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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골동품 중국 밀반출 급증/연변 등서 암거래 성행

    ◎국보급서화·자기 등 하루 10개꼴/경제난 따른 달러 등 외화벌이로 북한에서 출토됐거나 도굴된 골동품들이 최근 중국으로 밀반출되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 중국에 밀반출되는 북한의 골동품 가운데는 상당수의 문화재급 또는 국보급 서화와 자기등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최근 북한의 경제난이 폭발직전의 심각한 상태로 악화된데 따른 현상으로 달러등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이다.밀거래를 통해 중국으로 흘러들어간 북한 골동품들은 일본인등 외국인에게 팔려나가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경에서 북한 골동품을 취급하는 한 조선족동포는 『북한에서 은밀한 방법으로 중국으로 흘러들어오는 골동품 수는 하루평균 10개정도』라면서 『이들 골동품은 서화나 자기,청동기,철기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경에서 북한 골동품을 취급하는 거래상이 줄잡아 10여명이며 조선족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연변지방이나 두만강개발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는 단동을 무대로 암거래가 성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북한골동품들이 친척을 방문하러 중국에 건너오는 북한 동포나 북한에 갔던 중국인들,또는 북한에 살고 있는 중국인 화교들의 손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면서 『더러는 오래전부터 북한 골동품을 소장하고 있는 중국인들이 내다 파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북한의 경제사정이 크게 어려워진 요즈음엔 중국으로 출장오는 일부 상당한 지위의 북한인들까지 몰래 골동품을 갖고 들어와 달러와 바꿔가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곤 했다. 심지어 최근에는 북한의 한 문화재관리창고에 보관돼 있던 다량의 국보급 문화재들이 도난당해 이들 문화재의 해외유출을 차단하기 위해 북한­중국간 국경지역의 경비가 대폭 강화됐었다는 소문이 동북지방에 나돌기도 했다. 이와관련,주중 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1∼2년전부터 북한에서 암거래 루트를 통해 흘러들어온 많은 골동품들이 중국 동북지방을 중심으로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면서 『북한당국이 이를 철저히 단속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결과적으로 조국의 중요한 문화유산들이 유실되고 있다는게 참으로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 선사시대서 조선까지 생활사 한눈에/국립민속박물관 17일 확장개관

    ◎4천3백여점 시대순 분류전시/경복궁 중앙박물관자리/입체음향·영상 등 특수기법 선보여 국립민속박물관이 경복궁안 동쪽에 있는 옛 국립중앙박물관 자리에서 17일 개관식을 갖고 문화부 직속기관으로 새롭게 문을 연다. 새 민속박물관은 1만2천8백40평의 부지에 연 건평이 4천4백54평으로 순수 전시면적만도 2천2백44평에 이른다.이 것은 옛 민속박물관 시절 부지 2천9백60평에 연 건평 1천2백63평,전시면적 6백24평이었던 것에 비해 3∼4배 이상 커진 것이다.이에따라 전시품도 2천4백여점에서 4천3백여점으로 크게 늘어나 내실있는 전시가 가능해졌다. 민속박물관의 전시관은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야외전시장을 갖추었다.상설전시실은 다시 「한민족 생활사」를 담은 제1관과 「생활문화와 민속」을 담은 제2관,「한국인의 일생 및 사회제도」를 담은 제3관으로 나누어진다. 「한민족 생활사관」은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한민족의 생활사를 시대순으로 배치해 이해를 돕도록 했다.선사시대의 각종 생활도구와 청동기시대의 생활상,고구려의 생활문화,백제의 제사유적,신라의 왕경도,가야의 야철공방,고려의 인쇄 및 청자문화,조선의 한글창제와 과학기술 등 주로 정신세계와 관련된 자료들이 복원 전시된다. 「생활문물과 생산민속관」은 생업자료 및 농경문화와 세시·수렵·어로·수공예를 비롯해 우리 전통사회의 의·식·주 생활을 엿볼수 있도록 꾸몄다.고대 에서부터 근래까지 쓰였던 각종 농기구와 정월 대보름놀이 등 농경 세시의례를 비롯해 각종 옷과 장신구,부엌 세간 및 세시음식과 일상음식,각종 가옥의 모형 등을 전시하게 된다.이 밖에 양반 사대부의 생활과 내면세계를 살펴볼수있는 안방과 사랑방,칠기와 화각공예품이 전시되며 옹기가마도 복원해 놓았다. 「한국인의 일생과 사회제도관」은 한국인이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거치는 통과의례와 오락,사회제도 및 종교에 관한 것들을 담았다.득남을 비는 풍습과 선바위,서당,향교,관례 및 혼례,회갑연,상청과 제례상,사당,주막,굿청,각종 놀이모습이 전시된다.또 문방구류,악기,화폐와 교통·통신과 관련된 봉수대,조운선 등이 모형으로 재현된다. 이들 전시는 모두 디오라마,모형,입체음향과 영상매체를 이용한 특수 전시기법을 적극 활용해 관객들의 즐거움을 더하고 이해를 높이도록 했다.한편 중앙홀에서는 개관을 기념하는 「한국의 건축문화」특별전이 열린다.여기에는 신라의 안압지와 황룡사 9층탑,백제의 미륵사,고려의 다실,조선의 근정전,동십자각,사랑방 등의 모형이 포함됐다. 야외전시장에는 귀틀집과 원두막,솟대 등 생활문화가 원형의 크기로 들어섰다.이 밖에 영상실 및 2백52석 규모의 강당이 들어서 사회교육 기능을 담당하게 되며 기념품 판매대도 마련했다.
  • 기마인물토기 국보로/안 의사유묵 보물 지정

