있다면 경상수지(국세수지 기준).올들어 9월 말까지 경상수지 적자는 44억달러로 전년 동기 7억3천만달러의 6배 가량이나 된다.연말에 밀어내기 수출로 격차가 줄어든다고 해도 최소한 33억달러의 적자는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는 주로 자본재·원자재 수입에 따른 것이다.장기적으로는 이들을 가공,수출이 늘어나게 돼 「건전한 적자」인 셈이다.국내저축이 부족한 상황에서 적정 폭의 경상수지 적자는 성장에 필요한 측면도 있다. ▷금융실명제◁ K은행에 22년간 근무한 지점장 L씨는 아직도 의아해 한다.작년 8월12일 저녁 금융실명제 긴급명령이 발동되던 순간의 아찔한 기분이 가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실명제가 실시되면 은행 창구마다 현금을 찾으려는 고객들로 아수라장을 이루고 돈많은 사람들은 줄줄이 해외로 뜰 것으로 생각해 왔다.「마침내 올 것이 왔다」고 되뇌었던 어느 전직 대통령의 말처럼 「이 사람들이 기어이 일을 저지르고 말았구나」하는 참담한 심정으로 대통령의 담화를 지켜봤다. 다음 날 주가가 폭락하고,실명제를 어떻게 적용할 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창구직원들을 보며 그는 자신의 불길한 예감이 적중했음을 실감했다. 쏟아지는 실명제 지침과 직원교육 등으로 정신이 빼앗긴 채 한 달이 흐른 어느 저녁 퇴근 길에 그는 그 날의 일과가 실명제 전과 하등 달라진 게 없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실명제 이후 1% 포인트 이상 치솟던 금리도 제자리로 돌아오고,증시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반면 국민총생산(GNP)의 10%인 30조원의 검은 돈이 움직이던 사채시장 등 지하경제권은 꽁꽁 얼어 붙었다. 문민정부가 개혁중의 개혁으로 추진한 실명제는 L씨의 경험처럼 이렇게 전혀 예상치 않은 순간에 엄청난 충격으로 현실화됐다. ▷규제완화◁ 문민정부의 잇단 규제완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민간에서는 성과가 미흡하다고 한다.사실 일부의 행정규제는 아직 여전하다.기업환경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산업연구원이 올해 창원과 반월·시화공단의 임금과 땅값,금리 등의 수준을 영국·멕시코·중국·태국·베트남의 주요 공단과 비교한 결과 가장 나빴다.스위스의 IMD(국제경영개발연구소)는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41개국 중 24위라는 보고서를 낸 일도 있다. 과거에는 각 부처들이 소관 업무만 맹목적으로 쫓다 보니 기업에게 과다·중복규제를 안겨준 일이 많았다.『규제가 많아야 먹을 것도 많다』는 얘기처럼 엉뚱하게도 반대급부를 바라며 규제를 만드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때문에 문민정부는 어느 때보다 규제완화를 강도 높게 추진했다.「규제를 규제하는」법까지 만들어 가며 기업의 족쇄를 하나씩 풀었다. 의원입법으로 제정한 「기업활동 규제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은 각종 규제를 일괄 사문화,1년 이상 걸리던 창업을 45일로 줄였다.최근 유통업계의 잇단 「가격파괴」 현상은 그동안 정부의 규제완화에 힘입은 바가 크다.얽히고 설킨 유통상의 규제를 차례로 풀어 할인전문점 등으로 하여금 가격파괴를 유도했다. 금융실명제가 「돈의 흐름」을 맑게 한 조치였다면 규제완화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행정 흐름」을 바로 잡으려는 개혁이다.모든 규제가 마냥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기업의 횡포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 악」적인 규제도 있을 수 있다.문제는 규제완화의 질과 내용이다. 문민정부 출범 후 경제행정규제완화위는 업계의 건의를 받아 지난 5월 말까지 모두 1천1백28건의 개선조치를 확정,이 가운데 9월 말 현재 9백80건에 법령개정 등 조치를 끝냈다.일반 행정분야는 별도로 행정쇄신위가 중심이 돼 9월 말 현재 1천7백80건을 확정,이 가운데 1천75건을 조치했다.정부가 지난 1년여 동안 「규제와의 전쟁」에서 2천9백여 건의 전과를 올린 셈이다.
  • 핵폐기물 처리시설 연내 부지선정 완료/관계장관회의

    정부는 19일 삼청동 국무총리공관에서 이영덕총리 주재로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방사성폐기물처리시설 부지선정,세계무역기구(WTO) 협정 비준,추곡수매,시설물 안전관리 강화에 따른 물류대책등 경제현안 전반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방사성폐기물처리시설 부지선정 작업을 연내에 마무리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하고 부처간 협조방안이 집중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회의에서는 또 WTO협정 비준안과 추곡수매 문제의 처리 방안,그리고 세계화를 위한 국정운영방안등이 협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 충북 옥천군 안터 고인돌 인면상(한국인의 얼굴:6)

    ◎작은 돌에 새긴 실눈의 여인/지하 무덤방서 출토… 피장자 묘사/4천년전 신석기시대 유적 추정 우리나라 신석기유적은 해안지대의 조개더미(패총)가 주류를 이루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다.저 유명한 서울 강동구 암사동 집자리나 무덤과 같은 신석기시대의 내륙 유적도 많다.이러한 유적 가운데는 충북 옥천군 동이면 석탄리 안터 금강상류에 자리잡았던 고인돌(지석묘)과 선돌(입석)이 있다. 고인돌은 주검을 묻는 무덤시설이다.고인돌은 청동기시대에 유행한 무덤형식(묘제).그런데 옥천 안터 고인돌은 좀 별나게 청동기시대 보다 이른 시기에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깊게 그어 무늬를 새긴 빗살문(즐문)계통의 토기가 나와 지금으로부터 약 4천년전인 신석기시대 말기 유적으로 결론을 내렸다.그래서 선사시대의 문화상은 칼로 두부모를 가르듯 명확한 구분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고인돌유적에서는 사람얼굴을 표현한 인면상 하나가 나왔다.길이 12㎝,너비 9㎝,두께 2㎝ 정도의 강돌을 생긴대로 이용한 이 인면상은 여자 얼굴이다.돌 표면을 쪼기수법으로 두 눈과 입을 만들었다.가느라단 실눈을 애써 표현한 흔적이 남아 여자로 보고있다.그리고 여자 몫의 식생활관련 유물이 함께 출토되었다는 점도 이 인면상을 여자로 해석한 이유의 하나다.이들 유물은 모두 고인돌 아래 땅바닥 무덤방에서 나온 것이다. 이로 미루어 고인돌 아래 묻힌 주검의 주인공이 여자라는 사실은 밝혀진 셈이다.1977년 이 유적을 발굴한 충북대 이융조교수팀은 뚜껑돌에 옴팍하게 새긴 구멍의 크기와 숫자를 가지고 피장자의 나이를 30대 후반에서 40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여인의 주검 주변에는 노란색 염토를 덩어리째 뿌리고 문제의 인면상,토기,갈돌,×모양을 새긴 돌을 묻었다.그리고 나서 흙을 덮은 뒤에 다시 붉은 흙을 뿌렸다. 이 여인을 고인돌무덤에 장례를 치러준 안터사람들은 2백10m 떨어진 일직선상에 선돌을 세웠다.2백62㎝의 키를 가진 선돌은 배부른 사람이 고인돌을 바라보는 형상이다.배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지름 90㎝의 원을 쪼기 수법으로 돌렸다.원의 지름은 전체높이의 3분의1에 해당하는 수치다.얼굴부분은 길이 45㎝로 다듬어 배 지름의 2분의1이 되게 만들었다.그러니까 얼굴은 전체길이의 8분의1이 되는 셈이다. 우리는 여기서 신석기시대를 살았던 안터사람들에게 경탄을 보낼 수 밖에 없다.이들은 2분의1,3분의1,4분의1,8분의1 등의 줄인비를 응용할줄 아는 수리에 밝은 사람들이었다.특히 선돌 배부분을 쪼아서 원을 정확하게 그린 안터사람들은 기하를 일찍 터득했다.도형으로서 원은 그리 흔치 않으나,BC2000년경 아일랜드 그랜지 무덤유적의 둘레돌과 경남 밀양 조음리 고인돌의 덮개돌 등 몇몇 예가 있다. 안터사람들이 고인돌을 쌓고 선돌을 세우는 등의 거석문화를 일으킬 무렵 신석기인들의 인지는 상당히 발달했다.수리에 밝았던 안터사람들은 고인돌 덮개돌과 선돌을 이웃 돌산에서 옮겨오는데 나무썰매를 이용했다.무거운 돌을 옮기자면 공동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우두머리의 지휘를 받았을 것이다. 신석기시대는 언어도 보편화되었다.지금 모양의 세계지도와는 다른 3만5천∼10만년전 구세계에 살았던 구석기인 네안데르탈사람들도느릿느릿 말을 했다는 학설이 있다. 그러고 보면 신석기인들은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일제때 함북 웅기 조개무덤에서 개뼈가 나와 신석기인들은 가축도 길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신석기시대부터 개가 컹컹 짖어댔을 안터마을.지금은 대청댐 수몰지역이 되었다.
  • 동아 청동기문화 점검/문화연,16일 국제학술회의

