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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대 횡혈식 석실분중 가장 큰 규모

    한성도읍기 백제시대의 거대한 지하고분이 행정중심 복합도시 예정지에서 발굴됐다. 지하 궁전을 연상케 하는 이 무덤은 3m 이상 땅을 방형으로 파내려간 다음 시신을 안치하는 무덤방인 묘광(墓壙)이 한 변이 5m에 이르는 길이로 조성돼 있다. 외부에서 무덤방으로 향하는 무덤길 또한 길이가 무려 8m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한국고고환경연구소(소장 이흥종)는 지난 4월30일부터 행정중심 복합도시 예정지에 포함된 충남 연기군 남면 송원리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청동기시대 이후 백제,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의 각종 생활유적과 고분 등을 205곳에서 확인했다고 9일 밝혔다. 이 가운데 해발고도 72m인 송원리 송계동 마을 북쪽 야산 정상의 평탄지역에서 확인한 백제시대 고분 KM-016호분은 외부에서 묘광으로 통하는 길을 별도로 마련한 횡혈식 석실분(橫穴式石室墳)으로는 현재까지 확인된 것 중 가장 큰 규모여서 관심을 모은다. 이 무덤은 묘광 전체를 지하에 마련한 첫 번째 백제시대 고분으로 기록됐다. 이 무덤은 네 변 길이가 각각 4.74m이며 최대 3.48m까지 땅을 파 묘광을 조성하고 네 벽면에 깬돌을 촘촘히 쌓되 모서리 각을 죽이면서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궁륭형(穹隆形) 석실로 축조됐다. 무덤길은 8.13m에 달한다. 책임조사원인 김무중 연구실장은 “무덤방은 흡사 낙랑 전축분(벽돌무덤)인 평양 석암리 99호분을 연상케 한다.”면서 “아직 무덤 내부가 제대로 조사되지는 않았으나 광구장경호(아가리가 넓은 목 긴 항아리)나 삼족기(세발토기), 개배(뚜껑접시) 같은 토기 유물로 보아 한성도읍기 중 말기에 속하는 고분임이 확실하며, 나아가 그 시대에 이 지역에 대단한 지역적 기반을 갖춘 세력가가 있었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이번 조사에서 백제시대 고분만 석실분 6기, 석곽묘 19기, 토광묘 16기, 주구토광묘 9기, 옹관묘 5기 등이 확인됨으로써 이 지역이 공주나 부여 못지않은 대규모 백제시대 유적지일 가능성을 한층 높여주고 있다. 한편 정부는 향후 행복도시 건설에는 거의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관계자는 “해당 지역을 현재 자리에 보존할지 이전해 보존할지 등이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라면서 “설령 현재 위치 보존이 결정된다고 해도 고분 발굴지역의 면적이 넓지 않아 전체 공사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말했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BC 7세기 철기유물 강원도 홍천서 출토

    서기전 7세기 무렵의 철기 유물이 강원도 홍천에서 출토됐다. 한반도의 철기문화는 서기전 3세기 무렵 중국의 철기문화가 들어오면서 형성되었다는 그동안의 학설을 뒤엎는 것이어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이 철기는 중국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된, 녹인 쇠를 틀에 부어서 만드는 주조 방식이 아니라 철기의 발상지인 서아시아 지역처럼 쇠를 두드려서 강도를 높이는 단조(鍛造) 방식으로 제작된 것이어서 철기의 전래 경로에도 새로운 연구 과제를 던져주었다. 강원문화재연구소는 국도 확장 공사 구간인 홍천군 두촌면 철정리 일대 12만 6509㎡를 지난해 2월부터 발굴조사한 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에서 소형 단조 철기 1점을 수습했다고 21일 밝혔다. 지현병 연구실장은 “이 소형 철기는 제58호 주거지에서 무문토기 등 유물을 수습한 뒤 바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찾아냈다.”면서 “주거지에서 수거한 목탄(숯)을 시료로 서울대 기초과학공동기기연구원에 탄소연대 측정을 의뢰한 결과 BC 640∼BC 620년으로 통보받았다.”고 말했다. 지 실장은 “이 철기의 연대가 서기전 7세기로 확인된 것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면서 “철기가 한반도에 출현한 시기를 훨씬 앞당길 수 있는 데다, 뚜렷한 정설이 확립되지 못한 청동기시대의 하한 연대도 결정할 수 있는 자료”라고 덧붙였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골각기’ 시대별 양상 한눈에

    ‘골각기’ 시대별 양상 한눈에

    골각기(骨角器)란 포유류, 조류, 어류의 뼈, 이빨, 뿔 등으로 만든 도구와 장신구를 총칭한다. 선사시대의 골각기는 생업활동과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폭넓게 활용되면서 석기와 함께 주요 생활 도구로 위상을 갖게 됐다. 뿐만 아니라, 금속기가 보급된 이후 역사시대에 이르기까지 골각기는 다양한 형태로 우리의 생활 주변에 존재해 왔다. 그럼에도 골각기는 석기나 토기, 철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부산 복천박물관의 ‘또 하나의 도구-골각기’특별전은 골각기에 대한 세상사람들의 관심을 다시 불러모으겠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복천박물관 개관 11주년을 기념하여 3일부터 일반에 공개된 골각기 특별전은 오는 11월4일까지 34일동안 열린다. 이번 특별회는 그동안의 발굴성과에 비하여 연구는 지지부진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진다. 그 결과 전국의 주요 박물관이 적극 호응하여 어느 때보다 충실하게 우리나라 골각기의 전체적인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회가 될 수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국립박물관과 서울대와 충북대 등 대학박물관, 영남문화재연구원과 경남고고학연구소를 비롯한 발굴조사기관 등 국내 22개 박물관과 연구기관이 참여하여 380점 남짓한 중요 유물을 출품했다. 특별전은 ▲골각기의 출현 ▲생산도구 ▲일상생활 소도구 ▲무기와 장신구 ▲주술도구 ▲골각기의 제작과정 ▲골각기의 제작기술 ▲세계의 골각기 등 8가지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골각기가 출현하기 시작한 구석기시대 유물로는 뼈나 뿔의 끝을 뾰족하게 가공한 청원 두루봉과 단양 구낭굴의 첨두기가 선을 보인다. 신석기시대 것은 골촉이나 골창 같은 수렵구와 낚싯바늘과 작살 같은 어로구, 괭이와 낫 같은 농경구, 바늘과 칼 같은 가공구, 그리고 장신구와 의례구를 살펴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골각기 활용은 감소하는 청동기시대 이후에는 피리와 숟가락, 인물조각상, 장신구 등 가공 수준은 크게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하인수 복천박물관장은 “이번 전시회는 우리 역사 속에서 골각기가 차지하는 존재 이유와 의미를 재조명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면서 “나아가 일반 시민들이 우리의 골각기 문화를 재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동래읍성이 가까운 동래구 복천동에 있는 복천박물관은 삼한 및 삼국시대 부산의 역사와 문화는 물론 가야문화의 해명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는 복천동고분군을 발굴한 뜻깊은 자리에 1996년 세워진 고고학전문박물관.5만 6334㎡(1만 7041평)의 부지에 전시관과 야외전시관을 갖춘 지역 대표박물관의 하나이다.(051)554-4264.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지방시대] 울산 재평가되어야 한다/김선범 울산대 건축학부 교수