    문화부는 14일 가야시대 기마인물형 토기를 국보 제275호로 지정하는 한편 안중근의사 유묵등 6건을 보물로 지정,고시했다. 이번에 국보로 지정된 기마인물형 토기는 5세기경 만들어진 것으로 실물이 전하지 않는 방패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있는 등 당시의 토기뿐아니라 마구와 무구를 연구하는데도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이밖에 보물로 지정된 것은 다음과 같다. ▲제1147호 묘법련화경 권 제삼­사,오­칠 ▲제1148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제1149호 신간표제공자가어구해 ▲제1151호 청동흑칠발걸개 ▲경주 죽동리출토 청동기일괄
  • 가야 철제유물 대량 출토/김해/대형철창·환두대도 등 1백40점

    경남 김해군 주촌면 양동리 가야고분(AD2세기말∼2세기초)에서 우리나라 출토품가운데 가장 큰 철창과 가장 오래된 둥근고리큰칼(환두대도)등 철제유물을 비롯 가야의 북방교류사실을 새롭게 밝히는 청동솥과 장신구등의 각종 유물이 대량발굴됐다. 이들 유물은 부산 동의대박물관(관장 임효택교수)팀이 28일 양동리고분군의 제235호 고분인 흙구덩널무덤(토광목곽분·길이 7백60㎝·너비 3백90㎝)발굴과정에 출토한 것으로 이번에 모두 1백40여점의 각종 유물이 수습되었다.이가운데 쇠자루가 붙은 대형 쇠투겁창(철모)은 길이가 2백27㎝로 우리나라 고대유적 발굴사상 가장 큰것으로 밝혀졌으며,둥근고리큰칼(1백20㎝)도 가야 최대유물이자 최고유물로 가려졌다. 특히 둥근큰고리칼은 지금까지 동검으로 상징되던 피장자의 신분적 상징물이 둥근큰고리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또 이 둥근큰고리칼은 한·일 두나라 출토품가운데서도 가장 큰 것으로 확인되어 피장자는 가야지역 지배자급으로 추정됐다. 이밖에 수정제 굽은옥(곡옥)이 대량 출토되었다.이는 종래의 유리제 둥근옥(환옥),대롱옥(관옥)중심에서 북방계 영향을 받아 취향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출토품 청동기인 구리솥(동복)역시 지금까지의 출토품가운데 가장 클뿐아니라 북방계 영향을 받은 유물로 평가되었다. 그리고 이번 발굴에서는 널방(묘실)을 불태우는 특수 장례흔적을 발견하는 동시에 30여점의 판장철부를 발견함으로써 지신에게 묘지대금을 쇠붙이로 지불하는 풍습이 존재했음을 확인했다.
  • 「부산모임」 오늘 현장검증/검찰/정몽준의원에 “출두” 거듭 통보

    ◎안기부직원이 이틀째 철야조사 「부산지역기관장모임」과 도청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은 23일 국민당 정몽준의원이 도청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심증을 굳히고 1차소환에 불응한 정의원에게 24일 상오10시까지 출두하라고 전화통보했다. 검찰은 지금까지 조사결과 정의원이 해외로 달아난 현대중공업 부사장 안충승씨를 통해 도청실무책임자인 문종렬씨(42·전현대중공업직원)등과 연결돼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에따라 정의원을 상대로 도청을 직접 지시했는지 여부와 도청대가로 금품을 주기로 했는지 여부등에 대해 집중추궁할 방침이다. 검찰관계자는 『지금까지 도청경위등에 대한 사실은 확인했지만 구체적인 도청동기와 도청작업의 실질적 주도자,금품거래관계 등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라면서 『이 부분은 정의원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진 뒤에야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와함께 지난 22일 일단 귀가조치시켰던 문씨를 이날 다시 불러 정의원의 개입여부 등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또 안기부부산지부 직원 김남석씨(43)를 상대로 조찬모임의 정보입수 경위와 금품을 받았는지 여부에 대해 이틀째 철야조사했다. 김씨는 검찰에서 『고향후배인 문씨가 선거전에 찾아와 도와달라고 해 국민당을 돕기로 하고 우연히 입수한 모임정보를 제공했을 뿐이며 금품을 받거나 요구한 사실은 없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문씨의 친구 안종윤씨(43)와 현대해양개발이사 최충영씨(46)등 나머지 관련자 4명도 이날 연행 48시간이 됨에따라 귀가조치시켰다. 검찰은 또 모임사건과 관련,부산초원복국집 종업원 김모·장모씨등 2명을 불러 당시 모임분위기에 대한 참고인조사를 벌였으며 24일 김영환 전부산시장,박남수·강병중 부산상공회의소 회장과 부회장을 참석시켜 초원복국집 모임에 대한 현장검증을 실시할 예정이다. 검찰은 26일쯤 부산시장 비서실 직원들을 불러 초원복국집에 식사예약을 하게된 경위,기관장들과의 사전 연락과정등에 대한 참고인진술도 듣기로 했다. 검찰은 현장검증과 녹음성문 분석결과를 김기춘전법무장관등 모임참석자들의 검찰진술과함께 종합검토,사실관계를 확정지은뒤 법률검토를 끝내는 다음주초까지 이들의 사법처리 여부를 일괄적으로 결정지을 방침이다.
  • 돌다짐유구 발견/창원

