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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구대표팀 질책 그만/金炳局 고려대 교수·정치학(時論)

    21일 저녁. 뉴스가 시작하자 앵커가 차범근 감독의 경질 소식을 전한다. 기술위원회가 미숙한 팀 관리 및 경기운영에 대한 책임을 물어 대회 중간에 감독을 전격교체한다는 전갈이 파리 현지에서 날아온 것이었다. 한 평생을 축구로 살아온 차범근 감독으로서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같았을 것이다. ‘기술 부재’는 그가 태극 마크를 가슴에 달고 축구장을 휘젓고 다니던 청년시절부터 쌓아온 명예와 명성을 순식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어 놓기 충분한 판결이었다. ○희생양된 국민스타 그러나 더욱 안타까운 것은 경질 소식이 전해진 다음의 일이었다. 네덜란드 공격수가 한국 수비수를 제치고 골을 넣는 장면이 텔레비전 화면에 계속 비추어지고 대표팀에 대한 질책과 비난이 줄을 이었다. 한국 축구의 상징인 투혼마저 사라진 ‘최악의 졸전’이라는 관전평이 나오는가 하면 허탈감을 넘어서 ‘분노’의 수준에까지 이른 국민 감정 때문에 축구팀의 귀국길조차 순탄치 않을 지 모른다는 전망마저 점쳐졌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는 환란(換亂)에 바짝 움츠러든국민이 잠시나마 고통을 잊고 기를 펼 기회마저 사라졌다는 비난마저 가세하였다. 아무리 승자만이 살아남는 스포츠의 세계라지만 한 시대의 국민적 스타가 이렇게 추락하는 것은 모두에게 비극이다. 시련이 불어닥칠 때마다 ‘누군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여론에 떠밀려 한 시대의 영웅을 희생양으로 삼는다면 한국 축구는 불모지가 되고 만다. 스타가 없으면 자신의 인생 전부를 축구에 걸고 실력을 키우려는 ‘새 싹’이 돋아날 리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녀사냥 식의 경질은 문제의 본질마저 흐려 놓는다. ‘16강 진출’은 언론과 상혼 및 전문가가 저마다의 손익 계산 및 이해관계에서 조장한 허황한 꿈이었지,축구 그 자체에 대한 국민적 열정과 투자 및 후원 아래 착실히 준비되어온 플랜이 아니었다. 그 ‘거품’이 빠지자 이제는 모두가 차범근 감독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국민적 분노를 달래려 한다. 한국 축구가 오늘의 실패를 거울로 삼아 세계무대로 뻗어나갈 길을 스스로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에 책임전가 안될말 그러나 가장 안타까운 것은 역시 선수 각자의 상처받은 마음일 것이다. 국민은 한국 축구의 연패 행진을 지켜보면서 허탈해하지만 그 허탈감은 대회가 끝나면 금방 잊혀져버릴 한 순간의 감정밖에 되지 못한다. 하지만 바로 거기서 불거져 나오는 질책과 비난은 자신의 인생을 축구에 걸고 살아온 대표팀에게 영원한 상처를 남기는 비수가 되고 만다. ○2002년을 위하는 길 생애 통 털어 한번 출전할까 말까 하는 축구 대잔치에 일승의 신화를 창조하기 위하여 수년 동안 기술을 연마하고 체력을 키워온 선수 당사자로서는 경기 결과에 대한 여론의 평가가 결국 자신이 걸어온 인생을 총결산하는 최후의 심판이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 벨기에전이 치러지기 전에 달라져야 하는 것은 대표팀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더 이상의 질책이 없어야 한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꿈이환란으로 갈기갈기 찢겨질 때 느꼈던 아픔을 거울로 삼아 절망감에 젖고 슬픔에 잠긴 대표팀을 어루만져 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2002년이 밝아진다.
  • 병무비리 수사도 개혁 차원으로(사설)

    병무비리가 당초 국방부의 중간수사결과 발표 내용보다 훨씬 심각하다.구속된 元龍洙 준위로부터 정기적으로 상납받은 2∼3명의 장성외에 군단장급 고위 장성 2∼3명도 직위를 이용해 청탁한 혐의가 드러나 엄청난 충격을 주고 있다.병무청탁을 한 사회지도층 인사도 발표된 138명보다 훨씬 많은 400명선에 이르며 국회의원,변호사,기업체 대표,전 육군참모총장의 동생 등 웬만큼 돈이 있거나 힘쓴다는 부류의 사람들은 모두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군 당국은 그러나 전·현직 군고위 장성이나 국회의원·변호사 등은 청탁자 명단에 없다고 발뺌했다.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비리 불감증에 걸려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다.더욱 놀라운 사실은 청탁한 혐의를 받고 있는 군고위 간부들이 “사병 인사청탁 좀 했다고 인사조치한다면 해당자가 한두명이 아닐텐데 심하다”며 노골적으로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인 점이다.아직도 자신들의 행위가 얼마나 군 사기를 떨어뜨리고 국민들에게 실망과 분노를 안겨주고 있는 지 모르는 사람들이다.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못하고 ‘나만 왜 당해야 되느냐’는 식의 사고방식의 소유자들이 어떻게 자기희생과 무한 책임이 요구되는 군고위직에 오를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이번 병무비리 사건 수사는 단순한 범죄수사 차원을 넘어 군 개혁의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뼈를 깎는 아픔을 참으며 썩은 부분을 도려내야 할 것이다.사회 전반에 걸친 총체적 개혁이 요구되는 이 때 군이야말로 최우선 개혁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 사건은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이번 사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고구마 줄기처럼 새로운 비리 사실들이 드러나고 있어 그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조차 힘든 실정이다.멀쩡한 청년들을 정신병자로 가장하거나 자기공명촬영필름(MRI) 등을 바꿔치기 하는 수법으로 병역을 면제해준 건수만도 발표됐던 12건이 아니라 50여건에 이르며 이 과정에서 군의관들도 돈에 양심을 팔고 가담했다는 사실은 범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엄정한 위계질서와 군기가 생명인 군대에서 어떻게 일개 준위가 장성들을 ‘형님’이라 부르며 일부 장성들은오히려 준위를 ‘형님’으로 예우할 수 있는가.또 2∼3년마다 바뀌게 되는 순환보직인 병무청 파견 모병 연락관 자리를 元준위는 10년 동안이나 차지하며 수십억원을 착복할 수 있었는 지도 의문투성이다.군수뇌부의 비호와 뿌리깊은 비리커넥션이 없고는 불가능하다고 본다.이번에야말로 철저히 가려내지 않으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 존 던의 연가/김선향 지음(화제의 책)

    ◎낡은 전통 거부한 존 던의 시세계 17세기 영국의 형이상학파 시인인 존 던(1572∼1631)의 시세계를 그의 연시(戀詩)를 중심으로 살핀 연구서.학구적이던 던은 예리하고 논리적인 지성을 지녔으나 매우 감성적이기도 했다.던은 당시의 시류였던 궁정 연가나 페트라르카식 시와는 다른 자신만의 독특한 감성을 표현했다. 던은 종교적 갈등이 곧 정치적 논쟁이었던 시대에 살면서 구교도와 신교도의 잔인하고 무모한 희생을 지켜 보아야 했다.그런 만큼 그의 연가에 나타난 배반과 부정의 테마는 사랑에 관한 던의 사적인 생각이라기보다는 시대적이고 종교적인 변화와 함께 생각하고 의문하고 변화하는 인간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연애시에서 여자는 항상 이상형의 미인으로,남자는 시종처럼 끊임없이 연시를 지어 바치는 인물로 등장한다.연시 속에서 여인의 눈은 별,이마는 상아,머리는 금발 등으로 흔히 표현된다. 그러나 던의 연가는 이러한 낡은 전통을 거부하고 형식과 내용면에서 새로운 것을 추구했다.던이 쓴 연가의 혁신성은 무엇보다언어사용에 있다.던은 대화체로 된 극적 독백의 형식을 통해 서정시의 언어에 신선함을 안겨 줬다.또한 그의 연가는 명령이나 의문으로 시작되는 게 많다. 던은 청년기에서 40세경에 이르기까지 20여년의 세월을 두고 연가를 썼다.이 책에는 ‘시성(諡聖)’‘삼중 바보’‘튀크넘 정원’‘장기’등 55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한신문화사 1만원.
  • 병무비리 관련자 명단 밝혀라(사설)

    전·현직 군 고위 간부와 국회의원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연루된 병무비리 커넥션이 드러나 수사가 진행중이라는 보도는 충격적이다.이와 관련,국방부장관이 대국민사과 성명까지 발표하기에 이르렀으니 엄청난 사건임에 틀림없다.신성한 국방의무를 누구보다 앞장 서 지켜야 할 지도층 인사 자제들이 거액을 주고 군복무를 면제받거나 편한 자리를 얻는 것은 몰염치한 매국행위다.이번에야말로 그 명단을 빠짐없이 밝혀 우리 사회에서 추방해야 마땅하다고 본다.군당국은 병무비리가 어느 특정지역에 국한되지 않은 전국적 현상임을 강조하고 수사를 확대하는 한편 민간인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는 검찰에 의뢰했다고 한다.당연한 처사며 모든 역량을 집중해 망국적인 병무비리를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할 것이다. 도대체 이렇게 썩은 구석이 아직도 우리 군과 사회에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하루가 아까운 젊은 나이에 군대생활 3년은 누구에게나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그러나 이는 조국수호와 국민의 생존을 위해 건장한 청년이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의무다.여기에 예외가 있을 수 없다.그래서 대다수 젊은이들은 비록 군복무가 힘들다 하더라도 이 의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기꺼이 수행한다.그렇지만 일부 부유층이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오래 전부터 권력과 돈을 총동원해 자제들을 빼내고 있다.조국의 운명이 풍전등화(風前燈火)처럼 위태롭던 6·25전쟁 때도 유학 명목으로 미국 등지로 달아난 인사들이 많았다.우리나라 국회의원의 25%,그들 아들의 15.5%,재벌총수 아들의 52.4%가 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한 조사결과에서 우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국방의무의 현실을 본다. 예부터 전쟁이 나면 왕실가족 등 상류층에서 앞장 서 전쟁터로 달려가는 서구 선진사회의 전통과는 너무 대조적이다.오늘의 선진국 사회는 지도층 인사들의 이와 같은 희생과 솔선수범 정신이 바탕을 이루고 있기에 가능했다.사회지도층 인사로서 지켜야 할 의무를 그들은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해 대통령선거 기간동안 병역면제 문제가 큰 논란을 빚더니 이번에는 조직적인 비리의 실체가 드러났다.어떻게 육군본부의 준위정도가 이 엄청난 비리의 중심인물이 될 수 있는 지 개탄을 금할 수 없다.더구나 병역면제 5천만∼1억원,공익근무요원 판정 2천만원,카투사 선발 5백만∼1천만원,주특기 부여 및 입영연기 1백만원 등의 공정가격까지 정해져 10억여원이나 챙겼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성역없이 색출해 명단을 공개하고 근본적인 재발방지책을 강구하겠다는 국방부장관의 약속대로 병무비리를 완전히 뿌리뽑아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로 삼아야할 것이다.
  • 활과 리라/옥티비오 파스 지음(화제의 책)

