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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군복의 진화/진경호 논설위원

    젊은 세대에겐 낯설겠지만 한때 흔했던 옷색깔 이름이 ‘국방색’이다. 국방에도 색이 있다니 대체 뭔가 싶지만 1948년 이후 40년 넘도록 우리 육군이 군복색으로 썼던 카키색을 말한다. ‘흙먼지’를 뜻하는 힌두어 ‘카키’(khaki)에서 따온, 연한 녹색과 갈색을 뒤섞은 이 색은 현대군 최초의 위장색이다. 1846년 인도 펀자브 주에 주둔해 있던 영국군이 처음 사용했고, 이후 100년도 안 돼 전 세계 모든 군복의 기본색으로 자리하면서 제1, 2차 세계대전을 ‘국방색의 전쟁’으로 만들었다. 전쟁의 진화, 즉 무기의 발달과 이에 따른 전술의 변화에 맞춰 인류는 지난 수천년 전투복과 군복색을 바꿔왔다. 때론 목숨을 보전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고, 적을 심리적으로 제압하거나 자신의 지위와 신분을 과시하기 위한 방편으로 쓰이기도 했다. 무기라고는 칼과 창밖에 없던 고대엔 방패와 가죽 갑옷 정도면 충분했다. 그러나 중세 들어 활이 본격적으로 사용되면서 금속갑옷이 등장했다. 유럽만 놓고 보면 13세기 중엽엔 작은 쇠고리들을 그물처럼 엮은 쇠사슬 갑옷을 시작으로 14~15세기 철판 갑옷을 거쳐 16세기 들어 영화 로보캅에 등장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철판으로 감싼 ‘플레이트 아머’(판갑·plate armor)가 등장해 금속갑옷의 정점을 찍었다. 이 플레이트 아머는 영화 아이언맨에서 가슴에 소형 아크로 원자로를 달고 손바닥에서 레이저가 발사되는 최첨단 티타늄 버전으로 진화하기도 했으나, 사실 철과 청동밖에 없던 중세 후반 전장에선 뛰어난 방어력에도 불구하고 20kg이 넘는 무게에다 입고 있을 때의 엄청난 더위로 인해 효용성이 떨어졌다고 한다. 고조선 유물에서도 청동갑옷이 발견됐을 만큼 유구하고도 우수한 전투복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군이 22년의 구형 얼룩무늬 전투복 시대를 마치고 신형 전투복 시대로 전면 전환했다. 흙색을 바탕으로 수풀과 나무 등 국내 지형을 분석해 만든 디지털 문양의 이 신형전투복은 적외선 감지기나 레이더, 위성촬영 등에 잘 잡히지 않는 스텔스 효과를 갖추고 있다 한다. 2025년까지 GPS(위성항법장치)와 소형 PC가 부착되고 자동 온도·습도 조절과 열차단 기능, 세라믹 타일과 나노섬유로 가공해 방탄 기능까지 갖춘 전투복으로 개량해 나간다는 게 군의 계획이다. 여전히 ‘국방색’인 병영문화가 새삼 물음표를 던진다. 이런 첨단 전투복이 왜 필요한가. 전투력이 결코 장비만의 문제가 아님은 스스로가 더 잘 알 터, 첨단 전투복으로 가려진 청춘들의 피멍을 씻어내는 게 먼저임을 군 당국은 이제라도 뼛속 깊이 새겼으면 싶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부산 지하철 운행 중단·역사 침수…1·2호선 구간 운행 “시간당 100mm 폭우”(속보)

    부산 지하철 운행 중단·역사 침수…1·2호선 구간 운행 “시간당 100mm 폭우”(속보)

    부산 지하철 운행 중단·역사 침수…1·2호선 구간 운행 “시간당 100mm 폭우”(속보) 부산지방기상청은 25일 오후 1시를 기해 부산에 호우경보를 발령했다. 오후 1시 30분에는 강풍주의보도 발표했다. 24일 밤에 시작된 비는 대청동 관측소 기준으로 이날 오후 2시까지 33㎜ 내렸지만 지역별로 큰 편차를 보이고 있다. 특히 금정산을 낀 금정구에는 오후 1시부터 시간당 100㎜의 집중호우가 내리면서 오후 2시 현재 153.5㎜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이 때문에 온천천 물이 범람해 세병교와 연안교의 차량통행이 금지됐고, 온천천 산책길도 통제되고 있다. 또 북구 만덕대로에서도 빗물이 도시철도 역사로 넘쳐흘러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지하철 운행도 중단됐다. 이밖에 북구 시랑로 일부 도로가 유실되고, 동래구 금강로의 주택 1채가 침수하는 등 곳곳에서 침수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기상청은 밤까지 30∼80㎜, 일부 지역에는 120㎜의 비가 더 올 것으로 예보했다. 오후 들면서 바람도 강해져 초속 10m의 강한 바람이 불고 있다. 일부 해안가에는 돌풍까지 불어 순간 최대 풍속 초속 15m를 기록했다. 기상청은 돌풍과 함께 국지성 호우가 밤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시설물 관리를 빈틈없이 해 달라고 당부했다. 부산시는 SNS를 통해 ‘호우경보 발령 부산지하철 구간운행’이라는 정보를 통해 ”집중 호우로 인해 침수된 지역이 발생했다”면서 “현재 지하철 1호선은 신평역에서 장전역까지, 2호선은 장산역에서 구명까지 구간운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네티즌들은 “부산지하철 운행 정지, 지하철 역사 침수, 시간당 100mm라면 정말 어마어마한 양인데”, “부산지하철 운행 정지, 지하철 여갓 침수, 교통이 아예 마비될 정도네”, “부산지하철 운행 정지, 지하철 역사 침수, 부산 여행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속보]부산 지하철 운행 중지…시간당 최대 100mm 집중호우로 역사 침수

    [속보]부산 지하철 운행 중지…시간당 최대 100mm 집중호우로 역사 침수

    [속보]부산 지하철 운행 중지…시간당 최대 100mm 집중호우로 역사 침수 부산지방기상청은 25일 오후 1시를 기해 부산에 호우경보를 발령했다. 오후 1시 30분에는 강풍주의보도 발표했다. 24일 밤에 시작된 비는 대청동 관측소 기준으로 이날 오후 2시까지 33㎜ 내렸지만 지역별로 큰 편차를 보이고 있다. 특히 금정산을 낀 금정구에는 오후 1시부터 시간당 100㎜의 집중호우가 내리면서 오후 2시 현재 153.5㎜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이 때문에 온천천 물이 범람해 세병교와 연안교의 차량통행이 금지됐고, 온천천 산책길도 통제되고 있다. 또 북구 만덕대로에서도 빗물이 도시철도 역사로 넘쳐흘러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지하철 운행도 중단됐다. 이밖에 북구 시랑로 일부 도로가 유실되고, 동래구 금강로의 주택 1채가 침수하는 등 곳곳에서 침수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기상청은 밤까지 30∼80㎜, 일부 지역에는 120㎜의 비가 더 올 것으로 예보했다. 오후 들면서 바람도 강해져 초속 10m의 강한 바람이 불고 있다. 일부 해안가에는 돌풍까지 불어 순간 최대 풍속 초속 15m를 기록했다. 기상청은 돌풍과 함께 국지성 호우가 밤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시설물 관리를 빈틈없이 해 달라고 당부했다. 네티즌들은 “부산지하철 운행 정지, 지하철 역사 침수, 대단하네”, “부산지하철 운행 정지, 지하철 여갓 침수, 무슨 일이지”, “부산지하철 운행 정지, 지하철 역사 침수, 안돼”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지명(하) - 땅 이름, 無言의 역사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지명(하) - 땅 이름, 無言의 역사

