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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물관속 어린이 박물관

    박물관속 어린이 박물관

    여러분, 안녕?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에 온 것을 환영해요. 이제부터 ‘재미있는 과거로의 여행’을 함께 떠날 거예요. 옛날 사람들의 집, 농사짓기, 전쟁, 음악에 관한 재미있는 전시물들이 네 개의 공간에 가득 펼쳐져 있답니다. 잠깐, 출발하기 전에 확인할 게 있어요. ●입장권, 탁본 종이 준비하세요. 입장권은 준비되었나요?혹시 잊은 친구를 위해 알려줄게요.20명 이상의 많은 친구들이 함께 온다면 인터넷 홈페이지(www.museum.go.kr/child)에서 예약을 하세요. 나머지는 현장에서 선착순으로 표를 받을 수 있어요.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6회로 나눠 들여보내 주고 있어요. 표에 적혀 있는 시간에 맞춰 와야하고, 한번 들어오면 1시간 30분동안 구경할 수 있어요. 많은 어린이들이 한꺼번에 들어오면 마음껏 구경을 할 수가 없대요. 그래서 한 회에 150명까지만 들여보내 줘요. 그런데 요즘엔 오전 11시면 그날의 입장권이 모두 동이 나버린답니다. 예약을 할 수 없는 개인 관람객들은 아침 일찍 오시는 게 좋아요. 표를 내고 들어오기 전에 오른편에 있는 ‘뮤지엄 숍’에 들르세요.‘탁본체험’ 종이 세트를 500원에 팔고 있습니다. 이걸 가지고 들어가야 재미있는 탁본 체험을 할 수 있어요. ●따뜻한 집의 세계로 자, 그럼 출발합니다. 첫 번째 방. 이름은 ‘따뜻한 집, 삶의 보금자리’예요. 옛날 사람들의 집 모양과 집에서의 생활이 어땠는지 살펴볼 수 있을 거예요. 입구 바로 왼쪽에 커다란 움집이 보이죠? 그 안으로 들어가 보세요. 가운데 움푹 파인 곳이 불을 피우고 음식을 만들던 ‘작업 구덩이’예요. 밖으로 나오면 갈돌·갈판 네 개씩 놓여 있어요. 갈돌을 들고 갈판에 곡물을 놓은 다음 직접 갈아 보세요. 원시인이 된 기분이 들거예요. 방 가운데 나무로 만든 ‘봉정사 극락전’을 축소 모형으로 보세요. 그 아래 놓여 있는 나무토막들을 설명에 따라 끼워 맞추면 ‘우물마루’가 완성됩니다.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집을 만들었던 연장들이 벽에 걸려 있어요. 돌도끼, 홈자귀를 들고 폼을 잡아 보세요. 그 옆에 모형 기와로 암마룻장 기와와 수마룻장 기와를 차례로 얹는 연습도 해보세요. 마루도 깔고, 기와도 얹어 봤으니 훌륭한 건축가가 될 수 있겠네요. ●음식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이제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음식을 마련했는지 살펴 봅시다.‘쌀과 밥, 농사짓는 도구들’방에 들어가면 농민이 되어 볼 수 있어요. 오른쪽에 곡물 저장 단지들이 놓여 있죠?그 위에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는 것은 사람 모형이니까 너무 놀라지 마세요. 옛날 사람들은 곡물단지를 땅 속 깊은 곳에 묻어두고 저렇게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 꺼내갔대요. 땅 속은 온도가 일정하기 때문이죠. 좀 더 안으로 들어가면 옛날 부엌과 현대의 부엌을 비교할 수 있어요. 여러 가지 모양의 그릇들도 잘 살펴 보세요. 쓰임새에 따라 다르게 사용해서 제각기 생겼답니다.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게임판도 가운데 마련되어 있어요. 게임하는 방법을 알려줄게요. 먼저 큰 게임판 위에 있는 그릇을 차례로 작은 게임판 위에 올려 놓으세요. 게임을 잘 하려면 하나씩 올려 놓을 때마다 화면에 나오는 그릇에 대한 설명을 잘 읽어야 해요. 다음 큰 게임판의 화면을 보세요. 힌트가 나오면 그와 일치하는 그릇을 골라 정답 동그라미 위에 올려 놓으세요. 맞았나요, 틀렸나요?틀렸으면 다시 도전해 보세요. 그릇 조각 맞추기 게임도 놓치지 마세요. 퍼즐을 맞히듯 조각을 그릇에 붙이세요. 제자리에 붙여야 안 떨어집니다. 혼자 다 맞추기 어려우니까 친구들과 꼭 함께 하세요. 나가는 길에 농사 짓는 도구들을 차례로 만져보고 가세요. 도구 옆 화면에 나오는 만화를 보면 그 도구가 어떻게 쓰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용감한 무사가 되어 보자 ‘무기와 무사들’.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하죠?옛날 사람들도 서로 싸울 때가 있었어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 나라에 쳐들어오면 용감하게 나라를 지켜야 했죠. 이 방에서는 나라를 지킬 때 사용했던 것들이 전시돼 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산성을 많이 쌓았어요. 산성 그림에 유리 조각들을 차곡차곡 붙여 보세요. 그 유리처럼 생긴 돌들을 쌓아 성곽을 만들었답니다. 오른쪽 벽에 잔뜩 걸려있는 활들을 한개 한개 살펴보세요. 모두 뾰족하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다르게 생겼거든요. 맞은편에 있는 동그란 판은 퍼즐 맞추기예요. 위에 보이는 검 그림에 맞춰 퍼즐 조각을 맞춘다음 검을 멋지게 완성시켜 보세요. 키가 작은 친구들은 키가 큰 친구들이나 부모님,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야겠네요. 모퉁이로 가면 이순신 장군님이 입고 싸웠던 것과 비슷한 옷이 보이죠? 직접 입어보세요. 먼저 갑옷을 입고 어깨 가리개를 걸치세요. 팔 가리개와 목 가리개를 입었으면 마지막으로 투구를 쓰세요. 무척 무겁죠?옛날 용사들은 그렇게 단단하고 무거운 옷을 입고 싸웠답니다. 그럴듯한 용사가 되었으니 기념으로 사진 찍는 것도 잊지 마세요. ●아름다운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들어오기 전에 ‘탁본 체험 종이’를 산 친구들은 ‘마음과 영혼의 소리’ 방으로 가는 길에 탁본 체험 코너를 꼭 들르세요. 동판에 먹을 묻히고 종이를 댄 다음 쓱쓱 문지르면 신기한 모양이 새겨질 거예요. 마지막 ‘마음과 영혼의 소리’ 방은 음악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를 알려주는 곳이에요. 음악은 신을 부르고 복을 기원하는 의식에서 생겨났대요. 우리 조상들이 사용하던 청동 방울, 북, 장구를 직접 들도 소리를 내 보세요. 소리가 조금 낯설게 들리겠지만 모두 조상들이 슬프거나 기쁠 때 사용했던 악기들입니다. 멋진 연주 소리를 듣고 싶으면 벽에 붙어 있는 노란색 스피커에 귀를 대고 번호를 눌러 보세요. 거문고, 대금, 가야금 등 다양한 악기 소리가 퍼져 나옵니다. 출구 앞에 노래방이 있네요. 옛날에도 노래방이 있었냐고요? 그건 아니에요. 옛날 노래를 불러보라고 마련한 ‘도전 향가 따라부르기’ 방이에요. 마이크를 들고 곡을 선택하세요. 잘 모르는 곡이라면 ‘미리듣기’로 먼저 익힌 다음 도전하세요. 여행이 끝났습니다. 약간 지친 친구들은 쉼터에서 동화책이라도 읽으며 잠시 동안 쉬세요. 남기고 싶은 말이 있는 친구들은 ‘박물관 신문 만들기’ 코너로 가서 사진도 찍고 하고 싶은 말도 남기세요. 한 시간 반이 쏜살같이 지나갔죠?그럼, 안녕.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신대곤 학예연구관의 당부 어린이박물관은 누가 꾸민 걸까요? 신대곤(46)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님이에요. 신 연구관님은 1985년부터 10년간 중앙박물관 고고부에서 일하시고, 국립 대구·제주 박물관 학예연구실장 등을 맡으셨던 박물관 전문가입니다. 신 연구관님께 어린이박물관의 주제와 효율적인 관람 방법을 들어보세요. ●원시·고대인의 생활 속으로 “어린이 여러분, 두더지가 되어 보세요.” 어린이박물관의 캐릭터인 귀여운 두더지 보았죠?원시·고대인들의 생활상을 연구하는 사람들인 고고학자들의 별명이 두더지래요. 여러분들도 두더지들처럼 원시·고대인들의 생활을 체험하면서 배우라는 의미에서 두더지를 캐릭터로 정했대요. 어린이박물관의 주제도 ‘원시·고대인들의 생활 체험’이에요. 구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살았던 사람들의 집, 음식, 전쟁, 음악 등의 생활상이 어린이 박물관에 펼쳐져 있지요. 신 연구관님은 “하나하나 만지고 두드려 보면서 옛 사람들의 생활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앞으로 2∼3년에 한 번씩 주제를 바꿔서 조선시대의 회화, 대외 교류, 경제 활동 등 다양한 옛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실 예정이래요. ●전시물은 소중하게 그런데 신 연구관님이 요즘 걱정거리가 생겼대요. 어린이박물관의 많은 전시물들이 망가지고 있어요. 많은 친구들이 박물관의 물건들을 너무 함부로 대했기 때문이에요. 신 연구관님은 “많은 친구들이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전시물을 소중하게 다뤄 달라.”고 당부하셨어요. 또 “너무 큰 소리로 떠들거나 뛰어다니면 다른 친구들의 관람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말씀도 하셨어요. 박물관에서는 얌전히 공중 도덕을 지켜야겠죠?어린이들의 어머니들과 선생님들께도 하실 말씀이 있으시대요.“상설 전시관과 어린이박물관을 하루 안에 보려고 서두르지 마세요. 어린이박물관을 둘러본 다음 상설 전시관에서 실제 유물들을 보여 주세요. 새로 태어난 국립중앙박물관을 어린이들이 하루 동안 다 보기엔 너무 큽니다. 날짜별로 둘러볼 관람관을 정해서 천천히 보여 주세요.”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족장회의·문화재 복원 해보시죠 어린이박물관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는 아쉽다고요? 재미있고 알찬 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세요.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청동기인들과 신라인들의 족장 회의를 열어볼 수 있어요. 가족과 함께 삼국시대의 악기를 만들어 보고, 문화재를 발굴해 복원하는 과정도 체험할 수도 있어요. 유물로 모빌 만들기, 돌칼을 만들어 절구에 볍씨 찧어보기도 있고요. 고고학을 공부한 선생님으로부터 재미난 전래동화를 들어볼 수도 있답니다. 커서 기자가 되고 싶은 친구들은 방학 때 ‘박물관 신문만들기’ 프로그램에 꼭 참여하세요. 여러분이 직접 신문 기자가 되어 박물관 전시 내용을 기사로 써 박물관 신문을 만들 수 있어요. 학급별, 가족별 프로그램이나 방학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인터넷으로 미리 접수해야 해요. 평일 프로그램은 그날 박물관으로 가서 신청하면 됩니다. 참가 신청방법은 홈페이지(http://children.museum.go.kr)를 참고하세요.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대학서 잠자던 古유물 빛본다

