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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안’ 에 잠식 ‘괴물’ 된 20대

    ‘불안’ 에 잠식 ‘괴물’ 된 20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오찬호 지음/개마고원/240쪽/1만 4000원 도발적인 제목이다. 모든 종류의 차별을 타개하기 위해 수십년간 피땀 흘려 온 민주주의의 역사를 이렇게 대놓고 부정하다니…. 부제는 더 섬뜩하다.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언제나 그 시대의 가장 진보적이고 진취적인 세대로 꼽혀 온 20대가 아니던가. 88만원 세대, 이태백, 청백전(청년 백수 전성시대), 3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 포기) 같은 자조적인 유행어만 봐도 이 시대 20대의 고통과 불안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암울한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들을 ‘차별에 찬성하는’ 괴물 같은 존재로 규정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 아닐까 하는 게 책을 읽기 전의 솔직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책에는 지금의 20대가 승자 독식의 경쟁체제에 찌든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돼 버린 ‘불편한 진실’이 낱낱이 드러나 있다. 자신의 불안한 처지를 위로받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차별을 기꺼이 인정하는 20대들의 민낯은 안타까움을 넘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책은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인 저자가 2008년부터 4년간 박사학위 논문으로 연구했던 주제를 대중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시간강사로 서울과 수도권 10여개 대학에서 강의한 저자는 2000장이 넘는 학생들의 에세이 과제물을 읽고 그중 100편을 간추려 집중 분석했으며 50여명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20대의 속마음을 가까이서 들여다봤다. 20대에 대한 문제의식은 2008년 5월 한 강의에서 겪은 낯선 경험에서 출발했다. 저자는 당시 한창 이슈가 되던 KTX 비정규직 여승무원의 정규직 전환 요구를 주제로 ‘인권과 평화’에 대해 강의하면서 학생들의 의견을 물었다. 그때 한 학생이 이렇게 답했다. “정규직을 날로 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 입사할 때 비정규직으로 채용됐으면서 갑자기 정규직 하겠다고 떼쓰는 건 정당하지 못한 행위라고 당당히 주장하는 학생의 말에 저자는 당황했다. 지방대 출신이 취업시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다룬 영화를 보고 ‘인 서울’ 대학생들이 보인 반응도 놀라웠다. 그들은 영화 속 주인공의 좌절에 같이 눈물을 흘리면서도 자신의 학교보다 서열이 낮은 지방대 학생들과 같은 급으로 취급받는 것에는 불쾌해했다. 비정규직 고용 형태의 불합리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비정규직이 바로 정규직이 된다는 사실에 박탈감을 넘어 격렬한 분노를 느끼고, 수능 점수로 매겨진 대학 서열에 따른 차별 대우를 당연하게 여기는 그들의 태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저자는 20대가 겪고 있는 극심한 불안이 그들의 사고방식과 윤리를 근본적으로 바꿨다고 지적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정적인 삶을 기대할 수 없게 된 현실에서 자기 몫을 챙기는 데 예민해진 20대들이 차별의 벽을 쌓고 자기보다 못한 상대를 밀어내는 것에 위안을 삼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학력 위계에 대한 집착은 도를 넘어섰다. 학벌, 학연의 폐해는 줄곧 있어 왔지만 학력 위계는 같은 대학 내에서도 수시생들을 ‘수시충’, 지역균형 입학생을 ‘지균충’으로 부르며 무시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최근 몇 년 새 대학과 학과 이름이 새겨진 야구점퍼가 유행한 것도 학교 수준에 따른 과시와 멸시, 우월감과 열등감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저자는 20대들을 이처럼 자기중심적 이기주의자로 만든 배후로 ‘자기 계발 권하는 사회’를 꼽는다. 베스트셀러 목록을 점령한 자기 계발서들은 경쟁에서의 승리와 패배는 개인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 설파하면서 스스로를 통제하고 희생할 것을 독려한다. 취업에 목맨 20대에게 자기 계발은 입사 지원서에 기재할 ‘스펙’의 다른 이름이다. 문제는 자신이 투자한 노력과 시간을 기준으로 그보다 노력이 부족한 이들을 가혹하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자신처럼 열심히 공부해도 정규직 되기가 힘든데 비정규직으로 입사해서 감히 정규직을 요구하고, 자신보다 수능을 못 보고선 취업 시장에서 똑같이 대우받길 원하는 것은 ‘도둑놈 심보’라는 게 그들이 생각하는 ‘공정’과 ‘정의’다. 책은 대안을 제시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한다. 다만 현실의 문제를 정확히 인식할 때만이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괴물이 된 20대를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괴물이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구조적 원인을 따져 보고, 사회적 책임을 묻기 위해 20대의 양면을 직시해야 한다는 게 저자가 내린 결론이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플라밍고의 미소(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명주 옮김, 현암사 펴냄) 진화생물학자이자 과학의 대중화에 몰두한 스티븐 제이 굴드(1941~2002)의 과학 에세이집. 굴드는 1974년부터 2001년까지 매달 미국 자연사박물관이 펴낸 월간지 ‘내추럴 히스토리’에 300여편의 에세이를 연재했다. 이 글들은 굴드의 편집을 거쳐 ‘자연학 에세이’ 시리즈 10권으로 출간됐는데, ‘플라밍고의 미소’는 1985년에 나온 네 번째 책이다. 언어, 문학, 음악, 건축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폭넓은 식견과 독창적인 문체로 과학계의 전설로 통하는 굴드는 대중적 글을 표방하면서도 전문성을 희생하지 않는 글쓰기로 유명하다. 이 책에선 특히 야구에서 4할 타자가 사라진 원인을 분석한 ‘양극단의 소멸’이 널리 알려져 있다. 굴드의 생물학 연구의 초점인 서인도 바하마 제도의 육상달팽이 케리온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100번째 에세이도 수록됐다. 612쪽. 2만 8000원. 우리 사료 속의 독도와 울릉도(유미림 지음, 지식산업사 펴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독도연구센터 부연구위원을 지낸 유미림 한아문화연구소 대표가 독도 영유권에 관한 기존 사료들 외에 새롭게 발굴된 사료를 분석해 책으로 펴냈다. 특히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중국 외교문서를 처음으로 발견, 수록했다. 1947년 10월 이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문서는 중국이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도서로서 한반도 영토 범위에 속한다고 여겼음을 보여 주고 있다. 책에는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울릉도 사적’, 박세당의 ‘울릉도’, ‘책문(策文)’, 대한제국의 ‘울도군 절목(節目)’ 등도 포함돼 있다. 이 사료들은 새로 발굴됐거나 알려졌어도 제대로 번역되지 않은 자료들이다. 저자는 독도가 우리 땅임을 부르짖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사료를 끊임없이 발굴해 연구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468쪽. 2만 3000원. 제로의 기적(캐릴 스턴 지음, 정윤희 옮김, 프런티어 펴냄) 유니세프 미국기금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인 저자가 세계 곳곳의 구호 활동 현장에서 굶주림, 가난, 질병 등으로 죽어 가는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애쓴 7년의 여정을 담았다. 그녀는 충분히 살릴 수 있지만 기본적인 지원을 받지 못해 죽는 아이들의 숫자를 제로(0)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아 ‘제로의 힘을 믿어요(Believe in Zero)’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세 아이를 둔 그녀는 현장 경험이 없이 모잠비크에 갔다가 벌레가 무서워 벌벌 떨고는 했다. 하지만 눈앞에서 죽어 가는 아이들을 맞닥뜨리면서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당장 그들을 살리기 위해 나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된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열 살 소년부터 내란과 지진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난민으로 전락한 이들, 열악한 환경에서도 끝까지 용기를 잃지 않는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그렸다. 304쪽. 1만 3000원. 무당벌레는 꼭대기에서 난다(박찬순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라디오 프로듀서, 외화 번역가로 일하다 2006년 50세의 나이로 등단한 박찬순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자신에게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던 젊은이, 이웃들의 목소리를 소설에 들여보냈다는 작가는 비루한 인생들을 응원하는 9편의 ‘찬가’를 만들어 냈다. 줄 하나, 도마 크기의 안전판에 온 생명을 맡긴 채 고층 빌딩의 유리를 닦는 청년, 한국 공장으로 일하러 왔다가 동료를 죽인 스리랑카 소년, 박봉에 바쁜 일정에 쫓기며 사는 시간 강사와 수배자 신세로 떠도는 제자 등 작가는 디딜 데 없는 절망에 놓인 청년 세대, 이민자 등의 삶에 애정 어린 시선과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었다. “(이들은) 생의 가장 빛나는 시기에 혹독한 경쟁에 내몰렸거나 가혹한 삶의 조건에서 신음하는 이들이었다.316쪽. 1만 2000원.
  • “서해상 희생 폄하…할 말, 못할 말 구별해야”

    “서해상 희생 폄하…할 말, 못할 말 구별해야”

    최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시국미사에서 연평도 포격 도발·천안함 사건 관련 발언이 나와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두 사건 유족들이 25일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천안함 사건 당시 산화한 고(故) 최정환 상사의 자형 이정국씨는 이날 “정치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책임을 묻고 바로잡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아무리 주장을 내세우려 해도 할 말과 못할 말은 구별해야 하지 않나”라며 “왜 연평도 포격 등 서해상에서 일어난 희생을 폄하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현재 천안함 유족 대표를 맡고 있는 이인옥씨는 “개인적인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지만 그런 얘길 하면서 천안함과 NLL을 거론한 점은 용납하기 어렵다”며 “그럴 때마다 가족들의 마음이 매우 아프다”라고 심경을 밝혔다. 이씨는 “조만간 전주교구나 서울의 사제단 본부를 항의 방문하려고 가족들과 논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창신 원로신부의 발언 취지가 자신들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으로 해석하는 유족도 있었다. 연평도 포격 당시 사망한 민간인 김치백씨의 사촌동생 치중씨는 “유족이나 고인 본인들을 비하한 게 아니라 뭔가를 설명하려다 그렇게 된 것 같다”며 “아무리 그래도 신부님이 그렇게 나쁘게 생각해서 그런 말을 했겠는가. 가족들도 내 생각과 비슷한 것 같다”고 전했다. 한편 자유청년연합은 이날 박 신부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전주지검 군산지청에 고발했다. 군산지청은 접수된 고발장을 토대로 수사를 검토 중이다. 박 신부는 지난 22일 시국미사에서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과 관련해 북측의 입장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다른 보수단체들은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사제들의 ‘박근혜 대통령 사퇴 촉구’ 시국미사에 대한 비판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반면 참여연대, 새사회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이번 논란이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 등 더 중요한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정부가 반년 동안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아 정의구현사제단이나 신부님들이 행동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며 “논란을 격화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논평을 내거나 따로 행동에 나설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신수경 새사회연대 대표는 “종교인이 발표한 비판적 입장을 청와대가 성급하게 비판하고 나서면서 문제가 커졌다”며 “청와대는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한 대책 마련에는 고심하지 않고 정치적 논란을 부추기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한강(하)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한강(하)