    ‘역사도시 울산, 산업수도 울산’ 울산∼부산간 7호 국도를 따라 부산 쪽으로 가다 보면 울산과 양산 경계인 회야교 입구의 대형 안내간판에 쓰여 있는 문구다. 울산은 ‘산업’과 ‘역사’가 어우러진 도시라는 뜻이다. 태화강 상류인 대곡천 주변은 그 자체가 역사박물관이다. 한국문화의 기원이라는 반구대 암각화에다 천전리 각석이 있다. 땅을 파는 곳마다 ‘고분’이 나온다. 최대 ‘공룡 유적’이 있고 ‘청동기 주거지’도 널리 분포해 있다. 그럼에도 외지 사람들이 울산 하면 떠올리는 두 가지의 낡은 도시 이미지가 있다. 공해도시이며 노사분규가 많은 노동자 도시가 그것이다. 울산은 공업도시니까 당연히 공해가 많은 도시일 것이라고 상상한다. 하늘은 시커멓고, 공기는 마시기 두렵고, 냄새 퀴퀴하고, 오염으로 나무가 죽어가고, 바다는 죽어버린 것처럼 생각한다. 또 어느 날 전국으로 나가는 TV뉴스 한 장면을 보고서는 과격한 노사 충돌로 골치 아픈 도시이며 노사분규의 메카쯤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보라. 울산 도심에서 서쪽으로 30분 가면 해발 1000m가 넘는 고봉준령들이 즐비하다. 동쪽으로 30분만 가면 동해안 청정 해안이 넘실댄다. 인구 110만명의 대도시 울산 도심을 가로지르는 태화강에서는 몇년째 전국수영대회가 열리고 있다. 울산의 미세먼지 농도는 서울보다도 낮다. 이쯤만 열거해도 울산은 많이 ‘억울한’ 도시다. 도시는 늘 두 얼굴이다. 오래된 것과 새것,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 함께 한다.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선한 것과 악한 것, 전통과 현대가 공존한다. 울산에는 당연히 노동자의 외침도 있지만 노사평화의 모범도 많다. 현대자동차는 올해 처음으로 무분규 타결이라는 신화를 일구어 냈다. 세계 최대 조선소인 현대중공업은 13년 무분규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울산은 우리나라의 ‘산업수도’로서, 인구에 비해 자동차가 많은 도시이다. 디트로이트나 도요타처럼 ‘자동차 공업의 메카’로서 당연한 현상이다. 우리나라 공업화 45년 동안 공해를 많이 배출해 시민들은 오염된 공기를 많이 마셨고 공업화의 희생양이었다. 그런데 공해나 노사분규 같은 반갑잖은 소식만 나오면 기다렸다는 듯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생태도시를 위해 아무리 엄청난 투자를 하고 세계적 문화유산을 가진 역사도시라고 자랑해도 공해나 노사분규 같은 반갑지 않은 뉴스가 한두 번 나가면 소용이 없다. 세계 최대의 조선소가 있고 한국 자동차 공업의 메카이며 좋은 산과 바다를 끼고 있는 살기 좋은 도시라는 자랑이 빛을 잃게 된다. 울산은 이제는 더 이상 공해에 찌들고 노사 분규만 있는 과격한 이미지의 도시가 아니다. 한국 문화의 기원인 반구대 암각화와 한국 최대의 공룡 유적이 있는 도시다. 한국 공업화 45년의 일등 공신 도시이며 우리나라 산업의 10∼20%를 차지하는 도시다. 도심 한복판 태화강에서 전국수영대회를 개최하는 생태도시다. 이에 걸맞게 제대로 된 평가와 대접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울산의 환경투자가 보람이 있고 건전한 기업문화를 위한 지역 상공인들의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울산의 환경문제 보도로 취재 기자가 상을 받는 환경오염에 관한 논란은 없어야 한다. 지금까지 민과 관이 쏟아 부은 엄청난 환경투자가 한낱 물거품이 되는 그런 도시가 되지 않아야 한다. 우리나라 유일한 ‘생태산업도시’로의 꿈을 접어버리는 억울한 도시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울산이 재평가되어야 할 이유다. 김선범 울산대 건축학부 교수
  • [Local] 기장군에 유물박물관 건립

    부산 기장군 정관신도시에 택지 조성공사 때 출토된 유물들을 모은 박물관이 건립된다. 부산시는 6일 정관신도시 내 중앙공원(6600㎡)에 지상 2층, 지하 1층, 연면적 3300㎡ 규모의 박물관을 짓기로 하고 이달에 설계 현상공모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오는 2010년 개관 예정인 박물관에는 2003년 초부터 택지조성 공사때 발굴된 청동기 및 삼국시대 주거지와 습지, 분묘, 출토된 토기 등 각종 유적과 유물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 전시된다.
  • [데스크시각] 잃어버린 1년9개월/ 박정현 기획탐사부장

    북한 핵이 본격적인 협상국면으로 접어드는 모양이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지난주 전격적으로 평양을 다녀온 데 이어 국제원자력기구(IAEA) 실무단이 어제 평양에 들어가면서 북핵 협상은 급물살을 타는 듯하다.40만t의 쌀도 북한에 곧 보내지고, 한국과 중국의 북핵 담당자도 발걸음을 재우치고 있다. 분위기로 볼 때, 영변 원자로가 폐쇄되고 비핵화 단계에 한발 다가서는 일이 머지않은 것 같다. 힐 차관보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의 상호 교차 방문이라는 1단계,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이라는 2단계에 이어 4자 정상회담이라는 단계별 시나리오가 더욱 그럴듯해진다. 이런 협상국면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메우자’던 힐 차관보의 평양 발언은 많은 여운을 남긴다. 미 존스홉킨스대의 돈 오버도퍼 소장은 잃어버린 시간을 2·13 합의 이후 3개월로 계산했지만, 실제로는 1년 9개월이다.2005년 9·19 공동성명 채택 이후 BDA 동결자금이 해제되고 힐 차관보의 방북이 이뤄진 기간이다.BDA 북한 자금이 동결된 시점부터 해제될 때까지 잃어버린 시간 동안 북핵 협상은 한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협상의 시간이 정지된 사이 북한 핵 기술은 급격한 발전을 했다. 북한이 지난해 가을에 핵실험을 강행한 것은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상전벽해의 진화에 해당된다. 북핵 협상이 재개돼 잃어버린 세월을 메우려는 노력을 아무리 기울여 봐도 북한 핵실험의 기록을 지울 수는 없다. 성공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있을지언정 북한 핵실험은 엄연한 역사로 남아 있다. 북핵 협상의 시계가 다시 째깍이기는 한데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여인곤 통일연구원 동북아연구실장은 “초기단계까지는 그런대로 진행되겠지만 폐쇄단계에 가면 진전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생존의 마지막 카드인 핵무기를 쉽사리 폐기하려 들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핵무기와 맞바꿀 유일한 카드는 미국과의 전격적인 수교지만, 테러지원국 해제·의회 동의 같은 험난한 과정은 의지만으로 넘기 버거워 보인다. 힐 차관보와 2000년 10월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의 방북은 닮은 꼴이다. 두 사람의 평양 방문이 부시와 클린턴 행정부의 정권 말기에 이뤄졌다는 점이다. 막판에 북핵을 어떻게든 해결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로 볼 수도 있겠지만, 북핵을 긴장과 위기 국면으로 가져가 다음 대선에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하려는 외교적인 노력으로 해석될 소지도 없지 않다. 차이점으로는 올브라이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두번 면담했지만, 힐 차관보는 그러지 못했다. 그의 건강이상설이 나돌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누가 왜, 어떻게 북핵 협상의 시간을 잃어버렸느냐는 문제는 북핵협상의 전망을 점칠 수 있는 요인이다.BDA문제는 협상국면을 긴장과 위기국면으로 급반전시켰지만, 미국이 제기한 북한의 100달러짜리 위폐제조 의혹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리고 BDA자금은 모두 북한으로 되돌아갔다.BDA 자금 동결이란 카드가 왜 나왔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북한 핵실험 이후 만장일치로 채택했던 유엔 결의는 올 초 대화국면으로 반전되면서 휴지조각이 돼버린 지 오래다. 유엔과 미국의 권위는 실추됐다. 미국의 대북 정책은 일관성을 상실했고, 결과적으로 실패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은 6년 전 취임하면서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말했던 기억을 되새겨 보면 북한을 상대로 한 부시 행정부의 협상과 대화 자체가 무리였는지 모른다. 미국의 매파와 비둘기파가 주도권을 주고받으면서 대북정책은 냉탕과 온탕을 오갔고, 북한 핵문제는 꼬일 대로 꼬여 버렸다. 잃어버린 시간을 메우는 일보다도, 정책의 일관성이 더 중요하다는 게 ‘잃어버린 시간´이 남기는 교훈이다. 박정현 기획탐사부장 jhpark@seoul.co.kr
  • 3천년전 고대 중국 ‘황금가면’ 복원 전시

