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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인은 유럽을 먹이로 삼는 개미”

    ◎크레송 불 총리,또 대일 포문/일선 “베짱이보다 낫다” 응수 일본에 대해 적개심어린 험담을 서슴지 않았던 에디트 크레송 프랑스총리가 이번엔 일본인을 「개미」로 비하시켜 또한차례 시비를 불러일으켰다. 크레송총리는 16일 파리에서 가진 미ABC텔레비전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다음 희생물은 틀림없이 유럽』이라는 종전 주장을 되풀이한 뒤 이어 『일본인은 개미처럼 일만 하고 작은 아파트에 살며 통근시간은 2시간이나 걸리는 데다 물가는 턱없이 비싸다』는 혹평을 새롭게 덧붙였다. ABC방송은 이 인터뷰를 18일 미국에 방영하기 앞서 미리 그 요약을 프랑스언론에 공개했고 이 내용은 즉시 일본신문에 크게 보도되기에 이르렀다.일본인이 가만 있을 리 만무했다. 사카모토(판본) 관방장관은 17일 하오 기자회견에 나와 『베짱이보다 개미가 낫다는 것은 유치원에 다니는 애들도 아는 이솝우화』라고 맞받아쳤다. 르 피가로지는 크레송의 발언이 또다시 외국에서 비판받게 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이같은 우려는 개미발언이 있기 전에 벌어진 일본인들의 「크레송참수」 해프닝을 생각하면 충분한 타당성을 띠고있다. 프랑스 혁명기념일이었던 지난 14일 하오 일본 도쿄의 시부야공원 구내에서 극우단체의 하나인 「이수카이」소속 회원 30여명은 「에디트 크레송」이라고 딱지가 붙은 마네킹을 상대로 분을 터뜨렸다.한 청년이 날카로운 일본도로 마네킹의 목을 싹뚝 잘라낸뒤 땅에 굴러떨어진 머리와 몸통을 질질 끌고 30여명이 모두 합세,주일프랑스대사관까지 행진한 것이다. 한편 프랑스총리실은 ABC TV가 인터뷰내용중 「개미」발언을 비롯,몇몇 고십성 발언만 선별적으로 발췌,공개한데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그러나 일본의 「크레송 참수」가 극소수파의 해프닝인데 반해 「개미」발언은 총리의 인터뷰 공언인 점을 비교할때 「프랑스쪽이 너무 서둘지 않는가」하는 판단도 가능하다.힘이 달리는 만큼 룰에 벗어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여기서 힘은 물론 경제력을 말한다.
  • 알바니아 유혈사태 격화/개혁파­좌파 충돌… 12명 사망

    【베오그라드·워싱턴 AFP 로이터 연합】 알바니아의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폭력사태가 연 3일째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25일 아침 탱크들이 수도 티라나의 정부청사 주변에 한때 배치되었으며 지난 주말에는 폭력사태로 약 12명의 시민들이 사망하고 2백여명이 체포되었다고 민간소식통들이 밝혔다. 소식통들은 24일 밤에도 순찰군인들이 티라나에서 청년 2명을 검문도중 1명이 사살되었으며 현재 티라나 시가에는 무장병력의 순찰이 강화되었으나 탱크들은 일단 철수했다고 전하고 그러나 지난 주말 사망한 시민들은 대부분 강경파 공산당 지도자였던 고 엔베르 호자를 지지하는 좌파들과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개혁파들간의 충돌로 인한 폭력사태에서 희생된 것이라고 말했다.
  • 리투아공 유혈사태 왜 일어났나

    ◎공화국 탈소 움직임에 「초강경 대응」/소 보수파 입지 강화의 반증 세계의 이목이 온통 페르시아만 쪽으로 몰려있는 가운데 소련당국의 독립요구 시위를 벌이는 리투아니아 공화국 시민들에게 유혈진압을 단행했다. 흡사 지난 1956년 전세계의 관심이 수에즈운하에 쏠려있는 동안 헝가리에 탱크를 몰고 들어간 경우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최근 수개월간 크렘린 내부의 움직임을 보면 이번 무력진압은 페르시아만 사태와는 관계없이 언젠가는 일어날 사태발전으로 예견돼 왔었다. 무력진압의 표면적인 이유는 소련연군에 대한 징집 거부이다. 발트해 3개 공화국을 비롯해 몰다비아 우크라이나 그루지야 아르메니아 등 독립노선을 표방한 7개 공화국에서는 현재 연방군으로의 징집을 거부하고 있다. 이들 공화국 청년들의 입대불응 이유는 소련군이 점령군이기 때문에 입대명령에 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연방공화국 정부들은 이들에게 징집에 응하지 말것을 공공연히 부추기고 지난 8일 크렘린이 병력을 투입,병역 기피자 검거에 나서자 시민들에게 총궐기해 이를 저지할 것을 호소하고 나섰다. 크렘린 권위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 크렘린은 그동안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해오며 민족문제에 대해서도 비교적 관대한 입장을 취해왔다. 고르바초프 집권 이래 민족소요를 무력으로 진압한 것은 89년 그루지야 공화국 수도 트빌리시 시에서 군이 발포,20여명을 사망케 한 것과 90년 아제르바이잔에 병력 1천여명을 파견해 소요 진압에 나선 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생필품 부족 등 경제난이 더 극심해지고 연방공화국들이 독자적인 경제정책을 선언하는 등 국정 전반이 혼란으로 빠져들자 군부 KGB 관료조직 등을 중심으로 한 보수세력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커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고르바초프 대통령도 보수세력들의 입장에 점차 동조하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고 급기야 지난 12월 인민대표회의에서 연방공화국들의 독립을 사실상 불허하는 새 연방법이 채택됐다. 아울러 소요 지역에 대해서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대통령 직접통치를 명할 수 있는 비상권한까지 부여받았다. 