    ●모래 위의 욕망 ‘한강의 기적’이란 이름으로…여의도보다 컸던 밤섬 희생되다 “한강개발계획을 세워라. 첫째, 여의도에 제방을 쌓아서 가능한 한 많은 택지를 조성한다. 둘째, 여의도와 마포·영등포를 연결하는 교량을 가설한다. 셋째, 한강을 사이에 두고 남북의 제방도로를 연차적으로 축조함으로써 한강 홍수를 방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동차가 고속으로 달릴 수 있도록 한다.” ‘불도저’ 김현옥 서울시장이 여의도 건설을 주축으로 하는 한강개발 3개년계획이라는 것에 착안한 것은 1967년 8월이었다.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지낸 손정목 전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3월에 기공한 한강연안도로(강변도로)가 모습을 드러내자 재미있는 현상이 김 시장의 눈에 띄었다고 한다. 새로 생기는 도로와 기존 제방 사이에 새로운 택지가 조성됐는데 제방을 종전보다 안으로 들여 쌓은 결과였다. 여의도를 개발하면 엄청난 택지가 생기고 그것을 판 수익금으로 그동안 구상했던 일들을 한꺼번에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김현옥의 머리를 스쳤다. 같은 해 9월 서울시는 한강개발 3개년계획을 수립했다. 주무부서인 건설부와의 협의를 통해 여의도와 영등포 사이에 샛강을 두되 소양강댐이 완공되면 폐쇄해 택지를 더 조성하고, 홍수방지 차원에서 한강 본류의 폭을 1300m로 유지하는 안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여의도의 총면적은 127만평에서 샛강 면적 등 40만평을 뺀 87만평으로 확정됐다. 여의도 방죽(윤중제)의 높이는 15.5m, 제방 너비는 21m이며, 제방 안에 조성되는 택지는 강바닥에서 13m 높이로 정했다. 총 둘레는 7.6㎞였다. ‘여의도의 몇 배’라는 대한민국 면적의 기준치는 이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한강 폭을 1300m로 한다는 건설부와 서울시의 합의는 참으로 교묘했다. 여의도를 개발하되 강물의 흐름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밤섬을 없애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방을 쌓으려면 엄청난 골재가 필요한 마당에 코앞 밤섬 폭파로 골재를 얻는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당시 밤섬의 면적은 1만 7393평으로 지금의 40배 크기였다. 어마어마한 골재가 채취됐다. 밤톨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 붙은 밤섬(栗島)에는 78가구 443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조선 초기부터 17대를 살아온 마(馬), 판(判), 석(石), 인(印), 선(宣)씨 등 5개 희성 씨의 집성촌이었다. 이들은 토지보상비 838만원과 건물보상비 702만원을 지급받고 마포구 창전동 와우산 기슭의 대지 1000평 연립주택으로 옮겨갔다. 사람들은 이곳을 ‘밤섬 마을’이라고 불렀다. 밤섬은 고려시대 유배지였으며 주민들은 길이 18m짜리 장도릿배와 15m짜리 조깃배, 12m짜리 늘배 등을 만드는 배 목수 일을 주로 했다. ‘배 제작술을 배우려면 밤섬으로 가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여의도에 제방을 쌓고 땅을 다지느라 한때 여의도보다 더 컸던 섬이 무참히 희생됐다. 밤섬은 1968년 2월 10일 오후 3시 폭파돼 시야에서 사라졌다. 방죽을 쌓는 와중에 낭보가 날아들었다. 10만평의 부지에 국회의사당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여의도 입주신청 1호였다. 종묘 앞과 남산 등지를 전전하며 터를 구하지 못한 국회가 ‘신천지’ 여의도로 걸어 들어온 것이다. 이호철의 소설 ‘서울은 만원이다’가 신문 연재를 시작한 것이 1966년이었고 1968년 서울인구는 400만명에 이르렀다. 비록 1인당 국민소득은 123달러,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8층(소공동 반도호텔), 차량대수는 2만 5000대(승용차 1만대)에 불과했지만 모든 것이 광적으로 팽창하던 시기였다. 서울의 교통난, 주택난, 급수난을 해결할 요술방망이가 필요했다. ‘한강의 기적’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10일 만에 제방 축조공사가 끝났다. 기적에 가까운 초스피드 공사였다. 홍수가 오기 전 완공이 유일한 목표였고, 생태나 환경은 돌볼 틈이 없었다. 개발연대기의 원초적 불행이었다. 여의도라는 섬은 사실상의 육지가 됐다. 지금 국회가 들어앉은 양말산(羊馬山)은 높이 190m로 양이나 말을 기르던 목축장이었는데 이때 완파돼 평평해졌다. ●모래 위의 도시 차는 지상·보행은 위층… 초현대적 입체도시 꿈꾸었던 여의도 새로 탄생한 하중도시(河中都市) 여의도를 어떻게 조성할 것인가. 남산 국회의사당 현상설계(1959년) 당선자이며, 워커힐호텔(1962년), 세운상가(1966년), 청계고가(1967년) 계획과 설계를 맡았던 건축가 김수근이 또 등장한다. 김수근은 김종필 국무총리, 김현옥 서울시장과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건설기술종합 용역업체인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라는 국영기업체의 부사장을 거쳐 사장으로 재직했다. 건축사무소는 문을 닫고 ‘공간’이라는 건축잡지만 발행했다. ‘문학청년’ 김현옥은 김수근에게 초현대적이며 후세에 길이 남을 예술적 설계를 요구했다. 국회에 이어 사법부와 서울시청이 입주해 여의도를 중심으로 하는 ‘제2의 서울’을 건설한다는 포부였다. 10층 이상의 스카이라인에, 자동차는 지상으로, 보행자는 2층으로 다니는, 지하도나 육교가 없는 초현대적 입체도시를 꾸미겠다고 발표했다. ‘여의도 개발 마스터플랜을 위한 전제와 가설’(공간 1969년 4월호)과 서울시에 제출한 ‘여의도 및 한강연안 개발계획’ 등을 종합해 보면 이 계획을 완성하는 데는 무려 20년이 걸리며 107억원의 서울시 선행투자와 1000억원 이상의 막대한 민간투자가 필요했다. 1968년 당시 서울시의 일반회계 세입은 138억원이었고, 한강개발특별회계의 세입결산액은 11억원이었다. 서울시 재정상황은 직원 봉급주기도 빠듯한 지경이었다. 한마디로 실현불가능한 장밋빛 청사진이었고 실패한 도시계획의 전형이었다. 김수근의 여의도개발계획은 일제강점기 ‘백화점 왕’ 박흥식이 해방 후 재기를 노리며 세웠던 남서울 신도시계획안과 어딘가 닮았다는 느낌을 준다. 둘 다 천재였고, ‘강남시대’를 예견한 시대를 앞선 아이디어를 제시했지만 현실이라는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좌초됐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모래 위의 광장 ‘비상용 활주로’ 5·16 광장… 거대한 집회장소 기억 남기다 ‘밤섬의 저주’였나. 밤섬 폭파 후 2년여 흐른 1970년 4월 마포구 창전동 와우아파트가 무너져 33명이 죽고, 39명이 다쳤다. 공교롭게도 밤섬에서 강제이주한 주민들이 사는 밤섬 마을 바로 옆에서 초대형 사고가 터졌다. ‘건설은 나의 종교’를 외치던 김현옥은 물러났다. 같은 해 10월 여의도 한가운데에 12만평 규모의 ‘텅 빈’ 대광장을 만들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졌다. 여의도계획에 잡혀 있는 상업·업무지구를 동서로 나누라는 허탈한 지시였다. 여의도 입체도시 건설의 꿈이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5·16광장’ 건설로 여의도 계획은 뿌리째 뒤틀렸다. 새로운 계획이 필요했다. 1971년 8월 서울시는 서울시청사를 1976년까지 여의도에 건립하며, 여의도 전역을 미관지구로 지정하고, 통행금지 해제지역으로 지정하며, 여의도를 통과하는 지하철 2호선을 건설한다는 내용의 새로운 여의도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김수근보다 더 허황했지만 불가피했다. 투입 예산은 50여억원인데 수입은 국회 제공 부지 10만평을 평당 1만원에 판 10억원이 전부였다. 대법원지구로 예정된 땅 전부와 시청이 들어설 땅 절반에 시범아파트를 지어 팔기로 했다. 후임 양택식 시장을 비롯한 시 간부들이 거리로 나서서 시범아파트를 선전하는 홍보전단을 돌렸다. 분양이 쉽지 않았다. 서울시민들은 110일 만에 급조한 여의도 제방의 안전이 미덥지 못했고 모래섬 위에 사는 것을 꺼렸다. 그러나 극적인 반전이 찾아왔다. 대한민국 최초이자 최고를 내세운 시범아파트가 팔리기 시작한 것이다. 민영아파트도 따라 들어섰고 택지도 덩달아 팔려나갔다. 서울시청 건설예정부지였던 지금의 산업은행 자리도 팔았다. 국회와 방송 3사, 증권거래소 입지가 결정적이었다. 서울시는 투자한 54억원을 뽑고 30억원의 순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여의도는 시대를 앞서가는 첨단도시를 포기한 대가로 빈사상태의 서울시 재정난을 회생시켰다. 이 중 10억원이 지하철 건설비로 계상됨으로써 지하철 건설의 역사가 돛을 올렸다. 후에 드러난 일이지만 박 대통령이 의도한 여의도광장 조성은 전시 비상용 활주로 용도였다. 여의도는 1916년 간이비행장이 생긴 이래 1961년 김포공항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서울의 국제관문이었다. 공군의 발상지였으며 1971년 성남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공군 K16 비행장이었다. 1968년 김신조 일당의 서울 침입, 울진·삼척 무장공비사건 등 안보위기가 겹치면서 여의도는 예상치 못한 운명을 맞았다. 같은 해 북악스카이웨이가 개통되고, 다음 해 서울시민 30만명이 대피할 수 있는 지하대피용 남산1, 2터널이 굴착되는 등 이때부터 일련의 남북체제 대결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1971년 10월 1일. 국군의 날 행사 TV중계를 통해 처음 선보인 여의도와 여의도 광장의 엄청난 규모에 온 국민은 놀랐다. 이후 반공궐기대회와 대통령 유세, 취임식 등이 광장의 주요 용도였다. 1973년 닷새 동안 200만명이 모인 빌리 그레이엄목사 서울전도대회를 시작으로 국풍, 이산가족 찾기, 부처님 오신 날, 천주교 200주년 행사 등이 잇따르면서 매번 집회 참가인원 신기록을 갈아 치웠다. 텅 빈 광장은 소통의 광장이 아니라 ‘아고라포비아’(Agorafobia·광장공포증)를 유발한다는 비판도 따랐다. 1999년 조순 초대 민선 서울시장이 100억원을 들여 광장을 시민공원으로 바꿨다. 여의도와 여의도광장은 한국 현대사의 영욕이 담긴 기억저장소이다. joo@seoul.co.kr
  • 인도 전통춤의 신비로움에 넋 잃고 타인 위해 헌신하는 구도자를 보다

    인도 전통춤의 신비로움에 넋 잃고 타인 위해 헌신하는 구도자를 보다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가 개막작으로 선택한 ‘바라:축복’은 신비하고 몽환적인 전설과도 같은 작품이다. 인도의 전통 춤을 매개로 신과 인간의 관계를 주된 줄거리로 풀어 가는 방식은 물론 자연주의적인 영상미를 강조한 것도 설화 같은 느낌을 더한다. 부탄의 고승이자 영화감독인 켄체 노르부 감독은 인도의 저명한 소설가 수닐 강고파디아이의 단편 소설 ‘피와 눈물’을 바탕으로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 부탄 영화 사상 처음으로 해외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만큼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껏 보아 온 영화들과는 다른 신선함과 독특한 매력을 갖춘 것이 큰 미덕이다. 감독은 인도 남부지방의 전통 춤인 바라타나티암을 기본 소재로 신분의 굴레를 뛰어넘은 남녀의 사랑에 멜로를 덧입혀 요령껏 대중성과 작품성 사이의 균형을 잡았다. 아울러 카스트제도의 불합리성과 빈부 격차의 문제도 짚는다. 공간적인 배경은 인도의 자그마한 시골 마을로, 힌두 사원 바라타나티암 무희의 딸 릴라(사하나 고스와미)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릴라는 조각가를 꿈꾸는 하층 계급 청년 샴(다베시 란잔)의 요청으로 그가 만드는 여신상의 모델이 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마을의 지주가 릴리를 짝사랑하게 되고 결국 마을 촌장 수바에게 샴과의 관계가 발각된 릴리는 어머니와 샴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고 결심한다. 줄거리만 보면 지극히 통속적이지만 감독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헌신을 택한 릴라를 통해 신을 향한 구도자의 길을 이야기한다. 이 때문에 이 작품에서 릴라가 추는 바라타나티암춤은 중요한 상징이다. 릴라는 이 춤을 추면서 크리슈나 신을 만나는 상상을 하게 되고, 샴이 만들고자 했던 여신상도 바라타나티암의 춤동작을 하고 있다. 매력적이고 능숙하게 춤 솜씨를 뽐낸 인도 출신 여배우 사하나 고스와미는 “어릴 때 피아노를 배우는 것처럼 인도에서는 많은 소녀들이 춤을 배운다. 나 역시 다른 지역의 춤을 10년 동안 배웠기 때문에 이 춤의 기본기를 익숙하게 다졌다”면서 “소녀였던 릴라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통해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 연기했다”고 말했다. 현재 동굴 수행 중이어서 영화제 행사에 불참한 감독은 영상을 통해 “인도의 전통 무용을 보며 항상 감탄해 왔다. 춤을 매개로 인도 문화를 알리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20세 청년,포르노물 본후 할머니 무참히 살해

    20세 청년,포르노물 본후 할머니 무참히 살해

    스무살 청년이 컴퓨터로 포르노물을 본 직후 함께 거주하는 할머니를 무참히 살해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3일(현지시각) 영국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잉글랜드 북서부에 위치한 체셔 엘스미어 포트의 한 마을에서 지난 1일 잭 헉슬리라는 이름의 청년이 의할머니뻘인 재니스 둔다스를 수십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희생자는 62세의 전직 간호사로, 집이 없는 헉슬리에게 머물 곳을 제공한지 수시간만에 이같은 참변을 당했다.범행 전 헉슬리는 마약과 보드카에 취해 있었으며, 랩탑으로 젊은 남성과 성인 여성의 섹스장면이 담긴 포르노물을 3시간 동안 본 것으로 전해졌다. 헉슬리는 마치 피붙이처럼 대해줬던 둔다스가 잠을 잘 때 목을 베고 30여차례 칼로 찌른 것으로 밝혀졌다. 그가 희생자 살해 직전, 혹은 직후 성적인 공격행위를 저질렀는 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발견 당시 희생자는 거의 벌거벗은 상태였으며, 법의학적인 증거에 따르며 이번 살인이 성적 원인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는 덧붙였다. 1일 헉슬리는 지역 리버풀 크라운 법원에서 살인죄를 인정했다. 기소 자료에 따르면 헉슬리는 희생자인 둔다스의 딸의 남친이 데려온 아들이다. 원래 아버지쪽 조부모와 함께 생활했으나, 마약과 알코올 문제로 조부모가 통제할 수 없게 되면서 집에서 쫓겨났다. 이때 의외할머니뻘인 희생자가 그에게 집에 머물수 있도록 배려했는데, 불과 몇 시간 만에 참변을 당한 것이다. 희생자는 발견 당시 치명적인 상처를 여러군데 입은 상태였으며, 범행 순간 방어하기 위해 칼을 잡았던 듯 엄지손가락에 깊은 상처가 있었다고 전해졌다. 헉슬리의 변호인은 헉슬리가 전과가 없으며, 갑작스럽고 충동적인 폭력성 폭발로 범행을 저질렀고, 성적인 요인도 촉매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마리아 밀러 영국 문화부 장관이 온라인 포르노의 ‘치명적 영향’에 대해 경고한지 하루만에 발생해 충격을 더하고 있다. 그녀는 온라인 포르노물이 소년들에게 여성과 소녀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 비뚤어진 사고를 심어주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포르노물은 아이들에게 성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감을 주기 때문에 부모와 학교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우연하게라도 포르노물을 보지 않도록 하라고 주의를 촉구했다. 사진=데일리메일 캡처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한국형 창조경제 성공으로 가는 길] 1부 (9·끝) 좋은 일자리 어떻게 만드나 - 독일·네덜란드의 사례