    중국 청두(成都)에서 3000년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황금가면’이 발굴 및 복원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무게 46g, 넓이 19.5cm, 높이 11cm의 이 황금가면은 과거 중국에서 발견된 것 중 가장 크고 보존이 잘돼있어 고고학계를 흥분시키고 있다. 이 황금가면은 사각형의 이마와 칼 모양의 눈썹, 그리고 직사각형의 귀와 삼각형의 코가 높이 솟아올라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은 산싱두이(三星堆) 유적(기원전 5000~3000년전 신석기와 청동기 걸쳐 지속된 문명) 에서 발굴된 청동 두상과 거의 일치해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여덟번째 세계 기적’으로 불리는 산싱두이 유적은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 중점 보호명록에 등재돼 있다. 복원작업을 진행한 진사유적박물관장 왕이(王毅)는 “아마도 당시 신을 상징하는 가면으로 추측된다.”며 “고고학자의 세심한 복원과정을 거쳐 현재의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사진=XINHUANET 나우뉴스 신청미 기자 qingmei@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Local] 부산박물관 中고대 청동기 전시

    부산시는 6일 부산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오는 15일부터 9월9일까지 중국 고대(BC 4000년∼AD 220년)의 청동기와 옥기 95점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전시한다고 밝혔다. 한·중 수교 15주년과 부산·상하이 자매결연 14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특별 전시회로 전시되는 청동기와 옥기 등은 중국 상하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것이다. 전시회와 함께 중국 전통차 체험전(6월23일), 중국영화 상영 이벤트(전시기간 중 매주 토·일요일) 등 중국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여러가지 부대행사도 마련된다. 문의 (051)624-6343∼4
  • [사회플러스] 진주서 청동기시대 밭 발굴

    청동기시대의 대규모 밭 유적이 경남 진주시 평거3지구 택지개발사업지구에서 발견됐다.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는 남강을 가로지르는 희망교 가설 예정구간 1608㎡를 발굴조사한 결과 4개층으로 구분할 수 있는 청동기시대 밭의 흔적을 찾았다고 28일 밝혔다.
  • 청동기시대 韓·蒙 ‘한뿌리’·中 ‘’

    중국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남단,‘황사의 발원지’ 가운데 하나인 ‘오르도스’(Ordos)와 ‘오르도스 청동기 문화’가 우리 고대사 연구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기원전 2000년 무렵부터 고도의 청동기 문명을 이룩한 오르도스 지역의 문화는 요녕을 거쳐 한반도에까지 직접적 영향을 미쳤다. 오르도스 청동기 문명은 중국 문명의 본류인 중원의 황하문명과는 기원은 물론 형태 등도 판이하게 달랐다. 기원전 1000년 무렵의 것으로 추정되는 오르도스 청동기 유적과 한반도 청동기 유적의 유사성은 ‘비파형 동검’ 등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도대체 3000년전 오르도스와 한반도에는 무슨 교류가 있었던 것일까. 한국고대학회는 15일부터 이틀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오르도스 청동기 문화와 한국의 청동기 문화’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열어 그 비밀을 푸는 ‘열쇠’를 모색한다. 이번 학술대회에는 ‘민족문화 원형 발굴 및 정체성 확립을 위한 학술대회’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한국, 중국, 몽골, 러시아의 관련 학자들이 대거 참석한다. 기본적인 전제는 한국 청동기 문화가 중국 청동기 문화와는 이질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김정배 전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기조강연에서 “한국 청동기 유물과 깊은 관계가 있는 네이멍구와 중국 동북지역 출토 유물은 중국문화 계통이 아닌, 오르도스 등 북방의 초원유목문화가 근저에 깊이 깔려 있다.”면서 “러시아 남시베리아 카라스크와 타가르의 청동기 문화가 동쪽으로 뻗어와 내몽고, 요서, 한반도 등의 청동기 문화에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했다. 러시아극동대의 D.L. 브로스키 교수는 ‘연해주의 청동기 문화’라는 논문에서 “청동기 시대에서 초기철기 시대에 걸쳐 존속했던 얀콥스키 문화는 ‘읍루’의 문화로 간주되며 그 영역은 두만강 유역을 포괄한다.”며 한국 고대사의 일부인 옥저, 읍루의 실체를 밝히는 정보를 제공했다. 오강원 동북아역사재단 부연구위원은 “요서의 십이대영자문화는 기원전 10세기 후반부터 북방 청동기 문화와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관측된다.”는 내용의 연구결과를 밝혔다. 이같은 연구결과들은 동북아 청동기 문화가 ‘남시베리아-오르도스-요서-요동-한반도’ 라는 광대한 연속선 속에서 꿈틀거렸다는 가설을 학술적으로 입증하는 작업이 되고 있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열린세상] 쌀/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으뜸으로 치는 식물성 먹거리는 무엇일까. 이 질문의 대답은 두 가지일 것이다. 쌀로 지은 밥이나, 밀가루 반죽을 부풀린 빵이라고…. 세계에서 100여개 나라가 쌀을 얻기 위해 벼농사를 짓는다. 북위 53도의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아무르강 유역 모헤(漠河)로부터 남위 40도의 아르헨티나 리오네그로강 유역까지를 아우른 넓은 지역에 분포되었다. 아시아의 벼농사 집념은 유별나서, 해발 마이너스 1m 깊이의 인도 게랄리에서도 벼를 심는다. 처음에 물 속에서 자라 차츰 잎새와 이삭을 드러내는 이른바 심수도(深水稻)와 부도(浮稻)가 그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해발 2600m에 이르는 네팔의 주물라 같은 고랭지에서도 벼농사에 매달린다. 그러고 보면, 아시아 사람들이 쌀을 선호하는 열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리가 붓다로 일컫는 고타마 싯다르타의 아버지인 가리비성(城)의 성주 이름 수도다나에서 보이는 ‘다나’는 밥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이 수도다나를 한어로 옮길 때 깨끗한 밥을 상징하는 정반왕(淨飯王)으로 적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주의 여러 동생들 이름에도 ‘다나’를 넣어 슈크로다나·도토다나·아푸라토다나 따위로 이름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렇듯 아시아 사람들은 벼농사를 지어 거둔 쌀을 삶의 한 부분으로 여길 만큼 오랜 세월 동안 도작문화(稻作文化)에 동화되었다. 세계적으로 자리를 잡은 벼 품종은 아시아 재배종과 아프리카 재배종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아프리카 벼는 서부의 세네갈에서 나이지리아 지역에서만 심는다. 그러나 아시아 벼는 아프리카 동북부와 유럽, 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에 걸쳐 있다. 아시아의 벼는 크게 인디카와 자포니카 및 불루로 구분한다. 한국을 비롯한 중국과 일본 등 동북아시아에서는 온대 자포니카를 심는다. 이 온대 자포니카는 동북아시아 말고도 이집트와 이탈리아, 미국의 캘리포니아에서도 재배하는 품종이다. 이들 지역의 온대 자포니카는 인도네시아와 파키스탄, 버마와 인도 등지에서 나오는 길다란 쌀 인디카와는 생김새부터가 딴판이다. 한반도의 벼농사 기원은 먼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강 하류의 고양과 김포에서 4000∼4500년 전 신석기시대의 탄화미(炭化米)를 발굴한 데 이어 금강 상류인 청원 소로리에서는 1만 3000년 전 구석기시대 볍씨를 찾았다는 보고가 나와 있다. 그리고 일본 야오이(彌生·청동기시대) 유적과 죠몽(繩文·신석기시대) 유적에서 온대 자포니카와 열대 자포니카가 각각 나왔다고 한다. 이는 모두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것이 학계의 견해다. 어떻든 한반도의 유구한 벼농사 역사는 생활과 맞물려 쌀은 일상의 잣대가 되었다. 이를 테면 자신이 소유한 농토를 석섬지기 따위로 불렀고, 대단한 재력의 부자를 가리켜 만석꾼이라고도 했다. 장바닥에서 물건 값을 따질 때도 돈이 얼마라고 꼭 집어 말하기보다는 두말어치 같은 셈수를 예사로 드러냈다. 그래서 벼농사를 중심에 둔 한국의 농경문화에는 일상적 삶과 여러 습속(習俗)이 깊이 파고 들었다.‘나주 들노래’와 ‘탄금대 방아타령’‘강화 용두레질노래’ 등 숱한 민속예술 레퍼토리 속에 아직 농경문화의 잔영이 보이는 까닭은 거기 있다. 오늘의 농촌을 지탱한 그나마의 동력은 벼농사와 쌀이라는 원형질 문화를 다 잃지 않은 데서 비롯되었다. 이번 한·미 FTA 협상에서 끝까지 쌀을 지킨 한국대표단에 감사한 마음을 보낸다. 어미의 젖을 늦게 뗀 아기가 시름에 잠긴 여린 마음 같은, 농사꾼 걱정을 헤아린 그들이 고맙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자포니카 쌀이 들어올 기미를 보였다면, 온갖 전통이 한꺼번에 무너내리는 굉음이 천둥처럼 요란했을 것이다. 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 고창 청보리밭 페스티벌