    ◎중·일·러 청동기 전공학자 참석 문화재연구 국제학술대회가 「동아시아의 청동기문화」를 주제로 오는 16일 국립민속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린다.문화재연구소가 주최하는 이번 대회에는 국내는 물론 중국과 일본,러시아의 청동기전공 고고학자들이 대거 참여 한다. 지금까지의 동아시아 청동기문화의 연구성과를 제시하게될 이번 대회는 그동안 나온 청동기유물을 근거로 각국의 사회상을 밝힐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모든 문화가 그러하듯 우리의 청동기문화도 단독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인접 지역간에 부단한 교류가 이루어졌다.따라서 이번 학술대회에는 인접국가 전공학자들이 참가함으로써 기원전 1년전 쯤에 시작해 약 1천년동안 이어진 우리나라 청동기문화가 더욱 뚜렷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제발표 내용은 ▲중국 동북지방 청동기시대의 새로운 연구=린원(중국 길림대) ▲고르니 알타이의 피지리크 문화=폴시막 N(러시아과학원) ▲야요이시대 청동기무기 출현=이와나가 세이산(일본 나라문화연구소) ▲유입기의 청동기와 부장의식=시모무라 사토시(일본 후쿠오카교육위) ▲동북아시아 마제석검의 분포와 성격=심봉근(동아대) ▲청동기시대 개념과 한국청동기시대 구분=최몽룡(서울대) ▲청동기시대의 공열토기=조유전(국립민속박물관) ▲한국식 동검문화의 성격=이건무(국립광주박물관)
  • 철도·선박 등 대체운송수단/운임 인하방안 강구/화물수송난 덜게

    정부는 12일 이영덕 국무총리 주재로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홍재형 경제부총리를 비롯,내무·교통·건설부와 서울시등 11개 부처 관계장관간담회를 갖고 교량등 산업시설물에 대한 안전관리를 강화한 데 따라 가중되고 있는 화물수송난을 해소하기 위해 장·단기물류대책을 논의했다. 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범정부적인 물류체제개선대책위의 설치와 함께 화물차전용도로 및 고속도로 화물차선지정을 검토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날 회의에서는 수송난을 겪고 있는 화물차량의 대체운송수단으로 철도와 연근해 선박을 이용하도록 적극 유도하기로 하고 이들 대체수송수단의 운임료를 인하하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
  • 인간문화재 만정 이소희(이세기의 인물탐구:62)