    땅이름(지명)은 가장 겸허한 모국어이자 무형문화재이다. 지명 속에는 그 지역의 내력이 오롯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지명이란 무언(無言)의 역사이다. 지명에 몇 가지 요소가 덧붙여져 기록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햇볕을 쬐면 역사요, 달빛에 물들면 야사’(野史)라는 말이 생겼다. 우리의 지명은 어떠한가. 한자와 이두(吏)와 우리글의 치열한 ‘3자 경쟁’에서 한자가 압승을 거뒀다. 순우리말 지명은 유일하게 서울이 살아남은 반면 소부리(부여), 한밭(대전), 솜리(이리) 같은 아름다운 우리말 지명은 땅속에 묻혔다. ●지명은 해당 지역의 ‘과거사’ 압축적으로 보여줘 지명은 지역의 내력과 곡절을 숨죽여 외친다. 삼국시대에는 오늘의 양천구와 강서구 일대를 ‘제차파의현’(齊次巴衣縣)이라고 했다. 이두로 ‘제차’란 구멍, ‘파의’는 바위이므로 ‘구멍바위’이다. 이를 한자로 공암(孔岩)이라고 옮겼다. 옛 한강 공암진 나루요 양천 허(許)씨의 발상지로 알려진 허가바위의 유래가 깃들어 있다. 또 이 바위는 큰 홍수 때 이웃 광주땅에서 떠내려왔다고 하여 광주바위라고도 불렸다. 또 한강을 건너 삼남지방으로 가는 가장 가까운 지점인 노들나루가 있던 상도동에 전국 모든 장승의 우두머리 장승이 서 있다고 해서 장승백이(장승배기)라고 불렀지만, 지명으로 채택되지는 못했다. 이처럼 지명은 해당 지역의 과거사를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한 번의 잘못된 개명은 뜻을 일그러뜨리고, 사실을 비튼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땅이름은 우리말이었지만 기록에는 한자지명으로 남겼기에 우리말 지명이 홀대를 받은 측면이 있다. 조선시대 지방행정체계는 부(部)-방(坊)-계(契)-동(洞) 4단계였다. ‘전국 방방곡곡’이란 말은 여기에서 나왔다. 그러나 한자식 행정체계와는 무관하게 우리는 크든 작든 모든 마을을 ‘고을’이라고 했고,고을의 수령은 높든 낮든 모두 ‘사또’라고 불렀다. 토박이 지명은 조선시대 한자 지명화됐다가 일본 강점기에는 유래조차 짐작할 수 없는 엉뚱한 지명으로 변질됐다. 무쇠로 솥을 만드는 가마터와 대장간이 많이 있다고 하여 무쇠막 또는 무수막이라고 불리던 옛 수철리(水鐵里)는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 때 금호동으로 개악됐다. 물 수(水)는 호수 호(湖)로, 무쇠 철(鐵)은 금 금()으로 멋대로 바꾼 것이다. 금호동이라는 지명에서 옛 대장간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가. 없다면 잘못된 지명변경이다. 1914년 강제 행정개편 이후 불과 100년 사이에 잣골→백동→혜화동, 모래내→사천→남가좌동, 한내→한천→상계·중계·하계동, 배오개→이현→종로4가, 진고개→니현→충무로, 구리개→동현→을지로2가, 박석고개→박석현→갈현동 등으로 전혀 다른 엉뚱한 지명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정도는 덜하지만 붓골→필동, 삼개→마포, 두텁마위→후암, 물치→수색, 새내→신천, 노들→노량, 복삿골→도화동, 삼밭→삼전동, 미나릿골→미근동, 쇠귀바위→우이동, 서래→반포 등 순우리말 지명의 억지 한자화도 지역의 유래와 특색을 퇴색시키고 있다. ●무악이 안산, 아단산이 아차산으로 바뀐 까닭 지명은 시간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작품이기도 하다. 대개 안산(鞍山)이라고 불리는 무악은 서울 풍수의 알갱이를 이루는 내사산(백악-낙산-남산-인왕산) 못잖게 중요한 산이었지만 지금은 존재감이 없다. 무악재라는 험한 고개에 도로가 놓이고 평평해지면서 안산이라는 평안한 이름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았다. 조선 초기 풍수 중 ‘무악주산론’(毋岳主山論)이 있었다. 무악을 서울의 주산으로 정하고 오늘의 연세대와 이화여대 자리에 경복궁을 앉히자는 하륜의 주장이었다. 터가 좁다는 이유로 수용되지 않았지만 ‘백악주산론’과 마지막까지 자웅을 겨뤘다. 태종이 종묘에 나아가 길흉을 점친 결과 백악이 우세하자 태종은 “나는 무악에 도읍하지 아니하지만, 후세에 반드시 도읍하는 자가 있을 것”이라며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무악의 기는 쉽게 꺾이지 않았다. 비록 성 밖으로 밀려났지만 연희궁이라는 이궁이 무악 아래 지어졌다. 정종과 태종, 세종이 차례로 거했다. 세조 때는 서잠실(西蠶室)이라고 하여 양잠을 했고 연산군은 연회장으로 사용했다. 조선 최악의 내란이라고 일컫는 이괄의 난을 진압해 왕조가 이어진 장소가 바로 무악이기도 하다. 또 오늘날 연세대가 연희전문학교에서 출발했고 연희동에서 대통령이 두 명이나 나왔으니 태종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닌 듯싶다. 서울의 외사산(삼각산-용마산-관악산-덕양산) 중 용마산 부분이 좀 헛갈린다. 어떤 이는 용마산이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아차산이라고 한다. 그러나 두 산은 다른 산이 아니라 하나로 이어진 산이다. 서울의 외사산 중 좌청룡을 아차산으로 보고 아차산의 최고봉을 용마봉(348m)으로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고구려 유적지가 발굴되고 온달과 평강의 전설로 유명한 아차산의 지명 유래도 꽤 흥미롭다. 높을 아(峨)에 우뚝 솟을 차(嵯)를 써서 아차산이라고 하지만 높이가 285m밖에 되지 않으니 어울리지 않는 지명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각축지였다는 점에서 ‘내가 잠시 빌려 쓴(我借)’의 뜻으로도 해석하는 등 설이 분분하다. 아차산의 원 지명은 아단산(阿旦山)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다. 삼국사기에 ‘아침 해’(旦)를 의미하는 신성한 터, 아단산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그러나 태조 이성계의 이름(李旦)을 사용할 수 없었기에 비슷한 글자를 썼다는 풀이다. 이른바 군주의 이름을 피하는 피휘(避諱) 때문이었다. 경북 대구(大邱)도 본디 대구(大丘)였지만 영조 때 공자의 이름(孔丘)과 같으므로 피휘해야 한다는 유생들의 상소가 빗발치자 정조 때 바꾼 것과 마찬가지 이치라는 것이다. ●청운동·옥인동·인사동은 일제가 만든 합성 지명 서울역사 이천 년의 풍상보다 36년 일제 식민지배의 훼절이 더 엄혹했다. 한국땅이름학회에 따르면 서울 동 이름의 30%, 종로구 동명의 60%가 일제 잔재라지 않는가. 해방 후 창지개명(創地改名) 잔재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으면서 우리 지명의 대부분이 원상회복되지 못했다. 개발연대 이후 우리 손으로 행한 개악 사례도 적지 않다. 서울의 지명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합성지명이다. 서울시민이 사랑하는 청운동, 옥인동, 통인동, 인사동은 급조된 지명이다. 어느 날 갑자기 두 개의 지명을 합치면서 생겨난 정체불명의 이름이다. 일제는 행정개편이라는 이름 아래 멀쩡한 두 개의 지명을 하나로 합쳤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이뤄진 지명말살정책이었다. 지명 속에 전해 내려오는 우리의 얼과 문화를 송두리째 뽑아버리는 무서운 음모였다. 청운동은 청풍계(청하동)와 백운동에서 한 글자씩을 따 만들었다. 옥인동은 옥동과 인왕동의 합성이다. 유서 깊은 청풍계와 옥동이라는 지명은 우암 송시열의 글씨를 바위에 새긴 ‘백세청풍’과 ‘옥류동’이라는 글에서 비롯됐다. 청풍계천은 청계천의 발원지이며 청계천이란 이름의 연원이기도 하다. 인왕이라는 명칭은 인왕산에서 비롯됐다. 광해군 때의 기록에 따르면 인왕사라는 절 이름에서 산 이름을 따왔다. 한양도성 안 최고의 경치 좋은 곳으로는 백악의 동쪽 삼청동천(삼청동)을 으뜸으로 쳤고 백악 서쪽 백운동천(청운동)과 인왕산 아래 옥류동천(옥인동) 그리고 낙산 서쪽 쌍계동천(동숭동), 남산 아래 청학동천(필동) 등 다섯 곳을 꼽았다. 여기서 동천(洞天)은 산과 물이 어우러진 수려한 골짜기를 이른다. 내 천(川)을 쓰지 않고 하늘 천(天)자를 쓴 것은 사람만 모여 즐기는 곳이 아니라 신선도 더불어 노닌다는 뜻이다. 우리가 백사실계곡이라고 부르는 부암동 백석동천이나 관악산 자하동천도 풍광에서 빠지지 않았다. 새로 만들어진 청운동과 옥인동이 지명으로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네 개를 둘로 줄이면서 사라진 것들이 아쉬울 뿐이다. ●흐리멍덩한 지명 회복 실패의 교훈 잊지 말아야 서울을 찾는 외국인관광객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인사동이다. 한국적인 정취를 품고 있으며 인사동이라는 지명도 발음하기 쉽고 어감도 좋다. 그런데 인사동은 관인방의 인자와 대사동의 사자를 강제 결합시켜 지은 것이다. 한경지략에 따르면 “대사동은 곧 탑사동인데 옛날에 원각사가 있었으나 지금은 석탑만 남아 있다”고 유래를 전한다. 원각사지 10층 석탑 때문에 탑동, 사동, 대사동, 탑사동, 탑골 등으로 불렸고 지금도 탑골공원이나 파고다공원이라는 이름이 남아 있다. 백동(잣골)은 숭교방의 동쪽이라고 해서 동숭동이라고 바꿨고 괴동(회나무골)은 의금부가 있는 자리라고 해서 공평동, 옥방동(옥방골)은 인의예지에서 따와 예지동, 사동(탑골)은 낙원동, 원동(원골)은 원서동, 상사동(상삿골)은 원남동이라고 작명했다. 15개 동의 새 지명이 생겼다. 수진방과 송현을 합쳐 수송동이 되면서 송현(솔골)이 사라졌고 옥동과 인왕산동을 합쳐 옥인동을 만든다고 옥동(옥골), 운동(구름재)과 니동을 합쳐 운니동을 만들면서 니동(진골), 육상궁과 온정동을 합쳐 궁정동을 만들면서 온천수가 나오던 온정동이 각각 사라졌다. 서울이라는 유일한 순우리말 지명은 미군정청이 해방과 함께 일방적으로 준 선물이었다. 그러나 해방 후 지명을 회복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우리는 기존의 일본식 지명을 토박이 이름으로 되돌리지 않고 모조리 한자로 바꾸는 우를 범했다. 강제병합 이전의 지명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일본이 멋대로 변경하고 왜곡하고 합친 일본식 지명에서 정(町)을 동(洞)으로 바꾸는 데 급급했다. 세종대왕, 이충무공, 을지문덕 장군, 원효대사, 이퇴계, 민충정공 등 6명의 선현의 시호를 채택해 세종로(광화문통), 충무로(본정통), 을지로(황금정통), 원효로(원통) 등으로 가로명을 변경하는 데 그쳤다. 사라진 숱한 지명의 원혼 앞에 어찌 이리 덤덤한가. 현재 진행 중인 독도와 동해 표기전쟁은 한국과 일본의 지명전쟁이다. 독도냐 다케시마냐, 동해냐 일본해냐는 모두 지명선점 다툼이다. 해방 후 흐리멍덩한 지명회복 실패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에게 성명(姓名)이 역사이듯 땅에는 지명이 역사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부산 지하철 운행 중단…역사 침수 잇따라 “시간당 최대 100mm 폭우” 1·2호선 일부 지역 운행 차질(속보)