    ◎노벨상 수상작가 파스의 시론집 멕시코 출신의 시인 옥타비오 파스(1914∼1998)의 시론집.파스가 평생 천착한 ‘시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주로 다뤘다. 좌·우 이념투쟁이 세계를 휩쓸던 1943년,그는 자신을 시인의 반열에 올려준 후견인이었던 파블로 네루다와의 ‘순수­참여 논쟁’에 휘말린다.파스는 외면적 진실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역사의 이름으로 내면적 진실을 희생시켜서도 안된다고 주장했다.젊은 시절 스스로 혁명가를 자처했고 사회주의 운동에도 가담했던 파스는 시와 역사라는 이질적인 두 가치를 조화시키기 위해 애썼다.이것은 그에게 ‘시인으로서의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문제로 이어졌다. 이 논쟁 이후 청년 파스는 당시 문단을 지배하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옹호하는 참여문학 진영에서 철저히 소외됐다.그는 결국 질식할 것만 같은 조국의 문단을 등진 채 ‘숨을 쉬기’위해 국외로 떠났다.파스가 스페인어권에서 열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시인이 되고,중남미를 대표하는 지성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젊은 시절 겪었던혹독한 정체성의 흔들림에 정면으로 맞서 그것을 극복해냈기 때문이다. 옥타비오 파스 전집(전5권) 첫 권으로 나온 이 책에 이어 시론집 ‘흙의 자식들·타자의 목소리’,시선집 ‘일상의 불꽃’,문화비평서 ‘고독의 미로’‘동양사상 및 예술론’ 등이 내년 6월까지 나올 예정이다. 김홍근·김은중 옮김 솔 1만5,000원.
  • 뉴딜정책 기수 프랭클린 루즈벨트:중(미국의 대통령 문화:4)

    ◎‘대공황’ 늪서 미국 건진 행동주의자/‘공황탈출’ 정열적 활동… 수백만 실업자 환호/국민에 새정책 배경·방향 설명… 전폭적 신뢰 허드슨강변 언덕에 위치한 프랭클린 루즈벨트 사적지 한복판에 위치한 루즈벨트 도서관에 들어서면 첫 전시실은 ‘대공황’(Great Depression)실이다.한 실업자가 일자리를 달라는 피켓을들고 서있으며 그 옆으로는 대공황과 관련된 각종 사진자료들이 가득 차있다.이같이 루즈벨트는 많은 업적 가운데서도 미국을 대공황의 늪에서 ‘탈출’시킨 대통령으로 대부분의 미국민들에게 기억되고 있다.이는 링컨 대통령이 미국을 남북 분열의 위기에서 구출한 업적에 버금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1932년 11월8일.‘뉴딜’바람을 몰고온 FDR(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애칭) 뉴욕주지사가 32대 미 대통령으로 당선됐다.그러나 그의 당선 자체가 사태 해결을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선거전문가들은 “유권자들이 루즈벨트를 선택한것이 아니라 후버를 반대했던 것”이라고 선거결과를 분석했다.사회의 암울한 분위기는 가시지 않았다.새대통령의 취임식이 거행될 이듬해 3월까지 아직 4개월이 남았으며 이 기간은 29년부터 시작된 대공황이 최악의 상황에 처했을 때였다.실업율이 최고로 치솟았고 대부분의 기업은 도산됐으며 설상가상으로 농산물 가격까지 급락했다.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는 경제상황은 사람들의 마음까지 포함한 모든 것을 꽁꽁 얼어붙게 했다. 당시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든 것은 현직대통령 후버와 당선자 루즈벨트사이의 불화였다.자신의 신념에 대한 편집증적인 고집을 갖고 있던 후버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힘으로 공황을 극복해보려 했다.그래서 루즈벨트 당선자에게도 그같은 자신의 입장에 대한 지원만을 구하려 했다.그러나 루즈벨트는 국면전환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후버에게 협조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자신이후버의 실정에 개입된 인상을 줄것을 두려워해 소극적인 자세로 임했다. 정권이양기 4개월 동안 현직 대통령과 당선자와의 공식적인 만남은 두차례로 기록돼 있을 정도로 두사람의 사이는 소원했다.당선 2주후인 11월22일 가진 첫만남에서 후버는 당면 경제현안이 아닌 ▲유럽의 대미 전쟁채무상환 ▲제네바 군축회의에서의 미국역할 ▲세계경제회의 개최 등 대외문제에 대한 지원을 구했다.대공황의 원인을 세계 경제침체 등 대외적 요인때문으로 생각한 후버는 대외문제 해결을 통한 공황 탈피를 추구했다.그것도 후임자에게 협조를 구하는 태도가 아니었고 자신의 견해를 강요하려 했다. 따라서 공황극복의 해결책을 국내적 문제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던 루즈벨트와는 협조가 불가능했다.마침내 두사람은 힘겨루기 양상을 보였다.의회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루즈벨트는 자신의 임기전이라도 균형예산과 농민지원을 위한 입법을 추진하려 했다.그러나 번번이 후버의 거부권에 부딪혔다.그때까지도 정부개입의 최소화만을 고집했던 후버의 입장에서는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의미하는 루즈벨트의 보수주의 회귀를 비난하며 뉴딜정책 공약의 포기 압력을 가해왔다. 두사람 사이의 관계개선을 위해 당시 헨리 스팀슨 국무장관은 외교문제의 협조를 구실로 하룻길이 넘는 백악관과 허드슨파크를 몇차례 오가며중재에 나섰다.그 결과 이듬해 1월20일 두번째 백악관 회동이 성사됐다.그러나 이자리는 두사람의 서로 다른 입장만을 확인하는 자리가 됐다.후버는 레임덕현상에도 불구하고 퇴임날까지 스스로 끌고 나가겠다고 다짐했으며 루즈벨트는 냉각기를 갖기위해 측근들과 11일간 플로리다 크루즈여행을 떠났다. 후버는 그해 2월18일 루즈벨트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 뉴딜정책의 포기를 다시한번 권유했다.지난해 여름까지 상승세에 있던 경기가 지난 겨울부터더욱 악화된 것은 루즈벨트와 민주당의 새로운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 때문이라는 것이었다.그러나 이 편지는 답장도 없이 묵살됐다. 사태는 더욱 악화돼 후버의 대통령 퇴임 1주일전에는 은행 인출이 급증,전국의 은행이 파산 위기에 몰리는등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그는 사흘전인 3월1일 다시 루즈벨트에게 편지를 보냈다.은행의 지불유예 선언을 위한 지지 부탁이었다.취임식을 위해 루즈벨트가 워싱턴에 도착한 2일까지도 사람을 보내 그 선언에 동의해줄 것을 간청했다.그러나 루즈벨트는 완곡히취임전의 모든 정치적 행동을 사양했다. 이들 두사람의 인연은 1차대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해군성 차관보로 있던 루즈벨트는 당시 상무장관을 역임하고 있던 8살 위인 후버를 존경,1920년 그가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나서주기를 원할 정도였다.후버가 공화당을택한 후에도 루즈벨트의 그에 대한 존경은 계속됐다.그러나 28년 선거과정에서 두사람의 사이는 갈라지기 시작했으며 후버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더욱 벌어졌던 것이다. 33년 3월4일 미국의 제32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루즈벨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는 것,후퇴에서 전진으로 돌아서려는 우리의 노력을 마비시키는 공포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라며 온국민의 ‘두려움’에서의 탈출을 강조했다.그리고는 먼저 은행을 살리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다음날인 5일부터 4일간의 전국적인 ‘은행휴업’(bank holiday)를 선포했다.국민들은 51세의 보다 젊고 힘있는 새대통령의 자신에 찬 목소리를 환호했으며 그가 펼칠 새정책에 대한 기대를 갖는 모습이 역력했다. 루즈벨트는 그동안 은행개혁입법을 마련,9일 의회를 소집해 통과를 얻어냈다.그리고는 보완을 위해 은행휴업을 13일까지 연장했다.12일에는 첫 라디오연설 ‘노변정담’에서 이번 조치에 대한 배경및 경과를 설명하고 다음 단계의 추진방향을 밝히면서 국민들의 협조를 구했다.국민들은 진솔한 대통령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으며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다.이같은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다음날 은행이 업무를 재개하자마자 끝없는 예금행렬로 나타났다.첫날 예금 수신고는 수년내 최초로 인출액을 앞섰으며 그같은 현상이 계속되면서 은행들은 정상영업으로 돌아서게 됐다. 루즈벨트는 9일 시작되어 6월16일까지 계속된 의회의 특별회기 동안 뉴딜정책의 골격이 된 수많은 법안들을 만들었다.국민들에 대한 대통령 자신의 직접 설득도 계속됐다.의회의 심의 속도도 훨씬 빨라졌다.이같은 ‘100일’동안의 행정부와 입법부의 박력에 찬 행동주의는 기업가들 뿐 아니라 대공황의 가장 밑바닥에서 희생돼온 수백만 실업자들로부터도 큰 환영을 받게됐으며 국민적인 자신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됐다. ◎FDR 취임 100일 주요입법 내용/청년 30만명 자원보존 업무 투입/조직범죄 양산하는 금주법 폐지/예금보험공사 설립… 저축자 보호 1933년 3월 FDR의 대통령 취임직후 소집된 100일 동안의 의회 특별회기중 통과된 뉴딜정책의 핵심이 된 대표적인 입법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민간자원보존단(CCC)창설:18∼25세의 빈민가정 청년 30여만명을 1차적으로 전국의 각지에 파견,도로건설·식목·홍수통제 등 자원보존 업무에 투입.뒤에 300만명까지 확대됨. ▲연방긴급구호법(FERA):주정부와 시정부 등에 빈민 구제사업을 위한 자금으로 5억달러를 직접 지원. ▲금주법 폐지:그동안 술의 제조와 판매를 급지함으로써 밀수와 밀주제조 및 유통을 둘러싼 조직범죄를 양산하는 등 사회문제화 됨.맥주 판매 개시. ▲테네시계곡 개발공사(TVA):독립된 공사인 TVA에게 테네시강 유역 7개주의 홍수관리시설 개발권을 부여,댐과 발전소를 건설하고 삼림보호,수운확보,토양개선,싼 전기공급 등의 사업을 하도록 함. ▲국가산업부흥법(NIRA):이 법의 시행을 위해 국가부흥청(NRA)을 설립,정부 감독하에 산업의 자율적인 규제를 통해 경제를 소생시키려 했음.규제에 대한 협력의 상징으로 ‘푸른 독수리’(Blue Eagle) 마크를 붙이도록 했으며 이 마크가 없을 경우는 불매하도록 함. ▲농업조정법(AAA):정부가 농산물에 대한 가격통제를 할 수 있고 과잉생산을 막기 위해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함.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은행의 파산시 일반 저축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 ▲주택소유자 자금 대부회사(HOLC):저당권에 대한 재융자 및 저당물 반환권 상실 예방을 목적으로 함.
  • 병역은 형평성이 우선이다/임춘웅 논설위원(서울논단)