    [한국형 창조경제 성공으로 가는 길] 1부 (9·끝) 좋은 일자리 어떻게 만드나 - 독일·네덜란드의 사례

    독일 베를린에 사는 누리에 슈나이더(28)는 중소기업에서 계약 관련 법률을 검토하는 일을 한다. 변호사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슈나이더는 하루에 4시간만 근무하고 월 900유로(약 134만원)를 받는다. 나머지 시간은 시험 준비에 투자한다. 시간제 근로자지만 슈나이더는 전혀 불만이 없다. 그는 “회사에서 전일제와 같은 업무를 할 경우에 월 1800유로를 받는다”면서 “필요한 시간을 활용할 수 있고, 시간제로 일한다고 해서 업무에서 소외되거나 정규직에 비해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일자리정책의 벤치마킹 모델로 거론되는 독일에는 다양한 고용 형태가 공존한다. 정규직과 계약직, 시간제 일자리는 물론 ‘미니 잡’으로 불리는 월 450유로 미만의 저임금 일자리도 주요 정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카셀대에서 노동학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유럽연구소 이규영 팀장은 “모든 일자리를 정규직으로 만드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발상인 만큼 독일의 노동정책은 일자리 형태에 따른 불이익이나 차별을 없애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현재 독일의 일자리정책은 2000년대에 진행된 ‘하르츠개혁’의 산물이다. 당시 게르하르트 슈뢰더 내각은 저성장과 높은 실업률로 이른바 ‘독일병’으로 불리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과감하게 사회의 근간을 이루던 노동·복지 정책에 메스를 댔다. 사실상 무한정이던 실업급여 지급 기간을 1년 수준으로 단축하면서 강한 반발에 부딪혔지만,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산별노조와 협상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관철시켜 나갔다. 위원장으로 개혁을 진두지휘했던 폭스바겐 인사담당 책임자 페터 하르츠는 폭스바겐에서 이미 검증된 일자리 정책을 독일 사회 전반으로 확대했다. 폭스바겐은 1993년 주당 36시간이었던 노동시간을 28.8시간으로 줄이고 임금 10%를 삭감하는 대신 2만명의 해고를 막았다. 실제로 최근 한국 정부가 발표한 일자리 정책 역시 ‘근로시간 단축’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이 팀장은 “근로시간 단축은 임금과 직결되기 때문에 사회적 공감대가 없으면 시행되기 어려운 정책”이라며 “근로자들이나 노조 역시 공멸을 막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희생할 수밖에 없다고 인식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번 일자리는 최대한 시간제 일자리로 채웠다. 특히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전일제와 임금 격차가 없는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이 철저하게 적용된다. 구직을 포기한 저소득층이나 장기실업자들을 위해서는 노동과 복지 정책을 섞은 ‘미니 잡’ 정책이 시행 중이다. 미니 잡 종사자들의 기준은 월 급여 450유로 이하로 규정돼 있다. 건설 노동자, 광부, 선원, 가사보조, 세탁 등 단순노무직들이 주를 이룬다. 미니 잡 종사자들은 임금이 낮은 대신 다양한 사회복지 혜택을 받는다. 사회보험료 납부 의무가 없고, 소득에 대한 세금도 거의 내지 않는다. 사회보험료는 이들을 고용한 회사가 대신 낸다. 2008년 기준 655만명의 근로자들이 미니 잡에 종사하고 있는데, 이는 전체 고용 인구의 20.7% 수준이다. 주한독일문화원 관계자는 “지나치게 미니 잡이 많아지면서 저임금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지만 외국인, 여성근로자, 저숙련 근로자, 청년층에 있어 미니 잡이 노동시장의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서유럽 노동시장 개혁의 선두주자는 네덜란드다. 독일 역시 네덜란드에서 검증된 모델을 상당 부분 받아들였다. 노동학계에서는 1982년 네덜란드 정부가 노동총연맹, 사용자연맹과 맺은 ‘바세나르 협약’을 현대 노동사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가동되고 있는 ‘노사정위원회’의 원조 격이다. 노동계는 자율적 임금 동결, 사용자는 근로시간 단축 및 시간제 일자리 차별 금지와 고용안정성 보장, 정부는 직업 훈련 확대 및 여성 근로자 지원 정책을 맡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특히 네덜란드는 전체 노동자 중 시간제 근로자 비중이 36.7%에 이르고 변호사, 의사 등 고소득층까지 사실상 전 산업에 시간제 근로자가 퍼져 있다. 임상훈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시간제, 계약직 등을 정부가 말하는 ‘좋은 일자리’로 만들기 위해서는 임금이나 근로조건, 정년 등 양적인 측면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팀장은 “독일과 네덜란드의 공통점은 필요에 따라 자발적 시간제 근로자가 생겨날 수 있고, 정규직이 시간제로 전환하기도 자유로운 여건이 조성돼 있다는 것”이라며 “한국도 일자리에 대한 기본 개념을 바꾸는 정책들이 시행돼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베를린·자르브뤼켄·델프트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 이석기 “현 정세 무너뜨려야”…녹취록 내용 공개