    부산 지하철 운행 중단…역사 침수 잇따라 “시간당 최대 100mm 폭우” 1·2호선 일부 지역 운행 차질(속보)

    부산 지하철 운행 중단…역사 침수 잇따라 ”시간당 최대 100mm 폭우” 1·2호선 일부 지역 운행 차질(속보) 25일 오후 부산지역에 시간당 최고 100㎜의 집중 호우가 내리면서 도시철도 1호선 노포역과 2호선 화명역 등이 침수됐다. 이 때문에 부산교통공사는 오후 2시 50분부터 신평∼장전역 구간 등 일부 구간의 열차 운행을 중단했다. 부산지방기상청은 25일 오후 1시를 기해 부산에 호우경보를 발령했다. 오후 1시 30분에는 강풍주의보도 발표했다. 24일 밤에 시작된 비는 대청동 관측소 기준으로 이날 오후 2시까지 33㎜ 내렸지만 지역별로 큰 편차를 보이고 있다. 특히 금정산을 낀 금정구에는 오후 1시부터 시간당 100㎜의 집중호우가 내리면서 오후 2시 현재 153.5㎜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이 때문에 온천천 물이 범람해 세병교와 연안교의 차량통행이 금지됐고, 온천천 산책길도 통제되고 있다. 또 북구 만덕대로에서도 빗물이 도시철도 역사로 넘쳐흘러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이밖에 북구 시랑로 일부 도로가 유실되고, 동래구 금강로의 주택 1채가 침수하는 등 곳곳에서 침수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기상청은 밤까지 30∼80㎜, 일부 지역에는 120㎜의 비가 더 올 것으로 예보했다. 오후 들면서 바람도 강해져 초속 10m의 강한 바람이 불고 있다. 일부 해안가에는 돌풍까지 불어 순간 최대 풍속 초속 15m를 기록했다. 기상청은 돌풍과 함께 국지성 호우가 밤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시설물 관리를 빈틈없이 해 달라고 당부했다. 부산시는 SNS를 통해 ‘호우경보 발령 부산지하철 구간운행’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집중 호우로 인해 침수된 지역이 발생했다”면서 “현재 지하철 1호선은 신평역에서 장전역까지, 2호선은 장산역에서 구명까지 구간운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네티즌들은 “부산지하철 운행 중단, 역사 침수, 부산 폭우 대단하네”, “부산지하철 운행 중단, 역사 침수, 왜 이렇게 비가 많이 오지”, “부산지하철 운행 중단, 역사 침수, 대형 사고 조심해야지”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 도봉서원터에서 고려 불교유물 77점 햇빛

