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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천년전 단군유골 발굴」 황당무계”

    ◎북한 발표에 대한 국내학계의 시각과 반응/연대측정 방법에 무리… 기존학설과 달라/학문적성과 아닌 북정통성 강조 목적인듯 개천절을 앞두고 북한이 「단군릉에서 단군유골을 발굴했다」고 발표한 내용은 국민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단군이 실재했었나에 대해서마저 아직 입장이 정리되지 못한 국내 학계에서는 「단군이 실제로 유골을 남겼고 북한측이 이를 발굴했다」는 보도 자체가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다. 북한측이 주장한「단군릉 발굴」기사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국내에서 사학·고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들이 발표한 내용을 「상상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고고학적인 측면에서 보아 연대측정에서 어긋나는 데다가 역사학적인 면에서도 기존의 학설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한측이 그동안 주장했던 스스로의 연구성과하고도 차이가 커 국내 학자들은 그들의 주장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해 하고 있다. 그들이 발표한 내용이 아직 국내 학자들에게 정확하게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우선「전자상자성 공명법에 따른 유물 평가방식」「금동관 출토·석실봉토분등 유물에 대한 해석」등 기초적인 주장에 대해 국내 사학·고고학계를 대표하는 학자들로 부터 평가를 들어본다. 역사학의 입장에서는 최근 「고조선사 연구」를 발간해 고조선사에 대한 학설을 국내 최초로 정리했다고 평가받는 이종욱 서강대교수가,고고학의 입장에서는 최몽용 서울대교수(한국상고사학회 회장)가 도움말을 주었다. ▲이종욱 서강대교수=북한 학계는 최근 발굴한 단군의 유골이 5011년전의 것이라고 발표했다.또 청동판에 금을 도금한 왕관이 함께 출토됐다고 주장했다. 5011년전이라면 기원전(BC)3018년에 해당한다.이 시기는 한국·중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에서 왕을 중심으로 한 국가 권력이 출현하지 못한 때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왕권을 이룬 국가는 중국의 은나라이며 은나라는 기원전 2천년 무렵에 처음 고대국가를 형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이보다 1천여년 앞서 평양을 중심으로 해 강력한 고대국가가 형성돼 있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북한 학계에서도 그동안 기원전 12 00년 무렵에 고조선이 태동한 것으로 보아 왔다.왜 그들이 단군조선의 출현을 갑자기,훨씬 앞당겨 잡는지 궁금하다. ▲최몽용교수=북한 학자들이 유골의 연대측정에 사용한「전자상자성 공명법」은 최소한 5만년이상된 유물에 사용하는 방법이다.그같은 방법으로 유골의 연대를 측정하고 단군의 뼈라고 발표한 것은 무리가 있다. 더구나 그 무덤이 BC 3천여년전에 지어진 것이라는 주장은 더욱 이해가 안된다.그 시대라면 고고학의 편년상 신석기시대의 말기에 해당되기 때문이다.그럼에도 그들은 청동기시대에나 나올 수 있는 왕관이 발견됐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청동왕관의 발굴 ▲고구려 양식의 돌칸흙무덤(석실 봉토분)형태는 빨라야 기원전 200∼300년에야 가능한 것이다. 북한의 고고학계는 그동안 매년 한두번씩「새로운」이론을 발표해 왔다.그러나 그 목적은 학문적인 성과를 알리는데 있다기 보다 북한의 정통성을 강조하려는데 있는 것으로 보는게 국내학계의 평가이다.
  • 찬란한 백제문화 한자리서 감상/신축 국립부여박물관 내일 개관

    ◎국립박물관등에 분산 전시되던 유물 귀향/한·일 문화 교류 보여주는 일유물전도 새로 지은 국립 부여박물관이 6일 문을 연다. 삼국시대 백제의 옛 도읍이었던 충남 부여군 부여읍에는 지난 71년 국립박물관이 처음 세워졌으나 전시공간이 좁은데다 최근에는 시설마저 낡아져 매년 30여만명에 이르는 관람객들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다. 이에따라 박물관측은 지난 90년 12월 옛 박물관 부근인 부여읍 동남리 16의1 일대에서 신축공사를 시작해 2백16억원을 들여 2년7개월여만에 새 박물관을 갖게 됐다. 새 박물관은 부지 1만9천84평에 건평 2천5백38평,전시실 면적 6백40평으로 옛 건물에 비해 부지는 3배,건물은 6배,전시실은 3.5배 늘어난 방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전시실은 선사실·역사실·불교미술실·기획전시실로 나뉘어져 있으며 이 가운데 선사실에는 한국 청동기문화의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부여 구봉리,예산 동서리 출토 청동기등 4백여점과 부여 송국리 유적을 전시한다. 역사실은 백제의 왕궁터및 부소산성,부여 능산리고분에서 출토된 금동제품·철제품·토기류등 2백여점을,불교미술실은 불상류와 기와·벽돌류및 부여지역 절터에서 출토된 유물로 꾸며진다. 이밖에 박물관 야외공간에는 보물 제1백94호인 부여석조등 90여점의 석조물이 곳곳에 자리잡았다. 특히 박물관 신축을 계기로 그동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던 국보 제83호인 금동미륵보살반가상보물 제343호인 연대귀문전을 비롯 광주·전주·청주박물관등지에 분산전시돼오던 백제계 유물들이 이 곳으로 옮겨졌다. 이에따라 국립부여박물관은 국보 1점,보물 7점을 포함해 모두 7천8백67점의 소장품을 갖게 돼 소장품및 박물관 규모면에서 명실상부하게 백제문화권 박물관을 대표하게 됐다. 한편 기획전시실에서는 한·일 고대문화의 교류를 보여주는 일본 후지노키및 다카마쓰 고분 출토품 29점이 개관기념 특별전으로 오는 10월31일까지 선보인다. 전시품중 말안장꾸미개인 금동안금구와 말띠꾸미개인 금동행엽은 그 형태나 무늬가 백제·신라의 영향을 골고루 받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다까마쓰 고분에서 발견된 벽화의 사신도및인물화도 사진으로 확대 전시되는데 고구려·백제의 고분벽화와 거의 흡사해 고대 일본이 삼국의 문화를 이어받았음을 보여준다.
  • “고미술 1천여점” 민족문화 사료전 개막/「공평아트」서 7일까지