연방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행위는 절대로 용납치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따라서 새해 들어서 더욱 고조되고 있는 발트해 3국 등의 독립요구에 대한 크렘린의 무력대응은 충분히 예견돼 온 것이었고 앞으로 진압대상 지역과 경우에 따라 희생자 수도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크렘린 당국은 지금까지는 민족소요 지역에 대한 무력진압 등 내정문제에서의 강경입장을 대외문제에까지 연결시키지는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마무리 단계에 있는 전략무기 제한협상(START)과 페르시아만 사태 대응 등에서 계속 미국과 협력관계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등 서방국들은 발트해 공화국들에 대한 크렘린의 무력진압을 페레스트로이카의 중대한 방향전환 신호로 받아들이고 강력한 비난과 경고를 보내고 있다. 부시 미 행정부는 이런 상태라면 오는 2월의 미소 정상회담에 예정대로 임하기가 힘들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백악관의 스코크로프트 안보담당 보좌관과 말린 피츠워터 대변인 등이 잇따라 이 문제를 미소관계와 연결시키는 발언을 했다. EC 등 유럽국들과 캐나다도 약속한 대소 경협을 취소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문제는 크렘린도 연방공화국들과 극적인 타협점을 찾거나 독립을 허용해 주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강경대응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데 있다. 서방국들도 이런 입장을 감안해 일방적으로 연방공화국들의 독립을 지지하기 힘들다는 한계가 있다. 그런 식으로라도 소련이라는 대국이 와해되지 않고 안정을 유지하는게 세계 평화에도 플러스라는 계산들을 하는지도 모른다. 서방국들의 힘으로 크렘린의 무력사용을 막기는 힘들 것같다. 더구나 미국은 지금 페르시아만에 매달려 있다. 발트해 공화국들로서는 시기적으로도 너무 불리한 때 「당하게」된 것같다.
  • 김좌진장군의 손자 할복/어제

    ◎일 총리 파고다공원 방문 때맞춰/50여 바늘 꿰매… 생명엔 지장없어 방한중인 일본 가이후총리가 파고다공원을 방문한 10일 상오11시48분쯤 파고다공원 맞은편 길에서 독립유공자유족회 상임이사 김경민씨(36)가 가이후총리의 방한에 항의하며 할복자살을 기도,중상을 입고 한국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독립투사 김좌진장군의 장손으로 알려진 김씨는 이날 상오10시쯤부터 독립유공자유족회 회원 1백여명과 태평양전쟁 희생자유족회 및 3·1여성동지회원 등 3백여명과 함께 파고다공원 맞은편 인도에서 피켓 등을 들고 『가이후총리 방한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며 농성을 벌이다 가이후총리가 탄 승용차가 파고다공원 정문에 도착하는 순간 『나가자』는 구호와 함께 도로로 뛰쳐 나가려다 전경들에게 제지당했다. 김씨는 갖고있던 16절지 4장 분량의 성명서를 뿌리면서 품속에서 20㎝쯤 되는 등산용칼을 꺼내 웃옷을 벗어 제치고는 『대한민국만세』를 외치면서 배를 가로로 두번 그어 할복자살을 기도했다. 김씨는 옆에 있던 나라사랑 한마음운동협의회 청년부장 오해수씨(36) 등에 의해 이웃 한국병원 응급실로 옮겨져 1시간 남짓동안 50∼60바늘을 꿰매는 봉합수술을 받은 뒤 317호실에 입원했다. 치료를 맡았던 담당의사는 『복부상처의 길이는 25㎝쯤이며 깊이는 1∼2㎝이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밝혔다.
  • 탈냉전 이끈 고르바초프의 오른팔/전격 사임 셰바르드나제 소 외무

    ◎그루지야공화국 제1서기 출신/대 서방 관계개선에 선봉장 역할 20일 사임한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은 지난 5년 동안의 재임기간중 국제사회에서 소련의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는데 중대한 역할을 했다. 백발에 우아한 용모와 상냥한 미소를 갖춘 그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외교의 책임자로서 세계 각지를 분주히 돌아다니며 소련의 이미지를 「악의 제국」에서 「바람직한 상대국」으로 바꾸는데 중심적 역할을 담당해 왔으며 이데올로기적 차이를 포함한 모든 것에 우선해 미소 관계의 개선을 추진함으로써 세계평화에 지울 수 없는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소련의 외교적 성공과 대조적으로 악화일로를 걸어온 소련 내부의 정치적 혼란은 결국 그를 희생물로 삼고만 것이다. 소련 그루지야공화국 공산당 제1서기를 지냈던 그는 지난 85년 7월 57세의 나이로 소련 공산당 정치국 정회원이 됨과 동시에 안드레이 그로미코의 후임으로 소련 외무장관에 임명됐다. 예두아르트 암보로시에비치 셰바르드나제는 1928년 1월 그루지야공화국 남부의소도시 마마티에서 태어났다. 그는 20세 때 공산당에 가입한 뒤 9년 후 그루지야공화국 공산청년동맹의 위원장이 됐으며 68년부터 72년까지 그루지야공화국 내무장관직을 지냈다. 85년 외무장관에 임명됐을 때 그는 자신의 영어가 유창한 편이 못된다는 사실을 솔직히 털어놨으며 처음에는 업무를 완수하기 위해 하루 18시간씩 일해야 했다. 셰바르드나제의 가장 두드러진 업적중 하나는 85년 11월 고르바초프와 레이건 미 대통령과의 6년만에 이루어진 미소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일이다. 이후 3차례의 정상회담을 거친 뒤 두 정상은 88년 6월 모스크바에서 만나 역사적인 중거리핵전력(INF) 감축협정에 서명했다. 그는 이밖에 89년 2월에는 북경을 방문,중국 관리들과의 협상을 통해 3개월 후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중국 최고실권자 등소평간의 중소 정상회담이 이뤄지도록 했다. 그의 부인 나노울리는 비록 라이사 고르바초프에 비해서는 덜 각광받고 있지만 항상 상냥한 미소를 띠면서 그의 여행에 동반해 왔다. 그는 두 자녀를 두었는데 딸은 현재 TV방송국에서 편집자로 일하며 아들은 철학자이다.