    ◎맑고 구성진 목소리 “당대의 명창”/13세때 이화중선 소리에 매료… 송만갑 문화 입문/19세때 「춘향전 전집」 내고 72년 미 카네기홀 공연/“팔순기념무대 열어 사그라진 목소리 펼쳐 보이고파” 「천지 삼겨 사람이 나고,사람 삼겨 글만글저,뜻정자 이별별자 어이허여 내셨던고.뜻 정자를 내셨거든 이별 별자를 없었거나…’ 이는 「춘향가」중 「옥중장탄」이다. 「천지삼겨」는 정정렬 바디로 박녹주이후 만정 김소희만이 꿋꿋한 옛맛을 이어받고 있다. 널리 알려진대로 만정은 국악의 대가이자 우리가 세계에 자랑해 마지않는 인간문화재다. 만정을 둘러싼 찬사는 책한권을 꾸며도 넘칠 것이다. 이대교수이며 국악작곡가인 황병기는 그의 소리를 「가을밤 기러기소리」에 비유했고 음악평론가 서우석은 「낭랑하고 확실하게 뻗어나가는 절세의 명창」,소설가 박경수는 「민족의 한이 담긴 애원성의 절창」으로 표현하고 있다. 과연 만정은 그 음색이 맑고 차가우면서도 그 안에 이른 봄의 매화향기를 머금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더구나 그의 비절한 계면조는 억지 눈물을 강요하는 청승푸념과는 달리 안으로 한을 참아낸 고고한 유열이 깃들여있다. 이는 곧잘 강주 사마의 청삼을 눈물로 적신 「비파행」의 한구절에 비유되어 「옥반에다 크고 작은 구슬을 떨어뜨리듯」 「홀연 은병이 깨지며 물줄기 쏟아져내리듯」 애절한 사연이 굽이굽이 엮어지고 우조 또한 「철갑두른 기마병이 돌격하여 창칼을 부딪치듯」 웅장청원과 기염만장을 토해낸다. 1936년 일본 빅터레코드가 출반(서울음반 복각)한 「춘향전 전집」을 들어보면 열아홉살의 앳된 목이지만 또박또박한 발음이 청순하고 수줍은 느낌을 살려 그의 가락위에서 듣는 이의 흥취가 잦아들고 휘몰아친다. ○동·서편제 나눔은 무리 애원성의 진양조로 인해 만정은 서편제의 일인자로 손꼽히고 있지만 넉넉하면서도 화평한 평조와 경드름 설렁제를 두루 구사하여 어느 한 창제에 그를 못밖는 것은 무리가 아닐수 없다. 명인의 자질은 무엇보다 타고 난 소리와 홍진을 뛰어넘는 격조라면 이를 고루 갖춘 이가 아마도 만정일 것이다. 만정은 무대에서 관중을 압도하는 자태와 인물과 예인으로서의 조건에서 한치의 허점도 찾아볼 수 없다. 「노래를 하다보니 노래가 모두 시라 가사와 창을 올바로 알고 노래부르기 위해」 그는 등불을 돋워놓고 고전을 탐독하고 묵필을 가다듬어 묵정 그윽한 속에 노래의 진수를 아로새겨왔다. 여기에 가야금 거문고와 양금 살풀이춤이 뛰어나 그에게 가야금 가락을 닦아주던 김윤덕은 「만정은 창의 최고이지만 만약 가야금을 했다면 누구도 미치지 못할 명인이 되었을것」을 아쉬워했고 원로국악인 성경린은 「김소희의 춤은 소리보다 뛰어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의 판소리 더늠은 방정하고 단아하다.그리고 단순한 득음이 아닌 심득의 창성으로 관중을 사로잡아 지금까지 그가 공연한 판소리 무대는 흥청거리지 않은 것이 없었다. 공연이 있는 날은 자주 댕기들인 쪽진 머리에 옥비녀,옥색치마로 화사하게 단장하고 쥘부채 하나만으로 만마를 다스리고 천하를 호령한다. 수많은 공연중에서도 지난 84년 동아일보가 주최한 명인명창초대 공연은 그의 판소리의 위력이 얼마나대단한가를 한눈에 증명한 감동의 무대였다. 그날의 청중은 대학생에서 직장인,멀리 지방에서 올라온 촌로에 이르기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을 구름같이 메웠고 객석은 시종 박수와 추임새로 「국창」에 대한 예우를 지켰다. 만정 역시 칠순을 눈앞에 둔 나이와는 상관없이 정확한 발음에 적절한 극적표현 그리고 구성진 수리성과 질감이 풍부한 방울목으로 목을 굴려 공연이 진행되는 2시간을 정교하게 수놓아갔다. ○전 일본 순회공연 가져 특히 「춘향가」중 「오리정 이별」대목은 자진모리 장단을 엇박으로 바꾸면서 원박으로 되돌아가 중모리로 마무리짓는 상성의 극치를 보였다. 이 대목에 이르면 아무리 「소리는 타고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의 소리목에 깃든 공력앞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런 공연은 그의 전성기인 60∼70년대에 미 카네기홀과 링컨센터에서의 기립박수를 꼽을수 있다. 또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초청한 전일본 순회 공연도 한국 국창의 긍지를 마음껏 과시한 역사적 무대의 하나다. 만정은 평소 겸허하고 따사로우나저속하고 부당한 천격을 용납하지 않는다.후학들이 실수로라도 경박한 언행을 저지르면 그 자리에서 엄히 나무라고 자세를 바로잡아준다.그러나 사소한 일에 연연하거나 사적인 인맥으로 사람을 평가하기보다 상대방이 지닌 기량과 미점을 적소에 둘줄 안다. 예를들어 국악계는 계보에 엄격한 편이지만 그는 자신이 키운 성창순을 정권진에게 보내 강산제를 이어받게 했고 신영희를 박초월에게 소개하는등 그 스승의 좋은 대목을 제대로 배울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2년전 동숭아트홀에서 외동딸인 박윤초가 판소리 독창을 열었을때는 딸에게 『너 비위도 좋다.그 소리를 가지고 어떻게 노래하느냐』고 나무라면서도 막상 공연날은 무대에 나와 『아직 미거하나 후진을 키운다는 뜻에서 격려해달라』고 부탁하기를 잊지 않았다.후계자 자리를 딸에게 물려주게 되느냐는 문제도 『제가 잘하면 물려줄 것이요 잘못하면 어쩔수 없다』고 냉정한 면을 지킨다. 만정은 이제 국악계의 어른으로서 국악이 발전되어지는 과정을 그 한가운데서 지켜보는 위치다.지난해 신병으로 협회이사장 자리를 물러나면서 『원래 이사장 자리라는 것은 국악실력보다는 단체를 잘 이끌고 운영할수 있는 실무자가 바람직하다』는 이유로 이성림을 추천했고 이사장 선출로 야기될 마찰을 미연에 방지하는 결단을 보였다. 만정의 어린시절은 모든 「끼」있는 예인의 삶이 그러하듯 모진 가난과 슬픔의 기록이 점철된다. 판소리의 태두인 동리 신재효를 배출한 고창 흥덕에서 출생,부모의 불화로 부친은 타관으로 떠돌고 모친마저 친정으로 가버리자 친척집에 얹혀서 고아처럼 자라났다. ○「천에 하나」 어려운 천재 광주여고보에 들어간 13살 되던해 당대 명창이던 이화중선의 공연을 보고 장래 「소리하는 사람」이 될것을 결심했고 동편제 소리의 대가인 송만갑문하에 입문한지 1년만에 남원명창대회에서 1등,송만갑은 미려청아한 소리를 지닌 어린 소녀를 향해 「천에 하나 나오기 어려운 천재」임을 인정하여 수업료도 받지않고 그의 모든 것을 전수시켰다. 이어서 정정렬에게 「춘향가」를 비롯,화순의 박동실에게 「수궁가」「적벽가」,김계문에게 향제가곡을 사사하고 이승환에게 거문고,강태홍 김윤덕에게 가야금등 금과옥조와도 같은 스승들을 거치면서 국악의 가시밭 길을 무난하게 헤쳐나갔다. 21살에 결혼하여 10년만에 부군을 잃고 3남매를 혼자서 키우면서 속창 속악의 천시속에서 서너명을 앉혀놓고 공연을 한적도 있고 조선창극단 시절에는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내용때문에 왜경에게 붙잡혀 유치장 신세를 진적도 있다. ○소희이름 이모가 지어 조선성악연구회에 드나들던 소녀시절 본명 김순옥을 버리고 이모인 김남수씨가 지어준 「소희」란 이름을 가졌다.아호 「만정」은 「날이 갈수록 잔잔히 이름을 날리라」는 뜻으로 사주를 보는 이가 지어준 것이다. 만정은 지난 25년간 살았던 종로구 화동 골목안의 한옥을 떠나 84년 삼청동 쪽에 위치한 소격동으로 이사하면서 비로소 연탄불갈기에서 벗어났다. 지금도 결혼하지 않은 아들(준석·46·상업)과 둘이 살면서 손님이 오면 손수 문을 따주고 제자를 가르치고 밥짓고 빨래한다. 그만큼 그의 생활은 궁핍이 펼날이 없이 조금이라도 여유가생기면 가난한 제자들을 데려다 가르쳤다.지금은 국악계의 중진이 된 김소연 안향련이 그들이고 영화 「서편제」로 스타가 된 오정해는 8년간 이집에 머물면서 그가 세운 서울국악예고를 나왔다. 찬연한 오늘은 참담한 어제가 있었기에 얻어진 결과일 것이다. 지난 1,2년 병치레로 쇠잔해졌을 망정 그에게선 여전히 「닦은 자의 비어있는듯 차있는(수자 여하이유실)」예술불멸만이 돋보인다. 그리고 모진 시간속에서도 국창의 기개를 잃지않아 『만약 그때까지 살수 있다면 팔순 기념무대에 서서 사그라지면 사그라진대로 나의 목을 숨김없이 펼쳐보이고 싶다』고도 말한다. 한 시대를 주름잡던 화려한 흔적을 감추고 이제 역사의 뒤안길에 서려는 예인의 모습에는 자신을 끝없이 탁마하며 살아온 정제된 아름다움만이 하나의 구둣점처럼 선명하게 찍혀있다. □연보 ▲1917년 전북 고창 출생,본명 김순옥 ▲1930년 흥덕공립보통학교 졸업 ▲1932년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2년 수료 ▲1929∼34년 송만갑에게 「심청가」「흥보가」사사 ▲1936년 일본 빅터 오케이레코드 전속,「춘향전전집」취입 ▲1948년 여성국악동우회 설립 ▲1954년 민속예술학원(서울국악예고 전신)설립 ▲1959년 국악30년 김소희 판소리첫번째 독창회(서울 원각사) ▲1962년 한국국악협회 이사장,파리국제민속예술제 참가이후 해마다 세계 각국순회 공연,신호열씨에게 서예사사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제5호 판소리 기능보유자),뉴욕 아시아학회 초청 미국공연 ▲1967년부터 국전서예부 연3회입선 ▲1969년 일본 요미우리신문주최 요미우리홀 공연,전일본지역 순회 ▲1972년 미국카네기홀서 김소희 판소리독창회,뮌헨올림픽 참가공연 ▲1973년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심청가전집」(5장)출반 ▲1977년 불우이웃을 위한 회갑공연(서울시민회관)「춘향전」완창 출반 ▲1979년 김소희 국악50년 기념공연(세종문회회관),고향 흥덕에「만정 김소희여사 국창기념비」건립 ▲1982년 제1회 한국국악대상 수상,첫민요 발표회(공간사랑),민요전집 출반(성음사),이대 한양대 출강 ▲1984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동아일보주최 「명창 김소희 판소리의 밤 대공연」(세종문화회관 대강당) ▲1988년 서울 올림픽폐막식 공연,「김소희 구음과 민요」출반(성음사) ▲1993년 국악협회 이사장,94「국악의 해」지정기념 국악제 총지휘 ▲1994년 제1회 방일영국악상 및 11월28일 수상기념공연
  • 의사당에 조각품 37점 전시/오른쪽 동산에 1년간 선보여