    ◎유출됐다 돌아온 명품도 5천년 문화유산인 고미술품 1천여점이 망라된 사상최대의 고미술전시회 「민족문화사료전」이 서울 공평아트센터(733­9512)에서 개막됐다.7일까지. 한국고미술협회(회장 한기상)가 주최한 이 자리에는 고미술협회 회원 8백여명이 출품한 도자기를 비롯,토기 민속공예 목공예 서화류 청동기류 의상 선사유물 전적류등 고미술 전분야가 나와있다.여기에 출품된 1천1백30여점중에는 해외에 유출됐다가 최근 국내에 다시 돌아온 고미술품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이번에 선보인 것들중에는 또 문화재급에 속하는 명품이 다수 끼어있어 모처럼 민족문화의 정수를 접할수 있는 자리가 되고있다.조선시대의 「금동아미타불」(높이77㎝)과 황수영박사(전 동국대총장)가 격찬한 백제것으로 추정되는 「금동여래삼존불」(높이15·5㎝)등이 대표적인 것들. 회화는 추사 김정희를 비롯,호생관 최북,겸제 정선,미수 허목,소치 허련등 대가들의 명품들이 나와있다. 고미술협회 한기상회장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30명의 감정위원들이 출품작을 선정해 사료적 가치와 미술품으로서 수준이 갖춰진 작품들로 전시회를 꾸몄다』고 했다.그는 특히 고가의 투자대상으로 여겨지는 고미술에 대한 일반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일부 귀한 작품을 제외하고 2천5백만원 이하의 진품들로 출품작을 제한했다고 밝혔다.
  • 위만조선의 성격(온가족이 함께보는 우리역사:4)

    ◎단군조선 계승한 강력한 무역국가/「위만 중국인설」로 88년이전엔 학계 홀대/철기문화 개화,무기생산·농업 활발 수천년간 한반도와 중국 동북부,만주에서 거대한 세력을 형성했던 고조선을 멸망시킨 위만은 중국인 인가.또 그가 세운 「위만조선」은 우리땅을 점령한 외국인 정복국가인가. 위만조선을 둘러싼 이같은 의문들은 오랫동안 국내 사학계의 수수께끼 가운데 하나였으며 따라서 위만조선은 우리 역사상 그만큼 홀대를 받아왔다. 부정적 평가의 주된 이유는 위만이 중국 연지방에서 고조선으로 망명해와 그 국적이 모호하다는 것이었다.또 그가 왕위를「찬탈」했으며 그의 손자인 우거왕때 중국 한무제에게 망해 그 영토에 한사군을 설치케 했다는것 등에서였다. 이에따라 지난 88년이전까지만해도 고교용 국정 국사교과서에서 위만의 신분을「중국에서 고조선에 들어온 이주민 세력의 대표」로만 막연하게 밝혀왔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는 위만이 조선인이며,위만조선은 이민족의 정복국가가 아니라 단군의 고조선을 계승한 것이라는 해석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이와함께 위만조선은 강력한 무역국가로도 새로이 평가받고 있다. 이같은 해석의 근거는 다양하다. 우선 위만과 그의 무리 1천여명이 망명당시 상투를 틀고 조선옷을 입고 있었다는 기록과 위만이 준왕으로 부터 왕위를 빼앗은 뒤에도 「조선」이라는 나라이름을 유지했으며 고조선의 토착민 중에서 고위관리를 계속 중용한 사실이 밝혀졌다.또 고조선 토착민들이 위만의 세력들에게 특별한 저항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같은 민족의 뿌리였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이와함께 위만조선기를 전후한 당시대 상황을 볼때 이같은 해석은 훨씬 신빙성을 갖게 된다. 위만은 왕으로 등극할때 저항을 받지 않았으며 튼튼한 왕권을 바탕으로 청동기문화에 머물러 있던 고조선 사회에 철기를 적극 도입했다.농업생산도 늘리고 무기생산을 중심으로한 수공업을 발전시켰다.이후 위만조선은 주변국들과 활발히 무역을 벌였으며 한의 변방을 쳐 빼앗는등 자주 괴롭혔다. 반면에 중국대륙을 통일,당시 아시아 초강대국으로 부상했던 한은 위만조선과의 전쟁에서 1년넘게 고조선 백성들에게 시달려야 했다.고조선 점령후 설치했던 한사군도 엄청난 저항 때문에 수년내 통치를 포기해야 했다. 위만은 단군의 후손이 이끌던 고조선의 왕좌를 빼앗었지만 이는 단순한「정권교체」였다.오히려 그는 고조선 사회에 철기문화를 꽃피웠으며 고조선을 강력한 무역국가로 성장시켰다. 위만조선은 우리 민족이 통일된 중국세력과 처음 맞닥뜨렸던 한과의 전쟁에서 결국 패배,멸망하고 말았다.기원전 1백8년의 일이었다.그러나 위만조선의 백성은 한사군을 축출함으로써 외세의 침략에 꿋꿋이 맞서는 우리 민족의 자주적인 전통을 수립했다.
  • 한반도·중국 동북부·만주까지 통치(온가족이 함께보는 우리역사:3)