    【창원=이정령기자】 경남 창원군 동면 덕천리 고인돌무덤(지석묘)주변에서 돌다짐한 대규모의 석축유구와 함께 청동기등 유물이 대량 발견되었다. 21일 경남대 덕천리지석묘발굴조사단(단장 유장근 박물관장)에 의해 발굴이 마무리된 이 유구는 고인돌을 축조하기 위해 직경 약40m정도의 지반을 돌다짐한 것으로 확인됐다.
  • 강릉향토사료관 개관/영동지역 역사유물 연구·보존 활로텄다

    ◎유·무형문화재 1천여점 체계적 전시/대학박물관 중심 탈피… 시민에 친근감/개관되자마자 “만원”… 교육·관광 새 명소로 강릉향토사료관의 개관으로 박물관이 없는 영동지방의 역사유물 및 민속자료에 대한 보존·연구가 활기를 띠게 됐다.사료관은 또 지난 15일 개관되자마자 하루 1천명이상의 관람객이 찾아드는 등 지역민에 대한 사회교육의 장은 물론 강릉지역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강릉향토사료관은 강릉시가 지난 89년부터 모두 28억원을 들여 죽헌동177의4 오죽헌경내 5천2백22평의 대지위에 세웠다.건물은 지상1층 지하1층에 2백50평 규모.외관은 전통미를 살린 한옥이며 내부는 현대식으로 지어졌다. 사료관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유물 및 자료는 모두 1천여점이며 이가운데 4백70여점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강릉시는 당초 사료관의 개관작업을 하며 어떤 성격을 택하느냐를 놓고 고민에 빠졌었다고 한다.민속박물관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강릉지역에 독특한 민속이 다양하게 전래되고 있어 관객의 흥미를 끌수 있는 전시가 가능하다는것이었다.또 민속박물관이라는 명칭이 일반인들에게 친근한 느낌을 주며 어느정도 권위도 깃들어 있다는 이야기였다.그러나 대세는 향토사료관을 주장하는 쪽으로 기울어갔다. 이들은 최근 영동지방에서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청동기·원삼국·삼국시대에 이르는 유적이 체계적으로 발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동은 물론 강원도 전체에 박물관하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때문에 민속자료에 국한될 우려가 있는 민속박물관보다는 박물관과 민속박물관의 기능을 함께 하면서 규모는 작은 향토사료관이 되는게 바람직하다고 주장을 폈다.우선 지역내 역사유물및 민속자료에 대한 수집 보존 연구를 하고 후에 박물관이 세워지면 해당기능을 넘겨주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탄생과정을 거쳐 사료관은 선사문화실과 역사미술실 민속문화실 야외전시장으로 4개부문의 전시영역을 갖추게 됐다. 먼저 66평규모의 선사문화실에는 명주 심곡리에서 발굴된 구석기시대 찍개 긁개를 비롯,강릉 명주지역에서 출토된 선사유물을 체계적으로 전시하고 있다.특히 명주 안인리의 원삼국시대유적지를 바탕으로 당시 생활상을 재현해 이지역 선사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54평 규모의 역사미술실에는 보물 제81호인 한송사터 석불좌상을 비롯,강릉12향현의 유품,관동8경도등이 전시되어 있다. 또 92평 규모의 민속전시실에는 중요무형문화재인 강릉단오제와 강릉농악을 축소형으로 재현하고 민가와 생활용구등을 다양하게 전시,이지역 선인들의 생활상을 살필수 있게 했다. 야외전시장은 지역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선정비들과 신라시대의 석탑기단면석,석불입상들을 한데 모았으며 양양 포월리의 석실고분과 괸돌의 하부구조도 옮겨 전시하고 있다. 사료관은 현재 장상준관장등 14명의 직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사료관의 개관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관동대 신호웅박물관장은 『그동안 영동지역의 유물수집과 연구는 대부분 일반인들의 접근이 어려운 대학박물관중심으로 이루어졌던 만큼 사료관의 개관이 반갑다』고 말했다.신관장은 『그러나 사료관이 단순한 관광자원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유물수집과 연구에 획기적인 예산을 배정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한국청동거울 변천사 한눈에

    ◎청주박물관,선사∼근대 동경 180점 전시 국립청주박물관이 우리나라 청동거울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한국의 동경」특별전을 20일까지 본관 기획 전시실에서 열고 있다. 이 특별전은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민족이 사용해 온 동경을 한자리에 모아 그 형태및 제작기법의 시대적 변천을 보여주어 우리나라 동경에 대한 공예사적 이해를 도모하는 자리로 꾸며졌다. 전시되고있는 유물은 국보 제14 3호 화순 대곡리출토 청동기시대 동경과 국보 제161호 무령왕릉출토 백제시대 동경등 1백28건 1백80점이다. 예로부터 거울은 사물을 비춰볼수 있는 도구로 고안해 사용했을 뿐 아니라 신령스런 의기로 의미가 확대되어 시대에 따라 여러가지 상징적인 무늬가 담겨지고 형태도 다양해지게 되었다.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동경은 뒷면에 기하학적인 집선문을 도안하고 꼭지를 두세개 다는 것이 특징이다.초기에는 삼각형 또는 별모양의 윤곽안에 거친 무늬가 채워지다(다뉴추문경)차츰 정교한 무늬로 발전(다뉴정문경)하게 된다. 삼국시대에는 중국에서수입한 한경과 이를 모방한 거울(방제경)이 주류를 이룬다. 고려시대에는 거울의 수입과 국내제작이 모두 활발히 이루어져 다양한 종류가 나타난다.문양은 하나의 꼭지를 중심으로 주위에 수신 어용 화조 인물 신선 시구등을 새기고 있고 형태도 사각형 직사각형 팔각형 꽃잎모양등으로 다채롭다. 조선시대가 되면서 동경의 크기는 커지나 무늬가 간략해져 제작기술이 단순화된다.
  • 가야 중심 김해시,「가야와 동아시아」관계 국제학술회의