    이석기 “현 정세 무너뜨려야”…녹취록 내용 공개

    국가정보원이 내란음모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한 가운데 이 의원이 모임에서 발언한 녹취록 전문이 한국일보 등 일부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이 녹취록에 따르면 이 의원은 “현실은 힘과 힘의 싸움이다. 지배세력에 60여년동안 형성했던 현(남한 정부) 정세를 무너뜨려야 된다”면서 “전쟁을 준비하자. 정치 군사적 준비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모임에 참석한 이들은 발발 시 미군과 남한 정부에 타격을 주기 위한 준비를 구체적으로 모의한 내용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은 공개된 녹취록 요약 내용이다. ■이석기 의원 모두 강연 당연히 남북의 자주역량 관점에서 미 제국주의 군사적 방향과 군사체계를 끝장내겠다는. 이러한 전체 조선민족의 입장에서 남녘의 역량을 책임지는 사람답게 주체적이고 자주적으로 이 정세를 바라보고 준비해야 한다. 여기서 남녘의 혁명가는 어떠한 입장을 가지고 과연 무엇을 할 것이냐. 전쟁이 구체화되고 살인과 살의 와 모략과 민족적 재난을 일으킬 수 있는 침략의 마수와 침략의 노골적인 생각이 적나라하게 논의되고 있는데, 이걸 정면으로 침략의 본질을 **하지 않고 저놈들의 군사력, 폭력적인 자행되는 범죄를 **한 채 과연 평화라는 게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총보다 꽃이라는 것을 지향하는 것은 분명하나, 때에 따라서는 꽃보다 총이라는 현실 문제 앞에 우리는 새롭게 또 새로운 관점에서 현재 조성된 한반도의 엄중한 **를 직시해야 되지 않는가? 그런 말씀을 전하면서.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할 거냐? 그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하는데, 자, 무엇을 할까요? 전체의 정치적 관점에서 조선민족이라는 자주적 관점에서, 남녘의 혁명을 책임지는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 출발하되 현 정체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이냐. 첫째는 필승의 신념으로 무장되야 한다. 스스로 정치사상적으로 당면 정세에 대한 확고한 인식과 사상적 무장이 설결돼야 한다. 현 정세에서 바라보는 일면적이거나 편향적이거나 때에 따라서는 분단의 사고에 쩌들어 있으면 현 정세의 역동성과 변화의 큰 흐름, 역사의 본류의 큰 흐름을 보지 못한다. 필승의 신념으로 철저히 무장하자. 첫번째는 이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죠. 필승의 신념을 발휘한다....현 정세는 새로운 단계로 가는 낡은 지배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단계로 대격변기이며 대 변환기다. 종국적으로 조선민족으로 표현되는 자주 역량이 힘에 의해서 승리로 가는 국면은 분명하다. 그렇게 정리한 바 있습니다. 기억하시죠? 그런데 남녘에 있는 우리는 상당히 어려움이 있다. 고난을 각오하라. 제2의 고난의 행군을 각오해야 한다. 북은 집권당 아니야. 그렇지. 거기는 모든 행위가 다 애국적이야. 다 상을 받아야 돼. 그런데 우리는 모든 행위가 다 반역이야. 지배세력한테는 그런 거야. 전 세계에 최근에 자료를 보니까 6kg 미만의 최소 경량화해서 핵무기로 개발 할 수 있는 나라가 전세계 3~4개 밖에 안 된다고 그러네. 특히 이번에 이룬 게 엄청난 거예요 이게 나중에 과학기술의 측면만 잘 정리해서 보세요. (핵 보유 등을 설명한 후) 여기서 나온 게 이른바 전면전이 아닌 국지전, 정규전의 전면전이 아닌 비정규전 이런 상태가 앞으로 전개가 될 것이다. 그 전과 다른 현재에는 정치 군사적인 대결을 첨예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것. 그게 심리전 사상전 선전전에서 다양한 방면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거시 그 전과 다른 새로운 전쟁의 형태다. 이해됩니까. 한국사회의 진보와 보수 진짜 가짜를 가리는 유일한 기치가 자주인 거예요. 자주야 말로 그 어느 세력도 흔들 수가 없어요. 한국사회에는 체제 반대세력이 있거든. 혁명지지자가 있어야 돼. 극소수, 뭐 실제로 1%도 안 돼. 이 세력을 가만 나두면 역사적으로 보면 해방도 그렇고, 625도 그렇고 수많은 가장 급진적인 혁명세력, 자주기치를 든 세력이 그 정도야. 그걸 보고 4대 혁명세력이… 그 정치적 상황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군사적인 것도 필요하다. 그게 지금부터 가능하다. 앞으로 군사적인 위협국면이 더 조성되면 뭐든 이를 수 있는 거야. 모든 정세는 그런 거야. 북한의 대사상전, 전쟁이라고. 그게 현대전의 또 다른 전쟁. 그래서 저들이 각종 심리부대를 점검해서 다종다양한 형태로 만들고 있다. 수혜정당이 아니라 정치권력에 대한 정부, 그런 문제가 아니고 이 권력의 근간을 이루는 뿌리를 이제 바꿔 버려라. 분단의 체제 자체를 무너뜨려버려라. 어떻게? 남쪽의 자주역량에 대해서 민족사의 새로운 대전환기를 우리 힘으로 만들자고 호소를 하는 겁니다. 현실은 힘과 힘의 싸움이다 지배세력에 60여년동안 형성했던 현 정세를 무너뜨려야 되요. 60년 전행의 희생으로 드러난 게 재들은 절대로 물러나지 않을 거야. 온갖 방해 책동 물리적 탄압 공작이 들어올 거다. 당연하지. 전쟁인데. 오는 전쟁 맞받아치자. 시작된 전쟁은 끝장을 내자 어떻게? 빈손으로? 전쟁을 준비하자. 정치 군사적 준비를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하면 물질 기술적 준비 체계를 반드시 구책해야 한다. 그런데로부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물질 기술 준비란 뭐냐. 힘과 힘이 충돌하는 시기에 저놈들이 우리를 방해시켜서 우리가 역량을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그 물질, 기술적 준비를 갖춰야 하는데 왜 기술적인가? 그건 나중에 동료들과 토론에서 한 번 고민해 보세요. 이 기술 준비가 필요해요. 포괄적으로 물질적 준비를 갖추자. 그렇게 하면 좋을 텐데 조금만 더 정교하게 물질 기술적 준비라고 하는 거예요. 이게 현 정세에 우리가 저들과 싸우는 이기는 길이다. 정리하면 필승의 신념으로 무장하는 문제. 그러나 정치 군사적 준비 체계를 잘 갖추어서 물질 기술적 토대를 굳건히 하는 거예요. 수세적 방어가 아니라 공세적 공격 기회를 만드는 것에 대한 우리의 입장과 태도이고 이 입장과 태도의 준비 정도에 따라서 희생을 최소화하고 피 흘리는 동지도 적고 승리를 앞당기는 그 출발 부분에서 가장 지혜롭지 않겠는가. 그 지혜라는 것은 준비에 있는 거다. 인정하자. 현재의 우리 역량이라는 것을 다 인정하고 지금이라도 준비하자. 물질 기술적 준비를 단단히 구축하는 거예요. 우리가 자주된 사상, 통일된 사상, 미국놈을 몰아내고 새로운 단계의 자주적 사회, 착취와 허위없는 그야 말로 조선민족의 시대의 꿈을 만들 수 있다. 그 꿈을 2013년 하나의 주장이 아니라 하나의 물리적 힘으로 한두 사람의 발언과 결의가 아니라 전국적 범위에서 새로운 미래를 구축하기 위한 최종 결전의 결사를 하자는 겁니다. 이 또한 얼마나 영예롭지 않은가. 수 많은 곡절을 딛고 우리가 동지부대를 이루고 그야말고 미국놈들하고 붙는 대민족사의 결전기에서 우리 동지부대가 선두에서 저놈들의 모략책동을 분쇄하고 더 나아가 군사적인 파일럿이라 하는데 적들이의 그야말로 통일혁명의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면서 선두의 역할을 한다면 이 또한 명예가 아닌가. 그런 관점에서 투쟁을 미리 승리로 준비하자. 예견된 싸움이라면 그리고 우리가 예상하던 예상치 않던 북에 대한 도발이 분명하다면 우리의 힘과 의지를 단단히 준비해서 그러면 적의 도발을 선두에 서서 승리의 국면을 만들어 가면서 이에 대한 준비하는 것이 훨씬 지혜롭지 않겠는가. 그야말로 끝장을 내보자. 그래서 이 끝장내는 역사의 진행에 새로운 전환기를 우리 손으로 만든 것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바탕으로 다가오는 전투를 준비하는 그러나 지금 마치 일정시간이 지나면 이 정세 국면이 끝날 것이라고 착각하거나 그러지 마세요. 이건 이미 전쟁으로 가고 있다는 거. 새 형태의 전쟁이라는 것을 말씀 드립니다. ■권역별 토론(남부) ▲이상호(경기진보연대 고문)=대형면허가 있는 사람들은 다 징집대상인거고요. 또 SUV차량들은 다 징집이 되고 기타의 어떤 다른 여러가지 보완을 (*)텐데 징집이 되면은 될 수도 있긴 하겠지만 아까 이야기 했던 것처럼 이미 우리가 누군지 다 파악이 된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징집이 되겠습니까? 예비(검속?)이 되겠죠. (중략) 지역에서 간첩사건으로 연루됐다가 언론사 사업하고 있는 사람이 나한테 그런 질문을 하더라고요. 전쟁 분위기가 고조가 됐을 때였는데 그래봐야 2개월 간다. 자기가 볼 때는 자기가 수원지역에서 예비검속에 2인자다. 국정원이 따라다니는 것 보니깐 자기가 이긴 것 같다. 구체적인 이야기 하면은 자기는 조수석에 칼 하나 갖고 다닌다. 자기는 예비검속 당하면 근데 그냥은 안나간다. 나를 잡으면 한명은 죽이려고 칼을 넣고 다닌다. 그것이 그 사람의 결의겠죠. ▲이상호=근데 우리가 오늘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내가 이 지금 격변기에 불가피한 전시상황이 벌어졌을 때 우리가 어떻게 잠재해있던 전시상황을 유리하게 국면을 전환한다라고 하는 보다 큰 차원에서 문제들이 곳곳에서 (중략) 우리한테는 잘한다고 했는데 자기 생활에도 허점이 있는 거예요 합법주의에 빠진게 아닌가? ▲이상호=필승의 신념을 갖는 것은 갖는 건데 그 신념을 어떻게 구체화 할거냐? ▲신원미상 남자=그런 것들이 있어요 전국적으로 미군 유류라인이 (…) 낡아가지고 (…) 헐어가지고 (…)나온 ▲이상호=그냥 아주 엑기스만 이야기 하셨네요. 그래서 위장을 하자. 위장을 하고 우리가 전시에 차단해야 하는 활동에 대해서는 타격을 주자. 통신을 얘기한 거고. 그 다음에 이제 유류고. ▲이상호=그것은 지역별로 할지 전체로 할지 상황에 따라서 검토가 필요한 문제가 있을 거 같은데 중요한 것은 지침은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논의가 되는 거예요. 개별적으로 할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모여야 되겠죠. 거기에 맞춰서 소조가 정해질 거고, 임무가 주어지는 상황이 되고 다른 거는 지금 다른 의문사항에 대해 이야기 해보시죠. 통신하고 그 다음에 기름, 유류에 대한 논의가 됐거나 공유할 부분이 있을 겁니다. 화성에도 다른 지침이 있거나 그러면? ▲최진선=어떤 시점에서 예비검속은 피해야 되는 상황이고 뭔가 조짐이 있으면 더욱 구체적으로 해야 하는데. (중략) 이번에 폭력적인 대응, 기본 계획을 빨리 만들어 줘야 거기에 따라서 훈련도 되고 있는 문제이지 (중략)사실 개별적으로 저장소를 어떻게 한다 불가능한 예기고, 통신교란 불가능한 예기고, 우리지역에서 상황이 발생하면 군사쪽으로 움직여야 되는 거고. 군사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위치 체계와 준비가 돼있는가? 이걸 점검하고 부족한 것은 채워 나가는 부분이라서 어떤 시설에 대한 타격이나 이런 문제도 그게 갖추어 줘야 가능한거지 그렇지 않고는 가능할 수 없다. (중략)그런 매뉴얼을 만들어 필요하면 이런 이런 지침에 의해 움직이는 게 필요하고 (중략) 비상식량, 음식 필요한 이런 것들을 집에 준비하고 당장 할 수 있는게 그거 아닌가 싶어요. (중략) 보안이 가능한 장구를 마련하는 것도 준비인 것 같아요. ▲이상호=위기상황에서 통신 같은 경우는 보안만 되면 아무 문제 없으니깐. 거점을 지역별 거점을 잡는다고 하면 2단계 3단계 방안이 필요하겠죠. (중략) 우리가 방침이나 지침에 의해서 같이 공유하면 될 것 같고 다만 무장하자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를 하겠는지? 그러면 무장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하는 문제는 남는 문제가 있겠죠. 예를 든다면 지금 이제 외국에서 수입해 오는 장난감총 있잖아요. 그게 80만원 짜리에서 90만원 짜리 들어가게 되면 가스쇼바가 있는데 개조가 가능하며 그것이 안에 들어가면 비비탄총을 갖다가 새를 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사람을 조준하게 만드는 일반 총이 있어요. 그런 것들을 포함해서 예를 들려고 한다면 아니면 지금은 인터넷에서 무기를 만드는 것들에 대한 기초는 나와 있어요. 중학생들도 인터넷에 들어가 가지고 폭탄을 만들어가지고 사람을 살상시킬만큼 위협을 만들 수 있어요. 우리가 잘 해석해서 놓고 본다고 한다면 가지고 있는 재료들이 많이 있어요. 조금만 공부하고 조금더 남들이 이해하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이해할 수가 있겠죠. 항일 무장단체를 보면 (*)에 강한 사람이 있고,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가 지역별로 잘 파악해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 무엇이 있는지, 예를 들면 폭탄을 제조하는데 있어서 거기에 내가 참여하는데 있어서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우리가 추천하고 참여하면 되는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유류저장이 세계에서 가장 큰 데가 평택에 있는 유조창. 이거 세계에서 가장 큰 저장소에요. 그 탱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거기 뭐야 안에 있는게 니켈합금이에요. 그것은 관통하기가 어려워요. 더 중요한 문제는 뭐냐면 니켈합금을 감싸고 있는 것이 두께가 90cm에요. 벽돌로 시멘트로 그래서 그것이 총알로 뚫을 문제는 아니거든요. 우리가 차로 혼자 다이나마이트 싣고 와 가지고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폭하되는 문제는 아닌 거예요. 이미 정부에서 테러범이 투입되고 소방 특공대가 들어가고 다 이미 있는거죠. 인천에 그런 시설이 있는 거죠. 우리가 조사를 해놨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될 문제는 아니고 다만 전시상황이라든지 중요한 시기에는 우리가 통신과 철도와 가스, 유류 같은 것을 차단시켜야 되는 문제가 있는 거죠 다만 전시상황이라든지 중요한 시기에는 우리가 통신과 철도와 가스 유류 같은 것을 차단시켜야 되는 문제가 있는 겨죠. 그랬을 때 우리가 검토한 바에 의하면 그 시설이 실제로 경비가 엄하진 않았는데 그것이 쉽게 우리가 뭔가를 갖다가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걸로 알고, 그렇다면 안에 들어가서 시설을 파괴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고 중요시설 안에서 이것들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철도 같은 경우도 철로의 위를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철도가 지나가는데 있어가지고 통제하는 곳 이거를 파괴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 방법이다. 통신 같은 경우도 가장 큰 데가 혜화국이에요. 전화가 혜화동에 있어요. 그 다음에 분당에 있습니다. 수도권을 갖다 관통하는 혜화동하고 분당에 있는데 거기에는 쥐새끼 한마리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진공형태가 돼야 되기 때문에 몇 개의 문을 통과해야 하는 문제가 있고. 우리가 남에서 전쟁이 벌어지거나 상황이 된다고 하면은 목숨을 걸고 투쟁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들이 있는거죠. 목숨을 건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라 굉장히 기술적이고 과학적이고 거기에 맞는 뭔가 물질적인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문제가 있는 거죠. 더 나아가 결정적 시기가 되면 우리가 목숨을 걸고 수행해야 할 각자 임무들이 부여되면 거기에 맞는 과학적이고 물질적인 기술적인 문제들이 요구되는 부분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내가 화공과를 나왔는데 (*)에 대해서 (*)를 제조하면 된다 그런식으로. 자기 목숨을 걸고 탈취를 할 것이냐? 탈취한 것을 가지고 실질적 군사적 대응을 할 것이냐? 이 문제는 다를 수 있는 문제인데 많은 동지들이 저는 그러한 위급한 상황에 조직적이고 무장된 역량으로 임할 수. 평택지역 같은 경우가 군사 조치가 굉장히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어지는 거기에 사업할 때도 나와요. 그래서 실제로 지역에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중요하게 어떤 화약, 생산하는 곳이 있어요. 거의 북부지역이고 남부지역에 2개밖에 없고. 그런데 그런 것들도 필요하면 터치해야 되겠지. 그랬을 때 굉장히 질적인 요건들이 필요한 거고. 정보도 필요한 거고. ▲이상호=터치를 하는데 있어 가지고 인터넷에 나와 있는 주소가 다 틀려요. 그래서 지금 무기고라든가 화학약품이 있는 거기에 나와 있는 주소가 다 달라요. 그것들이 우리들 모르게 위장하는 거예요. 실제로 안맞아요. 그런 부분들을 찾아낸 부분들이 있어가지고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실제적으로 명단이 꽤 있는 거예요. ▲이상호=우리가 손재주가 있고 결의가 있고 거기에 재주가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라고하는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했고요. 또 필요하면 우리가 타겟활동을 해야 될 것인데. (중략) 이런 집단적인 논의를 통해서 정말로 내가 탈취를 하는 과정이라던가 혹은 내가 무기를 만드는 과정이라던가 뭔가 내가 통신시설을 파괴하는 어떤 나한테 어떤 임무가 주어질 지 모르지만 이런것들이 구체적으로 자기의 목숨을 내놓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대해서 이런 모임 자체가 여러분이 (*)을 가지기 때문에 어떤 필승의 신념을 갖는다고 했는데 신념이 이렇게 구체적인 논의 속에서 확인되어서 나온다고요. 파이프라인들이 오래되거나 혼재되고 그런데 그런 라인만 우리가 잘 알아서 가지고 그리고 전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전 단계에서 우리가 주변을 갖다가 보다 더 우리편을 확대하는 과정 등을 이런것들을 진행시키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거고. 그리고 더 중요한 문제는 우리가 물리적인 타격도 중요하겠지만 물리적인 타격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우리가 반드시 포섭하는 사업도 굉장히 중요할 것이다. ▲홍순석(경기도당 부위원장)=대중정치 역량을 우리가 지금보다는 백배 천배를 쌓아야지 이 난국을 극복한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권역별 토론 발표 ▲동부(김근래 경기도당 부위원장)=정세의 엄중함이나 심각함에 대해서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최급박한 전쟁의 상황까지 포함해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준비하는게 필요하겠다 느꼈다. 적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전기ㆍ통신분야에 대한 공격을 하는 것까지 포함에 여러 의견이 나왔다.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 고민했다라기보다 이 논의를 하는 것 자체가 자기의 하나뿐인 목숨도 걸어야 되고, 동지들과 함께 생사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확인했다. ▲남부(이상호)=여기 모인 사람들은 다 조국의 운명과 함께 한다고 생명을 거는 사람들이다는 이야기 했다. 2~3월에 대포 한 잔 했던 사람이 국정원이 따라다니는 것 같더라고 하면서 ‘한 명을 반드시 죽이고 자기도 최후를 맞을 거다’이런 얘기를 했다. 오늘 이야기는 한 놈 처단하는 문제가 아니라 격변기에 우리가 어떻게 정세를 주도적으로 맞이하는가 하는 문제다. 정리된 지침, 매뉴얼이 필요하다. 우리가 모여야지 개인적인 싸움이 아니다. 총은 준비해야 되는게 아니냐 이런 의견 나왔다. 어떻게 총을 만들거냐? 부산에 가면 있다. 항일의 시기에도 기술이 발달되지 않은 시기에도 만들어 썼는데 손재주가 있고 결의가 있으면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문제 이야기 했다. 그런데 불행히도 화공과 나온 사람은 없어요. 이런 집단적인 논의를 통해 탈취를 하는 과정이라든가 혹은 무기를 만드는 과정이라던가 통신선을 파괴한다든가 하는 나한테 어떤 임무가 주어질지 모르지만 신념이 이렇게 구체적인 논의 속에서 확인되어서 나온다. 물리적인 타격도 중요하겠지만 물리적인 타격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우리가 반드시 포섭하는 사업도 굉장히 중요하다. ▲중서부(홍순석 경기도당 부위원장) 안일한 사고로 전쟁인식이나 이런 것이 허술했다. 동지들 속에서 관점 견해 이런 것을 철저히 일치시키고 생활, 집단적인 기풍 이런 것을 다져야 된다는 분도 있었다. 생활규율부터 자기를 세우고 조직 속에서 임무와 규율로 무장하면서 다시 우리를 준비하는 것이 필승과 신념을 준비하는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한 동지는 총을 준비해야 된다고 했고, ‘뭐에 할거냐?’했더니 ‘저격하는 총이다’이러더라. 두번째 한 동지는 주요시설 마비 시킬려면 요즘에 첨단기술이니 해킹기술로 레이더기지나 이런 것들을 마비시킬 수 있다 그랬는데 이런 것도 뜬구름이었다. 세번째 동지는 좀더 구체적이었는데, 지도부 중심으로 지도부가 시키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오더가 딱 떨어지면 나와야 하는데 그런 준비가 돼 있느냐 문제에 공감했다. 마지막 동지는 대중 속에 들어가서 대중정치 역량을 지금보다 백배 천배를 쌓아야 난국을 극복한다는 얘기를 했다. ▲북부(이영춘 민주노총 고양 파주 지부장)=피부로 느끼는 사례가 있다. 어떤 지인인데 비상식량 준비나 생화학전 무기 때문에 비상 화생방 무기들을 구입해서 비치하고 있다. 전시상황이나 국지전이 발생할 경우에 북부지역은 다 사정권 안에 있다. 상호간에 집결지라든지 이동루트 이런 것이 필요하다. 그런 것에 대응하는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 이쪽 지역은 대부분 미군들이 동두천에 거주하고 있고 미군 아파트도 있기 때문에 미 군속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일상생활에서 파악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이쪽 지역의 발전이라든지 지하철이라든지 철도 등의 국가 기간산업이 포진을 많이 하고 있는데 그런 곳과의 관계를 좋게 만들어 가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행정부서나 이런데서는 전산망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는게 중요하다고 나왔다. 실제 팀을 예비역 중심으로 꾸리고 군사 매뉴얼 진행되는데 대한 우리의 매뉴얼을 준비해야 하고 각자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각자 건강문제 체력문제 등도 세심히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 나왔다. 연락체계, 후방교란, 무장과 파괴는 어떻게 할 거냐에 대해서 팀을 구성하고 대응책을 준비해 가야 한다. ▲청년(박민정 전 중앙당 청년위원장)=청년은 6명이다. 설마 전쟁이 일어나랴라는 안이함이 있었다. 저희끼리 6명이서 훈련을 할까? 아니면 백만조직 유인물 대회를 할까? 하는 다양한 이야기를 했지만 저희가 주도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 문제, 마음을 모으는 자리였다. 청년부문의 강화와 주체역량 강화라는 목표로 전투를 벌이고 있고 이기서 핵심은 동지를 선택하고 배후를 확대해서 실제 이 본질과 함께 해야 된다. 저희가 벌이고자 하는 백일전투 동안 우리부터 세밀하게 체력부터 시작해서 세밀한 준비를 해두자. ▲중앙파견(우위영 전 통합진보당 대변인)=한 동지가 오늘 (이석기의) 강의를 들으면서 전율을 느꼈다고 했다. 물질, 기술적 준비를어떻게 갖출 거냐? 뜨거운 반응이었다. 군대를 나온 분인데 최근 공부를 하고 있다. 정보전을 할 수 있는 최소의 인원, 적들의 통신망, 도로망 이런 것들을 가지고 논의가 되었다. 결론은 각자 소관 업무를 똑똑히 인식하고 각자의 초소에서 구체적으로 혁명전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혁명이 부를 때 언제든지 모일 수 있는 태세는 일상에서 나오는 것이다. ▲기타팀(조양원) 중요한 것은 전쟁이 일어나고 직접적인 발발이 있을 때 수뇌부를 지켜야 하는 거예요. 대표님을 중심으로 해서. 두 번째는 지도부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갖추고 거기에 준비를 해야 한다. 지난 번에도 이런 토의를 했는데 저희들이 느끼는 것은 사실 준비가 아직 많이 안돼 있잖아요. 준비를 갖추는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집단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앞으로 더욱 강력한 조직생활, 팀생활을 통해서 목숨 걸고 싸우는 각오로 군중사업도 해야 되고 자기 책임도 해야 되지 않겠냐고 얘기했습니다. ■이석기 의원 마지막 발언 ▲민족사의 60년의 총결산이라는 것을 깊이 자각해서 대차게 그리고 웃으며 승리하기까지 엄청난 태세로 여기 있는 동지들이 하나가 되기 위한 **가 아니라 모두가 성공해야 하는 것. 여러분들의 한치의 타협을 ** 전선의 **이라는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여기 동지들이 영리만 따지지 말고 즉각 전투태세로 돌아 갈 수 있을까 하는 건데 동지들은 준비가 잘 됐습니까. ▲오늘 이 시작으로 격변정세를 주동적으로 준비하는 것에 대한 하나의 결의가 아니라 실질적인 내용으로 물질적으로 강력하게 준비할 수 있도록 당장 준비하기를 바라면서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27일 정전협정 60년] “한국, 수십년 흘러도 할아버지의 희생 가치 있게 여겨 감명”