    대학서 잠자던 古유물 빛본다

    대학교 박물관들이 지난 45년간 발굴해온 유적에서 출토된 구석기∼조선시대 유물들이 한자리에 전시된다. 대학 박물관이 발굴·연구 외에 전시기능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깊다. 한국대학박물관협회(회장 배기동 한양대 박물관장)는 4일부터 다음달 16일까지 연세대와 이화여대 박물관에서 45년 발굴유물전 ‘대학 박물관-새로운 역사의 발견자’를 개최한다. 전국 40개 대학 박물관이 지난 45년동안 발굴한 유물 910여점이 전시되는 첫 대규모 연합전이다. 선사∼통일신라 유물은 연세대에서, 고려∼조선시대 유물은 이화여대에서 볼 수 있다. 대학 박물관은 지난 1960년대부터 전국 각지의 유적에서 고고학적으로 가치가 높은 유물들을 발굴하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그동안 발굴·연구에 치중한 나머지 외부공개 등 활용하는 측면은 부족했던 것이 사실. 이번 연합전은 대학 박물관의 연구성과를 정리함과 동시에, 발굴유물에 대한 가치를 일반에 공개한다는 의도가 담겨있다. 전시회에는 경희대 박물관이 발굴한 서울 암사동유적, 한양대 박물관의 연천 전곡리유적, 연세대 박물관이 발굴한 동굴유적인 영월 연당쌍굴 등 전국 143개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검·도자기·옷 등 920점이 전시된다. 백제 지배층이 사용했던 공주대 발굴 흑색마연토기와 전남대가 발굴한 삼국시대 녹유잔탁, 고구려 절터 이름을 알려준 제천 장락사지 출토 장(長)자명 기와 등 시대별 대표유물을 볼 수 있다. 또 순천대와 목포대가 발굴한 청동기 비파형동검과 세형동검을 비교할 수 있으며, 대학 박물관의 발굴역사를 보여주는 영상과 발굴장비도 전시된다. 배기동 협회장은 “발굴문화재를 대중에 보여줌으로써 유적보존 및 발굴유물 전시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대학박물관의 사회적인 역할을 제고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국립중앙박물관 용산시대] 반만년 겨레의 보물…눈길마다 탄성

    [국립중앙박물관 용산시대] 반만년 겨레의 보물…눈길마다 탄성

    우리나라의 찬란한 5000년 역사·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이 28일 서울 용산에서 새로 문을 연다. 광복 60주년과 역사를 같이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은 잦은 이전의 아픈 과거를 뒤로 하고 새 보금자리에서 한민족 역사를 다시 쓰게 됐다. 9만여평의 넓은 터에 최첨단 전시·관람시설, 넉넉한 식사·휴식·문화공간, 박물관을 둘러싼 자연경관까지 가족들이 즐기기에 손색이 없다는 평가다. 놓치기 아까운 새 박물관을 들여다보자. ●규모·시설, 세계 최고수준 박물관으로 향하는 정문에 들어서면 우선 엄청난 규모에 놀라게 된다.9만 2900평의 부지에 건물 연건평만 4만평이다. 특히 박물관 3개층에 달하는 전시면적은 8100평으로, 옛 경복궁 시절 전시실의 3배 이상이다. 정문에서 이어지는 ‘나들다리’를 걷다 보면 널따란 연못인 ‘거울못’을 만난다. 거울못을 지나 박물관 건물에 다다르면 동관과 서관을 잇는 ‘열린마당’에 서게 된다. 지붕은 있지만 벽이 없는 이 공간에서 남산을 바라볼 수 있다. 이어 동관 1층 ‘으뜸홀’에 이르면 비로소 3개층에 걸친 전시실들에 대한 본격적인 관람이 시작된다. 동관 상설전시관은 6개 관 43개 실로 꾸며졌다. 특히 1층 역사관과 2층 기증관,3층 아시아관이 신설돼 위용을 갖췄다. 서관에는 기획전시실과 어린이박물관, 도서관,805석 규모의 전문 공연장 ‘용’ 등이 자리잡고 있다. 이와 함께 다양한 문화상품을 개발, 선보이는 ‘뮤지엄숍’ 4개와, 야외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거울못 레스토랑’ 등 7개의 식음료공간도 갖췄다. 새로운 전시기법도 눈에 띈다.‘으뜸홀’에서 이어지는 복도인 ‘역사의 길’은 최첨단 자연채광 시스템을 갖췄다. 전시실마다 대기오염 감시시스템, 광섬유 조명시스템 등은 물론, 관람시 영상안내기(PDA)·음성안내기(MP3플레이어)를 통해 전시물 설명과 동선 정보까지 제공하는 종합정보화시스템은 최첨단 정보기술(IT)박물관으로서 손색이 없다. ●국보급 유물 한자리 집결 지하 수장고에 집결한 유물만 해도 15만점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중 개관때 전시실에 선보이는 유물은 1만 1000점 정도. 전시실 규모와 배치 등을 고려한 결과다. 개관에 맞춰 국보·보물 등 지정 문화재도 139건이 한자리에 모여 사상 최대 규모의 지정문화재 전시를 자랑하게 됐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경주 황남대총 출토 신라시대 금관(국보 191호)·금허리띠(국보 192호)와 반가사유상(보물 331호) 등은 박물관의 자랑거리다. 개관을 축하하기 위해 개인소장가와 공·사립박물관에서 대여해준 국보들도 어렵게 용산 나들이를 했다. 간송미술관 소장 훈민정음해례본(국보 70호)과 추사의 명품인 손창근 소장 세한도(국보 180호), 부여박물관 소장 백제금동대향로(국보 287호), 해남윤씨고택 소장 윤두서의 자화상(국보 240호) 등이다. 소장처를 떠나서는 한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중요 문화재들도 볼 수 있다. 현충사 소장 충무공 이순신 장군 칼(보물 326호), 화엄사 소장 화엄석경(보물 1040호) 등이 그것. 또 중앙박물관이 입수, 첫 공개하는 중요 문화재인 춘천 천전리 출토 청동기 화살대·화살촉을 비롯, 경북 경산 임당유적 출토 삼국시대 갑옷틀 등이 보존처리를 거쳐 모습을 드러낸다. 이와 함께 ‘여러 신들’ 불화와 소상팔경무늬·오리모양 연적 등도 박물관의 첫 공개유물이다. 중앙박물관에 처음으로 마련된 불화실에는 일본 나라국립박물관에서 대여한 수월관음보살 2점이 전시된다. 국내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힘든 14세기 고려불화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러나 이들 대여 보물은 2주일에서 1개월 정도 전시될 예정이라서 개관 초기에 들러야 제대로 볼 수 있다. 이같이 진귀한 문화재들이 가득한 전시실을 효율적인 동선에 따라 원하는 대로 둘러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1층 ‘역사의 길’에서는 10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북관대첩비’를 볼 수 있다. 복원작업을 위해 10일간만 볼 수 있으니 서둘러야 한다. 북관대첩비 뒤로는 10년간 복원·이전작업 끝에 자리를 잡은 ‘경천사지 10층석탑’의 웅장함을 감상할 수 있다. 박물관 야외전시실도 눈여겨 볼 만하다. 보신각 종 등 국보급 문화재 10여점을 포함, 석탑과 석비 등 다양한 석조유물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 ●박물관 제대로 즐기려면 모든 전시실을 둘러보는 데 11시간, 박물관이 엄선한 ‘명품 100선’을 구경하는 데만 3시간 정도 걸린다는 것이 박물관 관계자의 설명이다. 따라서 여유를 갖고 ‘골라보는 재미’를 즐기는 것도 좋다. 박물관측은 PDA 네비게이터 서비스를 통해 11시간짜리 ‘정석코스’와 ‘명품 100선 코스’ 외에 1∼2시간 내 관람할 수 있는 ‘집중코스’정보도 제공한다. 정해진 코스에 따라 관람하지 않는다면 관심 있는 주제에 따라 전시실을 골라 돌면 된다.PDA·MP3플레이어를 각각 3000원,1000원에 빌리면 ‘셀프 스터디’를 할 수 있다. 박물관 홈페이지(www.museum.go.kr)에서 사전 예약은 필수다. 전시실만 돌며 다리 힘을 빼지는 말자. 관람 중간중간에 밖으로 나와 연못과 석조물정원, 소나무길 등을 거닐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것도 좋다. 관람료는 올해 말까지 무료다. 그러나 관람질서 유지와 이용객 안전을 위해 매표소 3곳에서 ‘무료관람권’을 받아야 입장이 가능하다. 박물관측은 최대 3000명이 동시입장할 수 있고 1일 최대 1만 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수용인원 한도 내에서만 관람객을 받을 예정이다. 관람시간은 평일은 오전 9시∼오후 6시이며, 주말·공휴일은 오전 9시∼오후 7시. 내년부터 적용되는 관람료는 개인 2000원,20인 이상 단체는 1500원이며 6세 이하 어린이와 65세 이상 노인은 무료다. 청소년은 개인 1000원, 단체 500원이며 어린이박물관은 개인당 500원이다.20인 이상 단체관람은 관람 1주일 전에 인터넷으로 예약신청을 해야 한다. 매주 월요일은 연중 휴관한다. 내년부터는 매월 넷째 토요일이 무료로 운영된다. 직장인의 편의를 위해 관람이 끝나기 1시간전 무료로 개방하는 선셋(sun-set) 제도도 실시한다. 중앙박물관과 연계한 문화기관 중 5곳을 이용하면 박물관을 5회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뮤지엄 쿠폰’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대중교통 이용을 권장하기 위해 주차료는 기본 2시간에 소형차는 2000원, 대형차는 4000원이다.30분마다 500원이 추가되나 하루 주차료 상한선은 1만원이다. 개관날인 28일 오전 10시 대통령이 참석하는 개관기념식이 열리며, 오후 2시부터 일반에 공개된다.28∼30일 오후 6시부터 열리는 축하공연 및 박물관 외벽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멀티미디어 영상쇼’ 등도 볼거리다. 글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사진 강성남·이언탁기자 snk@seoul.co.kr
  • 선조들의 밥상 구경 오세요