    ◎정치예술의 장으로 전환 모색 거창하고 우람한 건물 분위기가 웬지 너무 권위적으로 느껴져 일반국민들에게 거리감을 갖게했던 국회의사당이 여류조각가들의 작품들로 면모를 일신하게 됐다. 지난 10월 열린 음악회를 열어 화합하는 정치의 장을 연출했던 국회 앞마당에는 95년 미술의 해를 앞두고 유연하며 개방적이고 조화로운 정치예술의 장으로 전환시켜 보자는 취지아래 국회의사당 오른쪽 동산이 여류조각가들의 작품들로 꾸며진다. 11일 상오에 있을 개막식을 앞두고 마지막 준비작업중인 국회 여류조각가 초청전에는 한국여류조각가회(회장 중앙대 임송자교수)중견회원 37명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37점이 출품돼 1년동안 선보이게 된다. 『이번 여류조각가전에는 화강암과 대리석,청동과같은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한 고전적인 인물상으로부터 스테인리스 스틸,강철,알루미늄 등으로 제작한 추상조각 및 설치작업에 이르기까지 한국 여성조각의 역사와 그 다양함을 한눈에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한국여류조각가회 임송자 회장의 설명이다. 동을 소재로 만든 김효숙씨의 「동그라미」,홍애경씨의 「어떤새의 노래」,배형경씨의 「존재와 부재에 대한 사색」,유당주씨의 「무제」,이재신씨의 「골통」,진송자씨의「빛·생명」 등이 구상계열이라면 화강석을 주 소재로 이용한 강은엽씨의 「오라 이곳으로」와 김혜경의 「나비」,스테인리스 스틸과 밧줄을 사용한 고경숙씨의 「솟대 94 03」,알루미늄과 철을 쓴 김정희씨의 「사운드 스페이스」가 두번째 모더니스트 범주에 든다고 들려준다.
  • “12·12는 군사반란”/검찰 수사결과 발표

    ◎전·노 전대통령등 34명 기소유예/전씨 좌천 막기위해 사전계획/대통령 재가없이 정총장 연행 79년 12월 12일에 발생한 12·12사건은 당시 군부의 일부 소장파 세력이 사전 모의에 따라 실행한 군형법상 군사반란사건으로 최종 규정됐다. 「12·12사건」고소·고발사건을 조사해온 서울지검은 29일 수사결과발표를 통해 이사건의 피고소·고발인 38명 가운데 사건을 직접 모의했거나 적극 가담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등 34명을 군형법상 반란수괴및 불법진퇴 등 혐의를 적용,기소유예 처분했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또 피고소인중 반란부화뇌동에 해당하지만 공소시효가 지난 당시 정호용 50사단장과 신우식특전사 작전차장,김진선수경사 작전처보좌관등 3명과 82년 사망한 백운택 71방위사단장 등 4명에 대해서도 「공소권 없음」을 결정,역시 불기소 처분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사건발생후 15년동안 정치·사회적으로 국론소모와 분열의 원인을 제공해온 이 사건에 대한 검찰의 사법적 처리가 최종 마무리됐다. 서울지검조준웅 제1차장은 이날 수사결과발표문에서『12·12사건은 유신체제 붕괴로 사회전반에 민주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소장 군부세력의 리더였던 당시 전두환 합수본부장이 10·26사건 관련 혐의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제거,군의 주도권을 장악함으로써 합수본부장 본인에 대한 좌천 인사조치를 사전 차단하고 소장 군부세력의 군내 입지를 보전할 목적으로 사전 계획하에 실행한 군사반란사건임이 명백히 드러났다』고 말했다. 검찰은 또『피고소인측은 12·12가 「10·26사건 관련 혐의를 조사하기 위해 정총장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우발적 충돌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10·26조사와 직무상 전혀 관련이 없는 국방부군수차관보와 수도권부대 주요 지휘관들이 총장 연행문제를 협의한점 ▲거사 직전 특전사령관등 육본 직할부대장들을 연희동요정으로 유인한 점 ▲일부 장군들이 집단으로 대통령에게 총장 연행재가를 요청한 점 ▲병력동원,핵심 지휘관 체포,국방부·육본 등의 점령 등에 대해 사전 모의,결정한 점 등에 비춰 전전대통령등 신군부측의 군권 장악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에따라 전두환 전대통령에게 군형법상의 반란수괴 및 불법진퇴,상관살해 및 상관살해미수,초병살해 등의 혐의를,노태우 전대통령과 유학성·황영시·차규헌·박준병·백운택·박희도·최세창·장기오·장세동·김진영·허화평·이학봉·허삼수등 14명에 대해 군형법상 반란모의참여와 중요임무종사등 혐의를,권정달,조홍등에게는 반란중요임무행사 등의 혐의를 각각 적용했다. 검찰은 이들이 하극상에 의한 군사반란을 꾀함으로써 헌정사를 후퇴시킨 점등이 인정되나 이들을 기소할 경우 재판과정에서 과거사가 재론되는등 법적 논쟁이 계속돼 국가분열과 대립양상이 재연됨으로써 국력을 소모할 우려가 있으며 이들이 이미 5공청문회와 대선 등을 통해 국민적 심판을 받은 것으로 판단돼 불기소처분하게 됐다고 밝혔다. 검찰조사에 따르면 전두환 전대통령은 79년 11월 중순부터 정승화계엄사령관이 자신을 합수본부장에서 한직으로 좌천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자 인사조치를 차단하고 군내입지를 보전할 목적으로 유학성 국방부 군수차관보,황영시 1군단장,차규헌 수도군단장,노태우 9사단장등과 접촉해 정승화 총장을 연행·조사하는 문제에 대해 협의했다. 이어 12월7일 노태우 9사단장과 회동,12월12일을 최종 거사일로 확정하고 박준병 20사단장,박희도 1공수여단장,최세창 3공수여단장,장기오 5공수여단장 등과 공모하는 한편 이학봉 합수부 수사1국장,허삼수 보안사인사처장,우경윤 육본범죄수사단장 등에게 정총장 연행계획을 수립토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또 정총장 연행시에 대비,허화평 보안사령관비서실장,조홍 수경사헌병단장에게 정병주 특전사령관,장태완 수경사령관,김진기 육본헌병감등 육본직할부대장들을 신군부 핵심인물의 집결시간인 12월 12일 하오 연희동 소재의 요정으로 유인토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 전대통령측은 거사 당일 하오 7시10분쯤 허삼수,우경윤,성환옥과 보안사 수사관 7명,수경사 33헌병대 병력 60여명을 한남동 총장공관으로 보내 「대통령 재가하에 김재규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에 대한 진술을 받아야 한다」며 정총장에게 동행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하자 M16 소총으로 위협,강제 연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 전대통령은 같은날 하오 삼청동 총리공관에 머물고 있던 최규하대통령에게 찾아가 정총장의 연행 재가를 요청하다 거절당했으며 재차 유학성·황영시·차규헌·백운택·박희도등 장군들과 함께 총리공관으로 몰려가 집단으로 재가를 요청하는등 2차례에 걸쳐 재가를 요청했다.이들은 결국 다음날인 13일 상오 5시10분쯤 노재현 국방장관을 위협,신현확 총리서리가 배석한 자리에서 대신 재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위헌소지… 결과 승복못해”/전·노씨/“기소유예 부당… 새달 항고”/고소인측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은 29일 변호인단 발표문을 통해 「12·12사태」와 관련,자신들에게 군형법상의 반란 혐의를 인정한 검찰의 수사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전전대통령쪽은 검찰수사결과 발표에 대해 적절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말했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전직 대통령쪽에서는 『정승화씨의 10·26 내란방조 혐의에 대해 80년3월 확정판결이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검찰이 확정판결의 내용을 뒤집은 것은 월권이며 헌법위반의 소지가 있다』면서 『당시 합동수사본부가 정씨를 연행·수사한 것은 정당한 공무집행 행위이며 군통수권자인 최규하 대통령에게 사전보고와 사후재가 절차를 모두 밟았다』고 주장했다. ◎정승화씨 등 21명 회동 정승화전육군참모총장등 12·12사태 관련 고소인 21명은 29일 상오 서울 강남구 신사동 모음식점에서 모임을 갖고 검찰의 수사결과에 불복,내달 2일 서울고검에 항고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정전총장은 이날 『군사반란죄가 인정된다면 당연히 기소를 해서 법원의 판결을 받게해야 마땅했다』며 『공소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점을 감안해 내달 2일 항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모임에는 12·12당시 3군사령관이었던 이건영씨를 제외한 고소인 21명이 모두 참석했다.
  • 북의 「승리산 사람」과 「만달 사람」(한국인의 얼굴:3)