    ◎대표적 유물 비파형동검 고르게 출토/전통·재야학자사이 문헌해석 논쟁 해결 고조선이 중국 북부와 만주·내몽고·연해주를 통치한 동방의 대제국이었는지,평양을 중심으로 한반도 서북부와 중국 동북부의 요령지방 일대에 형성된 작은 나라였는지는 70∼80년대의 치열한 논쟁을 통해서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소국이었음을 주장하는 전통사학자나 대제국이라고 강변한 재야사가측 모두 문헌해석에만 의존한 한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조선」을 서술한 사료는 우리측 문헌과 중국측 기록을 합하더라도 현재 10여종이 남아있는데 불과하다.더욱이 학자마다 각 사료에 대한 가치평가가 엇갈리는데다 믿을만하다고 공인된 사료에 대해서도 자구별 해석에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사료가운데 고조선을 기록한 최고의 문헌인 삼국유사의 경우 고려 후기에 쓰여졌고,그 내용이 비합리적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전통사학자들에게 외면당할 정도였다. 「고조선 평양중심설」은 조선 후기 한백겸·정약용등 실학자들이 우리의 역사지리를 연구하면서부터 시작돼 70년대 중반까지 통설로 인정됐다.이에 대해 비판자들은 「전통사학자들이 국내사료를 무시하고 중국측 문헌에만 의존,고조선의 영역을 축소시켰다」고 보고 있다. 반면 전통사학자들은 재야사가들이 「대제국설」의 근거로 제시하는 「단기고사」 「규원사화」 「환단고기」등을 후대에서 조작한 위서로 판단,사료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사료해석을 둘러싼 논쟁이 평행선을 긋는 동안 고고학적 발굴성과를 토대로 한 「이동설」이 제시됐다. 즉 고조선이 초기에 중국 요령지방에서 형성돼 점차 인접한 사회들을 통합하면서 만주와 한반도까지 발전하였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 근거로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인 비파형동검(비파형동검)이 중국 서북부 일대와 한반도 전역에서 고루 발견된다는 점을 들고,청동기문화를 가졌던 고조선이 중국 서북부와 한반도에서 단일 문화권을 형성한 것으로 해석했다. 비파형동검은 요령지방에서 많이 출토돼 요령식동검이라고도 불리는데,검의 날과 손잡이 부분을 따로 만들어 결합시킨 형태여서 중국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된 중국식동검과는 확연히 구분된다.한반도에서는 충남 부여 송국리의 석관묘에서 출토되는등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고루 발견되고 있다. 비파형동검은 한국형동검(일명 세형동검)으로 발전했으며 이들 동검은 우리의 청동기문화를 대표하는 유물로 인정받고 있다. 청동기문화 위에 성립한 최초의 국가 고조선은 중국 동북부와 만주일대,한반도를 세력범위로 하였다. 이같은 학설을 뒷받침하는 연구성과가 차근차근 쌓여가고 있다.
  • “한반도역사 70만년전 시작”입증(온가족이 함께보는 우리역사:1)

    ◎85년 발굴팀 매일 12시간씩 작업 강행/청동기­신석기­후·중기구석기 고루 분포 1985년 7월25일 저녁무렵 충북 단양군 매포읍 도담리마을 뒷산 「금굴」동굴 안. 연세대 사학과 손보기교수(현 단국대 한국민족학연구소장)는 초조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오늘도 저물고 있었다.지난 5월26일 3차 발굴에 들어간지 벌써 두달이 지났고 이제 발굴터도 바닥을 드러내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아침 7시반부터 12시간씩 강행군하는 처지에 오늘이라고 작업량을 늘릴 수는 없었다. 그동안 성과가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었다.3·4m를 판 지점부터 층별로 청동기­신석기­중석기­후기구석기­중기구석기 유물이 차례로 나와 발굴단을 흥분시켰었다. 그러나 손교수는 내심 「진짜 큰물건」을 기대하고 있었다.작업을 끝마치라고 하려는데 누군가 『선생님,주먹도끼가 나왔습니다』라고 외쳤다. 주먹도끼를 받아든 손교수는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내뱉었다. 『휜날주먹도끼로군』 『와』하는 함성이 동굴 안에 메아리쳤다.한국역사의 기원을 70만년전까지로 끌어올린 순간이었다. 이날 발굴된 「휜날주먹도끼」는 세계 고고학계로부터 전기 구석기시대의 대표적 유물로 인정받았으며 함께 출토된 화석등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60만∼70만년전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선사유적 발굴이 활발해지면서 이같은 통설은 차차 무너져온 터였다. 그동안 선사유적은 단양 금굴,공주 석장리유적말고도 남한에서는 충북의 제천 점말동굴과 청원 두루봉동굴,경기 연천 전곡리,제주 빌레못동굴 등지에서,북한에서는 함북 웅기 굴포리와 평남의 상원 검은모루동굴,덕천 승리산동굴등 한반도 전역에서 고루 발굴됐다. 특히 금굴에서 25㎞쯤 떨어진 단양 상시동굴과,승리산동굴·석장리유적지등지에서는 사람의 뼈·이빨·머리털등이 발견돼 한반도가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람이 살기 시작한 곳중의 하나임을 보여줬다. 또 이들 유적지는 한국인의 조상을「외지에서 한반도로 들어온 사람들」이 아니라「처음부터 살았던 원주민」이라고 인정하는 쪽으로 학설이 바뀌어가는 근거가 됐다.
  • 청동기시대 성읍국가 존재 확인/BC4세기 창원지석묘 발굴 현장