    ‘우리 조상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그 답을 알 수 있는 특별전시회가 부산에서 열려 눈길을 끌고있다. 우리 먹을거리의 뿌리를 찾아보는 ‘선사·고대의 요리’를 주제로 한 특별전시회가 바로 그것.17일부터 내달 18일까지 부산 동래구 복천동 복천박물관에서 한달간 열린다. 전시회는 ▲선사시대와 ▲삼한·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선사 및 고대의 취사방법 등 4부문으로 구분한 뒤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243건의 유물을 시대별로 분류, 해당 시대의 음식재료, 조리도구, 식기 등의 특징과 음식의 변화과정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했다. 선사시대 부문에서는 당시 주거지와 패총에서 출토된 음식재료인 견과류와 조·보리·밀 등의 식량자원을 어떻게 가공하고 조리했는지를 볼 수 있다. 신석기 유적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에서부터 소형 배식기, 중간 크기의 조리기, 대형 저장용기 등 다양한 토기가 전시되고, 청동기시대(1만 2000년전)에 시작된 벼농사의 증거인 쌀, 견과류 등의 저장과 조리법도 소개된다. 삼한·삼국시대에서는 광주 신창동 유적과 삼천포 늑도유적에서 출토된 다양한 용도의 조리기와 식기를 통해 그들의 밥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철솥과 놋그릇·수저·국자 등의 금속기가 정착돼 조리도구와 식기에서 우리의 전통이 확립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복천박물관은 전시회 기간에 매주 토요일 초등학생 관람객을 대상으로 ‘내가 조리해 보는 옛날 사람들의 요리’라는 체험행사도 갖는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7·9급 시험 완전정복] 국사

    [7·9급 시험 완전정복] 국사

    ※신석기시대(기원전 8000년경) (1)경제생활 1)자연경제(수렵, 채집, 어로) (1)경제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감소 (2)식량을 얻는 중요한 수단 2)생산경제의 시작:신석기혁명 (1)직조술의 시작-유물:가락바퀴, 뼈바늘 (2)가축(개, 돼지 등)의 사육 →철기:농경에 소·말 등 가축의 이용(우경의 시작) (3)농경의 시작(말기) (ㄱ)재배작물:조, 피, 수수 등 잡곡류 (ㄴ)사용도구 (가)간석기:돌보습, 돌괭이, 돌삽 등 (나)목기:현존× (ㄷ)유적지:평양 남경, 봉산 지탑리 등 (ㄹ)결과 (가)해안, 강변의 움집에서 정착생활 (나)토기의 제작 (A)용도:음식물의 조리, 저장 (B)명칭 -덧무늬토기-최초의 토기(무늬가 없고 작음 -이른민무늬토기-토기 몸체에 덧띠를 붙임(주발모양의 밑이 둥근 모양) -눌러찍기문토기(압인문토기):눌러찍은 무늬가 있음 -빗살무늬토기-대표적인 토기(전국 각지에 널리 분포·대부분 바닷가, 강가에서 출토·북방계통(시베리아·몽고)의 영향) (C)유적지:강원 고성 문암리, 부산 동삼동, 서울 암사동, 경남 김해 수가리 등 (다)신앙생활 (2)혈연을 바탕으로 한 씨족구성의 부족사회 ∥ 씨족사회(신석기)의 성격, 전통→계승, 발전 (ㄱ)족외혼→동예:족외혼 (ㄴ)폐쇄적 독립사회(경제적 독립)→동예:책화 (ㄷ)모계사회→고구려:서옥제 (ㄹ)평등사회→신라:화랑도 (ㅁ)씨족의 중대한 사건은 씨족회의에서 결정→신라:화백회의 (ㅂ)공동생산, 공동분배→삼한:두레 문제> 다음의 내용에 있는 신앙들이 등장한 시기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정답은(3) *자연현상과 자연물에 정령이 있다고 믿었다. *영혼이나 하늘을 인간과 연결시켜 주는 무당과 주술을 믿었다. *자기 부족의 기원을 특정 동식물과 연결시켜 숭배하였다. (1)동굴에서 살거나 강가에 막집을 짓고 살았다. (2)잔석기를 활과 같은 이음도구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3)농경생활과 정착생활을 하게 되었다. (4)밭농사가 중심이었지만 일부 저습지에서는 벼농사를 지었다. (해설)지문의 내용은 신석기시대에 등장한 애니미즘, 샤머니즘, 토테미즘에 대한 설명이다.(1)은 이동생활을 하였던 구석기시대의 주거지이다.(2)는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큰 짐승 대신에 토끼·여우·새 등 작고 빠른 짐승을 잡기 위해 활을 사용한 중석기시대에 대한 설명이다.(4)는 청동기시대에 대한 설명이다. 심태섭 남부고시학원 교수
  • [08일 TV 하이라이트]

    ●생방송 토론카페(EBS 오후 9시) 우리 국민 10쌍 중 한 쌍이 국제 결혼을 하는 시대가 됐다. 그러나 준비 없이 개방된 결혼시장으로 인한 문제점은 또 다른 사회문제를 낳고 있다. 결혼의 국제화 시대를 맞아 우리는 어떤 준비가 돼 있는지, 또 농촌에서의 국제결혼 증가가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를 논의해 본다.   ●라이프n조이(YTN 오전 8시20분) 매년 이맘 때면 청동기시대 유적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화 고인돌 축제가 막을 올린다. 오랜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땅 강화도. 보고, 듣고, 즐기는 역사 체험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과거 여행을 떠나 보자. 또 전통과 문화가 살아숨쉬는 남도의 가을을 만나 본다.   ●결혼합시다(MBC 오후 7시55분) 나영은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밤 늦게까지 남아 혼자 일을 하던 그는 친구이자 회사 동료인 석순, 후배 은선과 함께 찜질방에서 수다를 떨고 있다. 한편, 여 상사와 술을 마시다 많이 취한 재원은 회사 사장 민원처럼 잘나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를 터뜨린다.   ●잘먹고 잘사는 법(SBS 오전 9시) 달콤한 맛의 풍미와 5대 영양소가 가득한 완전식품 밤. 가을철의 보약이라는 영양덩어리, 밤의 모든 것을 건강음식대백과에서 공개한다. 제철을 맞은 대하의 싱싱함이 여행객들의 발걸음을 사로잡는다. 넘쳐나는 먹을거리와 신명나는 축제가 있는 남당리 대하축제 현장도 찾아가 본다.   ●청춘 신고합니다(KBS1 오후 5시10분) 창설 30주년을 맞은 ‘육군 제23 보병사단’ 장병들과 함께한다.‘병영퀴즈 전우야 휴가 가자’ 코너에서는 ‘아시나요’로 가요계 정벌에 나선 이재은이 심사위원으로 나섰다. 과연 누가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을까? 드러내 보일 수 있는 모든 장기를 총동원해 멋진 휴가증을 받으려는 청춘들의 무대.   ●위기탈출 넘버원(KBS2 오후 10시5분) 베란다에 놓여진 물건은? 어린아이가 베란다에 쌓아둔 물건을 밟고 올라가 밖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 어린아이가 있는 아파트 50가구의 베란다를 직접 조사해 베란다 추락의 위험성을 살피고 예방법을 알아봤다. 또 믹서에 잘린 손가락 처치법은 무엇인지도 알아본다.
  • 창작뮤지컬 ‘불의 검’ 주인공 임태경·이소정