  • 소 우즈베크공도 비상선포/대통령/“내전우려” 중앙정부에 개입요청

    ◎2만명 키르기스 월경시도 【모스크바 AFP AP 연합 특약】 소련의 키르기스족과 우즈베크족간의 인종분규가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키르기스공화국에 이어 우즈베크공화국도 8일 비상사태를 선포했다고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크공화국 대통령은 양종족간의 일련의 유혈충돌이 발생한후 접경지대인 안리잔의 수개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카리모프대통령은 또 키르기스공화국의 오슈지방을 비롯한 일부지역에서의 유혈충돌은 내전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크렘린당국에 인종분규 종식을 돕기위해 정치국원과 최고회의 대의원으로 구성된 정부조사위원단을 급파해 줄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지난 4일 사유토지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발생한 키르기스족과 우즈베크족간의 유혈충돌로 지금까지 적어도 78명이 사망하고 3백30여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련 내무부대변인은 3천여명의 키르기스 청년들이 이날 키르기스공화국 수도프룬제에 모여 최초 충돌이 발생한 접경지 오슈지방으로 가는 것을 허용해 달라고 요구하고 1만5천여명의 우즈베크인들도 국경을 넘어 키르기스공화국으로 넘어가려고 시도했다고 말했다. 한편 대부분이 학생들인 5천여명의 키르기스인들은 프룬제에 모여 유혈충돌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집회를 가졌다.
  • “평생모은 8백만원 심장재단 기증”유서(조약돌)

    ◎20대 고아청년 “외로움”비관,음독자살 ○…서울 중부경찰서는 27일 『평생동안 모은 8백여만원을 불우한 소년가장이나 심장재단에 전달해 달라』는 유언을 남긴채 극약을 먹고 숨진 오성문씨(26ㆍ공원ㆍ서울 노원구 공릉동 339의4)의 유지에 따라 오씨명의의 대한교육보험금 6백40여만원과 은행예금 1백70만원등 8백여만원중 병원치료비로 1백70여만원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모두 한국심장재단에 기부. 오씨는 자신의 부당해고를 구제해준 노동부 북부지방사무소 김종락씨(51) 앞으로 남긴 16절지 크기의 유언장에서 『부모님 사랑과 정을 못받았기 때문에 제가 원하는것은 애틋한 사랑』이라면서 『공부해서 예쁜 색시를 만나 사랑과 정을 받고 싶다』고 애절한 사연을 호소. 오씨는 또 『저를 보살펴준 모든 사람한테 용서를 비는 뜻으로 저의 몸을 희생하든가 보험금과 예금등을 합친 7백여만원을 불우한 어린이 가정이나 심장재단에 꼭 뜻있게 써달라』고 주문하고 『이것이 저의 마지막 소원』이라고 당부.
  • 독립투사 아들의 할복을 보며(사설)

    아직도 두드러기가 나는 듯한 일장기가 태극기와 함께 어우러져 광화문거리에 펄럭이던 23일,한 독립투사의 아들이 할복을 기도하여 중상을 입었다. 그가 어떤 과정으로 그곳에 이르러 「일왕의 사과」를 외치며 자해를 했는지는 소상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조직화하고 훈련된 세력이나 집단이 각본에 따라 배를 가르는 시늉을 한 것과는 다르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는 한국 광복군 총사령부의 참모로 활약했던 독립투사 김덕목씨의 아들이다. 그런 조건을 지닌 한국남성이라면 일상을 젖혀두고 일본 대사관앞으로 달려가 시위에 가담할 혈기가 마땅히 있음직하다. 그리고 그런 혈기와 의분때문에 분노의 외침끝에 할복을 기도할 수도 충분히 있어 보인다. 「할복」이라는 저항의 의식은 우리에게 그다지 익숙한 것은 아니다. 그런 죽음을 삶의 마무리를 위한 미학처럼 즐기고 있는 일본인과 우리는 좀 다르다. 그런데도 혼자서 결연히 할복을 기도한 김씨의 분노가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걸핏하면 조직폭력배처럼 몰려다니며 한국인 얕보기를 서슴지 않고방자하게 구는 일본의 극우세력이 지금 일본에서는 신이야 넋이야 날뛰고 있다. 일본의 나고야(명고옥) 한국인회관에 방화하고,오사카에서는 폭발물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23일에는 히로시마(광도) 평화공원 울타리 밖에 서있는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가 방화에 의해 불길에 싸였다. 이 히로시마 위령비는,그 서있는 모습 자체가 우리를 가슴아프게 하고,일본의 잔인한 실체에 소름돋는 것을 느끼게 하는 비석이다. 저희들은 전쟁의 원범이면서 「원폭의 비인도성」에 항의하기 위해 공원을 짓고 위령비를 세우고 요란스레 「슬픔」을 과시하는 것이 이른바 「평화공원」이다. 그 공원에서 침략당한 나라의 백성이라는 이유로 보다 더 억울하고 슬픈 피해를 입었으면서도 위령의 대열에서도 쫓겨나,한데다 세워둔 비석이 바로 그 비석이다. 우익이라는 세력이 그 비석을 걸핏하면 불질러 벌써 3년째 불탔다. 당연히 해야할 사과 좀 하라는데 길길이 날뛰며 폭거를 저지르고 다니는 극우세력이 있다는 건,일본이라는 나라의 도덕적 불감증의 발로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하는 것은 일부의 그런 잘못된 폭력집단의 행패가 아니다. 기회가 있을 때면 일본의 지도층들이 이 집단을 은근히 활용한다는 사실이다. 매우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이들은,일본정부가 대한문제로 약간 곤혹스러운 지경이다 싶으면 영락없이 나타나 행패를 하고,그러면 위정자측에서는 대단히 조심스럽다는 듯한 모양으로 『…우익세력의 여론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입장…』운운하며 효과적으로 이용한다. 23일 하오에는 또 동경에 있는 한국신문 지사에 우익청년들이 몰려와 반일 감정에 부채질하지 말라고 소란도 피웠다. 거대한 각본에 의한듯 역할분담을 하는 이런 일본의 태도는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상처를 난도질한다. 한국을 우호적으로 동반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일본에 더 큰 흠이 된다. 일본은 그것을 국민에게 인식시켜야 한다. 우리는 우리대로 무모한 자해행위같은 것은 참는 것이 좋겠다. 냉철하게 대응하고 지속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김씨의 울분에 동감하면서 빠른 쾌유를 비는 것도 그 때문이다.