    ◎5백평규모 1호분은 “왕릉급”/칠기문화흔적도 발견… 변진12국으로 발전 경남 창원군 동면 덕천리.진해만을 북으로 약간 비키면서 낙동강 남쪽 품에 안긴 구룡산 아랫녘 땅이다.청동기시대의 고인돌(지석묘)유적과 초기철기시대의 유적이 주변에 널려있거니와 변진의 실체를 보여준 1세기경의 다호리유적도 지척에 자리잡았다. 그 한반도 남해안의 덕천리가 새롭게 역사적으로 부각되고 있다(서울신문 6일자 1·22면).고인돌을 포함한 1만평규모의 유적지가 초기국가 형태인 성읍국가의 잔영을 처음으로 엿보게 한 것이다.경남대 박물관팀이 이 유적의 고인돌(3기),돌널무덤(12기),돌덮개 흙구덩무덤(5기)등을 발굴한 결과 덕천리 일대에는 이미 4세기경에 수장을 주축으로한 계급사회가 존재했음을 알게 되었다. 국가통치의 기본요건인 계급사회의 존재는 무덤형태(묘제)에서 우선 찾아진다.수장급 통치자가 묻힌 고인돌 묘역은 방형의 석축을 쌓아 구획했고,돌널무덤이나 흙구덩무덤은 그 외곽에 배치한 점이 그것이다.1호 고인돌의 경우 구덩이(8×6m)를 3단으로 파서 4.5m 아래 돌널을 만들고 그 위에 5장의 널돌을 얹었다.그리고 위에다 다시 돌무지를 한 뒤에 12장의 널돌을 2겹으로 덧덮어 실력자의 무덤답게 꾸몄다. 이 역시 처음 밝혀진 독특한 형식의 고인돌 무덤이다. 이 유적에서 쏟아져 나온 2백23점의 유물을 통해서도 초기 국가형태의 성읍국가의 실체는 물론 문화상을 가늠할 수 있다.고조선의 강역인 요령지방의 청동검을 지녔을 뿐 아니라 대롱옥을 치례거리로 갖추어 권력과 부를 함께 누렸다.돌을 가지고 청동기를 그대로 본 떠 간돌칼(마제석검)을 만들었고,흙으로 붉은간토기(단도마연토기)를 구었다.특히 나무에 입혔던 칠(칠)흔적이 여러군데서 발견되어 칠기문화의 존재도 확인되었다. 이 유적에서 분명히 잡히는 것은 한반도 남부지역 청동기사회에도 우월한 계급이 존재했다는 점이다.비슷한 시대에 수장의 무덤으로 여겨지는 유적이 한반도 인접국가에서 발견된 바 있다.중국 요령지방의 강상·누상묘나 일본의 방형주구 등이 그 실예로 꼽힌다. 어떻든 덕천리 유적을 근거로 한 청동기시대의초기의 성읍국가는 뒷날 변진12국으로 발전한 모태가 되었을 것이다.
  • 한반도남부/BC4세기에 국가형성/경남대조사단,창원지석묘발굴결과확인

    ◎비파형동검 등 유물 223점 출토/“청동기시대에도 막강 지배체제 존재” 【창원=서동철기자】 한반도 남부에 국가형성의 초기단계에 해당하는 지배체계가 현재 알려진 것보다 6세기 이상 앞서 존재했다는 사실이 5일 밝혀졌다.이는 경남대 박물관(관장 유장근)팀이 경남 창원군 동면 덕천리 168 일대 지석묘군에 대한 발굴조사결과 드러난 것이다.국가형성시기 왕의 무덤과 비견할만한 기원전 4세기 청동기시대 수장급의 무덤을 포함한 이들 27기의 유구에서는 비파형동검 1점을 비롯,단도 마연토기 8점,무문토기 5점,돌칼 3점,돌화살촉 35점,관옥 1백79점,목제품 2점등 모두 2백23점의 유물이 수습됐다. 지석묘가운데 1호분은 공동묘역안에 장방형으로 석축을 쌓아 물길을 돌린 5백평이상의 독립된 묘역으로 현재 확인된 석축의 규모는 남북 56m,동서 17.5m에 이르고 있다.주구와 석축으로 구획된 묘역을 가진 지석묘의 존재가 완벽히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이 무덤을 통해 청동기시대 당시 생활공간과 분묘공간이 분리되었다는 사실과 매장과 관련된의례행위등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이번에 확인된 유구는 ▲매장시설과 상석을 갖춘 지석묘(3기) ▲매장시설만 있는 석곽묘(12기) ▲돌뚜껑이 있는 토곽묘(5기)등이 주류를 이루고있다.이 가운데 수장의 무덤으로 보이는 1호분은 8m.6m의 묘곽을 3단으로 파서 4.5m 아래에 석곽을 쌓고 석곽위에 5개의 개석을 얹은뒤 30∼50㎝의 돌 80여개를 올렸다.그 위에 다시 12개의 개석을 2겹으로 덮고 묘광내부에 흙을 채웠는데 목질이 출토되어 나무널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했다.특히 출입로로 추정되는 서북단 모서리에서는 수십개체분의 무문토기조각과 토기에 구멍을 뚫어 폐기한 흔적이 발견되어 매장과 관련된 의식이 행해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조사단은 『이번 발굴을 통해 기원전 4세기경 한반도 남부지방의 청동기사회에도 막강한 세력이 존재했음을 확인했다』고 밝히면서 『지금까지 한반도남부에서 계급적 신분의 세력집단의 존재는 서기 2∼3세기로 추정되는 김해 대성동 고분이 가장 오래된 예였다』고 지적했다.한편 고대사학계 일부에서는 『비파형동검의 존재로 미루어 기원전 4세기 경에는 고조선의 영역이 이미 한반도 남부에까지 확대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를 제시함으로써 이 유적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 암각화군 영일서 발견

    경북 영일군 칠포리 곤륜산 북쪽계곡에서 청동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지는 대규모 암각화군이 발견됐다.이 암각화는 지난달 14일 포항제철고문화연구회(회장 이순철)가 이 일대에 대한 정기답사를 벌이던 중 높이 1m,길이 4m의 자연암반에 새겨진 석검·여성의 성기·상징적 문장 형태를 한 23점의 암각화를 발견,2일 학계에 보고한 것이다.이 암각화는 5∼15㎝의 다양한 크기로 뾰족한 청동기나 돌로 긁어 새긴 것으로 추정되고 잇다.
  • 한국도자기 유럽나들이/새달부터 벨기에·네덜란드 순회