    창작뮤지컬 ‘불의 검’ 주인공 임태경·이소정

    ‘오페라의 유령’‘아이다’ 등 외국 유명 뮤지컬이 잇따라 국내 무대를 장악한 가운데 모처럼 대형 창작뮤지컬 한 편이 야심찬 출정을 준비중이다. 19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개막하는 ‘불의 검’(김대성 작곡, 이종오 연출)은 창작뮤지컬로는 드물게 순정만화를 원작으로 삼아 일찌감치 화제를 모은 작품. 만화가 김혜린의 ‘불의 검’은 1992년부터 숱한 마니아층을 불러모으며 장장 12년간 장기 연재된 인기 만화로, 올해 ‘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코믹어워드’에서 작품상을 수상했다. 청동기에서 철기로 이어지는 선사 시대, 기억을 잃어버린 전사 ‘아사’와 그를 위해 ‘불의 검’을 만드는 여인 ‘아라’의 절절한 사랑이 기둥 줄거리.2차원 평면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두 주인공에게 피와 살을 부여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짊어진 이들은 크로스오버 테너 임태경(사진 오른쪽·32)과 해외파 뮤지컬 배우 이소정(사진 왼쪽·32)이다.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이후 한동안 쉬고 싶어서 처음엔 좀 망설였어요. 지금은 하길 참 잘했다 싶어요. 소재도 새롭고, 노래도 맘에 들고, 무엇보다 또 한번 내안의 틀을 깨는 작업이란 점에서 매력적이에요.”(이소정) “저야말로 장고에 장고를 거듭했습니다. 뮤지컬은 처음인데다 만화에 그려진 ‘아사’는 남자인 제가 봐도 반할 만큼 멋진 캐릭터라 선뜻 엄두가 안 났거든요. 그런데 극중에 고구려 무예가 등장한다기에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을 굳혔어요. 평소 무예에 관심이 많았거든요.”(임태경) 이소정은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주인공 ‘킴’역을 비롯해 여러 작품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배우. 국내에는 ‘마리아 마리아’로 처음 무대에 섰다. 강렬하면서도 부드러운 음색을 지닌 임태경은 지난해 1집 앨범 ‘센티멘탈 저니’를 발표하면서 크로스오버 음악계의 신성으로 주목받았다.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여려 보이는 외모와 달리 자아가 뚜렷하고, 하고 싶은 일은 꼭 해야 직성이 풀린다. 오랫동안 혼자서 외국 생활을 한 경험 덕에 독립심도 강하다. 임태경은 스위스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미국에서 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소정은 고등학교 시절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유학 가 음악을 전공했다. “어릴 때부터 음악과 운동을 좋아했지만 꿈은 과학자였어요. 그래서 망설임 없이 공대로 진학했는데 막상 박사과정을 밟으려니 음악이 너무 하고 싶은 거예요. 결국 공부를 포기하고 3년 반 동안 음반 준비에 매달렸지요.”(임태경) 성악가인 이모의 영향으로 4살때부터 노래를 했고, 부전공으로 성악을 배웠지만 정통 성악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뮤지컬이나 영상콘서트처럼 노래와 공연이 합쳐진 장르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모국어로 노래하고 싶은 절실함’때문에 국내로 돌아온 이소정은 이 작품이 끝나면 다시 브로드웨이로 컴백할 계획이다. 뮤지컬 배우보다는 ‘보컬 아티스트’로 불리고 싶다는 그녀는 작사와 동화 창작 등 다재다능한 면모를 갖추고 있다. ‘불의 검’의 주인공 ‘아사’와 ‘아라’는 수많은 여성 팬들에게 신화적인 인물이다. 때문에 두 사람이 아무리 잘해도 그들의 환상을 충족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게 마련. 두 사람의 심정이 궁금했다.“만화의 이미지만을 기대한다면 물론 실망하시겠죠. 만화와 뮤지컬의 차이점을 감안하고 뮤지컬이 줄 수 있는 부분에 초점을 두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그래도 굳이 만화와 비교하신다면…욕 먹을 각오 해야죠.(웃음)”10월23일까지.3만∼12만원.1588-7890.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판교 청동기유물 발견 신도시개발 차질 촉각

    판교신도시 예정지에서 유물이 다량 출토돼 개발사업의 차질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9일 한국토지공사에 따르면 토공, 주공, 경기도, 성남시 등 시행기관들이 판교 택지개발 사업구역중 판교동, 하산운동, 삼평동 일대 시굴대상 24곳중 6곳을 시범조사한 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 토광묘, 수혈유구, 무문토기, 청·백자 등 252기의 유구 및 유물이 발견됐다. 이에 따라 문화재 지도위원회는 시굴 대상지 34만평중 삼평동 등 5만 1000평을 발굴대상지로,6만 6500평을 추가시굴이 필요한 곳으로 결정했다. 시행기관들은 발굴대상지 및 추가 시굴 필요지역에 대해 문화재청 심의결과에 따라 발굴절차를 수행해야 한다. 보존가치가 높은 유적이 발견될 경우 발굴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토공은 “이미 발굴 소요기간 등을 감안하고 토지사용시기(2006년 12월)를 정해 공동주택용지를 공급했다.”고 설명했다.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정부기관 75% 지식관리 미흡

    정부기관 75% 지식관리 미흡

    정보 및 지식을 공유하는 정부의 지식관리 수준이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고 있다.48개 중앙행정기관 가운데 75%인 36곳이 준비단계이거나 도입·확산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07년까지 각 부처가 업무에 활용할 수 있도록 공유하는 지식의 질적 수준을 적극 업그레이드하기로 했다. 행정자치부 오영교 장관은 19일 정부중앙청사 별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이해찬 국무총리, 각 부처 장·차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지식관리토론회’에서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정부지식관리 현황과 발전방향’에 대해 보고했다. 이에 따르면 행자부가 지난 5월부터 2개월간 48개 중앙행정기관에 대해 정부지식관리 실태를 진단한 결과 75%인 36곳이 아직도 미흡한 실정이다. 지식관리의 목표·전략과 활용 등 5개 분야에 대한 조사에서 8개 기관(17%)은 지식 마인드조차 형성되지 않고, 지식관리시스템도 구축되지 않았다. 9개 기관(19%)은 겨우 지식관리에 대한 인식을 하고 시스템 구축과 담당자를 지정하는 수준이다.19개 기관(39%)은 지식공유 문화가 형성되어 있고, 전담인력을 배치하는 등 ‘확산단계’에 이르렀다. 업무시스템과 지식관리 시스템이 연계되고, 질(質) 향상이 추진되는 ‘활성화단계’에 이른 곳은 12개 기관(25%)에 불과했다. 마지막 단계인 성숙단계는 단 한 곳도 없었다. 각 부처의 지식관리시스템 평균 운영기간은 35개월에 불과하다. 시스템 운영부서도 정보화부서가 19개 기관(47%)으로 가장 많다.28개 기관은 업무시스템과 지식관리시스템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지식활동이 성과평가와 연계되지 않는 곳이 많고, 평가를 의식한 형식적인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는 곳이 상당수다. 등록된 정보도 활용할 수 있는 ‘고급’정보가 적은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는 이에 따라 지식관리를 ‘지식행정 차원’으로 육성, 정부의 경쟁력을 높여 나가기로 했다. 질적인 향상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기관은 물론 민간·외국기관까지 확대한 지식 네트워크를 구축해 나갈 방침이다. 또 현재 12곳에 불과한 ‘활성화’단계를 내년 중 절반으로 끌어올리고,2007년에는 모든 부처를 ‘활성화’단계까지, 이중 50%는 성숙단계까지 육성할 방침이다. 한편 노 대통령은 토론회에서 “지식경영을 안 하면 국가는 2류 국가로, 행정은 3류로 전락한다는 위기의식으로, 하면 된다는 자신감으로 지식경영에 적극적으로 나서 주길 바란다.”고 당부한 뒤 “공직사회가 산업화 사회를 이끌어 왔듯이 정보화 사회에서도 잘 이끌어갈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식경영시스템은 청동기시대의 철기문명을 습득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면서 “장관, 차관 등 부처의 리더들이 지식관리에 적극적으로 관여, 참여하지 않으면 지식경영을 통한 행정의 혁신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박정현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서호저수지·여기산유적지등 경기도 기념물 8곳 지정

    경기도는 9일 정조대왕이 만든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436 일대 서호저수지 33만 2997㎡와 여기산 선사유적지 22만 5828㎡ 등 8곳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했다. 도기념물 200호인 서호저수지는 조선 22대 임금인 정조가 1799년 수원에 신도시를 건설하면서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조성한 것으로 현재까지 잘 보존돼 있다. 201호로 지정된 여기산은 청동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의 주거지와 토기 등 많은 유물이 발굴되고 있다. 서호저수지와 여기산 선사유적지는 모두 농촌진흥청 안에 위치한 국유지로, 이곳이 경기도기념물로 지정됨에 따라 앞으로 이 일대 100여만㎡가 문화재보호구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정부의 공공기관 지방이전 방침에 따라 현재 보유하고 있는 토지를 매각, 지방으로 이전키로 한 농촌진흥청 산하 기관의 지방이전이 어려움을 겪을것으로 예상된다. 도는 이밖에 ▲평택 무성산성(청북면 옥길리 일대 3만 1491㎡) ▲평택 자미산성(안중면 용성리 일대 4만 6580㎡) ▲평택 비파산성(안중면 용성리 일대 23만 2348㎡) ▲평택 용성리성(안중면 용성리 일대 3만 3974㎡) ▲평택 독목리성(현덕면 덕목4리 1만 6127㎡) ▲풍고 김조순 묘역(이천시 부발읍 기좌리 일대) 등 6곳을 기념물 202∼207호로 각각 지정했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法’자에 미치고… 책수집에 미쳐