  • “보통사람 오신다” 차분한 대통령맞이/노대통령 방일 앞둔 일 표정

    ◎교포들,현수막등 내걸고 환영준비/궁중만찬선 「손에 손잡고」 연주 계획/한인 원폭희생자비 방화 등 일극렬파 극성 여전 ○…노태우대통령 방일을 맞는 일본에서는 전반적으로는 환영무드가 일고 있으나 좌ㆍ우익 과격파 단체등이 각각의 톤으로 방일반대운동을 벌이고 있어 경시청당국은 연일 2만여명의 경찰병력을 동원,노대통령 일행이 통과할 주요 간선도로변의 맨홀을 점검,봉인하고 교통규제를 실시하는 등 있을지도 모르는 좌ㆍ우익 과격파의 테러에 대비,24시간 비상경계체제를 펴고 있다. 당국은 아키히토(명인)국왕의 과거역사 사죄발언에 반대하는 우익과격파의 테러는 물론,천황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기독교단체 등 좌익단체들도 노대통령 방일이 자기들의 주장을 알리는 호기가 될것으로 판단,각종 테러를 자행할 우려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노대통령 방일을 맞는 재일동포사회의 환영분위기도 전두환 전 대통령때와는 여러가지 의미에서 달라져 시대의 변화를 실감케 하고 있다. 전두환 전대통령 방일때는 한국국가원수의 첫 일본방문인데다 당시의 국내분위기가 재일동포 사회에까지 이어져 다소 긴장된 가운데 일견 요란한 듯한 환영행사가 많았으나 이번에는 『보통사람 대통령을 보통의 기분으로 따뜻이 맞이하면 된다』는 분위기가 주류를 이뤄 전에 비해 차분해진 느낌. 도쿄(동경)도내에 있는 재일거류민단본부에는 며칠전부터 「대통령 방일을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렸고 민단 기관지 한국신문은 22일자 컬러판별쇄로 노대통령의 인물소개와 함께 「21세기의 한일관계 구축」「동포문제는 전후처리차원에서」등의 특집을 실었으나 전에 비해 절제된 분위기. ○…일본정부와 언론ㆍ재일동포사회의 이같은 환영분위기와는 달리 자칭 1백30개단체,1천6백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다는 우익단체연합회 전애회의와 재일한국청년동맹 등 좌ㆍ우익단체들은 전국 각지의 전철역 등지에서 방일반대전단을 돌리는 등 노대통령 방일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전단에서 『언제까지나 과거에 집착,일본을 모욕한다면 한일기본조약을 폐기하라』고 요구하고 『한일합방은 역사의 추세였으며당시 한국정부에 통치ㆍ외교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일본경찰은 연일 2만명의 경찰병력을 동원,24시간 경비태세를 펴고 있는데 특히 과격 게릴라와 테러리스트들이 사정이 긴 화약류를 이용하거나 원격조정장치를 사용하는 등 활용범위가 넓어지고 있음을 고려,3백여군데에 검문소를 설치하고 경비범위를 전두환 전대통령때의 주요 시설물로부터 1m이상에서 이번에는 3m이내로 확대했다. 또 10대의 헬기와 29대의 순시선을 노대통령의 방문여로에 배치. ○…일본 국내청은 노대통령을 맞아 아키히토(명인)일왕이 24일 저녁에 베푼 궁중만찬에서 노대통령내외를 위해 요리와 음악ㆍ여흥 등에서 이례적으로 여러가지 특별서비스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궁내청에 따르면 궁중만찬의 경우 국왕이 손님을 만찬장으로 맞아들일때 일본음악인 「친애」가 연주되는 것이 관례이지만 노대통령이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을 역임했음을 고려,이번에 한해 올림픽 주제가의 하나였던 「손에 손잡고」를 연주키로 했다는 것. 당국은 이밖에 궁중행사의 경우 보통 국왕 한사람에게만 붙이도록 돼있는 통역을 표현의 차이로 인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 노대통령에게도 한국인 통역을 따로 두기로 했으며 보통 국빈에게 제공되는 국화문양의 국왕전용 승용차(닛산ㆍ프린스 로얄)대신 가까운 곳에서 다이너마이트가 터져도 끄떡없는 외무성의 특별장비차를 제공키로 했다.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나고야(명고실) 오사카(대판)등지에서 극우극력분자들의 소행으로 보이는 방화ㆍ테러사건이 빈발하고 있는 가운데 23일에는 히로시마(광도)평화공원부근에 세워진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의 대좌에 놓여있던 추모용 종이학이 방화로 불에 탔다. 이들 종이학은 수학여행온 학생들이 바친 것으로 이날 상오 1시20분쯤 불이 붙고있는 것을 통행중인 트럭운전사가 발견,소화기로 진화했다. 이날 방화로 위령비자체에는 피해가 없었다. 경찰은 이 사건이 노대통령의 방일을 반대하고 있는 극렬분자들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중이다.