    ◎토우장식 항아리 등 75점을 전시 국립중앙박물관은 「한국 도자기」전을 3월25일부터 6월6일까지 벨기에 안트워프의 민족학박물관에 이어 6월19일부터 8월29일까지 네덜란드 라이덴의 국립민족학박물관에서 연다. 이 전시회에는 국보 제195호 토우장식 항아리와 보물 제10 58호 청화백자 초화문 표주박모양병 등 국보 1점과 보물 5건 6점 등 모두 69건 75점의 도자기가 출품된다. 이 도자기들은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토기,청자,분청사기,백자로 구성되어 유럽인들에게 우리 도자문화의 변천 과정을 한 눈에 이해할수 있게 했다.출품될 유물은 또 항아리,전,기와를 비롯해 주자와 매병,편병,장군,연적 등 다양한 형태가 망라되어 있다.한편 이 도자기들과 함께 황종구의 청자,민영기의 분청사기,황종례의 백자가 각 1점씩 출품되어 과거의 도자기 문화가 어떻게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게 된다. 이번에 전시회가 열리는 두 박물관은 유럽밖의 문화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박물관이다.두 박물관은 그동안 중국과 일본문화에 대한 소개는 많았으나 상대적으로 한국문화에 대한 소개가 빈약해 이번 전시회를 기획하게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안트워프는 「93 유럽의 문화수도」로 지정되어 갖가지 문화행사가 열리고 있는 곳이다.도자기전시회는 「한국,그 자연,종교와 도자기」라는 한국을 소개하는 기획전의 한 행사로 사찰과 자연,종교 등 전통문화와 현재의 생활상을 담은 종합사진전과 함께 열린다.
  • 북한 골동품 중국 밀반출 급증/연변 등서 암거래 성행

    ◎국보급서화·자기 등 하루 10개꼴/경제난 따른 달러 등 외화벌이로 북한에서 출토됐거나 도굴된 골동품들이 최근 중국으로 밀반출되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 중국에 밀반출되는 북한의 골동품 가운데는 상당수의 문화재급 또는 국보급 서화와 자기등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최근 북한의 경제난이 폭발직전의 심각한 상태로 악화된데 따른 현상으로 달러등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이다.밀거래를 통해 중국으로 흘러들어간 북한 골동품들은 일본인등 외국인에게 팔려나가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경에서 북한 골동품을 취급하는 한 조선족동포는 『북한에서 은밀한 방법으로 중국으로 흘러들어오는 골동품 수는 하루평균 10개정도』라면서 『이들 골동품은 서화나 자기,청동기,철기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경에서 북한 골동품을 취급하는 거래상이 줄잡아 10여명이며 조선족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연변지방이나 두만강개발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는 단동을 무대로 암거래가 성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북한골동품들이 친척을 방문하러 중국에 건너오는 북한 동포나 북한에 갔던 중국인들,또는 북한에 살고 있는 중국인 화교들의 손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면서 『더러는 오래전부터 북한 골동품을 소장하고 있는 중국인들이 내다 파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북한의 경제사정이 크게 어려워진 요즈음엔 중국으로 출장오는 일부 상당한 지위의 북한인들까지 몰래 골동품을 갖고 들어와 달러와 바꿔가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곤 했다. 심지어 최근에는 북한의 한 문화재관리창고에 보관돼 있던 다량의 국보급 문화재들이 도난당해 이들 문화재의 해외유출을 차단하기 위해 북한­중국간 국경지역의 경비가 대폭 강화됐었다는 소문이 동북지방에 나돌기도 했다. 이와관련,주중 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1∼2년전부터 북한에서 암거래 루트를 통해 흘러들어온 많은 골동품들이 중국 동북지방을 중심으로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면서 『북한당국이 이를 철저히 단속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결과적으로 조국의 중요한 문화유산들이 유실되고 있다는게 참으로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 선사시대서 조선까지 생활사 한눈에/국립민속박물관 17일 확장개관

    ◎4천3백여점 시대순 분류전시/경복궁 중앙박물관자리/입체음향·영상 등 특수기법 선보여 국립민속박물관이 경복궁안 동쪽에 있는 옛 국립중앙박물관 자리에서 17일 개관식을 갖고 문화부 직속기관으로 새롭게 문을 연다. 새 민속박물관은 1만2천8백40평의 부지에 연 건평이 4천4백54평으로 순수 전시면적만도 2천2백44평에 이른다.이 것은 옛 민속박물관 시절 부지 2천9백60평에 연 건평 1천2백63평,전시면적 6백24평이었던 것에 비해 3∼4배 이상 커진 것이다.이에따라 전시품도 2천4백여점에서 4천3백여점으로 크게 늘어나 내실있는 전시가 가능해졌다. 민속박물관의 전시관은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야외전시장을 갖추었다.상설전시실은 다시 「한민족 생활사」를 담은 제1관과 「생활문화와 민속」을 담은 제2관,「한국인의 일생 및 사회제도」를 담은 제3관으로 나누어진다. 「한민족 생활사관」은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한민족의 생활사를 시대순으로 배치해 이해를 돕도록 했다.선사시대의 각종 생활도구와 청동기시대의 생활상,고구려의 생활문화,백제의 제사유적,신라의 왕경도,가야의 야철공방,고려의 인쇄 및 청자문화,조선의 한글창제와 과학기술 등 주로 정신세계와 관련된 자료들이 복원 전시된다. 「생활문물과 생산민속관」은 생업자료 및 농경문화와 세시·수렵·어로·수공예를 비롯해 우리 전통사회의 의·식·주 생활을 엿볼수 있도록 꾸몄다.고대 에서부터 근래까지 쓰였던 각종 농기구와 정월 대보름놀이 등 농경 세시의례를 비롯해 각종 옷과 장신구,부엌 세간 및 세시음식과 일상음식,각종 가옥의 모형 등을 전시하게 된다.이 밖에 양반 사대부의 생활과 내면세계를 살펴볼수있는 안방과 사랑방,칠기와 화각공예품이 전시되며 옹기가마도 복원해 놓았다. 「한국인의 일생과 사회제도관」은 한국인이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거치는 통과의례와 오락,사회제도 및 종교에 관한 것들을 담았다.득남을 비는 풍습과 선바위,서당,향교,관례 및 혼례,회갑연,상청과 제례상,사당,주막,굿청,각종 놀이모습이 전시된다.또 문방구류,악기,화폐와 교통·통신과 관련된 봉수대,조운선 등이 모형으로 재현된다. 이들 전시는 모두 디오라마,모형,입체음향과 영상매체를 이용한 특수 전시기법을 적극 활용해 관객들의 즐거움을 더하고 이해를 높이도록 했다.한편 중앙홀에서는 개관을 기념하는 「한국의 건축문화」특별전이 열린다.여기에는 신라의 안압지와 황룡사 9층탑,백제의 미륵사,고려의 다실,조선의 근정전,동십자각,사랑방 등의 모형이 포함됐다. 야외전시장에는 귀틀집과 원두막,솟대 등 생활문화가 원형의 크기로 들어섰다.이 밖에 영상실 및 2백52석 규모의 강당이 들어서 사회교육 기능을 담당하게 되며 기념품 판매대도 마련했다.
  • 기마인물토기 국보로/안 의사유묵 보물 지정