    [27일 정전협정 60년] “한국, 수십년 흘러도 할아버지의 희생 가치 있게 여겨 감명”

    한국전 미국 참전 용사들의 후손들은 한국전쟁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참전 용사의 손녀들이 정전 60주년을 이틀 앞둔 25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알링턴에서 서울신문을 비롯한 한국 언론을 상대로 합동 인터뷰를 가졌다. 이들은 재미 민간단체인 ‘한국전 참전 용사 디지털 기념관 재단’(이사장 한종우)이 26일 발족하는 ‘한국전 참전 용사 청년봉사단’에 참여하기 위해 미 전역에서 모인 젊은이들 중 일부였다. ■서맨사 프레이저(30·교사) 교과서에 너무 짧게 기술돼 제대로 알리는 데 힘쓰고 싶어 조지아주 체로키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서맨사 프레이저는 인터뷰에서 미국 교과서에 한국전쟁이 너무 짤막하게 기술돼 있는 현실을 토로했다. 참전 용사인 외할아버지 헤럴드 메이플스로부터 어려서부터 한국전에 대해 들어 왔다는 그녀는 “교과서에 2차 세계대전은 15~20쪽의 장(chapter)이 별도로 배정돼 있고 베트남전도 여러 쪽에 걸쳐 기술돼 있는 반면 한국전쟁은 두 단락이 전부”라고 했다. ‘미국은 싸울 생각이 없었는데 북한이 침공해서 유엔과 함께 참전했고 나중에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후퇴했으며 결국에 가서는 정전과 함께 공산주의 확산도 멈췄다’는 내용 정도라는 것이다. 그녀는 “수업에서 2차 대전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다 보니 한국전쟁 부분은 전쟁이 일어났다는 사실만을 짧게 알려주거나 소련, 중국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잠깐 언급하고 넘어가는 식”이라며 “그러다 보니 학생들도 한국전에 관심이 없고 질문을 안 한다”고 했다. 그녀는 “한국전에 대해 증언해 줄 참전 용사들이 갈수록 연로해져서 마음이 급하다”면서 “앞으로 한국전이 제대로 알려지는 데 진력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알링턴(버지니아주)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데인 웨버(23·연구원) 팔다리 잃은 할아버지와 함께 한국 갔을때 시민들 진심 반겨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데인 웨버는 미국 내 대표적인 참전 용사로 유명한 ‘한국전 미군 참전 용사 기념재단’의 윌리엄 웨버 회장의 손녀다. 그녀는 이날 인터뷰에서 “한국전에서 오른쪽 팔과 다리를 잃은 할아버지가 정전 이후 지금까지 한국전을 기념하는 데 진력을 다하는 모습은 내게 깊은 영감을 준다”면서 “내 인생 전체가 할아버지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어렸을 때는 할아버지의 잘린 팔다리를 주목하지 않았지만 철이 들면서 그것이 얼마나 할아버지에게 힘든 부분이었을지 생각하게 됐다”면서 “할아버지가 한국전에 몸을 바쳤다면 나는 시간을 바쳐서 현 세대뿐 아니라 다음 세대에 한국전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2010년 할아버지와 함께 한국에 가기 전까지는 할아버지가 한국에서 그렇게 유명한 분인지 몰랐다”면서 “길거리에서 모르는 시민들이 반가워하며 할아버지에게 선물을 주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달리 한국은 수십년이 흘러도 변함없이 할아버지의 희생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게 매우 인상적”이라고 했다. 알링턴(버지니아주)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재클린 맥그레이스(19·대학생) 잿더미 속 경제발전 이룬 한국 할아버지 너무 자랑스러워해 웰즐리대학 1학년생인 재클린 맥그레이스는 외할아버지 앨빈 밸더스가 한국전 참전 용사이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주한 미군 2사단에 근무한 데 이어 현재는 오빠가 주한 미군 2사단에 근무 중인 ‘3대 세습 주한 미군’ 집안이다. 그런데도 재클린은 올여름에야 난생 처음 할아버지로부터 한국전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고 인터뷰에서 털어놨다. 그녀는 “이번에 내가 ‘한국전 참전 용사 청년봉사단’에 참여한다는 얘기를 듣고 할아버지가 비로소 한국전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했다”면서 “그 전까지는 할아버지가 너무나 끔찍했던 전쟁의 참상을 차마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묻지도 않았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참전 용사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정작 한국전에 대해 배운 것은 할아버지에게서가 아니라 학교에서였다는 것이다. 그녀는 “할아버지와 처음으로 한국전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기 시작한 건 내게 아주 뜻깊은 일”이라면서 “할아버지의 희생을 듣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다”고 했다. 이어 “할아버지가 전후 잿더미에서 지금은 엄청난 경제적 발전을 이룬 한국을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알링턴(버지니아주)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문단데뷔 40년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

    [김문이 만난사람] 문단데뷔 40년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

    그의 집은 ‘와초문학뜰’이다. 뜰 바로 아래에는 조용히 출렁이는 탑정호(塔亭湖)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잔디 마당에는 조각가 류훈의 작품 ‘오늘 저녁 술 한잔 어때요’가 있다. 이 조각은 세 명의 인간형상이다. 하나는 담배를 피우며 시름에 빠진 중년의 노동자이고 나머지 둘은 서로 떠들다가 ‘술 한잔 하자’는 자세를 취하며 어른을 바라보는 젊은 노동자이다. 집 뒤에는 작은 정자가 있다. ‘흐르고 머무니 사람이다’(流留亭)라는 문패가 그럴듯하게 걸려 있다. 그가 직접 쓴 글씨로 새겨넣었다. 얼핏 보아도 붓글씨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그의 부인은 10년 동안 서예공부를 했다. 부인이 그가 쓴 ‘흐르고 머무니~’를 보더니 “10년 공부한 사람보다 더 잘쓰면 어떡하느냐”며 한동안 삐쳤다(?)고 한다. 정자 바로 앞에는 앙증맞은 작은 계곡이 있다. 물이 졸졸 흐르고 붕어새끼들이 이리저리 뛰놀기에 딱이다. 정자에서 몇 발짝 걸어가면 텃밭이 있다. 상추와 고추 등 푸성귀들이 자라고 있다. 글을 쓰다가 소일거리로 잠깐씩 들러 자라는 식물과의 대화를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는 곳이다. 시간과 공간이 흐르는 곳,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홀로 가득 차고 따뜻이 비어 있는 집’이다. 이 집은 팬들을 위해 ‘행복한 만남’이라는 제목으로 1년에 봄, 가을 두 번 공개한다. 그럴 때면 전국 각지에서 200여명이 찾아온다. 글을 써서 인세로 장만한 집일까. “논산시에서 임대해 준 것이고 임대료는 내지 않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집필실은 1층과 2층에 있다. 1층은 정자가 바라보이는 곳이고 2층은 호수가 내려다보인다. ‘영원한 청년작가’ 박범신. 최근 ‘와초문학뜰’에서 문단 데뷔 40년이 되는 해에 40번째 장편소설 ‘소금’을 썼다. ‘은교’ 이후 홀연히 고향 논산으로 내려간 그가 2년여의 침묵 끝에 발표한 작품이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와 ‘비즈니스’로 연결되면서 자본의 폭력성에 대한 ‘발언’을 모아 펴낸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거대한 자본의 세계 속에서 가족들을 위해 ‘붙박이 유랑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그래서 가출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난달 26일 고향에서 첫 작품을 쓴 박씨와 와초문학뜰에서 만났다. 늘 그렇듯이 편하고 허름한 옷차림이다. 마당에서 만남이 이루어지다 보니 정자 얘기부터 먼저 나왔다. “원래는 마음 심(心)자를 써서 ‘심유정’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뻥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이 머무는 적은 없어요. 그래서 흐를 유(流)자로 바꿨더니 뻥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지요. 원래 붓글씨를 배워 본 적이 없는데 제가 직접 먹을 갈고 화선지에 쓰고 현판에 새겨 달아놓았습니다.” 머물고 흐르는 것이 곧 마음에 있는 것은 아닐까. 그는 잠시 후 배도 고픈데 식당으로 가자고 했다. 미리 와 있던 두 명의 손님과 함께 인근 민물고기 매운탕집으로 옮겼다. 식당 주인이 그를 단골손님처럼 반긴다. 그는 자리에 앉으면서 주인 아주머니에게 ‘닭도리탕’과 ‘매운탕’을 주문하고 “막걸리 두 병과 소주 한 병 주세요”라고 했다. 주종과 주량을 물었더니 “오늘은 속이 별로 안 좋아 막걸리 두어 잔만 하겠다”고 말한다. 술은 많이 마시지 못하지만 잠자기 전 소주 반 병 정도나 과실주를 주로 마신다고 했다. 2년 동안 고향에서 어떻게 지냈을까. “원래는 고향으로 내려올 생각을 안 했는데 하루는 40대의 젊은 시장이 ‘형님, 고향으로 오시죠’라고 해요. 그 형님 소리가 듣기 좋더라구요. 그래서 결정했습니다. 여기에서 2년 동안 살면서 금강문화권을 다시 공부했습니다. 탑정호수 건너편에 황산벌이 있습니다. 계백이 깨진 곳이지요. 이 금강문화권은 또 백제와 후백제의 멸망, 그리고 동학군이 최후를 맞이한 곳이기도 합니다. 원혼이 많아 한밤중에 귀신이 자주 나타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단다. 밤에 술을 마시고 마당에 앉아 있는데 누가 절뚝거리며 다가오더라는 것. 누구냐고 했더니 ‘계백 장군 똘마니 장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왜 안 가고 그러고 있느냐고 재차 물었더니 장수는 ‘계백 장군을 버리고 갈 수 없어서’라고 했단다. 얘기를 흥미롭게 듣다가 웃으면서 패망한 군인들의 원혼과 함께 있어서 외롭지 않겠다고 했더니 “뼛골만 있어도 생명을 불어넣고 그런 것이 작가가 아니냐.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묻혀 있는 곳이다. 2년 동안 고향사랑을 많이 했다”고 말한다. 술 한 잔을 마시고 담배 한 대를 입에 문다. “어린 시절 가난했던 추억만 가지고 있어서 고향에 오기가 싫었는데 지금은 아니다”라며 잠시 창밖을 바라본다. 40번째 장편소설 ‘소금’에 대해 얘기한다. “과거에는 어머니들이 희생했다면 요즘은 아버지들입니다. 베이비부머 시대의 아버지들이 쓸쓸하고 외롭습니다. 가부장의 권위도 해체되고, 아버지는 늘 자식을 위해 과실을 따오고 30대의 장성한 자식조차 여전히 아버지 등에 빨대를 꽂아 과실을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거대한 소비문명이 자식들을 빼앗아 갔습니다. 이것은 건강하지 못한 사회입니다. 이 시대의 아버지들은 어디에서 부랑하고 있는지, 지난 반 세기동안 무엇을 얻었고 잃었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아버지들이 젊었을 때에는 자식을 위해 수시로 돈을 뺄 수 있는 통장 역할을 하고 나이 들어서는 보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이 소설은 가족을 버리고 끝내 ‘가출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거대한 폭력과 쓸쓸함을 비판하면서 특정한 아버지가 아닌 동시대를 살아온 ‘아버지1~아버지10’을 다루고 있다. 애당초 젊은이들에게 읽히고 싶어 시작한 소설인데 정작 젊은이들에게 반발을 일으킬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며 웃는다. ‘은교’의 경우 시간의 반란을 그리기 위해 남자 주인공을 원래 77세로 설정했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젊은이들이 읽지 않는다며 65세로 해달라고 했다. 겨우 타협점을 찾은 것이 70세. 뚜껑을 열었더니 예상과 달리 20대 여자들이 책을 많이 본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이번에 쓴 ‘소금’은 그렇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소금’은 지금까지 7만부를 찍었다. “요즘 글을 쓰는 사람은 많고 독서 인구는 그에 비해 적어요. 예를 들어 문학책이 10만부가 팔렸다고 할 때 문학을 알고 사는 사람은 2만명, 나머지 8만명은 사회적 이슈이거나 자극적인 데서 책을 구입합니다. 5만 독자를 유지한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문학은 작업”이라고 말하면서 우리 수준이 문화적으로 높아져야 잘못된 제도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소설이란 마라톤과 같으며 빈틈없는 전략으로 뒤집기를 잘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요즘 작가들은 스타트는 좋으나 체력이 문제라면서 “소설이란 걸어갈수록 강력한 힘을 발휘해야 하며 달의 뒷면, 어두운 면까지 가는 것이 문학”이라고 설명한다. 정신적인 끈기와 투지가 있어야 하며 작가의 뒷심이 약하면 시대를 바라보는 뒷심 또한 약한 것이라고 한다. 요즘 젊은 작가들은 정보에 의존해 쓰다 보니 이야기를 확실히 장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한다. 그는 신문을 잘 안 본다고 했다. 나머지 인생을 굳이 정보에 의존해서 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한순간 달의 뒷면을 볼 수 있는 직관력으로 살아가려고 한단다. “30대에는 사랑받고 싶어 넓이에 정체성을 두고 글을 썼고 40대를 넘기면서 깊이를 추구했습니다. 치열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글을 써오는 동안 벌써 40년 연애한 것처럼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저 자신에게 아직도 순정주의 문학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연애한다고 생각하니 행복합니다.” 그는 히말라야 등정을 15차례나 했다. 존재의 등반이다. 자신의 내면 속으로 걷기, 초월적인 세계를 실감하기, 인간의 갈망이 있는 그곳에서 불멸과 순간, 현세적 삶과 초월적 삶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 ‘비우니 향기롭다’, ‘나마스테’, ‘촐라체’ 등이 이 같은 산악 세계에서 비롯되고 있다. 지금도 걷는 것은 누구보다도 자신있어 한다. 앞으로 그의 ‘문학적 걷기’는 어떻게 될까. “여기 올 때 고전소설 몇십 권을 가져왔는데 다시 틈틈이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밀란 쿤데라 작품도 읽어봤고, 아마 다음은 역사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조선 후기 노론의 기반이 되는 곳이 바로 논산이거든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생활의 모토에 대해 물었더니 ‘가난한 밥상’과 ‘쓸쓸한 배회’라고 했다. 달랑 물에 만 밥과 김치를 먹으며 육체와 정신의 기름기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박범신은 누구 1946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원광대 국문과와 고려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78년까지 소외된 계층을 다룬 중·단편 소설을 발표하며 문제작가로 주목받았다. 1979년 장편소설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등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1981년 ‘겨울강 하늬바람’으로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밖에 주요 장편소설로는 ‘불의 나라’, ‘더러운 책상’, ‘나마스테’, ‘촐라체’, ‘고산자’, ‘은교’,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비즈니스’ 등이 있다. 김동리문학상(2001년), 만해문학상(2003년), 한무숙문학상(2005년), 대상문학상(2009년) 등을 수상했다. 현재 상명대 석좌교수로 있다.
  • 주말 영화