  • 「정호용 출마」에 거여 “진퇴양난”

    ◎민자 탈당과 대구서갑 보궐선거 전망/반반승산에 후보내기 떨떠름/일단 포기 종용… 소외그룹 향배가 변수/결과따라 범여권 새 세력 형성 가능성 정호용 전 의원의 대구 서갑구 보궐선거 무소속 출마 선언으로 범여권의 공기가 냉랭해졌다. 정 전의원이 무소속 출마를 포기하지 않고,민자당도 후보를 낸다면 선거구의 특성상 이 싸움은 집권여당과 정 전의원과의 한판승부 성격을 갖게 된다. 시기적으로도 민자당 출범후 처음 치르는 선거여서 범여권의 제도권 세력과 정계개편 과정에서 소외된 이른바 여권내 「재야」 세력간의 대리전 성격을 지닐 가능성이 크다. 정 전의원은 2일 대구 기자회견에서 무소속 출마를 공식화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탈당이유 설명에서 『탈당은 무소속으로 출마하기 위한 것 아니냐』고 반문한 점이나 이날 기자회견에 이르기까지의 계산된 행보에 비추어 무소속 출마는 번의하기 어려운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여겨진다. 대구 서갑 보궐선거의 열도를 결정하게 될 민자당의 대응은 『어떻게 해서라도 무소속 출마를 포기 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소속 출마를 포기시키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무소속 출마를 강행할 경우 민자당으로서는 커다란 상처를 안을 수 밖에 없다는 데 여권의 고민이 있다. 민자당이 정 전의원의 무소속 출마를 포기시키지 못할 경우 택할 수 있는 대안은 ①후보를 내지 않는 방법 ②무명인사를 형식적으로 내는 방법 ③유력인사를 상대로 내세워 정의원을 정치권에서 완전히 제거하는 방법 등 세가지를 들 수 있다. ①ㆍ②안은 정 전의원과 야합했다는 비난을 들을 소지가 있다. 그러나 ③안을 선택하더라도 여권내의 혈전으로 패배시에 민자당에 엄청난 타격이 돌아오고 설혹 이긴다 해도 노태우 대통령과 정 전의원간의 특수관계로 인해 노대통령의 이미지가 나빠질 게 불을 보듯 뻔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형편이다. 민자당이 거론하고 있는 유력공천자들의 대부분이 「정 전의원 불출마」를 출마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점은 이번 선거전의 성격과 민자당의 난처한 입장을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유력 공천 후보자들중 대구시장을 지내 지명도가 높은 이상희 전내무장관과 이상연 보훈처장은 정 전의원이 출마한다면 같이 싸움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우현 치안본부장도 거론되고 있으나 경북고 후배여서 껄끄럽기는 마찬가지다. 이만섭 전국민당총재나 유성환 전의원(민주계) 등도 정 전의원의 불출마를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지난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나와 차점을 한 백승홍씨가 민자당 공천이 없다면 무소속으로라도 출마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지명도면에서 한결 떨어진다는 평가다. 정 전의원이 무소속 출마를 강행할 경우 민자당 후보와의 싸움은 백중세 또는 정 전의원이 우세하리라는 게 현지의 분석이다. 정 전의원측은 이미 선거사무장ㆍ지도장ㆍ청년조직 등의 점검을 끝내고 홍보전략 등에 대한 세부작업에 들어갔다. 대구시민과 지역구민의 명예회복을 내세워 동정표를 획득해 지난 선거 득표수인 5만2천표를 얻겠다는 생각이나 민자당이 지명도 높은 인사를 내세울 경우 힘든 싸움이 될 수도 있음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선거전의 양상은 민자당이어떤 수준의 후보를 내느냐와 어느정도 총력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물론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은 변수는 정 전의원과 집권여당과 맞서는 셈이되는 선거전을 유권자들이 어떤 시각에서 접근하느냐와 대구ㆍ경북지역 의원들의 동향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구 현지의 여론은 『노대통령이 나오지 말라면 나오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주장과 『노대통령이 이번에는 정호용 전 의원한테 신세를 갚을 차례』라는 상반된 주장으로 나뉘어 있다. 선거막판에 어느 흐름이 대구를 휘어잡느냐에 따라 선거결과는 큰 표차로 당락이 결정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정 전의원이 출마를 강행할 경우 대구ㆍ경북 의원들중 상당수는 그를 지원하는 것이 불가피할 것으로 민자당 내에서는 점치고 있다. 특히 서명파 의원들은 지역구 사정 등을 고려해 그를 못본체 하기 어려운 형편이고 권익현 전민정당대표위원을 포함한 5공그룹 등 여권내 소외세력도 정 전의원을 지원할 가능성이 크다. 백담사측의 향배도 주목되고 있다. 소외그룹이 정 전의원 지원에 연합전선을 형성한다면 대구 서갑구 보궐선거를 계기로 이들이 정치세력화 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범여권이 두조각으로 갈라질 가능성도 선거전의 양상에 따라서는 배제할 수 없는 셈이어서 그만큼 여권내 분위기는 미묘하다. 똑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후락 전중앙정보부장의 경우를 정 전의원의 무소속 출마와 대비해 볼 수 있다. 78년 12월 10대 총선에서 범여권이면서도 소외그룹에 속하던 이 전부장은 당시 공화당의 반대속에 울산ㆍ울주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9만7천여표를 얻음으로써 공화당 후보를 7만표차로 눌러 이긴 바 있다. 