    고창 청보리밭 페스티벌

    마냥 푸르기만 한 보리밭에 가본 적이 있으신가요? 어린 시절 동무들과 아지랑이를 좇아 한없이 달리고 뒹굴던 청보리밭을요. 밭이랑 사이에서 쉬던 종달새가 발자국 소리에 놀라 푸드덕거리며 파란 하늘로 날아오르고, 풀벌레들은 따다닥∼날갯짓을 하며 보리잎 사이로 몸을 숨기느라 정신없는 모습이었지요. 배 고프면 보리를 구워 먹기도 하고, 주변에 널린 자운영이며 클로버 꽃 등을 꺾어 꽃반지·꽃시계를 만들어 차기도 했고요. 이제 어른이 된 마당에 새삼 무슨 보리밭 타령이냐고요? 아직도 광활하게 펼쳐진 보리밭이 남아 있냐고요? 아이들 손잡고 전북 고창군의 학원관광농원으로 가보세요. 아마 생각이 달라질 겁니다. 끝 간데 없이 펼쳐진 청보리밭을 볼 수 있지요. 꽃보다 청산이라던가요. 꽃 구경, 사람 구경에 어지럼증을 느낀다면 이제 초록의 품에 안겨보는 건 어떨까요. # 푸름의 고장, 고창 고창의 옛 지명인 모양현(牟陽縣)의 모는 보리, 양은 태양을 뜻한다. 문자 그대로 보리가 잘 자라는 고장이라는 뜻이다. 청보리는 보리 이삭이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 누렇게 여물어가는 ‘보리누름’ 전까지의 파란색 보리를 말한다. 미풍에 살랑살랑 물결치는 모습이 싱그러워 특별히 청보리라 부른다. 학원농장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봄철 보리밭의 푸른 모습이 사진작가들의 각광을 받으면서부터. 지금은 연간 30만명가량이 다녀갈 만큼 고창 지역의 손꼽히는 관광명소가 됐다. 여전히 관람료는 받지 않고 있다. 농장주 진영호(56)씨는 국무총리를 지낸 진의종(작고)씨의 장남이다. 대기업의 이사까지 지내다 낙향해 보리밭을 일구며 살아가고 있다. 규모는 12만평 정도. 아름다운 농장 풍경을 인정받아 경관농업특구로 지정되면서, 인근 주민들도 보리를 심어 지금은 30만평 정도로 확장됐다. 보리밭길을 따라 산책을 하다 보면 새삼 그 규모에 감탄사가 나온다. 그저 손바닥 만 한 밭뙈기쯤으로만 생각했던 이들에겐 초록빛 바다로 여겨질 정도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결을 따라 보릿대가 일렁일 때면 영락없이 바다 한가운데 빠진 듯하다. 빛고을 광주에서 온 김미희(27)씨 등 세 처녀는 그래서 감동했나 보다. “늘상 회색 건물만 보다가 ‘쫘악∼’ 펼쳐진 청보리밭을 보니 마음도 ‘확∼’펴지는 것 같아요.” 지루한 일상에서 해방된 세 처녀는 보리대롱을 꺾어 보리피리를 만들어 불었다. 처음 해보는 일이니 잘될 턱이 없다. 연신 콧방귀 소리만 나온다. “까르르∼” 세 처녀들의 웃음소리는 그대로 초록이 되고 희망의 울림이 된다. 세 처녀의 시선을 따라 보리를 들여다보았다. 다소 차가운 봄바람 속에 가볍게 몸을 떨며 꿋꿋하게 서있다. 차가운 겨울을 이겨내 온 강인함과 끈질김은 우리가 배워야 할 덕목이 아닐까. 오는 14일∼5월13일까지 학원농장(www.borinara.co.kr) 일대에서 제4회 청보리밭 축제가 열린다. 행사장내에 시골 장터가 개설되고 창작 무용극 공연과 보리밥, 보리개떡 먹기와 봄나물 캐기, 보리 그슬려 먹기 등 다양한 체험행사가 펼쳐진다. 학원농장 (063)564-9897, 청보리밭 축제위원회 562-9895, 고창군청 문화관광과 560-2457∼8. 글 사진 고창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뛰어난 건축미, 고창읍성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한다. 백제 때 모양부리라 불렸던 것에서 유래된 듯하다. 언제쯤 세워졌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조선 단종 원년(1453)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성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나주진관의 입암산성과 연계해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담당했다. 여자들이 머리에 돌을 이고 성곽을 따라 한 바퀴 돌면 다리 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 돌면 극락왕생한다는 속설이 전해져 온다. 머리에 돌을 이는 이유는 해빙기에 이탈된 성곽을 밟아줌으로써 성곽을 다지는 효과가 있고, 성을 돈 다음 한 곳에 돌을 모아 전쟁 등 유사시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조상의 슬기가 엿보인다. 고창군에서는 매년 중양절(음력 9월9일)에 전래 답성놀이를 재현하는 행사를 연다. 성 안에는 동헌, 객사, 작청, 등양루와 같은 조선시대 건축물(1976년 복원)과 맹종죽(孟宗竹), 아름드리 노송군락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성곽을 따라 30∼40분 정도 가볍게 산책을 즐기며 자녀들과 역사공부를 하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이다. 자연석을 빼곡히 쌓아 1684m를 돌아나간 성곽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기도 수원의 화성에 견줄 만큼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요즘 성곽을 따라 벚꽃이 한창이다. 화사한 벚꽃과 고색창연한 성벽이 어우러져 절경을 연출한다. 오후 7시 이후에는 야간조명 불빛으로 인해 더욱 화려하게 변신한다. 여고생 두어명이 자그마한 돌을 머리에 이고 성벽을 걸어가며 까르르∼ 웃는 모습이 꼭 벚꽃을 닮았다. 언덕을 따라 여인네의 허리춤을 연상케 하는 성벽 위에 선 남자들의 얼굴색은 늦은 오후의 햇살처럼 붉게 물들어 있다. 성벽 아래로는 정겨운 고창 읍내의 초봄 풍경이 펼쳐진다. 아마 수백년 전 조선의 여인들도 이렇게 돌을 이고 성벽을 거닐었을 게다. 고창읍성 관리사무소 (063)560-2313. ●선운산 ‘호남의 내금강’으로 불린다. 동백꽃으로 유명한 선운사를 중심으로 천혜의 자연경관과 기암괴석이 산재해 있다. 선운사를 둘러싼 동백숲은 이미 붉은 꽃을 피웠고 공원입구 산벚나무 군락은 수채화를 연상케 할 만큼 절정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063)563-3450. ●지석묘군 청동기 시대의 유적 지석묘군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 2000여기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 특히 화시산 끝자락 성틀봉 주변의 죽림리와 상갑리 일대에 밀집된 고인돌 447기와 23곳의 상석채취장이 세인들의 이목을 끈다. ●미당 생가마을 고창은 미당 서정주를 낳고 길러낸 곳이다. 부안면 미안리 미당 생가마을에서는 그의 시집 ‘질마재 신화’의 추억을 오롯이 되새겨 볼 수 있다. 선운리 폐교를 개축한 미당문학관도 들러볼 만한 명소다. ▶먹거리 고창의 대표적 먹거리는 풍천장어와 복분자주. 흔히 ‘풍천’을 지명으로 알지만, 바닷 바람이 부는 강 하구를 뜻 하는 일반명사다. 서해 곰소만과 인접한 인천강의 옛이름이 풍천이라는 설도 있다. 선운사 입구 주변에 장어집들이 많다. 신덕식당(063-562-1533), 연기식당(562-1537) 등이 많이 알려져 있다. 고창읍내 조양관(508-8381)은 60년 전통의 한정식집이다. 풍천장어와 찰떡궁합이 복분자주. 남자는 출입을 금지시키고 여자들만 모여 술을 빚었다고 한다. 선운산 특산주 흥진(063-561-0209), 고창 명산품 복분자주(561-2031), 고창 고인돌복분자주(562-2008,6007). ●여행수첩 ▶가는 길 자동차 서해안고속도로→고창 나들목→15번 지방도→무장면→796번 지방도→공음면 학원농장 경부고속도로→천안-논산간 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정읍 나들목→22번 국도→고창읍→학원농장 청보리밭 축제를 앞두고 도로 곳곳에 이정표가 잘 마련되어 있다. 버 스 서울 반포 센트럴시티에서 고창까지 고속버스를 탄 다음, 군내 버스로 무장까지 간다. 무장에서 학원농장까지는 택시로 6000원 정도. 기 차 서울 용산역에서 KTX를 타고 정읍까지 간 다음, 고창행 시외버스를 이용한다.
  • [책꽂이]