    서울 도봉서원터에서 고려 불교유물 77점 햇빛

    조선 전기 서원터에서 고려시대 불교의례에 사용된 국보·보물급 용구 등 유물 77점이 출토됐다. 조선이 ‘숭유억불’ 정책을 펴면서 불교 사원터에 서원을 다수 세웠다는 문헌 기록은 있었으나 이를 증명하는 유적과 유물이 발굴된 것은 처음이다. 또 이곳에서 발굴된 불교의례 용구인 금강령(金剛鈴)의 경우 지금까지 발견된 같은 종류의 유물 가운데 제작 기법이 가장 뛰어난 데다 대승불교의 지파인 밀교(密敎)를 뜻하는 ‘오대명왕상’(불법을 수호하는 다섯 신)과 일반 불교의 ‘사천왕상’(불국토를 네 방향에서 지키는 신)이 동시에 새겨져 있어 지금까지 유례가 없는 독보적인 유물로 평가받는다. 21일 문화재청은 서울 도봉구 도봉서원(서울시기념물 제28호) 터에서 발굴된 불구(佛具)인 금동제 금강령과 금강저(金剛杵)를 비롯해 청동제 뚜껑항아리와 뚜껑합, 다양한 형태의 향로와 향완(향을 피우는 그릇), 세(세숫대야 모양의 용구), 대부완(굽이 달린 사발), 발우(승려의 식기), 대접, 숟가락 등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했다. 금강저는 승려들이 의식을 치를 때 쓰는 방망이 모양의 도구로 마음의 번뇌를 번개처럼 부수는 무기를 지칭하며 금강령은 금강저의 한쪽 끝에 달린 방울로 흔들어 소리를 내는 불교 용구다. 발굴 조사를 맡은 서울문화유산연구원의 이창엽 실장은 “출토된 금강령과 금강저는 그동안 발굴된 것 가운데 가장 정교하고 뛰어난 수준으로 판단된다”면서 “다른 유물인 향로와 뚜껑합 등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유적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말했다. 유물들이 고려 금속 기술의 정수와 함께 당시 불교의 번성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라는 것이다. 일각에선 고려 밀교 유물이 발굴된 전례가 드물다는 점을 들어 이 금강경과 금강저가 외국에서 수입된 물품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지만 문화재전문위원인 주경미 박사는 “통일신라와 고려에서만 쓰던 철고리가 달려 있는 등 12세기 이전 국내 유물이 맞다”고 반박했다. 도봉서원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학자인 조광조와 송시열을 배향한 서원으로 1573년에 세워졌다. 도봉구청이 2012년 5월부터 9월까지 복원사업을 위한 조사를 진행했는데 그해 9월 조사를 완료하고 현장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유물이 다량 출토됐다. 유물이 나온 곳은 서원이 들어서기 전 자리했던 영국사(寧國寺)의 금당이나 대웅전으로 추정되는 건물터다. 발견 당시 유물들은 청동솥 안에 담겨 있어 일종의 제의 행위나 다른 이유로 묻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인왕산 백운동계곡 서울시 문화재 지정

    인왕산 백운동계곡 서울시 문화재 지정

    종로구 인왕산 백운동계곡이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된다. 20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 문화재위원회는 지난 8일 백운동계곡에 대해 기념물 지정을 의결했다. 시는 21일자 시보에 기재해 향후 한달에 걸쳐 각계의 의견을 듣는다. 백운동계곡 일대 8675.5㎡와 구한말 법무대신이자 독립운동가인 동농 김가진 선생이 1903년(광무 7년) 백운동천(白雲洞天)이라는 글을 적은 바위가 대상이다. 총 7개 필지로 바위와 3개 필지는 서울시, 1개 필지는 종로구, 3개 필지는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 소유다. ‘동천’이라는 말은 기막힌 절경을 뽐내는 곳에 붙인다. 서울 도심의 비밀 정원으로 불리는 청와대 뒤 부암동 백석동천(白石洞天)의 자취도 커다란 바위 글씨와 함께 또렷이 남아 있다. 현재 자하문터널 위쪽에 위치한 백운동계곡 인근은 조선 때 ‘백운동’(白雲洞)으로 불렸다. 각 관아의 사무 처리에 필요한 행정법규와 사례를 편집한 행정법전인 ‘육전조례’와 각 도의 지리, 풍속 등을 기록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청계천의 수원으로 기록돼 있다. 또 성현(1439~1504)이 지은 ‘용재총화’와 이긍익(1736~1806)의 ‘연려실기술’ 등 조선시대 문집이나 사서, 역사지리지에서 명승지로 소개돼 있다. 한양도성도(1770년), 동여도(1856~1872년) 등 고지도에서도 그 지명을 확인할 수 있다. 겸재 정선(1676~1759)의 ‘백운동’(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회화에 기록된 풍경의 일부가 남아 있다. 백운동은 삼청동, 인왕동, 쌍계동, 청학동과 함께 조선 5대 명소로 꼽히기도 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세계의 창] “中 인민 잘살게 한 국부”… 거리 찬양 광고판·생가엔 헌화객 즐비

    [세계의 창] “中 인민 잘살게 한 국부”… 거리 찬양 광고판·생가엔 헌화객 즐비

    “중국이 잘살게 된 것은 덩샤오핑 덕이다(感謝致富鄧小平).”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인 2세대 지도자 덩샤오핑 탄생 110주년(22일)을 앞두고 지난 16일 찾은 그의 고향 쓰촨(四川)성 광안(廣安)시에는 곳곳마다 “여기가 덩샤오핑의 고향”이라고 외치듯 한목소리로 덩샤오핑을 찬양하는 펼침막과 광고판들이 즐비했다. 시 중심에 도착하자 사방이 뻥 뚫린 대형광장 안 거대한 청동 솥(鼎)이 눈길을 끌었다. 당국은 2004년 덩샤오핑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3800㎡ 규모의 쓰위안(思源)광장을 건립하면서 덩샤오핑의 동상 대신 높이 10m, 무게 42t에 달하는 솥을 세웠다. 솥의 앞과 뒷면에는 실사구시(實事求是)와 해방사상(解放思想), 솥을 받친 돌 단상에는 ‘발전이 곧 최고의 이치다’(發展才是硬道理)라는 글이 적혀 있다. 덩샤오핑이 마오쩌둥(毛澤東)의 ‘계급투쟁’ 노선을 끝내고 사회주의 시장경제와 개혁·개방을 시작하며 내놓은 명제들이다. 공원 관계자는 “솥은 중국 역사에서 ‘정권’을 상징한다. 덩샤오핑의 말을 새긴 이 솥은 중국 공산당이 덩샤오핑이 정해준 노선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광장 이름인 ‘쓰위안’도 이 같은 길을 제시해 중국을 부유하게 만든 덩샤오핑의 은혜를 잊지 말자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덩샤오핑의 생가, 동상 등이 모여 있는 덩샤오핑 생가 관광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중에서도 55만여㎡ 크기로 조성된 생가 공원은 마치 고급 삼림욕장을 연상케 했다. 기념관 안내원은 “무덤을 조성하는 대신 나무를 심어 달라는 덩샤오핑의 유훈에 따라 2004년 문을 열 당시 1500여만 그루의 나무들이 심어졌다”고 소개했다. 나무마다 식수자의 이름이 적힌 것도 특징이다. 덩샤오핑 일가 이외에도 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 등 당시 주요 당 원로와 지도부, 국영기업, 지방정부, 인민해방군 등 각계 인사가 일제히 참여한 것은 덩샤오핑의 독보적인 위상을 반영한다. 당시 저장(浙江)성 당서기였던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저장성을 대표해 기증한 나무도 하늘을 향해 높게 뻗어 있다. 덩샤오핑은 14세 때 이곳을 떠나 2년간 충칭(重慶)에서 머문 뒤 프랑스와 러시아에서 유학하며 혁명의 길로 들어섰다. 1926년 귀국 후에는 건국 지도자인 마오쩌둥을 지지하며 국민당과 맞서는 홍군(紅軍)으로, 일제에 대항하는 팔로군(八路軍)으로 군대를 이끌며 권력 토대를 다졌으나 마오로 인해 수차례 인생의 고비도 겪었다. 공원 내 조성된 덩샤오핑 진열관의 외관이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반복하는 여러 개의 삼각 지붕으로 꾸며진 것은 마오로 인해 세 차례 실각을 반복하면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개혁·개방을 이끈 그의 인생 역정을 표현한 것이란 설명이다. 반팔 차림으로 인자하게 웃고 있는 그의 동상 앞에는 입장객들이 바친 꽃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관람객 천레이(陳雷·42)는 “덩샤오핑은 인민들이 풍족하게 생활하도록 길을 깔아준 진정한 중국의 국부(國父)”라고 치켜세웠다. 대학생 자오융(趙永·19)은 “청나라 때 영국에 빼앗겼던 홍콩을 반환받으며 제시한 일국양제(一國兩制) 원칙은 덩샤오핑의 빛나는 지혜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반면 정치 개혁을 요구하던 대학생들을 탱크차로 밀어버린 톈안먼(天安門) 사태는 최대 과오로 남는다. 그의 통역을 맡았던 푸단(復旦)대 중국발전모델센터 장웨이웨이(張維爲) 주임은 최근 한 좌담회에서 “당시 민생 대신 정치개혁을 택했더라면 중국은 지금처럼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대변했다. 그의 사진과 유품 등을 전시한 덩샤오핑 기념관은 새 단장을 통해 오는 22일 탄생 기념일에 새롭게 문을 연다. 인근에 새로 건립된 덩샤오핑 추모관도 같은 날 개장한다. 평소 어린이들을 좋아한 그의 모습에 착안해 추모관 정문에는 아이들과 함께 있는 덩샤오핑의 조형물을 세웠다. 그는 중국의 ‘한 자녀’ 정책을 주창하기도 했다. 공산당 입장에서 주목하는 그의 공로는 ‘공칠과삼’(功七過三)이라는 평가를 내세워 마오쩌둥에 대한 공과 논란을 종결한 것이다. 개혁과 경제건설을 주장한 덩샤오핑은 마오의 계급투쟁과 계획경제에 반대했고 마오의 문화대혁명으로 인생 최대의 좌절까지 겪었지만 마오의 공로를 인정함으로써 공산당의 정통성과 일당독재 원칙을 확고히 했다는 평이다. 글 사진 광안(쓰촨성)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한산대첩 시나리오 이미 나와… 시기 조율”