    ◎넓은턱에 높은 머리의 후기 구석기인/평남 덕천­평양서 발굴… 얼굴 복원/「만달 사람」은 석기­골기 함께 출토 그 까마득한 옛날을 살았던 구석기인들이 자신들의 몸골을 뼈로나마 남기게된 까닭을 알아보면 지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가 지금 구석기인들의 뼈를 찾아낸 장소는 모두가 석회암동굴이다.이 때문에 오랜 세월동안 뼈가 보존되었다.동굴 천장에서 조금씩 흘러내린 알칼리성 석회수가 무수한 시간을 두고 뼈를 화석으로 바꾸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석회암동굴 중에는 선사문화를 가늠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유적들이 더러 끼어있다.북한 학자들이 오늘날 한국인의 얼굴 특징을 지녔다고 주장해온 이른바 「승리산 사람」의 뼈가 나온 유적도 석회암동굴이다.지질학적으로 상원계 석회암지대에 속하는 이 유적은 평남 덕천시 승리산에 자리했다.지난 1972년 발굴당시 사람 아래턱뼈가 나왔다.3만5천년전에 시작해서 1만년전에 끝난 후기구석기시대 사람의 뼈로 보고있다. 북한 학계는 이 아래턱뼈를 기본자료로 활용,당시 후기구석기인의 얼굴을 복원했다.학자들 손에 의해 다시 태어난 얼굴의 주인공이 후기구석기시대를 살았던 승리산사람인 것이다.승리산사람의 아래턱뼈 길이는 현대인과 비슷하지만,넓이는 비교적 넓은 편인 것으로 알려졌다.이러한 특징은 얼굴의 하관이 넓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보탬이 되고있다.그리고 머리가 높았다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승리산사람은 그동안 북한학계가 현대인의 조상뻘로 여기면서 그 지혜를 슬기슬기사람(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으로 주장한 인류다.이같은 주장은 승리산사람 얼굴 특징에 나타난 높은 머리와 넓은 하관부가 오늘날 한국인 특징의 일부로 남아있다는 데서 나왔다.머리 생김새는 어떤 민족의 체질인류학적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형태요소라 할 수 있다.이는 대개 생체관찰과 머리뼈관찰로 나누어 특징을 가린다.선사인의 경우는 머리뼈관찰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북한에서는 승리산사람 말고도 또다른 후기구석기시대 사람뼈가 발견되었다.평양시 승호구역 만달리에서 나온 사람 뼈화석은 「만달사람」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1979∼80년 사이에 출토된 뼈화석에는 얼굴을 되살려낼 수 있는 머리뼈와 아래턱뼈가 포함되었다.앞머리뼈에는 현생 인류에게서만 찾아지는 화살융기도 들어있었다.그리고 턱구멍이 현대인처럼 낮은 위치에 자리잡았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 만달인은 석기와 골기를 사용했다.가공한 흔적이 뚜렷한 석기 13점과 함께 뼈나 뿔로 만든 골기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이러한 연모를 만든 수법을 통해 만달인은 후기구석기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체질인류학적 검증을 통해 만달인이 숨질 무렵의 나이를 30살 정도로 가려낸 북한학계는 만달인을 건장한 용모의 청년으로 복원시켜 놓은 바 있다. 그러나 승리산사람이나 만달사람과 같은 후기구석기인류를 오늘날 우리 민족의 직계로 단정짓기에는 무리가 뒤따른다.구석기인들은 자연환경변화나 사냥거리에 따라 빈번히 이동했다.비록 후기구석기인들이 전·중기구석기인들 보다는 좀더 붙박이 정착생활 쪽을 택했을지라도 어디까지나 선주민에 지나지 않았다.우리는 여기서 신석기시대를 거쳐 청동기시대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민족이 형성되었다는 학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승리산사람이나 만달사람을 현생신류 즉,오늘의 민족과 연결시키는 이유중에는 정치성이 내재되었다.민족의 뿌리가 평양을 중심으로 뻗어나갔다는 것을 애써 강조하면서 남북대비,역사우위론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그리고 실제 평양근처에 잘 발달한 상원계 석회암지대 동굴만을 집중 발굴해왔다.지난해 평양근교에서 발굴했다는 단군유골과 올해 서둘러 축조한 단군릉의 경우도 이같은 선상의 역사오도 사건이라 할 수 있다.
  • “환상회화 창시” 크리스탄센 한국전

    ◎안토니 카로 금속조각전도 오늘부터 열려 후기 색면파 회화의 대표적 화가인 미국작가와 현대 조각계의 거장인 영국작가가 나란히 한국전을 가져 이채를 띠고 있다.「단 크리스탄센 작품전」(25일∼11월8일,갤러리이즘)과 「안토니 카로 금속조각전」(26일∼11월23일,국제화랑)이 그것. 단 크리스탄센은 미국에서 활동중인 가장 뛰어난 추상화가중 한사람으로 원의 이미지를 이용한 그림,즉 환상회화의 창시자로 평가 받고 있다.원은 빛과 더불어 일체감·영원성·완전성을 나타내기 위해 가장 널리 사용되는 상징.이같은 원의 이미지를 통해 미묘한 추상적 공간과 환상적인 색감의 조화미를 연출해내고 있는 것이 단 크리스텐의 특성이다.특히 단순화된 구성과 표면의 협소성을 명료하게 함으로써 보다 시각적인 색면을 강조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이번 전시는 바로 이러한 유의 근작회화 14점을 선보이고 있다. 한편 서구 조각계의 거목 헨리 무어의 수제자인 안토니 카로는 산업용 철제물과 그 표면에 칠해진 밝은 색체와의 결합을 통해 힘이 강조된 작품을다뤄온 세계적인 금속조각가.특히 쓸모없는 산업용 철조각들이나 청동의 재료를 녹슨 상태로 용접하거나 자르고,구부린 표면에 색채와 광택을 주어서 새로운 대상으로서의 조각을 창조함으로써 조각언어의 확장을 추구해온 작가다.조각의 장식성 보다는 환경과의 상호관계를 강조 하기도 하는 그는 지난 70년대 이후 최근까지의 작품 15점을 내놓았다.
  • 성수대교 참사후 휴일 관정가 표정