    ◎임나일본부/한반도 병합위해 조작/왜서 일본으로 개칭한것은 7세기/「일본서기」 5C기록에 「일본부」 등장은 어불성설/4C전후 왜와 교류,청동문화 전파시켜 고대 한반도 남부에 일본의 통치기구인 임나일본부 존재설은 허구인가 진실인가.이 임나일본부설은 일본학자들이 조작한 허구이며 삼국초기 낙동강 하류지역(김관가야)은 해상루트를 통해 이미 발달된 북방문화를 받아들인 강력한 독자적 세력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이는 일본학자들까지 참가한 가운데 가야문화의 중심지 김해시(시장 백승두)가 최근 개최한 「가야와 동아시아」 주제의 국제학술회의에서 제기돼 주목을 끌었다. 우리 역사에서 비교적 소홀하게 다루어져온 가야사의 실체를 규명하고 당시의 대외관계를 밝히기 위한 이 학술발표회에서는 한·중·일 3국의 시각에서 입체적으로 가야와 왜의 관계에 대한 조망이 시도됐다.발표된 주제는 「임나일본부와 위의 오왕」(왕건군·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장),「고고학에서 본 가야와 왜」(대총초중·명치대),「금관가야의 성립과 대외관계」(신경철·경성대)등. 중국측의 왕건군교수는 일본에서 정설로 취급되어온 「남선경영설」과 「임나일본부」의 존재는 한반도 병합을 위한 역사적 근거로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그 이유로 일본의 「고사기」「일본서기」등이 주로 신화와 전설을 기초로 편찬된 사실을 지적했다.따라서 이들 자료에 나오는 신공황후의 삼한정벌과 백제 진사왕의 죽음을 남선경영의 증거로 삼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왕교수는 「일본서기」의 부정확성의 한 예로 웅략8년(463년)이월조에 나오는 「일본부」에 관한 기록을 들었다.국호를 위에서 일본으로 개칭한 것이 7세기 후반이기 때문에 5세기의 기록에 일본이라는 명칭이 나오는 것 자체가 작위적 요소가 많다는 것이다. 오쓰카 하쓰시게(대총초중)교수는 한국과 일본의 교류가 활발해진 시점을 BC4세기를 전후한 한국의 청동기시대와 일본의 죠오몽(승문)시대 말기로 보고 이 시기에 벼농사문화가 한반도에서 전파됐음을 밝혔다.그는 김해 대성동·양동리고분,동래 복천동고분등의 발굴에서 구사국(삼한)과 금관가야의 구분이 명확해졌으며 왜와 가야와의 관계에 많은 문제를 제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지금 일본 고고학계의 뜨거운 시선이 가야에 쏠려 있다는 것이다. 오쓰카교수는 이들 고분에서 발견된 통형동기·파형동기등은 양국 고분시대사회의 소유형태나 부장상태를 분석해볼때 왜계유물의 성격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왜왕권이 만약 가야에 대하여 이들 청동제품을 헌공했다면 왜왕권에 있어서 가야는 대단히 중요한 존재였을 것이라는 그는 철의 입수를 목적으로한 행동의 표현이 헌공으로 나타날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신경철교수는 낙동강하류 분묘군에 분묘파괴현상이 있었음을 밝혀내고 파괴이전의 목곽묘군을 1부류,파괴를 당한 이후의 목곽묘군을 2부류로 나누었다.여기서 결정적인 분류근거로 도질토기의 등장을 든 신교수는 2부류의 묘들은 중국 동북지방의 길림성북부에서 출토된 것과 유사한 점이 있기 때문에 북방문화가 직접 이 지역에 유입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교수는 또 시대변천에 따라 왜의 교섭대상지역이 달랐다는 견해를 제시했다.이를테면 구사국시대(삼한시대)는 북부 구주와 금관가야때는 대화를 중심으로 교섭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 청동기시대 집터 백제유물 발견/마사리유적지 원형보존

    ◎문화부,최종확정 문화부 문화재관리국은 최근 청동기시대 집터와 백제시대 밭터등이 발굴되어 학계의 관심을 끌었던 미사리 유적지를 원형대로 보존키로 23일 최종 결정했다.이같은 결정은 지난 21일 소집된 문화재위원회 제3분과회의의 보존대책논의결과에 따른 것이다. 이에따라 문화재관리국은 당초의 호안공사계획선을 변경하는 문제를 조속한 시일내에 건설부와 협의에 들어가기로 했으며 경기도에도 이 사실을 통보했다. 이 지역은 사적지인 미사리선사유적지의 인접지역으로 지난 85년부터 시작된 한강종합개발계획에 따라 하천에 편입되기로 예정되어있어 사전발굴조사가 이루어졌었다.
  • 원광대 「동북아고대문화…」 학술회의서 새 학설