    주말 영화

    ■와일드 카드(OBS 일요일 밤 10시 15분) 사건 발생 신고를 받은 강남서 강력반 형사 오영달(정진영·왼쪽)과 방제수(양동근)는 즉시 수사에 착수한다. 인적 없는 지하철 역에서 발견된 중년 여인의 시체는 이렇게 세상을 떠날 수는 없다는 듯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반드시 억울하게 죽은 이의 원한을 풀어 주리라 다짐한 그들은 밤낮으로 탐문과 잠복을 계속하며 비상체제에 돌입한다. 한편 정보원들을 통해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나가는 사이, 비슷한 수법으로 살해당한 또 다른 희생자들이 발견된다. 더 이상 희생자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오영달과 방제수는 급기야 조폭 도상춘의 조직을 접수하고, 이제 형사들은 조직 폭력배의 조직망을 총동원해 수사에 나선다. 드디어 결전의 날. 범인들이 모이는 현장을 덮치기 위해 강력반 전체가 총출동한다. ■독립영화관-사랑의 화신 외(KBS1 토요일 밤 1시 5분) 주인공 영민은 첫 월급을 타서 애인대행으로 신혜를 만난다. 영민은 애인대행을 하면서 헤어진 여자 친구와 함께하지 못했던 데이트를 하려고 한다. 그들의 하루 동안 데이트는 점점 특별해지고 둘은 관계를 맺는다. 한 달 후 영민은 경찰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영민은 경찰에게 신혜와 가졌던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사랑의 화신). 열람실에서 우연히 남의 휴대전화를 받게 된 취업준비생 성모. 낯선 여자는 실수로 전화를 받게 된 성모에게 그 휴대전화를 들고 다짜고짜 자신과 만나 달라 사정한다. 낯선 영지와의 만남도 잠시. 그녀에게서 의혹을 느끼게 된 성모는 휴대전화를 넘기지 않게 되고, 영지가 총장의 비서라는 사실만을 접하게 된다(Keep Quiet). ■태양은 가득히(EBS 일요일 오후 2시 30분) 일확천금을 꿈꾸는 청년 톰 리플레이는 고등학교 동창이자, 방탕한 부잣집 외아들 필립의 아버지로부터 부탁을 받는다. 바로 로마에 간 그의 아들 필립을 데리고 오면 5000달러를 주기로 한 것이다. 학창시절부터 필립에게 항시 괄시를 받아온 톰은 필립을 만나 돈과 지위를 위해 참고 필립의 하인 노릇을 하면서 따라다닌다. 한편 둘은 요트를 타고 어촌 몬지베로에서 나폴리로 와 필립의 애인 마르쥬를 태우고 항해를 즐긴다. 필립은 톰이 두 사람의 방해물이라 생각해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한다. 결국 사소한 시비 끝에 필립은 톰을 구명보트에 매달고 달리다, 그만 구명보트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렇게 되돌아가 톰을 구출하지만, 햇볕 때문에 톰은 심한 화상을 입고 마르쥬의 간호를 받게 되는데….
  • [주말 인사이드] 베이징 대졸예정 22만명 중 취업 33%뿐… 경기 둔화 中의 ‘또 다른 고민’

    [주말 인사이드] 베이징 대졸예정 22만명 중 취업 33%뿐… 경기 둔화 中의 ‘또 다른 고민’

    “이제 졸업까지 보름 남짓 남았는데 앞길이 막막합니다.” 9월에 학기가 시작되는 중국 대학에선 6월쯤이면 사실상 취업이 마무리된다. 그러나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다. 황옌페이(黃燕飛·여)는 이달 말 졸업을 코앞에 두고도 아직 취업을 하지 못했다. 그는 당초 대학원에 진학할 계획이었지만 취업난으로 대학원 응시율이 사상 최고를 기록하면서 시험에 낙방한 뒤 지난 4월부터 뒤늦게 구직 행렬에 합류했다. 70여곳 넘는 회사에 이력서를 냈지만 면접을 보라고 연락 온 곳은 10곳도 채 안 된다. 당장 오는 30일 학교 기숙사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에 그때까지 취직을 못 하면 집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주변 친구들도 취업이 안 돼 사정이 딱하긴 마찬가지다. 전공과 상관없이 요즘 졸업 예정자들은 해삼 판촉직에도 지원할 만큼 처지가 절박하다. 5월 현재 베이징 소재 대학 졸업 예정자 22만 9000명 가운데 일자리가 확정된 학생은 33.6%다. 10년 전인 2003년 동기 취업률(89.7%)의 3분의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반면 취업난으로 올해 대학원 석사 과정에 응시한 학생은 전체 대졸자의 25.8% 수준인 180만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60년 만의 최대 취업난’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취업난의 일차적 원인은 수요 공급의 문제다. 대졸자는 증가한 반면 경제성장은 둔화돼 일자리가 줄었다. 중국 교육부가 밝힌 올해 대졸자는 699만명으로 지난해보다 19만명 늘었다. 중국 대졸자 수는 2010년 630만명, 2011년 660만명, 2012년 680만명으로 매년 20만~30만명씩 늘어나는 추세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 영향으로 해외 유학파들이 국내 취업 행렬에 동참하고 있는 것도 중국 국내 대졸자들의 취업 문턱을 높이는 요인이다. 지난해 귀국한 해외파 대졸자는 총 27만 2900명으로 전년보다 9만명 늘었다. 반면 경제성장 둔화로 일자리는 줄고 있다. 올 1분기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7.7%로 지난해 4분기 7.9%보다 0.2% 포인트 하락했다. 중국 500대 기업과 공공기관의 대졸자 채용 규모가 지난해보다 15% 포인트 줄어들었지만 대졸자들이 느끼는 체감 수준은 이보다 더 심각하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대졸 취업난은 한국과 비교할 때 사회 불안을 일으킬 수 있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다. 베이징이공(北京理工)대 경제학과 후싱더우(胡星斗) 교수는 “중국의 실질적인 대학 진학률이 20%란 점을 감안하면 대졸자는 이 사회의 준엘리트 계층”이라면서 “이들이 7%대 경제성장률 속에서도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은 중국 경제에 문제가 상당히 많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일자리를 창출하는 민간 기업은 문을 닫는 사례가 많고, 정부 투자 중심으로 성장률을 지탱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중국의 경제체제 개혁이 더딘 데다 향후 경기가 악화될 것이란 전망이 많아 대졸자 취업난은 사회 불안의 전조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부 관영 언론들은 취업난의 주된 원인 중 하나로 대졸자들의 높은 눈높이를 꼽는다. 올해부터 취업시장에 나오는 주링허우(1990년대 출생자들)들은 자기 주장이 강하고 자존심을 내세우는 성격이라거나 재능에 비해 좋은 일자리만 원한다는 식의 비판도 자주 한다. 중국의 지도층도 예비 대졸자들에게 눈높이를 낮출 것을 주문한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지난 9일 허베이(河北) 사범대학에서 취업난을 호소하는 예비 졸업생들과 만나 대학생들이 눈높이를 낮춰 농촌을 포함한 ‘기층’으로 눈을 돌릴 것을 요청했다. 리 총리는 당시 농촌인 고향으로 돌아가 영어를 가르치겠다는 한 여학생을 칭찬한 뒤 “아래로 내려가야 다시 올라올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도 지난달 톈진(天津)에서 열린 한 취업박람회장에서 예비 대졸자들에게 “고생스럽지만 용기를 내어 지방이나 사회 밑바닥에서 한 걸음씩 성실하게 인생을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한 바 있다. 두 지도자 모두 예비 대졸자들에게 안정적인 공무원이나 국영기업 자리만 고집하지 말고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딘 중서부 지역이나 중소기업으로 눈을 돌리라고 충고한 셈이다. 그러나 젊은이들 입장에서 이 같은 지적을 수용하기란 쉽지 않다. 우선 대졸자들은 불경기란 점을 감안해 이미 눈높이를 상당히 낮춘 실정이다. 베이징 청년스트레스관리서비스센터가 최근 1만 6000명의 대졸 예정자를 상대로 실시한 설문에서 대졸자들의 기대 초봉 금액이 2011년 5537위안에서 올해 3683위안으로 33.4%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일자리에 상관없이 취업을 하겠다는 대졸자들의 의지를 대변하는 것이다. 더욱이 월 3000위안대 수준의 급여는 베이징에서 살기 위한 최소한의 생계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이징 같은 대도시에서는 아무리 싼 곳을 찾아도 한 달에 2000위안(36만원) 미만인 방을 구하기 어렵다. 베이징 외곽에 싼 월세 집들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 창핑(昌平)구의 톈퉁위안(天通苑)에 둥지를 틀려 해도 방 한칸에 1000위안 안팎의 돈이 필요하다. 대졸자들이 집세를 아끼기 위해 비좁은 방에 여럿이 모여 사는 일명 ‘개미족’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이유다. 최근 베이징청년보(北京靑年報)는 취업을 준비 중인 대졸자 40여명이 베이징 시내와 가까운 충원먼(崇文門)의 방 3칸짜리 50평대 아파트에서 함께 살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실제로 중국사회과학원이 최근 펴낸 ‘2013 중국청년발전보고’에 따르면 베이징에만 약 16만명의 개미족이 있다. 상하이(上海) 등 다른 대도시까지 합하면 전국적으로 100만명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개미족 중 67.8% 정도는 10㎡ 이하의 주거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이들의 전체 평균 주거 공간은 6.4㎡, 월 임대료는 518위안(약 9만 5300원)으로 나타났다. 중국 지도자들의 조언에 따라 지방으로 내려간다고 해도 밝은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베이징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야 경력 관리에도 도움이 된다. 베이징 이외 지역 대졸자들까지 기를 쓰고 상경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최근 헤이룽장(黑龍江)성 치치하얼(齊齊哈爾)대 법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증까지 딴 닝보원(寧博文)은 “베이징 변호사 사무실에서 실습 자리를 얻었는데 보너스까지 합해도 월 급여는 2000위안을 조금 넘는 수준”이라면서 “집세로 월 800위안가량을 내고 이런저런 생활비를 쓰고 나면 오히려 적자 인생이지만 헤이룽장으로 돌아가더라도 베이징에서 일한 경력이 있어야 조금이라도 돈을 더 받을 수 있으니 베이징에서 버텨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도시와 농촌 간 격차, 동부와 서부 간 격차가 중국 최대 사회문제인 점을 감안하면 고된 생활도 마다하지 않고 베이징 등 대도시에서 사회 첫발을 내디디려고 몸부림치는 졸업자들의 모습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젊은이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기보다 도농 격차, 지역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게 우선이란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어떠한 국가 폭력도 다시 자라지 못하게”