    ■ 동국대 손성 법대학장 ‘法’자 모아 박물관개관 ‘법(法)’자 하나로 동양사상의 핵심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문화박물관이 탄생했다. 손성(54) 동국대 법대학장은 10년 동안 우리나라와 중국 등 한자문화권 국가를 돌며 수집한 ‘法’자 100여점을 모아 최근 ‘법문관(法文館)’을 열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40평 규모 법문관에는 암각화와 갑골·금문(청동기에 새겨진 글자)·죽간·소전·흉배(관복의 가슴과 등에 붙이던 수놓은 헝겊조각) 속 ‘法’자들이 들어차 있다.‘法’자만을 모아 놓은 세계 유일의 박물관인 셈이다. 이 가운데 ‘法’자의 상징 동물인 어른 주먹 크기의 청동 해치상은 손 학장이 5년 전 중국 베이징에서 어렵게 구한 희귀품이다. 법을 공부하는 학자로서 ‘法’이란 글자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손 학장은 “모든 사상과 철학의 핵심개념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신비하고도 여성적인 글자”라고 설명했다. 그는 ‘法’자의 뼈대를 이루는 ‘거(去)’자가 문자 출현 이전 선사시대에 활과 화살을 상징했다는 데서 깨달음을 얻었다. “모계사회에는 활과 화살이 권력의 상징이었지요. 그러다 점차 부계사회로 되면서 상징이 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法’자는 모계사회, 즉 여성을 상징하는 글자라고 볼 수 있지요.” 손 학장은 이런 가설을 담은 논문을 올 9월 베이징에서 열리는 세계법사학계에서 처음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그는 “법문관이 서양문화에 가려져 퇴색된 동양문화의 심오함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충북 대성중 강전섭교사 15년동안 7000권 모아“우리 집은 차는 없어도 보물 같은 책들로 가득하다.” 매일 책 1∼2권을 모아온 충북 청주 대성중 강전섭(49) 교사. 강 교사는 “두 딸이 집에 놀러온 친구들에게 서재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하는 걸 보고 참 흐뭇했다.”고 말했다. 15년 전부터 모아온 책이 7000여권에 이르는 그의 서재는 ‘작은 도서관’을 방불케 한다. 청주대 대학원에서 논문을 쓰면서 자료의 소중함을 깨닫고 책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강 교사가 가장 아끼는 책은 ‘소년’ 창간호. 육당 최남선 선생이 1908년 창간한 이 책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실려 있다. 그는 “1996년 충북문학 100년을 기념, 육당 관련 소장자료 전시회를 열었는데 육당의 넷째 아들 내외가 참석했다가 고마움의 표시로 건네준 것”이라며 당시의 기쁨을 되새겼다. 그의 신조는 불광불급(不狂不及·미치지(狂) 않고서는 미칠(及) 수 없다). 처음에는 가족들의 눈치가 보여 책을 얻어도 문밖에 숨기거나 아파트 경비실에 맡겨 뒀다가 모두 잠들고 나면 들여올 정도로 책 사랑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돈을 책 모으는 데 쓰느라 사지 못했던 승용차도 5년 전에야 마련했다. 그는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모은 책을 학교 교육자료로 활용하고 도서 전시회에도 출품하고 있다. 다음 달 청주박물관에서 광복 6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해방공간의 도서들’이라는 전시회에도 조선어학회의 ‘한글 첫걸음’(1945년) ‘정지용 시선’(1946년) ‘조선독립순국열사전’(1946년) 등 350여점을 출품할 계획이다. 청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골동품 수집 열 올리는 중국인들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골동품 수집 열 올리는 중국인들

    중국에 ‘골동품 열풍’이 불고 있다. 개혁·개방 이후 소득 수준 향상으로 중국인들도 이제 먹고사는 문제에서 벗어나 서서히 ‘정신문화’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어서다. 중국 언론들은 북송(北宋) 말기와 청조(淸朝) 초기인 강희제,1850년 이후의 청조 말기 등에 이어 4번째로 중국에 골동·예술품 수집 광풍이 몰려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최근 중국내 확산되고 있는 ‘중화사상’의 고조와 민족주의도 골동품 열풍에 일조하는 분위기이다. 지난 1949년 공산정권 출범 이후 홀대받던 중국의 ‘전통 문화’가 사회주의 퇴조와 함께 중국인들의 새로운 관심 대상으로 떠오른 것이다. |베이징 오일만특파원| 20년만에 찾아온 베이징의 무더위만큼이나 판자위안(潘家園) 시장은 열기로 가득했다. 베이징의 대표적인 골동품 시장으로 꼽히는 이 곳은 4만 8500㎡(약 1만 5000평)의 넓은 공간에도 불구하고 편하게 걸어다닐 수 없을 만큼 사람들도 붐볐다. 베이징 자오양(朝陽)구 동남쪽의 삼환(三還)에 위치한 이 시장은 1993년 자연발생적인 ‘벼룩 시장’으로 시작해 지난 97년 정식 시장으로 변모했다. ●활황 맞고 있는 골동품 시장 3000여개의 상설·간이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골동품 도매상과 수집 애호가, 관광객들간의 ‘흥정 소리’로 시장 전체가 메아리치는 듯했다. 콜라회사 직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20대 청년은 소매가 닳고 군데군데 해진 청조 시대 비단옷 1벌을 2500위안(약 30만원)에 샀다. 자신의 월급 절반 이상을 투자했지만 그는 “고대의 비단 무늬 복장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어 아깝지 않다.”며 웃는다. 그는 ‘짝퉁(모조품)’이 곳곳에서 판치고 있어 각종 관련 서적을 통해 전문지식을 쌓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자기 수집가인 천펑(陳馮·53)은 ‘사기 조각’이 수두룩하게 쌓여있는 좌판에 걸음을 멈췄다. 얼핏 아무짝에도 소용 없어 보이지만 진품 조각은 무려 2000위안(약 26만원)까지 거래된다. 골동품 시장에서 모조품이 판을 치고 있어 이 조각들은 진품 판별의 주요 기준이 된다고 한다. 동전 수집 애호가인 또 다른 20대 청년은 청조 말기 쑨원(孫文) 시대의 동전을 개당 5위안씩 100개를 골랐다. 하루종일 전통 향로(香爐)만을 찾아다니는 장카이이(張凱一·62)는 향로 전문가로서 이 곳에서 간간이 나오는 진품을 구입, 애호가들이나 전문 소매상에 되파는 일로 생계를 꾸려간다. 한달 수입이 5000위안을 넘어 중국에선 제법 ‘먹고 살 만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판자위안 시장은 중국 전통 예술품과 골동품의 도매상 역할도 하고 있다. 광저우(廣州)에서 왔다는 30대 스님은 부처상과 불주(佛珠) 등 불교용품이 가득 쌓인 점포에서 리어카 1대분의 물건을 구입했다. 다른 곳에 비해 30% 이상 싸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구입, 광저우 인근의 사찰에 공급한다. 이외에 윈난(雲南), 신장(新疆), 티베트 등의 소수 민족은 물론 만족(滿族) 회족(回族) 묘족(苗族) 등의 민속 예술품들도 인기가 높다. 이 곳에서는 문방사우와 도자기, 고가구, 소수민족 복장, 서화, 고서적 등 1000여종의 각종 상품이 판매된다. 주말에는 하루 8만명의 방문객들이 찾고 있으며 골동품 수집가는 물론 일반인과 외국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다. 연간 거래액은 4억위안(약 500억원)∼6억위안(약 750억원)에 달한다는 것이 시장 관리소측의 설명이다. 베이징의 경우 판자위안 외에도 류리창(琉璃廠)·바오궈스(保國寺) 문화거리와 베이징구완청(北京古玩城), 량마 수장품(亮馬收藏品)·훙차오(紅橋)시장 등 10여곳이 성업 중이다. ●작년 골동·예술품 1조3000억원대 거래 중국의 골동품 소장 애호가들은 전국적으로 6800만명을 넘어섰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이들의 소장 분야는 고대 청동기와 자기, 옥기, 서화, 가구, 동전, 복식, 편액, 문방사우, 고서적, 고사진 등 다양하다. 지난해 중국 전역에서 거래된 골동·예술품은 대략 100억위안(약 1조 3000억원) 안팎으로 알려졌으며 앞으로 1000억위안(약 13조원) 이상의 ‘발전 공간’이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인터넷 예술품 거래도 성행, 지난해 25만여점이 거래됐다.1분마다 2명이 가격을 흥정하고 2분마다 1건씩 소장품이 거래되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설명한다. 이러한 열기에 힘입어 골동·예술품 투자는 중국의 새로운 투자 대상으로 떠올랐다. 골동품에 대한 투자 이익은 30%가 넘어 증권의 평균투자 이익률(15%)이나 부동산(21%)보다 유망하다는 분석이다. 베이징 수집가협회 관계자는 “중국경제의 고도성장과 소득확대에 따라 중국인들의 정신문화 수요가 매우 빠르고 광범위하게 확대되고 있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이같은 분위기에 편승, 최근 골동품 관련 정기 간행물은 물론 언론, 방송사들의 골동·예술품 안내 프로그램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모조품 난립·가격체계 혼란 하지만 급속한 시장 확대에 따른 모조품 난립과 가격체계 혼란 등의 문제점도 드러나고 있다. 지난 4월1일 선전에서 열린 ‘제1회 예술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들의 상당수가 모조품일 정도로 ‘짝퉁’의 폐해는 심각하다. 공정한 시장가격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거래 자체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화 소장가협회 옌전탕(閻振堂) 회장은 “중국 고전 예술품 시장은 급격히 확대되고 있지만 아직 시장 질서와 안정을 확립할 법적 규제가 미비하다.”며 시장 규범화와 모조 방지를 위한 ‘소장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oilman@seoul.co.kr ■‘중국의 유대인’ 원저우상인들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중국의 유대인’으로 불리는 원저우(溫州) 상인들이 골동품 시장으로 몰려온다. 중국의 부동산 붐을 일으킨 원저우 상인들은 160만명의 탄탄한 조직망과 1000억위안(약 13조원)의 유동 자산을 번개처럼 움직이는 ‘게릴라 상단’으로 유명하다. 올초 항저우(杭州) 경매에서 140만위안(약 1억 8000만원)에 황빈훙(黃賓虹) ‘청록산수(靑綠山水)’를 구매한 게 신호탄이다. 지난 3월 베이징에서 열린 서화 경매에서는 2000만위안(약 26억원)에 리커란(李可染)의 ‘황산만학도(黃山萬壑圖)’를, 최근에는 당대(唐代) 최고의 화가인 루옌사오의 ‘두보 100절’을 6930만위안(약 90억원)에 사들였다. 최근 중국당국이 부동산 투기근절을 선언하자 수익률 높은 예술품 투자회사를 설립하는 등 중국 전역에서 열리는 예술품 경매에 조직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2001년부터 약 4년동안 원저우 상인들이 상하이에만 퍼부은 부동산 자금은 100억위안(약 1조 3000억원)이다. 골동품 업계에서는 “전국에 걸친 원저우 조직망을 이용해 고가의 예술품을 싹쓸이할 것”이라며 벌써부터 두려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oilman@seoul.co.kr ■베이징 골동품 상인 수레이 |베이징 오일만특파원| “중국의 농민들은 지금 돈이 되는 집안의 가보나 소장품들을 앞다퉈 내다팔고 있습니다.” 중국에 불고있는 골동품 열풍이 농촌으로 파급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판자위안(潘家園) 시장 어귀에 좌판을 깔고 ‘사업’을 하는 수레이(蘇雷·41)는 매달 9000위안(약 110만원) 안팎의 수입을 올리는 고소득층이 됐다. 허베이(河北)성 농촌 판타오(蟠桃) 출신인 그는 1990년대 초반부터 베이징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96년부터 골동품 장사로 나섰다. 주로 100∼2000위안짜리의 중·저가 향로나 촛대, 자기류가 주종이고 간혹 명·청대의 고급 도자기 등도 매매하고 있다. 고객들은 주로 수집가이지만 최근 도매 상인들이나 외국 관광객들의 출입도 잦아지고 있다. 젊은층 중심의 수집가들이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서방 세계를 흠모하던 청년층들이 요즘 들어 ‘중국적인 것’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분석한다.‘골동품·서화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대학생들도 새로운 고객이 되고 있다. 그는 “처음 장사를 시작할 때는 입에 풀칠도 하기 어려웠지만 지난해부터 골동품 바람이 불면서 수입이 3∼4배나 늘었다.”며 최근 젊은층들이 골동·예술품 구입에 가세하면서 시장이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oilman@seoul.co.kr
  • 도심속 ‘청동기 유적’