    병무청이 병역법을 개정해서 군복무에 적합치 않다고 판단되는 신체적 조건을 가진 사람이나 학력미달로 군에 가지 않는 사람도 일정기간 사회봉사활동을 하도록 하겠다고 한다.현역 복무를 하지 않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국민된 의무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병무청장이 6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 나와 감사를 받는 중에 내놓은 아이디어다.참으로 잘된 생각이다.왜 이런 아이디어가 이제야 나왔는지 모를 일이다.국가에 대한 의무 부과는 형평성이 관건인 것이다. 하루가 아쉬운 한창 젊은 나이에 3년여나 되는 긴 시간을 소비하는 군복무를 좋아할 청년이 어디있으며 호랑이 보다도 무섭다는 세금 내기를 좋아할 사람이 어디있는가.그러나 그런 것들이 비록 힘들고 싫은 것일지라도 만인에게 공평하게 부과되면 아무도 불평할 수 없는 것이다. ○‘면제자 사회봉사’의무 묘안 문제는 언제나 그렇지 못한데서 비롯되는 것이다.국가가 국민에게 의무를 지우는 일에 공정치 못한데가 있게되면 그것은 곧 국민의 불만이 되고 나아가 사회불안 요인으로 쌓이게되는 것이다.신한국당 이회창 대통령후보의 두아들 병역문제도 평소 우리 국민들이 병역문제에서 그런 의혹을 가져왔던 터였기 때문에 이토록 일이 커진 것이다.병무행정이 공평하게 이루어져 왔다는 국민들 믿음이 있었다면 이후보문제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쳤을 것이다. 만일 이후보 본인이 주장하는대로 두아들의 병역문제에 한점 부끄러움이 없다면 이후보는 우리사회의 오랜 병역형평성 시비가 낳은 희생물이 되는 것이다.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인가. 우리나라 병력 수요는 연간 대략 30만명 정도다.군현역,전투경찰,교정시설 경비교도,군장교복무자를 모두 합친 숫자다.그런데 한때는 만 19세의 신체검사 대상이 연 60만명선에 육박할 때가 있었다.따라서 현역 징집 비율이 52%에 불과했다.다시 말하면 징집대상자의 반에 가까운 48%가 군엘 가지 않아도 됐었다는 얘기다. 의혹의 가능성은 당초 이러한 구조적 문제에서부터 싹텄다고 할수있다.그러나 보다 원천적으로는 병력공급이 달렸던 전쟁때도 세칭 특수층 아들들은 이런저런 방법으로 군복무를 빠져나갔던 사례가 얼마든지 있었다.이런 일들로 해서 병역의무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의혹의 눈길은 뿌리 깊은데가 있는 것이다. 96년의 경우 현역 징집률이 총징병검사자의 85.9%에 이르고있다.보충역을 빼면 지난해의 경우 순수한 면제자는 전체의 7.8%에 불과했다.부정이나 불공정의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들게 됐다. ○제도 투명성만으론 불충분 뿐만 아니라 96년부터는 징병검사장이 전면 공개됐고 올해 2월부터는 신체등위판정 심의위원회 제도도 도입됐다.그만큼 징병검사제도가 투명해진 것이다. 그러나 투명성만으로 충분하다고 할수는 없다.형평성이 확보돼야 하는 것이다.눈이 나쁠뿐 다른 사회생활에 아무런 불편이 없는 사람이 면제되는 상황에서 눈이 좋아 현역복무를 하는 사람의 불만이 없을수 없다. 그런 관점에서 병무청이 내놓은 병역법 개정 방향은 전적으로 옳다.특수한 신체 장애자가 아닌 사람은 누구나 병역의무를 공평하게 져야 하는 것이다.현역 복무가 어려운 사람은 그만큼 다른 사회봉사를 통해서 병역과 상응하는 의무를 지우면 되는 것이다. ○공익요원 영역확대 바람직 지금까지는 보충역의 공익요원 사회봉사 영역이 너무 좁아 남는 인원을 다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그래서 이번에는 공익부문 영역을 고아원 양로원 특수병원 등으로 넓히겠다고 한다.수요처를 넓히자는 것이다.이번 법개정에서는 공청회도 열고 전문가들의 의견도 충분히 수렴해서 더이상 불만의 소지를 남기지 않는 산뜻한 병역법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선거직이나 고위공직자에게는 본인은 물론 가족들의 병역사항도 공개하는 제도도 도입했으면 한다.본인은 물론 직계가족에 국민된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 고위 공직자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이렇게 하자면 현역복무를 하지 못하더라도 사회봉사를 통해 국민된 의무를 다할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할 것이다. 병역법이 사회정의의 차원에서나 국민의무의 형평성에서 더이상 문제가 없는 방향으로 잘만 개정된다면 이회창후보 두아들의 병역문제가 불러온 병역시비는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 폭력시위­치안부재(대선주자 국정비전을 듣는다:8)

    ◎“시위주동자 색출… 선량 학생과 격리를” 여야 대선예비주자 10명은 4일 서울신문사 국정 테마별 지상토론의 여덟번째 주제로 긴급 선정한 「한총련 폭력시위」와 「민생치안의 부재현상」에 대한 설문에서 한결같이 최근 한총련 시위의 과격성과 폭력성을 지적하고 소수 시위주도 핵심세력의 발본색원을 촉구했다. 신한국당 이수성 고문과 최병렬 의원 등 일부주자들은 건전한 시위문화 정착을 위해 법을 고쳐서라도 소수 핵심세력을 건전한 학생들로 부터 격리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다.이홍구 고문은 학생들에게 분단상황을 진지하게 고려,폭력행동을 자제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민생치안과 관련,여야 주자들은 시국치안 수요의 민생치안으로의 전환,장비개선 및 사기진작을 위한 치안예산 확충,경찰서와 파출소 증설 등을 방안으로 제시했다.신한국당 이홍구·박찬종 고문과 김덕룡 의원 등은 임기말 공직기강 확립을 강조했다. ◎이홍구 대표/당략 넘어 국회차원 대책 나서자 먼저 운명을 달리한 고 유지웅상경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폭력시위를 근절하기 위해 정부는 한총련의 실체를 정확히 밝히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순리다.과격시위 배후에 불순한 세력이 연계되어 있다면 철저히 가려내 사회와 완전히 격리시켜야 한다.정치권도 정략적인 차원에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여야가 협력해 6월 임시국회에서 국회차원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요즘같은 정권교체기에는 공권력 기강이 해이해지기 쉽다.공권력 기강이 무너지면 치안부재 상태로 연결되므로 기강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조직폭력배는 사회의 어두운 그늘에서 자라는 독버섯이므로 완전한 근절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공권력 기강이 바로 잡히고 대응전략을 잘 세우면 폐해를 현저히 줄일수 있다.조직폭력에 대해서는 두목급을 가차없이 응징하는 등 한시적이 아닌 무한 전쟁의 자세로 나가야 한다. ◎이홍구 고문/「희망의 정치」 되면 사회기강 선다 대학은 사회의 양심과 지성의 상징으로 합리적이고,사회가 공감할 수 있는 절차와 방법으로 견해를 표시할 수 있다.그러나 우리사회에서의 학생운동이 순수성과 합리성을 상실하고 다른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게 사실이다.전경과 학생들의 물리적 충돌을 방지하고 희생의 악순환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학생들도 우리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직시하고 폭력행동을 자제해야 한다.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분단상황에 대한 진지한 고려도 있어야 한다.폭력이 수반되는 행동양식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전하고 안심시키는 것으로 특히 치안확보가 중요하다.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흐트러진 사회기강을 바로 잡아야 한다.또 정치가 국민에게 믿음과 희망을 주고,시민단체들의 자발적인 참여도 중요하다.민생치안 분야의 예산을 증액,치안분야 경찰관의 사기진작도 필요하다. ◎이수성 고문/예산 쪼들려도 경찰력­장비 증강 먼저 젊은이의 죽음 앞에 애도를 표한다.지금의 학생운동이 과거 독재치하의 순수한 운동과는 명백히 다르고 우리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이념과 폭력으로 사회를 유린하고 있어 단호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본다.지금이야말로 치밀하고 엄정한 수사를 통해 한총련 핵심세력과 단순가담자를 분리해내고 범법의 경중에 따라 엄중한 사법적 응징과 선도를 병행,학생운영의 방향이 올바르게 정립되도록 해야한다.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게 정치의 제1 책임이다.우리의 치안역량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켜야 한다.예산상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경찰인력을 대폭 늘려야 하고 현대적인 방법,수사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경찰공무원의 노고에 걸맞는 사회적 대우를 해줌으로써 사기를 진작시키고 동시에 전문성과 자질향상을 꾀해야 한다.또한 우리사회의 도덕풍토를 바르게 세우기 위한 시민운동의 육성,지원도 필요하다. ◎이한동 고문/“정권말인데…” 공복 복지부동” 경계 학생들이 아직도 이념적 미망에 빠져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한총련 핵심간부와 소극적 시위참가자를 분리시키고 대학 당국에도 시위문화의 개선을 위해 노력해줄 것을 요청해야 한다.최근 연세대의 휴업령 검토나 교수들의 자발적 반대움직임은 긍정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다.이제 한총련 문제는 근본적으로 대학교수나 교직원,그리고 선량한 일반학생들이 앞장서서 풀어나가야 하는 문제이며,학생들의 불법폭력시위를 방치하는 것은 법질서와 상식에 대한 도전으로 생각한다. 치안부재의 근본 원인은 공권력의 복지부동에 있다.특히 정권말기에 무사안일하게 하루하루를 넘기자는 공무원들의 자세가 문제다.공무원들의 근무자세를 잡는데는 대통령의 확고한 리더십이 중요하다.장기적으로는 공무원들이 자발적으로 일하도록 공무원사회에도 성과급 등의 경쟁원리를 도입해야 한다. ◎박찬종 고문/반체제 목청엔 분명한 선 그어야 일반적으로 민주사회에서 시민의 시위권은 헌법적 권리이지만 중요한 전제요건은 공공의 안녕·질서를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이뤄져야 하며 수반된 사회적 책임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과거 시위가 직·간접적으로 국민의사의 배출구 역할을 해온 배경 때문에 아직 상당수의 국민들은 시위에 대해 정서적 호의를 갖고 있다.하지만 폭력으로 법질서를 유린하고 체제의 안정을 부정하려는 시위에 대해서는 용인의 자세보다는 분명한 대응이 있어야 한다. 공권력의권위는 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의 회복과 직결된 문제이고 국가와 정부의 영이 엄정하게 정립되는데서 국가공권력의 권위가 출발하는 것이다.현실적으로 장비지원,처우개선 등 민생경찰력의 질적인 증강을 위한 조치가 필요하며 경찰의 주요 업무비중을 민생치안 분야로 이동하여 치안경찰관들에 대한 진급과 지원을 확대,사기를 진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병렬 의원/공권력 실감 나도록 강력히 대처 학생시위의 와중에서 불상사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시위의 과격성과 폭력성에 있다.따라서 시위와 진압과정에서 젊은이들의 희생이 되풀이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시위의 과격성과 폭력성을 없애는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지난해 연세대 사태에서도 그 실상이 드러났듯이 한총련 시위 핵심세력의 행동양태는 도시게릴라 수준이다.이들에게 평화적 시위나 선진국의 시위문화를 강조해봐야 소용없다.발본색원을 위해서는 법이 미비하면 보완해서라도 이들 소수 핵심세력을 선량한 학생들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 경찰력을 국가의 기본 책무인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에 집중시켜 범죄와의 전쟁을 벌여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폭력시위를 진압하는 일에 힘을 소모해서는 안된다.특히 조직범죄는 공권력의 힘으로 철저히 분쇄하여 공권력의 두려움을 실감하게 하는 방법으로 막아야 할 것이다. ◎김덕룡 의원/운동권 이슈 안되게 여야 성실을 지난날 우리 학생운동이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것은 시대정신을 반영해 왔기 때문이다.그런데 얼마전부터 학생운동이 위험한 주장과 극렬한 시위로 치닫고 있어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치고 있다.폭력화한 학생운동과 이에 대한 경찰의 강경진압의 대결 속에서 아까운 젊은이가 희생되었다.악순환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우선 평화적인 시위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그리고 학생운동도 이제는 방향을 환경운동,소비자운동 등 사회발전적인 분야에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물론 정치가 학생운동의 소재가 되지 않도록 여야합의를 이루어가는 것도 선결과제다. 치안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시민정신이 절실하다.구체적인 대책으로는 첫째,범죄유발환경요인을지속적으로 제거해야 한다.둘째,경찰의 모든행정을 민생치안 중심으로 운영해야 한다.셋째,지·파출소를 증설하고 인력 및 예산을 보강해야 한다. ◎이인제 지사/“집시법 등 타당한가” 정비 서둘때 학생시위문화는 권위주의적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정치적 저항운동의 성격이 강했고,따라서 과격한 성격도 지니고 있었다.이제 시대적 상황은 많이 변했다.학생운동의 방법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오늘의 폭력적인 학생운동을 대다수 국민들은 외면하고 있다.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학생운동은 생명력이 없는 만큼 폭력적인 학생시위는 점차 사라지리라 본다.건전한 학생시위문화 형성을 위해서는 민주시민 교육이 강화되어야 하고 동시에 시위관계법의 현실성과 타당성을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국민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울타리 역할을 해주는 것이 국가의 제일 큰 의무다.오늘의 공권력 부재현상은 사회위기의 총체성을 대변하는 것이다.이럴 때일수록 민생치안의 확보가 시급하다.경찰뿐만 아니라 각층 공익 근무요원도 민생치안과 연결시켜 활용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민생치안 확보를 위한 시민의 자체적 운동도 전개되어야 한다. ◎김대중 총재/제도의 장 모여들게 청년포럼 등 더 마련 남북청년교류 지원,「국회­청년방문의 날」 제정,청년정치포럼 개최 등 대학생 등 청년이 정치에 제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집단적 시위를 통한 의사표현을 줄여나가야 한다.또 폭력시위를 자제하는 등 선진적인 시위문화 정착에 힘을 쏟아야 한다.반면 경찰은 우선 평화시위를 보장해야 한다.전투경찰대설치법상 시위진압에 동원할 수 없는 작전전투경찰을 동원하고,경찰장구가 아닌 진압용구를 사용하는 등 공격 중심의 강경진압 형태 역시 개선해야 한다. 정권말기 사회기강 해이 등에 편승하여 성폭력·조직폭력·학교폭력 등이 급증하고 있는데,우선 경찰수사의 독자성을 확보해야 한다.또한 시국치안 중심의 경찰행정을 개선해야 한다.따라서 시국치안 인력 및 예산을 민생치안으로 전환하고,전문수사인력 및 수사장비를 확대해야 한다.경찰서와 파출소도 늘려야 한다. ◎김종필 총재/극렬세력 확산 빌미 안보불감증 큰 문제 한총련의 실체는 북한의 대남 적화전략에 입각,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면서 북한의 연방제 통일이념을 신봉하고 있다.극렬세력의 확산은 우리 사회에 만연된 안보불감증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국민들이 다시 한번 굳건한 대북,대공 안보태세를 가다듬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장기적으로는 중등교육에서의 건전한 통일 및 시민교육을 정립해야 한다. 치안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민생침해 범죄를 근원적으로 줄여나가는 방안들이 강구돼야 한다.이를 위해 경찰의 현장과 방범위주의 수사가 필수적이며,경찰의 인력과 장비를 합리적으로 활용하는 전문화 및 과학적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조직폭력 등 강력사범에 대해서는 영상정보를 컴퓨터에 입력해 수시로 검색 및 조회가 가능하도록 하는 「강력사범 영상정보 시스템」을 활성화해야 한다.
  • 망명결심후 황 비서의 메모·서신내용 요약