    ◎이 총리,공관서 대국민 사과문안 검토/여·야,대정부 질의 수위조절에 신경 ▷총리실◁ ○…국무총리실은 휴일인 23일에도 대부분 직원들이 정상적으로 출근해 24일부터 시작되는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자료 준비 하느라 바쁜 일손. 이들은 김영삼 대통령이 24일 이영덕 총리와 조찬을 나누면서 이총리의 사직서를 반려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점차 평온을 되찾아가는 분위기. 총리실 직원들은 김대통령이 사표를 수리할 생각이라면 이총리와 식사를 나누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 한 직원은 『이총리가 사직서를 제출했던 21일 보였던 망연자실한 표정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고 전언. 이총리는 일요일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상오 10시쯤 대신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고 하오 2시쯤 삼청동 공관으로 돌아와 늦게까지 예상되는 대정부질문에 대한 답변을 검토. 이날 총리실에서는 김시형 행정조정실장이 아침부터 직원들을 독려했고 이흥주 비서실장도 하오 2시쯤 나와 이총리의 국민에 대한 사과문안과 답변자료들을 미리 검토. 이총리는 2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앞서 사고경위를 보고하면서 「이번 사고로 귀중한 생명을 잃은 사람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는 요지의 사과를 할 예정. 총리실 직원들은 그러나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그 정도의 사과로 통할 것 같지 않은데다 몇몇 의원들이 총리실이 지금까지 입수한 것과는 다른 내용을 질문할 것이라는 정보 때문에 바짝 긴장. ▷정치권◁ ○…여야는 이날 성수대교 붕괴참사와 관련해 24일부터 시작되는 국회 대정부질문에 대한 발언수위등의 조절과 사고의 원인분석및 수습대책 마련에 고심하는 모습. 민자당의 김종필대표는 이날 청구동 자택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이번 사고를 포함해 잇단 사건·사고등으로 불안해진 민심을 달래기 위한 방안을 구상. 민주당의 이기택대표는 경기도 양평에서 사조직인 통일산하회 행사에 참석한 뒤 부인 이경의여사가 입원해 있는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들렀다가 자택에서 측근들과 함께 이번 참사에 따른 대응방안을 숙의. 민자당의 이세기 정책위의장은 이날 상오부터 성수대교 붕괴참사 현장과 동부경찰서 수사본부 성동구상황실등을 차례로 돌며 정부측의 사고원인 조사활동 현황을 점검. 이의장은 이어 평소 친분이 있는 토목전공 교수등 전문가들에게 전화로 자문을 구하는등 부실시공 근절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다음주부터 열리는 당정회의에 대비하느라 분주. 이와함께 24일 정치분야 국회 대정부 질문에 나서는 정순덕·정시채·이해구·강신옥(민자당)·한광옥·최재승·장영달(민주당)·이학원(무소속)의원등 8명은 질문내용에 이번 사고와 관련된 사항을 추가허면서 정부를 추궁할 수위를 조절하느라 바쁜 하루. 이날 여야 의원들의 상당수가 골프나 개인적인 모임등을 취소,이번사고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을 따갑게 느끼며 조심하는 분위기.
  • 일본다리/완벽한 「모형실험」/큰 지진에도 “안전”