    도심속 ‘청동기 유적’

    ‘도심에서 선사유적을’ 경북 경산시 도심에 청동기 시대의 유적을 전시한 ‘선사유적공원’이 조성돼 주민들의 견학 장소로 인기를 모을 전망이다. 20일 한국토지공사 대구경북지역본부에 따르면 경산시 옥곡동 서부택지지구 내 450여평에 총 사업비 3억원을 들여 선사유적공원을 조성했다. 이 공원에는 청동기 시대 출토 유적 가운데 지석묘 상석 1기(길이 300×너비 275×두께 60∼160㎝)와 석관묘 3기, 주거지 1기 등이 전시됐다. 이들 유물은 지난 2001년 10월∼2003년 12월 이 일대 택지개발과정에서 발굴된 청동기 시대 집단 취락지와 출토 유적 중 일부다. 이달 말 일반에 공개될 유적공원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주거지 형태와 내부시설, 생활유적 등을 엿볼 수 있다. 또 경산서부지구 전체를 600분의 1로 축소한 모형도와 안내판 등을 설치,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도록 했다. 한국토지공사 관계자는 “유적공원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현장감 제공은 물론 학습 및 교육적 효과를 높이는 데 조성의 주안점을 뒀다.”면서 “유적공원 공개에 앞서 경산시에 기부채납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청동기시대 저수지 발굴

    청동기시대 저수지 발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청동기시대의 저수지 유구가 경북 안동시 저전리 유적에서 확인됐다. 경북 영주 동양대박물관(관장 이한상)은 지난 3월부터 국도 5호선 확장공사 구간인 경북 안동시 서후면 저전리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여 26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청동기시대 인공연못(저수지)을 포함한 저습지 유적을 확인했다고 31일 밝혔다. 조사 결과 이 저수지는 하천 등 자연수로(水路)가 있는 계곡에 평면 장방형으로 파서 만든 인공연못으로, 전체 길이가 약 50m, 최대 너비가 15m에 이르는 규모로 확인됐다. 기반토를 45∼50도 기울기로 파냈으며 지금까지 드러난 지표 기준 최대 깊이는 2m를 넘는다. 바닥은 굴곡이 있으나 대체로 편평하며 바닥면에서는 자연수로의 흔적이 드러났다. 발굴팀은 또 이곳에서 청동기시대 전기를 대표하는 것으로 알려진 공열문(구멍 뚫린 토기) 토기편과 석기편 등을 여러 점 수습했다고 덧붙였다. 발굴팀은 바닥면에서 확인된 토기와 석기편 등으로 미뤄 이 저수지가 최소한 2600년 전 이상의 시대에 축조된 것이 확실하며, 이르면 청동기시대 전기인 기원전 8∼7세기까지 축조 연대를 소급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한상 관장은 “문헌기록에 따르면 지금까지 한반도에는 서기 3∼4세기 무렵에 벽골제와 의림지 등을 축조한 기록이 있을 뿐 그 이전에 저수지가 존재했다는 기록이나 유구는 없었다.”며 “이 저수지는 후대 저수지의 시원형으로 청동기시대 농경문화의 발전과정뿐 아니라 당시의 사회구조를 밝힐 수 있는 근거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산하기관 탐방] 고양시 농업기술센터

    [산하기관 탐방] 고양시 농업기술센터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흥동 농업기술센터엔 특별한 볼거리가 있다. 고양지역에서 발견된 5000년전 볍씨와 농경문화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농심테마파크’, 수백종의 자생식물과 선인장·난이 자라는 온실 실증시험포, 맨발 자갈밟기 오솔길 등의 생태공원이 꾸며져 있다. 농심테마파크의 볍씨는 지난 1991년 일산신도시 개발을 위한 지표발굴조사 과정에서 발견됐다. 당시 고양군 송포면 대화4리(현 일산구 대화동) 가와지마을 약 2m 깊이의 지표 토탄층에서 19개의 볍씨가 발견됐고, 그중 5개는 무려 5020년전 것으로 밝혀졌다. 한강 하류 고양땅이 5000년전에도 경작이 이뤄진 신석기 문화의 보고임이 확인된 것이다. 이 볍씨는 이후 이를 발견한 충북대박물관에 보관됐다가 지난 2002년 11월 고양시 농업기술센터에 농심테마파크가 세워져 지금은 전시실 투명 유리상자 안에 보관돼 있다. 테마파크 실내 전시실엔 볍씨와 함께 신석기-청동기-철기시대 농경에 사용된 돌괭이·돌낫·돌삽 등 다양한 농기구들이 전시돼 있다. 또 각종 토기 등도 전시돼 있다. 신석기 시대부터 삼국시대를 거쳐 현재까지 영농의 변천과정을 인형과 설명판을 통해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소와 돼지가 사는 농촌 마구간과 연장, 창고 모형도 실물크기로 제작돼 있다. 이곳엔 삼태기·망태·가래·맷돌·써레·쇠스랑·도리깨·탈곡기·멍석·발 등 요즘은 보기 힘든 농기구들이 모여 있다. 작은 연못이 있는 테마파크의 야외 정원에는 정자와 함께 해시계·측우기·수표 등 농사용 관측도구가 있고, 정원 한쪽 초가집엔 물레방아와 디딜방아가 있는 방앗간도 꾸며져 있다. 연자방아와 달구지도 눈길을 끈다. 화훼의 고장 고양의 난과 선인장의 우수 종자를 생산, 농가에 보급하기 위해 만든 450평 규모의 온실도 관람객에게 공개된다. 키 5m가 넘는 무위주,25∼30살이 넘으면 노란꽃을 피우는 금호, 손톱만큼 작은 리톱스 등 290여종의 선인장 4만여그루가 자란다. 패랭이·도라지·개발톱·범부채·산나리 등 자생식물과 풍란·호접란 등 동서양란, 칼라디움·알로카시아 등 관엽류도 있다. 음지식물과 수생식물을 키우는 별도의 공간도 있다. 온실 실증시험포 옆 야외정원 사이로 500m 길이의 구불구불한 오솔길이 나 있다. 이 길엔 형형색색의 자갈을 깔아 맨발로 거닐도록 돼 있다. 농업기술센터 관람시간은 3∼10월은 오전 9시30분∼오후 5시30분,11∼2월엔 오전 9시30분∼오후 4시30분이고 월요일은 휴관한다. 관람료는 무료다.(031)962-6012. 고양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7) ‘정감록(鄭鑑錄)’이 정감록인 까닭?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7) ‘정감록(鄭鑑錄)’이 정감록인 까닭?