    ◎“주체사상 학설 왜곡… 독재 무기로 활용”/“평화통일 앞당길 수만 있다면 희생 각오” 황장엽은 지난해 망명결심을 굳힌뒤 자신의 심경과 남북에 대한 상황인식 등을 담은 문건을 11월 10,13,15일 등 세차례에 걸쳐 작성,중개자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월간조선이 입수,공개한 이들 문건을 요약한다. 〈11월10일자〉 1.원래 주체사상은 김일성주석의 이름으로 마르크스주의를 극복하고 인간의 운명개척의 길을 밝히기 위해 창시된 것이다. 그러나 통치자들의 이기주의로 말미암아 이 학설은 왜곡되어 독재의 무기로 이용되고,남의 청년학생들을 기만하는데 이용되었다. 지금 짬짬이 써놓은 글은 만일의 경우를 고려하여 생각을 그대로 쓰지 못한 점도 있고,방조자도 없이 짬시간에 쓰다보니 논리적으로 다듬을 시간이 없었다.당면하여 이남의 주사파 학생들과 지하조직 일군들을 계몽시켜 그들이 북의 가짜 주체사상 선전에서 해방되어 진짜 주체사상을 체득하도록 하는데 참고자료로 이용할수 있을 것이다. 2.남한에서 정치적으로 나서고 싶지 않다.지금 얼마 남지않은 여생,가능하다면 주체사상을 더 알기쉽게 정리하여 조국인민에게 남기고 싶다. 3.거사는 신중히 하기 바란다.(북한은)무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여 왔다는 것,사람들이 다년간 오염되고 기만당하여 왔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4.잠수함사건 가지고 회담하자는 것,4자회담 참가 가능성 있다는 것 다 거짓임.절대 기회 걸지 말것. 5.명년 7월에 가서는 이문제를 단행할 것이 예견됨.그러면 할일 없게됨. 〈11월13일자〉 우리 민족을 전쟁의 참화에서 구원하고 나라의 평화통일을 앞당길수 있다면,그리고 세계 력사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다 산 자기생명을 버리는 것은 더말할 것도 없고 가족과 동지들의 가슴아픈 희생까지 각오하고 있다는 것.경제가 파탄되고 통치기반이 약화됨에 따라 당국의 경계와 질투심이 더욱 고조됨.당국은 금년 5월9일을 계기로 나의 사상이 자기의 통치체제에 맞지 않는다고 하면서 공격을 개시하였으며 나에 대한 감시를 집중하고 있음.그러므로 현직에 그냥 머무러있는 것은 기대할수 없음.늦어도 6개월이내로 결론이 내릴 것같이 생각됨. 지금 지위에서 물러나서도 안전하게 살수 있다면 큰 다행이지만 나와같은 요직에 있다 물러나면 그대로 두지 않는 것이 상례로 되고 있음.당국이 꾸며낸 자료에 의하여 공개적으로 규탄받고 죽는 것보다는 그전에 자결함이 여로모로 유리함. 2월에 큰 행사가 있으므로 그때까지 나를 리용하고 소문내지 않고 내적으로 처리하려고 할수 있음. 그러나 어느때 문제가 제기될지는 예측할 수 없음. 〈11월15일자〉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서두를 필요가 없으며 혼자 희생되여도 후회할 것이 없음.그러나 전쟁이 일어나는 길밖에 출로가 없는 조건에서 어떻게 전쟁을 미리 방지하거나 일어나는 경우 손실을 최대한으로 주리겠는가.학생들과 지하조직의 역할을 어떻게 저지시키겠는가 하는 문제가 중요문제로,민족의 운명문제로 제기됨.한편 전쟁준비를 마지막으로 다그치면서 군단장들까지 검토하는 조건에서 우리 지위가 안전하다고 볼수 없음.당국이 지금 대체로 다 파악하고 더 활동정형을 감시하기 위하여 손쓰지 않을수도 있음.그러므로 명년 2월에 가는 것이 허용되는 경우 그 기회를 리용함이 제일 중요할 것같이 생각됨. 지금 허다한 사람들을 마구 총살함을 폭로하면서 반체제인사들을 교환할데 대한 제안을 내놓는 것이 좋을 것같이 생각됨.그들(남의 반체제인사)은 북에 오면 다 개조되든가 죽게 됨.그러나 기만당한 상태에서 남에 있으면 위험한 존재임. 민족의 운명이 지켜질수 있도록 무거운 짐 지고 잘 다녀오시오.
  • 황장엽 망명­자필서신 요약