    ●도쿄타워를 향해 달려라(알렉산드라 후놀트 지음, 김준미 옮김, 주니어 김영사 펴냄) 일본 도쿄에서 일어난 도난사건을 해결하는 꼬마 탐정들의 범인추적 과정을 통해 일본의 문화와 지리, 역사 등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도록 꾸민 학습서. 일본의 전통여관 료칸, 벚꽃축제 하나미, 일본을 대표하는 전통종교 신도 등 고유의 문화를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배운다.‘추리와 탐험이 만나는 세계여행’ 시리즈 첫째권. 시리즈 2,3권으로 브라질편 ‘아마존에서 사라진 아빠’와 인도편 ‘뉴델리의 얼굴 없는 도둑’도 함께 나왔다.9500원.●흙으로 만든 귀(이규희 지음, 바우솔 펴냄) “나리 마님, 절대로 밖에 나가셔서는 안 됩니다. 왜놈들이 조선 사람들을 보기만 하면 귀나 코를 베어 소금에 절여 전리품으로 가져간답니다. 그래야 조선 사람들을 얼마나 죽였는지 알고 본국에 가서 상을 받는다고요. 지금 남원뿐 아니라 경상도나 충청도까지 귀나 코가 잘린 시신들이 셀 수 없이 많답니다.” 일본 교토에 있는 ‘미미쓰카’라 불리는 이총(耳塚, 귀무덤)의 역사를 알기 쉽게 설명한 책. 이 무덤엔 우리 군인과 민간인 12만 6000명의 귀와 코가 묻혀 있다. 무덤 뒤엔 가증스럽게도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제사 지내는 도요쿠니(豊國) 신사가 자리잡고 있다.7000원. ●트로이와 크레타(한스 바우만 지음, 강혜경 옮김, 비룡소 펴냄) 20세기초 트로이와 미케네, 크노소스 유적을 발굴해 전 세계에 고고학 열풍을 몰고온 하인리히 슐리만과 아서 에번스의 일대기. 기원전 3000∼1만년에 걸쳐 에게해 일대에서 번영을 누린 트로이와 미케네, 크노소스 문명은 이 지역에서 일어난 청동기 문명을 입증한 하나의 사건이었다. 독일 고고학자 슐리만은 일곱살 때 선물로 받은 책에서 불타는 트로이성의 그림을 보고 당시로선 신화로만 존재했던 트로이 전쟁의 무대를 직접 확인하겠다는 꿈을 키웠다.1만 2000원.●한국의 멋-인물편(최순자 등 지음, 삐아제어린이 펴냄) 조선시대 내로라하는 화가들의 이야기. 안견은 특히 산수화에 뛰어났고 초상화와 사군자에도 능했다. 그의 화풍은 일본의 수묵화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1447년에 그린 ‘몽유도원도’에는 안평대군의 발문을 비롯, 정인지·신숙주·성삼문 같은 당시 문신들의 찬시가 곁들여져 회화사적으로 더욱 가치가 높다.‘금강전도’ ‘청풍계도’ ‘계상정거도’ 등을 그린 겸재 정선, 김홍도·신윤복·김득신 등 조선 3대 풍속화가의 이야기도 실렸다.9000원.
  • 中언론 “단군신화 역사 편입” 비난

    |베이징 이지운특파원|교육부가 새학기 역사교과서에서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을 역사적 사실로 기술하고 한반도의 청동기 문화 도래시기를 500∼1000년 앞당긴 것과 관련, 중국 언론이 비난하고 나섰다. 상하이에서 발행되는 동방조보(東方早報)는 26일 “한국 당국이 신중하지 못한 태도로 학계의 고질병과 같은 요구를 받아들여 사람을 놀라게 하는 행동을 했다.”며 역사교과서 개정 내용을 소개했다. 신문은 이전 한국의 역사교과서는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웠다고 한다.’고 기술돼 있으나 새 교과서는 ‘단군 왕검이 고조선을 세웠다.’로 바꿔 신화를 역사에 편입시켰다고 밝혔다.또 한반도에 청동기시대가 시작된 시기에 대해서도 기원전 10세기에서 기원전 20∼15세기로 수정했다고 지적했다. 중국신문망은 한국의 역사교과서 개정 내용을 소개하며, 한국 내에서도 “너무 성급한 결정”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jj@seoul.co.kr
  • [생각나눔] 고조선 신화서 역사로… 청동기 1000년 앞당겨

    올해 신학기 역사교과서에 한반도 청동기 보급 시기가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최대 1000년까지 앞당겨진다. 또 그동안 신화 형태로 기술된 고조선 건국 과정이 공식 역사로 편입된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학계 의견이 엇갈려 논란이 예상된다. 교육부는 학계의 지적을 수용해 2007학년도 고교 역사교과서의 ‘고조선과 청동기 문화’ 단원을 일부 수정해 신학기부터 일선 학교에 개정교과서를 보급하기로 했다고 23일 밝혔다. 교육부에 따르면 이 단원 27쪽의 ‘한반도에서는 기원전 10세기경에, 만주 지역에서는 기원전 15∼13세기에 청동기 시대가 전개되었다.’는 부분이 새 교과서에는 ‘신석기 말인 기원전 2000년경에 중국 요령(랴오닝), 러시아 아무르 강과 연해주 지역에서 들어온 덧띠새김무늬 토기 문화가 앞선 빗살무늬 토기 문화와 약 500년간 공존하다 점차 청동기 시대로 넘어간다. 이 때가 기원전 2000년경에서 기원전 1500년경으로, 한반도 청동기 시대가 본격화된다.’라고 기록된다. 이 부분을 집필한 최몽룡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강원도 정선과 춘천, 홍천, 경기도 가평, 경남 진주 등지에서 최근 출토된 유물 등을 근거로 한반도에 청동기 문화가 전래된 시기를 앞당겼다.”고 말했다. 또 32쪽의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고 한다(기원전 2333년)’ 부분도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로 수정했다. 서강대 사학과 이종욱 교수는 “중국이 고조선 건국 장소인 중국 요동지역 청동기 도입 시기를 앞당기고 있는데 한반도 청동기 도입 시기를 앞당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또 “단군조선 초기 역사 형성 시기는 기원전 12세기다. 신화를 역사적인 시각으로 전환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송호정 교수는 “기원전 15세기에 한반도 청동기 시대가 본격화된다는 이야기는 학계에서 합의된 내용은 아니다. 이 시기에 나타나는 청동기 유물은 극소수 장신구에 불과하다.”면서 “중국 동북공정에 대항해 이런 논리가 나오는 것 같은데 좀더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고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고고사학과의 한 교수도 “고조선 편입 문제는 선뜻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적지 않다.”면서 “위만 조선이 과연 정치적 실체로서 얼마만큼 영향력을 행사하고 실체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었나를 생각하면 상당히 회의적”이라고 주장했다. 김재천 강아연기자 patrick@seoul.co.kr
  • “두루봉 유적 보존 못한게 恨”