    예언서는 예언가의 이름을 빌려 제목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단군조선 때의 ‘신지’, 후삼국의 ‘도선’, 조선의 ‘남사고’와 ‘이토정’은 유명한 예언가였다. 그들의 이름을 딴 ‘신지비사’‘도선비기’‘남사고비결’‘토정비결’은 많은 사람들이 즐겨 인용한 예언서였다. 대부분 내용은 위작으로 보이지만 신지비사는 이미 자취를 감췄고, 나머지 책들은 아직 남아 있다.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정감록’은 어떠한가? ‘영조실록’에 보면 ‘정감의 참서’라고 돼 있어 예언가 정감이 쓴 책으로 보아야 옳다. 아닌 게 아니라 현전하는 정감록을 읽어 보아도 예언가 정감이 중요하다. 정감은 누구인가? 그는 실존 인물이었는가? 만약 가공 인물이라면 하필 왜 정감인가? 그리고 무슨 이유로 ‘정감비기’ 또는 ‘정감비결’이 아니라 ‘정감록’인가? 역사상 최초로 문제가 됐던 정감록은 어떻게 생긴 책이었을까? 나는 정감록이 정감록인 까닭을 좀더 정확히 알고 싶다. 이번 호에서 검토될 사항들은 지금까지 한번도 다뤄진 적이 없는 새로운 내용이다. 지난 호와 마찬가지로 이번 호에서도 정감록의 기원을 밝히려는 나의 새로운 시도는 계속된다. ●실존 인물 정감이 정감록의 저자?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 보면 17세기 초반에 정감(鄭鑑)이란 관리가 있긴 했다. 그는 흔히 소과(小科)라 불리는 생원진사시험에 합격한 뒤 추천을 받아 관리가 됐다. 실록엔 형조 정랑(正郞)이란 중견관리로 나와 있다. 관리로서 제법 성공한 편이다. 그는 당시의 도덕적 기준에 어긋난 행위를 많이 해 비난을 받기도 했다. 광해 8년(1616) 5월 국왕에게 제출한 보고서에서 사헌부는 정감의 치부를 샅샅이 들춰냈다. 그는 성균관에서 공부할 때도 말썽을 일으켜 처벌된 사실이 있다고 했다. 일가친척이 성관계를 가진 여성을 데려다 첩으로 삼았다고도 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의 독직(瀆職) 행위였다. 고위층의 청탁 유무와 뇌물의 많고 적음으로 판결을 내린다 했다. 사헌부의 주장대로 정감은 부도덕한 부패 관리의 전형이었을까? 강경한 사헌부의 처벌 요구와는 달리 국왕이 정감에게 내린 처벌은 그야말로 솜방망이 처분이었다. 광해군은 정감의 벼슬을 바꾸는 소극적인 조치를 취했을 뿐이다. 불법 행위에 대한 사헌부의 고발이 한낱 풍문에 근거한 것이라 중벌이 가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굳이 정감을 애써 두둔할 생각이 내겐 없다. 내 관심은 17세기 전반 형조정랑을 지낸 정감이 1739년 서북지방에서 출현한 ‘정감의 참서’와 무슨 관계인가 하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아무 관계도 없었다. 형조정랑 정감은 생전에든 사후에든 단 한번도 예언서 ‘정감록’의 저자로 간주된 적이 없었다.1782년 정감록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사건 피의자 박서집의 진술이 참조된다. 그는 정감록의 유래에 대해 “그것이 처음 나온 것은 고려 왕조 때라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박서집의 이런 진술을 취조관들도 문제삼지 않았다. 요컨대 정감록의 저자 정감은 가공 인물이었던 것이다. ●정씨가 조선왕조의 대안? 가공 인물 정감이 하필 정(鄭)씨인 이유는 무엇인가? 250개나 되는 한국의 많은 성씨들 가운데서 굳이 ‘정’을 가공의 예언자에게 준 까닭은 무엇일까? 역사적 사실에 눈을 돌려보자. 조선 왕조가 출범한 14세기 말부터 정감록이 출현한 18세기 전반에 이르기까지 정씨 성을 가진 여러 사람들이 반 왕조적인 인물로 큰 역할을 담당했다. 첫째, 정몽주(鄭夢周)를 빠뜨릴 수 없다. 그는 고려 말의 대표적 유신(儒臣)이었다. 충의(忠義)를 다하기 위해 그는 조선 왕조를 개창한 이성계의 회유를 끝까지 물리쳤다. 결국 태종 이방원이 보낸 자객의 손에 의해 개성의 선죽교(善竹橋)에서 무참히 격살(擊殺)됐다. 흥미롭게도 ‘정감록’에 보면 정감이 정몽주를 후손이라 부르고 있다. 둘째, 정도전(鄭道傳)도 거론해야 옳다. 그는 조선 개국의 중심인물이었다. 조선의 수많은 제도가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그런 까닭에 현대 역사학자들 중에는 정도전을 ‘조선왕조의 설계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정도전은 정말 유능한 인물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왕위 계승을 둘러싼 왕자들의 갈등에 관련돼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셋째, 정여립(鄭汝立)이 있다. 재능과 학식이 탁월했던 그는 선조 연간에 불붙기 시작한 당쟁에 휘말려 국왕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향리에서 세월을 보내던 정여립은 끝내 반역자로 낙인 찍혀 관군의 추격을 받게 된다. 그는 도주하던 끝에 깊은 산골로 들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람들은 그가 정감록을 지었다고 보기도 하고 그의 비참한 운명을 애달파하기도 했다. 이밖에 영조 때 역모를 일으켰다가 죽은 정희량(鄭希亮)이 주목된다.1728년 그는 이인좌 등과 함께 남부지방에서 군사를 일으켰다. 처음엔 승승장구하는 듯 보였지만 그는 거창에서 관군에 붙잡혀 사형 당했다. 그런데 그가 죽은 지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정희량이 아직 살아 있고 머지않아 군사들을 이끌고 쳐들어 온다는 유언비어가 각지에 유행할 정도였다. 그는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기인(奇人)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며 민중의 기림을 유독 많이 받았다. 알다시피 역사상 반왕조적인 인물로 지목된 사람은 결코 한둘이 아니었다. 이씨와 김씨를 비롯해 여러 성씨가 골고루 뒤섞여 있었다. 그럼에도 위에서 언급한 몇몇 정씨는 민중들의 기억에 깊이 각인된 존재였다. 정여립과 정희량의 일생은 특히나 비극적이었고 신비한 부분도 적지 않았다. 민중들은 그들에 관한 추억을 더듬으며 더욱더 정씨를 이씨 왕조의 대안으로 삼게 된 것도 같다. 물론 민중의 이러한 역사인식이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은 아니었다. ●‘정성진인’에서 ‘정감’까지 16세기 말 정여립이 죽고 나서부터였다. 다음은 정씨 왕조가 들어설 차례란 생각이 민중들 사이에 뿌리를 내리게 됐다. 이런 생각이 차츰 영글어 17세기엔 이른바 ‘정성진인(鄭姓眞人)’이 민중들 사이에 새로운 화두로 등장했다. 달리 말해 정씨 성을 가진 완벽한 인간이 출현해 민중을 도탄에서 구해낼 거란 믿음이었다. 그런 인식이 널리 퍼진 가운데 18세기 전반 정희량이 붙들려 죽었다. 그는 군사를 일으켰을 때 자신에게 유리한 ‘정성진인설’을 적극적으로 사방에 유포하지 않았을까 짐작되기도 한다. 어쨌거나 정희량은 현실에선 실패했다. 그럼에도 민중의 뇌리엔 ‘이씨 왕조를 대체할 이는 정씨뿐이다.’라는 믿음이 더욱 굳어졌다.18세기에 등장한 정감록은 민중의 그런 생각에 확신을 불어넣어준 것으로 봐야 한다. 정감록의 핵심 내용은 정씨가 계룡산에 도읍한다는 예언이었기 때문이다. ●감(鑑)이란 이름의 뜻은? 좀더 생각해 보면 정감록에 예언가의 이름을 ‘감(鑑)’이라 설정한 이유도 무척 궁금하다. 그것을 일부 이본엔 ‘감(堪)’이라고도 했다. 예언가의 이름에 무슨 뜻이 숨어 있는지 따져 보고 싶다. 가공 인물을 대단한 예언가로 부각시키려 했을 때 우선적으로 고려될 점은 이름에 담긴 상징성이었을 것이다. 고도의 상징성을 가진 이름이라야 예언서의 독자들 그리고 민중을 설득해 믿게 만들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바로 이러한 숙고의 결과가 ‘감(鑑)’ 또는 ‘감(堪)’이란 글자의 선택이었다고 본다. ‘감(堪)’은 감여(堪輿) 즉 풍수지리를 뜻한다. 달리 표현하면 ‘감’은 천도(天道),‘여’는 지도(地道)라고도 한다. 감이란 글자를 이름으로 쓴다면 본인이 풍수가 또는 예언가임을 이미 천명한 셈이 된다. 현전하는 정감록은 풍수지리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그런 점에서 ‘감(堪)’은 책의 성격에 적합한 이름이다. 하지만 내가 본 정감록의 대부분은 ‘감(鑑)’을 주인공으로 정해 두고 있다.‘거울 감(鑑)’자엔 도대체 무슨 깊은 뜻이 담겨 있어 그런가? 고대로부터 한국에선 거울이란 사물은 매우 특별한 존재로 인식돼 왔다. 거울은 과거, 현재 및 미래를 비추는 마술적인 존재로 주목돼 왔다. 청동기 시대에 제작된 다뉴세문경은 당시 최고지배층이었던 제사장들이 소유했던 특수한 물건이었다. 주술을 비롯한 종교적인 목적으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대에도 거울의 마술적 속성은 여전하다. 무당들은 누구나 명도(明圖)라는 거울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이 명도를 이용해 집을 나간 사람을 찾거나 잃어버린 물건의 행방도 점친다. 무당들은 명도 거울이 신(神)의 영력(靈力)을 상징한다고 믿는다. 그들은 바로 그 거울이 있어서 인간의 미래를 투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거울이 국가의 운명을 예언하는 데 동원된 적도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아직 궁예의 부하로 있던 시절, 낡은 청동 거울에 새겨진 예언서가 발견되기도 했다. 궁예의 몰락과 왕건의 즉위, 그리고 후삼국의 통일을 예언한 것이었다. 중국 고대에 ‘은감불원(殷鑑不遠)’이라는 말도 있었다. 은(殷)나라의 거울은 먼 데 있지 않다는 말이다. 부연하면 주(周)나라 왕은 바로 앞선 시기에 존재한 은나라의 역사를 돌이켜보란 뜻이다. 다른 사람의 실패를 거울로 삼으란 것이다. 이 경우 거울이란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정감록의 주인공 정감 역시 역사의 교훈을 알려준다. 하지만 좀더 중요한 강조점은 다른 데 있었다. 정감록은 거울이란 이름을 가진 정감을 저자로 내세워 거울이 가진 주술성을 빌리고자 했다. 한마디로 말해 거울의 신비한 힘에 의존한 정감록은 결코 한 자도 틀리지 않는 예언서란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려 했던 것이다. ●‘록(錄)’은 조선후기에 등장한 예언서 따지고 보면 예언서 ‘정감록’의 제목이 ‘록(錄)’자로 끝나는 것도 범상한 일은 아니다. 이게 웬 말인가 되물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쓰려고 역대 예언서의 이름을 모두 조사해 봤다. 놀랍게도 고려시대는 물론 조선 전기에 발견된 예언서 중에 ‘록’자로 제목이 끝나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조선 초기에 해당하는 15세기까지 우리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한 예언서들은 그 제목이 무슨 무슨 비기(秘記), 비사(秘詞)’ 또는 유훈(遺訓)이라 돼 있었다.‘기’와 ‘사’는 한문학의 장르이기도 하다.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의 예언서는 은연중에 문학성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짐작은 실제로 예언서를 검토해본 결과와 일치한다. 한시와 같은 분위기를 가진 운문(韻文) 형태의 예언서들이 많았다. 그에 비해 ‘훈’자를 예언서 제목으로 삼은 경우는 도덕적인 명령을 내세우려는 의도가 뚜렷하다. 고려시대에 나온 ‘해동고현유훈(海東古賢遺訓)’이 대표적인 예다. 이 ‘유훈’도 문장의 표현 방식은 역시 운문이었다. 조선 후기에 출현한 ‘정감록’은 그 제목부터 새롭다.‘록’은 ‘실록’을 연상시킨다. 수사의 멋과 맛을 중시하는 과거의 예언서와 달리 앞으로 일어날 사실을 묵묵히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는 태도와 정신이 엿보인다. 예언서 정감록은 서술양식도 과거의 운문에서 벗어나 산문(散文)이 되었다. 한문학을 대표하는 시문(詩文)을 버리고 역사책의 전형인 편년체(編年體)를 택하거나 유교 경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화체를 선택했다. 정감록은 기왕의 예언서와 확연히 구별되는 새로운 서술방식을 채택했다는 점을 나는 강조하고 싶다. ●18세기의 정감록은 한글본이었다! 정조 6년(1783) 1월에 발생한 정감록 사건의 연루자 안필복은 자기가 읽은 정감록에 대해 상세히 진술했다. 황해도 해주 출신인 그가 집에 소장했던 정감록은 책자의 길이가 52∼62㎝, 두께는 4㎝,200장 정도 분량이었다. 정감록은 형태와 크기에 있어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여느 한적(韓籍)과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사실은 정감록이 백지에 한글(諺文)로 적혀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필사본이었다. 안필복의 진술이 있기 한 해 전에도 정감록 사건이 있었다. 그때 피의자 박서집은 정감록에 대해 “저는 어렸을 때 단지 한글로 된 ‘정감록’을 보았을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박서집의 출생 연도를 감안하면, 그가 정감록을 읽은 시기는 1740∼50년대에 해당한다. 아마도 1739년 최초로 조정의 관심을 끌었던 정감록은 박서집이 읽은 한글본 정감록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런데 그 당시 유행한 ‘정감록’은 오늘날 남아 있지 않다. 비록 그렇기는 해도 정감록이 본래 한글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다. 20세기에 와서 정감록을 집대성한 여러 편찬자들뿐만 아니라 정감록을 연구한 학자들도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정감록이라 하면 한문으로 된 ‘감결(鑑訣)’을 원본으로 간주하는 게 일반적이었다.20세기 초 ‘비난정감록진본(非難鄭鑑錄眞本)’을 편찬한 현병주는 ‘감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본장의 기록문자가 즉 정감록의 원본이다. 본장으로 말미암아 조선의 전 사회를 통하여 오백년간의 시선이 집주(集注)하던 정감록의 편명이 성립된 것이다.” 그 뒤의 다른 연구에서도 정감록이라면 으레 한문본을 염두에 두었을 뿐이다. 이 한문본은 18세기의 한글본 정감록과 어떤 관계에 놓여 있을까? 이것은 반드시 규명해야 할 장래의 과제다. ●새 예언서의 출현은 조선후기 사회문화의 변화를 반영해 정감록의 등장은 조선 후기 사회에 일어난 사회문화적 지각변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선 글을 읽고 쓰는 것이 더이상 극소수 특권층의 전유물은 아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 시기엔 내면의 미묘한 감정이나 사물의 복잡다단한 성격을 상세히 서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서사적인 글쓰기가 유행하게 돼 정감록과 같은 편년체 또는 대화체 서술이 일반화된 것이다. 책이 흔해진 것도 주목할 만하다. 종이 생산량도 늘어났고 소비도 활발해 정감록과 같은 필사본 예언서가 유행했다. 그런가 하면 상층 지식인들 사이에선 실사구시(實事求是) 즉 사실에 입각해 진리를 추구하는 지적 분위기가 유행했다. 정감록을 향유한 하층 지식인과 민중들도 사실성을 강조하는 시대적 담론에 그 나름으로 참여했던 것이다. 구태의연한 ‘정감비결’이나 ‘정감비기’가 아니라 하필 ‘정감록’이 된 데는 다 그만한 시대적 이유가 있었다. 정감록이 한글본이었다는 점도 중요한데 지식의 생산과 소비는 더이상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정감록과 더불어 새 시대의 동은 터 오고 있었다. (푸른역사연구소 소장)
  • 고성 청동기유적서 孔球형 석기 첫 출토