    “한산대첩 시나리오 이미 나와… 시기 조율”

    개봉 18일 만인 지난 16일 국내 흥행 최고 기록을 세우고 관객 150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는 영화 ‘명량’의 김한민(45) 감독. 그에게 어쩌면 이번 영화는 운명인지도 몰랐다. 개봉을 며칠 앞둔 날 꿈에 이순신 장군을 봤다. 1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장군이 여러 장수들과 함께 나를 내려다봤는데, 꼭 ‘잘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영화에 대한 그의 애착과 부담이 그런 꿈을 꾸게 했으리라. →‘명량’이 ‘아바타’를 꺾고 역대 최고의 흥행작이 됐는데. -이런 스코어는 정말 예상을 못했다. 그래서 오히려 담담하다. 영화를 찍으면서 과로와 스트레스로 두통과 신경통을 얻었지만 관객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시간이 좀 지나봐야 현실 감각이 있을 것 같다. →흥행의 주요 배경은 뭐라고 보나. -리더십 부재의 시대에 이순신 리더십에 대한 갈망이 컸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어릴 적부터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좋아했고 그야말로 시대와 계층, 지역 간 분열과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아이콘이라고 생각했다. 종교와 이데올로기를 뛰어넘어 존경받는 인물인 데다 백성들과 소통하며 역경을 딛고 일어났기 때문에 통합과 화합, 치유의 아이콘이 됐을 것이다. 이순신의 정신적인 요체가 바로 명량해전이었다. →세월호 사건으로 인한 국민적인 상처가 영화로 치유됐다는 분석도 있다. -영화 촬영은 지난해 7월 끝났고, 지난 4월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 처음에는 명량해전의 배경이 진도 앞바다여서 걱정이 많이 됐다. 그러다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영화가 굉장히 절망적인 순간을 극복한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이니까 오히려 국민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정말 다행히도 관객들이 그렇게 이해해 준 듯하다. →사회적으로 이순신 열풍이 불고 있다. 감독이 이해하는 이순신 장군은 어떤 인물인가. -‘난중일기’를 남의 일기를 훔쳐보듯이 읽었다. 정말 재미있었다. 읽다 보면 장군이 당시 어떤 심정이나 상황이었는지 유추할 수 있었다. 내가 본 이순신은 원칙이 뚜렷하고 담백한 무인이었다. 인간적인 면모도 많았다. 어느 날 일기에는 ‘어제 누군가 찾아와서 함께 술을 마셨다’라는 짧은 문장에 날씨만 ‘맑음’이라고 덧붙여 있었다. 어떤 순간에도 수군에게 가장 중요한 날씨를 챙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감독 입장에서는 그런 모습의 이순신을 이 시대의 관객들과 어떻게 소통하게 할 수 있을지가 숙제였다. 나중에 그건 사명감 같은 것으로 발전했다. →영화 속 명대사, 명장면을 꼽는다면. -‘이 쌓인 원한들을 어찌할꼬….’라는 대사가 전략적으로 관객들에게 먹힐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순신이라면 싸움의 승리에 도취된 것이 아니라 바다를 보면서 희생된 넋들을 위로하는 연민과 안쓰러움이 컸을 것이다. 배우 최민식도 이 대사를 좋아했다. 영화의 모든 장면들이 만족스럽다. 그중에서도 장군이 어머니 위패에 절하는 장면을 눈여겨보길 바란다. 현판에 좋은 글귀를 숨겨놓았다. →이순신 장군의 해전 3부작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또 다루고 싶은 인물이 있나. -한산대첩을 소재로 한 ‘한산:용의 출현’의 시나리오가 나와 있는데, 시기를 조율 중이다. 그에 앞서 ‘명량’의 해외판을 편집하고 있는 중이다. 노량해전은 그다음일 것 같다. 개인적으로 역사 소재를 무척 좋아한다. 역사 속에는 과거를 살았던 인물의 치열함과 생생한 발자취가 스며 있어 교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립투사인 이봉창 의사, 김구 선생 이야기를 언젠가 꼭 한번 해보고 싶다. →흥행 감독으로 우뚝 섰다. 연출의 어떤 부분이 관객에게 먹힌다고 보는가. -상업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와 울림, 즉 감동이다. 재미는 운율이 중요하다. 산문적 이야기 구도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풀어내느냐가 몰입도를 증강시킨다. 그래서 편집은 물론 음악, 대사 등 미장센이 잘 조화를 이루는 것에 천착하는 편이다. 재미 요소가 영화의 주제의식과 얼마나 잘 맞물려 있느냐가 중요하다. →작품성보다는 이순신 신드롬이 흥행에 더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도 있다. -평가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별로 괘념치 않는다. 오히려 ‘명량’이 단초가 되어 이순신 붐이 일어난 대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남녀노소, 특히 어린 학생들이 이순신을 다시 보고 대한민국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됐으면 좋겠다. 글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김한민 감독은…1969년 전남 순천 출생.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99년 동국대 대학원에서 연극영화학과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7년 스릴러 ‘극락도 살인사건’으로 장편 데뷔했으며 그해 청룡영화상 각본상과 신인감독상을 받았다. 2009년 두 번째 장편 영화 ‘핸드폰’을 선보였으며, 2011년 사극 ‘최종병기 활’로 747만명을 동원하며 주목받았다.
  • 밝아진 서촌 골목, 그늘진 주민 얼굴

    밝아진 서촌 골목, 그늘진 주민 얼굴

    “관광객이 떠드는 통에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요. 임차료가 올라 쫓겨나듯 떠난 상인도 많고….” 17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주민 김모(69·여)씨는 정자에 앉아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마을을 지켜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경복궁 서쪽에 있어 최근 ‘서촌’(종로구 효자동·통인동 등 15개 동)으로 불리기 시작한 이곳은 서울 강북의 새 관광 명소가 됐다. 조선시대 ‘서촌’으로 불리던 서울 서소문·정동 일대와는 다른 곳이다. ‘북촌’(종로구 재동·가회동·삼청동 일대)의 한옥마을이 큰 인기를 끌다가 관광객이 붐벼 포화 상태가 되자 인근 서촌이 조명받게 됐다. 궁중에 물자를 공급하는 서인과 역관이 많이 살았던 서촌에는 비교적 최근 지은 개량 한옥이 많고 지난해 박노수 화백의 가옥을 새로 꾸며 개관한 미술관도 있어 외부인이 즐겨 찾는다. 여행 가방을 끌고 와 카메라로 동네 곳곳을 찍으며 재잘거리는 젊은 관광객의 모습은 낯익은 풍경이 됐다. 마을이 활기를 얻으면 모든 주민이 좋아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관광객이 늦은 밤까지 근처 카페에서 술을 마시며 소란을 피우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모르는 이들이 집 앞에서 사진을 찍는 통에 주민들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한 주민은 “주말에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동네 주변을 뱅뱅 도는 관광버스 때문에 나다니기 어려울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또 마을의 인기와 더불어 집값과 점포 임대료가 오르면서 건물주는 미소 짓지만 오래전 터를 잡은 세입자들은 울상이다. 종로구 옥인동에 10년 전 자리 잡은 한 공인중개사는 “통인시장 후문에서 수성동계곡에 이르는 옥인길의 경우 최근 2~3년 새 가게 임차료가 2배 가까이 올랐다”며 “그런데도 외지 사람들은 매장을 못 구해 난리”라고 전했다. 옥인길에서 성업하던 세탁소 3곳과 슈퍼마켓 3곳이 최근 문을 닫고 새 카페와 음식점 등에 자리를 내줬다. 서촌 주민들은 갑자기 달라진 마을 풍경을 보며 마음을 졸인다. 상업화가 더 진행되면 전통 마을 고유의 멋이 사라지고 프랜차이즈 음식점 등 자본만 남은 북촌처럼 될까 걱정된다고 했다. 서촌에서 30여년째 살고 있는 이발사 이천동(65)씨는 “이 동네가 학군이 좋고 청와대에 인접해 치안도 잘돼 있어 예전부터 살기 좋았다”며 “주변에 문 닫는 가게가 늘어나면서 우리처럼 건물주와 사이가 좋은 관계가 아니면 불안해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이 오른 집세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일도 생겼다. 조기태 사단법인 세종마을가꾸기회 대표는 “주민들의 의견이 적극 반영된 ‘문화 마을’로 거듭나는 길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문화 In & Out] “발해, 지방도 계획도시 조성”