    “두루봉 유적 보존 못한게 恨”

    “한반도에서 코끼리나 코뿔소가 살았다는 사실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것을 50m 벼랑에서 로프에 의지한 채 목숨을 걸고 발굴했습니다.” 한국의 선사 고고학을 이끌어 온 이융조(65) 충북대 교수가 새달 정년을 맞는다.17일 충북대박물관에서 만난 그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도전한다는 각오로 발굴에 나섰던 것이 나름대로 성과를 이끌어냈던 것 같다.”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세계 最古 볍씨 발굴 이 교수는 태백산맥과 차령산맥·소백산맥으로 둘러싸인 중원지역의 선사 고고학에서 독보적 업적을 쌓았다. 청원 두루봉 구석기 유적에선 인골을 발굴했고, 청원 소로리에선 최고 1만 4810년전 것으로 측정된 볍씨를 찾아내 벼의 기원과 전파 과정을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단양 수양개에서 발굴한 슴베찌르개는 브리티시뮤지엄과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도 한국의 대표적인 구석기 유적으로 전시되고 있다. 천주교회사를 전공하려던 사학과 대학원생에서 급작스럽게 뒤바뀌어버린 그의 ‘발굴인생’ 또한 이웃한 공주 석장리 구석기 유적에서 비롯됐다.“1964년 연세대에는 모어와 샘플러라는 미국인 부부 고고학자가 연구원으로 와 있었어요. 호기심에 강연을 들었는데 처음부터 발굴 얘기를 꺼냈습니다. 강화 고인돌과 부산 동삼동, 공주 금강변에서 석기가 나오는데 가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하더군요.” 스승인 손보기 교수도 강연을 함께 들었다. 한반도에 구석기 시대가 존재했음을 처음 알린 석장리 유적의 발굴 주역이다. 공주사범학교 출신으로, 대학원의 막내였던 ‘이융조 조교’는 곧장 선발대로 석장리에 투입됐고, 이후 1974년까지 발굴에 참여했다. 이 교수는 “석장리는 수십만개의 석기가 나온 것 말고도 층위에 따른 발굴법을 제시하고, 방사성 연대 측정방법을 처음 도입하는 등 이후 구석기 고고학에 ‘가이드 라인’ 역할을 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석장리 발굴팀은 당시 주먹도끼와 찍개, 긁개, 밀개, 찌르개 등 요즘 널리 쓰이는 고고학 용어의 기초자료를 만들기도 했다. 그의 중원지역과 인연은 1976년 충북대 전임강사로 부임한 뒤 더욱 공고해진다. 이 해부터 두루봉 유적의 본격적인 발굴에 들어가는데, 동굴 중심의 발굴은 이후 중원지역 고고학 조사의 특징으로 자리잡는다. 두루봉에선 연세대 박물관이 9굴을, 충북대 박물관이 2굴과 15굴, 새굴, 처녀굴, 흥수굴을 차례로 찾아내 1983년까지 모두 10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2굴에선 진달래 꽃가루가 157개가 발견됐습니다.20만년전에 꽃을 사랑한 첫번째 사람들이라고 할까요. 옛 코끼리 상아가 나온 곳은 새굴입니다. 구석기 시대에 뼈연모를 만들기 위해 상아를 인위적으로 손질한 흔적은 아시아에서 처음 발견된 것입니다.” 40만∼50만년전으로 추정되는 처녀굴에서는 쌍코뿔이 뼈와 한 마리 분의 동굴곰 화석이 나왔다. 이 동굴곰은 3년동안의 복원작업을 거쳐 현재 충북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발굴에서 복원으로 흥수굴에서 나온 사람 뼈로 복원한 것이 ‘흥수 아이’다. 머리뼈의 해부학적 특징으로 볼 때 약 4만년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한다.1982년 현지 석회석광산 현장소장의 제보로 찾았다. 흥수굴이나 흥수 아이는 모두 김흥수 소장의 이름을 딴 것이다. 한데유적인 수양개는 충주댐 수몰지역 조사에 따라 1980년부터 발굴됐다. 유물의 숫자와 종류, 제작수법에서 국내 최대인 수양개는 세계적인 구석기 유적지로 발돋움했다.1996년부터 ‘수양개와 그 이웃들’이라는 국제학술대회를 해마다 열고 있다. 올해는 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열린다. 세계 구석기 학계의 중요한 교류의 장으로 자리잡았다. 이 교수는 “고고학의 마지막 목표는 복원”이라고 했다. 동굴곰과 흥수 아이는 물론 화순 대전 집터를 복원하고 석장리박물관, 중부고속도로 유물전시관, 충주 조동리선사유적박물관, 수양개박물관 등을 세우는데 역할을 하는 등 지나는 곳마다 ‘흔적’을 남기는 것도 이런 소신 때문이다. ●‘고인돌=청동기´ 아니다 하지만 이 교수는 발굴에서 찾아진 고고학적 증거가 곧바로 학계의 정설로 굳어지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손으로 고인돌에서 수없이 많은 신석기 시대 유물을 찾아냈지만 학계의 일부는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라는 기존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4330년전 것으로 추정된 고양 가와지 유적의 볍씨와 소로리 볍씨를 찾아낸 이후에도 영국 BBC가 보도하는 등 언론에서는 떠들썩했지만, 정작 학계의 일부는 조용했다. 그럼에도 이 교수는 “나의 발굴 조사 결과를 뒷받침하는 발굴이 조만간 이뤄지지 않겠느냐.”며 자신만만하다. 그는 “1만 5000년전 벼가 나왔다면 그것이 결코 시작이 아니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한편으로는 “큰소리치고 살면서도 실수한 것이 많았다.”고 했다. 두루봉과 수양개 종합보고서를 아직 펴내지 못했고, 수양개 국제학술대회에서는 300편 가까운 논문이 나왔는데도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저작집으로 정리해서 국제 학계에 보고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두루봉 유적을 보존하지 못한 것은 한스럽다.”면서 “잘했다면 한국의 주구점이 됐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베이징원인이 발굴된 저우커우디엔(周口店)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구석기 유적지의 하나로 꼽힌다. 이 교수는 “기분좋게 떠나간다.”고 했지만 대학원 강의를 계속하는데다, 발굴 및 연구 법인인 한국선사문화원구원을 이끌고 있어 ‘현역 고고학자’의 위치에는 변함이 없을 것 같다. 글 사진 청주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반가상·티베트 유물 ‘진짜 같은 가짜’ 즐비