    문화부는 14일 가야시대 기마인물형 토기를 국보 제275호로 지정하는 한편 안중근의사 유묵등 6건을 보물로 지정,고시했다. 이번에 국보로 지정된 기마인물형 토기는 5세기경 만들어진 것으로 실물이 전하지 않는 방패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있는 등 당시의 토기뿐아니라 마구와 무구를 연구하는데도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이밖에 보물로 지정된 것은 다음과 같다. ▲제1147호 묘법련화경 권 제삼­사,오­칠 ▲제1148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제1149호 신간표제공자가어구해 ▲제1151호 청동흑칠발걸개 ▲경주 죽동리출토 청동기일괄
  • 가야 철제유물 대량 출토/김해/대형철창·환두대도 등 1백40점

    경남 김해군 주촌면 양동리 가야고분(AD2세기말∼2세기초)에서 우리나라 출토품가운데 가장 큰 철창과 가장 오래된 둥근고리큰칼(환두대도)등 철제유물을 비롯 가야의 북방교류사실을 새롭게 밝히는 청동솥과 장신구등의 각종 유물이 대량발굴됐다. 이들 유물은 부산 동의대박물관(관장 임효택교수)팀이 28일 양동리고분군의 제235호 고분인 흙구덩널무덤(토광목곽분·길이 7백60㎝·너비 3백90㎝)발굴과정에 출토한 것으로 이번에 모두 1백40여점의 각종 유물이 수습되었다.이가운데 쇠자루가 붙은 대형 쇠투겁창(철모)은 길이가 2백27㎝로 우리나라 고대유적 발굴사상 가장 큰것으로 밝혀졌으며,둥근고리큰칼(1백20㎝)도 가야 최대유물이자 최고유물로 가려졌다. 특히 둥근큰고리칼은 지금까지 동검으로 상징되던 피장자의 신분적 상징물이 둥근큰고리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또 이 둥근큰고리칼은 한·일 두나라 출토품가운데서도 가장 큰 것으로 확인되어 피장자는 가야지역 지배자급으로 추정됐다. 이밖에 수정제 굽은옥(곡옥)이 대량 출토되었다.이는 종래의 유리제 둥근옥(환옥),대롱옥(관옥)중심에서 북방계 영향을 받아 취향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출토품 청동기인 구리솥(동복)역시 지금까지의 출토품가운데 가장 클뿐아니라 북방계 영향을 받은 유물로 평가되었다. 그리고 이번 발굴에서는 널방(묘실)을 불태우는 특수 장례흔적을 발견하는 동시에 30여점의 판장철부를 발견함으로써 지신에게 묘지대금을 쇠붙이로 지불하는 풍습이 존재했음을 확인했다.
  • 「부산모임」 오늘 현장검증/검찰/정몽준의원에 “출두” 거듭 통보

    ◎안기부직원이 이틀째 철야조사 「부산지역기관장모임」과 도청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은 23일 국민당 정몽준의원이 도청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심증을 굳히고 1차소환에 불응한 정의원에게 24일 상오10시까지 출두하라고 전화통보했다. 검찰은 지금까지 조사결과 정의원이 해외로 달아난 현대중공업 부사장 안충승씨를 통해 도청실무책임자인 문종렬씨(42·전현대중공업직원)등과 연결돼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에따라 정의원을 상대로 도청을 직접 지시했는지 여부와 도청대가로 금품을 주기로 했는지 여부등에 대해 집중추궁할 방침이다. 검찰관계자는 『지금까지 도청경위등에 대한 사실은 확인했지만 구체적인 도청동기와 도청작업의 실질적 주도자,금품거래관계 등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라면서 『이 부분은 정의원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진 뒤에야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와함께 지난 22일 일단 귀가조치시켰던 문씨를 이날 다시 불러 정의원의 개입여부 등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또 안기부부산지부 직원 김남석씨(43)를 상대로 조찬모임의 정보입수 경위와 금품을 받았는지 여부에 대해 이틀째 철야조사했다. 김씨는 검찰에서 『고향후배인 문씨가 선거전에 찾아와 도와달라고 해 국민당을 돕기로 하고 우연히 입수한 모임정보를 제공했을 뿐이며 금품을 받거나 요구한 사실은 없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문씨의 친구 안종윤씨(43)와 현대해양개발이사 최충영씨(46)등 나머지 관련자 4명도 이날 연행 48시간이 됨에따라 귀가조치시켰다. 검찰은 또 모임사건과 관련,부산초원복국집 종업원 김모·장모씨등 2명을 불러 당시 모임분위기에 대한 참고인조사를 벌였으며 24일 김영환 전부산시장,박남수·강병중 부산상공회의소 회장과 부회장을 참석시켜 초원복국집 모임에 대한 현장검증을 실시할 예정이다. 검찰은 26일쯤 부산시장 비서실 직원들을 불러 초원복국집에 식사예약을 하게된 경위,기관장들과의 사전 연락과정등에 대한 참고인진술도 듣기로 했다. 검찰은 현장검증과 녹음성문 분석결과를 김기춘전법무장관등 모임참석자들의 검찰진술과함께 종합검토,사실관계를 확정지은뒤 법률검토를 끝내는 다음주초까지 이들의 사법처리 여부를 일괄적으로 결정지을 방침이다.
  • 돌다짐유구 발견/창원