    [문화 In & Out] “발해, 지방도 계획도시 조성”

    북한의 무역 거점인 나진·선봉 지구 바로 위에 자리한 러시아 연해주 하산주의 크라스키노. 1200여년 전 일본 열도에까지 세력이 미쳤던 발해의 무역항 염주성이 자리했던 곳이다. 학자들은 이곳을 발해 62개주 가운데 하나인 염주의 중심 도시로 꼽는다. 발해가 신라, 일본과 교류했던 거점이라는 설명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최근 러시아사회과학원과 공동으로 진행 중인 발굴 결과를 인용, 이곳에 ‘계획도시’가 있었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내놨다. 재단에 따르면 이곳에선 남북국시대 발해에서 수도뿐 아니라 지방성까지 계획도시를 구축했음을 입증하는 구체적인 유적이 발견됐다. 각각 남북 16m, 동서 29m 길이에 불과하지만 도로 표면 위에 돌과 자갈이 깔렸던 흔적이 나왔다고 했다. 주위에선 잘게 깨뜨린 토기와 기와 조각도 발굴됐다는 것이다. 재단 측은 “발해의 상경도성 외에 그동안 도로망이 깔린 지방 도시를 찾아볼 수 없었다”면서 “이번 발견으로 발해가 지방에서도 계획도시를 조성했음을 알게 됐다”고 강조했다. 재단은 이번 발굴에서 특이한 모양의 14㎝ 높이 ‘토제 탑 모형’을 비롯해 철제 삽과 자귀, 열쇠, 비녀못, 손칼, 청동제 띠꾸미개, 홍옥 구슬 등도 출토됐다고 덧붙였다. 재단은 2006년 출범 이후 매년 여름 크라스키노 성을 발굴 조사해 왔다고 밝혔다. 올해에는 재단 역사연구실 연구위원이 발굴을 총괄하고 한국 발굴단 6명과 러시아 쪽 조사팀 40여명이 지난달부터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이번 조사는 오는 15일쯤 마무리될 예정이다. 그런데 이런 발굴 결과를 놓고 마냥 박수만 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살펴보면 이번 보고서는 재탕의 느낌이 강하다. 발굴 결과의 상당수는 2011년 8월 재단이 이미 대대적으로 소개한 바 있다. 당시 재단은 수도가 아닌 지방의 작은 성에 이렇게 잘 정비된 도로가 있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염주성에서 매우 활발한 경제활동이 이뤄졌을 것으로 유추했다. 또 성의 북부지역에서 확인된 도로는 너비 6m로 자갈과 모래를 깔아서 만들었고, 층위를 달리해 4겹이 확인된 상태라며 발해 염주성이 계획도시로 도시구획은 발해의 존속기간 전체를 통해 거의 변동이 없었음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1958년 발굴된 둘레 1.2㎞의 크라스키노 성터에 대한 연구는 1980년대 러시아 발굴팀이 처음 시작했다. 이어 1992년 한국의 대륙연구소, 2004년 고구려연구재단을 거쳐 2007년부터 동북아역사재단이 연구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재단은 2016년 재단 출범 10주년 기념사업으로 한·러 공동발굴 20년 성과 보고서와 자료집을 펴낼 계획이라고 한다. 국제학술대회도 계획 중이다. 재단의 해외 발굴 성과를 홍보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면 조금만 수위를 낮췄으면 하는 바람이다. 집중 발굴이 아닌 매년 한 달 남짓한 시간을 투자한 공동 발굴로는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올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박해의 흔적 보며 화해를 떠올리고… 천국의 門을 보며 마음의 門을 연다

    박해의 흔적 보며 화해를 떠올리고… 천국의 門을 보며 마음의 門을 연다

    오는 14~18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기념해 다채로운 전시가 마련됐다. 전시를 통해 교황의 행적은 물론 한국 천주교의 역사와 유물까지 두루 살펴볼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6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124위 순교자 시복식에 앞서 서울 서소문 성지를 찾는다. 정약종과 황사영, 한국 교회의 첫 여성 회장인 강완숙 등 시복 대상자 27위가 이곳에서 순교했기 때문이다. 서소문에 자리한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지난 8일부터 특별전인 ‘서소문·동소문 별곡’이 열리고 있다. 오는 10월 31일까지 이어지는 특별전은 천주교 관련 근대유물 400여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한국 천주교 사상 최대 규모의 전시다. 전시는 ‘두 성문이 지켜본 천주교 230년의 이야기’란 부제를 달고 조선 후기 신유박해 때 많은 순교자가 처형된 서소문 일대와 1909년 성 베네딕도회의 수도원이 설립된 동소문(지금의 혜화동) 일대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낸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베네딕도 왜관수도원, 상트 오틸리엔 선교박물관 등이 공동 주최로 나서 김대건 신부의 묘비석과 관, 정하상의 상재상서, 정약용의 십자가, 기해일기 등 교회사·시대사와 관련된 유물들을 내놓았다. 왜관수도원은 1915년 명동성당에 설치됐던 옛 강론대와 1911년 제작된 백동수도원의 현관문 등을 전시한다. 또 상트 오틸리엔 선교박물관은 조선시대 갑옷 등 34점의 한국 관련 유물을 처음 공개했다. 전시의 백미는 로마교황청이 소장한 ‘황사영 백서’. 서소문에서 순교한 황사영이 신유박해의 전말과 대응책을 흰 비단에 적어 중국 베이징의 구베아 주교에게 전달하려던 일종의 밀서다. 행마다 110여자씩 122행을 적어 글자 수만 무려 1만 3311자에 이른다. 1894년 의금부의 옛 문서들을 소각할 때 우연히 발견돼 당시 조선교구장이던 뮈텔 주교의 손을 거쳐 교황 비오 11세에게 전달됐다. 박물관 측은 “한국 천주교회사의 기념비적 유물로 신앙의 자유를 획득하는 방안에 대한 평신도 황사영의 고민이 잘 담겨 있다”고 전했다. 최근 서울 잠원동 성당이 경매에서 구입해 서울대교구에 기증한 안중근 의사의 유묵 ‘경천’(敬天)도 나왔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안중근은 하느님을 공경하라는 뜻에서 생전 ‘경천’이란 글귀를 자주 썼다. 처형장에 들어설 때도 10여분간 기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유묵은 1910년 3월 뤼순 감옥에서 사형 집행을 앞두고 일본인 간수의 부탁을 받아 쓴 글씨다. ‘대한국인 안중근서’라는 한자와 오른손 약지를 단지한 손도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15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개막하는 ‘천국의 문’ 특별전은 정·관계와 학계를 아우르는 ‘천국의 문 전시추진위원회’가 마련했다. 교황이 직접 사용했던 의복과 성물을 비롯해 피렌체 두오모 성당과 세계 3대 박물관인 바티칸 박물관이 소장한 도나텔로, 피사노 등 거장들의 작품과 유물 90여점이 나온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시대의 거장인 로렌초 기베르티가 15세기에 20여년간 제작한 ‘천국의 문’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한국을 찾는다. ‘천국은 문’은 이탈리아 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에 속한 세례당의 동문으로, 높이 7m의 문에 청동 재질의 장식판 10개를 달았다. 천지창조, 노아의 방주, 아브라함과 이삭, 다윗과 골리앗 등 구약성서의 주요 인물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풀어냈다. 서울신문 주최로 18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전시장에서 열리는 사진전 ‘헬로, 프란치스코!’도 연일 화제다. 전시에는 지난해 3월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이후부터 지금까지 교황과 관련된 150여점의 사진이 전시되고 있다. 특별전은 한국 천주교의 발원지인 서울 명동에서도 이어진다. 천주교 교황 방한준비위원회 문화행사분과는 19일까지 명동 가톨릭회관 평화화랑에서 ‘일어나 비추어라’전을 개최한다. 서울가톨릭미술가회 회원과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추천 미술가 등 72명이 참여해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인다. 방한준비위원회는 17일까지 서울 명동성당 성모동산에서 다문화가정의 묵상글을 전시하는 ‘다문화가정 묵상글 축제‘도 연다. 필리핀, 몽골, 중국, 과테말라 등 14개국 출신 다문화가정 주부와 노동자 50여명이 신앙을 고백하는 글을 썼다. 이 밖에 명동성당 바오로 교육관에선 ‘한국근대성모성화’ 특별전이 22일까지 열린다. 이 땅에 천주교가 뿌리내린 과정을 미술로 보여 준다. 방한준비위원회 문화행사분과 위원장인 박규흠 신부는 “이번 전시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특별히 사랑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뜻을 잘 나타낸 것”이라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의정 포커스] 박경준 성동구의회 의장