    ◎“고구려­만주혼강 토착세력이 세워”/청동·철기문화 수용후인 1C쯤 출현/부여인건국설 고고학근거 발견안돼 고구려의 기원문제가 새로운 각도로 제기되고 있다.이는 고구려 건국지역인 중국동북3성 일대에 대한 고고학적 학술성과의 공개와 함께 이 지역이 개방되고 있는데서 비롯됐다.이 문제는 한·중·일·러시아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회된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소장 김삼용)가 최근 개최한 국제학술회의에서도 심도있게 다뤄졌다. 마한·백제문화연구소의 이번 국제학술회의 주제는 「동북아고대문화원류와 전개」.모두 22개 발제 가운데 고구려와 관련한 발제는 3개나 됐다.특히 이송래교수(미노스웨스트크리스천대)의 「고고학적으로 본 고구려건국 이전의 환인­집안지구의 문화사회성격」이 주목을 끌었다.그는 이 발제를 통해 지금까지 상식적으로 알려진 문헌사의 한계를 뛰어넘어 고구려왕조의 주체세력이 누구였는가를 고고학적 성과를 토대로 새롭게 규명했다. 이교수는 먼저 고구려의 기원을 부여와 연관시켜온 학설에 부정적 견해를 제시하고 나섰다.그 이유는 이를 고고학적으로 뒷받침할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따라서 광개토대왕비문이나 「삼국사기」가 기술한 고구려 건국 내용속에는 몇가지의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이를테면 부여의 한 왕자에 의해 고구려라는 왕조가 세워질수 없다는 것이다. 왕국은 물론 국가단계의 사회는 결코 진공상태에서 갑자기 출현할수 없다는 것이 이교수의 지론.한 국가가 이루어지기까지는 사회적 정치적 힘이 뒤따라야 한다는 이교수는 특히 고구려와 부여의 민족을 서로 연결시킬수 있는 고고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무덤형태만 보아도 부여는 돌널무덤(석관묘)이 주류를 이루는데 비해 고구려에서는 전혀 다른 돌묻이무덤(적석총)을 축조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고구려를 형성한 주체세력은 누구인가.이교수는 혼강유역에서 신석기문화를 지켜온 사람들로 보았다.이 지역의 신석기문화를 BC3세기께까지로 편년하면서 비록 신석기문화이긴 했지만 정체된 것은 아니라고 분석했다.신석기시대 전시기에 걸친 문화혁신을 통해 BC3세기께에 접어들면 이미 상당한 힘을 쌓고 있다는 것이다.또 오늘날 중국 길림성 환인시와 집안시를 구심점으로한 이들은 청동기문화를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교수는 환인과 집안의 청동기문화를 단동과 연관시켰다.특히 거미줄모양을 새긴 청동거울(동경)과 청동투겁창(동모)은 두지역 출토품이 일치할뿐 다른 지역과는 사뭇 다르다는 이교수는 이지역 출토품인 연나라의 화폐 명도전 역시 단동을 통해 수용된 철기문화로 풀이했다.이러한 문화수용의 압력은 북중국에서 요동으로 진출한 연나라 세력에서 비롯됐다는 것으로 그 시기는 대개 연나라 소왕대(311∼279BC)로 잡았다. 환인·집안지역의 청동기·철기문화는 자연발생적 문화가 아닌 이른바 2차적 문명형성이기는 하나 대단한 사회역량이 축적되어 결과적으로 지역간의 교역,집약농경,인구증가를 가져왔다는 것이 이교수의 견해.이를 입증하는 유적과 유물로 환인·집안지역에서 각종 석기와 함께 발굴된 성읍성격의 토성지와 초기돌묻이무덤,각종 철제농기구들을 꼽았다. 이교수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1세기께에 출현한 것이 고구려이고,그 이전 환인·집안지역에서 신석기문화 전통을 간직한 가운데 청동기·철기문화를 수용한 세력이 바로 선고구려라고 주장했다.결론적으로 고구려는 2차 국가형성의 고전적 표본이라는 것이다.
  • 청동기유물 산지추정 가능/보존과학세미나… 일 히라오박사 주장

    ◎연대측정때 사용하는 납동위원소 이용/일본 청동기문화,“한반도서 전래”도 확인 고고학과 자연과학의 만남으로 고대 유물의 신비를 벗겨주는데 열쇠가 되고 있는 보존과학에 관한 세미나가 호암미술관 개관10주년기념사업으로 최근 서울 삼성본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렸다. 주제는 「고대 동아시아에 있어서의 청동」.발표는 일본의 보존과학전문가인 히라오 요시미치박사(도쿄국립문화재연구소 화학연구실장)가 맡았다.히라오박사는 특히 이 발표에서 연대측정방법의 하나인 납동위원소 비율을 통한 청동기문화의 해석방법을 규명했다.동북아에서 청동기문화의 도래시기에 대해서는 중국이 기원전 17 00년,한국은 기원전 10 00년,일본은 기원전 500년경으로 추정하며 일본의 청동기는 한반도를 통해서 전달됐음을 분명히 밝혔다. 일반적으로 고고학에서는 청동기유물의 외형적 특징이나 고대문헌에 의해 청동기문화를 해석하지만 정확한 산지나 생산연대를 밝히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따라서 납동위원소 비율을 이용한 청동유물의 해석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정확한 산지를 추정할수 있는 방법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특히 일본의 청동제종방울(동탁)연구를 통해 납동위원소 비율의 연구등을 통한 당시의 국제정치적 상황변화및 통치제도등을 규명했다.고대 유물에의 보존과학적 접근이 단순한 연대측정 뿐아니라 당시의 정치·사회상 파악으로까지 확대시킬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즉 초기 일본의 청동제종방울이나 혹은 세형동검등이 한반도산 납의 동위원소비를 나타내 한반도산 청동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규명했다.그러나 중기의 종방울등에서는 중국산 청동으로 바뀌는 것은 중국의 한반도 지배라는 정치적 상황변동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또 후기 종방울이 일정한 납동위원소비를 나타내는것은 한곳의 광산에서 채굴한 납만을 이용한 것인데,이는 바로 대륙 한나라가 금속판매를 철저히 통제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진주박물관 「고대의 소리」 특별전