    “어떠한 국가 폭력도 다시 자라지 못하게”

    시민들의 기부금으로 국가폭력 피해자를 돕기 위한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가 다음 달 문을 연다. 인권의학연구소는 ‘세계 고문희생자의 날’인 다음 달 26일 서울 성북구 정릉동 성가소비녀회 성재덕관에서 김근태 기념 치유센터 개소식을 한다고 26일 밝혔다. 센터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 발생한 고문 피해자들과 최근 민간인 불법사찰로 인한 국가공권력 남용 사건 피해자들의 치유를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센터는 국가폭력 피해와 피해자 치유에 관한 연구조사 활동, 고문 방지와 피해 보상 법제화 등을 수행한다. 이화영 인권의학연구소장은 “고문 피해자를 치유하는 일은 그들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어떠한 국가 폭력도 다시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면서 “민간 영역은 물론 정부도 치유 프로그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센터 설립 논의는 2011년 12월 30일 별세한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현 민주당) 고문의 영결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추모 미사를 집전한 함세웅 신부는 “전기고문을 당한 고인은 내외적인 상처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청년 시절의 열정을 갖고 밀어붙였다”고 회고하면서 치유센터 건립 의사를 밝혔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피플인 스포츠] 2013 아시아 5개국 대회 준우승 이끈 15인제 럭비대표팀 주장 박순채

    [피플인 스포츠] 2013 아시아 5개국 대회 준우승 이끈 15인제 럭비대표팀 주장 박순채

    야성적이고 원시적인 남자들의 스포츠, 트라이 하나를 찍기 위해 모두가 헌신하고 희생하는 신사의 스포츠, 전 세계 600만명이 열광하는 스포츠. 럭비다. 2013HSBC 아시아5개국대회(A5N)를 준우승으로 마친 15인제 럭비대표팀 주장 박순채(28·일본 산토리)를 지난 19일 만났다. 만나기 전까지 “말주변이 없고 인터뷰 울렁증이 있는데 어쩌냐”고 고민했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유쾌하게 재잘댔다. 그라운드에선 웃음기 없는 전사(戰士)였지만, 유니폼을 벗고 뿔테안경을 쓴 박순채는 순박한 청년이었다. 전날 홍콩전(43-22승)의 흥분이 가시지 않은 눈치. “지금까지 한 경기 중에 가장 잘한 것 같아요. 정신적 지주인 유영남(파나소닉)이 후반 30분을 남겨두고 부상으로 빠져서 불안했는데 마무리가 좋았죠. 오윤형(KEPCO)은 어제 트라이 세 개 찍고 보너스킥까지 해서 대회 득점 1위(68점·4경기)가 됐어요. 너~무 힘들었는데 준우승으로 다 보상받은 것 같습니다.” 15인제 럭비대표팀은 강원도 양구에서 고강도 체력훈련을 했고,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일본 원정경기를 다니며 지난 두 달을 빡빡하게 보냈다. 결국 지난해에 이어 아시아 2위를 지켰고, 국제럭비위원회(IRB) 랭킹도 2010년 4월 이후 가장 높은 24위로 두 계단 뛰어올랐다. ‘캡틴 박’은 뭐니뭐니해도 지난 4일 한·일전이 하이라이트였다고 전했다. 순수 일본인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용병을 수혈한 ‘무늬만 일본’에 5-64로 졌다. 한국은 올해 A5N에서 일본을 상대로 유일하게 트라이를 찍었고, 2002년 이후 원정 최소 점수차로 간극을 좁혔다. 프로(톱리그)를 보유한데다 등록선수만 12만명에 이르는 일본을 상대로 나름 선전했다는 게 자체 평가다. 박순채 자신에게도 특별했다. “창피한 얘기지만 치치부노미야 경기장을 처음 밟아봤어요. 소속팀 홈구장인데 동료들이 뛰는 것만 봤지, 그라운드를 처음 누빈거죠. 뭉클하기도 하고, 뭔가 보여줘야겠다는 각오도 컸습니다.” 한국은 졌지만, 그의 이름 세 글자는 확실히 각인시켰다. 파이팅 넘치게 팀을 이끄는 박순채의 모습에 일본 선수들은 놀랐고 또 반했다. 근성만큼은 알아주는 박순채다. 그는 일본 톱리그에서 뛰겠다는 의지만으로 겁없이 현해탄을 건넜다. 스카우트된 것도 아닌데 열정만 믿고 무작정 갔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명문팀 산토리가 관심을 보였다. “일주일동안 입단테스트를 봤어요. 러닝부터 체지방, 웨이트까지 세밀하게 체크하더라구요. 연습경기 20분동안 공을 딱 세 번 잡았는데 운 좋게도 두 번이 독주(獨走)로 연결돼 트라이를 찍었어요. 바로 계약서에 사인했죠.” 팀은 개인 숙소와 자가용 승용차, 비행기까지 살뜰하게 제공했다. 연봉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밝힐 순 없지만, 자유계약(FA)으로 대박친 몇몇 빼고는 프로야구 선수가 부럽지 않을 정도”라며 해맑게 웃었다. 설렘으로 시작한 일본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한국에선 승승장구하던 그가 벤치신세를 졌다. 지난 시즌 한 경기도 못 뛰었다. 파워풀한 럭비가 강점인데 팀은 스피드를 앞세운 럭비라 적응이 어려웠다고. 게다가 산토리는 톱리그 16개 팀에서도 최강팀. 지난 시즌 무패로 우승할 만큼 압도적이고, 기량이 월등하다. 그는 지난해를 ‘시련’이라고 규정짓는 대신 새 시즌에 대한 희망을 전했다. “못 뛰니까 정말 서럽더라고요. 이러려고 일본 온 게 아닌데 참담했죠. 올해는 8월 31일 리그 첫 경기가 잡혔는데 예감이 좋아요. 준비됐으니까 부딪혀봐야죠.” 럭비는 1998방콕·2002부산아시안게임에서 7·15인제 금메달을 따낸 효자종목이지만 일반인에게 생소하다. 삼성중공업·포스코건설·KEPCO와 국군체육부대가 일반부의 전부인데다, 1년에 10경기를 치를까말까 할 정도로 경기 수도 적다. “럭비 한다고 하면 한국에서는 ‘어깨에 뽕 넣고 하는 그거?’라면서 미식축구랑 헷갈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일본에서는 다들 ‘스고이’하면서 종이를 들이밀거든요. 일본 가서 처음 사인을 해봤어요. 리그 결승 때도 1만 7000명이 운동장을 꽉 채웠을 정도로 인기가 대단해요.” 박순채는 일단 운동장에서 보면 매력을 알 거라고 확신했다. 거칠고 위험해보이지만 철저히 스포츠맨십을 지키고 트라이 하나를 찍기 위해 15명이 희생하고 뭉친다며 럭비의 매력을 구구절절 읊었다. 일본처럼 바글바글한 관중석을 꿈꿨다. “뜨거운 함성이 있으면 힘들어도 한 발씩 더 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헝그리정신’ ‘비인기종목의 설움’ 이런 건 싫어요. 남들이 안 알아줘도 우리만의 색깔로 럭비할 수 있는 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럭비월드컵에 진출해 깜짝 놀라게 하겠다고 장담했다. 내년 A5N우승팀에게 2015년 월드컵 티켓이 주어지는데 결국 걸림돌은 일본이다. “내년까지 열심히 몸 만들고 성장해서 일본 한 번 잡아볼 생각입니다. 월드컵도 무조건 가야죠. 이번 대표팀에도 일본파가 11명이었는데 못할 것 없잖아요?”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프로필 ▲1985년8월20일 출생 ▲아버지 박종수(62), 어머니 김홍련(61), 누나 박혜정(30) ▲190㎝, 105㎏ ▲부개초-부평중-인천기계공고-경희대-포스코(2008~11년)-일본 톱리그 산토리(2012년~) ▲대한민국 남자15인제 럭비팀 주장, 5개국대회 준우승(2013년), 산토리 대회 우승(2012년), 전국체전·봄철리그·대통령배 포스코 3연패(2009~11년) ▲좌우명=최고보단 최선을, 말보단 행동으로
  • 20년동안 어둠 속에서 웅크려 살던 아이 미술관에 갑니다, 김은정 선생님 손잡고

    20년동안 어둠 속에서 웅크려 살던 아이 미술관에 갑니다, 김은정 선생님 손잡고

    10년 전 처음 만난 스물두 살 청년의 등은 굽어 있었다. 눈이 안 보이고, 외마디 비명을 제외하곤 말을 못했다. 일어나 걷지도 못했다. 두 눈이 완전히 안 보이는 시각장애인 청년은 무려 스무해 동안 방 안에서 화석처럼 웅크려 지냈다. 뼈와 장기는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위로 쏠린 채 퇴화했다. 강원도 유일 시각장애인 학교인 춘천시 우두동 명진학교에서 청년을 발견, 2년 동안 보살폈지만 그는 일어서지 못했다. 희생정신이 남다른 특수교사들마저 더딘 성장에 낙담할 무렵 청년은 김은정(작은 44) 교사를 만났다. 손과 발을 뻗쳐 닿는 곳이 세상의 전부였던 청년에게 새 세상이 열렸다. 청년은 김 교사와 함께 일어서고, 걸음을 떼며 굳어버린 근육이 찢어질 듯한 고통을 견뎌냈다. 100m를 걷는 데 40분이 넘게 걸렸지만, 김 교사는 청년의 손을 놓지 않았다. 올해 서른 두살인 청년은 이제 내년 졸업을 준비 중이다. 배울 시기를 놓친 탓에 여전히 말은 못하지만, 지금은 김 교사의 말을 알아듣는다. 기쁠 때 환한 표정을 지으며 환호할 줄 알고, 싫은 일에 괴성을 내며 거부할 수 있게 됐다. 김 교사는 20일 “가끔씩 ‘엄마’라는 말을 하거나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을 때가 있다”고 했다. 청년이 정말 옹알이하듯 말을 배우고 있는 것인지, 헬렌켈러의 스승인 ‘설리번 선생님’ 역할을 해 온 김 교사가 착각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오는 29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더케이호텔에서 대한민국 스승상 대상(홍조근정훈장)을 받는 김 교사는 20년 간 명진학교에서 중도·중복 시각장애 학생을 가르쳤다. 중도 시각장애인은 장애정도가 중증인 상태를 말하고, 중복 시각장애인은 눈이 안 보이는 동시에 다운증후군·뇌병변 등 다른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을 이른다. 신체적인 부분뿐 아니라 심리적 보살핌이 절실한 학생들이다. 김 교사는 학생들을 미술관으로, 도서관으로 이끌어내며 적극적으로 이들이 사회와 소통할 수 있게 유도했다. 겨울방학이 되면 이 학교 학생 10여명은 김 교사와 함께 기차나 전철을 타고 서울까지 이동해 용산구 이태원 삼성리움미술관이나 여의도 국회도서관을 찾았다. 처음부터 거창한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고 점자책·오디오북으로 도서관을 만들고, 강당에서 학생들과 영화관을 보다보니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문화 욕구가 커졌고 내친김에 미술관을 찾게 됐다고 귀띔했다. 김 교사는 “미국에 가지 않아도 미국에 대해 배우고 미국 여행을 좋아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들도 그림을 감상하고 좋아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올해 2회째인 대한민국 스승상 수상자로는 김 교사와 함께 ▲유아부 배미양 충남 성남초병설유치원 교사 ▲초등부 한상준 인천 연평초 교사, 이선녀 강원 반곡초 교사, 이완국 제주 애월초더럭분교장 교사 ▲중등부 김효상 부산 대광발명과학고 교사, 김상기 전북 삼례공고 교사, 이한복 충남 당진중대호지분교장 교감, 이영욱 경남 웅상고 교사 ▲대학부 이성범 서울 가톨릭대 교수 등 10명이 선정됐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韓·美 정상회담] 재외국민용 주민등록증 발급 등 현장 맞춤형 동포 정책 추진