    ◎“30년 무사고”의 저력/설계·시공·관리 크로스 체크 “부실 차단”/차량 대형화 고려,강도기준 대폭 강화 일본의 다리는 잦은 지진에도 끄떡없다.지진에도 잘 견디는 다리와 함께 살아온 일본사람들에게는 성수대교의 어이없는 붕괴는 상상도 할수 없는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다. 일본에는 길이 15m 이상의 다리가 모두 11만4천여개 있다(건설성 통계).이중 상판이 무너져 내리는 등의 대형 교량사고는 지난 64년 니가타현 지진으로 인한 다리붕괴사고 이후 한 건도 없다.일본의 다리는 왜 그렇게 견고하고 안전한가. 그 해답은 너무나 상식적이다.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설계·시공부터 건설후의 관리까지 철저한 행정지도와 크로스 체크를 하고 건설회사도 지진·해일등 잦은 자연재해에 견딜수 있는 견고한 다리건설을 위해 철저한 설계·시공을 하기 때문이다. 1천2백여개의 다리가 있는 도쿄도의 경우 준공검사는 도청 재무국이 담당하고 건설후 관리는 건설국이 맡고 있다.크로스 체크를 통해 부실공사를 원천봉쇄하겠다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는것이다. 일본은 또 차량의 대형화및 증가추세등 환경변화에 발맞추어 설계·건설기준도 강화하고 있다.그 예로 일본은 지난해 11월 교량의 강도 기준을 강화했다.일본은 당초 교량을 2종류로 나누어 1등교는 중량 20t인 차량이,2등교는 중량 25t 차량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것을 전제로 설계하도록 했다.그러나 개정된 강도 기준은 구분없이 중량기준을 모두 25t으로 늘렸다. 일본은 또 설계에 교량의 수직압력외에 차량의 움직임에 따른 압력도 고려한 활가중 개념의 도입을 중시하고 있다. 다리의 안전을 위한 이러한 설계·시공 과정에서의 철저한 대응과 함께 엄격한 관리시스템도 대형 다리사고를 방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15m 이상 다리의 관리는 교량이 위치한 도로에 따라 국도의 경우 건설성(9천개),고속도로는 일본도로공단(5천개),나머지는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관리를 맡고 있다. 건설성이 관리하는 다리의 경우 매일 순찰차가 교량의 노면상태등 안전여부를 점검하고 적어도 1년에 한번이상 건설성 직원이 직접 현장을 순회검사한다.또건설성 토목연구소와 민간 토목 전문가에 의한 부정기적 점검도 실시하고 있다. 도쿄의 경우는 지난 71년 건설된 도내 최대 교량 후나보리교(1천5백87m)를 비롯한 긴 다리와 20∼30m의 작은 다리까지를 7개의 교량관리사무소가 수시 점검하고 있다.또 5년에 한번씩 전문가에게 위탁,정밀 점검을 실시한다.이러한 철저한 교량관리로 도쿄에서는 지난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교량사고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일본 건설업체들도 안전한 다리 건설을 위해 다리건설공사를 수주할 경우 실제와 똑같은 상황으로 모형실험을 먼저 실시한다.일본건설업체들은 특히 토목뿐만아니라 재료공학도 중시하고 있다.일본은 또 최근에는 성수대교와 같이 「핀」을 이용하는 다리건설은 하지않는다고 건설성 토목연구소는 밝히고 있다. ◎「성수 참사」뒤의 정·관가/후속대책 마련 부산/청와대/“내각 총사퇴” 공세/민주당 이영덕 국무총리가 성수대교 붕괴사고에 책임을 지고 제출한 사표가 반려되는 쪽으로 분위기가 잡혀가는 가운데 22일 청와대를 비롯한 각 행정부처는 사태수습과 후속대책 마련이 먼저라는 원칙 아래 분주하게 움직였다. 민자당도 이날 열린 고위당직자회의등을 통해 정부쪽과 같은 시각에서 대처해 나가기로 의견을 모였으나 민주당은 전날에 이어 내각의 총사퇴를 촉구하는등 공세의 고삐를 죄었다. ▷청와대◁ 청와대는 김영삼대통령이 전날 이영덕총리의 사표를 즉각 반려하지 않아 한때 긴장된 분위기가 감돌았으나 곧 평정을 뒤찾아 사후대책 마련에 몰두. 청와대의 고위당국자는 이날 당정간에 힘을 합쳐 제도적 개선방안을 마련하라는 김대통령의 수석회의 지시가 개각이 없음을 시사한 것이라고 분석. 그는 이총리가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에게 사과를 할 예정이라고 밝혀 그 이전에 이총리의 사표가 반려될 것임을 시사. 이날 김대통령주재 수석회의에서는 각수석별 소관사항을 보고하던 주례회의와는 달리 성수대교 참사와 관련한 대책 위주로 간담회 형식으로 진행. 김대통령은 이자리에서 『청와대 비서실은 중대한 결심을 각오로 새출발의 자세로 일해달라』고 당부했으며 여전히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언. ▷총리실◁ 전날 퇴임식을 준비하라고 지시하는 등 강력한 사퇴의사를 밝혔던 이영덕 국무총리는 감정이 다소 누그러진 듯 전북 무주에서 열린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스키장 기공식에 불참한 것을 제외하고는 평소와 다름없이 집무. 이날 상오 7시45분쯤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집무실에 도착한 이총리는 이홍주비서실장과 김시형 행정조정실장으로부터 전날 열렸던 사고대책 관계장관회의 결과의 후속조치를 보고받은 뒤 두 실장과 오찬을 나누고 하오 1시20분쯤 삼청동 공관으로 퇴근. ▷민자당◁ 전날까지의 『죄송하다』 일변도인 수세적 태도에서 벗어나 민주당의 내각총사퇴 요구를 정치공세로 규정하는등 사건의 정치쟁점화를 차단하려는 모습. 문정수 사무총장은 『맹목적인 내각사퇴보다는 철저한 원인규명과 근본대책이 중요한 것』이라고 맞대응. 강삼재 기조실장도 『서울시장의 경질과 시공·관리 책임자에 대한 수사,교통소통대책및 부실시공 방치대책의 마련이 현실적인 과제』라고 지적하고 『내각개편은 정기국회 일정을 마치고 지방자치선거 국면을 맞는 12월쯤 고려될 것』이라고 전망. ▷민주당◁ 이영덕 국무총리의 사퇴서가 반려될 것이라는 관측이 여권 일부에서 흘러나오자 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전원에 대해 해임건의안을 제출하는 방안을 검토.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기택대표는 『이번 사고는 정부가 과거청산을 외면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사태수습에 앞서 먼저 내각부터 총사퇴하라』고 촉구. ◎「민심 수습」 부심 민자당/충격 벗어나 잇단 회의… 근본대책 제시 총력 민자당이 성수대교 붕괴사고의 뒷수습과 악화된 민심을 추스르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느라 부심하고 있다.당으로서 할수 있는 모든 역량을 사고수습에 투입하고 있지만 충격과 걱정은 여전한 모습이다. 민자당은 사고발생 하루가 지난 22일 일단 1단계 행동에 착수했다.김종필대표를 비롯한 당직자일행이 희생자들이 안치된 병원들을 찾아 조문및 유족위문활동에 나섰고 당에서는 고위당직자회의,정책위 국실장회의,재해대책위 등 대책회의가 잇따라 열렸다. 표면적으로 보면 전날 보여줬던 유구무언의 낭패감과 충격에 짓눌리던 무기력한 모습에서 어느정도 기운을 회복,뒷수습에 시동을 거는 분위기다. 민자당은 우선 이번 사고의 처리대책을 「수습과 재발방지 종합대책 강구」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사고는 그 자체로 국한,원인을 철저히 규명해 책임자에게는 엄한 책임을 묻되 앞으로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단도리를 잘 하는 것이 합리적 방도라는 판단이다. 이와 관련,수습책으로 급부상했던 개각론은 하루만에 가라앉았다.전날만 해도 대폭적 개각을 점치던 당의 분위기가 하루만에 「선수습」쪽으로 확연히 변했다. 박범진 대변인은 고위당직자회의가 끝난뒤 『현단계에서는 사람을 바꾸는 일보다 사고수습에 총력을 기울이고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는 것이 당의 공식방침』이라고 밝혔다.문정수 사무총장과 서청원 정무장관등 민주계 실세들도 박대변인의 발표를 낭독하듯 똑같은 얘기를 하고있으며 많은 민정계 의원들도 개각요인이 있음은 인정하면서도 지금은 그 시기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민주계의 한 핵심당직자는 이영덕국무총리가 사표를 제출한데 대해 『최근 연이은 사건·사고로 누적된 심적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워 사표를 냈겠지만 이총리의 결정은 여권이 품고있는 수습구도와는 배치된다』고 말했다.따라서 당안팎에서는 김영삼대통령이 말을 않고 있지만 당정개편문제에 대한 여권의 의견조율은 이미 끝난 것이 아니냐하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같은 수습골격의 마련과 행동돌입에도 불구하고 사고의 파장과 후유증을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는데다 뾰족한 수습방안도 쉽지않아 마냥 답답해하는 표정이다.이상득 정책조정실은 『지금으로서는 정부가 대책을 강구하면 당으로서 최대한 뒷받침하는 것말고 다른 방도가 마땅치 않다』고 말하고 있다.
  • 한국 상고사연구 방법론 논쟁

    ◎세종대 최정필고고학교수 「신진화론…」 논문 발표후 표면화/최 교수/족장사회는 국가형성 직전의 사회형태/사학계/고인돌사회→족장사회→고대국가로 변천 한국 상고사 연구의 방법론을 놓고 고고학계와 사학계가 일대 논쟁을 벌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이는 세종대 최정필교수(고고학)의 논문 「신진화론과 한국 상고사 해설비판에 대한 재검토」가 발표되면서 표면화 했다.한국 상고사 분야가 고고인류학이론에 의해 장식되는 것을 경계해온 사학계의 학문연구태도를 꼬집은 최교수는 신진화론이 보편적 가설로 검증된 이론인 만큼 수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먼저 신진화론에 의해 한국 상고사에 적용될 수 있는 족장사회를 밝혀냈다.족장사회를 국가사회가 형성되기 직전의 사회형태로 본 그는 호남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한 1만2천8백여기(전남 1만1천·전북 1천8백여기)의 청동기시대 고인돌에서 그 증거를 찾아냈다. 전남 승주군 송광면 우산리 고인돌에서 나온 긴돌칼 17점,비파형동검 2점,옥제장신구 10점과 여천군 적량동 고인돌 출토품인돌칼 3점,비파형동검 7점,대롱옥 1점은 고인돌사회를 족장사회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특히 청동제품과 옥제장신구는 일반인들이 사영할 수 없는 상류계급의 전유물인 동시에 교역을 통해 지배층이 소유한 귀중품이라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그리고 고인돌사회는 직업의 전문화와 노동력동원에 따른 행정적 통제력이 요구된 사회라는 견해도 내놓았다.3∼4t에서 수십t에 이르는 돌을 운반,고인돌을 축조하자면 이같은 요구가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는 최교수는 전남 해안지역과 보성강유역을 족장사회의 행정 근거지로 어림했다.왜냐하면 이 지역 고인돌에서 지배계급을 상징하는 유물이 많이 출토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학계는 가족수준의 집단사회→지방 집단사회→족장사회→국가사회로 이행되는 신진화론의 도식을 배제해왔다.고고인류학계는 족장사회를 청동기시대 또는 고인돌사회로 보는데 반해 사학계는 청동기시대이후 신라육촌과 삼한사회를 족장사회로 본다.또다른 사학계 한쪽에서는 신라 육촌의 경우도 족장사회가 아니고,고인돌사회(청동기시대)→소국→성읍국가→고대국가로 이어지는 국가형성단계 가운데 족장사회는 바로 성읍국가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어떻든 고인돌사회가 족장사회였다는 설이 제기되자 사학계는 한국 상고사를 서양의 도식화한 틀에 끼워 넣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족장사회를 성읍국가 이전 단계인 청동기사회로 올려잡는다면 족장사회의 상한은 신석기시대까지 끌어올릴 수도 있는 사태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학계는 이번에 문제가 된 최교수의 논문을 실은 「한국상고사학보」다음호(제17호)를 통해 반론을 펼 것으로 알려졌다.
  • 청동기 석관묘 대규모 발굴/충남 서천서