    ◎청동기∼조선시대 유물 4백여점 전시/선조의 무술적 정신세계 재조명 기회 국립진주박물관은 3일부터 12월3일까지 「고대의 소리」특별전을 연다. 이전시회는 주로 청동기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유물가운데 소리와 관련되는 4백여점을 한자리에 모아 선보이는 자리.주요 전시품으로는 청동제 각종악기와 방울,말장신구,통형동기,철제방울,흙으로 빚은 방물,방울달린잔 및 흙으로 빚은 주악인물상등이 있다.이밖에 통일신라시대이래 조선시대까지의 소리유물도 일부 선을 보인다. 이러한 소리관련유물들은 고대인들이 일상생활용품으로 사용됐을뿐아니라 주술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샤머니즘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이처럼 각종 소리관련유물에 투영되어있는 우리조상의 의식세계및 샤머니즘적 정신세계를 재조명해 우리 문화재에 깃들어있는 참뜻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 고대­중세­근대­현대/사학계,한국사 시대구분 논쟁

    ◎국사편찬위,학술회의/근대는 1876년 개항·현대사는 45년 해방에 초점/고대사는 의견 다양… 남북한도 다른 관점서 해석 한국사에 있어서 시대구분은 늘 논란의 대상이 돼 왔다.고대·중세의 기점을 어디로 보고 철기시대는 과연 존재했는가등이 그것이다.현대사 구분도 그러했다.역사연구의 기본 틀이기도 한 시대구분 문제를 다루는 학술회의가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박영석) 주최로 22∼23일 양일간 동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다. 역사학계는 물론 고고학 경제학 정치학계등 관련학자들이 참가하는 이번 학술회의 주제는 「한국사 시대구분의 제문제」.지난 67년과 68년 두차례 한국경제사학회 주최로 한국사의 시대구분문제 심포지엄을 가진 이후 4반세기만에 다시 논의하는 자리가 된다.특히 민족통일의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시점에서 한국사회의 발전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할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되어 그 성과가 기대되고 있다. 가장큰 논란이 예상되고 있는 분야인 「근·현대사의 기점문제」에는 김경태(이화여대)·서중석(성균관대)·조기준교수(학술원)등이 발표자로 나온다.1945년 해방을 현대사의 기점으로 설정하는데 의견일치를 보이나 근대사의 기점에서는 다소 이견을 나타내는 입장.김교수는 근대기점에 관한 「18세기후반기설」「18 94년 갑오개혁설」등을 들면서 근대사의 기점과 근대화의 기점을 따로 설정할것을 제의한다.그는 자본주의사회로의 이행이라는 관점에서 근대사의 기점은 타율적 개항이 이뤄진 1876년으로 근대화의 기점은 자율적으로 초기 근대화정책이 추진된 1880년으로 보았다. 「중세의 기점」에 대하여 발표한 이희덕교수(연세대)는 한국사에서 봉건제가 존재하지 않았다며 한국사의 정체성을 주장한 일본학자들에 대응해온 사회경제사학자들의 논의를 검토,그 한계점과 경직성을 지적하고 보다 신축적인 논의를 제안한다.또 「고대사의 시대구분」을 발제로한 박성봉교수(경희대)는 북한학계의 유물사관적 시대구분과 남한학계의 사회경제사적·사회인류학적 시대구분의 한계를 지적한다.그러면서 문화사상사적 혹은 사회적 지배세력의 변천을 기준으로한 시대구분론을 제시하고지금까지 남한은 대부분 서양사에서,북한은 유물사관에서 도출한 이론체계라고 비판한다. 「한국 철기시대의 시대구분」을 발표한 최몽용교수(서울대)는 한국사에서의 철기시대 존재를 부정하고 금석병용기를 설정했던 일인학자들의 주장을 먼저 비판한다.해방후 고고유물발굴 성과에 의한 청동기와 철기시대를 함께 설정해야 옳다는 그는 또 현재 BC3세기로 잡고 있는 남한학계와 BC7세기로 잡고 있는 북한학계 사이의 초기철기시대 설정에 따른 견해차를 줄여나가는것도 중요 과제로 보았다.「선사시대의 남북한 시기구분」을 다룰 임효재교수(서울대)는 구석기시대와 고조선,고구려 연구를 중심으로 한 주체사관을 확립해온 북한과 동아시아문화에서 우리문화의 위치와 시기에 따른 편년수립에 비중을 두어온 남한의 연구경향을 소개한다.임교수는 여기서 남북간의 이론적 방법론적 교류를 촉구할 계획이다.
  • 신석기∼삼국시대 유물 대량 출토/자연사박물관팀