    [의정 포커스] 박경준 성동구의회 의장

    “매일 아침 동네 한 바퀴를 돌아요. 이른 새벽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삶의 현장에서 맡은 역할을 열심히들 합디다. 이런 분들을 보면 주민 행복을 위해 무언가 해야겠다는 의욕이 솟구칩니다.” 서울 성동구의회 박경준(67·새정치민주연합·재선) 의장은 6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요즘 새로운 꿈에 들떴다”며 의욕을 내비쳤다. 새로운 꿈이란 성동구를 서울의 명소로 만드는 것이다. 성수동 수제화거리를 비롯해 특이한 카페와 화랑 등이 자생적으로 생겨나는 움직임에 주목했다. 또한 아파트형 공장이나 벤처기업 등에서 일하는 젊은이들과 서울숲을 방문하는 가족이나 연인들이 뚝섬역에서 성수역까지 상권도 변화시키고 있는 흐름을 강조했다. 박 의장은 “얼마 전 한 경제지에서 성수역 부근이 우리나라 10대 상권에 들어간다는 내용을 봤다”며 “삼청동길, 가로수길같이 성동구를 대표할 만한 문화와 상권을 갖춘 서울의 명소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구와 함께 문화, 경제가 꿈틀대도록 다양한 방안을 마련한다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의장은 지방선거에서 두 번 모두 당선권 밖이라는 말을 듣는 나번으로 공천을 받고도 당선될 정도로 기반을 탄탄하게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덕분에 6대 의회 운영위원장을 거쳐 의장에도 무난하게 선출될 수 있었다. 구의회는 최근 제7대 전반기를 맡은 의장단을 선출하고 원 구성을 마무리했다. 부의장에는 윤종욱(71·새정치연합·3선) 의원이 선출돼 앞으로 2년 동안 구의회를 이끌게 됐다. 의회운영위원장에는 김종곤(49·새정치연합·재선) 의원, 행정재무위원장에는 이상철(65·새누리당) 의원, 복지건설위원장에는 이성수(58·새정치연합) 의원이 각각 선출됐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청동기시대 유물 발굴한 英 초등학생들

    청동기시대 유물 발굴한 英 초등학생들

    영국의 초등학생들이 4천300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기 시대 금제 머리 장식물을 발굴해 화제다. 고고학계 주목을 받는 이번 발굴은 잉글랜드 북부 컴브리아주 노스페닌스의 고고학 발굴터에서 현장수업을 하던 초등학생들을 통해 이뤄졌다고 5일(현지시간) BBC가 보도했다. 컴브리아 앨스턴초등학교의 조지프 벨(7) 군 등 일행은 견학생을 위한 발굴터를 조사하다가 땅속에서 반짝이는 이 유물을 발견했다. 벨 군은 친구들과 찾아낸 유물이 수천 년 전에 묻힌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기쁨에 겨워 춤을 췄다”고 소감을 밝혔다. 친구 루카 앨더슨(8) 군은 “처음에는 플라스틱으로 생각했는데 진짜 금이라는 사실에 행복했다”고 말했다. 3.3㎝ 크기의 발굴품은 머리카락 가닥을 묶는 장식물로 선사시대에 이 지역에서 금과 구리를 채굴하던 인물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됐다. 이 지역에서는 1935년에도 같은 머리 장식물이 발굴돼 뉴캐슬 그레이트노스 박물관에서 소장·전시되고 있다. 이번 발굴 현장에서는 선사시대 화살촉들도 함께 발견됐다. 폴 프로드셤 발굴팀장은 “발굴 지역은 선사시대의 금속 채굴 현장으로서 고고학적으로 연구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찾아낸 선사시대 머리 장식물은 전문가 분석 작업을 거쳐 1935년에 발굴된 장식물과 짝을 이뤄 전시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레고랜드와 선사유적/서동철 논설위원

    춘천 중도(中島)는 북한강과 소양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만들어진 하중도(河中島)다. 원래 하나의 섬이었는데 춘천시 소양로와 서면 금산리를 뱃길로 연결하려고 섬의 가운데를 끊는 바람에 상중도(上中島)와 하중도(下中島)로 분리됐다. 이전엔 소양2교 건너편 사농동에서 걸어서 건널 수도 있었다고 한다. 춘천은 지금도 살기 좋은 도시지만, 이미 선사시대부터 강변을 따라 상당한 규모의 취락이 발달했다. 중도 북서쪽의 박사마을 너머 서면 월송리에서도 구석기 유물이 채집됐다. 신석기 유물도 북한강과 소양강을 따라 여러 곳에서 발견됐다. 청동기시대 것은 주거유적과 분묘유적이 밀집한 형태로 분포한다. 중도는 삼천동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5~10분만 가면 닿는다. 특히 하중도에는 청소년 야영장과 수영장, 보트장, 놀이마당, 잔디광장이 집중적으로 갖추어졌다. 중도 관광지로 불리는 이곳에 작은 선사유적 전시관도 세워졌다. ‘파기만 하면 유물이 나오는 보물섬’이라는 제목의 중도 르포 기사를 본 적도 있다. 선사시대 유적 밀집지역으로 이 섬의 중요성을 상징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실제로 국립중앙박물관은 1977년 중도 지표조사에서 고인돌과 돌무지무덤을 확인하는 한편 민무늬토기와 김해식토기를 수습함에 따라 연차 발굴에 들어갔다. 그 결과 중도가 청동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를 거쳐 철기시대에 이르는 선사시대 사람들의 중요한 삶의 터전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중도에서는 지금도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다. 2015년까지 5683억원을 들여 장난감 왕국이라는 ‘레고랜드 테마파크’를 짓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설물 건립에 앞선 구제발굴에서 청동기시대 고인돌 101기와 2000년 전 마을터를 비롯해 모두 1400기 남짓한 유적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그것도 전체 부지 132만 2000㎡의 10분의1도 채 되지 않는 12만 2025㎡를 발굴한 결과라니 놀랍다. 레고랜드는 한 해 200만명의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1000명 이상의 고용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모은다. 대규모 선사유적 발굴로 사업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지역민의 우려도 상당한 듯하다. 일부 유적의 보존과 레고랜드 개발이 접목되면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고고학계의 충고도 있다. 걱정스러울수록 장기적 관점에서 판단했으면 좋겠다. 10~20년 단위로는 레고랜드가 더 많은 관광객을 부르겠지만, 100~200년 단위로는 다를 수 있다. 그 넒은 중도가 거대한 선사유적공원이 된다면 레고랜드보다 훨씬 더 많은 관광객을 모으면서 한국의 문화수준도 과시하는 국제적 명물로 발돋움할 수도 있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걸스데이 민아 손흥민 데이트 사진 보니 ‘풋풋한 연인’