    ◎“굶어죽는 북은 사회주의 아닌 봉건주의”/김부자 미신적 숭배 강요… 침공땐 남 잿더미로/학생소요·총파업 한심… 노동법개정은 잘한일/북 침략대응 군·안기부 강화­강력한 여당 필요 북한의 황장엽 당비서는 12일 망명을 신청하기 훨씬 전인 지난달 2일 그의 망명동기로 해석될 수 있는 자신의 심경을 담은 서신을 작성,함께 망명신청한 김덕홍을 통해 중국에서 무역업을 하는 한 한국인에게 전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A4용지 13장 분량인 서신에서 황은 북체제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함께 남한에 대한 여러가지 견해를 밝히고 있다.다음은 월간조선이 입수해 공개한 황의 서신 요지이다. 남북간의 대립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이 아니라 자본주의와 봉건주의 사이의 대립이다.지금 북은 사회주의와 아무런 인연이 없다.인민들,노동자,농민들,지식인 등이 굶어죽는 사회가 어떻게 사회주의 사회로 될 수 있겠는가. ○운동권학생 어이없어 후계자(김정일)는 날 때부터 「광명성」으로 태어나 자기 아버지의 지위를 계승하기로 하늘이 결정한 것으로 선전하고 있다.이들 부자를 신격화하기 위한 형용사가 모자라게 되자 자연현상까지 위대한 장군님과 결부시켜 신비화하고 있다.소련에서는 스탈린에 대한 개인숭배가 비판되고 그후 다른 사회주의 나라 등에서도 민주화문제가 제기되고 있으나 북은 반대로 개인에 대한 숭배를 절대화하고 이른바 수령에 대한 절대적 숭배를 요구하는 수령관을 당 건설과 모든 당 활동,모든 정책작성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소위 조직생활이 되는 것은 아침부터 수령을 찬양하고 수령께 충성을 맹세하는 것으로 일관되어 있다.남의 청년학생들이 북이 사회주의가 아니고 봉건주의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북에 대하여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북의 인민들은 지금 최악의 고통을 겪고 있다.양곡이 약 2백만t이 모자라는데 군량미는 무조건 내야한다 하니 농민들이 자기 식량으로 남겨놓은 몫에서 3개월분을 떼 군량미로 바치고 있다.무단결석하는 학생들이 부지기수다.무자비한 탄압과 허위와 기만으로 충만된 암흑의 땅에서 인민들은 전전긍긍 목숨을 보존하기 위하여 위대한 장군님 만세를 부르고 있다.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실현하자면 남북간의 차이를 하늘과 땅 차이로 만들어야 한다.아마 남이 정치적으로 통일되고 경제적으로 인구 1인당에서 일본을 따라잡게 되면 평화통일이 실현될 것이다. 남의 경제가 일본을 따라잡자면 정치적으로 안정되어야 했는데 지난 8월에는 대규모 학생소요가 일어났고 또 이번에는 노조에서 대규모적인 파업을 일으켜 경제발전에 지장을 주고 있다.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이며 가슴아픈 일인가.도탄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북의 애국주의적 입장에서 이런 현상을 바라보면 미련하기 짝이 없다.그러나 그들이 왜 그렇게 정치적으로 암둔한 행동을 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북의 마수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하고 청년학생을 비롯한 대중관리,대중장치를 소홀히 한 남의 정치인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비판하지 않을수 없다. 남조선의 정치가 이렇게 약해가지고서는 경제 발전속도를 높이고 문제를 해결할수 없으며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 문제도 해결할 수 없고 잘못하면 북의 독재자들,군국주의자들의 침략의 희생물로 될 우려까지 없지 않다. ○학생 무단결석 부지기수 남의 정치를 바로잡기 위하여서는 우선 두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그 하나는 남을 불바다로 만들 기회만 노리고 있으며 남을 내부로부터 와해시켜 보려고 모든 힘을 다하고 있는 북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한 투쟁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군대를 강화하고 안기부를 강화하는 것이다. 정권교체에 관계없이 안기부를 군대와 같이 강화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안기부 성원들을 양적으로 늘리는 것보다는 그들의 사상이론수준과 기술실무수준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안기부일군 양성대학에 수재들을 받아들이고 안기부 일군들의 대우를 높이며 그들의 사회적권위를 높여주어야 할 것이다. 남의 정치를 바로잡기 위하여서는 강력한 여당을 건설하는 것이 필요하다.여당의 정치수준이 높으면 각계각층을 통일 단결시킬수 있고 학생소요나 노동자들의 파업같은 것은 얼마든지 정치적 방법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안기부법과 노동법을 개선하여 국회에서 통과시킨 것은 좋은 일이지만 여당이 각계각층속에 들어가 정치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이는 사업을 선행시켰더라면 이번과 같은 대중적 소요는 미연에 방지할수 있었을 것이다. 당면하여 남조선 정치를 바로잡기 위하여서는 강력한 여당을 건설하고 안기부를 결정적으로 강화하는 두가지 문제를 기둥으로 틀어쥐고 힘을 집중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 두가지 기본 문제를 해결하면서 북에 대하여 올바른 선택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①복지사회 건설 구호를 내놓고 남의 각계 각층을 단결시키는 정치에 힘을 집중하는 것이다.실업을 없애고 인민생활을 안정시키는데 필요한 사회시책을 실시하는데 큰힘을 돌린다.여당은이러한 정책의 정당성을 대중속에 들어가 널리 선전한다. ②대북정책 통일문제를 국가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에 놓도록 한다.북은 지금 식량난이 너무 심하고 경제가 마비상태에 있기 때문에 당장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겠지만 전쟁준비를 첫자리에 놓고 모든 일을 꾸미고 있다.남이 아무리 경제를 발전시켜도 북의 침공을 받게 되면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된다는 것을 전체국민이 인식하게 하여야 한다.잠수함사건이 일어나고 북이 보복하겠다고 떠들때 남의 정치상태가 호전되었었다.남의 정치인들 뿐아니라 기업가들,지식인들,노동자,농민들이 북의 침공의 위험성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야수를 앞에 두고 적수공권으로 서로 싸우고 있는 2중적으로 어리석은 과오를 범하는 것이다. ○외교로 북 고립시켜야 북이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북의 비참한 생활형편,포악무도한 독재의 후과를 남측이나 미국 일본이 정확히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그래서 북은 미·일 관계를 생명같이 여기고 있다.북의 정책은 밖으로부터 자기 내막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안개가 낀 흐린 상태로 만들고 북의 인민들이 외부로 보지 못하게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버리는 것이다. ③대외적으로 북을 최대한 고립시키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남측이 대국들과의 관계에서 더 겸손한 자세를 가지는 것이 좋다고 보며 북의 고자세외교를 자꾸 조장시켜 더욱 고립시켜야 한다.
  • “계엄군 과잉진압이 시민들 감정격화”/5·18 항소심 이모저모

    ◎검찰·변호인단 공판내내 신경전 17일 열린 12·12 및 5·18사건 항소심 3차공판에서 검찰측은 5·18피해자와 목격자를 증인으로 내세워 계엄군의 과잉진압을 부각시킨 반면 변호인측은 총기사용의 불가피성을 두둔하는데 주력했다. 이날 공판에는 전남도청 사수대로 활동하다 징역 7년을 선고받은 피해자 이양현씨(47·사업)와 동아일보 전남도청 출입기자로 현장을 목격한 김영택씨(60)가 증언대에 섰으며 지난 15일 재판부로부터 「피해자진술권」을 따낸 강길조씨(54·회사원)가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5·18피해자가 증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씨는 『진압군이 현장에서 붙잡은 시위대를 팬티만 입힌채 10여명씩 줄줄이 묶어 트럭에 매달아 끌고 다님에 따라 시민들의 감정을 격화시켰다』고 주장. 김씨는 『5월21일 하오 1시 정각 도청 스피커에서 애국가가 연주되자 공수부대원들이 일제히 발포했다』며 『공수부대원들은 퇴각하는 시위대에게 정조준 사격을 가해 3∼4명이 쓰러지는걸 목격했다』고 증언. 변호인단은 그러나 『공수부대원들의발포는 시위대가 관광버스와 장갑차를 몰고 공수부대원쪽으로 돌진해 1명이 깔려 죽었기 때문』이라며 『애국가는 도청직원이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틀었다』고 주장. 변호인단은 또 『당시 계엄군은 M16소총을,시민군은 칼빈소총을 사용했는데 민간인 희생자중 26명이 칼빈총상을 입었다』고 지적. 한편 피해자 진술에 나선 강씨는 『5월20일 광주역앞 차량시위때 전남대 강당으로 끌려온 한 청년은 대검에 머리를 찔려 죽었다』고 증언. ○…공판전부터 강씨에 대한 피해자진술권 채택여부를 두고 승강이를 벌인 검찰과 변호인단은 공판 내내 상대방의 말꼬리를 잡는 등 시종 신경전을 전개. 상오 재판이 끝난 뒤 『군인들이 과격하게 진압하니까 시민들이 저항한게 아니냐』는 일부 방청객들의 항의에 석진강 변호사는 비꼬는 말투로 『검찰에게 물어봐라』고 하자 김상희 부장검사는 『왜 자꾸 검찰을 걸고 넘어지느냐』며 역정을 내기도.〈김상연 기자〉
  • 군부는 “충성” 주민은 “못살겠다”/북한 반체제운동 실태

    ◎군­김정일 배려 각별… “언제라도 남침” 맹훈련/주민­반김정일 전단배포 등 체제불만 표면화 북한의 식량난이 가중되면서 북한 주민들의 김정일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이에 따른 반체제 움직임도 늘고 있다.그러나 군부에 대한 김정일의 배려는 특별해 군인들은 먹는 것에 대한 불만은 크지 않다고 박철호씨 등 귀순자 3명은 12일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지난 94년초 평남 성청군과 양덕군 등에는 「김일성 김정일 망할 날이 멀지 않았다」 「청년들이여 때는 왔다.일어나 싸우자」는 전단이 배포됐다.북한 당국은 이 사건을 「320호 사건」으로 이름 짓고 대대적인 수사를 전개해 주모자를 검거해 처형했다. 지난 3월말에는 원산 조선소안에 건설된 「김일성 영생탑」이 누군가 설치한 폭약으로 완전 폭파됐다고 얼마전 귀순자 정순영씨(37·미용사)도 증언했었다.물밑에서 암암리에 진행되던 반체제 움직임이 표면화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지금 『먹을 것이 없어 죽을 지경인데 배급도 주지 않고 금수산기념궁전,김일성영생탑 등 쓸데없는 상징물 건설만 하고 있다』『김정일만 믿다가는 다 굶어 죽는다』『정치하는 것이 유치하고 김일성만 못하다』고 불평을 토로하고 있다.또 군당집회 때 일부러 정전사고를 내는 등 체제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귀순자들은 전했다. 하지만 이같은 움직임도 삼엄한 감시와 통제로 아직 조직적으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김정일은 식량난으로 각종 범죄가 늘어나자 1년 가량 교화소에 보낼 범죄자를 이제는 10년 동안 교화소에서 지내도록 하는 등 형량을 강화해 막으려 하고 있다. 주민들의 불만에 비해 군부의 불만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편이다.김정일은 군 최고사령관에 취임한 이후 훈장과 훈시,격려를 통해 군의 사기를 높여주고 있다.주민들은 김정일이 군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고 불평한다. 북한군의 사기는 김정일의 배려로 높다고 한다.김일성 통치 때와 마찬가지로 김정일이 명령만 내리면 남침할 각오가 돼 있다는 것이다.훈련의 강도도 높다.북한 주민들은 군량미만 풀어도 식량난은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다. 기업소 지도원급 이상의 계층도식량난을 느끼지 않는다.이들과 일반주민들과의 괴리감도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김정일은 정치보위부 간부들에게 승용차를 주는 등 배려를 하고 있다.보위부 직원들은 자신의 직책을 유지하려고 무고한 주민들을 희생시킨다는 것이 귀순자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 수마에도 안꺾인 두 군인정신

    ◎이종우 소위­폭우속 순찰중 철책에 깔려 참변/박내만 소령­외아들 수해로 잃고도 철야근무 소대원들의 안전을 돌보다 산화한 소대장.아들의 주검을 뒤로 하고 피해복구에 나선 참모장교.집중호우로 장병들이 산사태에 매몰된 강원도 철원지역에서는 참다운 군인정신을 보여주는 사례가 잇따랐다.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남방한계선을 지키는 최전방초소 소대장 이종우 소위(23·3사 32기·명지전문대졸).그는 27일 상오 억수같이 퍼붓는 장대비에 혹시 산사태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철책선을 둘러보고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혼자 막사를 나섰다.소대원들을 이끌고 방금 철야근무를 마친뒤였다. 이소위는 그러나 소대막사에서 불과 20m 떨어진 남방한계선에 도달한 순간 폭우로 지반이 약해진 철책이 갑자기 무너지는 바람에 철조망에 깔려 숨지고 말았다.순찰을 나선지 30여분만인 상오 9시쯤였다. 이소위의 시신은 소대장이 실종된 사실을 뒤늦게 안 소대원들이 수색끝에 이날 하오에야 발견됐다.3년내 소설가로 문단에 등단하겠다는꿈을 키우며 습작을 게을리하지 않던 문학청년 이소위는 얼마전 스물세번째 마지막 생일을 맞았었다.그의 좌우명은 「피할 수 없거든 이를 즐겨라」였다고 한다. ○…육군 승리부대의 민심참모인 박내만 소령(36·육사 40기)은 26일 밤부터 피해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밤샘근무를 하다 27일 아침 아들 윤화군(7세)이 실종됐다는 청천벽락같은 소식을 들었다. 이날 상오 7시쯤 가족이 사는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군인아파트에 집채만한 물줄기를 타고 흙더미가 쏟아지며 산사태가 덮쳤다는 것이다.부인과 두살바기 젖먹이 딸은 흙더미에 휩쓸리며 집밖으로 튕겨졌으나 아들의 모습은 끝내 보이지가 않았다. 박소령은 아들을 찾았으나 발견되지 않자 집중호우로 17명의 사망자를 낸 부대로 다시 복귀,피해상황과 희생자구조에 다시 나섰다.이튿날 박소령은 아파트에서 4백m쯤 떨어진 들판의 비닐하우스 옆에서 차갑게 식은 아들을 발견했으나 『나만 당한일이 아니다.아들 죽은 것과 군인의 일과는 별개이다』며 다시 복귀,예하부대 순찰과 수해예방 조치에 나섰다.박소령은 결국 『아들의 영안실을 지키라』는 사단장의 강제명령에 따라 아들과 장병들이 안치된 국군 215병원 영안실로 발길을 돌렸으나 솟구치는 슬픔을 억누리지 못해서인지 다시 영내 재해반으로 돌아갔다.〈황성기 기자〉
  • “아직도 꿈속엔 네얼굴이…”/박용현 사회부 기자(현장)