    [韓·美 정상회담] 재외국민용 주민등록증 발급 등 현장 맞춤형 동포 정책 추진

    박근혜 대통령이 6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방문 두 번째 기착지인 워싱턴에 도착 직후 알링턴 국립묘지와 한국전 참전 기념비 공원을 참배하고 동포 간담회를 갖는 등 ‘강행군’을 펼쳤다. 박 대통령은 오후 5시쯤 한국전 참전 기념비 공원을 찾아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라고 적힌 태극기 모양의 화환을 헌화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의장대가 도열한 가운데 진행된 참배에는 에릭 신세키 미 보훈처장관과 역대 한미연합사령관 4명, 한·미 양국의 한국전 참전용사 10명이 함께했다.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한국전에 참전해 희생하신 분들과 역대 사령관들께 국민을 대표해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며 “오늘날 대한민국의 번영은 그분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사의를 표했다. 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2005년 3월 이곳을 참배한 사실을 회고하면서 “올해가 정전 60주년이자 동맹 60주년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앞서 박 대통령은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 애국가와 미국 국가가 연주되는 가운데 무명용사탑에 헌화했으며, 묘지 기념관을 찾아 ‘무명용사를 기리는 패’를 증정했다. 박 대통령이 묘지에 도착하자 예포 21발이 발사됐다. 박 대통령은 손을 흔드는 교민들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날 저녁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열린 워싱턴 지역 동포 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은 재외국민용 주민등록증 발급, 전문직 미국 비자 쿼터 1만 5000개 확대 추진, 동포 자녀 한글·역사 교육 등 구체적인 동포 지원 방안을 약속했다. 박 대통령은 “현장 맞춤형 동포 정책이나 영사 서비스 등 삶의 어려움을 먼저 찾아서 대응하는 ‘선제적 맞춤형 지원’으로 바꿔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운영 4대 원칙의 하나인 ‘현장 중심’ 행정 서비스를 동포사회에도 그대로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방미 수행단에 임종훈 청와대 민원비서관이 포함된 것도 해외동포들의 민원을 적극적으로 듣고 챙기라는 박 대통령의 뜻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마리사 천 연방 법무부 부차관보와 박충기 특허법원 판사 등 미국 주류 사회에 진출한 한국계 차세대 리더들을 언급하면서 “새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창조경제로 세워놨는데 (창조경제가 잘되면) 이처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창조적 리더들이 될 수 있다”면서 “앞으로 동포 청년들에게 창조경제 발전에 기여할 기회를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대해 “큰일 생기는 것이 아닌가 염려하시는데 안보와 경제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으니 걱정 안 해도 된다”면서 “우리는 항상 대화의 문을 열어 놓고 있다”고 밝혔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채찍의식·소 등 타기’ 성인식 치르는 하마르족

    ‘채찍의식·소 등 타기’ 성인식 치르는 하마르족

    에티오피아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 달리 3000년의 긴 역사를 가졌다. 솔로몬왕과 시바 여왕의 아들 메넬리크 1세가 초대 황제에 오른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6세기에 이슬람교도에 의해 14년간, 그리고 1936~1941년 이탈리아에 의해 5년간 지배를 받은 것을 제외하면 외세의 압제에 놓인 적이 없다. 덕분에 고유한 문화와 풍습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에티오피아 남서부에 있는 오모 계곡에는 다양한 소수민족들이 태고의 모습을 간직한 채 살고 있다. EBS에서 3일 밤 8시 50분에 방송되는 ‘인류원형탐험’ 제작팀은 독특한 장신구와 진흙으로 치장하기를 즐기며 ‘채찍의식’과 ‘소 등 타기’를 통해 성인식을 치르는 하마르족을 만났다. ‘채찍의식’은 성인식을 하는 소년의 친척 여인들이 성인식을 통과하고 결혼을 하지 않은 ‘마자’에게 회초리를 맞으며 성인식의 성공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때리는 사람은 있는 힘껏 회초리를 휘둘러야 여인을 존경하는 것이며, 회초리를 맞는 여인도 기꺼이 고통을 인내해야 한다. 고통을 견디고 상처와 흉터를 남기는 일은 훌륭한 여성임을 나타냄과 동시에 성인식을 치르는 가족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가족이 더 많이 맞으면 소년이 남자로 성숙해지고 잘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친척 여인들은 더 큰 희생을 원하고 먼저, 더 많이 회초리를 맞기 위해 다툼이 생기거나 마자에게서 회초리를 뺏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하마르족 남자에게 성인식은 매우 의미 있는 행사다. 성인식을 통과해야만 어른으로 인정받고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자격을 준다. 성인식은 개인의 의식일 뿐 아니라 하마르족을 결속시키는 마을 전체의 축제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보호자에게도 중요한 행사이다. 가족이 성인식에 성공하는 일은 가족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며 보호자는 소년이 하마르족 사회의 어엿한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마싱의 성인식을 앞두고 가족들이 분주해졌다. ‘소 등 타기’를 할 때 힘을 낼 수 있도록 돕고자 벌에 쏘여가면서 꿀을 따고, 꿀과 우유 그리고 소 피를 섞어 특별한 건강식을 준비한다. 성인 남자만 소유할 수 있는 의자 겸 목침 ‘부르코토’도 며칠 동안 정성들여 만든다. 하마르족 청년들은 주변 위험으로부터 부족을 지키고 가족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을 인정받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때문에 하마르족 남자들은 소 등을 뛰어넘는 성인식을 통해 자신의 힘을 증명한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사설] 60세 정년 연착륙하도록 사회적 지혜 모으자

    55세인 정년이 2016년에는 60세로 연장된다. 국회는 어제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원회를 열어 정년 연장을 권고가 아닌 의무 사항으로 못 박아 ‘정년 60세 연장법’을 통과시켰다. 60세 정년은 300인 이상 사업장에 우선 도입하고 2017년에는 300인 이하 전 사업장으로 확대된다. 그러나 기업 측도 임금피크제와 같은 임금 조정 조치를 통해 인건비 부담은 어느 정도 덜게 됐다. 정년 연장은 여러 가지 여건을 감안하면 불가피하다. 우리나라는 현재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돼 경제 활력을 잃고 있다. 경제활동인구(15~64세)는 2016년 3704만명을 정점으로 줄어들고 2017년에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14%를 넘어선다.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고 경제 성장을 통한 복지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정년 연장을 외면할 수만은 없다. 더군다나 베이비붐 세대 등을 포함한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노후에 대해 별다른 준비가 돼 있지 못하다. 연금도 충분치 못한 데다 정년과 연금 수령시기 간 격차가 생기는 등 ‘연금 절벽’이 발생하고 있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정년 연장은 세계적 추세이지만 우리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평균 정년은 57세이지만 실질 퇴직 연령은 이보다 훨씬 이른 53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에 비해서도 10년 차이가 난다. 이웃 일본은 이미 1998년 정년 60세를 의무화했으며 이달부터는 근로자가 희망할 경우 65세까지 고용을 보장하고 있을 정도다. 같은 아시아권인 싱가포르와 타이완도 62~63세 수준이며, 더 늘릴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정년 연장에 대해 노동계는 환영하고 있지만 기업은 시기상조라며 반대하고 있다. 연공서열형 임금체계여서 정년이 늘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은 더욱 커지게 된다. 이 때문에 재계는 정년이 연장되면 신규 채용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와 청년실업이 심화될 것으로 우려한다. 고용을 놓고 청년층과 장노년층이 대립하는 ‘세대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다. 또 여건이 어려운 중소기업은 정년 연장을 따라가지 못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가 더 벌어져 양극화가 심해질 수 있다. 일부에서는 일본이 준비 기간을 거쳐 정년을 60세로 연장한 것을 들어 정년 연장 도입 시기를 2016년으로 정한 것은 성급하다며 이론을 제기한다. 그러나 경제 성장을 압축적으로 이룬 데서 보듯 연금, 사회복지, 고령화 등 우리에겐 모든 문제가 준비할 여유를 주지 않고 일시에 닥쳐온다. 정부와 기업, 노동계는 정년 연장이 연착륙할 수 있도록 양보와 이해, 희생의 바탕 위에서 서로 지혜를 모아야 한다. 손해 보지 않겠다고 버틸 게 아니라 각자 하나씩 버리는 대승적 자세를 가지면 임금피크제, 일자리 충돌 등에 대한 해법을 찾을 수 있다.
  • ‘60세 정년’이 불편한 청년

    ‘60세 정년’이 불편한 청년

    정치권이 근로자 정년을 60세로 연장(현행 55세)하는 데 사실상 합의하자 젊은 층 사이에서 “청년 고용이 더 악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청년들도 기대 수명이 계속 증가하는 현실에서 부모 세대의 정년을 늘려야 한다는 데 공감하지만 “중·장년층의 안락함을 위해 일자리, 연금 문제 등에서 젊은이들에게만 자꾸 희생을 강요하는 것 같다”고 불만스러워한다. 23일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정년 연장이 청년층 구직에 미칠 영향에 대한 여러 의견이 올랐다. “청년 실업이 느는데 정년 연장까지 하면 결국 취업 준비기간이 3년쯤 더 늘지 않을까 걱정된다”(아이디 ‘ma*****’)거나 “정년 연장 때문에 (기업의) 모집 인원 중 최소 5분의1은 줄어들 것 같다”(‘pe*****’) 등 걱정 섞인 목소리가 많았다. 2년째 구직에 애를 먹는 취업준비생 강모(28)씨는 “정년이 연장되면 효율성에 목매는 기업은 분명히 청년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면서 “구직하면 나도 언젠가는 정년 연장의 혜택을 보겠지만 너무 먼 일이라 와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취업준비생 이모(25·여)씨는 “부모님 정년이 연장돼 가정 경제가 안정되면 취업에만 매진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낙관적 반응을 보였다. 정년 연장으로 20~30대 직장인들에게 업무 과부하가 걸릴 것을 염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2년차 대기업 사원인 황모(27)씨는 “과장급 이상 상사들은 실적 쌓기를 위해 일만 벌이고 실제 업무는 현장의 5년차 이하 직원들에게 떠맡긴다”면서 “방향을 지시하는 사람만 많고 정작 노 젓는 사람은 줄어들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3년차 직장인 장모(28)씨도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거나 고령 직원의 보직을 고문 등으로 바꿔 업무량에 맞춰 임금을 일부 삭감하는 등 추가 대책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년을 늘리면 50대 후반 인력의 기술력, 지식 등을 오래 활용할 수 있어 개인과 조직 모두에 이득이 돼 찬성한다”면서 “다만 정년 연장이 구직시장에 새로 진입하려는 이들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면 세대 간 긴장과 갈등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우리 존재 사라지는 날 고대… 정의구현 필요없는 세상 오길”

    “우리 존재 사라지는 날 고대… 정의구현 필요없는 세상 오길”

    “우리의 존재가 사라지는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정의로워져서 특별히 정의 구현을 위해 누군가 나설 필요가 없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것이지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지난 11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7년 만에 새 대표를 선출했다. 서울대교구 소속 나승구(50) 신부다. 2006년부터 대표를 맡아온 전종훈(57) 신부는 삼보일배·오체투지 순례와 같은 고된 활동의 후유증으로 건강이 나빠져 물러났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유신독재 때인 1974년 결성돼 민주화의 굽이굽이에서 뚜렷하고 의미있는 이정표를 남겨왔다. 1987년 박종철 고문 치사의 진상을 폭로해 거대한 민주화 함성의 용광로인 ‘6월 항쟁’에 불을 댕긴 것이 정의구현사제단이었다. 나 신부를 20일 그가 안식년을 보내고 있는 서울 영등포구 도림동성당에서 만났다. 1991년 사제 서품을 받은 그는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 지도신부, 서울 신월동성당 주임신부 등을 지냈다. “사제 서품을 받은 그해 봄 강경대와 김귀정이 시위현장에서 경찰 폭력진압에 사망했어요. 이후 ‘분신정국’이라 불렸던 청년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계속됐지요. 이후 효순이·미선이, 부안 핵폐기장, 새만금 등 너무 많아 열거할 수도 없는 불합리한 일들이 이어졌고, 저는 가급적 현장에 그들과 같이 있으려고 했어요.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나 어렵다, 나 정말 힘들고 지쳤다고 말하는 건데, 그들 곁에 내가 있어 힘이 돼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지요. 그것이 바로 제가 알고 있는 하느님 복음의 실천이기도 했고요.” 그는 정의구현사제단 탄생의 시대적 배경이었던 유신독재를 언급하며 “공공성의 견지에서 보면 지금이 유신독재 때보다 더 가혹할 수도 있다”고 했다. “과거 군사독재가 있던 자리를 이제는 재벌과 독점자본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윤 창출에 혈안이 된 자본의 놀음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상처받고 고통당하고 희생되고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진보’와 ‘보수’로 갈라놓고 보는 이분법이 사회 통합을 해치는 주범이라고 말했다. “어느 쪽을 보수냐 진보냐로 나누는 것은 주로 정치권의 행태입니다. 자신을 정통 보수라거나 정통 진보라고 명확히 갈라서 생각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겁니다. 사안별로 그때그때 이게 옳다 저게 옳다 판단을 하는 것이죠. ‘종북’이니 ‘꼴보수’니 하는 말들을 없애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대통합은 이뤄질 수 없습니다.” 그는 “미사 때 강론을 하면서 용산참사나 강정마을 등을 언급하면 마음이 불편해져서 중간에 나가버리시는 어르신들도 계시다”면서 “그분들의 생각도 존중하고 그분들의 얘기를 끝까지 잘 들어드리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김태균 기자 windse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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