총선뒤 잠시 무소속으로 있던 이 전부장은 그 후 공화당에 입당했으나 80년 김종필 당시 총재를 공격,제명권유처분을 받았었다. 민자당이 정 전의원의 출마를 포기시키지 못할 경우 강력한 후보를 내세워 혈전을 벌이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약한 후보를 내세워 싸움의 파장을 줄이려 할 것으로 보인다. 강력한 후보를 내세웠을 때 여권이 입을 이미지 손상 보다는 「야합」의 비난이 오히려 수용하기 편하다는 의견이 민자당내 민정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싸움이 전면전으로 확대됨으로 해서 신여권이 뿌리도 내리기전에 분열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정 전의원이 광주책임과 관련해 공직사퇴를 하기까지의 과정에 작용했던 「권력의 힘」을 고려하면 정 전의원의 출마가능성은 아직 50%의 수준이라고 봐야 할 듯하다. ◎정호용씨 「재출마의 변」/민자 공천 어려워 탈당… 국민의 심판 받겠다/「충고」 있었지만 「불출마 압력」 받은적 없어 대구 서갑 보궐선거에 사실상의 무소속 재출마를 선언한 정호용씨는 그동안의 심적 고민으로 무척 야윈 얼굴이었으나 2일 민자당에 탈당계를 제출한 탓인지 단호한 어조로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정씨는 이날 상오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의원직 사퇴가 「정치적 희생」이었다고 밝히는 한편,보궐선거의 재출마가 자신의 명예회복은 물론 대구 유권자들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강조함으로써 「탈당후 무소속 출마」의 변을 대신했다. ­민자당에서 공천자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탈당계를 낸이유는. 『그동안의 상황으로 보아 민자당의 공천은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으며 무엇보다도 내가 당에 남아 있음으로 해서 노태우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또 공천권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의미 외에도 나 자신이 무소속 출마의 자유를 가지기 위해서다』 ­대구 서갑 보궐선거에 재출마할 뜻을 굳혔는가. 『딱 부러지게 선언하는 것은 이제 질색이다. 보궐선거 공고후 후보자로 등록하는 것이 재출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민자당의 공천은 어렵다고 생각했나. 『여러가지 상황으로 어렵다고 본다. 민자당 내에도 여러사람들의 입장이 있지 않겠느냐』 ­출마하지 말라는 제의나 압력은 없었나. 『아는 분들로부터 「개인 의견」으로 충고받은 적은 있으나 출마하지 말라는 압력같은 것은 지금까지 없었다』 ­탈당하게 된 동기는. 『지난연말 공직사퇴 때 탈당하려고 했다. 과거를 마무리 짓는다는 차원에서 가능한한 조용히 후유증 없이 마무리되길 원했다. 당시 지역구 당원들이 흥분상태에 있었고 탈당계를 냄으로써 그 사람들을 격분시키지 않기 위해 보류해 왔던 것 뿐이다. 입후보등록을 함으로써 나의 거취가 법적효력이 있는 것이지만 탈당한 것으로 내마음을 읽어달라』 ­재출마 한다면 어떤 명분으로 임할 것인가. 『나를 뽑아준 유권자나 대구시민에게 늘 죄송스럽게 생각했다. 지지자들의 뜻을 끝까지 받들지 못하고 정치적 사정에 의해 도중에 의원직을 사퇴하게 돼 송구스러웠다. 그래서 내 기분으로는 항상 이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죄책감에 시달려 왔고 일신상의 사정으로 사퇴한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나의 사퇴로 인해 유권자와 대구시민의 명예에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하며 내 힘으로 되는 일이라면 이 사람들의 명예회복과 자존심에 대한 상처를 아물게 했으면 한다. 물론 나 자신의 명예회복도 포함된다』 ­무소속 출마가 노대통령의 통치권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도전할 이유도 의사도 없다. 다만 유권자에게 못다한 빚을 갚는 것이 의무라는 생각 뿐이다』 ­일단 사퇴했으면 그만이지 또 무슨 재출마냐는 시각도있는데. 『나의 사퇴는 어디까지나 정치적 희생이었다. 과거청산 마무리를 위해 나의 희생은 불가피했지만 나는 현재 공민권이 제한돼 있는 것도 아니고 또 3김씨 모두 사퇴후 나의 행동에 제한을 가한 적이 없다. 따라서 나는 국민에게 심판 받을 수밖에 없다. 나는 언제까지나 아무 것도 못하고 가만히 있어야 되겠는가 묻고 싶다』 ­14대 총선출마를 고려한 적은 없는가. 『국회의원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게 아니다. 명예회복의 차원에서 볼 때 보궐선거가 아닌 14대 출마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에 지금 나서는 것이다』 ­선거시 눈에 보이지 않는 제약에 대한 예상이나 걱정은. 『선거법 자체가 무소속에 불리한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6공이니까 과거에 비해선 나아질 것이다. 주민의식도 높고 언론도 있지 않는가. 지나친 제약이 있을 경우 법에 의해 고발할 생각이다』 ­의원직 사퇴 때처럼 출마결심이 또 바뀌지는 않겠는가. 『후보등록을 해야 출마가 공식선언 되는 것이지만 여러분 생각처럼 「마침내 불출마하는」 경우는 또 없을 것이다』 ­당선 된다면 민자당에 재입당 할 것인가. 『당선될는 지도 모르는데 당선후 얘기는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 아닌가』 ­민자당이 공천자를 내지 않을 경우를 생각해 봤나. 『그런 경우는 기대하지 않고 있다』 ­다른 정당에 입당할 생각은. 『나는 어차피 야당성을 가진 것은 아니다. 내가 필요해서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정당에서 들어오라면 모르겠지만 현재로선 의원도 아니고 정당에 들어갈 생각이 없다』