    반가상·티베트 유물 ‘진짜 같은 가짜’ 즐비

    |베이징 서동철특파원|베이징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골동품시장이라는 판자위안(潘家園)을 찾았다. 류리창(琉璃廠) 골동품 거리가 서화와 도자기 중심이라면, 판자위안은 거대한 민속박물관을 연상시킨다. 골동품이나 민속공예품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옛날 물건이 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마구, 북, 금강령 같은 티베트 유물이 먼저 눈길을 잡아끌었다. 판자위안은 1992년부터 이 지역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서던 도깨비시장(鬼市)으로 시작됐다. 규모가 갈수록 커지자 1997년 4만 8500㎡(1만 4700여평)의 부지에 건물을 지어 정식 골동품 시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도깨비시장이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나도는 물건의 대부분은 출처 불문에 연대 불문이다. 실제로 시장 곳곳에서는 진품과 모조품, 요즘 만든 생활용품이 뒤섞인 채 팔리고 있었다. 청동기시대 유물들도 마치 방금 출토된 듯 진흙이 잔뜩 묻은 채 진열되고 있었지만, 대부분은 가짜다. 심지어 우리나라의 국보 제78호 일월식 반가사유상과 국보 제83호 삼산관 반가사유상도 진열되어 있었다.30㎝ 높이로 복제한 반가사유상은 1200위안(14만 2800원),60㎝짜리는 2800위안(33만 3200원)을 달라고 했다. 짝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케이스다. 판자위안에서 흥정을 할 때는 일단 절반 이하로 깎는 것이 상식이라고 한다. 자원중(賈文忠) 중국 문화부 예술품평가위원은 “판자위안에 있는 골동품의 90% 이상이 가짜라고 보면 된다.”면서 “새벽에 시장이 열리자마자 노점상 구역을 찾으면 뜻밖에 좋은 물건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것도 전문가나 식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판자위안의 상인은 4000여명. 짐꾼 등 시장 주변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모두 합치면 1만명에 이른다. 상인의 60%는 베이징 밖의 18개 성·시·자치구에서 온 사람들이다. 판자위안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 4시30분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문을 연다. 여름에는 오전 9시, 겨울에는 오전 11시쯤에 가장 붐빈다. 하루 평균 6만명 이상이 찾는다. 천펑차오(陳鵬橋) 판자위안 시장관리부 경리는 “류리창이 규모가 비교적 크고 점포에서 거래가 이뤄진다면 판자위안은 노천시장에 가깝다는 것이 다르다.”면서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상인들을 대상으로 바가지 씌우지 않기 운동을 펼치는 한편 외국인을 위한 영어와 장애인 고객을 위한 수화를 가르치고 있다.”고 소개했다. dcsuh@seoul.co.kr
  • [HAPPY KOREA] 충남 3곳 주민활동 탐방

    [HAPPY KOREA] 충남 3곳 주민활동 탐방

    올바른 리더가 조직의 성공을 일궈내는 데 얼마나 중요한 지는 설명이 필요없다. 최고경영인(CEO)의 자질에 따라 기업의 흥망이 좌우되기도 한다. 마을이나 지역의 발전도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마을을 구성하는 주민 개개인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개인의 발전을 지역의 발전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지도자는 한 사람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 ‘의좋은 마을’ 이복현씨 예로부터 시골에서 양조장이나 정미소, 제재소를 갖고 있으면 ‘3대 부자’로 통했다. 그 자제들은 아쉬울 것도, 남부러울 것도 없어 보였다. 충남 예산군 대흥면 동서·상중리 ‘의좋은 마을’ 이복현(53)씨도 인근 광시중학교의 어엿한 교감 선생님이지만, 동네에서는 양조장집 둘째 아들로 더 잘 불린다. 이씨는 ‘있는 집안’의 거드름 피우는 아들이 아니라, 마을을 위해 봉사하는 일꾼으로 인정받고 있다. ●‘양조장집 둘째아들’ 별명은 ‘회장님’ 추수가 끝난 가을 밤, 형제가 서로의 빠듯한 살림을 걱정해 볏단을 몰래 가져다주는 중간에 만나 얼싸안고 울었다는 일화는 1956∼2000년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며 널리 알려졌다. 지난해부터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고 있다. 출처가 불분명한 민담으로 여겨졌던 이 이야기가 고려 말 실화라는 사실은 마을 주민들로 이뤄진 ‘대흥현 보존회’ 주도로 고증을 거쳐 밝혀졌다. 이씨는 보존회 회장이다. 그는 “형님이 일 때문에 타지로 이사해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면서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마을에 보존돼 있던 비석에서 관련 내용을 발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씨가 마을의 역사 복원에 관심을 갖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대흥현은 대흥면의 조선시대 명칭이다.1914년 대흥군이 예산군에 편입되기 이전까지 군소재지로 번성했던 곳이다. 때문에 면 단위 지역으로는 드물게 초·중·고교가 지금도 위치해 있다. 하지만 1964년 마을 앞에 예당저수지가 들어서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예당저수지는 330만평으로 전국 최대 규모지만, 주민들 입장에서는 그 만큼의 농지가 물에 잠겨 생계 수단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씨는 “저수지가 들어선 이후 마을 규모가 10분의 1정도로 줄어들 만큼 상전벽해를 실감한 곳”이라면서 “생산기반이 사라진 상황에서 마을을 되살릴 길은 풍부한 문화유산을 복원하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 보존회는 매년 11월 ‘의좋은 형제 축제’를 개최하는 것은 물론, 마을 인근에서 청동기시대 유물유적지를 발굴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특히 이곳에서 발견된 나팔형 동기는 국내에서 유일한 것이다. 이씨는 현재 대흥동헌과 대흥향교 등을 복원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조선 초기에 창건된 대흥동헌은 2002년 지방문화재로 등록됐다. 마을 뒷산에 위치한 백제 부흥운동의 근거지였던 임존성 복원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는 “노력을 인정해 주셨는지, 지금은 주민 모두가 보존회 회원으로 가입한 상황”이라면서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며 웃음지었다. 이어 “하나 뿐인 아들이 ‘고향 지킴이’가 되겠다고 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 사진 예산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문산·동곡마을’ 주형로씨 요즘같은 세상에 자식에게 대를 이어 농사를 지으라고 권하는 부모가 있다면 지청구를 듣기 십상이다. 충남 홍성군 홍동면 문당리 문산·동곡마을 주형로(48)씨는 예외다. 아들 이름을 농민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바람인 ‘하늬’로 할 만큼 농촌 사랑이 자식 사랑 못지 않다. 주씨는 “농촌이 발전하려면 지도자 양성이 중요하다. 대를 이어 꿈을 일궈나가겠다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촉망받던 배구선수에서 싹수있는 농사꾼으로 주씨는 풀무농고(현 풀무학교) 재학 당시인 1977년 문당리에 친환경 농법을 도입했다.1993년에는 국내 최초로 오리농법을 시도했다. 지금은 문당리 일대 250만평의 농지에서 친환경 농업이 진행되고 있다. 전국 최대 규모다. 일반쌀 80㎏ 한가마당 16만원 정도지만, 이곳 쌀은 26만원선에 거래가 이뤄진다. 마을을 찾는 방문객도 연간 2만명이 넘는다. 그럼에도 주씨는 모든 공을 스승인 홍순명 전 풀무농고 교장에게 넘긴다. 주씨는 “중학교 때까지 배구선수로 활약했지만, 성장이 멈춰 운동을 지속할 수 없어 풀무농고에 진학했다.”면서 “6개국어가 가능했던 홍 전 교장 선생님이 농사와 관련된 각종 외국서적을 끊임없이 번역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겸손해했다. 특히 주씨는 2000년에 서울대 환경대학원과 녹색연합의 도움을 받아 ‘21세기 문당리 발전 100년 계획’을 세웠다. 문당리는 지금도 모든 일을 계획서대로 진행하고 있다. 계획 수립과 함께 주민들이 참여하는 협업공동체운동을 시작했다.‘홍성 환경농업마을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어 정미소·황토방·농촌생활유물관 등을 공동 운영해 이윤을 골고루 나눠주는 것은 물론, 지역교육사업과 친환경농업 보급 등 비영리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마을 공동기금만 15억원에 이른다. 주씨는 “우리나라의 경우 마을 단위 발전계획이 전무하다시피하고, 공동체운동이 성공한 사례도 거의 없는 실정”이라면서 “농촌도 잘 살 수 있다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농활 나온 여대생, 문당리 총각에 빠지다 최근 10년간 문당리를 떠난 사람은 한명도 없다. 오히려 같은 기간 10여가구가 이주해 왔다. 농촌 총각들의 결혼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곳 총각들은 농활 나온 여대생들과 결혼한 커플만 지금까지 10여쌍에 이른다. 주씨는 현재 노령층과 젊은층이 공존할 수 있는 농촌형 주거공간인 ‘희망나눔동산’을 조성하기 위해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그는 “친환경농업과 자연순환을 통해 자립하는 농촌 마을을 만드는 게 꿈”이라면서 “꿈을 이루려면 지도자 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체계적인 교육시스템도 만들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지금은 3대가 살고 있지만, 대학생 아들이 돌아오면 4대가 함께 살 것”이라며 웃었다. 글 사진 홍성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풀꽃이랑마을’ 외지출신 주민 3총사 ‘굴러온 돌이 박힌 돌보다 나을 수 있다.’ 마을과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토박이만이 마을의 리더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뜨내기로 간주되는 이주민들이 변화를 몰고 오는 신선한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 충남 공주시 정안면 고성리 풀꽃이랑마을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풀꽃이랑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촌마을로, 주민이래봐야 70가구 150명이 고작이다.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정안 밤’의 산지이지만, 주민들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기에는 역부족이다. 밤 이외에 소득기반도 신통한 게 없다. 국유림과 고성저수지 등에 대한 환경훼손 문제가 우선적으로 고려됐기 때문이다. 마을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이주민이 하나둘씩 늘어난 90년대 말부터다. 인천에서 교직생활을 하던 서명석(65)씨는 1999년 퇴직 후 이곳으로 내려왔다. 경기도 일산에서 외국계 기업에 다니던 최인규(63)씨와 화가인 임성복(64)씨 등도 2000년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서씨는 “지리적으로 외부와 단절된 동네라, 모든 게 악조건으로 간주됐다.”면서 “하지만 자연환경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는 장점을 살려보고자 힘을 모으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우선 마을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했다. 계획에 따라 지난 9월 마을 명칭을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고, 팜스테이와 산촌학교 운영을 시작했다. 지금은 주민 모두가 팜스테이 운영회원으로 가입할 만큼 원주민들의 마음도 움직였다. 최씨는 “시골에 인적 자원이 부족하다는 것은 변화를 몰고 올 지도자가 없다는 의미”라면서 “악조건, 호조건을 논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라고 강조했다. 공주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3000년전 인도인 한반도서 벼농사?