    【창원=이정령기자】 경남 창원군 동면 덕천리 고인돌무덤(지석묘)주변에서 돌다짐한 대규모의 석축유구와 함께 청동기등 유물이 대량 발견되었다. 21일 경남대 덕천리지석묘발굴조사단(단장 유장근 박물관장)에 의해 발굴이 마무리된 이 유구는 고인돌을 축조하기 위해 직경 약40m정도의 지반을 돌다짐한 것으로 확인됐다.
  • 강릉향토사료관 개관/영동지역 역사유물 연구·보존 활로텄다

    ◎유·무형문화재 1천여점 체계적 전시/대학박물관 중심 탈피… 시민에 친근감/개관되자마자 “만원”… 교육·관광 새 명소로 강릉향토사료관의 개관으로 박물관이 없는 영동지방의 역사유물 및 민속자료에 대한 보존·연구가 활기를 띠게 됐다.사료관은 또 지난 15일 개관되자마자 하루 1천명이상의 관람객이 찾아드는 등 지역민에 대한 사회교육의 장은 물론 강릉지역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강릉향토사료관은 강릉시가 지난 89년부터 모두 28억원을 들여 죽헌동177의4 오죽헌경내 5천2백22평의 대지위에 세웠다.건물은 지상1층 지하1층에 2백50평 규모.외관은 전통미를 살린 한옥이며 내부는 현대식으로 지어졌다. 사료관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유물 및 자료는 모두 1천여점이며 이가운데 4백70여점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강릉시는 당초 사료관의 개관작업을 하며 어떤 성격을 택하느냐를 놓고 고민에 빠졌었다고 한다.민속박물관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강릉지역에 독특한 민속이 다양하게 전래되고 있어 관객의 흥미를 끌수 있는 전시가 가능하다는것이었다.또 민속박물관이라는 명칭이 일반인들에게 친근한 느낌을 주며 어느정도 권위도 깃들어 있다는 이야기였다.그러나 대세는 향토사료관을 주장하는 쪽으로 기울어갔다. 이들은 최근 영동지방에서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청동기·원삼국·삼국시대에 이르는 유적이 체계적으로 발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동은 물론 강원도 전체에 박물관하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때문에 민속자료에 국한될 우려가 있는 민속박물관보다는 박물관과 민속박물관의 기능을 함께 하면서 규모는 작은 향토사료관이 되는게 바람직하다고 주장을 폈다.우선 지역내 역사유물및 민속자료에 대한 수집 보존 연구를 하고 후에 박물관이 세워지면 해당기능을 넘겨주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탄생과정을 거쳐 사료관은 선사문화실과 역사미술실 민속문화실 야외전시장으로 4개부문의 전시영역을 갖추게 됐다. 먼저 66평규모의 선사문화실에는 명주 심곡리에서 발굴된 구석기시대 찍개 긁개를 비롯,강릉 명주지역에서 출토된 선사유물을 체계적으로 전시하고 있다.특히 명주 안인리의 원삼국시대유적지를 바탕으로 당시 생활상을 재현해 이지역 선사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54평 규모의 역사미술실에는 보물 제81호인 한송사터 석불좌상을 비롯,강릉12향현의 유품,관동8경도등이 전시되어 있다. 또 92평 규모의 민속전시실에는 중요무형문화재인 강릉단오제와 강릉농악을 축소형으로 재현하고 민가와 생활용구등을 다양하게 전시,이지역 선인들의 생활상을 살필수 있게 했다. 야외전시장은 지역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선정비들과 신라시대의 석탑기단면석,석불입상들을 한데 모았으며 양양 포월리의 석실고분과 괸돌의 하부구조도 옮겨 전시하고 있다. 사료관은 현재 장상준관장등 14명의 직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 사료관의 개관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관동대 신호웅박물관장은 『그동안 영동지역의 유물수집과 연구는 대부분 일반인들의 접근이 어려운 대학박물관중심으로 이루어졌던 만큼 사료관의 개관이 반갑다』고 말했다.신관장은 『그러나 사료관이 단순한 관광자원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유물수집과 연구에 획기적인 예산을 배정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한국청동거울 변천사 한눈에