  • 「경제의 6ㆍ29선언」 절실하다/유장희(서울시론)

    ◎기업인은 소명의식으로 부단한 변신을 요즘 우리 경제상황을 논함에 있어 밝은 얘기보다는 우울한 얘기를 많이 한다. 내리 3년을 두자리 성장률로 치닫던 경제가 89년도에 와서 갑자기 감속현상을 보이고 있으며 간신히 6%를 좀 넘는 실적으로 새해를 맞은 것이다. 이를 두고 외국신문들은 무슨 구경거리라도 만난듯이 대서특필하고 있다. 이젠 고속성장을 자랑하던 한국경제도 별볼일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 와서는 불안한 물가를 지적하고 있다. 1월 한달에 소비자물가가 1%나 올랐으며 이는 최근 수삼년의 평균에 비해 배이상의 물가상승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를 가리켜 성급한 몇몇 전문가들은 금년중 스태그플레이션(불황중의 인플레)현상이 심각할 것으로 내다보기도 한다. ○악재만 탓할수 없어 흔히 오늘날 우리경제의 저조현상이 노사분규,과도한 임금인상,환율 때문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노사분규로 생산에 차질을 빚었고 임금인상,원고현상 때문에 우리제품의 국제 경쟁력이 크게 떨어짐으로써 수출이 급감할 수밖에 없었으며따라서 수출의존형인 우리 경제가 뒤뚱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논리다. 필자는 이를 좀 다른 시각에서 보고자 한다. 노사분규,과도한 임금인상,원고 등등의 현상이 물론 악재이긴 하나 이들이 우연스럽게 나타난 일들이 아니라 부지불식간에 우리경제 내부에 누적되었던 여러가지 모순들이 그 근저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이러한 근본적 모순들을 민첩하고 유연하게 제거시켜 왔던들 오늘 겪고 있는 어려움을 피할수 있었다는 점이다. 악재를 나무랄것이 아니라 그 악재들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던 원인적 모순들을 방치한 우리 스스로를 나무랐어야 할 것이다. 6ㆍ29선언 이후 불어닥친 민주화의 열기를 보고 이것이 경제에 미칠 영향이 무엇이겠는가를 간파했어야 했다. 특히 이에 가장 민첩했어야 할 기업들이 사태를 강건너 불보듯이 안이하게 보고 있었다. 그동안 억제되었던 노동3권의 보장요구와 성장의 과실중 내몫을 내놓으라는 불만의 소리가 터져나올것은 뻔한 이치였다. 경제는 바로 정치적 분위기를 따라가게 마련인 것을 우리는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정치의 6ㆍ29는 있었으나 경제적 6ㆍ29는 뒤따라주지 못했었다. 정치적 혹은 국제적 급변상황에 능동적이고 민첩하게 대처함으로써 난국을 극복한 성공적인 예 두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는 일본의 신일본 제철이고 또하나는 미국의 AT&T사이다 ○각고의 개혁노력 필요 세계 제일의 철강 생산국이자 수출국인 일본은 80년대에 들어 급격한 엔고와 노임인상,그리고 한국 브라질 등 신흥공업국의 추격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종래의 생산체제나 경영방식은 이제 한계에 달했다고 판단한 신일본 제철은 87년 2월 실로 파격적이라할 정도의 일대 변신계획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조강생산을 90년도까지 30% 줄이고 제철부문에서 40%의 인원감축을 단행한다. 감축된 인원을 신규사업 부문인 컴퓨터,생명공학,신소재산업,도시재개발사업 등에 전환시킴으로써 단 한사람도 회사변신의 희생자가 되지 않게 한다. 철강생산도 완전히 하이테크를 이용한 일관작업으로 전환시킨다. 노사분규를 원점에서부터 재분석,새로운 사원복지의 개념을 정립한다. 이러한 개혁과 변신의 노력이 얼마만큼 성공하겠느냐 하는것은 아직 평가하기 이르나,89년도 실적은 개혁이전의 생산수준을 이미 12%나 능가하고 있음을 본다. 세계 최대의 규모와 최고의 통신시설을 자랑하는 미 AT&T 전화회사는 85년에 들어 국내외로부터 심한 도전을 받게되었다. 국내적으로는 독점업체의 해체 및 분할이라는 일대 회오리 바람을 맞아 각 지역에 뻗어있던 지사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국제적으로는 일본 한국 대만 등지로부터 각종 전화기기가 수입되는 바람에 AT&T의 시장은 크게 잠식되었다. 85년 한해에만 2만5천여명의 종업원을 해고할 수밖에 없었으며 한때는 도산설까지 증권가에 퍼질 정도였다. 이 회사의 올손 회장은 드디어 회사 재생을 위해 비장한 결심을 한다. 먼저 국제감각이 뛰어나고 경쟁과 효율성을 중시하기로 이름난 청년이사 앨런을 전격적으로 사장에 기용하고 개혁 전반을 맡긴다. 앨런이 취임하여 맨 먼저 착수한 것이 종업원의 생산성 향상이었다. 그는 사내에 경영개혁 연수과정을 신설하고 능률이 떨어져 있다고 판단된 모든 종업원에게 연수과정 이수를 명령했고 불복할 때는 퇴사처분을 단행했다. 비록 해고된 사원이라도 연수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복직시키는 제도도 신설했다. 곁들여 앨런 사장은 이미 축적된 전화통신 기술을 바탕으로 컴퓨터 제작사업을 벌이며 종래의 아날로그 통신망을 통합,더 효율적인 디지틀 장거리 통신망을 구축했다. 