    청동기시대 전기 유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매우 정교하게 가공된 이른바 ‘공구(孔球)형 석기’ 3점과, 청동기시대 전기 문화 요소 중 평양 중심 서북한 지역을 대표하는 것으로 간주된 ‘팽이형·공렬토기 혼합형’토기인 소위 ‘이중구연(二重口緣) 단사선문(短斜線文) 공렬(孔列)토기’가 사상 처음으로 확인됐다. 강원문화재연구소(단장 지현병)는 동해북부선(저진~군사분계선) 철도 연결 구간에 위치한 송현리·사천리 일대를 발굴한 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 13기와 성격 미상의 구덩이 유적 13기 등을 확인했다고 22일 밝혔다. 공구형 석기는 5호 주거지에서 2점이 세트로,6호 주거지에서는 1점이 출토됐다. 이들 석기는 검은색이 도는 점판암 석재를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크기는 지름 7㎝ 안팎이다. 겉면은 마치 그라인더로 간 것처럼 대단히 정밀하게 가공돼 있으며 그 중간에는 지름 1.6㎝가량 되는 원형 구멍을 뚫었다.‘이중구연 단사선문 공렬토기’는 10호 주거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지현병 단장은 “이 유물은 난생 처음이라 그 기능 등에 대해서는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면서 “출토 위치 등을 종합할 때 주거지가 활용되던 청동기시대 전기 유물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3000년전 청동기유적 발견

    기원전 10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되는 주구(周溝·무덤 주변의 도랑) 갖춘 석관묘(石棺墓) 16기가 강원 춘천시 신북읍 천전리에서 발견됐다. 강원도문화재연구소는 8일 춘천 동면∼신북간 도로 공사구간 일대 2만 3000여평 부지를 2년여 동안 발굴조사한 결과 이 지역에 무덤뿐 아니라 주거지 74개동과 경작지까지 갖춘 청동기시대 취락지역이 있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강원도문화재연구소는 ▲이번 발견된 석관묘 가운데 주구 길이가 42.5m인 초대형도 있고 ▲제사의식을 치른 듯한 흔적까지 발견된 데다 ▲발굴지역이 도로공사구간을 따라 좁은 지역에 한정됐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이 지역에 상당한 규모의 정치집단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발굴단 지헌병 책임조사원은 “토기 같은 유물은 없었으나 기원전 10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는 돌 화살촉 등이 발견됐다.”면서 “이 정도 규모는 아마 동북아시아 최초의 것일 것”이라고 말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마산 진동면 BC6세기 고인돌 청동기시대 국가 존재 가능성

    기원전 6세기 무렵, 한반도 남부 청동기시대 사회가 위계화된 계층사회나 ‘초기국가’였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고고학적 증거들이 경남 마산시 진동면 진동(鎭東) 유적에서 나왔다.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센터장 이범홍)는 경남 마산시 진동면 진동리 116 일대 아파트 신축 발굴현장에서 서기전 6세기 무렵에 축조한 대형 고인돌 30여기를 발굴중이라고 5일 밝혔다. 이 유적엔 지름 20m 정도의 대형 고인돌 20여기가 밀집해 있으며, 상당수 무덤은 봉토(무덤을 흙으로 덮는 것)와 호석(무덤 아래에 돌을 쌓는 것)을 갖추고 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오세창作 병풍 등 6점 국립중앙박물관 기증

    국립중앙박물관은 서예가이자 3·1운동때 민족대표 33인중 한사람으로 활약했던 독립운동가인 위창 오세창(1864~1953)선생이 1925년에 쓴 전서 10폭짜리 병풍을 비롯한 문화재 6점을 기증받았다고 28일 밝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기증받은 문화재에는 (사)한국박물관회가 내놓은 오세창 선생의 ‘위창필병풍’과 1913년 윤정현이 측량한 것으로 되어있는 청주군 내일면 수락리 일대 지적도, 로버트 세이어(Robert Sayer)가 1796년 제작한 한국-일본지도가 들어있다. 이가운데 ‘위창필병풍’은 오세창 선생이 병풍 각 폭에 중국 고대의 기와와 청동기에 들어있는 글자의 주석을 쓴 병풍이다. 또 청주지적도는 등고선을 비롯해 토지·대지 측량 결과, 지번·지목, 소유자 성명 등을 적고 있다. 세이어 지도는 동해를 ‘한국해’(Corean Sea)로, 서울은 ‘시오르’(Sior)로 표기한 점이 독특하다. 한편 이광영씨는 근대 승려화가로 유명한 석옹 철유(1851~1917)의 산수화를 기증했으며, 나종일 주일대사는 일본의 근대 회화작품 2점을 내놓았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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