    걸스데이 민아 손흥민 데이트 사진 보니 ‘풋풋한 연인’

    독일 바이에르 레버쿠젠의 손흥민(22)과 걸스데이의 민아(21)의 열애설이 온라인을 달구고 있다. 29일 더팩트는 손흥민과 걸스데이 민아가 손흥민의 차 아우디 r8에서 데이트하는 모습을 포착한 사진과 함께 두 사람이 열애 중이라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손흥민과 걸스데이 민아는 지난 16일부터 17일까지 강남구청역 근처와 한강공원, 삼청동 등지에서 4시간 정도 만남을 가졌다. 데이트는 주로 손흥민의 차 아우디 r8에서 이뤄졌으며 손을 잡고 길을 거닐기도 했다. 걸스데이 민아의 소속사 드림티엔터테인먼트는 이날 오후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민아에게 확인한 결과 손흥민 선수와 좋은 감정을 가지고 2회 만난 것으로 확인했다”며 “SNS를 통해 서로 팬으로서 격려와 우정을 쌓아오다가 손흥민 선수가 독일 소속팀 복귀전 좋은 감정으로 만나기 시작한 것으로 안다”고 열애설을 인정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손흥민 민아 데이트, 손흥민 차 아우디 R8에서 주로.. 사진 보니 “너무 잘 어울려”

    손흥민 민아 데이트, 손흥민 차 아우디 R8에서 주로.. 사진 보니 “너무 잘 어울려”

    ‘손흥민 걸스데이 민아 데이트 포착 열애 인정, 손흥민 차, 아우디 r8’ 독일 바이에르 레버쿠젠의 손흥민(22)과 걸스데이의 민아(21)가 열애를 인정했다. 29일 더팩트는 손흥민과 걸스데이 민아가 손흥민의 차 아우디 r8에서 데이트하는 모습을 포착한 사진과 함께 두 사람이 열애 중이라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손흥민과 걸스데이 민아는 지난 16일부터 17일까지 강남구청역 근처와 한강공원, 삼청동 등지에서 4시간 정도 만남을 가졌다. 데이트는 주로 손흥민의 차 아우디 r8에서 이뤄졌으며 손을 잡고 길을 거닐기도 했다. 손흥민은 직접 꽃다발을 준비해 민아에게 선물하는 로맨틱한 면모를 보였다. 걸스데이 민아의 소속사 드림티엔터테인먼트는 이날 오후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민아에게 확인한 결과 손흥민 선수와 좋은 감정을 가지고 2회 만난 것으로 확인했다”며 “SNS를 통해 서로 팬으로서 격려와 우정을 쌓아오다가 손흥민 선수가 독일 소속팀 복귀전 좋은 감정으로 만나기 시작한 것으로 안다”고 열애설을 인정했다. 네티즌들은 “손흥민 걸스데이 민아 열애설 대박이다”, “손흥민 차 아우디 r8, 여자친구 민아보다 더 부럽네”, “손흥민 차 아우디 r8, 남성들의 로망인데”, “손흥민 차 아우디 r8, 걸스데이 민아가 반할 만 하다”, “손흥민 민아 열애설, 이제 막 시작하는 것 같은데 터뜨리니 곤란하겠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손흥민-걸스데이 민아 열애 인정 ‘심야 아우디 r8 타고..’

    손흥민-걸스데이 민아 열애 인정 ‘심야 아우디 r8 타고..’

    독일 바이에르 레버쿠젠의 손흥민(22)과 걸스데이의 민아(21)의 열애설이 온라인을 달구고 있다. 29일 더팩트는 손흥민과 민아가 손흥민의 차 아우디 r8에서 데이트하는 모습을 포착한 사진과 함께 두 사람이 열애 중이라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손흥민과 민아는 지난 16일부터 17일까지 강남구청역 근처와 한강공원, 삼청동 등지에서 4시간 정도 만남을 가졌다. 데이트는 주로 손흥민의 차 아우디 r8에서 이뤄졌으며 손을 잡고 길을 거닐기도 했다. 걸스데이 민아의 소속사 드림티엔터테인먼트는 이날 오후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민아에게 확인한 결과 손흥민 선수와 좋은 감정을 가지고 2회 만난 것으로 확인했다”며 “SNS를 통해 서로 팬으로서 격려와 우정을 쌓아오다가 손흥민 선수가 독일 소속팀 복귀전 좋은 감정으로 만나기 시작한 것으로 안다”고 열애설을 인정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손흥민-걸스데이 민아, 손흥민 아버지 반응 반전 ‘파파라치 사진은?’

    손흥민-걸스데이 민아, 손흥민 아버지 반응 반전 ‘파파라치 사진은?’

    ‘손흥민-걸스데이 민아 열애’ 손흥민(레버쿠젠)이 걸스데이 민아와 열애설에 휩싸인 가운데 손흥민의 아버지가 쿨한 반응을 보였다. 29일 온라인매체 더팩트는 손흥민과 걸스데이 민아가 한강공원과 삼청동 등지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을 보도해 화제를 모았다. 사진 속에서 손흥민과 민아는 길거리에서 손을 깍지낀 채 잡고 다니며 행복한 표정을 지어 눈길을 모았다. 1992년생 손흥민과 1993년생 민아는 SNS를 통해 알게 돼 서로 팬으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급속도로 가까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매체에 따르면 두 사람은 지난 16일과 17일 심야 데이트를 즐겼고, 19일 소속팀 복귀를 앞둔 손흥민은 민아에게 직접 준비한 꽃다발 프러포즈를 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손흥민 아버지 손웅정 씨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젊은 나이로 연애를 할 수도 있지 않냐”며 쿨한 반응을 보였다. 손흥민-걸스데이 민아 아우디 r8 데이트 소식을 접한 네티즌은 “손흥민-걸스데이 민아 아우디 r8 데이트..부러운 두 사람”, “손흥민-걸스데이 민아 아우디 r8 데이트..잘 어울리네”, “손흥민-걸스데이 민아 아우디 r8 데이트..젊으니까 데이트 할 수도 있죠”, “손흥민-걸스데이 민아 아우디 r8 데이트..오래 사귀었으면 좋겠네”등 반응을 보였다. 사진 = 걸스데이 민아 트위터, 테그호이어 (손흥민-걸스데이 민아, 아우디 r8 데이트) 연예팀 chkim@seoul.co.kr
  • 손흥민 민아 데이트, 럭셔리 아우디 r8 데이트

    손흥민 민아 데이트, 럭셔리 아우디 r8 데이트

    ‘손흥민 민아 데이트’ 29일 더팩트는 손흥민과 걸스데이 민아가 손흥민의 차 아우디 r8에서 데이트하는 모습을 포착했다. 보도에 따르면 손흥민과 걸스데이 민아는 지난 16일부터 17일까지 강남구청역 근처와 한강공원, 삼청동 등지에서 4시간 정도 만남을 가졌다. 한편 민아는 1993년 출생으로 동덕여자대학교에서 방송연예를 전공하고 있다. 걸스데이의 리드보컬로 ‘잘해줘 봐야’ ‘반짝반짝’ ‘한번만 안아줘’ ‘Something’ 등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현재 여름 스페셜 앨범 ‘Darling’으로 활발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손흥민은 1992년 출생으로 동북고등학교를 거쳐 현재는 독일 레버쿠젠에서 활약하고 있다. 2014브라질월드컵 국가대표로 선발돼 월드컵 30번째 골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연예팀 c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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