    ◎북제주 궤네기굴서 60여점 발굴/골각기 등 생활용품이 대부분/본토서 임자도 거쳐 유입추정/천년주민활동 동시조명 자료 제주도 북제주군 구좌읍 동김녕리 「궤네기굴」에서 한반도문화를 맥락으로 제주도화한 패촉·골각기·점토띠구연토기편등 신석기시대에서 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유물이 처음으로 대량 발굴돼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있다. 제주도 민속자연사박물관(관장 김윤기)팀이 지난달 28일부터 18일까지 발굴한 이 동굴유적 출토유물은 전복껍질을 갈아 만든 삼각편패족 20점을 비롯,곽지식적갈색토기편 10편,점토대구순토기편 8점,멧돼지 이빨로 만든 골각기 10점,석기류 3점,숫돌 9점,녹각 5점등 60여점에 이르고 있다. 발견유물중 석기류는 신석기시대,점토띠구연토기편은 BC 3세기,곽지식토기편은 BC 1세기이후 패촉,골각기등은 원삼국·삼국시대에 해당하는 유물로 판명됐다.특히 우리나라에서 신석기∼청동기∼초기철기∼원삼국∼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1천여년 동안의 유물이 같은 장소에서 한꺼번에 출토되기는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동굴유적 「궤네기굴」은 길이 45m,폭 6∼7.5m 규모의 미니동굴로,동굴 바로위에는 동김녕리가 마을 보호수로 지정 보호하고 있는 높이 15m,둘레 5m에 수령 3백50년 된 팽나무가 자라고있다. 제주도 민속자연사박물관은 「궤네기」동굴 바닥면적 50여평중 12평에서 이같은 유물이 출토된 점으로 미뤄 발굴면적을 넓힐 경우 생활유물은 물론 제사유물 등 상당수의 유물이 더 나올 것으로 보고있다.사슴의 짐승뼈가 많이 출토되어 이 동굴유적은 제사유적 기능을 함께 지녔을 가능성도 배제되지 않았다. 「궤네기굴」 유적발굴작업을 지도한 서울대 최몽룡교수는 『이번 제주에서 처음 발견된 패촉등의 유물은 당시 제주사람들의 창작품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해로를 통해 제주에 유입된 철촉이나 석촉 등을 응용내지 번안해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하고 유입경로는 당시 본토의 낙랑에서 충남 안면도∼전남 임자도 등을 거쳐 제주도까지 왔을 것으로 추정했다.이 유적발굴작업에 참여한 조유전 문화재관리국 유적조사실장은 『출토유물들중 수렵과 관계된것들이 많은 점으로 보아 이것들은 제사유적이 아니라 생활유적으로 보는게 타당하다』면서 『학술가치가 큰 「궤네기굴」 일대를 문화사적지로 지정해 보호해야한다』고 주장했다.
  • 속초 조양동 선사유적/전남 장성군 백자 요지/사적 지정

    문화부는 강원도 속초시소재 조양동 선사유적을 사적 제376호로,전라남도 장성군 삼서면 소재 백자요지를 사적 제377호로 각각 지정해 13일 고시했다. 속초 조양동 선사유적은 양양과 속초를 잇는 7번 국도변의 청초호옆 야산에 위치하고 있다.이곳은 올해 강릉대박물관(단장 백홍기)의 발굴조사결과 기원전 8∼7세기의 청동기시대 집터임이 밝혀졌다. 장성 대도리 백자요지는 지난 7월 목포대 고고인류학과 조사단(단장 최성락)의 상무대이전부지에 대한 발굴조사결과 16∼17세기의 백자막사발을 구웠던 곳으로 확인됐다.이곳은 4개 소성실,4개의 불창,1개의 봉통으로 이루어진 연실식 등요로 보존상태가 양호해 사적으로 지정,보존케 됐다.
  • “향토역사 한눈에”/전시공간 잇달아 개관