    ◎가족들 오열 그치지 않는 희생자 분향소 『저는 아직 엄마가 돌아가셨다는게 믿어지지 않아요.여자 목소리나 구두소리가 나면 엄마가 온줄 알고 나가보곤 해요』 사랑과 그리움과 절망이 한데 엉크러져 흐느끼는 곳 「삼풍」.부모와 자식과 연인을 잃은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이 곳을 찾는 귀소본능을 얻었다. 28일 서울 서초구 서초4동 1685 삼풍백화점 주차장에 마련된 희생자분향소.서너명의 어머니들이 주저앉아 먼 세상으로 떠나버린 딸의 이름을 부르며 아직도 솟아오르는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장마비가 가건물 지붕을 뚫고 들어와도 젖은 자리에 몸을 누이며 벌써 며칠째 이 곳을 뜨지 못하고 있다. 혜숙,수희,은주,선미,보순,예지,미란,수진….딸의 위패를 볼때 느끼는 심정은 「어미」가 아니면 알 수 없다고 했다. 결혼을 앞두었던 딸(당시 26세·1층 가정용품매장 근무)을 잃은 박오순씨(55·여·경기도 성남시 성남동)는 사고가 난지 3개월만에 딸의 시신을 찾고 주위로부터 「축하인사」를 받은 일이 가슴에 사무친다.결혼식장에서 하례를 받을때 어떤 표정을 지을까 고민했던 박씨로서는 온전치도 않은 딸의 주검 앞에서 『축하한다』는 말을 듣는 것이 지옥의 고통이었다.한줌밖에 남지 않은 딸의 몸뚱아리를 고스란히 가슴에 묻었다. 분향소에는 지난 어린이날 아들을 찾았던 어머니의 모정도 그대로 남아있다.「며칠전 네가 꿈에 보이더라.손바닥이 많이 아프다고.그렇게 아픈데 어떻게 하나 걱정이 돼 엄마는 견딜 수가 없구나.빨리 낫게 약 사다 먹어라.오늘은 어린이 날이다.어렸을때 못사준 것 지금 사왔으니 가지고 놀아라」사진속에서 학사모를 쓴채 웃고 있는 김병건씨의 위패 옆에는 메모지와 함께 하얀색 장난감자동차가 놓여있었다. 애인의 영정 앞에 「우리의 사랑은 아직도 살아있다」며 붉은 장미를 바친 청년의 텅빈 마음과는 달리 무너진 A동자리는 모두 흙으로 메워졌다.무심히 자란 잡초가 발길에 채이는 「거대한 무덤」 앞에서 아내를 빼앗긴 중년의 사내는 움직일줄 몰랐다.흐린 날,담배연기도 무겁게 낮게만 흩어졌다.
  • 피아니스트 신수정(이세기의 인물탐구:97)

    ◎14살에 데뷔한 모차르트 연주 명인/조기교육 1세대… 초등교부터 각종 콩쿠르 입상/“생명이 있는 연주” “영혼이 깃든 선율”로 청중매료/78년 도미… 지나친 연습에 근육다쳐 한때 연주생활 중단도 「작품에 헌신하고 자기자신을 성찰할줄 아는 사람만이 모차르트를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알로이스 글라이더가 쓰고 62년 독일 유수의 출판사인 로볼트사가 출판한 「볼프강 아마데 모차르트」에 나오는 마지막 구절이다.「새로운 광채를 만들어낼 뿐 아니라 다이아몬드처럼 차갑게 빛나는 하얀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모차르트 연주자는 순수한 심성을 지니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피아노의 마음을 아는 수많은 별중에서도 특히 신수정을 「모차르트 피아노연주의 명인」으로 꼽는 까닭은 「그의 때묻지 않은 동심과 완전에 도달하려는 음악적 몰입,그리고 음악의 본질만을 끌어내는 투철한 예술정신」이 작곡자의 청결과 천진난만과 투명성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와 모차르트의 인연은 특별히 남다르다. 56년 1월27일,모차르트탄생 2백주년이 되던 날,서울 안국동 풍문여고 강당에서 그는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20」을 연주했고 그해 3월,「천재소녀」라는 타이틀과 함께 서울시향의 전신인 해군교향악단과의 협연으로 음악계에 화려하게 데뷔했다.그때 나이가 14살.이후 수많은 리사이틀과 런던필·도쿄필·NHK오케스트등 세계적 오케스트라와의 협연과 지난 91년 모차르트서거 2백주기 기념행사에서도 9회에 걸친 「피아노협주곡 전곡연주」로 그는 모차르트만의 「명징과 영롱」을 거침없이 안겨주었다. ○피아노협주곡 전곡 연주 음악애호가이면 누구나 한번은 모차르트에 빠지거나 그 「낭랑하고 정치하면서도 유연한 음향」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특히 창작의 절정기에 씌어진 「피아노협주곡 20번」은 밝고 화려한 다른 곡과는 달리 작곡자의 애환이 담긴 「명작중의 명작」으로 피아노가 분산화음을 뿌리는 알레그로 아사이의 론도와 오케스트라와 피아노의 대화,생동감이 넘치는 D장조로 클라이맥스를 꾸미는 찬란한 종결이 일품이다. 그중에서도 신수정의 연주는 「올바른 클레메이션(낭송)과 자연스러운 칸틸레나(서정적 선율),크레셴도(점강)와 데크레셴도를 절묘하게 구사하여 피아노만이 갖는 투명한 음색으로 곡전체를 아름다운 꽃으로 개화시키는 것」이 특징이다.평론가 한상우에 의하면 「신성한 음향상을 이뤄낸다는 것은 삶을 완성시키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는 연주자」다. 이른바 「생명 있는 연주란 작곡자의 탄생과 성장,시대와 개성과 교양의 넓이는 물론 인생에서의 사건과 환경에까지 빈틈없이 파고들어 마음의 소리가 계시하는 바를 쫓아서 자신만의 인터프리테이션(해석적 연주)으로 작품을 재창조한다」는 의지다. 그러나 피아노를 시작하던 어린시절에는 「피아노 없이는 못살겠다」는 소명의식이 없었고 단지 『공부 잘하는 우등생인 만큼 당연히 피아노도 잘쳐야 한다는 선에서 피아노에 열중했을 뿐 혼신을 다해 노력해왔다고는 말할 수 없으며』 그래서 『나자신이 피아노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피아노가 나를 선택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또 『모차르트를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지만그가 지닌 천재성과 경박성이 너무 난해하여 마음껏 양에 차본 적이 없다』고도 했다. 「정열적이면서도 두뇌가 탁월한 연주가」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그가 78년 결혼과 함께 부군(한광열씨)을 따라 도미,한동안의 공백기로 「피아니스트의 영광」을 잃는 것이나 아닌가 우려하는 이도 있었으나 미국에 간 지 4년만인 83년 5월,샌프란시스코 첫독주회에서 그곳에서 발간되는 크로니클지는 「그의 모차르트연주는 천상의 양식」이란 평으로 그의 건재를 과시해주었다.같은 해 8월,KBS교향악단과의 협연을 위해 일시귀국했을 때도 『그동안 아주 즐겁게 살았다.그야말로 삶자체를 속속들이 즐길 수 있었고 새로운 것을 많이 깨우칠 수 있었다』면서 「어느때보다 탁월한 연주와 다이내믹한 긴장감,경쾌한 리듬의 향연」으로 그는 변함없이 청중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종달새처럼 명랑한 모차르트의 내부에 남모를 애수와 음영이 도사린 것처럼 그는 미국생활동안 지나친 연습에서 온 근육이상으로 1년 넘게 연주를 멈춘 일과 부군과의 자녀 없이 이혼등 전혀 예기치 못한 시련을 겪는 동안 「화려한 소년기와 열정과 오만의 청년기를 지나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기회」에 도착했음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경원대 음대 학장 맡아 따라서 87년 영구귀국하면서 가진 독주회는 「인간적 성숙과 예술적 연륜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음악은 광채를 발하게 된다」는 평대로 「한 음악가가 자신을 완성시키는 결연한 의지」와 「무르익은 경지」를 확인시킨 자리이기도 했다.그때도 여전히 나이와는 상관없이 마모가 보이지 않는 젊은 모습과 「남에게 상처를 주기 싫어하는 따뜻한 마음씨」,맑고 높고 청량한 그의 목소리는 모차르트음악만큼이나 화창하고 투명하여 사람을 반기고 기쁨만을 나눠주었다. 그는 재미 피아니스트 한동일,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의 누나인 김덕주와 함께 한국 피아노음악계의 새로운 분기점을 이룬 세대다.그 세대로부터 조기피아노교육붐이 일기 시작했고 음악의 해외유학이 활성화되었으며 국내 음악콩쿠르가 등장한 것도 그 무렵이다. 충북 청주에서 평생 교육자이던 신집호씨(82)와 김석태씨(76)의 4남매중 장녀.옥천과 청주에서 중학교교장으로 있던 부친 덕분에 아무때나 학교의 피아노를 칠 수 있었고 벌써 그 시절에 서울과 청주,청주와 대구를 오가며 피아니스트 1세대인 김하경·이애내 스승에 사사,청주국민학교 6학년때 국내최초의 이화·경향음악콩쿠르와 오스트리아에 유학중 그곳에서 열린 각종 국제콩쿠르에 입상하면서 세계무대를 향한 「음악가의 길」에 들어섰다. 이제는 어엿한 음악계의 중진의 위치에서 각종 음악콩쿠르에서 심사를 맡고 후진을 양성하는 위치지만 그의 어느 구석에도 권위나 거드름이나 관록의 티는 찾아볼 수 없다.92년부터 경원대 음대학장직을 맡아 학교운영에 참여하면서 요즘은 주로 실내악에 관심을 갖고 경원대오케스트라를 일류로 키우기 위해 애정과 열성을 쏟고 있다.어릴때부터 그의 연주를 지켜본 평론가 이상만은 지난 5월초 예술의 전당서 열린 연주에 대해 『그의 선율에는 영혼이 있고 그의 피규레이션(수식)에는 현란함과 온갖 독창성이 있으며 그의 연주는 전아하고 유창하며 거기다가 화려하기까지하다』는 찬사를 보낸다. ○동생가족과 한집 생활 일상생활에서는 여자답고 꼼꼼해서 그의 수첩은 깨알만한 글씨로 그날의 일이 일일이 기록되고 친구를 좋아해서 외국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가족의 안부까지 묻는 섬세한 면을 지니고 있다. 그동안 살고 있던 청운동의 빌라에서 지난해 방배동주택으로 이사,친구 같은 동생인 화가 신수희씨가족과 아래위층을 나눠쓰고 있다.책과 피아노와 신수희그림 외에 집에는 아름다운 요크셔테리어만 세마리.요즘은 그 모든 캘릭터가 합쳐진 그만의 독특한 색깔과 풍부한 분위기를 지니면서 「중용과 절제미가 보이는 달관의 연주를 성취」하려는 시기다. 「명인」이란 언제나 자기자신과 자신의 생애를 버린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또 「무리를 떠나 혼자 높이 난다는 것은 그만큼의 희생과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다이아몬드의 영광은 외롭고,영광의 길은 고독하지만 그는 「피아노를 통한 청중과의 대화」로 외로움이나 고뇌의 기미란 전혀 없이 「다이아몬드처럼 차갑게 빛나는 광채」를 내기 위한 상서로운 징조만을오로지 그의 내면에 품고 있는 것 같다. □연보 ▲42년 충북 청주출생 ▲52년 이화·경향음악콩쿠르입상 ▲59년 서울예고졸업 ▲61년 동아음악콩쿠르수석입상 ▲63년 서울대음대졸업,오스트리아유학중 부조니국제피아노콩쿠르(64년)· 베토벤피아노콩쿠르디플롬(65년) ▲67년 오스트리아 빈국립음악예술 아카데미졸업,빈(브람스잘)·도쿄(이이노홀)·서울독주회(시민회관) ▲68년 한국일보주최 서울독주회 ▲69년 런던필등 협연 ▲70년 동아음악콩쿠르 심사위원,베토벤 탄생 2백주년기념 국향협연 ▲71년 동아일보주최 서울독주회 ▲74년 미피바디음대대학원졸업 ▲75년 도쿄독주회 ▲68∼81년 서울대음대교수 ▲77년 영국연수,방콕독주회 ▲78년 세종문화회관개관기념 NHK오케스트라협연,독일연수 ▲83년 샌프란시스코 독주회 ▲87년 중앙일보주최 서울독주회 ▲89년∼경원대교수 ▲90년 쇼팽아벤트(독주회),체코아카데미 목관5중주협연 ▲91·93년 독일뮌헨 국제콩쿠르 심사위원,모차르트 2백주기기념음악회서울시향협연,김민·신수정2중주,모차르트연탄곡전곡 이경숙과 2중주 ▲92·94년 일본 소노다피아노콩쿠르 심사위원 ▲92∼경원대음대학장 ▲95년 김신자·신수정 두오콘서트(미시간주립대),광복50주년기념 「세계를 빛낸 한국음악인」연주등 2중주 3중주 교향악단협연등 수회,일본 국제콩쿠르심사위원 ▲96년 독일 쾰른음대주최 국제피아노콩쿠르심사위원 〈수상〉 대한민국예술원상(78년)대한민국목관문화훈장(95년)
  • 조선족간부의 어제·오늘(압록강 2천리:28)