    3000년전 인도인 한반도서 벼농사?

    강원 정선군 아우라지 유적의 청동기시대 고인돌에서 출토된 사람 뼈가 백인의 것일 가능성이 있다는 유전자 분석 결과가 나와 주목되고 있다. 서울대 의대 해부학교실 신동훈 교수가 5일 아우라지 유적을 발굴 조사하고 있는 강원문화재연구소의 의뢰로 인골을 분석해 보니 영국인과 비슷한 DNA 염기서열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백인에 가까운 것으로 보이는 인골이 나온 것은 1965년 충북 제천 황석리 13호 고인돌에 이어 두번째. 당시 BC430년이라는 방사선 연대 측정 결과가 나왔다. ‘아우라지 사람’은 3000년 전에 해당하는 BC970년 정도로 강원문화재연구소는 추정한다. 황석리와 아우라지는 남한강으로 연결되는 동일생활권이다. 얼굴 전문가인 조용진 한서대 교수는 황석리 사람을 복원해 본 결과 완전한 서양인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는 “황석리 사람처럼 생긴 사람들이 지금도 남한강변인 원주와 충주 지역에 집중적으로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동훈 교수는 아우라지 인골이 백인의 것인지 확신을 갖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조심스러워 한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벌써부터 백인의 유전인자와 고인돌 문화를 전해받은 인도인들이 바닷길로 한반도에 건너와 벼농사를 지었고, 죽어서는 고인돌에 묻히지 않았겠느냐는 주장이 김병모 한양대 명예교수 등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김병모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이 인골의 주인공이 인도에서 벼농사 전래 경로를 따라 동남아시아를 거쳐 한반도에 들어왔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말 가운데 400여개 어휘는 인도토착어인 드라비다어에서 유래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면서 “쌀은 살(Sal), 풀은 풀(Pul), 벼는 비야(Biya), 메뚜기는 메티(Metti), 농기구인 가래는 가라이(Kalai) 등이 그것으로 벼농사 기술과 함께 소개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아우라지 사람’의 존재는 청동기시대 한반도와 인도를 비롯한 남방과의 교류가 그동안 알려진 것보다 훨씬 활발했음을 보여주는 직접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학계의 중요한 화두로 떠오를 전망이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이 한권의 책] ‘갈등과 반목’ 칼의 문화를 버려라

    북한의 핵실험, 정치권의 행태, 부동산의 투기 열풍, 대학입시 전쟁, 지하철 출근전쟁까지…. 우리는 매일매일 전쟁 속에서 산다. 지구촌은 어떠한가? FTA, 탄소시장,ODA 등의 세계 관계 속에서 각기 설 자리를 쟁탈하기 위한 세계인들의 삶은 국가의 경계도 없이 발가벗겨져 가고 있다. 힘센 자의 성공 논리로 점철되어온 지배 중심의 사회체제를 비판하고 평화의 대안으로 성배의 문화를 강조한 ‘성배와 칼’. 이 책의 저자인 리안 아이슬러는 인류학, 여성학, 사회학을 두루 아우르며 전쟁과 침략의 역사를 만들어온 지배문화를 ‘칼의 문화’라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인간이 끊임없이 분쟁을 일삼는 것도 ‘칼’의 역사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단호히 말한다. 마치 펜은 칼보다 무섭다는 말을 실감나게 할 만큼 인류학자 시각에서 지난 역사를 속속들이 분석하여 파헤치고 있다. 반면 대립보다는 협력과 공존을 중요시하는 공동협력 사회체제를 성배의 문화라고 칭한다. 아이슬러는 성배로 상징되는 ‘여신’을 중시한다. 여성의 출산과 자손번창, 심지어 죽음까지 성스럽게 덧입힌다. 남녀가 평등했으며 부자와 가난한 자도 없었고 의사결정이 만장일치로 이루어졌던 신석기시대를 성배문화의 기원으로 잡는다. 또 크레타문명을 재조명하며 “크레타는 역사 기록상 여성과 남성이 서로를 대등한 동반자로서 조화를 이루어 즐겁게 지낸 마지막 세상 같다.”고 극찬하고 있다. 그러나 유목민족의 침략으로 신석기시대는 무너지고, 청동기와 철의 무기를 만들어내면서 인류의 전쟁이 지구상에 등장한다. 텐트만 접으면 삶의 터가 바뀌므로 힘이 약한 여자들을 쉽게 납치, 약탈하여 노예화할 수 있던 유목민사회에서 ‘여신문화’는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야금술과 남성우월성이 자리잡혔다. 저자는 로마제국 시절 저술된 성경에 대해서도 통렬하게 비판하는데, 약자인 여성을 귀하게 섬겼던 예수님의 모습은 가려지고 지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남성 중심으로 기록되었다는 주장이다. 결국 인류가 평화를 지향하기 위하여 칼의 문화가 짓밟아버린 성배의 문화를 되찾는 새로운 관점을 정립해야 한다고 아이슬러는 강조한다. 죽음이 아닌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피라미드식의 위계질서보다는 연대를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공동협력사회를 이룰 때 인류의 평화가 도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보여준다. 그런 사회를 지향해갈 때 우리 사회는 21세기 지구촌의 화두인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 책을 덮으며 잠시 한국사회 속에 녹아 있는 칼의 문화를 되새기게 된다. 특히 조선시대 이래 600년간 이 땅에 뿌리박아온 부계사회에서 휘두른 칼의 위력에 짓밟힌 여성들의 슬픈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하다. 당시 이화고녀를 졸업한 씩씩하셨던 어머니, 온화하고 항상 인내하시던 모습의 외할머니, 그 윗대 할머니들은 또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그 모습은 모르지만 분명히 가부장적인 가치로 움직이던 사회에서 당신들의 주장은 접은 채 아이들 젖을 먹이고, 밥하고, 시부모님, 남편의 옷을 밤새워 지었으리라! 이제 세상이 많이 변하였다고 하나 곳곳이 아직도 칼의 문화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게 우리들의 현실이다. 이 책을 통하여 인류역사에 숨어 있는 성배적인 속성이 현대사회에 승화된 모습으로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정의감마저 치솟는다. 그래야만 남·녀를 불문하고 현대인 모두의 삶이 편안해 지리라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해졌다. 심리학자 샌드라 뱀의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인 속성이 아닌, 적응력을 강조하는 ‘양성의 문화’가 중요하다는 주장이 바로 이 저자의 ‘성배문화’와 접목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둘 다 나눔과 섬김의 철학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박은경 대한YWCA연합회장·인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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