    ◎안동민속박물관 이어 강릉도 곧 문열어/주민이 기증한 민속유물·놀이기구 전시 한 지역의 총체적인 문화와 문물을 한자리에 선보이는 지역문화 전시공간이 잇따라 개설된다. 지난 6월말 경북북부지역의 민속문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안동민속박물관이 개관된데 이어 오는 10월에는 영동지방의 향토역사를 대규모로 소개하는 강릉향토사료관이 문을 열 예정이다.이들 지역문화 전시공간들은 이제까지 소규모의 개별적인 소개에 머물러 왔던 지역문화와 역사를 종합·체계화한다는 의미외에도 상대적으로 소개에 소홀해 왔던 서민들의 민속문화를 위주로 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이같은 이유때문인지 이들 전시공간에 선보일 전시품목 대부분이 지역주민들의 자발적 기증과 기탁에 의존하고 있는 것도 이채롭다. 우선 안동시 성곡댐·안동댐옆 안동민속경관지 내에 들어선 안동민속박물관에는 골동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닌 유물보다는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던 민속유물이나 민속놀이기구가 주로 전시되고 있다.17만1천3백29㎡의 부지위에 모두 40억원이 투자돼지상 2층,연건평 3천85㎡규모의 현대식 장방형 콘크리트건물로 세워진 이 박물관에는 안동시가 경북 북부지역 각 시 군과 문중에서 기증받거나 사들인 3천8백여점의 민속유품 가운데 1천여점이 전시되고 있다.이 박물관의 주요 전시공간인 1층 제1전시실은 중앙에 초가까치구멍집을 설치하고 입구로부터 선사유적,고려시대 불교유적을 비롯하여 돌차림 어린이정장 남녀복식장구 농경생활 농기구 안동포짜기 등을 배치,서민생활을 소개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2층 제2전시실에는 반촌 양반생활을 짐작할 수 있게하는 7채의 건물이 배치됐다. 오는 10월 개관을 앞두고 유물배치작업이 한창인 강릉향토사료관 역시 강릉문화원 영동지역 주민 등으로부터 기증 또는 기탁받은 1천여점의 유물중 1차적으로 4백여점의 유물이 공개된다.강릉 죽헌동 오죽헌 바로옆 5천2백여평의 부지위에 건평 5백평의 단층 슬라브 한옥으로 건립된 이 사료관은 강릉을 중심으로 명주·삼척·양양 등 영동문화권에서 전해지고 있는 서민문화를 위주로한 각종 문화유산을 한자리에 모은다.이사료관의 특색을 가장 잘 드러내는 역사자료실의 경우 조상들이 사용하던 농기구·통방아·밥상·의상 등 생활용품 및 도구,토속신앙을 엿보게 하는 서낭당,이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발달했던 사다리꼴 모양의 오금집 등을 전시해 서민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게 할 예정이다.이밖에 무형문화제 13호인 강릉단오제를 조형물로 재현,성황당 제례굿 씨름 등을 내용으로 하는 옛날 단오제를 한눈에 엿보게 하는 한편 마네킹을 이용하여 지방문화제인 강릉농악도 전시한다. 선사시대실에는 이 지방에서 출토된 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 유물을 비롯하여 안인리 선사시대유적지가 복원·전시되며 역사미술실에는 보물 81호인 한송사 석불좌상과 보물84호인 신복사지의 와당편 등 주로 강릉지역의 불교미술품들이 선보일 예정이다.
  • 요령식 동검등 8백여점 선보여/중앙박물관 청동기 전시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나라에서 널리 제작 사용된 청동기를 한데 모은 「한국의 청동기문화」특별전을 21일부터 8월23일까지 본관2층 기획전시실에서 연다. 청동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까지 우리나라 청동기유물을 종합적으로 전시하게 될 이번 특별전에 출품되는 유물은 모두 8백여점이다. 이 가운데 주요 유물로는 초기 청동기문화를 대표하는 것으로 최근 전남지방의 지석묘에서 출토된 요령식 동검들과 함평 초포리,부여 합송리·구봉리,자수 남양리,당진 소소리 등에서 출토된 일괄유물,창원 다호리에서 출토된 흑칠 목제칼집 등이 있다. 이번 특별전은 우리나라 청동기문화의 실상을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각대학 및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까지 모두 망라해 전문가는 물론 일반인에게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따라 초기 청동기문화인 요령식 동검문화에서 한국식 동검문화로의 이행과정과 한국식 동검문화의 발전,철기의 출현,한국식 동검문화의 쇠퇴로 이어지는 문화적 변천과정 및 청동기의 제작기술등 청동기에 관련된 내용이 종합적으로 전시된다.
  • 「임나일본부설」 뒤엎은 가야전/도쿄 서동철기자(객석에서)

    『또 임나일본부입니까』 지난달 29일부터 「가야문화전」이 열리고 있는 도쿄국립박물관의 한일 두 나라 박물관 관계자들은 가야와 임나일본부설의 관계를 묻는 한국인 관람객의 질문에 답변을 하느라 몸살을 앓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 전시회가 오로지 가야가 일본보다 앞선 유물을 그들에게 소개함으로써 임나일본부설이 당치도 않다는 것만을 보여주려 마련된 것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그러나 일본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일본에서도 가장 권위있는 국립도쿄박물관의 전시내용이나 도록은 곧 교과서만큼의 무게를 갖는다고 한다. 도쿄박물관에서 만든 「가야문화전」도록에는 도쿄대 다케오 유키오교수의 「문헌으로 본 가야」라는 글이 실려있다. 다케오교수는 이 글의 제5장 「임나일본부로의 허실」에서 분명히 임나일본부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다.「일본」이란 이름이 가야가 망하고도 1백년 이상이나 뒤에 처음 나타나는데 임나일본부가 그 이전에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처럼 임나일본부설이 교과서에서도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인상황에서 가야와의 관계를 묻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우리측에서 「매우 양심적인」학자로 대접받고 있는 다케오교수도 임나일본부설만을 부인했지 일본의 가야지역 지배가능성 자체를 부인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임나일본부라는 명칭은 아니었지만 그에 해당하는 지배체계가 확립되어 있지 않았겠느냐는 식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모두 4백37점의 국내 출토품이 출품됐고 비교를 위해 40여점의 일본 유물도 함께 전시되고 있다.대부분 연대가 우리것이 일본보다 앞서고 있으나 개중에는 파형동기처럼 우리것은 4세기이나 일본것은 1∼2세기,그것도 주형이 전시된 것에 개운치 않음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부류의 일본인이라도 첫번째 전시실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기원전 1세기의 대형 철제 창날들에서부터 마지막 전시실을 가득 메운 5∼6세기의 철제마구와 갑옷·투구까지 모두 돌아보면 그들의 선조가 그들보다 청동기와 철기문화가 크게 발달한 가야를 지배했으리라는 망상은 쉽게 가질 수 없을것이 분명하다.이것이 이번 전시회의 가장 큰 의의인 것 같다.
  • 청동기 유물 속초서 발굴/강원대팀

    【속초=조성호기자】 청동기시대의 청동제 부채꼴 주머니도끼와 굽손잡이 토기가 강원도 속초시 조양동 청초호변 야산에서 발굴돼 고고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25일 강릉대 고고발굴단(단장 백홍기박사·강릉대 박물관장)에 따르면 지난 5월10일부터 속초시 조양동 산142 일대 청초호변 야산 유적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들 청동기시대의 유물을 발굴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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