    ◎문혁후 거의 복권… 조선족 자립에 앞장/부빈사업 보조금… 인삼재배 등 부업 장려/경제문화교류협 창립… 요령성­남한중기 교량역도/문혁때 간첩누명 옥고… 민족의식 새로이 한국과 같은 나라는 단일민족국가라서 국가와 민족이 공통의 의미를 갖지만 다민족 국가인 중국에서는 사정이 사뭇 다르다.그래서 요직을 차지한 간부들은 자신의 민족을 염두에 두지 않을수 없다.더구나 소수민족의 간부가 자기민족의 이익을 도외시하면 욕보따리를 등에 지니고 다니기 십상이다. ○의사차출 무료진료 요령성 관전현 전 부현장 김창영(67) 선생은 민족문제를 염두에 둔 좌우명까지 가지고 있다.그는 본래 평안북도 초산태생으로 교원을 지내다가 현 공청단위원회 서기로 있을 무렵 문화대혁명을 맞았다.조선간첩의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면서 터득한 것이 민족문제였다.누명을 벗고 나와 지난 70년대말 현 부현장이 된 그는 조선족을 위해 많은 일을 해냈다. 『관전현은 산골이라 지금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디요.그러니 70년대와 80년대는 오죽했겠습네까.1982년도인가 기래요.영전진 비구촌에 갔더니 조선족 10여호가 사는데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디요.목불인견이란 말이 실감납데다.집이란 거이 비막이 바람걸망도 안되고 옷은 조각보 저리가랄 정도로 남루했디요.병이 나도 약이 있나….물 한모금 제대로 마실 우물 조차 변변하지 않더란 말입네다.소 여물 썰 작두가 없어서 식칼을 썼으니 할말이 없디요』 그는 농촌을 돌아보고 와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부빈사업을 직접 틀어쥐었다.현정부 산하의 각 부서와 향과 진간부들에게 지시하여 가난한 집 몇가구씩을 떠맡겼다.그리고 자신은 비구촌을 손수 챙겼다.비구촌을 책임진 그는 위생국장을 불러 의사를 차출,무료진료는 물론 수리국에서 돈을 대어 상수도를 놓았다.은행 대부금을 끌어 농사 이외의 부업을 장려하는 다종경영을 부추기기도 했다. 진강향 녹강촌에도 조선족 10여가구가 살았는데,찢어지게 가난한 것은 매 한가지였다.털면 먼지밖에 나올 것이 없는 가난 뿐이었다.김창영선생은 당시 부현장 직책을 빌려 1만5천원의 보조금을 내려보냈다.그돈으로 인삼을 재배하고 그물을 사 민물고기를 잡았다.마을 강에서 서식하는 이른바 해방고기라는 지조공어를 일본에 전문으로 수출하기 시작했다.비옥한 땅과 수자원을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문화대혁명은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사람들은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그 격동의 시기가 지나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나름대로 구상했다.단동시 통전부에 있다가 1986년 퇴직한 김인형(69) 선생도 그런 사람이다.한때는 잘나가는 당원으로 승승장구하는 촉망되는 인물이었으나 문화대혁명에 된서리를 맞고서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단동시에 예배당 건립 그는 경상북도 의성 태생으로 1930년 길림성 반석현으로 이주해온 이후 혁명에 참가했다.1950년에는 지원군에 들어가 요동성 재정청 군비관 주임과 원을 맡았고,이후에는 안동지구 당위원회 감장위원 겸 농업감찰과 과장으로 일했다.이 때에 문화대혁명을 만나 졸지에 조선간첩의 누명을 쓰고 꼬박 10개월간 감옥에 갇혔다 나와서는 오늘의 향에 해당하는 양목공사로 쫓겨가 2년간 노동개조를 당했다. 『문화혁명이 끝나서 통전부 부부장을 맡고 보니 오십고개를 넘었더란 말입네다.팔팔한 나이 덧없이 까먹고 일할 시절이라야 칠팔년밖에 안남았습데다.기래서리 지나간 세월보다 곱배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디요.문화혁명이 끝나고 나서 조선족을 위해 큰 일을 세가지 했다고 자부합네다.그거이 보람이라면 보람이디요』 그가 문화혁명 이후 단동시 통전부에 자리를 잡고 처음 한 일은 조선족의 우파 낙인을 벗겨주는 것이었다.그래서 무장부 부부장 직책 이외에 단동시 당위원회 우파평반사무실 주임 자리 하나를 더 맡았다.우파평반이란 우파의 누명을 벗긴다는 뜻인데,그는 우파로 몰려 농촌으로 쫓겨간 사람들을 다시 도시로 불러들였다. 그가 문화대혁명 이전의 제자리로 돌려놓은 사람들은 꽤 많다.조선족학교의 출중한 교원이었던 이철과 오학중,사정부 민족과에 있던 이화의와 단동시 청년단위원회 소년부장 홍두표가 그들이다.이화의의 경우 민족사업을 했다는 이유로 민족분열주의자로 몰려 옥살이와 노동개조를 당했다.허무한 정치투쟁에서 억울하게 희생되었던 이들은 다시 단동시로 돌아와 일정한 보상도 받고 옛날의 일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단동시에 예배당을 세우는 데도 공헌했다.단동시로 이름이 바뀌기 이전 단동시내에는 두곳에 예배당이 있었다.역전과 제2중학교 옆에 있던 두 예배당은 문화대혁명 때 건물을 빼앗기고 교인들도 강제 해산되었다.그가 문화대혁명 이후 몸담았던 통전부라는 부서는 통일전선사업부의 준말로 종교및 기타 단체를 관장했기 때문에 이들 예배당을 세워주었다.상급 정부에 건의하여 64만원의 자금을 타내어 예배당을 재건했던 것이다. ○한족에도 우리말 보급 문화대혁명 뒤에 단동시에서 사라진 조선족 고중의 문을 다시 열게 한 사람도 김인형선생이다.한국의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고중이 단동시에 있었으나 문화혁명 때 관전현으로 내몰렸다.이에 따라 단동시와 다른 현에서는 중학교까지는 지방 조선족학교에 보내고 교육의 질이 낮은 산골 관전현 조선족 고중에 아이들을 보내지 않았다.그래서 조선족 아이들이 한족 고중에들어갔다. 그는 관전현으로 옮긴 조선족 고중을 다시 단동으로 유치하기로 결심했다.결국 시 당무위원회 재가를 받아 지난 1982년 국가로부터 60만원의 자금을 받았다.그리고 압록강 기슭에 3층짜리 교사를 지었다.또 각지에서 실력있는 교원들을 초빙하고 교원들의 주택과 가족들의 일자리도 마련해주었다. 중국의 조선족 제1대 간부들은 비록 나이가 들어 일선에서 물러났다 하더라도 민족을 위해 일하는 이들은 많다.요령성 민족사무위원회 정법처 처장 자리에 있을 때 요령성 조선신문 복간과 조선민족과학기술보급회 창립에 공헌한 우철희(65) 선생은 지금 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상근 부이사장겸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이 협회는 요령성내 1백40개 시와 3천여개 기업과 연계를 맺고 한국의 중소기업과 다리를 놓아주었다. 그리고 민간차원에서 발해대학,조선족실험직업학교,심양세종조선어학교 등을 꾸려왔다.심양세종조선어학교에서는 조선어를 모르는 청년과 학생들,외사와 무역부문에서 일하는 한족에게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고 있다.이미 초급반과 고급반을 졸업한 사람이 5백여명에 이른다는 것이다.
  • 평양의 「망명총성」­러 대표부 진입서 자살까지