이러한 뼈를 깎는 구조개혁과 변신의 노력이 주효해서 AT&T는 미국내 수주계약고 1위자리를 탈환했으며 국제적으로도 이탈리아 이탈펠사를 발판으로 한 구주시장 공략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잘되는 기업들은 이렇듯 위기와 난국을 맞을 때 개혁하고 변신한다. 이러한 능동적 기업풍토가 조성된 나라치고 경제가 안되는 나라는 없다. 일본의 경제가 연부력강의 기세로 선진국중 최고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으며 미국 경제도 전후 최장의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것은 정치적ㆍ사회적ㆍ국제적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며 변신하는 기업들이 있기 때문이다. ○변화에 능동대응할 때 우리 경제에 과연 희망이 있는가? 이는 전적으로 난국을 맞는 기업인들이 개혁하고 변신하여 심혈을 바쳐 이를 극복하려고 하는 의지와 능력이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이젠 기업인들도 정치인이나 관료와 마찬가지로 시대적 소명의식을 가져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경제학 교과서에는 기업의 목표가 이윤의 극대화라고 나와있으나 이는 지나치게 압축된 개념에 불과하다. 시대를 간파하고 꾸준히 경신하며 도전함으로써 이윤 뿐만이 아니고 국리민복을 위해서도 인생을 건다는 소명의식과 이로부터 오는 「보람」의 극대화도 기업인의 목적함수에 포함되어야 한다. 우리에겐 이런 기업인들이 아직도 많으며,따라서 우리경제의 장래는 결코 어둡지 않은 것이다.
  • 실업교육 강화와 재수생 문제(사설)

    기운이 펄펄나고 총기가 초롱초롱한 청년 30만명이 좌절과 실의에 싸여 황금같은 시기의 인생을 녹슬게 하고 있는 것은,나라를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서나 또는 집안을 위해서나 막대한 손실이다. 어찌어찌 헤어나 새로운 길을 가게 된다하더라도 지치고 진이 빠져서 준락오병처럼 따라가는 「삶」밖에 안되는 경우가 더 많다. 진학 안한 고졸생들의 문제는,이제 더는 방치해 둘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극히 일부의 상위성적 집단을 말고는 거듭해봐야 승산이 거의없는 재수를 하겠다고 학원가를 방황하는 젊은이의 수가 수십만씩 되어가는 이 실체에 대한 해결의 길을 지금 모색하지 못한다면 점점 더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게 될 것이다. 혈기는 왕성한 데 현실적 억압으로 뜻을 펴기 어려울 때 젊은이가 가장 크게 유혹을 받는 것은 범죄이거나 퇴폐등 타락한 길이게 마련이다. 유능한 재목을 적소에 활용하지 못하는 순기능적 손실만이 아니라 멀쩡한 기둥감이 몽둥이가 되어 해를 끼치는 역기능의 화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문교부가 인문계 고교에서도 직업교육을 강화하고 실업계 고교교육을 대폭 확대하는 방향으로 고교교육과정을 개혁한다고 밝힌 것은 해마다 누증되는 재수생문제를 해소하고 3분의1의 진학생 위주로 다수가 희생되어야 하는 입시위주의 고교교육을 바로잡기 위함으로 보여 늦기는 했지만 이제부터라도 수습하려는 의지라고 생각되어 환영한다. 우리에게 있어 대학진학 과열풍토는 그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사회적 모순의 빌미가 되고 있다, 모든 과정의 학교교육이 비정상화하고,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난제를 만들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원천적으로 풀어나가기 위해서도 진학하지 못하는 고졸생들의 문제는 해결되어야 한다. 대졸의 고학력 인력은 남아 돌지만 고졸인력은 모자라서 못쓰는 우리 형편까지 감안하면 고교과정에서 직업교육을 이수시켜 취업의 길로 나서게 하는 것은 진작부터 연구했어야 할 일이다. 여상출신의 사무원을 한두사람 구하기 위해서 학교로 추천을 의뢰하면,출근버스나 사원복지등 여러조건을 따져 묻고 시원찮다 싶으면 『우리 학교에서는 추천할 만한 학생이 없습니다』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이미 금년에만 해도 실업계 고교진학을 희망하면서도 수용능력의 부족으로 인문계로 진학한 학생이 12만4천명이나 되었다. 이런 현상은 교육정책이 현실에 적절한 대처를 못해왔음을 드러내주는 일이다. 이런 욕구를 원활하게 수용하여 확대할 수 있는 방향으로의 개편이 시급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대학진학에 대한 뿌리깊은 집착이 해소될 수 있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해 주지 못한다면 여전히 「재수라도 하겠다」는 맹목적인 「반학생 반시민」의 수가 줄어들지 않는다. 대학을 나오지 않고는 좋은 신랑감도 좋은 신부감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풍토,대학이라도 나와야 현재보다 나은 신분상승의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는 생각을 떨쳐버려야 한다는 인식이 보편화 할 수 있지 않고는 고교교육정책의 개혁만으로는 성과를 거두기가 어렵다. 취업에 있어서만은 대졸보다 차라리 고졸이 속편한 시대가 되었으므로 이 조건을 잘 살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고질적인 난제인 재수생문제의 해결에접근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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