    충남 서천에서 국내 처음으로 청동기 시대의 석관묘가 대규모로 발굴됐다. 공주대 박물관(관장 윤용혁)은 26일 『지난 6월 23일부터 약 3개월간 충남 서천군 서천읍 오석리 서해안고속도로 예정구간 1천5백평 부지에서 발굴 조사를 펼친 결과 청동기 시대인 기원전 4∼5세기경의 석관묘 25기,집터 4기,옹관묘 1기와 초기 철기시대(기원전 2∼기원후 2세기)의 토광묘 8기,옹관묘 5기 등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청동기시대 석관묘가 대규모로 집터와 함께 발굴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그동안 자료 부족으로 부진했던 중부 서해안 지역의 청동기문화 및 사회생활을 연구하는 획기적인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들 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 유물로 마제석검,마제석촉,돌도끼,돌끌,삼각형돌칼 등 마제석기 40여점과 무문토기 수백점과 초기철기시대의 회색 정날문토기,적갈색 양이부 직립구연호 등 토기류 10여점,구슬류 20여점이 출토됐다. 발굴단은 이번에 발굴된 초기 철기시대 토광묘는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시대로의 문화변화 과정을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될것이라고 밝혔다.
  • 영어대상 복재인양/고교외국어 경시대회

    교육부는 24일 서울 삼청동 중앙교육연수원 강당에서 제5회 전국고등학생 외국어학력경시대회 입상자 1백80명(대상 6명·금상 20명·은상 34명·동상 54명·장려상 66명)에 대한 시상식을 가졌다. 교육부는 각 부문별 대상·금상 수상자중 18명에게는 외국어특기자로서 대학 특례입학자격을,동상이상 입상자에게는 대학입시에서 해당과목에 가산점을 주도록 각 대학에 권장키로 했다. 과목별 대상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영어=복재인(여·대전 대덕고3년) ▲독일어=유소연(여·청주외국어고2년) ▲프랑스어=박지연(여·부산 동여고2년) ▲에스파냐어=송화인(여·건대부고1년) ▲중국어=송수연(여·경기여고1년) ▲일본어=이준교(강원 춘천고1년)
  • 정·관가인사들 추석연휴에 뭘했나

    ◎자택 머물며 독서·정국구상 몰두/김종필대표/부산·영일 오가며 지자선거 “숙고”/이기택대표/북한산 등산,「제2사정」대책 구상/이감사원장/최기선시장 사퇴 후속대책 분주/서 정무장관 정치권과 관가의 주요 인사들은 「정중동」의 추석 연휴를 보냈다.이들 대부분은 차분한 명절 지내기를 솔선수범한다는 의미에서 자택이나 고향,지역구에 머물며 차례를 지냈으며 정치권 인사들은 지역주민들과의 접촉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이들은 또 추석 연휴를 전후해 계속된 인천 북구청 세금 비리사건 수사와 이에 따른 최기선인천시장의 사의표명,전남 영광의 엽기적 연쇄살인사건등에 대한 깊은 우려와 함께 대책 수립을 위한 준비에 골몰하기도 했다. ○…이영덕국무총리는 추석날 엽기적인 연쇄살인 사건 소식을 전해듣고 충격과 함께 안타까움을 표시했으며 국민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의식개혁운동의 세부적인 추진대책을 구상하기도 했다고 비서진들이 전언.이총리는 이에 앞서 지난 17일 서울시청 추석종합대책 상황실을 방문,교통소통 대책과 추석 성수품공급상황등을 점검하고 서울 강동구 등촌동 보훈병원 입원환자들을 위문했으며 18일에는 경기도 남양주군 별내면 선영에 성묘하고 삼청동 공관에 줄곧 머물렀다. 이시윤감사원장은 연휴동안 주로 구기동 공관에 머물며 다시 흐트러져 가는 공직사회를 바로잡기 위한 「제2의 사정」이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이에 따른 감사원의 감사방향을 깊이 있게 숙고했다고 한 측근이 설명.이원장은 20일 안산 선산을 찾아 성묘했고 21일에는 서울고 동창들과 북한산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 19일 육순 생일을 맞은 최형우내무부장관은 서울에 손님이 몰릴 것을 우려,21일까지 지역구인 부산에 머물며 친지와 당직자들로부터만 축하인사를 받았다. ○…김종필민자당대표는 20일 세검정 큰집에 차례를 지내러 다녀온 것 말고는 청구동 자택에 머물며 주로 독서로 소일.김대표는 연휴동안 다음주부터 시작되는 국정감사등 정기국회 대책과 최근 제기되고 있는 제2의 사정 움직임등 정국에 대한 분석과 구상에도 몰두했다고.측근들은 22일로 예정된 청와대 주례보고가 당 운영의방향을 새롭게 하는 전환점이 될수도 있을 것 같다고 설명. 민자당의 문정수사무총장은 지역구인 부산에 머물며 고아원·양로원 방문,환경미화원과의 만남등 그늘진 곳을 찾아 위로했으며 이한동원내총무도 지역구인 경기도 포천·연천에서 정기국회 대책을 구상하고 21일 면민체육대회에 참가하는등 주민들과 시간을 함께 했다. 이세기정책위의장은 일본 요코하마대학에서 오는 26일 북한핵과 동북아의 안정에 대한 특강을 해 달라고 요청해와 원고준비에 몰두했으나 오는 27일 김영삼대통령이 주재하는 신경제추진회의에 참석하느라 강연을 포기,조금 김이 빠진 모습. 서청원정무1장관은 고향인 충남 천안에서 휴식한 뒤 연휴 마지막 날인 21일에는 서울에 돌아와 당정 인사들을 접촉하며 최기선시장 사퇴에 따른 후속대책등을 숙의. ○…민주당의 이기택대표는 지난 17일 부산으로 내려가 심장마비로 별세한 고 최달웅해운대지구당위원장 빈소를 위로하는 것으로 연휴를 시작.이대표는 이어 고향인 경북 영일에 들러 친지들을 찾아본 뒤 주로 부산과 영일에 머무르며 임시국회와 최근 제기되는 제2의 사정,내년 지방자치선거 대책등 등 정국을 구상. 김상현고문은 지난 18일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등지에서 교분이 있는 학자들과 만난뒤 21일 하오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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