    ◎29시간만에 막내린 망명의 꿈/14일 새벽 「김정일 축제」 허점 노려 결행/「러」 신병인도 조기결정에 “최후의 결심” 북한청년 조명길하사가 미명에 잠든 평양거리의 심장부를 뚫고 높이 2m의 러시아대사관 담장을 넘은 것은 14일 새벽 5시35분.북한의 최대경축일인 최고지도자 김정일의 생일축제를 불과 이틀앞둔 시간이었고 김정일의 집무실을 바로 지척에 둔 곳에서,그것도 불과 30m 간격으로 경비병이 배치된 삼엄한 경비망을 뚫은 것이다.진입과정에서 그는 소지한 권총1정으로 현장의 북한군경비병과 총격전을 벌였다.이 과정에서 3명의 북한군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당했다.일단 공관에 무사히 도착한 그는 곧바로 대사관구역내에 위치한 무역대표부의 1층사무실로 뛰어들며 『정치적 망명』임을 외쳤다.지상유일의 스탈린국가의 심장부에서 드디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순간이었다.『쫓기고 있다.정치적 망명을 하려니 도와달라』고 그는 러시아공관원들에게 호소했다. 곧바로 북한경비병 수십명이 그를 뒤쫓아 대사관 주변을 에워싸는 가운데 러시아당국은 사태파악에 들어갔다.평양주재 파디예프러시아대사가 달려오고 곧바로 그와 협상을 시작했다.러시아측은 총기반납을 종용했지만 그는 이를 거부하며 『망명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며 이를 거부했다.사건발생 1보부터 평양밖으로 나오는 유일한 뉴스원인 이타르­타스통신은 그가 침착한 태도로 러시아관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며 러시아대사관이 제공하는 식사를 먹었다고 타전했다.극도의 신변불안에 떠는 조는 러시아측 대표가 항상 자기곁에 함께 있어줄 것을 간절히 부탁했다.모스크바의 러시아당국은 긴급대책논의를 시작했다.체르니예프 러시아외무차관이 인테르팍스통신과의 회견에서 『다소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밝힘에 따라 크렘린이 일단 그를 정치적 망명요청자로 대우하는 것 같은 기대감이 퍼져나왔다.이후 모스크바로부터 갖가지 엇갈린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57년 옛소련과 북한사이에 맺어진 범인인도협정이 유효하기 때문에 조가 북한측으로 넘겨질 것이라는 설과 인도적인 고려와 국제관례가 무시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섞인 설이 교차됐다. 그러나 무슨 연유에서인지 러시아측은 당초예상보다 일찍 조의 신병인도를 결정했다.북한측에 이같은 결정이 전달되자 곧바로 북한 사회안전부 요원 10여명이 대표부안으로 진입했다.러시아 공관원들이 자리를 피한 가운데 조는 10여명의 특수부대원과 단신으로 마주하게 된다.그리고 그의 숨을 멈추게 한 1발의 총성.15일 상오 10시 30분.한반도 전역을 전대미문의 불안감 속으로 몰아넣은 이 사건은 발생 29시간만에 이렇게 막을 내렸다.타스통신은 특수부대가 진입하면서 그가 사살됐다고 보도했으나 몇시간이 지난후 자살로 바꾸어 보도했다.이어 러시아정부도 자살이라고 발표했다. ◎「러」 외무부 대변인 일문일답/“범죄자 인도 마땅한 처사”/자수·무장해제 수차례 요구 거절/평양당국­대사관 「작전」 긴밀협력 그리고리 카라신 대변인은 15일 하오 외무부 회견실에서 정례회견을 갖고 조명신하사사건과 관련한 러시아의 입장을 밝혔다. ­침입과정은. 『14일 아침 그가 러시아 대사관 영내,무역대표부를 무장한채 무단침입했다.그는 『나는 네사람을 죽였다』고 말해주었다.나중에 세사람이 죽고 한사람이 부상당한 것을 알게됐다.그는 자신이 수용소의 초병이라고 했다. ­어떻게 자살이 일어났는가. 『우리는 더 조사를 해야한다.그는 북한당국에 자수를 하라는 우리의 요구를 거절했다.그래서 우리는 북한당국과의 긴밀한 협의하에 특공대의 영내진입을 허락했다.특공대의 작전과정에서 그는 자살했다』 ­협의를 진행하면서 특공대를 불러들인 것인가. 『범인은 협상의 진행과정에서 무장해제를 하라는 우리의 요구를 계속 거부했다.우리는 북한정부와의 협의하에 특공대를 불러야 했다』 ­왜 정치적인 망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안된다.그는 범죄자이다.러시아 정부는 그를 정치적망명요청자로 받아들일수 없었다.러시아 대사관측과 북한당국,그리고 러시아외무부는 이번 작전전에 긴밀한 협의를 벌였다』 ­투입특공대의 규모는. 『알 수 없다.다음에 가르쳐 주겠다』 ­그의 자살시간을 알려줄 수 있는가. 『알 수 없다.다음에 가르쳐 주겠다』 ◎모스크바 한국대사관 표정/돌발사태 대비 대책반 확대 가동 ▷모스크바 한국대사관◁ ○…한국대사관측은 이날 상오 정화태 대리대사 주재로 북한상황전반에 대한 채널을 점검하는 등 분주한 움직임. 특히 대사관측은 이번 문제가 러시아와 북한간의 문제로 한국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판단아래 일단 러시아 외무부와의 다각적인 채널을 점검하고 관련정보 수집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 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일단 인명이 희생됐다는 점은 유감스런 일』이라고 밝히면서도 향후 러시아와의 관계를 고려,사태결과에 대해서는 논평을 자제하는 등 신중한 반응을 보이기도. 대사관의 다른 한 관계자는 『조하사의 자살소식도 이날 상오에 러시아측으로부터 전달받는등 비교적 빨리 우리 정부에 전달됐다』고 전하고 『성혜림씨 사건등 최근 남북한 관련 사태가 진행되는 동안 어느 때보다 러시아와의 협조가 긴밀히 이뤄지고 있다』고 자평. 현재 한국대사관측은 남북한이 동시에 수교하고 있으며 대사관이 있는 모스크바의 특수성을 고려,북한의 돌발적인 사태에 대비한 대책반을 이날부터 확대가동.
  • 북 20대 당 보안요원 망명요구 총격전

    ◎러 대표부 난입… 경비병 3명 사살/어제새벽/평양―모스크바 허용여부 협상중 【모스크바=유민특파원】 권총으로 무장한 북한의 20대 청년 한명이 14일 상오 평양주재 러시아 무역대표부에 침입,북한 경비병들과 총격전을 벌여 6∼7명을 사살한후 정치적 망명을 요구하고 있다고 이타르타스 통신이 평양발로 보도했다. 이타르타스통신은 25세 가량의 청년이 이날 상오 5시35분께 권총을 빼어 들고 평양시중심가 중앙동 만수대예술극장 맞은편의 러시아 무역대표부에 침입,총격전 끝에 경비병들을 사살한 뒤 망명이 허용되지 않을 경우 자살하겠다면서 위협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러시아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현재까지 파악된 희생자 가운데 러시아인은 없으며 북한경비원 3명이 총격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고있다』고 밝히고 이 청년과 북한측이 대화를 하는 한편 러시아외무부와 평양당국간에도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주평양대사관에 무장북한인이 난입해 인명을 앗아간 일은 유례가 없는 일』이라면서 『현재 러시아대사관건물 주위의 자체경비강화를 요구해놓고 있다』고 말했다. 이타르타스통신은 북한인 침입자가 러시아 직원들을 위협하고 있지 않고 있으나 자신의 안전을 위해 러시아 직원들이 곁에 있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하고,러시아 대표부 및 대사관 관리들은 이번 사건과 관련,구체적인 논평을 거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타르타스통신이 수미상의 북한군인들이 문제의 북한청년과의 협상을 위해 러시아 대표부내로 들어가는 것이 목격됐다고 보도하고 있는 가운데 인테르팍스통신은 러시아정부가 이 청년의 망명허용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이곳 외교소식통들은 이번 사건이 오는 16일의 김정일 생일을 맞아 15일부터 시작되는 국경일 축제를 하루 앞두고 발생한 점을 들어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이타르타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57년 옛소련과 북한이 전과기록이 있는 망명자가 발생할 경우 주재국에 인도하기로 한 내용의 범인인도협정을 체결했음을 상기시키면서,협정이 아직 유효하지만 양국정부가 이 협정을 아직도 준수하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설명했다. 평양주재 러시아 무역대표부는 평양 중심가의 러시아 대사관경내에 외교관 숙소, 학교 등 기타 시설들과 함께 자리잡고 있다.
  • 적 「안방」 공략 나선 김대중씨(정가 초점)

    국민회의 김대중총재가 19∼20일 대전과 부산을 잇따라 방문,본격적인 지방공략에 나선다. 김총재는 19일 상오 대전에서 당무회의를 연 뒤 낮에는 지역단체장및 의원들과 간담회를 갖는다.지난 5일 인천에서의 당무회의에 이어 두번째다.이어 부산으로 내려가 20일 지역언론인과 조찬 간담회를 가진 뒤 하오에는 동구 등 4개 지구당 창당대회에 참석한다.94년 9월 동부산JC(청년회의소)의 초청으로 강연회에 참석한 뒤 처음이다. 김총재의 이번 방문은 최대 취약지역인 충청권과 부산·경남권을 측면지원하기 위해서다.당의 이미지를 높이고,당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킨다는 전략인 것 같다. 특히 부산은 YS(김영삼대통령)의 「안방」이라는 점에서 총선 이후의 대권구도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이다.김총재가 『별 효과가 없다』는 측근들의 만류에도 『지구당위원장들이 오라는 데 안갈 수 없다』고 뿌리친 게 이를 뒷받침한다. 김총재는 이번 방문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고 박지원대변인이 전했다.이례적으로 부산지역 언론과도 인터뷰를 했다고 했다.평소 지역감정의 희생자로 자처한 김총재의 부산방문이 눈길을 끈다.
  • 「예수 사랑」 실천… 참인술 한평생/성탄절에 타계한 장기려 박사

    ◎차남과 맨손 월남… 옷두벌만 생겨도 남에게/내집 한칸없이 가난한 환자 치료에 온종성 평생을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위해 인술을 펴며 살아온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 성탄절인 25일 새벽 「사랑과 희생」이라는 값진 가르침을 성탄선물로 남기고 눈을 감아 세인들의 옷깃을 여미게 하고 있다. 고인은 80세가 넘어서도 하루 40여명에게 무료진료를 베푸는 등 「박애정신」을 몸소 실천했다.그에게 있어 「사랑」과 「봉사」는 이같은 삶을 걷게 한 밑거름이었다. 지난 11년 평북 용천에서 태어난 장박사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영향으로청년시절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꿈꿨다. 장박사는 대학졸업후 평양 기독병원에서 일하다 51년 1.4후퇴 때 부인 김봉숙씨와 다섯남매를 고향에 둔 채 둘째 아들 가용씨와 단 둘이서 월남했다. 곧 돌아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성경과 찬송가책만을 달랑 들고 부산까지 내려온 그는 그해 7월 맨손으로 영도구에 「복음의원」이라는 「천막병원」을 차려 전쟁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무료 시술을 해주었다.후에 외국인 선교사 말스베리의 도움으로 부산복음병원으로 확장한 이 병원을 운영하면서 68년 이 지역의 교회집사들과 함께 한국 의료보험조합의 효시인 「부산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세워 가난한 사람을 치료하는 데 헌신했다. 장박사의 평양시절부터 교회에서 알고 지내다 부산 피난때 재회했다는 방귀자씨는 『피난 때 옷이 두벌만 생겨도 한벌은 남에게 줄 정도로 곤경에 처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는 적이 없었다』고 회고했다.또 동료 의사들은 『부산대 의대 교수시절 학비를 마련 못한 가난한 제자들에게 학비로 쓰라고 월급을 선뜻 내놓은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추모했다. 그토록 남의 불행에만 민감하다 보니 월남후 한번도 자기집을 가져본 적이없었다. 평생 병원측이 마련해 준 사택에서 묵었으며 작고하기 전에도 부산복음병원의 후신인 고신의료원 건물 꼭대기층에 마련된 10여평 남짓한 허름한 곳에서 「무소유의 삶」을 살았다. 76년 이 병원 원장직에서 정년퇴직 한 뒤에도 그는 『아직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며 거제도로 건너가 섬주민들을 위해 인술을 베풀기도했다. 장박사의 이같은 봉사정신은 해외에도 알려져 79년도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부문을 수상했다. 외롭게 사는 자신에게 주위에서 재혼을 권유할 때면 그는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못잊어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일과 재혼했다』고 재회의 날만을 손꼽아기다렸다. 아들 가용씨는 『아버님이 병원에 입원해 있던 지난 10월 「주님을 섬기다간 사람」이라고 비문을 새겨달라고 유언을 남기셨다』고 전하고 『아버님의 비범한 삶이 어두운 세상에 한 줄기 빛이 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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