    ◎청주박물관,선사∼근대 동경 180점 전시 국립청주박물관이 우리나라 청동거울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한국의 동경」특별전을 20일까지 본관 기획 전시실에서 열고 있다. 이 특별전은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민족이 사용해 온 동경을 한자리에 모아 그 형태및 제작기법의 시대적 변천을 보여주어 우리나라 동경에 대한 공예사적 이해를 도모하는 자리로 꾸며졌다. 전시되고있는 유물은 국보 제14 3호 화순 대곡리출토 청동기시대 동경과 국보 제161호 무령왕릉출토 백제시대 동경등 1백28건 1백80점이다. 예로부터 거울은 사물을 비춰볼수 있는 도구로 고안해 사용했을 뿐 아니라 신령스런 의기로 의미가 확대되어 시대에 따라 여러가지 상징적인 무늬가 담겨지고 형태도 다양해지게 되었다.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동경은 뒷면에 기하학적인 집선문을 도안하고 꼭지를 두세개 다는 것이 특징이다.초기에는 삼각형 또는 별모양의 윤곽안에 거친 무늬가 채워지다(다뉴추문경)차츰 정교한 무늬로 발전(다뉴정문경)하게 된다. 삼국시대에는 중국에서수입한 한경과 이를 모방한 거울(방제경)이 주류를 이룬다. 고려시대에는 거울의 수입과 국내제작이 모두 활발히 이루어져 다양한 종류가 나타난다.문양은 하나의 꼭지를 중심으로 주위에 수신 어용 화조 인물 신선 시구등을 새기고 있고 형태도 사각형 직사각형 팔각형 꽃잎모양등으로 다채롭다. 조선시대가 되면서 동경의 크기는 커지나 무늬가 간략해져 제작기술이 단순화된다.
  • 가야 중심 김해시,「가야와 동아시아」관계 국제학술회의

    ◎임나일본부/한반도 병합위해 조작/왜서 일본으로 개칭한것은 7세기/「일본서기」 5C기록에 「일본부」 등장은 어불성설/4C전후 왜와 교류,청동문화 전파시켜 고대 한반도 남부에 일본의 통치기구인 임나일본부 존재설은 허구인가 진실인가.이 임나일본부설은 일본학자들이 조작한 허구이며 삼국초기 낙동강 하류지역(김관가야)은 해상루트를 통해 이미 발달된 북방문화를 받아들인 강력한 독자적 세력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이는 일본학자들까지 참가한 가운데 가야문화의 중심지 김해시(시장 백승두)가 최근 개최한 「가야와 동아시아」 주제의 국제학술회의에서 제기돼 주목을 끌었다. 우리 역사에서 비교적 소홀하게 다루어져온 가야사의 실체를 규명하고 당시의 대외관계를 밝히기 위한 이 학술발표회에서는 한·중·일 3국의 시각에서 입체적으로 가야와 왜의 관계에 대한 조망이 시도됐다.발표된 주제는 「임나일본부와 위의 오왕」(왕건군·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장),「고고학에서 본 가야와 왜」(대총초중·명치대),「금관가야의 성립과 대외관계」(신경철·경성대)등. 중국측의 왕건군교수는 일본에서 정설로 취급되어온 「남선경영설」과 「임나일본부」의 존재는 한반도 병합을 위한 역사적 근거로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다.그 이유로 일본의 「고사기」「일본서기」등이 주로 신화와 전설을 기초로 편찬된 사실을 지적했다.따라서 이들 자료에 나오는 신공황후의 삼한정벌과 백제 진사왕의 죽음을 남선경영의 증거로 삼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왕교수는 「일본서기」의 부정확성의 한 예로 웅략8년(463년)이월조에 나오는 「일본부」에 관한 기록을 들었다.국호를 위에서 일본으로 개칭한 것이 7세기 후반이기 때문에 5세기의 기록에 일본이라는 명칭이 나오는 것 자체가 작위적 요소가 많다는 것이다. 오쓰카 하쓰시게(대총초중)교수는 한국과 일본의 교류가 활발해진 시점을 BC4세기를 전후한 한국의 청동기시대와 일본의 죠오몽(승문)시대 말기로 보고 이 시기에 벼농사문화가 한반도에서 전파됐음을 밝혔다.그는 김해 대성동·양동리고분,동래 복천동고분등의 발굴에서 구사국(삼한)과 금관가야의 구분이 명확해졌으며 왜와 가야와의 관계에 많은 문제를 제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지금 일본 고고학계의 뜨거운 시선이 가야에 쏠려 있다는 것이다. 오쓰카교수는 이들 고분에서 발견된 통형동기·파형동기등은 양국 고분시대사회의 소유형태나 부장상태를 분석해볼때 왜계유물의 성격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왜왕권이 만약 가야에 대하여 이들 청동제품을 헌공했다면 왜왕권에 있어서 가야는 대단히 중요한 존재였을 것이라는 그는 철의 입수를 목적으로한 행동의 표현이 헌공으로 나타날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신경철교수는 낙동강하류 분묘군에 분묘파괴현상이 있었음을 밝혀내고 파괴이전의 목곽묘군을 1부류,파괴를 당한 이후의 목곽묘군을 2부류로 나누었다.여기서 결정적인 분류근거로 도질토기의 등장을 든 신교수는 2부류의 묘들은 중국 동북지방의 길림성북부에서 출토된 것과 유사한 점이 있기 때문에 북방문화가 직접 이 지역에 유입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교수는 또 시대변천에 따라 왜의 교섭대상지역이 달랐다는 견해를 제시했다.이를테면 구사국시대(삼한시대)는 북부 구주와 금관가야때는 대화를 중심으로 교섭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 청동기시대 집터 백제유물 발견/마사리유적지 원형보존

    ◎문화부,최종확정 문화부 문화재관리국은 최근 청동기시대 집터와 백제시대 밭터등이 발굴되어 학계의 관심을 끌었던 미사리 유적지를 원형대로 보존키로 23일 최종 결정했다.이같은 결정은 지난 21일 소집된 문화재위원회 제3분과회의의 보존대책논의결과에 따른 것이다. 이에따라 문화재관리국은 당초의 호안공사계획선을 변경하는 문제를 조속한 시일내에 건설부와 협의에 들어가기로 했으며 경기도에도 이 사실을 통보했다. 이 지역은 사적지인 미사리선사유적지의 인접지역으로 지난 85년부터 시작된 한강종합개발계획에 따라 하천에 편입되기로 예정되어있어 사전발굴조사가 이루어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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